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그린라이트] [싱글턴] [감성주점] [FA로이드] [예거밤] [아구아밤]

 

밀린 문화어 사전에 대한 묶음 특집입니다.

 

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반성의 뜻이기도... 아무튼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갑니다.

 

 

 

 

감성주점 [명사]

 

: 청춘 남녀가 짝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유흥업소

 

마땅히 정해진 짝이 없는 청춘 남녀가 다양한 핑계로 술자리에서 즉석 짝짓기를 해 온 것은 굳이 기원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행위다. 그리고 각 시대에 따라 이 목적을 수행하는데 최적화된 업소들이 등장해 왔다.

 

대부분의 경우 술자리에서의 즉석 만남은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먼저 다양한 방법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관심을 전달하고, 여자 손님들이 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21세기 초까지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업소에 고용된 직원들이 여자 손님들을 남자 손님들에게 데려가는 부킹이라는 방식이 유행했던 것이 주목할 만한 예외일 뿐이다. 정상적인 경우 1980년대에는 디스코텍, 90년대에는 락카페, 2000년대 이후에는 클럽이 만남의 장소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보다 노골적으로 짝짓기가 목적임을 적시한 업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부킹포차류의 주점들이 대표적이다. ‘부킹포차란 이름대로 외형상으로는 대형화된 일반 실내 포장마차와 차이가 없으나 손님이 20대 남녀로 제한된다는 점, 거의 모든 고객들이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동성끼리로만 구성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입장 자체가 이성으로부터의 접근을 바란다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2013년 현재 번창하고 있는 감성주점은 이런 부킹포차의 형식이 확대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외형상으론 일반주점과 큰 차이가 없으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개중에는 아예 DJ박스와 스테이지를 갖춘 곳도 있다. 짝짓기가 주 목적이되 대부분의 업소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직접 수작을 건네기 보다는 종업원을 거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일부 업소에서는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의사 표현을 할 때 간단히 사연을 쓴 카드를 이용하고 있고, 여자 손님들은 카드를 받은 뒤 승낙/거절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카드의 수에 따라 여자 손님들은 술값을 할인받을 수도 있는데 이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 손님들을 대량 확보하기 위한 업소 측의 프로모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3 10월 정부 당국에서 감성주점을 변태 영업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손님들이 업장 내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유흥주점 허가를 받아야 하나 대부분의 감성주점들이 세제 면에서 유리한 일반 음식점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변형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속이 이미 젊은 층에 만연한 감성주점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궁금하다.

 

 

 

 

FA로이드 [명사]

 

: FA를 앞둔 선수들이 평소보다 뛰어난 활약으로 몸값을 올리는 것을 약물 효과에 빗댄 것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몸값 폭발의 기회가 있다. 바로 FA(Free Agent) 제도에 따른 것이다. 야구의 예를 들면, 한 구단에서 9년간 매시즌 경기수의 3분의 2 이상을 출전한 타자는 FA자격을 획득, 원 소속팀을 비롯해 나머지 모든 구단과 새로 계약할 수 있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FA 자격을 획득하는 데에는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

 

F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FA 자격을 갖게 되는 시즌, 9번째 주전 시즌에 확실한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해에는 이를 악물고 초인적인 성적을 내기 마련인데 이를 가리켜 ‘FA로이드라도 맞은 거냐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뒷부분의 로이드는 만국 공통의 스포츠 금지 약물인 아나볼린 안드로제닉 스테로이드(anabolic-androgenic steroid, AAS)에서 따 온 것.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 벤 존슨이 메달을 박탈당한 것이나 미국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762)의 배리 본즈가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스테로이드 사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획득하는 프로야구 박한이(삼성)와 최준석(두산)은 올시즌 내내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이 경우 적절한 표현은 “FA로이드 불발”). 하지만 이들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자 맹타를 터뜨렸고, 결국 최종 승자 삼성의 박한이가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두산이 이겼다면 최준석이 만장일치 MVP를 받았을 상황. 이들은 조용한 시즌을 보내다 포스트시즌에 FA로이드를 폭발시킨 드문 경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싱글턴 [명사]

 

: singleton. 독신. 1인가구

 

본래 수학에서 단위집합(원소가 단 한 개인 집합, unit set)을 가리키는 용어. 2013년 들어 1인 가구 독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때문. 어디 가서 별 실속 없는 노처녀라는 점을 지적 받고 브리짓이 분통을 터뜨리자 친구 살롯이 너도 내가 결혼하지 않은 건 싱글턴이기 때문이야, 이 잘난 체 하고, 겉늙은데다 편협하기 짝이 없는 병신아라고 맞받아 쳤어야지("You should have said 'I'm not married because I'm a Singleton, you smug, prematurely aging, narrow-minded morons,' Shazzer ranted.)”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싱글턴이란 말은 독신자가 스스로를 다소 높여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국내에선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책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이후 널리 퍼졌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싱글은 독신자, ‘싱글턴독신 가구(1인 가구)’로 번역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건 독신인 성인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실정에서나 의미 있는 이야기고, 영미인들에겐 사실상 싱글=싱글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턴’ 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건 왠지 좀 격이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싱글을 싱글턴이라고 부른다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따라서 이런 표현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던 영국 배우 데이지 도노반은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긴 거라곤 싱글턴이라는 새로운 단어 하나 뿐인데, 그건 정말 최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린 라이트 [명사]

 

: Green Light. 청신호. 연애 관계에서 상대에게 대시해도 좋다고 보내는 OK 사인.

 

한국 어린이들은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에 길을 건너지만 미국 어린이들은 녹색 불에 길을 건넌다는 우스개가 있었다. 사실은 한국 신호등도 잘 보면 녹색 유리가 끼워져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청신호라고 부르는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야구에서는 언제든 자의로 판단해 2루로 도루할 자격이 주어진 선수를 가리키도 한다.

 

 

2013년 하반기부터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는 그린라이트를 켜라라는 코너가 등장하면서 이 용어가 젊은 층 사이에서 연애 용어로 확산되고 있다. 연애 초기 단계에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관심을 알아챈 여자가 적극적인 호응의 뜻으로 보내는 사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한 야구 전문 사이트가 이런 용법의 원조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영미권에서는 이 말이 오래 전부터 허가(permission)’와 동의어로 사용됐고, 남녀 관계에서도 ‘OK 사인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돼 왔다. 비욘세 와 존 레전드는 모두 ‘Green Light’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두 곡 모두 내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청신호를 보내 줘라는 내용이다.

 

 

 

 

밤 칵테일 [명사]

 

: Bomb Cocktail. 맥주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사용한 신세대 폭탄주.

 

1980년대부터 아저씨들은 맥주잔에 위스키가 담긴 샷 글라스를 빠뜨리며 밤을 지샜다. 세월이 흘러 맥주와 위스키의 황금비율을 따지던 세대는 황혼을 맞았고 21세기 클럽가에선 독주와 에너지드링크를 배합한 신종 폭탄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2013년 현재는 독일산 약초 리큐르인 예거마이스터가 주 재료인 예거밤과 코카 잎으로 숙성시킨 네덜란드산 리큐르 아구아(Agwa)를 이용한 아구아밤이 대세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클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칵테일들인데, 끝에 (bomb)’이 붙어 폭탄주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에너지 드링크와 알코올의 결합은 술을 더 빨리 취하게 하는 동시에 잠을 쫓는 각성 효과를 발휘해 밤새 놀아 보세용 음료로 안성맞춤이다. 물론 단시간에 혈압을 올려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가 있는데, 술이라는 건 본래 산삼 녹용을 섞어도 많이 마시면 몸에 좋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작작 마셔라.

 

 

 

 

일각에선 밤 칵테일의 유행에 대해 외래 클럽 문화가 한국의 전통적인 폭탄주 문화를 망가뜨렸다고 한탄하기도 하는데, 몰라서 하는 얘기다. 맥주+위스키 폭탄주는 이미 미국에선 19세기부터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 위 사진)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가난한 보일러공들이 빨리 취하기 위해 위스키를 원샷하고 맥주로 입가심을 한 것이 유래라는데, 지금은 맥주 잔에 위스키를 빠뜨려 먹는 제조법까지 한국의 원형 폭탄주와 똑같다.

 

 

 

 

 

728x90

[히든싱어] 시즌2를 마감하는 왕중왕전 1,2부가 화려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히든싱어' 방송 이후 처음으로 원조 가수를 앞선 두 명의 도전자들,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편의 임성현을 포함해 총 13명의 도전자가 치열한 경쟁을 치렀습니다.

 

자신들의 우상과 맞붙어 마지막까지 각축전을 벌였던 모창 능력자들은 한동안 쉬면서 축적한 기량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첫 방송 출연 당시에는 아무래도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겠지만, 두번째 도전인 왕중왕전에서는 활짝 개화한 듯한 도전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이유 모창자였던 사년의 열창과 웃음은 많은 남자 시청자들을 열광시켰죠.^

 

아무튼 이들의 기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연출자 조승욱 PD까지 경악하게 했던, 예상을 뛰어넘는 대접전 끝에 '논산가는 조성모' 임성현, '용접공 임창정' 조현민, 그리고 '사랑해 휘성' 김진호가 최종 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민투표 결과와 25일 생방송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왼쪽부터 조현민, 임성현, 김진호.

 

혹시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세 워너비들의 노래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라고 부르는 것은 좀 낯간지럽지만, 아무튼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두 시즌을 방송하면서, '모창'이라는 장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바꿔 놓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지난 12일 57세로 작고한 가수 김갑순씨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바로 '너훈아'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히든싱어'가 처음 방송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그저 기존의 '스타킹'이나 '묘기대행진' 처럼 신기한 기술의 하나로 모창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히든싱어'야 말로 진정한 트리뷰트 프로그램, 즉 원조 가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쓴 글입니다. "'히든싱어', 감동은 어디서 올까?"  http://fivecard.joins.com/1118 )

 

 

 

 

방송이 진행될수록, 모창 도전자들의 사연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도전자들의 출발점은 모두 '지극한 팬심'이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조홍경 원장의 지도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영혼 없는 연습만으로 그렇게 똑같이 부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수영이나 백지영, 주현미 편에 출연했던 도전자들이 가수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도전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그 가수들의 노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를 털어놓고, 가수들은 가수들대로 자신들이 불러 온 노래들이 어딘가에서,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수라는 직업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부와 명예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노래에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천만장의 팬레터와 문자 속에 파묻혀 있어도, 이렇게 팬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다 못해 목소리부터 몸짓까지 똑같이 흉내낼 정도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들에게도 대단한 행운인 셈입니다.

 

 

 

사실 '너훈아' 김갑순씨의 출발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나훈아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더욱 더 열심히 그의 노래를 연습하게 되고,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그리고 나선 아예 그의 그림자가 되는 인생을 선택한 것이죠.

 

'모창 가수'의 나쁜 예로 가수 박상민을 사칭하며 돈벌이를 했던 임모씨가 가끔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 임모씨는 스스로 '박상민 행세'를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반면 너훈아를 비롯한 대다수의 모창 가수들은 스스로를 '이미테이션 가수'라고 부르며, 가끔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선택한 애정과 추앙의 대상에게 자신의 인생을 기댄 셈입니다.

 

'히든싱어' 출연자들 가운데 너훈아 김갑순씨처럼 온 인생을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뮤지컬 김광석' 최승열처럼 김광석과 닮은 목소리 덕분에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게 된 경우를 보듯, 이들이 모창한 기존 가수의 삶과 활동은 이들의 이후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18일 방송된 '히든싱어2' 왕중왕전에서 '사랑해 휘성' 김진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 출연했을 때, '단 하루만이라도 휘성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왕중왕전 무대까지 서고 나니..."

