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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첫 주말이 지나갔습니다. '인조' '김자점' '소용 조씨'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등 관련 검색어들이 주말 내내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물론 가장 오래 떠 있던 검색어는 아무래도 소현세자빈 역의 '송선미' 였지만)하더군요. 물론 검색의 동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뭐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됐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2회에서는 인조(이덕화)와 김자점(정성모)의 질긴 인연이 중요한 요소로 그려졌습니다. 1636~37년에 걸친 병자호란이 끝났을 때, 인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도원수 김자점을 죽였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도원수는 오늘날의 육군 참모총장.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항복을 하는 상황에서 도원수가 멀쩡히 병력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죽어 마땅한 죄죠.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자면 1623년,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될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에 다뤄졌죠.

 

 

 

 

 

일단 인조반정의 주역들을 인명록처럼 살펴보겠습니다. 1623년 3월12일(음력)로 돌아갑니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기록입니다. 광해군의 마지막 날이죠.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부장 이귀【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은 최명길(崔鳴吉)【전 병조 좌랑.】·김자점·심기원【유생.】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김경징(金慶徵)【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신경인(申景摠)【도총도사(都總都事).】·이중로(李重老)【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장유(張維)【전 한림.】·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유생.】·신경유(申景裕)【무신인데 전 부사이다.】·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유생.】·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무신.】·최내길(崔來吉)【사예.】·한교(韓嶠)【전 현감.】·원유남(元裕男)【전 병사.】·이의배(李義培)【무장.】·신경식(申景植)【전 현감.】·홍서봉(洪瑞鳳)【전 승지.】·유백증(兪伯曾)【전 좌랑.】·박정(朴茢)【승문원 정자.】·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역사 상식. 광해군 때의 정권 주도 세력은 북인, 특히 대북이었고 인조 반정의 주역들은 서인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소장파였던 서인들은 벼슬이 없거나, 부사/좌랑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병사로 임명된 이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내쫓기던 중종반정 때에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양다리를 걸쳤듯 인조반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이 반정 음모를 입수하고 궁성 경비를 맡긴 이흥립이 바로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으니 이건 뭐 성공하지 못하면 이상할 지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조실록의 첫번째 기사, 즉 3월13일 기록된 인조반정의 상세한 내막을 보면 참 진행 과정이 가관입니다. 어쩌면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엉성한 반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엉성한 음모에도 무너질 정도로 광해군 하대의 정국은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최근 역사가들의 우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그리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하선이 아니고 진짜 광해여서 그랬는지도.^^)

 

 

 

 

인조반정 기사입니다.

 

 

 상(=능양군, 즉 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켜 강화(江華)로 내쫓고 이이첨(李爾瞻) 등을 처형한 다음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다.


 상은 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원종 대왕(元宗大王)【 정원군(定遠君)으로 휘는 이부(李琈)인데, 추존되어 원종이 되었다.】의 장자이다. 모후는 인헌 왕후(仁獻王后)구씨(具氏)【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이다. 추존되어 왕후가 되었다.】로 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만력 을미년(1595년) 11월 7일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탄생하였으니, 당시 왜변이 계속되어 왕자 제궁(王子諸宮)이 모두 해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선묘(宣廟)께서는 이것이 한 고조(漢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크게 애중하여 궁중에서 길렀고, 친히 소자(小字)와 휘(諱)를 명하고 깊이 정을 붙였으므로 광해가 좋아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큰 도량이 있었다. 여러 번 자급이 올라가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져서는 더욱 겸양하면서 덕을 길렀다.


(중략. 중간 내용은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반정의 정당성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죠.)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무인 이서(李曙)와 신경진(申景禛)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 및 구굉(具宏)·구인후(具仁垕)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속이었다. 이에 서로 은밀히 모의한 다음, 문사 중 위엄과 인망이 있는 자를 얻어 일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곧 전 동지(同知) 김류(金瑬)를 방문한 결과 말 한 마디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추대할 계책을 결정하였으니, 곧 경신년(1620년)이었다. 그 후 경진이 전 부사(府使) 이귀(李貴)를 방문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귀도 본래 이 뜻을 두었던 사람이라 크게 좋아하였다. 드디어 그 아들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및 문사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 유생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등과 공모하였다. 이로부터 모의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3년 된 음모. 이렇게 3년에 걸쳐 모의가 진행됐고, 참여자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음모가 소문이 아니 날 재주가 없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주동자인 이귀가 입이 싸서 '음모가 자주 누설되었다'고 되어 있을 정도.)

 
임술년(1622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애를 입은 김상궁 김개시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1차 위기.)

 

신경진과 구인후 역시 당시에 의심을 받아 모두 외직에 보임되었다. 마침 이서가 장단 부사(長湍府使)가 되어 덕진(德津)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하여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 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당시 정승 박승종(朴承宗)과 서로 인척이 되는 사이라 뭇 의논이 모두들 ‘도감군(都監軍)이 두려우니 반드시 이흥립을 설득시켜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장유의 아우 장신(張紳)이 흥립의 사위였으므로 장유가 흥립을 보고 대의(大義)로 회유하자 흥립이 즉석에서 내응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이서는 장단에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고 이천 부사(伊川府使) 이중로(李重老)도 편비(褊裨)들을 거느리고 달려와 파주(坡州)에서 회합하였다.

 

(도감군이란 바로 훈련도감의 정예병. 말하자면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이 되는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훈련대장 이흥립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반(李而攽)이란 자가 그 일을 이후배(李厚培)·이후원(李厚源) 형제에게 듣고 그 숙부 이유성(李惟聖)에게 고하자, 유성이 이를 김신국(金藎國)에게 말하였다. 이에 신국이 즉시 박승종에게 달려가 이이반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게 하고 또 승종에게 이흥립을 참수하도록 권하였다. 이반이 드디어 고변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12일 저녁이었다.

 

그리하여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고 먼저 이후배를 궐하에 결박해놓고 고발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하는데, 광해는 바야흐로 후궁과 곡연(曲宴)을 벌이던 참이라 그 일을 머물러 두고 재결하여 내리지 않았다. 승종이 이흥립을 불러서 ‘그대가 김류·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하므로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하자 곧 풀어주었다.

 

(이흥립의 평소 처신이 좋았던 것인지... 광해군 말년에 정말 인물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위에서 보듯 이흥립은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반정 핵심인 장유의 아우의 장인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광해군의 측근인 박승종과도 사돈 사이입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기든 내게 설마 해를 입힐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 인조반정 때의 실록 기사를 보면 어찌나 5.16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지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양다리에 능했던 이흥립은 결국 반정에 참여한 댓가로 공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 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도성으로 쳐들어 온 이괄 앞에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한편으로 몰린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거병 소식을 박승종에게 고발한 김신국이 인조 즉위 후에도 중용됐다는 점입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의병은 이날 밤 2경에 홍제원(弘濟院)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김류가 대장이 되었는데 고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포자(捕者=체포하러 오는 관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를 죽이고 가고자 하였다. 지체하며 출발하지 않고 있는데 심기원과 원두표(元斗杓) 등이 김류의 집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시기가 이미 임박했는데, 어찌 앉아서 붙잡아 오라는 명을 기다리는가.’ 하자 김류가 드디어 갔다.

 

(솔직히 '나를 잡으러 오는 놈을 베고 가려 했다'는 말은 핑계로 들립니다. 오히려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움츠리고 앉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른 기록에는 '포자를 죽이고 가겠다'는 호기있는 표현보다 '이렇게 된 이상 체포될 뿐'이라고 말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귀·김자점·한교(韓嶠) 등이 먼저 홍제원으로 갔는데, 이때 모인 자들이 겨우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김류와 장단의 군사도 모두 이르지 않은 데다 고변서(告變書)가 이미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흉흉하였다. 이에 이귀가 병사(兵使) 이괄(李适)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 김류가 이르러 전령(傳令)하여 이괄을 부르자 괄이 크게 노하여 따르려 하지 않으므로 이귀가 화해시켰다.

 

(정작 군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이괄 뿐이었는데 반정의 공로를 가를 때 이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결국 이것이 반정 1년 뒤, 이괄의 난의 계기가 된 것이죠. 저런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김류가 금세 장 행세를 하고, 정작 군대를 이끈 이괄에게 2등 공신 자리밖에 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상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서 이서(李曙)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바로 '꽃들의 전쟁'에 나오는 '김자점이 능양군을 찾아가 설득해서 끌어냈다'는 부분은 이 대목이라야 할텐데, 실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려실기술'에는 능양군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경계해 일찌감치 가솔들을 거느리고 연서역에 나와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김자점은 초기 능양군을 임금 감으로 점찍어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그 뒤로도 인조가 김자점을 감히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인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장단의 군사(=장단부사 이서가 거느린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이귀·심기원·최명길·김자점·송영망(宋英望)·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하여 군사를 단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敦化門)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문(後苑門)을 통하여 달아났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궁전이 연소하였다.
 
상이 인정전(仁政殿) 계상(階上)의 호상(胡床)에 앉았다. 궁중의 직숙관(直宿官)이 모두 도망쳐 숨었다가 잡혀왔는데, 도승지 이덕형(李德泂)과 보덕(輔德) 윤지경(尹知敬)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배례를 드리지 않다가 의거임을 살펴 알고는 바로 배례를 드렸다. 명패(命牌)를 내어 이정구(李廷龜) 등을 불러들이니, 새벽에 백관들이 다 모였다.

 

박정길(朴鼎吉)이 병조 참판으로 먼저 이르렀는데, 판서 권진(權縉)이 뒤미처 이르러 ‘정길이 종실(宗室) 항산군(恒山君)과 함께 군사를 모았는데, 지금 들어왔으니 아마도 내응할 뜻을 둔 것 같다.’라고 하였으므로 곧 정길을 끌어내어 참수하였다. 항산군을 잡아다 문초하니, 혐의 사실이 없어 석방하였다. 그런데 정길은 당연히 참형을 받아야 할 자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참수를 통쾌하게 여기었다.

 

(그러니까 박정길이 죽은 것은 혼란중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미움 받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의미. 항상 혁명 때에는 반혁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얼른 궁으로 찾아온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오해를 풀지 못할 정도로 혁명 주체들과 평소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그리고 상궁(尙宮) 김씨(金氏)와 승지 박홍도(朴弘道)를 참수하였다. 김 상궁은 선묘(宣廟)의 궁인으로 광해가 총애하여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권세를 내외에 떨쳤다. 또 이이첨의 여러 아들 및 박홍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무상으로 출입하였다. 이때에 와서 맨 먼저 참형을 받았다. 홍도는 흉패함이 흉당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자라 궐내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광해는 상제가 된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도망쳐 국신이 쓰던 흰 의관을 쓰고 있는 것을 국신이 와서 고하므로 장사들을 보내 떠메어 왔고, 폐세자(廢世子)는 도망쳐 숨었다가 군인들에게 잡혔다.
 
상이 처음 대궐에 들어가 즉시 김자점(金自點)과 이시방(李時昉)을 보내 왕대비(王大妃)에게 반정한 뜻을 계달하자, 대비가 하교하기를 ‘10년 동안의 유폐 중에 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중에 승지와 사관(史官)도 없이 이처럼 직접 계문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이 복명하여 아뢰자 상은 곧 대장 이귀(李貴)와 도승지 이덕형, 동부승지 민성징(閔聖徵) 등에게 명하여 의장을 갖추고 나아가 모셔오게 하였다. 이에 이귀 등이 경운궁(慶運宮)에 나아가 사실을 진계하며 누차 모셔갈 것을 청하였으나 대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이 이에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갔다.

