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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올 거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날'이란 싸이와 조용필이 신곡을 발표해 각종 음원 차트에서 경쟁을 펼치는 날을 말하는 겁니다. 빌보드 차트 히트곡인 싸이의 '젠틀맨'과 조용필이 내놓은 '바운스', '헬로' 세 곡이 차트 상위권에서 다투는 중입니다.

 

싸이가 글로벌 스타가 된 것도 놀랍지만, 노장의 신곡이 이렇게 새로운 감각을 담고 있을 지, 그리고 그 노래가 이렇게 대중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을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2003년 발표했던 18집에도 기존 팬들은 열광했지만 이렇듯 전 사회적인 화제가 될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쨌든 며칠전 있었던 조용필 19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는 자우림, 박정현 등 후배들이 한 무대에 서면서 더욱 무대가 풍성해졌습니다. 가왕의 권위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싸이와 조용필, 그리고 수많은 다른 가수들이 한 자리에 있었던 그 언젠가의 저녁이 생각납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참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날의 기억입니다. 2006년 1월4일, 가요계의 '대통령' 조용필이 후배 가수들과 신년 하례를 했습니다.

 

 

 

 

사실 이 모임은 2005년 연말에 이뤄졌어야 했습니다. 그 전의 모임이 2004년 연말에 있었으므로, 이때 '1년 뒤에 만나자'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2005년 연말에 송년회를 했어야 하는 거였죠. 하지만 "한번 해 보니 연말보다는 연초가 좀 더 모이기 쉬운 것 같더라"는 의견 때문에 송년회 대신 신년회를 하게 된 거였습니다.

 

2004년 모임에 가지 못한 게 좀 안타깝긴 했지만 2006년 모임은 좀 더 기대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모이는 장소가 라이브 클럽이었기 때문이죠. 2004년엔 식사 후에 흩어졌던 톱가수들이 올해는 '한잔' 씩을 걸친 뒤 노래를 뽑아낼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죽기 전에 이런 무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글을 읽다 보니 감흥이 되살아나 가슴이 콩당거립니다. 사실 옛날 블로그에 있던 글이지만, 이럴때 재활용하지 않으면 언제 재활용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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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원섭의 through*2 조용필-이적-김종서의 3중창을 들어 보셨나요?

 

 

4일 오후(2006년 1월4일입니다), "조용필씨가 가수 후배들을 불러 모아 신년 하례식을 하려고 한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선약이 있었지만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요계의 대통령과 3부 요인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입니다. 어떻게 이런 자리에 안 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후 8시, 약속 장소인 서울 청담동 클럽 스타즈 앞에는 보디가드들이 서 있었습니다. 이날 연락을 맡았다는 이현우가 홍경민과 함께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더군요. 대개 이런 행사 때에는 주최자가 가장 긴장하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김정민을 필두로 가수들이 속속 도착했고, 60여석의 자리는 금세 꽉 찼습니다.

 

이문세,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 이은미, 김종서, 신승훈, 조성모, 김현철, 김정민, 김민종, 패닉(이적 김진표), 김경호, 홍경민, 드렁큰타이거, 윤미래, 부가킹즈, 싸이, 빅마마, 린, 박효신, god(김태우 박준형), 자우림(김진만), 적우 등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뮤지션인 송홍섭, 최희선, 최태완 등 30여 명이 모였으니 그야말로 한국 가요계의 중추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겠죠.

 

8시30분 쯤 '각하'가 도착하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 맞았습니다. 조용필은 간단하게 "새해에 얼굴들을 좀 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연말에 모여볼까 했는데 다들 콘서트 준비로 바쁜 것 같아서 아예 신년회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모처럼 모이니 정말 반갑다"는 덕담으로 '공식 개회'를 알렸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가요계의 선후배들로 서로 얼굴이야 익은 사이였지만 연령차나 음악적 배경이 워낙 다양한 터라 쉽사리 섞이기는 쉽지 않더군요. 특히 어린 후배들은 조용필을 스스럼없이 대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싸이의 활약이 시작됐습니다.

 

싸이는 테이블을 돌며 '파도타기'를 외쳤고, 금세 술병이 비어갔습니다. 대신 급속도로 대화량이 늘어나고 분위기가 살아나더군요. 이날 조용필에게 "너 앞으로 공연 잘 하겠더라"라는 칭찬을 들은 터라 신이 날대로 난 싸이는 여기저기서 "브라질! 상파울로!"라는 특유의 환성을 올리며 흥을 돋궜습니다.

 

이때부터 현장에 있던 몇몇 기자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드림 스테이지가 펼쳐졌습니다. 만난 장소가 라이브 클럽이고, 모인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는 톱가수들인데 술이 한잔 들어가면 노래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회자로 나선 이현우는 첫 가수로 박효신을 지목한 뒤, 노래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명하는 규정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구름같은 선배들 앞에서 노래를 하려니 내성적인 박효신은 무척 떨렸던 모양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박효신은 결국 스팅의 Shape of My Heart 를 골랐습니다. 노래 실력이야 누가 토를 달겠습니까. 나중에 물어보니 "한번도 안 해본 노래"라던데 아무리 박효신이지만 좀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2번타자는 린. "이런 자리니 제 노래보단 신나는 노래가 나을 것 같다"던 린은 장윤정의 짠짜라 를 멋지게 불러 숨겨놓은 트로트 실력을 뽐냈습니다. "가수 되기 전에 노래방 알바 출신이냐"는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였죠.

 

이때 갑자기 지명도 받지 않은 김민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선후배 사이에 의리가 두텁기로 소문난 김민종은 "막내들이 먼저 나설 게 아니라 중간급들이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며 평소 애창곡이었던 조용필의 <꿈> 을 불렀습니다. 이때부터 이날의 진짜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꿈> 이 2절로 접어들자 신승훈과 김종서가 무대에 올라 3중창이 됐습니다. 김민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신승훈의 미성, 그리고 위편으로 '질러주는' 김종서가 한데 어우러진 이 무대는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했습니다. 이때부터 여기저기서 "조용필 트리뷰트 콘서트가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다음 순서로 나선 신승훈은 자신의 노래가 아닌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를 부르다가 중간에 '깜짝 모창'을 보여줬습니다. 김민종, 김종서, 이문세의 목소리로 한 소절씩을 부른 것이죠. 김종서는 자신의 모창이 나올 때는 앞에서 '립싱크'를 하는 재치도 보여줬죠.

 

이어진 싸이의 무대. <여행을 떠나요> 를 부르겠다고 고집하던 싸이에게 신승훈은 "그래도 <챔피언>을 일단 들어 보자"고 설득했습니다. 싸이의 신들린 <챔피언>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됐고, 싸이는 앵콜 곡으로 여행을 떠나요 를 불렀습니다. 이때 김태우와 박효신이 코러스로 등장했다가 결국은 코러스가 메인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한 구석에 설치된 드럼 세트에선 '드러머 김종서'의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입대를 앞둔 김태우는 "다섯명 몫을 혼자 다 하겠다"며 <촛불 하나>를 부른 뒤 이은미를 지명하고 내려가며 "JYP 선배님, 사랑해요!"라고 외쳐 사람들은 배를 잡고 뒹굴었습니다. 여기서의 JYP는 김태우의 소속사가 아니라 조용필을 가리키는 것이었죠. "나도 좀 여자로 봐 달라"고 애교섞인 코멘트를 던진 이은미는 "조용필 선배님과 왕년에 이 노래를 부를 때 정말 행복했다"며 <모나리자>를 선곡했습니다. 오히려 조용필 본인보다 훨씬 묵직한 <모나리자>더군요.

 

다음으로 지명된 이문세는 후배들의 환호 속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문세가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생각하기도 전에 후배들은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를 불러제꼈고, 결국 이문세는 <붉은 노을>을 불렀습니다. 이문세는 마이크를 신승훈에게 맡긴 뒤 "난 이제 댄스가수"라며 멋진 안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용필이형, 문세형 머리 쓰다듬는 장면 한번만 보여주세요"라는 신승훈의 코멘트도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이문세는 현장에 와 있던 3명의 빅마마 멤버들을 불러올리며 "3명이니 3곡은 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거부>로 포문을 연 빅마마는 <밤이면 밤마다>와 <남행열차>로 조용필을 비롯한 온갖 참석자들을 모두 무대 앞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마이크는 로커 김종서에게 넘어갔습니다. 라디오헤드의 'Creep'으로 문을 연 김종서는 열광의 박수가 이어지자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으로 열창을 이어갔습니다. 김종서는 "사실 목소리가 가늘다는게 컴플렉스였는데, 어딘가에서 '조용필은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는 골초'라는 기사를 읽고 이거다 싶었다. 담배를 피우면 조용필 선배의 멋진 탁성을 낼 수 있을 줄 알고 나도 담배를 세 갑씩 피웠다"는 사연을 얘기해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종서의 마이크를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중간에 이현우가 등장, 자신의 <꿈>을 불렀지만 김종서는 잠시 후 다시 등장, "용필이형의 모창이라면 내가 최고일 것"이라며 <창밖의 여자>를 뽑아냈습니다. 이 노래가 신호탄이 된 듯 이때부터 가수들은 일제히 '조용필, 조용필'을 연창했습니다. 드디어 조용필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조용필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나도 90년대 초, 방송활동을 중단했을 땐 콘서트에 사람이 들지 않았다. 그때는 좌절했지만 이내 그래선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대중을 두려워하면 안되고, 대중 앞에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마라. 왜냐하면 우리는 노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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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각이 밤 12시. 그때까지 귀가를 포기하고 심야의 '드림 콘서트'를 바라보고 있던 기자들의 눈이 번쩍 뜨인 것도 바로 이 순간입니다. "한류가 드라마와 영화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 가수들은 뭘 하나. 이래선 안된다. 수십만의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코리아 록 페스티발'을 한국 가수들의 힘으로 열자. 내가 추진하겠다."

 

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 "방송사와 정부, 시민단체들의 힘을 빌테니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 물론 소속사 관계자 여러분의 협조도 필요하다.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우리 가수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조용필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때 김태우가 "R&B나 힙합도 끼워 주셔야죠"라고 크게 외쳤고, 김종진이 "'록 페스티발'도 좋지만 이름은 '코리아 뮤직 페스티발'이 좋을 것 같다"고 거들어 조용필은 이름을 정정, 다시 "'코리아 뮤직 페스티발'을 개최하자"고 선언했습니다.

 

또 "결국은 라이브의 힘이 가수의 힘이다. 방송사에서 요구하더라도 립싱크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가수가 필요하다"는 등의 당부를 마친 조용필이 그냥 무대를 내려가려 하자 후배들은 길을 가로막고 일제히 '노래, 노래'를 연호했습니다. 사방에서 신청곡이 난무하는데 정말 히트곡이 많긴 많더군요. 결국 첫곡으로는 <비련>이 채택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다음의 가사가 '꺄아악'인 바로 그 비련 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꺄아악'이 연출됐고, 조용필은 여기서 노래를 끊었습니다. 역시 거의 강요에 못 이겨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게 된 조용필 옆에 이적과 김종서가 나란히 섰습니다. 흔히 보기 힘든 3중창. 이어진 <모나리자>에선 조성모, <단발머리>에선 갑자기 나타난 김경호가 화음을 이뤘습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서 조용필은 다시 한번 '코리아 뮤직 페스티발'을 강조하며 위대한 탄생 출신의 건반 주자 최태완씨를 불러올렸습니다. <친구여>를 피아노로 반주해달라는 얘기였죠.

 

조용필이 가운데 서고, 20여명의 가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는 <친구여>를 듣고 있으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디서 이런 무대가 다시 열리겠으며, 그런 광경을 이런 근거리에서 볼 기회가 언제 있겠습니까. 끝없이 이어질 듯 하던 친구여 가 끝났고, 조용필도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용필이형 노래 좀 듣자"며 무대로 올라가는 후배들을 뜯어 말리던 신승훈에게서도, 노래 한 곡 하지 않으면서도 온갖 퍼포먼스로 가수들의 노래에 양념 역할을 하던 홍경민의 표정에도 흡족한 빛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곧 추진될 '코리아 뮤직 페스티발'의 피날레에서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겠죠. 반드시 올해 안에 이 행사가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후에도 드렁큰타이거와 JK김동욱 등의 무대가 이어졌지만 사실 이날의 볼거리는 여기서 끝났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조용필 나오는 것 봤냐'는 속담도 있는 마당에, 조용필의 스테이지가 끝난 다음에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기자들 사이에선 "이 공연을 녹화하면 대박일텐데..." "진짜 드림콘서트보다 캐스팅이 낫잖아"라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아무튼 이날 하례식에 참석한 소감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럴 겁니다. "음. 기자 되길 잘 한 것 같아." (끝)

 

 

 

 

 

 

윗글엔 쓰지 않았지만 이날 싸이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때도 워낙 붙임성이 좋아 기자들의 테이블에 온 싸이는 "'너 공연 좋아하지? 그래. 공연 계속 해. 공연 자주 하는게 가수야' 하시더라"며 연신 싱글벙글했습니다.

 

이날의 분위기로 봐선 이 신년하례식이 매년 열릴 정례행사가 될 것 같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현재까지는 이게 마지막 모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또 열리게 될지, 만약 열리게 되면 그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한 구석에서 행사를 지켜볼 수 있을지. 앞날이야 누가 알겠습니까.^

 

 

 

 

P.S. 조용필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예수 풍의 남자주인공 제임스 리 맥쿤(에 대해 트위터에 쓴 적이 있는데 여주인공은 메이메이 렌프로(Maemae Renfrow)라는 미국 모델이군요. 본명은 메건 리 렌프로(Megan Leigh Renfrow). 이미 우리나라 남성 중심 사이트에서는 '매매(Mae는 '메이'라고 읽습니다^^) 렌프로'라는 이름으로 지명도를 얻고 있습니다.

