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사실 MBC TV '글로리아'는 큰 기대작은 아니었습니다. 주말드라마에서 계속 재미를 보지 못한 MBC가 뭔가 색다른 시도를 한다는 정도의 생각이었고, 주말드라마의 막장화에 재미들린 KBS는 유부남을 유혹하는 섹시한 독신녀의 아슬아슬한 플레이로 승부를 건 '결혼해주세요'로 시청률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글로리아'는 신선하면서도 짭조름한 재미로 눈길을 끌기 시작했고, 이제 시청률 두자리를 넘어서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재벌 세컨드의 아들, 재벌 세컨드의 딸, 구질구질한 달동네, 욕쟁이 할머니, 소위 말하는 루저들의 행진입니다. 그런데 문득 두 편의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바로 MBC의 전설적인 히트작 '서울의 달'과 KBS의 히트작 '파랑새는 있다'입니다.


김운경 작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두 편의 드라마는 모두 찌질하기 짝이 없는 서민 군상들의 정말 하찮은 고민과 생활고를 그려내며,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 호평받았습니다. 그 직후에는 이 분위기에 편승한 모방작들이 여러 편 등장했지만, 한동안 이런 배경의 드라마는 보기 힘들었죠.

'글로리아'는 거기에다 삼류 나이트클럽이라는 배경까지 보탰습니다. 배경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만 설명.

김밥장사에서 신문배달까지 생계를 위해 안 하는게 없는 억척녀 진진(배두나)는 달동네에서 언니 진주(오현경)와 함께 힘겹게 살아갑니다. 진주는 한때 신인상을 싹쓸이하던 유망한 가수였지만 사고로 인해 다섯살 지능을 가진 장애인이 됩니다.

이들 주변에 진진의 소꼽친구인 동아(이천희), 동아의 조카 어진(천보근),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억척 할머니(김영옥)이 포진해 있고 저 바깥 세상에는 재벌가의 서자인 강석(서지석)과 재벌가의 서녀 윤서(소이현), 강석의 생모이자 왕년의 인기 가수였던 정난(나영희) 등이 이들을 지켜봅니다. 이들을 엮어주는 틀이 바로 나이트클럽이죠. 진진과 진주의 삶의 터전인 나이트클럽 무대에 정난이 서게 되면서 두 세계가 어우러집니다.


물론 '글로리아'는 태생적으로 판타지일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전제나 과정 없이 어느날 우연히 무대에 선 진주가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나이트클럽 가수가 되고, 정난과 함께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고, 아마도 드라마 뒷부분에는 뭔가 진짜 가수가 될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는 별 가능성이 없는 일이 되겠죠. 뭐 더 따지면 윤서와 동아, 강석과 진진의 관계 역시 꿈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라고는 해도 그를 통해 비쳐지는 세상이 진짜라는 건 '글로리아'의 큰 매력입니다.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어둡게만 그려질 필요는 없겠죠. 그러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구성이며 주고 받는 대사의 걸찍한 맛에서 '글로리아'는 대단히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 매력의 한복판에는 배두나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일찌감치 연예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배두나의 '배두나스러움'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튀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수십년 더 연기 활동을 하겠지만, 이미 배두나라는 배우는 절대 악역이나 사려깊은 배신자 역할, 혹은 재벌가의 상속녀 같은 역할은 맡기 힘들 듯 합니다. 그 개성이 너무나 확연하게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루저의 여신' 정도라고나 할까요.

잘 나가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뭔가 세상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고, 부모나 가족으로부터도 항상 최우선의 자리는 공부 잘하고 싹싹한 언니나 동생에게 양보한 듯한 인물. 자기 혼자 잘 되기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잘 되는 길을 택하지만 그 보상은 충분히 받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할 때 배두나의 가치는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느끼는 관객들이 항상 존재해왔고, 그 관객들이 배두나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작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도 배두나는 세상의 약삭빠른 이치와는 좀 거리가 있는, 정의감 넘치는 영어선생님 역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 뿐만이 아니죠. 배두나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대개 올곧게 살아가려 하지만 아무래도 영악하지는 못하고, 다소 어리바리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사물을 보는 데에도 뭔가 독특한 자기만의 시각을 갖고 있고,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그런 입장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는 인물이죠. 

'플란다스의 개'며 '고양이를 부탁해'(위 사진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 '청춘'이며 '괴물' 등 배두나의 필모그래피들을 생각해보시면 이런 특징은 쉽게 추려집니다. 드라마에서도 메가 히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없지만 '학교' 이후 배두나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쨌든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말하자면 최근 들어 마이너리티(인종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역할로 각광받고 있는 일본 배우 우에노 주리의 선배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배두나는 감히 '루저의 여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포스를 갖췄습니다.

어찌 보면 배두나는 극중의 배두나와 현실의 배두나를 보는 사람들이 혼동할 정도의 독특한 개성을 차지했습니다. 약간 높은 목소리와 논리보다는 어지러운 말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캐릭터죠. 머리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사람들과의 의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의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건 100가지 변신을 시도하는 연기파 배우들에게는 미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장점일 수도 있죠. 좋아하는 스타에게서 기대하는 모습을 늘 볼수 있으니까요.



미니시리즈라면 이야기가 한창 중반이겠지만 50부작인 '글로리아'는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설정상 이 주인공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한참 가시밭길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의 독특한 매력은 최근 주말 드라마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듯한 불륜 가족 드라마보다 훨씬 가치 있는 걸로 느껴집니다.


P.S. '글로리아'에 대한 최근 기사 중에 폭소를 자아낼만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배두나가 부르는 노래 '글로리아'가 아바의 '마마 미아'를 편곡한 거라는 주장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겁도 없이 이런 주장을 하나 잠시 아연했습니다.

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아무래도 '글로리아'는 로라 브래니건이죠. 공연장 천장을 뚫어 버릴 듯한 폭발적인 가창력은 지금도 필적할 가수가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화면 맨 위에 추천란이 있습니다.


728x90
SBS TV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신민아는 처음부터 비교될만한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었죠. 이미 이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부터 신민아의 구미호 캐릭터가 곧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캐릭터와 비슷한 것일 거라는 추정이 나왔고, 기자간담회때 방송된 영상을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추측을 했을 겁니다.
 

이때문에 신민아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졌고, 신민아는 "일부 장면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정 반대의 캐릭터"라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물론 신민아가 그 자리에서 저렇게 대답하는 건 정답입니다. 행여 그런 자리에서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작가나 제작진에 대한 결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신민아에게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이하 여친구)' 제작진에게든, 신민아나 이 드라마가 전지현이나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자꾸 비교되는 건 나쁠 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신민아는, '포스트 전지현'으로 지목된 적이 있었죠.



지난 2008년, '엽기적인 그녀'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이 또 한편의 로맨스 판타지 영화를 내놨습니다. 제목은 '무림여대생'. 흥행 성적은 전국 관객 동원이 10만에 미치치 못하는 재난성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는 사뭇 흥미로운 점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신민아는 전통의 비전 무술가의 후계자입니다. 차에 치어도, 윗집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망치를 머리에 맞아도 끄떡 없는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죠. 그런 신민아가 꽃미남 대학생 유건에게 반하고, 남자에게 보호받는 사랑스러운 여자 행세를 하기 위해 무공을 감추고... 그러면서 신민아만이 상대할 수 있는 악의 무공 고수가 등장해 이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설정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만, 그리고 신민아의 청순미는 이 영화에서도 반짝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대로 펼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전개가 관객의 손바닥 안에서 너무 오래 맴돌기만 합니다.

물론 이건 결과론이고, 이 영화를 보면 신민아를 '포스트 전지현'으로 육성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게 여기저기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이 영화의 무술 여대생은 엽기적인 그녀의 변형입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남자에 비해 압도적인 전투력(엽기녀 전지현은 초인적인 권능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말빨과 폭력성으로 남자주인공 차태현은 물론, 주위 사람들이 감히 대들 수 없는 캐릭터였죠^^)을 가진 신비로운 여자라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찰랑찰랑한 생머리를 나부끼는 청순한 외모에서 가공할 전투력이 뿜어나올 때, 그 위력은 배가됩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으로 남자 주인공을 당황하게 하고, 그것이 웃음의 코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는 살짝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할 때에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 스타일은 그대로 '여친구'로 계승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엽기적인 그녀'에서 바로 '여친구'로 이어지기보다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무림여대생'을 거쳐 '여친구'로 넘어오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죠. 아울러 '여친구'의 구미호에게서 같은 홍자매의 작품인 '환상의 커플'에서 본 한예슬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도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내용 뿐만 아니라 연출 역시 그렇습니다. 19일 방송된 '여친구'에서 나풀거리며 이승기의 뒤를 따라 뛰는 신민아의 모습이나, 이승기의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검술 액션 신 등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재현되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제작진도 '엽기적인 그녀'와 '여친구'의 관계에 대해 그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신민아가 두 캐릭터를 '정 반대의 캐릭터'라고 말한 것도, 차태현을 좋아하지만 차태현으로부터 결국을 멀어지려고 스스로 마음 먹는 엽기녀 전지현과는 달리, 훨씬 마음 속 깊이 이승기를 좋아하지만 오히려 이승기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구미호의 성격 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부분에서 충분히 납득할만 합니다. 하지만 일단 '인간과는 전혀 사고방식이 다른 구미호가 인간 세계에서 멀쩡한 인간 남자와 사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드라마의 등뼈 자체가 '구미호의 엽기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캐릭터의 차이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드라마 '여친구'의 본질적인 유사성에 비하면 상당히 지엽적인 부분입니다.



