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좋지만 남들의 기대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제리(샤이아 라보프)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계좌에 75만달러라는 거금이 입금된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잠시 후 들어간 자취방에는 첨단 무기가 가득 쌓여 있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30초 안에 달아나지 않으면 FBI가 덮친다. 어서 달아나"라고 말하는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여자 목소리.
이 목소리를 무시한 제리는 엄청 곤욕을 치릅니다. (이상은 예고편에 나오는 장면) 알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리는 그의 명령에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고,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목에 나오는 '이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제리는 곧 자신처럼 이글 아이에 의해 조종되는 싱글맘 레이첼(미셸 모나한)을 만나고, 군 수사관 페레스(로자리오 도슨)와 FBI 수사관 모건(빌리 밥 손튼)은 그들을 뒤쫓으면서 이름 모를 강력한 손을 느끼게 됩니다.
D.J. 카루소 감독은 히치코크의 모든 작품을 현대판으로 개작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걸까요? 샤이아 라보프가 출연한 전작 '디스터비아'가 '이창'의 현대판이듯 '이글 아이'는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의 현대판이라고 감독 자신이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에 나오는 악당들은 '이글 아이'에 비하면 정말 어린애 장난 수준입니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전지전능하지도, 모든 것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도 못했죠. 공통점이라면 그저 죄 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오인돼 쫓겨 다닌다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당연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첫 손에 꼽힐 겁니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 스타일의 악당, 즉 모든 네트워크와 감시 수단을 이용해 상대를 추적하는 대 악당에 의해 위기에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로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만한 작품이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저런, 그러고 나서 보니 포스터까지 비슷하군요.^^)
그럼 '이글 아이'는 대체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사실 대단한 고민이었을 겁니다. 웬만한 극적 장치나 도구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거의 다 써버렸거든요. 실제로 이 영화의 액션에서 대단히 참신한 장면은 아예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스피드는 확실히 빨라졌죠. 이 스피드 역시 상당 부분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로 단련된 관객에게 이 영화에 나왔던 시퀀스를 다시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글 아이'는 스스로 새로운 착안을 하기 보다는 아주 쉽게, 또 한편의 고전 영화를 가져다 계란 후라이처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위에 얹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샤이아 라보프의 캐릭터를 관리하는 데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라보프는 '인디애나 존스 4'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성질만 좀 덜 급한가요?). 위기에 몰려도 위트를 잊지 않는 젊은 인디애나 존스라고나 할까요. 라보프의 연기력이 발전한 것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글 아이'에서는 훨씬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동안 액션 블록버스터에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 빌리 밥 손튼은 그 이유로 무척 신선해 보입니다. 반면 로자리오 도슨은 커리어 관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또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역인데다 빛도 나질 않습니다.
여주인공 미셀 모나한도 여러 모로 좀 실망입니다. 라보프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들어 보이기 때문에 남녀 주인공 사이의 연애 감정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거의 주지 못합니다. 대본상의 문제지만 이 캐릭터는 그냥 아들 구하기에 정신이 팔린 무뇌아 여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 3에 나왔을 때에도 이미 실망스러웠죠.
많은 리뷰어들이 플롯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수많은 하이테크 블록버스터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특별히 문제가 많은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신선한 발상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말이 안 되는 장면이 많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 한 식상한 요소들이 전편의 내러티브 내내 발견된다는 점이 더 문제죠. 쌍둥이 발상 같은 건 좀 헛 웃음이 나오게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교훈은 아무리 훌륭한 배우들과 엄청난 특수효과 팀, 그리고 시나리오 다듬기의 귀재들이 모여서 영화를 만든다 해도, 결국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에 당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인식시킨다는 정도입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예고편을 매우 속도감 넘치게 잘 만들었고, 영화 전체에서도 속도감이 돋보인다는 점 정도입니다. 안 그랬으면 대단히 지루했겠죠. 다행히 영화는 두시간 정도 즐기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 면에선 대본에 비해 연출력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 물가를 생각하면 당연히 싸게 먹는게 급선무일수밖에 없어서 '싸게 먹기'편을 먼저 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리 싼 편은 아니라는 뒤늦게 나타난 에딘버러 주민 한 분의 말씀에 조금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갔으면 궁상만 떨고 있을 수는 없죠. 멋진 데 가서 기분 내는 재미도 없으면 대체 여행을 왜 간단 말입니까. 제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런던의 레스토랑입니다.
단 가격은 좀 비싸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라면이나 햄버거,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던 분들도 가끔은 지갑을 풀어야 나중에 기억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비싸게 먹기 편을 먼저 보시면 눈을 버리실테니, 일단 '싸게 먹기'편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쪽이 '싸게 먹기' 쪽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확 느낌이 오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런던에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은 테이트 모던입니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면 나타나는, 겉모습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미술관입니다.
본래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개축했으니 외양이 그리 빛날 리는 없죠.
사실 대영제국은 오래 전에 빛을 잃었지만, 영국인들은 창의력으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영화, 뮤지컬, 대중음악, 패션 등등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영국은 여전히 최고의 선진국이죠.
그리고 그런 창의력이나 미적 감각의 근원이 이런 수준 높은 공공 미술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료로 이런 멋진 공간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카텔란의 '아베 마리아',
칸딘스키의 '스타른베르크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뿌듯한 일일 겁니다.
이 건물의 7층에는 'one of the finest view of London'을 제공한다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냥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하지막 막상 밤까지 영업하는 날은 금요일뿐입니다.
들어서서 오른쪽 창 밖으로는 미국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세인트 폴 대성당의 탑이 보입니다.
당연히 창가 자리에 앉으면 테임즈 강을 볼 수 있죠.
왼쪽 뷰는 그냥 평범한 시내입니다.
런치 메뉴입니다. 사실 가격은 꽤나 비쌉니다.
Penne pasta with butternut squash, cavolo nero, salted ricotta and pine nuts £11.95 Deep fried Cornish haddock with chips, tartare sauce and mushy peas £12.50 Smoked haddock & cod fish pie £12.95 Fish of the day, fresh from the Newlyn day boats, Cornwall (Market price) 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 £15.50 Char-grilled salt marsh leg of lamb steak with red onion, feta, mint & oregano £15.95
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를 골랐습니다. (herb rotolo는 이탈리아풍의 둥근 말이 음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닭 밑에 깔린 저 걸쭉한 소스가 환상.
구운 토마토와 모짜렐라의 가벼운 요리. 카프레제는 본래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조합은 처음입니다. 저 푸짐한 모짜렐라 치즈와 구운 토마토에서 나온 단맛이 정말 하늘나라의 조화를 느끼게 하더군요. 혓바닥까지 삼킬 뻔 했습니다.
런던 시내에만도 램지가 경영하는 식당은 대여섯곳이나 됩니다. 모두 gordonramsay.com에 올라 있죠. 폭스트로트 오스카는 그중 하나로, 빅토리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안에서 본 바깥. 저녁 첫 손님이라 그런지 비어 있습니다.
기분내기용으로 시킨 아이리쉬 사이다 Magners.
Cider는 본래 40도 정도의 스피릿이라고 들었는데 이 사이다는 4.5%더군요. 사이다가 소다수와 동의어로 쓰이는 건 우리나라뿐입니다. 주의하시길.
견과류가 많이 든 딱딱한 빵.
메인 메뉴는 대략 이렇습니다. 테이트 모던보다는 좀 싸군요.
아무튼 메뉴에 코코뱅이 있는 걸로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식 요리입니다.
Confit duck leg with braised lentils £11.75 Sausages and mash with onion gravy £11.25 Lobster, salmon and crayfish pie £12.75 Casterbridge 9oz rib-eye steak with béarnaise sauce £15.75 Leek and stilton tart £10.25 Game pie £11.50 Beer battered hake with chips and pea purée £12.75 Braised pig’s cheeks £12.75 Foxtrot fishcake £11.00 Coq au vin £11.50 Whole pan-fried rainbow trout with toasted almonds £10.75
토마토 가스파초.
서대(Sold) 뫼니에르. 지금 메뉴엔 없습니다.
양고기로 만든 프리카세(fricasse). 감자, 당근 등 고기와 함께 와인 소스를 가미한 스튜.
빅토리아 역 근처가 숙소인 분들이나, '빌리 엘리어트'를 보러 가시는 분들이라면 들러 볼 만 합니다. 빅토리아 역에서 139번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거리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건 테이트 모던의 세계적인 미술품들 앞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세계적인 크리에이터가 나올 수도 있겠죠.
야구 열기에 슬쩍 편승한 포스팅입니다. 준 PO에서 롯데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홈에서 2연패를 했군요. 지난밤 부산에서 쓰러진 소주병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갑니다.
삼성이 2연승을 하는 동안 눈길을 끈 점이라면 아무래도 삼성에 있는 롯데 연고, 특히 부산 출신 선수들의 분전이 돋보였다는 점입니다. 1차전에서 6타수 4안타를 친 1번 박한이와 4번 진갑용의 부산고 선후배가 롯데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는데 기여했다면, 2차전에서는 채태인이 이번 PO 첫 홈런을 때려냈죠. 채태인은 부산상고 출신입니다.
물론 부산 출신 선수는 당연히 롯데에 훨씬 더 많죠. 손민한-장원준-손광민으로 이어지는 부산고, 송승준-이대호-박현승으로 이어지는 경남고의 양대 명문고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가 부산 경남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들보다는 적지에서 뛰는 삼성 소속의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이 사직구장에서 더 펄펄 날았다는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롯데의 홈 사직구장은 뜨거운 응원 열기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홈 승률이 매우 낮은 구장이기도 합니다. 올해 롯데의 홈 승률은 63경기 중에서 32승 31패. 5할이 간신히 넘습니다. 여기서 마산 경기(1승5패)를 빼면 31승26패로 올라가긴 합니다만, 시즌 승률(.548)에 비해 낮은(.544) 승률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홈구장' 치고는 의외의 성적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분의 분석(http://toto5071.egloos.com/325459)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사직구장에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건 2006년과 올해 뿐입니다. 이건 롯데의 최근 전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지난 2000년 이후 9시즌 동안 사직구장 승률이 시즌 전체 승률보다 높았던 해는 2003, 2005, 2006년의 세 시즌밖에 없더군요. 좀 의아해지는 성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뜨거운 응원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자주 진다는 이유로 왕년에 자기 구단 버스에 불도 지른 적이 있을 정도(뭐 이건 부산이 아니라 마산에서 있었던 일이지만)로 뜨거운 롯데 팬들의 열성이 자칫 롯데 선수들을 주눅들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극성 엄마를 둔 수험생의 긴장...같은 것일까요?
반면 간간이 사직을 찾는 타 구단 소속의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은 왠지 모를 고향의 푸근함 때문에 실력을 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풀이의 의미는 아닙니다. 손민한과 부산고-고려대 동창인 진갑용은 두산 시절에도 롯데 쪽으로 곁눈질을 했다지만 엉뚱하게도 1년 먼저 입단한 최기문이 롯데로 트레이드되는 일도 겪었죠. 1,2차전에서 제 실력을 보인 선수들은 롯데도 탐내던 선수들이죠. 트레이드로 삼성에 간 신명철(마산고 출신)이라면 또 모르지만.
