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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 정경호]

'무정도시' 라는 드라마가 월/화요일 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쟁쟁한 지상파 드라마들의 몇배나 되는 검색량이 밀어닥쳤습니다. 검색어 순위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치 이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화제의 핵심에는 '정경호'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우. '무정도시'에서는 국내 최대 마약 거래 조직의 하부 조직을 이끄는 중간 보스 시현 역을 맡았습니다.

 

드라마에 대해서도 '영화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경호에게 저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인도 아니고, 주연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이미 수많은 출연작과 꽤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에게 이런 평이 나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정경호 본인과 제작진에겐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고 말이죠.

 

 

 

'무정도시'가 방송되기 전까지, '정경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활짝 웃는 미소년의 얼굴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런 모습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런 모습.

 

 

 

 

그런데 '자명고'에서는 슬쩍 남자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무정도시'에서는 활짝 피어납니다.

 

흔히 말하는 '리젠트 스타일'의 머리와 수트 차림의 색다른 모습. 단정한 듯 하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는 냉정함이 빛납니다.

 

 

 

대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하는데, 뭐 사실 서양에선 리젠트 스타일이란 말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폼파두르 스타일 Pompadour style 을 일본에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있군요. 그런데 누가 봐도 콩글리시같은 올빽 All-back'은 엄연히 쓰이는 표현이라니... 참 어렵습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

 

아무튼 리젠트든 올빽이든, 아무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머리 모양입니다. 일단 머리칼 외의 얼굴 각 요소들과 전체적인 윤곽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결점을 백일하에 드러내 주는 공포의 헤어 스타일.

 

 

 

 

그런데 저런 수준의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머리 모양으로 남성미를 극대화해서 표현하신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린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바로 누아르의 제왕, 험프리 보가트 선생이십니다. 물론 머리숱이 적어서 저런 머리 모양밖에 안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저런 허무와 냉정이 깃든 눈빛은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무정도시'의 정경호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의 대사.

 

"수야... 이 거리, 우리가 다 먹어 보자."

 

남자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거친 말투나 과장된 몸짓은 없습니다. 말투도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거역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담겨 있습니다. 상복에 가까운 검은 수트는 원래 '그쪽' 남자들의 유니폼 같은 것이지만, 정경호의 스타일은 결코 그 안에서 땀을 흘리거나 칼을 휘두를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20대1로 '다구리'를 뛴 뒤에도 땀방울 하나, 숨결 하나 가빠질 것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물론 저 수트 안에 탄탄한 근육이 감춰져 있긴 하지만, 결코 근육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이 아닙니다. 정경호는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을 익힌 듯 합니다.

 

(혹은 이정효 감독의 디렉션이 정경호의 내면을 제대로 끌어낸 것인지도.)

 

 

 

지난번 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무정도시'에는 유난히 등장인물들이 거리를 바라보는 뒷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좋게 말하면 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욕망의 표현이죠.

 

누구의 눈에서 바라본 미래가 현실이 될까요. 물론 '무정도시'는 꽤 길고 잔혹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의 주인공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그건 지금부터 드러날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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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안녕]이란 영화가 조용히 개봉했습니다. 아, 물론 주인공들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도 했고, 유시민 전 장관이 공개적으로 추천한 영화입니다. '조용히'라고 얘기한 건 '아이언 맨', '전국노래자랑'이나 '스타 트렉'처럼 요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안녕'이라는 제목을 보고 자니 리라는 옛날 가수를 떠올리려면 꽤나 아저씨여야 하겠지만, 이 영화는 1970년대 히트곡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원래 제목은 '불사조'였다고 합니다.

 

영화 '뜨거운 안녕'은 '인기 절정의 사고뭉치 아이돌 스타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한 호스피스에 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가정에 굉장히 충실하게 사람을 웃기고 울립니다.

 

 

 

 

줄거리. 인기는 최고고 실력도 있지만 성질머리는 최악인 아이돌 록스타 충의(이홍기). 어느날 술집에서 사고를 치고 '당분간 자숙'하는 의미로 지방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겠다고 서약합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 직전부터 자신의 감독자인 다른 자원봉사자 안나(백진희)에게 정통으로 찍혀 버립니다. 험난한 병원 생활을 예감하고 한숨짓는 충의. 봉사고 뭐고 병원에서 도망쳐 잠수를 탈까 고민하는 그의 앞에 다른 환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환자 주제에 자원봉사자에게 담배를 달라는 건달 출신 무성(마동석), 밤마다 병원을 빠져나가는 봉식(임원희), 대체 왜 병원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어린 소녀 하은(전민서)... 충의는 외칩니다. "대체 이 병원 정체가 뭐야?"

 

 

 

 

호스피스(hospice)라는 개념이 한국에 상륙한지도 30년이 넘었고, 꽤 많은 병원들이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곳이 있다'는 곳 조차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란 말기암 등 불치병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들이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정신적인 안정과 위안에 초점을 맞춘 병원을 말합니다.

 

충의군이 처음부터 호스피스의 개념을 머리에 담고 갔다면 큰 혼란이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런 걸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른이든 아이든, 병원 전체가 이미 가망 없는 환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고 그는 꽤 큰 혼란에 빠집니다.

 

사실 이런 병원의 존재는 코미디 소재라기보다는 뭔가 음울하고 측은한 분위기일 것 같지만, 오히려 '뜨거운 안녕'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남택수 감독은 그 분위기를 영화의 소재로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떠돌이 악사가 조폭 출신에게 "그래, 쳐 봐라, 아주 죽여라. 뭐 제삿날 받아 놓은 놈이 뭐가 겁나겠냐?" 라는 식으로 함부로 대들 수 없겠죠.

 

오래 전의 못된 농담 중에 할아버지가 소방관과 싸우면 이기는 이유로 상대가 '물불을 안 가리는' 소방관이라도 '막 가는 인생'인 할아버지를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입원 환자 전원이 '막 가는 인생'인 상황입니다. 시트콤 등 TV 예능 PD 출신인 남택수 감독에겐 이런 설정이 아주 편안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막 가는 인생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늘 적자 투성이인 병원이죠. 그 병원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이 뭔가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게 바로 밴드 '불사조'라는 설정입니다.

 

사실 충의는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뮤지션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아이돌이라도 슈퍼주니어 멤버보다는 실제 이홍기의 모습인 FT아일랜드의 보컬에 충실한 설정입니다. 하긴 그래야 악기도 연주하고 곡도 쓰는 배경과 맞을 수밖에.

 

 

 

이홍기와 백진희가 담당한 영화의 비주얼은 상큼하고 쾌적합니다. 물론 연기력을 따진다면 둘 다 어느 정도 점수 이상은 아직 무리겠지만, 다행히도 '뜨거운 안녕'은 그리 심각한 수준까지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착한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을 울리기 위해 넣은 장면도 심각하게 정서적인 장애를 낳을 정도는 아닙니다.

 

 

 

대신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 축은 마동석에게 가 있습니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 신설된 남우조연상의 첫 수상자였던 마동석은 "연기상 수상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줍니다. 전직 조폭이지만 이제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많이 착해진' 무성. 유난히 소시지에 탐닉하고 담배도 수시로 피워대는 무성이지만 그래도 말기암이라는 환경은 그의 마지막 동심을 끌어냅니다. 죽을 날이 되어서야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가지 희망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무성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이 갖고 있는 웃음과 눈물의 70% 이상을 마동석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차별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음악의 존재.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엄마 환자(심이영)에게 충의가 불러 주는 이문세의 '소녀'를 비롯해 영화 곳곳에 박혀 있는 노래들은 충분히 힐링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시장에는 '무공해 영화' 혹은 '힐링 영화'를 표방하면서 지독하게 눈물 짜내기의 설정을 통해 보고 난 관객의 피로감을 더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뜨거운 안녕'은 오히려 지나치게 양심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 인공 조미료를 지나치게 쓰지 않은 정갈한 산채 정식같은 느낌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힐링 무비는 바로 이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생활 주변을 돌아볼 때 힐링이 필요하다 싶은 분들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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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 한때 극장에 '느와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온갖 영화들이 따라 하던 표현입니다. 느와르(noir)란 검다는 뜻의 불어지만, 필름 느와르는 정작 프랑스와는 무관하고, 1950년대를 전후해 쏟아져 나오던 암흑가를 그린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쉴 해밋을 비롯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문학의 거장들이 큰 영향을 미쳤죠.

 

이 필름 느와르가 긴 세월을 거쳐 1980년대 홍콩에서 한번 용트림을 합니다. 주윤발의 선글래스와 함께 '홍콩 느와르'가 아시아를 넘어 퀜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미국/유럽의 오다쿠들까지 사로잡은 것이죠.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홍콩 느와르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이고, 외래어 표기도 '누아르'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그러는 사이 유위강 감독이 '흑사회'와 '무간도' 시리즈로 새로운 누아르 열풍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비열한 거리',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신세계'가 나와 그 맥을 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TV에선 마침내 드라마 '무정도시'가 나왔습니다.

 

 

 

 

 

서울. 현대. 경찰 고위 간부 민홍기 국장(손창민)은 마약 조직과 조폭의 결합체인 거대 조직 저울파를 제거하기 위해 보스 저울(김병옥)에 대한 그물을 좁혀갑니다. 하지만 조직에 신분을 감추고 침투시켜 놓은 핵심 언더커버 요원이 살해되고 덫은 실패합니다.

 

경찰대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를 지망했던 형민(형민)은 일선에서 마약 조직과 일전을 벌일 각오로 경찰에 돌아와 특설팀의 팀장을 맡습니다. 애인인 경미(고나은)는 그의 선택이 불만이지만 어쨌든 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경미에겐 어려서부터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보육원 출신의 동생 수민(남규리)이 있습니다.

 

한편 저울의 약을 내다 파는 하부 조직을 거느린 시현(정경호)은 통칭 '박사 아들'이라고 불리는 암흑가의 엘리트. 하지만 이익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저울과 마찰이 일고, 마침내 친형제같은 현수(윤현민)와 함께 암흑가의 패권을 노리는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1회를 온라인으로 미리 공개했습니다.

 

60분입니다. 한번 보시죠.