어쨌든 이미 '원조 청순 글래머'로서, CF 퀸으로 자리를 굳힌 신민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방의 히트작'이었을 것이고, 이미 수년 전부터 '포스트 전지현'의 강력한 후보였던 신민아에게 적당한 것 역시 '엽기성'이 강조된 작품일 것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적 선택입니다. 그런 이유로, 영화 '무림여대생'에 이어진 드라마 '여친구'는 그 전략의 두번째 도전인 셈이죠.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이 두번째 도전은 상당히 성공적일 듯 합니다. 누가 봐도 긴 머리를 나풀거리는 신민아가 이 드라마에서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물론 김탁구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이 성공이 '대성공'으로 끝날 지,  '의미 있는 성공'에 그칠 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요.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KBS 2TV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 윤시윤에 이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예는 구마준 역을 맡고 있는 주원입니다. 그리고 그의 프로필을 보면 2006년 아이들 (idol) 그룹 '프리즈' 출신이라는 이력이 나옵니다. 1987년생인 주원이 19세때의 일이죠. 그리고 나서 주원은 뮤지컬 쪽으로 진출해 경력을 쌓은 뒤 이번에 드라마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비와 붐이 멤버였던 '팬클럽'이나 원더걸스의 유빈과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멤버였던 '오소녀' 처럼 제대로 활동다운 활동을 하지 못한 그룹들도 다 기억하는 아이들 세계에서, 이상하게도 프리즈라는 그룹에 대해서는 '도대체 기억이 없다'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간단히 말해 이 프리즈는 정상적인 아이들 그룹과는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프리즈라는 그룹은 지난 2006년 초, 문준원(19, 이상 나이는 모두 당시 발표 나이), 김윤미(23), 한진희(20), 이경은(20), 황바울(21)이라는 다섯 멤버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여자가 3명, 남자가 2명이라는 구성은 지금으로선 꽤 희한하게 보이지만 서지영과 이지혜 외에도 여성멤버 1명이 더 있었던 초기 샵이 이런 구성이었죠. 외양으로는 이상할게 전혀 없었습니다.


(네. 이 무렵에도 당연히 강동원 얘기가 나왔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프리즈가 활동하던 공간은 쇼 프로그램도,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비바 프리즈'라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었다는 거죠. 2006년 11월부터 SBS에서 방송된 교육용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프리즈는, 가수로서 활동하는 그룹이라기보다는 '비바 프리즈'의 출연 캐릭터 팀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데뷔 초기부터 '아이들 그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키즈 엔터테인먼트 그룹', 혹은 키즈 싱어라는 등의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실제로 만나 본 이들은 꽤 가능성을 보이는 팀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준원이 가장 눈길을 끌었고, 그저 '미인대회 출신'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경은이라는 멤버가 있었죠.



이 친구도 연기자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케이블TV 드라마 '하자 전담반 제로'에 출연한 이경은과 동일인물입니다. 미스코리아 2005년 선 출신이죠.



아무튼 이런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프리즈는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불행히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만, 멤버들이 원했던 것과 회사가 원했던 것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듯 합니다. 팀 해체와 함께 멤버들은 각각 자기 길을 가게 되죠.

그리고 본명 대신 주원이란 이름으로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던 문준원은 '제빵왕 김탁구'를 통해 안방극장에 안착하게 됩니다. 좋은 출발입니다.



당시 프리즈 활동 때의 영상입니다. 주원이나 이경은이나 지금보다는 조금 살이 붙은 듯한(젖살?) 모습이지만,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튼 유망주들의 변신과 과거는 늘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실 2006년 초에 이들을 불러다 놓고 인터뷰를 했을 때, 방송 카메라도 아닌 스틸 카메라 앞에서도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을 볼 때에는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첫발을 잘 디딘 연기자 주원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공할지도 궁금합니다.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바로 아실수 있습니다.


728x90

비정상적인 연애 관계들이 TV 드라마를 점령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KBS 2TV '결혼해 주세요'에서 이종혁과 이태임이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대학 교수이며 유부남인 이종혁에게 아나운서인 이태임이 계속 눈길을 주고, 결국 야한 수영복 차림으로 혼자 수영을 즐기는 이태임을 이종혁이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결국 다가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뭐 불륜은 그냥 하나의 소재일 뿐이고, 이런 드라마가 나온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불륜'을 다루는 시선이 너무도 원초적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꽤나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보다 훨씬 쇼킹한(장면이 아니더라도) 드라마 속 설정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번은 MBC TV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의 박상원과 조윤희. 실제로도 23년차인 이들은 극중에서도 20년 차이가 넘는 연인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박상원은 부담스러워하지만, 조윤희가 막무가내로 애정 공세를 퍼붓고 있는 거죠.



여기에 질세라 KBS 1TV 일일드라마 '바람불어좋은날'에서는 이 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얘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이현진이 엄마뻘인 김미숙에게 막무가내로 구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나이 차이는 이쪽이 더 심합니다. 실제로 26년, 극중에선 약 20년 차이). 남녀가 바뀌었을 뿐, 양쪽 방송사의 일일드라마에서 모두 중년 남녀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젋은 남녀의 애정 공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년 얘기는 아니지만 이 '바람불어좋은날'이라는 드라마는 주인공 김소은이 애 딸린 진이한과 결혼하지만, 그 아이의 생모이자 진이한의 회사 회장 딸인 이성민이 미국에서 갑자기 돌아오는데 이 생모는 옛 애인이 키우고 있는 그 아이가 자기가 낳은 아이라는 것도 모르고, 심지어 과거에 아이까지 낳았던 연인인 진이한과 이성민은 한 회사 한 사무실에서 서로 존댓말을 써 가며 함께 일하고 있다는... 참 어처구니없는 설정까지 동반하고 있습니다. 한숨만 납니다.^)



대체 이런 설정들은 왜 등장하고 있는 걸까요. 우선 TV 드라마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자면,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간대별 최적 제작비를 구축해놓은 상태입니다. 즉, 다시 말해 일일드라마가 방송되는 시간대에는 제작비가 얼마를 넘으면 안되고, 그 결과로 시청률이 얼마 이상 확보되면 얼마 정도의 광고가 붙는다는 계산이 끝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는 줄이고 시청률은 올리는 방법은 결국 '막장'이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출연료나 로케이션, 특수효과 같은 돈은 전혀 들이지 않고 센세이셔널한 상황으로 시청자들을 잡아당기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여기에 '중년의 큰 나이차 연애'라는 게 들어간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입니다. 젊은 층이 지상파의 실시간 시청자에서 이탈하면서 이 시간대의 주요 시청층은 아무래도 이현진이나 조윤희보다는 박상원이나 김미숙 쪽과 감정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게 사실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션 코너리 같은 미노년(?)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자주 다뤄지는게 대부호인 할리우드 스튜디오 임원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한국 TV의 중년 열애 붐은 바로 시청자들에 대한 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당장 40, 50대 시청자들에게 20대의 꽃미남 꽃미녀가 달려들어 '저랑 사귀어 주세요'라고 말하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겠지만 드라마 속 얘기는 흐뭇하게 볼 수 있는 거죠.



단 이런 얘기들이 너무 막 나가다 보면 얼마전 방송된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이필모와 박지영의 연하남-연상녀 상황처럼 욕을 먹게 됩니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조금 더 높았더라면, 이 베드신은 아마 꽤 논란이 됐을 겁니다. 사실 맨 위에서 소개한 '결혼해주세요'의 장면들은 이 베드신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죠.^

그러니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황금물고기'는 섣불리 사랑의 진도(?)를 나가지도 못합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우리 세대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하는 흐뭇함일 뿐, 거기서 뭔가 더 진척되면 채널이 돌아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중년의, 나이 차이가 큰 사랑 이야기를 다뤄도 지난달에 방송된 MBC TV 특집극 '나는 별일없이 산다'의 경우는 70 노인인 신성일과 30대인 하희라의 애정행각(?)이 그려졌어도 '망칙하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극중 신성일이 곧 삶을 마감할 환자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철없다거나 장난스럽다는 느낌, 혹은 억지라는 느낌 없이 매끄럽고 성숙한 만남으로 승화되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만큼 자극적인 재미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중년 열애든 불륜이든, 소재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인 것은 그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드라마들은 이런 소재들을, 가능한 한 자극적이고 싸게(제작비 안 들게) 다뤄서, 사람들의 원초적인 호기심만 키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너무 선명합니다.

