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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 2, 실베스터 스탤론, 척 노리스] 1985년, 노량진 대성학원 옆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다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커피는 한잔에 천원. 그런데 특징이라면 차를 파는게 주업이 아니라 비디오를 틀어 주는게 주업이라는 점이었죠.

 

비디오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시절에 '빨간 비디오'를 틀어 주려면 시간이 그래도 새벽 한시는 넘어야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야한 영화가 아니라, 당시 극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할리우드의 최신작 영화들을 틀어 주는 전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커녕 삐삐도 없었고,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음반 산업의 주축이던 시절, 어디서 그런 영화들을 구해 오는지 매우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여름, 학원생들 사이에서 당시 화제의 영화였던 '람보2'를 '그 다방'에서 틀어 준다는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극장 개봉 전이기도 했거니와, 극장 영화 표값이 한 2500원 정도 했던 시절. 가 보니 다방 안에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항의로 상영(?)이 중단될 뻔 했습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재수생들이었지만 보다 보니 주인공이 실베스터 스탤론이 아니고, 영화도 람보2가 아닌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날 본 그 영화가 람보2였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명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항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진짜가 아닌 짝퉁 람보2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넘어갈 만큼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월남전 배경 영화는 흔치 않았던데다 서부극 못잖게 '쏘면 다 맞는' 영화는 현대전 영화에서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죠. 아울러 수염 기른 남자주인공 또한 사뭇 매력적이었습니다.

 

 

 

 

짐작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 영화는 'Missing in Action(1984)'이었고, 그 주인공은 척 노리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재수생의 머리 속에서 인연을 맺은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랠론은 27년만에 한 영화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익스펜더블2'.

 

 

 

1편을 보신 분이나 안 보신 분이나, 아무 상관없는 줄거리지만,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댐), 양(이연걸) 등은 1편의 악역이었던 거너 젠슨(돌프 룬그렌)을 멤버로 받아들여 여전히 용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는 네팔 어딘가에서 이들이 포로가 된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구해 주는 장면. 신나는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정부 일을 하고 있는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가 과거의 부채를 거론하며 로스에게 동구권 어딘가에 추락한 비행기 금고에서 모종의 물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들을 돕는 요원으로 젊은 중국인 여성 매기(여남餘男, 흔히 위난이라고 불립니다)가 파견되죠. 하지만 로스 일당은 현장에서 빌런(장 클로드 반담) 일당에게 기습을 당해 물건도 빼앗기고 인명 피해도 입죠. 분노한 로스는 매기의 도움으로 빌런 일당을 추격해 러시아로 갑니다.

 

 

 

 

이후의 전개에도 놀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전도, 복선도, 보는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편은 악당들을 뭉개 버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결론을 향해 영화는 달려갑니다.

 

물론 이건 영화를 보기 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영화 한 편에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 나오고 이들이 같은 편인데 대체 누가 그걸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장 클로드 반담? 어림없죠.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마음 자세는 - 당연히 그렇겠지만 - 지금 현재가 아니라 '왕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왕년'의 극장가를 뒤흔들었던,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바로 그 액션 영웅들이 얼마나 늙고 몸도 굼뜨게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은지원이나 문희준이 여전히 팬들을 졸도하게 할만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응답하라 1997'은 그 시절을 보냈던 연령층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유머 역시 철저하게 관객의 추억에 기대고 있죠.

 

 

더 알아듣기 쉽게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총알이 떨어졌다. I'll be back('터미네이터'의 상징적 대사).

브루스 윌리스: 그만 좀 돌아와! 이제 내 차례야. (제발 그 'I'll be back' 좀 그만 써먹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래. Yippe-kai-yay ('다이 하드'에서 맥클레인의 상징적 대사)

 

 

 

 

1편에서 이미 그런 정서를 이용해 꽤 많은 돈을 번 '익스펜더블' 프로젝트는 2편에 들어가면서 부커(척 노리스)와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강하고,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까지 실전에 투입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사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역시 추억의 명화인 '지옥의 특전대(Wild Geese)'에 가깝지만, 그 어떤 비장미도 찾아볼 수 없다는게 특징이죠. 영화 중반에서는 어쩐지 '황야의 7인(혹은 '7인의 사무라이')' 쪽으로 흘러가려는 듯한 느낌이 잠시 조성되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으시는게 좋습니다.

 

1편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몇몇 추가 멤버들과 함께 구질구질한 멜로드라마가 아예 삭제됐다는 것 뿐인데, IMDB 평점(6점대에서 7점대로), 로튼토마토 지수(41->64) 모두 상승했습니다. 글쎄 뭐가 그리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긴 하지만, 지금의 3,4,50대 남성 관객들이 두어 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고 1,2,30년 전을 그려 보기엔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뭐 여자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그런데 굳이 따져 보니 척 노리스는 70대였군요.^^ 진짜 액션 그랜드파...

 

척 노리스 1940.3.10

실베스터 스탤론, 1946. 7.6.

아놀드 슈워제네거 1947.7.30

브루스 윌리스 1955.3.19

돌프 룬그렌 1957.11.3

장 클로드 반담 1960.10.18

이연걸 1963.4.26

제이슨 스타댐 1967.9.12

 

 

 

 

자, 이제 3편에서는 누가 기다리고 있나 보겠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1962.7.31)와 스티븐 시걸(1952.4.10)이 있군요. 1편에서 악역을 거부했던 반담도 가세했으니 시걸에게는 다이어트만 남은 셈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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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리즈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마법의 섬 Enchanted Island)'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로크 오페라 가운데(특히 헨델의 작품 중에) '마법의 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마법의 섬'은 21세기의 음악가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와 '한 여름밤의 꿈'을 토대로 헨델, 비발디, 그리고 라무(Jean-Philippe Rameau)의 작품들 중 분위기에 맞는 곡을 골라 만들어 낸 혼성 모방(pastiche)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의 창작물이되 17~18세기의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는 작품인 겁니다.

 

이런 저런 요소들을 고려할 때 '마법의 섬'은 아름다운 무대와 적절한 유머 감각, 그리고 화려한 출연진의 명연기로 매우 훌륭한 볼거리 역할을 했습니다. 노래들이 워낙 반복이 심한 바로크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한 덕분에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40분의 공연 시간은 좀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번쯤 볼만한 작품이라는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속물인 저 같은 관객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마법의 섬'에 등장한 소프라노 여가수들이 하나같이 날씬한 미인들이더라는 겁니다.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 무슨 조화인지 모바일 버전으로는 글 중간이 뚝 끊어져서 핵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내용은 PC 버전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본다'고 말하면 '그 지겨운 걸 어떻게?'라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배나온 아저씨들과 한팔로 안을 수도 없는 뚱보 아줌마들을 절세의 미남 미녀라고 주장하는 공연을 대체 어떻게 보느냐'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마법의 섬'을 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듯 합니다.

 

 

 

 

 

 

 

온 출연진이 모두 스타급이지만 그보다는 출연하는 소프라노들의 모습이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일단 요정 에어리얼 역의 다니엘 드니스(Danielle De Niese). 화려한 외모 만큼이나 화려한 가창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소프라노입니다.

 

 

'마법의 섬'에서는 좀 과한 분장 탓에 외모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화사한 외모는 물론이고, 탁월한 콜로라투라로 명성이 높습니다. 특히 바로크 풍의 경력이 두텁죠. 그가 부르는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입니다.

 

 

그 다음은 헬레나 역을 맡은 레일라 클레어(Layla Claire).

 

 

물론 작은 역이지만, 무대가 메트로폴리탄인 만큼, 작은 역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 위상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섬'에서의 조연을 다른 여타 오페라의 조연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 2곡은 자기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BBC 프로그램에서 키리 테 카나와의 레슨을 받고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란다 역의 리셋 오로페사(Lisette Oropesa)입니다.

 

 

같은 메트로폴리탄의 '라인의 황금'에서는 라인의 세 처녀 중 하나로, '지그프리트'에서는 무대에 나서지 않는 새 역할로 참여했던 소프라노입니다.

 

물론 메트로폴리탄에서는 작은 역이지만 이미 다른 무대에선 광란 신으로 유명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적도 있는 소프라노. 머잖아 월드 클래스 주연급으로 도약할 것이 기대됩니다.

 

노래하는 모습.

 

 

그런데 오로페사의 과거 행적을 굳이 살피려고 한 것도 아닌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이건 다 구글의 과잉 친절 때문입니다.

 

 

 

설마 싶지만 설마가 아닙니다. 놀랍습니다. 이목구비는 똑같은데 사람이 절반...

 

 

스타덤을 위해 엄청난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이 드러나 보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채식을 이용한 엄청난 다이어트가 있었다는군요.)

 

물론 일찌기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선생이 '이미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의 주역 소프라노들은 다이어트를 마쳤다'고 하셨듯, 아무리 오페라가 고급 예술이라 해도 '관중의 눈'에 최적화된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반론은 오페라 주역을 고를 때 가장 큰 기준이 '미모+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무조건 일단 가창력'이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뭐 이 논란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어쨌든 추세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가 정말 당대 최고의 가창력 때문에 스타 소프라노가 된 것이냐, 아니면 미인이기 때문에 실력 이상으로 평가받은 것이냐 하는 얘기도 쉽게 끝날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네트렙코가 빌리 데커 판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DVD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오로페사의 무서운 다이어트도 결국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겠죠.

 

아무튼 '마법의 섬'은 메가박스에서 상영합니다. 단 금요일과 일요일만 상영하는 듯 하니 꼭 시간표를 확인하시길.

 

 

P.S. 인공지능이 적용된 덕분인지(?) 유튜브에 몇 차례 윗글에 나오는 이름들을 입력했더니 뜬금없이 이런 동영상을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발견한 몰도바 출신의 신예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Valentina Nafornita). 25세. 성악가라기보단 모델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도니제티, '돈 파스콸레' 중에서 '그 눈길이 기사의 심장을 사로잡아(Quel guardo! so anch'io la virtù)'.

 

 

지난해 BBC 주최로 카디프에서 열린 신예 성악가 발굴 오디션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당시 5위 안에 들었던 성악가 가운데 한국의 이혜정(진짜 가운데)도 있었더군요. 나폴니타는 맨 오른쪽.

 

아무튼 앞으로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집니다.

 

 

http://operalively.com/forums/showthread.php/545-Of-these-singers-who-is-the-love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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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 Tony Scott(1944~2012)] 나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 혹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 많은 영화와 그 많은 감독중에 어떻게 그렇게 쏙쏙 뽑아내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5명을 뽑으라면, 저는 언제든 토니 스콧을 꼽아 왔습니다. (늘 '토니 스코트'라고 쓰다가 갑자기 '토니 스콧'이라고 쓰려니 좀 그것도 그렇습니다)

 

토니 스콧은 한동안 돈 들인 블록버스터 부문에서 '가장 돈이 아깝지 않은 장면을 뽑아 내는 감독'으로 꼽혀왔습니다. 한때 '불꽃같은 젊음'을 가장 강렬하게 그려냈던 스코트는 나이들면서 약간의 혼란을 겪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감독들 중 하나로 꼽혀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치의 뇌종양이었다니. (이 부분은 현재 가족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어디서 태어나 누구의 영향을 받아 최고의 감독이 되었는지 같은 위인전 풍의 내용은 사실 잘 모릅니다. 형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영국에서 광고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수백편의 광고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특유의 영상미를 완성시켰다는 정도.

 

특이한 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시나리오에 크레딧을 올린 경우는 거의 없더라는 것입니다. 24편의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프로듀서로 나선 경우는 그 두배가 넘지만 시나리오를 직접 쓴 건 딱 두번뿐. 그것도 정식 상업영화 데뷔 전의 소품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서 개연성이 지적됐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네. 제가 '말이 안 되는 영화'에 유난히 좀 민감한 편입니다. 그런 제가 봐도 스코트의 작품에 사용된 시나리오들은 탄탄한 플롯을 자랑합니다. 오히려 내로라하는 시나리오 라이터 출신 감독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런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꼽은 그의 대표작 5선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 문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라스트 보이스카웃'이나 '폭풍의 질주 Days of Thunder' 팬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맨 온 파이어 (2004)

 

한국 영화 '아저씨'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영화들 중 하나인 '맨 온 파이어'는 토니 스콧이 본격적으로 덴젤 워싱턴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잡은 작품으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크림슨 타이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 이후 스콧의 영화 5편 중 4편의 주인공이 워싱턴이라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스콧이 복수를 소재로 선택한 것은 비교적 초기작인 '리벤지' 이후 오랜만의 일입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다코타 패닝이라는 건 관객의 공감을 200% 올려놓을 수 있는 배치죠. 마지막 시퀀스에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지만, 음악과 함께 휘발유 냄새가 나는 영상은 수작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덴젤 워싱턴이 사실상 고정 주인공처럼 되면서 전작들의 경쾌한 스텝이 사라지게 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토니 스콧 자신이 그걸 원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4.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1998)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테크노 스릴러는 기존의 토니 스콧 영화와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전의 액션들이 좀 더 우직하고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면,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는 초시계로 시간을 재듯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신과 신이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영화입니다.

