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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수대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중전 윤씨(전혜빈)는 아들을 빼앗기고 대비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해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고, 마침내 이번주 남편 성종(백성현)이 다른 후궁의 침소에 든 것을 참지 못해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다 얼굴 손틉자국을 내게 됩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성종과의 사이가 원만치 못해 늘 싸움이 잦았고, 어느날 용안에 손톱 자국을 낸 것이 인수대비에게 알려지며 즉시 폐비에 처해졌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남편인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을까요? 임금의 용안과 옥체는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겨지던 것이 당시의 정서입니다.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런 기록은 분명히 있습니다. 게다가 임금이 폐비 윤씨를 때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말로만 전해지는 야사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럴때 가장 확실한 지침은 일단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성종실록에는 성종 10년, 1479년 6월2일 마침내 임금이 폐비를 결심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성종 105권, 10년(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6월 2일(정해) 1번째기사

전날 저녁 야대(夜對)를 파(罷)한 뒤에 임금이 급히 승지(承旨)를 불러 입내(入內)하도록 하더니, 조금 있다가 이를 중지시키고, 정승(政丞) 등을 불러 내일 이른 아침에 예궐(詣闕)하라고 명하였다. 이날 여명(黎明)에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우의정(右議政) 윤필상(尹弼商)이 이르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였는데, 승지·주서(注書)·사관(史官)이 모두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좌우(左右)를 돌아보고, 일러 말하기를,

“궁곤(宮壼)의 일을 여러 경(卿)들에게 말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이 매우 중대(重大)하므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입직(入直)한 승지(承旨)와 더불어 이를 의논하고자 하였으나, 생각하니 대사(大事)를 두 승지와 결단할 수 없으므로 이에 경들에게 의논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선경 삼일(先庚三日) 후경 삼일(後庚三日)’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어찌 생각하지 않고 함이겠는가? 부득이하여서 그러는 것이다.

(선경삼일, 후경삼일이라는 것은 중대사일수록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한 것인가를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지금 중궁(中宮)의 소위(所爲)는 길게 말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내간(內間)에는 시첩(侍妾)의 방이 있는데, 일전에 내가 마침 이 방에 갔는데 중궁이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왔으니, 어찌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예전에 중궁의 실덕(失德)이 심히 커서 일찍이 이를 폐하고자 하였으나, 경들이 모두 다 불가(不可)하다고 말하였고, 나도 뉘우쳐 깨닫기를 바랐는데, 지금까지도 오히려 고치지 아니하고, 혹은 나를 능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비록 내가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소치(所致)이지마는, 국가(國家)의 대계(大計)를 위해서 어찌 중궁에 처(處)하게 하여 종묘(宗廟)를 받드는 중임(重任)을 맡길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후궁(後宮)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그릇되게 이러한 거조(擧措)를 한다고 하면 천지(天地)와 조종(祖宗)이 소소(昭昭)하게 위에서 질정(質正)해 줄 것이다. 옛날에 한(漢)나라의 광무제(光武帝)와 송(宋)나라의 인종(仁宗)이 모두 다 왕후(王后)를 폐하였는데, 광무제는 한 가지 일의 실수를 분하게 여겼고, 인종도 작은 허물로 인했던 것이지마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후궁의 침소에 왕이 들었는데, 그 침소에 중전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왕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중궁의 실덕(失德)이 한 가지가 아니니,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았다가 뒷날 큰 일이 있다고 하면 서제(噬臍)를 해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법(禮法)에 칠거지악(七去之惡) 이 있으나, 중궁의 경우는 ‘자식이 없으면 버린다.[無子去]’는 것은 아니다.”

하고, 드디어 ‘말이 많으면 버린다[多言去], 순종하지 아니하면 버린다[不順去], 질투를 하면 버린다[妬去]’라는 말을 외우고, 이어 이르기를,

“이제 마땅히 폐하여 서인(庶人)을 만들겠는데, 경들은 어떻게 여기는가?”

하였다. 정창손이 아뢰기를,

“이제 상교(上敎)를 받으니, ‘중궁이 실로 승순(承順)하는 도리를 잃어서 종묘(宗廟)의 주인을 삼는 것이 불가(不可)하다.’고 하였습니다. 상교가 이에까지 이르렀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한명회가 이르기를,

“신(臣)은 더욱 간절히 우려(憂慮)합니다. 성상께서 칠거(七去)로써 말씀하시니, 신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원자(元子)가 있어서 사직(社稷)의 근본이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였다. 윤필상이 아뢰기를,

“사세(事勢)가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심회가 이르기를,

“태종(太宗)께서 일찍이 원경 왕후(元敬王后)와 화합하지 못하여 한 전각(殿閣)에 벽처(僻處)하게 하고 그 담장을 높게 하였는데, 이것이 선처(善處)하는 도리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별궁(別宮)에 폐처(廢處)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창손과 윤필상이 이미 임금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한명회와 심회는 궁 밖으로 내치는 폐서인은 온당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뒤에 보면 정창손마저도 '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만치 이 폐비는 파격적인 조치였던 것이죠.)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들은 사의(事宜)를 알지 못한다. 한(漢)나라 성제(成帝)가 갑자기 붕어(崩御)한 것은 누구의 소위(所爲)였던가? 대저 부덕(不德)한 사람은 비의(非義)한 짓을 많이 행하는 것인데, 일의 자취가 드러나게 되면 화(禍)는 이미 몸에 미친 뒤이다. 큰 일을 수행(遂行)함에 있어 만약 일찍 조처하지 아니하였다가 만연이 된 뒤에는 도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일 비상(非常)한 변이 생기게 되면 경들이 비록 나를 비호하고자 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나라 성제는 본래 여색을 밝혀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당대의 미녀인 조비연, 조합덕 자매를 총애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성총을 잃지 않기 위해 왕과 다른 궁녀가 동침하면 그 궁녀를 죽이고, 심지어 다른 후궁이 낳은 아이까지도 사라지게 하는 마수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성제를 그런 악행을 모른체 했고, 이들은 성제의 비호 속에서 더욱 더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어느날 성제는 조합덕의 침소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두 자매가 성제를 죽일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 두 자매는 아이가 없어 황제가 죽으면 자신들의 권세도 끝나는 입장이었으므로 - 아무튼 황제가 죽은 뒤 사방에서 두 자매의 죄를 묻는 상소가 빗발치자 어쩔 수 없이 자결해 버리고 맙니다.

이쯤 되면 성종이 중전 윤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이미 정나미가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저것을 곁에 두었다가는 내가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다' 수준까지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중궁의 실덕한 바가 가볍지 아니하니, 진실로 이를 폐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러나 원자를 탄생(誕生)하였고 또 대군(大君)을 나았으므로 국본(國本)에 관계되는 바이니,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위호(位號)를 깎아 내리어 별궁(別宮)에 안치(安置)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자는 장차 세자(世子)로 봉(封)할 것인데, 어머니가 서인이 되면 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니, 천하(天下)에 어찌 어머니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강봉(降封)을 하면 이는 처(妻)로써 첩(妾)을 삼는 것이니 크게 옳지 못하다.”

하였다. 좌부승지(左副承旨) 김계창(金季昌)이 아뢰기를,

“중궁은 명(命)을 중국 천자(天子)에게 받아서 이미 위호(位號)가 정당하고 원자를 탄생하였으며, 또 국본이 되어 관계된 바가 매우 중하니, 갑자기 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옛날 송(宋)나라 인종(仁宗)은 곽후(郭后)를 폐하여 옥청궁(玉淸宮)에 두었으니, 원컨대 별궁에 옮겨 두고서 그 허물을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만약 그렇다고 하면 전일(前日)의 일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근자(近者)에 또 그 침실(寢室)을 따로 하고 자신(自新)하기를 바랐으나, 그래도 고치지 아니하였는데, 능히 허물을 뉘우치겠는가? 만일 허물을 뉘우칠 기미가 있다고 하면 내가 어찌 감히 폐한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좌승지(左承旨) 김승경(金升卿)이 아뢰기를,

“중궁이 전에도 잘못된 행동이 있어서 성상께서 이를 폐하고자 하였으니, 또한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것이 마땅한데, 또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으니, 뒷날 반드시 이것이 습관이 되어 잘못된 일을 할 것이므로, 한 나라의 모의(母儀)로서는 불가(不可)합니다.”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모후(母后)를 폐치(廢置)하고 어찌 경이(輕易)하게 사제(私第)로 돌아가게 하겠습니까? 더욱 미안(未安)한 일이 되겠습니다.”

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채수(蔡壽)가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下敎)가 이러하니 신자(臣子)로서는 그 사이에서 감히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채수는 이렇게 폐비에 찬성해 간신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뒷날 '폐비 윤씨가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니 물자를 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성종의 분노를 사 고문까지 당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소신이 강한 사람이었던 듯.)


하였다. 임금이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출궁(出宮)시킬 여러가지 일을 차비하도록 하라.”

하니, 홍귀달·김승경이 아뢰기를,

“모든 일은 이미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중궁은 이미 한 나라의 모의(母儀)로 있었는데, 사제(私第)로 돌려보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고, 김계창이 이르기를,

“모시던 귀빈(貴嬪)이 비록 죄고(罪辜)에 저촉되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사제로 돌려보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왕비(王妃)이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로 두고 여러 번 생각하소서.”

하니, 임금이 성을 내어 이르기를,

“경들은 출궁할 여러가지 일만 주선하면 그만인데, 무슨 말이 많은가?”

하였다. 정창손이 이르기를,

“이미 폐했는데, 어찌하여 반드시 다시 견책(譴責)을 가(加)하는 것입니까? 하물며 이미 중궁이 되어 한 나라의 모의가 되었고, 또 원자를 탄생하여 나라의 근본이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강등을 시키어 서인을 만들어 사제로 돌아가게 하면, 사론(士論)이 어떻하겠습니까? 청컨대 별전에 폐처(廢處)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별전에 두면 따로이 견책하는 뜻이 없다. 만약 그 아들이 주기(主器)가 되면 마땅히 추봉(追封)할 것인데, 지금 서인을 만드는 것이 어찌하여 무엇이 상하겠는가?”

하였다. 심회가 말하기를,

“별전(別殿)에 폐처하는 것이 사제(私第)에 돌려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원컨대 다시 여러 번 생각하소서.”

하고, 윤필상이 이르기를,

“별전에 안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어찌 별전을 새로 건립하겠는가? 정승(政丞)들은 나가도록 하라.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결단코 고칠 수가 없다.”

하였다. 정승과 승지들이 그래도 계속하여 다시 생각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성을 내어 일어서면서 이르기를,

“경들이 물러나지 아니하면 내가 마땅히 안으로 들어가겠다.”

하고, 또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승지를 불러 나가도록 재삼 말하니, 이에 모두 다 나갔으나, 홍귀달·김승경·이경동·김계창만이 머물러 나가지 아니하고, 다시 요청하다가 오래 되어서 나갔다. 얼마 있다가 중궁이 소교(小轎)를 타고 나가서 사제로 돌아 갔다.

(시일을 두지도 않고 당일 곧바로 폐비가 집행된 것입니다. 하지만 승지들은 굴하지 않습니다. 왕의 진노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들의 정신이 볼만합니다.)

