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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군의 기행에 대해 두번째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앞에서 말한 유희서 청부살인 사건은 사실 빙산의 일각. 유희서가 명문가 출신의 공신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부각된 것 뿐이고, 임해군의 세도에 희생된 사람들은 부지기수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오히려 나름 잘 나가던 유희서 같은 사람도 서슴없이 해치울 정도로 임해군의 행동은 안하무인이었다는.

 

임해군의 비행에 대한 첫번째 글은 이쪽입니다.

임해군, 소시오패스에 가까웠던 왕자 http://fivecard.joins.com/1155

 

그리고 임해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오죽하면...'이란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임해군에 대한 정사의 기록에 대한 부분입니다.

 

 

 

 

임해군 (1574-1609) 2

 

임해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광해군 때 편찬된 선조실록보다 인조 때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에 더 임해군의 비리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수정실록이 편찬된 이유가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것임을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다. 이 목적에 충실하려면 수정실록 편찬자들은 임해군을 광해군에 의해 밀려난 피해자로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반정의 주역들로서도 차마 임해군을 옹호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긴 왜란이 끝난 뒤에도 광해군은 정국 안정을 위해 안간힘을 썼고, 명나라도 세자 책봉을 정식으로 진행하자는 전갈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엔 선조가 주저했다. 조정 대신들이 마치 광해군이 이미 왕이라도 된 양 대하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1606년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선조는 뛸 듯 기뻐했지만 시간은 광해군의 편이었다. 1607 10, 선조가 병으로 드러누웠다.

 

선조는 죽기 한달 전까지도 광해군에게 양위하라는 정인홍의 상소에 어찌 신하가 할 말이냐고 격분하는 등 의욕을 과시했으나 1608 21일 돌연 사망했다. 이이첨의 계략에 의해 동궁전에서 들여간 약밥을 먹고 숨이 끊어졌다는 독살설이 돌았으나 이미 광해군의 등극이 대세였다.

 

 

선조의 마지막 나날은 광해군에겐 상당히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 선조가 왕위를 물려줄 뜻이 없는 듯한 느낌. 영창대군의 출생. 그런데 그 선조가 병으로 쓰러진 뒤 마음이 약해졌는지 1607년 10월11일, 이런 전교를 내립니다.

 

“나는 본디 질병이 많아서 평일에도 만기(萬機)의 정무는 절대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지금은 병에 걸린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조금도 차도가 없어 정신이 혼암하고 심병이 더욱 침중하다. 이러한데도 왕위에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는가? 세자 나이가 장성하였으니 고사에 의해 전위(傳位)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전위가 어렵다면 섭정(攝政)하는 것도 가하다. 군국(軍國)의 중대사는 이처럼 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속히 거행하는 것이 좋겠다.”

 

왕위를 물려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섭정으로라도 임명해 정사를 돌보게 하겠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미 영창대군에게 정치적으로 기울어 있던 유영경 등이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냐는 것이죠.

 

영의정 유영경(柳永慶), 좌의정 허욱(許頊),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이 회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비망기를 보고 서로 돌아보며 놀라고 황공하여 품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상께서 여러 달 동안 조섭하시어 즉시 쾌복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점차 수라를 드시어 원기가 회복되어 가니 온 나라 신민이 평복될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만 의외에 이번에 갑자기 이런 명을 내리시니 신들은 몹시 걱정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군국(軍國)의 기무(機務)는 조섭중에 계시더라도 적체된 것이 없으니 바라건대 이런 점은 염려하지 마시고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조섭에 전념하시면 종묘와 사직이 은밀히 도와서 성후(聖候)가 저절로 강녕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신들의 소원일 뿐만 아니라 군신(群臣)의 뜻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황공하게 감히 아룁니다.”

 

이런 말이 몇번 오가더니 선조는 슬그머니 전위나 섭정 이야기를 거둬 들입니다. 어쩌면 애당초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이 신하들을 떠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도마 위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온 광해군은 아슬아슬한 마음이었을텐데 이듬해 1월18일 정인홍이 상소를 올립니다. 

 

 

 

"신이 삼가 도로에서 듣건대 지난 10월 13일에 상께서 전섭(傳攝)한다는 전교를 내리자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마음 속으로 원임 대신을 꺼려 다 내어 쫓아서 원임 대신들로 하여금 참여하여 보지 못하게 하였고 여러번 방계(防啓)를 올리고 유독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공모하였으며 중전(中殿)께서 언서(諺書)의 전지를 내리자 ‘금일 전교는 실로 여러 사람의 뜻 밖에 나온 거사이니 명령을 받지 못하겠다.’고 즉시 회계(回啓)하여 대간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고 정원과 사관(史館)으로 하여금 성지(聖旨)를 극비로 하여 전출(傳出)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니, 영경은 무슨 음모와 흉계가 있어서 이토록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

 

이 말에 선조는 대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유영경을 규탄하는 상소지만 내용은 왕 자신이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는 지탄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만 있으면 왕위를 넘본 역적 대접을 받게 된 광해군은 당장 진땀을 흘리며 죄를 청합니다.

 

"신이 못난 자질로 감당하지 못할 지위에 있으므로 밤낮으로 근심하며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상후(上候) 미령함으로 인하여 갑자기 전섭(傳攝)한다는 명을 내리시니 신은 죽으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의 회계는 어찌 신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뜻밖에 정인홍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만들어 위로 천청(天聽)을 번거롭혔습니다. 성상의 하교에 ‘지친간에 부득불 이로 인해 의심하여 틈이 생기겠다.’고 하셨으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은 만 번 죽는 것 이외에는 다시 상달할 바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 황공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선조가 당장 정인홍을 잡아다 목을 베라는 명을 내리지 않은 것이 좀 신기할 뿐입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정인홍에 대한 선조의 신뢰가 워낙 두터웠다는 점(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정인홍을 도성에서 50리나 떠난 뒤 다시 불러들일 정도. 그리고 '정인홍이 여러 사람과 불편하게 지냈다'는 대신들의 말에도 그를 옹호할 정도), 그리고 정인홍이 이때 이미 73세의 고령이었다는 점 등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죽기 이틀 전, 1월29일 선조는 "정인홍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심정을 내비칩니다.

 

"소인의 성품은 남 해치기를 즐겨 하고 일 저지르기를 좋아하여 자신이 죽지 않으면 그치지 않으니 그러므로 악한 자 다스리는 법을 부득불 엄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만약 구차스럽게 임시 방편으로 처리하면 후일 다시 이보다 큰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만약 저들이 일시의 명사(名士)를 모두 모함한다면 비록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로부터 신하가 임금을 이간시키고도 천벌을 면할 수 있었는가. 나는 진실로 가슴이 아프다. 이는 참으로 신하가 목욕하고 토죄(討罪)를 청할 일이다"

 

아무튼 정인홍이 옳다, 유영경이 옳다는 주장으로 조정이 들썩들썩하던 도중, 2월1일 선조가 갑작스레 승하합니다. 정인홍이 상소를 올리고 보름도 안 되었으니 잡아 죽일 새도 없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광해군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샛길로 빠졌지만 다시 임해군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제 임해군을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해군이 등극한지 채 보름도 안 된 214, 이미 임해군이 몰래 장사를 모으고 병장기를 들이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광해군은 형이 그럴 리 없다며 신하들을 꾸짖었지만, 그 사이 임해군이 여자 옷을 입고 하인의 등에 업혀 동네를 빠져나가다 잡혀 들어왔다. 역모를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임해군에겐 마지막 살 길이 남아 있었다. 1608년 6월, ‘공인되지 않은 세자광해군이 장남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이유를 조사하겠다며 명나라 사신이 한양에 도착했다. 이들은 두 형제를 대질시켜야 하니 교동도(강화도 서쪽의 작은 섬)에 유배되어 있던 임해군을 데려오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정인홍은 대로하여 임해군의 목을 베어 사신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고함을 질렀지만, 조정의 중론은 사신을 잘 설득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는 쪽이었다. 국토의 2/3를 왜군에게 빼앗겼다가 명의 원군 덕분에 나라를 되찾은지 겨우 11. 명의 위세는 당당했다.

 

결국 이덕형이 나서 광해군은 사신들을 위무차 방문하는 정도로, 임해군은 서강(지금의 마포 근처)까지 나와 사신들과 면담하게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임해군이 일부러 미친 사람 시늉을 했다일월록의 내용이다. 어째서 명나라 사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대로만 해 주면 광해군이 최소한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신들의 입을 막기 위해 막대한 뇌물이 동원됐다. 역관 홍순언은 왜란 때 원군을 요청하면서도 명나라 고관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거늘, 이제 버릇을 들였으니 대국 사신이 올 때마다 백성들이 더욱 괴로워 질 것이라며 탄식했다. 결국 이 예측은 그대로 실현됐다.

 

1년 뒤 교동도에서 임해군이 급사했다. 1609 429일자 실록에는, ‘유배된 임해군을 지키던 무관 이정표가 독을 먹이려다 반항하자 목을 졸라 죽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되어 있다. 물론 광해군 당대에는 그저 소문으로만 돌던 이야기였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이이첨이 교동 현감인 이현영을 설득해 임해군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후임인 이직을 시켜 흉수를 쓴 것이라는 주장을 전하고 있다. 자손은 없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장남은 여럿 있었지만 임해군 만큼 악평에 시달리던 사람도 드물다. 그 본인도 문제였지만 너무 잘난 동생 광해를 둔 탓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선조의 아들들 가운데 임해군만 평판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순화군은 이유 없이 죽인 사람이 1년에 10명이 넘는다’, 정원군은 임해군보다 악하면 악했지 나을 것이 없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원군은 죽고 난 뒤 아들 능양군이 공신들에 의해 인조로 추대되면서, 비록 이름만 왕이지만 원종으로 추존됐고 생전의 악행은 조용히 묻혔다. 만약 임해군도 아들이 있어 왕위에 올랐다면 이런 오명을 후세에 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

 

 

순화군 이보의 졸기에는 "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悖妄)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이나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이에 양사(兩司)가 논계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안치시켰는데,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상이 특별히 명하여 그의 직을 회복시켜 순화군이라 하고, 익성군 이향령(益城君李享齡)의 아들 이봉경(李奉慶)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밖의 사료에는 대부분 정원군에 대해선 좋은 이야기만 있습니다. 효성이 두터웠다,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임금 감(?)으로 꼽혔던 아들 능창군이 역모에 휘말려 일찍 죽은 이후 속병을 앓아 폐인이 됐다... 이유는 장남인 능양군이 왕위에 올라 인조가 되었기 때문이죠. 임해군도 아들이 있었다면... 글쎄요.

 

 

P.S. 잊고 있는 사이 '불의 여신 정이'가 끝나 버렸네요. 아무튼 임해군에 대한 정리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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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들의 소위 전성기가 훨씬 지나 1987년에 나온 앨범 '가우디 Gaudi'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이 음반의 첫 곡 제목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다.

 

 

 

이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노래를 듣고 나서 당연히 '대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당연히 찾아 봐야겠는데, 1980년대 후반의 한국은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찾아낸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세월이 흐르며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혹은 성 가족 성당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쌓일 수록,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라는 다짐은 점점 굳어 갔다. 이 노래에서 보컬을 맡은 존 마일즈의 격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La Sagrada Familia we thank the lord the danger's over
La Sagrada Familia behold the mighty hand
La Sagrada Familia the night is gone the waiting's over
La Sagrada Familia there's peace throughout the land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에게 감사드리자. 위험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의 손길을 바라보라.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밤은 지나갔고, 기다림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었네.

 

그리고, 긴 기다림이 끝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런 모습으로 방문객을 처음 맞는다. 저 입구가 있는 벽체를 파사드 Pasad라고 부른다. 네 개의 옥수수 모양 탑이 있는 동편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부조들은 모두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복음서의 기록들을 조각으로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1882년 지어지기 시작한 이 성당에서 1926년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면은 단 한쪽 벽면. 바로 이 동쪽 면이다.