 

이미 고참 감독의 길에 접어든 스콧이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개인적인 소감은 주다스 프리스트가 '페인 킬러' 앨범을 내놨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 이후 스콧과 윌 스미스가 한번쯤 더 작품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최근작들이 훨씬 더 생기넘치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울러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전혀 비중 없는 도청 기술자 역으로 등장한 잭 블랙.

 

 '화성 침공' 등에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이때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Shallow Hal'도 뒷날의 얘기일 뿐. 만약 요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은 전혀 웃기지 않는 잭 블랙을 보는 것도 이색적인 느낌일 겁니다. 나름 '선악의 판단이 없이 하는 일만 하는 공대생'의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말이죠. (ㅋ)

 

 

 

3. 크림슨 타이드 (1995)

 

지금까지도 '잠수함 영화'를 한 편만 뽑으라면 뭐니뭐니해도 '특전 U보트(Das Boot)'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편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나머지 한 편은 '크림슨 타이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남자와 남자의 격돌, 그리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팽팽한 긴장은 이 영화를 '남자들의 영화'로 만드는 데 충분했습니다. 진 해크만과 덴젤 워싱턴의 충돌은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배우들이 꼭 참고해야 할 연기(아무리 알 파치노와 드 니로가 나온다고 해도 마이클 만의 '히트' 따위나 봐선 절대 연기가 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입니다.

 

'남성용 영화'의 거장이지만 스콧이 자주 쓰는 캐릭터에는 '의리'라는 요소가 매우 희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콧의 영화에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이란 서로 걱정하고 이해해 주는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대결하고, 상대의 가치나 실력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죠.

 

'탑 건'이나 '스파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역시 '크림슨 타이드'입니다.

 

 

또 이 영화를 잊지 못할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한스 짐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가끔은 그게 그거라서 구별하기 힘들다는 혹평도 있지만, 이 시한폭탄같은 긴장감을 주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는 '크림슨 타이드'의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비고 모텐슨과 설경구가 은근 겹쳐집니다. 물론 무명이었던 두 사람과 잠수함 내부 환경, 그리고 해군 제복의 느낌일 뿐. 캐릭터가 비슷한 건 아닙니다.

 

 

 

 

2. 탑 건 (1986)

 

IMDB에서 이 영화의 평점이 6.7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하긴 영어 사용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겠죠. 특히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 킬머의 "You can be my wingman"은 영화 사상 가장 느끼하고 유치한 대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청춘들은 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습니다. 불과 1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1986년의 세계 최대 흥행작인 것은 물론이고, 투입 대비 수익률로 따지면 역대 최상위의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신의 무명 배우 톰 크루즈'는 고른 치열이 빛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단번에 전 세계를 사로잡아 버렸고, 이후 4반세기를 꿰뚫는 스타의 화려한 탄생을 알립니다. 켈리 멕길리스가 조금 더 미인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뭐 다 바랄 수는 없죠.

 

창공을 쪼개는 영상미, 26년 뒤 한국에서 만들어진 어떤 영화의 플롯까지 지배하는 완벽한 전형의 제시, 톰 크루즈-발 킬머-멕 라이언까지 보석같은 신인들을 골라낼 수 있었던 제작진의 선구안까지(그게 스콧 혼자의 힘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전설이 될만한 작품입니다.

 

 

 

 (물론 톰 크루즈의 저 뒤쪽에 팀 로빈스가 큰 키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는 것도..)

 

특히 해롤드 폴터마이어, 조지오 모로더, 케니 로긴스, 스티브 스티븐스, 칩 트릭, 마이애미 사운드머신, 벌린(베를린^^), 그리고 여기에 제리 리 루이스와 라이처스 브라더스까지 얹힌 사운드트랙은 80년대 영화 중 무엇에 비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플래시댄스'나 '세인트 엘모스 파이어' 정도?

 

 

도대체 저게 무슨 노래야 싶은 분들을 위해 원곡을 준비했습니다.

 

 

영화 끝나기 전 이 노래가 원곡으로도 나오긴 나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1. 트루 로맨스(1993)

 

사실 '탑 건'을 제치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비록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이 '탑 건'에 미치지 못하는게 사실이라 해도 이만큼 액션과 로맨스, 판타지와 코미디가 절묘하게 배합된 작품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아드레날린의 미학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퀜틴 타란티노를 오늘날의 거장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 영화, '트루 로맨스'가 한 몫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글로 쓰고 고전 영화에서 보던 것이 실제 영상으로 가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공부가 되었을테니 말입니다. 비록 그가 이 시나리오를 헐값에 팔았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결말이 그가 직접 쓴 것과 상당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올리버 스톤이 만든 '내추럴 본 킬러스'보다는 이 작품에 훨씬 더 만족했다고 전해집니다.

 

(인터넷에서 '트루 로맨스'의 대본을 검색하면 타란티노의 원본과 실제 영화에 사용된 대본의 두가지가 검색됩니다. 결말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장면 장면에서 타란티노 풍의 장황한 대사가 많이 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본은 본래 '내추럴 본 킬러스'와 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전성기였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파트리샤 아퀘트의 연기도 그만이지만 막 스타 악역의 길을 밟기 시작한 게리 올드만, 딱 두 장면에 정신 빠진 모습으로 나오는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오션스11'을 보는 듯한 조연들의 화려한 연기 경연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킵니다.

 

흔히 우리가 '낭만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달 밝은 가을 밤에 하우스 밴드가 멋진 테라스에서 쿨 앤 더 갱의 'Cherish'를 연주하는 광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romantic'이란 말의 의미에서는 '질풍노도'의 요소가 생략되어선 안됩니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격정이야말로 로맨티시즘의 이상인 것이죠. 이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중세 기사들의 무용담입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격정과 과장, 허세를 영화 '트루 로맨스' 만큼 잘  표현한 작품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크림슨 타이드'의 그 '한스 짐머'가 이런 달콤한 멜로디를 내놨다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입니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그린 병아리 그림이랄까요.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나는 옛 이야기 하나. 알라바마(파트리샤 아퀘트)가 클레어런스(크리스천 슬레이터)에게 자신이 창녀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대사는 분명히 "I've been a call girl for exactly four days, and you're my third customer" 였는데 자막은 "당신이 내 첫 손님이었다구요"라고 뜨더군요. 1993년만 해도 수입사 관계자들은 주인공이 '창녀와 결혼한다'는 데 대한 도덕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보다 훨씬 전 얘기긴 하지만 '졸업'을 극장에서 볼 때는 더스틴 호프만의 연애 상대인 앤 밴크로포트가 자막상으로는 캐서린 로스의 엄마가 아니라 이모로 표현되기도 했더랬습니다. 어찌나 도덕적인지...)

 

 

이제 마무리를 위해 그의 다른 영화 사운드트랙 가운데 한 곡을 골라 봤습니다.

 

 

'폭풍의 질주'에서 뽑은 한 곡. 화이트스네이크라 불린 사나이 데이빗 커버데일이 부른 'Last note of freedom'입니다. 어쩐지 last note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길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가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길을 가겠다는 사나이의 각오입니다.

 

 

 

원제처럼 그야말로 '천둥의 나날'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토니 스콧, 돈 심슨(제작자), 로버트 타운(시나리오 작가), 제리 브룩하이머(제작자), 그리고 톰 크루즈. 스콧-심슨-브룩하이머가 구축했던 황금의 트리오에서도 이제 브룩하이머만 남았군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곡은 이 곡이라야 할 듯 합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분홍색 모자를 쓰고 이 음악에 맞춰 주먹을 흔들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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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R2D2를 연상하시는 영화 '알투비(R2B) 리턴 투 베이스'를 봤습니다. 본래 '빨간 마후라 2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것이 시간과 논의를 거치면서 결국 '알투비 R2B'라는 제목으로 결정됐더군요. 다 아시겠지만 R2B는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 즉 '기지로 귀환'이라는 뜻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분들 중에는 다른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창공 액션 영화라면 추억의 명화인 조지 페퍼드 주연의 '대야망(The Blue Max)'부터 그 이름도 거룩한 '탑 건(Top Gun)'를 지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두 편의 고전 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두 편이 공군과 파일럿의 세계에 대해 이뤄 놓은 업적이 워낙 큰 탓일 겁니다.

 

그리고 '알투비'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과연 이 영화를 어느 정도나 기대하고 보느냐의 차원이 될 것 같습니다.

 

 

줄거리. 태훈(정지훈)은 비행 실력에 있어선 따를 사람이 없지만 도대체 질서와 복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일럿. 결국 묘기를 부리다 공군 시험비행단에서 쫓겨나 (아마도 동부전선 어디쯤의) 전투여단에 배치됩니다.

 

선배 대서(김성수)의 편대에 배속된 태훈은 여기서 동기생 유진(이하나), 후배 석현(이종석)과 함께 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여단의 에이스는 미국 연수까지 다녀온 철희(유준상). 그는 제멋대로인 태훈의 기를 꺾어 진짜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훈은 여기서 미모의 정비사 세영(신세경)을 발견하고 달콤한 연애에 빠져듭니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서서히 긴장이 고조됩니다.

 

 

 

오래 전, '탑 건'이 개봉할 무렵, 관객들은 궁금증에 빠졌습니다. 이 영화가 F-14를 모는 미 해군의 최정예 파일럿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는데, 대체 실제 전투 장면이 나오는지, 나온다면 그 상대는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야망'이나 '빨간 마후라' 처럼 아예 전쟁 상황을 다룬 영화라면 이런 궁금증이 들 이유가 없겠지만, '탑 건'이나 '알투비' 같은 영화는 대체 '누구와 싸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뭐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들보다 몇년 전에 했어야 할 고민입니다.

 

물론 안 싸울 수도 있겠지만, 수백억원짜리 전투기를 보여주면서 그 전투기가 실전에선 이런 위용을 뽐낸다는 장면을 넣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일어났다고 우기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

 

 

여기서부터 전투기와 파일럿이 나오는 영화의 리얼리티가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 파일럿의 전투기가 어떻게 해서 교전상황에 말려들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그럴싸하고 납득할만한 상황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알투비'는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따내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CG가 화면을 장식하고 몇몇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일단 비행기가 날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부터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따위가 뭘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죠.)

 

어떤 분들은 '막상 비행기가 날고 액션이 펼쳐지기 전까지, 달달한 연애담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마지막 항공 전투 신은 호쾌하고 볼만했다' 고 평을 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그 유치하고 달달한 연애담 덕분이고, 정작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공중 전투 시퀀스는 한마디로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아무 기대도 없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를 보시는 동안, 절대로 논리적인 사고나 이성적인 판단 따위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쩐지 RETURN TO BASE 라는 제목은 '기본으로 돌아가라' 라는, 스스로 하는 반성처럼 읽힙니다.

 

그냥 하는 얘기는 여기까지. 나머지에선 스포일러가 밀어닥칩니다. 영화를 보러 가실 분은 여기서 표 끊으러 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작사 및 홍보 관계자, 알바 여러분도 별로 기분좋으실 얘기가 아니니 여기서 그냥 다른 데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 태훈이 왜 시종일관 감정의 제어가 되지 않는 미친놈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어려서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사실 그보다는 그냥 "'탑 건'의 톰 크루즈가 대략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라는 쪽이 솔직한 설명일 겁니다.

