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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하던대로 10편의 영화를 꼽아 봤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극장에서 본 영화가 꽤 많네요. 

어쩌다 보니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을만한 씨너스가 맨 위에 있는데, 숫자가 1위~10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1.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얼마 전에 올린 '21세기의 첫 쿼터를 대표하는 25편의 영화' 중의 한 편으로 올려놨으니 여기 빠질 수는 없는 작품.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도 20세기 초 미시시피 델타 지방의 끈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25년 단 한편을 뽑으라면 이 영화. 이미 리뷰를 길게 써서... 그쪽을 참고하시길.

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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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보 (이상일)

가부키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가, 그냥 막연한 이웃나라 연희극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 재능과 혈통, 우정과 경쟁, 인간 본연의 심리에 어필하는 훌륭한 작품. 3시간이 짧게 느껴집니다. 

국보, '가부키'라는 남자들만의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국보, '가부키'라는 남자들만의 이야기

0. 야쿠자의 아들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부모를 잃고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제자가 되어,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요코야마 류세이)와 함께 자라고, 함께 수련한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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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폴 토머스 앤더슨)

올해의 코미디. 찌질이 중년남으로 변신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인종주의 인간말종 꼰대로 변신한 션 펜, 두 아저씨의 열연이 기발한 정치 코미디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에겐 아직 이런 장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PTA는 운동권을 비웃은 걸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PTA는 운동권을 비웃은 걸까

1. PTA , 그러니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 중 , , , 는 좋아하는 영화들이지만 , 는 고만고만하고 는... 전혀 취향이 아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불세출의 천재 감독'이란 평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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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쩔수가 없다 (박찬욱)

흠이 있다면 <기생충>보다 늦게 만들어 진 것? 늘 그렇듯 풍성한 비유와 기이한 유머로 가득한 박찬욱스러운 작품. 한마디로 주제를 요약하자면 '구조는 노예들을 싸우게 한다'? 거대한 공장에 '혼자' 서 있는 박찬욱 감독의 모습이 어쩐지 다른 50대 감독들이 다 나가떨어진 한국 영화계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어쩔수가 없다, 아마도. 이제는 정말로.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어쩔수가 없다, 아마도. 이제는 정말로.

1. .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론 웃기면서 한편으론 곤혹스러운’. 이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가 아닐까. 아마도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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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콘클라베 (에드워드 버거)

교황의 급사 이후, 후계자 선출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 스스로를 킹메이커의 자리에 놓은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후보들을 눈대중으로 심사하며 카톨릭 교회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후보자들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아마 2010년 중반이었다면 아카데미상은 <콘클라베>의 차지가 됐을 듯. 그만치 고전적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 수사극(?)의 형태로 되어 있는 중간 중간의 문제들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2025년 최고의 정치 드라마(아, 아직도 이 영화가 종교극이라고 알고 계신건 아니겠죠)로 손색이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엔딩의 감동도 일품. 대단한 영화입니다.

 

6. 시빌 워 (알렉스 갈랜드)

어느 편이 어느 편인지도 모르게 미국의 50개 주들이 제각각으로 흩어져 서로 싸우게 된 근미래(사실상 현대). 국가의 분열을 초래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어느새 동부 끝으로 고립되어가고 있고, 특파원들은 대통령이 내릴 최후의 선택(?)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통과하는 미국의 시골 지역은 중앙 권력이 사라지며, 서부개척시대보다 더 엉망진창인 무법지역으로 변해 있습니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차마 웃을 수 없는 영화. 결말은 사이다일까요, 아닐까요. 

시빌 워. 우화가 아닌 악몽. 9개의 질문과 대답.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시빌 워. 우화가 아닌 악몽. 9개의 질문과 대답.

를 꽤 기다렸다. 2023년 연말,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와 정말 할리우드는 다이내믹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미국 개봉도 4월로 늦어지고(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선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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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앤드루 헤이그)

2023년작. 좀 늦게 봤지만 올해의 영화로 꼽지 않을 수 없을만큼 강렬했던 작품. 어둡고 우울한 도시에서 친구가 된 두 남자.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어렸을 적 부모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지 않은 주인공.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디즈니플러스에서 를 봤다. 앤드루 헤이그, 의 그 감독이다. 앤드루 스콧, 좋아하는 배우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퀴어? 보고 나서 알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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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F1 (조셉 코신스키)

역시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중 하나. 그동안 수많은 주제, 주제, 주제들에 시달렸던 관객들을 해방시켜 준 영화. '내가 왜 지금까지 영화라는 것을 보아 왔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속편 기대. 

F1, 세상은 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F1, 세상은 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2017년 F1의 사업권을 사들인 미국 회사 리버티 미디어는 의외로 F1이 미국에선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데 충격을 받고,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2019년 시작된 기획이 넷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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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노라 (션 베이커)

'어째서 아노라가 2025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어야 했는가'는 당시에는 꽤 논란이 됐지만, 할리우드가 당시 사회 분위기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뭐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죠. 그리고 션 베이커를 잘 모르셨던 분이라면, <아노라>를 통해 이 놀라운 감독의 세계를 느끼게 되실 듯. 자,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빨리 <아노라>를 보시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시길.

 

 

10. 세계의 주인 (윤가은)

역시 '만들어 줘서 고마운' 영화. 아직 인생의 도입부인 10대라는 세대, 그리고 남은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위 사람들은 어떤 태도여야 하는지를 찬찬히 가르쳐주는 영화. 물론 거기다 재미있는 영화. 윤가은 감독이 디렉션의 힘을 어서 느껴 보시길.

세계의 주인, 주인이의 세계.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세계의 주인, 주인이의 세계.

근래 굉장히 비슷비슷한 영화평이 여기저기서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왜 좋은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싶은데 설명을 하려들면 바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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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좋은 영화들이 많이 봤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19년작 <리처드 주얼>은 정의란 무엇이고, 우리는 얼마나 외모나 연출에 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좋은 사람들도 있고...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 한국 영화로는 역시 넷픓릭스에서 본 <살인자 리포트>(조영준) 좋았습니다. 당연히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 출발점에서 실제로 반전이 밝혀지는 후반까지 구성이 정말 탄탄합니다. 

좀 고전적인 취향이라면 쩐 아인 훙의 <프렌치 수프> (원제가 La passion de Dodin Bouffant네요)를 추천. 줄리엣 비노슈의 잔잔하게 나이든 모습을 볼 수 있고, 딱히 음식에 관심이 좀 있는 분이 아니라도, 충분히 빠져들만한 잔잔한 이야기가 일품. 음식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도 올해의 영화로 추천할만.

반면 좀 너무 평이한건 싫다 하는 분들은 넷플릭스에 있는 <악마와의 토크쇼>를 강추합니다. 1970년대, 심야 시간대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토크쇼들은 한명이라도 더 보게 하기 위해 마술, 심령, 불륜, 별별 소재들을 다 동원했는데, 그러다 결국 스튜디오에 악마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야말로 별별 짓을 다 보게 됩니다. 카메론/콜린 케언스(Cairnes, 캔스? 케이언스? 호주의 도시 이름인 Cairns와도 철자가 다름)는 형제인가본데 물론 전혀 들어본 적이 없고, 아는 배우도 나오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습니다. 물론 호러는 아니지만, 노약자들은 시청을 피하시길.

 

자, 2025년 한햇동안 애써주신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26년에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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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F1의 사업권을 사들인 미국 회사 리버티 미디어는 의외로 F1이 미국에선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데 충격을 받고,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2019년 시작된 기획이 넷플릭스 다큐 <본능의 질주 Drive to survive)>. 그 뒤로 시리즈도 승승장구, F1의 인기도 급상승. 코신스키도 영화 <F1> 제작에 <본능의 질주>가 미친 영향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다. F1에서 보여줄 수 있는 카메라 앵글을 비롯해 거의 모든 비주얼 요소를 가이드로 보여준 셈인데, 어찌 보면 이런 면에선 영화 공짜로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이서의 세계를 다룬 영화들은 참 많이도 나왔다. 할 얘기도 이미 다 했다. 남자의 고독, 질주 속에서 느끼는 실존감, 팀메이트간의 갈등, 특히 백전노장 드라이버와 신예 후배의 갈등, 차의 성능인가 드라이버의 실력인가, 의리와 명분... 주인공만 바뀐 똑같은 플롯의 영화들이 쌓여 있다. 물론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고 사실 영화라는게 원래 그런거 아닌가. 느와르는 안 그렇고, 로맨틱 코미디라고 크게 다른가.

스티브 맥퀸의 <르망(1970)>과 이브 몽탕의 <그랑프리(1966)>를 좋아한다. 두 캐릭터 모두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 드라이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후배들과 경쟁하고, 달린다.
 
지금은 매우 식상한 얘기지만 이런 영화들에는 꼭 "대체 이렇게 목숨 내놓고 이걸 해야겠어요? 뭐때문에 시속 200마일로 달리는 미친 짓을 하죠? (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떡해요?)" 라고 묻는 여성들이 나왔다. 그러면 노장들은 오만 폼을 잡고 말한다. "내겐 달리는게 전부야." 그렇다. 매우 유치하고 진부하지만, '달리는 것이 나의 존재 증명'이라는 그 시대의 과장된 진지함이 좋았다.

 

 
다행히도 코신스키의 <F1>에는 같은 질문을 던지는 여성 캐릭터가 없... 나오긴 한다. (웨이트리스가 비슷한 질문으로 브래드 피트에게 "돈은 중요치 않아요"라고 말할 기회를 준다.) 대신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그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 멋지지 않은가. 이것이 2025년이다.
 
사실 <F1>을 신나게 보고 나왔는데, 정작 <F1>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영화 자체가 그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F1의 규칙 같은건 나도 모른다. 아무튼 브래드 피트는 멋지고,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영화란 건 원래 이런 거였고, 이랬어야 했다.
 
P.S. 파트너 돈 심슨이 살아있던 시절, 다들 아시다시피 1990년 제리 브룩하이머는 레이싱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바로 톰 크루즈의 <폭풍의 질주>. <F1> 속편에선 톰형과 빵형이 '왕년의 라이벌'이었던 것으로 놓고 데이토나나 르망에서 '마지막 대결'을 위해 만나보는건 어떨까. <탑건 매버릭> 감독이기도 한 코신스키는 이미 이런 구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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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쩔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론 웃기면서 한편으론 곤혹스러운’. 이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가 아닐까. 아마도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고추잠자리>씬을 보면서 딱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이 다크한 코미디가 얼마나 대중적일지가 솔직히 궁금하다.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을 묘수풀이로 즐기는 관객들에겐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일 듯. 참고로 사과나무도 나오고, 뱀도 나온다.
 
 
2. 벌써 10몇년 전의 일이다. 한 지인의 지인이 출판사를 냈다며 건네 준 책에는 이런 추천사가 적혀 있었다. ‘박찬욱: 내가 가장 영화로 만들고 싶은 원작’...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야, 역시 재미있었다.
 
 
3. 소설 제목은 엑스(AX). 해고된 중년 가장이 재취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하고, 주인공은 자신이 특화된 영역의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 나와 비슷한 경력자들을 제거하면 되겠네? 그래서 실업자 아저씨는 킬러로 급변신을...
 
 
4. 대략 이런 이야기. 당연히 원작과 똑같지는 않다. 제지회사 베테랑 엔지니어 유만수(이병헌)는 사랑하는 미인 아내(손예진)와 두 아이, 두마리의 개, 자기가 태어나 자란 숲속의 집(어려서 집안이 망해 쫓겨났다가 성인이 되어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식물들로 가득 찬 온실까지, ‘다 가졌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영화 도입부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이제부터 주인공이 나락으로 향한다는 이정표다.
 
 
5. <어쩔수가 없다>. 제목은 너무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 일해 혼자 먹고 살 수가 없다. 반드시 어떤 부분은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 남이 해주는 일은 어딘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에서 그 부분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말 중 하나가 ‘어쩔수 없다’다.
 
