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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봤습니다(극장을 찾은게 얼마만인지...ㅜㅜ).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세븐'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2011년작입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미 2009년에 작가의 모국 스웨덴에서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밀레니엄 1부'라는 제목으로 이달초 국내에서도 개봉됐는데, 사실 이 영화에도 관심이 갔지만 개봉관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이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동안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욱 '영화부터 보자'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주연 여배우 루니 마라의 'W' 지 화보에서는 더더욱.




현대. 스톡홀름. 시사잡지사 '밀레니엄'에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Blomkvist,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업 총수 베너스트롬(Wennerstrom)의 비리를 폭로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해 패소하고 60만 크로나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됩니다.

좌절해 있던 미카엘에게 스웨덴의 오랜 재벌 가문인 방예르(Banger) 가문에서 연락이 옵니다. 방예르 가문의 가주 역할인 헨리크(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천재적인 조사관 리스베트(루니 마라)를 이용해 미카엘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조사해놓고 있죠.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4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조카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내 주면 베너스트롬을 몰락시킬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떡밥을 던집니다. 영하 20도를 넘는 한겨울, 몸이 덜덜 떨리는 시골 저택의 별채에서 미카엘은 뭔가 음습하고 비밀이 넘치는 방예르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왜 이 작품이 소설로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롬크비스트, 베너스트롬 같은 낯선 이름. 흔히 해외 유명 작품들이 무대로 삼는 런던, 파리, 제네바 같은 도시가 아니라 퍽 생소한 스톡홀름 등의 배경이 확실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Blomkvist라는 이름은 이전의 상식대로라면 Blomkwist, 즉 '블롬퀴스트'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여기선 또 '블롬크비스트'라는 발음이 등장합니다. 사실 '헤르미온느'나 '케드릭' 이후 한국 번역가들의 이름 발음 문제에 대해서는 큰 신뢰를 갖지 않게 됐지만, 북유럽 이름까지 가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문득 올림피크 리옹에서 뛰던 노르웨이 스트라이커 John Carew의 이름 표기를 놓고 벌어졌던 왕년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존 캐루 - 욘 캐루 - 욘 카레우 - 욘 카레브 - 욘 사레브까지 온갖 한글 표기들을 검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이라면 http://ko.forvo.com/word/john_carew/#no 를 검색해서 '욘 카레브'라고 자신있게 쓸 수 있었겠죠.)



어쨌든 핀처의 솜씨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Immigrant Song'으로 시작하는 격렬한 그래픽의 타이틀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편집의 대가답게 핀처는 대단한 속도감으로 전반부를 폭풍처럼 휩쓸어 갑니다. 꽤 숙련된 관객에게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달려나간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한 속도입니다. 반면 비숙련 관객에게는 '뭐야. 얘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라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포탈 감상평을 일별하면 이런 요소가 이 영화의 흥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달려가는 영화 사이사이에도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의 풍광은 핀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충분히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눈덮인 평야와 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사물들. 모든 등장인물이 영어로 대사를 하고 있지만 '뭔가 대단히 이질적인' 이 느낌들은 관객이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천재 조사관(우리나라로 치자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직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전문적으로 남의 뒷조사를 하는 사람입니다)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의 루니 마라입니다.


아마 이 장면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 말고도 '소셜 네트워크'를 보신 분이라면 놀라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도 이 배우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만들 동기를 부여한, '예쁜이 여대생 에리카'였다는 사실을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물론 배우 노릇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욕심 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리스베트 역할은 매력적입니다. 23세. 어려서 아버지를 죽이려 시도한 죄로 금치산자 판정. 천재 해커. 발군의 운동능력.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과단성과 일반인과는 사뭇 다른 도덕관("정말 죽여도 돼요?"에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던 무대포 캐릭터의 "정말 죽여?"가 떠오릅니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펑크 스타일의 패션. (위 사진. 페레즈 힐튼에 따르면 저 피어싱은 모두 진짜랍니다.)




(네. 솔직히 이 분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코믹하지 않아서 그렇지... 딱 스웨덴의 김꽃드레라고 할 수 있죠.)

고만고만한 20대 여배우 풀이 넘쳐 나는 세상, 데이빗 핀처 같은 감독이 이런 역할을 제안한다면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백번 해야 마땅한 일일 겁니다. 이 역할 하나로 루니 마라는 수년간 고민했을 '존재감'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자 안톤(하비에르 바뎀)에 비견할 만한 압도적인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1차적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해 낸 루니 마라를 칭찬해야겠지만, 간장보다는 고추장이 인상적인 맛을 내기 쉬운 재료이듯 이런 역할이 배우의 기량을 100% 끌어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3편의 원작이 모두 영화화된다면 루니 마라는 그때 가선 '어떻게 리스베트 캐릭터로부터 도망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워낙 본 모습과 멀리 떨어진 캐릭터인 만큼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 -.

(일각에서는 스웨덴 판에서 리스베트 역할을 한 누미 라파스와 비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글쎄, 일단 사진만으로는 23세라는 설정과 라파스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23세가 원작과는 관련 없는 나이일 수도 있겠군요. 라파스에게서는 마라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미성숙'의 느낌이 풍겨나오지 않습니다.)



리스베트 캐릭터가 빛이 나는 만큼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블롬크비스트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007 배우가 육체적으로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너무 무기력하게 리스베트에게 리드당하는 역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게 핀처의 의도인지, 원작자의 의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만약 대단한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밀레니엄'을 보신 분이 있다면 실망하시기 십상일 겁니다. 어차피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고, 결과를 볼 때 그리 엄청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첨단 디지털 기법을 병행해 가며 묵묵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리스베트/블롬크비스트 콤비의 노력은 대단히 흥미롭고, 충분히 돈 값을 합니다. 죽도록 달려 목표에 도달하는 본 요원이나 헌트 요원 못잖게, '죽어라고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긴장감 유발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리스베트의 여성성을 강조한 에필로그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에필로그를 보고도 2편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건조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핀처 판 '밀레니엄'은 강추작입니다.



P.S. 헨리크 역을 맡은 할아버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실 단역에 해당하는, 대사 하나 없는 '젊은 헨리크' 역을 줄리언 샌즈(58년생인데 '젊은 헨리크'...)가 맡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P.S.2. 날이 갈수록 동태눈 증세가 심해지는지, 로빈 라이트와 대릴 해너가 헷갈릴 지경에 온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P.S.3. 도입부의 'Immigrant Song'과 '해커1'의 NIN 티셔츠는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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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드라마에서 나온 것만도 한두번이 아닌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바로 수양대군, 뒷날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권을 견고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견제하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다수의 인물들을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대군을 귀양보낸 사건이죠. JTBC 드라마 '인수대비'가 계유정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언젠가부터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의 이름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정란(政亂)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계유정난의 정의는 '단종 1년인 계유년(1453년)에 난을 진압한 사건'입니다. 진압의 주체는 수양대군이고 '난'의 주체는 김종서-황보인인 셈이죠. 

물론 어느 쪽이 난의 주역이고 어느 쪽이 왕권 수호의 주축인지는 결과를 보고 나서도 헷갈립니다.

과연 계유정난의 시점에서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한 명나라 영락제의 심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린 조카를 보필해 '간신들'을 물리치고 왕위를 굳게 지킨 주나라 주공 단의 심정이었을까요. 전자라는 쪽이 압도적이지만 후자의 마음도 1% 정도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혹시 영화 '관상' 때문에 오신 분이라면 '관상' 리뷰는 이쪽입니다.

관상: 관상은 정말 운명을 지배하나? http://v.daum.net/link/49999746


아무튼 계유정난이 일어난 날, 1453년 음력 10월10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매우 길고 흥미롭습니다. 박진감넘치는 묘사로 보아 이 사건을 기록한 사관은 아마도 문학적 재능이 풍부했던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중간중간 역주의 색을 바꿔 놨는데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은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PC를 통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그리고 기록이 꽤 길고 정교합니다. 물론 가끔씩 시간대가 뒤바뀌곤 합니다만...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세조가 새벽에 권남(權擥)·한명회(韓明澮)·홍달손(洪達孫)을 불러 말하기를,
“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히 하겠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약속과 같이 하라. 내가 깊이 생각하여 보니 간당(姦黨) 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金宗瑞) 같은 자가 없다. 저 자가 만일 먼저 알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두 역사를 거느리고 곧장 그 집에 가서 선 자리에서 베고 달려 아뢰면, 나머지 도적은 평정할 것도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 여러 무사(武士)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조용히 이르겠으니, 그대들은 느지막에 다시 오라.”
하고, 드디어 무사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한낮쯤 되어 권남이 다시 왔다. 세조가 나와 보고 말하기를,
“강곤(康袞)·홍윤성(洪允成)·임자번(林自蕃)·최윤(崔閏)·안경손(安慶孫)·홍순로(洪純老)·홍귀동(洪貴童)·민발(閔發) 등 수십 인이 와서 더불어 과녁을 쏘는데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곽연성(郭連城)은 이미 왔으나 어미의 상중(喪中)으로 사양하기에, 여러 번 되풀이하여 타이르니, 비록 허락은 하였으나 어렵게 여기는 빛이 있다. 그대가 다시 말하라.” 하고, 세조는 도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권남이 곽연성을 보고 말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지금 종사의 큰 계책으로 간사한 도적을 베고자 하는데,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이니, 자네는 장차 어찌하려는가?”
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들었습니다. 장부가 어찌 장한 마음이 없을까마는 최복(衰服)이 몸에 있으니(상중이니) 명령을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지금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만번 죽을 계책을 내어 국가를 위하여 의(義)를 일으키는 것인데, 자네가 어찌 구구하게 작은 절의(節義)를 지키겠는가? 또 충과 효에는 두 가지 이치가 없으니, 자네는 구차히 사양하지 말고 큰 효를 이루라.” 하였다.

곽연성이 말하기를,
“수양 대군께서 이미 명령이 있으니 마땅히 힘써 따르겠으나,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니, 그대는 자세히 방략(方略)을 말하여 보라.”
하였다. 권남이 하나하나 말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나머지는 의논할 것이 없고, 다만 수양 대군께서 김종서의 집을 왕래하는 데 이르고 늦는 것을 알 수 없으니, 성문이 만일 닫히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이것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마땅히 선처하겠다.”

[수양대군은 도성 안에, 김종서는 도성 밖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김종서를 제거한다 해도 도성으로 들어와야 궁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날이 저문 뒤에 도성을 출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김종서가 대세를 뒤집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

하였다. 해가 저무니 홍달손(洪達孫)이 감순(監巡)으로 먼저 나갔다. 세조가 활 쏘는 것을 핑계하고 멀찌감치 무사 등을 이끌고 후원 송정(松亭)에 이르러 말하기를,
“지금 간신 김종서(金宗瑞)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君上)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서 비밀히 이용(李瑢)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당원(黨援)이 이미 성하고 화기(禍機)가 정히 임박하였으니, 이때야말로 충신 열사가 대의를 분발하여 죽기를 다할 날이다.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위 문장 속의 '이용'은 당연히 안평대군.]

하니,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하고, 송석손(宋碩孫)·유형(柳亨)·민발(閔發) 등은 말하기를,
“마땅히 먼저 아뢰어야 합니다.”

[당연히 역적을 토멸하려면 임금에게 아뢰고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세조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답입니다. '역적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받는다 해도, 저쪽에서 준비할 시간을 줄 뿐입니다. 기습 외에는 방법이 없던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말이나 듣고 있자니 속이 탔겠죠.]

하니, 의논이 분운(紛?)하여 혹은 북문을 따라 도망하여 나가는 자도 있었다. 세조가 한명회에게 이르기를,

“불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계교가 장차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하니, 한명회(위 사진) 가 말하기를,
길 옆에 집을 지으면 3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큰 일이겠습니까? 일에는 역(逆)과 순(順)이 있는데, 순으로 움직이면 어디를 간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모의(謀議)가 이미 먼저 정하여졌으니, 지금 의논이 비록 통일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청컨대 공(公)이 먼저 일어나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作舍道旁, 三年不成 이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옆에 집을 짓자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참견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이 말도 들었다 저 말도 들었다 하면 도저히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하고, 홍윤성(洪允成, 위 사진)이 말하기를,
“군사를 쓰는 데에 있어 해(害)가 되는 것은 이럴까 저럴까 결단 못하는 것이 가장 큽니다. 지금 사기(事機)가 심히 급박하니, 만일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른다면 일은 다 틀릴 것입니다.”
하였다. 송석손 등이 옷을 끌어당기면서 두세 번 만류하니, 세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 가서 먼저 고하라. 나는 너희들을 의지하지 않겠다.”

[ 여기서 강경파의 한 사람인 홍윤성은 뒷날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는 세도가가 되지만 뒷얘기는 영 좋지 않습니다. 성품이 잔혹한 탓인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횡포도 심했지만, 세조의 총애 때문에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고, 드디어 활을 끌고 일어서서, 말리는 자를 발로 차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지금 내 한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었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社稷)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나는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만일 고집하여 사기(事機)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먼저 베고 나가겠다. 빠른 우레에는 미처 귀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는 신속한 것이 귀하다. 내가 곧 간흉(姦凶)을 베어 없앨 것이니,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하고, 중문에 나오니 자성 왕비(慈聖王妃)가 갑옷을 끌어 입히었다.

드디어 갑옷을 입고 가동(家?) 임어을운(林於乙云)을 데리고 단기(單騎)로 김종서(金宗瑞)의 집으로 갔다. 세조가 떠나기 전에 권남과 한명회가 의논하기를,
“지금 대군이 몸을 일으켜 홀로 가니 후원(後援)이 없을 수 없다.”

[주: "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비장한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수양대군도 김종서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권언(權?)·권경(權擎)·한서구(韓瑞龜)·한명진(韓明?) 등으로 하여금 돈의문(敦義門) 안 내성(內城) 위에 잠복하게 하고, 또 양정(楊汀)·홍순손(洪順孫)·유서(柳?)에게 경계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따라가게 하였다. 세조가 처음에 권남에게 명하여 김종서를 그 집에 가서 엿보게 하였다.

권남이 투자(投刺)[주: 명함을 드림] 하니, 김종서가 〈불러들여〉 별실에서 한참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남이 돌아와 보고하니, 세조가 이미 말에 올라탔다. 세조가 김종서의 집 동구(洞口)에 이르니, 김승규(金承珪, 김종서의 장남)의 집앞에 무사 세 사람이 병기를 가지고 귀엣말을 하고 있고 무기(武騎) 30여 인이 길 좌우를 끼고 있어 서로 자랑하기를,
“이 말을 타고 적을 쏘면 어찌 한 화살에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세조가 이미 방비가 있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하기를,
“누구냐?”
하니, 그 사람들이 흩어졌다.

양정(楊汀)은 칼을 차고 유서(柳?)는 궁전(弓箭)을 차고 왔다. 세조가 양정으로 하여금 칼을 품에 감추게 하고 유서를 정지시키면서 김종서의 집에 이르니, 김승규가 문 앞에 앉아 신사면(辛思勉)·윤광은(尹匡殷)과 얘기하고 있었다. 김승규가 세조를 보고 맞이하였다. 세조가 그 아비를 보기를 청하니, 김승규가 들어가서 고하였다. 김종서가 한참 만에 나와 세조가 멀찍이 서서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들어오기를 청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해가 저물었으니 문에는 들어가지 못하겠고, 다만 한 가지 일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하였다. 김종서가 두세 번 들어오기를 청하였으나 세조가 굳이 거절하니, 김종서가 부득이하여 앞으로 나왔다.

