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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주된 텍스트는 '난중일기'입니다. 특히 해전 당일의 진행은 난중일기에 기록된 1598년 음력 9월16일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본인과 아들 이회, 그리고 송희립 나대용 안위 김억추 등 당일 전투에 참여한 부하 장수들은 물론이고 승려 혜희, 정찰꾼 임준영, 항복한 왜의 무사인 준사 등등 조연급의 인물들도 모두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 실제 역사는 역사,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있어서 '명량'이 나쁜 영화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단 '명량'을 실제 역사로 착각하는 일을 방지하거나, 혹은 그저 호기심에서 '명량'과 역사상의 기록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순신(1545~1598)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충무공 이순신의 일생을 간략하나마 한 페이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감히 저지를 수 없는 불손한 짓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명량에 기록된 ‘1598 9이란 제한한 시간 안에서, 각종 기록에 담긴 이순신의 전적을 다뤄보고자 한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개전 한달만에 일본이 조선의 수도 한양을 빼앗는 등 파죽지세의 면모를 보였으나 이후 명의 원군이 참전하고 강화 논의가 시작되며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화의가 깨지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격분했고, 1597년 정유재란이 시작됐다.

 

그해 3,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난 이순신은 7월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전사함에 따라 통제사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남은 전선은 겨우 열 두척.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난중일기 9월은 우울하기만 했다. 가까스로 남해의 서쪽 끝, 벽파진에 본부를 차렸지만 언제 적이 쳐들어올 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말단 병졸은 물론 지휘관들도 공포에 질렸다. 92, 전체 조선 수군의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전투를 피해 탈영할 정도였다.

 

97일에는 왜 수군의 척후대가 방어 태세를 살피기도 했다. 14, 왜군이 마침내 한줌 남은 조선 수군을 섬멸하고 한양으로 진공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결전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음력 916일의 기록도 평소보다 길지 않다. 130여척의 일본 함대는 명량해협으로 직진했다. 해류의 불리함이고 뭐고 압도적인 규모를 이용해 뭉개 버리겠다는 자세. ‘명량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구루지마가 선봉에 섰다.

 

전날 밤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를 부르짖어 투지에 불을 질렀지만, 막상 일본의 대함대를 마주한 장졸들은 겁을 먹고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특히 이순신이 일기에서 저런 자가 어떻게…”하고 한탄했던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800미터(두 마장)나 뒤쳐져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홀로 최전방에 선 이순신은 대장선의 앞선 화력을 이용해 공격해오는 왜선들의 접근을 막으며 꿋꿋하게 버텼다. ‘명량에선 그리 강조되지 않았지만, 조선의 전투 과학 기술은 이순신의 전술과 울둘목의 해류 못잖게 이날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판옥선은 일본의 주력함인 세키부네에 견고함이나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조선의 천지현황 총통도 사정거리나 파괴력에서 조총을 압도했다.

 

일본 수군은 갈고리를 걸어 상대 배에 뛰어드는 전술에 능했으나, 조선군은 현대전의 크레이모어를 연상시키는 대인살상병기 조란탄(鳥卵彈, 작은 탄두 수십개를 동시에 산탄처럼 쏘아 보내는 포탄)를 활용해 접근전을 원천봉쇄했다. 이순신의 눈부신 투지에 물러섰던 부하들도 하나둘씩 전선에 합류, 기적 같은 승리를 합작해냈다.

 

일본 수군은 구루지마가 전사하는 등 31척을 잃고 후퇴했다. 임진왜란 7년을 통틀어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급 지휘관이 전사한 것은 명량의 구루지마가 유일하다. 반면 조선 수군은 단 1척도 잃지 않았고, 대장선에서는 사망자가 2, 부상자가 3명 나왔을 뿐이었다(이런 피해라면 대장선에선 명량에 그려진 백병전이 펼쳐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명량대첩의 개략적인 결과다.

 

 

 

1. 백병전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영화 '명량'은 매우 충실하게 '난중일기'의 당일 기록을 재현하고 있습니다만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밝힌 대장선의 피해 규모를 볼 때,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물론 대장선이 아닌 안위의 배에서는 백병전이 펼쳐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장선이 혼자 앞으로 나가 왜 수군 전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대장선과 왜 수군 선발대의 원거리 타격 능력이 이지스함과 일반 함선 정도로 차이가 났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조금 더 들어가면, 조선 수군의 승리 뒤에는 조선의 뛰어난 선박 제조술과 화포 기술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명량'에서는 명량해전 후반에 조선 배가 일본 배를 들이받아 부수는 충파(衝破) 장면이 나오는데, 본래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용어는 당파(撞破)입니다(충파라는 용어는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실제로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은 이 당파를 '조선 배로 일본 배를 들이받아 깨뜨리는 전술' 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최근의 해석으로는 이 당파가 직접 배와 배가 들이받는 것이 아니라는 쪽입니다. 일찌기 1985년 드라마 '조선왕조500년-임진왜란' 편에서는 원균이 이 당파전술의 창시자(?)이며, 조선의 판옥선이 일본 배보다 훨씬 견고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전술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지만, 각종 문헌에서 사용된 '당파'를 해석해 본 결과 원거리 병기로 적함을 격침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적절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

 

이 시기 해전의 전투 방법이라면 1) 배와 배끼리 동반 침몰을 각오하고 들이받는 것 2) 화포나 활 등 원거리 병기로 공격하는 것 3) 갈고리를 걸고 상대 배로 넘어가 백병전을 펼치는 것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조선 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 일단 2)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반면 일본 수군의 당시 주된 전법은 3) 쪽에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으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육전에서는 왜군의 조총이 핵심 병기 역할을 했지만 해전에서는 조선군의 화포가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천지현황 총통과 위에서 말한 조란탄 같은 대량살상병기, 그리고 유명한 비격진천뢰처럼 목표물에 적중한 뒤 2차 폭발을 가져오는 신형 포탄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2. 거북선이 동원될 수 있었나?

 

명량해전을 앞두고 거북선을 새로 건조중이었다거나, 배설이 그 배에 불을 질렀다거나 하는 것은 본래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물론 실제로 거북선을 건조하려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설은 그저 전투가 두려워 혼자 탈영을 했고, 뒷날 육지에서 체포되어 참수됐다는 기록만 전해집니다.

 

더구나 거북선은, 갑판 위에 창칼을 꽂은 지붕이 덮여 있어(이것이 철갑이든 아니든^^) 왜군이 3)의 전법을 아예 시도할 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왜군들의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원거리 화력에서 뛰어난 조선 수군이 굳이 적의 강점인 백병전의 위협을 불사하고 배와 배끼리 들이받는 근접전을 선택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다만 거북선의 경우에는 적의 승선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보다 근접해서 화약무기를 활용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명량'에서 배 만드는 노인이 감동에 찬 목소리로 "구선(龜船: 거북선)이 돌아왔다!"고 외치는 것은 사실 좀 공허합니다.

 

 

3. 일반 백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영화 '명량'이나 '난중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항복의 '고 통제사 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나 윤휴 등이 작성한 이충무공의 행장에는 "백성들이 어선을 동원해 조선 수군이 일자진을 친 뒤에서 허장성세로 우리 함대의 수가 많은 것처럼 꾸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피란민들이 달아나지 않고 함대의 뒤에서 응원했다는 것은, 이 피란민들이 충무공에 대해 갖고 있던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줍니다.

 

연전연승하는 스타라서 그루피처럼 따라다닌 것이었다면 이렇게 수세에 몰렸을 때에는 백성들부터 달아났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명량'에서 백성들이 어선을 동원해 난류에 휘말린 대장선을 끌어 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런 기록을 기초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76년작 영화 '난중일기'에는 울돌목 수중에 긴 쇠사슬을 설치하고, 수천명의 백성들이 이 사슬을 잡아 끌어 해전을 돕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철쇄설'이라고 해서 한때 유행했던 전설입니다. 기원은 알 수 없으나 - 아마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쇠사슬 수전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만 -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근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강 싸움이라면 모를까, 울돌목에서 사용했을 만한 거대한 쇠사슬을 만들어 전투에 썼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합니다

 

4.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마다시인가?

 

'난중일기'에는 항복한 왜군 준사(영화에도 나옵니다)가 물 위에 뜬 비단 옷 입은 왜장의 시체를 보고 "저게 마다시(馬多時)"라고 했으므로 시체를 건져서 내걸어 적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목을 잘라 높이 건 시체는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것입니다.

구루지마는 임진왜란을 통틀어 전쟁 중 전사한 왜군 지휘관 중 최고위급의 지위관 (다이묘 전사자는 구루지마 뿐) 이므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마타시가 이 구루지마의 별칭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역시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왜장 간 마사카게(菅正陰)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사카게의 별명이 마타시로(又四郞)였다는군요.

 

 

5. 이순신은 왜 명장인가?

 

그럼 판옥선과 거북선이 우수하고, 조선의 화포가 뛰어나서 이건 거냐? 그게 다냐?

 

이런 질문을 하실 분들이 반드시 있을 듯 해서 덧붙입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충무공의 진정한 위대함은 비슷한 전력의 전투선단을 이끌고 용맹과 지략으로 적을 물리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대비해 장기간에 걸쳐 이처럼 적과 비대칭의 전력을 구성하고, 교전시에는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해 학살 수준의 전투를 벌여 적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전략가의 면모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피난민 구제에도 힘써 백성들이 정보 제공과 식량 및 자원 조달에 자진해서 나서게 하는 총체적인 역량을 고려할 때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기간의 시스템 구축, 단기전에서의 역량은 물론 심리전과 정훈병과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그냥 명장'들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전략가이면서도 인간적으로도 휘하 장병들과 백성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명량'의 이순신 묘사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따로.

 

명량, 영웅만들기에 성공했나. http://fivecard.joins.com/1266

 

 

 

난중일기 130척으로 기록된 왜적 함대 규모는 점점 부풀려져 19세기의 이긍익은 “600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이 당시 거느렸던 병력 규모로 볼 때 다 해봐야 고작 수십척이라고 맞선다.

 

일본 측 해석에 따르면 명량해전은 대첩도 아니요, 전체 판세에 영향을 주지 못한 국지적 교전이다. 비록 일본이 선봉을 격파당했지만 조선 수군은 명량에서의 교전 직후 후퇴했고, 다음날 일본의 본진이 명량을 지나 서해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전략적으로는 일본이 승리한 전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순신은 전투 직후 일본의 추격을 피해 군산 앞바다까지(921) 일시 후퇴했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 군세를 회복해 이듬해 2월에야 고금도에 진을 치고 전남 서부 해안을 확보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량해전 이후 일본 수군이 서해를 통해 한양에 진출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는 점, 이후 단 한번도 이순신 수군을 박멸하기 위한 군사 행동을 재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이런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이순신의 전적은 한일간의 역사적 자존심이 가장 팽팽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 역시 한국 측은 승한 반면 충무공이 유탄에 맞아 서거했다고 보는 반면 일본 극우 세력은 이순신이 죽었고 일본군의 주력이 한반도 탈출에 성공했으니 일본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전혀 좁혀지지 않을 해석의 차이가 한-일간의 심리적 거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끝]

 

일본이 생각하는 이순신에 대해선 나중에 짬을 내서 자세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개는 일본의 억지가 돋보입니다만, 도고 헤이하치로가 "나와 넬슨을 비교할 수는 있지만 이순신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라고 했다는 얘기는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꽤 거세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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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엄청나게 덥네요.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8월의 문화가이드 (2014)

 

 

8월은 자연스럽게 공연 비수기. 이럴 때면 절로 런던의 PROM이나 에딘버러의 프린지 같은 8월의 공연 천국이 그리워지네. 대신 서울의 8월은 대신 락 페스티발의 물결이야. 프레디 머큐리는 없지만 퀸이 슈퍼소닉 페스티발(8.14), 오지 오스본과 마룬5가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8.9~10), 레이디가가가 AIA리얼뮤직(8.15~16)에 내한하네. 여유만 있다면 돈 쓸 기회는 정말 많아.

 

물론 우리의 모토는 그런게 아니지? 고개를 돌리면 일단 82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부천 필하모닉 유럽 투어 프리뷰 콘서트가 보여. 말 그대로 올 가을 유럽 투어를 앞두고 국내 팬들에게 그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기회야. 지휘는 계관지휘자 임헌정. 브람스 교향곡 4번과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1번도 관심이 가지만 특히 한국 현대음악인 전상직의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초연이 포함돼 있는 공연이야.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도 주목. 모처럼 3만원으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R석에 앉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다음. 우리가 항상 셰익스피어를 교양의 표상으로 거론하지만 사실 셰익스피어극을 책 말고 실제 사람이 공연하는 모습으로 보기는 쉽지 않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지.

