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요즘 무서운 기세로 대세로 상승하고 있는 손담비 얘깁니다. 연예계에서는 흉내내는 사람이 나타나면 뜬 거라는 얘기가 있죠.

손담비가 '미쳤어'에서 보여주는 의자춤을 온갖 여자 연예인들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신봉선, 현영, 정가은 등에 이어 남자인 비도 살짝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정도입니다. 동영상 사이트들을 찾아보면 '여고생 의자춤' '여고생 미쳤어' 등의 제목으로 일반인들이 흉내낸 손담비의 의자춤 UCC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굴+몸매+춤 실력은 탁월해서 언젠가는 뜰 거라고 생각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동안 손담비를 띄우려는 주위의 노력에 비해 큰 성과가 없어 소속사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기도 했는데, 이제 걱정이 끝난 듯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포즈는 사실 그리 쉽게 나오지 않죠. 몇몇 사람들이 따라했지만 저 쭉 뻗은 다리의 포스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대개 저 상태에서는 무릎을 어느 정도 구부리게 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의자춤의 원류는 어디일까요. 사실 의자를 사용한 춤 자체는 드물지 않습니다. 25년 전 영화 '플래시댄스'에도 이미 의자를 이용한 섹시 댄스 퍼포먼스가 나오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욘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전에 이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Stronger'의 뮤직비디오에서 의자를 갖고 별 짓을 다 한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기억이 나실 겁니다.




물론 저 비디오에도 결정적으로 손담비를 유명하게 한 '의자 등받이 위로 다리 넘기기' 동작은 나오지 않죠. 그런데 놀랍게도 할리우드의 고전 명화를 보다가 손담비 의자춤의 원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51년작, '파리의 아메리카인'입니다. 뮤지컬 영화의 역사를 따질 때 역시 진 켈리가 주연한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과 함께 결코 빠뜨려서는 안될 대작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리에 살고 있는 가난한 미국인 화가 제리(진 켈리)는 어느날 우연히 부자 미망인 마일로(니나 포크)로부터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같은 날 프랑스 미녀 리즈(레슬리 카론)를 보고 반합니다. '무척 가난한 도시'로 묘사되고 있는 2차대전 직후의 파리를 배경으로 제리가 두 여자 사이에서 겪는 고뇌와 가난한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이 그려진 고전 뮤지컬의 걸작이죠.

최근 DVD 시장의 충격을 대변하듯 직배사들이 잇달아 한국을 대상으로 한 DVD 사업을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폭탄 세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고전 걸작인 '키스 미 케이트'와 이 영화를 묶어 파는 상품이 있어 얼른 샀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TV로 볼 때는 몰랐던 장면이 나오더군요. 물론 다 커서 보더라도 요즘이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갈 장면이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유튜브에는 역시 있군요. 

여기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 40초쯤부터 시작됩니다.)

 

의자 위로 다리 드는 춤 정도야 '시카고'에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하지만 저렇게 의자 등을 앞으로 해 놓고 다리로 넘기는 장면은 그리 흔치 않죠. 아마도 저 영화가 1951년작이니 '의자 등받이 위로 다리 넘기기'의 오리지널은 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워낙 고전에 걸작이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써먹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기도 하죠.

그냥 뜻밖의 장면에서 낯익은(!) 장면을 발견하고 혼자 웃었다는 얘깁니다.

참 이 카메라 CF에 나올 때만 해도 '왜 이렇게 성장 속도가 더딜까' 우려하게 했던 손담비 양. 이제 내년엔 할리우드 영화에도 나온다니 여러 가지로 기대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새 이런 사촌동생까지 등장했군요. 인물이 집안 내력인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2주간에 걸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1000회 특집이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지난 20년, 1000회에 걸쳐 국민들의 주말 시간대를 장악했던 거대한 프로그램의 역사를 짚어 보는 특집이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일밤'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빠져서는 안 될 주병진, 노사연, 이문세, 이홍렬, 신동엽, 최수종 같은 이름들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자료 화면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병진의 경우 스스로 연예인으로서 다시 TV에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고, 신동엽의 경우 SBS에서 현재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예의상' 출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작 두 차례의 특집에 출연한 사람들 중, 최근 몇년이 아니라 일밤의 20년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이경규와 김용만, 이휘재, 김국진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이 정도의 숫자는 '20년 총정리'를 말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밤 1000회' 특집의 제작진은 어느 정도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리가 허술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이경규의 존재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대중문화에서 이경규와 '일밤'이 지금까지 남긴 족적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지 '일밤'에 가장 많이 출연한 인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이경규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가지 장르의 막을 열었습니다. 하나는 그 자체가 장르의 이름이 된 '몰래카메라'고, 또 하나는 '이경규가 간다'로 대변되는 국민 계도성 오락 프로그램 입니다.

90년대 후반까지 누가 뭐래도 MBC 예능은 경쟁 방송사들을 압도했습니다. 그 시기를 지킨 수많은 예능 PD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송창의(현 tvN 사장)-은경표(현 워크원더스, DY 사장)로 대변되는 '재미 지상주의' 세력과 주철환(현 OBS 사장)-김영희(현 PD연합회장)로 대표되는 '교양주의(혹은 당의정파)' 세력입니다. 일단 오락 프로그램은 재미가 있어야 하며 그 재미가 바로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라는 것이 전자의 입장, 그리고 재미가 있는 가운데서도 보고 나면 뭔가 생각할 거리나 느낄 거리를 줘야 한다는 것이 후자의 입장입니다.

이중 후자의 결정판이 바로 '이경규가 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부터 '뭐든지 할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만큼 '이경규가 간다'의 정체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 어느날, '이경규가 간다'는 이른바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우리 사회의 숨은 양심을 찾겠다는 취지에서 전 국민을 몰래카메라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포상을 의식하지 않고 대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 국민의 영웅으로 삼겠다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습니다.

지금도 몇몇 주인공들 - 심야 정지선을 지킨 장애인 운전자, 한밤에도 자동차 전용도로 제한속도를 지킨 중소기업체 사장, 복잡한 지하철의 높은 계단 앞에서 무거운 보퉁이를 든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장병 등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경규가 간다'는 그동안 재미만 있으면 자기 몫을 다 했다고 여겨지던 오락 프로그램들도 공익적인 목표를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나갔습니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뿌리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MBC만이 가진 독보적 무기로 톡톡한 공을 세웠습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나 아예 다른 프로그램으로 출범한 '느낌표'를 비롯해 수많은 코너와 프로그램들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감동과 재미라는, 종래에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울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죠. '이경규가 간다'는 또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보였듯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오락 프로그램에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정상에서의 나날이 길다 보니 이경규 역시 잘 된 프로그램도, 실패한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너구리 사건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적도 있었죠. 주병진이나 이홍렬, 신동엽처럼 당대 최고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천재형 MC들과 나란히 섰을 때에는 재능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예능 MC의 가능성을 지금처럼 확대했고, 10년 이상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다는 꾸준함과 공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수많은 '진짜 왕'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무시당해 '일밤 1000회 특집'이 내세운 '왕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낯간지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경규가 있어 볼만했습니다. 공약대로 '일밤 2000회 특집'에서도 이경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장동건이 TV에 나왔습니다. '박중훈이 TV 토크쇼를 진행한다'에 이어 '장동건이 나온다'는 건 충분히 주말 밤, 시청자들을 화면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 만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KBS 2TV '박중훈쇼'는 비슷한 시간대 MBC 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과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안성기가 나레이션을 맡아 '라디오 스타' 콤비의 맞대결로 눈길을 끌었는데 쇼 프로그램과 다큐가 붙으면 당연히 오락 프로그램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두 개의 시청률 조사기관 중 한쪽은 '박중훈쇼'가, 다른 한 쪽은 '북극의 눈물'이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한쪽은 11.4%, 다른 한쪽은 9.5%로 집계했으니 '경이적인 시청률'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내용이 좋았으면 모르겠지만, '보다가 딴데로 돌렸다'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박중훈과 장동건의 굴욕'일까요? 왜 이 정도의 성적밖에 거두지 못한 것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너무나 당연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현재의 연예계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진행자가 박중훈이 아니라면 장동건을 TV 토크쇼에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최고 인기 토크쇼라고 할 수 있는 '무릎팍 도사'가 1년 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장동건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도 말했듯 '연기를 통해서만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방송에 출연한 건 결국 박중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럼 그렇게 어렵게 불러 낸 박중훈 측에서도 장동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동건의 열렬한 팬들이라면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는 '성인이 된 뒤에 사귄 여자가 몇이나 됩니까' '좋아하는 여자의 부위별 특징은' '밤에 혼자 있을 때는 뭘 합니까' 라는 식의 진행은 불만 투성이일겁니다. 물론 모두 나쁜 질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나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그 질문 하나로 끝나는 진행에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파고 들어가서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결말을 내 주길 바라는 거죠.

