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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회 청룡영화상이 20일 개최됩니다. 물론 경쟁 매체의 행사지만 이 정도면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건 다 접어 둔다 해도, 여자 MC가 김혜수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행사보다는 30점 정도 가산점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시상식의 규모나 수준에서 볼 때 한국 영화 시상식 중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의 수고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올해는 이 불황의 그늘이 영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시상식이 가까워지고, 후보들이 발표되면 누가 상을 받을지에 관심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과연 올해는 누가 트로피를 안고, 누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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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 수상자는 시상식 직전에나 결정되는게 관례이니 아직 모든 후보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게 좋겠지만, 이럴 때 밖에서 수상자를 점쳐 보는게 국외자들의 재미죠. 그래서 이번엔 하루 전인 19일, 순전히 재미로 수상자를 한번 찍어 보겠습니다.

물론 저라고 무슨 특별한 정보를 갖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냥 관객의 입장과, 다년간 이 영화제를 지켜봐 온 경험으로 찍을 뿐입니다.^^ 나중에 진짜 결과가 나왔을 때 너무 많이 틀렸다고 타박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은 청룡영화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겁니다. 한줄씩 가져오느라 좀 길어졌습니다. 혹시 깨진 글자가 거슬리는 분들은 사진을 클릭하면 크고 선명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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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 사실 시상식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할 부분이지만 작품상이 맨 위에 올라와 있군요. 이제 와서 다시 순서를 바꾸기도 귀찮으니 그냥 이 부문부터 생각해 보렵니다.

소거법을 써서 일단 먼 후보부터 제외하면서 줄여 보겠습니다. 우선 개봉 시기가 먼 작품들은 수상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세븐 데이즈'와 '우생순'은 그런 의미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추격자'도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이미 대상을 수상했으므로 좀 뒤쳐지는게 정상인데 올해는 좀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남는 작품이 '놈놈놈'과 '크로싱'인데, 두 작품 모두 정상적인 경우의 수상작들과 좀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특히 '놈놈놈'이 작품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좀 힘듭니다. 돈을 건다면 '놈놈놈'에 20, '추격자'와 '크로싱'에 40씩을 걸겠습니다. 딱 한편만 찍으라면... 고민 끝에 '추격자'.

(사실 어느 해나 이변은 있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론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살인의 추억'을 제치고 청룡 작품상을 받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 틀렸을 때를 대비한 탈출로 확보 차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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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일단 나홍진 감독이 신인감독상 부문으로 빠진 게 변수입니다. 올해의 경우 감독상은 작품상 부문의 2위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에 좀 복잡합니다.

아무래도 작품상은 아니더라도, '놈놈놈'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볼 때 '놈놈놈'의 화사한 화면이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김지운 감독을 찍겠습니다.^ 어떤 경우든, 올해 작품상과 감독상을 한 작품이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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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후보가 여섯이 된 데서 주최측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추격자'에서 김윤석과 하정우, '놈놈놈'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정우성은...).

이런 점에 역점을 두고 볼 때 일단 김주혁과 설경구의 수상 가능성은 떨어진다 보겠습니다. 근접성의 원칙에 따르자면 아무래도 '놈놈놈'이, 연기의 밀도로 보면 '추격자' 쪽에 자연스럽게 점수를 주게 됩니다.

후보를 먼저 줄여 보면 '놈놈놈'에서는 송강호, '추격자'에서는 김윤석이 한발 앞서 있다고 봐야겠죠. 양쪽 모두 수상해야 할 이유에서는 백중세. 하지만 송강호가 지난해 드디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한풀이를 했다는 점에 눈길이 갑니다. 결론은 조심스럽게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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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일반적인 시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기를 뽑자면 단박에 공효진과 수애가 눈에 들어옵니다. 김윤진과 문소리는 근접성이 떨어지고, 손예진도 연기만 놓고 보면 훌륭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전통적으로 청룡상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닙니다.

작품의 규모로 보면 수애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청룡영화상의 연기상 부문은 가끔씩 의외의 선택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2004년 '아는 여자'의 이나영같은 깜짝 수상이 이뤄질 때가 있어서 대단한 백중세로 예상합니다. 아무튼 공효진 수애 둘 중에서 굳이 찍으라면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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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 엄태웅과 임원희를 일단 제일 먼저 빼겠습니다. 정경호도 아직까지는 후보에 오른 걸 영광으로 여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1감으로는 '영화는 영화다'에서 감독 역을 기가 막히게 뽑아 낸 고창석이지만, 시상식이 원하는 '얼굴'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죠. 그래서 박희순이 살짝 유리해 보입니다. 청룡상이 이제껏 유지했던 '시상을 통한 스타의 발굴'이라는 관점에서도 박희순에게 표를 던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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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조연상. 여기서도 우선 김미숙과 박시연은 피하게 됩니다. 나머지 세 사람 중 사실 김해숙은 반칙입니다. '무방비도시'의 진짜 주인공은 손예진이나 김명민이 아니라 김해숙이기 때문입니다. 주연상 후보로 올라가야 마땅한 배우가 조연상에 들어 있다는 건...^

아무튼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 김지영과 김해숙, 서영희 중 누가 수상자가 되어도 이유는 충분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달렸죠. 일단 '영화상'의 순결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화배우'의 이미지가 강한 서영희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유동근이 한때 남우조연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이미 중견 배우이던 장동건이나 배용준도 영화배우로서 신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전통적으로 조연상은 영화계를 오래 지킬 새로운 얼굴에게 주는 게 보통입니다. 서영희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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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신인상. 아마도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분야일 겁니다. 이 영화상이 장동건과 배용준에게 준 상이 이번엔 소지섭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명도 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이제는 인정해줄만 하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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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인상. '거물'과 '진짜 신인'의 싸움이군요. 한예슬에겐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수상이 약간 부담이 될 것이고, 서우와 황우슬혜는 같은 작품에서의 경쟁이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수상자들을 고려해 볼 때 한예슬과 황우슬혜로 과감하게 압축. 근접성의 원칙에서 황우슬혜에게 조금 더 점수를 주는게 그리 부당한 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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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상. 사실 소지섭보다 조금 더 쉬운 예측이겠죠. '영화는 영화다'와 '미쓰 홍당무'의 높은 완성도가 안타깝지만, 나홍진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서 빠진 이상 신인감독상을 다른 사람이 받는 건 정말 이변 중의 이변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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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주요 부문을 예측해 봤습니다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예측일 뿐입니다. 설마 심사위원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뀌실 분은 안 계시겠죠.^^ 혹시 이 글에서 본인이 수상자가 아니었다고 해서 시상식을 불참하거나 하는 분들도 없길 바랍니다. 이거 그냥 장난이라니까요.

여러분도 같이 찍어 보셨습니까? 그럼 진짜 수상 결과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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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와 대표적인 우익 인사로 꼽히는 원로 작가 이문열씨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문열씨는 미국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요즘 우익에 자살골을 넣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지만원씨는 "지적한 내용으로 보아 나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좌경 방송이 내 발언의 요지를 왜곡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나를 매도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문열씨의 사과로 대략 마무리가 된 듯 합니다.

이 사건에서 누가 잘못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의 일들을 눈여겨 보니 대체 자살골이란 게 어떤 것인지는 잘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니면 이번 사태가 지만원씨의 사상적 커밍아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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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의 홈페이지(http://www.systemclub.co.kr)에 올라온 수많은 문근영 관련 글들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혼동을 막기 위해 지만원씨의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은 모두 파란 색으로 표시합니다.)


'다음'에서 류낙진 검색어를 치니 동영상이 뜬다. 내용은 예측한대로였다.

문근영은 얼굴 예쁘고, 연기 잘 하고, 마음도 예쁘고, 집안까지 훌륭하니 엄친딸에 딱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의 여동생이고, 그녀의 외조부는 통일운동가, 작은 외조부는 민주화투사, 외삼촌과 이모도 경찰 조사를 받을 반큼 애국자라는 뜻으로 선전을 한다.

빨치산은 통일운동가이고, 빨치산 가족은 집안 좋은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하고 엄친딸을 키운 집안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빨치산 집안은 아주 훌륭한 집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빨치산들의 심리전이며, 문근영의 선행이 선전되는 것만큼 빨치산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는 선전도 동시에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저들은 문근영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놓고 빨치산에 대한 혐오감을 희석시키고,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근영과 신윤복 프로를 띄워주는 조중동은 이런 심리전에 착안하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문양의 선행을 문제 삼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녀의 선행을 등에 업고 "보아라 문양은 훙륭하다. 그런데 그 가문은 빷치산 가족이다. 빨치산이란 통일운동가이고, 그래서 문양의 가문은 명분가문(좋은 집안)이다" 이렇게 선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만원씨를 이렇게 분노하게 한 것은 와이텐이라는 인터넷 방송사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방송 내용에 분명히 '....집안도 좋고, 엄친딸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이 나오긴 나옵니다.



뭐 그런 방송을 보셨다면 흥분하시는게 어쩌면 우익 인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비쳐 보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조직적인 심리전'이며 '조중동도 현혹되어 있다'고 주장하시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게다가 다음 부분은 한 단계 위의 상상력을 볼 수 있게 합니다. 바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속에 숨어 있는 좌익의 음모(!)에 대한 내용입니다.


갑자기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을 띄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띄워서 기존의 정통사관을 뒤집는 것이며, 사회 저항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역사에 기록된 인물, 신윤복은 기록되지 못한 인물이다. 기록된 이승만, 기록되지 못한 김구, 기록된 박정희와 기록되지 못한 장준하. 주몽을 통해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는 등의 심리전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최근 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신윤복 신드롬도 이런 차원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한다. 패자의 역사를 정사로 만들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것이다.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 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띄우는 것' = '좌익의 심리전' 이군요. 이 분의 다른 글을 보면(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바람에 퍼올 수 없었습니다),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배우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과격한 발언으로 논란을 유발시켰던 김민선이라는 것 역시 거대한 음모의 일각을 보여주는 증거인가봅니다.

'미인도'와 '바람의 화원'을 살펴보다가 신윤복 역을 맡은 두 여배우를 보고 "하나는 빨치산 손녀, 또 하나는 '청산가리',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다 증거가 드러나잖아!"라고 발견의 기쁨을 느끼신 듯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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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물론이고 전혀 역사에 기록된 바 없는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한 '대장금' 역시 대단한 좌경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허준 역시 별로 기록된 바가 없군요. '허준'도 좌경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좌경 색채가 강한 '대장금'같은 드라마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한국은 좌경 이념을 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선도국가였군요. '주몽' 외에도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려 했던 '태왕사신기'며 '바람의 나라', 곧 방송될 '자명고' 역시 좌경 드라마라는 굴레를 벗기 힘들 듯 합니다.

차라리 사극을 아예 금지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글에서는 또 문근영과 다른 의인들을 비교합니다.



