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
베를린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은 정말 뭉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멀리 왔다갔다 하지 않아서 좋지만 외곽에 위치한 구 박물관, 신 국립미술관, 그리고 보데 박물관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건물 전경을 찍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페르가몬 박물관에 이어, 신 박물관 Neues Museum 도 전경은 없다. 일단 박물관/미술관은 제일 높은 층부터 간다는 원칙에 따라 3층(그러니까 4층)으로 직행. 가 보니 인류 발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대형 모니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발달해 온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마음 바쁜 관광객도 자리를 지키고 보게 할 만큼 그래픽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3층 한 구석에는 이 박물관의, 어쩌면 베를린 전체를 대표..
페르가몬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뜬금없이 방 하나가 나타난다. (혼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국식으로는 3층에 해당한다) 알레포의 방 Aleppo Room 이라는 전시물이다. 이 대목에서 알레포가 누구야, 라고 하시면 안됨. 왜냐하면 알레포는 지명이라서. 지도 보시다시피 알레포는 레반트 지역의 북쪽, 시리아 북부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오래 된 도시. 이 방은 17세기 초, 알레포의 기독교인 거주구역에 있던 한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통째 뜯어내 재현한 것이다. (독일 분들은 뭔가 통째 뜯어와 재현하는 걸 참 좋아하지 싶다.) 옆방은 여전히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방 안의 치장이 정교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는 엄..
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베를린 둘쨋날. 작지만 알찬 박물관 두 개를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미친듯이 관광 포인트를 도는 여행은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천천히 다시 시내로 이동, '사진 박물관'을 찾았다. 분명히 영어로 하면 museaum for photography. 사진 박물관 맞는데 사실 사진박물관이라기보다는 개인 박물관의 느낌이다. 힌트는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헬무트 뉴튼 재단'. 헬무트 뉴튼이라면 바로 그 유명한 사람, 그 왜 엄청 유명한 셀렙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비닐 장화 '만' 신은 누드의 슈퍼모델들을 즐겨 찍었다는 그 양반! 사진 작가이면서 그 자신이 셀렙인. 이 박물관은 뉴튼의 유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뉴튼의 유물들이 전시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박물관인 만큼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영화 '신과 함께'를 봤습니다. 2017 연말은 '강철비'-'신과 함께' - '1987'이 잇달아 개봉하는 대목입니다. 겨울방학의 시작이고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시즌인데다 크리스마스와 1월1일이 모두 연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대작들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것은 좀 이례적인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학도 긴데 이렇게 꼭꼭 붙어 개봉을 해야 하는지 약간 의문입니다. 그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신과 함께'를 보았습니다. 일단 만족도는 최상. 오랜만에 훌륭한 순수 오락영화를 봤습니다. 흔히 오락성=상업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작품이 상업적이냐 아니냐의 기준에는 오락성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굳이 '순수 오락 영화'라고 한 것은 정..
올해 안으로 프라하/베를린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 2017년 6월xx일. 베를린 체류기간중의 예보는 내내 비. 하지만 베를린 주민님의 제보에 따라 베를린에서 비란 그냥 일상의 일부이며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다음날 아침은 정말 맺힌 데 없는 푸른 하늘. 물론 푸른 하늘이라고 더운 건 아니다. 오전엔 꽤 선선한 편이다. 물론 낮이 되어 해가 쨍하게 비치면 좀 덥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팔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샤를로텐부르크 궁 앞에 갔을 때에는 그런 날씨를 종일 기대해선 안된다는 먹구름이 매우 낮게 드리워 있었다. 심지어 흘러가는 ..
부산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영화의 바다에 풍 빠져보고 온갖 행사에 참석하고 하면 2박3일 정도의 일정이야 슝 날아가 버리는게 부산행이지만, 그래도 먹을 건 챙겨 먹어야 합니다. 특히 온갖 풍부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도시 부산에서라면. 왕년에는 부산에 꽤 자주 가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몇번 가다 보니, 가던 곳만 가게 되는 폐단이 있더라구요. 사실 그렇게 오래 머물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검증되지 않은 곳을 가는 건 또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엔 좀 맘 먹고 안 가보던 곳을 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토박이 및 부산 마니아들의 증언을 참고했습니다. 일단 황혼무렵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 제목은 '맛집 가이드'지만 실상은 '술집 및 해장 가이드' 입니다. 새로 개발된 해운대 주상복합군이 몰려 있는 ..
[자꾸 늦어지는 데 대한 변명: 나이를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고 눈은 침침하고(이건 아니지만)... 4개월 전의 일이지만 어찌나 지난 세기 같은지. 휴일 동안 엄청나게 진도를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었으나, 이래 저래 개인사가 복잡한 터라...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아무튼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 하케셔마크트 Hackescher Markt 라는 철자를 보면 대략 의미를 짐작할 수 있듯, 하케셔마크트는 '하케의 시장'이라는 뜻이다. 18세기 Hacke라는 사람이 베를린 시장일 때 형성된 market 지역으로, 중심지가 된 역사가 200년이 넘는다. 물론 지금도 활발한 시장이며 베를린 시내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하케셴 회페 Hackeshen ..