 

아쉽게도 실연은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극을 그 본고장인 영국 국립극단의 공연으로 볼 기회가 생겼어. 바로 NT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영국 국립극단의 공연을 실황으로 녹화해 전 세계의 다른 극장에서 보는 행사인데, 요즘 극장에서 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연상하면 될 거야. 올초 서울 국립극장에서 워 호스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아실테고.

 

830일과 31, 두 날에 걸쳐 코리올라누스리어 왕이 하루 한 차례씩 상영돼. ‘코리올라누스는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그리 자주 공연되지 않아 친숙하지는 않은 작품이야. 뭐 베토벤의 코리올란서곡을 아는 사람이라면 줄거리를 대략 아는 정도지.

 

 

 

 

2011년에는 레이프 파인즈와 제라드 버틀러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어. 그런데 이번 연극 코리올라누스가 주목을 끄는 건 영화 토르어벤저스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배우 톰 히들스톤이 타이틀 롤을 연기하기 때문이야.

 

리어 왕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품이지. 타이틀 롤을 맡은 사이먼 러셀 빌은 그리 지명도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이번엔 연출을 샘 멘데스가 맡았다는 데 눈길이 가. 멘데스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 ‘007 스카이폴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본래 연극 연출 출신이라는 건 다들 알지? 어쨌든 가격은 1만원~15000. 두 작품 모두 보는 걸로 알고 있을게.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831일까지 열리고 있는 백자예찬을 권하고 싶어. 백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백자의 미감에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한국 현대 미술의 일품들을 소개하는 전시야. 9000. 기획전과 상설전시를 모두 볼 수 있는 가격.

 

8월에 권하고 싶은 책은 아무래도 무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겠지. 이쯤에서 슬쩍 중앙일보 임주리 기자의 일상방황을 추천하고 싶기도 한데, 이 책이 비록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는 20~30대 여성들에게는 꽤 유용하면서 심지어 재미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기엔 좀 낯간지러운 책이기도 해.

 

그래서 진짜 추천할 책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작가 이름을 보고 스칸디나비아 느낌을 받았다면 정확해. ‘밀레니엄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두 작가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라르손이 2004년 사망해 밀레니엄시리즈는 더 볼 수 없게 됐지만 대신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전 세계 스릴러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어.

 

해리 홀레는 신장 1m90에 비쩍 마른, 절대 미남은 아니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매력으로 여자가 끊이지 않는(소설이잖아. 이해해) 엘리트 형사야. ‘스노우맨은 그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여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얘기지. 북유럽의 긴 겨울, 냉기가 뿜어나오는 스럴러가 더위 쫓기에도 제격일 거야. 624페이지 부담스럽다고? 곧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질 걸. 1만원 정도.

 

 

 

윤현승의 뫼신사냥꾼’. 6권이나 되는 시리즈인데 일단 첫권을 사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아마 34일 정도 여정이라면 휘딱 다 읽어 버리고 내가 왜 한권만 사 왔을까 애달복달할 지도 몰라. 조선을 모델로 한 가상국가를 무대로, 각 산을 차지하고 있는 괴력을 가진 뫼신(산신)들을 노리는 자들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그려 낸 판타지 소설이야. 검술을 기본으로 하는 무사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무당들, 그리고 본래는 동물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 된 뫼신들이라는 세 축을 놓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엇갈림이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일단 첫권 12천원 정도.

 

9월 초면 좀 시원해 지려나? 냉면 콩국수 빙수는 하루에 한번씩만 먹고, 배탈 조심해. 바이.

 

부천 필하모닉 유럽투어 프리뷰 콘서트         R 3만원

NT라이브, ‘코리올라누스’ ‘리어 왕             15000

서울미술관, ‘백자예찬                         9000

요 네스뷔, ‘스노우맨                          1만원

윤현승, ‘뫼신 사냥꾼                          12000

 

                                           91000

 

 

 

 

 

요 네스뵈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스티그 라르손을 잇는 북유럽 출신의 인기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 여담이지만 전에 들은 얘기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꽤 사이 나쁜 이웃이라고 하더군요. 구체적으로 두 나라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알 정도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그 춥고, 겨울이면 밤이 길고, 여름에는 백야가 찾아온다는, 인구도 얼마 안 되는 나라에서 이런 작가가 나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게 참 놀랍기도 합니다. 소수 언어 작가의 경우 영역본이 히트한 이후에 세계적인 붐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이런 작가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죠.

 

 

 

 

해리 홀레 (하리 홀레?) 시리즈는 현재까지 10권 정도 나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대로 가면 10권을 다 보게 될 듯. 흡인력이 장난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순서대로 모두 번역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시리즈의 맨 처음부터' 한글로 정주행하시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일단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는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라 함께 읽으셔도 무방할 듯.

 

당연히 엔딩은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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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둘쨋 날. 여전히 날씨는 흐리고, 동행인은 쇼핑을 원한다. 가난한 여행자의 마음에 그늘이 진다.

 

생전 처음으로 H 브랜드의 매장을 들어가 보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엘 코르테 잉글레스 El Corte Ingles 백화점도 가 보고... 뭐 그런 오전. 국내에서 살 수 없는 청바지를 잔뜩 샀다.

 

(여담이지만 국내 의류 메이커들은 허리 사이즈 34인치가 넘는 사람은 그냥 자루만 만들어 줘도 감사하며 입으라는 태도를 언제 버릴 지 궁금하다. 뚱보들도 디자인이 들어간 옷을 입고 싶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제2의 미술관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공식 명칭은 국립 아트센터 뮤지엄 레이나 소피아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꽤 길다. 프라도가 고전 미술 작품의 총 본산이라면 레이나 소피아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곳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비교할 만 하다고 할까? 본래 병원이었던 건물을 1986년 개축했고, 설립자인 레이나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땄다.

 

저 대형 엘리베이터 박스가 붙은 쪽이 정문이라는데 정문은 사실 눈길이 별로 가지 않고...

 

 

 

후문 쪽이 진짜 현대 미술관 답다.

 

 

 

아무 것도 안 써 있는데 분명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일 것 같은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나중에 보니 제목이 '붓놀림(Brushstroke)' 이라고. 그렇게 알고 보니 붓처럼 보인다.

 

 

천장과는 또 이런 조화.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의 식당이 괜찮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가격이 꽤 괜찮은 편.

 

그리고 비프 스테이크가 express menu에 있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다.^^

 

 

 

식사와 함께 미술관을. 그리고 휴식을. 아주 좋은 느낌이다.

 

 

 

 

 

많은 분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 2층 옆에 써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바라본 풍경.

 

 

 

이 미술관도 마찬가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는 분명히 되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사진을 찍건 말건 별 관심이 없다.

 

형식적으로라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역할을 해야 할 안내원(?) 들은 꽤 많이 배치되어 있다. 하는 역할에 비해 사람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배려라는 느낌이다. 만약 사설 미술관이라면 정말 남아 도는 인력이 많다.

 

아무튼 그 사람들도 딱 한 군데, 게르니카 근처에서는 사진 찍기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래도 게르니카가 어떤 식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너편 전시실에서 찍은 장면.

 

저 방 안으로 들어가면 한 벽 가득 게르니카가 펼쳐져 있다.

 

매우 크다. 방 안에서는 어차피 그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안 나온다.

 

 

 

 

1937년 4월26일. 히틀러의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사건이다. 165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 배경을 알고 보면 더 기가 막히다. 당시 스페인과 독일은 전쟁중도 아니었다. 스페인은 내전중이었고, 뒷날 이 폭격은 프랑코가 독일 공군에 요청해 이뤄진 것임이 밝혀졌다. 바스크 인들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이었다는 얘기다.

 

외국군을 요청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만행에 분노한 피카소는 강렬한 그림을 그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고 이를 규탄했다. 프랑코가 집권한 이상 이 그림은 스페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뉴욕 현대미술관의 간판이 되었다. 프랑코 사후 그림이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에도 스페인의 모든 미술관이 이 작품을 원했고, 경합 끝에 레이나 소피아가 최종 승자가 됐다.

 

 

 

피카소는 이후 이런 그림도 그렸다. '한국에서의 학살'. 6.25 전쟁 중 한국에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실은 대략 이런 느낌. 프라도 보다 세련된 느낌이 든다.

 

 

네 방향을 둘러 싼 본래 병원 건물답게 중정 patio 가 있고 가운데 제법 나무가 우거졌다.

 

 

 

인상적인 그림을 발견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제목과 작가 이름 적은 메모를 분실.

 

 

 

어디에나 별 관심 없이 학교에서 가잔다고 온 아이들은 구석에 '짱박히기' 신공을 구사한다.

 

 

 

 

 

이번엔 메모를 같이 찍었다. 루치아노 파브로라는 이탈리아 작가.

 

무라노 글래스를 이용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면 존 케이지의 '소리 전시'는 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현대미술도 분명 유행을 탄다. 그리고 '현대'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 이후 치러진 수많은 실험들 가운데서 이제 걸러 낼 것은 냉정하게 걸러 낼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에는 매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미술관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쓰레기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월을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닐까.

 

 

 

레이나 소피아의 중정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애정행각을 펼치고

 

 

누가 봐도 칼더의 작품인 모빌 하나가 무심히 아이들을 내려다 본다.

 

 

엇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알고 보니 호안 미로의 작품.

 

 

 

 

이 얼굴을 희화화 한 느낌이더라니까... 뭐 느낌이 안 오면 말고.

 

 

 

 마드리드의 하늘은 계속 부옇게 흐려 있고,

 

 

어느새 뉘엿 뉘엿 해가 넘어가는 오후. 건너편에 바로 아토차 역이 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 소피아 바로 앞이 작은 호텔촌이네.

 

베란다에 나와 레이나 소피아를 보는 것까진 좋은데 바로 역 앞이라 꽤 시끄러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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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들렀던 두 군데의 맛집을 소개한다.

 

두 집 모두 어찌어찌 추천을 받아 간 집인데, 정말 훌륭했다.

 

먼저 카사 밍고 Casa Mingo. 통닭집이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알 정도로 현지에서 유명한 집.

 

그렇다고 비싸고 럭셔리한 집이 아닌 동네 맛집 같은 분위기이니 여행자에겐 더욱 좋다.

 

 

 

외관. 밤에 불이 들어오면 그럴싸한 위치다. 시내의 다운타운은 아니고, 왕궁에서 약간 남서쪽 외곽에 있다.

 

서울로 치면 마포나 여의도 정도의 위치?

 

 

스페인식 저녁 타임으로는 살짝 이른 8시였지만 손님은 꽤 들어차 있었다.

 

드시는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집의 주 메뉴는 영계구이 Pollo Asado, 즉 통닭이다.

 

 

 

초점이 흐려졌지만 주 메뉴인 Pollo Asado는 10.2 유로 정도. 그리고 이 집에서 꼭 맛봐야 하는 두 가지를 더 안내받았다. 하나는 시드라 Sidra. 그리고 또 하나는 아사디요 Asadillo y ventresca 다. 시드라 옆의 3/4는 아마도 리터를 말하는 듯(즉 750ml).

 

 

 

시드라는 영어로 사이다(Cider). 이 대목에 얘기하자면, 대체 왜 레몬 소다 맛의 청량음료가 왜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지는 역사의 미스테리다. 미국의 세븐업이나 스프라이트에 해당하는 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인 것으로 안다.

 

그 밖의 나라에서 사이다는 사과를 주 원료로 하는 와인을 가리킨다. 모든 사이다가 스파클링 와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마셔 본 사이다에는 모두 적당량의 탄산이 들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줬다. 와인이라고 했지만 도수도 10도 미만. 맥주보다 약간 독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아사디요 이 벤트레스카, 혹은 벤트레스카 콘 피멘토스라는 이름의 이 음식. 그리 맵지 않은 고추와 토마토에 간 닭고기를 함께 볶은(보기에 따라서는 졸인) 음식이다. 마늘과 양파도 상당량 들어간 듯 한 맛. 한마디로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고추참치 통조림의 양념 맛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뽈로. 사전상으로 Pollo는 병아리를 뜻한다고 되어 있지만, 병아리라고 보기엔 만만치 않은 크기다. 한국에서 삼계탕 재료로 사용하는 웅추보단 최소 1.5배는 더 큰 사이즈. 기름을 쪽 빼고 껍질이 바삭바삭하게 구워 절로 침이 넘어간다. 냄새가 그만.

 

 

가게 한 구석을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한때는 한국에도 많았던 저 닭 굽는 틀. 이집 특유의 오븐 안에서 뽈로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한국식 통닭은 저렇게 굽고 끝나지는 않았다. 왕년의 통닭 명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저렇게 전기 틀에 넣고 굽는 것만으론 껍질의 식감이 그리 바삭바삭해지지 않아 손님 상에 내 가기 직전에 통째로 기름에 한번 튀겨 낸다고 한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어쨌든 먹는 법은 단순하다. 닭 살을 쭉쭉 찢어서 아사디요를 소스로 활용해 발라 먹으면 된다. 아사디요 바른 닭을 먹다가 목이 막히면 시드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시드라와 뽈로의 컴비네이션이 있었다.

