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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Toledo. 실질적인 스페인의 역사적 수도. 현재의 수도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가 된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 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 마드리드는 작은 소읍에 불과했고,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 스페인의 빛나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할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까지 '꼭 가야 하는 도시'를 잡아 놓고 그 틈새에 어느 도시를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슬람 유적의 코르도바와 절벽미의 론다, 피카소의 말라가,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와 요새 도시 쿠앵카 등등의 후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드리드 일정에서 하루를 빼서 간다면 엘 에스코리알톨레도 중 골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 은 수도원/학교/묘지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에 천도한 이후 이 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강력한 역사적 기념물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으로 건설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엘 에스코리알은 일단 교통이 좀 불편하고,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대부분 장소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뭔가 자료를 참고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진을 못 찍으면 가 봤다고 잘난체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아무튼 도보 이동을 매우 싫어하는 동반자가 있는 이상 이동 경로가 복잡한 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 첫번째 스페인 여행이라면 톨레도를 빼놓아선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남쪽의 아토차 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AVE를 타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노선이라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AVE가 다니고 있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왕복 요금은 50유로 가량 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복 10유로 정도면 해결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버스를 탈 경우 1시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 뭐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기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도착한 톨레도. 물론 톨레도는 중세의 성곽 도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시내에 기차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역은 성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으나 30분 가량 소요. 별 고민 없이 택시를 탄다. 4~5 유로.

 

거리를 생각하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비싼 기차까지 탄 마당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톨레도 성문 앞에 도착한다.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톨레도가 시작된다.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바로 이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ber 광장에서 내린다. 물론 광장이래봐야 농구 코트가 2개 이상 들어가기 힘든 크기다. 왼쪽의 'OPEN'이라고 써 있는 곳이 미니열차 Zocotren l의 출발/종착점. 자동차가 딸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꼭 타 봐야 할 시설이다. 

 

 

소코도베르 광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그러니까 남쪽 대문을 통해 톨레도 성에 입성해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바로 이 각도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저어기 보이는 맥도날드(고성에 웬 맥도날드냐고 놀리지 말 것. 바로 옆에는 KFC도 있다. 엄청나게 잘 된다) 매장에서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택해 걸어 올라가며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왼쪽 길로 올라갔다. 이유는 이 도시의 알카자르를 보기 위해서.

 

 

대략 엇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알카자르는 스페인식 성곽 도시의 방어 핵심 구조물이다. 외성벽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에 밀려들어왔다고 할 때 두번째 수성전을 전개할 만한, 도시 안의 도시라는 느낌이다. 일본식 성이라면 천수각의 의미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 혼자 생각이지만 - 대부분의 스페인식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두 건물은 알카자르와 카테드랄(대성당)이다. 카테드랄이 카톨릭의 귄위를 상징한다면 알카자르는 왕이나 영주의 세속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주들은 알카자르를 건설할 때 카테드랄에 기가 죽지 않도록, 보는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카테드랄은 화려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되 알카자르는 남성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강직한 미감을 지닌다. 특히 톨레도의 알카자르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엘 에스코리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왠지 이런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톨레도의 알카자르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들어가면, 이 거대한 건물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 동안 개축을 거듭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 나온다.

 

 

 

그리고는 바로 전시 시작.

 

그런데 이 전시물이라는 것이 왕년의 밀덕 또는 어쨌든 잠재적 밀덕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60대 남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인 반면, 여성 관람객들에게는 대체 이따위 것들을 왜 시간 내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 스페인을 천년간 장악했던 무어 인 기병의 기본 무장이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페인식 풀 플레이트 Full Plate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이즈는 작다.

 

 

이런 식의 챙 있는 투구는 불행히도 과거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선 별 감흥 없는 역할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나 영국 해적들을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에선 이 투구는 곧 '거드름은 피우지만 전투만 했다 하면 깨지는 스페인 세력'의 상징이었으니.

 

 

흥미로운 전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저 노란색과 빨간색 부대 이동을 통해 설명한다. 바닥의 굴곡은 당연히 현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교육을 위한 박물관 등에선 충분히 활용할만한 모습이다.

 

 

 

 

대략 3층까지는 과거 알카자르의 자리에 있었던 옛 건물의 토대 발굴 현장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현재의 알카자르가 위용을 드러낸다. 네 귀퉁이의 첨탑을 빼고 대략 5~6층 높이라는 느낌.

 

 

 

 

내다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원이다.

 

 

 

어쨌든 이렇게 생긴 건물.

 

 

 

 

 

 

 

 

 

 

정교하고 아름답다. 손 크기까지 고려해 맞춤 제작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주인을 보호했을 갑주의 모습. (아니면 단순히 보관상의 실수로 때가 묻은...?)

 

 

이렇게 보면 저 갑옷의 주인공들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기의 총기들은 외형만으로 참 매력적이다.

 

 

영어로는 Musketeer라고 불렀을 총기병.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 銃士 들의 스페인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건물의 4층 정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화려한 장식적 공간이 나타난다. 이른바 '하늘 위의 중정 Pateo' 인 셈이다.

 

 

 

 

 

 

 

 

과거 왕가의 문장을 전시한 곳에서 확 눈에 띄는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다.

 

 

합스부르크 가라면 대개 오스트리아를 연상하지만 카를 5세(1500~1558, 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의 후손들은 대표적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군주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문장. 아무리 봐도 스페인의 역사적 전성기는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결혼과 스페인 전토 통일(그리고 비슷한 시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카를로스 1세에서 펠리페 2세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 16세기 시절로 여겨진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 필립'과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유일한 혈육인 요아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탄생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왕위를 확보했고,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면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과 이 나라들의 모든 해외 영토를 한 손에 거머줜 강대한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대제(나라에 따라 샤를마뉴, 찰스, 칼, 카를로스라고 발음만 다르게 불리는 이름들의 조상) 이후,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왕이 되기 전까지 이렇게 넒은 영토를 독차지한 유럽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독일/오스트리아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손이었기 때문이고, 그리 보면 카를로스 1세 자신의 스페인 혈통은 50%에 불과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이 왕에게 굳이 그리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비유를 하자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조선과 명나라 모두의 황제가 되고, 그 후손들이 조선의 왕으로 이 땅을 다스린 뭐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아무튼 스페인 왕이고 사후에도 아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줄줄이 그 후손이 스페인 왕가를 차지한 데 대해 막상 스페인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여담이지만 카를 5세의 후손들인 합스부르크 왕들의 대가 끊긴 1700년에는 역시 스페인 공주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난 프랑스 왕가의 후손 필립 5세 -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 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렇듯 스페인 왕의 계보를 보면 국내파보다는 수입파가 훨씬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는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 쌍두 독수리 가슴의 방패가 저렇게 복잡한 것은 저 문장에 들어가야 할 상징물이 그가 다스린 지역의 수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 멋진 형이다.

 

 

 

 

느닷없이 등장하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자르. 바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성이다.

 

물론 뮌헨에 가면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은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사실 이쪽이 더 비슷하다).

 

뭐, 세계의 온갖 성 중에서 가장 멋진 것들을 모아서 지었겠지, 당연히.

 

 

 

 

 

 

대표적인 기병들의 군도인 사브르. 어찌 보면 무어 인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현대로 넘어오면 스페인 내전기의 무기들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인민전선군 - 그러니까 프랑코에 맞서 싸운 쪽의 기본 스타일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은 이번 여행에서 가 본 스페인 어디에도 짙게 남아 있었다.

 

 

전시물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봐도 좋을 정도로 방대했다. 간혹 가다 이런 깜찍한 전시물도 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 장면 묘사.

 

 

정원으로 나오면 보오얀 톨레도 교외가 펼쳐진다.

 

 

살짝 장난친 그림. 그리고 건물 밖에는 중세 ~ 근세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묘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 친숙함은 뭐지...?

 

 

 

 

 

영화 '신기전'을 보신 분들이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화차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신기전(神機箭)을 장착한 화차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정면으로 보면 더 많이 보던 그 물건이다.

 

 

이름도 Hwach. 화차의 공식 표기인 Hwacha와 한끗밖에 다르지 않으니 중국이나 일본의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 듯 싶다. 저 설명을 독할 능력은 없으나 동양에서 온 물건(oriental로 추측해 보건데) 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어쩌다 이 화차는 이역 만리, 톨레도 알카자르 앞에까지 와 있게 된 것인지.

 

물건의 인연이 기구하기도 하다. 아무튼 아방(我邦)의 흔적을 만리 밖에서 만나니 실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건 뭐냐 열하일기도 아니고...)

 

알카자르 방문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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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나섰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곳은 마요르 광장 주변과 푸에르타 델 솔. 그래서 마드리드의 상징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근처로 나섰다.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의 다른 광장들처럼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애당초 처음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 건물이 선 것이겠지만, 이제는 광장을 보기 위해선 건물들 사이로 난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느낌.

 

문득 지금도 약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청계천 구 세운상가 언저리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 구름다리같은 청계천 상가의 기둥 아래로 제과점이며 술집, 금은방 같은 점포들이 이어졌다.

 

마요르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기둥과 가스등 느낌의 가로등, 그 노리끼리한 불빛 아래, 마드리드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이야기가 넘쳐 난다. 구경꾼은 알 수 없는.

 

 

 

광장 안쪽. 당연히 북적이고 있다.

 

 

딱 나와 있기 좋은 날씨. 선선하고 보송보송하다.

 

 

펼쳐 보면 이런 모습.

 

 

광장을 둘러싼 건물 틈으로 나오는 문(물론 여닫는 문은 아니다) 하나 하나 마다 이렇게 이름까지 붙어 있다.

 

 

광장 서쪽으로 나오면 불이 환한 거대한 유리장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을 클릭해 보면 건물 왼쪽 위로 간판이 있다.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이다.

 

 

 

이 위치. 대략 광장과 비교해 봐도 결코 만만찮은 규모다.

 

 

밤 열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불야성.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한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을 거라고 생각된다.)

 

 

 

스페인에서 가는 곳마다 입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과일.

 

태양의 혜택을 받은 과일들이 진한 원산지의 맛으로 다가왔다.

 

 

가격도 꽤 괜찮은 편. 반건조 무화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딱 한국 밤 같은 생긴 밤이 있고, 그 옆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과일이 있다.

 

그렇다. 한국의 대봉시와 똑같이 생긴 감이다.

 

그런데 대봉시보다 100배쯤 맛있다. 모습은 대봉시지만 내용물은 단감인데, 딱딱한 단감이 아니고 살짝 말캉해서 망고보다 약간 더 단단한 상태의 단감(감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그 맛난 스페인 과일 가운데서도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막힌 맛이다.

 

잘 보면 과일의 이름은 Kaki, 즉 일본어로 감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감이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꽤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게 한다면 산 미구엘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시장 구석구석마다 이렇게 즉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해 놓았다는 점은 똑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그리고 문득 젓갈과 비슷한 신기한 비주얼 발견.

 

 

뭔가 지렁이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 Gulas라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별미로 장어의 새끼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저렇게 마트에서 파는 Gulas는 큰 생선(주로 대구) 살로 만든 가짜 새끼 장어라는 것.

 

즉 장어의 비주얼을 가진 '새끼장어 맛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게맛살을 먹듯이 이쪽에선 또 이런 걸 먹는다.

 

 

 

빠에야에 와인까지 곁들여도 5유로. 싸다.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오향장육인 줄 알았다. 삼겹살 같이 생긴 초콜릿 과자. 얇은 막을 여러 겹 붙여 튀겨낸 듯한 맛이다. 페스추리 Pastry 의 느낌?

 

 

 

같이 어울려 당장 뭘 먹고 싶은 분위기. 아예 끼니를 여기서 때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서 저렇게 굴을 까서 화이트와인과. 그리고 그 곁엔 친숙한 타바스코. 침이 절로 넘어간다.

 

 

영국처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펍의 분위기는 아니고, 웬만큼 앉을 자리가 있으면 다들 앉아서 먹는 느낌.

 

 

 

헉. 아구 ;;

 

바로 옆이 수산물 매장으로 이어지지만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국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와 비교해도 그 반의 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수산물 매장의 위생 관리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위 이름표에서 볼 수 있듯 아귀는 스페인어로 Rape다. (영어 아니다)

 

이 이름표를 보고 웃음이 난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해산물 스튜 사르수엘라 Zarsuela를 먹었을 때, 웨이터에게 이 스튜의 국물은 뭘로 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ape가 주 재료라는 거였다. 대체 그게 뭐냐.

