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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계에서 '김수현 드라마'만큼 확고부동한 브랜드는 없습니다. 그 뒤를 잇는 스타 작가들도 즐비하지만, 그 누구도 '김수현'이라는 이름만큼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런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가 오는 27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무자식 상팔자'. 들어 보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겠지만, 이순재 서우림 유동근 김해숙 송승환 임예진 윤다훈 견미리 엄지원 등 출연진도 화려합니다.

 

눈을 크게 뜨시면 시내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광고를 옆구리에 붙인 버스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버스를 사냥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패드2, 에스프레소 머신 등 상품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찍으시면 됩니다.

 

(안내 페이지는 이쪽)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127&menu_id=PM10015317&bbs_code=BB10010230

 

 

그렇게 썩 잘 찍지 않아도 됩니다.

 

대강만 보이면 합격!

 

 

 

사실 이렇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려면 아무래도 작품에 자신감이 있어야 할 건 당연지사. 그리고 그 방송 한달 전인 지난 25일,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서 그런 신뢰를 확인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열린 '방송전 드라마 시사회' 입니다. 드라마 방송 직전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전편을 상영한 드라마는 몇번 있었지만, 일반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드라마 시사회는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사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 방송 관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일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입니다. 대본을 보고 짐작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본을 보고 나서 이 드라마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일반 시청자가 아닙니다. 대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한번쯤 우리가 방송할 드라마를 일반 시청자들이 먼저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배우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죠. 극장을 빌려 상영하면 간단하지만 사실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만원 기준으로 표값을 다 계산해야 합니다. 즉 시청자 한 분을 모시는데 극장표 1장 값이 드는 겁니다.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다 문득 백화점마다 있는 문화공간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신세계 백화점 측도 OK. 당초 목적대로 2~3회 정도 시사회를 하는 것은 불발이었지만 어쨌든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9월25일로 시사 날짜가 잡혔습니다.

 

(그러니까 저 위에 있는 분들이 저희 사장님보다 먼저 이 드라마를 보신 겁니다.)

 

 

 

물론 뭐든 처음 하려면 문제가 생기는 법. 회사에선 멀쩡하게 돌아가던 DVD가 현장에서 말썽을 부립니다. 회사에서 황급히 테이프와 데크를 공수했습니다. 아찔한 순간은 지나가고, 시청자들이 입장하셨습니다. 약 200분 정도.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느낌으로는 당연히 시사 성공. 하지만 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설문지 수거 및 분석.

 

 

 

 

그렇게 해서 약 200명의 시청자 중 144분이 응답해 주신 설문지 분석 결과 10점 만점에 9.07의 평점으로 '무자식 상팔자'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필요하다면 드라마를 여기서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사실 모든 분들이 선명하게 사진을 찍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게라도 버스 사냥에 참여해 보시라는 얘깁니다.

 

의외로 찍기가 쉽지 않아서(폰카 켜는 사이에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경쟁률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첨 기회를 보면 이만한 이벤트도 드물 겁니다.

 

항상 긴장을 놓치지 마시고, 버스 정류장에서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계세요. 그럼 행운이 찾아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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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은 그저 그런 액션 영화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할리우드에서 한발 앞선 잔혹성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브라이언 밀스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에 비해 생명 존중 사상이 심하게 부족한 캐릭터였죠.

 

밀스는 모든 도구를 사용해 확실하게 악당들을 해치워주는 확실한 실력과, 절대 주저하지 않는 결단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덕분에 2500만달러 제작비의 저예산(?) 영화였던 '테이큰'은 미국에서만 1억 달러 넘는 흥행 성공을 거뒀습니다. 덕분에 '테이큰2'가 만들어지게 됐죠.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시퀀스와 쉽게 마주치게 됩니다. 주인공의 조력자가 범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으면 주인공은 "쏘면 안돼! 그놈을 데려다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한 뒤에 감옥에 쳐 넣어 죄값을 치르게 하자구!"라고 주절주절 떠들고, '우리편'이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악당은 벌떡 일어나 기관총으로 '우리편'의 몸에 수십개의 구멍을 내 놓는 뭐 이런 진행 말입니다. 하지만 '테이큰' 시리즈라면 이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죠.

 

'테이큰'이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것은 미국 관객들도 판에 박힌 '소심한 주인공'에는 질려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테이큰2'는 1편으로부터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동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 1편에서 밀스(리암 니슨)에게 죽음을 당한 인신매매 조직원들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마을의 좌장인 무라드(라데 세르베지야)는 밀스를 찾아 복수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밀스는 딸 킴(매기 그레이스)의 안전에 더욱 민감해지고, 전처 레니(팸키 젠슨)는 남편과 문제가 생깁니다. 밀스는 모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이 이스탄불에서 일을 마치면 함께 휴가를 즐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세 가족(?)은 밀스를 잡기 위해 이스탄불로 찾아온 무라드 일파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게 됩니다.

 

 

 

 

감독은 1편의 피에르 모렐에서 '트랜스포터3'의 올리비에 메가톤(물론 예명입니다. 그런데 설마 메가톤이라는 성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으로 바뀌었지만 그로 인한 위화감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1편의 주역들이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데다, 왕년의 명감독 뤽 베송이 제작자 겸 시나리오 라이터로 시리즈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테이큰2'의 긴장감은 1편에 비해 심하게 떨어집니다. 니슨이 연기하는 밀스는 여전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1편에 비해 악당들이 뭔가 강화됐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적 장치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무도 밀스 가족의 안전한 구출을 의심하지 않는 가운데, 크로아티아 배우 라데 세르베지야(Rade Serbedzija)는 훌륭한 악역을 보여주지만 이미 주인공 니슨부터 맥이 풀린 느낌을 주는 만큼, 그의 힘으로 영화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습니다.

 

뭐 영화가 잘 되고 못 되고에 대해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듯 합니다. '테이큰'을 보신 분에겐 그냥 또 다른 '테이큰'일 뿐이고, 자극의 강도는 확실히 약하다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여기까지. 이후부터는 이 영화에 나타난 '미국 시민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스포일러(라는 것이 과연 이 영화에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지만^^)가 싫은 분들은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목의 '미국 시민'이라는 말은 American Citizen의 번역입니다. 모든 미국인이 city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민'이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만 '시민권' 등의 말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알란 파커 감독의 1978년작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터키에서 마약 밀매 관련 협의로 체포된 미국 청년이 터키의 법에 따라 형무소에 수감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터키 사람들이 보기에 이 영화는 편견의 덩어리입니다.

 

'터키에서 죄를 지으면 터키 사법제도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정당한 질문 앞에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매우 뻔뻔스럽습니다.  "아니 우리 미국 시티즌을 너희 나라의 법 따위로 구속한다고? 심지어 너희 나라의 감옥 따위에 가둔단 말이야?" 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뭐 이런 생각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엔 좀 과도한 판타지도 등장합니다. 세계 어디에 있건 미국 시민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미국 정부가 그를 위해 하는 행위는 다소 거칠어 보여도 일단 정당하다는 식의 미화 말입니다.

 

앙트완 후쿠아의 '태양의 눈물'에서는 미국 정부가 미국인 여성 모니카 벨루치(그것도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아니고 미국 남자와 결혼해 미국 시민이 된 여자)를 구출하기 위해 브루스 윌리스가 이끄는 특공대를 파견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유발된 판타지라기엔 좀 너무 심합니다. 당연히 이 특공대는 아메리칸 시티즌 구출을 위해 현지인들을 거리낌없이 살해합니다. (뭐 정당방위처럼 보이긴 하죠.^^)

 

 

 

아마도 이같은 성향의 최고봉은 마이클 베이의 '나쁜 녀석들 2'가 아닐까 합니다. 미국 마이애미 경찰의 특수기동대는 아예 대규모 인원이 무기와 장비를 갖고 쿠바에 침투해 작전을 펼칩니다.

 

이게 독립국가인 쿠바의 주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고, 말하자면 전쟁 행위라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조용히 작전을 치르고 무사히 빠져나왔다면 또 모를까, 백주에 살상행위(물론, 대상은 끔찍한 악당들이죠)를 실컷 저지른 다음, 쿠바 영토 끝에 있는 미국령 관타나모로 탈출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테이큰'에서도 전직 첩보원 밀스는 프랑스의 사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프랑스 경찰의 친구(?)는 이런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고도 하지만 사실은 그의 행동에 다른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영화 속에서 무마됩니다.

 

하지만 '테이큰2'에서는 도를 넘습니다. 밀스는 터키 경찰을 살해하고(물론 그 경찰이 터키 폭력조직과 내통한다는 설정이지만, 밀스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단지 그가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는 이유로 사살합니다), 그로 인한 터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시내를 다 뒤집어놓는 자동차 경주 끝에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합니다.

 

심지어 그러고 난 바로 다음날, 밀스는 총기까지 휴대하고 다시 이스탄불 시내를 휘젓습니다. 네. 전처가 악당들의 손아귀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건 관객들이 잘 알고 있지만 남의 나라에서 이건 좀 너무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어처구니없는 영화 속 이야기지만, 한국 해경 선박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의 어부들을 별 책임도 묻지 않고 풀어주는 한국 경찰의 처지를 보거나, 심지어 한국 해경을 살해한 중국 어부들을 자기네 나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하는 일부 중국내 세력들의 시위를 보고 있으면, '테이큰' 시리즈 속의 이야기들이 반드시 허무맹랑한 얘기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

 

 

 

 

P.S. 밀스는 폭력과 피가 피를 낳는 복수의 고리를 끊으려 제의를 하지만 결국 그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스는 결국 다시 폭력을 행사하죠. 이게 만약 미국과 테러리즘에 대한 거대한 비유라면, 이런 논리는 9.11 전에나 통했을 법한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 본토도 안전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테이큰2'에선 밀스 가족이 미국에서 행복한 일상을 찾지만, 만약 '테이큰3'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LA 시내가 생지옥이 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총지휘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인 뤽 베송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테이큰' 시리즈는 은근히 미국민에게는 반성을, 비 미국인들에게는 반미감정을 촉진하려는 프랑스제 프로파간다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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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에 가속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추석 연휴도 '광해'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광해'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상상력에서 발생한 픽션이죠.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에서 화가 신윤복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부터 이야기를 끌어나갔고,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아들과 세조의 딸이 연인 사이였다면 하는 상상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과 쌍둥이처럼 닮은 남자가 있었는지 말았는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당연히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그 밖의 이야기들, 영화 '광해'가 다루고 있는 광해군 시대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가끔씩 영화를 역사 교과서로 생각하고 '아~~ 정말 그랬었구나. 난 몰랐네'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한 선 긋기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분명히 말해 둘 것은, 이 글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작품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글이라는 점입니다. '광해'는 매우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고, 영화는 본래 역사 교과서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도 저랬나?' 라든가, '저건 실제론 어땠지?'라는 궁금증을 느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그냥 리뷰가 필요하신 분은 이쪽:

'이병헌, 사실은 1인3역이었다. http://fivecard.joins.com/1050 '

 

사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지 않은 분이 이 글을 읽으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주 당연히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거론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미 영화를 보신 분이나, '나는 결말을 알고 가야 영화가 더 잘 들어온다(네. 이런 분 분명히 있습니다)'는 분들만 이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서 스포일러당했네 어쩌네 하는 분들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1. 광해군 8년, 광해는 위기였나?

 

사실 광해군은 즉위 내내 위기였다고 말해도 좋을, 매우 불안한 권력 위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중 이미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국정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지만, 선조는 뒤늦게 정궁에서 낳은 아들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뒤에도 왜 형 임해군이 아닌 둘째 광해군이냐는 명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결국 형 임해군의 의문사에 이어 즉위 6년차에는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귀양지에서 죽게 하는 데 이릅니다.

 

이런 상황이니 언제 반대파가 들고 일어나든, 누군가 수라에 독을 타든 그리 놀라울게 없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그런 상황이고 보면, 광해군이 '나와 똑같은 가짜를 써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광해'의 설정은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여기서 한번 광해군 관련 연보를 짚고 넘어갑니다.


1569 허균 탄생
1575 광해 출생

1576 중전 유씨 탄생

1592 임진왜란
1600 인목대비, 19세 나이로 51세 선조와 혼인
1606 영창 출생
1608 즉위, 대동법 실시
1613 5년 칠서지옥, 영창대군 서인
1614 6년 영창 살해
1616 8년. 2. 28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1618 10년 강홍립 파병, 인목대비 서궁유폐, 허균 역모로 능지처참

1623 15년 인조반정. 광해군 폐위

1641 광해군 사망

 

 

 

2. 중전 유씨는 한효주의 느낌이 났을까?