 

 

 

 

 

 

1997년생. 메가엘라풍의 짱구 앞머리가 인상적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앞날이 기대되는군요. 얼핏 보기보다 키가 크지만(5-8.5, 174cm) 모델보다는 다른 쪽으로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진에서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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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점의 난] '간신 김자점'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임경업전'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이라면 이순신과 김유신을 벗어나지 못했던 소년 시절, 문득 '명장 임경업'이라는 이름을 듣게 됐습니다. 아울러 비운의 명장 임경업을 몰래 죽인 사람이 바로 간신 김자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희대의 간신이었던 김자점의 명성에 비해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병자호란이라는 큰 사건을 방송 화면으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들인 돈에 비해서, 사람들이 과연 '조선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꼽히는 삼전도의 굴욕을 보고 싶어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 수가 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자점 역시 대중의 관심 밖으로 스물스물 사라져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방송중인 '궁중잔혹사-꽃들의전쟁'이 아니었다면 아예 얘기될 일 조차 없었을지도.

 

드라마 '꽃들의 전쟁' 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 당연히 소용 조씨(얌전이, 김현주)와 인조(이덕화), 그리고 세자빈 강씨(송선미)이지만 제게 가장 관심 가는 사람은 김자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글도 '매거진 M'에 실리는 '문화인물탐구' 란에 실리는 글인데, 사실 지면의 한계라는 것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김자점처럼 다각도에서 조명 가능한 인물을 원고지 11~12매에 압축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무튼 늘 하던대로, 원문을 전재하고 아쉬운 부분을 보충합니다.

 

 

 

김자점

 

조선 선조 때 전라도 낙안 땅, 천년 묵은 지네 귀신이 있어 주민들이 처녀를 바치고 복을 빌었다. 신관 사또가 어찌 벌레 따위를 신으로 모시냐며 군사를 풀어 지네를 잡아 토막 내 죽였다. 이때 단말마의 지네가 토한 핏방울이 사또의 미간에 튀었다. 그 직후 사또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놀랍게도 미간에 붉은 점이 있었다. 사또가 기이하게 여겨 처음에 붉은 점이라는 뜻으로 자점(紫點)이라 이름지었다가 뒷날 자점(自點)이라 고쳤다.

 

인조-효종 시대 매국노의 대명사로 불린 김자점(1588~1651)의 출생에 대한 전설이다. 지네의 저주로 태어난 괴물이었기에 희대의 간신이자 역적이 되어 마침내 집안을 멸문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부친인 김함이 벼슬을 산 적이 없으므로 지어낸 얘기임은 분명하지만, 500년 뒤까지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당시 김자점이 얼마나 큰 증오의 대상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김자점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최근에는 명종 때의 윤원형이나 연산군 때의 유자광에 비해 지명도에서도 뒤지는 분위기다. 1981년 컬러 TV 도입 기념으로 KBS가 큰 맘 먹고 제작한 대하 사극 대명에서 김순철이 김자점 역을 맡았고, 2009년 작 MBC TV ‘일지매에서 박근형이 같은 역을 맡은 정도다. 2013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정성모가 연기하는 김자점을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끈다.

 

각 드라마의 캐스팅은 김자점에 대한 해석을 그대로 반영한다. 김순철은 글자 그대로 원초적인 권력욕에 매달리는 저돌적인 간신의 모습을 연기했고, 박근형은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 당대 최고 세도가의 면모를 보였다. 한편 정성모는 왕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정권 탈취를 노리게 된 교활한 야수를 연기하고 있다.

 

 

 

김자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조와의 인연에서 시작해야 한다. 광해군을 내몰고 인조를 왕위에 올려 놓은 반정 과정에서 김자점은 절대적인 역할을 해냈다. 사실 이 반정은 성공한 게 신기할 정도로 허술했다. 몇 차례나 음모가 새나갔지만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희인 개시 김상궁에게 뇌물로 줄을 대고 있던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김상궁은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김자점, 김류 따위는 그저 백면서생들인데 무슨 큰 일을 하겠습니까라며 무마했다. 실제 반정 전날인 1623 311일에도 고변이 들어왔지만 광해군은 김상궁과 술을 마시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결국 김자점은 1등공신에 올랐다.

 

하지만 관료로서 김자점은 대단히 무능했다. 청의 군사적 위협 속에 도원수에 오른 김자점은 정예병을 큰 길에서 벗어난 산성에 주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병자호란 때 청군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대로로 진격해 한양을 범했다. 심지어 김자점 본인도 황해도 토산에 정병을 주둔해 놓고 교전을 피한 죄로 죽을 위기에 몰렸다.

 

그래도 인조는 김자점을 외면하지 않았다. 삼전도의 치욕으로 권위를 잃은 인조에겐 김자점 처럼 까라면 까는저돌적인 충복이 필요했을 거란 해석이 일반적이다. 김자점은 재빠르게 친청파로 변신해 조정 중신들을 제압했고. 그가 후원하는 소용 조씨도 인조의 안방을 차지했다.

 

하지만 소현세자의 죽음(1645), 세자빈 강씨의 사사(1646), 임경업의 주살(1646) 등 의혹 짙은 사건이 이어자자 김자점에 대한 여론은 악화됐다. 특히 임경업의 죽음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민심은 군사력을 키워 청에게 복수하자던 명장 임경업에게 극히 동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용 조씨의 딸 효명옹주를 손자며느리로 삼으며 권력은 더 강화됐지만 백성들의 지탄도 높아갔다.

 

                                          (충민공 임경업 장군 영정)

 

결국 인조의 죽음과 함께 파국이 왔다. 소용 조씨가 낳은 숭선군에게 밀려나는게 아닐까 은인자중하던 효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김자점에게 칼을 뽑았다. 삭탈관직에 이어 유배령이 떨어졌다. 때맞춰 효종은 북벌을 국시로 내세웠고, 김자점은 청과 내통하는 매국노의 표본이 됐다.

 

마침내 효종 2. 숭선군을 앞세워 역모를 꾀했다는 고변과 함께 김자점의 일족이 몰살당하는 옥사가 펼쳐졌다. 소용 조씨에게도 사약이 내려졌다. 불안한 임금 자리를 지키려는 인조의 속내는 누구보다 잘 읽었지만 여론의 흐름은 무시한 결과였다. 효종은 그를 잘라 냄으로써 민심을 얻는 동시에, 인조반정의 공신들을 억누르고 자신의 사람들로 조정을 채울 수 있었다.

 

김자점은 정말 반란을 시도했을까. 최소한 효종이 그를 편치 않게 느낀 것은 분명하다. 인조는 죽기 두 달 전, 세자(효종) 앞에 김자점과 이시백을 불러 네가 왕이 되어도 이 두 사람은 중용하라고 당부했다. 명심하겠노라 대답했지만 효종의 속내는 달랐다. 즉위 후 김자점의 역모를 보고받은 효종은 당시 시백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자점은 오만했다. 그때 자점이 나를 섬길 뜻이 없음을 알았다고 냉소했다. 자만이 재앙을 부른 셈이다.

 

P.S. 김자점 일족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자취를 감추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그 후손 가운데 불멸의 거인이 태어난다.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첫 문장에서 자신이 멸족을 피해 황해도로 이주한 김자점 가문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 (끝)

 

 

 

 

인조가 가장 신임했던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이시백(위 초상). 기억력 좋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시백은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인 이귀의 아들이며, 고전 소설 '박씨부인전'에 나오는 박씨부인의 남편입니다. 이시백이 치명적인 전란을 극복하고 복구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박씨부인의 지혜 때문이었다는 당시의 민심을 대변해주는 것이죠.

 

(박씨부인전이라면 또 잘 모르실 분도 있겠군요. 좀 나이드신 분들은 구 TBC 연속극인 '별당아씨'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별당아씨의 남편이 바로 이시백이라는 얘깁니다.)

 

어쨌든 인조 사후에도 이시백은 살아 남은 반면, 김자점은 반란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일족이 멸문당하는 대란을 겪습니다. 대체 왜 김자점은 몰락했을까요. 당연히 효종과의 관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현세자와 강빈이 비명에 죽고,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이 다시 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윗글에서 보듯 소용 조씨(이 무렵 귀인이 됩니다)와 김자점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죠. 어린 아이이긴 했지만 소용 조씨가 낳은 숭선군이 언제 자신을 대신해 세자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세자(봉림대군 = 뒷날의 효종)는 철저한 몸조심에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바보가 아니었던 세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해 차곡차곡 게획을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살아서 왕위에 오른다면'이라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일단 형 소현세자가 심양에 머물며 청나라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려다 반대 세력에게 제거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한편으론 김자점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누가 있을지를 찾아 봅니다.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선명한 입장을 갖고 있는 서인 재야 세력이죠. 송시열 송준길 등을 중심으로 한 인망 있는 집단이고, 송시열은 한때 봉림대군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국강병을 통해 나라를 다시 세우고 청에게 당한 치욕을 씻자고 주장하던 인물들이죠.

 

그렇게 해서 1649년 5월, 인조가 즉고 효종이 죽위하자 효종은 그 즉시 인조의 시호를 논의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에 은거하고 있던 송시열 등을 불러 올립니다. 심지어 송시열은 상경한 뒤,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며 독대를 요청하고, 효종이 '몸이 불편하다'며 독대를 거절하자 그 즉시 짐을 싸서 귀향길에 오릅니다. 당황한 효종은 사람을 불러 송시열을 붙잡고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음을 사과합니다. 이후에도 송시열은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이건 모두 제 덕이 부족한 탓이니 사직하겠습니다'를 되풀이하고, 그때마다 효종은 극구 만류합니다. 이런 사직 쇼(?)를 거쳐 전 조정이 송시열이야말로 효종 시대의 실세임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바로 알아차립니다. 송시열-송준길이 권력의 핵심이라면 과연 권력에서 소외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할 것인지. 그 다음 수순은 알아서 돌아갑니다. 효종이 직접 누구를 지목해서 아니라, 수많은 선비들이 김자점 탄핵에 나섭니다.

 

결국 김자점은 1년 뒤인 1650년, 벼슬을 내놓고 귀양가는 몸이 되는데, 마침 청의 사신들이 '조선이 요즘 (우리와 가깝던)선왕의 대신들을 왜 이유 없이 내쫓는가. 혹시 우리와 적대하려는 뜻이 있는 것인가'를 추궁할 것이란 소문이 돕니다. 이 소문의 배경은 '(청와 가까운) 김자점이 위기에 몰리자 청의 힘을 업고 조정을 압박하려 한다'는 것이었죠.

 

효종이 왕위에 오른지 두달이 채 안된 1649년 6월22일, 실록의 기록입니다. 대신들이 처음으로 영의정 김자점이 불충하고 무능하니 관직을 빼앗아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을 때의 기록. 처음엔 듣기 싫은 척(?) 하던 효종도 끝내 벼슬에선 물러나게 합니다.

 

...탄핵하기를 더욱 강력히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다가 경인년(1650년) 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도 부처(中道付處)를 명하여 홍천현(洪川縣)에 유배하였다. 이때 서울 안에는 자점이 죄를 입은 뒤로 노중(虜中)과 은밀히 내통하여 저들의 힘을 빌어 우리 조정을 위협할 계획을 한다는 등의 말들이 많이 나돌았다. 그런데 청나라 사신이 조사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세 무리가 잇따라 출발하여 압록강도 건너기 전에, 장차 즉위한 처음에 구신(舊臣)을 축출한 이유를 힐문(詰問)하려 한다는 헛소문이 먼저 퍼지니, 사태가 매우 위급하여 조야(朝野)가 흉흉해서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상도 자점을 의심하였으나 다만 그의 두 자식 연(鍊)식(鉽)을 내쳐 외읍(外邑)에 보임해서 그 모계(謀計)를 막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청나라 사신이 서울에 와서는 단지 우리 나라가 성을 쌓은 일만을 물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혹자는, 자점이 스스로 계획이 실패되어 탄로될 것을 알아차리고서 도리어 이형장(李馨長)을 시켜 청나라 사신에게 미봉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름에 양사가 다시 자점의 죄를 탄핵하여 절도(絶島)에 안치(安置)시키기를 청하며 누차 아뢰어 마지않으니 곧 멀리 귀양 보내라 명하여 광양현(光陽縣)에 유배하였다.

 

 

이쯤 되면 왕의 뜻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효종 즉위 2년째를 넘기지 못하고 누군가가 "김자점과 조인형(소용 조씨의 친척 오빠)이 서로 몰래 오가며 모의를 하고 있다"는 고변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김자점의 아들 김식과 손자 김세룡(소용 조씨가 낳은 옹주의 남편)을 지목합니다.

 

여기에 김자점의 역모가 보고됐을 때 효종의 반응이 널리 퍼집니다. 윗글에 있듯 효종은 인조가 이시백과 김자점을 불러 자신에게 "이 두 사람을 중용하라"고 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죠. 김자점이 얼마나 당시의 세자(효종)을 무시했는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황. 이건 "빨리 김자점을 잡아다 죽이지 않고 뭘 하느냐"고 직접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 보자면 과연 김자점이, 혹은 김식이 난을 일으키려 하기는 했을까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김자점의 권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인조가 죽기 전입니다. 김자점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세자를 폐하고 숭선군이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던 모양이고, 그 다음 방법은 효종이 즉위 후 일찍 죽고, 그 뒤를 이어 숭선군이 왕이 되는 것이었겠죠.

 

하지만 효종이 한발 빨랐습니다. 김자점의 예측에 비해 너무 손이 빨랐던 모양입니다. 1649년, 즉위 두달만에 벼슬을 빼앗고, 6개월만에 귀양을 보냅니다. 김자점에게 빌붙어 살던 사람들도 세상 판도를 파악하고 재빨리 등을 돌립니다. 마침내 난이 보고되고 김자점이 죽음을 맞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년6개월.