 

 

 

(선공개 영상과 실제 방송 1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장면이 다를 수 있습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미리 고지된대로 '무정도시'는 '무간도' 풍의 언더커버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원제가 아예 '언더커버'였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언더커버'라는 말을 듣고 '대체 언더커버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통에 새로운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undercover는 잠복, 잠행, 또는 아예 신분을 감추고 벌이는 위장 침투 등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드라마 제목을 저렇게 하자니 "박명수 나오는 그 사장님 얘기 비슷한 거냐?"는 질문이.... <- 참고로 '언더커버 보스'에는 박명수가 출연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을 했을 뿐이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드라마를 본 건 20일 제작발표회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처음 읽어 본 버전의 대본에 비해 훨씬 시청자 친화적으로 바뀐 부분은 참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가 읽어봤던 시점의 대본은 막이 오르면 곧바로 조직간의 치열한 전쟁 신이 시작됩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시현의 쿠데타죠.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이 쿠데타가 시작됐다면 대다수 시청자들은 누가 누구편인지 엄청나게 헷갈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수시로 시현의 뒷모습을 비춥니다. 어떤 때는 밤의 도시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어떤 때는 길을 걷는 시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액션 스타치고는 그리 떡 벌어진 편이 아닌 정경호의 어깨가 이 장면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나는 밤의 도시 전경. 그리고 그 도시를 모두 차지하고 말겠다는 남자의 야망. 하지만 뭔가 야망보다는 우수가 느껴지는 남자의 뒷모습.

 

 

 

 

 

1회에서 제작진이 가장 힘을 준 부분은 아무래도 지하보도에서 벌어지는 1대10 정도의 액션 신입니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좁은 복도 액션을 연상시키는 장면. 실제로 1대10 정도의 싸움이 가능하려면 배후를 차단할 수 있는 좁은 길이라야 가능할 겁니다. 한번에 한명씩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이정효 감독이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액션을 마음껏 구현한 듯한 느낌입니다.

 

 

 

 

반가운 얼굴 중 하나는 김병옥.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보디가드 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바로 그 배우입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가의 거물 저울 역을 맡아 마음껏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긴 드라마(20부작)다 보니 저울보다 더 지독한 최종 보스도 나중에 등장합니다만... 1회에 나오는 저울의 모습은 꽤 충격적.

 

 

 

아울러 이 드라마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배우는 이재윤입니다.

 

얼마전 끝난 '야왕'에서 수애 오빠 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 신예. 아직 신인 태가 가득하지만 버들가지같은 꽃미남형이 아니라 선이 굵은 남성미를 제대로 풍길 줄 아는 배우입니다. 일단 비주얼에선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분은 바로 이 분.

 

'청담동 살아요'에서 보신 분들은 그냥 인상만 나쁜 성형외과 의사로 기억하시겠지만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그야말로 악마의 친구 역으로 적나라한 악마성을 드러냈던 인물이죠.

 

이번 드라마에서도 당연히(?) 좋은 역은 아닙니다. 공포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1회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매우 기대됩니다.

 

무정도시. 27일 월요일 밤 10시부터 제대로 시작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JTBC 홈페이지 jtbc.co.kr 를 방문하시면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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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다른 수많은 유명한 고전 문학 작품들이 그렇듯, [위대한 개츠비]는 실제로 읽은 사람에게나 읽지 않은 사람에게나, 어느 정도 일정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하얀 색 랄프 로렌 풍 수트로 대표되는 1920년대 풍 패션을 떠올립니다. 이건 당연히 레드포드가 주연한 1974년작 영화의 영향이겠죠.

 

그리고 참 의외였던 것은 많은 남자들이(그리고 심지어 많은 여성들도) 제이 개츠비를 한 여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한, 이상적인 남자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려낸 이 유명한 인물은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집요한 집착(^^)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단면을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즈 루어만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놀랍도록 완벽하게 원작의 정서를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원작과 원작자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에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줄거리.

 

1922년 뉴욕. 중서부 명문가 출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뉴욕에서 성공하겠다고 결심한 예일대 출신의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는 8촌 여동생 데이지(캐리 멀리건)와 그 남편이며 자신의 대학 동창이자 대부호 가문의 후계자인 톰(조엘 에저튼)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여성 골프 선수인 조던 베이커(엘리자베스 드비키)로부터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남자 이야기를 듣습니다.

 

닉이 알게 된 옆집 남자 개츠비는 '엄청난 저택의 주인이며 뭘로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주말마다 수백명을 불러다 파티를 여는' 신비한 남자. 어느날 닉에게 개츠비의 파티 초대장이 전달됩니다. 파티장에서 닉은 조던과 재회하고, 신비의 인물 개츠비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그리고 닉에게 계속 호의를 베풀던 개츠비는 어느날 예기치 못한 부탁을 해 옵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데이지를 향한 사랑에 일평생을 바친 제이 개츠비의 이야기로만 보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입니다. 일단은 조금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개츠비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1920년대라는 시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19년 내려진 금주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술을 사고 팔지 못하게 된 시대. 그렇다고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술을 마시지 않을 리는 없으니 엄청난 밀주 조직과 비밀 클럽, 사설 파티가 유행하게 됩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위선을 강요하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이 몰락하고, 경로가 확실치 않은 자금이 투기에 사용되며 경제적으로는 대단히 풍요로운 시대가 됩니다.

 

풍요를 바탕으로 문화적으로는 재즈가 대중의 음악으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듀크 엘링턴과 루이 암스트롱의 시대, 즉 뒷날 재즈 에이지 Jazz Age라고 불리게 되는 시대인 것이죠. 아울러 플래퍼 Flapper의 등장과 함께 여권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대에 등장한 개츠비는 전통적인 '미국의 질서'에 대한 도전입니다. 전통적인 세습 명문가 출신이 아닌 갑부. 그런 개츠비에게 데이지를 빼앗길 수 없다는 톰의 분노는 기존 주류 사회의 집단적 반발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반대로 은근히 개츠비를 응원하는 닉의 시선 역시 우연의 소산은 아니죠. 도덕적 리더십을 잃은 세습 부유층의 이기적인 행태를 바라보는 피츠제럴드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물론 피츠제럴드 본인의 경험이 깔려 있죠.)

 

 

 

 

사실 개츠비며 데이지는 모두 그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개츠비는 20세기 이후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교육/문화의 측면에서 상류층과 격차를 좁힌 젊은 세대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그와 전혀 다른 차원의 장벽이라는 것이죠. 이런 시각에서 보면 데이지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성공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상징인 셈입니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스토커 적인 집착(^^)을 단순히 '일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낭만적인 이야기'로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 당시의 시점에서 자신이 데이지를 행복하게 해 줄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은 이건 순전히 '개츠비 혼자의 생각'이라는 점입니다. 산업 사회에서 많은 젊은 개츠비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데, 이때 어떤 여자들은 개츠비(부자가 되기 전의 가난한)를, 어떤 여자들은 톰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개츠비들은 여자에게 선택을 요구하기 이전, 스스로 '지금의 내 상태론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 가슴아프지만 지금은 내가 더 커야 해.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뒤 돌아와 말하겠어. 이제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자기 혼자의 생각인데 개츠비는 '당연히 데이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개츠비 이후 수많은 개츠비들의 비극이 뒤를 따르는 것이죠.

 

(물론 '많은 여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없더라도 젊은 개츠비를 선택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개츠비의 판단은 실제로 정확했을 겁니다. 돈이 없으면 개츠비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비참하게 제외되고, 데이지는 어딘가에 있을 재력가 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게 결과적으로 맞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순전히 '개츠비의 시선에서 내려진 판단'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일단 지금은 내가 더 커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개츠비에게 '미래의 어느 시점에 데이지를 되찾을' 기회가 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살아 보시면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아시게 됩니다.

 

(네. 이렇게 해서 많은 개츠비들이 과거의 데이지들을 '건축학 개론'의 수지로 만드는 겁니다. 바로 '쌍년'으로 말이죠.)

 

그런데 스콧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는 그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나로부터 그녀를 앗아간' 그 남자보다 훨씬 더 큰 재산과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 남자. 그럼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그 '절대적인 사랑'이 과연 얼마나 진짜 사랑이냐는 데 있습니다.

 

 

 

 

개츠비에게 있어 데이지는 사랑하는 여자의 수준을 넘은 '전 인생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라도 톰을 사랑한 적이 있어선 안 되는', 그러니까 '완벽하게 나만의 것'인 존재여야 하는 거죠.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뿌려 가며 주말마다 초대형 파티를 여는' 광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건 돈만 많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바즈 루어만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갖고 있는 그런 함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루어만의 특기인 비현실적인 과장의 미학이 바로 이런 개츠비의 허세와 아주 좋은 궁합을 보이고 있다고 할까요.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호오가 엇갈린다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그건 루어만의 원작에 대한 애정과 원작자에 대한 존경에 대해 관객이 어느 정도 공감하느냐에 달린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이 리뷰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원작과 원작자이기 때문에, 저는 그 의도를 잘 살렸다고 보여지는 이 루어만의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까지 반드시 그렇게 느낄 거란 보장은 없겠죠.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절대적인 강추. 놓쳐서는 안 될 영화입니다. (그런데 3D로 봐야 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1. 울프심 역을 맡은 아미타브 바흐찬은 인도 영화계의 절대적인 스타. 한때 '세계 최고의 미녀'로 불렸던 인도 여신 아이슈와라 라이의 시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사실 원작에 개츠비가 미남이란 얘기는 없죠.

 

그래도 레드포드가 낫냐, 디카프리오가 낫냐 하는 얘기는 무의미한 듯.

(답이 너무 뻔한 거 아닌가요.)

 

 

 

 

P.S.2.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1920년대, 재즈 에이지라 불리는 시대의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물론 빼놓을 수 없겠죠.

 

 

 

 

 

P.S.3.  많은 분들이 화려한 음악 - 감독이 바즈 루어만이니 이건 너무나 당연 - 을 얘기합니다. 그 중에서 한 곡, 위의 파티 장면에서 화려하게 편곡되어 등장하는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가 이 시대를 상징하는 명곡인 건 맞는데, 사실 이 곡의 발표 시점은 1924년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 설정이 1922년이니 역사 왜곡인 셈이죠. (아, 물론 비욘세의 Crazy in love도 나오지만 그건 그냥 패스.^^)

 

P.S.4. 원작에서든 영화에서든, 개츠비와 닉이 처음 대화를 트게 되는 계기는 군대 얘기였는데, 원작과 영화에서 표현되는 소속 부대가 다릅니다. 루어만은 왜 부대를 바꿨을까요?

