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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는 날선 면돗날 같은 영화입니다.

 

세상을 향한 냉소가 넘쳐나는 시대. 세상을 향한 분노와 좌절이 바뀐 것이 냉소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돌아 보면 비뚤어진 비아냥만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아직 분노 위에 서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약간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 정도로 대중이 느끼는 분노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장점은, 아무래도 촘촘한 플롯이라고 해야 할 듯.

 

 

 

 

어느날 오전 9시를 넘긴 시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윤영화(하정우)는 얼마 전 모종의 비리 사건으로 인해 마감 뉴스 앵커 자리에서 밀려난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청취자와의 전화 연결 코너에 엉뚱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폭탄을 갖고 있는데, 자꾸 이러면 터뜨리겠다"고 말합니다.

 

짜증스럽게 구는 남자의 태도에 "그래, 터뜨리려면 터뜨려봐"라고 욕설로 맞받아 친 윤영화. 하지만 얼마 뒤, 방송국에서 뻔히 보이는 마포대교가 폭발로 끊어집니다. 그리고 윤영화는 이 사건이, 구겨진 자신의 입지를 다시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테러범이 다시 전화를 걸어 올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이를 빌미로 차대은 국장(이경영)에게 자신이 이 상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조건으로 거래를 펼칩니다.

 

 

 

영화는 두어 시간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긴박감 넘치게 보여주지만, 실제로 영화가 드나드는 공간은 좁은 라디오 스튜디오와 그 조정실 뿐입니다. 이른바 밀실 서스펜스죠.

 

'더 테러 라이브'를 본 많은 사람들이 흑백영화의 고전인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을 떠올립니다. 배심원 회의실이라는 고정된 공간 안에서 12명의 사람들이 처음 보기엔 너무나 뻔했던 한 사건에 대한 의견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죠. 이 작품이 세대를 넘어 수작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액션 없이도, 총격전이나 자동차 추격전 없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 만으로도 '관객이 손에 땀을 쥘 수 있는' 스릴감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가장 큰 강점은 이 '대화가 주는 긴박감'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데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사건을 보는 각 등장인물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 서로의 수 싸움이 제대로 느껴지고, 대화를 통해 실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제7광구'나 '타워'같은 영화의 대본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부지런히 폭발음과 화염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막상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우들에게 주어진 대사가 극중 캐릭터의 눈으로 사건을 보고 있지 않고, 그저 뻔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 영화를 예로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 가운데 '더 테러 라이브' 수준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는 '현장의 대사'가 살아 있었던 작품을 꼽기가 쉽지 않습니다. 있다면 좀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분노'에 대한 영화입니다. '내가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누가 과연 나의 편을 들어 줄까'하는 질문은 아마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두고 있을 겁니다. 날이 갈수록 사회 안에서 '위쪽과 아래쪽'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 세상 사람들의 공분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대단한 강점입니다.

 

 

 

물론 '더 테러 라이브'가 완벽한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도 분명 있습니다. 실제 방송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싶은 부분이 꽤 있죠. (무전 너머로 들리는 "반드시 사살하세요"같은 장면도... 이건 좀 오버.)

 

그리고 또 한가지, 반드시 빠뜨리면 안 될 부분은 '테러범과의 생중계' 자체가 과연 해도 좋은 일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마포대교 투신 사건 때에도 현장에서 이 장면을 촬영한 방송사 카메라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극중 윤영화는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생중계하기 직전, 리드 멘트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테러범과의 대화를 내보낸다고 얘기합니다. 스페인 영화 '떼시스'에서 방송 앵커가 스너프 필름을 방송하는 이유를 댈 때에도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그냥 간과하지만, 김병우 감독이 꼬집고 싶었던 방송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이 부분에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도 분신 자살이라는 용어가 미디어에 등장할 때, 어느 매체 사진 기자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외신을 탄 적이 있습니다. 분신해 떨어진 사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고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현장에서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수단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전란으로 죽어가던 시절, 유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녀가 죽으면 곧바로 먹이로 삼으려는 듯한 독수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이 유명한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아이를 구할 생각은 없고 사진으로 유명해지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거냐"는 극심한 비난에 시달립니다. 그는 '20여분 동안 새와 아이를 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얘기했지만, '그 뒤에 아이가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그 20여분 사이에 새가 아이를 덮쳤어도 그는 그냥 사진을 찍고 있었을지도 몰랐고, 또 사진을 찍은 뒤에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죠. 결국 그는 1994년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이 사진으로 인한 죄책감이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항상 변명거리처럼 등장하는 것이 '대중의 알 권리'입니다. 기자라면 대중의 알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잊혀지기도 합니다. 독수리의 먹이가 될 위기에 있는 소녀를 촬영하는 것이나, 테러범과의 대화를 그대로 생방송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례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유사한 사안입니다. 둘 다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그보다 상위에 놓여야 할 다른 가치들을 무시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방송은 테러범과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내보내도 좋을까요. '더 테러 라이브'에서 대다수 관객들은 테러범에게 감정이입되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테러범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이 테러범이 이런 테러범이 아니라 진짜 테러리스트라면, 절대 생방송에 출연시켜서는 안됩니다. 정말 위험한 메시지를 일반에게 퍼뜨리려는 목적을 가진 자들이라면, 이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걸러지지 않고 방송을 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어쨌든 인질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협상에 나서고 양보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부정적으로 그려졌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태도 자체에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 테러 라이브'를 잘못 읽으면, 이런 문제점은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언론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 편만 드는 방송'을 욕하지만, 이 시점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대상은 바로 '시청률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하려는' 미디어입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고 '대중의 공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를 봐도 봤다고 할 수 없겠죠.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배우는 말하자면 다섯명. 대테러대책반 반장 역을 맡은 전혜진과 이지수 기자 역을 맡은 김소진, 그리고 테러범 역을 맡은.... (스포일러)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사실 하정우는 전형적인 앵커라기엔 너무 다혈질이지만, 그래도 그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성립하기 힘들었을지도.

 

어쨌든 '더 테러 라이브'는 마땅히 '올해의 영화'로 꼽힐만한 수작입니다. 젊은 김병우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P.S. 아래는 그냥 웃자는 이야기입니다.

 

 

마포대교 폭파 장면. 왼쪽에 63빌딩이 보이는 걸로 보아 마포 쪽에서 여의도 방향을 보고 찍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63빌딩 옆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마포대교 바로 옆에 있어야 할 쌍둥이 빌딩은 어디로 갔는지 없습니다.^^

 

 

하정우가 보는 각도는 이렇습니다. 오른족으로 쌍둥이 빌딩의 일부가 보이는.... 곳에는 방송사가 없습니다. 위치상 가장 가까운 곳은 MBC지만 그 건물에서 마포대교를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IFC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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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15일

슈퍼소닉 라이브 조용필 공연(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

22시10분부터 약 100분간 진행

 

보컬 조용필

기타 최희선

베이스 이태윤

드럼 김선중

키보드 최태완 이종욱

 

오프닝: DJ KOO

1. 미지의 세계

2. 단발머리

3. 자존심

4. 못찾겠다 꾀꼬리

5. 그대여

 

6. 조용필 기타 솔로 + 남겨진 자의 고독

7. 꿈

8. 장미꽃 불을 켜요

9. 판도라의 상자

10. 밴드 소개

 

11. 바운스

12. 모나리자

13. 헬로

 

(앵콜)

14. 해바라기

15.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6. 나는 너 좋아

17. 다 아는 그 노래.

 

록 페스티발에 맞게 선발된 송리스트.

슬로 곡은 '남겨진 자의 고독'과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단 2곡.

위대한 탄생의 연주력과 '달리는' 힘에 초점이 맞춰진 공연.

 

진정한 세대간의 화해가 펼쳐진 공연. 생각보다 젊은 관객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음.

 

P.S. 제발 락페에서 강제로 티머니 쓰게 하는 풍조는 없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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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군은 그동안 사극 드라마든 영화든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물론 등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동안 임해군 역을 맡은 배우들만 해도 정성모(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임정하(조선왕조 오백년, 회천문), 임혁주(서궁), 김유석(왕의 여자), 그리고 이번 '불의 여신 정이'의 이광수까지 꽤 많습니다. 한마디로 영화 '광해'를 제외하고 광해군이 나오는 작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임해군의 역할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광해군만 해도 1980~90년대 이후에야 '똑똑했는데 제대로 안 풀린 비운의 군주'로 관심의 대상이 됐던 만큼, '광해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형'에게까지 돌아갈 관심이 예전에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공부를 해 보니, 물론 '광해군이라는 똑똑한 동생'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겠지만 임해군에게는 왕이 될 수 없었던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임해군 (1574-1609) 1

 

선조의 장남이며 광해군의 형 임해군에 대해 널리 알려진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괴롭혀 조선 백성들의 손으로 왜군에게 포로로 넘겨졌다는 것, 또 하나는 광해군 때 명나라에서 왜 장남을 두고 차남이 왕이 되었는가 대한 엄격한 추궁이 있었다는 것 정도다.

 

두 가지 모두 를 묻는다면 한국사에서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임금이 되기에는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역시 왕의 장남이면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소현세자나 사도세자의 경우에도 공식 기록은 임금 감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사가 아닌 다른 사서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능력도 있고 뭔가 바꿔 보려는 의욕을 갖고 있던 왕자들이, 권신들의 음모에 휘말린 것이란 의심이 뭉클뭉클 일어난다. 

 

반면 임해군은 거의 모든 기록이 일치한다. 정사든 야사든 성품이 못되고 포악해서 임금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서술이다. ‘불의 여신 정이에서 얄미운 행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임해군(이광수)은 실제 기록에 비하면 많이 점잖은 편이다.

 

선조는 아들만 14형제를 두었는데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장남 임해군(1572년생), 차남 광해군(1575년생)을 얻었다. 14형제 중 정비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1606년생인 막내 영창대군 뿐이었다.

 

물론 영창대군이 왕위 계승의 경쟁자로 고려되는 것은 한참 나중의 이야기고, 일단 임해-광해 형제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배다른 형제들과 소리 없는 전쟁을 벌여야 했다. 이들을 낳은 공빈이 일찍 죽고, 그 뒤 선조의 총애를 받은 인빈이 의안군(1577년생)부터 내리 4형제를 낳았기에 더욱 그랬다.

(요즘 '불의 여신 정이'에 나오는 신성군은 의안군의 동생. 인빈의 둘째 아들.)

  

 

그런 가운데서도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 15일만인 428, 대신들의 뜻에 따라 17세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전란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혹시 왕이 잘못될 수도 있으니 후사를 미리 정해야 다소나마 민심이 안정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피난길을 떠나기 직전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대신들 사이에서도 반대가 없었다. 그만치 광해군은 임해군에 비해, 그리고 다른 왕자들에 비해 선조의 총애나 왕으로서의 자질 면에서 돋보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공사견문에는 이런 기록이 전한다.

 

(선조)이 여러 왕자에게 묻기를, ‘반찬 중에서 무엇이 으뜸이냐?’ 하니, 광해군이 소금이라 했다. 이유를 물으니 소금이 아니면 온갖 맛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임금이 또 묻기를, ‘너희들이 부족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냐?’ 하니 광해가 모친이 일찍 돌아가신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했다. 왕이 이를 기특하게 여겼다.”

 

세자가 된 광해군은 평안도로, 임해군은 순화군과 함께 함경도로 향하게 되었다. 민심을 안정시키고 군사를 모아 적에게 대항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임해군은 이런 의도에 적임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북상하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사에 쫓긴 임해군 일행은 함경북도 회령으로 달아나지만 여기서도 백성을 함부로 대하다 오히려 반란을 맞이한다. 난의 주역인 국경인 등은 두 왕자를 묶어 왜군에게 넘겼다. 의병장 정경운은 임진왜란 일기 고대일록(孤臺日錄)’에서 임해군의 체포를 출이반이(出爾反爾)’라며 한탄하고 있다. 이는 자업자득이라는 뜻. 오죽했으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겠느냐는 얘기다.

 

(함경도를 장악한 가토의 병력은 평안도로 넘어가 선조가 행재소를 차려 놓고 있던 의주를 공격해야 했겠지만 뜻하지 않게 이들을 가로막은 것은 여진족. 조선의 견제에서 벗어난 북동지방의 여진족들은 두만강 일대를 장악하려는 왜군을 물리치고 왜군이 함흥 언저리에서 머물게 만듭니다.

이어 정문부 - 아래 영정의 주인공 - 가 의병을 일으켜 국경인 등의 모반자들을 잡아 죽이고 가토 군을 무찔러(북관대첩) 함경도 일대를 회복합니다. 하지만 임해군 일행은 가토 군에 의해 이미 남쪽으로 옮겨진 뒤.

뒷날 임해군은 무사히 석방되긴 합니다만, 이후 평화회담이 오가던 시절 가토는 자기 명의로 임해군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포로로 있던 임해군과 가토는 비교적 관계가 원만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정에선 '누가 대충 예의만 갖추고 알아서 회신해라' 정도의 반응.)

 

 

 

반면 광해군은 선조 일행과 갈라선 뒤 영변, 정주 일대를 돌며 백성과 군사들을 위로했는데 매우 반응이 좋았고, 심지어 신하들 중에는 대놓고 선조에게 아예 광해군에게 양위하라는 권고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책감에 빠진 선조는 실제로 양위를 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하지만 1593, 명나라는 장남을 두고 둘째를 세자로 삼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광해군의 세자 책봉에 이견을 제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조는 그렇다고 심병(心病, 마음의 병, 즉 정신병)이 있는 임해군을 세자로 삼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답답해 했다. 광해군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임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임해군에 대한 사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런 반응은 당연해 보인다. 포악하다, 탐욕스럽다, 백성의 재물을 함부로 갈취했다, 왜군이 한양으로 몰려왔을 때 백성들이 궁성을 노략질할 때에도 임해군의 집에 재물이 많다 하여 표적이 됐다(유성룡의 서애집에는 반면 광해군의 집에는 아무도 불을 지르지 않아 민심이 광해군에게 있음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있다) 등등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전 경기도관찰사 유희서의 첩을 빼앗기 위해 유희서를 청부 살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선조의 적극적인 옹호로 더 이상 파헤쳐지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소시오패스의 기록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유희서 사건에 대한 연려실기술의 기록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계묘년(1603) 6월에 전 참판 유희서와 전 부사 황극중(黃克中)이 암살되었다.
희서는 고 정승 전(㙉)의 아들로서 본래 행검(行檢)이 없었는데, 임해군(臨海君)이 유의 첩이 미색임을 듣고 비밀리 불러들인 후 도적을 시켜 살해 하였다. 《일월록》


○ 도적이 참판 유희서를 암살하였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여 포도대장 변양걸(邊良傑)이 이 옥사를 철저히 수사하던 중 죄를 얻어 귀양가고 희서의 아들도 또한 장을 맞고 귀양가니, 영의정 이덕형이 상소하여 논하다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드디어 파면 당하였다.