 

죽음을 맞은 김자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한비자에는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을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것이 문제가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그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효종은 이 교훈을 확실히 지켜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자점이 효종을 정말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막았을테니 말입니다. 반면 김자점은 자만심에 빠져 이 교훈을 무시했던 셈이죠. 그것이 결국 김자점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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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문화 생활 가이드] 변명으로 시작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시간이 유수와 같다 보니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뭐 관심있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10만원으로 즐기는 문화생활 가이드'는 얼마전 창간된 주간 문화매거진 '매거진M'에 실리는 칼럼입니다.

 

이 칼럼이 실리는 시점이 3월 마지막 주였다면 아무런 부담 없이 이쪽으로 끌고 올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매달 첫호에 실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달의 경우는 4월 5일이었던 셈이죠.

 

지면에 칼럼을 쓰는 처지에, 아무리 제가 쓰는 것이긴 하지만 지면에 쓴 칼럼이 읽히기도 전에 블로그로 퍼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깜빡 시점을 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추천 공연인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공연 일정이 지나 버렸더군요. ;;; (아, 물론 제가 추천하는 공연을 제가 모두 보러 가는 건 아닙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4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이젠 봄내음이 물씬 나지? 3월이 발레의 달이었다면 4월은 음악의 달이야.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 기념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코리언 월드 스타 시리즈. 신영옥(45), 장한나(429), 조수미(430) 등 진짜 월드스타들이 홈커밍데이 행사를 하는 셈이지. 특히 장한나는 첼로 연주자 아닌 지휘자로 황병기 교수와 협연한다니 관심이 아니 갈 수 없지.

 

문제는 가격이야. 화려한 출연진에 비하면 과히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3~12만원은 약간 부담스럽기도 해. B석이라도 조수미 장한나의 무대를 놓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기회지만, 아무래도 이 지면이 지향하는 공연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일단 소개는 했어.

 

 

대신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건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야. 설마 김선욱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피겨 스케이팅에 김연아, 수영에 박태환이 있다면 피아노에는 김선욱이 있다는 괴물이야. 백건우 정명훈 이후 한국을 빛낸 수없이 많은 스타 피아니스트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선욱은 특이해. 뭐랄까, 아이돌의 자질을 가진 클래식 스타랄까?

 

김선욱은 지난해부터 LG아트센터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 중이야. 그 다섯 번인 413일은 17번부터 21번까지 연주하는 날. 특히 첫 곡인 17템페스트’ 3악장은 영화 하녀에서 이정재가 연주한 곡으로도 유명하지. 비교될 거라고? 천만에. 연주하는 김선욱을 현장에서 보면 이정재가 오징어로 보인다는 사람도 많아. R석은 7만원이지만 3만원 짜리 A석으로 즐기는 게 바로 문화가이드 정신이지.

 

또 매년 4월은 예술의 전당에서 한달 내내 교향악축제가 열리는 달이지.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매년 전국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상경해 각자 자존심을 걸고 공연을 펼치는 행사야. 평소 예술의전당 문턱이 높아 보였던 사람이라면 R3만원, S 2만원이라는 티켓 가격도 매력적이지. S석이면 충분해.

 

레퍼토리에 따라 취향 껏 찾아 보는 게 행사 취지에 맞는 감상이지만, 굳이 딱 하나만 골라 추천하라면 417일 열리는 수원 시향(지휘 김대진)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을 보라고 하고 싶어.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와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생상스 교향곡 3번이면 매치도 그만이지. 이제 손열음과 김선욱의 스승으로 더 유명한 마에스트로 김대진의 지휘를 즐겨 보도록.

 

 

모처럼 연극 한편? 마침 대학로에서는 연극 광해 21일까지 공연 중이야. 영화 광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광해가 연극으로 개작되어 공연 중이라는 것도 꽤 알려졌을 거야.

 

사실 같은 줄거리를 놓고 영화와 연극을 어떻게 차별화할 지가 제작진의 고민거리였을 텐데, 그 부분에선 꽤 훌륭해. 오히려 대본의 완성도는 영화보다 우수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영화에서 구멍으로 보였던 부분들이 싹 사라졌어. 출연진의 화려함으로 치자면 이병헌-류승룡-한효주가 나온 영화에 비길 수 없겠지만, 광해/하선(배수빈, 김도현)-허균(박호산, 김대종)-중전(임화영) 라인업도 매력적이야. 특히 영화에선 상징으로 처리됐던 하선의 뒷얘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볼만한 작품이기도 하더군. S석은 35천원.

 

볼만한 공연이 많다 보니 나머지는 책 한 권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4월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프라하의 묘지.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이번엔 19세기 음모설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괴문서 유대 장로들의 의정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어.

 

그렇다 보니 이 책은 너무나 한국인들의 정서를 꿰뚫는 느낌이야.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폐부를 찔러. 예를 들면 극중 회의주의자 게동이 하는 이런 말을 들어 봐.

 

무엇하러 책을 쓰고 감옥에 간단 말입니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원래 공화주의자이고, 문맹이라서 책을 읽지 못하는 농민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통 선거권을 얻어도 독재자를 지지하는 판에.” 물론 루이 나폴레옹이 제2공화정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제2제정 시대를 연 당시의 프랑스 정국을 비꼰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기막히게 와 닿는 얘기가 아닌가 싶어. 그런 의미에서 한번 읽어볼 만 한 책이야.

 

 

김선욱,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          3만원

연극 광해                                             35천원

교향악 페스티발 중 1                                 2만원

움베르토 에코, ‘프라하의 묘지                           12500원 내외

 

 

 

 

자칫하면 연극 '광해'의 종영도 지나쳐 버릴 참입니다. 21일까지.

지명도는 당연히 배수빈이 앞서지만 김도현-임화영 커플의 앙상블이 더 좋다는 평도 있습니다. 아무튼 보실만 합니다.

 

'프라하의 묘지'는 에코 선생의 전작들에 비해 그리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보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솔직히 말해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등과 이 분의 작품을 비교해 보자면, 단행본 3권짜리 어린이용 삼국지와 10권짜리 박종화 삼국지(혹은 이문열 삼국지)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아무튼 음모설 좋아하기로는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듯한 한국인들이 꼭 봐야 할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문득 또 위에 인용한 문장이 마음에 걸리네요. 음모설 따라다니는 분들이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고, 이런 책 읽을 사람은 이미 음모설은 그냥 음모설이라는 걸 아실 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재미있습니다. 강추.

 

왠지 부실한 포스팅이 된 듯 한 느낌이라 사죄의 의미로 벚꽃 짤방.

 

 

 

 

찍어놓고 보니 천녀유혼 배경 같군요.

내년 봄까지 벚꽃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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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 사실 장옥정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조선 숙종 때의 유명한 희빈 장씨의 이름이 옥정이라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꽤 긴 시간 동안 이 여인은 그냥 '장희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그리고 흔히 사람들은 조선 명종 때의 정난정, 연산군 때의 장녹수와 함께 '조선 3대 악녀'라는 이름으로 이 여인을 불러 왔습니다. 들으면 바로 아시겠지만 모두 TV 사극이 사랑해 온 여인들입니다. 이 뒤를 이어 광해군 때의 개시 김상궁, 인조 때의 소용 조씨 등이 '3대 악녀'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인물들이죠.

 

하지만 이런 인물들에게도 다 이유가 있는 법. 특히 장희빈 장옥정의 경우는 역사적 환경을 살펴보면 볼수록 그냥 '악녀'로 불리기에는 억울한 부분이 꽤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번에 시작하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이런 역사적 환경을 훌쩍 넘어서, 아예 새로운 판타지적 해석을 해 냅니다만...

 

 

 

 

어쨌든 장옥정이라는 여인의 삶을 한번 살펴 봤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런 구도입니다.

 

 

장희빈(1659?~1701)

 

사극이 시청률을 올리는 방법 중에 사약 신이 있다. 같은 사약이라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먹고 피를 토하는 게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실제 사약의 성분상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사약 신이라면 아무래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와 장희빈을 떠올리게 된다. 폐비 윤씨의 경우엔 비단 섶에 피를 토하며(물론 기록엔 그냥 피눈물이다) “내 아들이 왕이 되면 이것을 전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그리고 장희빈의 경우에는 조선 왕조 최고의 독부답게 약사발을 비운 뒤 그대로 쓰러지지 않고 한참 동안 몸부림을 치다가 죽음을 맞는 것이 보통이다. 장희빈을 연기한 수많은 여배우 중에서도 사약 신으로는 이미숙이 첫 손에 꼽힌다. 1981 MBC TV 드라마 여인열전에서 돌계단을 구르며 신음하던 이미숙표 장희빈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문정의 수문록(隨聞錄)’ 에는 더 지독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야사에 따르면 장희빈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뒷날의 경종)의 얼굴을 보기를 청한다. 허락을 받은 세자가 통곡을 하며 나타나자 장희빈은 내가 너희의 후손을 이어 줄 줄 알았더냐!”하는 악담을 퍼부으며 최후의 기력을 다해 왕자의 사타구니를 강타하고(反出不忍說之惡言肆其毒手侵及下部), 세자는 혼절한다. 장희빈은 그제야 깔깔 웃으며 사약을 들이킨다. 경종의 후사가 없었던 탓에 뒷날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장희빈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진을 구할 수 없어 '동이'에서 이소연의 사약 신으로 대체했지만 당시 이미숙의 사약 연기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댓돌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단말마의 모습... 아무튼 '수문록'의 기록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들을 성불구로 만들었다는 말인데, 사실이라면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악의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경종은 병약했고,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숙빈 최씨-'동이'-가 낳은 연잉군이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죠.) 

 

1990년대 이전까지 장희빈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는 이런 세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숙하고 현명한 인현왕후 민씨와 아름다운 악녀 희빈 장씨가 숙종을 놓고 삼각관계를 펼치고, 장희빈에게 빠진 숙종이 한때 총기를 잃어 어진 아내와 충신들을 멀리 하지만, 결국엔 제 정신을 차리고 악인들을 단죄한다는 교훈담이다. 이른바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나 고대 소설 인현왕후전의 충실한 재현이다. 당연히 장희빈 역은 당대의 섹시 아이콘들이 돌아가며 맡았고, 인현왕후 역에는 청순미 넘치는 전통적인 미인들이 들어섰다. 팀 장희빈의 김지미 남정임 윤여정 정선경 김혜수 등과 팀 인현왕후의 이혜숙 박순애 박선영 박하선 등을 보면 그 특징이 확연하다.

 

하지만 김혜수가 타이틀 롤을 맡은 2003년작 장희빈(KBS)’ 이후 장옥정을 당쟁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희빈 이전의 여자 장옥정은 여러 모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중인 가문의 딸로 태어나 일개 궁녀에서 출발해 왕의 정실인 왕비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그 하나뿐이다. 비록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 뒤 사약을 받아 끝내 장희빈이란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말이다.

 

 

일단 숙종 시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남인과 서인의 대립이 치열했던 시기. 장옥정의 아버지인 역관 장경은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역시 역관 출신인 백부 장현은 당대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당시 역관들은 사신단의 일원으로 허가받은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특히 장현은 소현세자와 효종이 청에 인질로 갔을 때 호종한 공로로 위세도 등등했다.

 

그런 장현이 남인 세력의 재정적 후원자였으니 장옥정 또한 남인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인현왕후 민씨는 그야말로 노론 핵심 가문의 딸이었다. 큰아버지 민정중과 아버지 민유중은 당대 서인의 영수였고, 친정 오빠들인 민진후, 진원 형제 역시 당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만만찮은 왕, 숙종이 있다. 1674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숙종은 세 차례의 환국(換局)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초기에는 남인이 다소 우세했지만 집권 6년째인 19세 때 경신환국(1680)으로 서인에게 권력을 넘겼고, 28세때엔 다시 기사환국(1689)으로 남인들의 세상이 왔다. 그리고 33세 때, 갑술환국(1694)으로 다시 서인들이 집권하게 된다.

 

이렇게 신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 숙종은 할아버지 효종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며 송자(宋子)라고 불릴 정도로 서인들의 추앙을 받던 송시열에게까지 사약을 내리는 냉혹함을 보였다. 숙종 이후 어떤 왕도 이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갖지는 못했다. 아무리 봐도 여색에 혹해 정치적 오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숙종이었기에 인현왕후를 내치고 장옥정을 중전으로 삼은 것이나(남인의 손을 들어 줌),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옥정에게 사약을 내린 것(서인의 손을 들어 줌) 모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겐 사랑도 정치의 연장선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삭막한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니 김태희가 제9대 장희빈으로 나서는 SBS TV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패션에 뛰어났던 궁녀 장옥정과 청년 왕 숙종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옥정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끝)

 

** 뒤늦게 보게 된 시놉시스에 따르면 '사랑하는 여인을 권력을 위해 결국 죽음으로 밀어 넣는 비운의 왕'으로 그려진다는군요. 그럴듯합니다.^^

 

 

이렇습니다. 벙자호란 이후 조선 정치사를 살펴보면, 그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발휘한 왕은 성군으로 알려진 영조나 정조가 아니라 숙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정조 시대만 해도 신하들의 세력을 무시한 왕정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던 반면 숙종은 당쟁을 이용해 어느 한 파벌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왕권을 구축하는 노련함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정치적 격변에 따라 후궁이 요동을 칩니다. 결과적으로 숙종이 서인들의 손을 들었기에 장희빈은 악역, 인현왕후는 선인 역을 맡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당시 남인에게 최종 우승기가 돌아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사극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대중 일반에게 전해진 장희빈 이야기는 사실 역사의 승자였던 인현왕후의 친정 쪽, 즉 서인 쪽(그중에서도 노론)의 입장에서 다분히 강조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

 

 

어쨌든 장옥정이 그렇게 악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스토리는 역사적인 배경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아예 시작부터 팩션이고, 판타지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무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예 종류가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는 전통적인 사극의 인기 캐릭터인 악녀의 모습을 보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시놉시스상으로는 한승연이 연기하는 최무수리(숙빈 최씨, 즉 '동이'의 한효주)가 오히려 악녀로 묘사될 것 같기도 한데, 어찌 될 지는 두고 볼 일.