 

누구나 스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모창자들은 자신의 우상과 최대한 비슷해지려 노력하면서, 그 가수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히든싱어' 시즌1과 시즌2를 합해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꼽자면 지난해 시즌1의 왕중왕전 출연자 전원이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종서' 이현학과 '윤민수' 김성욱의 활약이 눈부셨죠.^^

 

 

 

 

 

물론 올해의 '마법의 성'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한 히든싱어 왕중왕전의 잔치를 보면서, 문득 김갑순씨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때로 '짝퉁'이라는 말로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던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 그의 활동 역시 나훈아에 대한 헌정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도 '히든싱어'의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사. "너훈아로 20년, 그는 마지막까지 김갑순을 꿈꿨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1/18/13259846.html?cloc=olink|article|default

 

 

 

25일 방송을 마치는 '히든싱어2'. 2014년 하반기 방송될 '히든싱어3' 에서는 또 어떤 가수들과 어떤 모창자들이 또 다른 사연과 놀라운 기량으로 시청자들을 두근거리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P.S. 물론 팬심이 팬심으로만 꼭 끝나야 하는 건 아니죠. 어제 놀라운 가창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샤넌. 언젠가는 아이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우뚝 서는 날을 보고 싶더군요.

 

 

아래 손가락 모양을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빨리 알 수 있습니다.

 

728x90

알함브라 방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몇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그냥 가서 표를 사자면 대략 낭패.

 

티켓마스터 스페인 홈페이지 http://www.ticketmaster.es/ 를 방문해 따지지 말고 메뉴 맨 윗줄의 'Family and More'를 클릭한다. 그럼 이런 화면이 뜬다.

 

 

큼지막하게 La Alhambra 가 보인다. 클릭하고 들어가면 예매 페이지가 나타난다.

 

주의사항 페이지에는 반드시 읽어 둬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 가령 10월25일의 티켓을 샀다면 그 날짜에는 오전 오후 중 자신이 선택한 시간엔 언제든 궁전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스르 궁전 지역만큼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아니면 나스르 궁전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매때 확인하는 시간은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임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이걸 혼동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요약해 보자.

 

10월25일 표를 샀는데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오후 4시로 정했다 치자. 해당일의 알함브라 궁전의 오후 개장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그럼 오후 2시에 가든 3시에 가든, 나스르 궁전 이외의 지역을 먼저 마음껏 구경하고 오후 4시까지 나스르 궁전 앞에 가서 줄을 서서 입장하면 된다. 반대로 오전 10시 나스르 궁전 입장 조건으로 티켓을 샀다면, 오전 8시30분~오후2시 사이엔 마음대로 궁전 여기저기를 봐도 좋다. 단 나스르 궁전만큼은 오전 10시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주의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약할 때 오후 4시라니까 오후4시에 가서 나스르 궁전만 보고, 나머지는 시간이 없어서 못 보는 분들도 있다.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하절기와 동절기 사이에도 꽤 차이가 있다. 3월15일부터 10월14일까지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개장하지만 그 이후 기간에는 오후 6시까지만 개장한다. 이밖에 몇가지 야간 개장은 동절기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 점이 사실 매우 아쉬웠다. 애당초 처음 알함브라를 꼭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은게 바로 그 야간 개장 때 찍은 사진 때문이었기 때문에.

 

기타 알함브라 예약 요령http://blog.naver.com/enehye85?Redirect=Log&logNo=188319175 이 블로그 해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위 지도를 보면 아래쪽의 긴 고구마가 알함브라, 그리고 오른쪽 위의 돌도끼같은 모양이 헤네랄리페 Generalife 다.

 

헤네랄리페는 흔히 알함브라의 부속 여름 별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방문자 가운데는 이곳이 정작 알함브라 본편보다 인상적이었다는 분들도 꽤 있는데, 사실 그 말에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아무튼 헤네랄리페가 완공된 것은 14세기. 그리고 그라나다가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는 예배당으로 쓰였다.

 

저 알함브라 표지판이 있는 입장 관리소는 딱 한군데 있다. 미리 예매한 티겟은 이 자리에서 등록을 해야 궁전 구역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바로 사서 들어가시는 분도 있다는데, 가을 이후엔 어떨지 모르지만 봄 여름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야 간신히 그 날짜의 입장권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저 위에 써 있는대로 반드시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시기 바란다.

 

 

 

입장관리소를 통과하면 거대한 사이프러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타난다. 조경이 멋지다.

 

 

 

하이 시즌이 아닌 10월말이지만 어쨌든 관광객은 우글우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에서 보곤 정말 저렇게 생긴 나무가 있을까 했는데, 이 지역에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신기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멋지다.

 

 

 

나무 사이로 숲 건너편, 알함브라의 한 자락이 보이고 저 멀리 구시가의 산동네도 언뜻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그라나다에 가 보면 알함브라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코르도바는 1236년, 세비야는 1248년 함락되었지만 그라나다는 건재했다.

 

 

 

본격적인 헤네랄리페 지역의 입구. 조경이 정교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원근감이 없어져서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왼쪽은 알함브라의 서쪽 끝자락인 알카자르. 오른쪽은 그 건너편의 오래된 산동네다. 탁 트인 전망에서 보면 아 소리가 나온다.

 

 

 

 

 

헤네랄리페 입구의 계단식 정원. 간이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을 듯. 생김새가 독특하다.

(실제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깎았을까 싶은 나무 문을 지나면

 

 

전형적인 스페인/아랍식 정원의 정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의 상징은 물이다. 산 위에 요새를 건설하는 일은 건물만 지어서 될 일은 아니다. 바위산 위에 건물을 짓고 병력과 민간인이 거주하게 하려면 풍부한 수원이 있어야 한다. 일단 알함브라는 그 조건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알함브라는 안달루시아의 혹독한 직사광선과 더위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모든 조경에서 물의 활용을 극대화했다. 가는 곳마다 분수와 수로가 조경의 필수적인 요소다. 여긴 그냥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도 매혹적이다.

 

 

 

 

 

이런 그림 같은 정원 사이로

 

 

이렇게 한시간 두시간씩 앉아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피 공간이 있다.

 

 

어릴 적 한창 꿀을 빨았던 사루비아가 만발해 있는 정경이 반갑다.

 

샐비어(Salvia)는 뭔 놈의 샐비어. 사루비아는 사루비아라고 써야 제 맛이다. 꽃 꽁무니의 달콤한 꿀 방울도.

 

 

 

 

 

어디에나 깔려 있는 라임 나무.

 

처음에는 몇개 따 볼까도 생각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너무 흔해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느낌이다. 나중에 세비야로 넘어가면, 아예 가로수가 라임나무다. 문득 은행나무가 우거진 서울 거리의 가을 냄새가 생각났다.^

 

가로수가 라임이면 어느 철에는 도시에서도 라임 냄새가 날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이다.

 

정원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헤네랄리페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관개수로의 정원 Patio de la Acequia 에 도착한다.

 

 

 

 

헤네랄리페를 상징하는 바로 이 한 컷.

 

'관개수로의 정원'이란 번역 대신 그냥 '아세퀴아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실 오늘날의 헤네랄리페는 거의 유적에 가깝다.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헤네랄리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1670년 경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되는 헤네랄리페는 기독교 점령 시대에 예배당으로 개조됐다.

 

지금 남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파티오 데 아세퀴아 정도. 얼마나 더 화려하고, 얼마나 더 정교했을까.

 

 

 

반대쪽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난간 너머로 건너편 알함브라를 바라보는 맛도 최고.

 

 

 

 

잠시 후 알함브라에서 본격적으로 보게 되지만, 건물의 정교한 장식이 지금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관개수로의 정원에서 한 단계만 올라 서면 또 하나의 보물같은 정원이 나타난다.

 

 

 

 

 

이른바 '사이프러스 정원 Patio de los Cipreses'.

 

 

 

 

 

 

꼭대기의 사자상을 한번 잡아당겨 봤다. 벽돌로 된 아치와 기와를 얹은 지붕은 언뜻 친숙하게 느껴진다. 창덕궁 어느 한 구석에도 비슷한 색감의 벽돌 문을 발견할 수 있으니.

 

구불구불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사이프러스 정원을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실로 왕이 거닐었을 법한 정원이다.

 

 

난간으로 물이 흐르게 한 유수 계단의 아이디어. 꼴꼴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흥취를 더한다.

 

헤네랄리페의 많은 건물들과 구조물들은 모두 '여름 스페인의 태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태양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러자니 그 시절에 가능한 냉각제는 '흐르는 물'과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가능한 한 여러 곳의 그늘' 외에는 없었을 듯.

 

 

 

계단 위에 사려깊게 건설된 햇빛 가리개.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로본 관개수로의 정원.

 

 

규모가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헤네랄리페의 정원은 '이래서 사람들이 알함브라 알함브라 하는구나' 하고 수긍이 가게 하는, 정교하고도 품위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한껏 기대를 높인 상태에서 알함브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728x90

7,8년 전인 듯 합니다. 우연히 밤에 택시를 탔는데 일상적인 강원도 사투리보다 더 강한 억양의 사투리를 쓰는 기사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사투리였기에 '이북 쪽이신가봅니다?'했더니 함경도 쪽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보고 어떻게 아느냐길래 '저도 함경도 쪽'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겁니다.

 

알고 보니 그분이 탈북자. 그런데 그 무렵만 해도 탈북자가 택시 운전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직업적 본능(?)도 살아나고 해서 이것 저것 대화를 나누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부모님한테 효도하세요. 그때 피난 내려와서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여기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게요. 하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탈북자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미 한 장르로 자리잡을 만큼 커졌습니다. 물론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룬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 같은 영화 보다는 '북한 남성=그다지 근육질은 아니지만 마르고 탄탄한 특수부대 요원'이란 다소 비정상적인 고정관념을 확대시키는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게 현실이죠. 아무튼 그중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영화가 '용의자'입니다.

 

먼저 줄거리.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탈북자 지동철(공유). 다시 운전기사로 일해 달라는 박회장(송재호)의 청을 거절한 날 밤, 동철은 박회장을 살해하러 저택에 침입한 괴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격투를 벌이지만 박회장은 이미 치명상을 입고 동철에게 유언을 남긴 뒤 숨을 거둡니다.

 

영화의 흐름상 당연히 동철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공수부대 교관 민대령(박희순)은 왕년의 정보국 동료였던 김실장(조성하)의 호출을 받아 지동철 수색에 나섭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대령은 자신 외에도 동철을 뒤쫓는 팀이 있고,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릇된 오해를 받고 추격당하는 특수 요원'이라는 주제에는 누구나 본 시리즈를 떠올리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수백편, 수천편을 꼽아도 될 정도로 많습니다. 특히나 영화 뿐만 아니라 '24' 같은 드라마는 비슷한 플롯에 따라 수십편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찍어내 이 장르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동철을 연기하는 공유가 음식이라곤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어쩐지 이 영화가 '본' 시리즈보다는 '24'쪽에 오마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언하자면 '24'의 잭 바우어는 매 시즌 드라마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 걸로 유명하죠.^^)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터질 지경인 이 영화의 카 액션에는 엄청난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대단한 액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든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 완성도의 자동차 액션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경찰차를 이용해 경찰차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는 신은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물리적으로 과연 그런 돌파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 일단 앞 경찰차가 브레이크만 강하게 밟아도 불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 아무튼 보기 좋았습니다.

 

 

 

 

반면 몇 차례 등장하는 근접 전투 신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보아 온 탓에 이제 좀 질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나 두 명의 격투 상대자가 최대한 몸을 접근시킨 뒤 손날과 팔꿈치로 서로 동시에 공격과 방어를 하며 주위의 장애물들에 몸을 부딪는 '격투 전문가들의 싸움' 장면들은 최근 10년 사이 너무 많은 영화에서 사용돼 이제 좀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다음 세대의 격투 신은 과거처럼 팔과 다리를 화려하게 휘젓는 쪽으로 다시 유행이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영화 '용의자'는 희대의 걸작은 아니지만,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문제점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꼽자면, 이야기 자체가 그리 독창적이라고 보기 힘들고, 이야기의 짜임새 또한 그리 정교하지 않습니다. 특히 결말을 앞둔 마지막 30분 정도에선 논리적인 설명을 포기한 듯한 진행이 계속됩니다. 네. 이런 부분들이 '용의자'의 약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 마지막 30분 동안, 동철과 딸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비록 상당 부분 전형적인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관객들이 동철의 운명을 충분히 걱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감정의 배분이 잘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찌 보면 강인한 인상이지만 근본적으로 선량한 웃음을 갖고 있는 공유라는 연기자의 적절한 캐스팅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캐스팅만 해 놓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죠. 어떻게 그 동철에게 관객의 감정을 집중시키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원신연 감독은 이 부분에서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생존률 3%라는 북한 최고의 특수부대에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들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 나찰의 세계에서 버텨 온 남자가 과연 그렇게 선량한 눈빛과 웃음을 지닐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긴 합니다. 만약 진짜 특수부대 출신 - 자칭 특수부대 말고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부대 - 을 만나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뭐 어떻겠습니까. 이건 다큐가 아니라 그냥 영화인 걸. 그리고 2004년, 공유의 영화 데뷔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공유의 오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관객이 동철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 이상, 나머지 요소들은 꽤 무시해도 좋습니다. 대략 국정원 차장급의 간부가 분명하지도 않은 트집으로 지상파 방송사 기자를 해직시킬수 있다는 부분, 기자들이 닭처럼 '특종!'이라고 외치며 우왕좌왕하는 부분, 다른 경찰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때 항상 혼자 유유히 침투하는 슈퍼 능력자 민대령의 석연찮은 동선 등 이 영화의 플롯에는 좀 무리다 싶은 부분들이 분명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관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은 슬쩍 묻혀 버립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여자분들은 공유의 팬이거나, 아니었더라도 보고 나서 마음 속에 공유를 담아 가게 될 듯 합니다.