김종서가 나오기 전에 세조는 사모(紗帽) 뿔이 떨어져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정승(政丞)의 사모 뿔을 빌립시다.”
하니, 김종서가 창황(蒼黃)히 사모 뿔을 빼어 주었다. 세조가 말하기를,
“종부시(宗簿寺)에서 영응 대군(永膺大君)의 부인의 일을 탄핵하고자 하는데, 정승이 지휘하십니까? 정승은 누대(累代) 조정의 훈로(勳老)이시니, 정승이 편을 들지 않으면 어느 곳에 부탁하겠습니까?”
하였다. 이때에 임어을운이 나오니, 세조가 꾸짖어 물리쳤다. 김종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윤광은·신사면이 굳게 앉아 물러가지 않으니, 세조가 말하기를,
비밀한 청이 있으니, 너희들은 물러가라.”
하였으나, 오히려 멀리 피하지 않았다. 세조가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또 청을 드리는 편지가 있습니다.”
하고, 종자(從者)를 불러 가져오게 하였다. 양정이 미처 나오기 전에 세조가 임어을운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 편지 한 통이 어디 갔느냐?”
하였다. 지부(知部)의 것을 바치니 김종서가 편지를 받아 물러서서 달에 비춰 보는데, 세조가 재촉하니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쳐서 땅에 쓰러뜨렸다. 김승규가 놀라서 그 위에 엎드리니, 양정이 칼을 뽑아 쳤다.

[이 대목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수양의 옆에 있던 무사래봐야 4~5명 남짓. 장소는 김종서의 홈. 이미 아들 김승규와 30여명의 기병이 지키고 있던 상황. 측근들은 '할 얘기가 있으니 멀리 가라'는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테러가 가능했다는 것일까요. 김종서의 방심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방심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첨가합니다.]

하여금 말고삐를 흔들게 하여 돌아와서 돈의문에 들어가, 권언 등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이날 김종서가 역사(力士)를 모아 음식을 먹이고 병기를 정돈하다가 세조가 이르니, 사람을 시켜 담 위에서 엿보게 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적으면 나아가 접하고, 많으면 쏘라.”
하였다. 엿보는 자가 말하기를,
“적습니다.”
하니, 김종서가 오히려 두어 자루 칼을 뽑아 벽 사이에 걸어 놓고 나왔다.

[수양대군 일행의 수가 적다는 말에 오히려 방심해서 당했다는 이야기. 다음 부분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해치려 떠난 뒤, 후원에 남아 불안에 떠는 무사들과 그들을 안정시키는 권남의 역할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참 생생합니다.]

처음에 세조가 김종서의 집에 갈 때에 무사들을 저사(邸舍)에 가두게 하고 나왔다. 여러 사람이 오히려 떠들어대며 다투어 튀어나오려고 하자, 권남(權擥)이 문에 서서 막으니, 혹은 말하기를,

“먼저 아뢰지 않고 임의로 대신을 베는 것이 가합니까? 장차 우리들을 어느 땅에 두려고 합니까?”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용렬하지마는 대군(大君)은 고명하니, 익히 계획하였을 것이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일을 만일 이루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혼자 살겠는가? 장부는 다만 마땅히 순(順)을 취하고 역(逆)을 버리고, 종사를 위하여 공을 세워 공명을 취할 것이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어째서 우리들에게 미리 일러 활과 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다만 빈 주먹이니 어찌합니까?”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만일 격투할 일이 있으면 비록 그대들 수십 인이 병기를 갖추었더라도 어찌 족히 쓰겠는가? 그대들은 근심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만약 병력 대결로 간다면 팔도의 병권을 장악한 김종서에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수양과 측근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은 단신으로 대담한 암습을 감행했던 것이죠.]

하였다. 한명회(韓明澮)가 세조를 따라 성문(城門)에 이르렀다가 돌아와서, 또 세조의 명령을 반복하여 고해 이르고, 세조가 돌아오는 것을 머물러 기다리게 하였다. 권남이 달려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洪達孫)을 보고 세조가 이미 김종서의 집에 간 것을 비밀히 알리고, 순졸(巡卒)을 발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약속하고는, 또 두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숭례문(崇禮門)·서소문(西小門) 두 문을 닫게 하였다. 권남은 스스로 갑사 두 사람, 총통위(銃筒衛) 열 사람을 거느리고 돈의문(敦義門)에 이르러 지키게 하고 명령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일로 인하여 문 밖에 갔으니, 비록 종(鍾)소리가 다하더라도 문을 닫지 말고 기다리라.”
하고, 권언(權?)을 시켜 문을 감독하게 하였다.

[순청이란 야간 통행금지를 관장하던 기관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수양대군 휘하의 세력 외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었으니 일단 절반 이상의 성공입니다.]

장차 대군(大君)의 저사(邸舍)로 돌아가려 하여 미처 돌다리를 건너기 전에 성 안으로부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세조가 이르렀다. 웃으며 권남에게 이르기를,

“김종서(金宗瑞)·김승규(金承珪)를 이미 죽였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여러 무사가 아직도 공의 저사에 있으니, 따라오게 할까요?”
하였다. 세조가 조금 멈추었다가 부르니 한명회가 거느리고 달려왔다. 세조가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을 시켜 순졸(巡卒)을 거느려 뒤에 따르게 하고, 시좌소(時坐所) 로 달려가서 권남을 시켜 입직(入直) 승지(承旨) 최항(崔恒)을 불러내었다.

세조가 손을 잡고 최항에게 이르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이양(李穰)·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원구(元矩)·조번(趙蕃)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당부(黨附)하고,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경성 부사(鏡城府使) 이경유(李耕?)·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조수량(趙遂良)·충청도 도관찰사(忠淸都都觀察使) 안완경(安完慶) 등과 연결하여 불궤(不軌)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여 형세가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다. 김연(金衍)·한숭(韓崧)이 또 주상의 곁에 있으므로 와서 아뢸 겨를이 없어서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金宗瑞) 부자를 베어 없애고 그 나머지 지당(至黨)을 지금 아뢰어 토벌하고자 한다.”
하고, 연하여 환관 전균(田畇)을 불러 말하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의 중한 뇌물을 받고 전하께서 어린 것을 경멸히 여기어 널리 당원(黨援)을 심어 놓고, 번진(藩鎭)과 교통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기를 꾀하여 화가 조석에 있어 형세가 궁하고 일이 급박한데 또 적당(賊黨)이 곁에 있으므로, 지금 부득이하여 예전 사람의 선발후문(先發後聞)의 일을 본받아 이미 김종서 부자를 잡아 죽였으나, 황보인 등이 아직도 있으므로 지금 처단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너는 속히 들어가 아뢰어라.”
하고, 또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기운을 돌리고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천천히 아뢰고 경동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도진무(都鎭撫)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김효성(金孝誠)이 입직(入直)하였는데, 세조가 그 아들 김처의(金處義)를 시켜 부르고, 또 입직한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계전(李季甸) 등을 불러 들이어 세조가 최항·김효성·이계전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 아뢰고, 황보인·이양·조곡관·좌찬성(左贊成) 한확(韓確)·좌참찬(左參贊) 허후(許?)·우참찬(右參贊) 이사철(李思哲)·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정인지(鄭麟趾)·도승지(都承旨) 박중손(朴仲孫) 등을 불렀다.

[양정, 유수 등 수양이 계유정난에 동원한 주요 인물들은 바로 내금위 소속입니다. 국왕의 친위부대인 내금위는 김종서의 손 밖에 있는 병력이었죠.]

세조는 처음에 궐문에 이르러 입직하는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 등으로 하여금 갑주(甲胄)를 갖추고 궁시(弓矢)를 띠고 남문 내정(內庭)에 늘어서서 간적(姦賊)을 방비하여 엿보게 하고, 또 입직하는 여러 곳의 별시위 갑사(別侍衛甲士)·총통위(銃筒衛) 등으로 하여금 둘러서서 홍달손(洪達孫)의 부서를 시위하게 하고, 여러 순군(巡軍)은 시좌소(時坐所)의 앞뒤 골목을 파수하여 차단하게 하고, 친히 순졸(巡卒) 수백 인을 거느려 남문 밖의 가회방(嘉會坊) 동구(洞口) 돌다리[石橋] 가에 주둔하고, 서쪽으로는 영응 대군(永膺大君) 집서쪽 동구에 이르고 동쪽으로 서운관(書雲觀) 고개에 이르기까지 좌우익(左右翼)을 나누어 사람의 출입을 절제하고, 또 돌다리로부터 남문까지 마병(馬兵)·보병(步兵)으로 문을 네 겹으로 만들고, 역사(力士) 함귀(咸貴)·박막동(朴莫同)·수산(壽山)·막동(莫同) 등으로 제3문을 지키게 하고, 영을 내리기를,

이 안이 심히 좁으니, 여러 재상으로서 들어오는 사람은 따라오는 사람을 제거하고 혼자 들어오도록 하라.” 하였다.

[한명회가 이미 생살부(生殺簿)-요즘은 살생부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는 듯 합니다-를 작성해 놓고, '살'쪽에 기록된 인물이 들어오면 가차없이 처단하게 했다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임금의 명으로 불러 옆에 따라오는 사람을 모두 떼어냈으니 꼼짝없이 죽을 밖에요.]

조극관(鳥克寬)·황보인(皇甫仁)·이양(李穰)이 제3문에 들어오니, 함귀 등이 철퇴로 때려 죽이고, 사람을 보내어 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조번(趙藩)·원구(元矩) 등을 죽이고, 삼군 진무(三軍鎭撫) 최사기(崔賜起)를 보내어 김연(金衍)을 그 집에서 죽이고, 삼군 진무 서조(徐遭)를 보내어 민신(閔伸)을 비석소(碑石所)에서 베고【이때에 민신은 현릉(顯陵)의 비석을 감독하고 있었다.】또 최사기(崔賜起)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신선경(愼先庚)을 보내어 군사 1백을 거느리고 용(瑢, 안평대군)을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서 잡아서 압송(押送)하여 강화(江華)에 두고, 세조가 손수 편지를 써서 그 뜻을 이르고, 또 시켜서 말하기를,

“네 죄가 커서 참으로 주살(誅殺)을 용서할 수 없으나, 다만 세종(世宗)·문종(文宗)께서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너를 용서하고 다스리지 않는다.”
하였다.

용(瑢)이 사자(使者)를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도 또한 스스로 죄가 있는 것을 안다. 이렇게 된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삼군 진무 나치정(羅致貞)이 군사를 거느리고 용(瑢)의 아들인 이우직(李友直)을 잡아 압령하여 강화에 두었다. 용(瑢)이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급히 그 종 영기(永奇)를 불러 옷을 벗어 입히고 비밀히 부탁하기를,
“네가 급히 가서 김 정승에게 때가 늦어진 실수를 말하여 주라.”
하였으니, 대개 김종서가 이미 주살된 것을 알지 못하고 다시 이루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이 실록이 이미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쓰인 거란 점을 생각하면 사실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실록은 권람 등이 이미 9월25일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를 감지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야겠죠. 과연 이런 음모가 존재했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

또 말하기를,

“일이 만일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석(河石)이 반드시 먼저 베임을 당할 것이니, 네가 꼭 뼈를 거두어 오라. 내가 다시 보고야 말겠다.”
하였다. 이우직(李友直)이 강화에 이르러 용에게 말하기를,
“제가 여쭙지 않았습니까?”
하니, 용(瑢)이 말하기를,
“부끄럽다. 할 말이 없다.”
하였다.

용(瑢)의 당(黨)에 대정(大丁)이란 자가 있어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 숨어 있었는데, 성씨(成氏)가 여복을 입히어 침병(寢屛) 뒤에 엎드려 있게 하였다. 잡기를 급박하게 하니, 성씨가 부득이하여 내보냈는데, 곧 베었다. 운성위(雲城尉) 박종우(朴從愚)가 문에 이르러 들어가지 못하고 말하기를,
“비록 부르시는 명령은 없으나 변고가 있음을 듣고 여기 와서 명을 기다립니다.”
하니, 세조가 불러 들였다. 우승지(右承旨) 권준(權?)·동부승지(同副承旨) 함우치(咸禹治)가 또한 오니, 세조가 권준만 불러 들이었다.

[눈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줄을 서게 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도 만나 주지를 않으면 참 난감하겠죠.ㅋ]

정인지(鄭麟趾)가 권남을 시켜 붓을 잡고 이계전·최항과 더불어 함께 교서(敎書)를 짓는데, 밤이 심히 추웠다. 노산군(魯山君)이 환관 엄자치(嚴自治)에게 명하여 내온(內?) ·내수(內羞)로 세조 이하 여러 재상을 먹이었다. 세조가 군사에게 술을 먹이도록 아뢰어 청하고, 또 아뢰어 용(瑢)의 당(黨)인 환관 한숭(韓崧)·사알(司謁) 황귀존(黃貴存)을 궐내에서 잡아 의금부(義禁府)에 넘기었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빌려옴. ㅋ)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명민(李命敏)도 또한 다시 깨어나서 들것에 실려 도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홍달손(洪達孫)에게 고하니 호군(護軍) 박제함(朴悌緘)을 보내어 베었다.

세조가 인하여 여러 적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려하여, 양정(楊汀)과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흥상(李興商)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고, 김종서를 찾아 김승벽의 처가에 이르러 군사가 들어가 잡으니, 김종서가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軒)을 가져오라.”
하니, 끌어내다가 베었다.

[이렇습니다. 김종서는 설마 수양대군이 나선다 해도 감히 선왕의 고명대신인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너무도 방심했던 겁니다. 자신의 수족들이 하룻밤 사이 다 참살당하고 있는 판에 도성 진입도 실패하고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요. 이렇듯 무기력하게 도성 부근의 사돈 집에 숨었다 잡힌다는 건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수양이 최측근과 거사를 결심한 것이 9월29일. 그런데 10월2일, 이미 황보인과 김종서에게 이 정보가 누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수양은 "저 우유부단한 것들이 손을 쓰는데 열흘은 걸릴테니 열흘 안으로만 손을 쓰면 된다"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역시 후세의 영웅전설 꾸미기였는지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

김종서의 부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뒤에 저자 아이들이 난신(亂臣)의 머리를 만들어서 나희(儺戱)를 하며 부르기를,
“김종서 세력에 조극관 몰관(沒官)하네.”
하였다. 이날 밤에 달이 떨어지고, 하늘이 컴컴하여지자 유시(流矢)가 떨어졌다. 위사(衛士)가 놀라 고하니, 이계전(李季甸)이 두려워하여 나팔을 불기를 청하였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무엇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는가? 조용히 하여 진압하라.”
하였다. [10월10일의 실록 끝]


 

 


이렇게 해서 이틀에 걸친 살육이 끝났습니다. 조정을 가득 채웠던 김종서의 파벌, 안평대군의 사람들이 싸그리 제거된 것이죠.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듯 '계유정난=수양대군이 단군을 몰아낸 사건'은 결코 아닙니다. 계유정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계유정난 이후에도 단종의 치세는 2년 더 이어졌습니다. 안평대군도 귀양을 간 상태였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계유정난때 이미 단종과 안평대군의 운명은 결정돼 있었을까요. 물론 이때 세조의 심정이 어땠는가는 큰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살아 있는 한은 제아무리 세조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정국이 안정될 기회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주말, 김영호 수양대군이 어떤 카리스마를 발휘할 지 궁금합니다.

