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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이 있고,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있습니다. 영화적으로는 당연합니다. 두 인물은 1인 2역으로 같은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다 보면 1인2역이 아니라 1인3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왕이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가 효과적이려면 두 남자는 생김새와 목소리가 똑같지만 신분상으로서는 상당한 격차가 나야 합니다. '왕자와 거지'를 보건, '가게무샤'를 보건 한쪽 남자가 비천한 신분인 것은 매우 당연한 공식입니다. 그리고 그 비천한 남자는 빠른 속도로 변해갑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하선이라는 한 평범한 남자가 왕과 닮았다는 이유로 15일간 왕 노릇을 하고, 그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변신 이야기는 놀라운 완성도로 이미 큰 성공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조선의 왕 광해(이병헌)은 암살의 위협을 다시 한번 넘기고 심복 허균(류승룡)에게 "나와 용모가 꼭 닮은 자를 구해 오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기방에 출입하며 광대놀음을 하던 하선(이병헌). 왕의 용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이 흉내내며 글도 읽을 줄 아는 하선에게 왕과 허균은 만족하고, 하선은 이따금씩 왕의 미행을 감추는 대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해가 알 수 없는 독극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허균은 왕의 변고를 감추기 위해 하선을 궁으로 데려온 뒤 왕을 은밀한 곳에 숨겨 치료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선은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광해를 대신해 조선의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허균과 조내관(장광) 두사람 뿐. 비밀이 드러날 것에 대비해 "비빈들, 특히나 중전(한효주)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지지만....

 

 

 

 

 

 

조선의 여러 왕들 가운데 조선시대와 대한민국 시대에 가장 큰 평가의 변화를 겪은 임금을 하나 꼽으라면 광해군을 빼고 생각하기 힘들 듯 합니다. 연산군과 함께 패륜과 폭정의 상징이었던 광해군은 20세기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현명한 판단으로 전쟁 개입을 피하려 했던 외교의 대가요, 대동법을 도입한 선각자에다 임진왜란의 피해 극복을 지휘한 위대한 지도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사실 다들 아시겠지만 조선은 충보다도 효를 더 강조했던 윤리의 나라였습니다. 20세기 초, 전국에서 모인 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진공하려던 의병장 이인영이 모친상을 당한 몸으로 군을 이끌 수 없다며 귀향해 상을 치르고 체포된 것이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광해군 시대를 기록한 사서의 표현에서는 광해군의 정책에 대해 일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해당하는 인목대비(선조의 계비)를 유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패륜'을 저지르고서는 왕위를 제대로 보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해도 지도자를 선정할 때 개인적인 윤리 차원의 '검증'이 필요 이상으로 중시되는 걸 보면 이건 한국인의 내재된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광해에 대한 아쉬움이 이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슷하게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세종 때라는 배경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지만, 이 '광해'는 비슷비슷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시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모든 시대극은 그냥 시대극으로만 그쳐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일본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가 "나는 단지 내 이야기에 가장 맞는 시대적 배경을 고를 뿐"이라고 말한 이후 이건 상식이 됐죠.

 

'광해' 역시 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이걸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광해' 역시 이런 부분에서 다소 무리수가 보이지만,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팩션 가운데 그래도 '역사의 무게'에 대한 인식에선 확실히 한발 앞서 있는 영화가 바로 '광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게 '광해' 속의 당시 정치 상황이 역사에 기록된 모습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존중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뭐 '높은 것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아랫 것들은 사소한 의리에 따라 목숨을 건다'는 식의 지나치게 도식적인 배치는 아니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이를 포함해 '광해'에서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이야기'의 황금비율입니다. '둘 다'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배우 중 하나인 류승룡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류승룡의 움직임에 따라 두 이야기의 배분이 조절되기 때문이죠. 류승룡이 중심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코믹함이 돋보이는 배우 김인권이 강직함을 표상으로 하는 도부장 역을 맡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칼 관련 에피소드, 즉 김인권의 "저~~~~~언 하~~~ 히잉" 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전반적으로 코미디와 관련된 '호흡'과 '박자' 면에서 추창민 감독은 장인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배우들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병헌의 호연은 굳이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하선과 왕을 가르는 선이 그리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왕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하선이 지나치게 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선이 지나치게 시정 잡배처럼 보여선 안된다'는 제작진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하선1(광대놀음을 하던 원래 하선)이 하선2(왕이 된 뒤 변모한 하선)로 바뀌어 가면서 이병헌의 연기는 빛을 발합니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왕 하선2와, "용상에 앉았던 천한 것을..."이라며 서늘한 분노를 감추는 광해는 선명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이병헌은 세 인물을 연기하는 셈이 됩니다. 물론 광고 영화인 '인플루언스'에서 이미 1인3역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하선이라는 인물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 인물 가운데서도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하선2'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효주는 이미 사극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비련의 중전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아우라를 풍겼습니다. 역할의 특성상 눈에 띄는 자극적인 연기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광해'의 중전 역할을 할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객의 공감'입니다. 즉 '저런 중전이라면 하선이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해 가면서도 보호하려 기를 쓰는게 당연해'라는 생각을 줄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효주의 캐스팅은 탁월했습니다.

 

 

 

 

 

가짜와 진짜 사이의 에피소드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입니다만 '광해'에서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게무샤'의 영향이 좀 더 느껴집니다. 가짜가 어느 한 순간 자신의 가능성을 각성하고, 진짜가 되어도 큰 무리가 없는 '가짜 진짜'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기억나는 영화는 션 코너리 주연의 고전 영화 '왕이 될뻔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 입니다. 국내에서 극장 개봉은 없었던 듯 하고, TV에서 방송될 때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달았던 작품이죠. 인도에 파병됐던 두 명의 영국군 낙오병이 네팔 부근의 오지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중 한 병사(션 코너리)는 몇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으로 오해받게 되고, 서서히 그 자신도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나 혼동을 일으킵니다.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고, 쌍둥이가 나오지도 않지만 가짜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새로운 삶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사소한 성공들, 도주의 기회, 자발적인 거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비참한 몰락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은 광해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양쪽 영화 모두 성공적입니다.

 

(DVD 출시명은 '왕이 되려고 한 사나이'로군요.)

  

 

 

'광해'에서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빛의 사용입니다. 진짜 왕 광해는 빛을 등에 이고(후광이라고 할까요^) 있거나, 인공적인 조명의 도움을 받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선은 왕위에 있을 때도 자연광 앞에 노출됩니다. 이런 배치는 '태어난 왕'과 '만들어진 왕'의 차이를 은연중에 관객에게 심어주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입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얼른 보세요.

 

 

 

P.S. 사실 광해군은 33세에 왕이 됐고 중전 유씨는 당시 30세. 배경이 광해군 8년이므로 광해군은 41세고 유씨는 40세...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광해'의 로맨스가 깨질 우려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도 포스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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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 2, 실베스터 스탤론, 척 노리스] 1985년, 노량진 대성학원 옆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다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커피는 한잔에 천원. 그런데 특징이라면 차를 파는게 주업이 아니라 비디오를 틀어 주는게 주업이라는 점이었죠.

 

비디오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시절에 '빨간 비디오'를 틀어 주려면 시간이 그래도 새벽 한시는 넘어야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야한 영화가 아니라, 당시 극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할리우드의 최신작 영화들을 틀어 주는 전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커녕 삐삐도 없었고,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음반 산업의 주축이던 시절, 어디서 그런 영화들을 구해 오는지 매우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여름, 학원생들 사이에서 당시 화제의 영화였던 '람보2'를 '그 다방'에서 틀어 준다는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극장 개봉 전이기도 했거니와, 극장 영화 표값이 한 2500원 정도 했던 시절. 가 보니 다방 안에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항의로 상영(?)이 중단될 뻔 했습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재수생들이었지만 보다 보니 주인공이 실베스터 스탤론이 아니고, 영화도 람보2가 아닌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날 본 그 영화가 람보2였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명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항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진짜가 아닌 짝퉁 람보2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넘어갈 만큼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월남전 배경 영화는 흔치 않았던데다 서부극 못잖게 '쏘면 다 맞는' 영화는 현대전 영화에서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죠. 아울러 수염 기른 남자주인공 또한 사뭇 매력적이었습니다.

 

 

 

 

짐작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 영화는 'Missing in Action(1984)'이었고, 그 주인공은 척 노리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재수생의 머리 속에서 인연을 맺은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랠론은 27년만에 한 영화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익스펜더블2'.

 

 

 

1편을 보신 분이나 안 보신 분이나, 아무 상관없는 줄거리지만,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댐), 양(이연걸) 등은 1편의 악역이었던 거너 젠슨(돌프 룬그렌)을 멤버로 받아들여 여전히 용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는 네팔 어딘가에서 이들이 포로가 된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구해 주는 장면. 신나는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정부 일을 하고 있는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가 과거의 부채를 거론하며 로스에게 동구권 어딘가에 추락한 비행기 금고에서 모종의 물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들을 돕는 요원으로 젊은 중국인 여성 매기(여남餘男, 흔히 위난이라고 불립니다)가 파견되죠. 하지만 로스 일당은 현장에서 빌런(장 클로드 반담) 일당에게 기습을 당해 물건도 빼앗기고 인명 피해도 입죠. 분노한 로스는 매기의 도움으로 빌런 일당을 추격해 러시아로 갑니다.

 

 

 

 

이후의 전개에도 놀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전도, 복선도, 보는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편은 악당들을 뭉개 버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결론을 향해 영화는 달려갑니다.

 

물론 이건 영화를 보기 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영화 한 편에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 나오고 이들이 같은 편인데 대체 누가 그걸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장 클로드 반담? 어림없죠.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마음 자세는 - 당연히 그렇겠지만 - 지금 현재가 아니라 '왕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왕년'의 극장가를 뒤흔들었던,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바로 그 액션 영웅들이 얼마나 늙고 몸도 굼뜨게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은지원이나 문희준이 여전히 팬들을 졸도하게 할만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응답하라 1997'은 그 시절을 보냈던 연령층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유머 역시 철저하게 관객의 추억에 기대고 있죠.

 

 

더 알아듣기 쉽게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총알이 떨어졌다. I'll be back('터미네이터'의 상징적 대사).

브루스 윌리스: 그만 좀 돌아와! 이제 내 차례야. (제발 그 'I'll be back' 좀 그만 써먹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래. Yippe-kai-yay ('다이 하드'에서 맥클레인의 상징적 대사)

 

 

 

 

1편에서 이미 그런 정서를 이용해 꽤 많은 돈을 번 '익스펜더블' 프로젝트는 2편에 들어가면서 부커(척 노리스)와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강하고,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까지 실전에 투입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사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역시 추억의 명화인 '지옥의 특전대(Wild Geese)'에 가깝지만, 그 어떤 비장미도 찾아볼 수 없다는게 특징이죠. 영화 중반에서는 어쩐지 '황야의 7인(혹은 '7인의 사무라이')' 쪽으로 흘러가려는 듯한 느낌이 잠시 조성되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으시는게 좋습니다.

 

1편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몇몇 추가 멤버들과 함께 구질구질한 멜로드라마가 아예 삭제됐다는 것 뿐인데, IMDB 평점(6점대에서 7점대로), 로튼토마토 지수(41->64) 모두 상승했습니다. 글쎄 뭐가 그리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긴 하지만, 지금의 3,4,50대 남성 관객들이 두어 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고 1,2,30년 전을 그려 보기엔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뭐 여자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그런데 굳이 따져 보니 척 노리스는 70대였군요.^^ 진짜 액션 그랜드파...

 

척 노리스 1940.3.10

실베스터 스탤론, 1946. 7.6.

아놀드 슈워제네거 1947.7.30

브루스 윌리스 1955.3.19

돌프 룬그렌 1957.11.3

장 클로드 반담 1960.10.18

이연걸 1963.4.26

제이슨 스타댐 1967.9.12

 

 

 

 

자, 이제 3편에서는 누가 기다리고 있나 보겠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1962.7.31)와 스티븐 시걸(1952.4.10)이 있군요. 1편에서 악역을 거부했던 반담도 가세했으니 시걸에게는 다이어트만 남은 셈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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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좀 다양해졌습니다만 예전엔 야외에 나가면 먹는 음식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토종닭 백숙, 민물매운탕, 닭도리탕(닭볶음탕이라고도 합니다만...)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오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 바로 토종닭 백숙이라고 하겠습니다.

 

토종닭을 먹어 본 일반인들에게 토종닭의 특징을 물으면, 백이면 백 '질기다'고 합니다. 저도 그리 많이 먹어 본 것은 아니지만, 다릿살조차도 가슴살 못잖게 퍽퍽하고 질겼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야외까지 나와서, 비싼 토종닭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런데 최근 방송된 '미각스캔들'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먹어 온 토종닭은 토종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군요.