 

가우디의 구상에 따르면 동쪽 면은 예수의 탄생을, 남쪽 면은 예수의 영광을, 그리고 서쪽 면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었다. 이 동쪽 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은 지금 봐도 당연히 찬탄을 자아낸다.

 

 

 

그 정중앙을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된 인물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전 유럽의 거장들이 천년 동안 만들어 온 모든 성당을 뛰어 넘고야 말겠다는 가우디의 야망이 피부로 느껴진다. 

 

 

 

성당의 이름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이니 요셉의 비중이 작지 않다. 수태고지의 관을 쓰는 마리아를 옆에서 늙은 요셉이 바라보는 모습을 정면 중앙에 배치했다.

 

조각이나 그림 속의 요셉은 왜 이런 늙은이로 묘사되어 있을까. 그건 마리아가 결혼 뒤에도 처녀였다는 내용과 관련 있다. 요셉이 젊고 혈기방장한 남자일 경우 과연 그게 납득이 가겠느냐는 깊은 생각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위로는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예수를 상징하는 JHS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JHS, 혹은 IHS가 예수를 상징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찾아 보니 그게 무엇의 약자인지는 사실 의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라틴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Iesus Hominum Salvator ' 의 약자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그냥 IHS 자체가 '예수'의 다른 표기법이란 의견도 꽤 설득력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아직도 한참 공사가 진행중. 공사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26년을 넘기지 않고 완공시킨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사실 공사 기간은 엄청난 음모설의 대상이었다. 성가족성당의 공사가 초대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926년 이후의 진척도를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게 사실이다. 150층짜리 빌딩도 몇년이면 다 짓는 요즘 세상에 왜 70년 80년이 소요되고 있는가?

 

공식 답변은 '소요되는 엄청난 공사비를 기부금으로 충당했는데 모금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궁색하다. 오히려 스페인 정부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갖고 있는 관광자원으로서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의로 완공을 미루면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었다는 음모설이 훨씬 설득력있다.

 

그러던 것이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에서 미사를 한번 집전해 보는게 소원"이라고 얘기하면서 전 세계 가톨릭권의 압력이 스페인으로 밀려왔고, 결국 '등 떠밀린' 스페인이 공사에 속도를 붙여 2010년에는 지붕이 완성되고 미사가 진행되는 데까지 일이 진행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한번 맘먹고 지으면 금세 지을 걸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느냐는 의혹만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아무튼 예수 탄생 기록을 위해 가우디는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거의 모든 조각품이 실제 모델의 본을 떠 석고 모형을 만든 뒤 이뤄졌다는 것. 심지어 왼쪽의 '이집트로 피난가는 성가족'에서 마리아가 탄 당나귀를 표현하기 위해 진짜 당나귀의 본을 떴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오른쪽, 헤롯의 명령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참살하는 병사의 모습에도 얘깃거리가 있다.

 

일단 모든 모델을 석고본을 떴으면 아기는....?

 

병원에 연락해서 죽은 아기를 가져다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아기를 들고 있는 병사, 완성해 놓고 보니 발가락이 여섯개였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가 모델이라니 왠지 좀 섬뜩하게 느껴지긴 한다. 아무튼 대단하다.

 

 

 

예수의 영광을 그려낼 남쪽 파사드는 현재 열심히 공사중이다.

 

 

 

모퉁이를 돌면 서편, 그러니까 지금의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쪽 파사드가 보인다.

 

이른바 '수난의 파사드'인데, 조각가가 주젭 마리아 수비락스 Josep Maria Subirachs 로 바뀌면서 조각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적이고 화려한 동편의 조각과는 달리 20세기 스타일의 추상적인 형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네 개의 옥수수탑 중앙부, 녹색 공사용 그물이 쳐져 있는 곳에 약간 노리끼리한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장면을 확대하면 이렇다.

 

 

 

예수상이다. 문제는 높이 있으면 작아 보이는게 인지상정인데, 수비락스의 의도는 이 예수상이 아래쪽에 있는 예수상과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위에 있는 조상일수록 커져야 하는 법. 이 예수상만 3톤의 크기라고 한다. 그럼 저 거죽을 바른 도금엔 금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아무튼 서쪽의 추상적인 스타일은 동쪽의 고전적인 스타일과 완전히 대비를 이루며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도 아예 공사 현장의 X빔을 그대로 노출시켜 사용했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수건으로 피와 땀에 젖은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베로니카 성녀를 가운데 배치하는 파격적인 연출도 눈길을 끈다.

 

또 옆에 서 있는 로마 병사들은 카사 밀라 옥상에 있는 가면 쓴 병사들의 형상들을 그대로 가져와 가우디와의 접점을 마련했다(심지어 왼쪽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가우디).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 형상들은 영화 스타 워즈에 나오는 제국 군대 스톰 트루퍼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사실 이 모습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실은 피터 잭슨만 알고 있겠지.

 

 

심지어 맨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만년의 가우디.

 

 

 

이건 관찰력이 필요한 부분. 왼쪽의 사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33. 이 조각은 예수에게 키스해 병사들의 습격을 받게 하는 유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누가 예수고 누가 유다인지 혼동할까봐 유다의 발밑엔 뱀을, 예수의 등 쪽에는 합계 33(예수가 죽을 때의 나이)의 사방진을 배치했다. 왜 사방진인지는... 글쎄.

 

 

 

이렇게 해서 알파와 오메가의 형상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기룩한 성전 기둥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관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면, 내부를 보고는 감히 박수를 치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대단해서. 지금까지 세계를 돌며 좋은 것도 꽤 많이 봤지만,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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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2' 주현미 편에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졌습니다. 주현미의 도전자 중에 중국에서 귀화한 박애화씨가 있었던 거죠. 박애화씨의 사연을 들은 주현미는 그 자리에서 대뜸 중국어로 질문을 던졌고, 두 사람이 중국어로 몇마디 대화를 나누는 광경이 여과 없이 방송됐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주현미는 '약사 출신 가수'로도 유명했지만 '화교 가수'라는 사실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한 곡의 노래를 같이 부르기 시작합니다.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중국과 조금이라도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노래죠.

 

 

 

 

이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은 1953년 태어나 95년 42세로 요절할 때까지, 전 세계 중국어권 인구에게 여왕으로 군림했던 가수 등려군입니다. 방송중에는 영화 '첨밀밀' OST 수록곡으로 소개됐지만, 그 이전에 이 노래는 이미 불멸의 히트곡이었습니다. 영화에선 장만옥이 라디오를 통해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듣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죠.

 

등려군의 노래야 더없는 절창이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한두명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가창이 있습니다.

 

바로 장국영.

 

 

 

 

이날 노래를 시작한 박애화씨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주현미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노래 가사가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저 밝은 달이 전해주고 있다'는 것이니, 딱 떨어지는 노래입니다.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은 내게 물었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你問我愛 你有多深 我愛 你有幾分

내 마음은 떠나지 않아요.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我的情不移 我的愛不變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 보여주고 있잖아요.                    月亮代表我的心

 

이 노래를 같이 부른 주현미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없이 정겨운 무대가 연출됐습니다.

 

사실 주현미는 전부터 이 노래를 여기저기서 즐겨 불렀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주현미가 부른 '월량대표아적심'에는 여러 가지 영상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제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골라 봤습니다.

 

애절한 해금 소리와 노래가 참 잘 어우러집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수없이 주현미의 노래를 들었겠지만,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와 중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를 때, 주현미의 목소리는 살짝 다르게 다가옵니다. 뭐랄까... 중국어 노래를 부를 때에는 그 목소리에 내재되어 있는 회한의 정서가 더욱 극대화되는 그런 느낌.

 

그럼 한국어와 중국어로 한꺼번에 부를 때는 또 어떨까요. 주현미가 등려군의 '야래향'을 부른 영상입니다.

 

 

 

사실 이날 '히든싱어'는 맞추는 재미는 그닥 없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주현미의 농익은 기량과 나이에 따른 원숙한 음색이 다른 젊은 도전자들과 구분하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죠. 특히 패널 중 데니안은 도전자의 연령대까지 짐작하는 신기를 보였는데, 사실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느껴지는 건 분명한 사실인 듯 합니다. 비슷한 또래의 도전자가 나왔더라면 좀 더 구별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여담이지만 이런 상식을 깼던 가수가 바로 신승훈이었습니다. 저도 들으면서 '이건 젊었을 때 신승훈 목소리를 흉내내는 도전자잖아!'하고 생각했던 도전자(?)가 바로 신승훈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신승훈이 '히든싱어' 방송 사상 최초로 도전자에게 우승을 내준 건 지금까지도 너무나 젊은 날의 목소리를 그대로 간직했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나이를 극복하는 바람에' 청중 평가단을 혼란에 빠뜨린 거죠.^^) 

 

하지만 '히든싱어'의 재미는 이미 헷갈리냐 맞추냐의 선은 넘어선 듯 합니다. 지난 시즌 때의 백지영 때도 도전자들과 백지영의 목소리가 확연히 차이났지만 그래도 방송으로 접하는 재미는 떨어지지 않았죠. 이번 주현미 편도 '방송 이래 가장 쉬웠다'는 평인데도 시청률 면에선 방송 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하는 호조를 보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든싱어' 본방에서 들을 수 없었던 주현미의 히트곡 하나.

 

 

 

 

이젠 시청자들도 맞추고 틀리고 보다는 추억의 명가수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고, 출연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 가수의 워너비가 되었는지 사연을 즐기는 쪽으로 자리를 잡으신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바로 '히든싱어'를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히든싱어'가 단순한 모창 묘기 쇼가 아닌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거겠죠.

 

사실 저는 어제 못 들어 아쉬운 노래가 또 있습니다. 딱 한번, 1990년대 초쯤의 어느 날,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주현미가 출연했습니다. 당시 '작은 음악회'는 지금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주현미의 등장은 꽤 의외였죠.

 

이때 MC 노영심은 "평소 방송에서 보지 못하는 주현미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다"며 자신이 미리 주문한 다섯 곡의 노래를 불러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

 

 

 

주현미가 '신사동 그 사람'이나 '비내리는 영동교'를 불러 당대의 톱가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목소리 속에 들어 있는 짙은 페이소스가 듣는 이의 몸을 촉촉하게 적시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흥겨운 리듬의 노래를 부를 때도,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날을 되새기게 하는 매력이 담겨 있는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 '당년정'은 원래 제가 좋아하던 노래지만 이날 주현미의 가창은 그때까지 들어 본 어떤 다른 버전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그 뒤로 한번쯤 더 이 노래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했지만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없더군요. 살다보면 언젠가 한번 들어볼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다음은 약간 희귀한 버전입니다. 2003년, 장국영의 죽음 4일 뒤에 열린 홍콩 금상장 시상식장에서 곽부성, 장학우, 유덕화, 여명 등 홍콩의 4대천왕이 부른 추모의 노래 '당년정'입니다. 반주도 없고, 음질도 엉망이지만 장국영 팬들에겐 더 없는 선물일 듯 합니다.

 

 

 

 

 

분위기가 너무 처지지 않게 마지막으로 한 곡. '히든싱어2'에 주현미의 모창 도전자로 나온 여고생 배아현 양은 이날 주현미에게 "학교 졸업하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제자로 받아 주겠다"는 말을 듣고 펄쩍 뛰며 기뻐했습니다.

 

그 배아현 양의 타고난 꺾기 기술. 무슨 노래를 불러도 '뽕끼 작렬'이라는 말을 듣고 주영훈이 '트로트 아닌 다른 노래를 불러 보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에일리의 '보여줄게'.

