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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서른 아홉. 만약 누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며 돈 1000만원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1월6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비와 함께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9'라는 숫자는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 나이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핵심입니다.

 

과연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정말 마흔이 되면, 그때부터의 인생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까요? 서른 아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까요? 예전만큼 '40'이란 숫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여전히 그 나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그 나이를 맞기 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준비 비용이야'라면서 누군가 1000만원을 준다면, 그리고 가족이나 남편이나 애인이나 아이들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1. '우결수'에서 '우사수'까지. JTBC 미니시리즈의 진화

 

'우사수'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말, 줄인 제목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우사수'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연초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줄여서 '우결수')라는 드라마를 방송해 꽤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미숙이 극성스런 엄마로, 이미숙의 딸로 정소민이, 정소민과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로 성준이 출연했던 드라마입니다.

 

여교사에 예쁜 얼굴로 경쟁력을 갖춘 신붓감인 정소민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남친 성준과 결혼하려 하지만, '인생에 한번 하는 결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친정 엄마의 소신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 서슬에 보자 보자 하던 성준의 엄마 선우은숙이 발끈, 결혼은 산으로 가고 두 사람은 거의 헤어질 위기에 놓이죠.

 

결혼을 앞둔 커플의 심리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위 '결혼 한탕주의', 그리고 이들 커플을 둘러싼 다른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만들기가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연출을 맡았고 당시 무명에 가깝던 하명희 작가는 현재 방송중인 SBS TV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한마디'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 김윤철 PD가 새롭게 만드는 드라마가 1월6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와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로 붙였습니다.

 

 

 

 

 

2. '우사수'는 어떤 드라마?

 

'우결수'가 남녀간의 연애 못잖게 여자들끼리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는 걸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우사수'는 그렇게 사이 좋게 지내던 세 여자친구가 서른 아홉 나이를 맞아 각각 이혼녀, 유부녀, 노처녀로 '상태'가 갈린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셋 다 그리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애 딸린 이혼녀는 본래 시나리오 작가지만 생활을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전남편이 재결합하자는 줄 착각했다가 김칫국을 마시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유부녀는 씀씀이에 모자람이 없지만 엄한 시어머니와 다소 마마보이인 남편 때문에 남몰래 폭음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처녀. 브리짓 존스처럼 뚱뚱하지도 않고, 스타일도 좋고 수입도 좋은 소위 골드미스지만,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서른 아홉인 세 여자의 "대체 어디서부터 인생이 꼬인 걸까..."라는 넊두리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까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유진 최정윤 김유미가 각각 이혼녀, 유부녀, 골드미스로 나오고 엄태웅 김성수 박민우가 여자들의 서른아홉을 흔들어 놓을 남자들로 등장합니다.

 

 

 

 

 

3. 39 드림 프로젝트

 

서른 아홉. 남자든 여자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젊어 보이고, 아무리 건강해도 마흔이 넘으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할 것을 권해 옵니다. 특히 암 검사나 위/대장의 내시경 검사가 권장됩니다.

 

이런 나이를 앞두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과연 그때 그 판단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앞으로도 내 인생은 지금과 거의 차이 없이 흘러가게 될까.

 

'우사수' 방송에 즈음해 JTBC는 여자들의 인생에서 서른 아홉이란 나이가 갖는 별스러운 의미에 주목해 한가지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바로 '39 드림 프로젝트' 라는 이벤트입니다.

 

참가자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 입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도 있고, 넘은 분, 아직 이 나이를 맞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은, 직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는 이야기를 써 주시면 됩니다. 이미 서른 아홉을 지나 온 분들은, '그때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내용을 적어 주십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때 못한 그 일'을 다시 저질러 보시는 겁니다. 아직 서른 아홉을 맞지 않은, 상대적으로 행운아인 분들은 '내가 지금 서른 아홉'이라고 가정하고, 그 전에 꼭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은 일을 적어 주십쇼.

 

 

 

 

단 저희가 선정되신 한 분에게 지원해 드릴 수 있는 돈은 1000만원 입니다. 상당히 큰 돈이지만 아주 많은 돈은 아닙니다. 이 돈으로 저희는 참가하신 여러분께 카페를 차려 드리거나, 좋은 별장을 사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달 정도 인도 전역을 여행하거나, 아프리카에 가서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바라 보며 아침 커피를 드시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스키 강습을 받게 해 드릴 수도, 옥스포드에서 영어 연수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태 괜찮은 중고차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자전거를 살 수도 있고,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볼 수도 있습니다. 크게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드실 수 있지만 '버킷 리스트'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위안이라면 이 '39 드림 프로젝트'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의 재충전 기회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즉시 아래 링크를 눌러 JTBC 홈페이지를 노크하시면 됩니다.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275&menu_id=PM10021612&cloc=jtbc|top|top

 

그리고 '우사수'에 나오는 세 여자의 운명에도 계속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P.S. 물론 그 1000만원을 지원받은 분이 그 돈을 어떻게 쓰셨는지는 많은 분들의 관심사가 될 듯 합니다. 어떻게 그 돈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돈을 쓴 뒤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저희가 어떻게든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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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발적인 관객 동원으로 연말 최고의 화제작이 된 영화 '변호인'을 보고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변호인'은 매우 뜨거운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뜨거움이 득이 되는 경우도, 해가 되는 경우도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서 공개된 뒤에는 그 뜨거움이 영화의 완성도에 앞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변호인'은 매우 상업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거창한 의무감으로 이 영화를 추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송강호의 매력이 살아 있는, 잘 만들어진 휴먼 코미디 영화로 충분히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감동으로 소름이 끼치는 영웅담을 기대하신다면, 다른 영화를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줄거리.

 

상고 출신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돈을 벌기 위해' 판사직을 때려치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합니다. 학벌과 집안 같은 배경이 없던 송우석은 변호사들이 마다하던 부동산 등기 등을 취급하며 승승장구해 이름을 알립니다.

 

세무 변호사로 출세일로를 걷던 우석은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국밥집 아주머니(김영애)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에 도움을 주다 진우의 몸에 있는 고문의 흔적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날부터 그는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용공 조작 사건의 변호인을 맡아 인생의 전기를 마련합니다.

 

 

 

 

영화의 전반은 매우 잔잔한 영웅담입니다. 자신의 표현대로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던 우석은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부와 명성을 획득한 이 사회의 성공 모델입니다. 당연히 기득권층이고, 사회의 혼란이 그에게 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자신의 안온한 삶을 버리고(극중 사무장 박동호 역을 맡은 오달수의 대사에도 나옵니다. "송변, 오늘부로 니 편안한 인생, 니가 포기한기다") 누가 봐도 손해뿐인 '민주 투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 '변호인'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진우의 고문과 수사라는 것의 실체를 알게 된 우석은 이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를 내뱉습니다.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의 기준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보편적 상식의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상식'의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소위 민주국가, 선진국이라고 불리고 싶은 나라라면 그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 이라는 게 분명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한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 사법 기관에 의해 부당한 처우를 받아선 안된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현행범도 아닌데 두들겨맞고 끌려가선 안 된다, 고문 등으로 자백을 강요받아선 안 된다...

 

그러니까 변호사 송우석은 어떤 사상이나 의식에 의해 이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최소한의 상식' 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죠. 그리고 이 부분에서 바로 영화 '변호인'은 많은 관객들 앞에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고문 경관 차동영(곽도원)입니다. 양우석 감독이 그러낸 차동영은 그저 출세가 목표이거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서가 아니라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는 확신범입니다. 한국 영화에 지금껏 등장했던 대부분의 2차원적 악역들과는 달리, 인물 설계가 입체적입니다. 일제하 고등계 형사였던 차동영의 아버지는 6.25때 - 어째서 피난을 못 갔는지 모르겠지만 - 인민군 혹은 좌익 세력에게 '학살'당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 결과 차동영은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적개심을 갖게 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의 대사인 "나같은 사람이 빨갱이를 청소해주고 있으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발뻗고 잘난체 하며 잘 살 수 있는 거야(죄송합니다. 재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격투중에도 국기강하식에 예의를 잊지 않는 차동영의 모습은 그의 내면에 있는 '나는 애국자'라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이런 형태의 애국자 캐릭터는 이제는 고전이 되어 가는 영화 '어 퓨 굿맨'의 잭 니콜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 보위'의 큰 목표를 위해서는 사소한 악은 눈 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지닌 인물이죠. 단순히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변호인'은 단순한 흑백 논리의 대립이 아닌, 좀 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적'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 안의 도덕적 원칙을 얼마나 배신해도 좋으냐 하는 주제를 다룬 영화는 적지 않습니다. 스필버그의 '뮌헨'을 비롯해 캐서린 비글로의 지난해 화제작 '제로 다크 서티'에 이르기까지, 테러와 싸우기 위해선 같은 악마가 되어도 좋으냐는 '상식'의 문제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변호인'은 그에 대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차동영에 대한 더 깊은 묘사는 없습니다.

 

고전 영화 '케인호의 반란'을 리메이크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1988년작 '케인 호의 반란'은 원작에서 그저 함장의 권력에 집착한 미치광이로만 묘사됐던 퀵 선장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변호인인 바니가 이런 말을 하죠. "그래도 우리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게 해 준건 퀵 선장 같은 사람이 독일과 싸워 준 덕분이야. 그래서 난 이 재판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 뭐 할 얘기는 많지만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영화 전편을 통해 가장 빛나는 인물은 당연히 송강호입니다. 속물에서 소신을 가진 인물로 거듭나는 변호사 송우석. 이 캐릭터가 빛을 발하는 것은 역시 송강호라는 명배우에 의해 그 인물이 구현됐기 때문이라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송우석의 변화' 그래프가 관객에게도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 양우석 감독의 솜씨일 것입니다.

 

그밖에 꼼꼼한 80년대 초반의 그림, '보통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뽑아먹는 오달수, 몇 장면 안 나오지만 존재감은 기대 이상인 이성민 등이 모두 탄탄한 그림을 그려냅니다. 결론적으로 '변호인'은 올해 한국 영화가 낳은 마지막 화제작으로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입니다.

 

 

 

 

다만 몇몇 부분의 완성도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일단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약간 어정쩡한 스탠스의 문제입니다. 이 영화는 첫 자막과 마지막 자막이 모순 관계라는 흥미로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어느 정도 픽션임'을 알리는 자막으로 시작하지만, 끝날 때에는 '실제 일어난 일을 재현한 장면'임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옵니다('부산 지역 변호사 142명 중...'으로 시작하는 자막 말입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 영화가 둘 중 어떤 노선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좀 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차도영을 증인석에 앉힌 송우석의 모습은 그때까지 지켜져 온 영화의 룰,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살린 실제 사회의 물리 법칙을 따른다'는 설정을 한방에 날려 버립니다. 갑자기 영화의 성격이 달라져 버린다고나 할까요. 옆 자리에 앉은 동료 변호사의 한마디는 관객의 심정을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그럼 *, ****** 라고 할 줄 알았나?"

 

호오가 엇갈리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렸습니다. 다만 이 장면에서, 변호사들 역을 맡은 단역배우들이 미숙한 연기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오점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득 "'살인의 추억'에서는 논바닥의 시체도 등으로 연기를 한다"는 과거의 표현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정치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참 안습입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하자면, 그 시절 대학가 운동권 세력 가운데에는 분명 '용공'의 선을 넘어 북한의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네. 당시의 시국 관련 사건으로 조사받거나 처벌받은 사람들이 모두 억울한 피해자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몇몇 사건의 경우 이 영화와 비슷한 불법적 고문과 폭행이 자행됐고, 그로 인해 억울하게 인생을 망가뜨린 피해자 꽤 많이 있었습니다. 이 선에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맴도는 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엔 절대 도달하지 못합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영화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려 30년도 넘은 옛날,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절에 상식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묘하게도 자꾸 이 영화가 어딘가 당금의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이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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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스마우그의 폐허]

 

'호빗:스마우그의 폐허'는 '호빗' 시리즈 2탄입니다. 일단 줄거리부터 시작합니다.

 

1편에서 간신히 오크들의 추격을 뿌리친 소린(리처드 아미티지)과 난쟁이들, 그리고 빌보(마틴 프리먼)는 목적지 외로운산으로 가기 위해 어두운 숲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시 위기에 빠지고, 숲속 요정들에게 구원을 받았다가 다시 요정들의 감옥에 갇혔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인간들이 사는 호수 마을, 에스가로스까지 가게 됩니다. 여전히 오크들은 이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호수 마을의 민중 지도자 바르드(루크 에반스)는 난쟁이들이 예레보르의 옛 성으로 가 보물을 노릴 경우 스마우그의 분노를 사 마을에 피해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마을 영주와 대다수 주민들은 난쟁이들이 찾은 보물을 나눠 가질 생각에 이들을 환영하며, 물자를 주어 외로운산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들은 당연히...성에서 보물의 산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용 스마우그를 만납니다.

 

호빗 1편, '호빗: 뜻밖의 여정'에 대한 내용은 이쪽:  http://fivecard.joins.com/1086

 

 

 

 

속편이 있는 영화들이 대부분 숫자로 불리는 데 비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연작들은 독자적인 제목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에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도 '제국의 역습'이나 '돌아온 제다이', '보이지 않는 위협' 같은 제목들이 꽤 인식되긴 했지만 그래도 압도적으로 '에피소드 1~6'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죠. 하지만 '두개의 탑'이나 '왕의 귀환'을 '반지2'나 '반지3'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그만치 각 에피소드의 독립성 면에서는 괄목할만한 업적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1편의 부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반지의 제왕' 첫편은 '반지원정대'라는 제목 대신 그냥 '반지의 제왕'이라고 불리고, '스타워즈'도 '에피소드4'는 '새로운 희망'이라는 제목 대신 그냥 '에피소드4'나 아예 '스타워즈'로 불리곤 합니다. 이것도 흥미로운 특징입니다.)