아무튼 삼성에는 이밖에도 롯데 연고 선수들이 주요 전력으로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준PO 출전 선수 중에는 3차전 선발 예고된 윤성환도 부산상고 출신이고 신명철과 김창희(마산고), 강봉규(경남고) 등이 있죠. 이 선수들도 롯데를 상대로 계속 펄펄 날지 궁금합니다.
반면 롯데는 아직도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여기도 대구-경북 출신들이 꽤 됩니다. 투수 중에는
2차전에 나온 강영식(대구상고),
야수 중에는
강민호(포철공고)와
박기혁(대구상고)이 대표적이죠.
과연 대구 3차전에서는 삼성에서 뛰지 않고 있는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해 삼성에 타격을 줄까요, 아니면 대구구장의 안방 텃세가 더 셀까요. 3차전을 보고 나면 어느 쪽의 운이 더 강한지 판가름이 날 것 같습니다.
그나자나 선수 명단을 보니 삼성은 정말 '순혈 대구-경북' 선수들이 정말 적군요. 하지만 오히려 향토 출신 선수들이 타지 출신들을 왕따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정서가 강했던 시절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눈길이 갑니다.
한글날에 좀 맞는 화제를 들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추석 연휴때 또 나왔던 얘기이기도 한데 아끼고 아꼈다가 한글날 다 같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TV에서도 원음을 살려 자막으로 외화를 방송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요청은 대개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인기 외화가 몰아서 방송되는 명절 때 많이 제기된다고들 하지요.
꽤 전에 한 방송사 편성 담당 간부 한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문득 외화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죠. 'X-파일'이 방송되던 시절인데, 일부 일간지에서는 'X-파일'의 인기로 미국 드라마 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사가 나올 때였지만 정작 시청률이 왕년의 인기 외화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왜 '프렌즈'같은 시트콤을 방송하지 않느냐"고 물었죠. 그 간부는 "우선 정서가 한국 정서가 아니고, 너무 섹스와 관련된 얘기가 많아 적절하게 옮기기가 함들며, 성우들이 그 시트콤의 맛을 낼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자막으로 내면 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죠.
그러자 그 간부가 씩 웃으며 하던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거야? 누구 쪽박 차는 거 보고 싶어?" 저는 그때까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그렇게 자막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 간부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자막 들어가서 방송된 프로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게 뭔지 알아? '여명의 눈동자'야. 그거 빼곤 전부 한자리수야."
[송원섭의 두루두루] TV 외화, 더빙해야 할까 자막으로 볼까
명절 때가 되면 홍콩 스타 성룡(成龍)이 나오는 영화가 방송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재연되는 논란이 있다. 바로 '성룡의 목소리'와 관련된 문제다.
TV 외화는 더빙을 하는 게 좋을까, 하지 않는게 좋을까. 한쪽에선 관람의 편의나 우리말의 소중함을 내세우고, 다른 쪽에선 실제 배우의 육성이나 만들어진 음향을 해치지 않는 관람을 요구한다. 당연히 돈이 더 드는 쪽은 더빙을 하는 쪽이다. 어느 쪽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송사 쪽에선 돈을 안 들이고 욕먹는 쪽이 낫다고 보아야 할까?
일단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더빙과 관련해 '원어로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는 자유'를 말하자면, 한국만큼 이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과는 반대로, TV는 물론 극장에서도 '자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볼 권리'를 국민들에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방송 드라마의 경우 전면 더빙을, 극장용 영화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더빙을 원칙으로 생각한다. 그런 탓에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성우들이 인기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원어판(자막판)을 상영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더빙이 되어 있지 않음'을 명시해야 한다. 관객에게 '자막을 읽는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중국도 마찬가지. 자막 상영이 더 보편적인 일본에서도 거의 모든 영화가 더빙판 상영을 병행하고 있다.
오히려 극장에서 자국어로 더빙되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정도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외국(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은 더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자막을 읽어 가며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며, 외국어로 된 영화에 자막을 넣지 않는 것은 관객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외국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원어 그대로 보든, 자국어로 더빙해서 보든, 사실 대단한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블TV의 경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까지 자막 방송을 하기도 한다는 점은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혹시 이런 현실이 자국어에 대한 애정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더빙 여부가 제작비 몇 푼의 문제, 성우 몇 사람의 생계 문제만은 아니라는 부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끝)
사실 한국 관객들의 기준은 그리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1980년대, 홍콩 영화 포스터에는 조그맣게 '중국어 발성'이라는 문구가 써 있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홍콩 합작 영화가 꽤 많았고, 합작 영화는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홍콩에서는 광동어로 더빙되어 상영되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소룡에 이은 성룡의 성공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관객들은 재빨리 '중국어로 발성되는 영화'가 '한국어로 더빙된 중국 영화'에 비해 작품성이나 재미가 훨씬 낫다는 걸 알아 차린겁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죠. '중국어 발성'이란 바로 품질 보증이었던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극장에서 더스틴 호프만 대신 배한성씨의 목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걸었다가는 아마 관객들의 항의가 하늘을 찌를 겁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지금도 더빙판을 병행 상영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극장에 가서 외화를 본다=자막으로 영화를 본다'로 굳어진 지 오랩니다.
하지만 TV의 경우엔 영 다릅니다. 절대적으로 더빙된 영화에 대한 선호가 높죠. '어,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죄송하지만 이 경우에 여러분은 소수파입니다. 전체 국민, 즉 전체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자막이 들어간 외화는 절대적으로 기피 대상입니다. 자막으로 방송되는 'CSI'가 인기라구요? 그래 봐야 시청률로 따지면 2~3%가 한계입니다. 더빙으로 방송되는 지상파에서는 6~7%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만약 국산 드라마와 붙여 놓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자막으로 된 외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전 시청자의 절반 이하입니다. 많이 배운 여러분이 쉽게 계산에 넣지 못하는, '나이도 많고 교육수준도 낮은' 시청자들에겐 자막이 전혀 인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건 우리나라 쪽입니다. 다른 나라는 잘 사는 나라건 못 사는 나라건, 대개 극장에서도 더빙 상영판을 메인으로 간주합니다. 아예 원어 상영(자막판)을 하지 않는 나라도 꽤 많죠. 이건 바로 가장 기본적인 자국어 우선 정책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도 '더빙'을 무턱대고 구시대의 유물 취급하는 태도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극장에서야 지금처럼 자막 상영의 기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겠지만, TV에서는 더빙이 좀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영화까지 굳이 지막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어린이들이 일본어로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걸 보고 "조기 외국어 교육이 효과가 있네" 하면서 좋아할 수 없는 건 저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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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진은 위에서부터 배한성, 양지운, 장유진, 얼마 전 돌아가신 장정진, 그리고 탤런트로 더 유명한 김영옥씨와 그분들이 연기한 대표적인 역할입니다. 어려서 쇠돌이의 목소리를 내는 분이 중년 아줌마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더랬습니다.
요즘은 어떤 분들이 스타 성우인지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이누야샤 목소리를 내던 강수진씨 정도나 알겠네요. 그래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X-파일'의 경우 유독 더빙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 같더군요. 멀더군의 실제 목소리에 실망했다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제니퍼 빌(Jennifer Veale)이라는 기자가 서울발로 기사를 썼더군요. "South Koreans Are Shaken by a Celebrity Suicide"라는 제목입니다. 주요 내용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기사가 한국의 실정을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려는 말은 알겠지만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팩트가 약간 갸우뚱한 부분이 있습니다.
원문을 보시라고 하면 고문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아서 거칠지만 살짝 번역을 해 봤습니다. 뭐 사소한 오역은 꽤 있겠지만, 꽤 중요한 부분이 잘못된 경우엔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She was more than South Korea's Julia Roberts or Angelina Jolie. For nearly 20 years, Choi Jin Sil was the country's cinematic sweetheart and as close to being a "national" actress as possible. But since her body was found on Oct. 2, an apparent suicide, she has become a symbol of the difficulties women face in this deeply conservative yet technologically savvy society. Incessant online gossip appears to have been largely to blame for her death. But it's also clear that public life as a single, working, divorced mom - still a pariah status in South Korea - was one role she had a lot of trouble with.
그녀는 한국에서 줄리아 로버츠나 안젤리나 졸리보다 한 단계위의 스타였다. 근 20년 동안 최진실은 극장에서 전 국민의 연인이었고, 실제 존재하는 배우들 중 가장 '국민 여배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2일 명백히 자살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된 이후, 그녀는 '최신기술에는 빠삭하지만 엄청나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자들이 직면해야 하는 어려움'의 상징이 되었다. 끊임없는 온라인상의 가십이 그녀의 죽음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혼하고 아이가 딸린 채 일을 해야 하는 여성 - 한국에선 여전히 불가촉 천민(pariah)에 해당하는 - 으로서의 역할이야말로 그녀를 가장 괴롭혔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파리아는 인도에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그 이하의 천민을 말합니다. 가끔 인도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빨래 하는 노역자 등이 이 계급에 속하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어도 될 정도라는군요.
싱글맘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요즘은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인도의 불가촉천민 - 손으로 건드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뜻 - 과 비교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계속 이어집니다.
Dubbed the "nation's actress," Choi starred in some 16 movies and more than a dozen TV soap operas throughout the 1990s. But her career took a hit in 2002, when the public learned of her troubled marriage and subsequent divorce from Cho Sung Min, who plays baseball for the big leagues across the sea in Japan. After her divorce in 2004, the mother of two became anathema to producers and broadcasters who, according to industry observers, were and still are reluctant to put single mothers in starring or prominent roles. After four years of struggling, Choi's career had begun to pick up when her body was found in her bathroom in southern Seoul. She apparently hanged herself with a rope made of medical bandages. (Hanging is the most common form of suicide in South Korea, where gun ownership is illegal.) Her suicide has gripped the nation, dominating headlines as authorities, relatives and even the government try to determine what went wrong.
'국민 여배우'로 일컬어지는 최진실은 90년대를 통틀어 16편의 영화와 최소한 12편 이상의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커리어는 지난 2002년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했던 조성민과의 결혼 생활의 파탄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잇달아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2004년 이혼한 뒤에는 두 아이의 엄마인 최진실은 방송 관계자들에게 저주받은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 업계를 지켜보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들은 싱글맘들을 주인공이나 눈에 띄는 역할에 캐스팅하는 걸 꺼린다. 4년간 (이런 통념과의)투쟁 끝에 최진실의 커리어는 회복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 최진실의 시신은 강남에 있는 자신의 집 욕실에서 발견됐다. 그녀는 붕대로 노끈을 만들어 목을 맨 것이 분명했다. (총기 사용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목을 매는 것이 가장 흔한 자살방법이다) 그녀의 자살은 한국인들의 관심을 장악했고, 헤드라인을 독점해 전문가들, 친척들,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내려 진땀을 뺐다.