 

스튜디오가 뒤집어집니다. 잘 들어 보세요.

 

 

 

 

다음주 '히든싱어'는 윤도현 편이 방송됩니다. 당연히 토요일 밤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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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한복판에는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acia 라는 대로가 있다. 우선 바르셀로나의 도시 모양을 일단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지도를 보면 아무 느낌도 없겠지만, 며칠 돌아다니다 보면 이 도시의 특성이 보인다.

 

 

 

바르셀로나의 주축 도로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 Gran Via 다(위 지도의 파란색 선). Gran Via는 스페인에서 한 도시의 가장 큰 길을 말하는 것으로, 앞으로 갈 모든 도시마다 Gran Via가 있다. 대개의 경우 그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그란 비아의 공식 명칭은 Gran Via de les Catalanes 지만 뒷말은 무시해도 좋다. 어차피 그란비아는 이 길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지도를 클릭해서 크게 보면 파란 선이 통과하는 전철역(빨간 마름모) 중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acia라는 역이 보인다.

 

 

 

그러니까 그 중심 대로인 Gran Via 길 위의 그라시아 거리 역에서 수직으로 북서쪽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라시아 거리다.

 

이 거리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 길이 바르셀로나의 청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품의 거리기 때문이다. 샤넬에서 에르메스에 이르는 명품 매장들이 모두 이 길에 있다. 또 망고에서 자라까지 거의 모든 브랜드가 다 자리잡고 있어 쇼핑으로는 단연 그라시아 거리가 no.1이다.

 

이 거리는 19세기에 구축된 바르셀로나의 신시가지(도시가 좀 연식이 있다 보니 19세기가 신시가지다)로, 카탈루냐 광장 남쪽의 미로같은 구시가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딱딱 대로가 갈라지는 계획도시의 풍모를 강하게 풍긴다.

 

그리고 이 길 위에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 밀라카사 바트요 가 있다. 이 두 건물이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두 건물은 모두 20세기 초 중산층의 삶, 그리고 아르누보의 시대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

 

 

 

북서쪽에서부터 내려오다 보면 일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카사 밀라 Casa Mila.

 

카사 비센스에서도 예습했듯 1910년 지어진 카사 밀라는 '밀라 씨의 집'이라는 얘기다. 이 집 역시 세련된 취향을 가진 중산층 이상을 위한 아파트 단지로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 집 역시 실패한 단지였다. 가우디가 손만 대면 부동산으로선 매번 실패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된다. 보기 좋은 집이 살기도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일 듯 하다. 그래서 결국 주인이 몇번 바뀌다 바로 길 건너 있는 은행의 소유물이 됐다는 얘기.

 

아무튼 이 집은 채석장이란 뜻의 라 페드레라 La Pedrera 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그라시아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카사 바트요 Casa Batillo 가 나타난다.

 

스페인 건축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건물 앞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곳이 많지 않다. 뒤에 가 볼 도시들의 카떼드랄 Cathedral 들이 모두 그래서 건물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카사 바트요는 건물이 북동향이라 오후에는 길 건너편에서 찍으려 해도 건물 정면을 찍으면 역광이 된다. 그래서 저 건물의 특징인 용이 헤엄치는 지붕을 찍기란 매우 힘들다.

 

아무튼 참 절묘하고 특이하다. 그리고 가우디의 영향까진 아닐지 몰라도, 그라시아 거리엔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6~8층 정도로 거의 통일된 높이의 건물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치장되어 있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 건물의 정체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건 매우 유명한 카사 바트요 옆집. 카사 아마예 Casa Amatller ('아마트예' 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카탈루냐어로는 아마예라고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택시 운전사와 주민들이 동네 하나 부르는 이름이 모두 다른 스페인이고 보면 사실 좀 불안하긴 하다) 라는 건물인데, 그냥 '카사 바트요 옆집'이란 이름으로 국내 여행객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 건물도 카사 바트요 못잖게 요란하고 화려하다.

 

 

 

 

이 건물은 초콜렛 박물관으로 1층만 개방중인데, 어떤 인연인지 카사 바트요는 현재 추파 춥스 사탕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이건 카사 바트요에서 옆 길로 꺾어지면 보이는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 Fundacio Antoni Tapies. 이 건물도 가우디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몬타네르 Lluis Domenech I Montaner (역시 이분의 이름도 카탈루냐 식으론 유이스 두메넥 몬타네르...) 의 작품이라는데, 건물 위의 정신없이 꼬인 철사줄 같은 장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가우디의 진수를 맛보려면 건물 내부에 들어가야 할텐데 일단 장애가 좀 있다. 카사 밀라는 16유로, 카사 바트요는 20.35유로(관광안내소에서 10% 할인 쿠폰을 준다. 18.15유로인 셈)를 받는다. 두 건물 모두 보려면 1인당 5만원이 넘는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그리고 유로자전거나라는 카사 바트요 앞에서 점심식사 포함해 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을 준다. 그러니까 식사를 하고, 알아서 들어가고 싶은 건물을 들어가 보라는 얘기다.

 

일단 시차적응이 안 된 중년 커플은 여기서 퍼져 앉고 싶은 마음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몇 군데의 식당을 추천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오래 오래 걸리는 스페인 식 식사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비교적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음식은 전혀 빨리 나오지 않았다.)

 

 

 

따예 데 타파스 Taller de Tapas(자. 이제 taller를 톨러라고 읽는 촌스러운 발음은 빨리 졸업하도록 하자). 나중에 알고 보니 체인이어서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똑같은 간판을 볼 수 있다. 애초부터 프랜차이즈였는지, 장사가 잘 되어 분점이 여러 곳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식 맛은 낫 배드.

 

카사 바트요에서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보인다(남서쪽으로 한블럭 뒤라는 얘기). 주소는 Rambla de Catalunya, 49-51, 08007 (람블라 어쩌고 하는 주소 때문에 '아 그 유명한 람블라 길? 하는 오해는 없길 바람. 그 람블라 길은 La Rambla 다). 야외석과 실내석이 따로 있다.

 

여기서 드디어 스페인 식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를 시키게 된다. 메뉴 델 디아란 '오늘의 메뉴'라는 뜻으로, 거의 모든 레스토랑이 점심 시간에 전채 요리 하나, 메인 요리 하나, 그리고 디저트 등 3식에 빵과 음료를 더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게 되어 있는 제도를 말한다. 저렴하다는 건 10유로 정도. 관광지든 마드리드든 결국 메뉴 델 디아 가격으로 비싼 집이라도 14유로 이상은 못 봤다.

 

10유로면 14000~15000원 정도니 비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서서히 스페인 물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버거킹의 세트 메뉴가 7~8유로 정도 한다. 전식-메인-후식 세 접시 식사에 음료와 빵을 주고 10유로면 엄청나게 싼 거다. 이 제도를 만든 사람이 그 유명한 독재자 프랑코고, 노인네들 사이에서는 메뉴 델 디아가 '프랑코가 잘한 대표적인 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만, 이 제도를 경험한 결과, 메뉴 델 디아는 관광객에게 그닥 추천할만한 식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메뉴 델 디아에 나오는 전채와 메인, 디저트 모두 각각 몇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어떤 식당도 자기네 식당의 간판 메뉴를 메뉴 델 디아로 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나 관광지로 갈수록 메뉴 델 디아에 속하는 건 대개 닭다리, 소 안심 스테이크, 돼지 등심 구이, 심지어 햄버거 스테이크 등 '관광객용 메뉴' 인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에 가서 비교적 저렴하다고 메뉴 델 디아만 먹다 보면 정작 스페인이 자랑하는 특유의 맛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하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리고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재주껏 주문하는 요령만 생기면 배부르게 먹고도 메뉴 델 디아와 별 차이 안 나는 계산서를 만들 수 있다. 놀랍게도 식당 주인이나 웨이터들도 그런 태도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좀 아는구나. 그래. 음식은 그렇게 먹어야지' 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곤 한다.

 

스페인 식당에 갔으면 영어 메뉴와 스페인어 메뉴를 번갈아 보면서 음식 이름, 혹은 음식 재료 이름을 조금씩 익혀 가며 뭔가 주문해 먹는 맛, 이런게 있어야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건 다 며칠 지난 뒤의 얘기고, 이날은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12.5 유로짜리 메뉴 델 디아 주문.

 

 

 

 

 

메뉴 델 디아에서 전채로 선택한 연어 샐러드와 구운 야채.

 

 

그리고 메인 중 하나인 닭다리 구이. 뭐 이런 음식이 나온다. 굳이 스페인까지 가서 먹을 이유가 없는 음식들이다.

(그래서 이 집은 '스페인 맛집' 항목에 들어가지 못했다. 먹어 본게 이런 건데 어떻게 평가를 하겠냐는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 오후 3시30분 정도 되어 가는데(스페인의 점심 시간은 대략 오후 2시~4시 쯤이라고 보면 된다. 스페인 사람은 하루 보통 5끼를 먹는다고 하는데 이건 어느 가이드북에나 다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여기선 생략), 여전히 노변의 카페들이 바글바글했다.

 

흔히 '스페인에는 시에스타가 있다'고들 하는데 바르셀로나에는 시에스타가 없다. 다만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오거나 밖에서 아주 오래 오래, 잘 떠들면서 즐겁게 먹는다. 뭐... 직장인의 입장에서 참 보기 좋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날은 카사 밀라도, 카사 바트요도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의 오래 오래 먹는 점심 문화를 경험해 봤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여행 첫날은 항상 부담스럽고 힘들다.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이 건물들의 내부 이야기는 넷째날에 소개하기로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곧바로 전철을 타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짜잔. (당연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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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19금'입니다. '19금' 속에 묻어 뒀던 이야기들이 세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부에 JTBC '마녀사냥'이 있습니다.

 

방송 4개월째를 맞은 '마녀사냥'은 신동엽, 성시경, 샘 해밍턴, 허지웅 네 남자가 주축이 되어 털어놓는 짜릿하고 은밀한 연애 담론입니다. 물론 종래의 연애 이야기가 뭔가 미성년자용인 듯한 냄새가 났다면, '마녀사냥'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에도 '19금'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예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누드 모델이나 성인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까지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들 프로그램들과 지금 자리잡고 있는 '마녀사냥'과 'SNL'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마녀사냥'이 리드하는 '19금 해금'의 분위기에는 쏟아지는 농담 속에서 은근히 지켜지는 품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인들이라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이 정도 대화들은 하면서 서로 웃고 즐기지 않습니까'라는 식의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지고 있다고 봐야겠죠.

 

다소 야하다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근함'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선을 지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죠. 두 프로그램 모두 '신동엽의 통제' 아래 있다는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마녀사냥'이 가고 있는 길은 어딘가 음습하고 으슥한 퇴폐업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누군가 별스러운 사람들이 즐기는 환락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이전의 19금 이야기들과 다릅니다. 방송 내용의 대부분은 시청자들이 보내 온 사연이나 질문으로 이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사냥'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솔직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한 10여년 전만 해도 이 사회의 결벽증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여름 시즌의 납량 특집 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이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하면 '선정적'이라며 철퇴를 맞던 시절입니다. 물론 그보다 조금 전에는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이 울긋불긋 염색을 하고 나오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출연 정지를 시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근에도 남자 아이돌들이 수영장에서 수영 경기하는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상의 티셔츠를 입혀 수영을 시키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면 클럽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짝짓기 게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부비부비'라는 말이 방송용어가 되기 시작할 무렵의 얘기죠. 이 시절, 이미 이런 프로그램은 클럽에서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고, 이들 역시 카메라 앞에서 아무 스스럼없이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쪽 채널에서 이쪽 채널로 옮겨 가면, 바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던 시절입니다. 한마디로 한쪽은 조선 시대 그대로,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일부 강경한 도덕주의자들 때문에 엷게 가려져 있던 세상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담론이 이제 세상 밖으로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혼전순결이나 결혼의 영속성이 무슨 금과옥조처럼 지켜지던 시절도 아니고, 남녀가 사귀기 시작하면 대략 어떤 단계를 밟는다는 것도 이미 다 아는 세상이죠. 특히나 젊은 층일수록 '아저씨 아줌마'들의 상상보다는 훨씬 앞으로 나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변하고 있는데 TV 혼자 청학동 계곡 안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변화의 징후는 고정 출연자인 곽정은 기자(위 사진 왼쪽. 슈퍼모델 한혜진 옆에서도 밀리지 않는 미모가...)가 '코스모폴리탄'에 쓰는 칼럼들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10년 전, 15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의 과감한 칼럼을 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죠. 하지만 그 칼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지표입니다.