홍귀달 등이 차비문(差備門) 안에 나아가 다시 아뢰기를,

“신(臣) 등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니, 후궁이 비록 죄가 있어 견책(譴責)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사제로 돌려보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왕비이겠습니까? 이미 중궁의 정위(正位)가 되었고, 또 원자를 탄생하였는데, 이제 여염(閭閻)에 거처하면 소인(小人)들이 성음(聲音)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매우 옳지 못한 것입니다. 청컨대 자수궁(慈壽宮)에 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사제에 폐거(廢居)하게 되면 모자(母子)가 서로 보는 것도 또한 인정(人情)에 기뻐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만약 혹시 다시 아뢰면 장차 대죄(大罪)를 가할 것이다.”

하였다.

홍귀달 등이 이르기를,

“우리 조정에서는 조종(祖宗) 이후로부터 이러한 일이 있지 아니하였으니, 후세(後世)에 반드시 오늘날의 일로써 법을 삼을 것입니다. 청컨대 경솔하게 거행하지 말고 다시 대비(大妃)께 아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이 비록 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차마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거조는 오직 신 등과 정승만이 알고, 외정(外庭)에서는 모두 다 알 수 없었으니, 청컨대 군신(群臣)을 임석(臨席)시켜 교서(敎書)를 반포(頒布)하고 종묘(宗廟)에 고한 연후에 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옛날 세종(世宗)께서 김빈(金嬪)을 폐할 때에도 오히려 교서를 반포하였는데, 하물며 왕비이겠습니까? 다만 전지(傳旨)만을 내리는 것도 예(禮)에 합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종묘에도 오히려 고해야 하는데, 지금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위에서 계시니, 더욱이 품(稟)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종묘에 고하는 것은 아뢴 바가 마땅하다. 중궁의 정위는 길사(吉事)이었는데도 내가 오히려 군신을 참여시키지 아니했는데, 하물며 이러한 흉사(凶事)이겠는가? 권정례(權停禮)로써 행하도록 하라. 또 동부승지(同副承旨) 변수(邊脩) 외에는 모두 다 옥(獄)에 가두게 하라.”

하였다. 정승 등이 빈청(賓廳)에서 아뢰기를,

“승지들의 계옥(繫獄)은 무슨 일입니까?”

하니, 전지하기를,

“이미 정승들과 더불어 의논해 결정하였는데, 승지들이 오히려 대비(大妃)께 아뢰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다른 것이 아니고 윤씨(尹氏)를 구제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정창손·한명회가 아뢰기를,

“승지들이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오늘은 일이 많으니 우선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승지들이 대비께 아뢰기를 청한 것은 대비로 하여금 이를 중지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두 번이나 아뢰었더니, 대비께서 하교(下敎)하기를, ‘내가 항상 화(禍)가 주상(主上)의 몸에 미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이와 같이 되었으니, 나의 마음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남의 자식 된 자가 부모(父母)로 하여금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또 이는 이 한 집안의 정사이니, 내가 처치(處置)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대비께서 어찌 그릇되게 여기겠는가? 승지들은 육조(六曹)의 참의(參義)로 개차(改差)하도록 하라. 하였다.

일단 이날의 기록은 여기까지. 어쨌든 임금이 죄를 주겠다, 옥에 가두겠다고 협박을 해도 승지들은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직간을 합니다.

 

 

조선시대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왕조실록을 보다 보면 이 직간의 문화만큼은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금이 죽음으로 협박을 해도 당시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고 정면에서 맞섰습니다.

임금은 고사하고 한낱 상사들의 눈치나 보는 요즘의 소시민들이 보기엔 참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직언에 귀를 기울였던 당시의 왕들 역시 요즘의 윗사람들보다는 훨씬 행복했을 겁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들이 고쳐주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겠죠.

어쨌든 아무리 실록을 훑어봐도 '윤비가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일설에는 '왕이 윤비를 때렸다'는 내용이 전해진다고도 하는데 이건 3일 뒤인 6월5일, 6월2일의 회의 때 없었던 백관들 앞에서 임금이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윤씨의 죄가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털어놓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중요 부분만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정유년에 윤씨(尹氏)가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건시(乾柿)와 비상(砒礵)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는가? 혹 무자(無子)하게 하는 일이나, 혹 반신불수(半身不遂)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害)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후 대비께서 이를 취하여 지금까지도 있다. 또 엄씨(嚴氏) 집과 정씨(鄭氏) 집이 서로 통하여 윤씨(尹氏)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諺文)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權氏)의 집에 투입(投入)시켰는데, 이는 대개 일이 발각되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나를 볼 때, 일찍이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취하여 버리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비록 초부(樵夫)의 아내라 하더라도 감히 그 지아비에게 저항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왕비가 임금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또 위서(僞書)를 만들어서 본가(本家)에 통하여 이르기를, ‘주상(主上)이 나의 뺨을 때리니, 장차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나가서 내 여생(餘生)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였는데,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얻어보고 일러 말하기를,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려 서로 보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더니, 윤씨(尹氏)가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기를, ‘나를 거제(巨濟)나 요동(遼東)이나 강계(江界)에 처(處)하게 하더라도 달게 받겠으며, 남방기(南方記)에서 발원(發願)한 대로 사람의 허물을 무량수불(無量壽佛) 앞에서 연비하여 이를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이를 믿었더니, 이제 도리어 이와 같으므로, 전일(前日)의 말은 거짓 속이는 말이었다.

曩在丁酉, 尹氏陰懷毒藥, 謀欲害人, 至以乾柿砒礵, 同置囊中, 安知不欲食我也? 或無子, 或半身不遂, 凡害人之方, 書諸小冊, 藏于篋中, 事覺, 大妃取之, 至今猶在。 又僞作嚴氏家與鄭氏家相通, 謀傾尹氏, 諺文, 故投于權氏之第, 蓋欲事覺, 害及兩氏也。 常見我, 未嘗和顔, 或言欲取我足跡, 而去之。 雖樵夫之妻, 尙不敢抗其夫, 況妃之於君乎? 又作僞書, 通于本家曰: ‘主上打我腮, 將率吾二子, 出居于家, 以安吾生也。’ 予偶得其書, 謂之曰: ‘俟改過, 乃相見。’ 尹氏悔過曰: ‘使處我於巨濟遼東江界, 亦所甘受, 願於南方記, 人過無量壽佛前, 燃臂以矢之。’ 予乃信之。 今反如此, 前日之言詐也。

腮가 뺨을 뜻하는 '뺨 시' 자였군요. 아무튼 가정폭력이 만만치 않았으니, 거꾸로 윤씨가 성종의 얼굴을 할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성종은 만 22세의 혈기방장한 나이. 윤씨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종보다 두살 많거나 열두살 많은(드라마 '인수대비'는 12세 연상설을 택했습니다) 나이입니다. 나이가 많으니 자신이 시들고 꽃다운 새 후궁들에게 임금을 빼앗긴다는 것이 견딜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원자를 낳은 몸,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처신했더라면 연산군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작 중전이 성종의 뺨을 할퀴었다는 기록은 다른 책에 나옵니다. 1638년 나온 '기묘록'에는 이런 내용이 전해집니다.

성종조(成宗朝)에 공혜왕비(恭惠王妃)가 죽은 다음 숙의(淑儀) 윤씨를 올려서 비(妃)로 삼았다. 성화(成化) 병신년에 연산을 낳아 은총이 융숭하니, 교만하고 방자하여 여러 숙원(淑媛: 양가(良家)의 딸이었던 정씨(鄭氏)와 엄씨(嚴氏)를 말한다) 을 투기하였고 임금에게도 불손하였다. 하루는 임금의 얼굴에 손톱 자국이 있으므로 인수대비(仁粹大妃)가 크게 노하여, 천위(天威)를 격동시켰다. 임금이 외정(外庭)에 나가자 대신 윤필상(尹弼商) 등이 영합하여 의논을 올려 윤씨를 폐하여 친정으로 나가게 하였다.

成宗朝。王妃恭惠薨。陞淑儀尹氏爲妃。成化丙申生燕山。寵隆驕恣。妬忌諸媛不遜於上。一日聖顏有爪痕。仁粹妃 大怒。激成天威。出視外庭。大臣尹弼商等將順獻議。廢出私第。

 

뒷날의 '연려실기술'에서도 인용하고 있으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듯 합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바로 그날, 그 '임금이 다른 후궁의 침소에 간 날' 몸싸움이 벌어져 손톱자국이 났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손톱자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궁에서 쫓겨나는 몸이 된 중전 윤씨.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듯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사약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수십년 뒤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그 얘기는 나중에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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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포털에서 '아역 김소현 손예진 닮은꼴 미모 화제'라는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김소현이라면 '러브 어게인'에 김지수의 딸로 나오고 있는 처자. 1999년생이라는 무시무시한 출생 연도를 갖고 있는 만 13세 소녀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러브 어게인' 1회를 보다가 '어라, 저 이목구비가 예사롭지 않은 저 아이는 누구지?' 했던 참이었습니다.

 

문득 시대를 넘어 세상을 울리고 웃겼던 브라운관 속 소녀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그중 몇몇은 '잘 자랐다'는 말을 듣고, 또 다른 몇몇은 성인으로서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역 시절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분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는 것이 이번 포스팅의 의도입니다.

 

 

 

 

사실 우리의 김소현 양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아역이라고 불리려면 최소한 7~8세에는 데뷔를 해서 그 즉시, 혹은 10~12세 이전에 스타덤에 올라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15세 쯤이라면 방송계에서 통상 아역으로 분류하더라도 이미 하이틴 탤런트로 보아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일단 '미모의 아역' 얘기를 할 때 15세 이후에 빛을 발한 분들은 제외합니다. 임예진 김혜수 강주희 뭐 이런 분들, 그리고 가까이는 송혜교 한지민 등이 '아역' 시절 떴지만 실제로는 아역이라고 볼 수 없는 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해 봅니다.

 

 

 

 

기억이 희미하실 분들부터 시작합니다. 맨 처음 강수연이 TV에 나왔을 때 - 아마도 TBC 어린이 드라마 중 한편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당시까지 아역 배우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에서 벗어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어른 얼굴의 소녀가 등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짝 패인 보조개, 오똑한 콧날, 그리고 이미 '애기 소리'가 아닌 목소리(성인이 된 지금의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국 아역사에서 '미모'를 논하게 된 계기가 바로 강수연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미모를 뽐냈던 이 소녀는 결국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일세의 국민 여배우로 떠오릅니다. 일각에서(방송이든, 연예 기사든) '잘 자란 아역' 운운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리스트에 강수연이 빠져 있는 걸 보면 코웃음을 치게 됩니다. 그만치 그런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야가 좁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미모, 연기력, 화제성, 그리고 성인이 된 뒤 연기자로서의 성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까지 한국에서 강수연을 능가할 아역 배우는 나오지 않았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자료의 부족으로 강수연의 소시적 미모를 제대로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쉬울 뿐.)

 

 

 

나이는 강수연 보다 아래지만 강수연보다 먼저 데뷔한 아역 스타 가운데 윤유선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윤유선은 강수연과 달리 '전형적인 어린이 얼굴'의 배우였습니다. 미모라고 부르는 게 미안할 정도의, '살인적인 귀여움'을 갖고 있던 어린이였습니다.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호돌이와 토순이' 등을 통해 진행자로도 주목받았죠.

 

성인 연기자로는 20대의 나날을 어물어물 지나가 버린 느낌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30대 이후에 연기자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40대에 접어들어서도... 어린 시절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슈퍼 동안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죠.