이항복이 그 후임 갑진 에 임명되자 사양하기를, “양걸이 귀양간 것을 신도 실상 마음 아프게 여기는 바였는데 다만 미처 말을 못했을 뿐이니, 덕형은 바로 이미 말한 신(臣)이요 신은 바로 미처 말하지 못한 덕형입니다. 죄가 비록 드러나지 않았으나 신이 어찌 차마 본 정을 숨기겠습니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더욱 심각합니다. 유희서가 죽은 뒤 선조는 "서울에서 하루 거리인 포천에서 30여명의 도둑떼가 고관을 죽였으니 철저히 조사하라"는 영을 내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캐면 캘수록 흉흉한 구석이 나타납니다. 일단 설수와 김춘배라는 용의자가 잡히지만 이들을 포함해 관련자가 잡혀 오면 잡혀 올 때마다 감옥 속에서 자백할 틈도 없어 죽어 나갑니다. 유희서의 아들 유일, 그리고 포도대장 변양걸은 이 사건과 임해군의 관계를 폭로했지만 오히려 '증거도 없이 왕자를 모함했다'며 역공을 당해 귀양 가는 몸이 됩니다.

 

진상은 유희서의 첩 애생을 임해군이 탐내면서 벌어진 치정사건. 임해군이 은근히 애생을 달라 청을 해 보지만 유희서 또한 나라 법을 어기면서 차지한 애생을 내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생은 본래 관서의 관비라 유희서가 마음대로 데려올 수 없는 몸이었는데 나름 세도가인 유희서가 임의로 자기 집에 데려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임해군이 도적떼를 가장한 수하들을 보내 애생을 빼앗아 오게 한 것인데, 유희서가 기죽지 않고 맞서다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

 

수많은 관련자가 죽어 나가는 바람에 증인이 없는 상태가 되어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살아남은 박삼석 한 사람은 처음 체포됐을 때 임해군이 배후에 있다고 증언했으나, 막상 의금부에 와서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증언하고, 결국 이 사건은 선조 하대의 국가 기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맙니다.

 

아무튼 왕자가 무장한 건달 패거리를 거느리고, 그 건달이 참판급 관리를 죽여도 유야무야되는 이런 사건은 조선시대의 다른 왕 때에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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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설국열차'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논평이 등장해 있습니다. 영화 속 상징들에 대해 온갖 종류의 해석을 한 리뷰들에서부터, 봉준호 감독 본인이 나서 '그건 이런 의도'라고 해석한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관련된 읽을 거리가 넘쳐납니다.

 

이 글은 이 영화의 미덕을 칭찬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그런 글들은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깨시민을 옹호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본격적인 상징 해석도 아닙니다. 요나가 성경에 나오는 그 요나를 뜻하는 거라든가, 불의 등장이 인류의 문화 발달 단계를 의미하는 거라든가 하는 얘기를 원하는 분들은 다른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 껄끄러웠던 부분, 그리고 어딘가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 봤습니다. 스포일러가 닥치는 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보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줄거리 생략.

 

 

 

 

1. 왜 열차인가.

 

만약 별도의 연료 지원 없이도 영원히 멈추지 않는 영구기관이 있다면, 그리고 그걸로 얼어붙은 지구에서 인류 문명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면, 그 수단을 열차로 선택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짓입니다.

 

당연히 정지된 상태에서 이 영구기관의 에너지를 이용해 뭔가 해 보는게 훨씬 효율적이겠죠. 기차를 쓰면 외부인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웬만한 배리어만 친다면 어차피 설정이 온 세계가 다 얼어붙은 상황인데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열차다. 물론 '왜 열차인가'는 기차를 리드하는 인물 윌포드(에드 해리스)를 '기차에 미친 사람'으로 설정한 것으로 어느 정도 해명이 가능합니다. 미친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일단 '왜 그 영구기관의 기술을 윌포드만 갖고 있느냐'는 질문 역시 그렇습니다. 미친 사람이라는데 뭘 따지겠습니까.)

 

다소 찜찜하긴 하지만 미쳤다니까 넘어갑니다.^

 

 

 

 

2. 혁명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전적인 혁명 이야기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간단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맨 뒷칸의 승객들은 고전적인 시각에서 볼때 '착취당하는 민중'이 아닙니다. 이들은 기차가 달리게 하는 데 어떤 노동력을 제공하지도 않고, 그냥 윌포드로부터 열차 공간과 식량을 제공받을 뿐입니다. 영화 속 논리에 따르면 어쩌다 어린이 한두명과 바이올린 연주자 정도를 얻어간 듯 한데, 역시 영화 속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아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혁명에서 가장 큰 명분은 무엇일까요. '인류의 유일한 생존 공간이 기차 안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기차 안의 자원을 동등하게 공유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도 언급되듯, 맨 뒤칸 사람들은 이 기차와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로, 우연히 윌포드의 선의(?)에 의해 승차한 - 타지 않았으면 동사했을 -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일행이 원하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열차 안의 자원을 모든 사람이 공유, 생활의 질이 다 같이 떨어지더라도 전체 인원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자'는 것인데, '앞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뒷칸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혁명(?)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커티스는 "앞칸에 도달하면 (윌포드를 포함해) 거기 있는 자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대사는 봉준호 감독에게 이들이 꿈꾸는 '체제 전복'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는 별로 없음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전통적인 계급갈등에서 오는 혁명 이야기라기 보다는 '남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설정대로라면, 커티스 일행은 '왜 앞칸 인간들만 잘 먹고 잘 사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대체 왜 윌포드는 도움될 것 하나 없는 뒤칸 인간들을 프로틴 바를 먹여 가며 기차에 싣고 다니는가'를 궁금해 했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라는 것도, 윌포드 일행이 최초의 소요가 일어난 순간 귀찮은 뒤칸을 아예 떼어 내 버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뭣 때문에 윌포드는 적잖은 경비 인력을 희생시켜가며 정기적으로 소요를 일으켜 온 뒷칸을 유지해 온 것일까, 거기에 대해 커티스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제게는 참 이상했습니다.)

 

 

 

 

 

3. 은유와 액션 월드 사이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모든 사람이 다 아다시피 거대한 상징입니다. 이런 기차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주인공 일행이 휘젓고 다니는 각 열차 칸의 의미 등등은 도저히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뭐 영화 설정상으로 1000개의 칸이 있다고 하니 꼭 필요하지만 비쳐지지 않은 칸(예를 들어 앞칸 사람들이 먹는 스테이크를 공급하기 위한 육류 육성 칸 - 또는 인조 고기 생산을 위한 공장 칸) 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커티스 일행이 지나치는 대부분의 공간, 학교나 기타 앞칸 승객들을 위한 생활공간 등은 모두 리얼리티보다는 상징을 위한 공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액션들은 필요 이상의 리얼리티를 강요합니다. 몽둥이와 칼, 살과 뼈가 마주치는 대결의 현장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리얼한 액션은 수시로 리얼리티와 단절된 상징적인 공간과 맞닥뜨립니다. 예를 들면 앞칸에서 열심히 남궁민수와 커티스를 추격하던 분노한 앞칸 승객들은 어느 순간에 증발해 버립니다. 또 뒤칸으로부터 성화를 봉송(?)해 앞칸에서의 싸움을 이끄는 장면은 그동안 통과해 온 열차의 길이나, 이들이 통과해야 할 터널의 길이를 생각할 때 도대체 얘깃거리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소한 부분들, 어디까지를 상징의 세계로 보고 어디부터를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리얼리티의 세계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설국열차'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에서는 식구들이 식사하는 장면 가운데 딸 고아성의 유령이 나타나 식구들이 주는 밥을 먹는 장면이 갑자기 삽입됩니다. 리얼리티의 세계 안에 불쑥 등장한 은유의 세계인 것이죠. 이 장면이 별 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영화 전체가, '어쨌든 이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리얼리티의 세계였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설국열차'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와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가 너무 자주 교차하면서 상당 부분 설득력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불편함을 털어놓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상당히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4. 종교의 역할

 

이 영화에는 두 번, 사람의 머리 위에 신발을 얹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의 신분과 위치에 대한 비유로 사용됐습니다.

 

선종 불교의 지혜를 담은 '벽암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남전참묘南泉斬描'와 '조주대혜趙州戴鞋'라는 두 가지 화두가 나옵니다. 큰 스님인 남전이 두 법당의 승려들이 고양이 한마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 광경을 보고 "누구든 이 고양이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아 스님은 고양이의 목을 쳐 버립니다. 뒤늦게 절로 돌아와 이 소식을 들은 제자 조주는 스승 남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발을 집어 머리 위에 얹은 채 방으로 들어갑니다. 이를 본 남전은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며 탄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단히 난해한 화두입니다. 해설서들을 봐도 분명한 해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오히려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면 오히려 선불교의 화두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신발을 머리에 얹는다는 것은 가치의 전도를 말하는 것이며, 이렇게 전도된 가치를 갖고(살생금지의 계율에 대한 금지를 깨 가면서) 누구에게 진리를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힐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 화두가 과연 '설국열차' 속의 장면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지는 생각하기 나름인 듯 합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의 대표작 '금각사'에서 이 화두를 사용했듯, 근본적인 가치의 전도를 위한 소도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 외에도 두어 장면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윌포드가 커티스에게 '저 불쌍한 애욕에 물든 중생들에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기차 운영자(=부처?)의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고, 또 길리엄(존 허트)이 맨 뒷칸에서 행했다는 자비행의 모습이 그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 살을 베어 이웃을 먹인다는 장면도 - 뭔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혜숙선사와 구담공의 고사를 연상시킵니다 - 종교적인 가치 없이 설명하기 참 힘든 부분입니다. 이런 자기 희생을 통한 감화와 리더십의 획득이야말로 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길리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항목에서 계속)

 

아무튼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설국열차'는 종교의 허구성과 위선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영화가 됩니다. 윌포드가 주장하던 초월자의 시점이나, 길리엄의 희생이나, 결국은 지배자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니까요.

 

 

 

 

5. 길리엄의 배신

 

길리엄은 윌포드에 의해 파견된 언더커버 요원입니다. 그의 역할은 일단 무질서가 지배하던 뒤칸 인간들 사이에 사랑과 인류애를 되찾게 하고, 일정 수준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윌포드와의 사전 협의에 따라 일정 수준의 희망을 지속적으로 부여합니다.

 

즉 '언젠가는 혁명에 의해 우리도 앞칸을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윌포드는 뒷칸 승객들이 일정수 이상의 개체수를 보존하면서 소멸하지도 번성하지도 않는 수준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위에서 말한 어린이나 바이올리니스트의 공급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설국열차'의 설명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리엄은 윌포드를 배신합니다. 그들에게 허용되었어야 했던 진출선을 넘어, 물 공급 칸을 넘어 진격하는 것이죠. 그리고 커티스에게 말합니다. "윌포드를 만나면 말할 기회를 주지 말고 죽여" 라고. 이 말은 곧, 윌포드가 커티스를 만나면 '나와 길리엄은 본래 같은 편'이라는 말을 하고 설득에 나설 것임을 알기 때문에 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길리엄은 왜 윌포드를 배신한 것일까요. 기존 사회의 질서 유지에 이바지하던 종교의 몇몇 지도자들이 체제 전복에 나섰던 전례는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민중신학에 뛰어든 남미 카톨릭 신부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6. 제3의 선택은 있나

 

윌포드의 '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에 설득되기 직전, 커티스는 그런 체제 유지가 어린이들의 희생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대체 인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린이들의 희생이 비인도적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기차를 멈추고 절멸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으로'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방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즉 '인류의 소멸을 전제로한 인도주의의 실현'과 '소수의 희생을 통한 인류의 유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의미 있는 실천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실제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매우 궁금합니다만, '설국열차'는 여기서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남궁민수(송강호)가 주장하는 '기차 밖에서의 삶'입니다.

 

'인도주의자'에겐 참 다행스러운 선택이지만, 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도 사실 선택은 어렵습니다. 1) 어린이들을 몇 희생시키더라도 인류 문명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다 2) 어린이를 몇 희생시키느니, 인류 공멸이 더 도덕적으로 옳다 3) 둘 다 피하고 싶으니 기차를 세우고, 비록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기차 밖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는 쪽을 선택한다.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7. 결말은 희망?

 

이 부분은 사실 좀 실망스럽습니다. 심하게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곰이 - 비록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단 한마리의 백곰이라 해도 - 17년 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건 17년 동안,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인 백곰 한 마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했던 먹이들의 생태계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백곰의 먹이인 바다표범이 있었다면, 바다표범을 먹여살리기 위한 물고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 물고기가 있으려면 플랑크톤과 얼지 않은 바다가, 그리고 플랑크톤을 위해선 광합성을 위한 햇살이 있었을 거란 얘기죠.

 

2013년 현재 인류의 과학 기술 수준으로 볼 때, 백곰이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의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다면 인류가 절멸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100분1로 줄든, 1000분의 1로 줄든 절대 불가능하지 않겠죠. (위의 운행도를 보면 설날이 며칠 지난 뒤, 설국열차는 아프리카나 아랍 어딘가 정도를 지나고 있을 겁니다.^^)

 

아무튼 다 그렇다 치고, 남궁민수가 생각한대로 기차 밖에서의 삶이 가능하다 칠 때, 그 조건은 '기차 안에 있는 물자와 에너지를 동원해 밖에서 살아남는 것'일 겁니다. 영화의 결말처럼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고, 소녀 티를 못 벗은 여자 하나와 어린이 하나가 달랑 살아남아서 눈밭 위에 에덴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백곰의 한끼 식사가 되는 것이 더 가능성 높은 결말은 아닐까요.

 

문제의 백곰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것이 영화의 의도였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과연 이것이 희망의 표상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깁니다.

 

 

 

 

8. 설국열차는 성공했나.

 

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데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일단 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설국열차'는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기대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마더' 수준의 알듯 말듯한 수수께끼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나 뻔한 알레고리와 다소 무리한 결말을 가진, '또 한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로 느껴졌을 듯 합니다. 반면 '괴물'을 본 절대 다수의 관객들이 기대한 가족의 승리와 시원한 결말은 이 영화에 없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잔뜩 제공했다는 점에선 환영할만한 영화였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설국열차'의 티켓을 사면서 그런 것을 기대할 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한 쪽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가진 미덕들 -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호연, 각각의 기차 칸들이 가진 미장센의 미학, 자잘한 비유들이 가진 정답 찾기 놀이 - 를 이야기합니다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위를 향해 그려진 '봉준호 기대 곡선'은 이번엔 약간 아래로 향했다고 말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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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조금 늦었습니다.;

 

아무튼 리스트 나갑니다.

 

더울 때 멀리 가 봐야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도심에서, 조용하게.^

 

 

 

 

 

10만원으로 즐기는 8월의 문화가이드

 

아직도 7월 말~8월 초에 휴가들을 가시나? 학생들 있는 집에선 소위 학원 방학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그 시간에 가는 휴가지는 지옥과 별반 다를 게 없더군. 그러니까 학부형 아닌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 기간은 피하고,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해진 도심에서 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납량특집으로 연극 한 편. 연극 우먼 인 블랙이 서울 대학로 둥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9월까지 네번째 연장 공연중이야.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이미지 세탁을 위해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데, 두 배우가 별다른 소품도 없이 수십명의 캐릭터를 종횡무진 연기하면서 극을 끌어갈 수 있다는 게 볼거리야. ‘건축학 개론건축과 교수님인 지성파 배우 김의성 주연. 33천원.

