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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의 '굿바이 평양'을 보고 왔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제주도 출신(양씨라는 데서 일단 짐작 가능하죠^^)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고, 특히 북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인정받아 김일성과 함께 사진 촬영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세 아들을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10대 후반의 세 아들을 보냅니다.

막내인 양영희 감독은 세 오빠가 하루 아침에 집을 떠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세 오빠의 이후 삶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원망도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영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2004년까지 북한으로 가족을 방문하러 갈 때마다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습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전편과 속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같은 시기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되 조금 자제한 이야기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로 나눠집니다. '디어 평양'을 만든 죄(!)로 양 감독은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고 여기에 대한 반발(?)로 '굿바이 평양'을 내놨습니다.

영화는 1995년, 다섯살 난 선화가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선화는 양 감독의 둘째 오빠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입니다. 양 감독은 이것이 선화와의 첫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방문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1991년생(어쩌면 1992년생)인 선화는 1996년 엄마를 잃고, 1999년 새엄마를 맞습니다(그러니까 선화 아빠는 결혼을 세번 하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화는 구김살없이 명랑하고 씩씩한 아가씨로 자라납니다. 영화는 곧 선화의 성장사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기는 엄마의 묘소 앞에서도 방긋 방긋 웃는 아기가 되어 있고, 어느새 학교에서 배운 시 낭송을 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냥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이, 그동안 '식량난, 꽃잽이, 대량 탈출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만 부각될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북한의 실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수돗물은 하루에 두 시간 나오고 수시로 정전이 찾아오는 평양의 아파트(생일 축하를 위해 불을 껐을 때 아버지가 "어, 정전이냐?"고 물으면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도 평양 사람 다 되셨다"며 웃습니다. "영광스런 정전입니다" 하며 까르르 웃는 선화의 대사도 나옵니다), 어머니가 3년만에 닭고기 요리를 해 준다는 조카들, 미키마우스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는 선화에게 고모(양 감독)가 "이거 신어도 괜찮아? 하고 묻자 "다들 잘 몰라"라고 대답하는 선화, 그 선화보다 머리 하나씩은 작은 선화네 학교의 아이들(선화네 가족이 그나마 평양에서는 살림새가 괜찮은 편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은 양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영 신기한 듯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물질적인 빈곤 외에도, 고모가 자꾸만 선화에게 미안해 지는 이유는 여러 군데서 드러납니다. 해외 방문객이 머무는 호텔 식당에서 "먹어 본 게 없어서 고를 수가 없다"며 한동안 메뉴판만 뒤적이던 선화는 고모가 약간 민감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자 "카메라 꺼요"라며 눈치를 살핍니다. 열세살 나이에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될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양 감독이 선화에게 보여주는 애착은 오빠들 사이에서 혼자 자라나고 있는 고명딸이라는 공통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겁니다. 선화를 바라보는 양 감독의 시선에선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이 조카가 평양에서 자라야만 하는 데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디어 평양'이나 '굿바이 평양'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그런 나라에서 말입니다.




북한 입국을 금지당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오가고, 선화는 어느 새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고생하다 숨을 거두고, 아버지가 죽기 직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큰오빠(선화의 큰아버지)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큰오빠의 아들은 북한의 음악 영재로 자란 듯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양 감독이 담고 싶었던 것은 세 아들의 삶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대한 아버지의 깊은 후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특이한 가족사를 담아낸 '굿바이 평양'의 시선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따스합니다. 북한과 재일교포, 진실보다는 신화만 요란한 두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져야 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P.S. 아무쪼록 '굿바이 평양'의 공개가 선화나 그 가족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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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가 아카데미상 시상식 이틀 전에야 그 소문이 파다한 '블랙 스완'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완성도와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을 칭송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발레라는 소재,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의 분위기, 발레리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엄청난 변신 노력 등이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완벽을 향한 집념과 그 집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그리고 그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여리디 여린 신경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예술을 통한 성취 그 자체보다는, 세심하게도 이 여배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깔아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의 원천은 바로 '마마걸'이란 요소입니다.


미국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니나 세이어(나탈리 포트만)는 이 발레단을 이끌어 온 스타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은퇴와 함께 새 시즌의 개막작인 '백조의 호수'의 여주인공을 따내기 위해 엄청나게 긴장합니다. 단장(?)인 토마(뱅상 카셀)는 니나의 테크닉을 높이 평가하지만, 백조 여왕 오데트와 쌍둥이 흑조 오딜을 동시에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감정 표현이 완벽하지 않다며 의구심을 보입니다.

토마는 니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여주인공 역할을 맡기지만, 악의 상징이며 남자를 유혹해 오데트를 파멸에 빠뜨리는 오딜 역을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니나를 압박합니다. 이때문에 안 그래도 여린 니나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몇 분들이 오데트와 오딜을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토마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오해하시곤 하는데 사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거의 초연 때부터 오데트와 오딜을 한 무용수가 춤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백조의 호수'나 발레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는 결국 재능과 성공, 노력과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며, 그 단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아주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한 연출로 만만찮은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의 니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극중 발레 장면에서 보여주는 발레리나 연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설탕 인형 같은 니나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기하는 데 있어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 골든 글로브와 영국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BAFTA를 비롯해 13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여주인공의 극중 비중이나 연기력 면에서 2010년의 영화들 가운데 따라올 작품이 없다는 압도적인 성과인 셈입니다. 물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배우들 중 무시할 수 있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 올해만큼은 포트만의 독주에 제동을 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요소들에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이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웅대한 스케일, 피로를 날려 줄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약 두시간 동안 송곳으로 놋그릇을 긁는 소리를 듣는 감정의 혹사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블랙 스완'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건, 나탈리 포트만이 여우주연상을 받건 말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영화를 보는게 좋습니다. '명화'라는 말이나 지적 허영에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영화 소개는 이 정도.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니나 못잖게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의 세 여자입니다. 첫째는 예전 발레단의 여왕이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 천재성을 상징하는 릴리(밀라 쿠니스), 그리고 니나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엄마(바브라 허쉬)입니다. 사실 니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클리셰 덩어리 같은 캐릭터일 뿐입니다. 이 세 인물과의 관계가 니나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베스는 니나가 닮고 싶은 존재, 니나가 지향하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니나는 심지어 베스의 물건들을 훔쳐 가면서까지 베스의 세계에 접근하려 합니다.




릴리는 니나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무대공포증도 없고, 완벽에 대한 압박도 없이 발레를 즐길 수 있는 발레리나입니다. 니나와 같은 자기 혹사도 없고(자몽 반개로 끼니를 때우는 니나와는 달리 릴리는 치즈버거 -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다이어트로 인한 욕구불만의 상징으로 그려지죠 - 를 먹으며 춤을 춥니다), 목숨을 걸고 연습하지도 않지만 노련한 안무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유형의 예술가입니다.

릴리와 니나의 관계는 고전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릴리는 모짜르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예술이 원하는 완벽성을 희생시키는 존재입니다. 다만 니나가 90에서 100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의 90 이상을 투입해는 삶을 살고 있다면, 릴리는 80에서 90 정도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 인생의 50 정도(니나의 시선에서는 더 낮아 보입니다)를 투입하는 캐릭터입니다. (예술가의 노력과 결과로 나타나는 성취의 관계는 흔히 지수함수로 표현됩니다. 최정상의 단계에서 1%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선 그 전보다 몇 배의 투입 요소가 필요한 법입니다.)

니나가 본능적으로 릴리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 릴리처럼 역량의 50 정도를 투입한다면 릴리가 보여주는 80 정도의 퍼포먼스를 결코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릴리가 만약 인생의 100을 발레에 투입한다면 - 물론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 자신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릴리의 자유분방함은 니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상대에 대한 공포는 흔히 혐오로 바뀌기 마련이죠.




니나의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엄마와의 삶입니다. 영화 속 내용으로 짜 맞춰 보면 엄마는 그닥 재능있지는 않은 발레리나였고, 28세때 니나를 임신한 이후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니나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뒤로 다른 남자와의 삶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하고, 마찬가지로 니나의 성장과정에서 연애 같은 것은 아예 배제시켜버린 주역이기도 합니다.

니나를 사랑하고 니나를 통해 자신이 못 이룬 프리마돈나의 꿈을 이뤄보려 하지만 한편으로 니나는 자신의 발레 인생을 강제로 끝내게 한 존재(사실과 다르지만 니나 엄마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넘어 너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니나가 오데트 역을 따냈을 때 엄마는 니나에게 케이크를 먹이려 하고, 니나가 케이크를 거부하자(자몽 반개 먹는 사람에게 케이크라니...) 바로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 시도합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정상적인 딸이 자랐을 리 만무합니다.



물론 니나와 니나 엄마 같은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 쉽게 발견됩니다. 딸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장래의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딸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교우, 취미, 사회생활, 특히 연애 등을 철저하게 차단해 스파르타식으로 단련시키는 어머니들과 그 밑에서 경주마처럼 키워지는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성공하고, 어차피 몇몇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딸의 실적이 성공이냐 실패냐와는 별개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에선 엄청난 긴장과 비극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 '블랙 스완'은 좀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속 요소들이 대단히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위에서 소개한대로 아로노프스키의 섬세한 영화 작법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재능있는 딸에게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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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아주 오래 전, 국사 시간의 660-668-676 을 기억나게 하는 영화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 축출이라는 시간표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각각 정확하게 8년차가 나서 기억하기 쉬웠던 숫자였죠.

이준익 감독은 일찌기 세 편의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산벌'이 6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번 '평양성'은 668년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는 676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세력을 흡수해 당과 일전을 벌이고 한반도 경략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을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꽤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갑니다. 각각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공해 평양성에서 만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문무왕(황정민)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신(정진영)은 신라군 본진을 한성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 남생(윤제문), 남건(류승룡), 남산(강하늘)의 3형제가 항전을 이끌지만 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남생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남건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끝내 남생이 축출됩니다.

한편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으로 참전했던 거시기(이문식)는 이번 전쟁에는 신라군으로 징발돼 참전해 있습니다. 신라를 원수로 생각했던 거시기에게 신라군으로 뛰라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고구려군의 미녀 갑순이(선우선)을 보고 뭔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합니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평양성'이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과연 '평양성'을 극장에서 보는 관객 중 몇명이나 660-668-676을 기억하고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초반에 아무 설명 없이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를 몇명이나 제대로 느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전개는 '황산벌'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관객 대다수는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이 모두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며 형제간이라는 것, 김유신과 김흠순도 역시 형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자인 김인문은 오래 전부터 당과의 연락 담당(인질이라면 인질, 현지화 조기 유학생이라면 유학생)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 왜 맨날 뒷처리는 내가 하는 거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이라는 점, 이들 형제는 김유신과 군신관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처형이자 신라 군사력의 핵심인 김유신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황산벌' 때에도 이런 이유로 관객 중 절대 다수는 '황산벌'의 코미디 요소 중 상당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 절대 다수에게 '황산벌'은 백제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서로 사투리로 욕을 하는 코미디 영화였을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민초들에게 갖는 전쟁의 의미 등 정작 이 영화에서 중요했을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었고, 당시 삼국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이나 이해는 전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좋은 배우가 계백장군이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상황들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놀랐던 것은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평양성'은 '황산벌'의 맥을 제대로 잇고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인 만큼 TV 사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량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진행도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마구잡이 개싸움'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투 진행에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준익 식의 유머도 제몫을 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을 보다 보니 이준익-조철현 콤비는 '황산벌'의 성공 요인을 좀 오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양성'은 엄밀히 말해 '황산벌'보다 훨씬 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김유신이 평양성 내의 고구려 잔존 세력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읽힐 뿐입니다.