(전략: 앞부분은 동아일보 광고 취소사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문근영 Vs. 다른 의인들

이 세상에는 평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러는 언론에 발표되지만 대부분은 오직 자신과 하늘만이 알고 넘어 간다. 일생을 바쳐 나병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오웅진 꽃동네에 가서 온갖 궂은 일들을 묵묵히 해내며 일생을 바친 사람들,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있으면서도 산동네를 매일 다니면서 세상이 외면한 인생들을 보살피는 사람들 등등 하늘만 아는 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다. 이들은 언론들을 장식할 만큼 화려하게 큰돈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돈보다 더 귀중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지난 2001년 일본 유학 중인 이수현씨가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졌다. 그 후 일본인들은 해마다 그를 초무하는 행사를 진행해 왔고, 2006년에는 영화가 제작되어 10주간 연속 박스오피스에 오를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일본과는 정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 이틀 기사로 뜬 후 이내 잠이 들었고,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도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을 것이라며 수입이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2006년 05월 25일에는 또 다른 지하철 의인이 일본에서 탄생했다. 한국 유학생 신현구씨(27세), 선로에 넘어져 있는 여학생을 보고도 승강장에 있던 20여 명 정도의 일본인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는 거침없이 뛰어 내려 여학생을 구했다 한다. 한국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타인을 살려내는 의로운 선행들이 많이 있었지만 크게 기사화되지는 못했다.

그 다음의 의인들은 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를테면 빌케이츠 같은 사람들이 그가 가진 돈의 일부를 헐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해도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것은 빌게이츠 유의 의인들보다 한층 더 하기 어려운 의로운 선행이다.

얼른 과거의 기사를 몇 개 찾아보았다.  2002.05.30에는 40대 초반에 막 접어든 젊은 의사가 모교에 6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내놔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대구시내 중심가인 중구 삼덕2가 삼성안과의원 이승현(41), “그는 또 5년전부터 경북 군위·고령군 등 산골마을에 한 달에 한 번씩 무료진료,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수술, 부정기적으로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의 봉사와 기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04.19.에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80대 노인이 건국대에 장학금을 기탁해 화제”라는 기사가 있다.

2008.4.15.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할머니가 노년에 갑자기 손에 쥐게 된 토지보상금을 연세대에 찾아가 장학금으로 과감히 기탁했다”는 기사가 있다.

2008.8.14.에는 류근청 박사가 자식들에게는 돈 한 푼 안주고 모두를 털어 578억원을 KAIST에 기탁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이야기도 하루 이틀 언론에 뜨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문근영이 6년간 8억5천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사실은 위와 같은 의로운 선행 중 어디에 속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문근영의 선행은 위의 선행과는 달리 파장이 아주 크다. 조중동까지 나서서 문근영을 띄우고, 다음에서는 전달력이 매우 큰 동영상까지 만들어 이상한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가 연일 문근영을 띄우더니 오늘(11.17)은 동아일보에 “제2의 문근영 자주 보고싶다”는 제하의 시론이 실렸다.(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익명의 기부자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자 누리꾼들은 ‘이름 없는 천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문근영씨.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 씨였다. 누리꾼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의 선행을 미화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뜬  동영상과 글들은 선행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종의 음모를 연출하고 있다. 문근영은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마음씨가 아름답고, 출신(광주)도 좋고, 외할아버지가 통일운동가이고, 작은 외할아버지와 외가 식구들이 민주화운동가라 집안이 좋으니 엄친딸(엄마친구 딸, 가장 이상형이라는 뜻)의 전형이라는 메시지요, 비전향장기수 빨치산을 통일 운동가로 승화시키고, 광주와 김대중을 함께 승화시키는 메시지인 것이다.      

문근영의 선행, 이 하나만을 놓고 보면 참으로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며 기부의 모범으로 칭송할만하다. 그래서 그녀를 칭송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는 필자를 매우 이상한 꼴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꼴통, 꼴통이라는 의미는 고정관념에서 편집증 환자처럼 색깔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꼴통이라는 필자는 선행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선행과 선행을 띄워주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띄워주는 행태와 띄움에 내재한 숨은 메시지를 문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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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요약하면 다른 의인들도 많은데, 그 분들은 그리 화제가 되지 않았다. 문근영을 지속적으로 띄우는 데에도 음모가 숨어 있다는 얘기 되겠습니다.

물론 - 그래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팔순 할머니 기부왕보다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여동생이 알고 보니 익명의 기부왕이었다는 것이 훨씬 더 화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라 죄송합니다.)

아마도 지만원씨가 문제삼은 동영상보다, 지만원씨의 글이 훨씬 더 '빨치산의 손녀이며 좌익 선동의 정수인 문근영에 대한 호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과연 지만원씨가 흔히 말하는 '고도의 **'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합니다. 대체 지만원씨는 어느 쪽 편 일까요?

지만원씨는 17일 밤부터 시작된 수많은 보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해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해명이 잘 됐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문근영에 대한 문답
 
 

문1: 지만원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문양의 선행에 대해 문양 집안의 좌익이념을 문제삼아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는 구시대적 연좌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답: 어제부터 인터넷과 언론들은 저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확산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만원은 기부 문화에 찬 물을 끼얹은 사람이다.

둘째, 지만원은 아름다운 기부자를 빨치산 가족이라며 문제를 삼으면서 색깔을 씌우고 있다.

셋째, 지만원은 악풀의 진원지다.

이 모두가 거짓 모략입니다. 좌익세력에 의한 인민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행위에 딴지를 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기부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부행위를 등에 업고 빨치산 집안을 미화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기부 기사가 나온 11월13일부터 대다수 인터넷 매체들에는 문양의 외조부에 대한 기사가 도배돼 있었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보고 비로소 외조부 류낙진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빨치산 생활과 감옥생활로 채웠더군요. 그런데 도배된 글들의 대부분은 문양의 외조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라, 문양은 훌륭하다. 문양의 외조부가 통일운동가다. 빨치산 가문은 명문가다” 이런 식으로 표현돼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인터넷 방송 why 10 news의 11월14일자 동영상이었습니다. 좌익이 아닌 이상 이 동영상을 보고 어찌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문양의 기부행위에 감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선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좌익들이 벌이는 심리전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2: 문근영 양의 외조부와 식구들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답: 저는 문양의 외조부가 빨치산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11월14일, 갑자기 인터넷에 도배된 글들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글들의 대부분은 외조부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만 올린 것이 아니라 “문양의 가문이 통일운동가문이자 민주화 가문이고 그래서 명문가다” 이런 글들이었습니다. 저는 빨치산 기문이 명문가라는 표현들을 문제삼은 것이지 선행에 딴지를 건 것이 아닙니다. 악풀의 진원지라는 말은 모략인 것입니다.

문3: 문양에게 전신적 고통을 주고, 불우이웃돕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동이 아닌가요?

답: 결과적으로 문양의 입장에서는 서글프고 속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양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문양의 아름다운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왜곡하는 불순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들 역시 이런 불순세력, 플러스, 일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언론들이 제 글과 인터넷 글들을 비교하여 정확한 기사를 쓰지 않고 인민재판으로 지만원이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고, 악풀의 진원지라고 매도한 것입니다. 언론들은 어째서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을 미화한 불순세력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런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저를 공격하는 것이지 참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언론왜곡이 매우 심각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5년 3월 SBS방송이 "지만원이 강연에서 위안보 할머니들에게 은장도로 자살하라 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허위였지요. "은장도로 성을 지키던 시절에 국가는 아녀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위안부들의 울굴을 정치목적으로 거리에 내돌리지 말고 국가가 먼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왜곡한 것입니다. SBS는 언론중재위의 권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인사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면 되느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판사가 써준 대로 정정과 사과의 의미가 드러 있는 보도를 하라고 했는데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3천만원 손해배상청구를 했지요. 2천만원 승소판결이 나왔습니다. 공정을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들이 어러면 되겠습니가? 이렇게 사람 잡는게 언론의 현실인 것입니다.

문4: 문양에 대해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 가운데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나요?

광화문 폭력 시위를 옹호하고 경찰을 매도하는 네티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들이 사상적으로 건전합니까?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문양의 선행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선행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가 왜 딴지를 걸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선행을 격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선행을 배경으로 빨치산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이 사상적으로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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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사랑의 연탄 5만장 북한에 전달(2004년 북한 직접 방문)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409200439

문근영 불법 이적단체에 거금 지원(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08)

영화배우 문근영씨(18)가 최근 타계한 외조부 류낙진옹의 부의금 전액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 전달, ‘통일기금’으로 써 줄 것을 당부했다. 부의금의 액수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낙진의 묘비문: "통일애국열사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7152



이상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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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퀀텀 오브 솔러스' 리뷰를 쓸 때 제목을 '로저 무어가 그립다'고 달았는데, 이 탄식이 멀리 영국에까지 들린 모양입니다. 로저 무어 경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씀 하셨군요. "본드 무비가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해 슬프다(I'm sad that it has turned so violent)."

사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읽다 보니 아직 '퀀텀 오브 솔러스'를 안 보셨다고 합니다. 뭐 '카지노 로열'은 보신 모양이니 그 톤은 대략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아, 그리고 제목에 낚여서 '퀀텀'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내막은 지난 4일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얘기더군요.

아무튼 꽤 흥미로워서 본문을 옮깁니다.

당연히 녹색 부분은 제가 덧붙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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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저 무어는 보다 폭력적인 본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Roger Moore dislikes the more violent Bond movie)

현대 관객들은 왕년에 로저 무어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007 역을 맡았던 시대와는 달리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잔혹한 장면을 기대한다. 최소한 로저 무어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그 역할을 해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토록 폭력적이 된 걸 보니 슬프더군요." 무어는 북미지역에서 금요일 개봉하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어둠의 007로 나오는 '퀀텀 오브 솔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게 시대와 보조를 맞춘다는 거죠. 그게 바로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일테고, 박스 오피스 수치로 드러났잖습니까." 무어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내 말이 곧 내 본드(My Word is My Bond)"라는 자신의 회고록에 대해 말했다. (11월4일 출간됐군요. 알고 보니 인터뷰는 책 광고!)

런던에서 10월31일 개봉한 '퀀텀'은 2500만 달러의 흥행으로 영국의 주말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깼다. 전 세계에서는 1억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81세의 무어는 지난 1985년 자신의 7번째이자 마지막 007 작품인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을 촬영할 때 폭력 신에 진저리를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본드답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저서에서 무어는 자신이 10대 시절 BB탄으로 한 친구의 다리를 맞힌 이래로 총을 싫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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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때에는 본드가 좀 더 터프해지길 원했던 가이 해밀턴 감독이 본드가 정보를 얻기 위해 본드걸 모드 아담스의 팔을 꺾으며 부러뜨린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연기하게 했다. 무어는 "그런 종류의 캐릭터 설정은 나하고는 영 맞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는 내가 연기하는 본드가 좀 더 무자비해지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썼다.

"나는 '내 스타일의 본드'는 그녀를 먼저 침대에 데려감으로써 정보를 빼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의했다. 내 스타일의 본드는 연인이고, 익살을 떠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가이에게 동의했다." (물론, 이 팔 꺾는 장면도 '침대'에서 이뤄지죠.^^)

무어는 아직 '퀀텀 오브 솔러스'를 보지 않았지만, '카지노 로열'을 근거로 짐작할 때 이 영화 역시 북미 지역에서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니엘은 본드 영화를 한 편 찍었고, '뮌헨'에도 출연했다. 여러 가지 역할을 했지만, 본드 영화를 한 편 찍은 뒤에는 그가 원하는 것 모두가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그가 바로 본드다."