 

 

 

 

토종닭이 질긴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댑니다. 요즘 많이 먹는 일반 양계장 닭은 한정된 공간에서 먹이를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자라기 때문에 지방 함량도 높고 살이 무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토종닭은 풀어 놓고 기르기 때문에 온 몸이 근육질(?)이고, 그래서 질기다는 것이죠.

 

이때문에 시골 토종닭 전문점(?)에 가 봐도 주문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토종닭이라 삶는데 오래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또 그렇게 오래 삶아서 나온 닭도 턱이 아플 정도로 질긴게 보통이죠.

 

 

 

 

그렇지만 방송에서 직접 닭을 삶아 본 결과, 토종닭이라고 살이 질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반 육계와 비교해 볼 때 비슷한 시간을 삶으면 거의 비슷하게 살이 문드러집니다.

 

게다가 맛을 보는 사람들도 "생각과는 달리 쫄깃쫄깃하다"고들 합니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현재 유통중인 공인 토종닭, '우리맛 닭'과 '한협 3호' 중 '한협 3호'를 삶은 것입니다.

 

 

 

 

그럼 대체 왜 식당에서 파는 토종닭은 질겼던 것일까요. 이유는 진짜 질긴 닭, 즉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노계들이 토종닭으로 둔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산업계에서 규정하는 노계란 그냥 나이 먹은 닭이 아니라 산란종의 닭 가운데서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알 생산력이 없어 헐값에 팔려 나온 닭이라는군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토종닭은 질기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오히려 역이용해서, 본래 요리용이 아닌 닭(노계는 보통 동물 사료나 닭고기를 이용한 소시지 등 육가공식품용으로 팔린다고 합니다)을 속여 팔고 있었던 겁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이런 '질긴 토종닭'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보면 몇해 전 불처럼 일어났던 '수타면 논란'이 생각납니다.

 

방송을 통해 면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뽑는 '수타면 짜장'들이 각광받으면서 너도 나도 수타면으로 짜장면을 요리한다고 나섰을 때 일입니다. 이때 수타면을 처음 먹어 본 사람들은 '이게 국수냐 수제비냐' '수타면 수타면 하더니 영 아닌 것 같다'는 혹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수타면이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 '손으로 국수를 뽑아 내기는' 하되 기술자도 제대로 배운 기술자가 아니고, 손님이 늘자 시간도 부족하고 하다 보니 대충 만들다 만 수타면이라 국수의 굵기가 일반 기계면의 1.5~2배 가량 되는 수타면이 나온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국수에 양념이 제대로 배지도 않고, 최악의 경우 국수가 덜 삶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본래 장인들이 만든 수타면, 약간 과장을 보태면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수타면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당시의 '수타면 붐' 때문에 오히려 수타면을 거부하게 된 것이 어쩌면 근래의 토종닭 상황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장 저부터도 '토종닭=질기고 맛없는 닭'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토종닭은 위에서 말했듯 '우리맛닭'과 '한협 3호' 두 종류입니다. 그나마도 6.25 등을 거치며 아예 토종닭의 씨가 말랐던 것을 어렵게 종을 보존해 길러낸 것이 이 두 종류라는군요.

 

일반적으로 진짜 토종닭은 다리가 늘씬하고 발달해 있어 육안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맛닭은 발목이 저렇게 검은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또 일부러 닭을 염색하기라도 하는 작자들이 나타날까 겁납니다.

 

문제는 일반 육계가 30일이면 상품으로 나오는데 비해 토종닭은 60일 이상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2배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고급 음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나고야코친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뭐 그냥 '닭고기가 뭐 그리 비싸'라고 할게 아니라, 명품은 명품으로 취급하는 태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이런 표지가 붙은 곳에선 안심하고 진짜 토종닭을 맛볼수 있다는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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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페라를 가끔 봅니다만, 거기에 대해 포스팅하는 건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네가 언제부터 오페라 타령이냐고 면박을 당할 걱정도 좀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철저한 무관심을,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는 지식 부족에 대한 지적이나 받을 거라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하지만 2012년 8월24일의 위대한 공연에 대해서는 뭔가 개인적으로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는 정명훈 지휘, 서울 시향의 연주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국내 초연이 이뤄졌습니다.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음악당인 이유는 무대 진행이 없는 스탠딩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국내 초연이라니... 바그너 오페라 공연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의 공연이 이뤄진 사례 자체가 대단히 드물더군요. 저도 언젠가 '탄호이저'를 공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자그마치 1979년이더군요. 그 뒤로는 2005년 일본 오페라단 초청 공연, 그리고 2009년의 바그너협회 공연 정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08575)

 

 

 

 

물론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무대 장식이나 대형 합창단 등 '규모'가 크게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무대가 거의 필요없어 이런 형식의 콘서트 퍼포먼스에 적절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도 힘든 것은 일단 공연 시간의 문제가 크다는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대개의 오페라가 4시간을 넘나드는 만큼 연주가 어렵고, 그 어려운 공연을 소화해 낼만한 바그너 전문 성악가(한 관계자에 따르면 '소처럼 노래하는 성악가'^)가 드물다는게 문젭니다. 물론 국내에 없다는 거지 한국이 낳은 위대한 베이스 연광철 같은 바그너 전문 가수들은 본고장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단 공연 개요부터 정리.

 

트리스탄과 이졸데

 

지휘 정명훈

연주 서울 시향

출연

테너 (트리스탄) : 존 맥 매스터 _ John Mac Master, tenor (Tristan)

 

 


소프라노 (이졸데) :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_ Irmgard Vilsmaier, soprano (Isolde)

 



메조소프라노 (브랑게네) :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_ Ekaterina Gubanova, (Brangane)

 


 
바리톤 (쿠르베날) : 크리스토퍼 몰트먼 Christopher Maltman, baritone
베이스 (마르케 왕) : 미하일 페트렌코 _ Mikhail Petrenko, bass (Konig Marke)
테너(젊은 선원, 목동) : 진성원 _ Sung Won Jin, tenor (Ein junger Seemann, Ein Hirt)
테너(멜로트) : 박의준 _ Eui Joon Park, tenor (Melot)
베이스(조타수) : 김장현 _ Jang Hyun Kim, bass (Ein Steuermann)

합창 : 국립합창단 _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합창 : 안양시립합창단 _ Anyang Civic Chorale
연주 : 서울시립교향악단 _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공연의 우수함을 제가 감히 평할 수는 없겠지만, 전막 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바그너 오페라는 '마이너 공연'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날 공연은 이미 두어달 전에 매진이었습니다. 저도 공연 약 5일 전, 예매 취소된 표를 운 좋게 사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발적 관객'은 역시 '공짜표 관객'과는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일단 국내 어지간한 오페라 공연과 기침소리의 양에서 비교가 안 될만큼 정숙성이 뛰어났습니다. (제발 기침 참기 힘든 분들, 지루한 공연 보고 있으면 목이 간질간질해서 미칠 것 같은 분들, 굳이 예술의전당까지 와서 기침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비싼 공짜 표도 있는데 오페라 한번 보러 갈까' 하시는 분들, 괜히 가래 돋는 공연 보면서 기침 하지 마시고 차라리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1막 끝나고 다 가실 거잖습니까.) 아무튼 지금껏 본 어느 오페라 공연과 비교해도 만족도 면에서 뛰어난 공연이었습니다.

 

(괜히 또 흥분... 저도 뭐 사실 가끔 졸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명한 유럽 중세의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1막

아일랜드에서 콘월로 건너가는 배 위. 트리스탄이 숙부인 웨일즈와 잉글랜드의 왕 마르케의 신부감인 이졸데를 호위하고 가는 여정입니다. 아일랜드는 마르케 왕의 군대에 패했고 강화를 위해 공주인 이졸데를 왕비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배 위에서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미워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졸데의 약혼자였던 아일랜드 기사 모롤드가 마크 왕을 선제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모롤드는 목이 잘려 돌아옵니다.

얼마 뒤 아일랜드 해안에서 이졸데는 표류된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졸데는 비전의 의술로 그를 살려내는데, 본인은 가명을 대지만 이졸데는 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기사 트리스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트리스탄은 건강을 회복하고 아일랜드를 떠나지만 얼마 뒤 마르케 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와 이졸데를 왕의 신부감으로 데려간다고 말합니다.

배 위에서도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눈길을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라고 부르며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시녀 브랑게네를 시켜 가전의 비약 중 죽음의 약을 가져오게 합니다. 적국의 왕비가 되는 치욕을 감내할 수 없으니 원수 트리스탄과 함께 죽겠다는 거죠.

하지만 브랑게네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놓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는 대신 불같은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2막

콘월의 성에서 마르케 왕의 왕비가 된 이졸데와 트리스탄은 밤을 틈타 밀애를 이어갑니다. 브랑게네는 트리스탄의 친구 멜로트가 눈치챈듯 하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이졸데에겐 조심성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 왕이 사냥을 떠난 사이 밤이 새도록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밀회를 즐깁니다. 이들에겐 밤이 해방이요, 낮은 죽음입니다.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죽음은 이들에겐 하나입니다.

 

So sturben wir, um ungetrennt. 우리 죽어요, 떨어지지 말고

ewig einig ohne End' 끝없이 영원한 하나로

 

하지만 날이 새자 마르케 왕과 멜로트가 들이닥칩니다. 마르케 왕은 '네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믿을수 없는 미녀를 데려오더니 이게 무슨 배신이냐'라며 참혹한 배신감을 토로합니다.

변명할 수 없는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같이 죽겠느냐고 묻고, 이졸데는 호응하는 가운데 이들을 용서할 수 없는 멜로트가 공격해 옵니다. 트리스탄은 싸움에 응하는 대신 멜로트의 칼에 몸을 던져 치명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3막

브르타뉴에 있는 트리스탄의 성. 충실한 시종 쿠르베날에 의해 브르타뉴로 옮겨진 트리스탄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 중태였지만 이졸데가 오고 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연인의 얼굴을 보려는 일념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졸데와 마주하는 순간,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절망하는 이졸데. 이어 마르케 왕과 멜로트, 브랑게네가 다른 배로 따라와 상륙합니다. 쿠르베날은 이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잡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공격해 멜로트를 죽이고 자신 또한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마르케 왕은 이들을 용서하고 두 사람을 맺어 주기 위해 온 것이었죠.

결국 비탄에 빠진 이졸데는 유명한 사랑의 죽음(liebestod)를 부르고 쓰러져 죽어갑니다.

 

이 아리아가 결국 한편의 오페라를 압축한 느낌을 줍니다. 트리스탄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이름조차도 어원은 '슬픔'이라는군요), 어둠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다가 연애마저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졸데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가 이승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저승으로 미뤄 버립니다. 이 정서가 총정리된 것이 바로 이 아리아입니다.

 

이 오페라가 초연될 무렵(1859년)에는 이 노래를 가리켜 '로렐라이의 노래와 가장 유사한 노래'라는 평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공의 넋을 빼어 배를 침몰시켰다는 로렐라이의 요정이 부른 노래가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을 거란 얘기죠. 그럴싸하게 이승의 노래가 아닌 듯, 노래는 몽환적이고 관능적입니다.

 

전설적인 바그너 가수 비르기트 닐손의 노래입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이졸데 전문가 발트라우트 마이어의 버전.

 

 

마이어가 부른 이 노래의 버전만 해도 10여개 검색될 정도.

 

제가 갖고 있는 DVD도 마이어의 1995년 바이로이트 판입니다.

 

 

 

르네 콜로와 기네스 존스가 부른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듀엣입니다. 이 오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리베스토드'의 멜로디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사실상 같은 노래인 셈입니다.

 

중세 전설의 트리스탄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됩니다. 서로 뒤섞이는 전설의 속성에 따라 어떤 버전에서는 트리스탄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가운데 한 멤버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영화 '킹 아서'에도 트리스탄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는 랜슬로트도 같이 나오는게 좀 어색합니다.

 

랜슬롯과 트리스탄이 공존하기 힘든 것은, 아서 왕의 이야기에서는 본래 랜슬롯이 트리스탄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이자 군주인 아서를 배신하고 왕비 기네비어와 불륜을 맺는 주역 말입니다.

 

그래서 아서 왕 이야기를 다룬 최고의 영화 '엑스칼리버'에서는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밀회 장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사용합니다. 관능적인 느낌이 일품입니다.