 

 

 

 

한동안 '강수연=예쁜 아역의 대명사'였던 시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이상아였습니다. 일각에서는 '김지미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기도 합니다. 아무튼 영화 '길소뜸'에서 김지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이상아의 아역 시대는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어린 시절의 미모로는 감히 따를 사람이 없었던 이상아. 그런데 아역 시절 이상아는 가녀린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심한 허스키 보이스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엄청난 노력으로 목소리의 약점을 극복, 놀라운 의지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기도 했죠.

 

 

 

 

90년대 아역의 최고봉을 꼽자면 이재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모는 물론이고 아역 본연의 귀여움과 연기력 면에서 단연 발군이었죠.

 

특히 이재은의 강점은 한복을 입었을 때 드러나는 이마. 밥 먹는 옆에서 대본 한권을 읽어 주면 다시 볼 필요도 없이 줄줄 외웠다는 총명함까지, 당대의 이재은은 역대 최고를 다투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주로 극성맞은 역할('인수대비'의 한명회 부인 같은...)을 맡고 있는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비교적 근대(?)로 오면 문근영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맑디 맑은 눈망울에서 떨어지던 수정 같은 눈물방울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거의 없을테니 설명도 필요 없겠죠.

 

특히나 문근영은 10세 이하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현재까지, 공백기나 쇠퇴기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절정에 달했던 것은 13세 때인 2000년의 '가을동화' 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 문근영의 명성은 줄곧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이른바 '국민여동생'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문근영보다 세 살 아래, 문근영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봐야겠지만 미모 하나만큼은 역시 레전드로 꼽아 아깝지 않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바로 '반올림'의 고아라죠. 역시 13세때인 2003년 '반올림'으로 데뷔했습니다.

 

사실 스무살이 넘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아역 고아라'를 말할 때 과거형을 쓴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점은 고아라에게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뭐 성인 변신을 위한 확실한 작품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고.

 

(여담: 고아라에 비하면 유아인은 참 어른 얼굴이 된 셈이군요.^^)

 

 

 

 

위의 여섯 아역 스타들과 비교해 볼 때도 일단 미모를 따진다면 김소현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최근들어 갑자기 많은 작품('해품달' '옥탑방 왕세자' '러브 어게인')에 출연하며 관심이 집중됐다는 면도 있지만, '손예진 닮은꼴 미모'가 갑자기 거론되는게 그리 공허한 호들갑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10년, 20년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정도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죠.

 

여러분이 직접 '아역 미모'의 순위를 매기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는, 제가 지금까지 본 역대 최고의 아역은 이 친구입니다.

 

 

 

 

솔직히 아역을 평가할 때 '어른 얼굴'에 가까운 미모가 그리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신애를 능가할 아역을 지금까지는 못 본 듯 합니다. 귀여운 얼굴, 연기력, 어딘가 보고 있는 사람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청승맞은 눈빛까지... 완벽합니다.

 

P.S. 자료를 찾다 보니 이 아역이 눈길을 끄는군요. 누구일까요?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 얼굴이 그대로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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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가 일본 드라마 '동창회-러브 어게인 증후군'을 모태로 한 JTBC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생각난 작품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김지수는 2년 전, '도쿄 타워'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물망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도쿄 타워'라는 제목은 좀 흔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 '도쿄 타워'(2007)죠. 어머니와 아들의 찐한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지수가 물망에 올랐던 2004년작 영화 '도쿄 타워'는 이와는 좀 다른 얘깁니다. 20대 초반 청년과 40대 유부녀(극중에선 엄마의 친구로 설정)의 비련 이야기였죠. 일본 최고의 인기남 중 하나인 오카다 준이치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모태로 한 한국 드라마 '도쿄타워(물론 가칭입니다. 한국 드라마 제목을 '도쿄타워'라고 붙일 수는 없는 일... '남산 타워' 였으면 그것도 코미디였을 것이고...^^)'는 남녀 주인공까지 캐스팅되는 등 제작 초읽기 단계까지 갔지만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남자 주인공 물망에 올랐던 J군이 갑작스레 심각한 문제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고, J군은 긴 자숙에 들어갔고, 드라마는 무산돼 버렸습니다.

 

 



김지수가 출연한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유독 이 두 작품을 놓고 얘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본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금세 눈치채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 드라마 '동창회'와 영화 '도쿄 타워'의 주인공이 구로키 히토미라는 같은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쿠로키 히토미라고 쓰는게 정확한 발음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아직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은 첫 음에서 '쿠'와 '구'는 모두 '구'로 쓰게 되어 있습니다. 1960년 생. 일본의 독특한 문화 요소인 다카라즈카 출신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여성들이 소화하는 다카라즈카는 일본 연예계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구로키 히토미를 비롯해 '여왕의 교실', '보스'의 아마미 유키(아마도 '일본의 고현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나 미녀 배우 단 레이 같은 경우가 다카라즈카 출신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꼽히죠.

 

 

 

 

다카라즈카의 특징은 남자 역을 맡은 배우는 미모와 관계 없이 다소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몸에 배고(아마미 유키를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 역 전문 배우는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한 연기의 달인이 됩니다. 구로키는 대표적인 다카라즈카의 여자 역할 배우였다고 합니다.

 

 

 

 

나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구로키는 스타가 된게 오래 전의 일입니다. 아마도 좀 나이드신 분들은 1990년대 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주 거론됐던 '실락원'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실락원'은 남편과 갈등을 겪던 청순한 유부녀가 훨씬 연상인 중년의 잡지 편집장과 불륜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일본의 안성기'라는 식으로 비교되는 야쿠쇼 코지가 남자 주인공을, 구로키 히토미가 여주인공을 맡았죠. 주인공들의 이름값에 비해 상당한 수위의 노출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화제였고, 국내 도입을 놓고 '수준높은 예술영화'냐 '왜색 에로영화'냐 하는 논란이 상당히 거셌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가 1997년작이니 지금부터 15년 전. 이미 37세였던 구로키는 50대가 된 지금도 중년 여성의 로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드라마를 꼽자면 일본판 '하얀 거탑'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구로키는 한국 드라마로 치자면 장준혁(김명민) 박사의 애인인 카페 사장(한국에선 와인바 주인)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판에선 김보경이 연기한 역할이죠.

 


구로키는 올해도 '추정유죄'라는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출연작들을 훑어보면 배우의 이미지가 대략 그려집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의 느낌을 가진 배우죠. 특히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여자'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일본을 대표하는 '방부제 복용 배우'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40대의 나이에도 20대 남자와 연애할 수 있는 여자'의 대표자로 꼽히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시고 싶은 여자 상사', 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모델로 삼고 싶은 중년 여성' 등의 상위권에 단골로 뽑힙니다. 1991년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남편의 신상 등은 잘 알려지 있지 않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여담이지만 일본 연예계와 연예 저널리즘의 관계는 한국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가끔 보면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김지수와 구로키 히토미의 비교가 그리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겁니다. 나이를 무시한 방부제 미모, '연하남'이라는 코드, 꾸준한 인기, 여성들의 선망. 물론 12년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만, 구로키 히토미를 통해 대략 12년 후 김지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의 모습은 오늘 밤에도 방송되는 '러브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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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시면 '응? 주지훈과 류정한이 무슨 관계지?'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드라마 마니아라면 다르시겠죠. 두 사람 모두 드라마의 거장 황인뢰 감독이 '깜짝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캐스팅 과정이야말로 진짜 드라마'라는 말을 합니다. 작가와 연출자가 처음 대본을 만지면서 생각했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캐스팅되는 경우는 100에 하나가 될까 말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 구상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깜짝 신인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스타덤에 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고, '누가 봐도 망할 수가 없는 주인공'을 캐스팅한 드라마가 산산조각이 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것이 드라마의 세계죠.

 

 

 

 

최근 끝난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과 현재 방송중인 '러브 어게인'의 황인뢰 감독은 각기 일세를 풍미한 명 드라마 연출자로 유명합니다. 이 분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신인 기용과 관련해 대조적인 경우가 문득 떠오릅니다.

 

안판석 감독은 '아내의 자격'의 주인공 이성재를 처음으로 주인공에 기용한 연출자입니다. 바로 1997년작인 드라마 '예스터데이'죠.

 

 

 

당초 이 드라마는 메인 주인공인 영호 역을 비워 놓고, 영호의 의붓형인 민수 역에 이종원을, 그리고 두 남자주인공을 갈라 놓는 여주인공 역으로 김소연을 캐스팅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인 주인공 캐스팅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 감독은 이종원을 영호 역으로 바꾸고 대신 민수 역에 거의 완전히 신인인 이성재를 기용하는 모험을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이성재는 호평을 받았고, 두 남자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오히려 강한 인상의 이종원이 선한 주인공으로, 선하고 유약한 인상의 이성재가 이종원에게 앙심을 품는 역으로 등장하며 신선한 느낌을 줬다는 평이 주류였죠) 대신 이종원과 김소연이 너무 나이 차이가 커 보이며 케미스트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정 반대 케이스가 '궁'입니다. 궁은 일찌감치 김정훈을 남자 2번 격인 이율 역으로 캐스팅하고, 주인공으로 모델 출신 신인 주지훈을 캐스팅합니다. 당시 지명도로 보나, 인기로 보나 UN 출신의 김정훈이 주지훈보다 높은 급의 배우였죠.

 

당연히 김정훈을 메인 주인공으로 올려 놓고 두 배우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제작진은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잘라 버렸습니다. 주지훈의 외모에 대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지금 들으시면 깜짝 놀랄 얘기지만 '궁'이 방송되기 전에는 이런 얘기가 꽤 많았습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역시 황인뢰 감독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궁'은 히트했고, 주지훈은 바로 톱의 자리에 올랐죠.

 

물론 이런 선택 때문에 '궁'은 히트하고 '예스터데이'는 실패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죠. 다만 당시 '궁'의 연출자가 황인뢰 감독이고, '궁'에 이어 다시 한번 남자 주인공에 드라마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신인을 기용한 거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류정한이 연기 경력이 없는 신인이냐면 그건 또 아니고.^

 

최근 김무열 조정석 엄기준 주원, 멀게는 오만석 신성록 송창의 박건형 등등 뮤지컬계에서 내로라 하는 이름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진출해 각광받고 있는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수많은 스타들 가운데서도, 뮤지컬 본령에서 류정한의 이름을 넘어선 연기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있다면 조승우 정도?)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안정된 발성입니다. 위의 연기자들 가운데서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배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류정한의 적당히 기름기 있는^^ 저음은 특히 매력적이죠. '러브 어게인'에서 보면 '과연 저런 목소리의 형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하지만, 아무튼 목소리 참 좋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 수가 없습니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극장 무대에서의 연기와 클로즈업이 들어갈 수 있는 드라마/영화에서의 연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로 치자면 내야에서의 송구냐, 외야에서의 송구냐 정도 차이일 뿐, 기본적으로 어깨가 탄탄한 선수라면 어느 쪽이든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류정한이 드라마에서도 노래하는 장면을 한번 정도 보여주면 기존의 팬들 외에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는 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본인의 뜻과 다르다 보니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뒤로 가면 한번쯤 가능할지도...^^) 뭐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강력계 반장이 된 형사...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류정한의 노래 한 곡.

