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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에는 드라마 성격상 수많은 피아노 곡들이 등장합니다.

 

클래식의 세계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곡도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들어 좋은 곡이 있고, 전날 밤에 그렇게 좋았던 곡이 다음날 눈 뜨고 들으면 대체 내가 왜 이런 곡을 좋다고 했는지 이상할 때도 있죠.

 

아무래도 영상과 결합된 곡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온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쇼생크 탈출'에 나온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2중창'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분들이 '밀회'에 나온 주옥같은 피아노 곡들을 기억하실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선재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템포가 빠르고 높은 수준의 기교가 필요한 곡들이 많이 선곡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들린듯 건반 위를 달리는 번개같은 손'이 확실히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가장 먼저 알려진 곡은 이미 하이라이트 영상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저 곡 제목이 뭐냐"는 말을 들었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여기서 네 손은 four hands 입니다. your hands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두 명의 호흡이 잘 맞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더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 곡은 앞으로도 '밀회'의 주된 테마처럼 자주 쓰일 예정입니다. 선재와 혜원이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많은 것을 예고해 준다고 봐야겠죠.

 

 

 

의외로 남녀가 함께 연주한 버전은 많지 않아서 파울 바두라-스코다와 요르그 데무스 듀오.

 

그 전. '밀회' 1회에서 준형(박혁권)이 '나천재'라는 아이디로 선재(유아인)가 올린 영상을 보는 장면에 나온 곡은 바르톡의 피아노 모음곡(Op.14) 중 3번입니다. 준형이 "미친놈. 피아노로 개그하나"라고 말했던 바로 그 장면에 나오는 곡이죠.

 

 

 

 

2부에선 꽤 여러 곡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혜원(김희애)이 선재에게 "너 왜 평균율 칠때 페달 안 써?"라고 묻는 곡은 유명한 J.S.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아곡집 중 1번 전주곡(BWV 846) 입니다.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도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한다는 곡이죠.

 

이 분야에서 신화적인 존재인 글렌 굴드 버전입니다.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할 때에는 이 굴드의 연주처럼 대개 페달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혜원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선재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인지를 물은 것이죠. 선재는 "왠지 악보에 그렇게 하라고 써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역시 혜원이 선재의 천재성을 파악하는 대목입니다. 선재가 '배우지 않고도' 작곡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 차리는 것이죠.

 

 

그 다음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Appassionata)' 3악장.

 

"열정 3악장 다시 해봐. 아니다. 코다부터."

"저, 틀렸나요?"

"아니. 다시 듣고 싶어서."

 

혜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리 위에서 미친듯이 난간을 건반 삼아 두드리는 선재의 모습. 바로 그 부분입니다.

 

 

 

 

코다(Coda)는 소나타 형식의 종결부를 뜻합니다.

 

요즘 상한가인 랑랑이 연주하는 '열정' 3악장. 선재의 코다 부분은 위 영상에서 7분10초 정도 되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 열정 3악장의 메인 테마가 계속 변주되다가, 한 순간에 새로운 주제가 제시되면서 폭풍처럼 몰아치는(물론 앞부분도 강렬합니다만, 거기서 한번 더 '강렬함'이 추가됩니다)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

 

 

 

물론 '열정'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고뇌에 가득 찬 1악장 부터 순서대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이제는 지휘자로 더 유명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의 손은 아직 녹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제목만 나온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Wanderer Fantasie'. 입시 곡으로 뭘 치겠느냐는 준형과 혜원의 질문에 선재가 선택한 곡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천재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선재가 꿈을 이뤘을 때 가질 수 있을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한 영상.

 

김선욱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협연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입니다.

 

 

제목이 그래서가 아니고, 그야말로 모든 피아노 곡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라고 봐도 좋을 듯한 곡이죠.

 

만석을 이룬 대형 콘서트 홀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황제'를 연주하는 모습은 모든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꿈이기도 할 겁니다. '밀회'에서는 1회 음악제 장면에서 조인서(박종훈) 교수가 직접 지휘를 겸해 연주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런 다양한 곡들의 연주 연기를 위해 연기자들은 악보를 외우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준의 연주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손가락과 연주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의 숙달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드라마나 영화 속 연주 장면 중에서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일단 대략 3부까지 등장하는 중요한 곡들을 훑어봤습니다. 뒤로 갈수록 더 다양한 곡들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밀회'를 즐기는 좋은 방법, 음악과 함께 즐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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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소문이 무성했던 화제의 [밀회] 1회가 방송됐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얘기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대본을 아무리 읽어보고 잘 아는 배우들이 나와도, 편집을 마치고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엔 그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밀회'. 순산이었습니다.

 

 

 

 

'밀회' 첫회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설명에 소요됐습니다. 일단 인물관계도는 이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혜원(김희애)-선재(유아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한복판에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1회를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아직 살짝 감춰놓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금세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혜원을 중심으로 한 성숙(심혜진)과 영우(김혜은)의 관계입니다. 혜원은 예고 동창인 영우와 명목상 친구로 되어 있지만 재벌 회장의 딸이자 자신의 고용주 뻘인 영우의 시녀 역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혜원은 연봉 1억인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자리에 그 시녀 역할까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회장의 후처인 성숙이 있습니다. 교양미넘치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고급 룸살롱의 마담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우로부터 절대 계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속을 차리려는 야심과 계략이 가슴에 가득하고, 총명하고 성실한 혜원을 자기 사람으로 곁에 두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성숙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건 자신을 '한마담'이라고 부르는 영우의 목소리. 그 한마디에 성숙은 애써 지켜 온 교양미의 허울을 벗고 영우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암늑대가 되어 버립니다. (1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화장실 격투 신;;)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혜원의 '뺨 맞는 신'은 바로 이런 갈등이 표출된 결과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 모델을 데리고 오피스텔에서 잠든 영우를 깨우러 간 혜원. 그 혜원이 "하려면 진짜 사랑을 하든가"라고 쓴소리를 하자 영우는 다짜고짜 뺨을 갈기며 쏟아붓습니다. "기집애야, 너는 진짜야? 너 정말 강준형 사랑해서 바람 안 펴? 니 남편 허당인거 누가 몰라?"

 

그리고 드라마는 서한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서한음대의 민학장(김창완)과 혜원의 남편인 교수 준형(박혁권)을 보여줍니다. 이 사회의 맨 꼭대기에서 여러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 향기롭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을, 그리고 이 드라마가 그 군상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때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는 '음악판 하얀 거탑'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얀 거탑'이 한국 의학계의 후진성과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면 '밀회'는 한국 고전음악계의 병폐와 환부를 백일하게 드러낼 겁니다.

 

 

 

제법 긴 1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연히 서한재단 아트센터의 공연 날, 택배 물건을 갖고 현장에 도착한 선재가 무대 뒤에서 커튼 너머로 혜원 일행을 바라보는 지점입니다. 협연을 앞둔 조인서 교수(박종훈)와 민우(신지호)가 피아노를 조율하며 혜원과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재에게는 감히 꿈꿀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 장면을 트친 하나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청년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며 촉촉하고 몽환적이다.

근데 심지어 그게 유아인이란 거지." (@hsjeong)

 

더 이상 적절할 수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린 1회는 사전 공개 영상에서 드러났던 장면, 즉 혜원이 선재를 불러 피아노 실력을 테스트 해 보는 장면 바로 앞에서 끝났습니다.

 

이 예고에 대한 내용은 이쪽: 밀회, 보는 이를 압도하는 20분 http://fivecard.joins.com/1240

 

그러니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 두 주인공이 만난 것이 1회 끝나기 3분 전인 걸 보면 - 사실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잖아 두 사람의 관계에선 불꽃이 튈 겁니다.

 

드라마가 나오기도 전에 설정만으로 이 드라마를 싸구려 불륜 드라마 취급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1회를 보라'는 것 뿐입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수준으로 이 드라마와 견줄 만한 작품은 올해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이게 바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혹시 1회를 보실 기회를 놓친 분들, 여기서 1회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다행인 건, '이제 겨우 1회가 방송됐을 뿐'이란 겁니다.

아직도 15회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만치 더 즐기실 수 있단 얘기죠.

 

P.S. '베토벤 바이러스' 까지만 해도 연주자의 손이 흘러나오는 음악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누가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게 일반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밀회'는 다릅니다. 진짜 피아니스트들인 박종훈, 신지호는 물론이고 김희애와 유아인도 정확하게 건반을 짚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밀회'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작은 예일 뿐입니다.

두고 보시면 더 놀랄 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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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12일. JTBC 드라마 '밀회' 제작발표회가 열렸습니다.

 

김희애-유아인 주연,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 정성주 작가의 재회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된 드라마였습니다만, 사실 어떤 드라마가 나올 지는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습니다. 물론 일찌감치 대본을 읽어 보고 '이건 아마도 올해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대본과 정작 만들어진 드라마는 또 다른 법이거든요.

 

그리고 제작발표회. 본래 JTBC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1회를 모두 보여드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분 가량의 부분만이 먼저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당초 제작진은 '하이라이트'를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만, 만들어진 영상을 보니 하이라이트가 아니더군요. 일반적으로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뽑은, 시청자들이 보기에 극적인 장면들을 편집한 영상을 말하는데, 이날 공개된 영상은 드라마 한 중간의 20분 정도를 통으로 잘라 낸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드라마 앞부분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는 합니다. 일단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선재(유아인)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피아노 천재입니다. 어려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배운 적도, 누가 지도해 준 적도 없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아서' 기적적인 성취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택배 아르바이트.

 

혜원(김희애)은 재벌그룹에서 운영하는 예술재단의 기획실장. 재단 일은 물론이고 회장 사모님인 재단 이사장(심혜진)의 비서에서부터 재단 이사이자 동갑내기인 회장 딸(김혜은)의 뒤치닥거리까지 1인3역을 완벽하게 해 내는 슈퍼 우먼이지만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손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주자의 꿈을 접었지만, 지금도 음악인의 재능을 판별하는 '귀'는 국내 1인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 영상 바로 앞에 있었던 일: 혜원의 재단에서 주관하는 연주회 날. 우연히 그 공연장에 택배 일로 갔던 선재는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의 유혹에 빠져 놓여 있던 악보를 연주해 버립니다. 당연히 예정돼 있던 연주자가 리허설을 하는 걸로 알았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자 경악합니다.

 

CCTV를 통해 택배 옷을 입은 청년이 피아노를 치는 걸 발견한 혜원은 선재를 찾아내 재능을 테스트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보신 영상 내용의 전개가 이어집니다.

 

 

 

 

 

사실 대사도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두 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내용으로 이어지지만 간간이 나오는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캐릭터가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정말 정성주 작가의 내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쌀쌀맞음을 가장한 혜원의 관심과 놀라움, 처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선재의 순수함과 진지함.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대사보다 뜨거운 교감이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대본의 완벽성이 전혀 손상 없이 보는 이에게 이어지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력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 영상을 본 어떤 사람은 '어지간한 베드신보다 에로틱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짧은 연주를 통해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의 대화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고, 혜원은 선재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연주 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보는 이들이 새삼 느끼게 됩니다. 뭐랄까요, 영상과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마술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밀회'는 남편이 있는 40대 커리어 우먼과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스무살 청년의 사랑이란 충격적인 설정 때문에 알려졌지만 드라마의 도입부에선 전혀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재의 발견되지 못한 재능, 혜원의 불행한 결혼생활, 예술계의 권력인 후원자와 음악대학, 예술재단을 둘러싼 상류층의 부덕함과 부조리가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드라마입니다. 처음 선재를 발견한 혜원의 눈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기쁨과 자기 표현에 능하지 못한 소년 선재를 향한 귀여움으로 가득합니다.