 

 

 

뭐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바그너 음악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트로에서부터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례' 음악을 쓰고 있죠. 이 음악은 마지막 장면, 아서 왕의 죽음 때에도 되풀이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은 그 당시까지 마이너 음악이었던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 지만, 아서 왕 전설과 성배, 그리고 이 영화 속 퍼시벌이 바로 바그너 악극 '파르지팔'의 주인공이라는 점 등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의 바그너 사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랜슬롯-기네비어 이야기와 트리스탄-이졸데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약물'의 존재입니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랜/기 커플과는 달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약물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약물의 존재는, 마지막에 마르케 왕이 두 사람을 용서하는 이유(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뭔가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약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애절함도 훨씬 덜하죠. 물론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스토리로 보면 이졸데가 트리스탄에게 그토록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처음에 그를 치료하고 살려 보낸 것이 이미 감정의 동요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트리스탄이 배 위에서 한사코 이졸데와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것, 또 본능적으로 이졸데가 건네는 약이 독약이라고 느끼면서도 복용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 트리스탄이 기회만 있으면 죽고 싶어 안달인 염세적인 인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 이졸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미 끌리고 있었고, 약물의 역할은 도덕률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의 본능을 일시에 폭발시킨 정도...라고 보는 것으 적절한 해석일 듯 합니다. 그리고 마르케 왕이 굳이 미약의 핑계를 댄 것은 사랑하는 조카의 사랑을 용서해 주기 위한 언턱거리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 하루 빨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포함해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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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없는 꽃집'이라는 일본 드라마는 사실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제목은 스치듯 들어본 기억이 있었지만, 사실 일본 풍의 순정 멜로 드라마는 제게 대부분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호평일색인 '1리터의 눈물' 같은 드라마도 힘겨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는 '미녀 혹은 야수' 풍의 코믹터치입니다.)

 

게다가 여주인공이 다케우치 유코라는 것도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미인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수는 없지만 취향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런데 어쨌든 회사 일 때문에 이 '장미없는 꽃집'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네. 2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장미없는 꽃집'은 정말이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드라마였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의 내숭이라고나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드라마는 '전혀' 순정 멜로 드라마가 아닌 겁니다.

 

 

 

줄거리. 에이지(카토리 신고)는 작은 역 앞 꽃집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30대 가장. 아이 엄마는 딸 시즈쿠(야기 유키)를 낳다가 죽었고, 그 추억 때문에 이 꽃집은 장미를 팔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미모의 맹인 여성 미오(타케우치 유코)가 꽃집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외로운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게 됩니다. 여기에 우연히 에이지에게 얹혀 살게 된 호스트(마츠다 쇼타)까지 얽히며 미오와 에이지의 밀당이 시작됩니다.

 

...뭐 이렇게 쓰면 역시 전형적인 순정 멜로드라마의 시작입니다. 남자 주인공 에이지는 심지어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도 일부러 노인 뒤에 줄을 설 정도로 착하디 착한 남자. 이유는 "성질 급한 사람이 노인 뒤에 줄을 섰다가 빨리 계산하지 못한다고 구박이라도 받을까봐"입니다. 당연히 일본 드라마의 남주답게 절대 애정 문제에서도 박력이나 패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오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 미오에게 자신의 흑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저쪽은 처녀고 나는 애아빠...'라는 식의 한국적인 생각 아닙니다. 그냥 일본 풍으로 주저하는 겁니다. 아주 그냥.

 

그런데, 문제는 이게 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선 2회쯤 되면 미오가 사실은 맹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사실. 즉 처음에 설정되어 있던 인물들의 구조가 회를 거듭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구성된다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입니다. 즉 순정 멜로인 줄 알았던 장르가 미스터리 휴먼 성장 드라마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죠.

 

 (아니...뭐... 그렇다고 링은 아니고...)

 

출연진입니다.

 

薔薇のない花屋

 

2008年3月24日放送終了

 

香取慎吾  汐見英治
竹内結子  白戸美桜
釈由美子  小野優貴
松田翔太  工藤直哉
八木優希  汐見 雫 

 

 


 

가토리 신고는 일본 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들어봤음직한 슈퍼 아이돌 그룹 SMAP의 막내입니다. 아무리 막내라 해도 77년생.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쨌든 팀내 캐릭터는 장난꾸러기 막내라서 이전까지 '손오공' 류의 캐릭터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황당무계한 변신이 그의 주업이었지만, '장미없는 꽃집'에서는 진지한 정극 연기자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친구가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팬들이 보면 큰일나겠군요.)

 

 

 

타케우치 유코. 일본을 대표하는 순정파 여배우.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선이 특기입니다. 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을 휩쓴 이른바 민폐형 여배우 캐릭터의 화신이라 할 수 있죠.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기무라 타쿠야와 공연한 '프라이드'.

 

2005년 나카무라 시도와의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지했지만 2008년 이혼과 함께 복귀합니다. 그 복귀작이 바로 이 '장미없는 꽃집'입니다. 그 뒤로 다시 승승장구. 최근에는 미국 ABC 드라마 '플래시포워드'에도 출연합니다.

 

 

 

아마도 '로스트'의 김윤진이 성공을 거둔 이후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아시아 여배우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래시포워드는 시즌1으로 제작 중단.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는 타케우치가 아니라 시즈쿠 역의 아역 야기 유키입니다. 눈물 연기는 기본. 물론 '백한번째 프로포즈'를 쓴 천재 작가 노지마 신지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 중반에 나오는 명장면 '시즈쿠 찾기' 등을 통해 야기는 일본 최고의 아역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밖에 눈길을 끄는 배우는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마츠다 쇼타,

 

 

 

그리고 일본의 야쿠자 전문 배우 데라지마 스스무가 아직도 '청춘의 로맨스'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에이지 앞집의 카페 주인으로 등장, 웃음을 자아냅니다.

 

 

한번 보시면 다음 진행이 궁금해지는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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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리즈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마법의 섬 Enchanted Island)'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로크 오페라 가운데(특히 헨델의 작품 중에) '마법의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마법의 섬'은 21세기의 음악가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와 '한 여름밤의 꿈'을 토대로 헨델, 비발디, 그리고 라무(Jean-Philippe Rameau)의 작품들 중 분위기에 맞는 곡을 골라 만들어 낸 혼성 모방(pastiche)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의 창작물이되 17~18세기의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는 작품인 겁니다.

 

이런 저런 요소들을 고려할 때 '마법의 섬'은 아름다운 무대와 적절한 유머 감각, 그리고 화려한 출연진의 명연기로 매우 훌륭한 볼거리 역할을 했습니다. 노래들이 워낙 반복이 심한 바로크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덕분에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40분의 공연 시간은 좀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번쯤 볼만한 작품이라는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속물인 저 같은 관객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마법의 섬'에 등장한 소프라노 여가수들이 하나같이 날씬한 미인들이더라는 겁니다.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 무슨 조화인지 모바일 버전으로는 글 중간이 뚝 끊어져서 핵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내용은 PC 버전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본다'고 말하면 '그 지겨운 걸 어떻게?'라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배나온 아저씨들과 한팔로 안을 수도 없는 뚱보 아줌마들을 절세의 미남 미녀라고 주장하는 공연을 대체 어떻게 보느냐'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마법의 섬'을 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듯 합니다.

 

 

 

 

 

 

 

온 출연진이 모두 스타급이지만 그보다는 출연하는 소프라노들의 모습이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일단 요정 에어리얼 역의 다니엘 드니스(Danielle De Niese). 화려한 외모 만큼이나 화려한 가창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프라노입니다.

 

 

'마법의 섬'에서는 좀 과한 분장 탓에 외모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화사한 외모는 물론이고, 탁월한 콜로라투라로 명성이 높습니다. 특히 바로크 풍의 경력이 두텁죠. 그가 부르는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입니다.

 

 

그 다음은 헬레나 역을 맡은 레일라 클레어(Layla Claire).

 

 

물론 작은 역이지만, 무대가 메트로폴리탄인 만큼, 작은 역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 위상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섬'에서의 조연을 다른 여타 오페라의 조연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 2곡은 자기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BBC 프로그램에서 키리 테 카나와의 레슨을 받고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란다 역의 리셋 오로페사(Lisette Oropesa)입니다.

 

 

같은 메트로폴리탄의 '라인의 황금'에서는 라인의 세 처녀 중 하나로, '지그프리트'에서는 무대에 나서지 않는 새 역할로 참여했던 소프라노입니다.

 

물론 메트로폴리탄에서는 작은 역이지만 이미 다른 무대에선 광란 신으로 유명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적도 있는 소프라노. 머잖아 월드 클래스 주연급으로 도약할 것이 기대됩니다.

 

노래하는 모습.

 

 

그런데 오로페사의 과거 행적을 굳이 살피려고 한 것도 아닌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건 다 구글의 과잉 친절 때문입니다.

 

 

 

설마 싶지만 설마가 아닙니다. 놀랍습니다. 이목구비는 똑같은데 사람이 절반...

 

 

스타덤을 위해 엄청난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이 드러나 보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채식을 이용한 엄청난 다이어트가 있었다는군요.)

 

물론 일찌기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선생이 '이미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의 주역 소프라노들은 다이어트를 마쳤다'고 하셨듯, 아무리 오페라가 고급 예술이라 해도 '관중의 눈'에 최적화된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반론은 오페라 주역을 고를 때 가장 큰 기준이 '미모+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무조건 일단 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뭐 이 논란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어쨌든 추세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가 정말 당대 최고의 가창력 때문에 스타 소프라노가 된 것이냐, 아니면 미인이기 때문에 실력 이상으로 평가받은 것이냐 하는 얘기도 쉽게 끝날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네트렙코가 빌리 데커 판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DVD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오로페사의 무서운 다이어트도 결국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겠죠.

 

아무튼 '마법의 섬'은 메가박스에서 상영합니다. 단 금요일과 일요일만 상영하는 듯 하니 꼭 시간표를 확인하시길.

 

 

P.S. 인공지능이 적용된 덕분인지(?) 유튜브에 몇 차례 윗글에 나오는 이름들을 입력했더니 뜬금없이 이런 동영상을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발견한 몰도바 출신의 신예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Valentina Nafornita). 25세. 성악가라기보단 모델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도니제티, '돈 파스콸레' 중에서 '그 눈길이 기사의 심장을 사로잡아(Quel guardo! so anch'io la virtù)'.

 

 

지난해 BBC 주최로 카디프에서 열린 신예 성악가 발굴 오디션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당시 5위 안에 들었던 성악가 가운데 한국의 이혜정(진짜 가운데)도 있었더군요. 나폴니타는 맨 오른쪽.

 

아무튼 앞으로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집니다.

 

 

http://operalively.com/forums/showthread.php/545-Of-these-singers-who-is-the-love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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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X파일 냉면 육수의 불편한 진실] 냉면 육수에 대한 맛집 검증 프로그램이 화젭니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에서 2주 연속으로 냉면 육수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첫번째 방송 내용은 '소위' 냉면 전문점들의 냉면 육수 가운데에는 진짜 쇠고기가 1%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라 많은 공분을 샀습니다. 설탕과 식초, MSG와 쇠고기맛 조미료(즉 다시다)만을 배합해서 쇠고기 육수 맛을 낸다는 것이었죠. 워낙 신뢰도 높은 방송이라 반향도 컸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송, 이번에는 냉면 한 그릇에 만원 안팎을 받고 있는 냉면계의 명가들은 어떤지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검증 결과는 '사실상 MSG를 전혀 쓰지 않는 집은 없다'. 여기에 대한 실망감도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정말 온당한 것일까요?

 

 

 

 

자칭 냉면 마니아로서, 방송 내용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냉면 육수의 문제는 JTBC '미각 스캔들' 에서 먼저 다룬 바 있습니다. 지난 7월15일 방송이 나간 '칡냉면의 비밀' 부분입니다.

 

 

 

 

 

 

위의 재료 표에서 '모도'라는 것은 닭고기 맛이 나는 분말 재료를 말합니다. 아마도 '아지노모토'의 '모토'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아무튼 이 내용에서 그치지 않고 '먹거리 X파일'은 칡냉면 아닌 그냥 냉면집에서도 고기 한점 들어가지 않은 육수로 냉면을 말아 낸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 검증 대상에는 서울 시내 곳곳에 널려 있는 수천군데의 일반 냉면집 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미식가들이 환장하는 유명 냉면집들도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방송에서 내려진 결론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냉면을 하는 집은 없는 것 같다'입니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서울 시내의 유명 냉면집 가운데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내는 집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부정하거나, 그동안 '이집은 미원 같은 거 쓰지 않는 집이야'라고 자신있게 냉면집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 온 사람들이 있다면 냉면 마니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인공 조미료를 넣은 맛과 넣지 않은 맛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일 겁니다.)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일단 우리가 냉면 육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차원을 나눠 생각해봐야 합니다.