 

음악 공연 중에는 서울시향의 말러 9(830)이 눈길을 끌지만 일찌감치 매진. 추가 공연을 기다려 보고, 대신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 II’를 권하고 싶어. 이름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는 음악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야.

 

이렇게 강연과 음악이 버무려진 공연은 음악도 음악(테너 김재형, 피아노 윤홍천)이지만 해설자가 누구냐는 게 관건인데, 일단 김문경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신뢰해도 좋아. 풍부한 지식과 적절한 위트의 조합이 탁월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템페스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로미오의 아리아 , 태양이여 솟아라등이 연주돼. 음악당이 아니고 IBK 챔버 홀이니 33천원짜리 뒷자리면 충분.

 

 

 

 

 

 

 

7월에도 전시 두가지를 소개했지만 8월이야말로 진정한 성수기. 이 대목에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크릿 뮤지엄을 추천하지. 한마디로 명화를 디지털 영상으로 분석해서 미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내용이야. 루브르를 가 봤더라도 가서 모나리자밀로의 비너스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는 사람이 이 전시를 보면 , 내가 보기는 했지만 본 게 없는 거구나하고 느낄 점이 있을 거야. 12천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신중-불교의 수호신들도 추천하고 싶어. 신중(神衆)이란 부처나 보살보다 위계가 낮은 불교의 들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껍질을 벗겨 보면 다들 힌두교의 신들이지. 이를테면 제석천은 인드라, 범천은 브라흐마, 대자재천은 시바 신이 불교로 편입된 모습이거든. 이들이 불교 미술에서 어떻게 표현됐나를 보여주는 전시인데, 힌두 신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로울거야. 심지어 공짜. 당장 달려가.

 

일전에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인지 이번엔 장편이 번역되어 나왔어. 제목은 가벼운 나날(Light Years)’. 사실 이 책은 추천할까 말까 조금 망설였어.

 

줄거리만 보면 꽤 단순해. 꽤 성공한 건축가 비리 벌랜드와 사람을 잘 사귀는 미녀 네드라는 뉴욕 교외에 집을 짓고 두 딸과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부부야. 아름답고 통찰력있는 아내와 다소 소심하지만 착실하고 가정적인 남편, 누가 봐도 더없이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지.

 

하지만 네드라는 애당초 결혼으로 얽맬 수 없는 여자야. 어떤 양보나 희생도 그걸 바꿔놓지는 못해. 그렇게 두 남녀가 20여년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주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

 

분야는 다르지만 글 써서 한 20년 먹고 산 사람으로서, 설터의 문장은 찬탄의 대상 그 자체야. 어쩌면 이 대목에서 이런 생략을. 어쩌면 이 대목에서 이런 살떨리는 비유를. 한마디로 놀라움을 자아내는 문장가야.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데 왜 추천을 주저했냐고? 과연 이 소설이 인생의 모든 국면을 맞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야. 솔직히 내가 20대 때 이 소설을 읽었더라도 설터의 가공할 위력을 느낄 수 있었을 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니 혹 이 책을 읽다가 이게 뭐가 좋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거든, 내 얘기를 기억하고 책장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한 20년 뒤에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 (그런데 이런 얘길 하고 나니 문득 오래 전에 실망해서 읽다 만 책들이 문득 궁금해지네.)

 

덥다고 찬 음식 너무 많이 먹지 말고, 9월에 만나.  [끝]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잘 알려진 작품이면서도 다른 오페라들에 비해 캐스팅에 좀 민감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최근 이 로미오/줄리엣 커플은 알라냐-게오르규 부부가 일단 나서고, 그 다음 알라냐-네트렙코(위 사진)에서 이번엔 남자가 바뀌어 비야존-네트렙코가 각광받습니다. 여기서 여자가 바뀌어 비야존-마차이제(아래 사진),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로-마차이제가 현재 가장 각광받는 커플이 됐습니다. 한번은 남자, 한번은 여자가 바뀌는 순서가 매우 정례화되어 있는 듯.

 

어쨌든 유난히 출연하는 가수의 외모에 민감한 작품이다 보니 그리 많은 스타들이 이 역할을 맡지는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위 사진에 나오는 분들이 오페라계에서는 나름 비주얼 담당으로 꼽히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절대적 기준(!)에 따라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느낌으론 그리 적절치 않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R&J의 영상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듯 합니다.

 

아무튼 오페라를 소개했으니 노래 소개. 일단 줄리엣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나는 살고 싶어요(Je veux vivre)' 입니다. 1막 캐퓰릿 가의 파티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조수미 버전.

 

 

 

 

 

 

그 다음은 로미오의 가장 대표적인 아리아. 바로 위에 소개한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니콜라이 게다가 부르는 '아, 태양이여, 떠올라라(Ah, Leve-toi Soleil)'

 

사실 위에서 한참 '캐스팅에 민감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이 영상을 보시면 왜 그런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페라가 노래 실력 우선이라고 해도, 과연 이런 로미오를 보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르첼로 알바레스도 물론...^^

 

노래 실력이야 흠잡을 데가 없지만 이런 우렁찬 목소리가 과연 그렇게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이 노래에 특히 어울리는 목소리.

 

 

 

 

이 오페라의 에이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란도 비야존과 안나 네트렙코의 '가세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Va! je t'ai pardonné'  

 

 

 

 

그리고 글을 맺기 전에...

'가벼운 나날'에 대한 감상은 위에서 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많은 글을 읽고 써 왔지만, 저 감상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아마도 글을 써 본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이 어린 분들은 이 글의 느낌을 충분히 즐기기 어려우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추천은 하되, 혹 '이게 뭐야' 싶은 분들께는 책을 한 20년만 묵혀 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

 

그럼, 이런 글로는 9월에 뵙지요.

 

P.S. 위에 미처 적지 못한 볼거리로는 메가박스의 '라트라비아타' 베로나 원형경기장 공연 실황을 추천할 만 합니다. 아울러 짤스부르크 라이브도 있는데 이미 코엑스 M2관은 매진에 가까운 듯. 상영관이 여럿인데 평소 관객 수를 감안하면 아마도 동대문관이 가장 만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와 '돈 카를로'를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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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2]

 

사실 '레드2' 를 보러 가서도 '레드'의 핵심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3년이라면 요즘 블럭버스터의 속편 제작 주기에 비해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J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가 4년만에 나왔고,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 사이도 4년이었죠.

 

하지만 그리 전통있는 프랜차이즈라고 보기 힘든 '레드'의 경우 3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시리즈 간의 긴밀한 연속성을 제기하기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드2'는 보는 시간 내내 영화의 길이를 느끼기 힘들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생명존중과 같은 기본적인 윤리를 감안하면 참 막장형 영화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생각하면 이만큼 충족감을 주는 영화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순도 높은 '오락만을 위한 영화' 입니다.

 

 

 

 

전작에 이어지는 이야기. 왕년의 스파이 에이스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사라(메리 루이즈 파커)와 소시민으로 알콩달콩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마빈(존 말코비치)은 곧 폭풍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결국 프랭크와 사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 설치한 폭탄에 의해 마빈이 타고 있는 차가 폭발해버립니다[스포일러 아님]. 그리고 마빈의 장례식장에서 프랭크는 기관원들에 의해 연행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전 세계를 무대로 전개됩니다. 프랭크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영국은 전편에서도 활약한 이들의 동료 빅토리아(헬렌 미렌)를, 미국은 세계 최고의 킬러 배한조씨(이병헌. 이 이름에 대해선 저 밑에 자세히 정리)를 기용합니다. 이들 사이에 프랭크와 과거 사연이 있었던 러시아 스파이 카티아(캐서린 제타 존스), MI6에 의해 연금된 천재 과학자 베일리(앤서니 홉킨스) 등이 엎치락 뒤치락 연루됩니다.

 

 

 

 

사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는 데 뇌는 별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노장들이 실제로는 한창 팔팔한 현역들을 능가하는 기량의 소유자들이라는 스토리의 영화들은 이미 한두편이 아니죠. 최근작으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계열의 근육질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한 '익스펜더블' 시리즈가 있고, 추억의 영화로는 '지옥의 특전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던 Wild Geese(1978) 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옥의 특전대'의 주역인 리처드 버튼은 영화 개봉 당시 53세, 로저 무어는 51세, 리처드 해리스는 48세. 70년대에는 이 정도면 충분히 '노장'으로 불릴 만한 나이였죠. 반면 '레드2'의 브루스 윌리스는 58세, 존 말코비치는 60세. 헬렌 미렌은 68세. 앤서니 홉킨스는 76세... 평균 수명 연장과 과학의 발달에 따른 할리우드 스타 정년 연장이 실감납니다.)

 

 

 

 

아무튼 이 '지옥의 특전대' 때 이미 베테랑들의 노익장 과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주제는 완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21세기 판인 '레드' 시리즈에서 달라진 것은 좀 더 확실해진 인명 경시 사상.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존 말코비치는 아예 브루스 윌리스에게 대놓고 "사람 죽인 지 한참 지나 인생이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그 강력한 힘을 갖고도 사람 하나 죽일까 말까 30분씩(물론 영화상으로. 실제 시간은 더 걸릴 수도) 고민하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이 분들은 태연히 살인을 저지릅니다. 컴퓨터 게임보다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플롯이 너무 단순해 비어 보일 수 있는 영화의 틈바구니는 세계적인 명배우들이 잘 알아서 메꿔 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배우는 '여왕 폐하' 헬렌 미렌. 아마도 이 영화에서 헬렌 미렌이 미친 척 하기 위해 읊조리는 대사는 세실 어쩌고 하는 대목으로 봐서 2005년 출연했던 BBC 사극 '엘리자베스 1세'에 나오는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다시피 '더 퀸'에서는 현역 여왕 역으로 오스카를 따냈죠. (사실 정통 셰익스피어 극 출신인 이 양반은 젊어선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에서 모르가나 여왕 역으로 팜므 파탈의 위용을 떨친 분입니다.)

 

아무튼 그런 관록을 스스로 희화화하기라도 하듯, 이 영화에서 미렌은 카리스마 넘치는 코믹 연기(영화를 보시면 이게 말이 된다는 걸 납득할 수 있습니다^^)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특히 이병헌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의 액션을 보면 '아. 이 영화의 주인공은 헬렌 미렌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박지성이 출전하는 맨유 경기나 류현진이 던지는 다저스 경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병헌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지는가가 매우 중요한 요건이 되는데, 이 무시무시한 배우들 속에서 이병헌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움을 줍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토르'의 아사노 타다노부 등에 비해 훨씬 돋보이는 역할이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지아이조' 시리즈에 이어 너무 자객 이미지가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사나다 히로유키의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딱 맞춤으로 떨어지는 작품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아시아 출신의 남자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자면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튼 적지 않은 나이에 영어 연기에 도전해 이 정도의 성취를 거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과가 썩 시원치는 않아 이제 알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만약 '레드3'가 만들어진다면 이병헌의 역할은 '꽃보다 할배'의 이서진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해외의 이병헌 팬들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어의 '좆됐다'가 무슨 뜻인지 알았겠죠.^^)

 

나머지 배우들은 '딱 다 알만한 캐릭터'를 '딱 다 납득이 갈 만한 수준'으로 연기해 줍니다. 아쉬움도 없고, 그렇다고 큰 기대흘 할 만큼도 아닙니다. 극장에서 가치관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는 분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오락 영화. 인생의 의미나 구원의 메시지를 찾고 있는 분들에겐 비추. 당연히 헬렌 미렌이나 존 말코비치를 모르는 분들에게도 비추.

 

 

 

P.S. 이병헌의 극중 캐릭터 이름은 Han Cho Bai 인데 이게 한국 이름이라면 '배한조'라고 봐야겠죠^^. 뭐 한일관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미국 제작진이 이 캐릭터의 킬러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의 전설적인 닌자 핫토리 한조의 이름에서 대강 섞어 만든 듯 합니다만... 뭐 이런 영화에 그런 디테일까지 기대하기는 힘들 겠죠.

 

IMDB에 따르면 극중 이병헌의 어린 시절 사진에 나오는 분은 실제 이병헌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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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대중문화 상품을 살펴보더라도 자국산 TV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자국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 콘텐트인 나라는 더욱 적습니다.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과 영국입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나 독일의 TV 편성표를 살펴보더라도 미제 드라마, '하우스'나 'CSI'가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드'가 영 맥을 못 추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자국산 드라마 콘텐트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 조차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드라마 강국이 되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부터 인재들이 부단히 이 분야로 모여들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좀 더 나은 콘텐트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한 드라마'를 만든 절대 공로자 중 한 분이 어제 급서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원고 청탁이 와서 급하게 쓴 글입니다.

 

 

 

 

제목: 30년의 도전, 아쉬움 속에 끝맺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PD는 후배 김종학 PD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1985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임진왜란' 편을 찍을 때 이야기. 당시 급박한 촬영 일정 때문에 이PD는 한 후배에게 왜군들이 조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신을 부탁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엑스트라들 감기 들면 촬영이 어려워지니 신경 써서 찍으라'는 조언까지 했다. 이PD가 자기 신을 마치고 후배 PD의 촬영을 살피러 갔더니 조선 포로 엑스트라들이 맨발에 동저고리 차림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부까지 했는데. 화가 난 이 PD가 후배를 불러 따지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왜병들이 포로를 잡아갈 때 옷이며 신발을 제대로 챙겨서 끌고 갈 것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야 시청자들도 납득하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라 더 이상 야단을 치지 않았다는 이 PD, 당시에도 '저렇게 독하니(?) 좋은 PD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듬해, 입사 10년차인 후배 김종학은 '조선왕조500년'의 '회천문'을 연출했다.

 

 

 



김종학은 거대한 서사 속에서 운명에 맞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이문열 원작을 극화한 '영웅시대'와 '황제를 위하여' 는 그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북한의 현실을 그린 '동토의 왕국' 에선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낯선 연극 배우들을 대거 브라운관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김홍신 원작 '인간시장'에선 무명 신인이던 박상원을 기용해 한국형 히어로 드라마의 원형을 제시했다.

 

 


물론 '연출가 김종학'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은 단연 1992년작 '여명의 눈동자' 였다. 김성종 원작, 송지나 각색의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말~한국 전쟁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대치(최재성), 여옥(채시라), 하림(박상원)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렸다.

특히 이 시기를 다룬 한국 TV 드라마 중 최초로 이념의 벽을 넘은 작품이라 평가할 만 하다. 마지막 회, 빨치산 대장과 토벌군 장교로 만난 대치와 하림이 “우리의 자리가 언제 바뀌었어도 전혀 놀랍지 않았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화하는 장면은 아직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여운을 남겼다.

