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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이라는 영화가 상영중입니다. 처음 들어보시는 분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속에서 사실 다른 화제는 모두 묻혀버렸다고 봐도 좋을 2016년 겨울. 왠지 예술영화 취급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출연하는 역사 탐방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목의 '나의 살던 고향'은 바로 만주 벌판, 즉 오래 전 고구려를 세웠던 조상들이 살던 넓은 그 북쪽의 땅을 말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연출을 맡은 류종헌 감독이 친한 형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 영화를 보러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류종헌 감독은 본래 영화인이 아니고, 보시는 분들은 단번에 알아 보시겠지만 본래 영화로 상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는 것도 금세 드러납니다. 별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찍은 영상은 남극 탐험대나 에베레스트 등반대 보도 영상 못지 않게 흔들리고, 하다 못해 요즘은 모든 분야에서 필수인 드론을 이용한 공중 샷 하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데가 있습니다. 혹시 역사에 좀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평소 역사를 멀리 하고 살던 분들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지식의 다과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별 영향이 없는 듯 합니다.

 

 

 

영화 도입부. 도올선생은 높은 비사성 자락에서 발해만과 서해를 바라봅니다. 먼 옛날. 국사 교과서 어딘가에서 들어 본 비사성이라는 이름이 뇌세포를 자극합니다.

비사성은 요동반도의 맨 끝, 한때 중국 근대사에서 격동의 현장이었던 따롄(大連) 항 부근에 있습니다. 요동반도의 끝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 본토와 한반도를 잇는 근해 수로에서 최고의 요지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에서 거의 모든 중국 수군은 고구려 본토를 공격하기 전에 항상 비사성을 타격했습니다.

 

그 비사성을 시작으로 도올 선생은 압록강 북쪽, 환런과 지안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들을 한발 한발 짚어 갑니다.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은 바로 환인의 오녀산성. 주몽이 처음으로 고구려를 세웠다는 졸본성(홀본성)의 오늘날 이름입니다.

 

저 먼 절벽 위가 바로 오래 전 졸본성이 있었던 성터입니다.

 

 

도올선생도 언급하지만 과거 유대인들이 로마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떤 마사다 유적이나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유적인 바위 위의 성 시기리야를 연상시키는 그런 장대한 풍경입니다.

 

 

오녀산성을 위에서 촬영한 샷은 참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략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함부로 적들이 침입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 지형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오녀산성을 보여주면서 도올선생은 말합니다. "역사라는 것도 그 땅을 밟아 보기 전까지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입니다.

 

오녀산성의 장관을, 국내성/환도산성의 돌무더기를, 장군총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발해 상경의 무너진 성벽을 직접 보기 전의 고구려는 신화와 전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대단히 막연한 그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조 주몽이 오이 마리 협부라는 세 심복과 함께 거북이와 물고기가 모여 놓아 준 다리를 건너 그 어딘가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오녀산성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있는 요새의 간극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에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고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좀 아쉽기도 한데, 어찌 보면 또 크게 따질 일도 아니긴 합니다. 어차피 90분 짜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고구려 역사를 꿰뚫을 것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 즉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항상 먼 북쪽이라고 생각했던 만주 지도를 뒤집어 놓고, 반대로 만주에서 남쪽을 향해 한반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의 땅. 하지만 수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기도 한 역사의 현장. 그 땅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번이라도 궁금해 해 보신 분이라면 이 영상의 가치를 알아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귀한 기회를 주신 도올 선생과 류종헌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됩니다.

지금도 이 영화는 상영되고 있고, GV도 잇달아 열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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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개국 이후 드라마 몇 편의 책임프로듀서를 맡아 봤지만 단 한번도 캐스팅이 쉬운 적은 없었습니다. 좋은 대본을 찾는 일은 물론 어려운 일이고, 좋은 기획을 대본으로 발전시키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드라마 한 편을 같이 만드는 백여명의 스태프 중 어느 한 자리 '정말 좋은 사람'을 구하는 일 중 간단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 십중팔구는 '캐스팅'이라고 할 겁니다.

 

어떤 프로듀서도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방송국에서 원하는 캐스팅이 안 되고 날짜는 가고 있으면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가 않다"고. 그런데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본과 훌륭한 연출이 있어도, 좋은 배우가 붙은 상태와 붙지 않은 상태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대본은 아주 유명한 배우가 없어도 그 빛을 발휘합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가 출연해도 망하는 드라마들이 많고, 반대로 무명의 신인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드라마도 살리고 자신도 몸값을 높이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죠. 하지만 만약 그 대본에 정말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붙었다면, 그건 정말 대박이 났을 겁니다.

 

유명한 배우의 힘은 일단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요즘 TV 드라마의 경쟁자는 다른 채널 드라마가 아닙니다. 일단 채널 자체도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TV 외에도 스마트폰이나 IPTV, 그리고 수많은 다른 엔터테인먼트들이 경쟁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초반에 '어? 재미있어 뵈는데 한번 볼까'하는 생각에 들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저희는 '판타스틱'을 준비하면서 주상욱김현주라는, 믿을만 한데다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할 수 있었습니다. 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캐스팅에는 설득이라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그리고 두 배우 모두 지난한 설득 끝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습니다만, 주상욱이 망설인 이유 중에는 "어떻게 연기해야 좋을지 잘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몇개 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발연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본으로 이 드라마를 접한 사람들은(아, 물론 무식한 저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다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발연기가 뭐가 어려워?' 잘 하는게 어렵지 못하는게 뭐가 어려울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고 1주일 안에 드디어 그 '발연기'를 눈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2부의 '대본 연습' 신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극중 드라마 작가 소혜(김현주)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던지며 대본을 자기에게 맞게 수정해 달라는 해성(주상욱)에게 짜증이 나서 '킬러의 고뇌를 눈빛으로 연기하는' 고난도 감정 신을 쓰고, 대본 연습을 요청해서 해성을 망신시키려 하는 내용입니다.

 

신이 나서 대본을 읽어보던 해성은 마침내 감독과 상대역 여배우 앞에서 얼어붙고, 상대역 여배우는 그 자리에서 역할에 몰입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을 보다가 긴장한 나머지 평소보다 더 심한 발연기를 폭발시킵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다가 아, 왜 저 장면이 어렵다고 한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상욱은 해성의 캐릭터를 분석해 보고, '한류 톱스타가 할 수 있는 선의 발연기'를 구현하려 고민했기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발연기'를 생각하면 흔히 장수원의 '로봇 연기'를 떠올립니다. 이 '로봇 연기'는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아예 다른 하나의 장르로 간주해야 할 부분이지만, 아무튼 극중 해성이 로봇 연기를 보여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류해성은 아시아권의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는데, '로봇 연기'로 그런 자리에 갈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막상 주상욱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그 '한류스타의 발연기'라는 것이 오히려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적게는 2%, 많게는 5% 정도 부족한, 아주 끔찍한 연기도 아니면서 절대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그래서 뭔가 명연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딱 좋은, 절묘한 선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연기였습니다.

 

이 장면은 아마 방송으로 익히 보셨을테니 메이킹 영상을 가져 옵니다.

 

 

 

 

 

 

이 발연기 장면은 3부에서도 선배 배우 박원상의 지도를 받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아무튼 그 뒤로 인터넷에 기사가 뜰 때마다 '발연기 장인'이라는 별호가 주상욱에게 붙는 걸 보고 역시 큰 노력은 누가 봐도 확연히 보인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누가 뭐래도 마에스트로급입니다. 정말 요소 요소에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회 '발연기'와 '깨방정'으로 분위기를 살려 주는 주상욱이 큰 주목을 받으며 노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 관계자로서 참 흐뭇한 일입니다. 

 

 

 

 

 

 

P.S. 그런데 이 주상욱의 기막힌 발연기 연기가 중국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안타깝습니다. '한국에서 발연기로 소문난 배우가 중국에서는 우상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중국 시청자들이 발연기와 명연기를 구별할 줄 모른다고 비웃은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이야기입니다.

 

문득 개인적인 경험이 떠오릅니다.

 

몇해 전에 홍콩에서 방송학을 강의하시는 여교수님 한분과 우연히 저녁 자리에서 만난 일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조예가 깊었던 이 분은 저를 보더니 이런 저런 덕담을 하다가 "한국 여배우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들 예쁜 것 뿐만 아니라 연기까지 잘 하느냐. 연기 못하는 배우가 없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누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더냐"고 물었더니 이 분이 그 자리에서 줄줄이 십여명의 이름을 대는 겁니다. 이영애, 송혜교, 김태희, 김희선, 수애, 최지우, 전지현, 하지원.... 그랬더니 자리에 있던 다른 분이 웃으면서 "그러냐. 그런데 지금 말한 여배우들이 모두 얘기하시는 것만큼 명배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중국 여배우들이 훨씬 더 연기를 잘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좌중의 많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이 교수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누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더냐"고 반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장만옥, 유가령, 관지림, 서기, 이가흔, 장백지, 판빙빙..."이라고 어렵지 않게 중화권 여배우들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막 웃으면서 "그런가요? 내가 보기엔 장만옥 외에는 다 별론데..." 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시각차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날의 결론은 1) 남의 떡이 커 보인다 2)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연기력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실 2)는 우리가 평소에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남자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조니 뎁이나 조지 클루니가 명배우로 꼽히는 반면, 키애누 리브스나 매튜 매커너히, 올란도 블룸은 수시로 관객들이나 평론가들로부터 '발연기'라고 혹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배우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자의 배우들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죠. 특히나 비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저 배우들의 연기력이 혹평의 대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아 그래?' 하는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역시 언어의 장벽이란 이럴 때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 시청자 여러분들이 혹시 이 글을 접하시게 된다면(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 저희는 중국을 비하하려는 생각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점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인기는 높지만 발연기로 놀림 받는 배우가 중국(혹은 일본, 혹은 대만, 혹은 브라질)에서 인기를 얻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배우가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설정 자체가 불쾌하시다면 그건 어쩔수가 없겠지만, 요즘처럼 문화 교류가 빈번한 시대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극중 해성이 중국에서 환대 받는 장면은 최근 중국 스타 허위주(许魏洲, 쉬웨이저우)가 내한했을 때 인천 공항에서 펼쳐졌던 대대적인 환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만약 호가(胡歌, 후거) 같은 배우가 내한한다면 환영 인파로 정말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오해는 말아 주시길. 늘 얘기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대신 그냥 재미있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P.S. 2. 주상욱의 연기와 함께 꼭 같이 거론됐으면 하는 분은 바로 이분. 둘의 케미는 진정 환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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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무슨 시사회야... 하시던 분들. 제대로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극장가의 코어,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드라마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 얘깁니다.