더구나 누구보다 장동건의 평소 모습을 잘 알고 있을 박중훈이라면, "저번에 술자리에서 보니까 이러이러한 모습도 보이던데..."라는 식으로 슬쩍 슬쩍 시청자들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을텐데 매우 아쉽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용이 빈약한 이유 중에는 녹화 시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릎팍 도사'는 대개 4-5시간에 걸쳐 '게스트가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취조를 합니다. 그 정도로 '짜내고 짜내' 그걸 60분 내외로 편집해 두번에 걸쳐 방송하니 토크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죠. 장동건의 녹화 시간은 노래 부른 시간까지 합해 2시간 미만이었습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것은, 아무도 장동건에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고, 그런 식의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토크를 통해 '하늘 위에 사는 미남 귀공자'의 이미지를 훼손해 가면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로서 그에게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대체 뭐가 아쉽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장동건으로부터 주울 말은 "맥주 세 캔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 "새벽 세시에 혼자 깨 있을 때, '20분 안으로 전화하는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뒷말 때문에 이 방송을 본 여자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장동건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야겠다"는 농담 섞인 난리가 나기도 했죠.

여담이지만 장동건은 이날 세곡이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김수희의 '고독한 여인'과 최대 히트곡인 '되고송',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박중훈의 '비와 당신'은 제대로 불렀죠. 사실 '비와 당신'은 세 번이나 다시 불러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골랐습니다.

왕년의 가수 출신으로 대만에도 진출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최대 히트곡(?)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다시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설적으로 말해 이 정도의 빈약한 토크로 시청률 두자리를 기록했다는 게 장동건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긴 현장에 나간 후배들의 얘기로는 KBS 아나운서들도 녹화 현장에 내려가 방청객 역할을 자청할 정도였다는군요. (부럽습니다.^)

아무튼 첫회의 지루한 진행은 장동건이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치겠지만, 박중훈의 토크 진행 자체도 - 물론 첫회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 그리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일단 너무 툭툭 끊어지는 화법이 진행자로서는 감점 요인입니다. 그가 게스트였을 때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입장에서 보면 진행자로서 스피드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장동건 아닌 다른 게스트가 나왔을 때에도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그건 아마 재앙 수준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으로 어깨를 숙이고 자리에 앉은 자세도 좀 불편해 보였습니다. 좀 더 높은 테이블을 써서 테이블에 기대든가, 아니면 다리를 꼬고 안락의자 깊이 앉은 자세에서 대화를 끌어가는 건 어땠을까요. 주말 밤이라면 이런 게 보는 사람에게도 편안함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첫날 방송의 박중훈은 평소의, 특히 청룡영화상 인기상 시상 MC로 등장해 수많은 스타들을 '가지고 놀던' 여유 넘치고 노련한 모습이 아니더군요. 물론 워낙 뛰어난 감을 갖고 있는 분인 만큼 곧 자신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이 정도의 관심이 몰린 것만으로도 '장동건 효과'는 충분히 본 셈이죠. 이제는 어떤 토크로 승부를 볼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분명한 건 '첫회처럼'은 두번 다시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조진행자로 나온 이현주는 알고보니 '연세대 얼짱'으로 꼽혔던 슈퍼모델이었군요. 하지만 방송 무대에서는 아직 갈고 닦을 점이 많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불경기때 광고를 하는 것이 경기 회복 후의 급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경기가 나빠지면 홍보 예산부터 줄이는 것이 그리 좋은 방안은 아니라는 얘기죠. 그렇다고 억지로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서 광고를 집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시사주간지 TIME 온라인판은 대중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2008 베스트10을 선정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를 9위에 올린 2008 영화 베스트 10인데(뭐 타임의 한해 베스트 무비 선정은 예전부터 괴팍하기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TV 광고 베스트 10에 관심이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위의 '백악관, 새벽 3시에 누가 전화를 받을까' 광고가 마음에 들더군요. 가끔 '이에 대체 왜 베스트10일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한 광고에 높은 점수가 매겨진 듯도 합니다.


1. T-Mobile's NBA series

 
찰스 바클리 경(?)의 입담이야 전 세계가 알아주는 터. 그가 마이애미의 영웅 드웨인 웨이드에게 '정말 아무때나' 전화하는 주책맞은 아저씨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 냅니다. 웨이드의 연기력도 일품.


2. Fed Ex's horror flick
 

비둘기가 물건을 나른다. "큰 물건들은 어떡하지?" 거대 비둘기가 등장하지만, 이내 온갖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페덱스를 쓰는거야."


3. Fate, according to Nike

 
엔니오 모리코네의 '석양에 돌아오다'에 나오는 The Extacy of Gold 가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사나이는 대결하기 위해 태어났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는 메시지가 간명하면서도 강렬하군요. 감독은 '세븐'의 데이빗 핀처.


4. I'm a PC
 

마지막에 아주 작은 윈도우 마크. 빌 게이츠가 살짝 등장합니다(안경을 쓴...). 메시지는 "이제 PC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 듯 합니다. 꽤 특이하군요.

 
5. Scorsese to direct AT&T

 
침대 안의 어린이가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마틴 스콜시스가 나타나 평화로운 가족의 한 장면을 느와르 영화로 바꿔놓으려 합니다. 메시지는 "우리는 당신의 통화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우리의 영화를 방해하지 마세요." A급 유머. (극장 통화 예절을 가르치는 광고로도 제격입니다-이동통신 광고라면 더 잘 어울리겠군요.)



6. Old Spice's meta-humor 

 
'천재소년 두기'로 유명한 닐 패트릭 해리스가 "지속적인 몸냄새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코멘트로 올드 스파이스 스킨로션을 광고합니다. 그런데 뭐가 그리 뛰어난 유머인지 모르겠군요. 누가 설명 좀 해 주시면...



7. Visa's Olympic Tearjerker


'쇼생크 탈출'로 귀에 익은 모건 프리맨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400m 준결승에서 갑작스런 부상으로 쓰러진 영국의 데렉 레드먼드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끝내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였다는 점을 동원한 비자카드의 광고. 개인적으로는 좀 너무 상투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이건 '감동 마케팅'이라면 한국이 한발 앞서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 Obama's infomercial


명성이 자자한 오바마 선생의 선거용 인포머셜 광고입니다. 7분이 넘는 길이라 미니다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 살림살이가 악화된 사람들의 경우들을 직접 보여주며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제법 설득력있어 보입니다.


9. Guitar Hero's dream band


보컬 코비 브라이언트, 퍼스트 기타 알렉스 로드리게스, 세컨 기타 마이크 '피시' 펠프스, 드럼은 토니 호크(유명 스케이트 보더라는군요). 스포츠계의 톱스타들로 구성된 대형 밴드가 밥 시거의 'Old Time Rock and Roll'을 부르며 '기타 히어로' 게임을 광고합니다. 코비는 거의 연예인인데 펠프스는 아직 촌티(^^)를 다 벗지 못한 듯 합니다.

사실 하이디 클럼 버전이 더 관심이 가죠.^^ 이 버전은 TV용으로는 방송 불허랍니다.