실제로 668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1년전 당은 백제의 영토를 관장하는 웅진도독부에 의자왕의 아들 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과 백마의 목을 잘라 화친을 맹세하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구 백제 지역 영토를 신라에게 넘겨줄 뜻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결과 고구려 멸망 2년만인 670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을 꾀하는 왕족 안승을 지원해 고구려 왕에 임명, 당에 반발하게 하고 웅진도독부 지역을 공격해 백제 영토의 본격적 병합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당과의 전투가 이어지고 결국 676년,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 전략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그 순간마다 당과 결전을 벌일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당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병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황산벌'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수많은 TV 사극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실제 당시에 펼쳐졌던 사건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과거'에 '현대'의 의미를 담으려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판단이 어쩌면 관객들에게는 지나친 역사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시도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됐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준익 감독의 역사 강론은 자칫 관객들에게 '너무 직설적인 강의'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양성'의 코미디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문식을 비롯한 백제 출신 병사들이 부르는 '쌀노래'는 포복절도할 환경을 만들고 독특한 유머감각은 각처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만 고구려와 그 백성들에게 놓인 운명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밝은 면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 9단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선우선이 아쉽습니다. 선우선이 구사하는 이북 사투리 연기 가운데 제대로 소화됐다고 보이는 것은 '어찌 보니(왜 쳐다보니)?' 정도일 뿐, 나머지는 뭉개지고 흩어져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지만 '조선명탐정'에게 워낙 밀리다 보니 불길한 예감(이준익, "관객 250만을 넘지 않으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도 들지만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을 둘러 봤지만 제 취향에는 '평양성'이 가장 맞는 듯 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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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작, 황정민 주연의 '그림자 살인'입니다. 시대극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시대극이 아니고, 코믹한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군요.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림자 살인'도 190만명대의 관객을 동원했고, '조선명탐정' 역시 개봉 첫주 1위를 기록하며 순항중입니다. 이런 특이한 분위기의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정조 때인 1782년. 왕은 조정 대신들의 세금 포탈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探正)이라는 관직을 마련해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탐정(김명민. 끝까지 극중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름 비상한 현장감식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살해한 혐의로 옥에 갇힙니다.

어느새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개장수(오달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립니다. 왕(남성진)과의 호흡으로 열녀 감찰을 위해 떠나지만 실제로는 역시 비리 조사가 목적. 음모세력의 암살 도구를 쫓다 보니 만나게 된 한객주(한지민)에게 반하랴, 악당들과 치고 받고 싸우랴, 개장수와 코미디 하랴 마냥 바쁜 명탐정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려다 보니 참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는 추리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를 쓰는 추리는 저 멀리 가고 엎치락 뒤치락, 탐정 일행의 슬랩스틱과 말장난이 주요 내용입니다.

아마도 역시 2009년작인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역시 전통적인 셜록 홈즈 상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흥행 면에서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대변신입니다. 천의 얼굴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살짝 보여주다 만 코미디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쳐 줍니다. 첫 등장부터 몸개그를 작렬하는 데 이어 비속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상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튕겨 주는 '새끼' '자식' '임마'로 웃겨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변신의 백미는 한지민. '이산'을 생각하면 충격입니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그 변신(골...)이 매우 강조됐죠.



늘 청초한 눈빛 하나로 먹어주던 한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팜므 파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나이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늘 '다 큰 여자'라기 보다는 소녀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배우였기에 더욱 놀라운 변신입니다.

한국 여배우들에게 가장 부담없는 노출의 자리인 시상식 무대도 극구 거부하던 한지민이었기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ㅋ) 참 이런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잘 어울리더라는 것.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의 히트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한지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다소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는 배역 선정이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번 작품은 확실한 선을 긋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달수를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물론 늘 보던 모습이라 새로운 맛은 없지만, 최근 '높낮이없는 말투 개그' 부문에서 송새벽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던 터라 이 영화에서의 호연이 더욱 반갑습니다.



김석윤 감독의 예능 전력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 '조선명탐정'을 논리적인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의 차원에서 접근하신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플롯의 개연성이란 기대할 수 없고,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좀 의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비슷할지 매우 의문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일찌감치 퇴출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명탐정'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오달수의 찬탄을 자아내는 코믹 호흡과 함께 한지민의 새로운 매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슬랩스틱성 코믹 컷들이 관객을 계속해서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롯에서 좀 더 큰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단편적인 즐거움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가려줍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연기상을 줄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트 갓파더' 처럼 관객을 화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두어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설 극장가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S. 그런데 굳이 그런 영화에 '감동'이 비집고 들어가려 한 건 좀...^^


P.S. 영화 시작 때 나오는 '탐정'이란 관직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이건 그냥 뻥입니다. 그런 관직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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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대략 이러이러하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예측은 거의 틀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 영화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은 예상을 벗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고, 또 충주 성심학교라는 실제 청각장애인 고등학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거기에 '강우석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해진 길로 다니는 지하철처럼 '뻔한 영화'인 것이 분명한데도 '글러브'는 여전히 위력적인 상품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강철처럼 심장이 단련된 사람들이라 해도 '글러브'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것이 분명 '덜 가공되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세 차례나 MVP에 올랐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이었지만 이제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인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여러 차례 누적된 음주 사고로 선수 생활이 끝장날 위기에 놓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매니저 철수(조진웅)는 왕년의 은사인 KBO 상벌위원장의 주선으로 상남을 충주 성심학교로 보내 코치 자원봉사를 하게 합니다.

'전국대회 1승'이라는 이들의 목표를 보고 코웃음을 치던 상남. 하지만 교감(강신일)과 나선생(유선), 열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열정은 상남을 움직이고, 결국 상남은 아이들이 봉황대기에 나가 진짜 고교야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뻔할 뻔짜의 스토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중간 중간 들어가는 70년대풍의 닭살 대사 또한 무척 거슬립니다. 인물들은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두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는 상남-나선생-상남-철수-상남-교장선생-상남-아이들 사이를 계속 오가지만, 카메라 밖의 시간은 아예 정지해 있습니다. 어떤 상상력도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꽤 긴 상영시간 동안 스토리의 진행은 하품이 날 정도밖에 진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최악의 캐릭터는 유선이 연기하는 나선생입니다. 이 역할은 스토리 진행(그나마)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되는 듯 합니다. 상남이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냉정하게 굴면 "아이들은 어쩌구요?", 상남이 화를 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상남이 유난히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나선생을 보며 "이건 숫제 엄마구만"하고 빈정대면 보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전 그냥 이 아이들이 좋아요(네. 정말 2011년 한국 영화 최악의 대사로 꼽힐 만 합니다. 19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가면 "이제 그만해요!"하고 울부짖는 역할이죠.



그야말로 '전형성 100%'의, 뻔하디 뻔뻔뻔뻔뻔한 캐릭터입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위원이 공모작에서 발견하면 빨간 줄로 북북 그었을 것 같은 캐릭터죠. 이런 캐릭터이니 유선 아니라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 헬렌 미렌을 데려다 놔도 제대로 된 연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편집 과정에서 완벽하게 들어 내도 영화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대사량은 전체 출연진 가운데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는 건 이 영화의 성격을 제대로 말해 주는 요소입니다. 이런 쓸데 없는 대사와 감정 전개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정작 있어야 할 아이들과 상남의 관계나 아이들 서로간의 관계 같은 건 그냥 휙휙 넘어 갑니다. 본래 시나리오에도 없었는지, 아니면 찍어 놓고 다 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관객은 "여러분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하시죠? 네. 맞아요. 자, 그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수준의 내용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 투수 역의 장기범이나 포수 역의 김혜성 등 열명의 선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김혜성의 러브라인이 잠시 눈에 띌 뿐, 최소한 각각의 아이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비쳐질 기회는 전혀 없죠. 그냥 '선수 1, 선수 2, 선수 3....'일 뿐입니다.



또 '명색이 야구 영화인데 야구 장면을 보여줘야지' 라는 강박관념도 높은 점수를 보기 힘듭니다. 세 차례의 야구 경기 장면이 나오는데, 첫 경기와 둘째 경기는 크게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세번째 경기는 아무리 봐도 너무 길고, 너무 산만합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그 많은 커트를 찍기 위해 고생했을 양팀 선수 역의 배우들과 스태프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대체 왜 이렇게 긴 경기 장면, 그것도 수없이 똑같은 시퀀스가 반복되는 장면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엄청나게 긴 반면, 야구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 봐도 엉성한 진행이 너무나 눈에 띕니다. 손톱이 갈라져 피를 흘리면서도, 정규 이닝에서만 120개 넘게 던지고, 연장전에 들어가 4이닝을 더 역투하는 투수.... 이 정도가 되면 난타를 당하건 말건 다른 선수 중 누군가를 마운드에 올려 놨어야 합니다. 게다가 연장 13회, 전광판을 보면 양팀의 안타 수는 25대27이더군요. 아무리 난타전을 치렀다지만 이건 좀 아니죠. 또 아무 맥락 없이 왜 명재가 SF볼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왜 상남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지 등등은 계속 영화의 구멍으로 남습니다.



뭣보다 '왜 봉황대기인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습니다. 봉황기는 한국 고교야구 대회 중 유일하게 지역 예선이 없는 대회죠. 다시 말해 성심학교로서는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없는 실력을 감안할 때) 유일하게 서울에 올라와 참여할 수 있는 전국대회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 또한 전혀 없습니다.

(더 지적하자면, 이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1승'이지만 봉황대기에서의 1승은 다른 대회 지역예선에서의 1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선 없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전국대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굳이 '전국대회 1승'이라고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전국대회 1승'이 '지역 예선을 통과한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 한 1승'이란 의미라면 청룡기나 대통령배같은 다른 대회 이름을 댔어야죠.)



이 영화의 주역 가운데 유일하게 칭찬할만한 사람은 정재영 하나뿐입니다. 그조차도 영화 전반부에서는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짜증나는 캐릭터에 매달리지만, 이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인 "정말 무서운 적은 우리를 동정하는 놈들이다!" 장면에서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한껏 빛을 뿜습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여럿 있겠지만, '글러브'에서 상남 역을 맡아 이 대사를 이런 분위기로 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역시 정재영일 겁니다. 그 밖에도 영화 전편을 통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은 정재영뿐입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영화의 완성도는 후하게 줘야 70점을 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너무나 뻔한 눈물 코드인데도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참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화를 '더 잘' 만들면 더 많은 눈물이 날지, 아니면 대략 이 정도의 완성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더 큰 것인지, 저는 아직 이런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략 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고, 이런 영화가 던져줄 수 있는 감정의 격동을 원하는 관객에게 '글러브'는 최적의 선택입니다(절대 비아냥거리는게 아닙니다. 정말 눈물이 납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어쩌면 그런 아쉬움은 애당초 지하철을 설계한 감독에게 왜 포르셰 스포츠카를 내놓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바보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바로 '글러브'입니다. 지하철에겐 지하철의 미덕이, 스포츠카에겐 스포츠카의 미덕이 있는 법이죠. 그리고 사람이 더 많이 탈 수 있는 쪽은 역시 지하철인지도.