 

 

 


이 성공으로 MBC를 떠나 프리랜서가 된 김종학은 1994년 다시 한번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춰 광주 민주화운동과 범죄 조직간의 암투를 그렸다. 제목은 '모래시계'. 최민수 고현정 등 호화 캐스팅이 뒷받침 된 '모래시계'는 60%대 시청률이란 전설로 '귀가시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개국 4년째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를 통해 비로소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에 들었다고 일컬어진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2002년작 '대망' 은 팩션 사극의 새 장을 열었고 2007년,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운 판타지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 는 거대한 규모와 완성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제작사 대표 김종학'은 '연출가 김종학'에 미치지 못했다. '태왕사신기'에 투입된 200억원의 제작비는 당시의 한류 드라마 시장의 매출 규모에 비해 지나친 규모였다.

 

 

 

 

작품에는 엄격했지만 스태프들에겐 너그러웠던 성품도 적자 폭을 늘리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유작이 된 2012년작 '신의'는 이민호 김희선 등 한류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판타지 드라마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고, 막대한 투자는 이번에도 큰 짐이 됐다.

결국 시청자들은 더 이상 '김종학표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됐다. '모래시계' 이후 김종학의 일관된 꿈은 영화 연출이었다. 그는 한동안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의 제작에 몰두했으나 스스로의 완벽주의 때문에 계획은 자주 미뤄졌다. 그 동안에도 어린이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천계영 원작 '오디션'을 아이돌을 소재로 개작하려는 기획도 진행중이었다. 일찍 정상에 섰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은 도전 정신이야말로 '연출가 김종학'이 한국 방송사에 남긴 진정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끝)

 

 

 

 

 

 

고인의 업적을 다 기술하긴 터무니없이 짧은 분량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작품들인 만큼 특별히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그를 가리켜 '역사를 아는 PD'라고 일컫습니다. 물론 송지나 작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원작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읽어 본 사람들일수록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원작의 인물 구성과 사건의 흐름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보다 균형 잡힌 역사관이 가미되면서 일종의 '반공문학'이던 원작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대치는 그냥 흉폭한 악역이지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대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 북으로 가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림 역시 이념이나 정치적 구도에 대한 고려 없이, 어찌 하다 보니 미군의 군속이 되어 남쪽 편에 서게 되죠.

 

이런 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설정입니다. 그래서 저 윗글에서 소개한 장면이 뭉클한 감동을 줬던 것이죠. (이 드라마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 외에도 '여명의 눈동자'는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수작입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대치와 여옥이 "살아있어야 해! 살아있으면 만나게 돼 있어!"하고 절규하는 장면, 또 영국군의 추격을 피해 밀림을 횡단하던 대치가 뱀을 잡아 씹어먹던 장면 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 하나 거론하려면 날이 새도 모자랄 고인의 업적 중 하나는 탁월한 신인의 발굴입니다. 전혀 경력이 없는 신인을 발굴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런 신인들 중 하나'를 찍어내 일약 스타로 만들어 내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간시장'의 박상원과 '모래시계'의 이정재입니다. 특히 이정재는 '모래시계' 이전에도 활동을 했고, '느낌' 등의 드라마를 통해 나름 꽤 인기를 얻은 청춘스타였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에서 말수 적은 보디가드 역할을 하면서 전 국민이 아는 주연급 스타로 승격됐죠.

 

오죽하면 이 역할 이후에 유망 남자 신인을 꾈 때 드라마 제작진이 단골로 하는 말 중에 "모래시계 이정재 같은 역"이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그 외에도 '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아역이었던 이은주, 김경아(왕희지)의 아역이던 송혜교, '모래시계'에서 최민수의 아역이었던 김정현이 김종학 감독의 손끝을 통해 발굴됐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도 이지아와 이필립이 스타덤에 올랐죠(배용준의 아역이던 유승호는 원래 아역 스타였으니 빼겠습니다).

 

 

 

 

아무튼 어느 때든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나면 늘 "이것만 하고 영화 하려고" 하며 웃으시던 감독님. 이제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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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림]

 

군사 마니아들이나 시사에 밝은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 해군이 참가하는 국제 기동훈련 가운데 림팩(RIMPAC)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풀 네임은 'Rim of the Pacific Exercise' 인데 약자로 만들지 않고 가장 중요한 pacific과 rim만 따서 그냥 림팩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Rim of Pacific 이라고 쓰거나, Pacific Rim이라고 쓰거나, 결론은 모두 '태평양 연안(국)'을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영화의 제목만 들었을 때 혹시 림팩 훈련과 관련 있는 해양 액션물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올 여름 최대의 기대작이었던 이 영화,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엄청난 물건이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한 정도를 넘어섭니다. 2020년 언저리의 어느날, 갑자기 바다 속에서 카이주가 나타나 샌프란시스코를 공격합니다. 군의 출동으로 진압에 성공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카이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인류는 거대 로봇 예거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는 거의 20년에 걸쳐 카이주와의 전쟁을 펼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예거 '집시 데인저'를 조종하던 에이스 파일럿 롤리 베켓(찰리 허냄)은 전투의 충격으로 일선을 떠나 공사판(?)을 전전하던 도중 옛 상관 팬터코스트 장군(이드리스 엘바)의 방문을 받습니다. 뭐 이유는 너무나 뻔합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자는 사연인 것이죠.

 

(이미 잘 아시겠지만 Jaeger는 독일어서 hunter라는 뜻, 그리고 카이주는 한자로 怪獸, 바로 우리가 보통 부르는 그 괴수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아무튼 미리 말하자면, 이런 류의 '로봇 대 괴수'의 차고 때리고 부수는 대혈전을 실사로 볼 날을 꿈꿔왔던 많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야말로 꿈의 실현입니다. 신의 선물이죠. 그 밖의 분들은...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만족.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봤습니다.

 

 

 

 

 

이 영화의 국내 예매자 가운데 40~50대 남성의 비율이 무척 높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녀들을 위한 예매'만으로 보기 힘든 요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로봇 만화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70~80년대까지. 물론 90년대의 청춘들에겐 에반게리온이 있고, 이른바 '건담 왕조'라고 할만한 건담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진정한 메카물의 시대는 나가이 고의 마징가 연작과 겟타 로보가 활약하던 무렵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퍼시픽 림'은 메카물의 재현인 동시에, '울트라맨'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거쳐 '아이젠버그'로 이어지는 특촬물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입니다. DNA를 보자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기 보다는 특촬물의 고급화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감독이면서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적인 상상력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음을 전혀 감추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이 영화의 로봇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품으로 '철인 28호'를 꼽기도 했죠.

 

 

 

 

액션의 사이즈를 보면 확실히 '퍼시픽 림'은 '마징가'보다는 '고질라' 류의 계승입니다(사진은 고질라의 라이벌인 가메라). 마징가Z가 20m 이내, 건담 시리즈가 30~40m인데 이 영화의 예거와 카이주들은 100m 언저리의 신장을 갖췄습니다(그렇습니다. '트랜스포머'류 보다 훨씬 큽니다). 꼬리 길이를 합해 200m라는 고질라급의 체격이죠. 어쨌든 이 덩치들이 펼치는 액션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통의 계승이 충실히 이뤄지다 보니, 돈 들인 티가 좔좔 흐르는 화면 한 구석에서도 어딘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괴수물을 다시 보는 듯한 정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괴수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쿵쿵거리고 싸우는 동안 마분지로 만든 듯한 고층건물들이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70년대 특촬물의 저렴한 느낌 말입니다. 특히나 어린 마코가 파괴된 도쿄 한복판에 숨어 있는 장면은 '고질라' 시리즈 중 한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목에 있는 질문의 답은 이렇습니다. '강렬하게 추억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메카물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근거(혹은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한 플롯)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일단 그런 초대형 로봇이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데다, 사용하는 무기나 기타 동작이 전혀 물리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영화일 때에는 누가 뭐라 따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만약 이걸 실사판 영화로 바꾸어 놓는다고 하면 엄청나게 유치하게 보일 곳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철인28호'를 비롯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영화들이 개봉하자마자 욕설의 집중포화를 맞고 나오는 족족 침몰한 것도 이런 요소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런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가장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대형 로봇을 창조했습니다.

 

전투 장소까지 수십대의 대형 헬리콥터에 의해 이동하는 모습이나 로봇을 보관하기 위한 거대한 도크, 그리고 그런 전투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움직이는 엄청난 수의 보조 인력 등은 '로봇 만화'를 그냥 실사로 바꾸는 선을 넘어서, 어떻게 해서든 그런 로봇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천톤 무게의 로봇이 펀치를 날리며 싸운다든가, 고공에서 맨땅에 떨어져도 멀쩡하다든가 하는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요소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감독의 이런 세심한 노력 덕분에 '퍼시픽 림'을 보는 눈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그리고 '말이 되게 하기 위해' 일반 관객들이 과거 로봇물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무한정의 기대를 희생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칭찬할 만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뇌를 공유해야 로봇이 전력을 발휘해 싸울 수 있다든가 하는 드리프트라는 독특한 설정(어쩌면 '아이젠버그'에 나오는 '영이 철이 크로스!'의 발전된 형태...?^^)은 이 영화가 노리고 있는 특정한 줄거리를 펼쳐 나가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관객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로봇과 파일럿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싸울 수 있다는 설정은 이미 로봇이 공격당할 때 마다 파일럿이 그 공격당한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일본 메카 만화의 전형적인 설정에 매우 충실한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 관객들에게 아무 무리 없이 전달됩니다.

 

(물론 왕년에 만화영화를 볼 때에는 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괴수 로봇이 마징가 제트의 눈을 드릴로 후벼 팔 때, 자기 눈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쇠돌이(카부토)를 보면서, 아니 그냥 조종만 하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마징가와 쇠돌이는 신경이 연결되어 버린 거냐, 하고 당혹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에반게리온'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연령 때문에 본 게 에반게리온밖에 없어서 그럴 수는 있겠지만, 사실 에반게리온에서는 수트 외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은 게 없습니다. 아마 '철인28호'와 70년대 애니메이션을 모르시기 때문에 나온 얘기일 듯.)

 

 

 

뭐 델 토로가 이 그림- 고야의 '거인' - 을 연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건 '진격의 거인'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이 그림이 갑자기 21세기 들어 각광받고 있는 듯.

 

그런데 아래 댓글 지적에 따라 찾아 보니 이 그림이 고야의 그림이 아니고 제자 아센시오 훌리오의 그림이라는 보도가 있었군요. 이 글과 직접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내용의 일부입니다.

 

(프라도미술관의 19세기 작품 담당인 호세 루이스 디에스 씨도 캔버스 왼쪽 아랫부분을 확대해본 결과 AJ라는 서명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고야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아센시오 훌리아(Asensio Julia)의 이니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메나씨는 프라도미술관이 이 작품과 훌리야의 다른 작품들을 비교하고 추가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 그림이 고야의 작품이 아니라는 최종적인 결론은 유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148492)

 

 

 

사실 배우들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할 거리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아니라 예거들과 카이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를 진정 사랑할 관객들(!)이 원하는 것도 그런 요소들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사실 별 기대할 게 없습니다. 그건 배우들이 그리 이름값을 할만큼 거물들이 아니어서이기도 하겠지만(뭐 이 정도 그래픽에 돈을 때려 부었는데 배우까지 비싼 인물들을 쓸 여력은 절대 없었겠죠. 특히 영화에 딱 한명 나오는 '동양인 미소녀'가 기쿠치 린코라니. 이런 젠장), 그보다는 애당초 줄거리에 별다른 공이 기울여지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대략 이런 식으로 사건이 진행됩니다. "자, 이런 영화 많이 보셨죠?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대략 아시죠? 그럼 재미없는 부분은 대강 넘어갑니다?" 휘리릭.

 

그러다 보니 '퍼시픽 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비주얼은 볼만한데 뭐 내용은 하나도 없고...'라는 식의 평가를 합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정말 내용은 별 게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주인공 롤리가 '인간적인 갈등'이나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하거나, 펜터코스트 장군이 전 인류의 궐기를 호소하는 명연설을 펼칠 때에도 관객들은 '왜 이런 데 시간을 낭비하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치 '인간 대 인간이 겪는 감정'은 그냥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네. 이 영화는 관객들이 "이봐, 이럴 시간 있으면 로보트를 1분이라도 더 보여주는게 어때?" 이런 생각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이건 마치 FSS...)

 

 

그래서 굳이 결론은 - 로봇과 괴수의 박진감 넘치는 결전 장면은 아마도 인류가 만들어 낸 영화 사상 최고의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3D 효과 또한 역대 최강권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앞으로 모든 영화의 액션 신은 '맨 오브 스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퍼시픽 림'을 봤다면 자신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느끼고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밖의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높은 점수를 주기엔 '영화'로서의 플롯과 연기 등 '인간 캐릭터들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매우 부실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꽤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족도는 '이런 장면을 얼마나 실사로 보기를 꿈꿔왔는가'에 따라 퍽 많이 나뉠 듯 합니다. 아마 저처럼 "제발 속편, 아니면 프리퀄이라도 계속 만들어 줘!"라고 외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P.S. 1. '이런 영화는 한스 짐머'의 공식을 깨고 라민 자바디(Ramin Djawadi)가 맡은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 줍니다.

 

 

 

 

 

 

P.S.2. 미친 과학자 역으로 찰리 데이라는 배우가 나옵니다. 저는 당연히 샘 록웰인줄 알았습니다. 실수.

 

 

 

P.S.3. 관제탑 요원 역으로 나오는 텐도는 'Tendo Choi'라는 이름으로 보아 한국계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연기한 배우 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는 아시안 혈통과는 아무 상관 없는 멕시코 계 미국인.

 

P.S.4. 분명 여기저기 봐도 설정엔 일본 예거가 있는데, 일본 예거가 이 영화에 나오긴 하나요? 보신 분 계시면 어느 장면인지 제보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artgihun?Redirect=Log&logNo=20190632696

 

P.S.5. 어이, 양덕들, 이제 건담이나 FSS를 실사판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일본 친구들이 실사영화 만드는 솜씨는 이제 못 믿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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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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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 '천명'은 마지막에 악인 문정왕후가 참회하고 인종이 왕으로서의 귄위를 회복하는 해피엔딩을 맞았습니다.

 

뭐 드라마야 시청자들이 행복한 결말에 만족했다면 그걸로 끝이겠습니다. 사실 사극이건 현대물이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 반드시 현실 그대로 끝을 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천명'이 다루고 있는 공간은 실제 역사에서는 그냥 도입부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인 듯 합니다. 드라마는 문정왕후의 뉘우침으로 마무리됐지만, 진정한 '문정왕후의 시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문정왕후 윤씨(1501.10.22~1565.4.6, 음력)

 

조선 중종의 두 번째 아내이자 명종의 어머니. 조선 왕조를 통틀어 손꼽히는 독부(毒婦)로 꼽힌다. 그가 죽은 날 조선왕조실록에는 서경에 이르기를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했으니, 바로 윤씨 같은 이를 가리킨 것이다(牝雞之晨, 惟家之索, 尹氏之謂也)’라는 극언이 등장한다. 물론 생전에는 감히 아무도 할 수 없었던 말이다.