 

사실 사극에 나오는 중전마마들은 거의 한결같이 우아하고 기품있는 미인들인데 과연 모든 중전마마들이 그랬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때 본 사람이 지금 있을 수 없으니 이건 뭐 하나마나한 얘기.

 

그런데 사실 나이 부분은 좀 걸립니다. 왕비 유씨는 1576년생으로 광해군 보다 한살 아래. 이 말은 문제의 광해군 8년인 1616년에 유씨가 만 40세라는 뜻이 됩니다. 물론 하선도 실제 광해군과 비슷한 또래였긴 했겠지만 17세기의 40세는 지금의 40세와 상당히 다른 느낌이죠. 최소한 한효주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이 부분을 아래 댓글 지적을 받아 수정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게 틀리면 안되는데...;;)

 

그리고 실제 왕비 유씨는 柳씨지만 영화 속의 유씨는 兪씨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왜 굳이 성의 한자를 바꿨는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아울러 영화 속 중전의 오빠는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 중전 유씨의 오빠는 광해군 때의 권신 유희분입니다.)

 

 

 

 

3. 허균은 도승지가 아니었다?

 

영화 속 허균은 도승지로 광해군의 최측근 역할을 하지만 사실 허균은 도승지라는 벼슬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한때 좌승지로 임금의 비서 역할을 한 적은 있죠.

 

하지만 역시 1616년의 허균은 종계변무의 마무리를 위해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형조판서-좌참찬으로 출세일로를 걷습니다.

 

물론 판서는 정2품으로 정3품의 도승지보다 높은 자리지만, 도승지는 왕을 측근에서 보좌한다는 특별한 역할 때문에 품계에 관계없이 요직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작 광해군 시대에 도승지 자리를 가장 오래 유지한 사람은 이덕형입니다. 바로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그분이죠. 이덕형은 허균보다 8년이나 연상이지만 광해군이 밀려나는 그날까지도 도승지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류를 범했습니다. 광해군 때 오래 도승지 자리를 유지한 사람은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 아니라 또 다른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이덕형'이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래 댓글 지적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되면 이덕형은 허균보다 8년이 아닌 3년 연상이 됩니다.]

 

아무튼 허균이 1616~1617년에 걸쳐 광해군의 총신이었던 것은 분명하니 뭐 벼슬이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4. 서인 정권 속의 외로운 왕?

 

'광해'에는 하선이 백관들과 마주해 명에 보내는 공물 등을 논하며 "그대들같은 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라고 질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광해'와 현실이 가장 크게 빗나가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 대신들은 대부분 서인이 아닌 북인의 일부, 대북파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권을 좌우하던 당은 바로 광해군을 옹립한 세력으로, 이이첨을 중심으로 한 대복이었습니다. 서인은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 세력 들 중 중앙 고위직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 지방의 부사, 부윤 급 정도였습니다.

 

물론 광해군이 매사에 대북 일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광해'는 '보수파=서인=친명 세력=수구적=주자학 교조적'이라는 국사교과서의 상식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광해군도 서인 대신들 속에 파묻힌 것으로 오도하고 있습니다. '광해'와 '영원한 제국'을 혼동할 정도로 말입니다.^^

 

 

 

 

5. 광해군은 반명(反明)적이었나

 

사실 광해군의 정책은 똑부러지게 '반명'이라든가 '친청'이라고 규정하기 힘듭니다. 당시 조선 사대부의 여론은 확실히 재조지은, 즉 임진왜란 때 원병을 파견해 왜군을 물리쳐 준 명과의 의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히 광해군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대의였죠. 광해군도 후금과의 관계 조정은 어디까지나 '미봉'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619년의 실록. 명의 요청에 따라 조선군을 이끌고 후금과 전투를 벌인 강홍립이 광해군의 밀명에 따라 전투를 회피하다가 패전 후 항복한 데 대해 신하들이 강홍립의 가족을 벌주자는 건의를 하고, 거기에 광해군이 답변한 내용입니다.

 

 

광해 139권, 11년(1619 기미 / 명 만력(萬曆) 47년) 4월 8일(신유) 1번째기사
왕이 노추를 잘 미봉하고 명에 대한 의리로 국방의 계책을 삼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신 강홍립 등이 명을 받고 싸움터로 나갔다면 오직 적만을 쫓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먼저 통역을 보내어 미리 출병하는 까닭을 통지하는 등 마치 당초에 싸울 뜻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이어,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하였다가 그들의 장계를 보니, 힘이 모자라 함락을 당하였다는 정상은 조금도 없고 또한 구차하게 살아난 것을 부끄러워하는 뜻도 없이 가는 길의 행군한 절차를 차례로 서술하고 감히 미리 통지하여 낭패하였다는 등의 말을 버젓이 아뢰면서 스스로 그들이 한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끝에 가서는 다시 회답할 말을 지시해 주어 살아서 돌아오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신하로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천하에 가장 나쁜 행실입니다. 이것을 범하였을 경우 그 처자를 감금하여 법으로 처치하는 것이 국가의 일상적인 형법인데 (중략) 이 때문에 신들이 그들의 처자를 감금하고 정응정 등을 나포하여 문초하는 일에 대해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누누이 청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계사를 보니, 뜻은 좋다. 그러나 내 비록 혼미하고 병들어 맑은 정신은 아니지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경들은 이 적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나라의 병력을 가지고 추호라도 막을 형세가 있다고 여기는가? (중략)


지난해 군병을 들여보낼 때 경들은 마치 일거에 탕평할 것처럼 여겼는데, 병가(兵家)의 일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옛사람들이 감히 가벼이 사용하지 아니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명나라에서 만약 군병을 진열하여 무력을 과시하고 중국의 국경을 굳게 지킨다면 마치 호랑이나 표범이 산 속에 있는 형세와 같아 적이 비록 날뛴다고 하더라도 감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생각지 않고 가벼이 깊이 들어갔으니 반드시 패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었다. (중략)


강홍립 등의 사건에 있어서도 비록 적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나 이처럼 급하게 다스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강홍립 등이 불행히 적진 중에 함몰되었으나 보고 들은 것들을 밀서로 계문하는 것이 무엇이 안 될 것이 있는가. 진실로 본사의 계문과 같이 한다면 비록 노중(虜中)에 함락되었더라도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여 보내지 않아야 옳다는 말인가. 아, 묘당에 사려 깊은 노성(老成)한 인재는 거의 죄다 내쫓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젊고 일에 서투른 사람이 비국에 많이 들어갔으니 국가 운영을 잘 못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길 것조차도 없다.

대국 섬기는 성의를 더욱 다하여 붙들어 잡는 계책을 조금도 해이하게 하지 말고 한창 기세가 왕성한 적을 잘 미봉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좋은 계책이다. 그런데 이것을 버려두고 생각지 않은 채 번번이 강홍립 등의 처자를 구금하는 일만 가지고 줄곧 계문하여 번거롭히고 있으니, 나는 마음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본사에서 누차 청하는 뜻을 나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천천히 선처하여도 진실로 늦지 않다. 오직 국가의 다급한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추의 서신이 들어온 지 이미 7일이 되었는데 아직도 처결하지 못하였다. 국가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하늘의 운수이니 더욱 통탄스럽기만 하다.”

하였다. 당초에 강홍립 등이 압록강을 건너게 된 것은, 상이 명나라 조정의 징병 독촉을 어기기 어려워 억지로 출사(出師)시킨 것이었지,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그들을 원수로 적대하지 않아 실로 상대하여 싸울 뜻이 없었다. 그래서 강홍립에게 비밀리에 하유하여 노혈(虜穴)과 몰래 통하게 하였던 것인데 이 때문에 심하(深河)의 싸움에서 오랑캐의 진중에서 먼저 통사를 부르자 강홍립이 때를 맞추어 투항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구금되어 있으면서 장계를 써서 종이 노끈을 만들어 보냈는데, 화친을 맺어 병화를 늦추자는 뜻을 자세히 언급하였다. 정응정 등은 도망쳐 온 것이 아니고 오랑캐가 풀어 보낸 것인데, 보는 이들은 모두 노추(奴酋)가 전쟁을 늦추려는 계획이라고들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 기록은 모두 광해군이 폐위된 뒤에 편집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광해군의 패륜과 실정에 주목하고,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기록은 사관이 광해군의 말에 심히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시절 조정 대신들이 명분론에 매달려 나라를 망쳤다고 한탄하지만, 이 명분론이란 역사에 대의와 인과응보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과거사'와 '역사의 정의'를 말하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도 명을 부정하기 보다는, 다만 '미봉'이라는 말로 한창 일어나고 있는 후금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뿐입니다. (광해군이 어떻게 조정 대신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게 됐는지도 사실 궁금합니다. 비밀 정보조직이라도 운영한 것인지...)

 

 

 

 

6. 허균은 역성혁명을 일으켰나?

 

이건 제작진이 '역성혁명'이란 말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했는지 몰라 약간 애매합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 그러니까 '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성씨의 왕조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대로만 보면, 허균에게 씌워진 혐의는 역성혁명이 아니라 의창군 광을 추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의창군은 광해군의 막내 동생뻘이며 허균의 조카사위입니다. 의창군 역시 조선의 왕족이므로 이건 역성혁명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조선시대에도 역성혁명을 시도한 사람은 꽤 됩니다. 유명한 정여립이 - 물론 진짜 반란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렇듯 허균이 '역성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의 마지막 수정자가 역성혁명이란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지, 아니면 김탁환의 '허균의 마지막 19일' 등에 나오는 '허균 역성혁명 가설'을 선택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 안의 맥락으로 봐선 허균이 하선을 보고 '새로운 왕'의 가능성을 봤고, 하선을 살려 보낸 사실이 광해군에게 드러나면서 '역성혁명을 시도했다'는 죄목으로 처단됐다는 설명이 맞아 떨어집니다.

 

(어쩌면 제작진의 머리 속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끝난 뒤 허균이 다시 하선을 찾아 나서고, 하선을 다시 왕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음모를 짜다가 들통나고, 결국 하선과 허균이 함께 능지처참을 당하는 장대한 속편의 구상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마치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속속편인 브라즐론 자작의 3부 - 흔히 '철가면'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 같은 느낌이군요.^)

 

 

 

거듭 말씀드리자만 '광해'은 오락 영화로서 탁월한 완성도를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역사를 상상력으로 다시 재단해 자유롭게 구성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 보다는 꽤 많이 - 영화 속의 역사 재구성을 마치 '감춰진 역사 발굴'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는 그냥 영화로 봐라'라는 말씀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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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빌보드 석권] 싸이가 빌보드 차트 11위까지 오르는 초강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주 64위에 오른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2주만에 11위라니, 이제는 1위에 오른다 해도 놀랍지 않을 듯 합니다. 하긴 이미 소셜 차트 1위와 아이튠스 1위를 차지했으니 빌보드 1위도 결코 꿈이 아닙니다.

 

'강남스타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제2의 마카레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쓴지 한달 남짓 지났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속이 붙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아무튼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춤을 가르치고, 사이먼 코웰과 인증샷을 찍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럽에서 술잔을 나눈다니, 이제 국내에서 싸이를 보기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 설명 들어갑니다. 싸이가 만약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면 대략 사상 7번째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무슨 기록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바로 '영어가 아닌 언어 가사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노래' 부문에서 역대 일곱번째라는 뜻입니다.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자국어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자막으로 외국영화 보기'가 그들에겐 대부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마찬가지로 외국 언어로 된 노래를 소비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차라리 연주곡이 히트하기가 훨씬 쉽죠.)

 

지금까지 여섯 곡의 '비 영어 가사'로 된 노래들이 빌보드 핫100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물론 그중 한 곡은 잘 알려진 '마카레나'입니다. 그럼 그 전의 노래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놀랍게도 리키 마틴이나 샤키라, 셀린 디온은 아닙니다.

 

 

 

 

90년대의 슈퍼스타 리키 마틴이 부른 노래들 가운데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는 '리빈 라 비다 로카(Livin la Vida Loca)' 단 한곡 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제목만 스페인어 일 뿐(영어로는 대개 'crazy life'라고 번역됩니다), 가사는 모두 영어죠.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foreign language hit 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샤키라도 2005년의 'La Tortuna'가 차트 22위에 오른 정도가 최선입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그 유명한 '헤이'도 미국 핫100 성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HOT100에 올라 미국 시장을 석권했던 노래들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역사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핫100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1958년 이후 핫100 1위를 기록한 '비 영어 가사' 히트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 제가 알기론 6곡인데 좀 불안합니다.^^ 혹시 다른 사례를 알고 계신 분들의 제보 부탁드립니다. 당장 수정하겠습니다.