 

아무튼 20분 가량의 드라마 발췌본을 보고 난 부작용은 '밀회' 본편이 너무 기다려진다는 겁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하루빨리 3월17일이 오길 바랍니다.

 

 

 

 

P.S.1.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곡은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입니다. 남녀가 같이 연주하는 버전을 찾다가 마르타 아르게리히와 에두아르도 델가도의 버전을 골랐습니다. 이 곡도 이제 유명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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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위 영상을 보시다 보면 특이하게 생긴 스피커가 화면 한켠에 등장합니다. 바로 저 왼쪽 끝 아래 있는 물건.

 

 

저것이 바로 유명한 쿠르베 스피커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http://www.courbea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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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엔 후다닥 올립니다.

 

3월 공연/음악계가 꽤 풍성합니다. 조카들 졸업/입학 선물로 지출이 많으셨던 분들은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실 수도 있겠지만, 월 10만원 정도는 나만을 위한 지출로 남겨 두셔도 좋을 듯 합니다.

 

생각해 보면 꽤 좋은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그 돈 모아 봐야 다른 큰 일 못해요. 2년 모아야 명품 비슷한 백 하나 살 정도... 그러니까 마음을 살찌우는데 팍팍 쓰세요.^^

 

 

 

 

 

 

10만원으로 즐기는 3월의 문화생활가이드

 

 

우선 뮤지컬 마니아들이 흥분할 만한 소식. 지난해 7월 라민 카림루가 소리소문없이 내한공연까지 하고 나가더니 이번엔 알피 보 내한공연 소식이 들어와 있네. 315일 예술의전당.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면 알피 보는 현재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주연 테너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으로 특히 잘 알려졌지. DVD로 발매된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 국내 뮤지컬 마니아들에게도 친숙한 편이야.

 

당연히 그리 싸지는 않아. R석은 13만원. 꽤 비싼 공연인데 노래 들으러 가는 거니까 C 4만원도 갈만 한 공연이라고 봐. 각자 사정에 맞게 좌석 선택하길 바라. 그리고 이 공연을 보러 갈 사람이라면 이미 갖고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25주년 기념 공연 DVD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을 거야.

 

지난 2010 103일 런던 O2아레나에서 열린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은 지금껏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인데, 사실 알피 보가 장발장 역을 맡은 건 이 공연이 처음이야. 그 뒤로 웨스트엔드에서 장발장 역을 맡아 명성을 떨쳤고, 지금은 현역 최고의 장발장이 됐지. 물론 개인적으론 초연 때의 코엄 윌킨슨이 더 마음에 들지만. 9900(1년 전에도 추천한 적이 있으니 이번 달 계산에선 뺄게).

 

 

전시. 38일부터 5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팀펑크 아트전도 눈길이 가네. 스팀펑크(steamfunk)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도 꽤 있을 거야.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 , 이런 거?’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친숙한 물건들이지.

 

SF장르가 염세적인 분위기의 사이버펑크로 진화하던 무렵, ‘혹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문명으로 진화한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등장한 거야. ‘스팀펑크의 스팀은 당연히 증기기관을 말하는 거고, 증기기관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이 현대 문명과 결합됐을 때 이질적이면서도 옛스러운 느낌을 즐기는 거지. 이게 디자인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어.

 

알기 쉽게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같은, 19세기적인 분위기에 최첨단 기술이 결합된 느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이런 분위기에는 유머 감각이 필수라서 꽤 즐거운 구경이 될 거야. 12000.

 

 

321일에서 23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무사시도 관심이 가네. 일본의 셰익스피어 극 전문가인 니나가와 유키오가 연출한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인데, 영화 데스노트의 주인공인 청춘 스타 후지와라 타츠야가 무사시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야. 물론 국내 공연에도 후지와라가 온대. 무사시의 라이벌인 사사키 고지로 역도 드라마 신참자시리즈로 인기 높은 미조바타 준페이라니, 얼굴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베가본드로만 무사시 이야기를 접한 사람은 벙어리인줄 알았던 사사키 고지로가 말을 하는 걸 보고 당황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노우에의 설정일 뿐, 사사키가 벙어리였다는 기록은 없어. 어쨌든 본 적 없는 연극을 추천하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자는 취지에서 일단 추천. 티켓은 7만원에서 3만원까지인데, 주인공들 얼굴 표정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3만원 짜리 추천.

 

지난해 12월 조용히 콜린 윌슨의 부음이 떴어. 아는 사람들은 저 이름을 보는 순간 아웃사이더라는 책이 떠올랐을 거야.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아웃사이더의 원작이냐고? 아니, 그건 수잔 힌턴의 소설이고, 아웃사이더콜린 윌슨의 독특한 시선으로 본 세계 문명사라고 해야 할 그런 책이야.

 

이 책을 접하면 누구나 참 벼라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인간이 있었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케사르, 징기스칸, 바그너, 히틀러 등 인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대의 아웃사이더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거든.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이 책을 썼을 때 콜린 윌슨이 25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이 오지.

 

물론 읽다 보면 스물 다섯 청년만이 할 수 있는,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듯한 치기 어린 오만함을 느끼고 미소를 지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나이에 이만한 성과를 낸 해박함과 기발함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지. 이 책 한권만을 읽고 나도 콜린 윌슨만큼 박식해졌다고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야. 대략 12000.

 

3월은 아무리 봄이라도 쌀쌀해. 다들 감기 조심하고, 4월에 만나.

 

 

315일 알피 보 내한공연          C 4만원

321~23일 연극 무사시           C 3만원

38~518일 스팀펑크 아트전    12000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12000

(선택: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 DVD      9900)

 

합계                              94000(103900)

 

 

 

 

미야모토 무사시 이야기 처럼 잘 정리된 신화도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시카와 에이지 원작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의 권위가 워낙 견고하기 때문이죠.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이 1954년부터 내놓은 영화 '미야모토 무사시' 3부작도 원작 소설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사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베가본드' 역시 몇가지 새로 만들어 넣은 에피소드와 몇몇 설정(예를 들면 사사키 고지로를 벙어리로 설정해 둔 것 같은)을 제외하면 원작 소설의 스토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본 적 없는 작품을 추천한다는 건 꽤 꺼려지지만, 공연의 스펙으로 볼 때 안목을 넓히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듯.

 

스팀펑크라는 장르는 위에 설명한 이상은 힘들 듯 합니다. 그러니까,

 

 

 

 

윌 스미스 주연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는 전형적인 스팀펑크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19세기 유럽의 낙관적인 분위기 + 첨단 과학기술을 그려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장르는 유머가 필수가 돼 버렸습니다.

 

 

 

황정민 엄지원 주연 영화 '그림자 살인'은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스팀펑크의 분위기를 가진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알피 보. 뭐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마는.

 

 

 

 

 

레미제라블 관련 곡들은 많이 들어보셨을테니. 알피 보가 부르는 'Music of the Night'입니다.

 

 

 

 

다음은 영화 '물랑 루즈' 수록곡인 'Come What May'를 왕년의 걸 그룹 스파이스 걸스 멤버 멜라니 C와 함께 부르는 모습. 왜 듀엣 상대를 멜라니 C로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두 가창자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좋은 듀엣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아무튼 목적은 알피 보의 솜씨를 보자는 것이니 일단 들어 보시길.

 

 

 

마지막으로 알피 보가 본래 정통 테너였음을 보여주는 영상. 그가 부르는 Nessun Dorma를 듣고 나니 그가 뮤지컬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기존 테너들에게는 큰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오페라 스타로도 요나스 카우프만을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을지도. (외모지상주의)

 

 

 

노파심에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번 공연의 이름은 '알피 보 내한공연'이 아니라 '2014 봄의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알피 보의 단독 공연이 아니라는 말씀이고, 보가 부르는 노래는 전체 레퍼토리 중 7곡입니다(듀엣 포함).

 

왜 이런 구성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알피 보를 한국에서 만날 기회라는 것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소개했습니다. 혹시라도 '단독 공연이 아니었어!' 라는 실망을 하실 분들이 있을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21400&s_date=20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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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의 명물이라면 역시 히랄다 Giralda 탑이다.

 

높이 105m. 38층이라고 표기되는 히랄다 탑은 느낌 그대로 아랍 문화의 유산이다.

 

어쨌든 유럽에서도 크기로 손꼽히는 대성당의 상징이 됐고, 산지가 적은 안달루시아의 대평원에서 수백년 동안 멀리 멀리까지  그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38층이라는 말에 다소 긴장했지만 다행히 층고가 그리 높지는 않다.

 

여름에 올라간 사람들은 퍽 고생을 했을 거란 생각. 아무튼 도전. 오늘의 입장객수가 곧바로 표시된다.

 

 

 

 

계단이 아니라 네 면을 따라 비스듬히 경사면을 오르게 되어 있다.

 

계단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왕이 말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말이라면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올라가며 짬짬이 창밖을 내다 본다.

 

 

역시 성당의 명물 중 하나인 오렌지 나무 정원. 파티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파티오다. 내놓고 이슬람 양식.

 

 

조금씩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성당의 지붕을 통과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거의 다 올라왔다.

 

 

마침내 정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산지가 없다는 게 실감날 정도로 일망무제의 평원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 문득 장난을 쳐 보고 싶다.

 

이렇게.

 

 

 

 

 

 

 

 

뭐 다른 쪽도.

 

 

정말 예쁜 거리다.

 

 

 

오렌지 정원도.

  

 

 

정말 모형처럼 보인다.

 

 

 

세비야 대성당의 지붕. 용의 등뼈와 날개를 봉인한 듯한.

 

거대한 소음과 함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상상.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세인트 폴 성당을 건설하던 크리스토퍼 렌이 지붕의 무게 때문에 고민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세비야 대성당도 마찬가지. 지붕 쪽에 실리는 하중을 분산해 주기 위해 세워진 보조 기둥들의 위용이 인상적이다.

 

 

 

멀리 투우장이 보인다.

 

그 부근에 밤에 플라멩코를 보기로 한 공연장이 있다.

 

 

 

 

 

탑에서 내려가 오렌지 정원으로.

 

어쩐지 회랑에 악어가 매달려 있다. 무슨 사연일지.

 

 

오렌지 나무 사이로 정상이 보인다.

 

정상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

 

저 꼭대기의 여인상은 '왕자의 문' 앞에 있는 여인상과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성당에서 오렌지 정원으로 나오는 문.

 

'수태의 문' Puerta de la Concepción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 하다.

 

그냥 이해의 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이고 보면.

 

(영어의 컨셉션에 그런 뜻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성당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히랄다 탑과 성당의 지붕에게.

 

안녕.

 

성당을 나서 동쪽으로 담을 돌아가면 알카자르가 나타난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1. 유료다. 2. 민박집에서 "그라나다에서 오시는 길이면 실망하실 거에요. 안 보셔도 돼요"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굳이 알함브라를 보고 와서 다시 이슬람 양식의 정원을 보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담벼락은 멋지다.

 

 

 

 

 

담벼락이 끝나는 곳에서 산타 크루즈 지역이 시작된다.

 

 

세비야의 구 시가 지역. 좁다란 골목길 속에 알록달록 칠해진 다양한 가게와 건물들이 빼곡 들어찼다.

 

 

 

골목 골목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흔적과 관광객을 맞이하는 구역의 구별이 없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세비야를 찾은 사람들이 이곳의 정취를 얘기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골목이 마냥 예쁘다.

