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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 했어(Good Job)'야."

 

이 말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봤습니다. 압권입니다. 특히 마지막 15분 가량, 대사는 열 마디도 되지 않는 가운데 펼쳐지는 치열한 대결과 반전, 이런 영화는, 특히 이런 피날레는 어떤 영화에서도 일찌기 본 적이 없습니다. 근 몇년간 본 영화 중 가장 강추하고 싶은 작품.

 

감독 데미안 차젤(Damien Chazelle, forvo.com에 따르면 샤젤도, 차젤레도 아닙니다)은 18분짜리 단편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본 뒤, 그 성과를 토대로 투자를 받아 이 본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인간승리.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에 반감을 갖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부분이 거부감을 낳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드럼에 재능 있는 학생 앤드루(마일스 텔러)는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인 샤프너 스쿨(가상의 학교입니다)에 입학해 꿈을 키워나갑니다. 여느 때처럼 밤 늦게 연습하던 어느날, 학교 최고의 실력자인 플레처 교수(J.K. 시먼스)로부터 지목을 받고, 학교의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스튜디오 밴드의 연습에 나가게 됩니다. 그날부터 앤드루의 지옥 문이 열립니다.

 

플레처의 광기는 영화 전편을 통해 관객을 장악합니다. 어린아이를 보거나, 마음에 드는 순간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따뜻한 말로 간을 빼줄 듯 얘기하지만, 일순간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를 접하게 되면 조상 삼대를 들먹이는 욕설과 함께 폭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미친 선생'이죠. 그에겐 레귤러와 후보의 구분도 없습니다. 어제 아무리 잘 했어도 오늘 실수하면 당장 연습장 밖으로 악기를 싸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그의 규칙입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식의 훈육 방식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는데, 영화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전제는 플레처의 실력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드러머들의 귀로도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박자 차이를 고집하고, 30여명의 밴드 가운데 누가 틀린 음을 냈는지 귀신같이 짚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가 지도한 밴드의 수상 경력과 그가 키워낸 제자들의 활동상이 이미 그의 실력을 검증해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폭거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내용이다 보니 영화의 제목이자 메인 테마인 곡의 제목이 whiplash, 곧 '채찍질' 인게 당연한 일. 

 

 

 

 

 

이 영화에 대한 반감의 포인트도 여기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시퀀스들을 '교육 현장'에 대입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영화 중간에 플레처의 훈육을 받았던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문제 제기가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내용을 교육 전반에 대한 우화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위 0.01%, 아니, 상위 0.0001%에 속하는 초 엘리트들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이란 '과정 이수'와 '졸업 자격'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즉 '이 수준의 학교에서 60점 이상으로 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의 수준 이상임을 인정할 수 있다' 정도가 학교 조직의 목표인 셈이죠. 하지만 이 경우, 고도의 능력을 갖춘 슈퍼 엘리트의 육성을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입니다. 이른바 일반 교육과 영재 교육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나를 극한까지 혹독하게 몰아쳐서 내 안의 잠재력을 일깨워 줄 수 있었으면'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런 욕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욕구는 의외로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정상을 노릴 만 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서구인들보다는 한국인들의 내면에 이런 정서가 더 잘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랬고, 만화도 영화도 아닌 김성근 감독의 신화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와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플레처가 계속 예로 드는 찰리 파커와 조 존스의 전설도 '누군가를 끝까지 쥐어짜 죽을 힘까지 다 발휘하게 하지 않으면 천재성은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을 뒷받침합니다.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한번 '각성'에 이르기 위해선 온갖 시련을 죄다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물론 아무리 쥐어 짜도 그 방면으로 별 특출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 학생을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이 '누군가'는 부모, 교사, 가족, 친지, 심지어 그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미친듯이 쥐어 짜 봐야 그 결과가 해피엔딩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합니다. 다만 그 누군가가 그 자신이라면 - 즉 자기를 남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고된 수련의 길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그 자신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그만치 자신을 쏟아 부을만 한 목표를 갖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재능이 보잘것 없는 것이고, 그 부문에서 큰 성취를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와 앤드루는 둘 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슷하게 미쳐 있으니 말이죠. 이 둘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원하는 바가 같고, 원하는 바를 위해 가려고 하는 길도 같습니다. 앤드루 역시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 또 다른 플레처가 될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쨌든, 앤드루나 플레처 같은 사람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튼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천재를 낳게 하는 것은 가혹한 훈련과 경쟁의 결과라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위플래쉬'의 영화적 성취는 탁월합니다. 영화 전편에 나오는 드럼을 모두 직접 연주했다는 마일스 텔러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은: 꼭 보세요.

 

 

 

P.S.1. 이 영화와 더불어, '세상은 꼭 1등만을 위한 것은 아니야. 평범한 재능의 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야'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개의 가치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문제죠.

 

P.S.2. 영화의 결말은 제 생각엔 해피엔딩인 것 같습니다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은 듯. 글 저 아래에 데미언 차젤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붙여 놨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P.S.3.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곡들은 이미 존재하는 명곡들입니다. 듀크 엘링턴의 '캐러밴'. 그 유명한 조 존스의 드럼 솔로입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보시죠.

 

 

 

그리고 행크 레비의 '위플래쉬'. 역시 전설적인 섹소폰 연주자 돈 엘리스의 1973년 오리지널 녹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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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데미언 차젤 감독은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부러 번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사실 아니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영화를 본 뒤에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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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vecard.joins.com/1304 에서 이어집니다.

 

 

1. 유후인 료칸 야스하, 살짝 들여다 보기  http://fivecard.joins.com/1304

2.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3. 유후인, 야스하 료칸의 아침 식사는?  http://fivecard.joins.com/1306

4. 유후인, 왜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을까?  http://fivecard.joins.com/13067

 

 

 

아무래도 료칸 여행은 식도락 여행을 겸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이세키 요리라는 특전이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가이세키' 라고 한글로도 일본어로도 발음이 똑같은 회석 會席 요리와 회석 懷石 요리를 착각합니다. 전자는 격식을 갖춰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정찬 요리로 양도 많고 코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후자의 가이세키도 다양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도 용어로,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간단한 식사'라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가이세키 會席 = 양이 많고 코스가 다양한 정찬 요리 

가이세키 懷石 = 다도에서 비롯된 간단하고 정갈한 소품 식사

 

역사적으로 연원을 따지면 會席요리는 일본 전래의 정찬인 혼젠요리(理, 4~5차례 상을 바꿔 들이며 대접하는 전통적인 손님 접대용 정찬 요리)에 懷石 요리의 형식이 영향을 미쳐 성립된 것이라고 하니, 전혀 무관한 사이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정 반대이기 때문에 혼동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발음이 같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일식당 중에도 나오는 요리를 보면 會席 쪽인데 한자는 懷石 이라고 써 놓은 집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가 료칸에서 먹은 것은 會席(이제부터 이 글에서 쓰는 가이세키는 모두 이 會席 요리를 뜻합니다) 요리. 기본적인 가이세키 요리는 '전채1( - 전채2(前菜) - 맑은 국( - 생선회(お造り)- 구이(焼物) - 튀김(- 찜( - 초절임(酢物) - 밥(お碗) - 디저트'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야스하라는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구성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식전주

오자쓰키(

 

 

 

이 료칸에선 이렇게 미리 한글로 된 메뉴를 줍니다.

 

일본 료칸은 본래 방으로 큰 상을 들여다 식사를 제공했고, 아직도 전통을 중시하는 일류 료칸들은 그렇게 한다고들 합니다만, 이미 대다수 료칸들은 별도의 식당을 마련하고 식사를 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방까지 상을 들이는 인건비 등이 만만치 않아 그렇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이렇게 나와 먹는게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식전주. 복숭아 맛이 나는 달콤한 칵테일. 거의 술이 아닙니다.

 

 

오자쓰키(

 

 

젠사이(膳彩). 아귀 간과 두부, 치즈스틱을 햄으로 만 것, 가다랑어 무침, 호두 선, 사과 젤리, 새우 마요네즈 무침, 오징어 유자 매실무침, 농어 초밥... 아기자기해서 참 먹기 아깝습니다만 호로록 호로록.

 

 

 

 

 

 

생 와사비와 앙증맞은 강판 제공. 참 강판이 귀엽기도 하거니와, 생 와사비에서 매운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다고 생각될 정도.

 

 

 

야스하의 특징으로 꼽히는 간장 젤리. 간장에 다섯가지 과일주스 등을 섞어서 굳힌 젤라틴 형태의 간장입니다. 가끔 장조림에 들어 있는 반 고형 간장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듯. 색깔별로 다른 향이 살짝 스치는 희한한 맛입니다. 아무튼 굿.

 

 

 

 

 

 

 

 

 

 

 

 

 

 

 

 

 

배가 부른데! 배가 부르다고!

 

 

 

  

 

다 보여드리는 건 뭐 귀찮기도 하고, 아무튼 다시 11코스의 가이세키 요리를 먹었습니다.

 

  

 

  

 

유일하게 이틀 연속 등판한 분고 비프. 아무튼 두번쨋날 저녁에도 여지없이 배가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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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아침식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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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음으로 일본 료칸(旅館)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여행은 꽤 해 봤고, 당연히 온천도 가 봤지만 전통 료칸에 머문 것은 처음이라 꽤 궁금했습니다.

 

사실 일본에 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료칸에 대한 로망을 갖고 가지만, 쉽게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료칸이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온천이 있어야 하고, 전통적인 다다미방 숙소에 홑이불을 깔아 주는 서비스가 있고, 일본 전통 가이세키(會席. 일식집 중에도 가끔 다도에서 쓰는 懐石과 혼동해서 써 놓은 경우가 있는데 발음은 같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리로 저녁 성찬을 차려준다는 점 등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받으려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 료칸의 요금은 손님 1인당 가격으로 계산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위의 조건을 갖춘 료칸은 대개 1인당 1만엔 대부터 시작하고, 별채 방마다 개인용 욕실이 딸려 있느냐, 그리고 그 욕실이 노천 온천이냐 아니냐, 주위의 풍광이 얼마나 좋으냐, 식사를 방에까지 날라다 주느냐 등의 조건에 따라 가격이 점점 올라갑니다.

 

최고급 료칸 중에는 1인당 5만엔대까지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면 2인 1박에 한국 돈으로 100만원인 셈이죠(물론 제가 간 곳은 당연히 이런 최고급 료칸은 아닙니다;).

 

아무튼 사치라면 상당히 사치인 셈인데, 최근의 엔저 에 용기를 얻어 한번 질러 봤습니다.

 

총 4편의 글 중 첫편입니다.