최진실이 2000년 결혼부터 2004년 이혼때까지 출연한 작품은 연변 처녀로 나와 류시원과 공연한 MBC TV '그대를 알고부터' 한편뿐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스스로 활동을 자제한 덕분이죠. 이혼의 충격으로 부진했다고 할만한 드라마 역시 2004년의 MBC TV '장미의 전쟁' 뿐입니다. 바로 이듬해인 2005년 KBS 2TV '장밋빛 인생'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PD들이 저주받은 사람(anathema) 취급하면서 피했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심지어 '장미의 전쟁'이 부진했는데도 MBC TV와의 계약 잔여분을 무시하고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려다 MBC로부터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필요 없는 연기자라고 생각했으면 절대 그랬을 리가 없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MBC TV '나쁜여자 착한여자'도 꽤 주목을 끌었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CF도 끊기지 않았죠. 윗글처럼 'STRUGGLE'이라고 할 만큼 사회 통념(?)과 싸울 기회가 아예 없었습니다.
According to Korean news reports, Choi became depressed when rumors started circulating last month in the country's very active online communities that she was a loan shark and had driven a fellow actor, Ahn Jae Hwan, to kill himself. The word on the Net was that Choi had been pressuring Ahn to repay a loan of some $2 million. After enduring the accusations (which police said after her death were untrue), Choi killed herself in a "momentary impulse," according to the investigative team, driven by malicious rumors and prolonged stress.
한국 보도에 따르면 최진실은 한국에서 대단히 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달 이후 그녀가 고리대금업자이며, 친한 연기자인 안재환을 자살로 몰고 간 장본인이라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을 때 매우 의기소침했다. 온라인상에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최진실은 안재환에게 200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갚으라고 압력을 넣어왔다는 것이다. 수사 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소문(경찰은 그녀가 죽은 뒤에야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을 참다 못한 최진실은 악의적인 루머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했다.
South Korean police have since announced that they will crack down on online defamation, but little has been said about the late actress's problems as a single mother in this deeply conservative society. Choi spoke openly on the taboo topic and sought to change the unpopular public perception of single moms in South Korea. "Korean society does not like strong women, and thinks single moms have a personality disorder," says Park Soo Na, a national entertainment columnist. "It's like a scarlet letter." She says single mothers often ask their parents to raise their grandchildren so the kids don't have to endure the shame of living without a father figure.
한국 경찰은 심지어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을 근절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런 지독하게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 여배우가 싱글맘으로서 겪었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질 않았다. 최진실은 터부시되어 온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해왔고, 한국에서의 싱글맘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인식을 바꾸려 했다. "한국 사회는 강한 여성을 좋아히지 않고, 싱글맘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국의 연예 칼럼니스트 박수나씨는 말한다. "그건 마치 '주홍 글씨'와도 같다"고 말한 그녀는 싱글맘들은 자녀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치욕을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들의 부모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누가 이분에게 이런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제공했나 했더니 박수나씨라는 분이군요. 그런데 그 하늘의 별처럼 많은 인터넷의 연예 라이터들 중에도 박수나라는 이름은 전혀 검색에 걸리지 않습니다. 대체 이 분은 어디다 칼럼을 쓰시는 걸까요. 자기 일기장에?
(...혹시 나박수씨는 아니겠지요?)
또 최진실이 대체 언제 터부시되어온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으며(spoke openly on the taboo topic),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했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외조부모와 함께 살면 아버지 있는 자식이 된단 말입니까. 오히려 엄마도 없는 자식이 되어 버리죠.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릴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심하게 놀리겠군요. 이런 얘기는 10대 딸이 사고를 쳐 낳은 아이를 자기가 늦동이로 낳은 아이라고 속이는 어머니의 경우에나 해당되는 얘기일 것 같습니다. 오히려 '차이나타운'이나 '초원의 빛'같은 옛날 미국 영화에 많이 나오는 얘기로군요.
And for women without a movie star's bankroll, there's limited public financial support available, forcing some women to place their children in orphanages for long stretches or even put them up for adoption. "There's still a negative notion about single moms," says Lee Mijeong, a fellow at the Korean Women's Development Institute. "They have a hard time."
그리고 영화계 스타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여성들의 경우, 공공 재정 지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몇몇 여성들로 하여금 오랜 기간 동안 자녀들을 고아의 상태로 방치하거나, 아예 입양시키게 하기도 한다. 한국 여성개발원의 이미정 연구원은 "여전히 싱글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그들은 매우 고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싱글맘보다는 자녀 입양에 100배 정도 더 부정적이란 사실을 모르는 듯. 물론 해외 입양인지도 모르겠군요.
Whatever the motivation for her suicide, the actress's death has raised fears about a ripple effect. Korea has had the highest rate of suicide among the world's industrialized countries for the past five years. Policy makers and the general public readily admit that mental illness - even a common disorder like depression - is rarely talked about openly in the country.
그녀의 자살 동기가 무엇이건, 최진실의 죽음으로 인해 파문 효과(ripple effect)에 대한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세계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여왔다. 정책입안자들이든 일반 대중이든, (거의 모든 사람이) 한국에서 정신질환이 - 신경쇠약 같은 아주 흔한 질환까지도 - 공개적인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당연하게 여긴다.
"Koreans are very secretive about psychiatric problems," says Lee Myung Soo, a psychiatrist at the Seoul Metropolitan Mental Health Centre who agrees that one of the main reasons that people won't talk about it here is fear of losing one's job. More people will probably seek treatment because of Choi's death, explains Lee. But he also fears that there will be more suicides, as has happened after other celebrity deaths.
서울 시립정신병원의 이명수 박사는 "한국인들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문제를 매우 은밀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얘기하길 꺼리는 이유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박사에 따르면 최진실의 죽음으로 인해 치료받으러 나선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유명인사의 죽음 이후 더 많은 자살사건이 있을 것을 우려한다. (끝)
대략 이렇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냥 상식적인 내용. 은근히 한국을 너무 덜 깨인 나라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의 샤워가 다 씻기지 않은 듯 합니다. 게다가 IT 강국 한국의 인터넷이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매체인지를 잘 모르는 듯한 뉘앙스도 풍깁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납득할만한(물론 한국 독자들이 아니라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고국의 독자들이) 이유를 제시하려다 한국 여성들을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아랍 여성들 취급을 해 버린 듯 합니다.
(흑백논리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꼭 덧붙이자면) 물론 한국이 싱글맘에게 온통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나라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 글에 나오는 정도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pariah)'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라는 생각입니다.
Veale씨, 웬만하면 한국어를 좀 배워서 진짜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시는게 어떻습니까. 그리고 연예 칼럼니스트 박수나씨의 글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는지도 좀 가르쳐 주시죠.
p.s. 시사주간지 타임과 일간신문 타임즈(Times)를 혼동한 인터넷 기사도 눈에 띄던데 다시 찾아보니 안 보이는군요. 그새 수정한 모양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메릴 스트립을 꼽습니다. 위대한 배우죠. 남자의 경우라면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같은 배우들이 번갈아 꼽힐 자리지만 여자의 경우엔 메릴 스트립에 맞설 만한 경쟁자가 쉽게 거론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이앤 키튼 같은 대배우도 "우리 세대의 천재"라며 경쟁의 뜻을 전혀 비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에게도 감히 '그게 연기냐'고 비웃을 수 있는 천적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 없으니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앞부분의 얘기는 이 블로그를 자주 오시는 분들이라면 자칫 '또 이 얘기야?'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보이시는 것이..^
메릴 스트립, '맘마미아'에 잘 어울렸을까?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 박스 오피스를 강타하면서 '적역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맘마미아'는 70년대의 명 그룹 아바(ABBA)의 노래만으로 제작된 뮤지컬. 지난 1999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이번에 영화화됐다.
스트립이 연기한 여주인공 도나는 갓 스무살의 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잘 나가는 여성 그룹의 리더였던 도나가 '사고'를 쳐서 아빠도 모르는 딸을 낳은 것이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므로 도나의 극중 나이는 많아야 45세.
하지만 스트립의 실제 나이는 59세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젊어 보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주름살과 윤기 잃은 머리칼의 '전통적인 어머니' 상이 된 스트립과 뮤지컬에서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도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관객들이 상당수 있다.
물론 이런 무리를 모를 리 없는 제작진(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맘마미아'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맡았던 무대 연출가 출신)이 굳이 스트립을 캐스팅한 이유를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주요 타깃을 30대 이상 여성층으로 놓고,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에게 '어머니'로 느껴질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스트립 본인이 "새로 배울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바와 '맘마미아'의 팬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
스트립의 도나 연기에 우호적인 여성 팬들 가운데도 '노래는 조금 아쉬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사실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메릴 스트립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12세때부터는 오페라 가수를 목표로 성악트레이닝을 받았고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 캐스팅됐을 때는 8주 동안 하루 6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영화 '에비타'의 에바 페론 역할을 놓고 마돈나와 경합했을 때 했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내가 마돈나보다 노래 실력이 나아요. 그래도 마돈나가 그 역을 차지한다면, 그 여자 목을 찢어버리겠어요(I'll rip her throat out)."
물론 진지하게 한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유튜브 같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그의 노래 실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실크우드'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로버트 알트만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부른 '마이 홈 미네소타', '헐리웃 스토리(Postcard from the edge)'의 엔딩 장면에서 부른 '아임 체킹 아웃', 그리고 전성기 지난 여배우 역으로 나온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의 첫 장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에서 '미(Me)'를 부르며 보여준 춤과 노래가 일품이다.
그런 스트립이 왜 '맘마미아'에서는 적역 논쟁에 시달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음역이다. 아바의 원곡은 아니프리드와 아그네사라는 두 명의 걸출한 여성 보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청정 고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스트립의 저음은 거칠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트립의 '실력'은 알토 음역으로 컨트리풍의 노래를 부를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외모나 노래 실력에 대한 호오는 엇갈릴 수 있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스트립의 연기력이다. '맘마미아'에 대해서도 "노래도 연기라는 점을 생각할 때, 목소리를 떠나 가사에 실린 감정의 전달에서는 완벽했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1979년 '디어 헌터' 이후 아카데미상 역대 최다인 16회 노미네이션과 2회 수상('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소피의 선택), 동시에 칸 영화제(1989년 '이블 엔젤스')와 베를린 영화제(2003년 '디 아워스')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여배우.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지만 유독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회 수상해 역대 최다 기록을 갖고 있는 선배 캐서린 헵번은 "연기에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난다"는 혹평을 해 눈길을 끈다. "톱니바퀴가 돌 듯 너무나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연기를 한다"는 뜻이라나. (끝)
2006년 로버트 알트만이 생애 마지막으로 오스카 무대에 올라 공로상을 받을 때도 시상자였습니다. 그해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 출연하기도 했었죠.
자기가 출연한 작품이 작품상을 받아도 자신의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아예 참가를 기피하는 어떤 나라의 배우들과 참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기계적인 연기'라니, 대체 누가 천하의 메릴 스트립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캐서린 헵번이라면 반대로 스트립이 그냥 수긍해야 할 얘기일 지도 모릅니다.
헵번은 '모닝 글로리(나팔꽃, 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 '겨울의 사자(The Lion in Winter, 1968)', '황금연못(On Golden Pond, 1981)'으로 4개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스트립이 2회, 그것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는 여우조연상이었으니 정말 불멸의 기록인 셈입니다.