시청률의 확보, 그리고 중노년층 시청자에 대한 아부(!)라는 두 가지 속보이는 목적을 가진 요란한 불륜-중년 연애 드라마들, 어째 정신건강을 위해선 좀 시청을 피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 지나면 좀 제 정신이 돌아오려나요.


그럴듯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바로 아실수 있습니다.


728x90
KBS 2TV '제빵왕 김탁구'는 1회부터 '신데렐라 언니'의 뒤를 이어 시청률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1회부터 군더더기를 덜어낸 빠른 진행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신기하게도 1회는 어디서 많이 본 줄거리였습니다.

물론 한 30년 전이라면 TV에서도 이런 스토리가 심심찮게 나왔겠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스토리가 방송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던 듯 합니다. 1회의 전반부를 요약하면 모든 걸 다 갖춘 부잣집에 아이 보는 식모(전미선)이 들어갑니다. 주인집 남편(전광렬)과 아내(전인화)는 딸 하나를 두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부인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고, 두번째 딸을 낳아 완고한 시어머니(정혜선)을 실망시킵니다. 그리고 부인이 집을 비운 날, 남편은 갑자기 식모에게 손을 뻗어 옵니다.
 
듣고 본즉 최근에도 어디서 본듯한 스토리 아닙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스토리 뿐만은 아닙니다. 드라마 1회의 배경은 1950년대 내지는 60년대쯤으로 보입니다. 드라마의 주요 환경인 대성그룹 회장 집안은 당시는 물론 요즘도 보기 힘든 호화로운 2층집입니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집안 분위기는 영화 '하녀'의 회장 이정재가 살던 집에서 그대로 따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전체 줄거리를 놓고 볼 때 영화 '하녀'와 유사한 부분은 도입부뿐입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부인이 "절대 남편과의 사이에선 아들을 얻을 수 없다"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어린 시절부터 남편과 다같이 함께 자란 비서실장 승재(정성모)와 몰래 정을 통해 아들을 얻으려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해서 남편과 식모 미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주인공 김탁구(윤시윤), 그리고 부인과 승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당연히 김탁구의 라이벌인 구마준(신인 주원)이 될 거라는 건 드라마 세 편만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진행입니다.

그리고 나선 출생의 비밀을 가진 김탁구가 성장하고, 다시 구마준과 경쟁을 벌이고, 부잣집 아들로 오만방자하게 자란 구마준에게 결국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김탁구가 승리하고, 승리한 김탁구는 구마준에게도 형제애(사실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를 발휘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뭐 그런 진행이 예상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우 고전적인 진행이지만, 어쨌든 '제빵왕 김탁구'의 1회는 젊은 주인공들이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으면서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흥미를 돋구는 역할을 충실히 해 냈습니다. 교과서적인 1회라고 할만 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구도, 즉 '진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 일어서서 자기 몫을 찾고 '가짜 아들'은 성격적인 장애나 능력의 부족, 오만함 등의 부정적인 요소 때문에 몰락해간다는 그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그렇지 수많은 한국 드라마들에서 비슷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왕이든, 회장이든, 어쨌든 권력과 돈이 있는 아버지)의 두 아들이 경쟁을 할 때 대개는 진짜 아버지의 혈통을 갖고 있는 아들이 보다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갖고 있고, 가짜 아들은 어딘가 부족해서 결국은 2등에 머물고 만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언뜻 보면 어머니가 천출(^^)이라서 고생하며 자라곤 하지만, 진짜 혈통을 가진 쪽이 승리한다는 건 대단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감춰져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혹시 이 분야에서 전설적인 드라마 '생인손'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랄까, 어찌 보면 왕조시대에나 있었을법한 혈통 제일주의라고나 할까요. 이런 시각에서 한국 드라마 속의 승리와 패배 구도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무튼 비슷한 맥락에서 '제빵왕 김탁구'가 얼마나 전형적인 구성에서 벗어난 결과물을 내놓을지도 궁금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물론 이 드라마에 그리 정확한 고증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늦어도 70년대 쯤으로 보이는 시대에 영화에서 나오는 정도의 현대화된 공정을 갖춘 제과 회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분명히 마준이가 빵공장에 가기 싫은 이유는 '일요일마다 깨워서 데리고가기 때문'이라는 설정이었는데 빵공장에 들어간 탁구와 뚱보 친구는 모두 책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P.S.2. 게다가 제목이 '제빵왕'이고 첫회부터 제과 공장이 나오는데, 끝나고 나오는 수많은 협찬 공지 중에서도 유명 제과회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게 좀 신기하더군요. 무슨 이유일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3. 어쨌든 제목은 표절 맞는거죠?^^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KBS 2TV '신데렐라 언니'가 20회로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회 시청률 19.4%. 어쨌든 1위를 빼앗기지도, 위협받지도 않고 무사히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20%대로 내달릴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 합니다. 물론 시청률이 성공의 잣대냐...는 식의 뻔한 지적은 반사합니다. 당연히 '시청률 면에서의' 성공을 얘기한 겁니다. 사실 TV 드라마는 철저하게 민주주의가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품질면에선 어땠을까요. '신데렐라 언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봐도 좋을 드라마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들이 악녀들을 그려냈고, 드라마가 끝날 때쯤 이 악녀들에게도 모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거리를 마련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악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심지어 그 악녀의 해피엔딩인 드라마는 없었을 겁니다. (물론 사실은 진짜 악녀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선했던 드라마는 과연 끝까지 신선했을까요. 솔직히 그렇게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많은 시청자들을 -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 인질로 잡혀 있던 대략 전체 가구의 20%에 해당하는 시청자들을 - 애태우던 은조(문근영)과 기훈(천정명) 커플은 마지막 19회와 20회에서 연빵으로 키스신을 안겨주며 그동안의 속 태움을 보상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초반 구성을 봐선 이렇게 뒷심이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문제는 호흡 조절이었죠. 사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드라마는 아버지 대성(김갑수)이 죽은 뒤부터 계속 쳇바퀴돌기를 계속했습니다. 회사는 망할듯 망할듯 망하지 않았고, 은조와 기훈은 될듯 될듯 되지 않았고, 효선(서우)은 매일 똑같은 투정과 응석을 맴돌았고, 정우(옥택연)는 정말이지 그럴 시간에 고시 공부를 했으면 변호사라도 되어 은조를 보쌈해가고도 남았을 정도로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앞부분, 10회까지 이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기록될만한 드라마였다면, 뒷부분은 그냥 '결말이 궁금해서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는 자동시청모드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뒷부분의 흐름을 30% 정도는 걷어내고 16부 정도에서 마무리했다면 훨씬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 봅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던 분들에겐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일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보면 저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드라마는 또 별다른 액션이나 사건 없이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비쳐 주는 것으로 한회 한회를 이어갔습니다. 그런 결과, 연기자 개개인의 기량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효과가 나타났죠.

칭찬은 문근영에게 집중됐고, 문근영은 정말 충분히 그런 칭찬을 받을만 했습니다. 구태여 여기서 칭찬을 더 보탤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이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갔던 힘은 문근영보다는 역시 강숙 역의 이미숙에게서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고전 신데렐라나 장화홍련에서도 드라마를 끌고 간 것은 역시 계모들이었죠.^ 문근영이 발군의 연기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 전체로 볼 때에는 강렬한 캐릭터의 계모 역할이 역시 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에 진짜 마음 속의 소리인 듯 좋은 말을 할 때에도 '나 계모 노릇 하는거야. 더 이상 나한테 뭘 바래?'라며 효선을 윽박지르는 강숙을 볼때는 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이 드라마는 천정명이 얼마나 낭독에 능한지, 서우에게 있어 작품과 캐릭터의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택연이라는 새로운 연기자가 수많은 다른 아이들 출신 남자 배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얼마나 품격 있는 연기 자질을 갖췄는지를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김규완 작가의 죽은 사람 사랑은 참 여전하더군요. 마지막회 거의 마지막 장면에 김갑수의 등장 신은 '출연료 챙겨드리기'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 만도 했겠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김규완 작가의 이름 뒤에 '아사다 지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게 하는 명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다음번에는 좀 밝은 이야기도 써 보셨으면 어떨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론은 한폭의 드라마 잘 봤습니다. 다만 조금 짧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SBS TV '커피하우스' 1회는 이래저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처음에는 표민수 PD가 과연 '작품성은 좋지만 흥행(시청률)이 안 되는 연출가'라는 허울을 벗을 수 있을지, 그 다음엔 송재정 작가가 과연 김병욱 PD의 그늘을 벗어나 드라마 작가로도 히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는 강지환의 출연 여부를 놓고 벌어진 소속사와 전 소속사의 갈등 등이 잇달아 화제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관심을 끌던 '커피하우스' 첫회가 방송됐습니다. 제목부터 '커피하우스'라는 것은 어쩐지 '풀하우스'의 영광을 잇겠다는 의욕이 보이는 듯 하더군요.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강지환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 이진수 캐릭터였습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까칠남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이후에만도 까칠한 남자는 줄줄이 사탕이었습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 버럭 셰프로 포문을 열었고, '개인의 취향'의 이민호가 뒤를 이었습니다. 뭐 넓게 보면 '추노'의 장혁도 이 범주에 들 수 있고 '지붕뚫고 하이킥'의 최다니엘 역시 여기서 빠질 수 없습니다.

