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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
 
보는 동안은 잘 봤다. 너무 자주 반복되는 추격 장면이 좀 지루했고 너무 말이 안 되는 줄거리가 몰입을 방해했지만, 일단 주제가 'Raiders' March' 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쿵쾅 반가웠다. 마지막의 ‘대체 안 아픈데가 어디야’(1편의 대사다)에서 뭉클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고 나오는데 조금씩 슬퍼지기 시작했다.
 
<옐로우스톤>의 스핀오프 중 하나로 현재 방송중인 미국 드라마 <1923>의 주인공은 해리슨 포드다. 족보상으로 <옐로우스톤>의 주인공인 케빈 코스트너의 종증조부 쯤 된다. 타협을 모르는 늙은 카우보이.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지만 이미 말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카우보이의 시대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굴의 투지로도 극복할 수 없는 그의 나이가 보는 이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하지만 <인디애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에 나오는 해리슨 포드는 극중 70세(존스 박사는 1899년생이었던 것이다)인데 내용을 봐선 대체 왜 70세인지 알 수 없다. 처음 세 편의 시리즈에서 존스 박사는 각각 37세, 36세, 38세였다.
 
70세를 맞은 1969년, 존스 박사의 펀치력, 주력, 근력, 지구력은 30대 후반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전히 몸으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한다. 성배로 물을 마신 덕분인가. 2043년쯤 나올 <범죄도시 23>의 마동석을 미리 보는 것 같다. 영화 배경이 1940년 정도였다면 딱 어울릴 시나리오다.
 
아무튼 그 덕분에 ‘젊은 영웅’역할을 했어야 할 헬레나(피비 월러-브리지)는 방해꾼에 애물, 코믹 전담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소란스럽고 장황하다. 그냥 <플리백>을 보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제작사들은 만에 하나 늙은 챔피언이 은퇴하더라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젊은 챔피언이 그의 영광을 물려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 것 같다. 다행히 그 소원은 실현될 모양이다.
 
요즘 들어 자꾸 ‘위대한 왕국이 퇴색하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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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할수밖에 없다는 낙관, 식량과 자원의 부족은 기술의 발달이 모두 해결해 줄 거란 낙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통제 불가능한 정보의 확산은 진정한 인류애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란 낙관...
마블의 혼란과 DC의 제자리걸음을 보면서, 과연 이 세가지 낙관이 모두 무너진 세계에서 슈퍼히어로 영화가 살아남을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오갤3>와 <플래시>를 본 뒤 이 느낌은 더욱 굳어졌다.
누가 이런 망가진 세상에서 한가하게 슈퍼히어로 집단 따위가(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정의로운 초강대국 미국이')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해 줄 거라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낙관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2. 그런 시대에,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정말 끔찍한 제목. 이하 MI7)>의 현실 파악은 진정 탁월했다. 기후위기와 식량 및 자원의 부족으로 인류 전체의 생존이 회의적인 분위기, 전 지구적인 이기주의의 확산으로 전쟁 발발의 위협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정보의 흐름을 지배할 수 있는 '엔티티'라는 고도로 진화된 AI가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대체 어떤 정부가, 어떤 기관이 이 엔티티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세계의 경찰'이며 '가장 정의로운 국가'인 미국이 그 엔티티를 떠맡으려 했을 것이지만 이미 그런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누구도 70억 인구 전체가 다 같이 손잡고 밝은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 과연 우리의 영웅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3. 배경은 소름끼치게 현실적이지만, 물론, 본질적으로, MI7은 불로불사 톰 크루즈 아저씨의 동화다. 믿을 수 없는 선의로 가득찬 기사들과, 가면 하나로 다른 인간이 되는 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다. 그래도 어쨌든 '그냥 인간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다.
비록 그 주역들은 총알 한방이면 죽을 수 있는 약한 존재들이지만 불굴의 투지와 선을 향한 의지로 어떻게든 우리가 알던 세상이 유지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해서, 이 암울한 미래를 앞둔 인류가, 이제 구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4. 크리스토퍼 맥쿼리는 이런 세계를 설계하는데 최고의 장인임을 보여준다. 파트 원인데도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장악력. 탁월한 캐스팅과 적절한 교체. 고전과 미래를 넘나드는 미적 감각 모두 최고다.
개인적으로 MI 시리즈 중 최고이면서 코로나 이후 본 모든 영화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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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시선 -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 바우하우스 이야기>.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볼륨.

등장인물만 대충 꼽아 봐도 조너선 아이브, 디터 람스, 스티브 잡스,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요하네스 이텐,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말러,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슈테판 츠바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마 말러... 뭐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벨 에포크. 프로이센 왕국의 독일 통일에서 20세기 초까지. 그때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아이디어가 넘쳤던 이 시기는 '아무도 예측할수 없었던 전쟁',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이 끝난 뒤, 기존의 어떤 것도 믿을수 없게 된 시대에 가장 창의적이었던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학교를 만든다. 그 이름도 찬란한 바우하우스.
 
<창조적 시선>은 그 바우하우스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버티다 어떻게 달라져갔으며,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에 대한 책이다. 또한, 인류가 어떻게 해서 '창조성'이란 개념을 발명하게 되었는지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방대한 책의 내용을 더 이상 짧은 몇줄에 압축할 재간은 없다. 김정운 교수의 '10년 공부가 담겼다'는 윤광준 선생(이 책의 사진을 맡은)의 말씀이 결코 과언이 아니라는것 밖에는.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끝나는지가 궁금해 약 3주를 매달렸다.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대단원.
 
맨 위에 써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얽혀 어디로 흘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 단 각오는 단단히 하고 달려들어야 할 것. 어려워서 못 읽을 책은 절대 아니지만, 이야기의 망망대해 속에서 일엽편주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P.S. 문득 이 책과 매우 유사한, <판타레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책에 없는 것은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두 책은 빈의 제체시온 미술관에서 만난다. 비트겐슈타인 가문이 사재를 털어 마련했다는 미술관. 이 두 세계가 만나면 거기선 또 얼마나 더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질까. 한국에서도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 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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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가 있고 감독 류승완.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재미있는 여름 영화'의 간판으로 손색이 없다. 보고 나서도 만족. 
 
2. 2021년 촬영. 22년을 그냥 넘기면서 제작진이 했을 고민이 느껴진다. 코로나 이전의 관객과 이후의 관객은 어떻게 다를까.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할까. 그리고 그 선택은 강력한 다이어트로 나타났다.
 
2시간9분. 네 주연과 고민시 외의 다른 캐릭터들은 이 다이어트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던 것 같다. <밀수>는 한눈팔지 않고 그냥 달린다. 물론 좋은 선택. 오해도, 갈등도, 굳이 오래 끌지 않는다.
불필요한 우리편의 희생(개인적으로 21세기 한국 관객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도 없다. 따져 보면 꽤 심각한 스토리인데 빠른 해결로 바로 치고 나가니 발걸음이 가볍고, 관객도 편안해진다. 확 눈에 띄는 김혜수-염정아 여성 투탑의 서사를 빼고도 이 시대에 잘 맞춰진 영화다.
 

 
3. 아쉬움이 있다면 조연 라인이 좀 낭비됐다는 느낌. 특히 김재화 박준면 박경혜로 구성된 해녀팀은 촬영중에는 꽤 큰 비중이었을 듯 한데 완성된 영화론 거의 존재감이 없다. 반면 이런 점을 생각하면 고민시의 활약이 놀랍다. 후반부는 고민시가 끌고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물론 이 영화 최고의 수혜자로 조인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주연 넷 중에선 등장시간이 가장 짧은 캐릭터. 하지만 조인성이 과연 지금까지 이렇게 '여심에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한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훌륭한 변신을 보여준다. 조인성, 이제 느끼한 것도 된다!
 
5. 훌륭한 오락영화지만 아주 세심한 영화는 아니다. 이를테면 마지막 시퀀스에서 왜 닻줄이 끊어져도 배는 정지해 있나 같은 사소한 의문이 여러 곳에서 떠오른다. 이런 부분들이 디테일 마니아들에겐 다소 불편할수도 있겠으나 대세에 지장 없음. 편히 보시길.
 
