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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은 레이첼(메기 질렌할)의 새 연인인 고담 시의 새로운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커트)가 범죄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인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습니다. 배트맨과 덴트, 그리고 고든 반장(게리 올드만)은 조직범죄를 싹쓸이하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한편 고담시에는 유례가 없는 대악당 조커(히스 레저)가 등장, 시민들뿐만 아니라 조직 보스들도 공포에 떨게 합니다. 배트맨과 덴트가 조직들의 자금줄을 죄자 보스들은 마침내 조커에게 배트맨을 제거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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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으로 시작된 네 편의 영화는 그나마 음침함을 유지하고 있던 팀 버튼이 손을 떼면서 완전히 동화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은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이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죠. 보다 그럴듯 하고, 보다 성인용인 배트맨의 세계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크나이트'를 얘기할 때는 조커를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대단히 유니크한 범죄자입니다. 그는 단순한 범죄자의 차원이 아니라 악마 자체죠. '순수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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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영화라면 칙칙한 밤 장면이 많이 나오는게 당연하지만, 조커의 존재는 이 영화를 더욱 어둡고 무겁게 만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조커는 수세기에 걸친 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담은 캐릭터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현자들이 정리한 선과 악에 대한 정의들을 종합하면 결국 선은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의지', 악은 '타자의 생존 가치를 부정하는 이기적인 의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 순수선과 순수악만 존재한다면, 결국 세상은 사라져버리고 말 겁니다. 이론적으로 선이란 악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전체의 선을 위해서 소수의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른바 '필요악'이 등장합니다. 이것 바로 정의라고 불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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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이 정의라는 필요악이 지나치게 거대해져서 그것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걱정합니다. 특히 정의가 어떤 특정 이념을 신봉하는 세력에 의해 운영될 때 그렇습니다. 실제로 어떤 가치나 신념도 전제하지 않은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인종 청소를 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 문명일수록 절차와 합의를 중시하고, 정의의 실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나 사사로운 정의의 실현(예를 들면 부모의 복수)은 엄격한 경계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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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은 이런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조커는 순수악의 상징, 배트맨과 하비 덴트는 건전한 정의의 상징입니다. 이 상징이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죠.

영화 속의 세계로 들어가 설명하면 배트맨과 덴트가 있어 고담 시민들은 세계가 안전하고 정의롭게 운영될 수 있다는, 또는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쪽을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조커는 그런 상징을 파괴하려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성공하게 되죠.

'다크 나이트'는 바로 악과 싸우는 정의라는 필요악의 존재, 그리고 이 필요악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냉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흔한 블록버스터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놀런의 솜씨는 대단합니다.


아울러 월 스트리트 저널이 이 영화의 배트맨을 부시 대통령과 비교한 칼럼을 게재한 것도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요점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죠. (그 글의 방향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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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일반 관객들이 영화의 뒷면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놀런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할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을 날로 갱신하고 있는 미국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테구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나머지 절반, 즉 순수 블록버스터로서의 '다크 나이트'입니다. 그리고 이쪽 절반 역시 대단히 훌륭합니다.

사실 '다크 나이트'의 액션에는 두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배트맨의 강력한 의상으로 인해 스턴트맨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죠. 배트맨의 주연 배우가 그렇게 자주 바뀐 건 우연이 아닙니다. 누가 입어도 구별이 안 되는 의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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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주인공의 특성상 대부분의 액션 신이 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덜 정교해도 됩니다. 사소한 실수가 발견돼도 그냥 CG로 슥슥 검게 지워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도시 한복판에서 콘테이너 트럭을 직각으로 뒤집어 버리는 차원의 액션은 입이 떡 벌어지게 합니다. 홍콩과 고담(극중에선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한 시원시원한 액션 역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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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얘기로 넘어가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죠. 크리스천 베일과 히스 레저는 동급 최강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조커는 매우 연기하기 쉬운 역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저의 연기력은 발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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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배우들,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맨, 마이클 케인, 아론 에커트의 진용은 '오션스 11'이 부럽지 않죠. 이 영화의 배우 남용은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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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에선 주역이었던 킬리앙 머피가 스케어크로 역 그대로 카메오 출연합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앉은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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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단 한 신 나오고 마는 은행 경비원 역으로 윌리엄 피트너가 나올 정도라니 말 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이 메기 질렌할이라는 건 좀...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고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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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축복받은 영화라고 부를 만한 '다크나이트'지만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에 대한 예측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했다시피, 이 영화의 배트맨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슈퍼 영웅'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배트맨의 본질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죠. 배트맨은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아닙니다.

(배트맨의 답답성 본질(^^)에 대한 내용은:)




배트맨은 악당은 물론이고 자기를 깨무는 개조차도 죽이지 못합니다. 이건 그의 원칙에 따른 것인데(물론 '다크나이트'에는 배트맨 외에도, 기회가 왔을 때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또 있습니다), 이런 그의 원칙에 따른 행동거지가 과연 한국 관객들의 구미에 맞을지, 그건 확인해 보기 전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벌써 '속터져서 못 보겠더라'는 관객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보면서 마음속으론 조커를 열두번도 더 죽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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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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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영화 리뷰는

http://isblog.joins.com/fivecard/category/영상을%20훑다가/영화를%20보다가

(자동이동이 안되는군요. 긁어다 주소창에 붙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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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이라'가 처음 만들어 질 때만 해도 3편까지 나올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스티븐 소머즈가 대단한 기대주였던 것도 아니고, 브랜든 프레이저 역시 관객동원력 있는 배우가 아니었죠. 하지만 이 샘은 파도 파도 제법 단 물이 나오는 명천이었습니다.

누구나 아다시피 '미이라' 시리즈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를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든 시리즈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셔널 트레저' 시리즈까지 등장해 박스오피스를 휘젓는 바람에 올해 개봉되는 '미이라' 시리즈가 3편이라는 말에 '어? 3편은 벌써 보지 않았나?'하고 잠시 생각했더랬습니다.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서로 설정을 꿔다 쓰는 바람에 한 4편 정도는 이미 나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미이라 3' 는 앞선 두 편과는 몇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감독이 'XXX'의 롭 코헨으로 바뀌었고, 오코넬 부인 역이 레이첼 바이스(Weisz는 이렇게 읽는답니다)에서 마리아 벨로로 교체됐습니다. 아, 뭣보다 무대가 이집트에서 중국으로 옮겨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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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렇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1946년, 릭 오코너(브랜든 프레이저)와 이블린(마리아 벨로) 부부는 은퇴 생활이 좀이 쑤셔 죽으려는 시점에 상해로 중요한 보물을 갖고 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 냉큼 수락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들 부부의 아들 알렉스(루크 포드)가 진시황(이연걸)의 병마용갱을 발견해놓고 있었죠.

그래서 진시황을 부활시키려는 군벌 양장군(황추생)과 그를 저지하려는 린(양낙시), 그리고 빠지면 섭섭한 이블린의 오빠 조나단(존 해너)가 뒤얽혀 엎치락 뒤치락 대 활극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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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시리즈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수많은 아류작 중에서 가장 밝은 색채를 자랑합니다. 여기서는 주인공 중 누가 죽거나 다칠 일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마음 편히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영화죠. 물론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뭐 얘기의 진행이 저 따위야?'라고 화를 내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얼개는 짜 놓은 상태라 그냥 마음 편히 따라가면 됩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줄거리에 관대해졌느냐고 따질 분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훌륭한 스토리는 아니라 해도 스토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은 모두 충족하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곁가지로 '대체 왜 얘기가 이런 데서 겉도는 거야?'하는 느낌을 주거나, 쓸데도 없는 설명으로 템포만 뜰어뜨리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아, '가족 이야기'가 좀 지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가족영화로서의 이 영화가 갖춰야 할 최소한이라고 생각하시는게 마음 편할 겁니다.


이 영화에서 부인 역의 배역 교체가 일어난 것은 무엇보다 레이첼 바이스가 '엄마 역할'에 너무 크게 초점을 맞춘 대본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애엄마 역을 좋아하는 배우는 사실 없다고 봐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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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들 역으로 루크 포드가 새로 등장한 것은, 이번 작품으로 브랜든 프레이저와 '미이라' 시리즈의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차기작부터는 루크 포드를 중심으로 영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군요. (하지만 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루크 포드의 매력이 너무 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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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3'는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이미 만들어 진 다른 영화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카리스마틱한 과거의 제왕을 되살리려는 현대의 악당들이 반드시 등장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건 그냥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칩시다. 영생의 샘물과 그걸 마셔야만 하는 이유는 '인디애나 존스 3 - 최후의 십자군'에서도 봤던 얘깁니다(생각해보면 다친 사람이 누군지도 똑같죠). 이밖에도 유사한 영화들로부터 빌려 온 설정이나 클리셰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에 매드 독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장면에서는 아주 잠깐, 아예 '인디애나 존스'의 메인 테마가 울려퍼진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들으신 분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우들은 별로 언급할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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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프레이저의 주름살이 좀 안쓰럽고, 마리아 벨로는 레이첼 바이스보다는 케이트 베킨세일을 훨씬 닮았고(롭 코헨이 스티븐 소머즈의 시리즈를 이어 가는 영화라니까 '미이라 3'가 아니라 '반 헬싱 2'인줄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루크 포드는 너무 개성이 없고, 이연걸이나 양자경은 사실 이런 영화에 이런 역으로 나오는 것이 좀 망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가장 반가운 얼굴을 꼽으라면 존 해너였고,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양낙시(梁洛施, 이사벨라 렁)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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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시는 포르투갈계 아버지를 둔 올해 만 20세의 홍콩 여배우입니다. 가수로는 앨범을 다섯장이나 냈지만 아직 배우로는 이렇다할 경력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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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왕년의 장민과 장백지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인데, 앞으로 차세대 홍콩의 주역으로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대만 금마장에서 이준기가 탕유(탕웨이)에게 신인여우상을 시상할 때 동반 시상자였다는 인연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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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채셨겠지만 굳이 이 양낙시의 뒷조사를 하고 있는 건 영화에 대해 그리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이라' 1편과 2편을 보신 분인데, 두 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았다면 이 영화를 보시는 건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앞의 두 영화를 못 보셨다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권할 것은 '미이라 3'가 아니라 '미이라' 입니다. 3편은 그 다음에 볼지 말지를 생각해 보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굳이 한마디만 토를 단다면, 놀이공원의 기구들도 안전할수록 스릴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매우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게 장점이죠. 그 밖의 다른 부분이요? 유머란 써먹으면 써먹을 수록 위력이 약해지는게 당연한 거죠. 그리고 농담에 대한 한 롭 코헨에 비해 스티븐 소머즈가 열 배는 뛰어납니다.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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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롭 코헨은 아무래도 용에 무슨 한이 맺힌 것 같습니다. 제목에 용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든 게 벌써 세번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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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번째 작품 '드래곤 하트'에 나오는 용(숀 코너리가 목소리를 맡았던)과 이 영화의 용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p.s. 2. 극중에선 아무도 진시황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진시황일 수밖에 없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중국인들이라면, 아무리 살아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지른 진시황이라도 '양키들'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부활을 저지당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홍콩에선 지난달 31일에 이미 개봉했는데 중국 본토에선 개봉하기 힘들겠죠?


p.s.3. (영화를 보신 분만 이해하시겠지만) 정말 4편에는 잉카 제국이 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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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와 관련, 이 영화에 나오는 배트맨의 모습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더군요. 월 스트리트 저널(WSJ)에 실린 한 칼럼에 근거한 기사였습니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int&arcid=0920984551&cp=nv

보다 보니 궁금해서 원문을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한글 기사를 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유를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 ‘배트맨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닮은 꼴. 미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8일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유명 추리소설가 앤드류 클래번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칼럼에서 “두 사람은 선악 구별만 하는 단순한 도덕 관념, 긴급 사태를 핑계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철면피라는 점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11 사건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환호를 보낸 미국인들은 얼마 전 개봉된 영화 ‘배트맨:다크 나이트’편에 똑같이 열광하고 있다. 클래번에 따르면, 이 같은 미국인의 심리가 바로 보수 진영의 요람이다. 항상 정의의 승리를 위해선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네오콘(신보수주의)과 부시 정권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특히 영화계가 보수주의를 더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며 “진보 진영이 부시 정권을 사실적으로 비판하는 반면, 보수 진영은 만화 캐릭터나 동원해 부시를 응원한다”고 지적한다. 배트맨 같은 블록버스터 ‘영웅’은 보수 이미지를 ‘단순·만용·일방주의’로 고착시킬 뿐이란다.