 

 

 

 

결론적으로 '용의자'는 뭔가 생각 많이 하지 않고 볼만한 뇌 휴식용 영화를 원하는 분들에게 아주 훌륭한 선택입니다. 상영시간은 매우 짧게 느껴지고, 특히 액션 마니아들에게는 충분한 시각적 포만감을 제공합니다. 공유의 열연이 과연 올 한해, 대작 사극들이 수없이 격돌하는 2014년 남우주연상 레이스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P.S. 거의 첫 장면, 동철과 박회장이 만나는 허름한 식당의 이름이 '봉남집'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연히 '통미봉남'이 연상되어서였죠. 이밖에도 몇몇 대사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남북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꽤 심도 있는 학습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만, 영화상으로 그리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관객이 재미 없어 할 부분은 모두 뺀 결과겠지요.

 

P.S.2. 동철이 만삭의 아내에게 사다 준 물건은 크레파스라는군요. 아울러  언제부터 한국 대북공작원들의 전용차가 VW CC가 된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PPL]

 

 

 

P.S.3.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김성균. 역시 반갑더군요.

 

P.S.4. '용의자'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를 생각하면, 하정우 주연 '황해'도 좀 결말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P.S.5. 물론 이런 용의자는 안 나옵니다.

 

 

 

728x90

그라나다에 알함브라 이외의 볼거리가 많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차피 평생 스페인에서 보낼 게 아니라면 선택은 불가피했다. 아무튼 그라나다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것도 아침 일찍 기차에서 내려 좀 휴식을 취하고 나니 대략 오전은 다 지나갔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정문을 나서 바로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이런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앞에서도 말했듯 알함브라는 시내의 가장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식당-호텔 등이 몰려 있는 누에바 광장 Plaza Nueva 까지 가려면 약 1Km 정도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위의 경로와 대략 일치한다.

 

지도가 커서 멀어 보이지만 약 10~15분 정도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리막길이란게 매우 중요. 오르막이면 힘들다.)

 

 

 

산 위쪽을 바라보면 알함브라의 성벽 끄트머리가 숲 사이로 슬쩍 슬쩍 보이는 정도.

 

 

 

내리막이라 그렇지 만약 오르막이라면 꽤 힘들게 올라왔을 길이다. 경치는 참 좋지만 내리막으로 활용하는게 좋을 듯.^

 

 

 

시내까지 거의 내려오면 급수탑(?)이 나타난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길 안쪽에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함브라 처럼 산 위에 대단위 요새를 구축하려면 물이 필수였을 터. 헤네랄리페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고지이면서 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알함브라의 가장 핵심적인 입지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이 알함브라의 메인 게이트.

 

 

밖에서 성을 향해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이 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알함브라 영역이다.

 

물론 진짜 알함브라 성문은 이 문을 통과해 산길을 1Km 정도 올라가야 나타난다. 

 

 

 

플라멩코 기타의 장인(?)이 운영하는 기타 샵.

 

사진으로는 별 느낌 없지만 이 거리에 있으면 굉장히 운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저 골목 끝으로 보이는 곳이 누에바 광장이다. 위의 기타 샵 처럼 골목 곳곳에는 고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다양한 가게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는 흔히 세비야라고 하지만 스페인의 온 도시에 파에야 가게 없는 곳이 없듯 플라멩코 공연장 없는 곳도 없다.

 

특히 그라나다는 집시들의 거주지역인 동굴 내에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동굴 플라멩코는 아니지만(그건 구 시가의 알바이신 지구에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플라멩코 공연장이 여기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큰길 도착.

 

 

 

이것이 누에바 광장의 상징인 분수대.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광장은 이미 각종 레스토랑들이 전진배치해 놓은 식당들의 야외 좌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 좋은 곳에 있는 식당의 메뉴는 너무나 관광객용이다.

 

물론 지난번에 말했듯 프라이드 치킨, 햄버그 스테이크 등 관광객들이 고민하지 않고 먹을만한 메뉴 델 디아 의 향연이다. 뭔가 좀 전통 스페인식으로 보이는 음식을 시키려 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메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 음식은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메뉴 델 디아가 뭔가 싶은 분: 그란비아, 그리고 메뉴 델 디아란 무엇인가 http://fivecard.joins.com/1181 )

 

 

적당한 식당이 없어 그란비아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라나다 그란 비아의 이면 도로. 호텔에서, 그러니까 알함브라 궁전에서 누에바 광장을 거쳐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도 한눈 팔지 않고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말 아담한 도시다.

 

 

 

그리고서 바로 모퉁이만 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라나다의 유명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de Granada 이 나타난다. 그라나다라는 도시의 사이즈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라나다에선 모든 것이 가깝다.^^

 

 

 

이렇게 생긴 왕실 예배당. 바로 뒤에 그라나다의 카테드랄이 보인다.

 

거대한 카테드랄 옆에 있으면 소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사벨라 여왕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여왕 자신이 그라나다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 아무래도 콜럼버스의 영광보다는 스페인 땅의 마지막 이슬람 영토였던 그라나다 정복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혹은 새로 정복한 땅 그라나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자신이 이룩한 국토 통일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후손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아무튼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카테드랄도 마찬가지.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골목 안에 식당 하나. '세비야'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왠지 식당 간판의 느낌이 좋아서 바깥에 앉았다. 골목 안에 테이블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골목에서 바로 밖으로 나오면 바닥까지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세비야 샐러드 Ensalada de Sevilla(뭐 이런 이름의 샐러드가 어디 가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식당 이름을 단 샐러드)'와 기본 파에야 주문. 음료까지 25유로 정도.

 

 

 

작은 감자 샐러드를 먼저 전채 요리처럼 준다. 빠에야가 오래 걸릴 테니 기다리는 동안 맛보란 배려.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리브유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럽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흩뿌린 치즈,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잘게 썬 하몽이 샐러드 재료들과 어우려져 좋은 맛을 낸다.

 

신선한 야채와 함께 씹히는 짭짤한 하몽이 포인트. 통 올리브가 들어 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쉬웠다.

 

 

 

샐러드를 해치우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오너 셰프(?)가 직접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보는 앞에서 각각 접시에 덜어 준다.

 

토마토 소스에 조갯살, 닭가슴살, 오징어, 새우,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 있는 볶음밥이다.

 

 

 

흔히 리조또와 비교되는 것이 빠에야인데, 해외에서 먹은 리조또는 사실 맛있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기본적인 리조또의 상식은 쌀을 반 정도만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리조또는 한국식으로 푹 익혀 조리하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리조또는 오독오독 쌀이 씹힐 정도로, 한국 사람의 입장에선 설익은 밥의 수준을 넘어 절반 정도는 생쌀의 느낌이다.

 

왕년에 라스베가스에서 한국인 손님 유치를 위해 식당에 한식을 배치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주방장에게 밥 하는 법을 '설득'하는게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을 많이 붓고 쌀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 말을 해도 계속 설익은 밥을 가져오더라는 거다. '더, 더'하고 요구하니 '아니 그럼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식의 반응이더라는 얘기.

 

반면 빠에야는 몇번 먹어볼 때 한번도 쌀이 설익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즉 한국 복집에서 복 지리를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볶아 준, 약간 죽 비슷한 볶음밥의 느낌. 밥 상태가 아니고 쌀 상태에서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리조또와 마찬가지지만 '쌀을 충분히 물에 불려 둔다'는 것이 중요한 레서피라고 한다. 이 쌀의 익힘 정도가 리조또와 빠에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위 부분은 일천한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 구별이 정확한 것인지 검증을 구합니다. '나는 설익은 빠에야도 많이 먹어 봤다' 하는 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빠에야가 만족스러워서 아저씨와 사진 한 컷. 잘 먹었어요~~.

 

 

혹시 찾아 가실 분을 위한 주소. 그냥 왕실 예배당 옆구리 골목을 찾으시는게 나을 수도.

 

 

 

 

못 들어가는 왕실 예배당 한 컷.

 

 

카테드랄 옆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색색깔의 상가가 이어진다. 꽤 정감있는 뒷골목이다.

 

 

카테드랄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작품화 한 듯 한 관광객용 소품.

 

 

 

 

그라나다는 본래 '석류'라는 뜻이라는데 석류는 아닌 희한한 가로수가 자주 눈에 띈다.

 

 

 

여기가 아까 식당 앞에 있던 왕실 예배당의 정문. 카테드랄과 나란히 붙어 있다.

 

 

고개를 돌려 보면 모습을 드러낸 카테드랄.

 

 

 

아까 그 노란 열매가 익으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체 불명.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라나다의 카테드랄. 세비야보다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웅장하다.

 

 

 

그런데 스페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카테드랄을 지어 놓고 건물 앞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지 않은 것은 그라나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데까지 물러서 봐도, 이 정도 뷰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독특한 양식. 짓기 시작할 때에는 그냥 고딕 양식으로 설계했다는데 막상 완상할 때에는 아랍 풍의 느낌이 추가되며 약간 희한한 모습이 됐다. 내부도 상당히 화려하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카테드랄의 개관 시간까지 기다리다간 알함브라를 못 볼 상황.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는 것을 상징하듯 아랍풍의 말린 과일과 향초 등을 파는 가게들 천지다.

 

 

 

 

야자수 가로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구경을 하자면 두세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알함브라로 향했다. 그란 비아 어디에서나 미니버스 32번을 타면 알함브라로 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라나다처럼 작은 도시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서비스는 매우 마음에 든다.

 

 

728x90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또 한편의 여자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우사수'는 MBC TV의 '기황후', KBS 2TV '총리와 나', SBS TV '따뜻한 말한마디' 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월화드라마입니다. 묘하게도 '우사수'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우결수'를 집필했던 하명희 작가가 '따뜻한 말한마디'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게 참 묘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궤도에서 출발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빨라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고 바로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건 사실 우연입니다(제작발표회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김윤철 PD는 안타깝게도 '우사수'의 준비 때문에 '응사'를 한 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1995년, 다같이 지긋지긋한 고3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잠시 삽화로 보이는 2002년. 정완(유진)은 만삭의 임산부, 선미(김유미)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그리고 지현(최정윤)은 원숙한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인 세 친구는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서른 아홉 동갑내기엔 세 친구의 위치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던 정완은 남편과 헤어져 홀어머니와 함께 아들 태극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미는 잘 나가는 골드미스. 지현은 준재벌급의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셋 모두 그늘이 있습니다. 정완은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 선미는 어느새 동년배 남자들에게 자신이 '늙은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현은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의 친정 때문에 여전히 시모에게 가정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찍 낳은 딸 세라는 어느새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빵꾸똥꾸' 진지희가 어느새 성장해 10대 역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사수' 1회는 1995년에서부터 이들 세 단짝 친구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세 여자 주변에 포진된 남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완은 영화사 대표 도영(김성수)와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경수(엄태웅)을 만납니다. 동시에 도영은 지현의 첫사랑이기도 하고, 선미 역시 경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미에겐 진심을 고백하는 한참 연하의 부하 직원 윤석(박민우)이 있지만, 선미가 보기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사내아이일 뿐.