6. <앵두>,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무인도>까지. 전곡을 다 따라 부를수 있는 OST(반갑다). 엔딩은 <그 얼굴에 햇살이> 정도도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P.S. 류승완 감독이 인터뷰에서 <영웅본색>을 언급했다던데, 그리 오래지 않아 오마주 지점이 나와 (코믹 장면은 아닌데)잠시 웃었다. 흰 바바리라도 입고 나오거나, 돈을 줄 때 바닥에 흩뿌려 줬더라면 더 선명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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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들어 가장 잘한 일: 개봉관 부족과 묘하게 엇갈리는 일정을 무시하고, 만사를 다 제치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극장에서 본 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집에서든 어디서든 봤더라면 분명히 후회했을 듯.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시네마 천국>의 감독이자 자신의 모든 영화 음악을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맡겼던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위대한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인류의 추억'을 다큐멘터리로 정제한 작품이다. 누가 언제 이런 영상을 기획한다 해도 최고의 적임자일 수밖에 없는 토르나토레가 감독을 맡아 극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너무나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일찍 본 사람들 중 눈물 나더라는 사람이 많아서 아저씨들이 왜 주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 나도 펑펑 통곡.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생전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미션>에서 그냥 목놓아 울어 버렸다.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2. 스포일러는 딱히 없지만 고만 읽고 빨리 영화를 보러가라. 열려 있는 관들은 꽉꽉 차는 것 같기는 한데, 워낙 상영관 수가 적어서 언제 닫힐지 알 수 없음.



3. 1987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내 기준으로는 분노의 한마당이었다.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미션>이 작품상/감독상은 <플래툰>에게, 음악상은 <라운드 미드나잇>의 허비 행콕에게 밀려 촬영상 하나 받고 끝나는 걸 보고, 알만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이 분노했다. 

뉴욕출신 진보 유태인이란 아카데미의 성골 올리버 스톤이 미국 고인물들이 죽고 못 사는 월남전이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플래툰>의 싹쓸이는 어쩌면 당연. 그래도 <미션>아닌 다른 작품에 음악상을 수상한 건 오스카의 흑역사로 남을만 하다. 이 찌질한 로컬 잔치에 이 무식한 미국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1987년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반미의 선봉에 섰다. 이해하기 바란다).

뒤늦게 아 우리가 미쳤었구나 깨달은 아카데미는 일단 공로상 드릴게요 한 뒤에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로 잘못했습니다 시전. 굳이 차별이라기보다는 그래미가 제프 벡 젊었을때 했던 짓처럼, 그냥 미국 꼰대들(아카데미상은 원래 그 시대의 꼰대들이 뽑아왔다) 20세기까지는 참 무지했다는 증거. 

아무튼 모리코네의 6회 노미네이션은 <천국의 나날>, <미션>, <언터처블>, <벅시>, <말레나>, 그리고 <헤이트풀8>. 당연히 다 좋은 음악들이지만, 모리코네의 팬이라면 <미션>을 제외하고 후보로 오른 작품들이 과연 모리코네의 베스트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션>의 수상 실패가 워낙 충격적이라 그렇지 6회 지명-1회 수상이 그렇게 불운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2회 지명-2회 수상의 한스 짐머나 무려 48회 지명(!!!)-5회 수상의 존 윌리엄스를 보면 수상/지명의 비율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법자 3부작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등이 후보로도 꼽히지 않은 것은 역시 '로컬'임을 자인하는 안목 부족 외의 다른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나중에 기회가 오면 아카데미 음악상의 지명-수상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난맥상을 파보는 것도 코믹할 것 같다. 정말 들여다보니 기가 막히다.)

초딩 동창인 세르지오 레오네(좌)와 엔니오 모리코네(우)


4. 1928년 로마에서 트럼펫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공부한 정통 클래식 신동 모리코네는 한동안 '클래식을 배신한 저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본인도 영화음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는 것. 

문득 생각난 일화: 한국의 성공한 드라마 작가가 고향에 갈 때마다 예전 학창시절 같이 신춘문예 준비하던 문학서클 선후배들을 불러 3차까지 밥사고 술을 산다는데, 그렇게 얻어먹고 얼근히 취한 선배가 꼭 하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 **이도 조금만 더 참고 노력했으면 참 훌륭한 문인이 됐을텐데..."

그러니까 열심히 문학의 길을 걷다 TV 드라마 작가가 된 건 문학에 대한 배신이란 얘긴데, 놀랍게도 현역 드라마 작가들 중 은근히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더라는. 그러니 모리코네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아무튼 <미션>도 아니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때에서야 모리코네의 스승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현대 음악의 거장들이 '아, 이 친구가 정말 좋은 음악을 하고 있구나' 하고 탄복해서 사과 편지를 보냈다니. 참 이 분들도 대단한 분들일세.

 

5. 실제로 모리코네는 누가 들어도 바로 귀에 쏙쏙 꽂히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누가 들어도 어색한 현대음악 작곡가였다. 영화에도 '내 안에 두 사람이 있다'고 했을 정도. 물론 만년에는 '그 둘이 하나로 마침내 합쳐졌다'고 말하는 순간도 온다. 

아무튼 남의 곡을 섞어 쓰지 않겠다는 이유로 프랑코 제페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 맡기를 거부했다는 모리코네. 유난히 '내 영화는 내 곡으로 채운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은 모리코네. <엔니오>를 보고 나서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그렇게 남의 곡 쓰기를 싫어했던 모리코네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6. 문득 든 생각. 1960-70년대의 이탈리아 영화는 얼마나 쿨하고 다양했는지. 데시카, 펠리니, 파졸리니, 그리고 지금은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군데 군데서 다니엘라 비앙키, 비르나 리지, 줄리아노 젬마, 로드 스타이거 같은 배우들과 마주치며 깜짝 놀라게 된다.

아주 저렴하고 우수 넘치는 형사물과 스파게티 웨스턴들이 쏟아지던(두 장르 모두 모리코네의 단골이다) 시대.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할리우드의 부름을 받지 못한 이탈리아의 미녀들(그 리스트의 맨 끝에 모니카 벨루치가 있다)이 넘쳐나는 영화들.

지금은 볼 길도 없는 그런 영화들이 엄청나게 그립다. 그런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사람들이 극장에서 그런 영화들을 보던 시절이, 겪어보지도 못한 그런 시절이 참 그립다. 

아마도 이탈리아 영화계의 적자인 토르나토레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왕년에 이런 영화들이 있었다는 걸 소개할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토르나토레가 요약한 이탈리아 영화사, 아름다웠다.

 

7.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모리코네의 멜로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테마. 가끔 모리코네의 음악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영화를 좋다고 생각할 것인가 의심하게 될 때가 있다. 

모리코네의 음악 세계를 꿰뚫는 주제가 있다면 - 물론 500여편의 영화 음악을 맡았던 모리코네인 만큼 분명히 그 500편을 꿰뚫는 단일한 주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는 영화와 아는 음악의 한도 안에서 볼 때 - 그 주제는 '회한'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어느새 사람을 과거로 데려가 그 시절 내가 이루지 못한 것, 내가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했더라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랬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에 이르게 만든다. 분명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인 어떤 감정. 그런 감정을 끌어올리게 하는데 - 심지어 겪어 본 적도 없는 과거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마법을 포함해 - 모리코네를 능가할 만한 장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8. 가장 많은 코멘트를 하는 사람은 한스 짐머고, 존 윌리엄스도 몇 장면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존 윌리엄스는 아마도 스필버그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이봐, <엔니오> 봤어? 나는 루카스보다는 당신이 하나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둘이 공동으로 감독해도 좋을 것 같고." 

한스 짐머는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까. 리들리 스콧? 혹시 마이클 베이? ㅎ

아무튼 RIP, 마에스트로. 

 

P.S.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세계를 이야기할 때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을 꼽지 않을 수 없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지만 한글 제목이 엉터리다. 이 3부작의 제목은 한국에 수입 개봉되었을 때 붙여진 제목대로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석양에 돌아오다>라야 한다. 어느 무허가 비디오 제작자가 3편에 2편의 제목을 마음대로 붙이면서 이상하게 굳어진 케이스다. 여기에 대해서는 일찌기 분개한 적이 있다.

놈놈놈과 석양의 무법자의 관계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뭐 어차피 그깟 옛날 영화 제목 하나...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외국 영화가 수입됐을 때 원제를 직역한 것이든, 거기서 응용해 새로운 제목을 붙인 것이든, 제목에는 생명이 있다. 그 제목을 마음대로 바꿔버린 자들이 1차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영화 깨나 봤다는 사람들이 그런 잘못을 계속 답습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내일을 향해 쏴라>를 어느날 갑자기 "이제부터 이 영화는 <부치와 선댄스 키드>라고 부르기로 합시다"라고 하면, 그냥 그걸로 끝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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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시간여행과 멀티버스. 플래시의 능력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설정되었을때부터 시간여행 이야기는 언젠가 나오는게 필연이었겠으나, 막상 보고 나니 좀 그렇다. <플래시>의 리부트라기보다 <백투더 퓨처>의 리부트 느낌.
 