또한 진보 영화계가 얼핏 우월해 보이지만 진실의 한쪽 면만 부각시킨다는 점에선 보수 진영과 마찬가지라고 클래번은 꼬집었다. 테러리스트의 인권 침해 문제는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인권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 나온 배트맨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미국 보수주의의 현재는 우울해진다”며 “이제 보수주의도 만화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기자

>> (이상 국내 모 일간지 기사.)


이 기사를 봐선 앤드류 클래번이라는 사람은 부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자, 그럼 원문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보시라는 얘기는 않겠습니다.^^ 제가 엉뚱한 번역을 했는지도 모르니 다들 한번 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기사에서 굵게 표시한 부분을 원문에서 찾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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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트맨과 부시의 공통점

폭력과 공포에 휩싸운 도시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외침이 흘러나온다. 플래시 불빛이 밤하늘을 비치고, 흘러가는 구름 표면에 박쥐의 심볼이 비쳐진다.

가만. 저건 박쥐가 아니군. 사실, 손가락으로 따라 그려보면... 그건 마치... W처럼 보인다.

현재 모든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깨고 있는 '다크 나이트'는, 내가 보기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거의 찬가의 수준으로 조지 W. 부시가 지금과 같은 테러와 전란의 시대에 보여온 강고한 의지와 도덕적인 용기를 찬양하고 있는 영화다. W(부시)처럼, 배트맨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서고 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비방당하고 또 혐오를 사고 있다. 또 W처럼, 배트맨은 때때로 긴급 상황을 처리가히 위해 국민들의 권리를 잠시 유보해 두어야만 할 때가 있다. 물론 상황이 해결되는 즉시 그가 훼손된 권리를 원상회복 시킬 것 역시 당연하지만.

그리고 W처럼, 배트맨은 때로 사람들이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사회 와 파괴에만 열중하는 범죄자 집단 사이에 도덕적인 동등함(moral equivalance)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전자(자유 사회)는 비록 어리석음에 빠지더라도 고이 간직되어야 할 것이지만, 후자(범죄자 집단)는 반드시 지옥문 안에 갇혀 감시를 받아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다크 나이트'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의 영화다. 그리고 지난해의 '300'같은 영화들처럼, 부시 행정부가 하찮은 것들을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가치와 필요를 묘사함으로써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반대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좌경 색채의 영화들 -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렌디션(Rendition)''리댁티드(Redacted)' - 등은 도덕적 균형을 설교하고, 굴복을 옹호하며, 군과 그들의 사명을 비하하고, 미국과 이슬람 파시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개봉될때마다 '충격과 공포 작전(역주=Operation Shock and Awe: 2003년 이라크 침공 때의 작전명)' 수준으로 흥행에서 박살이 났다.

그렇다면 좌경 세력이 자신들의 영화를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면서 자유를 만끽한데 비해, 왜 할리우드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만(역주=배트맨 이야기를 빌려서) 했을까?  도덕심, 신앙, 자기 희생,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고귀함 등등, 우리를 지키는 데 힘을 더하는 보수적인 가치들은 대체 왜 '300',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스파이더맨 3'와 같이 판타지나 만화 원작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제작자들이 이슬람 테러리즘을 사실주의적인 영화에서 다루게 되는 순간, 이런 가치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좋은 편은 나쁜 편과 구별할 수가 없고, 결국 우리를 보호해주는 영웅들이 모욕받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대체 왜 이래야만 하나?

내게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바로 '다크 나이트'의 줄거리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사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미움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다. 물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도 있다(역주=누구일까요?).

좌경세력은 우익의 도덕관을 단순하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도덕이란 상대적이며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 안에서 이미 틀려 있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든 미국인들은 자유가 노예보다 낫다는 것을, 사랑이 증오보다 낫다는 것을, 친절이 잔혹보다 낫다는 것을, 관용이 편견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

정말 문제가 복잡해지는 건 우리가 이런 가치들을, 이 가치들이 널리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지켜내야 할 때이다. 우리가 관용을 지키기 위해 관용을 베풀수 없는 상황, 친절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친절해져야 하는 상황,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증오를 품게 될 때 말이다.

스스로 이런 어려운 일들을 떠맡는 영웅들이 등장할 때면, 나머지 우리들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려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우리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비방하는 경향도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평화적인 가치의 귀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우리 편의)사나운 병사나 잔혹한 심문자들을 저주하고 심판받게 했다. 정작 우리의 가치들을 지킨 건 그들인데 말이다. 게리 올드먼이 연기하는 고든 경찰국장이 미움받는 배트맨에 대해 "그는 멀리 도망가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뒤쫓을테니까"라고 말하듯이.

이거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혼란이다. 우리의 예술계가 때때로 사람은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타자를 죽여야만 하고, 그들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 그 가치를 침해해야 하고, 무비 스타들이 영웅인 적 하기 위해 우리의 아부의 조명 속에서 거들먹거리는 동안 진짜 영웅들은 어둠 속에서 축 처진 어깨로 살금 살금 도망치거나 모욕당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라야, 그리고 그럴 때에만 우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마땅히 받아야만 할 정당한 대우를 해줄 수 있고, 그때서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참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건 할리우드의 보수주의자들이 그들의 가면을 벗고, 낮의 햇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때일 것이다. (끝)



원문입니다. 주소는
http://online.wsj.com/article/SB121694247343482821.html?mod=sphere_ts&mod=sphere_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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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Bush and Batman Have in Common
By ANDREW KLAVAN
July 25, 2008; Page A15

A cry for help goes out from a city beleaguered by violence and fear: A beam of light flashed into the night sky, the dark symbol of a bat projected onto the surface of the racing clouds . . .

Oh, wait a minute. That's not a bat, actually. In fact, when you trace the outline with your finger, it looks kind of like . . . a "W."

There seems to me no question that the Batman film "The Dark Knight," currently breaking every box office record in history, is at some level a paean of praise to the fortitude and moral courage that has been shown by George W. Bush in this time of terror and war. Like W, Batman is vilified and despised for confronting terrorists in the only terms they understand. Like W, Batman sometimes has to push the boundaries of civil rights to deal with an emergency, certain that he will re-establish those boundaries when the emergency is past.

And like W, Batman understands that there is no moral equivalence between a free society -- in which people sometimes make the wrong choices -- and a criminal sect bent on destruction. The former must be cherished even in its moments of folly; the latter must be hounded to the gates of Hell.

"The Dark Knight," then, is a conservative movie about the war on terror. And like another such film, last year's "300," "The Dark Knight" is making a fortune depicting the values and necessitie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cannot seem to articulate for beans.

Conversely, time after time, left-wing films about the war on terror -- films like "In The Valley of Elah," "Rendition" and "Redacted" -- which preach moral equivalence and advocate surrender, that disrespect the military and their mission, that seem unable to distinguish the difference between America and Islamo-fascism, have bombed more spectacularly than Operation Shock and Awe.

Why is it then that left-wingers feel free to make their films direct and realistic, whereas Hollywood conservatives have to put on a mask in order to speak what they know to be the truth? Why is it, indeed, that the conservative values that power our defense -- values like morality, faith, self-sacrifice and the nobility of fighting for the right -- only appear in fantasy or comic-inspired films like "300," "Lord of the Rings," "Narnia," "Spiderman 3" and now "The Dark Knight"?

The moment filmmakers take on the problem of Islamic terrorism in realistic films, suddenly those values vanish. The good guys become indistinguishable from the bad guys, and we end up denigrating the very heroes who defend us. Why should this be?

The answers to these questions seem to me to be embedded in the story of "The Dark Knight" itself: Doing what's right is hard, and speaking the truth is dangerous. Many have been abhorred for it, some killed, one crucified.

Leftists frequently complain that right-wing morality is simplistic. Morality is relative, they say; nuanced, complex. They're wrong, of course, even on their own terms.

Left and right, all Americans know that freedom is better than slavery, that love is better than hate, kindness better than cruelty, tolerance better than bigotry. We don't always know how we know these things, and yet mysteriously we know them nonetheless.

The true complexity arises when we must defend these values in a world that does not universally embrace them -- when we reach the place where we must be intolerant in order to defend tolerance, or unkind in order to defend kindness, or hateful in order to defend what we love.

When heroes arise who take those difficult duties on themselves, it is tempting for the rest of us to turn our backs on them, to vilify them in order to protect our own appearance of righteousness. We prosecute and execrate the violent soldier or the cruel interrogator in order to parade ourselves as paragons of the peaceful values they preserve. As Gary Oldman's Commissioner Gordon says of the hated and hunted Batman, "He has to run away -- because we have to chase him."

That's real moral complexity. And when our artistic community is ready to show that sometimes men must kill in order to preserve life; that sometimes they must violate their values in order to maintain those values; and that while movie stars may strut in the bright light of our adulation for pretending to be heroes, true heroes often must slink in the shadows, slump-shouldered and despised -- then and only then will we be able to pay President Bush his due and make good and true films about the war on terror.

Perhaps that's when Hollywood conservatives will be able to take off their masks and speak plainly in the light of day. (끝)

Mr. Klavan has won two Edgar Awards from the Mystery Writers of America. His new novel, "Empire of Lies" (An Otto Penzler Book, Harcourt), is about an ordinary man confronting the war on t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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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눈이 삐었나 이곳 저곳 해외 블로거들의 주장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그렇습니다. 클래번이라는 작가가 엄청난 부시 빠에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다는 거죠.

대체 어떻게 저런 원문에서 그런 기사가 나왔는지 참 궁금하기만 합니다. 결론은 없습니다. 아무튼 참 믿을 게 별로 없는 세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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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시간이 좀 남아서 저걸 다 번역하긴 했지만, 절대로 내용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참 접해 볼 기회가 없던 주장이라 좀 신선하긴(^^) 하더군요. 실제로 미국인들 중에는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그런데 대체 얼마나 빠심이 깊어야 저 사인이 W로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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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이런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처(Foreign Policy)는 제가 예로 든 기사와 다르더군요. 혹시라도 착오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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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님은 먼곳에' 때문에 시작한 포스팅입니다. '님은 먼곳에'와 그 노래들에 대한 포스팅은 다른 쪽에 있습니다. 이 글은 거기서 시작돼 본격적으로 다른 영화들과 그 수록곡들을 살펴보는 내용입니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작품의 음악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개인적으로는 역시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입니다. 실제로 당시 월남에 있던 병사들이 즐겨 듣던 음악이기도 하고, TV 시리즈 '머나먼 정글'의 주제곡으로 명성을 떨쳤죠.

(그런데 정작 '머나먼 정글'이 국내 방송될 때 이 노래는 금지곡 - 반전, 퇴폐성이라는 이유로 - 이었습니다. 그걸 모르고 오프닝을 그대로 살려 놓았던 담당자는 뜨악했죠. 하지만 그걸 문제삼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조용히 넘어갔다는 엄청난 얘기가 있습니다.)

자, 추억의 '머나먼 정글(Tour of Duty)'.