 

 

 

 

Volare - Domenico Modugno, 이탈리아

1958. 8월부터 5주간 1위(연속은 아님)

 

이탈리아 가수 도메니코 모두뇨의 '볼라레'가 현재까지는 가장 오랜 기록인 듯 합니다. 요즘도 각종 CF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죠. '볼! 라~레'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집시 킹스(Gipsy Kings)가 리메이크한 빠른 템포의 뉴 버전이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곡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Dominique - the Singing Nun (Sister Smile)  벨기에

1963. 12.7~4주 연속

 

'싱잉 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벨기에 수녀(진짜 수녀 맞습니다) 지니 데커스(Jeannie Deckers)가 부른 노래입니다. 가사는 불어. 국내에도 오래 전부터 '도미 니크니크니크니크 즈을거워라~~~'하는 번안 가사로 잘 알려진 노래죠.

 

이 노래 외에도 왕년의 '비 영어 히트곡'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히트곡들이기 때문에 제목은 몰라도 들어 보면 너무나 친숙한 곡들입니다.

 

 

 

 


Sukiyaki - Kyu Sakamoto 일본

1963. 6.15~29 (3주)

 

지금까지 '아시아권에서 미국 진출에 성공한 가수'를 꼽으라면 항상 큐 사카모토가 거론됐고, 사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이 노래의 제목은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上を向いて歩こう), 즉 '위로 보고 걷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영국 음반사 사장이 이 노래의 영국 발매를 결정하면서 '저 제목으론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일본어 단어 중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스키야키'를 제목으로 붙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리메이크 연주곡으로 발매된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덕분에 히트하게 됐고, 일단 곡이 히트하자 음반사에선 아예 일본어 가사가 있는 원곡을 다시 발매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까지 퍼지며 불같은 인기를 누렸고, 핫100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싱글 음반이 1300만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내 발매 음반 사상 역대 10위권의 기록입니다.

 

 

 

 


Rock Me, Amadeus - Falco 오스트리아
1986. 3.29~4.12(3주)

 

이제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남 가수 팔코는 독일어 노래로 핫100을 석권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일렉트로닉 댄스 곡이라는게 특징. 비슷한 아이디어로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라는 노래도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Chopin이 '초핀'이 아니라 '쇼팽'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팔코는 이 노래 외에도 비장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Jeannie'라는 노래(한때 나이트클럽의 '부르스 타임'에 단골로 등장했던 곡입니다)로 미국은 아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이 노래는 거의 금지곡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가사가 '강간 미화'라는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뮤직비디오는 알고 보면 살인범 스토커와 그 피해자 사이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이었죠. 후렴구 외에는 전부 독일어 가사라 아시아 지역에선 반향이 적었던 듯...^^

 

 

 

 

La Bamba - Los Lobos 멕시코

1987. 8.29~9.3 (3주)

 

비행기 사고로 간 비운의 초기 록 스타 리치 발렌스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지금껏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87년, 그를 추모하는 영화 '라 밤바'가 개봉됐죠.

 

영화 자체는 엄청난 히트작이 아니지만 멕시코 뮤지션 로스 로보스에 의해 리메이크된 노래 '라 밤바'는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습니다. 리치 발렌스가 1958년에 부른 원곡은 차트 22위 정도에 그쳤지만 1987년의 '라 밤바'는 3주 연속 핫100 정상을 지켰습니다.

 

 

 

 

 

Macarena - Los Del Rio 스페인
1996. 8.3~11.2 (14주)

 

마지막은 지난번에도 소개했던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입니다. 당시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못 보신 분은 이쪽.

 

강남스타일, 제2의 마카레나 될 수 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30

 

 

 

지금까지 예로 등장한 노래들을 보면 스페인어가 2곡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과 일본이 하나씩입니다. 사실 미국 내 인종 비율을 생각하면 스페인어 노래는 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빌보드 핫100 1위를 다섯번이나 기록한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도 그 1위곡들은 모두 영어 노래들입니다.

 

현재의 기세를 볼 때 싸이는 아마도 핫100에서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현재까지의 히트 사례들을 볼 때, 비록 싸이가 지금 '강남스타일'을 영어로 개사할 필요는 없겠지만, 미국에서의 그 다음 히트를 기대한다면 아무래도 영어 가사로 된 신곡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합니다. 단독 작업이든, 저스틴 비버와 같은 히트 아이돌과의 공동 작업이든 말입니다.

 

(물론 이 '신곡'에는 과거의 히트곡들을 영어로 개사해 발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쪽 시장에서는 뭐든 다 신곡일테니.)

 

 

 

(그리고 아래는 '강남스타일'에 심취하신 어느 백인 아저씨. ㅋ)

 

 

 

쇼 비즈니스만큼 예측이 어려운 세계도 드문 만큼, 싸이가 '강남스타일' 이후에 어떤 식으로 미국 커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위에 있는 여섯 뮤지션 가운데 저런 불멸의 히트곡 외에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이어간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이 '로또에 맞듯' 성공을 경험했고, 그 이후 새로운 시장에 적응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싸이 역시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깜짝 성공이란 면에선 마찬가지지만, 현재 상황은 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 작곡을 도와주는 파트너 유건형(왕년에 '언타이틀'로 유명했죠), 유창한 영어 실력과 타고난 언변, 전 세계적으로 밀리지 않을 끼, YG의 본격적인 뒷받침, 미국 내 메이저들의 지원 등 상당히 유력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근래 몇년 사이 세계 시장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POP의 저변도 싸이의 지원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걸스도 화이팅.^^

 

그런 의미에서 싸이가 21세기의 '마카레나'를 넘어 21세기의 '리키 마틴'이 될지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될 듯 합니다(뭐 외모를 얘기한 건 아닙니다^^). 너무 야무진 꿈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싸이가 엘렌 드 제너리스 쇼나 SNL에 출연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기원의 뜻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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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북극곰 사진의 진실] 그러니까 발단은 한 후배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너무나 귀여운, 갓 태어난 북극곰 사진 하나를 본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클릭해 보니 해외 무슨 공공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사진이었고, 설명은 아주 간단히 '어린 북극곰(Polar bear cub)'이라는 것이었죠.

 

후배 기자의 설명은 '너무 작긴 하지만, 공룡 알도 타조알 사이즈인 걸 보면 쑥쑥 자라는 모양...' 운운 하는 것이었고, 그땐 그냥 '뭐, 좀 작은가보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네. 인터넷의 세계,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세계에는 그냥 믿으면 안되는 지뢰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사진입니다. 백곰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귀엽고 조그만 생명체가 사람의 손에서 귀염을 떨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사진설명에 백곰이라고 되어 있으니 "세상에!"하고 백곰이라고 믿었죠.

 

그리고 이 사진을 트위터로 내보냈습니다.

 

 

 

그랬더니 600회가 넘는 리트윗. 역시 '사람들은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트위터에 날려 보낸 수천개의 트윗이 이 곰새끼 사진 하나만도 못하구나'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 중에는 '이거 인형이에요'라는 것들이 몇개 있었습니다. 뭐 처음엔 그냥 무시했죠. 예쁜 여자 사진 올리면 '이거 뽀샵이에요' '이거 인형이에요' 라는 댓글이 기본으로 달리던 시절도 있었고...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영 찜찜한겁니다. 아니 무슨 백곰이 강아지도 아니고, 어떻게 조만한 새끼를 낳을수 있나 싶은 거죠. 게다가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백곰은 꽤 자라야 눈을 뜬다더라'라는 것도 생각나고. 혹시 저게 정말로 인형? 아니면 다른 동물의 새끼? 혹시 처음 생각한대로 코알라? 아니면 백곰 조산아?

 

...뭐 갖가지 의혹이 밀려옵니다.

 

검색 개시.

 

그리곤 이상한 것이 발견됩니다.

 

문제의 백곰?은 생명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타티아나 스칼로주브(Tatiana Scalozub)라는 분이 팔고 있는 곰 인형 패턴의 페이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은 자기가 만든 곰 인형 사진을 올려 놓고, 그 인형들을 만들 수 있는 봉제 패턴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분이었습니다.

 

거기엔 우리의 백곰이가 'best seller'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패턴에 관심 있는 분은 이쪽:

 

(http://www.etsy.com/people/TSminibears?ref=pr_profile)

 

여기 다양한 다른 포즈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것이, 한번 인형이라는 생각을 갖고 보니 또 이게 인형으로 보이는 겁니다. 특히나 입 모양을 보고 나니 이건 참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아무튼 참 잘 만든 인형입니다.

 

 

 

이분의 또다른 작품인 초미니 팬더. 더 작아서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아무튼 같은 장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작품에서는 그닥 사실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던 타티아나씨가 유독 심혈을 기울여 재현해 낸 바람에 저 위의 귀여운 백곰이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농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만 낚인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드리기 위해 퍼왔습니다. 해외의 한 애완동물 전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백곰이의 사진. "이 아기 백곰은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다. 이건 급성장(growth spurt)하기 직전의 모습"이라는 뻔뻔한 설명까지 붙어있군요.^^

 

(Tatiana Scalozub Polar Bear가 구글 검색어에 있는 걸 보면 이 사진에 엮인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널려 있다는 느낌입니다.^)

 

 

내친김에, 그럼 진짜 꼬마 백곰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코펜하겐의 한 동물원에서 찍혔다는 갓난이 백곰의 사진입니다. 생각보다 입도 크고, 눈은 더 폭 들어가 있습니다. 털의 느낌은 인형보다 훨씬 짧으면서 부숭부숭합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차이의 기본은 '싸이즈'.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그러니까 갓난이 백곰도 30cm 정도, 무게는 454~600g 정도 나간다는 겁니다. 함부로 손바닥 위나 그런데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가 절대 아닙니다. ;

 

 

 

이 친구는 생후 한달 정도 지난 사이즈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라면 이런 멋진 가족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아무튼 곰돌이 사진 때문에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들은 아무리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Cogito, Ergo Sum. 역시 옛말 틀린게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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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이 있고,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있습니다. 영화적으로는 당연합니다. 두 인물은 1인 2역으로 같은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다 보면 1인2역이 아니라 1인3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왕이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가 효과적이려면 두 남자는 생김새와 목소리가 똑같지만 신분상으로서는 상당한 격차가 나야 합니다. '왕자와 거지'를 보건, '가게무샤'를 보건 한쪽 남자가 비천한 신분인 것은 매우 당연한 공식입니다. 그리고 그 비천한 남자는 빠른 속도로 변해갑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하선이라는 한 평범한 남자가 왕과 닮았다는 이유로 15일간 왕 노릇을 하고, 그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변신 이야기는 놀라운 완성도로 이미 큰 성공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조선의 왕 광해(이병헌)은 암살의 위협을 다시 한번 넘기고 심복 허균(류승룡)에게 "나와 용모가 꼭 닮은 자를 구해 오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기방에 출입하며 광대놀음을 하던 하선(이병헌). 왕의 용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이 흉내내며 글도 읽을 줄 아는 하선에게 왕과 허균은 만족하고, 하선은 이따금씩 왕의 미행을 감추는 대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해가 알 수 없는 독극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허균은 왕의 변고를 감추기 위해 하선을 궁으로 데려온 뒤 왕을 은밀한 곳에 숨겨 치료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선은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광해를 대신해 조선의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허균과 조내관(장광) 두사람 뿐. 비밀이 드러날 것에 대비해 "비빈들, 특히나 중전(한효주)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지지만....

 

 

 

 

 

 

조선의 여러 왕들 가운데 조선시대와 대한민국 시대에 가장 큰 평가의 변화를 겪은 임금을 하나 꼽으라면 광해군을 빼고 생각하기 힘들 듯 합니다. 연산군과 함께 패륜과 폭정의 상징이었던 광해군은 20세기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현명한 판단으로 전쟁 개입을 피하려 했던 외교의 대가요, 대동법을 도입한 선각자에다 임진왜란의 피해 극복을 지휘한 위대한 지도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사실 다들 아시겠지만 조선은 충보다도 효를 더 강조했던 윤리의 나라였습니다. 20세기 초, 전국에서 모인 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진공하려던 의병장 이인영이 모친상을 당한 몸으로 군을 이끌 수 없다며 귀향해 상을 치르고 체포된 것이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광해군 시대를 기록한 사서의 표현에서는 광해군의 정책에 대해 일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해당하는 인목대비(선조의 계비)를 유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패륜'을 저지르고서는 왕위를 제대로 보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해도 지도자를 선정할 때 개인적인 윤리 차원의 '검증'이 필요 이상으로 중시되는 걸 보면 이건 한국인의 내재된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광해에 대한 아쉬움이 이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슷하게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세종 때라는 배경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지만, 이 '광해'는 비슷비슷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시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모든 시대극은 그냥 시대극으로만 그쳐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일본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가 "나는 단지 내 이야기에 가장 맞는 시대적 배경을 고를 뿐"이라고 말한 이후 이건 상식이 됐죠.

