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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여배우 노출'이라는 검색어를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두 개의 명사인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수많은 사설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아주 어려서는 '겨울여자'라는 영화가 '야하다'고 소문이 났더랬습니다. 제법 크고 나서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개인교수'가 화제를 뿌렸고, 한국 영화로도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이 일단 개봉을 했다가 재검열로 주요 부분들이 삭제되는 홍역을 치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퇴폐적인 대중문화'를 벌레 보듯 하던 군사 문화의 잔재가 여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6.29 이후에는 '매춘'이라는 영화가 또 대대적인 화제를 뿌린 이후 한국 영화계는 최소한 노출에 대한 한 검열기구로부터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공공기관도 '음란, 퇴폐'를 이유로 노출를 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만 들어가도 '야동'과 '야사'가 넘쳐 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여배우 노출'이 화제가 되고, 주요 검색어가 되고 있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체 왜 아직도 이런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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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아직도 여배우 노출이 화제가 되다니

누드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 중에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프리네의 재판'이라는 것이 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유명한 창부 프리네는 엘뤼시스의 포세이돈 축전에 참가한 대중들 앞에서 옷을 벗은 죄로 고발되어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신성한 축전에서 나체를 드러낸 것이 신성모독이란 이유에서였다.

이때 변호를 맡은 프리네의 연인 히페리데스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배심원들 앞에서 프리네가 입고 있던 옷을 잡아당겨 그녀의 나신을 노출시켰다. 판결은 무죄. 이토록 아름다운 누드를 드러내는 것은 모독은 커녕 오히려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데 모든 이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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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an Leon Gerome, Phryne before the Areopagus

최근 개봉된 몇몇 한국 영화들에서 여배우들의 노출이 화제가 됐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의 손예진이나 '미인도'에서의 김민선의 누드 열연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 강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중의 관심은 뜨겁다.

사실 이 정도가 화제가 된다는 건 한국 영화계가 그동안 얼마나 노출에 대해 보수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 여길 만 하다. 최근 기억할만한 노출신이 별로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제작자들이야 굳이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자극해 18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아 봐야 청소년 관객들만 잃을 뿐이고, 배우들도 '노출하는 배우'라는 평판이 나면 CF 이미지에 손해를 입는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 있는게 현실이다.

여기에 유독 노출에 민감한 한국 언론이나 평자들의 시선도 한몫을 한다. 세계 어느 나라나 영상물에 대한 규제의 두 축은 신체 노출과 폭력이다. 하지만 한국 영상에서 허용되는 폭력의 수준과 노출의 수준을 비교하자면 엄청난 불균형이 드러난다. 폭력에는 엄청나게 관대하지만 노출에 대해선 조선시대를 갓 벗어난 수준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런 불균형은 미국식의 검열 기준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지만 세상엔 반대 의견도 있다. 유럽식을 따르면 나신은 그냥 보여주지만 권총이나 무기에는 모자이크를 하는게 오히려 정상이다. 누드 보다는 폭력이야말로 미성년자들의 정서에 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인식이 시대에 따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9년 전에 나온 '해피엔드'에도 한참 못 미치는 '노출 연기'가 새삼 화제가 되고 저속한 호기심과 흥행의 관건이 되는 건 혹시 한국 사회의 정서적 퇴행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성숙도가 기원전 4세기 아테네 배심원들만도 못하대서야 될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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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ottger Artur, Fryne

프리네(Phryne)는 창부였지만, 개같이 번 돈을 정승같이 쓴 걸로도 유명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무너진 테베의 성벽을 개축하는데 아낌없이 성금을 보내, 개축된 성벽에는 '알렉산더가 허물고, 프리네가 다시 짓다'라는 표문이 붙여졌다는군요.

프리네가 엘뤼시스 축전 행사장에서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당시 유명한 화가 아펠라스는 거품 속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를 형상화한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 비너스의 탄생(Aphrodite Anadyomene)은 후대의 화가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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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이 그림은 아니지만, 이런 풍의 그림이었을 겁니다.
   이 그림은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로마 시대의 '비너스의 탄생'.)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도 바로 아펠라스가 그린 프리네의 후손 뻘 되는 그림일 겁니다. 이밖에 서양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도 프리네를 모델로 자주 아프로디테 상을 조각했다는군요. 프리네 이야기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듯 합니다. 특히나 자유 사상이 만개한 19세기 화가들은 너도 나도 프리네 이야기를 화폭에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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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rich Ippolitovich Semiradsky, Fryne on Eleusis

아무튼 프리네 얘기는 좀 과장도 섞인 듯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누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울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영상물에 대한 대표적인 두 가지 규제, 즉 성적 노출과 폭력성 노출에 대한 규제 사이에 제법 큰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은 언젠가 한번 짚고 넘어갈 만한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별로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걸 역할을 했던 에바 그린은 '마지막 황제'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만든 노출 심하기로 유명한 영화 '몽상가들'에 출연한 뒤, 미국 언론과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섹스와 폭력에 대한 시각 차이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인터뷰라고 생각해 인용합니다.

