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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4일째. 사실 여름에 홋카이도를 가는 사람들 중 80% 정도는 후라노-비에이 방향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북쪽의 섬. 한국보다 낮은 여름 기온. 나지막한 지평선과 알록달록한 화원.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삿포로에서 후라노까지 다녀오는 건 일단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침 일찍 기차나 버스편으로 삿포로를 떠나면 후라노 혹은 비에이까지 2시간 정도에 도착 가능합니다. 그 안에서 대략 어떻게 여행을 구성하느냐 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봐야겠죠.

 

물론 이틀 이상 머물며 구경한다면 더 느긋하게 초원의 정취를 느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도 다음번에는 한번쯤 렌트카를 이용해 넉넉하게 돌아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삿포로에서 이 지역을 가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네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하루 치기 관광 버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예매할 수 있는 버스 상품을 알아 본 결과, 그리 충실한 상품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추.

 

둘째는 기차-버스 연결입니다. 왕복은 기차를 이용하되 현장에서 버스 관광을 이용하는 방안입니다. JR을 이용하는 승객만 이용할 수 있는 트윙클 버스라는 특화된 서비스가 있습니다. 가격도 500~1000엔 사이.

 

세째는 기차로 현장까지 가서 자전거나 렌트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부터 아예 렌트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비에이 부근의 아름다운 구릉지대를 차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나 한국과 반대인 운전 방향에서 오는 위험성은 감수해야 할 겁니다.

 

 

저는 그래서 두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패스는 지난번 아사히야마 때와 마찬가지로 에나프투어(ENAF, www.enaftour.com)를 통해 JR의 열차 패스를 이용했습니다. 이 패스에 포함된 것은 삿포로-아사히카와 왕복권, 그리고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 사이를 오가는 구간에서의 열차 무제한 이용권입니다. 1인당 5400엔. 이용기간이 3일간이기 때문에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숙박을 해도 노롯코 열차는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삿포로-아사히카와 사이는 역시 슈퍼카무이라고 불리는 고속 전철로 연결합니다만,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를 거쳐 후라노까지 가는 길에는 '노롯코'라고 불리는 저속 열차가 하루 세 차례씩 왕복합니다. 물론 노롯코가 아닌 완행 열차도 다니지만, 여름에 후라노 지역을 찾는다면 당연히 노롯코 열차를 타 봐야 합니다. 왜 그런지는 타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당일 스케줄을 이용합니다.

 

09:06 삿포로 출발 / 11:03 후라노 도착 : 후라노 라벤더 EXP 3호

노롯코 열차 이용해 11:52(후라노)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그런데 사실 약간 불만인 것은 이렇게 하면 실제 후라노-비에이 지역 체류 시간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하라는 것(물론 식사 시간도 포함이지만) 역시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또 얘기를 들어 보니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볼거리 중에는 만족도가 높은 곳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래서 실제 관광 시간을 늘린 시간표입니다.

 

08:25 삿포로 출발 / 09:45 아사히카와 도착 : 슈퍼카무이 5호

노롯코 열차로 09:55(아사히카와) ~10:24(비에이)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이 경우의 단점은 '후라노 역'을 들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시간표의 목적은 가장 가 보고 싶던 곳인 팜 도미타(FARM TOMITA)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목적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해서 아사히카와 역에서 노롯코 열차로 갈아 탔습니다. 매우 귀엽고 운치있는, 소풍가는 느낌을 주는 열차입니다. 삶은계란과 사이다...는 아니더라도, 다들 뭔가 테이블에 잔뜩 펼쳐놓고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기차 안 매점에서도 간단한 먹을거리를 판매합니다.

 

 

노롯코 열차가 달리는 길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 지는 녹색 일색입니다. 달콤한 바람을 맞으면서 느긋하게 달리면 약 40분만에 '라벤더 팜' 역에 도착합니다.

 

 

사실 이 역은 여름, 라벤더가 피는 철에만 기차가 서는 역이기 때문에 역사 건물은 물론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그냥 건널목 하나가 있을 뿐.

 

 

본래 정규 역은 이 역 바로 다음 역인 나카후라노(中富良野) 역이지만 이 역이 여름에 개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역 부근에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팜 토미타가 있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팜 토미타는 라벤더 농원을 화원으로 꾸미고 거기서 특화된 라벤더 상품을 팔아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상품 판매가 수입원이라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이 농원이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꽃밭은 아니지만(이날 오후에 간 시키사이 언덕이 규모 면에서는 훨씬 큽니다), 그 공력이나 꽃밭을 상품화하는 능력에서는 비교가 안 됩니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 방문객들에게 그날 당일의 꽃밭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습니다. 아래 보시는 것이 8월5일의 꽃밭 모습. 물론 당일 기준으로 가장 꽃이 많이 핀 곳을 찍겠죠.

 

 

http://www.farm-tomita.co.jp/en/see/index.html (이 주소입니다.)

 

팜 도미타의 관광 사진을 보신 분들은 많으시겠지만, 위의 지도에 나오는 모든 꽃밭이 만개한 시기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모든 꽃이 다 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찾아간 7월초는 푸른보라색의 라벤더와 노란색의 뽀삐(?)가 가장 활발한 시기.

 

 

라벤더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지금 위에 보시는 것은 '트래디셔널 라벤더'라는 품종입니다. 이밖에도 이 농원은 직접 개발했다는 '사키와'라는 품종의 라벤더가 널리 심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꽃들을 다 이름을 보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농원 곳곳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구름과 꽃들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면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그러다 햇살이 따가워지면 그늘로 가면 되죠. 

 

팜 도미타라고 있다던데 눈도장이나 찍어 볼까? 여기야? 생각보다 별로인데... 사진이나 찍고 다음 장소로 고고! 라는 심정으로 가면 30분도 넉넉합니다.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당일 관광 버스는 팜 도미타에서 한 50분 정도 시간을 줍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적당한지는 개인차가 꽤 큽니다.

 

저희는 식사를 포함해 한 3시간 정도 머문 것 같은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라노의 명물 중 하나인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홋카이도 곳곳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특화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아이스크림은 연보랏빛 색과 함께 이 팜 도미타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화장품 냄새가 난다'는 설도 있지만, 제 입엔 그냥 맛있는 보라색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그 다음 명물이라는 '라벤더 라무네'. 라무네는 일본식으로 '레모네이드'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냥 사이다 맛입니다. 양도 적고 비쌉니다. 비추. 마개를 유리 공으로 막고 있는 옛날식이란 점이 약간 신기하지만, 병 수집이 취미가 아니시라면 굳이 마셔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팜 도미타에서는 많이들 마십니다.

 

직접 가 보니 왜 입장료를 받지 않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누, 오일, 파우더 등 라벤더로 만든 상품들은 그리 싼 가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더군요.

 

참고로 팜 도미타 전 매장 가운데 이 기념품 매장에서만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날 지갑을 놓고 가는 바람에 비상금이 없었으면 쫄쫄 굶을 뻔 했습니다. 팜 도미타는 물론이고 후라노/비에이 전 지역에서 그 어느 매장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더군요. 일본 가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용카드는 아예 '삿포로 시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삿포로 시내라고 '모두'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500원짜리를 사도 신용카드 결재가 가능한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라벤더 팜' 역 앞입니다. 구름이 살짝 몰려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평원 한가운데의 역. 사진찍기는 그럴싸 합니다.

 

노롯코 열차 편으로 다시 비에이 역에 내리면, 10분 쯤 뒤에 트윙클 버스가 출발합니다.

 

비에이에서 가는 트윙클 버스 노선은 두가지인데, 가격은 모두 500엔입니다. 시간표를 확인하시고 '반드시' 미리 예약하셔야 합니다. (아, JR 노선을 이용하는 관광객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는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전시한 타쿠신칸(拓眞館- 작품은 참 훌륭하지만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패스. 그 작품들을 보면 다른 계절의 비에이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 을 지나 역시 유명한 꽃밭인 시키사이(四季彩) 언덕으로 갑니다.

 

 

시키사이 언덕의 상징인 짚풀 인형상.

 

 

여기도 제철인 라벤더가 한창입니다. (7월 초 기준)

 

 

사진을 확대해 보시면 '청춘불패' 팀이 보입니다.

 

 

넓이로 따지면 팜 도미타에 못지 않은 넓은 지역. 꽃밭 자체는 참 아릅답고 저 너머로 보이는 비에이의 언덕들과 매우 잘 어울리지만, 꽃밭을 상품화하고 매력을 더하는 솜씨에서 팜 도미타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버스는 계속 달려 비에이의 '패치워크'라고 불리는 구릉지대를 보여줍니다.

 

정말로 패치워크를 보듯, 각기 다른 작물을 심어 대지의 결이 달라진 모습이 마냥 아름답게 보입니다. 거기에 한몫을 하는 것이 파란 하늘과 구름.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집니다.

 

 

후라노-비에이는 '이 지역의 볼거리는 뭐지? 뭐가 유명하지? 한 군데에 30분씩만 머물면 될까?' 혹은 '여기 오면 꼭 먹어야 하는게 있다던데, 줄을 서서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갈 곳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평원과 구릉, 그 위로 날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곳입니다. 언젠가 렌트카를 몰아 직접 달려보고 싶은 길들을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마지막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공항에서 르 타오의 치즈케이크와 삿포로 클래식 맥주(홋카이도 한정 판매)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홋카이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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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도둑들'의 전지현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앤 해서웨이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부터 올 여름 한국 극장가의 판도는 결국 '도둑들'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맞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 듯 합니다. 물론 '연가시'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 이후, 관객 동원 면에서 단 한번의 비틀거림도 없이 정상을 질주한 희대의 흥행사입니다. 이 '흥행사'라는 말이 불편하신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투자자와 제작사의 입장에서 보면 구세주나 다름 없죠. 더구나, 그 작품들 중 어느 한 편도 성미 까다로운 비평자들로부터 '대체 어떻게 저따위 영화가 대박이 날 수가 있나. 관객이란 존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한탄을 자아내지 않았으니, 한국 영화계의 간판 스타라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빠돌이풍의 도입부를 걸었으니, 이 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도 대략 예상하실 듯 합니다. 사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홍콩 느와르 전성기의 정서였습니다.

 

 

 

줄거리. 한 유명 미술관 복도. 모녀간으로 변장한 씹던껌(김해숙)과 예니콜(전지현)이 걸어들어갑니다. 예니콜이 작업해 놓은 젊은 관장(신하균, 특별출연)을 만나기 위해서죠. 밖에서 뽀빠이(이정재)와 잠파노(김수현)이 와이어를 걸고, 이들은 순식간에 미술관의 보물 향로를 훔쳐냅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뽀빠이가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고, 때맞춰 도착한 마카오박(김윤석)의 콜을 받아 일당은 마카오로 날아갑니다. 가석방된 펩시(김혜수)도 일행에 합류합니다.

 

마카오에는 첸(임달화)와 조니(증국상), 줄리(이심결), 그리고 앤드류(오달수) 등 홍콩 패거리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카오박은 한국과 홍콩의 연합 도둑 드림팀에게 마카오 카지노로 오고 있는 3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자고 제안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배경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참 노골적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정점을 찍은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를 모의해서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제작사 이름이 '케이퍼 필름'입니다. 이렇게 내놓고 시작하니 비슷하다 뭐다 하는 얘기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케이퍼 무비에다 올스타 캐스팅까지 갖춰졌으니 이제 필요한 건 조율. 한 영화에 한두명만 써도 적절하다 싶은 배우들을 통으로 엮었으니 자칫하면 분량 시비가 일어나고, 심하면 "야, ***는 그 영화에 대체 왜 나온 거냐?"는 소리가 나올 판입니다. 그렇다고 배우 체면 때문에 분량을 살려 주다가 영화가 지루하네, 군더더기가 너무 많네 하는 얘기를 듣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죠.

 

 

 

바로 그 부분에서 최동훈 감독은 신의 솜씨를 발휘합니다. 열 손가락이 각각 다 역할을 하되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안배가 이뤄집니다.

 

사실 머리 좋은 도둑들이 스케줄을 짜고, 놀라운 솜씨로 최첨단 방어막을 돌파하고, 그 결과로 부자가 되고 안 되고 하는 이야기로는 이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이 분야를 파고들었고, 레이저 광선에서 행글라이더까지 동원되지 않은 장비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긴장감 넘치는 침투 과정을 설정해 봐야 관객은 지루할 뿐입니다. 결국 승부가 나는 지점은 캐릭터인 것이죠.

 

 

 

 

순도 높은 액션 장면들이 보여주는 시각적 쾌감과 아주 찰진 대사가 빚어내는 웃음 사이에서 그 캐릭터들의 얽히고 설킨 사연이 잘 버무려질 때 비로소 코믹 케이퍼 무비가 완성됩니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개연성은 일단 뒤로 제쳐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엄청난 사건을 벌이는 범인들 중 아무도 스키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죠. 마카오에서도 그렇고 부산에서도 그렇고... 아무도 공개 수배 같은 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들간의 비중이 철저하게 1/N 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김윤석에게는 다른 배우들과 다른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도둑 연합군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장 머리를 많이 쓰는 인물이기도 하고, 다이아 탈취 작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윤석은 특히 이 영화의 중국어 대사에서 빛을 발합니다. 중국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가장 잘 소화해 내는 배우라면 김윤석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서가 좀 바뀐 듯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아마도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곳곳에는 왕년의 홍콩 영화들이 이뤄낸 성과들에 대한 오마주성 장면들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의 낡은 건물을 배경으로 한 와이어 액션을 보면서 서극의 '순류역류(Time and Tide)'가 생각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래된 아파트에서의 총격전 신은 정말 당시까지는 전 세계에 비길 데가 없었던 와이어 액션(와이어를 이용해 날아다는 것 처럼 표현하는게 아니라 진짜 주인공들이 건물에 와이어 걸고 그걸 이용해 벌이는 액션!)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도둑들'의 부산 액션 장면에는 이 영화가 영향을 미쳤을 듯 합니다.

