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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늦은 휴가를 발리로 다녀왔다. 발리 얘기를 하면 다들 "해변에서... 좋았겠다" 라고 얘기하지만 이번엔 바다 짠 내음도 맡지 않고 돌아왔다. 발리 섬 한 복판의 우붓(Ubud) 지역에 있는 마야 우붓 (Maya Ubud resort & spa) 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야 우붓을 가리라고 마음 먹은지는 꽤 됐지만 이번에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된 것. 그리고 마야 우붓은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껏 가 본 리조트 호텔 가운데 당당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야 우붓의 메인 수영장. 한달 가량 지났는데 벌써 그립다.

 

 

 

 

이번에는 발리의 우붓 지역을 가겠다고 했더니, 현재 발리에 거주하며 발리 지역 탑클래스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발리 전문가 K씨는 "형, 우붓을 누가 가요? 한국 사람 아무도 안 가요. 거기 너무 멀고 별로야"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에 마음이 흔들려선 안된다. ;;  

 

 

지도상의 위치는 보는 바와 같다. 아래쪽, Kuta라는 지명 바로 아래,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곳이 발리 웅우라이 국제공항의 위치다. 한국에서 발리로 가는 관광객의 90% 이상은 그 아래, 그러니까 South Kuta라고 써 있는 작은 반도 지역으로 간다. 공항에서 가까운 이 지역에 누사두아, 짐바란, 쿠타, 레기안, 스미냑 등 중요한 해변 관광지대가 몰려 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명 리조트 호텔들도 거의 다 이 지역에 있다.

 

하지만 처음 발리에 갔을 때 누사두아의 인터콘티넨탈을 갔고, 두번째는 짐바란 부근의 풀빌라를 갔기 때문에 이번엔 색다른 발리를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우붓 지역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위 지도에서 보듯, 우붓 지역은 공항에서 북북동으로 꽤 떨어져 있다. 물론 절대 거리가 먼 것은 아니나 발리의 교통 사정이 썩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구글맵으로 때려 보면 공항에서 마야 우붓 리조트까지 40km 내외. 택시를 이용하는데 갈때는 약 70분, 귀국 길에는 50분 정도 걸렸다. 갈 때 시간이 오후 6시 정도로 퇴근시간이 막 시작될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양호한 듯 하다. 하긴 공항에서 출발할 때 택시 기사가 "노 트래픽, 노 트래픽" 하면서 기도하는 시늉을 한 걸로 볼 때, "발리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듯. 전언으로는 공항에서 우붓 갈 때 90분 쯤 걸렸다는 주장도 있었다.

 

말 난 김에 얘기하자면 공항의 택시 서비스에서 우붓까지는 25만 루피아로 가격이 매겨져 있었지만, 목적지인 마야 우붓은 우붓 외곽이므로 35만 루피아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단호하게 "30만 루피아"를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환율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놓인 시점의 여행이었으므로 대략 1USD = 1,000원 = 10,000 루피아로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싼 가격도 가능. 한국어 상담이 가능한 우리발리 www.uribali.com 를 이용하면 25달러에 공항 픽업 또는 송영을 받을 수 있다. 5천원 차이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발리에서는 꽤 큰 돈이다.

 

 

 

 

우붓이 뭐하는 데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대개 이런 사진을 보여 준다. 처음 보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머, 이 호텔로 가시는 거에요?" 라고 말하면 조금 머쓱해진다.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붓의 행잉 가든(Hanging Garden) 리조트 사진이기 때문이다.

 

발리 남쪽의 해안가 호텔들이 자랑하는 것이 오션 뷰라면, 우붓 지역의 리조트들은 저 밸리 뷰(Valley View)를 자랑거리로 갖고 있다. 사진만 봐선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 수영장과 건너편의 원시림 사이에는 거대한 계곡이 있고, 수영장 끄트머리에서 건너편 원시림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나 행잉 가든은 수영장을 2단으로 배치해 사진을 찍었을 때 밸리 뷰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즉 사진발이 최고인 리조트다.

 

행잉 가든은 이 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1) 우붓 시내에서도 차로 20분 이상 떨어진 외진 곳에 있고 2) 이름 값을 하느라 비싸고(전체 룸이 풀빌라고 1박 최하 500불 수준), 3) 직원들의 수준이 떨어져 불친절하고 4) 음식이 그저 그렇다는 평도 얻고 있었다(tripadvisor에 나온 내용들이니, 행잉 가든 관계자가 혹시 항의하시려거든 그 쪽으로 하시기 바란다).

 

반면 마야 우붓은 1) 우붓 시내에서 차로 5분(3분?) 거리고, 2)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계절에 따라 조식 포함으로 230~300불 정도), 3) 음식 및 서비스가 최고라는 평이었다. 여기 하나 보태자면 사실 행잉 가든은 저 밸리 뷰 하나 뿐이지만 마야 우붓은 광대한 대지 위의 조경 하나하나가 예술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숙박비의 차이는 행잉 가든은 룸 전체가 풀빌라고, 마야 우붓은 풀빌라 외에도 일반 객실이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풀빌라끼리만 비교한다면 행잉 가든이 훨씬 더 비싸다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개인적으로 풀빌라라는 형태의 방이 왜 선호되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절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싶지 않은 셀렙이거나, 수영복 알러지가 있어서 수영을 반드시 알몸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비싼 풀빌라에 묵는 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야 우붓으로 마음을 정하고 호텔 예약에 들어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호텔 홈페이지보다는 익스페디아나 호텔스닷컴이 더 싸야 정상인데 마야 우붓은 메인 홈페이지가 더 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 사람이 사기에 가장 싼 곳은 국내 사이트인 트래블발리(http://www.travelbali.co.kr/) 였다. 무슨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발리에 대한 한 분명히 가장 싸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이트다. 비교해 본 결과 확실히 그렇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마야 우붓의 모양. 남북으로 엄청나게 길다. 사진 위쪽, 그러니까 북쪽에 메인 출입구가 있고, 출입구에서 차로 1분 정도 더 들어 와야 로비와 메인 빌딩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 왼쪽(서쪽)은 논, 오른쪽(동쪽)은 강이 흐른다. 강이 있다는 것은 깊숙한 계곡이 있다는 뜻.

 

 

마야 우붓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위성 사진. 왼쪽이 우붓 시내 중심가, 오른쪽이 거기서 동쪽으로 쭉 가면 있는 마야 우붓이다. 왼쪽 중간의 네모 칸이 우붓 한복판의 운동장(아마 우붓에 가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보셨을 그 운동장이다). 호텔 하나가 우붓 다운타운 거리의 크기와 맞먹는다. 직접 가 보면 그 규모에 일단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호텔 한 복판의 메인 빌딩 확대 사진. 1번이 웨스트 윙, 2번이 로비, 3번이 이스트 윙이다. 4번은 레스토랑과 라운지 등 부속 건물, 5번 위치에 메인 풀이 있다. 웨스트 윙과 이스트 윙은 일반 객실이 있는 3층 건물. 사진 아래 쪽으로 이빨같이 풀빌라들이 박혀 있다.

 

 

 

웨스트 윙 2층의 일반 객실(수피리어 룸)은 평범한 동남아 지역의 호텔 객실이다. 당연히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온다. 별 장식 없는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좋았다.

 

 

침대 쪽에서 본 화장대와 기타 집기들. 왼쪽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발코니가 있다. 물론 마야 우붓에서 발코니에 앉을 일은 별로 없을 듯 하고, 주로 빨래 너는데 사용한다.

 

웨스트 윙에 객실을 잡으면 서쪽의 논 뷰(Rice Field View), 이스트 윙에 묵으면 밸리 뷰가 보인다는 설명인데, 이 말만 들으면 이스트 윙이 좋아 보이지만 불행히도 이스트 윙은 울창한 숲 때문에 밸리 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반면 웨스트 윙은 논 뷰..가 제법 쓸만하다.  

 

 

 

 

도착 첫날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펼쳐지는 논 뷰. 평화롭고 정겹다.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풍경. 가슴이 설렌다.

 

아침 식사!

 

 

레스토랑은 메인 빌딩 1층에 하나, 그리고 남쪽 끝에 있는 리버 카페에 하나 있다. 메인 빌딩 2층엔 바가 있다.

 

 

개방형 구조가 아름답다. 특이한 건, 이런 개방형 구조인데도 레스토랑 안에서 벌레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점.

 

 

음식의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지만, 맛은 매우 훌륭하다. 오믈렛도 잘 부치고, 특히 빵 종류의 수준이 높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과일에 탐닉했다. 특히 망고스틴. 조식 때마다 10개씩은 먹었다.

 

...그리고 바로 딴 망고스틴은 개미의 서식지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저 윗부분의 녹색 이파리를 뜯어내면 개미가 20마리씩은 나온다. 유독 망고스틴을 개미가 좋아하는 듯.

 

 

 

식당에서도 바로 밸리 뷰가 보인다.

 

사실 사진으로 이 밸리 뷰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말로 설명하자면, 사진 아래쪽의 연한 녹색 식물군과 사진 위쪽의 진한 녹색 식물군 사이에 바로 페타누 강이 흐르는 큰 협곡이 있다.

 

그러니까 이 뷰가 협곡을 끼고 있는 건너편의 밀림지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쾌한 뷰인데, 사진상으로는 그 효과를 표현할 재간이 없다. 아무튼 직접 보는 뷰는 이 사진보다 1,000배 이상 멋지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있는 메인 풀 역시 마찬가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끄트머리로 가면 일망무제의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밀림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줄 정도.

 

하지만 일단 메인 풀보다 먼저 남쪽의 리버 카페 앞 수영장을 가 보기로 한다.

 

 

호텔 남쪽으로 향하는 길. 야자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다.

 

 

남쪽 끝. 리버 카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 엘리베이터 타워 앞에서 이 계곡 뷰는 절정을 이룬다. 물론 이런 사진으로 보는 뷰는 실제 풍경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직접 가서 보신다면 절대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남쪽 수영장을 내려다 본 모습.

 

이 두번째, 남쪽 수영장은 메인 빌딩이 있는 지대에서 약 5~60미터 가량 낮은 지대에 있다. 즉, 강이 굽이치는 계곡 아래 쪽에 있다는 말이다.강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밀림 속에 폭 파묻힌 느낌을 준다.

 

 

 

수영장 바로 밑으로 강이 굽이쳐 흘러간다.

 

 

 

내려와서 보면 이렇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선베드도 5~6개 뿐이므로, 오전인데도 경쟁이 치열하다. 숲과 계곡에 폭 파묻힌 곳이므로, 오전에는 사실상 수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이 차다. 당연히 물속에는 아무도 없다.

 

 ....지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수영장 바로 아래로 저렇게 강이 흐른다. 셀카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각도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음;;;

 

 

 

에라. 쉬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문제는 이게 이미 과거 시제라는 것... ㅠㅠ. 돌아가고 싶어요.)

 

 

http://fivecard.joins.com/1286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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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뜨린 것 같은데...하면 역시 빠뜨린게 있습니다. 네. 12월이 1주일 지난 12월 가이드.

 

다행히 아직 유효기간이 지난 볼거리는 없네요. 잘 나가시는 분들은 송년회 날짜가 부족해 두탕씩 뛰기도 하신다던데, 이젠 그냥 마음 편히, 시간 안 되는 사람은 다음달에 본다고 생각하시고, 이런 속세의 번뇌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분들은 좀 조용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2월의 문화가이드 (2014)

 

12월이야. 1년이 다 갔어. 가슴이 저리지? 이렇게 또 해놓은 것도 없이 한살을 더 먹는다는게 답답하겠지? 그런데 남들도 다 그래. 그건 그냥 원래 그런 거야. 금세 새해가 오고, 또 그렇게 부대끼다가그렇게 인생이 가.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는데, 12월은 온갖 공연이 넘쳐 나는 달이라 볼 거리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12월은 한해를 정리하는 고급 공연들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 칼럼에서 주로 다루는 가격대 성능비 높은 공연은 오히려 부족하기 마련이지. 혹시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이 나오는 으리으리한 공연에 못 간다고 한탄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 얼마 전 한 고마운 분의 성의 덕분에 비싼 연주회를 간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진리를 확인했어. ‘관객의 수준은 공연장 좌석 가격과 완전히 반비례한다는 것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바이올린 솔로의 피아니시모에 딱 맞춰 기침들을 하시는지. 반면 여기서 추천하는 공연들은 실제 공연장에 가 봐도 기분 잡칠 일이 없어. 훨씬 고품격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야. 믿어도 좋아.

 

지난달에 얘기한대로 12월 들어 갑자기 합창교향곡 공연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야. 올해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 공연은 2회 모두 매진이거든. 그러니 적당한 DVD를 사서 집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1222, 국립합창단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 아닐까 싶어.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아니지만 어쨌든 할렐루야코러스도 송년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S석이 3만원, A석이 2만원으로 저렴해.

 

 

 

좀 더 특이한 송년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1231일 밤 8시에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를 권하고 싶어. 현존하는 명창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안숙선 명창의 완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다, 공연이 끝나면 국립극장 앞에서 불꽃놀이도 구경할 수 있어. 전석 3만원. 같은 날 열리는 예술의전당 제야 음악회보다는 이쪽을 추천.