(출처는 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m1285/is_4_35/ai_n16359912/pg_2?tag=artBody;c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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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몽상가들'이 나왔을 때 누드 때문에 엄청난 법석들을 떨었다.
에바 그린: 미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영화에서 엄청나게 많은 살인 장면이 나오고, 당신은 다섯 살 때부터 팝콘 등등을 먹으면서 그걸 맘대로 볼 수 있지 않았나. 하지만 누드는... 아마도 미국에는 대단히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난 잘 모르겠다.
기자: 그 영화가 프랑스에서 처음 나왔을 때에는 별 반응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에바: 그렇다. 전혀 없었다. 오직 미국에서만 그랬다. 미국인들의 섹스 강박관념 때문이다.

NFC: When The Dreamers came out there was a big hoopla because of the nudity.
EG: So many movies in America have so much killing in them, and you can see them when you're 5 years old, sitting there happily eating your popcorn and everything. But with nudity ... maybe there are a lot of religious people in America, I don't know.
NFC: I don't remember an outcry in France when the film came out.
EG: No, not at all. It was only in America. Be cause they're obsessed with sex.


솔직히 '아내가 결혼했다'고 '미인도'고 한국 유사 이래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노출이 있던 것은 절대 아니고 보면(더구나 전에도 말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의 노출이란 건 장난 수준입니다), 온갖 매체의 호들갑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두 영화가 절대 망하면 안된다는 충정에서 나온 자발적인 붐 조성이라면, 몰이해를 사과드립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참 충격적입니다. 그리 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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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뉴스를 보다가 허걱 하고 놀랐습니다.

연예계 뉴스로 분류되지 않은 소식인 바람에 늦게 접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활동 10년을 결산하며 꾸준하게 거액을 내놓은 고마운 기부자들을 공개했더군요. 한데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하신 분이 연예인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20대의 여자 연예인인데 철저하게 익명을 요구, 이번 10주년 행사에서도 공개하지 못했다는군요. 참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일입니다(물론 범인^^으로 밝혀진 문근영 양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20대라면 아직 어린 나이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세상의 한 구석을 밝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말입니다. 더구나 도박이며, 대출 사기며, 귀족 계 사고며, 외제 승용차 사기 사건에 이니셜로 연예인들이 등장한 같은 날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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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기부를 합니다. 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라는 말씀대로 선행을 감추는 것이 더욱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하는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과연 꼭 그럴까요? 현장에서 몇가지 경우들을 보고 나서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마침 그와 비슷한 주제로 최근 '무비위크'에 썼던 글이 있어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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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김장훈 때문에 선행을 못 하겠다고?

연예인에게도 등급이 있다. 최상위층에 오르기 위해선 이제 한국 안에서만 활동해선 곤란한 세상에 왔다.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다.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쯤 되면 세상에 부러울 사람도 기죽을 사람도 없다.

인기나 수입은 이들보다 좀 덜하지만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으로 최상위층에 올라 있는 이들도 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 김장훈, 션-정혜영 부부 등 이른바 선행의 스페셜리스트들이다. 그 악플 천지인 인터넷에서도 이들을 욕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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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공짜 밝히기로 소문난 지인이 지난 연말 전화를 걸어 '김장훈 콘서트가 언제냐'고 물어 왔다. 표 부탁이냐니까 아니란다. "표 사서 가려고. '그런 분' 공연은 돈 내고 봐야지." 이 정도다.

사실 10년 넘게 연예계를 지켜보면서 참 우스운 꼴도 많이 봤다. 결혼 축의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겠다던 한 스타 커플은 "식장 대여비용과 피로연 대금을 치르고 나니 오히려 적자"였다며 단 한푼도 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축의금으로 북한의 결식 아동을 돕겠다던 다른 커플은 기사가 나간 뒤, 반공의식이 투철한 어른들로부터 '남쪽에도 도시락 못 싸 오는 아이들이 많은데 무슨 오지랖이냐'고 야단을 맞았다며 딸랑 50만원을 기부했다.

일찌기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였던 한 여배우는 이런 식의 성금 떼먹기에도 달인의 경지였다. 명절때면 으리으리한 선행 기사로 스포츠신문의 1면을 도배하기도 했던 이 스타의 주머니에서 실제 나온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어느 해 6월, 연초의 기부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순진하게 체크해 봤을 때, 매니저의 반응은 이랬다. "아, 어디다 기부할지도 안 정해주고 돈 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무능한 기자때문에 기부를 못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모든 연예인이 이런 건 절대 아니다. 심지어 악착같이 기자들의 눈길을 피해 몰래 사랑을 베푸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기부를 받는 자선단체들은 이런 '몰래 선행'의 주인공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피력하곤 한다. "연예인이 몰래 선행을 하면 그건 그 혼자만의 선행으로 끝나지만, 온 사방에 알리고 선행을 하면 그걸 보고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라는 거다. 심지어 한 자선단체 간사님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선행을 감추시는 분들의 뜻을 절대 모르는 건 아니지만, 흉내만이라도 기자들 잔뜩 달고 와서 사진찍는 분들이 더 고마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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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선행이란 부끄러워 할 이유도, 가식으로 보일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주눅들어 어디 기부를 못하겠다"는 연예인들이나 관계자들이 꽤 있다. 바로 김장훈과 션-정혜영 부부 때문이라는 거다. 자기 집 한칸 마련할 여유도 없이 죄다 이웃 사랑에 기부하고, 독도 수호 운동에 기부하고, 사람들 모아서 서해안 눈물 닦아주기 운동 하는 이들 때문에?