10. It's 3 a.m.


역시 대선이 있던 해다 보니 정치광고가 두개나 올라와 있군요. 사실 '광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오바마 것보단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새벽 3시, 아이들은 잠들어 있습니다. 이때 백악관에는 위기를 알리는 긴박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대체 누가 그 전화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일까요, 초보자일까요?' 훌륭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은 추억어린 패러디입니다.^



자, 여러분의 취향은 어느 쪽입니까?




p.s. 혹시 2007년의 베스트 10이 궁금하시면:




728x90

조성민이 결국 양육권과 재산관리, 법률대리권 등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최진실이 고인이 된지 60여일만의 일이었죠. 아버지로서의 의무만을 다 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진실 사후 두 자녀에게 남겨진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조성민 측과 최진실 유족 측의 시비는 가라앉게 된 셈입니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씨가 "조성민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거둬 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조성민으로서는 상처뿐인 결말인 셈입니다. 사실 8일 나온 화해의 내용은 지난달 18일 조성민이 MBC TV 'PD 수첩'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과 거의 차이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성민은 최진실의 유족 측에게 "(유산을)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좋고, 그쪽에서 모두 맡아서 관리하셔도 좋다. 다만 아이들을 걱정하는 아빠로서의 마음만 알아 주시고, 나중에 아이들만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만 해 주시길 바란다"고 제의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성민은 당초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최진실의 유산을 가족 아닌 누군가가 맡아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이날(18일), 처음으로 재산관리에 대해 아무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양육권은 처음부터 주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조성민은 이날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막자는 마음 뿐이었는데,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에 문제가 불거져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이미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갈라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로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하지만 인터넷 댓글로 상징되는 여론은 이런 조성민의 '항복 선언' 이후에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민법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살아가면서 이 말이 의미가 있을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던 '친권'이라는 법률 용어를 거의 모든 국민이 숙지하게 됐고, 그와 동시에 우리 민법이 얼마나 '만약의 사태'에 대해 미비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 사건이 만약 법원 책상 위에 놓이게 됐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기나긴 재판이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혼한 부부 중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아버지가 자동으로 친권자가 되는(혹시나 아버지가 친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포기 자체가 인정되지 않고, 다른 한쪽 친권자 - 즉 어머니 - 가 사망함과 동시에 되살아나는) 것이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맞아 수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과연 조성민의 친권도 자동으로 부활되는 것인가(혹은 애당초 포기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는가)?

놀랍게도 의견은 너무도 다양했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선 "당연히 친아버지가 친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다소 진보적인 쪽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친권의 부활 여부를 법정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조성민의 경우처럼, 아이의 양육과 별개로 친권을 주장하는 경우 그 향방은 뭐라 말하기 힘들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혼란처럼 온 사방에서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쏟아진 말의 90%는 너무도 일방적이었습니다. 특히 소설가 김연, 여성학자 오한숙희 처럼 이혼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죠. 이 분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한번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사람에게, 법이 그냥 '아버지로서의 권리(물론 의무를 포함해)'를 자동으로 부활시켜 줘서는 안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경우만 있을까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은 단호하게 반대쪽에 있습니다. 이른바 '핏줄은 가까운 쪽일수록 끌린다'는 논리죠. '착한 외삼촌보단 못된 아버지가 낫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조성민 때문에 되찾는 쪽을 아버지로 상정해서 좀 그런데, 되찾는 쪽이 어머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죠. 부부가 이혼해 꽤 많은 재산을 가진 아버지가 아이들을 맡았고,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했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빼앗긴' 자녀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민법이 친권의 자동 부활을 부정한다면, 이 친어머니는 자녀와 거기에 자동으로 딸려 있는 재산을 놓고 남편이 재혼한 여성(아이들의 양어머니)과 법정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자, 되찾는 쪽과 빼앗은 쪽(?)의 성별을 바꿔 놓고 보면 상황이 무척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이밖에 또 다른 입장은, 이처럼 아이를 맡는 경우 '상당한 수준의 유산에 대한 관리권'이라는 보너스가 함께 따라 오는 경우가 아닌, 아무도 아이를 맡지 않으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친권이란 권리를 넘어 의무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즉 미성년자인 자녀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이 경우 '가장 그 권리를 무겁게 갖는 사람은 바로 친 부모'라는 것이 친권의 의미라는 겁니다.

물론 현재의 민법 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부모든, 양부모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서 결정에 관여한다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쪽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모처럼 이런 이야기가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을 때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런 두 개의 주장 중에서 어느 쪽이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보다 적합한 것인지, 결론을 끌어내야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친권'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경우들과, 이런 다양한 경우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처리 방안들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민법상의 친권 개념과 그 시행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런 부분들이 빠짐 없이 고려되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번 사건 내내 조성민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 부은 사람들이 과연 이번 사건이 갖고 있는 이런 다양한 측면들에 시선을 돌렸을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으로 표출되는 대다수 여론은 거의 모두 한 쪽에 치우친 주장만을 수용했고, 조성민 쪽의 이야기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사기꾼이며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심지어 한 방송 프로그램까지 최진실 유족 측의 주장만을 거의 수용해서 방송해 '조성민 매도'에 불을 질렀습니다. 남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치 눈 앞에서 본 듯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론이 비명에 간 최진실을 옹호하고 동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 경로를 살펴보면, 조성민은 내세운 주장에 비해 너무 심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돈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쳤고, 그 주장을 입증한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에게 쏟아진 매도는 대단히 부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친권'이라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조성된 여론과 관심이 과연 이 친권 이슈를 기억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될까요?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온 사회를 휩쓸었던 뜨거운 관심과 에너지가 그저 순간의 관심과 한 개인에 대한 매도로 끝나고 만다면 그저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기왕 이슈가 되었다면 그저 구호와 목청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진정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개그 콘서트'가 다시 전성기입니다. 7일 방송에서는 간판 스타 중 하나인 강유미가 '가문이 영꽝'으로 복귀해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달인'이며 '박대박'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할매가 뿔났다' 등 한마디로 현재는 버릴 코너가 없을 정도로 알찹니다.

몇번째 전성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99년 시작된 프로그램이니 내년이면 10주년. '웃으면 복이 와요'도 아니고 스탠딩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흘러든 결과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체 '개콘'의 이런 융성에 비해 다른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힘은 왜 예전같지 않은 것일까요. '개그야'나 '웃찾사'는 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일까요. '개콘'과 여타 비슷한 프로그램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명한 것은 어떤 프로그램이든 부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콘'을 원조로 하는 3대 지상파 방송사의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서 한때 '웃찾사'가 가장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고, 또 한때는 '개그야'가 지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그중에서도 '개콘'이 전성기를 누린 기간이 제일 길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게다가 '개콘'이 현재 누리고 있는 전성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청률의 급상승은 일요일 오후 10시대에서 9시대로 한시간 빨라진데 따른 이익이지만 10시대일 때도 다른 개그 프로그램들이 무너져 갈 때 개콘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개콘의 힘은 무엇일까요? 스포츠 기사에서 어느 팀이든 우승의 원인을 분석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바로 '신구의 조화'입니다. 노장이 자기 몫을 다하고, 신인이 조기에 주전으로 정착해 주면 성적 안 나올 팀이 없겠죠. 현재의 개콘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노장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 '개콘 1세대'들이 여전히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있고,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데뷔한 김병만(2002) 이수근 변기수(2003)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 김대범 강유미 황현희(2004) 등이 주전으로 만개한 상태에서 신봉선을 필두로 '왕비호' 윤형빈, '수제자' 노우진, '박대박'의 박성광-박영진, '여성학자' 박지선 등 데뷔 만 3년 이내의 신진들이 자리를 잡아 주고 있습니다. 출연진의 폭이나 활약에서 역대 어느 세대의 '개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화려한 진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다 보니 코너의 생사와 '편집에서 살아남기'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을 볼 때도 '살릴건 살리고 죽일 건 죽인다'는 편집 방침이 확실해 진 것이 눈길을 끕니다. 최근 새로운 코너로 등장했던 '뜬금뉴스', '변수무당' 코너는 신속하게 사라졌지만, 그중 반응이 있었던 캐릭터인 안상태의 '난...'과 박휘순의 '미쳤어, 미쳤어'는 '봉숭아학당2008''에 흡수됐습니다.