배우 인생을 통해 본드 역이나 TV 시리즈 '세인트', 혹은 토니 커티스와 공연한 '전격대작전(Persuaders)'에서의 역할에 의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데 대해 무어는 "나는 아마도 위대한 리어 왕 역이나 햄릿 역의 배우들 중 하나로 기억되기를 바랐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나는 본드 역을 맡은 덕분에 대단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 전격대작전이 뭐지? 하는 분들을 위한 참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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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비망록은 비비안 리, 메이 웨스트, 라나 터너 등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스타들과의 일화로 가득하다. 그는 또 '뷰 투 어 킬' 을 촬영하다가 그레이스 존스와 사이가 벌어진 사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녀가 듣는 시끄러운 음악에 질린 그가 그녀의 오디오 전원을 빼 버리고 벽에다 의자를 집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뭐 원래 터프하셨군요.)

런던 남부 지역 경찰관의 독자로 태어난 무어는 2차 대전 이전의 성장 과정과 전쟁 중의 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시골로 피난 갔다가 공습을 당한 사연, 또 태어나 첫 직업으로 만화영화 제작사에 취직했다가 해고당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징집됐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그는 연합군 점령하의 독일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제대할 때 그는 육군의 연예병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쇼 비즈니스계 입문이었고, 이 무렵 그는 영국 가수 도로시 스콰이어스와 결혼했다.

"자네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그러니까 (무대에) 들어설 때 활짝 웃으라고!" 그가 처음 무대에 설 때 레퍼토리 시어터(전속 극단이 있는 극장을 의미함)의 매니저가 한 말이다. 사실 이 말도 프로 스케이트 선수 출신인 첫 아내가 한 말보다는 훨씬 나았다.

"당신은 결코 배우가 될 수 없어. 얼굴이 너무 떨어져. 턱은 너무 크고, 입이 너무 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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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충격적인 코멘트의 주인공이자 둔 반 스텐(Doorn Van Steyn)과 로저 무어. 정말 보송보송합니다. 디카프리오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원문입니다. 보러 가시기 귀찮은 분들도 있을테니. (오역 지적 환영)

Roger Moore dislikes the more violent James Bond
Tuesday November 11 12:45 PM ET
http://movies.yahoo.com/mv/news/va/20081111/122643635200.html

Movie audiences nowadays expect scenes of graphic violence in James Bond movies, unlike when Roger Moore played the super spy with a tongue-in-cheek humor, the actor believes. "I am happy to have done it, but I'm sad that it has turned so violent," Moore said before "Quantum of Solace," starring Daniel Craig as a darker Agent 007, opens in North America on Friday.

"That's keeping up with the times, it's what cinema-goers seem to want and it's proved by the box-office figures," Moore told Reuters in an interview about his memoir, "My Word is My Bond." The new Bond film opened in London on Oct 31, breaking the British weekend box-office record with a gross of $25 million. It has taken in more than $106 million worldwide so far.

Moore, 81, recalled being appalled at the violence in "A View to a Kill," the 1985 movie which was the last of the seven in which he played Bond. "That wasn't Bond," he said. In his book, Moore writes of his distaste for guns, ever since he was shot in the leg by a friend with a BB gun as a teenager.

While making "The Man With the Golden Gun," director Guy Hamilton wanted Bond to be tougher and had him threaten to break Maud Adams' character's arm to get information, he writes. "That sort of characterization didn't sit well with me, but Guy was keen to make my Bond a little more ruth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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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uggested my Bond would have charmed the information out of her by bedding her first. My Bond was a lover and a giggler, but I went along with Guy," the British actor wrote. Moore has not yet seen "Quantum of Solace," but based on Craig's first Bond film, "Casino Royale," believes it will be a success in North America too.

"Daniel has done one Bond and he was in 'Munich' and ... he's done a lot of stuff, but his face, after one Bond film, that's all he needs. He is Bond."

Asked about his own legacy as an actor known mostly for playing Bond and in TV series such as "The Saint," and "The Persuaders," with Tony Curtis, Moore said: "I would love to be remembered as one of the greatest Lears or Hamlets. But as that's not going to happen I'm quite happy I did Bond." His memoir is full of anecdotes about Hollywood and the stars he worked with such as Vivien Leigh, Mae West and Lana Turner. He also tells of his bust-up with Grace Jones during the filming of "A View to a Kill," when he forcibly pulled the plug on her stereo and flung a chair against the wall because she was playing loud rock music.

The only child of a south London policeman, Moore also writes about growing up before and during World War Two, of evacuation to the country and air raids and getting -- and being fired from -- his first job with a cartoon film company. By the time he was called up, the war was over, but he served as an officer in Allied occupied Germany, where he ended up in the Army's entertainment regiment. That was his entree into show business, along with his marriage to British singer Dorothy Squires.

"You're not that good, so smile a lot when you come on!" his first repertory theater manager told him. His first wife, who was a professional ice skater, was no less encouraging: "You'll never be an actor, your face is too weak, your jaw is too big and your mouth's too 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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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경, 1927년 생이고 젊은 날을 온갖 고생으로 보낸 뜻에 '세인트'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하지만 '세인트' 때문에 007 역을 션 코너리에게 넘겨주고, 결국 1972년에서야 제 3대 본드로 취임합니다. 이후 7편의 007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죠.

로저 무어의 본드와 션 코너리의 본드는 섹시하고 유머러스하다는 면에서는 기본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각론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코너리의 본드가 가끔 야비하고 잔혹하게까지 보이는 냉철함을 깔고 있는 반면 무어는 철저하게 느끼할 정도로 유들유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무기로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미 본드 역을 맡을 때 45세였던 무어에게는 이언 플레밍의 007이 요구하는 액션을 소화하기엔 무리여서 '결국 지나치게 특수장비에 의존하며 007의 순수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세인트'나 '전격대작전'을 봤다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본래 무어와 액션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무어의 본드는 사이먼 템플러(세인트)나 싱클레어 경(전격대작전)과 사실상 똑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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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시절의 모습입니다. 007이나 세인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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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본드 무비 가운데 최악은 아마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일 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문 레이커'죠. 역시 '정통' 007 팬들은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한때 007 팬 사이트에서 '최고의 007 영화' 1위에 뽑히기도 했죠. 취향이 워낙 엇갈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겁니다.

아무튼 제게는 이 분이야말로 최고의 007입니다. 물론 코너리 옹이 멋지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이 분의 능글능글함을 당할 사람이 앞으로도 누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시 조지 클루니?) 가장 멋진 본드걸도 이 분 시절에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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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유어 아이즈 온리'의 캐롤 부케입니다.

작품 목록은 하나 있어야겠죠?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 1973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Gun 1974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 1977
문레이커 Moonraker 1979
포 유어 아이즈 온리 For Your Eyes Only 1981
옥토퍼시 Octopussy 1983
뷰투어킬 A View to a Kill 1985

기회 되시면 책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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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퀀텀 오브 솔러스'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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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카지노 로열'이 끝난 뒤 약 30분 뒤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베스퍼 그린의 죽음 뒤에 감춰진 베일 속 인물 미스터 화이트를 체포해 달아다는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그의 부하들과 숨가쁜 카 액션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문제의 조직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강력하며, 훨씬 정교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손 대는 것마다 모두 죽여버리는 죽음의 천사 본드가 날아간 곳은 아이티. 여기서 본드는 친환경 기업 경영자로 포장된 악당 도미닉 그린(마티유 아말릭)과 복수를 위해 그에게 접근한 카밀(올가 쿠릴렌코)을 만나게 됩니다. 본드는 그린을 뒤쫓지만, 그린은 이미 미국과 영국 정부에게 유력한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 그에게서 손을 떼라는 명령이 내려오지만 본드가 그런 사소한 명령 따위에 얽매일 리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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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야 거대 조직의 이름이 '퀀텀 오브 솔러스'라는 걸 가르쳐 주는 이 작품은 매우 이색적인 본드 영화입니다. 21편 혹은 22편에 달하는(23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 007 시리즈 전편 중에서 앞 편의 내용에서 그대로 이어 시작하는 경우는 이 영화 한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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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007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반대자들로 떠들썩했지만 그가 주연한 '카지노 로열'이 흥행에서 대성공을 기록하면서, 반대의 소리는 쑥 들어갔습니다. 어떤 본드 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와 '카지노 로열'의 방향이 이언 플레밍과 초기 본드 영화의 근원에 다가간 것이라며 옹호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옛날 블로그에서 오래 전에 펼쳐졌던 그 본드 논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얘기가 - 제임스 본드가 왜 제이슨 본을 추종하고 있느냐는 주장을 비롯해서 - 전혀 새롭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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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본드의 2탄, '퀀텀 오브 솔러스'는 액션 영화로서 매우 훌륭합니다. 액션이 좀 지나치게 정신없긴 하지만, 액션에서 액션으로 건너 뛰는 솜씨는 매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너무 자주 권총도 아닌 주먹다짐이 등장하는 점을 포함해 대부분의 액션 시퀀스가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는(굳이 제이슨 본을 다시 들먹이지는 않겠습니다)게 좀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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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두드러진 단점도 있습니다. 두 명의 본드걸이 출연하지만, 예전의 본드걸들에 비해 너무 초라합니다. 특히 본드와 하룻밤을 보낸 뒤 '골드핑거'의 오마주 신에 등장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영국 배우 젬마 아터튼은 여러 모로 실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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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본드걸이라고 할 수 있는 올가 쿠릴렌코 역시 영화 속에서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복수에 눈이 먼 아이큐 25짜리 캐릭터를 원망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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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에서 쿠릴렌코가 연기하는 카밀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본드가 너무 빨리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도록 다리를 거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106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러닝타임이 그렇게 짧았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그리 탄탄하지 않은 플롯을 감안할 때 러닝타임을 줄인 제작진의 과감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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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저는 크레이그가 주도하는 새로운 본드 시리즈에 적대적입니다. 아마도 지금껏 로저 무어가 최고의 본드라고 생각하고, 로저 무어 시절에 성장해 다 큰 뒤에 션 코너리의 본드 영화들을 역사책 보듯 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레이그 옹호자들은 크레이그의 스타일이 초창기 코너리의 스타일('위기일발' 이전까지의 액션형 본드)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이언 플레밍이 묘사한, 해사한 미중년이 아니라 오른쪽 뺨에 상처가 있는 현장 요원형 본드에 더 어울린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기존의 본드와 크레이그 본드의 결정적인 차이는 유머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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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걸 다 떠나서 유머 감각이 없는 본드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퀀텀'에서 본드는 단 한 차례 유머를 구사하더군요. "우리는 교사들인데 로또에 맞았소." 위기에 닥쳤을 때 찡그리고 인상을 쓰는 것이 과연 본드일까요? 여기에는 정말 동의하기 힘듭니다.

옹호자들은 또 말합니다. 새로운 본드는 이제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그 본드가 완성될 때(아마도 다음 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예전의 본드가 갖고 있던 아우라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하지만 지금 본드 제작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그저 돈다발일 뿐입니다.

그 '새로운 본드'라는 것은 이미 '카지노 로열' 때 다 드러났지만, 제이슨 본과 '24'의 잭 바우어를 합쳐 놓은 듯한 잡종 액션 영웅일 뿐입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나오는 본드도 존중할 의미가 있겠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본드는 20여편의 영화를 통해 자리잡은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사실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본드도 있고, 저런 본드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 본드의 모습도 바뀌곤 하는 게 정상이겠죠. 저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레이어 케이크'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주연급 배우의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스티브 맥퀸 팬 중에서 과연 스티브 맥퀸이 007 역으로 나왔을 때 환호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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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플레밍이 가장 강력하게 밀었던 본드는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왔던 전형적인 영국 신사 데이비드 니븐이었습니다. 물론 플레밍도 '위기일발'에서의 코너리를 보고 극찬을 했지만, 이건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코너리가 자신이 니븐에게서 기대한 요소들을 연기해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크레이그가 코너리나 니븐이 보여줬던,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에서도 연미복을 차려 입고 "그래도 아직 담배 필 시간은 있겠지?"라고 말하는 식의 여유와 유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해선 매우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크레이그의 본드 시리즈가 흥행에 줄곧 성공하는 한 이런 기대를 채워줄 또 다른 본드의 출현은 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말 것 같아 더욱 아쉽습니다.