사실 영화 앞부분에서 미국인 임원의 대사는 “Sorry, no other choice”였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어쩔수가 없다”는 아마도 “It is what it is”, 아니면 “That’s the way it goes. It was the best I could do”에 더 가깝지 않을까.
 
 

6. 그리고 구조는 노예들이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건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부터 유지해 온 스탠스가 아닌가. 그때도 송강호는 신하균에게 말했다. “사실 너 착한 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죽이는거 이해하지?” 이건 내가 너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구조가 너를 죽이는 거야.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아줘. 나도 어쩔수가 없어. AI도 나오고, 이야기의 외피는 새롭지만 그 속살은 소설 원작이 나온 시절의 시각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지.
 
(물론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과 문명의 흐름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버려서 누구도 '어쩔 수 없이' 이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어쩔수가 없다' 인지도.)
 
 
7.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가 <기생충>보다 늦게 만들어진 이상, 비교는 필연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디언 분장의 손예진은 아마도 관객에게 보내는 ‘인정할게. 자, 됐지?’의 사인일듯. 암튼 비슷한 문제에 대해 두 감독이 제출한 두 장의 답안지를 보는 느낌이다.
 
 
8. 전체 제작비에서 대체 출연료만 어느정도일까 싶게 캐스팅이 환상적이다. 차승원 이성민이 이 정도 비중의 역할로 출연하는 영화라니.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짧다. 이병헌의 능력을 굳이 얘기하는 건 이제 사족일 뿐이고, 궁금한 건 박찬욱 감독과 손예진의 조합이었는데, 결과는 감동적이었다.
 
 
9.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처음으로 ‘죄’만 있고 ‘벌’은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벌이 있다면... 레슨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엔딩의 이병헌 혼자 있는 장면은 혹시 박찬욱 감독이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유는…)
 
 

10. 어쨌든 얼른들 가서 보세요. 보고 더 얘기합시다. 떡밥은 천지.

예를 들어 영재인 딸인 어딘가 AI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악보를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표기하는 아이. 놀라운 재능이 있지만 인간 부모들과는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 어딘가 미심쩍은 눈으로 인간 어른들을 보고 평가하고 있는 아이. 결국 그 '아이'와 어떻게 미래를.... (정말 돈이 많이 든다. 제대로 키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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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에서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를 봤다. 앤드루 헤이그, <45년>의 그 감독이다. 앤드루 스콧, 좋아하는 배우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퀴어? 보고 나서 알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도 그 관계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런던 어딘가의 낡은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폐허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아담(앤드루 스콧)은 어느날 이웃 해리(폴 메스칼)을 알게 된다. 세상 살이에 미련이라곤 없어진 아담은 어느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떠냐"는 해리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뒤늦게 자기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 아담. 그리고 그들은 매우 친숙한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아담은 갑자기 어려서 살던 옛 집을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있다. 자기를 남겨 두고 죽었을 때의 젊은 모습 그대로. 그들은 너무나 반갑게 아담을 맞이한다.
 
(네. 이런 얘기에요. ㅋ)
 
 
왠지 그렇게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가고, 결국 엔딩 크레딧이 뜬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기분 오랜만인데, 굳이 기억을 뒤져 보자니 관금붕의 <연지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외로움, 인연, 그리움, 이런 키워드들에 이어 ‘회한’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다 늦은 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문명이란 어떻게든 어둠을 이겨 보려는 인간들의 발버둥이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밤을 낮처럼 밝혀냈지만, 마음 속의 어둠은 쫓아낼 수 없었고, 도시에도 여전히 그늘은 있다.
 
 
그 그늘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두려워한다면, 아직 당신은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지도.
 
1월이지만 올 연말에 꼽을 올해의 영화 중 한 자리는 확정. 영화는 잔잔하지만 여운은 어마어마하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음.
 
 
P.S. 일본 작가 야마다 타이치의 <이방인과 보낸 여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8년에 영화화됐다. 물론 번역 출간도 되지 않았고, 영화도 볼 방법은 없어 보인다. 혹시 보신 분 계심?
 
 
P.S.2. 해리 역의 폴 메스칼이 <글래디에이터>에서 그 소년 루시우스였다고. 아. 세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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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굉장히 비슷비슷한 영화평이 여기저기서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왜 좋은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싶은데 설명을 하려들면 바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세계의 주인>. 여고생 주인은 어린이집 원장인 엄마, 마술사를 꿈꾸는 초딩 남동생과 살고 있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봉사 모임에도 나가고, 남자친구와 키스도 좋아하는, 활기차고 씩씩한 주인. 어느날 같은 반 남학생 수호가 서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는데, 주인은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아니 충분히 찬성할만한 일인데 왜?
 
 
영화의 전반은 수수께끼를 내고, 후반은 그 수수께끼의 답을 준다. 의아했던 것들이 풀려 나가면서, 관객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 묘한 영화. 미스테리는 해결되고, 웃음이 화면 가득 차오르지만 당신은 영화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악은 분명 존재한다. 악이란 너무나 알아보기 쉬워서, 마주하는 자가 유혹에만 넘어가지 않으면 피해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물론이고, 실제 세상에도 악한 인간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일단 악행이 저질러지고 나면, 어떤 식으로 단죄를 하든 '그 뒤의 삶'이라는 것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넘어온다.
 
 
그 악행의 흔적, 악행이 남긴 것은 지우개로 지우거나 욕실세제로 박박 닦아내릴수 있는게 아니다. 그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태양 아래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악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약한 자들을 보호할수 있을까. 한번 무너진 것은 어떻게 다시 일으킬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무너진 것을 다시 쌓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은 답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얼개를 짜는 재능 못지 않게 배우들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솜씨가 놀랍다. 영화 시작 후 30분이면 '음. 저 배우와 저 배우는 상당히 오버액션을 하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1시간30분쯤 되면 그 오버액션도 연출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드물게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휘몰아치는 힘이 느껴지는 영화. 상영관이 적은게 안타까운데 어떻게든 찾아서 보시길 권한다. 내 마음이 얼마나 굳어 있나 볼수 있는 자가검진 세트로도 사용 가능.

 

P.S.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윤가은 감독의 영화 몇 편을 찾아 봤는데, '남동생'이라는 존재의 특이한 역할이 공통점으로 드러나는 걸 보았다. 윤 감독은 남동생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관계일지가 궁금했다. (지인을 통해 '남동생이 있다'는 것까지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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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TA , 그러니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 중 <리노의 도박사>, <부기 나이트>, <팬텀 스레드>, <펀치드렁크 러브>는 좋아하는 영화들이지만 <마스터>, <매그놀리아>는 고만고만하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전혀 취향이 아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불세출의 천재 감독'이란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비호를 넘어 극혐에 가깝다(물론 라디오헤드의 우울증 유발형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이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도 유일한 약점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펼쳐지는 장면들과 지금 이 음악이 어울리나? 아무튼 내 취향엔 맞지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배틀...>은 진심 재미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선에 맞선(?) 가상의 테러 조직과 세월의 흐름, 백인우월주의 비밀 서클 같은 주제들이 종횡무진 대륙을 질주하며 벌어지는 요란한 액션 코미디. PTA가 어쩌다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기특하기 짝이 없다.
 
3.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말도 안되는 짓거리와 영화 속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 하는 짓들을 보면 이 영화는 트럼프의 나라가 되어 버린 미국에 대한 강렬한 비판인데, PTA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그 반대편도 날카롭게 후벼 판다.
 
 
4. 겉멋들린 운동권 엄마는 결국 모든 걸 배신해버리고, 그 바람에 애당초 혁명의식이란게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밥(디카프리오다)은 하루 아침에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그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어린 딸을 부양하면서 잡히지도 않고 버틸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무능하기 짝이 없다.
 
니들도 잘한게 없다는, 미국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이 그대로 담긴 듯한 느낌이다. 너희가 쓸데없는 PC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에만 매달려 민생을 돌보지 않는 바람에 정권이 트럼프한테 넘어간 게 아니냐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젊었을 때는 목숨을 걸고'를 외우고 다니는 586 꼰대들에 대해 실망한 한국 관객들의 호응도 눈부시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5.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천하의 악당 역을 맡은 션 펜, 카라테 센세 역의 베니시오 델 토로의 활약이 눈부신데, 이 세 아저씨(셋 중 하나는 확실히 내년에 오스카 트로피를 쥐지 않을까. 특히 주연일지 조연일지 모르겠으나 션 펜)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를 타란티노 아닌 PTA가 만들었다는 것이 의아해진다.
 
 
6. 물론 PTA에게 이런 장르가 익숙지 않아 그런지, 아니면 '어차피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생각에서인지 뒷부분으로 가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 특히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마지막 시퀀스의 자동차 추격전 장면에서 대체 마지막에 세 대의 자동차가 어떻게 그 차가 그 차인줄 알고 쫓고 쫓길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냥 달리다 보면 그 차가 그 차고, '본능적으로' 그 차가 자기를 죽이러 쫓아오는 차인 걸 눈치챈다는 식이다.) 하지만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은 금물. 특히 망원렌즈 활용을 극대화한 촬영은 박수받을만 하다.
 
 

 

SLA 홍보 요원이었던 허스트와 체포된 뒤의 모습.

 

7. 영화 속 프렌치75는 1970년대 언론재 벌 허스트가의 손녀 패트리샤 허스트를 납치한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SLA 같은 무정부주의 조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게 아닐까 싶다. 60년대의 대책없는 낭만이 남아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2010년쯤의 미국에서 이런 조직은 존재했을리가 없어 보이긴 한다.
 
SLA는 Symbionese Liberation Army의 약자로, 이들은 반 자본, 반 인종차별, 반 제국주의를 주장하는 극좌 조직이었다. 사상적으로 치밀하지는 않았고 막시즘과 모택동의 사상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이나 호치민의 게릴라 전에 대한 생각들을 조합한 것이 이들의 기반이었다. 
 
1974년 당시 SLA 는 패트리샤 허스트를 납치했다. 처음에는 유괴 사건이었고 이들은 허스트의 몸값으로 빈민들에게 식량을 지급하라는 등의 요구조건을 내새웠지만, 사라졌던 허스트가 SLA의 테러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찍히며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테러 조직에게 납치당했던 재벌가 상속녀가 그 테러 집단의 한패가 되어 있다니.
 
그들과 함께 생활하던 허스트는 그들의 반복되는 주장에 어느새 '세뇌되었고', 그들의 일원이 된 것이다. 허스트는 피해자에서 어느새 지명수배 명단에 함께 오르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조직은 체포되어 와해되었고, 허스트도 당연히 같이 처벌을 받았지만 1982년 허스트는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의 책(그러니까 자발적 참여가 아니고 억압적 세뇌에 의해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인 것이다... 운운)을 써서 사면에 성공했다. 정말로 그녀가 자발적으로 동참했는지, 아니면 새로운 심리적 이론의 근거를 마련한 것인지는 그녀 본인만 알 듯. 
 
8. 어쨌든 PTA 답지 않은 결말까지도 한국 관객 취향에도 딱 맞을듯한 작품. 개인적 기준으론 상반기의 <씨너스>와 올해의 영화를 다툰다. 얼른들 보시도록.
 
 
P.S. 성수동 메가박스가 문닫기 직전에 관람. 이런 식으로 극장이라는 존재가 삶의 주변에서 아예 사라져버릴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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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안 읽고 오신 분들을 위해 리스트만 앞에다 붙인다.

기준은 작품성 예술성 모르겠고,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한, 2001-2025 사이의 영화 25편. 배치는 제작 연도순. 순위 아님.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킬빌 (퀜틴 타란티노, 2003)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쿵푸허슬 (주성치, 2004)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렛미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타짜 (최동훈, 2008)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쉬가르 파라디, 2013)
킹스맨 (매튜 본, 2014)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이것만으론 아쉬우니 한줄씩 붙인다. 

1~11까지는 바로 앞의 포스팅 참고.