P.S. 이 만화 수준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한 건 너무 과욕이었을까요. 그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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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년 사이 가장 영화를 덜 본 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가을 이후에는 극장 갈 새가 없을 정도여서 좀 힘들었습니다. 특히 '부당거래', '초능력자' 같은 기대작을 못 본 건 꽤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년 꼽던 순위이니 한번 꼽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외로 연초에 본 영화들 가운데 괜찮은 작품들이 많더군요. 2011년의 첫 영화는 아무래도 잘못 고른 듯 합니다. '라스트 갓파더'... 이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어쨌든 1월이 가기 전에 얼른 이건 하나 정리해놓고 새해에 전념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황해

온 세상이 너무나 비정하고 악의에 가득 찬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을 빼면 완벽에 가까운 영화. 안 좋은 뒷얘기도 있지만 그건 영화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듯.





2. 아저씨

'원빈 사용법'을 숙지한 감독의 승리!




3. 인셉션

"토템이 계속 돌았는지 멈췄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코브가 더 이상 토템이 멈추는지 아닌지를 애타게 바라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놀런 -



4. 예언자

투옥은 사회와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사회로의 입장이었다. 극장에 불이 켜지면 죄수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묘한 영화.




5. 500일의 썸머

거의 모든 성인 남자들의 기억 속에 최소한 하나씩은 박혀 있는, 그 어느 떠꺼머리 시절에 만났던 '그지같은 망할 년'에 대한 탁월한 인류학 보고서. 음악까지 완벽하다.

특히 연애 문제에 고민을 겪고 있는 사회 초년생이나 20대 초반 분들에게 필람을 권합니다. 리뷰는 이쪽: http://fivecard.joins.com/675



6. 인 디 에어

나만을 위한 삶이란 정말 가능할까. '패밀리 맨'과 짝을 이룰만한 싱글남 연구의 결정판. 장거리 항공편의 기내 영화로 보면 효과 200%.


7. 의형제

부지런한 횟집 주인과 검신합일에 이른 주방장의 행복한 만남


8. 전우치

다소 무리일 수도 있는 자신감마저도 만족스러운.




9. 아이언맨 2

'왜 영웅은 오만 풍상을 다 겪고, 개고생을 한 뒤, 자기편이 다 죽고 나서야 비로소 영웅으로 거듭나야 하는가?' 한국인의 이런 불만을 싹 해소해 준 상쾌 영웅의 후속편. '다크 나이트'고 뭐고 한국에선 '아이언맨'이 최고인 이유를 다시 보여준 영화.


10. 소셜 네트워크

비록 페이스북이 뭔지는 모르더라도 자녀를 천재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학부형들이 보면 좋을 영화. '애가 똑똑해지면 다가 아니에요.'

경합작으로는 '하녀', '시라노 연애조작단', '방자전' '드래곤 길들이기' 팀 버튼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생각해보니 2010년의 한국 영화는 예년에 비해 참 풍성했던 듯 합니다. 반면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은 매우 실망스럽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권하고 싶지 않은 2010년의 영화들



1. 악마를 보았다

특이하게 한번 해 보겠다는 의욕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까운 영화



2. 이끼

분위기는 죽이고 원작 줄거리만 살린 평작



3. 슈렉 포에버

아무리 좋은 시리즈도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교훈?


4. 타이탄

신화도, 액션도, 멜로도, 돈값도 모두 놓친 특이한 영화


5. 페르시아의 왕자

...그냥 게임이나 할 걸 그랬어. 그것도 그냥 AT 시절에 나온 걸로.


아울러 2010년의 가장 황당했던 영화는 바로 이 영화.


'익스펜더블'입니다. 물론 제가 때려부수는 액션을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10편의 영화에 꼽지는 않았지만, 이런 영화도 새해엔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속편이 나오긴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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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낚시라고 생각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영국 날짜로 1월2일 암으로 서거한 피트 포슬스웨이트(Pete Postlethwaite, 향년 64세)가 세계 최고의 연기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누구?" 하고 반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명을 하자면, 그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배우(the best actor in the world)'라고 부른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사는 원래 그렇게 기억되는 겁니다. 아이쉬와라 라이 역시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게 된 건 줄리아 로버츠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인 것이죠.

그리고 그의 이름(네. 매우 발음하기 힘들고, 매우 깁니다)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꽤 있겠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다면 아주 작은 역이라도 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 배우의 위력이겠죠.


그가 어떻게 젊은 날을 보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젊어서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릴 외모는 절대 아니었고, 40대 후반에 들어서야 세계적인 명성을 갖기 시작한 배우입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이 당연히 짐 셰리단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일리언3(1992)'가 1년 정도 빠릅니다. '에일리언3'에서도 그는 죄수들의 행성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은 죄수 데이비드로 출연했습니다.

이후 그가 출연한 작품들 내내 비슷한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대개 머리가 좋고 인간미가 넘치는 남자 역이죠.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따스한 눈매를 가진 덕분입니다.



어쨌든 47세때 '아버지의 이름으로'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이후 포슬스웨이트는 승승장구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굳이 별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아일랜드 분쟁의 격동에 휘말린 부자를 연기한 포슬스웨이트는 오히려 주인공인 루이스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과시했죠. 사실은 11년 차이밖에 안 나는 부자간이었지만(당시 포슬스웨이트는 47세, 루이스는 36세), 타고난 노안 덕분에(?) 실감나는 연기가 펼쳐졌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작품, 감독, 남우주연 등 아카데미 핵심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결과는 참담합니다.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해는 '쉰들러 리스트'의 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우조연상은 좀 아리까리합니다.




이 정도 후보라면 '쉰들러 리스트'에서 눈부신 이상성격 연기를 펼친 레이프 파인즈와 포슬스웨이트가 경합을 펼쳐야 정상일 듯 한데 갑자기 웬 토미 리 존스...

'도망자'도 물론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전혀 오스카 타입의 영화가 아니었던 터라 이건 뭥미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존 말코비치('사선에서')가 같이 후보에 오른 걸 보면 이 해의 트렌드가 좀 희한했구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후 포슬스웨이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펼쳐집니다. 1994년은 미리 계약해 놓은 드라마에 주력했다면(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대박이 날 줄은 몰랐겠죠^^), 1995년부터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품 활동이 이어집니다.

1995년의 대표작은 바로 '유주얼 서스펙트'. 여기서 포슬스웨이트는 커피잔 역으로 나오죠(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실수 없을 겁니다 ㅋ). 전혀 일본 사람같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만, 서구인들이 보기엔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변호사 고바야시라니...


현명하고 선의로 가득한 중년 남자 역이 어울리는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 변호사 고바야시는 말만 공손한 악역입니다. 머리에 총이 겨눠진 상황에서 "미스터 키튼, 지금 저를 쏘시면 심각한 실수를 하시게 됩니다"라고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항변하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거죠.^^)




그 다음은 1996년작 '로미오+줄리엣'.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를 이어 주는 로렌스 신부 역입니다. 물론 전형적인 포슬스웨이트 타입의 연기지만 이 신부는 좀 괴짜죠. 등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문신(아래 사진)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온갖 인기 스타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정통 셰익스피어극 배우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도 받았죠.




이해 '브래스드 오프'같은 작은 영화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1997년 스필버그와 두 편의 프로젝트를 함께 합니다. 바로 '아미스타드'와 '주라기공원 2, 잃어버린 세계'죠. 특히 후자에서는 냉혹한 전문 사냥꾼으로 변신,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1993년에서 1997년 사이 이런 쟁쟁한 경력과 탄탄한 실력을 보여준 포슬스웨이트는 희한하게도 할리우드에서 실종됩니다. 은둔형 배우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그인 터라 갑작스런 세계적인 주목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혹은 매니저와 싸우고 업계에서 매장됐는지도...^^).

그 뒤의 경력은 거의 TV 수준에 머물고, 유명 감독들과도 '작은 영화'에 주력한 경향이 짙습니다. 세계 수준의 주목을 받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지난해의 '인셉션'은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의 운명을 예견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줍니다. 병상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리스 피셔 회장 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향년 64세,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그만한 배우는 세상에 많다고 말할 사람도 많겠지만, 그가 짧은 할리우드 나들이 기간 동안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라는 말이 무리가 아닌 배우였죠. 짧은 글로 고인을 추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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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올해를 대표할만한, 아니, 최근 3년간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연기, 구멍 하나 없는 스토리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복선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몇 분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해설 버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첫번째 느낌은 따로 리뷰로 정리해 뒀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황해'에 대해 혹시라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는 분들을 위한 버전입니다.



** 다시 한번 경고,

'황해'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리뷰는 http://fivecard.joins.com/897 이쪽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를 보신 분이나, 절대 안 보실 분들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왜 김승현(유도선수 출신의 교수/사업가)을 죽이러 간 사람이 셋이었나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꼼꼼하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혼동할 이유가 없겠지만, 김승현을 죽이려고 청부한 사람이 둘이었던 거죠. 한 사람은 김태원 사장이었던 거고, 또 하나는 모 저축은행의 김정환 과장이었던 겁니다.

버스 회사 사장이며 조폭 세력을 거느린 김태원 사장은 자신의 심복인 최성남을 통해 김승현의 운전기사(겸 보디가드)를 포섭했고, 그는 어디선가 두 명의 하수인을 구해 김승현을 살해하게 한 겁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김승현과 싸우다 건물 밖으로 던져졌고, 나머지 한 사람은 김승현에게 죽음을 당했든가,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려는 운전기사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김구남이 나타났고, 김구남이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가자 김태원은 당연히 운전기사가 고용한 하수인이 3명일 것으로 생각했고, 그가 살아나면 자신이 꼬리를 밟힐 여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혼란의 시작이죠.


2. 김태원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신 분이 가끔 있는 듯 합니다. 김태원은 면정환에게 치명상을 입은 뒤 김구남이 현장에 왔을 때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놈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 그놈이 내 여자를..."이라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립니다.

그 앞 장면에서 분당에 있는 내연녀의 집에 간 김태원은 여자에게 "너 나한테 뭐 할말 없냐?"라고 씁쓸하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김태원이 그 집을 나선 뒤, 다른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내연녀의 집으로 향하죠.

김승현이 김태원의 내연녀와 정분이 났고, 그 사실을 안 김태원이 김승현에게 복수를 한 겁니다. 흔히 있는 조폭간의 세력이나 돈 다툼이 아니라, 바로 '여자' 때문이었던 거죠.