 

 

 

 

 

사람 사는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동네다.

 

물론 다들 속으론 먹고 살기 바쁘겠지만.

 

 

 

 

마돈나가 왔다 갔다는 산 마르코 San Marco 라는 맛집.

 

소개는 받았는데 별로 뭘 시켜 먹어 보고 싶진 않았다. 마돈나가 별거냐.

 

 

그보다 더 원래부터 유명하다는 Bodega Santa Cruz 라는 식당.

 

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정작 들어간 집은 이 집. 이름은 La Catedral.

 

나중에 다시 나온다.

 

 

 

이렇게 히랄다 탑과 산타 크루즈를 헤매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느낌이 좋았던 종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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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미친 것 같습니다.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무튼 늦었지만 아직 하나밖에 안 지나갔군요. ^^;;

 

나머지 추천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가이드

 

1년 중 가장 짧은 달, 2월이야. 그래도 문화적으론 꽤 풍성한 달이지. 직장인들은 설 연휴에 목돈이 빠져나가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세뱃돈을 받아 풍성해졌을 테니 문화생활의 갈증을 한껏 풀어 보도록.

2월의 음악 공연 중에는 세계 정상급 솔리스트 두 사람이 참여하는 공연들이 눈길을 끄네. 바로 하피스트 라비니아 메니에르와 플루티스트 엠마누엘 파후드야.

 

14. 발렌타인데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로맨틱 라흐마니노프에 라비니아 메니에르가 나와.  연주할 곡은 모짜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메니에르는 몇해 전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라비니아의 귀향주인공이야. 네덜란드로 입양 간 한국인의 핏줄이지.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입양을 보낸 처지에 굳이 한 민족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 물론 연주력도 극강이니 믿어 봐.

 

이날의 메인 곡은 스테판 애즈베리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라 교향곡 2번이야. B 2만원 추천.

 

22일 공연은 엠마누엘 파후드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이란 제목이야. 한 번에 안 외워지지? 엠마누엘 파후드는 22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뽑혔다는 천재야. 그 뒤에도 플루트의 세계에선 최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중에서 바로크 음악에 특화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유닛이야. 더 설명이 필요할까?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비롯해 텔레만의 플룻 협주곡 등 친숙한 곡들을 연주해. 아마 연주의 정교함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협연이라고 생각해. 3만원짜리 C석도 있긴 한데 형편에 따라 B 5만원까진 써도 아깝지 않을 듯.

 

이번엔 국악 차례. 국립극장에서 19일부터 23일까지 공연되는 창극 숙영낭자전이야. 숙영낭자전은 신재효가 기존의 판소리 열두마당을 여섯마당으로 정리한 뒤로 판소리 사설이 전해지지 않아. 그래서 고전소설 숙영낭자전을 창극으로 개작한 작품이지.

 

달오름극장은 그리 크지 않으니 2만원짜리 A석이 목표인데 할인행사가 많아서 잘 찾아보고 가길 권해. ‘이름이 숙영인 분은 50% 할인같은 것도 있어.

 

 

공연에 돈을 많이 썼지만 아직 할 일은 많아.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선 117일부터 316일까지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려. 고인의 작품 90여점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상당히 뜻깊은 일이라는군. 또 국제갤러리에선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영국 화가 줄리언 오피의 개인전을 323일까지 개최해. 참고로 이 두 전시는 무료.

 

 

책은 그동안 소설 위주로 추천했는데 이번엔 흥미로운 역사+심리분석서를 한권 소개하려고 해. 나시르 가에미가 쓴 광기의 리더십(A first-rate madness)’.

 

제목을 보면 히틀러나 스탈린이 제일 먼저 생각날텐데, 물론 히틀러에 대한 내용도 있어.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링컨, 처칠, 간디 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대접받는 위인들이야.

 

저자는 각 인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정상인에 비해 상당히 심각한 정신병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병은 조증과 우울증인데,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에미는 이런 병증들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데 상당히 필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예를 들면 조증 환자는 전쟁처럼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탁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타입이라는 거지. 물론 다 좋다는 건 아냐. 예를 들어 2차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처칠에 대해 그는 하루에 100개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런데 그중 4개 정도만 쓸만하다고 비아냥거렸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어.

 

사실 자신의 판단 한번에 수백만, 수천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제정신일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서 어쩌면 지도자를 고를 때도 너무 반듯하고 흠 없는, 모범생만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야.

 

2월은 금세 지나가. 3월에 만나.

 

14일 로맨틱 라흐마니노프                                               B 2만원

22일 엠마누엘 파후드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B 5만원

19~23일 창극 숙영낭자전                                                B 2만원

국제갤러리 줄리언 오피전                                                 무료

가나인사아트센터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무료

나시르 가에미, ‘광기의 리더십                                       16000원 선

합계                                                                      106000

 

 

 

 

줄리언 오피는 제가 좋아하는 화가라 좀 사진이 편향되게 많이 들어갔습니다. 위에 보시는 이 블러의 앨범 재킷도 오피의 작품이죠. 또 한번 보면 처음 보는 작품도 그 사람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맨 위에 있는 그림의 제목은 '신사동을 걷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무관한 사이가 아닙니다.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빌딩(구 대우빌딩)에 걸렸던 작품 '군중'도 유명하죠. 저 동그란 머리가 바로 오피의 상징입니다.

 

 

 

일본 오모테산도 힐즈를 장식한 벽화들도 딱 보면 그의 작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추천해놓고 제가 서울 전시를 못 가보고 있다는 ㅜㅜ)

 

에마누엘 파후드는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시면 수없이 많은 공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곡 제목인 쉬링크스(Syrinx)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가 천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를 잠재우기 위해 만들었던 피리의 이름이죠. 당대의 '피신'으로 통하는 파후드에게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물론 이번 공연의 색채와는 좀 다른 곡이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습니다.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과의 협연도 자료가 있군요. 바흐 관현악모음곡 2번(BWV 1067) 중 7곡 바디네리입니다.

 

 

 

(제목만 보고 뭐야 하시는 분들, 들어 보시면 다 아시는 그 곡입니다.^^)

 

 

 

라비니아 메이에르의 영상을 찾아 보면 필립 글래스의 곡만 나와 좌절하시는 분들이 있을 법 합니다(개인적으로 필립 글래스는 공포의 대상...). 몬테베르디의 바로크 곡 연주를 들으시면 기분 전환이 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웃자는 내용. 파후드는 흔히 이런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드물지 않다는 거. (찾아보시면 더 심한 모습도 많습니다.)

 

남자도 사진빨, 크게 작용합니다.

 

그럼 늦은 2월 인사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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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인(아랍인)들로부터 국토를 되찾기 위한 스페인 카톨릭의 노력 결과, 세비야는 비교적 일찍, 13세기에 이미 기독교인의 땅이 되었다. 그 뒤로 세비야는 내륙의 교역 도시로 발달했고, 1401년에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카톨릭의 위엄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을 세울 계획이 세워졌다.

 

착공 100년이 되기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뭐 틀린 말인 건 다 알지만 그냥 이렇게 쓰자)했고, 세비야는 이 새로운 대륙 개척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실제로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는 세비야 서쪽의 우엘바와 남쪽의 카디스가 발달했지만, 신대륙 항해를 위한 법적 절차나 인허가는 모두 세비야에서 이뤄졌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부 역시 세비야에 집결됐다. 거대한 문서보관소와 황금의 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역시 세비야가 바로 신대륙 개척의 상징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스페인식으로 크리스토발 콜론의 묘가 세비야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스페인은 세계에서 52번째, 유럽에서 다섯번째, 그것도 유럽이라고만 하기엔 좀 껄끄러운 러시아와 터키를 빼면 세번째로 큰 나라(프랑스, 우크라이나 다음)다.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두배 이상 크다. 제국 스페인의 남쪽 해안선은 지브롤터를 경계로 동쪽은 지중해로, 서쪽은 대서양으로 열려 있다.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는 곧 대서양으로 열린 항구의 발전을 뜻하며, 우엘바와 카디스,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는 세비야는 제국 남부의 중심지로 줄곧 발달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유난히 큰 성당, 유난히 금박을 많이 씌운 성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부와 권위의 상징인 세비야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입구의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에그머니.

 

 

식도와 척추의 단면이 너무도 선명하게 묘사된 사람의 목부터 보게 됐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가 대체 누군가...했더니 Saint John Baptist. 그러니까 우리 말로 세례 요한이었다.

 

살로메의 복수 때문에 목이 잘렸다는 그 양반. 그런데 그 머리를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품은 대체....;;

 

 

 

두 성스러운 존재가 세비야 대성당의 상징인 히랄다 탑을 가호하는 그림이다. 한쪽은 아마도 성모 마리아일 듯 한데 다른 한 쪽은 대체 누구... 아무튼 손에 종려나무를 든 이런 수호신의 묘사는 세비야에 대단히 흔하다. 종려나무 가지가 바로 세비야의 상징이라서.

 

아무튼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뜨왓.

 

 

 

 

 

정말 거대하고...길다.

 

 

지난번에 본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 그림 앞쪽이 북쪽이고,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에 관광객 용 입구가 있다.

 

 

 

 

그리고 북쪽이 위로 가게 그려진 지도. 남쪽 입구가 관광객의 출입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입구 왼쪽으로 돌아서 정작 성당 내부로 들어서게 되는 건 위 지도의 숫자 10번이 그러진 지점 부근이다.

 

지도의 11, 12, 16, 17, 23, 24, 27 등으로 되어 있는 작은 방들은 스페인어로 카필라(Capilla), 즉 영어의 chapel에 해당하는 예배당이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 있는 성소 교회에서도 보았듯 큰 대성당 안에, 세비야 유력 가문들이 각각의 예배당을 운영해 온 셈이다.

 

 

 

그 각각의 예배당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네만의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해 가문의 영광을 뽐냈다. 무리요나 엘 그레코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동방에서 가져온 희귀한 성상 등 갖은 보물들이 이 안을 장식했다.

 

 

 

 

세비야 대성당은 길이가 긴 쪽이 135m, 짧은 쪽이 100m인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이 42미터, 물론 첨탑인 히랄다 탑을 뺀 천장 얘기다. 히랄다 탑 꼭대기는 105m에 달한다. 그 기둥과 내부의 공간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한다.

 

 

각각의 카필라들은 이런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와,

 

 

이렇게 요란하게 장식된 제단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제단의 양쪽 벽면은 이런 식으로 온갖 고전 회화들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카필라의 규모가 각 가문의 세 대결인 셈이다.

 

이런 카필라들을 구경하며 동쪽으로(동쪽에 주 제단이 있으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거대한 볼거리가 눈길을 장악한다.

 

 

합창대석의 양쪽에 장착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정말 크고 위압적이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이런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합창대석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돼 있다.

 

나무로 조각된 디테일 하나 하나가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합창대석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네 사람이 떠받든 관이 나타난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지다.

 

 

 

 

 

지도의 파란 별 모양이 있는 곳이 바로 콜럼버스의 묘지. 별 왼쪽 위의 Coro는 코러스, 즉 합창석을 말하며 그 바로 옆의 Capilla Mayor는 흔히 말하는 High Altar, 즉 이 성당의 주 제단을 말한다. 물론 그보다 더 동쪽 끝에는 Capilla Real, 즉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버스의 묘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석상은 네 사람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대성당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다. 네 왕은 각각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즉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에 있던 네 왕국의 왕들이다.

 

그러니까 이 네 왕이 운구를 할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남겼다는 얘기다.

 

 비록 죽은 뒤이지만 대단한 예우다.

