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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시면 '응? 주지훈과 류정한이 무슨 관계지?'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드라마 마니아라면 다르시겠죠. 두 사람 모두 드라마의 거장 황인뢰 감독이 '깜짝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캐스팅 과정이야말로 진짜 드라마'라는 말을 합니다. 작가와 연출자가 처음 대본을 만지면서 생각했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캐스팅되는 경우는 100에 하나가 될까 말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 구상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깜짝 신인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스타덤에 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고, '누가 봐도 망할 수가 없는 주인공'을 캐스팅한 드라마가 산산조각이 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것이 드라마의 세계죠.

 

 

 

 

최근 끝난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과 현재 방송중인 '러브 어게인'의 황인뢰 감독은 각기 일세를 풍미한 명 드라마 연출자로 유명합니다. 이 분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신인 기용과 관련해 대조적인 경우가 문득 떠오릅니다.

 

안판석 감독은 '아내의 자격'의 주인공 이성재를 처음으로 주인공에 기용한 연출자입니다. 바로 1997년작인 드라마 '예스터데이'죠.

 

 

 

당초 이 드라마는 메인 주인공인 영호 역을 비워 놓고, 영호의 의붓형인 민수 역에 이종원을, 그리고 두 남자주인공을 갈라 놓는 여주인공 역으로 김소연을 캐스팅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인 주인공 캐스팅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 감독은 이종원을 영호 역으로 바꾸고 대신 민수 역에 거의 완전히 신인인 이성재를 기용하는 모험을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이성재는 호평을 받았고, 두 남자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오히려 강한 인상의 이종원이 선한 주인공으로, 선하고 유약한 인상의 이성재가 이종원에게 앙심을 품는 역으로 등장하며 신선한 느낌을 줬다는 평이 주류였죠) 대신 이종원과 김소연이 너무 나이 차이가 커 보이며 케미스트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정 반대 케이스가 '궁'입니다. 궁은 일찌감치 김정훈을 남자 2번 격인 이율 역으로 캐스팅하고, 주인공으로 모델 출신 신인 주지훈을 캐스팅합니다. 당시 지명도로 보나, 인기로 보나 UN 출신의 김정훈이 주지훈보다 높은 급의 배우였죠.

 

당연히 김정훈을 메인 주인공으로 올려 놓고 두 배우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제작진은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잘라 버렸습니다. 주지훈의 외모에 대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지금 들으시면 깜짝 놀랄 얘기지만 '궁'이 방송되기 전에는 이런 얘기가 꽤 많았습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역시 황인뢰 감독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궁'은 히트했고, 주지훈은 바로 톱의 자리에 올랐죠.

 

물론 이런 선택 때문에 '궁'은 히트하고 '예스터데이'는 실패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죠. 다만 당시 '궁'의 연출자가 황인뢰 감독이고, '궁'에 이어 다시 한번 남자 주인공에 드라마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신인을 기용한 거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류정한이 연기 경력이 없는 신인이냐면 그건 또 아니고.^

 

최근 김무열 조정석 엄기준 주원, 멀게는 오만석 신성록 송창의 박건형 등등 뮤지컬계에서 내로라 하는 이름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진출해 각광받고 있는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수많은 스타들 가운데서도, 뮤지컬 본령에서 류정한의 이름을 넘어선 연기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있다면 조승우 정도?)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안정된 발성입니다. 위의 연기자들 가운데서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배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류정한의 적당히 기름기 있는^^ 저음은 특히 매력적이죠. '러브 어게인'에서 보면 '과연 저런 목소리의 형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하지만, 아무튼 목소리 참 좋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 수가 없습니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극장 무대에서의 연기와 클로즈업이 들어갈 수 있는 드라마/영화에서의 연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로 치자면 내야에서의 송구냐, 외야에서의 송구냐 정도 차이일 뿐, 기본적으로 어깨가 탄탄한 선수라면 어느 쪽이든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류정한이 드라마에서도 노래하는 장면을 한번 정도 보여주면 기존의 팬들 외에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는 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본인의 뜻과 다르다 보니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뒤로 가면 한번쯤 가능할지도...^^) 뭐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강력계 반장이 된 형사...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류정한의 노래 한 곡.

 

 

 

만약 류정한을 드라마에서 처음 보신 분이라면, 지금은 드라마 속 역할 때문에 조용조용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남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노래를 들어 보시면 그 안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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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라는 영화가 나오기 까지의 과정에 대해 미국 그래픽 노블('만화책'에 대한 공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니아들에게 물으면 '그걸 어떻게 한두시간에 설명하란 말이냐'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물론 그 엄청나게 복잡한 계보와 역사(절대 정리되지 않습니다. 작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를 일반 관객들이 이해할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일단 '미국 만화'에는 DC 계열과 마블 계열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화를 기준으로 볼 때 DC 계열보다는 마블 계열이 훨씬 결속력이 강하다는 정도만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사전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아이언맨' 이후 '퍼스트 어벤저-캡틴 아메리카', '토르' 같은 영화들은 이미 '어벤저스'를 만들기 위한 밑밥이라는 점을 관객들에게 너무나 분명히 알렸기 때문입니다. 즉 위 두 편의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어벤저스'의 사전 홍보 영상같은 의미라고 봐야겠죠.

 

줄거리. '어벤저스'는 가장 직접적으로, '토르'에서 이어집니다. 토르에게 한번 박살이 난 토르의 의붓동생 로키는 외계 전사 종족의 후원을 받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파이 능력을 이용해 이 외계 전사들을 지구로 불러들여 지구인을 멸망시킬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한편 로키에게 큐브를 빼앗긴 퓨리 국장과 SHIELD는 슈퍼 히어로들의 연대를 통해 지구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친다는 '어벤저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깁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배너 박사(헐크), 토르 등 개성 강한 히어로들은 절대 합심하지 못하고,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빚어집니다.

사실 지금 리뷰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잡담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동기에 더 부합하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겠죠.^^

굳이 볼까 말까를 물으신다면, 시원시원한 볼거리를 원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뭣보다 한국형 히어로 아이언맨이 나오잖습니까.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다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어차피 잡담이니까 번호 붙여 정리합니다.

1. 영화의 전반부를 보다 보면 제작진의 고민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이미 신격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강한 적을 붙여야 관객이 긴장하게 될까요?

이미 지나치게 강한 우리편과 듣보잡 상대편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결국 '자중지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부의 이야기는 참 바보같고 한심한 오해와 과민반응의 연속이라 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 쉽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제작진의 사정을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얼른 전반부가 지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관객의 태도입니다.

 

                                ...너무 약한 적. 그래. 바로 너.

2. 사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지금도 이미 너무 강한 어벤저스지만 여기에 같은 마블 코믹스 소속인 스파이더맨이나 X맨의 일부 멤버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스파이더맨이 굳이 이 판에 숟가락을 들고 낄 이유가 없고, X맨과의 연대는 안 그래도 복잡한 히스토리를 더욱 더 꼬이게 할 우려가 있으니, 지금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입니다.

아무튼 1, 2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조스 웨든 감독의 솜씨는 인정하게 됩니다.

 

3. 사실 진정한 슈퍼히어로 연합이라면 아이언맨, 캡틴, 헐크, 토르 정도까지가 적당합니다. 이미 이 정도만 해도, 솔직히 토르는 신이고 다른 멤버들은 사람인데 토르와 아이언맨이 동등하게 치고받고 한다는 것부터 좀 불편하죠. 게다가 실전에서 가장 위력적인 멤버가 방패도 없고 맨살로 뛰어다니는 헐크라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실전에서 '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무 초능력 없는 진짜 사람'인 호크아이나 블랙 위도우에 비해 뭐 하나 뾰족하게 나은 게 없더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적의 방패'입니다만, 그 방패 없는 나머지 멤버들도 적들의 사격은 그냥 야구장 레이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한방도 안 맞아요). 그 결과, 맨주먹으로 맞서는 캡틴은 그냥 명예 멤버 역할이나 하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팬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일수도...

 

 

4. 이 영화의 시각은 은근히 우익적입니다. 영화 도중 아이언맨은 SHIELD에서 외계의 에너지원인 큐브를 이용해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고 폭로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권력기관 민간인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배너 박사가 "내 너희 기관원들이 하는 짓이 그렇게 음흉할 줄 알았어! 니들 나한테도 *****하게 했잖아!"라고 흥분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걸 니들이 알아봤자 이런 소란밖에 더 피워?'와 '입만 살아 있는 무책임한 히어로들보다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묵묵히 아무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던 SHIELD가 짱'이라는 쪽.

 

5. 새로 추가된 배우가 워낙 없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코비 스멀더스의 출연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의 미녀 로빈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마찬가지로 반가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선 별 존재감 없는 역이었지만 감독 조스 웨든이 극장판 '원더우먼'을 계획할 때 타이틀 롤을 맡기려고 했던 인재입니다. 물론 취소된 프로젝트. 아래 사진은 아마도 그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은 팬 아트인 듯 합니다.

완전히 박살난 TV판 원더우먼 리메이크는 대체 왜 그런 캐스팅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거기에 비하면 코비 다이애나 프린스는 여신이군요.

6. '어벤저스'의 제작과 거의 확실한 '어벤저스2'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3'가 2013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건 역시 '어벤저스' 프랜차이즈가 아이언맨 없이는 존립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아이언맨이 유재석인 '무한도전'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전투력은 헐크가 최강이라도 결국 멋진 역할이나 재미있는 장면은 모두 아이언맨 차지. 애인이 나오는 캐릭터도 아이언맨 혼자 뿐.

이렇게 보면 '어벤저스'는 '아이언맨' 2편과 3편 사이의 간격을 메워 주는 '아이언맨 2.5' 의 역할이라고 보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전 우주적으로 놀게 된 아이언맨을 다시 지구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아이언맨3' 제작진은 얼마나 더 고민해야 할까요.

 

7. 베스트 신은 헐크가 보여주는 '분노의 빨래 털기'.^^

   이 한 장면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후련합니다.

 

P.S. 대체 항공모함이 공중에 떠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이점에는 뭐가 있을까요?

       어뢰에 맞지 않는다? 기뢰 공격을 피할 수 있다? ㅋ

       ('첼로리스트'는 워낙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터라 뭐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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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새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 첫방이 나갔습니다. 탄탄한 줄거리와 배우들, 연출력이 뒷받침 된 드라마이다 보니 첫 방송이지만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4%대 시청률로 막을 내린 '아내의 자격'의 후속이라서인지 첫회가 2%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드라마 줄거리보다 여주인공 김지수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김지수를 TV에서 처음 본 게 1994년의 '종합병원'이더군요. 뭐 저 뿐만 아니고 거의 모든 분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놀랍게도 김지수의 모습이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뱀파이어녀' 혹은 '방부제녀'라는 말이 좀 장난스럽게 쓰이곤 하는데, 김지수야말로 진정한 뱀파이어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건 바로 이번주 월요일에 있었던 '러브 어게인' 제작발표회장에서 찍힌 김지수의 모습입니다. 김지수는 1972년생. 오는 10월이면 만 40세가 됩니다. 극중 설정 나이가 얼추 45세면 실제 나이에 비해 큰 무리는 아닐 듯 하지만, 저 비주얼로 45세...라는 것은 진짜 45세 전후의 여성들에겐 참 불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2008년작 '태양의 여자' 때 한 잡지와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태양의 여자'가 벌써 4년 전 드라마라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과 김지수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뭐 4년 전이니 당연히 그럴 법 합니다. 

 

2005년작, 영화 '여자, 정혜' 때의 스틸입니다.

지금보다 살짝 어려 보이는 건 헤어스타일 탓인 듯도 하고... 아무튼 뭐 그닥 달라진 건 없는 얼굴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부터 7년 전의 모습이라는 것. 

 

2001년작 드라마 '온달왕자들'에서의 모습. 자, 한번 맨 위의 사진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며칠 전에 찍힌 사진보다, 이 모습이 나이들어 보인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11년 전의 모습입니다.