 

1) 냉면에 전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 집

2) 좋은 재료를 써서 육수를 내되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사용하는 집

3) 명목상 고기를 쓰기는 하지만 맛의 핵심은 조미료에 있는 집

4) 고기 0%에 조미료를 육수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집

 

1차 방송은 4)의 비양심 업소들을 집중 고발하는 것이었고, 이 집들은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정말 나쁜 놈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방송 내용이 '아예 고기를 쓰지 않는 집'에 맞춰지는 바람에 3)의 업소들까지 '억울하다'고 나섰죠.

 

그리고 2차 방송까지 보고 나니 두 편의 방송 결과로 볼 때에는 2)의 집도 '문제 있는 집'으로 표현됩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 그러니까 2)의 업소들과 3)의 업소들이 똑같이 도맷금으로 넘어간 건 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2회 끝에 소개된 '진짜 좋은 맛이 나는 집'(동두천의 평남면옥으로 추정됩니다. 저도 이 집은 가 본 적이 없습니다)도 마지막에 주인이 '육수에 조미료를 조금 넣는다'고 말을 해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지 못합니다.

 

 

 

 

이를 포함해 두번째 방송에서는 서울 시내 세 곳의 유명 냉면집을 방문합니다. 첫번째 집은 처음엔 주인이 "냉면엔 안 쓴다"고 주장하다가 주방에서 조미료가 발견되자 당황하며 얼버무립니다. 두번째 집은 매장에선 안 쓴다고 하지만 육수 공장에서는 "한통에 420g정도 쓴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조미료를 안 쓰면 '육수에 물을 탔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아예 분량까지 말해줍니다. 세번째 집에서는 아예 "어떻게 안 쓰냐. 쇠고기맛 조미료는 안 쓰지만 백색 MSG 분말(미원)을 쓴다. 손님들이 이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뭐 많이 가시는 분들은 외관만 봐도 금세 알아차릴테니 그냥 실명으로 씁니다. 첫집은 봉피양, 둘쨋집은 을밀대, 세째집은 우래옥입니다. 예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특히 우래옥은 인공 조미료 사용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안 쓰면 손님들이 외면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입니다. 가끔씩 소위 맛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우래옥 냉면에 대해 '조미료 냄새 전혀 없는 육향' 어쩌고 할 때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이 그렇게 문제일까요.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재료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조미료로 비싸고 좋은 재료를 대신하려는 태도입니다. 넣어야 할 비싼 재료를 다 넣었다면, 그 맛을 더 화려하게 하기 위해 조미료를 넣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유는 두가지.

 

 

 

 

첫째. 저 위에서 거론한 세 집을 가 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냉면집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이는 반응을 아실 겁니다. 시중의 일반 냉면집에서 흔히 '갈비집 냉면' 혹은 '분식집 냉면'이라고 불리는 시큼달콤한 냉면에 중독된 사람들은 위의 집들을 가서 쉽게 '맛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거부감이 심하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반응은 '값은 더럽게 비싼데 밍밍하고 맹물같다'는 것입니다.

 

자, 좋은 재료를 투입하고 '조미료 많이는 안 쓴다'는 집들이 일반적인 손님들로부터는 '밍밍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럼 사람들로부터 '밍밍하지 않다'는 느낌을 줬던 집들의 경우는 과연 어땠을까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답은 뻔합니다. 다른 집보다 훨씬 덜 쓰고 있다는 게 확인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냉면을 만들어도 손님이 오지 않아 망하면 사실 식당을 한다는게 의미가 없겠죠. 우래옥이건 하동관이건, 분명히 조미료만 가지고 그런 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조미료만 써서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면 두 집 모두 이미 오래 전에 지금의 독보적인 위치를 잃었을 겁니다.

 

 

그 다음 두번째. 위에서 거론된 봉피양과 을밀대의 경우 제작진에게 "앞으로는 전혀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을밀대에서 육수 기술자는 "지금까지 우리는 다시마를 대량으로 써 왔다. 그래도 거기에 조미료를 조금 더 썼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쇠고기 육수에 다시마를 왜 쓸까요? 바로 다시마의 MSG 성분 때문입니다. 조개, 다시마, 새우, 게 등에 다량 함유된 MSG 성분이 음식 맛을 확 살아나게 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죠. 하다 못해 라면 한개를 끓여도 새우 몇마리나 게 다리 하나가 들어가면 국물 맛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가끔 '그건 천연 MSG'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바로 함정입니다. MSG는 다 같은 MSG입니다. 어디서 추출하건, 사람 몸에서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사용하는 양의 문제인데, 이미 FDA는 MSG가 유해물질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뭐 그래도 불안해 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굳이 맛을 돋구기 위해 소량 사용하는 걸 불안해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금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금도 많이 쓰면' 몸에 해롭죠.

 

앞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조미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인공 조미료'에 대한 이상한 결벽증을 씻어 내는데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이쪽

당신은 MSG 없이 살 수 있습니까? http://fivecard.joins.com/990

식객 맛집은 정말 MSG를 쓰지 않을까 http://fivecard.joins.com/1029

 

세줄 요약

 

1. 냉면 육수, MSG 사용 여부보다 고기 재료를 제대로 안 쓰는게 문제다.

2. 비싼 재료를 쓰는 냉면집들도 MSG를 넣는 건 손님 입맛 때문이다.

3. 재료를 제대로 쓰고 맛 때문에 MSG를 좀 넣는 것까지 반칙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P.S. 아울러 2편의 유명 냉면집 탐방에 참여한 두 명의 '전문가' 분들(어디 교수님이라는 한 분과 자연음식 연구가라는 분)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다른 음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냉면 맛을 보시는 두 분의 자세는 정말 실망 그 자체입니다. (아, 나머지 한 분은 진짜 전문가 맞습니다. 제가 압니다.)

 

특히 아무개 교수님이 평남면옥에서 "냉면 육수가 투명해서 특이했다"고 하시는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명가 중의 명가인 평양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을 단 한번도 가 보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P.S.2. 'MSG가 들어갔다'는 말에는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반응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 MSG 안 써 보려고 했더니 맛 없다고 손님 끊어져서 식당 망할 뻔 했다'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건 마치 설문조사 응답할 때에는 '교양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 좋다. 요즘 TV 너무 저질이다'라는 답이 1등이지만 실제로는 막장 드라마 시청률만 하늘로 치솟는 현실과 거의 똑같다는 느낌입니다. 이런게 인지상정이겠죠.

 

P.S.3. 위에 나오는 4개의 냉면 사진은 각각 어느 집 냉면일까요? 냉면 마니아라면 그릇과 고명만 봐도 아실 겁니다.^^

 

P.S.4. JTBC '미각스캔들'과 채널A '먹거리 X파일' 모두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답공개: 위에서부터 봉피양 - 한일관 - 을지면옥 - 평양면옥입니다.

              3번을 '필동면옥'이라고 하신 분도 정답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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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 Tony Scott(1944~2012)] 나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 혹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 많은 영화와 그 많은 감독중에 어떻게 그렇게 쏙쏙 뽑아내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5명을 뽑으라면, 저는 언제든 토니 스콧을 꼽아 왔습니다. (늘 '토니 스코트'라고 쓰다가 갑자기 '토니 스콧'이라고 쓰려니 좀 그것도 그렇습니다)

 

토니 스콧은 한동안 돈 들인 블록버스터 부문에서 '가장 돈이 아깝지 않은 장면을 뽑아 내는 감독'으로 꼽혀왔습니다. 한때 '불꽃같은 젊음'을 가장 강렬하게 그려냈던 스코트는 나이들면서 약간의 혼란을 겪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감독들 중 하나로 꼽혀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치의 뇌종양이었다니. (이 부분은 현재 가족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어디서 태어나 누구의 영향을 받아 최고의 감독이 되었는지 같은 위인전 풍의 내용은 사실 잘 모릅니다. 형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영국에서 광고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수백편의 광고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특유의 영상미를 완성시켰다는 정도.

 

특이한 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시나리오에 크레딧을 올린 경우는 거의 없더라는 것입니다. 24편의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프로듀서로 나선 경우는 그 두배가 넘지만 시나리오를 직접 쓴 건 딱 두번뿐. 그것도 정식 상업영화 데뷔 전의 소품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서 개연성이 지적됐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네. 제가 '말이 안 되는 영화'에 유난히 좀 민감한 편입니다. 그런 제가 봐도 스코트의 작품에 사용된 시나리오들은 탄탄한 플롯을 자랑합니다. 오히려 내로라하는 시나리오 라이터 출신 감독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런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꼽은 그의 대표작 5선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 문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라스트 보이스카웃'이나 '폭풍의 질주 Days of Thunder' 팬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맨 온 파이어 (2004)

 

한국 영화 '아저씨'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영화들 중 하나인 '맨 온 파이어'는 토니 스콧이 본격적으로 덴젤 워싱턴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잡은 작품으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크림슨 타이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 이후 스콧의 영화 5편 중 4편의 주인공이 워싱턴이라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스콧이 복수를 소재로 선택한 것은 비교적 초기작인 '리벤지' 이후 오랜만의 일입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다코타 패닝이라는 건 관객의 공감을 200% 올려놓을 수 있는 배치죠. 마지막 시퀀스에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지만, 음악과 함께 휘발유 냄새가 나는 영상은 수작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덴젤 워싱턴이 사실상 고정 주인공처럼 되면서 전작들의 경쾌한 스텝이 사라지게 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토니 스콧 자신이 그걸 원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4.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1998)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테크노 스릴러는 기존의 토니 스콧 영화와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전의 액션들이 좀 더 우직하고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면,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는 초시계로 시간을 재듯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신과 신이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영화입니다.

 

이미 고참 감독의 길에 접어든 스콧이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개인적인 소감은 주다스 프리스트가 '페인 킬러' 앨범을 내놨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 이후 스콧과 윌 스미스가 한번쯤 더 작품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최근작들이 훨씬 더 생기넘치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울러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전혀 비중 없는 도청 기술자 역으로 등장한 잭 블랙.

 

 '화성 침공' 등에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이때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Shallow Hal'도 뒷날의 얘기일 뿐. 만약 요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전혀 웃기지 않는 잭 블랙을 보는 것도 이색적인 느낌일 겁니다. 나름 '선악의 판단이 없이 하는 일만 하는 공대생'의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말이죠. (ㅋ)

 

 

 

3. 크림슨 타이드 (1995)

 

지금까지도 '잠수함 영화'를 한 편만 뽑으라면 뭐니뭐니해도 '특전 U보트(Das Boot)'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편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나머지 한 편은 '크림슨 타이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남자와 남자의 격돌, 그리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팽팽한 긴장은 이 영화를 '남자들의 영화'로 만드는 데 충분했습니다. 진 해크만과 덴젤 워싱턴의 충돌은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배우들이 꼭 참고해야 할 연기(아무리 알 파치노와 드 니로가 나온다고 해도 마이클 만의 '히트' 따위나 봐선 절대 연기가 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입니다.

 

'남성용 영화'의 거장이지만 스콧이 자주 쓰는 캐릭터에는 '의리'라는 요소가 매우 희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콧의 영화에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이란 서로 걱정하고 이해해 주는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대결하고, 상대의 가치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죠.

 

'탑 건'이나 '스파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역시 '크림슨 타이드'입니다.

 

 

또 이 영화를 잊지 못할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한스 짐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가끔은 그게 그거라서 구별하기 힘들다는 혹평도 있지만, 이 시한폭탄같은 긴장감을 주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는 '크림슨 타이드'의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비고 모텐슨과 설경구가 은근 겹쳐집니다. 물론 무명이었던 두 사람과 잠수함 내부 환경, 그리고 해군 제복의 느낌일 뿐. 캐릭터가 비슷한 건 아닙니다.

 

 

 

 

2. 탑 건 (1986)

 

IMDB에서 이 영화의 평점이 6.7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하긴 영어 사용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겠죠. 특히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 킬머의 "You can be my wingman"은 영화 사상 가장 느끼하고 유치한 대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청춘들은 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습니다. 불과 1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1986년의 세계 최대 흥행작인 것은 물론이고, 투입 대비 수익률로 따지면 역대 최상위의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신의 무명 배우 톰 크루즈'는 고른 치열이 빛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단번에 전 세계를 사로잡아 버렸고, 이후 4반세기를 꿰뚫는 스타의 화려한 탄생을 알립니다. 켈리 멕길리스가 조금 더 미인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뭐 다 바랄 수는 없죠.