 

'호빗' 시리즈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1편의 부제가 '뜻밖의 여정'이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호빗'이거나 '호빗 1편' 정도로 통하고 있죠. 거기에 비하면 '스마우그의 폐허'는 꽤 알려진 제목이 될 듯 합니다만, 블록버스터 사상 이 영화만큼 독특한 2편도 아마 없을 듯 합니다. 이런 대작 영화 시리즈 가운데 이렇게 '야심이라곤 없는' 소박한 2편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흔히 3부작으로 알려진 수많은 영화 가운데, 처음부터 '이건 3부작이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영화는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부3'? '대부'나 '대부2'가 만들어질 때만 해도 계획에 없던 작품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미 3편이 넘어갔지만 '터미네이터'나 '인디애나 존스'도 마찬가지. 즉 이들 영화들은 모두 2편 째가 확실히 성공하지 않았다면 3편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작품들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확실히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었지만 이 역시도 2편째인 '두개의 탑'이 참혹하게 무너졌다면 3편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도 있었겠죠. 그런 만큼, '두개의 탑'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고, 장대한 클라이막스가 있습니다. 인간-요정 연합군과 오크 군대가 대규모로 격돌하는 헬름 협곡의 대전투는 로만 군대의 멋진 돌격과 함께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비록 실제 전투에서 가능한 양상과는 정 반대의 이상한 싸움이긴 하지만, 어쨌든 '두개의 탑'의 이 전투 신은 많은 사람들이 '왕의 귀환'에 나오는 미나스 티리스 수성전, 즉 펠레노르 평원의 대전투보다 더 좋아하는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두개의 탑'은 2편만 떼 놓아도 훌륭한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스마우그의 폐허'는 그만한 야심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것은 아주, 정말, 매우, 명백히 1편과 3편을 이어 주는 허리 기능 뿐입니다. 1편은 난쟁이들과 빌보가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고블린이나 오크들과 이번엔 어떤 액션을 펼치는지, 난쟁이들의 캐릭터는 어떤지, 간달프를 비롯한 1편 출연진들은 얼마나 변했는지(엄밀히 말하면 '옛날엔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미덕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나올 3편에선, 바르드와 인간들이 어떻게 스마우그와 싸우는지, 그리고 대규모로 집결한 고블린 및 오크 군대와 인간-요정-난쟁이 연합군이 어떻게 싸우는지가 화려한 볼거리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비해 2편엔 정말 들어간 재료가 별 게 없습니다.^^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새롭게 보여주는 거라곤 아르웬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엘프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과 인간 영웅 바르드의 등장, 그리고 이미 검증된 카드인 레골라스의 재등장 정도입니다. 액션으로도 나무통을 타고 가는 급류타기 놀이 정도?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힘을 준 부분은 성 안에서 잠자고 있던 거대한 용 스마우그(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목소리라고 미리 가르쳐주지 않으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목소리^^)의 등장이긴 합니다.

 

 

 

수많은 동화판 '호빗'의 삽화가들이 이런 모습으로 상상했던 스마우그를 '드디어' 공개하는 장면인 것이죠. 하지만 이미 스필버그의 '주라기 공원'에서 심형래의 '용가리'까지 수많은 용과 괴물들을 보아 온 관객들에게 이 스마우그의 모습이 - 아, 물론 대단히 멋지긴 하지만 - 기절할 정도로 놀라운 장면일 리는 없겠죠.

 

 

 

아마도 이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이 장면, 그러니까 거대한 보물의 산 속에서 잠자고 있던 스마우그가 스르르 눈을 뜨고 그 사악함과 강대함을 단번에 드러내는 장면일 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지의 제왕' 연작을 5편째 보고 있는 관객이 이 정도로 만족할 리는 당연히 없고, 피터 잭슨과 그 휘하의 선수들 역시 그럴 리는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상황입니다. 만약 이 2편만으로 독립된 만족감을 주려 했다면, 2편은 스마우그가 호수 마을로 날아가서 인간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그 다음에 ******** 되는 (스포일러 생략) 내용까지를 커버했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피터 잭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스마우그의 공격과 마지막 대결전을 3편에 모두 몰아넣었습니다. 이건 정말 영화 사상 보기 힘든 자신감입니다. 그런 볼거리 없이도 관객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다는, 그리고 '호빗'을 봤다고 얘기하려면 1,2,3편을 다 봐야 한다는, 세 편 중에서 재미있는 두 편만 골라 볼 수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인 것이죠. 이런 자신감을 갖고 2편을 만든 감독은 아마도 피터 잭슨 이전엔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작 일정이 촉박해서 도저히 여기까지밖에 만들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면 대개의 영화들은 차라리 개봉 시기를 늦춥니다. 그러지 않고 2편은 그냥 '2013년 크리스마스'에 풀겠다는 결정은 어지간해선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죠.)

 

 

 

 

아, 물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스마우그의 폐허'는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피터 잭슨과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그가 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봐, 어차피 끝까지 다 볼 거잖아. 그러니까 2편 하나가 재미있네 재미없네, 실망이네 아니네 하는 투정은 집어 치워. 그리고 2편이 헐거워 진 대신, 3편에서 다 보충해 주겠어. 알았지? 삐지지 마."

 

 

 

P.S.1. 누가 봐도 춥고, 습기차고, 정말 살기 힘들 것 같은 북유럽 풍의 호수마을. 이 미술팀은 정말 최곱니다.

 

P.S.2. 이번엔 HFR로 보지 않고 그냥 2D로 봤기 때문에 지난번 '호빗: 뜻밖의 여정' 때와 같은 이질감 - 야외 신인데도 세트처럼 보이는 이상한 비현실감 - 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HFR로 보신 분들은 그 사이 좀 적응이 되셨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이상했는지 궁금합니다.

 

P.S.3. '호빗'과 사우론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글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모를 관객이 과연 있을까요. '호빗' 때 이미 사우론의 재림이 노출됐다면, 간달프와 엘론드, 갈라드리엘 같은 지도자들이 그 긴 세월 동안 아무런 대비 없이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다는 게 더욱 한심해지지 말입니다.

 

P.S.4. 강대한 힘을 가진 스마우그와 사우론은 어떤 관계일까요? 같은 편? 서로 인정하는 사이? ^^

 

 

 

P.S.5. 레골라스를 보니 더욱 아라곤과 아르웬이 그리워집니다. 김리는 뭐, 이제 구별도 잘 안되고... 킬리와 타우리엘의 관계를 보면 역시 킬리는 드워프계의 허경환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이만큼 생겼으면 키는 좀 작아도 되잖아!"^^

 

마지막 사진은 스포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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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아내'는 금기 중의 금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경의 10계명 중 아홉번째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네 이웃의 아내'라는 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른바 '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그 '남의 아내'가 곧 '나의 아내'라는 점입니다. 아파트에서 한 복도와 안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는 앞집. 그 앞집에 마주 보고 사는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남편과 아내를 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뭔 막장 불륜 스토리냐 싶기도 하고, 스티븐 킹의 스와핑 단편 같기도 한 얘기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단초를 짚어간다'는 것, 혹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의 단면을 보여주자'는 것이라면, '네 이웃의 아내'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송하(염정아)는 광고회사의 꽤 유능한 팀장. 종합병원 의사인 남편 선규(김유석)와 겉으로 보기에는 주위의 부러음을 살 만한 전문직 부부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꾸역꾸역 살고 있는 커플. 신선한 자극도 이미 부부생활에선 사라진지 오래. 아직 어린 아들과 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대기업 부장인 상식(정준호)는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철두철미하고 책임 추궁에 강한 남편.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아온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상식에게 늘 반쯤 기가 죽어 사는 아내 경주(신은경). 남편 앞에선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정도로 순종적이지만 사실은 남편의 밥그릇에 침을 뱉는(위 사진) 비틀린 면을 보여주는 여자입니다.

 

주위에서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부부들의 모습이지만 이들 사이에선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일에서의 성공을 향해 악착같이 버티던 송하에게도 어느새 직장이 시들해지고, 병원의 수익 창출에 영 비협조적인 선규는 경영진의 눈밖에 나 위기를 맞습니다.

 

 

 

 

상식 역시 어느 남자에게나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를 슬슬 느끼고 있고, 경주는 과연 두 딸에게 자신이 제대로 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별 일 없던 것 같은 안온한 부부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계기는 평범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망 사건. 그것도 남편이 가정불화 끝에 아내를 폭행하고, 달아나던 아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사건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라고 부르기엔 약간의 어폐가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살인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건 이후 송하는 "인생이란, 부부란 뭘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앞집이 비면서 상식과 경주가 앞집으로 이사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아울러 이 사건을 통해 경주는 상식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를 더 낮춰 잡게 되죠.

 

 

 

 

그러는 사이 송하와 상식이 광고회사와 광고주 관계로 만나게 되고, 상식과 경주는 앞집 사람으로 얼굴을 마주칩니다. 그러면서 슬슬 이들의 잠들어 있던 과거가 눈을 뜨고, 비밀스러운 관계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주변에선 또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를 말하고 있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특히 아파트의 두 주부들입니다. 이름은 따로 없고, 주부1, 주부2라고 표현해야 할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비중은 제법 큽니다. 바로 서이숙-김부선 콤비죠.

 

 

 

 

영자 역의 김부선은 왕년의 아매부인으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서이숙은 많은 분들께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대표적인 배우일 겁니다. 많은 드라마에 상궁이나 동네 아줌마 역 등으로 나오셨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는 최고의 적역을 맡았습니다.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밖에선 아무도 몰라!" 라는 소름끼치는 대사를 말하는.

 

 

 

 

또 김부선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이세창 역시 할 얘깃거리가 많아 보입니다. 한참 연상인 아내와 조용히 잘 살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은 물밑에 숨은 바람의 제왕.

 

그밖에 송하의 직장 동료인 섹시한 유부녀 지영(윤지민)과 직장 내 넘버1 킹카인 정이사(양진우) 등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궁금한 캐릭터들이죠.

 

 

 

 

어쨌든 '네 이웃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출발했으니,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속시원히 꿰뚫는 이야기가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또 불륜 드라마냐'고 보지도 않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몸서리치게 리얼한 묘사에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는 '아내의 자격' 처럼 현실보다 더 리얼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대신 이 드라마에는 미스테리가 있고, 코미디가 있습니다. 10년 넘게 산 부부들, 더 이상 할 말 못할 말이 따로 없는 부부들의 속내가 여지없이 파헤쳐집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보는 드라마의 늘 보는 그런 결론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드라마가 30여편씩 방송되는 드라마 공화국, 하지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드라마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부부의 진실'에 도달할까요?

 

 

 

 

P.S. '네 이웃의 아내' 홈페이지에서는 현재 드라마 리뷰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리뷰 하나 잘 쓰면 상품이 후두둑. 상품 중에는 명품 프라다 백도 들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드라마 보고, 한 살림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260&menu_id=PM10020468&bbs_code=BB100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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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사회를 거치면서 예견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으로 시작하는 초 호화 캐스팅과 계유정난이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 그리고 과연 '관상이란 과연 운명을 지배하는 것인가'라는 흡인력 있는 주제가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결과입니다.

 

좋은 배우들의 열연은 '관상'의 가창 큰 힘입니다. 영화 초반은 송강호와 조정석의 착착 감기는 유머에 김혜수의 존재감이 영화를 풀어 갑니다. 후반은 잔혹무도한 수양대군(이 영화에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역을 맡은 이정재의 오만방자함이 힘을 발휘하죠. 이 배우들 보는 맛 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네. '관상'이란 영화는 대체 '관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줄거리.

 

보는 즉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는 관상의 대가 내경(송강호)은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함께 어느 바닷가 시골에 묻혀 살다 도성의 유명한 기생 행수 연홍(김혜수)의 방문을 받습니다. 관상의 사업적 가치를 알고 있던 연홍이 내경의 소문을 듣고 한양으로 불러 올리려 한 것입니다.

 

비록 관상쟁이가 됐지만 내경과 진형은 모두 역모죄로 처단된 양반의 자손. 아버지가 관상 보는 것을 싫어하는 진형은 어쨌든 선비답게 글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역적의 자손이 출세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아는 내경은 이런 진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곡절 끝에 내경과 팽헌은 도성으로 향하고 진형은 절로 들어가 공부를 계속합니다.

 

도성에서 내경과 팽헌이 마주한 것은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등극한 직후의 천하.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이정재)과, 이에 맞서 문종-단종 부자를 보호하려는 김종서(백윤식)의 편으로 세상이 나뉘고 있는 사이 내경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집안을 다시 일으켜 보려 합니다. (여기까지)

 

 

'관상'의 초반은 매우 활기차게 시작합니다. 15세기판 납뜩이 팽헌으로 변신한 조정석은 끊임없이 촉새 짓을 하고, 가끔씩 이를 눌러 주면서 오히려 웃음을 증폭시키는 송강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을 쉽게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특히 내경이 김종서를 만난 뒤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미리 놓인 철길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을 줍니다. 역사의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모든 관객이 알고 있지만, 영화 후반만 놓고 보면 내경은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져 버립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내경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줄거리를 건드리기 때문에 이 정도만. 궁금하신 분들은 저 아래쪽을 읽어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살려내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입니다.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이 다 아는 명배우들은 장면 장면마다 매력적인 커트를 내놓더군요. 특히 후반부, 한명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신은 배우 김의성의 소름끼치는 표정과 함께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문득 왕년 조니 뎁 주연 영화 '프롬 헬'에서 이안 홈의 눈동자 색이 바뀌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밖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들은 충분합니다. 치밀한 고증보다는 상상력의 소산이겠지만 조선시대 기방의 화려하고 방자한 모습이나, 황토빛이 도는 유려한 영상, 수양대군과 수하들의 공격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야외 신 등에서의 미술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정도면 추석 연휴를 앞둔 관객들에게 훌륭한 볼거리가 될 듯 합니다. 특히나 조정석, 이종석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듯 합니다.

 

P.S. 개인적으로 영화 첫 부분에서 '아마데우스'가 떠올랐습니다.^^

 

P.S.2. 충분히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 영화 속 송강호의 얼굴은 참 윤두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자, 기본적으로 여기까지.

 

더 아래로 내려가시는 분들은 줄거리에 노출되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2부 시작.

