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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신작 드라마가 그 전에 방송됐던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아무 허락 없이 베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슨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할 때 기존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베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죠. 

 

물론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콘텐트 강국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자국산 드라마를 편성하는 나라, 콘텐트 최강국인 미국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에 맥을 못 추는 나라는 생각보다 대단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외화'가 당당하게 핵심 시간대를 지켰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받은 해외 콘텐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늘 우리가 베끼고 받아들이던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표절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혹시 오다기리 조 주연 드라마 '가족의 노래'를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방송하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콘텐트를 점검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워낙 한국에 인기 높은 일본의 톱스타이기도 하고,'가족의 노래'는 특히  설정이 독특해 관심을 끌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죠. 결국 8회만에 조기종영을 맞았습니다. 한 회가 대개 11회 정도에서 끝나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조기종영하는 경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아무튼 별 사전정보 없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가족의 노래>(家族のうた)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을 맡았는데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8회 만에 막을 내린 범작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있었다.주인공 하야카와 세이기(오다기리 죠)는 10여 년 전 밴드의 일원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쇠퇴일로를 겪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퇴물 뮤지션이 되어 있다.

충실한 매니저 미키(유스케 산타마리아)만이 하야카와를 감싸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라는 착각에 빠진 하야카와는 늘 자존심만 앞세워 미키의 속을 썩인다.그러던 어느 날, 한 10대 소녀가 하야카와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하야카와가 한 여성 팬과 벌인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딸이며, 엄마가 죽고 없으니 이제 하야카와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하야카와는 몸서리를 치지만, 심지어 두 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 하야카와가 자신의 생부라고 주장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 영화 <라디오 스타>(2006)와 <과속스캔들>(2008)을 본 사람에겐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에게 일본 측과 판권에 관련된 협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가족의 노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 사카이 마사아키의 히트작 중에는 묘하게 기시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의 2010년 히트작 <할아버지는 25살>은 빙하에 46년간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주인공(후지와라 타츠야)이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아들, 동갑인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7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시트콤 <두번째 백년>(The Second Hundred Years)도 빙하에 갇혔던 주인공이 아버지뻘의 아들, 동갑인 손자를 만나 벌이는 난리법석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도 ‘청춘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25살>과 <청춘 할아버지>. 사실상 리메이크작입니다. 두 사진 모두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청춘 할아버지>의 판권을 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카이의 또 다른 히트작 <절대영도: 미해결사건 특명수사>는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재수사하는 경찰 특설 팀의 이야기다. 긴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서류철이 차가워졌다는 뜻에서 제목이 붙은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노골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국, 일본 작가들의 창작을 은근히 도용하고 채용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족의 노래>의 구성이 아무리 뻔뻔스럽다 해도 함부로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이준익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개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측이 일본 방송계를 싸잡아 매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해외 저작물의 무단 도용이나 차용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필요할 때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추적자 THE CHASER>(SBS)조차도 몇몇 미국 드라마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야를 지난 20년, 30년간의 드라마 전체로 확대할 때 한국 드라마의 독창성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한국 드라마들이 ‘외국 작품의 영향’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대외적으로 한국산 콘텐츠의 도용을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가족의 노래>와 <과속 스캔들>. 차이가 있다면 <가족의 노래>에서는 무려

      세 소녀가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매.

 

윗글에서는 한국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사실 '가족의 노래'를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작품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 그랜트, 드루 배리모어 주연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뮤지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공통점 외에도 주인공의 밴드 시절 동료 가운데 현재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남자와 갈등을 겪는다는 , 주인공에게 당대의 여자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먹고 살기 위해 어린이 공원('가족의 노래'에서는 동물원) 관련 일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후반까지 진행됐다면 공통점이 더 발견됐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드라마 소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일이 돼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우리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그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의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일은 없어져야 할 시점이 온 듯 합니다. '가족의 노래'가 바로 그런 시대임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된 듯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떳떳해 져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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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극의 세계에 집착하는 영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셰익스피어 극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죠. 특히 '햄릿'은 수십차례나 세계 각국에서 시대와 배경이 바뀐 채 영화화됐고, 영화 천황 구로자와 아키라도 '맥베스'와 '리어 왕'을 자기 식으로 만들어 낸 걸로 유명합니다.


그걸 한층 더 넘어서서, 만들어진지 2천년이 넘은 그리스 비극들이 다룬 모티브가 지금까지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삶의 형태가 변한다 해도 삶의 방식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들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설득력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그리스 비극이 자주 다뤘던 주제들이 확연한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썼던 글입니다. 제목은 '왜 그리스 비극은 아직도 유효한가' 정도로 붙이면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을린 사랑'을 보고 나서 쓴 글입니다.

시작.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만큼 가혹하고 기구하다.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스 마르케스가 시나리오를 쓴 1996년 작 <오이디푸스>(Oedipus the Mayor)라는 영화가 있다.

마약 군벌과 부패한 정부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의 한 도시에 젊은 시장 에디포가 부임한다. 하지만 도시는 실질적인 지배자 라이오가 게릴라에게 납치당한 사건으로 혼란스럽다. 얼마 뒤 라이오는 시체로 발견되고, 에디포는 라이오의 미망인 조카스테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이 남미를 배경으로 한 텔레노벨라(텔레비전 소설)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갑자기 등장한 관 짜는 노인(장님인 데다 이름이 심지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다)이 심상찮은 대사를 읊어대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라이오는 언젠가 자신이 아들에 의해 살해당할 거라는 꿈을 굳게 믿고 있었다. 에디포는 결국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알아차리고 만다. 아들과 정(情)을 통한 사실을 알게 된 조카스테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에디포는 스스로 두 눈을 파낸 뒤 거리를 방황한다.

무려 2,400여 년 전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왜 아직도 유효한 텍스트일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지 않아도 그리스 비극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는 선명하다.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 따위는 미치지 못할 만큼 때로 가혹하고 기구하다. 만인의 추앙을 받는 영웅도, 세상을 발아래 놓을 수 있는 미녀도 그런 운명 앞에선 가랑잎 같은 존재일 뿐.

그런 주제에 감히 ‘오만’(Hubris)을 품는 건 멸망을 자초하는 짓이란 게 그리스 비극의 공통된 메시지다. 물론 마르케스의 <오이디푸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디포 시장은 현실을 개혁하려는 젊은 이상주의자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가치관을 부정당하고(심지어 자신이 30년 이상 믿고 의지한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무너져 내린다. 자기 스스로 두 눈을 파내는 것은 극한의 자기 부정이다. 마르케스가 이토록 강하게 부정하는 대상은 뭘까.

서구 민주주의를 그대로 남미에 이식하려는 시도야말로 마르케스에게는 지독한 오만이다. 남미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합리성과 자본주의의 논리로 남미를 ‘계도’하려는 시도는, 알지 못한 채 근친상간의 패륜을 저지른 주제에 도덕 회복을 외치는 오이디푸스만큼 헛되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이다.

한때 유럽 영화를 이끌어가던 감독들이 앞 다퉈 그리스 비극을 영상으로 옮기던 시절이 있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이아>(1962),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의 <엘렉트라>(1962)는 시대적 배경이 에우리피데스 시대 그대로였지만, 그 중에도 줄스 다신 감독의 <죽어도 좋아>(Phaedra,1962)는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 무대를 현대로 옮겨왔다.

결말 부분의 광기 어린 자동차 질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영화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왕은 선박왕 타노스(랠프 발로네)로, 아들이며 후계자인 히폴리토스는 내성적인 화가 청년 알렉시스(앤서니 퍼킨스)로 바뀌었다. 현대 영화의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가 알렉시스와의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정열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리스 비극을 모태로 한 영화 한 편이 최근에 국내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물론 어떤 비극인지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에 해당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그 모델이 된 그리스 비극의 교훈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만을 반성하고 신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 진정한 인간 정신의 고양을 이뤄낼 수 있다는 빌뇌브 감독의 메시지는 지난 2,400년 동안 인간이 멈춰서 있지 않았음을 납득시키는 아름다운 증거다. <끝>




이 '시장 오이디푸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 '오이디푸스'라는 비디오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구해 보시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긴 합니다만,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전 취향이신 분들은 마리아 칼라스가 메데이아 역으로 나오는 '메데이아'같은 작품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단, 대단히 지루하다는 점은 각오를 하셔야 할듯.^^)

현대극으로 의미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죽어도 좋아' 쪽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신화/비극 속의 페드라에게 부여된 입체적인 캐릭터가 멜리나 메르쿠리라는 명배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소니 퍼킨스가 절벽으로 질주하며 '페드라!'를 외치는 이 영화의 엔딩을 기억하고 계시죠. 지금까지도 '불꽃같은 사련'을 얘기할 때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입니다. 이런 장면의 연기는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을 듯 합니다.

동영상이 좀 길긴 합니다만 약 4분30초 이후에 펼쳐지는 안소니 퍼킨스의 독백과 질주, 그리고 절규는 한번쯤 보실만 합니다.





'그을린 사랑' 이야기는 그쪽 리뷰에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http://fivecard.joins.com/947

@fivecard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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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저 제목은 틀렸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런 여론이 일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지진 해일/방사능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의 욘사마 배용준이 10억원을 쾌척한 데 이어 수많은 한류 스타들이 거액을 기부했을 때부터 나온 일입니다. '외국인이 저렇게 많은 돈을 선뜻 내놓고 있는데 대체 기무라 타쿠야는 뭘 하고 있느냐'는 불만이 일본 일각에서 터져 나온 것이죠.

그런데 오늘 오전, 일본 데일리스포츠(전통의 닛칸스포츠가 아닙니다^^. 온라인인듯.  http://www.daily.co.jp/gossip/article/2011/03/28/0003900459.shtml ) 가 그룹 SMAP 멤버들이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거액을 내놓고 있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기무라 다쿠야를 비롯한 다섯 멤버들이 기부한 돈이 총 4억엔(약 55억원?)에 달한다는 내용, 그리고 자선 광고 등에 출연한다는 내용, 그리고 멤버들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뒤늦은 얘기를 들고 나왔느냐...는 건 저번에 썼던 글과 관련해서 조금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왜 배용준은 기부를 하는데 일본 톱스타들은 기부를 하지않을까' 라는 의문은 얼마 전 술자리에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니가 잘 취재해서 그걸 칼럼으로 쓰라'는 냉냉한 대접(!)만 하더군요. 할수없이 주섬주섬 주변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쓴 글입니다. 2주쯤 되어 갑니다.

[분수대] 기부 한류

‘동일본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번 참사 이후 가장 빨리 움직인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구조대를 파견했고, ‘한류 스타’들은 앞다퉈 통 큰 기부에 나섰다. 김현중과 배용준을 비롯, 장동건·이병헌·송승헌·장근석·안재욱·최지우 등 알 만한 이름들은 모두 수억원씩을 쾌척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움직임 때문에 난처해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본의 톱스타들이다. 일본 내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외국인인) 배용준도 거액을 내놨는데 (일본의 톱스타인) 기무라 다쿠야는 뭘 하고 있느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일본 톱스타들이라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자니즈는 재해지역에 발전차를 파견했고, 기무라 다쿠야와 아라시 등 소속 스타들은 각자 이재민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등 톱스타가 즐비한 아뮤즈 엔터테인먼트도 마스크 240만 개와 구호용품을 ‘금일봉’과 함께 기부했다. 하지만 한류 스타들의 일사불란한 거액 기부 행렬에 비하면 뭔가 궁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화적 차이’로 설명한다. 일본 연예계에선 오래전부터 돈의 힘으로 튀어 보이겠다는 시도를 ‘바이메이(賣名)’라고 부르며 경계하곤 했다. 과거에도 일부 연예인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나서며 이목을 끌면 오히려 “바이메이를 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적 여론이 일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가수 각트(Gackt)는 일본적십자사의 성금 모금운동에 앞장섰다. 하마사키 아유미도 티셔츠를 팔아 기부금을 마련하는 등 직접 돈을 내지 않는 활동에 나섰다. ‘슬램 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등 수많은 스타 만화가도 돈보다는 이재민을 격려하는 만화로 성의를 표현하고 있다.

 재일동포 방송기획자 홍상현씨는 최근 “한류 스타들의 발 빠른 기부가 일본의 기부문화를 바꿔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기 걸그룹 AKB48이 눈치 보지 않고 5억 엔의 거액 기부를 밝혔고, 대형 기획사인 에이벡스도 1억 엔 규모의 기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 때, 한국 연예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해안으로 달려가 기름 묻은 바위를 닦는 봉사활동에 나섰다. ‘한류 기부문화’가 정착되면 일본 톱스타들도 지진 복구 현장에서 헬멧을 쓰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끝)

 

위에 나오는 일본 만화가들의 정성입니다. 일단 이노우에 다케히코.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모두 지진 피해 지역의 이름을 유니폼에 붙이고 있습니다. 피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라는 의지가 돋보입니다.


 

이건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 생소하신가요? '몬스터', '마스터 키튼', '20세기 소년'..

그리고 이름은 잘 몰랐지만 건담의 작화가인 오오카와라 쿠니오. '힘내라 일본'.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문을 구했을 때 두 분이 '바이메이(賣名)'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한 분은 윗글 안에 있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 대표입니다. 일본 연예계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분인데 '감히 내가 그런 이야기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다'며 극구 거절해 코멘트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가까이는 고베 대지진 때에도 일부 무명(?) 연예인들이 거액을 기부하는 행위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는 시도를 했는데, 한국 같으면 그래도 칭찬은 받았을 행위가 일본에서는 빈축을 사는 행동이 되었다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끼워 넣으면 '바이메이를 통한 메이와쿠' 인 셈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 글은 1160자라는 제한에 걸려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담기엔 역부족이고, 압축하다 보면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왜 일본 연예인들은 이런 역사적인 피해 상황에서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을 드렸을 때 홍상현씨 @kou_syougen 가 대답해 주신 내용을 전재해 보겠습니다.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 배경에는 일본의 문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욘사마가 10억을 냈는데 그게 결국 7,200만엔이거든요? 그런데 이를테면 일본의 대표적 메가뱅크 중의 하나인 미츠이스미토모 은행이 낸 돈이 1억엔이예요. 개인으로썬 상상도 못할 액수인 거죠.