설명인즉 너무나 강력한 선행 때문에 요즘은 어지간한 선행은 무시당하거나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는 거다. 농담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매니지먼트사 대표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은 몇백만원 기부하려면 몰래 하든가, 아예 안 하든가 해야 할 것 같다." "왜?" "요새 누가 뭘 어디다 기부했다, 봉사했다는 기사를 보면 밑에 꼭 김장훈과 비교하고 비웃는 댓글이 달려 있다. 돈 내고, 시간 내서 욕 먹을 바에야 그냥 가만 있는게 낫지."

너무나 다른 사람을 기죽이는(?) 기부가 이런 결과를 낳고 있었다니. 요즘 도움의 손길이 뜸해졌다는 게 불경기 때문만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기부왕들에게 자제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이젠 포털사이트에다 누가 뭘 기부했다는 선행 기사에도 댓글을 막아 달라고 요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 별게 다 말썽이다. 댓글 몇개를 여론으로 인정해버리는 세태를 탓해야 할까. 그렇다고 인터넷을 없앨 수도 없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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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나 이런 얘기를 "뭐?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보다 날림으로 겉보기 선행 하는 놈들이 낫다고?"라고 곡해할 사람이 있을까 겁이 납니다(워낙 난독증이 만연한 시대라). 결단코 선행을 감추는 것이 갸륵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윗글에도 있지만, "선행은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 공감하고 따를 수 있게 할수록 하는게 더욱 좋은 일"이라는 뜻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선행은 다 자기 사정대로 하는 겁니다. 김장훈처럼 대출까지 받아 기부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이건 좀 무리한 경우죠. 웬만한 금액이나, 웬만한 정성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결코 '애개~~ 그렇게 돈 많이 벌면서!'라고 비방하지는 말자는 거죠. 기부는 꼭 돈 만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이효리가 요즘 밤에 잠을 못 이룬다는 최진실의 두 아이와 놀아 주러 갔다는 기사에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또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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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중의 사랑을 받아 부와 명성을 얻은 분들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선행입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이 분의 모습이 아직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이런 모습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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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귀감이 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 덕분에, 한참을 지긋지긋한 뉴스들에 시달리다가도 가끔씩 세상에 살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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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자나 이 주인공이 기왕이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천사의 면모로 이미지를 굳힌 문근영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주인공이었으면 했는데 '정답'이 다시 답으로 확인됐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닙니다. 천사는 많을 수록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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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리고 뭣보다 1등한 익명의 기부천사에게만 관심을 기울이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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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코치를 비롯해 나머지 순위에 있는 분들도 기억합시다. 이런 데서도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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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퀀텀 오브 솔러스' 리뷰를 쓸 때 제목을 '로저 무어가 그립다'고 달았는데, 이 탄식이 멀리 영국에까지 들린 모양입니다. 로저 무어 경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씀 하셨군요. "본드 무비가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해 슬프다(I'm sad that it has turned so violent)."

사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읽다 보니 아직 '퀀텀 오브 솔러스'를 안 보셨다고 합니다. 뭐 '카지노 로열'은 보신 모양이니 그 톤은 대략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아, 그리고 제목에 낚여서 '퀀텀'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내막은 지난 4일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얘기더군요.

아무튼 꽤 흥미로워서 본문을 옮깁니다.

당연히 녹색 부분은 제가 덧붙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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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저 무어는 보다 폭력적인 본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Roger Moore dislikes the more violent Bond movie)

현대 관객들은 왕년에 로저 무어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007 역을 맡았던 시대와는 달리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잔혹한 장면을 기대한다. 최소한 로저 무어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그 역할을 해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토록 폭력적이 된 걸 보니 슬프더군요." 무어는 북미지역에서 금요일 개봉하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어둠의 007로 나오는 '퀀텀 오브 솔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게 시대와 보조를 맞춘다는 거죠. 그게 바로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일테고, 박스 오피스 수치로 드러났잖습니까." 무어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내 말이 곧 내 본드(My Word is My Bond)"라는 자신의 회고록에 대해 말했다. (11월4일 출간됐군요. 알고 보니 인터뷰는 책 광고!)