 

'광해' 역시 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이걸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광해' 역시 이런 부분에서 다소 무리수가 보이지만,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팩션 가운데 그래도 '역사의 무게'에 대한 인식에선 확실히 한발 앞서 있는 영화가 바로 '광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게 '광해' 속의 당시 정치 상황이 역사에 기록된 모습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존중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뭐 '높은 것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아랫 것들은 사소한 의리에 따라 목숨을 건다'는 식의 지나치게 도식적인 배치는 아니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이를 포함해 '광해'에서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이야기'의 황금비율입니다. '둘 다'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배우 중 하나인 류승룡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류승룡의 움직임에 따라 두 이야기의 배분이 조절되기 때문이죠. 류승룡이 중심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코믹함이 돋보이는 배우 김인권이 강직함을 표상으로 하는 도부장 역을 맡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칼 관련 에피소드, 즉 김인권의 "저~~~~~언 하~~~ 히잉" 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전반적으로 코미디와 관련된 '호흡'과 '박자' 면에서 추창민 감독은 장인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배우들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병헌의 호연은 굳이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하선과 왕을 가르는 선이 그리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왕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하선이 지나치게 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선이 지나치게 시정 잡배처럼 보여선 안된다'는 제작진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하선1(광대놀음을 하던 원래 하선)이 하선2(왕이 된 뒤 변모한 하선)로 바뀌어 가면서 이병헌의 연기는 빛을 발합니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왕 하선2와, "용상에 앉았던 천한 것을..."이라며 서늘한 분노를 감추는 광해는 선명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이병헌은 세 인물을 연기하는 셈이 됩니다. 물론 광고 영화인 '인플루언스'에서 이미 1인3역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하선이라는 인물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 인물 가운데서도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하선2'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효주는 이미 사극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비련의 중전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아우라를 풍겼습니다. 역할의 특성상 눈에 띄는 자극적인 연기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광해'의 중전 역할을 할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객의 공감'입니다. 즉 '저런 중전이라면 하선이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해 가면서도 보호하려 기를 쓰는게 당연해'라는 생각을 줄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효주의 캐스팅은 탁월했습니다.

 

 

 

 

 

가짜와 진짜 사이의 에피소드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입니다만 '광해'에서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게무샤'의 영향이 좀 더 느껴집니다. 가짜가 어느 한 순간 자신의 가능성을 각성하고, 진짜가 되어도 큰 무리가 없는 '가짜 진짜'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기억나는 영화는 션 코너리 주연의 고전 영화 '왕이 될뻔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 입니다. 국내에서 극장 개봉은 없었던 듯 하고, TV에서 방송될 때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달았던 작품이죠. 인도에 파병됐던 두 명의 영국군 낙오병이 네팔 부근의 오지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중 한 병사(션 코너리)는 몇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으로 오해받게 되고, 서서히 그 자신도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나 혼동을 일으킵니다.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고, 쌍둥이가 나오지도 않지만 가짜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새로운 삶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사소한 성공들, 도주의 기회, 자발적인 거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비참한 몰락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은 광해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양쪽 영화 모두 성공적입니다.

 

(DVD 출시명은 '왕이 되려고 한 사나이'로군요.)

  

 

 

'광해'에서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빛의 사용입니다. 진짜 왕 광해는 빛을 등에 이고(후광이라고 할까요^) 있거나, 인공적인 조명의 도움을 받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선은 왕위에 있을 때도 자연광 앞에 노출됩니다. 이런 배치는 '태어난 왕'과 '만들어진 왕'의 차이를 은연중에 관객에게 심어주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입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얼른 보세요.

 

 

 

P.S. 사실 광해군은 33세에 왕이 됐고 중전 유씨는 당시 30세. 배경이 광해군 8년이므로 광해군은 41세고 유씨는 40세...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광해'의 로맨스가 깨질 우려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도 포스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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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 2, 실베스터 스탤론, 척 노리스] 1985년, 노량진 대성학원 옆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다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커피는 한잔에 천원. 그런데 특징이라면 차를 파는게 주업이 아니라 비디오를 틀어 주는게 주업이라는 점이었죠.

 

비디오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시절에 '빨간 비디오'를 틀어 주려면 시간이 그래도 새벽 한시는 넘어야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야한 영화가 아니라, 당시 극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할리우드의 최신작 영화들을 틀어 주는 전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커녕 삐삐도 없었고,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음반 산업의 주축이던 시절, 어디서 그런 영화들을 구해 오는지 매우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여름, 학원생들 사이에서 당시 화제의 영화였던 '람보2'를 '그 다방'에서 틀어 준다는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극장 개봉 전이기도 했거니와, 극장 영화 표값이 한 2500원 정도 했던 시절. 가 보니 다방 안에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항의로 상영(?)이 중단될 뻔 했습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재수생들이었지만 보다 보니 주인공이 실베스터 스탤론이 아니고, 영화도 람보2가 아닌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날 본 그 영화가 람보2였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명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항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진짜가 아닌 짝퉁 람보2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넘어갈 만큼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월남전 배경 영화는 흔치 않았던데다 서부극 못잖게 '쏘면 다 맞는' 영화는 현대전 영화에서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죠. 아울러 수염 기른 남자주인공 또한 사뭇 매력적이었습니다.

 

 

 

 

짐작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 영화는 'Missing in Action(1984)'이었고, 그 주인공은 척 노리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재수생의 머리 속에서 인연을 맺은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랠론은 27년만에 한 영화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익스펜더블2'.

 

 

 

1편을 보신 분이나 안 보신 분이나, 아무 상관없는 줄거리지만,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댐), 양(이연걸) 등은 1편의 악역이었던 거너 젠슨(돌프 룬그렌)을 멤버로 받아들여 여전히 용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는 네팔 어딘가에서 이들이 포로가 된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구해 주는 장면. 신나는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정부 일을 하고 있는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가 과거의 부채를 거론하며 로스에게 동구권 어딘가에 추락한 비행기 금고에서 모종의 물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들을 돕는 요원으로 젊은 중국인 여성 매기(여남餘男, 흔히 위난이라고 불립니다)가 파견되죠. 하지만 로스 일당은 현장에서 빌런(장 클로드 반담) 일당에게 기습을 당해 물건도 빼앗기고 인명 피해도 입죠. 분노한 로스는 매기의 도움으로 빌런 일당을 추격해 러시아로 갑니다.

 

 

 

 

이후의 전개에도 놀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전도, 복선도, 보는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편은 악당들을 뭉개 버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결론을 향해 영화는 달려갑니다.

 

물론 이건 영화를 보기 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영화 한 편에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 나오고 이들이 같은 편인데 대체 누가 그걸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장 클로드 반담? 어림없죠.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마음 자세는 - 당연히 그렇겠지만 - 지금 현재가 아니라 '왕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왕년'의 극장가를 뒤흔들었던,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바로 그 액션 영웅들이 얼마나 늙고 몸도 굼뜨게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은지원이나 문희준이 여전히 팬들을 졸도하게 할만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응답하라 1997'은 그 시절을 보냈던 연령층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유머 역시 철저하게 관객의 추억에 기대고 있죠.

 

 

더 알아듣기 쉽게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총알이 떨어졌다. I'll be back('터미네이터'의 상징적 대사).

브루스 윌리스: 그만 좀 돌아와! 이제 내 차례야. (제발 그 'I'll be back' 좀 그만 써먹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래. Yippe-kai-yay ('다이 하드'에서 맥클레인의 상징적 대사)

 

 

 

 

1편에서 이미 그런 정서를 이용해 꽤 많은 돈을 번 '익스펜더블' 프로젝트는 2편에 들어가면서 부커(척 노리스)와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강하고,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까지 실전에 투입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사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역시 추억의 명화인 '지옥의 특전대(Wild Geese)'에 가깝지만, 그 어떤 비장미도 찾아볼 수 없다는게 특징이죠. 영화 중반에서는 어쩐지 '황야의 7인(혹은 '7인의 사무라이')' 쪽으로 흘러가려는 듯한 느낌이 잠시 조성되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으시는게 좋습니다.

 

1편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몇몇 추가 멤버들과 함께 구질구질한 멜로드라마가 아예 삭제됐다는 것 뿐인데, IMDB 평점(6점대에서 7점대로), 로튼토마토 지수(41->64) 모두 상승했습니다. 글쎄 뭐가 그리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긴 하지만, 지금의 3,4,50대 남성 관객들이 두어 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고 1,2,30년 전을 그려 보기엔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뭐 여자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그런데 굳이 따져 보니 척 노리스는 70대였군요.^^ 진짜 액션 그랜드파...

 

척 노리스 1940.3.10

실베스터 스탤론, 1946. 7.6.

아놀드 슈워제네거 1947.7.30

브루스 윌리스 1955.3.19

돌프 룬그렌 1957.11.3

장 클로드 반담 1960.10.18

이연걸 1963.4.26

제이슨 스타댐 1967.9.12

 

 

 

 

자, 이제 3편에서는 누가 기다리고 있나 보겠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1962.7.31)와 스티븐 시걸(1952.4.10)이 있군요. 1편에서 악역을 거부했던 반담도 가세했으니 시걸에게는 다이어트만 남은 셈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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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다양해졌습니다만 예전엔 야외에 나가면 먹는 음식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토종닭 백숙, 민물매운탕, 닭도리탕(닭볶음탕이라고도 합니다만...)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오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 바로 토종닭 백숙이라고 하겠습니다.

 

토종닭을 먹어 본 일반인들에게 토종닭의 특징을 물으면, 백이면 백 '질기다'고 합니다. 저도 그리 많이 먹어 본 것은 아니지만, 다릿살조차도 가슴살 못잖게 퍽퍽하고 질겼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야외까지 나와서, 비싼 토종닭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런데 최근 방송된 '미각스캔들'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먹어 온 토종닭은 토종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군요.

 

 

 

 

토종닭이 질긴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댑니다. 요즘 많이 먹는 일반 양계장 닭은 한정된 공간에서 먹이를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자라기 때문에 지방 함량도 높고 살이 무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토종닭은 풀어 놓고 기르기 때문에 온 몸이 근육질(?)이고, 그래서 질기다는 것이죠.

 

이때문에 시골 토종닭 전문점(?)에 가 봐도 주문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토종닭이라 삶는데 오래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또 그렇게 오래 삶아서 나온 닭도 턱이 아플 정도로 질긴게 보통이죠.

 

 

 

 

그렇지만 방송에서 직접 닭을 삶아 본 결과, 토종닭이라고 살이 질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반 육계와 비교해 볼 때 비슷한 시간을 삶으면 거의 비슷하게 살이 문드러집니다.

 

게다가 맛을 보는 사람들도 "생각과는 달리 쫄깃쫄깃하다"고들 합니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현재 유통중인 공인 토종닭, '우리맛 닭'과 '한협 3호' 중 '한협 3호'를 삶은 것입니다.

 

 

 

 

그럼 대체 왜 식당에서 파는 토종닭은 질겼던 것일까요. 이유는 진짜 질긴 닭, 즉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노계들이 토종닭으로 둔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산업계에서 규정하는 노계란 그냥 나이 먹은 닭이 아니라 산란종의 닭 가운데서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알 생산력이 없어 헐값에 팔려 나온 닭이라는군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토종닭은 질기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오히려 역이용해서, 본래 요리용이 아닌 닭(노계는 보통 동물 사료나 닭고기를 이용한 소시지 등 육가공식품용으로 팔린다고 합니다)을 속여 팔고 있었던 겁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이런 '질긴 토종닭'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보면 몇해 전 불처럼 일어났던 '수타면 논란'이 생각납니다.

 

방송을 통해 면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뽑는 '수타면 짜장'들이 각광받으면서 너도 나도 수타면으로 짜장면을 요리한다고 나섰을 때 일입니다. 이때 수타면을 처음 먹어 본 사람들은 '이게 국수냐 수제비냐' '수타면 수타면 하더니 영 아닌 것 같다'는 혹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수타면이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 '손으로 국수를 뽑아 내기는' 하되 기술자도 제대로 배운 기술자가 아니고, 손님이 늘자 시간도 부족하고 하다 보니 대충 만들다 만 수타면이라 국수의 굵기가 일반 기계면의 1.5~2배 가량 되는 수타면이 나온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국수에 양념이 제대로 배지도 않고, 최악의 경우 국수가 덜 삶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본래 장인들이 만든 수타면, 약간 과장을 보태면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수타면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당시의 '수타면 붐' 때문에 오히려 수타면을 거부하게 된 것이 어쩌면 근래의 토종닭 상황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장 저부터도 '토종닭=질기고 맛없는 닭'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토종닭은 위에서 말했듯 '우리맛닭'과 '한협 3호' 두 종류입니다. 그나마도 6.25 등을 거치며 아예 토종닭의 씨가 말랐던 것을 어렵게 종을 보존해 길러낸 것이 이 두 종류라는군요.