 

1. 유후인 료칸 야스하, 살짝 들여다 보기  http://fivecard.joins.com/1304

2.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3. 유후인, 야스하 료칸의 아침 식사는?  http://fivecard.joins.com/1306

4. 유후인, 왜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을까?  http://fivecard.joins.com/1307

 

  

 

유후인(湯布院) 역 전경. 만약 유후인만 갈 생각이라면 후쿠오카 공항에서 바로 연결되는 직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듯 합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역 정면으로 약 30m 떨어져 있습니다. 편도 2800엔 정도. 2시간~2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그렇지 않고 후쿠오카 시내(하카다 역?)까지 들어가든, 큐슈의 다른 도시를 거쳐가든 하면 역을 이용할 일이 있겠죠.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무것도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료칸에서 쉬다 오는 거였기 때문에 바로 버스를 이용해 저 위치에 내렸습니다. 역전에서 료칸에 전화하면 차가 데리러 오거나, 택시를 이용하는데 택시 요금을 료칸에서 지불합니다. (물론 안 그런 곳도 있습니다. 예약할 때 확인 필요.)

 

 

역에 내리면 보이는 유후인의 랜드마크는 유후다케라고 불리는 저 흰 봉우리.

 

 

차를 타고 료칸으로 가는 동안에도 정면의 흰 봉우리가 보입니다. 역에서 유후다케 방향으로 가는 큰길이 유후인의 메인 스트리트입니다. 그리고... 금세 알게 되지만 유후인은 매우 작은 골입니다. 정말 두어 시간이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니 차로 한 10여분 달리면 야스하(泰葉) 료칸에 도착합니다. 메인 스트리트 주변에도 료칸들이 눈에 띄지만, 메인 도로에서 건물이 약간 드물어질 때쯤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오르막길을 타고 좌우 양쪽에 료칸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약간 산속 같은 곳에 있는 편이 더 료칸 분위기가 납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yasuha.co.jp/index.htm  예약도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위에 보이는 건물이 1번의 메인 건물. 2층 건물로, 객실 몇개와 대욕장(이라지만 크지는 않음)이 있습니다. 2번 건물은 식당, 3번은 건물이 아니라 족욕장입니다.

 

 

족욕장에서 유후인 시내 쪽을 내려다보면 대략 이런 풍경입니다. 흰 연기는 온천수를 뽑아내는 수증기.

 

이 료칸을 선택한 건 '유후인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온천수'를 보유한 집이라는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유후인의 수많은 온천장 가운데서도 이 집의 원탕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뭐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지만 몸을 담가 본 결과 믿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일부 료칸들은 아직도 전화로만 예약을 받더군요.^)

 

http://www.jhpds.net/yasuha/uw/uwp3100/uww3101.do?yadNo=333257

 

 

 

객실과 객실 사이는 다 이런 회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눈비가 올때 편하도록.

 

 

위 지도에서 보면 7번 위치에 있는 방입니다. 다다미 8조짜리 별실이고, 전용 노천욕조가 바로 밖에 붙어 있습니다.

 

 

들어가 보면 이런 모습. 다다미가 깔린 끝에 2인용 탁자가 있고, 그 창밖이 바로 노천온천입니다. 왼쪽 문을 열고 나가면

 

 

이런 작은 욕실을 거쳐 바로 노천온천입니다.

 

 

이런 모습. 오른쪽은 관을 통해 온천물이 쉴새없이 흘러들고 있고, 왼쪽에는 냉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온천 원수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왼쪽 찬물을 틀어 대략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찬물을 타면서 왼쪽에 있는 저 넓적한 판때기로 물을 아래위로 휘젓죠.

 

 

방에 이불을 깐 모습. 채널 5개가 나오는 TV 한대, 빈 냉장고 한대, 물을 끓일 수 있는 포트와 차 세트가 있고, 얼음물은 무한 공급입니다. 유카타는 당연히 공급.

 

야스하 료칸에는 일반 객실, 다다미 8조짜리 별채 객실(노천온천 포함), 12조짜리 별채 객실(노천온천 포함)의 세 가지 방이 있습니다. 당연히 뒤로 갈수록 비쌉니다. 8조와 12조의 차이는 방 크기 외에 온천이 있는 정원도 조금 더 넓은 듯 합니다. 하지만 2~3인 정도라면 8조 객실로 충분합니다.

 

 

 

노천온천은 욕조 위로 바로 하늘이 보이는 타입은 아니고, 지붕이 있어 비가 올 때에도 노천욕을 하는데 지장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있으면 왕년에 홋카이도에서 겪었던, '노천온천에 누워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맛'은 보기 힘들죠.^^

 

뭐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지만, 이 온천에 누워 울창한 수풀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순해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소개글들을 보면 야스하 료칸의 온천수는 은은한 푸른색을 띤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닥의 돌이 파란 색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은근히 푸른 느낌이 드는 건 맞습니다.

 

 

일단 온천을 본 이상 이성을 잃고 뛰어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발 하나로 모든 설명 끝.

 

 

 

물은 쉴새없이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갑니다. 출수구의 저 흰 얼룩이나,

 

 

탕의 수위선에 어느새 생긴 흰 선을 보면 물에 석회질이 상당 부분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새벽에 일어나 탕으로 나가면 이렇게 푸르스름한 안개까지. 분위기 좋습니다.

 

 

 

방 밖은 거의 항상 이렇게 온천수를 뽑아내는 수증기로 가득.

 

 

온천수의 성분 때문에 주위의 나무들이 저렇게 흰 색으로 뒤덮인다고 합니다.

 

 

다시 본관. 본관은 이렇게 거대한 화덕 주위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 공간 바로 뒤편에 대욕장(공동탕)이 있습니다.

 

 

공동탕 안에는 당연히 이런 욕조와 일반 목욕탕 같은 벽면의 샤워 시설이 있고,

 

 

 

거기서 한번 더 문을 열고 나가면 대망의 노천탕이 있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잘 꾸며져 있고 나무가 우거져 있어 개방감이 좋습니다. 전체적인 푸르스름한 색조도 좋고, 몸을 담그면 기분 좋은 짜릿함이 느껴집니다.

 

일부 지역에는 이 노천탕이 남녀 혼탕인 곳이 있지만 여기는 노천탕도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만 바로 옆이라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는 될 듯...^^

 

 

물론 저런 공동탕도 좋지만 형편이 허락한다면 방마다 딸린 독점 노천탕의 유혹은 어마어마합니다. 특히 번거롭게 멀리 있는 욕장에 갈 채비를 할 필요 없이 그대로 옷만 벗고 탕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입니다.

 

밤의 모습. 쌀쌀한 날씨에 뜨뜻한 탕 안에서 몸을 덥히고, 너무 더워지면 밖으로 몸을 내밀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서늘해지면 또 탕에 뛰어들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놓으면 금상첨화.

 

정말 저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게 없더군요. 글자 그대로 PERFECT RETREAT.

 

 

 

 

 

 

자. 다음은 당연히 식사편. http://fivecard.joins.com/1305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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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하겠다고 반성해놓고 또 이런 일이 ;;

 

죄송합니다. ;;

 

 

 

 

 

10만원으로 즐기는 3월의 문화가이드(2015)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본다고 하면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게 연극이지. 아무래도 대사의 비중이 크다 보니, 외국어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하지만 요즘은 해외 유명 극단들도 내한공연을 하고, 기술의 발달로 자막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연을 즐기게 됐지.

 

2015 3월에 가장 관심이 가는 공연은 국립극장에서 35일부터 7일까지 펼쳐지는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의 라이온보이. 지난달 프랑켄슈타인은 무대극을 녹화한 영상이었지만 이번엔 진짜 배우들이 하는 내한공연이지.

 

원작은 2의 조앤 롤링으로 불리는 영국 작가 지주 코더(본명은 루이자 영)의 판타지 소설 라이온보이시리즈야. 검색해 보니 첫 공연 이후 수많은 미디어로부터 경이롭다’ ‘무대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어마어마한 극찬을 받았어. 고양이과 동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 흑인 소년이 납치된 부모를 찾아 벌이는 모험의 세계라는데, 과연 그걸 어떻게 영화도 아닌 연극 무대에서 펼칠지 사실 나도 궁금해. 일단 영국 가디언지가 브로드웨이에서 온 다른 커다란 맹수(뮤지컬 라이온 킹을 말함)보다 훨씬 볼만하다고 평했으니 기대해 볼만. VIP 7만원부터 시작인데, 3만원짜리 S석도 괜찮을 거라고 권해 주고 싶어.

 

이달은 추천하고 싶은 볼거리가 월초에 몰려 있네. 33,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윤한(피아노), 성민제(더블베이스), 크리스 리(피아노) 등 이미 실력으로 명성 높은 네 훈남 연주자들이 재즈 연주를 위해 뭉쳐. 공연 제목은 더 로맨티스트’. 연주 곡목도 루이 암스트롱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 등 재즈의 고전 중 고전들. 감상용으로도 좋고 데이트용이라면 최고일 듯. R 12만원부터 시작인데, 어차피 오빠들의 얼굴은 맨 앞자리 아니면 안 보여. B 3만원으로 좋은 시간 보내도록.

 

 

 

3월 후반엔 예술의 전당의 해피 버스데이 바흐가 눈길을 끄네. 바흐는 1685 321일 생이지만 공연 날짜는 22. 그러니까 탄생 330주년 생일 잔치인 셈이지. 임경원 교수의 무반주 첼로조곡 1번을 비롯해서 유명 연주자들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바흐의 간판 히트곡들을 연주해. 제목은 몰라도 일단 들어 보면 , 이것도 바흐 곡이구나할 곡들이야. S 35천원. 31일엔 같은 기획으로 해피 버스데이 쇼팽공연도 있으니 참고해.

 

 

 

이달의 추천 책 1번은 질 브라가르, 크리스티앙 루도 공저 대통령의 셰프. 세계 정상들의 식사를 책임진 특급 셰프들의 에피소드를 정리한 책인데, 전체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책이야. 다뤄지고 있는 나라는 각각이지만 그 셰프들은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니 말야.

 

하지만 전 세계 명문 축구 클럽이 브라질 산 스트라이커를 찾듯(하긴 뭐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미식에 대한 한 프랑스인 셰프들과 프랑스 요리들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정상적인 비율일 수도 있겠지.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정찬은 15~10코스, 3시간이 표준이었는데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던 드골 대통령이 그나마 줄인 게 5코스에 100분 정도라는 얘기도 이 책에 나와. 레이건 대통령의 셰프였던 피에르 샹브랭이 남긴 지방이 없는 음식은 맛이 없다. 나는 평생 훌륭한 요리를 해 왔다. 병원 요리를 하고 싶었다면 병원에 취직했을 것이란 명언은 다이어트에 지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기도 해. 12000원 정도.