 

과연 이 남자들이 서른 아홉이란 나이의 여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열 아홉 나이의 세 친구가 일제히 미장원으로 달려가 한껏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귀를 뚫습니다. 이걸 통해 '어른이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성년식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나란히 귀를 뚫은 세 친구가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 대학 졸업반이 될 무렵 IMF를 겪고, 취업난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기도 하고(물론 졸업 연도를 늦추려는 시도와 함께), 대학 운동권이 총학생회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2002년의 대축제로 20대의 끝자락을 장식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중년의 문턱에 와 있는 세 친구.

 

그런 그들의 시작을 '귀를 뚫는다'는 행위로 표현한 것. 매우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세 배우 모두 서른 아홉이란 나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이.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실제 나이보다 위인 배역은 거의 맡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캐스팅이지만 선공개된 '우사수' 1회를 봐선 이들 중 누구도 연기의 깊이가 부족해 애를 먹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회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누가 뭐래도 '여자를 가장 잘 아는 연출'로 불리는 김윤철 PD의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대사가 아닌데도 지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빠른 전개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39라는 숫자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퀸의 '39'입니다. 물론 나이로 서른 아홉이 아니라 1939년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흘러간 좋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데서 이 드라마, '우사수'와도 만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우사수'와 관련해선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여자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해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이쪽도 들러 보셔도 좋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아홉, 공돈 1000만원이 생기면 뭘 하지? http://fivecard.joins.com/1209

 

 

 

 

P.S. '우결수'도 '우결수'지만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의 시놉시스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드라마는 2004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였습니다. 당시엔 명세빈 이태란 변정수가 사회생활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세 친구로 나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던 작품이었죠.

 

'우사수'는 '응답하라 1994' 세대의 현재 이야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10년 뒤 이야기라면 딱 맞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만 하지 않을까요.  

 

 

 

728x90

바르셀로나-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야간열차와 (저가)항공이다.

 

야간열차는 당연히 침대차가 기본이다. 스페인은 매우 큰 나라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약 600Km)은 고속전철 AVE가 있어 2시간 30분이면 주파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 그라나다-바르셀로나 구간(약 800Km)은 아직 고속화되지 않았다.

 

야간 열차의 좌석이나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몸 상하는 일.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이동하는 일(대개 공항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다)을 꽤 싫어하고, 동시에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침대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 1인으로서(사실 동행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차를 선택했다.

 

늦은 시간. 그래도 산츠 역은 꽤 붐비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외진 곳이라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애매하게 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침대차가 꽤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지만 지금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남아 있는 노선 중에는 파리행과 그라나다행이 꽤 유력하다고 한다.

 

 

야간열차 트렌오텔 Trenhotel 은 밤 10시 출발. 그라나다에는 다음날 오전 9시11분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도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히 기차가 서고 내린다.

 

야간 열차라고 해서 모든 칸이 침대칸은 아니다. 일반 좌석이 있는 칸도 있다.

 

렌페 renfe.com 에 가서 야간 열차를 예매하려면 이런 화면을 만나게 된다.

 

 

다섯 등급의 좌석을 판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좌석 2등급, 좌석 1등급, 침대차 4인 1실, 침대차 2인 1실, 침대차 2인 1실(특실)에 식사 포함이라는 기준이다. 위에서 네번째인 Cama Preferen(2인 1실. 1등칸)을 선택했다.

 

일단 11시간을 이동하는데 좌석...도 굳이 타라면 못 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청춘이 아니다. 최소한 침대차는 되어야 한다. Cama Turista는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타 본 쿠셋 형의 변형인 듯 하다. 그래도 쿠셋은 방 하나에 간이 침대가 6개인데 이건 그나마 4개. 그리고 방 안에 세면대도 있다. 4인 1실이라도 남자 칸과 여자 칸이 따로 있다.

 

Cama Preferen은 164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가격은 아마도 당일 구매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인 듯. 약 1개월 전에 미리 사면 1인당 110유로 정도, 즉 2인 1실에 220 유로 정도에 탈 수 있다.

 

어쨌든 기차 표 끊는 법, 역에서 표 찾는 법 등은 이런 블로그 http://blog.naver.com/familyjhjh?Redirect=Log&logNo=90172132856 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여기서 새로 또 늘어놓지는 않는다.

 

220유로. 가격으로 따지면 재수가 좋은 경우 1박 요금+저가항공 2인 요금이 더 쌀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육상 교통, 특히 기차 이동을 매우 선호하는 본인으로서는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궁금하잖아.

 

 

 

문을 열고 2인 칸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 물론 가방을 넣어 두고 한숨 돌린 뒤에 찍은 거다. (문을 열자 마자의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첫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좁아!"

 

그런데 걱정하실 필요 없다. 조금 지나면 대략 익숙해 진다.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머물만 하다.

 

 

2층 침대에서 문 쪽을 본 모습. 안으로 들어와 방 문(오른쪽)을 닫아야 욕실 문(왼쪽)을 열 수 있다.

 

사진상으로 엄청나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맞다.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욕실 설비는 제법이란 느낌이 든다.

 

 

 

욕실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양치질용 물과 컵이 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잘 나오지만, 생수 2병을 굳이 넣어 뒀다. 물론 마실 수 있는 물이고, 럭셔리하게 양치질 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양치질하는 데 썼다. 이유는... 1.5리터짜리 에비앙을 이미 사 왔기 때문에. 다 마시느라 애썼다.) 

 

 

 

왼쪽을 보면 변기와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위에 샤워용의 큰 타월 두 장과 예비용 두루마리 휴지 등이 있다. 제법이다.

 

세면대와 변기를 합해 여객기 기내 화장실 정도의 크기. 하지만 거기엔 없는 호사스런 서비스가 있다.

 

 

 

제법인 이유는 더 안쪽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 여행 자료를 보면 Cama Preferen에 샤워가 있다, 샤워는 없고 세면대만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면 샤워실이 있었다.

 

넓이는 작은 사이즈의 샤워박스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갇힌 느낌으로 죽을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간 침대 열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호사다.

 

그리고 비록 좁다지만 원통형이라 나름 합리적이고, 사진에서 보듯 장시간의 입식 샤워(?)에 피로한 당신을 위해 엉덩이를 살짝 걸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울러 바닥은 배수가 잘 되도록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좁은 침실로 샤워 물이 넘쳐 방이 물바다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은 이 정도. 열차로 두 칸 정도 넘어 가면 스낵바가 있고, 스낵바 바로 너머에 식당칸이 있다.

(열차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진동...)

 

 

 

하긴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건 식당칸 옆의 부엌을 살짝 찍은 것. 철판 위에서 스테이크가 혼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식당칸에서 음료 정도는 마셔 주는 것도 괜찮을 듯 했으나 어찌나 에어콘을 세게 틀었는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밤 10시 출발. 한국인들에겐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이쪽 사람들에겐 한창 저녁을 즐길 시간이니.

 

 

 

이건 스낵바. 아주 가벼운 간식거리와 커피, 음료, 맥주 등을 판다.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데, 혼자 여기서 맥주라도 홀짝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이 측은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열차 안의 복도는 매우 좁다. 기내용 캐리어는 통과할 수 있지만 1주일 이상 여행용의 트렁크는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넓이다. 그 점 하나만 빼면 침대차 내의 시설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이건 방 안에 있는 1인용 위생 팩.

 

 

조립식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화장솜. 빗 등이 키트로 들어 있다.

 

준비 없는 사람이 1박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설비다.

 

 

 

1층 침상. 다리를 충분히 뻗을 수 있다. 위쪽으로 개인용 독서등도 있고, 충전용 전원도 있다.

 

 

동행인이 최종적으로 1층을 선호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은 왼쪽의 전화기를 빼면 시설에 아무 차이가 없다. 쿠셋과는 달리 두 층 뿐이므로 1층과 2층 모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침구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

 

누운지 몇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 기차 위이기 때문에 제법 흔들린다. 그 진동에 대한 적응엔 개인차가 꽤 크다. 앞서도 말했듯 본인은 그 진동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람 속 같다고나 할까), 눕자마자 금세 잠들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아침. 그라나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을 열었다.

 

안달루시아의 아침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느꼈지만, 땅이 넓은 곳에선 구름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쇼콜라를 마시고 산 초코 머핀과 초콜릿 크루아쌍으로 아침 간식.

 

그라나다가 가까워 온다. 침상 정리를 해 본다.

 

 

 

위층 침대를 접으면 이런 모습,

 

 

그리고 아래층 침대를 마저 접고 그 아래 감춰져 있는 좌석을 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오래 전 다녔던 오리엔트 특급 같은 열차에선 낮엔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저녁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식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낮 이동이 훨씬 지루하긴 하겠지만.

 

 

오전 9시. 그라나다 도착.

 

그라나다는 춥고, 역무원들은 불친절하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우리는 관광안내소가 아니다' 라며 지도 한 장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쌀쌀맞아.

 

 

택시를 잡아 타고 그라나다의 그란 비아(사진 오른쪽 가게 간판 쪽에 써 있다)를 따라 호텔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선 반팔이 더 많았다면 여긴 확실히 가을 느낌, 그것도 늦가을 느낌이 난다.

 

그래도 왔다. 그라나다. 기다려라, 알함브라.

 

 

그라나다는 굉장히 작은 도시다. 여행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숙소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에서 그라나다는 단 1박, 그리고 알할브라 궁전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숙소를 아예 알함브라 궁전 바로 코앞으로 잡았다. 이름하여 알함브라 팰리스 호텔 Alhambra Palace Hotel.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h-alhambrapalace.es/default-en.html

 

 

 

 

이번 여행 중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방을 달라면 어떤 반응일지 조금 궁금했지만, 비수기인데다 기차 도착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굳이 얼리 체크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해 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중엔 TV를 거의 안 봤다. 마드리드에서나 좀 채널을 돌려 봤던가...

 

 

 

 

아랍풍으로 꾸며진 욕실이 특히 넓고 화려했다.

 

 

 

호텔이라기보단 무슨 성 처럼 보일 정도로 요란한 장식이 있다.

 

 

사실 이 호텔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호텔이라는 점(호텔을 나서 언덕배기를 3분정도 걸으면 바로 알함브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알함브라 구경을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달려 들어오면서, 역시 가까운 호텔을 고르길 잘 했다며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기뻐했다.

 

아울러 두번째는 트립어드바이저에 누군가 써 놓은 fantastic city view. 알함브라가 보이는 뷰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알함브라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함브라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도 알할브라 쪽의 뷰는 그냥 산 뿐이다. 대신 시내 쪽 방은 이렇게 알함브라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방 구경과 짧은 오전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출동.

 

 

 

 

기다려라 알함브라! (사진은 헤네랄리페.)

 

 

 

 

 

728x90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에도 문화가이드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적극적으로 즐기시기 바랍니다. 인생 뭐 있겠습니까.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4)

 

연말 술병은 다들 회복해 가나? 아직도? 세월이 하 수상해서 맨정신으로 새해를 맞을 수 없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뭐 어쩌겠어. 세상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편에선 좋아지는 게 있기 마련이야.

 

예를 들면 말러의 10번 교향곡을 국내에서 정상급 지휘자의 리드로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아진 일 중 하나야. 123, 한스 그라프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야.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었기 때문에 말러는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이 10번 교향곡의 1악장만을 완성하고 죽어. 그리고 후세의 작곡가들이 나머지 초고를 완성해서 현재 연주되는 이 곡을 만들었지. 어떤 평론가는 이 10번의 정서를 용서라고 규정했던데,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못잖게 서정적인 선율이 일품이야. 123. B 2만원에 아직 쓸만한 자리를 살 수 있어.

 

사실 올해 1월의 음악 공연을 추천하라면 이 무지치 합주단의 사계(제일 싼 표가 5만원)나 제임스 블레이크 첫 내한 공연(균일 88000)을 첫 손에 꼽아야겠지.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이 칼럼에서 추천할 공연은 아닌 것 같아. 대신 오상진의 북콘서트같은 공연을 눈여겨 보라고 하고 싶어. 부제가 하루키의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같은 곡이 궁금할 거야. 대체 어떤 곡인지 찾아 들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겠지.