 

 

 

 

 

 

영화 '관상'은 누구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전제는 '관상이라는 것이 있고, 그를 통해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관상'은 흘러가던 도중 갑자기 변화구를 시도합니다. 김종서를 만나고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기 전까지 내경은 백발백중의 귀신같은 실력을 발휘합니다. 처음 만난 연홍의 속내를 한눈에 꿰뚫고, 관상만 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고, 탐관오리를 적발해 내는 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한명회의 경우엔 죽은 다음의 일까지 예측해 냅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떨어져 버립니다. 이를테면 김종서가 호랑이의 길상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아내지만, 그가 비명횡사하고 멸문을 당할 팔자라는 것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수양대군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성품이라는 것은 읽어 내지만 그가 왕위에 오를 팔자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정말 관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면 내경은 문종이 곧 죽을 것이라는 점, 단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점, 또 김종서의 측근들은 모두 일찍 죽고 집안이 몰락할 것이라는 점, 반면 수양대군의 측근들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라는 점 등을 맞춰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 죽은 여자의 경우처럼 '무병장수할 관상이라도 상대를 잘못 만나면 비명횡사 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지만, 그럼 양쪽 진영의 사람들이 함께 있어 길한 관상인지 흉한 관상인지 정도는 짚어 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내경은 "나는 파도만 바라보고 있었지, 바람을 보지 못했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라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파도를 보고 바람을 읽습니다. 파도가 동쪽에서 치면 동풍이 불고 있다는 뜻이죠. 수양대군의 측근 신숙주가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이고, 김종서의 측근 황보인이 비명횡사할 팔자라면(물론 영화 속 내경은 이 자체를 읽어내지 못하지만) 어느 쪽이 승자가 될 운명인지는 너무 당연하게 읽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죠.

 

내경이 생명의 위협을 겪은 뒤에도 계속 관상쟁이 노릇을 하는 것은 첫째, 김종서의 부름이 있은 뒤 역적의 후손으로 망해버린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둘째는 이름을 바꾸고 벼슬길에 들어선 아들 진형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비록 내경이 문종과 단종에게 충신 역할을 하지만 이건 당대의 세도가인 김종서 곁에서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일 뿐, 그가 자진해서 문종이나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설정상 선량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과 아들 진형의 앞날을 위해' 편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까지 '김종서가 죽으면 우리 다 죽는다'며 수양대군의 김종서 살해 현장에서도 끝까지 김종서를 보호하려 합니다. 만약 그가 '누가 역사의 승자가 될 지'를 관상을 통해 읽어냈더라면 당연히 수양대군 쪽으로 편을 바꿨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경이 무능한 관상쟁이로 바뀌면서 영화는 점점 무거워지고 갈 길이 뻔해집니다. 내경이 더 이상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하게 된 이상, 앞으로 보여질 내용들은 내경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한 저주가 실현되는 과정 뿐입니다. (영화 초반, 내경은 진형에게 "벼슬길에 나가면 화를 당할 관상"이라고 했고, 처남 팽헌에게는 "성질을 못 이기면 신세 망칠 관상"라고 했죠.)

 

이런 주장에 대해 혹시 어떤 분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영화 '관상'이 생각한 관상의 힘은 한 사람의 '능력치와 성격'을 읽어 내는 것이지 '운명이나 미래'를 읽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만한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관상의 힘'을 제한된 것으로 설정해 놓고 들어갔다고 하면 내경의 능력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야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애당초 내경에게 역사를 바꿀 어떤 기회를 기대하는 것 조차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는 정도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김종서가 신임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일들일 뿐입니다. 아울러 문종 앞에 선 내경이 "그 인물과 행동거지를 함께 보면 과거의 일 뿐만 아니라 미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이야기가 매우 공허해지는 것이죠.

 

내경에게 진정 미래를 꿰뚫는 능력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보여주는 극적 장치를 좀 더 정교하게 보여주었더라면, 혹은 운명의 힘을 직감하면서도 그를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할만한 동기를 내경에게 부여했더라면, '관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3. 이 영화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은 수양대군의 대사  "하지만 나는 이미 왕인데, 이제 와서 내가 왕이 될 관상이라고 하면 그걸 맞춘다고 할 수 있나?" 입니다.  이 세상의 가짜 예언자들과 아부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관상이란게 무슨 쓸모가 있어?"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양대군은 왜 내경에게 계속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물어 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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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 여기저기서 '힐링 드라마' '힐링 예능'이 등장한지 오랩니다. 하지만 진짜 '힐링 드라마'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JTBC 새 주말드라마 '맏이'. 어떤 드라마일까요?

 

타이틀 사진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하실 만 합니다. 어린 다섯 남매가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죠. 제목이 '맏이'인 것은 그 성장을 위해 맏언니가 엄마 노릇을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한다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 '맏이'가 14일 처음 방송됐습니다. 그리고 방송 첫날부터 반응이 호평 일색입니다. 한마디로 무공해 청정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누가 누군지 구별을 해야 드라마 보는 데 도움이 될 듯. 드라마의 중심인 오남매부터 시작합니다.

 

아역 캐스팅은 단연 최강입니다. 얼굴만 봐도 캐릭터가 절로 느껴집니다.

 

 

다섯 남매의 성격까지 뚜렷합니다. 드라마의 핵심인 맏이답게 똑똑하면서도 심지가 굳고 갖은 고생 속에서도 밝고 바른 마음씨를 간직하는 맏딸 영선. 아역 유해정, 어른 역은 윤정희가 연기합니다.

 

둘째 영란은 집안 살림이야 어쨌든 예쁜게 좋고 비싼게 좋은 허영 덩어리. 어느 집안에나 희한하게 둘째 중에 이런 성격이 많은 듯 합니다. 예쁘게 자라지만 그 예쁜 얼굴 때문에 결국 문제를 만듭니다. 아역 박하영, 어른은 조이진.

 

 

 

'난 공부가 제일 싫어요'라고 말하는 세째 영두. 아들이지만 똑똑한 구석도 없고, 야무진 구석도 없는 그런 아이. 아역은 김윤섭, 어른은 강의식. 그저 착한 것 하나 외에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네째 영숙은 말 없이 소심하고,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에 몽유병까지 생기는 약한 아이입니다. 언니의 도움이 유난히 필요한 동생이죠. 아역 한서진. 어른은 미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막내는 아직 아기 상태에서 못 벗어난 영재. 김예찬 군이 연기합니다. 10여년 뒤라고 해도 아직 아역 상태일 듯.

 

 

 

 

이 다섯 아이들이 아빠(윤동환)와 엄마(문정희) 밑에서 가난하지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고 어쩔 수 없이 고모를 찾아가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모도 소실 살이에 눈치 보며 사는 처지라는 것. 그 고모네 환경입니다.

 

 

 

고모 은순(진희경)은 동네 갑부 이상남(김병세)의 첩 살이를 하면서, 둘 사이에 아들 종복이를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그 이상남의 본처가 이실(장미희). 둘 사이에는 인호(아역 박재무, 어른 미정)와 지숙(아역 노정의, 어른 오윤아) 남매가 있지만 이실은 누구에게나 냉랭하기만 합니다. 워낙 상남과의 결혼이 원치 않은 결혼이었던데다 결핵이 깊어지며 누구 하나 곁에 가까이 두려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실을 어려서부터 짝사랑했던 창래아재(이종원)만이 마음을 기울여 이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정도. 딸인 지숙까지도 '차라리 돌아가시는게 낫겠다'는 속내를 비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 은순의 조카 오남매가 들이닥치면 반가워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겠죠. 은순 역시 떠맡을 처지가 아니지만 여기 말고는 기댈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영선이 친자식들조차 열지 못한 이실의 차가운 마음을 열게 되는 스토리.

 

 

 

 

그리고 한 동네에서 성장하는 영선의 소울메이트 순택네가 있습니다.

 

순택이네는 그래도 양반 끄트머리를 자처하는 집안. 어머니 반촌댁은 일자무식에 떡장수지만 그래도 아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전형적인 어머니입니다.

 

그 아들인 순택(아역 채상우, 어른 재희)은 도내 1등을 차지하는 수재. 부잣집 아들인 인호와 학교에서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입니다. 당연히 부모의 온갖 기대를 품에 안은 '개천에서 난 용' 캐릭터죠.

 

그 동생인 순금(아역 박지원, 어른 미정)은 오빠와는 달리 공부는 전혀 소질이 없지만 마음만은 하늘만큼 넓은 소녀. 눈치도 없고 남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공해 캐릭터입니다. 특히나 아역 박지원 양의 캐스팅은 정말 신의 한수. 단 1회만 봤을 뿐인데도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맏이'의 초반은 이 아역들의 눈부신 활약이 신화를 만들어 낼 것 같은 예감.

 

부모 없이 오남매만 남아 갖은 고생 끝에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고, 어른이 되어서도 돌봐줄 사람 없어 또 고생하고, 그중에 또 철없이 맏언니 속 썩이는 캐릭터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만 들으면 참 불쌍하고 눈물나고 답답한 이야기일 듯 하지만, 대한민국 원로 작가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정수 작가는 그리 뻔한 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듯 한 구석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어른들을 웃깁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찡하게 와 닿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전체적인 드라마의 색채는 밝은 녹색입니다.

 

 

 

 

저 또한 농촌 생활 한번 해 본적 없지만,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래, 저 시절엔 다들 저랬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할 드라마죠.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저 시절엔 저랬나' 싶은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피가 조금 다를 뿐,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살이의 모습은 똑같다고나 할까요.

 

또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듣다 보면 이건 금세 우리 삼촌, 우리 고모, 우리 누이의 모습이라고 공감할 만한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 인물들만 20여명이 되는 대형 드라마인데도 인물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가 모두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다는 데서 대 작가의 관록이 느껴집니다.

 

저 불쌍한 아이들이 언제 다 자라서 사람 구실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드라마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눈길을 떼기 힘들게 하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는 참 오랜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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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는 날선 면돗날 같은 영화입니다.

 

세상을 향한 냉소가 넘쳐나는 시대. 세상을 향한 분노와 좌절이 바뀐 것이 냉소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돌아 보면 비뚤어진 비아냥만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아직 분노 위에 서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약간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 정도로 대중이 느끼는 분노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장점은, 아무래도 촘촘한 플롯이라고 해야 할 듯.

 

 

 

 

어느날 오전 9시를 넘긴 시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윤영화(하정우)는 얼마 전 모종의 비리 사건으로 인해 마감 뉴스 앵커 자리에서 밀려난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청취자와의 전화 연결 코너에 엉뚱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폭탄을 갖고 있는데, 자꾸 이러면 터뜨리겠다"고 말합니다.

 

짜증스럽게 구는 남자의 태도에 "그래, 터뜨리려면 터뜨려봐"라고 욕설로 맞받아 친 윤영화. 하지만 얼마 뒤, 방송국에서 뻔히 보이는 마포대교가 폭발로 끊어집니다. 그리고 윤영화는 이 사건이, 구겨진 자신의 입지를 다시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테러범이 다시 전화를 걸어 올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이를 빌미로 차대은 국장(이경영)에게 자신이 이 상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조건으로 거래를 펼칩니다.

 

 

 

영화는 두어 시간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긴박감 넘치게 보여주지만, 실제로 영화가 드나드는 공간은 좁은 라디오 스튜디오와 그 조정실 뿐입니다. 이른바 밀실 서스펜스죠.

 

'더 테러 라이브'를 본 많은 사람들이 흑백영화의 고전인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을 떠올립니다. 배심원 회의실이라는 고정된 공간 안에서 12명의 사람들이 처음 보기엔 너무나 뻔했던 한 사건에 대한 의견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죠. 이 작품이 세대를 넘어 수작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액션 없이도, 총격전이나 자동차 추격전 없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 만으로도 '관객이 손에 땀을 쥘 수 있는' 스릴감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가장 큰 강점은 이 '대화가 주는 긴박감'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데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사건을 보는 각 등장인물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 서로의 수 싸움이 제대로 느껴지고, 대화를 통해 실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제7광구'나 '타워'같은 영화의 대본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부지런히 폭발음과 화염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막상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우들에게 주어진 대사가 극중 캐릭터의 눈으로 사건을 보고 있지 않고, 그저 뻔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 영화를 예로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 가운데 '더 테러 라이브' 수준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는 '현장의 대사'가 살아 있었던 작품을 꼽기가 쉽지 않습니다. 있다면 좀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분노'에 대한 영화입니다. '내가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누가 과연 나의 편을 들어 줄까'하는 질문은 아마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두고 있을 겁니다. 날이 갈수록 사회 안에서 '위쪽과 아래쪽'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 세상 사람들의 공분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대단한 강점입니다.

 

 

 

물론 '더 테러 라이브'가 완벽한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도 분명 있습니다. 실제 방송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싶은 부분이 꽤 있죠. (무전 너머로 들리는 "반드시 사살하세요"같은 장면도... 이건 좀 오버.)

 

그리고 또 한가지, 반드시 빠뜨리면 안 될 부분은 '테러범과의 생중계' 자체가 과연 해도 좋은 일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마포대교 투신 사건 때에도 현장에서 이 장면을 촬영한 방송사 카메라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극중 윤영화는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생중계하기 직전, 리드 멘트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테러범과의 대화를 내보낸다고 얘기합니다. 스페인 영화 '떼시스'에서 방송 앵커가 스너프 필름을 방송하는 이유를 댈 때에도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그냥 간과하지만, 김병우 감독이 꼬집고 싶었던 방송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이 부분에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도 분신 자살이라는 용어가 미디어에 등장할 때, 어느 매체 사진 기자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외신을 탄 적이 있습니다. 분신해 떨어진 사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고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현장에서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수단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전란으로 죽어가던 시절, 유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녀가 죽으면 곧바로 먹이로 삼으려는 듯한 독수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이 유명한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아이를 구할 생각은 없고 사진으로 유명해지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거냐"는 극심한 비난에 시달립니다. 그는 '20여분 동안 새와 아이를 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얘기했지만, '그 뒤에 아이가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그 20여분 사이에 새가 아이를 덮쳤어도 그는 그냥 사진을 찍고 있었을지도 몰랐고, 또 사진을 찍은 뒤에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죠. 결국 그는 1994년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이 사진으로 인한 죄책감이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항상 변명거리처럼 등장하는 것이 '대중의 알 권리'입니다. 기자라면 대중의 알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잊혀지기도 합니다. 독수리의 먹이가 될 위기에 있는 소녀를 촬영하는 것이나, 테러범과의 대화를 그대로 생방송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례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유사한 사안입니다. 둘 다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그보다 상위에 놓여야 할 다른 가치들을 무시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방송은 테러범과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내보내도 좋을까요. '더 테러 라이브'에서 대다수 관객들은 테러범에게 감정이입되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테러범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이 테러범이 이런 테러범이 아니라 진짜 테러리스트라면, 절대 생방송에 출연시켜서는 안됩니다. 정말 위험한 메시지를 일반에게 퍼뜨리려는 목적을 가진 자들이라면, 이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걸러지지 않고 방송을 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어쨌든 인질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협상에 나서고 양보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부정적으로 그려졌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태도 자체에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 테러 라이브'를 잘못 읽으면, 이런 문제점은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언론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 편만 드는 방송'을 욕하지만, 이 시점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대상은 바로 '시청률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하려는' 미디어입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고 '대중의 공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를 봐도 봤다고 할 수 없겠죠.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배우는 말하자면 다섯명. 대테러대책반 반장 역을 맡은 전혜진과 이지수 기자 역을 맡은 김소진, 그리고 테러범 역을 맡은.... (스포일러)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사실 하정우는 전형적인 앵커라기엔 너무 다혈질이지만, 그래도 그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성립하기 힘들었을지도.