 

더 활기찬 연말을 누리고 싶은 사람에겐 딱 맞는 공연이 있어.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일부터 111일까지. 지난 30년간 마당놀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해 온 손진책 김성녀 국수호 같은 대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고 볼만한 공연이지. 굳이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S 4만원, A 3만원.

 

 

 

연말이라 책 읽을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건너 뛸까도 했는데 그래도 올해를 마감하면서 국내 작가의 소설을 한권 정도 소개하고 싶었어. 그래서 결론은 이재찬 작가의 안젤라 신드롬이야.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며 밝게 살아가던 한 10대 소녀가 인간극장류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일약 주목받게 되는데, 그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야. 언뜻 봐도 TV 단막극 류의 코믹 설정 같지만, 페이지를 조금만 넘기면 예상 밖의 큰 스케일과 탄탄한 플롯에 놀라게 돼. 이 수준이라면 한국 소설은 도대체 재미라는 걸 어디다 팔아 먹은 거냐는 욕은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야. 인터넷 가격으로 11000원 선.

 

마지막으로 12월은 방학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 성수기인데, 올해는 그닥 개성있는 전시가 별로 눈에 띄질 않네. 그래서 뽑은 건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불멸의 여배우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스타일 아이콘이기도 한 이 분의 그림자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 13000.

 

전시를 보고 나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다시 보고 싶어질텐데 이건 각자의 선택에 맡길게. 아마도 이 칼럼의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소설이 집에 있을 테니(2014 1월 추천) 그걸 다시 읽어 봐도 좋고, 영화를 다시 볼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서 DVD 3천원대에 구할 수 있어. 물론 IPTV를 이용해도 되겠지. 그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자면 좋은 꿈을 꿀 거야. 새해에 만나.

 

국립합창단, 헨델, ‘메시아’ 12.22    A 2만원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 12.31  전석 3만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1.11  A 3만원

이재찬, ‘안젤라 신드롬   11000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11.29~3.8  13000

합계 약 104000

 

 

'연말=합창'이라는 등식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된 듯 한데 그 '합창'을 꼭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뭐 저는 2014년과 2015년은 예매 완료...^^ 2015년도 다들 서두르셔야 할 듯). 그런 의미에서 헨델의 '메시아' 도 좋고, 아래 곡 같은 합창도 연말 공연에선 충분히 시도해 볼 만 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 곡이 그닥 자주 연주되지 않는 듯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입니다.

 

 

최상의 녹음과 연주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 곡이 갖고 있는 고양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듯한 패기 넘치는 공연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혹시 이 곡 때문에 '탄호이저'를 집에서라도 감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콜린 데이비스 경의 1978년 바이로이트 실황 DVD를 권하고 싶습니다. 늘 제임스 레바인의 메트로폴리탄 판이 화질 등에선 좀 더 낫기도 하지만, 바로 저 곡, '순례자의 합창'이 매우 실망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띠 해가 가고 있죠.)

 

특히 저는 12월24일 저녁에 외출하고 뭐 이런 사람들은 정상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를 만나더라도 변두리나 각자의 집/하숙집/원룸/펜션 등등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강남역, 명동, 종로, 홍대, 연남동, 가로수길, 대학로 등등에서 방황하시는 분들은 정말 지긋지긋한 기억(추억이 아니라)을 남기게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반백년 가까이 살아 본 결과, 뭔가 이름 있는 날 사람 많은 데 가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동네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빼고.

 

뭐 이런다고 바뀔 분들이면 애당초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뭔가 영상 시설이 갖춰진(뭐 대단할 필요는 없고, 요즘은 그냥 디지털 TV와 블루레이 플레이어 한대 정도만 있으면 뭐든 가능) 장소에 모여서 고전 명화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겁니다. 가능하면 러닝타임이 긴 것들이 좋겠죠. 대부1,2,3편을 몰아 보시는 것도 좋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1,2,3편, 혹은 매트릭스 1,2,3편, 혹은 스타워즈 4,5,6편을 보셔도 괜찮습니다(취향에 따라 터미네이터 1,2,3이나 죠스 1,2,3일 수도...). 더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히치콕의 이창-현기증-레베카를 몰아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소파며 마루에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시간 잘 갑니다.

 

좀 더 수다에 초점이 맞춰진 분들이라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로열 알버트홀 축하 공연(절판된 모양인데 중고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혹은 카메론 매킨토시를 그리는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이건 아직 만원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같은 DVD를 BGM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의 영상물들은 조금만 품팔이 하시면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뭐 이건 그냥 예로 든 거고, 아무튼 명절날은 좋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TV만 같이 봐도 즐겁죠.)

 

 

술 마시다 노래가 하고 싶은 분들은 아이패드(뭐 아쉬운대로 스마트폰이라도) 하나만 있으면 노래방 앱 다운로드로 만사 해결. http://www.enuri.com/knowbox/KbCopy.jsp?kbno=322636 뭐 이건 옆집 항의받을 우려가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

 

아무튼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석양'으로 정했으니 석양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 한 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추위에 과음하지 마시고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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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참 많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지로 결정한 뒤부터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역시 현지에 가 보니 놓친 것들이 꽤 있었다.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하면 이렇다. 최신 유행에 따라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대체 언제 다녀온 여행을 여태 우려먹고 있느냐는 분들이 꽤 많다. 하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아직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마지막 마무리. 혹시 스페인에 가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지금까지 했던 포스팅들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http://fivecard.joins.com/search/스페인

 

 

 

 

 

 

1. 과일, 최고다.

 

 

오렌지, 멜론, 포도 등 거의 모든 과일이 상상 이상의 맛을 낸다. 특히 감 맛이 최고다.

(물론 사과,배와 딸기는 현재까지 한국산이 최고)

 

특히 위 사진, 'KAKI'라고 되어 있는 은 가을이라면 꼭 드셔 보시기 바란다. 수십년간 감을 먹어 온 한국인으로서 인생 최고의 감을 스페인에서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시와 단감, 대봉시의 장점만을 취한 환상의 감이다.

 

 

 

2. 예약 시스템, 뭔가 조금씩 이상하지만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셨다면 아마 렌페(Renfe)의 자주 다운되는 예약 시스템에 당황하셨을 듯.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건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거의 반드시 T10(10회 탈 수 있는 지하철 패스. 저 위의 기계에서 살 수 있다)을 사용하시는 게 좋고, 알함브라 궁전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공연 티켓을 인터넷으로 예매한다면, 어느 도시에서나 잘 보이는 라 카이샤(La Caixa) 은행 앞에 ATM 기계와 함께 있는 티켓 발매기에서 출력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길. 

 

 

3. 유로자전거 나라, 싸진 않지만 유용하다

 

 

여행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 안내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유로자전거 나라의 가이드들든 새로운 도시를 돌아 보는데 매우 유용했다. 특히 피카소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피카소의 일생 스토리를 듣고 피카소 미술관에 들르는 구성은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됐다.

 

 

4. 시장, 무조건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든,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이든, 시장을 가 보면 스페인이 달라 보인다.

 

시장(식료품 시장으로 특화된)을 가 보면,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밤낮도 없다. 광장시장의 약간 밝고 예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5. 타파스라는 종류의 음식은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타파스(Tapas)는 음식의 사이즈다. 한국에서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도 먹고 싶고, 깐풍기도 먹고 싶고, 난자완스도 먹고 싶을 때 인원이 적으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그걸 모두 타파스로 시키면 된다. 서너 입씩 먹을 분량으로 여러가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의 식문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혹시 가게 된다면 타파스보다 더욱 미니멀한 핀초(Pincho)도 잊지 말고 드시길.

 

 

6. 식사 시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식당이고 가게고 모두 쉰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지만, 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에스타의 개념이 점점 흐려져 간다고도 하고, 그 시간에 사람들은 낮잠을 자는게 아니라 카페며 식당에서 계속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다.

 

아무 시간이나 가서 먹고 떠들고 마셔도 된다. 웬만한 바나 레스토랑은 심야까지 한다. 한국과 비슷한, 참 좋은 나라다.

 

 

7. 하늘, 평원의 하늘은 다르다

 

 

 

안달루시아의 하늘. 평원 위의 하늘은 구름부터 다르다.

 

 

8. 알함브라, 역사를 알아야 보인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결혼으로 맺어지며 탄생한 대 스페인 왕국, 그리고 알함브라의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남부 스페인 여행은 의미가 반감된다. 가기 전에 대략의 윤곽이라도 파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물론 유로자전거 투어 같은 곳에선 어느 정도 설명을 해 주지만, 공부는 스스로.

 

 

 

9. 달리, 상상 그 이상

 

 

바르셀로나를 간다면 인근 피게레스(Figueres)에 있는 달리 미술관을 꼭 가 보시길 권한다. 난 미술엔 개뿔 흥미 없어, 하시는 분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10. 야경, 가는 곳마다 꼭 놓치지 말길

 

 

밤의 고딕 지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으슥할 것 같지만 오히려 한밤중에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그래도 멋지다. 그리고 알함브라의 야경은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길(안타깝게도 봄, 여름에만 가능해서 나는 실패).

 

그리고 다음에 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

 

- 바르셀로나에서 분수 쇼 보기 (왜 매일 안 하냐고)

- 리세우 오페라 (그 날짜에 적절한 공연이 있는지가 행운의 시작)

- 톨레도에서 1박 (밤의 톨레도가 진짜라던데)

- 세고비아에서 돼지 통구이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 달리가 살던 지중해의 어촌까지, 더 나아가 프랑스 국경까지.

- 그리고 국경을 넘어 모든 방문자가 '거기서 살고 싶다'던 리스본.

 

 

 

 

 

 

물론 이곳은 언제 가도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매혹의 공간.

 

이렇게 해서 1년여(;;)에 걸친 스페인 여행기 끝.

 

곧이어 발리 방문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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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에 우연찮은 인연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긴 인연이었기를 바라던 사람을 얼마 전 잃었습니다.

 

며칠 되지도 않아 늘 샘나던, 사람다움과 재능이 넘쳐 나던 친구 하나를 또 잃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란. 그 가볍고도 얇음이란.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그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In heißem Liebesstreben,
Werd'ich entschweben
Zum Licht, zu dem kein Aug' gedrung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Herz, in einem Nu!
Was du geschlagen
Was du geschlagen
zu Gott wird es dich tragen!

 

 

 

 

 

And, 제목 그대로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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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를 보고 나오는데 웬 여학생 둘이 열심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싸우더군요.

 

"그러니까 플랜 B 대로 된거지!"

"아니지, 그건 플랜 A도 아니고 플랜 B도 아닌거지. 블랙홀 들어가면서 새로운 길이 열린거잖아!"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무런 물리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게다가 평소 조용하시던 SF 덕후, 물리학 전공자, 전문 지식인들까지 합세해서 "그거랑 그거는 말이 안돼. 그리고 그건... 알지만 그렇게 한 거야. 그리고 이 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었습니다만, 굳이 169분, 3시간에서 11분 모자라는 러닝타임이 다 필요했나 하는 생각도 드는 작품입니다. 어쨌든 격찬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인데도 불행하게 '난 그 긴 시간을 졸지도 않고 봤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라는 분들이 꽤 계신 듯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들과 나름대로 생각한 답들을 적어 봤습니다.  당연히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바라는 의미에서 공개하는 글입니다. 끝부분에는, 도저히 제 수준에선 답을 생각할 수 없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우선 질문 0.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e good night 은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입니다. 밥 딜런이 예명을 따 온 바로 그 시인이죠. 전문과 해석은 http://dubunut.blog.me/220173993086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고사성어도 생각나고...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해 주는 시입니다.

 

이 글은 당연히 스포일러의 덩어리 입니다. 영화 아직 안 본 분은 여기서 패스. 그리고 영화는 꼭 보세요. 당연히 강추. 욕하실 분들도 일단 보시고 욕을 하세요. 물론 언제나 그렇듯, 가끔 '난 결말 알고 보는 게 더 좋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분들은 환영.

 

 

 

 

 

간단 줄거리:

 

지구가 기상이변과 자원고갈로 식량부족 상태를 맞게 되어 절멸의 위기에 놓인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왕년의 엔지니어이자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똑똑한 딸 머피의 방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관찰하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NASA와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종말에서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프로젝트가 진행중임을 알게 됩니다.

 

쿠퍼의 옛 보스였던 NASA의 리더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쿠퍼에게 우주로 나가는 탐사선을 조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단 인류를 구하는 길에는 플랜A와 플랜B가 있음을 설명하죠(아래 상술). 가족과 수십년이 될 수도 있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쿠퍼는 고민하지만 결국 대의를 따릅니다.

 

그리고 우주로 향하는 4명의 탐사대원. 이미 12명의 선발대가 생명이 존재 가능한 성단 지역 열 두곳을 탐사했고, 그중 세 곳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행성(밀러의 별)은 육지 없이 거대한 바다로만 이뤄진 행성이라 사람이 살 수 없었고, 두번째 별(만의 별)은 얼음으로만 뒤덮여 있습니다. 심지어 그 별에 먼저 도착한 만 박사(맷 데이먼)의 배신으로 탐사는 절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질문 1. 대체 플랜 A는 뭐고 플랜 B는 뭐냐?