 

중종의 첫 왕비(엄밀히 말하면 왕위에 오르기 전 진성대군일 때 혼인을 한 적이 있으니 아내로는 '두번째 아내'입니다) 장경왕후가 1515년 세자 호(, 뒷날의 인종)를 낳고 죽은지 2년 뒤, 문정왕후 윤씨는 만 16세의 나이로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궁의 최강자는 중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경빈 박씨. 출생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흥청(興淸, 연산군이 즐기기 위해 선발한 미녀들) 출신이라는 점, 1509년 아들 복성군을 낳았다는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윤씨보다 열 살은 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인자 희빈 홍씨도 아들을 다섯이나 낳을 정도로 총애가 두터웠다.

 

중종이 연산군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것이 1506년. 이때 이미 경빈 박씨는 연산군이 고른 미녀들 중 하나였으니 대략 1500~1501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연산군의 승은을 입지는 않았으니 중종에게도 차례(?)가 돌아왔을텐데, 1517년 문정왕후가 간택을 통해 궁에 들어올 즈음 경빈 박씨는 이미 궁 생활 10년을 넘긴 마녀 중의 마녀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경빈을 지원하던 쪽은 남곤 심정 등 훈구파의 구신들. 또 희빈 홍씨도 홍경주의 딸이었으니 아무리 문정왕후가 명문 파평윤씨가의 딸이라 해도 상대들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종은 경빈을 아예 계비로 삼으려 했으나 조정 대신들이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해 뜻을 접었다. 세자만 없다면 복성군이 왕위에 오른다 해도 놀랍지 않을 상황이었다.

 

문정왕후의 최선책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지만 그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 1521년 의혜공주부터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 살기 위해선 내가 세자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며 경빈 세력과 맞서야 했다. 이 파란의 시기를 그린 작품이 월탄 박종화 대하소설 여인천하. 2001 SBS TV에서 장장 150회에 걸쳐 방송되며 공전의 인기를 누린 사극 여인천하의 원작이다.

 

 

 

 

당시 여인천하를 열심히 본 시청자들에겐 요즘 KBS 2TV ‘천명의 문정왕후(박지영)가 영 낯설다. ‘여인천하의 문정왕후(전인화)는 악녀 경빈(도지원)의 세력으로부터 어린 세자를 보호하는 지혜롭고 따뜻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명에서는 그 문정왕후가 인종(바로 그 세자)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좀 이상하지만 둘 다 실제 문정왕후의 모습이다.

 

1527, 이른바 작서(灼鼠)의 변으로 경빈이 몰락한다. 누군가 세자의 생일에 맞춰 불에 지진 쥐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은 사건이다. 당연히 경빈 모자가 범인으로 지목돼 귀양길에 오른다.

 

중종은 어떻게든 복성군만은 살려 보려 했으나 윤임, 김안로 등 세자 보위 세력과 문정왕후의 동맹군은 집요했다. 6년 뒤인 1533, 사약이 내려졌다. 사실 경빈이 주범이라는 확증은 없었다. 오히려 이종익 같은 이는 김안로의 아들 김희의 짓이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던 만큼 자작극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여인천하' 방송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천재 소년 세자 역의 아역 스타 권오민. 이 친구에 대해서도 전에 뭔가 쓴 적이 있습니다. 1997년생. 한창 폭풍의 나날을 보내고 있겠군요.

 

아역스타, 그 성장의 위기   http://fivecard.joins.com/121

 

물론 권오민 군이 위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1534, 문정왕후가 마침내 아들 경원대군(뒷날의 명종)을 낳으며 동맹이 깨졌다. 세자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었다. 1543년에는 동궁 처소에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나 세자 부부가 죽을 뻔 했으나 유야무야 됐다.

 

결국 1544,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보위에 오르지만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한다. 문정왕후에 의한 독살설이 파다한 가운데 열한살의 명종이 왕위를 이었다.

 

그러니까 드라마와 역사가 갈리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드라마 '천명'에선 '모든것이 정리되고 다들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식의 마무리가 있었지만, 인종이 왕위에 머문 기간은 다 합해 8개월 뿐이기 때문입니다.

 

최원(이동욱)이 "밖에서 잘 살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과연 인종이 죽고 문정왕후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 그가 잘 살 수 있었을까요.^^

 

 

 

'여인천하' 보시던 분들에겐 참 아쉬운 일이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이런 현명하고 냉철한 전인화 문정왕후는 사라지고,

 

 

 

아들과 윤씨 일족, 그것도 윤원형 일족의 안녕을 위해 모든 장애물을 몸소 제거하기로 마음 먹은 독한 박지영 문정왕후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당시 권력 주변엔 윤씨 외척이 너무 많았다. 세조비 정희왕후,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 중종의 정궁인 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모두 파평 윤씨였기 때문이다. 대동단결했다면 조선말의 안동 김씨가 부럽지 않았겠지만 윤씨들은 내부 경쟁을 선택했다. 특히 인종의 외숙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大尹)과 명종의 외숙 윤원형의 소윤(小尹)은 마침내 명종 1(1545) 을사사화로 충돌, 수백명의 피를 흘렸다. 여기서 승리한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묵인 아래 친형인 윤원로까지 죽이고 권력을 독점했다.

 

문정왕후가 사관들에게 치열한 공격을 받은 것은 불교를 숭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윤원형의 독재를 비호한 잘못이 가장 컸다. 명종도 윤원형을 견제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네가 누구 덕에 왕이 됐는지 아느냐고 윽박지르는 데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20년 세도 끝에 문정왕후가 세상을 뜨자(1565) 곧바로 윤원형을 처단하라는 상소가 쏟아졌고, 궁지에 몰린 윤원형도 자결했다. 그의 부패와 만행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록은 오래도록 천벌을 면하다가 마침내 죽으니 조야가 모두 기쁘게 여겼다. (중략) 극형을 받지 않고 스스로 죽은 것이 안타깝다고 했을 정도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정난정(위 사진은 '여인천하' 때의 윤원형-정난정 커플)입니다. 천민 출신으로 윤원형의 소실이었던 난정은 문정왕후의 인정을 받으며 마침내 윤원형의 정실이 되어 정경부인의 칭호를 허락받습니다. 대단한 신분 상승인 셈이죠.

 

하지만 뒤를 봐 주던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의 만행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황해도로 귀양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예감한 정난정은 지니고 있던 독약으로 바로 목숨을 끊었고, 난정의 죽음을 안 윤원형 역시 통곡하다가 따라 자살했습니다.

 

(이런 사연을 보면 비록 악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정난정에 대한 윤원형의 마음은 참 진실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남매는 사후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다음 임금인 선조 때 사림은 심의겸의 서인과 김효원의 동인으로 갈라졌다. 동인은 심의겸이 외척(명종의 처남)이란 이유로, 서인은 김효원이 한때 윤원형의 식객이었다며 날을 세웠다. 서로 상대방을 타락한 구세력의 잔재로 규정하고 명분 싸움을 벌였으니, 당쟁의 기원이 바로 문정왕후의 정치적 유산이었던 셈이다.

 

윤원형은 본래 사림의 언관 출신이라 지식인들을 어떻게 억누르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관들의 인사권을 좌우하는 이조전랑직을 관리하면서 젊은 신진 관료들이 자신 앞에 스스로 줄을 서도록 한 것이죠. 유학 하는 선비로서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윤원형에게 잘 보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윤원형의 시대를 정리한 뒤에도 조정에 윤원형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조차도 윤원형의 세도가 시퍼렇던 시절에 벼슬을 하고 과거에 장원을 했다는 이유로 '세상에 아부했다'는 비판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윤원형도 죽고, 명종도 죽으면서 사림의 정치가 시작됐지만 이제 사림은 그 내부에서 파가 갈리며 권력 독점을 위해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대편을 비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윤원형의 개' 혹은 '구시대의 잔류'라는 것이 되죠.

 

 

 

P.S. ‘여인천하천명만큼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한류 드라마의 대표작 대장금에도 문정왕후가 등장했다. 박정숙이 연기한 이 문정왕후는 장금의 후원자로 그려졌으니 당연히 좋은 이미지.

 

실존인물인 의녀 장금은 천명에도 등장하는데, 이 장금(김미경)은 궁에서 홀몸으로 늙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민정호(지진희)와의 러브스토리는?

 

 

여담이지만 영화 '후궁'에서 박지영이 연기했던 대비 역시 문정왕후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그 이미지 때문에 '천명'에도 이어 출연하게 된 것으로 보이구요. 그런 의미에서 '후궁'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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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즈시절'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대략의 의미를 알고 쓰시는 분도 있고, 그냥 남들이 쓰니까 쓰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끔 꽤 엉뚱한 의미로 쓰시는 분들이 눈에 띄는게 조금 거슬립니다.

 

사실 '리즈시절'같은 말은 세월이 얼마가 흐르든 절대 사전 같은 곳에 등재될 말도 아니고, 누가 그런 의미에 크게 얽매일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리즈 시절'같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은 분명 그 사회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고, 왜 그런 말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누군가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문화어 사전]이란 항목으로 나오는 글들은 그런 목적에 따른 것들입니다.

 

 

 

 

 

리즈 시절 [관용구]

: 간단히 말해전성기

2005년 박지성이 전통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같은 맨유 소속이던 앨런 스미스를 두고 일부 팬들이앨런 스미스도 리즈 시절엔 날아다녔는데라며 자신의 축구 지식을 자랑한 것이 유래다.

 

여기서 리즈(Leeds)는 영국의 프로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를 말하며, 이는 곧나는 박지성 때문에 영국 프로 축구에 관심을 가진 너희와는 달라라는 잘난 척이다. 하지만 이후 ‘OOO의 리즈 시절이라는 식의 관용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예인을 지칭할 때에도 널리 사용되며옛날’ ‘성형 전’, 심지어학생 시절을 가리키는 말로 오용되는 사례가 눈에 띈다. 하지만 원 뜻은 어디까지나가장 빛나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리즈 유나이티드는 21세기 들어 무리한 구단 운영으로 성적이 추락, 2004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1(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 축구 팬들이 안방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저 위 사진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 엠블렘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고 있는 앨런 스미스입니다. 2000-2001 시즌 리즈를 UEFA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려놓은 것이 앨런 스미스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즈가 몰락한 것은 위에서 적은 바와 같고, 팀 말고 앨런 스미스 개인으로 봐도 98-99 시즌 EPL에 데뷔해 리즈에서 뛴 첫 6년 동안 38골을 넣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현재까지 10년 동안 10골을 넣었으니 확실히 리즈 시절이 그에겐 최고의 나날이었던 듯 합니다. 아무튼 당시엔 벤 애플렉을 연상시키는 미모가 매우 출중했군요.

 

결론적으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란 뜻입니다. 그냥 '옛날', 심지어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절'이란 뜻으로 쓰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에도 '리즈 시절'이라는 제목이 붙어 돌아다니는데,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이런게 '리즈 시절'은 아니라는 거죠.^^ 뭐 말의 의미라는 것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니 계속 쓰이다 보면 아예 이런게 '리즈 시절'이란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송혜교는 여전히 리즈 시절의 한복판이군요. 시들지 않는 미모와 인기.

 

 

 

 

 

 

미란이[고유명사]

 

올란도 블룸의 아내인 세계적인 톱모델 미란다 커(Miranda Kerr)를 한국 팬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 퍼스트네임인 미란다와 한국 여자 이름인미란의 발음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식의한국식 명명은 한국인 특유의 가족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한 캐서린 헤이글은 한국 소녀 네일리(Naleigh)를 입양한 덕분에김서린이라고 불린다.

 

 

 

이 계열에서석호필(石虎弼)’ 웬트워스 밀러를 빼놓을 수 없다. 밀러가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맡았던 캐릭터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이름인데, 사실 이 이름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원조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서구에 알린 공로 등으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훈장을 수상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리스트는 1627년 풍랑에 밀려 도착한 네덜란드인 얀 벨테브레(Jan Weltevree)에 도달한다(흔히한국에 도래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오인되는 하멜보다 26년 빠르다). 끝내 조선을 탈출한 하멜과 달리 벨테브레는 박연(朴燕)이란 한국 이름으로 적응해 잘 살았고, 병자호란에도 종군했다. ‘하멜 표류기에도 박연이 하멜의 탈주를 말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구한말엔 고종의 외교 고문 목인덕(穆麟德, 독일인 파울 폰 묄렌도르프), 영국 언론인 배설(裵說, 어니스트 베델), 연희전문 설립자 원두우(元杜尤,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 등이 이 전통을 이었다. 물론 거스 히딩크의 애칭 희동구(喜東丘)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뭐 한두분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거론하기는 그렇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가문을 꼽으라면 아에 '연희 원씨'라고 스스로 부르는 언더우드 패밀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두우-원한경-원일한-원한광 박사에 이르기까지 4대가 12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집안이니 누가 이분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희동구 이야기는 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으니 링크로 대신합니다.^^

히딩크는 왜 희동구가 되었나?     http://fivecard.joins.com/43

 

 

소공녀(小孔女) [명사]

 

: 모공이 작아 HDTV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피부 미인

 

한자가 다른소공녀(小公女)’는 미국 여류 작가 프랜시스 버넷이 1888년 펴낸 소설 ‘Little Princess’의 일본 번역판 제목. 한국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된 뒤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아왔다. 부유한 장교의 딸로 민친 기숙여학교 학생이던 사라 크루(Sara Crewe)  아버지가 행방불명 된 뒤 학교의 하녀로 신분이 급전직하되지만, 강인하고 낙관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2013년의소공녀(小孔女)’는 글자 그대로모공(毛孔)이 작은 여자라는 뜻. HDTV의 등장 이후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피부나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고화질에 대한 공포를 호소해 왔고, 그 뒤로 피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도자기 피부’ ‘단백질 인형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며 급기야소공녀까지 등장했다.

 

2013 5월 한 유명 피부클리닉에서 내원객 547명을 대상으로최강의 소공녀를 설문조사한 결과 미스A의 멤버 수지가 35%의 지지로 당당 1위에 뽑혔다. 19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공평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그만치아기 피부에 대한 여성들의 염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P.S. 소설소공녀의 영원한 파트너인소공자(小公子)는 같은 프랜시스 버넷이 1886년 펴낸 ‘Little Lord Fauntleroy’의 번역판 제목. 두 작품이 한 작가의 작품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뉴욕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년 세드릭(Cedric)이 어느날 영국 귀족인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미국 여자와 결혼한 아들을 버렸던 완고한 할아버지가 영리하고 품성 좋은 소년 세드릭의 힘으로 인간미를 되찾게 되는 훈훈한 이야기다.

 

버넷은소공자’, ‘소공녀는 물론 1909년작비밀의 화원(Secret Garden)’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물론 현빈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프란시스 버넷 여사는 작품세계와는 달리 매우 씩씩하게(?) 생긴 분이더군요.

 

 

아무튼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을 모두 같은 분이 썼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셔도 좋은 일일 듯. 참고로 JTBC에서도 곧 전현무-오상진-오현경이 진행하는 '비밀의 화원'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아, 물론 이것도 소설과는 무관한 미스코리아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잘 찾아 보시면 보너스 사진이 있습니다. 인디애나 존스3 스타일.^^

 

 

http://www.egotastic.com/photos/miranda-kerr-topless-surprise-during-photoshoot-in-miami/miranda-kerr-topless-surprise-in-miami-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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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중학교 교사의 블로그에서 가슴아픈 사연을 봤습니다. '요즘 제자들과 진격의 거인 때문에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게 왜 가슴아픈 사연일까요? 이유는 하나. "그 전까지 제자들이 어떤 만화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랍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덕후'는 아주 심한 욕에 가깝고,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답니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학생들은 만화를 볼래야 볼 시간이 없다는군요. 그래서 원피스도, 슬램덩크도 본 사람이 없답니다. '요즘 학생들이 호연지기가 없는 건 좋은 만화를 보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란 말에 저도 좀 가슴이 아팠습니다.