베트남전은 저에게도 먼 역사 속의 일입니다. 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미국 대사관을 철수하던 헬리콥터에 줄줄이 매달려 있던 피난민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뉴스 화면으로 본 듯한 기억이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리 먼 과거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 삼촌뻘이죠 - 로부터 월남전과 관련된 전설(?)은 꽤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학교 다닐 때 교련 선생님들은 대부분 월남전 참전 장교 출신이었죠. 물론 학생들이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남은 커녕 제주도도 못 가본 분들이더라도 학생들 앞에선 "이 새퀴들이, 백마부대 깡다구 강중위 그러면 베트콩 새퀴들도 다 죽었다고 엎드렸는데 어디서 개수작이야!"라고 충분히 표정관리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때로선 비 오는 교련시간에 '월남 무용담' 듣는게 퍽이나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 기억나는 것 몇 토막(위문공연 이야기는 저번에 써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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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병들도 항상 실탄과 수류탄을 휴대했기 때문에 상급자라도 지나치게 심한 얼차려나 인간적인 모욕을 할 수 없었다. 자살하거나 내무반에서 총질을 하는 사고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못살게 굴던 고참을 쏴 죽이고 밀림으로 달아난 놈이 있었다. 얼마 지나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서 시체를 찾았는데, 온몸 살가죽이 다 벗겨진 채로 죽어 있었다. 당시 부대원들과 혹시라도 베트콩에게 생포될 것 같으면 서로 쏴 죽여 주자고 약속했다.

2. 더운 지역이라 땅을 파고 화장실을 만들어도 너무 냄새가 심해 고역이었다. 고민 끝에 석유 드럼통을 절반으로 자르고, 석유를 반쯤 부은 다음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간이변소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 변이 차면 바로 불을 질러 소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편했다.

그런데 한 놈이 그 위에서 양담배를 꼬나물고 꽁초를 휙 버린 거였다. 죽진 않았지만 중요 부분이 모두 불고기가 돼 있었다. 나중에 병원으로 문병을 갔는데, 침대에도 바로 눕지 못하고 허리가 공중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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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콩이 이쪽으로 도주한다는 정보를 받고 1개 소대가 잠복했다. 잠시 후 눈앞으로, 멀쩡히 보고 있는데 한 50미터 앞에서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는게 보였다. 몇 초 사이지만 한 20명 정도가 지나갔을 거다. 당연히 일제사격을 가했다. 경기관총을 포함해서 M-16을 자동으로 놓고 드륵드륵 갈겼다. 그런데. 실제로 총에 맞고 쓰러진 건 단 2명이었다.

총이라는게 그렇게 안 맞는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긴, 사람이 초긴장상태가 되면 총에 맞고도 전혀 이상 없이 달린다고도 하더라. 맞긴 맞았는데 다 도망갔다가 어디 엉뚱한 데서 쓰러졌는지도 모르지.

4. 미국이란 나라가 무서운 걸 처음 알았다. 헬리콥터고 트럭이고 부서졌다고 말만 하면 바로 새걸로 갖다줬다. 국내에서 훈련할 땐 '탄피 100% 회수' 때문에 어지긴히 신경을 썼는데 여기선 다음 보급때까지 전에 받은 탄약 다 쓰는게 귀찮을 정도였다. 사격 훈련도 전부 자동으로 놓고 긁었다. 원 없이 쏴 봤다. 탄피? 아무도 안 찾더라.

처음엔 C-레이션도 나중에 먹으려고 껌이며 통조림을 챙겨 놓는 놈들이 있었는데, 곧 그게 바보짓이란 걸 알게 됐다. 레이션 같은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오히려 김치랑 밥이 먹고 싶어 혼났다. 나중엔 입맛이 고급이 되어서 왕건이 통조림만 하나 까 먹고 나머지는 죄다 현지인 꼬마들한테 뿌렸다. 미국이란 나라랑 같은 편에서 전쟁한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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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그럼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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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자면, 아무래도 이 영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겠습니다.

일단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 부터.





인상적인 모먼트는 여럿 있지만 도어즈의 'The End'로 시작하는 오프닝만큼 강렬하지는 않습니다. 단, 시퀀스가 너무 길기 때문에 원래 좋아하시는 분들 아니면 클릭을 자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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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툰'이란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 준 영홥니다. 이 영화에선 뭐니 뭐니 해도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유명했지만 그 외의 당시 분위기를 살린 팝 명곡들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White Rabbit'. 월남전-마리화나-사이키델릭 록은 빼놓을 수 없는 3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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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는 유명한 인종주의자 마이클 치미노의 극단적인 오리엔탈리즘 때문에, 아시아인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괴작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디어 헌터'의 음악만큼은 매우 훌륭합니다.

백만인의 애청곡, '카바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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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은 평범한 미국 청년들이 어떻게 전쟁 기계로 길러졌는지에 초첨을 맞춘 작품입니다. 저번 글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의 소녀 저격수 시퀀스가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죠.

본래는 트래쉬맨의 'Surfin Bird'가 삽입된 장면이 유명하지만, 다른 장면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도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궁금했던 분이 있었을 겁니다.



MIC, KEY, MOU, SE.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미키 마우스 송'이었던 겁니다. 전쟁터에서 총 든 군인들이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노래죠. 큐브릭이 보여주고자 했던 전쟁의 한 단편이 이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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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빼면 울 것 같은 분이 있어서 넣었습니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이 영화에서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참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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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심지어 포스터는 뮤지컬)가 뭐냐고 의아해하실 분이 꽤 있겠지만, 록 뮤지컬의 효시라고 불리는 '헤어'는 월남전을 무대로 한 유명한 반전 작품입니다. 비록 전쟁터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파월 장병으로 징집되는 데서 영화가 시작하고, 영화 전편이 전쟁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 중 하나는 훈련소에서 월남으로 파병됩니다.

뒷날 '아마데우스'를 만드는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영화판은 뮤지컬 영화의 흐름을 바꾼 걸작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헤어'를 유명해지게 한 노래는 'Aquarius'와 'Let the sunshine in'이죠. 본래 흑인 보컬 그룹 5th Dimension이 두 노래를 합쳐 불러 히트시킨 버전이 유명하지만 오늘은 따로 따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Age of)Aquarius.





다음은 Let the Sunshine in. 일부러 영화 버전과 다른 버전을 골랐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노래 같다가 2분30초쯤부터 나오는 유명한 후렴구를 듣고 나서 '아, 이 노래?' 하실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두개를 붙인 휩스 디멘전의 노래.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거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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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은 빌리 조엘의 'Goodnight Saigon'입니다. 영화음악도 아니지만 이 노래가 빠진 월남전 노래 이야기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아서 넣어 봤습니다. 물론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 처럼 실제로 당시 히트하던 노래들도 있지만 가사의 내용은 이 쪽이 훨씬 와 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끝까지 들었는데 왜 '님은 먼곳에'가 안 나오는지 궁금한 분들은




영화 리뷰를 보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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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님은 먼곳에'를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장면이 바로 수애가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조종사의 요청으로 기내 마이크를 들고 무반주로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져 있더군요. 앞부분은 무반주지만 뒤로 가면서 천천히 반주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목소리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맨 앞 부분입니다.

청순형의 외모와는 달리 수애의 목소리는 상당히 저음입니다. 게다가 콧소리가 많이 섞여 있고, 이 노래를 할 때에는 떨림음이 잘 살아 있습니다. 평소 음치+몸치라고 말한 걸 생각하면 상당히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거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생각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제목을 보시고 이걸 연상하신 분도 저 하나 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바로 이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일단 목소리를 들어 보시라고 저 화면을 위로 올렸습니다.

이 노래는 1962년 5월 19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45회 생일 축하 파티(참가자가 15000명. 참 별 걸 다 했다 싶습니다)에서 먼로가 부른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비음이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가 있는 목소리죠.

그 장면이 모두 담긴 영상은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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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많은 뮤지컬 영화 경력에서도 볼 수 있듯 먼로는 수애보다 훨씬 훌륭한 가수입니다. 또 섹시함에서 먼로를 지구상의 다른 여자와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잘 알고 있으니 '감히 어따 비교를...' 이라고 찌질하게 외치실 분들은 좀 참으시길)

게다가 목소리가 똑같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목소리를 놓고 볼 때, 수애에게는 충분한 자질이 보입니다. 어떤 목소리냐구요. 당연한 걸 뭘....

목소리만으로 남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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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딴 얘기지만 위 화면에서 사회자는 먼로를 무대로 불러 내기 위해 두세차례 다시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먼로가 노래를 하기 직전엔 'The Late Marilyn Monroe'라고 소개하는군요. 참고로 말하자면 이날의 날짜는 5월 19일. 먼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기 약 3개월 전입니다.  ...그렇습니다. 음모설인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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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친 김에 김추자의 오리지널 '님은 먼곳에'을 들어 보셔야 합니다.




영화 공식 주제가는 거미의 목소립니다.




뭐 수도 없이 많은 가수들이 부른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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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수도 없이 많이 불린 노래가 또 있습니다. 바로 CCR의 'Suzie Q' 죠. 고 이주일씨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올드 히트곡입니다.






이 노래가 '님은 먼곳에'에 등장하는 이유는 또 따로 있습니다. 이 장면, 기억하시겠죠.



월남전을 통틀어 수백번, 수천번 되풀이됐을 그런 장면입니다.



아무튼 영화엔 'Danny Boy'도 나오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나오지만 여기선 그냥 생략하기로 합니다. 후자의 경우엔 마땅한 동영상도 없군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교련(이게 뭔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텐데) 선생님들은 대부분 파월 전투 경험을 가진 장교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학생들 앞에선 전부 그렇게 얘기해셨겠죠. 아무튼 그중 한 분은 월남전을 생각하면 항상 이 노래가 생각나더랍니다.

파월 장병들이 타고 떠나는 거대한 수송선 선상에서 축하 악단의 연주를 듣고 있는데 유난히 이 노래가 귀에 감치더라는 거죠. 왠지 다시 못올 길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그렇습니다. 인생은 원래 나그네 길인 거죠.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 노래로 마무리.






자, 월남전을 다룬 다른 영화들의 음악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그나자나 수애는 언제쯤 영화 속 순이처럼 각성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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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는 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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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올해, 앞으로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이 영화를 뛰어넘을 만한 영화가 나온다면 그건 한국 영화의 복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이 만든 영화 중 최고다.'


줄거리는 다 아시겠지만, 대강 이렇습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71년. 남편(엄태웅)은 군대를 가고,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순이(수애)는 어느날 남편이 월남으로 자원해서 가 버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노골적인 시어머니의 박대. 결국 아들을 찾으러 월남을 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시어머니에게 "차라리 내가 가요!"라고 악다구니를 써 버립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파월 위문공연 예술단까지 찾아간 순이. 거기서 사기꾼에다 영 질이 나쁜 밴드 마스터 정만(정진영)과 엮여 또 어찌어찌 월남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하지만 월남에 도착한다고 바로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죠. 엄청난 난관이 순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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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그 난관이, 순이라는 철없고 순진한 한 여자를 성장시켜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그려내려 한 어떤 주인공보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상을 그려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청연'의 장진영처럼 박제된 캐릭터를 연상하시면 곤란합니다. 순이는 살아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난관이 진짜 고난의 연속으로만 그려지느냐, 물론 그럴 리가 없죠. 순이와 정만이 함께 하는 엉터리 위문공연단의 엎치락 뒤치락 발길은 가는 곳마다 관객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사실 마지막까지 숙연해지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지는 장면은 없습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코미디 쪽의 무게가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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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던져진 질문은 '대체 왜 순이가 그 고생을 하고 거기까지 가서 남편을 만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의 차이가 너무도 큽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전자의 경우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대폭 올라가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중간에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대체 뭘 하자는 영화인지를 모르겠다는 악평을 하게 됩니다.

영화상의 텍스트만으로는 정답이 없지만 분명한 건 최소한 동기가 사랑은 아니라는 겁니다. 남편은 순이에게 잘 해준게 없죠. 낑낑대고 면회를 간 순이에게 "너 나 사랑하니?"라고 심각하게 묻기나 하고, 혼자 번민하다가 훌쩍 월남으로 말없이 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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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상당수 매체의 보도 내용들은 관객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한가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순이가 남편을 사랑해서, 혹은 애타게 보고 싶어서 월남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귀인(attribution) 이론이라는 것도 있죠. 순이가 자신의 해놓은 행동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게 분명해'라고 스스로를 해석한다는 식의 이론이죠. 아, 물론 여기서 이 얘기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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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뭘까요. 순이는 왜 남편을 찾아서 그 고생을 감내하는 걸까요. 대략 보기에 순이는 거대한 모성입니다. 인류를 부양하는 대지같은 모성 말입니다. 남자들은 얼핏 보기에 깔짝거리면서 대단한 뭔가를 해 낼 듯 설칩니다.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벌이고, 혼자 생각있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허세만 대단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그런 남자들을 낳고, 키우고, 보듬고, 용서하고, 가르치는 여성성의 존재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얘기죠.