 

P.S.5. 많은 분들이 "대사를 글자로 화면에 띄우는 건 너무 오바 아니냐"는 지적을 하시더군요. 이건 아무래도 '자, 재미있지? 원작 읽어보고 싶지? 원작 사서 읽어'라는 루어만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만치 루어만이 원작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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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 잘 모르실 겁니다. 방송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JTBC 드라마고, 오는 27일 오후 9시 50분에 첫 방송이 나갑니다. 주인공은 정경호-남규리, 한국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지 못한 본격 느와르 드라마입니다. 아무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상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김남길 손예진. 박찬홍(연출)-김지우(극본) 콤비의 작품입니다(JTBC 개국작인 '발효가족' 팀이죠). 같은 27일 밤 10시에 시작합니다. 드라마의 지명도나 방송사의 힘에서 영 딸립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드라마를 알리기 위해 한 이벤트 중에서는 아마 가장 규모가 큰 '이상한 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5월13일. 명동에 이상한 아저씨들이 우글우글 모였습니다. 장소는 명동의 한 중심인 명동예술극장 사거리.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메이지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던 고급 문화 공간으로 한때 국립극장으로 사용된 적도 있습니다. 이후 다른 용도로 쓰인 적도 있었으나 2009년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극장으로 복원된 유서깊은 공간입니다.

 

(네. 명동예술극장에서 도와주신 게 많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명동예술극장 앞 작은 사거리에 한 패는 명동성당 쪽에서, 다른 패는 명동 전철역 쪽에서, 또 다른 패는 롯데백화점 건너편 쪽에서 진입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매우 불량해 보이는 패거리인데다 검정 양복 차림이라 한 눈에도 뭐하는 사람들인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사거리 앞에 모이더니 대뜸 대거리를 시작합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 합니다.

 

 

 

 

 

 

시비가 몇번 오가더니,

 

가장 인상이 나쁜 빨간 띠 편에서 먼저 외칩니다. "안되겠다, 얘들아! 쳐라!"

 

똘마니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리며 돌진합니다. 그런데 무기가 좀...

 

 

 

 

네. 총천연색 물총입니다.

 

 

 

 

 

 

 

 

현장 영상입니다.

 

 

 

 

구경하던 관광객들만 신났습니다.

 

 

 

물총 싸움이 한참 벌어지다 사이렌이 울리고, 명동예술극장 벽면에서 현수막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깜짝 등장한 남자.

 

바로 이재윤입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야왕'에서 수애의 오빠 역으로 지명도를 높였죠.

 

실물로 보니 엄청 건장합니다.

 

 

 

 

"'무정도시'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는 이재윤의 인삿말로 이벤트는 끝.

 

그런데 뜻밖에 이재윤의 팬들이 엄청 많습니다. 이벤트가 끝나고도 이재윤은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건 일본에서 온 관광객 아주머니들. 대체 언제 이재윤을 보셨는지, 반가워서 펄쩍펄쩍 뜁니다.

 

모처럼 명동 나들이에 팬들의 반응이 좋아 이재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도 즐거워 하시고, 구경하는 사람 모두 좋아했던 한 폭의 이벤트였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취재해 주신 덕분에 검색어 순위에도 죽죽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편집한 영상이 나왔습니다.

 

 

 

 

이건 이재윤씨 팬들을 위한 보너스.

 

 

 

 

3분 정도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더랬습니다. 기획서를 썼다 찢기를 수십번. 마침내 이벤트의 틀이 마련됐고 수많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 명동예술극장 앞 사거리가 선택됐습니다.

 

 

 

 

일단 명동예술극장에 현수막을 드리운다는 게 정상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더군요.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쨌든 해결했습니다.

 

그 다음은 배우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사전 리허설은 하지 못하고(ㅠㅠ), 대신 당일 새벽부터 여의도 공원에서 치열한 연습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솔로대첩'이 이뤄졌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웃던 배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조직의 일원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 형님'이 '저쪽 형님'에게 학대를 당하자 나중에는 진심으로(?) 흥분하시는 분이 있더군요.

 

 

 

 

아무튼 행사가 무사히 끝나 다행. 그리고 이제 드라마가 잘 되는 게 남았습니다.

 

 

 

 

 

http://drama.jtbc.co.kr/moojeong/?cloc=jtbc|header|drama

 

현재 '무정도시' 홈페이지에서는 4개의 이벤트가 동시 진행중입니다.

 

입맛대로 골라잡으시면 푸짐한 상품이 쏟아집니다. 관심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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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3], 개인적으로 가장 기다렸던 슈퍼히어로 무비입니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극장판을 전제로 생각할 때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영웅은 아이언 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존 파브로의 유머러스한 연출이 큰 역할을 했던 듯 합니다.

 

이번 '아이언맨3'는 처음으로 존 파브로가 감독하지 않은 시리즈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불안감도 갖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속편입니다. 히트작의 속편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툭툭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3편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는 시리즈가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세 편도 쉽지 않죠.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아이언맨' 시리즈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강추.

 

그런 면에서 '아이언맨3'는 '믿고 쓰는 아이언맨 표'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대다수 기존 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에선 반발도 있더군요. 한 쪽은 '어벤저스'의 지나친 개입이 기존 아이언맨 시리즈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 또 한 쪽은 어설픈 배트맨 흉내가 아이언맨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간단한 줄거리.

 

스토리는 '어벤저스'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뉴욕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의 저변에는, '과연 아이언 맨 수트를 입지 않은 나는 대체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악당 만다린(벤 킹슬리)이 등장해 전 세계를 위협하고, 미국 정부는 로드 대령에게 아이언맨 개량 수트를 입힌 뒤 새로운 슈퍼히어로 '아이언 패트리어트'라고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한편으론 새로운 싱크탱크의 주역 킬리언(가이 피어스)이 뇌의 특정 구역에 화학물질을 투입해 인간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가져와 스타크 컴패니와의 협업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스타크 사의 경영자인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는 자칫 인간을 무기화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협조를 거절합니다.

 

 

 

 

'아이언맨3'는 여러 가지로 시리즈의 전환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우선 아이언맨이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다양한 주인공들과 공조해서 액션의 규모가 전 우주적으로 확대된 '어벤저스' 이후 처음 나오는 시리즈입니다. '우주의 괴물들'과 싸우다 온 수준의 아이언맨이 다시 지구 수준의 악당들과 싸워야 한다면, 왠지 갑자기 적이 왜소해 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드래곤볼로 치자면 셀과 싸우다 갑자기 다시 피콜로와 싸워야 한다는 수준으로 설정이 축소된다면 누가 봐도 어색하겠죠.

 

하지만 슈퍼맨도 아닌 아이언맨이 갑자기 범 우주적인 적들을 맞아 싸울 수도 없는 일이니 제작진은 머리를 쥐어 짤 수 밖에.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집필진도 싹 바뀌고, 감독도 셰인 블랙으로 교체됩니다. 1,2편의 감독 존 파브로는 이번엔 그냥 해피 역으로 연기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감독 겸 연출을 맡던 배우가 같은 시리즈에서 감독을 그만두고 배우로만 남게 되는 것 역시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일단 악당들이 엄청나게 강력해졌습니다. 약물을 이용해 인간을 강화하는 익스트리미스를 사용하면 인간 개개인이 별다른 장비 없이도 아이언맨을 맞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집니다.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킬 정도죠.

 

(솔직히 아무리 인체를 강화한다 해도, 맨주먹으로 강철 인간을 상대한다는 건 일단 피부가 배겨내지 못할 일이지만 '아이언맨3'는 그런 건 간단히 무시해버립니다. 하긴 뭐 맨손으로 탱크를 때려부수는 헐크도 있다고 하면 그만인가요... 아무튼 '아이언맨3'의 세계에서 아이언맨은 별다른 슈퍼히어로도 아닙니다. 익스트리미스 강화 인간과 1:1로 싸우는 것도 힘겨워 보일 정도.)

 

여기에 하나 더 보태면, 평소 고민 안 하기로 유명한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어벤저스'의 연장선에서라면 논리상으론 충분히 그럴 법 합니다. 다른 슈퍼히어로들은 어쨌든 자신들에게 내재된 능력을 통해 자신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다르죠. 수트가 그의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민이 중요하다보니 '아이언맨3'는 전작들에 비해 토니 스타크의 맨손 활약이 훨씬 많은 작품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이언맨3'인 동시에 '토니 스타크1'인 셈이죠.

 

 

 

 

 

과연 이게 관객들에겐 어떻게 여겨질까요. 1,2편의 팬들에게라면 3편은 위에 든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이단적입니다. 고민이라는 걸 할 이유가 없는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가 심각한 표정이라니. 이건 팬들에 대한 배신이죠.

 

물론 원작 팬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통해 구현된 스크린 상의 '아이언 맨' 시리즈를 말하는 겁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은 '관객을 걱정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대의명분에 집착하는 슈퍼맨이나, 안 그래도 심각한데 크리스토퍼 놀란 이후 더 심각해진 배트맨과는 다른 면이죠. '마스크 속에 있는 나와 마스크를 통해 표현되는 나' 사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건 배트맨으로 충분합니다. 굳이 '아이언 맨'을 보러 와서까지 그런 찌질궁상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같은 이유에서 '아이언 맨' 시리즈가 '순수하게 시작했던 과학자들의 타락'이나 '새로운 인지 영역의 개발에는 그만한 책임과 도덕성이 따라야 함' 같은 교훈을 심는 도구로 변질되는 것 또한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토니 스타크는 일촉즉발의 시한폭탄 같은, 하지만 동기는 순수하고 판단은 나름 합리적인 그런 존재일 때가 매력적이지 인상을 쓰면서 윤리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언 맨3'는 약간 위태로운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만 전체적인 톤에서는 아직 '아이언 맨' 시리즈의 전통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토니 스타크의 수다도 여전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함축적인 개그도 전과 같습니다. '어린이라고 봐 줄줄 아냐' 야말로 토니 스타크 스타일이죠.

 

결론적으로: '아이언 맨3'는 '어벤저' 이후 마블 코믹스의 각 시리즈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그 이후 첫 결과를 보여줬다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 위에서 든 점들 처럼 약간 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 합니다. 특히 지하에 잠자고 있던 다양한 형태의 아이언맨 수트들이 총동원되는 모습도 좋았구요.