 

 

 

 

 

물론 흔한 플롯이긴 하지만, 또 생각나는 영화는 주윤발-장국영-종초홍이라는 황금의 트리오가 출연한 '종횡사해'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세 도둑과 그 사이의 엇갈린 러브라인. 문득 '도둑들'의 이정재에게서 '종횡사해'의 장국영에 대한 오마주를 느꼈다면 오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그런 오마주를 몸으로 대변하는 인물은 바로 임달화입니다. 사실 1980~90년대에도 임달화는 주윤발-장국영이나 사대천왕 급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왕년 '첩혈가두' 등의 영화를 통해 깊은 눈빛의 배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분입니다. (문득 임달화 이야기를 하자니 이수현이나 양가휘처럼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왕년의 스타들이 생각납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임달화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권총을 손에 쥐었을 때 관객을 압박하는 비장미는 한국 배우들에겐 아직 기대하기 힘든 듯 합니다(은근히 리얼리티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특히 '도둑들'에서 임달화의 라스트 신은 두고 두고 기억날 장면이라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임달화와 김해숙의 러브 라인도 빛을 발합니다.^^

 

임팩트를 놓고 보자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배우는 전지현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배우의 능력보다는 감독의 역할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전지현은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에 머물러 있고, 그 캐릭터를 여전히 잘 소화해 냅니다. 그 캐릭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뽑아낸 것이 바로 '도둑들'에서의 전지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캐럭터는 대성공입니다.

 

 

 

 

반면 김혜수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전지현의 따발총같은 대사와 많은 액션이 극장에 앉아있는 내내 관객을 즐겁게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더 많이 기억나는 것은 김혜수의 캐릭터 쪽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핵심 축은 김윤석 - 김혜수 - 이정재 라인이고, 이 라인 위를 흐르는 감정이 마무리되어야 영화가 끝납니다.

 

비중으로 보면 오달수와 김수현은 조연이죠. 하지만 김수현이라는 거물(?)이 출연한 만큼, 그 캐릭터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고, 연기도 흠잡을데가 없었습니다. 분량이 적다는게 아쉬울 정도. 김수현과 전지현을 주축으로 한 속편을 기대하게 합니다. 일각에서는 '전지현을 뺀 배우들의 존재감이 부족하다'고도 하는데, 그건 이런 올스타 캐스팅 영화를 보는 자세가 아니죠. 이런 말은 '타워링'에서 스티브 맥퀸밖에 기억이 안 난다거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모건 프리맨이 낭비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도둑들'의 캐스팅이 사기라고 생각되는 건 정말 지나가는 듯한 역할까지도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비의 여인 역을 맡은 예수정이나 채국희, 카지노 매니저 역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최덕문, 그리고 사건의 키를 쥔 인물(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 역으로 출연하는 연출가 기국서 등이 그렇습니다.

 

 

기국서의 경우에는 기주봉씨로 착각하신 분도 아마 있을 듯. 왼쪽이 기주봉, 오른쪽이 기국서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것으로 예상되는 '도둑들', 한마디로 2012년 한국 영화의 뛰어난 성취라고 불러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미 면에서든, 느껴지는 공력 면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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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뭔가 될 것 같은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월드와이드하게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올 줄은 몰랐습니다. CNN에서도 이 노래 얘기가 나갔고, 그 유명한 로비 윌리엄스까지 자기 블로그에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이고 있는 시대, 특히 유튜브를 이용한 문화 전파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시대에 이미 아이돌 그룹들을 통해 K-POP의 세례를 받은 해외 네티즌들도 이미 '강남 스타일'에 푹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경험담과 리액션 비디오가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문득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특히 30대 이상이라면 말입니다. 1996년, 한 편의 중독성 강한 댄스 곡과 독특한 춤사위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마카레나(Macarena)'입니다.

 

 

 

1996년, 두 명의 똥똥한 스페인 아저씨들로 구성된 로스 델 리오(Los Del Rio)라는 듀오가 '마카레나' 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전 세계인들은 묘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이 묘하게 촌스러우면서도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고, 은근히 후렴구를 따라부르게 되는 이 노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후크송이란 말을 들어 보기도 전, 이미 전 세계는 마카레나에 낚여 갔더랬습니다.

 

 

 

 

1992년 결성된 로스 델 리오는 그해 룸바 리듬으로 '마카레나'의 원작을 내놨습니다. 이 노래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히트하고, 차차 미국의 스페인계 커뮤니티로 확산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시장을 잘 아는 스패니시 팝 스페셜리스트들의 눈에 띄어 새로운 편곡으로 1995년 세계 시장을 겨냥합니다. 

 

사실 유명 가수가 유명 작곡자를 써서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해도 히트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대중음악의 세계. 그러나 될 노래는 되고야 만다는 것도 이미 확인된 얘기죠. 무명의 두 아저씨가 장난하듯 부른 이 노래는 '아아아싸!' 하는 후렴구만큼이나 호쾌하게 차트를 치고 나갑니다. 베이사이드 보이 믹스 버전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무려 60주 동안이나 차트에 머물죠.

 

이 대목에서 지금 들어도 흥겨운 이 노래.

 

 

 

(물론 이분들이 '마카레나' 이후에도 계속 세계적인 톱스타로 군림하느냐... 그건 아니구요. 이 딱 한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뒤에는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꽤 조용히, 그래도 의미있는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듀오는 2007년에 해체되고, 각기 자기의 길을 가신다고 하는군요.)

 

사실 마카레나 얘기를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니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왠지 제2의 '마카레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입니다. 일단 머릿수는 다르지만 노래를 부른 가수의 체형(!)이 유사하고, 노래 스타일은 다르지만 중독성이 무서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당대 팝 지존 로비 윌리엄스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소개했겠습니까.

 

 

 

포스팅 주소는 이쪽:
http://www.robbiewilliams.com/news-blogs/trying-to-figure-out-which-tracks-stay-the-album


그런 의미에서, 아직 못 보신 분은 없겠지만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난리인지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유튜브를 둘러 보시면 온 세계의 K-POP 마니아들이 '강남 스타일'에 얼마나 꽂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팬들의 비디오. 아래 비디오는 '오빤 강남 스타일'이 영어로 들으면 어떻게 들리는지(^^)를 알 수 있는 영상입니다. "open c***** style"  이라니... 살짝 불경스럽긴 한데, 그게 또 싸이 이미지와 어울립니다.

 

(아래 영상 강추.^^)

 

 

 

그 다음은 한 금발 소녀(?)가 뮤직비디오 전편을 자기 식으로 재구성한 작품. 노력상 정도는 줄 만 합니다. 꽤 충실한 재현입니다.

 

 

 

아래, 국내에서 나온 패러디 비디오와 한번 비교해 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이건 요즘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빠야 대구스타일'. 그런데 이건 동원된 인력을 볼 때 제작진이 군소 프로덕션 급은 되는 듯.... (그냥 팬 개인이 만들었다기엔 공장 냄새가 좀 나죠?^^)

 

 

패러디가 다가 아닙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소감이나 반응을 찍어 올리는 MV리액션 영상은 팬들의 자기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리액션 영상의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습니다.

 

 

 

'NamasteDwaejiKim' 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 두 친구는 이런 리액션 영상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돼지킴'이라는 뒷부분을 보면 뭔가 한국어도 좀 할 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별 볼 건 없는 이런 영상입니다.

 

그런데 조회수가 243,172회나 되다니.

 

 

 

인터넷은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던 1990년대 중반. 로스 델 리오가 미국으로 진출해 주요 음악 채널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전파하고, 마침내 '마카레나'를 히트시키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면 유뷰브는 이 모든 과정을 한달 안에 끝낼 수도 있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너무 앞서 가는 듯 하지만, 이러다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실제 히트곡이 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오퐈 캉남 스따일' 하며 말춤을 추는 날이 오는게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을 마무리로. 2003년 넵워스(Nebworth) 라이브의 첫 곡이었던 'Let me entertain you' 입니다. 6만을 헤아리는 엄청난 관중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로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싸이도 언젠가 저런 관중 앞에서 말춤 추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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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가면 가끔 얼굴을 찌푸리면서 숟가락을 내려 놓고 "미원 맛이 너무 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히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의 특징은 대부분 유명 맛집에 가면 군소리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래옥이나 한일관 같은 곳에 가면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싼 식당일수록 조미료를 많이 쓴다는 건 당연히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재료를 많이 쓰는 비싼 식당에서는 양심이 있으면 조미료를 덜 쓰겠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유명한 맛집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물론 '전혀 쓰지 않는' 집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칠맛이 나려면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싶은 곳에 가도 '저희 업소는 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안내를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그 안내가 허영만 만화 '식객'에 나오는 정도라면, 뭐 더 할 말이 없겠죠.

 

 

 

지난주 JTBC '미각스캔들'에서는 허영만 원작 만화 '식객'을 이용해 마케팅하고 있는 식당들을 점검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식객'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인가 하는 것은 새삼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이날 방송의 취지는 '식객'에 누를 끼치자는 것이 아니고, '식객'이 여기저기서 음식점 선전에 이용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를 짚어 보자는 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객'에서 우리 전통 음식을 지키는 집으로 소개된 곳이 아니라, 그냥 스쳐 가는 가게로 나온 집까지도 "우리 업소가 '식객'에 나왔다"고 떠드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객'의 본의 아닌 오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업주들이 한 말을 그냥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중엔 업주 측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비법에 따라 조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자들은 그 말이 '아무 근거가 없으며, 현재의 조리법은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라고 짚어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비판은 만화 출간 때부터 간간이 있었고, 이에 대해 허영만 선생도 "'식객'은 맛집 소개서이지 한국 음식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라고 직접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즉 위에서 말한 조리법의 역사나 원조집 논쟁 등에 대해 만화 '식객'이 판가름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방송의 주제와 달리 눈길을 끈 것은 유명 곰탕집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뭐 좀 먹으러 다녔다는 사람은 다 아는 이 집(그냥 'H'라고 하겠습니다. 뭐 방송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업소의 이름을 굳이 제가 얘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은 허영만의 '식객'에서 36-2-0-60이라는 암호같은 숫자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중 '0'이 바로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집의 국물에서는 그냥 쇠고기와 내장만을 우려 낸 국물맛이라기엔 조금 넘치는 듯한 감칠맛이 납니다. 물론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입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 놀랍지 않은, 친숙한 맛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감히 'H 곰탕 국물에서 조미료 맛이 난다'는 말을 함부로 할만큼 용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유명 맛집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이고 '허영만의 식객'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각 스캔들' 팀은 이 집 양쪽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H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헛된 신화임을 밝힙니다.

 

명동 본점 관계자의 말입니다.

 

 

 

 

명동 본점은 물론, 논현동 분점(명동에서는 분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이 집도 본래 H를 운영하던 집안의 일원이 운영하는 것은 분명합니다)에도 똑부러지게 조미료 사용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조미료'에 대한 기이한 민감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과연 'MSG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음식을 배척할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명 식품학자들 조차도 'MSG가 해롭다는 것은 소금이 해롭다는 것과 같다. 소금도 많이 먹으면 해롭지만, 소금이 없는 식생활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MSG 사용 여부를 가지고 어떤 식당이나 음식의 질을 평가할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좋은 재료를 깨끗하게 조리하는 식당에서 소비자의 취향을 위해 MSG를 소량 첨가하는 것이 마치 도의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MSG를 먹으면 안되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에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MSG 없이 살 수 있습니까? http://5card.tistory.com/990)

 

시판되는 라면 중에도 'MSG 무첨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제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MSG 자체는 몰라도 MSG 성분이 주 성분이 된 복합 조미료 소비량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무가당 오렌지 주스'를 '당분 0'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무균질 우유'가 '전혀 균이 없는 우유'라고 생각하듯 말입니다. 이런 착각을 이용하는 상술에 이제 눈을 뜰 때도 됐습니다.

 

 

P.S. 이 글은 결코 H관에 대한 폄하가 아닙니다. 만약 조미료만 쓰면 모두 그런 맛을 낼 수 있다면, H관이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하는 것은 '식객' 아니라 '식객' 할아버지의 도움이 있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 맛을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도 명동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면 꼭 '나는 모르겠던데 왜 입맛 갖고 잘난척이냐'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아는 한에서 비교의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집과 H관의 국물 맛을 비교해 보시면 어지간해선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만약 MSG 맛을 뺀 설렁탕 국물 맛을 시험해 보고 싶은 분은 서울 시청 부근, 중앙일보 옆의 '잼배옥'을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집 주방장이 아닌 이상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서울 시내의 대다수 곰탕/설렁탕 집에 비해 현저하게 MSG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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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개막의 충격이 하루 종일 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산만하고 별 재미 없던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 행사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개막식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올림픽 개막식 치고 멋지지 않은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런던 개막식이 줄곧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지금까지의 개막식들이 보여줬던 틀을 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국만이 할 수 있었던'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

 

 

 

지금까지의 개막식 가운데 최고를 치자면 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을 꼽아왔습니다. 그리스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신화를 먼저 떠올리겠죠. 그 소재를 최대한 이용한 당시 개막식은 누가 봐도 예술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도 좋은 평을 받았지만 미적 완성도보다는 어쩐지 물량으로 밀어붙여 보는 이를 압도하려는 듯한 '세 과시'가 좀 거부감을 주더군요. 아무튼 아테네 개막식의 미적 완성도는 여전히 역대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역대 최고 물량의 개막공연, 어떤 의미였나. http://5card.tistory.com/115)

 

하지만 런던 개막식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은 어떤 경우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특히나 세계 무대에 나선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은 이 행사를 국가 홍보를 위한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가 오랜 나라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이 주 재료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대니 보일은 이런 관례를 한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영국은 흔히 '오래된 나라'임을 강조해 온 나라입니다.

 

 

 

 

런던 개막식은 약 18세기를 배경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케네스 브라나가 셰익스피어의 고전 '템페스트'의 구절을 읊긴 했지만 18세기 이전까지 약 2천년의 역사는 그냥 스킵해 버린 겁니다. 스톤 헨지도, 아서 왕도, 사자왕 리처드도, 마그나 카르타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항해 시대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영제국의 건설이나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 등 영국 역사의 전성기는 아예 묘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pandamonium(지옥)이라는 이름으로 산업혁명과 혼란의 도래, 노동운동의 시작 등을 다뤘습니다.

 

(과거 - 잉글랜드의 화려한 역사 - 를 자꾸 강조해 봐야 '피정복지역'인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 사람들의 소외감만 강조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계관시인들의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이날 개막식에 등장한 사람은 '해리 포터'의 조안 K 롤링이었고, 피터 팬과 메리 포핀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동 복지와 전 세계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베겟머리에서 읽어 주는 책들이 바로 영국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을 강조할 때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자랑할게 얼마나 많은데...." 라는 자세.

 

메리 포핀스가 볼드모트와 요괴들을 퇴치하는 것으로 끝난 이 세션의 제목이 바로 "second to the right and straight on till morning"이었습니다. 이 말은 '피터 팬'에서 피터 팬이 네버랜드의 위치를 설명할 때 하는 말이었더군요. 그러고 보면 이 행사는 하나도 과장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어떤 어린이가 피터 팬과 해리 포터를 모를까요.