숨가쁜 계유정난의 틈바구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기회가 없다는게 참 아쉽기도...^ 어쨌든 우리의 한모양도 시아버지를 도와 뭔가 하는 모습이 보일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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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는 JTBC 개국 전부터 가장 기대를 모은 콘텐트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시트콤 데뷔작이라는 점, 일찌기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극장판 '올드 미스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 '조선명탐정'을 만든 김석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시작. 국민 어머니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궁상 아줌마로 변신한 김혜자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함께 '청담동 살아요'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8시대라는 만만찮은 시간대(MBC TV의 '하이킥' 3부와 일일드라마가 상당 부분 겹치죠)에 자리잡은 '청담동 살아요'는 힘든 싸움이지만 확실히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혹시 '청담동 살아요'를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 에피소드가 빠져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분들을 위한 '일단 가이드'입니다. 한번 보시면 헤어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중독성 경고는 생략합니다.






먼저 혜자. 

혜자네 식구가 청담동으로 오게 된 건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경기도 서평(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가상의 지명일 겁니다)의 단칸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혜자는 '서해안에서 낚시를 하던 이낙구씨가 해일 때문에 실종됐다'는 뉴스를 보자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사고무친인 '낙구오빠'는 청담동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서평에서도 살 길이 막막했던 터라 그 집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말만 청담동이지 사는 건 예전과 똑같은 혜자네 가족이지만, 혜자는 어찌어찌하다가 부잣집 마나님으로 오해를 받고, 상위 1%들만 드나든다는 글로리아 백화점^^ 문화센터의 VIP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클럽 멤버가 됩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혜자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됩니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아 그렇지 혜자는 한방에 거주지를 옮기는 과단성도 있고, 엄청난 양의 만화 독서로 쌓은 교양(최근에 '귀신의 물방울'이란 만화 덕으로 와인 지식을 뽐내기도 했죠^), 가끔씩 알바로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도 갖춘 능력자입니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라도 '청담동 상류층 행세'를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한편, 혜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 온 국민이 바라마지 않는 '청담동 생활'이란게 얼마나 허영과 거품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청담동 살아요'의 진짜 주제는 이 쪽에 있는게 아닐까요.


 
보희(이보희)는 혜자의 유일한 여동생. 미모 덕분에 20대 초반 시절 영화배우로 딱 한 작품을 히트시킨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재벌 2세와 결혼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주사 때문에 결국 이혼당하고 혜자에게 얹혀 사는 신세가 됐습니다.

지금도 미모는 여전하지만 살아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은 전혀 없는 민폐의 화신입니다(혜자는 청담동으로 이사 오면서 보희를 버리고 오려고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 정회장이 신문이나 TV에 나올 때마다 속을 끓이고 술병이 도지고, 정회장이 집어 주는 5000만원짜리 수표는 땅바닥에 팽개칠 정도로 괜히 통만 커서 더욱 골치덩이입니다.



혜자의 딸 지은(오지은). 혜자의 딸이자 보희의 조카답게 미인이지만 설정상으론 약간 예쁜 정도의 얼굴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청담동의 VIP들만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됐고, 여기서 A급 킹카 상엽과 자꾸만 엮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바닥 생활을 탈출하려는 의지 때문에 청담동 생활이 지은에게는 행운이면서도 고통입니다. 자신이 꿈꾸는 생활이 바로 앞에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 거리에서 이방인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은 앞에 만화가게 백수 현우(현우)가 자꾸만 어슬렁거립니다.



외모, 집안, 실력, 모든 것을 갖춘 상엽(이상엽)은 지은이 꿈꾸는 생활로 지은을 데려다 줄 수 있는 티켓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뺀질뺀질하기 짝이 없고, 수시로 여자(그것도 자신과 어울려 손색이 없는 A급 미녀들만)를 바꿔친다는 게 문제죠. 지은은 어떻게든 작업을 해 보려 하지만, 바둑으로 쳐서 지은이 3급이라면 상엽은 5단쯤 됩니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지만 아주 멀리 가버리지도 않는, 아주 고통스러운 존재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 작품에서 상엽은 지은의 시선에서만 존재감을 갖습니다. 지은에게 탄탈로스의 고뇌를 안겨주기 위한(tantalize라는 동사가 이 신화에서 나왔죠^^) 존재인 겁니다. 

물론 언젠가는 상엽도 지은의 매력을 알아 볼 때가 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얼마전까지 '뿌리깊은나무'에서 학사 성삼문으로 나오던 꽃미남 현우. 늘 혜자네 만화가게에서 빈둥거리는 백수고, 직업을 물으면 '뮤지션'이라고 합니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딜 봐도 돈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애저녁에 지은의 작업 선상에서 제외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아예 혜자네 옥상의 콘테이너에서 살겠다고 들어오고, 지은은 현우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불안해합니다(네. 잘 생겼기 때문에 불안한거죠).

물론 웬만한 시청자들이면 눈치채셨겠지만 현우는 그냥 가난한 백수는 아닌 듯 합니다. 대체 현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앞으로 등장할 볼거리.



혜자의 남동생 우현(우현). 딱 한번 만화를 출간한 적 있는 만화가이며 역시 생활력은 없어 혜자에게 얹혀 삽니다. 혜자의 하숙생인 '인상 나쁜 3인조'의 맏이인 셈이죠.

역시 최근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방지 역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연기파 배우 우현답게 이 시트콤에서도 최강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다음주 쯤에는 이방지 패러디도 등장할 듯...?



혜자네 하숙생 상훈(오상훈). 역시 인상 나쁜 얼굴 때문에 뭘 해도 오해를 사고, 아이들은 눈 마주치면 우는 인물이지만 마음씨만큼은 비단결. 인상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인물입니다.

악역 3인방의 막내. 본래 무술감독 출신으로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무인 역을 맡기 전까지 온갖 영화에서 건달 역의 조연으로 활약해온 배우입니다. 언젠가 '청담동 살아요'에서도 그의 액션을 볼 수 있게 될지도...



기러기 아빠인 성형외과 의사 무성(최무성). 송금할 양육비 때문에 혜자네 하숙생이 된 신세.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생활고와 엄청난 외모! 때문에 역시 정상적인 '청담동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의 동료 연쇄살인마^^역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잘 해내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입니다. 여기서도 가끔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때를 연상시키죠. 악역 3인방의 중심.



지은이 일하게 된 VIP 레스토랑의 셰프 정민(황정민). 해외 유학파인데다 영국 여왕과 절친(?)이고 요리 솜씨도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역시 '청담동에서 행세'하기엔 2% 부족합니다. 바로 외모.

하지만 실력과 자부심으로 꿋꿋하게 청담동 생활을 이어갑니다. 도도하고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속도 깊고 이해심도 뛰어납니다. 혜자와 지은의 실체를 가장 먼저 알게 되지만 함께 비밀을 덮어 주는 공범 역할을 자청합니다.



혜자가 오기 전부터 만화가게 건물 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던 5인조 청담불패의 기획사 사장 관우(조관우). 말은 사장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는 백수건달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먹는 라면을 빼앗아 먹기도 합니다.

'얼굴없는 가수'에서 '나는 가수다'를 통해 엔터테이너 기질을 보여준 조관우. 연기까지 보여주는 걸 보면 갑작스런 변신이 참 놀랍습니다.



관우가 키우는 5인조 '청담불패' 아이돌 준비생. 좁은 방 안에서 몸을 공처럼 감고 자고, 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꿈을 안고 있습니다. 가끔씩 들려주는 아카펠라 실력은 '청담동 살아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늘 입고 나오는 의상이 항상 똑같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실제로도 연습생인 이들은 곧 비스트와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할 예정입니다. 그때도 이름이 청담불패일지는...ㅋ



혜자의 어린 시절 서평여고 동창생 승현(서승현). 왕년엔 여고 짱의 주먹 실력을 뽐냈지만 시집을 잘 간 덕분에 청담동 사모님이 되어 있고, 혜자와 문학 클럽에서 마주쳐 혜자를 긴장시킵니다.

혜자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가장 경계하는 인물 1호. 혜자와는 별 나쁜 감정이 없지만 보희와는 어렸을때부터 앙숙입니다.

 


이낙구씨가 키우던 개 개똥이. 옥상 콘테이너 박스 옆에 살고 있는데, 본래 주인이 현우였다는 게 얼마전에 밝혀졌습니다. 현우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개.



가끔 김혜자 선생의 연기를 볼 때마다, 표정의 '천연덕스러움'이 참 코믹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담동 살아요'에서는 그런 '천연덕스러움'이 활짝 피어납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곳 청담동. 그 욕망의 무대에서 '나야말로 바로 청담동의 주인'이라고 자부할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잘 나가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 속에 티끝만한 불안감이나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들이야말로 더 큰 가식과 위선으로 행여 상처받을지 모르는 본체를 똘똘 감아 보호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청담동 살아요'는 그 핵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총 200회로 기획된 '청담동 살아요', 이제 딱 10%가 지나갔습니다. 당연히 새해부터는 더욱 확장된 혜자 가족의 이야기가 진행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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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송된 '빠담빠담' 5회가 제 날짜에 방송이 나가느냐 마느냐는 상당히 논란거리였습니다. JTBC 개국 이후 맞는 최대 사건(아마도 올해 대한민국 10대 사건 중 당당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사건) 때문이었죠. 하지만 하루 종일 뉴스 속보를 방송하던 중에도 '빠담빠담'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방송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팍팍한 뉴스에 시달리던 분들은 충분히 위안을 얻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빠담빠담'은 꿈과 현실 사이를 구분하기 힘들게 했던 초반을 지나,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강칠(정우성)과 국수(김범)가 강칠의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강칠의 어머니(나문희)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강칠은 수의사 지나(한지민)와 잇단 인연 끝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강칠이 간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국수는 일단 강칠의 아들 정(최태준)을 통영으로 데리고 내려옵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던 강칠과 지나, 마침내 서울 여행을 통해 충격적인 엔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죠.



물론 이날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 키스신이었지만, 최고의 대사는 전반부에 강칠에게서 나왔습니다. 16년 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이 여전히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강칠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대가를 받는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지 국수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지나의 호의로 함께 떠나 온 서울 여행,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며 행복에 빠진 강칠은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내 인생을 보상받으면 얼마나 될까요? .... 당신같이 괜찮은 여자를 만나도 사귀자고 말을 못하고.... 이걸 보상받으려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누가 봐도 고백이지만 지나는 슬쩍 눙쳐 버리고, 둘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강칠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두 가지 과거의 두려움을 떠올리죠.



강칠을 체포해 감옥으로 보낸 형사가 바로 지나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강칠이 죽인 동급생이 바로 지나 아버지의 동생이라는 것. 두 가지 과거가 강칠의 눈 앞을 스쳐 갑니다.

물론 강칠이나 지나나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죠. 그리고 강칠은 또 지나가 속옷을 사서 포장해 보내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오래 전 자신을 면회 오고 자신에게 속옷을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 지나의 죽은 어머니라는 것 역시 모릅니다.




그리고 전철 안. 흔히 남녀 사이에서 키스의 전주곡으로 통하는 '어색한 거리'가 연출됩니다. 뭐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 안이기 때문에 실제로 맞닿지는 않지만....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잡고 달리는 두 사람. 마침내 가까스로 기차에 오르고, 난생 처음 겪어 본 스릴에 웃고 있는 지나를 바라보다 강칠은 용기를 냅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번 파란이 시작되려는.


강칠의 '인생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문득 고전 영화 '빠삐용'의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빠삐용(스티브 맥퀸)은 꿈 속에서 사막을 걷고 있습니다. 모래 언덕 건너편에는 판관들이 서 있죠. 그들은 빠삐용에게 "너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묻습니다. 누명을 쓴 빠삐용은 외치죠. "나는 무죄다!" 하지만 판관들은 냉정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너는 유죄다."

이유를 묻는 빠삐용. 판관들은 말합니다. "너의 죄는 살인이 아니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이 말에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습니다. "...유죄 맞습니다."

 



        (역시 인터넷엔 없는게 없군요. 마침 딱 그 장면의 캡처가 있습니다. ㅋ)

빠삐용이 스스로 낭비한 인생의 값을 치르기 위해 멀리 남미의 유형지에 와 있는 것이라면, 강칠은 타의에 의해 빼앗긴 인생의 값을 뒤늦게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었을 뿐,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두 작품의 메시지는 같습니다. 타의에 의해 갇혀 있는 것도 아닌 당신들(바로 TV를 보고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은 인생을,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낭비하지 않고 쓰고 있느냐는 질문이죠.


한때 강칠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국수는 강칠이 계속 꿈꾸는 '사형당하는 꿈'에 대해 "출감 후의 삶이 두렵고, 밖에 나가 적응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그냥 여기서 다 포기하고 죽고 싶기 때문에 꾸는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살려고 좀 해 봐 이 바보야!"라고 외치죠.

강칠이 감히 지나에게 키스할 수 있었다는 건 강칠이 마침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강렬한 의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들 자신만 모르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이게 그리 쉽지는 않겠죠. 과연 강칠은 아들의 간을 이식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삶을 마감하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과연 이번엔 해피엔딩이 가능할지.



P.S. 계단 올라가기를 힘들어하는 지나의 모습은 죽은 어머니로부터 심장질환을 물려받았다는 암시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너무 환자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ㅋ. 아무튼 20일 밤 9시에 6회가 방송됩니다.

5회 다시보기는 이쪽.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13&menu_id=PM1001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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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JTBC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의 컨셉트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소녀시대에게 다섯 명의 비행청소년들을 데려오고, 아홉 멤버가 다섯 소년들의 멘토가 되어 바른 길(?)로 이끌어 준다는 거였죠.

별별 생각이 다 오갔습니다. ...과연 선도가 될까. 어쨌든 소녀시대 멤버들이 모두 다 주위에서 말하는 속칭 '범생이'는 아니었을텐데(물론 서현양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과연 멘토 역할을 할 자격은 될까. 한 단계 더 나가서, 전국의 청소년들이 '나도 소녀시대 누나들을 만나고 싶다'며 집단적으로 "비뚤어질테다"를 외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첫회가 방송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신생 방송사의 여러 가지 여건상 '내부자'들도 방송이 나가기 전 콘텐트를 요모조모 뜯어 보면서 꼼꼼히 검토할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분 부분 보는 것과, 전편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더군요.



방송이 나가기 전, 실시간 검색을 통해 소녀시대 팬들...로 추정되는 분들의 반응을 슬쩍 살펴봤습니다. 대략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1번 그룹은 '방송 정말 기다려진다'에서 '어떻게 하면 나도 위험한 소년으로 선발될 수 있느냐'까지,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편입니다. 'SM 앞에 가서 옷벗고 막 난동부리면 뽑힐 수 있냐'는 의견도 있더군요.^^ 

두번째는 '이따위 프로그램 확 망해버려라' 그룹입니다. '종편 망해라' 그룹은 아니고, '어떻게 우리 누나들을 그따위 놈들과 붙여 놓을 수 있느냐'는 쪽입니다. 소녀시대에 대한 사랑이 질투로 변하면서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놈들과 보낼 시간이 있으면 팬미팅을 하지!'라는 절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소년들일까요.


황용현. 전형적인 '뺀질이'입니다. 예고편에서 '놀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국회의원이 장래 희망이라고 말한 그 친구입니다.

그저 노는데 정신이 없고, 늘 지능적인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나려 합니다. 곱상하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술 담배는 기본이고, 술을 마시고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려 구치소에도 다녀온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언변과 지능이 우수하고, 사교적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진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 타입으로 보입니다.

윤아/효연 담당.


박경규. 부산 출신이고 현재 학교를 자퇴한 상태. 폭행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고, 가출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쉼터에서 픽업됐습니다.