 

 

 

문득 관 바닥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생겼다.

 

 

그의 업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금껏 여러모로 말이 많지만,

 

대장부로 태어나 죽어서 이런 예우를 받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의 묘를 지나면 오른편(그러니까 남쪽)으로 성구실과 보물창고에 이른다.

 

 

같은 실내고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성구실은 무척 밝다.

 

천장을 보면 바로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중 쿠폴라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돔의 상부에 채광창을 두어 빛을 성당 안으로 스며들게 한 배치다.

 

 

 

물론 사진에서 보듯 필요한 곳에는 각각 조명이 배치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보물창고는 훨씬 밝다.

 

 

 

언뜻 보기에도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을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아이(아무리 아기 천사라고는 하지만)들의 머리통을 밟고 선, 인자하기보단 잔혹해 보이는 성모상.

 

 

 

 

몇 안되는 출처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하나.

 

조각가 페드로 롤단(Pedro Roldan)이 만든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의 조각이다.

 

뒷날 '산 페르난도(성 페르난도)'로 추앙받은 페르난도 3세는 13세기 중엽, 세비야를 탈환해 기독교도의 품으로 되돌린 왕이다. 이때문에 산 페르난도라는 지명은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런 성구실 안에도 작은 파티오가 있고, 파티오 안에 분수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슬람 양식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아무튼 보물의 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따라 주 제단 Altar Mayor와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이 보수중.

 

보수막이라도 찍어 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주 제단은 목각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을 들이 부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생겼다.

 

세비야 관광 진흥 사이트에서 퍼옴.

 

 

 

 

 

 

뭐 대신 이 성당을 대표하는 사이트 중 하나인 은의 제단 Altar de Plata.

 

 

 

 

흔히 보는 기독교적인 상징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사실 이런 건 처음 봤다.

 

오히려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단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 관람을 마쳤다.

 

 

흔히 서양의 대성당을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왠지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성당 내부를 들어서면 거대한 용의 몸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

 

특히나 이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의 천장은 용의 등뼈를 보는 듯한 상상을 자아냈다.

 

 

사실, 밖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어느 카필라엔가 있었던, 아무리 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인 것 같은 그림 한 점.

 

(뭐 영향을 받은 화가일 가능성도 당연히.)

 

 

어떤 카필라는 이렇게 문을 열어 놓고 청소중이기도 했다.

 

위쪽의 초상화들은 아마도 자랑스러운 역대 귀족 가문의 조상들인 듯.

 

자. 이제 히랄다 탑을 오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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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의 오페라 제목이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세비야 Sevilla 의 이발사'로 바뀌어 자리잡은 건 아마도 1992년 세비야 엑스포를 전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1992년은 '투우와 태양, 다혈질의 나라'였던 스페인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나라'라는 브랜딩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해인 듯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같은 해다.

 

세비야는 이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흔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개의 문화 유산, 투우와 플라멩코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세비야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는 세비야의 담배 공장을 배경으로 소설 '카르멘'을 썼고, 이를 비제가 불멸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카사노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후안의 근거지도 세비야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 과연 중간에 어디를 거쳐야 할까 하는 걸 놓고 잠시 고민했는데,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세비야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고? 일단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도시 치고 카테드랄이 없는 도시는 없지만, 그래도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15세기 말. 당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대국은 포르투갈이었다. 항해왕 엔리케를 비롯해 바스코 다 가마, 바솔로뮤 디아스 등 명성 높은 탐험가들의 활약에 의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해안을 따라 인도양으로 진입해 인도 서안에 이르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거대한 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생각했다. 지구는 둥글다(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갈릴레오가 처음 한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동설이나 지구 자전설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별개의 주장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기원 3세기 이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널리 알린 주장이다). 만약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인도가 나왔다면, 반대로 서쪽으로 똑바로 나아가도 인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많은 모험가들(당시의 벤처 투자자들)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대개의 투자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1492년 1월, 코르도바에서 역사적인 영토 회복으로 한창 들떠 있던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물론 6년이나 공을 들인 끝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1492년 4월3일, 콜럼버스는 니냐, 핀타, 그리고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의 세 범선을 이끌고 지금 우엘바(Huelva)의 일부인 작은 항구 팔로스 델 라 프론테라(Palos de la Frontera)를 출발했다.

 

제노바 출신의 이탈리아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코르도바에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투자 허락을 받고, 산타페(그라나다 부근의 소읍)에서 '발견된 땅의 총독이 되고, 신대륙 수입의 10%를 갖는다'는 약정에 서명했고, 팔로스에서 1차 원정을 출발했고,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가 바르셀로나로 귀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여왕 부부를 알현하며 원정의 성공을 알렸다.

 

저 많은 인연 있는 땅을 두고 왜 세비야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을까. 그 이유는 세비야야말로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영광을 가장 크게 누린 도시였기 때문이다. (다음 글로 이어짐)

다시 시점은 그라나다를 출발할 때로 거슬러 올라감. 

 

 

 

그라나다에서 세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세비야. 입구의 야자수 가로수가 손님을 반긴다.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은 기차 버스 모두 가능하고, AVE가 아직 다니지 않아 시간도 얼추 비슷하다. 단지 버스가 약간 싸다.

 

뭐 꼭 가격이 싸서라기보다, 스페인의 고속버스는 어떤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ALSA 버스는 깨끗하고 편했다. 3시간 짜리 노선이라 그런지 중간에 정차는 없었고, 시속 100Km를 준수했다. 물론 도로 중간을 봐도 한국식의 거대한 휴게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유소와 편의점, 화장실 정도만으로 구성된 휴게소는 중간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에서 들렀던 휴게소는 그래도 커피숍과 카페테리아 정도의 설비를 갖춰 놓고 있었는데, 이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이 짧아서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ALSA 버스는 와이파이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다. 옆자리 미국인의 아이폰도 마찬가지. 그 외에는 깨끗하고 쾌적했고, 인터넷으로 예매도 할 수 있어 간편했다.

 

물론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교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지만.

 

 

 

세비야 고속버스 터미널. 나름 운치있게 꾸며져 있다.

 

공식 명칭은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Prado de San Sebastian) 터미널.

 

그냥 Estacion 은 역, Estacion de Autobuses는 버스 터미널이다.

 

 

 

밖으로 나오면 이렇다.

 

 

 

단 1박만을 위해 구한 민박 숙소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장점은 세비야 구시가와 가깝다는 것.

 

투우장 바로 옆이었고, 대성당까지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렸다. 또 직접 제작한 지도를 나눠주고 포스트를 설명해 주는데, 특히 식당 추천이 좋았다. 초행길에 꽤 도움이 됐다. 침구류에서도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단점은 대부분의 민박이 그렇듯 바닥이 아예 맨발로 다닐 수 없는 돌 바닥이고, 욕실에서 방까지 신을 신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 2인실이라도 방 안에 욕실이 있는 구조와 복도를 지나 공용 욕실이 있는 구조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식사는 전혀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냥 혼자 자취하면서 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워낙 대단한 대접을 받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주요 관광 포스트와의 연결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추천. 나머지 요소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비추.

http://cafe.naver.com/sevilla5happy.cafe

 

 

 

지도에서 B지점이 민박집, A지점이 대성당 모퉁이(대성당이 워낙 거대하다. 농담 아니고 지도상의 저 구획이 모두 성당이다).

 

도보로 5분은 조금 과장이고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도 왼쪽의 큰 M자가 써 있는 곳이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즉 버스를 내린 고속터미널.

 

거기서 꽤 큰 공원(공원 이름도 프라도 산 세바스티안인 모양이다. 버스 터미널 이름과 같다)을 건너가면 바로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이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대성당 부근, 그리고 에스파냐 광장만 보기로 맘먹은 사람에겐 좋은 입지가 아닐 수 없다.

 

 

 

숙소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피멘톤(Pimenton)은 반드시 들러 볼만한 곳. 나중에 자세히 소개한다.

 

 

저 피멘톤 앞길로 죽 내려가 도착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의 남쪽 면(엄밀히 말하면 성소교회의 남면).

 

세비야를 대표하는 교통 수단인 트램이 마침 지나갔다.

 

 

 

트램의 뒷모습. 1.5유로에 시내의 주요 지점을 연결해 주는데 꽤 편리하다.

(카테드랄 앞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단 2정거장. 5분이면 도착)

 

표를 끊고 차를 탔는데, 전혀 검표와 관련된 수단이 없어 매우 당황했다.

물론 처음엔 당황하지만, 다음엔 매우 기뻐하게 된다.

 

 

 

꽤 걸어야 카테드랄과 성소교회(Iglesia del Sagrario: Church of Sanctuary)의 경계면에 도착한다.

 

왼쪽은 왕실예배당의 입구, 오른쪽은 카테드랄의 서쪽 문.

 

 

 

그러니까 저 빨간 동그라미를 친 곳이 바로 대성당의 부속 건물인 성소교회다.

 

지금 서 있는 길이 저 빨간 선이 그어진 길이고.

 

 

 

전에도 말했듯 스페인의 카테드랄 앞길은 그리 넓지 않아서 전경을 찍기가 편치 않다.

 

그래서 꼭 이렇게 올려찍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 서문, 즉 승천의 문(Fuerta del la Asuncion)이 이 거대한 성당의 메인 도어라니 찍어 둬야지.

 

 

 

서문의 좌우를 자세히 찍은 뒤, 옆의 성소 교회로 입장한다.

 

 

 

성소교회 의 내부. 천장의 흰 천은 보수공사를 위해 씌워 놓은 것인데, 제법 잘 어울렸다.

 

성소교회, 즉 영어로 하면 Church of Sanctuary 인데, 무엇을 위한 성소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선 깊숙한 곳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예수의 유골이나 성인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의미로 Sanctuary라고 한 듯.

 

 

 

왕실예배당만 해도 규모가 상당하다. 물론 잠시 후 보게 될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

 

스페인식 성당의 배치를 보면, 복도(?) 양쪽으로 있는 작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예배당 역할을 한다.

 

이런 작은 방들을 카필라 Capiilla 라고 한다.

 

 

 

작은 방 하나 하나마다 이런 식의 성상 배치가 되어 있다.

 

대부분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예배당이다.

 

 

 

중앙의 주 성상만이 예수를 모시고 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

 

예수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면 아마도 이 제단 뒤편일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성모상이다.

 

 

이렇게 금빛으로 찬란하게 묘사된 성모상.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의 발 아래를 받치고 있는 올망졸망한 아기 천사상들이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보이지 않고 얼굴만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징그럽기도 하고, 성모가 아이들의 머리통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식으로 천사의 몸통을 다 묘사하고 있다면 그나마 낫긴 하다.

 

아무튼 좀 적응하기 힘든, 스페인 식의 묘사법이다.

 

 

주 예배석 위쪽의 쿠폴라에서 들어오는 빛. 흰 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보수중이라 조금 더 돋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카테드랄의 앞길로 이렇게 한가롭게 관광객 용 마차가 다닌다.

 

 

 

서쪽 문 근처에서 죽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대성당의 남쪽 문, 즉 관광객을 위한 일반 입구가 나타난다.

 

위 사진의 파란 세모가 있는 곳. 바로 여기다.

 

 

 

이것이 세비야 대성당의 대략의 입면도. 아까 위에서 본 승천의 문(Puerta de la Asuncion)이 오른쪽(그러니까 서쪽)에 있고, 지금 서 있는 면은 저 입면도에서 안 보이는 남쪽이다.

 

그 남쪽에는 왕자의 문(Puerta de la Principe)이 있다.

 

바로 이 문. 이 문 왼쪽이 관광객용 출입구다.