 

이 영화의 골격은 대부분 이 공식에 따릅니다. 인물의 배치나 설정에서 어떤 목적이나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한 설명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또는 '탑 건 안 봤어? 탑 건에서도 그랬잖아' 뿐입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야생마같은 주인공이 있으면 '왠지' 냉철한 이성으로 그를 통제하려 하는 맞수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연애를 할 예쁜 정비사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를 이해해 주는 큰형같은 선배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 큰형을 짝사랑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왠지 그렇게 있으면 굴러갈 것 같은' 캐릭터들이 즐비합니다. 어디서 본 듯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이는 캐릭터들 말입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극의 흐름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캐릭터라고는 선임 정비사 역의 오달수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태훈과 철희가 서로 마주 보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는 초등학생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서가 유진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모든 관객들은 '아, 대서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승을 하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위 사진의 세 인물과 관련된 대사, 설정, 연기는 모두 최악입니다. 이 세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싹 들어내면,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상당부분 감소될 수 있을 듯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알투비'를 보다 보면, 촬영할 때 있었던 참 많은 장면들이 가혹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장면들조차 이렇게 뻔하디 뻔한 장면의 연속일 때는 참 난감합니다. 심지어 그 뻔한 대서의 장례식 장면에, 대서의 어린 아들이 영정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까지 나오면, 관객은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메인 주인공을 정지훈과 신세경이라는 매력적인 스타들이 맡았다는 정도. 이해하기 힘든 두 인물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왠지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세영의 주정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활력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 장면이 이 영화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정지훈과 신세경이 아니었다면... 꽤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문제의 전투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으로는 북한의 원산 핵기지 주변 병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 정권(아마도 김정은)에 대항하고, 자신들의 선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향해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을 발사하려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일까요? 이를테면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싶은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영 부족하니 미국을 향해 ICBM을 발사하면 미국이 그 보복으로 북한 체제를 궤멸시킬 거라는 계산일까요. 단순한 자살 테러 치고는 참 심오합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런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눈에 띄는 것만 거론하자면, 수도 서울에다 총질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전투기를 '민간인 피해 때문에 격추시킬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휘본부, 대서의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완전히 전 세계가 (대서를 애도하기 위해?) 휴전상태로 들어갔다가 장례식을 마치자 다시 시작되는 '긴박한 상황', 긴 밤 다 지새우고 굳이 대낮에 단 2기로 북한에 침투하는 놀라운 대담성, 그런데 그 단 2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엄청난 방공망, 지하 활주로는 폭파됐는데 대체 어디서, 그것도 단 1기만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MIG-29 요격기, 분명히 발사되는 걸 봤는데도 공중에 정지하고 있다가 태훈의 폭격을 받고 폭발하고 마는 이상한 ICBM, 휴전선 바로 위인 원산에서 핵탄두가 폭발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걱정이나 대비는 전혀 없는 만사 태평의 한-미 양국 군사 수뇌들.... 한마디로 참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 이어지지만 뭐... 날아가는 비행기의 CG는 멋집니다.

 

 

 

당연한 반론이 예상됩니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런걸 그렇게 따지냐"에서 그저 "이런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수준의 창공 액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라는 등등. 하지만 그렇게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기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항상 그 영화가 갖고 있는 틀 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럼 스타워즈에서 광선으로 칼싸움하는 건 말이 되냐?'는 식의 반론은 바보 인증일 뿐입니다. 그건 원래 전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제7광구' 때도 그랬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플롯과 대사, 연기입니다. 특히나 이런 류의 영웅담 블록버스터에서는, 제발 오글거려야 할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쭉 나올만큼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와줬으면 합니다. 저는 작전에 투입되는 파일럿들이나 석현을 구하러 가는 레스큐 팀에게 비행단장이 뭔가 정말로 아드레날린이 확 뿜어나오는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는 규모가 커지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이런 기본은 점점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RETURN TO BASE, '기본으로 돌아가라' 일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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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도둑들'의 전지현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앤 해서웨이를 비교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부터 올 여름 한국 극장가의 판도는 결국 '도둑들'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맞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 듯 합니다. 물론 '연가시'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 이후, 관객 동원 면에서 단 한번의 비틀거림도 없이 정상을 질주한 희대의 흥행사입니다. 이 '흥행사'라는 말이 불편하신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투자자와 제작사의 입장에서 보면 구세주나 다름 없죠. 더구나, 그 작품들 중 어느 한 편도 성미 까다로운 비평자들로부터 '대체 어떻게 저따위 영화가 대박이 날 수가 있나. 관객이란 존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한탄을 자아내지 않았으니, 한국 영화계의 간판 스타라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빠돌이풍의 도입부를 걸었으니, 이 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도 대략 예상하실 듯 합니다. 사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홍콩 느와르 전성기의 정서였습니다.

 

 

 

줄거리. 한 유명 미술관 복도. 모녀간으로 변장한 씹던껌(김해숙)과 예니콜(전지현)이 걸어들어갑니다. 예니콜이 작업해 놓은 젊은 관장(신하균, 특별출연)을 만나기 위해서죠. 밖에서 뽀빠이(이정재)와 잠파노(김수현)이 와이어를 걸고, 이들은 순식간에 미술관의 보물 향로를 훔쳐냅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뽀빠이가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고, 때맞춰 도착한 마카오박(김윤석)의 콜을 받아 일당은 마카오로 날아갑니다. 가석방된 펩시(김혜수)도 일행에 합류합니다.

 

마카오에는 첸(임달화)와 조니(증국상), 줄리(이심결), 그리고 앤드류(오달수) 등 홍콩 패거리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카오박은 한국과 홍콩의 연합 도둑 드림팀에게 마카오 카지노로 오고 있는 3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자고 제안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배경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참 노골적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정점을 찍은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를 모의해서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제작사 이름이 '케이퍼 필름'입니다. 이렇게 내놓고 시작하니 비슷하다 뭐다 하는 얘기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케이퍼 무비에다 올스타 캐스팅까지 갖춰졌으니 이제 필요한 건 조율. 한 영화에 한두명만 써도 적절하다 싶은 배우들을 통으로 엮었으니 자칫하면 분량 시비가 일어나고, 심하면 "야, ***는 그 영화에 대체 왜 나온 거냐?"는 소리가 나올 판입니다. 그렇다고 배우 체면 때문에 분량을 살려 주다가 영화가 지루하네, 군더더기가 너무 많네 하는 얘기를 듣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죠.

 

 

 

바로 그 부분에서 최동훈 감독은 신의 솜씨를 발휘합니다. 열 손가락이 각각 다 역할을 하되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안배가 이뤄집니다.

 

사실 머리 좋은 도둑들이 스케줄을 짜고, 놀라운 솜씨로 최첨단 방어막을 돌파하고, 그 결과로 부자가 되고 안 되고 하는 이야기로는 이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이 분야를 파고들었고, 레이저 광선에서 행글라이더까지 동원되지 않은 장비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긴장감 넘치는 침투 과정을 설정해 봐야 관객은 지루할 뿐입니다. 결국 승부가 나는 지점은 캐릭터인 것이죠.

 

 

 

 

순도 높은 액션 장면들이 보여주는 시각적 쾌감과 아주 찰진 대사가 빚어내는 웃음 사이에서 그 캐릭터들의 얽히고 설킨 사연이 잘 버무려질 때 비로소 코믹 케이퍼 무비가 완성됩니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개연성은 일단 뒤로 제쳐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엄청난 사건을 벌이는 범인들 중 아무도 스키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죠. 마카오에서도 그렇고 부산에서도 그렇고... 아무도 공개 수배 같은 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우들간의 비중이 철저하게 1/N 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김윤석에게는 다른 배우들과 다른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도둑 연합군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장 머리를 많이 쓰는 인물이기도 하고, 다이아 탈취 작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윤석은 특히 이 영화의 중국어 대사에서 빛을 발합니다. 중국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가장 잘 소화해 내는 배우라면 김윤석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서가 좀 바뀐 듯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아마도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곳곳에는 왕년의 홍콩 영화들이 이뤄낸 성과들에 대한 오마주성 장면들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의 낡은 건물을 배경으로 한 와이어 액션을 보면서 서극의 '순류역류(Time and Tide)'가 생각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오래된 아파트에서의 총격전 신은 정말 당시까지는 전 세계에 비길 데가 없었던 와이어 액션(와이어를 이용해 날아다는 것 처럼 표현하는게 아니라 진짜 주인공들이 건물에 와이어 걸고 그걸 이용해 벌이는 액션!)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도둑들'의 부산 액션 장면에는 이 영화가 영향을 미쳤을 듯 합니다.

 

 

 

 

 

물론 흔한 플롯이긴 하지만, 또 생각나는 영화는 주윤발-장국영-종초홍이라는 황금의 트리오가 출연한 '종횡사해'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세 도둑과 그 사이의 엇갈린 러브라인. 문득 '도둑들'의 이정재에게서 '종횡사해'의 장국영에 대한 오마주를 느꼈다면 오버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그런 오마주를 몸으로 대변하는 인물은 바로 임달화입니다. 사실 1980~90년대에도 임달화는 주윤발-장국영이나 사대천왕 급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왕년 '첩혈가두' 등의 영화를 통해 깊은 눈빛의 배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분입니다. (문득 임달화 이야기를 하자니 이수현이나 양가휘처럼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왕년의 스타들이 생각납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임달화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권총을 손에 쥐었을 때 관객을 압박하는 비장미는 한국 배우들에겐 아직 기대하기 힘든 듯 합니다(은근히 리얼리티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특히 '도둑들'에서 임달화의 라스트 신은 두고 두고 기억날 장면이라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임달화와 김해숙의 러브 라인도 빛을 발합니다.^^

 

임팩트를 놓고 보자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배우는 전지현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배우의 능력보다는 감독의 역할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전지현은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에 머물러 있고, 그 캐릭터를 여전히 잘 소화해 냅니다. 그 캐릭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뽑아낸 것이 바로 '도둑들'에서의 전지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캐럭터는 대성공입니다.

 

 

 

 

반면 김혜수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전지현의 따발총같은 대사와 많은 액션이 극장에 앉아있는 내내 관객을 즐겁게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더 많이 기억나는 것은 김혜수의 캐릭터 쪽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핵심 축은 김윤석 - 김혜수 - 이정재 라인이고, 이 라인 위를 흐르는 감정이 마무리되어야 영화가 끝납니다.

 

비중으로 보면 오달수와 김수현은 조연이죠. 하지만 김수현이라는 거물(?)이 출연한 만큼, 그 캐릭터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고, 연기도 흠잡을데가 없었습니다. 분량이 적다는게 아쉬울 정도. 김수현과 전지현을 주축으로 한 속편을 기대하게 합니다. 일각에서는 '전지현을 뺀 배우들의 존재감이 부족하다'고도 하는데, 그건 이런 올스타 캐스팅 영화를 보는 자세가 아니죠. 이런 말은 '타워링'에서 스티브 맥퀸밖에 기억이 안 난다거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모건 프리맨이 낭비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도둑들'의 캐스팅이 사기라고 생각되는 건 정말 지나가는 듯한 역할까지도 대단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비의 여인 역을 맡은 예수정이나 채국희, 카지노 매니저 역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최덕문, 그리고 사건의 키를 쥔 인물(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 역으로 출연하는 연출가 기국서 등이 그렇습니다.

 

 

기국서의 경우에는 기주봉씨로 착각하신 분도 아마 있을 듯. 왼쪽이 기주봉, 오른쪽이 기국서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것으로 예상되는 '도둑들', 한마디로 2012년 한국 영화의 뛰어난 성취라고 불러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미 면에서든, 느껴지는 공력 면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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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예매 전쟁이 붙었다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영어 원제는 그냥 rise가 아니라 rises입니다)를 봤습니다. IMAX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열성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음향으로 알아준다는 롯데시네마 건대 6관을 이용했습니다. 덕분에 한스 짐머의 진면목은 실컷 누리고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배트맨 3부작을 마무리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습니다. 전작 '인셉션'의 흥행 성공 이후 한 인터뷰에서도 "인셉션이 흥행과 평단 양쪽에서 성공한 덕분에, 나의 마지막 배트맨 시리즈를 영화사에 전혀 빚진 느낌 없이, 그리고 아무런 간섭 없이 만들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 미국과 국내의 평론가/기자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놀란 감독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성과에 대해 찬양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거룩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이야기는 '다크 나이트'가 끝난 시점에서 8년 뒤에 시작합니다.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은 '투페이스' 하비 덴트의 죽음 이후 세상을 등지고 칩거합니다. 범죄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하비 덴트 특별법'을 통해 고담 시의 범죄율은 뚝 떨어지고 평화가 찾아오지만 짐 고든(게리 올드만)은 '아직 전쟁을 끝날 때가 아니다'라는 염려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웨인은 자신의 집을 털러 온 캣우먼(앤 해서웨이)의 등장, 그리고 자신이 배트맨이라는 것을 간파한 젊은 이상주의자 경찰관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 과 함께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고담이 거물 용병 베인(톰 하디) 무리에 의해 습격당하자 다시 배트맨으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베인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뇌나 완력 모두 막강합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완벽합니다. 특히 도시형 수직이착륙 전투기 '더 뱃(The Bat, 바로 아래 사진)'의 등장과 함께 액션은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전체 영화 속에서 액션의 비중이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풋볼 경기장 폭파 신이나 베인 일당의 항공 액션 등은 확실히 액션이란 절대적으로 '양보다 질'이라는 것을 입증해냅니다. 한스 짐머의 묵시록적 교향시를 바닥에 깔고 있는 이런 장면들은 이미 '트랜스포머'나 '어벤저스'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감탄을 일으킵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수천명의 대격돌 신에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얘기할 때 액션만으로 이야기를 끝낸다면 그거야말로 바보같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슈퍼 히어로 무비들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사이에는 대양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철학적 담론 얘깁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전편들과 같이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약간 이견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시는게 좋겠습니다.^ 이후 부분에서는 심하지는 않지만, 영화 내용을 꽤 언급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얼른 보시고,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댓글도 나중에 보시는게 좋습니다.