대체 왜 까칠남이 뜨는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 이건 여자들의 흔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드라마 속 까칠남이 되려면 일단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능한데 성격만 까칠한 인물은 까칠남의 범주에 절대 들지 못하죠. 뭐 주인공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용모도 특출해야 합니다. 인물이 못났는데 성격이 까칠한 건 역시 절대 까칠남이라고 불리지 못합니다. 이런 남자들은 못된 놈, 미친 놈에서 싸이코, 변태라고나 불려야 제격인 겁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속 까칠남들은 여주인공 하나에게만 마음을 엽니다. 물론 그런 뒤에도 여자들은 이 까칠남의 매력 때문에 주변을 맴돌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여자들이 접근할 때면 이 까칠남은 얼음장같은 본능이 되살아납니다. 오로지 여주인공에게만 따스한 웃음을 보여줄 뿐, 다른 여자들에게는 재수없고 아니꼽고 잘난체만 하는 이상한 놈으로 돌아서는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때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남이 '죄라면 착한게 죄'라는 식으로 인기를 모으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솔직히 시청자들도 많이 이기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른바 '1박2일'의 '나만 아니면 돼' 정신이랄까, 세상에 아무리 못되고 형편없는 놈이라도 나한테만 잘 하고 돈만 많으면 용서할 수 있다는 게 요즘 세상의 정서입니다. 오죽하면 '가십걸'의 척 배스 같은 놈도 멋진 놈으로 포장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커피하우스'의 강지환 또한 까칠남의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은 좀 너무 편하게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캐릭터는 또 다른 특이한 면이 보여 보는 눈이 즐거웠습니다.

문제의 이진수는 수려한 용모의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약속을 밥먹듯 어기고 글을 쓸 때에는 반드시 손으로 깎은 연필만 쓰며, 그 깎인 연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던져 버리고 새 연필을 깎아 쓰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주인공 승연(티아라의 은정)은 진수에게 우연한 기회에 도움을 받고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캐릭터는 알고 보니 보면 볼수록 희한한 별종이었던 겁니다. 1회에서는 그저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할 정도지만 그냥 단순한 까칠남이 아니라 결벽증과 완벽주의가 한데 뭉친 드문 캐릭터인 겁니다. 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에 이상한 미신 믿는 습관만 있다면 바로 '이보다 좋을순 없다(As good as it gets)'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잭 니콜슨이 나옵니다. 물론 강지환은 니콜슨과 비교할 수 없는 미남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점점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웃으면서 골 지르는' 이진수의 캐릭터는 강지환의 연기력 덕분에 확 살아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 맞서는 승연(함은정)은 역시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천방지축 실수연발이 특기인 민폐형 여주인공일 것 같지만 오버하지 않는 안정된 연기력 덕분에 보기가 편했습니다. 아울러 끝까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종래의 짜증나는 민폐형 여주인공들에 비해 적절한 선에서 자신의 현실을 깨닫는("아니 어쨌든 그럼 공짜로 비서가 생긴 셈인데 뭐라도 시켜서 부려먹고 싶지 않아요?") 현명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남녀 주인공의 두 캐릭터가 늘 보던 것 같지만 늘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차이가 있다는 점이 '커피하우스'를 생기있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조금씩의 차이가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뻔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밖에 어쩌다 늘 청승맞은 비련녀 역할만 하던 박시연이 오랜만에 다소 과장된 만화적인 악녀 연기를 맡은 것 하며, 한때 '발호세'로 불렸던 박재정이 말수 적은 과묵남으로 등장하는 것(알고 보면 심한 사투리 때문에 가능하면 입을 열지 않는 캐릭터라고 합니다^) 등의 설정이 눈길을 끕니다. 정웅인의 코믹 연기는 뭐 굳이 새로 거론할 필요가 없겠죠. 아무튼 아직 첫회밖에 못 봤지만 '커피하우스', 꽤 기대가 가는 드라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위기로 봐선 티아라의 다른 멤버들이 한두 장면씩은 모두 나와줄 것 같더군요. 두고 볼 일.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 를 트위터에서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빨리 아실수 있습니다.



728x90
어릴 적 '장희빈' 드라마의 클라이막스는 최무수리(숙빈 최씨, 즉 동이)의 임신을 안 장희빈이 최무수리를 잡아 고문하고, 뒤늦게 정신차린 숙종이 달려와 최무수리를 구하고, 왕의 간호로 정신을 차린 최무수리는 "마마, 중전마마를 다시 모셔와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이렇게 해서 장왕후는 강등당하는 신세...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주인공이 장희빈도 아니고, 인현왕후도 아니고, 최무수리인 드라마가 나오게 됐습니다. 바로 MBC TV '동이'죠. 사실 최무수리에 대해 알고 있던 거라곤 성이 최씨고, 천민이었고, 신분이 낮아서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인 영조는 왕이 되어서도 심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드라마 '동이'를 보면서 숙빈 최씨에 대해 알아 보니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띄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 '동이'에서 동이는 한양, 혹은 그 부근에 사는 오작(검시관으로 당시에는 천민)의 딸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오작이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이름이 최효원이라는 것은 남아 있습니다.

숙빈 최씨의 일생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묘지의 기록이겠죠.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에는 숙빈최씨신도비가 서 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숙빈 최씨는 수양 최씨로서 증조는 말정으로 통정대부였다. 할아버지인 태일은 벼슬하지 않은 유생이었고, 아버지는 효원으로 충무위부사과를 지냈다. 어머니는 홍씨로 통정대부 계남의 따님이고, 현종 경술년(현종 11, 1670년) 11월 을미일에 빈을 낳으셨다. 병진년(숙종 2, 1676년)에 선발되어 궁으로 들어가니 겨우 7세였다. 숙종대왕 19년 계유년(숙종 19, 1693년)에 처음 숙원이 되었고, 갑술년(숙종 20, 1694년) 숙의로 승진되었으며 을해년(숙종 21, 1695년)에 귀인으로 승계했다가, 4년 뒤에 숙빈으로 봉해졌으니, 나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품계이다.

빈은 타고나신 자질이 침착하고 진득하며 과묵하여 기쁨이나 노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두 내전을 모시되,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장엄하고 공경하며 삼가고 조심함으로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로 하였다. 모든 비빈이나 궁인을 접할 때 공손하고 온화하여 모두 그 환심을 샀고, 임금께서도 마음속으로 애중히 여겼다. 인현왕후와 혜순, 자경 두 대비도 역시 특별한 대우를 했으나, 빈은 더욱 겸손하고 두려워하였다. 더욱 남의 장단점을 말하기 좋아하지 않아, 옆에서 모시는 자들이 어쩌다 이런 일이 있으면 곧 꾸짖었으니 한 궁 안이 한결같이 칭찬하였다. 빈의 형제 중에 군문에 예속되었던 이들이 빈이 숙빈으로 봉해진 뒤로 그 직위를 사퇴하였으니, 빈이 삼가 조심하는 마음에서 실로 그렇게 시켰던 것이다.

