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발언이 나왔던 일은 아마 거의 찾아보기 힘들 듯 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패러디한 코미디는 많았지만, 실제 인물이 자신의 사례나 다른 사람의 사례에 대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농담의 소재로 사용한 경우는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12일 방송된 SBS TV '강심장'에서 홍석천이 조용히 한방을 터뜨렸습니다. 크게 화제가 되거나 요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의의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농담입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최근 방송을 마친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이승기와 신민아의 키스신을 패러디하는 순서가 마련됐습니다. 여자 출연자들 가운데 서인영이 신민아의 역할을 이승기와 함께 재현하는 역할을 맡았죠.
이승기와 포옹하는데까지 진행한 서인영은 "아 좋다"라며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대가 당대 최고의 인기남이며 흔히 '황제'라고 불리는 이승기였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인영이 자리로 돌아와서도 '아 좋다'를 연발하고, 다른 여자 출연자들이 꺅꺅 소리를 내는 가운데 홍석천이 조용히 한마디를 던진 겁니다. "난 인영이가 참 부럽네."
현장에선 당연히 폭소가 터졌고, 시청자 가운데서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네. 이승기가 그만치 매력적이라는 뜻인 거죠. 그리고 홍석천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빗대 한 농담이라는 것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홍석천이 실제로 이승기를 덮치겠다거나 하는 뜻은 아닐겁니다. ㅋ )
최근까지 이뤄졌던 한국 사회, 한국 연예계에서의 동성애 담론에 비교해 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가까운 일로는 SBS TV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정체 불명의 '어머니 단체'가 낸 신문 지면 광고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립니다'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이 사회의 일각에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죄악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 존재합니다.
예능에서의 '동성애 관련 발언'이라는 건 꽤 오래 전 김구라가 '명랑 히어로'에서 '어떤 남자가 목욕탕에 T팬티를 입고 왔더라'는 다른 출연자의 말에 '석천이 아니야?'라고 반문했다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라는 이유로 타박을 받은 게 사실상 유일한 사례일 정도입니다.
커밍아웃한 연예인도 극소수인데다 그나마 홍석천 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태이고 보면, TV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을 할 일도 없거니와 그런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가 돼 버립니다.
이런 환경에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물론 '김수현'이라는 대 작가의 이름이 없었다면 이런 내용이 들어 있는 드라마가 지상파에 편성된다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였다면, 홍석천의 작은 농담 한마디는 예능에서의 금기를 한번에 뛰어 넘은 시도로 볼만 합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시청자들의 욕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한번이 아니라 홍석천이 비슷한 수위의 발언을 계속 한다면, 자연히 '강심장'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농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겁니다. '강심장'이 그 수준을 소화할 수 있다면,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그런 수위에 대한 판단이 있을 테지요.
한 편에는 드라마 속 동성애 커플의 등장에 발끈한 보수 단체가 거액을 들여 신문에 5단 광고를 내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농담에 출연자와 시청자들이 깔깔 웃는 현상이 공존합니다.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견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선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같은 드라마라도 '개인의 취향'에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코미디가 큰 문제 없이 넘어간 반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신문 광고에까지 이어진 것 역시 그 프로그램의 시청층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강심장'에서 괜찮았다면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는 어떨까요? 혹은 '세바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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