그런데 여기서 참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는 기부행위 등을 하는 데에도 체면 등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유명인이 "나 얼마 낸다"하면서 기부를 하는 것은 정말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상술로써 매명행위(편집자 주=이것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바이메이'를 말하는 것입니다)를 하기 위해 내는 것이라는 그런 차가운 시선에 직면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이름을 밝히며 돈을 기부하거나 하기 보다는 익명으로 남을 돕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에는 기부 프로그램도 상당히 많지만 일본에서 보면 그거 참 신기한 거거든요.

그렇게 결국 "기부행위를 하면서도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문화가 일반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부를 하더라도 익명으로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선바자, 혹은 이번 쟈니즈가 하고 있는 것처럼 회사 이름으로 재해현장에 발전차를 보낸다든가 아니면 자선바자를 하던가. 그러던 것이 이번 동북의 지진재해 같은 경우 재해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사태의 심각성이 워낙 크니까 그런 문화자체도 다소 변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당연히 한류스타의 기부관련 보도도 자극제가 되었지요.

사실 연예기획사들의 시스템(K-Pop 가수들의 경우 거의 사무소 이름으로 돈을 내고 있잖아요)과 관련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본 연예기획사의 경우, 한국의 회사들처럼 회사쪽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갈 수는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꺼번에 큰 금액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AKB의 경우는 왜 달랐냐면 걔넨 일종의 고교생의 部活(한국으로 치면 특별활동 정도?) 같은 개념으로 활동을 시키고 일반적으로 다 학교생활도 하게 하면서 사무소가 돈을 거의 다 관리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하면, 일단 AKB같은 계약방식으로 일하지 않는, 이른바 목돈 버는 애들은 왜 돈을 풀지 않느냐는 질문이 남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관련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일본사회가(버블 이후 심화되었지요) 고질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워낙 고령화 사회인 데다, 연금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기에 결국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결국 착실히 저금을 해 놓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여, 사람들이 죽도록 저금만 하고 쓰지를 않는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내수경제가 침체되고, 디플레도 오게 된 것이고. 



게다가 한국처럼 나이 좀 들고, 은퇴하면 집에서 손자손녀들이나 봐주면서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여간한 집이 아닌 경우 힘들고, 사실 성인이 되면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여기 문화이니까... 그렇다 보니 연예인도, 평범한 사람들도 보통 여간한 일에는 돈을 풀지 않고(물론 자기 결혼식에 몇 억엔 쓰는 연예인도 있고 하지만) 죽도록 저금만 하는 것이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리고 일단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인식은 비슷할 지도 모르지만, 일단 여기 연예인 애들은 꿈, 팬들의 사랑 등과 같은 추상적인 목적이 아니라 스타가 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일"로서 "돈"을 벌기 위해 배우도 하고 가수도 하고 탈랜트도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인 거예요. 내가 능력 돼서 돈 버는 건 버는 거지만 그것과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게다가 기부를 한다는 것은 매명행위로 비쳐질 수도 있고 한국처럼 기부를 하지 않았다고 짠돌이라 부르지도 않으니 그냥들 사는 거죠.

그런데 이번 동일본대지진의 경우는 좀 다를 듯 합니다. 일단 한류스타들이 워낙 액수자체도 크고 적극적이면서도 빠르게 기부들을 해 줬고, 실제로 일본의 연예인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얘기도 나왔거든요. 실제로 어찌 보면 아무리 국민브랜드라고는 하지만 소니라든가, 미츠이스미토모 은행 같은 데와는 게임도 안 될 지 모르는 유니클로가 10억엔과 또 몇 억엔 어치의 현물기부까지 했고, AKB(어찌 보면 너무 어리다 보니 업계 눈치를 안 볼 수도 있는)가 5억엔을 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그 외의 흐름을 보자면 자기 돈을 털어서 내기보다는 자기 얼굴을 걸고 모금을 주도하는 형식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그것이 어제 1억엔을 돌파했다는 Gackt의 "Show your heart" 홈피를 통한 모금입니다.

일본적십자사와 협조해서 진행했죠. 결국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눈치들을 보고 있다가 사태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고 여기저기서 돈들을 내는데, 그걸 보니까 진짜 장난이 아닌 것 같아서 다른 액션들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동북지역이 고향인 니혼햄의 다르빗슈는 이치로의 다섯 배로 알려진(항간에 이치로는 천만엔을 냈다고 함) 오천만엔을 냈고, 연예계의 대모격인 와다 아키코(한국계로 알려진)씨 등이 소속되어 있는 홀리프로도 일단 기금을 설립해서 우선 5,750만엔 정도를 내놨지요. 연예계 앗코씨(여기선 그렇게 부릅니다)의 사무소가 그렇게 나섰으니 다른 후배들도 무척 많이 동참하게 될 겁니다. (이하 생략)

상황을 보다 보면 홍상현씨의 지적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SMAP 소속사 자니즈는 결국 '4억엔 기부'를 선언했고, 수많은 톱스타들이 SMAP에 앞서 실질적인 도움을 내놨습니다. 대재해가 일본의 기부 문화를 바꾼 셈이지만 거기에는 한류 스타들의 통 큰 기부가 큰 역할을 한 듯 합니다.

재해 초기, 일본인들의 질서 준수 문화가 알려지면서 '이런 선진국이 있나!'라는 경탄의 목소리가 한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무질서한 한국인들에 대한 반성이 잇달았죠.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복구나 구호 조직의 움직임이 느린 것이 일본 특유의 '매뉴얼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죠. 그 걸과, 문제가 생겼을 때 복구의 신속성이나 거액을 선뜻 내놓는 기부 문화, 그리고 내 일처럼 앞장서서 피해 복구에 나서는 '가슴의 뜨거움'은 어쩐지 한국이 더 앞서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에 앞다퉈 거액을 쾌척한 것은 아무래도 일본 시장으로부터 큰 덕을 보아 온 한류스타들로서는 당연한 일일 듯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본 연예인들보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를 더 걱정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처럼 한국 문화에는 한국만의 장점과 단점이, 일본 문화에는 일본만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문화든 좋은 점만을 모두 갖출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번 지진 사고때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한국 문화에 대한 자아비판'들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두 나라 사이의 다름이 그저 '우열'이 아니라 '다름'이었다는 균형잡힌 시선들이 나오는 게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P.S. 그나자나 해방 이후 드물게 보는 한/일간의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또 다시 역사 교과서 파동 국면이라니. 아무래도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 하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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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는 가다피라고 불렸던 카다피. 요즘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미친 노인네 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때는 '제3세계 반미 자주의 상징'으로 영웅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국내에서 카다피의 인기는 대단했죠. 한때 한국의 운동 깨나 한다는 학생들은 '카다피의 리비아야말로 한국이 미래에 본받아야 할 국가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를 표방하긴 했지만 리비아는 한국과 친근한 나라였던 것도 분명합니다. 동아건설이 주도했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포함해 한국 건설사들이 많이 진출했던 나라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 우연히 탔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왕년에 리비아 건설 현장의 중장비 기사 출신이시라며 가까이서 본 카다피의 영걸스러움(?)에 대해 한바탕 칭찬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카다피의 독재나 국내 인기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없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보신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1980년작, '사막의 라이온'이란 영홥니다.



그동안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신문에 쓴 글을 이쪽으로 가져오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꽤 오랜만에 가져오는군요.^^


[분수대] 영화와 현실

2009년 6월, 위성방송 스카이 이탈리아 채널은 느닷없이 1980년작 영화 ‘사막의 라이언(Lion of the Desert)’을 편성했다. 미국·리비아 합작인 이 영화는 1930년대 리비아 민중이 지도자 우마르 묵타르(Omar Muktar)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침략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 영화가 이탈리아군이 포로를 폭행해 학살하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1982년 상영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었다. 하지만 2009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이탈리아 방문 기간에 맞춰 TV 편성이 이뤄졌다.

 카다피와 이 영화의 인연은 매우 각별하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대작 영화를 통해 ‘서구에 맞서는 아랍의 영웅’으로 자신의 위업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이미지의 이상적인 모델이 바로 우마르 묵타르였다.

 할리우드의 아랍계 프로듀서 무스타파 아카드가 감독에 선정됐다. 아카드는 1977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기 영화 ‘무함마드, 신의 메신저’ 제작 때문에 카다피의 신뢰를 얻은 인물이었다. 3500만 달러의 오일 머니가 아낌없이 투입됐다. 같은 해 나온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제작비 2800만 달러)보다도 1.5배나 많은 규모였다.

 그 결과 묵타르 역의 앤서니 퀸을 비롯해 올리버 리드, 로드 스타이거 등 월드 스타들이 캐스팅됐고, 수백 명의 기마대가 탱크부대와 맞서 싸우는 대규모 전투 장면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관객은 프로파간다를 원치 않았다. 전 세계 흥행 수입은 1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이는 20세기 영화 사상 손꼽히는 실패 사례로 꼽힌다. 물론 가장 큰 투자자 카다피가 만족했으니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리비아인들은 유목민족 베두인의 후예답게 탱크 앞에서도 끈으로 다리를 묶고(후퇴하지 않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다. 포로가 된 묵타르도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우리에게 타협이란 없다. 내가 안 되면 다음 세대가 이어 싸울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과연 카다피는 그 국민이 목숨을 걸고 물리치려 하는 상대가 바로 자신이고, 국민들이 외세 개입에 희망을 거는 상황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직도 “국민들은 나를 사랑한다”고 우기고 있는 카다피는 더 이상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될까.

송원섭 JES 선임기자



영화 속에도 나오듯 이슬람 지도자이며 교사 출신이었던 우마르 묵타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 특유의 치고 빠지는 기동력을 이용해 이탈리아 침략군을 괴롭혔습니다.

사실 로마 제국 이후 이탈리아군이 다른 나라 앞에서 무력을 뽐낸 사례는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19세기까지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돼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2차대전사에서도 이탈리아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해 같은 편인 히틀러의 골머리를 썩힌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됩니다.

지금도 리비아는 광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는 600만 정도입니다. 만약 이탈리아가 아니라 좀 더 군사력이 강한 나라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묵타르의 영도력이 카다피에게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1981년 12월 국내에서 개봉됐고, 저도 광화문 한복판에 있던 '국내 최대의 무허가 건물' 국제극장에서 봤습니다. 대한극장을 제외하면 당시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극장이었기 때문이죠.

광대한 화면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전혀 나쁘지 않았고, 약소국 국민들이 제국주의 침략군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리비아는 적대해야 할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한국이 개척해야 할 건설 시장이었으므로 이 영화가 상영되는 데 장애 같은 건 전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 90% 정도는 이 영화의 배경이 리비아였다거나, 이 영화와 카다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광고를 보면 사상 초유의 제작비 3500만달러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당시의 3500만달러가 엄청난 돈인 건 분명하지만 그때도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 같은 영화는 5000만달러 대의 제작비를 쓰곤 했습니다. 물론 뒷날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2'로 1억달러 제작비를 넘어 서기 전까지 이 정도의 금액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분명 영화가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대실패한 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제작/후원/배급자인 카다피가 이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 들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도 거의 무료로 틀어달라고 한 게 아닐까...




묵타르에 대한 카다피의 집착은 바로 저 가슴에 달린 사진에서도 나타납니다. 이탈리아 군에 생포된 당시 묵타르의 사진(위 사진)을 가슴에 붙이고 공식석상에 수시로 등장할 정도로, 묵타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카다피의 야망은 적나라했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변했고, 카다피는 자신이 원했던 묵타르의 모습이 아니라 묵타르와 리비아 민중에게 쫓기는 이탈리아 침략군의 위치에 오게 됐습니다.

30년 사이 카다피가 초심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30년 사이 가식이 걷힌 것인지.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아무튼 30년 전 그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생각한 영화를 보면 정말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P.S. 가끔 이 영화 얘기를 하면 션 코너리가 아랍 족장으로 나왔던 영화를 떠올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바람과 라이온'입니다. 두 영화 모두 '사자'를 굳이 '라이온'이라고 쓴 이유는 아마도 일본식 표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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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지나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고도 하지만 몇십년 살아 보니 세상 이치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본래 입춘 지나고 나서 꽃샘추위가 오고, 입추 지나고 나면 마지막 반짝 더위가 오기 마련이죠. 일찌기 시성 두보도 음력 7월 초, 입추 갓 지난 때의 날씨가 온통 옷을 풀어헤치고 미친듯이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덥다(束帶發狂欲大叫)고 하셨으니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아무튼 아직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으니 유효기간 지나기 전에 써먹어야 할 포스팅입니다. 요즘은 냉장고 덕분에 무더운 염천에도 마음대로 얼음을 먹을 수 있지만 이건 20세기 들어서도 한참 지난 뒤의 일이죠. 그럼 그 전, 수백년 수천년 전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 시절에도 여름에는 얼음이 훌륭한 식재료로 사용됐습니다.




일단 정리한 글을 가져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 어떻게 한여름에 얼음을 먹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글입니다. 사실 너무 간략해서 이 포스팅을 하게 된 겁니다.

제목은 '반빙(頒氷)'입니다.