사실 이 기록만 봐서는 최씨가 천민이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무관을 지낸 양반의 자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건 자신의 어머니의 신분을 세탁하려는 영조의 뜻을 충분히 감안한 일종의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크죠. 심지어 영조 초기에 발발한 이인좌의 난 때애는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니며, 천민 출신인 숙빈 최씨가 김춘택과 밀통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반면 "빈의 형제 중에 군문에 예속되었던 이들이 빈이 숙빈으로 봉해진 뒤로 그 직위를 사퇴하였으니, 빈이 삼가 조심하는 마음에서 실로 그렇게 시켰던 것이다(嬪同氣之籍軍門者自 嬪封爵辭?其任 嬪謹愼之心實使之然也)"라는 대목을 봐서는 천애 고아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없는 형제까지 지어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왠지 부모와 형제는 제대로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서술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이 비문을 '정설'이라고 하자면, 이 비문의 내용과 상충되는 이설이 있습니다. 바로 정읍 지방에 내려오는 숙빈 최씨와 관계된 전설입니다. 정읍 부근 태인에는 오래 전 대각교라는 다리가 있었고, 이 다리에서 운명적인 만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1936년 편찬된 '정읍군지'에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이 정읍 길을 지날 때 대각교 위에서 옷차림이 초라한 소녀 하나를 마주칩니다. 하지만 소녀의 용모가 비상한 것을 본 민유중이 처지를 묻고, 소녀가 조실부모하여 오갈데없는 신세라고 하자 민유중이 이를 거두어 길렀다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연히 이 소녀 동이는 민유중의 딸과 함께 자라난 하녀가 되고, 나중에 이 딸이 인현왕후가 되어 궁으로 들어갈 때 따라가서 궁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에 따라 정읍시는 얼마 전 이 대각교 다리가 있던 자리에 '만남의 광장'이라는 유적(?)까지 조성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궁에서 나인 최씨(동이)가 인현왕후의 복권을 위해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다가 왕의 눈에 들어 성총을 받았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될만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동이가 1676년, 만 6세의 나이로 궁에 들어왔다는 기존의 기록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든 드라마 내용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지만 정읍시 측은 '동이' 방송에 맞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듯 합니다. 찾아 보시면 여기저기에 '동이의 고향'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동이는 서울 부근에서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정읍 태인 부근 출신일까요. 또 동이는 천민 출신의 무수리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온 하녀 출신 궁녀였을까요. 세월이 세월인지라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확실하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보충하는 것이 사극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지나치게 전후 인과관계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신데렐라 언니'는 왜 계속 동시간대 1위를 달리면서도 시청률 20%를 넘지 못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아직 진짜 주역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회에서야 그 주역이 나타났습니다.

간단한 질문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 '심청이 이야기', '장화홍련 이야기', '백설공주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대체 왜 재미있는 이야기로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남은 것일까요. 이 이야기들을 모두 이끌어 온 인물/캐릭터는 대체 무엇일까요. 대답하지 못할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바로 '계모'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신데렐라 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에는 아직 '계모'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미숙이라는 탁월한 배우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 역할은 지금까지 진짜 계모가 아니었죠. 구대성이라는 아버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던 한 여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제 남편이 죽고 없어짐에 따라 진짜 '계모'로 변신한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에도 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계모와 구박받는 전실 소생 딸이 필수적입니다. 이 계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데렐라가 학대받는 동안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살아 있었을까요, 아니면 죽은 뒤였을까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는...어려서...부모님을 여의고...'라는 노래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사라진 다음에 계모와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샤를 페로가 정리한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분명히 아버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계모에 의해 휘둘리기 때문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걸로 돼 있을 뿐입니다. 백설공주의 아버지도, 심봉사도 모두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들이 존재가 희미해질만큼 '계모' 캐릭터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드디어 10회에서 그런 구도가 나타났습니다. 효선(서우)은 계속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전같은 친근감을 이어 가려 하지만 강숙(이미숙)은 "너 치대는거 지겨워!"라며 매달리는 효선을 단칼에 잘라 버립니다. "질질 짤거면 나가!"가 2연타.

이 '악녀 본색'을 살짝 보여준 결과가 자체 최고 시청률로 나타났습니다. 문근영의 빛나는 호연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악녀의 등장이 시청률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 '현대적인 이야기'에서는 상황이 사뭇 달라집니다. 앞으로 강숙이 보여줄 계모의 역할은 모질고 독하기가 뺑덕어미 못지 않겠지만, 거기에 대한 변명거리도 준비돼 있습니다. 어쨌든 강숙은 이성보다는 야성이 앞서는 여자고, 그 야성은 '내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그럼 '내 새끼'가 아닌 효선은 그 보호망 안에 있을 수 없죠. 오히려 구대성 때문에 참고 있던, 그동안 제거하지 못했던 거추장스러운 요소에 불과합니다.

'현대적인'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걸 재빨리 인식하지 못하고 '엄마가 나한테 왜이래?'라고 어리둥절해 하는 효선을 더욱 답답하게 여깁니다. 이게 바로 옛날 이야기를 듣던 조선시대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의 차이일까요? 아니죠. 한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게 된 사람'과, 그냥 '예전부터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은 사람'의 차이일 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데렐라건, 백설공주건, 심청전이건,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은 전해지는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씹어 삼켰습니다. 작자가 원하는 대로 '친엄마가 죽은 불쌍한 딸'의 시선에서 그냥 계모를 '천하에 독하고 나쁜 년'이라고 보았을 뿐입니다. 계모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나, 그 친딸이 세상 속터지게 하는 공주병 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도 해 보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그런 사람들은 괴짜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이번에 '신데렐라 언니'를 죽 보아 온 시청자들은 '우리가 그동안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한쪽 편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그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인 대본들이 넘쳐 나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이 드라마의 시각이 눈에 띄는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강숙이 악녀의 본색을 드러냄에 따라 그동안 '너무 무거웠다'는 '신데렐라 언니'는 조금 더 선명해지고 편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해금'이 좀 더 많은 시청자를 이 드라마에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아무리 학대가 심해져도 시청자들이 서우를 전혀 불쌍해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겠습니다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일꾼들에게 소리치는 은조(문근영)의 어깨에 놓인 대성의 유령의 손에서는 다시 한번 김규완 작가가 아사다 지로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몇회 이내에 은조는 다시 대성과 대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KBS 2TV '신데렐라 언니'를 보다 보면 역시 TV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구나 하는 것과, 작가가 만들어 낸 좋은 캐릭터는 좋은 캐스팅을 통해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기본적인 내용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 대성(김갑수)의 죽음을 맞은 가족의 위기를 다룬 9회를 보면서 새삼 좋은 대본과 좋은 배우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9회에서는 그동안 앙금으로 남아 있던 기훈(천정명)의 편지가 은조(문근영)에게 전해졌나의 문제가 밝혀집니다. 기훈이 은조에게 편지를 받았느냐고 묻고, 은조는 그제야 효선(서우)이 그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챈 사실을 알아내지만 그래 봐야 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은조는 "편지를 받았지만 찢어버렸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버립니다. 이 장면과 몇 신 뒤 효선과의 대립 신에서 문근영이 보여주는 싸늘한 연기는 날로 발전하고 있는 이 배우의 성장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번 '신데렐라 언니'에서 굳이 '악역'이라는 타이틀을 씌워서 그렇지 문근영에게 '어두운 연기'를 기대했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벌써 4년 전 작품인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그야말로 어둠이 뭉클뭉클 피어나는 눈먼 상속녀 역할을 했죠. 4년 전 이 시절의 문근영과 지금의 문근영을 비교하면 일취월장이란 말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그때와는 배역을 대하는 자세와 이해가 판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서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내면의 어두움을 싸늘하게 내비치는 연기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시작할 무렵만 해도 문근영에 대해 '아직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번복해야 될 상황인 듯 합니다.^)

이 드라마를 계속 지켜본 분들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제는 결국 '어떻게 해서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는 괴물이 되었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구대성이라는 가장의 존재 속에서 계모, 언니, 신데렐라(즉 강숙, 은조, 효선)는 비록 긴장감이 있긴 했지만 평화로운 공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숙은 대성을 통해 평생을 찾아 해메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비록 마음 속의 한 구석은 계속해서 대성을 배신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있는 앞에서는 현모양처로서 모든 구색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정을 희구하는 진심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보여졌죠.

마찬가지로 은조는 '대성에 대한 의리'로, 효선은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세 여자는 모두 대성을 상대로 도는 세 개의 위성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의 궤도가 충돌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양보를 해 가면서(강숙이 은조 때문에 불륜 상대를 정리하듯)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결국 대성이 사라지면서 세 위성은 서로 충돌할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됐습니다. 대성과 대성도가가 공급하던 풍족한 생활은 사라지고, 강숙은 이제 더 이상 잘 보여야 할 상대가 사라진 이상 자신의 피붙이인 남매와 그렇지 않은 효선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물론 대성이 사라진다 해서 의리까지 사라지지 않는 은조는 강숙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상황 변화에 가장 취약할 효선은 자신이 공주에서 시녀만도 못한 처지로 떨어진 이유를 강숙-은조 모녀에게서 찾아야 할 상황입니다.