 

그때 그 웨이터 형이 그려준 그림이 이랬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저 그림을 보고 아귀라고 맞췄다는 것. ^

 

 

 

 

그리고 여러분이 스페인에 가시면, 꼭 드셔봐야 할 것이 - 물론 지금까지 꼽은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 바로 저 물건이다. 빨간 새우. 카라비네로 Carabinero 라고 한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을 제외하면 한국 대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제철에 먹는 대하나 타이거 새우보다 조금씩 더 크다. 지중해 산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래 조그만 숫자를 보면 1Kg에 70유로. 대략 9만5천원 정도 되니 절대 싼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살도 살이지만 대가리에서 정말 진한 국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맛있다.

 

지난번 글 http://fivecard.joins.com/1262 에서 소개한 벤타 엘 부스콘에서 먹으면 이렇게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수줍게 숨어 있는 빨간 애들이 바로 쟤들이다.

 

 

 

시장을 나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형태의 술집인 메손 Meson이 즐비한 산 미구엘 거리 Calle Cava San Miguel.

 

 

 

 

저 계단을 올라가면 마요르 광장으로 통한다.

 

 

그래도 한군데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음?

 

 

물론 1년 내내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곳이니 본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뭔가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드리드 특산물이라는 코시도 마드릴레뇨를 판다는 간판.

 

마드리드에 한 1주일만 있었어도 저런 집들을 찾아다니며 마드리드의 맛을 더 연구하련만.

 

이렇게 해서 마요르 광장 밤 풍경 스케치를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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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와도 여전히 무덥습니다.

 

사실 당연한 겁니다. 입추 지나고 한참 더 더운게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추석도 지나치게 빨라서 뭔가 계절의 균형이 깨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긴 합니다. 세월이 하 수상한데 날씨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죠. 9월 가이드 들어갑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9월의 문화가이드 (2014)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가을이 더 빨리 온 것 같아. 해가 쨍쨍 내리쬐는 불볕 더위가 언제 왔다 사라졌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산과 바다로 여행이라도 다녀들 오셨는지?

 

9월의 주요 볼거리들을 살펴 보다 보니 국악 관련 이벤트들이 눈길을 끄네. 가장 큰 무대는 추석을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블루문 페스티벌이야. 달맞이를 하듯 세 사람의 국악인들이 각각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하는 공연을 펼치는 거지.

 

96일은 양방언, 7일은 이자람과 송소희가 공연자로 나서. 그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건 이자람이야. ‘눈대목이란 이름으로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자신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개작한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해. 한번 직접 눈으로 보면, 왜 이 가이드가 이자람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지 알 수 있을거야. 티켓 값이 아주 싼 편은 아닌데, 33천원으로 2층 뒷자리 A석을 사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여담이지만 현재 한국 국악계가 내세울 만한 톱스타로 양방언, 이자람을 꼽는다면 거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런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톱스타가 여고생 송소희라는 건(티켓 가격도 제일 비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네. 하긴 뭐 송소희를 보고 있으면 나부터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냥 넘어 가기로 해.

 

보다 정통 국악의 느낌을 원하면 927, 서울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를 찾아 봐. 송재영 명창의동초제 흥보가 공연이야. 송재영 명창은 동초 김연수에서 오정숙을 거쳐 이일주에게 전해진 동초제의 정통 후계자지. 전석 2만원.

 

완창판소리 공연을 본 사람 중에 시간이며 돈이 아까웠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꼭 가사집을 사서 그 자리에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판소리는 사설의 다양한 표현을 보고 알아듣는게 중요한데, 아무리 전달력을 강조하는 동초제라고 해도 듣는 소리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야. 가사를 눈으로 보면서 들으면 100.

 

다음은 쉽게 볼 수 없는 합창 공연.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대개 카르미나 부라나라고 쓰는데 이번 공연엔 좀 액센트가 세더군)’를 국립합창단이 930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 제목만 들어선 모를 사람이 많겠지만, 이 합창모음곡의 1번인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를 유튜브 같은 데서 검색해서 들어 봐. 다들 ~ 이 곡?’ 하는 반응이 나올 거야.

 

곡에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강렬한 에너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중세 이전의 곡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르미나 부라나 1937년에 만들어진 현대 음악이야. 물론 꽤 오랜 시간 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한 곡이었지만 1980,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엑스칼리버에 사용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 그 뒤로 각종 시상식, 광고, 패션쇼 등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멜로디가 됐어. 최근엔 드라마 연애의 발견첫회에 에릭과 정유미가 재회하는 장면에도 나왔지. 아무튼 직접 전곡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색다른 경험이 될 거야. R석이 5만원으로 꽤 저렴한 편이고, 2만원 짜리 A석도 제법 좋은 자리야.

 

 

 

9월에도 연휴가 꽤 길지? 매일 TV만 보는 것도 지루할 테니 재미있는 책을 추천할게. 하정우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찍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국내에 소개된 게 1999년이고 그동안 수없이 좋은 책으로 소개됐으니 많이들 보셨겠지만 그래도 안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 잘난 척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신간 아니면 큰 일 나는 줄 알지만, 책이란 건 자기가 좋자고 보는 거거든. 그러니까 왜 나온지 12년이나 된 책을 새삼 소개하냐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이런 책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길 바라. 신간이 아니라서 8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내친김에 위화 선생의 다른 작품도 같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제목은 형제’. 사실 허삼관 매혈기형제는 중국 문화혁명이라는 같은 배경을 담고 있어. 하지만 허삼관 매혈기에서 문화혁명을 다소 장난기있게 훑고 지나간다면 형제에서는 그 사건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고나 할까. 주인공인 두 형제 아닌 형제 중 이광두는 G2까지 성장한 중국인의 배금주의와 사업 역량을 상징한다면 송강은 중국인 고유의 정신문화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 지인은 책 한 권으로 진정 중국을 알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형제’”라고 극찬하기도 했어. 사실 이 책이 세 권이라는 점을 빼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세 권 합쳐 인터넷 가격으로 23000원 정도.

그럼 다들 등화가친하시고, 10월에 만나.

 

 

블루문 페스티벌 이자람   A 33000

국립합창단 까르미나 부라나  A 2만원

완창판소리 송재영의 동초제 흥보가    전석 2만원

위화, ‘허삼관 매혈기      8000

위화, ‘형제 1,2,3’          23000

 

합계       104000

 

 

 뭐 말로 길게 할 것 없이 이자람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에 내려진 축복이라고 할만한 재능입니다.

 

 

물론 이 소녀도 이 시기 한국에 내려진 기쁨으로 손색이 없죠.

그리고 '카르미나 부라나', 역시 이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자, '아 이거!' 하셨습니까?

정작 이 영화에서 이 곡이 나오는 장면은 성을 빠져나온 아서의 기사단이 꽃잎이 나부끼는 숲속을 일렬로 질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그 장면을 극장에서 본 사람 치고 그 장면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카르미나 부라나' 신의 미적 충격은 압도적이었죠. 물론 지금 DVD 화질로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충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유튜브를 찾아 보면 그 장면의 영상도 있습니다만, 앞뒤 맥락을 다 잘라 버리고 그 장면만을 봐서는 어떤 감흥도 없을 겁니다.)

 

이 영화의 이전과 이후로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소재로 수없이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관객들은 아동용 판타지와 신화가 된 전설의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 내고 있는 존 부어맨의 연출에 혼이 녹아드는 충격을 받았지만, 불행히도 존 부어맨은 남은 영화 인생 동안 이 작품에 비견할 만한 성취를 다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브리엘 번, 리엄 니슨, 패트릭 스튜어트, 그리고 헬렌 미렌의 파릇파릇하던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날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화질의 벽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의 시대에. 아무튼 여담이고, '카르미나 부라나'는 한번쯤 들어 보실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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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영화 '해적'에 나오는 옥새 장면이 매우 굴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해 이웃 나라의 군주로부터 '그대들의 나라를 인정하고, 그대 나라의 국새를 보내 그것을 증명하노라'라는 칙명을 받는다는 건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연원을 생각해 보면,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에서 국새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모욕적인 일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조선이 명에 대해 취했던 자세와 마찬가지로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에 대해 굴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 국경을 함부로 넘어 조업하는 중국 어부들 하나 단속하지 못하고, 이를 가로막던 해경 요원이 중국 어부에게 살해당해도 속시원한 조치를 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 심지어 수많은 인권/재야 단체들 또한 여기에는 입을 다무는 현실을 보면, 대체 누가 어느 시대를 향해 사대주의적이고 종속적이었다고 욕할 자격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옥새의 의미와 그 전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옥새

[명사] 玉璽.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국왕의 인장. 흔히 국새(國璽)라고도 불린다. 각종 문서에 국가의 약속을 대신해 사용된다.

 

개인이 도장을 사용하듯 나라에는 국권을 대신하는 도장이 있다. 한자로 새()라는 글자 자체가 가장 높은 권위의 도장을 뜻하며, 굳이 옥으로 만들지 않아도 흔히 옥새라고 쓴다. 이는 아마도 국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국새라고 불리는 이 옥새는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 于天 旣壽永昌,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은 영원하리라)’의 여덟 글자를 전서로 새긴 것이다. 진에 이은 한()나라에서도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사용됐고, ‘삼국지연의에서 원소와 손견이 궁중 우물에서 발견된 이 전국새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에도 전국새를 가진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라는 통념 때문에 수,당 시대까지 권력의 상징으로 존중받았다.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 이후 전국새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고, 이후에는 모조품이 몇 차례 등장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진짜 전국새를 사용한 사람은 진시황 한 사람 뿐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찍이 진시황이 천하를 순시하던 도중 동정호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위태로워지자 옥새를 물에 던져 잔잔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황제의 권위로 동정호의 용을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왕은 노인으로 변신해 황제에게 다시 옥새를 전달했다고 한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에겐 이 모두가 황제를 신격화하려는 이벤트로 보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여러 왕조에게 중국으로부터 국왕에 책봉되어 칙명과 국새를 받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삼국시대 이후 책봉례가 끊인 시절은 없었다.

 

고려는 원과의 오랜 전쟁 끝에 굴복하고 사위의 나라가 된 뒤, 부마국왕(駙馬國王)의 칭호로 옥새를 받았다. 반면 새로 건국한 명은 고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1370,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 새겨진 국새를 보내왔다.

 

1392년 개국 직후 태조 이성계는 명에 사신을 보내 새 나라의 국호로 화령(和寧)’조선중 어느 것이 좋으냐고 질의했다. 화령은 함경남도 영흥의 옛 이름으로 이성계의 고향이다. 청을 받은 명 태조 주원장은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요, 불러서 아름다운 이름이라며 조선을 골라 줬다.

 

이로써 일단 정권의 정통성은 인정받은 셈이나 정식 책봉이 되려면 옥새 수령은 필수였다.  이성계는 1393년 고려 국새를 반납한 데 이어 1395년 태학사 정총을 사신으로 보내 옥새를 재촉했다. 하지만 당시 명은 정도전이 주도한 조선의 군비 확충을 우려 하던 터라 쉽게 국새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태종 1(1401) 612일에야 명으로부터 금으로 만든 국새를 지닌 사신들이 도착했다(국왕이 직접 받아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영화 해적에 나오듯 조선 사신이 대신 받아 가져올 수는 없었다). 태종은 매우 기뻐하며 두 사신에게 각각 7언절구를 지어 답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2년 뒤인 1403 48일에도 역시 금인(金印)과 칙령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2년만에 또 국새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진짜 고래가 삼켰는지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대단히 굴욕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 중국의 책봉은 중화라 불리는 동아시아 문명의 일부에 편입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시각을 달리 하면, 책봉 여부는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에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가 내린 한왜노국왕(漢倭奴國王)의 인장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초인 1401년엔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가 외교적인 노력 끝에 명으로부터 일본국왕지인(日本國王之印)이라는 국새를 받고 명의 왕위 책봉을 받아들였다. 막부의 권력을 인정받고 조공을 통한 명과의 무역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명이 청에게 대륙을 내준 뒤 청도 조선에 새로 국새를 보냈고,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는 글자체를 만주체로 바꾸어 새로 보내기도 했다. 서유문은 무오연행록에서 이 국새에 대해 금으로 만들어졌고, 위에 거북이를 앉혔다. 안남(베트남)이나 유구(오키나와)에는 은으로 만들고 낙타를 앉힌 인장을 내린 것을 보면 우리(조선)와 대접이 다름을 알 수 있다고 서술했다. 소중화(小中華)의 자존심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지나간 역사를 매도하기보다는 과연 그 시대의 사대(事大)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G2시대의 한반도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이미 중국을 상대로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과연 오늘날의 후손들이 자주성 운운 하며 조상들을 매도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P.S. 제발 옥쇄라고 쓰고 오타라고 우기지 말 것.