 

그래서 하자는 얘기는: '마녀사냥'은 한국 사회가 보다 솔직해지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물론 19금 방송은 방송 시간 준수를 비롯해 19금 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위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무지와 미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욱 많은 세상에서 '마녀사냥'의 시도는 음지에서 수근거리며 이야기하던 것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밝은 광장에서 이야기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래도 되는 거야?' '저런 얘기를 해도 돼?' 같은 이야기들은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이 모두 주위 사람들과 아무 스스럼 없이 하던 이야기들입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의 해금을 통해 세상은 좀 더 솔직해 질 것이고, 이유 없는 금기는 조금씩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식의 해금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이미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석천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이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필요 없죠. 이젠 그들도 이 사회에서 밥 먹고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옆에서 자기의 연애 이야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예전에는' 구직자가 고용주에게 감히 '연봉을 얼마 달라'고 내놓고 요구하지 못했고, '예전에는' 교사의 비정상적인 폭력에도 학생들이 항거하지 못했고, '예전에는' 학교 안에 전경이 들어가 정치적 사안에 반대 집회를 여는 학생들을 잡아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쯤 지나면 누군가 "예전에는 '마녀사냥' 같은 프로가 방송될 엄두도 못 냈대"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변하는 세상, 변하는 사람들을 느끼고 싶으신 분은... '마녀사냥'을 보시면 됩니다.

 

매주 금요일 밤 11시. 이제는 슈퍼스타K 보다 시청률이 잘 나옵니다. 당신만 세상에 뒤처져 있습니다.^^

 

 

P.S. 마지막은 전설적인 신동엽의 셀프 디스: '남자가 연락을 안 하는 4가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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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스페인을 찾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한번도 안 가본 곳을 가보려는 생각 가운데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이름이 스쳤다.

 

그리고 후배 아무개의 페이스북에서, 야간 개방을 한 알함브라 궁전 곳곳을 찍은 사진을 봤다. 신비롭고 또 신비로웠다.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내가 못 가봤다니. 불끈 마음 속의 불기둥이 섰다. 에스빠냐. 곧 가고 말겠다.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으로 여행 일정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비행기 한 대에는 수백개의 좌석이 있지만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손님들을 위해 열어 놓은 좌석은 그중 한주먹을 넘지 않았다. 몇 차례 혼선을 겪은 끝에 일정을 잡았다.

 

스타 얼라이언스를 이용한 바르셀로나 in ~ 마드리드 out의 일정. 10월17일에 서울을 출발해 28일 돌아오는 10박12일의 일정이었다. 직장인으로선 감히 생각하기 힘든 사치였지만 사실 마지막 날은 약간의 착오 때문에 생겼다. 돌아오는 여정은 당일 도착이 아니라 +1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그래서 10박11일이라고 생각한 여정이 12일이 돼 버렸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30분. 이미 프랑크푸르트에서 검색지역을 통과한 터라 바르셀로나에서는 바로 공항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공항 중에서도 유난히 민감한 검색으로 유명하다. 화장품류를 사는 경우, 액체 용량 제한에도 가장 엄격한 기준을 내걸고 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분. 요금은 29유로 정도. 미터기대로 갔는데도 가이드북의 추정 요금 30유로를 넘지 않았으니 정직한 예금으로 보인다. 첫날은 바로 수면. 물론 시차 때문에 숙면은 힘들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일단 강행군을 시작했다. 유로자전거나라의 1인당 30유로짜리 가우디 투어. 바르셀로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꽤 심도있는 해설을 해 준다. 단 30유로는 순전히 가이드 비용. 각 건물의 입장료나 이동 교통비 등은 모두 각자 부담이다. 그러니 절대 싼 가이드비는 아니지만, 찬찬 세세한 설명은 충분히 그 값을 한다.

 

 

 

 

첫 방문지는 카사 비센스 Casa Vicens. 스페인어로 '카사 ~'라는 이름은 '~의 집'이라는 뜻이다. 즉 카사 비센스는 주인의 이름이 비센스라는 얘기. 건물 전면을 타일로 장식한 것은 비센스 선생의 직업이 타일 판매상이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1878년부터 약 10년간에 걸쳐 지어진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의 첫 작품이라 그의 취향이 그리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는 설명. 아무튼 이색적인 건물이 충분히 눈길을 끈다. 어쨌든 현재 개인 소유라 내부 공개는 하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유머감각까지.^^

 

이 집은 현재 판매중이라는 후문. 자신있는 분은 응찰해 보시길.

 

 

 

 

특이한 건 집 앞 전깃줄에 내걸린 운동화.

 

 

 

 

알고 보니 이 신발은 그 앞집에서 대마초를 팔고 있다는 사인이라고.

 

 

 

다음은 산길을 넘어 도착한 구엘 공원.

 

 

 

그 수없이 많은 관광 책자며 블로그에서 보던 바로 그 정문.

 

구엘공원은 알려진대로 1900~1914년 연립주택으로 설계됐다. 옥상에 내린 빗물을 자동 정수해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등 획기적인 구상과 디자인이 당시에도 화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20세기 초의 교통 환경. 당시 이 일대는 주거지로 삼기엔 너무 산 꼭대기의 외딴 땅이었다. 그래서 결국 완공에 실패했고, 1920년 언저리에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입구의 이 아리따운 건물들이 바로 구엘 공원을 연립주택으로 설계했을 때 경비초소와 경비원 숙소라는 얘기.

 

 

 

 

 

금요일이라 공원 안은 소풍온 어린이들로 인산인해. 특히 계단의 상징 표석과 알록달록 도자기 모자이크가 박힌 도마뱀 주위는 항상 관광객들로 포위되어 있다.

 

이 기법을 트렌카디스 trencadis 라고 부른다고 한다.

 

 

 

10월이라도 구엘공원의 햇살은 충분히 일사병을 걱정하게 했다. 이때 위안이 된 것은 석조 회랑 안의 시원한 공간. 천정의 모자이크는 공사중이라 볼 수 없었지만, 그 곡선미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곳으로 소풍오는 초등학생들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도.

 

 

 

 

 

 

건물 주위를 둘러싼 유명한 석축 회랑을 뒤로 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아예 작정을 하고 조성한 듯한 공원이 나타난다.

 

 

 

 

 

 잘 알려진대로 공원의 가장자리는 이렇게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물결 무늬 모양의 벤치가 만들어져 있고,

 

 

 

 그걸 아래쪽에서 보면 이렇다.

 

 

 

 아무튼 구엘 공원에서 정면 쪽을 바라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다 아는 그 공사중인 옥수수 탑이 보인다.

 

 

 

사실 볼거리는 이게 전부. 10월 초라도 무시무시한 땡볕 때문에 밖에서 오래 구경하는 건 건강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우디의 명성 덕분인지 인파는 바글바글. 

 

일설에 따르면 해질 무렵 여기서 바라보는 석양이 기가 막히다고도 한다.

 

 

아무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구엘 공원은 마냥 아름답다. 구엘 공원 탐방을 마치고, 시내로 이동했다. 가우디와 관련해 돈독이 심한 바르셀로나에서 구엘 공원은 예외적으로 아직 공짜지만 곧 여기도 입장료가 생긴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해서 오전 일장을 마치고 시내로 이동했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가우디의 간판들,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 그리고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기 위해서.

 

18일 밤: 택시비 29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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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 들어서던 날, 비가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에도 가을 겨울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국물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사르수엘라(자르주엘라) Zarzuela가 생각났다.

 

하지만 호텔 매니저는 사르수엘라를 잘 하는 집은 커녕 사르수엘라라는 음식을 아예 몰랐다. "공연을 보시고 싶은 건가요?" 하고 반문을 한다. 참고로 사르수엘라는 스페인식 오페라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포기. 그럼 카스티야 풍의 국물 음식은 뭐가 있는지 물었다. 문득 가이드북에서 본 코시도 Cocido 라는 말이 생각났다. 호텔 근처에 코시도 잘 하는 집이 있느냐고 묻자 매니저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자신이 있다는 신호. '미첼린'에도 나온 집이란다. '음. 스페인식으로는 미슐랭이 미첼린이로군'.

 

그가 지도를 꺼내 표시해 준 집은 라 볼라 La Bola. 볼라 거리를 대표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호텔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거기서 메르쿠레 Mercure 호텔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으란 설명.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안에서 또 길이 두 갈래다. 이런. 일단 볼라 거리 Calle de Bola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이 방향이라고 가르쳐 준다.

 

 

 

가는 길에 한식당 마시타 Mashita 발견. 사실 여기까지 와서 한식당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나중 호기심에 찾아 보니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 순위가 높은 집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이 집에서 '환상적인 스시'를 먹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스시를 먹은 것일지. 혹시 노리마키?

 

 

 

 

마시타에서 골목길을 죽 내려가면 오른쪽에 라 볼라가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 3시에 줄을 서 있다. 대단하다.

 

 

 

 

집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미슐랭(스페인식으로 미첼린) 가이드의 위용. 그리고 더 잘 보이는 '현찰만 받아요' 간판.

정감있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실내엔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첫 주문은 당연히 이 집의 성명절기인  '마드리드식 코시도 Cocido Madrileño '. 그리고 고기와 토마토 소스 스튜라는 설명이 있는 로파비에하 Ropavieja를 시켰다.

 

 

 

 

아담한 항아리에 담긴 코시도가 나왔다. 아래 보이는 올리브는 기본 제공. 이 올리브만 반찬으로 해서도 빵 한접시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상큼한 맛이 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항아리가 개봉됐다.

 

 

 

 

코시도를 먹는 순서 1. 우묵한 접시에 소면 같이 가느다란 파스타를 담고, 거기에 항아리에서 국물만 따라 붓는다. 진한 국물과 함께 소면을 말아 먹는 셈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인상적인 맛.

 

대부분의 국내 곰탕/설렁탕 집들은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오만가지 비법을 다 쓴다. 마늘과 양파, 통후추는 기본이고 각종 한약재에서 커피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고기를 삶을 때 비장의 재료로 사용된다. 하지만 코시도의 국물은 이보다 훨씬 정직한 '고기 국물' 맛이다. 국물의 '고기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듯.

 

 

 

수프와 파스타 접시를 비우면 항아리의 내용물이 나온다.

 

 

 

스페인 특유의 알 굵은 콩을 중심으로 쇠고기 한 덩어리(양지머리 같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됨), 닭 가슴살 한 덩이, 소 꼬리 한토막, 그리고 삼겹살(이라지만 사실은 거의 비계) 한 덩이가 들어 있다. 이걸 푹 곤 국물을 좀 전에 먹은 거다.

 

 

 

고깃덩이를 가져다 찢어 먹는게 코시도의 두번째 순서. 느끼한 맛을 덜기 위한 토마토 소스, 초절임 고추(전혀 맵지 않다), 날 양파가 제공된다. 고기와 삶은 콩, 토마토 소스를 마구 버무려 먹다가 심심하면 고추절임을 한입씩 깨물면 된다.

 

맛있다. 음.