 

간단히 말하면 플랜 A는 현재 지구에 살아남은 인류가 외계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하는 것, 그리고 플랜 B는 수정란 상태의 인류를 외계의 보금자리에 새로 심어서 거기서 인류의 혈통이 살아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외계 어딘가에 인류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갈 데가 있어야 이식(플랜 A)이든 파종(플랜 B)이든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쿠퍼 일행이 탄 탐사선 인듀어런스 호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브랜드 박사는 쿠퍼에게 설명합니다. '일단 네가 탐사대를 이끌고 떠나고, 나는 여기 남아서 플랜 A를 위한 문제를 네가 돌아올 때까지 해결하겠다'. 이 문제란 대규모 인구의 우주 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문제(질문 4의 답에서 더 자세히 설명) 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왔듯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그것을 토성 근처까지(웜홀이 있는 곳까지) 가져다 놓는 것을 해결하는 수준의 기술이 있어야 플랜 A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 박사를 포함한 NASA는 최대한 플랜 A를 위해 노력하되, 그 가능성이 사라지면 플랜 B라도 실행하라는 미션을 탐사대에게 준 것입니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죠.)

 

 

 

 

질문 2. 그럼 플랜 A가 성공하지 못하면 쿠퍼도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플랜 A가 성공한다면, 쿠퍼가 지구로 돌아오지 않아도, 반대로 가족이 우주로 가서 쿠퍼와 재회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아니면 쿠퍼가 지구로 일단 돌아와서 가족과 재회할 수도 있고. 다만 전제는 '돌아올 연료가 충분할 때' 라는 것입니다.

 

이미 탐사대가 떠나기 전, 연료와 물자의 제한 때문에 '3개의 목표를 모두 돌아보고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불가능'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밀러의 별(바다의 행성)'을 거친 뒤 아멜리아 브랜드(앤 해서웨이)는 쿠퍼에게 말합니다. "두 번째 별(만의 별)로 갔는데 이곳이 인류의 정착지로 가능성이 없으면, 세번째 별(에드먼즈의 별)로 갈지 지구로 귀환할 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도 냉정하게 선택하기 바란다"고.

 

그리고 두번째 별. 만 박사는 "이 별의 높은 곳은 얼음뿐이지만 저지대로 내려가면 토양이 있고, 암모니아도 사라져서 호흡도 가능하다"고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탐사대는 이 별을 정착지로 삼고, 일단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죠(마침 플랜 A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쿠퍼는 얼음 행성에서 플랜 B를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미 플랜 A가 불가능해진 상황,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구 문명의 종말을 맞겠다는 뜻입니다.

 

 

질문 3. 대체 만 박사는 왜 미쳐 날뛰나?

 

처음 12명의 선발대를 얘기할 때 브랜드 교수는 "가장 용감한 사람들(the bravest men)"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몇년간의 고독한 우주 여행 끝에 별에 도착해서, 그 별이 인류의 새로운 고향이 될수 있는지를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능성이 없다면 이들에게 남은 것은 고독한 죽음 뿐입니다.

 

만 박사는 거기서 마지막 자제력을 잃은 것입니다. "혼자서, 무의미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공포에 패배한 것이죠. 그래서 컴퓨터를 망가뜨려 자동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임의로 조작한 데이터를 보내 얼음뿐인 그 별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옥토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후발 탐사대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우주에 인류의 씨앗을 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명예욕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쿠퍼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지구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쿠퍼를 제거하려 합니다. 인듀어런스호가 있어야 제 3의 별(에드먼드의 별이라고 하지요)로 가서 플랜 B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4. 그럼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

 

('방정식은 40년 전에 이미 풀었다'는 말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리.)

 

브랜드 교수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중력의 문제입니다. 현재(혹은 영화 시작 시점) 기술로 인류는 고작해야 서너명의 탐사태원을 먼 우주로 쏘아올릴 수 있습니다.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갈 수도 있다지만, 일단 토성 근처의 웜홀까지 가는 데 2년이 걸리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대규모의 인구가 거주하고, 자급자족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 거주 시설을 겸한 우주선(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거대한 우주정거장 같은)을 쏘아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 이미 쿠퍼가 출발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그것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인류의 우주 이민, 즉 플랜 A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죠.

 

브랜드 교수가 방정식을 풀었다는 것은, 절반의 답, 즉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데이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해결했지만, 지구에서 얻을 수 없는 데이터, 즉 '중력의 비밀'을 알아야 그 공식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구상의 데이터만으론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그리고 23년 간 바다 행성의 궤도에서 쿠퍼와 아멜리아를 기다리며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브랜드 교수가 알아내지 못한 답이 블랙홀 안에서 측정한 중력의 의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혹시라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도록 컴퓨터 타스(TARS)를 세팅해 놓죠.

 

하지만 브랜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머나먼 지구에서 숨을 거두고, 그 연구를 이어받은 머피 쿠퍼(제시카 차스테인, 쿠퍼의 딸)는 교수의 거짓말에 일단 분개하지만, 곧바로 브랜드 교수를 이해합니다. 교수가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희망을 잃었을 것이고, 설사 브랜드 교수나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해결한다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질문 5.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뭐 영화 속에 답이 있습니다만, 어떤 분들은 그 답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어떤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영화 속 쿠퍼의 추정으로 '그들'은 고도의 과학력을 가진 미래 인류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미 중력의 비밀을 알았고, 생각의 힘을 통해 그 중력이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다른 차원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직접 그 방법을 써서 쿠퍼나 머피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단지 쿠퍼나 머피를 '그것이 가능한 상황'에 도달하게 하는 듯 합니다. 흑은 이런 부분이 '그들'을 신의 위치에 놓고, 신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놀란의 해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에겐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직접 행사하기 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는다..는 식의 기독교적 해석일 수도.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절대 상세하지 않고, 이 영화의 방향으로 볼 때 상세해 질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6. 대체 왜 아멜리아는 그 시점까지 혼자서 에드먼즈의 별에 있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늙은 머피는 쿠퍼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혼자 기다리고 있는 브랜드(아멜리아)에게 가리고 말합니다. 그리고 쿠퍼는 수리한 타스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아멜리아에게 떠나고, 화면은 먼 별 어딘가에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비쳐 줍니다.

 

쿠퍼는 블랙홀로 들어갔으니 124세지만 당연히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지구 나이로 그 나이를 먹은 머피는 아마도 90대 정도의 나이일 것입니다. 즉 쿠퍼가 블랙홀에서 지구 시간으로 한 50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1) 왜 아멜리아는 젊은 모습 그대로인 것이고 2) 왜 '혼자' 있는 것일까요. 즉 쿠퍼가 전송한 데이터를 통해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공식에 반영시킨지 근 50년이 흘렀는데, 왜 머피는 아멜리아가 있는 별까지 후발대를 보내지 않은 것일까요.

 

뭐 1)에 대한 설명이야 아멜리아가 수시로 동면하면서 젊음을 유지했다면 굳이 가능한 일일 듯 하지만 2)는 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거대한 우주정거장까지 가능한 상황이라면, 머피는 쿠퍼를 발견하든 말든(애당초 발견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혹은 아멜리아가 에드먼즈 행성에 도달하건 말건 계속해서 후발대를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설명은 그 마지막 신의 별 풍경은 그냥 쿠퍼의 상상일 뿐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이미 활성화된 우주 식민지에서 90세의 할머니가 된 아멜리아든, 또는 동면으로 젊음을 유지한 아멜리아든 누가 쿠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 '혼자' 어쩌고 하는 것은 그냥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무리하면 아예 우주정거장 장면 전체가 쿠퍼의 꿈이라고 할 수도...)

 

어떤 분들은 그 별에서 아멜리아가 바라보는 곳에 이미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다고도 하시는데 이건 아마 착각일 듯. 이미 인듀어런스 호에는 아멜리아의 실험실을 포함해 별에 설치할 수 있는 건물과 기관이 실려 있습니다 - 얼음 행성에서 언급됩니다. 그걸 설치해 놓은 모습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죠.

 

 

 

 

 

 

 

질문 6,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제가 답을 생각하는 데 한계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7. 대체 왜 웜홀 너머에선 '어떤 정보'는 송신 가능하고 '어떤 정보'는 송신 불가능한가?

 

영화를 보다 보면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웜홀 너머를 다니는 인듀어런스호는 지구의 가족들로부터 영상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모르스 부호조차도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수신은 되지만 송신은 안 돼." 무려 23년간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이 연구 내용을 브랜드 교수님께 전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합니다. 아울러 전 승무원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안부 한 줄 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12년 전에 출발한 세 사람의 개척자들로부터는 신호가 도착합니다. 만의 별과 에드먼즈의 별 중 어디로 갈지를 싸우는 쿠퍼와 아멜리아의 대화를 보면 이들이 보낸 신호가 그 별의 환경에 대한 약간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 박사가 자신이 보낸 신호를 조작하고 동면한 뒤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만 박사의 신호가 거짓말이라고 밝히는 내용을 송신할 수 없다면, 만 박사는 일부러 컴퓨터를 고장낼 이유도 없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들은 웜홀을 통과한 외계 은하에서, 대체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있고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없는 것일까요?

 

 

 

질문 8. NASA에 이상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

 

맨 처음 쿠퍼와 머피가 NASA에 도달했을 때, 대체 어떻게 여기를 찾았느냐는 질문에 쿠퍼는 "믿을 리가 없겠지만..."하면서 곤혹스럽게 초자연적인 중력 현상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로밀리는 "이미 여러 차례 이상한 중력 신호가 '그들'로 부터 오고 있다"면서 의외로 '초자연 현상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말을 쉽게 믿습니다.

 

거의 마지막. 거대한 책장 모양의 블랙홀 신에서 이미 우리는 머피에게 보낸 다양한 중력 신호는 쿠퍼가 보낸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럼 대체, NASA에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일까요. 12명의 탐사대 중에 누군가가 쿠퍼보다 먼저 블랙홀에 갇힌 적이 있는 것일까요?

 

(아울러... 쿠퍼는 이미 지구를 떠나기 직전, 머피가 책장을 통한 신호가 'STAY'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 이미 알고 있는 그가 대체 왜 블랙홀 공간 안에서 안간힘을 써서 'STAY'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과거 시점에 이미 그 메시지를 전해 듣고도 무시한 자신에 대한 후회로? 그냥 그렇게 해야 앞뒤가 맞을 것 같아서?  그냥 감동하기엔 좀....)

 

 

 

질문 9. 왜 만 박사는 처음부터 플랜 B로 가지 않았을까?

 

얼음 행성에서 다른 탐사대원들이 머피의 메시지 "플랜 A는 뻥이다"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만 박사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 박사는, 위에서 말했듯,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플랜 B를 달성하기 위해 갖은 미친 짓을 하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는 지구를 출발할 때 어차피 방법은 플랜 B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질문: 대체 왜 12명의 선발대는 처음부터 플랜 B를 실시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인류의 수정란 갯수가 한계가 있었다면 모를까, 영화 앞부분에서 보듯 수정란은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만들 수 있고, 공간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럼 인듀어런스호에 실린 것만큼 대량은 아니더라도, 선발대가 각기 수정란을 갖고 많은 후보지로 출발했다면 인류의 생존 가능성도 훨씬 높아 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영화의 근본 설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말이 된다 안된다를 따지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인류의 남은 자원량이 인듀어런스 호 하나를 날려 보내는 정도로 달랑달랑했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한 대답은... 그냥 '그랬으니까 그런 거지' 정도?)

 

 

물론 이런 사소한 질문들에 대해, '영화가 주는 거대한 메시지에 감동할 생각은 않고,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 끝만 보는 저열한 행동거지'라고 야단 치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랍니다. 이런 거 따져 보는 재미가 또 이런 영화 보는 재미거든요. 그냥 할일 끔찍히 없다 생각할 분들은 그렇게 하시고, 혹시 이 질문들에 대해 다른 답이 있는 분들은 제게도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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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이 다 흘러가버렸네요. 다시 봄이 오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이 급해지지만 그래도 잠시 여유를!

 

 

 

10만원으로 즐기는 11월의 문화가이드 (2014)

 

왠지 12월과 1월이 시작과 끝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달로 꼽히다 보니 11월과 2월은 약간 곁다리처럼 느껴지곤 해. 하지만 올해 11월은 상당히 볼거리 많은 달이더군.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마이클 볼튼, 제이슨 므라즈, 림프 비즈킷, 여기에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같이 오시는 거 아니야. 각각이야)까지 굵직굵직한 내한공연이 잡혀 있다. 물론 이 페이지에서 다루기엔 매우 비싼 공연들이야. 그러니 개인적으로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알아서 카드를 긁으시고, 우리는 갈 길을 가자고.

 

평소 클래식에 전혀 관심 없던 분들도 연말만 되면 왠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나 말러 교향곡 2, 모짜르트의 레퀴엠, 가끔은 베르디의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 물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서울시향이 올해도 1226일에 합창교향곡 공연을 준비했는데, 이미 늦었어. 매진이야. 그런 분들 때문에 27일 추가로 만들어진 공연 역시 매진이야. 하지만 프로이데를 듣지 않으면 도저히 2014년이 마감될 것 같지 않은 분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어.

 

11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헨델 메시아 & 베토벤 합창 교향곡공연이야. 서희태가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 연주에 김동규 박미자 등의 협연으로 메시아의 하이라이트와 잘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들, 그리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의 4악장을 연주해. 뭔가 처음 보는 형상의 발췌 공연이라 좀 지나치게 대중적인 포맷이란 느낌은 드는데, 아무튼 앞서 말했듯 꼭 필요한분들을 위한 안내. ‘추천은 아니야. 티켓은 20만원부터 4만원 짜리까지.