 

 

 

 

어쨌든 과감하게 '유구한 역사' 부분을 들어 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를 메운 요소들 중 두 가지에 방점이 찍힙니다. 바로 '대중문화가 주제였다'는 것과 '영국식 유머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다른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그 나라 출신의 유명 음악인이나 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대중문화가 이렇게 올림픽 개막식의 주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007,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여왕을 호위하고 경기장으로 온다는, 그리고 여왕이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으로 들어온다는(물론 장난입니다만) 설정은 다소 엄숙하고 경건했던 지금까지의 개막식에선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입니다.

 

 

 

 

이날 행사 가운데 유일하게 클래식적인 요소였다면 베를린 필의 마에스트로 사이먼 래틀이 등장했다는 점이지만, 그 래틀 경이 지휘한 곡 조차도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의 주제곡. 거기다 '미스터 빈' 로완 애킨슨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잠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도록 촘촘한 웃음을 줬습니다.

 

 

 

 

또 '영국이 20세기 대중문화의 물결을 주도했다'는 자랑화제의 음악 파트에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주제는 'SNS를 통한 사회의 변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주말 밤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맞춰 수십곡의 히트곡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곡들이 모두 MADE IN UK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이 잠시 흘러나오는 듯 하더니 곧이어 지난 세기 전 세계의 팝 차트를 장식해온 클래시, 섹스 피스톨스, 데이비드 보위, 퀸, 폴리스, 유리스믹스, 그리고 프로디지의 곡들이 영상과 함께 들려왔습니다. 그야말로 영국의 일세를 풍미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대중음악사라고 해도 좋을 곡들이었습니다. 특히 록의 개척기는 물론이고 글램 록, 펑크, 뉴 웨이브, 테크노에서 브릿 팝까지 일세를 풍미한 장르들을 영국 뮤지션들이 개척하고 주도했다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더군요.

 

더욱 놀라운 것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같은 대 스타들에게도 결코 편중이란 없었다는 점입니다. 워낙 스타도 많고 히트곡도 많으니 그렇게 편식할 여유가 없다는 여유가 넘쳐 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니 보일의 출세작인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언더월드의 'Born Slippy'도 한 부분을 장식했습니다. 보일의 서명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낭비(?)는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개막식에 폴 매카트니가 나온다'는 정보 때문에 그 지루한 200개국의 입장을 다 지켜봤건만, 정작 등장한 매카트니 옹은 'The End'와 'Hey Jude' 단 두곡만을, 그것도 The End는 일부분만 부르고 바로 행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 장면 자체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트위터에 썼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가 세계에서 제일 큰 무대에서 세계에서 제일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부르고 바로 사라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매카트니 옹은 왜 꼭 Hey Jude의 후렴부분 떼창을 시킬 때(물론 시키지 않아도 이미 관객들은 '나 나나 나나나나'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남자들만 따로' '여자들만 따로' '한꺼번에 같이'를 시켜 보는 걸까요.^^

 

 

 

어떤 나라도 자기만의 독특한 올림픽 개막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마 런던 올림픽도 누구를 연출자로 기용했느냐에 따라 수천가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니 보일(바로 윗 사람) 아닌 다른 사람을 썼어도 이렇게 효과적으로 영국 대중문화의 막강함을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은 개막식을 통해 '봐라.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데. 잘 몰랐지? 어때. 멋지지?'라는 자세를 견지한 반면, 이번 런던 개막식은 '응. 이게 우리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 자, 이것도 우리 건데, 물론 그것도 알지? 우리 거라는 거 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아 놓으니 정말 대단하지?' 라는 거대한 자신감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대'를 배경으로.

 

사실 폐막식까지 생각하면 아직도 뜯지 않은 선물 보따리가 잔뜩 있습니다. 이미 엘튼 존, 오아시스, 조지 마이클의 참여가 흘러나왔죠.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한번쯤은 나와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고, 뭐니 뭐니 해도 나라가 영국이다 보니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속에 나오는 'Land of hope and glory'를 수만명 관객들이 떼창하는 모습도 연출되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다음 올림픽 개막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참 골치아플 듯 합니다. 폐막 행사도 참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웨버 옹은 "올해 올림픽 때문에 뮤지컬 흥행은 망했다"고 코멘트하신 내용만 나와 있군요. 아무리 웨스트엔드 흥행이 중요해도 국가적 대사에는 좀 참여해 주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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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이란 참 동물원에서 재미있게 보기 힘든 동물이었습니다. 사실 동물원에 가는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육식동물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호랑이, 표범, 사자를 동물원에서 재미있게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야행성인 이 동물들은 사람들이 구경 갈 시간에는 대개 한창 수면을 즐기고 있기 마련이죠. 가끔씩 동물원 생활에 적응한 몇몇 변종들이나 돌아다닐 정도.

 

대형 육식동물 중에서 그나마 낮 시간에 제대로 깨어 있는 것은 곰 정도지만, 이 또한 활기찬 몸집으로 구경꾼을 즐겁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백곰류는 한겨울이 아니면 생기를 보여주기 힘들죠. 더구나 백곰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하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방식으로는 그렇지 않더군요.

 

 

 

 

 

 

 

앞 글에서 설명했던 백곰 축사의 모구모구 타임에는 사육사가 백곰을 물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죠. 단 거의 모든 관에서 스트로보는 사용 금지입니다. 동물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는 이유입니다.

 

 

 

 

 

언뜻 둔해 보이지만 백곰의 몸놀림은 대단히 날렵했습니다. 사육사가 물속으로 던져 주는 먹이를 잡기 위해 움직일 때에는 물 밖에서의 느긋한 모습에서 180도 바뀌더군요.

 

 

속도감 인증. 아무튼 브라더와는 이렇게 작별입니다.

 

백곰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작은 동물관이 있고, 거기에 이 동물원의 스타들 중 하나인 레서 팬더(lesser panda)가 눈길을 끕니다. '쿵푸 팬더'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시푸(사부)의 원형이라 유명해졌죠.

 

 

 

그런데 이 동물원에서도 레서팬더를 찍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포토제닉한 동물들과는 달리 이 레서팬더는 워낙 카메라를 멀리 하는 수줍은 성격이었기 때문이죠.

 

 

 

 

이 정도가 가장 잘 나온 사진입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쪼르르 도망가 버리거나, 저렇게 높은 구름다리 위에서 낮잠만 잡니다. 상당히 영접하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나마 비가 뿌리기 전이라 저 정도라도 모습을 드러내는 듯.

 

이밖에 늑대관도 꽤 명성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행동전시를 위해 설비를 해 놓은 것 까지는 좋은데,

 

 

정작 늑대님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쿨쿨 오수를 즐겨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동물들이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일본의 상징 중 하나인 두루미.

 

 

갤럭시 노트를 이용하면 미술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관도 꽤 공들여 건립되어 있고 원숭이 종류도 다양합니다만,

 

 

비가 뿌리는 날씨 탓인지 별로 맥이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다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이 동물원에서 주력으로 미는 동물은 아래의 다섯 종류인 듯 합니다.

 

 

아사히카와 역에 설치된 전광판을 보시면 백곰, 펭귄, 레서팬더, 바다표범, 늑대의 다섯 종류가 캐릭터로 등장하죠.

 

분명 이 동물원에는 수많은 새들도 있고, 원숭이도 있고, 호랑이와 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동물들은 어찌 보면 그냥 구색맞추기 정도입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동물원에 가도, 호랑이와 사자는 있죠. 물론 백곰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독특한 전시 방침을 세우고, 자신들만의 강점을 내세운 동물원은 보기 힘듭니다. 심지어 겨울에는 이렇게 펭귄들이 행진하는 모습도 볼수 있다고 합니다. 운동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이게 또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됐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영화도 만들어지고, 책도 나오고, 경영 성공 사례로 여기 저기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지고... 뭐 좋은 순환입니다.

 

아무튼 '명망있는 동물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만의 볼거리'를 강조해 성공한 아사히야마 동물원. 여러 모로 참고가 되었습니다.

 

 

주의사항은:

 

고위도 지방이기 때문에 폐장시간이 꽤 빠릅니다. 오후 다섯시 전후? 오후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 아울러 역과 동물원을 연결하는 버스는 기차 시간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오픈 티켓이 아닌 경우(좌석을 예약한 경우)에는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비싼 택시비를 물게 됩니다. 기차 시간과 교통편의 경우에도 에나프 투어(ENAF, www.enaftour.com) 등의 전문 여행사를 이용하면 직접 열차 시간표를 보고 연구할 필요 없이 스케줄링을 해 주곤 합니다.

 

구내에 식사할 장소가 있기는 합니다만, 가격도 비싼 편이고 메뉴가 그닥 눈에 띄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좋은 음식은 저녁에 드시고, 도시락 비슷한 것을 싸 가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단, 날씨가 좋은 경우에만.

 

다음에는 구름에도 표정이 있어 보이는 꽃의 낙원 편입니다. 후라노-비에이 하루치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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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예매 전쟁이 붙었다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영어 원제는 그냥 rise가 아니라 rises입니다)를 봤습니다. IMAX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열성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음향으로 알아준다는 롯데시네마 건대 6관을 이용했습니다. 덕분에 한스 짐머의 진면목은 실컷 누리고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배트맨 3부작을 마무리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습니다. 전작 '인셉션'의 흥행 성공 이후 한 인터뷰에서도 "인셉션이 흥행과 평단 양쪽에서 성공한 덕분에, 나의 마지막 배트맨 시리즈를 영화사에 전혀 빚진 느낌 없이, 그리고 아무런 간섭 없이 만들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 미국과 국내의 평론가/기자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놀란 감독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성과에 대해 찬양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거룩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이야기는 '다크 나이트'가 끝난 시점에서 8년 뒤에 시작합니다.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은 '투페이스' 하비 덴트의 죽음 이후 세상을 등지고 칩거합니다. 범죄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하비 덴트 특별법'을 통해 고담 시의 범죄율은 뚝 떨어지고 평화가 찾아오지만 짐 고든(게리 올드만)은 '아직 전쟁을 끝날 때가 아니다'라는 염려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웨인은 자신의 집을 털러 온 캣우먼(앤 해서웨이)의 등장, 그리고 자신이 배트맨이라는 것을 간파한 젊은 이상주의자 경찰관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 과 함께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고담이 거물 용병 베인(톰 하디) 무리에 의해 습격당하자 다시 배트맨으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베인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뇌나 완력 모두 막강합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완벽합니다. 특히 도시형 수직이착륙 전투기 '더 뱃(The Bat, 바로 아래 사진)'의 등장과 함께 액션은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전체 영화 속에서 액션의 비중이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풋볼 경기장 폭파 신이나 베인 일당의 항공 액션 등은 확실히 액션이란 절대적으로 '양보다 질'이라는 것을 입증해냅니다. 한스 짐머의 묵시록적 교향시를 바닥에 깔고 있는 이런 장면들은 이미 '트랜스포머'나 '어벤저스'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감탄을 일으킵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수천명의 대격돌 신에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얘기할 때 액션만으로 이야기를 끝낸다면 그거야말로 바보같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슈퍼 히어로 무비들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사이에는 대양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철학적 담론 얘깁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전편들과 같이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약간 이견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시는게 좋겠습니다.^ 이후 부분에서는 심하지는 않지만, 영화 내용을 꽤 언급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얼른 보시고,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댓글도 나중에 보시는게 좋습니다.

 

주로 이 영화를 '액션 블록버스터'만으로 볼 것이냐(즉 '트랜스포머'나 '배틀십'과 같은 기준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트맨 비긴스'와 '다크나이트'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의라는 필요악의 선을 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슈퍼 영웅 배트맨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다크나이트'는 배경색을 통해 그리려는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듯, 순수한 악의 화신 조커를 통해 과연 정의의 집행자와 악의 화신 사이엔 어떤 간격이 있는지를 보여줘 온 세상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의 도덕률에 대한 설정은 이야기의 흐름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트맨은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엄격한 자기만의 원칙 아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살인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죠. 배트맨은 조커를 비롯한 악당들에게 '나는 너같은 살인마와는 달라'라고 말합니다. 조커는 갖은 노력을 통해 -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 배트맨이 통제되지 않는 살인자가 되게 하려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죠.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과연 저런 도덕적 기준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는 본래 필요악입니다. 악당들이 총을 들고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을 때, 소위 '슈퍼 영웅'이 자신만의 '살인 금지'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그 범죄를 막지 않는다면 대체 슈퍼 영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배트맨의 이런 우유부단함은 지구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국제 분쟁 개입 결정과 비교되곤 했습니다. 물론 개입을 결정하는 요인이 반드시 '정의의 실현'만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배트맨 캐릭터의 문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배트맨은 이번에도 상황을 무시한 채 '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라는 원칙을 고수해 계속 답답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심지어 개연성 면에서도 무리가 발생합니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월 스트리트의 대격전에서, 배트맨이 탄 공격기 '더 뱃'은 베인 군단의 장갑차에서 기관총 1정만 제거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배트맨은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맨주먹으로 격전에 참가하죠.

 

자동화기와 장갑차로 무장한 베인 군단에게 3천명의 경찰관이 곤봉과 권총만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것은 실전이라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월등한 화력을 보유한 배트맨이 '살인은 안된다'고 물러선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위가 아닐수 없습니다. 배트맨이 화력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경찰관들의 병력 희생은 몇십배가 되었을 겁니다. (뭐, '소수의 영웅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희생을 통해 얻어낸 승리가 진정한 승리'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핵폭탄을 실은 트럭을 제지하려는 순간에도 '더 배트'는 호위 차량을 제압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위차량이 발사한 미사일을 피하느라 시간만 낭비하죠.

 

(이 결전 이전에 주인공들은 "45분 후면 핵폭탄이 터진다"며 긴장된 표정으로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원칙 타령이나 하는 영웅이라니... 이 장면을 보고 감동하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너 가고, 아이언맨 불러와"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여기까지, 배트맨의 이런 특성이 답답한 사람은 답답한 것이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로 그만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개연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나의 배트맨은 원래 그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 밖에도 스토리의 전개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놀란의 너무 큰 야심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 수준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베인을 비롯한 '악의 세력'의 캐릭터가 부실합니다. 베인 자신은 뛰어난 두뇌, 막강한 전투력, 거기에 부하들로 하여금 배신보다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막강한 리더십을 자랑하지만 그 존재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 모호합니다.

 

이를테면 대체 왜 고담을 외부로 부터 차단해 점령하고, 5개월간 무정부 상태를 유지한 뒤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없습니다. 대체 그는(혹은 그를 배후조종하는 탈리아 알굴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댓글을 참고해 몇마디 덧붙입니다.