12.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어느 순간엔가, 모든 좀비 영화는 가장 무서운 병, 치매라는 병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가장 슬픈 좀비 영화는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다. 사랑하던 사람이 살아 있으나 더 이상 사랑하던 사람이 아닐 때, 그 사람을 바라보던 케이트 블랜칫의 슬픈 눈빛이 지금도 떠오른다. 관심 있는 분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단편을 읽어 보시길. 각색이란 얼마나 위대한 예술인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https://fivecard.joins.com/302

 

벤자민 버튼, 21세기의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데이빗 핀처는 잘 알려진대로 '에일리언 3'에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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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슈퍼맨은 단순하지만 명쾌한 데가 있어서 그나마 좋아했는데 뭘 해도 고민하는 배트맨은 너무 중2병스러워서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언맨의 자기애와 과시욕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등장. 그리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시대의 매혹적인 화법. 이 영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마블은 없었다.

https://fivecard.joins.com/271


 

아이언 맨, 제2의 트랜스포머가 될 듯

마블 코믹스의 세계가 참 깊고도 넓다는 것은 일찌기 알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릴 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만큼은 대단한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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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솔직히 놀란의 영화는 거의 다 봤지만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는 매우 마음에 들었던 반면 그 나머지 영화, 배트맨 3부작과 <메멘토>, <테넷> 등은 뭔가 좀 거슬렸다. 그런 사람으로서 <인셉션> 은 발상에서 그 발상을 영화로 표현한 방법까지, 진정 최고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과연 팽이는 멈춘 걸까.

https://fivecard.joins.com/823 

 

인셉션, 9가지 궁금증에 대한 심층해설

안 보면 왕따된다는 영화 '인셉션'. 본 사람도 또 보고 아이맥스로 봐야 진짜배기라고들 소문이 자자한 인셉션. 요즘 단연 장안의 화제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두가지네 어쩌네, 레오나르도 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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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ivecard.joins.com/820

 

인셉션, 누가 난해하다 했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에 대해 수없이 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들 속에는 흔히 공통된 단어나 어구가 등장합니다. '난해' '관객의 혼동' '지적인 블록버스터' '매트릭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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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을린 사랑 (대니 빌뇌브, 2010)

뭐하는 감독의 무슨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이런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보는 동안 설마...했던 것이 설마...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나는 충격의 순간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 세계, 어느 문명을 누리고 있어도 결국은 모두 비슷한 인간이라는 사실로 순식간에 회귀하곤 한다. <듄>이나 <컨택트>도, <시카리오>도 훌륭했지만 여전히 내게 빌뇌브의 최고작은 <그을린 사랑>이다. 

https://fivecard.joins.com/947 

 

그을린 사랑, 당신의 심장을 직격하는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러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극장이 거의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지명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각계의 호평이 쏟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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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왜 여전히 살아있을까

고전극의 세계에 집착하는 영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셰익스피어 극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죠. 특히 '햄릿'은 수십차례나 세계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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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그 많은 앨런의 영화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직도 물론 <애니 홀>을 꼽지 않을 수 없고, 10개를 꼽는대도 7,8개는 20세기의 영화들일 것 같은데, 그래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매혹적인 상상은 늘 다시 들쳐보고 싶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고 싶은가. 무엇이 나에게 진짜 산다는 느낌을 줄 것인가. 스스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앨런의 위대한 헌사.

 

17.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시네마 천국>의 토르나토레를 사랑했고, 그 뒤로도 그는 생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놀라운 작품들을 잇달아 만들어냈다. <스타메이커>, <언노운 우먼>을 지나 <베스트 오퍼>와 <피아니스트의 전설>중 어느 것을 꼽을까 고심하다가 선정한 것이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는데, 어느 분의 지적으로 확인해 보니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98년작. (아뿔싸)

가슴을 쓸어내리며 <베스트 오퍼>로 정정한다. 영화 <베스트 오퍼>는 '자만심'에 대한 경이로운 우화. 세상을 우습게 보는 남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그 외로움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적으로 토르나토레와 파라디를 21세기 초반,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부르고 싶다. (사실 토르나토레의 작품 중에 엔니오 모리코네에 헌정하는 다큐멘터리 <엔니오(2021)>를 뽑을까도 잠시 고민. 이렇게 눈물이 펑펑 흘렀던 영화도 드물었던 것 같다.)

 


1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뭔가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고레에다(꼭 좋은 뜻만은 아님). 아무래도 그냥 마구잡이로 혼자 분류할 때, '가족과 아이들'에 천착했던 고레에다 1기의 정점에 있는 영화는 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키웠는데 내 아이가 아니라니...에서 오는 직관적인 느낌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잊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19.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스가르 파라디, 2013)

고구마 서사를 싫어하기 때문에 <어떤 영웅>은 좀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파라디에 대한 기대가 여전한 것은 <씨민과 나데르의 이혼>과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워낙 좋았기 때문. 두 작품 중 어느 것을 고르는가는 그야말로 미세한 취향 차이일 수 있는데(두 편 다 고르자니 25편은 너무 적었다), 전자는 누가 봐도 '확실한 이야기'가 있었던 반면, 후자는 '무슨 이야기인지 분명치 않은' 이야기인데도 그걸로 한 편의 영화에서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위대한 스토리텔러 파라디의 재능을 더 잘 발휘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리스트에 넣었다.


20. 킹스맨 (매튜 본, 2014)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역을 맡은 007 시리즈가 흥행 기록을 돌파할 때 한켠에서 분노로 몸을 떨던 사람들이 있었다. '저게 어떻게 제임스 본드냐!' 매튜 본의 <킹스맨>이 사랑받은 이유 중에는, 그렇게 '진정한 본드'를 빼앗긴 사람들이 이쪽으로 집결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지. 비록 그 기세가 2편 3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킹스맨>의 발랄한 엔딩만큼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을 때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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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왕년의 007 팬들을 위한 최상의 선물

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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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이 영화, 네번째 매드맥스 시리즈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감독의 나이를 보고 전율했다. 70세 노장의 감각이 이렇게 힙할 수가 있다니. 34세때인 1979년 <매드맥스>를 내놨던 조지 밀러는 결국 그 세계관을 갈고 닦아 30여년 뒤에도 통할 수 있게 부활시키는 놀라운 저력을 과시했다. 그 시절 칙칙한 불법 복제 비디오로 <매드맥스>와 <매드맥스2>를 보던 사람들 중 누가 2015년에도 젊은이들이 빨간 내복에 열광할 줄 알았을까. 밀러는 아직도 6번째 매드맥스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가시기 전에 10편을 채워주시길. 


22.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마틴 맥도나의 영화라고는 <킬러들의 도시> 하나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영화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작은 도시에 세워진 세 개의 간판. 그리고 법 집행을 믿을 수 없는 엄마의 폭주. 정의와 질서라는, 인류가 문명을 건설한 이후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는 두 가지 요소가 제대로 충돌하도록 폭탄을 던지는 영화. 결국 영화란 우리의 인생에 뚝 떨어진 예기치 못한 사건과 거기에 대한 캐릭터들의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관점에서, 그 정의에 가장 충실한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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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미칠 영향은?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영화가 끝나 갈 무렵, 이 영화, '쓰리 빌보드' 의 악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꽤 적지 않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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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정말로 우연히, 부산영화제 참관차 갔다가 사전정보 0인 상태로 보게 된 영화. 그런데 여운이 일주일은 갔다. 어린이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 중 이보다 강렬한 작품이 있었을까. 대체 무엇을 해 줘야 할지 모르는,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한 철없는 엄마와 그나마 철이 좀 든 어린이의 기막힌 드라마. 물론 베이커에게 아카데미 작품/감독/극본상을 안겨준 작품은 <아노라>였지만, 가장 오래 기억될 영화는 역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아닐지. 

 

 


24.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신카이 마코토의 소위 '재난 3부작' 중 많은 사람들이 <너의 이름은>을 최고로 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베스트를 꼽자면 <날씨의 아이>. 끝없이 비가 내리는 도쿄의 어느 여름.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가 있다. 그런데 이 홍수는 우연이 아니고, 세계의 지형을 바꿀 노아의 대홍수였고, 그런 결과를 막는 것도 결국 그 소녀에게 달린 일이었다. 여기서 신카이는 묻는다. 자, 이 소녀 하나를 희생시켜서 그 비를 막을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전체주의 국가' 일본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다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동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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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일본인도 달라졌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나날. 비슷한 또래의 한 믿을만한 분이 극찬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포스터 속 파란 하늘이 끌려서 를 선택했다. 어쩌면 며칠 전 한강을 건너다 본,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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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대체 이게 뭐지. 호러 뮤지컬? <리틀 샵 오브 호러>나 <이발사 토드>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리메이크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였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고는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뚝심이 어마어마했다. 마이클  B 조던의 1인 2역 열연도, 영화 전편에 넘쳐 흐르는 순혈 블루스의 힘도 강력한 작품. 이 모든 것을 조율해 낸 라이언 쿠글러의 다음 작품이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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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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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고 추리다 영 아쉬워서 두편은 깍두기로 추가한다.


와일드 테일즈 (다미안 시프론, 2014)

인간의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6편의 단편 모음 영화. 아르헨티나, 그 중에서도 부에노스 아일레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야기 하나 하나의 밀도가 24시간 우려낸 설렁탕 이상이다. 천재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압권.


스틸 라이프/삼협호인 (가장가, 2006)

사람들은 왜 모이고, 무엇 때문에 흩어지는가. 왜 제목은 스틸 라이프일까. 지아 장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인물 하나 하나는 왠지 거대한 산수화 속에 박혀 있는 동그라미 머리 하나 하나처럼 느껴지곤 한다. 장강은 유유자적 흘러가고, 청산도 그대로 그 모습인데, 거기 잠시 머물다 가는 인간들의 사연이 제아무리 기구하다 하나, 어차피 곧 흘러갈 일들 아니겠는가. 이런 느낌 때문에 쉽게 '사회성 강한 영화'로 단정할 수 없게 하는 대작. 

 

이렇게 2001-2025까지 25편을 꼽아 봤다. (다 뽑은 지금도 역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뽑았어야 하나 생각중이다.)

여러분의 25편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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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가 21세기의 첫 쿼터를 맞이해 영화 100편을 꼽았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다. 나같으면 절대 꼽지 않았을 영화들이 대량으로 끼어 있다. 그냥 '21세기의 첫 100대 예술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리스트였다. 예술영화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직접 꼽아 봤다. 2025년이다 보니 그냥 숫자를 맞춰 25편을 뽑았다. 꼽아 놓고 보니 개중엔 좀 뭔가 있어 보이는 영화도 있고, 심각한 사람들이 보면 피식 웃을 영화들도 있는 것 같다. 그냥 취향의 기억을 위해 정리해 본다. 모든 작품의 기준은 논리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욕하실 분은 취향을 욕하시길.

생각해보니 인생 참 짧다. 과연 20세기의 두번째 쿼터에서 내가 이런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까. 약간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20세기의 마지막 쿼터에 대한 25편의 영화도 한번 골라볼까 싶다. 그래도 리스트 두개는 남겨 봐야지.

21세기가 2000년에 시작하는지, 2001년에 시작하는지는 좀 애매한 것 같은데, 그래도 꽂아넣고 싶은 영화가 2000년 작품이라 여기에 넣었다. 그럼 시작한다. 순서는 연도순. 

화양연화 (왕가위, 2000)을 꼽으려고 했는데 2000년은 21세기가 아니란다. ㅠㅠ

그래서 다시.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킬빌 1,2 (퀜틴 타란티노, 2003)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쿵푸허슬 (주성치, 2004)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렛미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타짜 (최동훈, 2008)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쉬가르 파라디, 2013)
킹스맨 (매튜 본, 2014)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줄이고 줄이다 영 아쉬워서 두편은 깍두기로 추가한다.


와일드 테일즈 (다미안 시프론, 2014)
스틸 라이프/삼협호인 (가장가, 2006)

이상 긴 리스트 끝. 