 

맛은 최고. 아사디요 레서피를 알아 오면 국내 치맥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듯 싶었다.

 

 

 

정면 사진은 못 찍었으나 저 대머리 홀 서빙 아저씨, 관광객 응대의 기본기가 충실한 프로였다.

 

말이 통하고 안 통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눈빛과 몸짓 하나 하나가 친근감을 더한다.

 

잘 나가는 집이라 그런지 회전도 꽤 빠른 편.

 

 

 

이 정도의 포만감으론 적절한 가격이라 여겨진다. 만족.

 

 

 

 

 

돌 벽에서도 관록이 느껴진다.

 

그 다음. 벤타 엘 부스콘 Venta El Buscon.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 Puerta del Sol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이 부글부글한 솔 광장의 곰 동상에서 동쪽으로 두번째 골목... 정도로 설명하면 될 듯. 찾기도 쉽고, 한참 걸을 필요도 없다. 그란 비아 주변에서도 충분히 도보로 도달 가능한 거리다.

 

Venta El Buscon은 좀 묘한 이름이다. Venta는 매상/수입/판매, Buscon은 사기/갈취 뭐 그런 뜻이라는데, 명색이 장사하는 집이면서 주인이 손님을 갈취한다는 뜻은 아닐테고, 느낌상으론 '이문 생각 없이 막 퍼주는 가게' 정도의 작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전에 어딘가 있었던 '주인이 미쳤어요' 정도의 가게 이름?

 

 

 

이 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메뉴로는 빠리야다 데 마리스코 Parrlliada de Marico 를 꼽는 분위기다. 뭐 이름은 길지만 우리말로 바꿀 때 '해산물 모듬'으로 불러 무리가 없을 듯 하다.

 

 

 

해산물이라고 하지만 어패류는 없고 모두 해양 갑각류. 바닷가재 Lagosta,  빨간새우 Carabineros, 닭새우 Cigalas, 대하 Gambas 가 나온다. 모두 맛으로는 한몫 하는 친구들이다.

 

18유로짜리 고기 모듬은 어떤 맛일지.^^

 

 

 

 

이건 안에서 문쪽으로 바라본 구도. 거리의 노천 식당이 가까이 있는데, 나름 보도는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반면 안쪽은 왁자지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기있는 동네 주점 분위기. 바며 테이블이며 꼭꼭 들어찼다.

 

 

 

 

도시 한 복판의 느낌이 절로 난다.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 모듬 한 접시, 구운 야채(아스파라가스, 파프리카, 호박, 버섯 등) 한 접시, 그리고 전형적인 샐러드 한 접시.

 

구운 야채에서 나는 냄새도 향기롭기 그지없다.

 

 

꿀꺽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은 이쪽. 몇마리 까 먹다 말고 황급히 사진을 찍었다.

 

달고 감미롭다.

 

 

 

 

 

특히 전날, 시장에서 바로 저 빨간 놈들을 본 터였다.

 

스페인에 가시는 분들, 꼭 저 빨간 놈들을 드셔 보시기 바란다.

 

새우의 신기원이다. 대하도 맛이 좋지만, 저 놈들은 국물의 농도가 다르다.

 

아 침 넘어간다. ;;

 

잠시 후....

 

 

뭐 이렇게 될 수밖에...

 

밖으로 나오면 바로 솔 광장의 번화가로 연결된다.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걸어서 호텔로. 사실은 이 날이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래서 맛난 음식에도 불구하고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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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고속전철 AVE 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소 흐린 날씨. 새로 지어진 세비야 산타 후스타 역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한가로움도 좋지만, 역시 초행 여행자라면 기차를 이용하는게 좀 더 안정된 여행의 지름길인 듯.

 

 

 

AVE 내부.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큰 짐칸이 따로 마련돼 있다. KTX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간 정차 역에선 슬쩍 불안해서 한번 가 보기도 했다.

 

 

 

 

간단한 스낵을 파는 가운데의 휴식 공간이 인상적. 본격적인 식당칸은 아예 없었다.

 

 

마드리드 아토차 Atocha 역에 도착. 2시간 30분 소요.

 

마드리드로 오는 길에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중간에 워낙 명망 높은 관광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에서 1박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로 직행하는 것이 여러 모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AVE를 이용해 오전에 이동하면 오후 시간을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

 

 

이쯤 되면 현대 광고만 봐도 좀 반갑다.

 

 

역에 내리자 가는 빗발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택시 잡는 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보도로 뛰어내려 택시를 잡는다.

 

그러고 보면 역에 내려서도 별 말 없이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고 지나간다.

 

이 고향에 온 듯한 친숙함은 뭐지? ^^

 

 

 

멀지 않은 그란 비아 Gran Via 거리의 아틀란티코 마드리드 Atlantico Madrid 호텔로 이동.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이 있는 화려한 대형 호텔은 아니지만 유서깊은 대도시를 여행하는 데 매우 적절한 호텔이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통이 편했다. 1호선의 Gran Via 역과 5호선의 Callo 역이 지척이었고, 솔 광장은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방이 좀 좁기는 했지만 깨끗하고 쾌적. 유럽 호텔들이 다 그렇듯 방이 좀 작은 것 빼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당시 마드리드 지역 1위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호텔이었다. 추천.

 

http://www.tripadvisor.co.kr/Hotel_Review-g187514-d227459-Reviews-Hotel_Atlantico-Madrid.html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을 위해 '마드리드의 국물'을 먹으러 갔다.

 

마드리드의 국물, 라 볼라의 코시도 http://fivecard.joins.com/1177   참조.

 

 

그리고 나서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바로 프라도 미술관.

 

3대 뭐니 4대 뭐니 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흔히 우피치, 에르타미주, 프라도를 유럽 3대 미술관이라고 한다는데, 이 순위의 묘한 점은 파리의 미술관이 모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루브르나 오르세가 위의 세 미술관에 비해 모자란 점이 있단 말인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뮌헨의 알타 피나코텍은?

 

아무튼 3대니 4대니 이런 숫자에는 신경쓰지 말자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프라도 미술관이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거기에 규모와 컬렉션에서 딸리지 않는 미술관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의외로 한산한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이 빽빽하다. 

 

마드리드를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게 비해 볼 게 없다고들 한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된 게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스페인 여행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게 되는 대성당이나 찬란한 아랍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톱스타 프라도가 있고, 레이나 소피아와 티에센 보르네제 미술관이 있다. 특히나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고야, 무리요 같은 로컬 스타들과 루벤스, 엘 그레코, 보쉬 같은 용병들을 대거 끌어모은 진정한 미술관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2층 중앙의 긴 복도. 벽에는 주로 루벤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4시간 정도를 보냈다. 미술관이 8시 넘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술관 곳곳에는 모사를 하고 있는 캔버스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인 듯...?

 

 

물론 미술관에 가기 전에 두 권의 책,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 고 전에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고 '아, 여자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작품을 즐기기 어렵다.

 

 

 

달리 미술관에서도 언급했던 파리스와 세 여신의 대면. 날개 달린 모자와 샌들을 신은 헤르메스가 파리스 옆에 있고 세 여신은 각각의 상징을 품고 있다. 각각 투구와 방패를 밑에 둔 아테네, 에로스가 매달려 있는 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헤라다.

 

...뭐 이런 그림이 수백점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끈 그림 한 점.

 

 

 

멜렌데스라는 화가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엘 그레코의 유명한 그림 제목과 같다.

 

내용은 같다. 오르가스라는 백작이 선행을 많이 하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덕분에 그의 매장 현장에 이미 죽은 성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엘 그레코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이 사람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사람들의 놀라움이 '오오, 성인이 나타나다니, 역시 백작님은 위대한 분이셨어!' 라는 식의 것이라기 보다는 '으악! 유령이 나타났다!' 인 것 같아 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비슷한 그림이라 놀랐다는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가 무슨 미술에 조예 깨나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냥 호기심일 뿐.

 

이 미술관에서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벨라스케스의 '여관들(시녀들)'. '사진 찍지 말라'를 모토로 하고 있는 미술관이지만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굉장히 사진 찍기 좋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닥 통제하려는 시도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는 포즈를 취한 사람에게 그냥 씩 웃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관들'이 있는 방만큼은 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통제를 하더라는. 그래서 문 밖에서 살짝 분위기 사진만 찍었다.

 

 

 

역시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승리(술꾼들)'이 있는 곳. 소심하게 멀리서...

 

직접 가까이서 그림을 보면 볼수록 벨라스케스는 천재라는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로 천재냐 하면...

 

약 400년 뒤에 태어날 미래의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왼쪽은 프라도에 있는 '세바스찬 모라의 초상'이라는 난쟁이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왕좌의 게임'을 보시는 분이라면 너무도 잘 아실 배우 피터 딘클리지.

 

그림을 보고 허걱,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가 저렇게 비교 사진까지 만들어 올려 놨다.

 

 

 

너무나도 광활하고 볼게 많은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서 일찍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자면, 이 미술관에서 뭐니 뭐니 해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관 만큼은 놓쳐선 안된다고 하고 싶다.

 

고야는 일찍부터 화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화가로 인정받은 초기 작품들은 사실 소박하다고 할 정도로 나이브한 느낌이 강하다. 농촌 정경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네 잔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그가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한 만년에는 그림 자체가 바뀐다. 위에 가져다 놓은 '크로노스'도 대표적인 이 시기의 작품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를 해치는 자식이 나온다는 예언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이런 어두운 심성을 표현한 시기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인간의 악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고야의 필치가 가슴을 뻥 뚫는 느낌을 준다. 전관, 수백점의 그림을 보더라도 고야의 블랙 페인팅 컬렉션 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없었다.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팁: 프라도에서 벨라스케스 관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전시실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한적한 공간도 있다.

 

 

미술관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관 카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슬슬 이런 카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꽤 오후에 미술관을 찾아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왔더니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와 보니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행렬. 아.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시위 때문에 도로 교통이 마비되어 어찌 어찌 하다가 호텔로 귀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다.

 

 

 

 

 

 

호텔 야경과 함께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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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띄엄띄엄 올린 데 대한 사죄의 말씀. 어쨌든 1년 내에는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세비야 여행 중 스페인 광장은 좀 계륵같은 존재다. '김태희가 CF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실 역사적인 유적도 아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성 공간이다. 다만 사진이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어머나 너 정말 유럽 갔다 왔구나'라는 평을 확실히 들을 수 있다.

 

그런 고민 끝에 아무튼 한번은 들러 보기로 했다. 카테드랄 앞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가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은 트램을 타는 것. 택시를 타려 해도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 나가야 한다(카테드랄 주변은 도보 전용 구역이다).

 

걷는다 해도 30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긴 하지만, 체력 보호를 위해 트램을 타기로 한다. 처음 세비아에 도착할 때 버스에서 내린 곳,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앞에서 내리면 된다.

 

 

 

깔끔한 내부.

 

정류장에서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표를 사게 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나면 검표를 위한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우 대개 '어쩌다 한번 검표 작업을 하는데 걸리면 50배 변상' 뭐 이런 규정이 있는 게 보통이다.

 

 

갈 때는 착하게 표를 샀는데 오는 길에는 자판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의지의 문제인지도...)

 

뭐 1.5유로 짜리 표를 아끼려고 한 건 아닌데.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바로 앞에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이 있다. 느낌상 이 공원이 터미널보다 먼저 생긴 듯.

 

공원은 해만 지면 바로 우범지역으로 변신할 것 같은 을씨년스런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아 저렇게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펼치는 청소년! 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트램을 하차해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을 가로지르면 바로 스페인광장의 문에 해당한다.

 

아니 광장이라더니 웬 문, 하시는 분들은 일단 문을 통과해 보시면 안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거라 감흥은 없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 으리으리...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정경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런 반원형의 긴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양쪽에 이렇게 큰 탑이 스페인 광장의 상징 역할을 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면 꽤 그럴싸 하다.

 

 

 

다리와 운하도 그럴 듯. 운하에서 노 저어 주는 사공도 있다.

 

 

장난을 쳐 보면 이런 느낌.

 

 

그리고 맨 아래층엔 빙 둘러서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한 칸씩 타일로 꾸몄다.

 

대개 자신이 다녀온 도시들 사진을 하나씩 찍어 오곤 한다.

 

관광객의 전통을 따랐다.

 

 

 

관광객의 자세에 충실하게.

 

 

 

왠지 카메라에 있는 장난 기능을 마구 써보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수시로 광장을 드나든다.

 

 

자동차는 매연을 남기고, 마차는 말의 **를 남긴다.

 

마른 **가 부서져 있다. 아기가 만지려 다가가자 엄마가 질색을 한다.

 

 

 

아무튼 사진 찍고 잠시 돌아보기엔 그럴 듯 한 곳이다.