 

유사가 연(輦)을 등대하고 위의를 베풀었으나 상은 이를 모두 거두라 명하였다. 교자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말만 타고 가면서 광해를 떠메어 따르게 하였는데, 도성 백성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오늘날 다시 성세를 볼 줄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이하는 생략. 어쨌든 무력으로 궁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열상 광해군의 모후 뻘인 인목대비의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광해군은 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것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받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인목대비의 인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죠. 다만 인목대비는 은근히 '누가 새 왕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해군을 죽여서 내 아들(영창대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강해 공신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옥신각신합니다. 이때 이귀가 인목대비와의 기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인조반정의 핵심 주체 사이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류, 최명길, 심기원, 원두표, 구인후, 김자점 등 인조반정의 주체들은 14년이 지난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점에도 정국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점을 해칠 수 없는 것은 김류의 조언 때문입니다. 사실은 인조보다는 김류에게 김자점이 더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 혁명 주체 세력은 같은 서인 출신이지만 뒤늦게 사림에서 정치에 나선 송준길, 송시열, 김상헌 등의 인물들에게 위협을 느낍니다. 특히나 패전에 대한 책임이나 명에 대한 의리의 선명성에서 이들은 뭔가 뒤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혁명 주체 세력의 투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용도로 김자점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이건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건 말건, 김자점은 왕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 '꽃들의 전쟁'의 출발점이니까요.

 

아무튼 김자점의 생애와 의혹(그는 정말 반란을 꿈꿨나?)에 대한 부분은 다른 글에서 조명해 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절해고도에서 인조의 배신과 옛 인연을 되새기다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김자점 역의 정성모. 정말 대단한 에너지의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장면은 두고 두고 '궁중잔혹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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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분노의 추격자] 퀜틴 타란티노가 만든 '장고'의 리메이크에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원제인 Django Unchained 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은 아닙니다만, 뭐 '사슬에서 풀려난 장고'라고 할 것도 아니고, 영화 내용과는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많은 구세대들들은 '장고'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몇가지의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수염이 바늘처럼 송송 자라난 프랑코 네로의 얼굴, 말을 타고 멋지게 달리는 대신 관을 끌고 다니는 괴상한 카우보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관 속에서 튀어나오는 *** (과연 1966년작 영화의 내용을 갖고 스포일러를 따져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려 두겠습니다.^^).

 

어쨌든 오리지널 '장고'는 최고의 오락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드레날린 아티스트 퀜틴 타란티노가 리메이크한다는데, 기대가 가지 않을 리가 없었죠.

 

그리고 많은 아저씨 관객들은 외쳤습니다. "젠장, 장고라니! (말년에) 관뚜껑 그림자도 못 봤는데 장고라니!"

 

 

 

가장 기대에서 어긋났던 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격자'는 1966년작 오리지날 '장고'와 사실상 아무 상관 없는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 외에는 전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로 위 사진, 스쳐 보기만 해도 '장고다!'라고 할 수 있는 저런 모습의 '오리지날 장고 비주얼'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혀.

 

 

 

 

사슬에 묶여 이동하고 있던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국 서부 사막을 떠돌던 슐츠 박사(크리스토프 발츠: 발츠라고 읽을지 월츠라고 읽을지 늘 갈등되는 상황)의 도움으로 구조됩니다. 그리고 장고에겐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연인 브륀힐데(케리 워싱턴)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죠.

 

일단 장고에게 킬러로서의 천부적인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슐츠는 그를 현상금 사냥의 조수로 쓰는 한변, 브륀힐데를 산 대농장주 칼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찾아내 장고와 브륀힐데를 재회할수 있게 해 주려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구세대들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아니 대체 이 영화에 왜 장고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 일단 '오리지널 장고'를 구성하는 시각적 표현물, 즉 푹 눌러 쓴 모자와 밤송이 수염, 지저분한 외양과 질질 끌고 다니는 관 같은 것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도 안 끌고 다니는 장고가 장고냐'는 말이 나올 법 합니다.

 

물론 타란티노는 당연히 할 말을 다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장고' 이후에 수십편의 영화가 '장고'라는 주인공을 이리저리 울궈먹었는데 그걸 다 관통하는 공통점이라도 있다는 거냐. 전혀 계승할 생각 없었다. 그런 걸로 따지지 마라. 뭐 영화 속에서 20세기 역사도 제 멋대로 바꾼 적 있는 타란티노니까 가질 수 있는 당당한 태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장고'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없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솔직히 플롯 면에서 뛰어난 점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단순 과격의 정서입니다. 관객에게 쓸데없는 추론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 같기도 합니다.

 

각각의 사건은 꽤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개별적인 사건들이 대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있나를 따지는 건 매우 곤란합니다. 그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서부극'이라는 뜻의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대신 '서던(Southern: 이 영화의 무대가 미국 서부가 아니라 남부라는 뜻에서. 물론 서부극의 주 무대인 텍사스는 더 남쪽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지만, 당시의 텍사스는 '미국'이 된지도 얼마 안 되는 서쪽의 황무지였죠)이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이 영화는 너무도 뼈속까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정수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의 위치를 따지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과 테렌스 힐의 '내 이름은 튜니티' 시리즈의 딱 중간 정도?

 

 

 

사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에 대한 일부 평론가/기자 양반들의 지나친 의미 부여가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독일계로 설정되어 있는 슐츠 박사라는 인물입니다. 이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전작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Ingrorious Bastards)'에서 나치 장교 역을 맡았죠.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또 독일계 미국인이 오히려 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이것 역시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얘깁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얘기는, 크리스토프 발츠라는 배우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것. 정말 최곱니다.

 

영화의 결말을 건드리게 될까봐 살짝 위태롭기도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악당 캔디 역시 '극악무도한 미친 놈'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약간 부당하긴 하지만, 어쨌든 '비즈니스'를 할 생각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성을 잃는 것은 우리 편, 즉 정의의 편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정의의 편(?)은 모든 문제를 좀 더 평화롭고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었죠. 하지만 감독이 타란티노이다 보니 불행히도 그런 진행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냥 즐겁게, 피의 향연을 즐기면서, 마음 편히(?) 보시면 되는 영화.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 자신의 다른 영화를 볼 때보다 조금 더,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 만큼은 어린이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가 유치하거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유치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이 영화는 '우리는 일부러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야'라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즐기는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나 그 가이드를 충실히 이행했느냐에 달렸습니다. 평소의 자신은 극장 밖에 두고, '장고'를 본 뒤에 다시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어설픈 의미 부여나 심층적인 해석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마시구요.

 

어쨌든 개인적으론 매우 강추. (물론 역시 개인적으로, 관뚜껑이 안 나오는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더군요.)

 

 

 

P.S. 올드 '장고'를 아쉬워하는 노친네들에 대한 배려로 프랑코 네로는 한 장면 나옵니다. 술집에서 만나는 아저씨 역으로.^ 아, 물론 '마이애미 바이스'의 돈 존슨도 한 장면 걸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물론 주제가도 가져다 씁니다. 이건 '대체 오리지날 장고라는 게 뭐야' 할 분들을 위한 오리지날 장고 주제가의 뮤직비디오(?). 친절하게 '장고' 한 편에서 장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 카운트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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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기획 초기부터 '여성 사극'을 표방했던 작품입니다. '꽃들의 전쟁-여자들의 정치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 사극'이라는 말은 사극 중에서도 특정한 작품군을 떠오르게 합니다. 대개 고전이 된 '개국'에서부터 '무인시대', '연개소문'으로 이어지는 KBS 대하사극풍의 작품들을 '남성형 사극'이라고 부른다면 '여성 사극'은 오래 전 MBC를 통해 방송된 '여인 열전'에서 SBS 사극의 정점을 찍었던 '장희빈'과 '여인천하'류, 그리고 JTBC의 개국 콘텐트로 큰 역할을 했던 '인수대비'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분명합니다. 주로 궁정이나 양반가의 규방이 주 무대가 되죠. 그리고 성격상 호쾌한 액션이나 군중을 동원한 몹 신보다는 오밀조밀한 대사를 통해 갈등과 해소가 이어집니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과 악녀의 무한대립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꽃들의 전쟁'은 이런 전형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19일 선공개된 1회 영상(본 방송은 3월23일)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에 선공개된 1회 영상은 실제로는 1회를 조금 넘어 2회 앞부분까지 살짝 걸치는 내용입니다. 대작의 위용을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간에 영상을 교체하는 바람에 카운트가 내려갔는데, 약 18시간만에 5만명 가량이 이 영상을 보시고 호평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간략한 도입부 줄거리.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겨울을 넘겨 새해를 맞은 조선 16대 왕 인조(이덕화). 정축년 초 마침내 청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습니다. 김상헌(한인수)을 비롯한 척화파 대신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인조는 대군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합니다.

 

호란의 틈바구니에서 양반가의 서녀 얌전이(김현주, 훗날의 소용 조씨)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인 남혁(전태수)와 애틋한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신분 차이가 분명한 두 사람이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죠. 물론 그렇다고 얌전이가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방지축 말괄량이형입니다.

 

다시 궁정. 도원수 김자점(정성모)이 격분한 인조에게 치도곤을 당합니다. 조선의 주력군을 이끌고 임진강 언저리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죄. 하지만 영의정 김류(김종결)는 은밀히 김자점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 김자점은 절도유배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항복의 치욕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구차한 삶은 정작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세자(정성운)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상황. 세자빈(송선미)은 갓난 아들 석철과 눈물로 이별하고, 인조는 홀로 남겨진 손자 석철을 부여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인조 시대가 사극의 초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찌기 80년대 초, 컬러TV 시대를 맞은 KBS가 방송사의 위용을 떨치기 위해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사극 '대명'에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조명한 적은 있었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쟁의 끝에서 바로 효종 시대로 점프하고, 전란의 마무리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조 후기의 정치사는 한국 사극의 역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꽃들의 전쟁'은 기존의 여성 사극류와는 규모에서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간간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화나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의 치욕 장면 등은 소위 '정통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거대한 비주얼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여성 사극들과 차이나는 점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작가 정하연의 내공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정하연 작가의 정치 분석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일찌기 수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났듯, 그의 사극에는 선인과 악인의 흑백 대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갑에게는 갑의 명분이, 을에게는 을의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 눈물로 항복을 권하는 최명길과 군신이 다 같이 죽자는 김상헌. 기존의 사극이라면 어느 한 쪽에 좀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꽃들의 전쟁'에서 최명길은 세자를 청으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김상헌에게 "이제 와서 좋은 말은 혼자 다 하십니다.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신지요"라고 정면으로 맞받아 칩니다. 

 

오히려 보다 큰 간신으로 그려지는 쪽은 영의정 김류와 도원수 김자점. 김자점이야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김자점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그렇게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던' 김자점을 인조가 다시 불러 중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중량감있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키는 '여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죠.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되, 그 근거가 되는 역사나 정치 이야기가 단순화/유치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소용 조씨(김현주) - 소현세자빈 강씨(송선미)의 대립이 드라마의 축이지만, 그 사이에서 열다섯 나이에 입궁하는 장렬왕후 역의 고원희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2AM 뮤직비디오, 아시아나 모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드라마로 확 개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작발표회 때 보니 의외로 또박또박 말을 잘 하던데, 별명이 '애늙은이'라는군요.

 

 

 

 

 

그리고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깨알 재미를 책임지실 분들. 일단 침장이 역의 손병호. 가벼운 톤을 잡았는데도 존재감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이 분. 내관 역을 맡은 우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꽃미남 부문'을 책임질 전태수. 오랜만이라 그런지 각오도 남달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갖출 건 다 갖춘 '꽃들의 전쟁', 23일 '무자식 상팔자' 후속으로 공식 출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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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줄곧 궁금해하긴 했지만, 3월13일 이전까지는 아무도 미리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극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의 팬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분은 제작에 있어선 지독한 완벽주의자입니다. 방마다 놓여 있는 소품 하나,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영수증 하나, 약 봉지에 쓰인 이름이나 주소 하나 허술하게 촬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윤제문' 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1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일제히 납득했습니다. 사실 3월13일 공개된 분량은 정규 1회를 넘어 2부 앞부분까지 포함되는, 약 80분 가량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론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걸작이다.'