2. 대체 왜 마블이고 DC고 멀티버스에 꽂혀서 이 난리인가. 다른 평행세계의 스파이더맨, 다른 세계의 닥터 스트레인지... 결국 이런게 다 이제 슈퍼히어로가 빌런과 싸워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지킬수 있다는게 너무 뻔하고 순진한 소리란 생각이 널리 퍼진 결과 아닐지. 지난번 <가오갤3> 때의 생각 반복.
 
3. 그런 의미에서 '플래시'는 추억 총소집으로 팬들을 감격시키는데 성공. 특히 가족애를 테마로 한 슈퍼마켓 신은 눈물이 찔끔 나오는 감동. 그동안의 수없이 반복된 리부트와 리빌딩이 결국은 멀티버스였다는 스토리텔링은 보너스. (근데 크리스찬 베일은 왜 왕따인가)
하지만 이 감동이 DC를 구원할수 있을지. 거기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슈퍼맨 레거시>? 글쎄.
 
4. "OH! FLASH! I LOVE YOU!" 이거 혹시 퀸의 명곡 'Flash' 에 대한 오마주인가? 이보다는 훨씬 노골적인 <쇼생크 탈출> 오마주 매우 웃겼다.
4-1. 감독이 시카고 팬인지. 왕년의 시카고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명곡이 두곡 나온다. 음악의 활용은 벌써부터 제임스 건의 영향인지 <가오갤> 느낌이 물씬.
 
5. 역시 내가 DC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배트맨의 캐릭터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란걸 재확인. 다크나이트고 뭐고... 태생이 고구마다.
 
6. 에즈라 밀러는 연기력도, 역할 해석도 매우 훌륭하다. 18세 배리의 성격이 좀 짜증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성격.  (이 리뷰를 작성하고 나서 얼마 뒤 에즈라 밀러의 과거 행각을 들음. 아마도 미국에서 <플래시>의 흥행이 박살 난 데에는 밀러의 역할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생각됨. 그런데도 미국 영화가에서는 "제임스 건이 이끄는 새로운 DC 세계에서도 에즈라 밀러는 계속 출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플래시>의 가장 큰 성공은 역대 최고의 슈퍼걸 사샤 카예라고 생각. 등장, 각성, 캐릭터, 외모 모두 최고다.
 
7. 플래시의 캐릭터 중 최강의 먹방 히어로라는 점은 왜 충분히 상품화되지 않았을까. 단적인 예로 왜 플래시 초콜렛바 같은게 없을까? 에너지 보충을 위해 뛰면서도 줄창 먹어야 하는 플래시와 딱인데.

 

8. 결론: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2> 이후 지금까지 본 DC 영화중엔 최고. 하지만... DC를 되살리기엔 너무 늦은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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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놨던 글인데 타이밍을 놓침. 어쨌든 길어서 블로그에 올림.


해가 갈수록 너무나 한심한 영화상이 되어 가고 있는 아카데미상에서 올해 그나마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싶은 부분은 피터 위어의 '공로상' 수상이다. 아카데미 공로상은 언젠가부터 '유명한 분인데 그동안 우리가 상을 못 드리고 외면해왔던 분들'에게 드리는 상이 되었다. 

피터 위어

이 상이 원래 그 해의 분위기라는 것(좋게 말해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워낙 민감하다 보니 '예년 같으면' 충분히 상을 받고도 남았을 영화들이 수상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상이 워낙 근엄한 상이다 보니 코믹 연기로 부각이 되거나, 영화가 좀 희한하거나 한 경우에도 상을 잘 주지 않았다. 성룡, 스티브 마틴, 데이빗 린치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온전히 봐도 충분히 상을 받을만 했는데도 좀 불운한 사람들의 경우, 번번이 뭔가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영화'들에 밀려 수상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총 14번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콜시스의 경우 <디파티드>가 없었다면 공로상의 0순위 후보였을 터. 

 

피터 위어는 6회 후보에 올라 무관(골든글로브는 4회 무관)이니 스콜시스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따르면 너무나 저평가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BAFTA에서는 <트루먼 쇼>, <죽은 시인의 사회>, <마스터 앤 커맨더>로 3회나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결코 상복이 없는 감독은 아니다. 다만 아카데미가 그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 뿐이다.
개인적으로 위어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트루먼 쇼>는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올랐어도 <셰익스피어 인 러브>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영화가 있었던, 아카데미 기준으로 극강의 해였기 때문에 수상은 실패했을 수도 있겠으나, 나머지 후보작들의 면면을 보면 <트루먼 쇼>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을 영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짐 캐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짐 캐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짐 캐리는 스콜시스나 위어는 저리 가랄 정도로 오스카가 철저하게 무시한 배우다. 캐리는 단 한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이 없고, 심지어 짐 캐리가 출연한 영화 중 어느 영화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마스크>나 <덤 앤 더머>는 말할 것도 없고, <이터널 선샤인>도, <트루먼 쇼>도, <맨 온 더 문>도 아니었다. 이런 일은 희극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의 결과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코미디언들도 비슷하다. 유명한 코믹 배우들은 커리어의 어느 시점에서 '어디 오스카가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정말 재미없는 영화를 '작정하고' 출연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빌 머레이와 스티브 캐럴은 각각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폭스캐처>로 1회씩 오스카 후보로 지명을 받은 적이 있다(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께 죄송.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두 배우들이 '어디 나도 상 받는 영화에 한번 출연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출연했던 영화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 진지하게 빌 머레이를 평가했다면 <고스트 버스터즈>나 <사랑의 블랙홀> 같은 영화였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짐 캐리도 위의 몇몇 영화를 통해 존 카우프만, 피터 위어, 밀로스 포먼 같은 '오스카가 외면하기 힘든' 영화인들과 공동 작업을 했지만 결국 실패한 걸 보면 오스카 심사위원들은 캐럴이나 머레이보다 캐리를 더 싫어했던 모양이다.

곡절 끝에 이번에 위어가 공로상을 받았으니, 언젠가 캐리도 공로상은 받을 수 있기를. 아니, 그 전에 아카데미 회원들이 정신을 차려서, 연기상을 받을 수 있기를. 위어 형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뒤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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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충격을 받고(정말로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해야 '영화 좀 본 사람'이 되는 것인지), 올해 아카데미상 수상작 리스트를 보다가 대체 영화란, 극장이란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내 일도 아닌 남의 일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카데미상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갔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을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장면인지, 저 영화의 장면인지 혼동할 정도로 세 영화는 매우 닮아 있다. 글자 그대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남녀 주인공 중 한쪽과 그 자연재해가 초자연적인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그 운명의 연결을 거스르려 한다는 점 등,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공통점이 한 가득이다. 물론 같은 감독이니 작화와 스타일도 당연히 같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강추. 안 보신 분들은 빨리 보러 가라. 아래 글은.... 물론 별 스포일러는 없다. 


그중 최신작인 <스즈메의 문단속>. 이번엔 큐슈 남동쪽의 미야자키가 무대다. 여고생 스즈메는 폐허를 찾는 '잘생긴 남자' 소타의 뒤를 쫓다가(심지어 등교를 포기하고!) 일본 땅 깊은 아래를 흐르는 큰 힘, 지진의 원인인 거대한 미미즈의 실체를 알게 된다. 심지어 스즈메의 실수로 미미즈를 잠재우고 있던 요석이 빠져버리고, 미미즈를 관리하는 가문의 후계자인 소타는 희한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그렇게 해서 미야자키-에히메-고베-도쿄-미야기까지, 일본 열도를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거의 종단하는 스즈메와 소타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비슷한 톤의 영화가 세 편째이다 보니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작 두 편에 비해 이야기의 양은 많고 진행은 훨씬 빨라졌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작 두 편에서 이미 스타일을 읽었을테니 비슷한 패턴을 다시 보여줄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는 얼른 건너뛰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얘기라 반가웠다. 

이런 진행 때문에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선이 너무 튄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어느 곳 어느 시절에, 남녀간의 감정에 매뉴얼 같은 것이 있단 말인가. 개연성이 필요하다면 소타의 외모가 개연성이겠지. 


세 편의 영화 중 대중성으로 따지면 단연 <너의 이름은>이 앞서고, 그 다음이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날씨의 아이> 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카이 감독의 후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날씨의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과연 대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이 요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제기였다. 

 

거의 매일 폭우가 내리는 도쿄. '날씨의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 한 비가 계속 내려 도쿄는 물에 잠길 운명이다. 그녀 하나의 희생으로 도시 하나를 구할 수 있다 해도, 과연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자신을 희생해야 할까? 혹은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을까? 