 

 

 

만약 류정한을 드라마에서 처음 보신 분이라면, 지금은 드라마 속 역할 때문에 조용조용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남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노래를 들어 보시면 그 안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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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라는 영화가 나오기 까지의 과정에 대해 미국 그래픽 노블('만화책'에 대한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니아들에게 물으면 '그걸 어떻게 한두시간에 설명하란 말이냐'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물론 그 엄청나게 복잡한 계보와 역사(절대 정리되지 않습니다. 작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를 일반 관객들이 이해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일단 '미국 만화'에는 DC 계열과 마블 계열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화를 기준으로 볼 때 DC 계열보다는 마블 계열이 훨씬 결속력이 강하다는 정도만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사전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아이언맨' 이후 '퍼스트 어벤저-캡틴 아메리카', '토르' 같은 영화들은 이미 '어벤저스'를 만들기 위한 밑밥이라는 점을 관객들에게 너무나 분명히 알렸기 때문입니다. 즉 위 두 편의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어벤저스'의 사전 홍보 영상같은 의미라고 봐야겠죠.

 

줄거리. '어벤저스'는 가장 직접적으로, '토르'에서 이어집니다. 토르에게 한번 박살이 난 토르의 의붓동생 로키는 외계 전사 종족의 후원을 받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파이 능력을 이용해 이 외계 전사들을 지구로 불러들여 지구인을 멸망시킬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한편 로키에게 큐브를 빼앗긴 퓨리 국장과 SHIELD는 슈퍼 히어로들의 연대를 통해 지구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친다는 '어벤저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깁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배너 박사(헐크), 토르 등 개성 강한 히어로들은 절대 합심하지 못하고,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빚어집니다.

사실 지금 리뷰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잡담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동기에 더 부합하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겠죠.^^

굳이 볼까 말까를 물으신다면, 시원시원한 볼거리를 원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뭣보다 한국형 히어로 아이언맨이 나오잖습니까.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다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어차피 잡담이니까 번호 붙여 정리합니다.

1. 영화의 전반부를 보다 보면 제작진의 고민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이미 신격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강한 적을 붙여야 관객이 긴장하게 될까요?

이미 지나치게 강한 우리편과 듣보잡 상대편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결국 '자중지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부의 이야기는 참 바보같고 한심한 오해와 과민반응의 연속이라 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 쉽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제작진의 사정을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얼른 전반부가 지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관객의 태도입니다.

 

                                ...너무 약한 적. 그래. 바로 너.

2. 사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지금도 이미 너무 강한 어벤저스지만 여기에 같은 마블 코믹스 소속인 스파이더맨이나 X맨의 일부 멤버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스파이더맨이 굳이 이 판에 숟가락을 들고 낄 이유가 없고, X맨과의 연대는 안 그래도 복잡한 히스토리를 더욱 더 꼬이게 할 우려가 있으니, 지금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입니다.

아무튼 1, 2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조스 웨든 감독의 솜씨는 인정하게 됩니다.

 

3. 사실 진정한 슈퍼히어로 연합이라면 아이언맨, 캡틴, 헐크, 토르 정도까지가 적당합니다. 이미 이 정도만 해도, 솔직히 토르는 신이고 다른 멤버들은 사람인데 토르와 아이언맨이 동등하게 치고받고 한다는 것부터 좀 불편하죠. 게다가 실전에서 가장 위력적인 멤버가 방패도 없고 맨살로 뛰어다니는 헐크라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실전에서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무 초능력 없는 진짜 사람'인 호크아이나 블랙 위도우에 비해 뭐 하나 뾰족하게 나은 게 없더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적의 방패'입니다만, 그 방패 없는 나머지 멤버들도 적들의 사격은 그냥 야구장 레이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한방도 안 맞아요). 그 결과, 맨주먹으로 맞서는 캡틴은 그냥 명예 멤버 역할이나 하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팬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일수도...

 

 

4. 이 영화의 시각은 은근히 우익적입니다. 영화 도중 아이언맨은 SHIELD에서 외계의 에너지원인 큐브를 이용해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고 폭로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권력기관 민간인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배너 박사가 "내 너희 기관원들이 하는 짓이 그렇게 음흉할 줄 알았어! 니들 나한테도 *****하게 했잖아!"라고 흥분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걸 니들이 알아봤자 이런 소란밖에 더 피워?'와 '입만 살아 있는 무책임한 히어로들보다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묵묵히 아무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던 SHIELD가 짱'이라는 쪽.

 

5. 새로 추가된 배우가 워낙 없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코비 스멀더스의 출연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의 미녀 로빈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마찬가지로 반가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선 별 존재감 없는 역이었지만 감독 조스 웨든이 극장판 '원더우먼'을 계획할 때 타이틀 롤을 맡기려고 했던 인재입니다. 물론 취소된 프로젝트. 아래 사진은 아마도 그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은 팬 아트인 듯 합니다.

완전히 박살난 TV판 원더우먼 리메이크는 대체 왜 그런 캐스팅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거기에 비하면 코비 다이애나 프린스는 여신이군요.

6. '어벤저스'의 제작과 거의 확실한 '어벤저스2'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3'가 2013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건 역시 '어벤저스' 프랜차이즈가 아이언맨 없이는 존립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아이언맨이 유재석인 '무한도전'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전투력은 헐크가 최강이라도 결국 멋진 역할이나 재미있는 장면은 모두 아이언맨 차지. 애인이 나오는 캐릭터도 아이언맨 혼자 뿐.

이렇게 보면 '어벤저스'는 '아이언맨' 2편과 3편 사이의 간격을 메워 주는 '아이언맨 2.5' 의 역할이라고 보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전 우주적으로 놀게 된 아이언맨을 다시 지구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아이언맨3' 제작진은 얼마나 더 고민해야 할까요.

 

7. 베스트 신은 헐크가 보여주는 '분노의 빨래 털기'.^^

   이 한 장면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후련합니다.

 

P.S. 대체 항공모함이 공중에 떠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이점에는 뭐가 있을까요?

       어뢰에 맞지 않는다? 기뢰 공격을 피할 수 있다? ㅋ

       ('첼로리스트'는 워낙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터라 뭐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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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새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 첫방이 나갔습니다. 탄탄한 줄거리와 배우들, 연출력이 뒷받침 된 드라마이다 보니 첫 방송이지만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4%대 시청률로 막을 내린 '아내의 자격'의 후속이라서인지 첫회가 2%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드라마 줄거리보다 여주인공 김지수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김지수를 TV에서 처음 본 게 1994년의 '종합병원'이더군요. 뭐 저 뿐만 아니고 거의 모든 분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놀랍게도 김지수의 모습이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뱀파이어녀' 혹은 '방부제녀'라는 말이 좀 장난스럽게 쓰이곤 하는데, 김지수야말로 진정한 뱀파이어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건 바로 이번주 월요일에 있었던 '러브 어게인' 제작발표회장에서 찍힌 김지수의 모습입니다. 김지수는 1972년생. 오는 10월이면 만 40세가 됩니다. 극중 설정 나이가 얼추 45세면 실제 나이에 비해 큰 무리는 아닐 듯 하지만, 저 비주얼로 45세...라는 것은 진짜 45세 전후의 여성들에겐 참 불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2008년작 '태양의 여자' 때 한 잡지와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태양의 여자'가 벌써 4년 전 드라마라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과 김지수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뭐 4년 전이니 당연히 그럴 법 합니다. 

 

2005년작, 영화 '여자, 정혜' 때의 스틸입니다.

지금보다 살짝 어려 보이는 건 헤어스타일 탓인 듯도 하고... 아무튼 뭐 그닥 달라진 건 없는 얼굴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부터 7년 전의 모습이라는 것. 

 

2001년작 드라마 '온달왕자들'에서의 모습. 자, 한번 맨 위의 사진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며칠 전에 찍힌 사진보다, 이 모습이 나이들어 보인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11년 전의 모습입니다.

 

 일일드라마로 공전의 히트작이던 '보고 또 보고' 시절의 사진. 고인이 된 박용하가 옆에 있어 세월을 느끼게 하지만 아무튼 엊그제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

어쨌든 1998년, 지금부터 14년 전입니다.

 

1997년작 '내안의 천사' 시절. 오른쪽에는 장진영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사진 역시 지금보다 조금 나이들어 보인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

 

이게 실질적인 데뷔작인 '종합병원' 때의 모습입니다. 1994년. 진짜 데뷔작은 1993년의 '머나먼 쏭바강'이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기억하는 첫 작품은 이거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이해 11월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 역시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살짝 남은 볼살 정도? 대개는 이 볼살이 빠지면서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지만 김지수는 볼살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점점 더 젊은 얼굴이 되어 간 듯 합니다.

어쨌든 제 느낌으로는 이 사진이 더 나이들어보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최소한 18년 전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듯 합니다.^^ 보통 사람들과 비하면 더욱 그렇고, 연예인들 가운데서도 18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이 정도인 사람은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김지수가 나온 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티저 영상 가운데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배경에 깐 버전이 공개됐습니다. 아마 드라마로는 4부 정도에 나오는 장면일 겁니다.

 

이 영상 속에 나오는 김지수와 다음 영상 속 김지수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쪽은 2001년 공개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공식 뮤직비디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상에서도 김지수가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화장법이 요즘 유행과 좀 달라지긴 했지만 참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안 변할 수가 있나 싶더군요.

 

김지수가 데뷔한게 벌써 19년 전. 참 여러가지로 놀랍습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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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각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포스팅을 꽤 자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공을 들인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방송 내용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주(그러니까 어제) '미각스캔들' 방송 내용은 '기름대창의 진실'이었습니다. 양대창집이 인기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전에는 내장을 징그럽다고 먹지 않던 여자 손님들도 요즘은 그런 거리감을 내던진지 오래인 듯 합니다. 특히 젊은 여성층 가운데서는 '고기보다 내장이 더 좋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세월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예전엔 여자친구에게 '곱창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이 사람이 날 뭘로 보나'하는 눈길을 느껴야 했는데...

하기야 호랑이가 사냥을 해도 제일 먼저 먹는 것이 내장이라고 하니 육고기보다 내장이 맛있다는 것은 자연계의 진리이자 포식동물의 본능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내장 가운데서 곱창과 대창, 양에 대한 내용은 한번 눈여겨 볼만 하더군요.

특히나 그동안 고소한 맛으로 먹어왔던 대창의 진실을 아는 순간... 참 눈앞이 캄캄해지셨던 분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일단 아는 것이 힘. 대체 대창이 뭐고 막창이 뭔지는 알고 나서 시작합시다. 먼저 소는 위가 네개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겠죠? 교과서에 나오는 소의 네 위 이름은 혹위-벌집위-겹주름위-주름위입니다. 하지만 이 위들이 식재료로 쓰일 때에는 순서대로 양, 절창, 천엽, 막창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런 명칭들이 흔히 그렇듯, 이 네 이름은 상당히 혼동됩니다. 일례로 양즙, 혹은 양곰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에는 이 네가지가 모두 들어가는게 보통입니다. 2위인 절창은 그물 모양이 벌집 모양으로 진하게 박혀 있어 벌집이라고도 불리는데, 하동관 곰탕을 드셔 보신 분들에겐 절창이나 벌집보다 내포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할 듯 합니다.

어쨌든 양은 흔히 구이, 절창은 탕, 천엽(처녑이라고도 쓰더군요)은 날로 기름장에 찍어 먹거나 탕, 막창은 구이로 먹는게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소 막창과 돼지 막창은 다르다는 것. 소는 제4위를 막창이라고 부르지만 돼지는 대장(큰창자)를 막창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똥창이라고 불렀다는데 듣기 좋은 이름으로 바꾼 거겠죠.