 

아울러 김태희가 이번 작품을 통해 그동안 수없이 약점으로 지목됐던 연기력 논란을 떨쳐 버릴 수 있을지. 그 또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악녀 캐릭터가 아쉬운 분은 주말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쪽을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인조 때의 요부 소용 조씨(사실 궁녀로는 귀인의 자리까지 올라갑니다만, 이상하게도 소용 조씨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합니다) 역을 맡은 김현주의 연기가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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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 주말 밤의 볼거리로 서서히 위력을 드러내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최근 김종서 편이 방송된 JTBC [히든 싱어]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6명의 목소리가 한 가수의 노래를 부릅니다. 놀랍게도 여섯 명이 모두 똑같은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진짜 가수는 그중 하나뿐입니다.

 

그동안 '모창'이라는 영역은 명절 때의 특집 프로그램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했습니다. 예능의 레드 오션 영역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히든싱어'가 그 의미를 바꿔놨습니다. 그동안 박정현, 김경호, 성시경, 조관우, 이수영, 그리고 김종서까지 여섯 명의 가수가 출연했는데, 출연한 가수 모두 출연자들의 수준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잇따랐습니다.

 

단순히 한 가수의 노래를 똑같이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 이런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재미는 물론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죠. 그건 바로 팬과 가수의 끈끈한 관계에서 오는 애정입니다. 특히 김종서 편에 출연한 시각장애인 이현학씨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1급 시각장애인인 이현학씨는 놀라운 노래 솜씨로 마지막 4라운드까지 진출했습니다. 여기서 이상학씨는 상금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다는 소박한 사연을 전했습니다.

 

 

 

 

 

사연을 들은 김종서가 "내가 떨어지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그리고 파이널 라운드입니다.

 

 

자, 이 셋 중 누가 진짜 김종서였을까요.^^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히든 싱어'는 그냥 모창 프로그램이 아니라 팬들이 만드는, 가수에 대한 트리뷰트 프로그램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그 가수를 사랑하고, 그 가수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목소리에 담아 부르느냐가 드러나는.

 

김종서 자신도 "조용필의 목소리가 갖고 싶어서 일부러 탁성을 내기 위해 성대를 망가뜨리려 한 적도 있다. 조용필씨가 골초라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나도 닥치는대로 담배를 피웠다"고 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팬들의 이런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용필씨는 현재 금연중입니다.^^)

 

사실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과 많이 다릅니다. 실용음악과 재학생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가수와 상관 없는 직업을 갖고 있고, 그리 넉넉지 않은 분들도 꽤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특정 가수, 자신이 잘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수의 노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팬으로 시작했다가, 모창이 취미이자 특기가 된 사람들인 것이죠. 그래서 재미로 하는 모창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런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살아남는 것입니다.

 

 

 

 

'히든싱어' 이수영 편에 출연했던 김재선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남자 이수영'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김재선씨는 "내가 힘들때 위로가 되었던 이수영을 직접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고, 이제 내 노래가 이수영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털어놔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물론 모든 가수가 히든싱어에 출연해 이런 감동을 연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팬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그 자신이 모창왕으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는 신승훈.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흉내내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히든싱어' 신승훈 편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신승훈씨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분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승철 이은미 등도 마찬가지. 하지만 세상엔 워낙 사람도 많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도 많다 보니 찾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역시 독특한 목소리로 유명한 백지영도 흉내낼 수 있는 도전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의외로 몇몇 인재들이 발견되어 백지영 편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됐습니다.

 

성시경 편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방송된 6편 중에서, 오락 프로그램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박정현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문이 열리면서 여섯 명의 박정현이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부르던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출연자 중 한 사람을 꼽자면 아무래도 김경호 편에 나왔던 원킬.

 

 

 

 

앞으로도 '히든 싱어'는 바비킴 장윤정 등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팬심 가득한 분들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수든, 주변에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분들이 있으면 적극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135&menu_id=PM10015608&bbs_code=BB10010241

 

그리고 언제쯤, 오리지널 가수를 꺾고 최종 상금을 획득하는 분이 나타날지도 매우 궁금합니다. (1등은 하지 못했지만 오리지널 가수에 이어 2등을 하신 분들은 6월쯤 '히든싱어' 시즌1이 끝날 무렵에 스페셜 가요제에서 다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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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든 드라마든, 유난히 제목이 헷갈리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비슷한 제목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어의 조합이 자연스럽지 않아 더 자연스러운 쪽을 찾아가는 경향도 있죠.

 

어떤 쪽이든 대개는 '제목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최근 1200만 관객을 넘어 선 '7번방의 선물'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설마 없겠죠. '홍보 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흥행 성적입니다. 그렇다고 제목이 너무 길어서 헛갈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렇게 제목이 헛갈리는 작품들이 대부분 흥행에서는 꽤 좋은 성적들을 냈더라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어떤 영화들이 있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바로 아래 포스터에 쓰여 있는 영화 제목을 한자 한자 정확하게 읽어 보시고, 스스로 반문해 보세요.

 

당신은 정말 이 영화의 제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정확한 제목은 '내가 살인범이다'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고, 심지어 '내가 살인자다', '나는 살인자다'로 착각한 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작품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목: ‘세상의 끝’, 아니고요, ‘세계의 끝입니다.

 

관객 천만명이 넘었는데도 제목이 헛갈리는 영화가 있다. 바로 ‘7번방의 선물이다. 아마 아직도 ? 내가 본 영화는 ‘7번방의 기적인데…”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7번방의 기적이란 영화는 없다.

왜 이런 착시현상이 생겼을까.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인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 이후로 유사 제목이 특히 한국에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에 참여한 1987년작 ‘Batteries not included’는 국내 개봉 때 8번가의 기적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임창정과 하지원이 주연한 1번가의 기적 도 흥행에선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왠지 제목만큼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QTV에서 신동엽이 진행하는 7번가의 기적 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7번방의 기적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이야 대박이 났으니 별 상관 없겠지만, ‘7번방의 선물관계자들은 엉뚱한 제목을 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덜컹 덜컹 내려앉았을 거다. 사실 필자도 요즘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 다름아닌 새 드라마, ‘세계의 끝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이 연출하고 윤제문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치사율 100%의 변종 바이러스가 한국을 덮치면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린 드라마다. 316일부터 매주 주말에 방송되고 있다. 포스터에서부터 세기말적인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하며, 서울 시내가 아비규환으로 변한다는 설정 하며 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싶었다. 본래 배영익 작가의 원작 소설 전염병에서 비롯된 작품이니 그냥 드라마 제목도 전염병으로 했으면 좋았겠으나 2010년 보건복지부가 전염병이라는 단어를 아예 감염병이라는 말로 바꿔 버렸다. 그렇다고 감염병이란 생소한 단어를 드라마 제목으로 붙일 수도 없지 없지 않은가.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계의 끝이란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世界りとハドボイルドワンダランド)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스키터 데이비스의 올드 팝 히트곡 ‘The end of the world’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절대 낯선 제목이 아니다.

그런데 제목을 확정한 바로 다음 날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새 드라마 세상의 끝말인데요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7번방의 선물아니라도 비슷한 제목이 있으면 헛갈릴 수 있다. 박시후 주연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나는 살인범이다로 잘못 쓴 기사만 해도 수백건이다. 당연히 나는 가수다 의 영향일 게다. 외화의 경우도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두 영화 디 아더스디 아워스를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좀 더 코믹한 경우로는 슈퍼맨 비긴즈배트맨 리턴즈가 있다(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2’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 하는 순간 또 헷갈리는 분들. 네. 슈퍼맨은 '리턴즈'가 맞고 배트맨은 '비긴즈'가 맞죠. 하지만 그게 또 끝이 아니라는 거...^^ 저 아래쪽에 보충 설명 나갑니다.)

 

하지만 세상의 끝이란 제목은 어디에도 없는데 왜 혼동을 가져오는 것일까. 정정해 줘도 심각하게 “‘세계의 끝’? ‘세상의 끝이 아니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봐, ‘신세계신세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잖아라고 항변했지만 그제야 알았다. 한국인에게는 세계보다세상이 훨씬 더 일상적인 단어라는 것을.

류시원 김희선이 주연한 왕년의 드라마도 세상 끝까지이고, 빔 벤더스 감독의 1991년작‘Until the end of the world’이 세상 끝까지로 번역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탓을 해도 소용 없는 것이, 역시 일본 베스트셀러인 世界中心で、をさけぶ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번역됐다. ‘그 번역만 독특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재치있는 포털 검색 담당자 덕분에 세상의 끝을 검색해도 바로 드라마 세계의 끝이 뜬다. 그리고 위에서 예로 든 작품들 대다수가 흥행 성과가 썩 나쁘지 않았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부디 세상 끝까지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해 본다. (끝)

 

 

아시는 바와 같이 '7번방의 선물'은 1200만, '내가 살인범이다'는 300만 고지를 넘어서며 흥행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끝'도 방송을 시작한 뒤까지 여전히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비해 아직 시청률 면에서는 아직 대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놀라운 완성도와 스케일, 그리고 윤제문, 장경아 등의 탄탄한 연기가 호평받고 있습니다.

 

'슈퍼맨 비긴즈'와 '배트맨 리턴즈'는 당연히 영화 '슈퍼맨 리턴즈'와 '배트맨 비긴즈'를 혼동해서 쓴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아는 분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놀란의 3부작 중 첫 작품은 분명 '배트맨 비긴즈'지만 '배트맨 리턴즈'라는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 버튼이 만든 배트맨 시리즈의 두번째 영화, '배트맨 2'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영화의 부제가 바로 '배트맨 리턴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배트맨 리턴즈'라는 표기를 어디선가 보게 되면 혹시 팀 버튼의 영화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슈퍼맨 비긴즈'의 경우에도 미드 '스몰빌'을 국내에서 방송할 때 이 제목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래 저래 확인이 필요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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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첫 주말이 지나갔습니다. '인조' '김자점' '소용 조씨'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등 관련 검색어들이 주말 내내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물론 가장 오래 떠 있던 검색어는 아무래도 소현세자빈 역의 '송선미' 였지만)하더군요. 물론 검색의 동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뭐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됐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2회에서는 인조(이덕화)와 김자점(정성모)의 질긴 인연이 중요한 요소로 그려졌습니다. 1636~37년에 걸친 병자호란이 끝났을 때, 인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도원수 김자점을 죽였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도원수는 오늘날의 육군 참모총장.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항복을 하는 상황에서 도원수가 멀쩡히 병력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죽어 마땅한 죄죠.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자면 1623년,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될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에 다뤄졌죠.

 

 

 

 

 

일단 인조반정의 주역들을 인명록처럼 살펴보겠습니다. 1623년 3월12일(음력)로 돌아갑니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기록입니다. 광해군의 마지막 날이죠.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부장 이귀【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은 최명길(崔鳴吉)【전 병조 좌랑.】·김자점·심기원【유생.】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김경징(金慶徵)【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신경인(申景摠)【도총도사(都總都事).】·이중로(李重老)【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장유(張維)【전 한림.】·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유생.】·신경유(申景裕)【무신인데 전 부사이다.】·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유생.】·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무신.】·최내길(崔來吉)【사예.】·한교(韓嶠)【전 현감.】·원유남(元裕男)【전 병사.】·이의배(李義培)【무장.】·신경식(申景植)【전 현감.】·홍서봉(洪瑞鳳)【전 승지.】·유백증(兪伯曾)【전 좌랑.】·박정(朴茢)【승문원 정자.】·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역사 상식. 광해군 때의 정권 주도 세력은 북인, 특히 대북이었고 인조 반정의 주역들은 서인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소장파였던 서인들은 벼슬이 없거나, 부사/좌랑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병사로 임명된 이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내쫓기던 중종반정 때에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양다리를 걸쳤듯 인조반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이 반정 음모를 입수하고 궁성 경비를 맡긴 이흥립이 바로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으니 이건 뭐 성공하지 못하면 이상할 지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조실록의 첫번째 기사, 즉 3월13일 기록된 인조반정의 상세한 내막을 보면 참 진행 과정이 가관입니다. 어쩌면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엉성한 반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엉성한 음모에도 무너질 정도로 광해군 하대의 정국은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최근 역사가들의 우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그리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하선이 아니고 진짜 광해여서 그랬는지도.^^)

 

 

 

 

인조반정 기사입니다.

 

 

 상(=능양군, 즉 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켜 강화(江華)로 내쫓고 이이첨(李爾瞻) 등을 처형한 다음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다.


 상은 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원종 대왕(元宗大王)【 정원군(定遠君)으로 휘는 이부(李琈)인데, 추존되어 원종이 되었다.】의 장자이다. 모후는 인헌 왕후(仁獻王后)구씨(具氏)【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이다. 추존되어 왕후가 되었다.】로 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만력 을미년(1595년) 11월 7일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탄생하였으니, 당시 왜변이 계속되어 왕자 제궁(王子諸宮)이 모두 해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선묘(宣廟)께서는 이것이 한 고조(漢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크게 애중하여 궁중에서 길렀고, 친히 소자(小字)와 휘(諱)를 명하고 깊이 정을 붙였으므로 광해가 좋아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큰 도량이 있었다. 여러 번 자급이 올라가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져서는 더욱 겸양하면서 덕을 길렀다.


(중략. 중간 내용은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반정의 정당성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죠.)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무인 이서(李曙)와 신경진(申景禛)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 및 구굉(具宏)·구인후(具仁垕)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속이었다. 이에 서로 은밀히 모의한 다음, 문사 중 위엄과 인망이 있는 자를 얻어 일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곧 전 동지(同知) 김류(金瑬)를 방문한 결과 말 한 마디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추대할 계책을 결정하였으니, 곧 경신년(1620년)이었다. 그 후 경진이 전 부사(府使) 이귀(李貴)를 방문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귀도 본래 이 뜻을 두었던 사람이라 크게 좋아하였다. 드디어 그 아들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및 문사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 유생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등과 공모하였다. 이로부터 모의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3년 된 음모. 이렇게 3년에 걸쳐 모의가 진행됐고, 참여자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음모가 소문이 아니 날 재주가 없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주동자인 이귀가 입이 싸서 '음모가 자주 누설되었다'고 되어 있을 정도.)