 

해지고 저녁식사 후, 예정대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카테드랄에서 남쪽으로 죽 걸어가면 강가에 투우장이 나온다.

 

 

투우장 정문. 웬만한 축구장 규모다.

 

투우장 바로 옆에 유명하다는 플라멩코 공연장 El Patio Sevillano 가 있다.

 

 

 

 

 

뭔가 샤갈 풍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매일 밤 19시와 21시30분에 90분씩 공연을 한다. 

 

늦은 시간에 더 좋은 출연진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뒷시간으로 예약. 민박집을 통해서 예약하면 성인 요금 38유로를 35유로로 할인받을 수 있다. 음료 한 잔이 제공되고, 3 course dinner를 함께 할 수 있는 상품도 있는데 그닥 밥을 먹으면서 보고 싶은 공연은 아니다.

 

여기는 음료 손님이 앞쪽에 앉고 식사 손님이 뒤쪽에 앉는데, 경우에 따라선 식사 손님이 앞줄인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플라멩코 공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힘차게 발을 구를 때마다 무대의 마루바닥에서 적잖게 먼지가 일어난다.

 

식사를 즐기며 공연을 보실 분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실 문제.^

 

 

공연장 앞길. 붐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관광객들이 꽤 들어차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 성수기 때에는 2층 양 옆의 테라스 같은 좌석까지 빽빽하게 찬다고 한다.

 

공연 시작. 특별히 줄거리가 있는 공연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에 따라 1인무, 2인무, 4인무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첫번째 나온 출연자가 계속 박자를 틀리고,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4인무부터 뭔가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오른쪽의 분홍색 치마 입은 분이 첫번째 독무자로 나와 기대를 꺾은 분.

 

동행인은 내 귀에 대고 "저 사람은 취미교실에서 온 것 같지 않아?" 라는 독설을.

 

반면 맨 왼쪽, 배우 션 빈을 살짝 닮은 양반은 테크닉도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의 공연을 보여줬다.

 

 

이 공연장의 2인자로 보이는 이분. 한국의 지인을 닮아 깜짝 놀랐다.

 

 

 

 

 

 

남자 솔로를 지나, 이 공연장의 간판으로 보이는 분이 나섰다.

 

 

 

 

최소 40년 경력은 되어 보이는 이분. 확실히 포스가 달랐다.

 

파워보다는 관록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탁월했다. 진정 박수.

 

 

 

1인무, 2인무, 4인무 식으로 펼쳐지다가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테마를 이용한 간략 무용극이 공연되고, 이어 전체 무용수들이 등장해 각자의 개인기를 펼쳐 보이는 마무리를 통해 공연이 끝났다.

 

 

역시 '스승님'의 포스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스승님'의 관록과 노련미가 끌고 가는 공연이라는 느낌. 하지만 몇몇 공연자들은 정말 머릿수를 채우러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 사이에 기량 차가 적지 않았다.

 

아울러 전체 공연의 느낌이 흔히 플라멩코에 기대하는 어둡고 비장한 느낌을 완전히 배제한, 밝고 명랑한 공연이란 점이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우연히 그라나다에서 동굴 플라멩코를 보고 오신 분을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이 분이 그라나다에서 설명 듣기로는 "그라나다 플라멩코는 집시 문화의 영향으로 페이소스가 짙은 춤을 보여주지만, 세비야는 본래 술집에서의 여흥을 위한 댄스가 발달해 발랄하고 화려한 공연을 우선으로 한다"고 하더란다.

 

혹자는 세비아에서 가장 좋은 공연을 하는 El Arenal 이 아니어서 실망했을 거라고도 한다. 물론 평을 보면 El Patio Sevillano의 공연이 좋았다는 분도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을 듯 하다.

 

아마도 바르셀로나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이 워낙 훌륭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카탈루냐 음악당,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http://fivecard.joins.com/1197

 

 

 

 

공연을 보고 세비야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시가의 골목들이 아름답다.

 

해가 뜨면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아쉬울 뿐.

 

 

 

 

그래도 아직 마드리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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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다가왔습니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휴가를 일찍 가게 된 해는 다녀오고 나면 남들 가는 휴가가 그렇게 부럽더군요.^^

 

게다가 달력에 7자만 박혀도 어찌나 항공권이며 호텔 요금이 폭등을 하는지. 대부분의 국제선 항공요금은 8월15일을 경계로 정상가로 돌아옵니다(뭐 안 그런 회사도 많이 있죠). 국내 피서지도 8월하순이면 조금씩 한적해지기 시작합니다. 적절하게 늦은 휴가를 가시는 것도 생활의 지혜.

 

물론 '아이들 학원 방학할 때' 무조건 휴가를 가셔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들이야 누가 거들 수가 없지만. 그런데 모든 생활이 '아이들 학원'에 맞춰지는 삶은 좀 우울하시지 않을까요. 그런 분들에게도 문화생활이 필요합니다.

 

7월편. 아주 유명한 퓰리처상 수상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1997년 로스토프에서 춤추는 옐친의 모습입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7월의 문화가이드 (2014)

 

덥지? 산과 바다로, 혹은 공항으로 떠날 마음이 부푸는 달이야. 물론 그런 달이라고 해서 문화생활을 거르면 곤란해. 그리고 작년에도 했던 얘기지만, 도시의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문화공간이야.

 

일단 이달의 추천 공연은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발. 시작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를 줄여 여우락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한국 전통 음악의 현대화라는 그릇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무대가 됐어.

 

 

 

10개의 공연 가운데 추천 1번은 뭐니뭐니해도 양방언과 그 주변의 ‘Various Artists’ 들이 펼치는 여우락 판타지’. 7 4일과 5,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에서 열려. 그 다음은 25일과 26일에 열리는 여우락 올스타즈’. 양방언을 비롯해 정재일, 강태환, 최희선, 사이토 테츠 등 이번 페스티발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한 무대에 서는 공연이야.

 

이런 공연들이 모두 3만원 균일. 10개 공연 중 5개를 9만원에 볼 수 있는 패키지도 있어. 다들 관심을 가져 볼 만 할거야. 아무튼 잘 골라서 두 공연에 6만원 정도는 투자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

 

아니면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7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재즈 피아니스트 피터 베이츠의 ‘Opera Meets the Jazz’ 공연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베이츠(Beets 라고 쓰고 베이츠라고 읽어.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그래)가 이번엔 클래식 리메이크를 주제로 펼치는 공연이야. 다 좋은데 좌석이 11만원부터라 좀 비싸. 물론 33천원짜리 B석도 있어.

 

7월은 12월과 함께 전시가 풍성해지는 계절이지. 방학을 끼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일단 에드바르드 뭉크 전과 퓰리처상 사진전에 눈길이 가.

 

 

 

현대미술 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을 꼼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를 꼽을 거야. 절규를 포함한 에드바르드 뭉크 전이 73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뭉크미술관과의 협력으로 이뤄진 전시라니까 기대할 만 할 것 같아. 1012일까지. 15000.

 

방학맞이 전시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도 빠뜨릴 수 없지. 이미 지난 1998년과 2010년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던 전시지만 이번엔 작품 수가 145점에서 234점으로 늘었어. 전시 속의 전시라고 할 수 있는 맥스 데스포 특별전, ‘6.25-잊혀진 전쟁도 관심이 가네. 12000. 914일 까지.

 

 

 

이달의 책은 이노우에 아레노의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처음엔 60세 전후의 여성 세명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아니 그런 얘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펼치면 분명히 달라질 거야.

 

이제 60세 전후의 여성을 만나할머니라고 부르면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르는 시대야. 아들 딸이 시집 장가를 가서 손주를 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예전의할머니들이 갖고 있던 위치에 올려 놓을 사람은 거의 없지.

 

이 책에 나오는 세누나들도 마찬가지. 이혼녀인 코코, 남편과 사별한 이쿠코, 평생 짝사랑만 해 본 마쓰코는 아직도 마음 속에는 소녀가 살고 있어. 그리고 이들과 이런 저런 사연으로 연결되는 꽃미남 총각도 나와. ‘꽃보다 누나의 생활 버전이라고나 할까. 인터넷 서점에선 1만원 내외에 살 수 있어.

 

 

한 권 더 추천하자면 그레임 심시언의 로지 프로젝트가 있어. 남자주인공 틸먼은 일단 얼굴도 잘 생기고, 직업도 교수인 A급 조건의 독신남. 그런데 문제가 있어. 아스퍼거 증후군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질 못해. 슈퍼 이성을 갖고 있어 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문제는 늘 지나치게 이성적으로만판단한다는 거지.

 

그의 인생에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여자 로지가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야. 물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도 틸먼의 기준이고, 여기에도 반전이 있지만 아무튼 일단 모르고 읽는게 더 재미있을 거야. 미드 빅뱅 이론이나 일본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강추 2만배. 가격은 역시 인터넷으로 11000원 정도.

 

약간 과용했나? 에어컨 바람 조심하고, 8월은 락페 스케줄도 체크해 봐. 그럼 안녕.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발 (74~) 공연당 전석 3만원

예술의전당 피터 베이츠, ‘Opera Meets the Jazz’  B 33000

에드바르드 뭉크 전(73~)                   15000

퓰리처상 사진전(624~)                     12000

이노우에 아레노,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1만원

그레임 심시언, ‘로지 프로젝트                     11000

 

합계 111000

 

 

이번 달엔 굳이 더 토를 달 부분이 없어 보입니다. 즐거운 7월 보내시고, 8월에.

 

이제는 다들 익숙하실 양방언의 Frontier로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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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전지현 생수 광고 해지 논란]

 

난데없이 한류스타 김수현과 전지현이 생수 광고 때문에 뜻하지 않은 화제의 중심이 됐더군요.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인기 상종가를 달리던 이들이 중국 생수 광고에 출연한게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게 큰 파문이 되면서 두 스타는 수십억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광고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용을 읽어 보니 쓴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헝다 생수 업체의 원산지 표기가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고,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북공정의 무시무시한 함의가 들어 있는 호칭이라는 주장이군요.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사전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장백산

 

[명사] 장빠이산(長白山). 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


2014년 6월. 김수현과 전지현이 한 편의 광고 때문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최근 중국의 헝다(恒大)그룹 계열 생수 업체의 모델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데 일각에서 두 한류스타가 이 광고에 출연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을 제기했다. 이 생수 제품의 취수원이 백두산인데, 백두산 대신 ‘장백산’이란 이름이 표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를 들어 보면 이렇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장백산을 ‘중국 10대 명산’에 포함시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이름을 장백산으로 못박아 놓고 ‘자기네만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니 생수 산지를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표기하는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행위라는 주장이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일파만파로 번져갔고, 부담을 느낀 전지현과 김수현이 해당 생수 업체에 광고 모델 계약 철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실관계를 따져 보면 참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백두산, 혹은 장백산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천지라는 거대한 화산호가 있고 최고봉은 장군봉 혹은 병사봉이라고 불리며, 높이는 해발 2744m다. 많은 사학자들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개국한 태백산 신시가 바로 백두산 기슭이라고 보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불함문화론’을 저술하기도 했다. 불함산도 백두산을 가리키는 별칭 중 하나다.

 

 


뭐니뭐니해도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가사를 보든, 북한에서 사실상 국가와 맞먹는 무게를 가진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장백산 줄기줄기'로 시작된다는 점을 보든  이 산이 한국인의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민족만이 이 산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청을 건국한 누루하치는 자신들 만주족의 시조는 백두산 천지에 내려와 목욕하던 천녀가 신령한 열매를 먹고 낳은 아이라고 선언했다. 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조상 아이신고로(愛新覺羅) 씨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포함해 만주 지역을 영유했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섬기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다산 정약용도 지인 신광하에게 준 글에서 ‘백두산은 산해경에 불함산, 각종 지리지에는 장백산으로 소개된다’며 ‘청 황제가 전통적인 명산을 말하는 오악(五嶽)에 백두산을 더해 육악으로 삼고, 때를 맞춰 제사를 지내니 존귀함과 중대함이 옛날에 비할 비가 아니다’라고 했다. 백두산, 아니 장백산이 중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산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국경 지역의 산이나 강이 국가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른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이루는 알프스 산백의 남쪽 연봉들을 가리켜 오스트리아에서는 쥐트티롤(Südtirol), 즉 남 티롤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돌로미티(Dolomiti)라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쪽 끝 경계를 이루는 강은 중국에서는 헤이룽강(黑龍江), 러시아에서는 아무르(Amur)강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이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동북공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거의 천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에 의해 흔히 사용됐다. 위에서 거론한 다산 정약용 뿐만이 아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은 ‘곡주공관신루기(谷州公館新樓記)’에서 "우리 나라의 영토는 삼면이 큰 바다에 닿았고, 북쪽으로는 장백산에 이른다(我國壤地。三面大海。北連長白山)"고 썼다.