 

주로 이 영화를 '액션 블록버스터'만으로 볼 것이냐(즉 '트랜스포머'나 '배틀십'과 같은 기준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트맨 비긴스'와 '다크나이트'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의라는 필요악의 선을 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슈퍼 영웅 배트맨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다크나이트'는 배경색을 통해 그리려는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듯, 순수한 악의 화신 조커를 통해 과연 정의의 집행자와 악의 화신 사이엔 어떤 간격이 있는지를 보여줘 온 세상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의 도덕률에 대한 설정은 이야기의 흐름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트맨은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엄격한 자기만의 원칙 아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살인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죠. 배트맨은 조커를 비롯한 악당들에게 '나는 너같은 살인마와는 달라'라고 말합니다. 조커는 갖은 노력을 통해 -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 배트맨이 통제되지 않는 살인자가 되게 하려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죠.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과연 저런 도덕적 기준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는 본래 필요악입니다. 악당들이 총을 들고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을 때, 소위 '슈퍼 영웅'이 자신만의 '살인 금지'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그 범죄를 막지 않는다면 대체 슈퍼 영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배트맨의 이런 우유부단함은 지구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국제 분쟁 개입 결정과 비교되곤 했습니다. 물론 개입을 결정하는 요인이 반드시 '정의의 실현'만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배트맨 캐릭터의 문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배트맨은 이번에도 상황을 무시한 채 '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라는 원칙을 고수해 계속 답답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심지어 개연성 면에서도 무리가 발생합니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월 스트리트의 대격전에서, 배트맨이 탄 공격기 '더 뱃'은 베인 군단의 장갑차에서 기관총 1정만 제거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배트맨은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맨주먹으로 격전에 참가하죠.

 

자동화기와 장갑차로 무장한 베인 군단에게 3천명의 경찰관이 곤봉과 권총만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것은 실전이라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월등한 화력을 보유한 배트맨이 '살인은 안된다'고 물러선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위가 아닐수 없습니다. 배트맨이 화력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경찰관들의 병력 희생은 몇십배가 되었을 겁니다. (뭐, '소수의 영웅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희생을 통해 얻어낸 승리가 진정한 승리'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핵폭탄을 실은 트럭을 제지하려는 순간에도 '더 배트'는 호위 차량을 제압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위차량이 발사한 미사일을 피하느라 시간만 낭비하죠.

 

(이 결전 이전에 주인공들은 "45분 후면 핵폭탄이 터진다"며 긴장된 표정으로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원칙 타령이나 하는 영웅이라니... 이 장면을 보고 감동하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너 가고, 아이언맨 불러와"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여기까지, 배트맨의 이런 특성이 답답한 사람은 답답한 것이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로 그만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개연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나의 배트맨은 원래 그래' 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 밖에도 스토리의 전개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놀란의 너무 큰 야심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 수준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베인을 비롯한 '악의 세력'의 캐릭터가 부실합니다. 베인 자신은 뛰어난 두뇌, 막강한 전투력, 거기에 부하들로 하여금 배신보다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막강한 리더십을 자랑하지만 그 존재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 모호합니다.

 

이를테면 대체 왜 고담을 외부로 부터 차단해 점령하고, 5개월간 무정부 상태를 유지한 뒤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없습니다. 대체 그는(혹은 그를 배후조종하는 탈리아 알굴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댓글을 참고해 몇마디 덧붙입니다.

 

많은 분들이 베인의 동기란 '라스 알굴의 유지 계승'과 '탈리아 알굴에 대한 사랑과 추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영화에 나옵니다. 그렇지만 베인이 영화 속에서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배트맨 식의 설정'에 익숙한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을 설득하기에는 역시 부족합니다.

 

이를테면 핵 과학자 납치 -> 웨인의 지문 탈취 -> 증권거래소 습격 -> 웨인 회사 경영위기 -> 미란다의 웨인 그룹 입성 -> 원자로 위치 파악 -> 테러로 고담 장악 -> 원자로를 핵폭탄으로 -> 5개월간의 해방구(?) 운영 -> 파멸 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왜 밟아야 하는지 납득할만한 동기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물론 굳이 설명하려면 할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일반 관객이라면, 억지라는 생각이 드는게 정상일 겁니다.

 

(아울러 지하에 갇힌 3천명의 경찰관을 왜 몰살시키지 않고 먹여살렸는지도... 혹시 고든과 블레이크가 식량을 조달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도시가 고립된 상태에서 3천명을 5개월 동안 먹고 마시게 할 수 있는 보급량을 10여명의 지하조직이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베인이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렇다면 대체 왜?)

 

 

 

고담이야말로 현대 서구 문명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고담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는 것이 온 세상에 본보기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리고 나서 그 목적을 이뤘으니 순교자가 되려는 걸까요.

 

참 기이한 악당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커만큼 선명한 목적이나 행동의 동기가 없는 이상한 악당은 이 영화의 극적 흥미를 상당 부분 떨어뜨립니다. 베인 일당이 미국이 상대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비유라면, 놀란은 그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논자와 관객들은 베인을 '슈퍼 빈 라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놀란은 영화 내내 현실에 대한 은유를 시도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증권거래소를 덮친 베인 일당에게 한 딜러는 "여기는 (현금이 오가지 않는) 증권거래소라 훔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베인은 "그런데 너희는 잘도 훔쳐 가더군?"이라고 비웃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놀란은 '자본의 탐욕에 맞선 시민들의 분노'를 다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란에 의해 그려지는 고담 시는 대혁명 때의 파리와 판박이가 됩니다. 혁명을 사칭한 베인 일당에 의해 교도소(바스티유?)는 무너지고, 혁명 재판소에서는 매일 피를 부르는 막무가내의 학살극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해서 월 스트리트를 점령했던 '분노한 시민들'은 베인 일당의 선동에 놀아난 '사회 불만세력 내지는 난동세력'으로 전락당합니다.

 

이런 어수선한 진행 끝에 결론은 '모든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있고, 세상은 한두명의 영웅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는 교과서적인 것이라니. 너무 안이합니다. 결론은... 놀란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건 그냥 안 하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인류 문명사의 복잡다단한 논점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물론 '배트맨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혹은 '이건 원래 만화잖아!' 라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놀란은 지금까지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등을 통해 자신이 그냥 단순한 상업영화 감독이 아니라는 기대를 심었습니다. 당연히 평가의 기준이 높아졌죠.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이상을 시도한 작품이되, 놀란 스스로 높인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이 대목에서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배트맨' 마니아들은 한 시리즈의 마무리에 환호했을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단순히 이 영화를 그냥 블록버스터로 소비한 관객에게도 꽤 훌륭한 선택이었겠지만, 놀란 감독의 작품들을 관심있게 지켜본 관객에게는 전작, 특히 '다크 나이트'에 비해 부족한 부분들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만치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아쉬움도 큰 것이겠죠. '어벤저스'나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들과 이 영화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배우들이 망라된 이 영화의 캐스팅에 토를 단다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겠지만, 마리옹 코티아르가 왜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로 나오는 지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으로서 미란다 역은 아무래도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로는 앤 해서웨이를 꼽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역대 최고의 배트맨 배우로 평가받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은 다시 배트맨을 연기할 수 있을까요? DC코믹스는 잭 스나이더가 준비하고 있는 슈퍼맨 시리즈의 리부트와 함께 마블의 '어벤저스'에 맞먹는 '저스티스 리그'의 출범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일단 베일은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놀란)가 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한 이번이 배트맨으로는 마지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은 남긴 셈이죠.

 

P.S. 많은 분들이 최근 일어난 극장 총격 난사사건에 우려를 표명합니다. '다크나이트'에서도 모방 범죄 애기가 나오지만 거기선 악당이 아닌 배트맨을 모방한 사람들 이야기였죠. 반면 이번 총격범은 '나는 조커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악역을 너무 멋지게 그려낸 부작용일까요.

 

P.S.2.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해석도 사실 논란거리입니다. 과연 브루스 웨인은 은퇴한 것일까요? 그럼 이제 정의 수호는 '로빈 맨'의 것일까요? 놀란은 배트맨-로빈 컴비를 긍정하는 것일까요, 부정하는 것일까요? 보신 분들의 의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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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던 영화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덜 대중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목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아시다시피 레오폴트 자허마조흐의 소설 제목입니다. 그리고 저 작가의 이름 자허마조흐에서 학대와 모욕을 당하면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상 성욕을 가리키는 매저키즘이라는 말이 나왔죠.

 

소설 내용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권력 균형과 극한으로 치닫는 욕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서 전혀 이탈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6년째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영화감독 민수(백현진)는 어느날 섹시하면서도 베일에 가려진 여자 주원(서정)을 발견하고,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기 위해 매달립니다. 하지만 주원은 내심 민수를 '벌레'라고 호칭하며 우습게 생각합니다.

 

민수는 그녀의 매력에 끌리는 동시에 그녀의 재력에도 욕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원은 이미 상대를 노예로 길들이며 즐거워하는 데 익숙해진 터. 민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줄듯 줄듯 하면서 즐기는 것(tantalizing)이 그녀의 목표입니다.

 

 

 

 

주원에게 부와 함께 성적 취향을 유산으로 남긴 사람은 얼굴이 나오지 않는 '남궁 회장'이라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결국 주원은 지금도 허회장이라는 인물과 정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죠. 그에게 민수는 하잘 것 없는 심심풀이의 대상 쯤 됩니다.

 

이렇게만 쓰면 이 영화가 인간의 욕망을 그리는, 대사는 거의 없는 1980년대 유럽 영화와 흡사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코미디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일단 송예섭 감독의 내면 깊숙히 존재하는 시니컬한 유머감각이 영화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받아 마시지 말고 나한테 부으란 말이야!" 뭐 이런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쓰면 제가 감독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을 보시면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 제 사촌형이기 때문입니다.^ )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특징은 양면성입니다. 주원과 관계를 맺는 허회장은 권력을 향한 심각한 얼굴과 주원의 성적 노예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수 또한, 기존의 영화들에서 묘사되던 차분한 관찰자나 희생양과는 다른 캐릭터입니다.

 

그 자신이 주원에게는 극도로 굴종적이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런 배치는 가학과 피학의 관계가 반드시 일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한쪽 측면에서는 약자로 보이는 한 인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죠.

 

 

 

 

민수 역의 백현진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로 무대에 섰을 때 보여주는 카리스마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모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거의 아양 떠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주원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특히 그렇죠. 어쨌든 직업배우가 아니라는 백현진의 말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어눌함을 지향한 연기는 무척 뛰어납니다. 특히 주원에 대한 세레나데 신은 아무래도 백현진 이외의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정말 안 어울렸을 듯 합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서정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충분히 뿜어냅니다. 제작진이 원한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이미지가 딱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죠. 다만 무엇이 그렇게 주원을 주변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어가는지, 동기 부여가 좀 더 충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결과를 낳을 듯 합니다.^^ 저는 계속 낄낄거리면서 봤습니다만, 그건 직업이 영화감독인 주인공 민수의 모습에서 제 사촌형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듯.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중입니다.

 

 

 

P.S. 티치아노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이 그림이 바로 자허마조흐의 원작에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랫도리에 두르고 있는 모피가 권위와 억압의 상징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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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최대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프로메테우스'가 국내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프로메테우스'가 박스 오피스 1위를 하고 있지는 않더군요.

 

솔직히 '프로메테우스'를 기대하면서도 이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 풍의 액션 블록버스터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점, 다시 말해 '아바타'같은 영화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작했을 것입니다.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록, '프로메테우스'는 '글래디에이터'보다는 '블레이드 러너'에 가까운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샘솟았습니다.

 

마침내 영화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웅대한 시각적 파괴력을 앞세워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는 역시 논란이 한창입니다. 이 영화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 자체가 불경스럽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입니다. 반면 지나간 스코트의 히스토리를 모르는 젊은 관객들은 '뭐야 이게'라는 반응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다양한 층위의 관객들이 있습니다.

 

대체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이런 다양한 반응을 낳고 있을까요.

 

 

 

 

간략 줄거리. 우주 어딘가의 별에서 한 외계인이 자신의 몸을 흩뜨려 검은 씨앗(?)을 전파시키는 장면이 프롤로그로 주어집니다.

 

2085년, 웨일랜드사의 탐사선 프로메테우스가 먼 우주로 떠납니다. 목적은 인류 문명의 외계 기원을 탐사하기 위해서. 수년간의 수면 비행에서 깨어난 비행사들은 그들이 잠든 동안 우주선을 지켜 온 안드로이드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납니다.

 

비행의 책임자인 비커스(샤를리즈 테론)는 이 미션에 대해 어딘가 시니컬하고, 엘리자베스 쇼(노미 라파스)를 비롯한 탐사 팀의 학자들과 회사의 목적이 분명히 다르다는 선을 긋죠. 어쨌든 미지의 행성에 발을 디딘 이들은 지구라면 피라미드에 해당할 거대 유적(혹은 시설물)을 발견하고, 거기서 놀라운 문명의 흔적과 마주합니다.