 

 

(...참 묘한 공연)

 

그럼 추천은 지금부터. 이달은 국립극장의 레퍼토리가 좋아. 일단 1031일부터 시작되는 단테의 신곡무대에 눈길이 가.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을 한태숙 연출로 재해석해서 이미 지난해 매진사례였던 작품이지. 정동환 박정자 등 대배우들의 관록이 빛난다고나 할까. 7만원부터 3만원까지 있는데 볼게 많으니 일단 3만원짜리 A석으로 하자고.

 

 

 

 

다음은 20일부터 126일까지 공연되는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이야. 혁신적인 연출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창극 춘향전의 연출을 맡은 무대지.

 

유럽 연출가가 창극을? 그게 말이 돼?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거야. 하지만 그렇게 친다면 한국 연출가가 셰익스피어 극이나 푸치니의 오페라를 연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또 한국에서도 같은 햄릿이라 해도 기국서 판 햄릿이나 안민수의 하멸태자처럼 변형한 작품이 각광을 받기도 하고. 아무튼 개인적으로도 매우 관심이 가. 5만원에서 2만원. 달오름 극장은 그리 크지 않으므로 2만원으로 일단 설정.

 

 

마지막으로 국악을 넘어 선 마스터 양방언의 공연 에볼루션 이 있어. 굳이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지? 특히 지난 7여우락때 매진이라서 공연을 놓친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를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아. 7만원~3만원 까지 있는데, 그냥 우리는 3만원 정도로 하자고. 중요한 건 현장이고, 음악이잖아?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나온지 좀 됐어. 200년 정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읽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어.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성장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이야. ‘역린에서 이산’, ‘성균관 스캔들’, ‘비밀의 문까지 수많은 작품들의 원형을 여기서 볼 수 있거든. 여러 출판본 중에선 정병설 교수의 번역본을 권하고 싶어. 그냥 번역만으로는 맛볼 수 없는 상세한 해설을 통해 풍성한 배경 지식까지 얻을 수 있어. 인터넷 가격으로 약 12000.

 

11월은 이렇게 보내도록 해. 연말에 보자고.

 

10.31~11.8 국립극장, 단테의 신곡, A 3만원

11.20~12.6 국립극장,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A 2만원

11.28~11.30 양방언, Evolution 2014, A 4만원

한중록, 정병설 편역  12000

총액 약 102000

 

 

안드레이 서반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닙니다. 다같이 참고용으로 서반이 연출한 파리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에서 '광란의 루치아'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건 영국 로열 오페라의 2013년 '투란도트' 공연. 서반이 처음 디렉터를 맡은 것은 1984년의 일이지만 당시의 연출 버전을 아직도 공연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1943년 생이니 이미 70대의 노장. 1960년대, 그러니까 팔팔하던 20대에 벌써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가부키 스타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려서 역사상 가장 야심만만한 연출이라는 호평을 받은 양반입니다. 그러니 70, 80년대에 이미 최고의 거장 대접을 받았고, 연극에 머물지 않고 오페라와 영화에까지 발을 뻗었던 양반입니다.

 

이런 경력에 비쳐볼 때 '아니 어떻게 서양 사람이 춘향전을...'이라는 식의 생각은 한참 기우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어떤 무대가 될지 저부터도 참 궁금합니다. 꼭 가 볼 생각.

 

 

 

마지막으로 한중록.

 

사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도세자와 정조, 그 시대에 대한 글을 썼지만 지금껏 한중록을 통독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중록이야말로 그 시대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미 혜경궁 홍씨는 노론의 영수 홍씨 집안의 딸이었으므로 그 기록은 사도세자에 대한 왜곡으로 점철돼 있을 거라는 논리에 노출된 뒤였으므로, 굳이 그 내용을 봐야 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탓도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감안하고 '한중록'을 읽으면 혜경궁 홍씨의 스탠스는 참 정치적으로 절묘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을 죄를 지었다 해도 곤란하고, 안 지었는데 누명을 쓰고 죽었다 해도 곤란할 처지에 있으니 글의 방향은 '일련의 사건들은 사실이나, 세자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병(광증)의 소치'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과연 그 주장 하나 하나가 얼마나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겠으나, '한중록'을 한번쯤 읽어 보고 나면 혜경궁을 '남편의 목숨보다 친정의 권력에 더 무게를 실었던 여자'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그 반대쪽의 논리가 좀 부실하다는 점도 큰 몫을 합니다.)

 

 

그리고 중간의 '헨델의 메시아+베토벤의 합창' 공연은 그냥 '살다 보니 이런 공연도 있더라' 정도로만 이해해 주시길.^^

 

 

좀 이르긴 하지만, 뉘른베르크에서 올해 6월에 있었던 플래시 몹입니다. 들을 만 합니다.

 

연말에 잘 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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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나긴 스페인 여행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지루하셨겠지만 이제 끝.]

 

기대 이상이었던 알카자르 덕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한 터라 톨레도의 나머지 지역 구경을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했다.

 

사실 톨레도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엘 그레코의 도시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이제 일단 엘 그레코는 뒷전. 우선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찬탄했던 언덕 위의 톨레도 뷰를 보기 위해 서둘렀다.

 

 

사상 최악의 길찾기 코스인 톨레도 관광에서 그나마 뭔가 트인 공간을 보려면 조코도베르 광장으로 가야 한다. 사실 처음에는 '뭐? 이따위가 광장이라고?' 라는 생각이지만, 톨레도에서 30분만 여기저기로 걸어 보면 '아, 이게 광장이구나'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로다.

 

그래서 조코도베르 광장의 저 M 사인이 보일 때 매우 반가웠다.

 

 

건물을 찍을 때는 사진에 표현되지 않지만 참 아름다운 날씨였다.

 

 

잠시 대기하며 배룰 채우고, 드디어 미니열차 Zocotren 출발. 요금은 5유로 정도고 약 40분 가량 톨레도 주위를 돌며 구경을 시켜준다. 톨레도 내부에서도 저렇게 다니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톨레도 내부엔 저 정도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다. 조코베르 광장을 벗어나면 도보 이동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못 봤지만, 만약 그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려 한다면 한참 욕을 먹을 듯.

 

 

그러니까 이런 길은 여기 말고는 없다고.

 

 

성벽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성 밖으로 나가기 전. 톨레도 성은 주변 지역보다 표고가 높다.

 

 

 

톨레도는 대략 이렇게 팝콘 알갱이 같이 생겼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외곽의 70%를 타호 강이 감싸고 있는, 평지보다 살짝 높은 고지대에 도시가 건설된 것이다. 방어를 위한 최선의 거점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굉장히 중요한 팁: 이 미니열차는 톨레도 시내를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도시외곽을 돈다. 그 말은 즉...

 

기차 안의 좌석은 한 줄에 약 4명씩 앉는 배치인데, 오른쪽 창가 쪽에 앉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 된다.

 

다들 저렇게 팔을 내놓고 촬영에 열중하게 된다. 그만치 풍광이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성 밖으로 나서면,

 

 

 

타호 강을 건넌다. 그림같다.

 

 

강 건너에서 시계방향으로 순환도도를 달리며 톨레도를 바라보게 된다. 오른쪽 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아까 가본 알카자르가 역시 도시의 상징답게 눈에 확 들어온다.

 

 

 

 

 

왕년에 쓰이던 다리와 정문.

 

이런 몇 군데의 포인트만 차단하면 톨레도는 그야말로 철벽 방어 태세가 된다.

 

 

 

남쪽으로 돌아 나오면 알카자르 말고도 볼만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

 

 

 

아이 이뻐.

 

 

 

잠시 후 차를 뷰포인트에 세워 준다.

 

강 건너편은 절벽. 만약 성문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 강을 건너고, 다시 톨레도의 성벽을 넘어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구경 화약무기가 발달하기 전까지 톨레도로 쳐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알 수 있다.

 

 

 

 

오른쪽의 알카자르와 비슷한 높이인 첨탑이 톨레도의 카테드랄이다.

 

성-속 권력의 경쟁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살짝 다른 각

 

 

이런 장난을 쳐 보고 싶게 하는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 올망졸망한 골목길.

 

잠시 후, 저 골목길에서 좌절하게 된다.

 

저 골목 안에 갇히면 길찾기의 제왕도 당황하게 된다. 바로 옆에 저만한 높이의 대성당이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혹시 이런 것도 침략자에 대비한 설계인 것일까.

 

 

도시의 서편. 아무튼,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 그냥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게 된다.

 

 

 

이건 동쪽 다리. 그러니까 정면의 성문(북문)이 있고, 다리는 동편과 서편에 하나씩 있다.

 

 

북쪽 성문을 통해 다시 성 안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보 톨레도 관광이 시작된다.

 

 

 

아니 웬 롯데리아...

 

근데 잘 보면 t가 하나 없다. 저 로떼리아는 복권. lotto와 같은 어원이겠지?

 

 

지금까지는 그나마 넓은 길. 사실 저렇게 차가 서 있지만, 톨레도 주민들은 대체 이 골목으로 어떻게 차가 다녀? 싶은 곳까지 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듯 싶다. 뭐 동네가 동네다 보니 적응한 것이겠지만.

 

 

 

그런데 예쁘다 예쁘다 하고 다니다 보니 길을 잃었다. 뭐 여행 다니면서 길 찾는 거야 평소 일도 아니라고 자부했던 터라 아무 걱정 없이 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여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위를 올려다 봐도 저렇게 자기 머리 위의 하늘만 보여.

 

 

밑을 봐도 표지판 하나 없고...

 

 

저렇게 빤히 보이는 건물도 막상 가다 보면 길이 없고 건물은 사라져 버린다. 골목길의 마술이다. 나중엔 무서워진다.

 

 

한참을 헤맨 뒤에 가까스로 도착한 카테드랄. 저 첨탑이 그 도시 밖에서도 잘 보이던 바로 그 첨탑인데, 막상 도시 안에선 저 첨탑이 보이질 않는다. 물어 물어 간신히 찾았다. 골목이 하도 복잡하니 현지인들도 마땅히 가르쳐 주기기 쉽지 않은 듯. 톨레도 가시는 분들은 농담 아니고, 나침반을 휴대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웅대한 카테드랄의 규모. 막상 대성당 앞에도 공터가 없으니 건물의 규모가 제대로 드러나는 사진은 감히 찍을 방법이 없다.

 

곧 내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나게 크고 장대하다.

 

 

엘 그레코의 도시에 왔으니 역시 엘 그레코 앞에 서야 한다. 그가 1603년에 남긴 'Santo Doming'라는 작품.

 

 

 

이런 식으로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전시된 공간을 살짝 지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걸개 그림이 방문자를 반긴다. 아직 놀라면 안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스페인 역사의 진짜 수도는 마드리드가 아니라 톨레도였다는 것은 카테드랄을 보면 안다.

 

 

이제 슬슬 익어가는 카테드랄의 기본 구조. 가운데에는 파이프오르간과 성가대석이 있다.

 

 

 

 

 

규모는 세비야 카테드랄이 더 클 수 있으나, 장식의 화려함은 톨레도 카테드랄이 훨씬 앞서 있다.

 

 

 

 

황금색으로 뒤덮인 장식 속에 곳곳의 이런 목각이 눈길을 잡는다.

 

 

 

진정 요란한 주 제단.

 

 

 

 

역시 딱 보면 알 수 있는 엘 그레코의 손길.

 

 

뜻하지 않은 곳에서 카라밧지오의 그림을 만난다. 그가 그린 San Juan Bautista.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San Juan Bautista는 앞서도 말했지만 Saint John the Baptist, 즉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스페인식 표기다. 어디선가 '바우티스타 성인'이라는 기이한 번역도 본 것 같다.

 

 

 

더 화려한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아무튼 이 카테드랄의 주제는 '화려함'이다. 금색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면 채광창을 통해 왕실 예배당으로 햇살이 비친다. 신비롭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엘 그레코의 12사도 그림이 있다. 익숙한 사람은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누가 봐도 엘 그레코'.

 

 

 

그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하는 길.

 

 

 

 

 

부속 건물은 고승들의 묘지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

 

엘 그레코를 찾아 산토 도메 성당까지 가는 것이 당초의 목표였으나 불행히도 알카자르에서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잡아 먹고, 카테드랄을 찾느라 너무 헤매는 바람에 감히 산토 도메 성당을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리 예매해 놓은 열차 시간이 달랑달랑.

 

어느 분이 톨레도는 관광객이 떠나간 오후 다섯시 이후가 진짜 끝장이라던데, 안 그래도 언젠가는 톨레도에서 하룻밤 자 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톨레도 역으로 복귀.

 

 

그래도 톨레도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한다는 마사판(Mazapan)은 한 상자 샀다.

 

엄청나게 달다. 우유나 쓴 커피가 없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

 

이렇게 해서 스페인에서의 열흘간이 지났다. 총정리편은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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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해진 생활용어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셋이서 어울려 다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아유 셋이 아주 삼총사야"하고 말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널리 쓰입니다. 뭐든 세명이 두각을 보이거나 중요한 존재가 되면 무조건 삼총사로 묶입니다(듀오, 삼총사, 사인방, [독수리]오형제...로 나가는 공식은 정말 영원불멸일 듯).