6월5일. 본격적인 베를린 투어의 시작이다. 일단 첫날은 마이리얼트립(Myrealtrip)의 1일 가이드 신청을 했다. 어떤 여행지를 갈 때 아무리 정확한 정보와 좋은 가이드북을 써도 사실 현지인의 말 한마디 만큼 정확한 경우는 없었다. 어떤 이들에겐 여행인 것이 그들에게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생활인의 정보만큼 충실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다른 무엇을 통해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며칠 정도는 민박을 해 볼까 생각도 해 봤는데 베를린의 한인민박들은 생각보다 시설이나 위치가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꽤 큰 비용을 지불하고 1일 정도는 마이리얼트립의 가이드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교회 앞. 2차대전 때 폭격으로 망가진 교회를 복원하지 않고 ..
대체 베를린에 뭐가 있는데 베를린을 가? 라는 말을 사실 너무 많이 들었다. 서독과 동독이 나눠져 있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을 때에도 독일을 대표하는 도시는 베를린이라고 들었다. 나폴레옹과 맞서 싸우던 프로이센의 수도. 그리고 통일 독일의 수도.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독일의 패권을 장악했던 제3제국의 수도. 뭔가 거대하고 강력한 힘의 원천 같은 도시. 하지만 동서 냉전이 치열하던 시절 베를린은 갈 곳이 아니었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이라는 대규모 간첩 사건도 있었고, 괜히 동독 영토 안 깊숙히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이라는 겁나는 곳이기도 했다. 뭣보다 독일로 가는 한국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렸다. 독일을 포함하고 있는 관광 상품은 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크를 중심으로 했다. 그 뒤로도 ..
슬슬 해가 기울 무렵, 천천히 호텔을 나서 구시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이든 민박이든, 한번 아침에 길을 떠나면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이제 좀 무리다. 그래서 핵심 관광 스팟에 가까운 호텔이 더 좋은 것이기도.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대도 예쁘게 찍히는 프라하의 마법.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을 음악회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프라하의 수많은 공연장에서는 쉴새없이 공연을 한다. 단, 거의 모든 공연들은 그저 '공연을 감상한다'는 목표에 맞춰져 있다.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소위 말하는 관광객용 공연이다. 그런데 또 막상 들어 보면 돈 값 이상은 분명히 한다. 이유는 공연장들이 100년 200년 씩 된 교회 내부라는 데 있다. 프라하의 폭염을 피해 들어간 서늘한 교회 내부에서..
이런 영화를 기억하실 분이라면 아마도 연식이 꽤 있는 분일게다. 1975년작. 대략 한 1990년대 초까지는 가끔씩 명절때 TV에서 방송해주곤 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5월27일. 히틀러가 '강철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고 불렀던 심복 중의 심복이자 독일군의 체코 총독이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Reinhart Heydrich 가 출근길에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영국의 지원을 받은 체코 출신 낙하산병들의 영웅적인 테러. 전 체코 주둔군은 비상이 걸렸고 무자비한 색출작전 끝에 배신자가 발생, 실제 하이드리히를 습격한 2명을 포함해 7명의 낙하산병들이 한 교회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그들은 수백명의 SS대원들을 상대로 저항했고, 마침내 교회 지하 묘..
사실 20년 전에도 존 레논의 벽은 존재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제목과의 호응을 고려해 첫 사진으로 넣음. 주요 내용은 나중에.) 다시 프라하 성으로 돌아간다. 오후의 햇살이 프라하 성의 돌바닥을 지글지글 달굴 무렵, 프라하 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성 조지 성당 St George's Cathedral 로 들어갔다. 세인트 조지 St. George 는 잘 알려진대로 용을 죽인 용사이며 성인이고,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물론 잉글랜드에서만 추앙받는 것은 아니고, 유럽 전역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떤 미술 작품을 볼 때 긴 창을 들고 용과 싸우고 있는 캐릭터가 있다면 성 조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거. 당연히 성 조지는 영어 이름. 체코에서는 이르지 Jiri 라고 불린다. 역시 저렇게 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다들 좋다고 할 때는 역시 다 이유가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다니는 곳은 카를교 와 프라하 성, 그리고 구시가 광장 이다. 그리고 볼거리로 따지자면 역시 프라하 성이다. 그런데 프라하 성에 가면 프라하 성이 보이지 않는다(볼 수가 없다). 위 사진 같은 모습을 보려면 프라하 성을 내려와 강을 건너야 한다. 강 건너, 혹은 카를교를 비릇한 여러 다리 위에서 보는 프라하 성이 제일 아름답다. 간혹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바보 짓이다. 가까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멋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프라하 성의 비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나온다. 프라하의 핵심 지역. 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