 

'진격의 거인'이 훌륭한 작품인 건 맞지만 과연 '슬램덩크'처럼 많은 소년들의 가슴에(소녀들은 어떤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청춘의 불꽃을 타오르게 할 그런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지도.

 

아무튼 이번 '문화어사전'은 진격의 거인으로 시작합니다.

 

 

 

 

 

문화어사전 (4)

 

진격의 [관형사]

 

: 엄청나게 큰, 매우 크고 위협적인, 도저히 당할 수 없는

 

만화 진격의 거인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말. 진격의 거인(원제 進擊巨人)지난 2009년부터 일본 소년 매거진에 연재중인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의 장편 만화. 27세의 신예가 그린 작품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탄탄한 구성과 획기적인 세계관으로 온갖 상을 휩쓸었고 단행본 판매도 일찌감치 100만부를 돌파, 2013년부터는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송중이다.

 

배경은 인류가 갑자기 나타난 거인들의 습격으로 멸종 직전인 가상의 시대. 살아님은 인류는 높이 50m 성벽 도시 안에 대피해 일시적이나마 평온을 유지하게 된 지 100년이 흘렀다. 하지만 어느날,  그 성벽 위를 넘겨다 볼 수 있는 초대형 거인이 등장하며 한 순간에 인류는 다시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만화의 인기와 함께 수없이 많은 패러디가 등장했다. 가장 자주 패러디되는 것은 초대형 거인이 성벽 너머로 인류를 바라보는 첫 장면과 그 장면에 깔리는 그 날, 인류는 떠올렸다. 놈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지낸 굴욕을이라는 대사다. (추천 검색어: ‘진격의 맥도날드’, ‘진격의 금붕어’) 최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의 신체적 위력을 진격의 준하라는 자막으로 빗대 표현하는 등, 터무니없이 크거나 강력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자주 사용된다.

 

P.S. ‘進擊巨人이란 일본어 제목과 ‘Attack on titan’이라는 영어 제목 사이엔 뭔가 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진격의 거인이란 한글 제목도, 한국어의 의미에 맞추려면 거인의 진격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게 바로 진격의 장미칼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분들은 덜 재미있을 수 있는...^^)

 

여담이지만 진격 시리즈를 잠시 소개합니다.

 

 

 

         진격의 금붕어

 

 

 

           진격의 백금붕어

 

 

  진격의 맥도날드

 

 

 

사랑과 진격 ㅋㅋㅋ

 

 

 진격의 식욕

 

 

 

 

 

그리고 진격의 축구공

 

 

 

죄송합니다. 이건 패러디는 아니군요.^^

 

이 축구공은 지금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보는 즉시 인증샷을 찍어 두시기 바랍니다. 찍어 두시면 좋은 일이 있습니다.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216&menu_id=PM10018402

 

모든 이벤트는 중복응모가 가능합니다.^^

 

 

 

 

가짜 싸이 [고유명사]

본명: 드니 재완 카레(Denis Jae Wan Carre)

2013년 칸 영화제에 등장했던 싸이와 닮은 인물. 신원이 밝혀지기 전에는 네티즌들에 의해 짜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정체는 드니 재완 카레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재완이라는 미들 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계 입양아다. 올해 34인 카레는 현지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한 나이트클럽에서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싸이다!’라고 외친 뒤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대 혼란이 벌어졌다.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싸이가 내 인생을 바꿔 놨다고 밝혔다. 최근 나이트클럽 등에서 싸이 닮은꼴로 행사 등에 출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의 눈으론 그리 닮은 편이 아니지만 칸 현지에서는 진짜 싸이라고 믿은 사람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싸이도 대인배답게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인 듯. 그가 개설한 페이스북 ’Gangnam Denis’도 칸 해프닝 이후 4000여명의 팬이 몰리는 등 인기 급상승중이다.

 

 

 

 

 

 

 

 

기내 라면 [명사]

: 항공 여객기 내에서 기내식 혹은 간식으로 먹는 라면

 

기내 라면이 정확하게 라면이냐 컵라면이냐를 구분하지 않은 보도 때문에 상당 기간 혼란이 있었다. 현재 국적기 규정에 따르면 1등석은 봉지 라면을 끓여서, 비즈니스석은 대형 컵라면을 익힌 뒤 그릇에 담아서, 그리고 이코노미석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 용기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이 원칙이다. 컵라면이든 라면이든 1등석과 비즈니스석은 항상 제공 가능하지만, 이코노미석은 일부 노선에서만 제한적으로 공급된다.

 

최근 승무원 폭행 사건의 핵심으로 등장한 라면의 맛에 대해 본래 기내에서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는 주장이 일었다. 그 원인으로 신형 기종인 A380의 기내 전압이 안전 문제로 80V 이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전압이 낮다는 것은 화력이 약한 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라면 조리의 달인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객기내의 낮은 기압이다.

 

표고 1m 고공의 정상 기압은 0.2기압. 물론 항공사들은 승객들이 고산병으로 쓰러지는 일을 막기 위해 인공 가압(pressurization)을 통해 기내 기압을 0.8기압 정도까지 올려 놓는다. 그래도 기내에서 물의 끓는점은 섭씨 80도 정도다. 높은 산에서 밥이 설익듯, 압력솥을 쓰지 않는 한 기내에서 알맞게 익은 라면을 먹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컵라면의 조리법이 애당초 끓이는 것이 아니라 불리는(macerate) 것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느냐는 주장이 있다. 라면이 제공되지 않는 이코노미석에서도 승무원에게 잘 보여(“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면을 얻어먹어 온 베테랑 승객들의 의견을 따르면, 기내에서 라면 맛 타령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현재까지 등장한 설명 가운데 가장 설득력있는 쪽을 골랐습니다.

 

아무튼 저도 기내라면 참 좋아하는데요, 저도 곧 먹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국적기를 타고 단 한번도 승무원이 불친절 근처에라도 간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씩 불친절과 차별대우를 호소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체 그 분들은 평소에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로부터, 혹은 회사 직원들이나 가족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고 사시는지 참 궁금해지곤 합니다.

 

(아, 물론 승무원 말고 항공사의 다른 분야 직원들, 그리고 항공사의 업무 처리 스타일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K 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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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잠시 비교했습니다. 본인은 비명에 가더라도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큰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소현세자는 아들들 뿐만 아니라 아내인 강빈까지 사약을 받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한번 왕위에서 밀려나면 언제 반역의 무리로 몰릴 지 알 수 없는 '밀려난 왕손'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여기에 하나 더. 그래도 '북벌 정책(비록 실질적으론 큰 의미가 없었다고 하나)'을 시도하며 '기개 있는 왕'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효종에게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형의 자손들에 대한 대접이죠.

 

일부 드라마에선 효종이 소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실상은 그럴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이은 소현세자 2탄입니다. 순서대로 보시려면 여기를 먼저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나     http://fivecard.joins.com/1140

 

 

 

소현세자 (2)

 

1645 218, 백성들은 소현세자의 귀국을 앞다퉈 환영했다. 국가 차원의 경사였지만 이미 심사가 틀어진 왕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공사견문은 인조의 성품에 대해 찡그리고 웃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무겁고 말이 없어 가까이 모시는 궁녀도 임금의 말을 자주 듣지 못했으며 여러 신하는 임금의 뜻이 어떤지 측량하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성적이고 감정표현이 별로 없던 인조의 내면엔 세자에 대한 미움이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소용 조씨의 역할도 컸다. 조씨 소생의 숭선군은 세자가 귀국하던 1645, 고작 만 여섯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어쨌든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소용 조씨, 공신 세력의 우려를 대변하는 김자점, 그리고 의심 많은 인조의 성품이 만난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423, 세자는 학질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24일과 25침을 맞았다는 기록 한 줄씩만을 남긴 채 26일 사망했다. 침을 놓은 사람은 인조의 신임이 두터웠던 어의 이형익이었다.

 

 

 '꽃들의 전쟁'에서 손병호가 연기하고 있는 이형익. 조선왕조실록은 꼭 집어 지목만 하지 않고 있을 뿐, 사실상 이형익의 손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고 거의 적시하고 있습니다.

 

 

세자의 졸곡제를 다룬 실록 기사에는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온 몸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중략)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내용이 전한다. 사실상 독살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꽃들의 전쟁에서는 김자점(정성모)이 직접 이형익(손병호)에게 세자를 해치게 지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의에서는 이형익(조덕현)이 다시 이명환(손창민)을 이용해 세자에게 독을 썼다는 설정이다.

 

 

'마의'에서는 그래서 이명환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시 이형익을 살해한다는 설정입니다. 직접 손을 쓴 것은 한 단계 더 거친 이명환이란 해석.

 

 

이형익은 심지어 소용 조씨의 어머니와 사통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그에게 혐의가 가는 것이 당연했다. 언관들이 당장 이형익을 조사하라고 들고 일어났지만 인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수시로 이형익을 불러들여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인조는 62, 서둘러 대신들을 모아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봉하겠다고 밝혔다. 원칙대로라면 왕위계승의 우선권은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자 인조는 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때도 김자점이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그해 113, 봉림대군의 감기가 낫지 않자 이번에도 의원 이형익이 침을 맞아야 낫는다고 간했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대군은 가벼운 감기라며 치료를 거절했고, 곧 회복했다. 만약 이 침을 맞았다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해가 바뀌어 1646 1, 인조는 수랏상의 전복구이에서 독이 나왔다며 진실 규명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소현세자빈 강씨를 용의자로 놓은 수사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강빈은 궁중의 왕따 신세였고, 엄중한 감시의 대상이었다. 독을 반입해 어선에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문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었고, 강빈의 하인들 가운데서 자백이 나왔다.

 

조정 대신들이 목숨만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조는 중국 조나라 무령왕의 예를 들며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맞섰다. 무령왕은 장남을 폐하고 차남을 후계자로 삼았다가 후계 구도를 놓고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궁에 유폐되어 굶어 죽은 인물이다. 누가 봐도 비슷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인조의 광기는 이미 통제의 범위를 넘어 있었다. 강빈은 사약을 받고, 어린 세 아들도 제주도에 유폐됐다. 그중 둘은 일찍 죽고(그 죽음의 원인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막내 석견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아이가 추노의 그 아기다.

 

 

조나라 무령왕의 고사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령왕은 사실 당시 중국 남자의 하의(당시까지는 바지보다 치마에 가까웠던)를 개량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라!"는 개혁 조치를 한 긍정적인 고사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입니다. 당시까지 오랑캐의 옷으로 간주되던 헐렁한 바지를 '말 타고 내리기 편하다'는 이유로 도입해 전국 7웅 중 하위권이던 조나라의 국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말년에 총기가 흐려진 탓인지, 다 자란 장남을 제쳐 놓고 후비가 낳은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한 뒤 양위합니다. 대개 이렇게 되면 장남이 정치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수순이지만, 갑자기 장남이 불쌍해진 무령왕은 장남의 영토를 넓혀 조나라를 두개로 쪼개 상속할 궁리까지 합니다. 하지만 후비파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격분한 장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후비파에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반란은 가볍게 실패. 장남은 아버지 무령왕의 궁으로 달아납니다. 이미 왕위를 넘겨받은 후비와 어린 아들 쪽에선 장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무령왕은 "내 아들인데 목숨만이라도 보존하게 해 달라"고 오히려 간청하죠.

 

밖에선 잔혹한 결단이 내려집니다. 장군들이 "만약 장남을 잡으러 들어갔다가 무령왕을 다치게 하는 날이면 우리는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그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죠. (이건 사실 또 얘기하려면 긴 얘기가 되어 여기선 생략하겠지만 병법의 대가 오자(오기)의 죽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궁의 문을 밖에서 잠그고 아무도 나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한달이 지나 굶어 죽은 무령왕과 장남의 시체가 다 썩어 없어진 뒤에야 문을 열어 통곡을 하며 장사를 지낸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무령왕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스스로 후계자를 잘못 고른 결과이니, 인조 자신이 강빈을 죽여야 하는 이유로는 매우 궁색합니다. 그리고 무령왕과 자신을 비교한 것은 소용 조씨 소생의 숭선군을 세자로 봉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만, 결국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시선에선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겠지만 김자점이나 소용 조씨에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행여라도 소현세자의 자손이 왕위를 차지하는 날이면 그들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의 생명 또한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비정함은 효종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효종은 왕위에 오른 뒤,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홀로 남은 어린 조카 석견을 경안군으로 봉하고 서울로 불러 올렸지만,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회복해주는 것은 딱 잘라 거절했다. 오히려 상소를 올려 강빈의 신원을 촉구한 김홍욱을 잡아다 때려 죽이기도 했다. 아무리 조카가 가엾어도, 그들에게 '역적의 자손'이라는 죄를 씻어 주고 나면 자신의 후손들이 계승할 왕좌가 불안해 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경안군은 1665년 만 21세로 죽었다. 두 아들을 낳아 후사를 이었으나, 맏손자 밀풍군은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했다. 소현세자와 그 후손들에게 조선은 더없이 잔혹한 나라였다. ()

 

 

 

 

 

소현세자와 강빈이 죽은 뒤, 세 아들이 남았습니다. 인조가 서둘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소현세자가 죽은 뒤 왕위 계승 서열에서 각각 1,2,3위가 될 왕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게 된 이상 효종의 왕위 계승 경쟁자일 뿐입니다. 1647년, 이들은 처음엔 각각 흩어져 귀양을 갔다가 '서로 모여 살게 하라'는 인조의 은혜(?)로 제주도에 모입니다.

 

1648년, 석철이 13세의 나이로 가장 먼저 죽고 곧이어 둘째 석린도 숨을 거둡니다. 공식적인 원인은 풍토병. 하지만 인조와 김자점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당시에도 일었다고 합니다.

 

석철이 죽기 전 청나라 장수 용골대(병자호란 때 선봉장이었던 당대 청의 대표적인 장군입니다)가 조선 조정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이 고아가 되어 형편이 딱하다고 하니 내가 데려가 기르면 어떻겠는가."

 

용골대와 소현세자는 심양 시절에 꽤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실록에 남은 기록은 주로 조선을 무시하는 용골대에게 소현세자가 맞서 싸운 내용이지만, 그렇게 자주 대면을 했으니 꽤 교분이 쌓였을 법 합니다. 하지만 인조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이 말은 매우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네가 아무리 둘째를 왕으로 세웠다지만, 맏손자는 우리 손에 있다. 네가 삐딱하게 나오면,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는 후보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더구나 그 손자가 잔혹하게 부모를 죽인 할아버지를 곱게 볼 리가 없죠. 오죽하면 석철의 죽음을 전하는 실록에 "용골대가 그런 말을 했으니 모든 사람들이 이제 석철이 온전하겠느냐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죽었다"는 말이 다 나오겠습니까.