런던에서 10월31일 개봉한 '퀀텀'은 2500만 달러의 흥행으로 영국의 주말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깼다. 전 세계에서는 1억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81세의 무어는 지난 1985년 자신의 7번째이자 마지막 007 작품인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을 촬영할 때 폭력 신에 진저리를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본드답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저서에서 무어는 자신이 10대 시절 BB탄으로 한 친구의 다리를 맞힌 이래로 총을 싫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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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때에는 본드가 좀 더 터프해지길 원했던 가이 해밀턴 감독이 본드가 정보를 얻기 위해 본드걸 모드 아담스의 팔을 꺾으며 부러뜨린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연기하게 했다. 무어는 "그런 종류의 캐릭터 설정은 나하고는 영 맞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는 내가 연기하는 본드가 좀 더 무자비해지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썼다.

"나는 '내 스타일의 본드'는 그녀를 먼저 침대에 데려감으로써 정보를 빼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의했다. 내 스타일의 본드는 연인이고, 익살을 떠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가이에게 동의했다." (물론, 이 팔 꺾는 장면도 '침대'에서 이뤄지죠.^^)

무어는 아직 '퀀텀 오브 솔러스'를 보지 않았지만, '카지노 로열'을 근거로 짐작할 때 이 영화 역시 북미 지역에서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니엘은 본드 영화를 한 편 찍었고, '뮌헨'에도 출연했다. 여러 가지 역할을 했지만, 본드 영화를 한 편 찍은 뒤에는 그가 원하는 것 모두가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그가 바로 본드다."

배우 인생을 통해 본드 역이나 TV 시리즈 '세인트', 혹은 토니 커티스와 공연한 '전격대작전(Persuaders)'에서의 역할에 의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데 대해 무어는 "나는 아마도 위대한 리어 왕 역이나 햄릿 역의 배우들 중 하나로 기억되기를 바랐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나는 본드 역을 맡은 덕분에 대단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 전격대작전이 뭐지? 하는 분들을 위한 참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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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비망록은 비비안 리, 메이 웨스트, 라나 터너 등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스타들과의 일화로 가득하다. 그는 또 '뷰 투 어 킬' 을 촬영하다가 그레이스 존스와 사이가 벌어진 사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녀가 듣는 시끄러운 음악에 질린 그가 그녀의 오디오 전원을 빼 버리고 벽에다 의자를 집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뭐 원래 터프하셨군요.)

런던 남부 지역 경찰관의 독자로 태어난 무어는 2차 대전 이전의 성장 과정과 전쟁 중의 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시골로 피난 갔다가 공습을 당한 사연, 또 태어나 첫 직업으로 만화영화 제작사에 취직했다가 해고당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징집됐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그는 연합군 점령하의 독일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제대할 때 그는 육군의 연예병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쇼 비즈니스계 입문이었고, 이 무렵 그는 영국 가수 도로시 스콰이어스와 결혼했다.

"자네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그러니까 (무대에) 들어설 때 활짝 웃으라고!" 그가 처음 무대에 설 때 레퍼토리 시어터(전속 극단이 있는 극장을 의미함)의 매니저가 한 말이다. 사실 이 말도 프로 스케이트 선수 출신인 첫 아내가 한 말보다는 훨씬 나았다.

"당신은 결코 배우가 될 수 없어. 얼굴이 너무 떨어져. 턱은 너무 크고, 입이 너무 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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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충격적인 코멘트의 주인공이자 둔 반 스텐(Doorn Van Steyn)과 로저 무어. 정말 보송보송합니다. 디카프리오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원문입니다. 보러 가시기 귀찮은 분들도 있을테니. (오역 지적 환영)

Roger Moore dislikes the more violent James Bond
Tuesday November 11 12:45 PM ET
http://movies.yahoo.com/mv/news/va/20081111/122643635200.html

Movie audiences nowadays expect scenes of graphic violence in James Bond movies, unlike when Roger Moore played the super spy with a tongue-in-cheek humor, the actor believes. "I am happy to have done it, but I'm sad that it has turned so violent," Moore said before "Quantum of Solace," starring Daniel Craig as a darker Agent 007, opens in North America on Friday.

"That's keeping up with the times, it's what cinema-goers seem to want and it's proved by the box-office figures," Moore told Reuters in an interview about his memoir, "My Word is My Bond." The new Bond film opened in London on Oct 31, breaking the British weekend box-office record with a gross of $25 million. It has taken in more than $106 million worldwide so far.

Moore, 81, recalled being appalled at the violence in "A View to a Kill," the 1985 movie which was the last of the seven in which he played Bond. "That wasn't Bond," he said. In his book, Moore writes of his distaste for guns, ever since he was shot in the leg by a friend with a BB gun as a teenager.

While making "The Man With the Golden Gun," director Guy Hamilton wanted Bond to be tougher and had him threaten to break Maud Adams' character's arm to get information, he writes. "That sort of characterization didn't sit well with me, but Guy was keen to make my Bond a little more ruth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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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uggested my Bond would have charmed the information out of her by bedding her first. My Bond was a lover and a giggler, but I went along with Guy," the British actor wrote. Moore has not yet seen "Quantum of Solace," but based on Craig's first Bond film, "Casino Royale," believes it will be a success in North America too.