냉장고가 없었다고 인류가 한여름 무더위를 마냥 참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란에서는 BC 4세기부터 야크찰(yakhchal)이라는 원뿔형 저장고가 등장했다. 섭씨 40도가 넘는 사막 한복판에서도 얼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선 춘추전국시대부터 한겨울 산과 강에서 얼음을 떼어다 돌집에 보관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이를 벌빙(伐氷)이라 했는데, 고관 대작들에게만 허용됐으므로 벌빙이란 말이 곧 출세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신라 3대 유리왕(노례왕) 때 이미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藏氷庫)를 지었다 한다.고려 이후엔 나라에서 저장한 얼음을 매년 여름마다 관원들에게 나눠줬다. 이것이 반빙(頒氷)이다. 귀한 것이므로 궁중과 종친, 당상관에게 우선 지급됐지만 은퇴한 관리나 장수하는 노인, 활인서에 입원한 환자들의 몫도 있어 사회 복지의 측면도 있었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양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운영됐다. 서빙고 하나만으로도 약 13만5000정(丁)의 얼음을 보관해 사용했고, 관리의 직급과 업무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 얼음의 양을 표시한 빙패(氷牌)가 지급됐다. 마패 아닌 빙패로도 위세를 견줄 수 있었던 것이다.이렇듯 중요한 사업이었으니 좋다 나쁘다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종 1년(1469년)에는 얼음을 나누면서 몰래 민간에 내다 파는 일이 있으니 이를 엄하게 단속하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성종 때 죄인들에게도 얼음을 나눠주자 당대의 유학자 김종직은 “성상께선 백성의 더위를 염려하여/ 감옥에도 반빙을 허락하셨다(九重尙軫元元熱 更許頒氷岸獄中)”고 선정을 칭송했다. 반면 연산군은 “궁중에서 직물 염색을 하는 데 얼음이 필요하다”며 반빙을 중단시킨 일이 있었다. 3년 뒤에 반정(反正)이 일어난 것도 왠지 우연이 아닐 듯싶다.

최근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각 관공서의 냉방 온도를 28도, 마트나 백화점은 26도로 규제하면서 '덥다'는 반발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예비전력률 저하 등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무작정 냉방 온도만을 높여 감시하기보다는 전체 사업장의 전력 소모량을 규제하는 등 보다 효율적인 방안도 있을 듯하다. 반빙을 해도 모자랄 삼복더위에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끝)



이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야크찰의 모습입니다. 사실 칼럼 하나를 쓰려면 꽤 자료를 모으게 됩니다. 사실 모은 재료를 그냥 내버리기는 너무 아깝고, 그래서 포스팅으로 모아 본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얼음 저장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신라 유리이사금(모례왕) 편에 나옵니다. '쟁기와 보습, 장빙고를 만들고 수레를 지었다(製犁耜及藏氷庫, 作車乘)'는 것입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이보다 훨씬 늦은 지증왕 6년 11월, 왕이 명을 내려 얼음을 저장하게 했다(始命所司藏氷)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시절의 얼음이란 모두 겨울에 뜯어다가 여름까지 녹지 않게 보관한 것 뿐입니다. 자연상태에서도 여기저기 얼음골(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 지대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이름)이 조성되는 걸 보면 옛날 사람들도 여건만 잘 갖춰 놓으면 여름에도 얼음을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뒤로 얼음을 뜯어다 저장하는 건 상당히 보편적인 일이 된 걸로 보입니다. 위에 나온 벌빙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얼음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게 대부(大夫) 이상의 벼슬아치들에게만 허용되는 사치였다는군요. 조선시대 유학자 김굉필의 시에 이 벌빙이란 말이 나옵니다. 바로 '출세'라는 뜻으로 쓰였죠.

분수 밖에 벼슬을 하여 벌빙하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 分外官聯到伐氷
임금을 돕고 세상을 바로잡는 데 내가 어찌 능할쏜가 / 匡君救俗我何能
후배들로 하여금 나의 우졸을 조롱하게 하였으나 / 從敎後輩嘲迂拙
권세와 이익을 구차하게 바라지 아니하네 / 勢利區區不足剩


(물론 경주 석빙고가 신라시대 유물인 건 아닙니다. 이 석빙고는 조선시대 것.)

하지만 이렇게 얼음을 채취하고 보관할 장소를 짓고 하는게 꽤 고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한겨울에 해야 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습니다. 고려사절요에 전하는 1243년, 고려 고종때의 기록입니다.

12월에 최이가 사사로이 얼음을 캐어 서산(西山)의 빙고(氷庫)에 저장하려고 백성을 풀어서 얼음을 실어 나르니 그들이 매우 괴로워하였다. 또 안양산(安養山)의 잣나무를 옮기어 집의 후원에 심었다. 안양산은 강도(江都)에서 여러 날 걸리는 거리인데 문객인 장군 박승분(朴承賁) 등으로 감독하게 하였다.

이 최이는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의 다른 이름이죠. 최씨 무신정권이 정점에 올랐을 때의 권력자 최이는 이렇게 백성들을 괴롭혀 얻은 얼음을 중신들에게 나눠줘 당대의 문장가 이규보 같은 사람은 감사의 시를 짓기도 합니다.

얼음, 또 반빙에 대한 시를 많이 쓴 사람으로 목은 이색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려말 삼은의 한 사람인 이색은 상당히 비대한 몸에 더위도 많이 탔던 모양입니다. 유난히 여름의 얼음을 고마워하는 글이 여러 편입니다. 예를 들면,

전각은 조용하고 덥지도 않은데 / 殿閣靜無暑
얼음 깬 물에 꿀을 타서 마시어라 / 蜜漿調碎氷
지경이 깊으니 인적은 적적하고 / 境深人寂寂
바람이 부니 나무는 층층이로다 / 風動樹層層
얼굴에 비추면 냉기가 쏘아대고 / 照面冷相射
목에 삼키면 머물 틈도 없이 넘어갔지 / 入喉流不凝
(중략)
형세는 한로 절기부터 시작하여 / 勢從寒露始
물이 얼어서 절로 얼음이 되는데 / 水結自爲氷
골짝마다 사람은 얼음 조각을 캐내고 / 萬壑人擎段
교하엔 말이 층층 얼음 위를 달리네 / 交河馬踏層


한편으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반빙의 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서운해 하는 글도 있습니다. 얼마나 한여름 얼음이 고마운 존재인지 보여주죠.

해마다 유월에 얼음덩이 마주하면은 / 年年六月對氷峰
잠자리 깨끗하고 부채 바람 인 듯했는데 / 枕簟無塵扇有風
앓고 나서 문득 반사가 적음에 놀랐노니 / 病後忽驚頒賜
지난겨울 다수워 빙고가 텅 빈 때문일세 / 只因冬暖凌陰空

반빙하는 총재는 홀로 여유가 있거니와 / 頒氷冢宰獨優游
양부의 관원들은 등에 땀이 줄줄 흐르네 / 兩府摩肩背汗流
승선 다섯 사람만 유독 반사를 얻었으니 / 五箇承宣偏得賜
성조에서 예부터 승선을 중히 여겼음일세 / 聖朝從古重龍喉

기억컨대 연산에 모진 더위 푹푹 찔 적엔 / 記得燕山酷熱蒸
길거리 곳곳에서 얼음 꿀물을 타 마셨는데 / 街頭處處蜜調氷
동에 돌아온 신세는 청량하기 그지없어라 / 東歸身世淸?甚
시냇물 솔바람에 시원한 기운이 모이는 걸 / 澗水松風爽氣凝


조선시대 들어서는 반빙이 아예 정부의 주요 사업이 됐습니다. 이조 아래에 빙고를 관장하는 관직이 생겼고, 도성에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설치해 반빙을 실천했습니다. 만기요람에 나오는 서빙고의 반빙 현황은 이렇습니다.

서빙고에 저장한 얼음 134,974 정(丁)은 그 가운데 수가(受價)한 혜청미(惠廳米) 677석ㆍ호조미 367석을 합하면 1,054석인데 그 가운데 장빙미 551석의 나머지 쌀 503석과 병조목 6동(同) 29필을 본고에 응용할 것과 얼음을 져나르는 품삯으로 지급하고, 본고를 수리할 때에 목물값 쌀 82석은 선혜청에서 매년 지불함.

각 전(殿)ㆍ궁(宮)에 공상(供上)하는 것 10,100정 3월부터 9월까지.

각 궁방(宮房)에 660정 5월부터 7월까지 각 전ㆍ궁 아지(阿只) 시녀(侍女)ㆍ장번내관(長番內官)ㆍ내반원(內班院)에 900정 5월부터 7월까지로 하나 시녀청에는 6월로부터 7월까지.

종친(宗親 국왕의 친족)ㆍ문ㆍ무 2품 이상ㆍ삼사장관(三司長官)ㆍ육승지(六承旨)ㆍ제상사(諸上司) 패빙(牌氷 패를 가지고 찾는 얼음)이 9,144정 각원(各員) 패빙은 다만 6월 한 달뿐이고, 매 패(牌)에 10정이며, 각 사 예빙(例氷)은 한 달 혹은 두 달로 하되 많고 적음은 같지 아니함 내빙고 이래조(內氷庫移來條)ㆍ각 궁방(宮房)ㆍ내각(內閣)ㆍ내반원(內班院)에 반빙(頒氷)하는 것 1,800정 5월부터 7월까지.

시임(時任 : 현임(現任)) 직각(直閣)ㆍ대교(待敎) 각 45정, 제학(提學)ㆍ직제학(直提學) 각 90정, 원임(原任 : 전임(前任)) 각 10정 을 합계한 얼음 22,623정. 각사의 반빙을 받을 각원(各員)에게는 선공감(繕工監)에서 패를 제조하여 공급하되 패면(牌面)에 받을 정수(丁數)를 써서 얼음을 받는 데 빙고(憑考)가 되게 함.


사실 이렇게 관에서 배급하는 얼음 외에도 시중에서 사사로이 얼음을 저장해 쓰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뭣보다 1급 기방 같은 곳에서는 얼음 없이 한여름에 손님을 받을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얼음 수요를 놓고 부정행위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 기축(1469), 7월2일의 기록입니다. 

서빙고의 관리와 예빈시·내섬시 등 제사의 얼음을 저장하는 관리를 추국하게 하다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서빙고(西氷庫)에 저장한 얼음은 처음에 단단하지 않아서 녹아 없어지기에 이르며, 또 얼음을 흩인 후에 여염(閭閻)에 많이 파니, 서빙고의 관리와 예빈시(禮賓寺)·내섬시(內贍寺)·의금부(義禁府)·군자감(軍資監) 등 제사(諸司)의 얼음을 저장하는 관리를 추국하여 아뢰라.”


또 성종은 옥중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하사해 당대의 거유 점필재 김종직을 감동시켜 이런 시가 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아첨 집어다 졸린 눈에 뻗지르고 / 時點牙籤挑睡睫
한가히 누수 들으며 저녁 종을 기다리기도 / 閑聽銅漏待昏鐘
성상께선 오히려 백성의 더위를 염려하여 / 九重尙軫元元熱
감옥에까지 얼음을 나눠 주도록 윤허하도다 / 更許頒氷岸獄中


이런 아버지를 닮지 못한 폭군 연산은 반빙을 막아 민심을 분노케 하죠. 연산군 10년 갑자(1504) 7월6일의 기록입니다.
 

전교하기를, “예조(禮曹)가 더 반빙(頒氷)하기를 청하였는데, 얼음은 비록 많이 저장되어 있으나 궁중에 남빛 물들일 물건이 많아서 반드시 많이 쓰리니, 더 반사(頒賜)하지 말라.”
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쫓겨납니다. 뭐 여기서 인과관계를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이럴 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도 하죠.^^

아무튼 이렇게 해 놓고 슬며시 정작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인 '냉방온도 상한제'로 넘어갑니다. 애당초 무더위 속 냉방으로 전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대비했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더위를 참는 걸로 전력 대책을 삼으라는 것도 참 답답한 일입니다. 국민을 시원하게 해 줘도 모자랄 판에 자꾸 덥게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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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대로 인셉션에 대한 세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은 그냥 전반적인 '인셉션 많이 보기 캠페인', 그리고 두번째 글이 '인셉션,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에 대한 집중 설명'이거나 '겉으로 안 보이는 인셉션의 속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세번째는 인셉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 속에 감춰진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 이름짓기의 원조도 역시 매트릭스라고 할 수 있겠죠. 주인공의 이름을 one의 배치를 바꾼 neo로 짓는다거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대장의 이름을 모피어스라고 지은 것이나... 여기에 비할 때 가장 선명하게 의미가 오는 '인셉션'의 캐릭터는 바로 아리아드네입니다.


<<<이번 글 역시 스포일러 가득입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보고 오세요. 그게 아니고 영화 속 의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분은 바로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 신화에 조금만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 속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의 연인이었던 아리아드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일 겁니다. '인셉션'의 코브는 아리아드네를 보자 마자 미로를 그려 보라고 하죠.


신화 속의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덕분에 미로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기 위해 테세우스는 제물을 가장해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데,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실꾸리를 가지고 들어가 길을 잃지 않고 미노타우르스를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해피엔딩이 아니죠. 신화에도 스포일러가 있다는 세상이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아무튼 아래 그림, 낙소스 섬에 버려지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그 다음 눈길을 끄는 건 임스입니다. 임스의 스펠링은 Eames. 바로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임스 체어의 임스입니다. 건축가와 가구 설계자로서 전 세계적으로 '공간의 마술사'라는 호평을 받았던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를 가리키죠.