물론 4회 수상이 불만인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1907년생이니 26세때 처음 받고 60세, 61세, 74세에 세 개를 받았군요. 사실 아카데미상의 경로사상 덕분에 덕을 보기도 했을테니 스트립이 역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아무튼 캐서린 헵번은 평소 제레미 아이언스, 존 리스고, 글렌 클로즈를 좋은 배우로 칭찬했던 반면 스트립에 대해서는 '계산하는게 빤히 보인다'고 혹평을 했다고 합니다. 스트립은 '억울하면 역전'을 반드시 시켜 봐야겠군요.
이 글을 추천하시려면:
p.s. 사람들이 메릴 스트립과 가장 자주 혼동하는 스타는 누굴까요?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글렌 클로즈와 메릴 스트립을 혼동한다고 하는군요.^ 글렌 클로즈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로 토니상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영화판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를 제치고 주연을 따내 이완 맥그리거와 공연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영화가 개봉될 기미가 안 보입니다.
본래 1950년작인 '선셋 대로'는 글로리아 스완슨의 전설적인 명 연기로 기억되는 걸작이죠. 뮤지컬도 'With one look'같은 명곡이 히트했지만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봤다는군요. 저도 무대에서 전편을 본 적이 없어서 은근히 영화판이 기다려집니다.
우선 'Once upon a time'과 'With one look'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잘 알려진대로 '선셋 대로'는 자신이 아직도 전성기인 줄 아는 왕년의 스타 여배우와 시나리오 작가의 기이한 관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 영상은 이들의 첫 만남 장면. 남자가 "당신 한때 대단했잖아(You used to be big)!"라고 말하자 눈을 똑바로 뜨고 "I'm Big. It's the picture that's got small(난 여전히 대단해! 작아진 건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여배우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다음은 'As if we never said goodbye'입니다. 1995년 토니상 시상식. '백야'의 그레고리 하인즈와 '프로듀서즈'의 네이선 레인이 작품을 소개하고 글렌 클로즈가 등장합니다.
갑자기 엉뚱한 얘기로 흘러갔군요.^ 혹시 메릴 스트립이 예전 영화에서 노래하던 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는 친일파 갑부의 아들 이해명(박해일)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부임 온 검사 친구 신스케(김남길)와 함께 재즈 클럽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 난실(김혜수)의 춤과 노래를 보고 푹 빠져버립니다. 난실의 선심을 사기 위해 그가 일하는 양복점에서 수십벌의 양복을 맞추는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어느날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 사무실에서 폭발해버립니다.
당연히 혼비백산한 해명.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난실을 찾아다닙니다. 그 과정에서 난실이 쓰는 이름만도 로라, 나타샤, 난실 등 여러개라는 사실을 알아버린데다 남편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뒤에도 난실에 대한 해명의 집착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천방지축 날뛰는 해명 역의 박해일은 영화 '모던 보이'의 상징입니다. 모던 보이란 1930년대의 유행어로, 꽤 전에 사용되던 말로는 '오렌지 족' 정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는 적당한 대체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강남 뺀질이' 정도 되려나요('엄친아'와는 좀 다릅니다). 아무튼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줄인 '모뽀(당시의 공식 표기는 모단 뽀이)', '모걸'은 당대의 유행어였습니다.
영화 카피에는 '경성 최고의 플레이보이'라고 표현됩니다만, 이건 영화 속 해명의 '자칭'일 뿐이지 사실 해명의 캐릭터를 놓고 저렇게 인정해 주기는 좀 힘듭니다. 너무 촐삭대기 때문이죠. 이런 캐릭터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긴 하지만, 실제로 저렇게 경박한 타입이 최고의 플레이보이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플레이보이의 절대적인 조건이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라는 점임을 생각하면 해명은 일단 그 계열에서는 열외입니다.
해명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두고도 말들이 좀 있었습니다. 의상이야 요즘도 통할 멋진 복고풍의 댄디한 스타일이지만, 머리 모양은 다소 해괴하거든요. 이 머리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당대 최고의 모던 보이로 통하던 시인 백석의 헤어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동안 월북시인이란 이유로 한국 문학사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했던 백석은 그 시절 '문단의 3대 미남'으로 통했다는군요. 물론 이것도 백석의 '자칭'이라는 주장이 있고 보면 '모던 보이'의 해명은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행태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셈이 됩니다.
1912년생으로 평안도 정주 출생인 백석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할 정도의 엘리트였습니다. 1937년이면 25세의 한창 나이.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백석은 전혀 주요 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정지용도 마찬가지였죠) 들어본 시라고는 바로 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보고 '아주 특이하고 희한한 시'라서 기억이 나는 정도죠.
그렇다면 백석의 연인인 나타샤는 누굴까요. 기록에 따르면 이 시가 나오던 1938년, 백석은 제자의 여동생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을 겪습니다. 비록 엘리트이긴 했지만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기생 자야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점에서 감점을 당했다는 겁니다.
반면 또 다른 기록에는 백석의 진짜 연인은 바로 이 기생 자야이며, 이 자야는 서울 성북동에서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동해 으리으리한 요정을 그대로 절집으로(현재의 길상사) 시주한 인물입니다.
자야에 호의적인 기록에 따르면 백석은 기생과의 연애를 끊으려는 부모에 의해 세 차례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달아나 서울에 있던 자야에게 갔다는 주장입니다. 어쩐지 위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죠.
그런데 또 다른 기록에는 제3의 여인인 '란(蘭)'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을 만난 것은 자야나 제자의 동생보다 먼저인 1934년이라는군요. 당시 기자였던 백석은 이화여전 재학생이던 란을 만나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뭐 그 1년 뒤에 자야를 만나고, 또 얼마 뒤에 다시 란을 만나고, 만주로 가서는 이름모를 기생 출신과 동거하다 아들도 낳고, 그 뒤에 또 다른 아내로부터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드문 드문 보입니다. ...시인의 사랑이란 참.
이런 백석을 모델로 했다기엔 해명은 또 너무 순정형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일단 난실에게 한번 빠지고 나니 직장이고 현실이고 고문이고 모두 나몰라라입니다. 심지어 엉겁결에 '열사'가 될 뻔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정지우 감독의 오랜 주제이기도 합니다. '해피엔드'에서 '사랑니'를 거쳐 '모던 보이'에까지 이르는 동안 세 영화는 모두 저항할 수 없는 매혹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파멸에 이르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닫죠. 연하의 매력남 때문에 아기의 엄마라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넘어선 전도연, 연하남과의 야릇한 사랑에 빠져 뭐든 다 내팽개칠 수 있게 된 김정은, 그리고 이번엔 난실에 빠져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게 된 박해일과 그 해명에게 빠져 자신의 사명을 잊을 지경이 된 김혜수까지.
(우연히 정지우 감독에게 이 일련의 주제에 대해 말하니 '말을 듣기 전까지 그렇게 묶을 수 있다는 걸 정말 몰랐다'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그런데 이번의 '매혹'은 나무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였던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순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명을 유혹에 빠뜨리는 난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해명에게 빠지는 난실 쪽이 더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아무튼 두 배우의 연기는 따로 떼놓고 볼 때 그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그리 짙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 다음의 불만은 좀 더 관객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해도, 영화의 많은 부분은 코미디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관객을 편히 웃게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관객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는 웃기 힘들죠. 영화 전반부의 흐름을 보다 쉽고 선명하게 했더라면 좀 더 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모던 보이'의 장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30년대의 사진첩을 선명하게 HD 화질로 복구한 듯, 그 시절 경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아울러 해명을 탈 시대적인 인물로 그려낸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주얼 면에서 '모던보이'는 역대 한국 영화가 이뤄낸 성과 중 하나입니다.
p.s. 김혜수가 부르는 몇 곡의 노래들 역시 매혹적이더군요. 물론 '개여울'의 가사는 김소월의 시지만 노래는 1970년대 정미조가 취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배경과 절묘하게 어울려 떨어집니다. 일본어 노래 역시 실제 그 시대의 노래가 아니라 그 시대 음악의 분위기를 살린 트리뷰트 곡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몇해전 적우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반주가 대단한 수준입니다.
1972년, 대구 부근의 기지촌에서 컨트리 뮤직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 패거리는 낯선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 패거리를 만나 의기투합, 6인조 밴드를 결성합니다. 팀 이름은 데블스. 때맞춰 서울에서 보컬그룹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서울 진출을 노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죠. 시민회관 화재 이후 막 피어나던 그룹사운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은근히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주간지 기자 병욱(이성민)은 통행금지와 밴드의 공연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건 바로 통금 해제 시간인 4시까지 올나잇으로 영업하는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최호 감독의 '고고70'은 한국 최초의 '본격' 록 밴드 영화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음익 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청춘스타 전영록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고(개중엔 여성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돌아이' 시리즈도 있었죠), 또 한때는 동방신기급의 인기를 끌었던 송골매 멤버들이 주연한 '모두다 사랑하리' 류의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정글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음향과 음악, 연주와 스토리가 제대로 '붙은' 영화로는 아마도 '고고70'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밴드지만 조승우와 차승우를 주축으로 한 밴드 데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밴드인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진짜 밴드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승우와 신민아지만, 진짜 주인공은 '밴드'입니다. 혹은 이 밴드가 펼치는 공연과 노래야말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화려한 휴가'를 볼 때와 비슷한 안타까움입니다. 1970년대, 지금은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옛날이지만 우리에게도 저렇게 촌스럽고 미약해 보이지만 다양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화가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아깝고 분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의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에 대해 '번역 문화'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의 밴드들은 해외의 성공적인 음악을 '따 오는 데' 급급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관심도 없을 때라 귀로 들어서 좋은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개사해서 쓰기도 하던 시절이죠. 이 영화에도 나오는 C.C.R의 'Proud Mary'같은 노래는 한글로 개사한 곡만도 10여 종류가 존재할 정돕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이죠. '도올고, 도오는, 물래방아 이인생' 하는 노래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올라가요 남산, 놀아봐요 명동'이라는 가사로 등장하죠.^
하지만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몇해 되지도 않았던 시절, 그렇게 남의 문화를 '이식'하는 과정이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가 의문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모방하고, 베껴 내다 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70년대는 너무 어두웠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스파르타식의 금욕적인 병영국가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당시의 '어른' 들은 이런 국가 이념에 쉽게 동조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문화라는 것은 사치였고, 나약과 퇴폐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란 군가나 새마을 노래의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TV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한국 대중문화계는 정말 뻥 뚫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이름을 알만한 가수들은 모조리 무대와 방송에서 사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창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던 친척 형들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나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같은 금지곡을 부르는 걸 반항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시절입니다.
그때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딴따라'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일까요. 어차피 대중들이 모두 좋아하기엔 한계가 있는 클래식 문화는 숭상하면서도(그것도 사실 숭상이라기보단 해외 유명 콩쿨에서 입상하는 걸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걸 보듯하는 분위기에 가깝죠) 대중이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문화는 비천하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것으로 매도한 대가를 한국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 대가란 이런 겁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부는 땅만 보고 묵묵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몇명의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창의력의 시대인 거죠.