 

 

 

 

 

영화 '해적'에 잠깐 스쳐 등장한 국새의 모습입니다만, 실제로는 봉황이 아닌 거북이가 새겨져 있었던 듯.

 

 

 

 

명이나 청으로부터 받은 옥새는 외교 문서용으로 고이 간직하고, 내정용으로는 수시로 국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청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한 고종이 즉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기존의 조선국왕지인 대신 황제어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한 것을 보면 자주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단지 조선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력의 뒷받침 없이 자주성이며 주권, 대의를 부르짖었던 댓가가 어떤 것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자주와 자유를 외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주성을 주장하고도 뒷탈이 없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잠시 기분은 유쾌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는 자존심 한 번 제대로 지킨 댓가를 그 이후의 몇 세대가 치렀던 일이 적지 않았음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선으로 조상들을 함부로 비웃지 맙시다.

 

P.S. 이와는 별도로 '해적'은 참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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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이 흥행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예견됐던 일입니다. 방학 시즌에 가족 관객들이 동반 관람할 만한 안전한 선택이라는 점은 큰 이점입니다. 게다가 그 어느때보다 리더십이 화두에 올라 있는 상황, 모든 비난과 고난을 한몸에 담고 묵묵히 실천을 통해 아랫사람의 분발을 이끄는 명장 이순신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명량'을 보면서 여러 차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보여졌던 많은 강점들이 실종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영웅'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성웅 이순신'에 대한 감동을 소감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과연 '명량'이 그 '영웅 만들기'에 성공한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성공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습니다. 그 아쉬움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은 평자들이 '명량'의 강점을 '정공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많은 장치들을 배제하고, 그저 '위대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동시에 이 '정공법'이라는 말 안에는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굳이 교과서 텍스트 이상을 표현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어떻게 그릴까' 입니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놀랍니다. 특히 통제사 해직 - 고문과 백의종군 - 칠천량의 패전 - 통제사 복직 - 명량해전에 이르는 참담한 기간의 일기에서는 고뇌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인간 이순신의 면모가 가슴을 때립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조정, 말도 안 되는 상황, 말도 안 되게 강한 적, 그 절망을 뚫고 나가려는 초인적인 의지.

 

그런데 영화 '명량'의 이순신은 아쉽게도 매우 단선적인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옳고 바른 영웅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우선 이 인물에게는 소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그를 믿고 의지하던 부하 안위조차도 퇴각을 주장하지만 영화 속 이순신은 단 한번도 그들에게 왜 여기서 싸워야 하는지 설득하지 않습니다. 전략은 내 머리 속에 있고, 너희는 싸워야 한다는 식입니다. 혼자 고뇌하고, 혼자 불면의 밤을 보내고, 탈주자를 엄벌에 처할지언정 누구와도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영웅입니다.

 

 

 

 

다음. 12대 133(또는 300)의 치명적인 열세 상황에서, 그래도 부하들은 이순신이 홀로 앞에서 혈투를 벌이며 북을 치자 달려나와 호응하고 전선에 합류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의 솔선수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장선이 공격당하는 순간 뱃머리를 돌려 달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물론 대장선이 격침당했다면 바로 다들 달아났겠죠). 이런 상황에서 부하들이, 그리고 백성들이 그를 믿고 달아나지 않은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명량'에서처럼 '소통' 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대체 왜 그들은 그를 믿고 따를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의 가장 주된 텍스트인 '난중일기'에는 그 이유까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난중일기'에 그런 설명이 있었다면 충무공은 지금까지 이렇게 추앙받는 영웅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있었다면 그건 자화자찬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충무공이 혼자 힘으로 분투할 때 부하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앞으로 치고 나와 전투에 합류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할 수 있었던, 백성들이 피난을 가기는 커녕 열두척의 전선 뒤에서 군선을 가장하고 허장성세를 펼쳐 전투를 도울 수 있었던('난중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항복이나 윤휴가 쓴 충무공 행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일부러 백성들의 배를 뒤편에 배치해 우리 편의 수가 많은 것 처럼 꾸몄다" 이 때문에 명량해전을 다룬 일본 쪽 기록은 조선 수군의 전력이 열두척 뿐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인, 바로 충무공과 아랫 사람들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가 이 영화를 봐선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선 어느 정도 상상력이 발휘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명량, 실제 역사와는 어떻게 달랐나. http://fivecard.joins.com/1268

 

 

 

 

 

하지만 지나치게 '곧이 곧대로' 표현된 이 영화의 이순신은 고집불통의 노장으로 보일 뿐이고, 희대의 지략가라기보다는 그저 불굴의 투사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최민식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이 역할을 맡음으로써 그나마 어느 정도 입체적인 인물 상이 그려질 뿐, 배우의 역량을 빼 놓고 본 '명량'의 이순신 캐릭터에게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역사나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뚝 떼어낸 듯한 재미없는 인물일 뿐입니다.

 

 

 

 

이순신이 그렇게 되고 나니 다른 인물들은 차마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 말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이순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루시마 역의 류승룡이 '나, 왜장. 당신들이 생각하는, 임진왜란 사극에서 늘 보던 바로 그 왜장. 잔혹하고 피에 굶주린 그런 왜장' 에 그쳤고 보면 말입니다. 나오는 장면 장면이 모두 인상적이었던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심한 캐릭터입니다.

 

 

(그 외의 배우들은 더더욱 할 말이... 한 영화인은 "소년 수봉 역을 맡은 신인 박보검 하나 외에는 모두 명량에 수장됐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입니다.)

 

물론 '명량'의 최대 강점은 해전 장면의 스펙터클에 있습니다. 바다 위를 수놓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면서 '명량'은 비로소 기지캐를 켭니다. 전투의 세세한 상황이 실제 역사와 부합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명량'의 전투 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배우들과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결과가 현재의 '명량'이라면, 아무래도 아쉽다는 느낌이 앞서게 됩니다.

 

하긴 현재 상태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명량'을 본 뒤 '애국의 열정이 샘솟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가슴이 뛰었고, 영화의 진정성을 깊이 느꼈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런 평가를 내리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한민족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과 그 명장의 위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 '명량'에 대한 평가는 이런 관중의 대대적 호응과는 조금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도 있을 듯 합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앞부분에는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유명한 문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찢어 버리라고 명령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시의 이해 Understanding Poetry' 라는 이 교과서에서는 한 시 작품의 위대성을 판단하기 위해 두 가지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시가 얼마나 예술적으로 완성도 있게 쓰여졌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가 다루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은 바로 이 설명을 찢어버리게 합니다. '중요한 대상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면 위대한 시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얼마나 헛된 것이냐는 이유 때문입니다.

 

'명량'은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그린 작품으로는 한국 영화사에 충분히 기억될 만한 그런 영화입니다. 하지만 '성웅 이순신'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그만한 평가를 받기 힘들 듯 합니다. 스필버그의 '링컨'이나 TV 사극 '뿌리깊은 나무', '정도전' 처럼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진 영웅을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있어 각각 다른 방식의 전범을 보여준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명량'이 그려낸 이순신의 모습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입체적이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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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주된 텍스트는 '난중일기'입니다. 특히 해전 당일의 진행은 난중일기에 기록된 1598년 음력 9월16일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본인과 아들 이회, 그리고 송희립 나대용 안위 김억추 등 당일 전투에 참여한 부하 장수들은 물론이고 승려 혜희, 정찰꾼 임준영, 항복한 왜의 무사인 준사 등등 조연급의 인물들도 모두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 실제 역사는 역사,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있어서 '명량'이 나쁜 영화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단 '명량'을 실제 역사로 착각하는 일을 방지하거나, 혹은 그저 호기심에서 '명량'과 역사상의 기록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순신(1545~1598)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충무공 이순신의 일생을 간략하나마 한 페이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감히 저지를 수 없는 불손한 짓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명량에 기록된 ‘1598 9이란 제한한 시간 안에서, 각종 기록에 담긴 이순신의 전적을 다뤄보고자 한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개전 한달만에 일본이 조선의 수도 한양을 빼앗는 등 파죽지세의 면모를 보였으나 이후 명의 원군이 참전하고 강화 논의가 시작되며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화의가 깨지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격분했고, 1597년 정유재란이 시작됐다.

 

그해 3,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난 이순신은 7월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전사함에 따라 통제사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남은 전선은 겨우 열 두척.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난중일기 9월은 우울하기만 했다. 가까스로 남해의 서쪽 끝, 벽파진에 본부를 차렸지만 언제 적이 쳐들어올 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말단 병졸은 물론 지휘관들도 공포에 질렸다. 92, 전체 조선 수군의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전투를 피해 탈영할 정도였다.

 

97일에는 왜 수군의 척후대가 방어 태세를 살피기도 했다. 14, 왜군이 마침내 한줌 남은 조선 수군을 섬멸하고 한양으로 진공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결전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음력 916일의 기록도 평소보다 길지 않다. 130여척의 일본 함대는 명량해협으로 직진했다. 해류의 불리함이고 뭐고 압도적인 규모를 이용해 뭉개 버리겠다는 자세. ‘명량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구루지마가 선봉에 섰다.

 

전날 밤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를 부르짖어 투지에 불을 질렀지만, 막상 일본의 대함대를 마주한 장졸들은 겁을 먹고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특히 이순신이 일기에서 저런 자가 어떻게…”하고 한탄했던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800미터(두 마장)나 뒤쳐져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홀로 최전방에 선 이순신은 대장선의 앞선 화력을 이용해 공격해오는 왜선들의 접근을 막으며 꿋꿋하게 버텼다. ‘명량에선 그리 강조되지 않았지만, 조선의 전투 과학 기술은 이순신의 전술과 울둘목의 해류 못잖게 이날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판옥선은 일본의 주력함인 세키부네에 견고함이나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조선의 천지현황 총통도 사정거리나 파괴력에서 조총을 압도했다.

 

일본 수군은 갈고리를 걸어 상대 배에 뛰어드는 전술에 능했으나, 조선군은 현대전의 크레이모어를 연상시키는 대인살상병기 조란탄(鳥卵彈, 작은 탄두 수십개를 동시에 산탄처럼 쏘아 보내는 포탄)를 활용해 접근전을 원천봉쇄했다. 이순신의 눈부신 투지에 물러섰던 부하들도 하나둘씩 전선에 합류, 기적 같은 승리를 합작해냈다.

 

일본 수군은 구루지마가 전사하는 등 31척을 잃고 후퇴했다. 임진왜란 7년을 통틀어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급 지휘관이 전사한 것은 명량의 구루지마가 유일하다. 반면 조선 수군은 단 1척도 잃지 않았고, 대장선에서는 사망자가 2, 부상자가 3명 나왔을 뿐이었다(이런 피해라면 대장선에선 명량에 그려진 백병전이 펼쳐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명량대첩의 개략적인 결과다.

 

 

 

1. 백병전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영화 '명량'은 매우 충실하게 '난중일기'의 당일 기록을 재현하고 있습니다만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밝힌 대장선의 피해 규모를 볼 때,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물론 대장선이 아닌 안위의 배에서는 백병전이 펼쳐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장선이 혼자 앞으로 나가 왜 수군 전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대장선과 왜 수군 선발대의 원거리 타격 능력이 이지스함과 일반 함선 정도로 차이가 났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조금 더 들어가면, 조선 수군의 승리 뒤에는 조선의 뛰어난 선박 제조술과 화포 기술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명량'에서는 명량해전 후반에 조선 배가 일본 배를 들이받아 부수는 충파(衝破) 장면이 나오는데, 본래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용어는 당파(撞破)입니다(충파라는 용어는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실제로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은 이 당파를 '조선 배로 일본 배를 들이받아 깨뜨리는 전술' 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최근의 해석으로는 이 당파가 직접 배와 배가 들이받는 것이 아니라는 쪽입니다. 일찌기 1985년 드라마 '조선왕조500년-임진왜란' 편에서는 원균이 이 당파전술의 창시자(?)이며, 조선의 판옥선이 일본 배보다 훨씬 견고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전술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지만, 각종 문헌에서 사용된 '당파'를 해석해 본 결과 원거리 병기로 적함을 격침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적절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

 

이 시기 해전의 전투 방법이라면 1) 배와 배끼리 동반 침몰을 각오하고 들이받는 것 2) 화포나 활 등 원거리 병기로 공격하는 것 3) 갈고리를 걸고 상대 배로 넘어가 백병전을 펼치는 것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조선 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 일단 2)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반면 일본 수군의 당시 주된 전법은 3) 쪽에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으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육전에서는 왜군의 조총이 핵심 병기 역할을 했지만 해전에서는 조선군의 화포가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천지현황 총통과 위에서 말한 조란탄 같은 대량살상병기, 그리고 유명한 비격진천뢰처럼 목표물에 적중한 뒤 2차 폭발을 가져오는 신형 포탄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2. 거북선이 동원될 수 있었나?