 

 

 

남쪽면에 위치한 카테드랄의 동쪽 출입구. 개인 입장객은 이곳으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단체 입구는 북쪽, 히랄다 탑 옆구리에 따로 있다)

 

입구의 청동상은 세비야의 문장이 든 깃발과 세비야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입구로 처음 들어가면, 세비야 대성당과 관련된 박물관을 먼저 보게 되는데,

 

 

 

 

에그머니나. 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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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부탁했다.

 

"산 건너편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우 로맨틱한 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를 예약해 다오."

 

스페인 사람답게 잘 생긴 직원은 씩 웃으며 최고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테라스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웃으며 10월 밤 날씨면 테라스에서 밥 먹다가 얼어 죽을 수 있단다. 대신 창이 넓은 식당을 추천하겠다며 '나만 믿어'라는 눈빛을 쏜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남자의 눈빛이다. 남녀 안 가리고 쏜다.

 

그래서 간 곳이 여기. 에스뜨레야스 데 산 니콜라스 Estrellas de San Nicolas.

 

Callejón Atarazana Vieja, 1, 18010 Granada, ; +34 958 28 87 39

 

 

산 니콜라스 는 흔히 말하는 '알함브라 앞산' 동네, 즉 알바이신 지구의 꼭대기 쯤에 있는 전망대의 이름이다.

 

본래 건너편에 있는 알함브라를 보는데 최적화된 전망대고, 그 전망대 바로 옆에 이 레스토랑이 있다.

 

 

 

식당의 외부 전경.

 

 

 

낮에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산 니콜라스 전망대. 가운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공터가 산 니콜라스 전망대고, 오른쪽 동그라미 친 곳이 바로 이 레스토랑이다.

 

 

 

식당 내부는 그냥 흔한 산장식 레스토랑. 그닥 운치는 없다. 오직 알함브라의 아경이 있을 뿐이다.

 

창가 테이블을 달라고 분명히 요청했는데 '이미 그 자리는 오래 전에 예약된 자리라' 어쩔 수 없단다.

 

성질 같아선 나가버리겠는데, 비까지 내리는 이역만리. 치안도 좋지 않다는 지역에서 무리하면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창 너머 풍경을 도촬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다.

 

창가 자리를 내놓으라고~~

 

 

 

 

자료 사진을 보니 여름철엔 아예 창틀을 뜯어내는 모양이다. 이편이 훨씬 잘 보이긴 하겠다.

 

 

 

 

첫 메뉴. 세가지 치즈와 견과류가 들어간 샐러드.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런 맛이다.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만들었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여전히 마음은 창가 자리에 있는데,

 

 

 

그라나다 지역의 좋은 물로 만들었다는 탄산수.

 

물맛 좋다.

 

냉수 먹고 속 차리자.

 

 

 

메인 디시. 안달루시아 풍의 쇠꼬리 찜.

 

와인 소스가 진한 맛을 내는데, 사실 쇠꼬리를 갖고 한 요리를 골라 먹으라면 한국식 꼬리찜을 먹겠다.

 

꽤 유명한 음식이라 맛이 궁금했는데, 한국식 꼬리찜을 먼저 먹어 본 사람이라면 이걸 먹고 감동하긴 쉽지 않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비추.  

 

 

 

 

식후. 디저트 와인과 함께 저 통 안에 계산서를 꽂아서 내 온다.

 

나름 귀염을 떤다.

 

 

 

 

창가 자리 손님이 먼저 자리를 뜬 김에 다시 촬영 시도.

 

아니 왜 알함브라는 잘 안 나오고 뚱보만 나와.

 

이때까지만 해도 식당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종업원에게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건물 바로 바깥이란다.

 

진작 얘기하지.

 

 

 

밖으로 나왔다. 비에 젖은 알함브라가 훨씬 잘 보인다.

 

사진 왼쪽의 높은 건물이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탑, 그리고 그 뒤로 약간 높이 보이는 흉물이 카를로스5세 궁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성벽이 알카사바.

 

 

건물 측면도.

 

바로 옆에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목적인 알함브라.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는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다.

 

 

 

비 때문인지 문 닫은 앞집 식당.

 

날씨 좋은 날이면 이 집에 가서 노천 테이블을 잡는게 여러 모로 좋을 듯 하다.

 

 

 

 

어쨌든 호텔로 귀환.

 

 

 

밤에 보면 정말 그럴듯한 로비가 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내다 본 그라나다 시가 야경. 멋지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한 공간도 나쁘지 않다. 이 호텔, 꽤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성수기 때는 꽤 비쌀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안달루시아를 고속도로로 가로질러 세비야로 향했다.

 

잇힝,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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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닙니다. '꽃보다 할배'도 아닙니다.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면서 새롭게 등장한 실버 예능의 기수입니다. 제목은 '님과 함께'.

 

티저를 보시면 느낌이 확 올 겁니다. 제목은 '재혼자들'.

 

 

 

 

그러니까 임현식-박원숙씨가 드라마 아닌 예능에서 가상 부부 체험을 하는 얘깁니다.

 

두 분은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커플 연기(주로 서민적인 정서가 뚝뚝 떨어지는)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한지붕 세가족'.

 

그 변형입니다. 2차 티저. '한지붕 새가족'.

 

 

 

 

'산업 폐기물 같은 맛'...이란.

 

그런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추억의 드라마가 솔솔 생각납니다. 바로 '한지붕 세가족'.

 

 

 

'봄바람 분다고 장독대 꽃피나'로 시작하는 김창완의 국악풍 주제가가 인상적인 오프닝.

 

 

 

 

 

'한지붕 세가족'은 자료에 따르면 1986년 11월9일부터 1994년 11월13일까지 방송됐습니다. 방송 시간은 몇번 바뀌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일요일 아침을 고수했던 작품입니다. 참 지금 보니 젊은 모습.

 

 

 

제목이 한지붕 세가족인 것은 주인 집(현석)이 집의 2층과 별채를 세놓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서민 거주 지역에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거주 형태였죠. 그 시절을 잘 모르는 분들은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동네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 임현식, 엄마 박원숙, 아들 이건주로 구성된 순돌이네는 동네의 전파사 및 만물 수리점이었죠. 그리고 순돌 아빠의 라이벌(?)로는 동네 세탁소 주인인 만수 아빠 최주봉이 있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했지만 우등생인 만수와 늘 노는 것과 먹는 것만 밝히는 순돌이의 캐릭터가 대조를 이뤘습니다.

 

세월이 흘러 집 주인이 임채무로 바뀐 뒤에는 임채무의 처남 강남길과 애인 차주옥, 그리고 강남길의 어린 시절 친구인 김영배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위 사진은 90년대 '한지붕 세가족'의 모습인 듯 합니다.)

 

 

 

 

특히 강남길의 고교 동창이며, '시골 고등학교에선 동네와 학교를 주름잡는 멋진 친구였지만 나이를 먹어 이제는 허세밖에 안 남은' 김영배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죠.

 

 

 

사실 작가와 연출자들은 소재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고르지 않아 몇번이고 종영이 검토됐지만 그럴 때마다 "'한지붕 세가족'을 없애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MBC로 빗발쳤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 '회장님'과 '사모님'이 나오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시절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이런 드라마가 있었죠.

 

또 수많은 스타들이 '한지붕 세가족'을 통해 안방극장에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한석규 음정희를 비롯해 김혜수 차인표 등도 이 드라마를 거쳐갔죠.

 

그래도 화려한 스타 후보생들보다는 역시 서민적인 정취를 가진 연기자들이 '한지붕 세가족'에선 더 빛을 발했습니다.

 

 

 

 

 

그렇게 8년을 방송한 '한지붕 세가족'도 막을 내리고, 다들 나이를 먹었습니다.

 

개구장이 꼬마였던 순돌이 이건주가 어느새 어른이 됐죠.

 

 

 

 

 

 

 

 

그리고도 몇해 더 세월이 흘러 순돌아빠와 순돌엄마는 예능 속에서 맺어졌습니다.

 

재혼을 염두에 둔 가족 예능인 '님과 함께'에는 순돌이네 커플과 함께 이영하-박찬숙 커플도 출연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날 법 한 웬만한 일들은 다 겪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청춘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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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에서 그라나다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 나는 이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과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이런 것을 짐작했다. 그런데 여기 그라나다에서 그것은 가장 명확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혹은 아랍의 카펫처럼 벽들을 조각하고 디자인했다. 그렇게 그것들은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기둥들은 더 가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졌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퍼진다.

 

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들은 대담한, 하나의 특별한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고정되고 무거운 모든 내용물을 추상화시켜서 오직 지적인 윤곽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 나니 진정 실감이 난다.

 

 

윗글의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을 찾자면 역시 나스르 궁전 가운데에서도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을 꼽게 된다.

 

사자의 정원인데 사자는 어디 있다고 궁금해 하실 분들, 

 

사자 나온다.

 

 

 

뒤로 돌면 이런 장식의 문.

 

앞을 보면 생각보다 규모는 작지만 자못 감동을 자아내는 사자의 정원이 전경을 드러낸다.

 

 

 

 

 

 

나스르 궁전 평면도. 대략 파란 선을 따라 구경을 하게 된다.

 

중앙의 긴 빨래판 모양이 도금양(아라야네스)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고 우하단에 사자의 정원이 보인다.

 

 

사자의 정원에 있는 사자는 우리 민화 속 호랑이를 닮았다.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사자상이 12마리인 것은 매 시간마다 물을 흘려 내보내는 것으로 시계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사자가 입을 통해 물을 흘려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의 방들.

 

첫번째 방은 흔히 아벤세라헤의 방 Sala de los Abencerrajes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팔각별 모양의 천장은 나스르궁 최강의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방은 나스르 궁에서 가장 흉악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방이다.

 

아벤세라헤 일족의 남자 30여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치적 음모에 대한 발각설과 왕비와의 불륜설이 있다. 가이드북에는 이 방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있다는 등의 호러 스토리를 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천장의 아름다움이 매우 인상적인 방이다.

 

어쨌든 성 전체가 기독교도들에게 넘어가기 전에도, 넘어간 뒤에도 이 방은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그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여행 사이트나 기행문의 '알함브라' 파트를 장식하는 바로 그런 비주얼이다.

 

사실 사자의 정원을 구성한 이 수많은 기둥들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 많은 관광객용 사진들은 대개 여름의 해질녘에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이 기둥들은 금빛으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보면 솔직히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날씨가 꽤 흐렸다. 해가 쨍쨍 나는 맑은 날엔 또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 조명을 타는 유적이다.

 

 

 

벽에 어른어른 그림자 같은 것이 비친다. 이런 것들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핏자국인지도.

 

 

그리고는 왕의 방. Sala de los Reyes

 

스페인어의 Sala는 방(Room)으로도, 홀(hall)로도 번역되는데 이 경우엔 그냥 홀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Sala de los Reyes 는 방도 홀도 아닌 그냥 긴 회랑이다.

 

 

 

그 다음 방은 두 자매의 방 Sala de Dos Hermanas 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전설이 있는 방은 아니다(심지어 정말 자매가 살았다는 보장도 없다). 보압딜과 그 이전의 군주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저 높은 천장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이 꽤 아름답게 방을 감싼다.

 

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사자의 정원을 지나 나스르 궁의 부속 건물로 접어든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 보면 창틀의 모양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천장의 글자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여기는 카를로스 5세가 잠시 사용했다는 황제의 집무실 Habitaciones de Carlos V 이다.