 

어쨌든 '더 테러 라이브'는 마땅히 '올해의 영화'로 꼽힐만한 수작입니다. 젊은 김병우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P.S. 아래는 그냥 웃자는 이야기입니다.

 

 

마포대교 폭파 장면. 왼쪽에 63빌딩이 보이는 걸로 보아 마포 쪽에서 여의도 방향을 보고 찍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63빌딩 옆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마포대교 바로 옆에 있어야 할 쌍둥이 빌딩은 어디로 갔는지 없습니다.^^

 

 

하정우가 보는 각도는 이렇습니다. 오른족으로 쌍둥이 빌딩의 일부가 보이는.... 곳에는 방송사가 없습니다. 위치상 가장 가까운 곳은 MBC지만 그 건물에서 마포대교를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IFC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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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설국열차'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논평이 등장해 있습니다. 영화 속 상징들에 대해 온갖 종류의 해석을 한 리뷰들에서부터, 봉준호 감독 본인이 나서 '그건 이런 의도'라고 해석한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관련된 읽을 거리가 넘쳐납니다.

 

이 글은 이 영화의 미덕을 칭찬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그런 글들은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깨시민을 옹호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본격적인 상징 해석도 아닙니다. 요나가 성경에 나오는 그 요나를 뜻하는 거라든가, 불의 등장이 인류의 문화 발달 단계를 의미하는 거라든가 하는 얘기를 원하는 분들은 다른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 껄끄러웠던 부분, 그리고 어딘가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 봤습니다. 스포일러가 닥치는 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보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줄거리 생략.

 

 

 

 

1. 왜 열차인가.

 

만약 별도의 연료 지원 없이도 영원히 멈추지 않는 영구기관이 있다면, 그리고 그걸로 얼어붙은 지구에서 인류 문명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면, 그 수단을 열차로 선택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짓입니다.

 

당연히 정지된 상태에서 이 영구기관의 에너지를 이용해 뭔가 해 보는게 훨씬 효율적이겠죠. 기차를 쓰면 외부인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웬만한 배리어만 친다면 어차피 설정이 온 세계가 다 얼어붙은 상황인데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열차다. 물론 '왜 열차인가'는 기차를 리드하는 인물 윌포드(에드 해리스)를 '기차에 미친 사람'으로 설정한 것으로 어느 정도 해명이 가능합니다. 미친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일단 '왜 그 영구기관의 기술을 윌포드만 갖고 있느냐'는 질문 역시 그렇습니다. 미친 사람이라는데 뭘 따지겠습니까.)

 

다소 찜찜하긴 하지만 미쳤다니까 넘어갑니다.^

 

 

 

 

2. 혁명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이 열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전적인 혁명 이야기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간단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맨 뒷칸의 승객들은 고전적인 시각에서 볼때 '착취당하는 민중'이 아닙니다. 이들은 기차가 달리게 하는 데 어떤 노동력을 제공하지도 않고, 그냥 윌포드로부터 열차 공간과 식량을 제공받을 뿐입니다. 영화 속 논리에 따르면 어쩌다 어린이 한두명과 바이올린 연주자 정도를 얻어간 듯 한데, 역시 영화 속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아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혁명에서 가장 큰 명분은 무엇일까요. '인류의 유일한 생존 공간이 기차 안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기차 안의 자원을 동등하게 공유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도 언급되듯, 맨 뒤칸 사람들은 이 기차와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로, 우연히 윌포드의 선의(?)에 의해 승차한 - 타지 않았으면 동사했을 -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일행이 원하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열차 안의 자원을 모든 사람이 공유, 생활의 질이 다 같이 떨어지더라도 전체 인원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자'는 것인데, '앞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뒷칸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혁명(?)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커티스는 "앞칸에 도달하면 (윌포드를 포함해) 거기 있는 자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대사는 봉준호 감독에게 이들이 꿈꾸는 '체제 전복'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는 별로 없음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전통적인 계급갈등에서 오는 혁명 이야기라기 보다는 '남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설정대로라면, 커티스 일행은 '왜 앞칸 인간들만 잘 먹고 잘 사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대체 왜 윌포드는 도움될 것 하나 없는 뒤칸 인간들을 프로틴 바를 먹여 가며 기차에 싣고 다니는가'를 궁금해 했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라는 것도, 윌포드 일행이 최초의 소요가 일어난 순간 귀찮은 뒤칸을 아예 떼어 내 버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뭣 때문에 윌포드는 적잖은 경비 인력을 희생시켜가며 정기적으로 소요를 일으켜 온 뒷칸을 유지해 온 것일까, 거기에 대해 커티스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제게는 참 이상했습니다.)

 

 

 

 

 

3. 은유와 액션 월드 사이

 

'설국열차'에서 기차는 모든 사람이 다 아다시피 거대한 상징입니다. 이런 기차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주인공 일행이 휘젓고 다니는 각 열차 칸의 의미 등등은 도저히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뭐 영화 설정상으로 1000개의 칸이 있다고 하니 꼭 필요하지만 비쳐지지 않은 칸(예를 들어 앞칸 사람들이 먹는 스테이크를 공급하기 위한 육류 육성 칸 - 또는 인조 고기 생산을 위한 공장 칸) 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커티스 일행이 지나치는 대부분의 공간, 학교나 기타 앞칸 승객들을 위한 생활공간 등은 모두 리얼리티보다는 상징을 위한 공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액션들은 필요 이상의 리얼리티를 강요합니다. 몽둥이와 칼, 살과 뼈가 마주치는 대결의 현장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리얼한 액션은 수시로 리얼리티와 단절된 상징적인 공간과 맞닥뜨립니다. 예를 들면 앞칸에서 열심히 남궁민수와 커티스를 추격하던 분노한 앞칸 승객들은 어느 순간에 증발해 버립니다. 또 뒤칸으로부터 성화를 봉송(?)해 앞칸에서의 싸움을 이끄는 장면은 그동안 통과해 온 열차의 길이나, 이들이 통과해야 할 터널의 길이를 생각할 때 도대체 얘깃거리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소한 부분들, 어디까지를 상징의 세계로 보고 어디부터를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리얼리티의 세계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설국열차'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에서는 식구들이 식사하는 장면 가운데 딸 고아성의 유령이 나타나 식구들이 주는 밥을 먹는 장면이 갑자기 삽입됩니다. 리얼리티의 세계 안에 불쑥 등장한 은유의 세계인 것이죠. 이 장면이 별 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영화 전체가, '어쨌든 이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리얼리티의 세계였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설국열차'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와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가 너무 자주 교차하면서 상당 부분 설득력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불편함을 털어놓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상당히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4. 종교의 역할

 

이 영화에는 두 번, 사람의 머리 위에 신발을 얹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의 신분과 위치에 대한 비유로 사용됐습니다.

 

선종 불교의 지혜를 담은 '벽암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남전참묘南泉斬描'와 '조주대혜趙州戴鞋'라는 두 가지 화두가 나옵니다. 큰 스님인 남전이 두 법당의 승려들이 고양이 한마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 광경을 보고 "누구든 이 고양이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아 스님은 고양이의 목을 쳐 버립니다. 뒤늦게 절로 돌아와 이 소식을 들은 제자 조주는 스승 남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발을 집어 머리 위에 얹은 채 방으로 들어갑니다. 이를 본 남전은 "조주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며 탄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단히 난해한 화두입니다. 해설서들을 봐도 분명한 해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오히려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면 오히려 선불교의 화두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신발을 머리에 얹는다는 것은 가치의 전도를 말하는 것이며, 이렇게 전도된 가치를 갖고(살생금지의 계율에 대한 금지를 깨 가면서) 누구에게 진리를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힐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 화두가 과연 '설국열차' 속의 장면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지는 생각하기 나름인 듯 합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의 대표작 '금각사'에서 이 화두를 사용했듯, 근본적인 가치의 전도를 위한 소도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 외에도 두어 장면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윌포드가 커티스에게 '저 불쌍한 애욕에 물든 중생들에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기차 운영자(=부처?)의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그랬고, 또 길리엄(존 허트)이 맨 뒷칸에서 행했다는 자비행의 모습이 그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 살을 베어 이웃을 먹인다는 장면도 - 뭔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혜숙선사와 구담공의 고사를 연상시킵니다 - 종교적인 가치 없이 설명하기 참 힘든 부분입니다. 이런 자기 희생을 통한 감화와 리더십의 획득이야말로 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길리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항목에서 계속)

 

아무튼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설국열차'는 종교의 허구성과 위선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영화가 됩니다. 윌포드가 주장하던 초월자의 시점이나, 길리엄의 희생이나, 결국은 지배자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니까요.

 

 

 

 

5. 길리엄의 배신

 

길리엄은 윌포드에 의해 파견된 언더커버 요원입니다. 그의 역할은 일단 무질서가 지배하던 뒤칸 인간들 사이에 사랑과 인류애를 되찾게 하고, 일정 수준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윌포드와의 사전 협의에 따라 일정 수준의 희망을 지속적으로 부여합니다.

 

즉 '언젠가는 혁명에 의해 우리도 앞칸을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윌포드는 뒷칸 승객들이 일정수 이상의 개체수를 보존하면서 소멸하지도 번성하지도 않는 수준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위에서 말한 어린이나 바이올리니스트의 공급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설국열차'의 설명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리엄은 윌포드를 배신합니다. 그들에게 허용되었어야 했던 진출선을 넘어, 물 공급 칸을 넘어 진격하는 것이죠. 그리고 커티스에게 말합니다. "윌포드를 만나면 말할 기회를 주지 말고 죽여" 라고. 이 말은 곧, 윌포드가 커티스를 만나면 '나와 길리엄은 본래 같은 편'이라는 말을 하고 설득에 나설 것임을 알기 때문에 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길리엄은 왜 윌포드를 배신한 것일까요. 기존 사회의 질서 유지에 이바지하던 종교의 몇몇 지도자들이 체제 전복에 나섰던 전례는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민중신학에 뛰어든 남미 카톨릭 신부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6. 제3의 선택은 있나

 

윌포드의 '체제 유지를 위한 노력'에 설득되기 직전, 커티스는 그런 체제 유지가 어린이들의 희생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대체 인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린이들의 희생이 비인도적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기차를 멈추고 절멸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으로'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방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즉 '인류의 소멸을 전제로한 인도주의의 실현'과 '소수의 희생을 통한 인류의 유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의미 있는 실천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실제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매우 궁금합니다만, '설국열차'는 여기서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남궁민수(송강호)가 주장하는 '기차 밖에서의 삶'입니다.

 

'인도주의자'에겐 참 다행스러운 선택이지만, 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도 사실 선택은 어렵습니다. 1) 어린이들을 몇 희생시키더라도 인류 문명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다 2) 어린이를 몇 희생시키느니, 인류 공멸이 더 도덕적으로 옳다 3) 둘 다 피하고 싶으니 기차를 세우고, 비록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기차 밖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는 쪽을 선택한다.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7. 결말은 희망?

 

이 부분은 사실 좀 실망스럽습니다. 심하게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곰이 - 비록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단 한마리의 백곰이라 해도 - 17년 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건 17년 동안,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인 백곰 한 마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했던 먹이들의 생태계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백곰의 먹이인 바다표범이 있었다면, 바다표범을 먹여살리기 위한 물고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 물고기가 있으려면 플랑크톤과 얼지 않은 바다가, 그리고 플랑크톤을 위해선 광합성을 위한 햇살이 있었을 거란 얘기죠.

 

2013년 현재 인류의 과학 기술 수준으로 볼 때, 백곰이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의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다면 인류가 절멸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100분1로 줄든, 1000분의 1로 줄든 절대 불가능하지 않겠죠. (위의 운행도를 보면 설날이 며칠 지난 뒤, 설국열차는 아프리카나 아랍 어딘가 정도를 지나고 있을 겁니다.^^)

 

아무튼 다 그렇다 치고, 남궁민수가 생각한대로 기차 밖에서의 삶이 가능하다 칠 때, 그 조건은 '기차 안에 있는 물자와 에너지를 동원해 밖에서 살아남는 것'일 겁니다. 영화의 결말처럼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고, 소녀 티를 못 벗은 여자 하나와 어린이 하나가 달랑 살아남아서 눈밭 위에 에덴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백곰의 한끼 식사가 되는 것이 더 가능성 높은 결말은 아닐까요.

 

문제의 백곰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것이 영화의 의도였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과연 이것이 희망의 표상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깁니다.

 

 

 

 

8. 설국열차는 성공했나.

 

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데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일단 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설국열차'는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기대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마더' 수준의 알듯 말듯한 수수께끼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나 뻔한 알레고리와 다소 무리한 결말을 가진, '또 한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로 느껴졌을 듯 합니다. 반면 '괴물'을 본 절대 다수의 관객들이 기대한 가족의 승리와 시원한 결말은 이 영화에 없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잔뜩 제공했다는 점에선 환영할만한 영화였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설국열차'의 티켓을 사면서 그런 것을 기대할 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한 쪽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가진 미덕들 -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호연, 각각의 기차 칸들이 가진 미장센의 미학, 자잘한 비유들이 가진 정답 찾기 놀이 - 를 이야기합니다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위를 향해 그려진 '봉준호 기대 곡선'은 이번엔 약간 아래로 향했다고 말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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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2]

 

사실 '레드2' 를 보러 가서도 '레드'의 핵심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3년이라면 요즘 블럭버스터의 속편 제작 주기에 비해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J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가 4년만에 나왔고,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 사이도 4년이었죠.