제목만 열거하고 끝내려니 뭐라도 한마디씩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순서는 연도순. 순위 아님.

화양연화 (왕가위, 2000)

정말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지금 최고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알 수 있을까. 먼 훗날, 지나고 난 뒤 석상의 귀에 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면, 인생은 너무나 슬픈 것이 아닐까. '유려하다'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슬로모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만옥의 치파오,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몇몇 사람들과 반대로 과도하다 싶은 1인 샷들. 내용을 떠나 '가장 아름다운 영화'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어쩔수 없이 <화양연화>는 제외.

1.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바즈 루어만이 그동안의 영화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쏟아부은, 그의 영화 세계 종합편. 인도 영화인들은 '인도 사람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발리우드 영화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것은 마치 '한국인이 제작하지 않은 K-POP'을 연상시킨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모든 장면들이 현란하고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은 탱고와 어우러진 '록산' 신. 데이비드 셔젤이 <바빌론>으로 해보려 했던 것들을 이 영화는 모두 뛰어넘고 있다.


2.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피터 잭슨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시기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듯. 물론 그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스스로 이야기 속에 폭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그려낸 성과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명배우들이 열연했지만, 이 영화 시리즈에서 딱 한 장면만 뽑으라면 2편에 나오는 '로한의 봉화' 장면. 지금도 빅 스크린에서 이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쳤던 순간이 생생하다.


3.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신이 있다면 이런 도시를 세상에 남겨두어도 좋은 것일까. <시티 오브 갓>을 보면서,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 가치, 보람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 뒷날, 그가 <두 교황> 같은 영화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강렬하고 또 강렬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오고 20여년, 세상은 점점 더 '신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4.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우리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슬픔과 상실과 분노를 자아내는 힘을 악이라고 부른다. 악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우리는 그것을 기를 쓰고 단죄하려 하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부이며, 우리는 잠시 그것을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런 인간들의 이야기 중 <살인의 추억>은 단연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5.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대부>가 만들어 진 이후, 범죄집단과 그 가족을 그린 영화로 <대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은 없다. <무간도2>는 1편에서 만들어진 인물의 구도(경찰에 잠입한 마피아와 마피아 속에 잠입한 경찰) 위에 <대부>의 가족 플롯을 덮어 씌운 탁월한 작품. 1편도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2편은 그 구도에 그리스 비극의 장중한 운명을 얹은 걸작이다. 물론 그 뒤에는 3편이라는 어이없는 작품이 있어 이 영화를 트릴로지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역대 어떤 홍콩의 갱스터 무비보다 뛰어난 작품.


6. 킬빌 1,2 (퀜틴 타란티노, 2003)

자신이 보고 자란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타란티노의 핏빛 광시곡. 장난기조차도 엄숙하게 연출하는 이 작품을 과연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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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빌, 쿵푸의 스타 데이비드 캐러딘을 조상하다

영원한 '쿵푸'의 스타 데이비드 캐러딘이 73세로 운명했습니다. 1936년생. 4일 방콕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군요. 70대에 자살이라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로 왕년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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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올드보이 (박찬욱, 2003)

박찬욱은 항상 죄와 벌을 말한다. 그런데 그 벌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신이?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아니면 그냥 인간이 인간의 판단으로? 어떻게 결정하든, 그 벌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궁금한 것. 과연 오대수의 뒤편에서 흔들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8. 쿵푸허슬 (주성치, 2004)

주성치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영화 좀 본다는 사람 중에 '주성치 영화를 보는 사람'을 비웃지 않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이후에는 이 콧대높은 소위 영화 마니아들은 여래신장 맞은 두꺼비 꼴이 되었다. 순도 높은 주성치 스타일의 루저 주인공에서 깨알같은 전통 무협 장르 패러디까지 완벽한 선물같은 영화. 


9.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모든 영화는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별다른 원칙 없이 '그저 열심히' 하던 사람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오는 순간. 동독 비밀경찰의 숨가뿐 기밀 업무 속에서, 하나의 '인간'이 눈을 뜨고,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폰 도너스마르크는 왜 좀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시고 꼭 <작가미상>을 보실 것.

 

10. 렛미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뱀파이어는 주인이 초대하지 않으면 그 집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기에 한국에서도 호랑이는 창귀의 부름에 대답하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었으니, 이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피를 빨아야 살 수 있는 괴물도 청순하고 여릴 수 있다는 뜻밖의 경험. 순백의 눈 위에 그려진 순수의 그림. 아름다운 영화.

11. 타짜 (최동훈, 2008)

허영만의 원작은 걸작이 분명했는데, 최동훈이 아니었다면 그 숨결을 이렇게 살려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소재는 도박이지만 분명 이것은 의리와 불의, 성장과 복수의 무협 극화. 검결을 외던 검객들이 그저 화툿장을 손에 쥐었을 뿐. 불행히도 속편들은 <타짜>의 맥을 제대로 잇지는 못했다. 이제 곧 20주년이 되면 시리즈 리부팅은 어떨지.

https://fivecard.joins.com/156

 

'타짜', 왜 자꾸 '친구'가 어른거릴까

화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드라마 '타짜'의 배경이 부산일까, 왜 이 드라마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올까. 그리고 왜 고니의 패거리는 네 명이고, 원작에 없는 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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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야쿠자의 아들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부모를 잃고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제자가 되어,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요코야마 류세이)와 함께 자라고, 함께 수련한다. 이들은 한지로를 계승해, 가부키의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로 성장한다.

두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지로는 기쿠오의 재능이 아들 슌스케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을 깨닫고, 기쿠오는 그 재능을 한껏 펼치고 싶은 야심을 품고, 슌스케는 아버지의 선택과 친구의 재능 앞에 좌절한다. ...그렇게 50년이 흐른다.

이상일 감독의 <국보>. 화려하고 재미있다. 전혀 난해하지 않고, 선명하다.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얼른들 극장에서 보시길. 극중 가부키 장면의 화려함이 압도적이고, 묘하게 닮은 두 주인공의 열연에 절로 빠져든다. 정리 끝. 



1. 영화에도 등장하듯 일본에는 '인간 국보'라는 개념이 있다. 공식 용어로는 '중요 무형문화재 보지자', 대략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온다. 아마 한국의 인간문화재 제도는 이 제도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가부키든, 교겐이든, 전통춤이든 어떤 한 분야의 인간 국보가 되면 그 분야에서는 절대적인 해석 권력이 되며,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제목이 <국보>인 것은, 바로 이 제도를 전제로 한 것이다.



2. <국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혈통'과 '재능'이다. 가부키는 가문이 지배하는 사회고, 그 가문의 이름이 곧 배우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대를 건너가면서도 4대 5대 6대로 이어져 다른 인물이지만 선대 같은 인물을 그대로 계승한다. 계승의 근거는 혈통이고, 스타 가문의 후계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스타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대가 끊어지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통이 아닌 사람은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명문가 출신의 후계자는 주인공을 맡고, 조연 가문의 후계자는 조연을 맡는다. 가부키 명문가의 자손들은 사회적으로도 귀족 대우가 기본이고, 가부키 외의 연예계 활동, 이를테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때도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사실 재능이냐 혈통이냐를 따지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엘리트 교육을 받기때문에 실력으로 꼬투리를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인 마츠 다카코가 유명 가부키 패밀리의 딸이고, 신인일 때부터 "(가문의 힘 덕분에)마츠 다카코는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뜰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3.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러 가기 전, 내가 가부키에 대해 아는 게 고작 이런 지엽적인 것들 뿐이라는 깨닫고 뭔가 예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넷플릭스를 뒤져 보니 <이쿠타 토마의 도전>이라는 게 있다. 유명 배우 이쿠타 토마가 글자 그대로 친구의 꾐(?)에 빠져 가부키 연기에 도전하는 내용의 소프트 다큐다. 

일드 많이 보신 분이면 눈에 익었을 배우 오노에 마츠야(2대)가 바로 그 친구인데, 이 배우가 가부키 가문의 후계자라는 것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들이 하는 가부키는 정통 가부키라기보단 대중화를 지향하는 신 가부키라 로보트도 나오고, 개그도 나온다. (신 가부키라는 것은 말하자면 창작 가부키를 가리키는데, 고전 가부키 중에는 한국의 판소리 다섯마당처럼 18편이 오래 전부터 전통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서 '노래방 18번'이 나왔다.)

 

아무튼 <이쿠마 토마의 도전>을 보면 가부키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수 있고, 그렇게 해서 이들이 공연하는 가부키 <아카도 스즈노스케>가 전편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 <국보> 관람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

<아카도 스즈노스케>에서 온나가타 역을 맡은 나카무라 간교쿠는 오종종한 체구의 미인형(?)으로, <국보>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비련의 여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한국식 로코 주인공 같은 발랄한 온나가타의 전형을 보여준다. 온나가타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4.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했듯 예술 세계에서의 재능과 노력의 대립이라면 <아마데우스>가 있고, 극중 세계와 바깥 세계, 여기에 여성 역할의 남자 연기자를 등장시켜 성 정체성의 문제를 덧붙인 걸작으로는 <패왕별희>가 있다. 그렇다면 <국보>는 여기에 어떤 이야기를 보태야 할까. 

이상일 감독은 온나가타, 남자들만의 세계인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두 남자의 50년에 걸친 우정과 경쟁을 철저하게 '남자의 눈'으로 그렸다. 실제로 온나가타라는 역할의 역사를 남색(!)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울테지만, 감독은 그렇게 뻔한 길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두 주인공은 극중에서 여자 역을 하고 여성성을 표현하는 데 몰두할 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넘치는 확고한 남성성이다.

물론, 그들 각각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은 당연히 발현되는데, 끝까지 이 두 주인공은 서로를 '동성의 친구'로서 인식한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 다음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됩니다. 영화를 보고 오실 분은 여기서 정지.]

 

5. 여성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현실과 무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불량배들의 폭력에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은 여장남성과 관련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클리셰라 하겠는데(<헤드윅>이나 <프리실라>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보>에도 이런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서 잠깐 '만약 감독이 이 장면을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구성했다면 <국보>는 어떤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이 영화의 성격을 결정한다. 사실 <국보>는 그 방향으로 흘러가기에는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 영화다. 

<국보>의 여성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역할은 하루에라는 역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하루에는 처음에는 기쿠오에게 인생을 바친 헌신과 후원을 약속하고, 나중에는 슌스케의 아내가 되어 후계자를 낳아 주는 역할이다. 그러나 하루에게 왜 이렇게 변신을 하고, 그 변신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는지는 영화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국보>에서 이상일 감독의 연출 방식은 '...이 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얘기는 다 할 시간이 없어요' 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하루에의 존재는 스토리의 구멍일까.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상일 감독은 하루에를 '가부키 세계' 혹은 '예술 세계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모든 예술은 탁월한 재능을 사랑하지만, 결국은 예술계도 하나의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는 처음에는 기쿠오를 추앙하지만 결국은 슌스케에게 봉사한다. 이런 논리를 하루에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

사실 약간 억지인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인물이다. 감독이 하루에라는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었다면, 최소한 슌스케의 아내가 된 뒤에 기쿠오에게 뭐라도 이해를 구하는 행동이 있어야 하겠지만, <국보>의 하루에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기능적인 캐릭터로 그냥 활용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6. 이 영화에는 묘하게 등장인물들이 분장실 거울을 통해 다른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거울 속에 있는 나(남성)는 나인가, 아니면 극중 인물인 여성인가, 아니면 극중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존재하는 내 안의 여성인가. <국보> 속의 '여성'이란 이런 존재다. 이 가상의 여성이 강조되기 위해, 실제 여성 캐릭터들은 소품이나 별 치이 없게 다뤄지는 셈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영화 <국보>는 철저하게 남자들의 이야기와 남자들의 세계라는 가부키 월드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생각. 물론 더 나아가면 일본이라는 사회의.... (뭐 이건 그냥 넘어가자)



7.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호연. 키쿠오와 슌스케의 소년 시절 역할을 한 두 배우, 성인 연기를 한 두 배우 모두 감동적인 열연을 펼친다. 1년 넘게 가부키를 수련해야 했다는데, 화면을 보면 그 성과가 놀랍다(혹시 가부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영 미흡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 관객으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가부키 무대의 연출 또한 대단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키쿠오와 슌스케의 관게를 LGBT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당연히 없지 않겠으나, 누차 말했듯 이 영화는 남성성의 강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끌릴 수도 있겠으나, 그 끌림은 근대 이후 설정된 우정(그리스 시대의 우정이 아니다)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선이 비슷한 두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은 결국 또 하나의 거울, 즉 내가 너를 보듯 너는 나를 보면서, 나의 이런 인생을 너만은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8. 엔딩. 이상일 감독은 죽 이어진 스타일대로, 구체적인 해석이나 설명 없이 영화를 맺는다. 과연 기쿠오는 무엇을 얻었나. 인간 국보가 된 것이 그가 평생 추구한 것의 성취인가. 평범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을 포기하고 도달한 것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가. 답은 어디에도 없다.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득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끝을 맺은 이문열의 <금시조>가 떠오른다. 