 

 

 

 

개봉 전부터 에일리언의 프리퀄이네 아니네 말이 많았지만, 프리퀄의 정의를 뭘로 하건 이 영화가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1979년작 '에일리언'의 앞 이야기 인 것은 맞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말 많던 스페이스 자키의 정체는 무엇인지, 우리의 뒤짱구 에일리언은 어떻게 해서 탄생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별이 '에일리언'에서 화물선 노스트로모 호의 승무원들이 갔던 그 별이냐, '프로메테우스' 첫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별이 지구냐 아니냐 등에는 논란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리들리 스코트는 좀 반칙을 합니다. 원작자는 작품을 던졌으면 그만이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 놓고 해석 A와 B에 대해 '내 의도는 ....였다'는 식의 인터뷰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이건 창작자의 역할은 독자나 관객 앞에 작품을 던져 놓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움베르토 에코 선생이 봤다면 혼찌검이 날 일입니다. (심지어 그닥 독창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 외계인의 예수 파견설까지...)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오함'이라든가 '철학적' 이라든가, '화제작'이라든가 하는 변설에 이끌려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은 아예 안 보시는게 낫습니다. 이 영화는 매우 특이하고 야심적인, 놀라운 규모의 SF입니다. 처음부터 이 장르와 스코트에 애정이 없는 분들은 아무 감흥이 없을 것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진입장벽이 꽤 있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12년에 무슨 영화가 있었나...하고 회고할 때 이 영화가 빠진다면 좀 부끄러울 수도 있을 그런 영화죠.)

 

이하는 스포일러가 쑥쑥 튀어나올 겁니다. 하긴 뭐,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오히려 스포일러가 감상에 도움이 될지도.

 

 

 

 

사실 리들리 스코트의 '에일리언'에 대해서는 몇가지 오해가 둥둥 떠 다니고 있습니다. '스코트가 만든 에일리언 1편은 쫄딱 망하고 혹평에 시달렸는데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2편이 대박을 치면서 프랜차이즈가 살아났다'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흥행 성적만 보더라도 1979년작 '에일리언'은 1천만달러 살짝 넘는 제작비로 6천만달러 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약 2천만달러를 투입해서 8천만달러를 벌어들인 1986년의 '에일리언2(Aliens)'에 비해 낫다고도 할 수 있는 성적입니다. 쫄딱 망하거나 욕을 먹었다면 카메론이 굳이 속편을 만들겠다고 하지도 않았겠죠.

 

아마도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와 '에일리언'을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생긴 일인 듯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에일리언2'가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개봉했다가 호평을 받고, 여기 필 받아서 뒤늦게 개봉한 '에일리언'은 '뭐 이딴게 다 있어'라는 평을 얻었기 때문에... 국내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죠. 저도 개인적으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재미 면에서는 '에일리언2'가 훨씬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어두운 우주선 안에서 승무원 일곱명이 차례 차례 잡아먹히는 내용은 단조롭고 지루하죠.

 

 

 

 

어쨌든 카메론이나 데이빗 핀처(에일리언3) 등의 노력으로 에일리언 시리즈는 전설의 흥행 시리즈가 됐고 비록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원조집 사장인 스코트 옹은 뿌듯해집니다. 그리고 다른 레스토랑으로 잇달아 대박을 낸 터라, 이 기회에 '에일리언 원조집'을 대대적으로 오픈할 결심을 했습니다.

 

(뭐 중간 중간 '이건 에일리언 원조집(prequal)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지만,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런 게 바로 허세...^^)

 

 

 

 

물론 백전노장 스코트 선생이 아무 준비 없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그럼 뭐겠습니까'에 대한 답으로 준비한 것이 바로 '인류의 시원을 찾아가는 대우주 파노라마'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함께 수만년을 오르내리는 웅대한 플롯이 마련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것만으로 감동할만큼 현대 관객들이 순진무구하냐는 데 있습니다. 인류의 외계 기원설이라는것이 그렇게 새로운 시각도 아닐 뿐만 아니라, 특히나 '신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관념을 수천년 동안 유지한 서구 기독교 사회가 아니라면 '야, 인간은 알고 보니 신이 만든 게 아니라 외계인이 뿌린 씨에서 태어난 거였어. 깜짝 놀랐지?'라는 말에 과연 얼마나 큰 정서적 타격을 입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창조자는 누가 만들었을까?'하는 말 역시 뭐 그닥 큰 울림이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비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더 정확하게는 유일신 신앙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인간을 신이 만들었건, 외계인이 만들었건, 우연히 단백질이 가득 찬 연못에 번개가 떨어진 뒤 수억년에 걸쳐 진화했건 별 큰 감회가 없는게 보통이죠. '뭐, 그랬나보지...'  

 

 

 

 

다만 여기에 스코트 감독은 또 하나의 층위를 보탭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줬던 인간의 피조물, 바로 안드로이드죠. 이미 인간보다 기억력, 분석력, 체력, 근력, 심지어 외모까지도 모두 우월해진 데이빗 같은 안드로이드는 서서히 생각하게 됩니다. '대체 왜, 이렇게 훌륭한 내가, 나를 창조했다는 이유로 인간 같은 보잘것 없는 존재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관념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데이빗에게는 일단 웨일랜드 본인과 회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동기가 있고, 그 밖에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달성한다는 동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이용해 제법 위험해 보이는 외계 생물을 지구로 가져가려 하는 것은 이 두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 것이죠.

 

아무튼 데이빗은 상당히 흥미로운 발언을 많이 합니다.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나요?' 같은. 우주선이 수년을 날아오는 동안 혼자서 지구의 상고 문명을 모두 연구하고, 갖가지 고대 문자를 비교 분석해서 지구 최고의 석학이 된 데이빗에게 '생명'이란 사실 귀찮고 부담스러운 관념입니다. 그래서 외계인의 골이 터지는 장면을 보면서도 '쳇. (너조차도) 불멸의 존재는 아니었어' 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죠.

 

 

 

 

이 영화 최대의 떡밥은 웨일랜드와 데이빗이 잠에서 깨어난 '엔지니어'와 만나는 장면입니다. 대체 데이빗은 웨일랜드의 감격적인 인삿말을 어떻게 전달한 것일까요. 웨일랜드의 뜻대로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인지, 그리고 왜 엔지니어는 그런 파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인지는 참 궁금합니다.

 

이 대목에서 유일한 단서는 제목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신들의 입장에서는 주고 싶지 않았던' 불을 주는 바람에 바위벽에 매달리게 된 티탄 신족입니다. 이 영화와 관련해 이 신화를 인용하시는 분들이 1.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와는 다른 신족이고 2. 프로메테우스가 절벽에 묶인 것은 사실 불을 줘서가 아니라 제우스의 예언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고 3. 정작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에 묶이지만 불을 전달받은 인류는 대홍수로 절멸의 운명을 맞는다는 점을 간과하곤 합니다.

 

대체 왜 엔지니어가 지구인들을 싫어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나오지만, 그건 신화에도 나오듯 '저깟 것들이 뭔데 불(혹은 지성)을 사용해?'라는 간단한 불쾌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나 '에일리언' 등의 인간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외양, 때로 인간보다 뛰어난 지성을 보이는 것을 경멸하곤 하죠. 자신들의 피조물에 대한 무시는 때로 몇날 며칠을 공들여 만든 성냥개피 집을 자기 손으로 휙 허물어 버리거나, 늘 흥미롭게 지켜보던 개미집 표본에 물을 부어 수많은 개미들이 익사하는 광경을 즐거워하는 어린이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건데 어때? 죽이건 살리건 무슨 상관이야. 또 만들면 되지."

 

 

 

 

사실 '프로메테우스'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상념에 젖게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철학적이고, 심오하고, 압도적이어서 아니라(물론 비주얼은 진정 압도적입니다)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빈 칸이 많은 상태로 관객 앞에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리들리 스코트는 그의 진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공 지능과 인격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헤어지는가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블레이드 러너'의 설정 곳곳에 있는 여백(노골적으로 말하면 '구멍')에 얼마나 마니아들이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 열광이 얼마나 자신을 더 위대한 감독으로 만드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에 남겨진 여백들은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보다 훨씬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리들리 스코트가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 제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너희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와 웅대한 설정, 압도적인 비주얼, 그리고 한 3년 너희끼리 치고 받을 수 있는 풍성한 떡밥을 주마. 나는 가끔씩 인터뷰를 통해 '나의 진정한 의도'를 흘려 주지."

 

 

 

 

새로운 리플리 역을 맡은 노미 라파스(Noomi는 누구나 '누미'라고 읽고 싶어지는 스펠링이지만 독일이나 북유럽권에서 oo는 '우' 보다는 '오'의 장음에 가깝다고 합니다. '특전 유보트'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Das Boot'는 '다스 부트'가 아니라 '다스 보트'죠^^)는 강인하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초인적인 캐릭터라서 현실감이 떨어집니다(배를 절개한 뒤 스테이플러로 박고도 날아다니는 인간이라니...그거 참). 또 하나의 여성 캐릭터인 비커스는 샤를리즈 테론의 낭비였다는 여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련되고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악당 데이빗(...사실 이런게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뭐가 사이코패스겠습니까^^)는 이미 성공이 예견된 캐릭터였고, 이미 패스벤더는 매그니토 역을 통해 보여준 악역 잠재성을 유감없이 이 영화에서 펼칩니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77년생 치고는 노안이라는... 그런데 블레이드러너의 시대는 2019년. 이때 이미 넥서스들이 그렇게 발달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80년대의 데이빗, 2130년대의 비숍은 좀 발달이 정체된 느낌이 있습니다. 웨일랜드사가 타이렐 사의 기술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P.S. 스코트 형님의 입장은 '반드시 속편을 만든다' 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속편은 정말 예상대로 엘리자베스가 우주 괴물들을 데리고 엔지니어들을 멸종시키는 내용일까요.^^ 매우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이제 뒤짱구 에일리언은 다시 못 보게 될 것 같으니 좀 아쉽습니다. 사진은 H.R.기거의 오리지널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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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 노출'이라는 검색어로 몇주째 인터넷 여론을 이끌고 있던 영화 '후궁: 제왕의 첩'을 조금 빨리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후궁'은 표면적으로 사극이고 조여정이 주인공이라는 점 외에는 '방자전'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영화지만 워낙 마케팅 차원에서 '방자전'이 강조되다 보니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같은 감독의 영화로 착각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노파심에서 강조하자면, '방자전',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과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누', '후궁'의 김대승 감독을 혼동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름이 비슷하긴 하군요.)

 

제목에 저렇게 써 놓고 본문은 '조여정이 주인공...'이라고 시작하니 이게 또 뭔 헛소리인가 하실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조여정만 주인공이 아니고, 김동욱, 박지영도 주인공이었다'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느끼실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스타일'이라는 괴물입니다.

 

 

 

 

대략 조선 초기 정도로 추정되는 시대. 왕의 배다른 동생 성원대군(김동욱)은 우연히 사냥길에 나섰다 머물게 된 참판(안석환)의 집에서 참판의 딸 화연(조여정)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대략 화연과 그 집의 아들처럼 대접받는 식객 권유(김민준)가 예사롭지 않은 관계지만 성원대군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원대군의 모친이며 왕의 계모인 대비(박지영)는 대군의 마음을 알면서도 간택령을 내려 화연을 왕의 후궁으로 들이고, 권유와 함께 도망쳤던 화연은 권유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궁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바로 아들을 낳아 중전의 자리에 오릅니다.

 

5년 뒤, 병약했던 왕이 급사하고 성원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대비가 수렴청정에 나서면서 선왕비 화연과 화연이 낳은 왕자는 권력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왕이 된 성원은 여전히 화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상황에서 거세당한 권유가 내시가 되어 입궐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이 정도까지의 줄거리는 이미 각종 기사나 TV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훨씬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작진이 굳이 오마주라고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찌기 신성일 윤정희 주연, 신상옥 감독의 '내시(뒷날 이두용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됩니다)'에서 오만석 구혜선 주연의 TV 사극 '왕과 나'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양가집 규수와 서로 사랑하던 젊은이가 여인을 궁에 빼앗기고 자신은 남성을 빼앗긴 몸이 되어 내시로 입궁,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는 옛 연인을 바라보는 이야기' 말입니다. 물론 '후궁'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주체를 '내시'에서 '왕'과 '여자' 족으로 확장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결말도 크게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고전의 극복 혹은 재해석'이라는 강점을 갖고 시작합니다. 보는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를 깔고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왕의 여자를 사랑한 왕' 부분에서 조금은 무리가 있습니다. 웬만하면 성원대군의 욕망이 성취될 가능성 정도는 열어놓는 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선왕의 여자를 탐한 왕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측천무후도 당태종의 후궁이었지만 그 아들인 고종의 황후가 되었고 광해군도 선조의 후궁이었던 개시 김상궁을 총애했습니다. 하지만 '아들까지 낳은 형의 정궁'을 어찌 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죠. 며느리였다가 시아버지의 여자가 된 양귀비도 최소한 아이는 없었습니다.