 

 일일드라마로 공전의 히트작이던 '보고 또 보고' 시절의 사진. 고인이 된 박용하가 옆에 있어 세월을 느끼게 하지만 아무튼 엊그제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

어쨌든 1998년, 지금부터 14년 전입니다.

 

1997년작 '내안의 천사' 시절. 오른쪽에는 장진영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사진 역시 지금보다 조금 나이들어 보인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

 

이게 실질적인 데뷔작인 '종합병원' 때의 모습입니다. 1994년. 진짜 데뷔작은 1993년의 '머나먼 쏭바강'이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기억하는 첫 작품은 이거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이해 11월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 역시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살짝 남은 볼살 정도? 대개는 이 볼살이 빠지면서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지만 김지수는 볼살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점점 더 젊은 얼굴이 되어 간 듯 합니다.

어쨌든 제 느낌으로는 이 사진이 더 나이들어보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최소한 18년 전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듯 합니다.^^ 보통 사람들과 비하면 더욱 그렇고, 연예인들 가운데서도 18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이 정도인 사람은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김지수가 나온 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티저 영상 가운데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배경에 깐 버전이 공개됐습니다. 아마 드라마로는 4부 정도에 나오는 장면일 겁니다.

 

이 영상 속에 나오는 김지수와 다음 영상 속 김지수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쪽은 2001년 공개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공식 뮤직비디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상에서도 김지수가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화장법이 요즘 유행과 좀 달라지긴 했지만 참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안 변할 수가 있나 싶더군요.

 

김지수가 데뷔한게 벌써 19년 전. 참 여러가지로 놀랍습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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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매회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내의 자격' 10회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이혼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혼한 부부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이혼한 부부의 모습은 '폭력 남편', '바람피는 남편'과 '폭력 피해자 아내' 또는 '자식새끼 내버리고 튄 화냥년'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다르더군요. 특히 자녀에게 이혼을 설명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이혼을 맞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아내의 자격'이 다른 드라마들과 어떻게 다른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10회에서 서래(김희애)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결이를 찾아갑니다. 과연 5학년인 아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게 '자식을 버리고 바람나서 달아나는' 경우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까.

대부분의 경우라면 이런 부모들은 그냥 바로 숨어 버릴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아예 죄책감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그려지죠. 하지만 서래는 아이를 만나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왜 엄마와 살 수 없느냐는 질문에 "양육권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엄마가 잘못해서"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빠 말고 다른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어서"라는 말에도 결이는 심하게 충격받지 않습니다.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치과 의사 아저씨라는 데에서야 놀랄 뿐입니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만 되어도 자신의 부모들이 이혼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결이는 엄마를 만났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혼자 이런 저런 상상 많이 했는데 다 알게 돼서 좋았어요. 다음주에는 엄마 만나러 가고 싶어요."

그런 조숙한 아이에게 서래가 전하고 싶은 것도 "엄마는 너를 버리는게 아니야"라는 한마디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를 떠난다고 아이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가슴으로 전하는 여주인공이 지금까지 몇이나 있었을까요.

(사실 '아이에게 말하기'라는 것은 이런 경우의 부모들에겐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그걸 잘 알기에 지선(이태란)도 태오(이성재)에게 "딸에게는 네가 저지른 짓, 직접 얘기하라"고 쏘아붙입니다.)

 

또 하나,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혼의 이유가 불륜'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드라마에서는 '바람 피우다 이혼하는' 수없이 많은 커플들이 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태오-지선 부부가 갈라서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부가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이유에는 수천만가지가 있다는 것을 넌즈시 보여줍니다.

지선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강남좌파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른바 '패션좌파'라고도 불리는 강남 부유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오가 대학생이던 시절 운동권이었다는 것은 이미 태오의 선배이자 서래 남편 상진의 친구인 진만(현재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태오와 캠퍼스 커플이었던 지선 역시 그 영향 속에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동지적 관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 지선은 강남 한복판에서 상위 1%의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학원 강사가 아니라 성공한 경영인으로 변신해 있고, 학원기업을 일으키자는 야망도 갖고 있습니다. 또 '내 딸 만큼은 상위 0.1%로 키워내야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지선 때문에 호의호식하는 것도, 지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태오에겐 모두 불만입니다. 이것이 어느새 부부 사이를 냉랭하게 만든 것이죠. 그리고 태오에게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선도 태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늘 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다들 강남 좌파라고 한껏 폼 내고 사는데 이 남자(태오)는 왜 그렇게 못 할까. 화염병 만들던 애들이 빈티지 와인 마시고, 가끔 소탈한 척도 해야 하니까 막걸리도 있는 종류대로 골라 마시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이 남자는 그걸 못하나."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부부가 갈라서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성주 작가는 이혼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부부 사이의 위기, 혹은 '불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정점으로 삼았습니다. '아내의 자격'과 간혹 비교되곤 했던 '애인'에서도 유동근과 황신혜가 연기했던 두 주인공은 결국 고뇌 끝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렸죠.

하지만 김희애와 이성재는 16부작 드라마의 10회에서 갈라서 버립니다. 나머지 6회는? 기존의 드라마 진행속도로 본다면 이건 보너스인 셈이죠.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아내의 자격 1부'였던 셈이고, 이제 '아내의 자격 2부'가 제대로 시작할 조짐입니다.

 

물론 서래의 눈물겨운 고생담도 지금부터 시작일 듯 합니다. 태오에게는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고생 없이 살고 있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생활을 위해 고기집에서 한밤중까지 불판을 닦는 고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회에서는 그런 현실을 태오가 알게 되는 듯 하더군요. 이래저래 차회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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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소문 최강인 영화 '건축학개론'. 명성대로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입니다.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을 보고 '이야, 이렇게 뻔할 듯한 이야기를 갖고 이만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하고 재능에 감동한 게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영화, 특히 전작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가지고 이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소문대로 이 영화는 Y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감독이 90년대초 Y대 건축공학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Y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가수 김동률의 노래 '기억의 습작'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영화입니다. 시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바보같은 스무살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촉촉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정도.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보세요."



현재.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승민(엄태웅)에게 어느날 갑자기 잊고 살던 15년 전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서현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승민. 그런 승민에게 서현은 의사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 지을 집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15년 전(1997년?). 건축공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1학년 2학기 건축학개론 시간에 음대생 서연(배수지)을 보고 가슴이 설렙니다. 알고 보니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서연. 제훈과 서연은 갑작스레 가까워지고, 건축학개론 과제를 위해 꽤 멀리까지 함께 나다니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워낙 경험이 없는 탓에 이 감정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승민. 갓 스무살의 신입생에게 사랑이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크로니클'에서 갑작스런 초능력을 갖게 된 10대들이나 마찬가집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에너지로 충만해 있는 시기죠(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그렇습니다). 문제는 첫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에너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려는, 상온에서의 니트로글리세린같은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감정은 느끼되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과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죠. 에리히 프롬이 젊음에 대해 '사랑은 충만해 있으되 그 사랑을 어디로 쓸 줄 모르는 상태'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소한 오해, 별 것 아닌 힌트, 아무 일도 아닌 위기감, 그리고 질투, 선망, 동경 등등 미세한 감정의 흐름에 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곤 합니다.

'건축학개론'은 제목대로(?) 바로 이런 '첫사랑에 대한 개론'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첫사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낭만적인 병리적 증상을 남김없이, 그리고 매우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첫사랑에 대한 잘 만든 영화가 어디 한두편일까마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 한 영화가 우려먹고 지나가고, 그 세대가 흘러가 다음 세대가 비슷한 주제를 찾을 때까지 - 이 소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86년의 '겨울나그네', 2000년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2012년의 '건축학개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세대가 나타나겠죠.)



개인적으로 - 뭐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한 분들이 많겠지만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신입생 시절의 승민과 서연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김동률의 노래를 듣는 장면입니다. 

승민은 서연이 건네 주는 이어폰의 한쪽 끝을 귀에 꽂습니다. CD 플레이어가 작동되기까지 약 2,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물론 이 정적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이 순간은 서연에 대한 승민의 마음을 0의 상태, 즉 컴퓨터로 말하자면 초기화시키는 시간인 셈입니다), 김동률의 익숙한 첫 가사, '이젠/ 버틸수 없다고...'가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승민은 먼 훗날 누군가로부터 '언제 서연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일테죠. 이렇게 이용주 감독은 필요한 부분마다 적시타를 날려 주는 강타자의 면모를 보입니다.




표면상 주인공은 엄태웅/한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성인 부분은 그냥 간판 역할입니다. 진짜 영화의 핵심은 이제훈/배수지에게 가 있죠. 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캐스팅은 매우 절묘했습니다.

이제훈은 갓 명문대에 입학한, 다소 어려운 집안의 젊은이로서 완벽합니다.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듯한 그늘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빈부 양극화로 접어들기 직전, '한국사회에서 강남이 갖는 의미와 강남 문화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위축감'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고의 걸그룹 출신인) 배수지는 그런 부분에서 묘한 존재입니다. 승민이 서울 강북 지역에서 자라났고, '강남/강북'의 구도가 그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폭력적인 느낌이라면, 아예 서울 사람이 아니었던 서연에게는 그런 구도가 큰 의미가 없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나 '서울 사람'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서연에게는 '기왕이면 강남이 더 멋지지 않아?'라는 의식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이 무참히 사라진 이유 이면에는 이처럼 '강남/강북'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구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서울 지역에서 '강남 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을 느끼고 있던(말하자면 '계급에 대한 인식'인 거죠) 승민은 그 외곽으로부터 진입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강남 문화에 대한 선망과 편입 의지를 보이는 서연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연을 사랑할수록 그 불만은 점점 깊어갈 뿐입니다. 

아마도 승민은 서연이 자신의 처지나 시각을 '알아서' 공유해 주기를 바랐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강남/강북'에 대한 인식이 없는 서연은 이런 승민이 불안하고 어색해 보일 뿐입니다. 안경 쓴 선배는 그 '강남'을 상징하는 존재지만 '그날밤의 사건'은 사실 둘이 헤어지는 데 부수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애당초 이런 인식 차이가 있는 한 승민과 서연은 잘 될 수가 없는 관계였죠. 이용주 감독은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고, 관객에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이해하실...)



승민의 눈에 비치는 서연은 '예측불가능한 요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인 것이죠. 이런 대상이 되려면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서연 역을 구현하는 배수지의 스타일과 연기는 완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림하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이 엿보입니다.





영화에서 표제곡으로 등장한 노래는 다 아시는 '기억의 습작'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떠오르는 노래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직접 들었다면 줄거리의 균형을 깨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영화의 포스터 중에 이 카피가 써 있는 버전이 있군요.^^)



P.S.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우리중 인기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첫사랑'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중 많은 '나'는 어느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을 겁니다. (네. 불편한 진실이죠.^^ 대중은 속고 있습니다.) 


P.S.2. 납뜩이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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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수목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보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한마디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회사가 회사다 보니 주변에 널린 게 기자들입니다. 요즘은 신문과 방송이 한 건물 안에 있으니 신문기자, 방송기자가 다 있습니다. 그중 한 선배에게 요즘 '아내의 자격'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야, 말도 마라. 요즘 집에서 마누라 그거 못 보게 하느라고 마크하는데 진땀 뺀다."

아니 회사의 간판 프로그램인데 못 보게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 남편, 얼마나 찌질하게 나오냐? 거기다 기자잖아."


'아내의 자격'에서 극중 방송사 중견기자 한상진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장현성. 왕년에 '놀러와'에 출연해 "지적인 외모 때문에 한때 길에서 정치범(?)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는 바로 그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상진 캐릭터는 정말 '먹물 찌질이'의 대명사라 할만한 캐릭터입니다. 뭔가 아는 것도 많고, 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은 다 그럴듯하지만 방송 밖으로 나오면 금세 본색이 드러납니다.


서래와 결혼할 때만 해도 뭔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인 듯 보였겠지만 결국은 출세와 성공을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하는 그런 남자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집에서는 큰소리를 쳐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어 보이는 말'로 자기를 포장하기 바쁩니다.