(先是, 龍骨大之來也, 以取養石鐵爲言, 人皆謂其必 不保全, 至是卒)

 

 

 

 

 

그 뒤로 왕위는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집니다. 숙종의 친위세력은 숙종을 가리켜 '삼종의 혈맥(三宗之脈)'이라고 떠받듭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왕의 정궁(정식 왕비)으로부터 태어난 왕자들로만 이어진 혈맥이라는 것이죠. 그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세조-단종까지 이어진 초기 4대를 제외하면 정궁 소생의 왕자들로만 왕위가 이어진 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효종은 즉위와 함께 아버지의 세력이던 인조 반정 공신들을 싹 청소하고, 북벌 이데올로기와 함께 정통성을 확보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한 뒤 3대에 걸쳐 자신의 후손들이 왕 노릇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공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의 자손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풀어 주지 않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건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가의 자손은 두 가지 면에서 위태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를 지키고 있는 쪽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경쟁자요, 정권을 뒤집어 엎으려는 음모가 쪽에서는 옹립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입니다.

 

사실 광해군 시절의 능양군(인조)처럼 반란군과 사전에 교감이 있던 경우도 있지만, 뒷날 김자점의 난(?)에 함께 거론된 숭선군이나 소현세자의 증손자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된 밀풍군의 경우엔 다들 "그들이 일방적으로 옹립하려 한 것일 뿐 직접 관련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숭선군은 살아남았고 밀풍군은 죽음을 당했죠. 이들의 생사는 정말 그때 그때 운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달랐지만, 특히나 밀풍군의 죽음에는 '한이 많은 소현세자의 자손'이라는 면도 꽤 작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이건 먼 뒤의 이야기. 당장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의 운명, 이어지는 소용 조씨(김현주)의 악행은 아직 한참 더 '꽃들의 전쟁'을 통해 펼쳐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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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3년의 상반기가 마감되고 있습니다. 뭐 구구절절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반기도 즐거운 나날 계속되시길.

 

7월은 덥고 짜증나는 달이니 휴가와 여유있는 전시 관람 중심으로 짜 봤습니다. 특히나 5월이 공연의 달이라면 7,8월은 전시의 달이라고 할 정도로 방학 철을 앞두고 온갖 주최사들이 잔뜩 힘을 준 전시들이 이어집니다.

 

이번엔 알폰소 무하 전과 스튜디오 지브리 전이 눈길을 끕니다. 아울러 아래 사진의 브레겐츠 오페라 라이브 연결도 권장.

 

 

 

  

 

10만원으로 즐기는 7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휴가철의 문화생활이란 어떤 걸까.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와 베르니니의 조각들을 직접 만나 보는 것?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할인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 다 좋은데, 당장 그런 팔자가 안 되는 사람들은 이번 달 가이드를 잘 읽어보도록. 서울에 앉아서도 잘 찾아보기만 하면 얼마든지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가장 먼저 추천해야 할 공연은 황병기 배병우 양방언의 토크 콘서트 동양 풍경이야. 가야금의 황병기, 사진의 배병우, 피아노의 양방언이라면 이미 대한민국의 각 분야에서 확실한 명성을 굳힌 거장들이지. 이런 거장들이 뭉쳐 90분 동안 뭘 보여준다면 3만원은 그리 비싸지 않다고 생각해. 73일 국립극장에서 단 한 차례 공연.

 

이 공연을 놓친다면 퓨전 국악 기획 공연 여우락(여기 우리의 음악이 있다)’의 다른 공연들을 눈여겨 봐. 양방언 한영애 김수철 등 믿고 볼만한 이름들이 꽤 있어.

 

지난번에 브레겐츠 호반 오페라에 대해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올해 휴가철을 맞아 메가박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내놨어. 그것도 브레겐츠 현지에서 올해 717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신작 공연을 라이브로 보는 기회야.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의 베니스의 상인(19)’과 모짜르트의 마술 피리(20)’. 특히 후자에 눈길이 가. 매번 공연 때마다 연출자들이 머리를 짜내 다양한 특수효과로 장식해 온 작품인데, 역시 늘 창의적인 연출로 화제를 만들었던 호수 위의 무대에서 어떤 연출이 이뤄질지 궁금해. 3만원.

 

이달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두 전시가 돋보이네.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이 있어. ‘이웃집의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등 걸작 애니메이션의 밑그림이 된 스케치 1300여점을 볼 수 있어. 15천원. 더 설명이 필요한가?

 

 

 

 

또 하나는 알폰소 무하의 작품들이 나오는 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이야. 20세기 초 체코 출신 화가 알폰소 무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작품을 보면 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어. 너무나 친숙한 그림들이기 때문이지.

 

혹자는 연습장 표지계의 거장’, ‘순정만화 그림체의 창시자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 화가의 놀라운 영향력에 대한 질시의 표현이라고 봐. 아무튼 알폰소 무하를 검색해서 나오는 작품들을 보고 결정해.  12천원.

 

, 휴가용 서적 추천. 휴가 때 정의란 무엇인가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을 사람은 패스. 아무래도 휴가 때는 뭔가 머릿속이 말랑말랑해지는 소설이 최고지.

 

 

 

 

추천 1번은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Gone Girl)’. 얼마 전 트위터에 최근 10년 동안 읽은 책 중 재미로 치자면 최고라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관심글표시를 했던데 과연 몇 명이나 실제로 읽었나 궁금해.

 

이 소설은 시골 출신 수재 닉이 뉴욕에서 나고 자란 부잣집의 천재 딸 에이미와 결혼해 5년이 지난 뒤의 얘기야. 5년째 되는 날, 에이미가 사라져. 그리고 이런 소설의 특징대로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되지. 그런데 그 뒤로 이 소설은 적어도 다섯 번, 독자에게 반전의 스릴을 느끼게 해.

 

주의사항. 여기까지 읽었으면 절대 인터넷 블로그든, 신문 기사든, 서평 기사를 검색하지 마. 너무나 뻔뻔스럽게 스포일러를 노출한 작자들이 한둘이 아니야. 지금 상태에서 그냥 믿고 책을 찾아 읽든, 아니면 그냥 읽지 마. 인터넷 가격으로 12천원 내외.

 

 

 

또 한 권은 픽션이란 제목의 단편집이야. 닉 혼비, 닐 게이먼 등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영미권 작가들의 골때리는단편들을 모은 책이지. 레모니 스니켓이 쓴 서문을 읽어 보면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이 가장 혐오하는게 바로 진부함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작품 하나 하나가 발랄한 상상력 그 자체야. 뭣보다 피서길 흔들리는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읽기에도 적절해 보여. 11천원 내외.

 

그럼 밤에 배 잘 덮고 자고, 8월에 만나.

 

황병기 배병우 양방언의 토크콘서트 동양 풍경        3만원

브레겐츠 페스티발 오페라, ‘마술 피리                  3만원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15천원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12천원

길리안 플린, ‘나를 찾아줘                               12천원

닉 혼비 외, ‘픽션                                           11천원

 

11만원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발 오페라 '마술 피리'의 준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영상입니다. 독일어지만 그림만 보셔도 대략 어떤 분위기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 말한 브레겐츠 페스티발 오페라는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브레겐츠 호수 위에 설치된 무대에서 매년 여름 펼쳐지는 독특한 오페라입니다. 그때 "브레겐츠에 비길 만한 독특한 오페라 무대로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이 있다"고 했는데, 올 여름에 브레겐츠와 베로나 무대를 모두 메가박스에서 현장 중계할 모양입니다.

 

(2월 가이드 참조: http://fivecard.joins.com/1093)

 

올해 브레겐츠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의 '베니스의 상인'과 모짜르트의 '마술 피리' 입니다. '마술 피리'는 웬만한 분들은 직접 보시지 못했어도 제목은 들어 보셨거나 밤의 여왕이 부르는 가장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불길은 내 마음에 타 오르고 Der hoe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를 잘 아실 겁니다.

 

브레겐츠 오페라는 무대의 제한을 독특한 공간 연출로 승화시킨 놀라운 무대로 유명한데, '마술 피리'는 대대로 연출자들의 상상력을 시험해 온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 무대와 작품의 만남은 매우 기대되는 경우죠. 브레겐츠 무대가 감이 안 오는 분들을 위해 2011년 '안드레아 세니에'의 프로모 영상입니다.

 

 

 

 

이건 2009년의 '아이다'. 본래의 배경 이집트를 현대 뉴욕과 접목시킨 상상력이 그럴듯합니다. 아무튼 무대 미술은 놀랍습니다. 관객이 찍은 듯한 영상인데 분위기를 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실 윗글에는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베니스의 상인'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우리가 잘 아는 '백조의 호수'의 표트르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폴란드 작곡가 앙드레 차이코프스키(1935~1982)입니다.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은 그의 유작으로, 이번 브레겐츠 공연이 세계 초연이라는군요.

 

 

 

                                  (이 양반이 앙드레 차이코프스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읽고 난 다음 많은 분들의 소감을 들어 봤습니다. 의외로 여자들보다 남자들의 호응이 훨씬 컸고, 특히 결혼 생활을 경험해 보신 분들의 공감도가 훨씬 높았다는 점이 참 특이하더군요.

 

사실 서평이든, 영화 리뷰든,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책이나 영화를 스스로 보기 전에는 가급적이면 남의 리뷰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스포일러도 짜증나지만, 그 작품의 진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어설픈 리뷰는 감상을 해칠 뿐입니다. (원래 리뷰란 작품을 감상한 뒤, 남들은 나와 생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기 위해 있는 겁니다.^^)

 

그래도 어떤 작품을 볼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 리뷰를 참고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내가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리뷰어의 글만 보라'는 정도입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나와 코드가 맞는 리뷰어'라고 쓰는 게 더 적절할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것과 달리 세상에 '모든 사람이 극찬하는 걸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디 워'를 보더라도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그만이죠. 세상에는 '내가 보기에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을 다른 사람이 욕하면 벌컥 화를 내는 바보들이 있는데, 전혀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믿을만한 리뷰어인지는 경험이 축적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전에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어떤 작품에 대한 특정 리뷰어의 글을 읽어 보고, 그 글이 내 생각(혹은 취향)과 대략 일치한다는 느낌이 들면 일단 신뢰할 수 있는 리뷰어의 리스트에 올려 놓아도 좋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또 '이 바쁜 세상에 언제 내가 그런 리뷰어 따위까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그대로 사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외식 한번을 하려고 인터넷 블로그들을 검색할 때에도 이 블로거가 용돈 받고 맛있다고 써 주는 사람인지, 소신껏 자기 판단에 따라 쓰는 사람인지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론은 뭐든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한의 관심과 노력은 필요한 법입니다. 그게 귀찮으면 그냥 집에서 열심히 리모콘을 조작하면서 '채널은 많은데 왜 이렇게 볼게 없냐'고 짜증이나 내시는게 좋겠죠.

 

아무튼 리뷰는 함부로 읽으면 안 됩니다. 아래 리뷰는 '절대 읽으면 안 되는' 리뷰의 좋은 예입니다. '나를 찾아줘'를 이미 읽어 보셨거나, 소설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극악의 스포일러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다시 한번 주의: '나를 찾아서'를 읽어 보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절대 보면 안 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320918

 

 

'픽션'의 대표작가로 소개된 닉 혼비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와 '피버 피치(영국 영화)'의 원작자입니다.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문장이라면 당대 최고 중 하나죠.

 

아무튼 이 정도면 멀리 휴가 못 가는 분들도 7월을 즐기기엔 손색 없어 보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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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멤피스'라는 뮤지컬이 극장에서 상영중입니다. 5~6월의 메가박스 상영 목록에 보면 '뮤지컬 멤피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2010년 토니상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으니 브로드웨이 기준으로도 꽤나 신작인 셈입니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의 존재를 아시는 분들은 '멤피스'라는 제목을 보고 혹시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엘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뭐 엘비스가 거론되지는 않지만, 내용으로 보아 전혀 관계 없지도 않군요.^^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을 갖고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은 '올슉업 All Shook Up'입니다.)

 

'멤피스'는 1950년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 시점의 그곳은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했던 곳이고, 심지어 백인들이 흑인 음악을 듣거나 흑인 음악이 담긴 음반을 트는 것 조차도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흑인 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솔(Soul)을 현대 대중음악의 핵심적인 요소로 끌어 올리는 시도가 시작됐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로이 오비슨, 제리 리 루이스 같은 인물들은 흑인 음악의 요소를 끌어들여 발빠르게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만들어 낸 개척자 역할을 해 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시기, 척 베리라는 원조 흑인 히어로가 미국을 열광시킵니다.

 

 

 

 

 

 

뮤지컬 '멤피스'는 바로 이렇게 흑인음악이 미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기 직전, 인종차별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미국 남부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뭐 줄거리 따로, 노래 따로 구비하려면 힘들 것 같아 아예 노래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한번 구성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 마땅히 가이드도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멤피스' 관람 가이드 형식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1막> 1950년대 초 멤피스.

 

  • Underground - Delray, Felicia and Company
  • 멤피스의 흑인 환락가인 빌 가(Beale Street)의 밤. 들레이의 클럽에서 클럽 주인 들레이의 여동생이며 가수인 펠리시아가 노래를 부르며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립니다.

     

  • The Music of My Soul - Huey, Felicia and Company
  • 클럽에 백인인 휴이가 등장하자 흑인들이 모두 불쾌해 합니다. 하지만 휴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흑인음악에 심취해 있었음을 밝히고, 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립니다.

     

    낮의 휴이. 마켓에서 형편없는 판매원으로 잘리기 직전이던 휴이가 사장에게 "매장에서 음악을 틀어 레코드 판매 실적을 내겠다"고 제안합니다. 사장은 외출하면서 한번 해 보라고 하죠.

     

  • Scratch My Itch - Wailin' Joe and Company
  • 그래서 튼 이 노래로 휴이는 높은 판매고를 올리지만 사장은 흑인들의 노래(Race records)를 틀었다는 이유로 휴이를 해고해 버립니다.

     

  • Ain't Nothin' But a Kiss - Felicia and Huey
  • 들레이의 클럽에선 여전히 펠리시아가 노래를 부르고, 휴이는 "내가 반드시 너의 노래가 라디오 방송에서 울려퍼지게 해 주겠다"고 장담합니다. 이때까진 다들 비웃는 단계.

     

    그리고 휴이는 어찌어찌해서 방송국에 난입(?)해 노래 한 곡을 틉니다. 휴이가 DJ가 되는 과정이 코미디의 압권.

     

     

     

  • Everybody Wants to Be Black on a Saturday Night - Company
  • 그런데 이 노래가 청취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전화 폭주.

     

  • Make Me Stronger - Huey, Mama, Felicia and Company
  •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음반을 전해 주며 정말 틀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펠리시아. 하지만 아들이 흑인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 그렇게 해서 딱 한장 뿐인 레코드는 깨지고...

     

  • Colored Woman - Felicia
  • 펠리시아는 흑인 여성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한탄합니다.