 

사실 배우들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 드라마는 제때 만들어서 방송 내기 바쁩니다. 바빠서 죽을 새도 없고, 밤을 밥먹듯 새 가며 납기일 맞추는 게 제격입니다. 게다가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려면 대관해야지, 조명 마이크 시설 갖춰야지, 영상이 제대로 재생되는지 영상 플레이도 체크해야지, 음향도 알아봐야지, 정말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고 제대로 작정해야 가능합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듯, 본방 거의 1주일 전에 1회를 완성에 가까운 형태로 내놔야 한다는 짐이 제작진에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 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행사를 기획한 JTBC 홍보마케팅팀과 영상을 만들어 주신 조남국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행사는 결국 아주 단순한 니즈, 즉 "어떻게 하면 드라마를 방송 전에 널리 알려 볼 수 있을까"하는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극장에서 시사회를 해 보자는 거였죠. 물론 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제대로(사실은 티켓을 팔아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대형관에서 팬들과 몇몇 관계자들, 파워블로거들을 초청해서 해 보자는 생각을 한 겁니다.

 

 

 

뭐 기왕 판을 벌인 김에 이런 등신대 패널을 설치해 팬들이 사진 찍을 수 있는 플레이스를 만들었고

,

 

입장할 때 팬들이 써 넣은 사연에 따라 소원 들어 주기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이날 이벤트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한 분이 있습니다.

 

 

 

 

주상욱씨 팬 중에 "제 눈을 보고 제가 어디가 예쁜지 말해주세요"라는 사연을 쓰신 분.

 

 

 

 

다 쓰러졌습니다. ㅋ (얼마나 예쁜 분이었는지는 상상에...)

 

 

굳이 길게 말로 하는 것보다, 대체 어떤 행사였는지 직접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다행히 관객 반응도 좋더군요. (행사에 대한 반응 말고 드라마에 대한 반응^^)

 

 

 

 

 

박수갈채 속에 상영이 끝나고, 행운권 추첨 이벤트까지 이날의 행사가 끝났습니다.

 

 

아, 이미 앞에 감사 인사는 JTBC 홍보마케팅팀과 조남국 감독님에게 드렸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JTBC의 장남 장성규 아니운서. 이날 제작발표회에 이어 시사회까지 환상의 진행 실력을 뽐냈습니다.

 

요즘 인터넷방송 '짱티비씨'로도 인기 폭발입니다.

 

짱티비씨 보실 수 있는 곳은 페이스북의 https://www.facebook.com/JjangTBC  여기나 http://afreecatv.com/jjangtbc 

 

 

 

영상을 퍼올까도 생각해봤지만 지금 짱티비씨는 짱티비씨고,

 

주제는 판타스틱.

 

혹시 그동안 판타스틱 예고 한번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엑기스를 드립니다.

 

옛다.

 

 

 

 

 

에... 아무튼 재미있다는 이야기고요.

 

첫 방송은 9월2일 금요일 밤 8시30분.

 

앞으로 두어달 동안 여러분을 흥분시킬 그 드라마입니다.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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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이라는 대본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이 드라마가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그 다음은 불치병이라는 소재를 전혀 무겁지 않게 다뤘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와 톱스타라는 남녀 주인공의 구도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암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국내 드라마 중에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자세를 유지했던 드라마는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판타스틱'의 주인공 이소혜는 인기 드라마 작가. 어렵다는 장르 드라마에서 연속 히트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는 '갓소혜'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 소혜는 드라마 속 시한부 인생 대목의 자문을 위해 암 전문의 홍준기를 자주 만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바로 유방암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혜.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돈도 꽤 벌고 직업인으로서 기반은 굳혔지만, 버는 족족 돈은 가족들에게 들어갔습니다.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는 언니네가 들어가 살고 있고, 자신은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죠. 결혼은 커녕 연애도 언제가 마지막인지 가물가물.

 

이렇게 인생을 끝낼수 없다고 결심한 소혜는 마지막 나날을 화려하게  불살라 보기로 결심합니다. 10년 넘게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찾아내고, 평소 전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합니다. 그러는 사이, 오래 전 뭔가 관계가 맺어질 뻔 했던 류해성이 드러내놓고 자신에게 대시해 오고, 주치의인 홍준기도 "우리 사귀는게 어떠냐"고 제안해 옵니다. 심지어 홍준기는 현재의 삶을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암 환자입니다.

 

진작들 나타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무튼 인생이 마지막 나날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 아무튼 이렇게 해서 두 남자와 썸 타랴, 자신의 유작이 될 것 같은 드라마 집필하랴, 소혜의 분주한 나날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작가 본인의 판타지로 보이는 이 내용(연출자 조남국 감독은 이성은 작가에게 "본인이 하고 싶었던 연애 내용이 다 들어가 있는 거냐"고 대놓고 얘기하십니다 ㅋ) 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라는 점에서 볼 때 김현주와 주상욱은 최상의 조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따질 땐 따박따박 따지고 바늘끝처럼 신경이 예민한 여자이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소혜 역이라면 누가 봐도 김현주가 적격입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 속은 어린이인 철없는 한류 스타 역할을 주상욱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드물죠.

 

특히나 팬들 앞에서는 허세 가득한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과시하지만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에게는 애교 덩어리. 겉으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마음 속은 히트맨 아닌 '히타맨'인 남자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겁니다.

 

 

 

캐스팅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지만(누군가 말했습니다. "캐스팅만 안 해도 되면 드라마 프로듀서는 신의 직업"이라고), 어쨌든 두 주인공이 결정된 뒤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왕년의 거칠 것 없는 여고 퀸에서 지금은 거대 로펌 오너의 아내로 숨 죽여 살고 있는 백설 역을 박시연이 맡게됐고, 백설로 하여금 답답한 현실을 박차고 역시 자기의 삶을 찾게 하는 연하의 남자 상욱 역에 지수가 캐스팅됐습니다.

 

사실 순서상으로 가장 먼저 캐스팅된 사람은 의사 홍준기 역의 김태훈입니다. 무시무시한 연기력 덕분(?)인지 그동안 이상성격의 인물들 역할을 자주 맡는 바람에, 저는 이 배우의 진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보여지지 않았던 엉뚱한 김태훈의 면모가 드러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캐릭터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영상. 저 다섯 주인공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깨알같은 "이거 너무 잘생긴거 아니야?" ㅋㅋㅋ

 

 

 

 

 

 

생각해 보면 올해만큼 사회 각계에서 '여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해도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각종 혐오 범죄와 여혐 논란, '미러링'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고, 그런 가운데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 전반에서 '유리 천장'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예견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저희는 올해 '여성'이 뭔가 중심에 오는 이야기들에 계속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여성, 세상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여성, 사랑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여성,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이야기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욱씨남정기'의 욱다정 이요원이었고, 배경이 조선시대이기는 합니다만 '마녀보감'의 연희도 저주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줬습니다. '청춘시대'의 다섯 주인공 역시 아직 미생의 존재인 여대생들이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눈치 채셨겠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생활로부터 해방된 여자'의 이야기는 '여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한국 사회의 모든 성인들은 사회에 나서는 순간 주위를 둘러 볼 여유 없이 '앞으로 앞으로' 자전거 페달 밟기를 강요당합니다. 다리를 멈추는 순간 자전거가 쓰러지고 너는 낙오된다는 교훈 속에서 수십년간 훈육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시한부 진단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자녀 있는 분들에게는 큰일 날 얘기죠.^^) 

 

 

아무튼 '판타스틱'은 넓게 보아 남자든 여자든 '생활로부터 벗아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작은 판타지입니다. 어떤 계기에서든 조금 여유를 가지고, 그 지긋지긋한 생활의 쳇바퀴에서 살짝 내려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잠시 즐겨 보는 것이 힘든 일상에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P.S. 이 드라마 1,2회를 보시고 나면 옛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질 겁니다. 문득 한참 떠올리지 않았던 이름들을 찾아 보고, 전화번호가 011이나 016으로 되어 있어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다들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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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청춘시대' 티저에 쓰였던 윤동주 시인의 시 '병원' 입니다. 이미 대본을다 읽은 뒤였기 때문에, 티저에 들어간 저 싯구절이 더욱 적확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청춘시대'를 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예상대로, '너무 자극이 약하지 않느냐' '전개가 느리다' '대체 누가 남자 주인공이냐'는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기간이 지나고, 서서히 이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폭발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에 굳이 주인공이 있다면 주인공일' 윤진명, 즉 한예리의 지독한 불행입니다. 그 불행이 단적으로 나타난 장면은 지긋지긋한 알바와 그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든 매니저의 갑질이 아니라, 어느날 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윤진명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복도. 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는 "수명아, 그동안 엄마 불쌍해서 못 간 거지? 내가 안다. 우리 아들. 6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를 되뇌며 주위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 어디선가 다가온 의사는 말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안정됐습니다."

"...?"

"바이탈이 안정됐습니다."

"예?"

"원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침묵하는 어머니. 어떤 어머니들에게든 '아들의 죽음'보다 절망적인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지만 '청춘시대' 4회의 이 장면은 아들의 죽음보다 더 큰 절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던 어머니가 '아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에 고개를 떨궈야 하는 무서운 상황입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윤진명은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하고 돌아서 가 버립니다. 그리고는 박재완(윤박)에게 '날 좋아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집(벨 에포크)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눈물을 보입니다. 우는 이유는 "삶이 고달파서"가 아니라 "손톱이 빠진게 너무 아파서".

 

스물 여덟의 대학 졸업반. 세 군데 알바를 뛰어야 간신히 이어갈 수 있는 삶. 항상 바라보고 있는 두 사채업자의 그림자. 병원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 남동생. 그 손을 놓지 못하고 빚만 쌓아 가고 있는 어머니. '절망적'이란 말 하나로 설명하기 힘든 한 여자의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의 어깨를 눌러 옵니다.

 

어쩌면 이런 무게를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그 이유로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은 그래도 윤진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람들이라야 이런 드라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 '절실함'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때립니다.

 

 

 

 

 

 

 

또 하나의 동력은 막내 유은재(박혜수)의 첫사랑입니다. 은재가 은근히 좋아하는 복고풍 미남(대본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은재가 귀여워 미치겠지만 그 눈치없음에 환장할 것 같은 선배 윤종열(신현수). 이 구도가 너무나 깜찍했습니다.