'이런 남자'에 대한 정성주 작가의 서릿발같은 비판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바로 왕년의 히트작 '아줌마'에서 강석우가 연기했던 장진구라는 캐릭터입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속물 지식인이었던 장진구는 늘 학력 컴플렉스가 있는 아내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양 포장해 떠들지만 자신의 실체와는 영 거리가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14일 방송된 '아내의 자격'에서 상진은 한술 더 뜹니다. 캠핑장 가는 길을 못 찾자 "이런데 캠핑장 만드는 것 부터가 자연 훼손"이라고 욕을 하더니 캠핑장이 마음에 들자 "역시 사람은 자연의 기를 자주 들이마셔야 한다"고 금세 팔랑거리고, 처음 만난 태오 부부에게도 바로 '학번'과 '학교'를 묻고 그 학교의 '아는 사람'을 들먹이며 선배 행세를 합니다.

15일로 넘어가면, 상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과 친한 태오의 선배를 불러내 굳이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해 나뒹구는 추태를 보입니다. 아무튼 학벌/인맥/사회적 지위 앞에 한없이 작아져 '언론인의 기개'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한껏 보여줍니다.


사실 너무 익숙한 광경이어서 소름이 끼칠 정돕니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저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집에서 그거 볼까봐 겁난다"는 선배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아무튼 14일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불륜의 적발 장면. 늦은 밤 캠핑장에서 혼자 불 곁에 앉아 술을 마시던 태오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나온 서래와 마주칩니다. 코를 고는 남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나온 것이죠. 차에 가서 자겠다는 서래를 따라 나선 태오는 서래의 차 옆자리에서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서래는 차창 밖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지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순간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서래. 모두 다 모인 자리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던 지선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서래를 꼭 껴안고 귀에 나지막히 속삭입니다. "내가 결이 엄마 좋아하는 거 알죠?"


결국 다시 '내가 미쳤지 미쳤어'의 자세로 돌아간 서래는 지선을 찾아가 "모두 내 불찰"이라며 간곡히 사과합니다. (물론 주인공들이 이 선에서 마무리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가정이 회복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겠죠.ㅋ) 하지만 이미 서래의 남편 상진과 시누이 명진이 사건의 추이를 알고 있는 이상, 간단히 일이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 방송에서는 두 개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는 태오에게 "이건 밥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서래의 대사. 뒤늦게 찾아온 감정이 소중하긴 하지만, 없어서 죽는 건 아니라는 걸 가리키는 얘기죠.

하지만 다음주 예고에서 서래는 "10년만에 내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드라마며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여운이 남다릅니다. 글쎄, 여자가 아닌 제가 이해하기는 참 힘든 얘깁니다만... 남자들이라고 매일 매 시간 '나는 남자다'라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인식시키며 살지는 않죠. 그럼 남자들은 언제 '나는 아직 남자다'라는 걸 느낄까요. 그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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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서래(김희애)의 대사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미쳤어"입니다. 입으로는 계속 '미쳤어' '미쳤어'를 되뇌면서도, 마음이 몸을 어찌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치동 교육 현실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던 1,2부에 이어 이번주 3,4부에서 '아내의 자격'은 서래와 대오의 격정이 명진과 은경의 감시망에 걸려드는데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생긴 듯 합니다. '과연 한번 빠지면 저렇게까지 될까?' 라는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3부. 서래의 집에 시댁 식구들이 다 와서 저녁을 먹고 서래 남편 상진이 진행하는 '생생경제학'이라는 뉴스 꼭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로원에 가서 서래 엄마의 치과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태오가 계속 문자를 보냅니다. '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배에서 내렸습니다', '터널 막 지났습니다'. 그 문자를 계속 확인하는 서래는 금방이라도 손에서 그릇을 놓쳐 깨뜨릴 사람처럼 보입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밝은 낮에 주세요' 이 한마디를 왜 못하나 화가 날 지경입니다. 마지막에 서래는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이 한마디를 못 하죠. '경비실에 맡겨 주세요'를 문자로 다 쳐 놓은 뒤에도 서래는 끝내 보내질 못하고 달려나갑니다. 그리고는 태오의 차 옆자리에 앉아 숨을 헉헉거리며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집에 시댁 식구들 다 와 있는데 거짓말 하구 나왔어요. 결혼해서 단 한 번두 안해본 짓이예요. 엄마가 치매라는 거두 숨기구 싶었지만 그러믄 내가 더 속상할 거 같아서 다 말했어요. 애 학원에선, 애 땜에 의논 좀 하자는데 그냥 내뺐어요. 그 학원 보낼려구 온갖 짓을 다 하구,원장 말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나야 마땅한데, 도망쳤다구요.  어떻게든 김태오씨 만나구 싶어서요. 지금, 원장이 전화 하라는데두, 안하구 싶어요. 내일 하구 싶어요. 말두 안되는 일이예요. 정신이 나간 거예요."

(정성주 작가님 존경합니다. 대사의 생생함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정말 미친게 맞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시댁 식구들 다 와 있어요. 다음에 주세요'라고 했겠죠. 태오야 뭐 사정을 알리 없으니 그냥 문자 계속 찍어 보내는 거고. 아무튼 얼마든지 미룰 수 있었는데 서래는 미루질 못합니다. 왜. 그냥 당장 보고 싶은거죠. 당장 그 사람 얼굴을 못 보면 안될 것 같은 거고. 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 주부가 말입니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제가 알 길이 별로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금단의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들은 흔히 '미친 것'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예는 많습니다. 영화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너무 남자(주진모)가 만나고 싶었던 전도연은 젖병에 수면제를 타 아기를 재워 놓고 달려나갑니다. 그 결과는... 유혈극이죠.



영화 '쌍화점'에서도 왕비 송지효는 왕의 심복인 무사 조인성에 대한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고를 치고 맙니다. 이처럼 많은 작품에서 여자들은 '한번 사랑에 눈을 뜨면 세상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격정을 가진 존재들'로 그려지곤 합니다.

사실 속설로도 이런 얘기는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는 어쩌다 바람을 피워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냥 한번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바람이 나면, 남편이며 자식이며 다 버린다. 여자란 사랑에 눈멀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맞는 얘기인지 알 수 없지만 참 많이 들은 얘깁니다.



제목은 저렇게 달았지만, 남자인 저로서는 참 궁금합니다. 왜 여자는 '스쳐가는 바람에 인생을 거는' 존재로 그려질까요. 왜 남자는 한번 스치고 지나가서도 흘러간 시절을 가끔씩 기억하며 잘 사는 반면, 여자는 평생을 잊지 못하고 한을 품는다고들 한 것일까요. 이런 건 정말 옛날, 여자들이 억압받고 살던 시절이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일까요?

그런데 정말 더 궁금한 건, '아내의 자격'을 보면서, 이 21세기의 다 열린 시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김희애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들 하는 겁니다. 과연 여자는 원래 그런 존재일까요?




P.S. 사실 김희애에 가려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아내의 자격'에는 또 하나의 '미친 여자'가 있습니다. 바로 서래의 앞집에 사는 은주(임성민)입니다.

은주는 서래의 시누이인 명진(최은경)과 친구 사이지만 사실은 명진의 남편 현태(박혁권)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은주가 혼자 기르는 아들 재훈이 바로 현태의 아들인 것이죠. 한 동네에서 두집살림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은 치밀한 구성이 숨어 있습니다. 3부에 나온 바로 이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은주-설마 당신 오늘 저녁 때 우리 앞집에 납실 건 아니겠지?
현태-돌았냐?!
은주-명진이가 늦더라두 오래던데?
현태-말이 그렇지!
은주-당신 명진이 말 잘 듣잖아. 좋은 남편 행세하느라 왔다가 재훈이랑 정면으루 마주치믄 참 볼 만 할거야,그치?
현태-얼른 가. 쓸데 없는 걱정 말구.  
은주-알았어...비루하지? 처남 집에두 맘놓구 못다니구.
현태-가라고!
은주-재훈이 국제중 들어갈 때까지만 참어. 나두 그 때 바라보구 참는 거야. 그리구,재훈이 아침 공부 매일 해 줘.일주일에 하루,거지한테 적선해? 나 그거 싫거든?
현태-아,아니,이거 봐,
은주-조현태씨. 재훈 아빠.나 당신 쫌 많이 알어. 나는 최후에 터질 폭탄이지만, 그러기 전에, 내 맘에 안들게 굴믄 터뜨릴 게 무수히 많다구...당신 별명이 2차 대마왕이라지?
현태-누가 그따위 소릴 해!
은주-당신 나 어디서 만났니...나 아직 그쪽 인맥 안 끊었어...왜냐,당신이 여전히 출입하구 있으니까.
현태-그,그거야 업무의 연장,
은주-뭐?
현태-아,알았어,일단 가.누가 보기 전에.

그러니까 이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은 은주가 한때 룸살롱에 나갔다는 것, 현태는 여전히 룸살롱 업계의 큰 고객이라는 것, 두 사람은 호스티스와 손님 사이로 만났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한 동네였던 게 아니라 혼자 아들(재훈)을 키우던 은주도 바로 '교육 때문에' 현태와 명진이 사는 바로 그 동네로 왔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은주 또한 미쳐 있는 거죠. 분명 현태가 유부남인 것도 알고 만났겠지만, 어쨌든 자기가 온전한 가정을 갖지 못한다는 불만이 늘 가득 차 있고, 그것 때문에 현태의 목줄을 쥐고 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랑에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미친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지지만, 이 광기는 왜 은주가 서래와 태오의 관계를 폭로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자기가 차지하지 못한 현태를 차지하고 있는 명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명진이 늘 자랑하는 '완벽한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죠. 아무튼 이런 광기 때문에 '아내의 자격'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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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주연 '아내의 자격'이 첫 전파를 탔습니다. 연출 안판석, 극본 정성주, 주연 김희애 이성재 이태란 장현성.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라인업입니다.

처음 대본을 대했을 때의 느낌은 '정성주 작가의 화려한 귀환'이었습니다. 1999년 최진실-김혜자가 환상의 고부간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장미와 콩나물', 2000~2001년 원미경 주연의 '아줌마'로 남자들의 위선적인 가부장주의를 거침없이 공격했던 대 작가였죠(한 시대를 풍미한 미남 스타 강석우가 찌질남의 대명사 '장진구'로 불리게 됐던 바로 그 드라마입니다). 이 시기의 정성주 작가는 포스트 김수현의 선두로 불러 아깝지 않은 필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홈 드라마에서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힘은 대단했죠.

그러나 '고질적으로 대본이 늦는다'는 혹평과 함께 드라마 '술의 나라' 파동을 겪은 이후 정 작가의 작품에선 이전의 파괴력을 엿보기 힘들었습니다. 최정원 주연의 '애정만세'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변호사들'은 마니아 층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지만 예전의 정 작가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정 작가가 절치부심 뽑아낸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소한 조연급 인물 하나 하나의 동작에도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 것은 물론, 대사 하나 하나에도 섬세한 디테일이 잘 지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의 자격'은 아들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전세를 얻어 이주한 주부 서래(김희애)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강남 중산/부유층에서 자라나 방송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 상진(장현성)이 '아들 결이의 장래를 위해 이대로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이동생(최은경)의 딸이 국제중에 입학하는 장면을 본 다음의 결론입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강남의 벽'은 높았고, 결이는 국제중 입학을 위해 다녀야 할 학원 시험에서마저 꼴찌를 하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합니다. 궁지에 몰린 서래는 학원 원장인 '홍마녀'(이태란)를 찾아가 결이를 받아줄 것을 간청하고, 서래에게서 일반적인 대치동 아줌마들과 다른 뭔가를 본 홍마녀는 결이에게 기회를 줍니다.

