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는 JTBC 개국 전부터 가장 기대를 모은 콘텐트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시트콤 데뷔작이라는 점, 일찌기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극장판 '올드 미스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 '조선명탐정'을 만든 김석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시작. 국민 어머니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궁상 아줌마로 변신한 김혜자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함께 '청담동 살아요'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8시대라는 만만찮은 시간대(MBC TV의 '하이킥' 3부와 일일드라마가 상당 부분 겹치죠)에 자리잡은 '청담동 살아요'는 힘든 싸움이지만 확실히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혹시 '청담동 살아요'를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 에피소드가 빠져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분들을 위한 '일단 가이드'입니다. 한번 보시면 헤어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중독성 경고는 생략합니다.
먼저 혜자.
혜자네 식구가 청담동으로 오게 된 건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경기도 서평(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가상의 지명일 겁니다)의 단칸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혜자는 '서해안에서 낚시를 하던 이낙구씨가 해일 때문에 실종됐다'는 뉴스를 보자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사고무친인 '낙구오빠'는 청담동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서평에서도 살 길이 막막했던 터라 그 집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말만 청담동이지 사는 건 예전과 똑같은 혜자네 가족이지만, 혜자는 어찌어찌하다가 부잣집 마나님으로 오해를 받고, 상위 1%들만 드나든다는 글로리아 백화점^^ 문화센터의 VIP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클럽 멤버가 됩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혜자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됩니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아 그렇지 혜자는 한방에 거주지를 옮기는 과단성도 있고, 엄청난 양의 만화 독서로 쌓은 교양(최근에 '귀신의 물방울'이란 만화 덕으로 와인 지식을 뽐내기도 했죠^), 가끔씩 알바로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도 갖춘 능력자입니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라도 '청담동 상류층 행세'를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한편, 혜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 온 국민이 바라마지 않는 '청담동 생활'이란게 얼마나 허영과 거품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청담동 살아요'의 진짜 주제는 이 쪽에 있는게 아닐까요.
보희(이보희)는 혜자의 유일한 여동생. 미모 덕분에 20대 초반 시절 영화배우로 딱 한 작품을 히트시킨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재벌 2세와 결혼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주사 때문에 결국 이혼당하고 혜자에게 얹혀 사는 신세가 됐습니다.
지금도 미모는 여전하지만 살아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은 전혀 없는 민폐의 화신입니다(혜자는 청담동으로 이사 오면서 보희를 버리고 오려고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 정회장이 신문이나 TV에 나올 때마다 속을 끓이고 술병이 도지고, 정회장이 집어 주는 5000만원짜리 수표는 땅바닥에 팽개칠 정도로 괜히 통만 커서 더욱 골치덩이입니다.
혜자의 딸 지은(오지은). 혜자의 딸이자 보희의 조카답게 미인이지만 설정상으론 약간 예쁜 정도의 얼굴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청담동의 VIP들만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됐고, 여기서 A급 킹카 상엽과 자꾸만 엮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바닥 생활을 탈출하려는 의지 때문에 청담동 생활이 지은에게는 행운이면서도 고통입니다. 자신이 꿈꾸는 생활이 바로 앞에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 거리에서 이방인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은 앞에 만화가게 백수 현우(현우)가 자꾸만 어슬렁거립니다.
외모, 집안, 실력, 모든 것을 갖춘 상엽(이상엽)은 지은이 꿈꾸는 생활로 지은을 데려다 줄 수 있는 티켓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뺀질뺀질하기 짝이 없고, 수시로 여자(그것도 자신과 어울려 손색이 없는 A급 미녀들만)를 바꿔친다는 게 문제죠. 지은은 어떻게든 작업을 해 보려 하지만, 바둑으로 쳐서 지은이 3급이라면 상엽은 5단쯤 됩니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지만 아주 멀리 가버리지도 않는, 아주 고통스러운 존재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 작품에서 상엽은 지은의 시선에서만 존재감을 갖습니다. 지은에게 탄탈로스의 고뇌를 안겨주기 위한(tantalize라는 동사가 이 신화에서 나왔죠^^) 존재인 겁니다.
물론 언젠가는 상엽도 지은의 매력을 알아 볼 때가 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얼마전까지 '뿌리깊은나무'에서 학사 성삼문으로 나오던 꽃미남 현우. 늘 혜자네 만화가게에서 빈둥거리는 백수고, 직업을 물으면 '뮤지션'이라고 합니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딜 봐도 돈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애저녁에 지은의 작업 선상에서 제외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아예 혜자네 옥상의 콘테이너에서 살겠다고 들어오고, 지은은 현우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불안해합니다(네. 잘 생겼기 때문에 불안한거죠).