 

과연 요즘의 스무살 안팎 청년들이 아직도 저렇게 깜찍하게 연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 유은재와 윤종열의 모습은 '요즘 대학생'이라기 보다는 한 10여년 전 대학생들의 모습과 더 닮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아직 철이 덜 든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처음 다가가 보여주는 동작이 상대에겐 '시비 걸기' 내지는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아 괴롭히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특히나 상대가 경험이라곤 저혀 없는 초짜 중의 초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둘의 연애는 시작하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콧물 흘리는 모습조차도 귀여운 박혜수, 그 박혜수를 자기도 어찌할 줄 몰라 바라보지만 어쨌든 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은 신현수. 두 배우의 매력이 이 드라마를 살린 원동력 중 하나라는 건 아마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리얼한지'에 대해서는 큰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는 2016년의 진짜 대학생들 이야기이기 보다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진짜 순수했던 그 시절'의 그림에 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젊은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아마도 매우 중요한 한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 배우들은 시청자들과 함께 시공을 넘어 누구에게나 있을 '젊은 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태곤 감독의 세심한 연출은 그 공감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몇 회 남지 않은 '청춘시대'. 일단 이 드라마는 12회로 끝나지만 이 끝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어디 가서 이만한 완성도의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확히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디서든 윤진명, 강이나, 정예은, 송지원, 유은재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될 날을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는 한껏 웃으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판타스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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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거의 1년 전 일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벨 에포크'라는 대본을 받아 보게 됐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박연선 작가님의 작품이라 두 손으로 고이 받들어 읽어 봤는데(당시엔 5부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1부 읽고 나면 2부가 궁금하고, 2부 읽고 나면 3부가 궁금하고, 아무튼 그래서 순식간에 5부까지 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또 뒷 얘기가 궁금하더군요.

 

하지만 팬으로서의 자세는 자세고, 일단 냉정을 되찾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어디 있지? 로맨스는? 연애 상황에서의 긴장감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뭐 당연합니다. 원래 없었으니까요. 뜯어볼수록 정말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1년 전이라니까 엄청나게 옛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 제작에서 1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농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태양의 후예'와 '닥터스'의 원본 대본은 이미 5년 전에 나와 있었습니다.)

 

 

 

 

사실 용기의 문제였습니다. 네. 위에 말한 '드라마의 흥행 요소들' 없이도 잘 되는 드라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꽃같은 여대생 다섯이 한 집에 사는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이 기대할 만한 상업적인 요소는 굉장히 적은 드라마가 분명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잠시 오고 가다가 어찌 어찌 해서 이 드라마는 다른 방향을 타게 되고, '그래, 좋은 대본은 다 임자가 있는 거구나' 하고 미련을 접었드랬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대본이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뭐랄까, 내가 어쩔수 없이 떠나 보낸 옛 애인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배경음악: '마치 어제 만난 것 처럼~~')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용자, 함영훈 CP가 "이 작품을 우리가 해 보자"고 주장했습니다. 뭐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상업적으로 큰 기대를 할 만한 로맨틱 코미디 종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품성 있는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시일도 촉박했지만 아무튼 '지금 와서 이름 있는 스타들이 이 드라마에 출연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신선한 얼굴들로 여대생들을 채우고, 원작의 품격을 최대한 살려 가 보자'는데 다들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연출해 보고 싶어하던 이태곤 감독도 순식간에 섭외됐습니다.

 

그 준비과정에서 제가 한 거라곤 가끔 옆에서 구경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아 네, 저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 차곡차곡 들어차는 젊은 배우들의 면면을 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주축인 다섯 여대생이 관건인데, 대략 이렇습니다.

 

 

 

 

 

유은재(박혜수) :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신입생. 어찌 보면 작중 화자 역할. 네 선배들이 모여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유은재가 들어 오면서 드라마가 시작됨.

 

용팔이 동생 박혜수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내기 여대생 느낌이 팍 납니다. 대본을 찢고 나온 듯한 적역.

 

 

 

 

정예은(한승연) : 가장 여성적인 성격. 살짝 평범한 자신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여대생.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목을 매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친구가 항상 가장 속을 썩임.

 

카라의 한승연인데 뭐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송지원(박은빈) :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연상되는 선머슴아. 입심은 신동엽인데 사실 실전 경험은 없고 입만 열면 어디서 주워들은 구라가 쏟아짐. 사람들 많은 자리에선 조용하고 어색한 걸 못 참아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그러다 보면 항상 집엔 혼자 돌아오는 타입.

 

사실 박은빈이라면 단아한 한복 차림이 기억에 남는데, 이렇게 단장하니 또 새로운 느낌이군요. 아래 예고에서 막춤 신을 보시면 그 '단아한 느낌' 속에 감춰진 끼를 느낄수 있습니다.

 

 

 

 

강이나(류화영) :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화려하고 섹시한데다 개방적인 성격. 후원해 주는 '오빠'가 셋은 있어야 생활이 유지된다. 셰어하우스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는 역할.

 

제작진이 가장 고심 끝에 캐스팅한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력 면에선 류화영보다 훨씬 앞선 후보들이 꽤 많았지만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은 류화영의 눈빛 하나에 올인. 기대됩니다.

 

 

 

 

윤진명(한예리) : 공부와 알바 외에는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경주마 인생. 아무 여유 없는 청춘이지만 그래도 청춘에겐 청춘의 빛이 내리쬐기 마련. 대체 그녀 인생의 봄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는 타입.

 

연기력으로 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로 보나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 줄 맏이(극중에서도 맏이). 어떻게 봐도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예리라는 배우에겐 그리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멜로멜로한 장면들이 기대되는 작품.

 

 

 

 

 

 

 

 

이렇게 서로 섞이지 않는 다섯 색깔의 여대생들이 한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대생 밀착 동거담'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습니다. 사실 기운 팔팔한 여자 다섯이 한 집에 머리 맞대고 있으면 가장 큰 화제가 뭐겠습니까. 남자와 연애겠죠.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사 수위'는 어찌 보면 꽤 높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중요한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프니까 청춘' 어쩌고 하는 말도 꼰대들의 짜증나는 헛소리로 여겨지는 지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냥 그대로 놔 두고 봐 줘'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청춘이라고 늘 즐거울 수도 없고, 아무리 세상이 힘들다고 절망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는데 뭘 그리 분석하고 위로하려고 애쓰느냐는 얘기죠.

 

그냥 그대로 두고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티저.

 

 

 

 

이 드라마의 원 제목이자 이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의 이름인 '벨 에포크 Belle epoque' 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말~1차대전 발발 전까지의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과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윤동주 시인의 시가 깔려 있는 이 티저의 영상과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됩니다.

 

하긴. 그 언제라고 청춘이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 있었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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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지난주 '욱씨남정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욱다정의 시원한 던지기 한판이었습니다.

 

화려한 손기술이었는데, 정확하게 이런 동작을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도 경기 중계방송에서 보던 빗당겨치기와 비슷한 한판이었는데,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영상 준비했습니다.

 

 

 

비교적 촬영 초기에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찍은 장면이라 이때까지는 욱다정 역의 이요원과 남정기 역의 윤상현이 아직 서먹서먹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잔혹한 액션 소화가 가능했는지도...(물론 농담입니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이요원이 몇 차례나 '빵' 터지는 바람에 촬영이 계속 중단됐습니다^^).

 

아무튼 현장에서 이 장면의 촬영을 지켜보며, 짧은 액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차례씩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던지며 노력하신 스턴트맨들의 프로 정신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 있는 현장 메이킹 영상. 아는 얼굴(?)이 나와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런데 욱다정은 대체 어디서 그런 고급 격투기를 익혔을까요? 사실은 3부 앞부분에 그 답이 숨어 있었습니다.

 

 

 

 

3부의 한 장면. 이요원의 머리 뒤로 사진 같은 것이 보입니다.

 

 

 

 

위치를 바꿔 봅니다. 벽장에 뭔가 상장 같은 것과 사진이 같이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궁금증 해결을 위해 경기도 모처에 있는 '욱씨남정기' 세트로 가 봅니다.

 

 

엘리베이터 홀을 지나

 

 

 

다정의 방으로 갑니다. 거실과 방 하나를 터서 아주 큰 원룸식 거주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위 장면에 나온 다정의 책상을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반대쪽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

 

 

 

방 한 구석에는 강한 여자를 상징하는 케틀벨이,

 

 

그리고 책장에 마침내 문제의 그 사진이 보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유도 단증과 검은 띠 도복을 입은 옥다정의 모습입니다.

 

욱다정은 본래 유도 유단자였던 것입니다.

 

단증은 대한유도회가 발행한 실제 단증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진짜 단증은 대개 초단이든 3단이든 '몇 단을 수여함'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는 그게 없군요.^^ 그리고 눈이 좋은 분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대한유도회장은 김정행 金正幸  현 대한체육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단증에 도장을 찍어 주신 분은 '김정신 金正辛' 회장입니다.

 

(이 표기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소품 제작 과정의 실수인지는 물론 모릅니다.^^) 

 

책장 속의 이 사진이 드라마 속에서 공개될 날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건 아직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개되던 아니건, 제가 가까이서 지켜본 드라마 제작진들은 보통 이 정도의 디테일은 반드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김희애 이성재 주연 '아내의 자격' 촬영장에는 극중 치과의사로 나온 이성재의 치과 의사 자격증이 극중 이름으로 만들어져 진료실에 걸려 있었고(물론 이 자격증을 클로즈업하는 장면 같은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 때에는 이순재 서우림 할머니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찍은 팔순 잔치 기념사진이 장지문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물론 이 사진 역시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 단 한번도 가까이서 비쳐진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소품들이 놓여 있는 공간, 그 공간이 출연자와 제작진에게 거는 마법의 힘을 무시해선 안될 듯 합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 하나가 모여서 일단 만드는 사람들을 홀리고, 나아가 시청자를 홀리는 것이니까요.

 

 

 

여기는 욱다정의 침실.

 

 

욱다정은 자기 전에 만화를 즐겨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방. 거실과 마찬가지로 화이트와 아이보리 톤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략하게 욱다정의 집을 살펴봤습니다. 이 집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남정기네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다음 기회에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황찬성 군의 활약이 5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더 이상 민폐 봉기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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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꼴갑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첫 두 편의 방송이 나간 뒤,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뭣보다 두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나 윤상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대의 찌질남 남정기가 그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받았을 때, 남정기라는 역할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할지는 상당히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의 화제성이 우선이냐, 연기력이 우선이냐도 논의의 대상이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 특히나 남정기 같은 캐릭터는 - 연기력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지만 요즘은 점점 화제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윤상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본인도 대본을 읽어보고 즉시 '이건 나만큼 잘 할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뭣보다 윤상현 카드가 현실이 됐을 때, 대본을 읽어 본 사람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배우의 열의와 연기가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윤상현이라고 완벽한 배우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목소리는 좋지만, 열연을 하다 보면 가끔 발음이 뭉개질 때가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경우에 성우 같은 발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 그런 발성이 역할에 훨씬 더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결점이 결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느 일터에나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윤상현은 압도적으로 전자에 속합니다. 육아...라기 보다는 아기 사랑 때문에 늘 붉은 눈으로 촬영장을 오가지만(새벽까지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서 눈을 붙여야 할 때에도 아기를 보면 너무 예뻐서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늘 밝은 모습으로 다른 출연자들에게 에너지를 전파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사실 남정기는 소심을 넘어 자칫하면 발암 캐릭터입니다. 누구든 자기 집에 호수도 확인하지 않고 신발 신고 들어와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긴다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당장 발끈해서 화를 내고 싸움을 벌였겠지만, 우리의 남정기는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죠. 연애를 했어도 정말 속터지게 했을 것 같고, 한마디로 21세기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되기엔 덜 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캐릭터입니다. 실수도 잦아서 거기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불쌍한 토끼처럼 움츠러들어서 심하게 뭐라 하기도 어려운, 마음 놓고 화내기도 쉽지 않은 답답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윤상현을 통해 표현되는 순간, 남정기 과장은 안쓰러운 마음에 왠지 도와주고 싶은 인물로 묘하게 살아납니다. 애정이 생겨 버리는 거죠. 이게 바로 이 배우의 진정한 능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끝까지 답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답답이 남정기가 욱다정이라는 인생의 웬수이자 멘토를 만나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갈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1회를 보고 나니 윤상현 이외의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했더라면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뭐 저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더군요. 쏟아지는 호평을 바라보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1,2회를 보시고 엉뚱한 장면에서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남정기는 왜 갑자기 방에서 묘한 소리를 내면서 파스를 붙이냐, 대체 낮에 뭐 하는 거냐 (대부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 인부 아저씨 대신 일당을 벌어 갚기 위해 이삿짐 나르는 알바를 한 거죠) 등에서부터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냐까지 다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 여기에 한꺼번에 묶어서 대답을 해 드립니다. 또 궁금하신 게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나?