 

 

방 자체가 지금까지 거쳐온 알함브라의 방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기독교도들이 알함브라의 주인이 된 뒤에 구축한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는 방이 바로 '워싱턴 어빙의 방'.

 

전에 말했던 '알함브라 이야기'의 저자이며, 사실상 서구 사회에 알함브라 관광 붐을 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먼지에 덮여 있던 알함브라를 세상에 널리 알린 덕분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그 덕분에 스페인 정부도 알함브라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정비에 나섰다는 얘기다.

 

어빙은 물론 '스케치북'의 저자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비조이기도 한데, 이렇게 알함브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방이 남을 정도의 영광은 역시 알함브라를 소개한 공이 아닐까 싶다.

 

(국내 번역 제목은 '알함브라' 1권과 2권인데 그라나다로 갈 때 꼭 읽고 가야 할 정도는 아니다. 감상이 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고나 할까. 맘에 드는 문장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좀...

 

 

 

워싱턴 어빙의 방을 나선 테라스에서 구 시가 쪽을 바라보면 이런 정경이 펼쳐진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구조를 가진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 장난도 쳐 보고 싶어진다. 인형 같은 집들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나스르 궁 구경도 거의 끝이다.

 

쇠창살의 정원 Patio de la Reja. 글자 그대로 네 면이 모두 건물에 둘러 싸인, 정통 사각형 파티오다. 작고 아담.

 

 

 

그리고 나서 건물을 돌아 나오면 오렌지 정원 Jardín de los Naranjos 이 나온다.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랍풍 목욕장의 유적이 등장.

 

 

 

타일로 방수가 되어 있는 목욕방. 별 모양의 천장 창을 통해 조명을 해결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오렌지 나무 정원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스르 궁 안녕. 그리고 관람 시간이 끝났다.

 

알함브라는 여기서 안녕.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의외로 알함브라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보다 매우 작은 규모(나스르 궁에 한정해 이야기할 때), 나스르궁을 보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와 줄서기의 번거로움, 또 아마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직면해야 할 안달루시아의 직사광선과 더위 등이 이런 실망을 부추긴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알함브라는 다른 중동 지역의 이슬람 유적에 비해 규모와 색채감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다. 돌과 벽돌의 자연색을 그대로 활용한 유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의 티무르제국 유적의 웅대함과 신비로운 파란 타일에 넋을 잃어 본 사람이나,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금은보화의 빛을 본 사람에게 알함브라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알함브라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알함브라의 아간 관람 사진을 보고 난 뒤였다. 아마도 밝은 태양 아래서는 워싱턴 어빙이 그토록 강조하는 '달빛 어린 전설'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관능적이고 요염한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을 듯 하다.

 

언젠가 돌아와 밤의 알함브라를 보게 되길 기원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식당...은 다음 편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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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 2014년 1월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밤. JTBC 사옥 호암아트홀에선 '히든싱어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중왕전 생방송이 펼쳐졌습니다.

 

왕중왕전으로는 세번째 방송. 그러니까 1월11일과 18일, 2회로 나뉘어 왕중왕전 본선이 치러졌고 25일에는 거기서 살아남은 세 사람의 모창 도전자 - 임성현(논산가는 조성모), 조현민(용접공 임창정), 김진호(사랑해 휘성)의 최종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왕중왕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치열한 대결을 뚫고 올라온 이들입니다. 난다긴다하는 모창자들 중에서 선발됐고, 그 우승 혹은 준우승자 사이에서도 각 조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들이니 말입니다.

 

 

 

 

물론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이 휘성 모창자 김진호의 우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지막날 생방송을 현장에서 보고 있으니 과연 더 이상 '모창'이란 말로 이 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모창이란 큰 의미가 없어진 대결이었습니다.

 

 

 

PM 10:20

 

이날 호암아트홀 무대는 정말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찼습니다. 앞에 보이는 빈 자리는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연예인들과 그동안 '히든싱어2'에 출연했던 멤버들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들이고, 나머지 자리는 꽉 들어찬 것을 지나 복도까지 어떻게든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만약 '히든싱어3' 때도 최종 생방송을 한다면 경희대 평화의 전당 정도는 충분히 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M 10:30

 

30분 전. 출연진들은 분장실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고, 스태프들은 원활한 무대 진행을 위해 마지막 점검이 한창입니다.

 

 

 

2층에서 본 모습.

 

 

 

PM 10:50

 

하늘 위에서 찍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미집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팔을 휘저어 봅니다. 앞줄엔 출연 연예인들이 착석 완료를 확인하는 스태프들이 아직 서 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

 

 

 

 

 

PM 11:00

 

무대 중앙문에서 전현무가 걸어나오며 환호와 함께 방송 시작.

 

세 사람의 도전 여정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건 세 도전자가 처음으로 예심에 나섰을 때의 모습.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처음에 보였던 쭈뼛대는 모습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신감이 예전과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순서대로 세 도전자의 노래.

 

 

 

 

조현민과 김진호를 향한 임창정과 휘성의 찬사와 응원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조성모가 나오지 못한 임성현이 혼자 좀 쓸쓸해 보입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야 할 조성모가 없으니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이는 아쉬움. 휘성의 무대 의상까지 그대로 물려입고 나온 김진호의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5일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사람은 임성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히든싱어' 시즌 1,2를 통틀어 원조 가수를 누르고 우승한 사람든 단 둘뿐,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 편의 임성현 뿐입니다.

 

장진호가 의외의 부진으로 최종 3인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이변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실력은 탁월했습니다. 특히 임성현은 25일 무대에서 최상의 실력을 보여 진짜 조성모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던 당시의 우승이 우연의 결과가 아님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AM 00:00

 

부조정실. 전현무의 말이 많아질수록 조승욱 PD의 주름이 늘어갑니다. 자꾸 시간이 초과되기 때문이죠.

 

당초 실시간 문자투표를 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왕중왕전 두 차례를 마친 뒤 1주일간 진행한 사전 인터넷 투표의 총 개표수가 1만건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방송중 투표를 수없이 진행한 ARS 업체에서도 "이 시간이면 15만표 정도가 예상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15만표는 방송 시작 20여분만에 훌쩍 넘어섰고, 밤 12시를 지나면서 50만표 이상이 확실시됐습니다.

 

대박 예감.

 

 

 

 

 

AM 00:30

 

최종 투표가 마감됐습니다. 총 투표수는 864,868표.

 

음향편집실 스태프도 분주합니다. 이때부터 전현무 특유의 '쪼는' 시간에 맞는 음악이 나갑니다.

 

물론 3위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광고를 봐야 합니다.^^

 

 

 

 

 

"우승자는 김진호!"

 

두 사람이 남은 상황에서 전현무의 발표 순간, 김진호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세 사람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조현민은 많은 사람이 아는대로 부산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과 집안 환경 때문에 음악에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임성현은 현역 뮤지컬 배우이지만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아픔을 겪었고, 곧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임성현의 아버지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뤘다"며 눈물을 보이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진호는 연세대에 다닐 정도의 우등생이지만, 한편으론 거울을 보며 휘성의 동작을 따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진로를 놓고 남들은 짐작하지 못하는 고민을 겪었을 겁니다.

 

이런 세 사람 모두에게 왕중왕전 생방송은 그야말로 한풀이의 무대였습니다. 음악이란 이들에게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목표였고, 어찌 보면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켠에는 그들 각자에겐 음악의 세계를 엿보게 했던 우상들이 있습니다. 이들 각자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우상에 대한 존경, 그리고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표출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세 사람의 고민과 좌절이, 이날 보여준 놀라운 실력에 날개를 달아준 듯 했습니다.

 

이날 무대에 선 것은 임창정과 조성모, 휘성을 모창하는 세 사람이 아니라, 그 세 우상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세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의 노래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 것입니다. 임창정이 장난스럽게 던진 "전 저렇게 못 불러요"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닐 정도로, 세 사람은 생방송 무대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나 보기 좋았던 것은 그런 꿈의 소중함을 아는 선배들과 곧바로 '즐기는 무대'가 연출됐다는 것.

 

 

 

AM 1:00

 

생방송이 끝난 무대는 몰려 나온 축하객들로 북적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무대에서 단연 인기있는 출연자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유 모창자 샤넌.

 

최종 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많은 남성 시청자들을 좌절시켰던 '히든싱어2'의 주역(!) 중 하나.

 

 

 

다들 샤넌과의 기념 촬영을 위해 줄을 섭니다.

 

옆에 찬조출연한 작곡가 주영훈. "야, 샤넌이랑 빨리 찍어. 얘 데뷔하면 우린 사진도 같이 못 찍을거야."

 

 

 

그래서 저도 잠시 본분을 잊고...

 

 

 

샤넌양, 정말 얼굴이 조막만 하더군요. 화장기 없는 얼굴도 어쩌면 그리 귀여운지.^^

 

 

 

AM 1:20

 

곧바로 심야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새벽 시간이지만 취재 열기가 뜨겁습니다.

 

 

 

다들 밝게 웃는 모습.

 

대락 기억나는 질문과 답은:

 

 "전현무를 시즌3에도 MC로 쓰겠느냐"는 질문에 "생각 중"이라고 말한 조승욱 PD.

 

"내가 '히든싱어2' 최고의 수혜자인 것 같다. 안티가 많이 줄었다"는 휘성의 말에 "안티는 제가 더 많습니다"라고 덧붙인 전현무.

 

상금 2000만원을 어떻게 쓰겠냐는 말에 "제작진과 출연자들을 모아 고기를 배터지게 먹겠다'는 김진호.

 

세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가장 감격스러운 건 팬카페가 생겼다는 것.

 

 

 

 

임성현은 이미 노래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세 사람의 인생이 '히든싱어2' 출연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진호의 말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기억으로 이겨내겠다"고 한다면, 참 좋은 일일 듯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세 사람 모두 수천명의 지원자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자들이라는 것.

 

늦은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세 사람을 환영했습니다.

 

국민투표에 임해 주신 864,868명의 시청자들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히든싱어2'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히든싱어3'는 당연히 돌아옵니다. 아쉬우시겠지만 늦어도 8월이면 '히든싱어3'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짧은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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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엠비씨 일기예보 배경음악(일설에 따르면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 안내 배경음악이라고도 한다^^)으로 늘 나오던 청승맞은 기타 연주곡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곡의 제목이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함브라 궁전? 뭔가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이름을 가진 이 궁전이 아라비아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이 또 흘렀다. 제법 머리가 굵었고 왜 스페인에 아랍인들의 궁전이 있는지도 알았다. 또 세월이 흘러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역은 바로 나스르 궁전이고, 그 나스르 궁전이야말로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땅에 남겨 놓은 최고의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왔다.

 

 

 

 

바닥도 예사롭지 않아.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작다면 작은 공간이다. 나스르 궁전은 절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치명적인 조형미가 있을 뿐이다.

 

 

설계도면으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제일 먼저 메수아르 Mexuar 에 도달한다.

 

 

 

천장 장식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기둥과 각도가 애매하다 보니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은 '메수아르의 방'. 거의 모든 가이드북에 '메수아르의 방'이라고 나오는데 그냥 메수아르 Mexuar 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이 메수아르는 나스르 궁전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전실 antechamber 이며, 왕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때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메수아르를 거쳐 나오면 다시 하늘이 보이고

 

 

작은 파티오가 하나 나온다. 저 문 안의 방 이름을 따서 파티오 델 쿠아르토 도라도 Patio del Cuarto Dorado, 즉 '황금의 방의 파티오'라는 이름이다.

 

 

 

 

작은 분수도 하나 있다. 파티오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분수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 황금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알함브라 전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황금의 방 자체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지만,

 

 

지금부터 알함브라는 디테일로 승부한다.