 

다만 '좀 더 깊이 있어 보이기 위해' 자꾸만 아이언 맨을 배트맨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절대 사양입니다. 이런 시도는 시리즈의 성격을 아예 바꿔 버릴 여지가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됩니다. 원작 코믹스에는 아이언맨도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극장판 아이언 맨 시리즈'의 팬들은 자신들의 히어로가 같잖은 철학을 깔고 나오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아이언 맨이니까 鐵學일까요.^^)

 

 

 

 

 

P.S.1. 아무튼 마블 코믹스의 앞으로 나올 시리즈들은 '어벤저스'를 중심으로 모두 한 타임라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라는 유기적 관계를 보다 강화할 조짐입니다. '아이언맨 3'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다른 히어로들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심지어 브루스 배너(헐크, 마크 러팔로)는 쿠키 영상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쿠키 영상들에 비하면 굳이 볼 이유가 없을 정도입니다. 영화 끝나면 바로 극장을 뜨셔도 좋습니다.

 

 

 

P.S.2. 토니 스타크가 대머리 악당에게 한방을 먹인 뒤 'Did you like it'인가 'Did you get it'이라고 말한 뒤 이 악당을 'Westwolrd?'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의 초기작인 영화 'Westworld'를 말하는 겁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 성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과거 서부를 재현한 로봇 공원 'Westworld'가 개관되는데 갑자기 기계 이상으로 로봇들이 관광객들을 살육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왕년의 대머리 스타 율 브리너가 무표정한 총잡이 로봇으로 등장하죠(바로 위 사진). '아이언맨3'의 악역들은 이 웨스트월드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배지 데일이 약간 율 브리너와 닮은 듯도 하군요.

 

P.S.3. 담요(판초 대신^)로 몸을 감고 눈밭에서 아이언맨 수트를 끌고 가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은 어딘가 관을 끌고 가는 오리지널 '장고'의 모습을 연상시키더군요. 타란티노의 '장고'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장면이.

 

P.S.4. 영화 내내 '크리스마스'를 강조하는 건 아마도 이 영화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었어야 할 작품이라는 걸 강하게 암시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개봉이 5개월이나 늦어진 걸까요.

 

 

 

 

P.S.5. 알록달록한 아이앤 패트리어트. 어느 나라나 공무원들이 하는 짓은 다 비슷하더라는 고급 유머.

 

P.S.6. 이 글 제목은 당연히 황석영 선생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의 패러디입니다. 거기선 좋은 제목이었지만, '아이언 맨' 시리즈에까지 이런 식의 식상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미로 써 봤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타이타닉'의 마지막 시퀀스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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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첫 주말이 지나갔습니다. '인조' '김자점' '소용 조씨'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등 관련 검색어들이 주말 내내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물론 가장 오래 떠 있던 검색어는 아무래도 소현세자빈 역의 '송선미' 였지만)하더군요. 물론 검색의 동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뭐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됐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2회에서는 인조(이덕화)와 김자점(정성모)의 질긴 인연이 중요한 요소로 그려졌습니다. 1636~37년에 걸친 병자호란이 끝났을 때, 인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도원수 김자점을 죽였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도원수는 오늘날의 육군 참모총장.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항복을 하는 상황에서 도원수가 멀쩡히 병력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죽어 마땅한 죄죠.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자면 1623년,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될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에 다뤄졌죠.

 

 

 

 

 

일단 인조반정의 주역들을 인명록처럼 살펴보겠습니다. 1623년 3월12일(음력)로 돌아갑니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기록입니다. 광해군의 마지막 날이죠.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부장 이귀【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은 최명길(崔鳴吉)【전 병조 좌랑.】·김자점·심기원【유생.】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김경징(金慶徵)【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신경인(申景摠)【도총도사(都總都事).】·이중로(李重老)【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장유(張維)【전 한림.】·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유생.】·신경유(申景裕)【무신인데 전 부사이다.】·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유생.】·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무신.】·최내길(崔來吉)【사예.】·한교(韓嶠)【전 현감.】·원유남(元裕男)【전 병사.】·이의배(李義培)【무장.】·신경식(申景植)【전 현감.】·홍서봉(洪瑞鳳)【전 승지.】·유백증(兪伯曾)【전 좌랑.】·박정(朴茢)【승문원 정자.】·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역사 상식. 광해군 때의 정권 주도 세력은 북인, 특히 대북이었고 인조 반정의 주역들은 서인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소장파였던 서인들은 벼슬이 없거나, 부사/좌랑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병사로 임명된 이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내쫓기던 중종반정 때에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양다리를 걸쳤듯 인조반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이 반정 음모를 입수하고 궁성 경비를 맡긴 이흥립이 바로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으니 이건 뭐 성공하지 못하면 이상할 지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조실록의 첫번째 기사, 즉 3월13일 기록된 인조반정의 상세한 내막을 보면 참 진행 과정이 가관입니다. 어쩌면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엉성한 반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엉성한 음모에도 무너질 정도로 광해군 하대의 정국은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최근 역사가들의 우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그리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하선이 아니고 진짜 광해여서 그랬는지도.^^)

 

 

 

 

인조반정 기사입니다.

 

 

 상(=능양군, 즉 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켜 강화(江華)로 내쫓고 이이첨(李爾瞻) 등을 처형한 다음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다.


 상은 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원종 대왕(元宗大王)【 정원군(定遠君)으로 휘는 이부(李琈)인데, 추존되어 원종이 되었다.】의 장자이다. 모후는 인헌 왕후(仁獻王后)구씨(具氏)【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이다. 추존되어 왕후가 되었다.】로 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만력 을미년(1595년) 11월 7일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탄생하였으니, 당시 왜변이 계속되어 왕자 제궁(王子諸宮)이 모두 해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선묘(宣廟)께서는 이것이 한 고조(漢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크게 애중하여 궁중에서 길렀고, 친히 소자(小字)와 휘(諱)를 명하고 깊이 정을 붙였으므로 광해가 좋아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큰 도량이 있었다. 여러 번 자급이 올라가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져서는 더욱 겸양하면서 덕을 길렀다.


(중략. 중간 내용은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반정의 정당성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죠.)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무인 이서(李曙)와 신경진(申景禛)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 및 구굉(具宏)·구인후(具仁垕)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속이었다. 이에 서로 은밀히 모의한 다음, 문사 중 위엄과 인망이 있는 자를 얻어 일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곧 전 동지(同知) 김류(金瑬)를 방문한 결과 말 한 마디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추대할 계책을 결정하였으니, 곧 경신년(1620년)이었다. 그 후 경진이 전 부사(府使) 이귀(李貴)를 방문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귀도 본래 이 뜻을 두었던 사람이라 크게 좋아하였다. 드디어 그 아들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및 문사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 유생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등과 공모하였다. 이로부터 모의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3년 된 음모. 이렇게 3년에 걸쳐 모의가 진행됐고, 참여자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음모가 소문이 아니 날 재주가 없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주동자인 이귀가 입이 싸서 '음모가 자주 누설되었다'고 되어 있을 정도.)

 
임술년(1622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애를 입은 김상궁 김개시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1차 위기.)

 

신경진과 구인후 역시 당시에 의심을 받아 모두 외직에 보임되었다. 마침 이서가 장단 부사(長湍府使)가 되어 덕진(德津)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하여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 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당시 정승 박승종(朴承宗)과 서로 인척이 되는 사이라 뭇 의논이 모두들 ‘도감군(都監軍)이 두려우니 반드시 이흥립을 설득시켜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장유의 아우 장신(張紳)이 흥립의 사위였으므로 장유가 흥립을 보고 대의(大義)로 회유하자 흥립이 즉석에서 내응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이서는 장단에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고 이천 부사(伊川府使) 이중로(李重老)도 편비(褊裨)들을 거느리고 달려와 파주(坡州)에서 회합하였다.

 

(도감군이란 바로 훈련도감의 정예병. 말하자면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이 되는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훈련대장 이흥립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반(李而攽)이란 자가 그 일을 이후배(李厚培)·이후원(李厚源) 형제에게 듣고 그 숙부 이유성(李惟聖)에게 고하자, 유성이 이를 김신국(金藎國)에게 말하였다. 이에 신국이 즉시 박승종에게 달려가 이이반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게 하고 또 승종에게 이흥립을 참수하도록 권하였다. 이반이 드디어 고변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12일 저녁이었다.

 

그리하여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고 먼저 이후배를 궐하에 결박해놓고 고발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하는데, 광해는 바야흐로 후궁과 곡연(曲宴)을 벌이던 참이라 그 일을 머물러 두고 재결하여 내리지 않았다. 승종이 이흥립을 불러서 ‘그대가 김류·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하므로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하자 곧 풀어주었다.

 

(이흥립의 평소 처신이 좋았던 것인지... 광해군 말년에 정말 인물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위에서 보듯 이흥립은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반정 핵심인 장유의 아우의 장인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광해군의 측근인 박승종과도 사돈 사이입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기든 내게 설마 해를 입힐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 인조반정 때의 실록 기사를 보면 어찌나 5.16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지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양다리에 능했던 이흥립은 결국 반정에 참여한 댓가로 공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 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도성으로 쳐들어 온 이괄 앞에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한편으로 몰린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거병 소식을 박승종에게 고발한 김신국이 인조 즉위 후에도 중용됐다는 점입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의병은 이날 밤 2경에 홍제원(弘濟院)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김류가 대장이 되었는데 고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포자(捕者=체포하러 오는 관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를 죽이고 가고자 하였다. 지체하며 출발하지 않고 있는데 심기원과 원두표(元斗杓) 등이 김류의 집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시기가 이미 임박했는데, 어찌 앉아서 붙잡아 오라는 명을 기다리는가.’ 하자 김류가 드디어 갔다.

 

(솔직히 '나를 잡으러 오는 놈을 베고 가려 했다'는 말은 핑계로 들립니다. 오히려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움츠리고 앉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른 기록에는 '포자를 죽이고 가겠다'는 호기있는 표현보다 '이렇게 된 이상 체포될 뿐'이라고 말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귀·김자점·한교(韓嶠) 등이 먼저 홍제원으로 갔는데, 이때 모인 자들이 겨우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김류와 장단의 군사도 모두 이르지 않은 데다 고변서(告變書)가 이미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흉흉하였다. 이에 이귀가 병사(兵使) 이괄(李适)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 김류가 이르러 전령(傳令)하여 이괄을 부르자 괄이 크게 노하여 따르려 하지 않으므로 이귀가 화해시켰다.