흔히 의자 만드는 사람들로만 알고 계신 분도 있었겠지만 아래 사진이 이분들이 만든 임스 하우스라는 건물입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건축과 공간의 대가에게 오마쥬의 뜻으로 이름을 따 오는 건 그리 희한한 일이 아닐 겁니다. 아무래도 이 임스는 그 임스에서 따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놀란이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따 오고 싶었던 대상은 아마도 따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주에 중앙일보 '분수대'에 썼던 글을 잠시 갖고 오겠습니다.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SF영화 ‘인셉션’은 흔히 1999년작 ‘매트릭스’와 비교된다. ‘매트릭스’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가짜’라는 메시지와 충격적인 영상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면 ‘인셉션’은 자유자재로 타인의 꿈속에 침투하며 그 내용을 지배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뜻 듣기엔 매우 획기적인 내용 같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사실은 인류가 몇천 년 전부터 이미 익숙해져 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꿈속의 수십 년이 현실에선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영화 속 아이디어는 이미 『삼국유사』의 조신지몽(調信之夢) 설화에 등장한다. 신라 승려 조신은 태수의 딸에게 반해 매일 그녀와 맺어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슬피 울던 조신에게 어느 날 밤 그녀가 찾아와 “함께 달아나자”고 한다. 그 뒤로 두 사람은 50년을 살았지만 결국 가난을 이기지 못해 헤어졌다. 그리고 조신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50년 세월이 고작 하룻밤의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모습을 바꿔 활약하는 이야기도 그리스 신화에서 엿볼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따르면 바람의 신의 딸 알키오네는 항해 나간 남편이 익사한 줄도 모른 채 매일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이를 보다 못한 헤라는 꿈의 신 몰피우스를 시켜 사실을 알려 주게 했다. 알키오네의 꿈속에 들어간 몰피우스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익사한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 그의 죽음을 알렸고 잠에서 깬 알키오네는 남편을 따르기 위해 자결한다.

이렇듯 고대에는 꿈의 지배가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면 현대에는 프로이트의 후계자들이 그 권능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28일자 뉴욕 타임스는 ‘대본을 따라 악몽에서 탈출하기(Following a Script to Escape a Nightmare)’라는 기사를 통해 최근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꿈의 변환을 이용해 성폭행 피해자나 참전 용사들을 치료하는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악몽을 좋은 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 환자가 꿀 꿈의 구체적인 내용을 미리 정하는 것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셉션’은 무당이 하던 일을 과학자들이 하게 된 지금, 과연 인간은 더 행복해진 것인지를 묻는 영화로도 읽힌다. (끝)



가운데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영화 속 임스의 역할을 연상시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기능을 생각하면 아마도 임스의 이름은 몰피우스로 지어졌다면 딱 떨어졌겠죠. 하지만 불행히도 몰피우스라는 이름은 '매트릭스'에서 이미 사용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놀런 감독은 아예 방향을 틀어 임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다음은 한 팀입니다. 피셔, 아서, 유수프는 하나로 엮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성배'라는 상징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아서 왕과 성배의 관련은 새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원탁의 기사들에게 최대의 목표는 성배를 발견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성배의 위치를 발견하는데 이르기까지 꿈을 통한 암시와 상징은 매우 중요한 단서로 간주됐습니다.

아서 왕 전설에 방계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어부 왕, 피셔 킹입니다. 물론 영화 속의 피셔는 Fisher가 아니라 Fischer지만 독일어의 fischer는 영어의 fisher와 같은 뜻, 바로 어부라는 뜻입니다.



어부 왕은 아서 왕 전설에 한때 성배를 수호했던 왕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성배와 원탁의 기사 전설은 여러가지 방계 전설들로 둘러싸여 매우 혼란스럽지만, 그중 정설로 여겨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원탁의 기사 중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랜슬로트가 어부 왕의 성을 찾아갔을 때, 어부 왕은 성스러운 창에 찔린 상처로 병석에 누워(!) 아들과 함께(!)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랜슬로트가 신비로운 힘으로 어부 왕을 치유하고(위 그림은 어부 왕의 치유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이 왕은 자신의 딸 일레인을 랜슬로트와 동침시켜 성배를 찾을 능력을 가진 성스러운 기사 갈라해드를 태어나게 합니다.

영국 밖으로 나가면 이 전설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에서는 이 상처입은 어부 왕이 암포르타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다른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로엔그린은 또 이 파르지팔의 아들이라는 설정입니다. 물론 이 파르지팔은 원탁의 기사 중 하나인 퍼시벌의 독일식 발음이죠.

아무튼 병석에 누워 성을 지키는 피셔 킹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비밀에 접근하는 아서, 이런 설정은 왠지 '인셉션'과 겹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 유수프는 뭐냐구요? 아, 유수프는 성경에 나오는 요셉(즉 영어식으로 조셉)을 아랍식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처음에는 이 유수프라는 이름이 바이블 앞부분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 요셉(꿈으로 자신이 선지자임을 깨닫죠)에서 따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런 피셔 킹의 등장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아리마대의 요셉 Joseph of Arimathea 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아리마대의 요셉은 바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피를 성배에 받아, 그 성배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는 인물이죠(위 그림). 비밀의 운반자라는 의미에서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그럼 남는 것은 코브와 사이토입니다. 일단 코브라는 이름은 놀런 감독이 전에도 한번 써 본 적이 있습니다. 1998년작 'Following'이란 작품이었죠. 저도 보지 못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Cobb라는 인물의 직업도 도둑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이토라는 인물은 당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선 워낙 흔한 성이라서..


이걸로 끝은 아닙니다. Eames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도 있습니다. 혹시 등장인물 모두가 건축가 이름에서 따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이것도 꽤 유력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집단 가운데 Pei Cobb Freed & Partners라는 회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루브르 박물관의 리모델링으로 대단히 유명합니다. Cobb이란 이름은 이 멤버 가운데 Henry Cobb라는 건축가에서 따 온 것이죠.

이 길로 가면 사실 더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빈의 쉔브룬 궁을 설계한 사람은 요한 베르나르트 피셔 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 라는 건축가이고, 유수프라는 이름도 카이로의 살라딘 성을 건축한 그리스 출신의 건축가 유수프 부쉬나크 Yusuf Bushnaq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Saito Kazuya라는 건축가가 있다고 구글이 가르쳐 주는데,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아서나 사이토는 사실 흔한 이름과 성인 만큼 어떤 직업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건축가 이름 집단이라는 게 더 간단해 보이지만, 성배 전설과 관련된 짜깁기도 꽤 매력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뭐든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얼마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뭐 어차피 영화 '인셉션'은 놀런 감독의 꿈이고, 그 꿈 속에서는 뭐든 그분 마음대로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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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 공신력있는 조사 결과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대한민국의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 남자 가운데서 미중년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사람이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40여분이 50개의 답변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손석희 교수님(성신여대)은 무려 9표의 몰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다수표를 받은 분들을 보다 보니, 묘한 추세가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즉, '꽃미남'을 고른다면 미모와 몸매로 평가할 여성들이, '미중년'을 고를 때에는 뭔가 다른 기준을 적용하더라는 거죠. 그게 뭐였을까요?



일단 그 설문조사(?) 내용을 토대로 쓴 글을 먼저 보시는게 정리가 빠를 겁니다.

제목: 왜 한국엔 미중년이 드물까

그러니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꽃미남의 표상, 완벽한 미모의 상징이던 원빈이 23세 연하의 소녀에게 망신을 당할 날 말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상대역인 만 열살 소녀 김새론은 "촬영 시작할때 원빈이 누군지 몰랐다", "우리 또래는 2PM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원빈을 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연기 쪽으로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원빈 아저씨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3연타로 원빈을 넉다운시켰다.

물론 33세와 10세는 큰 차이지만 세월이 흘러 48세와 25세쯤 되면 자연스럽게 멋지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키애누 리브스나 조지 클루니, 톰 크루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여대생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미중년. 그런데 갑자기 국내에서는 거기에 대응시킬만한 인물이 금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한국 여성들이 생각하는 미중년은 어떤 사람일까. 이럴땐 트위터에 묻는게 제격이다. 질문을 올렸다. "한국 남자 중에 미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연예인이건, 그냥 유명인이건)은 누가 있을까요?"



짧은 시간에 50명 가까운 분들이 답변을 해 왔다. 61세의 정동환에서 37세의 김원준까지 총 26명이 거론됐다. 순간적으로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트위터의 각별한 매력이다. 아무튼 다양한 답변을 들은 결과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9표로 1위, 조국 서울대 교수와 배우 안성기가 6표로 공동 2위, 배우 정보석이 5표로 4위, 배우 홍요섭이 3표로 5위였다. 그밖에 송호창(변호사) 염재호(교수) 천호선(정치인) 정명훈(지휘자) 김광민(피아니스트) 등 일반인 셀레브리티들이 박상원 정동환 천호진 조민기 차인표 탁재훈 등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뜻밖에도 연예인에 대한 선호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창 활동이 많은 박중훈 정준호 신현준 유동근 최민식 등 40대 톱스타들이 단 한표도 나오지 않았다는게 의외였다.

물론 응답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던 약식 조사지만 추세는 뚜렷했다. '20대 꽃미남'을 골라 달라고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미모와 몸매가 여기선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꽃미남 아닌 미중년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에는 응답자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지성이나 사회적 지위, 능력, 도덕성 등을 고려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러고 보면 미중년이 드문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기름진 안주와 잦은 술자리, 운동부족이 젊어서 한가닥 하던 미남들을 망가뜨렸다는게 흔한 핑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세상 자잘한 욕심에 흐려진 마음은 그대로 안색에 비치기 마련. 또 교언영색과 눈치보기에 도가 튼 영악한 눈빛에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풍길 리 없다. 심지어 학교 졸업한 뒤로는 독서로 머리를 채우지 못하고, 여유로 옷장을 채우지 못하니 제아무리 타고난 외모가 원빈 아니라 텐빈이라 해도 스타일이 따라 주지 못한다. 이게 일반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팔자다. 마음가짐이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자신감이라도 버텨 주련만.



50대 동안의 기수인 주철환 전 OBS사장은 최근 저서 '청춘'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당.포'를 꼽았다. 인생 선배로서 가져야 할 '전문성', 그리고 약간의 '당근', 마지막으로 '포용력'을 지닌다면 마음을 터놓고 젊은이들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거다. 자기 혼자 거울 보고 웃는 미중년보단, 젊은이들과 함께 웃는 전당포 중년이면 제법 만족해도 좋을 듯 싶다.

P.S. 월드컵 붐을 타고 미중년 붐을 일으킨 독일 대표팀의 속칭 '장동건' 뢰브 감독도 코딱지 먹는 동영상 하나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게 세상이다. 미중년까진 언감생심이라도 최대한 깔끔은 떨어야 한다는게 교훈이다. 곱게 늙기, 정말 쉽지 않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네. 하려는 말이 모두 들어 있다 보니 더 보탤 말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눈꼬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미중년' 아저씨들이 젊은 아가씨들에게 빠다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눈빛과 멘트로 어필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저건 그러니까 그냥 영화, 그것도 미국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위에 나온 분들 가운데 얼굴을 잘 모를만한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사진을 몇장 더 덧붙입니다. (의외로 조국 교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일단 한국의 진정한 엄친아로 꼽히는 조국 서울대 교수.


송호창 변호사


염재호 고려대 교수, 그리고


아, 죄송합니다. 이 분이 아니군요.


(야유는 좀;; 솔직히 이런 저질 개그 좋아하시는 분도 많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여성들이 '중년 남성'의 매력으로 꼽는 가장 큰 요소가 지성미였다는 겁니다. 잘생기되 살짝 비어 보이는 것도 젊어서는 매력으로 커버될 수 있지만 나이 먹은 뒤에는 뭘 채워 줘야 버틸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아, 물론 며칠 전에 만나 뵌 미모의 법조인 한 분이 엄격하게 제한을 하신 내용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성미가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어쨌든, 뭐니 뭐니 해도, 심지어 얼굴 생김보다도 날씬한게 중요하다. 배 나오고 퉁퉁한 사람은 절대 미중년이 될 수 없다. 지성미 아니라 뭐라도 그냥 아저씨다."

네. 그래서 미중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성미+날씬한 뱃살이라고 정리하면 될 듯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있는 분들은 그냥 '괜찮은 아저씨'에 만족하셔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무슨 노력을 해도 뢰브 감독 같은 외양을 갖출 수 없는 분들은 지성미라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괜찮은 아저씨 소리라도 듣죠. 이게 오늘의 주제.)

보너스는 - 이미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 뢰브 감독 팬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바로 그 동영상입니다. 파는 건 뭐 그렇다 치지만 먹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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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가 벌써 관객 100만을 넘어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워낙 기대작이었고 관심이 쏟아지던 터라 흥행 호조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 '이끼'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이미 쓴 터라 이번엔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영화 속 인물들과 실제 인물들의 일치도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일치도 1위는 단연 박해일이겠지만, 물론 얼굴이나 분위기가 닮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캐스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이끼'에 대한 리뷰는 이쪽입니다.