또 개그 코너들의 전반적인 향상에 대해선 최근 5-6년 동안 KBS가 기울여 온 코미디 개발의 노력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개그사냥'과 '폭소클럽'의 존재죠. 다양한 스타일의 코미디 개발을 모토로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되었던 프로젝트들입니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이 발굴되어 KBS의 공채 개그맨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마땅히 출연할 프로그램이 없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우기도 해왔습니다. 한때 KBS의 한 관계자는 "'개그사냥'이 싱글 A, '폭소클럽'이 더블-트리플 A, '개그콘서트'가 메이저"라는 식으로, KBS 개그의 팜(Farm) 시스템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행히도 이 두 프로그램은 모두 폐지됐습니다. 아무래도 시청률 면에서 대박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개콘'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영광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개콘'에도 위기가 올 거란 예감을 갖게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 없이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곤 대학로의 공연 무대뿐입니다. 이런 무대의 현장감각도 중요하지만, 방송 적응이라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진짜 방송 프로그램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 효과는 두통약처럼 즉각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이 등장해서 성과로 연결되기까지 3-4년이 걸린 걸 보면, 위기가 찾아오기 까지도 꽤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오랜만에 강유미가 복귀한 '가문이 영꽝', 재미있더군요. 왠지 강유미의 얼굴에서 고생(?)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728x90

이 글을 처음 쓴게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정리된 이야기를 고치지 않았다는 데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조금 내용을 손봤습니다. (2022. 2. 28)

 

---------------------------------------------------------------------------------
오래 전에 스타들의 식성에 대한 얘기를 '송승헌이 설렁탕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 어떤 분이 질문을 던지셨더군요. 바로 '대체 설렁탕과 곰탕은 뭐가 다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막연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설렁탕은...이러이러한 거고, 곰탕은 저러저러한... 그런데 막상 말로 정리하려고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대체 뭐가 다르지?

궁금하면 못 참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한두성상이 아닙니다. 수사에 착수해 봤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에 대한 추적보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명 식당 이남장의 전형적인 설렁탕 모습)

일단 전문가들의 해석은 단호합니다. 많은 분들이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11권에 나오는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지적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고, 곰탕은 고기 국물이다."

맛 전문기자로 10년을 보내신 요식업계의 거물 선배 기자께도 여쭤봤습니다. 역시 마찬가지.

"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와 내장로 국물을 낸 것이 곰탕이다. 그래서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국물이 맑다. 국물이 투명하면 곰탕이라고 불러도 좋다."

명료합니다. 더 이상 토를 달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곰탕의 명가 하동관의 투명한 국물을 생각하면 너무도 명백하게 구분됩니다. 일단은 이런 설명이 정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곰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하동관 곰탕밖에 없느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동관 곰탕은 소위 서울식 곰탕의 대표라고 해야겠죠.

일단 하동관 못잖게 유명한 현풍할매곰탕이 있습니다. 영남지방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서울에도 진출했죠. 물론 원조 논쟁이 아직도 치열하지만, 일단 현풍할매곰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은 죄다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중 한 집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대체 곰탕 국물은 뭘로 내나요? 사골도 들어갑니까?

"그럼 곰탕 국물을 사골로 내지 뭘로 내요? 물론 내장도 넣고 고기도 넣지만."

전문가들은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할 때, '사골곰탕'이라는 등의 말은 민간에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상당수 지역에서는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꼬리곰탕'이라는 표현 역시 제대로 정착해 있죠. 꼬리곰탕집 치고 국물이 말간 집은(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꼬리곰탕도 분명히 곰탕이되, 뼈 위주의 국물이 나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사 바로 옆에는 1972년에 개업했다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유서깊은 설렁탕집이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메뉴를 설렁탕으로 집중했지만, 그동안은 도가니탕과 꼬리곰탕도 함께 팔았습니다. 이 집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가 뭡니까?

"국물은 같아요. 같은 국물에 건더기가 다른 거지."

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20년 전 쯤 충북 청주의 한 식당에서 메뉴판에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주인에게 대체 둘이 뭐가 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의 증언은 이랬답니다.

"국물은 똑같소. 수육만 나오는지, 수육하고 내장이 같이 나오는지 차이지."

뭐 당시의 식당 주인이 한식 전문가는 절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이런 통념도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데 기준이 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설렁탕에는 뼈는 물론이고 소 머리와 양지머리, 기타 소의 온몸 부위가 다 들어간다. 뼈가 주 재료이기 때문에 뽀얀 국물이 특색이다. (물론 선농단 제사가 기본이 됐다는 설은 현재에는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이 서민의 음식이기 때문에 시커먼 뚝배기를 주로 쓴다. 

2. 곰탕은 기본적으로 내장과 고기로 국물을 낸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곰탕의 원형에 충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경계가 흐려졌지만 분명 원래는 '설렁탕은 뼈가 들어가 뽀얀 국물, 곰탕은 내장과 고기로 끓여 맑고 투명한 국물'이 구분의 기준이다. 또 곰탕은 태생이 양반집의 귀한 보양 음식이기 때문에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다. 

3. 어쨌든 설렁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은 그 기원이 언제든, 20세기 이후에 서울의 시장 음식(서울 구경을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틀이 잡혔기 때문에 전국으로 퍼진 뒤에도 어디서나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뼈 국물을 곰탕이라 부르는 지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라는 말 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설렁탕은 뼈 국물, 곰탕은 고기 국물'이라는 구분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에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법'에 '소면이 들어 있으면 설렁탕, 소면 대신 당면이 들어 있으면 곰탕'이라는 말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 보니 이게 웃을 수가 없는 얘기더군요. 재료나 전통을 가지고 설렁탕과 곰탕을 정확하게 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국수의 유무만큼 선명한 구분의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설렁탕 맛집인 이남장의 경우, 설렁탕 국물(뼈국물)과 곰탕 국물(고기 국물)을 따로 따로 끓여 적정한 비율로 섞습니다. 반면 곰탕 맛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명동 하동관은 본래 고기와 내장으로만 국물을 냈지만, 언젠가부터 사골도 재료에 포함시킵니다. 물론 그 양으로 따지면 사골은 결코 주 재료가 아니고, 국물이 뽀얗게 변하지 않을 정도로만 들어갑니다. 

그렇게 점점 음식들이 섞여 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본래는 분명히 다른 음식이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을 참고하시라고 권합니다. 

더욱 깊숙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728x90
서태지가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바람에 SBS TV '김정은의 초콜릿' 출연이 무산됐다는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서태지의 특별 대우 요구 - 이를테면 사전 녹화 - 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는 했죠. 하지만 세상이 변해 요즘은 웬만한 가수는 웬만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전녹화를 합니다.

그밖에도 서태지는 까다로운 요구를 많이 하는 연예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편집권이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편집권이란 과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한일까요?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편집권이란 PD의 성역이며,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해당 PD가 'PD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을 요구해서 거절했다'는 것은 현재의 관행을 볼 때 상식 밖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방송가에선 오래 전부터 서태지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얼마든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김정은의 초콜릿' 등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TV 쇼에 나갈 때, 여건이 되는 가수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편집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이승철이며 김장훈 등 많은 가수들이 직접 편집권을 행사해왔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수들은 라이브 공연이라도 할라치면 대단히 세심하게 자신의 무대와 음향을 손질합니다. 몇번이고 조율을 하면서 스피커의 방향이나 각 악기 사이의 음량 균형을 맞춰 최고의 소리가 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TV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2,3곡을 부르기 위해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적인 여건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은 대신 자신들의 출연분을 가져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편집합니다. 물론 이미 치러진 녹음에서 손질을 하는 정도일 뿐, 새로 녹음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런 손질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음질은 놀랍게 좋아집니다. 또 녹화중의 커트나 카메라의 방향, 소도구나 인력(댄스팀이나 합창단, 심지어 오케스트라의 등장) 등도 얼마든지 PD와 가수, 혹은 제작자 사이에서 협의가 가능합니다. 물론 전체 프로그램의 편집권을 요구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분적으로 PD가 권한을 양보한다 해도 결국 프로그램의 공과는 PD가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방송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방송사가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구현해주지 못하는 좋은 품질의 방송을 위해 가수나 제작자가 노력을 보탠다고 생각하죠. 이런 걸 말릴 PD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겁니다.

이 문제 때문에 흥분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이제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서태지는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할 수도 있고,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태지가 요구한 것은 일반적으로 현재 방송가에서 'PD의 권한 침해'로 간주되는 것들은 아닙니다. 만약 출연이 없던 일이 된다면 무슨 다른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깁니다.^^


p.s. 저희 기자가 쓴 좀 긴 글을 링크합니다.

'서태지, 방송사에 까다로운 요구... 비난 받을 일인가?'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812/05/2008120516440804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728x90

조니 뎁이 새로 만들어질 영화에서 젊은 날의 로저 무어 역할 물망에 올라 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그냥 듣보잡 뉴스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꽤 공신력이 있는 WENN의 기사입니다.