 

(정작 군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이괄 뿐이었는데 반정의 공로를 가를 때 이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결국 이것이 반정 1년 뒤, 이괄의 난의 계기가 된 것이죠. 저런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김류가 금세 장 행세를 하고, 정작 군대를 이끈 이괄에게 2등 공신 자리밖에 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상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서 이서(李曙)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바로 '꽃들의 전쟁'에 나오는 '김자점이 능양군을 찾아가 설득해서 끌어냈다'는 부분은 이 대목이라야 할텐데, 실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려실기술'에는 능양군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경계해 일찌감치 가솔들을 거느리고 연서역에 나와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김자점은 초기 능양군을 임금 감으로 점찍어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그 뒤로도 인조가 김자점을 감히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인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장단의 군사(=장단부사 이서가 거느린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이귀·심기원·최명길·김자점·송영망(宋英望)·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하여 군사를 단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敦化門)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문(後苑門)을 통하여 달아났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궁전이 연소하였다.
 
상이 인정전(仁政殿) 계상(階上)의 호상(胡床)에 앉았다. 궁중의 직숙관(直宿官)이 모두 도망쳐 숨었다가 잡혀왔는데, 도승지 이덕형(李德泂)과 보덕(輔德) 윤지경(尹知敬)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배례를 드리지 않다가 의거임을 살펴 알고는 바로 배례를 드렸다. 명패(命牌)를 내어 이정구(李廷龜) 등을 불러들이니, 새벽에 백관들이 다 모였다.

 

박정길(朴鼎吉)이 병조 참판으로 먼저 이르렀는데, 판서 권진(權縉)이 뒤미처 이르러 ‘정길이 종실(宗室) 항산군(恒山君)과 함께 군사를 모았는데, 지금 들어왔으니 아마도 내응할 뜻을 둔 것 같다.’라고 하였으므로 곧 정길을 끌어내어 참수하였다. 항산군을 잡아다 문초하니, 혐의 사실이 없어 석방하였다. 그런데 정길은 당연히 참형을 받아야 할 자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참수를 통쾌하게 여기었다.

 

(그러니까 박정길이 죽은 것은 혼란중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미움 받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의미. 항상 혁명 때에는 반혁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얼른 궁으로 찾아온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오해를 풀지 못할 정도로 혁명 주체들과 평소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그리고 상궁(尙宮) 김씨(金氏)와 승지 박홍도(朴弘道)를 참수하였다. 김 상궁은 선묘(宣廟)의 궁인으로 광해가 총애하여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권세를 내외에 떨쳤다. 또 이이첨의 여러 아들 및 박홍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무상으로 출입하였다. 이때에 와서 맨 먼저 참형을 받았다. 홍도는 흉패함이 흉당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자라 궐내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광해는 상제가 된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도망쳐 국신이 쓰던 흰 의관을 쓰고 있는 것을 국신이 와서 고하므로 장사들을 보내 떠메어 왔고, 폐세자(廢世子)는 도망쳐 숨었다가 군인들에게 잡혔다.
 
상이 처음 대궐에 들어가 즉시 김자점(金自點)과 이시방(李時昉)을 보내 왕대비(王大妃)에게 반정한 뜻을 계달하자, 대비가 하교하기를 ‘10년 동안의 유폐 중에 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중에 승지와 사관(史官)도 없이 이처럼 직접 계문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이 복명하여 아뢰자 상은 곧 대장 이귀(李貴)와 도승지 이덕형, 동부승지 민성징(閔聖徵) 등에게 명하여 의장을 갖추고 나아가 모셔오게 하였다. 이에 이귀 등이 경운궁(慶運宮)에 나아가 사실을 진계하며 누차 모셔갈 것을 청하였으나 대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이 이에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갔다.

 

유사가 연(輦)을 등대하고 위의를 베풀었으나 상은 이를 모두 거두라 명하였다. 교자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말만 타고 가면서 광해를 떠메어 따르게 하였는데, 도성 백성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오늘날 다시 성세를 볼 줄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이하는 생략. 어쨌든 무력으로 궁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열상 광해군의 모후 뻘인 인목대비의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광해군은 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것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받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인목대비의 인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죠. 다만 인목대비는 은근히 '누가 새 왕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해군을 죽여서 내 아들(영창대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강해 공신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옥신각신합니다. 이때 이귀가 인목대비와의 기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인조반정의 핵심 주체 사이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류, 최명길, 심기원, 원두표, 구인후, 김자점 등 인조반정의 주체들은 14년이 지난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점에도 정국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점을 해칠 수 없는 것은 김류의 조언 때문입니다. 사실은 인조보다는 김류에게 김자점이 더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 혁명 주체 세력은 같은 서인 출신이지만 뒤늦게 사림에서 정치에 나선 송준길, 송시열, 김상헌 등의 인물들에게 위협을 느낍니다. 특히나 패전에 대한 책임이나 명에 대한 의리의 선명성에서 이들은 뭔가 뒤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혁명 주체 세력의 투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용도로 김자점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이건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건 말건, 김자점은 왕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 '꽃들의 전쟁'의 출발점이니까요.

 

아무튼 김자점의 생애와 의혹(그는 정말 반란을 꿈꿨나?)에 대한 부분은 다른 글에서 조명해 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절해고도에서 인조의 배신과 옛 인연을 되새기다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김자점 역의 정성모. 정말 대단한 에너지의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장면은 두고 두고 '궁중잔혹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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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분노의 추격자] 퀜틴 타란티노가 만든 '장고'의 리메이크에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원제인 Django Unchained 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은 아닙니다만, 뭐 '사슬에서 풀려난 장고'라고 할 것도 아니고, 영화 내용과는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많은 구세대들들은 '장고'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몇가지의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수염이 바늘처럼 송송 자라난 프랑코 네로의 얼굴, 말을 타고 멋지게 달리는 대신 관을 끌고 다니는 괴상한 카우보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관 속에서 튀어나오는 *** (과연 1966년작 영화의 내용을 갖고 스포일러를 따져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려 두겠습니다.^^).

 

어쨌든 오리지널 '장고'는 최고의 오락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드레날린 아티스트 퀜틴 타란티노가 리메이크한다는데, 기대가 가지 않을 리가 없었죠.

 

그리고 많은 아저씨 관객들은 외쳤습니다. "젠장, 장고라니! (말년에) 관뚜껑 그림자도 못 봤는데 장고라니!"

 

 

 

가장 기대에서 어긋났던 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격자'는 1966년작 오리지날 '장고'와 사실상 아무 상관 없는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 외에는 전혀.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로 위 사진, 스쳐 보기만 해도 '장고다!'라고 할 수 있는 저런 모습의 '오리지날 장고 비주얼'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혀.

 

 

 

 

사슬에 묶여 이동하고 있던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국 서부 사막을 떠돌던 슐츠 박사(크리스토프 발츠: 발츠라고 읽을지 월츠라고 읽을지 늘 갈등되는 상황)의 도움으로 구조됩니다. 그리고 장고에겐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연인 브륀힐데(케리 워싱턴)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죠.

 

일단 장고에게 킬러로서의 천부적인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슐츠는 그를 현상금 사냥의 조수로 쓰는 한변, 브륀힐데를 산 대농장주 칼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찾아내 장고와 브륀힐데를 재회할수 있게 해 주려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구세대들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아니 대체 이 영화에 왜 장고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 일단 '오리지널 장고'를 구성하는 시각적 표현물, 즉 푹 눌러 쓴 모자와 밤송이 수염, 지저분한 외양과 질질 끌고 다니는 관 같은 것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도 안 끌고 다니는 장고가 장고냐'는 말이 나올 법 합니다.

 

물론 타란티노는 당연히 할 말을 다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장고' 이후에 수십편의 영화가 '장고'라는 주인공을 이리저리 울궈먹었는데 그걸 다 관통하는 공통점이라도 있다는 거냐. 전혀 계승할 생각 없었다. 그런 걸로 따지지 마라. 뭐 영화 속에서 20세기 역사도 제 멋대로 바꾼 적 있는 타란티노니까 가질 수 있는 당당한 태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장고'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없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솔직히 플롯 면에서 뛰어난 점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단순 과격의 정서입니다. 관객에게 쓸데없는 추론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 같기도 합니다.

 

각각의 사건은 꽤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개별적인 사건들이 대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있나를 따지는 건 매우 곤란합니다. 그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서부극'이라는 뜻의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대신 '서던(Southern: 이 영화의 무대가 미국 서부가 아니라 남부라는 뜻에서. 물론 서부극의 주 무대인 텍사스는 더 남쪽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지만, 당시의 텍사스는 '미국'이 된지도 얼마 안 되는 서쪽의 황무지였죠)이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이 영화는 너무도 뼈속까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정수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의 위치를 따지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과 테렌스 힐의 '내 이름은 튜니티' 시리즈의 딱 중간 정도?

 

 

 

사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에 대한 일부 평론가/기자 양반들의 지나친 의미 부여가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독일계로 설정되어 있는 슐츠 박사라는 인물입니다. 이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토프 발츠는 전작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Ingrorious Bastards)'에서 나치 장교 역을 맡았죠.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또 독일계 미국인이 오히려 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이것 역시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얘깁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얘기는, 크리스토프 발츠라는 배우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관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것. 정말 최곱니다.

 

영화의 결말을 건드리게 될까봐 살짝 위태롭기도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악당 캔디 역시 '극악무도한 미친 놈'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약간 부당하긴 하지만, 어쨌든 '비즈니스'를 할 생각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성을 잃는 것은 우리 편, 즉 정의의 편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정의의 편(?)은 모든 문제를 좀 더 평화롭고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었죠. 하지만 감독이 타란티노이다 보니 불행히도 그런 진행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냥 즐겁게, 피의 향연을 즐기면서, 마음 편히(?) 보시면 되는 영화.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 자신의 다른 영화를 볼 때보다 조금 더,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 만큼은 어린이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가 유치하거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유치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이 영화는 '우리는 일부러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야'라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즐기는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나 그 가이드를 충실히 이행했느냐에 달렸습니다. 평소의 자신은 극장 밖에 두고, '장고'를 본 뒤에 다시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어설픈 의미 부여나 심층적인 해석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마시구요.

 

어쨌든 개인적으론 매우 강추. (물론 역시 개인적으로, 관뚜껑이 안 나오는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더군요.)