그런 순이 역할을 수애에게 맡긴 것은 참 절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냥 평범한 촌 색시라기에는 지나치게 미인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오히려 순이가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정만이 돈에 환장했다 하더라도 가수로 써먹으려고 월남으로 데려갈 생각을 하지 는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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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순이의 모성이 처음부터 깨어 있는 건 아닙니다, 순이는 전쟁 속에서 각성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순이는 서서히 군인들 사이에서 동화되어가죠. 처음엔 그저 상대를 군인들로 보던 순이가 서서히 그들을 원치 않는 전쟁터로 끌려온 스무살 안팎의 총각들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노래가 그런 불쌍한 청춘들을 잠시나마 위로하는 힘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을 담아낸 '님은 먼곳에'의 솜씨는 조용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겠지만 이 영화는 뼛속까지 판타지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인생의 어두운 면을 싹 걷어 치운 판타지죠.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란 딱 견딜 수 있을 정도에서 끝납니다(이건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도 마찬가지죠). 순이가 월남에서 겪는 고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파월 위문공연이나 병사들의 환경이 영화에서처럼 동화같지만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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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분에게 들어 본 월남전 위문공연 얘깁니다.

<< 병사들은 모두 술이 얼큰히 취해 있었다. 오랜만에 전투지역에서 나온 터라 부대 차원에서 술을 돌린 것 같았다. 많은 전사자를 낸 격전지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눈은 야수처럼 이글이글 빛났다. 겁을 먹은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가길 꺼릴 정도였다. 이윽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무용단이 나서자 병사들은 일어서서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에겐 이성은 물 건너간 얘기였다. 그중 몇몇이 무대 위의 무용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장교들이 나서서 제지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고, 단원들 모두 공연이고 뭐고 무대 뒤로 달아나기 바빴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옷이 찢기고 젖가슴에 멍이 든 몇몇 여성단원들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미군 병사들과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나오는 장면을 봐도 아마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미나 남진 등 당시를 경험한 가수들은 "장병들은 모두 동생처럼 느껴졌다. 환영의 몸짓이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회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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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선 '기본적으로 성장드라마'라고 했지만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여자 특유의 강인함과 오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과연 순이는 남편을 찾아서 뭘 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대체 왜 날 버리고 갔는지,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가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의 마지막 장면은 이 답이 맞았다고도, 아니라고도 얘기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대답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아마도 직접 본 사람이 내리는 답이 정답이겠죠. 개인적으론 대단히 마음에 와 닿는 결말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준익 감독 특유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기술은 이 영화에서 만개합니다. 달인의 경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누구도 '만주에서는 자네 실력이 최고'라든가 '넌 내가 본 놈 중 가장 냉정한 놈이야'라는 식으로 설명에 의해 규정되지 않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통해 캐릭터를 그려내는 건 정말 가장 저열한 수준의 인물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관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이런 식의 직설적인 설명은 관객을 지루하게 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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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이 연기하는 정만부터 정경호가 연기하는 용득이까지 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언행을 통해 직접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순이와 함께 성장해가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마네킹처럼 유리장안에 얌전히 남아 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놈' 정만을 연기하는 정진영을 칭찬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될테니 건너 뛰겠습니다. 수애는 이 작품으로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아마 본인도 느낀 점이 꽤 많았을 듯 한데, 이 변화가 다음 작품에서도 살아남을지, 아니면 이 영화와 함께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될지(그런 경우도 수없이 봤습니다)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겠죠.

아무튼 헬리콥터 안에서 수애가 천천히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장면, 물론 헬리콥터를 직접 타 보면 그 정도 높이의 목소리로 절대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장면의 뭉클함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수애의 비음 섞인, 아주 끈적이는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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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준익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최고'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기사로 쓰는 글이라면 조심해야겠지만 이건 블로그니까 제 생각대로 쓴 겁니다. '황산벌'은 이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긴 했지만 좀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부분이 있고, '왕의 남자' 역시 시도가 좋았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완성도를 따지자면 '라디오 스타'가 이 영화 전까지의 최고작이었다고 해야겠죠. 물론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 대해선 뭐라 말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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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런 장면이 나오긴 합니다만,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대단히 코믹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절대 아니고, 여성 영화도 아닙니다. 밴드 영화는 더구나 아닙니다. 일종의 성장 판타지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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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뒷전, 전 일본의 주먹대장들이 모이는 스즈란 고등학교에 전학생 겐지(오구리 슈운)가 찾아오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현직 야쿠자의 아들인 겐지는 스즈란을 제패하면 대를 잇게 해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스즈란 전체 짱이 되기 위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스즈란의 3학년에는 이미 스즈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괴물 세리자와(야마다 타카유키)가 있다. 난제에 직면한 겐지에게 한심한 야쿠자 켄(야베 쿄스케)이 나타난다...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본듯 한 스토리. 한마디로 뻔한 얘기 되겠습니다. 일본 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학원 폭력물이라는 장르가 아예 따로 있을 정도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유명한 '상남 2인조'를 비롯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작품들이 있죠. 이 '크로우즈 제로'도 만화 '크로우즈'가 원작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장르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있죠. 허영만의 '비트'가 원조 격이 될 것이고, 조운학의 '니나잘해'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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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작품들의 구조 또한 천편일률적인게 보통입니다. 주먹으로 일본 제일이라는 학교에 전학생이 찾아오고(사실 이런 경우 이 전학생은 무시무시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새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과거와는 어느 정도 단절을 노리는데도, 워낙 새 학교의 텃세가 심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주먹을 든다... 뭐 이런게 전형적인 구조인데, '크로우즈 제로'는 그 부분에서 좀 다르죠), 새 학교에서의 주먹잡이들은 '드래곤 볼'처럼 쑥쑥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엄밀히 말해 영화 '크로우즈 제로'는 작품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실한 구석이 꽤 있습니다. 뻔한 구조는 장르의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영상의 대부분이 교복을 입은 꽃미남들의 액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액션 또한 성룡이나 이연걸의 아크로바틱 액션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상당히 지루해집니다. 미이케 다카시는 신이 나서 힘을 주고 찍었을 지 모르지만 '용이 간다'에 비해 달라진 게 없는 솜씨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굳이 찾아 볼 사람들에게는 이런 건 사실 무의미하겠죠. 한마디로 '간지'나는 꽃미남들의 '후까시', 웃기지만 잔뜩 멋을 부린 아드레날린 넘치는 대사, 슬로비디오 속에서 움직이는 펄펄 뛰는 젊음, 비가 오지만 대장이 우산을 버리면 다 함께 우산을 버리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가는 막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볼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 장르가 살아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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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나잖아!)

이런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서 갖춰야 할 키워드는 위에서 다 나왔습니다. '간지', '후까시', 그리고 바로 '꽃미남'이죠. 이 영화에선 오구리 슌이 그 역할의 90%를 떠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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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리의 가장 특징은 아무래도 일본 배우라고는 믿기 어려운 신장에 있습니다. 유지태나 강동원, 조한선, 정우성, 조인성 등이 활보하는 한국이라면 좀 얘기가 다르겠지만 1m75를 넘는 미남 배우들이 극히 드문 일본에서 1m84짜리 아이들 스타의 존재는 한국 농구계에 나타난 서장훈이나 하승진의 충격 못지 않습니다.

1982년생. 고교생 역할을 하기에 얼굴이 늙어보이는 편은 절대 아닌데, 솔직히 말해 과연 꽃미남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적잖이 느끼게 되죠. 물론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무라 타쿠야나 원빈을 미남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양쪽 나라에서 모두 극소수일겁니다.

야마시타 토모히사나 김현중의 경우(너무 닮긴 했습니다만)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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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김현중일까요.^^)



그런데 과연 이런 얼굴은 어떻습니까? 과연 한국에서도 이의 없이 꽃미남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얼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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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요즘 한국에도 마츠모토 준을 좋아하는 팬들이 꽤 있다고도 합니다만, 일단 한국에선 저 다리 길이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뭐 가메나시 가즈야에 비하면 마츠모토 준은 양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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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들도 미남 소리를 듣는 일본인 만큼 오구리라면 당연히 최고 대접을 받을만 합니다(네. 반면 한국에서 잘생겼다는 얼굴이 일본에 가면 안 먹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오구리도 만약 무명 시절 한국 유명 기획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면 아마 즉시 이런 얘길 들었을 겁니다. "턱 좀 깎고... 치열교정 하면 턱도 들어가. 조금만 손보면 되겠네."

물론 그랬다면 특유의 매력이 사라진 그냥 편안한 얼굴이 돼 버렸겠죠. 일본 스타들도 수시로 성형을 하지만, 그래도 일본의 대형 기획사 중에는 오구리 같은 얼굴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대로 밀어붙이는 회사도 있다는 게 한국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여배우라면 요즘의 한국의 연예인들 가운데 아오이 유우 같은 매력을 가진 얼굴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타 본연의 매력, 혹은 독특한 개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게 일본 쪽인 듯 합니다.


비중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구로키 메이사도 참 특이한 매력을 가진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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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 본 얼굴인데 의외로 출연작들은 눈에 익지 않더군요. 알고 보니 CF 모델로 너무나 잘 나가던 얼굴이었습니다. 88년생인데 비해 대단히 성숙해 보이는 얼굴. 역시 아버지가 미국인이었습니다.

유명했다는 음료 광고




그리고 최근에 나왔다는 도시바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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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자와 역의 야마다 타카유키. 얼굴은 장동건 느낌이 좀 납니다만, 역시 신장에 원한이 많을 것 같은 타입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숙원이 '조선여자를 데려다 (신장 면에서) 품종 개량을 좀 해보자'는 것이었다는데, 참 이 분야에선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크로우즈 제로', 자신이 원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아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남들이 재미있다던데'라는 말에 부화뇌동해서 보시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p.s. 학교 이름은 스즈란, 한국말로 하면 '영란(鈴蘭)남자고등학교'더군요. 서울에는 같은 이름의 여고가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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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시즌은 세계적인 영화 시장의 대목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5월부터 8월말까지의 석달간이죠. 물론 남반구는 정 반대가 되겠지만, 북반구의 대다수 문명국가에서는 이 시기에 사람들의 외부 활동이 많아집니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5월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여름방학을 관통하는 시기에 각 대형 스튜디오들의 그해 농사가 판가름나죠. 물론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작년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국내 영화를 압도했습니다. 물론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들이 많았던 작년이 특히 강한 해였고 올해는 지난해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를 빛낸(?) 블록버스터들을 일단 정리해 보겠습니다.

5월2일 개봉영화들의 미국 흥행 성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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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이언맨이 개봉 첫 주말에만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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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 '아이언 맨'이 2주 연속 정상을 지배합니다. 비가 출연해 화제였던 '스피드 레이서'는 개봉 첫주부터 3위, 김이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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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나니아연대기2-카스피안 왕자'가 1위를 먹었습니다. '아이언맨'은 여전히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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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인디애나 존스 4'가 가볍게 첫주에 1억5000만달러를 거둬들이며 1위에 안착. '나니아 연대기2'는 비록 2위로 밀려났지만 이미 1억달러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뒀습1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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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 '섹스 앤 더 시티'가 1위에 오르지만 지금까지의 다른 1위들에 비해 훨씬 적은 5000만달러 선의 수입에 그칩니다. 1위에 집중되지 않고 그래프가 넓게 퍼졌다는 걸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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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쿵푸 팬더'도 '섹스 앤 더 시티'보단 낫지만 그리 압도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인디애나 존스 4'의 관객이 아직 그리 줄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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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3일. '인크레더블 헐크'가 밀고 올라옵니다. '쿵푸 팬더'는 2주 합계 1억달러 흥행을 돌파해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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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0일. '겟 스마트'가 1위에 오릅니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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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픽사의 'Wall E'가 근소한 차이로 '원티드'를 제치고 1위. 만만찮은 대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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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핸콕'이 두 영화를 모두 물리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세 작품 모두 1억달러 흥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상태. 초대박은 아니지만 모두 행복한 결말입니다.