 

 

 

3월13일 공개한 1회 선공개 영상은 여기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회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계의 끝' 첫회는 원양어선 문양호의 마지막 생존자 기영(김용민)이 고무 보트에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장쾌한 헬리콥터 샷으로 시작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첫 출근한 나현(장경아). 첫날부터 팀원들은 나현을 놀리기 위해 '셜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헌(윤제문)에게 나현이 뭘 타고 왔는지, 뭘 먹었는지를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정확하게 다 맞춰 내는 주헌을 보고 놀라는 나현.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고, 질병관리본부의 수뇌부 회의가 열립니다. 보름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괴 바이러스에는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첫 희생자의 직업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취미는 사진 촬영. 다각도로 수색에 들어가지만 발병 원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희생자를 이송한 구급요원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희생자의 집에 누군가 이틀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인물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한 주헌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편 '그 인물'인 기영도 자신이 들렀다 간 흔적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안 기영은 자수를 생각해 보지만, 생체 실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달아나려 합니다. 그래도 2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기다려 준 여자친구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세계의 끝'의 전제가 되는 이야기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는 의학적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그 사람은 감염되든가, 아니면 자연치유되든가 할 겁니다. 그런데 몸 속에 그 병원체가 우글거리는데도 그 사람은 멀쩡하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은 병에 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장티푸스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메리 말론이라는 여성에게서 이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무려 51명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1907년 마침내 관계 당국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조사를 시작했죠.

 

 

 

 

'세계의 끝'은 몸서리쳐지는 재난 드라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주헌을 비롯한 조사반원들은 목숨을 걸고 질병과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사실 이 병난의 문제는 바로 장티푸스 메리와 같은 존재인 기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기영이 치료약 개발에 협조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기영은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만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다 죽었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다음의 선택은 "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거야"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싫어' 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알게 뭐냐' 인 겁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영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과 여자친구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철조망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안판석 감독은 윤제문, 장현성, 박혁권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낯설 뿐이지 다들 연극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이 입증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의 벽을 가능한 한 엷게 하기 위해 이런 캐스팅을 합니다. 다큐멘터리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죠.

 

제목과 배우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http://fivecard.joins.com/1106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인생에 갑작스레 던져진 재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다.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에 '불륜'이라는 재앙이 밀려오면서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가족이 일순 붕괴된다. '세계의 끝'도 마찬가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드라마이면서 휴먼드라마인 '세계의 끝', 만듦새에서는 이미 동급 최강이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제작진도 '옥의 티 0'라는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매주 주말 밤마다, 온 세계가 종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음산한 체험이 기다릴 겁니다. 3월16일(토) 오후 9시55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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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아직 그리 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끝'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억하실 겁니다(초기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제목은 귀에 익지 않아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노래? 하실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사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Why does the sun go on shiny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세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녀풍의 노래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느낌이 영 다르더라는 겁니다.

 

왜 태양은 아직도 반짝이는 것일까

왜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걸까,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스산한 느낌이 감돌지 않으시나요?

 

이 제목은 바로 이런 느낌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의 어느날. 서울 시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합니다. 치사율은 100%.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TF가 발족하지만 감염원은 오리무중. 치열한 추적 끝에 원양어선을 타던 복학생이 최초의 보균자로 파악되지만 그의 소재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괴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주인공 강주헌은 헌병 장교 출신이란 독특한 경력의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과장. 치열한 조사 끝에 감염원을 찾아내지만, 괴 바이러스의 치료는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바이러스의 발생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거죠.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1회를 그냥 통으로 보여 드립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물량 규모가 만만찮습니다.

 

일단 맛뵈기부터 보고 싶은 분은 다음 티저 영상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돈 좀 들었습니다.

 

 

 

 

강주헌 역을 맡은 배우는 윤제문. 의외로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의 사수 건달 역으로 이 배우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품 조연', '신 스틸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연기 죽이는 놈 있잖아' 등으로 명성을 날렸죠.

 

그리고 나서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더 킹 투 하츠'의 악당 김봉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그냥 '윤제문' 하면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보단 '가리온'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죠.

 

사실 캐스팅 리스트에는 윤제문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완벽주의자 안판석 감독님이 이 배우를 콕 찍은 겁니다. 이 친구와 하겠다고. 뭐 거기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죠.

 

다른 사람들이 아쉬울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전달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긴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하얀 거탑'으로 김명민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듯, '세계의 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윤제문이 각인될 거라고. 뭐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을 만든 양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주인공이 윤제문이면 주인공의 파트너인 이나현 역이라도 좀 있어보이는 배우가 뽑히길 기대했지만 전화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누구?" 라고 한 세번 물어봐야 했습니다. 장경아랍니다. 대체 장경아가 누구야.

 

 

 

 

 

1987년생. 26세.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위 사진에선 심각하고 초췌한 모습만 보이지만, '여고괴담' 때만 해도 이랬습니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박혁권, 장현성 등 '아내의 자격'을 통해 '안 사단'으로 불리게 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역시 이 배우들도 저희 회사 근처에선 '김희애 남편'이나 '김희애 시누이 남편'으로 더 유명한 분들이기도 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아내의 자격'의 여파가 아직 안 가시고 있어서...)

 

 

 

아무튼 아직 쇼킹한 비주얼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가 아니라 시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만, 밀도 있는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세계의 끝' 1회는 JTBC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다음(위에 퍼온 영상)을 통해 선공개됩니다. 미리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규 방송은 16일 오후 9시55분부터.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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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포스터나 홍보물을 보면 이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화는 타겟팅이 중요할테지요. 즉 '어떤 사람이 볼 만한 영화다'라는 것이 바로 계산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소수의 영화광들은 일단 스크린에 틀어 주기만 하면 뭐든 보겠다는 마음이 들 지 모르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초절정 드라이 액션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측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맛(?)간 남자/사랑에 훅(?)간 여자'라는 식의 헤드라인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가지 쯤 되는 사랑의 오만가지 양상을 비틀고 비틀어 영화를 만들다가 마침내 '둘 다 맛이 간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랑 이야기를 해 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냥 둘이 그렇게 해서 잘 먹고 잘 살았대(Happily ever after)'를 미덕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서 나온 물건 치고는 그 잔향이 만만찮습니다.

 

그야말로 아찔하다고나 할까요. 미리 설레발을 치자면, 아직 3월이지만 제게는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엄마의 도움으로 퇴원하는 팻(브래들리 쿠퍼).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 줄을 놓아 버려 입원하는 신세가 됐지만 막상 퇴원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아내를 되찾을까 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남편과 사별한 뒤, 역시 정신 줄을 놓고 주변 온갖 사람들과 섹스를 해 맛간 여자 취급을 받으며 주위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팻에게 어렴풋이 호감을 갖지만 팻은 티파니 앞에서도 늘 아내 얘기 뿐입니다.

 

 

 

 

분명히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이성적인 행동을 할 리는 없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쓰고 조깅을 하고, 농구 유니폼이 정장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조건 따라 뛰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독특한 점은, 이 영화 속의 비정상적 인물들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생각해서 최선의 방책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팻이며 티파니,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 도박 중독인 팻의 아버지와 그 친구까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미친 듯 행동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최선의 길을 택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 감정이입까지 가능하게 해 줍니다.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 속에, 멀쩡한 남들이 다 하는 고민과 눈물, 밀당과 감정의 폭발이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할리우드의 마법이 한몫을 거듭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팻과 티파니처럼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은 브래들리 쿠퍼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1000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장 눈에 띌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살짝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뛰어도 멋지게 보일 만큼 잘 생기고 쭉빵 미인이라면 평가가 달라지는게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미모와 감독의 지원에 의해 두 배우는 '비호감형 캐릭터'들을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승화시킵니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팻의 아버지는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수시로 탈출을 시도하는 팻의 병원 동기(?) 대니 역으로 크리스 터커가 나옵니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잭 니콜슨 주연 '이보다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또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드렁크 러브'입니다. 두 편 모두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담은 영화죠. 특히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는 명대사로 지금껏 기억되는 '이보다...'는 괴상한 행동을 일삼던 작가 잭 니콜슨이 '사랑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아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나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공감을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주는 구원의 메시지는 쌍뱡향입니다. 팻과 티파니는 모두 결함이 큰 사람들이지만, 구원은 어느 한 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양쪽이 서로에 대개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이 균등하지는 않지만(어느 순간까지는 굉장히 한쪽이 더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 뿐만 아니고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서로는 서로의 구원자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모르셨다구요. 그럴 리가 없지요. 이 영화는 제목부터 그런 뜻인데 말입니다.

 

silver lining은 구름 가장자리의, 밝고 투명하게 보이는 윤곽 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구름이 가리고 있지만 그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죠. 이 말 자체가 '희망'의 상징입니다(물론 영화 속에서도 그 말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playbook은 '계획'이란 뜻이지만 미식축구에서 다양한 공격 포맷을 도식화해서 기록한 '작전집' 정도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포스터 중 하나는 아예 그런 '작전도'를 이용한 비주얼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행복을 찾기 위한 작전집', '행복 찾기 대작전'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이유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 수도 있고, 경제난이 이들의 앞에 암운을 드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라는 물건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끝을 맺어 주죠.

 

전작에서부터 가족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사람들(흔히 '일반인'이라고 하죠)이 성취하는 것, 혹은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행복과 성취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이 8점을 노리고, 우승을 노릴 때 5점이면 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도 행복과 만족이 올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해 주고, 1등병이나 경쟁 지상주의에 찌들어가는 현대인(특히 한국인)에게 힐링 무비의 역할을 할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의 치유를 받아들일지는.

 

아무튼, 본래 강추지만,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특히 강추.

 

 

P.S.1. 영화적으론 좀 사족같지만 이런 아버지의 충고는 굉장히 와 닿습니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서 팻의 아버지가 팻에게 티파니를 놓치지 말라고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Let me tell you, I know you don't want to listen to your father, I didn't listen to mine, and I am telling you you gotta pay attention this time. When life reaches out with a woman like this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m telling you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t'll haunt you the rest of your days like a curse. You're facing a big challenge in your life right now at this very moment, right here. That girl loves you. she really really loves you. I don't know if Nicky(팻의 전처) ever did, but she sure as shit doesn't right now. So don't fuck this up.

 

P.S.2. 좋은 가사. 저는 스티비 원더의 원곡보다 이 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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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보면서 '무간도'와 '대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영화 이후에 나온 갱 영화나 언더커버 캅에 대한 영화가 두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평을 듣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세계'가 이 두 영화에 대해 지고 있는 빚은 흔히 말하는 '영향'을 넘어 서 있습니다. 이른바 오마주의 세계라고 할까요.

 

사실 개인적으로 '신세계'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무간도'가 아니라 '무간도2'입니다. 전편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무간도'를 훨씬 능가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수백편(수천편?) 쯤 만들어졌을, '대부 오마주' 영화들 가운데서도 손꼽을만한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안 보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신세계'는 굳이 말하자면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대부 오마주' 영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자면 아마도 '신세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풍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국내 최대 폭력조직이며 합법적인 기업으로 진화한 골드문파의 보스 석회장(이경영)은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고 풀려난 직후 의문의 사고로 사망합니다. 후계자가 필요해진 상황. 연합 조직인 골드문파의 특성상 최대 계파인 재범파의 보스 중구(박성웅)와 여수 화교 중심의 파벌인 북대문파의 정청(황정민)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릅니다.