 

많은 분들이 베인의 동기란 '라스 알굴의 유지 계승'과 '탈리아 알굴에 대한 사랑과 추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영화에 나옵니다. 그렇지만 베인이 영화 속에서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배트맨 식의 설정'에 익숙한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을 설득하기에는 역시 부족합니다.

 

이를테면 핵 과학자 납치 -> 웨인의 지문 탈취 -> 증권거래소 습격 -> 웨인 회사 경영위기 -> 미란다의 웨인 그룹 입성 -> 원자로 위치 파악 -> 테러로 고담 장악 -> 원자로를 핵폭탄으로 -> 5개월간의 해방구(?) 운영 -> 파멸 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왜 밟아야 하는지 납득할만한 동기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물론 굳이 설명하려면 할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일반 관객이라면, 억지라는 생각이 드는게 정상일 겁니다.

 

(아울러 지하에 갇힌 3천명의 경찰관을 왜 몰살시키지 않고 먹여살렸는지도... 혹시 고든과 블레이크가 식량을 조달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도시가 고립된 상태에서 3천명을 5개월 동안 먹고 마시게 할 수 있는 보급량을 10여명의 지하조직이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베인이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렇다면 대체 왜?)

 

 

 

고담이야말로 현대 서구 문명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고담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는 것이 온 세상에 본보기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리고 나서 그 목적을 이뤘으니 순교자가 되려는 걸까요.

 

참 기이한 악당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커만큼 선명한 목적이나 행동의 동기가 없는 이상한 악당은 이 영화의 극적 흥미를 상당 부분 떨어뜨립니다. 베인 일당이 미국이 상대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비유라면, 놀란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논자와 관객들은 베인을 '슈퍼 빈 라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놀란은 영화 내내 현실에 대한 은유를 시도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증권거래소를 덮친 베인 일당에게 한 딜러는 "여기는 (현금이 오가지 않는) 증권거래소라 훔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베인은 "그런데 너희는 잘도 훔쳐 가더군?"이라고 비웃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놀란은 '자본의 탐욕에 맞선 시민들의 분노'를 다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란에 의해 그려지는 고담 시는 대혁명 때의 파리와 판박이가 됩니다. 혁명을 사칭한 베인 일당에 의해 교도소(바스티유?)는 무너지고, 혁명 재판소에서는 매일 피를 부르는 막무가내의 학살극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해서 월 스트리트를 점령했던 '분노한 시민들'은 베인 일당의 선동에 놀아난 '사회 불만세력 내지는 난동세력'으로 전락당합니다.

 

이런 어수선한 진행 끝에 결론은 '모든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있고, 세상은 한두명의 영웅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는 교과서적인 것이라니. 너무 안이합니다. 결론은... 놀란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건 그냥 안 하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인류 문명사의 복잡다단한 논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물론 '배트맨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혹은 '이건 원래 만화잖아!' 라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놀란은 지금까지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등을 통해 자신이 그냥 단순한 상업영화 감독이 아니라는 기대를 심었습니다. 당연히 평가의 기준이 높아졌죠.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이상을 시도한 작품이되, 놀란 스스로 높인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이 대목에서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배트맨' 마니아들은 한 시리즈의 마무리에 환호했을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단순히 이 영화를 그냥 블록버스터로 소비한 관객에게도 꽤 훌륭한 선택이었겠지만, 놀란 감독의 작품들을 관심있게 지켜본 관객에게는 전작, 특히 '다크 나이트'에 비해 부족한 부분들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만치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아쉬움도 큰 것이겠죠. '어벤저스'나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들과 이 영화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배우들이 망라된 이 영화의 캐스팅에 토를 단다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겠지만, 마리옹 코티아르가 왜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로 나오는 지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으로서 미란다 역은 아무래도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는 앤 해서웨이를 꼽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역대 최고의 배트맨 배우로 평가받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은 다시 배트맨을 연기할 수 있을까요? DC코믹스는 잭 스나이더가 준비하고 있는 슈퍼맨 시리즈의 리부트와 함께 마블의 '어벤저스'에 맞먹는 '저스티스 리그'의 출범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일단 베일은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놀란)가 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한 이번이 배트맨으로는 마지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은 남긴 셈이죠.

 

P.S. 많은 분들이 최근 일어난 극장 총격 난사사건에 우려를 표명합니다. '다크나이트'에서도 모방 범죄 애기가 나오지만 거기선 악당이 아닌 배트맨을 모방한 사람들 이야기였죠. 반면 이번 총격범은 '나는 조커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악역을 너무 멋지게 그려낸 부작용일까요.

 

P.S.2.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해석도 사실 논란거리입니다. 과연 브루스 웨인은 은퇴한 것일까요? 그럼 이제 정의 수호는 '로빈 맨'의 것일까요? 놀란은 배트맨-로빈 컴비를 긍정하는 것일까요, 부정하는 것일까요? 보신 분들의 의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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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 가운데에도 지능이 높고, 인간이라는 자기와 다른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돌고래, 침팬지 등이겠죠.

 

그런데 지능은 이 정도에 미치지 못해도 인간들에게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즐겨 하는, 과시욕 강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펭귄은 명백하게 자신에게 인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갈매기는 지능과는 무관하게, 사람 가까이까지 날아와 공중에서 사실상 정지하는 동작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물론 인간들의 새우깡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만) 본의와는 무관하게 포토제닉한 동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모두 바다표범을 접해 보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저는 바다표범이야말로 진정 카메라를 사랑하는 연예인 기질의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다표범(아자라시) 관은 바로 펭귄 관이 끝나는 곳에서 이어집니다. 펭귄관과 마찬가지로 실외와 실내로 이뤄진 전시관이 있고, 관람은 실내에서 먼저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굵은 원통 기둥 모양의 투명 관.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람 공간 한가운데 원통 기둥이 있고, 그 기둥 속으로 바다표범들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위에서 스윽 하고 한 녀석이 원통 속으로 내려옵니다.

 

이야~~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지죠.

 

환호를 받은 이 분은 결코 퍼포먼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주를 넘어 주는 건 기본.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합니다.

 

 

특히나 어린이가 있는 쪽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듯한 느낌까지.

 

원통 기둥 속으로 바다표범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동영상으로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오디오가 중요함^)

 

 

원통 기둥 옆은 아예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깔아 바다표범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 한 구석으로 이렇게 다가와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응시합니다.

 

 

그럼 이렇게 다들 달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바다표범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아무튼 바다표범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우아하고 장난기가 많은 지 보여주는데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그 다음은 왠지 친숙한 동물입니다.^

 

 

가족이랄까...

 

 

이 동물원에서는 행동전시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의 바로 코 앞까지 가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뒀습니다.

 

우측 상단의 돔 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사람이 보이시죠?

 

 

저 안에서 곰을 보면 이렇게 보입니다.

 

곰이 화가 나서 이 돔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그냥 상상 뿐. 사실 안에서 본다고 그닥 희한할 것은 없습니다. 어쨌든 백곰관의 하이라이트는 먹이를 주는 모구모구 타임입니다.

 

 

사실 우리의 백곰 브라더, 날도 더워 멱을 감고 싶을만 한데 전혀 물에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속에 먹을거리가 투입되는 모구모구 타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속에 먹이가 투입되는 순간,

 

 

주저없이 물에 뛰어드는 우리의 브라더 아니 백곰! 하지만 너무 길어져서 동물원 편은 한번 더 늘립니다.^ 백곰의 수중 활약은 다음 편으로...

 

이걸로는 예고가 약한 것 같아 이 동물원의 마지막 스타도 소개합니다.

 

 

바로 레서팬더(lesser panda). 레드 팬더라고도 불리는 분입니다.

 

 

 

이분의 모델이었던 분이죠. 그럼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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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른이 된 마당에 어디로 여행을 가더라도 동물원을 꼭 가는 편은 아닙니다. 심지어 세렝게티 사파리라면 모를까, 동물원을 가 보기 위해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을 벌였습니다. 그 동물원은 일본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旭川) 교외에 있는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 '펭귄 하늘을 날다'라는 책과 영화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늘 뻔한 동물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전기를 마련한 전설로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그 아이디어란 바로, 펭귄이 수영하는 풀 아래로 터널을 파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하늘 위로 날아가는 펭귄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그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은 홋카이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아사히카와(旭川) 외곽에 있습니다. 삿포로-아사히카와는 거의 30분 간격으로 슈퍼 카무이라는 급행 열차로 연결됩니다. 소요시간은 약 80분 정도.

 

 

 

그리고 역전에 내리면 아사히야마행 버스로 갈아탑니다. 2012년 7월 현재 아사히야마 역전은 공사 관계로 약간 어수선한데, 아무튼 입구를 나서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가시면 됩니다. 길을 건너 모퉁이를 돌면 정류장이 있습니다.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면: 웬만하면 화장실은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해치우시기 바랍니다. 월요일인데도 버스 정류장에는 줄이 꽤 길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정류장으로 가서 줄 앞쪽에 서는 것이 현명합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행 버스 시간은 기차 도착 시간에 연동되어 있습니다. 버스로 30~40분 정도 가기 때문에, 자리에 앉지 못하면 가기 전부터 진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버스요금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삿포로~사히카와 왕복 열차표]+[아사히카와~아사히야마 왕복 버스권] + [동물원 입장권] 이 포함된 연계 티켓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티켓을 개별적으로 구매하려면 실제 판매 가격은 5900엔. 저는 이 가격이 에나프 투어(ENAF, www.enaftour.com) 여행 상품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이보다는 조금 쌌을 듯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입구가 절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시골 동물원이라는 느낌.

 

입구로 들어가시면 반드시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동물원의 특징 중 하나인 '모구모구'라는 시간표입니다. 모구모구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용은 '사육사가 먹이를 주며 그 동물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 되겠습니다.

 

제가 저 앞에 선 것이 11:40 정도였으므로 11:45의 오랑우탄이 있었지만 오랑우탄은 13:30에도 있으므로 패스. 이후 14:30 백곰, 15:15 바다표범(아자라시), 15:45 펭귄의 모구모구 타임이 남아 있습니다. 구경을 하더라도 이 시간은 기억해 두고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동선상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이 동물원의 간판인 펭귄관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통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펭귄 터널입니다. 사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규모가 크지도 않고, 터널의 길이가 길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터널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집니다. 

 

생기기는 세계 어디 가나 있는 수족관의 수중 터널과 똑같이 생겼지만, 이 터널에서는 이런 새들이 마구 날아다니기 때문이죠.^

 

 

 

이러다 고개를 들어 보면 머리 위로.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정말 펭귄이 새라는 게 실감이 납니다.

 

 

 

다들 환성이 터져나오죠. 여고생들로 보이는 소녀들은 '스고이' '가와이' 난리 났습니다.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 들고 '펭귄 사냥'에 난리가 납니다.

 

 

 

근데 어찌나 빠른지... (사실 똑딱이 카메라의 셔터 반응 속도가 느린 탓도 있지만) 잡았다 싶으면 이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예측 사격(!)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 이 정도로 잘 빠진 '날아가는 펭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똑딱이로 펭귄 잡기가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한참을 해도 질리지 않더군요.

 

 

아저씨도

 

 

아줌마도

 

모두 펭귄 사냥에 넋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위로 올라갑니다.

 

구경하는 통로 배치상 정말 동물들이 가까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 황제펭귄 종류는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못되게 생겼습니다.

 

 

악당의 얼굴이죠.^ '배트맨2'의 악역인 암흑가의 두목 펭귄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가까이서 보고 나니 황제펭귄보다 이 땅딸한 녀석들이 더 맘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땅딸하다고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훨씬 적극적이어서, 덩치큰 황제펭귄 종류보다 먹이를 먼저 먹습니다. 땅딸이들이 다 먹고 나서야 큰 놈들이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놈을 만났습니다.

 

 

 

 

 

 

'해피 피트'에 나온 저 녀석과 똑같지 않습니까? ^^

 

 

 

아무튼 이런 지근거리에서 사람과 펭귄이 함께 하는 동물원은 처음입니다.

 

일설에는 이런 거리 때문에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도 합니다만, 오히려 이 펭귄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진해서 어슬렁거리며 포즈를 취해 줄 정도. (물론 동물 사정은 동물만 알겠죠.)

 

펭귄에 너무 심취해서 분량이 길어졌습니다.

 

 

 

정말 바다표범은 사진찍히기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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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 처음 간 사람은 대개 오오토리 공원과 TV 타워, 스스키노의 밤거리와 홋카이도 도청사, 시계탑 등을 구경합니다. 그리고 삿포로 팩토리와 맥주 공장, 시로이 고이비토(白い恋人) 테마파크 정도를 가고 나면 그냥 별 볼 것 없는 도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삿포로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살아 본 사람에겐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역사적인 유적 같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젊은 도시입니다. 젊은 도시이기 때문에 바둑판 모양의 잘 정돈된 시내와 일본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훨씬 여유있고 스케일 큰 공간 활용이 매력이긴 하지만, 볼거리 면에서는 떨어지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놀라운 볼거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놋포로 삼림공원(野幌森林公園)입니다. 현대적인 지루한 도시 속에서 한잔의 시원한 생맥주같은 숲이랄까요.

 

 

 

처음부터 보시려면 이쪽을 먼저 다녀오시는 것도 좋습니다.

 

 

둘쨋날은 맘 편히 삿포로 시내나 교외 일대를 구경할 요량이었습니다. 일요일이기도 해서, 당초 작정했던 관광지를 가자니 사람이 복작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삿포로 시내에는 그닥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 눈길을 끈 것이 '삿포로 예술의 숲'과 저 '놋포로 삼림공원'이었습니다. 둘 다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았고,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란 느낌은 들었지만 워낙 개인적으로 수목원을 좋아하는 터라 후자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삿포로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 가운데 놋포로에 가신 분은 별로 없는 듯 했습니다. 놋포로 삼림공원 안에 있는 '삿포로 개척촌'을 가신 분들은 좀 있는 듯 합니다만, 전체 삼림공원의 규모에 비하면 개척촌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인공 재현시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삼림공원을 집중적으로 파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삿포로의 중심인 오오토리 역에서 도자이센(동서선)을 타고 동쪽 종착역인 신 삿포로 역까지 갑니다. 놋포로 공원은 역에서 버스로 10~15분 거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오토리에서 신 삿포로 역까지 20분 정도 걸리니 시내 중심에서 30~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 삿포로 역에서 버스 연결이 까다로울 수도 있습니다. 막상 내려 보니 신 삿포로 역의 버스 환승장이 너무 넓었고, 결국 연결 버스를 찾지 못해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900엔 정도 나옵니다. (기본요금 650엔)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입구라고 할 만한 곳도 없습니다. 입구도 굉장히 많습니다. 일단 저는 오오사와구치(大澤口)라는 입구에 내렸습니다. 주차장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서 바로 시작되는 숲. 제대로 숲길을 향하기 전에 일단 준비해간 도시락을 풀었습니다. 바람이 좀 세게 불어서 그렇지 분위기는 아주 좋습니다.