 

 

 


1458년 신숙주가 집필한 ‘국조보감’의 세조 초 기록에도 “삼각산을 중악, 금강산을 동악, 구월산을 서악으로, 지리산을 남악으로, 장백산을 북악으로 삼자고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같은 산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백두산이 95회, 장백산이 40회 나온다.

 

1712년, 청태종은 사신 목극등 등을 보내 백두산을 기준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을 구분하는 정계비를 세우게 했다. 여기에는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 즉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송화강의 상류)을 국경으로 삼는다고 명기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두만강 이북의 광활한 간도 지역을 조선 땅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청은 이 토문강은 발음이 비슷한 두만강이라고 우기며 간도 탈취의 야욕을 불태웠고 1909년 일본은 만주 철도 이권을 차지하는 대가로 간도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해버린다. 이 간도협약이 체결되고 일제시대를 맞으면서 두만강 이북의 우리 강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62년 북한과 중국 정부가 맺은 변계조약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 선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힘에 의해 실제 영토가 왔다 갔다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한낱 생수병의 원산지 명칭이 그 나라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법석을 떨어 봐야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그 생수 광고에 출연한 한국 연예인을 놓고 역사 의식이 없다며 훈계하는게 가당한 일일까. 심지어 그 명칭은 수천년 동안 한-중 양국이 공유했던 이름인데 말이다.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끝]

 

 

 

 

 

 

 

 

그러니까 이 생수 광고 출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마치 '장백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중국이 '한국인의 영산'인 백두산을 빼앗기 위해 날조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두산-장백산의 관계가 독도-다케시마의 관계인 것처럼 본다는 얘기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백두산은 영토 분쟁지역도 아니고, 중국과 한국(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산입니다.

 

윗글을 읽고 나서, 동북공정의 장착 유무를 떠나, 대체 정상적인 중국 생수 제조 업체라면 그 생수의 원산지 이름을 어디로 표기해야 할 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나라에서 쓰는 이름인지, 아니면 남의 나라에서 쓰는 이름이어야 할지.

 

현재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절반 정도는 중국 땅, 나머지 절반이 북한 땅으로(정확하게는 천지의 54.5%는 북한 것이고, 나머지 45.5%가 중국 땅이라고 합니다)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백두산 정계비를 우리 쪽 주장대로 해석해도 백두산의 30%는 중국 땅이었던 셈입니다만, 어쨌든 현재 백두산의 일부가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남한에 사는 한국인들도 백두산을 관광하러 갈 수 있습니다. 말하지면 그 분들도 백두산을 오른 것은 아니죠. 장백산을 오른 겁니다.

 

 

 

 

어쨌거나 생수 이름이 장백산인 것도 아니고, 그저 취수원이 장백산이라고 표기된 생수의 광고에만 출연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걸 근거로 전지현이나 김수현이 생수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 무슨 역사의식이 결여된 행동이라거나, 매국적인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얘기죠.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지금 막 일고 있는 중국 내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마도 '1박2일'의 '백두산을 가다' 편이 준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도 곳곳에 '장백산'이 붙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바보같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주장하실 셈인가요.

 

 

 

 

 

 

 

 

 

 

자, 이제 다들 냉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길어서 이해 못하는 분이 있을까봐 정리해 드립니다.

 

1. 백두산은 옛날부터 한-중 양국에서 장백산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그냥 장백산이라고 불러도 된다.

 

2. 만주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숭상했다. 한국인에게만 백두산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3. 동북공정이 문제 없다는 것은 아니나, 생수의 원산지 표기 때문에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4. 그러니 김수현 전지현 욕하지 말고, 이 기회에 제발 역사에 관심 좀 가져라.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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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감 자체와 왔다갔다 하는 상황.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일(약간의 노가다성)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군요.

 

아무튼 너무 허물치 마시길...

 

올립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6월의 문화가이드

 

 

세월호의 충격으로 아직 온 나라가 어두워. 공연예술계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그 여파로 꽁꽁 얼어붙은 듯 해. 거액의 달러 빚을 내서 폴 매카트니 옹의 내한공연을 예매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취소로 허탈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런 분위기에서 힐링을 위한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5일 있었던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이었지만 이건 몇 달 전부터 매진 사례(이번 달 이 칼럼이 지각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해).

 

그래도 6월의 볼거리로 우선 추천하고 싶은 건 트럼페터 앨리슨 발솜의 내한 공연이야. 클래식계의 속성상 미녀 연주자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각 음반사에서도 스타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또 그렇게 키워진 스타들은외모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아무튼 발솜은 2013년 그라모폰 어워드 수상자야.

 

61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공연. 개인적으로 트럼펫 만큼 대중친화력을 가진 악기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를 보면 정말 그런 느낌이 들 거야.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3악장이 왕년장학퀴즈의 테마로 유명하지), 코플랜드의시민을 위한 팡파레(제목은 낯설지 모르지만 들어 보면 무조건 아는 곡이야)’ 등이 연주돼. 물론 피아졸라의리베르탕고를 어떻게 트럼펫으로 소화할지 궁금하기도 하지. 5만원 짜리 B석 추천.

 

 

 

 

 

또 하나. 6월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 줄 공연으로 7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고란 브레고비치의집시를 위한 샴페인을 추천하고 싶어. ‘집시 음악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건 뭔가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담았으면서도 미친 듯이 흥겹고,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는그런 강렬한 느낌이지(나만 그런가?).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집시 음악은 사라사테의지고이네르바이젠을 비롯해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이 수용한 집시 음악인데, 지휘자 이반 피셔나 렌드바이 부자 같은 헝가리 출신 음악인들이 그 정서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 왔어. 그런데 브레고비치는 같은 동유럽이긴 하지만 세르비아 출신이야.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틀에 수용되지 않은진짜 집시 음악의 계승자로 평가받는 인물이야. 궁금한 사람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과 브레고비치가 같이 작업한 영화 ‘집시의 시간이나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찾아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티켓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아. 8만원에서 4만원 사이. 우리는 당연히 4만원 짜리 A석을 선택해야겠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맨 앞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밴드와 눈을 맞추며 흥겹게 춤춰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예산을 많이 소진했네. 이달의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최민우 저, ‘뮤지컬 사회학이야. 제목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그만치 정공법으로 쓰여진 책이야. “뮤지컬, 아니, ‘한국 뮤지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봐라는 자부심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한국 뮤지컬 시장은 알면 알수록 희한한 시장이야. 뮤지컬 관객 수는 매년 폭증한다고 하는데 그럼 한국을 대표하는 국산 뮤지컬은 뭘까. 2009오페라의 유령 30만을 넘는 관객수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한 작품을 300번씩 보는 마니아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라고 본다면 대체 한국의 뮤지컬 시장규모는 얼마로 봐야 할까. 대체 왜 뮤지컬 한 편의 남자 주인공으로 네 배우가 돌아가며 출연할까.

 

이런 희한한 시장이 만들어진 원인과, 그 시장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단언컨대 이렇게 속 시원한 답을 주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을거야. 특히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팬덤 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주로 조승우 vs 김준수)도 압권. 이 칼럼을 읽을 정도의 대한민국 문화인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어. 인터넷 가격 1 2천원 정도.

 

뭔가 이번 달엔 평소 기준으로 약간 비싼 볼거리들을 추천해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무료 전시 추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월부터아시아 미술 신소장품전을 하고 있는데 622일이면 끝나. 그 전에 다들 챙겨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한국 유물만 전시하는 건 아니야. 아시아 각국의 보물들을 사들여 소장하기도 하는데, 그중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선보이는 기회야.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기본 관람료가 무료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이번 기회에 한번씩 들러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참고로 유료 전시인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12000)도 같이 하고 있어(이건 편법 추천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이번 달은 월드컵의 달이네. 지구 정 반대편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 거리 응원은 커녕 중계방송 시청도 좀 곤란할 것 같아. 너무 밤 새고 무리하지 말고, 7월에 만나.

 

67, 고란 브레고비치 - 집시를 위한 샴페인   A 4만원

611, 트럼페터 앨리슨 발솜 공연             B 5만원

최민우, 뮤지컬 사회학                            12천원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미술 신소장품전           무료

 

 

집시 음악이라면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집시의 바이올린이란 어떤 걸까. http://fivecard.joins.com/139

 

세월은 빨라서 벌써 이게 6년 전. 그런데 놀랍게도 저 글에서 언급한, 그날 들은 그 연주를 유튜브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반 피셔가 지휘하는 BFO, 협연은 렌드바이 부자.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 바이젠. 2008년 8월23일 에딘버러 어셔 홀입니다.

 

 

 

 

 

저 박수갈채 속에 제 박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못 감동적이군요.^

 

물론 대중음악으로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집시 킹스 형님들을 빼놓고 얘기하면 서운하겠죠.

 

 

 

 

집시 킹스에 명성으로 밀린다면 서운할 고란 브레고비치.

 

저 'Volare'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유명한 멜로디, 'Bella Ciao'.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추억의 테마인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으로 마무리.

 

 

 

의외로 트럼펫 계에 미녀 연주자들이 많군요. 이건 멜리사 베네마의 연주입니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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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이라는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김수현 김정수 정성주에서 김은숙 홍자매에 이르기까지, 여성 일색인 한국 드라마의 스타 작가 그룹에서 정말 몇 안되는 남성 작가로서(물론 정하연 최완규 작가가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필명을 날리고 있는 대형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드라마를 좋아하시던 분들이라면 대개 40대 이상일겁니다. 도지원과 양동근(!)의 실질적 데뷔작인 '서울뚝배기(1990)'를 비롯해서 최민식 한석규 채시라 트리오가 빛났던 1994년의 '서울의 달', '차력 연기자' 이상인을 하루아침에 국민 스타로 만들어 버린 '파랑새는 있다'(1997) 까지가 이 분의 황금기였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오늘날까지도 효과 있는 백윤식의 도사형 캐릭터도 바로 이 '파랑새는 있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이 분이 그 이후라고 그냥 쉬신 건 결코 아닙니다. 3년 전에도 천정명 이상윤 주연의 퓨전 사극 '짝패'로 건재를 과시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벌집 같은 쪽방이 나오고,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늘진 사람들이 나와야 진정한 '김운경 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칠맛 나는 대사들을 톡톡 터뜨려 주는 재능 있는 연기자들도 그리웠습니다. '김운경 드라마'는 역시 꽃미남 꽃미녀는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쏙쏙 뽑아먹는 신 스틸러들이 함께 할 때 제 맛이 나죠.

 

그런데 그런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유나의 거리'는 눈에 뻔히 보이듯, 유나라는 여자 주인공(김옥빈)의 이야기입니다.

 

 

 

 

 

유나의 직업은 소매치기. 그것도 업계에서 에이스로 통하는 소매치기죠. 아버지(임현식)의 뒤를 이은 2대 소매치기인 셈인데, 징역도 산 적이 있지만 어쨌든 소매치기 본능을 끊을 수 없는 천부적인 소매치기입니다. (뒤에 대사에도 나옵니다. "소매치기 중에 끊을 수 있는 소매치기도 있고 못 끊는 소매치기도 있는데, 걔는 절대 못 끊어")

 

 

 

 

그리고 유나의 반대편에는 이 세상에 절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착한 남자'가 있습니다. 착한 남자라고 해서 연약하고, 감성 충만하고, 늘 세상에 불쌍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질질 짜고 하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가진 것 없지만 절대 비관하지 않고,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알고 보면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훌륭한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 창만(이희준)의 눈에 비친, 예쁘고 발랄한 유나는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존재입니다.

 

 

 

유나와 창만이 세들어 사는 다가구주택(뭐 흔히 벌집이라고 불리는 집들입니다)과 콜라텍을 운영하고 있는 한사장 역의 이문식. 왕년 '공공의 적'에 나오는 산수 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이문식이 오랜만에 건달 출신의 사업가(...)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사장 부인 홍여사 역은 김희정.

 

 

 

 

왕년의 장도끼 장노인 역에는 정종준. "마사까리. 난 도끼 들고 다닌 적이 없어. 그런데도 왜놈들이 나보고 마사까리라고 불렀어. 왜? 내가 도끼 눈이라는거야. 싸움은 눈으로 하는 거야." 젊어서 명동 이화룡의 오른팔이었다는 장노인은 지금은 늙고 다리 한쪽이 불편한 채로 한사장에게 얹혀 사는 처지입니다. 집도 절도 식구도 없는 신세.

 

물론 한사장이 장노인을 모시고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노인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 냅니다. 그 비밀이 6회 이내에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노인 역할에 좀 더 체구는 작고 눈매가 매서운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했습니다만, 김운경 작가는 정종준이라는 배우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더군요. 물론 그 연기력에 의심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왕년의 부패 형사 봉반장. 한사장과는 범인과 형사로 쫓고 쫓기던 악연이 있고, 지금은 왕년의 유명 소매치기(유나의 선배)와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형사 어네스트 보그나인 커플을 연상케 하는 조합이죠.