반대로 소는 작은창자를 곱창, 큰 창자를 대창이라고 간단히 구별합니다. 즉 우리가 그동안 먹어 온 소곱창은 대창과는 다른 부위입니다.

여기까지는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대창이 그런 비밀을 갖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일단 대창과 곱창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곱'이라고 통칭하는데, 곱창의 곱이 맛있는 내용물이라면 대창의 곱은 그냥 기름덩어리라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아니, 사실은 알았겠지만 - 그 입안에서 구운 곱창이 터지는 고소하고도 부드러운 맛에 그냥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린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곱일 수가 없는 것이, 손님상에 나오는 대창은 안팎을 뒤집은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곱이라고 생각했던 쇠기름은 원래 대창 밖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죠. 안이 아니라 거죽이었던 겁니다.

 

 

 

 

 

심지어 체인점 사장님은 대창을 먹지 않는다든가,

"우리야 잘 팔려서 좋지만 괜히 나중에 죄받을까봐 겁나지..."

대창을 파시는 분들이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대창에 대한 애정이 싹 식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팁은 양/대창 전문점에서 양 구이는 거의 이문이 남지 않을정도의 서비스 품목이라는 점. 사실 대창보다 양을 좋아하던 저로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양구이 가격이 대폭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사실 자연계에서 육식동물들이 내장을 탐식하는 것은 위에서도 얘기했듯 맛도 맛이지만 지방 섭취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방은 그 자체로 동물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양소죠. 다만 영양상태가 과다하게 좋은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먹거리라고만 하기는 부담스럽습니다.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미각스캔들'은 참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창 마니아였던 장성규 아나운서의 충격이 커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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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숨가쁘게 16회를 달려온 '아내의 자격'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최종회에서 거둔 4.41%의 시청률(AGB닐슨,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 6.03%의 순간 최고 시청률은 개국 4개월을 맞은 방송사의 기록으로는 대단히 화려합니다. JTBC 개국 이후 최고 시청률일뿐만 아니라, 지난 20년간 지상파 3사 이외의 채널에서 방송된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로 보입니다.

이런 호성적을 기록한 프로그램인 만큼 마무리도 성대해야 했겠죠. 2012년 4월20일 밤 서울 마포구의 한 고기집에서 '아내의 자격' 종방연이 열렸습니다. 물론 안판석 감독, 정성주 작가와 김희애, 이성재, 장현성 등 드라마의 주역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3개월간의 숨가쁜 촬영이 마무리된 만큼 다들 홀가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오후 7시 넘어 연기자와 주역들, 스탭들이 넓은 고깃집 뜰을 가득 메웠습니다.

 

안판석 감독님과 이성재.

정한용, 최은경, 이태란.

장현성, 임성민, 박혁권, 장소연이 보입니다. 뒤통수만 보이는 분이 이성재씨.

양해를 좀 구하자면 폰카로 찍은 사진들이라 화질이 영 엉망입니다. 카메라를 가져갔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다음번엔 꼭 카메라 가져가겠습니다.)

남선현 JTBC 사장님의 격려금 전달.

이어 주철환 JTBC 콘텐트본부장 진행으로 드라마의 주역들이 한마디씩 소감을 말하는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안판석 감독 옆의 분이 바로 오랜만에 명성을 확인하게 된 정성주 작가. '아내의 자격' 속 수많은 명대사의 연금술사가 바로 이 분입니다.

물론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희애. 최고의 공로자이자 여주인공인 김희애는 "참 연기가 하고 싶었는데...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취지의 인삿말을 했습니다. 김희애에게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은 누가 처음이라고 할 게 없이 갑자기 '노래! 노래! 노래!'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런 상황에서 가끔 장난으로 하는 외침이죠.

대개 이런 경우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몇번쯤 빼는 척 하다가, 사람들로부터 몇번 '우우'하는 함성도 좀 더 듣다가, 마지못한 척 살짝 노래 한 소절을 부르는 정도로 성원(?)에 보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여주인공, 김희애는 이런 클리셰를 거부했습니다. 바로 '노~래, 노~래, 노~래'라는 외침에 한 세번 정도 울려퍼지자 바로 노래 모드로 넘어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무슨 노래일까요?

 

김희애 본인의 히트곡, '나를 잊지 말아요'였습니다.

1988년 3월, KBS 라디오 DJ 13명이 함께 낸 앨범 '우리 노래 어때요'에 수록된 이 노래는 당시 KBS '가요톱텐'의 3위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미 '아내의 자격'팀 회식에서도 김희애는 이 노래를 불러 여신으로 등극한 적이 있었다는군요. 아무튼 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김희애에게도 기분 좋은 하루였던 듯. 노래 실력은 동영상에 들어간 이 노래의 피날레 부분을 참고하시길.^^

아무튼 김희애는 이날 지난 2개월 동안 출연한 '아내의 자격' 대본에 대해 "마치 하느님이 다 내려다보고 쓰는 한마디 한마디 같았다"며 정성주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씩을 정리하면,

 

"나는 3개월 동안 안판석 감독의 아바타였다!"

이성재의 절규. 연출자의 여주인공 편애(?)에 대한 남주인공의 반발일까요.^^

 

"액션스타로 거듭나겠다"는 최은경.

유난히 이 드라마에서 액션 신이 많았죠.^^

 

결이 역의 임제노, "안녕하세요. 드라마에선 5학년부터 나왔지만 저 사실 중2에요."

옆의 재훈이는 본명이 손성준이랍니다. 

결이와 아빠는 원래 이런 사이....

 

이날 쫑파티 현장에서는 그동안 촬영장에서 스틸 팀이 촬영한 사진들을 죽 붙여 놓고 '자기 얼굴이 붙은 사진을 떼어 가세요'라고 써 놓은 코너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진을 보다 보니 어느새 흘러간 시간이 피부로 느껴지더군요.

'아내의 자격'이 이렇게 끝났다는 아쉬움에 참석한 사람들은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이태란의 말, "이렇게 분위기 좋은 스태프와 일해 본 기억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언젠가 이 팀 그대로 다시 만나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라는 얘기처럼.

이렇게 해서 '아내의 자격'이 막을 내렸습니다.

 

'아내의 자격' 후속으로는 25일부터 새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이 방송됩니다.

첫사랑과의 재회라는 소재를 극대화하기 위해 김동률의 선율에 기댈 생각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노래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에서 김지수가 주인공이었더군요.

김지수의 앳된(?) 모습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전혀 나이 먹지 않은 김지수에게 더 놀라게 됩니다.)

 

물론 그보다 앞선 23일, 바로 다음 월요일부터도 새 드라마 '해피엔딩'이 방송됩니다.

최민수 이승연 심혜진 박정철 소유진 소이현 강타 김소은.

이 정도면 호화 캐스팅이라는 말을 써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주에도 JTBC 드라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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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게 인생의 중요한 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음식에 관심은 많지만 맛집 관련 블로깅은 상당히 자제해 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세상 천지의 맛집 고수들 사이에 감히 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맛의 세계에 가끔씩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아무래도 '미각스캔들'이란 프로그램의 영향이 큽니다. 어느새 JTBC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된 '미각스캔들'은 그 말하기 힘든 맛의 세계를 수업중인 무사처럼 성큼성큼 누비고 있습니다. 물론 그 선두에는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이 있습니다.

 

'미각스캔들'의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는 김재환 감독은 연출 못잖게 문필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에 기고한 글 때문에 권 아무개씨의 말 많던 해외 경력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죠. 카메라 못잖게 글도 매섭습니다.

 

 

 

 

 

그런 김재환 감독이 '미각스캔들' 홈페이지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최종병기 MSG'.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이 가시겠죠.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내용이 많으실 겁니다. 한번 읽어 보시죠.

 

MSG를 검색해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1908년 이게다 박사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국물 맛의 성분이 다시마의 글루타민산(Glutamic Acid)임을 밝혀내고 그 성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아지노모도’란 이름으로 상품화했는데 그 강렬한 맛은 사람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요리사가 아니라 화학자가 발명한 마법의 맛, MSG(Monosodium Glutamate)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부터 MSG 과다섭취로 인한 두통, 메스꺼움 등 이른바 중국음식증후군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고 유해성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절대 MSG의 마법을 포기할 수 없다. 한식 요리사들을 만나보면 순수하게 재료 본연의 맛을 우려내 국물을 내려면 지금 음식값으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라고 말한다. 게다가 다들 화학조미료를 쓰는데 혼자 사용하지 않으면 MSG에 인이 박힌 소비자들이 그 식당을 외면할 것이다. 국제소비자연맹(IOCU)이란 단체는 10 16일을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로 정했다는데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이 소비되면 이런 날까지 정했겠는가.

 

 

 

 

통계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MSG생산량 중 국내출하량은 2006 1,910만 톤에서 2008 1,242만 톤으로 오히려 준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에 가보니 심지어 MSG를 주로 생산해 성장해온 회사에서도 MSG를 쓰지 않은 조미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에도 MSG를 뺐다는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광고만 봐서는 다 웰빙이다.

 

그럼 정말 MSG 사용량이 줄었을까? No! 이건 식품회사들의 마케팅 꼼수다. 옛날에 잘나가던 연예인 MSG양이 전신성형하고 개명해서 다시 걸그룹으로 데뷔한 거다. 식품 뒷면의 성분표기를 보면, ‘복합양념’ ‘00 시즈닝’ ‘감칠맛 조미분’ ‘00 분말’ ‘00 베이스’ ‘향미증진제’란 다양한 명칭의 변형 화학조미료들이 첨가돼있다. 단지 MSG라 불리는 오리지널 ‘L-글루타민산나트륨’만 빠진 것이다. MSG를 기본 원료로 하는 복합조미료 생산량 통계를 보면 2006 2,910만 톤에서 2008 5,377만 톤으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식당과 식품회사들은 절대 최종병기 MSG를 포기할 수 없다. 먼저 포기하면 먼저 망한다. 만약 우리나라 모든 식당에서 한날 한 시에 화학조미료가 다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요리사와 식당의 수준이 확실히 드러나게 될 테니 무척 재밌을 것이다. 비싼 가격을 받는 유명 파스타 집에도 화학조미료를 쓰는 나라니 일반 식당들은 오죽 하겠는가.

 

TV는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천연조미료 식당’들을 좋아한다. 방송사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다. <트루맛쇼> 제작 당시 그 중 몇몇 음식점의 시료를 수거해 연구소에 테스트를 맡겨 보니 모두 다 꽤 많은 MSG가 검출되었다.

 

요즘은 정말 훌륭한 식당에서도 화학조미료를 쓴다. 수십 년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정육점 한 곳에서 최고 수준의 암소를 납품 받아온 우래옥과 하동관도 MSG를 사용한다. 주방에 들어가 식자재를 꼼꼼히 살펴본 황교익 선생님에 따르면 우래옥 평양냉면에 메겨진 11,000원이란 가격은 전혀 비싼 게 아니라고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의 식당에서 최상급 식재료로 맛을 낸 그 훌륭한 냉면 육수에도 최종병기 미원이 투하되는 게 우리나라 요식업의 현실이다. 우래옥에서는 손님들의 입맛이 간절히 원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고, 하동관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MSG를 쓰고부터 장사가 더 잘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피부미인 김태희의 쌩얼도 보고 싶다.