 

하지만 그리 전통있는 프랜차이즈라고 보기 힘든 '레드'의 경우 3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시리즈 간의 긴밀한 연속성을 제기하기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드2'는 보는 시간 내내 영화의 길이를 느끼기 힘들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생명존중과 같은 기본적인 윤리를 감안하면 참 막장형 영화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생각하면 이만큼 충족감을 주는 영화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순도 높은 '오락만을 위한 영화' 입니다.

 

 

 

 

전작에 이어지는 이야기. 왕년의 스파이 에이스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사라(메리 루이즈 파커)와 소시민으로 알콩달콩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마빈(존 말코비치)은 곧 폭풍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결국 프랭크와 사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 설치한 폭탄에 의해 마빈이 타고 있는 차가 폭발해버립니다[스포일러 아님]. 그리고 마빈의 장례식장에서 프랭크는 기관원들에 의해 연행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전 세계를 무대로 전개됩니다. 프랭크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영국은 전편에서도 활약한 이들의 동료 빅토리아(헬렌 미렌)를, 미국은 세계 최고의 킬러 배한조씨(이병헌. 이 이름에 대해선 저 밑에 자세히 정리)를 기용합니다. 이들 사이에 프랭크와 과거 사연이 있었던 러시아 스파이 카티아(캐서린 제타 존스), MI6에 의해 연금된 천재 과학자 베일리(앤서니 홉킨스) 등이 엎치락 뒤치락 연루됩니다.

 

 

 

 

사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는 데 뇌는 별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한물 갔다고 생각했던 노장들이 실제로는 한창 팔팔한 현역들을 능가하는 기량의 소유자들이라는 스토리의 영화들은 이미 한두편이 아니죠. 최근작으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계열의 근육질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한 '익스펜더블' 시리즈가 있고, 추억의 영화로는 '지옥의 특전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던 Wild Geese(1978) 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옥의 특전대'의 주역인 리처드 버튼은 영화 개봉 당시 53세, 로저 무어는 51세, 리처드 해리스는 48세. 70년대에는 이 정도면 충분히 '노장'으로 불릴 만한 나이였죠. 반면 '레드2'의 브루스 윌리스는 58세, 존 말코비치는 60세. 헬렌 미렌은 68세. 앤서니 홉킨스는 76세... 평균 수명 연장과 과학의 발달에 따른 할리우드 스타 정년 연장이 실감납니다.)

 

 

 

 

아무튼 이 '지옥의 특전대' 때 이미 베테랑들의 노익장 과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주제는 완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21세기 판인 '레드' 시리즈에서 달라진 것은 좀 더 확실해진 인명 경시 사상.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존 말코비치는 아예 브루스 윌리스에게 대놓고 "사람 죽인 지 한참 지나 인생이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그 강력한 힘을 갖고도 사람 하나 죽일까 말까 30분씩(물론 영화상으로. 실제 시간은 더 걸릴 수도) 고민하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이 분들은 태연히 살인을 저지릅니다. 컴퓨터 게임보다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플롯이 너무 단순해 비어 보일 수 있는 영화의 틈바구니는 세계적인 명배우들이 잘 알아서 메꿔 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배우는 '여왕 폐하' 헬렌 미렌. 아마도 이 영화에서 헬렌 미렌이 미친 척 하기 위해 읊조리는 대사는 세실 어쩌고 하는 대목으로 봐서 2005년 출연했던 BBC 사극 '엘리자베스 1세'에 나오는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다시피 '더 퀸'에서는 현역 여왕 역으로 오스카를 따냈죠. (사실 정통 셰익스피어 극 출신인 이 양반은 젊어선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에서 모르가나 여왕 역으로 팜므 파탈의 위용을 떨친 분입니다.)

 

아무튼 그런 관록을 스스로 희화화하기라도 하듯, 이 영화에서 미렌은 카리스마 넘치는 코믹 연기(영화를 보시면 이게 말이 된다는 걸 납득할 수 있습니다^^)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특히 이병헌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의 액션을 보면 '아. 이 영화의 주인공은 헬렌 미렌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박지성이 출전하는 맨유 경기나 류현진이 던지는 다저스 경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병헌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지는가가 매우 중요한 요건이 되는데, 이 무시무시한 배우들 속에서 이병헌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움을 줍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토르'의 아사노 타다노부 등에 비해 훨씬 돋보이는 역할이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지아이조' 시리즈에 이어 너무 자객 이미지가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사나다 히로유키의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딱 맞춤으로 떨어지는 작품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아시아 출신의 남자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자면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튼 적지 않은 나이에 영어 연기에 도전해 이 정도의 성취를 거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과가 썩 시원치는 않아 이제 알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만약 '레드3'가 만들어진다면 이병헌의 역할은 '꽃보다 할배'의 이서진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해외의 이병헌 팬들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어의 '좆됐다'가 무슨 뜻인지 알았겠죠.^^)

 

나머지 배우들은 '딱 다 알만한 캐릭터'를 '딱 다 납득이 갈 만한 수준'으로 연기해 줍니다. 아쉬움도 없고, 그렇다고 큰 기대흘 할 만큼도 아닙니다. 극장에서 가치관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는 분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오락 영화. 인생의 의미나 구원의 메시지를 찾고 있는 분들에겐 비추. 당연히 헬렌 미렌이나 존 말코비치를 모르는 분들에게도 비추.

 

 

 

P.S. 이병헌의 극중 캐릭터 이름은 Han Cho Bai 인데 이게 한국 이름이라면 '배한조'라고 봐야겠죠^^. 뭐 한일관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미국 제작진이 이 캐릭터의 킬러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의 전설적인 닌자 핫토리 한조의 이름에서 대강 섞어 만든 듯 합니다만... 뭐 이런 영화에 그런 디테일까지 기대하기는 힘들 겠죠.

 

IMDB에 따르면 극중 이병헌의 어린 시절 사진에 나오는 분은 실제 이병헌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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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대중문화 상품을 살펴보더라도 자국산 TV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자국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 콘텐트인 나라는 더욱 적습니다.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과 영국입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나 독일의 TV 편성표를 살펴보더라도 미제 드라마, '하우스'나 'CSI'가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드'가 영 맥을 못 추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자국산 드라마 콘텐트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 조차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드라마 강국이 되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부터 인재들이 부단히 이 분야로 모여들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좀 더 나은 콘텐트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한 드라마'를 만든 절대 공로자 중 한 분이 어제 급서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원고 청탁이 와서 급하게 쓴 글입니다.

 

 

 

 

제목: 30년의 도전, 아쉬움 속에 끝맺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PD는 후배 김종학 PD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1985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임진왜란' 편을 찍을 때 이야기. 당시 급박한 촬영 일정 때문에 이PD는 한 후배에게 왜군들이 조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신을 부탁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엑스트라들 감기 들면 촬영이 어려워지니 신경 써서 찍으라'는 조언까지 했다. 이PD가 자기 신을 마치고 후배 PD의 촬영을 살피러 갔더니 조선 포로 엑스트라들이 맨발에 동저고리 차림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부까지 했는데. 화가 난 이 PD가 후배를 불러 따지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왜병들이 포로를 잡아갈 때 옷이며 신발을 제대로 챙겨서 끌고 갈 것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야 시청자들도 납득하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라 더 이상 야단을 치지 않았다는 이 PD, 당시에도 '저렇게 독하니(?) 좋은 PD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듬해, 입사 10년차인 후배 김종학은 '조선왕조500년'의 '회천문'을 연출했다.

 

 

 



김종학은 거대한 서사 속에서 운명에 맞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이문열 원작을 극화한 '영웅시대'와 '황제를 위하여' 는 그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북한의 현실을 그린 '동토의 왕국' 에선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낯선 연극 배우들을 대거 브라운관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김홍신 원작 '인간시장'에선 무명 신인이던 박상원을 기용해 한국형 히어로 드라마의 원형을 제시했다.

 

 


물론 '연출가 김종학'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은 단연 1992년작 '여명의 눈동자' 였다. 김성종 원작, 송지나 각색의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말~한국 전쟁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대치(최재성), 여옥(채시라), 하림(박상원)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렸다.

특히 이 시기를 다룬 한국 TV 드라마 중 최초로 이념의 벽을 넘은 작품이라 평가할 만 하다. 마지막 회, 빨치산 대장과 토벌군 장교로 만난 대치와 하림이 “우리의 자리가 언제 바뀌었어도 전혀 놀랍지 않았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화하는 장면은 아직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여운을 남겼다.

 

 

 


이 성공으로 MBC를 떠나 프리랜서가 된 김종학은 1994년 다시 한번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춰 광주 민주화운동과 범죄 조직간의 암투를 그렸다. 제목은 '모래시계'. 최민수 고현정 등 호화 캐스팅이 뒷받침 된 '모래시계'는 60%대 시청률이란 전설로 '귀가시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개국 4년째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를 통해 비로소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에 들었다고 일컬어진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2002년작 '대망' 은 팩션 사극의 새 장을 열었고 2007년,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운 판타지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 는 거대한 규모와 완성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제작사 대표 김종학'은 '연출가 김종학'에 미치지 못했다. '태왕사신기'에 투입된 200억원의 제작비는 당시의 한류 드라마 시장의 매출 규모에 비해 지나친 규모였다.

 

 

 

 

작품에는 엄격했지만 스태프들에겐 너그러웠던 성품도 적자 폭을 늘리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유작이 된 2012년작 '신의'는 이민호 김희선 등 한류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판타지 드라마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고, 막대한 투자는 이번에도 큰 짐이 됐다.

결국 시청자들은 더 이상 '김종학표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됐다. '모래시계' 이후 김종학의 일관된 꿈은 영화 연출이었다. 그는 한동안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의 제작에 몰두했으나 스스로의 완벽주의 때문에 계획은 자주 미뤄졌다. 그 동안에도 어린이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천계영 원작 '오디션'을 아이돌을 소재로 개작하려는 기획도 진행중이었다. 일찍 정상에 섰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은 도전 정신이야말로 '연출가 김종학'이 한국 방송사에 남긴 진정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끝)

 

 

 

 

 

 

고인의 업적을 다 기술하긴 터무니없이 짧은 분량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작품들인 만큼 특별히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그를 가리켜 '역사를 아는 PD'라고 일컫습니다. 물론 송지나 작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원작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읽어 본 사람들일수록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원작의 인물 구성과 사건의 흐름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보다 균형 잡힌 역사관이 가미되면서 일종의 '반공문학'이던 원작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대치는 그냥 흉폭한 악역이지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대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 북으로 가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림 역시 이념이나 정치적 구도에 대한 고려 없이, 어찌 하다 보니 미군의 군속이 되어 남쪽 편에 서게 되죠.

 

이런 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설정입니다. 그래서 저 윗글에서 소개한 장면이 뭉클한 감동을 줬던 것이죠. (이 드라마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 외에도 '여명의 눈동자'는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수작입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대치와 여옥이 "살아있어야 해! 살아있으면 만나게 돼 있어!"하고 절규하는 장면, 또 영국군의 추격을 피해 밀림을 횡단하던 대치가 뱀을 잡아 씹어먹던 장면 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 하나 거론하려면 날이 새도 모자랄 고인의 업적 중 하나는 탁월한 신인의 발굴입니다. 전혀 경력이 없는 신인을 발굴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런 신인들 중 하나'를 찍어내 일약 스타로 만들어 내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간시장'의 박상원과 '모래시계'의 이정재입니다. 특히 이정재는 '모래시계' 이전에도 활동을 했고, '느낌' 등의 드라마를 통해 나름 꽤 인기를 얻은 청춘스타였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에서 말수 적은 보디가드 역할을 하면서 전 국민이 아는 주연급 스타로 승격됐죠.

 

오죽하면 이 역할 이후에 유망 남자 신인을 꾈 때 드라마 제작진이 단골로 하는 말 중에 "모래시계 이정재 같은 역"이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그 외에도 '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아역이었던 이은주, 김경아(왕희지)의 아역이던 송혜교, '모래시계'에서 최민수의 아역이었던 김정현이 김종학 감독의 손끝을 통해 발굴됐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도 이지아와 이필립이 스타덤에 올랐죠(배용준의 아역이던 유승호는 원래 아역 스타였으니 빼겠습니다).

 

 

 

 

아무튼 어느 때든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나면 늘 "이것만 하고 영화 하려고" 하며 웃으시던 감독님. 이제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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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림]

 

군사 마니아들이나 시사에 밝은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 해군이 참가하는 국제 기동훈련 가운데 림팩(RIMPAC)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풀 네임은 'Rim of the Pacific Exercise' 인데 약자로 만들지 않고 가장 중요한 pacific과 rim만 따서 그냥 림팩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Rim of Pacific 이라고 쓰거나, Pacific Rim이라고 쓰거나, 결론은 모두 '태평양 연안(국)'을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영화의 제목만 들었을 때 혹시 림팩 훈련과 관련 있는 해양 액션물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올 여름 최대의 기대작이었던 이 영화,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엄청난 물건이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한 정도를 넘어섭니다. 2020년 언저리의 어느날, 갑자기 바다 속에서 카이주가 나타나 샌프란시스코를 공격합니다. 군의 출동으로 진압에 성공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카이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인류는 거대 로봇 예거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는 거의 20년에 걸쳐 카이주와의 전쟁을 펼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예거 '집시 데인저'를 조종하던 에이스 파일럿 롤리 베켓(찰리 허냄)은 전투의 충격으로 일선을 떠나 공사판(?)을 전전하던 도중 옛 상관 팬터코스트 장군(이드리스 엘바)의 방문을 받습니다. 뭐 이유는 너무나 뻔합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자는 사연인 것이죠.

 

(이미 잘 아시겠지만 Jaeger는 독일어서 hunter라는 뜻, 그리고 카이주는 한자로 怪獸, 바로 우리가 보통 부르는 그 괴수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아무튼 미리 말하자면, 이런 류의 '로봇 대 괴수'의 차고 때리고 부수는 대혈전을 실사로 볼 날을 꿈꿔왔던 많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야말로 꿈의 실현입니다. 신의 선물이죠. 그 밖의 분들은...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만족.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봤습니다.