"Daniel has done one Bond and he was in 'Munich' and ... he's done a lot of stuff, but his face, after one Bond film, that's all he needs. He is Bond."

Asked about his own legacy as an actor known mostly for playing Bond and in TV series such as "The Saint," and "The Persuaders," with Tony Curtis, Moore said: "I would love to be remembered as one of the greatest Lears or Hamlets. But as that's not going to happen I'm quite happy I did Bond." His memoir is full of anecdotes about Hollywood and the stars he worked with such as Vivien Leigh, Mae West and Lana Turner. He also tells of his bust-up with Grace Jones during the filming of "A View to a Kill," when he forcibly pulled the plug on her stereo and flung a chair against the wall because she was playing loud rock music.

The only child of a south London policeman, Moore also writes about growing up before and during World War Two, of evacuation to the country and air raids and getting -- and being fired from -- his first job with a cartoon film company. By the time he was called up, the war was over, but he served as an officer in Allied occupied Germany, where he ended up in the Army's entertainment regiment. That was his entree into show business, along with his marriage to British singer Dorothy Squires.

"You're not that good, so smile a lot when you come on!" his first repertory theater manager told him. His first wife, who was a professional ice skater, was no less encouraging: "You'll never be an actor, your face is too weak, your jaw is too big and your mouth's too 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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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경, 1927년 생이고 젊은 날을 온갖 고생으로 보낸 뜻에 '세인트'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하지만 '세인트' 때문에 007 역을 션 코너리에게 넘겨주고, 결국 1972년에서야 제 3대 본드로 취임합니다. 이후 7편의 007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죠.

로저 무어의 본드와 션 코너리의 본드는 섹시하고 유머러스하다는 면에서는 기본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각론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입니다. 코너리의 본드가 가끔 야비하고 잔혹하게까지 보이는 냉철함을 깔고 있는 반면 무어는 철저하게 느끼할 정도로 유들유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무기로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미 본드 역을 맡을 때 45세였던 무어에게는 이언 플레밍의 007이 요구하는 액션을 소화하기엔 무리여서 '결국 지나치게 특수장비에 의존하며 007의 순수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세인트'나 '전격대작전'을 봤다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본래 무어와 액션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무어의 본드는 사이먼 템플러(세인트)나 싱클레어 경(전격대작전)과 사실상 똑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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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시절의 모습입니다. 007이나 세인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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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본드 무비 가운데 최악은 아마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일 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문 레이커'죠. 역시 '정통' 007 팬들은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한때 007 팬 사이트에서 '최고의 007 영화' 1위에 뽑히기도 했죠. 취향이 워낙 엇갈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겁니다.

아무튼 제게는 이 분이야말로 최고의 007입니다. 물론 코너리 옹이 멋지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이 분의 능글능글함을 당할 사람이 앞으로도 누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시 조지 클루니?) 가장 멋진 본드걸도 이 분 시절에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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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유어 아이즈 온리'의 캐롤 부케입니다.

작품 목록은 하나 있어야겠죠?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 1973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Gun 1974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 1977
문레이커 Moonraker 1979
포 유어 아이즈 온리 For Your Eyes Only 1981
옥토퍼시 Octopussy 1983
뷰투어킬 A View to a Kill 1985

기회 되시면 책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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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퀀텀 오브 솔러스'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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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연기'라는 말을 못 들어 보신 분들은 없겠죠. 특히나 최근 인기 있는 몇몇 드라마들과 관련해서 '발연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OOO 발연기', 'XXX 발연기'같은 검색어도 자주 보입니다.

(사실 이 '발'에 대응하는 말은 '손'이어야 하는데, 이 말이 성립하려면 '손연기'라고 하면 잘 한다는 뜻이 되어야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기는 얼굴과 입으로 하는 거죠.^)

아무튼 발연기라는 말은 배우에겐 심각한 충격이 될 겁니다. 요즘 몇몇 배우들은 이 '발연기'라는 말에 인터넷 공포증에 걸려서 아예 인터넷의 댓글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이런 말을 안 들어 본 배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용모가 뛰어난 배우일수록,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신인 시절에는 이런 말을 들을 소지가 많이 있죠. 그래서 이런 평가에 쉽게 좌절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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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는 젊은 배우들을 위한 위로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발연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연기' 앞에 '발'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잘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나 요즘 가장 인기 있는 MBC TV 월화 드라마 '에덴의 동쪽'과 KBS 1TV 일일극 '너는 내 운명'에 나오는 젊은 배우들이 이 '발연기'라는 악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연기를 못한다는데 기분 좋을 배우는 없겠지만 당장 혹평이 쏟아진다고 해서 앞길이 구만리같은 신인 연기자들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 힘이 될만한 이야기를 몇가지 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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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실 연기에 대한 평가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출연하는 작품의 작가나 연출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심하게 엇갈리기도 한다.