얘기인 즉 미국의 초대행 프로덕션 두 군데에서 로저 무어의 회고록 '내 말이 곧 본드(My Word Is My Bond)'의 영화화 판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저번에 한번 소개한 적 있는 이 책은 제임스 본드 시절의 흥미진진한 일화는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 라나 터너, 데이비드 니븐 등 1950년에서 60년대에 걸친 세계적인 스타들과의 일화들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책 관련 얘기는 이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얘기들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구미에 맞았고,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주로 본드 역할을 맡기 이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거란 얘기가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소식은 로저 무어의 젊은 날을 연기할 스타로 조니 뎁이 첫 손에 꼽히고 있다는 겁니다. 글쎄, 솔직히 말해 그리 닮았다고 볼만한 얼굴은 아닌 것 같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어스 브로스넌이 한 15년만 젊었어도 똑 떨어지는 닮은꼴인데 너무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곤란할 듯 합니다. '세인트' 역할을 이어받은 아이언 오질비나 최근 리메이크중인 '전격대작전'을 이어받은 휴 그랜트도 너무 늙어서 곤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젊은 피를 과감하게 수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더스트'와 '나니아 연대기'에서 판타지형 미남의 본색을 보여준 벤 번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몸에 007의 피가 흐르는 이 총각도 괜찮을 듯 합니다. 좀 낯선 얼굴이죠? 바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 션 브로스넌입니다. 영국산 꽃미남으로 쓸만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쌍둥이처럼 닮지는 않았다 해도 조니 뎁이 하기만 한다면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섹시함이나, 마술같은 변신 능력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혹시 로저 무어 본인이 마음에 안 들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신에 따르면 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하군요. WENN은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사안은 모두 극비리에 진행중이지만, 로저 무어 경은 최근 친구들에게 '나도 조니 뎁의 열렬한 팬'이라고 털어놨다"고 측근의 입을 빌어 전했습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본다면, 그 시절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해야 할테니 닮은꼴 배우들이 잇달아 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얘기가 될 것 같군요.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젊은 날은 누구 연기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사실 닮았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휴 잭맨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떻습니까. 정말 후계자로 부를 만 하죠?



728x90
빌리 조엘의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미리 몇 글자 써 놓고 가도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막상 뭔가 글을 쓰려고 하는데도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멈춰 버리는 듯 하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1949년생. 내년이면 환갑.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중요한 다른 일정도 있었지만, 이 공연을 뒤로 미루고 할 만한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공연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주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제 인생에서 2008년은 '빌리 조엘의 공연을 본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팝의 역사를 정리할 때 흔히 50년대는 엘비스 프레슬리, 60년대는 비틀즈, 70년대는 엘튼 존/ 빌리 조엘, 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의 시대로 정리하곤 합니다. 틀린 말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차트상으로 볼 때는 분명 참이 아닙니다. 엘튼 존이나 빌리 조엘은 나머지 세 아티스트에 비해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 1위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빌리 조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한 앨범은 4장(52nd Street, Glass Houses, Storm Front, River of Dreams)이지만, 싱글 히트곡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은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Tell Her about It, We Didn't Start the Fire의 단 세 곡 뿐입니다.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는 내놓는 족족 석권했지만 전체 싱글 차트에서는 그렇게 위력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아티스트들 중 홀 앤 오츠 등과 비교해도 초라해지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은 단기간에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는 않았다는 것일 뿐, 20년간의 앨범 활동 기간을 통틀어 본 전체적인 앨범 판매량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전미 음반산업협회(RIAA) 자료에 따르면, 빌리 조엘은 생애 통산 미국내 앨범 판매량에서 약 8천만장을 판 것으로 나타나 종합 6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약 6천만장으로 집계되는 마이클 잭슨(17위)보다 많습니다. 전 세계 판매량을 합치면 1억장을 훨씬 넘겠죠.

BEATLES, THE 170
BROOKS, GARTH 128
PRESLEY, ELVIS 118.5
LED ZEPPELIN 111.5
EAGLES 100
JOEL, BILLY 79.5
PINK FLOYD 74.5
STREISAND, BARBRA 71
JOHN, ELTON 70
AC/DC 69

(사실 가스 브룩스야 미국내 인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AC/DC의 경우가 정말 놀랍습니다. 저 정도로 많은 앨범을 팔았다니.)

역시 RIAA 집계에 따르면 단일 앨범으로도 빌리 조엘의 '베스트 1, 2집 합본(물론 맨 처음부터 합본으로 나왔습니다)'은 2100만장이 팔려 역대 미국 내 히트 앨범 6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9 EAGLES/THEIR GREATEST HITS 1971 - 1975 EAGLES ELEKTRA
27 THRILLER JACKSON, MICHAEL EPIC
23 LED ZEPPELIN IV LED ZEPPELIN ATLANTIC
23 THE WALL PINK FLOYD COLUMBIA
22 BACK IN BLACK AC/DC EPIC
21 GREATEST HITS VOLUME I & VOLUME II JOEL, BILLY COLUMBIA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빌리 조엘의 가치는 단기간의 1, 2위에 있는 게 아니라 두고 두고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 가수로서의 힘에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자는 그의 성공을 가리켜 미국 라디오 방송사들이 록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인 청취자들을 겨냥하고 의도적으로 그를 '키워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뭐 그렇게 '키워내서' 이 정도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1971년 데뷔해 1973년, 두번째 앨범에서 'Piano Man'을 내놨던 빌리 조엘은 1993년 "더 이상 새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신곡을 내놓지 않았을 뿐, 공연을 통해서는 팬들과 계속 만났습니다. 1999년 12월31일의 밀레니엄 콘서트는 물론이고 총 24회에 걸친 엘튼 존과의 조인트 콘서트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는 전 세계를 흥분시킵니다. 일본에서도 몇 차례 '페이스 투 페이스'의 공연이 있었는데, 대체 왜 한국에서는 이 공연이 유치되지 않는가에 분통을 터뜨린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어 2006년부터는 전미 순회 공연이 이뤄졌고, 잘하면 한국에도 올 수 있겠다고 기대를 부풀게 하던 즈음에 마침내 한국 공연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날짜가 하필 11월이어서 실내(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로 들어가야 했지만, 조금만 빨랐다면 엘튼 존이 했던 잠실 종합운동장 메인 스타디움도 채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월 15일 오후 7시20분쯤 조엘 선생은 7명의 백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기본 멤버에다 퍼커션과 두 명의 브라스 주자가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 당연히 포함.

공연을 보다 보면 이 백밴드의 활약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가지만 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색소폰 주자는 'Stranger'의 앞부분 휘파람 라이브를 맡기도 하고, 여성 퍼커션 주자는 백보컬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본 중에 가장 다재다능한 밴드가 아닐까 합니다.

이날의 공연 목록은 이랬습니다.

1. Angry Young Man
2. My Life
3. Honesty
4. Zanzibar
5. New York State of Mind

6. Allentown
7. Stranger
8. Just the Way You Are
9. Movin' Out
10. Innocent Man

11. Keeping the Faith
12. She's Always a Woman
13. Don't Ask Me Why
14. River of Dreams
15. Highway to Hell (AC/DC)

16. We Didn't Start the Fire
17.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18. Big Shot
19. You May Be Right

여기에 앵콜로 Only the Good Die Young 과 Piano Man까지 총 21곡. 숨가쁘게 흘러간 100분간이었습니다. 당연히 30년을 기다렸던 골수 팬들이 운집했을테니 첫곡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피아노 전주만 듣고도 함성을 울려댔으니 말입니다. 'Honesty'나 'Just the Way You Are'처럼 국내에서 인기 높은 곡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죠.

 
(15일 서울 공연의 모습과 거의 똑같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피아노 위의 생수병만 머그 잔으로 바꿔 놓으면 정말 구별을 못 할 지경이군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River of Dreams에서 We Didn't Start the Fire까지 세 곡의 열광. River of Dreams에서는 앞으로 뛰쳐나온 관객들을 저지하려던 질서유지요원에게 빌리 조엘이 화를 내면서 잠시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고, 아무튼 그 열띤 분위기가 그대로 온 관객을 벌떡 일어서게 했습니다. 조엘이 기타리스트로 변신하고 스태프 중 하나(?)라는 거구의 호주 남자가 AC/DC의 Highway to Hell을 멋지게 불러 제끼는 깜짝 이벤트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짜여진 각본대로 앵콜이 진행됐고, 누구나 알고 있었던 마지막 앵콜 곡인 Piano Man이 흘러나오면서, 대형 스크린에는 Piano Man의 가사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필 선생이 잠실벌을 노래방으로 만들듯, 조엘 선생은 체조경기장을 다시 한번 노래방으로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묘하게도 그 순간은 '토요일 저녁 오후 9시(Nine O'clock on a Saturday)' 즈음이었고, 온 관객이 한 마음으로 Piano Man을 따라 불렀고, 가사가 Pretty Good Crowd for Saturday에 이르고 조엘이 슬쩍 관객들을 바라보자 센스 있는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러 자축했습니다.