 

이 책 얘기를 하다 보니, 이런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아야 할 책 한권이 생각났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이야. 요네하라 마리 팬들이 보시면 아니 이런 뻔한 고전을 이제사 소개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따지실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 이 책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강추하고 싶어. 어린 시절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살았던 저자의 독특한 경험이 낳은 책이야. 보드카 원조국의 명예를 걸고 벌인 러시아와 폴란드의 대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11000원 정도. 이달은 조금 넘쳤지? 다음 달에 절약해.

 

P.S. 이달의 궁금증은 공연 제목 더 로맨티스트(Romantist)’. 영어엔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라는 말은 있어도 로맨티스트라는 말은 없어. 출연자 이름의 절반이 영어인 저 공연에 어쩌다 저런 제목이 붙었는지 정말 궁금해.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 부탁해.

 

 

3.5~3.7, 영국 컴플리시테 극단의 라이온보이       S 3만원

3.3     더 로맨티스트공연                       B 3만원

3.22    해피 버스데이 바흐콘서트                S 35000

질 브라가르, 크리스티앙 루도 저 대통령의 셰프     12000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11000

 

                                                   118000

 

 

 

 

안 그래도 월초에 볼거리가 몰려 있어 어쩔까 싶던 차에 복잡한 일들이 한데 몰려 이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그려;;

 

대신 책 많이 읽으시는 3월이 되기를(퍽) 기원합니다.

 

'대통령의 셰프'를 읽다 보면 이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얘기가 나오는데, 마침 3월 개봉이더군요. 책 안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안 그래도 보수적인 남자들의 사회인 주방에서, 여성 셰프가 프랑스 대통령의 수석 셰프가 된 뒤로 수많은 갈등과 얘깃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현실에선 대단한 해피엔딩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영화 소개는 이 쪽: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148

 

아무튼 위에서 예로 든 피에르 샹브랭의 코멘트처럼 'Kcal=맛의 단위'라는 것은 역시 정설인 듯 합니다.

 

같이 소개한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블로그에서도 한번 소개했던 책이고, 사실 국내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산문 열풍이 불게 했던 발화점을 제공한 책이기도 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유머 넘치고, 그러면서도 뭔가 냉철한 그의 문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다른 책들이 이 책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살짝 실망하기도 했던.)

 

마지막은 아무래도 생신 맞으신 바흐님에 대한 헌정입니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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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론 에저튼)는 곡절 끝에 킹스맨의 멤버가 되기 위한 테스트에 응합니다. 그 사이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세계적인 IT기업가 발렌타인(새뮤얼 잭슨)은 지구에 붙어 사는 바이러스적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 음모는 엄청나게 위험한 계획이란 사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킹스맨]을 즐기기 위해 사전에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어떤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단순합니다. 사실 기본 설정부터 말이 안 됩니다. '유명 양복점들과 연관된 재력가들이 뭉쳐 전 세계 어떤 정부, 어떤 권력과도 관련이 없는 정의 수호를 위한 국제 정보기관을 만들었다'라뇨.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팍한 설정과 막나가는 진행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킹스맨'의 첫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스파이는 영국산'이라는 교훈의 부활입니다. 물론 너무 늦게 태어난 까닭에 이미 스파이 세계가 이선 헌트와 제이슨 본이 지배하던 세계였던 분들, 그리고 007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극약 처방으로 본래의 색채를 잃은 시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분들에겐 참 죄송하기 짝이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과거 션 코너리와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던 시대를 얘기하는 것은 참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그보다 더 마이너한 TV 시리즈들인 '어벤저(The Avengers)'나 '전격대작전(The Persuaders)', '세인트(The Saint)' 등을 얘기하면 이 뭔 선사시대 이야기인가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이런 '수트를 폼나게 갖춰 입은 영국제 스파이'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킹스맨'이 가장 반가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격 제로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방송된 'New Avengers'의 패트릭 맥니. 존 스티드라는 빛나는 '영국 스파이' 캐릭터로 20여년에 걸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007 이전, 카리스마 넘치는 '세인트'로 인기 스타의 자리를 굳힌 로저 무어.)

 

그 전통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는 불행히도 그 맥을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2006년작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007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그 본질적인 정취가 사라져 버렸죠. 일부 본드 마니아 중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거칠고 냉혹한 이미지가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초기 본드의 모습과 어울린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플레밍이 왜 '근육질의 액션 스타형 젊은이' 션 코너리를 캐스팅 한 데 실망감을 표하고 "내가 원했던 본드는 데이빗 니븐"이라고 말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플레밍은 이미 이 시절에 '영국산 스파이'의 본질이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로 극복해 나가는, 여유 있는 신사의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예상과는 달리 션 코너리는 역사에 남을 영국산 스파이의 전형을 멋지게 연기해 냈고, 그 연기를 본 플레밍이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다"며 만족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007 시리즈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넌 체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전성기만큼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시리즈의 색채를 짝퉁 제이슨 본 시리즈로 만들어 놓은 뒤 흥행 면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통 영국산 스파이'의 정취는 영영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국 귀족의 후예로 태어날 때에는 드 비어 드루먼드 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던 매튜 본이 칼을 뽑고 나선 것입니다. ('드 비어'라는 이름은 '킹스맨'에도 등장하죠. 갤러해드가 발렌타인에게 접근했을 때 쓰는 가명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킹스맨'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체제의 007을 비롯해 일단 뛰고 달리고 아크로바트 액션을 펼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 21세기 초반의 스파이 영화 시장입니다. 과연 관객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스파이 영화 뿐만이겠느냐는 냉소가 담겨 있죠. 물론 '오스틴 파워'나 '자니 잉글리시'도 방향만 보자면 비슷한 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미덕을 '킹스맨'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수트 포르노'라고 불리는 진정한 '수트 입은, 섹시한 영국 스파이' 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발몽'의 꽃미남 시절 콜린 퍼스. 누군가 '킹스맨'을 보고 "왜 콜린 퍼스는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오르지 않은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 오르지 않았을 리야 없지만 사실 경쟁이 너무 치열했던 거죠.)

 

사실 콜린 퍼스는 경력만 놓고 보면 '대영제국 스파이'의 이력이 없는 배우지만, 어쨌든 전 세계 여성 팬들을 녹일 수 있는 댄디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매튜 본의 의도는 타론 애저튼을 앞세워 '귀족인 척 하는 자들의 희화화'였는지도 모르지만, '킹스맨'을 본 전 세계의 대다수 여성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서 애저튼은 퍼스의 비중에 비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라는 점에서, 별 의미 없는 얘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영화를 본 거의 모든 분, 특히 여성 관객들은 콜린 퍼스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아울러 1960년대, 또 다른 히트 스파이 시리즈인 '해리 팔머' 시리즈를 주도한 마이클 케인이 아서 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에 '영국산 스파이'와 '안경 쓴 쉬크한 스파이'의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물론 킹스맨 2층의 회의실이 원형 테이블이 아니라는 건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지만요.

 

 

(해리 팔머 시리즈 시절의 풋풋한 마이클 케인.)

 

 

 

 

이런 맥락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과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비판이나 계도성 메시지가 담겨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를 좀 왜곡하는 느낌이 듭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매튜 본의 영화 이력은 사실상 가이 리치의 히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프로듀서 역할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로 직접 감독으로 나서 만든 영화들 - 가이 리치 의 영화라고 해도 아무도 신기해 하지 않을 '레이어 케이크'에서 이번 '킹스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B급이면 어때'와 '주인공만 주인공이란 법 있어' 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과연 그의 영화에서 몇몇 평론가들이 읽어 내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서태지의 '소격동'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려는 것 만큼이나 억지로 느껴집니다. 뭐 이 영화에 귀족과 기득권층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로 '킹스맨'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인종차별국가 미국을 전복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라고 보아야 할 정도겠죠.

 

사실 '킹스맨'은 매우 비교육적인 영화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 담긴 생명 경시나 성차별, 인종 차별,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이란 말 자체를 비웃는 듯한 표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저속함을 이유로 무시하기엔 이 막나가는 코미디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코미디는 그냥 코미디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돈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가이 리치, 오른쪽이 매튜 본)

 

P.S. 한때 매튜 본은 '가이 리치의 재능을 흠모해 따라다니는 돈 많은 친구' 정도의 대접을 받았지만, '킹스맨'을 통해 마침내 가이 리치와의 위치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가이 리치가 데뷔 초의 재능은 어디로 팔아먹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영혼 없는 영화로 흥행 감독의 면모만 유지하게 되어 버린 결과죠.

 

흥미롭게도 가이 리치 또한 나폴레옹 솔로라는 슈퍼 스파이로 유명한 왕년의 인기 시리즈 '첩보원 0011(Man from U.N.C.L.E)'의 리메이크와 함께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제작을 발표해, '고전적 스파이 이야기'와 '아서왕 이야기'를 한방에 버무린 매튜 본과 평행선을 그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 두 작품에서 가이 리치가 왕년의 기발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 옛날, 매튜 본의 '스타더스트'에 대한 글 http://blog.joins.com/fivecard/8417922

 

매튜 본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리뷰 http://fivecard.joins.com/939

 

그리고 가끔 혼동되는 또 다른 매튜 본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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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서서히 인기에 불이 붙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하녀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선 지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가 아니고 보면 10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닙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두메산골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새 나라가 섰다는 사실도 최신 뉴스일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나라의 주역들이 가장 경계할 일은 아무래도 전 왕조의 후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동태 파악입니다. 백제가 망한 뒤에도 백제의 강역에서 부흥운동이 펼쳐졌고,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일어난 데 이어 그 땅에서 고구려의 후신임을 주장하는 발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자료를 보면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 왕실의 후예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듯 하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죠. 자신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조선이 망한 뒤 고려 왕씨들이 어떤 운명을 걸었는지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왕 거을오미' 입니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 1393~) [가장 극적으로 살아남은 고려의 후예]

 

드라마 하녀들에는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반목하는 사이 고려를 수복하려는 왕씨들과 그 유신들로 구성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가 망한 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누군가 조직적으로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구려의 안승이나 백제의 귀실복신 같은 인물은 고려가 망한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고려 왕씨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집권 직후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공양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데 이어 태조 2(1393) 526일에는 거제도를 비롯한 낙도로 유배가 있던 공양왕의 후손들을 육지로 나오게 해 생업을 주고 안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 중 왕강은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에게 동조한 공이 있어 조선 건국 뒤에도 벼슬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계 본인보다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은 훨씬 더 강력하게 왕씨들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을 내버려 둘 경우 새로운 왕조에 해가 될 것이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마침내 1394226일에는 이성계가 직접 보호하던 왕강와 왕승보 등도 귀양가는 몸이 되었다. 이어 414일 윤방경 등을 강화에, 손흥종 등을 거제에 보내 왕씨 일족을 단속하라는 명을 내렸다. 말인즉 파견되는 관리가 재량껏 단속하라는 것이었으나, 조정의 여론을 감안하면, ‘재량껏이란 씨를 말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척에 귀양 가 있던 공양왕도 이때 아들과 함께 처형됐다.