(날짜는 모두 영화들의 개봉 날짜입니다. 통계가 나온 날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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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집계를 볼 때 올해 여름의 최강자는 3억달러 흥행을 넘어선 '아이언 맨'과 '인디애나 존스 4'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특히 '아이언 맨'은 경쟁이 치열한 여름 블록버스터시즌에 2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대단한 위용을 뽐냅니다. (표를 보셨다시피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건 '아이언 맨'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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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두 영화 모두 400만 고지를 돌파하며 대박을 일궈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시장에선 이들 외에도 '쿵푸 팬더'가 400만을 넘어섰다는 것. 이대로 가면 한국에서의 최종 승자는 '쿵푸 팬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뒤를 이어 지난주까지 '강철중'이 340만 정도로 4위권. '원티드'가 200만 고지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고 '나니아 연대기2', '섹스 앤 더 시티' '인크레더블 헐크' 등이 1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나마 '강철중'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살렸다...고 해 버리기엔 대단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한국 정도로 로컬 무비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여름 시즌에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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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이후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일단 이번 주말은 '적벽대전' 앞에 할리우드 영화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국에서 7월11일 개봉작인 '헬보이 2'와 '삼차원 여행(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의 번역 치곤 참 해괴합니다)'는 아예 국내에선 상영 일정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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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 한국에선 대망의 '놈놈놈'이 17일 개봉하고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두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와 '맘마미아' 영화판이 18일 막을 올립니다. 두 영화가 붙는다면 그야말로 대 격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런 대결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일단 한국 시장에서는 '놈놈놈'의 위력을 인정하고 8월 7일로 개봉일을 멀찍이 물려 잡았기 때문입니다. '마마미아'는 아예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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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엑스 파일: 나는믿고싶다'가 7월25일 개봉이지만 한국에서는 7월24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를 피해 달아났습니다. 국내에선 8월14일 개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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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대작 두 편을 피해간 할리우드 영화는 그 다음주에야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막을 올립니다. '미이라 3'는 한국에선 7월31일, 미국에선 8월1일 개봉이죠. 차승원 한석규 주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는 승부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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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8월 7일, 할리우드는 이제 파장입니다. 별다른 흥행 후보작인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월 E'와 '다크 나이트'가 8월7일 정면 승부에 들어갑니다. 두 편 모두 이런 저런 사정을 피해 개봉 날짜를 늦춰 격돌하게 된 거죠.

8월14일 이후는 한국도 소강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가 14일 개봉해 '엑스 파일'과 맞붙고, 주성치의 '장강 7호'가 미루고 미룬 끝에 8월21일 개봉될 것 같습니다. 당초 여름 시즌을 노릴 것으로 예상됐던 '신기전', '모던 보이', '고고 70' 등의 기대작들은 모두 9월 이후로 개봉이 연기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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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 영화의 올 여름 시장 '우승 가능 수치'는 약 500만 정도로 잡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이언 맨', '인디애나 존스 4', '쿵푸 팬더', '강철중' 등 지금까지 나선 도전자들이 모두 500만을 넘지 못하거나, 넘어도 아슬아슬하게 넘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럼 이 숫자는 아무래도 '놈놈놈'에 물어봐야겠군요. 과연 '놈놈놈'의 스코어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놈놈놈' 리뷰는 다음주에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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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크로싱'은 여전히 국내 박스오피스 4-5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아직 관객 동원은 눈길을 끌 정도는 아니군요. 올 여름이 가기 전에 '크로싱'도 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대열에 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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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홍콩 영화 감독들은 다작이 숙명입니다. 간혹 그 운명을 거부한 감독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철저한 마이너로서의 길이었죠. 오우삼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을 합해 50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우삼의 영화들을 되새겨 보면, 기억에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빼놓을 수 없겠고, 밉든 곱든 '첩혈쌍웅'이 있습니다. 이어 그의 홍콩시대를 마무리하는 '첩혈가두'와 '종횡사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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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로 넘어가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가 화려한 액션 거장의 탄생을 알렸죠.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 나왔고, '페이첵'에서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적벽대전'은 이런 시점에서 등장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800억원의 제작비와 홍콩-중국-대만 영화계를 망라한 올스타 캐스팅. 과연 이 영화가 오우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가 될지가 궁금한 시점입니다.

거론한 영화들을 돌이켜 볼 때 오우삼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 왔다는 점과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배우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감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의 영화는 정교한 플롯이나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빼어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영상미의 완성도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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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 주로 두 명의 배우들을 통해 드러났죠. 바로 주윤발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과 오우삼의 관계에 대해 굳이 얘기하는 건 지면 낭비가 되겠죠. 동아시아인, 특히 수컷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정과 신뢰,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를 주윤발은 깊은 눈빛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솔직히 그 아닌 다른 어떤 배우로도 홍콩에서의 오우삼의 성공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첩혈쌍웅' 처럼 엉망진창의 플롯을 가진 영화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게 하는 기이한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아닙니다. '영웅본색' 조차도 여자 관객들에겐 장국영의 영화죠. 장국영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영웅본색'은 남자들만의 컬트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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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오우삼이 발견한 것은 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이 그의 영웅이었다면 존 트래볼타는 그가 창조해 낸 가장 완벽한 악당이었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에서 트래볼타는 중국 삼십육계 중의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뒤에 칼을 감추다)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정의의 편인 크리스찬 슬레이터나 니콜라스 케이지 보다는 트래볼타가 훨씬 빛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우삼이 어느 쪽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지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두 배우 없이 오우삼이 남긴 업적을 꼽기는 매우 곤란해집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자, 너희가 원하는 게 고작 이런 거지?'라고 말하는 영화였죠. 비평은 형편없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뒀고, 오우삼은 자신감을 얻어 '윈드토커'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2차대전을 무대로 그리려 했던 '남자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이 영화에는 존 트래볼타도, 주윤발도 없었죠.

너무 길어졌지만, '적벽대전'은 원작을 보는 오우삼의 시각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수백년 동안 수천만의 독자들에게 읽혀 왔고, 그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며 대사 하나 하나가 명언록에 올랐습니다. 일단 그 소설 전편에서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수천페이지짜리 소설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낸 부분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그 부분만으로 판소리 한편(적벽가)을 만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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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오우삼은 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재해석'하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대개의 경우 재해석이라는 것은 '기존의 해석'에 사람들이 질려 있을 때 하는 거죠. 불행히도 소설 삼국지의 독자들은 '기존의 해석'에 질릴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책으로 읽었던 감동적인 작품의 명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가'였는데, 오우삼은 뭔가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 한다는 공명심이 앞섰습니다. (이건 얼마전 개봉됐던 영화 '용의 부활'과 똑같은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오우삼 아니라 어떤 감독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 권리가 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거대한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제대로' 화면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우삼의 선택도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남자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원작 마니아의 시각에서 볼 때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도 실패했고, 원작에 나오는 대규모 전투의 시각적 변환에서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제갈양과 주유는 서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마음 속의 칼을 견줘 보는 일대 영웅들입니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긴장감이 매력적이죠. 하지만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양은 서로 전학 와서 주먹 대보기 하는 중학생들 같습니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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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이 마지막까지 이 영화에 주윤발을 출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만, 출연했더라도 주유 역이라는 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주랑(周郞)'이라 불렸던 꽃미남 스타 주유 역에 주윤발이라는 건 납득하기 힘들죠.

전투 신에서도 대규모 기병 액션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남은 건 실망뿐입니다. 맨 땅에서 두 다리로 달리며 싸우는 보병 관우-장비란 게임 '진삼국무쌍'에나 나오는 겁니다. 적토마 갈기를 나부끼며 82근 청룡도를 휘두르는 관운장의 위용을 볼 수 없는 삼국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팔괘진을 응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팔괘진으로 포위해 놓고도 적병을 어쩌지 못한다는 해괴한 진행 역시 관객을 짜증스럽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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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놈놈놈'을 보면서 몇몇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을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어야 해." '놈놈놈'의 거의 마지막 부분, 일본군을 뚫고 말을 달리며 '장총 돌려쏘기' 묘기를 과시하던 정우성의 모습이 '적벽대전'에 나오는 어느 장수보다 멋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우성은 '적벽대전'의 조자룡 역으로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적이 있죠.)

아무튼 원작 팬들의 한숨은 자꾸 깊어만 갑니다. '용의 부활'과 '적벽대전'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과연 진정한 '영상으로 보는 삼국지'는 언제나 관객들 앞에 나타날까요. 사실 이대로라면 송혜교가 캐스팅된 오우삼의 차기작 '1949'도 크게 기대가 가지 않습니다. 오우삼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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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한스 짐머의 걸작 '브로큰 애로우'를 다시 들어 봅니다.

 



아울러 늘 장국영이 부르던 주제가만 나오는데 질린 분들을 위해,





처음 썼던 '적벽대전' 리뷰입니다.




그리고 관련이 꽤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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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영웅 존 핸콕(윌 스미스)은 항상 사람들을 돕지만,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성격 때문에 감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듣는 캐릭터입니다. 어느날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이상주의자 PR전문가 레이(제이슨 베이트먼)는 그의 나쁜 이미지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지만, 그의 아내 메리(샤를리즈 테론)는 헛수고 하지 말라며 남편을 설득합니다. 어쨌든 핸콕과 레이는 의기투합해 이미지 쇄신 작전을 짭니다.-

'핸콕'을 보고 나오는데 영 느낌이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더군요. 미국의 '유치한 흥행작의 대가'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아키바 골즈먼(2편의 배트맨 시리즈와 '아이 로봇', '뷰티풀 마인즈' 등등을 쓴 시나리오 작가 겸 제작자)이나 조나선 모스토가 손을 댔다 하면 모든 영화가 안 봐도 본듯하게 흘러가는게 보통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을 합쳐도 못 당할 것 같은 슈퍼히어로가 있는데 성격은 최악이라 하는 짓마다 사고만 친다. 이런 슈퍼히어로를 어떻게 계도할 것인가?'라는 설정에다 주인공이 윌 스미스라면 관객들이 어떤 흐름을 기대할 지는 웬만한 제작자라면 짐작하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의 진행 방향은 이상하게도, 대다수 관객들이 기대했을 '아무 생각 없이 때려부수고 시원하게 즐기세' 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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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던 건, 이 영화를 그냥 오락영화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자꾸 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는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핸콕의 모습이 왠지 미국의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처음 핸콕이 누워 자고 있던 벤치에 새겨진 흰 독수리, 거기에 이마에 떡하니 붙은 독수리...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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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바로 미국의 상징이죠.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는 짓거리도 미국과 어쩐지 비슷합니다. 세계 최강의 힘을 가졌지만 도대체 철학도 없고, 타자(외국, 타 문화 등등)와의 공존에 대해서는 영 젬병이란 점, 나름 좋은 일을 한답시고 여기 저기 나서는데, 이상하게 도움을 받았다는 쪽이 그리 고마워하질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정작 자기가 왜 욕을 먹는지 본인은 모른다는 것도 비슷하죠.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한쿡? 거기 우리 아미가 가서 목숨 걸고 공산화를 막아 준 나라 아니야? 우리 때문에 잘 살고 있는 나라잖아. 그런데 그런 나라가 반미? 걔들은 대체 왜 그래?")

일단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점점 더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웹 검색을 해 봤더니 역시나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 뉴욕포스트의 영화 칼럼니스트 카일 스미스(Kyle Smith)였습니다(그밖에도 여러 명 있겠지만 귀찮아서 다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수많은 사람들이 카일 스미스의 칼럼에 대해 자기 생각을 덧붙인 글들을 내놨더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분, 상당히 우경화된 분입니다.