3. 김정환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마지막 단서인 김정환을 찾아간 김구남은 죽은 김승현의 아내가 김정환과 은행 직원과 고객으로서 마주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김정환 또한 김구남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죠.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순간 김구남은 허탈감에 빠집니다.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고 김정환이 면정환에게 청부(김정환의 단골 웨이터를 통해서)를 했다면 이유는 한가지. 김승현의 아내와 김정환이 불륜에 빠져 있었을 거란 답이 나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도달한 김구남은 그 며칠 전 김승현의 아내에게 "누가 시켰는지 찾아내서 내가 꼭 죽여 줄게"라고 말한 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그 불륜커플을 보다가 구남은 잠시 아내(라고 생각한)의 유골함을 바라보죠. 자신의 불륜 의심이 아내를 죽게 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을 수 있습니다.


4. 김정환은 진짜 청부를 했나?

일각에서 "세상에 살인 청부하면서 명함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앞글에서 '살인청부란 왜 어려운가'에 대해 좀 설명을 했는데, 세상에 명함을 주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김정환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몇천만원 정도의 돈만 입금하고, 버튼만 누르면 자기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김승현이라는 인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 거죠. 자신은 손끝 하나 더럽히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전자 오락 게임 하듯 사람 하나 죽여달라고 청부한 김정환 때문에 수십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대 참사가 벌어집니다. 나 하나 쯤 아무 상관 없을 거리고 생각한 무분별한 행동이 엄청난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는 것이 바로 이 김정환 캐릭터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5. 김구남의 아내는 돌아왔나?

맨 마지막 장면이 김구남의 상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건 감독의 의도가 뭐건 간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상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죠. 일단 시체는 확인한 대행업자(심부름센터?)가 "이거 영 모르겠네"라고 투덜대는 데서 구남의 아내라고 단정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일각에선 그렇게까지 소식이 없던 아내가 갑자기 그렇게 돌아올리가 있느냐는 지적을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아내가 돌아와야 구남의 헛된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돌아오는게 당연한 결말이라고 합니다. 뭐 후자 쪽이 더 당연한 얘기라는데 동의하고, 아울러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남의 아내와 정분이 났던 수산업자는 구남에게 된통 혼쭐이 나고, 구남의 아내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 아내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을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구남이 한국에서 간 것 중 유일한 결말은 아내를 돌아오게 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돌아올수 있었건 말건.

(구남이 보던 뉴스에서 "...아울러 연변 출신 피살 여성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찾고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문제의 수산업자가 구남의 아내를 이미 죽인 상태에서 구남을 만났다면, 혹시 구남이 먹은 양꼬치가...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수산업자가 갑자기 고기를 납품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너무 지나친 망상.)



6. 대체 두번째 청부업자들은 어떻게 김구남을 찾아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사건의 흐름을 잠시 되살려 봅니다. 구남은 살인 현장이 된 건물 위 살림집(펜트하우스?)에 숨어 있다가 집에 온 피살자 김승현의 아내를 만납니다. 놀라는 여자에게 구남은 "...남편 죽이게 시킨 사람은 내가 반드시 죽여 주겠으니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남은 운전기사의 집을 통해 최성남을 찾아내고, 최성남의 집에 찾아가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러는 사이 김태원의 부하들은 차이나타운에서 김정환의 사주를 받은 웨이터를 찾아 데려옵니다. 이 웨이터로부터 '김정환'이란 이름이 박힌 명함을 본 김태원은 "이놈은 또 누구야? 최성남이 어디 갔어? 최성남이 데려와!"라고 소리치죠.

장면 전환. 최성남의 집을 빠져나가려던 구남의 차를 다른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이받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족 범인들은 의식을 잃은 구남을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죠. (잠시 후 이 범인들은 "너 죽이라고 시킨 놈 명함이 차 안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건 김정환의 명함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입니다. 이 조선족 범인들은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구남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구남이 최성남을 찾아올 줄 알고 최성남의 집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구남을 찾아내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김승현의 아내가 정보를 줬다는 것이지만, 이건 김승현의 아내가 운전기사에서 최성남, 김태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죠. 더구나 그렇다 쳐도 구남에게는 일부러 운전기사 선까지만 가르쳐 주고, 조선족 청부살인 2인조에게는 최성남의 존재를 가르쳐 줘서 속도 조절을 한 뒤에 그 자리에서 딱 마주치게 한다는 것은 신의 솜씨입니다.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시 영화의 구멍? ㅋ )

              (김태원의 정부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이엘입니다. 늘씬하더군요.)

7. 대체 왜 모든 경우에 여자가 문제?

그러게 말입니다. 살인청부 1도 여자 때문, 살인청부 2도 여자 때문, 청부 받아서 살인하러 온 사람도 여자 때문.

...대체 여자랑 무슨 원수가... (전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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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천재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고, 두번째 작품인 '황해'의 개봉이 늦어지자 조심스럽게 소포모어 징크스를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황해'의 봉인이 뜯기자 세상은 곧바로 찬사와 감탄으로 가득찼습니다.

'황해'같은 영화가 예전에 없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만치 치밀하고 집요하게, 빈틈 없는 플롯으로 세 시간을 밀어붙인 작품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신과 충돌 신 등의 완성도는 입이 떡 벌어집니다.

한마디로 2010년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최고의 역작이 나왔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세 시간이 이렇게 짧은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온 세상이 악의로 가득차고, 누군가 뒤에서 등에 칼을 꽂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끈 불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황해'는 연변 어딘가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구남(하정우)이 그날 번 몇푼 안 되는 돈을 마작으로 다 날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국에 일하러 간 아내는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은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죠. 그런 가운데 사채업자들의 혹독한 빚독촉까지 받는 절망적인 나날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구남은 연변의 보스 면사장(김윤석)으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습니다. "한국에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면 빚 탕감을 해 주겠다"는 겁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제의를 받아들인 구남. 천신만고 끝에 밀입국에 성공하지만 달랑 주소와 이름 하나 받아들고 한국에 온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 그 사이에 아내의 행방도 찾고 주어진 일도 마무리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행 단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황해'는 오락 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만만찮습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고 왕래가 가능해진 뒤, 한국인들에게 '연변(옌볜) 동포'란 '언젠가 만나게 될 북한 동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나면서 연변과 조선족 자치구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저 이제는 싸고 말이 통하는 노동력의 공급처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면서 조선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하고, 무시와 모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때로 추격이 힘든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분명히 이 사회의 한 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조선족 아줌마' 없이 돌아가는 식당이 없을 지경인데도 온 세상이 그냥 외면하고 싶은 그런 존재들로 남아 있습니다.

'황해'는 단순히 치고 때리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과연 '조선족'이라는 집단이, 한국에 와 있고, 약간 이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애매한 이 사람들은 대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조선족 관련 다큐멘터리나 시사월간지 기획 특집들 속에 이름과 나이로 표시되는 사람들이, 실제 숨쉬고 생각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김윤석, 하정우의 연기와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 스토리 진행력은 한마디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위에서 거론했던 자동차 추격 신에서 순간 순간 뉴스 화면처럼 보이는 영상(아마도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다 보니 노출 차이가 꽤 있었던 듯 합니다)이 삽입된 것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거기까지 통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문제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 문제 제기를 한다면 하정우의 캐릭터에는 조금 부언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 넘어와 람보가 되는 하정우가 대체 왜 그렇게 잘 싸우고 임기응변이 뛰어난지에 대해서 너무 설명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깨진 결혼사진에서 하정우가 입고 있는 옷이 군복이 아니었나(확실치 않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중국군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입니다. (아니면 연변 남자들에게 그 정도는 기본일까요? ㅋ )

'추적자'와 '황해'를 통해 볼 때 나홍진 감독의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여성관'입니다. '추적자'에서의 여성이란 학대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수난의 대상인 반면 '황해'에서의 여성들은 남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존재들입니다(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실 겁니다). 과연 세번째 작품 쯤에는 '긍정적인 여성'이 등장할 지도 궁금합니다.

화면 전체가 피칠갑이 되는 영화지만 '악마를 보았다'에 비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폭력의 수준으로 본다면 '올드 보이'급?). 아무튼 이제 남은 건 과연 '황해'가 어느 정도 관객을 동원하는가를 넘어, '조선족'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데 대한 궁금증입니다.


P.S. 아울러 빛을 발하는 것은 나감독의 블랙 유머감각. 구남이 개고생을 하며 한국으로 타고 오는 배 이름이 '행복호'인 것을 비롯해 어두운 화면 여기 저기에 유머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저는 면정환이 "어, 그러고 보니 최이사가 안 보이네?"라고 말할 때에도 빵 터졌습니다(물론 뒤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이지만...).

P.S.2. 그런데 이 영화처럼 청부살인이란 쉬운 일일까요? 평범한 회사원도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이는 세상일까요? 조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조폭이라거나, 범죄 집단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구직자(?)도 꽤 있을 것이고, '황해'에서 보듯 조선족을 쓰거나 '달콤한 인생'에서 보듯 다른 동남아 근로자를 고용해 일을 치르거나 등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그냥 평범한 사회인이라면,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자, 우선 어디서 '사람을 죽여 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뭐 세상이 편해졌으니 그런 웹사이트가 있다고 가정하죠. 홈페이지를 통해 당신은 KILLER-1 과 채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한 뒤에, 죽일 사람에 대한 기초 정보를 주고, 거래를 마칩니다.

간단할 것 같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최소 수백만원 단위의 상당한 거금(뭐 사람 하나 죽여 주는데 30만원, 50만원 한다면 그건 더 믿을 수 없겠죠)을 KILLER-1이 시키는대로 입금하는데 그때부터 KILLER-1이 감감소식이 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분명 상당히 고가의 상품일텐데, 대체 뭘 믿고 돈을 주겠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돈만 갖고 튀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KILLER-1을 직접 만나 그가 정말 사람을 죽일 능력과 그걸 사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사실 이것 역시 매우 위험합니다. 만약 만날 사람이 진짜 킬러라면, 그는 귀찮게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을 의뢰인을 등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중에 경찰에 가게 되더라도 대답이 궁색합니다. '평소 알지도 못하던 그 위험한 사람을 왜 으슥한 데서 만났어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요? '사람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려구요'?^^)

그 킬러에게 의뢰인인 당신이 노출되면 될수록 반대로 협박을 받을 가능성만 커집니다. 반드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회사, 혹은 그 죽여달라고 청부한 목표 인물에게 '아무개가 돈을 줄테니 당신을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공개해 버리겠다는 협박은 꽤 유효합니다.

따라서, 살인청부라는 것은, 최소한 그 청부자에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너부터 죽을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협박이 가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살인은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살인 용역을 발주하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히나 '황해'에 나오듯, 어설프게 명함 한장 주고 시킬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황해'의 완성도와는 무관한 얘깁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바로 영화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죠.


P.S.3.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영화에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 프리 버전입니다. 스포일러 만땅 버전, "황해의 모든 것" 편은 곧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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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눈이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겨울 하면 눈이죠.^^

물론 제멋대로 고른 리스트입니다. '눈이 소재인 영화 10선'도 아니고, '눈이 소재인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 10선'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눈발이 날릴 때면 그냥 저 혼자 생각나는 영화 10편일 뿐입니다. 대략 1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이긴 하지만,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가 크게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 놓고 시작해도 반드시 왜 그 영화가 있냐, 이 영화는 왜 없냐, 뭐 리스트가 이따위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직접 리스트를 꼽으시라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을 듯 합니다. (네. 많이 겪어 봐서 하는 얘깁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좀 예상을 뒤엎어 보고도 싶지만, 1위는 너무나 뻔한 영화 -


네. 오겡키데스카 맞습니다. 바로 그 영화. 다른 영화가 떠오른다 해도 솔직히 이 영화보다 먼저 떠오르지는 않더군요.