9. 아무래도 가부키라는 장르를 지금껏 한번도 접근하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받아 온 항일교육, 즉 왜색을 멀리하고 일본 문화의 요소를 긍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강력한 정신 교육의 의 지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국보>가 호평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런 구세대의 잔재에서 어느 정도 대한민국이 자유로워졌다는 뜻. 혹은 케이팝과 케이컬처라는 이름의 문화적 자부심이 '가부키 정도는 뭐라도 괜찮아'라는 안심을 준 것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런 요소들 외에도 가부키라는 장르에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것은 그 '형식 과잉'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하지만 영화 <국보>는 그런 형식 과잉의 예술에 대한 거부감을 어느 정도 씻어주고 있다. 뭣보다 이 정도의 치열함이 있다면, 그게 뭐든 그 결과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음번 일본 방문 때에는 한 막이라도 가부키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만화 <가부쿠몬>부터 구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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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쓴 글은 맞지만 딱히 리뷰라고 하기는 애매한 글입니다. 극장판 <무한성편>은 일단 비주얼 면에서는 황홀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성의 렌더링이 감동을 자아내고, 격투신의 박진감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물론, 그러나, 본인이 애니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귀멸의 칼날>은 만화책 대신 애니로 거의 다 봤으면서...), 특히나 무한성편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너무나 말이 많습니다. 장광설도 이런 장광설이 없습니다. 싸우는 시간보다 떠드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그게 제게는 심하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같은 이런 의견보다는, 비주얼 당연히 멋지고, 내용도 가슴저리게 감동적이었다는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무튼 쓴 글은, 무한성편을 보다가 든 궁금증입니다. 대체 왜 어른들은 어디 가고, 아이들만 혈귀와 싸우고 있는거지?

시작.

무한성에 앞서 <귀멸의 칼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심히 보고 있다(미친돗이 열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뜻. 대단한 팬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 보다 보니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왜 귀멸대의 검사들은 이렇게 다 어릴까. 인류의 미래가 걸린 혈귀와의 전쟁을, 어른들은 왜 방관하고 있을까. 무한성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나이 많은 주 교메이가 27세. 탄지로는 16세. 나머지 주요 등장인물들은 10대 중반-20대 초반. 최연소 주인 토키토는 13세... 너무 어리다.



가장 먼저 나올 답은 '<귀멸의 칼날>의 타겟이 10대라서'인데 이건 너무 당연한 애기고, 그럼 이것을 설정이 어떻게 합리화하는가가 궁금했다. 

첫번째 이유는 귀살대와 주가 얼마나 극한직업인가에서 기인한다. 즉 귀살대에서 혈귀들과 싸우며 20 중반을 넘긴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 전에 대부분 싸우다 죽기 때문이다. 27세면 놀라운 나이. 귀살대가 되어 싸우면서 그 나이를 넘겨 심지어 늙어 죽을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혈귀와의 전쟁이 중요한 일이라면, 혈귀가 이렇게 날뛰는데 왜 조정은 적극적으로 토벌하지 않고, 혈귀와의 투쟁은 일개 가문의 일로 한정되어 있을까. 혈귀의 수장 무잔이 여러 경로를 이용해 조정까지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잔이 조정을 움직여 귀살대를 토벌해버리는게 더 손쉬울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간 비약이 있겠지만, 가능한 답은.... 이 <귀멸의 칼날>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혈귀를 배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혈귀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존재이므로, 당연히 희생자는 계속 나오지만, 혈귀의 덕을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이 '혈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 

그런 것이 바로 어른의 세계다. (다만 혈귀의 혜택이 뭔지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냥 넘어가자.)



귀살대는 그런 세계 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키려 싸우지만, 성인이 된 귀살대가 거의 없는 것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전투에서 사망한다기보다는 살아남더라도 혈귀가 되거나, 혈귀의 존재를 인정해버리는(혹은 혈귀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혈귀의 상현 중에는 귀살대 출신이 몇명 있고, 그중 아카자는 끝까지 물의 주 키유에게 '혈귀가 되라'고 권유하고 무잔도 탄지로를 혈귀로 만들려 한다. 사실 상현까지 성공한 것이 두명일 뿐, 귀살대에서 넘어간 인원은 실제론 훨씬 더 많은게 아닐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귀멸의 칼날>은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너무나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라고 모두 불의에 맞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닌데,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들은 어느새 이들을 가로막는 존재(즉 혈귀)가 되어 있거나, 혈귀와 함께 살아가기를 택한다. 예를 들어 빵 공장에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지만, 죽을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이건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다, 라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이런 것이 혈귀 식의 논리다.

혈귀가 수십만 수백만이 아니니, 혈귀로 인한 희생자는 80억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일 뿐. 그 정도를 희생시키고,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내 삶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혈귀와 싸우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잔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주인공 탄지로를 비롯한 귀살대 대부분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는 것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들은 이미 정상적인 '어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혈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정말 끔찍한 작품이 아닐수 없다. 비록 무잔을 해치우는걸로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 무잔은 사라져도 다른 무잔이 어느새 만들어져 그 자리를 차지할테고. 아무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석은 관객의 권리)

제일 불쌍한 토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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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다. 이상.

 

1. 블루스라는 단어가 나에게 의미를 준 시점을 기억한다. 1993년 여름,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애매한 시기에 갑자기 기회가 생겨 난생처음으로 미국 유람을 가게 되었다. 첫 도착지는 시카고. 당시 노스웨스턴대 유학중이던 친구 집에 기숙하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시카고에 왔으면 가봐야 한다고 끌고 간 곳이 블루스 바였다.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 중학교때 이후로 본적이 없는 나무 책걸상 같은 테이블과 의자. 파고다극장만도 못한 무대. 그런데 온 손님 중에는 뭔가 상류사회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있어 좀 의외였다.  

라이브 시간이 되자 지독하게 깡마른 흑인 노인 한 사람이 담배를 물고 무대로 걸어나와 아주 천천히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저러다 쓰러지는거 아닌가 싶었다. 이마 가득한 주름 사이에는 담배도 끼울수 있을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불붙은 담배를 마이크 옆에 끼운 노인은 별 연습도 없이 바로 기타줄을 뚱겼다. 



그런데 그 첫 음, 지이이잉 하는 기타 소리를 듣는 순간, 아 이건 대체 뭐지! 하는 느낌이 머리를 띵 때렸다. 그때까지 태어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곧이어 노인은 30년 동안 하루 5갑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절대 낼수 없을듯한 가래 끓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당연히 가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한방에 알수 있었다. '삶에 대한 배신감', 바로 그거였다. 

젊어선 나도 한때 우쭐했고, 세상이 우습게 보였고, 연애도 많이 했어.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면 알겠지? 인생이 그래. 기대? 기대하지 마. 도전? 그러다 내 꼴 나. 사랑? 야, 이게 정말 웃긴 건데 말이지, 내가 왕년에, 그런데 다 끝났어. 돌이킬수 없어. 뭐가 이래. 에이 씨발. 생각할수록 이건... 

표정, 목소리, 기타 소리, 완벽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흡수할수 있었다. 가사 따위 아무 필요 없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날 그가 불렀던 노래 가사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해라면 완벽한 오해였을 것이다. 뒤이어 드러머도 나오고, 사람들은 일어서서 춤을 췄다. 금세 쓰러질것 같던 노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맥주 한병으로 버텨서 세번의 라이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가 아주 잘난척하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게 블루스라는거야." 

그 뒤로 집에 돌아와서 블루스에 심취해 자칭 국내 최고의 블루스 마니아가 되었냐....는 건 절대 아니었다. 블루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BB King이며 Buddy Guy며 들어 봤지만, 음반으로 듣는 블루스에선 그날의 처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날의 쨍한 충격은 추억의 더깨가 얹혀지며 더 대단했던 것으로 포장됐을테니, 그 체험의 재현은 불가능했다.

운이 좋아서 나중에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를 가 볼 기회도 있었으나, 지독하게 상업화된 라이브 바들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를 보고, 그날 밤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2. 영화 <씨너스>는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다. 거대한 미시시피강의 하구 삼각주를 가리키는 '델타' 지역이야말로 블루스의 고향이다. 

사실 이 클락스데일과 멤피스를 연결하는 선이 바로 블루스가 태어난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도로의 이름이 바로 61번 고속도로고, 밥 딜런의 앨범 제목인 <Highway 61 revisited>에 나오는 그 61번 도로다. 일명 <블루스 하이웨이>. 이 도로로 나가기 전, 클락스데일 시내에는 일명 <블루스 크로스로드>라는 사거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에 가 보면 'Home of the Blues'라는 대문짝만한 아치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 홈은 블루스를 세상에 알린 홈이고, 진짜 고향은 클락스데일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니까 블루스는 클락스데일에서 태어났고, 멤피스에서 성인이 되었고, 시카고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바로 영화 <씨너스>의 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을 저렇게 단 거다.)

델타 블루스의 완성자, 현대 블루스의 조상으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은 이 사거리에서 악마를 만났고, 악마에게 기타를 배워 불세출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전설적인 존재다. 그 뒤로 이 사거리에 서 있으면 악마를 만날 수 있고,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생겼고, 랄프 마치오 주연 영화 <크로스로드(1986)>는 이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 <크로스로드(1986)>. 당대의 하이틴 스타였던 랄프 마치오가 스티브 바이와 기타 배틀을 펼치는 클라이막스가 압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의 록 마니아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기타 배틀 신에서 악 소리를 냈다. 당대의 천재 속주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가 '악마에게 혼을 판 기타리스트'로 나오기 때문에.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재미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안 보신 분들은 한번씩 보시기를 권한다. 

왼쪽이 랄프 마치오(30여년 전 한때 <베스트 키드>, 혹은 <가라테 키드>라는 영화로 세계적인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오른 적이 있다), 오른쪽이 스티브 바이.

로버트 존슨

어쨌든 '전설'에 따르면 1911년생인 로버트 존슨이 어디선가 기타를 배워 클락스데일 무대에 신화처럼 등장한 것이 1932년, 그의 나이 21세때다. 그렇게 당대 최고로 인정받고 급사한 것이 1938년. 27세에 사망했으니 블루스의 신으로 군림한 기간은 대략 7,8년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 <씨너스>의 배경도 1932년 클락스데일이라는 것. 이쯤 되면 영화 <크로스로드>와 <씨너스>는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3. 영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 

1932년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 시카고의 알 카포네 조직 휘하에서 목돈을 모은 1차대전 참전 용사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이 쌍둥이 형제 양쪽을 1인2역으로 연기한다)이 돌아와 블루스 클럽을 연다. 백인 농장주 소유인 제재소 건물을 사서 블루스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이들 형제는 어리지만 발군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사촌 새미(마일스 케이톤), 관록있는 피아노-하모니카 연주자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 내장과 운영을 맡을 야오(보 초우) 부부 등 죽마고우와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렇게 해서 오픈한 클럽은 대성황을 맞고, 클럽 무대에 데뷔한 새미는 뛰어난 실력으로 갈채를 받고, 공식적으로는 금주법 시대지만 다들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취해서 춤을 추는 흑인들만의 신명나는 잔치가 진행된다. 하지만 저 멀리 어둠속에서, 흡혈귀 무리들이 서서히 클럽을 노리고 다가온다. 그리고, 해가 뜰 때까지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오버랩된다.)