물론 제목이 '신데렐라 언니', 즉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은 왕자님에 의해 구출되는 것은 효선일 것입니다. 그 왕자님이 기훈일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지는 드라마가 한참 더 진행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주인공이 '신데렐라 언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드라마의 초점이 강숙-은조 모녀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대본이 그리 편파적이지는 않습니다. 효선에게도 충분한 '자기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효선의 특기,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극한의 귀여움+애교+순수함이 바로 그것이죠. 즉 은조가 '어둠'이라면 효선은 극한의 '밝음'입니다. 하지만 과연 서우가 이 특기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은... '글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현재 극한의 어둠(다른 말로 하자면 다크 포스?^)을 뿜어내고 있는 문근영이 이 드라마가 끝날 때 쯤에서 어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여부가 일곱편 남은 '신데렐라 언니'를 끝까지 지켜보게 될 가장 큰 이유일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택연의 연기는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김현중, 정윤호, 정용화, 임슬옹 등 지난해 이후 등장했던 수많은 아이들 그룹 출신 남자 연기자 중에서는 단연 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물론 무리하게 주인공을 노리지 않은 선택도 적절했겠지만.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케이블TV OCN이 수입한 '스파르타쿠스(Spartacus:Blood and Sand)'가 2회 방송만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케이블TV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시청률인 4%를 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케이블TV 방송사 스타즈(Starz)에서 방송될 때부터 폭발적인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 스타즈는 유선 케이블 방송사입니다. 대개는 히트한 신작 영화를 TV에서 처음으로 트는 채널이죠. 하지만 2005년 이후에는 HBO가 일으킨 '오리지널 시리즈 붐(케이블TV들이 외부의 드라마 시리즈나 영화를 받아서 방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처음으로 제작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늘려 나가는 것. HBO의 '섹스 앤 더 시티' 등이 촉발시킴)'에 따라 직접 제작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파르타쿠스'는 스타즈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계기가 되죠. 그런데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사상 초유의 선정성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개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사에 남을 걸작인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커크 더글러스가 스파르타쿠스 역을 맡은(그 밖에도 이 영화의 캐스팅은 정말 초절정이죠^^) 이 영화의 몇몇 이미지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무튼 이 영화와 2010년작 드라마는 모두 로마의 삼두 정치 시대, 최대의 노예 반란을 일으킨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쨌든 드라마는 갓 2회 방송됐지만, 트라키아 출신의 스파르타쿠스가 어떻게 해서 검투사가 되는지에 대한 배경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뭐 보나 마나 스파르타쿠스는 가장 친한 친구를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고(영화에서도 이 사건이 반란의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인물에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감당해야 하는 인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근육질 사나이들의 생사를 건 격투와 우정, 반목이 그려질 것이고 또 사나이들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도 만만찮게 펼쳐지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샷들은 초급 수준. 당연히 여기서 다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회에서부터 정사신과 헤어누드가 수시로 등장하고, 2회까지 상반신을 노출하고 등장하는 여배우만도 10명을 넘는 것 같습니다(대사 없는 엑스트라 포함).

물론 섹스만이 제한 대상은 아닐 겁니다. 폭력면에서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이 드라마에서의 피는 전형적인 피 색깔인 선홍색보다는 보라색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어 잔혹함을 좀 완화시키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만, 사람의 목을 날리고 내장을 가르는 장면이 콜라 병따는 장면처럼 태연히 등장합니다.

영상이 주는 리얼리티는 딱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300'의 중간 쯤 됩니다. 어떤 장면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와 차이 없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만 격투 장면이나 특히 피가 넘쳐 화면을 가리는 살해 장면의 처리는 '실사형 애니메이션'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미국에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던 프로그램을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공짜로 눈요기(?)를 시켜준다는 면에서 OCN의 처사가 참 고맙기도 합니다만, 갈수록 높아질 '스파르타쿠스'의 섹스와 폭력 수위를 과연 어떻게 조절할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이미 화제가 됐던 시리즈 '로마'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섹스와 폭력 문제를 슬쩍 슬쩍 피해 방송한 전력이 있긴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에 비하면 '로마'의 선정성은 텔레토비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로마'의 기준으로 화면을 들어내면 '스파르타쿠스'는 아예 방송시간이 80% 정도로 줄어들거나, 아예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막에서도 출연자들의 '막말'을 걸러내느라 애쓴 흔적이 꽤나 보이더군요.^^)

물론 이런 논란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욱 부추길 것 역시 명약관화. 이러다 보면 '스파르타쿠스'의 시청률은 공전의 기록을 세우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도 높은 콘텐트를 기본 채널에서 큰 여과 없이 내보내는 건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수준의 콘텐트가 그냥 기본 채널로 방송되면, 국내에서는 별도 비용을 지불한 소수 관객을 겨냥하는 프리미엄 채널 사업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게 왜 당신 마음에 걸리냐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든 오늘은 이 정도. 영화와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의 비교나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리뷰 등등은 드라마를 좀 더 본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자나 미국에선 최근 시즌1의 마지막회인 13회가 방송됐고, 스타즈 측은 정규 방송 전부터 이미 "시즌 2는 기본"이라고 주장했다지만, 최근 주인공 앤디 윗필드가 림프종 진단을 받는 바람에 시즌 2는 언제쯤 나올지 아직 미상이라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배우가 바로 앤디 윗필드.]

대신 시청자들의 갈증 해소^^를 위해 스타즈는 6부 정도로 프리퀄을 제작한다고 하는데, 어차피 윗필드가 없으니 아마도 여기선 크릭서스와 바티아투스가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되겠군요. 바티아투스 역을 맡은 존 해너의 연기가 기대됩니다.

P.S. 그나자나 참 미국 나라의 배우 풀은 정말 넓고도 깊군요.^^



흥미롭게 보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MBC TV '동이'가 한효주의 등장 이후 시청률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사극들의 경우 어린이들이 시청률을 벌어 놓은 뒤 성인 연기자들이 그 시청률을 깎아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엔 성인 주인공들, 특히 어른 동이 역의 한효주가 출연한 이후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본래 '이병훈표 사극'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어리처럼 시청률이 붙는다는 것이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장금'이나 '이산'도 각각 첫회는 15와 14% 정도에서 출발했죠. 이번 '동이'도 첫회는 13% 정도, 현재 6회째가 15% 정도지만 갈수록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병훈 감독은 시작 전 "어쨌든 관건은 한효주"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효주가 등장한 이후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6일 숙종과 한효주가 담을 넘네 못 넘네 하며 펼치는 한폭의 코믹한 장면들에서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효주는 참 특이한 연기자입니다. 한효주와 함께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매니저들은 입을 모아 "참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유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여자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것이죠.

일례를 들자면 여자 연예인들에게 취미를 물어 '독서'라고 답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연예인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효주와 일본 문학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면 두어 시간 내내 그 얘기만 하게 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보기 드문 배우입니다. 약 한달 전, '동이'의 방송 전 프로모션과 관련된 행사장에서 한효주를 만났습니다. 행사는 오후 일찍 끝났고, 이날 촬영이 없었던(스태프와 출연진이 모두 이 행사에 참여하느라 촬영은 취소된 날이었죠) 한효주는 뭘 할거냐는 질문에 "지금 파주에 가기로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파주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니 "제 묘가 있잖아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더군요. 이 대답에 저는 그저 감동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주에는 사적 358호로 지정된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昭寧園)이 있었습니다. 본래는 소령묘라고 불렀지만 영조가 생모의 무덤을 키워 나가 '원'으로까지 승격시킨 곳이죠.

가끔 이 드라마의 제목 동이를 과거 한민족을 부르던 동이(東夷)로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동이는 숙빈 최씨의 이름입니다. 최씨는 궁녀로 입궁했다가 한때 물러나오고, 다시 궁녀보다 아래 신분인 무수리로 입궁했다가 숙종의 성은을 입어 후궁이 된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씨, 즉 동이가 용종(龍種, 임금의 자손)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안 장왕후(이미 이때는 희빈에서 왕후, 곧 중전의 자리에 오른 뒤였죠)가 자신의 궁으로 최씨를 불러다 모진 고문을 하고 목숨을 빼앗으려 하기도 했지만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숙종이 직접 달려와 최씨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야사로도 유명합니다. 장왕후가 최씨에게 큰 독을 덮어 씌워 고문 사실을 감추고 시치미를 떼려 했으나 숙종이 최씨의 신음소리를 듣는 바람에 살려낼 수 있었다는 민담도 있었죠.

왕위에 오르기 전 연잉군이라고 불렸던 영조는 자신이 왕의 정실이 아닌 후궁, 그것도 천민 출신 후궁의 자손이라는 점에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어머니 숙빈 최씨를 사후에라도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 데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령원을 찾아가 그 정성을 살핀다는 것은 숙빈 최씨를 둘러 싼 당시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꽤 의미가 있는 행동이죠.

이쯤 되면 제가 왜 감동했는지 아마 짐작하실 겁니다. 대한민국의 배우들 가운데 사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뒤 자진해서 그 인물의 묘소를 찾아가 볼만한 연기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연출진이나 다른 누가 일부러 데리고 가면 모를까, 스스로 찾아가 보겠다고 생각한 연기자는 아마 따로 없을 겁니다. 이 언저리에서 10여년을 일했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효주의 이런 남다른 태도는 연기력 향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경력이 전무하던 시절, 신데렐라처럼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연기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일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 긴 호흡을 배웠고, 이후 '일지매'에서도 쪽진 머리를 처음 보여줬지만 이때는 호연에도 불구하고 봉순 역의 이영아에 비해 상대적인 비중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계단을 밟을 때마다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 게 바로 지난해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찬란한 유산'이었죠.