 

명량해전을 앞두고 거북선을 새로 건조중이었다거나, 배설이 그 배에 불을 질렀다거나 하는 것은 본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물론 실제로 거북선을 건조하려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설은 그저 전투가 두려워 혼자 탈영을 했고, 뒷날 육지에서 체포되어 참수됐다는 기록만 전해집니다.

 

더구나 거북선은, 갑판 위에 창칼을 꽂은 지붕이 덮여 있어(이것이 철갑이든 아니든^^) 왜군이 3)의 전법을 아예 시도할 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왜군들의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원거리 화력에서 뛰어난 조선 수군이 굳이 적의 강점인 백병전의 위협을 불사하고 배와 배끼리 들이받는 근접전을 선택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다만 거북선의 경우에는 적의 승선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보다 근접해서 화약무기를 활용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명량'에서 배 만드는 노인이 감동에 찬 목소리로 "구선(龜船: 거북선)이 돌아왔다!"고 외치는 것은 사실 좀 공허합니다.

 

 

3. 일반 백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영화 '명량'이나 '난중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항복의 '고 통제사 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나 윤휴 등이 작성한 이충무공의 행장에는 "백성들이 어선을 동원해 조선 수군이 일자진을 친 뒤에서 허장성세로 우리 함대의 수가 많은 것처럼 꾸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피란민들이 달아나지 않고 함대의 뒤에서 응원했다는 것은, 이 피란민들이 충무공에 대해 갖고 있던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줍니다.

 

연전연승하는 스타라서 그루피처럼 따라다닌 것이었다면 이렇게 수세에 몰렸을 때에는 백성들부터 달아났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명량'에서 백성들이 어선을 동원해 난류에 휘말린 대장선을 끌어 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런 기록을 기초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76년작 영화 '난중일기'에는 울돌목 수중에 긴 쇠사슬을 설치하고, 수천명의 백성들이 이 사슬을 잡아 끌어 해전을 돕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철쇄설'이라고 해서 한때 유행했던 전설입니다. 기원은 알 수 없으나 - 아마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쇠사슬 수전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만 -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근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강 싸움이라면 모를까, 울돌목에서 사용했을 만한 거대한 쇠사슬을 만들어 전투에 썼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합니다

 

4.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마다시인가?

 

'난중일기'에는 항복한 왜군 준사(영화에도 나옵니다)가 물 위에 뜬 비단 옷 입은 왜장의 시체를 보고 "저게 마다시(馬多時)"라고 했으므로 시체를 건져서 내걸어 적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목을 잘라 높이 건 시체는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것입니다.

구루지마는 임진왜란을 통틀어 전쟁 중 전사한 왜군 지휘관 중 최고위급의 지위관 (다이묘 전사자는 구루지마 뿐) 이므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마타시가 이 구루지마의 별칭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역시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왜장 간 마사카게(菅正陰)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사카게의 별명이 마타시로(又四郞)였다는군요.

 

 

5. 이순신은 왜 명장인가?

 

그럼 판옥선과 거북선이 우수하고, 조선의 화포가 뛰어나서 이건 거냐? 그게 다냐?

 

이런 질문을 하실 분들이 반드시 있을 듯 해서 덧붙입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충무공의 진정한 위대함은 비슷한 전력의 전투선단을 이끌고 용맹과 지략으로 적을 물리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비해 장기간에 걸쳐 이처럼 적과 비대칭의 전력을 구성하고, 교전시에는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해 학살 수준의 전투를 벌여 적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전략가의 면모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피난민 구제에도 힘써 백성들이 정보 제공과 식량 및 자원 조달에 자진해서 나서게 하는 총체적인 역량을 고려할 때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기간의 시스템 구축, 단기전에서의 역량은 물론 심리전과 정훈병과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그냥 명장'들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전략가이면서도 인간적으로도 휘하 장병들과 백성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명량'의 이순신 묘사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따로.

 

명량, 영웅만들기에 성공했나. http://fivecard.joins.com/1266

 

 

 

난중일기 130척으로 기록된 왜적 함대 규모는 점점 부풀려져 19세기의 이긍익은 “600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이 당시 거느렸던 병력 규모로 볼 때 다 해봐야 고작 수십척이라고 맞선다.

 

일본 측 해석에 따르면 명량해전은 대첩도 아니요, 전체 판세에 영향을 주지 못한 국지적 교전이다. 비록 일본이 선봉을 격파당했지만 조선 수군은 명량에서의 교전 직후 후퇴했고, 다음날 일본의 본진이 명량을 지나 서해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전략적으로는 일본이 승리한 전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순신은 전투 직후 일본의 추격을 피해 군산 앞바다까지(921) 일시 후퇴했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 군세를 회복해 이듬해 2월에야 고금도에 진을 치고 전남 서부 해안을 확보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량해전 이후 일본 수군이 서해를 통해 한양에 진출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는 점, 이후 단 한번도 이순신 수군을 박멸하기 위한 군사 행동을 재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이런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이순신의 전적은 한일간의 역사적 자존심이 가장 팽팽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 역시 한국 측은 승한 반면 충무공이 유탄에 맞아 서거했다고 보는 반면 일본 극우 세력은 이순신이 죽었고 일본군의 주력이 한반도 탈출에 성공했으니 일본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전혀 좁혀지지 않을 해석의 차이가 한-일간의 심리적 거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끝]

 

일본이 생각하는 이순신에 대해선 나중에 짬을 내서 자세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개는 일본의 억지가 돋보입니다만, 도고 헤이하치로가 "나와 넬슨을 비교할 수는 있지만 이순신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라고 했다는 얘기는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꽤 거세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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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엄청나게 덥네요.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8월의 문화가이드 (2014)

 

 

8월은 자연스럽게 공연 비수기. 이럴 때면 절로 런던의 PROM이나 에딘버러의 프린지 같은 8월의 공연 천국이 그리워지네. 대신 서울의 8월은 대신 락 페스티발의 물결이야. 프레디 머큐리는 없지만 퀸이 슈퍼소닉 페스티발(8.14), 오지 오스본과 마룬5가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8.9~10), 레이디가가가 AIA리얼뮤직(8.15~16)에 내한하네. 여유만 있다면 돈 쓸 기회는 정말 많아.

 

물론 우리의 모토는 그런게 아니지? 고개를 돌리면 일단 82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부천 필하모닉 유럽 투어 프리뷰 콘서트가 보여. 말 그대로 올 가을 유럽 투어를 앞두고 국내 팬들에게 그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기회야. 지휘는 계관지휘자 임헌정. 브람스 교향곡 4번과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1번도 관심이 가지만 특히 한국 현대음악인 전상직의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초연이 포함돼 있는 공연이야.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도 주목. 모처럼 3만원으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R석에 앉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다음. 우리가 항상 셰익스피어를 교양의 표상으로 거론하지만 사실 셰익스피어극을 책 말고 실제 사람이 공연하는 모습으로 보기는 쉽지 않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지.

 

아쉽게도 실연은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극을 그 본고장인 영국 국립극단의 공연으로 볼 기회가 생겼어. 바로 NT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영국 국립극단의 공연을 실황으로 녹화해 전 세계의 다른 극장에서 보는 행사인데, 요즘 극장에서 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연상하면 될 거야. 올초 서울 국립극장에서 워 호스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아실테고.

 

830일과 31, 두 날에 걸쳐 코리올라누스리어 왕이 하루 한 차례씩 상영돼. ‘코리올라누스는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그리 자주 공연되지 않아 친숙하지는 않은 작품이야. 뭐 베토벤의 코리올란서곡을 아는 사람이라면 줄거리를 대략 아는 정도지.

 

 

 

 

2011년에는 레이프 파인즈와 제라드 버틀러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어. 그런데 이번 연극 코리올라누스가 주목을 끄는 건 영화 토르어벤저스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배우 톰 히들스톤이 타이틀 롤을 연기하기 때문이야.

 

리어 왕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품이지. 타이틀 롤을 맡은 사이먼 러셀 빌은 그리 지명도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이번엔 연출을 샘 멘데스가 맡았다는 데 눈길이 가. 멘데스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 ‘007 스카이폴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본래 연극 연출 출신이라는 건 다들 알지? 어쨌든 가격은 1만원~15000. 두 작품 모두 보는 걸로 알고 있을게.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831일까지 열리고 있는 백자예찬을 권하고 싶어. 백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백자의 미감에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한국 현대 미술의 일품들을 소개하는 전시야. 9000. 기획전과 상설전시를 모두 볼 수 있는 가격.

 

8월에 권하고 싶은 책은 아무래도 무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겠지. 이쯤에서 슬쩍 중앙일보 임주리 기자의 일상방황을 추천하고 싶기도 한데, 이 책이 비록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는 20~30대 여성들에게는 꽤 유용하면서 심지어 재미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기엔 좀 낯간지러운 책이기도 해.

 

그래서 진짜 추천할 책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작가 이름을 보고 스칸디나비아 느낌을 받았다면 정확해. ‘밀레니엄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두 작가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라르손이 2004년 사망해 밀레니엄시리즈는 더 볼 수 없게 됐지만 대신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전 세계 스릴러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어.

 

해리 홀레는 신장 1m90에 비쩍 마른, 절대 미남은 아니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매력으로 여자가 끊이지 않는(소설이잖아. 이해해) 엘리트 형사야. ‘스노우맨은 그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여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얘기지. 북유럽의 긴 겨울, 냉기가 뿜어나오는 스럴러가 더위 쫓기에도 제격일 거야. 624페이지 부담스럽다고? 곧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질 걸. 1만원 정도.

 

 

 

윤현승의 뫼신사냥꾼’. 6권이나 되는 시리즈인데 일단 첫권을 사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아마 34일 정도 여정이라면 휘딱 다 읽어 버리고 내가 왜 한권만 사 왔을까 애달복달할 지도 몰라. 조선을 모델로 한 가상국가를 무대로, 각 산을 차지하고 있는 괴력을 가진 뫼신(산신)들을 노리는 자들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그려 낸 판타지 소설이야. 검술을 기본으로 하는 무사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무당들, 그리고 본래는 동물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 된 뫼신들이라는 세 축을 놓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엇갈림이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일단 첫권 12천원 정도.

 

9월 초면 좀 시원해 지려나? 냉면 콩국수 빙수는 하루에 한번씩만 먹고, 배탈 조심해. 바이.

 

부천 필하모닉 유럽투어 프리뷰 콘서트         R 3만원

NT라이브, ‘코리올라누스’ ‘리어 왕             15000

서울미술관, ‘백자예찬                         9000

요 네스뷔, ‘스노우맨                          1만원

윤현승, ‘뫼신 사냥꾼                          12000

 

                                           91000

 

 

 

 

 

요 네스뵈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스티그 라르손을 잇는 북유럽 출신의 인기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 여담이지만 전에 들은 얘기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꽤 사이 나쁜 이웃이라고 하더군요. 구체적으로 두 나라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알 정도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그 춥고, 겨울이면 밤이 길고, 여름에는 백야가 찾아온다는, 인구도 얼마 안 되는 나라에서 이런 작가가 나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게 참 놀랍기도 합니다. 소수 언어 작가의 경우 영역본이 히트한 이후에 세계적인 붐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이런 작가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죠.

 

 

 

 

해리 홀레 (하리 홀레?) 시리즈는 현재까지 10권 정도 나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대로 가면 10권을 다 보게 될 듯. 흡인력이 장난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순서대로 모두 번역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시리즈의 맨 처음부터' 한글로 정주행하시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일단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는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라 함께 읽으셔도 무방할 듯.