심지어 '연기 잘 하는 배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메릴 스트립도 "너무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연기를 한다"는 혹평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평가를 한 사람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캐서린 헵번이라면 묵묵히 수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보고 싶은 분은 이 쪽으로)

둘째,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해서 드라마나 영화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흔치는 않지만 반대의 경우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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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방송된 SBS TV '천년지애'에서 각각 백제 공주와 백제 장군의 현신 역으로 나온 성유리와 소지섭의 연기는 지독한 혹평에 시달렸지만 시청률은 30%에 육박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1998년 방송됐던 MBC TV '육남매'에서 엄마 역을 맡은 장미희의 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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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장미희의 감정 과잉 연기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똑 사세요(떡 사세요)'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큰 호응을 얻었다. 굳이 말하자면, 망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혼자만 칭찬받는 것 보다는 성공한 드라마에서 연기가 엉망이라고 욕을 먹는 편이 낫다.

세째, 연기는 하면 할수록 는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연기를 했을 거라는 문근영같은 천재도 있지만 대개는 연기 경력이나 인생의 간접 경험이 연기력을 지배한다. 80년대의 황신혜는 '컴퓨터 미녀'란 찬사를 받았지만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늘 바닥을 달렸다.

하지만 본인은 절대 그런 악평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연기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성장했다. 결국 1996년 유동근과 공연한 불륜 소재의 드라마 MBC TV '애인'의 성공 이후 감히 황신혜에게 연기를 못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론은 어떤 경우라도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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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육남매' 얘기를 하려니 옛날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몇몇 기자들이 MBC 드라마 국장이시던 김지일 국장과 '육남매'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체 그게 무슨 연기냐. 정말 웃음이 나와서 못 보겠다. 전혀 상황의 심각성이 전달되지 않는 연기다'라며 혹평이 쏟아졌죠. 그때 김국장의 한마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송기자, 너무 그러지 마."

"?"

"그래도 한 5년만 지나 봐. 사람들이 이 '육남매'라는 드라마 얘기 할 때, 그때는 다들 '그 왜 육남매라고 기억 나? 왜 장미희가 똑사세요 하던 그 드라마 있잖아'라는 얘기밖에 할 게 없을거야."

...물론 그때라고 동의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정말 탁견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다른 건 사실 기억나는게 전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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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려던 얘기는 위에 다 있습니다. 뭣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황신혜는 일찌기 자신에 대해 연기 논란이 있을 때마다 "내 연기가 정말 이상해?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이상해. 사람들이 왜 내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라며 의욕을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 정확하게 말하면 위에서 말한 '애인'보다 몇해 먼저, '똠방각하'라는 드라마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 황신혜에 대한 연기 논란은 쑥 들어가 버렸죠. 오히려 지금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과연 태희양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할 날이 올지, 아니면 그 전에 뭔가 다른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발연기라는 말이 나오면 불쾌하실 듯한 분들의 발을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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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 아시다시피 박지성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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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주인들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이렇게 묵묵히 고생한 발들을 봐서라도 '발연기'라는 말은 좀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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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카지노 로열'이 끝난 뒤 약 30분 뒤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베스퍼 그린의 죽음 뒤에 감춰진 베일 속 인물 미스터 화이트를 체포해 달아다는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그의 부하들과 숨가쁜 카 액션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문제의 조직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강력하며, 훨씬 정교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손 대는 것마다 모두 죽여버리는 죽음의 천사 본드가 날아간 곳은 아이티. 여기서 본드는 친환경 기업 경영자로 포장된 악당 도미닉 그린(마티유 아말릭)과 복수를 위해 그에게 접근한 카밀(올가 쿠릴렌코)을 만나게 됩니다. 본드는 그린을 뒤쫓지만, 그린은 이미 미국과 영국 정부에게 유력한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 그에게서 손을 떼라는 명령이 내려오지만 본드가 그런 사소한 명령 따위에 얽매일 리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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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야 거대 조직의 이름이 '퀀텀 오브 솔러스'라는 걸 가르쳐 주는 이 작품은 매우 이색적인 본드 영화입니다. 21편 혹은 22편에 달하는(23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 007 시리즈 전편 중에서 앞 편의 내용에서 그대로 이어 시작하는 경우는 이 영화 한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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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007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반대자들로 떠들썩했지만 그가 주연한 '카지노 로열'이 흥행에서 대성공을 기록하면서, 반대의 소리는 쑥 들어갔습니다. 어떤 본드 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와 '카지노 로열'의 방향이 이언 플레밍과 초기 본드 영화의 근원에 다가간 것이라며 옹호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옛날 블로그에서 오래 전에 펼쳐졌던 그 본드 논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얘기가 - 제임스 본드가 왜 제이슨 본을 추종하고 있느냐는 주장을 비롯해서 - 전혀 새롭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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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본드의 2탄, '퀀텀 오브 솔러스'는 액션 영화로서 매우 훌륭합니다. 액션이 좀 지나치게 정신없긴 하지만, 액션에서 액션으로 건너 뛰는 솜씨는 매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너무 자주 권총도 아닌 주먹다짐이 등장하는 점을 포함해 대부분의 액션 시퀀스가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는(굳이 제이슨 본을 다시 들먹이지는 않겠습니다)게 좀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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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두드러진 단점도 있습니다. 두 명의 본드걸이 출연하지만, 예전의 본드걸들에 비해 너무 초라합니다. 특히 본드와 하룻밤을 보낸 뒤 '골드핑거'의 오마주 신에 등장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영국 배우 젬마 아터튼은 여러 모로 실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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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본드걸이라고 할 수 있는 올가 쿠릴렌코 역시 영화 속에서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복수에 눈이 먼 아이큐 25짜리 캐릭터를 원망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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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에서 쿠릴렌코가 연기하는 카밀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본드가 너무 빨리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도록 다리를 거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106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러닝타임이 그렇게 짧았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그리 탄탄하지 않은 플롯을 감안할 때 러닝타임을 줄인 제작진의 과감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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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저는 크레이그가 주도하는 새로운 본드 시리즈에 적대적입니다. 아마도 지금껏 로저 무어가 최고의 본드라고 생각하고, 로저 무어 시절에 성장해 다 큰 뒤에 션 코너리의 본드 영화들을 역사책 보듯 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레이그 옹호자들은 크레이그의 스타일이 초창기 코너리의 스타일('위기일발' 이전까지의 액션형 본드)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이언 플레밍이 묘사한, 해사한 미중년이 아니라 오른쪽 뺨에 상처가 있는 현장 요원형 본드에 더 어울린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기존의 본드와 크레이그 본드의 결정적인 차이는 유머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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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걸 다 떠나서 유머 감각이 없는 본드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퀀텀'에서 본드는 단 한 차례 유머를 구사하더군요. "우리는 교사들인데 로또에 맞았소." 위기에 닥쳤을 때 찡그리고 인상을 쓰는 것이 과연 본드일까요? 여기에는 정말 동의하기 힘듭니다.