이런 본드는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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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지 않는 이 007은 영화 속에서 새로운 칵테일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스폰서 중 하나인 세계적인 보드카 메이커 스미르노프는 이 칵테일을 '베스퍼'라고 부를 모양입니다. 성분은 15ml Smirnoff Black Vodka, 45ml Gordon’s Gin, 7.5ml Lillet 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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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이라고는 하지만 40도짜리 술들의 조합이니 스트레이트를 먹는 거나 비슷하겠군요. 이걸 6잔 마셨으니 67.5 x 6 = 405 ml. 700ml짜리 위스키를(안주도 없이) 반병 이상 마신 셈이었네요. 주당 인정.




p.s.2. 로저 무어 경이 또 한 말씀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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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도 과거의 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아직 66세면 한창 나이인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암'이 사인이라니,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20세기 후반 세계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영상물로 만들어졌고, 많은 부분에서 그는 소설가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5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8편은 직접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최소한 원작의 힘 만으로도 그의 성과가 무시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의 상상력이 개발한 새로운 세계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죠.

조상하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으니 당연히 제가 아는 작품들 위주의 얘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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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크라이튼은 하버드와 캠브리지대에서 수학했고, 1969년 하버드 메디컬 스쿨을 거쳐 의학박사(M.D)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대단한 경력이죠. 'E.R'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6피트 9인치(2.06m)의 키는 의사로서는 너무 큰 키였다고 생각했는지, 작가로 변신합니다.

최초로 영상화된 그의 작품은 1971년작(모두 영화 기준) '안드로메다 위기(Andromeda Strain)'입니다. 외계로부터 온 미지의 유기체가 과연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연구하는 미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비상 대책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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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책으로 읽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외계로부터의 이런 위협에까지 대비하는 매뉴얼과 설비를 갖춰 놓고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그것도 1969년이라는 태고적에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은근히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끼어듭니다. (그리고 소설이 나온 1969년은 크라이튼이 메디컬 스쿨을 졸업한 해인데, 의대를 다니면서도 이런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 역시 놀라웠습니다.)

아무튼 무대가 좁은 실험실 하나인데도 전편 내내 긴박감이 넘치게 하는 문체는 일품이었습니다. '안드로메다 위기'는 올해 TV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방송됐더군요.

그 다음으로 제가 기억하는 작품은 1973년작 '웨스트월드(Westworld)'입니다. 70년대의 어느날 2부작으로 나뉘어 한국 TV에서 방송된 적이 있기에 TV 시리즈인줄 알았는데 극장용 영화였더군요. 크라이튼의 극장판 감독 데뷔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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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첨단 로봇 기술을 사용, 관광객이 14세기의 영국 기사도나 서부 개척시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꿈의 성인용 놀이공원 웨스트월드에서 시작됩니다. 관광객들은 자기 마음대로 중세의 기사가 되거나 서부의 총잡이가 되어 살인과 섹스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컴퓨터가 폭주하고, 놀이공원은 살육의 현장으로 돌변합니다.

로보트 총잡이로 나오는 율 브리너의 무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작품.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넋을 잃고 두 시간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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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80년대의 남성 섹스 심벌이었던 톰 셀렉이 주연한 '런어웨이(Runaway, 1984)'입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정식 수입도 되지 않은 1985년 서울 노량진의 한 다방에서였습니다. 당연히 자막도 없는 비디오로 봤지만 충분히 즐길만 한 활기찬 액션 영화였습니다. (나중에 더빙된 TV 방송때 보니 좀 지루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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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선 곧바로 1993년의 '쥬라기 공원'으로 넘어갑니다. 소설이건 영화건 이 작품에 대해선 굳이 더 보탤 말이 없겠죠. 그의 경력의 절정이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 사이 살짝 감춰져 있는 것이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 1993)'이라는 영화입니다. 사실 서구인의 시각으로 동양인을 보는 작품은 동양인들이 보기엔 어색할 때가 많죠. 전자제품 수출로 제2의 진주만 공격을 노리는(?) 일본인들의 음모에 션 코너리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맞서 싸우는, 좀 어정쩡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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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그의 원작 영화화는 미친듯이 진행됩니다. 마이클 더글러스, 데미 무어의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묘한 우화 '폭로(Disclosure, 1994)', 회오리바람(tornado)을 쫓는 과학자들 이야기 '트위스터(Twister, 1996)도 이때 영화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최악의 졸작은 1995년작 '콩고(Congo)'죠.

원작 소설 콩고는 구 콩고 지역의 밀림 속에 감춰진 황금의 사원을 우연히 발견한 탐험대와 유적을 지키는 놀라운 수호자들(고릴라라고 말해도 재미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사이의 대결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스릴러의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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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재미있고 박진감넘치는 원작을 갖고 코미디도 아니고 액션도 아닌, 어정쩡하고 한심한 영화가 나와 버린 거죠. 당부를 하나 하자면, '콩고' 원작을 보신 분은 절대 영화를 보지 마시고, 둘 다 안 본 분은 그냥 소설만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작을 이렇게 망쳐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냉정하게 말해 크라이튼의 영화는 '쥬라기 공원' 1편에서 끝났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시리즈의 2, 3편도 그렇고, 그 뒤에 나온 '13번째 전사(13th Warrior)'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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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역시 권하고 싶은 것은 소설 쪽입니다. 중세 베오울프 전설에 대한 참신하고도 신비로운 해설에다 아랍 문화의 흔적을 섞은 크라이튼의 솜씨가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크라이튼이 직접 나선 영화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죠. 아마도 이 시기의 크라이튼은 'ER'에 너무 힘을 많이 기울인 듯 합니다.

2003년의 '타임라인'은 영화와 원작 모두 기대 이하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타임 슬립 액션이었고, 캐릭터도 진부하기 그지없었으니 당연히 흥행에서도 대패했죠.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웨스트월드'의 리메이크와 '쥬라기 공원' 4편의 제작이 한창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가는 건 당연히 '웨스트월드'쪽이죠. 첨단 CG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더 강력한 영상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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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자나 크라이튼 옹이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셨다니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군요. '타임라인' 이후로는 신작을 보지 않았는데 이제 유작인 셈인 '공포의 제국(State of Fear)이나 읽어 봐야 할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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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로 추정되는 시대. 중국 북서쪽 변방의 한 요새를 지키던 장군 왕생(진곤)이 유목민족과의 전쟁터에서 미녀 소유(주신)을 데려온 이후부터 성 안에서는 심장을 도려낸 시체들이 잇달아 발견됩니다.

왕생의 아내 왕부인(조미)은 소유를 의심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소유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죠. 이때 왕부인을 사모하던 도법의 달인 방용(견자단)이 성으로 돌아오고, 우연히 여우 요괴를 쫓던 항마사 하빙(손려)과 마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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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피(畵皮)'의 원죄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열 중 일곱 사람은 '천녀유혼'을 떠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녀유혼'의 영어 제목이 Chinese Ghost Story라는 데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제목은 영화 한 편의 제목이라기보단 하나의 장르 이름으로 어울릴 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 이후로, '중국의 미녀 귀신'을 소재로 한 아류작들이 끝없이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화피'와 '천녀유혼' 사이에는 일단 똑같은 '요재지이'에서 원작을 뽑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녀유혼'도 마찬가지지만 '화피' 역시 원작의 이야기는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남자가 미녀를 집으로 데려와 첩으로 삼고 희희낙락하는데, 길에서 만난 도사가 "당신 지금 혼이 빠져나가고 있어. 그냥 두면 오래 못 살아"라고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고 나니 정말 건강에 이상이 생기죠. 그러다 우연히 문틈으로 미녀가 가죽을 벗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가죽에다 그림(화장)을 그리고 있는 걸 목격합니다. 뭐 그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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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피' 제작진은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외로운 변방의 장병들과 요괴, 무림의 고수에다 심지어 요괴를 사모하는 다른 요괴(아마도 천년묵은 도마뱀 정도로 추정되는)까지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로 바꿔 놓았습니다.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공간과 요괴의 습격이라는 주제는 고전 공포영화 '더 씽(The Thing)'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가 초반 도입부에서 방용과 하빙이 등장하기까지 약 40분이 지나면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사건이 해결되건, 주인공들이 요괴에게 죽음을 당하건 뭔가 결론이 지어 져야 할 시점이죠. 하지만 이야기는 16부작 드라마처럼 지지부진하게 한참 동안 방황합니다.

정리는 커녕,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동안 '말하자면 주인공'인 왕생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내 패용에 대한 사랑과 소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방황이나 그 방황 과정에서 필연처럼 따라다니는 패용의 오해와 절망이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관객의 짜증 역시 필연처럼 따라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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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불행히도 이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천녀유혼'과 비교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서극-정소동-장국영-왕조현이라는 황금의 멤버들이 만들어낸 역작 '천녀유혼'을 가슴 한 구석에 담은 관객에게 있어 '화피'는 우울하고 조악한 복제품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나아진 것은 CG 가술 뿐인데, 그나마도 영화에 대한 평가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 관객의 인내심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피'는 중국어권 영화의 위기를 대변해주는 듯한 작품입니다. 지난 2006년 이후 중국 영화 거장들이 줄줄이 내놓는 대작들 중 도대체 이거다 싶은 영화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죠.

풍소강의 '야연'과 '집결호', 진가신의 '명장(投名狀)', 장예모의 '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 정소동의 '연의 황후(江山美人)', 심지어 오우삼의 '적벽대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무협 액션과 결합된 스펙터클만 살아 있을 뿐, 따분하지 않은 영화를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한마디로 내러티브의 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볼거리만 있고 뭘 봤는지 기억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영화들의 범람은 결국 중국 영화의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게 자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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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올림픽 개최로 떵떵거리는 외형을 과시하면서도 속으로는 엉터리 분유 파동으로 갓난아이들이 죽어가는 중국 내정의 현실을 영화계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2005년작인 진개가(첸카이거)의 '무극', 서극의 '칠검하천산', 당계례-성룡-김희선의 '신화'까지 올라가 봐도 한숨만 짙어질 뿐입니다. 뭐가 문제인지, 깊은 반성이 필요할 듯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얘기하기엔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너무도 허술합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두 스타 여배우의 모습 정도군요. 물론 거기에도 차이가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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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생 동갑인데도 조미의 얼굴에서 이제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반면('적벽대전'과 비교해 볼 때 이 영화의 조미는 3년 정도는 더 나이들어 보입니다. 의도된 분장인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주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한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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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런 모습도 미녀 요괴의 기준이 된 이 분과 비교하면 어쩐지 초라해지고 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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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녀 요괴를 사모하는 도마뱀 요괴 소이(小易) 역의 척옥무. 어쩐지 연정훈을 연상시키는 얼굴이라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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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왕조현과 '천녀유혼'의 전설이 그리우신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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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홍조증이란 약간의 감정 변화, 심지어 약간의 온도 차이만 느껴도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변하는 증세를 말합니다. 이것이 일종의 병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갖가지 치료 방법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피부병이나 마찬가지로 '절대 죽을 병은 아니지만 완치도 되지 않는' 증세인 듯 합니다.