 

당연히 엔딩은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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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둘쨋 날. 여전히 날씨는 흐리고, 동행인은 쇼핑을 원한다. 가난한 여행자의 마음에 그늘이 진다.

 

생전 처음으로 H 브랜드의 매장을 들어가 보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엘 코르테 잉글레스 El Corte Ingles 백화점도 가 보고... 뭐 그런 오전. 국내에서 살 수 없는 청바지를 잔뜩 샀다.

 

(여담이지만 국내 의류 메이커들은 허리 사이즈 34인치가 넘는 사람은 그냥 자루만 만들어 줘도 감사하며 입으라는 태도를 언제 버릴 지 궁금하다. 뚱보들도 디자인이 들어간 옷을 입고 싶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제2의 미술관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공식 명칭은 국립 아트센터 뮤지엄 레이나 소피아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꽤 길다. 프라도가 고전 미술 작품의 총 본산이라면 레이나 소피아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곳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비교할 만 하다고 할까? 본래 병원이었던 건물을 1986년 개축했고, 설립자인 레이나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땄다.

 

저 대형 엘리베이터 박스가 붙은 쪽이 정문이라는데 정문은 사실 눈길이 별로 가지 않고...

 

 

 

후문 쪽이 진짜 현대 미술관 답다.

 

 

 

아무 것도 안 써 있는데 분명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일 것 같은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나중에 보니 제목이 '붓놀림(Brushstroke)' 이라고. 그렇게 알고 보니 붓처럼 보인다.

 

 

천장과는 또 이런 조화.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의 식당이 괜찮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가격이 꽤 괜찮은 편.

 

그리고 비프 스테이크가 express menu에 있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다.^^

 

 

 

식사와 함께 미술관을. 그리고 휴식을. 아주 좋은 느낌이다.

 

 

 

 

 

많은 분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 2층 옆에 써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바라본 풍경.

 

 

 

이 미술관도 마찬가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는 분명히 되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사진을 찍건 말건 별 관심이 없다.

 

형식적으로라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역할을 해야 할 안내원(?) 들은 꽤 많이 배치되어 있다. 하는 역할에 비해 사람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배려라는 느낌이다. 만약 사설 미술관이라면 정말 남아 도는 인력이 많다.

 

아무튼 그 사람들도 딱 한 군데, 게르니카 근처에서는 사진 찍기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래도 게르니카가 어떤 식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너편 전시실에서 찍은 장면.

 

저 방 안으로 들어가면 한 벽 가득 게르니카가 펼쳐져 있다.

 

매우 크다. 방 안에서는 어차피 그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안 나온다.

 

 

 

 

1937년 4월26일. 히틀러의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사건이다. 165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 배경을 알고 보면 더 기가 막히다. 당시 스페인과 독일은 전쟁중도 아니었다. 스페인은 내전중이었고, 뒷날 이 폭격은 프랑코가 독일 공군에 요청해 이뤄진 것임이 밝혀졌다. 바스크 인들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이었다는 얘기다.

 

외국군을 요청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만행에 분노한 피카소는 강렬한 그림을 그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고 이를 규탄했다. 프랑코가 집권한 이상 이 그림은 스페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뉴욕 현대미술관의 간판이 되었다. 프랑코 사후 그림이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에도 스페인의 모든 미술관이 이 작품을 원했고, 경합 끝에 레이나 소피아가 최종 승자가 됐다.

 

 

 

피카소는 이후 이런 그림도 그렸다. '한국에서의 학살'. 6.25 전쟁 중 한국에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실은 대략 이런 느낌. 프라도 보다 세련된 느낌이 든다.

 

 

네 방향을 둘러 싼 본래 병원 건물답게 중정 patio 가 있고 가운데 제법 나무가 우거졌다.

 

 

 

인상적인 그림을 발견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제목과 작가 이름 적은 메모를 분실.

 

 

 

어디에나 별 관심 없이 학교에서 가잔다고 온 아이들은 구석에 '짱박히기' 신공을 구사한다.

 

 

 

 

 

이번엔 메모를 같이 찍었다. 루치아노 파브로라는 이탈리아 작가.

 

무라노 글래스를 이용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면 존 케이지의 '소리 전시'는 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현대미술도 분명 유행을 탄다. 그리고 '현대'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 이후 치러진 수많은 실험들 가운데서 이제 걸러 낼 것은 냉정하게 걸러 낼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에는 매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미술관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쓰레기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월을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닐까.

 

 

 

레이나 소피아의 중정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애정행각을 펼치고

 

 

누가 봐도 칼더의 작품인 모빌 하나가 무심히 아이들을 내려다 본다.

 

 

엇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알고 보니 호안 미로의 작품.

 

 

 

 

이 얼굴을 희화화 한 느낌이더라니까... 뭐 느낌이 안 오면 말고.

 

 

 

 마드리드의 하늘은 계속 부옇게 흐려 있고,

 

 

어느새 뉘엿 뉘엿 해가 넘어가는 오후. 건너편에 바로 아토차 역이 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 소피아 바로 앞이 작은 호텔촌이네.

 

베란다에 나와 레이나 소피아를 보는 것까진 좋은데 바로 역 앞이라 꽤 시끄러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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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들렀던 두 군데의 맛집을 소개한다.

 

두 집 모두 어찌어찌 추천을 받아 간 집인데, 정말 훌륭했다.

 

먼저 카사 밍고 Casa Mingo. 통닭집이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알 정도로 현지에서 유명한 집.

 

그렇다고 비싸고 럭셔리한 집이 아닌 동네 맛집 같은 분위기이니 여행자에겐 더욱 좋다.

 

 

 

외관. 밤에 불이 들어오면 그럴싸한 위치다. 시내의 다운타운은 아니고, 왕궁에서 약간 남서쪽 외곽에 있다.

 

서울로 치면 마포나 여의도 정도의 위치?

 

 

스페인식 저녁 타임으로는 살짝 이른 8시였지만 손님은 꽤 들어차 있었다.

 

드시는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집의 주 메뉴는 영계구이 Pollo Asado, 즉 통닭이다.

 

 

 

초점이 흐려졌지만 주 메뉴인 Pollo Asado는 10.2 유로 정도. 그리고 이 집에서 꼭 맛봐야 하는 두 가지를 더 안내받았다. 하나는 시드라 Sidra. 그리고 또 하나는 아사디요 Asadillo y ventresca 다. 시드라 옆의 3/4는 아마도 리터를 말하는 듯(즉 750ml).

 

 

 

시드라는 영어로 사이다(Cider). 이 대목에 얘기하자면, 대체 왜 레몬 소다 맛의 청량음료가 왜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지는 역사의 미스테리다. 미국의 세븐업이나 스프라이트에 해당하는 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인 것으로 안다.

 

그 밖의 나라에서 사이다는 사과를 주 원료로 하는 와인을 가리킨다. 모든 사이다가 스파클링 와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마셔 본 사이다에는 모두 적당량의 탄산이 들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줬다. 와인이라고 했지만 도수도 10도 미만. 맥주보다 약간 독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아사디요 이 벤트레스카, 혹은 벤트레스카 콘 피멘토스라는 이름의 이 음식. 그리 맵지 않은 고추와 토마토에 간 닭고기를 함께 볶은(보기에 따라서는 졸인) 음식이다. 마늘과 양파도 상당량 들어간 듯 한 맛. 한마디로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고추참치 통조림의 양념 맛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뽈로. 사전상으로 Pollo는 병아리를 뜻한다고 되어 있지만, 병아리라고 보기엔 만만치 않은 크기다. 한국에서 삼계탕 재료로 사용하는 웅추보단 최소 1.5배는 더 큰 사이즈. 기름을 쪽 빼고 껍질이 바삭바삭하게 구워 절로 침이 넘어간다. 냄새가 그만.

 

 

가게 한 구석을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한때는 한국에도 많았던 저 닭 굽는 틀. 이집 특유의 오븐 안에서 뽈로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한국식 통닭은 저렇게 굽고 끝나지는 않았다. 왕년의 통닭 명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저렇게 전기 틀에 넣고 굽는 것만으론 껍질의 식감이 그리 바삭바삭해지지 않아 손님 상에 내 가기 직전에 통째로 기름에 한번 튀겨 낸다고 한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어쨌든 먹는 법은 단순하다. 닭 살을 쭉쭉 찢어서 아사디요를 소스로 활용해 발라 먹으면 된다. 아사디요 바른 닭을 먹다가 목이 막히면 시드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시드라와 뽈로의 컴비네이션이 있었다.

 

맛은 최고. 아사디요 레서피를 알아 오면 국내 치맥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듯 싶었다.

 

 

 

정면 사진은 못 찍었으나 저 대머리 홀 서빙 아저씨, 관광객 응대의 기본기가 충실한 프로였다.

 

말이 통하고 안 통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눈빛과 몸짓 하나 하나가 친근감을 더한다.

 

잘 나가는 집이라 그런지 회전도 꽤 빠른 편.

 

 

 

이 정도의 포만감으론 적절한 가격이라 여겨진다. 만족.

 

 

 

 

 

돌 벽에서도 관록이 느껴진다.

 

그 다음. 벤타 엘 부스콘 Venta El Buscon.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 Puerta del Sol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이 부글부글한 솔 광장의 곰 동상에서 동쪽으로 두번째 골목... 정도로 설명하면 될 듯. 찾기도 쉽고, 한참 걸을 필요도 없다. 그란 비아 주변에서도 충분히 도보로 도달 가능한 거리다.

 

Venta El Buscon은 좀 묘한 이름이다. Venta는 매상/수입/판매, Buscon은 사기/갈취 뭐 그런 뜻이라는데, 명색이 장사하는 집이면서 주인이 손님을 갈취한다는 뜻은 아닐테고, 느낌상으론 '이문 생각 없이 막 퍼주는 가게' 정도의 작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전에 어딘가 있었던 '주인이 미쳤어요' 정도의 가게 이름?

 

 

 

이 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메뉴로는 빠리야다 데 마리스코 Parrlliada de Marico 를 꼽는 분위기다. 뭐 이름은 길지만 우리말로 바꿀 때 '해산물 모듬'으로 불러 무리가 없을 듯 하다.

 

 

 

해산물이라고 하지만 어패류는 없고 모두 해양 갑각류. 바닷가재 Lagosta,  빨간새우 Carabineros, 닭새우 Cigalas, 대하 Gambas 가 나온다. 모두 맛으로는 한몫 하는 친구들이다.

 

18유로짜리 고기 모듬은 어떤 맛일지.^^

 

 

 

 

이건 안에서 문쪽으로 바라본 구도. 거리의 노천 식당이 가까이 있는데, 나름 보도는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반면 안쪽은 왁자지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기있는 동네 주점 분위기. 바며 테이블이며 꼭꼭 들어찼다.

 

 

 

 

도시 한 복판의 느낌이 절로 난다.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 모듬 한 접시, 구운 야채(아스파라가스, 파프리카, 호박, 버섯 등) 한 접시, 그리고 전형적인 샐러드 한 접시.

 

구운 야채에서 나는 냄새도 향기롭기 그지없다.

 

 

꿀꺽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은 이쪽. 몇마리 까 먹다 말고 황급히 사진을 찍었다.

 

달고 감미롭다.

 

 

 

 

 

특히 전날, 시장에서 바로 저 빨간 놈들을 본 터였다.

 

스페인에 가시는 분들, 꼭 저 빨간 놈들을 드셔 보시기 바란다.

 

새우의 신기원이다. 대하도 맛이 좋지만, 저 놈들은 국물의 농도가 다르다.

 

아 침 넘어간다. ;;

 

잠시 후....

 

 

뭐 이렇게 될 수밖에...

 

밖으로 나오면 바로 솔 광장의 번화가로 연결된다.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걸어서 호텔로. 사실은 이 날이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래서 맛난 음식에도 불구하고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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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고속전철 AVE 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소 흐린 날씨. 새로 지어진 세비야 산타 후스타 역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한가로움도 좋지만, 역시 초행 여행자라면 기차를 이용하는게 좀 더 안정된 여행의 지름길인 듯.

 

 

 

AVE 내부.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큰 짐칸이 따로 마련돼 있다. KTX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간 정차 역에선 슬쩍 불안해서 한번 가 보기도 했다.

 

 

 

 

간단한 스낵을 파는 가운데의 휴식 공간이 인상적. 본격적인 식당칸은 아예 없었다.