 

야담집 추강냉화에는 당시 학살의 풍경이 기록돼 있다. 파견된 관원들이 왕씨들에게 육지에서 떨어진 낙도에 모두 모여 살게 해 주겠다며 거짓 포고령을 내려 포구에 모은 뒤, 배에 싣고 가다가 가라앉혀 몰살시키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죄없는 내 후손들을 몰살시키니 네 아들들도 뒤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어 426일에는 아예 왕씨라는 성의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다. 본래 왕씨면 어머니의 성을 쓰고, 사성(賜姓)으로 왕씨를 받은 자들도 본래의 성으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왕씨들이 전()씨나 옥(), ()씨로 성울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다들 한자로 보면 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이다.

 

공양왕의 형인 왕우는 태조의 8남 방번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귀의군에 봉해진 뒤, 이런 변란 속에서도 왕씨의 제사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목숨을 보존했다. 하지만 1397년 왕우가 죽고 장남 왕조가 귀의군의 칭호를 물려받은 뒤, 이듬해인 1398 826일엔 귀의군 왕조와 그 아우 왕관이 죽었다는 기록이 실렸다. 이날은 1차 왕자의 난으로 방번-방석 형제와 정도전, 남은 등이 주살당한 날이다. 방번이 죽었으니 그 처남들인 왕조와 왕관을 더 이상 살려 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왕씨가 사라졌다.

 

하지만 태종 13(1413) 11, 고려 왕족인 왕휴의 서자 왕거을오미가 발견되어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왕휴가 이밀충이란 사람의 누이를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인데 20세가 되어 호패를 마련하려는 것을 지신사 김여지가 조정에 보고한 것이었다.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 공초가 있었으나 태종은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전조의 자손들을 아예 멸족시킨 경우는 없었다. 특히 태조의 경우 왕씨들을 몰살시킨 것이 본의가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내가 나이 어려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제 내가 왕씨의 자손들을 보호하겠다며 거을오미의 석방령을 내렸다. 이후 문종 1(1451)에는 왕씨의 사용 금지령을 해제하고 임금이 직접 "왕씨의 후손들을 찾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오늘날까지 개성 왕씨의 후손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가 망한 뒤 부흥의 움직임이 공식 문서에 기록된 바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가혹한 박해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거을오미도 왕씨에 대한 박해가 끝났음을 알린 인물이기는 하나, 관직이나 토지를 주어 잘 살게 했다는 기록 역시 없는 것을 보면 무슨 특전이 주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문종 때 왕씨의 사당인 숭의전을 짓고 왕우지를 발탁해 왕순례라는 이름을 내린 뒤 숭의전 부사로 봉해 토지와 집을 주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한 것이 완전한 사면의 첫 기록이다.

 

이렇듯 조선 왕조가 왕씨를 받아들이는 데 대략 건국에서 60년이 걸렸다. 다시 한번 망국의 비애를 느끼게 된다.

 

P.S. 고려 왕씨에서 비롯된 성씨 중에는 위에서 거론한 성씨 외에 개성 내()씨가 있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초 검문하던 군관이 무슨 성씨냐고 묻는 말에 당황한 왕씨 일족이 ?”하고 반문하는 바람에 내씨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인데,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개성 내씨 이야기는 참 코믹합니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라는 생각.

 

뭐 역사의 만약이란 얘기해 봐야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지만, 왕우와 이성계가 사돈을 맺을 때 하필 방번과 왕우의 딸을 결혼시킨 것이 묘한 상황입니다. 이성계가 후계자로 삼으려 한 아들은 방번과 어머니가 같은 방석이었으니, 그대로만 됐으면 왕우의 집안은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왕자의 난으로 태종 방원이 방번-방석 형제를 처지했으니 왕우의 자손들은 두 겹의 역적이 된 셈이죠. 망국의 왕손인데다 난신적자의 집안... 이것이 팔자 소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전씨(全이든 田이든) 중에 고려 왕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설에 따르면 가능성은 꽤 있는 편입니다. 한때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측근들도 넌즈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경우를 부여 서씨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왕성은 본래 부여(夫餘)씨인데, 나라가 망한 뒤 여(餘)자의 일부를 변형해 여(余)씨나 서(徐)씨로 성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왕씨의 후손들은 이렇게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문종 때 세워진 왕씨들의 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니, 굳이 누가 진짜 고려의 후손인지를 따질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하녀들'은 태종 초, 함흥차사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시작했으니 왕씨의 후예들은 모조리 참살당한 뒤의 상황입니다. 그래도 고려 부흥의 음모가 등장하니 왕씨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하녀들'의 등장인물 중에는 누가 고려 왕실의 후예일까요. 뭐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눈치 빠른 분들은 대략 짐작을 하실 듯 합니다. 당연히 비밀조직 만월당의 주역들 중에 있겠죠.^^

 

('하녀들'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김치권[김갑수]와 아들 은기[김동욱]가 고려 왕실의 자손이고, 무명[오지호]은 이방원의 아들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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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2월입니다. 세월 참 빠르죠?

 

이달의 기대는 바로 이것.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가이드 (2015)

 

이번달 예술의 전당 공연 중에는 향수라는 표제의 공연이 눈길을 끌어. 대부분의 연주회들이 별 설명 없이 레퍼토리를 내놓는 데 비해 이 공연은 향수라는 주제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첼로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 9신세계를 연주해. KBS 상임지휘자였던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연주. 첼로 독주자는 인기 최고인 송영훈이야.

 

함신익과 심포니송은 지난해에는 황홀이란 표제를 달고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4번을 연주했는데, 한 작곡가를 이렇게 한 단어로 압축하는 건 무리가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 반편, 참신하고 대중적인 접근이란 면에서 그럴듯하기도 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드보르작의 음악 세계를 설명할 때 미국에서 활동하며 고향 보히미아를 그리던 작곡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걸 보면 드보르작과 향수를 연결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여. C 3만원이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거야.

 

다음. 국립극장에서 영국 국립극장(NT, National Theatere)의 공연을 그대로 녹화한 영상을 가끔씩 상영하고 있다는 걸 아는 분들은 이제 아실 거야. 그런데 이번 공연은 그야말로 마니아들을 흥분시킬만한 대박이야.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미국 뉴욕판 셜록 드라마인 엘리멘트리의 셜록 조니 리 밀러가 함께 무대에 서거든. 작품은 메리 셸리 원작 프랑켄슈타인’.

 

누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고 누가 괴물이냐고? 둘 다야. 두 스타 배우가 공연에 따라 번갈아가며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을 바꿔 연기해. 이번 국립극장에선 두 가지 버전의 공연을 각각 3회씩 상영하지. 게다가 연출은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이 글을 쓰는 나부터도 마음이 급해지네. R 15000, S 1만원. 알았으면 서둘러야겠지?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구치 지로의 선생님의 가방이야. 1년에 150권을 읽는(정상이 아닌) 다독가 하지현 교수가 추천한 책인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술 좋아하는 37세의 골드미스 츠키코가 우연히 술집에서 옛날 고교시절 선생님을 만나 차츰 남녀관계로 발전해가는 이야기야. 3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남녀, 그것도 노인의 연애 이야기인 거지.

 

하 교수에 따르면 나이가 만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계의 감정이 무르익어 자연스럽게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일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이제 나이 들어 의미가 가슴에 닿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 두권 짜리 만화의 울림이 만만치 않아. ‘고독한 미식가등을 통해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체를 접해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한컷 한컷이 작품이라는 생각이 정도의 공력이 느껴져.

 

 

 

 

문득 반대쪽에 있는 책을 하나 추천하고 싶어지네. 배명훈의 책을 추천하는 이번이 두번째인 같은데, ‘맛집 폭격이라는 제목을 들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 한국과 곳에 있는 어떤 나라가 묘한 긴장 상태에 들어가. 워낙 거리라 직접 교전은 없지만 양쪽 상대방의 본토에 대해 미사일로 정밀 공격을 가하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인 거지. 그런데 한국의 상황 분석자가 보기엔 정말 묘할 정도로, 적의 공격 목표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 함께 가던 추억의 맛집들이더라는 거야. 과연 메시지가 뜻하는 뭘까.

 

선생님의 가방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 어떤 감정을 감정이라고 말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맛집 폭격 감정 대놓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쿨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행동이라서 차마 그렇게 말할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그렇게 너무나 달라. 아마 작품 모두를 좋아하는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인터넷 서점 기준으로 맛집 폭격 12000 , ‘선생님의 가방 권당 1만원 .

 

 

 

마지막으로 이달의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년 128일부터 열리고 있는 폼페이. 중앙박물관 전시 중에는 드물게 유료 행사야. 기원 79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유적은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봐야 곳으로 꼽히지. 이번에는 폼페이에서 나온 유물 300여점이 전시돼. 폼페이 유적이 특별한 도시가 서서히 몰락해 가면서 텅빈 유령도시가 되어 유적화한 것이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생활이 진행되던 상태에서 화산재로 덮여 정지화면처럼 그대로 남았다는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생활을 재현할 있는 유물이 풍성한 편이지. 성인 13000.

정도면 2월은 심심찮게 보낼 있을거야. 3월에 만나.  

 

 

향수 드보르작                                            C 3만원

국립극장,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밀러의 프랑켄슈타인  R 15000

다니구치 지로, ‘선생님의 가방’ 1,2                            1만원

배명훈, ‘맛집 폭격                                          12000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13000

 

                                                           9만원

 

 

 

그러니까 긴말 할 것 없이,

 

 

 

 

그리고

 

 

 

이렇게 두가지를 볼 수 있다는 거죠.

 

뭐 굳이 말을 더 길게 할 필요가 없을 듯. 팬들은 얼른 예매하세요.

 

이달의 음악도 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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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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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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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라고 원대한 포부와 인생의 계획을 정립하는 건 그냥 부지런히 살아서 큰 일 하실 분들의 얘기인 것 같고, 이런 블로그를 돌아보실 여유를 가진 분들은 그냥 사시던 대로 사시는 게 좋겠습니다.

 

 

 

Paul, Stella and James, Scotland © 1982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그러니까 저 밑에 쭈그리고 앉은 소녀가 아디다스 삼선을 촌스러움의 상징에서 벗어나게 한 그 분이란 얘기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5)

 

송년 모임으로 퀭한 눈을 하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세번째 새해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리네. 어찌나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혹시 그 전에 이 칼럼을 본 사람이라면 새해라는 건 그냥 달력 위로 지나가는 표시일 뿐이야. 1월 한달 어떻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냥 살던 대로 살라는 지침은 지난해와 똑같아.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안달복달하지 말고 살아. 남들이 뭘 하고 얼마나 앞서 가건, 조금만 길게 보면 언젠가 다 비슷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있어.