유독 집단주의가 강조되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감동의 포인트였다. 20세기의 풍요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일본에서, '왜 당신들이 망쳐 놓은 나라를 우리가 수습해야 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질문을 대변한 듯한 느낌. 하지만 <너의 이름은>을 사랑했던 많은 신카이 팬들은 이런 메시지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이진, 단지 지루했을 뿐인데.


그래서인지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통적인 윤리관으로 돌아갔다. 주인공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매우 상식적인 주제를 따른다. 스즈메는 어떻게 해서든 이 '당연한 희생'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나, 이번에는 그 '재난'이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12년전의 대 사건이라면, '막을 수 있었어도 나를 희생해서 그걸 막지는 않겠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그런데, 그러면 다이진은 대체 무슨 죄로 그 지루하고 어두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가.

 

헤라클라스는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가지러 갔을 때, 직접 가는 것보다 아틀라스를 보내라는 조언 때문에 잠시 아틀라스 대신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일을 맡는다. 그런데 사과를 가지고 돌아온 아틀라스는 '왜 내가 계속 하늘을 떠받쳐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아틀라스도 잠시 풀려난 뒤의 해방감을 알아버린 뒤, 다시 교대해 주고 싶지 않았던 그런 일.

'그건 원래 네가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 라는 이유로, 다이진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결국 다시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잠시 묵념, 네네. 이게 주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그래서 <날씨의 아이>쪽이 더 맘에 든다니까요.)

어쨌든 작화의 연출이나 영상, 음악, 거의 모든 면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탑 크리에이터로서 손색없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한국처럼 문화적으로 근접한 나라가 아닌 글로벌 관객을 고려한 일본적 요소의 승화 부분에서도 - 물론 한국 관객들은 좀 더 이해의 폭이 크겠지만 - 특히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미즈(일본어로 지렁이더라)의 형태는 아니지만 지진이 잦은 나라의 특성상 지하에 뭔가 초자연적인 거대한 존재(이를테면 용, 메기, 구렁이 등등)가 진동을 일으킨다는 전설, 그리고 역시 신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 진동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있다가 무슨 변고가 생길 때마다 대재앙이 덮쳐온다는 것....

그런 자투리들을 모아서 이만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진정 탁월하다.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아무튼 강추. 얼른얼른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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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도시 바빌론. 계시록에 나오는 죄악의 도시.현대 문명권에서 sin city는 거의 공식적으로 라스베가스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데미안 셔젤에게는 할리우드가 바빌론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에게는 파리가 바빌론이었던 것처럼. 

 

영화 <바빌론>은 '그 타락이란게 대체 어떤 건지 보여주마'를 작심한 듯한 파티 신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산업'이 되면서 콘텐트 비즈니스의 엄청난 매출 창출 능력이 현실이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들어간 돈의 100배, 1000배의 이윤을 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그 파티 신 하나에 어마어마한 허영과 사치와 욕망이 녹아 흐른다. 압도적이고 효과적인 첫 장면.

타락의 끝, 바빌론 그 자체...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가 가리키는 시점은 1920년대의 할리우드, 무성영화가 유성영화(토키)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물론 데미안 셔젤은 토키의 충격보다는(이미 이 영화 곳곳에 인용되는 <싱잉 인 더 레인>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그 '충격'을 중요한 소재로 다뤘다) 그 시절의 영화계 사람들이 느꼈을, "이렇게 돈을 쉽게 벌어도 되는 거야?"라는 충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는 '신성한 영화의 역사에 바치는 헌사'와는 조금 다르다. <바빌론> 속 영화계는 재능은 있지만 그보다 먼저 말초적인 유혹에 미친 장인들과, 일확천금에 눈이 먼 장사꾼들의 파티장이다. 등장인물들은 아무데나 똥을 싸고, 걸핏하면 토한다. 마약이 알콜에 취한 사람들이 흔히 하듯이.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누구도 <바빌론>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취한 브래드 피트가 석양을 안고 펼치는 환상적인 촬영 장면이나, 당대 할리우드를 들었다 놨다 했던 가십 칼럼니스트(아마도 실존인물인 헤다 호퍼나 루엘라 퍼슨스를 모델로 했을)가 피트를 향해 "당신 시대가 간 건 당신 탓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죽고 난 뒤에 태어날 어떤 젊은이가 당신 영화를 보고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느낄 때, 당신은 다시 살아나는 거야" 하고 위로하는 장면을 보면, 이런 장면에서의 셔젤은 진심으로 할리우드의 팽창기, 전설이 된 시대를 살아 보고 싶었던 영화소년의 자세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제정신을 잃고 술과 마약과 섹스와 향락과 사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정신을 잃은 할리우드를 빈정대는 듯한 셔젤, 그런데 그 정신나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찬란한 성과와 다시 오지 않을 전설의 시대에 대해 미칠듯한 부러움을 토로하는 셔젤. 이 두개의 셔젤은 영화 내내 쌈박질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정체성도 좀 오락가락한다. 너무 노골적으로 팬심을 드러내기 부끄러웠던 것일까. 애정표현이라면 좀 비뚤어진 표현이긴 하지만, <바빌론>의 시대에 대한 셔젤의 진심은 너무나 충분히, 넘칠 정도로 느껴진다.

 

(이런 종류의 동경은 굳이 영화 <미드나잇 앤 파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너무나 친근하다. 만약 당신이 야구선수라면 트랙맨도, 갖가지 통계도, 에이전트도, 혹사 논란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 베이브 루스나 월터 존슨과 플레이하는 꿈을 꿀 지도 모른다. 가수라면 MP3가 없던 시절로, 글쟁이라면 인터넷이, 심지어 워드 프로세서가 없던 시절로.... 뭐 아무튼.)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영화가 꽤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한다는 데 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내겐 너무 길었다. 코로나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최소한 3시간은 되어야 티켓값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누군가 여기저기 전염시키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든 굳이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상, 아무리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만들었다 해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때 영화라는 장르에 평균 이상의 애정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번 보고 기억해 둘만한 영화. 이 영화에는 15분짜리 유튜브 압축본을 보고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 있다. 분명히. 그것이 욕이든, 감동이든.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나는 저거 무슨 영환지 다 알아' 하는 유치한 자부심 같은 걸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P.S.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시 돌아온 바빌론>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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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고 되어 있는 것은 아시다시피 한 편으로 끝나지 않는 시리즈 영상물을 말합니다. 요즘 TV는 그냥 단말기일 뿐, 네트워크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연속극이냐, 8부작이냐, 30부작이냐, 매주 연속공개냐, 한방에 다 공개냐 따위의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는 시리즈를 그냥 '드라마'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제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3시간 이내의 단편이냐, 아니면 1시간~1시간30분 이내를 한 편으로 하고 내용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대략 3편 이상의 시리즈이냐 정도로밖에 구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특징인 '16부작 미니시리즈', 일본 드라마의 특징인 '연 4분기에 따라 공개되는 10~11부작', 미국 드라마의 특징인 '인물과 배경을 유지하고 시즌1이 성공하면 무한시즌 연속제작' 등이 다 OTT라는 거대한 늪에서 뒤섞이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늘 그렇듯 '볼게 없어....'하다가 연말이 되면 '아, 올해도 꽤 많이 봤구나' 하게 되는 드라마 결산.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숫자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냥 갯수를 세기 위한 도구일 뿐. 그리고 2022년이라는 것은 제가 해당 드라마를 본 게 2022년이라는 것이지 이 드라마들이 모두 2022년작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그러나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에 빛나는)가 현실 법조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사건을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단언컨대 한국에서 지금까지 나온 장애에 대한 드라마 가운데 가장 유니크한 시선을 보여준 작품. 물론 '실제 장애인들에 비해 너무나 뛰어난' 우영우가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다른 편견을 일으킨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원래 드라마란 매우 특이한 인물들을 보여주는 장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P.S. 한 법조인은 "지금까지 본 한국 법정 드라마 중에서 가장 재판 장면이 리얼하다"고 평가하기도.

 

2. 재벌집 막내아들

최초는 아니지만 한국 드라마의 세계에 본격적인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장을 연 드라마로 기록될 역사적인 작품. 평생 재벌 그룹에서 일했다기보다 재벌 일가의 집사처럼 일했던 한 직장인이, 심각한 배신을 경험한 뒤 그 일가의 잊혀진 막내로 빙의, 거대한 성공과 복수의 인생 2회차를 살아가는 이야기. 도준이가 대체 언제 비트코인을 사나 궁금했는데...

1회와 16회 vs 나머지 2~15회를 별도의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지만, 이런 논란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려면, 과연 21세기 한국의 시청자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했을텐데, 그렇지 못한 한국의 드라마 평단(?)이 좀 답답했습니다.  