물론 웬만한 시청자들이면 눈치채셨겠지만 현우는 그냥 가난한 백수는 아닌 듯 합니다. 대체 현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앞으로 등장할 볼거리.
혜자의 남동생 우현(우현). 딱 한번 만화를 출간한 적 있는 만화가이며 역시 생활력은 없어 혜자에게 얹혀 삽니다. 혜자의 하숙생인 '인상 나쁜 3인조'의 맏이인 셈이죠.
역시 최근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방지 역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연기파 배우 우현답게 이 시트콤에서도 최강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다음주 쯤에는 이방지 패러디도 등장할 듯...?
혜자네 하숙생 상훈(오상훈). 역시 인상 나쁜 얼굴 때문에 뭘 해도 오해를 사고, 아이들은 눈 마주치면 우는 인물이지만 마음씨만큼은 비단결. 인상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인물입니다.
악역 3인방의 막내. 본래 무술감독 출신으로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무인 역을 맡기 전까지 온갖 영화에서 건달 역의 조연으로 활약해온 배우입니다. 언젠가 '청담동 살아요'에서도 그의 액션을 볼 수 있게 될지도...
기러기 아빠인 성형외과 의사 무성(최무성). 송금할 양육비 때문에 혜자네 하숙생이 된 신세.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생활고와 엄청난 외모! 때문에 역시 정상적인 '청담동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의 동료 연쇄살인마^^역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잘 해내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입니다. 여기서도 가끔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때를 연상시키죠. 악역 3인방의 중심.
지은이 일하게 된 VIP 레스토랑의 셰프 정민(황정민). 해외 유학파인데다 영국 여왕과 절친(?)이고 요리 솜씨도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역시 '청담동에서 행세'하기엔 2% 부족합니다. 바로 외모.
하지만 실력과 자부심으로 꿋꿋하게 청담동 생활을 이어갑니다. 도도하고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속도 깊고 이해심도 뛰어납니다. 혜자와 지은의 실체를 가장 먼저 알게 되지만 함께 비밀을 덮어 주는 공범 역할을 자청합니다.
혜자가 오기 전부터 만화가게 건물 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던 5인조 청담불패의 기획사 사장 관우(조관우). 말은 사장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는 백수건달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먹는 라면을 빼앗아 먹기도 합니다.
'얼굴없는 가수'에서 '나는 가수다'를 통해 엔터테이너 기질을 보여준 조관우. 연기까지 보여주는 걸 보면 갑작스런 변신이 참 놀랍습니다.
관우가 키우는 5인조 '청담불패' 아이돌 준비생. 좁은 방 안에서 몸을 공처럼 감고 자고, 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꿈을 안고 있습니다. 가끔씩 들려주는 아카펠라 실력은 '청담동 살아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늘 입고 나오는 의상이 항상 똑같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실제로도 연습생인 이들은 곧 비스트와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할 예정입니다. 그때도 이름이 청담불패일지는...ㅋ
혜자의 어린 시절 서평여고 동창생 승현(서승현). 왕년엔 여고 짱의 주먹 실력을 뽐냈지만 시집을 잘 간 덕분에 청담동 사모님이 되어 있고, 혜자와 문학 클럽에서 마주쳐 혜자를 긴장시킵니다.
혜자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가장 경계하는 인물 1호. 혜자와는 별 나쁜 감정이 없지만 보희와는 어렸을때부터 앙숙입니다.
이낙구씨가 키우던 개 개똥이. 옥상 콘테이너 박스 옆에 살고 있는데, 본래 주인이 현우였다는 게 얼마전에 밝혀졌습니다. 현우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개.
가끔 김혜자 선생의 연기를 볼 때마다, 표정의 '천연덕스러움'이 참 코믹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담동 살아요'에서는 그런 '천연덕스러움'이 활짝 피어납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곳 청담동. 그 욕망의 무대에서 '나야말로 바로 청담동의 주인'이라고 자부할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잘 나가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 속에 티끝만한 불안감이나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들이야말로 더 큰 가식과 위선으로 행여 상처받을지 모르는 본체를 똘똘 감아 보호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청담동 살아요'는 그 핵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총 200회로 기획된 '청담동 살아요', 이제 딱 10%가 지나갔습니다. 당연히 새해부터는 더욱 확장된 혜자 가족의 이야기가 진행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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