 

 

 

 

 

이 영화의 국내 예매자 가운데 40~50대 남성의 비율이 무척 높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녀들을 위한 예매'만으로 보기 힘든 요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로봇 만화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70~80년대까지. 물론 90년대의 청춘들에겐 에반게리온이 있고, 이른바 '건담 왕조'라고 할만한 건담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진정한 메카물의 시대는 나가이 고의 마징가 연작과 겟타 로보가 활약하던 무렵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퍼시픽 림'은 메카물의 재현인 동시에, '울트라맨'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거쳐 '아이젠버그'로 이어지는 특촬물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입니다. DNA를 보자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기 보다는 특촬물의 고급화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감독이면서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적인 상상력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음을 전혀 감추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이 영화의 로봇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품으로 '철인 28호'를 꼽기도 했죠.

 

 

 

 

액션의 사이즈를 보면 확실히 '퍼시픽 림'은 '마징가'보다는 '고질라' 류의 계승입니다(사진은 고질라의 라이벌인 가메라). 마징가Z가 20m 이내, 건담 시리즈가 30~40m인데 이 영화의 예거와 카이주들은 100m 언저리의 신장을 갖췄습니다(그렇습니다. '트랜스포머'류 보다 훨씬 큽니다). 꼬리 길이를 합해 200m라는 고질라급의 체격이죠. 어쨌든 이 덩치들이 펼치는 액션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통의 계승이 충실히 이뤄지다 보니, 돈 들인 티가 좔좔 흐르는 화면 한 구석에서도 어딘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괴수물을 다시 보는 듯한 정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괴수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쿵쿵거리고 싸우는 동안 마분지로 만든 듯한 고층건물들이 무너지고 불타오르는 70년대 특촬물의 저렴한 느낌 말입니다. 특히나 어린 마코가 파괴된 도쿄 한복판에 숨어 있는 장면은 '고질라' 시리즈 중 한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목에 있는 질문의 답은 이렇습니다. '강렬하게 추억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메카물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근거(혹은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한 플롯)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일단 그런 초대형 로봇이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데다, 사용하는 무기나 기타 동작이 전혀 물리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영화일 때에는 누가 뭐라 따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만약 이걸 실사판 영화로 바꾸어 놓는다고 하면 엄청나게 유치하게 보일 곳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철인28호'를 비롯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영화들이 개봉하자마자 욕설의 집중포화를 맞고 나오는 족족 침몰한 것도 이런 요소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런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가장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대형 로봇을 창조했습니다.

 

전투 장소까지 수십대의 대형 헬리콥터에 의해 이동하는 모습이나 로봇을 보관하기 위한 거대한 도크, 그리고 그런 전투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움직이는 엄청난 수의 보조 인력 등은 '로봇 만화'를 그냥 실사로 바꾸는 선을 넘어서, 어떻게 해서든 그런 로봇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천톤 무게의 로봇이 펀치를 날리며 싸운다든가, 고공에서 맨땅에 떨어져도 멀쩡하다든가 하는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요소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감독의 이런 세심한 노력 덕분에 '퍼시픽 림'을 보는 눈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그리고 '말이 되게 하기 위해' 일반 관객들이 과거 로봇물에 대해 갖고 있는 거의 무한정의 기대를 희생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칭찬할 만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뇌를 공유해야 로봇이 전력을 발휘해 싸울 수 있다든가 하는 드리프트라는 독특한 설정(어쩌면 '아이젠버그'에 나오는 '영이 철이 크로스!'의 발전된 형태...?^^)은 이 영화가 노리고 있는 특정한 줄거리를 펼쳐 나가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관객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로봇과 파일럿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싸울 수 있다는 설정은 이미 로봇이 공격당할 때 마다 파일럿이 그 공격당한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일본 메카 만화의 전형적인 설정에 매우 충실한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 관객들에게 아무 무리 없이 전달됩니다.

 

(물론 왕년에 만화영화를 볼 때에는 좀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괴수 로봇이 마징가 제트의 눈을 드릴로 후벼 팔 때, 자기 눈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쇠돌이(카부토)를 보면서, 아니 그냥 조종만 하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마징가와 쇠돌이는 신경이 연결되어 버린 거냐, 하고 당혹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에반게리온'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연령 때문에 본 게 에반게리온밖에 없어서 그럴 수는 있겠지만, 사실 에반게리온에서는 수트 외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은 게 없습니다. 아마 '철인28호'와 70년대 애니메이션을 모르시기 때문에 나온 얘기일 듯.)

 

 

 

뭐 델 토로가 이 그림- 고야의 '거인' - 을 연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건 '진격의 거인'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이 그림이 갑자기 21세기 들어 각광받고 있는 듯.

 

그런데 아래 댓글 지적에 따라 찾아 보니 이 그림이 고야의 그림이 아니고 제자 아센시오 훌리오의 그림이라는 보도가 있었군요. 이 글과 직접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내용의 일부입니다.

 

(프라도미술관의 19세기 작품 담당인 호세 루이스 디에스 씨도 캔버스 왼쪽 아랫부분을 확대해본 결과 AJ라는 서명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고야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아센시오 훌리아(Asensio Julia)의 이니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메나씨는 프라도미술관이 이 작품과 훌리야의 다른 작품들을 비교하고 추가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 그림이 고야의 작품이 아니라는 최종적인 결론은 유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148492)

 

 

 

사실 배우들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할 거리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아니라 예거들과 카이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를 진정 사랑할 관객들(!)이 원하는 것도 그런 요소들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사실 별 기대할 게 없습니다. 그건 배우들이 그리 이름값을 할만큼 거물들이 아니어서이기도 하겠지만(뭐 이 정도 그래픽에 돈을 때려 부었는데 배우까지 비싼 인물들을 쓸 여력은 절대 없었겠죠. 특히 영화에 딱 한명 나오는 '동양인 미소녀'가 기쿠치 린코라니. 이런 젠장), 그보다는 애당초 줄거리에 별다른 공이 기울여지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대략 이런 식으로 사건이 진행됩니다. "자, 이런 영화 많이 보셨죠?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대략 아시죠? 그럼 재미없는 부분은 대강 넘어갑니다?" 휘리릭.

 

그러다 보니 '퍼시픽 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비주얼은 볼만한데 뭐 내용은 하나도 없고...'라는 식의 평가를 합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정말 내용은 별 게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주인공 롤리가 '인간적인 갈등'이나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하거나, 펜터코스트 장군이 전 인류의 궐기를 호소하는 명연설을 펼칠 때에도 관객들은 '왜 이런 데 시간을 낭비하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치 '인간 대 인간이 겪는 감정'은 그냥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네. 이 영화는 관객들이 "이봐, 이럴 시간 있으면 로보트를 1분이라도 더 보여주는게 어때?" 이런 생각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이건 마치 FSS...)

 

 

그래서 굳이 결론은 - 로봇과 괴수의 박진감 넘치는 결전 장면은 아마도 인류가 만들어 낸 영화 사상 최고의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3D 효과 또한 역대 최강권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앞으로 모든 영화의 액션 신은 '맨 오브 스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퍼시픽 림'을 봤다면 자신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느끼고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밖의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높은 점수를 주기엔 '영화'로서의 플롯과 연기 등 '인간 캐릭터들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매우 부실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꽤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족도는 '이런 장면을 얼마나 실사로 보기를 꿈꿔왔는가'에 따라 퍽 많이 나뉠 듯 합니다. 아마 저처럼 "제발 속편, 아니면 프리퀄이라도 계속 만들어 줘!"라고 외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P.S. 1. '이런 영화는 한스 짐머'의 공식을 깨고 라민 자바디(Ramin Djawadi)가 맡은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 줍니다.

 

 

 

 

 

 

P.S.2. 미친 과학자 역으로 찰리 데이라는 배우가 나옵니다. 저는 당연히 샘 록웰인줄 알았습니다. 실수.

 

 

 

P.S.3. 관제탑 요원 역으로 나오는 텐도는 'Tendo Choi'라는 이름으로 보아 한국계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연기한 배우 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는 아시안 혈통과는 아무 상관 없는 멕시코 계 미국인.

 

P.S.4. 분명 여기저기 봐도 설정엔 일본 예거가 있는데, 일본 예거가 이 영화에 나오긴 하나요? 보신 분 계시면 어느 장면인지 제보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artgihun?Redirect=Log&logNo=20190632696

 

P.S.5. 어이, 양덕들, 이제 건담이나 FSS를 실사판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일본 친구들이 실사영화 만드는 솜씨는 이제 못 믿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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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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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잠시 비교했습니다. 본인은 비명에 가더라도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큰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소현세자는 아들들 뿐만 아니라 아내인 강빈까지 사약을 받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한번 왕위에서 밀려나면 언제 반역의 무리로 몰릴 지 알 수 없는 '밀려난 왕손'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여기에 하나 더. 그래도 '북벌 정책(비록 실질적으론 큰 의미가 없었다고 하나)'을 시도하며 '기개 있는 왕'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효종에게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형의 자손들에 대한 대접이죠.

 

일부 드라마에선 효종이 소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실상은 그럴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이은 소현세자 2탄입니다. 순서대로 보시려면 여기를 먼저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나     http://fivecard.joins.com/1140

 

 

 

소현세자 (2)

 

1645 218, 백성들은 소현세자의 귀국을 앞다퉈 환영했다. 국가 차원의 경사였지만 이미 심사가 틀어진 왕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공사견문은 인조의 성품에 대해 찡그리고 웃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무겁고 말이 없어 가까이 모시는 궁녀도 임금의 말을 자주 듣지 못했으며 여러 신하는 임금의 뜻이 어떤지 측량하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성적이고 감정표현이 별로 없던 인조의 내면엔 세자에 대한 미움이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소용 조씨의 역할도 컸다. 조씨 소생의 숭선군은 세자가 귀국하던 1645, 고작 만 여섯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어쨌든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소용 조씨, 공신 세력의 우려를 대변하는 김자점, 그리고 의심 많은 인조의 성품이 만난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423, 세자는 학질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24일과 25침을 맞았다는 기록 한 줄씩만을 남긴 채 26일 사망했다. 침을 놓은 사람은 인조의 신임이 두터웠던 어의 이형익이었다.

 

 

 '꽃들의 전쟁'에서 손병호가 연기하고 있는 이형익. 조선왕조실록은 꼭 집어 지목만 하지 않고 있을 뿐, 사실상 이형익의 손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고 거의 적시하고 있습니다.

 

 

세자의 졸곡제를 다룬 실록 기사에는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온 몸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중략)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내용이 전한다. 사실상 독살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꽃들의 전쟁에서는 김자점(정성모)이 직접 이형익(손병호)에게 세자를 해치게 지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의에서는 이형익(조덕현)이 다시 이명환(손창민)을 이용해 세자에게 독을 썼다는 설정이다.

 

 

'마의'에서는 그래서 이명환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시 이형익을 살해한다는 설정입니다. 직접 손을 쓴 것은 한 단계 더 거친 이명환이란 해석.

 

 

이형익은 심지어 소용 조씨의 어머니와 사통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그에게 혐의가 가는 것이 당연했다. 언관들이 당장 이형익을 조사하라고 들고 일어났지만 인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수시로 이형익을 불러들여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인조는 62, 서둘러 대신들을 모아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봉하겠다고 밝혔다. 원칙대로라면 왕위계승의 우선권은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자 인조는 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때도 김자점이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그해 113, 봉림대군의 감기가 낫지 않자 이번에도 의원 이형익이 침을 맞아야 낫는다고 간했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대군은 가벼운 감기라며 치료를 거절했고, 곧 회복했다. 만약 이 침을 맞았다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해가 바뀌어 1646 1, 인조는 수랏상의 전복구이에서 독이 나왔다며 진실 규명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소현세자빈 강씨를 용의자로 놓은 수사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강빈은 궁중의 왕따 신세였고, 엄중한 감시의 대상이었다. 독을 반입해 어선에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문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었고, 강빈의 하인들 가운데서 자백이 나왔다.

 

조정 대신들이 목숨만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조는 중국 조나라 무령왕의 예를 들며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맞섰다. 무령왕은 장남을 폐하고 차남을 후계자로 삼았다가 후계 구도를 놓고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궁에 유폐되어 굶어 죽은 인물이다. 누가 봐도 비슷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인조의 광기는 이미 통제의 범위를 넘어 있었다. 강빈은 사약을 받고, 어린 세 아들도 제주도에 유폐됐다. 그중 둘은 일찍 죽고(그 죽음의 원인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막내 석견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아이가 추노의 그 아기다.

 

 

조나라 무령왕의 고사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령왕은 사실 당시 중국 남자의 하의(당시까지는 바지보다 치마에 가까웠던)를 개량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라!"는 개혁 조치를 한 긍정적인 고사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입니다. 당시까지 오랑캐의 옷으로 간주되던 헐렁한 바지를 '말 타고 내리기 편하다'는 이유로 도입해 전국 7웅 중 하위권이던 조나라의 국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말년에 총기가 흐려진 탓인지, 다 자란 장남을 제쳐 놓고 후비가 낳은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한 뒤 양위합니다. 대개 이렇게 되면 장남이 정치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수순이지만, 갑자기 장남이 불쌍해진 무령왕은 장남의 영토를 넓혀 조나라를 두개로 쪼개 상속할 궁리까지 합니다. 하지만 후비파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격분한 장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후비파에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반란은 가볍게 실패. 장남은 아버지 무령왕의 궁으로 달아납니다. 이미 왕위를 넘겨받은 후비와 어린 아들 쪽에선 장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무령왕은 "내 아들인데 목숨만이라도 보존하게 해 달라"고 오히려 간청하죠.