'찬란한 유산'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밝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밝음'의 핵심이 한효주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냥 밝고 수선스럽기만 한 캔디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점점 성숙해가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죠. 그리고 그런 '깔끔하고 총명하며 밝은' 이미지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동이'의 타이틀 롤 캐스팅로 이어진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그동안 좋은 연출가들을 계속 만나 온 것도 한효주의 복이고, 그 사이에서 자양분을 흡수해 자신의 자산으로 만든 것은 한효주의 힘입니다. 하지만 '동이' 역할은 그보다 훨씬 큰 도전이죠. 지금까지는 10대 소녀 동이의 역할이라 그저 밝고 순수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만 하면 되지만(풍산개^^), 뒤로 갈수록 동이는 정치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고, 그 안에서 왕자를 낳고 키워내며 뒷날의 제왕이 되게 하는 어머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게 됩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큰 발전을 필요로 합니다.

만 23세, 아직은 나이가 나이다 보니 아직은 미숙한 부분도 보이지만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연기하고 나면 연기자로서 한효주는 동년배들 중 누구도 쉽게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하고 난 배우가 될 겁니다. 그 뒤의 한효주는 과연 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이 배우에게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아마도 10년이 지나지 않아 '지성미를 갖춘 톱스타' 부문에선 경쟁자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물론 이런 모습은 아직 낯설기도 합니다만.^^ 설명이 없으면 못 알아볼수도.

공감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제목이 왠지 낚시같지만 낚시 아닙니다. 답이 손예진도 아닙니다. 이민호는 손예진과 공연하는 MBC TV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 첫회 첫 등장하는 장면이 베드신이었죠. 이민호가 데뷔한 뒤 첫 베드신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꽃보다 남자'에서 산장에 갇힌 구준표가 금잔디와 밤을 지새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산장신'이었고, 이 장면에 침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첫 장면에서 진호(이민호)는 자기 집 침대에서 자명종이 울리는 가운데 오전 8시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에 옆 자리를 바라보다가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라죠. 웬 여자가 슬립 차림의 요염한 자태로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진호가 전혀 여자처럼 느끼지 않는 혜미(최은서)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을 뜨고 일어나 이민호에게 "어떻게 나같이 섹시한 여자를 외면할 수 있어.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거 아냐?"하며 눈을 흘기는 역할입니다. '어려서부터 진호 집안과 친해 정혼(?)한 사이고, 캐나다 유학중이지만 한국에 오면 진호네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이'라는 설정입니다. 진호는 별 관심이 없지만 태훈(임슬옹)은 혜미를 짝사랑하고 있죠.

그래서 뭐가 어쨌느냐는 분들, 최은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혹시 기억나시는게 없나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이민호가 '꽃보다 남자'로 하룻밤 사이 깜짝 스타로 거듭났을 무렵,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민호가 과거 여친들과 찍은 사진'들이 삽시간에 퍼진 적이 있었습니다. 박보영, 문채원, 다비치의 강민경 등이 그 상대였죠. 그리고 그 사이에 '최은서'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에 있는 '이민호의 첫 베드신 상대역'은 '알고보니 왕년의 스캔들 상대역'이었던 겁니다.^^ 기억을 보완해 드리기 위해 과거 글을 링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려했던(?) 이민호의 과거...^^]

물론 이민호와 같은 소속사 후배인 최은서는 당시에도 경쟁자들(?)에 비해 지명도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집중 조명을 받을 수 없었고, 이민호가 장난스럽게 '다음에 열애설이 난다면 아마 상대는 최은서일 것'이라고 말한 덕분에 오히려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1988년생인 최은서는 2004년 공포영화 '레드 아이'에 출연한게 데뷔로 기록돼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아니었죠.

그나마 최은서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도 '반올림'의 광팬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아라 이은성과 함께 유아인 김정민 등이 나온 시절이 1기, 유아인 대신 김기범(슈주)이 고아라의 상대역으로 등장한게 2기입니다. 최은서는 5년 전 고아라의 고교시절을 다룬 2기에서 불우한 가정 출신의 소녀로 꽤 비중있게 출연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꽃보다 남자'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그 사이에도 최은서의 활약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역시 눈에 띄는 건 이민호와의 화보 촬영 정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마침내 이번엔 이민호와 임슬옹 사이에서 살짝 갈등을 일으키는 혜미 역을 맡게 됐습니다. 참 이민호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1988년생. 말하자면 '개인의 취향'은 최은서의 성인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1-2회에서는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아무튼 자기 몫은 충분히 해 낸 걸로 보여집니다. 앞으로도 이민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받게 하는 상황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쁘게 잘 자랐군요.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한 신인입니다.


728x90
솔직히 한가지만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세 드라마 모두 궁금해서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어젯밤에는 리모콘을 여기저기 돌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볼만한 배우들과 탄탄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올 연초에도 '공부의 신'과 '제중원', '파스타'가 동시에 출격하면서 상당히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대결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손예진의 '개인의 취향', 문근영의 '신데렐라 언니', 김소연의 '검사 프린세스'로 대표되는 세 작품이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까요.

첫날 시청률에서는 일단 '신데렐라 언니'가 앞섰습니다. 나이 먹은 시청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시청률 면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듯 합니다. 세 드라마 중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의 비교 포인트를 찾아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손예진 vs 이미숙

왜 손예진 vs 문근영이 아닐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본 대로 얘기하자면 확실히 이랬습니다. '농익은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이미숙은 당연히 - 딸 문근영에게 의붓아버지를 백만명씩 가져다 붙여 주는, 없느니만도 못한 엄마 역으로 너무나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도망가면서도 옷 구겨질 걸 걱정하는 여자, 장농에 감춰둔 반지 빼내 온 걸로 그 남자와의 인연을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여자, 새로운 표적 앞에선 연기대상감의 솜씨를 보여주는 여자. 특히 김갑수와의 자전거 신은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반면 손예진은 첫회에서 너무 망가지는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코믹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다 보여줬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어쩌면 이 배우가 자신의 미모를 이제 신뢰하지 못하고 연기파 배우로 완전히 지향점을 바꿔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로... 봉태규가 덮치는 장면에서의 박력(?)은 좀 아쉬웠지만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우는 장면은 이제 이 배우가 어느 선을 넘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이민호 vs 문근영

이 두 배우가 한데 묶이는 것은, '나는 이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년배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어제 두 드라마의 첫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직은 조금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일단 문근영은 80점 정도. 앙칼지게 소리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더라는 점에선 좋았지만, 그 결과 발음이 뭉개져 대사 전달이 힘들었다는 점도 지적할만 했습니다(하긴 서우와 비교하면 발음 얘기는 할 수가 없겠죠). 너무 신경질적인 아이로 방향을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늘 얘기 나오던 '성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지만 변신의 시도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민호는 이보다는 좀 더 역할 적응력이 돋보였습니다. 두가지 톤으로만(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상어와 화난 말투) 연기하면 충분했던 '꽃보다 남자'에서 실제 살아있는 남자를 연기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하긴 '꽃남' 전에도 꽤 탄탄한 솜씨를 뽐낸 이민호니까... 그런데 '완전히 나쁜 남자'일 때에 비해서는 매력이 덜하다는 지적(저의 동거인의 주장입니다)도 있더군요.

어쨌든 두 배우 모두 자기 몫의 시청자를 끌어들일만한 솜씨는 충분히 보여준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조은지 vs 강성진

사실 제 생각에 '개인의 취향'의 최대 강점은 손예진도 이민호도 아닌 조은지입니다. 정말 채널을 돌리다 '개인의 취향'을 보게 된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조은지의 한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달콜살벌한 연인'에서 정평이 난 조은지의 코믹 조연 연기는 일단 믿을만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신데렐라 언니' 쪽의 카드로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강성진을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소년 정우는 코믹 카드로 훌륭하지만 이 소년이 곧 자라서 옥택연이 될테니...(어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똥땡이 소년이 짐승남 택연으로 성장하다니... 뭐 이건, 진짜 신데렐라는 소년 정우더군요). 일단 주인공들을 소개하는데 바빠 첫회에는 강성진에게까지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결국 이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건 그의 역할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한희 vs 김규완

일단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가 단연 앞섭니다. 지나치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문근영의 독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갑수와 이미숙의 자전거 신 같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독특한 잔혹 동화같은 느낌을 잘 살려 줍니다.

'개인의 취향'은 원작자인 이새인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는데 물론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몇 부분에서 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민호가 건축 모형을 들고 버스에 탈 때부터 그 모형이 온전하지 않을 거란 점도 잘 알고,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남자가 시간을 끌 때 같은 장면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죠. 물론 장르의 클리셰라는 것도 있어야겠지만 이 시간대에는 언제든지 채널을 돌리게 할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이 큰 부담입니다.