결손가정에서 생활하고 있고, 스스로도 순간적인 폭력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충동조절장애 - 이건 흔히 말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받아야 하는 병입니다 -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영/티파니 담당.



김회훈. 경남 거창 출신. 가장 의욕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타입. 뭘 하고 싶다기보다는 만사가 귀찮아 보입니다. 목표는 군대 다녀와서 '자는 것'.

욕을 많이 하는 건 혼자만의 특징이 아니고, 아직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습니다. 안경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이미지가 퍽 다릅니다.

서현/태연 담당.


구지수. 이렇게 찍어 놓고 보니 신장이 꽤 작군요.^ 광주 출신으로 가장 쿨해(?) 보이는 타입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나름의 논리가 있고, 말수가 적어 허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죠.

특히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기 때문에, 어른이든 아이든 이런 친구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애어른이라고 할까요. 가수를 꿈꾼 적이 있고, 노래 실력도 꽤 있어 보입니다.

유리/제시카 담당.


김성환. 나이도 가장 어리고, 1m86의 신장에 꽃미남 풍의 얼굴을 갖췄습니다. 힙합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하지 않을 뿐, 이미 '비행'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본 '형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속단해선 안될 듯. 앞으로 지켜보다 보면 의외로 주위와 잘 섞이지 못하는 문제를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써니 담당(9를 5로 나누면 누군가는 단독 담당일 수밖에...)

어쨌든 프로그램은 이들 소년들의 평소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음주, 흡연, 욕설은 기본입니다.

학교에서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교사들도 어떻게 제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말로 달랠 뿐입니다. 아이들도 전혀 교사나 교실의 권위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아마 대다수 시청자들의 느낌도 소녀시대 멤버들의 반응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다섯 소년보다 그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더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다섯 소년이지만, 소녀시대 멤버들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하긴 누군들, 그가 대한민국의 17~19세 청년이라면, 느닷없이 소녀시대 멤버들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 때 이런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송에서 나온 대로 이들 앞에 소시 멤버들이 등장한다는 건 절대 비밀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소년들에게 소녀시대가 상담자 역할을 한다면, '선도'가 효과적일 것임은 달리 의심할 필요가 없겠죠. 그건 전문가 의견과도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분 또한 소녀시대에 빠지지 않는 미인이더군요.

박소장님의 조언에 따라 소녀시대 멤버들은 이 다섯 소년을 훈련시켜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 출전시키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 소년들은 합숙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터져나올 듯 합니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선, 당최 제재라는 것을 받지 않고 자란 다섯 혈기황성한 소년들이 어떻게 적응해 갈지...가 볼거리인 거죠.


과연 이것이 진정한 '선도'로 인정받게 될지, 다섯 소년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될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특성상 결과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방송에 노출된다는 사실 자체가 다섯 소년들의 인생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비록 이런 우려는 있지만, 이미 첫회를 통해 한국 청소년들이 접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그 존재 가치를 절반은 입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은 누군가로부터의 따뜻한 관심, 게다가 그 '누군가'가 평생 한번 만나볼까 말까 할 '여신들'이라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도 있을 거라고 턱없이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첫회에서 보여준 진지함이라면(물론 진지하다고 재미가 없을 수는 없더군요. 특히 진지할수록 더 코믹해 지는 서현 같은 친구도 있으니...^), 저희 채널이 부끄러움 없이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년들' - 학교에서 교사들은 '차라리 수업시간에 조용히 잠이나 자 주길' 바라고, 우등생들은 '그저 내 석차가 유지될 수 있게 알아서 밑밥을 깔아 주는' 존재로 여기는 그런 소년들 말입니다 -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일정 부분이라도 기여한다면, 이런 예능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지금의 이 나라에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7시30분(대략 '1박2일'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1회는 이쪽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25&menu_id=PM10010236

p.s. 물론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좋은 교본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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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들의 무식함'이 소재로 동원되곤 합니다. 일찌기 '무한도전'에서 여섯 멤버들은 지식, 체력, 순발력 등에서 대한민국 최저 수준임을 표방(물론 재력에서는 절대 아니지만^^)해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1박2일' 역시 마찬가지. 수시로 등장하는 퀴즈 코너를 통해 멤버들의 지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했죠.

물론 실제로 연예인이 무식하냐, 아니면 방송용 연출이냐를 떠나 이런 설정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았던 듯 합니다. TV에 나와 수억원을 버는 연예인들이, 어린 시청자들조차도 '뭐야, 저런건 나도 아는 건데'라고 말할 만한 문제를 틀릴 때, 사람들은 묘한 우월감과 함께 쾌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사실 연예인 개개인에게도 이런 '캐릭터 구축'은 매우 유효합니다. 잘생기고 고교시절 전교 회장까지 했다는 이승기가 어설프게 문제를 틀릴 때, 그렇게 해서 생긴 '허당' 이미지는 너무 모든걸 다 갖춰 자칫 얄미울 수도 있는 이승기를 국민 남동생으로 키워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JTBC의 금요일 새 예능, '아이돌 시사회'는 이런 기존의 프로그램들과는 좀 다릅니다. 사실 그동안 TV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머리 빈'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과 친숙함을 쌓아 왔다고 할 수 있죠(지금은 여신들이 되어 있는 소녀시대도 데뷔초에는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엄청난 오답을 대고 '어 왜 답이 아니에요?' 라며 배실배실 웃고 있었습니다). 방송가에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시청자는 자신들보다 똑똑하게 보이는 연예인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돌이 나오는 시사 퀴즈쇼'를 표방하는 '아이돌 시사회'는 아이돌 멤버들이 기를 쓰고 서로 정답을 맞추기 위해 나서는 프로그램입니다. 예능인들이다 보니 '방송 분량'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보니 한번 경쟁심에 불이 붙으면 무섭게 달려드는 것 역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특징이죠.

(물론 호승심이 바로 실력으로 이어지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겁니다. 의욕만 앞서고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정말 폭소를 자아내는 아귀다툼이 벌어집니다.)


사실 - 제가 내부자이다 보니 - 이 프로그램의 컨셉트를 들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MC는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역시 그 MC를 기용하더군요.

바로 김구라입니다.


지상파 데뷔 초기, '면죄부' 문제로 논란이 일었던 김구라는 거친 막말 진행으로 한동안 비판 여론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그 공격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 나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그냥 거칠기만 했다면 김구라 스타일은 애시당초 지상파에서 퇴출됐을 겁니다. 하지만 김구라의 공격성에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시원하다'고 표현할 요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나 같으면 저기서 당연히 저런 걸 물어 볼텐데' 라든가 출연자가 좀 심하게 가식적이거나 상투적인 대답을 할 때 '또 저딴 소리야?'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죠. 이런 경우 시청자의 마음속에 떠오른 저런 생각을, 아주 적나라하게 던져 주는 역할은 대개 김구라가 맡았습니다.

물론 김구라의 재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면박을 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시스타 효린이 '눈치없이' 나오자 마자 문제를 맞췄을 때) "'붕어빵'에선 여덞살 짜리도 문제를 돌릴 줄 아는데, 이건 뭐 초짜들을 데리고 하려니..."  같은 멘트가 적재적소에서 터집니다.

이번 '아이돌 시사회'에서도 김구라는 아이돌 멤버들의 비위를 맞춘다든가, 방송을 품위있게 보이게 한다든가 하는 쪽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단 한수 위의 지적 능력과 입심으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쪽을 택했죠.

그런데 걸그룹 시스타를 비롯한 첫회 출연자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첫회 방송 내내 김구라는 '어라? 제법인걸?'하는 표정을 더 자주 짓게 됐습니다. (물론 원래 웃기는 것이 직업인 김태현, 김영철이나 아예 '백지 캐릭터'로 방향을 굳힌 해금이는 제외...)

사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과연 아이돌은 박원순 시장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만약 모른다면 '어른들'은 혀를 찰 일이죠. 그런데 아이돌 멤버들의 눈에는 박원순 시장과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사례 하나. '배우 리처드 기어의 얼굴을 맞히라'는 문제인데, 일단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의 이름에 출연자들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아니 어떻게 리처드 기어를 몰라?'하고 혀를 차실 겁니다. 하지만 충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저 자신부터 '아니 어떻게 리처드 기어를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어 저희 부서의 신입사원 후배를 불렀습니다. 참고로 1986년생, 서울대 졸업반입니다.

나: 너 혹시 앤서니 퀸이라는 배우 아냐?
그: 아뇨, 모르겠는데요.
나: 안소니 퀸이라고 하면 아냐? 혹시 그런 배우가 있다는 건 아니?
그: ...전혀 들어본 적 없는데요.
나: 그럼 혹시 아랑 드롱은 아니?
그: ....아뇨.

이런 상황이라면, 1990년대생 아이돌 멤버들이 리처드 기어를 모른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뭐 직접 관련은 없을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초반생인 다른 후배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나: (신작과 고전 영화에 대해 대화 도중)...그래도 고전 영화들은 다시 보면 재미있지 않냐?
후: (무시하지 말라는듯) 저도 옛날 영화 좋아해요.
나: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
후: 아녜요. 저 요새도 옛날 영화 TV에 나오면 계속 보고 그래요.
나: 그래? 그런데 네가 말하는 옛날 영화 중에서 '제일 오래된 옛날 영화'는 뭐냐?
후: (당당하게) 백투더퓨처요.

참고로 '백 투 더 퓨처' 1편은 1985년작입니다. 뭐 저 후배들에게 공감하실 분들이 당연히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사실 이날 방송을 통해 시스타의 다솜에 대해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예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날 성적으로 봐선 대단히 지적이고 또렷한 면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디 가서 '아이돌 계의 브레인'으로 대접받을 만 하다는 느낌입니다. (네. 다솜은 박원순 시장도 알고, 공지영 작가도 알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재주있는 아이돌들과 김구라가 만났을 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신생 채널의 신생 프로그램이라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좀 더 입소문을 타고 나면 저희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을 듯 합니다.

첫회를 못 보신 분은 이쪽 다시 보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공짭니다.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19&menu_id=PM10010033


(이날 가장 웃겼던, 김영철이 분노했던 장면.) 개그맨 김영철과도 한참 세대차가 나는 아이들. 김영철과 심현섭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이 프로그램이 세대간의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과 자녀들이 '야, 니들은 정말 저런 것도 몰라?' '아빠는 그럼 %%% 알아요?' 하는 대화를 나누며 격차를 좁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군요.


P.S. 본방은 금요일 밤이지만 일요일 오후 1시10분에 재방송도 한다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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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JTBC '상류사회'가 처음으로 전파를 탔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더라'는 반응이 꽤 많았고, '첫회라 그런지 썰렁하더라'는 반응도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이만한 반응도 저희로서는 감지덕지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아무리 이수근 김병만이 나오고, '1박2일'의 이동희 PD가 연출자라 해도 처음 개국한 방송사, 마땅한 홍보 경로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첫회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까 하는 것은 참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짓을 하든 최소 5%의 시청률은 보장하고 들어가는 지상파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의 '무모한 도전'과 '1박2일'이 과연 얼마나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게다가 '상류사회'의 첫 방송 시간은 토요일 오후 7시30분. 지상파의 강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토요일의 핵심 시간대입니다. 이 시간에 겁없이 뛰어든 '상류사회'가 첫 방송으로 이만한 반응을 얻었다는 건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상류사회'는 '골방 버라이어티'입니다. 그냥 장난 반으로 '펜트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공간(뭐 겉에서 보기엔 그럴싸합니다)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절반으로 나눠 한 방은 이수근, 다른 한 방은 김병만이 거주합니다.

이 두 명의 거주자에게 시청자들이 보낸 택배가 도착합니다. 이 물건들을 하나 하나 까 보면서 벌이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상류사회'의 컨셉트인 겁니다.




보기엔 그럴싸하게 생긴 펜트하우스가 지어 진 곳은 여의도 인근, 영등포의 한 건물 옥상입니다. 촬영 내내 벗고 있는 두 출연자를 보면 아시겠지만 난방은 무척 잘 된다고 하는군요.^^ 물론 상류사회에 걸맞는 각종 편의시설...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일본의 예능성 다큐멘터리(혹은 다큐성 예능) 가운데, 일정 기간 동안 한 사람이 신문이며 방송의 상품 응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트의 쿠폰 응모건, 각 기업의 신제품 이름 짓기 공모건 닥치는 대로 응모해서 상품을 얼마나 타낼 수 있느냐 하는 거였죠. 리얼리티의 나라 일본답게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몇달 동안 빈 아파트에서 감금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고, 요즘은 집안에 앉아 전화 한통 걸지 않고도 온갖 생활용품을 구입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들에겐 최적의 환경인 셈이죠. 

어쩌면 '상류사회'는 그런 시대에 대한 패러디인 듯도 합니다. 집 밖으로 머리를 내밀지 않아도 온갖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 때로는 명품과 사치품도 직접 구매하러 나가지 않는 시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편리하고 발달했지만 여전히 그게 서민의 삶으로 느껴지는 시대.

이런 세상일수록 '진짜 상류사회'는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세트에서 샛강 건너 보이는 고층빌딩군의 불빛처럼 말입니다. 두 주인공이 거의 원시 상태의 알몸으로 출연하는 것 역시 현대 사회의 본질에 대한 풍자를 느끼게 하죠.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제목이 바로 '상류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택배로 물품을 보내 준 시청자 중 1등을 뽑아 매주 100만원씩을 '품위유지비'라는 명목으로 시상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비싼 물건을 보내 주신 분들 위주로 드린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디 프로그램이 유지되겠습니까.^^

처음 이 프로그램을 구상하던 제작진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글쎄요, 작은 회사들이 신제품을 보내 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일은 설마 없겠지만 혹시라도 장난으로 위험한 물건을 보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택배 물품에 대한 사전 점검은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도 소개됐지만 X레이 검사와 안전도 체크는 기본입니다.

택배를 보내실 때 '이수근 앞', '김병만 앞'이라고 따로 따로 보낼 수도 있고, 별도 표시 없이 경쟁을 통해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그 경쟁 방법까지 시청자가 지명해서 보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다 보면 명품 스타킹을 선물받게 되기도 하고...^^

사실 첫회이다보니 택배 물품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이었지만 앞으로 이 부분은 금세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각각 자신의 방에서 벌인 100M 경주였습니다. 워낙 작은 방이라 20바퀴를 돌아야 100미터가 나온다는 미니 트랙(^^). 물론 금을 밟아도, 벽을 짚어도 실격패인 엄격한 규정 때문에 뛰는 자세도 각이 안 나옵니다.

'1박2일'에서 주로 비오는 날 많이 시도됐던 '방안 게임', 그 진수를 앞으로 '싱류사회'에서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그 방 안에서 대체 둘이 뭘 하고 70분을 보낼까' 했는데 그건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참 할게 많더군요. ㅋ





이렇게 길게 써 놨지만 핵심은 하나. '상류사회'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1661-3645로 전화하시면 됩니다.

반복하지만 결코 비싸고 화려한 물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정성이 담긴, 그리고 마음이 담긴 물건이 좋은 방송을 만들어 낼 겁니다.


참 의상비 안 드는 방송, '상류사회'.

P.S. 이미 도착한 물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물건이 있던데... 과연 그게 저 방 안에선 무슨 용도로 쓰일지...(들어가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류사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저도 궁금하군요. 