 

새해의 첫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118, ‘정명훈과 서울시향 10이라는 10주년 기념 공연이었어. 서울시향을 두고 시민의 혈세로 1%의 상류층을 위한 서비스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절인데, 그런 사람들에겐 세금으로 뭘 해야 낭비가 아닌지 궁금해. 도로 포장? 하수도 보수? 정말 그거면 충분해?

 

또 다른 일각에선 정명훈이 온 뒤와 오기 전 서울시향의 연주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일각에선 무식한 게 죄냐고 방어벽을 쳐 주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은 무식한 게 죄야. 자기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건 더 큰 죄고.

 

아무튼 그런 분들의 생각보다는 이런 공연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티켓 가격은 무려 1만원 부터시작해) 상류층이 꽤 많은 덕분인지, 이 공연은 거의 매진 직전이야. 이 칼럼이 책으로 나갈 때에는 매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 추천하기는 곤란하네.. 연주 곡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황제’(협연자가 심지어 김선욱이야),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 혹시 취소표가 나오는지 각자 확인해 보도록 해.

 

이 공연을 포기하면 아쉽긴 하지만 1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요엘 레비 지휘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 B 3만원, C 2만원. 

 

오랜만에 연극 한 편. 국립극장에선 118일부터 해롤드 앤 모드라는 연극이 공연돼. 늘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19세 소년이 삶에 무한히 긍정적인 80세 할머니를 만나면서 훈훈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는 줄거리.

 

 

 

잠깐, 그런데 이거 내가 아는 연극 같은데?’라고 말하려는 분? 그거 맞아. 지난해까지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 맞아. 다만 원작자 측에서 원제 해롤드 앤 모드를 그냥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해. 벌써 한국에선 여섯번째 공연인 셈이지. 할머니 모드 역은 계속해서 박정자가 나서고, 19세 소년 해롤드 역은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으로 주목을 끈 강하늘이 맡게 됐어.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극중 40) – 유아인(극중 20) 커플은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최강 연상연하 커플의 훈훈함이 추위를 날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이런 추운 날씨엔 집에 콕 박혀 볼 책을 소개하는게 더 맞을 것 같지만, 건강을 위해선 추워도 바깥 출입을 좀 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1월은 아시다시피 전시의 성수기잖아. 방학이기도 해서 괜찮은 전시들이 몰리는 시점이지.

 

우선 지난 1213일부터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리, 일상의 유혹전에 눈길이 가.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Les Arts Decoratifs)에 소장된 장식 예술품과 가구, 식기, 기타 생활용품 등을 통해 18세기 파리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야. 그동안 흔히 있었던 예술품이나 사진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네. 13000. 329일까지.

 

 

Jimi Hendrix Experience, London © 1967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서울 대림미술관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전시야. ‘매카트니라는 이름에서 바로 느낌이 오겠지. 비틀즈의 리더 폴 매카트니의 전처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어머니인 린다 매카트니는 그룹 윙즈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래 출발점이 사진작가야.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해. 물론 이런 칭찬은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동세대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사진(바로 위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처럼) 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야.

5000. 116일부터 426일까지.

 

1. 16. KBS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B 3만원

1.18~2.28 연극 해롤드 앤 모드                                 S 5만원

11.6~4.26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5000

12.13~3.29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파리, 일상의 유혹     13000

                                                                      98000

 

 

 

사실 한달에 10만원을 자기를 위한 비용으로 쓰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한달에 10만원을 쓴다면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 한두번, 혹은 괜찮은 바에서 마시는 보드카 한 병 정도의 값으로 쓰는 게 훨씬 더 효용이 높은 분도 계실 겁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새해 담배값이 많이 올랐더군요)을 한달간 매일 즐길 수 있는 돈이기도 하군요. 옷이나 가방, 화장품 가격으로 따지면.... 비교하는 게 바보같을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10만원을 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아주 한정된 방법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어느게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소비의 방법에 우열을 두고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는 이상,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소비는 모두 욕먹어 마땅한 짓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종문화회관 앞을 그냥 지나치는 대중'에 대한 헛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몰입해서 즐길 거리가 있는 삶이(다른 말로 하자면 '취향을 가진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골프와 온천, 여행과 쇼핑, 그리고 낮 시간의 정치 토크쇼만이 인생의 전부인 노장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 두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뭐든 말입니다.

 

어쨌든 새해니까. 

 

그러고 보니 저렇게 팔팔하게 활동하시던 로린 마젤 옹도 지난해 이승을 뜨셨더군요.

 

살아 있을 때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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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neujahrskonzert 실황을 메가박스 생중계로 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생중계' 라든가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 '생중계' 등이 있긴 했지만 사실 진짜 생중계는 거의 없었죠(일단 그쪽에서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저녁 시간일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대략 24시간 이내에 다른 국가의 극장에서 방송되는 건 '생중계'로 친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1월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진짜 생중계였습니다. 주빈 메타 지휘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빈 현지 시각으로 1월1일 오전 11시15분부터 치러진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빈의 시차는 8시간. 대략 7시20분 쯤 중계방송(?)이 시작됐으니 생중계 맞습니다.

 

 

 

 

사실 저도 보기 전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본 건 아니고, 그냥 대략 "시간으로 볼 때 이번엔 진짜 '거의' 생중계겠구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시차를 따져 보니 진짜 생중계라서 좀 놀랐습니다. (분명히 생중계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 영상에서는 앵콜 곡이었는데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고, 생중계 방송사에선 자막까지 다 만들어 놓고 뭐 이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예전에도 몇 차례 쯤 국내 방송에서 신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방송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시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BGM으론 가능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사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소감을 좀 기록해 놓을까 합니다.

 

 

 

 

 

1. 생중계의 품질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 대략 15분에서 20분마다 화면과 음향이 LP 튀듯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영상과 음향이 싱크로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물론 결정적으로 방송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30분짜리 '음악' 콘텐트를 중계하는 데 7~8회 정도(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수신 이상이 발생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2.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5개관이 동원됐고 기타 지점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석 매진이란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콘텐트를 신년 이벤트로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 과장하면 '매년 1월1일은 메가박스에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3.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약 150여곡,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170여곡의 월츠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사실 월츠라는 음악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위한, '실용음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월츠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콘서트장이나 이런 이벤트를 통해 월츠를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것은 댄스뮤직을 좌정하고 앉아 '감상'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

 

4. 그러다 보니 전반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미션이 지난 뒤, 2부부터는 주빈 메타의 적극적인 진행 감각이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을 연주할 때에는 곡 후반을 피아니시모로 유지하다가 관객을 향해 큰 소리로 "etc, etc, etc" 라고 외쳐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더군요. 끝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곡 특성을 유머로 승화시킨.

 

5. 처음 들어 본 곡입니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학생 폴카'라는 곡이 연주됐는데, 이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곡이더군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에 나오는 '가우디아무스 이기투르 Gaudeamus Igitur' 파트의 변주로 보이던데... 이건 브람스의 패러디지, 아니면 브람스와 슈트라우스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래가 그 가우디아무스...

 

 

 

 

6. 이밖에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곡들에 발레 안무를 덧붙이는 아이디어(물론 공연 주최측보다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ORF가 짜낸 것이겠지만)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마음에 든 연출은 바로 Hans Christian Lumbye 의 곡인 Champagner-Galopp 을 연주할 때 등장한 '샴페인 병 따는 소리 내는 악기'와 단원들에게 술잔을 권하던 메타 옹의 퍼포먼스.  

 

8.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엔딩 곡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때 보여준 메타 옹의 박수 지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 음악의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크기의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얻어 내는 노련한 지휘자의 기량을 통해 '과연 음악에서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보여줬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앞부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메타 옹이 단원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빈 거주자, 독일어 능통자 내지는 음악 고수 여러분의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

 

9. 결론은 강추. 다음 기회에라도 한번 보실만한 콘텐트입니다. 정 뭐하면 2016년 1월1일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10. 이 이벤트를 놓친 분들께 추천 하나. 1월3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5 신년음악회'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단, 제목은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2014년 12월29일(현지시간) 열린 '새해맞이 음악회'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제목은 '신년음악회 New Year Concert'가 아니라 '새해맞이 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20332/ ) 인 겁니다. 뭐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죠.^ 물론 이런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1항 에서 지적한 생중계의 문제도 없고, 오히려 감상용 공연으로는 훨씬 더 좋을 듯.

 

 

P.S. 일본의 상류층 여성 사이에는 '기모노 입고 1월1일 빈에서 신년음악회 보기' 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기모노 입은 일본 여성 관객들이 최소 10명은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1090유로급  좌석인 모양이던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가장 싼 좌석은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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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순화동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9년.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2015년은 상암동에서 시작합니다. 새로운 방송 메카로 부각되고 있는 상암동...이지만 주변 환경은 아직 척박하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특히나 순화동 주변의 오래된, 혹은 내공 있는 맛집들이 매우 그리워 질 듯 합니다.

 

시청-순화동-충정로 주변에서 자주 가던 맛집들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순화동 주변에는 워낙 오래된 맛집들이 많습니다. 아시는 맛집이 없어서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텐데, 뭐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들은 제외했습니다. 유명하긴 한데 왜 유명한지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제외한 집들도 있습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맛집은 취향. 따지지 맙시다.

 

[지금부터 반말 모드]

 

 

 

1. 비진도 해물뚝배기 (A+뚝배기)

 

 

 

 

사진을 보고, 저 앞을 수십번 지나간 사람도 "아, 저 집이 그런 집이야?"라고 물어볼 정도. 주변을 잘 아는 사람에게 "고가도로 밑에 한정식 은정과 중국집 한성각이 있고, 그 건물 1층에 있는 집"이라고 설명해도 "거기에...?"라는 반응이 나옴.

 

이렇듯 존재감은 없으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충정로 최강의 맛집으로 정평이 난 집. 뚝배기에 해물을 그득 담아 국물을 내 주는데, 국물에서 MSG 맛이 거의 나지 않으나 놀랍게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남. (참고로 글쓴이는 절대 MSG 배제론자가 아님. MSG 맛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함. 다만 MSG 맛이 나지 않는 소박한 맛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비진도 해물뚝배기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서울 시내 여타 지역의 지점들과 이 집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 집이 그중 원조격인 것은 분명함.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비진도 해물뚝배기 충정로 직영점'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지점이 표시되는데, 아래 지도에 나오는 지점이 맞음.

 

단 테이블이 4~5개 뿐이고 11:30에 정확하게 오픈하기 때문에 경쟁률 장난 아님. 정말 앉기 힘든 집이라 더욱 가치가 드높은.