 

 

마드리드 아토차 Atocha 역에 도착. 2시간 30분 소요.

 

마드리드로 오는 길에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중간에 워낙 명망 높은 관광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에서 1박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로 직행하는 것이 여러 모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AVE를 이용해 오전에 이동하면 오후 시간을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

 

 

이쯤 되면 현대 광고만 봐도 좀 반갑다.

 

 

역에 내리자 가는 빗발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택시 잡는 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보도로 뛰어내려 택시를 잡는다.

 

그러고 보면 역에 내려서도 별 말 없이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고 지나간다.

 

이 고향에 온 듯한 친숙함은 뭐지? ^^

 

 

 

멀지 않은 그란 비아 Gran Via 거리의 아틀란티코 마드리드 Atlantico Madrid 호텔로 이동.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이 있는 화려한 대형 호텔은 아니지만 유서깊은 대도시를 여행하는 데 매우 적절한 호텔이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통이 편했다. 1호선의 Gran Via 역과 5호선의 Callo 역이 지척이었고, 솔 광장은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방이 좀 좁기는 했지만 깨끗하고 쾌적. 유럽 호텔들이 다 그렇듯 방이 좀 작은 것 빼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당시 마드리드 지역 1위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호텔이었다. 추천.

 

http://www.tripadvisor.co.kr/Hotel_Review-g187514-d227459-Reviews-Hotel_Atlantico-Madrid.html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을 위해 '마드리드의 국물'을 먹으러 갔다.

 

마드리드의 국물, 라 볼라의 코시도 http://fivecard.joins.com/1177   참조.

 

 

그리고 나서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바로 프라도 미술관.

 

3대 뭐니 4대 뭐니 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흔히 우피치, 에르타미주, 프라도를 유럽 3대 미술관이라고 한다는데, 이 순위의 묘한 점은 파리의 미술관이 모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루브르나 오르세가 위의 세 미술관에 비해 모자란 점이 있단 말인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뮌헨의 알타 피나코텍은?

 

아무튼 3대니 4대니 이런 숫자에는 신경쓰지 말자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프라도 미술관이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거기에 규모와 컬렉션에서 딸리지 않는 미술관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의외로 한산한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이 빽빽하다. 

 

마드리드를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게 비해 볼 게 없다고들 한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된 게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스페인 여행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게 되는 대성당이나 찬란한 아랍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톱스타 프라도가 있고, 레이나 소피아와 티에센 보르네제 미술관이 있다. 특히나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고야, 무리요 같은 로컬 스타들과 루벤스, 엘 그레코, 보쉬 같은 용병들을 대거 끌어모은 진정한 미술관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2층 중앙의 긴 복도. 벽에는 주로 루벤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4시간 정도를 보냈다. 미술관이 8시 넘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술관 곳곳에는 모사를 하고 있는 캔버스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인 듯...?

 

 

물론 미술관에 가기 전에 두 권의 책,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 고 전에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고 '아, 여자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작품을 즐기기 어렵다.

 

 

 

달리 미술관에서도 언급했던 파리스와 세 여신의 대면. 날개 달린 모자와 샌들을 신은 헤르메스가 파리스 옆에 있고 세 여신은 각각의 상징을 품고 있다. 각각 투구와 방패를 밑에 둔 아테네, 에로스가 매달려 있는 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헤라다.

 

...뭐 이런 그림이 수백점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끈 그림 한 점.

 

 

 

멜렌데스라는 화가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엘 그레코의 유명한 그림 제목과 같다.

 

내용은 같다. 오르가스라는 백작이 선행을 많이 하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덕분에 그의 매장 현장에 이미 죽은 성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엘 그레코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이 사람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사람들의 놀라움이 '오오, 성인이 나타나다니, 역시 백작님은 위대한 분이셨어!' 라는 식의 것이라기 보다는 '으악! 유령이 나타났다!' 인 것 같아 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비슷한 그림이라 놀랐다는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가 무슨 미술에 조예 깨나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냥 호기심일 뿐.

 

이 미술관에서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벨라스케스의 '여관들(시녀들)'. '사진 찍지 말라'를 모토로 하고 있는 미술관이지만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굉장히 사진 찍기 좋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닥 통제하려는 시도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는 포즈를 취한 사람에게 그냥 씩 웃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관들'이 있는 방만큼은 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통제를 하더라는. 그래서 문 밖에서 살짝 분위기 사진만 찍었다.

 

 

 

역시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승리(술꾼들)'이 있는 곳. 소심하게 멀리서...

 

직접 가까이서 그림을 보면 볼수록 벨라스케스는 천재라는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로 천재냐 하면...

 

약 400년 뒤에 태어날 미래의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왼쪽은 프라도에 있는 '세바스찬 모라의 초상'이라는 난쟁이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왕좌의 게임'을 보시는 분이라면 너무도 잘 아실 배우 피터 딘클리지.

 

그림을 보고 허걱,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가 저렇게 비교 사진까지 만들어 올려 놨다.

 

 

 

너무나도 광활하고 볼게 많은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서 일찍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자면, 이 미술관에서 뭐니 뭐니 해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관 만큼은 놓쳐선 안된다고 하고 싶다.

 

고야는 일찍부터 화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화가로 인정받은 초기 작품들은 사실 소박하다고 할 정도로 나이브한 느낌이 강하다. 농촌 정경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네 잔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그가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한 만년에는 그림 자체가 바뀐다. 위에 가져다 놓은 '크로노스'도 대표적인 이 시기의 작품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를 해치는 자식이 나온다는 예언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이런 어두운 심성을 표현한 시기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인간의 악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고야의 필치가 가슴을 뻥 뚫는 느낌을 준다. 전관, 수백점의 그림을 보더라도 고야의 블랙 페인팅 컬렉션 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없었다.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팁: 프라도에서 벨라스케스 관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전시실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한적한 공간도 있다.

 

 

미술관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관 카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슬슬 이런 카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꽤 오후에 미술관을 찾아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왔더니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와 보니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행렬. 아.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시위 때문에 도로 교통이 마비되어 어찌 어찌 하다가 호텔로 귀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다.

 

 

 

 

 

 

호텔 야경과 함께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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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띄엄띄엄 올린 데 대한 사죄의 말씀. 어쨌든 1년 내에는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세비야 여행 중 스페인 광장은 좀 계륵같은 존재다. '김태희가 CF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실 역사적인 유적도 아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성 공간이다. 다만 사진이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어머나 너 정말 유럽 갔다 왔구나'라는 평을 확실히 들을 수 있다.

 

그런 고민 끝에 아무튼 한번은 들러 보기로 했다. 카테드랄 앞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가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은 트램을 타는 것. 택시를 타려 해도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 나가야 한다(카테드랄 주변은 도보 전용 구역이다).

 

걷는다 해도 30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긴 하지만, 체력 보호를 위해 트램을 타기로 한다. 처음 세비아에 도착할 때 버스에서 내린 곳,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앞에서 내리면 된다.

 

 

 

깔끔한 내부.

 

정류장에서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표를 사게 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나면 검표를 위한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우 대개 '어쩌다 한번 검표 작업을 하는데 걸리면 50배 변상' 뭐 이런 규정이 있는 게 보통이다.

 

 

갈 때는 착하게 표를 샀는데 오는 길에는 자판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의지의 문제인지도...)

 

뭐 1.5유로 짜리 표를 아끼려고 한 건 아닌데.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바로 앞에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이 있다. 느낌상 이 공원이 터미널보다 먼저 생긴 듯.

 

공원은 해만 지면 바로 우범지역으로 변신할 것 같은 을씨년스런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아 저렇게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펼치는 청소년! 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트램을 하차해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을 가로지르면 바로 스페인광장의 문에 해당한다.

 

아니 광장이라더니 웬 문, 하시는 분들은 일단 문을 통과해 보시면 안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거라 감흥은 없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 으리으리...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정경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런 반원형의 긴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양쪽에 이렇게 큰 탑이 스페인 광장의 상징 역할을 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면 꽤 그럴싸 하다.

 

 

 

다리와 운하도 그럴 듯. 운하에서 노 저어 주는 사공도 있다.

 

 

장난을 쳐 보면 이런 느낌.

 

 

그리고 맨 아래층엔 빙 둘러서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한 칸씩 타일로 꾸몄다.

 

대개 자신이 다녀온 도시들 사진을 하나씩 찍어 오곤 한다.

 

관광객의 전통을 따랐다.

 

 

 

관광객의 자세에 충실하게.

 

 

 

왠지 카메라에 있는 장난 기능을 마구 써보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수시로 광장을 드나든다.

 

 

자동차는 매연을 남기고, 마차는 말의 **를 남긴다.

 

마른 **가 부서져 있다. 아기가 만지려 다가가자 엄마가 질색을 한다.

 

 

 

아무튼 사진 찍고 잠시 돌아보기엔 그럴 듯 한 곳이다.

 

해지고 저녁식사 후, 예정대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카테드랄에서 남쪽으로 죽 걸어가면 강가에 투우장이 나온다.

 

 

투우장 정문. 웬만한 축구장 규모다.

 

투우장 바로 옆에 유명하다는 플라멩코 공연장 El Patio Sevillano 가 있다.

 

 

 

 

 

뭔가 샤갈 풍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매일 밤 19시와 21시30분에 90분씩 공연을 한다. 

 

늦은 시간에 더 좋은 출연진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뒷시간으로 예약. 민박집을 통해서 예약하면 성인 요금 38유로를 35유로로 할인받을 수 있다. 음료 한 잔이 제공되고, 3 course dinner를 함께 할 수 있는 상품도 있는데 그닥 밥을 먹으면서 보고 싶은 공연은 아니다.

 

여기는 음료 손님이 앞쪽에 앉고 식사 손님이 뒤쪽에 앉는데, 경우에 따라선 식사 손님이 앞줄인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플라멩코 공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힘차게 발을 구를 때마다 무대의 마루바닥에서 적잖게 먼지가 일어난다.

 

식사를 즐기며 공연을 보실 분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실 문제.^

 

 

공연장 앞길. 붐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관광객들이 꽤 들어차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 성수기 때에는 2층 양 옆의 테라스 같은 좌석까지 빽빽하게 찬다고 한다.

 

공연 시작. 특별히 줄거리가 있는 공연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에 따라 1인무, 2인무, 4인무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첫번째 나온 출연자가 계속 박자를 틀리고,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4인무부터 뭔가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오른쪽의 분홍색 치마 입은 분이 첫번째 독무자로 나와 기대를 꺾은 분.

 

동행인은 내 귀에 대고 "저 사람은 취미교실에서 온 것 같지 않아?" 라는 독설을.

 

반면 맨 왼쪽, 배우 션 빈을 살짝 닮은 양반은 테크닉도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의 공연을 보여줬다.

 

 

이 공연장의 2인자로 보이는 이분. 한국의 지인을 닮아 깜짝 놀랐다.

 

 

 

 

 

 

남자 솔로를 지나, 이 공연장의 간판으로 보이는 분이 나섰다.

 

 

 

 

최소 40년 경력은 되어 보이는 이분. 확실히 포스가 달랐다.

 

파워보다는 관록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탁월했다. 진정 박수.

 

 

 

1인무, 2인무, 4인무 식으로 펼쳐지다가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테마를 이용한 간략 무용극이 공연되고, 이어 전체 무용수들이 등장해 각자의 개인기를 펼쳐 보이는 마무리를 통해 공연이 끝났다.

 

 

역시 '스승님'의 포스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스승님'의 관록과 노련미가 끌고 가는 공연이라는 느낌. 하지만 몇몇 공연자들은 정말 머릿수를 채우러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 사이에 기량 차가 적지 않았다.

 

아울러 전체 공연의 느낌이 흔히 플라멩코에 기대하는 어둡고 비장한 느낌을 완전히 배제한, 밝고 명랑한 공연이란 점이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우연히 그라나다에서 동굴 플라멩코를 보고 오신 분을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이 분이 그라나다에서 설명 듣기로는 "그라나다 플라멩코는 집시 문화의 영향으로 페이소스가 짙은 춤을 보여주지만, 세비야는 본래 술집에서의 여흥을 위한 댄스가 발달해 발랄하고 화려한 공연을 우선으로 한다"고 하더란다.

 

혹자는 세비아에서 가장 좋은 공연을 하는 El Arenal 이 아니어서 실망했을 거라고도 한다. 물론 평을 보면 El Patio Sevillano의 공연이 좋았다는 분도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을 듯 하다.