▲ 상처를 한 것인지, 이혼을 한 것인지 궁금하실 분들이 꽤 있겠지만 남정기는 이혼남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 아니 그 성격에 왜 이혼을? 부인이 웬만큼 바가지 긁어도 잘 맞춰줬을 것 같은데?

▲ 전처 쪽에서 '너같은 남자랑 못 살겠다'고 한 셈인 거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요. 이해가 갑니다.

 

- 동생 봉기(황찬성)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듯?

▲ 1회에 나왔듯 정기의 현재 나이는 마흔하나. 봉기는 20대 중후반이니 최하 띠동갑 정도 되는 형제간입니다. 1회 아버지 용갑(임하룡)의 대사에도 있듯 "늘그막에 어디서 저런게 하나 튀어나와서..." 인 형제간이죠. 매일 맞을 짓을 하는 동생이지만 정기에게는 아들(?) 같아서 애틋한 동생입니다. 그래서 용돈까지 챙겨 줄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 그런데 봉기를 너무 실감나게 때린다.

▲ 원래 친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영화 '덕수리 5형제'에서도 이미 많이 맞았다고... (참고로 임하룡씨는 제작발표회 때 "(황)찬성이는 심형래 이후로 가장 나에게 많이 맞고 있다. 이걸로 곧 큰 인물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뭐 맞는 역할은 원래 맞아야 크는 겁니다.

 

- 1회에 엘리베이터에서 정기를 강제로 내리게 하는 사람은 누구?

▲ 1부엔 출연 분량이 없었지만 정기의 회사인 러블리 코스메틱의 실권자인 인사팀 신팀장(안상우)입니다. 본래 이 회사는 조사장(유재명)의 처가집 지분이 훨씬 컸고, 그래서 조사장도 처남인 신팀장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는 처지죠. 그래서 신팀장은 회사 인에선 안하무인으로 행동랍니다.

 

- 정기네는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인 서민이고 욱다정은 나름 상류층인데 같은 아파트 이웃이라는게 말이 되나?

▲ 혼자 살지만 넓은 집을 좋아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한 재산 형성에 아무 관심이 없는 욱다정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주보는 집이라도 집안 인테리어를 보면 같은 단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듯.

 

 

- 2회에 남정기에게 로케트 펀치 쏘는 여자는 누구?

▲ 은행 대출담당 여직원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김은지입니다. 참고로 윤상현씨와 한 집 사시는 분.

 

- 대체 아파트 복도에 자전거를 세워 놨는데 왜 65만원을 내야 하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10조 2항에 보면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복도 계단 등에 유모차나 자전거 등을 세워놓는 행위는 불법인 거죠. 그래서 이삿짐 나르던 인부는 그 자전거에 걸려 넘어지면서 팔을 다쳤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한 것이고, 욱다정은 그 원인을 제공한 자전거 주인을 찾아 책임지고 보상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 조사장은 왜 계속 양갱을 먹나?

▲ 원래 긴장하면 당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 혹시 양갱이 협찬인가?

▲ 협찬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제과업체든 협찬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꾸벅)

 

- 황금화학은 욱다정도 그렇고 지팀장(송재희)도 그렇고 너무 김상무한테 막말을 한다. 한국 회사에서 그게 가능한가?

▲ 좋은 회사라서... (먼산)

 

- 결국 이 드라마도 끝에 가면 남정기랑 욱다정이 연애하는 얘기로 갈거 아님?

▲ 사람 일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 같은...  글쎄, 일단 둘이 잘 어울리기는 할까요?

 

(뭐 오늘은 이 정도. 옥다정 쪽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부는 3월25일(금) 저녁 8시3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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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회사에 그런 얘기를 듣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3대 마녀'니 '5대 마녀'니 하는 여자들 말입니다.

 

개중에는 진짜 성격이 나쁜 여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이 친목 단체도 아니고, 다 같이 만나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애당초 개개인의 인성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들 가운데 '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과 남의 일을 똑부러지게 구분하는 경우, 남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기 거부하는 경우, 최상층의 신뢰가 두터운 경우 등에 '마녀'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됐던 일'을 해 내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략 미모가 뛰어난 여직원은 대개 일 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통념(물론 이런 통념은 당연히 편견의 영역에 해당합니다)을 깨고 '미모에 비해 지나치게(?) 일과 성공에 의욕을 보이는' 경우를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우들이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정도의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유능함을 발휘하고, 그 유능함이 아직 대다수인 남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때 '마녀'라는 호칭이 절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유능하다고 해서 다 마녀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마녀라고 불린다고 다 유능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요약해 보면 능력이 출중하건 아니건, 백이 있건 아니건, 외모가 빼어나건 아니건, 명문대를 나왔건 아니건 '무능한 여직원'을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위협'이라는 요소와 매우 관계가 깊은 듯 합니다.

 

(중간에 불쑥 얘기하자면, 이 글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왜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집어 들었나'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자니 당연하게 '우리 편 입장'만 나옵니다. )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옥다정은 한번 불끈 하면 자제가 안 되는 성격 때문에 '욱씨' 혹은 '욱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이혼을 세 번이나 했고, 꽤 능력이 있어 나이에 비해 일찍 팀장까지 승진했지만 그 뒤에는 별별 소문이 다 따라다닙니다. 성격이 지랄같은 것은 기본, 사내 스캔들이 수차례 있었고 고위층과는 소파 승진의 의혹도 있습니다. 심지어 연상 연하 가리지 않고 남자를 밝힌다는 이야기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다 보면 드러나는 여자는 이와는 좀 다른 여자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수시로 '욱'하고 나서서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먼저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일에 함부로 '욱'하는 여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욱다정이 분노하는 일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해야 하지만, 다들 후환이 두렵거나 '좋은 게 좋은 거' 기 때문에 슬쩍 못본 채 넘어가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남의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 연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욱다정의 첫번째 남편은 같은 회사 동료였습니다), 타고 난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습니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남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이 일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회사의 관리직에 오르려면 사회관계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당연한 얘기고, '서글서글한 여걸스러움'이 여성 관리자들에게는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 그런 태도를 곱게 보지 않는 누군가의 술자리 뒷담화에는 이런 여자들이 수시로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나 남자들이 이끌어가기 마련인 회사 집단. 그 회사 집단에서 남자들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여자들 중에 바로 욱다정이 있었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던 것이죠.  

 

 

 

 

꼴갑(甲)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의 초반 에피소드들을 언뜻 보면 왠지 하청기업 과장인 남정기(윤상현)를 욱다정(이요원)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따라가면, 사실 옥다정이 실수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청을 원하는 기업이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것에 대해 화를 낸 것, 다소 무례한 실수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한 것,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것, 같은 아파트 주민의 부당한 복도 점유(복도에 자전거나 가구를 내 놓는 것은 소방법 위반이라고 합니다)를 지적한 것 등 모두 따지고 보면 옥다정이 정당한 판단과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워 '먹고 살기 힘든데' '뭐 고작 그정도 가지고' '그런 일 안 당해 본 사람이 누가 있나' '하여간 유난을 떤다' 며 욱다정에게 '역시 듣던대로 성질이 더럽다'는 말을 합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어차피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욱다정, 변명을 하거나 자기 편을 만들어 하소연을 하거나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평판은 점점 굳어가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이유가 '욱씨남정기'인 이유는 욱다정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간, 즉 '책임을 지는 순간 명이 짧아진다'는 소심함과 무사안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남정기가 처음으로 욱다정이 '소문으로 듣던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욱다정에게 가장 많이 당한 남정기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 앞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그 여자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 가면서 지지리도 못났던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성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전개로 느껴졌습니다. 

 

'욱씨남정기'는 그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아 온 탓에 '드센 여자' 혹은 '지랄맞은 여자'로 낙인 찍혀 온 한 여자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녀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옆집의 속터지는 '고구마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고 그 자신에게 부족했던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서서히 찾아 가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코미디라서 일단 보고 있는 동안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지만, 그 속에 주변의 오해 속에서 '강한 여자'를 넘어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한 여자. 그 여자가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욱씨남정기'는 해 볼만한 드라마라고 느꼈습니다. 일단 다들 한번씩 보시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남정기는 그냥 별 의미 없는 고구마 인생이냐.... 그건 또 아니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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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은 첫 대국이 끝나고 습관적으로 복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복기에 응해줄 사람은 없었다. 아자황씨는 그냥 돌을 놓아 주는 사람일 뿐, 알파고가 왜 그 자리에 돌을 놓았는지 설명해줄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세돌 역시 그런 복기 시도가 부질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듯 했다. 그런데 이세돌이 이해할 수 없다면, 인간 중에 그런 수를 예측하거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알파고의 1승은 단순한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 그리고 그 판단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인류 최고의 전문가를 꺾었다. 인공지능이 인류 최고 전문가보다 합리적인 판단, 더 최적화된 판단을 한다고 인정받은 순간이다.

 

본래 나보다 나은 전문가의 판단은 즉시 이해할수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바둑에서도 조훈현9단이나 이세돌9단의 실전을 중계하는 해설가는 "이런 수는 감히 제가 좋다 나쁘다 말할수가 없네요. 저보다 훨씬 고수가 두신 거라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겁난다.  