 

아무튼 형사 시절 범죄자들을 뜯어먹어 '봉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찌질한 품성. 그 때문에 아내와 유나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합니다.

 

 

 

 

 

한사장의 처남. 일명 개삼촌(조희봉). 사람보다 개를 좋아하며, 옥상에서 개 키우는 게 주 업무입니다. 하지만 건달인 매형을 믿고 설치다 주로 맞고 멍 빼는게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뒤로 가면 기가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보다 개랑 더 친해서 개랑만 논다고? 사실은 개들도 쟤 싫어해. 맨날 물리고 그래."

 

 

 

사실 저 위에 있는 기라성같은 신 스틸러들과 비교할 짬밥은 아니지만, 극중 역할의 비중 때문에 포스터 멤버에 들었습니다. 남수 역의 강신효. 유나보다 한참 떨어지는 실력과 경력의 소매치기라서 어떻게든 유나를 자기 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도 인생의 목표가 확고해 '소매치기는 마흔살까지만' 이라는 신념으로 일하는 소신파.

 

얼마 전 이준 주연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보다가 이준의 친구(매니저) 역인 강신효를 처음 봤습니다. 연기는 아직 맘먹은 대로 안 되는 듯 하지만, 남자다운 눈빛. 머잖아 제몫을 할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일곱 장의 포스터 멤버(개인샷으로 포스터가 있는 출연진) 외에도 출연진은 꽉 찬 라인업입니다.

 

 

 

유나의 룸메이트 미선(서유정)과 그 불륜 상대인 정사장(윤다훈). 사전 공개 영상에서 잠깐 보여 준 서유정의 막강 불륨은 왕년 맘보걸의 명성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몸매.

 

 

 

또 이분을 빼놓을 수 없겠죠. 유나의 아버지이며 전설적인 소매치기 역의 임현식.

 

 

 

마지막으로 한사장 딸 다영 역을 맡은, 은근히 팬이 많은 신소율까지. 이렇게 '유나의 거리' 라인업이 펼쳐집니다.

 

 

 

물론 드라마의 스타일이 다르고, 주 소구층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 주 끝난 '밀회'에 비해 손색 없는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특히나 한번 두번 씹어도 단물이 흐르는 듯한 대사의 맛은 당대 최고 수준이죠. 그리고 그런 대사들을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살려내는 신 스틸러들이 즐비한 라인업. 특히 툭툭 던지는 듯한 이희준의 말투를 처음 들었을 때, 이 대사가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회의 숨은 얘기 하나. 본래 대본에는 창만이 유나에게 "다들 날 보고 장동건 닮았다고 그래요"라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이희준이 '이병헌'으로 굳이 바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들 '이병헌 닮았다'고들 했다는군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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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입니다. 좀 늦었습니다. 연휴와 함께 약간 게을러진;;

 

기온의 급강하/급상승으로 인한 감기 몸살 환자가 급증하는 시절입니다. 유의하시길.

 

그럼 시작합니다. 다행히 아직 지나간 추천 무대는 없군요.

 

세월호 사태 이전에 마감된 글이라 거기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네. 이 칼럼은 이쪽으로 가져오기 전에 주간 '매거진M'의 끝에서 두번째 페이지에 실립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마감이 빠릅니다.^^;; )

 

그때문에 너무 태평스럽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5월의 문화 가이드 (2014)

 

결혼 안 한 분들은 상관 없겠지만, 아이 키우는 분들에게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때문에 가외 지출로 마음이 무거운 달이야. 보통 사람들은 어린이날의 놀이공원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인파와 교통체증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게 되지만, 평소 바빠서 아이들 잘 못 돌보는 분들은 그런 고통의 현창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목말을 태워 데려가야 죄책감을 덜 수 있다고들 해.

 

이런 분들에게 공연이며 문화생활을 얘기하는 건 너무 대단한 사치일 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식의 희생을 아이들이 모두 기억하고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착각이 아닐까 싶어.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의 인생이 자신의 보람이 될 수는 없다고. 뭐 당장 아이들의 학교 성적에 신경이 곤두선 부모들에게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5월의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야.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여러 공연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지. 그 가운데서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할 만한 공연이 눈에 띄었어. 518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올 댓 재즈라는 공연이야.

(홈페이지는 http://www.seoulspringnew.org/2014-ko/ )

 

 

 

실내악축제의 다른 공연들이 5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어떤 스폰서가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공연만은 전석 2만원이야. 일단 가격면에서 눈길을 끄는데 공연의 내용도 대단히 대중적이야. 재즈의 고전이라면 바로 꼽히는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비롯해 다양한 미국 작곡가들의 곡이 연주돼. 출연진도 프랑스의 클라리넷 연주자 로망 귀요를 비롯해 최나경(플루트), 강동석(바이올린) 등 대단히 화려해. 일단 예매부터 하라고 권하고 싶어.

 

다음은 523,24일 열리는 국립극장의 오페라 돈 카를로’. 유럽 오페라계에선 소프라노를 찾으려면 발트해 연안으로 가고, 베이스를 찾으려면 한국으로 가라는 말이 있대. 이런 분위기를 만든 개척자로 누구나 강병운을 꼽지.

 

강병운은 바그너 오페라의 베이스로도 유명하지만, ‘돈 카를로의 필리페 2세 역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평을 듣는 분이야. 그가 이 역할을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연은 가치가 다르다고 봐. 그리고 연출자가 엘라이저 모신스키라는 것도 가슴 뛰는 일이지. 모신스키가 누구인지는 각자 검색해 보도록.

 

 1만원부터 12만원까지 표가 있는데, 5만원짜리 A석도 1층에 좌석이 있어. 그 정도는 투자할 만 하다고 봐.

 

날씨가 좋으니 야외로 나가는 것도 좋지. 517일과 24일에는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신세계 스퀘어)에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발 갈라 콘서트가 열려. 야외 무대인데 표는 어떻게 파냐고? 무료야. 마음 편히 와도 돼.

 

이 공연을 보러 오는 김에 전시를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것 같아. 여러 전시가 있지만 54일부터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쿠사마 야요이 전시가 눈에 띄네. 쿠사마 야요이가 누구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을텐데, 포털에서 저 이름을 검색하면 바로 점박이 호박 사진이 뜰 거야. 그 호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

 

문득 기사를 보다가 발견한 건데 2014 47일은 르완다 대학살 사태가 마무리된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어. 크게 관심 없는 사람도 대강은 아는 얘기일거야. 민족분쟁으로 100만명 이상이 살해당한 사태 말이지.

 

그런 비극을 겪은 르완다가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보도도 있던데, 불행히도 중부 아프리카 전체를 놓고 보면 비극은 현재진행형이야. 자원 수탈을 위한 선진국들의 지원 아래 수많은 무장집단들이 끔찍한 학살극을 계속 펼치고 있고, 만년필보다 총이 흔하다는 지경이 끝날 줄을 모른다는 거지. ‘호텔 르완다블러드 다이아몬드같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대략 짐작할 수 있을거야.

 

이런 사태들에서 시작해 지독한 환경오염이나 핵 발전소 사고 같은 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인류가 지구의 주인입네 할 자격이 있는 종()인지를 의심하게 돼.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의 출발점도 여기가 아닌가 싶은 거지.

 

이미 2년 된 책이라 읽은 사람도 꽤 있겠지만, 올해 5월엔(4월은 지나갔으니까) 한번 추천하고 싶은 책이야. 그리고 2년 지나는 사이 가격도 많이 떨어졌어. 처음엔 15천원 선이었지만 지금 사면 9천원, 잘 찾아 보면 7천원대로 파는 온라인 서점도 꽤 있어.

 

수입 생맥주 한잔 값도 안 돼. 물론 술 한잔에 좋은 사람들 사귀고 인생에 도움 될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겠지만, 절대 책값이 비싸서 책 못 읽는다는 얘기는 하지 말도록. 그럼 6월에 만나.

 

 

523~24일 오페라 돈 카를로’, 국립극장                  A 5만원

518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올 댓 재즈’, LG아트센터       전석 2만원

54~  쿠사마 야요이 전. 한가람미술관                    15000

517, 24  서울 오페라페스티발 갈라콘서트, 예술의전당 야외무대      무료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소설                           7000~9000

 

 

 

 

위에서 말한 호박이란 못 보신 분이 없을 바로 이 호박이구요.

 

 

 

쿠사마 여사의 상징인 저 땡땡 무늬는 루이 뷔통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김남주가 입고 있는 의상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뭐 다들 잘 아실테니 호박 얘기는 여기까지.

 

성악가 강병운에 대해서도 감히 아는 척 하는게 민망합니다. 10년 쯤 전만 해도 "유럽 무대에서 각광받은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현지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며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스마트 월드가 된 이후에는 현지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면서 이런 얘기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강병운의 경우엔 너무 일찍 유럽 무대에서 각광받는 바람에(혹은 주인공인 테너만 중요한 역이라고 간주되면서) 그 위력이 국내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이로이트 홈페이지의 '강병운 Philip Kang' https://www.bayreuther-festspiele.de/fsdb_en/personen/165/index.htm 페이지를 한번 보시면 8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파프너와 훈딩 역은 거의 그의 전유물이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대부분의 레퍼토리가 바그너 영역이긴 합니다만, 그 기록엔 1990년 안트워프에서 돈 카를로의 필리페(필립) 2세 역할을 한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페이지 https://www.bayreuther-festspiele.de/fsdb_en/personen/421/index.htm 나  https://www.bayreuther-festspiele.de/fsdb_en/personen/160/index.htm   를 보시면 이런 분들의 활약 앞에 거대한 선배의 영역 개척이 있었다는 걸 훨씬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베르디의 후기 역작 돈 카를로 에 대해선 뭐 길게 설명하기도 그렇고, 가장 잘 알려진 1막(프랑스어 판에선 2막)의 2중창입니다. 평생을 약속하는 두 남자의 우정의 노래죠.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게 이 오페라는 어쨌든 한 여자를 사랑한 부자간의 갈등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돈 카를로 못잖게 아버지 필리페(필립) 2세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공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적인 왕의 고뇌를 그린 노래가 유명합니다.

 

 

 

 

이 오페라에는 묘하게도 에볼리 공주 역을 맡은 온갖 메조소프라노들을 좌절시키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저주받은 나의 미모'라는 제목의 노래죠. 노래가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목 때문에...

 

그 제목에 굴하지 않았던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

 

 

 

 

수많은 영상물 중에서도 카레라스-프레니-발차 등의 슈퍼 캐스트가 빛니난 카라얀 판이 지금껏 역대 최강으로 꼽히지만 워낙 명연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최근작이 갖는 선명한 영상의 강점을 포기하실 이유도 없을 듯. 갖고 있는 파바로티-데시-레이미의 무티 판도 어떤 분들은 파바로티가 너무 대충 불렀다며 욕하시지만 개인적으론 만족스럽습니다. 지난해 짤스부르크에서 공연된 카우프만-햄슨 판도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뭐 늘 하는 얘기지만 오페라를 즐기는 가장 싸고 효율적인 방법은 DVD를 이용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DVD라는 매체가 오페라를 위해서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 여담이지만 비슷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뮤지컬 부문에서는 아직 DVD가 그리 중요한 매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매우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글을 마감한 것이 세월호 사건 이전이라 '제노사이드'의 선정이 참 묘한 느낌을 줍니다.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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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피아노곡 소개]

 

'밀회' 3부 이후는 음악이 극의 중심이 아니어서 살짝 서운하셨던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7,8회는 음악의 역할이 다시 전면에 나섰습니다. "누가 뭐라구 그래! 음악이 갑이야" 라는 말씀대로. 특히나 강조된 곡은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본래 팬이 많은 곡이죠. 그밖에도 많은 곡들이 소개됐습니다. 더 쌓이기 전에 일단 4부 이후, 8부까지 쓰인 곡들을 정리합니다.

 

3부까지 쓰인 곡들은 이쪽 포스팅에 있습니다. http://5card.tistory.com/1246

 

 

 

 

자, 먼저 드라마 진행 순서대로. 5부에서 선재와 혜원이 듀엣으로 연주해 눈길을 끌었던 곡이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네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KV 521. '네개의 손' 시리즈가 슈베르트에 이어 펼쳐졌습니다.

 

 

 

1941년생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1971년생인 에프게니 키신. 30년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음악을 통해서는 연인 같은 화음을 들려줍니다. 특히 가끔씩 키신의 재능 - 한때 피아니스트의 새로운 세대를 개척한 신동이었죠 - 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돌아보는 아르헤리치의 미소를 보면, 어딘가 '밀회'의 모티브가 이 연주 동영상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음은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5부에선 제목만 언급되고 6부에서 선재가 입학 오디션을 위해서 연주하는 곡입니다. 정열적이고 파괴적인 곡이죠.