안면홍조증에다 외모 컴플렉스가 심각하고 스토커 기질을 보이는 여주인공. 대체 이런 주인공을 누가 만들어 낼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어떻게 이런 주인공을 가지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미쓰 홍당무'는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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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피부과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양미숙(공효진)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여중 영어교사인 미숙은 고교시절 스승이자 이제는 같은 계열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종철(이종혁)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철에게는 아내(방은진)와 미숙의 제자인 딸 종희(서우)가 엄연히 있죠. 게다가 예쁜 얼굴에 백치미 넘치는 동료 교사 유리(황우슬혜)와 종혁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사실까지 알아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처를 받고 '소주 한 잔'으로 쓰라린 속을 달래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강함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즉 '네가 아니면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이 어디 없을 것 같냐'는 생각이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양미숙은 그런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기상천외의 독특한 해결 방식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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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독창적이고 싱싱한 캐릭터들입니다. 양미숙 같은 캐릭터라면 주변이 어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건, 왕따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겁니다. 늘 피해의식과 암울한 자기만의 상상에 갇혀 있고, 늘 기괴한 자기만의 해결 방식을 고집하면서 자기는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는데 왜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의아해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괴짜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거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일상은 엉망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서서히 그 주변을 피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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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숙은 이런 괴짜의 매커니즘을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누구라도 마음속 깊숙한 곳에 조금은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캐릭터에게 마음을 열기도 쉽지만, 또 한편으로 양미숙은 누구도 똑바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바보같은 면을 증폭시킨 캐릭터이기 때문에, 너무 심하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양미숙은 그 사이의 선을 적절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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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의 적'으로 묘사되는 이유리 선생은 언뜻 공주병의 흔적과 함께 '왜 다들 나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식의 백치미가 돋보입니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착한 공주' 스타일이기도 하죠. 이런 캐릭터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진짜 예쁘기 때문이기도 하고(안 예쁜 공주는 매장당하기 십상이죠), 또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선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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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겉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전따(전교 왕따)가 되어 있는 종철의 딸 종희. 자신이 친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깊은 컴플렉스를 안고 있습니다. 아무튼 본질적으로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영혼(요즘 여중생 중에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이가 몇명이나 있을까요?)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위 아이들과는 거리가 생깁니다.

볼수록 내공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인데다 그 역할을 맡은 공효진, 황우슬혜, 서우는 모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듯한 호연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혼연일체라고나 할까요.

이런 인물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나오는 이경미 감독의 솜씨 또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캐릭터에 곧 스토리가 담겨 있고, 스토리가 캐릭터를 다시 보여주는 데 있어 너무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솜씨 때문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정말 비교되는 올해의 영화는 바로 '놈놈놈'입니다. 2차원의 스토리와 2차원의 캐릭터가 그나마 따로 따로 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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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유머감각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만화에서 곧바로 실사영화가 된 듯한 장면들이 관객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미 유명해진 "러시아 어로 라이터를 섹시하게 말해봐!" 장면을 비롯해 영화를 보는 내내 심심함을 느낄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말은 '영화라는 건 메시지가 있어야지!'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만족시킬만 합니다. '왕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하는 건 사회적 패자(loser)들을 다루는 영화에서 너무 자주 등장해 진부하게 느껴지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왕따와 왕따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더군요. 그걸 보여주는 방법도 매우 독창적입니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엄청난 대박은 아니지만 이런 영화를 알아보고 호응하는 관객이 꽤 있다는 것도 한국 영화의 희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한마디로 알이 꽉 찬 꽃게를 쪄서 쪽쪽 빨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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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양미숙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는 코트. 자세히 보면 영화 마지막의 고교시절 단체사진 촬영 장면에서, 종철의 옆에 선 (그리고 아마도 종철이 귀여워했을) 여학생이 입은 코트와 같습니다. 미숙의 뿌리 깊은 열등감을 표현해줍니다.

또 학교 축제 장면에서는 교장선생님의 복장을 그대로 코스프레한 여학생이 교장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얼핏 지나갑니다. 특정 장면에서 유리 선생의 구멍난 원피스도 웃음을 자아내죠. 한마디로 배경 하나에도 제작진이 신경을 썼다는 증거가 역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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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유리 선생 역의 황우슬혜는 연극 경력이 탄탄한 82년생, 종희 역의 서우는 중학생 역이지만 88년생으로 20세입니다. 사실 서우의 '엽기성'은 '옥메와까'라고 불리는 빙과 CF에서 익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고정관념을 깨 주는 CF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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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 사이트로 열리면서 참 여러가지로 역사가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역사상의 인물들을 한번씩 검색해 보는 재미도 있고, 거기서 가끔씩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하지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좀 힘든 사람들입니다. 왕조실록은 아무래도 왕과 근신들에 의한 통치행위에 대한 일기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한 화공들이 다뤄지기엔 좀 무리가 있죠. 하긴 연산군일기에는 '왕의 남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공길이란 광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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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검색 결과. 우선 '신윤복'을 검색했지만 영-정조대에 신윤복이란 이름의 인물과 관련된 기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실망.

하지만 김홍도는 달랐습니다. 일단 첫번째 기록은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8월 26일(병신)의 기사로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申漢枰) · 김홍도(金弘道) 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신한평은 바로 신윤복의 아버지죠. 그럼 김홍도와 신윤복이 알고 지냈을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해집니다. 아들이었건 딸이었건(^^) 이렇게 어진을 함께 모사할 정도의 사이라면 어려서라도 보긴 봤겠죠. 이때 김홍도는 36세의 한창 나이입니다. 기록대로 신윤복이 1758년생이라면 이때 23세로군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은 두 차례 더 나옵니다. 저 기사가 나오고 바로 다음달인 9월 3일(임인),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김홍도에게 어용을 그리게 하다'라는 기록이죠. '희우정(喜雨亭) 에 나아가 승지·각신을 소견하였다.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화사(畵師) 김홍도(金弘道) 에게 어용(御容)의 초본(初本)을 그리라고 명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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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은 창덕궁의 후원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마포구 합정동에도 희우정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 희우정은 아니겠죠.

아무튼 14년 뒤인 정조 19년(1795년) 정월 연풍현감 김홍도에게 재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물으라는 공론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화공으로 출세해 현감 벼슬까지 누리고 있었지만 정사에는 그리 밝지 못했던 듯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김홍도 관련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 화가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실록에 이름이 세번이나 오르내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신윤복은 물론이고 조선 3대 화가로 거론되는 안견 역시 단 한번 이름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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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는 지난주부터 화산관 이명기라는 당대의 유명 화가가 등장했습니다. 김홍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드라마에 흥미를 더 할 인물이죠.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초상화의 1인자로 불리던 이명기는 생몰연대가 불분명하지만 1791년 어진화사를 맡았고 1795년 김홍도와 함께 '서직수 초상'을 합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시대의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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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직수 초상. 오른쪽에 '얼굴은 이명기가, 몸은 김홍도가 그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명기가 등장하고 보면 아쉬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긍재 김득신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게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득신의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위트있고 서민적인 화풍이 매우 닮아 있죠.

가장 대표적인 그림, '파적도(破寂圖)'입니다. 일명 '야묘도추(野猫盜雛: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고도 하지요.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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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생으로 김홍도보다 9세 연하, 신윤복보다는 4세 연상인 김득신은 이처럼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한 탁월한 화가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자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1712년생인 최북입니다. 최산수, 최칠칠이라고도 불리는 최북은 상당히 광화사의 표본 같은 인물이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는 최북은 호방한 성품으로 널리 친구를 사귀고, 금강산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관에 취해 물에 빠져 죽겠다고 시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 질 정도로 기인의 풍모가 깃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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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회에 안경을 쓴 김홍도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는데, 최북이야말로 눈을 다쳐 줄곧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1786년 술을 마시고 길에서 객사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인데, 이 드라마가 현재 조명하고 있는 시기가 정조의 즉위초인 1770년대 말에서 80년대 정도라고 할 때,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는 인물인데 좀 아쉽습니다.

최북의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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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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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렸던 이 그림은 제목이 같은 겸재 정선의 '한강조어도'였습니다.


아무튼 '바람의 화원'으로 인해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나자나 간송 미술관은 10년 전에 가 보고 못 가봤군요. 어떻게 좀 더 넓고 시설 좋은 곳으로 옮기면 안될지 참 궁금합니다. 리움 정도의 시설이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말입니다.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문근영.



다음은 왕년의 박신양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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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심 많고 매력적인데다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의 열혈 팬이라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여자. 다소 소심한 회사원 덕훈(김주혁)은 자신만을 위해 창조된 것 같은 인아(손예진)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지만 인아는 길들일 수 없는 여자입니다. 어떻게 한번에 한명만 사랑할 수 있느냐는 자유연애 신봉자인 인아를 결국 포기하지 못한 덕훈은 결혼으로 인아를 묶어 두려 합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아가 '남편 하나를 더 두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죠(이건 제목에 있는 내용이니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아내를 다른 남자와 나눠 가질 위기에 놓은 덕훈. 과연 덕훈은 어떻게 이 위기에 대항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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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의 베스트셀러 '아내가 결혼했다'는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과 드라마 제작자들이 탐냈던 작품입니다. 원작이 그냥 인기만 끈 게 아니라 상당히 논쟁을 유발할만한 흥미로운 줄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서술형의 제목을 들은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 글의 제목처럼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또 결혼해? 그런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너 죽고 나 죽자고 결판을 봐야지!" 그래서 이 영화를 보던 어떤 사람은 분을 식히기 위해 극장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더군요.

물론 뻔히 남편을 두고 있는 여자가 다른 남편을 갖겠다고 주장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나 원작 소설을 두고 말이 되는 걸 따지는 건 바보 짓이죠. 워낙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그 줄거리에 공연히 집착하다간 이 작품이 정작 하고자 하는 얘기를 놓쳐 버리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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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남녀 관계를 연결해서 묘한 공통점을 이어가는 원작은 실상 두 가지 얘기를 독자에게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일처제라는 현재 문명국의 보편적인 제도가 인류의 전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영원한 것이지도, 다른 제도에 비해 타당한 것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전제로 한 도덕률이나 민법 조항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에 우선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굳이 폴리아모리(polyamory)를 옹호하는 건 아니죠.