 

3. 나의 해방일지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분'을 남겼다면 이 드라마는 '추앙'을 남겼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통학은 30분, 통근은 1시간 이상 걸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탓에 이 드라마의 깊은 상징성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는 못되고, 그저 2022년의 가장 달달했던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합니다. ("나 안 되는데." "왜?" "살쪄서" "한시간 내로 살 빼고 나와")

그리고 한편으로 이 드라마의 진정한 가치는, 21세기 초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한 단면 - 인구의 50%가 '수도권'이란 곳에 모여 살고, 그 안에서도 안쪽에 사는 절반과 바깥쪽에 사는 절반이 어떤 다른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어떤 사회학 서적보다 훌륭한 이해를 가능해게 해 줬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4. 모닝쇼 (애플)

10년 이상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아침 프로그램 <모닝쇼>에서 어느날 남자 MC의 성희롱에 대한 고발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방송국 사장, 이사, 담당 CP, PD, 그리고 혼자 남은 여성 MC(제니퍼 애니스톤)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치열한 눈치보기에 돌입합니다. 목적은 단 하나 '남들이야 어찌 되건 나에게는 그 불똥이 튀지 않도록'. 이런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에 갑자기 등장한 시골 방송국의 무명 기자 리즈 위더스푼. 예측 불허의 다이내믹한 전개가 엄지를 절로 들게 하는 걸작.

....그러나 시즌2로 숫자가 바뀌는 순간, 거짓말처럼 드라마는 쓰레기로 바뀝니다. 주의.

 

5. 테드 라소 (애플)

별 성적을 내지 못하던 EPL 구단에서 어느날 미국 대학 농구 감독을 데려다 감독 자리에 앉힙니다. 미국인이 축구를 잘 알 리가...의 수준이 아니고, 오프 사이드 룰이 뭔지 설명하지 못하는 수준. 하지만 그는 타고난 친화력, 낙천성, 강한 의지로 팀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온갖 난관을 돌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위대한 미국인이니까! 

드라마 전체가 하나의 농담이지만 매우 강력합니다. 그리고 감동적입니다. 최고.

 

6. 아파트 주민들이 수상해 (디즈니)

디즈니플러스를 탈탈 털어도 <만달로리안>과 이 <아파트 주민들이 수상해> 만한 작품은 다시 없다는게 제 생각. 뉴욕의 유서깊은 고급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어찌 어찌 하다가 엮인 세 주민은 힘을 합쳐 실시간으로 범죄를 추적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합니다. 한물 간 배우와 한물 간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그리고 신인 화가의 케미가 의외로 찰떡. 

시즌2도 재미있습니다. 

 

7. 페리패럴 (아마존)

한국에선 마이너 OTT에 불과하지만 세계 2위 OTT인 아마존은 사실 매우 강합니다. 비록 <더 보이즈> 같은 작품이 시즌2에서 쓰레기로 불타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페리페럴> 같은 걸작을 내놓고 있습니다. 클로이 모레츠가 드디어 성인 역할에서 제대로 한 작품을 뽑아냈다는 생각.

근미래. 흔한 미국 시골 마을에 병으로 눈이 멀어가는 어머니, 술이나 축내는 제대 군인 오빠와 살고 있는 클로이 모레츠는 알고 보면 보기 드문 게임 천재. 뭔가 실생활에서도 직업을 찾으려 하지만 실제 수입은 부자들의 게임 레벨 올려주기 알바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너무나 실감 넘치는 게임에서 뭔가 미션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와. 정말로 실제같은 게임. 그런데.... 

 8. 업로드 (아마존)

사실 신작은 아니고, 몇해 전 시작을 했지만 사정에 의해 못 보게 되었다가 올해 다시 정주행한 작품입니다. 배경은 인간의 뇌를 하드 디스크에 저장해 육신의 생사와 무관하게 인간의 의식을 살아 있는 상태로 뇌에 저장할 수 있게 된 근미래 시대. 그렇게 해서 인간들은 죽음을 거부하고, 자아를 인간이 만든 메타버스 세계에 저장해 생전보다 훨씬 더 꿈같은,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천국에서 영생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천국에 가게 된 남자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 설정만 봐도 흥미진진!

 

9. 애나 만들기 (넷플릭스)

엄청난 물량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의 올해 대다수 시리즈는 실망의 연속. 그러나 <애나 만들기>는 강추할만 합니다. 사기꾼이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은 그 사기꾼에게 놀아나는가. 정확한 분석과 정교한 묘사. 이것은 다큐인가, 드라마인가(사실 넷플릭스에는 이 사건에 대한 다큐도 있고, 이 드라마에서 언급되는 파이어 아일랜드 페스티발에 대한 다큐도 있습니다. 후자 강추). 흥미진진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애나 아버지가 독일에서 어린 애나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페트루스를 주문하는 장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웬즈데이 (넷플릭스)

아담스 패밀리를 봤건 안 봤건, 좋아했건 안 좋아했건, 이 독특한 청소년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기는 쉽지 않을 듯. 이 드라마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담스 패밀리>보다 <해리 포터>를 예로 드는 것이 훨씬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어둠의 세계의 해리 포터>라고 해야 어울릴 듯한 작품. 캐서린 제타 존스의 모습이 좀 슬프긴 하지만, 드라마는 참 재미지죠.

아주 이상한 아담스 패밀리의 딸 웬즈데이가 집안 내력에 따라 기숙학교를 가는데, 그 기숙학교에는 뱀파이어, 인어, 늑대인간, 마법사 등이 드글드글. 한마디로 별 초능력 없는 웬즈데이가 평범해 보일 지경. 하지만 곧 모두들 알아차립니다. 과연 누가 제일 이상한 아이인지.

 

그리고 10대 드라마에는 꼽지 못했지만 올해의 기념할 만한 작품들로는:

* 수리남: 한 4.5회 분량으로만 줄였어도 10대 드라마에 당연히 꼽았을.

* 슈룹: 유니크해서 재미있었는데, 가짜 역사를 너무 진짜처럼 포장해서 살짝 마음에 안 든.

* 사내맞선 : 뭐라 욕해도 좋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재미있었던. 

 

아, 그리고 어디다 끼워 넣어야 할까....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했던 것 중 하나.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의 마지막 편, <히바로 Jibaro>야말로 2022년을 대표하는 영상 작품 중 하나였죠. 알베르토 미엘고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 엄청난 작품. 

히바로 Jibaro, 21세기 인류 문명의 정수 (joins.com)

이렇게 2022년의 드라마들을 보내고, 이제 <더 글로리>를 열심히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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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러브 데쓰+로봇> 시즌3의 마지막 편인 <Jibaro>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얼얼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작 17분짜리 애니메이션이지만 담고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는 인류 문명 전체를 제대로 관통한다. 진정한 글로벌 프로젝트란 이런게 아닐까 싶다.
 
2. 가장 기본이 되는 배경 스토리는 신대륙을 짓밟은 스페인 침략자들의 이야기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혹은 키르케) 이야기의 결합인듯.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미지의 폭격은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다.
 
 
3. 지역 문명을, 지구를, 혹을 자연을 제멋대로 약탈하고 유린하는 침략자들에게 원주민들이 숭배해 온 자연신(혹은 신적 존재)이 저항하는 이야기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고전으로는 존 부어맨의 <에메럴드 포레스트>가 있었고, <원령공주>나 <아바타> 가 그랬다.
 
 
4. 그런데 여기에 존 워터하우스의 <사이렌>이나 <라미아> 같은 작품들의 메시지, 밀레이의 <오필리아> 같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물과 꽃잎 이미지, 금색 조각들로 뒤덮인 클림트의 <키스>같은 그림들의 아우라가 풍겨나온다. 극중 사이렌의 이미지나 동작은 인도+발리풍?
 
(물론 이건 다 제 기분에 그렇다는 겁니다. 전문가분들이 보시고 야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하시면 바로 깨갱...)
 
5. 물론 이런 이미지나 스토리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지만, 알베르토 미엘고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사실 다 가져다 합쳤다는 것만도 놀라운데), 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 다음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17분밖에 안 된다. 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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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코로나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극장을 찾는 것이 전보다 좀 더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래 리스트 중에서도 극장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네요. 심지어 극장에서 본 영화가 집에 앉아서 본 영화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던 것도 결코 아니고 말이죠.

아무튼 늘 그렇듯 제가 2022년에 봤다는 것이지 제작 연도가 2022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숫자는 순위가 아닙니다. 그냥 갯수를 세기 위해 붙인 넘버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1. 프리가이

NPC,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들이 열심히 기관총을 쏠 때 한가하게 옆을 지나가는 백곰들이나 당신이 금괴 판매자를 찾아 중동의 낯선 항구를 방황할 때 옆으로 지나가면서 "메카에서는 향신료가 싸다네"하는 존재들을 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존재를 가지고 만들어 낸 보석같은 영화. 시대정신에 딱 맞습니다.