“Hancock,” directed by Peter Berg, who also made last year’s pro-America Middle East crime drama “The Kingdom,” is superficially a blockbuster aimed at the masses who like to see cars thrown around and wish they could fly, but for those who read into a film it’s a sly allegory about America’s place in the world today.

원문을 보시려면: http://kylesmithonline.com/?p=1333
(영화를 보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존 핸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찾아봤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핸콕이 자신의 이름이 핸콕이 된 이유에 대해 "...그때 병원에서 간호사가 존 핸콕 어쩌고 하길래..."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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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핸콕은 미국이 독립하기 전 영국의 식민지였을때 자치기구격인 대륙회의 의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에겐 유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1776년 7월 4일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큼지막하게 사인을 한 사람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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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문서가 끝나는 부분에 유난히 눈에 띄는 사인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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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존 핸콕의 사인이라는군요. 그런데 왜 하필 병원에서 핸콕이 '존 핸콕'이란 이름을 듣게 됐을까요. 사실 이건 매우 코믹한 부분입니다. 존 핸콕은 저렇게 유명한 위인의 이름인 동시에 미국의 유명한 보험 회사 이름이기 때문이죠.^^

자, 독수리로 도배를 하고, 이름인 존 핸콕도 원래 이런 인물이라면 피터 버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핸콕=미국'이라고 읽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그 의도는 어떤 방향일까... 생각해 보는데, 영화가 영화다 보니 '미국의 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억울한 오해에 대한 푸념' 쪽의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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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핸콕이 비록 망나니 짓을 하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도 핸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핸콕의 행위가 선의에 입각한 것이고, 핸콕이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핸콕이 욕을 먹는 것도 나쁜 짓을 해서라기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는 해명입니다. 상당히 핸콕을 옹호하는 시선이 느껴지죠.

게다가 '핸콕이 없어지면 2주도 못가 사방에서 찾고 난리가 날 것'이라는 접근도 "니들이 맨날 미국 욕을 하지만 정작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더 개판이 될 걸?"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냄새를 풍깁니다.

피터 버그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배경으로 만든 전작 '킹덤'에서도 은근히 '미국이 온 세게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행을 외면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정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여줬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뭐, 미국 감독이니 '미국의 국제 활동에 대한 건설적인 조언을 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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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냥 제 생각일 뿐이고, 이런 생각들은 영화 '핸콕'을 즐기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냥 특이한 슈퍼히어로 무비로 소비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죠.

하지만, 그냥 순수한 오락영화라고만 본다면, '핸콕'의 주인공들이 너무 심각하게 꼬여버린다는 점이 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중반 이후에 영화가 초반의 경쾌한 유머 감각을 잃고 발이 무거워진다는 점도 약간 거슬리죠. 꽤 놀라운 반전(!)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할 장면들은 바로 여러분이 예고편에서 본 그 장면들이라는 이야기를 빠뜨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째 예고편이 너무 길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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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윌 스미스는 매우 훌륭합니다. 반면 한때 영장류 최고의 미모를 자랑했던 샤를리즈 테론은 이 영화에서 역할이 너무 작아 보이죠. 뒷부분으로 가면 꽤 활약이 있기도 합니다만, 근래 테론의 괜찮은 작품을 본 기억이 없고 보면 아카데미 후유증이 너무 오래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깊이 얘기를 하려면 줄거리를 건드려야 하는 영화라 참 뭐라 쓰기가 민감합니다. 아무튼 '핸콕'은 아무 생각 없는 코믹 액션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나,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이상한 가정을 세워 보는 사람들 모두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그중 어느 한 쪽도 '최고의 영화'라고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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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속에서 핸콕이 나발을 불고 다니는 버본 위스키의 상표를 혹시 보신 분이 있으신가요? 실제로 존재하는 술인지 그냥 가상의 술인지가 궁금합니다. 찾아보니 참 어이없게도 '핸콕'이라는 이름의 버본 위스키가 있더군요. 그런데 영화 속의 병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럼 대체 그 술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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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딱 한마디만 하라면,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은 대재난이란 말을 해야겠군요. 한마디 더 하라면,'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벽대전'을 보고 나니 그만하면 '삼국지-용의 부활'은 걸작이라고 불러도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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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기다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저도 그중 하납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이 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불안한 전조가 비치긴 했습니다. 기사 인용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적벽>이 무협판타지가 아니라 좀더 사실적인 역사극이라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특히 오우삼은 “<삼국지>보다는 <삼국사기>를 주로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극적으로 왜곡된 캐릭터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좀더 적확하게 고증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굴지의 영화전문지 기사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뭔가 찜찜합니다. '삼국사기'? '후한서'도 아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도 아니고, '삼국사기'? 설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아니겠지요? 중국 사서에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는 얘기는 도무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영화사 쇼박스가 제작에 참여하는 바람에 한국 역사책을 참고했다는 뜻일까요?

아무튼 삼국사기건 뭐건 정말 정사를 참고해 고증에 충실했다는 뜻일 것 같은데, 문제는 만들어 놓은 영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고증에 충실했느냐가 좋은 영화냐 아니냐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일단 그 부분에선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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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조조(장풍의)는 헌제를 협박, 유비와 손권의 토벌을 허락받고 대군을 움직입니다. 유비는 백성들을 다 데리고 가느라 박살이 나고, 조운(호군)은 아두를 구합니다. 제갈양(금성무)은 손권(장진)을 설득해 함께 조조에 대항하려 합니다. 손권을 만난 제갈양은 그 하나만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님을 깨닫고 적벽에 주둔한 주유(양조위)를 설득하러 갑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의기투합, 조조를 무찌르기 위해 공동 전선을 폅니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赤壁: Red Cliff, 2008)'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절정을 이루는 적벽대전 전후의 이야기를 다룬 오우삼 감독의 4시간 짜리 대작의 앞부분입니다. 일단 절반은 북경 올림픽 전에 개봉하고, 나머지 절반은 연말쯤 개봉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진짜 적벽대전의 화공 신은 후반부에 있고, 전반부는 대륙의 영웅들이 어떻게 결전을 준비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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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앞부분의 '적벽대전'에서는 전혀 박진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일단 소설과 영화는 결코 작지 않은 차이를 보입니다. 오나라의 군웅들을 압박하는 제갈양의 현하 달변은 1분 정도로 압축돼 버렸습니다. 제갈양 혼자 오나라 군중에 머물지도 않고, 아예 유비와 손권, 주유가 연합 사령부를 만들고 함께 작전을 의논하고 군사훈련도 함께 합니다. 감녕과 조운이 친한 사이가 될 정도죠.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의 사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유와 제갈양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관객들을 졸음에 빠뜨립니다.

'삼국사기'(?)를 참고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소설과 벗어나 정사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도입부에서 조조가 유비와 손권의 정벌을 허락받는 장면부터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조조는 당시에 유비와 손권을 정벌하러 길을 나선게 아니었죠. 유표를 정벌하러 갔다가 형주가 의외로 쉽게 떨어지자 그 길로 동오 정벌에 나선 겁니다. 게다가 조조의 군대가 80만이라는 건 소설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으로 저지른 뻥의 결과죠.

정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이 어정쩡한 대본은 오우삼 본인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삼국지연의든 정사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비-손권 연합군의 합동 군사훈련 이라니, 마치 영화 '젠틀맨 리그'를 보는 듯 합니다. 삼국지를 읽은 초등학생의 상상을 대본으로 옮겨놓은 거라고나 할까요.

사실 이 부분을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결국은 적이 될 운명이지만 서로 끌리는 두 인물, 제갈양과 주유는 왠지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조조를 응징하기 위해 서로 씩 웃으며 협력하는 영웅들은 어딘가 '영웅본색 2'의 다시 만난 삼총사를 보는 듯 합니다. 어쨌든 이런 설정은 기존의 삼국지와 썩 잘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15세 이하용 삼국지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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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이 이 수준이니 천하의 명배우가 온 들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유 역의 양조위와 제갈양 역의 금성무를 비롯해 도대체 이 대본으로는 캐릭터가 그려지질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사람처럼 보이는 건 조조 역의 장풍의와 손권 역의 장진, 그리고 손상향 역의 조미 정도입니다.

미스캐스팅의 냄새도 짙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는 진짜 주인공을 주유로 놓고 있는 것 같은데 양조위는 이 역할에서 그만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상향 역의 조미는 '남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상무 공주'는 커녕 천방지축 날뛰는 말괄량이 '황제의 딸'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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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손상향, 아래가 유비...)

뭐 딱이 나쁜 건 아니지만 유비와 짝을 이룰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유비 역에 뭔가 있어 보이는 미중년 배우가 나섰더라면(...주윤발?) 모를까, 정말 지금의 유비로는 너무 심각한 아버지와 딸 구도밖에 안 그려집니다.

그럼 액션은 어떨까요.

일단 개인전은 게임 '진 삼국무쌍'의 실사 화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관우와 장비, 조운은 '소설 원작' 대로 수백명의 적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게임 화면같은 전투를 벌입니다. 물론 말을 타지 않고 땅 위에서 말입니다. 너무 비슷한 전투가 계속 펼쳐지는 바람에 나중엔 지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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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도 안습 수준입니다. 동양식의 전쟁 묘사라면 지금까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비길 만한 것이 없었다는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오우삼은 두 편의 할리우드 에픽에서 따 온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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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되는 방패는 킹 비더 감독의 1959년작 '솔로몬과 시바'에서 나온 것이고, 팔괘진에 갇힌 조조 기병대의 모습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1970년작 '워털루'에서 영국 보병대의 방진에 갇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폴레옹 기병대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특히 전장 전체를 조망하며 내려오는 부감 촬영은 같은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죠.

모방은 했으되, 기본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을 연구하지 않은 태가 역력합니다. 조조군의 마지막 무기(?)인 방패작전 같은 것이 그렇죠.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만한 병력을 진영 속에 가둬 뒀으면 화살 몇 대로 끝날 일을 갖고 장난감 쇼를 합니다.

오우삼이 '란'이나 '가게무샤', 혹은 가도카와 하루키의 '하늘과 땅과' 등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명장'의 전투 장면도 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리얼하게 느껴지고, 무려 19년전 영화인 정소동의 '진용'의 기마 전투 신도 이 영화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오우삼과 연출진이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무술감독으로 개인간의 액션에 강한 원규보다 집단 액션의 경험이 풍부한 정소동의 도움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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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후, '평이하고 지루하다'는 평과 '만화같고 재미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좋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실망이 커서인지 연말 개봉 예정인 '적벽대전' 후편을 보게 될지가 의문입니다. 욕을 하더라도 봐야 할지, 아니면 그나마 안 보는게 오우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일이 될지 말입니다.


p.s. 삼국지를 읽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좋은 오락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군요. 오우삼에게 정통 대하 사극을 기대한게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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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런 장면은 후편에 나올 모양입니다. 삼국지 팬들은 보는 즉시 어떤 장면인지 아시겠죠. 참고로 왼쪽 인물은 노숙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개봉을 앞둔 '적벽대전'을 보시면 실망을 피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p.s.3. 오우삼의 영화답게 비둘기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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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전, 일련의 고수들이 천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살수단(암살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천년 동안 역사 뒤에서 암약하며 세상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조직의 핵심이었던 한 암살자가 그들의 독선에 의심을 품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때부터 중원은 혈겁에 휩싸이게 된다....-

네. 아주 무협지적인 구상이죠. 그리고 실제로, 영화 '원티드'는 너무도 전형적인 무협지입니다. 단지 칼이나 주먹 대신 총을 주로(칼을 안 쓰는 건 아닙니다) 쓴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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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의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매커보이)는 직장에서 뚱뚱한 여자 상사에게 아무리 '갈굼'을 당해도, 여자친구가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워도 아뭇소리 하지 못하는 천하의 찌질남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여신같은 폭스(안젤리나 졸리)가 나타나고, 그의 일상은 전쟁터가 되어 버립니다.