 

 

 

인류는 이제 앞으로 인공지능에게 많은 판단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금융, 군사, 행정, 의료... 수많은 분야에서. 거기에 환호하면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준 답을 충실히 수행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찍어 준 장소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아무 미련 없이 노후된 주택단지를 철거하고 거기에 녹지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대학 입시 정원을 늘리고, 금리를 올리고 내리고,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내놓고, 커피값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결정해 줄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부패하지 않는다. 학연이나 지연에 따라, 당리 당략에 따라, 지지율이나 득표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자식의 노후를 챙겨줄 이유도 없다. 정말 사리사욕 없이, 공명정대하게, 주어진 자원과 상황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뭔가 이상한 판단(혹은 명령), 인간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다. 인간의 통념에 어긋나거나, 뭔가 상당히 큰 희생을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이는 판단이라 즉시 따르기를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다. 뜬금없는 명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당장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훌륭한 판단이었음이 입증된', 감히 인간의 작은 뇌로는 가질 수 없는 통찰력을 인정받은 뒤다. 거기에 이론을 제기하는 인간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도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의 그런 판단이 그릇된 데이터에 기인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데이터상의 작은 차이가 최종 판단에서 심각한 차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은 늘 있다. 물론 뛰어난 인공지능은 데이터 입력 오류 내지는 잘못 측정된 데이터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기능(예를 들어 숙련된 분석자가 입력된 데이터만 훑어보다가도 '여기서 왜 이런 엉뚱한 숫자가 나와?'라고 의혹을 제기할 수 있듯)을 보유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오류는 적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현장에서 오는 데이터라고 모두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악의적으로 조작된 데이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인공지능의 그 '이상한 판단'을 의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뭐 아주 멀리 가면 스카이넷 수준의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사리사욕에 따라 이상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차마 상상하지 못하겠다). 그 시점이 되면,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 되어 버려 있을 것이다. "감히 네녀석 따위가 인공지능님의 답을 의심해?"  

 

이미 2016년에 이세돌도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어 승리를 이끌어 낸 인공지능이다. 물론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들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을 한 단계 한 단계 분석해 보면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혹은 오류인지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런 분석을 시도한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할 이유가 없다. 충분한 시간이 없는, 시급한 결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라면, 인간은 어느새 인공지능의 권유대로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둔 판단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누구보다 똑똑하다. 직관적으로 그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옳다. 인간은 거기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이런 순간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진정 두렵다. '프로그램을 짠 인간과 바둑 공부를 한 인간의 대결에서 프로그래머가 이겼으니 결국 인간의 승리'라고 말할수 있는 낙관적인 사람이 부럽다.

 

 

 

한문장 요약: 일각에서 자의식을 가진 스카이넷을 걱정하지만 그건 진짜 다음 얘기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하에' 활성화됐을 때, 인공지능이 준 답이라는 이유로 그 답을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시대, 최소한 '니들 인간들이 내놓은 답보다는 이 답이 훨씬 나을 수밖에 없어'가 상식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P.S. 구글과 알파고의 정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전문가의 글 한편을 소개합니다. 아래 글을 쓴 사람은 슈퍼컴퓨팅 전문기업 클루닉스의 대표이자 베스트셀러 '빅데이터 혁명'의 저자인 권대석 박사입니다. 일찌기 왕년에 장학퀴즈 기장원을 하신 분이기도 하지요.^^

 

"예상대로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http://blog.naver.com/hyntel/220650239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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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밥만 먹고 살 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동네에 가면 구경을 해야 합니다.

 

애당초 목적지를 다낭과 훼의 중간에 있는 리조트로 잡았을 때부터 훼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훼를 가리켜 '베트남의 경주'라고 합니다. 그만치 유적이 풍부하다는 뜻. 물론 시대를 따지면 1802년부터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브로 경주라는 호칭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리조트가 훼 중심가에서 약 40Km 정도.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60 이상을 내지 못하는 베트남의 교통 법규때문에 대략 1시간 정도를 잡아야 합니다. 여러가지 여건을 감안해 기사 딸린 택시를 하루 전세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택시 회사와 교섭해 50달러에 합의를 봤는데, 막상 실제 길에 나가니 약간의 하소연(?)이 있어 60달러로 10달러를 더 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쪽에서 합의를 깬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맞설 수도 있었지만 굳이 한국 돈 1만원 정도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아무튼 그 정도의 시세라는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인건비에 비해 운전 관련 비용은 아주 싸지는 않은 듯.)

 

아무튼 첫번째 목적지로 삼은 곳은 카이딘(Khai Dinh) 황릉입니다.

 

 

 

카이 딘 황제는 1916년에서 25년까지 재위했던 응우옌 왕조의 12대 황제입니다. 연호를 따서 홍종 계정제(弘宗 啓定帝)라고도 불렸던 황제입니다. 카이 딘은 '계정'이란 이란 이름을 베트남어로 읽은 것입니다.

 

물론 저도 베트남 역사엔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이름과 한국 사람의 이름이 한자로 써 놓았을 때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더군요. 카이 딘 황제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완복창(阮福昶), 왕조의 이름인 응우옌은 한자로 완(阮)씨를 가리킵니다. 이밖에도 유물에 남은 한자의 사용을 보면, 베트남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는 한국이나 일본에 가까운 나라입니다. '동남아'라는 지역명으로 뭉뚱그려 얘기하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올라가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정교한 건물 생김새가 매력적입니다만, 건립 연대가 20세기다보니 많은 부분이 시멘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흥미가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능 앞의 이런 문신상도 중국이나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볼만한데 재질이 시멘트라 큰 감동은 없는.

 

 

거대 석비가 있습니다만, 비문은 어느새 해독 불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유적은 20세기 초에 축조된 것입니다.

 

 

 

뭔가 십자가 모양의 느낌이나,

 

 

정자 실루엣의 가시 모양이나,

 

 

건물의 모양새에서 누가 봐도 유럽 풍의 영향이 역력합니다.

 

 

아무튼 저 멀리 관음상(?)이 보입니다.

 

 

 

 

훼 근처의 명물로 유명한 이 해수관음상인 듯. 낙산사 해수관음보다는 좀 더 서구형의 세련된 모습입니다. 색도 순백색...

 

 

 

 

 

 

 

 

 

 

그리고 내부의 계성전. 이곳이 바로 황제의 묘입니다.

 

 

 

베트남이 한국과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이렇게 보고 있으면 자꾸 정신을 차리게 되죠.

 

 

 

자, 빨리 택시 안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타죽을 것 같습니다. 거의 40도.

 

본격적인 훼 시내 관광이 시작됩니다.

 

시내 한복판으로 오면 바로 이 거대한 국기봉에 도달합니다.

 

 

 

 

 

바로 이 쑹 강 앞에 국기봉이 있고, 그 뒤가 황궁입니다.

 

 

 

황궁의 남쪽 입구인 오문(午門). 자금성과 마찬가지 배치입니다. 여기까진 거의 중국인데,

 

 

 

해자가 녹차색이라는 데서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연꽃(?) 종류가 피어있을 때엔 장관이라고 하더군요.

 

 

굳이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홍살문 비슷한 것이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태화전. 그러니까 자금성의 정전과 이름이 같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근정전이겠죠. 내부는 촬영 금지.

 

 

그런데 이 태화전 뒤가 너무나 허전합니다. 엄청난 넓이가 전성기 때 황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습니다.

 

 

 

간혹 이렇게 건물이 한채씩 덩그러니 있을 뿐,

 

 

 

쇠락의 흔적이 가슴아픕니다. 이곳이 다 전각과 나인들로 가득 찼던 곳이라는 거죠.

 

 

 

그나마 중간에 이런 회랑이 복원되어 과거의 영화를 되새길 수 있게 합니다.

 

 

 

 

 

여기가 거의 황궁의 끝자락. 그래도 남아 있는 황금 용이 과거의 영화를 되새기게 합니다.

 

 

 

 

택시 기사에게 본래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들었지만, 도저히 두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궁궐의 동쪽 입구로 바로 빠져 나올 수밖에 없더군요.

 

다낭-훼 부근은 북위 17도선, 그러니까 한국의 38선 부근입니다. 치열한 전투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곳이죠.

 

하루빨리 베트남 사람들도 훼의 황궁을 복원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잊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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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일단 리조트의 꽃인 아침식사부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베다나 리조트의 레스토랑은 한 곳입니다. 여기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처리합니다.

 

 

베트남의 아침은 베트남 커피로 시작합니다. 전 세계 모든 호텔에서는 아침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Tea or Coffee?"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아이스커피를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덥기도 했고, 베트남 커피가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아, 물론 베트남의 아이스커피는 기본이 연유 추가 상태입니다. 그냥 블랙 상태의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려면 반드시 'no sugar, no milk' 라고 말을 해 줘야 합니다.

 

 

저는 커피든 아이스 커피든 평소엔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시고, 쓰고, 속이 아프고, 오히려 갈증을 더 부추기기 때문인데 처음 가본 베트남에서 마신 커피는 달랐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두잔까지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설탕을 조금 넣어도 좋고, 아예 베트남식으로 연유를 타도 좋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 자리에 bucket of ice 는 필수. 아침부터 푹푹 찝니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놓칠 수 없는 것은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이 쌀국수. 제가 별로 먹어 본 게 없어서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 먹어 본 쌀국수는 쌀국수가 아니더군요.

 

 

저렇게 생긴 누들 바에서 아침마다 취향대로 국수를 만들어 줍니다. 일반적인 쌀국수와 당면처럼 생긴 버미셀리 국수 중 선택, 그리고 쇠고기/닭고기/해산물(새우) 육수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닭 육수에 새우 꾸미를 얹고 숙주와 야채, 고수를 듬뿍 넣은 다음, 베트남에서 느억맘 Nuoc Mam 이라고 부르는 피시 소스에 엇 Ot 이라고 부르는 쥐똥고추를 썰어 넣은 장(태국에서는 똑같은 배합을 삑 남쁠라라고 부르죠)을 살짝 두릅니다. 여기에 다진 고추 양념을 조금 풀고 라임을 쭉 짜 넣으면 - 여기까지만 해도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후루룩 후루룩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더위와 매운 고추 맛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 콧등을 슥 문지르는 맛. 달콤하면서도 시고 매운 국물을 쭉 들이키고 얼얼해진 혀를 아이스커피로 달래는 데 까지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기본 동작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한국에선 저런 베트남 국수를 먹을 수 없는 거냔 말입니까. 무슨 이유로 어디 가나 똑같은, 베트남 다시다 국물에 얇은 쇠고기 수육 말아넣고 억센 숙주 말아넣는 국수만 팔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저렇게 테라스 같은 자리가 있고, 실내의 선풍기 아래 자리가 있는데, 비록 아침이라도 혹서기에는 감히 밖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쌀국수의 유혹은 이길 수 없으니 참.

 

 

 

가짓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쌀국수도 있습니다. (밥 종류도 미리 주문만 하면 해 준다는...)

 

 

 

아, 주스 종류는 확실히 다양합니다. 오렌지, 파인애플, 수박, 패션푸르트, 믹스 푸르트 주스가 기본입니다. 모두 직접 간 것.