긴 노래도 어느덧 끝나 가고 있었을 때 조엘 선생은 반주를 끊고, 관객들에게 이날의 공연을 함께 마무리할 기회를 줬습니다.

Sing Us a Song, You're a Piano Man,

Sing Us a Song, Tonight.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You've Got Us Feeling Alright.

마지막 네 소절이 관객들의 생 목소리로 울려퍼졌습니다. 다시 한번 목이 메어 옵니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그의 피아노와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기다렸던 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p.s. 당연히 그렇지만 - 어느 곡 하나 버릴 게 없는 명곡들의 나열인데도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못 들은 명곡들,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And So It Goes'나 'Longest Time', 'I Go to Exterme', 'Lenningrad'나 'Goodnight Saigon' 같은 노래들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아, 물론 'Uptown Girl'은 기대도 안 했습니다만.

And So It Goes의 뮤직비디오는 퍼올 수가 없어서 King's Singers의 리메이크를 가져왔습니다. 이 버전도 훌륭하지만 빌리 조엘의 원곡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곡은 http://kr.youtube.com/watch?v=eELB6NxrZ7A


I Go to Extreme을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부르는 80년대 조엘의 모습입니다.




p.s. 이제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이 내년 일본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F2F) 공연을 재개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두 명의 슈퍼 피아노 맨이 만나 벌이는 피아노와 노래의 혈투. 생각만 해도 흥분됩니다. 일본까지 오는 김에 한국에도 한번 들러 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니면 휴가라도 내야겠죠?

1998년 도쿄에서 있었던 F2F 공연의 한 장면입니다.








728x90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가수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를 왜 열어주지 않느냐고 강력한 항의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대중 가수나 대중 가요를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짙습니다. 특히 클래식 연주자나 성악가들은 대단한 예술가 취급을 하지만 대중 가수들은 딴따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 편견을 생각하면, 인순이의 항변은 심정적으로 강력하게 끌리는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런 편견 외에도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본질적으로, 수준 있는 공연장의 절대 부족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 형식으로 이번 인순이 파문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정리해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인순이는 데뷔 후 30년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대형 가수다. 이미 '열린음악회'를 통해 전 국민에게 대형 무대에서의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이며, 세종문화회관 무대에도 섰다. 그런 가수가 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는 공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B: 왜 하필 오페라하우스인가?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오페라하우스는 글자 그대로 오페라를 위한 공간이다. 극장의 용도가 정해진 공간이다. 세계 유수의 오페라 홀을 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콘서트 홀은 다양하게 개방하지만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와 발레를 위한 전용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뉴욕의 메트 오페라, 런던의 코벤트 가든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디를 가나 오페라 극장은 대단히 제한된 공간이다. 함부로 개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A: 말 잘 했다. 지금 예로 든 극장 중에서 뮤지컬이나 개인 독창회를 위해 개방하는 곳이 있나?

B: ...없는 걸로 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하지만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이미 수없이 많이 뮤지컬을 위해서도 개방됐다. 극장의 순수성이라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게다가 조용필이라는 대중가수를 위해 개방한 선례가 있지 않나.

B: 아니 어따 감히 조용필 선생과 인순이를! 대한민국에 조용필은 단 한 사람 뿐이다.

A: 인순이도 한 사람 뿐인데?

B: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을 비교하는 건 무리다. 가수로서 전성기의 위치, 히트 곡의 수, 범 국민적인 인기 등등을 고려할 때 조용필은 인순이에 비교할 수 없는 가수다. 대체 인순이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뭐가 있나. '밤이면 밤마다'? 그 밖에 뭐가 있나. '친구여'나 '거위의 꿈' 역시 자기 노래도 아니지 않은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대체 언제부터 오페라극장이 대한민국 가수의 경력 판단기관이 됐나? 그럼 대체 히트곡 몇곡 이상, 앨범 판매량 얼마 이상, 해외 공연 몇회 이상이면 오페라극장 공연 가능 가수인가?

B: 그동안 운영 방침이 약간 정상 궤도에서 어긋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순도 높은 클래식 이벤트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A: 사실 전통이며 품위며 얘기하는 것도 우습다. 한국에 유럽처럼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있나? 팝이건 클래식이건, 한국 사람이 보기엔 모두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고급 문화 취급을 받고, 어떤 것은 싸구려 취급이다. 허위의식이 낳은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B: 그 말을 뒤집으면, 인순이가 반드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허위의식의 소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대중가수라면 어떤 무대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굳이 일반 가수들이 서지 못하는 무대에 서서 자신의 훌륭함을 입증하겠다는 식의 사고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A: 인정한다. 사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무대를 가릴 이유가 없다. 12월에 오는 플라치도 도밍고도 체육관에서 공연하던데...
여담이지만 한국 가수들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을 탐내는 것은 일정 규격 이상이 되면 좀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공연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늘 일본같은 선진국과 비교해서 그렇지만, 한국에서 2, 3천석 이상 되면서 좌석이나 무대가 세종문화회관 수준인 곳이 도대체 몇 군데나 있나. 인순이의 주장 가운데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왜 좋은 공연장은 전부 클래식용이냐. 우리도 좀 좋은 공연장 쓰면 안되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B: 그렇긴 하다. 공연 문화의 수준과 공연장 수는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강남이건 강북이건, 으리으리한 대형 건물들이 올라갈 때마다, 저 건물들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씩만 들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두산 연강홀도 좋은 예지만, 다른 회사들도 이런 식으로 자기 이름 붙은 공연장 하나 갖기 운동을 하는게 어떨까.

A: 그렇게 따지면 없는게 한둘인가. 20년째 투덜대고 있는 야구 팬도 있다. 프로야구 20년인데 서울 부산 수원 인천 빼면 여전히 수용인원이 만명 수준이다. 우리도 돔 구장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도대체 남아도는 거라곤, 2002년 월드컵 치르고 남은 초대형 축구전용구장들 뿐이다. K리그 경기때마다 텅텅 비어서 차마 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치지 못하는 구장들 말이다.

B: 정말 한국 가수들 안됐군.

A: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에 어떻게 인순이 좀 잘...

B: 아니, 글쎄, 여태 얘길 했지만 그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백날 얘기해봐야 매일 똑같은 얘기라는게 우울해질 뿐입니다.

내한공연은 소리가 컹컹 울리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하나, 사무-전시용 공간인 코엑스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가수들. 그나마 12월에는 대관이 안 되는 현실. 대체 언제쯤 좋아질까요. 대중 가수라고 해서 노래방 마이크 들고 공연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호텔 디너쇼, 호텔이 음향 좋고 공연하기 좋아서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가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들 하는 거죠. 예술의 전당 아니라도 가수들은 갈 곳 많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강남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왜 다른 곳에도 살 데가 많은데 굳이 강남에 살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인순이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건 안 하건, 대중가수들이 '나도 빨리 저 무대에 서야지'라고 꿈을 키울만한 무대는 따로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부도칸이든, 미국의 슈라인 오디토리엄이든, 영국의 로열 알버트 홀이든 말입니다. 그래야 '클래식 공연만 하는 무대에서 공연했으니 나도 A급 가수'라는 생각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728x90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당연히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이용의 '잊혀진 계절'입니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수 이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입니다. 81년 제5공화국 문화 정책의 야심작인 '국풍 81' 축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이용은 다음해인 82년,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한 조용필의 아성을 깨고 MBC TV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차지했습니다.

사실 그 방송을 직접 본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10대 가수'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샤이니나 원더걸스 같은 teenager 가수들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하지만 90년대 까지만 해도 '10대 가수'라면 당연히 매년 연말 뽑는 MBC 10대 가수를 가리키는 말일 정도로, '10대 가수 가요제'의 중량감은 대단했습니다. 김흥국이 단 한번 10대 가수에 든 것으로 '안녕하세요, 10대 가수 김흥국입니다'라고 몇 해를 버틸 정도였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당시 이용은 데뷔곡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로 누구도 부럽지 않을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가수들이 트로트나 스탠다드 팝 스타일의 보컬을 고수하고 있는 환경에서, 당시만 해도 이렇게 쭉쭉 뻗는 성악적인 발성의 고음 가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당시의 대한민국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이용의 인기가 대단하긴 했지만 82년의 조용필 역시 대단했습니다. 이해 4집을 내놓은 조용필 역시 '못찾겠다 꾀꼬리'와 '기도하는~'이라는 가사로 너무나도 유명한 '비련', '자존심' 등을 히트시키며 정상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이용이 가수왕에 오른 것은 이변으로 여겨질 만 했습니다. 조용필 팬들은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었죠.