 

그런데 정작 이 삼총사가 본래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뒤마의 소설 제목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그 내용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얼마 없더군요. 오히려 그 바로 뒤에 나오는 '사인방'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듯 합니다. 

 

'삼총사'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첫 단계는 가운데의 '총'입니다. 이 총이 쏘는 그 총이라는 걸 아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삼총사

[명사] 본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제목. 이후 세 명이 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용중.

 

한자 표기 三銃士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놀라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총이 탕 하고 쏘는 그 총 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원제인 ‘Les Trois mousquetaires’에 나오는 mousquetaire는 영어의 musketeer, 즉 화승총과 현대식 라이플의 중간 세대에 위치한 화약 무기 머스킷(musket)으로 무장한 근대식 기병을 말한다. ‘머스킷을 쓰는 병사를 압축해 번역하다 보니 총사(銃士)라는 한자어가 등장한 것이다.

 

삼총사에 나오는 프랑스 총사대는 1622년 루이 13세에 의해 국왕 직속부대로 창설됐다. 아버지 앙리 4(‘낭트 칙령을 발표해 프랑스 내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를 모두 정당한 신민으로 인정한 왕으로 유명하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마고 여왕의 남편)가 거느리고 있던 경기병(Carabinier)의 화력을 보강해 개편한 프랑스 육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왕이 직속부대를 강화하자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 추기경도 자신의 직속 경호대를 창설했다. 국왕에 비해 꿀릴 것이 없는 권력자인 만큼 자신의 경호대가 왕의 총사대에 비해 규모나 무장 등에서 손색이 없도록 구성한 모양이다. 당연히 두 부대 사이에는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싹텄다. 소설 삼총사의 앞 부분, 즉 달타냥이 파리에 도착해 총사대와 경호대 사이의 분란에 뛰어드는 대목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설 삼총사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루이13세와 안느 왕비, 왕비의 연인이며 영국의 총리대신인 버킹엄 공작 존 빌리어스, 달타냥의 숙적인 추기경 리슐리외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달타냥과 삼총사는 실존 인물과 행적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달타냥의 모델은 뒷날 달타냥 백작이 된 군인 샤를 드 바츠(1811~1873)라는 게 정설이다. 소설과는 달리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궁정과 추기경 사이를 누비며 은밀한 활약을 펼쳤고, 뒷날 총사대의 대장에도 올라 실제 소설의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달타냥 백작의 일생에 감명을 받은 가티엥 드 쿠르틸 드 상드하(Gatien de Courtilz de Sandras)라는 동시대 작가가 달타냥 씨의 비망록이라는 기록(제목은 비망록이지만 내용은 무협지 수준의 과장이 넘쳐난다고 전한다)을 출판했고, 200년 뒤 사람인 뒤마는 이 기록을 모태로 자신의 대표작인 삼총사’ 시리즈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공을 거둔 이 책은 20세기 이후 수십차례 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4년 한국에서는 원작의 배경을 조선 인조 때로 옮겨 놓은 드라마도 나왔다.

 

 

삼총사의 총이 그 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왜 소설에선 칼싸움 밖에 안 나오냐고 반문하는데, 사실 총 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삼총사의 후반 1/3 가량은 1627~28년에 걸쳐 벌어진 라 로셸 포위전에서 피아 5만의 군대가 대포와 총을 동원해 벌이는 대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총은 안 나오잖아?'하는 분들은 이 책의 앞 쪽 50페이지만 읽은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굉장히 옛날 같지만 1622년이면 이미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에서 사수,살수와 함께 조총병인 포수를 양성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번역을 했다면 소설 제목 삼총사삼포수(三砲手)’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달타냥과 삼총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삼총사'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 두고 싶다. 뒤마는 삼총사와 달타냥을 주인공으로 1844삼총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년 후’, ‘브라젤론 자작(Le Vicomte de Bragelonne)’등 속편을 내놨다. 삼총사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젤론 자작 3부가 바로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철가면 에 등장하는 철가면과 루이 14세 이야기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20년 후1995년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어 구해 볼 방법이 없고, ‘브라젤론 자작은 아예 출간된 적이 없다. 영화 철가면이 나왔을 때 뒤마 원작이라고 아는 척 했던 분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읽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삼총사도 수십가지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 아동용 압축본인 게 한국의 출판 현실이다.

 

P.S. 30여년 전, 아동문학전집에 섞여 있던 삼총사는 국왕 폐하에게 충성하는 달타냥이 카르지나르라는 간신과 싸우는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 카르지나르가 악당의 이름이 아니고 추기경(Cardinal)’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어 중역본 시대의 웃픈 이야기.

 

 

 

 

 

 

무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밀덕들에게 당할 수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삼총사 - Three Muskuteers 라는 말은 초콜릿 바 이름에까지 쓰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단 저렇게 영어로 써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삼총사라는 말과 Musket이라는 무기를 연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비해 '삼총사'라고 쓰면 그게 저 무기와 관련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죠.

 

흔히 arquebus를 '화승총'으로, rifle을 '(현대식)소총'으로 번역하는 반면 그 중간 단계인 musket에는 마땅히 붙일 만한 번역어가 없습니다(물론 아퀴부스와 라이플 사이에 머스킷 한 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다른 단계와 다른 이름의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머스킷 총'이라고 부릅니다.

 

머스킷은 아퀴부스의 약점인 짦은 사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멀리 나가게 하려면 총신이 길고 견고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연히 무게가 더 나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초기의 머스킷은 대단히 무거워서 받침대가 없으면 혼자 사격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무기였지만, 차츰 개량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머스킷과 라이플의 차이는 단적으로 말해 총신에 강선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rifle 은 동사로는 '총신(bore)에 회오리 모양의 강선을 파다'라는 뜻입니다. 즉 머스킷의 총알이 그냥 총구에서 밀려 나오는 방식이었다면, 라이플로 쏜 총알은 총구에서부터 회전하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더 빠르고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어떤 사람은 rifle을 '장총'이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은 '소총'이라고 번역합니다. 정 반대의 의미인 셈이죠. 물론 길이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이긴 합니다만, 어쩌다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참...^^)

 

 

 

 

 

 

아무튼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총사'는 여러 번 읽어 봤지만 '20년 후'나 '브라젤론 자작'은 당연히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20년 후'만 해도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서점에 서서 몇 줄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에 나오는 안느 왕비가 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왕년에 왕비님을 도와준 달타냥을 기억하십니까? 그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하자 왕비가 "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하는 반응을 보이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던 듯 합니다.

 

그러니까 '삼총사'에서 달타냥과 세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일을 성사시켰더니 20년 뒤 왕비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져 있다니. 등장인물에 대한 배신감이 확 일어서 책을 사 볼 마음이 없어졌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책도 구할 길이 없어져 버리고 나니, 그때 그 책을 샀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아무튼 언젠가 '20년 후''브라젤론 자작(혹은 철가면)'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수십 수백개의 삼총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삼총사는 이 쪽.

 

 

 

혹은 그 원형인 이쪽.

 

 

 

 

아 이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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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밝은지 좀 됐군요.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얼른 올립니다. 다행히 로스 로메로스 공연은 9일이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0월의 문화가이드

 

매년 하반기의 낙이라 할 수 있는 추석 연휴가 칠천량 해전에 나간 원균의 함대처럼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겠지? 남은 건 송편이랑 갈비찜 때문에 찐 살과 가족들 선물 산 카드값 밖에 없다는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마. 10월엔 아직 개천절과 한글날이 충무공의 열 두 척처럼 남아 있으니까. 사즉필생!

 

10월의 공연 전시 리스트를 보다가 이건 봐야 해하는 느낌이 딱 오는 이벤트가 있었어. 바로 109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 홀에서 열리는 로스 로메로스 내한 공연 이야. 세계적인 스패니시 기타리스트 셀레도니오 로메로가 창설한 로스 로메로스(눈치챘겠지만 로메로 가족이란 뜻이야)는 스패니스 기타의 쿼텟 스타일을 처음으로 만든 팀이지.

 

세월이 흘러 셀레도니오의 둘째 아들이며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의 페페 로메로가 리더 역할을 이어받았고 두 손자가 멤버로 들어와 팀이 3대째로 접어들었어. 가을 밤의 스패니시 기타 소리. 네 명의 기타 명인이 연주하는 알베니스의전설(Leyenda, 혹은 Austurias)’. 어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지?

 

물론 다 좋지만 문제는 가격. 11만원 짜리 R석과 7만원 짜리 S석밖에 없어. 고민되지만 이럴 때 한번 질러 보는 거지 뭐. IBK홀은 그리 크지 않아서 굳이 11만원짜리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 7만원 투척.

 

다음은 지난달 카르미나 부라나에 이은, ‘들으면 다 아는데 쉽게 연주되지 않는 곡시리즈 2탄이야. 1031일 예술의전당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연주돼. 네이버 지식인에 둥당둥당 둥당둥당 밤~ ~ ~ 빠밤으로 시작하는 클래식 곡 제목이 뭐죠?’ 라고만 물어봐도 누군가가 답을 알려 줄 만큼 유명한 곡이지. 하지만 실제 연주를 들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이번 연주는 스타 지휘자 임헌정이 올 연초 코리아심포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뒤 내놓은 기획이야. R석이 5만원인데다, 1층 사이드와 2층 대부분 좌석이 2만원 짜리 A석이라는 건 감동적인 보너스지. 단 곡의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를 꼭 읽고 오라고 부담 주고 싶지는 않아.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도 끝까지 보려면 힘들 수도 있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음악만 들으러 와.

 

, 다음은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이야. 이미 821일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인데다 워낙 유명하지만 그래도 1만원에 이만한 효용의 전시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제목이 교감 - Beyond and Between’ 이듯 우리 고전 미술 작품과 국내외 현대 미술 작품 간의 대화를 상징하는 전시야. 혹시 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8월의 추천 전시였던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의백자예찬과 비슷한 컨셉트의 전시라고 볼 수 있겠네. 물론 리움의 소장품이 등장한다면 더 말 할 게 없겠지. 1221일까지니까 여유있게 들러 봐.

 

이달의 책. 전 세계적으로 사 놓고 안 읽는 책 1라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추천해서 여러분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하거나(책값만 3만원…), 저 책을 읽은 척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이드로 알려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를 추천할 생각은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도 너무 뻔한 선택이라 탈락. 뭐 이미 보신 분도 많을테고.

 

 

 

그래서 고른 이달의 책은 조시 베이젤의 비트 더 리퍼. 뭐 이 코너를 지켜보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어쨌든 모토는 재미있는 책이야. 그리고 대략 취향도 파악됐을 거야. 깜찍발랄한 소설 참 좋아해.

 

비트 더 리퍼는 병원 인턴 피터의 일상에서 시작해. 그런데 사실 이 피터는 평범한 의대생이 아니고 전직 마피아의 킬러였어. 그것도 천재적인 킬러. 그런데 과거를 씻고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거야. 킬러 출신 인턴, 멋지지 않아?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알던 마피아 멤버 하나가 환자로 병원에 나타난 거야. 그리고 요구하지. “내가 죽으면 (너의 비밀을 폭로할 테니) 너도 죽는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살려라.”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2011년 출간된 책이라 가격도 싸. 7000원대면 살 수 있어. 그러니 늘 당부하지만, 신작에 목 매지 말라고.

 

그럼 이달은 여기까지. 11월에 만나.

 

로스 로메로스 내한공연                                         S 7만원

코리아 심포니,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 2만원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1만원

조시 베이젤, ‘비트 더 리퍼                                     7000

합계                                                            107000

 

 

 

자, 영상 학습 시간.

 

영화에 좀 관심있는 분이라면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어디선가 들어 보셨을 유명한 장면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 장면이죠.

 

그냥 별 할일 없이 자빠져 뒹굴고 있던 원생 인류(외견상 침팬지와 별 차이가 없죠^^)들이 어느날 외계에서 날아온 모노리스(검은 색의 비석)로 부터 영감을 얻어 동물과 선을 긋고 진화의 방향을 선택하는 그 장면이죠. 모노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한 유인원이 동물의 다리뼈를 도구로 이용하는 법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팔과 다리 이외의 도구를 확장된 몸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인류 문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큐브릭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무 길어서 다 못 보시겠다는 분들은 5분25초 쯤부터 보시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번의 '까르미나 부라나'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한번 영화를 통해 음악의 위용이 드러난 다음에는 엄청난 남용의 시기가 찾아오고, 그러다 보면 음악이 실제 갖고 있는 의미는 저 뒷전으로 사라집니다.

 

패션쇼 오프닝이나 지하철 상가 개장 광고에서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어 오신 분들이 한번 이 기회에 진짜 음악을 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페페 로메로 옹의 연주. '스패니시 기타 연주곡' 이라면 누구라도 딱 머리에 떠올릴 알베니스의 '전설'.

 

 

 

 

한곡 더?

 

 

 

 

Los Romero: 50th Anniversary Concert at 92Y - GIMÉNEZ: El baile de Luis Alonso (1896)

 

영상에도 표시되듯 2009년 3월21일 연주입니다.