이 영화와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때문에 저 먼 홋카이도의 오타루라는 도시가 관광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물론 다녀오고 나서 만족하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뭐 이런걸 보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 명소로 꼽히는 오타로 운하, 오타루 유리 박물관 등등은 뭐 그냥 예쁜 동네 레벨.

개인적으로 홋카이도의 겨울 관광은 눈, 온천, 식도락 외에는 전부 무시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눈이 오면 러브레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2번은 좀 튑니다. 국내 제목은 '존 카펜터의 괴물'. 영어 제목 'The Thing'이라야 좀 더 아실 분이 늘어나려나요.

북극 기지에 갑자기 개 한마리가 나타나고, 그 개의 뒤를 쫓아 미친듯이 총을 쏴 대는 사람이 보입니다. 어찌 어찌 해서 북극 기지에서 그 개를 키우게 되는데, 그 뒤로 자꾸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개 안에는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 숨어 있었던 거죠.

눈과 얼음으로 고립된 기지. 그 기지 안에서 필사적으로 외계 괴물과 싸우는 인간들. 특히 누가 괴물이고 누가 진짜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지금 보면 특수효과가 좀 유치할 지 모르겠지만, 당대에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1951년작인 '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의 리메이크라고 해도 좋을 듯 한데 리메이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더군요. 물론 줄거리는 흡사하지만 내용은 훨씬 정교합니다.

구해서 보실 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으면 보셔도 좋을 듯. 재미납니다.




하얀 자작나무 숲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신화처럼 떠받드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무튼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흡혈귀 소녀의 종이면서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던, 그리 유능하지는 못한 옆집 아저씨의 운명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안 보신 분은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다음 세 편의 영화는 좀 얼굴을 찌푸리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1년간 산촌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도 하고, 극중 할머니 역의 여배우는 자해 장면을 위해 일부러 돌에 이를 부딪혀 부러뜨리는 연기 아닌 연기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쯤되면 열정을 넘어 광기의 수준이죠.

이런 부분에서는 참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영화입니다만, 마지막 시퀀스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고려장 장면은 참 가슴이 미어지는 명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생각하고 나면 떠오르는 영화 두 편이 있습니다.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년의 '명화극장'에서는 '바렌'이란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입니다. 원제는 'The Savage Innocents', 1960년작입니다. 앤서니 퀸이 에스키모 청년 이누크 역을 맡았고 일본 여배우 타니 요코가 그 아내, 그리고 지성파 배우 피터 오툴이 이들을 이해하는 문명인 역으로 등장합니다.

'바렌'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황무지를 뜻하는 barren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쩌다 저런 '한글 제목'이 붙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주인공 이누크는 빙원의 황무지에서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가끔씩 사냥한 바다표범 가죽 등을 가져가 백인들이 만든 교환 상점에서 쓸만한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 이들에겐 유일한 문명과의 접촉 기회입니다.

그런 이누크가 어쩌다 살인 혐의를 쓰게 되고, 사법관인 피터 오툴은 이누크를 체포하기 위해 빙원을 건너 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고, 오툴은 오히려 이누크 부부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됩니다.

평범한 감독이 만들었다면 매우 서정적이고 슬픈, 문명이 순수한 야만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 없는 반항'의 니콜라스 레이 감독은 이 영화를 문명과 야만에 대한, 놀랍도록 뛰어난 통찰이 담긴 코믹 터치의 걸작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길게 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뭐 아무튼 에스키모 영화이니 당연히 눈과 얼음이 넘쳐 납니다.^^)



그 세번째 영화는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 입니다. 1980년대 그래도 영화에 대해 한마디 하려면 반드시 봐야 했던 영화죠. 한때 '매춘'의 개봉에 즈음한 외국 문화의 일제 해금기에 어쩌다 이 영화도 개봉관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 전편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 남편과 부정을 저지른 아내, 그리고 아들이 눈 덮인 들판을 건너는 에피소드는 정말 집중하고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관객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주는 설득력은 앞부분의 지루함을 충분히 잊게 할만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시작된 세 편의 자유연상은 여기까지.


눈 덮인 환경과 인간의 비극을 그린 작품들을 건너 다시 눈의 서정이 강조된 작품입니다. 바로 '에드워드 가위손'.

뭐 설명이 필요 없겠죠.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에드워드가 만들어 내는 인공 눈(?)을 맞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위노나 라이더의 청순한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네. 솔직히 이 영화가 생각났지만 너무 뻔해 보일까봐 참고 있었던 거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프란시스 레이의 그 유명한 음악과 함께, 이 영화의 눈 장난 장면은 그야말로 클래식이 됐죠.

너무 젊어서 제목을 모르는 분들에게 서비스하자면 제목은 '러브 스토리'입니다. 네. 정말로 영화 제목이 '러브 스토리'라니까요.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집 여자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갖은 고생 끝에 남자가 변호사가 되자 여자가 백혈병으로 죽는 이야기입니다.

네. 정말 그런 뻔한 영화가 있었다니까요. 거 참... ;;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안 보신 분이 의외로 많은 영화입니다. 코엔 형제의 재능이 발휘된 수많은 걸작 중 하나(물론 모든 영화가 걸작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죠. 저는 이 영화와 '밀러스 크로싱'을 최고로 칩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눈 덮인 벌판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영화. '파고' 입니다.

 

이 영화에서 대체 눈이 뭐 중요하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눈에 대한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이 영화가 떠오르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이 영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1편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였지만 공간이 LA였기 때문에 눈발은 날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편은 그야말로 눈밭에서 개고생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분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이 하드 2'는 1편 못잖게 재미있었던 2편의 예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제아무리 항공유라고 해도, 불이 번지는 속도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속도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느리다는 과학적인 상식 따위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꺼 두시는게 좋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효율이 높아지듯 이미 열 편은 찼지만 왠지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 '쿨 러닝'. 이 영화에서 언제 눈 내리는 장면이 있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이 선수들이 밟고 있는 건 모두 눈 맞습니다.

물론 그런 기준이라면 '국가대표'도 꼽고 싶어지는데... 아무튼 패스.


아울러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만, 이 장면에서 날리는 것은 보시다시피 눈이 아니라 종이 테이프입니다. 그럼 대체 이 영화에서 눈이 나오는 장면은 어디일까요? 스케치 북 넘기는 고백 장면의 뒷 배경이 눈 덮인 길이었던가...?

기억이 안 나서 패스.



개인적으로는 위 영화, '프랑켄슈타인, 더 트루 스토리'도 꼽고 싶었지만 너무 마이너해서 빼기로 했습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이었던 레너드 휘팅(화이팅?)이 프랑켄슈타인박사 역으로 나오는 TV판 영화입니다.

1973년작으로 역시 오래 전 베타 VTR과 TV 방영을 통해서만 봤지만 지금까지 본 프랑켄슈타인 영화 중에서는 단연 최고입니다. TV 영화라지만 본드걸 출신인 제인 세이무어, 제임스 메이슨, 데이비드 맥컬럼 등 호화 출연진이 눈길을 끌죠.

이 영화에서도 박사에 의해 창조된 '아담'이 처음 자살을 기도하며 눈밭 위에 뿌리는 검붉은 피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만, 패스.



좀 로컬한 퀴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영화가 생각나시나요? 하긴 이건 퀴즈라기보다는 공감도 테스트 같군요.^^ 힌트는...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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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대략 두개의 키워드로 정리 가능합니다. 바로 '짝사랑'과 '야구'입니다. 후자에는 'YMCA 야구단'과 '스카우트', 그리고 대본을 맡았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전자에는 '광식이 동생 광태'와 이번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들어갈 겁니다. (묘하게도 전자는 흥행 대박을 냈거나 대박이 예상되는 반면, 후자의 야구 소재 영화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미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드러났듯, 김현석 감독은 미묘한 연애심리와 그 예측불가능성을 묘하게 짚어내는 데에는 정말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이번 '시라노'는 '광식이 동생 광태'를 뛰어넘어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를 다시 쓸만한 완성도를 과시하고 있더군요. 더구나, 올 연초부터 이어진 아바타 열풍까지 이 영화의 앞길에 레드 카펫을 깔아 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뜨거운 형제들'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연극 연출을 하던 병훈(엄태웅)은 자금 마련을 위해 '시라노-연애조작단'이라는 회사를 차려 놓고 연애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다양한 첨단 기술을 이용해 맺어 주는 사업을 벌입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가는데 어느날 펀드매니저 상용(최다니엘)이 찾아와 희중(이민정)과 자신을 연결해 달라는 청탁을 해 옵니다. 좋은 조건의 고객이지만 병훈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입니다. 희중이 유학시절 자신의 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진행은 제목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만, 이 영화와 원작이랄 수 있는 희곡 '시라노 드 벨주락'은 사실 어찌 보면 비슷하고 어찌 보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극중에서도 충분히 설명되듯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벨주락 Cyrano de Bergerac 은 최고의 글재주와 검술 실력을 갖췄지만, 우스꽝스러운 코로 인한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록산느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시라노는 어찌 어찌 하다가 잘생긴 부하인 크리스티앙이 록산느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자신의 글재주를 이용합니다. 연애편지 대필에다 그녀를 만나 읊어 줄 즉흥시까지 써 주는 거죠. 이렇게 해서 크리스티앙과 록산느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으로 시라노는 대리 만족을 합니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에서는 그래도 시라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집니다. 크리스티앙이 죽은 뒤, 혼자 살고 있는 록산느에게 중상을 입고 찾아간 시라노는 어둠 속에서 크리스티앙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외워 보이죠. 그제서야 그동안 모든 편지를 쓴 것이 시라노란 것을 알게 된 록산느는 그녀가 시라노 또한 사랑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이 고백을 마지막 위안으로 삼아 시라노는 세상을 등집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맺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은 비슷합니다. 비록 우스꽝스런 외모는 아니지만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할 상황이라는 게 포인트죠.