 

 

 

 

뭐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 8세도 형의 아내였던 캐서린을 첫 왕비로 맞기도 합니다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형사취수가 일반적이었던 고구려 시대 이후로는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혹시 이런 기록을 보신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고려 때만 해도 부계만 다르면 남매끼리도 혼인을 하고, 이모나 삼촌과 결혼한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경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작진의 의도는 아마도 성원의 욕망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일 때 극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었겠지만, 반대로 '너무 어처구니없는 욕망'이기 때문에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왕(성원대군)에 대한 공감이 뚝 떨어지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이쪽 생각입니다). 물론 막장드라마에 익숙한 현대인들이라면 다를 수도 있을 것이고, 결국은 관객 개개인의 취향 문제입니다.

 

 

 

 

굳이 성원대군의 욕망이 아니더라도, 이미 '혈의 누'에서부터 김대승 감독에게 '조선시대라는 배경의 고증과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의 완벽한 균형' 같은 것은 전혀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사극 영화의 예고편 배경음악으로 라흐마니노프가 쓰일 때부터 짐작됐죠^^)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사소한 딴지 이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관객들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도입부에 얘기했듯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예사롭지 않은 비주얼입니다. 도저히 조선시대 의상으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의상과 공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하는 이야기로 일각에서는 왜색 의상설^^까지 나왔다고 합니다만, 이건 좀 무리한 얘기고, 오히려 이 비주얼에서 김대승 감독의 의도가 좀 더 분명해진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 속의 낯선(?) 고전 의상들을 보다 보면 와다 에미('란', '영웅')나 '와호장룡'의 섭금첨(葉錦添, 티미 입)이 만들어 낸 탈국적적 내지는 범 동양적인 고전 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특히 섭금첨이 미술을 맡고 풍소강 감독이 '햄릿'의 재해석을 시도했던 '야연'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듯 합니다. '후궁'에서는 국내 최고의 미술감독으로 불리는 조상경씨가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런 의상과 장중함이 강조된 궁 세트는 자연스럽게 관객을 지배합니다. 이 글의 제목을 정할 때 '스타일이 주인공'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감독의 거대한 야심이 발현되고, 배우들의 연기를 압도하는 스타일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일반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반면 셰익스피어적인 조건을 갖췄으되 셰익스피어 등장인물들의 독백이나 방백을 빼앗긴 배우들에겐 이 영화 속 등장인물로 동화되는 것이 상당히 힘든 과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배경 설명이 필요없는, 너무나 선명한 인물인 대비 박지영이 돋보인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 같고 반대로 다소 무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았던 김동욱의 호연에도 큰 칭찬이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드 연기를 부담으로 여기지 않은 조여정의 열연은 굳이 새로 거론할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 화려한 세트와 의상을 능가하는 존재감이랄까요(오히려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듣는 것이 부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이 영화를 보는 이유 1번이 '조여정'인 분들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P.S. 이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궁금증입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 줄거리에 큰 영향이 없으니 스포일러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목이 '후궁'이지만 사실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후궁은 조은지 한명 뿐입니다. 물론 조여정이 처음 입궁할 때 계비로 입궁한 것인지, 후궁으로 입궁한 것인지(아마도 후자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분명치 않지만, 후궁으로 입궁했다 해도 그 시절은 영화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후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뭐 후궁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비전 지하의 그 비밀스러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친절하게 제목에 '제왕의 첩'이라는 해설까지 붙어 있고, 영어 제목도 'cocubine'으로 붙어 있고 보면(영화 제목에서 이 단어를 보는 건 '패왕별희' 이후 처음입니다), 충분히 제기될만한 의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왜 제목이 '후궁'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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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라는 영화가 나오기 까지의 과정에 대해 미국 그래픽 노블('만화책'에 대한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니아들에게 물으면 '그걸 어떻게 한두시간에 설명하란 말이냐'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물론 그 엄청나게 복잡한 계보와 역사(절대 정리되지 않습니다. 작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를 일반 관객들이 이해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일단 '미국 만화'에는 DC 계열과 마블 계열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화를 기준으로 볼 때 DC 계열보다는 마블 계열이 훨씬 결속력이 강하다는 정도만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사전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아이언맨' 이후 '퍼스트 어벤저-캡틴 아메리카', '토르' 같은 영화들은 이미 '어벤저스'를 만들기 위한 밑밥이라는 점을 관객들에게 너무나 분명히 알렸기 때문입니다. 즉 위 두 편의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어벤저스'의 사전 홍보 영상같은 의미라고 봐야겠죠.

 

줄거리. '어벤저스'는 가장 직접적으로, '토르'에서 이어집니다. 토르에게 한번 박살이 난 토르의 의붓동생 로키는 외계 전사 종족의 후원을 받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파이 능력을 이용해 이 외계 전사들을 지구로 불러들여 지구인을 멸망시킬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한편 로키에게 큐브를 빼앗긴 퓨리 국장과 SHIELD는 슈퍼 히어로들의 연대를 통해 지구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친다는 '어벤저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깁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배너 박사(헐크), 토르 등 개성 강한 히어로들은 절대 합심하지 못하고,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빚어집니다.

사실 지금 리뷰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잡담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동기에 더 부합하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겠죠.^^

굳이 볼까 말까를 물으신다면, 시원시원한 볼거리를 원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뭣보다 한국형 히어로 아이언맨이 나오잖습니까.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다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어차피 잡담이니까 번호 붙여 정리합니다.

1. 영화의 전반부를 보다 보면 제작진의 고민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이미 신격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강한 적을 붙여야 관객이 긴장하게 될까요?

이미 지나치게 강한 우리편과 듣보잡 상대편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결국 '자중지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부의 이야기는 참 바보같고 한심한 오해와 과민반응의 연속이라 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 쉽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제작진의 사정을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얼른 전반부가 지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관객의 태도입니다.

 

                                ...너무 약한 적. 그래. 바로 너.

2. 사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지금도 이미 너무 강한 어벤저스지만 여기에 같은 마블 코믹스 소속인 스파이더맨이나 X맨의 일부 멤버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스파이더맨이 굳이 이 판에 숟가락을 들고 낄 이유가 없고, X맨과의 연대는 안 그래도 복잡한 히스토리를 더욱 더 꼬이게 할 우려가 있으니, 지금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입니다.

아무튼 1, 2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조스 웨든 감독의 솜씨는 인정하게 됩니다.

 

3. 사실 진정한 슈퍼히어로 연합이라면 아이언맨, 캡틴, 헐크, 토르 정도까지가 적당합니다. 이미 이 정도만 해도, 솔직히 토르는 신이고 다른 멤버들은 사람인데 토르와 아이언맨이 동등하게 치고받고 한다는 것부터 좀 불편하죠. 게다가 실전에서 가장 위력적인 멤버가 방패도 없고 맨살로 뛰어다니는 헐크라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실전에서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무 초능력 없는 진짜 사람'인 호크아이나 블랙 위도우에 비해 뭐 하나 뾰족하게 나은 게 없더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적의 방패'입니다만, 그 방패 없는 나머지 멤버들도 적들의 사격은 그냥 야구장 레이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한방도 안 맞아요). 그 결과, 맨주먹으로 맞서는 캡틴은 그냥 명예 멤버 역할이나 하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팬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일수도...

 

 

4. 이 영화의 시각은 은근히 우익적입니다. 영화 도중 아이언맨은 SHIELD에서 외계의 에너지원인 큐브를 이용해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고 폭로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권력기관 민간인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배너 박사가 "내 너희 기관원들이 하는 짓이 그렇게 음흉할 줄 알았어! 니들 나한테도 *****하게 했잖아!"라고 흥분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걸 니들이 알아봤자 이런 소란밖에 더 피워?'와 '입만 살아 있는 무책임한 히어로들보다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묵묵히 아무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던 SHIELD가 짱'이라는 쪽.

 

5. 새로 추가된 배우가 워낙 없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코비 스멀더스의 출연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의 미녀 로빈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마찬가지로 반가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선 별 존재감 없는 역이었지만 감독 조스 웨든이 극장판 '원더우먼'을 계획할 때 타이틀 롤을 맡기려고 했던 인재입니다. 물론 취소된 프로젝트. 아래 사진은 아마도 그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은 팬 아트인 듯 합니다.

완전히 박살난 TV판 원더우먼 리메이크는 대체 왜 그런 캐스팅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거기에 비하면 코비 다이애나 프린스는 여신이군요.

6. '어벤저스'의 제작과 거의 확실한 '어벤저스2'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3'가 2013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건 역시 '어벤저스' 프랜차이즈가 아이언맨 없이는 존립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아이언맨이 유재석인 '무한도전'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전투력은 헐크가 최강이라도 결국 멋진 역할이나 재미있는 장면은 모두 아이언맨 차지. 애인이 나오는 캐릭터도 아이언맨 혼자 뿐.

이렇게 보면 '어벤저스'는 '아이언맨' 2편과 3편 사이의 간격을 메워 주는 '아이언맨 2.5' 의 역할이라고 보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전 우주적으로 놀게 된 아이언맨을 다시 지구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아이언맨3' 제작진은 얼마나 더 고민해야 할까요.

 

7. 베스트 신은 헐크가 보여주는 '분노의 빨래 털기'.^^

   이 한 장면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후련합니다.

 

P.S. 대체 항공모함이 공중에 떠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이점에는 뭐가 있을까요?

       어뢰에 맞지 않는다? 기뢰 공격을 피할 수 있다? ㅋ

       ('첼로리스트'는 워낙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터라 뭐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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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소문 최강인 영화 '건축학개론'. 명성대로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입니다.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을 보고 '이야, 이렇게 뻔할 듯한 이야기를 갖고 이만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하고 재능에 감동한 게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영화, 특히 전작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가지고 이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소문대로 이 영화는 Y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감독이 90년대초 Y대 건축공학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Y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가수 김동률의 노래 '기억의 습작'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영화입니다. 시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바보같은 스무살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촉촉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정도.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보세요."



현재.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승민(엄태웅)에게 어느날 갑자기 잊고 살던 15년 전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서현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승민. 그런 승민에게 서현은 의사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 지을 집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15년 전(1997년?). 건축공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1학년 2학기 건축학개론 시간에 음대생 서연(배수지)을 보고 가슴이 설렙니다. 알고 보니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서연. 제훈과 서연은 갑작스레 가까워지고, 건축학개론 과제를 위해 꽤 멀리까지 함께 나다니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워낙 경험이 없는 탓에 이 감정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승민. 갓 스무살의 신입생에게 사랑이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크로니클'에서 갑작스런 초능력을 갖게 된 10대들이나 마찬가집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시기죠(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그렇습니다). 문제는 첫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에너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려는, 상온에서의 니트로글리세린같은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감정은 느끼되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과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죠. 에리히 프롬이 젊음에 대해 '사랑은 충만해 있으되 그 사랑을 어디로 쓸 줄 모르는 상태'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소한 오해, 별 것 아닌 힌트, 아무 일도 아닌 위기감, 그리고 질투, 선망, 동경 등등 미세한 감정의 흐름에 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곤 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제목대로(?) 바로 이런 '첫사랑에 대한 개론'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첫사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낭만적인 병리적 증상을 남김없이, 그리고 매우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사랑에 대한 잘 만든 영화가 어디 한두편일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 한 영화가 우려먹고 지나가고, 그 세대가 흘러가 다음 세대가 비슷한 주제를 찾을 때까지 - 이 소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86년의 '겨울나그네', 2000년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2012년의 '건축학개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세대가 나타나겠죠.)



개인적으로 - 뭐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한 분들이 많겠지만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신입생 시절의 승민과 서연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김동률의 노래를 듣는 장면입니다. 

승민은 서연이 건네 주는 이어폰의 한쪽 끝을 귀에 꽂습니다. CD 플레이어가 작동되기까지 약 2,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물론 이 정적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이 순간은 서연에 대한 승민의 마음을 0의 상태, 즉 컴퓨터로 말하자면 초기화시키는 시간인 셈입니다), 김동률의 익숙한 첫 가사, '이젠/ 버틸수 없다고...'가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승민은 먼 훗날 누군가로부터 '언제 서연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일테죠. 이렇게 이용주 감독은 필요한 부분마다 적시타를 날려 주는 강타자의 면모를 보입니다.




표면상 주인공은 엄태웅/한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성인 부분은 그냥 간판 역할입니다. 진짜 영화의 핵심은 이제훈/배수지에게 가 있죠. 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캐스팅은 매우 절묘했습니다.