많은 출처에서 이 영화를 '이색적인 호러'라고 소개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혈투가 나오니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참 생뚱맞은 홍보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나온다고 우리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호러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뱀파이어 군단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백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물리면 흑인도 황인도 뱀파이어가 되기는 하지만, 뱀파이어 무리는 절대 다수가 백인이다. 영화 속 흑인들이 블루스 기반의 음악으로 흥을 올리는 반면, 뱀파이어들은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며 덩실덩실 포크댄스 같은 춤을 춘다. 이게 대체 뭘까. 조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구도다. 

많은 흑인들은 백인들이 흑인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았다고 말한다. 일단 자유를 빼앗고, 노동력을 착취했고, 나중에는 그들의 영혼(이걸 soul이라고 하면 중의법이 된다)까지도 빼앗았다. 수많은 백인 뮤지션들이 흑인 음악의 정수를 가져가 자신들의 음악에 녹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영향을 받거나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시키는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겠지만, 아예 훔쳐 쓰는 경우도 흔했다. 

흑인 음악이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아니,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까지, 그러니까 흑인이 듣는 음악과 백인이 듣는 음악이 따로 있던 시절에 흑인들의 멜로디를 그냥 가쳐 가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예를 들면 척 베리 같은 유명 뮤지션도 히트곡 <Sweet Little 16> 같은 히트곡을 그냥 도용당하기도 했다(이 곡이 바로 비치 보이스의 대표 히트곡 <Surfin USA>다). 이 곡은 발매 당시 그냥 브라이언 윌슨 작곡으로 표기됐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 아예 항변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척 베리는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Surfin USA>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https://youtu.be/ZLV4NGpoy_E?feature=shared

아무튼 이 영화의 분위기로 볼 때 백인 뱀파이어들은 '자유, 노동력에 이어 흑인들의 영혼까지' 빨아 먹는 존재들이라는 은유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왜 아일랜드 민요를? 이건.... 굳이 끼워맞추려면 아일랜드 출신들이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 이민들 가운데서도 주로 하층 노동계급으로 천대받는 계층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인종주의든 뭐든, 계급간의 갈등은 실제 접점이 가장 넓은 지점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흑인들과 가장 접점이 많은 것도 백인들 중 최하위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던 아일랜드계(혹은 폴란드 등 동구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흑인들에게 직접적인 박해자로 나섰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략 그런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설정은 그렇다 치고, 도입부에서 영화는 어딘가 인디영화스러움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전반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카메라는 자주 초점을 빗나가고, 조명은 지나치게 어둡다. 특히 실내 장면에서 인물들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 21세기의 첨단 문명 시대에 기술이나 제작비가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이런 설정들은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1932년'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전기도 제한적이고, 특히 실내 조명은 엉망이었을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이클 B 조던과 라이언 쿠글러.

4. 호러 영화라고 누가 주장하든 말든, 사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음악+역사극이다. 음악 신동 출신인 마일스 케이톤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직접 연주와 노래를 실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블루스라는 장르가 목화 따고 돼지 비계에 닭 튀겨 먹던, 비록 노예 신분은 벗어났지만 생활 수준은 그리 나아진 것도 없었던 델타 지역 흑인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는 것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된 노동과 낮은 보상, 딱히 꿈도 희망도 없는 삶 속에서 이들은 직설적인 가사와 음률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을 터. 이런 정서가 역사책 100권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플롯 면에서는 누가 봐도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지만,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한과 그 한풀이가 담긴 영화.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멕시코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는 미국 마약상들이 구 아즈텍의 성소를 함부로 모욕했다가 아즈텍 지박령들에게 혼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정서적으로는 꽤 근접해 있다. 다만 <씨너스>에선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느끼기 힘든, 짙은 페이소스가 풍겨 나온다는 정도. 

씨너스는 결국 결말에서, '불멸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뱀파이어 영화의 클리셰 같은 이 질문에 대한 쿠글러의 답은 "이미 (블루스 뮤지션으로서) 나는 불멸의 존재다"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블루스고, 블루스가 나인데, 이 육신의 불멸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탄탄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무튼 <씨너스>근 3,4년 간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마음이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사실 록키 시리즈를 다시 우려 먹고 있는 <크리드>도, 마블의 <블랙 팬서>도 개인적으로는 별 감흥 없는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라이언 쿠글러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내려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으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어차피 좀 있으면 OTT에 올라오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직도 극장에서 보는게 압도적으로 더 좋은 영화들이 있다. 정말이다. 믿어라. 

P.S. 과연 내년 오스카에서 <씨너스>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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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를 넘어 고혹적인 맏딸, 미야자와 리에. 둘쨋딸, 미인이지만 확 끌리지는 않는 둘째딸, 오노 마치코. 별 인기도 없고 남자와 인연도 별로 없는 셋째딸, 아오이 유우(이건 좀 캐스팅에 문제가...?), 그리고 젊음과 발랄함이 주제인 막내 히로세 스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수라처럼>을 본 사람은 누구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떠올린다. 같은 감독이 만든 자매들 이야기. 그때 밖에서 들여온 막내였던 히로세 스즈가 이번에도 막내지만 업둥이 아닌 정규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쨌든 믿고 보는 고레에다. 명불허전. 드라마는 아름답고 섬세하다. 안 보신분들 얼른들 보시고,

2. 그 네 딸들이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바람을 의심하고, 자매간에도 툭탁거리고, 그러면서도 가족의 테두리를 꿋꿋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 매우 흥미롭다. 템포도 적당히 빠르고, 중간 중간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같은 것 없이 툭툭 넘어가는 시간 흐름도 좋다. 그런데 제목이 <아수라처럼>이라니. 한국식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에겐 아수라장이라면 이보다 10배는 더 극악스러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인데.

 

그럼 한국에서라면 어떤 제목이 적절했을까. 아사리판? 문득 아사리판의 어원이 아수라장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3. 게이샤 지망생인 마이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다가 약간 쓴 맛을 봤지만, 고레에다는 글로벌 시청자를 상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로컬리티를 강조해야 한다는 신념을 아직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본 프로듀서들의 공통된 입장인 듯. 고레에다가 에이스인 팀 재팬은 지금까지 게이샤, 스모, 닌자처럼 오래 전부터 서구인들이 사랑해온 소재들로 넷플릭스를 노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에서 <쇼군>의 성공을 봤으니 이런 신념은 다 굳어졌을 것 같다.

 

똑같이 목표는 세계인에게 먹히는 콘텐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지만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쪽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한국 팀과는 상반된 접근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잘 만들면 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파이팅.

4. 그런데 자매 이야기를 해서 성공하려면 딸이 넷이어야 하는 법칙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작은 아씨들>도 그렇고, 지난해 인상적으로 읽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그렇다. 특히 같은 일본 작품이다 보니 <세설><아수라처럼>은 은근히 구조적인 공통점이 눈길을 끈다.

 

네 자매지만 맏딸보다 둘째딸이 동생들을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든지, 그러다 보니 둘째딸의 남편이 처형이나 처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족의 일원처럼 행동한다든지, 셋째는 남녀관계에 소극적이고 넷째는 오히려 지나치게 개방적이라 대조를 이루면서 가족들의 걱정을 산다든지...사실 이런 것들보다 더 표면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일본 전통 복장의 네 자매가 전면에 나선 포스터 같은 것들이다.

(세설이 뭔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물론 벚꽃철에 교토에 간 적은 없었다. 단지 상상했을 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세상을 화려하게 뒤덮다 강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을 노래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사라지는 벚꽃

fivecard.joins.com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오히려 똑같잖아!’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튼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세설>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비교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5. 사실은 <세설>과의 공통점을 너무 강조할 수도 없는 것이, <아수라처럼> 자체가 일본에서는 워낙 유명한 브랜드였더라고. 1979년에 이미 원작 드라마가 나와 히트했고, 2003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고레에다의 2025년 드라마 출연진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올스타 캐스팅으로 보이지만, 2003년작 영화에는 오타케 시노부, 구로키 히토미, 후카츠 에리, 후카다 교코가 네 자매 역으로 출연. 굳이 점수를 매겨 보자면 이쪽이 더 대단한 캐스팅으로 보인다. 

영화는 어땠는지도 궁금하네.

 

 

6. 사실 아무도 관심 없을 디테일 하나. 1980년대 초가 배경이고, 넷째딸의 남편이 권투선수이다 보니 구시켄 요코가 잠시 언급된다. 사실 나도 구시켄 요코를 직접 보거나 아는 세대는 아니지만, 장정구와 유명우를 언급할 때마다 따라다니던 이름이라 저 두 영웅을 아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한국의 장정구와 유명우가 세계 라이트플라이급을 호령하기 얼마 전, 일본의 구시켄 요코는 세계 타이틀을 무려 13차례 방어하며 일본의 복싱 영웅으로 군림했다. 물론 이 기록은 장정구가 15차 방어에 성공하며 깨진다.

 

이런 걸 보면 문득 한국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대략 1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걸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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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첫 완주 드라마는 <재칼의 날>. Peacock 오리지널인데 한국에서는 웨이브를 통해 공개됐다. 

The Day of the Jackal. 한때 세계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했던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소설이 나온 것이 1971년, 첫 영화가 나온 것이 1973년. 원작을 한 줄로 요약하면 '특정 정치 단체가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세계 최고의 프로페셔널 킬러를 고용하고, 어찌 어찌 해서 이 정보에 접하게 된 유럽 각국의 수사기관이 총력을 기울여 음모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다.

1962년 실제로 있었던 음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드골이 저격수에 의해 암살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진정한 걸작 스릴러. 특히 오늘날의 시선으로 본다면 핸드폰도 위성 감시도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재칼 한 마리를 지목하고 포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재칼(암살자의 암호다)이 한 수를 두면, 수사관들도 한 수를 둔다.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쪽 모두 최선을 다 한다.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생각하듯, 멀리 건물에 진을 치고 총 한방 쏘면 되는 저격은 없다. 포사이스의 작품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 하나 죽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디테일이 어마어마하다. 

총 한자루도 그냥 총이어선 안되고, 총알도 그냥 총알이어선 안된다. 뭣보다 총이 총의 형상을 갖고 있다면 아예 그 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해야 하고, 접근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자살 테러라면 죽이는데까지만 생각해도 되겠지만, 돈을 받는 프로 킬러는 살아남아서 그 돈을 써야 한다. 당연히 현장에서 어떻게 도망칠지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뭐 비슷한 상황이 쫓는 쪽에서도 펼쳐진다. 

1973년작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영화 <재칼의 날> 역시 스릴러의 역사에서 걸작으로 꼽기에 아쉬움이 없는 작품이다. 뭣보다 소설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다큐멘터리 같은 건조한 연출이 빛난다. 재칼 역을 맡은 에드워드 폭스의 무표정한 연기도 일품.  (그러나 두번째 영화화라고 일컬어지는, 브루스 윌리스, 리처드 기어 주연의 <재칼>이 있는데, 솔직히 이 영화는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아깝다. 거론하지 않는다.)

세번째 작품인 드라마 <재칼의 날>은 배경을 현대로 바꾸고, 저 원작의 한줄 요약 내용을 '드골 대통령'에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한방에 바꿔 놓을 IT계의 거물'로 바꿔 놓고 시작한다. 인터넷도, CT 검색대도, 프로파일러도 있는 시대다. 