     

     

     

     

    어쨌든 휴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를 씁니다.

     

  • Someday - Felicia and Company
  • 방송국 스튜디오로 펠리시아를 불러 라이브로 노래를 하게 하죠. 그리고 히트.

    펠리시아도 감사의 인사(?)로 휴이와의 감정을 확인.

     

  • She's My Sister - Delray and Huey
  • 동생을 걱정하는 들레이는 휴이와 동생이 남녀관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 봐선 당연한 얘기.

     

  • Radio - Huey and Company
  • 그리고는 휴이의 전성기가 찾아옵니다. 휴이가 발굴한 아티스트들이 성공하고, 휴이는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되죠. 아울러 펠리시아와의 관계도 깊어갑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휴이와 펠리시아가 함께 걷다가 백인 불량배들에게 습격을 당합니다.

     

  • Say a Prayer - Gator and Company
  • 클럽 들레이로 다친 펠리시아를 데려와 도움을 요청하는 휴이. 내 이럴 줄 알았다고 격분하는 들레이. 이때 단 한마디도 대사가 없던 게이터가 모두를 진정시키는 노래를 부릅니다. (1막 끝)

     

     

     

     

    <2막>

     

  • Crazy Little Huey - Huey and Company
  • 2막이 시작하면 텔레비전 시대가 열리고, 휴이는 R&B를 전면에 내세운 TV쇼의 MC로 나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 Big Love - Bobby
  • 그리고 방송국 청소부이던 바비가 가수로 데뷔합니다.

     

    펠리시아는 멤피스의 인기가수가 됐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몰래 만나는 사이. 펠리시아는 인종 차별 문제가 심하지 않은 뉴욕으로 함께 가자고 하지만 휴이는 여기서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뉴욕에서 업계의 거물 앞에서 몰래 오디션을 보는 펠리시아.

     

     

     

     

  • Love Will Stand When All Else Falls - Felicia and Company
  • 거물은 흡족해 하지만 자신이 소외된 사실을 안 휴이는 분개. 하지만 거물은 휴이도 뉴욕으로 함께 가 쇼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권장합니다.

     

  • Stand Up - Delray, Felicia, Huey, Gator, Bobby and Company
  • 다같이 뉴욕으로 가자고 다짐하는 일행.

     

  • Change Don't Come Easy - Mama, Delray, Gator and Bobby
  • 심지어 이제 휴이의 강력한 후원자가 된 어머니까지도 휴이에게 웬만한 건 고집부리지 말고 더 큰 물로 나가라고 격려합니다. (전형적인 '아줌마 보컬'이던 어머니도 soulful한 보컬의 대열에 합류하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노래입니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휴이

     

  • Tear the House Down - Huey and Company
  • 전국 네트워크에서 원하는, 평범한 스타일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음을 알고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내는 휴이.

     

    휴이가 전국 방송의 MC가 될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펠리시아는 어쨌든 자신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가겠다며 휴이에게도 같이 갈 것을 간청합니다.

     

  • Love Will Stand/Ain't Nothin' But a Kiss (Reprise) - Felicia and Huey
  • 절망적인 심정으로 휴이는 생방송 도중 펠리시아에게 키스. 방송은 중단되고, 들레이는 당장이라도 뉴욕으로 떠나야 펠리시아가 안전할 수 있다고 재촉합니다. 그래도 펠리시아를 따라 나서지 못하는 휴이.

     

  • Memphis Lives in Me - Huey and Company
  • 펠리시아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이 왜 멤피스를 떠나지 못하는지 절절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휴이.

     

    4년이 흐른 뒤, 휴이는 3류 DJ로 다시 전락해 있습니다. 그때 펠리시아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 Steal Your Rock 'n' Roll - Huey, Felicia and Company
  • 결말은 스포일러일테니 여기까지. (내용이 드러나면 좀 곤란하니 Steal your Rock'n Roll은 토니상 수상 퍼포먼스 영상입니다.^^)

     

     

     

     

     

    멤피스를 1950년대 이후 미국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만든 데에는 Phillips라는 성을 가진 두 사람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선 레코드(Sun Records)의 창립자인 샘 필립스. 이 사람이 설립한 선 스튜디오와 선 레코드를 통해 로이 오비슨, 제리 리 루이스, 자니 캐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배출됐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주류 대중음악으로 흑인 음악이 흘러들어와 로큰롤을 태동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개척자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멤피스 지역의 인기 라디오 DJ였던 듀이 필립스(Dewey Phillips). 이 사람이 바로 휴이 칼훈의 모델이 된 인물입니다. 비슷한 시기 같은 바닥에서 활동한 두 사람의 필립스는 가족 관계는 아니었지만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샘 필립스의 아티스트들이 듀이 필립스의 라디오를 통해 스타로 성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가 라디오에 데뷔한 것이 바로 듀이 필립스를 통해서였다고.

     

    (wiki에 따르면 듀이 필립스가 엘비스의 데뷔 음반을 방송한 것이 1954년 7월이었고, 그 다음 엘비스에게 출신 고등학교를 질문해 '인종'을 공개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시절 남부에는 백인과 흑인이 다니는 학교가 구분되어 있었으므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라디오라도 한 사람이 어느 학교를 다녔다고 말하면 그걸 통해 그 사람이 흑인인가 백인인가를 알 수 있었다는 얘기죠.

     

    '멤피스'에서도 이 에피소드가 칼훈이 처음 DJ로 마이크를 잡았을 때 등장합니다. 라디오 방송국 사장이 "자네가 백인이라고 밝히라"고 하자 휴이가 곧대로 "I'm White"라고 해 버리죠. 이때 사장이 "아니 그렇게 말고!" 하자 휴이는 "저는 어디 어디 고등학교를 나왔구요"라고 돌려 말합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만큼 또 그걸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건 금기에 해당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듀이 필립스는 1968년, 42세의 나이로 저 세상 사람이 됩니다. 뮤지컬 속의 휴이도 늘 술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현실의 듀이 역시 워낙 술과 약물에 찌들어 살던 터라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멤피스'의 휴이 칼훈 스토리에는 듀이 필립스와 당대의 인기 DJ였던 알란 프리드의 일화가 많이 섞여 있다는군요.)

     

     

     

     

    아무튼 이 뮤지컬 영상을 보고 나면 몬테고 글로버(Montego Glover)의 팬이 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만치 풍성한 성량과 절절한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 토니 어워즈 여우주연부문에도 올라갔지만 캐서린 제타 존스라는 할리우드 스타의 명성과 A Little Night Music 이라는 전설적인 작품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몬테고 글로버라는 무명 배우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게다가 이런 실력을 가진 배우가 적잖은 나이에 - 바이오를 공개하지 않아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 무명으로 있었다는 데서도 브로드웨이의 가공할 선수층에 놀라게 됩니다.)

     

    과연 이 뮤지컬은 언제쯤 국내 무대에 올려지게 될 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폭발적인 R&B 넘버들과 댄스를 소화할 수 있는 빼어난 가수들이 대거 등장해야 할텐데, 만약 한다면 누가 하게 될까요.^^ 노래만 놓고 보면 손승연 같은 재목들이 있어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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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현세자]

     

    사극 드라마나 영화, 역사 소설을 보다 보면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거나 인기가 오르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을 평가할 때에는 그 시대가 어떤 가치를 강조하는 시대였느냐가 큰 영향을 미치죠.

     

    소현세자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소현세자에 대한 내용은 매우 짧고 섬소합니다. 그런데 그 짧은 생애를 보면 유명한 사도세자에 비해 더 큰 비극을 안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세자의 몸에서 (아버지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것까지는 같지만, 사도세자는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올라 어느 정도 한풀이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소현세자는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참혹한 비극의 주역이 됐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대체 소현세자는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드라마 '꽃들의 전쟁' 보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어땠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소현세자(1612~1645) 1

     

    2010년 화제의 드라마 추노는 조선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추노꾼 대길(장혁)과 노비 태하(오지호)의 쫓고 쫓기는 대결을 그렸다. 본래 무관이었던 태하는 소현세자의 마지막 혈육인 왕손 석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피난길을 떠나고, 대길은 영문도 모른 채 그의 뒤를 쫓는다. 태하는 본래 소현세자의 측근인 무관이었으나 세자 사후 정변에 휘말려 노비로 강등됐다는 설정이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추노를 보면 의문이 들었을 법 하다. 대체 소현세자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본인이 급사한 뒤 부인인 세자빈 강씨도 사약을 받고, 어린 세 아들까지 목숨을 위협받게 된 것일까. 답은 권력의 비정함에 있다.

     

     

    (이 아기가 바로 당시 인기 높았던 그 석견이죠.)

     

     

    병자호란이 끝난 1637, 청은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요구했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와 차남 봉림대군(뒷날의 효종)이 수많은 포로들과 함께 심양으로 끌려가고, 청은 명을 완전히 멸망시킨 1645년에야 이들의 귀국을 허락한다 

     

    하지만 돌아온 소현세자를 바라보는 궁 안팎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껏 전해내려오는 야담에서 읽을 수 있다. 두 아들이 귀환하자 인조는 무엇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소현세자는 용 모양의 벼루를 꺼내며 이것이 천하의 귀물이라는 용연석(龍硯石)으로 만든 벼루입니다. 아버님께 드리려고 천금을 들여 샀습니다라고 했다. 반면 봉림대군은 청 황제에게 간청하여 포로로 끌려간 우리 백성들을 힘 닿는대로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인조는 세자를 향해 너 따위가 무슨 세자냐고 호통을 치며 그 벼루로 머리를 내리쳤다. 세자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곧 병들어 죽었다는 전설이다.

     

    실체가 있는 기록 역시 소현세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세자가 숨을 거둔 1645 426 실록에 실린 졸기(卒記)를 보면,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였으나 기국과 도량은 넓지 못했다는 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무인들과 어울리는데 시간을 쏟았다. 오직 화리(貨利:사고 팔아 이익을 남김)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를 즐기고 개와 말 따위를 기르는데 열중했으므로 크게 인망을 잃었다는 내용도 있다. 한마디로 소현세자가 일찍 죽고 효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 나라를 위해 큰 다행이었다는 주장. 이것이 일제시대까지의 전통적인 해석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평가는 수정되기 시작했다.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끌려가 있을 때 독일 출신 선교사 탕약망(湯若望),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과의 친교를 통해 많은 신문물을 조선에 소개했다는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렸다.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개혁군주가 되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주장이다.

     

     

     

     

    사실 동시대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던 소현세자의 모습도 오늘날의 시각에선 그리 흠으로 보이지 않는다. 글이나 읽는 샌님보다는 건축과 이재에도 밝은 무인 풍의 세자가 훨씬 미래지향적인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마의의 정겨운 이나 현재 방송중인 꽃들의 전쟁의 정성운 모두 이런 시각의 소현세자를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가 인질로 나날을 보냈던 심양은 지정학적으로한반도를 관리하는 대륙의 창구 역할을 했던 도시다. 고려말 원나라도 만주에 심양왕이라는 직책을 마련해 두고 고려 왕을 견제했다. 고려 25대 충렬왕이 마음에 들지 않자 심양왕으로 있던 아들 충선왕을 개경으로 보내 부자간에 왕권 다툼을 벌이게 한 적도 있다..

     

    소현세자는 이 심양에서 예친왕 도르곤을 비롯한 청의 고위 인사들과 막역한 사이가 되어 갔다. 중원이 이미 청에게 넘어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판단이다. 자연스럽게 병자호란으로 권위가 실추된 인조보다 청 황실과 가까운 젊은 소현세자가 실세로 판단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미래 권력인 세자에게 투자하자는 계산이 서기 시작한 것이다.

     

    인조와 정치적 생명을 함께 하는 김자점 등 반정 공신 세력들에겐 이보다 께름칙한 일이 없을 터. 이들은 날이 새면 인조에게 달려가 소현세자가 이미 왕이 된 듯 처신하고 있다며 속닥질을 했다.

     

    언젠가 물려줄 왕위라 해도 당장 내놓으라면 불쾌한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게다가 충렬왕과 충선왕의 전례를 생각해 보면 어느날 갑자기 청이 양위를 요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한양과 심양의 거리 속에서 부자간의 관계는 날로 소원해져 갔다. (2부에 계속)

     

    2부 소현세자, 죽은뒤에도 눈을감지 못했다. http://fivecard.joins.com/1141

     

     

     

     

    그러니까 소현세자가 귀국하자마자 죽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를 불안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에 대해 "심양에 있으면서 거의 왕과 왕비 행세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이게 소현세자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당시까지 청의 수도인 심양에 세자가 있고, 포로 송환을 비롯해 수많은 외교 사안이 있었던 상황이고 보면, 세자와 수행원들은 오늘날의 대사관 역할을 넘어 아예 조선의 작은 정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세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성격이었다면 모를까, 말을 달리는 매 사냥을 즐기고 청 순치제의 숙부인 예친왕(도르곤)과 친분을 쌓는 호방한 성격이었으므로 그 존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세자가 있었으니, 조선 내에도 세자야말로 조선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특히나 인조는 병자호란의 패전으로 정치적인 권위가 내려앉은데다 그를 둘러싼 인조반정 공신들, 그 중에서도 김자점의 세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방송중인 사극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을 보시면 이 시기의 정국이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김자점(정성모)이 수양딸로 삼아 궁에 들여보낸 궁인 조씨(김현주)는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두 아들을 낳고 내명부로서 소용을 거쳐 귀인에까지 이릅니다. 김자점은 한편으로 조씨가 낳은 공주를 손자며느리로 맞아들이는 등 인조를 둘러싼 김자점과 소용 조씨의 '인의 장벽'은 날로 두터워졌죠.

     

    이들에게 최선의 결과는 인조가 인열왕후(이때는 이미 죽은 뒤)와의 사이에 낳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인평대군을 제치고 조씨가 낳은 숭선군이 인조의 후사를 잇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김자점을 경원하는 세력이 세자 곁으로 모였으니 이들이 갈 길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세자와 인조의 사이를 갈라 놓아야 했던 것이죠.

     

     

     

    게다가 소현세자는 천주교에 귀의했을 가능성까지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2005년 막을 올린 연극 '흔적'은 한국 기독교의 첫 순교자로 소현세자를 꼽고 있습니다. 조선이 본격적인 기독교 박해에 나서기보다도 훨씬 전의 일인데, 어쨌든 당시 조선의 분위기로 보아 천주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교(邪敎)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P.S. 마지막으로 인조와 소현세자-봉림대군 사이의 벼루 이야기는 당시로선 꽤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진 이야기인 듯 합니다. 실제로 소현세자가 귀환할 때 많은 문물과 함께 꽤 많은 재물을 가져왔다고 하니 그 이야기가 저렇게 윤색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아울러 일설에 따르면 인조가 소현세자를 내리친 '용연석'이 요즘도 쓰이는 '요녀석'이라는 말의 어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얼마나 공인된 학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주장을 읽어 보시면 웃어 넘길 정도로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http://www.unn.net/ColumnIssue/detail.asp?nsCode=21437

     

     

    너무 길어졌습니다. 소현세자 사후에도 3대에 걸쳐 이어진 비극에 대해선 다음 또 한편의 글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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