날아갈 것 같지만 여전히 대치동 생활이 낯설고 힘든 서래는 동네 치과를 갔다가 언젠가 자신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 준 태오(이성재)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서래와 태오는 양로원에 있는 서래의 어머니 치료를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귀경하는 배를 놓칠 위기에 놓입니다. (여기까지가 1~2부의 주요 내용)



대본상으로 여기까지 내용을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여기 저기 나타나는 치밀한 취재의 흔적이었습니다. 대본은 강남 아이들이 학원 시험을 치르는 과정, 실제 가족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반찬 아줌마'들의 네트워크, 가족관계와 대화 내용 등 '대치동 라이프 스타일'의 디테일을 생생하게 살려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대치동'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흔히 '욕망 `1번지'로 불리는 강남 일대. 그 가운데서도 자녀들의 미래가 교육에 걸렸다는, 가장 첨예한 욕망이 들끓어 오르는 곳입니다. 몇해 전부터 유행하던 말입니다만 흔히 자녀 교육의 성공에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네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 중에서 '아빠의 무관심'이란 -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되니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그냥 방해나 안 되게 멀찌기 가 있는게 낫다는 뜻 - 남자들이 지어낸 말 같기도 합니다만, 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보시면 이 네가지 요소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가장 간단한 요약은 '김희애의 불륜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런 소개에 상당히 거부감을 갖습니다. 이 드라마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미 1, 2회를 통해 '강남 교육특구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2세 교육이 현대 한국 부부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쉽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예전만큼 부모 자식간의 유대가 굳지 않고 어떤 부부도 노후 대비를 자녀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됐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은 그 전의 어느 세대 못지 않게 치열합니다. 그 경쟁의 강도를 놓고 보면 사상 최고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1편에서 서래의 남편은 '이건 전쟁'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의미 못잖게 서래와 태오의 관계 역시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칫하면 '불륜 미화'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죠. 두 사람의 만남이 수채화같은 영상 속에서 아른아른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따져 보면 단순히 불륜 미화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해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선배 등으로 규정되어 가는 것이죠.



이런 관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두 성인이 기존의 관계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감정을 느꼈을 때, 과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 가는지를 바라보자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의 차이가 있겠지만, 정성주 작가의 시선은 두 사람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등지고 개인의 욕망을 향해 가는 과정을 참 설득력있게 그려냅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단지 지켜볼 뿐입니다. 물론 응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네. 누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ㅋ)

마무리는 이 드라마의 주제곡처럼 쓰이게 된 Byrds의 Turn, Turn, Turn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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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빠담'이 이제 두 회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일 개국 때부터 종편방송은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외면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드라마 한 편이 나쁜 얘기 한마디 듣지 않고 방송되고 있는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 시작하는 방송사에서 '빠담빠담'을 방송하는 것도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개국 첫 드라마를 무엇으로 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름 돈 깨나 써서 방송하는 드라마인데, 그래도 반향이 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민간 상업방송인데 시청률이 우선이라는 의견 등등.

하지만 그래도 '빠담빠담'이라는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그래도 이런 작품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쉽게 모아졌습니다. 안 그래도 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을 방송, 이 작품이라면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 묘한 반응이 일각에서 나왔습니다. 쏟아지는 호평 한 구석에서 "왜 이런 드라마는 '종편'에서 해서 사람을 갈등하게 만드냐'는 의견(아니 종편이 무슨 유신 시절의 대남방송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ㅋ ), 그리고 '지상파에서 했으면 20%는 나왔을 걸작인데 방송사를 잘못 만나 참 안타깝다'는 의견 등등.

그런데 과연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빠담빠담'은 빅 히트를 기록했을까요. 현재 '빠담빠담'은 2%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지상파 채널도 아니고, 아직 채널의 존재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을 벗어나면 '채널15'라고 자신있게 말할 처지도 아닌 상태에서 이 정도면 대단히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그만치 달라졌을까?> 미리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는 의견입니다. 

시작합니다.



얼마 전,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 2010)을 집필하던 김수현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이미숙이 수애 남매 생모일 것이라는 점치기가 있었던가 본데 하하’, 이어서 ‘이젠 사촌 오빠 이상우가 수애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좋아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사촌 누이동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가 전부, 숨겨놓은 카드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그리 아시길’이라는 내용이었다. <천일의 약속>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미숙은 지형(김래원)을 끝까지 애닯게 사랑하는 향기(정유미)의 엄마 역으로 출연했다. 만약 자신의 딸을 버린 지형에게 서연(수애)이란 연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찾아가서 어떤 행패를 부렸을지 모를 캐릭터였다.

물론 이 드라마가 <천일의 약속>이 아니고, 작가가 김수현이 아니었다면, 이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알고 보니 이미숙이 어려서 수애 남매를 버리고 달아난 생모였다’는 식의 진행은 충분히 가능했을 거다. 최근 몇 년간 지상파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아 온 시청자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김수현 작가도 일단 ‘하하’ 하고 반응했던 것이다.

드라마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가 종편 채널 JTBC에서 방송되고 있다.

면면이 일단 화려하다. 국가대표 작가 노희경과 <아이리스>(KBS2, 2009)의 김규태 PD가 힘을 합쳤고, 정우성 한지민 김범이라는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 드라마는 현재 전국 기준으로 2퍼센트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이하 <빠담빠담>)가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빠담빠담>의 기획안은 각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국 데스크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품을 거부했다. ‘장사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빠담빠담>은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은 드라마다. 첫 장면부터 주인공 강칠(정우성)이 교수대에 목이 매달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사건의 물리적 순서도 불분명하다. 귀휴로 교도소 밖에 나가 있던 강칠과 국수(김범)가 어느새 교도소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꿈인지, 환각인지도 분명치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신경 말초를 박박 긁는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강칠에게 이어지는 기적이 과연 환상인가, 아니면 자칭 천사인 국수가 일으키는 기적인가를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10대 시절 교도소에 들어가 16년 옥살이 끝에 출감한 강칠이 여주인공 지나(한지민)를 만나 조금씩 삶의 기쁨에 눈떠 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10퍼센트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선전했을까.

노희경 작가의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KBS2, 2008)도 완성도에서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현빈과 송혜교라는 주인공의 무게 역시 <빠담빠담>에 비해 못할 것이 없다. 극 중 사극 제작 신(<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 PD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다)에서 단 1회를 위해 사극 세트를 세웠다가 바로 불태워버렸을 정도로 투입된 물량도 <빠담빠담>을 넘어섰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최고 시청률 7.7퍼센트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거부한 시청자들이 과연 <빠담빠담>은 받아들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담빠담>의 현재 시청률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유료방송 채널이라는 약점과, 종편에 대한 일각의 반감을 극복하고 이만한 수의 시청자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반갑다. ‘화학조미료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주방에서 MSG를 쓰지 않는 식당은 며칠 못 가고 망한다는 것을. 드라마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수라도 진짜 음식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입맛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나니 이런 이야기가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경영 압박이 심해지면 퀄리티를 훼손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을 100% 부인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최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이 기조를 간직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빠담빠담' 19회와 20회.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빠담빠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 결말은 저도 모릅니다.;;)



다음주부터는 송창의, 한혜진, 조재현, 박건형 주연의 '신드롬'이 방송됩니다. '브레인'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뇌수술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바꿔 놓으려는 위험한 시도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김성령이 송창의와 모자관계로 나온다니... 이건 좀 가슴이 아프군요. 아직 너무 젊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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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봤습니다(극장을 찾은게 얼마만인지...ㅜㅜ).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세븐'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2011년작입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미 2009년에 작가의 모국 스웨덴에서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밀레니엄 1부'라는 제목으로 이달초 국내에서도 개봉됐는데, 사실 이 영화에도 관심이 갔지만 개봉관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이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동안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욱 '영화부터 보자'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주연 여배우 루니 마라의 'W' 지 화보에서는 더더욱.




현대. 스톡홀름. 시사잡지사 '밀레니엄'에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Blomkvist,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업 총수 베너스트롬(Wennerstrom)의 비리를 폭로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해 패소하고 60만 크로나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됩니다.

좌절해 있던 미카엘에게 스웨덴의 오랜 재벌 가문인 방예르(Banger) 가문에서 연락이 옵니다. 방예르 가문의 가주 역할인 헨리크(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천재적인 조사관 리스베트(루니 마라)를 이용해 미카엘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조사해놓고 있죠.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4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조카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내 주면 베너스트롬을 몰락시킬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떡밥을 던집니다. 영하 20도를 넘는 한겨울, 몸이 덜덜 떨리는 시골 저택의 별채에서 미카엘은 뭔가 음습하고 비밀이 넘치는 방예르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왜 이 작품이 소설로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롬크비스트, 베너스트롬 같은 낯선 이름. 흔히 해외 유명 작품들이 무대로 삼는 런던, 파리, 제네바 같은 도시가 아니라 퍽 생소한 스톡홀름 등의 배경이 확실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Blomkvist라는 이름은 이전의 상식대로라면 Blomkwist, 즉 '블롬퀴스트'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여기선 또 '블롬크비스트'라는 발음이 등장합니다. 사실 '헤르미온느'나 '케드릭' 이후 한국 번역가들의 이름 발음 문제에 대해서는 큰 신뢰를 갖지 않게 됐지만, 북유럽 이름까지 가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문득 올림피크 리옹에서 뛰던 노르웨이 스트라이커 John Carew의 이름 표기를 놓고 벌어졌던 왕년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존 캐루 - 욘 캐루 - 욘 카레우 - 욘 카레브 - 욘 사레브까지 온갖 한글 표기들을 검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이라면 http://ko.forvo.com/word/john_carew/#no 를 검색해서 '욘 카레브'라고 자신있게 쓸 수 있었겠죠.)



어쨌든 핀처의 솜씨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Immigrant Song'으로 시작하는 격렬한 그래픽의 타이틀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편집의 대가답게 핀처는 대단한 속도감으로 전반부를 폭풍처럼 휩쓸어 갑니다. 꽤 숙련된 관객에게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달려나간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한 속도입니다. 반면 비숙련 관객에게는 '뭐야. 얘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라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포탈 감상평을 일별하면 이런 요소가 이 영화의 흥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달려가는 영화 사이사이에도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의 풍광은 핀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충분히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눈덮인 평야와 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사물들. 모든 등장인물이 영어로 대사를 하고 있지만 '뭔가 대단히 이질적인' 이 느낌들은 관객이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천재 조사관(우리나라로 치자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직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전문적으로 남의 뒷조사를 하는 사람입니다)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의 루니 마라입니다.


아마 이 장면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 말고도 '소셜 네트워크'를 보신 분이라면 놀라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도 이 배우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만들 동기를 부여한, '예쁜이 여대생 에리카'였다는 사실을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물론 배우 노릇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욕심 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리스베트 역할은 매력적입니다. 23세. 어려서 아버지를 죽이려 시도한 죄로 금치산자 판정. 천재 해커. 발군의 운동능력.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과단성과 일반인과는 사뭇 다른 도덕관("정말 죽여도 돼요?"에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던 무대포 캐릭터의 "정말 죽여?"가 떠오릅니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펑크 스타일의 패션. (위 사진. 페레즈 힐튼에 따르면 저 피어싱은 모두 진짜랍니다.)




(네. 솔직히 이 분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코믹하지 않아서 그렇지... 딱 스웨덴의 김꽃드레라고 할 수 있죠.)

고만고만한 20대 여배우 풀이 넘쳐 나는 세상, 데이빗 핀처 같은 감독이 이런 역할을 제안한다면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백번 해야 마땅한 일일 겁니다. 이 역할 하나로 루니 마라는 수년간 고민했을 '존재감'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자 안톤(하비에르 바뎀)에 비견할 만한 압도적인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1차적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해 낸 루니 마라를 칭찬해야겠지만, 간장보다는 고추장이 인상적인 맛을 내기 쉬운 재료이듯 이런 역할이 배우의 기량을 100% 끌어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3편의 원작이 모두 영화화된다면 루니 마라는 그때 가선 '어떻게 리스베트 캐릭터로부터 도망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워낙 본 모습과 멀리 떨어진 캐릭터인 만큼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 -.

(일각에서는 스웨덴 판에서 리스베트 역할을 한 누미 라파스와 비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글쎄, 일단 사진만으로는 23세라는 설정과 라파스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23세가 원작과는 관련 없는 나이일 수도 있겠군요. 라파스에게서는 마라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미성숙'의 느낌이 풍겨나오지 않습니다.)