 

일반적으로 진짜 토종닭은 다리가 늘씬하고 발달해 있어 육안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맛닭은 발목이 저렇게 검은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또 일부러 닭을 염색하기라도 하는 작자들이 나타날까 겁납니다.

 

문제는 일반 육계가 30일이면 상품으로 나오는데 비해 토종닭은 60일 이상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2배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고급 음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나고야코친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뭐 그냥 '닭고기가 뭐 그리 비싸'라고 할게 아니라, 명품은 명품으로 취급하는 태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이런 표지가 붙은 곳에선 안심하고 진짜 토종닭을 맛볼수 있다는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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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페라를 가끔 봅니다만, 거기에 대해 포스팅하는 건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네가 언제부터 오페라 타령이냐고 면박을 당할 걱정도 좀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철저한 무관심을,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는 지식 부족에 대한 지적이나 받을 거라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하지만 2012년 8월24일의 위대한 공연에 대해서는 뭔가 개인적으로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는 정명훈 지휘, 서울 시향의 연주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국내 초연이 이뤄졌습니다.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음악당인 이유는 무대 진행이 없는 스탠딩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국내 초연이라니... 바그너 오페라 공연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의 공연이 이뤄진 사례 자체가 대단히 드물더군요. 저도 언젠가 '탄호이저'를 공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자그마치 1979년이더군요. 그 뒤로는 2005년 일본 오페라단 초청 공연, 그리고 2009년의 바그너협회 공연 정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08575)

 

 

 

 

물론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무대 장식이나 대형 합창단 등 '규모'가 크게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무대가 거의 필요없어 이런 형식의 콘서트 퍼포먼스에 적절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도 힘든 것은 일단 공연 시간의 문제가 크다는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대개의 오페라가 4시간을 넘나드는 만큼 연주가 어렵고, 그 어려운 공연을 소화해 낼만한 바그너 전문 성악가(한 관계자에 따르면 '소처럼 노래하는 성악가'^)가 드물다는게 문젭니다. 물론 국내에 없다는 거지 한국이 낳은 위대한 베이스 연광철 같은 바그너 전문 가수들은 본고장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단 공연 개요부터 정리.

 

트리스탄과 이졸데

 

지휘 정명훈

연주 서울 시향

출연

테너 (트리스탄) : 존 맥 매스터 _ John Mac Master, tenor (Tristan)

 

 


소프라노 (이졸데) :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_ Irmgard Vilsmaier, soprano (Isolde)

 



메조소프라노 (브랑게네) :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_ Ekaterina Gubanova, (Brangane)

 


 
바리톤 (쿠르베날) : 크리스토퍼 몰트먼 Christopher Maltman, baritone
베이스 (마르케 왕) : 미하일 페트렌코 _ Mikhail Petrenko, bass (Konig Marke)
테너(젊은 선원, 목동) : 진성원 _ Sung Won Jin, tenor (Ein junger Seemann, Ein Hirt)
테너(멜로트) : 박의준 _ Eui Joon Park, tenor (Melot)
베이스(조타수) : 김장현 _ Jang Hyun Kim, bass (Ein Steuermann)

합창 : 국립합창단 _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합창 : 안양시립합창단 _ Anyang Civic Chorale
연주 : 서울시립교향악단 _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공연의 우수함을 제가 감히 평할 수는 없겠지만, 전막 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바그너 오페라는 '마이너 공연'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날 공연은 이미 두어달 전에 매진이었습니다. 저도 공연 약 5일 전, 예매 취소된 표를 운 좋게 사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발적 관객'은 역시 '공짜표 관객'과는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일단 국내 어지간한 오페라 공연과 기침소리의 양에서 비교가 안 될만큼 정숙성이 뛰어났습니다. (제발 기침 참기 힘든 분들, 지루한 공연 보고 있으면 목이 간질간질해서 미칠 것 같은 분들, 굳이 예술의전당까지 와서 기침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비싼 공짜 표도 있는데 오페라 한번 보러 갈까' 하시는 분들, 괜히 가래 돋는 공연 보면서 기침 하지 마시고 차라리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1막 끝나고 다 가실 거잖습니까.) 아무튼 지금껏 본 어느 오페라 공연과 비교해도 만족도 면에서 뛰어난 공연이었습니다.

 

(괜히 또 흥분... 저도 뭐 사실 가끔 졸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명한 유럽 중세의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1막

아일랜드에서 콘월로 건너가는 배 위. 트리스탄이 숙부인 웨일즈와 잉글랜드의 왕 마르케의 신부감인 이졸데를 호위하고 가는 여정입니다. 아일랜드는 마르케 왕의 군대에 패했고 강화를 위해 공주인 이졸데를 왕비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배 위에서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미워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졸데의 약혼자였던 아일랜드 기사 모롤드가 마크 왕을 선제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모롤드는 목이 잘려 돌아옵니다.

얼마 뒤 아일랜드 해안에서 이졸데는 표류된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졸데는 비전의 의술로 그를 살려내는데, 본인은 가명을 대지만 이졸데는 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기사 트리스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트리스탄은 건강을 회복하고 아일랜드를 떠나지만 얼마 뒤 마르케 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와 이졸데를 왕의 신부감으로 데려간다고 말합니다.

배 위에서도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눈길을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라고 부르며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시녀 브랑게네를 시켜 가전의 비약 중 죽음의 약을 가져오게 합니다. 적국의 왕비가 되는 치욕을 감내할 수 없으니 원수 트리스탄과 함께 죽겠다는 거죠.

하지만 브랑게네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놓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는 대신 불같은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2막

콘월의 성에서 마르케 왕의 왕비가 된 이졸데와 트리스탄은 밤을 틈타 밀애를 이어갑니다. 브랑게네는 트리스탄의 친구 멜로트가 눈치챈듯 하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이졸데에겐 조심성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 왕이 사냥을 떠난 사이 밤이 새도록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밀회를 즐깁니다. 이들에겐 밤이 해방이요, 낮은 죽음입니다.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죽음은 이들에겐 하나입니다.

 

So sturben wir, um ungetrennt. 우리 죽어요, 떨어지지 말고

ewig einig ohne End' 끝없이 영원한 하나로

 

하지만 날이 새자 마르케 왕과 멜로트가 들이닥칩니다. 마르케 왕은 '네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믿을수 없는 미녀를 데려오더니 이게 무슨 배신이냐'라며 참혹한 배신감을 토로합니다.

변명할 수 없는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같이 죽겠느냐고 묻고, 이졸데는 호응하는 가운데 이들을 용서할 수 없는 멜로트가 공격해 옵니다. 트리스탄은 싸움에 응하는 대신 멜로트의 칼에 몸을 던져 치명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3막

브르타뉴에 있는 트리스탄의 성. 충실한 시종 쿠르베날에 의해 브르타뉴로 옮겨진 트리스탄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 중태였지만 이졸데가 오고 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연인의 얼굴을 보려는 일념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졸데와 마주하는 순간,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절망하는 이졸데. 이어 마르케 왕과 멜로트, 브랑게네가 다른 배로 따라와 상륙합니다. 쿠르베날은 이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잡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공격해 멜로트를 죽이고 자신 또한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마르케 왕은 이들을 용서하고 두 사람을 맺어 주기 위해 온 것이었죠.

결국 비탄에 빠진 이졸데는 유명한 사랑의 죽음(liebestod)를 부르고 쓰러져 죽어갑니다.

 

이 아리아가 결국 한편의 오페라를 압축한 느낌을 줍니다. 트리스탄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이름조차도 어원은 '슬픔'이라는군요), 어둠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다가 연애마저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졸데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가 이승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저승으로 미뤄 버립니다. 이 정서가 총정리된 것이 바로 이 아리아입니다.

 

이 오페라가 초연될 무렵(1859년)에는 이 노래를 가리켜 '로렐라이의 노래와 가장 유사한 노래'라는 평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공의 넋을 빼어 배를 침몰시켰다는 로렐라이의 요정이 부른 노래가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을 거란 얘기죠. 그럴싸하게 이승의 노래가 아닌 듯, 노래는 몽환적이고 관능적입니다.

 

전설적인 바그너 가수 비르기트 닐손의 노래입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이졸데 전문가 발트라우트 마이어의 버전.

 

 

마이어가 부른 이 노래의 버전만 해도 10여개 검색될 정도.

 

제가 갖고 있는 DVD도 마이어의 1995년 바이로이트 판입니다.

 

 

 

르네 콜로와 기네스 존스가 부른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듀엣입니다. 이 오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리베스토드'의 멜로디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사실상 같은 노래인 셈입니다.

 

중세 전설의 트리스탄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됩니다. 서로 뒤섞이는 전설의 속성에 따라 어떤 버전에서는 트리스탄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가운데 한 멤버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영화 '킹 아서'에도 트리스탄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는 랜슬로트도 같이 나오는게 좀 어색합니다.

 

랜슬롯과 트리스탄이 공존하기 힘든 것은, 아서 왕의 이야기에서는 본래 랜슬롯이 트리스탄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이자 군주인 아서를 배신하고 왕비 기네비어와 불륜을 맺는 주역 말입니다.

 

그래서 아서 왕 이야기를 다룬 최고의 영화 '엑스칼리버'에서는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밀회 장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사용합니다. 관능적인 느낌이 일품입니다.

 

 

 

뭐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바그너 음악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트로에서부터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례' 음악을 쓰고 있죠. 이 음악은 마지막 장면, 아서 왕의 죽음 때에도 되풀이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은 그 당시까지 마이너 음악이었던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 지만, 아서 왕 전설과 성배, 그리고 이 영화 속 퍼시벌이 바로 바그너 악극 '파르지팔'의 주인공이라는 점 등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의 바그너 사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랜슬롯-기네비어 이야기와 트리스탄-이졸데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약물'의 존재입니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랜/기 커플과는 달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약물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약물의 존재는, 마지막에 마르케 왕이 두 사람을 용서하는 이유(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뭔가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약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애절함도 훨씬 덜하죠. 물론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스토리로 보면 이졸데가 트리스탄에게 그토록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처음에 그를 치료하고 살려 보낸 것이 이미 감정의 동요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트리스탄이 배 위에서 한사코 이졸데와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것, 또 본능적으로 이졸데가 건네는 약이 독약이라고 느끼면서도 복용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 트리스탄이 기회만 있으면 죽고 싶어 안달인 염세적인 인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 이졸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미 끌리고 있었고, 약물의 역할은 도덕률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의 본능을 일시에 폭발시킨 정도...라고 보는 것으 적절한 해석일 듯 합니다. 그리고 마르케 왕이 굳이 미약의 핑계를 댄 것은 사랑하는 조카의 사랑을 용서해 주기 위한 언턱거리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 하루 빨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포함해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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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없는 꽃집'이라는 일본 드라마는 사실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제목은 스치듯 들어본 기억이 있었지만, 사실 일본 풍의 순정 멜로 드라마는 제게 대부분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호평일색인 '1리터의 눈물' 같은 드라마도 힘겨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는 '미녀 혹은 야수' 풍의 코믹터치입니다.)

 

게다가 여주인공이 다케우치 유코라는 것도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미인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수는 없지만 취향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런데 어쨌든 회사 일 때문에 이 '장미없는 꽃집'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네. 2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장미없는 꽃집'은 정말이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였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의 내숭이라고나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드라마는 '전혀' 순정 멜로 드라마가 아닌 겁니다.

 

 

 

줄거리. 에이지(카토리 신고)는 작은 역 앞 꽃집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30대 가장. 아이 엄마는 딸 시즈쿠(야기 유키)를 낳다가 죽었고, 그 추억 때문에 이 꽃집은 장미를 팔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미모의 맹인 여성 미오(타케우치 유코)가 꽃집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외로운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게 됩니다. 여기에 우연히 에이지에게 얹혀 살게 된 호스트(마츠다 쇼타)까지 얽히며 미오와 에이지의 밀당이 시작됩니다.

 

...뭐 이렇게 쓰면 역시 전형적인 순정 멜로드라마의 시작입니다. 남자 주인공 에이지는 심지어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도 일부러 노인 뒤에 줄을 설 정도로 착하디 착한 남자. 이유는 "성질 급한 사람이 노인 뒤에 줄을 섰다가 빨리 계산하지 못한다고 구박이라도 받을까봐"입니다. 당연히 일본 드라마의 남주답게 절대 애정 문제에서도 박력이나 패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오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 미오에게 자신의 흑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저쪽은 처녀고 나는 애아빠...'라는 식의 한국적인 생각 아닙니다. 그냥 일본 풍으로 주저하는 겁니다. 아주 그냥.