옹호자들은 또 말합니다. 새로운 본드는 이제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그 본드가 완성될 때(아마도 다음 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예전의 본드가 갖고 있던 아우라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하지만 지금 본드 제작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그저 돈다발일 뿐입니다.

그 '새로운 본드'라는 것은 이미 '카지노 로열' 때 다 드러났지만, 제이슨 본과 '24'의 잭 바우어를 합쳐 놓은 듯한 잡종 액션 영웅일 뿐입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나오는 본드도 존중할 의미가 있겠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본드는 20여편의 영화를 통해 자리잡은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사실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본드도 있고, 저런 본드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 본드의 모습도 바뀌곤 하는 게 정상이겠죠. 저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레이어 케이크'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주연급 배우의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스티브 맥퀸 팬 중에서 과연 스티브 맥퀸이 007 역으로 나왔을 때 환호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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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플레밍이 가장 강력하게 밀었던 본드는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왔던 전형적인 영국 신사 데이비드 니븐이었습니다. 물론 플레밍도 '위기일발'에서의 코너리를 보고 극찬을 했지만, 이건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코너리가 자신이 니븐에게서 기대한 요소들을 연기해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크레이그가 코너리나 니븐이 보여줬던,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에서도 연미복을 차려 입고 "그래도 아직 담배 필 시간은 있겠지?"라고 말하는 식의 여유와 유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해선 매우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크레이그의 본드 시리즈가 흥행에 줄곧 성공하는 한 이런 기대를 채워줄 또 다른 본드의 출현은 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말 것 같아 더욱 아쉽습니다.

이런 본드는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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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지 않는 이 007은 영화 속에서 새로운 칵테일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스폰서 중 하나인 세계적인 보드카 메이커 스미르노프는 이 칵테일을 '베스퍼'라고 부를 모양입니다. 성분은 15ml Smirnoff Black Vodka, 45ml Gordon’s Gin, 7.5ml Lillet Bl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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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이라고는 하지만 40도짜리 술들의 조합이니 스트레이트를 먹는 거나 비슷하겠군요. 이걸 6잔 마셨으니 67.5 x 6 = 405 ml. 700ml짜리 위스키를(안주도 없이) 반병 이상 마신 셈이었네요. 주당 인정.




p.s.2. 로저 무어 경이 또 한 말씀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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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사진을 찍는 타이밍이 적절치 않아서 몇분이 빠져 있습니다. 사진에 찍힌 발은 8명분, 두분은 먼저 가셨고, 한분은 뭔가 다른 일(폭탄 심지 구매)을 보러 가 계신 동안입니다.

2008년 11월7일 모임에는 저를 포함해서 총 11분이 참가하셨습니다. 서울 모처에서 맥주와 바비큐(두 분은 소주;)를 앞에 놓고 여느 때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그 해결책 같은 건 전혀 나올 턱이 없었습니다.