 

내가 먹는 게 내 몸을 구성한다. 만약 당신이 좋은 식자재와 아주 적은 양의 화학조미료를 쓰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받는 양심적인 식당을 알고 있다면 주인 분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나만 알고 있는 좋은 밥집은 소중한 공간이고 은밀한 즐거움이다. TV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식당이 진짜 맛집이다. 그 식당이 문 닫지 않도록 자주 가서 드시라. 좋은 소비가 좋은 사람들을 격려한다. (끝)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MSG에 대한 태도는 사뭇 이중적입니다. 먹는 음식에 MSG가 들어가 있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집에서 먹는 음식에 어머니나 아내가 MSG를 썼다고 하면 한숨을 쉬거나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홍대앞 조폭떡볶이 집 조리 광경은 수만명이 봤을텐데, 그때문에 그 떡볶이의 매상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가게를 차려 들어가기 전, 트럭 장사를 할 때 이 집의 떡 리필 장면은 그 자체가 볼거리였습니다. 커다란 솥에 떡 한보따리를 넣고 나서 커다란 바가지로 설탕 한 바가지, 미원 한 바가지를 넣는게 순서였습니다. 네. 떡볶이가 괜히 맛있는게 아니었죠.

마찬가지로, 조금만 맛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MSG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밖에서 먹는 식당의 음식 맛에 MSG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고급 식당과 저급 식당의 음식 맛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MSG의 마력이죠. 단지 고급 식당은 재료 7에 MSG 3으로 소기의 맛을 낸다면 하급 식당은 재료 3에 MSG 7로 비슷한 맛을 낸다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한국 음식에는 MSG가 많이 들어가지만 외국식 요리에는 안 들어갈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유명한 양식 레스토랑에서도 베이스가 되는 닭 육수(치킨스톡)는 통조림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MSG가 듬뿍 들어 있죠.

 

 

태국이나 베트남에 가면 왜 이렇게 음식이 입에 짝짝 붙는지 모르겠다는 분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두 나라는 세계적으로 MSG의 생산/소비가 선두권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한국에서만 조미료 쓰는 게 아닙니다.

물론 MSG라는 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란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마, 새우, 꽃게 등 "집어넣기만 해도 국물 맛이 확 살아나는" 식재료들은 모두 MSG의 전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글루타민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흔히 이들 '천연 재료'를 가공해서 만든 '천연 조미료'라는 것들 역시 성분은 화학 조미료와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결국 성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양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식품영양학자들은 'MSG가 해롭냐, 아니냐는 논쟁은 소금이 해롭냐 아니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금을 넣지 않고 맛을 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 소금도 많이 먹으면 고혈압이나 기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유죠.

그래서 윗글에서도 '조금 쓰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말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적당히 넣어서 우리의 입맛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배척할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들이 붓듯 사용하는 식당들은 좀 자제할 필요가 있고, 소비자가 일단 현명해져야 그런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달콤한 떡볶이를 1인분 2천원에 먹으려면 MSG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5천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주인이 MSG를 쓴다고 욕하면 그 또한 도둑놈 심뽀입니다. 그리고 혹시 MSG 거의 안 쓰고 좋은 재료로 맛을 내는 곰탕이 한 그릇에 2만원이라면(실제로 있습니다.^^), 그걸 도둑이라고 욕해선 안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공지, '미각스캔들'은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됩니다.^^

 

 

이 사진이 안 들어가면 실망하실 분들이 꽤 많을 듯 하여... 이제 만족하시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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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꽃등심'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본 건 한 20년 전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등심구이, 그보다 더 전에는 '로스구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였죠.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꽃등심'이라는 말이 쇠고기의 최고봉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꽃살', '설화육' 같은 말들이 뒤이어 등장했죠.

물론 '꽃등심'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한참 뒤까지도 고기를 먹으러 가서 '마블링'이라는 말을 쓰면 뭔가 대단히 아는 척 하는 것으로 비쳐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시골 고기집에 가도 마블링을 얘기하게 됐으니 상전벽해가 된 셈이죠.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마블링의 위력. 하지만 세상이 다시 한번 돌아 제자리로 왔습니다. 마블링이라는 것이 과연 가장 좋은 쇠고기의 절대적인 기준이냐는 질문을 던질 시점이 온 듯 합니다.

8일 방송된 JTBC '미각스캔들'에서는 '마블링 만능론'에 대해 의문을 던졌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우 육질은 일단 A, B, C로 나뉘고, A급은 다시 1++A, 1+A, A급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이 1++를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는 바로 마블링의 모양이 절대적 역할을 합니다.

본래 마블링이란 기름과 물의 성질을 이용한 미술 기법입니다. 물 위에 유성 물감이 아른아른 번지는 모습이 매끈한 차돌 겉면의 무늬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블링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쇠고기의 마블링은 눈꽃처럼 넓게 퍼지는 것을 최고로 치죠.

물론 그 마블링의 흰 색은 모두 지방입니다. 고기 끝에 뭉쳐 있다면 떼 버릴 지방이 고기 속에 골고루 퍼져 있으면(근내지방이라고 하죠) 박수를 받는 겁니다. 적당이 콕콕 마블링이 박힌 고기는 쉽게 질겨지지도 않고, 얇게 썰면 살코기와 지방이 사르르 녹아 버리는 느낌을 줍니다. 쇠고기 뿐만 아니고, 오도로라고 불리는 참치 뱃살에서도 마블링이 잘 된 것일수록 높은 품질로 쳐 주지만, 사실 취향에 따라선 느끼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쇠고기의 마블링은 9단계 표로 표시됩니다. 이 도표와 비교해 볼 때 8,9 등급 이상이라야 1++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거론됐듯, 전체 도살우 중에서 1++ 등급을 받는 고기는 7.8% 정도라고 합니다. 12마리 중 1마리 꼴입니다.

사실 방송에서는 마블링 때문에 2, 3 등급을 받는 소들이 속출해 축산 농가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엄밀히 말해 마블링의 가장 큰 페해는 먹는 사람의 건강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블링이 많은 소는 절대 건강하지 않은 소입니다.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고열량의 먹이를 먹으면서, 심지어 알콜까지 섭취하게 해 만들어 낸 소가 근내 지방 축적이 많습니다. 사람으로 쳐도 운동따위는 뒷전으로 미루고 편안한 소파 위에서 뒹굴며 술과 고지방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피둥피둥 살찌는게 당연한 얘기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묵념...)

방송에서는 막걸리를 소에게 먹이고 트로트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왔지만, 일본에서도 최고급 무사시노 와규를 생산하는 농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맥주를 먹이고 클래식을 듣게 한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이렇게 '기름기가 찬' 소의 고기를 먹으면 그 기름기는 다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사람의 몸에 마블링으로 박히기 됩니다. 물론 먹고 나서 모두 지방흡입으로 빨아 내실 분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형편이 아닌 분들이 1++ 고기를 포식하는 건 꽤 위험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인데 - 마블링만 박히면 정말 맛이 좋으냐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나 분명한 것은, 고기를 찍어 맛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마블링은 가장 확실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삶거나 찌지 않는 경우. 그리고 숙성하지 않는 경우. 생고기를 구워 먹는 조리법에서 마블링의 신뢰도는 대단히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아니 보기는 좋은데 고기 맛이 왜 이래' 싶은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네. 마블링은 폭설이 펄펄 내리는데도 구워 놓으면 그냥 기름덩어리 씹는 것 같은 경우 말입니다. 마블링=절대적인 맛의 기준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소위 '기름 맛'에 대한 호오가 상당히 엇갈린다는 부분도 마블링에 대한 신화를 깰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를테면 최고 등급의 와규는 아래 보시는 사진처럼 거의 연분홍색입니다. 지방과 육질의 비율이 저 정도가 되면 불 위에 올려놓을 때 이미 '녹기' 시작하고, 혀에 얹어 놓으면 그냥 스윽 흘러넘어가 버립니다. 씹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죠.^^ 이런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저런 와규가 그렇게 비싼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아닙니다.

기름 맛에 사람들이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기름치입니다. 기름치라는 물고기는 살이 25% 이상이 지방이라 먹으면 설사나 복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기름치 사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기름치가 회로 먹을 때는 참치(물론 최저등급의 허연 참치살), 구워 먹을 때에는 메로와 혼동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이 '기름 맛'을 진짜 맛과 구별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저도 궁금한 맛입니다만 가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콩 먹고, 쇠죽 먹고 자란 소고기 맛'은 분명 지금의 마블링 지글지글 고기맛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도 '유기농으로 기른 소' 들이 서서히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죠.

물론 가격을 따져 보면 이 소들이 사료 먹여 기른 소보다 더 비쌀 수도 있겠지만(...계란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비싼게 당연한데, 한편에선 '비싼 수입 사료 안 먹여서 오히려 쌀 수도 있다'고 합니다), 왕년에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드시던 '쫄깃하고 고소한 고기' 맛은 한번 보고 싶습니다. 몸에도 그 쪽이 훨씬 좋다니 말입니다.

P.S. 15일 방송되는 '미각스캔들'에서는 '대게의 비밀' 편이 방송됩니다. 동해안 대게 산지에서도 국산 대게는 실종되고 수입 대게가 국산으로 변신해 팔려나가고 있다는군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더 쇼킹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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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매회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내의 자격' 10회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이혼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혼한 부부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이혼한 부부의 모습은 '폭력 남편', '바람피는 남편'과 '폭력 피해자 아내' 또는 '자식새끼 내버리고 튄 화냥년'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다르더군요. 특히 자녀에게 이혼을 설명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이혼을 맞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아내의 자격'이 다른 드라마들과 어떻게 다른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10회에서 서래(김희애)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결이를 찾아갑니다. 과연 5학년인 아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게 '자식을 버리고 바람나서 달아나는' 경우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까.

대부분의 경우라면 이런 부모들은 그냥 바로 숨어 버릴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아예 죄책감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그려지죠. 하지만 서래는 아이를 만나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왜 엄마와 살 수 없느냐는 질문에 "양육권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엄마가 잘못해서"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빠 말고 다른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어서"라는 말에도 결이는 심하게 충격받지 않습니다.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치과 의사 아저씨라는 데에서야 놀랄 뿐입니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만 되어도 자신의 부모들이 이혼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결이는 엄마를 만났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혼자 이런 저런 상상 많이 했는데 다 알게 돼서 좋았어요. 다음주에는 엄마 만나러 가고 싶어요."

그런 조숙한 아이에게 서래가 전하고 싶은 것도 "엄마는 너를 버리는게 아니야"라는 한마디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를 떠난다고 아이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가슴으로 전하는 여주인공이 지금까지 몇이나 있었을까요.

(사실 '아이에게 말하기'라는 것은 이런 경우의 부모들에겐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그걸 잘 알기에 지선(이태란)도 태오(이성재)에게 "딸에게는 네가 저지른 짓, 직접 얘기하라"고 쏘아붙입니다.)

 

또 하나,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혼의 이유가 불륜'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드라마에서는 '바람 피우다 이혼하는' 수없이 많은 커플들이 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태오-지선 부부가 갈라서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부가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이유에는 수천만가지가 있다는 것을 넌즈시 보여줍니다.