 

하루키는 본래 클래식과 재즈, 올드 팝에 대한 식견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봐. 이번엔 오상진이 책을 읽고 캐나다 교포 피아니스트 루실 정이 곡을 연주하는 진행. ‘1Q84’에 나오는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드뷔시의 달빛등이 연주돼. 119, 예술의전당. 4만원.

 

만약 이런 컨셉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이란 제목의 CD도 추천할 만 하다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 30년 소설 속의 음악이란 부제를 보면 따로 설명은 필요 없을 듯. 3CD. 15000. 클래식과 재즈만이라는 게 아쉽지만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등 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뮤지션들은 이런 컴필레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맑은 겨울날, 이런 음악을 틀어 놓고 먼 산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영화로 본 분들이 꽤 많겠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은 초코파이와 자허 토르테만큼 큰 차이가 있어.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비해 소설은 근본적으로 쓴 맛을 베이스로 깔고 있어. 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 역시 영화에선 그냥 한국 월화드라마의 귀여운 4차원 아가씨 정도지만 소설에선 미쳐도 단단히 미친 X이거든. 물론 꽤 매력있는 미친 X이긴 하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생각나는 작품이 둘 있어. 하나는 에밀 졸라의 나나, 또 하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아마도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대체 왜 이런 비교가 가능한 지 상상하기 힘들거야. 그러니 이번 기회에 원작을 한번 읽어 보길 바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새 번역본으로 약 1만원, 나머지 두 책은 7천원 내외로 살 수 있어. 싸지? 고전이 이래서 좋은 거야.

 

 

 

춥다고 너무 분위기를 떨어뜨린 것 같으니 아주 발랄하고 활기넘치는 전시 하나 소개할게. 스페인의 천재 그래픽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전시회가 예술의전당에서 316일까지 열려.

 

마리스칼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를 비롯해서 동글동글한 귀여운 선이 특징이지. 동심의 세계를 늘 떠나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일으키는 마리스칼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아직도 세상에는 상상력과 낙천적인 에너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럼 다들 감기조심하고, 2월에 만나.

 

오상진의 북콘서트 119    A 4만원

말러 교향곡 10 123     B 2만원

하비에르 마리스칼 전          12000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3CD)     15000

티파니에서 아침을               1만원

나나                           7천원

생의 한가운데                  7천원

 

 

 

말러가 수많은 선배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유 때문에 '9번 교향곡'이라는 말을 꺼렸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러의 교향곡 번호는 9번이되 9번으로 불리지 않는 '대지의 노래'와 실제로는 10번째 교향곡이지만 9번으로 불리는 그냥 9번으로 약간 족보가 틀어집니다.

 

어쨌든 9번을 내놓고 10번은 완성하지 못한 채 말러도 고인이 됐으니 그렇게 두려워했던 징크스가 현실이 된 듯 합니다. 베토벤 이후 브루크너, 슈베르트, 드보르작이 모두 걸린 9번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물론 교향곡을 풀빵처럼 찍어낸 작곡가들은 이후에도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스타 작곡가 가운데선 15곡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가 이 징크스를 무력화시킨 공로자로 꼽힙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미완성으로 남은 10번은 데릭 쿡에 의해 5악장으로 완성된 버전으로 꽤 자주 연주됩니다. 국내에선 2010년 서울 시향이 처음 연주한 버전이죠. 안 그래도 들을 곡 천진데 굳이 다른 사람이 완성한 미완성곡까지 연주해야 할까...하는 의문도 물론 있지만, 흔히 그냥 '아다지오'라고도 불리는 1악장의 아름다움은 심하게 매혹적입니다.

 

 

 

특히나 이 곡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즈 역할을 했던 말러의 아내 알마에 대해 말러의 '용서'를 담은 곡이라는 사연이 전해집니다. 솔직히 좀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는 얘기지만...^^ 곡 해설과 사연에 대해선 이쪽 참조.

 

http://www.pungwoldang.kr/board_music/content.aspx?b_UniqueID=107&tname=board_music

 

 

'티파티에서 아침을'의 원작 소설에 대해선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지난해 나온 '트루먼 커포티 선집'에 끼어 있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 독특한 작가와 누구나 다 아는 '그 영화'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책에 나오는 미스 고라이틀리(Go+lightly^^)는 영화의 오드리 헵번과 너무x너무나 차이가 컸습니다.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에 의해 '4차원적 사랑스러움'이 원작에선 너무나도 선명한 '돌아이 짓'이더군요. 원작자 커포티가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에 대해 "난 마릴린 먼로가 훨씬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원작을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은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긴 합니다만, 이렇게 핵심적인 주인공의 캐릭터가 달라지고 보니 전혀 다른 작품처럼 읽힙니다. 그래서 에밀 졸라의 '나나'가 연상되는 것이고(고라이틀리는 오늘날 뉴욕에 떨어진 나나처럼 보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후일담도 졸라가 나나에 퍼부은 저주와 거의 유사한 수준...).

 

아무튼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아예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마리스칼의 코비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패스. 다시 한번 생각나는 것은 이 코비의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피카소의 '여관들'이라는 그림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해 그린 그림이죠. 혹시 관련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 글 http://fivecard.joins.com/1190 참조.

 

2월에 만나요~~

 

 

728x90

여자 나이 서른 아홉. 만약 누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며 돈 1000만원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1월6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비와 함께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9'라는 숫자는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 나이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핵심입니다.

 

과연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정말 마흔이 되면, 그때부터의 인생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까요? 서른 아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까요? 예전만큼 '40'이란 숫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여전히 그 나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그 나이를 맞기 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준비 비용이야'라면서 누군가 1000만원을 준다면, 그리고 가족이나 남편이나 애인이나 아이들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1. '우결수'에서 '우사수'까지. JTBC 미니시리즈의 진화

 

'우사수'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말, 줄인 제목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우사수'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연초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줄여서 '우결수')라는 드라마를 방송해 꽤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미숙이 극성스런 엄마로, 이미숙의 딸로 정소민이, 정소민과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로 성준이 출연했던 드라마입니다.

 

여교사에 예쁜 얼굴로 경쟁력을 갖춘 신붓감인 정소민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남친 성준과 결혼하려 하지만, '인생에 한번 하는 결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친정 엄마의 소신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 서슬에 보자 보자 하던 성준의 엄마 선우은숙이 발끈, 결혼은 산으로 가고 두 사람은 거의 헤어질 위기에 놓이죠.

 

결혼을 앞둔 커플의 심리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위 '결혼 한탕주의', 그리고 이들 커플을 둘러싼 다른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만들기가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연출을 맡았고 당시 무명에 가깝던 하명희 작가는 현재 방송중인 SBS TV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한마디'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 김윤철 PD가 새롭게 만드는 드라마가 1월6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와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로 붙였습니다.

 

 

 

 

 

2. '우사수'는 어떤 드라마?

 

'우결수'가 남녀간의 연애 못잖게 여자들끼리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는 걸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우사수'는 그렇게 사이 좋게 지내던 세 여자친구가 서른 아홉 나이를 맞아 각각 이혼녀, 유부녀, 노처녀로 '상태'가 갈린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셋 다 그리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애 딸린 이혼녀는 본래 시나리오 작가지만 생활을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전남편이 재결합하자는 줄 착각했다가 김칫국을 마시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유부녀는 씀씀이에 모자람이 없지만 엄한 시어머니와 다소 마마보이인 남편 때문에 남몰래 폭음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처녀. 브리짓 존스처럼 뚱뚱하지도 않고, 스타일도 좋고 수입도 좋은 소위 골드미스지만,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서른 아홉인 세 여자의 "대체 어디서부터 인생이 꼬인 걸까..."라는 넊두리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까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유진 최정윤 김유미가 각각 이혼녀, 유부녀, 골드미스로 나오고 엄태웅 김성수 박민우가 여자들의 서른아홉을 흔들어 놓을 남자들로 등장합니다.

 

 

 

 

 

3. 39 드림 프로젝트

 

서른 아홉. 남자든 여자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젊어 보이고, 아무리 건강해도 마흔이 넘으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할 것을 권해 옵니다. 특히 암 검사나 위/대장의 내시경 검사가 권장됩니다.

 

이런 나이를 앞두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과연 그때 그 판단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앞으로도 내 인생은 지금과 거의 차이 없이 흘러가게 될까.

 

'우사수' 방송에 즈음해 JTBC는 여자들의 인생에서 서른 아홉이란 나이가 갖는 별스러운 의미에 주목해 한가지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바로 '39 드림 프로젝트' 라는 이벤트입니다.

 

참가자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 입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도 있고, 넘은 분, 아직 이 나이를 맞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은, 직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는 이야기를 써 주시면 됩니다. 이미 서른 아홉을 지나 온 분들은, '그때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내용을 적어 주십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때 못한 그 일'을 다시 저질러 보시는 겁니다. 아직 서른 아홉을 맞지 않은, 상대적으로 행운아인 분들은 '내가 지금 서른 아홉'이라고 가정하고, 그 전에 꼭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은 일을 적어 주십쇼.

 

 

 

 

단 저희가 선정되신 한 분에게 지원해 드릴 수 있는 돈은 1000만원 입니다. 상당히 큰 돈이지만 아주 많은 돈은 아닙니다. 이 돈으로 저희는 참가하신 여러분께 카페를 차려 드리거나, 좋은 별장을 사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달 정도 인도 전역을 여행하거나, 아프리카에 가서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바라 보며 아침 커피를 드시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스키 강습을 받게 해 드릴 수도, 옥스포드에서 영어 연수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태 괜찮은 중고차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자전거를 살 수도 있고,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볼 수도 있습니다. 크게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드실 수 있지만 '버킷 리스트'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위안이라면 이 '39 드림 프로젝트'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의 재충전 기회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즉시 아래 링크를 눌러 JTBC 홈페이지를 노크하시면 됩니다.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275&menu_id=PM10021612&cloc=jtbc|top|top

 

그리고 '우사수'에 나오는 세 여자의 운명에도 계속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P.S. 물론 그 1000만원을 지원받은 분이 그 돈을 어떻게 쓰셨는지는 많은 분들의 관심사가 될 듯 합니다. 어떻게 그 돈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돈을 쓴 뒤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저희가 어떻게든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28x90

사실 이 집을 소개할까 말까 좀 고민을 했다.

 

우리가 이 집을 간 건 맛집 소개를 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숙소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깥 여정에서 일찍 돌아온 날, 시내로 나가기 위해 민박집 주인장에서 시내에 가볼만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동네 식당 한번 가 보는게 어때요? 우리도 가끔 가는데, 시내 식당보다 나아요" 라며 이 집을 찍어 주셨다.

 

그래서 가 본 곳이 라 펠라 La Perla.

 

 

 

풀네임은 La Perla Groupo Reloj.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구글에 있다.^^

 

https://maps.google.co.kr/maps?ie=UTF-8&q=la+perla+barcelona&fb=1&gl=kr&hq=la+perla&hnear=0x12a49816718e30e5:0x44b0fb3d4f47660a,%EC%8A%A4%ED%8E%98%EC%9D%B8+%EB%B0%94%EB%A5%B4%EC%85%80%EB%A1%9C%EB%82%98&ei=HUW2UrPbA8HoiAe_o4GoCg&sqi=2&ved=0CPgBEMgT

 

 

 

 

 

혹시라도 산츠 역에 내려 잠시 식사할 데를 찾는다거나(하긴 산츠 역에서 도보로 딱 10분. 아주 가깝다고 할 수 는 없다^^), 숙소가 아바 호텔, NH 누만시아 호텔, 그리고 그 주변인 사람들을 위해 적어 놓는다.

 

산츠 기차 역 광장으로 나와 누만시아 Carrer de Numancia 라는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쭉 직진하면 바로 나온다. 찾기는 절대 어렵지 않다. 아바 호텔 Abba Hotel 만 찾으면 끝.

 

 

 

실내는 이렇게 생겼다. 왼쪽에 굉장히 독일식 발음을 하던 웨이터 아저씨가 보인다.