(자, 당연히 이런 얘기들은 본론이 아닙니다.)

이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가사나 제목에 날짜가 등장하는 노래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 이 날짜가 기쁜 날인 경우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일단 '잊혀진 계절'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로 시작합니다. 당연히 '10월31일'은 노래에 나오는 두 사람이 헤어진 날입니다. 그 이별의 아픔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에게 10월 말은 잊혀진 계절이 되고 만 겁니다.


서태지의 유명한 '10월 4일' 역시 마찬가지죠.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 떠올라
내가 숨을 멈출 때 너를 떠올리곤 해

내 눈가엔 아련한 시절의
너무나 짧았던 기억 말고는 없는데

넌 몇 년이나 흠뻑 젖어
날 추억케 해

네가 내 곁에 없기에
넌 더 내게 소중해

그렇습니다. 역시 그 소녀도 지금 옆에 없죠. 서태지는 한 인터뷰에서 "중2때 좋아했던 소녀의 기억을 담은 노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비의 최신 앨범에 있는 '9월12일' 역시.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나는 멋지게 이별의 말 뱉었죠
나보다 좋은 사람을 찾아가라고 겉으론 그렇게..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 없다'고 나오는군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9월12일이 헤어진 날이 아니라 옛 애인을 처음 만난 날이라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에 날짜가 들어가진 않지만 버즈의 '일기'라는 노래도 있죠.

12월 9일 목요일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고
4월에 나눌 인사를 미리 서둘러 하고
세상과도 이별한다고
눈을 감으면 깨어나지 못하면 매일 써오던 일기
내게 전해주라고

혼자 남은 나를 걱정했나요 많이 아파했나요
갚지 못할 그 사랑에 자꾸 눈물이 나죠
사랑했던 날을 모두 더하면 이별보다 길텐데
그댄 벌써 내게 제발 잊으라고만 하네요

4월에 내린 햇살을 만져보고 싶다고
힘없이 눌러쓴 그대 팔에
몇일동안 비가 내려 많이 아파하던 날
멈춰버린 4월 어느날
가지말라고 제발 눈을 뜨라고
이건 장난이라고 이럼 화낼거라고

버즈 멤버들은 아니지만 작사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노래라고도 하는군요. 구체적인 사연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행복한 사연은 아닌게 선명합니다.


날짜가 나오는 노래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곡을 찾자면 아무래도 에픽하이의 '11월1일'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친구가 있었죠 내 숨소리 보다 가깝게 느꼈죠
피아노와 통키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현실보다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오 그 지난 날 남다른 길에 발 딛고
무대위에서 내게 보내던 분홍 빛깔 미소
아직도 그때가 그립다 그땐 사랑과 열정이
독이 될 줄 몰랐으니까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가슴이 타 몇 순간마다
술잔이 술이 차 내 친구가 걱정돼도
말을 못하고 가리워진 길로 사라지는
뒷모습 바라봤죠 그가 떠나가
남긴 상처 보다 깊은 죄가 비라며
내 맘속엔 소나기뿐 너무나 그립다
텅빈 무대끝에 앉아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 쫓던 그대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볼 것도 없이 이 날은 소중했던 친구가 떠나간 날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친구란 누구일까요. 이 노래에 원티드의 김재석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교통사고로 숨진 원티드의 전 멤버 서재호를 추모하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에 한국 가요계의 두 거목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바로 1987년 11월1일 사망한 유재하와 1990년 11월1일 사망한 김현식이죠. 에픽하이의 타블로도 "어려서부터 존경하던 유재하의 기일이 노래의 제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에선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군요. 한국어가 남아 있는 한, 한국어 가요라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마지막까지 흘러나올 노래들 중 하나일겁니다.




팝 쪽으로 가봐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정도를 제외하면 날짜를 담은 노래 중에 밝은 사연을 담은 노래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비지스의 'First of May'가 생각나는군요.

다 아시겠지만 소년 소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 '멜로디'에 실렸던 노랩니다. 지금도 5월1일이면 신청이 폭주한다는 곡이죠.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The apple tree that grew for you and me,
I watched the apples falling one by one.
And I recall the moment of them all,
The day I kissed your cheek and you were mine.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Do do do do do do do do do...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듣고 있으면 참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어 기억이 달력장에 덮여도 느낌은 그대로 남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과 다시 오지 않을 느낌들이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는 게 가끔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날짜가 제목에 담긴 노래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안타까움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씩 사라져 가겠지만.



p.s. 날짜를 명시하고 있는 좋은 노래들로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별의 12월32일 빼고)

728x90

난독증이라는 바이러스가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모두 걸립니다.

아무래도 남의 글이니까 휙 보고 만다는 생각이 이 바이러스에게는 너무나 좋은 환경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앞서면 남의 글이 무슨 내용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블로그 월드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옳은 주장이든, 무리한 주장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남이 해 놓은 말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 블로거 뉴스 베스트 화면에 두 개의 글이 떠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에로영화 후원하는 영진위'(5번)라는 글이고, 또 하나는 '스포츠서울 글에 대한 반론'(9번)이라는 제목입니다.

두 개의 글은 모두 핑크영화제라는 행사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행사는 11월1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시너스 체인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핑크영화가 뭔지 생소한 분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본제 준 포르노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제일 적절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하자면 일반 극장용 영화와 비디오-DVD로 나오는 AV 영화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장르죠. 일본만의 독특한 장르인데 철저한 저예산 체제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일반 극장용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표현이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또 그냥 포르노라고 치부하기에는 작품성이나 수준에 대한 자기검열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영화를 좀 기형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들여온다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핑크영화제도 사회 일각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 관객들을 위한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남자 관객들은 매주 수요일, 그것도 여성을 동반한 경우에만 입장할 수 있다는군요.



아무튼 이런 행사에 대한 비판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을 '원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http://press.sportsseoul.com/471

제목만 보면 '에로영화같은 걸 왜 후원해?'라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비판 글에 대한 반박이 나왔죠. (편의상 이 글을 '비판글'이라고 부릅니다.)

http://blog.daum.net/songcine81/13701812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두 글을 모두 읽어 보면, 비판글의 방향이 영 석연찮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비판의 대상이 된 원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비판글의 논조는 "스포츠서울 블로그에 실린 글이 핑크영화제를 비판하고 있다. 핑크영화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인데 그걸 한국의 영진위가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크영화는 그런 후지고 나쁜 영화가 아니다. 게다가 니들이 그걸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라" 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원글을 잠시만 살펴보면,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글은 핑크영화제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를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에로 영화는 수많은 제도적-비 제도적 장벽때문에 고사위기에 있는데, 한국에서 찍는다면 오만 난리가 다 날 영화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행사를 영진위가 후원한다는 데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를 들여다 영화제까지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느냐는 비분강개가 담긴 글이죠.

원글의 일부분입니다.

에로영화 제작현장을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의 에로영화는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놓여져 있다. 가장 중요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에로영화다. 영등위의 서슬퍼런 칼날은 유독 에로영화에만 잔혹하다.

이번 핑크영화제에서 예매가 쇄도한다는 '노예- 누가 뭐래도 좋은 나의 이야기'가 에로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가위질을 하고 재심, 삼심을 거쳐도 심의 불가다. 새디즘, 매저키즘 같은 변태성향의 스토리는 에로영화에서 절대 다룰 수 없다.

동성애도 안되고 2대1 성행위도 안된다. 에로영화는 안되는 것 투성이다. 그런 판국에 진정한  하드코어(포르노를 두개로 분류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성행위 묘사가 매우 강한 쪽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소프트코어라고 한다)라는 일본 핑크영화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원글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일본 핑크무비도 예술이랍시고 영화제까지 여는데 더 말해서 뭣하랴. 억울하면 에로영화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덕분에 한국 에로영화의 숨통도 사실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신인 에로배우가 없어 더 이상 찍어댈 것도 없다는 것이 감독들의 하소연이다. 좋겠다. 에로영화가 없어져서. 대신 그 자리에 일본 음란물을 들여와서. 실제로 요즘 케이블TV 등을 보면 일본 핑크영화에서부터 포르노물까지 다양하게 줄창 나오고 있다."