이 '현대성'의 적용은 일단 성공적이다. 원작과 워낙 시대 차이가 크다 보니 그냥 가져다 쓸 에피소드는 거의 없는 셈인데, 거의 1:1 대응처럼 원작의 흐름을 현대에 적용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대 시청자들에게도 '이렇게 과학이 발달해도, 방어하는 쪽도 첨단 기술을 쓰다 보니 그걸 뚫고 들어가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드라마가 '킬러'라는 존재에 대한 포사이스의 시각을 상당히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사이스의 건조한 문체를 따라가 본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재칼의 날>에서 포사이스는 킬러를 일종의 자연재해, 질병, 혹은 사람들을 호환의 제물로 만드는 사나운 동물처럼 묘사한다. 이 존재에게는 인간의 윤리나 정의가 적용될 수 없다.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도 없다. 그냥 대자연의 일부인데 인간에게는 때로 해로울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요약하면, 재앙은 인간의 논리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며,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식이다. 

특히 그런 부분에서, 재칼이라기 보다는 한마리 표범 같은 에디 레드메인의 캐스팅은 탁월했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킬러는 사실 판타지지만, 레드메인이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순간 설득력이 발생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훌륭한 각색이지만 레드메인의 연기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장점들이 있고, 그것만 잘 살렸더라도 <재칼의 날>은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문제는 가족. 2024년 판 <재칼의 날> 제작진은 아마도 자신들의 버전만에 있는 요소를 추가하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건조한 킬러 이야기만으로 에피소드 10개의 드라마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킬러에게도 아내와 처가 식구들을 주었고, 추적의 핵심인 MI6 수사관에게도 가족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상상력의 빈곤이 시작된다. 수사관의 가족은 너무나 뻔한, 클리셰의 덩어리다. 너무 바빠서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엄마, 알고보니 사람도 죽이는 아내... 여자 특공대원이나 경찰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백번쯤 본 상황이 이어진다. 

킬러의 가족 쪽은 더 심한데, 일단 어떻게 해도 추적할 수 없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킬러가 고정된 거주지와 맨얼굴을 본 가족, 동네사람을 수십명 만들어 놓는다는 것부터 너무나 말이 안 되지만, '아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서 어쩔수 없었다'는 것을 강요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상당 부분의 개연성을 포기했다. 아예 코미디를 하자는 거라면 그렇다고 이해를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킬러를 인간이 아닌 재앙처럼 그리는 것이 포사이스의 놀라운 장점인데, 가족을 붙여 놓은 장면에서는 이 장점이 사라져버린다. 안타깝다.

포사이스의 원작은 물론이고 진네만의 영화도 가장 놀라운 점은, 보는 이에게 "...저럴 때 왜 저 방법을 쓰지 않아?" 라고 할만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최선의 수들로 연결되어 있고, 만약에 등장인물이 언뜻 보이는 최선의 방책을 선택하지 않을 때에는 거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다. 드라마 <재칼의 날>은 이 부분에서 70% 정도는 성공하지만 30% 정도는 그냥 포기해버리는데, 포기해 버리는 부분 중 거의 모두에는 이 '가족'이 연결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일단 따르기로 한 원작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현대에 맞춰 잘 구현해 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볼만한 드라마가 됐다. 시즌2가 확정이라는데, 부디 제작진이 시즌2에서는 킬러를 가지고 홈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이상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두줄 요약: 냉혹하고 건조한 킬러의 하드보일드 걸작이 될 수 있었으나 부적절한 가족 코미디의 시도에 다소간 희생당한 억울한 작품. 그래도 재미있다. 

P.S. 이 드라마는 유럽 각국 사람들에 대한 클리셰가 꽤 등장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영국인 중심이라는 게 웃음의 포인트다. 이 작품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감정의 통제를 하지 못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독일인은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속마음은 여전히 인종주의자들이고, 스페인인은 프랑스인보다 더 감정 통제를 못 하고 특히 사랑에 눈이 머는데 스스로는 스마트하다고 착각하고, 헝가리인들은 야만적이고 무지한데 탐욕스럽다. 유럽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진정한 돈에 환장한 것들이고, 자만심 때문에 스스로를 해친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우리' 영국인들이 이들을 이끌어 주지 않으면 큰일날 것들이다,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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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를 꽤 기다렸다. 2023년 연말,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와 정말 할리우드는 다이내믹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미국 개봉도 4월로 늦어지고(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선과 정치적 상황이 편집 과정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12월31일에야 개봉이 이뤄졌다. 

미국은 대략 160년 전에 내전(civil war)을 겪은 나라다. 여러가지 이유로 연방을 박차고 나간 남부 연합을 상대로 대통령은 탈퇴 불가를 선언했고, 결국 전쟁이 터졌고, 연방의 승리로 미국은 다시 한 나라가 되었다. 나라를 지켜낸 대통령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워싱턴엔 미국의 신전같은 기념관이 세워졌다. 

 

영화 <시빌 워> 속 미국은 좀 다르다. 적극적으로 분열을 부추기고 독재에 나선 대통령에 맞서 나라가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고,  그중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힘을 합친(사실 영화 속이니 가능한 조합이다) 서부군이 워싱턴을 위협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시작 부분. 뉴욕에 머물던 베테랑 저널리스트 리(커스틴 던스트)는 서부군의 우세 속에 워싱턴에 고립된 대통령을 인터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전쟁의 끝을 보기 전, 벙커에 숨은 독재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할지가 가장 세상이 궁금해 하는 뉴스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가능만 하다면야 누군들 1945년 8월의 히틀러를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시 베테랑인 동료 조엘과 둘이만 갈 계획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은퇴를 앞둔 노장 새미, 그리고 종군기자를 꿈꾸는 스무살 안팎의 제시가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리와 제시

보고 난 느낌: 저널리스트를 앞세운 것은 탁월한 판단. 미국의 내전을 '미국인 종군기자'의 눈으로 지켜보게 한다는 시선이 좋았다. 내전을 누가 일으켰는가, 내전의 대의명분은 어느 쪽에 있는가, 누가 어떻게 전쟁 후의 세계를 건설하는가는 영화 밖에 있다. 전쟁이 일어난 뒤 벌어질 일들과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랙스 갈랜드는 냉철하고 차분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2025년이 방금 시작했지만 올해 연말에 꼭 넣고 말 수작. 강추한다. 

(아울러 마지막 30분 정도에 걸쳐 벌어지는 시가전 장면은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 속 교전 장면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훌륭하다. 실제 전쟁 속에 들어가 아드레날린에 중독되는 제시의 마음 속을 이해할 수 있는 명장면이 이어진다. 대강 엑스트라들에게 자동화기만 쥐어 주면 저절로 총격 액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몇몇 영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 영화가 시작될 때, 전쟁중인 미국은 어떤 형국인가?

미국 개봉때 만들어진 자료 중 하나가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대략 4개 정도의 큰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서부군(Western Forces)과 충성파(Loyalist States)사이의 전쟁이다. 충성파는 현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미 합중국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것이고, 서부군은 대통령의 독주와 헌정파괴에 대한 항의로 독립을 선언한 세력을 말한다. 

 

2. 서부군의 주력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로 되어 있는데 이건 무슨 얘긴가. 

영화 막판에 공개되는 서부군의 깃발. 미국 국기에서 50개의 별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두개의 별이 있다. 두 별은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의미하고, 이 깃발에 13개의 붉고 흰 줄이 있는 것은 이 깃발을 지지하는 자들이야말로 미국 독립 당시 13주의 정신, 즉 미국의 헌법과 수정헌법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두 주의 깃발에 모두 별이 하나씩 들어 있기는 하다. 

사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하나로 힘을 합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확실한 민주당 지지 주고 텍사스는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의 중심 거점이기 때문이다(특히 이민 문제에 있어, 멕시코 접경인 텍사스가 가장 강경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 두 주가 힘을 합쳐 괴물 같은 독재자 대통령에게 대항한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특정 정파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감독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물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3. 그럼 영화 시작 시점의 뉴욕은 어느 파벌의 소속인가?

지역적으로 동부 끝인 뉴욕은 당연히 충성파 지역이어야 하겠지만 영화 속 설정은 뉴욕의 특수성(UN 본부가 있는 국제 도시)을 감안한 중립 지역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수시로 정전되고 길에서 물 배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화 속에서 기자들이 머무는 호텔과 로비(기자 클럽?)는 교전지역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에서 베이루트나 사이공의 외신기자들이 머무는 호텔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느낌을 주려는 것이 연출 의도였을 것이다. 여기서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속으로는 특종 경쟁을 하는 기자 집단의 아지트 같은. 

4. 뉴욕에서 워싱턴을 가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영화 속에서 '고속도로는 파괴되고, 교전지역을 피해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뉴욕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거리는 233마일(약 375km) 정도라 대략 네 시간이면 차로 주파 가능한 거리지만, 영화 속 이동 거리는 857마일, 약 1379km 정도다. 워싱턴을 포위하고 있는 최전선을 우회해 펜실베이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거쳐 둘러둘러 갔다는 얘기. 

서부군의 사령부가 설치되어 있다는 샬러츠빌 Charlottesville 이 워싱턴 DC 전의 최종 목적지로 되어 있는데(새미와 제시를 내려놓겠다고 리가 마음먹었던 곳), 이 샬러츠빌도 워싱턴 DC 보다 훨씬 남서쪽 아래에 있다. 

 

 

[스포일러 경고.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일단 보시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사람 따라 취향도 각각이라, 일단 난 다 알아도 상관없어 하는 분도 있는데, 아무튼 나라면 나머지는 영화 보고 와서 읽어볼 듯.]

 

5. 그래서 어느 쪽이 좋은 쪽인가 

영화 속에서 어느 편이 어떤 이념으로 누구를 죽이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두고 있지는 않다. 영화 속 리와 노엘의 집단도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과,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을 상대로 싸우는 민병대 같은 복장의 집단과 주로 소통한다. 그나마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양쪽 집단 모두 저널리스트 혹은 프레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세력이건 자신들의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와 명분 쌓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일 듯. 아울러 '후세에 물려줄 자신들의 모습'을 저널리스트들이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결론은 누가 정의인지는 제작진이 구분할 의사가 없다는 쪽. 저널리스트들과 소통하는 민병대 세력이 유색인을 다소 포함하고 있고, 백악관 진입 세력을 흑인 여지휘관이 이끌고 있지만 대통령 경호실을 대표해 나온 경호원도 흑인이다. 

6. 인종차별이 영화 속 이슈인가?

노엘의 아시아인 동료들을 사살하는 백인 병사(아이러니컬하게도 커스틴 던스트의 진짜 남편인 제시 플레먼스)를 보면 인종주의는 이 전쟁의 이슈 중 하나지만, 드러난 이슈는 아닐 것 같다. 만약 이게 그렇게 부각되는 이슈였다면, 아무리 목숨 걸고 막 나가는 두 동양인 저널리스트들이라 해도, 교전지역으로 그렇게 대책없이 들어가지는 않지 않았을까. 

(혹은 그런 명시적인 경고도 무시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병사가 말하는 '리얼 아메리카'는 최소한 아시아계 이민을 '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인종주의가 전쟁의 원인이었다기 보다는, 영화 앞부분에서 린치가 자행되는 시골 주유소의 모습처럼, 헌법이 무시되고 질서와 공권력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개개인의 편견과 본성, 총 든 자가 정의라는 원시적 폭력성이 무한대로 제약 없이 노출될 수 있다는 삽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 대통령의 죽음과 조엘의 질문이 뜻하는 것은.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관용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 내란의 주범이며, 더 이상의 발언권을 보장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조엘은 저널리스트로서, 이 역사의 현장에서 전쟁의 한 주역인 대통령에게 마지막 코멘트를 요청한다. (사실 이들의 목적이 바로 전쟁의 막판에 몰린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진영을 이끌던 수장 치고는 참으로 비겁한 한마디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나 죽이지 말라고 해줘. Don't let them kill me." 그동안 온갖 수사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권력자가, 끝까지 측근들을 앞세워 목숨을 구걸하고 결국 이렇게 비루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다니.... 라는 갈랜드 감독의 조소가 담겨 있다. 