 

 

숲도 좋고 햇살도 덥지 않게 따사롭고 (마트에서 사온 것이긴 하지만) 도시락도 좋은데... 바람이 너무 심합니다. (머리가 저렇게 되지 않은 사진이 없는데 대한 변명;;)

 

하지만 안내에 따르면, 그나마 이 자리(자연생태관)을 벗어나면 이런 식탁이나 벤치도 없는 그냥 숲과 길 뿐입니다. 쓰레기통도, 자판기도 없습니다. 그냥 이정표 뿐.

 

 

 

 

 

 

 

 

그리고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일단 이쪽은 초원지대입니다. 물론 초원이라고 해도 주변의 인가가 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가다 보면 활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워낙 대규모 공원이라 그 안에 각각의 식생에 따라 특색있는 숲이 짜여져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좀 가다 보면 이 숲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곧 놀랍니다.

 

 

 

 

지도상으로 보시면 전체 공원에 비해 약 3시간 동안 돌아다닌 지역(왼쪽 위의 빨간 동그라미 안)의 넓이가 턱없이 좁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전체 공원을 횡단하거나 하려면 배낭에 식량과 음료를 채워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좋은 점은, 워낙 큰 규모의 숲이기 때문에 계속 걸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좋다는 숲, 좋다는 수목원에 가도 사람이 바글거리면 숲의 느낌이 반감되어 버리곤 하지만, 여기선 2,30분 걸어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기 힘듭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갑자기 평원 위에 등장하는 삿포로 개척 100주년 기념탑.

 

 

 

혹자는 거대 로봇이 변신 중인 상태같다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리는 입자포의 포신 같다고도 하고. 어쨌든 뭔가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과 엄청난 배포가 결합된, 무식한 물건이란 느낌은 분명합니다. 

 

1971년. 일본이 64년 올림픽 개최 후 세계 1등 국가로 진입하고 있던 시기의 자신감을 대변해주는 물건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홋카이도라는 이 드넓은 대지, 혹한의 겨울을 가진 땅을 개척한 포부가 엿보이는 그럴싸한 기념물이었습니다. 물론, 개척을 '당한'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족과 이 개척 과정에서 상당히 많이 희생된 한인 징용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탑 정상으로 걸어 올라가는 계단이 나 있습니다만, 엄두가 나지 않아 역시 포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 만약 겨울에 찾는다면 진짜 시베리아의 숲 느낌도 맛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초 예정은 '숲 가운데까지는 가 보자'는 것이었는데, 동행인과 저의 저질 체력으로 그랬다가는 나머지 일정을 자리보전으로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절한 지점에서 포기했습니다.

 

아무튼 눈이 내려 쌓인 뒤에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가득 채운 다음, 파카에 장화를 신고 한번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입니다. 플라스크에 담은 보드카나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시베리아 기분을 내 볼수도 있겠죠.

 

 

노포로 삼림공원은 강추입니다만, 가시기 전에 신 삿포로 역에서의 접근 경로와 퇴로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 삿포로 역에서 10번, 12번, 22번 등 여러 버스로 도착할 수 있는데 버스의 운행 간격이 1시간 이상입니다. 자칫하면 나올 때 미아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내린 정류장에서 꼭 다음 버스 시간을 확인하시고, 아니면 아예 나올 때에는 마음 편히 신 삿포로 역까지 택시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택시비 만큼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게 아니면 아예 삿포로 기차역에서 하코다테 가는 길에 있는 JR 삼림공원 역까지 가서 걸어 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쪽에선 진입로가 워낙 길어 본격적으로 숲이 시작되는 개척기념탑까지 가는데만 빠른 걸음으로 30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체력에 자신이 있는 분들에겐 이게 더 간편한 길일 수도 있겠습니다.

 

http://www.pref.hokkaido.lg.jp/ks/skn/environ/parks/nopporo.htm

 

 

 

 

공원을 나서 찾아간 곳은 삿포로 팩토리. 어디를 가건 쇼핑몰을 안 가면 그 도시를 가본 게 아니라는 동행인의 지론에 따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인데도 쇼핑몰은 지나치게 한산. 삿포로 팩토리가 기울고 있는 것인지, 삿포로 시 경제가 기울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약간의 이상 신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쇼핑몰에 가면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소소한 아이디어 상품들. 물론 가격도 싸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눈길을 끕니다.

 

저 인형은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붓고 라면이 익을 때까지 뚜껑이 덮인 채로 고정되게 도와주는 물건입니다. 몇개 사와서 선물로 뿌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840엔이면 만원이 넘는 가격이라 패스.

 

 

 

홋카이도에 왔으면 뭐니뭐니해도 대표 동물은 곰. 그래서 푸마 대신 쿠마(일본어로 곰) 티셔츠를 입거나,

 

 

곰고기, 사슴고기, 바다사자 고기 등의 통조림도 쇼핑할 수 있습니다. 야마토니(やまとに[大和煮])라는 것은 일본식의 장조림 비슷한 요리라고 합니다.

 

물론 맛은 절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에 들은 애기로는 '토할 것 같더라'는 말도 있더군요.^ 용기 있는 분들은 한번쯤 시도해 보실 만도.

 

 

 

삿포로 팩토리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과거 맥주 공장이었던 시설의 외관과 에이트리움이라고 불리는 초대형 온실 모양 건물의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여기선 역시 유명한 홋카이도 한정 판매 맥주인 삿포로 클래식을 마셔 줘야죠.

 

 

 

 

백년이 가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탄탄한 벽돌 건물의 구 맥주공장, 물놀이 하는 아이들,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맥주잔에 비치는 걸 바라보며 삿포로의 일요일 오후가 저물어 갑니다.

 

맥주같은 숲, 숲 같은 맥주. 삿포로가 특별한 이유가 이런 거겠죠.

 

 

 

저녁식사는 가장 많이 기대했던 게 전문점. 게 요리에 대한 내용은 따로 정리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먼저 먹어야 할 것은? http://fivecard.joins.com/1017

 

 

다음날은 하늘을 나는 펭귄을 보러 아사히야마 동물원으로 갑니다.

실망했다는 분들도 있어 은근히 걱정했는데, 절대 헛걸음이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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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막연히, 언제 홋카이도를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줄곧 갖고 있었습니다. 2001년 겨울에 한번 간 적이 있었고 그 때의 기억도 참 좋았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겨울의 홋카이도는 눈의 천국이죠.

 

어디를 가나 도로에는 중앙선이 허공에 떠 있을 정도(눈 때문에 길 바닥의 선은 전혀 보이지 않음)로 눈이 쌓여 있는 설국. 온 사방에 눈이 쌓인 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온천에 들어가 얼굴에 선뜩 선뜩 눈송이가 떨어지는 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당시 온갖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국내에서 유명해진 장난감 도시 오타루도 멋졌죠.

 

그런데 언젠가 누가 "홋카이도가 겨울이 좋다지만 사실은 여름이 훨씬 더 좋다"고 얘기한게 계기가 됐습니다. 워낙 귀가 얇은 터라 '그래?'하고 솔깃했지만 이번 여름, 마침내 실천에 옮겼습니다.

 

 

 

2001년 겨울, 김민종은 '하얀 그리움'이라는 노래로 겨울 시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볼 수 없을 정도의 겨울 풍경을 위해 홋카이도로 날아갑니다. 저도 그 일행에 끼어 처음으로 홋카이도 땅을 밟았습니다.

 

바로 이 뮤직비디오죠.

 

 

뮤직비디오 중간에 나오는 설원 장면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도야 호수 근처의 평원에서 찍었는데 바람 한 점 막을 곳이 없는 거대한 눈밭에서 하루 종일 촬영을 진행하는 걸 보고 몸서리를 친 적이 있습니다. 한 5분만 서 있어도 뇌 속의 수분이 모두 얼어붙는 것 같은 강추위였기 때문이죠. (네. 저는 본부 격인 버스 안을 거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낮 일정이 끝나면 환상적인 온천과 맥주의 휴식을 기대할 수 있는, 참 괜찮은 출장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이라 해도 엄청나게 짧았죠.^^

 

 

 

사진을 보니 참 김민종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군요.^^ 사진의 날짜가 1999년인 것은 사진기의 오류입니다. 당시만 해도 DSLR보다 더 컸던 코닥 디지털 카메라(거의 시제품)를 처음으로 들고 간 상황이었습니다. 메모리도 15~16장 저장이 고작이던 시절. 찍었다가 확인하고 후진 사진은 바로 지워야 했습니다. 오른쪽은 당시에도 이미 스타 사진작가였던 조선희씨.

 

아무튼 그해 겨울의 좋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홋카이도를 막상 다시 간다고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엔 여행사의 힘을 한번 빌려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는 절대 사절. 다만 호텔과 교통편 예약을 해 주는 발전된 호텔팩 형태라면 괜찮을 듯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사 서치에서 어렵지 않게 에나프 투어(ENAF, www.enaftour.com)라는 회사를 발견했습니다.

 

이 회사의 장점은 주어진 코스대로 가지 않고 직접 일정을 구성해 자유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만 코스를 재구성해도 합리적인 가격이 산출됩니다. 총 4박5일. 하루는 아시히카와 행, 하루는 후라노 행으로 조절해 견적을 받았습니다. 견적을 받은 뒤 약간의 절충이 있었습니다.

 

요즘 온 사방에서 욕을 먹는 '파워 블로거지' 흉내를 한번 내 본 거죠("사장님, 제가 블로그에도 한번 쓰고 하면 홍보가 쫘악~~"). 그렇게 해서 아주 약간의 할인(정말 약간입니다. 견적 요금의 10% 미만 ^^;;;)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뭐 꼭 그래서라기보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 온 지금, 다른 지역은 몰라도 홋카이도를 갈 때에는 여행사의 자유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직접 숙소나 교통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여러 모로 바쁜 사람들에겐 숙소와 교통편 예약에 꽤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차차 더 자세히 나올 겁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그렇게 해서 신 치토세 공항에 내린 것이 오후 2시경. 흐리고 비가 쏟아질 거라던 예보가 무색하게 해는 쨍쨍 빛났습니다. 그래도 덥지는 않은 날씨. 22~23도 정도의 기온입니다. 시내까지는 1040엔짜리 공항 특급 전철로 직행합니다. 삿포로 역까지 35분. 운이 없으면 서서 갈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 고유의 날렵한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삿포로 역은 역시 일본답게 노숙자나 사창가, 우범지역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대도시 역과는 전혀 다른 느낌. 대형 쇼핑몰이 잇달아 있어 도쿄의 시부야 역이나 서울의 용산역 같은 느낌입니다.

 

삿포로 시내는 쾌적하게 뚫려 있고 워낙 평지라 삿포로 역 광장에서 남쪽으로 쭉 뚫린 길을 바라보면 스스키노의 랜드마크인 기린맥주 전광판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보인다는 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꽤 가까운 거리 같지만 실제로는 전철 두 정거장. 네. 걸으면 시간과 땀이 꽤 소요됩니다.

 

 

 

 

숙소인 그랜드 호텔은 삿포로 역과 오오토리 역의 어렴풋이 중간에 있습니다. 삿포로 역까지는 약 7분, 오오토리 역까지는 3,4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1층에 스타벅스가 있어 금세 눈에 들어옵니다.

 

삿포로의 명물인 구 도청사가 바로 뒤편에 있어 호텔에서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만 보고 가 보진 않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삿포로의 고전적인 호텔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랜드 호텔.

 

 

스타벅스 간판 뒤로 길이 막힌 듯 보이는게 삿포로 역사. 지척입니다. 참고로 이 넓은 길은 인도입니다. 정작 큰길은 오른쪽 지하도 입구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리뉴얼을 통해 객실은 깔끔하게 마무리됐습니다. 특히 일본 호텔답지 않게 공간이 널찍합니다. 화장실도 사진은 없지만 꽤 넉넉한 공간. 방 안에 사무용 탁자 하나 정도만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쨌든 여장을 풀자 마자 기내식이 좀 부족했는지 '허기지다'는 마나님을 모시고 길을 나섰습니다. 목표는 스스키노 역 바로 옆에 있는 스미레. '도쿄 연예인들이 삿포로에 오면 꼭 들르는 집'이라는 말에 혹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한지 한 7,8년 밖에 안 됩니다. 아직까지는 미소라멘의 진득한 맛 보다는 쇼유라멘의 (상대적인) 깔끔함이 더 끌리는 편이죠. 하지만 삿포로에서는 아무래도 미소라멘이 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예상 적중. 국물에 면을 말았다기보다는 짜장에 물을 약간 부었다고 할 정도로 진하디 진한 미소 국물. 쇼유라멘과는 달리 차슈를 넣지 않고 대신 간 고기를 꾸미로 넣어 줍니다. 면발과 함께 술술 넘어갑니다. 약간 신 맛이 나는 미소 육수가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줍니다.

 

반면 쇼유라멘은 뭐랄까... 간장이 본 육수의 강렬함을 전혀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것이 삿포로 라멘 전체의 특징인지, 아니면 스미레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간사이에서는 라멘에 대만족을 표현하던 동행인이 스미레의 쇼유라멘에 질려 "이번 여행에서 라멘은 이걸로 끝"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멘요코초와 신라멘요코초 모두 그냥 간판만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면: '요코초'란 골목을 말하는 것으로, 삿포로의 명물인 라면 전문점이 모여 있는 작은 골목입니다. 라멘요코초가 인기를 얻어 뒷날 신라멘요코초가 생겼죠. 모두 스스키노 역 주변의 잘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첫날인 만큼 무리하지 않고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입안을 정리한 뒤(아이스크림 이야기는 한방에 모아서 다시 소개합니다.) 숙소로 귀환. 잠시 오수를 취하고 느즈막히 저녁식사를 위해 삿포로 역사 상가로 향했습니다. 역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시집 '하나마루'를 가기 위해서입니다.

 

알려진대로 오후 8시30분인데도 늘어서 있는 줄. 안내자는 "3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한다"고 합니다. 뭐 그 정도는 기다려 주지.^^ 그런데 회전초밥인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삿포로 역사 빌딩에는 다이마루 백화점 - 스텔라 플레이스 - 에스타라는 이름의 상가가 한 건물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이 스시집 하나마루는 스텔라 플레이스 6층. 사진으로는 오른쪽으로 보이는(파란색) 다이마루 백화점 연결 통로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가격표. 세금 포함하면 136엔에서 420엔까지 있습니다. 제일 비싼 420엔 짜리는 우니(성게알), 오도로(참치 뱃살), 통 아나고(붕장어) 등입니다. 환율을 감안해도 먹을만한 가격입니다.