 

아마도 바르셀로나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이 워낙 훌륭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카탈루냐 음악당,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http://fivecard.joins.com/1197

 

 

 

 

공연을 보고 세비야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시가의 골목들이 아름답다.

 

해가 뜨면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아쉬울 뿐.

 

 

 

 

그래도 아직 마드리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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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다가왔습니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휴가를 일찍 가게 된 해는 다녀오고 나면 남들 가는 휴가가 그렇게 부럽더군요.^^

 

게다가 달력에 7자만 박혀도 어찌나 항공권이며 호텔 요금이 폭등을 하는지. 대부분의 국제선 항공요금은 8월15일을 경계로 정상가로 돌아옵니다(뭐 안 그런 회사도 많이 있죠). 국내 피서지도 8월하순이면 조금씩 한적해지기 시작합니다. 적절하게 늦은 휴가를 가시는 것도 생활의 지혜.

 

물론 '아이들 학원 방학할 때' 무조건 휴가를 가셔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들이야 누가 거들 수가 없지만. 그런데 모든 생활이 '아이들 학원'에 맞춰지는 삶은 좀 우울하시지 않을까요. 그런 분들에게도 문화생활이 필요합니다.

 

7월편. 아주 유명한 퓰리처상 수상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1997년 로스토프에서 춤추는 옐친의 모습입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7월의 문화가이드 (2014)

 

덥지? 산과 바다로, 혹은 공항으로 떠날 마음이 부푸는 달이야. 물론 그런 달이라고 해서 문화생활을 거르면 곤란해. 그리고 작년에도 했던 얘기지만, 도시의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문화공간이야.

 

일단 이달의 추천 공연은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발. 시작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를 줄여 여우락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한국 전통 음악의 현대화라는 그릇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무대가 됐어.

 

 

 

10개의 공연 가운데 추천 1번은 뭐니뭐니해도 양방언과 그 주변의 ‘Various Artists’ 들이 펼치는 여우락 판타지’. 7 4일과 5,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에서 열려. 그 다음은 25일과 26일에 열리는 여우락 올스타즈’. 양방언을 비롯해 정재일, 강태환, 최희선, 사이토 테츠 등 이번 페스티발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한 무대에 서는 공연이야.

 

이런 공연들이 모두 3만원 균일. 10개 공연 중 5개를 9만원에 볼 수 있는 패키지도 있어. 다들 관심을 가져 볼 만 할거야. 아무튼 잘 골라서 두 공연에 6만원 정도는 투자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

 

아니면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7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재즈 피아니스트 피터 베이츠의 ‘Opera Meets the Jazz’ 공연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베이츠(Beets 라고 쓰고 베이츠라고 읽어.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그래)가 이번엔 클래식 리메이크를 주제로 펼치는 공연이야. 다 좋은데 좌석이 11만원부터라 좀 비싸. 물론 33천원짜리 B석도 있어.

 

7월은 12월과 함께 전시가 풍성해지는 계절이지. 방학을 끼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일단 에드바르드 뭉크 전과 퓰리처상 사진전에 눈길이 가.

 

 

 

현대미술 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을 꼼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를 꼽을 거야. 절규를 포함한 에드바르드 뭉크 전이 73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뭉크미술관과의 협력으로 이뤄진 전시라니까 기대할 만 할 것 같아. 1012일까지. 15000.

 

방학맞이 전시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도 빠뜨릴 수 없지. 이미 지난 1998년과 2010년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던 전시지만 이번엔 작품 수가 145점에서 234점으로 늘었어. 전시 속의 전시라고 할 수 있는 맥스 데스포 특별전, ‘6.25-잊혀진 전쟁도 관심이 가네. 12000. 914일 까지.

 

 

 

이달의 책은 이노우에 아레노의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처음엔 60세 전후의 여성 세명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아니 그런 얘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펼치면 분명히 달라질 거야.

 

이제 60세 전후의 여성을 만나할머니라고 부르면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르는 시대야. 아들 딸이 시집 장가를 가서 손주를 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예전의할머니들이 갖고 있던 위치에 올려 놓을 사람은 거의 없지.

 

이 책에 나오는 세누나들도 마찬가지. 이혼녀인 코코, 남편과 사별한 이쿠코, 평생 짝사랑만 해 본 마쓰코는 아직도 마음 속에는 소녀가 살고 있어. 그리고 이들과 이런 저런 사연으로 연결되는 꽃미남 총각도 나와. ‘꽃보다 누나의 생활 버전이라고나 할까. 인터넷 서점에선 1만원 내외에 살 수 있어.

 

 

한 권 더 추천하자면 그레임 심시언의 로지 프로젝트가 있어. 남자주인공 틸먼은 일단 얼굴도 잘 생기고, 직업도 교수인 A급 조건의 독신남. 그런데 문제가 있어. 아스퍼거 증후군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질 못해. 슈퍼 이성을 갖고 있어 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문제는 늘 지나치게 이성적으로만판단한다는 거지.

 

그의 인생에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여자 로지가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야. 물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도 틸먼의 기준이고, 여기에도 반전이 있지만 아무튼 일단 모르고 읽는게 더 재미있을 거야. 미드 빅뱅 이론이나 일본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강추 2만배. 가격은 역시 인터넷으로 11000원 정도.

 

약간 과용했나? 에어컨 바람 조심하고, 8월은 락페 스케줄도 체크해 봐. 그럼 안녕.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발 (74~) 공연당 전석 3만원

예술의전당 피터 베이츠, ‘Opera Meets the Jazz’  B 33000

에드바르드 뭉크 전(73~)                   15000

퓰리처상 사진전(624~)                     12000

이노우에 아레노,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1만원

그레임 심시언, ‘로지 프로젝트                     11000

 

합계 111000

 

 

이번 달엔 굳이 더 토를 달 부분이 없어 보입니다. 즐거운 7월 보내시고, 8월에.

 

이제는 다들 익숙하실 양방언의 Frontier로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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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전지현 생수 광고 해지 논란]

 

난데없이 한류스타 김수현과 전지현이 생수 광고 때문에 뜻하지 않은 화제의 중심이 됐더군요.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인기 상종가를 달리던 이들이 중국 생수 광고에 출연한게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게 큰 파문이 되면서 두 스타는 수십억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광고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용을 읽어 보니 쓴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헝다 생수 업체의 원산지 표기가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고,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북공정의 무시무시한 함의가 들어 있는 호칭이라는 주장이군요.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사전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장백산

 

[명사] 장빠이산(長白山). 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


2014년 6월. 김수현과 전지현이 한 편의 광고 때문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최근 중국의 헝다(恒大)그룹 계열 생수 업체의 모델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데 일각에서 두 한류스타가 이 광고에 출연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을 제기했다. 이 생수 제품의 취수원이 백두산인데, 백두산 대신 ‘장백산’이란 이름이 표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를 들어 보면 이렇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장백산을 ‘중국 10대 명산’에 포함시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이름을 장백산으로 못박아 놓고 ‘자기네만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니 생수 산지를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표기하는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행위라는 주장이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일파만파로 번져갔고, 부담을 느낀 전지현과 김수현이 해당 생수 업체에 광고 모델 계약 철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실관계를 따져 보면 참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백두산, 혹은 장백산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천지라는 거대한 화산호가 있고 최고봉은 장군봉 혹은 병사봉이라고 불리며, 높이는 해발 2744m다. 많은 사학자들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개국한 태백산 신시가 바로 백두산 기슭이라고 보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불함문화론’을 저술하기도 했다. 불함산도 백두산을 가리키는 별칭 중 하나다.

 

 


뭐니뭐니해도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가사를 보든, 북한에서 사실상 국가와 맞먹는 무게를 가진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장백산 줄기줄기'로 시작된다는 점을 보든  이 산이 한국인의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민족만이 이 산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청을 건국한 누루하치는 자신들 만주족의 시조는 백두산 천지에 내려와 목욕하던 천녀가 신령한 열매를 먹고 낳은 아이라고 선언했다. 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조상 아이신고로(愛新覺羅) 씨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포함해 만주 지역을 영유했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섬기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다산 정약용도 지인 신광하에게 준 글에서 ‘백두산은 산해경에 불함산, 각종 지리지에는 장백산으로 소개된다’며 ‘청 황제가 전통적인 명산을 말하는 오악(五嶽)에 백두산을 더해 육악으로 삼고, 때를 맞춰 제사를 지내니 존귀함과 중대함이 옛날에 비할 비가 아니다’라고 했다. 백두산, 아니 장백산이 중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산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국경 지역의 산이나 강이 국가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른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이루는 알프스 산백의 남쪽 연봉들을 가리켜 오스트리아에서는 쥐트티롤(Südtirol), 즉 남 티롤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돌로미티(Dolomiti)라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쪽 끝 경계를 이루는 강은 중국에서는 헤이룽강(黑龍江), 러시아에서는 아무르(Amur)강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이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동북공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거의 천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에 의해 흔히 사용됐다. 위에서 거론한 다산 정약용 뿐만이 아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은 ‘곡주공관신루기(谷州公館新樓記)’에서 "우리 나라의 영토는 삼면이 큰 바다에 닿았고, 북쪽으로는 장백산에 이른다(我國壤地。三面大海。北連長白山)"고 썼다.

 

 

 


1458년 신숙주가 집필한 ‘국조보감’의 세조 초 기록에도 “삼각산을 중악, 금강산을 동악, 구월산을 서악으로, 지리산을 남악으로, 장백산을 북악으로 삼자고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같은 산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백두산이 95회, 장백산이 40회 나온다.

 

1712년, 청태종은 사신 목극등 등을 보내 백두산을 기준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을 구분하는 정계비를 세우게 했다. 여기에는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 즉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송화강의 상류)을 국경으로 삼는다고 명기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두만강 이북의 광활한 간도 지역을 조선 땅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청은 이 토문강은 발음이 비슷한 두만강이라고 우기며 간도 탈취의 야욕을 불태웠고 1909년 일본은 만주 철도 이권을 차지하는 대가로 간도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해버린다. 이 간도협약이 체결되고 일제시대를 맞으면서 두만강 이북의 우리 강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62년 북한과 중국 정부가 맺은 변계조약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 선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힘에 의해 실제 영토가 왔다 갔다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한낱 생수병의 원산지 명칭이 그 나라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법석을 떨어 봐야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그 생수 광고에 출연한 한국 연예인을 놓고 역사 의식이 없다며 훈계하는게 가당한 일일까. 심지어 그 명칭은 수천년 동안 한-중 양국이 공유했던 이름인데 말이다.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끝]

 

 

 

 

 

 

 

 

그러니까 이 생수 광고 출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마치 '장백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중국이 '한국인의 영산'인 백두산을 빼앗기 위해 날조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두산-장백산의 관계가 독도-다케시마의 관계인 것처럼 본다는 얘기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백두산은 영토 분쟁지역도 아니고, 중국과 한국(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산입니다.

 

윗글을 읽고 나서, 동북공정의 장착 유무를 떠나, 대체 정상적인 중국 생수 제조 업체라면 그 생수의 원산지 이름을 어디로 표기해야 할 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나라에서 쓰는 이름인지, 아니면 남의 나라에서 쓰는 이름이어야 할지.

 

현재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절반 정도는 중국 땅, 나머지 절반이 북한 땅으로(정확하게는 천지의 54.5%는 북한 것이고, 나머지 45.5%가 중국 땅이라고 합니다)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백두산 정계비를 우리 쪽 주장대로 해석해도 백두산의 30%는 중국 땅이었던 셈입니다만, 어쨌든 현재 백두산의 일부가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남한에 사는 한국인들도 백두산을 관광하러 갈 수 있습니다. 말하지면 그 분들도 백두산을 오른 것은 아니죠. 장백산을 오른 겁니다.

 

 

 

 

어쨌거나 생수 이름이 장백산인 것도 아니고, 그저 취수원이 장백산이라고 표기된 생수의 광고에만 출연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걸 근거로 전지현이나 김수현이 생수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 무슨 역사의식이 결여된 행동이라거나, 매국적인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얘기죠.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지금 막 일고 있는 중국 내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마도 '1박2일'의 '백두산을 가다' 편이 준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도 곳곳에 '장백산'이 붙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바보같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주장하실 셈인가요.

 

 

 

 

 

 

 

 

 

 

자, 이제 다들 냉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길어서 이해 못하는 분이 있을까봐 정리해 드립니다.