'이끼'가 영화화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독자들은 해국 역으로 박해일을 추천했습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었던 듯 합니다. 박해일은 나무랄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지만, 한편으로는 반항기 풍기는 프로필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해국은 똑똑하고 용의주도한 인물이면서도, 세상을 손해 보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어찌 보면 너무 올곧아서 비뚤어져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남편과 사는 아내라면 가끔씩 소리를 지르는게 정상이겠죠. "제발 웬만한건 좀 대충 넘어가!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 났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박해일에겐 왠지 그런 캐릭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장 논란이 심했던 것은 이장 역의 정재영. 이장 천용덕과 해국의 아버지 류목형 역으로는 30대 배우와 70대 배우를 각각 기용하는 방법과, 한 배우에게 노역과 젊은 역을 모두 연기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강우석 감독은 한 배우에게 모두 맡기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정재영이 선택됐습니다. 젊은 천용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과, 감독이 함께 일해서 신뢰할 수 있는 배우를 쓰겠다는 뜻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아무튼 앞의 글에서도 거론했다시피 정재영의 연기는 합격점 이상입니다. 다만 류목형이 '두려움이 당신을 구할 것'이라고 선언할 때 등의 디테일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와 관련해 솔직히 가장 기대와 벗어났던 캐스팅은 류목형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어찌 보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중 하나인 허준호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류해국이나 천용덕에 비해 훨씬 깊이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아마 강우석 감독도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원작의 인물에 비해 영화 속의 류목형은 어느 정도 평범한 성직자의 느낌이었달까요. 류목형은 그저 자애로운 인물의 느낌이라기보다는, 광기 어린 교주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한없이 포근하게 온갖 죄인들을 끌어안는 모습인 동시에, 말 한마디로 산전 수전 다 겪은 천용덕이 움찔하게 하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눈빛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신비로운 인물의 이미지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유선. 영화 속의 영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비극적인 여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선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청승'의 극한이죠.

하지만 원작의 영지는 오히려 기이한 마을의 유일한 여자로서, 그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 보이는, 묘하게 육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캐릭터입니다. 그 마을의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에 여족장처럼 잘 젖어 있는 모습이죠. 하지만 영화 속 유선은 매일 밤마다 눈물로 지샐 것은 같은 연약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원작과 달라서 효과적인 부분도 없습니다.




유해진, 김준배, 김상호가 연기한 마을 주민 3인방은 그림에서 튀어나온듯한 조화가 빛났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들 세 캐릭터가 얼마나 흉악하고 무서운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김상호가 연기한 성만은 원작 속에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사이코패스지만 영화 속에선 그저 흔한 밀렵꾼으로 축소되어버리더군요. 아무튼 신체적인 강건함으로 상대를 위압하는 성규 역의 김준배는 매우 인상적인 호연을 펼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작과 가장 달라진 캐릭터로는 박검사를 들 수 있습니다. 유준상이 연기하는 박검사는 시종일관(?)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는 캐릭터입니다. 오버액션도 제일 많고, 어쩌면 원작 '이끼'의 박민욱 검사보다는 '공공의 적2'의 강철중 검사(설경구)와 훨씬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원작의 박검사는 류해국에 대한 원한과 막혀버린 출세길에 대한 좌절감으로 폭발하기 직전에 있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박검사는 해국 때문에 시골로 좌천된 것을 오히려 즐거워하는 듯한 묘한 냄새를 풍깁니다. 원작에서 '고민'의 요소가 어디론가 가출해버린 캐릭터가 된 것이죠.

물론 전후사정을 다 떼고, 그저 활기차고 정의로운 검사 캐릭터가 하나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유준상은 그 연기라면 제대로 멋지게 해 냈습니다.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작과의 비교인데, 캐릭터 하나의 성격이 변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캐릭터가 그대로인데 배우가 살리지 못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절대 간과하면 안 될 것이, 만화 원작과 영화 속 캐릭터의 일치나 불일치를 얘기하는 건 그냥 그걸로 끝나야 합니다. 그 일치와 불일치를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건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원작 팬과 영화 관객이 모두 환호하면 좋겠지만, 원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영화 관객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원작과 동떨어진 각색이라도 독자적인 생명을 갖는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원작에서 빼다 박은' 캐스팅이라고 반드시 베스트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은 정말 정교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에 썼던 글 하나를 붙여 보겠습니다.


제목: 캐스팅

1938년 마거릿 미첼의 베스트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누가 남녀 주인공을 연기할 것인가에 몰렸다. 레트 버틀러 역을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 클라크 게이블이 한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 역은 달랐다. 캐서린 헵번, 메이 웨스트를 비롯한 30여 명의 톱스타와 그 몇 배나 되는 신인들이 물망에 올랐어도 전설적인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은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셀즈닉은 '마법과도 같은 그 어떤 것'을 가진 여배우를 원했다.

여주인공 없이 촬영이 진행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셀즈닉은 영국 출신의 비비언 리를 낙점했다. 여론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무명의 영국 배우가 '남부의 정신'을 대표하는 여주인공을 연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셀즈닉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완성된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지금도 '너무나 완벽한 캐스팅이라 감히 리메이크할 수 없는 작품'의 대명사로 꼽힌다.

원작이 있는 영화치고 독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감독이 고른 실제 배우의 일치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은 예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최근에는 '싱크로율(synchro率)'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제 캐스팅된 배우가 원작의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기존 독자들의 지지가 높지만 그것이 반드시 최상의 캐스팅인 것은 아니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는 원작인 윤태호의 동명 웹툰(인터넷 연재 만화)이 워낙 인기였던 탓에 제작 초기부터 싱크로율 논란에 시달렸다. 주인공 중 유해국 역의 박해일은 독자들로부터 '싱크로율 100%'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이장 역의 정재영은 '싱크로율 50% 미만'이란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영화가 공개되자 정재영에 대한 지지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최근 후임 총리와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화제다. 민심 속의 이미지와 싱크로율이 높은 캐스팅, 뭘 시켜도 잘 해낼 듯한 인기스타를 앞세우는 캐스팅에도 장점이 있지만, 처음에는 평이 엇갈려도 세월이 흐른 뒤 적역이었음이 입증되는 게 진정한 인선의 묘미다. 캐스팅 책임자의 안목과 의지가 더없이 중요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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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이번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즌 전승의 기록을 세워도 좋았겠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남아있는 가장 큰 목표였던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이기 때문에 그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김연아도 사람이었다'는 정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 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밴쿠버의 큰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가 기대 이상의 점수를 내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던 '대인배 김연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김연아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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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은 '김연아는 지금부터 뭘 할까'일 겁니다. 스무살 나이에 이만한 성취와 이만한 영광을 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연아가 살아야 할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4 정도를 지났다고 할까요? 일반인들 같으면 오랜 수험 준비를 마치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이제 나도 인생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나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저는 본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부모님의 측근도 아닙니다. 다만 '우상 김연아'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한번 생각난 바를 끄적여 봤습니다. 제목은 '김연아는 앞으로 뭘 하며 살까?' 였죠. 시점은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어쨌든 3월 초 정도의 시점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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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연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1990년생 김연아.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어떤 영화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최상의 드라마가 밴쿠버의 얼음 위에서 펼쳐졌다. 김연아 스스로 “내가 꿈꾸던 것을 모두 이뤘다”고 했듯 1차적으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에게 더 이상 노릴 목표는 없는 셈이다. 물론 목표는 만들 수도 있다.

193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 소냐 헤니는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을 3연패했고,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도 1984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에 불과한 김연아가 역대 세 번째 신화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두 번째 금메달 도전이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대세다.

헤니야 전 세계가 그의 독무대였던 시절이었고, 비트 역시 사회주의 동독 체제 하에서는 스케이팅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출전 선수들은 날로 어려지고 있어 스물네 살이면 충분히 노장급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얻는 것에 실패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커 보인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르디이른 스무 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아 도전할 성취를 거둔 이 천재 아가씨는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오지랖 넓게도 이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국보 김연아’를 남이 아니라 여기게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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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20세기 전반 최고의 아역 배우로 명성을 떨친 셜리 템플이다. 1928년생인 셜리 템플은 1930년대 어떤 성인 스타들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에서 템플의 미소를 보며 어려움을 잊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치하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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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역 배우에겐 연령 제한이 있었다. 1940년대 이후 템플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시작했고 1945년, 그녀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템플은 성인 배우로 활동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아역 스타’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템플의 명성이 돌아온 것은 유방암 투병을 벌이면서도 직업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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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던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한 것은 그동안 가상 적국이었던 미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이른 시기에 최상의 성취를 이룬 조숙한 천재들은 대부분 그 분야에 매진해 명성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분야도 분명 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나 아역 스타는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현재까지의 성공만으로도 김연아는 평생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성을 얻었다. 지금부터 여생(?)을 여유있게 보낸다 해도 그건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든,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제2의 인생을 위한 설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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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빙상 영웅 에릭 하이든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부터 1만 미터까지 다섯 종목을 제패한 불멸의 스타 하이든은 스케이터로서의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스케이팅을 포기하고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동시에 학업에도 열을 올려 1991년 스탠퍼드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의 팀닥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이든의 인생’이라는 대하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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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미국 대표팀 팀닥터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하이든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글은 김연아보고 '앞으로 인생을 이러이러하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초기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루고, 그 나머지 인생은 그냥 편안하게 놀면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구축한 두 사람이 긴 여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예시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이런 두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건, 아니면 좀 더 쉽고 편안한 삶을 살건, 그건 전적으로 김연아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 전업 주부의 삶을 살건,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건, 지금부터 학업에 전념해 박사님이 되건, 올림픽을 2연패하건, 그냥 피겨 지도자로 제2의 김연아를 육성하며 살건, 거기에는 어느 하나가 우세한 것이라는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감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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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팬으로서, 혹은 좀 더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김연아에게 바라는 것은, 그중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한다는 것이고, 또 부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실망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늘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도 참 피곤하겠지만 반대로 늘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이 어느날 사라지더라도,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에 후회는 남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선택은 또 다른 후회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에릭 하이든의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 삶이 정답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라고 해서 '내가 정말 이짓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미 주목받아버린 사람의 삶이란 이래서 힘든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김연아가 제목이 됐지만, 수많은 10대 아이들 스타들의 경우에도 분명 비슷한 면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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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요일 아침인데도 늘지 않는 구조자 수와 떨어지지 않는 기침이 영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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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무지막지한 아귀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토록 유명한 스님이 돌아가신 뒤로 저서가 잘 팔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여기에 "내가 남긴 책은 모두 절판하도록 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더해지면서 '무소유'는 한 권에 15만원씩에도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과연 그 책을 꼭 절판해야 할까? 오히려 책을 계속 내면서 다른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그저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이 반드시 유언을 실현하는 길일까? 출판사에서 책 한권 절판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상혼이 춤추고 '무소유'라는 책 제목과 전혀 걸맞지 않게 그 책을 '소유'하려드는 중생들이 넘쳐 난다면, 과연 그것이 스님의 유언을 제대로 따르는 길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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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무소유'라는 책의 홍보 문구에도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있군요.^^ 스님이 이 책의 인세로 버신 돈만 해도 지금까지만 해도 상당한 액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스님이 자신을 위해 축적한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말입니다.

스님을 알고 지내던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난스럽게 '스님은 지갑을 갖고 다니십니까' 했더니 아래로 길게 늘어진 승복의 소맷자락을 툭툭 치면서 '여기가 내 지갑이지'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장난기가 더 나서 '스님, 용돈 좀 주세요' 했더니 보지도 않고 소매 안에서 잡히는 대로 수표 한 장을 툭 꺼내 주시더라는군요.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했더니 '뭐 그게 내거냐?' 하시더라는...

과연 15만원씩 내고 그 책을 가져간 사람(분명히 자신의 행동이 '무소유'와는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이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볼 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해도 그 의미를 깨달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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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님이 책을 절판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그 책으로 돈벌이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뜻은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미 수십만권이 팔렸고, 온 천지의 도서관에 그 책이 있는데 이제 와서 그 책을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만약 그런 뜻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전에 쓴 책은 보는 족족 태워 버리라'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책에 세상을 위한 좋은 말이 쓰여 있고, 그 책을 지금에라도 보고 가르침을 얻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책을 좀 더 많이 찍어 내서 그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유언 몇 자를 어긴다 해도 이것이 생전의 뜻을 더 충실히 잇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저 혼자 생각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은 저 말고도 많은 듯 합니다. 다음 기사도 한번 보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7/2010031702115.html

그러고 보니 저도 스님이 입적하신 다음날, 신문에는,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쓴 적이 있군요.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다음 글은 평소나 마찬가지로, 호기심 많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대체 사리란 어떤 것인가 궁금하셨던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사리 같은 건 찾지 말라'고 하셨죠. 옛날 어른들은 스님들이 절을 많이 하면 관절염이 생겨서 연골이 뭉쳐 사리가 된다고도 하고, 채식을 많이 하면 담석이 생겨서 사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다 속설이고, 사리라는 게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건 아무리 봐도 참 신기한 일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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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리

사리(舍利)란 본래 '몸'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Sharira)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로 음역해서 설리라(設利羅), 또는 뜻을 옮겨 영골(靈骨)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광명경'은 석가모니의 말을 빌려 '사리는 정혜(定慧)를 닦은 데서 나오므로 보기 드물고, 사리를 얻는 것은 상등의 복전(福田)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설에는 세존의 사리가 여덟 섬에 이른다고도 하고, 속세의 신도들은 고승일수록 입적할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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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널리 퍼졌다. 중국 의약서 '본초강목'은 사리는 영양의 뿔(羚羊角)로만 깰 수 있을 뿐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학자 이규경도 저서 '석전총설(釋典總說)'에서 사리는 극음의 산물이므로 극양의 재료인 코뿔소의 뿔이 닿으면 바로 녹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틈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던 듯싶다. '고려사절요'에는 효가(曉可)라는 요승이 등장한다. 그는 꿀물과 쌀가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감로사리(甘露舍利)”라고 주장하며 세를 불려 사기 행각을 벌이다 충선왕 5년(1313년) 처벌을 받았다.