 

(가격표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돌아가는 접시 외에 먹고 싶은 스시가 안 보이면 종이에 적어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초밥 재료 몇가지 정도는 쓸 줄 아는 쪽이 일본 여행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저도 일본어는 못하지만 초밥 재료는 좀 아는 편입니다.)

 

 

맛있어 보여서 집었는데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먹고 나서도... 뭔가의 껍질을 간장에 졸인 느낌? 아무튼 무척 짰습니다.

 

일본 어디건 바닷가 아닌 곳이 없겠지만 그래도 홋카이도에서 먹는 스시는 참 신선하다는 느낌. 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옆의 커플은 벌써 세 그릇 째 장국을 추가해가며 엄청나게 먹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라아게까지. 남자도 남자지만 여친도 참 대단. (누가 일본 사람이 소식한다고 했냐고.)

 

반면 왼쪽에는 미국인인 것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 커플(?)이 열심히 '이쿠라' '오토로우' 해 가며 초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초밥 한 접시에 간장 한 종지씩을 먹어 치웁니다. 저렇게 짜게 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누가 한국 사람이 짜게 먹는다고 했냐고.)

 

 

아무튼 삿포로 클래식 나마비루 한잔에 대게 다릿살 스시. 최상의 조합입니다. 담백하고 달달한 스시의 밥알 하나 하나가 맥주를 타고 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 왜 서울에서 먹으면 이런 느낌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홋카이도 특산이라는 멜론 한 조각으로 마무리.

 

 

 

필 받은 김에 삿포로에서만 파는 한정 맥주를 사들고 귀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오른쪽은 대기업 브랜드인 삿포로맥주의 홋카이도 한정판이지만 왼쪽은 아예 '스스키노 비어'라는 로컬 브랜드입니다.)

 

 

다음날 예고편은 노롯코 공원.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놀랄만한 대자연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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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던 영화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덜 대중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목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아시다시피 레오폴트 자허마조흐의 소설 제목입니다. 그리고 저 작가의 이름 자허마조흐에서 학대와 모욕을 당하면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상 성욕을 가리키는 매저키즘이라는 말이 나왔죠.

 

소설 내용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권력 균형과 극한으로 치닫는 욕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서 전혀 이탈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6년째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영화감독 민수(백현진)는 어느날 섹시하면서도 베일에 가려진 여자 주원(서정)을 발견하고,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기 위해 매달립니다. 하지만 주원은 내심 민수를 '벌레'라고 호칭하며 우습게 생각합니다.

 

민수는 그녀의 매력에 끌리는 동시에 그녀의 재력에도 욕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원은 이미 상대를 노예로 길들이며 즐거워하는 데 익숙해진 터. 민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줄듯 줄듯 하면서 즐기는 것(tantalizing)이 그녀의 목표입니다.

 

 

 

 

주원에게 부와 함께 성적 취향을 유산으로 남긴 사람은 얼굴이 나오지 않는 '남궁 회장'이라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결국 주원은 지금도 허회장이라는 인물과 정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죠. 그에게 민수는 하잘 것 없는 심심풀이의 대상 쯤 됩니다.

 

이렇게만 쓰면 이 영화가 인간의 욕망을 그리는, 대사는 거의 없는 1980년대 유럽 영화와 흡사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코미디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일단 송예섭 감독의 내면 깊숙히 존재하는 시니컬한 유머감각이 영화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받아 마시지 말고 나한테 부으란 말이야!" 뭐 이런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쓰면 제가 감독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을 보시면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 제 사촌형이기 때문입니다.^ )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특징은 양면성입니다. 주원과 관계를 맺는 허회장은 권력을 향한 심각한 얼굴과 주원의 성적 노예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수 또한, 기존의 영화들에서 묘사되던 차분한 관찰자나 희생양과는 다른 캐릭터입니다.

 

그 자신이 주원에게는 극도로 굴종적이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런 배치는 가학과 피학의 관계가 반드시 일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한쪽 측면에서는 약자로 보이는 한 인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죠.

 

 

 

 

민수 역의 백현진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로 무대에 섰을 때 보여주는 카리스마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모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거의 아양 떠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주원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특히 그렇죠. 어쨌든 직업배우가 아니라는 백현진의 말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어눌함을 지향한 연기는 무척 뛰어납니다. 특히 주원에 대한 세레나데 신은 아무래도 백현진 이외의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정말 안 어울렸을 듯 합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서정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충분히 뿜어냅니다. 제작진이 원한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이미지가 딱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죠. 다만 무엇이 그렇게 주원을 주변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어가는지, 동기 부여가 좀 더 충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결과를 낳을 듯 합니다.^^ 저는 계속 낄낄거리면서 봤습니다만, 그건 직업이 영화감독인 주인공 민수의 모습에서 제 사촌형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듯.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중입니다.

 

 

 

P.S. 티치아노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이 그림이 바로 자허마조흐의 원작에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랫도리에 두르고 있는 모피가 권위와 억압의 상징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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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 가 보신 분이라면 우유, 소프트 아이스크림, 옥수수, 징기스칸, 스프 카레, 홋(임연수어) 구이 등등 여러가지 답이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보편적인 답은 '게'일 겁니다.

 

물론 제가 게를 좋아하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사실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 구석 구석에서 게를 싫어하는 문화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세계 어느 구석을 가도 게라는 동물은 대부분 '비싸고 맛있는' 종류에 속하는 편입니다. 그게 꽃게건, 킹크랩이건, 던전 크랩이건, 스리랑카 머드 크랩이건 말입니다.

 

그런데 특히나 홋카이도는 게의 산지로 유명하죠. 일단 세 종류의 게가 유명합니다. 다라바가니(たらばがに, 킹크랩), 즈와이가니(ずおいがに), 그리고 케가니, 털게입니다.

 

 

 

 

일단 잘 알려진 고급 게 전문점을 가 봤습니다. 좋은 걸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스무살때 만난 옛 친구의 충고대로 '일단 좋은 것부터' 먹어 봤습니다.

 

식당 이름은 효세츠노몽(氷雪の門). 사실 워낙 게가 유명하다 보니 가니쇼군이나 가니혼케 같은(눈치채셨겠지만 일본어로 게가 '가니'입니다) 거대 체인점들이 시내 곳곳에 있습니다. 또 게 전문점도 넘쳐나고 있죠. 그 가운데서도 뭔가 명가의 풍미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에 혹해 찾아갔습니다. 호텔에 예약을 부탁하니 '아, 그집, 유명하죠' 라고 하더군요. 뭐 국내에서도 윙버스 같은 곳에 애저녁에 올라가 있습니다.

 

 

 

 

 

 

간판. 그럴듯합니다. 사실 웬만큼 먹으러 다니면 이제 간판만 봐도 대략 그 집의 내공이 보입니다. 왠지 믿어도 좋겠다는 느낌이 팍 옵니다.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홋카이도 3대 게가 골고루 나온다'는 세트를 골랐습니다. 가격은... ㅠㅠ. 하지만 뭐 한번쯤은...

 

일단 전채 요리로 다코와사비가 나옵니다. 아주 쬐금 나옵니다. 짭짤하고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게 다릿살이 회로 나옵니다. 물론 깔끔하고 시원한 맛입니다.

 

그리고 약간 잔인한 짓일 수도 있지만, 곧 상에 올라올 털게 한마리를 직접 보여 줍니다.

 

 

제법 큰 녀석입니다.

 

 

그리고는 샤부샤부.

 

 

한점 한점 익혀 먹는 풍미를 몰라 그냥 재료를 통으로 넣고 익혀 먹었습니다. 뭐 맛이 없을 리가 없지요. 육수에 파와 배추를 우려낸 시원한 국물도 그만입니다. 나중에 이 국물에 죽을 끓여 줍니다.

 

 

그러는 사이 한켠에서는 작은 풍로에 킹크랩 다릿살을 구워 줍니다. 꽤 시간이 걸리네요.

 

 

 

지금껏 먹어 본 방법 중 킹크랩 다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쫄깃한 맛이 그만입니다. 맛이 너무 좋아서 껍질까지 다 씹어먹을 지경입니다. 찌거나 삶는 것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저보다 더 게를 좋아하는 듯한 동행인도 당연히 엄지손가락 업.

 

 

 

그리고는 아까 본 그 녀석이 찜으로 등장합니다.

 

사실 털게는 상당히 먹기 불편합니다. 그놈의 털이 보기에도 징그럽지만, 까 먹으려 들면 은근히 손가락을 찌르기 때문이죠. 찔러서 아플 정도로 굵은 털은 아니지만, 그래도 깔끄러운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점답게 깔끔하게 절반으로 갈라 나온 게를 보면 탄복하게 됩니다. 단면을 잘 이용하면 이렇게 살이 쏙 떨어져 나옵니다.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그만입니다. 물론 파먹는 노력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선 게살 무침 샐러드. 무심코 한입 떠먹은 다음에 찍어 양이 실제보다 더 적게 나왔습니다. 세 입 정도 나옵니다. 원래 샐러드가 맨 처음쯤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아쉽지 않은 맛입니다.

 

 

마지막으로 튀김. 역시 부족함이 없는 맛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까 샤부샤부를 먹은 국물에 죽이 나오고(죽이라고는 하지만 밥을 넣고 오래 끓이지 않습니다. 끓는 국물에 밥을 말았다 싶은 정도에서 그냥 불을 끕니다), 유자 맛의 샤베트가 마무리로 나옵니다.

 

홈페이지에서 인쇄해 간 쿠폰을 제시하면 생맥주 한잔이나 청주 한 도꾸리가 제공됩니다. 니혼슈 한잔에 풍성한 식사를 마쳤습니다. 비싸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한번쯤은 누려 볼만한 호사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경험입니다.

 

워낙 유명한 게 산지이므로 게를 먹을 수 있는 전문식당은 매우 많습니다. 그중에서는 일본 특유의 식문화인 다베호다이(食べ放題)라는 형태의 가게들도 있습니다. 국내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집은 '에비가니갓센'이라는 집입니다. 에비는 새우, 가니는 게, 갓센은 뭔지 모르겠더군요.

 

 

 

약간 호프집 같은 느낌. 대각선 방향으로 스스키노의 랜드마크인 기린 전광판이 보이는 대로변의 좋은 위치입니다.

 

이 짐에서 1인당 4200엔을 내면 토막낸 대게, 킹크랩, 그리고 털게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단 시간 제한은 90분. 그리고 게는 모두 찐(혹은 삶은) 뒤 식혀 제공됩니다. 일단 차가운 상태에서 제공된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다양한 세트에 따라 조금씩 제공되는 메뉴가 다르지만, 아무튼 이 4200엔 짜리 메뉴에는 전술한대로 세 종류의 게와 함께 게살 초밥, 그리고 새우튀김이 무한 제공됩니다. 부페처럼 집어다 먹는 형태는 아니고, 1차 제공된 음식을 모두 해치우고 그 다음 접시를 요청하면 음식이 더 나오는 방식입니다.

 

 

처음 제공된 접시는 이렇습니다.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위의 대게와 킹크랩 다리를 걷어 내면,

 

 

이렇게 털게 한마리가 수줍게 등장합니다. 아무튼 한 접시의 양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킹 크랩 다리를 까 보니 살도 통통한 것이 제법 먹음직스럽습니다. 차가운 식감이 그리 친숙하지는 않고, 간장 외에는 별다른 소스도 제공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지만 맛은 제법 그럴 듯 합니다.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만,

 

첫 접시까지만 그랬습니다. 두번째 접시부터는 확 달라지더군요.

 

첫 접시의 게는 그냥 까 먹기 딱 좋을 정도의 염도였습니다. 간이 살짝 싱겁지 않나 싶을 정도였는데, 두번째 접시는 어처구니없이 짜더군요. 식욕이 확 떨어지는 맛이었습니다. 첫 접시를 약간 무리하다 싶게 빨리 비웠더니 일부러 그러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쨌든 짠 맛 앞에는 장사가 없더군요. 짠맛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물을 마셔야 하고, 물을 마시는 만큼 식욕은 역시 떨어지고. 도저히 두 접시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단품 메뉴 가격표를 보니 맨 처음 제공되는 저 접시와 비슷해 보이는 메뉴(대게 다리+킹크랩 다리+털게)의 가격이 3500엔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즉 4200엔짜리 다베호다이 메뉴를 주문하면 두 사람이 최소한 저 접시로 세 접시는 먹어야 본전(?)을 뽑는다는 얘기가 되는데, 만약 업주측이 이런 식으로 '소금물에 담근 게' 작전을 편다면 손님은 백전백패입니다.

 

실수였는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의도된 것이었는지 단 한번 가봐서 알 수는 없겠지만,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좀 반칙이다 싶더군요. 삿포로를 다시 가게 되면 차라리 비싼 곳을 다시 가더라도 이곳은 전혀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 업소를 나오면서 동행인에게 물었습니다.

 

"당분간 게 생각 안 나겠지?"

"응."

 

하지만 다음날, 스시 집에서 게살 초밥을 집어드는 동행인을 보면서 이거 참,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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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1504)의 만행으로 수많은 신하들의 피를 흘린 연산군. 이해 4월 인수대비도 숨을 거두고, 이제 연산군의 만행을 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제부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그로부터 2년 뒤 연산군은 장녹수와 노닐다 말고 권좌에서 내려와 유폐되는 신세가 됩니다. 왕좌는 이복 동생인 진성대군(중종)에게 물려주게 되죠.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연산군은 왜 진성대군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2년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을까요.

 

 

 

드라마 '인수대비'에서도 다뤄지지만 연산군이 폐위될 때 거론된 수많은 죄 중에는 '패륜'이 으뜸입니다. 패륜 중 하나는 앞글에서 얘기했다시피 병중인 할머니 인수대비를 '이마로 박치기 해' 충격으로 사망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큰어머니고 아버지 성종의 형수인 월산대군부인(승평부부인) 박씨와의 사통입니다.

 

연산군 12년 병인 (1506, 정덕1)  7월 20일(정유)
 
월산 대군의 처 박씨의 졸기
 

월산 대군 이정(月山大君李婷)의 처 승평부 부인(昇平府夫人) 박씨가 죽었다. 사람들이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죽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박씨와의 관계는 - 일단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 연산군의 폐위에 매우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중종반정의 핵심인 박원종이 바로 승평부부인의 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날이 7월20일, 연산군이 권력에서 물러난 것이 9월2일입니다. 그러니 정말 직접적인 동기가 아닐 수 없죠. 아무튼 연산군과 박씨를 둘러싼 추문 묘사는 실록에서도 대단히 구체적입니다.