리스베트 캐릭터가 빛이 나는 만큼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블롬크비스트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007 배우가 육체적으로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너무 무기력하게 리스베트에게 리드당하는 역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게 핀처의 의도인지, 원작자의 의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만약 대단한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밀레니엄'을 보신 분이 있다면 실망하시기 십상일 겁니다. 어차피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고, 결과를 볼 때 그리 엄청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첨단 디지털 기법을 병행해 가며 묵묵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리스베트/블롬크비스트 콤비의 노력은 대단히 흥미롭고, 충분히 돈 값을 합니다. 죽도록 달려 목표에 도달하는 본 요원이나 헌트 요원 못잖게, '죽어라고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긴장감 유발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리스베트의 여성성을 강조한 에필로그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에필로그를 보고도 2편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건조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핀처 판 '밀레니엄'은 강추작입니다.



P.S. 헨리크 역을 맡은 할아버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실 단역에 해당하는, 대사 하나 없는 '젊은 헨리크' 역을 줄리언 샌즈(58년생인데 '젊은 헨리크'...)가 맡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P.S.2. 날이 갈수록 동태눈 증세가 심해지는지, 로빈 라이트와 대릴 해너가 헷갈릴 지경에 온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P.S.3. 도입부의 'Immigrant Song'과 '해커1'의 NIN 티셔츠는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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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드라마에서 나온 것만도 한두번이 아닌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바로 수양대군, 뒷날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권을 견고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견제하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다수의 인물들을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대군을 귀양보낸 사건이죠. JTBC 드라마 '인수대비'가 계유정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언젠가부터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의 이름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정란(政亂)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계유정난의 정의는 '단종 1년인 계유년(1453년)에 난을 진압한 사건'입니다. 진압의 주체는 수양대군이고 '난'의 주체는 김종서-황보인인 셈이죠. 

물론 어느 쪽이 난의 주역이고 어느 쪽이 왕권 수호의 주축인지는 결과를 보고 나서도 헷갈립니다.

과연 계유정난의 시점에서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한 명나라 영락제의 심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린 조카를 보필해 '간신들'을 물리치고 왕위를 굳게 지킨 주나라 주공 단의 심정이었을까요. 전자라는 쪽이 압도적이지만 후자의 마음도 1% 정도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혹시 영화 '관상' 때문에 오신 분이라면 '관상' 리뷰는 이쪽입니다.

관상: 관상은 정말 운명을 지배하나? http://v.daum.net/link/49999746


아무튼 계유정난이 일어난 날, 1453년 음력 10월10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매우 길고 흥미롭습니다. 박진감넘치는 묘사로 보아 이 사건을 기록한 사관은 아마도 문학적 재능이 풍부했던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중간중간 역주의 색을 바꿔 놨는데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은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PC를 통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그리고 기록이 꽤 길고 정교합니다. 물론 가끔씩 시간대가 뒤바뀌곤 합니다만...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세조가 새벽에 권남(權擥)·한명회(韓明澮)·홍달손(洪達孫)을 불러 말하기를,
“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히 하겠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약속과 같이 하라. 내가 깊이 생각하여 보니 간당(姦黨) 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金宗瑞) 같은 자가 없다. 저 자가 만일 먼저 알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두 역사를 거느리고 곧장 그 집에 가서 선 자리에서 베고 달려 아뢰면, 나머지 도적은 평정할 것도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 여러 무사(武士)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조용히 이르겠으니, 그대들은 느지막에 다시 오라.”
하고, 드디어 무사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한낮쯤 되어 권남이 다시 왔다. 세조가 나와 보고 말하기를,
“강곤(康袞)·홍윤성(洪允成)·임자번(林自蕃)·최윤(崔閏)·안경손(安慶孫)·홍순로(洪純老)·홍귀동(洪貴童)·민발(閔發) 등 수십 인이 와서 더불어 과녁을 쏘는데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곽연성(郭連城)은 이미 왔으나 어미의 상중(喪中)으로 사양하기에, 여러 번 되풀이하여 타이르니, 비록 허락은 하였으나 어렵게 여기는 빛이 있다. 그대가 다시 말하라.” 하고, 세조는 도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권남이 곽연성을 보고 말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지금 종사의 큰 계책으로 간사한 도적을 베고자 하는데,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이니, 자네는 장차 어찌하려는가?”
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들었습니다. 장부가 어찌 장한 마음이 없을까마는 최복(衰服)이 몸에 있으니(상중이니) 명령을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지금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만번 죽을 계책을 내어 국가를 위하여 의(義)를 일으키는 것인데, 자네가 어찌 구구하게 작은 절의(節義)를 지키겠는가? 또 충과 효에는 두 가지 이치가 없으니, 자네는 구차히 사양하지 말고 큰 효를 이루라.” 하였다.

곽연성이 말하기를,
“수양 대군께서 이미 명령이 있으니 마땅히 힘써 따르겠으나,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니, 그대는 자세히 방략(方略)을 말하여 보라.”
하였다. 권남이 하나하나 말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나머지는 의논할 것이 없고, 다만 수양 대군께서 김종서의 집을 왕래하는 데 이르고 늦는 것을 알 수 없으니, 성문이 만일 닫히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이것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마땅히 선처하겠다.”

[수양대군은 도성 안에, 김종서는 도성 밖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김종서를 제거한다 해도 도성으로 들어와야 궁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날이 저문 뒤에 도성을 출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김종서가 대세를 뒤집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

하였다. 해가 저무니 홍달손(洪達孫)이 감순(監巡)으로 먼저 나갔다. 세조가 활 쏘는 것을 핑계하고 멀찌감치 무사 등을 이끌고 후원 송정(松亭)에 이르러 말하기를,
“지금 간신 김종서(金宗瑞)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君上)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서 비밀히 이용(李瑢)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당원(黨援)이 이미 성하고 화기(禍機)가 정히 임박하였으니, 이때야말로 충신 열사가 대의를 분발하여 죽기를 다할 날이다.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위 문장 속의 '이용'은 당연히 안평대군.]

하니,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하고, 송석손(宋碩孫)·유형(柳亨)·민발(閔發) 등은 말하기를,
“마땅히 먼저 아뢰어야 합니다.”

[당연히 역적을 토멸하려면 임금에게 아뢰고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세조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답입니다. '역적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받는다 해도, 저쪽에서 준비할 시간을 줄 뿐입니다. 기습 외에는 방법이 없던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말이나 듣고 있자니 속이 탔겠죠.]

하니, 의논이 분운(紛?)하여 혹은 북문을 따라 도망하여 나가는 자도 있었다. 세조가 한명회에게 이르기를,

“불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계교가 장차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하니, 한명회(위 사진) 가 말하기를,
길 옆에 집을 지으면 3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큰 일이겠습니까? 일에는 역(逆)과 순(順)이 있는데, 순으로 움직이면 어디를 간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모의(謀議)가 이미 먼저 정하여졌으니, 지금 의논이 비록 통일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청컨대 공(公)이 먼저 일어나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作舍道旁, 三年不成 이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옆에 집을 짓자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참견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이 말도 들었다 저 말도 들었다 하면 도저히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하고, 홍윤성(洪允成, 위 사진)이 말하기를,
“군사를 쓰는 데에 있어 해(害)가 되는 것은 이럴까 저럴까 결단 못하는 것이 가장 큽니다. 지금 사기(事機)가 심히 급박하니, 만일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른다면 일은 다 틀릴 것입니다.”
하였다. 송석손 등이 옷을 끌어당기면서 두세 번 만류하니, 세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 가서 먼저 고하라. 나는 너희들을 의지하지 않겠다.”

[ 여기서 강경파의 한 사람인 홍윤성은 뒷날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는 세도가가 되지만 뒷얘기는 영 좋지 않습니다. 성품이 잔혹한 탓인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횡포도 심했지만, 세조의 총애 때문에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고, 드디어 활을 끌고 일어서서, 말리는 자를 발로 차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지금 내 한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었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社稷)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나는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만일 고집하여 사기(事機)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먼저 베고 나가겠다. 빠른 우레에는 미처 귀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는 신속한 것이 귀하다. 내가 곧 간흉(姦凶)을 베어 없앨 것이니,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하고, 중문에 나오니 자성 왕비(慈聖王妃)가 갑옷을 끌어 입히었다.

드디어 갑옷을 입고 가동(家?) 임어을운(林於乙云)을 데리고 단기(單騎)로 김종서(金宗瑞)의 집으로 갔다. 세조가 떠나기 전에 권남과 한명회가 의논하기를,
“지금 대군이 몸을 일으켜 홀로 가니 후원(後援)이 없을 수 없다.”

[주: "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비장한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수양대군도 김종서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권언(權?)·권경(權擎)·한서구(韓瑞龜)·한명진(韓明?) 등으로 하여금 돈의문(敦義門) 안 내성(內城) 위에 잠복하게 하고, 또 양정(楊汀)·홍순손(洪順孫)·유서(柳?)에게 경계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따라가게 하였다. 세조가 처음에 권남에게 명하여 김종서를 그 집에 가서 엿보게 하였다.

권남이 투자(投刺)[주: 명함을 드림] 하니, 김종서가 〈불러들여〉 별실에서 한참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남이 돌아와 보고하니, 세조가 이미 말에 올라탔다. 세조가 김종서의 집 동구(洞口)에 이르니, 김승규(金承珪, 김종서의 장남)의 집앞에 무사 세 사람이 병기를 가지고 귀엣말을 하고 있고 무기(武騎) 30여 인이 길 좌우를 끼고 있어 서로 자랑하기를,
“이 말을 타고 적을 쏘면 어찌 한 화살에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세조가 이미 방비가 있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하기를,
“누구냐?”
하니, 그 사람들이 흩어졌다.

양정(楊汀)은 칼을 차고 유서(柳?)는 궁전(弓箭)을 차고 왔다. 세조가 양정으로 하여금 칼을 품에 감추게 하고 유서를 정지시키면서 김종서의 집에 이르니, 김승규가 문 앞에 앉아 신사면(辛思勉)·윤광은(尹匡殷)과 얘기하고 있었다. 김승규가 세조를 보고 맞이하였다. 세조가 그 아비를 보기를 청하니, 김승규가 들어가서 고하였다. 김종서가 한참 만에 나와 세조가 멀찍이 서서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들어오기를 청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해가 저물었으니 문에는 들어가지 못하겠고, 다만 한 가지 일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하였다. 김종서가 두세 번 들어오기를 청하였으나 세조가 굳이 거절하니, 김종서가 부득이하여 앞으로 나왔다.

김종서가 나오기 전에 세조는 사모(紗帽) 뿔이 떨어져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정승(政丞)의 사모 뿔을 빌립시다.”
하니, 김종서가 창황(蒼黃)히 사모 뿔을 빼어 주었다. 세조가 말하기를,
“종부시(宗簿寺)에서 영응 대군(永膺大君)의 부인의 일을 탄핵하고자 하는데, 정승이 지휘하십니까? 정승은 누대(累代) 조정의 훈로(勳老)이시니, 정승이 편을 들지 않으면 어느 곳에 부탁하겠습니까?”
하였다. 이때에 임어을운이 나오니, 세조가 꾸짖어 물리쳤다. 김종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윤광은·신사면이 굳게 앉아 물러가지 않으니, 세조가 말하기를,
비밀한 청이 있으니, 너희들은 물러가라.”
하였으나, 오히려 멀리 피하지 않았다. 세조가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또 청을 드리는 편지가 있습니다.”
하고, 종자(從者)를 불러 가져오게 하였다. 양정이 미처 나오기 전에 세조가 임어을운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 편지 한 통이 어디 갔느냐?”
하였다. 지부(知部)의 것을 바치니 김종서가 편지를 받아 물러서서 달에 비춰 보는데, 세조가 재촉하니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쳐서 땅에 쓰러뜨렸다. 김승규가 놀라서 그 위에 엎드리니, 양정이 칼을 뽑아 쳤다.