 

이런 상황은 본래 경찰이지만 비밀리에 조직에 잠입한 자성(이정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8년 노력한 끝에 정청의 오른팔이 된 자성은 자신을 투입한 강과장(최민식)에게 그만 풀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강과장은 자성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합니다. 소위 '신세계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일각에서 흐름이 좀 느리다는 평이 있었지만 2시간14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단 세 남자의 대립이 촘촘하게 짜여 있고, 세 주인공의 조합은 예상대로 매우 훌륭합니다. 셋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아무래도 황정민이겠죠.

 

'달콤한 인생'에서 건달 중의 상건달 - 흔히 말하는 '양아치'에 가까운 - 역할로 연기력을 과시했던 황정민은 그와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인물 정청 역을 맡아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이 정말 본능만 있는 벌레같은 인간이라면, '신세계'의 정청은 동네 아저씨같은 인간미와 하이에나같은 악착스러움에다 뱀 같은 냉정함까지, 한 작품 안에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주연을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만만찮은 비중을 자랑한 박성웅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구가 지나치게 냉정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 그런 냉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미친개가 되는, 좀 더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

 

사실 '신세계'는 전형적인 영화이긴 합니다만, 배우들이 연기하기는 또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판타지 느와르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한국 경찰과 조폭의 관계에서 이런 식의 언더커버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경찰이 8년씩 조폭 밑에 들어가서 발각되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 있으며, 수시로 인사조치가 있는 한국 조직의 특성상 어떤 중간 간부가 -이를테면 강과장이- 8년씩 그런 장기 프로젝트를 보안 위험을 감수해 가며 추진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이나 미국 같이 넓은 나라에서는 혹시 또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고, 출신 지역이나 학력만 추적해 봐도 어느 집 누가 뭘 하는지 다 드러나는 나라에서 과연 이런 식의 철저한 은폐가 가능할까요. 더구나 경찰/검찰과 조폭의 인맥이 이렇게 촘촘하게 엮여 있는 나라에서 말이죠.^^ - 물론 '신세계' 같은 영화를 볼 때에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어쨌든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영화니까 말입니다.

 

다만 '무간도'나 '디파티드' 같은 영화들은 가능한 한 그 현실과의 괴리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개연성을 보강하고 있는 반면, '신세계'는 그런 부분에서 덜 치밀합니다. 예를 들어 송지효가 연기하는 바둑 선생 같은 캐릭터는 오히려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면을 더 강조해 버리는 면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야쿠자 영화를 의식한 듯한 두 차례의 장례식 장면도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물론 많은 관객들은 무협영화나 '스타 워즈'를 보듯, 이 '언더커버 판타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세계'를 볼 겁니다. 그리고 이 장르에 애정을 갖고 있는 관객이라면 '신세계'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관객 상당수가 '무간도'나 '도니 브래스코'류의 영화에 노출되어 있었을 거라고 전제하면, 자성이 당연히 겪어야 할 정체성의 혼란 같은 장면은 과감하게 제거하는게 당연했을 겁니다. '우리 외국 나가서 살까?' 정도의 대사로 쉽게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다만 영화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다소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러 있는 건 좀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연변 거지 개그는 무거운 흐름을 풀어 주는데 꽤 역할을 합니다만,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한우 개그 같은 것은 들어 냈어도 되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신세계'는 그동안 '대부'의 영향권에서 다소 먼, 비교적 독자적인 길을 걸어 온 한국 느와르가, 전 세계적인 '정통'에 다가선 물건을 내놨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아주 매끄럽고 정교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풍미를 자랑하는 관객에게는 좋은 선물입니다. 특히 여성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는 장점이 있죠. 전체 영화보다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 잘 부각되지만, 휴일을 즐기는 데 후회 없는 선택일 듯 합니다. 추천.

 

 

 

 

P.S.1. 언더커버 캅이 자기 패거리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이란 소재에 관심 있는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영화는 '도니 브래스코'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논픽션에서, 마약 조직에 투입돼 상당 기간 동안 조직원 행세를 했던 주인공은 이런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조직이 일망타진되고 작전이 마무리됐을 때, 법정에서 만난 한 조직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봐. 내가 잡혔을 때 경찰은 내게 전화를 딱 한 통 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어. 나는 그 전화를 변호사도 아니고, 두목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너에게 걸었지. 도망치라고. 그런데 네가 경찰이었다니.' "

 

이런 말을 듣고도 동요가 없다면 그건 정말 냉혈한이겠죠.

 

 

 

 

P.S.2. 몇가지 질문에 대해서 박훈정 감독은 고의로 대답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건 속편 제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면 석회장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강과장이 언급하는 '언더커버에서 끈을 끊어 버리고 진짜 조폭이 된 전직 경찰'은 누구일까 하는 것 등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예견하듯,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 내용은 '신세계'의 프리퀄, 그러니까 이 주인공들의 과거 사연 이야기가 될 전망입니다. 이미 '신세계'의 흥행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는 만큼 배우들만 동의하면 우리는 그 궁금증을 속편에서 해소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 그 답이 정 궁금한 분들은 주위 사람들을 설득해서 '신세계'의 흥행 스코어를 좀 더 올려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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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라는 제목만 듣고 벤 애플렉이 신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려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특수효과의 거장 래리 해리하우젠의 [아르고 황금 대탐험(Jason and the Argonauts)]의 리메이크 쯤 되는 영화가 아닐까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영화는 매우 건조한 느낌의 첩보(?) 영화였고, 사실 아르고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보가 들어오는데, 약간 황당무계한 이 영화의 내용이 모두 실화라는 겁니다.

 

지난 연말에는 개봉하자마자 밤 12시대 외에는 개봉관이 없는 상태로 2~3주만에 사라지는 바람에 [아르고]는 자칫하면 전설 속의(?) 영화가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아르고]가 각종 영화상의 주요 후보로 떠오르면서 다시 이 영화를 볼 방법이 생기더군요.

 

 

 

1979년, 이란 혁명의 뒤끝에서 축출된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이란 내부에서는 팔레비를 내놓으라는 국민들의 분노가 솟구치고, 급기야는 미 대사관이 점거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그대로 인질 상태로 억류됩니다.

 

하지만 정작 대사관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대사관이 점거되기 직전 도망친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문제가 됩니다. 대사관 안에 억류된 사람들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이란 정부의 관리 아래 있는 만큼 이란의 원리주의 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건드릴 수 없지만, 대사관 밖의 사람들은 이란 민간인들에게 발견되는 즉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인 것이죠.

 

일단 그 6명이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대사관 안의 사람들보다 이들을 우선적으로 탈출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집니다. 문제는 방법이죠. 이미 서구 백인들은 거의 모두 이란을 떠나 있는 상황. CIA는 이란으로부터 사람을 빼내 온 전문가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을 불러들입니다.

 

 

 

 

'아르고'는 실화를 근거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건의 궤적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을 지 알고 있다는 것이죠. 네. 1980년 1월 29일, 토니 멘데스는 이 6명을 성공적으로 탈출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킬 것인가' 입니다.

 

 

이런 부분은 실제 사건, 혹은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가장 먼저 봉착하는 한계입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몇몇 영화들은 실제 역사에서 한사코 벗어나려 하고(그래서 늘 '영화와 실제는 별개'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하죠), 가끔 유별난 영화들은 아예 역사 자체를 무시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퀜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입니다. 이 영화는 아예 죽어선 안 될 유명 인물을 죽여 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릅니다. 아예 역사를 바꿔 버리겠다는 심사죠.

 

(물론 타란티노나 되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라는 식의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벤 애플렉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또 절묘한 편집을 통해, 유명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관객이 억류자들의 운명을 걱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감독 벤 애플렉'의 놀라운 역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시 이란의 원리주의 정권을 악의 상징으로 규정해버리거나, CIA를 정의의 사도들로 묘사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칭찬할 만 합니다. 애당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는 내용을 깔아 놓고 시작하죠.

 

거대한 폭발이나 대단한 볼거리 보다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움직임, 조금씩 변화해 가는 사람들, 그리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디테일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아르고'는 참 훌륭한 스릴러의 전범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화면에서 3분에 하나씩 뭔가 터져 주지 않으면 잠이 들어 버리는 분들에겐 중간에 잠들어 깨어 보니 끝나 있는 영화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자잘한 얘깃거리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국내에서도 꽤 크게 보도됐더군요. (왼쪽 위 사진은 다른 기사의 사진입니다. 혼동 없으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도 다뤄졌듯, 이때까지 이 탈출은 철저하게 캐나다 정부의 공작으로만 발표됐습니다. 대사관에 억류돼 있던 나머지 인질들의 안전 때문이죠.

 

 

 

실제 제작됐던 포스터 'ARGO'. 아래의 영화 속 포스터와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아래와 같은 포스터도 실제로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CIA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영화처럼' 매끄러웠던 건 아니죠.

 

 

병력을 동원해 대사관 인질들을 구조해 보려던 시도는 이렇게 헬기 추락 사고와 함게 비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SEAL 대원들이 사진처럼 희생됐죠. 척 노리스 주연 '델타 포스'는 이 실패에 대한 정신 승리의 의미를 갖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왜 등장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영화 같은 실제 사건.

 

 

그러니까 'ARGO' 작전의 마지막에 실제 탈출자들이 탑승한 비행기의 이름이 'ARGAU'였다는 것인데, 참 희한하군요.

 

 

 

그리고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과 상당한 싱크로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된 것이 분명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은 그럴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실제 토니 멘데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실 벤 애플렉 같이 생긴 요원은 상당히 써먹기 불편하겠죠. 어디 가나 눈길을 끌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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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우습게 아는 분들은 "10%? 10% 짜리 프로는 지상파에 널렸어"라고 말하지만 지상파에서의 5%와 비 지상파 채널에서의 10%는 참여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 어지간해서 지상파 3사, 4개 채널의 테두리를 벗어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만치 '끙'하는 작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채널 번호도 잘 모릅니다. 대개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하면 그냥 시청하는 식의 패턴이죠.

 

그런 상황에서 10%라는 건 엄청나게 목적성이 강한 시청자의 수가 만만찮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채널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 가서 본 채널이라는 얘기죠. 매일 신도림역을 지나가는 5만명이 '신도림역'에 부여하는 가치와, 단풍철에 설악산을 찾은 5만명이 '설악산'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JTBC에서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가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도 뜨겁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우수성이 의심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비교해 볼 때, '무자식 상팔자'는 유난히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문득,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김수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2,30년 전부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무자식 상팔자'의 등장인물 가운데 준기(이도영)-수미(손나은) 커플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학습된 가족 판타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리얼하지 않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처절한 격전 장면에 대한 평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과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까. 관객 중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가 봤거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 영화가 리얼한지 리얼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도, “리얼하다”는 표현을 입에 올린다.

 

분명 어색한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을 ‘리얼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2차대전 기록영화와 라이프 사진집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오마하 비치라는 격전지의 이름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이 가짜 리얼함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히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부모 자식간의 예의에 충실한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이 등장한다. 3대의 한집 거주는 필수. 그런데 이런 대가족은 사실 50대 이하의 시청자들 중 절대 다수에겐 판타지다. 한국 사회는 4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이미 핵가족화를 시작했다. 20년 전엔 이미 조손(祖孫)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 상팔자’ 속의 가족 관계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호평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이 향수는 허구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존재한 적도 없는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시나리오 마스터’라고 불리는 미국 USC의 로버트 맥키 교수가 한 말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를 가정하고, 잘 만들어진 서사가 읽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력있게 묘사했다.