 

밖에선 잔혹한 결단이 내려집니다. 장군들이 "만약 장남을 잡으러 들어갔다가 무령왕을 다치게 하는 날이면 우리는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그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죠. (이건 사실 또 얘기하려면 긴 얘기가 되어 여기선 생략하겠지만 병법의 대가 오자(오기)의 죽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궁의 문을 밖에서 잠그고 아무도 나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한달이 지나 굶어 죽은 무령왕과 장남의 시체가 다 썩어 없어진 뒤에야 문을 열어 통곡을 하며 장사를 지낸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무령왕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스스로 후계자를 잘못 고른 결과이니, 인조 자신이 강빈을 죽여야 하는 이유로는 매우 궁색합니다. 그리고 무령왕과 자신을 비교한 것은 소용 조씨 소생의 숭선군을 세자로 봉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만, 결국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시선에선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겠지만 김자점이나 소용 조씨에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행여라도 소현세자의 자손이 왕위를 차지하는 날이면 그들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의 생명 또한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비정함은 효종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효종은 왕위에 오른 뒤,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홀로 남은 어린 조카 석견을 경안군으로 봉하고 서울로 불러 올렸지만,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회복해주는 것은 딱 잘라 거절했다. 오히려 상소를 올려 강빈의 신원을 촉구한 김홍욱을 잡아다 때려 죽이기도 했다. 아무리 조카가 가엾어도, 그들에게 '역적의 자손'이라는 죄를 씻어 주고 나면 자신의 후손들이 계승할 왕좌가 불안해 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경안군은 1665년 만 21세로 죽었다. 두 아들을 낳아 후사를 이었으나, 맏손자 밀풍군은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했다. 소현세자와 그 후손들에게 조선은 더없이 잔혹한 나라였다. ()

 

 

 

 

 

소현세자와 강빈이 죽은 뒤, 세 아들이 남았습니다. 인조가 서둘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소현세자가 죽은 뒤 왕위 계승 서열에서 각각 1,2,3위가 될 왕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게 된 이상 효종의 왕위 계승 경쟁자일 뿐입니다. 1647년, 이들은 처음엔 각각 흩어져 귀양을 갔다가 '서로 모여 살게 하라'는 인조의 은혜(?)로 제주도에 모입니다.

 

1648년, 석철이 13세의 나이로 가장 먼저 죽고 곧이어 둘째 석린도 숨을 거둡니다. 공식적인 원인은 풍토병. 하지만 인조와 김자점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당시에도 일었다고 합니다.

 

석철이 죽기 전 청나라 장수 용골대(병자호란 때 선봉장이었던 당대 청의 대표적인 장군입니다)가 조선 조정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이 고아가 되어 형편이 딱하다고 하니 내가 데려가 기르면 어떻겠는가."

 

용골대와 소현세자는 심양 시절에 꽤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실록에 남은 기록은 주로 조선을 무시하는 용골대에게 소현세자가 맞서 싸운 내용이지만, 그렇게 자주 대면을 했으니 꽤 교분이 쌓였을 법 합니다. 하지만 인조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이 말은 매우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네가 아무리 둘째를 왕으로 세웠다지만, 맏손자는 우리 손에 있다. 네가 삐딱하게 나오면,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는 후보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더구나 그 손자가 잔혹하게 부모를 죽인 할아버지를 곱게 볼 리가 없죠. 오죽하면 석철의 죽음을 전하는 실록에 "용골대가 그런 말을 했으니 모든 사람들이 이제 석철이 온전하겠느냐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죽었다"는 말이 다 나오겠습니까.

(先是, 龍骨大之來也, 以取養石鐵爲言, 人皆謂其必 不保全, 至是卒)

 

 

 

 

 

그 뒤로 왕위는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집니다. 숙종의 친위세력은 숙종을 가리켜 '삼종의 혈맥(三宗之脈)'이라고 떠받듭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왕의 정궁(정식 왕비)으로부터 태어난 왕자들로만 이어진 혈맥이라는 것이죠. 그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세조-단종까지 이어진 초기 4대를 제외하면 정궁 소생의 왕자들로만 왕위가 이어진 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효종은 즉위와 함께 아버지의 세력이던 인조 반정 공신들을 싹 청소하고, 북벌 이데올로기와 함께 정통성을 확보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한 뒤 3대에 걸쳐 자신의 후손들이 왕 노릇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공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의 자손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풀어 주지 않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건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가의 자손은 두 가지 면에서 위태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를 지키고 있는 쪽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경쟁자요, 정권을 뒤집어 엎으려는 음모가 쪽에서는 옹립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입니다.

 

사실 광해군 시절의 능양군(인조)처럼 반란군과 사전에 교감이 있던 경우도 있지만, 뒷날 김자점의 난(?)에 함께 거론된 숭선군이나 소현세자의 증손자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된 밀풍군의 경우엔 다들 "그들이 일방적으로 옹립하려 한 것일 뿐 직접 관련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숭선군은 살아남았고 밀풍군은 죽음을 당했죠. 이들의 생사는 정말 그때 그때 운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달랐지만, 특히나 밀풍군의 죽음에는 '한이 많은 소현세자의 자손'이라는 면도 꽤 작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이건 먼 뒤의 이야기. 당장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의 운명, 이어지는 소용 조씨(김현주)의 악행은 아직 한참 더 '꽃들의 전쟁'을 통해 펼쳐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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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

 

영화 '월드워Z'는 아시다시피 맥스 브룩스의 유명 원작 '세계대전Z(World War Z)'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이 국내에 처음 소개될 무렵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마징가Z'를 먼저 연상하는 바람에 진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요소도 있지만, 사실 '좀비 문학'이라는 것이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는 데에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좀비물은 책 보다는 영화에서 먼저 장르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습니다. 그 유명한 조지 로메로 감독의 70년대 좀비물은 제작자와 관객 모두를 환호하게 만든 새로운 시장의 개적을 알렸죠. 이후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한 좀비물은 마침내 소설 '세계대전Z'로 하나의 기념비를 남겼고, 영화 '월드워Z' 역시 좀비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물론 칭찬입니다.)

 

그런데, 물론 재미있게 잘 봤지만, '월드워Z'는 참 예상과는 다른 영화였습니다.

 

 

 

 

먼저 줄거리. 전 UN 조사관이었다가 은퇴한 뒤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던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는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 시내에 나갔다가 갑작스런 좀비의 습격으로 도시가 생지옥이 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곧이어 미국 전역, 아울러 세계 전체가 좀비의 공격으로 인류 문명이 말살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UN 당시의 상관으로부터 헬리콥터를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옵니다. 간신히 탈출해 UN 소속 함대에 합류한 제리에게 "다시 현역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가족을 보호해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제리는 UN의 비밀 조사단을 인솔하고 좀비 바이러스가 최초로 보고된 한국 평택(Camp Humphreys)으로 향합니다.

 

 

 

 

영화 '월드워Z'는 공개되기 전, 예고편 단계에서부터 소설 팬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원작의 설정과 매우 다른 장면들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원작은 전통적인 소설의 작법이 아닌, '좀비와 인간의 세계대전'을 가상 설정으로 두고 거기에 참가했던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아마도 이 원작 하나만 갖고도 이런 저런 영화를 30편 정도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가상 논픽션'입니다. 그런데 영화 '월드워Z'는 그런 원작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영화는 분명히 아닙니다.

 

맥스 브룩스의 소설 '세계대전Z'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는 처음부터 좀비의 특성과 그 공략법, 현대 사회의 취약성 등에 대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설정을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작의 완벽한 설정을 영화가 상당 부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 팬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이를테면 소설 원작의 좀비들은 '느리고, 기본적으로 1대1에서는 인간보다 체력이 약하고, 사다리가 있어도 그걸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지능과 균형 잡힌 운동 능력이 0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영화 '월드워Z'의 좀비들은 거의 표범 수준으로 날렵하더군요.

 

'뇌를 파괴하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소설과 영화가 일치하지만, 영화에서는 뇌가 아닌 다른 부위에 총을 맞아도 좀비들은 일단 동작을 멈추고, 거의 전투불능상태에 빠집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목 윗부분만 남아도 쉴새없이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무엇이든 물어뜯으려 드는 원작 소설 속의 좀비들보다는 어찌 보면 공포감이 덜하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영화도 원작 속의 설정을 100% 재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상화를 위해선 적절한 변화를 두는 것이 훨씬 성공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영화 '월드워Z'의 경우에는 역대 어느 영화에서보다 '빠르고 전투력 강한' 좀비상을 설정하는 바람에(아무래도 '28일 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영화의 진행에 다소 무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왜 굳이 원작과 다른 길을 갔는지 상당 부분 아쉽습니다.

 

원작에 나오는 생생한 인간과 좀비군단의 전투, 왜 현대의 첨단 무기가 좀비 군단을 막는데 역부족이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 단순한 전투력 뿐만 아니라 공포심과 무기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성찰 등이 영화에 전혀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워서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늟어놓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도, 이 장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소설 '세계대전Z'를 꼭 읽어 보시기 권합니다.

 

 

 

 

안 좋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원작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 영화만으로 판단했을 때, '월드워Z'는 훌륭한 오락 영화입니다. 특히 좀비와 액션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적인 특성보다는 온 가족용 코미디로서 탁월합니다. 예를 들어 슈퍼히어로 장르라고 가정한다면, 겉으로 보기엔 '아이언맨'이나 '다크나이트'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크레더블'이나 '슈퍼배드', 혹은 '스카이 하이'에 가까운 영화였던 겁니다.

 

(전형적인 좀비 마니아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얘기지만, 잔혹한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보다도 덜 잔인합니다. 좀비 영화의 기본인 좀비의 산 사람 먹방, 사지 절단 등의 장면은 그냥 상상력으로 커버해야 할 수준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다릅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화 '월드워Z'를 지배하는 건 다소 시니컬하고 허무주의적인 유머감각입니다. 사소한 좀비 패러디도 아니고, 대사 하나 하나마다 지적인 유머가 감춰져 있다고 할까요. 

 

피트가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고 난 뒤 아내와 나누는 전화 대화("여보. 내가 아까 전화했는데..." "응. 알아." <-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보신 분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배꼽빠지게 웃기는 장면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처럼 아주 노골적으로 웃기는 장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건 냉소적인 허무개그의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전반부에 '인류의 희망'이라며 강조하던 패스바크 교수의 운명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죠.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진심으로 유쾌했습니다.

 

 

 

 

아울러 이 영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애가 철철 넘쳐 흐릅니다. 어떻게 해서든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영웅 브래드 피트의 파란만장 일대기 - 이를테면 '오딧세이' - 인 것이죠.

 

이렇게 가족영화적 요소와 코미디적 요소를 강조한 작품이다 보니 이 영화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한 제작비 2억 달러짜리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큰 작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명 배우라고는 브래드 피트 혼자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2억 달러일 정도로 비주얼에 공을 들인 영화인데, 이렇게 비주얼이 인상적이지 않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나마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데이빗 모스나 매튜 폭스는 우정 출연 수준. 물론 데이빗 모스는 그 짧은 출연 시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죠^. 사실 이렇게 쓰면 영화에 대한 비판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재미있게' 할 거라면 돈은 훨씬 덜 써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깁니다.^^)

 

 

 

 

이건 아무래도, 비록 '퀀텀 오브 솔러스'를 만들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의 감독이 아닌 마크 포스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인간 내면을 표현하는데 장점을 가진 그의 특기가 잘 살아난, 성공적인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영화 '월드워Z'가 이런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 데에는 매튜 마이클 카너핸(Matthew Michael Carnahan)이라는 각본가의 공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들인 'Lions for Lambs'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그리고 '킹덤'에서 보듯 카너핸은 저널리스트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세계관과 다소 염세적인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현실 세계의 국제 정세를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던 작가입니다. (물론 완성도 높은 유머는 누구의 기여일 지 매우 궁금합니다.)

 

어쨌든 결론은 강추. 요약하면

 

1. 원작과는 너무나 딴판이다.

2. 좀비 블록버스터 액션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큰 실망.

3. 반면 가족 코미디로서는 대단한 수작. 장르 선입견 없는 사람이라면 대만족일듯.

 

개인적으론 언젠가 용자가 나서서 '월드워Z, 더 리얼 무비' 정도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이나 잭 스나이더면 진짜 인간과 좀비의 세계대전을 실감 넘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P.S. 원작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이 영화 속에서 구현된 경우는 위르겐 바름브룬 외에는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제리 레인이 소설에도 나오는 인물인지는 찾아 보려다 포기했습니다. 혹시 기억나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P.S.2. 이 도표를 봐도 영화 '월드워Z'의 좀비들은 역사상 '가장 날쌘 좀비들'로 보이는군요.^^ (표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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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강철의 사나이)'은 슈퍼맨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이고, 슈퍼맨을 다룬 수많은 DC코믹스 원작 중 여러 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탄생 1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슈퍼맨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약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워낙 많은 텍스트가 워낙 긴 세월에 걸쳐 축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근 80여년에 걸쳐 축적된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온 역사와 변천 과정, 다양한 외전과 작품 사이에 서로 상충되는 설정에 대해 다 알 리가 없을 겁니다(거론되는 텍스트의 양으로 보아 한 학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저스티스 리그' 처럼 배트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같은 우주에서 만나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 총체적 혼란이 와야 정상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코믹스 팬들, 정말 존경합니다.)

 

아무튼 잭 스나이더와 크리스토퍼 놀런이라는 최강의 조합으로 새롭게 시리즈를 시작하는 '맨 오브 스틸'을 봤습니다.

 

 

 

일단 줄거리.

 

지구에서 엄청나게 먼 행성 크립톤은 고도로 과학을 발달시킨 문명을 갖고 있었지만 지나친 자만으로 행성의 소멸을 막지 못합니다. 늘 문명의 종말을 경고해왔던 과학자 조엘(러셀 크로)은 갓 태어난 아들을 캡슐에 태워 종족의 미래를 잇게 하려 합니다. 한편 무능한 원로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군인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은 조엘을 죽이지만, 반란 혐의로 체포되어 우주 유형에 처해집니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 슈퍼맨은 미국 캔자스 주 스몰빌(!)에 사는 조나산 켄트(케빈 코스트너)와 마사 켄트(다이언 레인) 부부의 아들로 성장하고, 사춘기가 지나 슈퍼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북극 기지에서 크립톤의 선조들이 날려 보낸 우주 정찰선을 발견하는 과정에 유능한 기자 조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의 눈길을 끌게 되고, 결국 레인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족쇄에서 풀려난 조드 장군이 지구에 나타나 '조엘의 아들'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대체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 알지 못하는 인류는 혼란에 빠집니다.