지선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강남좌파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른바 '패션좌파'라고도 불리는 강남 부유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오가 대학생이던 시절 운동권이었다는 것은 이미 태오의 선배이자 서래 남편 상진의 친구인 진만(현재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태오와 캠퍼스 커플이었던 지선 역시 그 영향 속에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동지적 관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 지선은 강남 한복판에서 상위 1%의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학원 강사가 아니라 성공한 경영인으로 변신해 있고, 학원기업을 일으키자는 야망도 갖고 있습니다. 또 '내 딸 만큼은 상위 0.1%로 키워내야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지선 때문에 호의호식하는 것도, 지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태오에겐 모두 불만입니다. 이것이 어느새 부부 사이를 냉랭하게 만든 것이죠. 그리고 태오에게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선도 태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늘 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다들 강남 좌파라고 한껏 폼 내고 사는데 이 남자(태오)는 왜 그렇게 못 할까. 화염병 만들던 애들이 빈티지 와인 마시고, 가끔 소탈한 척도 해야 하니까 막걸리도 있는 종류대로 골라 마시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이 남자는 그걸 못하나."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부부가 갈라서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성주 작가는 이혼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부부 사이의 위기, 혹은 '불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정점으로 삼았습니다. '아내의 자격'과 간혹 비교되곤 했던 '애인'에서도 유동근과 황신혜가 연기했던 두 주인공은 결국 고뇌 끝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렸죠.

하지만 김희애와 이성재는 16부작 드라마의 10회에서 갈라서 버립니다. 나머지 6회는? 기존의 드라마 진행속도로 본다면 이건 보너스인 셈이죠.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아내의 자격 1부'였던 셈이고, 이제 '아내의 자격 2부'가 제대로 시작할 조짐입니다.

 

물론 서래의 눈물겨운 고생담도 지금부터 시작일 듯 합니다. 태오에게는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고생 없이 살고 있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생활을 위해 고기집에서 한밤중까지 불판을 닦는 고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회에서는 그런 현실을 태오가 알게 되는 듯 하더군요. 이래저래 차회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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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미스라는 조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대략 정의도 내려져 있죠. 고등교육을 받고 대략 전문직이나 대기업 등 안정된 수입을 갖고 있는 30대 중반 ~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이들은 노후 설계보다는 자기 계발을 위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문화, 패션, 피트니스, 미용 등 여러 분야의 주 소비층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합니다. 흔히 이들의 성경은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문화적 취향은 뮤지컬(흔히 골드미스들이 없으면 사라질 장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에서 아이돌 마니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골드미스로 분류되는 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보면 주변에서 보는 것과 제법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흔히 이들은 '70년대 이후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고,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 세대의 집중 지원을 받아 남자 형제 못잖은 교육 투자를 받아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이룩한 세대'로 표현되곤 하죠. 이런 시각 이면에는 이들이 '결혼보다는 사회적인 성공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는 분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4일, 완전히 리뉴얼된 JTBC 시사 코미디 쇼 '개구쟁이'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코미디와 다큐멘터리, 가짜 다큐멘터리와 진짜 전문가 토크가 오가는 구도는 다소 낯선 것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속시원히 얘기해 보자'는 취지로 개편된 '개구쟁이'의 첫회 주제는 '당신은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였습니다. 여기서 참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죠.

가장 핵심적인 답변은 '돈이 너무 들어서'였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된 바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커플당 결혼 비용은 1억7000만원대라고 합니다. 뭐 있는 분들에게는 별 돈 아니겠지만, 새로 모든걸 시작해야 하는 젊은 커플들에겐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말이죠.

일반적인 서민 계층의 경우, 이 '돈 때문에 결혼 못한다'는 남녀들은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취업후 서울 시내 전세 마련에 17년 걸린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면 더욱 그 심각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이런 금액 정도는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는(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 소득을 감안하면 충분히 선지출이 가능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결혼 연령은 왜 늦어지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위에서 얘기한 '골드미스'의 등장은 이렇게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A-B-C-D 이론이 등장합니다. +


사회학 혹은 심리학 분야에서 이 ABCD 이론은 너무나도 상식화되어 있는 이론입니다. 더구나 지구상 인류의 수많은 문화권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맞아 떨어지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남녀를 모두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A,B,C,D 네가지 그룹으로 나누면(그룹의 수는 별 의미 없습니다. A,B,C 세 그룹으로 나눠도 마찬가지), 남자 A그룹과 여자 B그룹, 남자 B그룹과 여자 C그룹, 남자 C그룹과 여자 D그룹의 통혼이 가장 보편적인 혼례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여자 A그룹과 남자 D그룹이 독신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더라는 것이죠.

따라서 각 문화권에서는 여자 A그룹과 남자 D그룹에게 '독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시스템화하기도 합니다. 인도 불가촉천민 집단은 어려서부터 남자에게 요리와 빨래 등 가사 활동을 가르치고, 과거 제정 러시아의 한 시대에는 여자 중 최고 서열에 속하는 공주들은 아예 결혼하지 못하고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가(下嫁)라는 것을 부정해버린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아예 통계적으로 이 이론을 검증하려는 시도들이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가설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대략 요약하면 남자의 경우에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혼에 도움이 되었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로 인용한 조사는, 개방후 중국 상하이 지역의 남녀를 A,B,C 집단으로 나눠 분석한 것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중국 남성들은 결혼에 앞서 '자신의 통제력'을 중요한 요소로 삼았고, 여성들은 '존중의 대상'으로서의 남성을 추구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A그룹 여성의 경우, 같은 커뮤니티의 A그룹 남성들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나 야심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위치에서 볼 때 대부분의 A그룹 남성들도 이들에게는 '신통찮은 녀석들'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연구는 이런 A그룹 여성들의 경우 상당수가 '외국인'에게 눈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하이는 교수, 사업가 등 다양한 층위의 외국인들이 있고, 특히 영어에 능통해진 A그룹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이들과 맺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죠. (매우 그럴듯하고, 낯익은 얘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ezinearticles.com/?The-ABC-of-Shanghai-Girls---A-Lesson-in-Loneliness&id=1327315



대략 반만년 인류 문화사가 입증하고 있는 이 추세에는 사실 해결책이 없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A그룹 여성과 D그룹 남성의 수를 강제로 줄여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누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현대 문명 시대에 이런 식의 강제 균형은 불가능할 것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설명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고학력/고연봉/고연령 남성군은 여전히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반대로 여성은 아무리 '고학력/고연봉/고연령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우월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성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 듯 합니다.

결국은 사람이 변해야 이런 문제가 사라질 수 있겠죠. 남성들이 생각을 바꿔 자신들과 동등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시대가 오거나, 한편으로는 성공한 여성들이 자신보다 열등한 지위의 남성들을 피부양자로 생각하고 수용하거나(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골드미스들과 어린 꽃미남들의 커플링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부양-피부양 관계의 파괴인 셈이죠.^^), 어떤 식으로든 전통적인 남녀 관계의 틀과는 다른 형식의 관계들이 늘어나야 할 듯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필연이라거나, 혹은 반드시 지금보다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개구쟁이'는 이밖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웃음으로 풀어냈습니다.



약혼자의 과거 남친은 이해해도 혼수 깎자는 말은 이해 못 하는 남자나,


결혼이 일종의 서바이벌 마켓이 된 것을 풍자하는 '위대한 며느리'(물론 '위대한 탄생'의 패러디입니다.ㅋ) 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개구쟁이' 첫회는 우리 사회의 이런 고민을 파헤치는 데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비록 첫회다 보니 약간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조금 더 파고 들어야 했을 부분을 수박 겉핥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고 볼 부분도 있겠지만 어디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있겠습니까.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 다음주, 개편 2회차가 더 기대되긴 합니다. 이날의 주제는 '거짓말'. 특히 선거철이다 보니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이 가해질 듯 합니다. 코미디를 통한 비판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원래 코미디란 사회 풍자에서 출발한 것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 희극이나 희극인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의 출발점이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어쩌면 다음주 '개구쟁이'는 회사 높은 분들이 보시면 놀랄 수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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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은 신화의 데뷔 14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지난 1998년 3월24일이 바로 신화가 데뷔한 날이었던 것이죠.


이날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데뷔 14주년 기념이자 10집 발매 기념 콘서트 'The Return'이 열렸고, 공연장에 못 가신 분들을 위해서는 JTBC '신화방송' 2회가 준비됐습니다. 그리고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 멤버들이 데뷔 이래 가장 심하게, 가장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방송됐습니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망가져 우스꽝스럽게 날아가는' 모습이었지만, 제게는 '신화방송'의 안착 축하 비행으로 보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들의 비행 속에서 재회한 신화와 '신화방송'의 밝은 앞날을 보셨을 겁니다.



'신화방송' 1,2회는 SF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딸을 구하라' 편이 방송됐습니다. 게임 세대에 친숙한 RPG 미션 게임의 형태였죠. 해당 장소로 이동해 단서를 찾고, 그 단서에 따라 또 그 다음 미션을 해결하는 식의 진행이었고 지난주 1회의 미션은 '월이' 최홍만을 찾는 데까지 진행됐습니다.

누구도 최홍만 앞에선 피할수 없는 꼬꼬마의 굴욕....ㅋ




6대 1로 덤벼도 당할 수 없는 괴력의 거인 최홍만. 결국 투충 전진과 잼샌디 앤디의 활약으로 승리가 확보됐고, 다음 미션은 수영장 퀴즈. 공포의 플라잉 체어 게임이었습니다.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사용됐던 플라잉 체어는 그리 낯설 것 없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신화 멤버들이 하면 다르다는 것이 이날 여실히 증명됐습니다.




압권은 '플라잉 도중 예술 동작을 보이면 날아가는 벌칙을 면제받는다'는 것. 고기 동완을 제외한 다섯 멤버 가운데 가장 '몸'에 강한 투충 전진이 제1후보로 꼽혔죠.

하지만 테이프를 끊은 것은 의외로 육릭 에릭. 놀라운 반사신경이 펼쳐졌습니다.


부분확대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공중에서 180도로 다리가 펴지는 운동신경.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 자극받은 투충 전진.



원숭이 자세로 역시 감탄을 자아냅니다.



코믹한 공중정지동작. 예능으로 단련된 몸이라야 가능한 자세가 분명합니다.

물론 그러는 사이 다른 멤버들도 하염없이 무너져갑니다.


 


KISS 멤버들을 연상시키는 저 뺨의 별...

시작할 때에는 원더우먼의 머리 위 티아라 한복판에 박혀 있던 게 어느새 흘러내린...


사실 이날 감동적인 것은 예능 초보인 필타 혜성의 분투였습니다.

플라잉체어를 본 순간 "나 이거 한번도 안 해봤는데..."라고 나지막히 중얼거린 그.
(에릭도 처음일 듯 하지만 - 본 기억이 없어서 - 혜성은 확실히 처음입니다.)

어쨌든 처음에는 확실히 부적응자의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미역 감은 타잔', '치마 벗겨진 타잔' 등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며 그 '예능 초보'를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 잠재력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팬 여러분이 기대하셨던 '전라 토크'는 아니었지만, 첫회 녹화를 마친 멤버들은 다양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특히 원더우먼 복장으로 심하게 망가진 민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다면 정말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우리 멤버들끼리 다 같이 하니까 한 거지. 더 이상 그 이상 내려갈 곳이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라고 심경을 털어놨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얘기했지만 이 망가짐은 망가짐이 아니죠. 오히려 이런 망가짐을 통해 신화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가장 대중과 친숙한 아이돌'의 면모를 다시 한번 강화했습니다.

이들의 친화력은 왕년의 H.O.T도, god도, 동방신기도 갖고 있지 않던 이들만의 강점입니다. 데뷔 초부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져진 친근감과 예능감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이죠.