 
임술년(1622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애를 입은 김상궁 김개시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1차 위기.)

 

신경진과 구인후 역시 당시에 의심을 받아 모두 외직에 보임되었다. 마침 이서가 장단 부사(長湍府使)가 되어 덕진(德津)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하여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 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당시 정승 박승종(朴承宗)과 서로 인척이 되는 사이라 뭇 의논이 모두들 ‘도감군(都監軍)이 두려우니 반드시 이흥립을 설득시켜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장유의 아우 장신(張紳)이 흥립의 사위였으므로 장유가 흥립을 보고 대의(大義)로 회유하자 흥립이 즉석에서 내응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이서는 장단에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고 이천 부사(伊川府使) 이중로(李重老)도 편비(褊裨)들을 거느리고 달려와 파주(坡州)에서 회합하였다.

 

(도감군이란 바로 훈련도감의 정예병. 말하자면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이 되는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훈련대장 이흥립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반(李而攽)이란 자가 그 일을 이후배(李厚培)·이후원(李厚源) 형제에게 듣고 그 숙부 이유성(李惟聖)에게 고하자, 유성이 이를 김신국(金藎國)에게 말하였다. 이에 신국이 즉시 박승종에게 달려가 이이반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게 하고 또 승종에게 이흥립을 참수하도록 권하였다. 이반이 드디어 고변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12일 저녁이었다.

 

그리하여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고 먼저 이후배를 궐하에 결박해놓고 고발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하는데, 광해는 바야흐로 후궁과 곡연(曲宴)을 벌이던 참이라 그 일을 머물러 두고 재결하여 내리지 않았다. 승종이 이흥립을 불러서 ‘그대가 김류·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하므로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하자 곧 풀어주었다.

 

(이흥립의 평소 처신이 좋았던 것인지... 광해군 말년에 정말 인물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위에서 보듯 이흥립은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반정 핵심인 장유의 아우의 장인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광해군의 측근인 박승종과도 사돈 사이입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기든 내게 설마 해를 입힐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 인조반정 때의 실록 기사를 보면 어찌나 5.16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지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양다리에 능했던 이흥립은 결국 반정에 참여한 댓가로 공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 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도성으로 쳐들어 온 이괄 앞에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한편으로 몰린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거병 소식을 박승종에게 고발한 김신국이 인조 즉위 후에도 중용됐다는 점입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의병은 이날 밤 2경에 홍제원(弘濟院)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김류가 대장이 되었는데 고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포자(捕者=체포하러 오는 관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를 죽이고 가고자 하였다. 지체하며 출발하지 않고 있는데 심기원과 원두표(元斗杓) 등이 김류의 집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시기가 이미 임박했는데, 어찌 앉아서 붙잡아 오라는 명을 기다리는가.’ 하자 김류가 드디어 갔다.

 

(솔직히 '나를 잡으러 오는 놈을 베고 가려 했다'는 말은 핑계로 들립니다. 오히려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움츠리고 앉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른 기록에는 '포자를 죽이고 가겠다'는 호기있는 표현보다 '이렇게 된 이상 체포될 뿐'이라고 말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귀·김자점·한교(韓嶠) 등이 먼저 홍제원으로 갔는데, 이때 모인 자들이 겨우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김류와 장단의 군사도 모두 이르지 않은 데다 고변서(告變書)가 이미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흉흉하였다. 이에 이귀가 병사(兵使) 이괄(李适)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 김류가 이르러 전령(傳令)하여 이괄을 부르자 괄이 크게 노하여 따르려 하지 않으므로 이귀가 화해시켰다.

 

(정작 군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이괄 뿐이었는데 반정의 공로를 가를 때 이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결국 이것이 반정 1년 뒤, 이괄의 난의 계기가 된 것이죠. 저런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김류가 금세 장 행세를 하고, 정작 군대를 이끈 이괄에게 2등 공신 자리밖에 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상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서 이서(李曙)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바로 '꽃들의 전쟁'에 나오는 '김자점이 능양군을 찾아가 설득해서 끌어냈다'는 부분은 이 대목이라야 할텐데, 실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려실기술'에는 능양군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경계해 일찌감치 가솔들을 거느리고 연서역에 나와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김자점은 초기 능양군을 임금 감으로 점찍어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그 뒤로도 인조가 김자점을 감히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인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장단의 군사(=장단부사 이서가 거느린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이귀·심기원·최명길·김자점·송영망(宋英望)·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하여 군사를 단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敦化門)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문(後苑門)을 통하여 달아났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궁전이 연소하였다.
 
상이 인정전(仁政殿) 계상(階上)의 호상(胡床)에 앉았다. 궁중의 직숙관(直宿官)이 모두 도망쳐 숨었다가 잡혀왔는데, 도승지 이덕형(李德泂)과 보덕(輔德) 윤지경(尹知敬)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배례를 드리지 않다가 의거임을 살펴 알고는 바로 배례를 드렸다. 명패(命牌)를 내어 이정구(李廷龜) 등을 불러들이니, 새벽에 백관들이 다 모였다.

 

박정길(朴鼎吉)이 병조 참판으로 먼저 이르렀는데, 판서 권진(權縉)이 뒤미처 이르러 ‘정길이 종실(宗室) 항산군(恒山君)과 함께 군사를 모았는데, 지금 들어왔으니 아마도 내응할 뜻을 둔 것 같다.’라고 하였으므로 곧 정길을 끌어내어 참수하였다. 항산군을 잡아다 문초하니, 혐의 사실이 없어 석방하였다. 그런데 정길은 당연히 참형을 받아야 할 자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참수를 통쾌하게 여기었다.

 

(그러니까 박정길이 죽은 것은 혼란중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미움 받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의미. 항상 혁명 때에는 반혁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얼른 궁으로 찾아온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오해를 풀지 못할 정도로 혁명 주체들과 평소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그리고 상궁(尙宮) 김씨(金氏)와 승지 박홍도(朴弘道)를 참수하였다. 김 상궁은 선묘(宣廟)의 궁인으로 광해가 총애하여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권세를 내외에 떨쳤다. 또 이이첨의 여러 아들 및 박홍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무상으로 출입하였다. 이때에 와서 맨 먼저 참형을 받았다. 홍도는 흉패함이 흉당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자라 궐내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광해는 상제가 된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도망쳐 국신이 쓰던 흰 의관을 쓰고 있는 것을 국신이 와서 고하므로 장사들을 보내 떠메어 왔고, 폐세자(廢世子)는 도망쳐 숨었다가 군인들에게 잡혔다.
 
상이 처음 대궐에 들어가 즉시 김자점(金自點)과 이시방(李時昉)을 보내 왕대비(王大妃)에게 반정한 뜻을 계달하자, 대비가 하교하기를 ‘10년 동안의 유폐 중에 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중에 승지와 사관(史官)도 없이 이처럼 직접 계문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이 복명하여 아뢰자 상은 곧 대장 이귀(李貴)와 도승지 이덕형, 동부승지 민성징(閔聖徵) 등에게 명하여 의장을 갖추고 나아가 모셔오게 하였다. 이에 이귀 등이 경운궁(慶運宮)에 나아가 사실을 진계하며 누차 모셔갈 것을 청하였으나 대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이 이에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갔다.

 

유사가 연(輦)을 등대하고 위의를 베풀었으나 상은 이를 모두 거두라 명하였다. 교자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말만 타고 가면서 광해를 떠메어 따르게 하였는데, 도성 백성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오늘날 다시 성세를 볼 줄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이하는 생략. 어쨌든 무력으로 궁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열상 광해군의 모후 뻘인 인목대비의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광해군은 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것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받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인목대비의 인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죠. 다만 인목대비는 은근히 '누가 새 왕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해군을 죽여서 내 아들(영창대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강해 공신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옥신각신합니다. 이때 이귀가 인목대비와의 기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인조반정의 핵심 주체 사이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류, 최명길, 심기원, 원두표, 구인후, 김자점 등 인조반정의 주체들은 14년이 지난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점에도 정국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점을 해칠 수 없는 것은 김류의 조언 때문입니다. 사실은 인조보다는 김류에게 김자점이 더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 혁명 주체 세력은 같은 서인 출신이지만 뒤늦게 사림에서 정치에 나선 송준길, 송시열, 김상헌 등의 인물들에게 위협을 느낍니다. 특히나 패전에 대한 책임이나 명에 대한 의리의 선명성에서 이들은 뭔가 뒤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혁명 주체 세력의 투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용도로 김자점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이건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건 말건, 김자점은 왕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 '꽃들의 전쟁'의 출발점이니까요.

 

아무튼 김자점의 생애와 의혹(그는 정말 반란을 꿈꿨나?)에 대한 부분은 다른 글에서 조명해 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절해고도에서 인조의 배신과 옛 인연을 되새기다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김자점 역의 정성모. 정말 대단한 에너지의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장면은 두고 두고 '궁중잔혹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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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분노의 추격자] 퀜틴 타란티노가 만든 '장고'의 리메이크에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원제인 Django Unchained 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은 아닙니다만, 뭐 '사슬에서 풀려난 장고'라고 할 것도 아니고, 영화 내용과는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많은 구세대들들은 '장고'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몇가지의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수염이 바늘처럼 송송 자라난 프랑코 네로의 얼굴, 말을 타고 멋지게 달리는 대신 관을 끌고 다니는 괴상한 카우보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관 속에서 튀어나오는 *** (과연 1966년작 영화의 내용을 갖고 스포일러를 따져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려 두겠습니다.^^).

 

어쨌든 오리지널 '장고'는 최고의 오락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드레날린 아티스트 퀜틴 타란티노가 리메이크한다는데, 기대가 가지 않을 리가 없었죠.

 

그리고 많은 아저씨 관객들은 외쳤습니다. "젠장, 장고라니! (말년에) 관뚜껑 그림자도 못 봤는데 장고라니!"

 

 

 

가장 기대에서 어긋났던 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격자'는 1966년작 오리지날 '장고'와 사실상 아무 상관 없는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 외에는 전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로 위 사진, 스쳐 보기만 해도 '장고다!'라고 할 수 있는 저런 모습의 '오리지날 장고 비주얼'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혀.

 

 

 

 

사슬에 묶여 이동하고 있던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국 서부 사막을 떠돌던 슐츠 박사(크리스토프 발츠: 발츠라고 읽을지 월츠라고 읽을지 늘 갈등되는 상황)의 도움으로 구조됩니다. 그리고 장고에겐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연인 브륀힐데(케리 워싱턴)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죠.

 

일단 장고에게 킬러로서의 천부적인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슐츠는 그를 현상금 사냥의 조수로 쓰는 한변, 브륀힐데를 산 대농장주 칼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찾아내 장고와 브륀힐데를 재회할수 있게 해 주려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구세대들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아니 대체 이 영화에 왜 장고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 일단 '오리지널 장고'를 구성하는 시각적 표현물, 즉 푹 눌러 쓴 모자와 밤송이 수염, 지저분한 외양과 질질 끌고 다니는 관 같은 것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도 안 끌고 다니는 장고가 장고냐'는 말이 나올 법 합니다.

 

물론 타란티노는 당연히 할 말을 다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장고' 이후에 수십편의 영화가 '장고'라는 주인공을 이리저리 울궈먹었는데 그걸 다 관통하는 공통점이라도 있다는 거냐. 전혀 계승할 생각 없었다. 그런 걸로 따지지 마라. 뭐 영화 속에서 20세기 역사도 제 멋대로 바꾼 적 있는 타란티노니까 가질 수 있는 당당한 태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장고'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없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솔직히 플롯 면에서 뛰어난 점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단순 과격의 정서입니다. 관객에게 쓸데없는 추론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 같기도 합니다.

 

각각의 사건은 꽤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개별적인 사건들이 대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있나를 따지는 건 매우 곤란합니다. 그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서부극'이라는 뜻의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대신 '서던(Southern: 이 영화의 무대가 미국 서부가 아니라 남부라는 뜻에서. 물론 서부극의 주 무대인 텍사스는 더 남쪽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지만, 당시의 텍사스는 '미국'이 된지도 얼마 안 되는 서쪽의 황무지였죠)이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이 영화는 너무도 뼈속까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정수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의 위치를 따지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과 테렌스 힐의 '내 이름은 튜니티' 시리즈의 딱 중간 정도?

 

 

 

사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에 대한 일부 평론가/기자 양반들의 지나친 의미 부여가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독일계로 설정되어 있는 슐츠 박사라는 인물입니다. 이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전작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Ingrorious Bastards)'에서 나치 장교 역을 맡았죠.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또 독일계 미국인이 오히려 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이것 역시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얘깁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얘기는, 크리스토프 발츠라는 배우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것. 정말 최곱니다.

 

영화의 결말을 건드리게 될까봐 살짝 위태롭기도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악당 캔디 역시 '극악무도한 미친 놈'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약간 부당하긴 하지만, 어쨌든 '비즈니스'를 할 생각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성을 잃는 것은 우리 편, 즉 정의의 편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정의의 편(?)은 모든 문제를 좀 더 평화롭고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었죠. 하지만 감독이 타란티노이다 보니 불행히도 그런 진행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냥 즐겁게, 피의 향연을 즐기면서, 마음 편히(?) 보시면 되는 영화.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 자신의 다른 영화를 볼 때보다 조금 더,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 만큼은 어린이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가 유치하거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유치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이 영화는 '우리는 일부러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야'라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즐기는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나 그 가이드를 충실히 이행했느냐에 달렸습니다. 평소의 자신은 극장 밖에 두고, '장고'를 본 뒤에 다시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어설픈 의미 부여나 심층적인 해석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마시구요.