 

 

 

열대의 낙원답게 과일 테이블을 볼 때마다 행복해집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망고스틴은 기본 제공은 아니고 - 아마도 잘 상하기 때문인지 - 미리 말만 하면 준비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망고스틴을 굉장히 좋아하는 터라 이번에도 50개는 먹고 온 듯...

 

계절 탓인지, 베트남의 식생이 원래 그런지 망고와 드래곤프루트가 유난히 맛이 좋습니다. 수박은 요즘 지구상에 한국산 수박보다 맛있는 수박이 사라진 듯.

 

오른쪽에 나란히 있는 작은 항아리들에는 리조트에서 만든 잼이 담겨 있는데 파인애플 잼과 패션 푸르트 잼을 추천합니다. 특히 파인애플 잼은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밀어 내고, 크루아쌍의 no.1 파트너가 될 만 합니다.

 

 

 

아침 식사는 이 정도로 해 두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어 본 현지식을 일단 소개합니다.

 

 

 

이번에 베트남에서 만난 인생의 음식 중 하나인 분 띳 느엉 Bun Thit Nuong. 한국의 소면 비슷한 국수에 숯불에 양념해 구운 돼지고기를 얹고 약간의 야채, 느억맘과 베트남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인데 날 덥고 입맛 떨어질 때 정말 딱입니다.

 

어찌 보면 국내에서도 가끔 먹는 분 보 싸오 Bun Bo Xao라는 음식과 흡사한데, 직원에게 문의한 결과 분 띳 느엉은 넓게 펴서 구운 고기를, 분 보 싸오는 다져서 볶은 고기를 꾸미로 얹는다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건 뭐 그닥 크게 두드러진 게 없었던 구운 새우+야채 볶음.

 

참. 새우는 베트남에선 톰 tom 이라고 부릅니다. '똠 얌 꿍'에도 '똠'이 들어가 태국어와 혼동하기 쉽지만, 태국어의 똠은 그냥 '국물'이란 뜻이고 새우는 꿍 Koong 입니다. 그래서 새우 국물이 '똠 얌 꿍'이 되는 것이더군요.  

 

 

 

일종의 퓨전식인 듯한 해산물 샐러드. 오징어, 새우, 견과류, 야채, 망고, 말린 국수 등등을 느억맘에 비벼 먹습니다. 무난하고 맛있습니다. 다만 전통 베트남 식은 아닌 듯.

 

 

 

국내에서도 많이 먹는 새우 쌈 전채 요리 고이 꾸옹 톰 Goi Cuon Tom. 고이 꾸옹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라이스페이퍼 쌈 요리의 통칭입니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야생 파 같은 식물을 저렇게 길게 뽑아 준다는 것. 물론 한국에서 먹을 때처럼 땅콩장이나 느억맘에 찍어 먹습니다. 역시 실패하기 힘든 음식.

 

 

 

해산물 볶음밥 Com Chien Hai San. 밥이 꼼 Com 이라서 볶음밥은 꼼랑 Com Rang 혹은 꼼찐 Com Chien 이라고 쓰는데 그 뒤에 밥 외의 부재료 이름이 들어갑니다. Hai San 은 글자 그대로 해산물. 거의 베트남을 대표하는 국민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 것 같고, 어디 가나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음식입니다.

 

물론 느억맘을 뿌려 먹는 게 포인트.

 

 

나가서 먹는 게 귀찮아 룸 서비스를 차려 봤습니다.

 

어쨌든 밖으로 나가기 쉽지 않은 리조트 특성상 한국에서 음식을 적당히 준비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 컵라면이나 봉지 김치는 기본 중의 기본. 전자렌지가 없어서 햇반을 못 드신다는 분들은 욕조나 세면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적당히 담가 두면 밥이 됩니다. 각종 레토르트 식품도 같은 요령으로 드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여행 비용도 상당히 절감되겠죠.

 

베다나 리조트도 절대적으로 비싼 리조트는 아니지만 식비는 꽤 듭니다. 주변에 식당이 없기 때문이죠. 호텔 식당에선 요리 1개 당 20만 동, 한화로 1만원 정도는 책정해야 하니 베트남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편입니다. 아무튼 요리 2개에 음료면 50만, 3개면 70만 동 정도는 한끼 식사 비용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은 바깥 식당.

 

훼 시내 레스토랑 중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꽤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유명 맛집 Les Jardins De La Carambole 를 들렀습니다. 불어는 일자무식이지만 카람볼레는 거리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카람볼레 거리의 정원' 뭐 대략 이런 뜻이 되겠죠.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만큼, 여기저기에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뭔가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연상시키는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

 

 

에어콘을 틀어 달라고 요청하면 대략 한쪽을 막아 놓고 틀어 줍니다. 하지만 지역 특성인지 얼음같은 냉풍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맥주 이외의 음료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도 아직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느낌.

 

(의아해 하실 분들을 위해: 베트남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게 대단히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중부를 대표하는 요리인 반 베오 Banh Beo. 찹쌀가루 반죽에 양념한 새우 소를 넣고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음식.

 

 

그런데 이것이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습니다(새우찰떡?).

 

양도 많지 않아 순식간에 홀라당.

 

 

 

동남아 지역에선 국가를 막론하고 흔히 먹을 수 있는 볶음 국수. 이 식당에선 유난히 버터 향이 강했습니다.

 

 

 

구운 새우와 밥(은 따로 시키지 않았는데 그냥 딸려 나옵니다). 익히 아시는 구운 새우 맛. 위에 얹힌 것은 고추와 파...같이 생겼지만 파가 아니고, 질겨서 씹히지 않는 그 동남아 특유의 야채입니다.

 

음식은 꽤 정갈하고 맛있는 편인데, 이렇게 세 가지 요리를 시키면 이 식당도 대략 70~80만 동 정도의 계산서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영어 메뉴판이 있고, 종업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깔끔하고 아담한 분위기의 관광객 용 레스토랑은 이 정도가 평균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끼니딩 최소 한화 2만원 정도 소요.

 

하지만 현지 식당 에 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놀랍게 싸고, 놀랍게 맛있습니다.

 

 

Nhà Hàng Bà Chanh (나항 바찬. 나항은 베트남어로 식당)

117 Bà Triệu, Xuân Phú, tp. Huế, Huế, 베트남

 

훼를 다녀오신 분이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보고 찾아갔습니다.

 

다만 주소는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식당의 페이스북에는 주소가 9 Truong Chinh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117 Ba Trieu 로 찾아갔을 때 택시 기사가 '저 주소는 여긴데 여기는 식당이 아니네...?' 하더니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 다른 지점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짐작해 볼 때 어쩐지 실제 주소는  9 Truong Chinh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시 물어 찾아간 장소도 원래 장소에서 멀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Ba Trieu 주변에 있는 것은 분명한 듯.

 

 

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소인 빅C(큰 쇼핑몰...이라기 보다는 마트)를 바라보고 오른쪽 길이 Ba Trieu 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쨌든 나항 바찬이 나오는 건 분명합니다.  

 

 

 

들어가 보면 한국에도 아직 많은 해변 가건물 횟집이나 서울의 염가 횟집 같은 느낌입니다.

 

 

 

수저 통과 땡땡무늬 컵이 정겨운 느낌.

 

 

 

일단 기본적으로 이따시만한 얼음통이 테이블마다 기본 제공됩니다. 저희는 외국인 식(?)으로 저 얼음통 속에 맥주와 음료를 담가 먹었는데 현지인들은 기본적으로 저 얼음으로 잔을 가득 채운 다음 맥주를 따라 마십니다.

 

일단 야채 요리가 먹어 보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어로 라 무엉 Rau Muong, 흔히 우리 말로 공심채, 혹은 물시금치라고 불리는 이 식물은 본래 나팔꽃 종류라 영어로는 그냥 Morning Glory라고 불립니다. 아무튼 저 공심채를 마늘을 넣고 살짝 볶아주면 아주 맛있는 나물이 됩니다. 이 볶은 음식을 라 무엉 싸오 토이 Rau Muong Xao Toi 라고 부릅니다. 한 접시에 3~4000원 정도. 그런데 반찬처럼 먹기에 딱 좋습니다.  

 

(물론 중국 음식이나 태국 음식 등에도 이 공심채 볶음은 자주 등장하는 메뉴죠)

 

 

 

뭐 봐도 알듯 말듯 한 메뉴판. 좌하단의 CAC MON KHAC 코너를 보면 맨 위의 Com Chien Hai San은 해산물 볶음밥, Com Chien Tom은 새우 볶음밥을 뜻한다는 정도만 알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밥 종류는 대개 3000~4000원 수준.

 

 

 

게 종류는 베트남에서도 아주 싼 편은 아니라서 저 게 1Kg이 50만 동이었습니다. 알 밴 암케는 60만동. 게는 베트남어로 꾸아 Cua 라고 합니다.

 

꽃게는 아니고 미국 서해안에서 먹는 던전 크랩과 비슷한 모양과 맛입니다. 조리 방식은 찜, 튀김, 팬 구이 등이 있는데 그냥 찌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크기 판단을 위한 손 등장.

 

 

단면입니다. 알과 살이 꽉 차 있어 한 사람이 한 마리 먹기가 힘들 정도.

 

 

...과 새우 볶음밥. 볶음밥도 베트남 특유의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제대로 된 볶음밥입니다.

 

이렇게 배 터지게 먹고 65만 동. 이런 놀라운 가격이야말로 베트남 여행의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료.

 

태국을 대표하는 거리 음료가 흔히 땡 모 반 이라고 부르는 수박 주스라면,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료는 이 넉 미아 Nuok Mia. 바로 사탕수수 주스입니다. 물론 베트남이라고 수박 주스를 안 파는 건 절대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보면 '넉 미아'라고 써 있는 가판대가 수없이 서 있습니다. 

 

 

이런 환경. 옆에 있는 사탕수수 수수깡을 그냥 착즙기에 꽂으면 요란한 커억 소리와 함께 즙이 아래로 흘러나옵니다. 거기에 얼음을 가득 넣고 마시면 끝. 사실 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위생적인 불량식품임에는 분명합니다만, 현지 기분을 내고 싶다면 넉 미아 한잔 정도는 마셔 주는게 좋을 듯 합니다.

 

(몇번 시도를 해 봤지만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넉 미아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거리에서만!)

 

 

 

물론 먹는게 인생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구경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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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에는 꽤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베트남의 밤 열시는 서울의 밤 열 두시. 두 시간의 시차라는 건 사실 시차 축에도 못 드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찍 잠들고 일찍 깨어났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네 시 가량.

 

어렴풋이 커튼 너머로 밝은 기운이 비치는 것 같아 욕실을 통해 조용 조용 테라스로 나갔습니다.

 

그 다음엔 오 마이 갓.

 

 

난간 너머로 동쪽 하늘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더군요.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하늘을 보면 아직도 집 못 찾아간 별들이 가득.

 

 

 

이른 새벽 일 나온 어선들의 통통통 엔진 소리가 새벽을 가르고 지나갑니다.