 

 

 

P.S. 올드 '장고'를 아쉬워하는 노친네들에 대한 배려로 프랑코 네로는 한 장면 나옵니다. 술집에서 만나는 아저씨 역으로.^ 아, 물론 '마이애미 바이스'의 돈 존슨도 한 장면 걸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물론 주제가도 가져다 씁니다. 이건 '대체 오리지날 장고라는 게 뭐야' 할 분들을 위한 오리지날 장고 주제가의 뮤직비디오(?). 친절하게 '장고' 한 편에서 장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 카운트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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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기획 초기부터 '여성 사극'을 표방했던 작품입니다. '꽃들의 전쟁-여자들의 정치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 사극'이라는 말은 사극 중에서도 특정한 작품군을 떠오르게 합니다. 대개 고전이 된 '개국'에서부터 '무인시대', '연개소문'으로 이어지는 KBS 대하사극풍의 작품들을 '남성형 사극'이라고 부른다면 '여성 사극'은 오래 전 MBC를 통해 방송된 '여인 열전'에서 SBS 사극의 정점을 찍었던 '장희빈'과 '여인천하'류, 그리고 JTBC의 개국 콘텐트로 큰 역할을 했던 '인수대비'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분명합니다. 주로 궁정이나 양반가의 규방이 주 무대가 되죠. 그리고 성격상 호쾌한 액션이나 군중을 동원한 몹 신보다는 오밀조밀한 대사를 통해 갈등과 해소가 이어집니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과 악녀의 무한대립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꽃들의 전쟁'은 이런 전형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19일 선공개된 1회 영상(본 방송은 3월23일)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에 선공개된 1회 영상은 실제로는 1회를 조금 넘어 2회 앞부분까지 살짝 걸치는 내용입니다. 대작의 위용을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간에 영상을 교체하는 바람에 카운트가 내려갔는데, 약 18시간만에 5만명 가량이 이 영상을 보시고 호평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간략한 도입부 줄거리.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겨울을 넘겨 새해를 맞은 조선 16대 왕 인조(이덕화). 정축년 초 마침내 청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습니다. 김상헌(한인수)을 비롯한 척화파 대신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인조는 대군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합니다.

 

호란의 틈바구니에서 양반가의 서녀 얌전이(김현주, 훗날의 소용 조씨)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인 남혁(전태수)와 애틋한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신분 차이가 분명한 두 사람이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죠. 물론 그렇다고 얌전이가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방지축 말괄량이형입니다.

 

다시 궁정. 도원수 김자점(정성모)이 격분한 인조에게 치도곤을 당합니다. 조선의 주력군을 이끌고 임진강 언저리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죄. 하지만 영의정 김류(김종결)는 은밀히 김자점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 김자점은 절도유배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항복의 치욕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구차한 삶은 정작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세자(정성운)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상황. 세자빈(송선미)은 갓난 아들 석철과 눈물로 이별하고, 인조는 홀로 남겨진 손자 석철을 부여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인조 시대가 사극의 초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찌기 80년대 초, 컬러TV 시대를 맞은 KBS가 방송사의 위용을 떨치기 위해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사극 '대명'에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조명한 적은 있었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쟁의 끝에서 바로 효종 시대로 점프하고, 전란의 마무리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조 후기의 정치사는 한국 사극의 역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꽃들의 전쟁'은 기존의 여성 사극류와는 규모에서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간간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화나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의 치욕 장면 등은 소위 '정통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거대한 비주얼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여성 사극들과 차이나는 점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작가 정하연의 내공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정하연 작가의 정치 분석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일찌기 수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났듯, 그의 사극에는 선인과 악인의 흑백 대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갑에게는 갑의 명분이, 을에게는 을의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 눈물로 항복을 권하는 최명길과 군신이 다 같이 죽자는 김상헌. 기존의 사극이라면 어느 한 쪽에 좀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꽃들의 전쟁'에서 최명길은 세자를 청으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김상헌에게 "이제 와서 좋은 말은 혼자 다 하십니다.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신지요"라고 정면으로 맞받아 칩니다. 

 

오히려 보다 큰 간신으로 그려지는 쪽은 영의정 김류와 도원수 김자점. 김자점이야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김자점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그렇게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던' 김자점을 인조가 다시 불러 중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중량감있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키는 '여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죠.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되, 그 근거가 되는 역사나 정치 이야기가 단순화/유치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소용 조씨(김현주) - 소현세자빈 강씨(송선미)의 대립이 드라마의 축이지만, 그 사이에서 열다섯 나이에 입궁하는 장렬왕후 역의 고원희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2AM 뮤직비디오, 아시아나 모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드라마로 확 개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작발표회 때 보니 의외로 또박또박 말을 잘 하던데, 별명이 '애늙은이'라는군요.

 

 

 

 

 

그리고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깨알 재미를 책임지실 분들. 일단 침장이 역의 손병호. 가벼운 톤을 잡았는데도 존재감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이 분. 내관 역을 맡은 우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꽃미남 부문'을 책임질 전태수. 오랜만이라 그런지 각오도 남달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갖출 건 다 갖춘 '꽃들의 전쟁', 23일 '무자식 상팔자' 후속으로 공식 출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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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줄곧 궁금해하긴 했지만, 3월13일 이전까지는 아무도 미리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극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의 팬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분은 제작에 있어선 지독한 완벽주의자입니다. 방마다 놓여 있는 소품 하나,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영수증 하나, 약 봉지에 쓰인 이름이나 주소 하나 허술하게 촬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윤제문' 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1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일제히 납득했습니다. 사실 3월13일 공개된 분량은 정규 1회를 넘어 2부 앞부분까지 포함되는, 약 80분 가량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론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걸작이다.'

 

 

 

3월13일 공개한 1회 선공개 영상은 여기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회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계의 끝' 첫회는 원양어선 문양호의 마지막 생존자 기영(김용민)이 고무 보트에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장쾌한 헬리콥터 샷으로 시작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첫 출근한 나현(장경아). 첫날부터 팀원들은 나현을 놀리기 위해 '셜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헌(윤제문)에게 나현이 뭘 타고 왔는지, 뭘 먹었는지를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정확하게 다 맞춰 내는 주헌을 보고 놀라는 나현.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고, 질병관리본부의 수뇌부 회의가 열립니다. 보름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괴 바이러스에는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첫 희생자의 직업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취미는 사진 촬영. 다각도로 수색에 들어가지만 발병 원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희생자를 이송한 구급요원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희생자의 집에 누군가 이틀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인물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한 주헌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편 '그 인물'인 기영도 자신이 들렀다 간 흔적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안 기영은 자수를 생각해 보지만, 생체 실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달아나려 합니다. 그래도 2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기다려 준 여자친구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세계의 끝'의 전제가 되는 이야기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는 의학적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그 사람은 감염되든가, 아니면 자연치유되든가 할 겁니다. 그런데 몸 속에 그 병원체가 우글거리는데도 그 사람은 멀쩡하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은 병에 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장티푸스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메리 말론이라는 여성에게서 이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무려 51명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1907년 마침내 관계 당국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조사를 시작했죠.

 

 

 

 

'세계의 끝'은 몸서리쳐지는 재난 드라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주헌을 비롯한 조사반원들은 목숨을 걸고 질병과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사실 이 병난의 문제는 바로 장티푸스 메리와 같은 존재인 기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기영이 치료약 개발에 협조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기영은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만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다 죽었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다음의 선택은 "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거야"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싫어' 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알게 뭐냐' 인 겁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영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과 여자친구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철조망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안판석 감독은 윤제문, 장현성, 박혁권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낯설 뿐이지 다들 연극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이 입증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의 벽을 가능한 한 엷게 하기 위해 이런 캐스팅을 합니다. 다큐멘터리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죠.

 

제목과 배우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http://fivecard.joins.com/1106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인생에 갑작스레 던져진 재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다.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에 '불륜'이라는 재앙이 밀려오면서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가족이 일순 붕괴된다. '세계의 끝'도 마찬가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드라마이면서 휴먼드라마인 '세계의 끝', 만듦새에서는 이미 동급 최강이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제작진도 '옥의 티 0'라는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매주 주말 밤마다, 온 세계가 종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음산한 체험이 기다릴 겁니다. 3월16일(토) 오후 9시55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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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아직 그리 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끝'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억하실 겁니다(초기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제목은 귀에 익지 않아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노래? 하실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사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Why does the sun go on shiny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세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녀풍의 노래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느낌이 영 다르더라는 겁니다.

 

왜 태양은 아직도 반짝이는 것일까

왜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걸까,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스산한 느낌이 감돌지 않으시나요?

 

이 제목은 바로 이런 느낌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의 어느날. 서울 시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합니다. 치사율은 100%.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TF가 발족하지만 감염원은 오리무중. 치열한 추적 끝에 원양어선을 타던 복학생이 최초의 보균자로 파악되지만 그의 소재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괴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주인공 강주헌은 헌병 장교 출신이란 독특한 경력의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과장. 치열한 조사 끝에 감염원을 찾아내지만, 괴 바이러스의 치료는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바이러스의 발생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거죠.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1회를 그냥 통으로 보여 드립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물량 규모가 만만찮습니다.

 

일단 맛뵈기부터 보고 싶은 분은 다음 티저 영상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돈 좀 들었습니다.

 

 

 

 

강주헌 역을 맡은 배우는 윤제문. 의외로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의 사수 건달 역으로 이 배우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품 조연', '신 스틸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연기 죽이는 놈 있잖아' 등으로 명성을 날렸죠.

 

그리고 나서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더 킹 투 하츠'의 악당 김봉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그냥 '윤제문' 하면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보단 '가리온'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죠.

 

사실 캐스팅 리스트에는 윤제문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완벽주의자 안판석 감독님이 이 배우를 콕 찍은 겁니다. 이 친구와 하겠다고. 뭐 거기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죠.

 

다른 사람들이 아쉬울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전달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긴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하얀 거탑'으로 김명민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듯, '세계의 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윤제문이 각인될 거라고. 뭐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을 만든 양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주인공이 윤제문이면 주인공의 파트너인 이나현 역이라도 좀 있어보이는 배우가 뽑히길 기대했지만 전화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누구?" 라고 한 세번 물어봐야 했습니다. 장경아랍니다. 대체 장경아가 누구야.

 

 

 

 

 

1987년생. 26세.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위 사진에선 심각하고 초췌한 모습만 보이지만, '여고괴담' 때만 해도 이랬습니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박혁권, 장현성 등 '아내의 자격'을 통해 '안 사단'으로 불리게 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역시 이 배우들도 저희 회사 근처에선 '김희애 남편'이나 '김희애 시누이 남편'으로 더 유명한 분들이기도 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아내의 자격'의 여파가 아직 안 가시고 있어서...)