 

리스트는 아마도 최초로 그루피(groupie)를 거느렸던 피아니스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리스트.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유럽의 귀부인들이 마차를 빌려 연주 일정에 따라 유럽을 횡단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택시를 전세 내서 '오빠들'을 뒤쫓고 다닌다는 사생팬들의 행태와 그리 다를 게 없습니다. 그만치 리스트의 외모와 초절정의 기교가 눈부셨다는 얘기죠. 그가 작곡한 곡들도 자신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듯 화려한 테크닉을 가져야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라자르 베르만은 '다자키 쓰구루'를 읽어 보신 분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피아니스트.

(스페인 광시곡 이야기는 아래서 또 이어집니다.)

 

 

 

그리고 8부에선 대망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곡들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입니다. 파가니니는 사라사테와 함께 지금까지도 초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이죠. 피아노에서의 리스트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파가니니의 일생을 그린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스트(Paganini: The Devil's Violinist)의 한 장면. 바로 이 곡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파가니니가 당시 어떤 카리스마로 무대에 임했는지 느낄 수 있죠. 요즘의 록 기타리스트와 사실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실제로도 없었을 겁니다.

 

위 영상을 보면 저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6년작 전설의 영화 '크로스로드(Crossroads)'. 기타 소년 랄프 마치오가 우여곡절 끝에 '악마에게 혼을 판 기타리스트'와 대결을 펼입니다. 그런데 그 기타리스트가 바로 스티브 바이라는게 웃음의 포인트. 누가 봐도 진짜 '악마에게 혼을 판 것 같은' 바이의 초절정 연주 기교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마치오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기타로 변주해 멋지게 역전승을 따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여기.

 

 

 

리스트의 피아노 광시곡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광시곡이라는 제목에서 피아노 독주를 연상하시겠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광시곡답게 전통적인 협주곡의 악장 개념은 없고, 작게 나눠 24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죠. 특히 유명한 곡은 바로 18 변주입니다.

 

스티븐 허프(Hough)가 연주한 위 영상에서는 대략 20분 15초 부근부터 들으시면 여러분이 찾는 '바로 그 멜로디'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 듣기도 귀찮으신 분들은 아래 영상에서 딱 18번 변주만 들으시면 됩니다.

 

 

 

 

이 곡을 선재와 혜원이 연주하게 된 건, 두 사람이 국제 음악제 예심을 위해 DVD를 제작하기 위한 곡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혜원이 "너 협주곡 피아노 파트 다 외는 곡 뭐 있니?"라고 묻자 선재는 더듬 더듬 "슈만 협주곡하고...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변주곡" 이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이건 아마도 정성주 작가님의 사소한 실수인 듯 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입니다. '변주곡'이 아니죠. 정작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는 곡은 따로 있습니다. 브람스의 곡이죠. 바로 이 곡.)

 

 

 

 

이어집니다.

 

8부에선 협주곡 반주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선 혜원의 꾸지람에 그 자리를 모면해 보려던 선재가 "선생님, 그 손열음이 카푸스틴 치고 그렇게 일어날 때 좋았었는데..."하고 나름 애교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가서 찬물에 세수하고 와"라는 싸늘한 대답.

 

여기서 카푸스틴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 Nikolai Girshevich Kapustin 을 말합니다. 손열음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할 때 카푸스틴의 변주곡 41번을 연주했습니다. 그때 곡을 마무리하면서 벌떡 일어난 모습을 말하는 겁니다.

 

 

잘 아는 듯이 얘기하지만 저도 저렇게 벌떡 일어선 모습은 이번에 찾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손열음은 이때 위에서 언급한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도 연주했습니다. 여기서 은근히 선재가 손열음의 팬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마지막으로 8부에 소개된 '선재의 모짜르트 교과서' 님은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Maria Joao Pires 입니다.

 

 

 

 

포르투갈어의 표준 발음이 쉽지 않아 흔히 마리아 호아오(혹은 후아오) 피레스라고 소개됩니다만, forvo.com을 참고한 결과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모두 '주앙'이라고 발음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같은 이름이 들어간 보사노바의 대가 Joao Gilberto는 요즘은 거의 '주앙 질베르토'로 교정이 이뤄지고 있더군요.

 

이 분의 모짜르트입니다. 피에르 불레즈와 협연한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1944년생. 2003년의 영상이니 극중에서 혜원과 선재가 얘기하던 '60세 무렵'의 모습입니다.

 

이상 4부~8부까지의 삽입곡들과 거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봤습니다.

 

매회 하기는 힘들고, 또 곡이 쌓이면 포스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협찬 광고 하나. 스피커는 역시 쿠르베. http://courbea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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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는 두 끼(첫날 점심과 저녁)를 밖에서 먹고 한 끼(이튿날 아침)를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민박집 식사는 총각 혼자 운영하시는 민박집 사정을 생각하면 딱히 뭐라 따질 수준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광고대로의 '푸짐하고 영양가 넘치는 식단'은 결코 아니었다. 뭐 한끼 정도야 그러려니 하는 거다.

 

첫날의 두 끼는 모두 타파스로 해결했다. 일단 점심. 세비야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두고 나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했다. 민박집-카테드랄은 도보 5~10분 정도. 그 중간의 골목길에 Pimenton 이 있다.

 

 

 

주소는 Calle Garcia de Vinuesa 29, 41004 Seville, Spain. 트립어드바이저에 El Pimenton 이라는 이름으로 리뷰가 올라와 있다.

 

http://www.tripadvisor.co.kr/Restaurant_Review-g187443-d3742726-Reviews-El_Pimenton-Seville_Province_of_Seville_Andalucia.html

 

위 주소로 구글 검색을 해 보면

 

 

 

주위를 둘러볼 때 분명 같은 곳인데 다른 가게가 나온다.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가게인 모양이다. 민박집에서는 '새로 생긴 집인데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추천했다.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차가운 타파스와 뜨거운 타파스 메뉴가 있고, 여기서 1인당 3가지를 고르면 음료와 빵, 커피를 포함해 8.95 유로에 준다는 착한 가게다. 당연히 두 사람이므로 차가운 접시 3개와 뜨거운 접시 3개를 시켰다.

 

 

실내. 그냥 깔끔하다. 으리으리하지 않고 실속을 차렸다는 느낌.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마냥 깔깔거리고 떠드는 품이 나쁘지 않다.

 

뭐, 현지인이 아니고 세비야에 오래 눌러 앉은 장기 여행자들일 수도.

 

 

가지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야채 튀김. 한국식 야채 튀김과 매우 흡사한데 씹히는 맛이 좋다.

 

 

새우가 들어간 감자 샐러드. 왠지 '안전한 맛'을 위해서 시켰는데 다른 메뉴들도 전혀 입에 맞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해도 좋았을 듯한 라따뚜이. 정작 메뉴에는 스페인어로는 Pisto Al la Italiana (이탈리아식 잡동사니 요리), 영어로는 Ratatouille 라고 써 있다. 아무튼 맛이 좋았다.

 

 

이게 아마... 버섯 크림으로 덮은 쇠고기 요리였던 듯. 아무튼 맛있었음.

 

 

Questo fritto con arandanos. 치즈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흡족한 점심식사였다. 가격대 성능비로 보나, 냉정한 맛 평가로 보나 맛집으로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음.

 

저녁은 조금 더 넉넉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대성당의 뒤편이 있는 이 집.

 

아무리 봐도 이름이 딱 써 있지 않다.

 

Bar La Catedral. 주소는 Calle Mateos Gago 5.

 

 

사실 처음부터 이 집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맨 처음엔 카테드랄이 보이는 광장 한 구석의 꽤 운치있는 카페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으려 했다. 해가 막 기우는 시간.

 

 

 

그래서 이렇게 앉아서 관광객용 사진도 찍고 하면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일단 웨이터의 자세부터 '그 테이블이랑 의자랑 니들이 쉬라고 내놓은 거 아니다. 거기 앉으면 식사를 해야 한다' '우리는 코스만 취급한다. 단품은 안 판다' '와인 시켜라. 와인 좋은 거 있다. 와인을 안 마셔? 왜?' 뭐 이런 식이다.

 

게다가 살펴본 메뉴도 이건 '특제 슾' '세비야 식 스테이크' '새우를 곁들인 샐러드' 등 그냥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기본 양식 정찬이다. 이런 걸 먹으려면 대체 왜 여기까지 왔겠나. 물론 가격이나 싸면 모르겠는데 1인당 30유로.

 

야. 야. 사진 다 찍었으니 됐다. 니네 집에서 밥 안 먹을란다, 하고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고 가다 보니 눈에 띄는 웨이터 형. 실물은 이것보다 잘 생겼다.

 

옆에 보이는 메뉴처럼 줄줄이 이런 타파스가 한 접시에 3유로에서 12유로까지 다양하다. 이런 데를 가고 싶었다.

 

영어 메뉴와 스페인어 메뉴. 이제 여행 일주일에 접어드니 영어 메뉴만 보는 게 더 헷갈린다. 스페인어 메뉴와 영어 메뉴를 같이 보는게 훨씬 주문하는 데 편리하다.  

 

 

 

그리고 바쁜 웨이터 불러다가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주문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물론 바쁘니까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관광선진국 웨이터는 그러지 않더라는 거지. 게다가 이것 저것 물어봐서 시키려고 노력하는게 가상한지 추천도 막 해 주고, 재료를 집어다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

 

 

 

뭐 길가 바로 옆 테이블이라 그렇게 우아하지는 않다. 인도에 나와 있는 테이블이기 때문에 행인들이 옆으로 지나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저 골목 안의 가로수가 모두 라임이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떠다니는 공기결에 라임 냄새가 묻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라임들은 다 익어 땅에 떨어져 밟혀도 구린내가 나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상그리아도 당연히 한잔.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간 신선한 샐러드 한판. 뭐 이건 괜히 시켰다 싶기도 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음식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서.^^

 

 

또 음식마다 야채가 조금씩 딸려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튼 첫 접시는 Chocos fritos con ali-oli. '마늘 소스 오징어 튀김'이다. 스페인에선 초코 Choco 즉 그냥 오징어와 세피아 Sepia, 뼈오징어가 매우 흔히 식재료로 쓰인다. 스페인 사람들은 세피아를 흔하게 먹어서 이번 여행 내내 세피아는 두세번 먹은 듯 하다.

 

이 오징어는 얼마나 큰 놈인지 모르겠으나 세피아에 비해 식감이 쫄깃했다. 오른쪽에 있는 마늘이 들어간 드레싱에 찍어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다.

 

 

Langostinos Salsa tartara gratinados 큰 새우 타르타르 소스 볶음.

 

흔히 새우는 그냥 Gamba, 랍스터가 Langosta 라고 하는데 Langostino는 중간 정도 되는 큰 새우를 말한다고.

 

뭐 대하 수준으로 큰 새우는 아니고 아무튼, 저런 애가 몇마리 들어 있다.

 

 

 

이건 뭐 이름이 엄청나게 길었는데 요약하면 '메추리알을 곁들인 하몽 토스트' 정도 되겠다.

 

그래도 하몽은 하나 시켜야 스페인 관광객 아니겠어?

 

 

 

Solomillo Catedral (Salsa Sevillana Antigua) - 전통 소스로 조리한 카테드랄식 소 등심

 

여기서의 카테드랄은 이 식당의 이름을 말한다. 보기에 좀 저래서 그렇지 육질이며 육즙이며 흠잡을 데가 없는 맛이다. 스페인 쇠고기의 질에 대해서는 거듭 감탄하게 된다. 맛있다. Solomillo는 영어의 Sirloin에 해당하는 듯.

 

 

 

Turbante de Pimiento con Carne Picada y Salsa de Piquillo

터번            피망               간 고기             매콤한 소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불러도 좋을 음식. 피망의 속을 간 고기로 채우고 그 상태에서 구워 매콤한 소스를 뿌린 음식이다.

 

아마도 완성된 형태의 모양 때문에 투르반테(터번)이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Champinones Plancha. 버섯 구이. 집어 먹다 찍어서 좀 갯수가 적어 보이는데 원래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다.

 

 

먹다가 찍어서 좀 지저분하긴 한데, 이렇게 테이블 가득 시켜 놓고 아구 아구 먹어댔다.

 

 

 

그렇게 해서 가격이 세금 포함해 34.1 유로. 전망좋은 광장 카페에서 먹었더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포만감과 정신적인 만족감을 포함해서, 그 광장 카페 정식 가격의 딱 절반이다. 웨이터들이 번갈아 나와서 눈이 마주치면 '맛있어? 맛있지?' 라고 눈빛으로 물어본다. 좋다.

 

어느새 해가 져 깜깜해지고,

 

 

가게 안에는 불이 들어온다.

 

 

 

가게 안 곳곳에 소 머리가 장식돼 있다.