어찌어찌하다 자신에게 천하제일살수(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보니...)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웨슬리는 그때부터 무공을 익혀 정의 실현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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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쓰는 무협지적 영상의 역사는 아마도 허관걸 주연의 '루안살성'에서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마크 다카스코스의 '크라잉 프리맨'은 이 영화의 할리우드 버전으로 두 작품 모두 일본 만화 '크라잉 프리맨'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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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영화 이후 사라진 것 같았던 총 쓰는 무협영화는 총과 무공을 조화시키지는 않았던 '매트릭스'를 슬쩍 비껴가 '이퀼리브리엄'에서 꽃을 피웁니다. 심지어 건 카타(Gun Kata)라는 마니아적인 용어도 남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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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에서 총을 사용한 무공은 '이퀼리브리엄'을 넘어섭니다. '뻥 중의 개뻥'으로 꼽힐 만한 총알 곡선으로 쏘아 보내기를 비롯해 수 킬로 밖에서 저격하기, 달리는 전철에서 쏘기 등 만화 '크라잉 프리맨'이나 '고르고 13'에서나 보여졌던 놀라운 비기들이 속속 드러나 관객을 신나게 합니다.

여기에 그가 최강의 킬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쌓는 수련, 찌질이에서 진짜 남자로 거듭나는 설정, 그를 단련시키는 다양한 고수들의 등장 등 너무도 무협지적인 도구들이 매우 완성도 높게 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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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시도를 무협의 확장으로 생각하며 유쾌하게 받아들일 관객들에겐 '원티드'는 매우 신선하고 즐거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객들에겐 허튼 소리와 뻥으로 점철된 황당무계한 영화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화는 일단 '남는 것(혹은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상당수의 한국 관객들에겐 이런 영화를 받아들일 공간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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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에는 무거워지려면 얼마든지 무거워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른바 운명의 베틀(운명의 여신들이 짜는 베에 의해 인류와 개인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신화는 그리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습니다)이 결정하는 사람을 리더가 지목하면 휘하의 킬러들이 그 사람을 척살한다는 것은 상당히 은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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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있지만, 베틀이 짠 베 위에서 2진수로 암호화 된 한 사람의 이름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베 위에서 올 수를 세어 특정인의 이름이 나타난 부분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건 애당초, 처음부터 그 베를 해석하는 사람이 죽일 사람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사적인 정의 구현에 나선다는 스토리는 수없이 많은 영화에 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중의 어떤 주인공도 웨슬리처럼 "내가 죽이려는 사람이 진짜 죄인인지 어떻게 알아?"라는 고민을 단 3분만에 해치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 그따위 고민으로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겠다'는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스타일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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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7세. 세계 문화의 변방 중 변방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감독이, 그것도 중앙 아시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티무르'라는 이름의 감독이 이렇게 할리우드의 메인스트림에 뛰어들어 세계 액션 영화의 조류에 몸을 싣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 감독은 러시아 영화인 2004년작 '나이트 워치'와 2006년작 '데이 워치'를 성공시킨 결과 '원티드'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른바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는 기존의 할리우드 감독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두번째 할리우드 영화가 은근히 기대됩니다.


p.s. 물론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오래 오래 여운이 남는' 영화를 원하는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되는 영화입니다. '이퀼리브리엄'이나 '콘스탄틴'에 열광하신 분들이라면 아마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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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어느 포스터를 봐도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이 더 크게 나온다는 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졸리가 이제까지의 출연작 중 가장 매력적으로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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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인 21은 두 가지 숫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블랙잭을 상징하는 카드의 합계, 또 하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나이입니다.

영화 '21'이 흥미로운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딱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플롯에 있습니다. 'MIT에 다니는 수학 천재들이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블랙잭에 도전, 수백만달러를 딴 이야기'라는 부분이죠.

특히 'MIT 수학천재들의 라스베가스 무너뜨리기(Bring down the house)'라는 논픽션 원작의 존재는 더욱 흥미를 끕니다.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은 실제 존재하는 MIT 블랙잭 팀 소속 멤버들을 살짝 변형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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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졸업반의 가난한 수재 벤(짐 스터지스)은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합격하고도 총 30만달러에 달하는 학비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미키 로사 교수(케빈 스페이시)가 놀라운 제안을 해 옵니다.

뛰어난 머리를 이용한 카드 카운팅으로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긁는 팀이 존재하고, 그 팀에 결원이 생겼으니 들어오라는 거죠. 심지어 짝사랑하던 여학생 질(케이트 보스워스)이 그 팀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벤은 결국 "딱 학비만 따자"는 생각으로 팀에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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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도 성공적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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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도박으로 딴 돈에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장학금이 장애인에게 유리하듯, 도박으로 딴 돈을 가져갈 수 있는 주인공은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 형제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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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는 할리우드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인 이른바 '수재 영화'와 TV 시리즈 '라스베가스' 사이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단 수재 영화 쪽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수재들의 세계를 그리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단 몬티 홀 문제. 처음 강의실에서 미키 교수는 벤에게 3개의 문을 가진 퀴즈 진행자 문제를 내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다는 설정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연자가 A, B, C라는 세 문 중 하나를 선택해 자동차가 나오면 그 자동차를 선물로 주는 퀴즈 쇼가 있다. 3개의 문중 하나에는 자동차가 있지만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출연자가 문 A를 열자 진행자는 선택되지 않은 문 두 개(B, C) 중 하나를 열어 염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혹시 본래의 선택을 바꾸겠느냐"고 물어본다. 이때 출연자에게는 선택을 바꾸는 것이 유리할까, 본래의 선택을 그냥 유지하는게 유리할까?'


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렇습니다. '남은 문은 2개. 그럼 뭘 고르나 아무 상관이 없잖아.' 하지만 확률과 통계란 상식과 가끔 차이를 보여줍니다. 통계학적으로 출연자가 선택을 바꾸는 것이 본래의 선택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2배 더 높은 당첨 확률을 갖고 있습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이해하는게 좋습니다. 당초 3개의 문이 있을 때 출연자는 1/3의 확률로 선택을 합니다. 즉 그가 고른 문 뒤에 차가 있을 확률이 1/3, 고르지 않은 두 문중 하나에 차가 있을 확률이 2/3입니다. 그런데 사회자는 나머지 두 문 중 하나를 열어주면서 2/3의 확률이 있는 쪽으로 옮겨 탈 수 있는 기회를 준 겁니다. 따라서 당연히 가야 하죠.

물론 무슨 소리냐고 발끈하실 분이 있을 거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는,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도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고, 못 알아듣는 분은 못 알아듣더군요. 다만 계산은 정확하고, 실제로 충분히 큰 횟수의 테스트를 해 봐도 같은 스코어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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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해 두고 싶은 이야기는 이 몬티 홀 문제(이 문제의 이름입니다)를 MIT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4학년 학생이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겁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수학 전공 학부생들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문제기 때문이죠. 또 웬만큼 퍼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한두번은 들어봤을 문젭니다.

이 문제로 미키 교수가 벤의 능력을 알아본다는 건, 대학 영문과 4학년 전공 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햄릿의 결말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그걸 맞춘 학생을 "정말 대단한 녀석인걸!"이라고 감탄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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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카드 카운팅이란 가능할까요? 물론 레인맨이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블랙잭을 아는 분들이라면 당여한 얘기지만, 블랙적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받을 다음 한 장의 카드가 그림(10 또는 왕족)일까, 또는 로 넘버(특히 2, 3, 4, 5, 6)일까 하는 것이죠.

가장 고전적인 카운팅은 그림 카드에게 +1, 로 넘버에는 -1의 값을 주고 덧셈 뺄셈을 하는 겁니다. 나머지 카드는 당연히 0이죠. 카드 한 벌은 13곱히기 4로 52매. 카드가 모두 오픈되면 숫자는 0이 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카드 32매가 사용됐고 카운트가 +10이라면, 나머지 20장의 카드에서 -10이 나와야 합니다. 0값의 카드가 골고루 사용됐다면 이제부터 남은 카드 중에는 절대적으로 로 넘버가 많다는 뜻이 되죠.

물론 이건 카드를 단 한벌 사용할 때의 얘깁니다. 당연히 카지노 측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최소 4벌, 혹은 6벌(six deck)의 카드를 사용하죠. 그것도 커트를 해서 일정 부분만 사용합니다. 모두 카운팅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정교한 카드 카운팅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설의 MIT 팀 멤버 중 몇 사람은 아예 blackjakinstitute.com이란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카드 카운팅을 가르치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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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화 '21'은 수재의 세계도, 블랙잭의 세계도, 더구나 카드 카운팅의 세계도 어느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평작입니다.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초보적인 설교 또한 유치할 뿐입니다.

그저 관심이 가는 건 한때 올란도 블룸의 애인으로 유명했던(그래서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 케이트 보스워스가 예쁘게 나온다는 정도일까요?

거기에 관심 없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기보다는 원작을 읽거나, 블랙잭에 대한 책을 사서 보시거나, 아니면 드라마 '라스베가스' 시리즈를 구해 보시거나 하기를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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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한국계 배우 아론 유가 등장인물 중 '초이'라는 한국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버드 메디컬 학장도 한국인 유학생을 거론하죠. 아이비리그에 한국 학생들이 많긴 많은가봅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프로 갬블러 중에는 또 동양인이 많죠. 사람들에 따르면 영화의 주인공 벤 캠블의 캐릭터는 한때 MIT 팀의 리더였던 제프 마(당연히 중국계겠죠)에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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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카드 카운팅은 미국 어디에서도 합법입니다. 다만 카지노 업주들은 자신들의 영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정도로 베팅이 큰 카드 카운터들은 적발해서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이건 무슨 규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개인사업자도 사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손님을 내쫓을 수 있다는 원칙에 준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10년 목욕 안 한 사람은 공중목욕탕에서 안 받는게 당연하다는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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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이 터졌습니다. 한국 영화의 위기, 위기 할때 영화계가 "그래도 '강철중' 만큼은..."하는 기대를 걸었고, 또 반드시 터져야만 하는 영화였죠. 강우석 감독이나, 그의 제작-투자사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서도 그랬고 한국 영화계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설마 이건..." 했던 작품입니다. 그만큼 절박했다고 할 수 있죠. 사정을 보시면 이해가 갑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에서 제작 혹은 투자한 작품들은 이랬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궁녀' '아들', '황진이', '싸움', '신기전', '모던 보이', '뜨거운 것이 좋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그리고 '밀양'과 강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강철중'이었죠.

이중 '아들', '황진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싸움',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뜨거운 것이 좋아'가 줄지어 흥행에서 쓴 맛을 봤고 '모던 보이'와 '신기전'은 이렇다할 이유 없이 개봉이 한없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결과물에 대해서도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밀양'과 '궁녀'가 간신히 손해를 안 본 정도라면 더 할 말이 없죠.

그러니 '강철중'이 무너졌으면 아예 시네마서비스가 문을 닫거나 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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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강우석 감독이 너무도 자신만만했던 '한반도'에서 '실미도'의 신화 재현에 실패한 터라 - 이 영화는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긴 했지만 누구도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를 꺼리는 아주 드문 사례입니다. 초반 '밀어붙이기'를 통해 관객 동원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도를 그만큼 떨어뜨린 영화였죠 -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역시 가장 자신있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

뭐니뭐니해도 강우석 감독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건 역시 코미디죠. 그 중에서도 역시 경찰 코미디,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 시리즈가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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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별다른 설명도 필요없습니다. 2002년 '공공의 적'에 나온 강철중 형사와 강동경찰서 강력반이 그대로 재현되는데 단지 이번의 나쁜놈은 대 조직의 보스 이원술(정재영)입니다.