 

어쨌든 개인적으론 매우 강추. (물론 역시 개인적으로, 관뚜껑이 안 나오는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더군요.)

 

 

 

P.S. 올드 '장고'를 아쉬워하는 노친네들에 대한 배려로 프랑코 네로는 한 장면 나옵니다. 술집에서 만나는 아저씨 역으로.^ 아, 물론 '마이애미 바이스'의 돈 존슨도 한 장면 걸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물론 주제가도 가져다 씁니다. 이건 '대체 오리지날 장고라는 게 뭐야' 할 분들을 위한 오리지날 장고 주제가의 뮤직비디오(?). 친절하게 '장고' 한 편에서 장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 카운트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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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기획 초기부터 '여성 사극'을 표방했던 작품입니다. '꽃들의 전쟁-여자들의 정치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 사극'이라는 말은 사극 중에서도 특정한 작품군을 떠오르게 합니다. 대개 고전이 된 '개국'에서부터 '무인시대', '연개소문'으로 이어지는 KBS 대하사극풍의 작품들을 '남성형 사극'이라고 부른다면 '여성 사극'은 오래 전 MBC를 통해 방송된 '여인 열전'에서 SBS 사극의 정점을 찍었던 '장희빈'과 '여인천하'류, 그리고 JTBC의 개국 콘텐트로 큰 역할을 했던 '인수대비'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분명합니다. 주로 궁정이나 양반가의 규방이 주 무대가 되죠. 그리고 성격상 호쾌한 액션이나 군중을 동원한 몹 신보다는 오밀조밀한 대사를 통해 갈등과 해소가 이어집니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과 악녀의 무한대립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꽃들의 전쟁'은 이런 전형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19일 선공개된 1회 영상(본 방송은 3월23일)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에 선공개된 1회 영상은 실제로는 1회를 조금 넘어 2회 앞부분까지 살짝 걸치는 내용입니다. 대작의 위용을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간에 영상을 교체하는 바람에 카운트가 내려갔는데, 약 18시간만에 5만명 가량이 이 영상을 보시고 호평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간략한 도입부 줄거리.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겨울을 넘겨 새해를 맞은 조선 16대 왕 인조(이덕화). 정축년 초 마침내 청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습니다. 김상헌(한인수)을 비롯한 척화파 대신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인조는 대군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합니다.

 

호란의 틈바구니에서 양반가의 서녀 얌전이(김현주, 훗날의 소용 조씨)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인 남혁(전태수)와 애틋한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신분 차이가 분명한 두 사람이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죠. 물론 그렇다고 얌전이가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방지축 말괄량이형입니다.

 

다시 궁정. 도원수 김자점(정성모)이 격분한 인조에게 치도곤을 당합니다. 조선의 주력군을 이끌고 임진강 언저리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죄. 하지만 영의정 김류(김종결)는 은밀히 김자점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 김자점은 절도유배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항복의 치욕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구차한 삶은 정작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세자(정성운)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상황. 세자빈(송선미)은 갓난 아들 석철과 눈물로 이별하고, 인조는 홀로 남겨진 손자 석철을 부여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인조 시대가 사극의 초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찌기 80년대 초, 컬러TV 시대를 맞은 KBS가 방송사의 위용을 떨치기 위해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사극 '대명'에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조명한 적은 있었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쟁의 끝에서 바로 효종 시대로 점프하고, 전란의 마무리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조 후기의 정치사는 한국 사극의 역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꽃들의 전쟁'은 기존의 여성 사극류와는 규모에서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간간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화나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의 치욕 장면 등은 소위 '정통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거대한 비주얼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여성 사극들과 차이나는 점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작가 정하연의 내공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정하연 작가의 정치 분석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일찌기 수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났듯, 그의 사극에는 선인과 악인의 흑백 대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갑에게는 갑의 명분이, 을에게는 을의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 눈물로 항복을 권하는 최명길과 군신이 다 같이 죽자는 김상헌. 기존의 사극이라면 어느 한 쪽에 좀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꽃들의 전쟁'에서 최명길은 세자를 청으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김상헌에게 "이제 와서 좋은 말은 혼자 다 하십니다.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신지요"라고 정면으로 맞받아 칩니다. 

 

오히려 보다 큰 간신으로 그려지는 쪽은 영의정 김류와 도원수 김자점. 김자점이야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김자점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그렇게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던' 김자점을 인조가 다시 불러 중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중량감있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키는 '여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죠.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되, 그 근거가 되는 역사나 정치 이야기가 단순화/유치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소용 조씨(김현주) - 소현세자빈 강씨(송선미)의 대립이 드라마의 축이지만, 그 사이에서 열다섯 나이에 입궁하는 장렬왕후 역의 고원희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2AM 뮤직비디오, 아시아나 모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드라마로 확 개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작발표회 때 보니 의외로 또박또박 말을 잘 하던데, 별명이 '애늙은이'라는군요.

 

 

 

 

 

그리고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깨알 재미를 책임지실 분들. 일단 침장이 역의 손병호. 가벼운 톤을 잡았는데도 존재감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이 분. 내관 역을 맡은 우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꽃미남 부문'을 책임질 전태수. 오랜만이라 그런지 각오도 남달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갖출 건 다 갖춘 '꽃들의 전쟁', 23일 '무자식 상팔자' 후속으로 공식 출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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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란 영화가 개봉하니 링컨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조명해 보자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부터 '이달의 문화인물'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매거진 M'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문화인물'이긴 합니다만, 정작 내용은 '문화 속에 비쳐 그려진 유명인물의 실상' 쪽에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쓰려니 너무 길어서 아마도 편집 측에서 그냥 '문화 인물'이라고 뭉뚱그려 묘사한 듯 합니다.^

 

아무튼 책에 나온 순서와는 달리 블로그에는 '링컨' 편부터 소개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약간 타이밍이 안 맞기 때문이죠. 물론 그 사람들도 이쪽으로 모셔올 계획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1865 1,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느 전장에서 말단 병사들과 격의 없이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병사의 입에서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가 흘러 나오자 병사들은 앞다퉈 다음 문장을 줄줄 외운다. 소집 나팔이 울리고, 부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흑인 병사도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의 첫 장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게티스버그 연설은 1863 11월의 일이니 시간적으론 가능했겠지만 역사가들은 고개를 흔든다. 거의 모든 미국인이 이 연설문을 줄줄 외우게 된 건 링컨이 죽고 나서도 한참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니까 ’.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2.12~1865.4.15)은 가장 유명한 지구인 중 한 사람이다. 그 지명도에 걸맞게 대중 문화 속에서도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 수많은 전기 영화가 일찌감치 만들어졌고(결정판은 존 포드의 1939년작 젊은 링컨이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류의 영화에선 미국을 대표하는 위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엔 뱀파이어(‘링컨:뱀파이어 헌터’)나 좀비(‘링컨 VS 좀비’)와 싸우는 히어로로 변신하기도 했다.

 

대중의 속성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 민중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삼국지의 영웅 관우는 사후 관성대제라는 이름의 신으로 승격됐고, 천년 넘게 악귀 퇴치와 재복 기원은 물론 무좀 치료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중의 친근감이 전쟁의 승리나 노예 해방 같은 거대한 업적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통나무집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가난, 독학으로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에 이른 입지전, 비극적인 최후 까지 성공 신화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여기에 유머 감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패션에 둔감한 촌사람의 이미지를 스스로 비웃는 자학 개그의 달인이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그의 유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날 국무장관 에드먼드 스탠튼이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전선에서 늘 술에 취해 있다고 험담을 했다. 링컨의 대답. “그 양반이 마시는 위스키 상표를 좀 알아 오게.” “왜요?” “다른 장군들에게도 돌리려고.”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술 좀 마시는게 대수냐는 식이다.

 

고지식한 스탠튼은 이런 그가 못마땅했다. “각하, 왜 늘 농담만 하십니까.” 대답은 그것도 안 하면 난 당장 죽네.” 링컨의 가족을 살펴보면 이런 심정도 이해가 간다. 네 아이 중 셋이 미성년일 때 죽었고 장남 로버트만 성인이 됐다(영화에서 조셉 고든 래빗이 연기한 로버트는 뒷날 미국 육군 장관을 지냈다). 아내 메리 토드는 평생 강한 집착과 낭비벽으로 링컨을 괴롭혔고, 링컨 사후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링컨 본인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 속 링컨은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미국 영토 내에서 모든 노예 제도를 금지하는수정헌법 13조의 의회 통과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 역사가들로부터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목이다. ‘노예 해방은 영화 링컨의 시점 보다 2년 전(1863 1)에 링컨 자신에 의해 이미 실현됐고, 수정헌법 13조의 통과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영화는 영화다. 그리고 스필버그가 역설하고 있는 것은 링컨 같은 인물 조차도 목적 달성을 위해선 다소 치사해 보이는 정치적 행위를 불사해야 했다는 점이다. 측근을 이용해 은밀하게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의원들에게 남부 연합의 평화 사절단의 방문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뇌물까지 사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면서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아마도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 과정에 무관심한 이상주의자들, 타이핑만 하면 저절로 멋진 나라가 만들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교육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P.S. 많은 한국인들은 링컨이 아주 먼 옛날, 아무 상관 없는 먼 나라에서 위대한 일을 하다가 비명에 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시대에 이미 우리는 미국과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다. 링컨이 사망하고 16개월 뒤인 1866 8, 대동강 입구에 제너럴 셔먼 호라는 미국 상선이 나타난다. 이 배는 조선 관민과의 시비 끝에 불태워지는 운명을 맞는다.

 

배 이름의 셔먼 장군은 바로 링컨을 도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윌리엄 T 셔먼 장군이다. 미국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1871년 강화도로 함대를 보낸다. 이것이 신미양요. 만약 링컨이 암살당하지 않고 3선에 성공했다면, 위대한 대통령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을 침략한 대통령으로 기록됐을 수도 있었다. 참고로 신미양요를 일으킨 대통령은 위에도 나오는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였다. (끝)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에서 링컨은 세종대왕이고, 태종무열왕이고, 광개토대왕입니다.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의 게티스버스 연설은 미국 초등학생들도 외우는 고전이고, 링컨 메모리얼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대표하는 조형물 중 하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실 그렇게 옛날 사람도 아닙니다. 링컨에게 "여자들은 턱수염 기른 남자를 좋아하는데 아저씨도 길러보면 어때요?"라는 편지를 보내 턱수염을 기르게 한 전설의 소녀 그레이스 베델(Grace Bedell)은 1936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생생한 인물일 수 밖에요.

 

링컨의 농담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만도 수백가지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용모에 대한 자학 개그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

 

"내가 시골 살 때 어떤 놈이 총을 들고 눈을 부라리면서 술집에 들어와 '여기 나보다 못생긴 놈이 있으면 쏴 죽여 버리겠어!'라고 소리치며 나를 딱 바라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보다 못생겼다면 차라리 내가 내 머리를 쏘겠다!' 라고."

 

네. 딱 웃기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의 개그가 링컨의 특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링컨을 목격한 사람의 기록. "코트는 흉측하게 길고, 소매는 너무 짧고, 바지 한 쪽은 괜찮은데 다른 한 쪽은 양말에서 적어도 2인치는 모자라는 위치까지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극악의 패션 센스입니다.

 

 

 

 

영화 '링컨'은 좀 지루하다는 점만 빼면 매우 훌륭한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를 완성도보다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숭고하고 거룩한 메시지'에 따라 평가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는 극찬을 받아도 부족할 영화죠. 이런 영화를 따로 떼어 성화(聖畵) 정도로 구분해야 할지도.

다만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예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864년 11월, 링컨은 미국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지 B 맥클렐런(McClellan)에 압승을 거두고 연임에 성공합니다(물론 우리가 흔히 링컨을 16대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재선을 감안하지 않고 사람 머릿수 대로 센 것입니다). '남부의 반란'에 대한 승리는 결정적이었고, 모든 국민 여론은 링컨에 대한 절대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어떤 정책이든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

 

(영화에서는) 이 시기의 링컨은 이미 노예해방 선언(1863.1)을 해 놓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남부 각 주가 법원을 앞세워 이 노예 해방 조치에 대한 위헌 심판같은 것을 냈을 때, 소위 '법적인 판단'에 의해 이미 해방된 노예들이 다시 농장주들의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개헌을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수정헌법 13조'. 내용은 아주 짧고 간단합니다.

 

Section 1.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shall exist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lace subject to their jurisdiction.

Section 2. Congress shall have power to enforce this article by appropriate legislation

 

'그러니까 미국의 주권이 닿는 지역에서 모든 노예 제도와 비 자발적 노동 강요는,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헌법으로 규정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듯 보이는 훌륭한 정책에도 반발은 만만찮았고, 링컨은 이 수정헌법의 의회 통과를 위해 갖가지 꼼수를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남부에서는 때마침 평화 사절을 보냅니다. 북부의 입장은 '항복'이지만 남부에서는 끝까지 '평화 협상'을 요구하고, 즉각적인 항복이 있기 위해서는 '수정헌법의 통과'를 없던 일로 해 달라는 조건이 첨부됩니다.

 

여기서 링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죠. 며칠이라도 전쟁을 더 빨리 끝내 무고한 병사들의 희생을 막을 것이냐, 아니면 두고 두고 역사에 남을 옳은 일을 위해 얼마간 더 희생을 감수할 것이냐.

 

(이것이 영화 '링컨'의 내용. 이런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분들은 도대체 저게 뭔 소리냐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가들은 영화 '링컨'의 이런 내용들이 꽤나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답니다. 의회 통과를 위한 노력은 꽤 사실적인 것 같으나 일단 수정헌법 자체가 저 시점에선 그리 심각한 얘기가 아니었고, 따라서 남부 평화협상단의 요구 같은 것도 당시로선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는 주장들.) 