 

 

 

그러는 사이 두번째 메뉴 로파비에하 Ropavieja 등장.

 

재료상으로는 코시도 마드릴레뇨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토마토 소스를 나중에 첨가해서 먹느냐, 아니면 토마토 소스를 함께 넣고 고기를 잘게 찢어 국물이 많지 않게 자박자박하게 끓여 내느냐의 차이 정도.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로파비에하가 이 집의 진미를 맛보는 더 간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코시도로 일어선 집인 만큼 처음에는 일단 코시도를 맛봐 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메뉴상으로는 다양한 생선과 고기 요리를 취급한다. 혹시 다음에 가 볼 기회가 있다면 이 집 방식의 라따뚜이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태양의 나라에도 쌀쌀한 날씨는 있는 법, 푸짐하게 먹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코시도.

 

 

 

끝으로 서비스의 질. 서빙하는 거구의 어르신도 라 볼라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왔을 듯 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들을 맞아서도 여유가 넘치고, 양쪽에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을 때 코시도 항아리를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놈.을.먼.저.줄.까.요' 를 몸짓으로 구현하기도 하는 재치까지. 음식 맛 뿐만 아니라 여유있는 서비스도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1870년부터 성업중인 노포의 명성은 역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듯.

 

 

 

스페인 여행 첫 소식을 이걸로 전합니다. 앞으로 [여행]과 [맛집]으로 나눠 포스팅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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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다 아시다시피 천재적인 관상가 내경(송강호)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은 점이나 조짐, 팔자 등에 기대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계유정난 당시, 각 진영엔 결정적인 판단을 할 때 의견을 묻던 점술가가 있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그런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죠.

 

그럼 조선시대의 기록에 그와 비견할만한 역술가가 있었을까요. 조선 초기,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역술가'로 불린 인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록이 너무 기이하다 보니 실존 인물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고 문헌마다 살았다는 연도가 제각각이라 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한 면이 있습니다. 반면, 그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을 듯.

 

그의 이름은 홍계관입니다.

 

 

 

 

홍계관(洪繼灌, ?~?)

 

영화 관상은 관상의 대가 김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실제 사건인 계유정난을 재해석한 영화다. 영화 속 내경(송강호)는 누구든 얼굴만 보면 내력과 속내, 그리고 장래의 운명까지 꿰뚫는 천재 관상가다. 누구든 이렇게 관상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치세보다는 난세에 훨씬 더 출세하기 쉽겠지만, 불행히도 영화 속 내경의 행보는 그리 평탄치 않다.

 

실제로도 내경 같은 인물이 있었을까.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도성 안에 통명청(通明廳)을 두고 빼어난 점쟁이를 국복(國卜)으로 삼아 큰 일을 점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여러 사서에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점쟁이로 홍계관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어찌나 유명했던지 한양 도성 안에 홍계관골이라는 마을이 생길 정도였다.

 

관상의 내경이 관상가였던 반면 홍계관은 맹인이었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백발백중이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어쩌지 못했다는 점에선 매우 유사하다 하겠다.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홍계관의 일화에는 계유정난을 전후로 한 세종~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명종 시대의 것이 뒤섞여 있다. 두 시대의 간격이 약 100년 정도이니 동일인일 가능성은 없고,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인물이 남긴 행적이 합쳐졌을 것이다.

 

세조 시대의 홍계관은 계유정난의 주역 중 하나인 홍윤성의 장래를 알아 본 것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장안의 유명한 건달이었던 홍윤성이 점을 보러 오자 홍계관은 갑자기 자세를 고쳐 큰 절을 올렸다. 놀란 홍윤성이 연유를 묻자 공은 뒷날 정승의 자리에 오를텐데, 뒷날 제 아들이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놓일 테니 그때 목숨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과연 홍윤성이 홍계관의 지시에 따라 세조와 인연을 맺고 승승장구,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는데 한 죄수가 윤성을 보고 저는 점쟁이 홍계관의 아들이니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홍윤성이 그의 목숨을 구해 주고 홍계관의 재주에 탄복했다는 이야기다.

 

 

 

 

부계기문(涪溪記聞)’엔 이렇게 전해지지만. 극작가 윤백남의 채록에 따르면 홍계관의 아들은 배은망덕한 홍윤성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는다. 권세를 남용하며 백성을 학대했다는 홍윤성에 대한 민간의 반감이 표현된 설화다.

(윤백남의 채록에 따르면 홍윤성은 홍계관의 아들임을 알고도 뇌물을 요구하고, 홍계관의 아들에게 뇌물로 줄 돈이 없자 그를 처형당하게 내버려 둡니다. 그러자 홍계관의 아들은 끌려나가며 "우리 아버지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는 평생 후손이 없을 것이라 합디다"라고 울부짖었다는 것이죠. 윤백남에 따르면 홍윤성이 그 뒤로 절손을 당했다고 하나, 실제로 홍윤성에게 자손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명종 시대의 홍계관은 젊은 날의 승려 보우(普雨)와 재상 상진(尙震)을 만나 앞날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어느날 자신의 운명이 궁금해진 홍계관은 모년 모월모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용상 밑에 엎드려야 한다는 점괘를 얻는다. 명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홍계관은 왕에게 사정해 한시간 동안 용상 아래 숨을 수 있게 되었다.

 

용상 아래 홍계관이 죽은 듯 엎드려 있을 때 갑자기 전각 안으로 쥐 한 마리가 후다닥 달려들어왔다. 갑자기 홍계관을 시험하고 싶어진 왕은 지금 들어온 쥐가 모두 몇 마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홍계관은 점을 짚어 본 뒤 세 마리라고 답했다.

 

재차 확인해도 홍계관이 세 마리라고 말하자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네가 그 동안 사기로 점을 쳐서 민간의 재물을 함부로 취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당장 처형할 것을 명했다. 홍계관이 형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기다리는데 혹시나 싶었던 왕이 쥐의 배를 갈랐다. 그 안에는 새끼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제야 홍계관의 재주에 탄복한 왕은 급히 내시를 보내 형을 멈추려 했으나 이미 홍계관은 목이 잘린 뒤였다. 왕이 아차하고 탄식했다는 데서 이 곳의 지명이 아차산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아차산은 지금의 노량진 사육신묘 부근이란 설과 서울 광진구 아차산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고구려 때 추남(楸南)의 이야기와 사실상 같다. 역시 억울하게 죽게 된 점쟁이 추남이 고구려 왕에게 내가 신라 김서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이 원한을 갚겠다고 한 뒤 김유신으로 태어났다는 설화다.

 

배경이야 어쨌든 이야기의 교훈은 유명한 점쟁이라 해도 제 죽을 날을 내다 보지 못한다는 것. 영화 속 내경의 경우에도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을 보면, 운명을 예측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끝)

 

 

 

이렇습니다. 추남의 이야기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유신의 젊은 시절 일화 중 하나입니다.

 

김유신이 국선(國仙)인 화랑(花郞)이 되었을 때, 백석(白石)이란 사람이 낭도(郎徒)로 있었다. 김유신이 삼국통일 계획을 세우는데, 백석이 고구려의 정세를 탐지한 뒤에 계획을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을 옳게 여긴 김유신은 백석과 함께 고구려의 사정을 탐지하기 위해 길을 떠나 하루는 밤에 산 고개에서 쉬는데, 두 여자가 나타나 따라가겠다고 했다. 같이 일행이 되어 가는데,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니 밤에 다시 한 여자가 나타나, 세 여자는 김유신에게 과일을 대접하며 즐겁게 얘기하고 놀았다.

 

김유신이 세 여인들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니, 여인들은 신(神)의 모습으로 변하여 자신들은 나라를 지키는 내림(奈林) 혈례(穴禮) 골화 등 세 지역 수호신인데, 김 공이 적국 사람에게 유인되어 가는 것을 막으려고 온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놀란 김유신은 나와서 골화관에서 자고,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으니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백석을 묶은 다음 문초를 했다. 백석은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 김유신이 전생에 원한을 품고 죽은 고구려의 추남이기 때문에 그를 잡으러 왔다고 했다.

 

추남은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였는데, 국경지역에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변고가 생겨 점을 치게 했더니 추남은 왕비가 왕과의 잠자리에서 음양을 거꾸로 하기 때문에 일어난 변고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비는 요망한 거짓말을 하니, 다른 것으로 시험해 보고 맞히지 못하면 벌을 가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말했다. 임금이 상자 속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봉한 다음, 무엇이 들었는지 맞혀 보라 했는데, 추남은 쥐 여덟 마리가 들었다고 대답했는데, 왕은 쥐 한 마리가 들었기 때문에 잘못 대답했다고 해 추남을 죽였다. 그런데 상자 속의 쥐를 꺼내 배를 갈라보니 새끼 일곱 마리를 배고 있었다.

 

추남은, 자신이 억울하게 죽으니 다른 나라 장군으로 태어나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하고 죽었는데, 이날 밤 임금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꿈 얘기를 들은 고구려 사람들은 모두 추남이 원수 갚기 위해 신라 김유신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어, 김유신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김유신은 이야기를 듣고 백석을 사형에 처한 후, 음식을 마련해 지역 수호신에게 제사를 모시니, 신들이 나타나 흠향했다.

 

 

그러니까 홍계관의 사망 관련 설화는 아무래도 삼국시대 추남의 이야기, 혹은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용한 점쟁이의 이야기가 슬쩍 변형되어 '홍계관'이란 유명한 점쟁이의 이름에 덧씌워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선시대의 문헌이 '홍계관골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는 걸 보면 홍계관이라는 용한 점쟁이가 있었다는 건 사실인 듯.

 

 

 

아무튼 홍계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점쟁이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점쟁이의 초인적인 능력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운명의 힘이란 점 따위로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짚어 내고 있습니다. 결국 영화 '관상'의 결론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홍계관과 재상 상진(尙震)의 일화는 그 예외는 바로 '선행'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점쟁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는 뜻은 그런 교훈담이었다는 이야기.

 

상진 관련 설화를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출전은 '연려실기술'.

 

점쟁이 홍계관(洪繼灌)이 공의 일생을 점쳐 보니 길흉화복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고, 죽을 해까지도 말하였다. 공이 지난 일이 다 맞았으므로 그해에 이르러 미리 초상에 쓸 것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홍계관이 마침 일이 있어 호남에 가 있으면서, 서울에서 오는 이를 만나면 꼭 공의 안부를 물었는데 1년이 다 지나도 공은 탈이 없으니, 홍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서 서울에 오는 길로 곧 공을 찾아 인사하니, 공이, “내가 자네의 점을 믿고 명이 금년으로 다 된 줄 알았더니, 어찌 맞지 아니하는가.” 하였다.

 

홍이 말하기를, “대감의 명수를 보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오나, 예전 사람이 음덕으로 수명을 연장한 이가 있었으니, 대감께서 반드시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 다만 내가 수찬으로 있을 때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상에 붉은 보자기가 있어서 주워 보니, 순금 잔 한 쌍이라 가만히 간직해 두고 대궐 앞에 방을 붙이기를, ‘아무날 물건을 잃은 자는 나를 찾아오라.’ 하였더니, 이튿날 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소인은 대전 수랏간 별감(大殿水刺間別監)이온데 자질의 혼인이 있어 몰래 주방에 있는 금잔을 빌려 내왔다가 잃었으므로 이미 죽을 죄를 범하였으니, 후일 탄로가 나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대감께서 얻으신 것이 그 물건이 아닌지요.’ 하기에, ‘그렇다.’ 하면서 내어주었다.” 하니, 홍이 말하기를, “대감의 수명이 연장된 것이 반드시 이 때문입니다.” 하였는데, 15년 후에 죽었다.