 

사실 이 식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음식, '바르셀로나의 국물'이라고 부를 만한 사르수엘라 Zarsuela 때문이다. 발음은 '사르수엘라'와 '자르주엘라'의 딱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르수엘라는 본래 노래와 무용이 결합된 스페인 특유의 가극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어디 사르수엘라 하는 데 없나"하고 묻자 "무슨 오페라 같은 걸 찾는 거냐?"는 답이 나왔다. 접객 업무가 많은 호텔 직원이 이런 반응인 걸 보면 마드리드에선 이 음식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했다.

 

정식 명칭은 사르수엘라 데 마리스코 Zarzuela de Marisco. 마리스코는 해산물을 뜻한다. 사진에서 보듯 꽃새우, 대하, 조개, 대구살, 홍합 등을 넣고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스의 국물에 걸쭉다기 보단 멀끔하게 끓여 낸 스튜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기가막히게 맛있다.

 

 

뭐 보시다시피 국물 재료에 맛 없을 것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맛은 보장인데,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육수 재료에서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달콤짭짤한 맛이 난다. 그게 일품이다.

 

같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는 뭔가 비슷한 느낌의 음식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 홍합 찜 Zuppa di Cozze 도 국물을 흥건하게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낸다. 예전 서울 청담동의 올리비아라는 레스토랑에선 여기서 발전된 혇태의 얼큰한 홍합 국물에 파스타가 떠 다니는 요리를 나띠보라고 불렀는데, 한때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다(그런데 왜 이름이 나티보인지는 모르겠다. Naitv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native에 해당하는 말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파는 자숙홍합으로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럴 듯 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식 해물탕인 야베스 bouillabaisse 도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부야베스는 강한 버터 맛이 났다. 물론 부야베스도 식당 따라, 조리사에 따라 레서피가 다를테니 그 강한 버터 맛이 부야베스의 본질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요리 자체를 비교하는 건 무작위로 태권도, 유도, 합기도 선수를 1명씩 데려다 놓고 싸움을 붙여 무도의 서열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우연히 태권도 9단과 합기도 8급이 맞붙을 수도 있으므로)로 바보같은 짓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어 본 지중해 풍의 해산물 스튜 요리 가운데서는 이날 라 펠라에서 먹은 사르수엘라가 단연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레서피를 배워다 한국에서 스페인식 해물탕집을 차려 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

 

가격이 싸지는 않다. 이 집에서 24유로. 하지만 먹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듯. 바르셀로나의 식당가에서 어느 식당이든 들어갔다면, 한번쯤 메뉴판에서 사르수엘라를 찾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같이 먹은 음식 중 하나. 아스파라거스와 조갯살이 들어간 스페인 식 계란 찜.

 

태국에 갔을 때 대부분의 요리 이름들이 직관적으로 재료의 이름을 붙이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 이를테면 뿌는 게, 팟은 볶다, 카리는 커리, 합하면 뿌팟퐁가리가 된다 - 생각해보면 한식도 비슷하다. 설렁탕이나 육개장처럼 이름만 봐선 뭘로 만든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만, 대개 아구찜은 아구를 찐 것이고 통닭은 닭을 통으로 구운 거다.

 

스페인도 대략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에는 스페인어의 식재료를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이게 하나 둘 셋 넷 세는 것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여기에 몇개 보태자면,

 

마늘 Ajo 아요, 고추 Picante 피칸테, 고기 Carne 카르네 (카르네는 거의 쇠고기지만 구별하면 쇠고기는 Ternera, 돼지고기는 Cerdo) 등이 있다. 알면 알수록 당연히 도움이 된다.

 

세상에 먹는 것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고, 물어보기 귀찮고, 괜히 말 안 통하면 답답할까 어색하고, 이런 게 싫어서 여행 가서 맥도날드만 먹다 오면 그것보다 큰 불행이 없을 듯 하다. 더구나 스페인처럼 맛난 것이 많은 나라에서.

 

 

 

하다못해 패스트푸드를 먹더라도, 스페인 곳곳에 있는 이런 '빤스' 같은 체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야간 촬영이라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노란 바탕에서 저 검은색 로고를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가격은 맥도날드와 비슷한 수준. 바게트 샌드위치 세트가 5~6유로 선이다.

 

샐러드도 박스로 팔아 좋았다. 맛도 굿.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됐다.

 

스페인 여행의 첫 방문지라서,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서 동경했던 도시라 아쉬움도 크지만, 아직 남은 여정이 긴 터라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게 됐다. 가우디, 피카소, 그리고 달리. 20세기를 장식한 천재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포만감 느끼는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거리에서 바 안을 들여다 보고 찍는 사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안은 멋지고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또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과 고민이 있을게다.

 

나흘이 후딱 지나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더 푹 젖어 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에 이렇게 안녕을 고하게 됐다.

 

 

 

다음은 그라나다로 가는 침대 열차의 모든 것.

 

 

 

 

728x90

넷째날은 휴식과 쇼핑을 겸한 날이었으므로 포스팅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중에서도 하나만 골라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사 바트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라면 카사 밀라도 뭔가 관광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외관 사진도 잘 안 받는 카사 바트요에 비해 카사 밀라는 이렇게 사진발도 잘 받는다.

 

물론 입장료는 싸지 않다. 1인당 16.15유로.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꽤 거칠어서 카사 바트요에 비해 생활 건축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보기는 좋지만 실제로 살기에 그리 편할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본래 입구는 이랬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로비가 보인다.

 

 

1층으로 들어가면 카사 밀라 전체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다. 천장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은 뭘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실제로 뻥 뚫린 중정(中庭)이 있다. 스페인 전통 건축의 특징을 살린 셈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카사밀라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옥상이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이 기괴한 모습의 두상.

 

 

 

 

 

 

이 투구 같은 머리가 바로 카사 밀라의 상징. 

 

멀리 악바르 타워가 보이기도.

 

 

 

이 투구머리가 스타 워즈에 나오는 스톰 트루퍼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닮긴 닮았다.

 

 

정말 조지 루카스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갔을까? 물론 진실은 은하계 저 너머에...

 

 

멀리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도 보이고...

 

 

뭐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기이한 녀석들은 대부분 통풍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도 매우 그럴싸하다.

 

한국에 이런 게 있었다면 아마 주변 고층건물 사이에 폭 파묻혀 버리지 않았을까.

 

 

다양한 머리 가운데 이 머리들만 깨진 녹색병 조각을 사용한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카사 밀라의 특징은 천장 바로 아래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이다. 가우디 건축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카사 밀라의 모형.

 

 

 

카사 밀라의 기초.

 

 

그리고 이것이 가우디의 미완성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건축 때 등장했다는 철사 모형이다. 보다시피 쇠사슬에 매듭을 지어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의뢰인인 구엘 가문에서 새 건물의 디자인을 요구하자 가우디는 이 사슬 모양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뢰인 측은 이해하지 못했다.

 

의뢰인: 대체 이게 뭔가요? 어떻게 이렇게 생긴 건물을 짓겠다는 거죠?

가우디: 누가 이대로 짓는대?

의뢰인: 그럼요?

가우디: 답답하긴, 거울 좀 갖고 와 봐.

 

 

 

이렇게. 이걸 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딱 쳤다고 한다. 역시 가우디!

 

 

 

 

저 모습을 구현하겠다고 한 스케치가 이렇다. 하지만 이 스케치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현재의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이 아랫단 부분만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 지어졌더라면 또 하나의 명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 전시공간은 가우디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스-로마 시대 열주형 건물의 기둥을 가우디가 어떻게 변형했는지 보여주는 모형들.

 

 

건축의 안정성을 위해, 그리고 보다 훌륭한 채광을 위해 가우디가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게 설계한 카사 밀라.

 

 

그리고 가우디가 자신의 건축물에 응용한 자연물들의 모습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옥수수.^^

 

 

그리고 한 층을 더 내려가면 카사 밀라 완공 당시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이 남겨져 있다.

 

카사 밀라는 본래 바르셀로나의 신흥 부르주아들을 위한 아파트로 설계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바르셀로나에도 신흥 유산계급이 형성됐고, 이들은 중정이 있는 저택보다 가장 모던하게 설계된 주거공간을 요구했다. (물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카사 밀라 분양계획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한다.^^)

 

 

 

암모나이트 문양이 새겨진 육각 타일로 마감된 바닥. 그 정성이 참 대단하게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모형.

 

 

 

이렇게 보면 분양에 실패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천장이며 벽이 모두 곡선이다. 이런 집에선 기존의 장롱이며 의자 등을 놓고 사는게 영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20세기 초. 지금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실내 싱크대도 있다.

 

 

 

꽤 스타일있어 보이는 난방/조리용을 겸한 스토브.

 

 

 

비데까지 있는 널찍한 욕실.

 

어찌 보면 '현대 생활'에서 갖춰야 할 것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아르누보의 시대에 모두 마련된 것 같다.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소재가 좀 달라졌을 뿐 온수용 가스 보일러를 포함해 현대 가정에서 필요한 편의 도구는 이 시기의 사람들도 이미 누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듯 하다.

 

 

 

 

물론 카사 밀라 측은 '카사밀라는 가구를 사서 들어올 필요가 없는, 모든 가구와 생활용 시설이 붙박이로 부착된 신개념 주거공간'이라고 열심히 홍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좀 흉물스럽고... 사람이 막상 들어가 살기엔 많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들어와 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행 소유가 됐다고.

 

지금이라면 더더욱 살고 싶지 않을. 하지만 분명 멋진.^^

 

 

 

이렇게 해서 사실상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은 끝났다. 이제 저녁식사와 함께 그라나다행 침대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연내 바르셀로나 탈출이 목표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맞춰가고 있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728x90

[히든싱어2 김광석 편]을 보고 뭔가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1980년대. 요즘 자꾸 떠오르는 말입니다. 그때 이문세가 있었고, 변진섭이 있었고, 이승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켠에 노찾사가 있었고, 동물원이 있었고, 김광석이 있었습니다.

 

2013년 12월28일. JTBC '히든싱어2'의 김광석 편이 방송됐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히든싱어'는 많은 히트곡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원조 가수가 출연하고, 그 가수의 노래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모창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출연해 과연 방청객과 시청자의 귀를 얼마나 혼동시킬 수 있는가 하는 데서 1차적으로 재미를 찾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음원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가수를,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 편을 제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여기 쓴 적이 있듯, '히든싱어'의 진정한 매력과 감동은 출연자가 원조 가수와 얼마나 비슷하냐, 혹은 비슷하지 않느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팬과 가수 사이의 교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즉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은 진정한 트리뷰트 쇼의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이고, 그 원조 가수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미 많은 분들이 보신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 다시 적지는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이쪽으로.

히든싱어, 감동은 어디서 올까? http://fivecard.joins.com/1118 )

 

 

그렇다면 김광석 편이야말로 반드시 만들어 볼만 하다는 의견이 점점 커졌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느냐는 것이죠.^^ 즉 후배 모창 가수들은 자기 육성으로 노래를 하고, 고 김광석은 음원으로만 존재할 때 그게 듣는 이를 혼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이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기술적으로 유사한 시도를 보자면, 방송중에 작곡가 주영훈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냇 킹 콜과 나탈리 콜 부녀가 함께 부른(?) 'Unforgetable'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죽은 아버지 냇 킹 콜이 부른 노래에 나탈리 콜의 노래를 입혀 세대를 뛰어 넘은 듀엣곡이 탄생한 것이죠.

 

 

 

 

그리고 위에서 보시는 저 광고, 아이유와 김광석이 함께 '서른 즈음에'를 노래하는 광고도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광석의 주요 레퍼토리들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녹음됐다는 점입니다. '히든싱어'에서 후배 가수들과 라이브(?)로 경쟁하려면 원곡 음원에서 반주와 육성을 분리하고, 그 육성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유족과 여러 관계자들의 도움 덕분에 그동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잊혀지는 것' 등이 디지털로 복원되어 있었고, 이번 '히든싱어'를 위해 '먼지가 되어' '일어나'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이 새로 분리될 수 있는 음원으로 등장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그를 있게 했던 노래 '사랑했지만'을 비롯해 '거리에서' '기다려줘' 등 초기 히트곡들은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히든싱어'에서는 이 노래들이 경쟁곡으로 쓰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먼지가 되어' '나의 노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서른 즈음에'가 방송에 사용됐습니다.)  

 

대신 그런 아쉬움은 후배 가수들의 노래로 달랬습니다.