 

“읽어가는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나는 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형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표현하지만 관객 모두는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가장 적절한 예로 떠오른다. ‘가짜 리얼리티’의 원천은 치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공감가는 인물 설정과 전개다.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남과 맏며느리의 대화에서, 다른 누군가는 막내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갈등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맏손녀와 엄마의 말다툼에서 자신이나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더 있다. 우리가 이미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 보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속의 어떤 대사는 30년 전 어느 드라마 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30여년 전에 시청률 50%~70%를 오갔던 그녀의 드라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 규범의 영향을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매트릭스‘ 속 아키텍트처럼) 우리의 삶의 일부를 그려낸 셈이다. 그런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언젠가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 같은’ 향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극중 상황. 스물다섯 나이에 학력은 고졸,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준기는 어느날 같은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고생 수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미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결손가정 출신의 '사실상' 가출 여고생입니다. 커피숍 알바로 근근이 고시원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죠. 하지만 천부적인 붙임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준기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수미에 대한 동정이 그냥 동정이 아님을 알아차린 준기는 아직 미성년인 수미와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당연한 어른들의 반대. 하지만 수미를 직접 만난 아버지-할아버지의 순으로 수미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결국 '3년간 연애 인턴 기간(?)'을 두고 준기와 수미의 관계가 반 허락을 받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입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아직 만 18세도 안 된 여고생과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모가 있을 리 없죠.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분위기에서 그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설 젊은이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배경은 철저한 판타지입니다. 과연 요즘 10대 여고생들 가운데 수미 같은 말투와 생각을 보여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미는 요즘의 '5,60대 어른들이 바라는 여고생'의 형상화죠. 혹은 70년대 쯤 존재했을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립의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옮겨 온 모습입니다.

 

 

 

(문득 1976년작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의 실제 나이 16세 임예진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언젠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쾌활하고 똘똘한 소녀 캐릭터죠. 사실상 '무자식 상팔자'의 수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미와 준기의 관계를 허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이순재)인데, 이 할아버지의 허락을 위해선 김수현 작가의 치밀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기의 누나인 소영(엄지원)이 미혼모가 됐을 때 가족들은 여자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운신하기 좋으니 태어난 아기를 '준기가 어디서 사고 쳐 낳아 들어온 아기'로 포장하자는 꾀를 냅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연한 기회에 그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소영의 눈물 앞에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섭니다. 그 앞에 서 있던 것이 바로 준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준기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문 밖으로 나가죠.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짓은 '그러니까 네가 누나의 곤란함을 알고, 밖에서 아이를 낳아 들어온 칠칠치 못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던 거구나. 착한 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너희 애비와 삼촌들은 정말 죽일 놈이지만 너는 정말 가족을 위할 줄 아는 놈이구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죠.

 

그 뒤에도 온 가족은 '평소 밖에서 병든 강아지 하나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던' 준기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준기는 3남매의 막내. 맏이 소영은 판사에 둘째 성기(하석진)는 의사인데 비해 변변찮은 스펙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함' 때문에 할아버지가 막내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각별한 것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며 상황 따지지 않고' 준기가 데려온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우리가 먹고 살만 하니 불쌍한 아이(수미-손나은) 하나 정도 품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있는 사람이 더 한'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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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 참 많고도 많습니다. 특히 한국 안방극장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꽤 많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점 하나 찍고'의 원조인 '아내의 유혹' 이후 특히 많아졌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JTBC '가시꽃'도 그런 유형의 드라마입니다.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여자가 죽음을 가장하고 기회를 노린 다음, 새롭게 태어나 돌아와서 자신을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많이 듣던 얘기긴 합니다.

 

물론 '아내의 유혹'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의 원조라고 보기에 '아내의 유혹'은 참 젊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을 살펴보려면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수 이야기, 특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벌이는 복수 이야기의 고전은 뭐니뭐니해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이 1845년이고 보면 그 전이라고 이런 이야기가 없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품의 지명도나 완성도, 대표성 등을 고려할 때 '원조'라는 이름을 가질만 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남자라는 점. 여자의 복수 이야기도 장화홍련전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렸지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귀신이 주인공이면 안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웃자는 얘기지만, 시각을 좀 돌려 보면 셰익스피어의 '헛 소동'이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 히어로가 행실이 나쁘다는 모함을 받아 결혼이 깨지고, 히어로가 죽음을 가장한 뒤 진실이 밝혀지자 히어로의 아버지는 남자들에게 '내 딸은 이미 죽었지만 똑같이 생긴 조카딸이 있는데 그 아이와 결혼하라'고 하죠. ...네. 사실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죽은 여자가 돌아오는' 상황은 아마도 '헛 소동'이 원조일 것 같다는 얘기.)

 

그러다 문득 한 후배가 "선배, 혹시 예전에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서 잘나가는 모델로 변신해 복수하는 외국 드라마 본 기억 나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앗.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날듯 말듯. 남편이 아내를 악어 밥으로 던졌는데 여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성형수술로 더욱 미인이 되어 복수하는....?

 

그래서 찾아냈습니다. 바로 '에덴으로 돌아오다'.

 

 

 

1983년작 호주 드라마 '에덴으로 돌아오다(Return to Eden)'는 이런 내용입니다.

 

부유한 40세 여성 스테파니(레베카 질링)는 유명 테니스 선수이자 미남인 그렉(제임스 레인)과 결혼, 온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렉의 진짜 연인은 스테파니의 절친인 질리(웬디 휴즈). 세 사람은 늪지대로 여행을 떠나고, 배 위에서 악어를 바라보며 스테파니가 탄성을 지르고 있을 때 그렉은 스테파니를 뒤에서 밀어 버립니다. 악어 밥을 만들어 버리고자 한 거죠.

 

그렉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테파니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악어가 시원찮으면 구하기 위해 악어를 쏘다가 실수로 스테파니를 맞혔다고 하려고 했던 듯. 하지만 악어는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스테파니를 공격하고, 피투성이가 된 스테파니는 조용히 물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쩔 줄 모르는 질리를 한 팔로 제지하며 지는 해를 향해 총 한방을 쏘는 냉혹한 그렉.

 

(이 장면은 위 동영상 27분30초 지점부터 꽤 실감나게 나옵니다.)

 

 

 

 

"말도 안 돼! 악어한테 저렇게 물려 가서 살아났다고?" 라고 화내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악어의 평소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악어는 일단 잡은 먹이를 그 자리에서 토막낸다거나 하지 않고, 일단 물속으로 끌어들인 뒤 익사시키는 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바로 먹지 않고 물 속의 수초 줄기나 돌 틈에 끼워 '저장'해 두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니 '저장'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스테파니가 살아 나올 가능성도 있는 셈이죠.

 

(어디까지나 가능성!)

 

 

1983년의 '미니시리즈(한국 미니시리즈는 16부가 기본이지만 70~80년대 영미권에서는 3~6회 정도의 연작 드라마를 미니시리즈라고 불렀습니다)' 판 '에덴으로 돌아오다'는 불과 딱 세편짜리 소품이었지만, 호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만만찮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1986년에는 22부작의 정규 시리즈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리즈도 제목이 'Return to Eden'이라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니시리즈'라는 설명이 붙은 것이 원편.)

 

 

 

 

 

한국에서는 1989년 신년 특집으로 방송돼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연히 여러 차례 앵콜 방송됐고, 얼마 뒤에는 '시드니 셸던 원작'의 소설이 발간되기도 했죠. 왜 ' '를 쳤느냐... 이유는 이 소설이 시드니 셀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만 사실. 이 시절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법이 통할 정도로 허술한 나라였다는 겁니다. (또는 그럴 정도로 시드니 셀던은 구매력 있는 작가였다든가.)

 

 

 

아무튼 결론.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장르에서 원조격인 작품을 찾으라면 이 '에덴으로 돌아오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가장한 트릭은 샤론 스톤, 이자벨 아자니 주연 '디아볼릭'의 원작인 1955년작 프랑스 영화 'Les diaboliques'이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여자의 죽음이 소재가 아니라서 제외.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도 '아내의 유혹'이 인기를 얻었고, 현재는 '가시꽃'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유망한 신인에서 깜짝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은 세미(장신영). 하지만 세미에게 그 기회를 빼앗긴 유명 스타 지민(사희)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세미는 재벌집 외동딸인 지민의 집 별장 관리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지민은 깨진 자존심에 몸을 떨었던 거죠.

 

그 별장에서 파티가 열리고, 세미는 술에 취한 지민의 오빠 혁민(강경준)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결국 혁민을 피해 달아나던 세미는 2층에서 추락해 식물인간이 되고, 혁민 일행을 저지하려던 세미의 아버지도 계단에서 밀려 떨어져 죽음을 맞습니다. 재벌 2세와 국회의원 아들 등으로 구성된 혁민의 일행 특성상 부모들은 모든 연줄을 동원해 사건을 무산시키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세미의 어머니도 사고를 위장해 살해합니다.

 

  (실제 드라마 장면과는 좀 다른, 장신영의 여유 컷)

 

남은 것은 식물인간이 된 세미. 일당은 세미마저 조용히 없애 후환을 없애려 하지만 세미는 깨어나고, 혁민/지민의 집안에 원한을 갖고 있는 남준(서도영)의 도움으로 복수를 준비합니다. 물론 집에 불을 질러 세미가 죽은 것으로 꾸미는 것은 필수. 그리고 7년 뒤, 세미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복수를 시작합니다.

 

 

 

 

...이런 어디서 살짝 본 듯한 스토리. 하지만 '가시꽃'은 스피디한 전개(어차피 다 짐작하실 만한 내용은 과감히 통과!)와 적절한 악역들의 배치(특히 악당 중에서도 잡초같은 3류 악당 백춘 역을 맡은 이철민씨가 압권입니다. 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실 듯...)로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 7회만에 시청률이 3배로 급상승중입니다. (아, 물론 출발점이 좀 낮긴 했죠.^^)

 

전형적인 복수극의 외양을 갖춘 '가시꽃'이 어느 정도까지 주부 시청층을 흡수할 지 개인적으로 참 궁금합니다.

 

(보너스는 1~7회까지의 하이라이트 요약. 이 정도면 지금부터 '가시꽃'을 보시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주요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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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시사회를 연 뒤부터 '물건이 하나 터졌다'는 소문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간간이 '재미있는데 와 닿지 않는다'는 평도 섞여 있었지만, 아무튼 최근에 개봉했던 수많은 영화들에 비해 [베를린]이 '급이 다르다'는 느낌은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사실 직접 보기 전에 오는 이런 호평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호평들에 발맞춰 기대치도 그만치 급격하게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기대치가 오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도 쉽고, 사소한 꼬투리도 크게 보이는 면이 있죠. 반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기대는 안 하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영화에서는 의외의 장점이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 홍보사 직원들은 시사회에 오는 기자들에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도 합니다. 무조건 걸작이라고 칭찬하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거죠.^^)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큰 기대를 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물건'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사실 그 정도를 넘어서 최근 수년 내 개봉했던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베를린의 한 호텔. 러시아인 무기상과 아랍 테러리스트, 그리고 북한 요원 표종성(하정우)이 한 객실에서 비밀리에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산 무기를 아랍 조직에 팔기 위한 비즈니스 미팅인 것이죠. 호텔 밖에는 이 미팅을 감시하는 정진수 반장(한석규)의 국정원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을 덮치려는 순간, 스스로를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 요원들이라고 밝히는 무리들이 먼저 방을 습격합니다. 이들은 북한 요원인 표종성에게 '너에겐 관심 없으니 자리를 뜨라'고 요구하죠. 정진수 팀은 방을 떠난 표종성을 추적해 결국 머리에 총을 겨누기까지 하지만 현장에서 놓쳐 버리고 맙니다.

 

국정원 베를린 지부는 초상집. 반면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은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의아해 하고, 북한은 베를린 대사관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군부 실세의 아들이며 엘리트 요원인 동명수(류승범)를 파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통역요원이며 표종성의 아내인 련정희(전지현)에 대한 의혹이 발생합니다.

 

 

 

 

'베를린'은 굳이 강점과 약점을 말하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우선 시나리오 단계에서 완결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납니다. 한마디로 '말 안 되는 장면', 그리고 감정선을 강화한답시고 영화의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지루한 장면이 없습니다. 액션이 화면을 지배하고, 질주하는 스포츠카에서 물건을 떨구듯 관객에게 액션 틈틈이 사건을 툭툭 던지는 진행이지만, 그렇다고 뒤에 가서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빈틈이 거의 없습니다.