 

결론: 착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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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인데다 드라마며 영화에도 한두번 등장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우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아주 오래 전, 중학교 시절 김동인의 장편 '대수양'을 읽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 상식은 이광수의 '단종애사'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손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김종서 황보인 같은 중신들과 성삼문 박팽년 등 자신이 신뢰하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단종을 보필할 것을 당부한 세종의 모습, 당연히 그 당부를 이행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선인'의 영역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또 당연히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즉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이나 그를 도와 피바람을 일으킨 한명회 신숙주 홍윤성 같은 사람들은 악인의 위치에 올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대수양'('수양대군'이란 제목의 판본도 있습니다)은 이런 시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이 책에는 김종서와 황보인이 역모까지는 아니지만 어린 왕을 볼모삼아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로 그려집니다. 정작 세종의 유지를 이어 왕권을 안정시키고 새 왕조를 탄탄하게 한 것이 바로 수양대군의 공이라는 쪽이죠.

 

실제로 세종의 눈부신 업적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반석 위에 놓인 것은 세조~성종 연간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국대전을 비롯한 제도의 정비가 완성된 것이 이 무렵이기 때문입니다. 1392년에 건국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 첫 100년에 걸쳐 이룬 것들이 이후 400년을 지탱한 힘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100년을 이끈 사람들 중 '한명회'라는 이름은 단순히 업적만으로도 빼놓기 힘든 인물이더군요.

 

 

 

 

 

한명회(1415~1487)

 

권력에 눈이 먼 모리배인가, 시대의 경륜가인가. 한명회를 어떤 인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16세기 이후 지식인들의 답 없는 숙제였다. 그를 정반대로 그린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김동인의 대수양보여주듯, 한명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이었다.

 

개국 공신의 후예였지만 가난한 집안의 칠삭동이로 태어난 인물. 변변찮은 외모에 과거에 번번이 떨어진 낙방거사가 하루 아침에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로 거듭난 신화는 많은 창작자들을 자극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중 기억할 만한 한명회 연기자로는 1984 MBC ‘조선왕조 500시리즈 설중매의 정진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한가놈조희봉과 영화 관상의 김의성을 주목할 만 하다. 특히 관상의 김의성은 실제 출연하는 장면은 두세 신 뿐이면서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명회에 대한 사적을 검토해 보면 다른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1453년 음력 1010, 뒷날 계유정난이라 불린 김종서 참살의 날 당일 낮까지도 수양대군의 측근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수양은 이미 김종서 등이 불측한 마음을 먹었으니 내가 베어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했으나 휘하 무장들은 임금(단종)에게 먼저 고하는 것이 좋겠다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때 한명회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큰길 옆에 집을 지으면 오가는 사람마다 훈수를 두어 3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한다(作舍道旁, 三年不成)고 합니다. 이제 공이 큰 뜻을 세웠으니 오직 실행이 있을 뿐입니다.” 이 말에 수양은 과감하게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강요하지 않겠다(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는 비장한 한마디를 던진 뒤 단신으로 김종서의 집에 달려가 일을 치른다.

 

(그러고 나서도 곧바로 '혼자 가게 내버려두어선 안된다'고 장사들을 수습해 뒤를 따르는 것도 한명회입니다.)

 

 

 

세조의 내심을 그만큼 잘 읽어내는 사람도 없었다. ‘소문쇄록에 전하는 일화 하나. 술자리에서 만취한 세조가 신숙주의 팔을 꺾으며 그대도 내 팔을 꺾으라고 장난을 쳤다. 역시 취한 신숙주가 대뜸 세조의 팔을 꺾자, 옆에서 보던 세자(뒷날의 예종)의 안색이 변했다. 다들 껄껄 웃으며 술자리를 파했지만, 한명회는 신숙주의 하인에게 신숙주는 아무리 취해도 집에 가면 일어나 앉아 책을 읽는다. 오늘은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과연 밤에 세조가 내시를 보내 신숙주의 집을 정탐하게 했다. 한명회는 세조가 혹시 신숙주가 맨 정신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리라는 것을 내다 본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을 위한 해설. 그러니까 한명회는 '내시가 궁에 돌아가 "신숙주 대감은 귀가후 불을 켜고 한참 책을 읽다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보고할 경우, 세조는 신숙주가 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이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해코지를 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입니다. 세조가 겉으로는 호방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의심이 많고 치밀한 성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한명회이니 이런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만큼 세조도 자신의 속내를 너무 잘 아는 한명회를 은근히 두려워했다. 1467, 이시애의 난 때 한명회와 신숙주가 내통한다는 소문이 돌자 세조는 즉시 두 사람을 의금부에 잡아들였다. 10여일만에 풀려나긴 했으나, 이들의 평생 관계를 생각하면 역시 권력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관상의 한명회는 김내경(송강호)의 예언 때문에 평생 적을 만들지 않고 살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그에게 도전한 신진 세력은 어김없이 철퇴를 맞았다. 귀성군과 남이의 옥사가 대표적인 예다. 김종직 이후 배출된 사림파는 한명회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조정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1487년 사망할 때까지 아무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죽은 뒤의 일까지 예측할 수는 없는 법.  1504, 연산군은 22년 전 아버지 성종이 폐비 윤씨를 사사하겠다 결정할 때 찬성한 사람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당시 조정의 중신 전원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살아있던 사람들은 즉시 참수됐고, 이미 죽은 정창손 한명회 등은 관을 뻐개고(剖棺) 시신의 목을 치는(斬屍) 부관참시를 당했다. 중종반정과 함께 복권이 이뤄졌지만, 선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사림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그를 대표적인 간신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행정구역의 이름 면,(面里)제도를 포함해 조선시대의 문물과 제도 가운데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명회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 드물다. 북방을 개척한 무인으로서의 공훈까지 생각하면, 조선 500년을 통틀어 그만한 업적을 가진 인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결과가 과정을 덮을 수 있을지 고민할 만 하다.

 

그는 한강변에 압구정(狎鷗亭)이란 정자를 세우고 하루 빨리 고된 조정 일을 떠나 낙향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고 입버릇 처럼 말했지만, 그가 압구정에서 베푸는 연회는 그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들끓는 권력의 잔치였다. 공교롭게도 그 일대가 동네의 이름이 되어 오늘날에도 부귀공명의 상징이 됐다.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끝>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선명한 한명회의 이미지는 과거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 편에 등장한 정진 씨의 모습입니다. 당시 TV에선 사실상 무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정진씨는 이 드라마에서 '체구는 왜소하지만 꾀 많은 한명회'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그려내면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진왜란' 편에서는 풍신수길 역으로 다시 등장했죠.

 

 

 

 

그리고서 기억할만한 한명회는 역시 또한번 '한명회의 틀'을 깬 '이덕화 한명회'. 한명회 역을 하기엔 너무 멀쩡한 외모 때문에 당나귀 귀 모양(혹은 스포크 귀^^)의 특수 분장을 하고 등장했습니다.

 

 

 

 

역시 최근의 모습 중에는 '뿌리깊은 나무'의 '한가놈'을 빼뜨릴 수 없죠. 끝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고 '머리 좋고 임기응변에 능한 한가놈'이었던 조희봉은 마지막회에서야 '한명회'라는 실명을 드러냅니다. 작가진이 이 한명회가 주축이 되어 다시 밀본을 재건하는 내용의 속편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이번 '관상'의 한명회는 목소리가 포인트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등장은 최소화하면서도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리고 나서 마침내 얼굴이 공개되는 장면, 이 장면의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탁월한 발성 덕분에 '목소리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한명회' 역할이 제대로 살았던 거죠. 기억나는 영화와 비교하자면 영화 '프롬 헬'에서 마지막 시퀀스, 이안 홀름의 눈동자 색이 바뀌는 장면과 비교할만 합니다.  

 

 

 

 

배우 김의성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두 주인공이 들은 건축학개론 수업의 교수님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물론 기억을 되새겨 보시면 홍상수 감독의 출세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인공이기도 했죠.

 

최근에는 연극 '우먼 인 블랙'의 주인공으로도 장기 출연중. 근래 몇년 사이 갑작스레 주목이 늘었지만 80년대부터 활동해온 원로 배우(물론 중간에 휴지기가 있었지만)에게 새삼 신 스틸러니 명품조연이니 하는 것도 적절치 않은 얘기라는 생각. 

 

아무튼 1980년대 이후 국사 교과서에서 훈구파와 사림파 중심의 내용이 나오면 '좋은 건 훈구파, 나쁜 건 사림파'로 쓰면 맞다는 우스개도 있었습니다. 사림파의 집권이 결국 지나치게 절의와 명분에 집중하고, 뒷날 당쟁의 기원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그 훈구파의 '좋은 점'들을 마지막으로 계승한 인물이 바로 한명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의명분과 역사의 정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 반대의 답이 나오겠지요.

 

그래서 한명회라는 인물은 더욱 매력적으로, 그리고 한명회를 연기한 배우들을 더욱 명배우로 이끌어 내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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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왜 포스팅이 안 올라오나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멀리 멀리 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로마인들이 히스파니올라라고 불렀던,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찾아 노저어 갔던 바로 그 곳입니다.

 

대략 밤에 잠들면 아침에 깨고, 현지 요령이 하나둘씩 생겨날 무렵에 돌아가야 한다는게 아쉽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있습니다.

 

 

 

 

 

 

 

 

 

 

 

 

 

 

 

 

 

 

 

 

 

 

 

 

 

 

 

 

 

 

 

 

 

 

 

 

 

 

 

 

 

 

일부만 올리는데도 참 힘들군요.

 

아무튼 그동안 없던 마음의 평화를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곧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연말까지는 여행 포스팅으로 먹고 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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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아내'는 금기 중의 금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경의 10계명 중 아홉번째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네 이웃의 아내'라는 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른바 '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그 '남의 아내'가 곧 '나의 아내'라는 점입니다. 아파트에서 한 복도와 안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는 앞집. 그 앞집에 마주 보고 사는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남편과 아내를 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뭔 막장 불륜 스토리냐 싶기도 하고, 스티븐 킹의 스와핑 단편 같기도 한 얘기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단초를 짚어간다'는 것, 혹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의 단면을 보여주자'는 것이라면, '네 이웃의 아내'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송하(염정아)는 광고회사의 꽤 유능한 팀장. 종합병원 의사인 남편 선규(김유석)와 겉으로 보기에는 주위의 부러음을 살 만한 전문직 부부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꾸역꾸역 살고 있는 커플. 신선한 자극도 이미 부부생활에선 사라진지 오래. 아직 어린 아들과 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대기업 부장인 상식(정준호)는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철두철미하고 책임 추궁에 강한 남편.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아온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상식에게 늘 반쯤 기가 죽어 사는 아내 경주(신은경). 남편 앞에선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정도로 순종적이지만 사실은 남편의 밥그릇에 침을 뱉는(위 사진) 비틀린 면을 보여주는 여자입니다.

 

주위에서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부부들의 모습이지만 이들 사이에선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일에서의 성공을 향해 악착같이 버티던 송하에게도 어느새 직장이 시들해지고, 병원의 수익 창출에 영 비협조적인 선규는 경영진의 눈밖에 나 위기를 맞습니다.

 

 

 

 

상식 역시 어느 남자에게나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를 슬슬 느끼고 있고, 경주는 과연 두 딸에게 자신이 제대로 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별 일 없던 것 같은 안온한 부부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계기는 평범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망 사건. 그것도 남편이 가정불화 끝에 아내를 폭행하고, 달아나던 아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사건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라고 부르기엔 약간의 어폐가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살인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건 이후 송하는 "인생이란, 부부란 뭘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앞집이 비면서 상식과 경주가 앞집으로 이사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아울러 이 사건을 통해 경주는 상식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를 더 낮춰 잡게 되죠.