 

 

정말 바라바고 또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

 

 

 

몇해 전 스페인 여행 때문에 산 RX100-2의 성능에는 100% 만족합니다. 오히려 가끔은 실제 눈으로 보는 것 보다 지나치게 과장된 색조를 뽑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새벽 풍경만큼은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현장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산 것이 바로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목을 메게 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보다는 대략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슬슬 시차가 없어져 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리고 또 한번 오 마이 갓.

 

 

사실 이 사진은 폰카로 찍은 겁니다.

 

 

 

정말 뭘 다른 걸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

 

새벽 다섯시에 그냥 아무 갈등 없이 맥주 캔을 땄습니다. 행복합니다.

 

한시간 쯤 뒤,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트기 직전의 핑크색 구름.

 

 

 

 

 

검은 산 실루엣을 감싸는 황금색 띠가 이렇게 아름다운줄 미처 몰랐습니다.  

 

 

 

 

조금씩 더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침을 맞으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리조트 웨딩(?) 같은 것을 고려한 수변 공간. 밤에도 저기에 테이블을 놓고 앉으면 좋을 듯 합니다.

 

 

역시 물 위에 건설된 요가 공간.

 

 

친환경 리조트답게 이런 운동 공간에는 전혀 냉방 시설이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별 객실과 스파 공간 외에는 에어콘 가동을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게 방침인 듯 합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는 요가 수업. 하지만 몸은 확실히 가벼워 진다는 느낌. ㅎ

 

 

 

그리고 모든 리조트의 로망, 수영장.

 

긴쪽은 약 50m, 짧은 쪽은 15m 가량 되는 긴 직사각형 모습입니다.

 

선베드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객실 수에 비하면 적은 편도 아닙니다.

 

 

 

현지 웨딩 촬영 광경 도촬.

 

 

단지 수영장 수면에 그늘이 지는 자리가 없고, 저희의 방문 기간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은 데다 날씨가 워낙 뜨거워 수영장이 아예 기능 마비가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낮에는 수영장 물 조차도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 불상사가.

 

 

 

 

 

오히려 밤 수영이 권장할 만 합니다.

 

아 물론 폭염 때문에, 밤 사이에도 물이 차갑게 식지는 않았습니다. (대낮보다는 나은 정도)

 

하지만 수영장 물에 누워 밤하늘에 가득 찬 별을 바라보는 맛은 또 다른 어디에 비교하기 힘든 재미입니다.

 

지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별이 꽉 찼던 하늘을 한번 찍어 봤습니다. 

 

 

 

  

 

 

역시 다른 말이 뭐가 더 필요할까 싶은.

 

문명의 혜택이 그리운 분들에게 베다나 리조트는 약간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와이파이는 빵빵하게 터지지만, 가장 가까운 도시가 1시간 밖에 위치해 있어 다른 소통은 포기해야 합니다. 레스토랑도 사실상 1개 뿐이라 식사도 자칫 물릴 가능성이 있겠죠.

 

하지만 정말 문명으로부터의 도피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역시 perfect retreat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하늘 구경만으로도 숙박비를 다 뽑은 듯한 느낌이.

 

 

 

 

먹거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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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은 한번의 검색에서 비롯됐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해외 유명 여행지의 사진을 검색해 보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번 발리의 마야 우붓을 가게 된 것도 우연히 검색질을 하다가 보게 된, 우붓 행잉 가든 리조트의 사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어찌 어찌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보게 됐습니다.

 

바로 이 사진.

 

 

 

이 사진 한 장에 매혹돼 버렸습니다.

 

물론 페이스북을 보고 소개팅 상대의 외모를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듯 단 한장의 사진으로 리조트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때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취합해 나갑니다. 리조트의 이름이 베다나 리조트 앤드 스파 Vedana Resort and Spa 이고, 베트남의 다낭 Da Nang과 Hue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는 내용 정도가 바로 파악됩니다.

 

다낭이야 어린 시절 청룡부대 국군장병 아저씨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이니 당연히 들어 본 이름이지만 훼('후에'라고도 쓰는데 현지 발음은 확연히 '훼')라는 도시는 처음 들어 봅니다. 어쨌든 그 다음 순서는 리조트의 가격과 항공편 검색. 다낭까지는 인천 공항에서 직항이 수시로 다니고 있고, 리조트는 꽤 합리적인 가격(물론 약간의 행운이 겹치면서 초저가에 예약을 할 수 있었지만)입니다. 올 여름 휴가지로 결정합니다.

 

대개의 경우 리조트의 숙박 가격은 tripadvisor를 거치면 윤곽이 잡힙니다. expedia, hotels.com 등 세계 유명 예약 사이트들의 가격을 비교해 주기 때문이죠. 물론 동남아 지역 리조트의 경우에는 이런 예약 사이트에 비해 개별 호텔의 자기 사이트에서 더 싼 요금을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울러 제 경험에 비쳐 볼 때, 국내 여행사 가운데 '**지역 전문 여행사'들은 최하 하루 5천원 정도 씩이라도 싼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있으니, 충분히 검색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베트남을 그냥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수도 하노이에서 구 월남의 수도 호치민(왕년의 사이공)까지가 육로로 1700KM나 되는, 남북으로 꽤 긴 나라죠.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1.7배 정도 면적입니다. 인구도 1억에 육박하는 큰 나라로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한국처럼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남과 북의 경계가 위 지도의 후에-다낭보다 살짝 위쪽인 북위 17도 선이었습니다. 이후 남쪽을 지지하던 미국이 1975년 대대적인 철수를 감행하고, 통일을 이룬 뒤 한동안 심각한 경제 침체와 사회주의 철권 통치의 곤란을 겪다가 1990년대 이후에야 개방이 시작된 상황. 어쨌든 다 과거의 이야기고 21세기의 베트남은 한국인 관광객을 선호하는 나라가 된지 오래입니다. 베트남 지도에서 목적지 베다나 라군 리조트는 위의 빨간 화살표 지역.

 

 

베다나 라군 리조트는 엄밀히 말해 다낭 보다는 후에 인근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후에 공항이고 약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리조트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대략 50만 동(VND) 정도. 베트남과의 환율은 통상 20대 1로 계산하면 한국 돈으로 근사치가 나옵니다. 즉 50만 동이면 2만5천원. 10만 동 지폐가 5천원 짜리 지폐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죠.

 

어쨌든 후에 공항에 내리는 경우는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다른 공항에 일단 기착한 다음 베트남 국내선을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될테니 여기에 갈 일은 없습니다. 뭐 장기 베트남 여행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후에 공항이 유리하겠죠.

 

 

 

한국에서 직항이 운영되는 다낭 공항까지는 대략 베트남항공이 가장 싼 요금을 제시하는 듯 합니다(저가항공 제외). 대략 4시간 소요. 화장실이 적다는 것을 제외하면 베트남 항공과 국적기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유리한 점이라면 서울-다낭 노선에 오전 출발편이 있다는 것. 아쉬운 점은 귀환편의 서울 도착 시간이 오전 6시대라 짐을 찾고 나오면 시내 귀환이 강변북로/올림픽대로의 출근 정체를 피할 수 없다는 정도. 물론 전철을 이용하신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

 

다낭 공항에서 베다나 라군 지역까지는 대략 9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63Km밖에 안 되는데 대체 왜 90분이나 걸려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일단 속도 제한으로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도로 사정도 원활치 않습니다. 물론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이나 우즈베키스탄 외곽 지역도 도로 사정은 비슷했지만 이 나라 운전자들의 속도 제한 준수는 대단히 엄격하더군요.

 

그런 이유로 공항-리조트 이동 비용은 꽤 비싼 편입니다. 현지 택시 회사의 대절 차량을 미리 예약해 이용하는 것이 45달러로 가장 싼 편. 사실 이 정도 가격도 베트남의 기본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참고로 베다나 리조트의 호텔 픽업 차량을 이용하면 140만 동(VND), 약 63달러 정도 합니다. 모 한국 렌트카 업체에 문의해 봤더니 240만 동(약 110달러)을 부르더군요.

 

물론 얼마 전 인터파크 투어를 이용한 관광객이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안전을 중시해 믿을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의 그 베트남 투어가 '믿을 수 있는' 인터파크라는 브랜드 아래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그러니 판단은 자기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사용한 택시 회사입니다. http://www.lefamilytaxi.com/hue-city-tour/

 

이 회사에 대한 트립어드바이저 이용자들의 평. 주장이 좀 엇갈리는 편입니다. 기사에 따라 복불복...? ^^

 

http://www.tripadvisor.co.kr/Attraction_Review-g298085-d5501680-Reviews-Le_Family_Taxi_Private_Day_Tours-Da_Nang_Quang_Nam_Province.html#mtreview_211212768

 

아무튼 저도 가는 길에는 이 택시를, 귀국편을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할 때에는 호텔 차량을 이용했습니다. 마지막날은 밤 이동이라 그래도 좀 더 조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오전 11시20분 서울을 출발해 오후 2시 다낭 도착. 거의 없다시피 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무시무시한 열기가 밀려옵니다. 차량 사진을 찍고 말고 할 의사를 싹 씻어내는 더위입니다. 얼른 차에 짐을 싣고 출발하자는 생각 뿐.

 

나이 지긋한 기사 양반 믹(Mihk) 씨는 인사 수준의 영어 실력. 호텔로 향하는 길에 하이 반 고개(Hi Van Pass)를 타고 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합니다.

 

 

 

하이반 패스란 다낭-베다나 리조트(혹은 후에) 노선의 중간에 있는 고갯길을 말합니다. 위 지도의 2번 노란 도로를 말하는 것이죠. 현재는 1번의 산을 뚫고 직진하는 터널이 건설되어 있어서, 굳이 다닐 필요가 없는 길이 됐지만 그래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전망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동해안으로 가는 한계령이나 미시령 길과 비슷한 의미라고나 할까요.

 

 

 

 

사실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세계 10대 드라이빙 로드' 운운 하는 선전 문구를 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낭 근처 현지 여행사들의 여행 상품에도 이 길이 있을 정도더군요. 그래서 시험삼아 기사 양반에게 '터널 말고 그 길로 가 달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길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이고, 멀리 다낭 시내가 보입니다.

 

 

 

구름과 바다를 보며 어느새 고갯마루에 도착.

 

 

 

 

가운데 차가 저희가 타고 온 찹니다. 토요타 VIOS. 현대 액센트 급의 차량이죠. 쾌적합니다.

 

 

 

월남전 시절의 유물인 듯한 경비탑이 있고, 위에서 보듯 간단한 음료류와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있습니다.

 

캔 음료 하나에 3만 동. 베트남 물가의 첫 경험입니다. 일반 상점에선 2만 동 정도 받습니다.

 

정상이 약간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곶 같은 지점에 있어서 양쪽 모두 바다가 보인다는 게 특이합니다.