영화 '시라노'는 전개며 예상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고비 고비마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탄탄한 대본은 이 영화가 가장 자랑할만한 강점입니다. 특히 배우들이 영화의 진행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든 대사가 입에 붙은 듯 연기하는 모습을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놀랄만한 호연을 보여주는 배우로는 최다니엘을 반드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과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나이답지 않은 연기적응력을 보였던 최다니엘은 이 영화에서 최상의 캐릭터 몰입력을 보여줍니다. 한국 영화/드라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의 탄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이하의 내용은 영화 내용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습니다. 뭐 스포일러성은 아니니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시라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은 기술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기술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에 불과합니다.
영화 '시라노'에 나오는 연애조작단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랑의 기술'을 다른 데서 가져올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극중에서 최다니엘이 연기하는 상용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잘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제가 못하는 연애는 아웃소싱하자는 거죠. 이러면 정말 효율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하지만 과연 연애라는 것이 '아웃소싱'한다고 해서 정말 시간을 잡아먹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지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이 어떤 음식, 어떤 음악,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알아내고, 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팁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하루 종일 생각나지 않는다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에도 모니터에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이뤄져봐야 말짱 꽝'인 사랑일 뿐입니다. 영화의 후반, 최다니엘이 크리스티앙과 시라노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이런 말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키스 한번 정도를 얻어내거나, 하룻밤 정도 같이 잘 수 있는 방법도 아마 수없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는 거기서 끝난다는겁니다. 연주하지도 않는 첼로를 가지고 다닌다거나, 별 관심도 없는 스쿠터에 대해 아는 척 한다거나, 누가 만들어 준 요리로 정말 요리에 재능있는 척 하거나, 누가 대신 써 준 편지로 사랑을 고백한다거나 하는 건 누가 녹음해 준 노래를 자기가 부른 척 하는 거나 별반 차이 없는 짓들입니다. 이런 '기술'의 마력은 그 '기술'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 되는 순간 훅 날아가 버릴 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기술'을 기술로 끝내지 않고, 자기의 내재된 속성으로 바꿔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전 물가에도 가지 않던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수영 선수가 되는 일도 있고, 갑자기 섹소폰 연주의 대가가 되기도 합니다. 평생 티셔츠만 입던 사람이 패셔니스타가 되기도 하죠. 이런 '자기화'의 노력은 정말 높이 평가받을 만 합니다.

영화 '시라노'의 앞부분은 이런 '기술'이 사랑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이게 살짝 포장해 놓습니다. 하지만 뒷부분에선 결국 기술은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해 줍니다. 사실 아바타가 진심으로 노력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뜨거운 형제들'만 열심히 본 사람도 알만 하죠.



세상이 아무리 얄팍해졌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결국 연애의 성패는 사람1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사람2에게 알리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2가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도 거부하는지, 아니면 진심임을 알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지에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심'을 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이 생각보다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2가 자기를 향해 던져진 사람1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면서도 뿌리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2 들은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그게 진심이라는 걸 모르는 척 합니다(심지어 그 스스로에게도 모른다고 우기죠). 안타깝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 전달된 진심이 상대에게 승인을 받고, 그 자신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그 '진심'이 사실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을 때 비로소 '사랑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 '시라노'는 그런 사실을 꽤 정확하게(때로는 암묵적으로 - 이를테면 이 영화에는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남자에게 구애하는 방법' 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저는 이 영화의 대본을 올해 한국 영화 최고의 대본으로 꼽아야 할 듯 합니다.

결론: 이번 추석 연휴 영화 중 '무적자' '아리에티' '퀴즈왕' '시라노'를 본 결과, 최우선순위의 추천작은 역시 '시라노'입니다. 이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그 완성도는 충분히 인정하실 걸로 믿습니다.

아울러 이 배우가 나온다는 점도 충분한 흥행 포인트죠.^^



P.S. 그런데 대체 이 정도의 장비와 인력, 소품을 운영하려면 대략 천만원대는 받아야 운영이 가능할 듯 한데, 과연 이 정도의 돈을 들여 '사랑을 성취'하려는 사람의 시장이 그렇게 클까요? (뭐 어차피 그것부터 판타지라면...^^)

P.S.2. 희중(이민정)은 병훈(엄태웅)이 "파리에 있을때 오르세 박물관도 못 가봤다"고 하자 "오빠는 루브르도 30분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이잖아.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 한번, 다비드상 앞에서 사진 한번 찍고..."라고(아주 정확하진 않습니다) 합니다만, 이건 좀 그렇습니다. 저 '다비드상'이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말하는 거라면(뭐 다른 군소 다비드상은 있을 수 있겠죠), 그건 루브르가 아니라 피렌체의 아카데미 갤러리에 있죠. 물론 화가 이름인 다비드를 말하는 거라고 우긴다면 별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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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극장에 가서 표값을 볼 때마다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꽤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단 극장에 걸리면 모두 같은 값입니다. 1억달러를 들여 찍은 영화건, 1억원을 들여 찍은 영화건 관객은 똑같은 돈을 내고 보게 됩니다. 

이런 환경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싼 영화건 비싼 영화건 똑같은 가격이 매겨진다면 비싼 영화 쪽이 손해일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영화가 8000원 받을 때, 대작 영화는 한 10000원이나 12000원 정도 받아서 더 빨리 자본 회수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이런 시스템은 작은 영화 쪽에 훨씬 더 손해입니다.



티켓 가격이 고정되어 있다면, 관객의 입장에선 기왕이면 좀 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를 봐야 '본전을 찾는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실망스럽더라도 대규모 전투신이나 유명 스타의 소문난 베드신, 엄청난 CG등 '볼거리'라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인지상정이죠. 물론 영화를 보면 볼수록, 제작비와 만족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만 말입니다.

'죽이고 싶은'은 누가 봐도 단촐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단 두명. 전체 출연진을 다 합해 봐야 열명 남짓입니다. 배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두신을 제외하면 병원 주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온 몸에 마비가 진행중인 환자 김민호(천호진)는 옆자리에 새로 온 환자 박상업(유해진)을 보고 평생 잊지 못하던 원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뇌손상인 박상업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김민호는 원수가 옆에 있건만 일어서서 박상업의 옆까지 걸어갈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박상업이 조금씩 기억을 회복해 가면서, 상황은 또다시 일변합니다.

누가 가해자인지를 가리는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기 때문에 흔히 이 영화는 스릴러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액션 스릴러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두 주인공이 모두 침대에 누워 있지만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액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대체 어떻게 액션이 가능하다는 거냐?'는 질문이 떠오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시면 그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액션이 펼쳐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워낙 등장인물이 적고 배경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영화는 상당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무대극이었다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굳이 영화 중에서 비교하자면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가 열연했던 영화 '추적(Sleuth)' 정도일까요. 두 남자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수트를 입고 우아하게 싸우는 '추적'과는 달리 '죽이고 싶은'의 두 남자는 환자복 차림으로 아주 추하게 진흙탕 싸움을 벌입니다.

거기서 어떻게 싸움이 가능하냐는 대목에서 연출진의 아이디어가 빛납니다. 일단 방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다 사용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특공대원이나 무술 대가를 설명할 때 흔히 '온 몸이 무기'라고 하지만 이 영화의 두 배우에겐 '잡히는게 다 무기' 입니다. 여기서 웃음과 함께 비애가 느껴집니다.

(사실 이 영화의 액션 진을 보다 보면 영화 전체가 악몽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 악몽 속에선 있는 힘을 다해 적을 공격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죠. 등장인물들의 상태가 바로 그렇습니다. 투지만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 그야말로 악몽인 셈이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야구 한국시리즈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도 두 남자는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시라고 하면 간단할 듯 합니다.

구성을 보면 다른 어떤 영화보다 배우의 몫이 클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두 배우는 자기 몫을 톡톡히 합니다. 천호진은 마초적인 외양에 비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배우로 꼽힙니다.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의 형사반장 같은 역에는 미스캐스팅의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뭐 경찰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는 설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듯^^). 반면 '죽이고 싶은'에서는, 과거는 알수 없지만 어쩐지 연민을 자아내는 초로의 환자 역할에 매우 어울립니다.



물론 영화의 활력은 대부분 유해진에게서 나옵니다. 아마도 상당 부분 애들립일듯한 유해진의 코미디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에 적절한 조미료로 작용합니다. 그러면서도, 희극적인 얼굴에서 순간 범죄자의 얼굴로 바뀌는 표정 연기는 이미 이 배우가 어느 정도 경지를 넘어 섰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 영화 관계자와 잘 아는 사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상당히 초기부터 지켜 봤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롯데 자이언츠적인 요소(^^)가 정점 강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기도 했습니다(충분히 아실 수 있겠지만 감독이 부산 출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반전의 요소가 조금 더 불명확했던 상태가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 극장에 개봉되어 있는 영화는 그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이 말끔하게 의혹을 해소해 줍니다. 분명히 출연하긴 하되, 마지막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한 배우는 대체 출연료를 얼마나 받았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무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대략 합의가 이뤄진 내용이 있습니다. '관건은 극장에까지 관객을 데려오는 거다. 설정과 규모를 보고 이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일단 보고 나면 괜히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라는 겁니다. 이런 의견에는 대다수가 동의하더군요. 그렇습니다. 화려한 캐스팅과 물량으로 관객을 유혹한 뒤 막상 보고 나면 '이 뭥미?'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와는 정 반대 방향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영화는 조원희/김상화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아무쪼록 이 두 사람이 이번 영화로 재능을 인정받아 좀 더 큰 예산의 영화를 만들어 선보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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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상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원빈의 '아저씨' 상영관에는 거의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만치 관객들의 기대가 컸다는 얘기였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난 첫번째 느낌은 '대체 한국영화계는 그동안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고 뭘 했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나가 작품상을 받을 영화가 아닙니다. 요리로 치자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대단한 명품 음식이 아니지만, 싸고 맛있는 떡볶이 같은 영화입니다.

무슨 대단한 상상력이나 엄청난 기술의 힘, 혹은 거액의 제작비가 필요한 작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를 등한히했던 영화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꽃미남 배우의 제대로 된 활용이란 면에서도 이 영화는 동료 감독들에게 귀감이 될만 합니다.



달동네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태식(원빈, 이름은 한참 나중에 나옵니다)의 유일한 친구는 매일 혼자서 노는 소미(김새론). 나이트클럽 댄서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녀입니다.

하지만 마약중독자인 엄마가 섣부른 욕심을 내는 바람에 엄마와 소미는 거대한 마약 조직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직간 암투에 뛰어든 경찰은 소미의 운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황. 이제 소미를 구할 수 있는 건 '옆집 아저씨' 하나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줄거리.

소미에게 다행인 건, 이 옆집 아저씨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한 소녀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킬러의 이야기 '레옹'과,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온 프랑스의 인신매매 조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테이큰'으로부터 태어난 자손입니다(뭐 '맨 온 파이어'를 살짝 덮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대개 이런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특수부대원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80년대 한국에도 '사형집행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던 돈 펜들턴의 펄프 픽션 'Executioner' 시리즈는 아마도 이런 판타지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은 월남전 그린베레 출신인 맥 보란이 스스로 '1인 군대'를 선언하고 여동생을 망친 마피아에게 단신으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바로 이런 판타지에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 '사법 제도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과 불만', '여자나 어린이에 대한 보호'와 같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잘 섞어 폭발력 강한 혼합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원칙에 민감한 법조계 관련 인사들은 법 질서에 근거하지 않은, 사사로운 정의 실현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이 영화의 주제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영화 속 원빈이 악당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면서 동정심보다는 쾌감을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다크 나이트'같은 속터지는 영웅 이야기보다 이런 영화를 100배 정도 선호하는 유전자가 계승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료만 좋다고 바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만 이정범 감독의 세심한 솜씨는 곳곳에서 반짝입니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좋은 배우들입니다.