 

8. 리는 왜 그렇게 최후를 맞나.

몇 차례의 사건을 거치며 제시는 변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인 만큼, 아드레날린 분비로 겁도 없어진다. 리가 보기에는 '그 일'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 반면, 이런 과정을 모두 겪었을 리는 새미의 죽음을 겪은 뒤 모든 것에 염증을 느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워싱턴 진입 후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 희생은 '제발 너도 나처럼 되지 마. 무감각하게 스릴에 중독되어 판단 없이 뛰어들지마' 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리가 쓰러진 뒤에도 제시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총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들어간다. 리의 메시지는 전해진 것일까, 아닐까. 그건 한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저널리즘이란 뭘까. 저널리스트란 뭘까. 전쟁터에서 누구의 편도 아닌 채, 총든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인가. 네 편도 내 편도 아니라는 것이 이제 의미가 있는 시대인가. 쓰러진 리의 모습이 던지는 질문들. 

(사실 쓰러진 리는 방탄조끼같은 것을 입고 있었고, 어쩌면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다. 이 또한 분명치는 않다.)

9.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대체 뭘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이 꼴 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민의 나라'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현실, 다양성에 대한 거부, 대놓고 지지세력에게 폭력을 선동하는 대통령, 과연 이런 불확실성이 문명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설정에 대한 해설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깊다고 본다. 적의 수괴를 사살하고 만세를 부르는 서부군 병사들. 과연 이 사건 이후의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10년 뒤, 30년 뒤에 그 장면을 찍은 제시의 사진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폭군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승리의 상징으로 남을 지, 아니면 이유야 어쨌든 야만의 도래와 문명의 후퇴를 알리는 신호로 여겨질지. 

워싱턴에 진입한 서부군이 첫 시가전을 벌이는 장소가 하필 링컨 기념관이다. 링컨 기념관 기둥 뒤에 숨어 저항하는 수비대나, 거기에 화력을 퍼붓는 서부군이나. 링컨,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렇게..."

 

 

 P.S. '내전'은 좀 민감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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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많이 봤고, 물론 드라마라는 장르 특징상 1,2회 보다가 때려 친 것도 많고, 일단 완주한 것 위주로 꼽아 봤습니다. 영화나 마찬가지로 순서는 무의미. 맨 위에 있다고 1등이라는 뜻 아닙니다. 

물론, 제목에도 있지만 기준은 개취입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작품이 꽤 많았네요. 

졸업

대치동. 학원에서 장학금까지 줘 가며 성공 사례로 잘 키운 우수한 학생이 어느날 대기업을 때려치고 대치동 일타강사가 꿈이라며 돌아온다. 대체 왜? 제일 반대한 건 그 학생을 키워 오늘날 일타강사가 되어 있는 여선생. 그리고 그 둘은... 뭐 그 뒤는 안 봐도 알 것 같겠지만, 이 시대의 드라마 장인 중 하나인 안판석은 어찌 보면 뻔한 연하남-연상녀의 러브 스토리 속에 학교, 청소년, 수업, 장래, 꿈, 교육, 이 시대의 가장 무겁다 싶은 키워드들이 생생하게 뛰어놀게 했다. 지금이라도 찾아 보시길. 려원의 재발견도 놀랍다. (tvN - 티빙)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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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동재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고?' 하실 분이 적지 않을 듯.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모르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동재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하긴 사람에 따라서는 <비밀의 숲>조차도 들어본 적 없는 마이너 드라마 취급을 받으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좋거나 나쁜 동재>는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은 성정의 주인공이 끝까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실상 최초의 드라마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미드에 비교하자면 한국판 <Better Call Saul>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지금 바라는 건 동재2건 비숲3이건, 이 유니버스가 계속 이어지는 것 뿐. (티빙 오리지날)

 

지배종 

역시 이런 드라마는 처음 들어 보시는 분이 많을 듯. 디즈니 플러스가 반성해야 할 이유 중 하나. 미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국의 신기술기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고, 그 회사의 존재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이수연 작가의 본격 SF로는 두번째 시도라 할 수 있겠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던 <그리드>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매끄러워졌다. 한효주-주지훈의 호흡도 제대로다. 그런데, 이수연 월드에서 이 정도의 주인공 커플은 사실상 처음 아닌가? (디즈니)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고 한효주 주지훈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작품이 한방에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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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올해 가장 할 얘기가 많았던 드라마. 임진왜란 2년 뒤인 서기 1600년, 일본의 미래를 건 다이묘들간의 최종전이 펼쳐진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휘하에는 영국 항해사 출신의 사무라이가 있었다는 것 까진 실제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고, 이걸 제임스 클라벨이라는 아시아 덕후 작가가 소설로 쓰고(일본의 역사적 인물들은 모두 이름을 고쳤다), 그걸 미국 제작자들이 1980년에 만들어 히트하고, 2024년에 다시 만들어 또 히트시켰다. 디즈니 플러스 사상 최고 히트작이라나. 

백인들이 쓴 얘기다 보니 영국인 주인공의 눈으로 센고쿠시대의 끝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1980년과 2024년은 비교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지만 내용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은 거의 차이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워낙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당대에 할 수 없었던 화려한 미술과 특수효과가 놀라운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아무래도 1980년판의 배우들보다 못한 느낌이. 물론 개취. (디즈니)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디즈니 플러스의 10부작 .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작품도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배경은 서기 1600년의 일본. 타이코(태합) 나카야마는 1598년 사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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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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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태양은 가득히>에서 <리플리>까지, 이미 두 차례의 굵직한 영화로 친숙해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이번엔 흑백 드라마로 만들었다. 왜 하필 흑백인가, 왜 하필 이번 주인공은 왜 이렇게 늙고 못생겼나 싶기도 하지만 단 한회만 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사기에는 별 소질 없는 리플리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서사. 1950 혹은 6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도 일품. 2024년의 드라마로 단 한편을 찍으라면 여기에 투표할 것 같다. (넷플릭스)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처음 공개됐을 무렵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를 보다가 에 눈길이 갔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를 써서 두번이나 영화화된 작품. 그걸 심지어 드라마로? 결과 다 아는 얘기로 8부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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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여왕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란 종목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만큼 뭔가 제대로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이 드라마는 1980년대 초, 일세를 풍미했던 악역 전문 레슬러에 초점을 맞춘다. <극악여왕>을 먼저 보고 <정년이>를 보게 되니 어찌나 그 정서가 비슷한지. '그리 팬시하지 않았던 과거의 유행을 오늘날의 시선에 맞춰 팬시하게 바꿔놓은 무대'라는게 2024년의 트렌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나 공들여 찍은 액션 신이 일품인 반면, 그렇게 공들여 찍은 장면을 차마 편집할 수 없어 너무 길어진 액션신이 단점이기도 한 묘한 드라마다. 그렇지만 강추. 개인적으론 오랜만에 보게 된 카라타 에리카도 반갑기 그지없네.  (넷플릭스)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 있었다. TV에서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을 중계방송하던 시절, 오프닝으로 여자 경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선 여자 경기가 오프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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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2

1편을 추천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히려 2편에서 이야기가 더 진화했다. 워싱턴의 정치 구도 속에서, 직업 외교관이면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을 제치고 주영 미국 대사가 된 주인공.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이라는 '영원한 같은 편'이면서 '어딘가 그래도 낯선' 나라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물론 드라마인 만큼 이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실제라고 오해해선 안되겠지만, 충분히 몰입할 만한 전문성이 담긴 대본과, 그걸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존경이 앞선다.  특히 주인공 케리 러셀의 캐릭터 창조가 압권이고, 루퍼스 시웰을 비롯한 영국 배우들이 탄탄하다.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

미국 서부의 전설 와이어트 어프는 유명한 'OK목장의 결투' 사건으로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총잡이가 되는데,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결투로 악을 물리친 보안관은 오히려 공권력으로 시민을 압박한 악당으로 몰리고, 그 정서의 배경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지역감정이 있고, 대륙을 철도로 관통하려는 자본가들의 동기가 있다. 

거의 정석적인 선과 악 대결 스토리로만 알려졌던 이야기에서 이런 중층적인 분석이 나오다니.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오가는 형식이 너무나 적절했던 걸작.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OK목장'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의 목장이 실제로 미국 아리조나주 툼스톤에 있었고, 와이어트 어프라는 유명한 보안관이 전설을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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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영국 MI5에는 007만 있는게 아니다. 거기서 일 못하는 걸로 찍힌 요원들은 시내 슬럼가의 허술한 사무실에서, 도저히 '본사'가 처리할 수 없는 허드렛일들을 수행하게 된다(설마 실제로 이런 건 아니겠지). 그 부서로 가 있는 루저들을 '본사'에서는 슬로 호시스, 즉 느린 말이라고 부른다. 

그 느린 말들의 보스가 게리 올드먼. 물론 이게 드라마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그 느린 말들이 수트를 빼입은 본사 요원들이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결해 낸다. 왜? 리더가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느린 말들이 정말로 무능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개성이 강하다 보니 본사의 딱딱한 관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거였기 때문에. 긴 말이 필요 없다. 문제는 한번 발을 들이면 시즌5까지 도저히 발을 뺄수 없다는 것. 역시 만두는 중국에서, 소프라노는 발트해 연안에서, 그리고 스파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찾아야 제대로다. (애플티비)

가족계획

지난해의 <소년시대>에 이어 쿠팡도 연말에 한칼을 보여줬다. 김곡/김선 콤비의 새 작품.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두 10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인데 - 사실 진짜 가족인지도 좀 의심스럽지만 - 각 개인의 개인기가 어지간한 나라 하나는 말아먹을만큼 무시무시하다. 당연히 조용히 살고 싶은 가족인데, 하필 정착한 지역에도 만만찮은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다. 정의구현 같은 걸 하고 싶은게 아닌데 강제로 정의구현을 하게 되는 이야기야말로 이 시대의 정서.

작품 특성상 잔혹한 장면이 적잖게 등장하지만, 그만치 웃긴다. 올해 가장 시원한 드라마. 탄산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쿠팡)

 

그리고 그밖에 꼭 언급해야 할 드라마들

중간에 흐름이 좀 요상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 <정년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 안 끝나 뭐라 할 수 없지만 <옥씨부인전>도 그 줄에 충분히 들어설만 한 작품. 

넷플릭스 드라마로는 위에 든 세 편 외에는 사실 취향인 작품이 없었고, <삼체>가 볼만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추천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시즌2는 없을테니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으시는게 좋을지도. 

넷플릭스가 양으로 민다면 애플티비는 질로 앞선다는 세평이 있는데, 물론 개인적인 취향으로 애플티비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많다는 게 약점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테드 라소 3>(이 얘기를 이제 하는 걸 보면 애플티비를 한동안 외면했다는 걸 눈치채실듯)는 역시 걸작이었고, 원제가 <Shrink> 인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가 딱 취향이었다. 물론 케이트 블랜칫의 <디스클레이머>도 딱 취향은 아니었지만 볼만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2025년쯤에나 한번 다시 살려 볼 생각)

 

그리고 드라마 아닌 시리즈들도 한번 언급하자면,

더 커뮤니티

이런 소재로 이런 신선한 리얼리티 쇼를 만들 수 있다니. 이 쇼를 아직 모르는 사람은, 여기서 길게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주 시민의 자격이 없다. 벤자민 화이팅. 

곽튜브의 기사식당

왜 그렇게 여행 프로그램이 많은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적을까. 역시 이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진정성'을 설명해주는 교과서. 

흑백요리사

설명이 필요 없는 2024년의 빅 콘텐트. 물론 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외식업계나 고급 레스토랑업계가 살아날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좀 과했지만,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던 프로그램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수만개의 품평이 올라오고 있는 . 굳이 말을 보태기보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김.[주: 지난 9월28일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늦었지만 옮겨 봅니다. 당시의 느낌을 보관하기 위해. 사실 드라마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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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해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려 고민하시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1년 동안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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