 

하지만 그런 요소들만 극복하면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당연하지. 누가 만든 영환데). 그리고 연기의 신(한때 연애의 신이기도 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소름이 쪽쪽 끼칩니다. 톰 행크스가 해내지 못한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이 루이스에게 돌아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링컨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존 포드의 영화 '영 링컨(바로 위 사진. 헨리 폰다)' 까지만 해도 링컨의 아내  메리 토드 역시 위대한 대통령을 잘 보필한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정도로 미화됐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본래 명문가의 딸인 메리 토드는 오로지 '영부인'이 되기 위해 링컨과 결혼했고,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채찍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이 발병하고, 장남 로버트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 로버트도 '링컨의 아들'이란 후광을 업고 공화당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정치인으로 손꼽힌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 '링컨 아들이 왜 저 모양이야?'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무튼 영화 '링컨'이 주는 메시지는 자명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숭고한 이상을 관철시킬 수는 없다는 것. 일찌기 정조의 한글 서간이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반대파인 노론 대신들과 주고 받은 서신에서 때로는 욕을 하고, 때로는 어르고 협박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인간적인 풍모'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도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늘 입으로 도학을 주장하며 높은 이념으로 아랫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제대로 된 정치란, 곁에서 보고 '이건 잘 했고, 이건 잘못 했고' 하는 식으로 훈수나 늘어놓는 평론가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영화는 훌륭하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제너럴 셔먼 호의 '제네럴 셔먼'이 그 셔먼 장군이라는 건 쓴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링컨이 3선만 했다면 '조선의 침략자 링컨'이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여담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제너럴 셔먼 호 격침 사건을 주도했다는 우상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P.S. 마지막 사진은 신미양요 때 미군에 의해 탈취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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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줄곧 궁금해하긴 했지만, 3월13일 이전까지는 아무도 미리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극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의 팬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분은 제작에 있어선 지독한 완벽주의자입니다. 방마다 놓여 있는 소품 하나,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영수증 하나, 약 봉지에 쓰인 이름이나 주소 하나 허술하게 촬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윤제문' 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1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일제히 납득했습니다. 사실 3월13일 공개된 분량은 정규 1회를 넘어 2부 앞부분까지 포함되는, 약 80분 가량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론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걸작이다.'

 

 

 

3월13일 공개한 1회 선공개 영상은 여기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회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계의 끝' 첫회는 원양어선 문양호의 마지막 생존자 기영(김용민)이 고무 보트에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장쾌한 헬리콥터 샷으로 시작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첫 출근한 나현(장경아). 첫날부터 팀원들은 나현을 놀리기 위해 '셜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헌(윤제문)에게 나현이 뭘 타고 왔는지, 뭘 먹었는지를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정확하게 다 맞춰 내는 주헌을 보고 놀라는 나현.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고, 질병관리본부의 수뇌부 회의가 열립니다. 보름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괴 바이러스에는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첫 희생자의 직업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취미는 사진 촬영. 다각도로 수색에 들어가지만 발병 원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희생자를 이송한 구급요원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희생자의 집에 누군가 이틀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인물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한 주헌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편 '그 인물'인 기영도 자신이 들렀다 간 흔적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안 기영은 자수를 생각해 보지만, 생체 실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달아나려 합니다. 그래도 2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기다려 준 여자친구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세계의 끝'의 전제가 되는 이야기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는 의학적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그 사람은 감염되든가, 아니면 자연치유되든가 할 겁니다. 그런데 몸 속에 그 병원체가 우글거리는데도 그 사람은 멀쩡하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은 병에 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장티푸스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메리 말론이라는 여성에게서 이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무려 51명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1907년 마침내 관계 당국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조사를 시작했죠.

 

 

 

 

'세계의 끝'은 몸서리쳐지는 재난 드라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주헌을 비롯한 조사반원들은 목숨을 걸고 질병과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사실 이 병난의 문제는 바로 장티푸스 메리와 같은 존재인 기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기영이 치료약 개발에 협조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기영은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만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다 죽었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다음의 선택은 "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거야"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싫어' 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알게 뭐냐' 인 겁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영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과 여자친구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철조망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안판석 감독은 윤제문, 장현성, 박혁권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낯설 뿐이지 다들 연극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이 입증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의 벽을 가능한 한 엷게 하기 위해 이런 캐스팅을 합니다. 다큐멘터리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죠.

 

제목과 배우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http://fivecard.joins.com/1106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인생에 갑작스레 던져진 재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다.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에 '불륜'이라는 재앙이 밀려오면서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가족이 일순 붕괴된다. '세계의 끝'도 마찬가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드라마이면서 휴먼드라마인 '세계의 끝', 만듦새에서는 이미 동급 최강이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제작진도 '옥의 티 0'라는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매주 주말 밤마다, 온 세계가 종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음산한 체험이 기다릴 겁니다. 3월16일(토) 오후 9시55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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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아직 그리 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끝'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억하실 겁니다(초기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제목은 귀에 익지 않아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노래? 하실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사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Why does the sun go on shiny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세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녀풍의 노래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느낌이 영 다르더라는 겁니다.

 

왜 태양은 아직도 반짝이는 것일까

왜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걸까,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스산한 느낌이 감돌지 않으시나요?

 

이 제목은 바로 이런 느낌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의 어느날. 서울 시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합니다. 치사율은 100%.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TF가 발족하지만 감염원은 오리무중. 치열한 추적 끝에 원양어선을 타던 복학생이 최초의 보균자로 파악되지만 그의 소재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괴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주인공 강주헌은 헌병 장교 출신이란 독특한 경력의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과장. 치열한 조사 끝에 감염원을 찾아내지만, 괴 바이러스의 치료는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바이러스의 발생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거죠.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1회를 그냥 통으로 보여 드립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물량 규모가 만만찮습니다.

 

일단 맛뵈기부터 보고 싶은 분은 다음 티저 영상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돈 좀 들었습니다.

 

 

 

 

강주헌 역을 맡은 배우는 윤제문. 의외로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의 사수 건달 역으로 이 배우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품 조연', '신 스틸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연기 죽이는 놈 있잖아' 등으로 명성을 날렸죠.

 

그리고 나서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더 킹 투 하츠'의 악당 김봉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그냥 '윤제문' 하면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보단 '가리온'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죠.

 

사실 캐스팅 리스트에는 윤제문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완벽주의자 안판석 감독님이 이 배우를 콕 찍은 겁니다. 이 친구와 하겠다고. 뭐 거기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죠.

 

다른 사람들이 아쉬울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전달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긴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하얀 거탑'으로 김명민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듯, '세계의 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윤제문이 각인될 거라고. 뭐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을 만든 양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주인공이 윤제문이면 주인공의 파트너인 이나현 역이라도 좀 있어보이는 배우가 뽑히길 기대했지만 전화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누구?" 라고 한 세번 물어봐야 했습니다. 장경아랍니다. 대체 장경아가 누구야.

 

 

 

 

 

1987년생. 26세.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위 사진에선 심각하고 초췌한 모습만 보이지만, '여고괴담' 때만 해도 이랬습니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박혁권, 장현성 등 '아내의 자격'을 통해 '안 사단'으로 불리게 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역시 이 배우들도 저희 회사 근처에선 '김희애 남편'이나 '김희애 시누이 남편'으로 더 유명한 분들이기도 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아내의 자격'의 여파가 아직 안 가시고 있어서...)

 

 

 

아무튼 아직 쇼킹한 비주얼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가 아니라 시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만, 밀도 있는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세계의 끝' 1회는 JTBC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다음(위에 퍼온 영상)을 통해 선공개됩니다. 미리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규 방송은 16일 오후 9시55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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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포스터나 홍보물을 보면 이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화는 타겟팅이 중요할테지요. 즉 '어떤 사람이 볼 만한 영화다'라는 것이 바로 계산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소수의 영화광들은 일단 스크린에 틀어 주기만 하면 뭐든 보겠다는 마음이 들 지 모르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초절정 드라이 액션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측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맛(?)간 남자/사랑에 훅(?)간 여자'라는 식의 헤드라인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가지 쯤 되는 사랑의 오만가지 양상을 비틀고 비틀어 영화를 만들다가 마침내 '둘 다 맛이 간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랑 이야기를 해 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냥 둘이 그렇게 해서 잘 먹고 잘 살았대(Happily ever after)'를 미덕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서 나온 물건 치고는 그 잔향이 만만찮습니다.

 

그야말로 아찔하다고나 할까요. 미리 설레발을 치자면, 아직 3월이지만 제게는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엄마의 도움으로 퇴원하는 팻(브래들리 쿠퍼).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 줄을 놓아 버려 입원하는 신세가 됐지만 막상 퇴원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아내를 되찾을까 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남편과 사별한 뒤, 역시 정신 줄을 놓고 주변 온갖 사람들과 섹스를 해 맛간 여자 취급을 받으며 주위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팻에게 어렴풋이 호감을 갖지만 팻은 티파니 앞에서도 늘 아내 얘기 뿐입니다.

 

 

 

 

분명히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이성적인 행동을 할 리는 없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쓰고 조깅을 하고, 농구 유니폼이 정장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조건 따라 뛰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독특한 점은, 이 영화 속의 비정상적 인물들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생각해서 최선의 방책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팻이며 티파니,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 도박 중독인 팻의 아버지와 그 친구까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미친 듯 행동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최선의 길을 택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 감정이입까지 가능하게 해 줍니다.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 속에, 멀쩡한 남들이 다 하는 고민과 눈물, 밀당과 감정의 폭발이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할리우드의 마법이 한몫을 거듭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팻과 티파니처럼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은 브래들리 쿠퍼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1000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장 눈에 띌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살짝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뛰어도 멋지게 보일 만큼 잘 생기고 쭉빵 미인이라면 평가가 달라지는게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미모와 감독의 지원에 의해 두 배우는 '비호감형 캐릭터'들을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승화시킵니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팻의 아버지는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수시로 탈출을 시도하는 팻의 병원 동기(?) 대니 역으로 크리스 터커가 나옵니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잭 니콜슨 주연 '이보다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또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드렁크 러브'입니다. 두 편 모두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담은 영화죠. 특히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는 명대사로 지금껏 기억되는 '이보다...'는 괴상한 행동을 일삼던 작가 잭 니콜슨이 '사랑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아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나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공감을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주는 구원의 메시지는 쌍뱡향입니다. 팻과 티파니는 모두 결함이 큰 사람들이지만, 구원은 어느 한 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양쪽이 서로에 대개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이 균등하지는 않지만(어느 순간까지는 굉장히 한쪽이 더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 뿐만 아니고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서로는 서로의 구원자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모르셨다구요. 그럴 리가 없지요. 이 영화는 제목부터 그런 뜻인데 말입니다.

 

silver lining은 구름 가장자리의, 밝고 투명하게 보이는 윤곽 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구름이 가리고 있지만 그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죠. 이 말 자체가 '희망'의 상징입니다(물론 영화 속에서도 그 말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playbook은 '계획'이란 뜻이지만 미식축구에서 다양한 공격 포맷을 도식화해서 기록한 '작전집' 정도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포스터 중 하나는 아예 그런 '작전도'를 이용한 비주얼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행복을 찾기 위한 작전집', '행복 찾기 대작전'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이유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 수도 있고, 경제난이 이들의 앞에 암운을 드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라는 물건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끝을 맺어 주죠.

 

전작에서부터 가족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사람들(흔히 '일반인'이라고 하죠)이 성취하는 것, 혹은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행복과 성취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이 8점을 노리고, 우승을 노릴 때 5점이면 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도 행복과 만족이 올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해 주고, 1등병이나 경쟁 지상주의에 찌들어가는 현대인(특히 한국인)에게 힐링 무비의 역할을 할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의 치유를 받아들일지는.

 

아무튼, 본래 강추지만,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특히 강추.

 

 

P.S.1. 영화적으론 좀 사족같지만 이런 아버지의 충고는 굉장히 와 닿습니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서 팻의 아버지가 팻에게 티파니를 놓치지 말라고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Let me tell you, I know you don't want to listen to your father, I didn't listen to mine, and I am telling you you gotta pay attention this time. When life reaches out with a woman like this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m telling you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t'll haunt you the rest of your days like a curse. You're facing a big challenge in your life right now at this very moment, right here. That girl loves you. she really really loves you. I don't know if Nicky(팻의 전처) ever did, but she sure as shit doesn't right now. So don't fuck this up.

 

P.S.2. 좋은 가사. 저는 스티비 원더의 원곡보다 이 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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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신입생의 달입니다. 뭐 학생들이라면 딱 신입생이 아니더라도 신입생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맞는 달이기도 하죠. 직장인들에게는 크게 다를 것 없는 달이지만 말입니다.

 

3월에는 여기저기서 꽤 그럴싸한 문화행사가 펼쳐집니다. 지난달에 비해 매우 풍성해 보입니다. 특히 이번 문화가이드상으로 3월의 테마는 '발레'. 뭐 저도 개인적으로 크게 발레에 관심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번 달엔 모처럼 저렴한 가격에 고품격 발레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좀 있어서 소개합니다.

 

어쨌든, 뭐든 최대한 가격 배리어를 넘고 보자는 문화가이드 정신.

 

3월분을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3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3월이야. 직장인들은 설 연휴나 스키 휴가가 이미 지나간 꿈이라는 게 안타깝고, 학생들은 뭔가 새 학기의 분주함과 설렘으로 마음이 바쁠 때지. 또 애인 있는 남자들은 314, 화이트데이를 어떻게 넘길까 고민하게 되어 있고, 솔로들은 이런 고민이 마냥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달이기도 해.

 

사실 지난달에 발렌타인 데이용 스케줄을 소개하지 못해 좀 찜찜했는데, 올해는 314일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공연이 있어. 그것도 갑자기 생겼어.

 

본래 서울시향은 315일에 베토벤의 3중협주곡과 교향곡 7번을 공연할 예정이었어. 이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지. 그런데 표 못 산 분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14일에 추가 공연 스케줄이 생긴 거야.