악당 형제 역의 김희원과 김성오, 믿음직한 수사관 역의 김태훈(김태우의 동생이죠), 그리고 낯설지만 적역에 들어간 태국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까지 다양한 조역 배우들이 최상의 연기를 펼칩니다. 연기 못하는 아역 배우란 원래 존재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김새론은 참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인물 배치는 현역 최고의 꽃미남 스타인 원빈이 케이크 꼭대기의 체리 역할을 유감없이 해낼 수 있게 하는 탄탄한 팀워크를 만들어 줍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원빈은 정확한 타깃 역할만 하면 되는 구성입니다. 그에게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패스를 받아 골문까지 드리블을 하거나 상대 수비를 유인하는 일, 혹은 수비에 가담하는 일 따위를 맡기지 않고 오직 골을 넣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 대목에서 이정범 감독의 용병술은 빛을 발한다고 하겠습니다. 

원빈의 연기력을 논하기에는 대사가 너무 적기도 하지만(녹음 때문인지, 발음 때문인지 중요한 대사가 그리 잘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리한 요구 없이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한 것이 좋았다는 얘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원빈은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작품의 원빈보다 멋집니다. 역시 아무리 명품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법입니다. 이정범 감독과 만난 건 원빈의 행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저씨'는 정당하게 느껴지는 폭력(물론 실제로 정당한 것과는 큰 거리가 있죠)과 적절한 유머("나, 옆집 아저씨야" "중문과, 너 오늘 알바비 날렸다" 등등), 속도감 넘치는 구성과 아동 대상 폭력에 대한 공분이 무르익은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불만 붙이면 바로 터질 수 있는 폭탄같은 영화로 태어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판타지 스타일의 마무리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지만, 오히려 여성층은 현재의 결말에 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이 영화의 흥행에는 아무 걱정이 없을 듯 합니다.

분명 '아저씨'는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을 걸작형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영화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장인 이정범'의 발견이란 면에서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을 듯 합니다.



P.S. 특수부대원 판타지와 관련: '람보' 시리즈 1편 '퍼스트 블러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트라우트먼대령이 람보를 뒤쫓는 경찰들에게 람보가 얼마나 시골 경찰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아저씨'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설명을 하다 만 듯한 느낌이라 좀 아쉬웠습니다. (혹 다 찍어 놓고 편집에서 삭제된 것이 아닐지...)


P.S.2. 이렇게 시작된 '아저씨'의 속편은 혹시 특수부대원 '아저씨'가 특수 업무 수행을 위해 투입되는 시리즈로 이어지게...되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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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면 왕따된다는 영화 '인셉션'. 본 사람도 또 보고 아이맥스로 봐야 진짜배기라고들 소문이 자자한 인셉션. 요즘 단연 장안의 화제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두가지네 어쩌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반지가 어쩌네 저쩌네, 킥과 토템이 어쩌네 저쩌네 떠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괜히 화제를 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보다 슬쩍 잠들었다는 분,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없었다는 분, 대체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난 다 봤는데도 당최 먼 소린지를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단,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절대 읽어선 안 될 포스팅입니다. (아, 드물게 '난 결말을 알고 봐야 영화가 눈에 들어온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분들은 보셔도 좋습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무시하고 그냥 읽은 다음에 스포일러 작렬 어쩌고 화내 보셔야 소용없습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의 덩어리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는 분들을 위한 해설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설계자는 뭐고 추출은 뭐냐? 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해설: '인셉션'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의 꿈을 연결하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거나 표적이 되는 사람을 자신의 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떤 수단을 쓰든 다른 사람의 꿈 속에서 깊이 감춰진 비밀을 가져오는 것을 추출(extra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꿈의 설계자(architect)입니다. 이 사람은 때로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꿈 추출의 표적이 되는 사람이 현실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 사람에게 친숙한 공간을 그대로 모사해내기도 합니다. 본래 영화의 앞부분에선 내쉬(루카스 하스)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팀의 설계자이지만, 무능한 배신자로 밝혀지고, 결국 파리에서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설계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밖에 꿈 속에서 활동하는 캐릭터로는 포인트맨(pointman)과 페이크맨(실제론 forger)이 있습니다. 전투 게임에서 근접전 요원을 말하는 포인트맨은 이 영화에선 꿈과 현실을 출입하며 안전을 관리하는 전술전문가를 말하고, 페이크맨은 꿈의 특징을 활용해 모든 캐릭터로 변신하는 일을 맡습니다.

 

2. 대체 맬은 왜 모든 사람의 꿈에 등장하나?

엄밀히 말하면 맬(마리옹 코티아르)은 별도의 인격이라기보다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머리 속에 박힌 하나의 소인격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평소에는 활동하지 않지만 코브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즉시 활성화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무 꿈에나 다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코브가 들어가는 꿈에만 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이 맬의 존재는 '인셉션'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이토의 꿈에 들어갔다게 맬에게 총질까지 당한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코브와 함께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는 일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코브와 함께 꿈속 일을 하는 건 자살행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2세 피셔(킬리앙 머피)의 꿈 속에 들어갈 때 그렇게 무방비상태였다는 건 아서의 무능함을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3. 왜 한 단계 깊이 들어갈 때마다 팀은 한명씩 남을까?

피셔의 꿈에 들어간 뒤, 꿈1에서 꿈2로 갈 때 유수프(딜립 라오)는 남아서 차량의 운전을 맡습니다. 이건 꿈1의 주인이 유수프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꿈2의 주인은 아서였고, 아서는 꿈3으로 가지 않죠. 이건 그 사람이 남아서 더 깊은 단계로 가는 멤버들의 몸을 돌보고, 적절한 시기에 음악 신호나 킥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모두 이 영화의 설정입니다. 꿈 3에서 현실로 바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고, 깨어날 때에도 꿈3-꿈2-꿈1-현실의 순서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한 스테이지에는 한 사람씩 남아서 그 과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4. 왜 다들 꿈 속에서 천하무적인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인셉션'의 배경이 되는 세상에서는 꿈 추출이 하나의 전문직이 되어 있습니다. 코브와 아서 팀 외에도 기억 추출을 위해 암약하는 무리들이 꽤 있다는 뜻입니다.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이들 전문가들은 꿈 속에서 거의 람보같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터프해 보이는 무장 경호원들도 이들에게는 1:1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현실세계의 킬러 하나가 코브에게 '어이, 너 현실에서도 꿈속처럼 터프하냐?'고 물어보기도 하죠.)

그건 이들이 꿈 속에서의 활동을 위해 다양한 훈련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꿈 속에서 이들은 사고하는 존재인 반면, 나머지 인물들은 그냥 표적 인물의 무의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 계산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일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떨어지는 게임 속의 졸때기들처럼 주인공들의 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누구나 꿈속에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곤 하죠.^ 아마 '인셉션 2'가 나온다면 그때는 주인공들이 다 날아다닐 겁니다.


5. 자살신에서 왜 둘은 젊은 얼굴인가? 실수?

아내를 림보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코브는 아내에게 눈에 보이는 세상을 믿지 말라는 인셉션을 하고, 그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철길에 누워 죽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 아내가 "나와 함께 늙어가겠다고 맹세했잖아!"라고 말하자 코브는 "이미 그렇게 했었다"고 대답합니다. 즉 림보에서 보낸 50년 동안, 그들은 노인이 되어 갔다는 걸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노인이 되어 거리를 걷는 이들의 뒷모습도 나옵니다.

하지만 앞서 나오는, 철길에 누운 자살 장면에서 코브와 아내는 젊은 얼굴 그대로입니다. 이걸 놀런 감독의 실수라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실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뭐랄까, 연출자의 의도라고나 할까요. 그 시점에서 이들의 얼굴을 노인으로 바꿔버리는 건 상당히 김빠지는 일이 됐을 법도 합니다.

영화 속에선 페이크맨 임스(톰 하디)의 얼굴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장난이 여러 번 등장하죠. 한마디로 그 정도는 알아서 이해하라는 것이 놀런의 입장인 듯.


6. 림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인가, 아니면 개인에게 하나씩의 림보가 있나?

사실 매우 혼란스러운 부분입니다. 만약 림보가 공통이라면, 코브와 아내가 림보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림보는 본래 한 사람에게 하나 씩 존재하는 공간이며, 림보에서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꿈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 뿐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코브와 피셔가 연결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코브와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림보로 내려가 피셔를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하에서 보면, 코브가 "사이토를 찾아서 데려가겠다"며 림보에 남는 설정이 매우 애매해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코브는 사이토보다 먼저 림보에 온 것이고(코브와 아리아드네가 림보로 가고 꽤 시간이 지나 사이토는 송풍구에 수류탄도 던지고 하며 나름 활약을 하다가 꿈3 스테이지에서 숨을 거둡니다 - 정확하게 말하면 꿈1에서 죽는 거죠. 어쨌든 코브와 아리아드네보다 늦게 림보로 가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의 맨 첫 장면에서 사이토만 노인이 되어 있고 코브는 젊은 채로 있다는게 말이 안 됩니다. 늙어도 코브가 더 늙어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여기에 대한 해결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리아드네와 피셔가 뛰어내리는 킥(자살입니다)으로 꿈3에 돌아간 뒤, 코브도 꿈3으로 복귀했다가 꿈1에서 물에 빠져 죽어서(꿈1의 코브는 물에 빠진 미니버스 안에 안전벨트로 묶여 있죠^^) 다시 림보로 간다는 설정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코브가 한번 빠져나왔다가 다시 림보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코브는 젊고 사이토는 늙어 있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코브가 호기있기 "나는 사이토를 찾아 데리고 갈게! 너희는 먼저 가!"라고 한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혹이 남습니다. 너무 길어져서 한번 더 쪼갭니다.




7. 비행 시간의 문제 - 왜 20분만 남아 있나?

주인공들이 비행시간이 10시간이나 되는 LA행 비행기 안을 '범행 장소'로 채택한 것은, 이들이 꿈1 스테이지에서 일주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사이토가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사이토가 림보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모든 걸 계획보다 서둘러 진행하게 되죠.

(일반 꿈이라면, 사이토는 꿈 속에서 죽으면 바로 현실로 살아나지만 이들은 10시간 동안 깨지 않게 하기 위해 유수프의 독한 약을 썼기 때문에 꿈1에서 죽으면 림보로 떨어진다는 설정입니다. 이 사실을 안 임스는 "나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기 싫으니 여기(꿈1)서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코브는 "10시간이면 꿈1에서 1주일인데, 그 사이에 피셔의 경호원들에게 잡혀 죽을게 뻔하다. 차라리 일정을 앞당겨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킥으로 빠져 나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꿈2, 꿈3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결국 꿈 1 기준으로 약 2시간만에 모든 일정을 다 해치워 버립니다. 현실에서는 10분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죠.

무슨 말이냐면, 바로 위 항에서 얘기한대로 코브가 미니버스 안에서 익사 - 그리고 바로 림보로 가서 사이토를 구출하는 과정이었다면 아무리 해 봐야 현실에서는 1시간 이상 지나가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코브와 사이토가 눈을 떴을 때, 비행기는 LA 도착 20분을 남겨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7-8시간 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혼자 추측해 봤습니다. 그 대답은 다음 질문에서 해결합니다.