 

이야기 부분이 이럴진대 액션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 부분은 이미 10년 전에도 국내 1인자였던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니 말입니다. 배우들은 더더욱 할 말이 없죠. 많은 사람들이 한석규-하정우-류승범-전지현이라는 라인업에서 이미 사기 라인업이라는 생각을 했을테니 말입니다. 여기에 이경영 곽도원 최무성 김서형 같은 조연진들까지, 짜임새로는 '도둑들'을 능가하는 올스타 팀입니다.

 

특히 90년대의 최강 멜로드라마 주역에서 '색깔있는 악역' 중심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짜고 있는 한석규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이 영화에서 하정우와 류승범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21세기 이후 한국 영화 최고의 대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전부터 류승완 감독의 능력 중에서 '류승범이라는 동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적잖은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베를린'에서 이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얼마전 '무비위크'에 '왜 돈 들인 영화일수록 촌스러워질까' 라는 식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아마도 '베를린'을 보고 난 뒤에는 그런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아래 부분,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영화 보시는 데 방해될 것 같진 않습니다. 혹시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게 좀 불편하신 분이라면, 미리 보시는 것도 좋을 정도 수준입니다.

 

이번엔 알아서 판단하시길.^^

 

그리고 어쩌나 저쩌나, '베를린'은 강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한국판 본 시리즈'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제이슨 본이 생각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본 시리즈'를 단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지 않는 맨손 격투 위주의 액션 신, 그리고 숨쉴 새 없이 흘러가는 진행 속도,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이 국가와 조직 사이의 '큰 그림' 속에서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 등에서 이 영화는 '본 시리즈'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본 시리즈'가 한 획을 그은 뒤, 스파이 액션 장르의 영화 가운데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일단 본 시리즈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007 시리즈가 아예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린 채 '007판 제이슨 본 시리즈'로 간판을 바꿔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두고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무비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국내 관객들은 '베를린'을 가리켜 '본 시리즈의 복사판'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는 듯 합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장 강하게 하는 분들은 본 시리즈와 '베를린' 외에는 본 영화가 거의 없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미국 드라마 '24'와 '베를린'만을 본 사람이라면 "이거 뭐야. '24'의 복사판이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죠.

 

(이런 예는 사실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음악 쪽 얘기지만, 한 10년 전에는 "모든 애시드 재즈 뮤지션들은 스티비 원더의 표절"이라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죠. 90년대에는 신해철이 "오오 듀스는 서태지의 표절이구나"라는 말로 댄스 뮤직에 무지한 사람들을 비꼬기도 했고. 또 일부 관객들은 '한국판 본 시리즈'라는 말을 칭찬으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밖에 의외의 반응 중에는 '와 닿지 않는다' 는 것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으로 '불필요한 감정선을 제거했다'는 점을 꼽는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반응입니다. 하정우와 전지현의 묘한 부부관계는 많은 부분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입장인데, 그 부분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당과 국가의 명령이 인생에 있어 최우선인 '공화국 영웅' 표종성과 부부로 살기 위해서 련정희는 많은 것을 희생했을 겁니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부부로 맺어졌는지, 그리고 첫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쪽은 관객의 상상력이 채워 줘야 할 부분이죠. 영화상으로는 전지현의 쓸쓸한 눈빛이면 충분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전지현의 발전은 참 놀랍습니다. 이미 인생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된 여자. 수많은 상처를 안으로 향하게 해서 가슴 속 응어리가 천근은 될 듯한 여자의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승맞으면서도 강인함을 품은 이런 여자의 역할을 전지현이 제대로 연기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역시 세월과 경험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엄밀히 말해 가장 동기가 불분명한 인물은 한석규가 연기하는 정진수 반장인데, 이 부분은 표종성의 대사인 "난 외려 당신(정진수)이 왜 이 일에 목숨거는지 이해가 안 되오"로 만사 OK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어디에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영화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던 장면.)

 

 

 

 

그밖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는 평에 대해서는 감히 반박하기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모사드와 CIA, 아랍 테러 조직이 한 자리에 있으면 대략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북한의 해외 대사관이 외화 벌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사전 이해가 없는 사람(더 단적으로 말해 모사드가 이스라엘 정보기구의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영화의 도입부는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도 이 영화 전체가 그리 친절하지 않게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 앞 부분에 '모사드' '슈퍼노트(자막에는 그냥 '위조지폐'라고 나왔죠)' 같은 단어들이 아무 추가 설명 없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거 말 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여기에 대한 불만이 적잖이 있는 듯 합니다.

 

이 맥락에서 더 많은 관객을 위해서 좀 더 친절한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은 감독보다는 제작자가 더 강력한 입장을 내세웠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런 '불친절함'이 약점이라면 약점일 수 있겠습니다.

 

(뭐, 그런데 "대체 블라디보스톡은 생뚱맞게 왜 가는 거냐?"는 수준의 관객들도 적지 않은 것 같고...^^  <- 영화를 보신 분이라야 무슨 말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데 있어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을 벤치마킹 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베를린'과 본 시리즈의 관계는 'R2B'와 '탑 건'의 관계 혹은 '타워'와 '타워링'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적이고 깔끔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겠지만 '베를린'을 보지 않고 2013년에 영화를 봤다고 말하시면 참 곤란할 듯 합니다. 초대행 배급사의 극장 싹쓸이 만행이 불쾌하신 분들이라도, 그런 어마어마한 힘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데 쓰인다면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지 않을까요.

 

P.S. 많은 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속편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하네요.

 

P.S.2. '세계에서 가장 밥을 맛있게 먹는 배우' 하정우의 솜씨는 그 짧은 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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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기 전부터 엄청난 호평이 밀려왔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이안 감독은 정말 최고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는 최고다,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가 없다.... 이 정도로 호평 일색인 평가는 그야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더군요. 스스로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취향인 것도 잘 알고 있는데다 지나친 호평은 기대를 낳고, 역시 과도하게 부풀려진 기대는 항상 실망을 낳는다는 것도 이미 익숙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불허전.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로 꼽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3D IMAX, 최소한 반드시 3D로는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는데 그 말에 동의합니다. 수많은 액션 대작들, 심지어 '호빗'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 영화만치 3D가 효과적인 작품도 드물 듯 합니다.

 

 

 

 

일단 줄거리. 영화는 얀 마텔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대략 크게 벗어나는 내용은 없는 듯 합니다.

 

소재 고갈에 시달리던 작가는 인도 폰티체리에서 만난 노인의 조언에 따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인도인 파이(이르판 칸, 연령대에 따라 여러 배우가 연기합니다)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파이는 '신의 존재를 믿게 할만한 이야기를 해 주겠다'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폰티체리에서 동물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파이의 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 파리의 한 수영장 이름에서 따 온 것이지만 피신(pscine: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란 뜻이더군요)이란 이름이 영어의 오줌싸기(pissing)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원주율을 뜻하는 파이로 개칭합니다.

 

힌두교와 기독교, 이슬람까지 모든 종교에 빠져들던 소년 파이는 부모의 캐나다 이주 계획에 따라 일본 화물선을 타고 긴 항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배는 필리핀을 지나 태평양 한복판에서 침몰해 버리고, 우여곡절 끝에 파이는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구명보트에서 위험천만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예고편에서도 보여지듯, 영화의 3/4 정도는 망망대해 위의 배 안에서 파이와 호랑이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 궁금해합니다. 대체 좁디 좁은 배 안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소년이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지? 당연히 드는 생각일 겁니다. 물론 그 내용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기 때문에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지인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보고 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죠. 영화 속의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의 대우주입니다. 특히 수천마리의 해파리가 이뤄내는 바닷 속 장관, 고래의 등장, 해뜰 때와 해질 때의 수평선, 날치떼의 습격 등은 그야말로 CG의 영상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장면들입니다. 이런 장면들만으로도 '라이프 오브 파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안 감독의 영화답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표면적인 이야기 속에 또 한 층의 이야기를 깔아 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정교하게. 다만 이 이야기는 아직 안 본 분들의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 놓고 하고자 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반드시 영화를 보신 뒤에 와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경고!

 

 

 

 

 

 

 

 

 

소설가가 파이를 찾아가 만나는 첫 장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입니다.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모태로 하고 있는 바로 그 영화죠.

 

물론 소설가들은 언제나 소재를 찾아 해메기 마련이고, 소설가가 누군가로부터 독특한 이야기를 듣는 데서 시작하는 스토리는 매우 흔합니다. 그런데 '스모크'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가는 오기 렌에게 말하죠. "자네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야." 그리고 '라이프 오브 파이'의 엔딩 역시 이 장면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 멕시코의 병원에서 파이는 실제로 '그 자리에서 생각해 낸 그럴싸한 이야기'로 위기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이렇죠. 멕시코의 병원에서 파이는 사고 수습을 위해 찾아온 일본 해운회사 직원들에게 시달립니다. 이들은 "호랑이나 식인 섬이 등장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말고, 납득할만한 '진짜 이야기'를 해 달라"며 파이를 괴롭히죠. 파이는 이들에게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파이가 '그냥 생각해 낸 이야기' 일까요?

 

지금까지 관객이 본 영화와는 달리 이 이야기에는 동물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리 다친 얼룩말은 실제로도 다리를 다친 선원으로, 오랑우탄은 파이의 엄마로, 하이에나는 배 위에서도 파이 가족을 괴롭혔던 주방장으로 묘사됩니다.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안 감독은 이 대목에서 의도적으로 제2의 해석을 열며 관객의 의심을 자극합니다. 파이는 정말 배 위에서 동물들과 살았던 것일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구명 보트 위에서 서로 죽고 죽인 것은 실제론 사람들이었지만 차마 인간들이 이런 짓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파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들을 모두 동물로 바꿔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대체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누구일까요. 파이 자신이 아니라면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미친 주방장이 선원과 엄마를 죽이자 파이는 내면의 야수성이 폭발하며 주방장을 죽여 응징합니다. 하지만 파이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죽인 자신을 호랑이로 삼아 본래의 자아와 떼어놓습니다.

 

파이의 분열된 자아는 배 안과 배 밖에 있습니다. 참극이 일어난 배를 떠나 구명대 위로 피신한 파이는 자신의 야수성을 배 안에 남겨두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을 찾기 싫은 파이는 '보트로 돌아가면 호랑이가 나까지 해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이안 감독은 이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해석'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를 여기 저기 깔아 두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살해하기 전까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공간에 하이에나와 공존하기도 하죠. 진짜 호랑이라면 하이에나가 '죄'를 지어 응징해야 할 때까지 가만히 살려두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파이가 배 안의 식량과 물을 모두 구명대 위로 옮겨 놓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이유 또한 없겠죠.

 

물론 이안 감독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거였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의도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냥 암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심지어 파이 자신도 -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그냥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집착하는 것은 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제대로 감상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야기는 계속.)

 

 

 

 

그러던 어느날, 파이는 우연한 사고로 보급품을 모두 잃고, 마침내 '리처드 파커'와 공존해야 할 필요를 깨닫습니다. 채식을 포기하고 야수성을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파이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파괴적인 본능을 달래기 시작합니다. 고기 한점 한점을 먹이며(먹으며) 말이죠.

 

식인의 섬은 참 기묘한 상징입니다. 특히나 미어캣으로 가득 찬 섬이라니... 파이의 환상 치고는 참 희한합니다. 정답이라는 근거는 없지만(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답'이라는 말 자체가 이 영화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한가지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어쩌면 파이는 바다 위에서 또 다른 표류자를 만나거나, 인간이 살고 있는 어떤 섬에 도착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 존재들이 미어캣으로 표현된 것은, 자신에 의해 희생된 - 자신의 먹이가 된 - 존재들이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의 발현일 수 있습니다.