두번째는 첫번째 주장만큼 선명하지는 않지만 남들의 가정, 특히 부부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어 표현에는 skeleton in the closet이라는 것이 있죠. 좋은 얼굴을 하고 사는 남편이 사실 집에서는 바람을 피우는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만한 고민은 차라리 별 것 아닌 편이며, 정작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은 아예 남들에게 털어놓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 영화 속의 김주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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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작품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어거지와 목청 높이기의 시대에 관용과 역지사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덕훈이 인아를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인아가 너무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지만, 그밖에 인아가 하는 말을 자신의 논리로 공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덕훈이 폭력이나 욕설을 동원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부정한다면 그건 또 다른 영화나 소설이 되겠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원작이 다져 놓은 길을 충실하게 가고 있습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좋은 이야기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화=재창조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어설프게 손질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단 칭찬할 만 합니다. 정윤수 감독은 비록 흥행에선 쓴맛을 봤지만 전작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서 남녀 사이의 끈끈한 말장난에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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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영화가 소설의 판박이인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서 남편 덕훈의 상상으로 그려지던 부분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데 비해 영화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말을 그려 줍니다. 아무래도 '흐지부지'를 싫어하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을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캐스팅은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자는 '작품에 비해 너무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여러 인터뷰에서 "소설 쓸땐 인아가 왜 그렇게 매력적인지, 덕훈이 왜 인아를 떠나지 못하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영화를 보니 손예진의 웃음 하나로 모두 설명이 되어 버리더라. 영화가 소설에 비해 유리한 부분"이라고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소감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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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마따나 손예진의 매력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상황이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시사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손예진이라면 1/4이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손예진이 취향 밖인 분들한테야 별 수 없는 얘기겠지만 말입니다. 역시 이 배우에게는 '무방비도시'보다는 이런 모습이 더 어울립니다.

김주혁도 최고 수준의 개인기를 보유한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합니다. 축구로 비교하자면, 김주혁은 순식간에 서너명을 제치고 대포알같은 캐논킥을 터뜨리는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혼전 속, 상대 수비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 안에서 슈팅 각도를 확보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골을 뽑아내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가 딱 좋아하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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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 외에 다른 배우에 대해서는 굳이 할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습니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거의 모든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라면 내수는 물론이고 한국 영화가 만들어낸 훌륭한 수출용 상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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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손예진의 노출에 대한 일부 기사들은 낚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노출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요즘 중학생들도 코웃음을 칠 수준이고, 유일하게 '노출'이라고 부를만한 장면은 대역이라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납니다. 물론 그 장면을 제외하면 손예진이 직접 촬영한 건 맞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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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다, 라는 말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섬유나 암석 등의 질감을 표현해주던 것이 어느새 사람에게로 옮겨 와 그 전까지 '퉁명스럽다', '싸늘하다', '냉랭하다', '딱딱하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냉소적이다' 등으로 표현되던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까칠함이 하나의 매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을 통해서 그렇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아직은 좀 힘들 지 모르지만, 최소한 드라마든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든, '까칠한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물론 눈치채셨겠지만 이 까칠남들은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요즘 인기 좋은 까칠남의 선두 주자로는 바로 이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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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박', '하박'이라고 불리는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님입니다.

하우스 박사의 까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 전문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한쪽 다리에서 여전히 주기적인 통증이 밀려와 진통제를 사탕처럼 와작와작 씹어 먹고 다니는 사람이 신경질적이 아닐 리가 없겠죠. 그런데 신경질을 뿜어도 참 머리를 써서 뿌려댑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한 2초 정도 생각해야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High Sense of Humor를 담고 있죠. 물론 유머는 유머이되 매우 뒤틀려 있습니다. 내장이 꼬여도 힘 좋은 아낙네 둘이 열심히 빙빙 돌린 홑이불 빨래만큼 꼬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여인네들이 세상에 널렸습니다. 오래 전의 드라마들에 나오던 주인공들처럼 내면은 사실 따뜻하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워낙 많이 받은 터라, 혹은 알게 모르게 불치병의 소유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행여 자신에게 정을 줬다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악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못됐고 진짜로 꼬인 심성의 소유자인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단 다른건 다 몰라도 그의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라는 데서 찾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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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이라면 애저녁에 보따리를 싸서 달아났을 그의 수하 의사 세 사람이 악착같이 하우스의 곁에 붙어 있었던 것도(물론 지금은 다 떠나 있지만) 그의 탁월한 실력과 경험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 흔한 얘기로 '위급상황에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인간성 좋은 의사보다는 못됐더라도 실력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기도 하죠. 아무튼 하우스 박사를 인기남으로 남아 있게 하는 건 우선 그의 뛰어난 실력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바이크도 잘 타는 그의 다양한 개인기, 마지막으로 한번 싫으면 무작정 싫다는 단순한 태도가 다소 어린애같은 면을 보여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한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 더 보탠다면 TV에선 냄새가 안 난다는 점을 꼽아야겠죠. 하우스의 스타일을 보면 대체 옷을 언제 갈아입는지, 머리는 감는지 궁금합니다. 자연 냄새가 풀풀 나겠죠. 하우스의 '수려한 용모'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순전히 여성 시청자들에게만 수시로 일어나는 전형적인 캐릭터의 음덕 현상(캐릭터의 매력이 배우의 외모로 전이, 본래 그 배우가 잘 생겼던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가까이는 생쥐 아빠일 때, 멀게는 로완 애킨슨과 공연했던 영국의 걸작 고전 코미디 '블랙애더'(요즘 BBC 위성채널에서 일요일 오전마다 틀어주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본 사람이 휴 로리의 외모에 대해 높이 평가할지는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하우스 박사님의 인기가 유일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오만 개성질 다 부리기의 고수 고든 램지 선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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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수면 난 파바로티다 스타일의 인간 말종 스타일 사이먼 코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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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픽션 속 인물로 돌아가 정말 싸가지없는 강마에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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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강마에씨가 자꾸 착해지는 바람에 드라마의 재미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시청자들은 강마에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계속 못되게 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하박사님을 포함해 이런 캐릭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뭘 조언을 하건, 남들의 약점을 짚어 내건 틀리는 법이 거의 없죠.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게다가 이 사람들은 모두 솔직 담백면에선 확실한 믿음을 줍니다. 남들처럼 돌려서 얘기하는 법을 아예 모릅니다. 램지나 코웰은 나름 꿈을 안고 온 도전자들에게 "실력도 없는게 왜 여기서 시간낭비 하고 있어? 얼른 딴데 가서 알아봐"라며 쏘아붙입니다. 강마에씨야...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최고의 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당한 매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라고 해서 실생활에서도 그 흉내를 내거나, 저런 캐릭터로 보여서 이성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참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라고 쓰고 보니 거의 똑같은 기사(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335317)가 이미 나와 있더군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포스팅을 한 시간이 10월12일, 링크의 기사가 나온 건 14일입니다 - 베낀 건 아니란 뜻입니다.

아무튼 확 지워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길게 쓴게 아까워서 그냥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하의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까칠한 캐릭터들에게 열광하는 이유, 일단 그들이 잘났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런 캐릭터들이 통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둘째, 그게 자기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V 속 강마에를 보면서 깔깔 웃던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이 속엔 뭐가 들었을까, 똥.덩.어.리"해도 웃음이 나올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실생활에서 저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독설을 정면으로 받는다면 아마 안색이 변하고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끼얹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사람들이 저런 캐릭터를 좋아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닐 때까집니다. '남들이 당할 때'와 '내가 당할 때'의 차이를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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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위의 캐릭터들은 모두 허구 속의 존재들입니다. 저들의 완벽함은 실생활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나 강마에는 픽션 속 인물이니 당연한 얘기고 램지나 코웰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램지도 고기를 설익히거나 수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코웰 또한 정말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를 못 알아볼 수도 있겠죠. 이들 역시 방송 속에서만 전지전능합니다. 방송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들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고 말 겁니다.

물론 실생활에서도 '상당히' 까칠한데 '상당히' 인기 있는 사람들은 꽤 있죠.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틀림없이 까칠하지만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까칠한게 통한다'는 착각으로 이 아저씨들의 흉내를 내시려는 분이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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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좋지만 남들의 기대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제리(샤이아 라보프)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계좌에 75만달러라는 거금이 입금된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잠시 후 들어간 자취방에는 첨단 무기가 가득 쌓여 있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30초 안에 달아나지 않으면 FBI가 덮친다. 어서 달아나"라고 말하는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여자 목소리.

이 목소리를 무시한 제리는 엄청 곤욕을 치릅니다. (이상은 예고편에 나오는 장면) 알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리는 그의 명령에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고,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목에 나오는 '이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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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곧 자신처럼 이글 아이에 의해 조종되는 싱글맘 레이첼(미셸 모나한)을 만나고, 군 수사관 페레스(로자리오 도슨)와 FBI 수사관 모건(빌리 밥 손튼)은 그들을 뒤쫓으면서 이름 모를 강력한 손을 느끼게 됩니다.

D.J. 카루소 감독은 히치코크의 모든 작품을 현대판으로 개작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걸까요? 샤이아 라보프가 출연한 전작 '디스터비아'가 '이창'의 현대판이듯 '이글 아이'는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의 현대판이라고 감독 자신이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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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에 나오는 악당들은 '이글 아이'에 비하면 정말 어린애 장난 수준입니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전지전능하지도, 모든 것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도 못했죠. 공통점이라면 그저 죄 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오인돼 쫓겨 다닌다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당연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첫 손에 꼽힐 겁니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 스타일의 악당, 즉 모든 네트워크와 감시 수단을 이용해 상대를 추적하는 대 악당에 의해 위기에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로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만한 작품이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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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그러고 나서 보니 포스터까지 비슷하군요.^^)

그럼 '이글 아이'는 대체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사실 대단한 고민이었을 겁니다. 웬만한 극적 장치나 도구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거의 다 써버렸거든요. 실제로 이 영화의 액션에서 대단히 참신한 장면은 아예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스피드는 확실히 빨라졌죠. 이 스피드 역시 상당 부분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로 단련된 관객에게 이 영화에 나왔던 시퀀스를 다시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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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글 아이'는 스스로 새로운 착안을 하기 보다는 아주 쉽게, 또 한편의 고전 영화를 가져다 계란 후라이처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위에 얹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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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샤이아 라보프의 캐릭터를 관리하는 데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라보프는 '인디애나 존스 4'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성질만 좀 덜 급한가요?). 위기에 몰려도 위트를 잊지 않는 젊은 인디애나 존스라고나 할까요. 라보프의 연기력이 발전한 것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글 아이'에서는 훨씬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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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액션 블록버스터에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 빌리 밥 손튼은 그 이유로 무척 신선해 보입니다. 반면 로자리오 도슨은 커리어 관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또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역인데다 빛도 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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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미셀 모나한도 여러 모로 좀 실망입니다. 라보프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들어 보이기 때문에 남녀 주인공 사이의 연애 감정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거의 주지 못합니다. 대본상의 문제지만 이 캐릭터는 그냥 아들 구하기에 정신이 팔린 무뇌아 여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 3에 나왔을 때에도 이미 실망스러웠죠.

많은 리뷰어들이 플롯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수많은 하이테크 블록버스터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특별히 문제가 많은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신선한 발상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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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말이 안 되는 장면이 많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 한 식상한 요소들이 전편의 내러티브 내내 발견된다는 점이 더 문제죠. 쌍둥이 발상 같은 건 좀 헛 웃음이 나오게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교훈은 아무리 훌륭한 배우들과 엄청난 특수효과 팀, 그리고 시나리오 다듬기의 귀재들이 모여서 영화를 만든다 해도, 결국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에 당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인식시킨다는 정도입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예고편을 매우 속도감 넘치게 잘 만들었고, 영화 전체에서도 속도감이 돋보인다는 점 정도입니다. 안 그랬으면 대단히 지루했겠죠. 다행히 영화는 두시간 정도 즐기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 면에선 대본에 비해 연출력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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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 E'에 이어 이 HAL의 눈을 또 보게 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던 이 분은 이 영화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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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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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는 친일파 갑부의 아들 이해명(박해일)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부임 온 검사 친구 신스케(김남길)와 함께 재즈 클럽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 난실(김혜수)의 춤과 노래를 보고 푹 빠져버립니다. 난실의 선심을 사기 위해 그가 일하는 양복점에서 수십벌의 양복을 맞추는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어느날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 사무실에서 폭발해버립니다.