아마 이 부분만 봐도 원글이 어떤 취지인지는 충분히 짐작하실만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비판글은 이렇게 보고고 있습니다.  



"스포츠서울 블로그의 글로 보면 모든 애로 영화들은 벌거벗은 여자들이 남성의 그거(?)나 열심히 빨고 있는 그런 변태적 성향의 영화로만 생각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이 블로그 글에 올린 스틸컷만 보면 딱 그런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한심한 소리이다." (오자나 비문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남의 다리 긁는 비판입니다. 원글은 핑크영화를 매도하지도 않았고, 변태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걸 왜 한국 에로영화에는 허용하지 않느냐'고 분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열심히 '핑크영화가 왜 저질이 아닌가'를 설명하는 건 정말 초점 없는 얘기죠.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튼 '비판'이라는 간판을 걸 때에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는 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p.s. 사실 이 분만 갖고 뭐라 할 일은 아니죠. 워낙 이런 풍조가 퍼져 있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2. 그나자나 저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남자는 안된다니 대략난감.;

728x90

'드림걸스'의 제니퍼 허드슨이 가족의 살해라는 끔찍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제니퍼 허드슨의 어머니와 오빠가 24일 시카고 자택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한 남자를 용의자로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스타의 가족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곱살난 남자 조카도 실종됐다고 하는군요.

물론 일반인이라도 이런 일을 당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주목과 관심을 끄는 스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의 파급효과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이런 식의 비극은 스타 본인의 커리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망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가족이 살해당한다는 건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와 가족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아마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경우일 것입니다. 폴란스키는 2002년 아카데미 감독상과 칸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획득한 작품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는 명감독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피아니스트' 이전에도 1968년작 '악마의 씨(Rosemary's baby)'를 비롯해 '차이나타운(74)'그리고 나스타샤 킨스키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테스(79)' 등의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란스키는 1968년 금발의 미녀 스타 샤론 테이트와 결혼하지만 1년만인 1969년 8월9일, 테이트는 자택에서 네명의 다른 피해자와 함께 무참하게 살해당합니다. 범인들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찰리 맨슨의 '패밀리'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찰리 맨슨, 또는 찰스 맨슨은 미국 범죄사에 악명을 날리고 있는 연쇄 살인범입니다. 70대의 나이로 지금도 살아서 복역중인 맨슨은 수많은 후배 살인마들로부터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FBI가 맨슨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을 따로 관리할 정도라고 하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는 마릴린 맨슨도 있죠. 그의 '맨슨'은 바로 찰리 맨슨에게서 따 온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26세로 임신중이었고 출산을 2주 앞뒀던 테이트는 맨슨 패거리에 의해 칼에 찔리고 목이 졸려 살해됩니다. 당연히 이런 끔찍한 사건은 폴란스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겠죠.

한동안 침묵에 빠져 있던 폴란스키는 1971년작 셰익스피어 원작인 '맥베스의 비극'으로 복귀했습니다. 물론 거의 언급되지 않는 영화지만,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맥베스의 던컨 왕 살해 장면이 들어간 것도 폴란스키의 의도였고, 화면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을씨년스럽지 않느냐고 묻는 스태프에게 폴란스키는 "자네가 작년에 내가 살던 (살해 사건의 현장이 된)집을 봤어야 하는데"라고 말해 물어본 사람을 머쓱하게 했다고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 하나. 영화에서 맥베스가 달아난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장면을 찍을 때, 폴란스키는 네살짜리 아역 여배우를 잔뜩 피 칠을 해 놓고 죽는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가 무심코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폴란스키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였죠. "샤론."

아무튼 몇해 뒤 폴란스키는 13세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투옥될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가족을 잃은 비극과 관련이 있을지는... 글쎄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커리어를 바꿀뻔 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조던이죠.

설명이 필요 없는 조던은 NBA 초유의 3연패를 달성하던 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맞습니다. 1993년 아버지 제임스 조던이 두명의 10대 흑인에게 총에 맞아 사망한 거죠. 두 범인 중 다니엘 그린은 스스로를 로드 우알라라고 부르는 '교주형' 과대망상증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조던은 결국 1993-94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대신 그가 택한 길은 야구였죠.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야구선수가 되길 바랐다" "사실은 1992년, 드림팀 때부터 은퇴하고 싶었다"는 등 특유의 장황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의 버밍햄 배런스에서 1994년을 보낸 조던의 야구 성적은 형편없습니다. .202에 3홈런. 간신히 2할을 넘긴 정도였죠. 버밍햄 팀에 '전 미국 마이너리그 팀 버스 중 가장 호화로운 버스'를 선물한 조던은 결국 95년초, 한참 헤매고 있던 94-95시즌 막판의 불스에 복귀합니다.

그 다음은 잘 아시는대로 95-96, 96-97, 97-98시즌을 다시 3연패 해버리죠. 아버지의 죽음과 방황, 복귀는 마치 한폭의 스포츠 영화처럼 '조던 전설'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합니다.

과연 허드슨에게도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폴란스키나 조던처럼 극적이고 충격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물론 그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말입니다.

728x90

제목이 낚시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겠죠. 그런데 SBS TV '골드 미스가 간다' 팀의 기준에 따르면 말이 됩니다. 김태희 뿐만이 아닙니다. 이효리, 공효진, 이나영, 하지원이 모두 골드미스로군요.

'골드 미스가 간다'는 '일만 열심히 하다가 성공은 했지만 결혼적령기를 놓친(?)' 여섯 명의 여자 연예인들이 출연해 각종 게임을 통해 순번을 정하고 제작진이 추천한 괜찮은 남자와 소개팅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뭐 이런 제작의도만으로도 흠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분들이 널려 있겠지만, 일단 대중을 즐겁게 하면서 출연자들에게도 좋은 일인 만큼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 보면 나이 면에서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출연자 중 막내 선이라고 할 수 있는 신봉선과 장윤정이 80년생, 만 28세이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골드 미스가 간다' 출연진은 모두 6명입니다.

일단 맏언니 양정아는 71년생, 37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은이와 예지원이 73년생으로 35세 동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재영이 77년생으로 31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봉선과 장윤정은 80년생으로 28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 위에 써 있는 나이는 출연진들의 프로필에 있는 나이보다 모두 한살 씩 적습니다. 우리 나라의 어떤 방송에서도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 나이(태어난 즉시 한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골드 미스가 간다'에서만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고 있더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이를 불리기 위한 겁니다. 출연진 중 막내 둘이 스물아홉도 아닌 스물여덟이라면 설득력이 뚝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죠. 1960년대라면 모를까, 스물여덟살을 노처녀라고 부르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물여덟이건, 스물아홉이건 그건 그렇다 칩니다. 그런데 그 정도 나이면 요즘 분위기에서 노처녀 대접을 받을까요? 요즘의 사회 통념과 너무 멀리 있지 않습니까? 일반인 아닌 연예인이라도 만 28세에 노처녀라는 건 어색하기만 합니다.

당장 위에서 예를 든 김태희와 임수정, 공효진, 한은정, 황보 등이 80년생입니다. 이들이 '골드 미스가 간다'팀이 보는 골드 미스의 하한선이군요. 이들보다 한살 위인 79년생 이효리, 김민선, 이나영은 말할 것도 없죠. 78년생인 하지원까지 봐도 골드 미스라는 표현은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의 기준에서 골드 미스라면 76년생인 김정은이나 현영 정도가 하한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골드 미스라는 개념이 나이로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은 '나이만 먹었다고 모두 골드 미스는 아니다'라는 뜻이죠.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20대에도 골드 미스 대접을 받는 건가요? 20대 후반을 골드 미스라고 부르는 건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문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1 올 연초 결혼한 진희경의 경우에 다들 '골드 미스'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아무도 어색해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결혼한 이승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죠. 과연 이들이 자신들과 거의 띠동갑 차이가 나는 후배들이 '골드 미스'란 이름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합니다.^


p.s. 2 그러고 보면 요즘의 '노총각'은 대략 몇살 부터라고 생각들 하시나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