 

그 존재를 인간이라고 보는 것은 미어캣 - 두 다리로 걷는 동물 - 이라는 형상에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어린 아이였는지도 모르지요.

 

 

 

 

여기서 파이는 꽃인지, 과일인지 모를 덩어리 안에서 인간의 이빨을 발견합니다. 끼워 맞추자면 이건 파이 자신의 용변일 수도 있습니다(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에 용변을 매화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와 마주치는 순간입니다만, 파이는 역시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섬(식인이 일어난 공간)이며, 그 섬을 떠나면 자신은 더 이상 자신의 죄악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는 섬을 떠나는 배 안에 '리차드 파커를 위한 식량(미어캣)을 챙기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인간이 사는 문명의 땅에 도착한 파이. 이제 더 이상 야수성과 공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파커는 밀림 속으로 떠나갑니다. 다시는 볼 일이 없겠죠. 파이가 또 한번 야만의 환경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면 언제든 호랑이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파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많은 한줄 평들은 '자연과 소년의 아름다운 조화' '공존의 미학'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이면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거든요. 마지막 장면, 파이가 평범한 가장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민 장면은 인간이 얼마나 다층적인 존재인지를 드러내 주는 장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여전히 채식주의자인 '온화한 파이'의 모습도.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비유와 상징이라는 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사건을 그대로 서술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보다는 실제 일어난 일을 다른 사물이나 동물에 비유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곤 했죠. 넓게 보면 인격화된 신의 존재도 결국은 이런 비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영화 '파이 스토리'는 인류가 어떻게 해서 우화라는 것을 탄생시켰는지, 혹은 어떻게 해서 비유법과 과장법을 발달시켜 왔는지에 대한 깔끔한 설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소름끼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대자연 전체를 대상으로 볼 때 삶이라는 것은 항상 우아한 행위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의 교훈은 오히려, '삶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소한 교훈이나 도덕, 가치나 율법 따위보다 항상 상위에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문명은 낳은 자와 태어난 자,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와 섬김에 대해 가르치지만 여왕개미는 위기에 놓이면 자기가 낳은 알과 애벌레를 먹고 생존하라는 본능에 따릅니다. 이것은 선악 이전에 존재하는 생명의 법칙이죠. 자연은 본래 도덕 이전에 존재합니다. 이른바 노자가 말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가르침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가 망망대해에서 야수의 공포를 길들이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물아일체의 경지(크리쉬나의 입안에 있는 우주처럼..) 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켠에서는 그 이면에 엄연히 존재하는 치열한 생존의 원칙을 - 인간들이 문명을 앞세워 가끔 부정하곤 하는 - 일깨워주기도 하는 매혹적인 작품입니다. 어쩌면 이런 감춰진 이야기가 없었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흔한 어린이용 영화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더없이 매력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이른바 '우화의 탄생에 대한 우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S. 인도 철학...까지는 몰라도 인도 신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 온갖 신들을 주워섬기던 파이는 정작 번개를 보면서 인드라를 떠올리지는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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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을 극장에서 보기를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클로드 미셸 숀버그의 [레미제라블]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입니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무대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원작의 스펙터클은 어떻게 구현됐을까, 일단 이름값으로는 최강인 스타들이 어떤 식으로 노래를 소화할까. 당연히 궁금했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톰 후퍼 감독의 고민과 노력에 대한 칭찬입니다. 이번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면, 왜 여태까지 이 뮤지컬의 영화화가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 원작 소설 '레미제라블'은 최근 5권으로 완역본이 나왔을 정도의 대작입니다. 이미 수차례 영화화됐지만 만만찮은 규모의 물량이 투입되어야 하는 대작이죠. 이런 규모의 작품과 무대용 뮤지컬을 조화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시카고'나 '아가씨와 건달들'과는 다른 작품이라는 얘기죠.

 

물론 '그래서 그 결과물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걸작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좀 망설이게 됩니다만.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만 - 오래 전 이 뮤지컬에 대해 처음 글을 썼을 때도 했던 얘기지만 -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은 '레미제라블'이 그냥 "미리엘 주교가 전과자 장발장에게 '자네 왜 은식기만 가져가고 은촛대는 놓고 갔나'라고 말해 그를 새 사람으로 만드는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19세기 초, 한마디로 격동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던 하층민들의 세계를 진지하게 그려보려 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1832년 6월 파리 슬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봉기로 이어집니다. 물론 민중의 힘에 기반한 혁명이 아니고 일부 학생들의 봉기였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죠.

 

 

 

 

뮤지컬에서도 수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스토리의 진행상 가장 중요한 노래는 학생들이 봉기를 결의하고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과 봉기 전날 밤, 등장인물 전원이 다음날 아침 각자의 운명이 어떻게 갈릴까를 놓고 부르는 'One Day More'입니다. 각자 흩어져 자기의 삶을 살던 인물들이 이 봉기를 통해 같은 시공간에 모이고,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되죠.

 

(그 결과도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레미제라블'에서도 이 봉기의 핵심 지도자인 앙졸라는 실패와 함께 이슬로 사라지지만 본래 명문가의 후손인 마리우스는 장발장에 의해 구조되어 본가로 돌아가 코제트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게 되죠. 여담이지만 80년대 운동권 학생들 중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걸은 분들이 적지 않다는...)

 

 

 

 

아무튼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톰 후퍼 감독은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 결과 내린 결정은 '아무래도 영화라는 장르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노래를 희생시키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대 뮤지컬에 익숙한 분들이 팡틴 역의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이나 에포닌 역의 사만사 바크스가 부른 'On my own'을 들으면 뭔가 아쉽고 싱겁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가 부른 'Stars'는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

 

많은 분들이 '아무래도 영화배우들이 전문 뮤지컬 배우들보다 노래를 못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합니다. 게다가 무대 뮤지컬에서 당연히 사용하는 전용 극장의 울림(심지어 노래방 마이크도 에코 빼고 들으면 이상하죠^^)이 사라진 노래들이라 더욱 박력 없게 들리기도 합니다. 사만사 바크스는 레미 25주년 기념 공연에도 출연한 정통 뮤지컬 배우 출신이지만 이 영화에선 완전히 힘을 빼고 부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영화 전편을 볼 때 톰 후퍼 감독은 이 작품을 제대로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무대 뮤지컬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판단은 영화 전반부까지는 매우 성공적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은 무대 뮤지컬과는 기능이 다릅니다. 무대에선 이 노래가 공연 시작 후 40분 가량이 경과된 상황에서 관객들을 강하게 움켜쥐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관객을 압도하는 파워가 필요합니다.

 

(아래 예고편에서 그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노래만 따로 들었을 때에는 '고작...?'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 속에서 들으면 확 달라집니다.)

 

 

 

무대 뮤지컬과는 달리 톰 후퍼의 영화에서 이 노래는 배우의 가창력이 아니라, 영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또 무대판에서 이 노래의 시점은 팡틴이 창녀가 되기 전이지만, 영화에서는 창녀가 된 뒤에 신세한탄을 하는 시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감독은 그 상황에서 무대의 배우들이 부르듯 절규하는 팡틴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어색하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의도야 어떻든 해서웨이의 가창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이 노래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대표하는 트랙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독의 선택은 뒤로 가면서 조금씩 문제를 드러냅니다. 중간 휴식도 없이,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되는 영화를 계속 본다는 것은 일반 관객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대라면 관객들도 박수를 쳐야 할 노래와 쉬어 갈 노래 사이에서 나름 체력관리(?)를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생동감이 떨어지는 영화 관객들은 90분쯤 지나면 눈에 띄게 지쳐갑니다. (제 옆자리의 중년 남성 관객은 어찌나 한숨을 크게 쉬던지...)

 

무대든 극장이든 가장 힘을 줘야 할 부분인 바리케이트에서의 대치 장면도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극장용 영화에서 뭔가 민중 봉기를 그려내려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스펙터클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배경을 펼쳐 놓으면 톰 후퍼 감독이 기대하는 '배우들이 현장에서 노래하며 연기하는' 뮤지컬로 그려내기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극장용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바리케이트 장면은 골목 하나를 배경으로 한 초 미니 사이즈로 표현됩니다.

 

 

(위 사진의 거대한 바리케이트는 엔딩 신에만 잠깐 등장할 뿐입니다. 오해 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레미제라블'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일단은 워낙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원작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다음엔 정상급 배우들의 열기 넘치는 호연 때문이죠. 톰 후퍼 감독은 노래 하나 하나에 클라이막스를 두기 보다는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데 역점을 뒀고, 배우들은 그 연출에 맞춰 최고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주요 배우별로 얘기하자면 최고의 캐스팅은 아무래도 앤 해서웨이입니다. 노래로 전설적인 브로드웨이 스타들과 경쟁하는 대신 팡틴의 캐릭터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영화 전체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냈다고 할만 합니다.

 

 

 

 

휴 잭맨도 노래와 캐릭터 모두 AA급으로 매길만 합니다(사실 장발장 역은 노래에 큰 비중이 있는 역할은 아니죠^^). 반면 러셀 크로. 연기야 흠잡을 데가 없지만 노래는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습니다. 기본은 해 줬어야 하는데 말이죠.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좀 아깝습니다. 코제트 역 같은 단역을 이런 배우에게 맡기는 건 누가 뭐래도 낭비죠.

 

 

 

 

결론적으로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뮤지컬의 영화화가 성공적이려면 노래/춤의 비율이 최소한 6:4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카고'나 '그리스'같은 작품이죠. '레미제라블' 처럼 노래와 춤의 비율이 9:1 이고 처리해야 할 드라마의 볼륨이 큰 작품을 '뮤지컬 영화'로 만들기 위해선 타협이 불가피합니다. 어떻게 해도 입체감이 희생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감독이 숭숭 생략하고 넘어가는 무대 뮤지컬과는 달리 원작의 스토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지까지 갖고 있다면 더욱 더 힘든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톰 후퍼의 '레미제라블'은 최고라고 하기엔 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최선의 영화화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어도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영화화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이보다 더 잘 만들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서를 달자면,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아무래도 무대 공연을 봐야 할 것 같군요.

 

 

 

P.S. 사실 콤 윌킨슨의 출연은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윌킨슨이 출연해 줘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 역이라니.^^

 

오리지널 웨스트엔드의 장발장으로 유명한 윌킨슨이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가장 어울렸던 역할은 '맨 오브 라만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국내건 국외건, 누구도 그가 불렀던 'The Impossible Dream'을 능가하지는 못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안 들어주면 또 서운하겠죠.^^)

 

 

 

P.S. 가장 감독에게 불만이 컸을 것 같은 배우는 앙졸라 역의 아론 트베잇. 훌륭한 목소리와 외모를 보여줬지만, 앙졸라 역의 핵심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앞부분 독창을 없애 버렸으니, 발코니 신이 없는 로미오가 된 셈이죠.

 

앙졸라 뿐만 아니라 이 노래의 배경을 야외로 끌고 나오자는 발상은 오랜 고민의 결과인 듯 하지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카페를 배경으로 했을 때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생각. 뭐 이 장면도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분들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런 분들에겐 반드시 무대 공연의 박력을 느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30

현재 국내에서 투어 중인 '레미제라블'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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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우연한 여행(이하 '호빗')]은 개봉 전 말이 많았던 영화입니다. [호빗]을 본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 이 영화가 3부작으로 기획됐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큰 작용을 한 듯 합니다. '뭐야, 왜 이렇게 끝나?'에서부터 '아니 왜 사건의 진도가 이렇게 안 나가?' 까지 다양한 불만이 나왔습니다.