영국이란 나라는 19세기가 전성기였고,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 구석으로 찌그러져 버리지만, 현대의 영국은 창의력 선진국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패션과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영국은 세계 최첨단의 인재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죠(물론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이기도 합니다만). 대중 문화의 질과 다양성 부문에서 영국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물을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딴따라'들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진취적인 태도가 바로 그 힘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딴따라'들과 협연하기를 꺼리지 않는 그런 문화적 관용과 창의력은 종이의 앞뒷면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튀는 놈'들을 '딴 생각을 품은 놈', 혹은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놈' 들로 때려 잡은 결과, 한국의 대중문화는 21세기까지도 외국 것들을 누가 먼저 베껴오느냐로 승부가 갈리는 수준에 머물게 됐습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동기에 이미 '퇴폐문화의 주범'이라는 철퇴와 함께 지하로 사라져버린 한국 록 문화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죠. 몇 차례의 '쥐잡기'로 인해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사이 '록 문화'에는 심각한 왜곡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즐거워야 할 록 문화가 기이하게도 저항의 상징(물론 이런 부분도 의미와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가장 대중 가까이 가야 할 록 문화가 오히려 대중과 멀어질수록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되는 분위기를 띠게 된 것이죠. 이것 역시 통탄할 일입니다.
딴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고고70'은 그런 암울한 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창의력을 군화가 짓밟아 버린 시대의 우화입니다. 소재는 지극히 비극적이지만, 당시의 발랄했던 청춘을 그린 작품인 만큼 분위기는 밝고 싱싱합니다. 최호 감독의 손끝을 통해 이런 분위기는 관객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70년대와 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친 것도 저항이었지만 머리를 기르고 기타를 메고 다니거나, 통금 해제 시간인 새벽 4시 거리로 달려나오면서 경찰관들을 희롱하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도 소극적인 저항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당시의 록밴드 문화와 데블스 멤버들을 마냥 우상화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들 또한 그냥 인간들일 뿐이고, 도덕적으로는 우월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인기를 무기로 여자들과 희희낙락하기도 하고, 도박으로 악기를 날리기도 하며, 인기에 취해서 친구며 '초심'을 잃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균형을 이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습니다.
'고고70'이 이런 완성도를 갖는 데 있어 조승우라는 탁월한 배우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특히 무대에서 '엄마, 보고싶다!'를 외치는 조승우는 지금껏 우리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져 보지 못한 록 히어로의 상상 속 재현이라는 느낌이 아깝지 않은 명연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에너지가,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최대한으로 발휘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신민아 또한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발랄함을 이 영화에서는 한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이 배우에게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이 작품에서의 신민아를 보면 그동안의 갖고 있던 청순의 이미지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만식 역의 차승우도 연기자 데뷔(?)를 통해 감춰졌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아무튼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열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고고70'는 남달리 생기 넘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신나게 찍었는지 느껴진다고 할까요.
이 영화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사실 이해의 깊이에 따라 감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대를 경험했거나 어렴풋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의 진정과 유머가 통렬하게 와 닿을수 있는 반면, 197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를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좀 불친절한 영화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뇌가 정확한 반복 박자의 '나이트 댄스' 음악에만 젖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이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면 '고고70'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생활화합시다.^
p.s. 막상 화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으면서도 마음 속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저 시대, 그렇게 무식하게 싹을 죽이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중문화 환경을 향유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이죠. 물론 영화 자체는 그런 생각 따위일랑 걱정 많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저 신나게 '놀면서' 볼 수 있는 영홥니다.
p.s.2. 이 영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2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우는 록 아티스트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가수 조경수의 아들. 만식 역의 차승우는 한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던 미남 가수 차중락의 조카입니다. 아버지 차중광도 가수였죠. 또 록의 대부 신중현의 2세들인 신윤철과 신석철도 등장합니다. 잘 찾아보시길.^
p.s.3. 영화에 나오는 주간서울 이병욱 기자의 모델은 잘 알려진대로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씨(전 주간중앙 기자)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런게 시빗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이 분이 대중문화에 정통하신 분이란 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반응입니다. 이 분의 항의로 결국 와일드캣츠라는 여성 그룹의 이름이 와일드걸스로 바뀌었다는군요.
"(전략)물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원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감독들은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합니다. 창작자의 발언, 전문가인 기자·평론가의 발언, 그리고 관객인 네티즌의 발언이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네티즌의 파워에 쏠려 있는 불균형 상태를 심히 우려합니다.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후략)." ('최진실을 보내며'. 10월2일 한국 영화감독네트워크 성명에서)
'최진실법'의 추진 움직임이 정치권의 화두가 됐습니다. 물론 어떻게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번 사건이 통칭 사이버 모욕죄의 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값진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최진실의 죽음의 원인이 100% 인터넷의 악성 댓글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항상 어리석은 사람들일 수록 100%냐 아니냐를 따지죠.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악성 댓글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루머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지 않은 사람도 없을 듯 합니다. 수많은 댓글과 근거 없는 루머의 확산 채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둡고 습기가 차면 당연히 곰팡이가 핍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웅크리고 세상에 독을 뿜어내는 족속들에게 인터넷은 너무나 바람직한 환경이 됩니다. 슬쩍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익명성, 그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좋다는 방임의 환경이 이런 곰팡이들을 천지에 피어나게 만듭니다.
지금 주요 포털은 '최진실'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기사에 댓글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죽음을 맞은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식으로 댓글을 차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2년 전, 그러니까 이의정의 암 투병-복귀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들을 보고 하도 기가 차서, 이런 광경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 접촉했던 포털 홍보 담당자의 말은 이랬습니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의사 교환의 장이며 댓글은 그 중요한 수단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댓글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 아름다운 말입니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근거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만연했다는 이런 광경을 연상시킵니다.
남자 A, 남자 B의 뒤통수를 친다. B: 왜 때려? A: 자유야. B: 뭐? A: 나한테는 너를 때릴 자유가 있어. 이제 해방됐으니 자유야. B: 뭐가 어쩌고 어째. 오냐. 그럼 이 방망이로 너를 패는 것도 자유지? 맛좀 봐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실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라고 있는 것 중에서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자유'라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안에서, 혹은 부득이하게 피해를 줄 경우 타인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한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 단군 이래 지금만큼 이 자유가 널리 보장된 적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과 출판의 결과물은 엄격한 법에 의해 배포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명에훼손과 사생활 침해, 모욕죄, 업무방해죄 등에 의거해 언론의 잘못되거나 왜곡된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아 인터넷에서는 개인의 의견이 어떤 언론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됐습니다. "정선희 남편이 죽었는데 최진실이 왜 기절해?" "글쎄, 돈 빌려 줬었나보지"라는 식의 실속 없는 농담이 "최진실이 거액의 사채를 빌려줬다더라"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가 되어 돌아오는 게 인터넷 환경의 특징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남의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는, 고층 건물에서 창밖으로 볼펜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볼펜에 맞고 누군가 죽었다면, 당사자는 책임을 져야겠죠. 그것이 사이버 모욕죄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 의식 없이 툭툭 던지는 심한 말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것이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법규로도 어느 정도의 처벌(그래봐야 솜방망이지만)은 가능합니다. 제가 종사하는 분야가 이런 쪽이라 자주 봐 왔지만, 연예인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허위 소문의 유포로 막상 경찰에 잡혀 온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하는 짓 또한 너무도 똑같습니다. "별 악의 없이 한 일이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 용서를 빈다." 그러고 나서, 해당 연예인이 '선처를 호소'하지 않으면 악플이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 재수없다. 지가 대단한 줄 안다. 다 팬들이 밀어줬으니까 오늘의 영화가 있는거지, 뭐 대단한 말을 했다고 안 풀어주고 **이냐?"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티 세력의 등장입니다. '안티가 많다'는 소문이 돌면 가장 큰 수입원인 CF가 끊기기 때문이죠. 결국은 아무리 심한 악플을 달아도 대개는 그냥 훈방해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최진실법이라는 것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 거론하고 있는 사소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내가 이 행동으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 법으로 인해 처벌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든, 그런 인식의 확산이 무엇보다 절실한 순간입니다. 아니, 이미 2,3년 전부터 세상은 이런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저 망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할 뿐입니다.
p.s. 이 글에도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댓글들이 꽤 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의 끄나풀답다" 뭐 이런 내용도 있겠죠. 그런 분들에게 하나 권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정당하다면,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 누군지를 밝히고 댓글을 달아 보십쇼. 어둠 속에 숨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바보같은 손가락질이나 하지 말고 말입니다.
p.s. 2. 최진실에 대한 보도 행태를 보면 사태가 사태인 만큼, 기자들도 예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하지만 일부 보도를 보다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기사가 가끔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괴담에는 그녀가 동생을 바지사장으로 앞세워 사채업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또 돈 때문에 정선희를 안재환에게 소개시켜줬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이른 바 '정략 중매설'이다. 안재환에게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돈을 잘 버는 후배 정선희를 결혼 상대로 소개시켜줬고 최진실의 의도를 알게 된 정선희가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게 루머의 요체다.
세 사람과 관련된 루머의 핵심은 최진실씨가 안재환씨에게 사채를 빌려줬다는 설. 증권가에 도는 소위 ‘찌라시’(온갓 소문을 모은 정보지)에서 출발한 이 소문은 최씨가 직접 돈을 빌려줬다는 것에서 시작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신 빌려줬다는 바지사장설, 새아버지가 사채업자라 새아버지를 통해 빌려줬다는 새아버지설 등으로 끈질기게 부풀려져 갔다.
이런 걸 쓰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관련 기사를 쓰면서 '그 소문이란게 사실 이러이러한 것이고 이러이러하게 발전되고 있답니다'라고 그렇게 충실하게 독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오히려 기사가 루머 확산에 더욱 더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까? 혹시 망자에게 미안하지는 않던가요?
마침내 문근영의 여장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젊은 화원 후보생들 사이에 끼어 선머슴아같은 옷차림과 말투로 귀여움을 과시하던 문근영이 마침내 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거죠.
남장 연기에 그새 익숙해지다 보니 여장한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현하는 모습에서 작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문근영과 '바람의 화원'은 어떤 관계일까요. 과연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문근영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볼 때 '바람의 화원'은 문근영이 최근 2-3년 사이 추구하던 '성인 역할로의 변신'에는 그리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기자 문근영'의 길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 될 수 있는 드라마죠.
물론 세계 어디서나 아역 스타의 성인 변신은 꽤 힘든 과제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죠. 거기서 얻어진 교훈은, 분위기가 - 외모든, 체형이든, 정말 외적인 상황이늗 - 갖춰지지 않은 성인 변신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근영이 '지금 스무살이 넘었으니 어쨌든 성인 여성으로서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고, 지금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에 올인하는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선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 역할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국민 여동생', 이젠 '국민 남동생' 노리나?
문근영 이전에 한국엔 '국민 여동생'이 없었다. 국민가수 이미자-조용필, 국민배우 안성기는 몰라도 국민 오빠, 국민 엄마 등 가족에 대응한 새로운 호칭들은 모두 문근영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문근영을 통해 임예진이 '70년대의 국민 여동생' 임예진이 주목받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문근영에게 쏟아진 관심은 2000년작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시작된다. 당시 주인공은 송승헌 원빈 송혜교 등 지금도 한류의 주축을 이루는 톱스타들이었지만 이 드라마의 인기를 낳은 것은 송혜교의 아역이었던 문근영과 선우은숙 사이에서 펼쳐졌던 눈물의 모녀 연기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 당시 13세였던 문근영이 보여준 연기력은 이미 성인 배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 '저항할 수 없는 귀여움'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이 기간 동안 문근영은 '장화 홍련(2003)', '어린 신부(2004)', '댄서의 순정(2005)'까지 세 편의 영화로 대한민국의 모든 총각들을 오빠로 삼았다. 일각에서는 롤리타 컴플렉스를 들먹이기도 했지만 요즘의 원더걸스와 비교하면 참 어이없는 얘기다.