 

창공을 쪼개는 영상미, 26년 뒤 한국에서 만들어진 어떤 영화의 플롯까지 지배하는 완벽한 전형의 제시, 톰 크루즈-발 킬머-멕 라이언까지 보석같은 신인들을 골라낼 수 있었던 제작진의 선구안까지(그게 스콧 혼자의 힘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전설이 될만한 작품입니다.

 

 

 

 (물론 톰 크루즈의 저 뒤쪽에 팀 로빈스가 큰 키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는 것도..)

 

특히 해롤드 폴터마이어, 조지오 모로더, 케니 로긴스, 스티브 스티븐스, 칩 트릭, 마이애미 사운드머신, 벌린(베를린^^), 그리고 여기에 제리 리 루이스와 라이처스 브라더스까지 얹힌 사운드트랙은 80년대 영화 중 무엇에 비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플래시댄스'나 '세인트 엘모스 파이어' 정도?

 

 

도대체 저게 무슨 노래야 싶은 분들을 위해 원곡을 준비했습니다.

 

 

영화 끝나기 전 이 노래가 원곡으로도 나오긴 나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1. 트루 로맨스(1993)

 

사실 '탑 건'을 제치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비록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이 '탑 건'에 미치지 못하는게 사실이라 해도 이만큼 액션과 로맨스, 판타지와 코미디가 절묘하게 배합된 작품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아드레날린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퀜틴 타란티노를 오늘날의 거장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 영화, '트루 로맨스'가 한 몫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글로 쓰고 고전 영화에서 보던 것이 실제 영상으로 가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공부가 되었을테니 말입니다. 비록 그가 이 시나리오를 헐값에 팔았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결말이 그가 직접 쓴 것과 상당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올리버 스톤이 만든 '내추럴 본 킬러스'보다는 이 작품에 훨씬 더 만족했다고 전해집니다.

 

(인터넷에서 '트루 로맨스'의 대본을 검색하면 타란티노의 원본과 실제 영화에 사용된 대본의 두가지가 검색됩니다. 결말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장면 장면에서 타란티노 풍의 장황한 대사가 많이 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본은 본래 '내추럴 본 킬러스'와 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전성기였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파트리샤 아퀘트의 연기도 그만이지만 막 스타 악역의 길을 밟기 시작한 게리 올드만, 딱 두 장면에 정신 빠진 모습으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오션스11'을 보는 듯한 조연들의 화려한 연기 경연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킵니다.

 

흔히 우리가 '낭만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달 밝은 가을 밤에 하우스 밴드가 멋진 테라스에서 쿨 앤 더 갱의 'Cherish'를 연주하는 광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romantic'이란 말의 의미에서는 '질풍노도'의 요소가 생략되어선 안됩니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격정이야말로 로맨티시즘의 이상인 것이죠. 이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중세 기사들의 무용담입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격정과 과장, 허세를 영화 '트루 로맨스' 만큼 잘  표현한 작품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크림슨 타이드'의 그 '한스 짐머'가 이런 달콤한 멜로디를 내놨다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입니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그린 병아리 그림이랄까요.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는 옛 이야기 하나. 알라바마(파트리샤 아퀘트)가 클레어런스(크리스천 슬레이터)에게 자신이 창녀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대사는 분명히 "I've been a call girl for exactly four days, and you're my third customer" 였는데 자막은 "당신이 내 첫 손님이었다구요"라고 뜨더군요. 1993년만 해도 수입사 관계자들은 주인공이 '창녀와 결혼한다'는 데 대한 도덕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보다 훨씬 전 얘기긴 하지만 '졸업'을 극장에서 볼 때는 더스틴 호프만의 연애 상대인 앤 밴크로포트가 자막상으로는 캐서린 로스의 엄마가 아니라 이모로 표현되기도 했더랬습니다. 어찌나 도덕적인지...)

 

 

이제 마무리를 위해 그의 다른 영화 사운드트랙 가운데 한 곡을 골라 봤습니다.

 

 

'폭풍의 질주'에서 뽑은 한 곡. 화이트스네이크라 불린 사나이 데이빗 커버데일이 부른 'Last note of freedom'입니다. 어쩐지 last note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길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가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길을 가겠다는 사나이의 각오입니다.

 

 

 

원제처럼 그야말로 '천둥의 나날'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토니 스콧, 돈 심슨(제작자), 로버트 타운(시나리오 작가), 제리 브룩하이머(제작자), 그리고 톰 크루즈. 스콧-심슨-브룩하이머가 구축했던 황금의 트리오에서도 이제 브룩하이머만 남았군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곡은 이 곡이라야 할 듯 합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분홍색 모자를 쓰고 이 음악에 맞춰 주먹을 흔들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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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신작 드라마가 그 전에 방송됐던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아무 허락 없이 베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슨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할 때 기존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베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죠. 

 

물론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콘텐트 강국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자국산 드라마를 편성하는 나라, 콘텐트 최강국인 미국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에 맥을 못 추는 나라는 생각보다 대단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외화'가 당당하게 핵심 시간대를 지켰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받은 해외 콘텐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늘 우리가 베끼고 받아들이던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표절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혹시 오다기리 조 주연 드라마 '가족의 노래'를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방송하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콘텐트를 점검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워낙 한국에 인기 높은 일본의 톱스타이기도 하고,'가족의 노래'는 특히  설정이 독특해 관심을 끌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죠. 결국 8회만에 조기종영을 맞았습니다. 한 회가 대개 11회 정도에서 끝나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조기종영하는 경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아무튼 별 사전정보 없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가족의 노래>(家族のうた)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을 맡았는데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8회 만에 막을 내린 범작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있었다.주인공 하야카와 세이기(오다기리 죠)는 10여 년 전 밴드의 일원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쇠퇴일로를 겪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퇴물 뮤지션이 되어 있다.

충실한 매니저 미키(유스케 산타마리아)만이 하야카와를 감싸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라는 착각에 빠진 하야카와는 늘 자존심만 앞세워 미키의 속을 썩인다.그러던 어느 날, 한 10대 소녀가 하야카와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하야카와가 한 여성 팬과 벌인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딸이며, 엄마가 죽고 없으니 이제 하야카와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하야카와는 몸서리를 치지만, 심지어 두 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 하야카와가 자신의 생부라고 주장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 영화 <라디오 스타>(2006)와 <과속스캔들>(2008)을 본 사람에겐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에게 일본 측과 판권에 관련된 협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가족의 노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 사카이 마사아키의 히트작 중에는 묘하게 기시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의 2010년 히트작 <할아버지는 25살>은 빙하에 46년간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주인공(후지와라 타츠야)이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아들, 동갑인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7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시트콤 <두번째 백년>(The Second Hundred Years)도 빙하에 갇혔던 주인공이 아버지뻘의 아들, 동갑인 손자를 만나 벌이는 난리법석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도 ‘청춘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25살>과 <청춘 할아버지>. 사실상 리메이크작입니다. 두 사진 모두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청춘 할아버지>의 판권을 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카이의 또 다른 히트작 <절대영도: 미해결사건 특명수사>는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재수사하는 경찰 특설 팀의 이야기다. 긴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서류철이 차가워졌다는 뜻에서 제목이 붙은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노골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국, 일본 작가들의 창작을 은근히 도용하고 채용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족의 노래>의 구성이 아무리 뻔뻔스럽다 해도 함부로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이준익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개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측이 일본 방송계를 싸잡아 매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해외 저작물의 무단 도용이나 차용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필요할 때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추적자 THE CHASER>(SBS)조차도 몇몇 미국 드라마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야를 지난 20년, 30년간의 드라마 전체로 확대할 때 한국 드라마의 독창성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한국 드라마들이 ‘외국 작품의 영향’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대외적으로 한국산 콘텐츠의 도용을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가족의 노래>와 <과속 스캔들>. 차이가 있다면 <가족의 노래>에서는 무려

      세 소녀가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매.

 

윗글에서는 한국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사실 '가족의 노래'를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작품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 그랜트, 드루 배리모어 주연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뮤지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공통점 외에도 주인공의 밴드 시절 동료 가운데 현재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남자와 갈등을 겪는다는 , 주인공에게 당대의 여자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먹고 살기 위해 어린이 공원('가족의 노래'에서는 동물원) 관련 일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후반까지 진행됐다면 공통점이 더 발견됐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드라마 소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일이 돼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우리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그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의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일은 없어져야 할 시점이 온 듯 합니다. '가족의 노래'가 바로 그런 시대임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된 듯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떳떳해 져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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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R2D2를 연상하시는 영화 '알투비(R2B) 리턴 투 베이스'를 봤습니다. 본래 '빨간 마후라 2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것이 시간과 논의를 거치면서 결국 '알투비 R2B'라는 제목으로 결정됐더군요. 다 아시겠지만 R2B는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 즉 '기지로 귀환'이라는 뜻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분들 중에는 다른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창공 액션 영화라면 추억의 명화인 조지 페퍼드 주연의 '대야망(The Blue Max)'부터 그 이름도 거룩한 '탑 건(Top Gun)'를 지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두 편의 고전 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두 편이 공군과 파일럿의 세계에 대해 이뤄 놓은 업적이 워낙 큰 탓일 겁니다.

 

그리고 '알투비'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과연 이 영화를 어느 정도나 기대하고 보느냐의 차원이 될 것 같습니다.

 

 

줄거리. 태훈(정지훈)은 비행 실력에 있어선 따를 사람이 없지만 도대체 질서와 복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일럿. 결국 묘기를 부리다 공군 시험비행단에서 쫓겨나 (아마도 동부전선 어디쯤의) 전투여단에 배치됩니다.

 

선배 대서(김성수)의 편대에 배속된 태훈은 여기서 동기생 유진(이하나), 후배 석현(이종석)과 함께 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여단의 에이스는 미국 연수까지 다녀온 철희(유준상). 그는 제멋대로인 태훈의 기를 꺾어 진짜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훈은 여기서 미모의 정비사 세영(신세경)을 발견하고 달콤한 연애에 빠져듭니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서서히 긴장이 고조됩니다.

 

 

 

오래 전, '탑 건'이 개봉할 무렵, 관객들은 궁금증에 빠졌습니다. 이 영화가 F-14를 모는 미 해군의 최정예 파일럿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는데, 대체 실제 전투 장면이 나오는지, 나온다면 그 상대는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야망'이나 '빨간 마후라' 처럼 아예 전쟁 상황을 다룬 영화라면 이런 궁금증이 들 이유가 없겠지만, '탑 건'이나 '알투비' 같은 영화는 대체 '누구와 싸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뭐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들보다 몇년 전에 했어야 할 고민입니다.

 

물론 안 싸울 수도 있겠지만, 수백억원짜리 전투기를 보여주면서 그 전투기가 실전에선 이런 위용을 뽐낸다는 장면을 넣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일어났다고 우기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

 

 

여기서부터 전투기와 파일럿이 나오는 영화의 리얼리티가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 파일럿의 전투기가 어떻게 해서 교전상황에 말려들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그럴싸하고 납득할만한 상황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알투비'는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따내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CG가 화면을 장식하고 몇몇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일단 비행기가 날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부터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따위가 뭘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죠.)

 

어떤 분들은 '막상 비행기가 날고 액션이 펼쳐지기 전까지, 달달한 연애담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마지막 항공 전투 신은 호쾌하고 볼만했다' 고 평을 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그 유치하고 달달한 연애담 덕분이고, 정작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공중 전투 시퀀스는 한마디로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아무 기대도 없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를 보시는 동안, 절대로 논리적인 사고나 이성적인 판단 따위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쩐지 RETURN TO BASE 라는 제목은 '기본으로 돌아가라' 라는, 스스로 하는 반성처럼 읽힙니다.

 

그냥 하는 얘기는 여기까지. 나머지에선 스포일러가 밀어닥칩니다. 영화를 보러 가실 분은 여기서 표 끊으러 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작사 및 홍보 관계자, 알바 여러분도 별로 기분좋으실 얘기가 아니니 여기서 그냥 다른 데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 태훈이 왜 시종일관 감정의 제어가 되지 않는 미친놈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어려서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사실 그보다는 그냥 "'탑 건'의 톰 크루즈가 대략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라는 쪽이 솔직한 설명일 겁니다.