또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리는 옛날에도 얻기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승려가 죽어도 반드시 사리가 나왔다며 부도(浮屠)를 세운다. 전에는 사리의 진위를 놓고 승려들이 소송을 하더니 부도를 허물고 진짜 사리인지 깨 보는 일도 있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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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사리는 인간의 신체 내부에 있던 물질이 화장 때의 열로 인해 변형된 것일 뿐 득도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1995년 국제 법의학 저널에 인간의 넓적다리 뼈를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할 때 수정 형태의 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가 실렸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사리를 보물로 만드는 것은 구슬의 가치나 성분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지극한 불심이다. 그저 사리의 개수를 따져 대덕(大德)의 법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11일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열린다. “절대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은 세간의 저속한 관심을 꾸짖는 지엄한 가르침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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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사리는 모두 8섬 4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이죠. 물론 이것도,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사리탑의 수와 사찰의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문득 이 대목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아드소가 스승 윌리엄에게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에서 잘라 낸 나뭇조각이 이 수도원에도 보물로 간직되어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윌리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들이 다 진짜라면 예수님은 십자가가 아니라 큰 숲에 못박혀 돌아가신게 분명해."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이런 식으로 '뭔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을 통해 믿음을 굳히고 싶은 생각은 만국 공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무소유'라는 책에 대한 일부의 집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걸 좀 사회에 긍정적인 자산으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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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받은 선물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먹은 걸 두 배로 토해내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네. 공포의 화이트데이 시즌입니다. 이미 2월14일이 발렌타인데이고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는게 있다며? 라는 식으로 얘기하다가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시대가 된지 오래입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남성들(아마도 미혼일 겁니다)은 이번 화이트데이 선물값으로 8만2천원을 쓸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꽤 큰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이 지난 발렌타인데이때 받은 선물의 평균 추정 가격이 4만1천원이라는 겁니다. 정확하게 두배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죠.

당연히 이 대목에서 황현희의 절규가 생각납니다. "니생일엔 명품백, 내생일엔 십자수냐!" 돈으로 바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불쌍한 남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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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선물 비용이 딱 두배라는 기사는 이쪽입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100312074007556&p=akn

그리고 한 홈쇼핑 회사의 조사 결과도 화이트데이 관련 상품의 매출이 거의 두배에 가깝다는군요. 쇼핑 현장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타인데이보다 화이트데이가 더 큰 대목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2266300

그리고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1위 초콜릿, 2위가 상품권이란 응답이 나왔답니다. 반면 여자들은 마찬가지로 화이트데이에 받고 싶은 선물로 1위 가방, 2위 화장품, 3위 상품권이라고 응답했답니다.

그럼 화이트데이의 상징인 꽃과 사탕은?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찍혔다는 겁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2/11/200902110500023/200902110500023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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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는 순진한 남자들도 있을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화이트데이에 꽃과 사탕을 안겨주면 환하게 웃던 여친이 속으로 '이게 다야? 딸랑 이거? 이 짠돌이 자식. 내년에도 내가 너랑 이날을 보내고 있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이를 갈고 있었을 거란 얘깁니다.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도 여전히 여친과 잘 만나고 있다구요? ...아마도 여친의 친구들이 그리 쓸만한 소개팅을 해주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십쇼.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우울한 세상입니다. '쿨한 삶'이나 '세련된 생활'을 추구한다고 포장되어 있는 각종 월간지들을 보다 보면 페이지 사이의 이율배반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한쪽에서는 '돈보다는 역시 나의 꿈이 중요해' '문화와 교양이 풍부한 나는 얼마든지 무식한 너희를 비웃을 수 있어'라는 엘레강스한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반면 몇장 넘기면 '시계 말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본다고? 이런 원시인 같으니' '이 정도도 못 사면 너는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3년 전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고 길에 나설 수가 있어?'라는 식의 돈쓰기 장려운동이 낯간지럽게 나타납니다. 남성지건 여성지건, 사실 아는 사람이 보면 전혀 교묘할 것 없지만, 출판사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들에 대한 성의가 철철 넘친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런 메시지들에 중독되신 분들, 제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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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순진하게 꽃과 사탕만 안겨주면 우리 사랑이 영원할거라고 믿는 건 바보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넘겨다 본 광고의 카피는 '정말 사탕만 선물하려고?' 더군요. 여자들이 대놓고 '우린 안 보이는 마음 같은 건 몰라. 어서 네 마음이 잘 보이게 신용카드로 그려 봐'라고 말하는 세상. 한번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보원'이 승승장구하고, 박성호와 황현희, 최효종의 인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거겠죠.

(우리 인간적으로, 왜 여자들만 갖고 그러냐고 뭐라 하지 맙시다. 남자들 솔직히 초콜렛만 받아도 감지덕지합니다. 간도 안 맞은 수제 초콜렛 받아도 맛있는척 감동하고 먹는게 남자들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괜히 감동했어. 괜히 맛있다고 그랬어. 한입만 먹을걸 그랬어. ---- 다이어트.)

아무튼 화이트데이가 되어 또 한번 '개콘의 혜안'을 느낍니다. 얼마 전에 썼던 글을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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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개콘'에서만 유행어가 나올까

지난 연말연시에 여기저기서 수많은 송년회와 신년 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적시 적소에 사용되는 유행어. 연말 모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냐’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다면, 2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력 신년 모임에서 애용되는 코멘트는 ‘니가 말한 ○○이 그 ○○은 아니겠지’다.

TV와 담쌓고 지내시는 분들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할 것 같다. 위의 두 대사는 모두 KBS 2TV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에 나오는 유행어들이다. 앞의 것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에서 파출소에 끌려온 취객으로 등장하는 박성광이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멘트고, 뒤의 것은 ‘드라이 크리닝’이라는 코너에서 래퍼로 등장하는 김지호가 윤형빈과 함께 하는 말이다.

며칠 전 가졌던 모임에서도 이 분위기는 계속됐다. 그리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는데도, 요즘 뜨고 있는 신흥 유흥가 얘기가 오가는 동안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희도 그 동에 살거든요” 같은 대화가 나오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니가 말한 그 동이 야동은 아니겠지?”를 합창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필자 주위의 사람들이 유난히 TV 예능 중독인 것은 아닐 듯했다.

연말연시, 평소 접하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은 이제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젊은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였다. 특히나 <개콘>은 중장년층까지 넓은 수용자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 하나로 순식간에 형성되는 공감대의 힘은 무서울 정도였다. 함께 미소를 짓는 가운데 ‘아, 개콘을 보시는군요?’ ‘네, 저도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닙니다’와 같은 정서가 교환되는 것을 보면서 코미디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됐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개콘> 유행어들의 특징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행어들이 갖고 있던 특징이 변형이 쉽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재생할 때 효과적인 것이었다면, 최근의 유행어들은 외부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개콘>의 또 다른 인기 코너인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박성호가 퍼뜨린 ‘괜히 ○○○ 했어, 괜히 ○○○ 했어, 나 어떡해’와 ‘우리 인간적으로 ○○○는 해 줍시다’는 사용자가 쓰고 싶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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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보원 선생님, 자꾸 성함을 거론해서 죄송합니다.)

또 이런 유행어들의 본고장이 코미디라는 것은 다양한 함의를 통해 언중유골의 효과를 낼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회식 자리에서 평소 쫀쫀하게 부하 직원들을 편애하던 상사를 향해 “고과 1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부장!”이라고 소리쳐도 어차피 코미디라며 도망갈 수 있다. 뭔가 뒷일이 켕기면 “나 같은 놈도 받아주는 아름다운 선배!”라는 식으로 슬쩍 물타기를 할 수도 있다. 문득 이런 유행어들이 왜 전부 <개콘>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때 <개콘>과 천하를 다투던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폐지설까지 나오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정성호 김미려 조원석 등이 활약하던 MBC TV <개그야>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후속 <하땅사>가 재건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콘>의 경쟁자들은 왜 이렇게 인구에 회자될 만한 유행어를 낳지 못하는지 한 번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개콘>의 유행어들 속에는 세상 읽기가 감춰져 있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면 곤란하다. 듣는 사람이 ‘아, 저건 내 얘기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유머는 진정한 힘을 얻게 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의 분발이 기대된다. “그런 유행어 하나 못 만들면 그건 개그 프로그램 아니잖아요. 그냥 쑈지 쑈.” (끝)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성 여러분, 부디 화이트데이 주말의 위기를 다 잘 넘기시고, 다들 팔팔하게 월요일을 맞이하시길.^ 뭐 돈 굳었다고 좋아하시는 싱글들은 복 받은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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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성 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와 항상 엇갈립니다. 지난 금요일, 굳은살이 덕지덕지 붙은 이상화의 발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일제히 온갖 언론이 '이상화의 발'과 '박지성의 발'을 비교하고 나섰죠.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맨발로 스케이트를 신는다는 것에도 놀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깝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양발굿'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발굿이란 '양(洋)인들이 발로 하는 굿'이라는 뜻인데요,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보고 당시의 한국 사람들이 붙인 명칭입니다. 하도 양발굿이 유명해서 명성황후가 궁중으로 이들을 초청해 '양발굿'을 한번 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는군요. 이것이 한국에 스케이트가 소개된 공식 기록입니다.

이상화의 발 사진이 하루만 먼저 소개됐더라면, 절묘하게 이 '양발굿'과 타이밍이 맞았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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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상화 얘기 없이 쓴 '양발굿'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 스케이팅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들어 있습니다. 인류가 스케이트를 탄 것은 알려진대로라면 약 5천년, 그리 긴 역사는 아니더군요.

제목: 양발굿

인류 최초로 스케이트가 만들어진 곳은 스칸디나비아 혹은 북러시아 일대로 추정된다. 2008년 영국 옥스퍼드대 페데리코 포멘티 교수 팀은 약 5000년 전 고대 핀란드 지역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스케이트를 복원해 실효성을 증명했다. 이들은 당시 제작법 그대로 말 뼈를 갈아 만든 날을 가죽끈으로 연구진의 신발에 묶고 얼음 위를 달렸다.

하지만 이 원시 스케이트는 중심을 잡기 위해 양손 지팡이가 필요했으므로 최고 시속 8㎞를 넘지 못했다. 16일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의 최고 시속 57㎞엔 비할 바가 아니다. 금속 스케이트 날이 처음 도입된 것은 3세기 초이지만, 빙속 경쟁이 시작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1592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최초의 철제 날이, 1850년 미국에서는 강철 날이 도입됐고 빙상 대회가 겨울 볼거리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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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설마(雪馬)라는 썰매를 이용한 기록이 보이나 주로 화물 운반용이었던 듯하고, 1894년 경복궁 향원정에서 고종 내외가 바라보는 가운데 빙족희(氷足戱)란 이름으로 서양식 스케이트의 시범이 처음으로 펼쳐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따르면 민간인 중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어 본 사람은 현동순이라는 이다. 그는 1904년 선교사 질레트에게 15전을 주고 스케이트를 구입해 개천에서 타는 법을 독학했다고 전해진다.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일단 빙상에 서자 한국인의 활빙(滑氷) 속도는 눈부셨다. 해방 전까지 이성덕·최용진 등 6명이 8차례나 전일본 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1936년 독일 가르미슈에서 열린 제4회 겨울올림픽을 통해 처음 국제 무대에 나선 김정연은 1만m에서 18분2초로 '일본 신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 뒤 불과 수십 년 만에 쇼트트랙 스케이팅 최강국이 된 한국은 2010년 밴쿠버에서 전통의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종목인 남녀 500m를 잇따라 석권하며 북유럽 빙상 종주국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쾌거라 기쁘면서도 놀라움이 앞선다.

구한말 사람들이 스케이팅을 '양발굿'이라고 부른 걸 보면 그들에게도 이 빙상 묘기가 대단히 신명 나는 일로 여겨졌던 듯하다. 한국 젊은이들이 이 기세를 몰아 밴쿠버를 더 큰 얼음판 놀이마당으로 만들길 기대해 본다. (끝)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스케이트는 대략 이런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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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용 가죽신에다 저런 뼈 스케이트를 묶고서 스키 타듯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얼음을 지치던 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스케이팅이 오늘날에는 시속 50km를 넘는 고속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어쨌든 이상화의 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면 그걸로 참 값진 일입니다. 하긴 성공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굳은살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누구에게든 굳은 살이 노력의 대가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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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김연아의 발이 공개돼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죠. 하긴 저렇게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아픈 발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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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은근히 우리는 발 사진 중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랄까요, 이런 발 사진은 감동의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왼쪽부터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박지성의 발, 그리고 '상록수' 뮤직비디오를 통해 잘 알려진 박세리의 발입니다. 양말을 벗는 순간 햇빛에 그을은 종아리와는 달리 양말 속에서 하얗게 되어 있던 발이 노력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던 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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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발을 쓰는 사람에게는 발이 중요하지만, 손을 쓰는 사람에겐 반대로 손바닥의 굳은살이 노력이 상징입니다. 웬만한 야구선수들은 굳은 살을 몇번씩 깎아내곤 합니다. (웃자는 얘기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왕년에는 왼손 손목 바로 위에 굳은 살이 배겼더랬습니다. 키보드 짚는 버릇이 안 좋아서...^^)

윗글에는 다 들어가 있지 않지만, 저는 '양발굿'이라는 말의 뜻이 신명나는 놀이라는 느낌도 있었겠지만, 양발에 칼을 달고 타는 스케이트라는 것이 어쩐지 무당의 작두타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칼날을 밟고 서는 것과는 반대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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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라는 것은 흥겨운 놀이판이면서도 극도의 집중과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 나라가 빙상 500m 금메달을 싹쓸이한 사상 초유의 결과는 그야말로 '신들렸다'는 말 외에는 설명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그래서 더욱 '굿'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신들린 발' 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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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우리도 다음엔 맨발로 한번 찍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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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김연아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방송사간의 혈전이 한창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단독 중계를 하게 된 SBS는 입이 찢어져서 자사 홍보에 여념이 없고, 공동 중계를 관철시키지 못한 MBC와 KBS는 연일 흠집내기에 골몰하다가 결국 '취재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SBS가 단독 중계권을 확보한 가운데 KBS와 MBC는 취재진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죠. 양사의 주장은 거의 같습니다. (중계도 못 하게 된 이상) 대규모 취재단을 파견할 예정이었지만 SBS는 주요 경기 장면 촬영 등을 불허하고 하루 2분 분량의 방송용 화면은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그럴 바엔 아예 안 가고 말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MBC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SBS 직원도 아니지만 참 웃음이 나옵니다. '비통한 심정으로', '비도덕적인' '합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등등의 문구가 등장하더군요. 그런데 과연 MBC와 KBS는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을까요?