 

 

 

 

그러는 사이 송하와 상식이 광고회사와 광고주 관계로 만나게 되고, 상식과 경주는 앞집 사람으로 얼굴을 마주칩니다. 그러면서 슬슬 이들의 잠들어 있던 과거가 눈을 뜨고, 비밀스러운 관계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주변에선 또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를 말하고 있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특히 아파트의 두 주부들입니다. 이름은 따로 없고, 주부1, 주부2라고 표현해야 할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비중은 제법 큽니다. 바로 서이숙-김부선 콤비죠.

 

 

 

 

영자 역의 김부선은 왕년의 아매부인으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서이숙은 많은 분들께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대표적인 배우일 겁니다. 많은 드라마에 상궁이나 동네 아줌마 역 등으로 나오셨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는 최고의 적역을 맡았습니다.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밖에선 아무도 몰라!" 라는 소름끼치는 대사를 말하는.

 

 

 

 

또 김부선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이세창 역시 할 얘깃거리가 많아 보입니다. 한참 연상인 아내와 조용히 잘 살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은 물밑에 숨은 바람의 제왕.

 

그밖에 송하의 직장 동료인 섹시한 유부녀 지영(윤지민)과 직장 내 넘버1 킹카인 정이사(양진우) 등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궁금한 캐릭터들이죠.

 

 

 

 

어쨌든 '네 이웃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출발했으니,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속시원히 꿰뚫는 이야기가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또 불륜 드라마냐'고 보지도 않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몸서리치게 리얼한 묘사에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는 '아내의 자격' 처럼 현실보다 더 리얼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대신 이 드라마에는 미스테리가 있고, 코미디가 있습니다. 10년 넘게 산 부부들, 더 이상 할 말 못할 말이 따로 없는 부부들의 속내가 여지없이 파헤쳐집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보는 드라마의 늘 보는 그런 결론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드라마가 30여편씩 방송되는 드라마 공화국, 하지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드라마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부부의 진실'에 도달할까요?

 

 

 

 

P.S. '네 이웃의 아내' 홈페이지에서는 현재 드라마 리뷰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리뷰 하나 잘 쓰면 상품이 후두둑. 상품 중에는 명품 프라다 백도 들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드라마 보고, 한 살림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260&menu_id=PM10020468&bbs_code=BB100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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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도 어김없이 '뉴스9' 클로징에 다섯 곡의 노래가 소개됐습니다.

 

물론 다 좋은 곡들이겠지만, 뉴스와 연결해서 읽으시면 흥미를 더합니다.

 

어떤 엔딩곡들이었을까요. 바로 시작합니다.

 

 

 

 

930

 

누군가에게는 힘들었을, 누군가에게는 당혹스러웠을, 누군가에게는 억울했을지도 모를 9월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내일(1)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뉴스9을 마칩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Man in the mirror' - James Morrison

 

 

Man in the mirror란 누구일까요. 바로 그 자신이죠.

 

나는 거울 속의 남자와 함께 새로 시작해요.

나는 그에게 그의 방식을 바꾸라고 말하죠.

그리고 이보다 더 선명한 메시지는 없을 거에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으면, 그 자신을 돌아보고, 그의 방식을 바꾸라고.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
I'm asking him to change his ways
and no message could have been any clearer
if you wanna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a change

 

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제일 먼저 자신이 변하라는 교훈적인 노래죠.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대응 방식 때문에 많은 사람을 답답하게 했던 어떤 사람에 대한 노래일 수도.... (물론 제가 선곡자의 의도를 100%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저도 이 글을 쓸 때는 시청자 중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실 모리슨의 곡도 좋지만 이 곡은 아무래도 오리지널이 최강이죠.

 

 

 

 

 

 

 

101

 

10 1일 밤의 뉴스 9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Leader of the band/ Washington Post March

Dan Fogelberg

 

 

 

 

 

댄 포겔버그는 'Longer'로 한국인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포크 가수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 내용은 작중 화자(아마도 댄 포겔버그 자신)이 존경했던 밴드 리더에 대한 이야기라서, '대체 이 곡이 왜 선곡된걸까'에서부터 제목 뒤에 '워싱턴 포스트 마치'는 왜 붙어 있는 거냐고 궁금해 할 분들이 꽤 있을 걸로 보입니다.

 

잘 들어 보시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살짝 행진곡이 들립니다. 아주 잠깐.^^

 

매우 유명한 곡이죠. '행진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필립 수자의 대표작인 '워싱턴 포스트' 행진곡입니다. 다음 동영상의 앞부분에 이 곡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가 어린이 작문 콘테스트의 프로모션을 위해 수자에게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라는 제목이 붙은 거였군요.^^ 어쨌든 이 곡은 오랜만에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재개된 날, 서비스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102

 

또다시 남북대화록 파문을 접하면서 사후에도 편치 않은 사람을 봅니다.

뉴스9을 마치겠습니다. 내일(3)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The Frozen Man' - James Taylor

  

 

 

손사장님이 사랑하시는 제임스 테일러가 또 등장했습니다. 사실 제임스 테일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꽤 많지만(대부분 연식이 상당하신 분들 가운데), 그 분들이 좋아하시는 테일러는 70년대의 테일러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1991년 곡. 90년대에도 신곡을 계속 내놓고 활동한 테일러의 정력도 놀랍지만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팬은 매우 드물죠.

 

왜 이날 이 노래가 선곡됐나를 알아 보려면 설명이 꽤 필요합니다. 영상 앞부분을 보시면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임스 테일러 본인이 직접 길게 설명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죠.

 

요약하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향하던 시절의 범선이 항로를 잘못 잡아 얼음에 갇힙니다. 그러던 것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배가 발견되어 탐사대가 찾아가죠. 그리곤 얼어 있던 시체들을 일으켜 사진을 찍고... 그러니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던 제임스 테일러는 '사진기가 발견되기 전에 죽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느낌과 함께 이 노래를 작곡합니다.

 

비록 다큐에선 시체를 일으켜 사진을 찍는 정도지만, 'The Frozen Man'의 가사에선 윌리엄 제임스 맥피라는 선원이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 현대 사회는 아내도 아이들도 이미 없는 쓸쓸한 곳일 뿐입니다. 되살아난 기쁨의 노래는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테일러도 노래를 시작할 때 가사의 마지막 부분인 Lord have mercy on the frozen man'을 먼저 말하고 노래를 시작하죠.

 

이날의 가장 큰 뉴스는 NLL 대화록의 발견입니다. 그럼 클로징 멘트에 나오는 '사후에도 편치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매우 분명해집니다.

 

P.S. 참고로 이 곡은 2009년 11월19일 손석희 MC의 '백분토론' 마지막 방송 때 퇴장곡으로도 사용됐습니다. 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곡인 듯 합니다. 참고하실 분은 아래 블로그 글을.

http://blog.naver.com/unisite?Redirect=Log&logNo=120060429558

 

 

 

103

 

적어도 토요일까지는 높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4)은 부담없는 금요일입니다.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Sky Walker' - Isao Sasaki

 

 

 

하늘이 열린 날, 맑은 하늘 아래.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선곡입니다.

 

 

 

 

104

 

뉴스9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Jason Mraz ’93 Million Miles’

 

 

 

유명한 제이슨 므라즈의 유명한 노래. 60대 무명 기타리스트와 함께 변기를 고치며 만든 노래라는 뒷얘기도 있는데 뭐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고...^^

 

아무튼 930만마일은 약 1억4900만 Km, 즉 1AU입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죠. 그 어마어마한 우주의 사이즈에 비해 보면 지구 어디에 살든 우리는 집에 있다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특별히 10월4일의 뉴스와 관련지을 이유는 없고, 굳이 연결하자면, 요즘 대개 그렇지만 이날도 참 답답한 뉴스가 많았다는 점 정도. 거기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아버지는 내게 말하셨지. 아들아. 인생은 어둡게 보인단다.

하지만 빛이 없는 시간도 존재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

알아둬라. 너는 혼자가 아니란 걸.

넌 언제든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걸.

 

He told me, Son sometime it may seem dark,
But the absence of the light is a necessary part.
Just know,
you’re never alone,
You can always come back home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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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가을의 중심. 가장 풍요로운 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루 늦었습니다만, 아무튼 10월의 권장 소비 문화 행사를 정리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문화 소비는 '10만원 가이드'와 함께~~

 

 

 

 

10만원으로 즐기는 10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올해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란 얘기는 이미 여러 번 해서 지겨울거야. 그래서 국내외에서 수많은 공연이 있었는데, 아마도 올해 한국에서 무대에 올려졌던 오페라 중에 지금부터 얘기할 공연만큼 의미 있는 무대는 없을 것 같아.

 

10 1, 3, 5일 예술의전당에서 올리는 파르지팔(Parsifal)’이야.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인 파르지팔은 아서왕 휘하 원탁의 기사 중 성배를 발견하는 기사 퍼시벌Perciva의 이야기를 모태로 하고 있어. 퍼시벌의 독일어식 표기가 파르지팔이지. 그리고 이 파르지팔은 이미 바그너의 초기작 로엔그린에서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아버지로 나와. 

 

아무튼 , 드디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페이지를 열었다가 헉 하고 놀랐어. 이 오페라의 주역인 구르네만츠 역으로 연광철 선생이 나온다는 거야.

 

참고로 바그너 오페라의 주역을 꿈꾸는 가수에게 최고의 무대는 잘 알려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이야. ‘파르지팔도 바이로이트에선 거의 매년 공연되지. 그런데 연광철 선생은 거기서 5년 연속으로 구르네만츠 역을 맡았거든. 이건 한마디로 굴지의 바그네리안인 동시에 세계 최고의 베이스 가수로 인정받았단 뜻이야.

 

여기다 지휘를 맡은 로타 차그로젝(Rotha Zagrosek)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음악감독을 역임한 바그너 전문 지휘자야. 또 악한 마법사 크링졸 역을 맡은 몇해 전 국내 음악회에서 본 바리톤 양준모도 미래가 촉망되는 성악가지. 한마디로 흥분되는 무대야.

 

 

당연히 아쉬운 건 가격인데, 오페라하우스 3 B석에 5만원 정도는 투자할만한 생각해. 경쟁 상대라면 1015일 신영옥이 질다 역을 맡는 리골레토가 있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미 질다 역으로 재능을 인정받은 신영옥이니 누가 토를 달 수 없는 훌륭한 공연이겠지.

 

그런데 이 공연은 무대 장치 없이 콘서트 홀에서 약식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콘체르탄테(concertante). 반면 파르지팔은 제대로 무대와 의상을 갖추고 하는 정식 공연이지. 비슷한 가격이라면, 이번엔 파르지팔을 권하고 싶어. , 물론 무조건 바그너 보다 베르디가 좋다는 사람은 취향을 따라야겠지.

 

 

 

다음은 전시. 지난 달에 로버트 카파전을 소개했으니 이번 달에는 라이프 사진전이야. TV나 영화의 위력이 요즘같지 않던 시절, 사진 저널리즘의 최고봉이었던 라이프(LIFE)’ 지는 지금까지도 그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잊혀지지 않고 있어.

 

이번 전시는 ‘people’ ‘moments’ ‘It’s life’라는 3개 섹션을 통해 1936~1972년 사이에 촬영된 140여점의 사진이 전시돼. 특히 관심을 끄는 건 ‘people’ 섹션이야. 윈스턴 처칠-아돌프 히틀러, 무하마드 알리-조 프레이저에서 김구-이승만까지 라이프의 앵글에 잡힌 20세기 대표 인물들의 모습이 자못 기대돼. 1125일까지. 12천원.

 

 

 

국립극장에선 9월부터 하반기 완창 판소리 공연이 재개됐어. 1019, 최승희 명창이 정정렬제 춘향가를 완창해. 지난 3월에 우리 나이로 여든인 성창순 명창의 심청가를 듣고 홀딱 반했는데, 올해 희수(喜壽)인 최승희 명창도 그 못잖은 관록을 보여 주실 거야. 워낙 고령이시니 따님인 모보경 명창을 비롯한 네 제자들이 분창자로 나와. 2만원.