 

항상 대궐안에서의 연회에 사대부(士大夫)의 아내로서 들어가 참여하는 자는 모두 그 남편의 성명을 써서 옷깃에 붙이게 하고, 미모가 빼어난 이는 녹수를 시켜 머리 단장이 잘 안되었다고 핑계대고 그윽한 방으로 끌어들이게 해서는 곧 간통했는데, 혹 하루를 지난 뒤에 나오기도 하고, 혹은 다시 내명(內命)으로 인견(引見)하여 금중(禁中)에 유숙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월산 대군(月山大君) 부인은 세자의 양모라는 핑계로 항상 금내(禁內)에 머물게 하였고, 성종의 후궁 남씨(南氏)도 대비의 이어소(移御所)에 있으면서 자못 총행(寵幸)을 입어 추한 소문이 바깥까지 퍼졌다.

常於內宴, 士大夫妻人參者, 皆令書其夫姓名, 付諸衣領, 有姿色者, 令綠水, 諉以梳粧不整, 引入幽房, 卽通焉。 或經日後出, 或復以內命引見, 留宿禁中者, 亦數有之。 月山大君夫人, 稱爲世子養母, 常留禁內。 成宗後宮南氏, 亦在大妃移御所, 頗見寵幸, 醜聲聞外。

 

'녹수를 시켜'의 녹수는 당연히 장녹수. 또 다른 기록.

 

중종 5년 경오(1510,정덕 5) 4월17일 (임인) 
 평성부원군 박원종의 졸기
 
원종은 순천(順川) 사람이며, 무과로 출신(出身)했는데 풍자(風姿)가 아름다웠고, 폐주(廢主) 말년에 직품이 정2품에 이르렀다. 원종의 맏누이는 월산 대군 이정(月山大君李婷)의 아내로 폐주가 간통하여 늘 궁중에 있었는데, 폐주가 특별히 원종에게 숭정(崇政)의 가자를 주니 원종이 분히 여겨 그 누이에게 말하기를 ‘왜 참고 사는가? 약을 마시고 죽으라.’ 하였다.


元宗, 順天人, 由武擧進, 美風姿。 廢主末年, 位至正二品, 元宗之姉, 乃月山大君婷妻也, 廢主通焉, 長在宮中。 廢主特授元宗崇政加, 元宗憤之, 語其姉曰: “何爲忍生, 飮藥而死。

 

이 주장에 따르면 박원종이 누이의 죽음을 강요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연산군과 박씨의 관계가 사실이겠느냐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의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박씨의 나이. 박원종이 1467년생이고, 맏누이인 승평부부인은 1455년생으로 전해집니다. 그럼 박씨는 죽을 때 만 51세...연산군이 1476년생이니 21세 연상입니다.

 

뭐 나이가 사랑의 장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51세도 아니고 15세기의 51세에 과연 임신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시절의 51세면 사실상 할머니에 가까운데 도대체 무슨 마술로 연산군을 미혹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좀 의심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남녀관계였는지, 양어머니와 아들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연산군이 매년 수백필의 비단과 수십석의 곡식을 박씨에게 내린 것이 사실이고, 불교를 숭상하던 박씨의 집에 사대부집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풍기문란으로 미운털이 박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연산군과 함께 제거되어야 할 대상인 것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당초의 궁금증으로 돌아가서. 연산군은 왜 최대의 라이벌인 진성대군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일설에는 정현왕후(자순대비)가 키워준 공 덕분에 진성을 친동생처럼 아꼈다고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그날 밤(성종의 후궁들을 죽이던 1504년 3월20일)'의 기록에 연산군이 자순대비 침전 앞에 칼을 빼들고 난입해 당장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이런 설명은 그닥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연산군, 정말 계산 없는 광인이었나 http://5card.tistory.com/1012 참조.)

 

자신의 권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심복 신수근의 딸과 혼인한  진성대군이 '딴 마음'이 없다고 확신한 걸까요. 이런 설명도 신통치 않은 것이, 진성이 아무리 다른 마음이 없어도 그가 살아 있는 한, 모든 반란 세력은 일단 그를 옹립하고 일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반대로 연산군이 죽이려고 결심만 했다면, 반란 사건하나를 조작하고 진성대군을 그 수괴로 조작하는 건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죠.

 

무엇이 이유였을까요. 마침 며칠 전 '인수대비' 종방연 자리에서 정하연 작가를 뵌 김에 여쭤봤습니다.

 

- 대체 연산군은 왜 진성대군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정: 허허. 죽일 새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 왕위에 12년이나 있었는데요.

정: 인수대비가 살아 있는 동안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죠. 조선왕조의 이념은 충보다 효가 항상 우위에 있었어요. 대비가 살아있는 한 어떤 왕도 그 대비를 넘어설 수 없었으니까요. 광해군이 쫓겨난 가장 큰 이유도 패륜, 바로 모후는 아니지만 선왕의 정궁인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이었죠. 그러니 기회가 있었다면 인수대비 사후 뿐이에요.

 

- 인목대비 사후에는...

정: 의미나 시간이 없었죠. 이 정권은 갑자사화와 인수대비 사망 이후에 급격히 무너집니다. 사람을 죽이면 권력이 강화될 수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할머니를 핍박해 죽게 했다는 것은 연산군에게 치명적이었던 겁니다. 박원종 아니라 누구라도 뒤집어 엎었겠죠. 연산군 스스로도 이미 민심과 신심이 모두 자신을 떠나 자신이 왕위를 오래 보전할 수 없을 것임을 눈치챘습니다.

 

(연산군이 자신의 앞날을 예감했다는 내용은 실록에도 전해집니다. 1506년 8월23일, 왕위에서 밀려나기 대략 열흘 전의 기록입니다.)

 

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8월23일 (경오)
 
후원에서 나인들과 놀며 불의의 변고를 예감하다. 전비와 장녹수 두 계집이 슬피울다
 

내거둥이 있었는데, 왕이 후정(後庭) 나인을 거느리고 후원(後苑)에서 잔치하며 스스로 초금(草笒) 두어 곡조를 불고, 탄식하기를,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하며, 읊기를 마치자 두어 줄 눈물을 흘렸는데, 여러 계집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고 유독 전비(田非)와 장녹수(張綠水) 두 계집은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으니, 왕이 그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하며, 각각 물건을 하사하였다.

 

有內擧動, 王率後庭內人, 宴後苑, 自吹草笒數闋, 嘆曰: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吟訖淚數行下, 諸姬共竊笑, 唯田、張二姬, 悲噓飮泣, 王手撫其背曰: “今太平日久, 安有不虞之變, 然脫或有變, 汝必不免。” 各賜物。

 

정하연 선생의 말대로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의 정치력은 극도로 악화됩니다. 언문으로 연산군을 욕하는 벽보가 붙은 사건은 연산군이 민심을 잃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고, 그 측근 중에는 무력으로 정국을 끌고 갈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연산군의 측근 중 하나고 두 차례의 사화에서 모두 승자였던 노련한 총신 유자광이 어느새 중종반정의 주역으로 변신했다는 것은 연산군의 총신들 중에도 정권 보위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연산군 집권 말기 그 측근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묘록 속집(己卯錄續集)

구화사적(構禍事蹟)

정덕(正德, 명 무종(明武宗)의 연호) 병인년(1506)에 중추부(中樞府) 지사(知事) 박원종(朴元宗)과 전 참판 성희안(成希顔)과 이조 판서 유순정(柳順汀)이 반정을 하려 할 때에 우의정 강귀손(姜龜孫)을 시켜 비밀리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의 생각을 떠보게 하였다. 이에 수근이 말하기를,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세우는 것이니 나는 말할 수가 없소.” 하였다. 곧 연산(燕山)의 비(妃)는 수근의 누이요, 중종(中宗)의 전 왕비는 수근의 딸이기 때문이다.

(守勤曰。廢妹夫立女婿。吾所未能言。蓋燕山妃乃守勤之妹。而中廟前妃守勤之女故也)

 

귀손이 마침 등극사(登極使)로 명 나라 서울에 가는데 일이 발각될까 스스로 의심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병이 되어 길에서 죽었다. 원종 등은 귀양가 있는 이과(李顆)가 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수령과 더불어 본도의 병마(兵馬)를 거느리고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 기일을 당겨서 먼저 거사하려 하였다. 그런데 9월 초이튿날에 마치 연산군이 장단(長湍)의 적벽(赤壁)에서 놀이를 하게 되었으므로 그 기회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초하룻날 저녁에 원종 등이 장사들을 훈련원(訓練院)으로 모으기로 약속을 하니 그날 모인 자가 백여 명이나 되었으나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이에 무령부원군(武靈府院君) 유자광(柳子光)을 부르고 그의 계책에 따라 두터운 유지(油紙)를 오려 표신(標信)을 만들어서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죄수와 역부(役夫)를 몰아 돈화문(敦化門) 앞 수백 보쯤 되는 곳에 나가서 말을 세워 진을 치고, 운천군(雲川君)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진성대군(晉城大君)의 저사(邸舍)를 호위하게 하고, 변수(邊修)ㆍ최한홍(崔漢洪)ㆍ심형(沈亨)ㆍ장정(張珽)을 시켜 궁 내성(內城)을 지키면서 내사복시(內司僕寺)에 쌓아둔 꼴더미에 불을 질러 뜻밖의 변에 대비하게 하고, 또 신윤무(辛允武)를 보내어 용맹한 장사 이조(李藻)를 거느리고 신수영(愼守英)ㆍ신수근(愼守勤)ㆍ임사홍(任士洪)의 집으로 가서 그들을 끌어내어 쳐 죽이게 했다. 그리하여 초이튿날 자순대비(慈順大妃)의 전지를 받들어 관원을 보내어 종묘에 고하고, 왕을 폐하여 연산군(燕山君)으로 삼아 교동(喬桐)으로 옮기게 했다.

 

좌의정 신수근은 연산군의 매부이며 심복 중 심복입니다. 그런 인물에게 '난이 일어나 진성대군을 세우면 누구 편을 들겠느냐'고 물어봤는데도 음모가 누설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인물의 대답이 '매부와 사위 중 누구를 고르란 말이냐. 난 못 고른다'라는 것은 당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권의 핵심 인물조차도 '까짓, 난이 실패하면 내 매부가 왕, 난이 성공해도 내 사위가 왕이 되는데 나를 어쩌겠어'라는 식으로 양다리나 걸칠 생각이었으니, 누가 연산군을 지키기 위해 나섰을까요. 반정이 성공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신수근은 그의 판단과는 달리 사위가 왕이 된 덕을 전혀 보지 못했고, 중종은 공신들의 등쌀에 왕비 신씨를 사가로 돌려보내고 새 왕비를 맞아야 했습니다. 박원종 등 중종반정의 주도세력들은 신수근과 새로운 권력을 나눌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던 것이죠.

 

신수근은 커녕 유자광조차도 '박쥐' 취급을 받아 반정 핵심세력에 의해 곧 처단당합니다. 유자광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도 반정에 이용만 당한 것이죠. 그야말로 비정한 권력의 속성입니다.

 

 


 

아무튼 드라마 '인수대비'에 따르면 인수대비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죽음이 연산군의 정치 생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예상했고, 그 예상대로 '할머니를 해친 패륜아'의 낙인이 찍힌 연산군은 2년만에 왕위를 내주고 유폐당하는 몸이 됩니다.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4대에 걸쳐 정권을 농단했던 인수대비. 여걸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좋은 팔자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어쨌든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한 임금의 권좌를 좌우할 정도였으니 그 그림자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산군이 물러나던 날의 자세한 풍경을 남겨 봅니다.

 

 

연산군 12년 병인 (1506, 정덕1) 9월 2일(기묘)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

 

평성군(平城君) 박원종(朴元宗)과 전 참판 성희안(成希顔)이 한 마을에 살았는데, 서로 만나 시사를 논할 적마다 ‘이제 정령(政令)이 혼암 가혹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니 종묘 사직이 장차 전복될 것인데, 나라를 담당한 대신들이 한갓 교령(敎令)을 승순(承順)하기에 겨를이 없을 뿐, 한 사람도 안정시킬 계책을 도모하는 자가 없다. 우리들은 함께 성종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차마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천명과 인심을 보건대 이미 촉망된 바 있거늘, 어찌 추대하여 사직을 바로 잡지 않을 수 있으랴.’ 하고, 드디어 큰 계책을 정했는데 모사에 참여할 자가 있지 않았다.

부정(副正) 신윤무(辛允武)는 왕의 총애와 신임을 받는 이로서 평소에 늘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일조에 변이 있게 되면 화가 장차 몸에 미치리라.’ 생각하고, 원종 등에게 가서 말하기를 ‘지금 중외(中外)가 원망하여 배반하고 왕의 좌우에 친신(親信)하는 사람들도 모두 마음이 떠났으니, 환란이 조석간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오. 또 이장곤은 무용과 계략을 가진 사람인데, 이제 망명하였으니 결코 헛되이 죽지는 않으리다. 만약 귀양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군읍(郡邑)에 격문을 보내어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쳐 들어온다면, 비단 우리들이 가루가 될 뿐 아니라, 사직이 장차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것이니, 일이 그렇게 된다면 비록 하고자 한들 미칠 수 없게 될 것이오.’ 하니, 원종 등이 뜻을 결정하였다. 이조 판서 유순정(柳順汀)은 함께 일할 수 있다 하고, 그 계획을 말하자 따르므로 이어 장정(張珽)·박영문(朴永文)을 불러 윤무(允武)와 더불어 무사를 모을 것을 언약하였다. 또 용구(龍廐)의 모든 장수들과 각기 응군(鷹軍)을 거느리고 오기로 약속하였다.

 

최측근들이 이렇게 동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이윽고 무인일 저녁에 모두 훈련원에 모여 희안이, 김수동·김감에게 달려가 함께 가자고 하니, 감은 즉시 따랐고 수동은 두려워 망서리다가 결국 따랐다. 또 유자광이 지모가 많고 경력이 많다고 하여, 역시 불러 함께 하는 한편 용사들을 임사홍과 신수근·신수영의 집에 보내어 퇴살(椎殺)하고, 또 사람을 보내어 신수겸(愼守謙)을 개성부에서 베니, 이를 들은 도중(都中)의 대소인들이 기약도 없이 모여 들어 잠깐 동안에 운집하자 즉시 모든 장수들을 편성하고 용구마(龍廐馬)를 내어 주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을 에워싸고 지키게 하였으며, 또 모든 옥에 있는 죄수들을 놓아 종군하게 하니, 밤이 벌써 3경이었다.