[상당히 긴 글입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분들은 중간을 건너뛰고 맨 끝부분이라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만 보고 엉뚱한 얘기를 하시는 분을 최소한으로 줄여 보려고 드리는 충언입니다. 물론 세상 모든 얘기를 석줄로 요약할 수는 없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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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온 지상파 3사간 주요 스포츠 중계권 분쟁의 역사가 생각나서입니다. 그 역사는 바로 배신과 반목, 뒤통수 때리기와 공허한 합의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번 WBC 대회의 지상파 중계가 무산 위기에 있었을 때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 분들이 많을테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WBC, 결국 실속은 방송사 몫  http://fivecard.joins.com/330

물론 이 내용은 야구에 대한 부분만 정리한 겁니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경기까지 합하면 배신의 역사는 뎌욱 화려해집니다. 어느 때건 세 회사는 모여서 합의를 하고, 그중 누군가는 합의를 깨고 뒷거래를 성공시킨 다음 혼자 샴페인을 터뜨리고, 나머지 두 회사가 만나 그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끝없이 되풀이된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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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중계권에 대해 최근 썼던 글입니다.

제목: 올림픽 중계권:

손기정의 마라톤 금메달로 기억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기록 영상 면에서도 두 가지 신기원을 이뤘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여류 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기록영화 '올림피아' 2부작은 지금까지도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교과서로 꼽힌다. 게다가 이 대회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중계방송된 올림픽이기도 하다. 당시 독일 제3제국은 좀 더 많은 국민에게 올림픽의 열기를 전달하기 위해 폐쇄회로 TV를 이용해 베를린 시내 곳곳으로 경기 영상을 내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올림픽의 TV 중계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6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쿼밸리 겨울올림픽 때 마침내 올림픽 중계권의 거래가 시작됐다. 당시 미국 CBS는 독점의 대가로 5만 달러를 지불했다.

50년 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독점 중계를 위해 NBC는 20억 달러의 거액을 베팅해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하지만 NBC는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NBC가 위축된 사이 ABC와 ESPN의 모기업인 월트 디즈니사는 2014년 겨울올림픽과 2016년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해 '올림픽은 NBC'라던 아성에 흠집을 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 국내 중계를 SBS가 독점하면서 KBS와 MBC는 SBS의 부도덕함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주요 스포츠 이벤트 때마다 중계권과 광고 수입을 둘러싸고 3대 지상파 방송사가 보여준 배신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피해자들'이라고 그리 떳떳해 보이지는 않는다. 독점 중계는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위협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공동 중계를 한답시고 똑같은 메달 유망 종목만을 온 채널에서 중복 중계하며 시청률 경쟁에 매달렸던 전력을 감안하면 다양한 시청자의 기호 충족이란 명분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도 느끼게 된다.

시청자들은 지난해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를 앞두고 광고 물량을 기대할 수 없다며 지상파 3사가 일제히 중계 불가 방침을 내세웠던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내세우는 국민의 시청권이란 방송사의 수익이 동반될 때에만 고려 대상이 된다는 것을 지나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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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MBC가 SBS의 독점 중계를 규탄한다며 발표한 성명입니다.

공영방송 MBC는 상업방송 SBS의 독단적 동계올림픽 중계 결정으로 중계방송을 포기한다. 또 SBS의 비협조적 보도 영상 제공 계획으로 인해 올림픽 보도 역시 완벽한 뉴스 보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MBC는 비록 중계방송은 할 수 없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볼 권리를 위해 올림픽 뉴스 보도에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취재팀 2개를 꾸릴 수 있도록 SBS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SBS 스포츠국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보도와 관련해 KBS와 MBC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SBS는 일체의 협의 없이 "올림픽 영상 1일 2분 제공, 현지 취재 ID 3장"으로 제한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이는 15일간 열리는 올림픽 뉴스 보도를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게 하는 것으로, 이정도 영상 분량으로는 하루에 뉴스 아이템 하나 이상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SBS도 주지하는 일이기에 노골적 타 방송사 방해 의도가 명백하다고 본다.

 SBS는 외부로는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내심 MBC와 KBS에 뉴스조차도 협조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에 MBC는 공영방송사로서 비통한 심정으로 국민 축제인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 관해 중계방송에 이어 어쩔 수 없이 뉴스 보도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MBC는 한국 대형 스포츠 중계 사상 유례없는 이같은 사건의 원인제공자는 SBS이고 그동안 방송사 합의사항을 처음부터 준수할 생각 없이 무성의한 협상 태도로 일관한 의도적 결과라고 판단한다.

 MBC와 KBS는 공동으로 마지막까지 SBS와 협상 타결을 위해 방송법 및 방송법 시행령에 의거 방송통신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의뢰했으나 이마저도 SBS가 분쟁조정 자체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해 협상은 무산되었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는 “신고”에 따른 조사만 하고 있다.

SBS의 이러한 비도덕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MBC는 여전히 올림픽, 월드컵이 국민 관심이 지대한 국가적 행사로서 다른 지상파 채널에서도 공평하게 방송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후 남아공 월드컵 방송권 재분배에서는 SBS가 합의 위반과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응해 합동방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MBC도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한국 방송계에 SBS처럼 방송3사 사장단의 합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또한 국민 축제인 올림픽과 월드컵이 보편적 시청권을 외면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민영방송사의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 그럼 이번엔 지난 2000년 KBS는 어떤 입장이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매일경제신문의 2000년 11월 9일 보도 내용입니다. MBC가 박찬호가 등판하는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독점중계권을 확보했다는 데 대한 KBS의 분노 넘치는 반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0065320)

MBC의 박찬호 경기 독점중계권 계약에 대해 막대한 외화낭비라는 방송가의 비난이 높다.

KBS는 9일 이규창 스포츠국장 명의의 'MBC의 미 프로야구 독점계약에 대한 KBS의 입장'이란 제목의 공식성명을 내고 "MBC가 3200만달러 (한화 약 384억원)라는 많은 외화를 지불하면서 미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을 독점계약한 것은 방송사간 과열 경쟁을 막기위해 공중파 3사가 합의·시행하고 있는 스포츠 합동방송 시행세칙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KBS는 또 "방송 3사가 합의한 시행세칙 중 합동방송대상 6항에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리그도 포함돼있다"면서 "지난 97년에도 합동방송대상인 월드컵 축구 지역예선전을 단독 방송했던 MBC가 이번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합동방송세칙을 백지화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KBS가 이같이 공식성명까지 내게된 것은 지난 7일 MBC가 7일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주관하는 MLBI(Major League Baseball International)와 내년부터 4년간 지상파 케이블 위성을 포괄하는 독점 중계권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데 따른 것이다. 계약관행이라며 MBC측가 정확한 계약금액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방송가에서는 대략 3200만달러(한화 약 3840억원)선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지난 97년 KBS가 박찬호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연간 30만달러를 지불했고 이듬해iTV가 중계에 나서면서 100만달러(98년)로 올려놓은 이래 99년 150만달러, 2000년 300만달러를 지불한 점을 감안하면 중계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셈이다.

이에따라 방송가 안팎에서는 MBC가 지나치게 높은 금액으로 계약해 결과적으로 막대한 외화 손실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내 방송사들은 중계권 확보 과열경쟁에 따른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98년부터 KBS MBC SBS 방송3사가 메이저리그 경기등을 합동중계키로 합의, 시행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MBC가 이를 무시하고 단독 중계키로 했다는 점에서 경쟁사의 비난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인 MBC가 많은 돈을 지불해가며 굳이 독점적 중계권을 확보해야 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이에따라 KBS는 "MBC의 합동방송 참여를 제한하는 문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할 것도 없이 대회 이름만 바꾸면 정말 쌍둥이같은 성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주요 국제경기가 벌어질 때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원인은 간단합니다. 스포츠 중계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중요성이 큰 경기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누구도 중계방송에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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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한 방송사가 출혈을 각오하고라도 단독 중계를 감행한다면, 누구도 그걸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 것 뿐입니다. SBS는 설사 이번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이 그 자체로서는 이익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 물론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 장기적으로는 큰 소득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에는 방송사 이미지나 위상의 제고라는 무형의 소득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에 깨졌다는 3사 사장 합의를 볼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서상으로 볼 때, 만약 3사 중 어느 하나가 합의를 깼을 경우에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가수 한 명의 전속 계약에도 약속이 깨졌을 경우에는 위약금을 문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세상이란 점을 감안할 때 참 순진한 일입니다. 더구나 이미 몇번씩 서로 배신하고 배신당한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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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는 한겨레신문 기사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147388.html )

그러다 보니 이번에 '배신당했다는' MBC와 KBS가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것 역시 '누가 깨도 깼을 합의'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만약 그 합의가 전제하고 있다는 '월드컵/올림픽 특별위원회'가 약속을 깬 방송사의 중계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어도 이런 식의 배신이 가능했을까요. 설마요. 거액의 중계권료를 내고도 방송을 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면 누가 무리를 하겠습니까.^^

네. 저도 설마 그럴리는 없을 거라고 보지만, 지금까지 배신의 역사가 워낙 장구하다 보니 이런 의심까지 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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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결론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싼 값에 중계를 사다 보여준다면 국민에게도 좋고, 그 이전에 방송사의 수지를 위해 좋은 일일 겁니다. 일각에선 경쟁으로 중계권이 올라가면 국부 유출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싸게 사고 싶은 것은 누구도 아닌 방송사들입니다. 그런 방송사들이 출혈경쟁이라며 돈을 '지를'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그걸 업계 밖에서 아무리 경쟁하지 말고 싸게 사라고 강요한들, 실제로 심각한 징벌 방안(예를 들면 방송 중계권 무효화와 같은)이 없는 한 '배신'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솔직히 좋은 콘텐트가 있고 그걸 확보하려는 경쟁자가 있는 누가 그 경쟁을 막을 수 있을까요.

[물론 정말로 비판자들이 '국부유출'을 경계하는 거라면, 각 방송사들이 'IOC(혹은 FIFA)가 너무 비싼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적정 중계권료로 중계권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올해 월드컵 중계방송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국부 유출을 막으려는 저희 방송사들의 충심을 시청자 여러분들이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성명을 발표할 때 온 국민이 박수를 보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건 그리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듯 합니다. 오히려 '시청료까지 걷어가면서 (혹은 광고도 죽어라고 틀어대면서) 월드컵 중계도 안 하냐, 이 돈먹는 하마같은 놈들아'라는 욕설이 나오겠죠. 참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공동 중계랍시고 캐스터와 해설자만 다른 방송을 세 채널을 통해 중계하는 꼴은 제발 그만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해설자와 캐스터'의 선택이 '시청자의 선택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시청자의 선택권은 "올림픽 중계를 볼 것인가, '개그 콘서트'를 볼 것인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볼 것인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월드컵 시즌이라고 월-화-수-목 드라마가 올스톱되는 걸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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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시청률 선두를 달리고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일러주는 현상이라고 할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부'와 '공부법' 혹은 '명문대 입학'에 관심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일각에서는 이 드라마를 사회악의 근원처럼 규정하곤 합니다. 혹자는 김수로가 연기하는 강석호 변호사의 말이 독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이라고 말하곤 하죠.

반대 논리는 말 자체로는 그럴듯합니다. 지금도 입시 지옥에다 과잉 경쟁으로 자살까지 하는 학생들도 나오는 판에 더 시험 시험 하는게 말이 되는 얘기냐, 그리고 결국 구조적으로 잘사는 집 애들이 좋은 대학 가는게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공부 공부 하는 드립으로 '네가 좋은 대학 못 가는 건 네가 노력 안 해서 그런거야'라는 식으로 호도한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들이 모두 맞는다고 일단 인정해 봅시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현실이 그러니 그냥 손 놓고 공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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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 놨던 얘기부터 한번 리뷰해 보겠습니다. 그냥 고리타분한 얘기만은 아닙니다.

제목: 공부의 신

공부에는 왕도가 있을까. 이 답은 공부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시험 공부’로만 한정한다면 답은 ‘있다’로 바뀐다.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으로는 17세기 시인 김득신이 첫손에 꼽힌다. 베스트셀러였던 『미쳐야 미친다』에 따르면 김득신은 ‘백이전’을 11만3000번 읽은 것을 비롯해 유가의 주요 경서들을 거의 수만 번씩 읽었다고 전해진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지나치게 충실히 이행한 셈이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은 이런 공부 방법에 고개를 저었다. ‘하루에 100번씩 3년 꼬박 읽어야 10만 번인데 그 많은 책을 모두 만 번 이상 읽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는 이유다. 다산은 또 증언(贈言)을 통해 제자들에게 과거 볼 것을 적극 권유하면서 시험용 공부법을 일러 주기도 한다. 고문(古文·고전)에서 시작해 그 다음엔 이문(吏文), 그 다음엔 과문(科文)으로 나아가야 빠르다는 것이다. 이문은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 쓰이는 중국식 문장, 과문은 과거 시험용 문장을 말한다.