 

날씨 참 기가 막히게 좋군요. 좋은 10월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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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개는 '투쟁'이라는 말이 뒤에 붙어야 한 단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눈에 띄는 '단식원'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한가하거나, 뭔가 숭고한 대의를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의 이유로 단식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연이 있을테지만요.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단식이라는 위협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좀 남용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압하는 쪽이나, 억압받는 쪽이나, 느낌표와 과장법이 지배하던 시대의 유산에서 아직도 세상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분명히 '단식'이라는 것은, 시도하는 사람이 "나는 지금 내 목숨을 걸고 나의 주장의 관철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 의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는, 절박하고도 비상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때 진실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정도의 절실한 문제가 아닐 때 과연 이런 투쟁의 방식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세상의 주목을 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너무 흔해진 줄 알았던 '단식투쟁'의 의미가 이렇게 절박하고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켰으니까요.

 

 

 

 

단식 [명사] 斷食. 스스로 음식 섭취를 중단함.

 

단순히 밥을 먹지 않는다고 단식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주체적인 의지를 갖고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는 점에서 단식은 의학적 목적으로 음식 섭취를 막는 금식(禁食)과 구별된다. 아울러 우리 말의 단식에는 영어의 fasting hunger strike,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영어의 fast빠른이란 의미 외에 단식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은 아침식사를 가리키는단어 ‘breakfast’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즉 밤 사이 잠을 자느라 어쩔 수 없이 했던 단식(fast)을 깨는(break) 것이 바로 아침식사라는 얘기다.

 

엄밀히 말해 단식 투쟁으로 번역할 수 있는 hunger strike는 인류사 전체를 돌이켜 볼 때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행동양식이 아니다. 20세기 이전 인류 문명의 대부분 지역에서, 절대 다수의 피지배 계층에게 있어 기아(飢餓)는 형벌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식량의 절대 생산량이 부족하던 시대에 만약 별 지명도 없는 인물이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굶어 죽겠다고 적을 위협했다면 그 적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 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물론 단식을 감행하는 사람이 평소 큰 명망과 존경을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달랐을 수도 있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의에 반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단식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통 탓인지 영국의 통치에 맞선 아일랜드 독립투사들 중 많은 수가 옥중에서 단식 투쟁으로 숨졌다. 1920년 무려 94일간의 단식으로 기네스북 기록을 갖게 된 피터 크로울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131, 보비 샌즈를 비롯한 10명의 IRA(아일랜드 공화군) 전사들은 자신들을 전쟁 포로 아닌 일반 죄수로 취급하는 영국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순차 단식에 들어갔다. 첫 희생자인 샌즈는 66일만인 55일 목숨을 잃었고, 다른 9명도 차례로 소금과 물만을 섭취하며 버티다 차례로 숨져 갔다 마지막 주자 마이클 디바인이 숨진 것은 820일이었다.

 

이런 일이 빚어지는 동안 영국 미디어의 헤드라인은 로열 웨딩의 화사한 뉴스로 도배되고 있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그해 224일 약혼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커플은 729일 런던 세인트폴 예배당에서 전설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테러리스트라면 테러리스트지만, 열명의 젊은이가 차가운 감방에서 수개월에 걸쳐 스스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꽃가루를 뿌리는 초대형 결혼 이벤트가 펼쳐졌으니, IRA와 동조자들의 입장에선 피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정부에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이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의 행정부다웠다.

 

단식 투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도 끔찍하지만, 더 심각한 폭력은 단식을 강제로 중단시키기 위한 강제급식(force-feeding)이다. 얼핏 생각하면 단식으로 죽어 가는 사람에겐 강제로라도 음식을 먹여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인도적일 것 같지만, 세계 의료협회(WMA) 1975년 전 세계 수감자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도쿄 선언(Declaration of Tokyo)’ 7항에서 모든 의사들은 일체의 강제급식 행위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단식 투쟁은 구금상태에 놓인 사람의 선택이며, 이를 강제로 막는 것이야말로 인권에 반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불행히도 단식이 아름다운 결과를 빚어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도 가장 동화 같은 이야기는 1948, 마하트마 간디가 펼친 마지막 단식이 아닐까 싶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을 쟁취한 인도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반목으로 심각한 내전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간디는 1948 113, 모든 계파가 유혈사태를 멈추고 평화에 동참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식민주의와 맞서 평생 비폭력의 길을 걸으며 수시로 단식 투쟁을 감행한 간디였지만 이미 79. 단식을 한다면 며칠 버티지 못할 것임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5일만인 118, 인도 전역에서 총성이 멎었고 100여명의 각 종교 계파 지도자들이 간디의 처소 앞에 집결해 제발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불행히도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12일 뒤인 130일 간디가 권총으로 저격당해 숨지며 비극으로 끝났다. 범인은 힌두교 광신자 나투람 고드세로 밝혀졌다. 그의 총알은 인간애에 대한 호소, 비폭력 수단에 의한 투쟁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역시 산산조각을 냈다. (끝)

 

 

인도는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국이 됩니다만, 종교로 인한 분리는 피하지 못합니다. 힌두교가 절대 다수인 인도를 남긴 채 1947년 이슬람교 우세 지역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독립했고, 역시 불교 우세 지역인 스리랑카도 다른 나라가 됐지요. 아무튼 이런 분리 이후에도 온 나라가 심각한 종교 분쟁에 휘말려 죽고 죽이는 피바람이 일 때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간디는 원초적인 형태의 단식에 들어갑니다.

 

 

 

 

간디의 일생을 다룬 5시간 짜리 다큐멘터리. 4시간48분부터 이 최후의 단식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79세의 나이에 단식에 들어간 겁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1982년작 '간디'의 후반부.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단식 5일째인 간디에게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찾아와 더 이상의 유혈 사태가 없을 것을 약속하며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사정하는 장면.

 

무슬림들에게 자식을 잃은 복수로 자신도 무슬림의 아이를 죽였기 때문에, 자신은 지옥에 갈 거라는 힌두 전사에게 간디는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잃은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부모 없는 아이를 데려다 키워라. 단 그 아이는 무슬림의 아이여야 하고, 무슬림으로 길러져야 한다."

 

 

간디의 만년 이야기가 영화적인 과장이 아닌, 실제 역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1948년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시절엔 저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지막으로 윗글에서 언급한 도쿄 선언의 제 7조 전문.

 

Where a prisoner refuses nourishment and is considered by the physician as capable of forming an unimpaired and rational judgment concerning the consequences of such a voluntary refusal of nourishment, he or she shall not be fed artificially. The decision as to the capacity of the prisoner to form such a judgment should be confirmed by at least one other independent physician. The consequences of the refusal of nourishment shall be explained by the physician to the prisoner.

 

수감자가 자의로 단식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그 수감자의 판단을 무시하고 비자발적인 강제급식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물론 스스로 마지막 순간을 맞지 않도록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죠).

 

누군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을 때, '인도적인 결정에서' 죽지 않게 보살펴 주자는 이유가 아니라, 그 수감자가 죽어서 영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강제 급식(force-feeding)'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단식 투쟁과 거의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 강제 급식은 그 자체가 고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도쿄 선언은 '양심적인 의료인이라면' 거기 동참하지 말라고 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강제급식은 유명한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롯해 수많은 감옥에서 현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보비 샌즈의 투쟁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헝거'를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주변에서 '진짜 목숨을 걸지 않은' 단식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한번쫌 보시라고 권해도 좋을 듯.

 

문득 근 30여년 전. "단식할 때 정말 아무 것도 안 먹니?" "물은 먹죠." "그것밖에 안 먹어?" "가끔 사탕 정도는 먹죠." "또. 그게 다야?" "저녁엔 초콜렛 정도는 먹어야 해요. 그래야 안 쓰러져요." 이런 바보같은 대화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상대방은 혹시 이 대화를 기억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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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Toledo. 실질적인 스페인의 역사적 수도. 현재의 수도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가 된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 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 마드리드는 작은 소읍에 불과했고,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 스페인의 빛나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할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까지 '꼭 가야 하는 도시'를 잡아 놓고 그 틈새에 어느 도시를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슬람 유적의 코르도바와 절벽미의 론다, 피카소의 말라가,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와 요새 도시 쿠앵카 등등의 후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드리드 일정에서 하루를 빼서 간다면 엘 에스코리알톨레도 중 골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 은 수도원/학교/묘지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에 천도한 이후 이 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강력한 역사적 기념물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으로 건설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엘 에스코리알은 일단 교통이 좀 불편하고,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대부분 장소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뭔가 자료를 참고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진을 못 찍으면 가 봤다고 잘난체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아무튼 도보 이동을 매우 싫어하는 동반자가 있는 이상 이동 경로가 복잡한 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 첫번째 스페인 여행이라면 톨레도를 빼놓아선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남쪽의 아토차 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AVE를 타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노선이라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AVE가 다니고 있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왕복 요금은 50유로 가량 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복 10유로 정도면 해결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버스를 탈 경우 1시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 뭐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기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도착한 톨레도. 물론 톨레도는 중세의 성곽 도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시내에 기차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역은 성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으나 30분 가량 소요. 별 고민 없이 택시를 탄다. 4~5 유로.

 

거리를 생각하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비싼 기차까지 탄 마당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톨레도 성문 앞에 도착한다.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톨레도가 시작된다.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바로 이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ber 광장에서 내린다. 물론 광장이래봐야 농구 코트가 2개 이상 들어가기 힘든 크기다. 왼쪽의 'OPEN'이라고 써 있는 곳이 미니열차 Zocotren l의 출발/종착점. 자동차가 딸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꼭 타 봐야 할 시설이다. 

 

 

소코도베르 광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그러니까 남쪽 대문을 통해 톨레도 성에 입성해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바로 이 각도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저어기 보이는 맥도날드(고성에 웬 맥도날드냐고 놀리지 말 것. 바로 옆에는 KFC도 있다. 엄청나게 잘 된다) 매장에서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택해 걸어 올라가며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왼쪽 길로 올라갔다. 이유는 이 도시의 알카자르를 보기 위해서.

 

 

대략 엇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알카자르는 스페인식 성곽 도시의 방어 핵심 구조물이다. 외성벽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에 밀려들어왔다고 할 때 두번째 수성전을 전개할 만한, 도시 안의 도시라는 느낌이다. 일본식 성이라면 천수각의 의미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 혼자 생각이지만 - 대부분의 스페인식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두 건물은 알카자르와 카테드랄(대성당)이다. 카테드랄이 카톨릭의 귄위를 상징한다면 알카자르는 왕이나 영주의 세속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주들은 알카자르를 건설할 때 카테드랄에 기가 죽지 않도록, 보는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카테드랄은 화려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되 알카자르는 남성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강직한 미감을 지닌다. 특히 톨레도의 알카자르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엘 에스코리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왠지 이런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톨레도의 알카자르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들어가면, 이 거대한 건물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 동안 개축을 거듭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 나온다.

 

 

 

그리고는 바로 전시 시작.

 

그런데 이 전시물이라는 것이 왕년의 밀덕 또는 어쨌든 잠재적 밀덕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60대 남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인 반면, 여성 관람객들에게는 대체 이따위 것들을 왜 시간 내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 스페인을 천년간 장악했던 무어 인 기병의 기본 무장이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페인식 풀 플레이트 Full Plate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이즈는 작다.

 

 

이런 식의 챙 있는 투구는 불행히도 과거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선 별 감흥 없는 역할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나 영국 해적들을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에선 이 투구는 곧 '거드름은 피우지만 전투만 했다 하면 깨지는 스페인 세력'의 상징이었으니.

 

 

흥미로운 전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저 노란색과 빨간색 부대 이동을 통해 설명한다. 바닥의 굴곡은 당연히 현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교육을 위한 박물관 등에선 충분히 활용할만한 모습이다.

 

 

 

 

대략 3층까지는 과거 알카자르의 자리에 있었던 옛 건물의 토대 발굴 현장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현재의 알카자르가 위용을 드러낸다. 네 귀퉁이의 첨탑을 빼고 대략 5~6층 높이라는 느낌.

 

 

 

 

내다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원이다.

 

 

 

어쨌든 이렇게 생긴 건물.

 

 

 

 

 

 

 

 

 

 

정교하고 아름답다. 손 크기까지 고려해 맞춤 제작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주인을 보호했을 갑주의 모습. (아니면 단순히 보관상의 실수로 때가 묻은...?)

 

 

이렇게 보면 저 갑옷의 주인공들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기의 총기들은 외형만으로 참 매력적이다.

 

 

영어로는 Musketeer라고 불렀을 총기병.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 銃士 들의 스페인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건물의 4층 정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화려한 장식적 공간이 나타난다. 이른바 '하늘 위의 중정 Pateo' 인 셈이다.

 

 

 

 

 

 

 

 

과거 왕가의 문장을 전시한 곳에서 확 눈에 띄는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다.