 

 

 

 

2. 진주회관(콩국수)

 

한여름에는 20~30분 대기가 필수인 서울시내 굴지의 콩국수. 일단 콩국수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젓가락 뜨는 순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콩국수 좀 빨아 봤다고 주장하면서 이 집을 부정하는 사람은 클래식 좀 듣는다면서 "난 베토벤은 좀 별로더라" 라는 식의 코멘트를 던지는 사람과 비슷한 대접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1만원 넘는 가격은 좀 아쉽.

 

여의도 백화점 지하를 통일한 진주집과는 친척이라는 후문. 사실 콩국수를 1년 내내 팔지는 않고, 콩국수 철에는 매우 불친절해진다는 특징이 있음. 이렇게 이미 유명한 집을 굳이 다시 소개한 건, 비수기에는 섞어찌개(내용은 부대찌개+오징어)와 김치볶음밥(이라기보다는 깁치철판비빔밥)이 맛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히 섞어찌개는 근동의 부대찌개류 중 최고.

 

 

 

 

 

 

 

3. 원조집 (닭한마리)

 

공식명칭은 "닭한마리 칼국수 원조집". 사진은 찍어놓은게 없는 것 같고, 비주얼은 맑은 국물의 일반 닭한마리와 매우 유사. 그런데 뭣보다 닭고기의 질이 순화동 주변의 여타 닭한마리 집들과 비교가 안 되는 양질이고,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와 나박김치의 중간 형태 쯤 되는 국물 시원한 배추김치가 일품.

 

남비를 올릴 때 마늘을 추가로 요청해 잔뜩 국물이 넣고, 간장소스+식초+겨자+매운 양념을 배합해 고기를 찍어 먹고, 국물이 적당히 졸았을 때 익은 마늘과 국물을 같이 먹는 맛이 일품. 배추김치로 국물 뒷맛을 없애면서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으면 식사 끝. 인당 1만5천원 정도 소요.

 

 

 

 

 

 

4. 남도식당 (추어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동 한복판의 추어탕집. 가벼운 된장 기운에 부담스럽지 않은 국물이 시원하고, 정갈한 반찬에 상을 받으면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워지는 명문의 위력이 여전하다. 서울 전역에 있는 추어탕집들의 내공이 동반 상승해 요즘은 웬만한 집이면 비슷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집의 매력은 여전하다. 특히 추운 날 강추.

 

다만 어느 시간에 가도 붐빈다는 점 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 눈으로 보는 줄의 길이에 비하면 회전률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그러니까 기다릴 만 하다. 그래도 죽어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정동까지 가기 전 전통찻집 덕수궁 옆 골목에 있는 '월매네남원추어탕'을 가셔도 된다. 이 집도 남도식당 근처라 인정을 못 받아 그렇지, 꽤 한다.

 

 

 

 

5. 버즈 앤 벅스 (각종 샌드위치)

 

일단 정동으로 접어들면 절대 가면 안 되는 집이 '길***기'라는 아주 으리으리하고 멋진 집. 뭐 워낙 입지가 좋아 늘 손님으로 미어 터지는 집이니 여러분이 안 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앞을 주저없이 지나 경향신문 쪽으로 죽 가면 왼쪽으로 고풍창연한 한옥 대문 형식의 이화여고 구 교문이 있고, 그 교문 안으로 들어가면 버즈 앤 벅스가 있다.

 

각종 샌드위치와 파이, 정식류를 비롯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맛을 낸다. 채광이나 조경도 일품. 근동의 '예쁜 밥집' 중 최고.

 

 

 

 

 

 

6. 진주집 (꼬리곰탕)

 

부근에서 추운 날, 중년 남자와 약속이 있다면 필승의 집. 유명한 갈치조림 골목 안에 있다. 꼬리곰탕이 워낙 비싼 음식이다 보니 보통 꼬리곰탕으로는 면이 안 살고, 이집 비장의 '토막'을 시켜야 하는데 19,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다만 비슷한 가격의 파스타 한 접시로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차가운 한파가 두렵지 않은 짙은 고기 국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4인 기준으로 6만원 정도 하는 꼬리찜을 시키고, 고기를 건져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과 국수를 끓여먹는 것도 별미. 남대문 시장의 꼬리곰탕이라면 올리브타워 지하에도 분점이 있는 은호식당이 라이벌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방 맛이 좀 과한 은호식당보다 다소 은은한 진주집을 훨씬 선호함. (이 정도는 취향 차이로 인정 가능)

 

 

 

 

7. 중림장 (설렁탕)

 

순화동 주변의 설렁탕이라면 전통의 잼베옥과 중림장이 쟁패를 벌인다. 가장 큰 차이는 MSG의 촉촉한 맛. 잼베옥은 거의 MSG의 수혜를 못 본, 다소 슴슴한 국물 맛이 일품이고 중림장은 상대적으로 고소하고 감칠맛도는 M의 세례가 선명하다. 김치도 중림장 쪽이 단맛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중림장 국물 맛이 훨씬 친숙한데, 이 집을 두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어마어마한 냄새. 한경빌딩 주변 50M 반경에까지 꼬랑꼬랑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밥을 먹고 나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생각나는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8. 고려정 (국수전골)

 

이 동네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가는데 가장 고민이 덜할 집. 가츠오부시+다시마+멸치 베이스 육수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여 먹는, 전형적인 국수전골이 일품이다. 물론 주 1회 이상 먹으면 금세 물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우 감동스럽다. 예전엔 낮에는 한정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방을 내주지 않는 거친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 1만2천원 정도. 아울러 밤에는 상당히 양질의 삼겹살을 낸다.

 

 

 

 

 

9. 마마스 (각종 샌드위치)

 

뭐 워낙 유명한 집이고, 여전히 경쟁력도 넘쳐난다. 1만원대 초반의 샐러드로 2인 식사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필리치즈샌드위치가 최근 질이 낮아지고 있어 아쉽긴 하다. 아무튼 최고.

 

 

 

 

10. 부원면옥 (냉면)

 

생각해보면 냉면이 그리 고급 음식이었을 리 없건만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인 시내 고급 냉면집들이 야속한 분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냉면집. 적당히 시장스럽고, 적당히 전통미 있는 달달한 국물이 씨원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빈대떡을 부치는 데 쓰는 돼지 비계 냄새가 확 풍기지만,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그 냄새 또한 이 집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부원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걸어 내려 오면서 적절한 지점에 있는 옛날식 팥도너츠를 사먹는게 부원면옥 방문의 완성.

 

 

 

11. 버거B

 

번지도 없는 위치라 좀 의아하지만, 프레이저 플레이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정면에 교통센터같은 건물(실제 왕년엔 교통센터였다고)에 있다. 맛 매우 훌륭. 이 근방에 이런 맛을 내는 수제버거집이 있다는 게 감동일 뿐이다.

 

아울러 이 집의 진정한 강점은 옥상. 야외가 부담스럽지 않은 계절에 옥상에서 식사를 하거나, 해가 저문 뒤 가로등 불빛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 도심 속의 낙원이 따로 없다. 언젠가 이 옥상에서 가든 파티를 해보겠다는 작은 꿈이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 슬프다.

 

 

 

12. 센나리

 

시청역 부근의 메밀국수집으로는 전통의 유림면(김수현이 별그대에서 간 그 집)이 있어 다른 집은 아예 안 보인다. 유림면의 명성에 누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물이며 단무지가 좀 짜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냄비우동은 비추지만 비빔메밀은 강추.

 

그런데 유림면이 부럽지 않은 작은 식당이 하나 감춰져 있다. 센나리(千成)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작은 집. 테이블이 4개 정도 뿐인 작은 집인데 소바 정식이나 오뎅 정식이 먹을만. 밤에는 간단한 안주에 한잔 술을 곁들이는 작은 술집으로 변신한다. 운치있다.

 

 

 

13. 해원각

 

원래 신문사의 로망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맛있는, 오래된 중국집 골방인데 불행히도 순화동에는 그런 중국집이 드물다. 가장 기본인 짜장면 맛이 약하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집으로는 한경빌딩 바로 옆에 있는 해원각을 추천하고 싶다. 단 기본 메뉴 - 짜장 짬뽕 탕수육 깐풍기 - 에서 벗어나면 책임지기 힘들다.

 

 

 

14. 산수갑산 (삼수갑산)

 

양질의 목살구이로 정평이 난 집. 낮시간에는 목살과 된장찌개를 결합한 목살구이 정식으로 유명했다. 저녁에는 목살 못잖게 곱창전골이 맛있다. 가끔 순화동의 다른 집이 곱창전골 맛집으로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데, 이 집을 한번 가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지실 듯.

 

물론 본래 지명은 '삼수갑산'이 맞는데, 이 집 안에는 두 표기가 다 써 있다. 그냥 혼동을 피해 병기.

 

 

 

 

15. 안춘선 갈비배추탕

 

좀 멀리 갈 각오가 돼 있을 때 가는 집. 제목은 갈비배추탕이지만 돼지고기 수육이 우선 일품. 절대 싼 집은 아니지만 음식이 그만한 값을 한다.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앉아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집. 삶은 돼지고기를 깍두기 국물과 깻잎에 싸 먹으면 시름이 절로 가신다. 엷게 된장을 푼 갈비배추탕에선 우거지 갈비탕과 또 다른 달콤한 배추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보다는 '저녁에 한잔'이 어울림.

 

 

 

16. 뚜껑집

 

서울 시내에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고 부르는 집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태원의 바다식당과 서대문 경찰서 뒤의 뚜껑집 정도? 물론 이름만 같을 뿐,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뚜껑집은 그냥 '전형적인' 부대찌개. 칼칼하고 진한 맛이다. 햄 구워 먹다가 찌개 해서 소주 한잔 하면 좋을 집.

 

 

 

 

17. 중림집

 

정작 사무실이 한경빌딩에 있을 때는 존재를 몰랐던 집. 꽤 연식이 있다. 점심 메뉴로는 갈치조림, 동태탕, 제육볶음이 인기다. 가격도 1인분 만원 미만인데 내용이 실하다는게 놀랍다. 제법 두툼한 갈치를 보고 '어떻게 이 가격에...?'라고 물으면 '중국산이야. 그런데 어차피 서해바다에서 잡은 거라 똑같애'라고 시원하게 말해주시는 사장님. 사실 이 집을 한번 가 보면 남대문시장의 희락을 갈 수 없게 된다. 메뉴는 파전, 두루치기, 제육 등이 있어 저녁에 슴슴하게 소주 한잔 하기에도 딱 어울린다.  

 

 

 

 

18. 대보찻집

 

밥집은 아니고 찻집.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외부 찻집 중 하나. 호암아트홀 맞은 편, 마마스와 장호왕곱창 사이 지하에 있다. 굉장히 허름하고, 70년대 역전 다방 같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전통차는 진하고 맛있다. 특히 여름에 마시는 냉대추가 일품이다.

 

그런데 검색하니 2호점이라고 나와서 깜짝 놀람. 대체 1호점은...?