윤형로(尹衡老)를 금상(今上)의 사제(私第)에 보내어 그 사유를 아뢰고 그대로 머물러 모시게 하고, 이어서 운산군 이계(雲山君李誡)와 무사 수십 명을 보내어 시위하여 비상에 대비하게 하였다. 희안 등은 모두 돈화문 밖에 머물러 날새기를 기다리니, 숙위(宿衛)하던 장사와 시종·환관들이 알고 다투어 수채 구멍으로 빠져 나가 잠시 동안에 궁이 텅 비었다.


승지 윤장(尹璋)·조계형(曺繼衡)·이우(李堣)가 변을 듣고 창황히 들어가 왕에게 사뢰니, 왕이 놀라 뛰어 나와 승지의 손을 잡고 턱이 떨려 말을 하지 못하였다. 장(璋) 등은 바깥 동정을 살핀다고 핑계하고 차차 흩어져 모두 수채 구멍으로 달아났는데, 더러는 실족하여 뒷간에 빠지는 자도 있었다.

원종 등은 내시를 시켜 장사 두어 명을 거느리고 왕에게 가 옥새를 내놓고 또 동궁에 옮길 것을 청하였으며, 전동(田同)·심금손(沈金孫)·강응(姜凝)·김효손(金孝孫) 등을 군중(軍中)에서 베었다. 여명(黎明)에 궁문이 열리자 원종 등이 경복궁에 나아가 대비에게 아뢰기를 ‘주상이 크게 군도(君道)를 잃어 종묘를 맡을 수 없고 천명과 인심이 이미 진성 대군에게 돌아갔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의지(懿旨)를 받들어 진성 대군을 맞아 대통(大統)을 잇고자 하오니, 청컨대 성명(成命)을 내리소서.’ 하니, 대비는 전교하기를 ‘나라의 사세가 이에 이르렀으니 사직을 위한 계책이 부득이하다. 경 등이 아뢴 대로 따르리라.’ 하였다.


순정이 전지를 받들고 즉시 금상의 사제로 가 아뢰니, 상이 굳이 사양하기를 ‘조정의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大計)가 진실로 이러해야 마땅하나 내가 실로 부덕하니 어떻게 이를 감당하겠는가.’ 하고, 재삼 거절한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였다. 순정이 호종 시위하여 경복궁에 들어가니, 길에서 첨앙(瞻仰)하는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모두들 ‘성주(聖主)를 만났으니 고화(膏火) 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신시(申時)에 근정전에서 즉위하여 백관의 하례를 받고 대사령(大赦令)을 중외해 내렸으며, 대비의 명에 의하여 전왕을 폐위 연산군으로 강봉하여 교동(喬桐)에 옮기고, 왕비 신씨를 폐하여 사제(私第)로 내쳤으며, 세자 이황(李) 및 모든 왕자들을 각 고을에 안치시키고, 전비(田非)·녹수·백견(白犬)을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베니, 도중(都中) 사람들이 다투어 기왓장과 돌멩이를 그들의 국부에 던지면서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하였는데, 잠깐 사이에 돌무더기를 이루었다.

 

전비, 녹수, 백견은 연산군을 모시던 기생 출신의 총희들. 결국 '난리가 나면 너희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던 연산군의 예측대로 된 것이죠.


책공(策功)을 의정(議定)하게 하자, 원종 등이 여러 종실·재상들과 공을 나눔으로써 뭇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하니, 처음부터 모의에 참여하지 않은 유순(柳洵) 등 수십 인이 다 정국 공신에 참여되었다. 당초에 원종 등이 돈화문 밖에 모여 순(洵)에게 사람을 보내어 순(洵)을 부르니, 순이 변이 있는 줄 알고 어찌할 바를 몰라 나와 문틈으로 엿보다가 도로 들어가기를 너덧 차례나 하였으며, 또 문틈으로 말하기를 ‘나는 구항(溝巷)에서 죽고 싶지 않으니, 이번 일이 가하오. 마음대로 하오.’ 하고, 오랫동안 다른 일이 없음을 알고서야 나왔다. 그리고 구수영(具壽永)은 당초 원종 등이 거의(擧義)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훈련원에 달려가 제장들을 보았다. 여러 장수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랬지만, 벌써 와 몸바치기를 허하였으므로, 마침내 훈적(勳籍)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단 반란이 성공하고 나면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을 일부러 공신에 포함시켜 정국을 안정시키는 수법이 엿보입니다. 구항이란 길가의 도랑을 말하는 것인데, 일국의 재상이 '마음대로 하라, 나는 모른다'고 벌벌 떠는 모습은 참 안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폐부(廢婦) 신씨(愼氏)는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 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중종반정이 마무리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 블로그의 인수대비 관련 글 모음입니다.

 

1. 계유정난은 어떻게 진행됐나  http://fivecard.joins.com/964
2. 폐비 윤씨는 정말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03
3. 폐비 윤씨, 사약을 마시고 정말 피를 토했나? http://fivecard.joins.com/1004
4. 폐비 윤씨 사약이 남긴 공무원의 숙명 http://fivecard.joins.com/1007
5. 연산군, 정말 계산 없는 광인이었나?  http://fivecard.joins.com/1012
6. 인수대비 사후, 연산군은 어떻게 몰락했나 http://fivecard.joins.com/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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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쓰고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조선 왕조 최악의 군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廟號)를 받지 못한 한심한 왕이 두 사람 있습니다. 바로 연산군과 광해군이죠. 자의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신하들에 의해 끌려내려왔기 때문에 시호와 묘호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역사적 사실이 곧 무능한 군주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두 사람 중 광해군은 20세기 이후 재조명에 의해 - 비록 선왕의 정궁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그 소생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도적적인 흠결은 있지만 - 실질적으로 임진왜란 동안 국가를 경영한 능력이나 중국 명-청 교체기를 버텨낸 탁월한 국제감각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폭군'이라는 딱지를 어느 정도 뗀 느낌입니다.

 

반면 이런 치적이 없는 연산군은 보호망도 없이 패륜의 제왕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왕의 후궁들을 직접 때려 죽이고(여러분이 '인수대비'에서 보고 계신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 소생인 동생들을 살해하고, 큰어머니를 범하고, 할머니를 머리로 받아 결국 사망하게 하고, 두 차례의 사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럼 연산군은 저런 광기의 제왕이었을까요? 혹시 달리 볼 요소는 없을까요?

 

 

 

 

일단 집권 4년째(1498)에 무오사화를 일으킬 때까지 연산군의 '만행'은 크게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4대 사화의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만치 피를 본 군왕이 한둘은 아닙니다.

 

하지만 폐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면서 연산군의 행적은 정상적인 사고를 벗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연려실기술'이 모아 들인 여러 사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성종이 함구령을 내린 폐비 윤씨 문제가 어떻게 연산군의 시대에 문제가 되었는지, 그 과정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하겠습니다.

 

일찍이 성종(成宗) 기유년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자결하게 했는데, 폐출되어 사약을 내린 일은 성종조에 나와 있다. 윤씨가 눈물을 닦아 피묻은 수건을 그 어머니 신씨(申氏)에게 주면서, “우리 아이가 다행히 목숨이 보전되거든 이것을 보여 나의 원통함을 말해 주고,또 거동하는 길 옆에 장사하여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 주시오.” 하므로 건원릉(健元陵)의 길 왼편에 장사하였다.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세상을 떠나자 신씨는 나인들과 서로 통하여 연산주의 생모 윤씨가 비명으로 죽은 원통함을 가만히 호소하고 또 그 수건을 올리니 폐주는 일찍이 자순대비(慈順大妃)를 친어머니인 줄 알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매우 슬퍼하였다. 시정기(時政記)를 보고 성을 내어 그 당시 의논에 참여한 대신과 심부름한 사람은 모두 관을 쪼개어 시체의 목을 베고 뼈를 부수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기묘록》

 

윤씨가 죽을 때에 약을 토하면서 목숨이 끊어졌는데, 그 약물이 흰 비단 적삼에 뿌려졌다. 윤씨의 어미가 그 적삼을 전하여 뒤에 폐주에게 드리니 폐주는 밤낮으로 적삼을 안고 울었다. 그가 장성하자 그만 심병(心病)이 되어 마침내 나라를 잃고 말았다. 성종(成宗)이 한 번 집안 다스리는 도리를 잃게 되자 중전의 덕도 허물어지고 원자도 또한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뒷 세상의 임금들은 이 일로 거울을 삼을 것이다. <<파수편>>

 

그런데 궁금한 건 연산군의 준비 과정입니다. 이미 연산군은 즉위 2년째인 1496년에 어머니 폐비 윤씨의 묘를 확장하자는 의견을 냈다가 대신들의 반대로 철회했고, 이해 10월 21일, 대신 윤씨의 어머니인 장흥부부인 신씨(즉 연산군의 외할머니)에게 곡식과 의복을 내리라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廢妃母申氏, 依領敦寧, 歲賜米三十碩、黃豆二十碩).

 

하지만 공식적으로 갑자사화의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20일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이날 연산군은 그동안 감춰졌던 분노를 폭발시키며 만행의 시작을 알립니다. 연산군에게 적대적인 사관들이 상당 부분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인간성을 잃은 듯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렇게 아버지 성종의 후궁들인 엄귀인과 정소용을 끌고 나간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래 나오는 안양군과 봉안군은 모두 정소용이 낳은 자신의 동생들이죠.

 

그 동생들을 동원해 어머니의 복수(?)를 시키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목: 안양군과 봉안군을 곤장 때리다 
 

전교하기를, "안양군 이항(安陽君李㤚)과 봉안군 이봉(鳳安君李㦀)을 목에 칼을 씌워 옥에 가두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숙직 승지 두 사람이 당직청에 가서 항과 봉을 장 80대씩 때려 외방에 부처(付處)하라. 또 의금부 낭청(郞廳) 1명은 옥졸 10인을 거느리고 금호문(金虎門) 밖에 대령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항·봉을 창경궁(昌慶宮)으로 잡아오라.”
하고, 항과 봉이 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뒤에 전교하기를,
“모두 다 내보내라” 하였다. 항과 봉이 나오니 밤이 벌써 3경이었다.


항과 봉은 정씨(鄭氏)의 소생이다. 왕이,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항과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


왕이 손에 장검을 들고 자순 왕대비(慈順王大妃) 침전 밖에 서서 큰 소리로 연달아 외치되 ‘빨리 뜰 아래로 나오라.’ 하기를 매우 급박하게 하니, 시녀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대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왕비 신씨(愼氏)가 뒤쫓아가 힘껏 구원하여 위태롭지 않게 되었다.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젓갈(醢)로 만든다는 것은 시체조차 보존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최악의 형벌입니다. 일찌기 한고조 유방이 반란의 혐의를 씌워 맹장 팽월을 죽인 뒤 해(醢)로 만들어 제후들에게 맛보라고 돌렸다는 바로 그 형벌이죠.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에선 누구에게 먹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리고 나서 열흘 동안 엄씨와 정씨 친정 가족들을 참살하고, 안양군과 봉안군을 귀양보내고, 이미 다른 죄(그 전해 9월, 잔치 자리에서 임금이 내린 술잔을 몰래 따라 버린 죄..^^)로 위기를 맞고 있던 이세좌를 처단합니다. 그리고는 4월 1일, 마침내 조정에 정식으로 명을 내립니다. 

  

왕이 춘추관(春秋館)에서 상고한, 폐비(廢妃)에게 사약 내린 전말의 단자(單子)를 내려보내며 이르기를,
“도승지가 의정부·춘추관 당상 및 예문관(藝文館) 관원과, 함께 다시 그때 옛일을 인용하여 일이 되게 한 자와, 폐위함이 불가하다고 간하다가 죄를 받은 자, 사약을 내릴 때 간하지 않고 명대로 가서 일 본 자를 유(類)대로 뽑아 아뢰라”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보고 있으면 의문이 듭니다. 대체 왜 연산군은 즉위 10년 뒤에서야 어머니의 복수를 시작한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10년 뒤에서야 외할머니 신씨를 만나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분노했다고 보지만, 일단 연산군이 어머니의 비극을 알게 된 시점이 분명치 않습니다. 

 

(위에 인용한 '기해록'의 기록으로는 인수대비가 죽고 나서 알게 되어 피바람이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분명 사실과 다릅니다. 갑오년 3월20일이 피바람의 시작이었고, 인수대비는 그 한달 넘게 뒤인 4월27일 숨을 거둡니다.)

 

 

 

 

정황으로 볼 때 연산군이 1504년에 와서야 모든 것을 알게되었다고 보는 것은 너무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었고,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적당한 때란 언제일까요. 바로 자신의 힘이 인수대비와 비등해졌다고 판단한 때일 것입니다. 즉위 4년 째인 1498년(무오년), 연산군은 조의제문 사건을 이용해 김종직의 제자들을 참살합니다. 명분은 이유 없이 할아버지 세조를 사림이 욕보였다는 것이고, 당연히 인수대비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왕에 대한 도전을 권력으로 제압하고 나면 왕권은 강화되는 것이 당연한 일. 무오사화를 통해 힘을 한껏 키운 뒤에도 연산군은 6년을 더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 갑자년 1월, 고령의 인수대비가 병석에 눕게 됩니다.

 

이제서야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연산군은 그 전부터 파악되어 있던 외할머니 신씨를 궁으로 불러들여 시커멓게 변한 금삼(피를 토했든, 약을 토했든 어쨌든 20여년이 흘렀으니 검은 색이었겠죠^^)을 전달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 '의식'은 온 조정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 이제부터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테다. 그리고 당시의 일을 철저하게 규명할 것이다. 당시 아버지 편에 섰던 놈들은 모두 각오해라.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볼 때 큰 잘못이 없는 자들은 지금부터 병석에 누운 대비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내 편에 설 것인지, 잘 생각해 보고 입장을 정하라.'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정리했겠죠.

 

 

 

게다가 갑자사화의 이면에는 연산군을 중심으로 무오사화 이후 권력을 보위하던 임사홍, 신수근 등의 친위세력과 세조-성종대를 지나오며 공신전을 독점하고 기반을 구축해 온 신권 세력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있습니다. 친위세력을 동원해 권신들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엿보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감안하면 연산군은 미친 왕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전략적인 야심가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비록 음탕하고 무능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런 기록들은 당연히 중종반정의 중심세력이 서술했을테니 그대로 믿기에는 약간의 의심이 듭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의 저변에는, 지난번 글에서 잠시 다뤘듯 자신의 최고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진성대군(뒷날의 중종)을 해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역시 이건 이번에도 다음 글에서 다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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