 

이 영화의 골격은 대부분 이 공식에 따릅니다. 인물의 배치나 설정에서 어떤 목적이나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한 설명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또는 '탑 건 안 봤어? 탑 건에서도 그랬잖아' 뿐입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야생마같은 주인공이 있으면 '왠지' 냉철한 이성으로 그를 통제하려 하는 맞수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연애를 할 예쁜 정비사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를 이해해 주는 큰형같은 선배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 큰형을 짝사랑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왠지 그렇게 있으면 굴러갈 것 같은' 캐릭터들이 즐비합니다. 어디서 본 듯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이는 캐릭터들 말입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극의 흐름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캐릭터라고는 선임 정비사 역의 오달수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태훈과 철희가 서로 마주 보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는 초등학생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서가 유진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모든 관객들은 '아, 대서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승을 하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위 사진의 세 인물과 관련된 대사, 설정, 연기는 모두 최악입니다. 이 세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싹 들어내면,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상당부분 감소될 수 있을 듯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알투비'를 보다 보면, 촬영할 때 있었던 참 많은 장면들이 가혹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장면들조차 이렇게 뻔하디 뻔한 장면의 연속일 때는 참 난감합니다. 심지어 그 뻔한 대서의 장례식 장면에, 대서의 어린 아들이 영정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까지 나오면, 관객은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메인 주인공을 정지훈과 신세경이라는 매력적인 스타들이 맡았다는 정도. 이해하기 힘든 두 인물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왠지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세영의 주정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활력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 장면이 이 영화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정지훈과 신세경이 아니었다면... 꽤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문제의 전투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으로는 북한의 원산 핵기지 주변 병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 정권(아마도 김정은)에 대항하고, 자신들의 선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향해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을 발사하려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일까요? 이를테면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싶은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영 부족하니 미국을 향해 ICBM을 발사하면 미국이 그 보복으로 북한 체제를 궤멸시킬 거라는 계산일까요. 단순한 자살 테러 치고는 참 심오합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런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눈에 띄는 것만 거론하자면, 수도 서울에다 총질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전투기를 '민간인 피해 때문에 격추시킬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휘본부, 대서의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완전히 전 세계가 (대서를 애도하기 위해?) 휴전상태로 들어갔다가 장례식을 마치자 다시 시작되는 '긴박한 상황', 긴 밤 다 지새우고 굳이 대낮에 단 2기로 북한에 침투하는 놀라운 대담성, 그런데 그 단 2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엄청난 방공망, 지하 활주로는 폭파됐는데 대체 어디서, 그것도 단 1기만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MIG-29 요격기, 분명히 발사되는 걸 봤는데도 공중에 정지하고 있다가 태훈의 폭격을 받고 폭발하고 마는 이상한 ICBM, 휴전선 바로 위인 원산에서 핵탄두가 폭발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걱정이나 대비는 전혀 없는 만사 태평의 한-미 양국 군사 수뇌들.... 한마디로 참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 이어지지만 뭐... 날아가는 비행기의 CG는 멋집니다.

 

 

 

당연한 반론이 예상됩니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런걸 그렇게 따지냐"에서 그저 "이런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수준의 창공 액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라는 등등. 하지만 그렇게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기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항상 그 영화가 갖고 있는 틀 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럼 스타워즈에서 광선으로 칼싸움하는 건 말이 되냐?'는 식의 반론은 바보 인증일 뿐입니다. 그건 원래 전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제7광구' 때도 그랬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플롯과 대사, 연기입니다. 특히나 이런 류의 영웅담 블록버스터에서는, 제발 오글거려야 할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쭉 나올만큼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와줬으면 합니다. 저는 작전에 투입되는 파일럿들이나 석현을 구하러 가는 레스큐 팀에게 비행단장이 뭔가 정말로 아드레날린이 확 뿜어나오는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는 규모가 커지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이런 기본은 점점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RETURN TO BASE, '기본으로 돌아가라' 일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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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4일째. 사실 여름에 홋카이도를 가는 사람들 중 80% 정도는 후라노-비에이 방향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북쪽의 섬. 한국보다 낮은 여름 기온. 나지막한 지평선과 알록달록한 화원.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삿포로에서 후라노까지 다녀오는 건 일단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침 일찍 기차나 버스편으로 삿포로를 떠나면 후라노 혹은 비에이까지 2시간 정도에 도착 가능합니다. 그 안에서 대략 어떻게 여행을 구성하느냐 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봐야겠죠.

 

물론 이틀 이상 머물며 구경한다면 더 느긋하게 초원의 정취를 느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도 다음번에는 한번쯤 렌트카를 이용해 넉넉하게 돌아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삿포로에서 이 지역을 가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네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하루 치기 관광 버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예매할 수 있는 버스 상품을 알아 본 결과, 그리 충실한 상품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추.

 

둘째는 기차-버스 연결입니다. 왕복은 기차를 이용하되 현장에서 버스 관광을 이용하는 방안입니다. JR을 이용하는 승객만 이용할 수 있는 트윙클 버스라는 특화된 서비스가 있습니다. 가격도 500~1000엔 사이.

 

세째는 기차로 현장까지 가서 자전거나 렌트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부터 아예 렌트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비에이 부근의 아름다운 구릉지대를 차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나 한국과 반대인 운전 방향에서 오는 위험성은 감수해야 할 겁니다.

 

 

저는 그래서 두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패스는 지난번 아사히야마 때와 마찬가지로 에나프투어(ENAF, www.enaftour.com)를 통해 JR의 열차 패스를 이용했습니다. 이 패스에 포함된 것은 삿포로-아사히카와 왕복권, 그리고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 사이를 오가는 구간에서의 열차 무제한 이용권입니다. 1인당 5400엔. 이용기간이 3일간이기 때문에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숙박을 해도 노롯코 열차는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삿포로-아사히카와 사이는 역시 슈퍼카무이라고 불리는 고속 전철로 연결합니다만,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를 거쳐 후라노까지 가는 길에는 '노롯코'라고 불리는 저속 열차가 하루 세 차례씩 왕복합니다. 물론 노롯코가 아닌 완행 열차도 다니지만, 여름에 후라노 지역을 찾는다면 당연히 노롯코 열차를 타 봐야 합니다. 왜 그런지는 타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당일 스케줄을 이용합니다.

 

09:06 삿포로 출발 / 11:03 후라노 도착 : 후라노 라벤더 EXP 3호

노롯코 열차 이용해 11:52(후라노)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그런데 사실 약간 불만인 것은 이렇게 하면 실제 후라노-비에이 지역 체류 시간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하라는 것(물론 식사 시간도 포함이지만) 역시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또 얘기를 들어 보니 후라노 역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볼거리 중에는 만족도가 높은 곳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래서 실제 관광 시간을 늘린 시간표입니다.

 

08:25 삿포로 출발 / 09:45 아사히카와 도착 : 슈퍼카무이 5호

노롯코 열차로 09:55(아사히카와) ~10:24(비에이) ~ 17:45(아사히카와) 관광

18:00 아사히카와 출발 / 19:20 삿포로 도착 : 슈퍼 카무이 40호

 

이 경우의 단점은 '후라노 역'을 들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시간표의 목적은 가장 가 보고 싶던 곳인 팜 도미타(FARM TOMITA)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목적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그렇게 해서 아사히카와 역에서 노롯코 열차로 갈아 탔습니다. 매우 귀엽고 운치있는, 소풍가는 느낌을 주는 열차입니다. 삶은계란과 사이다...는 아니더라도, 다들 뭔가 테이블에 잔뜩 펼쳐놓고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기차 안 매점에서도 간단한 먹을거리를 판매합니다.

 

 

노롯코 열차가 달리는 길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 지는 녹색 일색입니다. 달콤한 바람을 맞으면서 느긋하게 달리면 약 40분만에 '라벤더 팜' 역에 도착합니다.

 

 

사실 이 역은 여름, 라벤더가 피는 철에만 기차가 서는 역이기 때문에 역사 건물은 물론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그냥 건널목 하나가 있을 뿐.

 

 

본래 정규 역은 이 역 바로 다음 역인 나카후라노(中富良野) 역이지만 이 역이 여름에 개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역 부근에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팜 토미타가 있기 때문입니다.

 

널리 알려진 팜 토미타는 라벤더 농원을 화원으로 꾸미고 거기서 특화된 라벤더 상품을 팔아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상품 판매가 수입원이라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이 농원이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꽃밭은 아니지만(이날 오후에 간 시키사이 언덕이 규모 면에서는 훨씬 큽니다), 그 공력이나 꽃밭을 상품화하는 능력에서는 비교가 안 됩니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 방문객들에게 그날 당일의 꽃밭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습니다. 아래 보시는 것이 8월5일의 꽃밭 모습. 물론 당일 기준으로 가장 꽃이 많이 핀 곳을 찍겠죠.

 

 

http://www.farm-tomita.co.jp/en/see/index.html (이 주소입니다.)

 

팜 도미타의 관광 사진을 보신 분들은 많으시겠지만, 위의 지도에 나오는 모든 꽃밭이 만개한 시기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모든 꽃이 다 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찾아간 7월초는 푸른보라색의 라벤더와 노란색의 뽀삐(?)가 가장 활발한 시기.

 

 

라벤더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지금 위에 보시는 것은 '트래디셔널 라벤더'라는 품종입니다. 이밖에도 이 농원은 직접 개발했다는 '사키와'라는 품종의 라벤더가 널리 심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꽃들을 다 이름을 보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농원 곳곳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구름과 꽃들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면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그러다 햇살이 따가워지면 그늘로 가면 되죠. 

 

팜 도미타라고 있다던데 눈도장이나 찍어 볼까? 여기야? 생각보다 별로인데... 사진이나 찍고 다음 장소로 고고! 라는 심정으로 가면 30분도 넉넉합니다.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당일 관광 버스는 팜 도미타에서 한 50분 정도 시간을 줍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적당한지는 개인차가 꽤 큽니다.

 

저희는 식사를 포함해 한 3시간 정도 머문 것 같은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라노의 명물 중 하나인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홋카이도 곳곳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특화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아이스크림은 연보랏빛 색과 함께 이 팜 도미타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화장품 냄새가 난다'는 설도 있지만, 제 입엔 그냥 맛있는 보라색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그 다음 명물이라는 '라벤더 라무네'. 라무네는 일본식으로 '레모네이드'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냥 사이다 맛입니다. 양도 적고 비쌉니다. 비추. 마개를 유리 공으로 막고 있는 옛날식이란 점이 약간 신기하지만, 병 수집이 취미가 아니시라면 굳이 마셔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팜 도미타에서는 많이들 마십니다.

 

직접 가 보니 왜 입장료를 받지 않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누, 오일, 파우더 등 라벤더로 만든 상품들은 그리 싼 가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더군요.

 

참고로 팜 도미타 전 매장 가운데 이 기념품 매장에서만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날 지갑을 놓고 가는 바람에 비상금이 없었으면 쫄쫄 굶을 뻔 했습니다. 팜 도미타는 물론이고 후라노/비에이 전 지역에서 그 어느 매장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더군요. 일본 가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용카드는 아예 '삿포로 시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삿포로 시내라고 '모두'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500원짜리를 사도 신용카드 결재가 가능한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라벤더 팜' 역 앞입니다. 구름이 살짝 몰려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평원 한가운데의 역. 사진찍기는 그럴싸 합니다.

 

노롯코 열차 편으로 다시 비에이 역에 내리면, 10분 쯤 뒤에 트윙클 버스가 출발합니다.

 

비에이에서 가는 트윙클 버스 노선은 두가지인데, 가격은 모두 500엔입니다. 시간표를 확인하시고 '반드시' 미리 예약하셔야 합니다. (아, JR 노선을 이용하는 관광객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는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전시한 타쿠신칸(拓眞館- 작품은 참 훌륭하지만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패스. 그 작품들을 보면 다른 계절의 비에이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 을 지나 역시 유명한 꽃밭인 시키사이(四季彩) 언덕으로 갑니다.

 

 

시키사이 언덕의 상징인 짚풀 인형상.

 

 

여기도 제철인 라벤더가 한창입니다. (7월 초 기준)

 

 

사진을 확대해 보시면 '청춘불패' 팀이 보입니다.

 

 

넓이로 따지면 팜 도미타에 못지 않은 넓은 지역. 꽃밭 자체는 참 아릅답고 저 너머로 보이는 비에이의 언덕들과 매우 잘 어울리지만, 꽃밭을 상품화하고 매력을 더하는 솜씨에서 팜 도미타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버스는 계속 달려 비에이의 '패치워크'라고 불리는 구릉지대를 보여줍니다.

 

정말로 패치워크를 보듯, 각기 다른 작물을 심어 대지의 결이 달라진 모습이 마냥 아름답게 보입니다. 거기에 한몫을 하는 것이 파란 하늘과 구름.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집니다.