 

 

 

 

 

온 벽이 다 장식이다.;;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림이나 조각이 있을 법 하지만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슬람의 특성상 어디에나 기하학적인 문양 뿐이다. 꽃무늬 비슷한 문양은 가끔 눈에 띄지만 동물 모양은 절대 없다.

 

 

 

황금의 방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 입구를 나서면 앗, 많이 보던 광경인데, 라는 정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말 낯익은 광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을 볼 시간이 아니다. 왼쪽의 검게 보이는 입구로 발을 들여 놓으면,

 

 

 

 

 

 

 

 

코마레스 탑의 입구에 해당하는 배의 방 Sala de la Barca 이 나온다.

 

 

 

 

이런 다소 어두운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함브라가 규모로 사람 기죽이기에 들어간다. 이것이 '대사의 방 Salón de los Embajadores '.

 

대사의 방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알함브라의 왕이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기 위한 자리다.

 

대사의 방은 알함브라의 마지막 이슬람 군주였던 보압딜이 1492년 1월, 기독교도의 왕,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보압딜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망명한다. 물론 상대가 관용이라곤 모르는 기독교도들이었으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에 따르면 이 기독교도 군주들의 후손인 카를로스 5세는 보압딜의 우유부단한 처사를 비웃으며 "나 같으면 알함브라를 나의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빙은 이런 말로 보압딜을 옹호했다.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 패배자들에게 영웅주의를 설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불행한 이들에게 목숨 말고 남은 게 없을 때, 그 목숨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 거대한 방은 이렇게 이슬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전성기 때 왕은 이 창을 등지고 앉아 귄위를 뽐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인용되는 대사의 방의 천장.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이 시절 사람들에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듯한 위압감을 주었을 듯한 천장이다.

 

 

 

다들 천장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어디에나 있는 종유석 문양.

 

대사의 방을 나서 다시 배의 방을 지나 이 아치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스페인어를 살려 '아라야네스의 정원'이라고도 소개되는 도금양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 나타난다.

 

도금양은 뭘 도금했다는 뜻이 아니고, 식물의 이름이다.

 

 

이 샘으로부터 시작되는, 우아하고 격조있는 정원이다.

 

완벽한데 저 건물 너머로 보이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정돈된 스카이라인에 끼어든다. 바로 위에서 보압딜을 무시했던 카를5세가 이 궁 안에 지은 카를5세궁이다.

 

대체 왜 저기다 저따위 건물을 지은 것인지 불만이 생긴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면,

 

 

코마레스 탑이 보인다. 저 탑 안이 하나의 방이고, 그 방이 바로 그 대사의 방이다. 그러니 넓을 수밖에.

 

흔히 나스르 궁전은 3개 지역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첫째 메수아르, 둘째 대사의 방(코마레스 탑)과 도금양 정원, 그리고 세째는 사자의 정원과 거기 딸린 세 개의 방이다.

 

 

이것이 절정에 오른 기둥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엄청나게 많은 기둥들. 기둥 하나 하나, 벽면 하나 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 있으면 정말 아름다움에 둔감해 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사자의 정원이라더니 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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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에서 알함브라 궁전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이런 다리가 있다.  

 

헤네랄리페를 먼저 보든, 나중에 보든 알함브라 관람은 이 문에서 시작하게 된다. 알함바르 궁전의 동쪽 끝에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어디냐 하면...

 

 

 

 

고구마처럼 동서로 긴 알함브라 궁에서 빨간 동그라미가 있는 이 위치다.

 

다시 말하면 동쪽 끝이란 얘기.

 

 

 

문 위의 문장. 무슨 뜻인지 일일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알함브라 연구자도 아니고...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의 qa'lat al-Hamra, 즉 '붉은 성(red castle)'에서 왔다고 한다. 물론 선홍빛으로 붉지는 않다.

 

알함브라의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9세기부터. 중동/북아프리카를 손에 넣은 이슬람 정복자들의 칼날은 마침내 8세기 초, 지브롤터를 건너 바로 빤히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로 향했다. 정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졌고, 이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말을 달려 중부 유럽까지 진출하려 했다.

 

하지만 칼 마르텔(카를로스/샤를마뉴/칼/찰스 대제의 할아버지.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조상. 지금은 유명한 브랜디 브랜드인 'Martell'을 통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에 의해 투르-프와티에의 결전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에서의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프랑크 인들 또한 그 서쪽으로는 넘어 오지 않아 이슬람인(스페인에서는 특히 무어 인이라 불림)들은 약 800년에 걸쳐 사실상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코르도바, 세비야 등과 함께 아랍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 중에 그라나다가 있다.

 

 

 

그라나다 부근은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지형이 험한 곳이다. 남쪽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끼고 있는 등 툭 터진 안달루시아의 평원 가운데서 꽤 지대가 높고, '가려져 있는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악 지형 한가운데 그라나다가 있고, 그 그라나다를 제압하는 언덕 위에 알함브라가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압도적인데다 물까지 풍부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들여 놓을 수 있는 알항브라 터는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한 땅이다. 그래서 9세기부터 조금씩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기. 나스르 왕조의 첫 왕인 무하마드 1세가 이곳에 자신의 궁성과 요새를 포함한 '도시 안의 도시'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이후 나스르 왕조의 다른 왕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속 건물을 지으며 알함브라를 완성시켰다. 천혜의 요새 알함브라는 이 시기 기독교 세력의 확대로 이슬람의 강역이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200년 가량 더 왕조의 운명을 지속시켰다. 

 

아마도 알함브라에 도성을 정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1492년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얼마나 더 버텼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는 것을 알면 알함브라를 구경하는데 꽤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알함브라 안으로 들어서도 왕년의 거대한 도시는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문을 들어선 뒤로 한참 동안 건물은 보이지 않고, 조경이 잘 된 공원 속 같은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길이 15세기 중엽에는 화려한 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다 보면 첫번째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스팟.

 

 

바로 7층탑의 문 Torre de los Siete Suelos, 토레 데 로스 시에테 수엘로스다.

 

스페인어로 써 놓는다고 더 멋져지는 건 아니다. 지금 관람자가 성 안에 있으므로 안쪽에서 본 모습인데, 꽤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성 밖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이게 밖에서 본 모습. 이 광경을 보려면 밖으로도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반바퀴 쯤 돌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아무튼 밖에서 보면 꽤 그럴싸한 광경이다.

 

그런데 문의 이름이 7층탑의 문인 것은 지하에 일곱 층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발굴해 본 결과 두 층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론은...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야 이거)

 

 

 

그리고는 계속해서 예쁜 조경 산책로.

 

 

 

그리고 걷다 보면 왼쪽으로 이런 폐허가 나타난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또 걷는다.

 

그리고 약간 넓은 뜰이 나온다.

 

 

이 문은 알함브라의 파라도르로 통한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파라도르 Parador 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검색하게 된다. 유서깊은 유명 관광지의 경내에 위치한 숙박업소다. 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므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느낌이 다른 숙소라는 평이 있다.

 

특히나 그 유명한 알함브라 성내에 있는 이 알함브라 파라도르는 명성이 자자해 몇달 전부터 예약이 차 있다고 한다. 뭐 이런 숙소는 감히 예약할 생각도 못했던 터라, 여기서도 그냥 정문만 보고 지나쳤다.

 

 

 

이 빨간 원 정도의 자리. 참 좋긴 좋아 보이는 자리다.

 

 

 

근처에 이런 호텔도 있다. 아니 대체 유서깊은 알함브라 안에 호텔이 두개나 있는거야.

 

이름도 그렇고...뭔가 좀 무성의한 느낌.

 

 

그리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골목 사이로 카를5세 궁(스페인 식으로 하면 카를로스 5세 궁)이 보인다.

 

좌우의 건물들은 그리 세련되지 않은 기념품 등속을 팔고 있다.

 

 

 

이게 카를5세 궁.

 

모든 지도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겉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안에서 보면 원형인, 재떨이같이 생긴 건물이다.

 

 

 

굳이 이 궁 안에 이런 식의 유럽식 건물을 세우려고 생각했다는 것도 불순하고, 건물 자체가 그리 정감 가는 데가 없다.

 

1527년 카를 5세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정작 1957년에 완공됐다는 건물.

 

 

그리고 게속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알카사바 Alcazaba 가 나타난다.

 

 

 

지도상으로는 이 위치. 그러니까 알함브라의 서쪽 끝이며, 전체 알함브라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구축된 지역이다.

 

당연히 군사 주둔 지역. 주위를 압도하는 전망탑이 그 상징이다.

 

 

 

알카사바 쪽에서 본 카를 5세 궁. 크긴 참 크다.

 

 

 

알함브라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사람 따위가 구경을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함을 갖췄다. 유서깊은 비궁의 주민 답다.

 

 

 

결코 먼저 관심을 보인다거나, 관광객 따위가 내는 어설픈 고양이 소리 흉내 따위엔 절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온다. 뭐 운치를 더한다면 더하는 느낌.

 

 

세월의 더깨.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천년이 넘은 성벽이다.

 

중간에 또 보수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천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이 고성을 지키고 있는 전망탑. 자못 감동적이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오르면,

 

 

 

이런 광경에 도달한다. 속이 탁 트인다.

 

 

 

클릭해 보시면 파노라마.

 

 

 

크고 아름답다.

 

 

알카사바의 무너진 부분은 문득문득 앙코르 와트를 생각나게 한다. 붉은 색의 성벽 때문일까.

 

 

왼쪽으로는 과거 병사들의 숙소 유적이 보인다. 아무튼 요새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아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면,

 

 

 

 

성벽과 성벽 사이의 좁다란 정원.

 

이 정원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작 나무가 너무 우거져 전망은 살짝 가려진다.

 

이곳의 성벽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갔다 와서 알았다.)

 

프란치스코 A. 데 이카사 Francisco A. de Icaza 라는 시인의 유명한 시라고 한다.

 

 

대략 해석하면

 

그를 부축해다오, 여인이여.

그라나다에서 장님으로 사는 것보다

금생에서 더 비참한 일은 없으려니.

 

 

 

 

 

다시 좁다란 문을 지나 내려가면

 

 

 

알카사바의 출구가 보인다.

 

 

알카사바 안녕.

 

 

 

알카사바를 나와 알함브라의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이런 정경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알함브라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뷰포인트, 산 니콜라스 전망대다. 사진 속에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있다.

 

이제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을 입장할 시간이 왔다. 줄을 서야 한다.

 

 

 

 

나스르 공원의 입구에 있는 마추카 정원 Patio de Machuca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 앞에서 줄이 끊겼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입장시키지 않기 위해 안내원들이 계속 머릿수를 헤아린다.

 

 

 

드디어 긴 기다림이 끝났다. 이제 나스르 궁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됐다.

 

알카사바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알함브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나스르 궁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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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문화어 사전 세일 기간입니다.

 

별 설명 없이 그냥 나갑니다.^^

 

사진은 신성일, 윤정희가 주연한 전설의 히트작 '내시'. (조여정 주연 '후궁'과 매우 흡사한 내용입니다.)