 

베토벤 교향곡은 전부 9곡인데 그중 3,5,6,9번에는 부제가 있지. 사실 웃자는 얘긴데, 클래식에 별 조예가 없는 사람일수록 곡의 제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그래서 부제가 없는 다섯 교향곡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곡이 바로 7번이야. 개인적으로는 5운명다음으로 대중적이고 매력적인 곡이라고 생각해(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타이틀로 괜히 쓰인 게 아님). 3만원짜리 B석 권장. 단 화이트데이 데이트라면 이날 교통 정체가 심할 테니 시간 잘 맞춰야 할 거야.

 

다음. 3월의 테마 장르는 발레야. 남자들 중엔 발레란 말만 들어도 낯빛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겠지만, 마침 이번 달엔 저렴한 가격에 클래식 발레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두 가지나 있어.

 

하나는 319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물론 이번 시즌 들어 열리는 6차례의 공연 중 세번째지만 이번엔 좀 특별해. 주제가 ‘17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클래식 발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이름도 유명한 백조의 호수라 바야데르를 소개해.

 

백조의 호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생략. 그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인도를 배경으로 한 라 바야데르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클래식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야. 게다가 국립 발레단은 올해 49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란 게 포인트야. 팬들로선 예술의 전당 공연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하이라이트를 미리 볼 수 있는거지. 해설까지 곁들여서.  2만원.

 

또 하나는 38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물론 비싸. R석은 10만원이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 없어. 1만원짜리 C(4)도 있으니까 내가 과연 발레를 좋아하는지, 한번쯤 테스트해 볼 수 있어. 혹시 알아? 지금부터 발레에 확 꽂힐 수도 있잖아. 나라면 이미 검증된 백조 강예나의 11일 공연으로 적성검사를 해 볼 것 같아.

 

 

, 그럼 DVD 코너. 아시겠지만 올해는 1813년생 동갑인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어. 여러분도 여기에 살짝 동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야. 현재 나와 있는 DVD 중에서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건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아존이 출연한 라 트라비아타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실황 공연이야.

 

DVD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어. 일단 전 세계적으로 오페라 DVD 시장을 살려 놓은 타이틀로 평가돼. 왜냐. 흔히 오페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뚱보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가 폐병 걸려 애처롭게 죽어가는 장르라고 비웃곤 하는데, DVD를 보면 그런 말을 못 해. 당대의 미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네트렙코가 노래도 못 하면서 얼굴로 미는 인물이냐면 절대 그렇지 않아. 노래는 물론이고 연기도 A급이지. 게다가 빌리 데커라는 천재 연출가가 만들어 낸 미니멀한 무대도 감탄을 자아내. 그야말로 소장가치 100점의 DVD. 인터넷에서 2700~25000원 정도에 살 수 있어. (주의사항: 한글 자막이 있는 상품인지 꼭 확인할 것.)

 

마지막으로 3월의 책은 이시은 작 짜릿하고 따뜻하게.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일본의 히트 광고 카피와 해제를 모아 놓은 책인데, 만약 어떤 일에서든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 후루룩 한번에 읽어 보기는 좀 아깝고, 생각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어보는 화장실 용 책으로도 활용가치가 높아 보여. 인터넷으로 11000원 정도.

 

말이 많았는지 작별할 공간이 없네. 4월에 만나.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7                         3만원

국립발레단 해설이 있는 발레                          2만원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                           1만원

DVD ‘라 트라비아타                                  2700~25천원

책 짜릿하고 따뜻하게                                 11000

                                                     96천원

 

 

발레는 발레고, 여기서 저화질 동영상으로 보여드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발레는 현장에서 볼 때가 다르고, 뭔가 좌정하고 볼 때 또 다릅니다. 정말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나 발레 봤는데 그거 영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고 하시는 분들께 '뭘 봤냐'고 물으면 절대 다수가 '호두까기 인형'이라고 합니다. 뭐 훌륭한 작품이지만,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발레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건 '해리 포터'를 보고 난 다음에 "난 영화는 이제 안 볼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치 발레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특히 추천 공연인 11일 강예나의 공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백조 중 하나인 강예나가 스스로 '백조는 이제 마지막'이라고 부르는 공연입니다. 여러 모로 의미가 있죠.

 

그리고 이번 달에 추천한 '백조의 호수'나 '라 바야데르'는 '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과 함께 고전 발레를 대표하는 명작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전 발레만 발레라고 생각하셔도 곤란합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모던 발레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지 킬리안(Jiri Kylian: 이 스펠링에서 대체 왜 이런 발음이 나오는지 제가 설명할 길은 없지만 체코어로는 이렇게 표기한다고 합니다)의 발레 소품 'Petite Mort(작은 죽음)'을 보시면 '이런 발레도 있다'는 말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은 오페라. '네가 뭘 안다고 되도 않는 오페라 타령이냐'고 할까봐 늘 겁나는 장르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 잘 모릅니다. 제대로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냥 듣고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겁니다. 유명한 아리아나 합창곡은 들어보면 아 이게 어디 나오는 뭐구나 좀 알지만, 레시타티보를 들으면서 음 좋구나 하는 분들은 신선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수준이다 보니, 노래만 잘 하는 가수(특히 소프라노..;;)에게선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인지상정이죠. '라 보엠'같은 오페라를 볼 때 덩치가 산만한 소프라노가 고혈압이나 당뇨가 아니라 폐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얘기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낄지는 솔직히 저도 의문입니다. 심지어 카라얀 선생도 일찌기 왜 뚱뚱한 소프라노들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네는 오페라 볼 때 눈 감고 보나"라고 반문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런 면에서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 같은 가수들은 신의 선물이라 여길만 합니다. 최근에는 네트렙코도 나잇살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2005년 '라 트라비아타' DVD에 출연할 때만 해도 인기는 하늘을 찔렀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축배의 노래(Brindisi)'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프라노 비올레타를 대표하는 곡은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노래.

 

 

들어 보시면 안나 네트렙코가 얼굴만으로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의 주역을 따내고 있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사실 문외한이 들어도 위 노래와 아래 노래 사이의 차이는 제법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한 세기에 몇명 안 될 겁니다. 게다가 보는 즐거움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죠. 모든 여배우가 메릴 스트립처럼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적으로 이 노래는 조운 서덜랜드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Memory'의 표준이 엘렌 페이지가 아니라 바브라 스트라이잰드가 되었듯 말이죠.)

 

 

 

아무튼 근래 들어 세계적인 주역 소프라노들의 외모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한번 거기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죠.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법의 다이어트에 나서다 http://5card.tistory.com/1042

 

그때 소개한 슈퍼모델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Nafornita를 나포니타 혹은 나폴니타로 쓸 수 도 있을 듯 합니다)가 부르는 '라 트라비아타'의 브린디시입니다. 상대는 블라드 미리짜(Vlad Mirita). 

 

 

마지막으로 3월의 책 한권. 제목은 '짜릿하고 따뜻하게' 입니다. 산토리 올드 위스키 광고 카피인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등 일본 광고의 명 카피들을 모아 해설한 책입니다.

 

'일본 광고는 참 착하다'는 하지현 박사님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입니다. 기한을 읽을 책도 아니고, 심각하게 공부하면서 볼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위에서 소개했듯, 화장실 문 앞에 두고 들어갈 때마다 한 장씩 읽고 나오면 너무나 적절할 그런 책입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달은 여기까지. 풍성한 3월 즐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야구도 보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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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경우의수 정리] 네덜란드-대만전은 최악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덜란드-대만전 결과가 네덜란드가 이기면 최선, 대만이 큰 점수차로 이기면 그 다음, 접전으로 이기는게 그 다음, 3~6점차로 이기는게 최악이었는데 하필 딱 5점차 승부가 났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네덜란드가 호주를 이긴다고 가정하고, 한국은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되 특히 대만을 6점차로 꺾어야 2라운드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겨도 5점 차라면 한국/대만/네덜란드간의 득실점 중 자책점의 비율까지 계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4점 차 이하로 이기면 같은 2승1패라도 한국이 무조건 탈락합니다.

 

물론 열심히 기도하면 호주가 네덜란드를 잡아 주는 로또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실제론 지금부터 대표팀 타선이 심기일전, 막강 공격력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대표팀 타선, 특히 중심타선이 살아나주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 시작합니다.

 

 

 

 

모든 대회는 그 대회만의 고유 룰이 있는 법입니다. 특히 이번 WBC는 동률 팀이 나왔을 때 아주 고약하게 구분을 해 놓고 있습니다.

 

일단 원문을 그대로 가져와 봤습니다.

http://web.worldbaseballclassic.com/wbc/2013/about/rules.jsp#pool_first

 

 

POOL PLAY AND TIE-BREAKING PROCEDURES

First Round

The First Round of the Tournament shall be conducted in a round-robin format.

In the First Round, the Federation Teams in each pool shall be ranked according to the winning percentage of games in the First Round. The two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such winning percentages in each pool shall advance to the Second Round as the Pool Winner and the Pool Runner-Up.

If at the end of pool play in the First Round of the Tournament two or more Federation Teams within a pool are tied with an identical winning percentage, the tie shall be broken based on head-to-head records or by ranking each team's "Team Quality Balance" (TQB), as set forth below:

  • Scenario 1
    Two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Winner designation.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in the First Round shall be declared the Pool Winner, and the loser of that game shall be declared the Pool Runner-Up.

  • Scenario 2
    Three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Winner designation.

    To determine the Pool Winner and Pool Runner-Up,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i.e., the sum of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RS/IPO)-(RA/IPD)=TQB)). For purposes of determining TQB only the scores from the games between the tied teams are to be used in the calculation.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Earned Runs Team's Quality Balance ("ER-TQB", i.e., the sum of earned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earned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ERS/IPO)-(ERA/IPD)=ER-TQB)).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batting average in games between the tied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ER-TQB, and ranking the Federation Teams by batting average,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each of the foregoing procedures have been applied, such remaining ties shall be determined by coin flip.
  • Scenario 3
    Three Federation Teams with the low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Runner-Up designation.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to determine the Pool Runner-Up.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the Pool Runner-Up designation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Earned Runs Team’s Quality Balance (ER-TQB).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batting average in games between the tied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ER-TQB, and ranking the Federation Teams by batting average,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the Pool Runner-Up designation after each of the foregoing procedures have been applied, such remaining ties shall be determined by coin flip.

 

 

상당히 깁니다만, 이번 대회의 동률 처리 규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한 조 안에서 두 팀이 동률일 때: 무조건 두 팀 사이의 승자승.

 

2) 세 팀이 동률일 때: 세 팀간 TQB에 따라 결정.

    TQB(Team Quality Balance)란 다음과 같습니다.

 

To determine the Pool Winner and Pool Runner-Up,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i.e., the sum of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RS/IPO)-(RA/IPD)=TQB)). For purposes of determining TQB only the scores from the games between the tied teams are to be used in the calculation.

 

그러니까 (낸 점수/공격 이닝 수) - (잃은 점수/수비 이닝 수) = TQB인 것입니다.

 

이제 그럼 한국이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I. 2승1패 3자 동률이 되고, 대만에 6점차 이상 승리하는 경우

 

일단 호주가 3패를 기록하고, 한국/대만/네덜란드가 2승1패 동률이 되는 경우를 상정해서 계산해 보겠습니다. 물론 한국이 나머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이 경우 동률팀간의 득실만을 따진다는 규칙에 따라 호주전에서의 득실점은 계산에서 제외됩니다.

 

한국과 대만을 모두 상대한 네덜란드는 17이닝을 공격해서 8점을 냈고, 역시 17이닝을 수비해서 8점을 잃었습니다. TQB 공식에 넣어 보면, (8/17)-(8/17)=0, 합계 0점이 됩니다.

 

대만과 한국은 5일 경기에 따라 결과가 나옵니다. 현재는 한국이 -.625, 대만은 +.667이지만 이 수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한국이 대만을 5:0으로 이긴다고 가정하면,

 

한국 (5/17)-(5/17)=0

대만 (8/17)-(8/17)=0

 

이렇게 해서 역시 세 팀이 다시 TQB 0점으로 3자 동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건 5:0이건 6:1이건, 5점차가 나는 경우에는 불변입니다. (물론 9회까지 0:0으로 비기다가 10회에 5점차가 나는 경우라면 달라지지만, 가능성 희박한 경우는 제외합니다.)

 

한국이 만약 6:0으로 이기는 경우라면,

 

한국 (6/17)-(5/17)= .059

대만 (8/17)-(9/17)= -.059

 

그러니까 대만을 6점차로 이기면 TQB 점수에 따라 한국과 네덜란드가 올라가고 대만은 탈락합니다.

 

대만에 5점차로 이겨 다시 3자 동률이 되는 경우에는, 역시 대회 규정에 따라 ER TQB라는 더 복잡한 수치가 등장합니다. 저 득점과 실점 중에서 자책점의 비율이 높은 팀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냥 TQB에선 한국의 실점이 5점이지만 1점은 실책으로 인한 점수였으므로 ER TQB에서는 4점만 계산된다는 것이죠.

 

즉 '진정한 실력으로 점수를 낸 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1점이 나중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II. 호주가 네덜란드를 꺾고, 한국이 남은 2승을 올리는 경우

 

이렇게만 된다면 득실 따질 필요 없이 한국과 대만이 올라갑니다. 한국이 대만을 이기면 승자승에 따라 자연히 조1위가 되죠.

 

 

III. 호주가 네덜란드를 꺾고, 한국이 대만에 지는 경우

 

이 경우엔 한국/네덜란드/호주가 1승2패로 3자 동률이 됩니다. 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만, 다시 위의 해설처럼 세 팀간의 TQB를 계산해야 합니다. 이 경우라면 호주와의 경기에서도 얼마나 큰 점수차로 이기느냐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습니다.

 

 

 

결론은 한국은 무슨 수를 쓰든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기더라도 그냥 이기는 것 만으론 부족하고 점수를 많이 뽑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투수들도 투수들이지만, 타자들의 분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따져 볼수록 네덜란드전에서 몇점이라도 점수를 뽑았어야 한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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