반면 전체적인 배우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솜씨는 '개인의 취향'의 압승입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능숙한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신데렐라 언니' 쪽은 어떻게든 서우와 천정명을 나머지 배우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천정명의 대사 솜씨가 하루 아침에 나아 질 리는 없겠지만, '파주'와 '탐나는도다'의 서우가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마 그건 서우의 책임으로 비쳐지진 않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2AM vs 2PM

뭐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데뷔하는 임슬옹과 '신데렐라 언니'의 옥택연은 모두 연기 데뷔입니다. 개인적인 인기로는 옥택연이 단연 앞서지만 연기력은 임슬옹에게 훨씬 기대가 갑니다. 이유는 '패떳2'를 보신 분이라면 당연히 짐작하실....

하지만 뭔가 벗은 상태에서의 박력은 택연에게 대적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 두 드라마 첫회를 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 봤습니다. 두 쪽에 더 신경을 쓰느라 '검사 프린세스'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김소연의 새 머리 모양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 실망입니다.


재미있으셨으면 아래 왼쪽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KBS 2TV  '추노'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 눈에 띄는 낚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 합니다.

'추노'의 가장 큰 힘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하는 짤막짝막한 대사 사이 사이에 적절한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 주던 천성일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치러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추노'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각본상을 따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물론 '추노'의 설정에도 살짝 억지는 있습니다. 일단 배경을 인조 때로 잡아 소현세자와 원손 석견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잡고 여기에 주인들을 죽이러 다니는 노비 패거리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때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분명 실제 역사의 진행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노'에서 가장 큰 역설은 대길의 묘 위로 흐르는 송태하의 후일담 나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송태하는 인조의 죽음과 효종의 즉위, 그리고 석견의 복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역사와는 정 반대로 얘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조가 승하하고 세자 봉림대군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쇄는 중지되었다.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석견이 효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나고 왕족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55년에 노비 추쇄가 끝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55년은 노비 추쇄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효종이 노비 추쇄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이듬해에 석견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4년 뒤인 1659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655년, 효종과 신하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보시겠습니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1월 27일(임자) 1번째기사

(전략)상이 이르기를,
“어제 장례원(掌隷院)이 경기의 노비를 살펴 아뢴 것을 보니, 어린 것까지 모두 3백 구(口)뿐이었다. 시노비(寺奴婢)는 어찌 낳은 것이 없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경기 화량(花梁)을 옮겨 들여보내어 한 진을 만들고, 또 해서의 변보(邊堡)를 옮겨서 한 진을 만들고, 본부의 속오(束伍)로 한 진을 만들고, 시노(寺奴)로 한 진을 만들어, 모두 네 진을 만든다. 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들여보내고 바라지 않는 자는 베를 거두어서 모집하여 들여보내는 군졸에게 주면, 폐단이 없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영돈녕 김육(金堉)이 한가히 노는 사람들에게서 베를 거두려 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도 또한 하려 하였다. 19만의 노비에게서는 어찌 그 신공을 죄다 거두어 군수(軍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이 으레 행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따로 도감(都監)을 세워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추쇄관(推刷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쇄관을 차정(差定)한 뒤에 꼴찌에 해당한 자는 사율(死律)로 논하라. 명나라 태조(太祖)는 뭇 신하 중에서 죄를 범한 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찌 한낱 추쇄관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이제 어느 관원으로 추쇄를 맡게 할 것인가?”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음관(蔭官) 또는 문관(文官)으로 하되 삼조(三曹)의 낭관(郞官)인 자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심지원이 아뢰기를,
“장례원·형조가 맡되 이조를 시켜 극진히 가리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김익희(金益熙)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형조·장례원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빨리 결단해야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경의 이 말을 비웃고 욕하겠으나, 이제 경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추쇄는 모두 대사헌의 말대로 시행하되 대신 한 사람이 통괄하여 살피는 것이 옳겠으니, 우상이 맡게 하고 어사는 명관(名官)을 차출하여 보내라. 국가에 이익이 있다면 내가 모발이나 피부같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 분의(分義)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대사헌의 말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이조 참판 홍명하(洪命夏)에게 이르기를,
“추쇄관은 명관을 차출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조가 중벌을 받을 것이다. 사노비는 달아났거나 죽었거나 잡탈이거나를 막론하고 해원(該院)을 시켜 사실대로 초록(抄錄)하여 들이도록 하라. 또, 연미(燕尾)와 갑곶에는 첨사(僉使)를 두고 그 나머지 두 곳에는 만호(萬戶)를 두도록 하라.” (후략)


길고 복잡하다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655년은 북벌 사업에 매진했던 효종이 국가 재정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문서상 기록된 19만의 공노비 가운데 사라진 자들을 찾아 오게 한 해인 것입니다. 또 이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기존 관서에서 다루기보다는 특별 기관을 설치하고, 중앙 관료를 뽑아 추쇄관으로 임명해 그 일을 독려하게 하고, 그중에 추노 실적이 가장 뒤지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나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석견을 살려낸 효종을 성군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노비 추쇄에 대한 한 효종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종 이후의 왕들은 혹독한 노비 추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숙종은 추노 과정에서 노비를 함부로 죽인 관료를 엄벌했고, 영조 때에는 추쇄관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고, 정조는 마침내 추쇄관을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추쇄관이 없어졌다고 해서 추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조가 남긴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평등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제목: 추노

1684년 12월 13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의 진노를 전한다. 지평(持平)을 지낸 정제선(鄭濟先)이 살인죄로 사형 위기에 놓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선처를 요구한 데 대한 분노였다. 사헌부의 정5품 벼슬인 지평은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정승도 탄핵할 수 있는 요직이었고, 정제선은 급제 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30대의 유망한 관료였다.

그런 정제선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추노(推奴) 때문이었다. 정제선은 연행 사신단의 일원이던 1683년, 달아난 노비(叛奴) 2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비 2명과 양민 1명까지 잡아들였고 술에 취해 이들을 무리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끝에 정제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유배됐다.

하지만 숙종은 이때 정제선을 사형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24년 뒤인 1708년에도 숙종은 “정제선 뒤로도 양반 사대부 가운데 살인죄로 사형당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대부가 법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처벌하는 자들이 꺼렸기 때문인가?”라며 법 적용이 공평하지 않음을 개탄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KBS-2TV 인기 드라마 '추노'가 25일 마지막 회를 맞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17세기 인조 때지만 실제 추노의 기록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도망친 노비의 체포와 환원이 당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잇따라 겪으며 신분제도에 혼란이 오자 효종 때에는 아예 추노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추쇄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쇄관의 폐해가 심해지자 정조는 이를 혁파하고 노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파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가 이리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이 없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天之生人, 豈亶使然哉). 가련한 마음은 한이 없다.”(홍재전서)

추노와 관련된 기록을 살필수록 신분의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도 인권과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민하던 깨인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18세기 조선이 문물의 중흥기를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끝)


마지막 부분 정조의 말은 홍재전서 12권에 나오는 '노비인(奴婢引)'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존재가 노비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팔조지교는 그것이 악을 징계하자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했던 것인데, 역대로 그것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인습해 왔기 때문에 대를 물려 가면서 남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팔고 하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로 전해 가면서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며, 오랑캐 비슷하게 반드시 어미를 우선하고, 아비 성을 따르지 않고 종[奴]으로 성(姓)을 삼는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이웃에서도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니, 높고 두꺼운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 없는 자와 같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 약간의 인정을 베푼 열성조의 사랑으로 인해 비록 몸은 보존하고 살 곳 정해 살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은 한이 없다.
내가 국정에 바쁜 여가를 이용하여 두 쪽 다 똑같이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우선 노비 규정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신 고용(雇傭)의 법을 만들어서 대물림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한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그에 관한 방략(方略)을 먼저 정하여 대금을 주고 드나들게 하는 데도 다 일정한 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한 한두 신하들과 함께 그 영(令)을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명분만을 숭상하는 편인데, 만약 양민과 천민을 한데 섞어서 반벌(班閥)이 분명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무시하고 덤빌 자가 틀림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남의 부림을 받는데 자식은 도리어 주인에게 항거한다거나, 작은 역(驛)과 보(堡)에 부릴 하인이 없다거나, 궁한 선비 집에 땔감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만 한 가지 폐단이 다시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작은 절목 내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평민과 섞여 사는 것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병행될 수만 있다면 단연코 결행할 것이다. 지금 공의 주고를 인하여 이와 같이 내 뜻을 약간 밝힌다.

생각할수록 정조는 참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추노'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좀 의문입니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의 지성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숙-경-영 시대를 거치며 조선 후기의 문화가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허공의 활로 하늘의 해를 쏘는 대길의 엔딩은 참 멋지더군요.



공감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