이제훈은 갓 명문대에 입학한, 다소 어려운 집안의 젊은이로서 완벽합니다.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듯한 그늘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빈부 양극화로 접어들기 직전, '한국사회에서 강남이 갖는 의미와 강남 문화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축감'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고의 걸그룹 출신인) 배수지는 그런 부분에서 묘한 존재입니다. 승민이 서울 강북 지역에서 자라났고, '강남/강북'의 구도가 그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폭력적인 느낌이라면, 아예 서울 사람이 아니었던 서연에게는 그런 구도가 큰 의미가 없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나 '서울 사람'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서연에게는 '기왕이면 강남이 더 멋지지 않아?'라는 의식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이 무참히 사라진 이유 이면에는 이처럼 '강남/강북'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구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서울 지역에서 '강남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을 느끼고 있던(말하자면 '계급에 대한 인식'인 거죠) 승민은 그 외곽으로부터 진입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남 문화에 대한 선망과 편입 의지를 보이는 서연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연을 사랑할수록 그 불만은 점점 깊어갈 뿐입니다. 

아마도 승민은 서연이 자신의 처지나 시각을 '알아서' 공유해 주기를 바랐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강남/강북'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서연은 이런 승민이 불안하고 어색해 보일 뿐입니다. 안경 쓴 선배는 그 '강남'을 상징하는 존재지만 '그날밤의 사건'은 사실 둘이 헤어지는 데 부수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애당초 이런 인식 차이가 있는 한 승민과 서연은 잘 될 수가 없는 관계였죠. 이용주 감독은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고, 관객에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해하실...)



승민의 눈에 비치는 서연은 '예측불가능한 요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인 것이죠. 이런 대상이 되려면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서연 역을 구현하는 배수지의 스타일과 연기는 완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림하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이 엿보입니다.





영화에서 표제곡으로 등장한 노래는 다 아시는 '기억의 습작'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떠오르는 노래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직접 들었다면 줄거리의 균형을 깨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영화의 포스터 중에 이 카피가 써 있는 버전이 있군요.^^)



P.S.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우리중 인기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첫사랑'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중 많은 '나'는 어느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을 겁니다. (네. 불편한 진실이죠.^^ 대중은 속고 있습니다.) 


P.S.2. 납뜩이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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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봤습니다(극장을 찾은게 얼마만인지...ㅜㅜ).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세븐'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2011년작입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미 2009년에 작가의 모국 스웨덴에서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밀레니엄 1부'라는 제목으로 이달초 국내에서도 개봉됐는데, 사실 이 영화에도 관심이 갔지만 개봉관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이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동안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욱 '영화부터 보자'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주연 여배우 루니 마라의 'W' 지 화보에서는 더더욱.




현대. 스톡홀름. 시사잡지사 '밀레니엄'에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Blomkvist,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업 총수 베너스트롬(Wennerstrom)의 비리를 폭로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해 패소하고 60만 크로나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됩니다.

좌절해 있던 미카엘에게 스웨덴의 오랜 재벌 가문인 방예르(Banger) 가문에서 연락이 옵니다. 방예르 가문의 가주 역할인 헨리크(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천재적인 조사관 리스베트(루니 마라)를 이용해 미카엘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조사해놓고 있죠.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4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조카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내 주면 베너스트롬을 몰락시킬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떡밥을 던집니다. 영하 20도를 넘는 한겨울, 몸이 덜덜 떨리는 시골 저택의 별채에서 미카엘은 뭔가 음습하고 비밀이 넘치는 방예르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왜 이 작품이 소설로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롬크비스트, 베너스트롬 같은 낯선 이름. 흔히 해외 유명 작품들이 무대로 삼는 런던, 파리, 제네바 같은 도시가 아니라 퍽 생소한 스톡홀름 등의 배경이 확실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Blomkvist라는 이름은 이전의 상식대로라면 Blomkwist, 즉 '블롬퀴스트'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여기선 또 '블롬크비스트'라는 발음이 등장합니다. 사실 '헤르미온느'나 '케드릭' 이후 한국 번역가들의 이름 발음 문제에 대해서는 큰 신뢰를 갖지 않게 됐지만, 북유럽 이름까지 가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문득 올림피크 리옹에서 뛰던 노르웨이 스트라이커 John Carew의 이름 표기를 놓고 벌어졌던 왕년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존 캐루 - 욘 캐루 - 욘 카레우 - 욘 카레브 - 욘 사레브까지 온갖 한글 표기들을 검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이라면 http://ko.forvo.com/word/john_carew/#no 를 검색해서 '욘 카레브'라고 자신있게 쓸 수 있었겠죠.)



어쨌든 핀처의 솜씨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Immigrant Song'으로 시작하는 격렬한 그래픽의 타이틀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편집의 대가답게 핀처는 대단한 속도감으로 전반부를 폭풍처럼 휩쓸어 갑니다. 꽤 숙련된 관객에게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달려나간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한 속도입니다. 반면 비숙련 관객에게는 '뭐야. 얘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라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포탈 감상평을 일별하면 이런 요소가 이 영화의 흥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달려가는 영화 사이사이에도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의 풍광은 핀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충분히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눈덮인 평야와 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사물들. 모든 등장인물이 영어로 대사를 하고 있지만 '뭔가 대단히 이질적인' 이 느낌들은 관객이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천재 조사관(우리나라로 치자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직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전문적으로 남의 뒷조사를 하는 사람입니다)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의 루니 마라입니다.


아마 이 장면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 말고도 '소셜 네트워크'를 보신 분이라면 놀라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도 이 배우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만들 동기를 부여한, '예쁜이 여대생 에리카'였다는 사실을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물론 배우 노릇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욕심 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리스베트 역할은 매력적입니다. 23세. 어려서 아버지를 죽이려 시도한 죄로 금치산자 판정. 천재 해커. 발군의 운동능력.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과단성과 일반인과는 사뭇 다른 도덕관("정말 죽여도 돼요?"에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던 무대포 캐릭터의 "정말 죽여?"가 떠오릅니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펑크 스타일의 패션. (위 사진. 페레즈 힐튼에 따르면 저 피어싱은 모두 진짜랍니다.)




(네. 솔직히 이 분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코믹하지 않아서 그렇지... 딱 스웨덴의 김꽃드레라고 할 수 있죠.)

고만고만한 20대 여배우 풀이 넘쳐 나는 세상, 데이빗 핀처 같은 감독이 이런 역할을 제안한다면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백번 해야 마땅한 일일 겁니다. 이 역할 하나로 루니 마라는 수년간 고민했을 '존재감'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자 안톤(하비에르 바뎀)에 비견할 만한 압도적인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1차적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해 낸 루니 마라를 칭찬해야겠지만, 간장보다는 고추장이 인상적인 맛을 내기 쉬운 재료이듯 이런 역할이 배우의 기량을 100% 끌어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3편의 원작이 모두 영화화된다면 루니 마라는 그때 가선 '어떻게 리스베트 캐릭터로부터 도망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워낙 본 모습과 멀리 떨어진 캐릭터인 만큼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 -.

(일각에서는 스웨덴 판에서 리스베트 역할을 한 누미 라파스와 비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글쎄, 일단 사진만으로는 23세라는 설정과 라파스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23세가 원작과는 관련 없는 나이일 수도 있겠군요. 라파스에게서는 마라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미성숙'의 느낌이 풍겨나오지 않습니다.)



리스베트 캐릭터가 빛이 나는 만큼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블롬크비스트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007 배우가 육체적으로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너무 무기력하게 리스베트에게 리드당하는 역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게 핀처의 의도인지, 원작자의 의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만약 대단한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밀레니엄'을 보신 분이 있다면 실망하시기 십상일 겁니다. 어차피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고, 결과를 볼 때 그리 엄청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첨단 디지털 기법을 병행해 가며 묵묵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리스베트/블롬크비스트 콤비의 노력은 대단히 흥미롭고, 충분히 돈 값을 합니다. 죽도록 달려 목표에 도달하는 본 요원이나 헌트 요원 못잖게, '죽어라고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긴장감 유발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리스베트의 여성성을 강조한 에필로그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에필로그를 보고도 2편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건조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핀처 판 '밀레니엄'은 강추작입니다.



P.S. 헨리크 역을 맡은 할아버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실 단역에 해당하는, 대사 하나 없는 '젊은 헨리크' 역을 줄리언 샌즈(58년생인데 '젊은 헨리크'...)가 맡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P.S.2. 날이 갈수록 동태눈 증세가 심해지는지, 로빈 라이트와 대릴 해너가 헷갈릴 지경에 온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P.S.3. 도입부의 'Immigrant Song'과 '해커1'의 NIN 티셔츠는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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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혹성'이라는 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제목이 바로 '혹성탈출'입니다. planet이라는 말의 공식 한국어 번역은 '행성'입니다. 일본어의 와쿠세이(惑星)는 더 이상 한국에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일단 한번 붙여진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의 생명은 길기도 합니다. 뭐 일단 붙여진 제목이 워낙 유명하니 흥행을 생각하는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 제목을 유지하려는게 당연하겠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아주 오래 전 시작된 '혹성탈출'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1968년,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영화 '혹성탈출'이 개봉된 뒤, 사람들은 원숭이 탈을 씌운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됐고, 이 시리즈가 유명한 인간 스타 배우(예를 들면 찰턴 헤스턴)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줄거리:

제약회사의 스타 연구원 윌(제임스 프랑코)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뇌세포 재생 약제의 개발에 골몰합니다. 암컷 침팬지에게 실험한 결과 놀라운 지능 향상 효과를 발휘하지만 우여곡절끝에 침팬지는 살해되고, 윌은 발견되지 않은 새끼 침팬지를 맡아 기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아기 원숭이는 시저(앤디 서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같은 또래의 인간 아이를 능가하는 지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시저는 자신과 인간이 왜 다른 대우를 받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죠.



영화의 원제는 원숭이 행성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약간 우스꽝스러운 제목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1968년작 '혹성탈출'의 원제가 Planet of the Apes. 직역하면 '원숭이의 행성'입니다. 한국 제목 '혹성탈출'이 일본어 제목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본어 제목은 원작의 제목을 직역한 '원숭이의 혹성'이죠. 이 제목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혹성탈출'이라는 한국 제목을 붙인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에는 네 편의 공식 속편이 있습니다.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 (1970)
- 1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지구 지하에 원숭이의 지배를 피해 살고 있는 인류가 있습니다. 이 인류들은 겉보기엔 완벽한 미남 미녀들이지만 사실은 핵 오염으로 추악한 외모를 정교한 가면으로 감춘 것 뿐이고, 이들의 신은 지구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핵무기입니다. 어쩐지 '매트릭스'에도 영향을 준 듯한 영화. '속 혹성탈출'이란 제목으로 국내에도 개봉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 (1971)
- 더 이상 속편을 만들 수 없게 된 줄거리상(?) 과거로 돌아갑니다. 1편에서 찰턴 헤스턴을 도와준 원숭이들이 어찌 어찌 해서 인류의 과거로 돌아가 현생 인류에게,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무모한 과학 발달 때문에 인류가 절멸하고, 미래는 원숭이의 차지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경고에 놀란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그 미래를 막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이야기.
  결국 지구를 지배하게 된 원숭이들은 미래에서 온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미래가 과거를 만들고 다시 과거가 미래를 만든다는 루프 스토리.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 (1972)
- 앞편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인간들의 책동(?)은 실패하고, 원숭이 부부가 낳은 아이 시저가 지구상의 원숭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모아 인간을 상대로 봉기합니다. 당연히 원숭이의 반란은 성공하고, 지구는 원숭이 판이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KBS가 여름 방학 특선인가 하는 제목으로 여기까지 세 편의 시리즈를 연속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목은 '행성정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자들의 지적으로 '혹성'이란 제목을 포기했던 거죠.

Battle for the Planet of the Apes (1973)
- 지구를 차지한 원숭이들의 내전 이야기. 정권을 차지한 원숭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겨 침팬지파와 고릴라파가 지구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위의 영화들은 어렴풋이 줄거리라도 기억나지만 이건 본 적이 없는 영화라...

이밖에도 '혹성탈출'을 TV 시리즈로 만든 작품, 그리고 '완결편'을 자처하는 'Back to the Planet of the Apes'라는 TV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 시리즈는 이런 장대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위에서 든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에서 바로 나온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래에서 온 원숭이' 보다는 훨씬 설득력있는 '유전공학 기술의 실수로 태어난 천재 원숭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죠.

'진화의 시작'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시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정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돌연변이 천재로 태어난 시저는 자신이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들 사이에 낄 수 없다는 데 분노를 느끼는데, 영화는 관객이 그 분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미물 원숭이'가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데 관객은 인간보다는 시저의 편에서 응원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아바타' 스토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 혹은 '아바타' 때 외계인에게 미군이 궤멸당하는데도 미국 관객들이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라고 할 수도 있겠죠 - 아무튼 영화 속의 시저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특히 윌과 시저가 느끼는 감정의 연대가 잘 표현되어 있어 "Caesar is home" 같은 대사는 꽤나 감동적인 울림을 자아냅니다.