 

 

 

 

19. 에가오

 

에가오라는 집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체인인 듯. 나름 괜찮은 케이크와 커피를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집의 빙수맛이 일품이다. 가격도 7~8천원대. 물론 아티제도 빙수가 좋지만 가성비로는 에가오에 당할 수 없다. 우유맛이 너무 진하지도 않은 것이, 팥을 너무 많이 주지도 않는 것이 은은하고 적당한 맛.

 

 

대략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집은 이 정도. 물론 독립문 바로 옆으로 이사간 대성집 도가니탕이나 청파동의 민물매운탕집, 마포의 진미게장, 명동 중국대사관 입구의 오래된 화상들 등 '범 서소문권'의 맛집들도 생각이 간절할 것 같다.

 

이 동네에 남아 계신, 혹은 새로 오신 분들에겐 이 리스트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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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그룹 어나니머스의 활동,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홍콩 민주화 시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공통점은 뭘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뾰족한 코와 팔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어떤 남자의 얼굴을 묘사한 가면이죠. 그런데 최근까지 이 가면이 누구의 얼굴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가이 폭스, 가이 포크스라는 남자는 한때 영국인들에게 반역자, 혹은 악당의 대명사로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이 폭스 데이'라고 불리는 매년 11월5일 밤이면 영국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 뒤꽁무니에 폭죽을 달아 공중으로 날려버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다 보니 어느새 이 남자는 자유와 민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가이 폭스

[인명] Guy Fawkes(1570~1606).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에 폭탄을 설치해 국왕 제임스 1세와 주요 귀족들을 몰살시키려다 실패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21세기 들어 그의 얼굴을 본딴 가면이 민중 저항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로 변신했다.

 

비슷한 얼굴의 가면을 쓴 시위 인파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를 메우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시작으로, 프랑스 터키 헝가리 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같은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추고 구호를 외쳤다. 웃는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자 형으로 멋지게 치켜올라간 콧수염이 특징으로 누구나 같은 얼굴의 가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2014 11월에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이 가면을 쓴 시위대가 포착됐다.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도 자신들의 상징으로 같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거나, 웹상에 표시되는 영상에 이 가면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때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가면을 가리켜 어나니머스 가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면은 가이 폭스 마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귀도 폭스(Guido Fox)라고도 불리는 가이 폭스(한글 표기로는 가이 포크스라고 쓰기도 한다) 1570년 영국 중부 요크의 가톨릭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군인의 길을 걸었고, 스페인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페인 군에 가담해 싸울 정도로 골수 카톨릭 전사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영국 국왕이 된 제임스 1세는 본래 스코틀랜드 왕가 출신으로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왕위에 오른 뒤에는 국론 통합을 위해 영국 국교만을 인정하고, 이에 반발하는 카톨릭과 청교도 모두를 탄압했다. 폭스는 제임스 1세의 배신에 분개했고, 동지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지하로 땅굴을 판 뒤 폭약을 설치해 왕과 그 측근들을 일거에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음모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 일이 너무 커질 것을 겁낸 음모자 중 누군가가 왕의 측근 몬티글남작에게 익명의 편지로 계획을 고발했다. 몬티글 남작의 하인 중 하나가 다시 일당들에게 음모가 들통났다고 알려 줬지만, 눈에 띄는 대응 조치가 없자 폭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을 끌자 제임스 1세 본인도 음모를 전해 듣게 됐고, 폭스는 거사를 저지르려던 115일 당일 밤 체포됐다. 폭스와 동지들은 1606 131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영국인들에게 가이 폭스라는 국왕 시해를 시도했던 흉악범으로 유명해졌다. 115일은 가이 폭스 데이’, 혹은 음모의 밤(Plot Night)’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 노는 축제일이 됐다. 미국 학원문학의 고전인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골목대장(The Story of a Bad Boy)’에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소년들이 가이 폭스 데이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가면을 쓰거나, 가이 폭스 인형에 폭약을 달고 거기에 불을 붙여 인형을 불태우는 놀이를 했다. 한마디로 아주 유명한 악당이었던 셈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이뤄졌다. 몇몇 역사가들은 그의 계획이 단순한 역모가 아니라 종교 탄압에 대항한 민중 봉기라고 해석했고, 미국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는 이런 재해석을 바탕으로 1982년 만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내놨다. 전 세계적인 민중의 저항을 주도하는 주인공 V가 가이 폭스의 가면 뒤에 얼굴을 감췄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주인공 V(휴고위빙)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중이 가이 폭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동참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후 이 가면은 세계 곳곳에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이 폭스 자신도 음모에 성공한 것 보다 이런 명성을 더 흡족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기다.

 

사실 그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다. 그의 이름인 ‘guy’이상한 옷을 입은 기이한 남자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됐고, 19세기 쯤 미국으로 건너가녀석, 친구라는 의미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guy’라는 단어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끝>

 

뉴욕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홍콩에서도, 가이 폭스의 물결입니다.

 

가이 폭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영국의 종교 지도에 대한 지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영국 인구의 절대 다수는 기독교도이지만 그 분포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파는 흔히 성공회(Anglican Church)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입니다. 카톨릭에 대항해 만들어진 교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동기가 다른 신교(protestant) 교파와는 매우 다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스페인 출신인 왕비 캐서린(원래 형수였던)과의 이혼을 반대하는 카톨릭 교회에 한대 먹이기 위해 '영국 국왕의 명은 교황의 명보다 우선한다'고 선포한 데서 비롯된 교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聖公會 라고 부르는 것인데,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된 헨리 8세의 사적을 보면 과연 '성공'이라고 불릴만한 왕인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아무튼 헨리 8세와 아들 에드워드 6세, 그 뒤를 이은 제인 여왕(재위 9일만에 왕위에서 밀려난)에 이어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외가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므로 영국을 다시 카톨릭의 나라로 되돌려놨지만 그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가 아버지 헨리 8세의 유지를 이어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잉글랜드'만의 이야기고, 저 북쪽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카톨릭의 땅이었습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당연히 후사가 없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엘리자베스 1세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장남인 제임스 1세였습니다. 당연히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탄압(?) 당했던 카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1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수장답게 성공회를 장려하고 카톨릭을 억눌렀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가이 폭스를 비롯한 카톨릭 과격파들은 제임스 1세를 배신자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P.S. 가이 폭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 소설 'A story of a bad boy'는 '얄개전'의 저자인 조흔파 선생에 의해 '골목대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바 있습니다.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같은 분들이 쓰신 '얄개전'이나 '남궁동자', '에너지 선생', '6학년 0반 아이들', '아파도 웃는다', '나는 둘' 등의 학원 문학 장르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유산이랄까요. 그래서 지금도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라는 표기보다는 '토마스 베리 올드릿취'라는 표기가 훨씬 정겹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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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쓴 글들을 방출합니다. 물론 이미 '매거진 M'을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십상시의 여파가 남은 동안 매년 연말 등장하는 교수협회의 고사성어에 '지록위마'가 등장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0.2초 내로 답이 나옵니다. '환관'이죠.

 

어째서 우리는 2014년에 환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이고 중간에 조고와 지록위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록위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더군요.

(마지막에 2001~2014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들이 궁금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거의 '동의어 찾기' 수준.)

 

 

 

 

 

십상시

 

[명사] 十常侍.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세를 장악했던 장양 등 열 명의 환관을 통칭해 부르던 말.

 

500여년간 동양 남성의 필독서였던 소설 삼국지연의천하의 대세란 본래 갈라지면 하나로 합쳐지고, 합쳐지면 또 갈라지는 것(天下大勢, 分久必合,合久必分)이란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광무제에 의해 시작된 후한(後漢)의 정세가 어떻게 어지러워지면서 위, , 촉 삼국의 뿌리가 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서기 168,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영제(靈帝)는 평생을 환관들의 영향 속에 살았다. 몇몇 신하들이 도전했으나 영제는 매번 결정적인 시기에 환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선대 환제(桓帝) 때 부터 황제를 모신 열 명의 내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권을 농단했다. ‘삼국지연의는 이들의 이름을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건석、정광、하휘、곽승이라 기록하고 있다. 정사인 후한서도 장양, 조충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그 수가 12명이다.

 

이들의 폐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의 통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됐지만 영제는 주색에만 탐닉하다 189, 34세로 숨을 거뒀다. 16세인 영제의 장남 유변(劉辯)이 뒤를 이었으나 5개월 만에 십상시의 난을 겪으며 동탁에 의해 쫓겨나 소제(少帝)라 불렸다.

 

명색이 십상시의 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와 그 일족들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정권 탈취 음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는 이름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환관들의 권력이 철저하게 황제의 총애에 기반한 것이고 보면, 환관들이 황제를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었다. 하지만 해바라기 권력의 속성상 이들은 군왕의 심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였으므로, 대개 국정은 극도로 어지러워졌다.

 

십상시 외에도 중국 역사에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진시황 때의 조고를 비롯해 촉한의 황호, 당 현종 때의 고역사, 당 희종 때의 전영자 등 부지기수다. 명 태조 주원장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환관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정치 참여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엄한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고작 37년 뒤인 1435, 5대 영종 때 다시 환관 왕진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시대를 전횡한 내시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치 사대부들의 견제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5(1494)에는 임금이 몇몇 환관들과 의관들에게 가자(加資, 관료들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를 내리자 조정 백관들이 크게 반발한 기록이 있다. 특히 대사간 윤민은 한나라 원제가 석현 한 사람을 등용했을 때 뒷날 오후(아래에 자세히 설명)나 십상시의 권세를 예견했겠느냐228일부터 312일까지 11회나 상소를 올리며 가자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성종 또한 결국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훨씬 신중해졌다.

 

이렇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내시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수준의 학문과 교양을 갖춘 이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학식을 갖추면 정치에 관여한다 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업무 수행에 걸맞는 교양을 쌓는 것을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연구서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엔 내시부에 환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3명의 내시고관을 상주시키고 어린 내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순조 때 시문집 노곡만영을 남긴 이윤묵 같은 문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중국 내시가 조선 내시에 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이유를 황제의 권력과 조선 국왕의 권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은 일찍이 사대부의 나라로 자리잡았고, 어떤 군왕도 중국 황제처럼 전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 황제들이 권력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던 두 축은 종실(또는 외척)과 환관이었다.

 

환관 권력의 대명사인 십상시는 본래 영제의 전임자 환제의 시대에서 태동했다. 환제는 외척 세력 타도를 위해 암암리에 환관들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공을 세운 다섯 환관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오후(五侯).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영제는 자연스럽게 환관들을 자신의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인의 장막이 최고 통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제와 십상시의 시대에서 2천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외척환관의 권력 암투가 뉴스가 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담일 수도 있겠다(끝)

 

 

 

 

 

요약하자면 내시 권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척? 자기 집안 생각 뿐이고 삼촌? 사촌? 다들 내가 어떻게 되면 이 자리를 탐낼 자들이야. 아예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환관들? 저들에겐 가문도 없고, 그저 믿을 건 나 뿐이잖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주고, 나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은 쟤들밖에 없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시 권력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 옆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안위가 내시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시 권력은 '어르신'의 기분과 안전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흉악하고 불측한 것들'과 '어르신'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죠. 그러는 사이 국정은 개판이 되고 맙니다.