2006년, 19세의 대학 신입생(성균관대 국문과)이 된 문근영은 '첫 성인 연기 도전'이라는 문구로 포장된 '사랑따윈 필요없어'로 제 2기의 문을 열었다. 결과는 '잠시 쉬어 가라'는 진단. 사실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광고와는 달리 아예 성인 도전이 아니었다. 여전히 영화는 문근영의 하이틴 이미지에 매달렸고, 상대역 김주혁은 연인이 아닌 삼촌으로 보였다.
이 영화의 실패와 대학 입학 과정에서 생긴 안티들('자력으로 수능을 치러 대학에 가겠다'고 했던 문근영이 결국 특례 입학한 것을 비판)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2007년 한해를 꼬박 쉰 문근영은 24일 첫 방송을 탄 SBS TV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통해 컴백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회가인 혜원 신윤복이 사실은 여자였다는 추정에서 출발하는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이 원작. 문근영은 당연히 신윤복 역이다.
단 두 편이 방송됐지만 문근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찬사 일색이다. 입을 삐죽거리는 앳된 소년 모습은 더없이 잘 어울렸고, 김홍도 역의 박신양을 향해 외치는 "야 이 그지같은 놈아!" 같은 대사는 이제껏 문근영이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수위 높은 대사로 기록될 만 했다. 하지만 문근영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의 화원'은 '성인 역할로의 변신'이라는 전 세계 아역 출신 배우들의 공통된 난관을 이번에도 슬쩍 피해 간 작품으로 보인다. 이번 신윤복 역할은 성적 이미지가 배제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남장여자 판타지는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다룬 중국의 양축 설화에서 유태인 율법학교에 몰래 들어간 여학생 이야기를 다룬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주연의 영화 '옌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문화를 넘어 폭넓은 인기를 모았다. 특히 남장 미녀의 등장은 동성애적인 분위기와 이성애의 느낌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고래로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이때문에 문근영은 '바람의 화원' 첫회에 벗은 등을 노출했음에도 전혀 선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판타지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원인 성인 연기자 변신은 또 다음 작품으로 미루게 됐지만 변함 없는 탄탄한 연기와 사랑스러운 모습은 '안티'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꽤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된다. 혹자의 말처럼 이 작품으로 '국민 남동생'이 되는 건 아닐지. (끝)
뭐 사진을 통해 순서대로 리뷰하자면 이렇습니다.
'가을동화' 모습은 이미 저 위에 있고, 2003년 '장화홍련'.
2004년 '어린 신부'. 혹시 이 광경을 보고 다들 마음 속으로 '김래원 이 자식!'하고 주먹을 불끈 쥐시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2005년의 '댄서의 순정'.
물론 그 사이에도 성인 느낌이 나게 해 보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섹스 어필이 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더군요. 그리고 이번엔 남장 여자 역할입니다. 사실 예쁜 여자는 아무리 남장을 해 놓아도 예쁩니다. 게다가 어찌 보면 더 고혹적으로 보이기도 하죠. 그건 고도의 계산이 깔린 치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개는 좀 과장된 선머슴아 느낌을 내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진짜 남자보다 훨씬 더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기도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런 느낌도 나죠.
하지만 어떤 경우든, 그 작품 자체로 '성인 여자의 느낌'을 주는 경우는 좀 드뭅니다. 사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오랜 기간 남자들과 지내는데도 여자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물론 굉장히 남자같이 생기고, 체격도 남자다운 여자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미모의 여배우를 남장시켜 놨을 때 그 자체로는 성적인 느낌이 사라져버리는 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물론 여기서 정상이란 이성애자를 기준으로 얘기한 겁니다. 동성애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 자체가 현실이 아니라는 걸 보는 사람도 은연중에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판타지에 나오는 요정족이 어쩐지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같은 경우라면 아무래도 남장여자 쪽이 여장남자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런 건 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최진실을 실물로 처음 본 것은 지난 1990년입니다. 당시 저는 MBC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일하던 프로그램에 최진실이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다들 반가워했죠. 기대가 컸습니다.
녹화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방청객들이 자리를 잡은 뒤, 최진실이 당시 매니저였던 고 배병수씨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출연자들에게 문제 몇 개를 읽어 주는 역할이었는데, 배씨는 연출자에게 "똑똑하게 보이게 해 달라"고 당부를 했고, 연출자는 "걱정하지 마. 너무나 지적으로 보이게 해 줄게"라고 농담으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최진실은 낭독이 그리 좋지 못했고, 특히나 문제에는 어려운 말이 몇 개 들어 있어서 처음 읽어 보는 사람이 한번에 매끄럽게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최진실은 몇번 실수를 했고, 머쓱했는지 고개를 들고 씩 웃었습니다. 그때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주위가 환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글래머도, 선이 굵은 서구형 미인도 아니었지만 그 웃음이 준 파장은 만만찮았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학생 하나도 그러더군요. "읽다가 자꾸 틀리자 '어머, 나 왜 이래' 하면서 웃으며 뒤를 살짝 돌아보는데, 갑자기 조명이 확 켜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그 시점에서도 이미 상당한 스타였지만, 그날의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더욱 대단한 스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시로 실물을 접하게 됐지만 대화를 나눌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기자 초년병일 때에는 톱스타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대개 톱스타일수록 고참 선배들이 집중 관리를 하기 때문이죠. 1996년쯤엔가 그와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서원들 여럿과 최진실, 그리고 최진실의 측근 몇 사람이 당시 광화문에 있던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톱스타 최진실과 순대국집,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지만 최진실은 순대국집에서도 내장탕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대개 여자들은 순대국 자체를 거부하거나, 순대국집에서도 내장을 뺀 '순순대'를 더 선호하는게 보통이죠. 놀랐습니다.
최고 스타의 소박한 식성이 놀랍기도 했지만 '어려서 너무 많이 먹어 수제비는 지금도 싫어한다'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걷는데 혼자만 못 냈다. 사실을 알고 선생님이 만원짜리 한 장을 주셨다. 다음날 그걸로 파마를 하고 학교에 갔다가 크게 혼났다' 는 등 데뷔 초에 익히 알려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날 당시 데스크와 선배들은 대낮부터 만취했습니다. 최진실은 주량도 주량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는 재주 또한 탁월하더군요. 시간은 어느새 초저녁이 됐고, '저녁먹으면서 2차로(?) 한잔 더 하자'던 최진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들 사무실로 달아났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최진실이 1일 밤 가졌던 마지막 술자리도 순대국집이었다니. 참 묘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 뒤로도 최진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어쩌다 인터뷰를 할 기회도 있었지만 최진실쯤 되는 스타에게 있어 인터뷰는 거의 밥 먹고 차 마시는 다반사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지난 2005년 연말,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혼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던 최진실을 부활시킨 드라마로 통합니다. 최수종과 공연한 '장미의 전쟁'이 그리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해 부심하고 있던 최진실은 '장밋빛 인생'의 빅 히트로 다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죠. 당연히 인터뷰 제의가 쏟아졌지만 공식 응답은 "너무 분주해서 도저히 인터뷰 할 시간을 낼 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인터뷰를 하느냐'에 경쟁이 붙은 상태였죠.
결국 이런 연줄 저런 연줄을 모두 짜내 '현장에 오면 어떻게든 시간이 나는 대로 해 보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현장이란 수원의 KBS 드라마 세트였고, 당장 달려갔습니다. 가 보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공간 여유가 있었던 수원 세트에서는 개개인에게 꽤 넓은 공간의 분장실을 제공했습니다. 이 분장실이 아예 생활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50신 중에서 45신에 최진실이 나온다"는 제작 스태프의 말처럼 거의 모든 신에 최진실이 나왔기 때문에 세트를 떠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최진실은 아예 귀가를 포기하고 분장실에 침대를 마련해 2주째 숙식을 세트에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니 고생을 잊을 수 있다며 웃더군요. 당시의 최진실은 "아무리 인기도 좋지만 빨리 촬영 끝나고 아이들과 놀고 싶다"던 보통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한때 청순미의 상징이던 최진실은 이혼과 아이들을 놓고 벌인 줄다리기로 이미지에 꽤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른 걸 다 떠나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만큼은 옆에서 봐도 측은할 정도'라며 옹호하더군요. 결국 그런 모성애는 아이들을 자신의 성으로 바꿔 놓는데에까지 미쳤습니다.
최진실의 최근 여건은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준호와 공연한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호평 속에 막을 내렸고, 그 2부가 곧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1일에는 CF 촬영까지 했죠.
더구나 지금도 가장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렇게 아이들을 끔찍히 아끼던 그가 바로 그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갑작스럽게 떠나야 했을까요. 10여년 이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믿기 어려운 일들을 만났지만 이번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또 처음인 듯 합니다. 당분간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네요.
최근 너무 자주 하게 되는 말이라 더 안타깝지만, 부디 고인이 편안한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
1박2일의 사직구장편이 방송될까 말까,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27일에 '1박2일' 팀의 나영석 PD를 만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죠. 당시 나PD는 "방송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방송이 나갔고, 예상대로 많은 부분이 해명됐습니다. 물론 앞장서서 '1박2일'을 성토했던 사람들이 이 정도 한방에 입장을 바꿀 리도 없었죠. 어떻게든 비판할 거리를 찾으려면 꼬투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편집에 농락당하면 안된다' '어쨌든 야구장은 야구 팬들의 것이다' '야생 다큐가 왜 도시 한복판에 들어왔느냐' 등등의 억지 논리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립니다. 물론 처음부터 조용했던 대다수 시청자들은 "보니 별 것 없는데 왜 저럴까" 분위기인 듯 합니다.
사직구장에서 한 행동에 대해 '1박2일'은 대략 면죄부를 받은 듯 합니다만, 아직 궁금한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왜 굳이 사직구장에 간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얘깁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1박2일, 사직구장 말고도 갈 곳은 많다
'1박2일'이 아직 시끄럽다. KBS 2TV '해피 선데이'의 인기 코너 '1박2일'이 요즘 전국 최고의 야구 열기에 들떠 있는 사직구장을 방문한 여파가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네티즌들은 50석 예매했다면서 왜 100석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알고 보니 뒤에 빈자리가 있었던 건 경기 시작 1시간 전이었기 때문), 왜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에서 한화의 응원가인 '무조건'을 불렀나(관중들이 '무조건'을 연호하며 요청), 왜 클리닝 타임에 긴 공연을 해 경기를 방해했나(사전 협의된 시간 안에 끝냄)며 '1박2일' 팀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결국 뚜껑을 열고 보니 잘못된 정보와 일부 네티즌의 착각이 삽시간에 마녀 사냥으로 비화했던 것임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눈 빠지게 센 게 다 헛수고였다는 얘깁니다. 하긴 지정석 산 사람들이 경기전 한시간 전에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죠.)