 

사실 '호빗'이 3편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건 좀 무리로 보이긴 합니다. '반지의 제왕'이야 원작이 3권(한국에선 6권)이니 3부작이라도 뭐랄 사람이 없겠지만 '호빗'은 원작도 그리 두껍지 않은 1권인데 대체 그걸로 어떻게 영화 세 편을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하지만 그런 혹평들이 기대를 털어내게 해 준 덕분인지, 직접 본 '호빗'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피터 잭슨은 '호빗'을 원작 그대로 3부작으로 쪼갤 생각은 애당초 없었던 모양입니다. 큰 줄거리는 소설 '호빗'을 따라가되, 원작에 나오지 않는 부분들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메꿔 넣어,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이 즐거워할 만한 프리퀄의 요소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반지의 제왕'의 구도를 재현하려 한 근거는 바로 이런 인물에서 드러납니다. 사진상으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난쟁이' 킬리입니다.

 

...이런게 난쟁이라니! 이건 사기야! 게다가 활도 잘 쏜다니. 아무래도 이건...^^

 

 

 

일단 간단한 줄거리.

 

전혀 모험 따위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호빗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은 어느날 회색 마법사 간달프(이언 맥캘런)의 방문을 받습니다. 빌보는 '함께 모험을 떠나자'는 간달프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지만, 바로 다음날 '참나무 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이 이끄는 열 세 난쟁이들의 방문을 받습니다.

 

난쟁이들의 목표는 강력한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난쟁이들의 도시 예레보르를 탈환하겠다는 것. 난쟁이들의 먹성에 식품 저장고가 텅 비는 참사가 벌어지지만, 곡절 끝에 빌보는 소린 원정대의 일원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은 초원, 눈덮인 벼랑, 오크, 고블린, 트롤, 엘프 등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영화는 아주 친절한 편은 아닙니다. '본래 호빗들은 손님 접대를 좋아한다' '호빗들은 요리를 잘 한다' '난쟁이들은 매우 조용히 움직이고, 호빗들은 그보다 더 조용히 움직이기 때문에 은밀한 행동을 하는 데에는 호빗만큼 이점을 가진 종족이 없다'는 등의 설명이 있다면 영화 '호빗'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설명들은 영화에선(대화 중에 나오긴 합니다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말로 그냥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아무런 부담 없이 받아들입니다. 온 국민이 다 극장에서 본데다 기회만 있으면 케이블TV 영화 채널에서 시도 때도 없이 틀어 준 결과, 초등학생에서 할아버지까지 전 세대가 너무나 친숙하게 여기게 된 '반지의 제왕' 3부작 덕분이죠. 영화의 국적을 불문하고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사상 이보다 더 친숙한 영화는 없을 지경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 분까지 나오시니 뭐 친숙함은 이루 말할수가...)

 

영화의 흐름은 어쩌면 피치 못하게 '반지의 제왕' 1편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원정대가 조직되고, 주인공 호빗이 예기치 못하게 그 일원이 되고, 험한 길을 가면서 괴물들과 싸운다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원정대의 실질적인 리더는 (그때나 지금이나) 간달프. 그리고 원정대의 표면적 리더는 (그때나 지금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미중년 전사.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원정대에 활기를 불어 넣는 꽃미남 궁수가 있습니다. 아라곤이 했던 역할을 소린이, 레골라스가 했던 역할은 킬리가 한다고 보면 딱 떨어질 구도입니다. 김리 역할은.... 뭐 10명이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반지의 제왕'의 구도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속셈이 너무 보인다는 얘기.

 

 

(카리스마틱 리더 소린 역의 리처드 아미티지,)

 

 

(기형 난쟁이 킬리 역의 에이단 터너. 이제 올란도 블룸은 끝난 거죠.)

 

 

(열 세 난쟁이 중 하나인 이분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주역 김리의 아버지인 글로인입니다. 배우 이름은... 근데 알아서 뭐 하실라구요?)

 

이런 구도는 사실 약간 위험하기도 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편안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면도 있지만, '뭐야, 재탕이야?'라는 느낌을 줄 여지도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지루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관객들은 '고작 세 편'으로 끝난 '반지의 제왕'을 좀 더 오래 오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 '호빗'을 세 편으로 만든다는 의도 자체가 바로 이런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봐야 할 겁니다.

 

 

 

'호빗'의 주인공 마틴 프리먼이 엘라이자 우드만큼의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듯 하지만, 의외로 대사도 별로 없는 킬리 역의 에이단 터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다른 난쟁이들이 체형 비율에서도 난쟁이 표준인 4~5등신을 유지하는 반면 킬리는 키만 작을 뿐 신체 비율도 8등신입니다. 여성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캐스팅의 냄새가 뚜렷합니다.

 

'호빗'을 보기 위해 원작 '호빗'을 새로 사서 읽을 필요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사실 원작을 읽어도 큰 방해는 되지 않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경우와는 달리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풍성하니까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에 앉으시면 다른 고민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다소 쫓기듯 진행됐던 '반지의 제왕'에 비해 '호빗'은 훨씬 여유있고, 느긋한 영화라는 점만 기억하시면 세 시간이 짧게 느껴지실 겁니다.

 

 

단지 이렇게까지 '반지의 제왕'의 주역들이 다 나와버리면 전편의 아라곤과 아르웬이 참 그리워진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케이트 블랜칫이 시리즈 최고의 미녀라는 건 아무래도 '호빗'의 최대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그렇다고 수염 난 드워프 여주인공을 등장시킬 수도 없고...^^)

 

시리즈 2편에 가면 타우리엘이라는 새로운 엘프가 나올 듯 한데 그거나 기대해봐야겠군요.

 

 

 

 

P.S.1. HFR(High Frame Rate)을 적용한 초당 48프레임의 3D로 봤는데 기존의 영화와는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너무 선명해서 영화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즉 판타지 영화 특유의 약간 부드러운 터치와 몽환적인 영상이 사라지고, 장시간 카메라를 고정하고 찍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화면이 이어지다 보니 오히려 영화의 현실감이 떨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반면 HFR을 먼저 보고 그냥 디지털 2D로 다시 보신 분은 '두번째는 화면이 뿌예서(?)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 하시는 걸 보면, 역시 적응하기 나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영화가 아니라 자연 다큐 혹은 전편을 거대한 세트에서 촬영한 시트콤 같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 낮 장면이.)

 

P.S.2.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두가지 역으로 모두 합해 약 20초간 나옵니다. 출연료를 받았을지가 매우 궁금.^^ 아무튼 셜록과 왓슨의 대결은 1편엔 없습니다.

 

P.S.3. 과이히르(영화에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호빗' 후반부를 보시면 누군지 저절로 아시게 됩니다)를 불렀으면 좀 더 태워달라고 하지 그렇게 엉뚱한 데에 내려주면...^^

 

 

 

 

P.S.4. 본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드워프 종족의 특징은 '키가 작고, 손재주가 뛰어나고, 협동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며, 보기보다 싸움도 잘 한다'는 것인데 일각에서는 이 드워프가 어찌어찌해서 북유럽 지역으로 흘러들어온 아시아 계 민족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톨킨이나 잭슨의 해석과는 아무 상관 없는 얘깁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어쨌든 피터 잭슨, 마틴 프리먼, 엘라이자 우드는 현실에서도 호빗 사이즈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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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에서 주역은 청춘들입니다. 아무리 '제빵왕 김탁구'같은 드라마에서 '실질적인 주연'은 전인화와 정성모 같은 중년 배우들이었다고 해도 제목이 '김탁구'인 이상 김탁구 역의 윤시윤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찬가지.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이하 우결수)도 실질적인 주인공은 한 딸의 이혼과 한 딸의 결혼을 온 몸으로 추진하고 있는 억척 엄마 들자 역의 이미숙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의 핵심은 정훈(성준)과 혜윤(정소민) 커플입니다. 이 두 젊은이의 가파른 결혼 길이 드라마의 갈 길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두 사람이 드라마의 커플 1번, 그리고 공기준(김영광)-동비(한그루) 커플이 2번으로 드라마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혼 위기에 있는 혜윤의 언니 혜진(정애연) 부부가 3번이죠. 그런데 4번 커플이 드라마 전면으로 죽죽 치고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민호(김진수)와 들래(최화정)의 중년 커플입니다.

 

 

극중 민호는 세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결혼생활에 질려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 타는 취미로 사는 40대 중년남입니다. 그래도 '건물 하나 정도 갖고 있는' 재력 덕분에 사는 데 지장 없고, '20대 아니면 여자로 보이지 않는'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반면 혜윤의 이모 들래는 50세의 노처녀 어린이집 교사. 예전엔 예쁘다는 말도 수없이 들었고, 소녀적인 정서를 아직 갖고 있는 탓에 이상형의 남자는 어디까지나 미소년-미중년으로 진화했을 뿐 무식하고 교양없는 중년의 아저씨에겐 눈길조차 줄 생각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참 사람 일이라는게, 하다 보니 들레가 모터사이클에 대한 묘한 동경을 갖고 있고, 그러다 보니 민호와 들래 사이가 남녀 사이가 됩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론 꽤 있습니다.

 

 

들레 같은 스타일의 노처녀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몸도 늙고 마음도 늙어가는데, 유독 취향은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현실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이 분들의 이상형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발견됩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만큼 대부분 먹고 사는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현실에서의 로맨스는 그만치 멀리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녀시절의 판타지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에 대한 하명희 작가의 시선은 코믹하지만 냉엄합니다. 이미 지난주 10회에서 드러났듯, 나이 50에 생물학적으로 처녀인 들레의 꿈 속에서 저승사자로 변한 언니 들자(이미숙)는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 알죠? 아직까지 성경험이 미개봉 상태이기 때문에 그 몸으론 저승에 갈 수 없어요.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될 거에요"라고 악담을 던진 뒤 주저없이 들레의 관 위로 삽질을 해 댑니다.

 

 

 

"언니 나는 어디로 가?"

 

 

"생전에 날 알던 사람인가본데, 난 저승사자가 되어 전생의 기억이 없어요."

 

 

"어디보자. 혼전순결이 미개봉 상태라서 이 상태론 저승에 갈 수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은 자 유죄란 말 알죠?" 

"...그럼 전 어떻게 되나요?"

"이대로 구천을 떠돌게 되는 거죠."

 

 

이 뒤로는 이런 상상에 충격을 받은 들래가 민호에게 "중간 과정 생략하고 빨리 자자"고 재촉하는 코믹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나이 50에 처녀라는게 생매장당할 죄라고 한다면 분노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실 분도... 뭐 따지다 보면 정말 억울한 분들도 있겠죠.;;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

 

사실 민호-들레 커플이 인기를 얻는 것은 실제 생활에서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이 이 커플을 좋아하시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반대로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분들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 커플에 대한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끕니다. 아마도 이 커플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 언제라도 젊은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센 척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민호도 외롭습니다. 남자 생각 따위는 전혀 없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들레가 외로운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눈에 보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의 외로움을 자신의 외로움에 겹쳐 보면서, 두가지 외로움이 서로 닮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민호의 별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들레는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외롭구나. 이렇게 같잖은 짓을 하면서까지 친해지고 싶어하는구나. 내가 뭐 잘났다고. 나도 아는데. 외로운 게 뭔지."

 

여기서 핵심은 바로 '내가 뭘 잘났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사실 긴 시간이나 논리적인 설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첫 눈에 서로 눈이 맞아 뭔가가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즉 일단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먼저 호감을 갖기 시작한 경우라면 바로 이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내가 뭘 잘났다고.' 거기서부터 공감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우결수'는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이 보게 만들어진 드라마인 듯 하지만 사실은 퍽 어른용 드라마입니다. 대사 하나 하나마다 통찰이 숨어 있고, 인생이 녹아 있습니다. 웃음 속에 페이소스가 있고, 한숨 속에 지혜가 있습니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하고, 이해를 구한게 잘못이야?" "잘못이지. 그럼. 왜 다 알게 해. 생각만 복잡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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