거성그룹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회장이 된 원술은 고교생 싸움패들을 특채해 조직원으로 키우고, 겁없는 아이들을 속칭 '칼받이'로 이용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형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던지려던 강철중은 조직들의 극악한 행태에 분개해 사건 현장으로 뛰어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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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플롯이나 스토리에 큰 의미를 두게 되지는 않습니다. 처음 설정 때, 대단히 치밀하고 악랄한 두목으로 설정됐던 이원술이 어찌 보면 너무 간단히 무너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영화의 강철중은 별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칼까지 맞는데도 별 고생 아니라면 좀 미안한가요?) 아무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사소한 스토리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게 아니라 이미 관객들의 애정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강철중이란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웃음을 만들어내느냐에 집중하고 있고,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특히 강철중의 딸, 강미미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관객들이 배를 쥐고 웃게 하는 동안에도 어른답게 최소한의 '할 얘기'까지 빠뜨리지는 않습니다. 경찰보다 조폭이 더 폼난다고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용해 폭력 도구로 사용하는 조폭 두목들에게 '누군가는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아무튼 설경구는 강철중 역할을 통해 뭐가 연기고 뭐가 연기가 아닌지를 헷갈리게 하는 명연기를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정재영은 '할만큼 했다' 정도가 적절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정재영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 '아는 여자'나 '바르게 살자', '귀여워' 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것 - 예를 들자면 다양한 감정이 담긴 표정연기 - 을 요구하는 것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죠. 진짜 건달 연기라면 '귀여워'에서 매우 훌륭하게 해 냈지만 이번 연기는 그런 원조 건달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고... 성과라면 강철중이 전화를 안 받는 장면에서 진짜 악당처럼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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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과거의 성공적인 조연들을 불러낸 데 대해서 자기복제니 뭐니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대체 시리즈 영화의 장점이 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리고 '공공의 적' 하면 강철중 다음엔 역시 치사한 조폭 연기의 달인이신 산수 이문식 선생인데, 당연히 산수를 보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줬어야 정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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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는 '공공의 적 1-1'이라는 제목으로, 강철중을 검사로 만들었던 '공공의 적 2'를 무시해버리고 다시 '공공의 적'의 공식 속편 자격을 이 영화에 부여하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탓인지, 각본을 쓴 사람이 장진 감독으로 바뀐 탓인지 강철중은 좀 변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1편의 강철중은 상당히 위험한 캐릭터였죠. 빼돌린 돈이며 훔친 마약 때문에 어지간히 고민도 하고, 교통과로 쫓겨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강철중'에서의 강철중은 거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입니다. 무슨 짓을 하건 걱정이 안 되는 수준으로 안전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죠. 무슨 말이냐면, 1편의 강철중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캐릭터였지만 이제 강철중 형사는 '공공의 적' 시리즈의 언저리 안에서는 절대로 죽지 않을 불사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객을 안심시키는 캐릭터가 되어 버린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서민 영웅'의 캐릭터를 타고 태어난 터라 매편 죽도록 고생만 하고 별다른 즐거움은 누리지 못할 것 같으니 절로 혀를 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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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강철중'은 몇편이나 만들어지게 될까요?

다행스러운 것은, '공공의 적 2'에서의 설경구를 볼 때 어째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입니다. 이 다음의 '강철중' 영화에 대해서도 일단 설경구의 입장은 '작품이 좋으면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그렇다면 한 두가지 점만 조심하면 우리는 수시로 '강철중'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연구 부족으로 설경구가 하고 싶을만한 대본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나라가 갑자기 좋은 나라가 되어 더 이상 공공의 적이라고 볼만한 존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는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써 봤습니다.)

세번째는 이 영화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설경구가 '공공의 적'의 속성을 띄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성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적'들은 모두 사회적인 강자이면서 악한입니다. 즉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편히 잘 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들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들이죠. 즉 '잘나고 못된 놈' 들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악당들은 고급 양복과 넓은 사무실, 좋은 집과 좋은 외제 차 등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 놈들은 뭔가 부정한 짓을 했기 때문에 - 실제로는 별로 나보다 나을 게 없으면서도 - 저렇게 잘 나가는 것'이라는 약간 비뚤어진 시각이죠. 어찌 보면 아주 노골적으로 사회적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 설경구가 호화 별장을 산다든가, 향정신성 의약품과 관련된 시비를 일으킨다든가, 엄청난 미녀 스타와 염문설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동안 나왔던 '공공의 적'들이 갖고 있던 악덕을 보여준다면, 그는 더 이상 강철중 역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이건 어찌 보면 설경구라는 배우의 운명일 수도 있겠군요.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모습으로 봐선 이런 건 기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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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유망주 이한이 김남길(가운데)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군요. 그럴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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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라구, 영화 제목이 '아버지와 마리화나'란 말야?" 그런데 실제로 그런 내용이라는 걸 알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물론 진짜 제목은 '아버지와 마리와 나' 입니다.)

왕년에 잘 나갔던 록가수 태수(김상중)은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혼자 살던 고교생 아들 건성(김흥수)에게 돌아옵니다. 밤낮 대마초에 취해 교도소를 들날락거리던 아버지를 거의 친구 대하듯 하는 건성 앞에 유모차에 아기를 실은 마리(유인영)이 나타납니다.

어찌어찌하다가 두 부자만 사는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마리와 아기.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철이 없고, 식구는 늘었지만 먹고 살기는 빠듯합니다. 이런 와중에 건성은 학교에서 1진과 시비가 붙죠. 참 복잡한 확대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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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묘한 부자간입니다. 아버지는 1960년대생, 아들은 1990년대생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 아버지의 차림새나 스타일은 1950년대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구들의 모습을 봐선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친 히피 컬처의 수혜자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어린 건성을 두고 잡혀 갈 때의 패션은 누가 봐도 1970년대 풍입니다. 80년대의 로커라면 좀 더 머리가 길었어야죠.

어쨌든 아버지는 미국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젊어서 히피 시절을 보낸 철없는 중년' 캐릭터를 닮았습니다. 나이도 먹고 자식이 있지만 여전히 낙천적이고, 책임감도 전혀 없습니다. 당장 하루 하루를 즐기는게 최선인 사람입니다.

반면 아들 건성은 비록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타워팰리스에 살아 보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죠.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절대 '약쟁이'가 되어 교도소에 들락거리지는 않겠다는 올곧은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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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건성은 출소한 아버지를 위해 두부를 준비해가며 맞이하지만 아버지는 두부의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투덜대는, 사이가 괜찮아 보이지만 결국은 언젠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시죠. 한국에서 '길들여질 수 없는 로커' 스타일의 노장들이 누가 있을지. 일단 한대수가 떠오르고, 전인권이 뒤이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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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배우 아무개양 때문에서 스타일도 좀 구겼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인권은 대마초 피울 만큼 피우더라도 노래하게 안 잡아갔으면 좋겠다"는 골수 팬들이 즐비했습니다. 한번 이런 분들이 10대 아들과 한 집에서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시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출발점입니다.

이 관계의 긴장을 바짝 당기는 것이 마리 역의 유인영입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미모의 미혼모 여고생. 사실 이 부분에서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심하게 떨어집니다.^^ 아무리 집에 먹을 게 없다 한들 혈기방장한 고교생이 비슷한 또래의 유인영을 보고 눈에 하트가 그려지지 않는다든가, 함부로 내쫓으려고 한다든가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아무튼 이 영화에서 '아무 생각 없는 천사' 역을 맡은 유인영은 한껏 매력을 뿜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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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이 영화가 2년 전에 이미 완성된 작품이라는 겁니다. 2년 전에는 거의 경력 없는 신인이던 유인영도 이제는 일일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얼굴이 됐죠.

그런데 현재의 모습에 비해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고 생기있어 보입니다. 신인 연기자에게 연출자의 애정이나 정확한 디렉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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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도 이 역할에서 자기 몫을 다 합니다. 꽃미남이라고 부르긴 살짝 간지럽지만 연기력 면에선 이제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세 차례나 나오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버텨내는 건 장하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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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흥수가 지금까지 인정받았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와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너무 이미지가 하나로 굳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약간 얼띤 친구 역으로 나오는 이기찬도 칭찬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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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있다면 김상중 쪽입니다. 뭘 해도 좋고 즐거운, 철없는 중년의 록스타라는 생소한 캐릭터를 맡고 보면, 스스로 인물을 창조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평생 남의 절제를 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과연 그렇게 허허 웃는 무골호인이기만 했을까 하는 데에는 의문이 갑니다. 대본 단계에서의 문제일 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더러운 성질'이 드러나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김상중과 김흥수의 진짜 노력은 이 영화에 나오는 연주와 노래를 모두 직접 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김상중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프로 수준이라고 불러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가 이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 진짜 이유는 이쪽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경쾌하고 발랄한 초반에 비해 후반이 어이없이 신파로 흘러간다는 주장도 있지만, 영화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볼 때 후반이 처진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결말도,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이미 필연적으로 이런 결말이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복선이 깔려 있죠. 전혀 생뚱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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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재미있게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관객이 갖고 있는 마음의 여유와 관용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모든 장점과 단점을 막론하고 "대마초 피우는 놈들은 모조리 갖다 쳐 넣어야 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재미는 전혀 느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적극적으로 대마초 옹호론을 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대마초가 상징하는 문화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무영 감독은 "대마초 허용을 주장하는 영화냐"는 질문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취재진의 이어지는 질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허용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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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는 사람에게 환각을 제공하지만 중독성은 없다는 것(물론 심리적 의존성은 크겠지만)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담배나 술보다 건강에 미치는 해악도 적다고 하죠. 물론 대마초 반대자들의 주장도 팽팽합니다. 대마초는 가끔 '마약 입문 과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대마초 자체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자들도 인정하지만, 대마초 단계에서 막지 않으면 대마초를 통한 자극이 시들해진 마약 사용자들이 점점 더 상위단계의 '진짜 마약'에 손을 뻗게 되어 있다는 거죠. 아무튼 대한민국 현행법은 대마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김상중이 대변하는 것은 대마초라는 약물 자체가 아니라 흔히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좋았던 60년대', 즉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턱없이 순진하고 낭만적인 이상주의가 세계(아무래도 특히 미국) 젊은이들의 머리 속을 점령했던 그 시절의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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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꽃을 꽂고 온 세상 사람이 서로 사랑으로 소통하면 빈곤이나 전쟁, 종교 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극도의 평화주의죠. 대마초로 붕 뜬 몽환적인 상태는 빈부의 격차도, 악착같은 물욕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군비 경쟁도 잊게 해 줄 거란 게 이 시기의 생각들입니다.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발이나 뮤지컬 '헤어'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들이죠.

아버지의 세대는 그런 문화를 동경했지만, 불행히도 당시의 한국은 그런 문화가 꽃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일단 먹고 살아 남는게 가장 시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절대 빈곤 속에서는 온 세상이 이런 '착하지만 무기력한 베짱이들'에 대해 손가락질을 해댔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버지는 모든게 풍족해 그 시대의 어려움을 모르는 아들이 좀 야속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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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를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이미 10대 후반에 현실은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 아들. 그 아들에게는 낭만이나 이상 보다는 부잣집 아이들만 편애하는 학교의 현실에서 겪는 고통,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한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아들이 아버지 못잖게 대책이 없는 마리 모자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분명히 좀 지나친 낙관주의의 산물로 보이지만, 시위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출 수 있는 21세기에는 오히려 이런 동화가 더 설득력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는 영화를 바라는 분, 지루하거나 눈물 짜는 영화는 딱 질색인 분들이 보시면 충분히 영화의 박자에 몸을 실을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가끔 "이런 얘기는 TV 단막극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재를 어떻게 TV에서 다뤄!"라고 반문할 수 있는 영화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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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그동안 이무영 감독의 유머는 '보는 사람을 뻘쭘하게 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푸하하 웃게 되지만 막상 그 바로 옆에서는 웃는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그런게 바로 '그분의 유머'였죠. 전작 '휴머니스트'나 이감독이 대본에 참여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보통 사람도 충분히 웃을 수 있는 개그 감각이 폭발합니다. 이게 아마 가장 큰 변화가 아니었나 싶군요. (감독 본인은 "나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입장입니다.)

p.s.2. 영화 속의 대마초는 모두 인조 화초입니다. 진짜 대마초를 갖다 찍으려 했는데 법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는군요.

p.s.3. 이건 영화 보신 분들이라야 이해하시겠지만 - 과연 마리와 아기에게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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