'1박2일' 팀은 사직구장 촬영분에 대해 방송 여부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정면돌파를 택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왜 하필 사직구장에 갔을까'에 대한 부분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1박2일'이 '야구의 인기에 편승'하려 했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편승이란 표현은 오해다. 한국 야구의 가장 큰 잔치인 한국시리즈 경기 중계방송의 시청률은 6∼7% 정도. '해피 선데이' 전체의 시청률은 11%까지 떨어졌지만 '1박2일' 부분의 시청률은 30%대를 오르내린다.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선명하다.
(주: 28일 방송분의 '1박2일' 부분 시청률은 21.7%였다고 합니다. 전보단 좀 떨어졌군요.)
이를 근거로 '1박2일' 팀의 한 연출자는 "야구가 최고 인기 종목이라지만 한국 시리즈 시청률을 보더라도 아직 응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지난해 미국 월드시리즈 1차전은 인기 구단인 보스턴이 진출했는데도 첫 경기 시청률이 간신히 10%를 넘었다. 그렇다고 야구가 비인기종목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확고한 지역 연고제의 영향이 전국 시청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야구가 지금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린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1박2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도 야구장 한번 가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정상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이 기왕 좋은 일에 나선 거라면 지금도 만원사례인 사직구장보다는 음지 쪽에 애정을 보여주는게 낫지 않았을까.
올림픽 때에만 관심이 쏠리는 수많은 비인기 종목 경기장이나,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불경기로 타격을 받은 텅빈 공연장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죽 한그릇이 간절한 사람들이 널렸는데 그래도 살 만 한 집에 쌀가마니를 얹어 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
<물론> 야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떼버린 히어로즈의 암울한 현황은 결국 프로야구가 수익사업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관중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1박2일'로 인해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다 해도, 사직구장의 전체 홈 경기가 매진된다 해도 그걸로는 구단 1년 운영비의 절반 정도나 메울 수 있는게 현실입니다. 프로 구단 모기업의 구장 보유 혹은 염가의 구장 장기 임대, 무엇보다 방송 중계권의 현실화 등등 구단의 수익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흑자 전환은 요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문제라는 것을 이미 20여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바꿔놓지 못한 KBO가 있습니다.
아무튼 야구의 경우에는 이렇듯 경기 외적인 문제가 더 큰 과제로 남아 있고, 그 기반을 이루기 위한 야구 팬들의 성원은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내년 초 WBC가 남아 있긴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의 힘, 그리고 그 주축 선수들이 거의 모두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힘이 됐습니다. 거기에 대한 한 '1박2일'이 더 보탤 수 있는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1박2일'의 영향력을 이용한 국민의 관심 유도는 좀 더 그늘진 곳에 힘을 보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야구장에는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7위와 8위의 경기에도 몇천명씩 관중이 옵니다. 몇백명의 관심이 아쉬운 곳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늘진 곳만 보고 살다간 끝이 없겠죠. 하지만 잘난체 하지 않는 소박함과 친근함이 무기였던 '1박2일'과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의 현장은 어째 좀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하는 느낌도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1박2일'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p.s. 녹화 직후 올라온, '1박2일'을 비난하는 수많은 낚시 포스팅 중에는 위 사진 같은 사진들을 죽 엮어서 "김C의 어두운 표정을 보라. 야구를 했던 김C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태가 이런 파국으로 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표정이 어두웠던 거다"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최근 김C를 만날 일이 있어서 이 얘기를 해 줬습니다.
나: 그래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웠어요? 김: 사실 그날 야구가 하도 재미있어서 녹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딴 생각 하는 얼굴이 잡혔나봐요. 근데 나 원래 표정이 그런데... 누군지 참 별 생각을 다...^^
참 살다 보니 뉴스 기사에 사진이 실리기도 하고,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참고로 위 사진은 뉴시스의 보도용 사진입니다.^)
지난 27일부터 30일까지 문화콘텐츠 진흥원의 역점행사인 제1회 대한민국 콘텐츠페어 2008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컬쳐토크 흐름('컬처토크'로 검색하면 절대 안 나옵니다. '컬쳐토크'랍니다)'이라는 행사에서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토론은 아니고 대담 형식인데 매번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이끈다고 할 수 있는 분들이 나옵니다. 이날은 '1박2일' 팀의 나영석 PD와 '우리 결혼했어요'의 전성호 PD가 나왔습니다.
첫날인데 홍보가 잘 됐는지 그래도 꽤 많은 인원이 오셨습니다. 상암 DMC(디지털 미디어 시티)의 열악한 교통 사정을 생각하면 찾아 오시는게 참 신기할 정도죠.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화산업단지를 전담 전철역 하나 없는 곳에 뚝딱 지어놓다니 참.
수색역에 내리면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있다고 합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왜 현재 인기인가, 현재 어느 정도의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 제작하고 있는가, 이 팀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현장성 높은 이야기를 비롯해 과연 리얼 버라이어티는 리얼이라고 볼 수 있는가, 연출자가 연출하지 않는 대신 출연자 개개인이 스스로를 연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연출자의 권한을 연기자나 MC에게 넘겨 준 것이 아닌가 등등의 실천적인 과제들에 대해 상당히 심도 있는 얘기가 오갔습니다.
물론 가장 잘 기억나는 얘기는 나영석 PD의 "승기는 원래 허당이다. 은지원은 평소에도 당연히 초딩스럽다", 전성호 PD의 "전에 하던 프로그램에서 김현중을 아침에 깨우다 깨우다 못 깨운 적이 있다. 거기서 이 친구를 '우결'에 투입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는 종류입니다. 저보다 대담을 지켜보신 분들이 아마 중요한 내용은 더 잘 기억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쨋날은 '모던보이'의 정지우 감독을 모셨습니다. 특별히 준비하신게 없을텐데도 강의를 듣는 듯 명쾌하고 유머 넘치는 설명이 일품이더군요.
'컬쳐토크 흐름'은 화요일까지 계속됩니다. 오늘은 '난타'의 송승환 PMC 대표, 내일은 '바람의 나라'의 김진 만화가를 모시고 얘기합니다. 오후 4시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은 뵐 수도 있겠군요. (평일 오후 4시라니...)
그리고 어제, 28일일은 좀 분주했습니다.
오전 9시 초지대교. 강화에는 몇번 가 본 적이 있지만 초지대교를 건너 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엔 늘 강화대교로만 갔었죠.
운전중에 촬영한 왼쪽과
오른쪽입니다. 운전중 사진촬영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노약자가 아니면 절대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적 방향은 다리 건너 좌회전.
꽤 큰 섬이라 평야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강화도 하면 뭐니뭐니해도 갯벌.
특히 겨울에는 이 갯벌이 모두 얼어붙어서 눈부시게 빛납니다.
겨울에 가 보시길 권장합니다.
자, 목적지인 얼렁뚱땅 펜션.
저 너머로 보이는게 드넓은 서해 바다....라면 정말 멋지겠지만,
불행히도 갯벌입니다. 엄청난 넓이입니다.
하긴 갯벌이나 바다나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하긴 마찬가지.
그런데 대체 일요일 아침부터 뭘 하러 거기까지 갔느냐...하면,
이런 프로그램입니다. 그러고 보니 방송 날짜를 모르겠군요.
16명의 대학생이 서바이벌 게임을 펼쳐 우승자 한명이 장학금 천만원을 받는답니다.
저는 왕년의 대학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이유로 섭외된 것 같습니다. 명색이 심사위원. 불쌍한 학생들의 생사여탈 권리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녹화는 지지부진. 뭐 일반인들 모시고 하는 프로가 다 그렇지.
심심해서 어디선가 날아온 기이한 동물을 찍어봅니다.
이건 나방도 아니고 새도 아니고 파리도 아니고 벌도 아니고. 생전 처음보는 괴상한 종류.
초점이 꽃에 맞았군요. 위 사진을 클릭해서 보시는게 좀 더 잘 보이겠습니다.
녹화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점심은 거르고 곧바로 상암 DMC로 직행. 일요일이라 그런지 강화도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더군요. 눈물의 뻥튀기(막히는 길에서는 어디나 팝니다)를 오물오물 씹으며 노심초사 달린 결과 상암 DMC에 들어선 시간이 3시50분. 간신히 시간을 지켰습니다.
혹시라도 오늘 오실 분들은 예약이고 뭐고 그냥 오셔도 충분히 앉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평일 오후 4시) 부근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괜찮은 기회가 될 겁니다.
피시 앤 칩스로 상징되는 영국에서의 식생활. 가장 영국의 물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때가 바로 밥값을 낼 때입니다. 1파운드=2천원이라는 환율도 환율이지만, 워낙 물가가 비싼 나랍니다.
다른걸 다 떼 버리고 햄버거 세트가 5파운드가 넘으니 말 다 했죠. 햄버거 세트가 만원 하는 나라는 아마 이 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뉴욕 맨하탄 어디를 가나 2달러가 거의 공정가인 핫도그, 런던에서는 약간 더 긴 소시지를 주는 대신 2.5파운드나 받습니다. 거의 2.5배 가격입니다.
이런 영국에서 조금이라도 싸게 먹고 구경다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사먹는 끼니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숙소를 민박집으로, 가능하면 아침 저녁 밥을 주는 민박집으로 정하는 것도 좋겠죠. 또 취사 가능한 유스호스텔을 골라 해 먹으면서 버티는 방법도 좋습니다.
그럴 형편이 아닌 분들이라면 조금이라도 싼 걸 먹으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는데, 위에서 말한 햄버거 세트 이하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샌드위치는 3파운드 정도 하고, 맛이나 내용물도 훌륭하긴 합니다만 저런 것만 먹고 버티면 오래 못 갑니다.
물가가 런던보다 더 비싼 에딘버러, 그것도 도심에서 열리는 페스티발 기간 중에 싸고 괜찮은 식당을 고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두 곳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보겠습니다.
에딘버러 페스티발 홀 바로 옆에 있는 시티 레스토랑도 그중 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메뉴. 이 식당의 breakfast입니다. "이건 아침밖에 못 먹잖아!"라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식 중단'이라는 breakfast의 어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영국인들은 하루 중 아무 시간이나 breakfast를 먹곤 합니다. 그래서 'all day breakfast'나 'whole day breakfast'라고 써 붙여 놓은 집들이 꽤 됩니다. 이런 집들을 찾아 들어가면 하루 종일 이런 메뉴를 시킬 수 있습니다.
가격은 소형이 4.9, 보통이 5.9, 특대가 6.9파운드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접시는 보통이지만, 보통과 소형의 차이는 맨 오른쪽의 시커먼 덩어리뿐입니다. 저 덩어리, 드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코틀랜드의 명물(?)인 하기스(Haggis)입니다.
하기스는 돼지의 위에 각종 곡물과 자투리 고기 등을 넣고 쪄 낸 요리죠. 조리 방법이 순대와 비슷한 만큼 저 덩어리도 아바이 순대 속을 버터에 비빈 듯한 느끼한 맛이 납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정없이 허기지지 않다면 굳이 먹고 싶지 않은 맛입니다.
아무튼 저 하기스 빼고 같은 접시에 토스트 2쪽과 음료(주스) 한 잔을 포함해 가격이 4.9라면 영국에서는 꽤 괜찮은 식사입니다. 물론 맛이 대단히 유별난 건 아닙니다만, 누구나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만 짜여져 있다는게 강점이죠.