[이 대목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수양의 옆에 있던 무사래봐야 4~5명 남짓. 장소는 김종서의 홈. 이미 아들 김승규와 30여명의 기병이 지키고 있던 상황. 측근들은 '할 얘기가 있으니 멀리 가라'는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테러가 가능했다는 것일까요. 김종서의 방심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방심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첨가합니다.]

하여금 말고삐를 흔들게 하여 돌아와서 돈의문에 들어가, 권언 등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이날 김종서가 역사(力士)를 모아 음식을 먹이고 병기를 정돈하다가 세조가 이르니, 사람을 시켜 담 위에서 엿보게 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적으면 나아가 접하고, 많으면 쏘라.”
하였다. 엿보는 자가 말하기를,
“적습니다.”
하니, 김종서가 오히려 두어 자루 칼을 뽑아 벽 사이에 걸어 놓고 나왔다.

[수양대군 일행의 수가 적다는 말에 오히려 방심해서 당했다는 이야기. 다음 부분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해치려 떠난 뒤, 후원에 남아 불안에 떠는 무사들과 그들을 안정시키는 권남의 역할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참 생생합니다.]

처음에 세조가 김종서의 집에 갈 때에 무사들을 저사(邸舍)에 가두게 하고 나왔다. 여러 사람이 오히려 떠들어대며 다투어 튀어나오려고 하자, 권남(權擥)이 문에 서서 막으니, 혹은 말하기를,

“먼저 아뢰지 않고 임의로 대신을 베는 것이 가합니까? 장차 우리들을 어느 땅에 두려고 합니까?”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용렬하지마는 대군(大君)은 고명하니, 익히 계획하였을 것이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일을 만일 이루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혼자 살겠는가? 장부는 다만 마땅히 순(順)을 취하고 역(逆)을 버리고, 종사를 위하여 공을 세워 공명을 취할 것이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어째서 우리들에게 미리 일러 활과 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다만 빈 주먹이니 어찌합니까?”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만일 격투할 일이 있으면 비록 그대들 수십 인이 병기를 갖추었더라도 어찌 족히 쓰겠는가? 그대들은 근심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만약 병력 대결로 간다면 팔도의 병권을 장악한 김종서에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수양과 측근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은 단신으로 대담한 암습을 감행했던 것이죠.]

하였다. 한명회(韓明澮)가 세조를 따라 성문(城門)에 이르렀다가 돌아와서, 또 세조의 명령을 반복하여 고해 이르고, 세조가 돌아오는 것을 머물러 기다리게 하였다. 권남이 달려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洪達孫)을 보고 세조가 이미 김종서의 집에 간 것을 비밀히 알리고, 순졸(巡卒)을 발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약속하고는, 또 두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숭례문(崇禮門)·서소문(西小門) 두 문을 닫게 하였다. 권남은 스스로 갑사 두 사람, 총통위(銃筒衛) 열 사람을 거느리고 돈의문(敦義門)에 이르러 지키게 하고 명령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일로 인하여 문 밖에 갔으니, 비록 종(鍾)소리가 다하더라도 문을 닫지 말고 기다리라.”
하고, 권언(權?)을 시켜 문을 감독하게 하였다.

[순청이란 야간 통행금지를 관장하던 기관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수양대군 휘하의 세력 외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었으니 일단 절반 이상의 성공입니다.]

장차 대군(大君)의 저사(邸舍)로 돌아가려 하여 미처 돌다리를 건너기 전에 성 안으로부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세조가 이르렀다. 웃으며 권남에게 이르기를,

“김종서(金宗瑞)·김승규(金承珪)를 이미 죽였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여러 무사가 아직도 공의 저사에 있으니, 따라오게 할까요?”
하였다. 세조가 조금 멈추었다가 부르니 한명회가 거느리고 달려왔다. 세조가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을 시켜 순졸(巡卒)을 거느려 뒤에 따르게 하고, 시좌소(時坐所) 로 달려가서 권남을 시켜 입직(入直) 승지(承旨) 최항(崔恒)을 불러내었다.

세조가 손을 잡고 최항에게 이르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이양(李穰)·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원구(元矩)·조번(趙蕃)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당부(黨附)하고,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경성 부사(鏡城府使) 이경유(李耕?)·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조수량(趙遂良)·충청도 도관찰사(忠淸都都觀察使) 안완경(安完慶) 등과 연결하여 불궤(不軌)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여 형세가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다. 김연(金衍)·한숭(韓崧)이 또 주상의 곁에 있으므로 와서 아뢸 겨를이 없어서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金宗瑞) 부자를 베어 없애고 그 나머지 지당(至黨)을 지금 아뢰어 토벌하고자 한다.”
하고, 연하여 환관 전균(田畇)을 불러 말하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의 중한 뇌물을 받고 전하께서 어린 것을 경멸히 여기어 널리 당원(黨援)을 심어 놓고, 번진(藩鎭)과 교통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기를 꾀하여 화가 조석에 있어 형세가 궁하고 일이 급박한데 또 적당(賊黨)이 곁에 있으므로, 지금 부득이하여 예전 사람의 선발후문(先發後聞)의 일을 본받아 이미 김종서 부자를 잡아 죽였으나, 황보인 등이 아직도 있으므로 지금 처단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너는 속히 들어가 아뢰어라.”
하고, 또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기운을 돌리고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천천히 아뢰고 경동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도진무(都鎭撫)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김효성(金孝誠)이 입직(入直)하였는데, 세조가 그 아들 김처의(金處義)를 시켜 부르고, 또 입직한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계전(李季甸) 등을 불러 들이어 세조가 최항·김효성·이계전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 아뢰고, 황보인·이양·조곡관·좌찬성(左贊成) 한확(韓確)·좌참찬(左參贊) 허후(許?)·우참찬(右參贊) 이사철(李思哲)·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정인지(鄭麟趾)·도승지(都承旨) 박중손(朴仲孫) 등을 불렀다.

[양정, 유수 등 수양이 계유정난에 동원한 주요 인물들은 바로 내금위 소속입니다. 국왕의 친위부대인 내금위는 김종서의 손 밖에 있는 병력이었죠.]

세조는 처음에 궐문에 이르러 입직하는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 등으로 하여금 갑주(甲胄)를 갖추고 궁시(弓矢)를 띠고 남문 내정(內庭)에 늘어서서 간적(姦賊)을 방비하여 엿보게 하고, 또 입직하는 여러 곳의 별시위 갑사(別侍衛甲士)·총통위(銃筒衛) 등으로 하여금 둘러서서 홍달손(洪達孫)의 부서를 시위하게 하고, 여러 순군(巡軍)은 시좌소(時坐所)의 앞뒤 골목을 파수하여 차단하게 하고, 친히 순졸(巡卒) 수백 인을 거느려 남문 밖의 가회방(嘉會坊) 동구(洞口) 돌다리[石橋] 가에 주둔하고, 서쪽으로는 영응 대군(永膺大君) 집서쪽 동구에 이르고 동쪽으로 서운관(書雲觀) 고개에 이르기까지 좌우익(左右翼)을 나누어 사람의 출입을 절제하고, 또 돌다리로부터 남문까지 마병(馬兵)·보병(步兵)으로 문을 네 겹으로 만들고, 역사(力士) 함귀(咸貴)·박막동(朴莫同)·수산(壽山)·막동(莫同) 등으로 제3문을 지키게 하고, 영을 내리기를,

이 안이 심히 좁으니, 여러 재상으로서 들어오는 사람은 따라오는 사람을 제거하고 혼자 들어오도록 하라.” 하였다.

[한명회가 이미 생살부(生殺簿)-요즘은 살생부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는 듯 합니다-를 작성해 놓고, '살'쪽에 기록된 인물이 들어오면 가차없이 처단하게 했다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임금의 명으로 불러 옆에 따라오는 사람을 모두 떼어냈으니 꼼짝없이 죽을 밖에요.]

조극관(鳥克寬)·황보인(皇甫仁)·이양(李穰)이 제3문에 들어오니, 함귀 등이 철퇴로 때려 죽이고, 사람을 보내어 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조번(趙藩)·원구(元矩) 등을 죽이고, 삼군 진무(三軍鎭撫) 최사기(崔賜起)를 보내어 김연(金衍)을 그 집에서 죽이고, 삼군 진무 서조(徐遭)를 보내어 민신(閔伸)을 비석소(碑石所)에서 베고【이때에 민신은 현릉(顯陵)의 비석을 감독하고 있었다.】또 최사기(崔賜起)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신선경(愼先庚)을 보내어 군사 1백을 거느리고 용(瑢, 안평대군)을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서 잡아서 압송(押送)하여 강화(江華)에 두고, 세조가 손수 편지를 써서 그 뜻을 이르고, 또 시켜서 말하기를,

“네 죄가 커서 참으로 주살(誅殺)을 용서할 수 없으나, 다만 세종(世宗)·문종(文宗)께서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너를 용서하고 다스리지 않는다.”
하였다.

용(瑢)이 사자(使者)를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도 또한 스스로 죄가 있는 것을 안다. 이렇게 된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삼군 진무 나치정(羅致貞)이 군사를 거느리고 용(瑢)의 아들인 이우직(李友直)을 잡아 압령하여 강화에 두었다. 용(瑢)이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급히 그 종 영기(永奇)를 불러 옷을 벗어 입히고 비밀히 부탁하기를,
“네가 급히 가서 김 정승에게 때가 늦어진 실수를 말하여 주라.”
하였으니, 대개 김종서가 이미 주살된 것을 알지 못하고 다시 이루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이 실록이 이미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쓰인 거란 점을 생각하면 사실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실록은 권람 등이 이미 9월25일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를 감지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야겠죠. 과연 이런 음모가 존재했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

또 말하기를,

“일이 만일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석(河石)이 반드시 먼저 베임을 당할 것이니, 네가 꼭 뼈를 거두어 오라. 내가 다시 보고야 말겠다.”
하였다. 이우직(李友直)이 강화에 이르러 용에게 말하기를,
“제가 여쭙지 않았습니까?”
하니, 용(瑢)이 말하기를,
“부끄럽다. 할 말이 없다.”
하였다.

용(瑢)의 당(黨)에 대정(大丁)이란 자가 있어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 숨어 있었는데, 성씨(成氏)가 여복을 입히어 침병(寢屛) 뒤에 엎드려 있게 하였다. 잡기를 급박하게 하니, 성씨가 부득이하여 내보냈는데, 곧 베었다. 운성위(雲城尉) 박종우(朴從愚)가 문에 이르러 들어가지 못하고 말하기를,
“비록 부르시는 명령은 없으나 변고가 있음을 듣고 여기 와서 명을 기다립니다.”
하니, 세조가 불러 들였다. 우승지(右承旨) 권준(權?)·동부승지(同副承旨) 함우치(咸禹治)가 또한 오니, 세조가 권준만 불러 들이었다.

[눈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줄을 서게 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도 만나 주지를 않으면 참 난감하겠죠.ㅋ]

정인지(鄭麟趾)가 권남을 시켜 붓을 잡고 이계전·최항과 더불어 함께 교서(敎書)를 짓는데, 밤이 심히 추웠다. 노산군(魯山君)이 환관 엄자치(嚴自治)에게 명하여 내온(內?) ·내수(內羞)로 세조 이하 여러 재상을 먹이었다. 세조가 군사에게 술을 먹이도록 아뢰어 청하고, 또 아뢰어 용(瑢)의 당(黨)인 환관 한숭(韓崧)·사알(司謁) 황귀존(黃貴存)을 궐내에서 잡아 의금부(義禁府)에 넘기었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빌려옴. ㅋ)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명민(李命敏)도 또한 다시 깨어나서 들것에 실려 도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홍달손(洪達孫)에게 고하니 호군(護軍) 박제함(朴悌緘)을 보내어 베었다.

세조가 인하여 여러 적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려하여, 양정(楊汀)과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흥상(李興商)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고, 김종서를 찾아 김승벽의 처가에 이르러 군사가 들어가 잡으니, 김종서가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軒)을 가져오라.”
하니, 끌어내다가 베었다.