 

 

 

아마도 왕년에 투우에 나갔던 소들이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가게 바로 앞에서 찍은 각도. 히랄다 탑과 대성당의 동쪽 면이 바로 보인다.

 

 

 

구글맵에서 본 이 식당의 위치.

 

 

 

지도에서 보면 이렇다.

 

 

 

밤에 보면 더 훌륭한 카테드랄. 금박을 씌운 듯한 조명도 훌륭하다.

 

 

 

 

 

카테드랄 앞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부른 배를 안고 플라멩코를 보러 간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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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4월입니다.

 

이러다 곧 연말 공연 안내가 나갈 듯한 속도감...ㅠ

 

 

 

 

 

 

 

10만원으로 즐기는 4월의 문화가이드(2014)

 

4. 내한공연이 별들의 전쟁일세. 수잔 베가(42)도 오고 제프 벡 영감님(427)도 또 오시지만 다들 너무 비싸. 베가 공연은 제일 싼 표가 66000, 벡 영감님은 88000.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볼만한 공연인 게 분명하지만 이 칼럼의 취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여. 528일 폴 매카트니 옹의 내한공연 계획이 발표됐으니 거기에 맞춰 저금을 해야 할 사람도 있겠지?

 

현존하는 최강의 기교파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내한공연도 눈길이 가는데 레퍼토리가 너무 가곡 위주네. 물론 취향에 따라 이 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불만이 없겠지만, 그래도 드세이가 공연을 한다면 오페라 아리아 위주로 리스트를 짜 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다른 공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

 

이렇게 저렇게 다 빼고 추천할 공연은 따로 있어. 41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교향악 축제가 시작돼.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교향악단들이 모두 회심의 역량을 선보이는 기회지. 예당 홈페이지에서 연주 곡목들을 살펴본 뒤 맘에 드는 곡을 고르는게 아마 제일 간편할 거야. 제일 비싼 티켓이 4만원. 이럴 때 예당 콘서트홀의 중앙 자리에 앉아 보는 거야. 물론 같은 돈으로 1만원 짜리 표를 사서 4개의 공연을 보는 것도 추천. 개인적으론 419일 열리는 부천 교향악단과 서울대 최연소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의 협연이 궁금하네.

 

국립극장은 3월부터 셰익스피어 관련 공연이 한창인데, 3월에 이미 시작해 413일까지 공연되는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도 좋을 것 같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공연은 425일부터 27일까지 공연되는 한여름밤의 꿈이야.

 

 

 

 

공연 주체는 핸드스프링 퍼펫 컴패니라는 이름의 남아프리카 극단. 이름을 보면 눈치채겠지만 인형극단이야. 그게 뭘 어쨌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겐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워 호스라는 연극을 검색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 표정까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말 인형을 무대에 등장시켜 기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팀이지.

 

당시 워 호스를 연출했던 톰 모리스가 연출을 맡아서 더 기대가 돼. 티켓은 4만원에서 5만원. 정교한 인형들의 움직임을 잘 보려면 과감하게 5만원을 투자하라고 권하고도 싶어.

 

돈을 많이 썼으니 4월의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 ’. 요즘 드라마나 영화 뿐만 아니라 현실 세상에서도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게 쏟아지고 있는데, 이 소설은 1959년작이니 그야말로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인 셈이야.

 

 

 

당시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고, 그해 연말 한국에서도 출간됐어. 당시 한 신문에 실린 책 광고를 보면 싸강양() 쾌심(快心)의 일대역작(一大力作)’이라는 카피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새해 선물로 추천하고 있어.

 

서른아홉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라는 부유한 애인 로제와 연애중이지만 그의 사랑을 진지하게 믿고 있지는 않아. 아니, 그 자신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지. 그런 폴라가 스물다섯살의 순수한 견습 변호사 시몽을 만나 느끼는 새로운 감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야.

 

당시에서는 서구에서도 남녀간 열 네살의 차이가 대단히 크게 느껴졌던 모양이야. 요즘은 한국 드라마 밀회에서 김희애와 유아인이 극중 스무살 차이가 나는 남녀 사이의 감정을 다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

 

사강은 1960년대와 7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감정선을 지배했던 여류 작가의 대명사야. 그런데 정작 서른 아홉 독신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던 사강의 당시 나이가 24세였다는 건 어쩐지 뭔가 속는 기분이 들기도 해. 아무튼 지금 그의 문체를 다시 읽어 보면 어딘가 흑백 영화를 보는 듯, 마음이 촉촉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거야. 이 소설은 1961년 할리우드에서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탕, 앤서니 퍼킨스 주연으로 영화화됐어. 지금은 구해 보기 힘든 영화가 돼 버렸지만.

 

봄바람이 살살 불면 주말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 마침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이 열리고 있어.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 재일교포야. 유족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고인이 유품으로 남긴 스케치, 모형, 영상, 회화 등 500여점을 기증했고, 그 덕분에 이 전시가 열리는 거지. 참고로 고인은 평생 귀화하지 않을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했던 분이고, 이타미 준은 귀화명이 아니라 예명이야.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서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 대표작들을 제주도에 지었지. 여기서 영감을 받으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날씨야. 다음달에 봐.

 

 

 

그 다음은 덧붙이는 이야기들.

 

 

톰 모리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연극 '워호스'는 전 세계에서 벌써 240만명이 직접 봤다는군요. 영화라면 별 것 아닐 수 있겠지만 연극이라면 대단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직접 공연이 아닌, 무대 공연을 촬영한 영상물로 볼 수 밖에 없었지만(그것도 단 3일 동안 국립극장에서 개봉), 좀 기다리면 '워 호스'에 이은 충격이라는 '한여름밤의 꿈'은 직접 공연 팀이 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워 호스의 말 인형들 - 馬形 이라고 쓰는게 맞을런지도^^ - 들이 준 충격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정교한 제작 기법과 조종술의 조화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BBC의 소개 영상을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듯. 톰 모리스 인터뷰와 '워 호스', 그리고 '한여름밤의 꿈'을 다룬 내용입니다. 인형극과 연극의 경계를 넘은 환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화한 할리우드 영화 '굿바이 어게인'이 나온 1961년 기준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46세, 앤서니 퍼킨스는 29세였습니다. 실제 나이 기준으로 하면 현재 '밀회'에 나오고 있는 김희애-유아인과 거의 비슷한 차이지만, 사실 사진상으로는 그리 큰 차이가 나 보이지 않습니다.

 

 

 

 

퍼킨스에 비하면 유아인은 심하게 동안인 셈이죠.

 

 

요즘 밀회 때문에 피아노 다시 배우러 나가는 분들이 많다는 소문도. 아무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다시 보시면서 '밀회'를 즐기시면 더 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P.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끝 점 세개는 사강이 꼭 그렇게 해 달라고 고집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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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가 방송되기 전, 방송을 예고하는 기사에는 허튼 악플들이 많이 달렸습니다. 이모와 조카 같다느니, 저질스러운 불륜 드라마는 공해라느니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딱 첫주 방송이 나간 뒤부터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싹 사라졌습니다.

 

한국 방송시장에서는 매주 20여편의 드라마가 방송됩니다. 개중에는 훌륭한 것도 쓰레기 같은 것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밀회'를 단 한 회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물건이든 직접 써 보면 대개 품질이 드러납니다. 흔한 두루마리 휴지가 같은 길이라도 처음부터 세 겹인 휴지가 있고, 가격은 싸지만 홑겹이라 몇번을 겹쳐 써야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밀도가 다르죠. '밀회'도 그렇습니다. 압축도가 다른 드라마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밀회'를 본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시간이 짧게 느껴지냐" "앞부분 한 20분 못봤는데 흐름을 못 따라갈 것 같다. 왜 이리 진행이 빠르냐"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허투루 버리는 시간, 잡담으로 시간만 늘려 놓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사에 군더더기 설명이 없고,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하듯 '피차간에 다 아는 얘기는 생략하고'라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똑같은 70분 드라마라도 훨씬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의 자존심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그냥 삽화처럼 지나가는 장면도 나중에 보면 아, 그래서 저 장면이 들어갔고, 저 대목에서 저 사람이 그 말을 했구나 하는 것이 깔려 있는 드라마입니다. 제작비가 더 비싼 드라마 중에는 조연급까지도 시청자들이 알만한 배우들로 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만, 안판석표 드라마에는 허투루 나오는 조연들 중에도 어색해 보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이 몰라서 그렇지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역할로 나오는 분들도 대개는 연극 경력이 20년 이상 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아내의 자격'이나 '하얀 거탑' 때 지나가는 역으로 보였던 배우들이 계속 눈에 띄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검증된 배우들은 계속 쓴다...는 것 역시 안판석 표 드라마의 특징이죠. 예를 들어 '아내의 자격'에 연변 아줌마로 나왔던 연극배우 길해연이 '밀회'에는 역술가 겸 투자전문가로 나오고, '아내의 자격'에서 김희애 동생 역이었던 장소연은 이번에도 김희애의 부하 직원으로 나옵니다.)

 

 

 

 

 

드라마 구조가 보여주는 세계는 무섭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고액연봉의 기획실장이지만 혜원(김희애)의 삶은 칼날을 밟고 산다, 혹은 담장 위를 걷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나날입니다. 4부에서 김희애가 스스로를 지칭한 '3중 첩자'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김희애는 최종 보스인 서회장(김용건), 회장의 딸 영우(김혜은), 회장의 후처 성숙(심혜진)의 딱 중간에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능했다면 애저녁에 눈밖에 나 버려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에 붙었다면 그 역시 세 사람이 벌이는 신경전 속에서 녹아 버렸겠죠.

 

세 사람 모두 혜원에게는 은근히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묻습니다. 말이 '3중 첩자'지 여기서 만약 다른 쪽의 기밀을 누설해 준다면 그날로 역시 버려지는 몸이 될 겁니다. 세 사람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서 저쪽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저쪽에서도 여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테니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4회에 나온 서회장과 혜원의 대화는 그야말로 백전노장,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와 여우의 대결입니다.

 

 

 

 

서회장: 뭣보다 성숙이가 널 안 내놓겠지.

혜원: (웃음)

서회장: 한 잔 해라.

혜원: 운전 땜에.

서회장: 그 밑에 있으믄 평생 실장일텐데.

혜원: 평생이믄 고맙죠. 직함이야 어찌됐든.

서회장: 한성숙이는 젖두 크구, 다 좋은데 딴주머니가 너무 커져버렸어.

혜원: (민망하지만 미소 지우지 않고,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서회장: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앉혀 놨다.

혜원: 어떡하죠, 회장님? 제 원칙대루라면, 지금 그 말씀 이사장님께 보고 해야 하는데,

서회장: 허허 참, 이거, 니가 진짜 큰 여우다, 나한테 협박을 다 하구.

혜원: 죄송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버티는 혜원도 대단하지만, 어쨌든 힘을 가진 사람들은 혜원이 아니라 이들 셋입니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거스르는 날이 혜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버티기 힘든 상황이 시작되는 날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지혜를 발휘해 살아남고, 회장을 위해 설렁탕 집의 음식 나르는 아줌마까지 섭외하는 혜원. 영우에게는 입만 열면 '윤리 도덕'을 말하는 것이 어쩌 보면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유명 음대를 나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왕년의 피아노 수재, 선재(유아인)의 눈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호화 스펙에다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혜원이지만 실제로는 적잖은 대가를 치르고 있습다. 잔혹하고 무서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앨리스가 전사로 다시 태어난 셈입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모욕과 굴욕을 다 참고, 본래 갖고 있던 도덕적 원칙을 다 숙여 입시 비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본래 도덕이라곤 모르는 듯한 재벌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남은 혜원. 그 대가로 누리고 있는 것은 유명 음대 교수 부인이며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 만약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위협하는 일이 닥치면 혜원은 가차없이 그 싹을 잘라 버릴 인물입니다.

 

 

 

 

그런 혜원이 과연, 가진 것을 모두 내려 놓으면서 스무살 어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선재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려 할까요. 아직까지는 자신의 애정을 다른 감정, 즉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묻혀 버릴 선재의 재능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애써 속이며 행동하고 있지만, 드라마가 드라마가 되려면 그 감정이 곧 드러나고야 말 겁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드러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성주 작가의 거침없는 필로를 생각하면 지레 겁이 납니다. 혜원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혜원을 여신으로 생각하는 선재가 혜원의 삶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혜원의 껍데기 남편 준형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엇을 기대하든, 아마도 시청자들은 그 기대보다 훨씬 적나라한 현실을 보게 될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은근히 두려움이 앞서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일 선물로 받은 16개의 초콜릿 가운데 벌써 네개나 포장지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물론 기획 단게에서 20부로 끝낼 수도 있다는 검토가 있었으니 기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라흐마니노프. 보컬리제. 유자 왕의 연주입니다. ('밀회'에 나올 곡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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