 

 

영충호 [명사]

: 영남, 충청, 호남 지방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

전통적으로 영남, 호남, 충청 지방을 총칭하는 이름은 삼남(三南)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따로 이 세 지역을 묶어 부르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인구 순에 따라 영남-호남-충청의 순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13 812, 이시종 충북지사는 충청 지역 인구가 호남 지역 인구를 넘어선 데 맞춰 영충호 시대라는 신조어를 내놨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 10월 기준으로 충청남북도와 대전,세종시 인구는 총 526만여명으로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를 합한 호남권의 525만여명보다 약 1만여명 많다. 이런 인구 변화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삼남 외에 영호남과 충청 지방을 한꺼번이 일컫는 조선시대의 표현으로는 양호(兩湖)와 영남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양호란 호남(湖南, 전라도)과 호서(湖西, 충청도)를 말한다. 이 호남과 호서는 모두 중국에서 동정호(洞庭湖)를 중심으로 그 남쪽과 서쪽을 가리키는 지명이지만 한국에는 동정호에 비길 만한 큰 호수가 없다. 그럼 대체 왜 호남과 호서라는 지명이 한국에서 쓰이게 된 것일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의 지리전고(地理典故) 편에는 전라도의 김제군 벽골제호(碧骨堤湖)를 경계로 해서 전라도를 호남이라 부르고, 충청도를 호서라고도 부른다. 또는 제천에 의림지호(義林池湖)가 있기 때문에 충청도를 호서라고 한다.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과 죽령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는 삼한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저수지이긴 하지만 자연이 만든 호수도 아닌 터라 중국과 같은 지명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붙인 기준임이 역력하다.

 

P.S. 호서와 호남 모두 비슷하게 억지에 가까운 지명인데도 두 지명 가운데 오늘날 호서는 상대적으로 사라진 이름이 된 데 비해 호남은 여전히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다나다 [형용사]

 

: ‘대단하다의 영혼 없는(?) 표현

 

대단하다를 아무런 억양 없이 읽으면 대다나다가 된다. ‘대다나다로 쓰는게 일반적이지만, 발음의 특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로 점을 찍어 쓰기도 한다.

 

의미도 그냥 대단하다는 뜻이긴 하지만, 진심으로 감탄하는 경우를 대단하다라고 쓴다면 내심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영혼 없이’) 형식적으로만 인정해 주는 경우에 쓰는 말이 바로 대다나다인 것이다.

 

 

어원은 2013 123 MBC TV ‘라디오 스타에 소녀시대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로 추정된다. 유리가 요가 시범을 보이자 제시카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는데, 유세윤이 이 말에 아무런 억양이 없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라며 지적했다. 이후 이 말이 대다나다라는 표기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

 

(위 동영상의 2:00~2:10 사이에 나옵니다.^^)

 

P.S. VIXX의 히트곡 ....는 가사 내용과 이 말의 뜻이 아무 상관이 없다(심지어 노래 안에 대다나다라는 가사가 나오지도 않는다).

 

 

 

순애보(殉愛譜) [명사]

 

: 연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슬픈 사랑 이야기

 

1939년 출간된 박계주 원작 소설 순애보는 오늘날 보기엔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희대의 히트작. 남자 주인공 문선이 인순과 명희라는 두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제목 순애보()’은 오래 전 왕이나 귀족이 죽을 때 하인들을 같이 묻는 순장(殉葬)  자다. 그래서 순애보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이야기라는 뜻. 하지만 이 순애보순수한 사랑 이야기라는 뜻의 순애(純愛譜)’로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별 심각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심지어 아무 위기 없이 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에도 순애보라는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순애보(純愛譜)’도 있지만,  한자 표기를 순()으로 쓴 경우의 90%는 별 생각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P.S. 물론 원작 소설 순애보에서도 문선이 죽을 각오를 하긴 하지만 죽지는 않음.

 

 

클리셰 [명사]

 

: cliché(불어). 본래 진부한 문구 혹은 상투적인 표현을 뜻하는 문학용어.

 

전통적으로 클리셰라는 말은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드라마로 치자면 재벌 2세인 기획실장님과 간신히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가난한 캔디가 회사 복도에서 부딪혔을 때 실장님이 아무 사과 없이 지나가려 하고, ‘캔디회장 아들이면 이래도 되는 거에요!”하고 화를 내며 실장님의 따귀를 때리는 뭐 그런 진행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클리셰가 변명이 되기도 한다. 2013년 하반기 표절 시비에 몰린 수많은 가요들에 대해 작곡자들이 그건 장르적 클리셰일 뿐이라고 항변하면서, 클리셰라는 말이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장르적 클리셰라는 것은 일단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클리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상투적인 표현(음악의 경우 곡의 진행)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것이 없으면 그 장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인 특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왕과 기사, 엘프와 용이 등장하는 것은 판타지 장르의 클리셰다.

 

하지만 판타지라는 장르에 무지한 사람은 드래곤 라자를 읽고 이건 반지의 제왕의 표절이잖아!”하고 흥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런 주장은 낯설지 않다. 90년대 그룹 넥스트를 이끌며 수차례 표절 시비에 오른 신해철은 댄스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오오, 이 듀스라는 녀석들은 서태지의 표절이구나!’ 할 수 있다며 특정 장르에 대한 무지가 무분별한 표절 논란을 확산시킨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장르적 클리셰 이론도 이제 더 이상 대중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정 리듬이나 멜로디, 곡의 진행은 부분적으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똑 같은 위치에 똑 같은 악기나 코러스를 배치한다든가, 왜 하필 특정 장르를 선택했는가와 같은 문제에 답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중은 또 많은 작곡가들이 이건 장르적 클리셰이므로 표절이라 볼 수 없다고 코멘트하는 것 자체가 동업자끼리의 의리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법에서 표절 여부는 원저작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청구해야 법정이 판단할 수 있는 민법상의 개념이므로, 결국 그 곡의 표절 여부는 바로 전문가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맨 처음 문제가 된 곡에 대한 고발’, 그리고 실제 판결 결과와 상관 없이 자신이 의심한 작곡가에 대한 선택적 거부 정도인 셈이다.

 

비트코인 [명사]

 

: Bitcoin. 2009년부터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사이버 화폐의 이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화폐를 법으로 규정하고, 이 화폐 유통 질서에 도전하는 시도를 엄벌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정보화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온라인에선 사이버머니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오래다.

 

2013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비트코인은 사이버머니로 출발했지만 현실 사회에서의 통용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온라인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게임머니나 아이템도 실제 화폐와 교환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트에 가서 디아블로3의 골드를 줄 테니 컵라면을 달라고 하면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물론 같은 길드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싸이월드 도토리나 네이버 해피빈과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서서히 오프라인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상거래가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의 최대 보유국이 중국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미국 주도의 세계 통화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음모설도 등장했다. 비트코인을 만들어 낸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개인인지 집단인지도 불분명하다)이라 음모설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대가 사이버 머니의 탄생을 요구한다면 어차피 보통 사람들로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을 누비는 쇼핑 마니아들에겐 환전이나 환율을 따지지 않는 비트코인이 보편화되는 세상이 천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기명이고 거래 흔적도 남지 않는 비트코인이 현재대로 발전할 경우 가장 좋아할 사람들은 마약 카르텔의 보스들이나 국제 무기상, 그리고 뇌물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부패한 공직자들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도 빠지지 않는 환관 역할.

내시 [명사]

 

 

: 內侍. 왕의 주위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

 

 

오늘날에 와서 내시라는 말은 흔히 환관(宦官)과 사실상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이 말은 처음부터 같은 뜻이 아니었다. ‘성기능을 상실하고 궁에서 일하는 남성을 가리키는 말은 엄밀히 말해 환관이다. 이에 비해 내시는 그저 권력자의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이었다. 한국의 경우 14세기 이전, 고려 중엽까지 임금의 직속 비서 역할을 하던 엘리트 문관들을 내시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삼국지연의에도 조조의 사촌인 조인이 조조의 침전에 들어가려 하자 허저가 이를 막는 대목에 이 말이 나온다. “내가 조조의 친척인 것을 모르느냐고 꾸짖는 조인에게 허저는 나는 비록 친척이 아니지만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고(許褚雖疏,現充內侍), 주공이 취해 누워 있으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혹시 이 내용을 보고 허저가 고자였다고 착각한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유사 이래 아시아권의 다양한 왕정 체제에는 복수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후궁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거세된 남성의 역할이 상시 존재했다. 최고 통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환관과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특히 중국 명대 후기에는 환관들이 실질적인 재상 역할을 했으나 부패와 타락이 심해 당대의 석학 황종희가 명이대방록에서 환관들은 독약이나 맹수와 같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국왕의 시중 등 단순 업무만 처리하던 환관들은 고려 의종 이후 서서히 내시들의 영역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공민왕 5(1356) 내시부를 설치하면서 내시=환관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갔다. 고려 말에는 원의 영향으로 환관의 숫자도 많아졌고 특히 원의 조정에 진출한 고려인 환관들은 본국 내정에 간섭하며 세도가 행세를 했다.

 

조선 왕조는 내시부 체제를 계승해 1894년 갑오경장으로 내시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고려말 환관들의 악몽 탓인지 내시들의 권력 장악에 대한 견제를 엄격하게 유지, 간혹 부를 축적한 내시들은 있어도 권력을 휘두른 강한 내시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2013년 이후 최고 통치자의 참모들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처신, 소신 있는 행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시 정치라고 비꼬는 용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고위공직자는 내시도 아니고, 울지도 않았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중국의 역대 환관들이 모두 후한시대의 십상시처럼 나라를 어지럽힌 간신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환관 가운데서도 종이를 발명한 후한 때의 채륜이나 대함대를 거느리고 동남아시아 일대를 경략한 명초의 정화 같은 큰 인물들이 나왔다.

 

 

 

또 조선 세조 때부터 4대를 섬긴 김처선은 사대부들이 숨 죽이고 침묵할 때 연산군의 패악무도함을 직간하다가 팔다리가 잘려 죽은 의인이었다. 여기다 함부로 조선시대 내시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김처선의 영혼이 저승에서도 편치 못할 듯 하다.

 

P.S. 오만석 주연 드라마 '왕과 나'에서 오만석의 역할이 바로 김처선이었습니다. 연산군을 다룬 사극에선 김처선이 빠질 수가 없죠. 최근 '인수대비'에서는 맹상훈이 이 역할이었습니다.

 

고자는 한자로 鼓子라고 씁니다. 물론 한자에 본래 그런 뜻이 없으니 '고자'는 순 우리말이고, 그걸 한자로 맞춘 게 鼓子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고자를 엄인()이라고 부릅니다.

 

 

드립치다 [동사]

 

: 특정 주제나 특정 형식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다

 

인터넷 용어 드립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라틴어의 즉흥 대사를 뜻하는 약어 애드리브(ad lib)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즉 누군가 엄청나게 형편없거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을 때, 누군가 개드립(+애드리브) 치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고, 이것이 더 단축되면서 그냥 드립으로 축소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드립의 예들을 보면 그때 그때 순발력을 이용해 발생하는 애드리브의 범주에 드는 것 보다는 나름 여러 날 고민해서 만들어 낸 듯한 경우가 많다. 특히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공격할 때 ‘X드립 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드립의 어원이 드리블(dribble)이라는 견해도 있다. 축구나 농구에서 공을 몰 듯, 어떤 주장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어이없이 몰고 가는 경우를 보고 비웃을 때 드립(드리블) 친다고 한 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방송/연극/영화계에서 흔히 대사를 친다’, 애드리브 역시 친다고 표현하듯 체육계에서는 드리블도 친다고 말한다. 여기 비쳐 볼 때 충분히 그랬을 법한 표현이다.

 

드립치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한 드립은 접미어로 활용되며 ‘~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수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드립이라는 명사가 독자적으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세대가 사용하는 구라라는 말의 대체어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개그맨 김구라의 데뷔가 한 10년쯤 늦었으면 김드립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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