P.S.2. '상류사회' 1회는 JTBC홈페이지(www.jtbc.co.kr)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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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남들이 만드는 드라마, 영화 방송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런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 뭐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뭐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곧 방송국을 오픈할 주제에 남들 작품 갖고 왈가왈부하는 게 솔직히 불안했죠. 뚜껑 연 뒤에 "남의 것 갖고 그 난리를 치더니 참 대단한 물건들 만들어 놨다"는 비아냥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2월1일 JTBC가 개국을 하고, 하나 하나 준비한 물건들을 까 보는 과정에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교양 '깜놀, 드림프로젝트', 그리고 예능 '칸타빌레'를 보면서 콘텐트의 질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 한편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겠죠. 바로 '노희경표 드라마', '빠담빠담'입니다.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의 원제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입니다. 좀 길죠. 이 드라마는 16년 전 어울려 다니던 동년배 학생을 죽인 죄로 수감된 강칠(정우성)과 어찌 어찌 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수의사 지나(한지민)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100% 드라마 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강칠은 사건의 진범이 아니고, 강칠의 손에 피묻은 칼을 쥐어 준 진범은 현재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대법관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첫회부터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마주치는 강칠과 지나 사이에는 끈끈한 인연이 숨어 있습니다. 강칠이 죽인 것으로 오해를 산 학생은 지나의 삼촌, 그러니까 형사인 지나 아버지의 나이 차이 나는 동생이었던 겁니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싸움질이나 하다가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나 아버지는 강칠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살인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나 어머니는 강칠이 진범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면회를 다니며 강칠의 구명 운동을 펴고, 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이때문에 지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죠.

참 난마처럼 얽인 관계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갈등 구조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빠담빠담'을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드라마를 풀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꿈'과 '현실'의 교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스로 천사라고 주장하는 국수(김범)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의 궁금증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국수가 진짜 천사인가, 아니면 자기가 천사라고 믿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연 이 드라마가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가, 아니면 강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죠. 제가 이 글의 제목에 '인셉션'을 끌어들인 것도 이 질문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 내부자(?)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보다 별로 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모두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절대 회사나 제작진의 의견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흑백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대는 남북전쟁기의 미국. 한 남군 포로가 북군에게 체포돼 다리 위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줄이 끊어지고, 그 포로는 강물 속 깊이 빠집니다.

다리 위의 적군이 총을 쏘지만 포로는 요행히 총을 피해 내고, 들판을 달려 집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그리던 고향 집이 눈에 보이고, 예쁜 아내가 환히 미소지으며 포로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가 아내와 손을 맞잡는 순간,

목줄이 조여지고, 포로의 다리가 축 늘어집니다. 그러니까 고향 집과 행운의 탈주는 모두 이 포로가 목이 졸리고 숨이 끊기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 동안 꾼 아름다운 꿈이었던 것이죠. 어찌 보면 삼국유사의 조신지몽과 비교할 수 있는, 인생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수작입니다.

(뭐 대략 짐작도 하실 수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결말은 감춰 두었습니다. 마우스로 위의 흰 부분을 긁으시면 답이 보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 단편 영화는 로버트 엔리코(Robert Enrico)의 1962년작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입니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상 단편 부문을 휩쓴 유명한 작품이고, 저 결말은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단편 영화 치고는 24분 가량으로 좀 길지만, 한번 보실만한 수작입니다.

굳이 이 영화 얘기를 왜 꺼냈는지 이해 못할 분은 안 계시겠죠.^^



1, 2부에 걸쳐 강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석방 직전의 갈등 - 싸움 - 김교위의 갑작스런 죽음 - 교수형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귀휴-아들과의 만남-지나의 차에 의한 교통사고 - 병원에서의 깨어남 역시 반복됩니다.

두 사건의 흐름은 정상적이라면 귀휴 - 교통사고 - 병원에서 눈뜸 - 교도소로 귀환 - 싸움 - 교수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강칠은 교수형 이후 병원에서 눈이 뜨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싸움 장면을 경험하면서 국수에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라고 절규합니다. 마지막 순간, 김교위에게 향하던 주먹을 간신히 멈춰 정해진 사건을 중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의아해하게 됩니다. 과연 강칠에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의 사건이 미래를 내다보게 해 준 예지몽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현실이라면 왜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그냥 그대로 '국수가 천사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천사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개연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건 바보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은, 뒷부분을 '강칠의 꿈'으로 풀어 가는 해석입니다. 강칠은 김교위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후회를 수십번, 수천번은 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몸을 멈췄다면...'하는 간절한 소망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강칠에게는 수많은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출감하고, 출감해서 귀휴 때 만났던 그 예쁜 아가씨를 다시 만나고, 알고 보니 그 아가씨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속옷을 보내 주던 그 아주머니의 딸이고.... 간절함이 현실로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꿈은 꿈. 언젠가 꿈은 깨게 되어 있는 법. 그래서 어느 한 순간, 강칠은 다시 깨어납니다. 그 깨는 장소가 병원 침대 위일지, 감방 안일지,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장소일지는 알 수 없겠죠. 그리고 그 꿈을 깬 뒤의 결과가 해피엔딩일지 비극일지도....

만약 이렇게 진행된다면 참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노희경 같은 대 작가가, 저 따위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진행을 선택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빠담빠담'은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아직 18회나 남아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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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11번은 영구결번이 됐군요. 과연 이제 와서 구단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이 팬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최동원 잔혹사' 풍의 냄새를 풍기기는 합니다만, 최동원이 속해 있던 '70년대 야구'의 풍경을 바라볼 때 최동원의 혹사는 어찌 보면 거의 모든 투수들, 특히 에이스 급 투수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김경홍(가네다 마사이치. 한때 김정일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의 투구사를 보면 50~60년대 일본 프로야구 역시 '투수 혹사'라는 면에선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매년 투구 이닝이 300이닝이 넘고 '25승20패' '24승24패' 등의 연간 기록을 보다 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최동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것을 안 세대입니다.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일 수도 있겠죠.


순서대로: 1편은 이쪽입니다. http://5card.tistory.com/m/post/view/id/954


고교생 최동원이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관심사였듯 연세대 에이스이자 한국 최고 투수 최동원의 졸업 후 진로는 국민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국내 실업야구 사정상 최동원을 데려갈 수 있을만한 팀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은행팀이 아닌 기업 팀, 즉 롯데, 한국화장품, 포철 등이나 그만한 스카우트 비용을 낼 거라는 게 기정사실이었죠. 특히 롯데는 김동엽 감독에 의한 창단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세미 프로 냄새를 강하게 풍겼습니다. 부산 지역과의 끈끈한 연고 의식으로 박영길 감독을 비롯해 경남고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는 점 역시 최동원이 롯데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짙게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 입단도 만만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게 '최윤식씨'와 '선판규씨'는 스타플레이어나 감독 못잖은 유명인이었습니다. 당연히 두 분은 최동원과 선동렬, 두 국보급 투수의 아버지들이고 그만치 열성적으로 아들을 보살핀 분들입니다.


대학 이후 최동원의 진로에 대한 입장들은 대부분 최윤식씨의 입을 통해 알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주장들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대학 시절 구타 사건 뒤엔 "동아대로 전학시켜 달라. 맞아 가면서 연세대에서 운동을 시키지 않겠다", 대학 졸업반일 때에는 "롯데에 가지 않고 그냥 군 입대를 시키겠다", 81년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곤 "시리즈가 끝나면 은퇴시키겠다"는 등의 말들이 최윤식씨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당연히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억지였고 이런 주장들은 최동원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일생을 둔 동갑내기 라이벌 김시진은 포철과 입단 줄다리기를 하다가 이른 군입대를 선택, 경리단 소속이 됩니다. 포철이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지출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그 '거액'은 얼마쯤이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81년. 곡절 끝에 최동원은 "무려 3000만원의 계약금에" 아마추어 롯데자이언츠의 에이스가 됐습니다. 그해 롯데는 사실상 투수 최동원과 강만식을 스카우트하는 정도로 선수 보강을 마쳤습니다. 역시 이미 최강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기 방식상 여러 명의 투수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포철은 상당히 가난한 기업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과 당시의 물가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야겠죠.^^)

당시의 각 팀 전력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초기 프로야구를 휩쓴 스타들이 당시엔 어떤 팀 소속으로 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성인야구의 특성상 경리단과 성무, 두개의 군 팀이 가장 유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지난번 글에서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1년 방식은 10개 팀이 4차례의 리그(전기 1,2차와 후기 1,2차)를 펼치는 것. 그래서 총 36게임을 치르게 됐고 롯데와 경리단이 각각 전,후기를 나눠 가져 코리언시리즈에서 맞붙었습니다.

관심이 가는 건 최동원의 등판입니다. 총 36경기 가운데 무려 30경기에 등판, 17승4패를 기록했습니다. 매일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지나치다 싶은데... 전기리그만 놓고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총 18경기에서 최동원이 13승1패를 기록한 겁니다. 전기 1,2차 리그를 합한 롯데의 성적은 18승2패.

이런 말이 안 되는 기록이 가능했던 건 당시의 진행 방식입니다. 일단 10팀이 풀리그를 벌이면 경기수는 총 45경기. 하루 3~4경기씩 약 2주에 걸쳐 대회가 진행됩니다. 매일 한 경기씩 완투하던 최동원에겐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대회 끝나면 또 몇달 푹 쉬지 뭐", 이런 식). 성인야구라고는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얘기했듯 30대 선수라곤 리그 전체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 한 젊은 리그에서 최동원을 막을 적수는 김시진 정도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전기 1,2차 리그를 휩쓴 롯데는 후기 리그에선 다소 부진합니다. 최동원이 지친 탓인지, 아니면 굳이 코리언시리즈를 없앨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후기 우승은 경리단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5판 3선승제의 코리언시리즈가 개막된 겁니다.

이 무렵,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같은해 9월, 결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는 AP 통신의 보도, 그리고 계약이 "사기계약이라 무산됐다"는 최윤식씨의 발표, 이어 왜 사기계약인지에 대한 해설 기사 등등이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한 1981년 9월24일자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좀 길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재합니다.

금테안경을 끼고 시속 1백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야구의 간판스타 최동원(23·롯데자이언츠)이 미국 프로야구 아메리컨리그 소속인 터론토 블루 제이즈팀과 입단계약을 맺었다는 23일의 AP통신 보도는 국내 야구계를 흥분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결론적으로 최동원의 캐나다 터론토에 프랜차이즈(전용구장)를 둔 블루 제이즈 입단은 현재 양측의 조건이 엇갈려 결렬상태에 있다고 최의 전권을 쥐고있는 부친 최윤식씨(52)가 23일 밝혔다.
<정부차원 타결모색>
그러나 최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블루제이즈 구단은 스카우트의 관건이 되는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의 고위인사가 오는 27일 방한하는 캐나다 「트뤼도」수상 일행과 함께 와 한국정부측에 비공식으로 요청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는 AP통신이 『블루제이즈측은 최의 병역문제를 28일 한국정부가 보류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농구 전 국가대표 김명자씨가 통역>
한편 최동원의 블루 제이즈 입단계약은 지난 15일 서울 플라자호텔 18층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고 부친 최씨가 말했다.
전 국가대표 여자 농구선수인 김명자씨(36)가 스카우터들이 와 14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롯데-성무와의 경기를 보고 15일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완투, 2-0으로 패했으나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잰 이들은 만족을 표시했다.
김명자씨의 남편인 미국인「프랭키·위키」씨(미8군 골프클럽지배인)는 터론토에 오래 거주한 일이 있어 블루제이즈측은 이들 부부를 통역으로 내세운 것이다.
열렬한 스포츠맨인「위키」씨는 『만일 내 한 팔을 잘라 내 아들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기꺼이 이를 해내겠다』고 극언할 정도로 흥분되어 이번 일에 성의를 다해 도와주었다는 최씨의 설명이다. 15일 밤 플라자호텔에서 블루제이즈 구단의 지난25년동안 스카우트요원으로 활약한 「엘리어트·웨일」인사담당관을 비롯, 「봅·주크」감독, 그리고 「웨인·모건」스카우터 등 3명을 혼자서 만난 최씨는 계약금 20만 달러(약1억4천 만원)에 연봉 20만 달러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메이저리그 규약상 신인에겐 첫해에 연봉 3만2천5백 달러(약2천2백75만원)이상을 줄 수 없으며 2년째부터 향후 4년 동안 총계 61만 달러(약4억2천7백만원)를 지급하는 조건의 계약서를 제시해왔다.
<깨알같은 계약서>
최씨는 약간 미심쩍기는 했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장장 7면에 걸친 계약서를 얼른 알 수도 없어 사인을 한 뒤 사본을 하나 얻어 돌아왔다. 그러나 최씨는 메이저리그 신인선수의 연봉 최하한선이 3만2천5백 달러라는 조항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계약에 따라선 이 이상 제한 없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씨가 사기계약을 했으므로 계약서를 파기하고 안하는 경우 출국정지를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당황한 이들은 계약은 무효로 하되 본사와의 관계로 계약서를 폐기할 수는 없다며 17일 떠났다. 최씨는 자기아들을 높이 평가하여 이역만리를 찾아온 손님들이어서 계약파기만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23일 느닷없이 외신으로 입단계약이 이루어졌다는 보도에 놀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동원은 최근 로스앤젤레스 다저즈 팀에서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는 경우엔 이 블루제이즈와의 계약이 불씨로 남게 됐는데 최씨도 이점은 시인하고 있다.
한편 최동원은 오는 28일 병역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블루제이즈 팀의 입단가능성이 남아있어 앞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면, 신인 연봉 상한선이라는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하한선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속인 데 항의해 계약무효를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루제이스 측은 최윤식씨가 서명한 계약서를 파기하지 않았고, 향후 몇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최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은퇴설이 아버지 최윤식씨에 의해 제기됩니다. 이런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최동원 측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별 실현 가능성 없는 '은퇴'같은 말이 나온 것은 좀 아쉽다고나 할까요.

○…한국야구의 간판투수인 최동원 (23·롯데) 을 둘러싸고 화제와 잡음이 꼬리를 물고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인 터론토 블루제이즈 입단여부로 화재를 뿌렸던 최동원이 이번에는 은퇴설이 나돌아 야구계를 아연케하고 있다. 연세대 진학과 지난해 롯데입단 때도 잦은 후문을 낳았던 최동원의 이번 은퇴설은 잡음의 극치를 이룬 느낌.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씨(51)는『잘하면 잘하는 대로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데도 조금만 잘못하면 탓하고 인기에 먹칠을 하는 현재의 국내야구풍토에서는 더 이상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다』면서『롯데를 떠나기 위해서라도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롯데­경리단의 코리언시리즈를 끝으로 은튀 시킬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해 롯데와의 심한 불화관계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최씨는 『외국에 나가는 길이 있으면 내보내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해 은퇴는 미국프로야구진출을 위한 연막으로 해석하는 야구인들이 많다.
이같은 최씨의 발언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둔데다 체육특기자의 병역혜택이 발표된·직후에 일어난 것이어서 야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약삭 빠른 태도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최동원과 함께 청주에 전지훈련중인 박영길 롯데감독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더구나 코리언시리즈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일어난 것이어서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뭏든 앞으로의 최동원의 진로가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있다.

네. 진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렇게 뒤숭숭한 가운데 코리언시리즈가 시작됩니다. 후기리그 들어 최동원이 부진 아닌 부진을 보인 결과 롯데가 후기 우승을 경리단에 내줬다는 점에서, 혹시 최동원이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에 따른 의욕 부진으로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건 기우였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이 메이저리그 진출 포기에 상응하는 다른 당근을 제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또 이해 하반기부터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 새롭게 의욕에 불을 질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81년의 최동원-김시진 시리즈를 84년 한국시리즈의 전초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필생의 동갑내기 라이벌과 맞붙어 6경기 전부를 등판하고 2승을 올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84년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3승1무2패로 롯데가 경리단을 꺾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거죠.