참고로 베이컨이 베이컨이 아닙니다. 미국식의 뒤가 비칠 것 같은 베이컨을 생각하면 큰 코 다칩니다. 거의 삼겹살을 그대로 절여 놓은 듯한(짜기는 엄청 짜죠^) 두께가 제법 압박감을 줍니다. 웬만큼 양이 되는 분들도 한접시 다 먹으면 든든합니다.
이게 바로 에딘버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페스티발 시어터. 이 사진의 바로 왼쪽에 시티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하기스 못잖게 유명한게 소시지라고들 합니다.
에딘버러에서 꽤 유명한 베들렘 교회 근처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MONSTER MASH라는 소시지 전문점이 있습니다.
외관 사진은 깜빡.
내부 사진입니다.
칠판에 그날의 메뉴를 주욱 써 놨습니다. 사실 왼쪽의 소시지 메뉴 맨 위에 '칠리 소시지'가 있었는데 제가 시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떨어졌다"며 지우더군요.
아무튼 꽤 여러가지 재료로 갖가지 소시지를 만드는 집입니다.
소지지의 길이가 12cm 이상 되는 대형입니다. 소시지 2개와 엄청난 양의 매쉬드 포테이토(머스터드가 들어 있어 그리 느끼하지 않습니다), 그레이비(양파가 많인 든 걸로 선택)가 나옵니다. 이걸로 두 사람이 먹어도 점심은 거뜬할 정도. 6파운드 정도 합니다.
계산서에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가 써 있군요.
사탕을 주는 센스.
에딘버러 중심가인 로열 마일에서 베들렘 교회 쪽(에딘버러 국립 박물관 쪽 방향입니다)으로 가다 보면 이런 집이 보입니다. 사진을 키워 보시면 아래쪽에 'Birthplace of Harry Potter'라고 쓰여 있습니다. 네. 롤링 여사가 노트북을 펴놓고 '해리 포터'를 썼다는 가게죠. 비쌀 것 같아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해리 포터 팬들은 한번 가 보실만 할겁니다.
아무튼 이 정도 가격이 직접 해 먹지 않고, 샌드위치나 노점 음식(핫도그)을 먹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최저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에딘버러에서 식사를 해결하실 분들은 재료를 가져가는게 좋겠습니다.
축제 기간이라고 맛자랑 시장 같은 곳도 열리고 있더군요. 온갖 식재료 가운데 바닷가재와 게를 파는 곳이 있어서 큰 맘 먹고 바닷가재 한마리(15파운드-3만원 정도)를 사다가 눈 딱 감고 라면과 함께 먹었습니다. 매우 고급스러운 라면이더군요.^
저 가게 옆에 서 있으면 맛 보라고 바닷가재 살을 조금씩 떼 주는데, 그냥 서 있어도 한 10파운드 어치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로 인심이 좋았는데 거기 비하면 바닷가재 값은 싸지 않더라는게 좀 안타까웠습니다. 차라리 덤 주지 말고 값을 깎아 줄 것이지...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좀 멋지게 먹을 때도 있어야겠죠. 그래서 다음번엔 '비싸게 먹기'편을 소개합니다.
MBC 스페셜 '나는 이영애다'를 봤습니다. '대장금'의 세계적인 인기에 비쳐 이영애라는 배우의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일상을 그린다는 데 관심이 끌렸습니다.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건 '과연 이 내용이 이만한 시간과 전파를 들여 방송할 만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이영애다'에서 새롭다고 느낀 것은 이란과 짐바브웨 시청자들의 '대장금'에 대한 열광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막상 현장에서의 연출은 유치할 정도로 작위적이더군요. 아무리 '대장금'이 좋다고 해서 자기 아내를 '양금(이란에선 장금을 이렇게 부른답니다)'이라고 부를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한번 해 본 얘기일게 뻔한데 그게 얼마나 이 사람들이 '대장금'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단한 증거인 듯 그려집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드러납니다.
이영애가 거리를 걷고, 영어를 배우고, 모자를 눌러 쓰고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이영애의 꾸밈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죠. '인간시대'처럼 몇주씩 한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이영애에게 던져진 질문 역시 너무도 피상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이고, 이영애의 대답 역시 언제나처럼 '무리 없는 정답'일 뿐입니다. 30분만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이영애'를 쳐 보고 질문지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무미건조한 문답만 오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이영애는 '대장금'이라는 대단한 드라마에 나왔고, 이영애는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수십개 나라에서 놀라운 인기를 얻었고, 그런 이영애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참 성실하고 온화하며, 차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훌륭한 연기자라는 것입니다. 네.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과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참 궁금합니다.
제작진이 늘 이영애를 접하던 드라마-예능쪽 팀이 아니고 교양 파트 팀이어서 평소 이영애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작 한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상식적이고 뻔한 내용으로만 채워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때 '산소같은 여자'라는 이영애의 별명에 대해 '산소=무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안티들도 있었지만, 현재 대한민국 여자 연예인 중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그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심은하가 사실상 은퇴하고, 왕년의 68년생 트리오인 최진실 채시라 이승연이 서서히 아줌마 역할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다 김희선과 고소영도 최근 들어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90년대의 여성 톱스타들 가운데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김혜수와 이영애, 고현정 정도라고 해야겠지요.
얼마 전 90년대 초의 드라마들을 잠시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초호화 캐스팅(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얘깁니다)인지 사뭇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얼마전 99년작 '해피 투게더'를 연출한 오종록 PD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캐스팅을 할 수 있는지 참(이병헌 송승헌 차태현 한고은 김하늘 전지현...) 웃음만 나온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절의 드라마들은 더욱 대단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언급했던 '아스팔트 사나이'도 이병헌 정우성 최진실 이영애 허준호라는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했죠. 사실 그 시절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런 드라마가 드물지 않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들도 모두 지금같으면 회당 수천만원씩 받을 스타들이 즐비하더라니까요.
아무튼 이 시절, 산소같던 이영애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엔 연기력이나 미모보다 다른 측면이 더욱 돋보였죠. 지칠줄 모르는 박지성을 가리켜 산소탱크를 메고 뛰는 것 같다(물론 정말 메면 무거워서 더 못 뛰겠지만)고들 하는데, 이영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 나오기 전까지의 이영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TART.
인터뷰를 하다 보면 연예인 사이에도 세대차가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10.26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처음으로 신문 인터뷰를 해도 별로 어는 기색들이 없다. 구김살없이 자라난 세대라 그런 모양이다.
반면 지구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조금 고된 스케줄이 잡히면 픽픽 쓰러져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잦아졌다. 이제는 '링거 투혼' 같은 이야기가 너무 흔해져서 기삿거리가 되질 않는다.
옛날엔 안 그랬느냐고?
예전에는 스타가 되려면 체력이 필수 요소였다. 이쯤에서 기억나는 스타가 있다.
이영애를 처음 본 것은 지난 96년초 방송됐던 KBS 2TV 드라마 <파파> 때였다. 당시 <파파>의 남자주인공인 배용준은 김지호와 함께 데뷔했던 캠퍼스 드라마 <사랑의 인사>와 <젊은이의 양지>를 마치고 막 떠오르던 시점이었고, 그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은 <맨발의 청춘> <첫사랑> 등엔 아직 출연하기 전이었다. 이영애 역시 '산소같은 여자' CF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93년 드라마 데뷔작인 <댁의 남편은 안녕하십니까> 이후 별다른 성공작이 없을 때였다.
배용준과 이영애는 여기서 이혼한 부부로 나왔는데 누구나 예상하듯 결말은 재결합이었다. 배용준이 대단히 이지적이고 냉철한 성격이었다는 점을 빼면 최근 은근히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와 거의 비슷한 플롯이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거의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MBC TV에서는 <그들의 포옹>이라는 드라마가 기획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의 포옹>의 방송 시점과 <파파>의 종영 시점은 1주일 차이였는데 이영애가 이 드라마에도 출연한다는 거였다.
<그들의 포옹>은 최민식 안재욱 김승우 등이 출연한-지금으로서는 엄청난 호화 캐스팅이지만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던-법정 드라마로 법조계에 진출한 젊은이들이 사회의 벽에 부딪혀가며 자신의 소신을 지켜간다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도 이영애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기에 '무척 피곤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파파>와는 달리 <그들의 포옹>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16부작을 마쳐가고 있었는데, 새로 기획되는 MBC TV의 주말 드라마에 이영애가 또다시 캐스팅 물망에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동기간>. 이영애가 나온다면 김지수 이민영과 함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갈래머리 여고생으로 나올 드라마였다.
아니 드라마 세 편을 연이어 출연하다니. 요즘같으면 이렇게 스케줄을 잡는 매니저가 있다면 바로 계약 해지 사유다. 물론 지금도 동시에 서너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중견 배우들이 있지만, 이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한진희-노주현-정윤희-유지인이 돌아가면서 매번 주연을 하던 70년대도 아니고, 90년대 이후에 한 배우가 휴식도 없이 세 편의 드라마에서 연속으로 주인공을 맡았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동기간>이 시작됐는데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동기간>의 장수봉 PD와 박진숙 작가 는 이 작품 바로 전에 아들을 편애하는 집안에서 자라난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최수종-김희애 주연의 <아들과 딸>을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한석규라는 걸출한 신인을 발굴한 터였다. 당연히 엄청난 기대가 쏟아졌지만 <동기간>은 <아들과 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조기 종영의 운명을 맞았다.
<동기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국에서 우연히 이영애를 만났다. 지금같으면 어디 가서 마주쳐도 인삿말이나 건네 주실까 겁나는 대 스타지만 당시에는 같이 앉아서 음료수도 나눠 마시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운하지 않을 리가 있나. "좋은 드라마인데 안타깝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정말 궁금했던 질문.
"괜찮아요?" "네?" "혹시 피곤하거나 어디 아프지 않아요?" "…별로요. 제가 원래 좀 튼튼한 편이라서요."
너무나 멀쩡한 대답. 비단같은 외모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강철같은 면모였다. 이어진 얘기인 즉, "<파파>와 <그들의 포옹>에서 계속 세련된 현대 여성 역할을 맡다 보니 이건 좀 아닌데 싶고 뭔가 좀 연기 변신을 해 보고 싶었다. <동기간> 대본을 봤는데 천둥벌거숭이라고 해야 할 말괄량이 역할이더라. 너무 마음에 들어서 대번에 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체력? 체력은 원래 좋은 편이라서…." 감탄했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외모와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체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아직도 미니시리즈 한편 찍으려면 하루 2시간 수면으로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필수다. 전국의 연예 지망생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체력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끝)
이상입니다. '나는 이영애다'를 보고 나니 옛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굳이 '대장금' 방송 5년째를 맞아 이영애와 대장금에 대해 다시 짚어 볼 생각을 했다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을 '생활인 이영애'를 겉핥기로 시도하느니 과연 이영애와 대장금 현상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일궈냈는지, 혹은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매출이나 산업적인 기여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을 제대로 다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한자리수 시청률(9.7%)에 머물진 않았을 지도 모르죠.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이영애를 우리는 밀착 인터뷰 해 봤어'라고 자랑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내용이라 아쉬움만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