 

 

 

(에이핑크 정은지의 음색이 참 곱더군요. 지금껏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게 해서 '히든싱어2' 김광석 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하면 자화자찬이라 낯간지럽지만 이런 식으로 고인이 된 가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국내에선 처음일 것이고, 해외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음원 김광석'이 쟁쟁한 후배 가객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미 누가 이기고 누가 이기지 않고에 연연할 분들은 없었을 겁니다. 아이유 때도 '너무 쉽다'는 여론이 있었고(물론 10~20대 시청자들 이야기입니다. 중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남진 때도 너무 쉽다는 여론(물론 50대 이상 시청자들 얘깁니다. 젊은 시청자들은 헉 했다고 전해집니다)이 있었지만, 이번 김광석 편을 갖고 난이도를 얘기하는 분들(물론 있었습니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진정한 의미는 쉽고 어렵고에 있지 않다는 걸 다들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들, '음원 김광석'의 턴에서 방문이 열리고 빈 공간만이 드러날 때, 마음 한 구석이 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다들 공유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 있었어야 할 그 가수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짙은 안타까움으로 남으면서.

 

 

 

 

 

 

내친 김에 그의 노래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964년 대구 태생. 증언에 따르면 그의 음악 역정은 80년대 대학가의 포크 동아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음악 동아리들은 필연적으로 대학가의 노래패, 즉 음악을 통한 변혁 운동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죠. 그래서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인들이나 나중에 김광석이 참여하는 동물원 멤버들은 모두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그런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광석과 안치환은 여러 무대에서 같이 공연하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김광석이 부른 '광야에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광석은 나중에 낸 자신의 '다시 부르기' 앨범에 노찾사를 세상에 알린 노래인 '그루터기'와 '광야에서'를 녹음해 넣기도 했습니다.

 

1992년 MBC 대학가요제에서는 이런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죠. 김광석, 노찾사, 안치환이 함께 부른 '그날이 오면'. 

 

 

 

그러던 어느날 김광석은 김창기 등 동료들과 함께 동물원이라는 그룹을 결성합니다. 이미 대학가의 '몰려 다니는 노래꾼' 들 사이에선 특히 서정적인 노래들로 나름 인기를 모았던 팀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김광석이 한때 고려대 앞에서 경영했던 '고리' 라는 카페에서 낮이나 밤이나 뭉쳐 다니던 사이였는데, 우연히 이들의 노래를 접한 김창완의 적극 후원으로 음반을 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1987년 동물원 1집. 특별히 메인 보컬이 있다기보다는 노래마다 특성에 맞는 사람이 보컬을 맡는 형식. 그래도 단연 기억에 남는 '동물원의 목소리'는 김광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김광석이 부른 동물원의 노래가 많지는 않습니다. 1집에선 '거리에서', 2집에선 '흐른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정도죠. 다만 이 노래들이 그 앨범에서 각각 가장 유명한 노래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아마추어리즘, 혹은 직장인 밴드의 한계를 가진 팀이었고 프로 가수의 꿈을 가졌던 김광석은 결국 동물원을 벗어나 1989년 솔로 1집을 발표합니다. 물론 이 앨범에도 동물원 멤버 김창기('히든싱어2'에 출연하신 분입니다^^)가 작곡한 '기다려줘'가 가장 잘 알려진 노래일 정도로 동물원 멤버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쭉 이어집니다.

 

한때 동물원 멤버들은 한 인터뷰에서 '동물원은 광석이형이 유명해지기 전에 어울려 놀던 동네 놀이터 같은 팀'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김광석이 떠난 뒤에도 동물원은 동물원 대로,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같은 히트곡을 낳으며 자신들만의 색깔을 키워 갑니다.

 

 

 

(1995년 방송된 KMTV 김광석 슈퍼콘서트는 그리 많지 않은, 김광석의 방송 출연 영상물입니다.)

 

'가수 김광석'을 낳게 한 가장 큰 동인은 2집, 그리고 '사랑했지만'의 히트입니다.

 

'사랑했지만'은 역시 '히든싱어2'에 패널로 참가했던 한동준('너를 사랑해'라는 불멸의 히트곡을 가진 분이죠)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위의 영상 끝부분을 보시면 직접 말하기도 하지만 정작 김광석은 이 노래를 부르기 전, 그리고 심지어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한 뒤에도 이 노래에 대해 큰 애정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영상을 보면 애정이 다시 생긴 듯 합니다^^)

 

그 외에도 이 2집에선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 등이 히트했지만 김광석은 이 2집에 대한 애정이 다른 음반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특히 스타 가수들에겐 매우 흔한 일입니다. 조지 마이클은 'Last Christmas'에 대해 '정말 이젠 더 이상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죠.^^).

 

그래도 팬들에겐 변함 없이 최고의 걸작입니다.

 

 

 

1994년 4집의 마지막 곡인 '자유롭게'입니다.

 

2집 이후에도 김광석은 3집의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4집의 '일어나', '서른 즈음에' 등을 히트시키며 전설이 되어 갑니다. 네번째 앨범이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활동기간은 정말 짧았던 셈입니다. 그 외에 리메이크 앨범, 라이브 앨범을 합쳐도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음원 자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1996년 1월. 향년 만 32세.

 

너무 이른 나이였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김광석의 노래들은 수없이 많은 후인들에 의해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2월 28일, '히든싱어2'에 출연해 우승하셨습니다.

 

 

'히든싱어2' 는 김광석 편으로 정규 시즌을 마칩니다. 임창정 신승훈 조성모 김범수 주현미 윤도현 아이유 남진 휘성 박진영 김윤아 김광석 까지 12명의 가수가 출연했습니다. 이제 2014년 1월4일, '히든싱어2'의 가장 화려했던 장면들을 모은 하이라이트가 방송되고 1월11일과 18일에는 모창가수들 중의 탑을 찾는 왕중왕전이, 그리고 25일에는 왕중왕전의 우승자를 가리는 특별 생방송이 진행됩니다.

 

'히든싱어2'의 포스트시즌 경기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P.S. 김광석 편의 감동을 이어가려면 어떤 가수가 있을까요. 저라면 '히든싱어3'에선 이런 가수는 어떨까 합니다.

 

 

 

 

아래 손가락 모양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이 됩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빨리 아실 수 있습니다.

 

 

 

 

 

728x90

[Txapela] 스페인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빠에야 많이 먹고 와"라고 한다. 빠에야 Paella가 유명한 스페인 음식이긴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아무데나 가서 빠에야 먹지 말라'는 거였다.

 

일단 스페인 사람들은 '발렌시아가 아니면 빠에야를 먹지 말라'고 한다는데, 사실 요즘처럼 인구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이건 별 설득력 없는 얘기인 것 같다. 그 다음 중요한 얘기는 '주문하고 15분 이내에 나오는 빠에야는 냉동 빠에야'라는 설명이다(이 이야기는 빠에야 먹은 이야기 때 자세히).

 

아무튼 그래서 빠에야는 대단히 후순위에 있었고, 대신 타파스 Tapas 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런데 현지에 가 보니 타파스에서 한발 더 나간 핀초 Pincho 라는 것이 있다는 거였다. 핀초? 대체 핀초가 뭐야?

 

 

 

이게 핀초다. Pincho라는 말은 꼬챙이를 뜻한다. 그러니까 핀초의 정의는 '꼬치로 찍어서 한입에 넣을 정도 사이즈의 음식'을 말한다.

 

가끔 보면 '스페인 식 타파스 전문점' 같은 설명을 보게 되는데, 물론 타파스에 더 강점을 가진 식당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이번 스페인 여행 중 가본 식당 중에 특정 메뉴만 파는 '전문 식당'이 아닌 식당 중엔 '타파스를 팔지 않는 식당'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좋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면 웨이터가 "타파 Tapa로 줄까, 플라토 Plato로 줄까?'하고 묻는다. 이건 중국집이나 아구찜 집의 중/대 메뉴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요리를 0.5인분 이하 사이즈인 작은 타파로 시키든, 1인분이 넘는 큰 플라토로 시키든 그건 손님의 자유다.

 

대신 두 사람이 가서, 여러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싶을 때 타파스만큼 좋은 선택은 없다. 플라토로 시키면 기껏해야 1~2개밖에 먹지 못할 음식을 타파스로 시켜서 5~6가지를 맛보고 기분 좋게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스페인 음식 문화를 선진적이라고 칭찬하는 이유다.

 

핀초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맛있어 보이는 꼬치 요리를 다양하게 준비하고, 손님들이 골라서 먹게 한다. 그리고 핀초의 상징인 꼬챙이(이쑤시개) 수로 음식 값을 계산한다는 거다. 말하자면 이건 회전초밥의 서빙 방식과 거의 똑같다.

 

그라시아 거리에 나간 김에 핀초를 맛보기로 했다.

 

 

 

이건 물론 핀초 전문점이 아니라 서점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아직 명품 거리 한 복판에 서점이 있다.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직 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 그것도 대로변에 서점이 있다면 과연 한국인들은 믿으려고 할까.

 

이런 현실은 잠시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정문 사진은 빌려왔다.

 

요즘 바르셀로나에서 잘 나가는 핀초 전문점이라고 한다. 이름은 차펠라 Txapela. Passeig de Gràcia, 58, 08007 Barcelona

 

핀초는 본래 바스크 지방의 전통이라고 한다. 어디 보면 Pincho도 Pintxo라고 쓴 곳이 있던데, 지역의 특성을 살린 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한 메뉴. 물론 식재료 이름이 모두 스페인어로 써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이쯤 되면 회전초밥에 익숙한 분들은 아, 어떤 시스템이구나 하는게 딱 감이 오실 듯.

 

 

레스토랑 안쪽에서 바깥쪽을 찍으면 이렇다.

 

입구 쪽의 바에서는 진열장에 나와 있는 핀초 가운데 손님이 직접 골라 먹기도 한다.

 

하지만 안쪽은 메뉴를 보고 주르르 주문하면 주방에서 만들어 갔다 주는 시스템.

 

 

 

이런 시스템을 쓰는 이유는 핀초의 변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려진 대로라면 핀초는 모두 '식어도 상관 없는 음식' 들이다. 즉 변형된 샌드위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뉴를 보듯 이미 이 집의 핀초는 차가운 음식과 더운 음식이 혼재되어 있다. 구운 고기나 햄버그 종류도 포함된 거다. 그러니 오르 되브르 Hors d Oeuvres 풍의 핀초만 있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타파스보다 더 미니화 된 소형 음식' 으로서의 핀초가 등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덕분에 손님들은 더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둘이서 욕심사납게 12개를 시켰다.

 

이렇게 접시에 담겨 나온다.

 

 

 

 

위 메뉴에서 1, 8, 10, 12, 22, 24, 27, 29, 30, 31, 41, 47번을 골랐다. 개당 가격은 1.75~2.45 유로 사이. 평균 2유로 정도다. 

 

1. 미니햄버거,

8. 대구 샐러드

10. 하몽 슬라이스를 뿌린 계란 토스트

12. 새우 베이컨 등을 꿴 꼬치구이

22. 구운 오징어 토스트

24. 세가지 치즈를 넣어 만든 크로켓

27. 튀긴 영계와 소시지

29. 새우 샐러드 토스트

30. 머쉬드 포테이토와 고추 절임

31. 바르셀로나 식 오믈렛

41. 엔초비와 절인 고추, 올리브 꼬치

47. 토마토와 아투라 치즈 토스트

 

친한 사이라면 한입씩 나눠 먹으며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메뉴들을 보면 알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독특한 요리 같은 것은 없다. 대부분 큰 무리 없이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맛은 좋았다.)

 

물론 지난번에 소개한 라 볼라처럼 한가지 요리를 잘 하는 전문 식당을 찾아가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스페인 특유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핀초 전문 레스토랑 차펠라. 둘이 먹은 가격은 음료 포함 약 30유로. 점심 치고는 좀 넉넉하게 먹은 편이다.

 

 

 

마지막 날이라 그라시아 거리 부근을 걸었다. 여자 다리를 설치한 극장 간판이 눈길을 끈다.

 

 

뭘 해도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 한 켠의 대형 삼성 네온사인.