 

 

 

아무튼 아직 쇼킹한 비주얼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가 아니라 시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만, 밀도 있는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세계의 끝' 1회는 JTBC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다음(위에 퍼온 영상)을 통해 선공개됩니다. 미리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규 방송은 16일 오후 9시55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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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포스터나 홍보물을 보면 이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화는 타겟팅이 중요할테지요. 즉 '어떤 사람이 볼 만한 영화다'라는 것이 바로 계산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소수의 영화광들은 일단 스크린에 틀어 주기만 하면 뭐든 보겠다는 마음이 들 지 모르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초절정 드라이 액션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측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맛(?)간 남자/사랑에 훅(?)간 여자'라는 식의 헤드라인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가지 쯤 되는 사랑의 오만가지 양상을 비틀고 비틀어 영화를 만들다가 마침내 '둘 다 맛이 간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랑 이야기를 해 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냥 둘이 그렇게 해서 잘 먹고 잘 살았대(Happily ever after)'를 미덕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서 나온 물건 치고는 그 잔향이 만만찮습니다.

 

그야말로 아찔하다고나 할까요. 미리 설레발을 치자면, 아직 3월이지만 제게는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엄마의 도움으로 퇴원하는 팻(브래들리 쿠퍼).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 줄을 놓아 버려 입원하는 신세가 됐지만 막상 퇴원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아내를 되찾을까 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남편과 사별한 뒤, 역시 정신 줄을 놓고 주변 온갖 사람들과 섹스를 해 맛간 여자 취급을 받으며 주위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팻에게 어렴풋이 호감을 갖지만 팻은 티파니 앞에서도 늘 아내 얘기 뿐입니다.

 

 

 

 

분명히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이성적인 행동을 할 리는 없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쓰고 조깅을 하고, 농구 유니폼이 정장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조건 따라 뛰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독특한 점은, 이 영화 속의 비정상적 인물들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생각해서 최선의 방책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팻이며 티파니,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 도박 중독인 팻의 아버지와 그 친구까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미친 듯 행동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최선의 길을 택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 감정이입까지 가능하게 해 줍니다.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 속에, 멀쩡한 남들이 다 하는 고민과 눈물, 밀당과 감정의 폭발이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할리우드의 마법이 한몫을 거듭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팻과 티파니처럼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은 브래들리 쿠퍼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1000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장 눈에 띌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살짝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뛰어도 멋지게 보일 만큼 잘 생기고 쭉빵 미인이라면 평가가 달라지는게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미모와 감독의 지원에 의해 두 배우는 '비호감형 캐릭터'들을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승화시킵니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팻의 아버지는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수시로 탈출을 시도하는 팻의 병원 동기(?) 대니 역으로 크리스 터커가 나옵니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잭 니콜슨 주연 '이보다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또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드렁크 러브'입니다. 두 편 모두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담은 영화죠. 특히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는 명대사로 지금껏 기억되는 '이보다...'는 괴상한 행동을 일삼던 작가 잭 니콜슨이 '사랑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아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나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공감을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주는 구원의 메시지는 쌍뱡향입니다. 팻과 티파니는 모두 결함이 큰 사람들이지만, 구원은 어느 한 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양쪽이 서로에 대개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이 균등하지는 않지만(어느 순간까지는 굉장히 한쪽이 더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 뿐만 아니고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서로는 서로의 구원자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모르셨다구요. 그럴 리가 없지요. 이 영화는 제목부터 그런 뜻인데 말입니다.

 

silver lining은 구름 가장자리의, 밝고 투명하게 보이는 윤곽 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구름이 가리고 있지만 그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죠. 이 말 자체가 '희망'의 상징입니다(물론 영화 속에서도 그 말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playbook은 '계획'이란 뜻이지만 미식축구에서 다양한 공격 포맷을 도식화해서 기록한 '작전집' 정도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포스터 중 하나는 아예 그런 '작전도'를 이용한 비주얼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행복을 찾기 위한 작전집', '행복 찾기 대작전'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이유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 수도 있고, 경제난이 이들의 앞에 암운을 드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라는 물건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끝을 맺어 주죠.

 

전작에서부터 가족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사람들(흔히 '일반인'이라고 하죠)이 성취하는 것, 혹은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행복과 성취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이 8점을 노리고, 우승을 노릴 때 5점이면 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도 행복과 만족이 올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해 주고, 1등병이나 경쟁 지상주의에 찌들어가는 현대인(특히 한국인)에게 힐링 무비의 역할을 할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의 치유를 받아들일지는.

 

아무튼, 본래 강추지만,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특히 강추.

 

 

P.S.1. 영화적으론 좀 사족같지만 이런 아버지의 충고는 굉장히 와 닿습니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서 팻의 아버지가 팻에게 티파니를 놓치지 말라고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Let me tell you, I know you don't want to listen to your father, I didn't listen to mine, and I am telling you you gotta pay attention this time. When life reaches out with a woman like this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m telling you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t'll haunt you the rest of your days like a curse. You're facing a big challenge in your life right now at this very moment, right here. That girl loves you. she really really loves you. I don't know if Nicky(팻의 전처) ever did, but she sure as shit doesn't right now. So don't fuck this up.

 

P.S.2. 좋은 가사. 저는 스티비 원더의 원곡보다 이 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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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보면서 '무간도'와 '대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영화 이후에 나온 갱 영화나 언더커버 캅에 대한 영화가 두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평을 듣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세계'가 이 두 영화에 대해 지고 있는 빚은 흔히 말하는 '영향'을 넘어 서 있습니다. 이른바 오마주의 세계라고 할까요.

 

사실 개인적으로 '신세계'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무간도'가 아니라 '무간도2'입니다. 전편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무간도'를 훨씬 능가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수백편(수천편?) 쯤 만들어졌을, '대부 오마주' 영화들 가운데서도 손꼽을만한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안 보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신세계'는 굳이 말하자면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대부 오마주' 영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자면 아마도 '신세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풍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국내 최대 폭력조직이며 합법적인 기업으로 진화한 골드문파의 보스 석회장(이경영)은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고 풀려난 직후 의문의 사고로 사망합니다. 후계자가 필요해진 상황. 연합 조직인 골드문파의 특성상 최대 계파인 재범파의 보스 중구(박성웅)와 여수 화교 중심의 파벌인 북대문파의 정청(황정민)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릅니다.

 

이런 상황은 본래 경찰이지만 비밀리에 조직에 잠입한 자성(이정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8년 노력한 끝에 정청의 오른팔이 된 자성은 자신을 투입한 강과장(최민식)에게 그만 풀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강과장은 자성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합니다. 소위 '신세계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일각에서 흐름이 좀 느리다는 평이 있었지만 2시간14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단 세 남자의 대립이 촘촘하게 짜여 있고, 세 주인공의 조합은 예상대로 매우 훌륭합니다. 셋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아무래도 황정민이겠죠.

 

'달콤한 인생'에서 건달 중의 상건달 - 흔히 말하는 '양아치'에 가까운 - 역할로 연기력을 과시했던 황정민은 그와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인물 정청 역을 맡아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이 정말 본능만 있는 벌레같은 인간이라면, '신세계'의 정청은 동네 아저씨같은 인간미와 하이에나같은 악착스러움에다 뱀 같은 냉정함까지, 한 작품 안에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주연을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만만찮은 비중을 자랑한 박성웅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구가 지나치게 냉정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 그런 냉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미친개가 되는, 좀 더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

 

사실 '신세계'는 전형적인 영화이긴 합니다만, 배우들이 연기하기는 또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판타지 느와르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한국 경찰과 조폭의 관계에서 이런 식의 언더커버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경찰이 8년씩 조폭 밑에 들어가서 발각되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 있으며, 수시로 인사조치가 있는 한국 조직의 특성상 어떤 중간 간부가 -이를테면 강과장이- 8년씩 그런 장기 프로젝트를 보안 위험을 감수해 가며 추진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이나 미국 같이 넓은 나라에서는 혹시 또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고, 출신 지역이나 학력만 추적해 봐도 어느 집 누가 뭘 하는지 다 드러나는 나라에서 과연 이런 식의 철저한 은폐가 가능할까요. 더구나 경찰/검찰과 조폭의 인맥이 이렇게 촘촘하게 엮여 있는 나라에서 말이죠.^^ - 물론 '신세계' 같은 영화를 볼 때에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어쨌든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영화니까 말입니다.

 

다만 '무간도'나 '디파티드' 같은 영화들은 가능한 한 그 현실과의 괴리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개연성을 보강하고 있는 반면, '신세계'는 그런 부분에서 덜 치밀합니다. 예를 들어 송지효가 연기하는 바둑 선생 같은 캐릭터는 오히려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면을 더 강조해 버리는 면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야쿠자 영화를 의식한 듯한 두 차례의 장례식 장면도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물론 많은 관객들은 무협영화나 '스타 워즈'를 보듯, 이 '언더커버 판타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세계'를 볼 겁니다. 그리고 이 장르에 애정을 갖고 있는 관객이라면 '신세계'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관객 상당수가 '무간도'나 '도니 브래스코'류의 영화에 노출되어 있었을 거라고 전제하면, 자성이 당연히 겪어야 할 정체성의 혼란 같은 장면은 과감하게 제거하는게 당연했을 겁니다. '우리 외국 나가서 살까?' 정도의 대사로 쉽게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다만 영화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다소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러 있는 건 좀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연변 거지 개그는 무거운 흐름을 풀어 주는데 꽤 역할을 합니다만,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한우 개그 같은 것은 들어 냈어도 되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신세계'는 그동안 '대부'의 영향권에서 다소 먼, 비교적 독자적인 길을 걸어 온 한국 느와르가, 전 세계적인 '정통'에 다가선 물건을 내놨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아주 매끄럽고 정교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풍미를 자랑하는 관객에게는 좋은 선물입니다. 특히 여성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는 장점이 있죠. 전체 영화보다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 잘 부각되지만, 휴일을 즐기는 데 후회 없는 선택일 듯 합니다. 추천.

 

 

 

 

P.S.1. 언더커버 캅이 자기 패거리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이란 소재에 관심 있는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영화는 '도니 브래스코'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논픽션에서, 마약 조직에 투입돼 상당 기간 동안 조직원 행세를 했던 주인공은 이런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조직이 일망타진되고 작전이 마무리됐을 때, 법정에서 만난 한 조직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봐. 내가 잡혔을 때 경찰은 내게 전화를 딱 한 통 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어. 나는 그 전화를 변호사도 아니고, 두목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너에게 걸었지. 도망치라고. 그런데 네가 경찰이었다니.' "

 

이런 말을 듣고도 동요가 없다면 그건 정말 냉혈한이겠죠.