 

그런데, 문제는 이게 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선 2회쯤 되면 미오가 사실은 맹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사실. 즉 처음에 설정되어 있던 인물들의 구조가 회를 거듭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구성된다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입니다. 즉 순정 멜로인 줄 알았던 장르가 미스터리 휴먼 성장 드라마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죠.

 

 (아니...뭐... 그렇다고 링은 아니고...)

 

출연진입니다.

 

薔薇のない花屋

 

2008年3月24日放送終了

 

香取慎吾  汐見英治
竹内結子  白戸美桜
釈由美子  小野優貴
松田翔太  工藤直哉
八木優希  汐見 雫 

 

 


 

가토리 신고는 일본 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들어봤음직한 슈퍼 아이돌 그룹 SMAP의 막내입니다. 아무리 막내라 해도 77년생.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쨌든 팀내 캐릭터는 장난꾸러기 막내라서 이전까지 '손오공' 류의 캐릭터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황당무계한 변신이 그의 주업이었지만, '장미없는 꽃집'에서는 진지한 정극 연기자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친구가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팬들이 보면 큰일나겠군요.)

 

 

 

타케우치 유코. 일본을 대표하는 순정파 여배우.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선이 특기입니다. 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을 휩쓴 이른바 민폐형 여배우 캐릭터의 화신이라 할 수 있죠.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기무라 타쿠야와 공연한 '프라이드'.

 

2005년 나카무라 시도와의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지했지만 2008년 이혼과 함께 복귀합니다. 그 복귀작이 바로 이 '장미없는 꽃집'입니다. 그 뒤로 다시 승승장구. 최근에는 미국 ABC 드라마 '플래시포워드'에도 출연합니다.

 

 

 

아마도 '로스트'의 김윤진이 성공을 거둔 이후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아시아 여배우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래시포워드는 시즌1으로 제작 중단.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는 타케우치가 아니라 시즈쿠 역의 아역 야기 유키입니다. 눈물 연기는 기본. 물론 '백한번째 프로포즈'를 쓴 천재 작가 노지마 신지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 중반에 나오는 명장면 '시즈쿠 찾기' 등을 통해 야기는 일본 최고의 아역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밖에 눈길을 끄는 배우는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마츠다 쇼타,

 

 

 

그리고 일본의 야쿠자 전문 배우 데라지마 스스무가 아직도 '청춘의 로맨스'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에이지 앞집의 카페 주인으로 등장, 웃음을 자아냅니다.

 

 

한번 보시면 다음 진행이 궁금해지는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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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리즈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마법의 섬 Enchanted Island)'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로크 오페라 가운데(특히 헨델의 작품 중에) '마법의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마법의 섬'은 21세기의 음악가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와 '한 여름밤의 꿈'을 토대로 헨델, 비발디, 그리고 라무(Jean-Philippe Rameau)의 작품들 중 분위기에 맞는 곡을 골라 만들어 낸 혼성 모방(pastiche)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의 창작물이되 17~18세기의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는 작품인 겁니다.

 

이런 저런 요소들을 고려할 때 '마법의 섬'은 아름다운 무대와 적절한 유머 감각, 그리고 화려한 출연진의 명연기로 매우 훌륭한 볼거리 역할을 했습니다. 노래들이 워낙 반복이 심한 바로크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덕분에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40분의 공연 시간은 좀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번쯤 볼만한 작품이라는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속물인 저 같은 관객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마법의 섬'에 등장한 소프라노 여가수들이 하나같이 날씬한 미인들이더라는 겁니다.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 무슨 조화인지 모바일 버전으로는 글 중간이 뚝 끊어져서 핵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내용은 PC 버전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본다'고 말하면 '그 지겨운 걸 어떻게?'라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배나온 아저씨들과 한팔로 안을 수도 없는 뚱보 아줌마들을 절세의 미남 미녀라고 주장하는 공연을 대체 어떻게 보느냐'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마법의 섬'을 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듯 합니다.

 

 

 

 

 

 

 

온 출연진이 모두 스타급이지만 그보다는 출연하는 소프라노들의 모습이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일단 요정 에어리얼 역의 다니엘 드니스(Danielle De Niese). 화려한 외모 만큼이나 화려한 가창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프라노입니다.

 

 

'마법의 섬'에서는 좀 과한 분장 탓에 외모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화사한 외모는 물론이고, 탁월한 콜로라투라로 명성이 높습니다. 특히 바로크 풍의 경력이 두텁죠. 그가 부르는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입니다.

 

 

그 다음은 헬레나 역을 맡은 레일라 클레어(Layla Claire).

 

 

물론 작은 역이지만, 무대가 메트로폴리탄인 만큼, 작은 역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 위상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섬'에서의 조연을 다른 여타 오페라의 조연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 2곡은 자기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BBC 프로그램에서 키리 테 카나와의 레슨을 받고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란다 역의 리셋 오로페사(Lisette Oropesa)입니다.

 

 

같은 메트로폴리탄의 '라인의 황금'에서는 라인의 세 처녀 중 하나로, '지그프리트'에서는 무대에 나서지 않는 새 역할로 참여했던 소프라노입니다.

 

물론 메트로폴리탄에서는 작은 역이지만 이미 다른 무대에선 광란 신으로 유명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적도 있는 소프라노. 머잖아 월드 클래스 주연급으로 도약할 것이 기대됩니다.

 

노래하는 모습.

 

 

그런데 오로페사의 과거 행적을 굳이 살피려고 한 것도 아닌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건 다 구글의 과잉 친절 때문입니다.

 

 

 

설마 싶지만 설마가 아닙니다. 놀랍습니다. 이목구비는 똑같은데 사람이 절반...

 

 

스타덤을 위해 엄청난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이 드러나 보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채식을 이용한 엄청난 다이어트가 있었다는군요.)

 

물론 일찌기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선생이 '이미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의 주역 소프라노들은 다이어트를 마쳤다'고 하셨듯, 아무리 오페라가 고급 예술이라 해도 '관중의 눈'에 최적화된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반론은 오페라 주역을 고를 때 가장 큰 기준이 '미모+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무조건 일단 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뭐 이 논란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어쨌든 추세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가 정말 당대 최고의 가창력 때문에 스타 소프라노가 된 것이냐, 아니면 미인이기 때문에 실력 이상으로 평가받은 것이냐 하는 얘기도 쉽게 끝날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네트렙코가 빌리 데커 판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DVD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오로페사의 무서운 다이어트도 결국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겠죠.

 

아무튼 '마법의 섬'은 메가박스에서 상영합니다. 단 금요일과 일요일만 상영하는 듯 하니 꼭 시간표를 확인하시길.

 

 

P.S. 인공지능이 적용된 덕분인지(?) 유튜브에 몇 차례 윗글에 나오는 이름들을 입력했더니 뜬금없이 이런 동영상을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발견한 몰도바 출신의 신예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Valentina Nafornita). 25세. 성악가라기보단 모델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도니제티, '돈 파스콸레' 중에서 '그 눈길이 기사의 심장을 사로잡아(Quel guardo! so anch'io la virtù)'.

 

 

지난해 BBC 주최로 카디프에서 열린 신예 성악가 발굴 오디션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당시 5위 안에 들었던 성악가 가운데 한국의 이혜정(진짜 가운데)도 있었더군요. 나폴니타는 맨 오른쪽.

 

아무튼 앞으로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집니다.

 

 

http://operalively.com/forums/showthread.php/545-Of-these-singers-who-is-the-love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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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X파일 냉면 육수의 불편한 진실] 냉면 육수에 대한 맛집 검증 프로그램이 화젭니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에서 2주 연속으로 냉면 육수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첫번째 방송 내용은 '소위' 냉면 전문점들의 냉면 육수 가운데에는 진짜 쇠고기가 1%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라 많은 공분을 샀습니다. 설탕과 식초, MSG와 쇠고기맛 조미료(즉 다시다)만을 배합해서 쇠고기 육수 맛을 낸다는 것이었죠. 워낙 신뢰도 높은 방송이라 반향도 컸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송, 이번에는 냉면 한 그릇에 만원 안팎을 받고 있는 냉면계의 명가들은 어떤지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검증 결과는 '사실상 MSG를 전혀 쓰지 않는 집은 없다'. 여기에 대한 실망감도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정말 온당한 것일까요?

 

 

 

 

자칭 냉면 마니아로서, 방송 내용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냉면 육수의 문제는 JTBC '미각 스캔들' 에서 먼저 다룬 바 있습니다. 지난 7월15일 방송이 나간 '칡냉면의 비밀' 부분입니다.

 

 

 

 

 

 

위의 재료 표에서 '모도'라는 것은 닭고기 맛이 나는 분말 재료를 말합니다. 아마도 '아지노모토'의 '모토'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아무튼 이 내용에서 그치지 않고 '먹거리 X파일'은 칡냉면 아닌 그냥 냉면집에서도 고기 한점 들어가지 않은 육수로 냉면을 말아 낸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 검증 대상에는 서울 시내 곳곳에 널려 있는 수천군데의 일반 냉면집 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미식가들이 환장하는 유명 냉면집들도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방송에서 내려진 결론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냉면을 하는 집은 없는 것 같다'입니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서울 시내의 유명 냉면집 가운데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내는 집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부정하거나, 그동안 '이집은 미원 같은 거 쓰지 않는 집이야'라고 자신있게 냉면집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 온 사람들이 있다면 냉면 마니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인공 조미료를 넣은 맛과 넣지 않은 맛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일 겁니다.)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일단 우리가 냉면 육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차원을 나눠 생각해봐야 합니다.

 

1) 냉면에 전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 집

2) 좋은 재료를 써서 육수를 내되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사용하는 집

3) 명목상 고기를 쓰기는 하지만 맛의 핵심은 조미료에 있는 집

4) 고기 0%에 조미료를 육수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집

 

1차 방송은 4)의 비양심 업소들을 집중 고발하는 것이었고, 이 집들은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정말 나쁜 놈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방송 내용이 '아예 고기를 쓰지 않는 집'에 맞춰지는 바람에 3)의 업소들까지 '억울하다'고 나섰죠.

 

그리고 2차 방송까지 보고 나니 두 편의 방송 결과로 볼 때에는 2)의 집도 '문제 있는 집'으로 표현됩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 그러니까 2)의 업소들과 3)의 업소들이 똑같이 도맷금으로 넘어간 건 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2회 끝에 소개된 '진짜 좋은 맛이 나는 집'(동두천의 평남면옥으로 추정됩니다. 저도 이 집은 가 본 적이 없습니다)도 마지막에 주인이 '육수에 조미료를 조금 넣는다'고 말을 해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지 못합니다.

 

 

 

 

이를 포함해 두번째 방송에서는 서울 시내 세 곳의 유명 냉면집을 방문합니다. 첫번째 집은 처음엔 주인이 "냉면엔 안 쓴다"고 주장하다가 주방에서 조미료가 발견되자 당황하며 얼버무립니다. 두번째 집은 매장에선 안 쓴다고 하지만 육수 공장에서는 "한통에 420g정도 쓴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조미료를 안 쓰면 '육수에 물을 탔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아예 분량까지 말해줍니다. 세번째 집에서는 아예 "어떻게 안 쓰냐. 쇠고기맛 조미료는 안 쓰지만 백색 MSG 분말(미원)을 쓴다. 손님들이 이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뭐 많이 가시는 분들은 외관만 봐도 금세 알아차릴테니 그냥 실명으로 씁니다. 첫집은 봉피양, 둘쨋집은 을밀대, 세째집은 우래옥입니다. 예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특히 우래옥은 인공 조미료 사용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안 쓰면 손님들이 외면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입니다. 가끔씩 소위 맛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우래옥 냉면에 대해 '조미료 냄새 전혀 없는 육향' 어쩌고 할 때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이 그렇게 문제일까요.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재료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조미료로 비싸고 좋은 재료를 대신하려는 태도입니다. 넣어야 할 비싼 재료를 다 넣었다면, 그 맛을 더 화려하게 하기 위해 조미료를 넣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유는 두가지.

 

 

 

 

첫째. 저 위에서 거론한 세 집을 가 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냉면집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이는 반응을 아실 겁니다. 시중의 일반 냉면집에서 흔히 '갈비집 냉면' 혹은 '분식집 냉면'이라고 불리는 시큼달콤한 냉면에 중독된 사람들은 위의 집들을 가서 쉽게 '맛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거부감이 심하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반응은 '값은 더럽게 비싼데 밍밍하고 맹물같다'는 것입니다.