 

 

후라노-비에이는 '이 지역의 볼거리는 뭐지? 뭐가 유명하지? 한 군데에 30분씩만 머물면 될까?' 혹은 '여기 오면 꼭 먹어야 하는게 있다던데, 줄을 서서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갈 곳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평원과 구릉, 그 위로 날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곳입니다. 언젠가 렌트카를 몰아 직접 달려보고 싶은 길들을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마지막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공항에서 르 타오의 치즈케이크와 삿포로 클래식 맥주(홋카이도 한정 판매)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홋카이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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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도둑들'의 전지현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앤 해서웨이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부터 올 여름 한국 극장가의 판도는 결국 '도둑들'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맞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 듯 합니다. 물론 '연가시'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 이후, 관객 동원 면에서 단 한번의 비틀거림도 없이 정상을 질주한 희대의 흥행사입니다. 이 '흥행사'라는 말이 불편하신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투자자와 제작사의 입장에서 보면 구세주나 다름 없죠. 더구나, 그 작품들 중 어느 한 편도 성미 까다로운 비평자들로부터 '대체 어떻게 저따위 영화가 대박이 날 수가 있나. 관객이란 존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한탄을 자아내지 않았으니, 한국 영화계의 간판 스타라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빠돌이풍의 도입부를 걸었으니, 이 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도 대략 예상하실 듯 합니다. 사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홍콩 느와르 전성기의 정서였습니다.

 

 

 

줄거리. 한 유명 미술관 복도. 모녀간으로 변장한 씹던껌(김해숙)과 예니콜(전지현)이 걸어들어갑니다. 예니콜이 작업해 놓은 젊은 관장(신하균, 특별출연)을 만나기 위해서죠. 밖에서 뽀빠이(이정재)와 잠파노(김수현)이 와이어를 걸고, 이들은 순식간에 미술관의 보물 향로를 훔쳐냅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뽀빠이가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고, 때맞춰 도착한 마카오박(김윤석)의 콜을 받아 일당은 마카오로 날아갑니다. 가석방된 펩시(김혜수)도 일행에 합류합니다.

 

마카오에는 첸(임달화)와 조니(증국상), 줄리(이심결), 그리고 앤드류(오달수) 등 홍콩 패거리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카오박은 한국과 홍콩의 연합 도둑 드림팀에게 마카오 카지노로 오고 있는 3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자고 제안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배경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참 노골적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정점을 찍은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를 모의해서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제작사 이름이 '케이퍼 필름'입니다. 이렇게 내놓고 시작하니 비슷하다 뭐다 하는 얘기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케이퍼 무비에다 올스타 캐스팅까지 갖춰졌으니 이제 필요한 건 조율. 한 영화에 한두명만 써도 적절하다 싶은 배우들을 통으로 엮었으니 자칫하면 분량 시비가 일어나고, 심하면 "야, ***는 그 영화에 대체 왜 나온 거냐?"는 소리가 나올 판입니다. 그렇다고 배우 체면 때문에 분량을 살려 주다가 영화가 지루하네, 군더더기가 너무 많네 하는 얘기를 듣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죠.

 

 

 

바로 그 부분에서 최동훈 감독은 신의 솜씨를 발휘합니다. 열 손가락이 각각 다 역할을 하되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안배가 이뤄집니다.

 

사실 머리 좋은 도둑들이 스케줄을 짜고, 놀라운 솜씨로 최첨단 방어막을 돌파하고, 그 결과로 부자가 되고 안 되고 하는 이야기로는 이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이 분야를 파고들었고, 레이저 광선에서 행글라이더까지 동원되지 않은 장비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긴장감 넘치는 침투 과정을 설정해 봐야 관객은 지루할 뿐입니다. 결국 승부가 나는 지점은 캐릭터인 것이죠.

 

 

 

 

순도 높은 액션 장면들이 보여주는 시각적 쾌감과 아주 찰진 대사가 빚어내는 웃음 사이에서 그 캐릭터들의 얽히고 설킨 사연이 잘 버무려질 때 비로소 코믹 케이퍼 무비가 완성됩니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개연성은 일단 뒤로 제쳐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엄청난 사건을 벌이는 범인들 중 아무도 스키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죠. 마카오에서도 그렇고 부산에서도 그렇고... 아무도 공개 수배 같은 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들간의 비중이 철저하게 1/N 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김윤석에게는 다른 배우들과 다른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도둑 연합군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장 머리를 많이 쓰는 인물이기도 하고, 다이아 탈취 작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윤석은 특히 이 영화의 중국어 대사에서 빛을 발합니다. 중국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가장 잘 소화해 내는 배우라면 김윤석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서가 좀 바뀐 듯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아마도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곳곳에는 왕년의 홍콩 영화들이 이뤄낸 성과들에 대한 오마주성 장면들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의 낡은 건물을 배경으로 한 와이어 액션을 보면서 서극의 '순류역류(Time and Tide)'가 생각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래된 아파트에서의 총격전 신은 정말 당시까지는 전 세계에 비길 데가 없었던 와이어 액션(와이어를 이용해 날아다는 것 처럼 표현하는게 아니라 진짜 주인공들이 건물에 와이어 걸고 그걸 이용해 벌이는 액션!)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도둑들'의 부산 액션 장면에는 이 영화가 영향을 미쳤을 듯 합니다.

 

 

 

 

 

물론 흔한 플롯이긴 하지만, 또 생각나는 영화는 주윤발-장국영-종초홍이라는 황금의 트리오가 출연한 '종횡사해'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세 도둑과 그 사이의 엇갈린 러브라인. 문득 '도둑들'의 이정재에게서 '종횡사해'의 장국영에 대한 오마주를 느꼈다면 오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그런 오마주를 몸으로 대변하는 인물은 바로 임달화입니다. 사실 1980~90년대에도 임달화는 주윤발-장국영이나 사대천왕 급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왕년 '첩혈가두' 등의 영화를 통해 깊은 눈빛의 배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분입니다. (문득 임달화 이야기를 하자니 이수현이나 양가휘처럼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왕년의 스타들이 생각납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임달화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권총을 손에 쥐었을 때 관객을 압박하는 비장미는 한국 배우들에겐 아직 기대하기 힘든 듯 합니다(은근히 리얼리티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특히 '도둑들'에서 임달화의 라스트 신은 두고 두고 기억날 장면이라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임달화와 김해숙의 러브 라인도 빛을 발합니다.^^

 

임팩트를 놓고 보자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배우는 전지현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배우의 능력보다는 감독의 역할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전지현은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에 머물러 있고, 그 캐릭터를 여전히 잘 소화해 냅니다. 그 캐릭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뽑아낸 것이 바로 '도둑들'에서의 전지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캐럭터는 대성공입니다.

 

 

 

 

반면 김혜수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전지현의 따발총같은 대사와 많은 액션이 극장에 앉아있는 내내 관객을 즐겁게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더 많이 기억나는 것은 김혜수의 캐릭터 쪽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핵심 축은 김윤석 - 김혜수 - 이정재 라인이고, 이 라인 위를 흐르는 감정이 마무리되어야 영화가 끝납니다.

 

비중으로 보면 오달수와 김수현은 조연이죠. 하지만 김수현이라는 거물(?)이 출연한 만큼, 그 캐릭터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고, 연기도 흠잡을데가 없었습니다. 분량이 적다는게 아쉬울 정도. 김수현과 전지현을 주축으로 한 속편을 기대하게 합니다. 일각에서는 '전지현을 뺀 배우들의 존재감이 부족하다'고도 하는데, 그건 이런 올스타 캐스팅 영화를 보는 자세가 아니죠. 이런 말은 '타워링'에서 스티브 맥퀸밖에 기억이 안 난다거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모건 프리맨이 낭비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도둑들'의 캐스팅이 사기라고 생각되는 건 정말 지나가는 듯한 역할까지도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비의 여인 역을 맡은 예수정이나 채국희, 카지노 매니저 역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최덕문, 그리고 사건의 키를 쥔 인물(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 역으로 출연하는 연출가 기국서 등이 그렇습니다.

 

 

기국서의 경우에는 기주봉씨로 착각하신 분도 아마 있을 듯. 왼쪽이 기주봉, 오른쪽이 기국서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것으로 예상되는 '도둑들', 한마디로 2012년 한국 영화의 뛰어난 성취라고 불러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미 면에서든, 느껴지는 공력 면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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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뭔가 될 것 같은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월드와이드하게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올 줄은 몰랐습니다. CNN에서도 이 노래 얘기가 나갔고, 그 유명한 로비 윌리엄스까지 자기 블로그에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이고 있는 시대, 특히 유튜브를 이용한 문화 전파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시대에 이미 아이돌 그룹들을 통해 K-POP의 세례를 받은 해외 네티즌들도 이미 '강남 스타일'에 푹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경험담과 리액션 비디오가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문득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특히 30대 이상이라면 말입니다. 1996년, 한 편의 중독성 강한 댄스 곡과 독특한 춤사위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마카레나(Macarena)'입니다.

 

 

 

1996년, 두 명의 똥똥한 스페인 아저씨들로 구성된 로스 델 리오(Los Del Rio)라는 듀오가 '마카레나' 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전 세계인들은 묘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이 묘하게 촌스러우면서도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고, 은근히 후렴구를 따라부르게 되는 이 노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후크송이란 말을 들어 보기도 전, 이미 전 세계는 마카레나에 낚여 갔더랬습니다.

 

 

 

 

1992년 결성된 로스 델 리오는 그해 룸바 리듬으로 '마카레나'의 원작을 내놨습니다. 이 노래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히트하고, 차차 미국의 스페인계 커뮤니티로 확산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시장을 잘 아는 스패니시 팝 스페셜리스트들의 눈에 띄어 새로운 편곡으로 1995년 세계 시장을 겨냥합니다. 

 

사실 유명 가수가 유명 작곡자를 써서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해도 히트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대중음악의 세계. 그러나 될 노래는 되고야 만다는 것도 이미 확인된 얘기죠. 무명의 두 아저씨가 장난하듯 부른 이 노래는 '아아아싸!' 하는 후렴구만큼이나 호쾌하게 차트를 치고 나갑니다. 베이사이드 보이 믹스 버전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무려 60주 동안이나 차트에 머물죠.

 

이 대목에서 지금 들어도 흥겨운 이 노래.

 

 

 

(물론 이분들이 '마카레나' 이후에도 계속 세계적인 톱스타로 군림하느냐... 그건 아니구요. 이 딱 한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뒤에는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꽤 조용히, 그래도 의미있는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듀오는 2007년에 해체되고, 각기 자기의 길을 가신다고 하는군요.)

 

사실 마카레나 얘기를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니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왠지 제2의 '마카레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입니다. 일단 머릿수는 다르지만 노래를 부른 가수의 체형(!)이 유사하고, 노래 스타일은 다르지만 중독성이 무서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당대 팝 지존 로비 윌리엄스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소개했겠습니까.

 

 

 

포스팅 주소는 이쪽:
http://www.robbiewilliams.com/news-blogs/trying-to-figure-out-which-tracks-stay-the-album


그런 의미에서, 아직 못 보신 분은 없겠지만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난리인지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유튜브를 둘러 보시면 온 세계의 K-POP 마니아들이 '강남 스타일'에 얼마나 꽂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팬들의 비디오. 아래 비디오는 '오빤 강남 스타일'이 영어로 들으면 어떻게 들리는지(^^)를 알 수 있는 영상입니다. "open c***** style"  이라니... 살짝 불경스럽긴 한데, 그게 또 싸이 이미지와 어울립니다.

 

(아래 영상 강추.^^)

 

 

 

그 다음은 한 금발 소녀(?)가 뮤직비디오 전편을 자기 식으로 재구성한 작품. 노력상 정도는 줄 만 합니다. 꽤 충실한 재현입니다.

 

 

 

아래, 국내에서 나온 패러디 비디오와 한번 비교해 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이건 요즘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빠야 대구스타일'. 그런데 이건 동원된 인력을 볼 때 제작진이 군소 프로덕션 급은 되는 듯.... (그냥 팬 개인이 만들었다기엔 공장 냄새가 좀 나죠?^^)

 

 

패러디가 다가 아닙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소감이나 반응을 찍어 올리는 MV리액션 영상은 팬들의 자기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리액션 영상의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습니다.

 

 

 

'NamasteDwaejiKim' 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 두 친구는 이런 리액션 영상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돼지킴'이라는 뒷부분을 보면 뭔가 한국어도 좀 할 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별 볼 건 없는 이런 영상입니다.

 

그런데 조회수가 243,172회나 되다니.