8. 맨 첫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 장면에서 코브는 의식을 잃은 채 해변에 밀려 옵니다. 영화를 죽 보다 보면 그 해변이 바로 림보에 빠진 사람이 처음 도착하는 망각의 해변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브는 그 상태에서 사이토의 부하들에게 이끌려(어떤 사람은 림보에서 단 둘만 살고, 어떤 사람은 림보에서도 부하들에게 둘러 싸여 삽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죠) 이미 노인이 되어 있는 사이토에게 끌려 갑니다.

사이토는 코브의 총과 토템을 보고(물론 이것도 영화를 한참 더 봐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죠) 그를 어렴풋이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사이토는 말합니다. "오래 전 꿈에서 본 젊은 남자가 이런 걸 갖고 있었다. 나를 죽이러 온 남자..."


이 말은 코브가 이 전에도 사이토를 죽이러(즉, 죽여서 림보에서 끌어내러) 왔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 후반에서 사이토가 꿈3에서 죽고, 곧바로 코브가 사이토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현실-림보-현실-림보로 몇 차례에 걸쳐 다시 다이빙을 한 끝에 간신히 사이토에게 도달하고, 그리고서도 실패를 겪은 뒤 겨우 다시 사이토를 만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렇게 설명하면 위에서 얘기했던, 시간이 한참 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 안에 이런 설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지만, '매트릭스2'에서 아키텍트가 네오에게 "네가 처음은 아니다. 네 전에도 다섯명이나 전임자가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의 황당함에 비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은 코브에겐 절박한 거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LA 도착 시간이 20여분 남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신히' 성공을 거둔 코브는 현실에서 한숨을 내쉬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 멤버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뭐 중요하진 않지만 이제는 우호적으로 변한 피셔와 함께 1주일 동안 꿈1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일찍 현실로 빠져나왔는지, 사이토를 구하러 갔다가 사이토에게 죽어 현실로 돌아온 코브가 킥으로 깨워 줬는지... 그거야말로 관객이 알아서 할 부분이라는게 역시 놀런의 입장.^)



9. 그래서 도대체 마지막에 토템은 멈추나, 안 멈추나?

사실 토템이라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별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대사가 나온 다음부터, 눈치 빠른 분들은 아마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쯤에 감독이 이 이야기를 써먹을거라는 걸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사이토를 무사히 구출하고, 수배에서 자유로워진 코브는 마침내 아버지(장인?) 마일스 교수의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떤 분들은 마일스가 파리에 있지 않고 미국에 있는게 이 마지막 시퀀스가 꿈이라는 증거라고도 하는데, 이건 놀런의 수준에 비하면 너무 유치한 얘기죠. 그리고 애당초 파리에서 코브는 마일스에게 "아이들에게 나 대신 선물(인형)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어쨌든 코브는 집에 도착하고, 밖에 아이들이 보이자 습관적으로 토템을 꺼내 테이블 위에 돌려 놓고 아이들을 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죠. 물론 보인다, 안 보인다가 현실과 꿈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꿈에서 코브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건 코브가 아이들의 얼굴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스스로 죄책감으로 억압했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그 죄책감은 꿈 속에서 다시 한번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모두 해소했죠.

(이 대목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과거와 똑같으므로 이 대목은 꿈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분명히 다릅니다. 특히 여자아이의 옷이 똑같이 핑크 톤의 색이긴 하지만, 디자인이 다릅니다. 꿈속의 필리파는 그냥 원피스를 입고 있지만 마지막 장면의 필리파는 흰 티셔츠 위에 끈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어쨌든 코브가 아이들과의 재회하는 사이에도 토템은 계속 돌아가고, 멈출 듯 하면서 다시 돕니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서 끝나 버립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토템이 그냥 쓰러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 쓰러졌고, 이게 모두 꿈이라고 믿고 싶은 분은 "그냥 그렇게 믿으라"는게 놀런의 생각입니다.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찌보면 이 결말을 통해 논란을 일으키겠다는 얄팍한 수이기도 하죠.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그 수는 먹혀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인셉션'의 플롯은 완벽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보고 있는 사이에 관객에게 큰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는 물론 아니죠.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영화에는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자는 거대한 세계관이나 미래를 향한 의지 같은 것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건 그야말로 보기에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오백년 묵은 버드나무를 신으로 섬기는 거나 비슷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인셉션'은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진 오락영화이고, 수작입니다. 그리고 못 보시면 대단히 아쉬울 작품입니다. 그리고 감탄할만한 상상력의 활용이란 면에서 정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번째 리뷰. 물론 제 설명이 모두 맞다는 보장은 절대 할 수 없겠죠? 지적, 의견 개진 적극 환영합니다. 함께 설명해가는 인셉션을 만들어 봅시다.^^

세번째 리뷰는 '인셉션, 아는 만큼 보인다' 정도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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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링크로 들어오신 분들은 화면 상단에 추천 마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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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에 대해 수없이 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들 속에는 흔히 공통된 단어나 어구가 등장합니다. '난해' '관객의 혼동' '지적인 블록버스터'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꿈과 현실의 혼란' 등등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말들에 현혹되어 이 영화가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하며 다 보고 나서도 뭔가 화장실에서 물 안 내리고 그냥 나온 듯 찜찜한 기운이 남는 영화라고 착각하실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아 급히 몇줄 쓰기로 했습니다. '인셉션'은 절대 그런 영화 아닙니다. 탄탄한 대본과 놀라운 연출이 조화를 이룬, 독창성에 찬탄을 금할 수 없는 그런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놀런의 전작 '다크 나이트'를 훨씬 뛰어넘는 작품입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설정을 전혀 모르셔도 상관 없지만, 아셔도 될 부분까지만 설명드리겠습니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해 비밀을 찾아내는 콤비입니다. 이들은 큰 회사의 요청에 따라 일본의 대부호 사이토(켄 와타나베)의 꿈에 침투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사이토에 의해 격퇴당하고, 반대로 그의 청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새로운 미션을 위해 코브와 아서는 꿈 속에 침투하는 드림팀을 짭니다. 새로운 꿈의 설계자로 여대생 아리아드니(엘렌 페이지), 무엇으로도 변신하는 임스(톰 하디), 약물전문가 유수프(딜립 라오)가 합류하죠. 그런데 코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아내였던 맬(마리옹 코티아르)가 계속 꿈에 등장한다는 거죠.


영화 내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꿈 속에서 또 꿈을 꾸고, 그 꿈에서 한 단계씩 심연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설계'한 놀런의 상상력입니다. 게다가 놀런이 창조한 세계 못잖게 보는 이를 놀라게 하는 것은 실로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연기파 배우들로 채워진 라인업입니다. 화려함으로는 '오션스 일레븐'에 뒤질 지 모르지만 실력파들로 채워졌기로는 근래 보기 드문 탄탄한 진용이더군요.

출연진 가운데 7명이 오스카 후보에 올랐고 그중 2명(마이클 케인, 마리옹 코티아르)은 수상자입니다. 나머지 6명은 3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 수상하지 못한 디카프리오,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피터 포슬스웨이트, '주노'의 엘렌 페이지, '라스트 사무라이'의 켄 와타나베, '플래툰'의 톰 베렌저입니다.
 
하다못해 단역인 첫 장면의 설계자 역으로 루카스 하스, 그리고 누워서 몇마디 하지도 않는 늙은 피셔 회장 역으로 피터 포슬스웨이트가 나오는 걸 보고 '이것이 스타 감독의 위용인가...'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초반부터 조셉 고든 래빗과 루카스 하스가 함께 나오는 걸 보니 갑자기 아이디어가 신선했던 영화 '브릭' http://www.imdb.com/title/tt0393109/  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배우가 있더라도 그게 영화의 성패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배우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제대로 활용한 놀런의 실력은 다시 한번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놀런이 이번에 창조한 세계는 꿈 속. 물론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1950년대의 영화광에게 '인셉션'을 보여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그동안 '매트릭스'를 봤고, '바닐라 스카이(혹은 '오픈 유어 아이즈')'를 봤고, 하루 아침에 도시 하나를 만들었다 허무는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를 봤고, 사람의 뇌를 하드 디스크로 활용하는 윌리엄 깁슨의 원작 소설을 기초로 한 '코드명J(Johnny Mnemonic)'를 봤고, 사람의 마음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아이덴티티'를 봤고, 연인의 마음 속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을 그린 '이터널 선샤인'을 봤으므로 남의 꿈속에 들어가고, 남과 나의 꿈을 연결해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이 감춰진 비밀을 훔쳐낸다는 황당무계한 설정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변화에 따라 놀런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을 서로 연결해주는 기계의 매커니즘 따위에 대해서는 설명을 절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으로 러닝타임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것이 놀런의 입장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설정의 기본 골격이 워낙 탄탄하고 설명이 명료하기 때문에, 놀런이 사소한 부분에선 수시로 설정을 바꾸는 데에도 관객은 쉽게 적응합니다.

그러니까 '매트릭스' 시리즈가 1편의 탁월한 설정과 창의력에도 불구하고 2편, 3편으로 가면서 지나치게 관객들을 혼란시키며 자멸의 길을 걸은 반면, 놀런은 아예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설정을 완전히 배제해버리며 보다 관객들에게 친숙한 길을 걷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 장면 하나 정도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건 글자 그대로, '관객의 취향'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기도 책임질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결말을 내려 놓고서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관객에게 '그건 관객이 해석할 몫'이라고 대답하는 한심한 감독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무책임한 감독들이 '관객이 해석할 몫'이라고 말할 때에는 콘서트에서 진정 관객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이 올라가지 못하는 고음 파트에서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내미는 가수가 떠오릅니다.


잠시 다른 길로 빠졌지만 이 영화를 통해 놀런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오래 전 칼 융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은 깨어 있을 때 의식상태에서 하는 것과 달리 무의식이 뭔가를 위해 움직이고, 그 결과물인 꿈에서 사람은 자신이 의식상태로 인지하지 못하는 의미를 전달받곤 한다는 식이죠. 그래서 주인공들은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단서를 심고,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데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써놓고 보면 길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고, 칼 융 이후에 누가 또 뭘 어쩌고 누구의 철학 이론에 따르면 꿈이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에는 아무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데 그런 바보같은 수작은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놀런의 공헌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충분히 납득이 가면서도 박진감있는 스토리로 풀어놓는가 하는 부분에 있죠. 이런 차이가 어떤 사람은 공부나 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대 감독이 되어 떼돈을 벌게 합니다. 꿈속의 꿈 부분, 그리고 꿈의 단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부분 등은 정말 탁월한 설정입니다.



'인셉션'에 대해서는 깊이 우려먹을 부분이 또 있을 것 같아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해 두려 합니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해도 꽤나 머리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어쨌든 이런 얘기들은 나중에 다시 하고, 결론은 꼭 보시라는 것.^^

P.S. 많은 분들이 결말을 갖고 머리를 썩히시지만,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정답이 없는 결말입니다. 어느 한 쪽이든, 관객이 믿고 싶은 쪽을 믿으면 됩니다. 

P.S.2. 소위 '킥 송'으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마리옹 코티아르가 여주인공인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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