 

 

 

 

P.S.2. 몇가지 질문에 대해서 박훈정 감독은 고의로 대답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건 속편 제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면 석회장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강과장이 언급하는 '언더커버에서 끈을 끊어 버리고 진짜 조폭이 된 전직 경찰'은 누구일까 하는 것 등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예견하듯,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 내용은 '신세계'의 프리퀄, 그러니까 이 주인공들의 과거 사연 이야기가 될 전망입니다. 이미 '신세계'의 흥행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는 만큼 배우들만 동의하면 우리는 그 궁금증을 속편에서 해소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 그 답이 정 궁금한 분들은 주위 사람들을 설득해서 '신세계'의 흥행 스코어를 좀 더 올려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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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라는 제목만 듣고 벤 애플렉이 신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려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특수효과의 거장 래리 해리하우젠의 [아르고 황금 대탐험(Jason and the Argonauts)]의 리메이크 쯤 되는 영화가 아닐까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영화는 매우 건조한 느낌의 첩보(?) 영화였고, 사실 아르고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보가 들어오는데, 약간 황당무계한 이 영화의 내용이 모두 실화라는 겁니다.

 

지난 연말에는 개봉하자마자 밤 12시대 외에는 개봉관이 없는 상태로 2~3주만에 사라지는 바람에 [아르고]는 자칫하면 전설 속의(?) 영화가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아르고]가 각종 영화상의 주요 후보로 떠오르면서 다시 이 영화를 볼 방법이 생기더군요.

 

 

 

1979년, 이란 혁명의 뒤끝에서 축출된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이란 내부에서는 팔레비를 내놓으라는 국민들의 분노가 솟구치고, 급기야는 미 대사관이 점거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그대로 인질 상태로 억류됩니다.

 

하지만 정작 대사관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대사관이 점거되기 직전 도망친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문제가 됩니다. 대사관 안에 억류된 사람들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이란 정부의 관리 아래 있는 만큼 이란의 원리주의 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건드릴 수 없지만, 대사관 밖의 사람들은 이란 민간인들에게 발견되는 즉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인 것이죠.

 

일단 그 6명이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대사관 안의 사람들보다 이들을 우선적으로 탈출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집니다. 문제는 방법이죠. 이미 서구 백인들은 거의 모두 이란을 떠나 있는 상황. CIA는 이란으로부터 사람을 빼내 온 전문가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을 불러들입니다.

 

 

 

 

'아르고'는 실화를 근거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건의 궤적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을 지 알고 있다는 것이죠. 네. 1980년 1월 29일, 토니 멘데스는 이 6명을 성공적으로 탈출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킬 것인가' 입니다.

 

 

이런 부분은 실제 사건, 혹은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가장 먼저 봉착하는 한계입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몇몇 영화들은 실제 역사에서 한사코 벗어나려 하고(그래서 늘 '영화와 실제는 별개'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하죠), 가끔 유별난 영화들은 아예 역사 자체를 무시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퀜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입니다. 이 영화는 아예 죽어선 안 될 유명 인물을 죽여 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릅니다. 아예 역사를 바꿔 버리겠다는 심사죠.

 

(물론 타란티노나 되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라는 식의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벤 애플렉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또 절묘한 편집을 통해, 유명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관객이 억류자들의 운명을 걱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감독 벤 애플렉'의 놀라운 역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시 이란의 원리주의 정권을 악의 상징으로 규정해버리거나, CIA를 정의의 사도들로 묘사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칭찬할 만 합니다. 애당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는 내용을 깔아 놓고 시작하죠.

 

거대한 폭발이나 대단한 볼거리 보다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움직임, 조금씩 변화해 가는 사람들, 그리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디테일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아르고'는 참 훌륭한 스릴러의 전범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화면에서 3분에 하나씩 뭔가 터져 주지 않으면 잠이 들어 버리는 분들에겐 중간에 잠들어 깨어 보니 끝나 있는 영화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자잘한 얘깃거리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국내에서도 꽤 크게 보도됐더군요. (왼쪽 위 사진은 다른 기사의 사진입니다. 혼동 없으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도 다뤄졌듯, 이때까지 이 탈출은 철저하게 캐나다 정부의 공작으로만 발표됐습니다. 대사관에 억류돼 있던 나머지 인질들의 안전 때문이죠.

 

 

 

실제 제작됐던 포스터 'ARGO'. 아래의 영화 속 포스터와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아래와 같은 포스터도 실제로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CIA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영화처럼' 매끄러웠던 건 아니죠.

 

 

병력을 동원해 대사관 인질들을 구조해 보려던 시도는 이렇게 헬기 추락 사고와 함게 비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SEAL 대원들이 사진처럼 희생됐죠. 척 노리스 주연 '델타 포스'는 이 실패에 대한 정신 승리의 의미를 갖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왜 등장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영화 같은 실제 사건.

 

 

그러니까 'ARGO' 작전의 마지막에 실제 탈출자들이 탑승한 비행기의 이름이 'ARGAU'였다는 것인데, 참 희한하군요.

 

 

 

그리고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과 상당한 싱크로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된 것이 분명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은 그럴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실제 토니 멘데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실 벤 애플렉 같이 생긴 요원은 상당히 써먹기 불편하겠죠. 어디 가나 눈길을 끌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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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우습게 아는 분들은 "10%? 10% 짜리 프로는 지상파에 널렸어"라고 말하지만 지상파에서의 5%와 비 지상파 채널에서의 10%는 참여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 어지간해서 지상파 3사, 4개 채널의 테두리를 벗어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만치 '끙'하는 작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채널 번호도 잘 모릅니다. 대개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하면 그냥 시청하는 식의 패턴이죠.

 

그런 상황에서 10%라는 건 엄청나게 목적성이 강한 시청자의 수가 만만찮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채널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 가서 본 채널이라는 얘기죠. 매일 신도림역을 지나가는 5만명이 '신도림역'에 부여하는 가치와, 단풍철에 설악산을 찾은 5만명이 '설악산'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JTBC에서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가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도 뜨겁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우수성이 의심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비교해 볼 때, '무자식 상팔자'는 유난히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문득,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김수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2,30년 전부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무자식 상팔자'의 등장인물 가운데 준기(이도영)-수미(손나은) 커플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학습된 가족 판타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리얼하지 않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처절한 격전 장면에 대한 평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과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까. 관객 중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가 봤거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 영화가 리얼한지 리얼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도, “리얼하다”는 표현을 입에 올린다.

 

분명 어색한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을 ‘리얼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2차대전 기록영화와 라이프 사진집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오마하 비치라는 격전지의 이름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이 가짜 리얼함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히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부모 자식간의 예의에 충실한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이 등장한다. 3대의 한집 거주는 필수. 그런데 이런 대가족은 사실 50대 이하의 시청자들 중 절대 다수에겐 판타지다. 한국 사회는 4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이미 핵가족화를 시작했다. 20년 전엔 이미 조손(祖孫)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 상팔자’ 속의 가족 관계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호평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이 향수는 허구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존재한 적도 없는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시나리오 마스터’라고 불리는 미국 USC의 로버트 맥키 교수가 한 말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를 가정하고, 잘 만들어진 서사가 읽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력있게 묘사했다.

 

“읽어가는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나는 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형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표현하지만 관객 모두는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가장 적절한 예로 떠오른다. ‘가짜 리얼리티’의 원천은 치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공감가는 인물 설정과 전개다.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남과 맏며느리의 대화에서, 다른 누군가는 막내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갈등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맏손녀와 엄마의 말다툼에서 자신이나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더 있다. 우리가 이미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 보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속의 어떤 대사는 30년 전 어느 드라마 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30여년 전에 시청률 50%~70%를 오갔던 그녀의 드라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 규범의 영향을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매트릭스‘ 속 아키텍트처럼) 우리의 삶의 일부를 그려낸 셈이다. 그런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언젠가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 같은’ 향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극중 상황. 스물다섯 나이에 학력은 고졸,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준기는 어느날 같은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고생 수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미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결손가정 출신의 '사실상' 가출 여고생입니다. 커피숍 알바로 근근이 고시원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죠. 하지만 천부적인 붙임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준기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수미에 대한 동정이 그냥 동정이 아님을 알아차린 준기는 아직 미성년인 수미와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당연한 어른들의 반대. 하지만 수미를 직접 만난 아버지-할아버지의 순으로 수미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결국 '3년간 연애 인턴 기간(?)'을 두고 준기와 수미의 관계가 반 허락을 받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입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아직 만 18세도 안 된 여고생과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모가 있을 리 없죠.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분위기에서 그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설 젊은이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배경은 철저한 판타지입니다. 과연 요즘 10대 여고생들 가운데 수미 같은 말투와 생각을 보여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미는 요즘의 '5,60대 어른들이 바라는 여고생'의 형상화죠. 혹은 70년대 쯤 존재했을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립의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옮겨 온 모습입니다.

 

 

 

(문득 1976년작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의 실제 나이 16세 임예진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언젠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쾌활하고 똘똘한 소녀 캐릭터죠. 사실상 '무자식 상팔자'의 수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미와 준기의 관계를 허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이순재)인데, 이 할아버지의 허락을 위해선 김수현 작가의 치밀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기의 누나인 소영(엄지원)이 미혼모가 됐을 때 가족들은 여자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운신하기 좋으니 태어난 아기를 '준기가 어디서 사고 쳐 낳아 들어온 아기'로 포장하자는 꾀를 냅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연한 기회에 그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소영의 눈물 앞에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섭니다. 그 앞에 서 있던 것이 바로 준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준기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문 밖으로 나가죠.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짓은 '그러니까 네가 누나의 곤란함을 알고, 밖에서 아이를 낳아 들어온 칠칠치 못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던 거구나. 착한 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너희 애비와 삼촌들은 정말 죽일 놈이지만 너는 정말 가족을 위할 줄 아는 놈이구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죠.

 

그 뒤에도 온 가족은 '평소 밖에서 병든 강아지 하나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던' 준기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준기는 3남매의 막내. 맏이 소영은 판사에 둘째 성기(하석진)는 의사인데 비해 변변찮은 스펙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함' 때문에 할아버지가 막내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각별한 것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며 상황 따지지 않고' 준기가 데려온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우리가 먹고 살만 하니 불쌍한 아이(수미-손나은) 하나 정도 품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있는 사람이 더 한'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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