 

 

 

 

우선 맨 처음 경고.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스토리의 개연성을 따지자는 것은 이 영화를 보지 말자는 것과 같습니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비교해도 슈퍼맨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정 자체가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 수 있고,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고, 다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왕년에는 크립톤 별에서 나온 광석, 즉 크립톤나이트를 접하면 약해지는 약점이라도 있었지만 '맨 오브 스틸'에서는 그조차도 없어졌습니다.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냥 신입니다. '토르'같은 히어로는 참 신이라고 불릴 가치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슈퍼맨 이야기는 아무리 정교하게 꾸미려 해도 그냥 동화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슈퍼맨이 '아무 이유 없이(혹은 성격상의 문제로)' 자신의 능력을 덜 쓰지 않는 한, 패배가 불가능한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꽤 정교해질 수 있는 배트맨 이야기와는 달리 슈퍼맨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이건 원래 그냥 유치한 옛날 이야기에요' 라는 자세를 유지해왔습니다. 오죽하면 슈퍼맨이 성장한 동네 이름은 '작은 동네(smallville)'고 성장한 슈퍼맨이 기자 클락 켄트로 활동하는 대도시는 '대도시(metropolis)'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슈퍼맨 이야기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뇌의 회전을 멈추고, 그냥 영화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비해 비판하지 않고 어린 시절 옛날 이야기를 듣듯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그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오브 스틸' 제작진은 최대한 이 이야기가 마치 지성에 근거한 것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도입부에서 크립톤 행성의 의사결정기관이 반란죄로 체포된 조드 일당을 굳이 행성 밖으로 추방하는 데 대해 조드 장군이 "나를 죽일 용기도 없는 놈들!"이라고 욕을 하는 대목 등이 그렇습니다(하지만 사실은 이 '유배형'이야말로 크립톤 행성의 소멸에서 조드 일행이 살아남는 계기가 됩니다. 한마디로 최고의 문명이 발달한 크립톤 행성 사람들은 반란군에게 - 죄 없는 사람들보다 우선해서 - 최대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문명이었던 것이죠).

 

뭐 이런 대목을 세다 보면 역시 날을 지샐 수 있으니 그냥 덮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를 즐기려면 많은 걸 [덮어 둬야] 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너무나 신나는 엔터테인먼트의 총체입니다. 며칠 전에 본 '스타트렉:다크니스'의 비주얼이 갖고 있는 장대함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슈퍼맨과 조드 일당이 벌이는 액션의 강도는 역대 최강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쌓인게 많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절대 비아냥 아닙니다. 정말 신납니다)

 

아무튼 보다 보면 이 영화의 슈퍼맨은 두 다른 맥락의 영웅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는 '맘만 먹으면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선과 악의 두 존재가 지구를 무대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드래곤 볼 시리즈죠. 슈퍼맨과 조드가 싸우기에는 지구라는 무대, 특히 뉴욕 메트로폴리스 같은 대도시는 매우 취약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에 허망하게 부서져가는 고층건물과 차량 및 시설물들이 참 안쓰러울 뿐입니다. 싸우려면 좀 사막 같은 데 가서 싸우든가...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드래곤 볼 시리즈의 손오공 역시 외계에서 온 인류의 구원자. 신과 죽음을 초월한 능력자. 자손 대대로 이어진 히어로 계보와 팬덤의 확장 등을 보면 무척 비슷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또 하나는 바이블 스토리. 슈퍼맨을 예수에 대입시키는 해석이나 시도는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심지어 '슈퍼맨 리턴즈'에서는 '부활'이란 설정까지 등장해 수많은 관객들에게 떡밥을 던졌죠. 그런데 '맨 오브 스틸'에선 또 다른 식으로 이런 해석을 밀어붙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의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외계 세균의 존재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스와닉 장군에게 "33세까지 아무도 감염시킨 적이 없다"며 은근히 나이를 공개하는 대목입니다.  33세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나이죠. (슈퍼맨의 나이가 33세라는 것이 슈퍼맨 일대기의 공식 설정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다른 의견 있는 분이 계시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예수와 슈퍼맨(특히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은 많은 성장기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친아버지를 모르는 채 양아버지에 의해 양육됐고 ▲정체성 때문에 고민했고 ▲인류와는 엄청난 능력 차이를 가졌고 ▲기적을 일으켰으며(광신도 엄마가 "Act of God"이라며 흥분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왜 친아버지가 자신을 인류에게 보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하며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구금되기도 하지만 ▲언제든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슈퍼맨을 의심하고, 괴물 취급하고, 욕하는 인간들은 빌라도 앞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친 유태인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맨 오브 스틸'의 많은 장면은 '21세기에 예수라는 존재가 인류 앞에 나타났다면' 이라는 상황을 상상하게 합니다.

 

(한편으론 '너무나 신에 가까운' 슈퍼맨이란 캐릭터 자체가 반 기독교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슈퍼맨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피조물일까요? 그도 구원받을 영혼을 갖고 있는 존재일까요? 이런 이유로 '맨 오브 스틸' 중간에 삽입된 슈퍼맨과 신부의 대화는 묘하게 코믹하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슈퍼맨'이다 보니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이 지나가는 청소부 역까지 맡을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끕니다. 이런 배우들이 몇마디 안 되는 대사로 슥슥 지나가는게 아쉬울 지경입니다.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로이스 레인은 매우 흡족하고 다이언 레인의 주름살이 참 가슴아프더군요.

 

 

 

뭐 가장 중요한 슈퍼맨 역의 헨리 캐빌은 기대 이상입니다. 당초 '전형적인 각진 턱 미남'이 아니라는 점에서 살짝 우려가 있었지만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되는 수준입니다. (뭐 한때 니콜라스 케이지도 거론된 적 있었던 슈퍼맨 역할이고 보면...^)

 

 

 

 

헨리 캐빌이 얼굴만 지나치게 잘 생긴 브랜든 라우스에 비해 좋은 캐스팅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2:8 가르마가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왕년의 그분, 크리스토퍼 리브야말로 진정한 역대 최강의 슈퍼 페이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철거된 국제극장을 몇바퀴 감았던 살인적인 매표 라인을 뚫고 이 영화를 보러 간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이렇게 세 사진을 놓고 보니 슈퍼맨 수트의 색깔 변화가 더 확연합니다.)

 

자, 이제 정리 들어갑니다.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 리턴즈'로 인해 위축됐던 무비 스타 슈퍼맨의 위치를 다시 세우는 데 더 없이 훌륭한 성취를 보여줬습니다.

 

주요 스태프들이 워너 브라더스와 3편으로 계약을 했다니 당연히 후속작이 나오겠지만(일부 보도에 따르면 다음 한 편은 그냥 속편, 그리고 3편째는 저스티스 리그-배트맨 같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함께 활약하는-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합니다), 1편에서 워낙 기대 강도를 높여 놓은 터라 대체 2편째에는 어떤 악당이 슈퍼맨과 대결을 펼칠 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래갖고는 어디 렉스 루더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결론적으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대작. 개인적인 취향으론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더 다음에 들지만, 이 정도면 그리 실망하실 분은 없을 듯 합니다. 강추.

 

 

 

 

P.S.음악은 '누가 들어도 한스 짐머'였는데, 슈퍼맨과 조드 일행(정확하게는 페이오라)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의 음악은 '누가 들어도 영웅본색' 이더군요. 기억 안 나시는 분들은 이 동영상의 6분45초쯤부터 나오는 음악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개인적으론 역시 존 윌리엄스가 더 취향.^^

 

 

아울러 이 친구의 장래가 기대됩니다. 딜런 스프레이베리 Dylan Spray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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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다크니스]

 

'스타트렉 다크니스(Startrek into the darkness)'는 J.J.에이브럼스의 두번째 스타 트렉 시리즈 영화입니다. '스타 트렉-더 비기닝(2009)' 이후 4년만에 나온 영화죠. 대부분의 시리즈 영화들이 2년 간격을 준수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간격이 좀 길었던 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다려 온 팬들에게도 기다림은 상당히 지루했죠.

 

그리고 그 지루함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물합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의 정수라고나 할까요. 밀림 속에서 갑자기 앙코르와트를 발견하는 듯한 즐거움입니다. 아이맥스나 큰 화면을 강추.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스타트렉'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등장인물과 설정을 깔고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자, 다 아시는 내용은 생략하고 시작합니다'라는 식의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스토리텔링의 제왕인 J.J 에이브럼스는 과거 팬들의 향수('스타트렉' 시리즈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60년대에 이 오리지널 시리즈를 봤던 세대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새로 생성된 수많은 '젊은' 팬들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드 팬이라고 해서 반드시 60~70대라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거죠)를 달래면서도 새로운 팬들을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리부트의 형식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되, 시점을 오리지널 시리즈보다도 한참 더 앞선, 그러니까 유명한 등장인물들이 처음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부터 새로 벽돌 쌓기를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커크나 스팍 같은 유명한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보면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 처음 우주함대에서 인연을 맺게 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에이브럼스의 새 영화 시리즈를 보는 사람들은 올드 팬이나 새로운 팬이나 동등한 위치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불만 많은 올드 팬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죠. 몇몇 팬들은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아주 느슨하게 영향을 받은 왕년의 영화 '스타트렉: 칸의 분노(Star Trek: the Wrath of Khan, 1982)과의 관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리메이크면 떳떳하게 리메이크라고 해라!'라는 식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일단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줄거리.

 

미지의 행성을 관찰하고 있던 우주전함 엔터프라이즈. 외계에서 어떤 문명을 접하든 그 문명의 역사에 관여해선 안된다는 것이 우주함대(Starfleet)의 절대 의무(Prime Directive)지만 이들은 그 행성에서 두 부분의 선을 넘습니다. 첫째는 스팍(재커리 퀸토)이 화산을 진정시켜 행성의 멸망을 막은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커크(크리스 파인)가 스팍을 구조하기 위해 엔터프라이즈의 모습을 행성민들에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주함대로부터 징계를 받고 커크는 함장직을 내놓게 됩니다. 한편 모종의 음모에 의해 우주함대의 수뇌부에 테러 공격이 가해지고 고위 지휘관들이 살해당합니다. 테러의 배후에는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다시 우주함대가 출동합니다.

 

그리고 이 테러의 배후에는 정치적인 음모와 과거의 배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환상에 가까운 비주얼의 도가니입니다. 내용은 없고 비주얼만 화려한 영화만큼 관객을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지만, 적절한 플롯의 배치에 가해진 비주얼의 위력은 정말 '궤멸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효과적입니다.

 

특히 곳곳에서 등장하는 스펙터클은 더욱 효과적입니다. 화려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장려하기까지 하죠. 영화 초반, 미지의 행성에서 벌어지는 추격 신과 함께 바닷 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하늘로 솟구치는 엔터프라이즈의 모습은 제아무리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려 마음 먹은 관객도 한방에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발휘합니다.

 

 

 

젊은 주인공들 역시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기존의 시리즈가 커크-스팍의 관계에 집중됐던 느낌(이래서 이 둘의 관계를 BL쪽으로 풀어 보려는 마니아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이라면, 의사 맥코이(칼 어반)나 기관장 스코티(사이먼 펙), 그리고 항해사 우후라(조이 살다나) 등의 비중이 만만찮습니다. 조타수 술루(존 조)나 엔지니어 체코프(안톤 옐친)도 시리즈를 거듭하다 보면 주연급이 될 지도...

 

(아니면 아직 그리 핵심 멤버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사소한 트러블이 생기면 다음 시리즈에서는 다른 배우로 교체될지도...^^)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 시리즈를 살리는 핵심적인 키는 바로 이 괴물같은 배우에게 있습니다. 사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조금 더 빨리 스타덤에 올랐더라면 이번 악역 대신 스팍 역을 제안받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외계인스러운 외모는 물론이고, 일반 지구인의 감정을 잘 이해 못하는 이성 제일주의자의 컨셉트라면 스팍이나 셜록이나 막상막하. 하긴 제안을 받았다 해도 '너무 똑같은 역할을 계속 맡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컴버배치가 거부했을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컴버배치라는 거물 악역의 등장으로 시리즈는 또 한번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최소한 한번 이상은 우려먹을 듯한 느낌.

 

 

 

4년 전,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보고 나서 '60년대 SF로의 회귀'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때는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한 낙관', 내지는 '미국적인 프론티어 정신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에서 그랬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서가 90년대 이후 '지나치게 심각해진' SF 영화들에 싫증났던 기존 관객들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라고 했던 것이고, 이번 '다크니스'에서도 그런 경향은 여전히 유지됐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2대차전 시절의 할리우드 영화같은 느낌이 추가됐다고나 할까요.

 

사실 '이 분위기'야말로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9.11과 테러의 위협에 노출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메시지라면, 꽤 의미 있는 변화가 느껴집니다.

 

'스타트렉' 시리즈에선 사실 꽤 강도 높은 군국주의가 읽히곤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늘 강조되는 모토는 '소수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번영'입니다. 주인공들은 '나 하나를 희생시켜서 이 전함이, 혹은 이 전함 한 척을 희생시켜서 전 함대가, 혹은 이 함대를 희생시켜서 인류 전체가' 보호받을 수 있다면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로 가득합니다.

 

(어떤 때 보면 전함 엔터프라이즈가 아니라 '진충보국'을 가슴에 새긴 1940년대 전함 야마토의 승무원들 같기도 하죠.)

 

이 맥락에서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특히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적(테러)과 맞서기 위해선 우리도 적잖은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안온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들만 파괴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희생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고 강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쩐지 이 영화는 2차대전 시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이던 애국주의를 보강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입장은 영화 초반에 견지됐던, '외부 문명의 운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우주함대 본연의 프라임 디렉티브와는 분명히 서로 상충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교묘하게 가려져 있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건 현실에서도 '최강의 문명국가'가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죠. 보편적인 도덕률에 따라 개입할 것인가, 누군가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켜볼 것인가.

 

 

 

 

뭐, 이 양반에게 깊이 파고 들면, '어차피 먼 미래의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할테지만요. 아무튼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올 상반기 최고의 오락영화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개인적인 순위에선 '아이언맨3'를 이미 제쳤습니다.^)

 

마지막은 참 코믹한 패러디. 눈빛만으로도 엮으면 이렇게 엮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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