 

 

 

인터넷은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던 1990년대 중반. 로스 델 리오가 미국으로 진출해 주요 음악 채널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전파하고, 마침내 '마카레나'를 히트시키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면 유뷰브는 이 모든 과정을 한달 안에 끝낼 수도 있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너무 앞서 가는 듯 하지만, 이러다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실제 히트곡이 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오퐈 캉남 스따일' 하며 말춤을 추는 날이 오는게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을 마무리로. 2003년 넵워스(Nebworth) 라이브의 첫 곡이었던 'Let me entertain you' 입니다. 6만을 헤아리는 엄청난 관중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로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싸이도 언젠가 저런 관중 앞에서 말춤 추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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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가면 가끔 얼굴을 찌푸리면서 숟가락을 내려 놓고 "미원 맛이 너무 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히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의 특징은 대부분 유명 맛집에 가면 군소리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래옥이나 한일관 같은 곳에 가면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싼 식당일수록 조미료를 많이 쓴다는 건 당연히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재료를 많이 쓰는 비싼 식당에서는 양심이 있으면 조미료를 덜 쓰겠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유명한 맛집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물론 '전혀 쓰지 않는' 집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칠맛이 나려면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싶은 곳에 가도 '저희 업소는 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안내를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그 안내가 허영만 만화 '식객'에 나오는 정도라면, 뭐 더 할 말이 없겠죠.

 

 

 

지난주 JTBC '미각스캔들'에서는 허영만 원작 만화 '식객'을 이용해 마케팅하고 있는 식당들을 점검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식객'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인가 하는 것은 새삼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이날 방송의 취지는 '식객'에 누를 끼치자는 것이 아니고, '식객'이 여기저기서 음식점 선전에 이용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를 짚어 보자는 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객'에서 우리 전통 음식을 지키는 집으로 소개된 곳이 아니라, 그냥 스쳐 가는 가게로 나온 집까지도 "우리 업소가 '식객'에 나왔다"고 떠드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객'의 본의 아닌 오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업주들이 한 말을 그냥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중엔 업주 측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비법에 따라 조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자들은 그 말이 '아무 근거가 없으며, 현재의 조리법은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라고 짚어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비판은 만화 출간 때부터 간간이 있었고, 이에 대해 허영만 선생도 "'식객'은 맛집 소개서이지 한국 음식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라고 직접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즉 위에서 말한 조리법의 역사나 원조집 논쟁 등에 대해 만화 '식객'이 판가름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방송의 주제와 달리 눈길을 끈 것은 유명 곰탕집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뭐 좀 먹으러 다녔다는 사람은 다 아는 이 집(그냥 'H'라고 하겠습니다. 뭐 방송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업소의 이름을 굳이 제가 얘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은 허영만의 '식객'에서 36-2-0-60이라는 암호같은 숫자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중 '0'이 바로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집의 국물에서는 그냥 쇠고기와 내장만을 우려 낸 국물맛이라기엔 조금 넘치는 듯한 감칠맛이 납니다. 물론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입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 놀랍지 않은, 친숙한 맛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감히 'H 곰탕 국물에서 조미료 맛이 난다'는 말을 함부로 할만큼 용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유명 맛집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이고 '허영만의 식객'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각 스캔들' 팀은 이 집 양쪽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H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헛된 신화임을 밝힙니다.

 

명동 본점 관계자의 말입니다.

 

 

 

 

명동 본점은 물론, 논현동 분점(명동에서는 분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이 집도 본래 H를 운영하던 집안의 일원이 운영하는 것은 분명합니다)에도 똑부러지게 조미료 사용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조미료'에 대한 기이한 민감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과연 'MSG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음식을 배척할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명 식품학자들 조차도 'MSG가 해롭다는 것은 소금이 해롭다는 것과 같다. 소금도 많이 먹으면 해롭지만, 소금이 없는 식생활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MSG 사용 여부를 가지고 어떤 식당이나 음식의 질을 평가할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좋은 재료를 깨끗하게 조리하는 식당에서 소비자의 취향을 위해 MSG를 소량 첨가하는 것이 마치 도의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MSG를 먹으면 안되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에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MSG 없이 살 수 있습니까? http://5card.tistory.com/990)

 

시판되는 라면 중에도 'MSG 무첨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제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MSG 자체는 몰라도 MSG 성분이 주 성분이 된 복합 조미료 소비량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무가당 오렌지 주스'를 '당분 0'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무균질 우유'가 '전혀 균이 없는 우유'라고 생각하듯 말입니다. 이런 착각을 이용하는 상술에 이제 눈을 뜰 때도 됐습니다.

 

 

P.S. 이 글은 결코 H관에 대한 폄하가 아닙니다. 만약 조미료만 쓰면 모두 그런 맛을 낼 수 있다면, H관이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하는 것은 '식객' 아니라 '식객' 할아버지의 도움이 있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 맛을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도 명동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면 꼭 '나는 모르겠던데 왜 입맛 갖고 잘난척이냐'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아는 한에서 비교의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집과 H관의 국물 맛을 비교해 보시면 어지간해선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만약 MSG 맛을 뺀 설렁탕 국물 맛을 시험해 보고 싶은 분은 서울 시청 부근, 중앙일보 옆의 '잼배옥'을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집 주방장이 아닌 이상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서울 시내의 대다수 곰탕/설렁탕 집에 비해 현저하게 MSG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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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 다니엘 크레이그, 케네스 브라나, 사이먼 래틀, 폴 매카트니, 미스터 빈, 데이비드 베컴, 조안 K 롤링, 엘리자베스 2세, 메리 포핀스, 볼드모트...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는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섹스 피스톨스, 퀸, 유리스믹스, 프로디지....

 

런던 올림픽 개막의 충격이 하루 종일 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산만하고 별 재미 없던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 행사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개막식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올림픽 개막식 치고 멋지지 않은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런던 개막식이 줄곧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지금까지의 개막식들이 보여줬던 틀을 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국만이 할 수 있었던'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

 

 

 

지금까지의 개막식 가운데 최고를 치자면 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을 꼽아왔습니다. 그리스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신화를 먼저 떠올리겠죠. 그 소재를 최대한 이용한 당시 개막식은 누가 봐도 예술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도 좋은 평을 받았지만 미적 완성도보다는 어쩐지 물량으로 밀어붙여 보는 이를 압도하려는 듯한 '세 과시'가 좀 거부감을 주더군요. 아무튼 아테네 개막식의 미적 완성도는 여전히 역대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역대 최고 물량의 개막공연, 어떤 의미였나. http://5card.tistory.com/115)

 

하지만 런던 개막식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은 어떤 경우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내용으로 꾸며집니다. 특히나 세계 무대에 나선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은 이 행사를 국가 홍보를 위한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가 오랜 나라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이 주 재료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대니 보일은 이런 관례를 한방에 날려 버렸습니다. 영국은 흔히 '오래된 나라'임을 강조해 온 나라입니다.

 

 

 

 

런던 개막식은 약 18세기를 배경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케네스 브라나가 셰익스피어의 고전 '템페스트'의 구절을 읊긴 했지만 18세기 이전까지 약 2천년의 역사는 그냥 스킵해 버린 겁니다. 스톤 헨지도, 아서 왕도, 사자왕 리처드도, 마그나 카르타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항해 시대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영제국의 건설이나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 등 영국 역사의 전성기는 아예 묘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pandamonium(지옥)이라는 이름으로 산업혁명과 혼란의 도래, 노동운동의 시작 등을 다뤘습니다.

 

(과거 - 잉글랜드의 화려한 역사 - 를 자꾸 강조해 봐야 '피정복지역'인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 사람들의 소외감만 강조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계관시인들의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이날 개막식에 등장한 사람은 '해리 포터'의 조안 K 롤링이었고, 피터 팬과 메리 포핀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동 복지와 전 세계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베겟머리에서 읽어 주는 책들이 바로 영국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을 강조할 때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자랑할게 얼마나 많은데...." 라는 자세.

 

메리 포핀스가 볼드모트와 요괴들을 퇴치하는 것으로 끝난 이 세션의 제목이 바로 "second to the right and straight on till morning"이었습니다. 이 말은 '피터 팬'에서 피터 팬이 네버랜드의 위치를 설명할 때 하는 말이었더군요. 그러고 보면 이 행사는 하나도 과장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어떤 어린이가 피터 팬과 해리 포터를 모를까요.

 

 

 

 

어쨌든 과감하게 '유구한 역사' 부분을 들어 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를 메운 요소들 중 두 가지에 방점이 찍힙니다. 바로 '대중문화가 주제였다'는 것과 '영국식 유머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입니다.

 

다른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그 나라 출신의 유명 음악인이나 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대중문화가 이렇게 올림픽 개막식의 주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007,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여왕을 호위하고 경기장으로 온다는, 그리고 여왕이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으로 들어온다는(물론 장난입니다만) 설정은 다소 엄숙하고 경건했던 지금까지의 개막식에선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입니다.

 

 

 

 

이날 행사 가운데 유일하게 클래식적인 요소였다면 베를린 필의 마에스트로 사이먼 래틀이 등장했다는 점이지만, 그 래틀 경이 지휘한 곡 조차도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의 주제곡. 거기다 '미스터 빈' 로완 애킨슨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잠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도록 촘촘한 웃음을 줬습니다.

 

 

 

 

또 '영국이 20세기 대중문화의 물결을 주도했다'는 자랑화제의 음악 파트에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주제는 'SNS를 통한 사회의 변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주말 밤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맞춰 수십곡의 히트곡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곡들이 모두 MADE IN UK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이 잠시 흘러나오는 듯 하더니 곧이어 지난 세기 전 세계의 팝 차트를 장식해온 클래시, 섹스 피스톨스, 데이비드 보위, 퀸, 폴리스, 유리스믹스, 그리고 프로디지의 곡들이 영상과 함께 들려왔습니다. 그야말로 영국의 일세를 풍미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대중음악사라고 해도 좋을 곡들이었습니다. 특히 록의 개척기는 물론이고 글램 록, 펑크, 뉴 웨이브, 테크노에서 브릿 팝까지 일세를 풍미한 장르들을 영국 뮤지션들이 개척하고 주도했다는 자신감이 넘쳐 흐르더군요.

 

더욱 놀라운 것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같은 대 스타들에게도 결코 편중이란 없었다는 점입니다. 워낙 스타도 많고 히트곡도 많으니 그렇게 편식할 여유가 없다는 여유가 넘쳐 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니 보일의 출세작인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언더월드의 'Born Slippy'도 한 부분을 장식했습니다. 보일의 서명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낭비(?)는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개막식에 폴 매카트니가 나온다'는 정보 때문에 그 지루한 200개국의 입장을 다 지켜봤건만, 정작 등장한 매카트니 옹은 'The End'와 'Hey Jude' 단 두곡만을, 그것도 The End는 일부분만 부르고 바로 행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 장면 자체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트위터에 썼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가 세계에서 제일 큰 무대에서 세계에서 제일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부르고 바로 사라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매카트니 옹은 왜 꼭 Hey Jude의 후렴부분 떼창을 시킬 때(물론 시키지 않아도 이미 관객들은 '나 나나 나나나나'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남자들만 따로' '여자들만 따로' '한꺼번에 같이'를 시켜 보는 걸까요.^^

 

 

 

어떤 나라도 자기만의 독특한 올림픽 개막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마 런던 올림픽도 누구를 연출자로 기용했느냐에 따라 수천가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니 보일(바로 윗 사람) 아닌 다른 사람을 썼어도 이렇게 효과적으로 영국 대중문화의 막강함을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은 개막식을 통해 '봐라.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데. 잘 몰랐지? 어때. 멋지지?'라는 자세를 견지한 반면, 이번 런던 개막식은 '응. 이게 우리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 자, 이것도 우리 건데, 물론 그것도 알지? 우리 거라는 거 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아 놓으니 정말 대단하지?' 라는 거대한 자신감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숨쉬고 있는 '현대'를 배경으로.

 

사실 폐막식까지 생각하면 아직도 뜯지 않은 선물 보따리가 잔뜩 있습니다. 이미 엘튼 존, 오아시스, 조지 마이클의 참여가 흘러나왔죠.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한번쯤은 나와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고, 뭐니 뭐니 해도 나라가 영국이다 보니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속에 나오는 'Land of hope and glory'를 수만명 관객들이 떼창하는 모습도 연출되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다음 올림픽 개막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참 골치아플 듯 합니다. 폐막 행사도 참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웨버 옹은 "올해 올림픽 때문에 뮤지컬 흥행은 망했다"고 코멘트하신 내용만 나와 있군요. 아무리 웨스트엔드 흥행이 중요해도 국가적 대사에는 좀 참여해 주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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