 

2. 리카르도가족으로 산다는 것

언젠가 '왈가닥 루시'라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세대가 이제 사라져가고 있지만, 한때 미국의 연인이자 세계의 연인이었던 루실 볼이라는 여배우. 그 여배우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인종주의와 매카시즘의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둥둥 떠다니던 시절이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영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절대 그냥 주어진 것도 아니고, 태곳적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3.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든 소설이든 모든 것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영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촘촘하게 책으로, 잡지로 만들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웨스 앤더슨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문라이즈 킹덤>과 함께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 

 

4. 탑건: 매버릭 

당신은 왜 극장에 가고 영화라는 것은, 극장이라는 것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장 최근의, 가장 설득력있는 답변. <탑건> 세대가 아닌 관객들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직 인류가 낭만, 성취, 우정 같은 동기들에 대해 애착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는...

그리고 영화 보는 동안이라도 스무살로 돌아간 듯한 느낌. 

 


5. 놉

조던 필 감독의 세번째 작품. 대체 우리가 모르는 하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뭔가 진지하게 얘기하는 척 하다가 곧바로 병맛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블랙코미디인 척 하다가도 어느새 호러로 변신해 있는 영화. 영화 <놉> 자체가 영화의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거기까지 굳이 갈 필요가 없다. 그냥 한 편의 호러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고 강렬한 작품. 

P.S. 다니엘 칼루야는 조던 필 감독의 세 작품 모두에 출연하지는 않습니다.

 


6. 헌트 

한국 스릴러의 역사는 <헌트> 전의 작품과 그 뒤의 작품으로 나뉠 듯. 특히 한국 현대사의 정치 부분을 건드리면서 시나리오 상태에서 이 정도의 짜임새를 갖춘 영화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고, 이 모든게 신인 감독 이정재의 책임하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진정 놀라울 뿐. 

 


7. 헤어질 결심

이미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이 영화는 박찬욱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죄와 벌에 대한 영화. 박해일의 죄가 '아내를 배신한 죄'가 아니라 '사랑을 외면한 죄'라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벌 역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 그래서 이 영화를 멜로 영화로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처참한 징벌극. 

 

8. 13 라이브스

극장개봉도 하지 않고 단지 아마존프라임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장 강렬했던 영화 중 하나. 13명의 조난당한 소년 축구단 일행을 구하기 위해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는데.... 너무나 담담한 시각이 가슴을 저미는 영화. '저렇게 모두들, 자기 할 일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던 거죠.

 

9. 아바타2 

솔직히 292분은 좀 무리라는 생각도 했지만 2022년에 본 영화 중 10편을 뽑는데 <아바타2>를 꼽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불가능했습니다. <아바타3>이 나와도 꼭 볼 거구요. 물론 그 얘기 외에는 사실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게 함정. 그래도 같은 돈 만원(물론 저는 2만원) 내고 세시간 넘게 이런 시각적 경험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염가라고 생각합니다. 

 

10. 더 스위머

시리아 출신의 두 자매가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하 생략) 내전과 학살의 땅. 먼 나라에 사는 우리는 그저 '거기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곳에도 젊음이 있고, 누려야 할 삶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무겁고 눈물부터 쏟아야 할 것 같은 톤이 절대 아니고, 거칠 것 없는 젊은이들 이야기답게 흥겹고 씩씩한 영화지만, 어느새 '난민'이라는 말의 무게가 가슴에 실리는 영화. 

 

경합:
범죄도시2

어쨌든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가장 위로해준 작품. 손석구 캐릭터가 왜 사람을 죽이는가에 대한 개연성 여부를 비롯해 스토리의 구멍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마동석의 펀치가 작렬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500년 된 오동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쩍' 소리의 쾌감 앞에서는 비판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듯. 

엘비스

바즈 루어만에 대한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호오가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잊혀져가는 엘비스와 그의 시대에 대한 정리를 더 이상 아름답게 해낼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톰 행크스의 악역이 신선했고, Suspicious Mind가 보고 나서도 한동안 귓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워스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제 이런 영화를 보기엔 너무 늙었...

 

긴급선언

한국 평론가들이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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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 되면 정리를 해보곤 합니다만... 매년 반복되는 생각은 '아 내년에는 책 좀 더 읽자'. 

물론 실용서 종류를 필요에 따라 보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지나고 나면 참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시간순으로 2022년의 첫 책인지도? 이미 올해가 저물 때가 되어 가다 보니 아직 안 읽은 분이 거의 없을 듯도 하지만, 혹시 아직 안 읽은 분들이 있다면 늦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살짝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 여성 과학자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로 시작하다가 한 유명 어류학자의 성공담, 그리고.... 반전에 반전이 존재하는, 그러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놀라운 책.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2023년에는 반드시 읽어 보시길.

 

2.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본래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는 편. 프랑스의 <파리 마치>가 자신들의 잡지에 연재된 세계 유명 작가의 단편들 중 베스트를 추린 단편집. 이선 캐닌의 <궁전 도둑>과 제임스 설터의 <방콕>, 두 편만으로도 제값을 하는 책입니다. 물론 오래 전에 읽었지만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도 걸작. 누군가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두고 '불면증에 대한 가장 뛰어난 은유'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삼.

이런 단편집은 시간 날 때마다 사탕 까 먹듯 한편씩 읽는 재미가 쏠쏠하죠.

 

3. 일본인 이야기 1, 2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하지만 '진짜 일본'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정말 적은 나라 한국. 자칭 일본 전문가는 넘쳐나지만 센고쿠 시대와 임진왜란 시대, 혹은 메이지 유신기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역시 대부분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에도 시대 일본이 엄격한 기독교 금지와 쇄국 정책 속에서도 난학의 전통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을 꾸준히 가까이 하며 이미 한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거기서 좀 더 알고 싶으면 한국어로 된 좋은 문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같은 맥락에서 시라이 사토시의 <국체론>도 참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휴가 때 긴자나 오모테산도, 좀 더 나아가 지유가오카나 시모키타자와에서 쇼핑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을 알고 싶은 분들이 읽으실 만한 책. 감동적입니다.

 

4. 고립의 시대

현대의 고독을 말한 사람은 많지만 그 고독을 이렇게 사회적/심리적/산업적으로 주도면밀하게 분석한 책은 드뭅니다. 뭣보다 중요한 건 코로나가 끝난다 해서 사람들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외로움의 치유를 위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혹은 그 해결을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해 빛나는 인사이트를 주는 책. 거기다 나치, 트럼프, 아베의 성공을 설명해주는 외로움과 문명의 관계는 매우 설득력있습니다.

초반의 '뉴욕의 시간제 친구' 이야기부터 흡인력이 장난 아닙니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너무 폭이 넓다(너무 많은 것을 고독과 고립감으로 해석한다?) 정도인데 그건 각자 알아서 새겨 들으시길. 

 

5. 고양이에 대하여

어떤 주제에 대해 '정말 당신이 이 주제에 대해 뭘 알긴 알아?' 라는 식의 책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마찬가지로 애묘인들이 넘쳐 나는 시대. 과연 고양이 기르는 분들은 이런 것까지 알까.... 싶은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야생에 가까운 동물이라는 것(인류가 개를 길들인 기간이 고양이를 길들인 기간의 5~10배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애완' 보다는 '포획' 상태의 종이라는 것.... 등등. 필요에 의해서 읽은 책이지만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이든, 아닌 분이든 매우 흥미로울겁니다.

 

6. 더 페이블

뭔가 우울하고 답답할 때를 위한 만화. 일본 전국구로 활약하던 살인청부업자에게 어느날 보스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오사카의 아는 야쿠자를 소개시켜 줄테니, 그 지역에서 당분간 숨 죽이고 살아라. 절대 티 내지 말고,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야 한다." 반문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 보스의 명령. 당연히 잘 수행하려고 하는데, 당연히 잘 안 되겠죠. 

문제는 한국에선 전자책으로밖에 발매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이 만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전자책 정도는 살만 합니다.

 

7.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이 작가의 전작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읽고 대실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사이트라고 할 수도 없는 잡담으로 가득한 책. 그런데 그런 기대를 뺀 상태에서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으니 재미와 상상이 솔솔. '데이터 사이언스 어디까지 왔나'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현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오락성도 매우 뛰어납니다.

한마디로 '아주 구라가 좋은' 책. 구라 속에서 쓸만한 이야기를 걸러낼 수 있는 사람에겐 참 유용한 책.