당시의 보도.

끈기의 롯데가 2년만에 실업야구 왕자자리에 복귀했다. 초반2연패를 기록했던 롯데는 31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코리언시리즈 6차전에서 7회초 9번 손상대의 천금같은 결승꼴로훔런으로 지난해 우승팀인 훈리단을 6-4로 물리치고 79년에 이어 2년만에우승을 되찾았다.
롯데는 월드시리즈에서의 로스앤젤레스다저즈가 2연패후 내리 4연승을 거두고 괘권을 안은 것처럼 초반 2연패 후. 3연승을 기록, 일대 역전승을 장식한것이다.
한편 롯데의 최동원은 최우수선수 (MVP)·최다승리투수 (17승4패) 그리고 신인투수상등 3관왕을, 이해창은 최고 수훈상을 각각 차지했다.
이날 롯데는 최동원을 6게임째 등판시켰고, 경리단은 권영호·김시진 (6회)을 계투시켜 숨가쁜 한판승부를 펼쳤다.


다만 이때 적인 경리단에 김시진과 권영호만 있었다면 84년에는 황금박쥐 김일융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틱하다고 할까요. 어쨌든 이 81년 시리즈가 '최동원의 전설'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당시를 사셨던 분들에게도 이 81년 시리즈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치 '실업야구'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아니었죠. 코리언 시리즈 기사가 신문 스포츠면의 톱도 아니고 2단 기사 정도로 처리됐으니 말입니다. 81년 한국 야구계의 가장 큰 스타는 이미 최동원이 아니라 박노준이었고, 이 해의 가장 큰 사건은 최동원의 성인야구 데뷔와 스윕이 아니라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박노준의 발목이 부러진 것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최동원이 우승을 했다 해도 '뭐 한국 야구는 원래 최동원인데...'하는 것이 일반 통념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최동원이 실업야구에 진출해 우승하지 못했다면 '최동원도 이제 한물 갔구나'하는 게 뉴스가 됐을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1981년 10월말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발표가 나자 이듬해인 82년부터 당장 리그 시작이 확정될 정도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82년 서울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릴 예정이라 83년에 개막한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도 당시의 '하면 된다' 분위기에서는 어림없었을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가 한국의 우승으로 끝났고, 선동렬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투수가 발굴됐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대표팀의 면면을 소개하는 선에서 마쳐야 할 듯 합니다. 감질나시겠지만 하나 더 써야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0일 오는 9월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잠실구장및 서울운동장·인천구장에서 열릴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23명을 최종확정하고 단장에 김상겸 부회장을 선임했다.
12월 선발한 국가대표상비군 28명중 그동안 국내성적과 대만전지훈련 (2월)결과를 토대로 윤학길 김정수(이상 연세대) 이상군(한양대) 김봉근(동국대) 김상기(인하대) 등 투수5명을 제외하고 포수및 내·외야수들은 그대로 선발, 오는 26일부터 영동유드호스텔에서 합동훈련에 들어가기로했다.
최종확정돤 대표선수를 보면 실업에서는 최동원 임호균 (이상한전) 김시진 장효조(이상경리단) 김재박 이해창 (이상한화) 등 11명이며 대학에서는 선동렬 박노준 김정수(이상고려대) 박영태 조성옥 김상훈 (이상동아대) 오영일 김진우(이상인하대)등 12명으로 구성, 대학과 실업, 노장과 신예가 조화를 이루고있다. 사상 처음 대회를 유치한 한국은 이번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고있으나 힘의 야구를 구사하고있는 쿠바·미국·일본등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올해 프로야구출범으로 경험있는 많은 유망선수들이 프로로 진출, 우승을 차지하는데는 다소 어두운 전망이다.
이번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1.1세에 평균신장 178.2cm, 타율2할8푼으로 되어있다.
한편 어우홍대표팀 감독(한전)은 『프로로 많은 선수를 빼앗겨 경험이 부족한것이 흠이지만 노련한 실업선수들과 패기의 대학선수들이 잘만 조화된다면 쿠바·미국등과 한번 겨뤄볼만하다』면서『14일동안 11게임을 치러야하기때문에 평균연령이 22.1세로 구성된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표팁명단
▲단강=김상겸 ▲총무=김진영(인하대감독) ▲감독=어우홍 ▲코치=배성서(한양대) 김 충 (상업은)▲투수=김시진 (23 189cm) 최동원 (25·179cm) 임호균 (26·l75cm·이상 한전) 선동렬(20·183cm) 박노준(21·178cm·이상 고려대) 오영일(22·185m·인하대) 박동수(22· 174cm·동아대) ▲포수=심재원(29·178cm·한화) 김진우(25·l88cm·인하대) 한문연(22·l73cm·동아대) ▲내야수=김상훈(23·180cm) 박영태(24·180cm·이상 동아대) 이석규(24·178cm ) 정구선(25·178cm·이상경리단)한대화(21·177cm·동국대) 김재박(28·174cm·한화) 이선웅(22·173cm·인하대)▲외야수=이해창 (29·180cm·한화) 장효조 (25·174cm·경리단) 박종훈 (23·176cm·상업은) 유두열 (27·172cm·한전) 조성옥 (22·176cm·동아대) 김정수(23·177cm·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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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에 대해 늘 나오는 얘기는 '단기전에서는 최강이었고 타자를 압도하는 기세가 일품이었지만 젊어서 너무 혹사당한 탓에 투수로서 단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환경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리 짧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투수를 나름대로 조상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 출범 직전인 1977~1981년의 시점으로 돌아가 봅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고교야구였고, 성인야구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있었지만 후대에까지 전설로 불릴 만한 스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꼽자면 최동원, 장효조, 그리고 김재박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세 선수는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세를 뿜어내고 있었죠. 80년대로 접어들면서 고교야구 사상 최강의 강타자들이었던 한양대의 이만수와 고려대의 김정수가 차세대 스타의 자리를 예약하고 있던, 그리고 선동렬과 박노준이 갓 고교야구 스타로 발돋움할 시점입니다.


77년 연세대에 입학한 직후부터 최동원은 곧바로 국내 최고 투수로 공인을 받게 됩니다. 고교야구 시절 한 경기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며 최고의 재목으로 꼽히기는 했지만, 당시 경남고의 전력은 최동원을 제외하면 큰 기대를 가질 수준이 아니었죠. 아무리 최동원이 잘 던져도 늘 이길 수 없는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세대는 달랐습니다. 고려대 입학 약속을 하루 아침에 뒤집고 최동원이 연세대에 입학한 77년은 바로 전력이 급상승하는 해였던 겁니다. 이미 박철순, 배경환 등 뛰어난 투수들이 있었던데다 실업야구의 강타자이자 국내 최고 포수 중 하나였던 박해종이 뒤늦게 7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합니다. 또 3년 선배로 '투수에서 포수까지 전 포지션을 뛸 수 있다'던 만능 선수 이광은과 그의 배재고 동기인 철완의 외야수 신언호가 있었고, 역시 강타자 김봉연도 이 해에 복학합니다. 최동원과 합께 입학한 강타자 양세종도 빼놓을 수 없죠.



(만약 최동원이 당시 고려대로 갔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요. 김윤환 우경하 등 강타자들과 또 한팀을 만들었겠지만 연세대만큼 강한 팀이 되지는 못했을 듯 합니다. '최동원의 연세대'를 이기기 위해 고려대는 이듬해부터 김경문 박종훈(78년)은 물론 79년에는 양상문 김호근 김정수 김남수라는, 당대 고교야구의 '빅4'를 모두 잡아오는 등 필사적인 추격을 펼칩니다....만, 최동원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전력의 뒷받침 속에서 최동원은 최고의 에이스로 자리를 굳힙니다. 그해 대학야구 4관왕에 오른 것은 물론, 곧바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자마자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을 해 버립니다. 물론 쿠바가 불참한 대회라는 것도 최동원의 행운 중 하나일 겁니다. 이 대표팀 마운드에서 최동원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그가 승승장구,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몇가지 좋은 여건이 따랐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말한 대로 경남고 졸업 직후 그를 포함해 전력이 최고조에 이른 연세대에 입학한 것. 그리고 둘째는 좋은 동년배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대회 대표팀입니다. 7명의 투수 중 3명이 실업, 4명이 대학 선수일 정도로 대학생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 설명합니다.)


고교시절부터 동갑내기 최동원-김시진-김용남은 최강의 트리오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77년, 최동원이 대학에 입학한 이후 김용남은 약간 빛을 잃고, 이들보다 2년 선배인 임호균을 합해 최동원-김시진-임호균이 국가대표 마운드의 1,2,3번 투수가 됩니다. 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대표팀이 이 최-김-임 트리오의 데뷔 무대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 트리오는 82년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선동렬이라는 새로운 에이스가 등장할 때까지 한국 야구의 최고 투수 자리를 내놓지 않습니다.

(78년 고교야구에서도 양상문(좋은 투수라는 것 외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지만 부산 출신에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제2의 최동원'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상윤, 장호연, 양일환 등 우수한 투수들이 대거 배출됐지만 이 세대 역시 최동원과 김시진을 넘어설 만한 대 투수는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한국 야구의 주축으로 일찍 떠오르게 된 것은 우선 무엇보다 이들이 뛰어난 투수였기 때문이지만, 당시 실업야구의 조로현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대학 3~4년차, 졸업후 3~4년째까지가 전성기였고 그 뒤로는 아예 은퇴를 하거나 실력이 내리막을 걸었던 것이 이 시기에는 상식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엘리트 선수의 코스는 대략 이렇습니다. 고교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실업팀에 스카웃됩니다. 이후 2~3년간 선수로 뛰다가(대개 야간대학원 진학 등의 편법을 쓰는 거죠), 군에 입대합니다. 당시엔 성무(공군)와 경리단(육군)이 라이벌 관계로 실업야구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대할 시점이면 서른 전후.

대단한 엘리트 선수가 아니면 은퇴를 해 일반 직원으로 변신하거나 - 은행 팀들이 실업야구의 주축일 때에는 많은 선수들이 은행원으로 변신했습니다 - 지도자가 되는게 대략의 길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가실 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은행 팀에 입단하면 '평생직장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대학에 스카웃될 수 있는 우수 선수들 가운데서도 고교 졸업 직후 은행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례를 보면 더 느낌이 옵니다. 김응용 감독이 한일은행 선수에서 은퇴해 감독이 된 건 만 31세 때인 1972년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69년 일찍 은퇴하기도 했지만 실업야구 기업은행 감독이 된게 만 30세 때인 1972년이죠. 코치도 아니고 감독이 서른살 언저리였다면 한국 성인야구가 얼마나 젊은 팀이었는지 아실만 할 겁니다.

(이때문에 프로 출범 직전인 1981년, 현역 선수였던 33세의 김우열이나 32세의 윤동균은 전 실업야구 리그를 통틀어 대단히 희귀한 존재들이었습니다. 28세의 김봉연이 '대단한 노장' 대접을 받았으니 뭐 말할 것도 없죠.)


다시 77년으로 돌아가, 이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19세의 최동원이 한국 야구의 기둥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프로야구 출범이 선수들의 수명을 엄청나게 늘려 놓은 지금의 시선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선수들은 체계적인 몸관리가 필요 없었던 겁니다.

어차피 야구는 '서른 넘으면 그만 두는 종목'이었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쓸데 없는 근육을 만들어 배팅 스피드를 줄이는', 절대 하면 안되는 운동이었죠. 당시의 투수들이 어깨가 아파도 계속 던졌고, 지도자들이 그걸 그냥 용인했던 것은 '서른 넘으면 쓸 일도 없는 어깨'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던졌다가 오늘 또 던지고, 아프면 약 먹고 던지고 하는게 상식이던 시절입니다.

1978년 6월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저 위 기사를 보면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한 대회에서 42이닝, 그것도 준결승-결승은 이틀동안 연장전 포함 27이닝을 혼자 던졌다는 얘깁니다. 요즘 프로야구의 '노예'라고 불리는 투수들은 여기에 비하면 왕족이죠.

하지만 기사 어디에서도 '혹사'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예 그런 개념이 없던 시대였던 겁니다. 최동원은 이런 70년대 야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투수가 1980년대 이후에 배출됐다면... 뭐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에 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군요.


아무튼 그 최동원은 바로 그 77년부터 미국 일본 프로야구의 주목을 받습니다. 오라는 데 많은 바쁘신 몸이 된 겁니다. 나중엔 미국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까지 했다가 파기를 선언, 계약위반이니 뭐니 시끄럽기도 했고 스카우트 파문에 짜증이 난 최동원이 은퇴를 선언하는 등 진통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학 재학기간 중에는 주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심이 쏟아졌죠. 재일교포가 구단주인 롯데 오리온즈(지바 롯데 마린스의 전신)로 가는게 아니냐는 얘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거기다 79년에는 구타에 항의한 팀 이탈 사건도 벌어졌고, 이때 세상의 반응은 '아니 어떻게 최동원 같은 스타를 때릴 수가 있느냐'는 것과, '마운드에서도 건방져 보이더니 오죽하면 선배들한테 맞았겠느냐'는 것으로 양분됐습니다.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죠.

일단은 여기서 한번 자르겠습니다. 예상대로 길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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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만화에는 대개 주인공과 맞수인 완벽한 야구 선수가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성 못잖게 유명했던 마동탁이죠. 그런데 한국 야구에는 그런 타자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만화같았던 타자입니다.

그 타자, 한때 재일교포 강타자 장훈에 비견되어 '작은 장훈'이라고 불렸던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고인이 됐습니다. 왕년의 야구소년 눈에 불가능이 없는 타자로 여겨졌던 거인이 이렇게 빨리 전설이 되어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요즘 정신이 사람 정신이 아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강타자 장효조'를 얘기할 때 프로 진출 이후를 얘기하곤 합니다. 4회의 타격왕, .331의 통산 타율.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한 천재타자가 어느 야구소년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기억을 심어준 날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뭐 직접 만났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1978년. 서울 동대문구장(당시 이름은 서울운동장)에서 드문 볼거리 하나가 등장합니다. 한미 대학야구. 미국 NAIA 소속 대학야구 선수 15명으로 구성된 팀이 내한해 한국 대학선발팀과 경기를 가졌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대학선발이라면 그냥 무명 선수들의 집합체 정도로 생각되겠지만, 프로가 없던 시절 대학선발팀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당시 멤버는 이랬답니다.

◇대학선발야구단
▲단장=이봉모 ▲부단장=이팔관 ▲총무=신현철 ▲감독=김진영(중대감독) ▲「코치」=배성서(동국대감독) 강태정(건대감독) ▲투수=최동원(연대) 김시진(한대) 노상수(고대) 유종겸 선우대영(이상 중대) 김성한(동국대) 임호균(동아대) ▲포수=박해종(연대) 조종규(건대) ▲내야수=김봉연 정진호 양세종(이상 연대) 김진근(성대) 김한근(한대) 정학수(동아대) ▲외야수=김우근 송진호(이상 건대) 장효조(한대) 박종훈(고대) 양승관(인하대)

사실 최동원-김시진-임호균은 당시 한국 야구의 넘버 1, 2, 3 투수들이었습니다. 김성한이 투수로 들어 있는데 놀랄 젊은(?) 야구팬들도 있겠지만 당시의 김성한은 조계현이나 이광은 등과 함께 손꼽히는 투타 겸업의 천재 선수였습니다. 프로 원년에 거둔 10승은 우연이 아니었죠.