[이렇습니다. 김종서는 설마 수양대군이 나선다 해도 감히 선왕의 고명대신인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너무도 방심했던 겁니다. 자신의 수족들이 하룻밤 사이 다 참살당하고 있는 판에 도성 진입도 실패하고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요. 이렇듯 무기력하게 도성 부근의 사돈 집에 숨었다 잡힌다는 건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수양이 최측근과 거사를 결심한 것이 9월29일. 그런데 10월2일, 이미 황보인과 김종서에게 이 정보가 누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수양은 "저 우유부단한 것들이 손을 쓰는데 열흘은 걸릴테니 열흘 안으로만 손을 쓰면 된다"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역시 후세의 영웅전설 꾸미기였는지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

김종서의 부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뒤에 저자 아이들이 난신(亂臣)의 머리를 만들어서 나희(儺戱)를 하며 부르기를,
“김종서 세력에 조극관 몰관(沒官)하네.”
하였다. 이날 밤에 달이 떨어지고, 하늘이 컴컴하여지자 유시(流矢)가 떨어졌다. 위사(衛士)가 놀라 고하니, 이계전(李季甸)이 두려워하여 나팔을 불기를 청하였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무엇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는가? 조용히 하여 진압하라.”
하였다. [10월10일의 실록 끝]


 

 


이렇게 해서 이틀에 걸친 살육이 끝났습니다. 조정을 가득 채웠던 김종서의 파벌, 안평대군의 사람들이 싸그리 제거된 것이죠.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듯 '계유정난=수양대군이 단군을 몰아낸 사건'은 결코 아닙니다. 계유정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계유정난 이후에도 단종의 치세는 2년 더 이어졌습니다. 안평대군도 귀양을 간 상태였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계유정난때 이미 단종과 안평대군의 운명은 결정돼 있었을까요. 물론 이때 세조의 심정이 어땠는가는 큰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살아 있는 한은 제아무리 세조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정국이 안정될 기회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주말, 김영호 수양대군이 어떤 카리스마를 발휘할 지 궁금합니다.

숨가쁜 계유정난의 틈바구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기회가 없다는게 참 아쉽기도...^ 어쨌든 우리의 한모양도 시아버지를 도와 뭔가 하는 모습이 보일 것도 같습니다.

 

영화 '관상' 리뷰: 관상은 정말 운명을 지배하나? http://v.daum.net/link/49999746

 

이 블로그의 인수대비 관련 글 모음입니다.

1. 계유정난은 어떻게 진행됐나  http://fivecard.joins.com/964
2. 폐비 윤씨는 정말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03
3. 폐비 윤씨, 사약을 마시고 정말 피를 토했나? http://fivecard.joins.com/1004
4. 폐비 윤씨 사약이 남긴 공무원의 숙명 http://fivecard.joins.com/1007
5. 연산군, 정말 계산 없는 광인이었나?  http://fivecard.joins.com/1012
6. 인수대비 사후, 연산군은 어떻게 몰락했나 http://fivecard.joins.com/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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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송된 '빠담빠담' 5회가 제 날짜에 방송이 나가느냐 마느냐는 상당히 논란거리였습니다. JTBC 개국 이후 맞는 최대 사건(아마도 올해 대한민국 10대 사건 중 당당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사건) 때문이었죠. 하지만 하루 종일 뉴스 속보를 방송하던 중에도 '빠담빠담'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방송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팍팍한 뉴스에 시달리던 분들은 충분히 위안을 얻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빠담빠담'은 꿈과 현실 사이를 구분하기 힘들게 했던 초반을 지나,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강칠(정우성)과 국수(김범)가 강칠의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강칠의 어머니(나문희)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강칠은 수의사 지나(한지민)와 잇단 인연 끝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강칠이 간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국수는 일단 강칠의 아들 정(최태준)을 통영으로 데리고 내려옵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던 강칠과 지나, 마침내 서울 여행을 통해 충격적인 엔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죠.



물론 이날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 키스신이었지만, 최고의 대사는 전반부에 강칠에게서 나왔습니다. 16년 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이 여전히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강칠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대가를 받는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지 국수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지나의 호의로 함께 떠나 온 서울 여행,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며 행복에 빠진 강칠은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내 인생을 보상받으면 얼마나 될까요? .... 당신같이 괜찮은 여자를 만나도 사귀자고 말을 못하고.... 이걸 보상받으려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누가 봐도 고백이지만 지나는 슬쩍 눙쳐 버리고, 둘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강칠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두 가지 과거의 두려움을 떠올리죠.



강칠을 체포해 감옥으로 보낸 형사가 바로 지나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강칠이 죽인 동급생이 바로 지나 아버지의 동생이라는 것. 두 가지 과거가 강칠의 눈 앞을 스쳐 갑니다.

물론 강칠이나 지나나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죠. 그리고 강칠은 또 지나가 속옷을 사서 포장해 보내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오래 전 자신을 면회 오고 자신에게 속옷을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 지나의 죽은 어머니라는 것 역시 모릅니다.




그리고 전철 안. 흔히 남녀 사이에서 키스의 전주곡으로 통하는 '어색한 거리'가 연출됩니다. 뭐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 안이기 때문에 실제로 맞닿지는 않지만....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잡고 달리는 두 사람. 마침내 가까스로 기차에 오르고, 난생 처음 겪어 본 스릴에 웃고 있는 지나를 바라보다 강칠은 용기를 냅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번 파란이 시작되려는.


강칠의 '인생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문득 고전 영화 '빠삐용'의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빠삐용(스티브 맥퀸)은 꿈 속에서 사막을 걷고 있습니다. 모래 언덕 건너편에는 판관들이 서 있죠. 그들은 빠삐용에게 "너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묻습니다. 누명을 쓴 빠삐용은 외치죠. "나는 무죄다!" 하지만 판관들은 냉정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너는 유죄다."

이유를 묻는 빠삐용. 판관들은 말합니다. "너의 죄는 살인이 아니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이 말에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습니다. "...유죄 맞습니다."

 



        (역시 인터넷엔 없는게 없군요. 마침 딱 그 장면의 캡처가 있습니다. ㅋ)

빠삐용이 스스로 낭비한 인생의 값을 치르기 위해 멀리 남미의 유형지에 와 있는 것이라면, 강칠은 타의에 의해 빼앗긴 인생의 값을 뒤늦게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었을 뿐,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두 작품의 메시지는 같습니다. 타의에 의해 갇혀 있는 것도 아닌 당신들(바로 TV를 보고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은 인생을,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낭비하지 않고 쓰고 있느냐는 질문이죠.


한때 강칠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국수는 강칠이 계속 꿈꾸는 '사형당하는 꿈'에 대해 "출감 후의 삶이 두렵고, 밖에 나가 적응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그냥 여기서 다 포기하고 죽고 싶기 때문에 꾸는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살려고 좀 해 봐 이 바보야!"라고 외치죠.

강칠이 감히 지나에게 키스할 수 있었다는 건 강칠이 마침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강렬한 의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들 자신만 모르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이게 그리 쉽지는 않겠죠. 과연 강칠은 아들의 간을 이식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삶을 마감하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과연 이번엔 해피엔딩이 가능할지.



P.S. 계단 올라가기를 힘들어하는 지나의 모습은 죽은 어머니로부터 심장질환을 물려받았다는 암시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너무 환자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ㅋ. 아무튼 20일 밤 9시에 6회가 방송됩니다.

5회 다시보기는 이쪽.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13&menu_id=PM1001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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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남들이 만드는 드라마, 영화 방송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런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 뭐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뭐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곧 방송국을 오픈할 주제에 남들 작품 갖고 왈가왈부하는 게 솔직히 불안했죠. 뚜껑 연 뒤에 "남의 것 갖고 그 난리를 치더니 참 대단한 물건들 만들어 놨다"는 비아냥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2월1일 JTBC가 개국을 하고, 하나 하나 준비한 물건들을 까 보는 과정에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교양 '깜놀, 드림프로젝트', 그리고 예능 '칸타빌레'를 보면서 콘텐트의 질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 한편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겠죠. 바로 '노희경표 드라마', '빠담빠담'입니다.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의 원제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입니다. 좀 길죠. 이 드라마는 16년 전 어울려 다니던 동년배 학생을 죽인 죄로 수감된 강칠(정우성)과 어찌 어찌 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수의사 지나(한지민)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100% 드라마 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강칠은 사건의 진범이 아니고, 강칠의 손에 피묻은 칼을 쥐어 준 진범은 현재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대법관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첫회부터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마주치는 강칠과 지나 사이에는 끈끈한 인연이 숨어 있습니다. 강칠이 죽인 것으로 오해를 산 학생은 지나의 삼촌, 그러니까 형사인 지나 아버지의 나이 차이 나는 동생이었던 겁니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싸움질이나 하다가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나 아버지는 강칠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살인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나 어머니는 강칠이 진범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면회를 다니며 강칠의 구명 운동을 펴고, 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이때문에 지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죠.

참 난마처럼 얽인 관계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갈등 구조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빠담빠담'을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드라마를 풀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꿈'과 '현실'의 교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스로 천사라고 주장하는 국수(김범)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의 궁금증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국수가 진짜 천사인가, 아니면 자기가 천사라고 믿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연 이 드라마가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가, 아니면 강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죠. 제가 이 글의 제목에 '인셉션'을 끌어들인 것도 이 질문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 내부자(?)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보다 별로 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모두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절대 회사나 제작진의 의견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흑백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대는 남북전쟁기의 미국. 한 남군 포로가 북군에게 체포돼 다리 위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줄이 끊어지고, 그 포로는 강물 속 깊이 빠집니다.

다리 위의 적군이 총을 쏘지만 포로는 요행히 총을 피해 내고, 들판을 달려 집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그리던 고향 집이 눈에 보이고, 예쁜 아내가 환히 미소지으며 포로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가 아내와 손을 맞잡는 순간,

목줄이 조여지고, 포로의 다리가 축 늘어집니다. 그러니까 고향 집과 행운의 탈주는 모두 이 포로가 목이 졸리고 숨이 끊기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 동안 꾼 아름다운 꿈이었던 것이죠. 어찌 보면 삼국유사의 조신지몽과 비교할 수 있는, 인생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수작입니다.

(뭐 대략 짐작도 하실 수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결말은 감춰 두었습니다. 마우스로 위의 흰 부분을 긁으시면 답이 보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 단편 영화는 로버트 엔리코(Robert Enrico)의 1962년작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입니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상 단편 부문을 휩쓴 유명한 작품이고, 저 결말은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단편 영화 치고는 24분 가량으로 좀 길지만, 한번 보실만한 수작입니다.

굳이 이 영화 얘기를 왜 꺼냈는지 이해 못할 분은 안 계시겠죠.^^



1, 2부에 걸쳐 강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석방 직전의 갈등 - 싸움 - 김교위의 갑작스런 죽음 - 교수형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귀휴-아들과의 만남-지나의 차에 의한 교통사고 - 병원에서의 깨어남 역시 반복됩니다.

두 사건의 흐름은 정상적이라면 귀휴 - 교통사고 - 병원에서 눈뜸 - 교도소로 귀환 - 싸움 - 교수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강칠은 교수형 이후 병원에서 눈이 뜨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싸움 장면을 경험하면서 국수에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라고 절규합니다. 마지막 순간, 김교위에게 향하던 주먹을 간신히 멈춰 정해진 사건을 중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의아해하게 됩니다. 과연 강칠에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의 사건이 미래를 내다보게 해 준 예지몽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현실이라면 왜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그냥 그대로 '국수가 천사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천사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개연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건 바보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은, 뒷부분을 '강칠의 꿈'으로 풀어 가는 해석입니다. 강칠은 김교위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후회를 수십번, 수천번은 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몸을 멈췄다면...'하는 간절한 소망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강칠에게는 수많은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출감하고, 출감해서 귀휴 때 만났던 그 예쁜 아가씨를 다시 만나고, 알고 보니 그 아가씨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속옷을 보내 주던 그 아주머니의 딸이고.... 간절함이 현실로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꿈은 꿈. 언젠가 꿈은 깨게 되어 있는 법. 그래서 어느 한 순간, 강칠은 다시 깨어납니다. 그 깨는 장소가 병원 침대 위일지, 감방 안일지,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장소일지는 알 수 없겠죠. 그리고 그 꿈을 깬 뒤의 결과가 해피엔딩일지 비극일지도....