 

8. 감각의 미래

'아니 이런 책을 이제서야 보고...?' 라고 하셔도 할 수 없는, 이미 고전이 된 책. 소위 말하는 인지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너무나 뛰어난 가이드. 흔히 우리가 오감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감각들을 뇌가 어떻게 처리하는가에서부터 그 각각의 감각을 현대 첨단 과학은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대체하고 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인간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즉 메타버스 세계)에서 인간의 감각기관과 뇌의 '착각'은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각종 실험과 새로운 기술을 통해 설명하는 대목.

물론 이 책이 나온 뒤에도 놀라운 발전이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겠지만, 역시 그건 각자 알아서 보충해 가시길. 제 수준에서는 이 정도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9. 폴리나

바스티엥 비베스. 우연히 그림 한 장을 보고 빨려들듯 읽게 된 책. 회색의 사회주의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폴리나가 츤데레의 끝에 있는 발레 선생님을 만나고, 재능을 인정받고.... 그렇게 자기 인생의 춤을 추게 되는 이야기. 쓸쓸하지만 군데 군데 훈훈하고, 그 어떤 젊었던 날을 되새겨보게 하는 만화.

만화가 두 편이나 올해의 책으로 뽑힌 것은 그만치 '진지한 책'을 안 읽었다는 반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지금 저 표지에 나온 정도의 제한된 선으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빠짐 없이 표현해 내는 걸 보고 있으면 저절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비베스는 천재다'. 물론 이 책을 보고 나면 <염소의 맛>도, <내 눈 안의 너>도 읽게 됩니다. 당연히. 

 

10. 크래프톤 웨이

'아 얘가 그 쪽으로 가더니 이런 책을... '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많을 듯. 사실 책을 선물받고 거의 1년 지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흥미진진. '개발, 디자인, 마일스톤, KPI, MAU' 이런 이야기를 배제하고 보면 이 이야기는 하나의 현대 영웅서사더군요. 그런데 주인공은 2/3가 지난 다음에 등장하고, 책의 초반부에 대의를 위해 뭉친 군웅들의 운명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아 이건 스포일러라 차마 말할 수가). 소설적인 과장, 무협지적인 윤색 없는 담담한 서술이랄까. 

많은 이들은 역사가 그냥 숫자와 도표의 연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남들의 성공담은 그냥 우상향의 그래프라고 생각해버리곤 하지만, 실제로 역사를 들여다 본 사람들은 어떤 위대한 업적도 우상향 직선으로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걸 알려주는 좋은 책, 좋은 서술. 많은 면에서 공감하고 감동.

 

11. 위어드

많은 뛰어난 분들이 극찬하시기에 속으로 의아했던 책. 아니 고등교육을 받은 진보적인 서구 남성들이 인류 문명을 이끌고 있다는 게 대체 뭐가 신기한 일일까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책의 데이터 활용은 매우 놀랍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부분. 어떤 분야에서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정직성("당신이 유일한 증인인, 친한 친구의 범법 사실을 감춰주기 위해 당신은 위증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최하위인 나라. 과연 이런 나라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거다 싶은 답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아무튼 읽고 나면 뿌듯해집니다. 

 

12.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13세기 남송의 화가 이숭이 그린 <고루환희도(骷髏幻戱圖)>를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 상징성의 깊이에 감탄하게 됩니다. 해골은 작은 해골로 아이를 유혹합니다. 그 아이를 말리는 다른 아이는 누구며, 해골의 뒤에서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인은 또 누구란 말인가.

그러다 보면 과연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오래 전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부박한 것인가 하는 것은 대략 2000년 전에 확인된 것인데,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당신이 함부로 커피 한잔에, 소주 한잔에, 가벼운 실패 후에 '인생 뭐 있니'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는 책.

고루환희도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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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봉 첫주를 놓치면 루저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예매 시도. '드디어 예매가 열렸다'는 제보를 받고 예매에 착수했는데 어찌나 세상에 손 빠른 사람들이 많은지 이미 대부분의 IMAX와 DOLBY CINEMA의 핵심 좌석은 사라진지 오래. 마침 누군가 현재 국내 최고의 관람 환경은 남양주에 위치한 현대아울렛 스페이스원(메가박스)라고 극찬했던 말이 생각나 예매 시도. 여기도 역시 대다수 좌석은 빛의 속도로 사라진 뒤였으나 그래도 센터 라인의 좌석 확보. 대신 토요일 오전 8시. 

2. <아바타>와 제임스 카메론에 대해서는 존경심 뿐. 1984년 겨울,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대체 영화의 장르가 뭔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본 <터미네이터>의 충격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식당들이 설렁탕에 깍두기 반찬 하나, 짜장면 우동에 단무지 반찬 하나 놓고 장사 하던 시절에 갈비구이 반상에 16첩 반찬을 깔아 놓고 갑자기 방어회, 서산 무젓, 눈볼대 구이에 백합탕까지 시간 순으로 깔아 준 뒤 다 먹고 나가려는데 차가운 배숙에 개성식 주악으로 마무리까지 기막한 한끼 식사를 같은 돈 내고(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선 모든 영화의 관람 요금이 같다) 먹게 해 준 카메론 형님의 은혜란. 그 뒤로 <에일리언2>를 보고 비슷한 감동을 느꼈고,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을 배신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던 <어비스>도 아름답기만 했다. 아니 뭐가 어때서? 재미만 있는데. 

3. <아바타>때는 그래도 관객들이 새로운 세계관에 안착하게 하기 위해 꽤 긴 도입부와 안내 설정이 필요했지만, 이미 <아바타>를 13년 전에 본 관객들에겐 <아바타2>를 위한 새로운 적응 따위는 필요 없었다. 줄거리 역시 너무나 직관적. 이미 <아바타>의 엔딩에서 설리는 자신의 나비족 아바타에 정신을 이식, 아바타를 새로운 몸으로 삼아 판도라 행성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인간 과학자들이 적응을 위해 만든 나비족 아바타가 어찌나 완성도가 높던지 각종 운동능력은 물론이고 생식기능까지 완벽, 설리는 아내 네이티리(이 이름 기억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는 듯. 캐릭터 이름을 기억할 필요 없는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등장)와 아들 딸 쑴풍쑴풍 낳고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의 보고 판도라 행성을 기껏 개척해놓고 포기할 인류가 아닌 터. 그 전보다 확실한 준비를 갖추고 다시 침략자들이 밀어닥친다. 더구나 숙적 쿼리치 대령까지 지난번의 패배는 체력 격차 때문이었다고 판단한 듯, 나비족 아바타 몸을 새로 갖추고 달려든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수순. 쿼리치와 인간들의 1차 제거 표적이 자신과 가족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설리는 정든 할렐루야 마운틴을 떠나 멀리 멀리 새로운 곳에 숨는다. 그곳에는 해양 생태에 맞게 진화한 살짝 다른 나비족들이 살고 있다. 

4. 보시다시피 <아바타2>의 이야기 구조에는 큰 매력 포인트가 없다. 14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풀 떡밥은 <WAY OF THE WATER>라는 부제답게 끝없이 펼쳐지는 대양 생태계와 그 속에서 함께 헤엄치는 나비족들의 화려한 모습, 그리고 새로 도전해 온 인간들과의 치열한 전투 정도다. 그렇다. '볼거리'에 대한 만족이 <아바타2>에 대한 당신의 만족도를 결정한다. 그 밖의 것은 없다.

사실 많은 사람이 화질과 자연스러운 몸동작을 이야기하지만... 물론 아주 훌륭하다. 훌륭하긴 한데, 이미 많은 사람이 UHD와 4K 시대를 즐기고 있는 마당에, 이 정도의 영상이 과연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나 멋지다'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에서 20인치 브라운관을 보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기절할 정도의 놀라움은 아니었다 정도로 해 두자.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볼거리는 매우 훌륭하나, 2시간 72분을 버티기에는 살짝 아쉽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 타이타닉(?) 시퀀스는 좀 너무 길고 성의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아, 노파심에서 얘기하자면 이런 얘기들은 '그래서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님을 다시 한번 밝혀 둔다. 무조건 봐라. 극장에서 봐라. 가능한 한 큰 상영관에서 3D로 봐라. 이걸 다 전제로 하고 하는 얘기다. 이런 투정을 한다 해도 이건 그냥 가족간의 응석 같은 것일 뿐. 이번 생에 <아바타> 시리즈가 몇 편 더 나올지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어찌 안 보고 지나갈 수 있을까. 다 본다.

5. 카메론은 살짝 변했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가족애'를 좀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하며, 전 같으면 나비족 한 마을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초토화시켜도 모자랄 상황인데, 악당들이 지나치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하며... 너무 인자해진 메론이형이랄까.