최동원-박해종의 배터리는 당연히 국가대표 주전이었고, 박해종-김봉연-장효조 역시 국가대표에서도 클린업 트리오에 해당했습니다. 이 시절에도 실업야구가 있었지만 박해종이나 김봉연은 사실 실업야구에 먼저 진출했다가 대학으로 U턴한 경우라 나이는 일반 대학생보다 한참 위였습니다. 경험 면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거죠.

그 해의 국가대표 명단입니다.

▲감독=김응룡(한일은) ▲「코치」=한을룡(한전)·이재환(연대) ▲투수=이선희(경리단) 최동원(연대) 김시진(한대) 유남호(롯데) 박철순(성무) 권영호(한국화장) 이광권(한전) ▲포수=심재원(한국화장) 박해종(연대) ▲내야수=김봉연(연대) 천보성(성무) 김재박 김일환(이상 한국화장) 배대웅(포철) 구영석(상은) ▲외야수=장효조(한대) 김일권 이해창 김준환(이상 경리단) 김우열(제일은)

면면을 보시면 대부분 프로야구 초창기를 빛낸 스타플레이어들입니다. 아무튼 국가대표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던 쟁쟁한 선수들이 대학선발의 주축을 이뤄 미국에서 온 선수들과 붙었습니다. 

WBC를 거치고, 박찬호 추신수의 시대를 보면서 현재의 야구팬들은 미국 야구에 대해 별다른 공포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 야구만 해도 장훈, 백인천의 활약 덕분에 크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체격 면에서 압도적인 '미국 야구'는 '절대 한국인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란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죠. 아마 지금도 현저한 '한국 농구와 미국 농구' 정도의 차이, 혹은 '한국 육상과 미국 육상의 차이' 정도를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아무튼 '미국 본토의 대학야구 선수들'은 어떤 수준일까 하는 궁금증 속에 대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7월23일, 한국은 당연히 에이스 최동원을 등판시켰고, 최동원은 5회까지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고 타선은 4점을 뽑아 이길 듯한 기미를 보입니다. 하지만 6회 최동원은 투런 홈런을 맞아 4-3으로 쫓긴 채 마운드를 김시진에게 넘기고, 김시진이 역전 3점포를 허용하면서 5-7로 첫판을 내줍니다.

한국의 충격은 사뭇 컸습니다. 최고 투수인 최동원과 김시진, 임호균을 모두 동원해서도 미국 타선을 봉쇄하지 못했고, 타자들은 나름 분전했지만 거구의 미국 타자들에게 동대문구장은 작게만 보였습니다. 게다가 야수들의 다이빙 캐치, 외야에서 홈으로 '쏘는' 송구 등은 그때까지 한국야구에서 볼 수 없는 허슬플레이였습니다. '본토 야구는 강하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던 겁니다. 당연히 첫판 이후 비관론(...'론'이라봐야 동네 여론이지만)이 번졌습니다.

하지만 둘째판부터 상황이 일변했습니다. 첫날 '역시 김시진은 안돼(큰 경기에 약한 경향...ㅋ)' 소리를 듣던 김시진이 9이닝을 2실점으로 완투하고 타선이 대폭발하며 13대2, 대승으로 첫날 패배를 설욕한 것입니다. 이렇게 1대1이 된 상황, 3차전에 관심이 몰렸습니다.

여기서 장효조의 한방이 전설을 만듭니다. 1978년 7월25일, 당시만 해도 전력 사정으로 보기 쉽지 않았던 야간 경기(흔히 '나이터'라고 불렸죠) 때의 일입니다.


3차전은 한국의 승세가 초반 빛을 발했습니다. 선발 임호균은 5회까지 단 1안타로 호투했고, 타선은 박해종의 3점포를 포함해 5-0으로 앞섰습니다. 하지만 호투하던 임호균은 일순 흔들려 만루홈런을 허용해버립니다. 5-4로 쫓긴 상황. 1차전의 홈런 역전패가 팬들의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한국에도 찬스가 돌아왔습니다. 7회. 1사 만루에서 4번 김봉연이 타석에 섰습니다. 하지만 삼진. 그런데 해설자가 묘한 말을 합니다. "병살타보다는 삼진당한게 나아요." 1차전 막판의 역전 찬스를 병살타로 날린 김봉연에 대한 질책인지, 아니면 5번 장효조에 대한 기대인지, 요즘 같으면 해설자들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해 버린 겁니다. (사실 김봉연은 1~3차전에서 연속 홈런을 치는 좋은 컨디션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서 2사 만루, 타석에는 한국에서 가장 잘 친다는 장효조. 물론 프로 데뷔 후의 장효조를 기억하는 분들에겐 '딱총'의 이미지가 강하겠지만 당시의 장효조는 당당한 홈런타자였습니다. 프로 데뷔 시즌인 1983년에도 18개의 홈런을 쳤을 정도로, 당시의 장효조는 장/단타를 가리지 않는 타자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그의 체구가 그렇게 작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5-4로 쫓긴 7회, 2사 만루, 2-3의 극적인 상황에서 장효조는 왼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만루홈런을 터뜨려버립니다. 당시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밀어 친 홈런'. 9-4. 온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야구를 보면서 이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준 홈런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장효조는 소년에게 야구의 신이 되었습니다. 전혀 관심 없던 대학야구도 챙겨 보기 시작했죠. 대학야구에서도 장효조는 평균 4할 이상의 강타자였고, 타자 개인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어 놓는 카리스마를 뿜어냈습니다. 국가대표에서도 그 이상 믿을 수 있는 타자는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삼성의 잇단 한국시리즈 패배와 함께 '찬스에 약한 타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무튼 프로 진출 이후,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였지만 1978년 한미대학야구 3차전에서처럼 가장 극적인 상황에서 '영화같은 활약'은 다시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물론 이 분도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1983년 타격왕을 차지하고도 신인왕을 박종훈 현 LG감독에게 넘겨준 것에 대해 대개 '신선하지 않다'는 이유(물론 아마 시절 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 스타였던 장효조에게 새삼 신인왕을 주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로 주로 설명하지만, 많은 야구인들은 '안하무인'이라는 주변의 평가도 큰 역할을 했다고도 증언합니다.

또 호타준족이었지만 수비만큼은 도저히 칭찬할 수 없었다는 것 역시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프로에서는 주로 우익수로 출전했지만 아마 시절만 해도 1루수나 지명타자 출전이 많았죠. 특히 결정적인 포구 미스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격에 있어서만큼은 신의 솜씨라는 것 역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때 야구 기자였던 시절, 원로 심판들이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포수 미트로 들어오는 공을 보면 베테랑 심판들은 공이 들어 오기 0.1초 전에 '아, 삼진이구나', 혹은 '치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다는 겁니다. 공의 방향, 스피드, 타자의 자세(어느 코스를 기다리는구나)를 본 상태에서의 종합적 판단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측을 어김없이 비웃는 타자가 바로 장효조였다는 거죠. '절대 칠 수 없는 코스. 헛스윙이나 루킹 삼진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믿을 수 없는 각도에서 배트가 나와 커트를 시켜 버린다는 겁니다. 또 이럴 때마다 장효조 타자는 심판을 보면서 씩 웃었다고 합니다. '어때, 못 칠줄 알았지?'하는 표정으로. 이심전심인 거죠.

여기에 위 도표를 보시면 경기수에 비해 안타수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습니다. 이건 아무 공이나 치는 타자가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는 타자였다는 것이죠. 실제로 타격 1위는 통산 4번이지만 출루율 1위는 6번입니다.

1m72의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이런 경이적인 선구안, 앞에서 말한 배트 컨트롤, 거기에 '글러브 안에 들어온 공도 친다'는 배트 스피드. 그것이 '장효조의 전설'을 만든 것입니다.


그날의 신화가 생각나는 밤. 추모의 뜻을 담아 두서없이 정리해봤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사실 옛날 기사를 찾아보기 전까지 저도 제 기억이 맞는지 반신반의했습니다. 한점차로 쫓긴 상황, 2사만루 2-3 풀카운트에서 나온 만루홈런. 그런데 정말 기억 그대로더군요. 가끔 기억이 전설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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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극의 세계에 집착하는 영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셰익스피어 극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죠. 특히 '햄릿'은 수십차례나 세계 각국에서 시대와 배경이 바뀐 채 영화화됐고, 영화 천황 구로자와 아키라도 '맥베스'와 '리어 왕'을 자기 식으로 만들어 낸 걸로 유명합니다.


그걸 한층 더 넘어서서, 만들어진지 2천년이 넘은 그리스 비극들이 다룬 모티브가 지금까지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삶의 형태가 변한다 해도 삶의 방식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들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설득력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그리스 비극이 자주 다뤘던 주제들이 확연한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썼던 글입니다. 제목은 '왜 그리스 비극은 아직도 유효한가' 정도로 붙이면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을린 사랑'을 보고 나서 쓴 글입니다.

시작.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만큼 가혹하고 기구하다.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스 마르케스가 시나리오를 쓴 1996년 작 <오이디푸스>(Oedipus the Mayor)라는 영화가 있다.

마약 군벌과 부패한 정부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의 한 도시에 젊은 시장 에디포가 부임한다. 하지만 도시는 실질적인 지배자 라이오가 게릴라에게 납치당한 사건으로 혼란스럽다. 얼마 뒤 라이오는 시체로 발견되고, 에디포는 라이오의 미망인 조카스테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이 남미를 배경으로 한 텔레노벨라(텔레비전 소설)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갑자기 등장한 관 짜는 노인(장님인 데다 이름이 심지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다)이 심상찮은 대사를 읊어대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라이오는 언젠가 자신이 아들에 의해 살해당할 거라는 꿈을 굳게 믿고 있었다. 에디포는 결국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알아차리고 만다. 아들과 정(情)을 통한 사실을 알게 된 조카스테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에디포는 스스로 두 눈을 파낸 뒤 거리를 방황한다.

무려 2,400여 년 전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왜 아직도 유효한 텍스트일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지 않아도 그리스 비극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는 선명하다.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 따위는 미치지 못할 만큼 때로 가혹하고 기구하다. 만인의 추앙을 받는 영웅도, 세상을 발아래 놓을 수 있는 미녀도 그런 운명 앞에선 가랑잎 같은 존재일 뿐.

그런 주제에 감히 ‘오만’(Hubris)을 품는 건 멸망을 자초하는 짓이란 게 그리스 비극의 공통된 메시지다. 물론 마르케스의 <오이디푸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디포 시장은 현실을 개혁하려는 젊은 이상주의자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가치관을 부정당하고(심지어 자신이 30년 이상 믿고 의지한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무너져 내린다. 자기 스스로 두 눈을 파내는 것은 극한의 자기 부정이다. 마르케스가 이토록 강하게 부정하는 대상은 뭘까.

서구 민주주의를 그대로 남미에 이식하려는 시도야말로 마르케스에게는 지독한 오만이다. 남미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합리성과 자본주의의 논리로 남미를 ‘계도’하려는 시도는, 알지 못한 채 근친상간의 패륜을 저지른 주제에 도덕 회복을 외치는 오이디푸스만큼 헛되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이다.

한때 유럽 영화를 이끌어가던 감독들이 앞 다퉈 그리스 비극을 영상으로 옮기던 시절이 있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이아>(1962),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의 <엘렉트라>(1962)는 시대적 배경이 에우리피데스 시대 그대로였지만, 그 중에도 줄스 다신 감독의 <죽어도 좋아>(Phaedra,1962)는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 무대를 현대로 옮겨왔다.

결말 부분의 광기 어린 자동차 질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영화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왕은 선박왕 타노스(랠프 발로네)로, 아들이며 후계자인 히폴리토스는 내성적인 화가 청년 알렉시스(앤서니 퍼킨스)로 바뀌었다. 현대 영화의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가 알렉시스와의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정열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리스 비극을 모태로 한 영화 한 편이 최근에 국내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물론 어떤 비극인지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에 해당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그 모델이 된 그리스 비극의 교훈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만을 반성하고 신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 진정한 인간 정신의 고양을 이뤄낼 수 있다는 빌뇌브 감독의 메시지는 지난 2,400년 동안 인간이 멈춰서 있지 않았음을 납득시키는 아름다운 증거다. <끝>




이 '시장 오이디푸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 '오이디푸스'라는 비디오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구해 보시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긴 합니다만,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전 취향이신 분들은 마리아 칼라스가 메데이아 역으로 나오는 '메데이아'같은 작품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단, 대단히 지루하다는 점은 각오를 하셔야 할듯.^^)

현대극으로 의미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죽어도 좋아' 쪽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신화/비극 속의 페드라에게 부여된 입체적인 캐릭터가 멜리나 메르쿠리라는 명배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소니 퍼킨스가 절벽으로 질주하며 '페드라!'를 외치는 이 영화의 엔딩을 기억하고 계시죠. 지금까지도 '불꽃같은 사련'을 얘기할 때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입니다. 이런 장면의 연기는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을 듯 합니다.

동영상이 좀 길긴 합니다만 약 4분30초 이후에 펼쳐지는 안소니 퍼킨스의 독백과 질주, 그리고 절규는 한번쯤 보실만 합니다.





'그을린 사랑' 이야기는 그쪽 리뷰에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http://fivecard.joins.com/947

@fivecard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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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혹성'이라는 말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제목이 바로 '혹성탈출'입니다. planet이라는 말의 공식 한국어 번역은 '행성'입니다. 일본어의 와쿠세이(惑星)는 더 이상 한국에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일단 한번 붙여진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의 생명은 길기도 합니다. 뭐 일단 붙여진 제목이 워낙 유명하니 흥행을 생각하는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 제목을 유지하려는게 당연하겠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아주 오래 전 시작된 '혹성탈출'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1968년,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영화 '혹성탈출'이 개봉된 뒤, 사람들은 원숭이 탈을 씌운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됐고, 이 시리즈가 유명한 인간 스타 배우(예를 들면 찰턴 헤스턴)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줄거리:

제약회사의 스타 연구원 윌(제임스 프랑코)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뇌세포 재생 약제의 개발에 골몰합니다. 암컷 침팬지에게 실험한 결과 놀라운 지능 향상 효과를 발휘하지만 우여곡절끝에 침팬지는 살해되고, 윌은 발견되지 않은 새끼 침팬지를 맡아 기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아기 원숭이는 시저(앤디 서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같은 또래의 인간 아이를 능가하는 지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시저는 자신과 인간이 왜 다른 대우를 받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죠.



영화의 원제는 원숭이 행성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약간 우스꽝스러운 제목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1968년작 '혹성탈출'의 원제가 Planet of the Apes. 직역하면 '원숭이의 행성'입니다. 한국 제목 '혹성탈출'이 일본어 제목에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본어 제목은 원작의 제목을 직역한 '원숭이의 혹성'이죠. 이 제목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혹성탈출'이라는 한국 제목을 붙인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에는 네 편의 공식 속편이 있습니다.