 

 

 

최근 이 모 국회의원 사건과 주사파 논란을 보면서 존 르 카레의 영원한 친구라는 소설이 생각났어. 유럽에서도 한때 학생운동이 뜨거울 때가 있었지. 하지만 이상주의적 좌파였던 학생들은 나이를 먹어 가며 동서 양대 진영의 현실 정치 세력에 의해 도구가 되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해.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련과 동구가 몰락한 뒤,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그로부터 꽤 긴 세월이 지난 어느날, ‘현장이 다시 이들을 찾아와.

 

이 소설의 결말과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리 비슷하지는 않아. 단지 세상은 쑥쑥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젊은 날의 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게 공통점이랄까. 고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러시아 하우스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그 뒤로 존 르 카레의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 대략 12천원 정도.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고 지켜봐야 할 것이 간송미술관의 가을 개관이야. 매년 5월과 10월에만 꼭 보름씩 보물창고를 여는 독특한 진행인데, 그런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사진으로나 봐야 할 명품들이 나와. 게다가 이 전시는 공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번에도 10월 중에는 개관을 할 테니 다들 개관 소식을 기다려 봐.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B    5만원

라이프 사진전                  12천원

최승희, 정정렬제 춘향가 완창    2만원

존 르 카레, ‘영원한 친구        12천원

간송미술관 가을 개관 전시       무료

 

합계 94천원

 

 

 

 

아시는 분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베이스바리톤 연광철은 한국 음악계의 진정한 국보입니다. 실제로 해외에서 평가하는 한국 성악계의 최대 강점은 베이스에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쓸만한 강속구 투수가 없을 때 '어디 쿠바에서 배 타고 누가 도망 안 나오나' 하듯, 유럽 오페라 관계자들은 '소프라노는 발트해 연안에서, 베이스는 한국에서'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병운, 연광철, 전승현(아틸라 전) 등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최고의 명성을 가진 스타는 바로 연광철.

 

일단 몸풀기 영상부터.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라이문도 역을 맡았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와의 듀엣.

 

 

 

워낙 바그너 전문 가수로 잘 알려져 있어서 이탈리아 오페라에 출연한 모습은 저도 처음 봤습니다. 아무튼 가볍게 감상.

 

다음은 독일계 성악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슈베르트 가곡.

 

 

 

'겨울나그네' 중의 '밤 인사'입니다.

 

자, 다음은 대망의 '파르지팔'.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입니다.

 

당연히 표면적인 주인공은 파르지팔 역의 테너지만, 바그너 오페라가 대개 그렇듯 테너의 역할은 사실 별게 없습니다. 전체 등장인물 중 맨 처음 무대에 오르는 기사 구르네만츠가 실질적인 주인공이죠.

 

그런데 연광철은 현역 최고의 구르네만츠로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파르지팔'에서 5년 연속 구르네만츠 역을 맡았다면 뭐 더 할 말이 없는 거죠.

 

2012년 바이로이트에서는 성배수호자인 왕 암포르타스의 부하인 구르네만츠와 그 시종들에게 모두 천사 날개를 달았습니다. 12분30초 쯤 보시면 구르네만츠가 등장합니다.

 

 

아무튼 뭐 이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참고로 '파르지팔'의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성 금요일의 음악'은 아주 오래 전 MBC 뉴스 타이틀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라이벌이던 TBC 뉴스는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팡파레를 타이틀로 썼죠.^^)

 

 

신영옥이야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포레의 '월광'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이상하게도 신영옥이 질다 역을 맡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발견할 수가 없군요. 아무튼 맑고 투명한 소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소프라노입니다.

 

 

 

 

 

존 르 카레의 '영원한 친구'는 사실 끝까지 읽고 나면 좀 허탈할 수도 있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80년대의 이념을 21세기에 적용한다는 건 결국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마무리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영원한 친구'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그룹 폭시 사진. 이 친구들은 요즘 어디가서 뭘 하는지...^^)

 

 

 

 

끝으로 간송 가을 전시는 13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 정도 되는 소장품을 가진 미술관이 아직 공식 홍페이지도, 전시 안내도, 이번 전시의 주제에 대한 발표도 없다는 건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매번 전시를 할 때면 이런 국보급 문화재들을 가산을 털어 마련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업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 전시 방식이나 미술관의 운영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만, 언젠가는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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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2]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히든싱어 시즌2가 오는 10월12일 돌아옵니다.

 

이미 시즌1의 성공적인 방송을 통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프로그램이지만 벌써부터 다양한 수단을 통해 히든싱어2가 시즌1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을 이루고 있는 건 다양한 이벤트입니다. (저 아래, 마지막 동영상을 보시면 그 이벤트의 성공을 위해 제작진 혹은 마케팅 스태프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이달 초,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대형 극장 이벤트가 그 시작입니다.

 

사실 이 이벤트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도 상품이 - 치킨 500마리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3000명이 들어 찬 대극장에서 정답을 발표했을 때 울려퍼지던 '우와'하는 함성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이 극장용 듣기평가 이벤트는 10월1일 오후 2시30분, 히든싱어 시즌2 제작발표회장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된 뒤 정답이 공개됩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생중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금이라도 막차로 지원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다음은 히든 콜택시 이벤트입니다.

 

'히든싱어 2'에 출연하시고 싶은 분들을 직접 찾아가 진행하는 이벤트. 번호를 눌러 신청하시면 택시가 여러분의 댁으로 찾아갑니다.

 

6일까지 운행합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어떤 거냐면,

 

 

 

짧아서 아쉬우시죠? 풀 버전으로 보시면 조금 더 자세합니다.

 

짧은 시간 사이에 10만명 넘게 이 영상을 보셨습니다.

 

저는 조용필 모창자가 가장 인상적...^^

 

 

 

 

사실 히든 콜택시라는 새로운 서비스(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았습니다.

 

이게 택시로 오해받으면 어쩌나, 대뜸 타고 "부산 가자"고 하시면 어쩌나, 노래가 잘 녹음이 안 되면 어쩌나, 노래하기가 혹 불편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결론은, 본격적으로 서비스하기 전에 직접 타 봤습니다.

 

그 영상입니다.^^

 

(아는 사람이 나와도 너무 놀라진 마시길...)

 

 

 

아....

히든콜택시의 뒷좌석은 아이패드를 통해 태진 노래방 홈페이지를 접속, 노래를 고르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기존 노래방과 큰 차이 없습니다.

다만 노래방 시트(?)가 다소 덜컹거리고 간혹 급정거 비슷하게 하는 경우, 그리고 차선 변경을 하는 경우가 있어 미리 예측하지 못하면 노래하다 당황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사회자(운전자^^)의 평가에 따라 우수 모창자로 선발되시면 DR.DRE의 고급 헤드폰을 선물로 드립니다. (물론 선발되지 못한 분들에게도 기본 선물이 있죠.)

10월 6일까지입니다. 아직 시간 있습니다. 지원하십쇼.^^

그리고는,

감기때문에 목 상태가 좀 별로였다는 핑계.

 

그리고 뭐... 택시 뒷좌석에서 노래한다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는 핑계.

 

뭐 그런 등등.

 

아무튼 그래서 저는 본편에는 출연하지 못하게 됐더라는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히든싱어 시즌2,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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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1주가 지났습니다.

첫주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9'을 진행하면서 들려 드린 클로징 음악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도 정리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2주째. 9월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흘러나온 엔딩 음악을 소개합니다.

확실히 첫주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넓어졌습니다.

 

 

 

 

923일 클로징 멘트:

증세를 해도 공약의 후퇴, 증세를 안해도 공약의 후퇴 가능성. 이런 경우를 말그대로 진퇴양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늘(23) 뉴스9,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내일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Beatles Recovered Band ‘When I’m sixty-four’.

당연히 비틀즈의 곡입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수록곡.

단지 저작권 사용에 대단히 민감한 비틀즈이기 때문에 카피 곡을 선곡하신 듯.

여기선 뭐 그냥 원곡으로 들으시겠습니다.

 

 

 

당장 귀에 확 들리는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를 계속 필요로 할 건가요?

나를 계속 부양할 건가요?

내가 예순 네 살이 되어도?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사실 국내 노인복지의 시작은 거의 대부분 65세부터 자격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순 넷이나 예순 다섯이나(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복지에 민감한 나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Will you still feed me는 딱 걸렸단 느낌. 

 

 

9 24일 클로징 멘트:

 

시청자 여러분, 오늘(24)도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추구한 것은 '한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였습니다. 내일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James Taylor, ‘That lonesome road’

 

 

 제임스 테일러는 밥 딜런과 함께 손사장이 가장 좋아하시는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리로 향하는 길의 외로움을 노래한 'That lonesome road'는 성가풍의 멜로디와 코러스 때문에 'You raise me up'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당연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니 외롭고 고될 수 밖에요. 지금 JTBC 뉴스가 걷고 있는 길처럼.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두번 말을 들었더라면

내가 떠드는 대신 입을 다물고 눈을 크게 떴더라면

내가 머리는 차게 식히는 대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더라면

나는 오늘밤 이 길을 가고 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을텐데.

If I had stopped to listen once or twice/

If I had closed my mouth and opened my eyes

If I had cooled my head and warmed my heart

I’d not be on this road tonight

모두 가정법 과거완료, 즉,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라는 게 가슴아픈 가사... 

 

 

925일 클로징 멘트:

 

복지공약 후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내일(26)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뉴스9을 여기서 마칩니다.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엘튼 존, Sorry Seems to be a hardest word

 

 

복지공약 후퇴를 말한 박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비판을 받았죠.

(물론 26일부터 사과에 나섰죠. 이 노래는 25일까지의 상황을 대변하는 겁니다.)

정말 미안한다는 말 듣기가 어려웠죠. 문득 이 가사가 떠오릅니다.

 

It's sad, so sad/ It's a sad, sad situation/

And it's getting more and more absurd

이건 정말, 정말로 슬픈 상황이야. 그리고 점점 어처구니없어져 가고 있어.^^

....

 

 

926일 클로징 멘트:

 

오늘(26)부터 날씨가 부쩍 선선해졌습니다.

감기 피하시고 가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뉴스 9을 여기서 마칩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서 버스커버스커의가을 밤이 흘러나왔습니다. 첫번째 국내 곡이자 연주곡입니다. 가슴이 저며옵니다.

뭐하세요. 가을을 느끼자는데. 가사 같은 건 필요 없잖아요.

 

 

 

9월27일 클로징 멘트:

 

오늘(27일)밤 밤샘토론 예고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JTBC에서는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에 신예리 국제부장 사회로 밤샘토론을 합니다.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이슈를 밤 12시 반부터 새벽까지 툭 터놓고 뜨겁게 토론할 예정입니다.

오늘 주제는 '꽉 막힌 정국, 누구 책임인가' 입니다. 토론으로 불금되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Junip, 'Line of Fire'

 

 

영화 'In the line of fire'에서처럼 line of fire는 총알이 날아가는 사선(射線)을 의미합니다. 또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최전방을 가리키기도 하죠. 그리고 치열하게 논쟁이 오가는 토론은 흔히 사선으로 비교되곤 합니다.

 

CNN의 유명한 토론 프로그램 제목도 'CROSSFIRE(십자포화)' 였죠. 이번 선곡은 토론 프로그램 'JTBC 밤샘토론'을 위한 응원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네 주위에 네 편은 아무도 없어

아무도 네 말을 이해하지 못해

네가 부르는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아.

 

No one else around you
no one to understand you
no one to hear your calls

이런 토론이 되면 안 될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또 한주가 흘렀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월요일에 만나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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