 

1. 백두산은 옛날부터 한-중 양국에서 장백산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그냥 장백산이라고 불러도 된다.

 

2. 만주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숭상했다. 한국인에게만 백두산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3. 동북공정이 문제 없다는 것은 아니나, 생수의 원산지 표기 때문에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4. 그러니 김수현 전지현 욕하지 말고, 이 기회에 제발 역사에 관심 좀 가져라.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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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감 자체와 왔다갔다 하는 상황.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일(약간의 노가다성)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군요.

 

아무튼 너무 허물치 마시길...

 

올립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6월의 문화가이드

 

 

세월호의 충격으로 아직 온 나라가 어두워. 공연예술계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그 여파로 꽁꽁 얼어붙은 듯 해. 거액의 달러 빚을 내서 폴 매카트니 옹의 내한공연을 예매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취소로 허탈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런 분위기에서 힐링을 위한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5일 있었던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이었지만 이건 몇 달 전부터 매진 사례(이번 달 이 칼럼이 지각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해).

 

그래도 6월의 볼거리로 우선 추천하고 싶은 건 트럼페터 앨리슨 발솜의 내한 공연이야. 클래식계의 속성상 미녀 연주자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각 음반사에서도 스타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또 그렇게 키워진 스타들은외모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아무튼 발솜은 2013년 그라모폰 어워드 수상자야.

 

61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공연. 개인적으로 트럼펫 만큼 대중친화력을 가진 악기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를 보면 정말 그런 느낌이 들 거야.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3악장이 왕년장학퀴즈의 테마로 유명하지), 코플랜드의시민을 위한 팡파레(제목은 낯설지 모르지만 들어 보면 무조건 아는 곡이야)’ 등이 연주돼. 물론 피아졸라의리베르탕고를 어떻게 트럼펫으로 소화할지 궁금하기도 하지. 5만원 짜리 B석 추천.

 

 

 

 

 

또 하나. 6월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 줄 공연으로 7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고란 브레고비치의집시를 위한 샴페인을 추천하고 싶어. ‘집시 음악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건 뭔가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담았으면서도 미친 듯이 흥겹고,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는그런 강렬한 느낌이지(나만 그런가?).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집시 음악은 사라사테의지고이네르바이젠을 비롯해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이 수용한 집시 음악인데, 지휘자 이반 피셔나 렌드바이 부자 같은 헝가리 출신 음악인들이 그 정서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 왔어. 그런데 브레고비치는 같은 동유럽이긴 하지만 세르비아 출신이야.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틀에 수용되지 않은진짜 집시 음악의 계승자로 평가받는 인물이야. 궁금한 사람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과 브레고비치가 같이 작업한 영화 ‘집시의 시간이나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찾아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티켓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아. 8만원에서 4만원 사이. 우리는 당연히 4만원 짜리 A석을 선택해야겠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맨 앞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밴드와 눈을 맞추며 흥겹게 춤춰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예산을 많이 소진했네. 이달의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최민우 저, ‘뮤지컬 사회학이야. 제목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그만치 정공법으로 쓰여진 책이야. “뮤지컬, 아니, ‘한국 뮤지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봐라는 자부심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한국 뮤지컬 시장은 알면 알수록 희한한 시장이야. 뮤지컬 관객 수는 매년 폭증한다고 하는데 그럼 한국을 대표하는 국산 뮤지컬은 뭘까. 2009오페라의 유령 30만을 넘는 관객수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한 작품을 300번씩 보는 마니아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라고 본다면 대체 한국의 뮤지컬 시장규모는 얼마로 봐야 할까. 대체 왜 뮤지컬 한 편의 남자 주인공으로 네 배우가 돌아가며 출연할까.

 

이런 희한한 시장이 만들어진 원인과, 그 시장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단언컨대 이렇게 속 시원한 답을 주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을거야. 특히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팬덤 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주로 조승우 vs 김준수)도 압권. 이 칼럼을 읽을 정도의 대한민국 문화인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어. 인터넷 가격 1 2천원 정도.

 

뭔가 이번 달엔 평소 기준으로 약간 비싼 볼거리들을 추천해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무료 전시 추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월부터아시아 미술 신소장품전을 하고 있는데 622일이면 끝나. 그 전에 다들 챙겨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한국 유물만 전시하는 건 아니야. 아시아 각국의 보물들을 사들여 소장하기도 하는데, 그중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선보이는 기회야.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기본 관람료가 무료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이번 기회에 한번씩 들러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참고로 유료 전시인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12000)도 같이 하고 있어(이건 편법 추천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이번 달은 월드컵의 달이네. 지구 정 반대편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 거리 응원은 커녕 중계방송 시청도 좀 곤란할 것 같아. 너무 밤 새고 무리하지 말고, 7월에 만나.

 

67, 고란 브레고비치 - 집시를 위한 샴페인   A 4만원

611, 트럼페터 앨리슨 발솜 공연             B 5만원

최민우, 뮤지컬 사회학                            12천원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미술 신소장품전           무료

 

 

집시 음악이라면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집시의 바이올린이란 어떤 걸까. http://fivecard.joins.com/139

 

세월은 빨라서 벌써 이게 6년 전. 그런데 놀랍게도 저 글에서 언급한, 그날 들은 그 연주를 유튜브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반 피셔가 지휘하는 BFO, 협연은 렌드바이 부자.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 바이젠. 2008년 8월23일 에딘버러 어셔 홀입니다.

 

 

 

 

 

저 박수갈채 속에 제 박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못 감동적이군요.^

 

물론 대중음악으로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집시 킹스 형님들을 빼놓고 얘기하면 서운하겠죠.

 

 

 

 

집시 킹스에 명성으로 밀린다면 서운할 고란 브레고비치.

 

저 'Volare'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유명한 멜로디, 'Bella Ciao'.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추억의 테마인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으로 마무리.

 

 

 

의외로 트럼펫 계에 미녀 연주자들이 많군요. 이건 멜리사 베네마의 연주입니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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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이라는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김수현 김정수 정성주에서 김은숙 홍자매에 이르기까지, 여성 일색인 한국 드라마의 스타 작가 그룹에서 정말 몇 안되는 남성 작가로서(물론 정하연 최완규 작가가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필명을 날리고 있는 대형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드라마를 좋아하시던 분들이라면 대개 40대 이상일겁니다. 도지원과 양동근(!)의 실질적 데뷔작인 '서울뚝배기(1990)'를 비롯해서 최민식 한석규 채시라 트리오가 빛났던 1994년의 '서울의 달', '차력 연기자' 이상인을 하루아침에 국민 스타로 만들어 버린 '파랑새는 있다'(1997) 까지가 이 분의 황금기였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오늘날까지도 효과 있는 백윤식의 도사형 캐릭터도 바로 이 '파랑새는 있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이 분이 그 이후라고 그냥 쉬신 건 결코 아닙니다. 3년 전에도 천정명 이상윤 주연의 퓨전 사극 '짝패'로 건재를 과시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벌집 같은 쪽방이 나오고,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늘진 사람들이 나와야 진정한 '김운경 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칠맛 나는 대사들을 톡톡 터뜨려 주는 재능 있는 연기자들도 그리웠습니다. '김운경 드라마'는 역시 꽃미남 꽃미녀는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쏙쏙 뽑아먹는 신 스틸러들이 함께 할 때 제 맛이 나죠.

 

그런데 그런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유나의 거리'는 눈에 뻔히 보이듯, 유나라는 여자 주인공(김옥빈)의 이야기입니다.

 

 

 

 

 

유나의 직업은 소매치기. 그것도 업계에서 에이스로 통하는 소매치기죠. 아버지(임현식)의 뒤를 이은 2대 소매치기인 셈인데, 징역도 산 적이 있지만 어쨌든 소매치기 본능을 끊을 수 없는 천부적인 소매치기입니다. (뒤에 대사에도 나옵니다. "소매치기 중에 끊을 수 있는 소매치기도 있고 못 끊는 소매치기도 있는데, 걔는 절대 못 끊어")

 

 

 

 

그리고 유나의 반대편에는 이 세상에 절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착한 남자'가 있습니다. 착한 남자라고 해서 연약하고, 감성 충만하고, 늘 세상에 불쌍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질질 짜고 하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가진 것 없지만 절대 비관하지 않고,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알고 보면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훌륭한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 창만(이희준)의 눈에 비친, 예쁘고 발랄한 유나는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존재입니다.

 

 

 

유나와 창만이 세들어 사는 다가구주택(뭐 흔히 벌집이라고 불리는 집들입니다)과 콜라텍을 운영하고 있는 한사장 역의 이문식. 왕년 '공공의 적'에 나오는 산수 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이문식이 오랜만에 건달 출신의 사업가(...)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사장 부인 홍여사 역은 김희정.

 

 

 

 

왕년의 장도끼 장노인 역에는 정종준. "마사까리. 난 도끼 들고 다닌 적이 없어. 그런데도 왜놈들이 나보고 마사까리라고 불렀어. 왜? 내가 도끼 눈이라는거야. 싸움은 눈으로 하는 거야." 젊어서 명동 이화룡의 오른팔이었다는 장노인은 지금은 늙고 다리 한쪽이 불편한 채로 한사장에게 얹혀 사는 처지입니다. 집도 절도 식구도 없는 신세.

 

물론 한사장이 장노인을 모시고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노인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 냅니다. 그 비밀이 6회 이내에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노인 역할에 좀 더 체구는 작고 눈매가 매서운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했습니다만, 김운경 작가는 정종준이라는 배우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더군요. 물론 그 연기력에 의심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왕년의 부패 형사 봉반장. 한사장과는 범인과 형사로 쫓고 쫓기던 악연이 있고, 지금은 왕년의 유명 소매치기(유나의 선배)와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형사 어네스트 보그나인 커플을 연상케 하는 조합이죠.

 

아무튼 형사 시절 범죄자들을 뜯어먹어 '봉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찌질한 품성. 그 때문에 아내와 유나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합니다.

 

 

 

 

 

한사장의 처남. 일명 개삼촌(조희봉). 사람보다 개를 좋아하며, 옥상에서 개 키우는 게 주 업무입니다. 하지만 건달인 매형을 믿고 설치다 주로 맞고 멍 빼는게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뒤로 가면 기가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보다 개랑 더 친해서 개랑만 논다고? 사실은 개들도 쟤 싫어해. 맨날 물리고 그래."

 

 

 

사실 저 위에 있는 기라성같은 신 스틸러들과 비교할 짬밥은 아니지만, 극중 역할의 비중 때문에 포스터 멤버에 들었습니다. 남수 역의 강신효. 유나보다 한참 떨어지는 실력과 경력의 소매치기라서 어떻게든 유나를 자기 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도 인생의 목표가 확고해 '소매치기는 마흔살까지만' 이라는 신념으로 일하는 소신파.

 

얼마 전 이준 주연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보다가 이준의 친구(매니저) 역인 강신효를 처음 봤습니다. 연기는 아직 맘먹은 대로 안 되는 듯 하지만, 남자다운 눈빛. 머잖아 제몫을 할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일곱 장의 포스터 멤버(개인샷으로 포스터가 있는 출연진) 외에도 출연진은 꽉 찬 라인업입니다.

 

 

 

유나의 룸메이트 미선(서유정)과 그 불륜 상대인 정사장(윤다훈). 사전 공개 영상에서 잠깐 보여 준 서유정의 막강 불륨은 왕년 맘보걸의 명성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몸매.

 

 

 

또 이분을 빼놓을 수 없겠죠. 유나의 아버지이며 전설적인 소매치기 역의 임현식.

 

 

 

마지막으로 한사장 딸 다영 역을 맡은, 은근히 팬이 많은 신소율까지. 이렇게 '유나의 거리' 라인업이 펼쳐집니다.

 

 

 

물론 드라마의 스타일이 다르고, 주 소구층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 주 끝난 '밀회'에 비해 손색 없는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특히나 한번 두번 씹어도 단물이 흐르는 듯한 대사의 맛은 당대 최고 수준이죠. 그리고 그런 대사들을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살려내는 신 스틸러들이 즐비한 라인업. 특히 툭툭 던지는 듯한 이희준의 말투를 처음 들었을 때, 이 대사가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회의 숨은 얘기 하나. 본래 대본에는 창만이 유나에게 "다들 날 보고 장동건 닮았다고 그래요"라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이희준이 '이병헌'으로 굳이 바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들 '이병헌 닮았다'고들 했다는군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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