 

정치는 본래 욕망의 콜로세움입니다. 그 다양한 욕망과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해서 스스로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때로 그 욕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로를 수정하는 것이 통수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듣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을 던져 주는 오래된 측근들, 그들의 인의 장벽에 갇혀 '욕망의 정치판'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시 권력'의 핵심이고, 세간에서 말하는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현실인 것입니다.

 

 

 

 

아울러 2001년부터 교수신문의 한해 정리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01 오리무중 五里霧中  설명이 필요 없는.
02 이합집산 離合集散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국론 분열
03 우왕좌왕 右往左往  설명이 필요 없는.
04 당동벌이 黨同伐異  같은 편끼리 떼지어 상대방을 치는 국론분열에 대한 개탄
05 상하화택上火下澤   위는 불이요, 아래는 못. 다급한 상황

06 밀운불우 密雲不雨  구름은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07 자기기인 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누구를 속이려느냐는 개탄

08 호질기의 護疾忌醫  의사를 믿지 못해 병을 더 키움. 누가 자기 편인지도 모르고 충고를 무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탄
09 방기곡경 旁岐曲逕  곧은 길이 아닌 구부러진 골목길. 한마디로 '정도를 가라'는 뜻.
10 장두노미 藏頭露尾  머리는 감췄는데 꼬리는 뻔히 보임.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11 엄이도종 掩耳盜鐘  자기 귀만 막고 종을 훔치다. 역시 눈 가리고 아웅.
12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 썩은 세상.
13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

(하지만 '도행역시'의 경우에는 고사를 살펴보면 본래의 맥락은 "어쩔수 없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이므로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절한 사용은 아닙니다. 이건 교수신문의 무리수.)

그리고... 올해의 지록위마 指鹿爲馬. 뭐 속성상 어떤 해라도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탄 일변도인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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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vecard.joins.com/1278 에서 이어집니다.

 

마야 우붓의 그림 같은 숲속 수영장.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리버 카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화창한 날씨 속이지만 오전까진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셀카봉의 성능 테스트를 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아직 좀 차갑다.

 

 

 

사진으로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 정글 속의 수영장은 진정 아름답다.

 

 

 

리버카페 뒤로 나 있는 샛길로 언덕을 올라가 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계곡을 따라 가면 끝없는 밀림.

 

약간 과장이 보태지긴 했지만 정말 밀림이다.

 

 

 

 

기억나시겠지만 마야 우붓은 호텔 경내로 강이 흐른다. 물론 강을 보려면 계속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꽤 한참.

 

그리고 강이 나온다.

 

 

 

 

 

호텔 경내에 이런 밀림과 급류가 흐른다. 어마어마하다.

 

 

 

위쪽을 쳐다보면 까마득한 밀림 속 절벽.

(그런데 이게 호텔 안의 정원...이라니까.)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면 폭포도 나온다.

 

 

                                                                다시 올라갈 길이 막막한 수준.

 

 

 

이렇게 호텔 안에서 대자연을 만끽하고, 흐르는 땀을 씻는다.

 

 

                                                  간신히 돌아온 지상. 이제야 살 것 같다.

 

 

저녁에는 호텔의 유일한 바에서 이브닝 드링크를.

 

영국식 풍습인지 오후 4시에 애프터눈 티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기대할 만한 서비스는 아니다. 티 두어 종류에 과일과 인도네시아 식 떡 종류가 나오는데 가짓수도 한가지 뿐인데다 양도 부실하다. 떨어지면 바로 바로 리필해 놓지 않는다. 예전에 다녀오신 분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 애프터눈 티가 식사 대용이 될 정도로 풍성했다던데, 그게 호텔 경영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무튼 호텔에서 우붓 시내로 가는 셔틀이 오후 5시, 시내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셔틀이 5시30분에 끊긴다는 건 여행자 입장에선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물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손님의 수를 늘려 보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사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차라리 우붓에서 식사와 유흥을 좀 즐기고 사설 택시를 이용해 호텔로 돌아오는 편을 더 선호한다. 호텔 택시(라이드)를 부르면 4~5만 루피아, 우붓 시내에서 마야 우붓 정도로 들어오는 택시를 잡아 타면 딜 하기 나름인데 3만 루피아 내외다(처음에는 거리에 서 있는 택시 - 라기보다는 나라시 - 기사들이 한 5만 정도를 부른다). 어차피 한화로 3천원 내외라 크게 다투게 되지는 않는다.

 

우붓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대략 10만 루피 이내에서 2인 식사와 음료가 해결된다. 반면 호텔 구내에서는 1인에 최하 15만 루피는 든다고 봐야 한다. 뭐 체면이 깎인다고 싫어할 사람도 있겠으나, 비용 절감을 생각하면 컵라면(포트 이용)이나 햇반(뜨거운 욕조 이용^^) 등을 사용해 방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셔틀을 타러 나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호텔 로비를 보게 됐다.

 

 

우붓 시내는 그리 큰 볼거리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붓 시내에 장신구며 전통 예술품, 혹은 공예품 등 살 거리가 많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우붓의 인사동'이라는 잘란 드위시타(Jalan Dewisita)를 가 봐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붉은 선 정도가 가장 잘 발달한 쇼핑가. 그리고 왼쪽 아래로 보이는 사각형 운동장 아래 쪽으로 죽 내려가면 역시 번화가인 몽키 포리스트 로드가 나온다. 거의 한 집 건너 맛사지 샵과 식당, 카페가 있다. 맛사지는 60분 기준 10만 루피아, 한국 돈으로 1만원 정도. 태국보다도 엄청나게 싸다. 다만 스타일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흔히 타이 마사지라고 불리는 종류는 관절을 꺾고 근육을 주물러서 맺힌 곳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안마에 더 가깝다. 하지만 발리 마사지는 진짜 마사지, 즉 기름을 피부에 문질러 흡수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많이 걷거나 수영으로 지친 근육을 풀어 주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다. 피부에는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가격이 워낙 싼 탓인지 마사지 샵의 시설에 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좀 강하게 주무르는 안마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지 발리에서의 마사지에 큰 감흥을 느껴 보지 못했다.

 

물론 음식에 대한 한 우붓은 어느 집을 가거나 신뢰해도 좋다. MSG를 넉넉하게 써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뭘 먹어도 입맛을 당긴다. TRIPADVISOR에서 추천한 멜팅 웍 아룽(Melting Wok Arung)을 가 봤다.

 

 

 

이 집에서 추천하는 정식류가 4800~5800 원 수준. 저렴한데 맛도 훌륭하다.

 

 

인도네시아 전통주인 아락(Arak)에 레몬과 꿀을 탄 음료. 아락은 40도 가량의 독주다. 쨍한 느낌이 온다. 고량주같은 깔끔한 맛이라기보다는, 많이 마시면 바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열대산 스피릿의 느낌이 있다.^

 

 

 

 

손님 중에는 서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프랑스계로 알려진 여주인은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센스를 갖췄다. 월드와이드 맛집의 지위를 즐기는 모양새라고나. 아무튼 맛도, 서비스도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우붓 야경. 밤에는 제법 운치가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이 길을 세계 각국 청춘들이 가득 메운다고 한다. 10월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거리는 한산했다. 쿠타나 짐바란 같은 해변에는 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고들 하는데, 과연 산속인 우붓에 오는 젊은이들은 뭘 기대할지 궁금했다. 래프팅? 하이킹?

 

 

우붓의 할거리 중에는 리조트 투어도 있다.

 

흔히 우붓 지역 리조트에는 두가지 뷰(view)가 있다고들 한다. 바로 밸리 뷰(Valley view)와 논 뷰(^^)다.

 

밸리 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조트 중에 앞서 말한 행잉 가든이 있고, 이 바이스로이(Viceroy)가 있다. 바이스로이는 모든 객실이 풀빌라인 고급 리조트다. 가격도 1박에 150만원 이상. 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식사를 하러 갔다.

 

 

 

바이스로이 메인 풀의 위용. 저 수영장도 우붓 특유의 인피니티 풀(infiniti pool)이라 끝에서 저절로 물이 흘러 넘쳐 공중에 뜬 느낌을 준다. 저 밀림지대는 건너편 언덕이라, 수영장 끝 벽에 매달리면 일망무제의 호쾌한 뷰를 즐길 수 있다.

 

다만 뭘 먹어도 맛난 우붓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식사가 바로 이 바이스로이에서의 식사였다. 가격에 비해 맛은 그닥. 어쩌면 주 고객인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춰진 탓일 수도 있겠다.

 

 

 

식사 후에 정중하게 요청하면 버기 카를 이용해 리조트 구경을 시켜준다. 물론 구경은 공짜다.

 

 

150만원짜리 풀빌라의 위용. 모든 객실에서도 메인 풀에서 볼 수 있는 밸리 뷰의 위용을 즐길 수 있다.

 

다만...이런 리조트에서 1박을 하느니 나같으면 마야 우붓에서 5박을 하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바이스로이가 멋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치 마야 우붓이 마음에 들었다.

 

 

 

마야 우붓에서는 밤 시간에 야외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엄밀히 말해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 앞 테이블을 예약해야 하지만, 사실 2층의 바에서 내려다 보면 공짜다.^^

 

 

 

이렇게.

 

 

 

 

밤하늘과 리조트의 조명은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너무 좋아서 생긴 풍경. 저 점점이 다 별이다.

 

바이스로이의 쭉 펼친 뷰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마야 우붓의 메인 풀 역시 뒤지지 않는다.

 

수영장 저 끝에 매달려 건너편의 계곡과 밀림을 바라보면, 1년 내내 그러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지치면 이런 옆 동굴 공간까지 완비.

 

 

 

동굴 공간에 음식과 음료를 넉넉하게 배달시키면 2인 기준 한화로 3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아주 싼 비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호텔 휴가라고 생각하면 지출할 수 있는 가격.

 

 

그리고 종일 있어도 동포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야 우붓이 취향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다들 관광을 나가신 것인지.

 

 

바에서 맥주 한잔을 즐긴 뒤 바라본 메인 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휴양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했다.

 

다양한 외부 활동과 관광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호텔. 하지만 어딘가 조용히 콕 박혀서 한없는 휴식과 낮잠, 햇살과 독서, 약간의 수영을 즐기면서 그야말로 retreat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호텔을 권하고 싶다. 글자 그대로 낙원의 다른 이름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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