그리 길지도 않고, 엄청난 액션 장면이 있지도 않지만 시저의 성장기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또 다른 시리즈가 시작되려는 것인지는 알수 없군요. 그건 관객들이 제임스 프랑코 없이 시저를 주인공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크게 돈 들인 장면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앞부분은 저예산 영화의 냄새(윌이 일하는 제약회사에서의 전반부 촬영 장면은 돈 들이지 않고 찍은 태가 역력합니다. 90년대 이전 한국 영화의 영상 수준이랄까...)까지 나지만 이 영화 역시 1억 달러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입니다. CG 기술의 발달로 가상 캐릭터 시저를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비용은 여전히 만만찮습니다.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속편의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 이야기가 인간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과연 원숭이 영웅이 병든 인간 사회를 정복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있을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보고 싶기도 하군요.^^)


어쨌든 '진화의 시작'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습니다. 정말 앤디 서키스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P.S. 말포이는 여기서도 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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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여름 시즌의 블록버스터들은 치열한 눈치 싸움 끝에 개봉 날짜를 잡습니다. 당연히 방학 앞부분, 즉 7월 초쯤에 개봉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날짜를 앞당겨 경쟁작과 '박치기'라도 하게 되면 피해가 막심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개봉 첫주 박스 오피스 1위' 달성은 매우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보다 훨씬 더 '기업 마인드'로 스크린수를 조절하는 한국 멀티플렉스들의 성향으로 볼 때, 미국처럼 개봉 초기에는 미미했지만 점점 더 스크린 수를 불려 나가며 롱테일 흥행작으로 우뚝 서는 경우는 더 보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8월 후반에 개봉하는 작품들은 스스로 약세를 인정한 셈이라는 시각이 있었는데, 의외로 올해는 8월 중순 개봉작들이 완성도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났습니다. '최종병기 활'과 '블라인드'가 그렇고, 외화 중에도 '혹성탈출 2'가 평이 좋더군요.


인조반정. 광해군의 측근에 대한 토벌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린 남이와 자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북쪽으로 달아납니다. 아버지의 친구 김무순(이경영)에 의해 길러진 남매. 자인(문채원)은 곱게 자라 무순의 아들 서군(김무열)과 혼인을 하게 되지만, 혼인 당일날 병자호란의 발발로 청의 군대에 의해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서군과 자인은 포로로 끌려가는 몸이 됩니다.

바뀐 시점. 청의 바이러(貝勒)이며 황제의 동생인 용장 쥬신타는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이상한 궁수 하나가 앞서 귀환한 조카(청의 황자)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재촉해 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그 궁수가 놀라운 솜씨를 갖고 있으며, 자신이 한 마을에서 본 이상한 자와 동일인물이라는 확신만 굳어 갈 뿐입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 영화가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속도감이 일단 발군입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따로 감정 신을 나열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연출은 없습니다. 석양이나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주인공들이 굳이 자기의 속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 같은 대사를 읖조리게 할 만큼 이 영화는 한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손실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정신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탄력이 살아났습니다. 어느 부분을 짚어도 탱탱하게 튕겨나갈 듯한 박진감이 느껴집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과 비교해 볼 때, 윤색에 참여했다는 하리마오 픽처스('추노'와 '7급 공무원'을 히트시킨 천성일 작가의 회사입니다)의 공헌이 꽤 커 보입니다.

아무튼 재미 요소에서 이 영화는 근 몇년 동안 개봉됐던 한국 영화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권해도 욕 먹지 않을,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들의 힘은 굳이 말할 게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쥬신타를 연기하는 류승룡의 중량감이야말로 영화의 큰 힘입니다. '고지전'의 인민군 중대장 역할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는 것이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아무튼 '넘어야 할 막강한 적'이면서 '그 적에게도 싸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로 이보다 좋은 캐스팅과 연기는 찾기 힘들 듯 합니다.

박해일의 남이는 참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만약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혁이 이 연기를 했다면 정말 진중한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박해일이었기 때문에, 극도로 비장미 넘치는 장면에서 슬랩스틱에 가까운 장면까지 캐릭터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이 영화가 이 정도까지 큰 호응을 얻는 데 있어 박해일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도르곤 역의 박기웅을 비롯해 남이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니루들의 역할도 모두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더군요. 아무튼 요즘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저 장면 하나 찍기 위해 진짜 목숨을 걸어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절벽에서 따라 뛰는 장면 같은 부분에서는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실 꽤 중량감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니 당연히 광해군과 북방 외교 정책, 인조반정과 서인의 득세에 이은 외교 균형의 파괴,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역사적인 치욕에 대해서는 관객의 사전 지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르곤이나 정황기, 바이러나 니루 같은 청나라의 군 제도에 관련된 단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쑥쑥 튀어 나오고 육량시, 애깃살 같은 군사 전문 용어(?)도 마구 등장합니다. 물론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알고 보면 볼수록 더 재미있어 진다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 직접 검색해서 찾아 보시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일 듯 싶습니다.)

영화 속 청의 군대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제 사어 취급을 받는 만주어입니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원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만주어를 복원할 정도의 공덕인데 남이와 서군은 어찌하여 이렇게 현대화된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인지...)



단지 하나 딴지 아닌 딴지를 걸자면,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병자호란'이라는 시기와 사용되는 무기가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청의 주력이 일단 궁장기병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청의 팔기군은 이 궁장기병의 기동력으로 총포를 사용한 명군을 무력화하며 승승장구한 기록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청을 상대로 기록한 몇 안되는 전과 가운데 하나가 청 태조 누루하치의 사위라는 명장 양고리(楊古利)를 사살했다는 것인데요,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양고리는 고창 출신 무장 박의의 조총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 가장 신빙성있게 보입니다. (물론 원두표라는 설도 있고, 무명의 병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방어 전술은 활보다는 총포를 중심으로 한 성곽 체제였고, 조선을 대표하는 병기 역시 조총으로 급격히 변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 속 남이가 정규군 소속도 아니었고, 혼자 산속에서 무예를 익힌 인물이었으므로 활대 활의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를 처음 만들 당시에도 '배경이 병자호란이라면 활대 활이 아니라, 청의 활대 조선 총의 대결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괜한 지적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 기록은 박의가 양고리를 사살한 무기가 활인 듯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만...ㅋ 5천년 역사를 이어온 조선 명궁의 전설이 '명포수'로 바뀌어 가는 것이 이 시대였기 때문에 해 본 얘기였습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속도감을 높이는 편집을 위해 많은 것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위에도 했지만, 그래도 남이와 몇몇 동료들이 '호랑이 사냥을 위해 압록강 일대를 자주 넘나들어 주변 지리에 익숙해 있었다' 정도의 밑밥은 영화 앞 부분에 좀 깔아 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남이의 활에 써 있던 문장 해석.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는 '앞은 태산처럼 무게를 두고 시위는 호랑이 꼬리처럼 말아 쏘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니 국궁 용어 중 유명한 전추태한 후악호미(後握虎尾)의 변형이더군요.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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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을 보러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극장이 거의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지명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각계의 호평이 쏟아진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대체 어떻게 이런 많은 관객을 몰고 왔나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사전정보를 수집하는 거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워낙 온 세상이 영화 정보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라, 근 몇년 사이 이 영화만큼 사전에 아무런 지식 없이 본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내가 "'그을린 사랑'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게 전부였죠.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지 않은 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은 빨리 창을 닫으시기 바랍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를 보지 않고 2011년을 그냥 흘려 보낸다면 여러분은 이 해에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캐나다 퀘벡에 위치한 장 레벨씨의 공증인 사무소. 쌍둥이 남매 시몬과 잔느는 어머니 나왈의 기묘한 유언장을 접하고 당황합니다. 어머니는 남매에게 두 가지를 각각 부탁합니다. 잔느에게는 '너희의 아버지를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 시몬에게는 '너의 형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진작에 죽었다고 알고 있고, 형이 있다는 말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남매는 일순 반발합니다. 하지만 유언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는 시몬과는 달리 어머니에게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낀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를 찾기 위해 나왈의 고국인 '아랍의 어느 나라'로 향합니다.



끝까지 나왈이 태어나 자란 '이 나라'가 어디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인종 청소와 관련된 내전이 거론되는 탓에 구 유고 연방 지역의 어딘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보고 있으면 레반트 지역의 어느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의 주요 촬영지는 요르단. 하지만 기독교 민병대와 PLO가 개입된 내전으로 국토가 폐허가 될 정도의 심각한 혼란을 겪은 나라라면 레바논이 모델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원작이 된 연극의 저자도 레바논 출신이라는군요.

(다만 이 시기 중동 지역에서 펼쳐진 종교분쟁의 아수라장을 얘기할 때 책임을 피하기 힘든 이스라엘과 미국 관련 내용은 이 영화에서 아예 거론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신중함이 이 영화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려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리주의를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요소가 비판을 부르는 부분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10대 후반쯤이었을 나왈은 '이 나라'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 팔레스타인 난민 청년(당연히 무슬림입니다)과 해서는 안될 사랑에 빠지면서 역사의 격동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것은 손에 묻은 피를 새로운 적의 피로 씻는 복수극의 정서입니다. 온갖 참극을 직접 몸으로 겪은 나왈 역시 스스로 복수의 화신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이런 격렬한 복수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로 전환된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을 한 여인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을 설득하는 빌뇌브 감독의 스토리텔링은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 할만 합니다.

빌뇌브 감독이 모성애에 기반한 이해와 용서를 웅변처럼 외치고 있는 이면에서 또 한가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록에 대한 애정입니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가 기록자의 시각에 따라 왜곡될 여지가 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반면, 숫자로 표현되는 기록은 묵묵히 진실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물론 기록 자체도 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중에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어떤 기록이 채택되는지에 의해 주관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지만 화려한 수사로 서술된 '말의 역사'에 비하면 도표와 숫자는 훨씬 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빌뇌브 감독의 입장은 선명합니다. '기록하라'. 당장 의미가 부여되지 않아도 제대로 된 기록은 언젠가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는 얘기죠. 뒷날 기록에 의한 진실 규명이 이뤄진 뒤에도 용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닐까(프랑스계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고전적인 가르침대로 덮어 둘 것은 그냥 덮어 두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그을린 사랑'을 보고 나면 빌뇌브 감독의 이런 주장에 대략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너무나 강력한 서사가 지배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대해 뭐라 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왈 역을 맡은 루브나 아자젤은 1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한 여자의 반생을 기가 막히기 표현해 냅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글자 그대로 '망가져'가는 개인의 삶을 묵묵히 표현해내는 연기는 보톡스와 친한 중년 여배우들에게선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절제와 균형이 빛을 발하는 연기와 연출입니다.

사실 '그을린 사랑'의 가장 큰 강점은 빌뇌브 감독의 메시지보다는 이야기를 배치하는 교묘한 솜씨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결말 이후에도 영화의 에너지가 전혀 사라지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아무리 칭찬해도 진정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반전'을 너무 기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반전에 신경 쓰다 보면 진정 중요한 메시지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빌뇌브 감독은 이 부분에서 반전을 감추기 위해 살짝 영화적인 반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안 속겠다고 버티면 버틸수록 영화의 감동은 사라진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은 아무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 역시 같은 요령으로 가려 둡니다. 영화를 이미 보신 분만 마우스로 긁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끝까지 읽어보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바로, 표 사러 나가세요.


전체적인 영화의 얼개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이오카스테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니야드를 나중에 알아보기 위해 표시하는 부위가 발 뒷굼치라는 점('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란 뜻입니다)은 관객을 위한 힌트라고 봐야 할까요.

물론 니야드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빌뇌브 감독은 지나치게 나이 든 배우를 기용해 자신의 의도를 가립니다. 나왈이 크파르 리야트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니야드는 만 스무살을 넘기 힘들죠. 하지만 그때 니야드의 얼굴을 보고 스무살 안팎의 청년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합니다. 일종의 반칙인데, 애교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P.S. 영화에는 두 가지 형태로 지식인의 역할을 표현합니다. 한 사람은 다레쉬에 갔을 때 잔느가 처음 만나는 수학 교수입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인물이죠. 잔느가 "빌어먹을 코헨(이 교수를 소개시켜 준 자신의 은사를 말합니다)"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살짝 중의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코헨이라는 대표적인 유태인 이름을 이용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비극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네. 과잉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장 중요한 사람, 바로 나왈의 고용주였던 공증인 장 레벨입니다. 레벨이 병상에 누운 나왈의 구술에 따라 편지를 대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쉽게 남매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해 줄 수도 있었을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남매가 어머니의 유언을 직접 몸으로 수행하고 어머니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합니다.

물론 편지는 죽기 전에 써 놓은 것일 수도 있고, 레벨도 전모를 알고 있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끝까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주는 레벨의 역할을 생각하면, '기록자'에 대한 빌뇌브 감독의 애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P.S.2. 원제 INCENDIES는 '전쟁의 참화', '불에 그을린 것'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군요. 거기에 비하면 '그을린 사랑'은 너무 순한 제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쁜 제목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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