 

자, 좋은 재료를 투입하고 '조미료 많이는 안 쓴다'는 집들이 일반적인 손님들로부터는 '밍밍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럼 사람들로부터 '밍밍하지 않다'는 느낌을 줬던 집들의 경우는 과연 어땠을까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답은 뻔합니다. 다른 집보다 훨씬 덜 쓰고 있다는 게 확인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냉면을 만들어도 손님이 오지 않아 망하면 사실 식당을 한다는게 의미가 없겠죠. 우래옥이건 하동관이건, 분명히 조미료만 가지고 그런 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조미료만 써서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면 두 집 모두 이미 오래 전에 지금의 독보적인 위치를 잃었을 겁니다.

 

 

그 다음 두번째. 위에서 거론된 봉피양과 을밀대의 경우 제작진에게 "앞으로는 전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을밀대에서 육수 기술자는 "지금까지 우리는 다시마를 대량으로 써 왔다. 그래도 거기에 조미료를 조금 더 썼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쇠고기 육수에 다시마를 왜 쓸까요? 바로 다시마의 MSG 성분 때문입니다. 조개, 다시마, 새우, 게 등에 다량 함유된 MSG 성분이 음식 맛을 확 살아나게 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죠. 하다 못해 라면 한개를 끓여도 새우 몇마리나 게 다리 하나가 들어가면 국물 맛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가끔 '그건 천연 MSG'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바로 함정입니다. MSG는 다 같은 MSG입니다. 어디서 추출하건, 사람 몸에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사용하는 양의 문제인데, 이미 FDA는 MSG가 유해물질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뭐 그래도 불안해 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굳이 맛을 돋구기 위해 소량 사용하는 걸 불안해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금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금도 많이 쓰면' 몸에 해롭죠.

 

앞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조미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인공 조미료'에 대한 이상한 결벽증을 씻어 내는데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이쪽

당신은 MSG 없이 살 수 있습니까? http://fivecard.joins.com/990

식객 맛집은 정말 MSG를 쓰지 않을까 http://fivecard.joins.com/1029

 

세줄 요약

 

1. 냉면 육수, MSG 사용 여부보다 고기 재료를 제대로 안 쓰는게 문제다.

2. 비싼 재료를 쓰는 냉면집들도 MSG를 넣는 건 손님 입맛 때문이다.

3. 재료를 제대로 쓰고 맛 때문에 MSG를 좀 넣는 것까지 반칙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P.S. 아울러 2편의 유명 냉면집 탐방에 참여한 두 명의 '전문가' 분들(어디 교수님이라는 한 분과 자연음식 연구가라는 분)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다른 음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냉면 맛을 보시는 두 분의 자세는 정말 실망 그 자체입니다. (아, 나머지 한 분은 진짜 전문가 맞습니다. 제가 압니다.)

 

특히 아무개 교수님이 평남면옥에서 "냉면 육수가 투명해서 특이했다"고 하시는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명가 중의 명가인 평양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을 단 한번도 가 보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P.S.2. 'MSG가 들어갔다'는 말에는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반응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 MSG 안 써 보려고 했더니 맛 없다고 손님 끊어져서 식당 망할 뻔 했다'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건 마치 설문조사 응답할 때에는 '교양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 좋다. 요즘 TV 너무 저질이다'라는 답이 1등이지만 실제로는 막장 드라마 시청률만 하늘로 치솟는 현실과 거의 똑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런게 인지상정이겠죠.

 

P.S.3. 위에 나오는 4개의 냉면 사진은 각각 어느 집 냉면일까요? 냉면 마니아라면 그릇과 고명만 봐도 아실 겁니다.^^

 

P.S.4. JTBC '미각스캔들'과 채널A '먹거리 X파일' 모두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답공개: 위에서부터 봉피양 - 한일관 - 을지면옥 - 평양면옥입니다.

              3번을 '필동면옥'이라고 하신 분도 정답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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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 Tony Scott(1944~2012)] 나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 혹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 많은 영화와 그 많은 감독중에 어떻게 그렇게 쏙쏙 뽑아내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5명을 뽑으라면, 저는 언제든 토니 스콧을 꼽아 왔습니다. (늘 '토니 스코트'라고 쓰다가 갑자기 '토니 스콧'이라고 쓰려니 좀 그것도 그렇습니다)

 

토니 스콧은 한동안 돈 들인 블록버스터 부문에서 '가장 돈이 아깝지 않은 장면을 뽑아 내는 감독'으로 꼽혀왔습니다. 한때 '불꽃같은 젊음'을 가장 강렬하게 그려냈던 스코트는 나이들면서 약간의 혼란을 겪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감독들 중 하나로 꼽혀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치의 뇌종양이었다니. (이 부분은 현재 가족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어디서 태어나 누구의 영향을 받아 최고의 감독이 되었는지 같은 위인전 풍의 내용은 사실 잘 모릅니다. 형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영국에서 광고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수백편의 광고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특유의 영상미를 완성시켰다는 정도.

 

특이한 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시나리오에 크레딧을 올린 경우는 거의 없더라는 것입니다. 24편의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프로듀서로 나선 경우는 그 두배가 넘지만 시나리오를 직접 쓴 건 딱 두번뿐. 그것도 정식 상업영화 데뷔 전의 소품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서 개연성이 지적됐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네. 제가 '말이 안 되는 영화'에 유난히 좀 민감한 편입니다. 그런 제가 봐도 스코트의 작품에 사용된 시나리오들은 탄탄한 플롯을 자랑합니다. 오히려 내로라하는 시나리오 라이터 출신 감독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런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꼽은 그의 대표작 5선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 문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라스트 보이스카웃'이나 '폭풍의 질주 Days of Thunder' 팬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맨 온 파이어 (2004)

 

한국 영화 '아저씨'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영화들 중 하나인 '맨 온 파이어'는 토니 스콧이 본격적으로 덴젤 워싱턴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잡은 작품으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크림슨 타이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 이후 스콧의 영화 5편 중 4편의 주인공이 워싱턴이라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스콧이 복수를 소재로 선택한 것은 비교적 초기작인 '리벤지' 이후 오랜만의 일입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다코타 패닝이라는 건 관객의 공감을 200% 올려놓을 수 있는 배치죠. 마지막 시퀀스에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지만, 음악과 함께 휘발유 냄새가 나는 영상은 수작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덴젤 워싱턴이 사실상 고정 주인공처럼 되면서 전작들의 경쾌한 스텝이 사라지게 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토니 스콧 자신이 그걸 원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4.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1998)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테크노 스릴러는 기존의 토니 스콧 영화와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전의 액션들이 좀 더 우직하고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면,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는 초시계로 시간을 재듯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신과 신이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영화입니다.

 

이미 고참 감독의 길에 접어든 스콧이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개인적인 소감은 주다스 프리스트가 '페인 킬러' 앨범을 내놨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 이후 스콧과 윌 스미스가 한번쯤 더 작품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최근작들이 훨씬 더 생기넘치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울러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전혀 비중 없는 도청 기술자 역으로 등장한 잭 블랙.

 

 '화성 침공' 등에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이때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Shallow Hal'도 뒷날의 얘기일 뿐. 만약 요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전혀 웃기지 않는 잭 블랙을 보는 것도 이색적인 느낌일 겁니다. 나름 '선악의 판단이 없이 하는 일만 하는 공대생'의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말이죠. (ㅋ)

 

 

 

3. 크림슨 타이드 (1995)

 

지금까지도 '잠수함 영화'를 한 편만 뽑으라면 뭐니뭐니해도 '특전 U보트(Das Boot)'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편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나머지 한 편은 '크림슨 타이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남자와 남자의 격돌, 그리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팽팽한 긴장은 이 영화를 '남자들의 영화'로 만드는 데 충분했습니다. 진 해크만과 덴젤 워싱턴의 충돌은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배우들이 꼭 참고해야 할 연기(아무리 알 파치노와 드 니로가 나온다고 해도 마이클 만의 '히트' 따위나 봐선 절대 연기가 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입니다.

 

'남성용 영화'의 거장이지만 스콧이 자주 쓰는 캐릭터에는 '의리'라는 요소가 매우 희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콧의 영화에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이란 서로 걱정하고 이해해 주는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대결하고, 상대의 가치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죠.

 

'탑 건'이나 '스파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역시 '크림슨 타이드'입니다.

 

 

또 이 영화를 잊지 못할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한스 짐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가끔은 그게 그거라서 구별하기 힘들다는 혹평도 있지만, 이 시한폭탄같은 긴장감을 주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는 '크림슨 타이드'의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비고 모텐슨과 설경구가 은근 겹쳐집니다. 물론 무명이었던 두 사람과 잠수함 내부 환경, 그리고 해군 제복의 느낌일 뿐. 캐릭터가 비슷한 건 아닙니다.

 

 

 

 

2. 탑 건 (1986)

 

IMDB에서 이 영화의 평점이 6.7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하긴 영어 사용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겠죠. 특히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 킬머의 "You can be my wingman"은 영화 사상 가장 느끼하고 유치한 대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청춘들은 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습니다. 불과 1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1986년의 세계 최대 흥행작인 것은 물론이고, 투입 대비 수익률로 따지면 역대 최상위의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신의 무명 배우 톰 크루즈'는 고른 치열이 빛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단번에 전 세계를 사로잡아 버렸고, 이후 4반세기를 꿰뚫는 스타의 화려한 탄생을 알립니다. 켈리 멕길리스가 조금 더 미인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뭐 다 바랄 수는 없죠.

 

창공을 쪼개는 영상미, 26년 뒤 한국에서 만들어진 어떤 영화의 플롯까지 지배하는 완벽한 전형의 제시, 톰 크루즈-발 킬머-멕 라이언까지 보석같은 신인들을 골라낼 수 있었던 제작진의 선구안까지(그게 스콧 혼자의 힘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전설이 될만한 작품입니다.

 

 

 

 (물론 톰 크루즈의 저 뒤쪽에 팀 로빈스가 큰 키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는 것도..)

 

특히 해롤드 폴터마이어, 조지오 모로더, 케니 로긴스, 스티브 스티븐스, 칩 트릭, 마이애미 사운드머신, 벌린(베를린^^), 그리고 여기에 제리 리 루이스와 라이처스 브라더스까지 얹힌 사운드트랙은 80년대 영화 중 무엇에 비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플래시댄스'나 '세인트 엘모스 파이어' 정도?

 

 

도대체 저게 무슨 노래야 싶은 분들을 위해 원곡을 준비했습니다.

 

 

영화 끝나기 전 이 노래가 원곡으로도 나오긴 나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1. 트루 로맨스(1993)

 

사실 '탑 건'을 제치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비록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이 '탑 건'에 미치지 못하는게 사실이라 해도 이만큼 액션과 로맨스, 판타지와 코미디가 절묘하게 배합된 작품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아드레날린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퀜틴 타란티노를 오늘날의 거장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 영화, '트루 로맨스'가 한 몫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글로 쓰고 고전 영화에서 보던 것이 실제 영상으로 가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공부가 되었을테니 말입니다. 비록 그가 이 시나리오를 헐값에 팔았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결말이 그가 직접 쓴 것과 상당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올리버 스톤이 만든 '내추럴 본 킬러스'보다는 이 작품에 훨씬 더 만족했다고 전해집니다.

 

(인터넷에서 '트루 로맨스'의 대본을 검색하면 타란티노의 원본과 실제 영화에 사용된 대본의 두가지가 검색됩니다. 결말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장면 장면에서 타란티노 풍의 장황한 대사가 많이 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본은 본래 '내추럴 본 킬러스'와 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전성기였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파트리샤 아퀘트의 연기도 그만이지만 막 스타 악역의 길을 밟기 시작한 게리 올드만, 딱 두 장면에 정신 빠진 모습으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오션스11'을 보는 듯한 조연들의 화려한 연기 경연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킵니다.

 

흔히 우리가 '낭만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달 밝은 가을 밤에 하우스 밴드가 멋진 테라스에서 쿨 앤 더 갱의 'Cherish'를 연주하는 광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romantic'이란 말의 의미에서는 '질풍노도'의 요소가 생략되어선 안됩니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격정이야말로 로맨티시즘의 이상인 것이죠. 이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중세 기사들의 무용담입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격정과 과장, 허세를 영화 '트루 로맨스' 만큼 잘  표현한 작품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크림슨 타이드'의 그 '한스 짐머'가 이런 달콤한 멜로디를 내놨다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입니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그린 병아리 그림이랄까요.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는 옛 이야기 하나. 알라바마(파트리샤 아퀘트)가 클레어런스(크리스천 슬레이터)에게 자신이 창녀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대사는 분명히 "I've been a call girl for exactly four days, and you're my third customer" 였는데 자막은 "당신이 내 첫 손님이었다구요"라고 뜨더군요. 1993년만 해도 수입사 관계자들은 주인공이 '창녀와 결혼한다'는 데 대한 도덕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보다 훨씬 전 얘기긴 하지만 '졸업'을 극장에서 볼 때는 더스틴 호프만의 연애 상대인 앤 밴크로포트가 자막상으로는 캐서린 로스의 엄마가 아니라 이모로 표현되기도 했더랬습니다. 어찌나 도덕적인지...)