(이들의 뒤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그룹이라면 슈퍼주니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H.O.T-동방신기, 신화-슈퍼주니어 사이에는 참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신화에게서 약 10년 뒤 슈주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아무튼 플라잉 체어 위에서 슝슝 물 위로 날아가는 이들 멤버들의 모습이 제게는 14주년 자축 비행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 속에서 시청자들도 행복했습니다.

SNS를 통해 단편적으로 엿본 시청자 반응이지만 그야말로 칭찬 일색입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디는 어설프게 가림.)


그런 의미에서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됩니다.



P.S. 가면 속 대통령 딸의 정체는 JTBC 임현주 아나운서였습니다.


미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현재 JTBC '뉴스4 - 박성태의 사사건건'과 '미각스캔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분도 앞날이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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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소문 최강인 영화 '건축학개론'. 명성대로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입니다.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을 보고 '이야, 이렇게 뻔할 듯한 이야기를 갖고 이만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하고 재능에 감동한 게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영화, 특히 전작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가지고 이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소문대로 이 영화는 Y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감독이 90년대초 Y대 건축공학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Y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가수 김동률의 노래 '기억의 습작'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영화입니다. 시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바보같은 스무살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촉촉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정도.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보세요."



현재.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승민(엄태웅)에게 어느날 갑자기 잊고 살던 15년 전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서현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승민. 그런 승민에게 서현은 의사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 지을 집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15년 전(1997년?). 건축공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1학년 2학기 건축학개론 시간에 음대생 서연(배수지)을 보고 가슴이 설렙니다. 알고 보니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서연. 제훈과 서연은 갑작스레 가까워지고, 건축학개론 과제를 위해 꽤 멀리까지 함께 나다니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워낙 경험이 없는 탓에 이 감정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승민. 갓 스무살의 신입생에게 사랑이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크로니클'에서 갑작스런 초능력을 갖게 된 10대들이나 마찬가집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시기죠(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그렇습니다). 문제는 첫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에너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려는, 상온에서의 니트로글리세린같은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감정은 느끼되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과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죠. 에리히 프롬이 젊음에 대해 '사랑은 충만해 있으되 그 사랑을 어디로 쓸 줄 모르는 상태'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소한 오해, 별 것 아닌 힌트, 아무 일도 아닌 위기감, 그리고 질투, 선망, 동경 등등 미세한 감정의 흐름에 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곤 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제목대로(?) 바로 이런 '첫사랑에 대한 개론'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첫사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낭만적인 병리적 증상을 남김없이, 그리고 매우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사랑에 대한 잘 만든 영화가 어디 한두편일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 한 영화가 우려먹고 지나가고, 그 세대가 흘러가 다음 세대가 비슷한 주제를 찾을 때까지 - 이 소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86년의 '겨울나그네', 2000년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2012년의 '건축학개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세대가 나타나겠죠.)



개인적으로 - 뭐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한 분들이 많겠지만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신입생 시절의 승민과 서연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김동률의 노래를 듣는 장면입니다. 

승민은 서연이 건네 주는 이어폰의 한쪽 끝을 귀에 꽂습니다. CD 플레이어가 작동되기까지 약 2,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물론 이 정적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이 순간은 서연에 대한 승민의 마음을 0의 상태, 즉 컴퓨터로 말하자면 초기화시키는 시간인 셈입니다), 김동률의 익숙한 첫 가사, '이젠/ 버틸수 없다고...'가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승민은 먼 훗날 누군가로부터 '언제 서연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일테죠. 이렇게 이용주 감독은 필요한 부분마다 적시타를 날려 주는 강타자의 면모를 보입니다.




표면상 주인공은 엄태웅/한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성인 부분은 그냥 간판 역할입니다. 진짜 영화의 핵심은 이제훈/배수지에게 가 있죠. 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캐스팅은 매우 절묘했습니다.

이제훈은 갓 명문대에 입학한, 다소 어려운 집안의 젊은이로서 완벽합니다.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듯한 그늘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빈부 양극화로 접어들기 직전, '한국사회에서 강남이 갖는 의미와 강남 문화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축감'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고의 걸그룹 출신인) 배수지는 그런 부분에서 묘한 존재입니다. 승민이 서울 강북 지역에서 자라났고, '강남/강북'의 구도가 그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폭력적인 느낌이라면, 아예 서울 사람이 아니었던 서연에게는 그런 구도가 큰 의미가 없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나 '서울 사람'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서연에게는 '기왕이면 강남이 더 멋지지 않아?'라는 의식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이 무참히 사라진 이유 이면에는 이처럼 '강남/강북'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구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서울 지역에서 '강남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을 느끼고 있던(말하자면 '계급에 대한 인식'인 거죠) 승민은 그 외곽으로부터 진입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남 문화에 대한 선망과 편입 의지를 보이는 서연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연을 사랑할수록 그 불만은 점점 깊어갈 뿐입니다. 

아마도 승민은 서연이 자신의 처지나 시각을 '알아서' 공유해 주기를 바랐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강남/강북'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서연은 이런 승민이 불안하고 어색해 보일 뿐입니다. 안경 쓴 선배는 그 '강남'을 상징하는 존재지만 '그날밤의 사건'은 사실 둘이 헤어지는 데 부수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애당초 이런 인식 차이가 있는 한 승민과 서연은 잘 될 수가 없는 관계였죠. 이용주 감독은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고, 관객에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해하실...)



승민의 눈에 비치는 서연은 '예측불가능한 요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인 것이죠. 이런 대상이 되려면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서연 역을 구현하는 배수지의 스타일과 연기는 완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림하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이 엿보입니다.





영화에서 표제곡으로 등장한 노래는 다 아시는 '기억의 습작'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떠오르는 노래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직접 들었다면 줄거리의 균형을 깨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영화의 포스터 중에 이 카피가 써 있는 버전이 있군요.^^)



P.S.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우리중 인기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첫사랑'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중 많은 '나'는 어느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을 겁니다. (네. 불편한 진실이죠.^^ 대중은 속고 있습니다.) 


P.S.2. 납뜩이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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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쇼킹했던 뉴스 중에 '해리 포터'의 여주인공 엠마 왓슨이 양익준 감독의 독립영화 '똥파리'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뭐 워낙 정신없이 돌아가던 나날이라 자세히 훑어보지는 못하고 그냥 제목만 보는 수준이었는데, 놀라운 가운데서도 몇가지 궁금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1) '똥파리'를 언제 봤을까? 2) 그런데 '똥파리'의 영어 제목이 뭐지? Dung Fly는 아닐테고...^^ 뭐 그런 정도였죠.

며칠 뒤에 누군가 '똥파리'의 영어 제목이 'Breathless'라고 가르쳐 주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흠. 리처드 기어 나오는 영화 제목과 똑같군..."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만화평론가로 잘 알려진 미디어 연구가 김낙호님의 트위터를 보고 의혹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정말 엠마 왓슨이 추천한 것은 '똥파리'였을까요?



기사 내용을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엠마 왓슨은 최근 세계적인 패션지 보그(Vogue) 인도판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vogue.in/content/my-beautiful-life-emma-watson




그리고 인터뷰 기사 말미에, 몇가지 질문에 간단하게 답한 부분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이자벨 마랑 등을 꼽고, 좋아하는 영화로 "양익준의 '똥파리',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 그리고 리처드 커티스의 모든 작품"이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Breathless'라는 영화 뒤에 친절하게 '양익준'이라고 덧붙여 놨습니다.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안 한국 기자들이 이 내용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보그가 무슨 듣보잡 매체도 아니고, 직접 인터뷰를 한 보그가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런데 김낙호님(@capcold)이 이런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아래 capcold님이 직접 남겨주신 댓글, '고다르 감독님은 아직 살아 계십니다.^^)

흠...

사실 만약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 관심이 있는 누군가 'Breathless'라는 영화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두 편의 영화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첫째는 영어로 'Breathless', 불어로 'A Bout De Souffle', 한국어로는 '네 멋대로 해라'라는 제목을 단 1960년작, 장 뤽 고다르 감독의 프랑스 고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장근석을 한때 '허세남'으로 만들었던, "뉴욕 헤럴드 트리뷴!" 이라는 대사의 출처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ㅋ)



그리고 한편을 더 떠올린다면 리처드 기어 주연의 1983년작 'Breathless', 국내에서는 '브레드레스'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던 영화입니다. 사실 이 두 영화는 같은 영화죠. 자동차 도둑인 한 남자가 우연히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도망쳐야 할 상황에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목숨을 댓가로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입니다. 리처드 기어 판 '브레드레스'는 프랑스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엠마 왓슨이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 겁니다. 왓슨은 2010년, 랑콤 광고 한편에 출연했는데, 단순히 출연한 것 뿐만 아니라 연출과 카피에도 자기 의사를 반영했고, 그 컨셉트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은 당시 WWD라는 여성지와의 인터뷰에 나와 있습니다.
(원문은 접근이 안 되어 그 내용을 인용한 웹 문서를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비슷한지는 직접 눈으로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위쪽은 왓슨이 출연했던 랑콤의 광고, 아래쪽은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 진 세버그에 대한 트리뷰트 영상입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여러 장면을 짜깁기한 것입니다.









왓슨이 짧은 헤어스타일을 비롯해 의도적으로 세버그의 스타일을 추종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런 비교도 자주 되고 있더군요.



이쯤 되면 '어, 뭔가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왓슨이 말한 영화는 고다르의 영화였던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가능한 가설은 "엠마 왓슨은 전후 설명 없이 그냥 'Breathless'라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영문 제목이 같은 장 뤽 고다르의 영화와 양익준의 영화를 혼동해 이 영화가 '똥파리'로 둔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그' 인도판 기자의 양식을 믿는다면, 반대로 의혹이 일기 시작합니다. 만약 '보그' 기자가 엠마 왓슨을 인터뷰하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을 때, 전후 맥락 없이 그냥 "'Breathless'"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그 유명한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제쳐 두고, 리처드 기어 주연의 나름 컬트 영화를 제쳐 두고, 2008년작 한국 영화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 해서 저렇게 자신있게 (   )안에 부가 정보로 넣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보그 기자가 아니라 세계 어떤 기자라도 이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 기자라도 말이죠(오히려 이 경우엔 '똥파리'의 영문 제목이 'Breathless'라는 걸 모를 가능성이 더 크겠군요.^^).

만약 그 기자가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고, Breathless가 바로 고다르의 'A Bout De Souffle'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차라리 그래서 imdb 같은 곳에서 검색을 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해서 제목도 의혹 제기로 끝났지만, 사실 제가 내릴 답은 없습니다. 정리하면 분명한 팩트는 (1) '보그' 인도판 기자는 왓슨이 말한 영화가 양익준의 영화라고 분명히 적었고, (2) 왓슨은 영문 제목이 같은 고다르의 영화 팬이란 사실을 이미 공표한 바 있다, 이 두가지입니다. 

물론 이 두개의 팩트는 '왓슨이 어딘가에서 양감독의 영화를 보고 매혹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공존 가능합니다. 왓슨은 프랑스의 고전 'Breathless'와 한국의 'Breathless'를 모두 좋아하고, 이번엔 (같은 아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이므로) 신작 영화를 추천했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해명하지 않는 한 진실은 저 어둠 속에....


아무튼 그러고 나니 궁금증은 배가됩니다. 과연 왓슨이 추천한 영화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혹시 개인적으로 연락 되시는 분 있으면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의혹만 제기해 놓고 뭐냐고 따지시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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