 

한국인 여행자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삼성 간판이 있는 건물의 바로 오른쪽 1층에 하드 락 카페가 있다.

 

여기서 소개한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저 건물 뒤편, 라 람블라 거리와 고딕 지구에 있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를 떠날 시간.

 

그래도 저녁식사는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간 동네 식당에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이었던 사르수엘라를 먹어 보게 됐다.

 

 

 

 

728x90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우디의 작품을 꼽으라면 그건 누가 뭐래도 당연히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그리고 조금 더 꼽아 보라면 카사 바트요 Casa Batillo 카사 밀라 Casa Mila 를 꼽게 된다. 두 건물은 모두 바르셀로나의 청담동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두 건물과 주변 거리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http://fivecard.joins.com/1181 이쪽 참조. )

 

첫날 그 주변을 돌아봤고, 넷째날에는 건물 안까지 들어가서 살펴봤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다보탑,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석가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고르라면 카사 바트요 쪽.

 

 

 

카사 바트요의 모습이 무엇을 본뜬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비 모양, 고양이 모양, 해골 모양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이 건물을 왜 '뼈로 만든 집'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건물 한채가 전부 인체의 뼈대를 압축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한편 카사 바트요의 옥상을 보면 용의 비늘과 등뼈가 드러난다. 이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용이라는 설.

 

 

 

뭐 이런 데를 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고양이 해골인데, 이게 나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다고.

 

 

 

아무튼 카사 바트요는 전체 모습을 찍기가 꽤 까다롭다. 앞의 보도가 좁은데다 건물이 동향이라 오후에는 항상 역광이 된다. 차라리 밤에 가서 야경을 찍는게 좋을 듯. 야경은 이렇게 환상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건 기본 조명이고, 여기서 더 나가아면 특정한 날마다 다양한 조명으로 이 건물을 화려하게 꾸민다고 한다. 안 봐도 엄청나게 멋질 것 같다. 앞으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시는 분은 밤의 카사 바트요를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나는 야경은 못 봤다.

 

대신 적잖은 입장료를 내고 건물 안으로 진입.

 

무려 1인당 20.35유로다. 바르셀로나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0%로 할인권을 주긴 하는데 그래 봐야 18.3유로. 몇 층 되지도 않는 건물 치고는 정말 비싼 입장료가 아닐 수 없다.

 

 

 

1층. 바로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의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개의 도자기 형상이 방문자를 반기는데 그 바로 위에 앙증맞은 채광창이 따로 나 있다. 이게 바로 이 건물에 담긴 철학을 압축한 모습.

 

 

 

2층의 응접공간.

 

 

밖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 된다.

 

 

 

흔히 말하길 '가우디의 건물에는 직선이 없다'고들 하는데, 방 구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직선이 있긴 있다. 하지만 최대한 직선을 직선같지 않게, 원만한 선으로 감싸게 디자인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아름다움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채광. 이 건물 2층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이다. 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바로 앞의 불투명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자연광이 건물 안의 깊숙한 속살에까지 미치게 되어 있는 디자인. 가우디가 괜히 가우디가 아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복도. 정면에 보이는 작은 유리 문은 엘리베이터 룸이다.

 

 

 

어찌 보면 해골 무늬같은 창이 잇달아 있어 약간 코믹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 해골의 입 부분에 나 있는 세 줄의 구멍은 환기구 역할을 한다. 아무튼 푸른 색 타일로 장식된 계단 회랑이 마냥 아름답다.

 

 

 

2층 바깥쪽에 있는 작은 테라스.

 

 

 

그리고 그 테라스에서 바라본 카사 바트요의 뒷면. 앞면만큼 아름답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그 중간 층은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몇층 더 올라가면 천장의 채광창이 바로 보인다. 이 빛 역시 사방으로 나 있는 창을 통해 각 층의 공간으로 전달된다.

 

물론 공기도.

 

 

 

 

 

중간 층의 굳게 닫힌 문들. 이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1층과 2층, 그리고 맨 꼭대기층만이 공개된다.

 

 

이것이 꼭대기층의 복도.

 

 

어디서나 나선 계단은 기본이다. 이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꼭대기층의 시뮬레이션 룸에선 카사 바트요에 조명을 비추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모형으로 보여준다.

 

 

카사 바트요 옥상에서 뒤편을 바라보면 그라시아 거리의 이런 광경이 보인다.

 

 

 

그리고 옥상 앞쪽으로 가면,

 

이런 기둥들이 보인다. 바로 가우디 특유의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이 사용된 전형적인 예다.

 

 

 

동화속 같은 굴뚝 너머로 용의 등뼈가 보인다.

 

 

 

카사 바트요의 상징인 마늘 십자가와 용의 등 껍질.

 

 

정면에서 바로본 길 건너편.

 

 

 

 

 

 

 

 

다시 옥상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뭐 화장실은 그리 특이하지 않다.^^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확실히 스페인이 디자인 강국임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바로 이 의자.

 

그렇다. 사진을 키워 보면 가격이 1400유로. 뭐 한국 돈으론 약 200만원밖에 안 한다.

 

보면 볼수록 예쁜데 그냥 몇개 사 올 걸 그랬다. 가격도 얼마 안 하는데... (스페인 여행 카드 영수증을 받고 슬슬 미쳐가고 있음)

 

 

이건 미니어처. 하지만 가격은 결코 미니어처가 아니었다.^^ 디자인 값.

 

평소보다 조금 짧은 포스팅으로 마친다.

 

카사 바트요를 본 소감은 '어쨌든 죽기 전에 다시 와서 알록달록 야간 조명으로 물든 카사 바트요를 다시 보고 싶다'다.

 

 

 

다음 순서는 기대하시라 카사 밀라.

 

 

728x90

피게레스를 다녀와 찾은 곳은 누가 뭐래도 바르셀로나의 여러 식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이미 이곳들 들러 본 사람들의 평을 여러 블로그에서 봤고, 또 민박집 주인장으로부터도 강력한 추천을 받은 곳이다. 바로 엘 레이 델 라 감바 El Ray De La Gamba. '새우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리 럭셔리하거나 분위기가 엄청나게 로맨틱한 곳은 아니다. 그런 곳들은 따로 있다.

 

다만 적당한 분위기와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맛으로 평가할 때 이 집이 준 감동은 매우 컸다.

 

 

 

 

바르셀로네타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불쏙 솟아 있는 작은 반도다. 바르셀로나 항구를 위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햔다. 아무튼 해변이 넓게 발달되어 있고, 제법 정취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기본적으로 남동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항구다. 그리고 바르셀로네타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네타 아래쪽, 그러니까 해변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항만이 개발되어 있다.

 

반대로 바르셀로네타의 바깥쪽(위 지도에서 파선이 그어져 있는 부분)부터 북동쪽으로는 대양을 맞는 모래톱이 죽 이어져 있다. 바로 파도가 적은 지중해를 향한 환상의 천연 해수욕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지도에서 A가 바르셀로네타 역, B가 목적지인 엘 레이 델 라 감바 다. A에서 B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 가장 좋은 코스라면 고딕 지구를 거닐다가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에서 바르셀로네타 역까지 걸어서 약 5,6분, 그리고 바르셀로네타 역에서 직선 길을 따라 내려와 약 10분이면 닿는다. B는 주소상으론 Pg. Joan de Borbo' 53.

 

가다 보면 수많은 비슷비슷한 해변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가다 보면 엘 레 델 라 감바 2호점이 먼저 나오고, 거기서 한 20미터만 더 가면 1호점이 등장한다. 사실 20미터 거리의 1호점과 2호점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어쨌든 1호점이 먼저 차고, 그 다음에 2호점이 찬다고 한다.

 

 

 

이렇게 생겼다.

 

 

본래는 건물 안이 레스토랑이겠지만 이렇게 노천으로 나와 있는 테이블이 당연히 훨씬 선호된다. 10월이라 밖에 앉아 있으니 꽤 선선한 날씨. 물론 반팔부터 점퍼까지 다양한 차림새가 공존한다.

 

지시대로 해물 모듬 절반 Parillada Medio Plato 을 주문했다. 본래 Parillada Plato 가 2인분 기준으로 40유로인데 '그걸 시키면 후회할 것'이란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Jamon y Melon을 먼저 주문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흔히 나오는 프로슈토+멜론과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결론은 똑같다. 프로슈토와 하몽은 본질적으로 국적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 식품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재료가 같고(돼지 뒷다리), 불기운 없이 소금에 절여 말린다는 공정이 같으니 맛이 그닥 다를 이유가 없다.

 

멜론은 스페인 멜론이 더 달다는 느낌.^^ 아무튼 맛있다.

 

 

 

그리고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팡 콘 토마테 Pan con Toamate.

 

항상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식'을 이야기할 때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거기다 간 토마토와 다진 마늘을 쓱쓱, 그리고 올리브 기름으로 마무리...'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팡 콘 토마테다.

 

구수하고 좋다. 그 자체로 맛이 좋은데, 아마 먹고 자란 사람이라면 꽤 생각날 음식인 수 있겠다.

 

 

 

나왔다. 절반 사이즈로 보기엔 꽤 거대하다.

 

구성은 꼭대기의 닭새우 1마리. 갑오징어 Sepia 1마리, 그리고 대구와 메로 종류로 보이는 생선살이 각각 한 피스(통으로 썬 단편 하나 정도), 대하가 약 20마리, 나머지는 접시 가득 홍합이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새우의 맛이다. 찐 새우 위에 뭔가 올리브 오일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 되어 있는데, 그 양념 맛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뭔가를 가미하니 새우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

 

새우 한 마리를 까서 입에 넣으면 바로 다음 마리에 손이 가 있어야 할 정도로 입에 침이 고인다. 저 새우에 뿌린 소스 맛의 비밀만 알아낸다면, 서울에서 당장 '바르셀로나식 해물찜' 가게를 차리고 싶다. 아무튼 처음 먹어보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양도 적지 않아 먹다가 홍합을 좀 남겼다. 그런데 옆자리의 백인 아저씨는 체구도 별로 크지 않은데 똑같은 Medo를 시켜서 혼자 다 뜯어먹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식사량이 만만찮은 듯.

 

 

 

식당 안쪽. 1층은 거의 다 주방으로 쓰는 듯 하고, 지하에 화장실과 테이블들이 있다. 뭐 굳이 해변까지 와서 지하에 앉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스페인 어디나 매달려 있는 저 하몽들.

 

아, 물론 1층 야외 테이블이라고 해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은 아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길 건너편도 육지다. 갈매기가 좀 날아다니는 정도?

 

 

물론 해물 전문 식당이니 하몽만 걸려 있지는 않다. 식재료로 쓰이는 바닷가재들이 어항을 헤엄치는 모습.

 

 

 

식사 후 천천히 바르셀로네타 해변 쪽으로 걸어내려왔다.

 

그리고 마주친 건 호수처럼 잔잔한 지중해 위의 달. 어쩐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파도는 거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잔잔하게 밀려오고, 그 위로 구름 낀 하늘, 그리고 구름 속의 달.

 

철 지나 텅 빈 바닷가에 이렇게 달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광경.

 

자연상태가 아닌, 촬영용 세트 안에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여름엔 세계 각국에서 온 피서객들이 즐비했을 해변. 10월엔 쓸쓸하기만 하다.

 

고성방가 금지, 해변 수면 금지 사인만이 한때의 영화를 대변해 줄 뿐.

 

 

가다 보니 희한한 기념물이 등장했다. 정말 달리의 그림 배경에나 나올법한 초자연적인 구도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이렇게 바다 가까이 나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달을 감상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분위기로 따지자면 이런 곳들이 우리가 식사한 엘 레이 델 라 감바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로맨틱해 보인다.

 

특히 맨 아래 간판의 살라망카라는 가게 뒤켠이 눈에 들어왔다(그 바로 위 사진). 사진상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화톳불까지 군데군데 피워 놓은 것이 아주 제대로라는 느낌이다.^^

 

혹시 신혼여행 같은 걸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게들을 가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택시로 숙소행.

 

엘 레이 델 라 감바는 저 해산물 모듬 절반을 먹는다는 전제하에 2인 기준 약 35~40유로 정도로 음료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식후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산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한여름이라도 점심 보다는 저녁에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