 

 

이제 마무리를 위해 그의 다른 영화 사운드트랙 가운데 한 곡을 골라 봤습니다.

 

 

'폭풍의 질주'에서 뽑은 한 곡. 화이트스네이크라 불린 사나이 데이빗 커버데일이 부른 'Last note of freedom'입니다. 어쩐지 last note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길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가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길을 가겠다는 사나이의 각오입니다.

 

 

 

원제처럼 그야말로 '천둥의 나날'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토니 스콧, 돈 심슨(제작자), 로버트 타운(시나리오 작가), 제리 브룩하이머(제작자), 그리고 톰 크루즈. 스콧-심슨-브룩하이머가 구축했던 황금의 트리오에서도 이제 브룩하이머만 남았군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곡은 이 곡이라야 할 듯 합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분홍색 모자를 쓰고 이 음악에 맞춰 주먹을 흔들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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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신작 드라마가 그 전에 방송됐던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아무 허락 없이 베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슨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할 때 기존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베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죠. 

 

물론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콘텐트 강국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자국산 드라마를 편성하는 나라, 콘텐트 최강국인 미국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에 맥을 못 추는 나라는 생각보다 대단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외화'가 당당하게 핵심 시간대를 지켰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받은 해외 콘텐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늘 우리가 베끼고 받아들이던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표절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혹시 오다기리 조 주연 드라마 '가족의 노래'를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방송하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콘텐트를 점검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워낙 한국에 인기 높은 일본의 톱스타이기도 하고,'가족의 노래'는 특히  설정이 독특해 관심을 끌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죠. 결국 8회만에 조기종영을 맞았습니다. 한 회가 대개 11회 정도에서 끝나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조기종영하는 경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아무튼 별 사전정보 없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가족의 노래>(家族のうた)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을 맡았는데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8회 만에 막을 내린 범작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있었다.주인공 하야카와 세이기(오다기리 죠)는 10여 년 전 밴드의 일원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쇠퇴일로를 겪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퇴물 뮤지션이 되어 있다.

충실한 매니저 미키(유스케 산타마리아)만이 하야카와를 감싸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라는 착각에 빠진 하야카와는 늘 자존심만 앞세워 미키의 속을 썩인다.그러던 어느 날, 한 10대 소녀가 하야카와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하야카와가 한 여성 팬과 벌인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딸이며, 엄마가 죽고 없으니 이제 하야카와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하야카와는 몸서리를 치지만, 심지어 두 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 하야카와가 자신의 생부라고 주장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 영화 <라디오 스타>(2006)와 <과속스캔들>(2008)을 본 사람에겐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에게 일본 측과 판권에 관련된 협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가족의 노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 사카이 마사아키의 히트작 중에는 묘하게 기시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의 2010년 히트작 <할아버지는 25살>은 빙하에 46년간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주인공(후지와라 타츠야)이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아들, 동갑인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7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시트콤 <두번째 백년>(The Second Hundred Years)도 빙하에 갇혔던 주인공이 아버지뻘의 아들, 동갑인 손자를 만나 벌이는 난리법석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도 ‘청춘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25살>과 <청춘 할아버지>. 사실상 리메이크작입니다. 두 사진 모두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청춘 할아버지>의 판권을 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카이의 또 다른 히트작 <절대영도: 미해결사건 특명수사>는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재수사하는 경찰 특설 팀의 이야기다. 긴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서류철이 차가워졌다는 뜻에서 제목이 붙은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노골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국, 일본 작가들의 창작을 은근히 도용하고 채용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족의 노래>의 구성이 아무리 뻔뻔스럽다 해도 함부로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이준익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개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측이 일본 방송계를 싸잡아 매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해외 저작물의 무단 도용이나 차용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필요할 때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추적자 THE CHASER>(SBS)조차도 몇몇 미국 드라마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야를 지난 20년, 30년간의 드라마 전체로 확대할 때 한국 드라마의 독창성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한국 드라마들이 ‘외국 작품의 영향’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대외적으로 한국산 콘텐츠의 도용을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가족의 노래>와 <과속 스캔들>. 차이가 있다면 <가족의 노래>에서는 무려

      세 소녀가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매.

 

윗글에서는 한국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사실 '가족의 노래'를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작품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 그랜트, 드루 배리모어 주연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뮤지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공통점 외에도 주인공의 밴드 시절 동료 가운데 현재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남자와 갈등을 겪는다는 , 주인공에게 당대의 여자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먹고 살기 위해 어린이 공원('가족의 노래'에서는 동물원) 관련 일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후반까지 진행됐다면 공통점이 더 발견됐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드라마 소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일이 돼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우리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그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의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일은 없어져야 할 시점이 온 듯 합니다. '가족의 노래'가 바로 그런 시대임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된 듯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떳떳해 져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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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R2D2를 연상하시는 영화 '알투비(R2B) 리턴 투 베이스'를 봤습니다. 본래 '빨간 마후라 2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것이 시간과 논의를 거치면서 결국 '알투비 R2B'라는 제목으로 결정됐더군요. 다 아시겠지만 R2B는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 즉 '기지로 귀환'이라는 뜻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분들 중에는 다른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창공 액션 영화라면 추억의 명화인 조지 페퍼드 주연의 '대야망(The Blue Max)'부터 그 이름도 거룩한 '탑 건(Top Gun)'를 지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두 편의 고전 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두 편이 공군과 파일럿의 세계에 대해 이뤄 놓은 업적이 워낙 큰 탓일 겁니다.

 

그리고 '알투비'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과연 이 영화를 어느 정도나 기대하고 보느냐의 차원이 될 것 같습니다.

 

 

줄거리. 태훈(정지훈)은 비행 실력에 있어선 따를 사람이 없지만 도대체 질서와 복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일럿. 결국 묘기를 부리다 공군 시험비행단에서 쫓겨나 (아마도 동부전선 어디쯤의) 전투여단에 배치됩니다.

 

선배 대서(김성수)의 편대에 배속된 태훈은 여기서 동기생 유진(이하나), 후배 석현(이종석)과 함께 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여단의 에이스는 미국 연수까지 다녀온 철희(유준상). 그는 제멋대로인 태훈의 기를 꺾어 진짜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훈은 여기서 미모의 정비사 세영(신세경)을 발견하고 달콤한 연애에 빠져듭니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서서히 긴장이 고조됩니다.

 

 

 

오래 전, '탑 건'이 개봉할 무렵, 관객들은 궁금증에 빠졌습니다. 이 영화가 F-14를 모는 미 해군의 최정예 파일럿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는데, 대체 실제 전투 장면이 나오는지, 나온다면 그 상대는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야망'이나 '빨간 마후라' 처럼 아예 전쟁 상황을 다룬 영화라면 이런 궁금증이 들 이유가 없겠지만, '탑 건'이나 '알투비' 같은 영화는 대체 '누구와 싸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뭐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들보다 몇년 전에 했어야 할 고민입니다.

 

물론 안 싸울 수도 있겠지만, 수백억원짜리 전투기를 보여주면서 그 전투기가 실전에선 이런 위용을 뽐낸다는 장면을 넣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일어났다고 우기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

 

 

여기서부터 전투기와 파일럿이 나오는 영화의 리얼리티가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 파일럿의 전투기가 어떻게 해서 교전상황에 말려들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그럴싸하고 납득할만한 상황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알투비'는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따내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CG가 화면을 장식하고 몇몇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일단 비행기가 날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부터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따위가 뭘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죠.)

 

어떤 분들은 '막상 비행기가 날고 액션이 펼쳐지기 전까지, 달달한 연애담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마지막 항공 전투 신은 호쾌하고 볼만했다' 고 평을 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그 유치하고 달달한 연애담 덕분이고, 정작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공중 전투 시퀀스는 한마디로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아무 기대도 없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를 보시는 동안, 절대로 논리적인 사고나 이성적인 판단 따위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쩐지 RETURN TO BASE 라는 제목은 '기본으로 돌아가라' 라는, 스스로 하는 반성처럼 읽힙니다.

 

그냥 하는 얘기는 여기까지. 나머지에선 스포일러가 밀어닥칩니다. 영화를 보러 가실 분은 여기서 표 끊으러 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작사 및 홍보 관계자, 알바 여러분도 별로 기분좋으실 얘기가 아니니 여기서 그냥 다른 데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 태훈이 왜 시종일관 감정의 제어가 되지 않는 미친놈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어려서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사실 그보다는 그냥 "'탑 건'의 톰 크루즈가 대략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라는 쪽이 솔직한 설명일 겁니다.

 

이 영화의 골격은 대부분 이 공식에 따릅니다. 인물의 배치나 설정에서 어떤 목적이나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한 설명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또는 '탑 건 안 봤어? 탑 건에서도 그랬잖아' 뿐입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야생마같은 주인공이 있으면 '왠지' 냉철한 이성으로 그를 통제하려 하는 맞수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연애를 할 예쁜 정비사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를 이해해 주는 큰형같은 선배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 큰형을 짝사랑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왠지 그렇게 있으면 굴러갈 것 같은' 캐릭터들이 즐비합니다. 어디서 본 듯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이는 캐릭터들 말입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극의 흐름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캐릭터라고는 선임 정비사 역의 오달수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태훈과 철희가 서로 마주 보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는 초등학생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서가 유진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모든 관객들은 '아, 대서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승을 하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위 사진의 세 인물과 관련된 대사, 설정, 연기는 모두 최악입니다. 이 세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싹 들어내면,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상당부분 감소될 수 있을 듯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알투비'를 보다 보면, 촬영할 때 있었던 참 많은 장면들이 가혹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장면들조차 이렇게 뻔하디 뻔한 장면의 연속일 때는 참 난감합니다. 심지어 그 뻔한 대서의 장례식 장면에, 대서의 어린 아들이 영정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까지 나오면, 관객은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메인 주인공을 정지훈과 신세경이라는 매력적인 스타들이 맡았다는 정도. 이해하기 힘든 두 인물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왠지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세영의 주정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활력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 장면이 이 영화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정지훈과 신세경이 아니었다면... 꽤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문제의 전투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으로는 북한의 원산 핵기지 주변 병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 정권(아마도 김정은)에 대항하고, 자신들의 선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향해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을 발사하려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일까요? 이를테면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싶은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영 부족하니 미국을 향해 ICBM을 발사하면 미국이 그 보복으로 북한 체제를 궤멸시킬 거라는 계산일까요. 단순한 자살 테러 치고는 참 심오합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런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눈에 띄는 것만 거론하자면, 수도 서울에다 총질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전투기를 '민간인 피해 때문에 격추시킬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휘본부, 대서의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완전히 전 세계가 (대서를 애도하기 위해?) 휴전상태로 들어갔다가 장례식을 마치자 다시 시작되는 '긴박한 상황', 긴 밤 다 지새우고 굳이 대낮에 단 2기로 북한에 침투하는 놀라운 대담성, 그런데 그 단 2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엄청난 방공망, 지하 활주로는 폭파됐는데 대체 어디서, 그것도 단 1기만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MIG-29 요격기, 분명히 발사되는 걸 봤는데도 공중에 정지하고 있다가 태훈의 폭격을 받고 폭발하고 마는 이상한 ICBM, 휴전선 바로 위인 원산에서 핵탄두가 폭발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걱정이나 대비는 전혀 없는 만사 태평의 한-미 양국 군사 수뇌들.... 한마디로 참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 이어지지만 뭐... 날아가는 비행기의 CG는 멋집니다.

 

 

 

당연한 반론이 예상됩니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런걸 그렇게 따지냐"에서 그저 "이런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수준의 창공 액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라는 등등. 하지만 그렇게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기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항상 그 영화가 갖고 있는 틀 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럼 스타워즈에서 광선으로 칼싸움하는 건 말이 되냐?'는 식의 반론은 바보 인증일 뿐입니다. 그건 원래 전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제7광구' 때도 그랬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플롯과 대사, 연기입니다. 특히나 이런 류의 영웅담 블록버스터에서는, 제발 오글거려야 할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쭉 나올만큼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와줬으면 합니다. 저는 작전에 투입되는 파일럿들이나 석현을 구하러 가는 레스큐 팀에게 비행단장이 뭔가 정말로 아드레날린이 확 뿜어나오는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는 규모가 커지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이런 기본은 점점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RETURN TO BASE, '기본으로 돌아가라' 일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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