당연히 혼비백산한 해명.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난실을 찾아다닙니다. 그 과정에서 난실이 쓰는 이름만도 로라, 나타샤, 난실 등 여러개라는 사실을 알아버린데다 남편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뒤에도 난실에 대한 해명의 집착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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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날뛰는 해명 역의 박해일은 영화 '모던 보이'의 상징입니다. 모던 보이란 1930년대의 유행어로, 꽤 전에 사용되던 말로는 '오렌지 족' 정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는 적당한 대체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강남 뺀질이' 정도 되려나요('엄친아'와는 좀 다릅니다). 아무튼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줄인 '모뽀(당시의 공식 표기는 모단 뽀이)', '모걸'은 당대의 유행어였습니다.

영화 카피에는 '경성 최고의 플레이보이'라고 표현됩니다만, 이건 영화 속 해명의 '자칭'일 뿐이지 사실 해명의 캐릭터를 놓고 저렇게 인정해 주기는 좀 힘듭니다. 너무 촐삭대기 때문이죠. 이런 캐릭터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긴 하지만, 실제로 저렇게 경박한 타입이 최고의 플레이보이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플레이보이의 절대적인 조건이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라는 점임을 생각하면 해명은 일단 그 계열에서는 열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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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두고도 말들이 좀 있었습니다. 의상이야 요즘도 통할 멋진 복고풍의 댄디한 스타일이지만, 머리 모양은 다소 해괴하거든요. 이 머리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당대 최고의 모던 보이로 통하던 시인 백석의 헤어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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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월북시인이란 이유로 한국 문학사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했던 백석은 그 시절 '문단의 3대 미남'으로 통했다는군요. 물론 이것도 백석의 '자칭'이라는 주장이 있고 보면 '모던 보이'의 해명은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행태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셈이 됩니다.

1912년생으로 평안도 정주 출생인 백석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할 정도의 엘리트였습니다. 1937년이면 25세의 한창 나이.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백석은 전혀 주요 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정지용도 마찬가지였죠) 들어본 시라고는 바로 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보고 '아주 특이하고 희한한 시'라서 기억이 나는 정도죠.

그렇다면 백석의 연인인 나타샤는 누굴까요. 기록에 따르면 이 시가 나오던 1938년, 백석은 제자의 여동생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을 겪습니다. 비록 엘리트이긴 했지만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기생 자야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점에서 감점을 당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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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또 다른 기록에는 백석의 진짜 연인은 바로 이 기생 자야이며, 이 자야는 서울 성북동에서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동해 으리으리한 요정을 그대로 절집으로(현재의 길상사) 시주한 인물입니다.

자야에 호의적인 기록에 따르면 백석은 기생과의 연애를 끊으려는 부모에 의해 세 차례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달아나 서울에 있던 자야에게 갔다는 주장입니다. 어쩐지 위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죠.

그런데 또 다른 기록에는 제3의 여인인 '란(蘭)'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을 만난 것은 자야나 제자의 동생보다 먼저인 1934년이라는군요. 당시 기자였던 백석은 이화여전 재학생이던 란을 만나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뭐 그 1년 뒤에 자야를 만나고, 또 얼마 뒤에 다시 란을 만나고, 만주로 가서는 이름모를 기생 출신과 동거하다 아들도 낳고, 그 뒤에 또 다른 아내로부터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드문 드문 보입니다. ...시인의 사랑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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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백석을 모델로 했다기엔 해명은 또 너무 순정형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일단 난실에게 한번 빠지고 나니 직장이고 현실이고 고문이고 모두 나몰라라입니다. 심지어 엉겁결에 '열사'가 될 뻔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정지우 감독의 오랜 주제이기도 합니다. '해피엔드'에서 '사랑니'를 거쳐 '모던 보이'에까지 이르는 동안 세 영화는 모두 저항할 수 없는 매혹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파멸에 이르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닫죠. 연하의 매력남 때문에 아기의 엄마라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넘어선 전도연, 연하남과의 야릇한 사랑에 빠져 뭐든 다 내팽개칠 수 있게 된 김정은, 그리고 이번엔 난실에 빠져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게 된 박해일과 그 해명에게 빠져 자신의 사명을 잊을 지경이 된 김혜수까지.

(우연히 정지우 감독에게 이 일련의 주제에 대해 말하니 '말을 듣기 전까지 그렇게 묶을 수 있다는 걸 정말 몰랐다'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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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의 '매혹'은 나무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였던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순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명을 유혹에 빠뜨리는 난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해명에게 빠지는 난실 쪽이 더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아무튼 두 배우의 연기는 따로 떼놓고 볼 때 그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그리 짙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 다음의 불만은 좀 더 관객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해도, 영화의 많은 부분은 코미디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관객을 편히 웃게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관객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는 웃기 힘들죠. 영화 전반부의 흐름을 보다 쉽고 선명하게 했더라면 좀 더 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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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던 보이'의 장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30년대의 사진첩을 선명하게 HD 화질로 복구한 듯, 그 시절 경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아울러 해명을 탈 시대적인 인물로 그려낸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주얼 면에서 '모던보이'는 역대 한국 영화가 이뤄낸 성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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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김혜수가 부르는 몇 곡의 노래들 역시 매혹적이더군요. 물론 '개여울'의 가사는 김소월의 시지만 노래는 1970년대 정미조가 취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배경과 절묘하게 어울려 떨어집니다. 일본어 노래 역시 실제 그 시대의 노래가 아니라 그 시대 음악의 분위기를 살린 트리뷰트 곡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몇해전 적우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반주가 대단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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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대구 부근의 기지촌에서 컨트리 뮤직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 패거리는 낯선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 패거리를 만나 의기투합, 6인조 밴드를 결성합니다. 팀 이름은 데블스. 때맞춰 서울에서 보컬그룹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서울 진출을 노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죠. 시민회관 화재 이후 막 피어나던 그룹사운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은근히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주간지 기자 병욱(이성민)은 통행금지와 밴드의 공연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건 바로 통금 해제 시간인 4시까지 올나잇으로 영업하는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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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의 '고고70'은 한국 최초의 '본격' 록 밴드 영화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음익 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청춘스타 전영록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고(개중엔 여성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돌아이' 시리즈도 있었죠), 또 한때는 동방신기급의 인기를 끌었던 송골매 멤버들이 주연한 '모두다 사랑하리' 류의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정글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음향과 음악, 연주와 스토리가 제대로 '붙은' 영화로는 아마도 '고고70'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밴드지만 조승우와 차승우를 주축으로 한 밴드 데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밴드인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진짜 밴드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승우와 신민아지만, 진짜 주인공은 '밴드'입니다. 혹은 이 밴드가 펼치는 공연과 노래야말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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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화려한 휴가'를 볼 때와 비슷한 안타까움입니다. 1970년대, 지금은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옛날이지만 우리에게도 저렇게 촌스럽고 미약해 보이지만 다양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화가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아깝고 분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의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에 대해 '번역 문화'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의 밴드들은 해외의 성공적인 음악을 '따 오는 데' 급급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관심도 없을 때라 귀로 들어서 좋은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개사해서 쓰기도 하던 시절이죠. 이 영화에도 나오는 C.C.R의 'Proud Mary'같은 노래는 한글로 개사한 곡만도 10여 종류가 존재할 정돕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이죠. '도올고, 도오는, 물래방아 이인생' 하는 노래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올라가요 남산, 놀아봐요 명동'이라는 가사로 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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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몇해 되지도 않았던 시절, 그렇게 남의 문화를 '이식'하는 과정이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가 의문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모방하고, 베껴 내다 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70년대는 너무 어두웠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스파르타식의 금욕적인 병영국가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당시의 '어른' 들은 이런 국가 이념에 쉽게 동조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문화라는 것은 사치였고, 나약과 퇴폐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란 군가나 새마을 노래의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TV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한국 대중문화계는 정말 뻥 뚫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이름을 알만한 가수들은 모조리 무대와 방송에서 사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창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던 친척 형들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나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같은 금지곡을 부르는 걸 반항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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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딴따라'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일까요. 어차피 대중들이 모두 좋아하기엔 한계가 있는 클래식 문화는 숭상하면서도(그것도 사실 숭상이라기보단 해외 유명 콩쿨에서 입상하는 걸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걸 보듯하는 분위기에 가깝죠) 대중이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문화는 비천하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것으로 매도한 대가를 한국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 대가란 이런 겁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부는 땅만 보고 묵묵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몇명의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창의력의 시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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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란 나라는 19세기가 전성기였고,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 구석으로 찌그러져 버리지만, 현대의 영국은 창의력 선진국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패션과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영국은 세계 최첨단의 인재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죠(물론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이기도 합니다만). 대중 문화의 질과 다양성 부문에서 영국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물을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딴따라'들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진취적인 태도가 바로 그 힘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딴따라'들과 협연하기를 꺼리지 않는 그런 문화적 관용과 창의력은 종이의 앞뒷면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튀는 놈'들을 '딴 생각을 품은 놈', 혹은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놈' 들로 때려 잡은 결과, 한국의 대중문화는 21세기까지도 외국 것들을 누가 먼저 베껴오느냐로 승부가 갈리는 수준에 머물게 됐습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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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기에 이미 '퇴폐문화의 주범'이라는 철퇴와 함께 지하로 사라져버린 한국 록 문화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죠. 몇 차례의 '쥐잡기'로 인해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사이 '록 문화'에는 심각한 왜곡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즐거워야 할 록 문화가 기이하게도 저항의 상징(물론 이런 부분도 의미와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가장 대중 가까이 가야 할 록 문화가 오히려 대중과 멀어질수록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되는 분위기를 띠게 된 것이죠. 이것 역시 통탄할 일입니다.

딴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고고70'은 그런 암울한 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창의력을 군화가 짓밟아 버린 시대의 우화입니다. 소재는 지극히 비극적이지만, 당시의 발랄했던 청춘을 그린 작품인 만큼 분위기는 밝고 싱싱합니다. 최호 감독의 손끝을 통해 이런 분위기는 관객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70년대와 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친 것도 저항이었지만 머리를 기르고 기타를 메고 다니거나, 통금 해제 시간인 새벽 4시 거리로 달려나오면서 경찰관들을 희롱하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도 소극적인 저항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당시의 록밴드 문화와 데블스 멤버들을 마냥 우상화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들 또한 그냥 인간들일 뿐이고, 도덕적으로는 우월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인기를 무기로 여자들과 희희낙락하기도 하고, 도박으로 악기를 날리기도 하며, 인기에 취해서 친구며 '초심'을 잃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균형을 이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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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70'이 이런 완성도를 갖는 데 있어 조승우라는 탁월한 배우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특히 무대에서 '엄마, 보고싶다!'를 외치는 조승우는 지금껏 우리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져 보지 못한 록 히어로의 상상 속 재현이라는 느낌이 아깝지 않은 명연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에너지가,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최대한으로 발휘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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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아 또한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발랄함을 이 영화에서는 한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이 배우에게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이 작품에서의 신민아를 보면 그동안의 갖고 있던 청순의 이미지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만식 역의 차승우도 연기자 데뷔(?)를 통해 감춰졌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아무튼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열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고고70'는 남달리 생기 넘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신나게 찍었는지 느껴진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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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사실 이해의 깊이에 따라 감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대를 경험했거나 어렴풋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의 진정과 유머가 통렬하게 와 닿을수 있는 반면, 197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를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좀 불친절한 영화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뇌가 정확한 반복 박자의 '나이트 댄스' 음악에만 젖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이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면 '고고70'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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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막상 화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으면서도 마음 속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저 시대, 그렇게 무식하게 싹을 죽이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중문화 환경을 향유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이죠. 물론 영화 자체는 그런 생각 따위일랑 걱정 많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저 신나게 '놀면서' 볼 수 있는 영홥니다.


p.s.2. 이 영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2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우는 록 아티스트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가수 조경수의 아들. 만식 역의 차승우는 한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던 미남 가수 차중락의 조카입니다. 아버지 차중광도 가수였죠. 또 록의 대부 신중현의 2세들인 신윤철과 신석철도 등장합니다. 잘 찾아보시길.^


p.s.3. 영화에 나오는 주간서울 이병욱 기자의 모델은 잘 알려진대로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씨(전 주간중앙 기자)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런게 시빗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이 분이 대중문화에 정통하신 분이란 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반응입니다. 이 분의 항의로 결국 와일드캣츠라는 여성 그룹의 이름이 와일드걸스로 바뀌었다는군요.