Beneath the Planet of the Apes (1970)
- 1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지구 지하에 원숭이의 지배를 피해 살고 있는 인류가 있습니다. 이 인류들은 겉보기엔 완벽한 미남 미녀들이지만 사실은 핵 오염으로 추악한 외모를 정교한 가면으로 감춘 것 뿐이고, 이들의 신은 지구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핵무기입니다. 어쩐지 '매트릭스'에도 영향을 준 듯한 영화. '속 혹성탈출'이란 제목으로 국내에도 개봉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scape from the Planet of the Apes (1971)
- 더 이상 속편을 만들 수 없게 된 줄거리상(?) 과거로 돌아갑니다. 1편에서 찰턴 헤스턴을 도와준 원숭이들이 어찌 어찌 해서 인류의 과거로 돌아가 현생 인류에게,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무모한 과학 발달 때문에 인류가 절멸하고, 미래는 원숭이의 차지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경고에 놀란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그 미래를 막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이야기.
  결국 지구를 지배하게 된 원숭이들은 미래에서 온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미래가 과거를 만들고 다시 과거가 미래를 만든다는 루프 스토리.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 (1972)
- 앞편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인간들의 책동(?)은 실패하고, 원숭이 부부가 낳은 아이 시저가 지구상의 원숭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모아 인간을 상대로 봉기합니다. 당연히 원숭이의 반란은 성공하고, 지구는 원숭이 판이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KBS가 여름 방학 특선인가 하는 제목으로 여기까지 세 편의 시리즈를 연속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목은 '행성정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자들의 지적으로 '혹성'이란 제목을 포기했던 거죠.

Battle for the Planet of the Apes (1973)
- 지구를 차지한 원숭이들의 내전 이야기. 정권을 차지한 원숭이들 사이에 분란이 생겨 침팬지파와 고릴라파가 지구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위의 영화들은 어렴풋이 줄거리라도 기억나지만 이건 본 적이 없는 영화라...

이밖에도 '혹성탈출'을 TV 시리즈로 만든 작품, 그리고 '완결편'을 자처하는 'Back to the Planet of the Apes'라는 TV 영화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혹성 탈출' 시리즈는 이런 장대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위에서 든 'Conquest of the Planet of the Apes'에서 바로 나온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래에서 온 원숭이' 보다는 훨씬 설득력있는 '유전공학 기술의 실수로 태어난 천재 원숭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죠.

'진화의 시작'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시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정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돌연변이 천재로 태어난 시저는 자신이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들 사이에 낄 수 없다는 데 분노를 느끼는데, 영화는 관객이 그 분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미물 원숭이'가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데 관객은 인간보다는 시저의 편에서 응원하게 되는 것이죠.

이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아바타' 스토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 혹은 '아바타' 때 외계인에게 미군이 궤멸당하는데도 미국 관객들이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라고 할 수도 있겠죠 - 아무튼 영화 속의 시저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특히 윌과 시저가 느끼는 감정의 연대가 잘 표현되어 있어 "Caesar is home" 같은 대사는 꽤나 감동적인 울림을 자아냅니다.



그리 길지도 않고, 엄청난 액션 장면이 있지도 않지만 시저의 성장기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또 다른 시리즈가 시작되려는 것인지는 알수 없군요. 그건 관객들이 제임스 프랑코 없이 시저를 주인공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크게 돈 들인 장면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앞부분은 저예산 영화의 냄새(윌이 일하는 제약회사에서의 전반부 촬영 장면은 돈 들이지 않고 찍은 태가 역력합니다. 90년대 이전 한국 영화의 영상 수준이랄까...)까지 나지만 이 영화 역시 1억 달러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입니다. CG 기술의 발달로 가상 캐릭터 시저를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비용은 여전히 만만찮습니다.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속편의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 이야기가 인간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과연 원숭이 영웅이 병든 인간 사회를 정복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있을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보고 싶기도 하군요.^^)


어쨌든 '진화의 시작'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습니다. 정말 앤디 서키스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P.S. 말포이는 여기서도 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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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여름 시즌의 블록버스터들은 치열한 눈치 싸움 끝에 개봉 날짜를 잡습니다. 당연히 방학 앞부분, 즉 7월 초쯤에 개봉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날짜를 앞당겨 경쟁작과 '박치기'라도 하게 되면 피해가 막심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개봉 첫주 박스 오피스 1위' 달성은 매우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보다 훨씬 더 '기업 마인드'로 스크린수를 조절하는 한국 멀티플렉스들의 성향으로 볼 때, 미국처럼 개봉 초기에는 미미했지만 점점 더 스크린 수를 불려 나가며 롱테일 흥행작으로 우뚝 서는 경우는 더 보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8월 후반에 개봉하는 작품들은 스스로 약세를 인정한 셈이라는 시각이 있었는데, 의외로 올해는 8월 중순 개봉작들이 완성도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났습니다. '최종병기 활'과 '블라인드'가 그렇고, 외화 중에도 '혹성탈출 2'가 평이 좋더군요.


인조반정. 광해군의 측근에 대한 토벌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린 남이와 자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북쪽으로 달아납니다. 아버지의 친구 김무순(이경영)에 의해 길러진 남매. 자인(문채원)은 곱게 자라 무순의 아들 서군(김무열)과 혼인을 하게 되지만, 혼인 당일날 병자호란의 발발로 청의 군대에 의해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서군과 자인은 포로로 끌려가는 몸이 됩니다.

바뀐 시점. 청의 바이러(貝勒)이며 황제의 동생인 용장 쥬신타는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이상한 궁수 하나가 앞서 귀환한 조카(청의 황자)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재촉해 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그 궁수가 놀라운 솜씨를 갖고 있으며, 자신이 한 마을에서 본 이상한 자와 동일인물이라는 확신만 굳어 갈 뿐입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 영화가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속도감이 일단 발군입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따로 감정 신을 나열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연출은 없습니다. 석양이나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주인공들이 굳이 자기의 속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시 같은 대사를 읖조리게 할 만큼 이 영화는 한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손실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정신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탄력이 살아났습니다. 어느 부분을 짚어도 탱탱하게 튕겨나갈 듯한 박진감이 느껴집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과 비교해 볼 때, 윤색에 참여했다는 하리마오 픽처스('추노'와 '7급 공무원'을 히트시킨 천성일 작가의 회사입니다)의 공헌이 꽤 커 보입니다.

아무튼 재미 요소에서 이 영화는 근 몇년 동안 개봉됐던 한국 영화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권해도 욕 먹지 않을,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들의 힘은 굳이 말할 게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쥬신타를 연기하는 류승룡의 중량감이야말로 영화의 큰 힘입니다. '고지전'의 인민군 중대장 역할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는 것이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아무튼 '넘어야 할 막강한 적'이면서 '그 적에게도 싸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로 이보다 좋은 캐스팅과 연기는 찾기 힘들 듯 합니다.

박해일의 남이는 참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만약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혁이 이 연기를 했다면 정말 진중한 캐릭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박해일이었기 때문에, 극도로 비장미 넘치는 장면에서 슬랩스틱에 가까운 장면까지 캐릭터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이 영화가 이 정도까지 큰 호응을 얻는 데 있어 박해일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도르곤 역의 박기웅을 비롯해 남이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니루들의 역할도 모두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더군요. 아무튼 요즘은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저 장면 하나 찍기 위해 진짜 목숨을 걸어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절벽에서 따라 뛰는 장면 같은 부분에서는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사실 꽤 중량감이 있습니다. 한국인이니 당연히 광해군과 북방 외교 정책, 인조반정과 서인의 득세에 이은 외교 균형의 파괴,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역사적인 치욕에 대해서는 관객의 사전 지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르곤이나 정황기, 바이러나 니루 같은 청나라의 군 제도에 관련된 단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쑥쑥 튀어 나오고 육량시, 애깃살 같은 군사 전문 용어(?)도 마구 등장합니다. 물론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알고 보면 볼수록 더 재미있어 진다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니 직접 검색해서 찾아 보시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일 듯 싶습니다.)

영화 속 청의 군대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제 사어 취급을 받는 만주어입니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원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만주어를 복원할 정도의 공덕인데 남이와 서군은 어찌하여 이렇게 현대화된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인지...)



단지 하나 딴지 아닌 딴지를 걸자면,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병자호란'이라는 시기와 사용되는 무기가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청의 주력이 일단 궁장기병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청의 팔기군은 이 궁장기병의 기동력으로 총포를 사용한 명군을 무력화하며 승승장구한 기록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청을 상대로 기록한 몇 안되는 전과 가운데 하나가 청 태조 누루하치의 사위라는 명장 양고리(楊古利)를 사살했다는 것인데요,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양고리는 고창 출신 무장 박의의 조총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 가장 신빙성있게 보입니다. (물론 원두표라는 설도 있고, 무명의 병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방어 전술은 활보다는 총포를 중심으로 한 성곽 체제였고, 조선을 대표하는 병기 역시 조총으로 급격히 변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 속 남이가 정규군 소속도 아니었고, 혼자 산속에서 무예를 익힌 인물이었으므로 활대 활의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를 처음 만들 당시에도 '배경이 병자호란이라면 활대 활이 아니라, 청의 활대 조선 총의 대결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괜한 지적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 기록은 박의가 양고리를 사살한 무기가 활인 듯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만...ㅋ 5천년 역사를 이어온 조선 명궁의 전설이 '명포수'로 바뀌어 가는 것이 이 시대였기 때문에 해 본 얘기였습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속도감을 높이는 편집을 위해 많은 것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위에도 했지만, 그래도 남이와 몇몇 동료들이 '호랑이 사냥을 위해 압록강 일대를 자주 넘나들어 주변 지리에 익숙해 있었다' 정도의 밑밥은 영화 앞 부분에 좀 깔아 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남이의 활에 써 있던 문장 해석.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는 '앞은 태산처럼 무게를 두고 시위는 호랑이 꼬리처럼 말아 쏘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니 국궁 용어 중 유명한 전추태한 후악호미(後握虎尾)의 변형이더군요.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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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을 보러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극장이 거의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지명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각계의 호평이 쏟아진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대체 어떻게 이런 많은 관객을 몰고 왔나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사전정보를 수집하는 거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워낙 온 세상이 영화 정보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라, 근 몇년 사이 이 영화만큼 사전에 아무런 지식 없이 본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내가 "'그을린 사랑'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게 전부였죠.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지 않은 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은 빨리 창을 닫으시기 바랍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를 보지 않고 2011년을 그냥 흘려 보낸다면 여러분은 이 해에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캐나다 퀘벡에 위치한 장 레벨씨의 공증인 사무소. 쌍둥이 남매 시몬과 잔느는 어머니 나왈의 기묘한 유언장을 접하고 당황합니다. 어머니는 남매에게 두 가지를 각각 부탁합니다. 잔느에게는 '너희의 아버지를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 시몬에게는 '너의 형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진작에 죽었다고 알고 있고, 형이 있다는 말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남매는 일순 반발합니다. 하지만 유언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는 시몬과는 달리 어머니에게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낀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를 찾기 위해 나왈의 고국인 '아랍의 어느 나라'로 향합니다.



끝까지 나왈이 태어나 자란 '이 나라'가 어디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인종 청소와 관련된 내전이 거론되는 탓에 구 유고 연방 지역의 어딘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보고 있으면 레반트 지역의 어느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의 주요 촬영지는 요르단. 하지만 기독교 민병대와 PLO가 개입된 내전으로 국토가 폐허가 될 정도의 심각한 혼란을 겪은 나라라면 레바논이 모델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원작이 된 연극의 저자도 레바논 출신이라는군요.

(다만 이 시기 중동 지역에서 펼쳐진 종교분쟁의 아수라장을 얘기할 때 책임을 피하기 힘든 이스라엘과 미국 관련 내용은 이 영화에서 아예 거론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신중함이 이 영화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려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리주의를 고집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요소가 비판을 부르는 부분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10대 후반쯤이었을 나왈은 '이 나라'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 팔레스타인 난민 청년(당연히 무슬림입니다)과 해서는 안될 사랑에 빠지면서 역사의 격동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것은 손에 묻은 피를 새로운 적의 피로 씻는 복수극의 정서입니다. 온갖 참극을 직접 몸으로 겪은 나왈 역시 스스로 복수의 화신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이런 격렬한 복수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용서와 평화의 메시지로 전환된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을 한 여인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을 설득하는 빌뇌브 감독의 스토리텔링은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 할만 합니다.

빌뇌브 감독이 모성애에 기반한 이해와 용서를 웅변처럼 외치고 있는 이면에서 또 한가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록에 대한 애정입니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가 기록자의 시각에 따라 왜곡될 여지가 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반면, 숫자로 표현되는 기록은 묵묵히 진실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물론 기록 자체도 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중에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어떤 기록이 채택되는지에 의해 주관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지만 화려한 수사로 서술된 '말의 역사'에 비하면 도표와 숫자는 훨씬 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빌뇌브 감독의 입장은 선명합니다. '기록하라'. 당장 의미가 부여되지 않아도 제대로 된 기록은 언젠가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는 얘기죠. 뒷날 기록에 의한 진실 규명이 이뤄진 뒤에도 용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닐까(프랑스계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고전적인 가르침대로 덮어 둘 것은 그냥 덮어 두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그을린 사랑'을 보고 나면 빌뇌브 감독의 이런 주장에 대략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너무나 강력한 서사가 지배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대해 뭐라 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왈 역을 맡은 루브나 아자젤은 1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한 여자의 반생을 기가 막히기 표현해 냅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글자 그대로 '망가져'가는 개인의 삶을 묵묵히 표현해내는 연기는 보톡스와 친한 중년 여배우들에게선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절제와 균형이 빛을 발하는 연기와 연출입니다.

사실 '그을린 사랑'의 가장 큰 강점은 빌뇌브 감독의 메시지보다는 이야기를 배치하는 교묘한 솜씨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결말 이후에도 영화의 에너지가 전혀 사라지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아무리 칭찬해도 진정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반전'을 너무 기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반전에 신경 쓰다 보면 진정 중요한 메시지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빌뇌브 감독은 이 부분에서 반전을 감추기 위해 살짝 영화적인 반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안 속겠다고 버티면 버틸수록 영화의 감동은 사라진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은 아무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 역시 같은 요령으로 가려 둡니다. 영화를 이미 보신 분만 마우스로 긁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끝까지 읽어보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바로, 표 사러 나가세요.


전체적인 영화의 얼개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이오카스테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니야드를 나중에 알아보기 위해 표시하는 부위가 발 뒷굼치라는 점('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란 뜻입니다)은 관객을 위한 힌트라고 봐야 할까요.

물론 니야드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빌뇌브 감독은 지나치게 나이 든 배우를 기용해 자신의 의도를 가립니다. 나왈이 크파르 리야트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니야드는 만 스무살을 넘기 힘들죠. 하지만 그때 니야드의 얼굴을 보고 스무살 안팎의 청년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합니다. 일종의 반칙인데, 애교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P.S. 영화에는 두 가지 형태로 지식인의 역할을 표현합니다. 한 사람은 다레쉬에 갔을 때 잔느가 처음 만나는 수학 교수입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인물이죠. 잔느가 "빌어먹을 코헨(이 교수를 소개시켜 준 자신의 은사를 말합니다)"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살짝 중의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코헨이라는 대표적인 유태인 이름을 이용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비극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네. 과잉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장 중요한 사람, 바로 나왈의 고용주였던 공증인 장 레벨입니다. 레벨이 병상에 누운 나왈의 구술에 따라 편지를 대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쉽게 남매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해 줄 수도 있었을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남매가 어머니의 유언을 직접 몸으로 수행하고 어머니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합니다.

물론 편지는 죽기 전에 써 놓은 것일 수도 있고, 레벨도 전모를 알고 있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끝까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주는 레벨의 역할을 생각하면, '기록자'에 대한 빌뇌브 감독의 애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P.S.2. 원제 INCENDIES는 '전쟁의 참화', '불에 그을린 것'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군요. 거기에 비하면 '그을린 사랑'은 너무 순한 제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쁜 제목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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