심지어 다산은 ‘(공부에 있어)너희들은 쉬운 지름길을 택할 것이요, 울퉁불퉁하거나 덩굴로 뒤덮인 길로는 가지 말라(諸生須求捷徑去 勿向犖确藤蔓中去)’는 말까지 했다. 좋은 성적을 내는 요령이 있다면 따르기를 피하지 말란 얘기다.

요즘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이 화제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교사도 아닌 변호사 강석호(김수로)가 다섯 명의 열등생을 조련해 1년 안에 국립 명문대인 천하대(말하자면 서울대)에 합격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일각에선 학력만능주의와 사교육 열풍을 부추긴다며 비판하지만 학부모들은 ‘룰에 불만이 있으면 룰을 만드는 사람이 돼라’는 강석호의 독설에 ‘부모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준다’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천하대에 간다 해서 그다음의 인생이 공짜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도할 것이 성적 향상뿐일 리는 없다. 하지만 별 희망 없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고 가르치는 드라마를 놓고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정작 고쳐야 할 것은 명문대를 나와서도 다시 로스쿨이나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줄을 서게 하는 진짜 세상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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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이기 때문에 못 다 들어간 설명을 덧붙입니다. 증언(贈言)이라는 것은 여유당전서의 다산시문집에 전하는 다산 정약용의 문건 중 '제자들에게 주는 글'이라는 부분을 말합니다.

유배를 간 다산이 현실 정치에 대한 염증을 드러냈을 것도 당연지사. 다산이 이렇게 되는 걸 본 후학들에게도 현실은 멀리 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 역시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산은 학문에만 틀어박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길을 택하라고 후학들에게 권유합니다.

魯之?鄒之翁。當危亂之世。猶復轍環四方。汲汲欲仕。誠以立身揚名。孝道之極致。而鳥獸不可與同?也。今世仕進之路。唯有科擧一蹊。故靜菴退溪諸先生。皆以科目拔身。誠知不由是。卒無以事君也。

노(魯) 나라의 공자와 추(鄒) 나라의 맹자께서는 위란(危亂)의 세상을 당하여서도 오히려 사방(四方)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벼슬하려고 급급하였으니, 진실로 입신양명(立身揚名)이 효도의 극치이고, 새나 짐승과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란 과거(科擧) 한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으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호)ㆍ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호) 등 여러 선생들께서도 모두 과거를 통하여 발신(拔身)했으니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끝내 임금을 섬길 방도가 없음을 알겠다.

즉 배운 사람으로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불만이 있으면 직접 조정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가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강석호 아저씨의 말과 본질적으로 같은 얘깁니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다산은 '과거를 보는 데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까지도 소개하고, 위에서 보듯 시험 준비를 하는데 있어 지름길이 있으면 지름길로 가라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흔히 '첩경'이라는 말을 무슨 반칙처럼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조언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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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다산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했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 분들에게 질문합니다. 강석호가 강당 가득 모인 병문고 학생들에게 외치는 '너희같이 모자란 놈들일수록 명문대를 가야 한다' '평생 똑똑한 놈들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으려면 너희도 공부해라' '이 세상의 룰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너희가 직접 룰을 만드는 편이 되어라'라는 말이 기득권의 메시지를 그대로 설파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럼 '그것이 기득권의 논리이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주장이라면, 대체 학교에서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외에 뭘 할까요. '공부의 신'이 전교생 모두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드라마일까요? 그리고 만약 공부 외에 다른 무엇을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입시 준비를 하는 만큼의 노력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요?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교육 정책 중에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시험이 어려워서 공부하느라 자살하는 학생이 나온다고
입시 문제를 쉽게 냈습니다. 평균 점수는 올라갔지만, 변별력이 없어지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대학 가기 어려워서 좌절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대학 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방방곡곡에 대학이 생겼고, 대학에 가고 싶은데도 경쟁에서 뒤처져 못 가는 학생은 대폭 줄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대학은 입학생이 모자라 문을 닫을 지경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대졸자가 다 취업할 곳은 없었습니다. 우편 집배원이나 환경미화원에도 대졸자가 지원하는 나라가 정상일까요?

공부 공부 하는 사람들이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든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경쟁은 좋은 대학 가려는 학생들만 하는게 아닙니다. 적성에 안 맞는 공부보다 즐겁고 좋은 노래와 춤을 연습한다 해서 모두 소녀시대나 2PM 멤버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직업이든 남들보다 더 잘 하려는 의지는 반드시 경쟁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든 남들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은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뭐든 좀 더 잘 해보려는 의지가 없다면, 남보다 못한 대우도 감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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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여론에 따르면 곤란하다? 10대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자? 10대들에게 국민투표를 시키면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고 입시 없이 대학가게 해 달라'는 것이 아마 9대1 정도로 통과될 겁니다. 과연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일지는 정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석학도, 어떻게 교수가 됐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도 모두 고등학교 한 반처럼 1등부터 꼴찌까지 천지 차이가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이 좋은 대학일까요.

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부잣집 아이들만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교육 열풍'도 잡아야 하고, 그렇다고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너의 인생에 좀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얘기해서도 안 되고, 그래도 '국가 경쟁력을 위해 인재는 양성해야' 한다면(네. 낱개로 흩어 놓으면 모두 '지당하신 말씀'들입니다), 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정작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내놔야 할 인재들이 엔지니어로는 미래가 없다고 한의대나 의대, 치의학 대학원에 다시 줄을 서거나 외국 회사로 빠져나가 버리는 세상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대 커트라인이 다 끝난 다음에 서울대 공대 커트라인이 시작되는 세상이죠. 인문계 학생의 대다수가 '고시에 붙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거나, 고시 합격을 하지 않으면 공무원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목을 매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바꾸지 않고 아이들에게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백날 얘기해 봐야, 지레 포기하거나 너무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루저로 규정하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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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가 골든글로브 극영화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쓸었군요. 이렇게 되면 아카데미에서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이번엔 "나는 황제다!"라도 나오려나요?

'아바타'는 역대 최고 흥행 영화 순위에서도 2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지난 주말까지 '아바타'는 전 세계에서 16억달러, 한국 돈으로 약 1조 8천억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죠. 이로써 제작비가 5억달러라서 어지간한 흥행으로는 영화사가 망할 지도 모른다는 쑥덕거림도 물건너간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이미 미국 국내 흥행만으로도 본전은 뽑을 전망입니다.

사실 미국 국내 흥행으로 4억9천만달러를 번다는 건 아무리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도 쉽게 기대할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역대 미국내 흥행 영화 가운데 3위에 해당하는 숫자였기 때문이죠. 미국 국내 흥행만으로 5억달러 수입을 넘긴 영화는 지금까지 단 두편 뿐입니다. '타이타닉'과 '다크 나이트'가 그 영화들입니다.

16억달러로 세계 흥행 순위 2위에 오른 '아바타'보다 앞서 있는 영화 역시 '타이타닉', 단 한편 뿐이죠. 현재 기록은 18억달러로 2억 달러만(?) 더 벌면 순위가 바뀔 전망입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세로 보면 카메론의 기록을 깰 사람은 카메론 뿐인 듯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영화는 왜 이리 돈을 긁어 모으고 있는 걸까요. 흥행 성적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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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흥행 순위 톱에 올라 있는 영화들은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들입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큰 성적을 내지 못하고 세계 순위에 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전체 흥행 성적에서 미국내 흥행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자료는 boxofficemojo.com의 것을 이용했습니다.

worldwide
1 Titanic Par. $1,842.9 $600.8 32.6% 1997
2 Avatar Fox $1,602.2 $491.8 30.7% 2009
3 The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NL $1,119.1 $377.0 33.7% 2003
4 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an's Chest BV $1,066.2 $423.3 39.7% 2006
5 The Dark Knight WB $1,001.9 $533.3 53.2% 2008
6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WB $974.7 $317.6 32.6% 2001
7 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 BV $961.0 $309.4 32.2% 2007
8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WB $938.2 $292.0 31.1% 2007
9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WB $929.4 $302.0 32.5% 2009
10 The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NL $925.3 $341.8 36.9% 2002^

(표 보시는 법: 영화 제목 - 영화사 - 세계 흥행 - 미국내 흥행 - 비율 - 제작 연도)

이 영화들이 역대 흥행 순위 탑 10에 오른 작품들입니다. 현재까지 미국내 흥행에서는 '아바타'를 앞서고 있는 '다크 나이트'가 세계 흥행 순위에서는 5위로 처져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미국내 흥행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흥행의 비율입니다. 세계 흥행 톱10에 들기 위해선 아무래도 미국내 흥행의 비율이 40% 이하라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일한 예외가 '다크 나이트'입니다. 미국 내 흥행이 전체 흥행의 53.2%나 됩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미국 밖의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훨씬 이 영화에 덜 열광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탑10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어떤 영화들이 국제적인 흥행 대작이 될 수 있는지 쉽게 보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3편,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2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2편이나 포함됐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이면서 판타지적인 소재, 그리고 온 가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나 '아바타'의 경우는 저 영화들 가운데서도 가장 미국내 흥행 비율이 낮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30.7%로 20%대까지 떨어질 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영화 관객들이 상당히 이례적으로 환호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뭐 CG가 뛰어나니, 3D가 예술이니, 개량 서부극의 스토리이니, 뻔한 얘기는 일단 빼겠습니다. 지난번에도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하실 분들은 '아바타를 보는 네가지 방법'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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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 중심 세계관으로부터의 탈피

겉으로 중시하고 있든, 속에 깔려 있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모두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바타'는 제목부터 인도 신화를 염두에 두고 있고, 미국 중심의 가치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추구하는 미국 내 식자층의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적으로 충실한 영화인 셈입니다.


2. 현실에 대한 충실한 반영

세계 대부분의 문명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진짜 자아와 사이버 자아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절묘한 반영이 더욱 공감대를 크게 합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억지로 '가상 세계'로 부터 떼어 놓아야 한다는 경험, 목욕이나 식사, 면도 등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가끔씩 강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에 대한 동경 등의 현상들에 대해 그리 낯설지 않을 겁니다. (미디어에 의해 자주 보도되는 내용이기도 하죠.^)

이런 두 가지에 대해서는 중앙일보 '분수대'에 이미 써 놓았던 글이 있습니다. 그냥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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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바타

세계 모든 신화에서 신들은 인류 역사에 개입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은 때로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하거나 인간 여인들과 관계를 갖고 수많은 반신(半神)과 영웅들을 낳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비해 힌두 신들은 아예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 인간이나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 이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바타(avatar), 혹은 아바타라(avatara)다. 특히 3대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아바타들은 인류를 위해 정의와 평화를 수호해왔다. 영웅 라마도, 무적의 전사 크리슈나도 비슈누의 아바타다.몸은 인간이되 권능은 신 그대로이므로 평범한 인간은 감히 상대가 될 수 없다.

힌두 최고의 전쟁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서도 크리슈나의 동료나 적수들은 대부분 다른 주요 신의 아바타다. 물론 그중에서도 최고신인 비슈누의 아바타를 이길 존재는 없다.이런 어원을 가진 아바타는 오늘날 사이버 공간에서 수많은 네티즌의 분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싸이월드 같은 소셜(social)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리니지 등의 게임 속 세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바타가 인간 주인과는 별개의 모습과 인격으로 존재한다.'타이타닉'의 거장 제임스 캐머런이 1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아바타'도 결국 제2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 화면이 6대4 정도로 배합된 '아바타'는 새로운 형식과 시각적인 완성도로 찬탄을 자아내는 동시에 현실을 빗댄 우화로서도 풍부한 함의를 갖고 있다.

주인공 제이크(샘 워딩턴)는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지만 원주민 아바타에 접속해선 용감한 전사로 변신해 비룡을 타고 모험을 펼친다. 그에게 이런 이중의 삶은 롤 플레잉 게임에 푹 빠진 오타쿠의 상황과 흡사하다. 인간으로 있을 때에도 목욕이며 식사를 내팽개친다든가, 현실과 게임 속을 혼동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게임 중독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이기도 하다.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가 지구인이면서 아바타의 정체성을 선택해 인간과 싸운다는 설정은 자아와 제2의 자아가 반드시 순행하지는 않는다는 현실과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을 준다. 애당초 신화에서도 모든 아바타가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슈누의 아바타는 10개라고도 하고 22개라고도 한다. 공통적으로 마지막 아바타인 칼키(Khalki)는 약 43만 년 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종말을 선고할 존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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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3. 합법적인 반미 영화로서의 가능성

지구상 어디를 둘러봐도 미군(?)을 학살하면서 관객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영화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 국내에서는 더욱 당연한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아바타'는 그걸 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상으로는 애매하게 이들은 정규군이 아니며 기업에 의해 구성된 용병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렇다 해도 '미국어'를 쓰는 병사들이 퍽퍽 죽어 나가는데 관객이 반대편을 응원한다는 것은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카메론의 영화 세계로 표현하자면, 에일리언과 지구인이 사투를 벌이는데 관객이 에일리언을 응원하고 있는 격입니다.

어찌 보면 교묘한 속임수이기도 하지만, 미국 바깥의 관객들이 볼 때 이런 설정은 '우리가 항상 참일 수는 없다'는 미국내 지식인들의 반성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미 미국 내의 보수층은 이 영화가 '매우 위험한 선전물'이라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죠. 물론 이런 반응은 제작사나 카메론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일테고, 영화의 흥행에는 훨씬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미국 내의 보수집단이 이 영화에 대해 저주를 하면 할수록, 전 세계 흥행 성적은 더욱 솟구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 그런데 '아바타'의 속편이 같은 설정으로부터 이어진다면 과연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인류와 나비족의 전면전이 예상되는데, 대체 카메론 선생은 과연 어떻게 이 줄거리를 풀어나갈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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