 

 

합스부르크 가라면 대개 오스트리아를 연상하지만 카를 5세(1500~1558, 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의 후손들은 대표적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군주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문장. 아무리 봐도 스페인의 역사적 전성기는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결혼과 스페인 전토 통일(그리고 비슷한 시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카를로스 1세에서 펠리페 2세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 16세기 시절로 여겨진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 필립'과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유일한 혈육인 요아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탄생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왕위를 확보했고,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면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과 이 나라들의 모든 해외 영토를 한 손에 거머줜 강대한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대제(나라에 따라 샤를마뉴, 찰스, 칼, 카를로스라고 발음만 다르게 불리는 이름들의 조상) 이후,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왕이 되기 전까지 이렇게 넒은 영토를 독차지한 유럽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독일/오스트리아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손이었기 때문이고, 그리 보면 카를로스 1세 자신의 스페인 혈통은 50%에 불과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이 왕에게 굳이 그리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비유를 하자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조선과 명나라 모두의 황제가 되고, 그 후손들이 조선의 왕으로 이 땅을 다스린 뭐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아무튼 스페인 왕이고 사후에도 아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줄줄이 그 후손이 스페인 왕가를 차지한 데 대해 막상 스페인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여담이지만 카를 5세의 후손들인 합스부르크 왕들의 대가 끊긴 1700년에는 역시 스페인 공주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난 프랑스 왕가의 후손 필립 5세 -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 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렇듯 스페인 왕의 계보를 보면 국내파보다는 수입파가 훨씬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는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 쌍두 독수리 가슴의 방패가 저렇게 복잡한 것은 저 문장에 들어가야 할 상징물이 그가 다스린 지역의 수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 멋진 형이다.

 

 

 

 

느닷없이 등장하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자르. 바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성이다.

 

물론 뮌헨에 가면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은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사실 이쪽이 더 비슷하다).

 

뭐, 세계의 온갖 성 중에서 가장 멋진 것들을 모아서 지었겠지, 당연히.

 

 

 

 

 

 

대표적인 기병들의 군도인 사브르. 어찌 보면 무어 인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현대로 넘어오면 스페인 내전기의 무기들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인민전선군 - 그러니까 프랑코에 맞서 싸운 쪽의 기본 스타일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은 이번 여행에서 가 본 스페인 어디에도 짙게 남아 있었다.

 

 

전시물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봐도 좋을 정도로 방대했다. 간혹 가다 이런 깜찍한 전시물도 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 장면 묘사.

 

 

정원으로 나오면 보오얀 톨레도 교외가 펼쳐진다.

 

 

살짝 장난친 그림. 그리고 건물 밖에는 중세 ~ 근세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묘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 친숙함은 뭐지...?

 

 

 

 

 

영화 '신기전'을 보신 분들이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화차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신기전(神機箭)을 장착한 화차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정면으로 보면 더 많이 보던 그 물건이다.

 

 

이름도 Hwach. 화차의 공식 표기인 Hwacha와 한끗밖에 다르지 않으니 중국이나 일본의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 듯 싶다. 저 설명을 독할 능력은 없으나 동양에서 온 물건(oriental로 추측해 보건데) 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어쩌다 이 화차는 이역 만리, 톨레도 알카자르 앞에까지 와 있게 된 것인지.

 

물건의 인연이 기구하기도 하다. 아무튼 아방(我邦)의 흔적을 만리 밖에서 만나니 실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건 뭐냐 열하일기도 아니고...)

 

알카자르 방문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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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나섰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곳은 마요르 광장 주변과 푸에르타 델 솔. 그래서 마드리드의 상징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근처로 나섰다.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의 다른 광장들처럼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애당초 처음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 건물이 선 것이겠지만, 이제는 광장을 보기 위해선 건물들 사이로 난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느낌.

 

문득 지금도 약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청계천 구 세운상가 언저리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 구름다리같은 청계천 상가의 기둥 아래로 제과점이며 술집, 금은방 같은 점포들이 이어졌다.

 

마요르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기둥과 가스등 느낌의 가로등, 그 노리끼리한 불빛 아래, 마드리드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이야기가 넘쳐 난다. 구경꾼은 알 수 없는.

 

 

 

광장 안쪽. 당연히 북적이고 있다.

 

 

딱 나와 있기 좋은 날씨. 선선하고 보송보송하다.

 

 

펼쳐 보면 이런 모습.

 

 

광장을 둘러싼 건물 틈으로 나오는 문(물론 여닫는 문은 아니다) 하나 하나 마다 이렇게 이름까지 붙어 있다.

 

 

광장 서쪽으로 나오면 불이 환한 거대한 유리장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을 클릭해 보면 건물 왼쪽 위로 간판이 있다.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이다.

 

 

 

이 위치. 대략 광장과 비교해 봐도 결코 만만찮은 규모다.

 

 

밤 열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불야성.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한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을 거라고 생각된다.)

 

 

 

스페인에서 가는 곳마다 입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과일.

 

태양의 혜택을 받은 과일들이 진한 원산지의 맛으로 다가왔다.

 

 

가격도 꽤 괜찮은 편. 반건조 무화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딱 한국 밤 같은 생긴 밤이 있고, 그 옆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과일이 있다.

 

그렇다. 한국의 대봉시와 똑같이 생긴 감이다.

 

그런데 대봉시보다 100배쯤 맛있다. 모습은 대봉시지만 내용물은 단감인데, 딱딱한 단감이 아니고 살짝 말캉해서 망고보다 약간 더 단단한 상태의 단감(감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그 맛난 스페인 과일 가운데서도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막힌 맛이다.

 

잘 보면 과일의 이름은 Kaki, 즉 일본어로 감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감이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꽤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게 한다면 산 미구엘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시장 구석구석마다 이렇게 즉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해 놓았다는 점은 똑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그리고 문득 젓갈과 비슷한 신기한 비주얼 발견.

 

 

뭔가 지렁이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 Gulas라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별미로 장어의 새끼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저렇게 마트에서 파는 Gulas는 큰 생선(주로 대구) 살로 만든 가짜 새끼 장어라는 것.

 

즉 장어의 비주얼을 가진 '새끼장어 맛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게맛살을 먹듯이 이쪽에선 또 이런 걸 먹는다.

 

 

 

빠에야에 와인까지 곁들여도 5유로. 싸다.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오향장육인 줄 알았다. 삼겹살 같이 생긴 초콜릿 과자. 얇은 막을 여러 겹 붙여 튀겨낸 듯한 맛이다. 페스추리 Pastry 의 느낌?

 

 

 

같이 어울려 당장 뭘 먹고 싶은 분위기. 아예 끼니를 여기서 때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서 저렇게 굴을 까서 화이트와인과. 그리고 그 곁엔 친숙한 타바스코. 침이 절로 넘어간다.

 

 

영국처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펍의 분위기는 아니고, 웬만큼 앉을 자리가 있으면 다들 앉아서 먹는 느낌.

 

 

 

헉. 아구 ;;

 

바로 옆이 수산물 매장으로 이어지지만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국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와 비교해도 그 반의 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수산물 매장의 위생 관리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위 이름표에서 볼 수 있듯 아귀는 스페인어로 Rape다. (영어 아니다)

 

이 이름표를 보고 웃음이 난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해산물 스튜 사르수엘라 Zarsuela를 먹었을 때, 웨이터에게 이 스튜의 국물은 뭘로 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ape가 주 재료라는 거였다. 대체 그게 뭐냐.

 

그때 그 웨이터 형이 그려준 그림이 이랬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저 그림을 보고 아귀라고 맞췄다는 것. ^

 

 

 

 

그리고 여러분이 스페인에 가시면, 꼭 드셔봐야 할 것이 - 물론 지금까지 꼽은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 바로 저 물건이다. 빨간 새우. 카라비네로 Carabinero 라고 한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을 제외하면 한국 대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제철에 먹는 대하나 타이거 새우보다 조금씩 더 크다. 지중해 산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래 조그만 숫자를 보면 1Kg에 70유로. 대략 9만5천원 정도 되니 절대 싼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살도 살이지만 대가리에서 정말 진한 국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맛있다.

 

지난번 글 http://fivecard.joins.com/1262 에서 소개한 벤타 엘 부스콘에서 먹으면 이렇게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수줍게 숨어 있는 빨간 애들이 바로 쟤들이다.

 

 

 

시장을 나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형태의 술집인 메손 Meson이 즐비한 산 미구엘 거리 Calle Cava San Miguel.

 

 

 

 

저 계단을 올라가면 마요르 광장으로 통한다.

 

 

그래도 한군데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음?

 

 

물론 1년 내내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곳이니 본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뭔가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드리드 특산물이라는 코시도 마드릴레뇨를 판다는 간판.

 

마드리드에 한 1주일만 있었어도 저런 집들을 찾아다니며 마드리드의 맛을 더 연구하련만.

 

이렇게 해서 마요르 광장 밤 풍경 스케치를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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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와도 여전히 무덥습니다.

 

사실 당연한 겁니다. 입추 지나고 한참 더 더운게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추석도 지나치게 빨라서 뭔가 계절의 균형이 깨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긴 합니다. 세월이 하 수상한데 날씨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죠. 9월 가이드 들어갑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9월의 문화가이드 (2014)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가을이 더 빨리 온 것 같아. 해가 쨍쨍 내리쬐는 불볕 더위가 언제 왔다 사라졌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산과 바다로 여행이라도 다녀들 오셨는지?

 

9월의 주요 볼거리들을 살펴 보다 보니 국악 관련 이벤트들이 눈길을 끄네. 가장 큰 무대는 추석을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블루문 페스티벌이야. 달맞이를 하듯 세 사람의 국악인들이 각각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하는 공연을 펼치는 거지.

 

96일은 양방언, 7일은 이자람과 송소희가 공연자로 나서. 그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건 이자람이야. ‘눈대목이란 이름으로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자신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개작한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해. 한번 직접 눈으로 보면, 왜 이 가이드가 이자람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지 알 수 있을거야. 티켓 값이 아주 싼 편은 아닌데, 33천원으로 2층 뒷자리 A석을 사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여담이지만 현재 한국 국악계가 내세울 만한 톱스타로 양방언, 이자람을 꼽는다면 거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런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톱스타가 여고생 송소희라는 건(티켓 가격도 제일 비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네. 하긴 뭐 송소희를 보고 있으면 나부터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냥 넘어 가기로 해.

 

보다 정통 국악의 느낌을 원하면 927, 서울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를 찾아 봐. 송재영 명창의동초제 흥보가 공연이야. 송재영 명창은 동초 김연수에서 오정숙을 거쳐 이일주에게 전해진 동초제의 정통 후계자지. 전석 2만원.

 

완창판소리 공연을 본 사람 중에 시간이며 돈이 아까웠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꼭 가사집을 사서 그 자리에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판소리는 사설의 다양한 표현을 보고 알아듣는게 중요한데, 아무리 전달력을 강조하는 동초제라고 해도 듣는 소리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야. 가사를 눈으로 보면서 들으면 100.

 

다음은 쉽게 볼 수 없는 합창 공연.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대개 카르미나 부라나라고 쓰는데 이번 공연엔 좀 액센트가 세더군)’를 국립합창단이 930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 제목만 들어선 모를 사람이 많겠지만, 이 합창모음곡의 1번인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를 유튜브 같은 데서 검색해서 들어 봐. 다들 ~ 이 곡?’ 하는 반응이 나올 거야.

 

곡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강렬한 에너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중세 이전의 곡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르미나 부라나 1937년에 만들어진 현대 음악이야. 물론 꽤 오랜 시간 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한 곡이었지만 1980,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엑스칼리버에 사용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 그 뒤로 각종 시상식, 광고, 패션쇼 등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멜로디가 됐어. 최근엔 드라마 연애의 발견첫회에 에릭과 정유미가 재회하는 장면에도 나왔지. 아무튼 직접 전곡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색다른 경험이 될 거야. R석이 5만원으로 꽤 저렴한 편이고, 2만원 짜리 A석도 제법 좋은 자리야.

 

 

 

9월에도 연휴가 꽤 길지? 매일 TV만 보는 것도 지루할 테니 재미있는 책을 추천할게. 하정우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찍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국내에 소개된 게 1999년이고 그동안 수없이 좋은 책으로 소개됐으니 많이들 보셨겠지만 그래도 안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 잘난 척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신간 아니면 큰 일 나는 줄 알지만, 책이란 건 자기가 좋자고 보는 거거든. 그러니까 왜 나온지 12년이나 된 책을 새삼 소개하냐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이런 책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길 바라. 신간이 아니라서 8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내친김에 위화 선생의 다른 작품도 같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제목은 형제’. 사실 허삼관 매혈기형제는 중국 문화혁명이라는 같은 배경을 담고 있어. 하지만 허삼관 매혈기에서 문화혁명을 다소 장난기있게 훑고 지나간다면 형제에서는 그 사건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고나 할까. 주인공인 두 형제 아닌 형제 중 이광두는 G2까지 성장한 중국인의 배금주의와 사업 역량을 상징한다면 송강은 중국인 고유의 정신문화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 지인은 책 한 권으로 진정 중국을 알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형제’”라고 극찬하기도 했어. 사실 이 책이 세 권이라는 점을 빼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세 권 합쳐 인터넷 가격으로 23000원 정도.

그럼 다들 등화가친하시고, 10월에 만나.

 

 

블루문 페스티벌 이자람   A 33000

국립합창단 까르미나 부라나  A 2만원

완창판소리 송재영의 동초제 흥보가    전석 2만원

위화, ‘허삼관 매혈기      8000

위화, ‘형제 1,2,3’          23000

 

합계       104000

 

 

 뭐 말로 길게 할 것 없이 이자람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에 내려진 축복이라고 할만한 재능입니다.

 

 

물론 이 소녀도 이 시기 한국에 내려진 기쁨으로 손색이 없죠.