이런 면모들을 볼 때 <아바타>의 속편이 몇편까지 만들어지든(일단 5편까지는 나온다 치고), 동화같은 해피엔딩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편에서 나비족은 모두 소수민족 배우들이 연기했던 반면, 이게 오히려 역차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나비족 역할에도 상당히 많은 백인 배우들이 투입된 점도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6. 애당초 <아바타2>는 2015년 정도에 개봉 예정이었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사실 누가 카메론 옹에게 일 좀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을 할 것이며,  카메론 형 입장에서 보면 몇달 사이에 더 좋은 기계와 더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는 판에 어느 단계에서 딱 끊고 완성작을 내놓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2편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3편은 좀 빨리 내주길.

아무튼 메론이형,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고 앞으로도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주세요!



P.S. 1. 사실 카메론 형은 흥행 못잖게 제작비 상한 파괴자로서도 1인자의 면모를 과시해왔다. <T2>때 최초로 제작비 1억불을 넘겼고 <타이타닉>에선 역시 최초로 2억불을 넘겼다. 그때마다 할리우드 최강의 스튜디오들이 드디어 우리 회사가 망하는구나 곡소리를 냈지만 그 곡소리들은 이내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아바타2> 개봉에 맞춰 카메론은 희한한 이야기를 했다. GQ 기자가 수지타산 이야기를 묻자 "영화 사상 최악의 비즈니스다. 이번 영화는 역대 3,4위권의 흥행을 기록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역대 1위가 <아바타>의 29억불, 4위가 <타이타닉>의 20억불 선인데. 이 말이 기사화되면서 "<아바타2>의 손익분기점은 흥행 20억불 선"이라는 소문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그런데 이 금액이 너무 어이없는 금액이다 보니 저게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아바타2>의 제작비는 최대 4억불 정도. 통상 손익분기점은 제작비+배급 비용+홍보비 정도에서 결정되는 것이 상식인데, 누가 뭐래도 이 제작비 외의 추가 비용이 16억불이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얘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추측한 바에 따르면,


1) 카메론이 <아바타2>를 통해 앞으로 남은 속편들의 제작비를 다 뽑기로 결심했다(카메론은 적으면 3편, 많으면 5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가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니까 다음 작품부터는 그냥 리스크 0인 상태에서 제작을 할 계획이다.  <- 사실 말이 안 되지만 카메론이 한 말이니 이런 의미일수도 있겠다 정도?

2) <아바타2>를 만들기 위해 특수효과나 그래픽 관련 기업들을 아예 카메론이 사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회사들의 인수비용을 모두 뽑을 생각이다. <- 역시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그중 나름 합리적인 해석.

3) 사실 <아바타2>의 제작비가 4억불보다는 꽤 많고, 카메론은 미국 국내 흥행만으로 흑자를 내 버릴 생각이다. <아바타>의 전 세계 흥행 성적은 29억달러로 역대 1위지만 미국 국내 흥행만으로 따지면 약 7억불 정도, 역대 4위권이다.  <-뭐 이것도 할리우드=세계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가능한 숫자...

4) 그냥 카메론의 과장법이다. <- ....충분히 가능

P.S.2. 그렇게 판도라 행성까지 가서 구하려고 다들 애썼던 암리타는 이미 지구에서 시판되어 팔리고 있다. 메론이형, 부디 이거 드시고 건강 지키시길. (AMRITA는 산스크리트어로 '불멸' '불사'라는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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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파이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를 '첩보물'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가 배신자인가' 혹은 '누가 진짜 스파이인가'를 찾는 이야기는 그 안에서도 별도의 장르로 분류될 정도로 인기 높은 소재입니다. 조직 내에 잠입해 우리편을 가장하고 있는 첩자를 영어로 두더지(mole)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장르를 두더지사냥(molehunt)라고 흔히 부르죠. 영화의 제목이 <헌트>인 것 역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케빈 코스트너의 <노 웨이 아웃>같은 거라면 당신은 옛날 사람... 네? <무간도>요? ;;)

<헌트>는 이 장르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이면서 탁월한 독자성을 갖춘 작품이고, 감히 말하자면, 한국 영화계가 이 장르에서 지금껏 만들어 낸 영화들 중 최고작으로 꼽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한국 영화에서 평균적으로 등장해 온, 너무나 밋밋하고 평면적인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불만이었던 관객이라면 <헌트>를 통해 그 갈증을 씻어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수트를 차려 입었지만 속은 일상처럼 서로 죽고 죽이던 칼잡이들 그대로인, 무사들의 시대를 <헌트>는 실감나고 설득력있게 그려냅니다. 

영화는 전두환 정권의 집권 3년차인 198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웅평 귀순, 소련 전투기에 의한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 그리고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등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져나온 파란만장한 그 해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권력 수호의 핵심이던 중앙정보부를 전두환 정권이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했지만 여전히 대외 첩보와 민간 사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던 시절이죠. 정권은 바뀌었지만 "당신들 누구야?" "남산에서 나왔다 이 새끼야!"는 그대로이던 그 때.

하지만 <헌트>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전두환, 노신영, 이웅평 같은 인물들의 실명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거나 아예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테러의 무대도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바꿔 버리고 사건의 내용도 '국가 원수 시해 음모'라는 핵심을 제외하면 실제 사건과 사실상 일치하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창작의 세계로 멀리 가 있죠.

아무튼 잠시 줄거리.

독재 정권 3년차의 안기부. 국내팀 담당 차장 정도(정우성)와 해외팀 담당 차장 평호(이정재)는 워싱턴에서 대통령 살해 음모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처리 과정에서 심하게 대립합니다. 서열상으로는 평호가 윗사람이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결코 편치 않은 사이.

특히 안기부 내부의 최고 기밀 정보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조직 상부는 내부 첩자를 파악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들 두 사람이 상대방을 견제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조사에 착수한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에게서 석연찮은 증거들을 발견해 냅니다. 

그렇게 해서 두 라이벌의 대결 속에서 '과연 누가 첩자일까'를 풀어가는 고전적인 구조.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 후반부에서 그 전형을 만들어 놓은, 두 라이벌 사이의 치열한 치고 받고를 중심으로 한 플롯의 핵심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기울지 않는 균형인데,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의 증언대로 이정재 감독의 솜씨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에서의 연출은 사실 배우로서의 연기와 따로 떼 놓고 생각하기가 힘들죠. 두 배우의 대결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화면 가득한 풀샷을 이겨내는, 잘 늙은(?) 두 남자의 투샷은 매우 아름답고 만족스럽습니다. 정우성 역시 농익은 연기가 그만입니다. 



이정재 감독은 시나리오 수정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들었는데, 그 완성도가 놀랍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두 남자는 그저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선을 그을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란 면에서 감탄을 자아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한국의 1980년대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파악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흑과 백, 양 극단 사이에 두터운 회색 층이 있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이나 미국이라는 변수들까지 감안하면 계산은 매우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그 뒤,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 사회의 관찰자들은 처음엔 흰색이나 희뿌연 회색으로 보였던 수많은 점들이 당시에는 선명한 검은 색이었던 점들보다 더 검게 보이게 되곤 하는, 기묘한 변화를 목격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커버하고 있는 시대는 그런 시대였고, 오히려 주인공인 두 남자는 그런 시대에 나름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지, 혹은 그 '배신'과 '충성' 사이의 어느 쪽이 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지. 영화는 분명 흥미진진한 오락 영화지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아무튼 누군가 <헌트>에 대해 '먹물들이 더 좋아할 영화'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는데, 제가 어쩔 수 없는 먹물 취향이라면 그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복잡한 생각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적이면서 또 동지이기도 한 두 남자의 경쟁과 협력(?) 이야기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감히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에 비견할 만한 멋진 영화가 드디어 한국 영화사에도 등장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놓치지 말고 보시길. 

 

P.S.1. 올 여름,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했는데, 정작 최고의 캐스팅을 감춰둔 건 이 작품이었습니다. 유재명 주지훈 황정민 정경순 조우진 박성웅 등 어지간한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이 거의 제대로 된 대사 한마디 없는 역으로 스쳐가듯 등장합니다. 감독님의 캐스팅 실력 실로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베스트는 진짜 귀순용사같았던 그 분. 

P.S. 2. 저분의 귀순을 환영하기 위해 그해 4월 여의도에서 열린 환영대회에 130만명이 몰렸다고 하는데, 그 130만명 중 한명이었다는 옛 기억이 문득.... (비가 부슬부슬 오던 그날, 10KM는 걸은 듯. 절대 자진해서 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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