 

 

 

 

동남쪽을 보면 이렇게 다낭 쪽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다시 다른 바다가 보이는 형태.

 

 

고개를 다 내려온 곳에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 보입니다. 랑 코 Lang Co 라는 곳입니다. 이곳도 유명 리조트가 건설되어 있고,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에는 '직접 가 보는 것보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보는게 더 아름답다'라고도...)

 

 

 

이렇게 물과 산이 보이는 길을 따라 하염없이 차를 달리면,

 

 

 

 물 한 가운데 있는 리조트에 도착합니다.

 

전체 객실은 빌라형이고 수영장 없는 육지의 빌라, 수영장이 붙은 풀빌라, 물 위에 있는 아쿠아 빌라의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풀빌라 중에 침실이 2개인 대형이 몇개 있죠. 아쿠아 빌라 중에도 침실 2개+수영장이 있는 대형이 하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객실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예약한 객실은 아쿠아 빌라.

 

 

이렇게 물 위에 건설되어 있는 집.

 

들어가면 넓고 으자자한 침대가 있고,

 

 

 

뭐 식탁과 TV,

 

 

왼쪽 창으로 보는 뷰는 이렇고,

 

 

 

침대에 누워 정면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옵니다.

 

비가 잠시 뿌린 뒤라 살짝 흐린 모습.

 

그런데 9월이 우기라는 주장과는 달리 도착한 첫날 이후엔 아예 비 구경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대신 37도의 폭염이...;; 차라리 비가 좀 와 주길 바라게 됩니다.)

 

 

 

테라스로 나가 밖을 내다보면 이런 느낌.

 

 

 

오른쪽을 보면 올망졸망 다른 빌라들이 보입니다.

 

절대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을 거리가 유지돼 있죠.

 

 

 

위성으로 크게 확대해 본 모습. 그러니까 아래쪽 1번 아래 지역에 메인 로비와 테니스 코트, 라이브러리(비즈니스룸) 등이 있고, 중간에 객실들이 있습니다. 2번 지역이 수영장과 레스토랑이 있는 지역, 3번 지역이 스파 및 요가 공간입니다.

 

메인 로비에서 스파까지는 넉넉잡아 7,800m 정도? 만약 낮에 걷는다면 단단히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구내 이동은 로비에 버기카를 요청하거나, 객실마다 자가용처럼 딸려 있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왼쪽 뷰.

 

 

 

욕실로 들어가면 2인이 충분히 들어갈 사이즈의 대리석 욕조가 있고,

 

 

아무튼 넓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변기가 욕실 바로 밖, 노천에 있다는 것.

 

 

 변기 뷰(?)는 이렇습니다. 하늘과 밀림을 보면서 용변을 보게 설계됐죠.

 

이 밖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친환경 리조트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한국보다 2시간 늦은 표준시 때문에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편입니다.

 

노닥노닥 짐 정리와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은 이런 모습.

 

 

 

 뒤를 돌아 보면 이런 모습.

 

 

 

레스토랑 자리에서 바라본 이른 저녁 풍경은 이런 모습.

 

 

 

너무나 맛 좋은 후다 Fuda 맥주로 마침내 휴가가 시작됐음을 느낍니다.

 

살면서 가장 보람 넘치는 순간.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다음날 새벽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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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인데다 온천 지대인 유후인의 2월은 꽤 따뜻했습니다만 곳곳에 눈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습니다. 워낙 큐슈 지역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동네이기도 하다더군요. 심지어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 예매 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습니다. <눈으로 인해 버스 운행이 예고 없이 중단될 수도 있음>.

 

이런 안내를 보면 한번쯤 '그럼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몇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은 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우선 첫째, 버스가 훨씬 쌉니다. 둘째, 시간 면에서도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직접 유후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반면 기차는 하카다 역(후쿠오카 시내)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기차로 움직여야 하므로 시간과 번거로움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 뭐 인생에 한번 쯤은 '예. 접니다. 지금 유후인인데 여기가 산골이라 폭설로 길이 끊겼다네요. 죄송합니다. 기차요? 기차는 현지 승객들로 꽉 차서 입석표도 없다고... 예. 상황 정리되는대로 복귀하겠습니다' 같은 전화도 한번쯤 해 볼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20여년간 회사 생활을 해 본 경험에 따르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고민 말고...

 

유후인의 눈 흔적입니다.

 

 

유후인 온천장 료칸이나 호텔들은 거의 대부분 오전 10:30~11시에 체크아웃, 오후 2:30~3시 체크인의 스케줄을 따르고 있습니다. 2박 이상 투숙한 사람에게도 점심 식사는 제공되지 않으며, 특히 약간 외진 지역에 위치한 료칸들은 주변에 점심을 해결할만한 식당이 흔치 않은 편입니다. 대신 료칸들은 대부분 체크인/아웃 시간에 맞춰 무료 송영(送迎) 서비스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동네 구경에 나섰습니다. 나선 결론은... '왜 유후인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이 다 똑같은 지 알겠다' 였습니다.

 

 

 

민가의 정원.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예쁜 장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료칸에서 시내 어디에 내려 주면 좋겠다고 묻기에 일단 유후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긴린코(金鱗湖)를 가 보자고 했습니다.

 

 

조용하고 예쁜, 그냥 관광엽서에 흔히 등장할 것 같은,

 

 

이름 그대로 금잉어가 헤엄치는 그런 호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습니다.

 

혹시 경기도 운천의 산정호수를 가 보신 분이라면, 그 1/5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도는데 15분이면 충분한 규모.

 

 

뒤편으로는 신사와 신수가 있고,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굳이 가 볼만한 풍광은 아닐 듯 해서 패스.

 

 

 

한국과 일본 관광지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1) 뽕짝민요메들리 등의 기괴한 소음이 없다 2) 기념품 가게의 물건 종류와 품질이 확연히 다르다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큐슈산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몇 군데를 돌아 봤는데 저 식재료의 종류가 거의 겹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어느 가게를 가 보나 똑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긴린코 주변의 개천 운하(?)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걸어나옵니다. 날도 따스하고, 절로 걷고 싶어지는 길입니다.

 

 

크고작은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가격이 싼 편은 결코 아니고, 최대한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를 생각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간판들만 봐도 매력적이죠.

 

 

 

 

예를 들면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을 전문적으로 파는 이런 가게.

 

 

 

저의 상징물인 냥코센세가 가득합니다. 집안을 냥코센세로 채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집에 냥코센세는 너 하나면 충분해!"라는 마나님의 일갈에 움찔.

 

 

 

반면 또 바로 그 앞집에는 강아지 관련 소품들을 집중적으로 파는 상점이 성업중입니다.

 

 

걷다 보면 유후인의 명소인 크라프토관 하치노스 게텐하신(クラフト館 蜂の巣 月點波心)이라는 가게를 만나게 됩니다. 크라프토(craft)라는 이름대로 목공예 중심의 공방. 비싸지만 정말 세심하게 만들어진 수많은 물건들이 여행자를 노립니다. 특히 여성 여행자를 동반한 분들이라면 매우 조심하셔야 할, 위험한 곳입니다. 눈이 뒤집어 집니다.

 

실내는 촬영 금지 지역.

 

 

걷다 보면 어느새 역전까지 와 버립니다.

 

유후인 시내 어디를 가든, 택시로 료칸까지 1000엔 이내에 도달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 택시비 만원이면 꽤 먼 거리도 갈 수 있는 가격이지만, 유후인의 택시 기본 요금은 660엔... 1000엔이라봐야 한국 택시의 5천원 거리도 안 됩니다.

 

 

 

관광객들을 겨냥한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좋지만 이런 오래된 간판들도 뭔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습니다.

 

 

한 60~70년대부터 그냥 그대로 이 모습이었을 것 같은 료칸.

 

물론 구경만 하고 간식을 챙기지 않으면 곤란하죠.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는 미르히 Milch.

 

 

맛있지만 홋카이도에서 매일 먹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에 비견될 정도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느꼈던, 삿포로 스스키노의 제과점 센슈안(千秋庵)의 아이스크림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처럼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우유맛과 얼음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성지 홋카이도로 직행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1921년 개점한 센슈안 본점을 꼭.

 

 

 

유후인 제일의 생크림 롤 가게라는 B-SPEAK에서는 정석대로 미리 주문한 뒤 보냉 팩으로 포장.

 

 

아, 물론 생크림 롤은 그냥 생크림 롤 맛입니다. 죽은 사람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벌떡 일어날 맛은 아닙니다.

 

원래 생크림 롤이라는게 다 맛있는거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맛없는 생크림 롤이 없음)

 

 

 

어쨌든 아무리 좁다고 해도 마냥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잠시 쉬어 가고 싶어집니다.

 

눈길을 끄는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쿠쿠치(麴智)라는 이름.

 

 

유후인 역에서 도보 10분(이 정도면 유후인에선 꽤 먼 거리입니다^^).

 

뭐 다녀와서 검색해 보니 이미 꽤 유명한 곳이더군요.

 

 

 

일단 나무를 중심으로 한 정원과 인테리어가 탁월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춘 듯한 석유 스토브의 정겨움까지.

 

 

 

홍차와 유자 모나카를 주문했습니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유자 모나카. 바삭한 껍질 안에 유자 향 가득한 팥 잼이 들어 있습니다. 절묘합니다.

 

 

 

바깥쪽에서 본 쿠쿠치의 정원.

 

 

 

도로 쪽에서 보면 왼쪽은 카페, 오른쪽은 제과 판매점입니다. 오른쪽 가게에선 유자 모나카를 비롯해 이 집에서 만든 다양한 과자와 수재 잼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뭔가 성의 있는 선물을 하시고 싶은 분들에게 적절합니다. 매번 공항에서 도쿄 바나나(이름과는 달리 일본 전국 각지에서 판매중)나 공항제 도리야키만 사 가신 분들이라면 특히.

 

 

메인 관광로는 다양한 상점과 카페, 관광객들로 붐비지만(이 거리의 모국어는 아마도 한국어인 듯. 일본어보다 더 많이 들립니다) 한 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시골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산책에 최적화.

 

 

 

귀환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들어가 본 유후인 역 대합실(버스 터미널과 도보 2분 거리인데 역 대합실이 훨씬 넓고 쾌적합니다).

 

 

동네 주민 미술 동호회(?)의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 갤러리 느낌의 높은 천장과 채광창이 예쁘고 플랫폼으로 통하는 문도 뭔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딱 마음에 드는 공간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름 온천이 제 맛'이라고도 하시지만 그래도 온천은 한겨울. 같은 곳을 또 가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다시 찬바람이 불면, 분명 유후인 온천 료칸이 다시 생각날 듯 합니다.

 

 

 

 

수시로 뭔 짓(?)을 벌이던 이 두 녀석도.

 

 

 

 

지금까지 보신 내용은 2015년 2월 기준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여름엔 이런 델 가야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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