그리고 '카르미나 부라나', 역시 이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자, '아 이거!' 하셨습니까?

정작 이 영화에서 이 곡이 나오는 장면은 성을 빠져나온 아서의 기사단이 꽃잎이 나부끼는 숲속을 일렬로 질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그 장면을 극장에서 본 사람 치고 그 장면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카르미나 부라나' 신의 미적 충격은 압도적이었죠. 물론 지금 DVD 화질로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충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유튜브를 찾아 보면 그 장면의 영상도 있습니다만, 앞뒤 맥락을 다 잘라 버리고 그 장면만을 봐서는 어떤 감흥도 없을 겁니다.)

 

이 영화의 이전과 이후로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소재로 수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관객들은 아동용 판타지와 신화가 된 전설의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 내고 있는 존 부어맨의 연출에 혼이 녹아드는 충격을 받았지만, 불행히도 존 부어맨은 남은 영화 인생 동안 이 작품에 비견할 만한 성취를 다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브리엘 번, 리엄 니슨, 패트릭 스튜어트, 그리고 헬렌 미렌의 파릇파릇하던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날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화질의 벽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의 시대에. 아무튼 여담이고, '카르미나 부라나'는 한번쯤 들어 보실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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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영화 '해적'에 나오는 옥새 장면이 매우 굴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해 이웃 나라의 군주로부터 '그대들의 나라를 인정하고, 그대 나라의 국새를 보내 그것을 증명하노라'라는 칙명을 받는다는 건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연원을 생각해 보면,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에서 국새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모욕적인 일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조선이 명에 대해 취했던 자세와 마찬가지로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에 대해 굴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 국경을 함부로 넘어 조업하는 중국 어부들 하나 단속하지 못하고, 이를 가로막던 해경 요원이 중국 어부에게 살해당해도 속시원한 조치를 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 심지어 수많은 인권/재야 단체들 또한 여기에는 입을 다무는 현실을 보면, 대체 누가 어느 시대를 향해 사대주의적이고 종속적이었다고 욕할 자격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옥새의 의미와 그 전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옥새

[명사] 玉璽.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국왕의 인장. 흔히 국새(國璽)라고도 불린다. 각종 문서에 국가의 약속을 대신해 사용된다.

 

개인이 도장을 사용하듯 나라에는 국권을 대신하는 도장이 있다. 한자로 새()라는 글자 자체가 가장 높은 권위의 도장을 뜻하며, 굳이 옥으로 만들지 않아도 흔히 옥새라고 쓴다. 이는 아마도 국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국새라고 불리는 이 옥새는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 于天 旣壽永昌,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은 영원하리라)’의 여덟 글자를 전서로 새긴 것이다. 진에 이은 한()나라에서도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사용됐고, ‘삼국지연의에서 원소와 손견이 궁중 우물에서 발견된 이 전국새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에도 전국새를 가진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라는 통념 때문에 수,당 시대까지 권력의 상징으로 존중받았다.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 이후 전국새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고, 이후에는 모조품이 몇 차례 등장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진짜 전국새를 사용한 사람은 진시황 한 사람 뿐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찍이 진시황이 천하를 순시하던 도중 동정호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위태로워지자 옥새를 물에 던져 잔잔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황제의 권위로 동정호의 용을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왕은 노인으로 변신해 황제에게 다시 옥새를 전달했다고 한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에겐 이 모두가 황제를 신격화하려는 이벤트로 보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여러 왕조에게 중국으로부터 국왕에 책봉되어 칙명과 국새를 받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삼국시대 이후 책봉례가 끊인 시절은 없었다.

 

고려는 원과의 오랜 전쟁 끝에 굴복하고 사위의 나라가 된 뒤, 부마국왕(駙馬國王)의 칭호로 옥새를 받았다. 반면 새로 건국한 명은 고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1370,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 새겨진 국새를 보내왔다.

 

1392년 개국 직후 태조 이성계는 명에 사신을 보내 새 나라의 국호로 화령(和寧)’조선중 어느 것이 좋으냐고 질의했다. 화령은 함경남도 영흥의 옛 이름으로 이성계의 고향이다. 청을 받은 명 태조 주원장은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요, 불러서 아름다운 이름이라며 조선을 골라 줬다.

 

이로써 일단 정권의 정통성은 인정받은 셈이나 정식 책봉이 되려면 옥새 수령은 필수였다.  이성계는 1393년 고려 국새를 반납한 데 이어 1395년 태학사 정총을 사신으로 보내 옥새를 재촉했다. 하지만 당시 명은 정도전이 주도한 조선의 군비 확충을 우려 하던 터라 쉽게 국새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태종 1(1401) 612일에야 명으로부터 금으로 만든 국새를 지닌 사신들이 도착했다(국왕이 직접 받아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영화 해적에 나오듯 조선 사신이 대신 받아 가져올 수는 없었다). 태종은 매우 기뻐하며 두 사신에게 각각 7언절구를 지어 답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2년 뒤인 1403 48일에도 역시 금인(金印)과 칙령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2년만에 또 국새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진짜 고래가 삼켰는지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대단히 굴욕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 중국의 책봉은 중화라 불리는 동아시아 문명의 일부에 편입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시각을 달리 하면, 책봉 여부는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에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가 내린 한왜노국왕(漢倭奴國王)의 인장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초인 1401년엔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가 외교적인 노력 끝에 명으로부터 일본국왕지인(日本國王之印)이라는 국새를 받고 명의 왕위 책봉을 받아들였다. 막부의 권력을 인정받고 조공을 통한 명과의 무역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명이 청에게 대륙을 내준 뒤 청도 조선에 새로 국새를 보냈고,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는 글자체를 만주체로 바꾸어 새로 보내기도 했다. 서유문은 무오연행록에서 이 국새에 대해 금으로 만들어졌고, 위에 거북이를 앉혔다. 안남(베트남)이나 유구(오키나와)에는 은으로 만들고 낙타를 앉힌 인장을 내린 것을 보면 우리(조선)와 대접이 다름을 알 수 있다고 서술했다. 소중화(小中華)의 자존심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지나간 역사를 매도하기보다는 과연 그 시대의 사대(事大)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G2시대의 한반도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이미 중국을 상대로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과연 오늘날의 후손들이 자주성 운운 하며 조상들을 매도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P.S. 제발 옥쇄라고 쓰고 오타라고 우기지 말 것.

 

 

 

 

 

영화 '해적'에 잠깐 스쳐 등장한 국새의 모습입니다만, 실제로는 봉황이 아닌 거북이가 새겨져 있었던 듯.

 

 

 

 

명이나 청으로부터 받은 옥새는 외교 문서용으로 고이 간직하고, 내정용으로는 수시로 국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청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한 고종이 즉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기존의 조선국왕지인 대신 황제어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한 것을 보면 자주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단지 조선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력의 뒷받침 없이 자주성이며 주권, 대의를 부르짖었던 댓가가 어떤 것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자주와 자유를 외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주성을 주장하고도 뒷탈이 없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잠시 기분은 유쾌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는 자존심 한 번 제대로 지킨 댓가를 그 이후의 몇 세대가 치렀던 일이 적지 않았음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선으로 조상들을 함부로 비웃지 맙시다.

 

P.S. 이와는 별도로 '해적'은 참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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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이 흥행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예견됐던 일입니다. 방학 시즌에 가족 관객들이 동반 관람할 만한 안전한 선택이라는 점은 큰 이점입니다. 게다가 그 어느때보다 리더십이 화두에 올라 있는 상황, 모든 비난과 고난을 한몸에 담고 묵묵히 실천을 통해 아랫사람의 분발을 이끄는 명장 이순신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명량'을 보면서 여러 차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보여졌던 많은 강점들이 실종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영웅'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성웅 이순신'에 대한 감동을 소감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과연 '명량'이 그 '영웅 만들기'에 성공한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성공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습니다. 그 아쉬움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은 평자들이 '명량'의 강점을 '정공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많은 장치들을 배제하고, 그저 '위대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동시에 이 '정공법'이라는 말 안에는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굳이 교과서 텍스트 이상을 표현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어떻게 그릴까' 입니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놀랍니다. 특히 통제사 해직 - 고문과 백의종군 - 칠천량의 패전 - 통제사 복직 - 명량해전에 이르는 참담한 기간의 일기에서는 고뇌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인간 이순신의 면모가 가슴을 때립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조정, 말도 안 되는 상황, 말도 안 되게 강한 적, 그 절망을 뚫고 나가려는 초인적인 의지.

 

그런데 영화 '명량'의 이순신은 아쉽게도 매우 단선적인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옳고 바른 영웅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우선 이 인물에게는 소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그를 믿고 의지하던 부하 안위조차도 퇴각을 주장하지만 영화 속 이순신은 단 한번도 그들에게 왜 여기서 싸워야 하는지 설득하지 않습니다. 전략은 내 머리 속에 있고, 너희는 싸워야 한다는 식입니다. 혼자 고뇌하고, 혼자 불면의 밤을 보내고, 탈주자를 엄벌에 처할지언정 누구와도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영웅입니다.

 

 

 

 

다음. 12대 133(또는 300)의 치명적인 열세 상황에서, 그래도 부하들은 이순신이 홀로 앞에서 혈투를 벌이며 북을 치자 달려나와 호응하고 전선에 합류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의 솔선수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장선이 공격당하는 순간 뱃머리를 돌려 달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물론 대장선이 격침당했다면 바로 다들 달아났겠죠). 이런 상황에서 부하들이, 그리고 백성들이 그를 믿고 달아나지 않은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명량'에서처럼 '소통' 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대체 왜 그들은 그를 믿고 따를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의 가장 주된 텍스트인 '난중일기'에는 그 이유까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난중일기'에 그런 설명이 있었다면 충무공은 지금까지 이렇게 추앙받는 영웅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있었다면 그건 자화자찬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충무공이 혼자 힘으로 분투할 때 부하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앞으로 치고 나와 전투에 합류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할 수 있었던, 백성들이 피난을 가기는 커녕 열두척의 전선 뒤에서 군선을 가장하고 허장성세를 펼쳐 전투를 도울 수 있었던('난중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항복이나 윤휴가 쓴 충무공 행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일부러 백성들의 배를 뒤편에 배치해 우리 편의 수가 많은 것 처럼 꾸몄다" 이 때문에 명량해전을 다룬 일본 쪽 기록은 조선 수군의 전력이 열두척 뿐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인, 바로 충무공과 아랫 사람들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가 이 영화를 봐선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선 어느 정도 상상력이 발휘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명량, 실제 역사와는 어떻게 달랐나. http://fivecard.joins.com/1268

 

 

 

 

 

하지만 지나치게 '곧이 곧대로' 표현된 이 영화의 이순신은 고집불통의 노장으로 보일 뿐이고, 희대의 지략가라기보다는 그저 불굴의 투사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최민식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이 역할을 맡음으로써 그나마 어느 정도 입체적인 인물 상이 그려질 뿐, 배우의 역량을 빼 놓고 본 '명량'의 이순신 캐릭터에게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역사나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뚝 떼어낸 듯한 재미없는 인물일 뿐입니다.

 

 

 

 

이순신이 그렇게 되고 나니 다른 인물들은 차마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 말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이순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루시마 역의 류승룡이 '나, 왜장. 당신들이 생각하는, 임진왜란 사극에서 늘 보던 바로 그 왜장. 잔혹하고 피에 굶주린 그런 왜장' 에 그쳤고 보면 말입니다. 나오는 장면 장면이 모두 인상적이었던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심한 캐릭터입니다.

 

 

(그 외의 배우들은 더더욱 할 말이... 한 영화인은 "소년 수봉 역을 맡은 신인 박보검 하나 외에는 모두 명량에 수장됐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입니다.)

 

물론 '명량'의 최대 강점은 해전 장면의 스펙터클에 있습니다. 바다 위를 수놓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면서 '명량'은 비로소 기지캐를 켭니다. 전투의 세세한 상황이 실제 역사와 부합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명량'의 전투 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배우들과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결과가 현재의 '명량'이라면, 아무래도 아쉽다는 느낌이 앞서게 됩니다.

 

하긴 현재 상태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명량'을 본 뒤 '애국의 열정이 샘솟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가슴이 뛰었고, 영화의 진정성을 깊이 느꼈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런 평가를 내리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한민족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과 그 명장의 위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 '명량'에 대한 평가는 이런 관중의 대대적 호응과는 조금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도 있을 듯 합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앞부분에는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유명한 문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찢어 버리라고 명령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시의 이해 Understanding Poetry' 라는 이 교과서에서는 한 시 작품의 위대성을 판단하기 위해 두 가지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시가 얼마나 예술적으로 완성도 있게 쓰여졌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가 다루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은 바로 이 설명을 찢어버리게 합니다. '중요한 대상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면 위대한 시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얼마나 헛된 것이냐는 이유 때문입니다.

 

'명량'은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그린 작품으로는 한국 영화사에 충분히 기억될 만한 그런 영화입니다. 하지만 '성웅 이순신'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그만한 평가를 받기 힘들 듯 합니다. 스필버그의 '링컨'이나 TV 사극 '뿌리깊은 나무', '정도전' 처럼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진 영웅을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있어 각각 다른 방식의 전범을 보여준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명량'이 그려낸 이순신의 모습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입체적이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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