만약 이렇게 진행된다면 참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노희경 같은 대 작가가, 저 따위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진행을 선택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빠담빠담'은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아직 18회나 남아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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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혹성'이라는 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제목이 바로 '혹성탈출'입니다. planet이라는 말의 공식 한국어 번역은 '행성'입니다. 일본어의 와쿠세이(惑星)는 더 이상 한국에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일단 한번 붙여진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의 생명은 길기도 합니다. 뭐 일단 붙여진 제목이 워낙 유명하니 흥행을 생각하는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 제목을 유지하려는게 당연하겠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아주 오래 전 시작된 '혹성탈출'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1968년,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영화 '혹성탈출'이 개봉된 뒤, 사람들은 원숭이 탈을 씌운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됐고, 이 시리즈가 유명한 인간 스타 배우(예를 들면 찰턴 헤스턴)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줄거리:

제약회사의 스타 연구원 윌(제임스 프랑코)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뇌세포 재생 약제의 개발에 골몰합니다. 암컷 침팬지에게 실험한 결과 놀라운 지능 향상 효과를 발휘하지만 우여곡절끝에 침팬지는 살해되고, 윌은 발견되지 않은 새끼 침팬지를 맡아 기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아기 원숭이는 시저(앤디 서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같은 또래의 인간 아이를 능가하는 지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시저는 자신과 인간이 왜 다른 대우를 받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죠.



영화의 원제는 원숭이 행성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약간 우스꽝스러운 제목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1968년작 '혹성탈출'의 원제가 Planet of the Apes. 직역하면 '원숭이의 행성'입니다. 한국 제목 '혹성탈출'이 일본어 제목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본어 제목은 원작의 제목을 직역한 '원숭이의 혹성'이죠. 이 제목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혹성탈출'이라는 한국 제목을 붙인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에는 네 편의 공식 속편이 있습니다.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 (1970)
- 1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지구 지하에 원숭이의 지배를 피해 살고 있는 인류가 있습니다. 이 인류들은 겉보기엔 완벽한 미남 미녀들이지만 사실은 핵 오염으로 추악한 외모를 정교한 가면으로 감춘 것 뿐이고, 이들의 신은 지구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핵무기입니다. 어쩐지 '매트릭스'에도 영향을 준 듯한 영화. '속 혹성탈출'이란 제목으로 국내에도 개봉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 (1971)
- 더 이상 속편을 만들 수 없게 된 줄거리상(?) 과거로 돌아갑니다. 1편에서 찰턴 헤스턴을 도와준 원숭이들이 어찌 어찌 해서 인류의 과거로 돌아가 현생 인류에게,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무모한 과학 발달 때문에 인류가 절멸하고, 미래는 원숭이의 차지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경고에 놀란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그 미래를 막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이야기.
  결국 지구를 지배하게 된 원숭이들은 미래에서 온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미래가 과거를 만들고 다시 과거가 미래를 만든다는 루프 스토리.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 (1972)
- 앞편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인간들의 책동(?)은 실패하고, 원숭이 부부가 낳은 아이 시저가 지구상의 원숭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모아 인간을 상대로 봉기합니다. 당연히 원숭이의 반란은 성공하고, 지구는 원숭이 판이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KBS가 여름 방학 특선인가 하는 제목으로 여기까지 세 편의 시리즈를 연속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목은 '행성정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자들의 지적으로 '혹성'이란 제목을 포기했던 거죠.

Battle for the Planet of the Apes (1973)
- 지구를 차지한 원숭이들의 내전 이야기. 정권을 차지한 원숭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겨 침팬지파와 고릴라파가 지구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위의 영화들은 어렴풋이 줄거리라도 기억나지만 이건 본 적이 없는 영화라...

이밖에도 '혹성탈출'을 TV 시리즈로 만든 작품, 그리고 '완결편'을 자처하는 'Back to the Planet of the Apes'라는 TV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 시리즈는 이런 장대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위에서 든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에서 바로 나온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래에서 온 원숭이' 보다는 훨씬 설득력있는 '유전공학 기술의 실수로 태어난 천재 원숭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죠.

'진화의 시작'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시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정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돌연변이 천재로 태어난 시저는 자신이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들 사이에 낄 수 없다는 데 분노를 느끼는데, 영화는 관객이 그 분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미물 원숭이'가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데 관객은 인간보다는 시저의 편에서 응원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아바타' 스토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 혹은 '아바타' 때 외계인에게 미군이 궤멸당하는데도 미국 관객들이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라고 할 수도 있겠죠 - 아무튼 영화 속의 시저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특히 윌과 시저가 느끼는 감정의 연대가 잘 표현되어 있어 "Caesar is home" 같은 대사는 꽤나 감동적인 울림을 자아냅니다.



그리 길지도 않고, 엄청난 액션 장면이 있지도 않지만 시저의 성장기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또 다른 시리즈가 시작되려는 것인지는 알수 없군요. 그건 관객들이 제임스 프랑코 없이 시저를 주인공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크게 돈 들인 장면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앞부분은 저예산 영화의 냄새(윌이 일하는 제약회사에서의 전반부 촬영 장면은 돈 들이지 않고 찍은 태가 역력합니다. 90년대 이전 한국 영화의 영상 수준이랄까...)까지 나지만 이 영화 역시 1억 달러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입니다. CG 기술의 발달로 가상 캐릭터 시저를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비용은 여전히 만만찮습니다.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속편의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 이야기가 인간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과연 원숭이 영웅이 병든 인간 사회를 정복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있을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보고 싶기도 하군요.^^)


어쨌든 '진화의 시작'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습니다. 정말 앤디 서키스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P.S. 말포이는 여기서도 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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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여름 시즌의 블록버스터들은 치열한 눈치 싸움 끝에 개봉 날짜를 잡습니다. 당연히 방학 앞부분, 즉 7월 초쯤에 개봉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날짜를 앞당겨 경쟁작과 '박치기'라도 하게 되면 피해가 막심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개봉 첫주 박스 오피스 1위' 달성은 매우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보다 훨씬 더 '기업 마인드'로 스크린수를 조절하는 한국 멀티플렉스들의 성향으로 볼 때, 미국처럼 개봉 초기에는 미미했지만 점점 더 스크린 수를 불려 나가며 롱테일 흥행작으로 우뚝 서는 경우는 더 보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8월 후반에 개봉하는 작품들은 스스로 약세를 인정한 셈이라는 시각이 있었는데, 의외로 올해는 8월 중순 개봉작들이 완성도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났습니다. '최종병기 활'과 '블라인드'가 그렇고, 외화 중에도 '혹성탈출 2'가 평이 좋더군요.


인조반정. 광해군의 측근에 대한 토벌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린 남이와 자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북쪽으로 달아납니다. 아버지의 친구 김무순(이경영)에 의해 길러진 남매. 자인(문채원)은 곱게 자라 무순의 아들 서군(김무열)과 혼인을 하게 되지만, 혼인 당일날 병자호란의 발발로 청의 군대에 의해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서군과 자인은 포로로 끌려가는 몸이 됩니다.

바뀐 시점. 청의 바이러(貝勒)이며 황제의 동생인 용장 쥬신타는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이상한 궁수 하나가 앞서 귀환한 조카(청의 황자)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재촉해 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그 궁수가 놀라운 솜씨를 갖고 있으며, 자신이 한 마을에서 본 이상한 자와 동일인물이라는 확신만 굳어 갈 뿐입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 영화가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속도감이 일단 발군입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따로 감정 신을 나열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연출은 없습니다. 석양이나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주인공들이 굳이 자기의 속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 같은 대사를 읖조리게 할 만큼 이 영화는 한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손실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정신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탄력이 살아났습니다. 어느 부분을 짚어도 탱탱하게 튕겨나갈 듯한 박진감이 느껴집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과 비교해 볼 때, 윤색에 참여했다는 하리마오 픽처스('추노'와 '7급 공무원'을 히트시킨 천성일 작가의 회사입니다)의 공헌이 꽤 커 보입니다.

아무튼 재미 요소에서 이 영화는 근 몇년 동안 개봉됐던 한국 영화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권해도 욕 먹지 않을,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들의 힘은 굳이 말할 게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쥬신타를 연기하는 류승룡의 중량감이야말로 영화의 큰 힘입니다. '고지전'의 인민군 중대장 역할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는 것이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아무튼 '넘어야 할 막강한 적'이면서 '그 적에게도 싸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로 이보다 좋은 캐스팅과 연기는 찾기 힘들 듯 합니다.

박해일의 남이는 참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만약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혁이 이 연기를 했다면 정말 진중한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박해일이었기 때문에, 극도로 비장미 넘치는 장면에서 슬랩스틱에 가까운 장면까지 캐릭터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이 영화가 이 정도까지 큰 호응을 얻는 데 있어 박해일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도르곤 역의 박기웅을 비롯해 남이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니루들의 역할도 모두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더군요. 아무튼 요즘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저 장면 하나 찍기 위해 진짜 목숨을 걸어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절벽에서 따라 뛰는 장면 같은 부분에서는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실 꽤 중량감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니 당연히 광해군과 북방 외교 정책, 인조반정과 서인의 득세에 이은 외교 균형의 파괴,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역사적인 치욕에 대해서는 관객의 사전 지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르곤이나 정황기, 바이러나 니루 같은 청나라의 군 제도에 관련된 단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쑥쑥 튀어 나오고 육량시, 애깃살 같은 군사 전문 용어(?)도 마구 등장합니다. 물론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알고 보면 볼수록 더 재미있어 진다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 직접 검색해서 찾아 보시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일 듯 싶습니다.)

영화 속 청의 군대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제 사어 취급을 받는 만주어입니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원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만주어를 복원할 정도의 공덕인데 남이와 서군은 어찌하여 이렇게 현대화된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인지...)



단지 하나 딴지 아닌 딴지를 걸자면,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병자호란'이라는 시기와 사용되는 무기가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청의 주력이 일단 궁장기병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청의 팔기군은 이 궁장기병의 기동력으로 총포를 사용한 명군을 무력화하며 승승장구한 기록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청을 상대로 기록한 몇 안되는 전과 가운데 하나가 청 태조 누루하치의 사위라는 명장 양고리(楊古利)를 사살했다는 것인데요,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양고리는 고창 출신 무장 박의의 조총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 가장 신빙성있게 보입니다. (물론 원두표라는 설도 있고, 무명의 병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방어 전술은 활보다는 총포를 중심으로 한 성곽 체제였고, 조선을 대표하는 병기 역시 조총으로 급격히 변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 속 남이가 정규군 소속도 아니었고, 혼자 산속에서 무예를 익힌 인물이었으므로 활대 활의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를 처음 만들 당시에도 '배경이 병자호란이라면 활대 활이 아니라, 청의 활대 조선 총의 대결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괜한 지적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 기록은 박의가 양고리를 사살한 무기가 활인 듯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만...ㅋ 5천년 역사를 이어온 조선 명궁의 전설이 '명포수'로 바뀌어 가는 것이 이 시대였기 때문에 해 본 얘기였습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속도감을 높이는 편집을 위해 많은 것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위에도 했지만, 그래도 남이와 몇몇 동료들이 '호랑이 사냥을 위해 압록강 일대를 자주 넘나들어 주변 지리에 익숙해 있었다' 정도의 밑밥은 영화 앞 부분에 좀 깔아 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남이의 활에 써 있던 문장 해석.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는 '앞은 태산처럼 무게를 두고 시위는 호랑이 꼬리처럼 말아 쏘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니 국궁 용어 중 유명한 전추태한 후악호미(後握虎尾)의 변형이더군요.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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