서병후씨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1&eid=L0dCFk3/eDOtVynGoSZHNNdPgHP5Lbxu&qb=yLK058fRIL+1yK0goa6w7bDtNzChryC/1rDuu+ewxw==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 'Land of 1000 dances'의 원곡입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윌슨 피켓의 노래죠. 이런 분위기의 음악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50초만 들으면, '아, 이 노래?' 하실만큼 유명한 후렴구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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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두 편을 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털어놓자면, 박신양이라는 배우가 왜 그렇게 인기있는지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하지 못했더랬습니다. 프로필상으로는 1993년작인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데뷔작으로 되어 있지만 존재감 없는 역할인게 확실하고, 1996년 그가 처음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1996년 당시 MBC TV에서는 '사과꽃 향기'라는 드라마를 내놨습니다. '사춘기'에서 정준을 하이틴 스타로 만들고, 뒷날 '왕초'나 '복수혈전'같은 히트작을 만드는 장용우 PD의 작품이었죠. 유호정 김혜수 염정아 김윤정이 네 자매로 나오고, 김승우와 윤동환이 김혜수의 두 상대역으로 등장했습니다. 박신양은 김혜수를 짝사랑하는 직장(방송국) 동료 역이었죠. 남자 3번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배우여서 내력을 물으니 김혜수의 동국대 선배였고 김혜수의 추천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데 일조했다는 거였습니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배우로 양윤호 감독(알고 보니 동국대 연영과 동기더군요. 나중에 함께 일하게 되는 IHQ의 정훈탁 대표와도 모두 동기생입니다)과 '유리'라는 영화를 찍어 놓고 아직 개봉은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이 대단한 배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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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초반에는 박신양의 재즈 댄스 장면이 삽입돼 있었습니다. 장PD에 따르면 "우연히 춤 실력을 보게 됐는데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내용을 수정해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설정이었죠. 김혜수의 직장 동료들이 회식 자리에서 나이트클럽에 갑니다. 다들 술을 마시고 떠드는데 워낙 내성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던 박신양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죠.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박신양이 스테이지로 나가 열정적인 춤을 춥니다. 물론 '나이트 댄스'와는 거리가 먼 춤이지만 대단히 역동적이었고, 극중에서 김혜수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이 박신양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 드라마가 폭발력이 있었다면 이 장면도 꽤 화제가 됐겠지만 불행히도 '사과꽃향기'는 시청률 면에서 그닥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박신양도 이 드라마로 주목받지는 못했죠. 뒤이어 '유리'도 개봉됐지만 난해하기로 소문난 박상륭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 화제가 됐을 뿐, 실제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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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신양은 이듬해인 1997년 최진실과 공연한 '편지', 98년엔 전도연과 공연한 '약속'을 히트시키면서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이 시기, 저는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박신양의 '외모'가 여성들에게 먹힌다는 거였습니다.

대다수 남자들이 보기에 박신양은 결코 미남이 아닙니다. 심지어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그래도 외모는 내가 박신양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여자들은 비웃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은 박신양에게서 '젠틀함+순정을 지키는 남자+소극적이지만 정직한 남자=믿을 수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읽어내더군요. 이런 이미지가 집대성+극대화된 것이 바로 '파리의 연인'이겠죠. 하지만 솔직히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도 그런 열광을 이해하는 데에는 참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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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배우는 그 바깥에 순수 야성에 가까운 이미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배우가 그렇게나 범죄자 역할을 많이 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쪽의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킬리만자로'를 비롯해 '범죄의 재구성'이나, 거슬러 올라가 '약속'의 공상두처럼 자기 생각에 외곬수로 빠져 있는 양아치 연기를 할 때 박신양의 연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남자들은 이 쪽에 훨씬 가까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람의 화원'에서의 김홍도 연기는 이제까지 박신양의 이미지를 다져온 두 개의 선에서 어긋나 있었습니다. 물론 외곬수의 고집장이 캐릭터라고 하자면 지금까지 박신양이 지켜온 수많은 이미지의 교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예술가 연기는 그중 어떤 캐릭터와도 좀 달랐습니다.

'바람의 화원'에서 박신양의 첫 등장이 어떤 장면일지가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첫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광화사의 모습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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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나뭇잎을 잔뜩 꽃고 얼굴에는 흙칠을 한 김홍도의 모습. 이 인상적인 첫 장면을 통해 박신양은 '그림에 환장한 사람', 그리고 '그림을 위해서는 심지어 목숨까지 아랑곳않는, 그림에 미친 사람'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었습니다. 안경과 더부룩한 수염에서는 '빠삐용'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강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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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초기에는 박신양의 합류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민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박신양의 성품과 초고액 출연료가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고 나니 박신양의 가치가 새삼 느껴집니다. 형식과 전통에 꽉꽉 갇혀 있던 당시의 화단에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강인한 소신과 타고난 재능을 갖춘 대 화가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린 아이와도 소리를 지르며 싸울 수 있는 천재 화가의 이미지를 첫회 30분 정도의 분량에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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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채널에서는 또 다른 천재가 인기몰이에 한창입니다. '강마에' 김명민이죠. 이 천재는 천재이긴 하되 진짜 천재에 대한 컴플렉스를 안고 있는 가짜 천재입니다. 전형적인 살리에리 증후군 환자죠. 이런 억눌린 감정이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할 때에는 더욱 예술의 엄정성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권위주의로 발산되는 인물입니다.

참으로 복잡다단한 인물이지만, 김명민의 솜씨에 의해 이 인물은 너무나 편안하게 시청자들에게 소화됩니다. 인물을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도 없이, 그냥 꿀꺽꿀꺽 마시면 '아, 이게 강마에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요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게 대단한 배우와 보통 배우의 차이일 겁니다.

사실 김명민은 데뷔할 때 일각에서 '제2의 박신양'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외모에(글쎄 남자들에겐 이렇게 보인다니까요;;) 선이 굵은 연기를 한다는 면은 공통점으로 꼽을 만 하죠. 그런데 두 배우가 이제 맞대결을 펼치고 있으니 참 흥미로운 일이죠. 시청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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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드라마 '타짜'의 배경이 부산일까, 왜 이 드라마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올까. 그리고 왜 고니의 패거리는 네 명이고, 원작에 없는 건달들이 이렇게 많이 나올까.

뭐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바로 이 냄새를 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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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타짜'는 고니(장혁)과 영민(김민준)이라는 두 친구를 주역으로 내세웠습니다. 드라마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영민은 타짜 아귀(김갑수)의 수하로 들어가고, 고니는 세상을 돌면서 스승 평경장(임현식)을 만나 최고의 타짜가 되어 다시 만날 모양입니다. 물론 그때는 두 사람이 적수가 되어 있겠죠. 그 사이에 난숙(한예슬)과 정마담(강성연)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어차피 드라마의 큰 흐름에는 둘 다 별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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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의 1부인 '지리산 작두'를 시대만 조금 바꿔 거의 그대로 재현했던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와 어쨌든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듯 합니다. 그래서 1부 '지리산 작두'와 2부 '신의 손'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선에서 각색이 이뤄졌죠.

만화에서 1부의 주인공은 고니, 2부의 주인공은 고니의 누나의 아들인 대길이지만 드라마판의 주인공인 고니는 고니와 대길이를 합쳐 놓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대길이의 평생 연인인 광숙이-미나는 난숙이-미나로 이름을 살짝 바꾸고, 식당을 하는 어머니(박순천)와 사진관 아저씨(이기영)의 로맨스는 그대로 살리되, 사진관 아저씨가 왕년의 타짜 '지리산 작두'가 됩니다. 이 '지리산 작두'는 바로 만화에서 고니의 별명이니 족보가 어지러워지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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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영민이란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됐고, 아귀의 캐릭터도 원작이나 영화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만화와 영화판에 나오는 본래의 아귀는 돈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원시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악의 화신이지만 김갑수가 연기하는 아귀는 머리좋고 영악한 사업가처럼 보입니다.

여차하면 상대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본래의 아귀와는 달리 이 새로운 아귀는 너무 머리를 많이 굴리죠. 말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귀라는 캐릭터가 본래 갖고 있던 위압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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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캐릭터로 넘어가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캐릭터가 어디서 온 것인지가 너무도 잘 보이기 때문이죠. 김민준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 '사랑'의 치권을 쉽게 연상시킵니다. 부산 출신인 김민준에게 '사투리로 하니까 연기가 되는구나!'라는 칭찬을 듣게 했던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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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민준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라는 점이 걸립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캐릭터를 만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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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굳이 부산이 무대인 점이며 굳이 폭력배들이 처음부터 치고 받고 하는 점, 패거리가 네 명인 점 등이 모두 희대의 히트작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 계열의 흐름과 영화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함께 뒤섞여 흘러가는 작품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두 흐름이 그리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는게 문젭니다.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가 희대의 히트작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연재로 이 만화를 지켜보신 분들은 잘 느끼시겠지만, 이 만화의 특징은 하루 이틀만 연재를 놓쳐도 따라가기 쉽지 않을 만큼 스토리의 진행이 빠르다는 데 있죠. '이런 정도의 스토리라면 좀 더 늘려도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친구' 스토리의 수혈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진행을 더디게 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돼 버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심지어) 영화 '친구'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박장 장면을 통해 한껏 흥미를 올려 놓으면, 우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친구 스토리'가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려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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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원작 만화의 각색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틀어 볼 때 '가능한 한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작품'일수록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틀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고 애썼던 영화 '식객'과 '타짜', '비트', 드라마 '식객'이 전자의 예라면 '사랑해'나 '아스팔트 사나이'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원작의 구성과 전개가 탁월하기 때문에, 손을 대면 댈수록 망가진다는 쪽에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타짜'도 굳이 원작의 설정에 왜 그렇게 많이 손을 대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더구나 그 '손질'이 창의적인 시도였다면 모를까, 이미 초대박이 난 영화와 그 아류작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익을 대로 익은, 어쩌면 슬슬 싫증이 났을 수도 있는 터치라면 말입니다. '타짜'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현재의 시청률은 단지 '에덴의 동쪽'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왠지 교각살우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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