특기사항은, '왜 항상 모일 때마다 절반은 처음 오시는 분들일까'를 궁금해 했는데, 이번엔 처음 오신 분이 딱 한 분이었다는 것 정도. 아무튼 그 처음 오신 ****님도 알고 보니 거의 매번 오신 ***님과 책상 두 개 차이에 있는 한 직장 동료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번인가 빼고 다 오신 오신 오프 마니아 *****님, 비슷하게 많이 오신 최연소 *******님, 가장 늦게 오신 최장신 ***님,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예쁜 연예인이 누구인지 못 정하신 ****님(책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앉아 있을 때에는 별 말 없다가 노래방에서만 신난 *****님, 고속버스 출발시간을 아쉬워 하며 떠나가신 ***님(심야 우등고속 운행 편수를 늘려달라고 민원이라도 넣으세요), 용인행 좌석에 몸을 실으신 **님, 엉겁결에 금요일 저녁을 함께 보내게 된 *****님(다음번엔 논어 얘기는 제발), 모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익광고: 스핑크스는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무튼 다들 어찌나 입심이 좋으신지 정신 차려 보니 거의 네시간이 지났더군요. 불황 탓인지 협찬 상품의 수준이 날로 떨어지는 것 같아 좀 안타깝기도 했지만, 아무튼 제가 보기엔 상당히 공평한 배분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두개의 제비가 모두 꽝이어서 좌절하신 **님에게 상품을 나눠주신 다른 분들의 따뜻한 배려도 돋보였습니다. 다음번엔 다들 좀 더 나은 실력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찌나 평소에 TV 안 보시는 분들이 많은지).

일찍 가신 분들을 위해 조금만 덧붙이자면: 이날 처음 오신 ****님은 직장생활을 유흥계에서 하신 듯한 엔터테이너 기질이 돋보이셨고, 지난번 모임때 '다 가수야'만 연발하시던 ****님은 그동안의 절치부심이 엿보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컬 트레이닝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님의 일취월장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아무튼 *****님의 뇌관 협찬으로 약간 알딸딸한 분위기에서 2차를 마쳤습니다.

아무튼 이날 모임은 이 정도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폐막. 다음번에는 MT를 시도하자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등장했지만 아무튼 일단 다음 모임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몇번 모이다 보니 직업이며 사회적 관계며 나이를 떠나 그냥 편안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제게는 꽤 편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은 또 노래로 정리.



네. 원래 유흥이라는게 끝도 없고 룰도 없고 지금 순간만 있는거 맞습니다. 다음번에도 그런 정신으로 내가 주인공이다 생각하고 다들 달려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가사가 놀랍지 않습니까?)



p.s. 그리고서 집에 와 보니 신기한 물건 하나가 도착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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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로만 듣던 구글 수표라는 겁니다. 드디어 첫 결실이 등장했군요. 이제부턴 매달 날아올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용기가 마구 솟구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더욱 분발(?)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 되는게 여러분이 잘 되는 겁니다(뭐야 이건).

아무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다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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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라이튼도 과거의 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아직 66세면 한창 나이인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암'이 사인이라니,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20세기 후반 세계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영상물로 만들어졌고, 많은 부분에서 그는 소설가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5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8편은 직접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최소한 원작의 힘 만으로도 그의 성과가 무시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의 상상력이 개발한 새로운 세계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죠.

조상하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으니 당연히 제가 아는 작품들 위주의 얘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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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크라이튼은 하버드와 캠브리지대에서 수학했고, 1969년 하버드 메디컬 스쿨을 거쳐 의학박사(M.D)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대단한 경력이죠. 'E.R'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6피트 9인치(2.06m)의 키는 의사로서는 너무 큰 키였다고 생각했는지, 작가로 변신합니다.

최초로 영상화된 그의 작품은 1971년작(모두 영화 기준) '안드로메다 위기(Andromeda Strain)'입니다. 외계로부터 온 미지의 유기체가 과연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연구하는 미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비상 대책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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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책으로 읽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외계로부터의 이런 위협에까지 대비하는 매뉴얼과 설비를 갖춰 놓고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그것도 1969년이라는 태고적에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은근히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끼어듭니다. (그리고 소설이 나온 1969년은 크라이튼이 메디컬 스쿨을 졸업한 해인데, 의대를 다니면서도 이런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 역시 놀라웠습니다.)

아무튼 무대가 좁은 실험실 하나인데도 전편 내내 긴박감이 넘치게 하는 문체는 일품이었습니다. '안드로메다 위기'는 올해 TV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방송됐더군요.

그 다음으로 제가 기억하는 작품은 1973년작 '웨스트월드(Westworld)'입니다. 70년대의 어느날 2부작으로 나뉘어 한국 TV에서 방송된 적이 있기에 TV 시리즈인줄 알았는데 극장용 영화였더군요. 크라이튼의 극장판 감독 데뷔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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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첨단 로봇 기술을 사용, 관광객이 14세기의 영국 기사도나 서부 개척시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꿈의 성인용 놀이공원 웨스트월드에서 시작됩니다. 관광객들은 자기 마음대로 중세의 기사가 되거나 서부의 총잡이가 되어 살인과 섹스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컴퓨터가 폭주하고, 놀이공원은 살육의 현장으로 돌변합니다.

로보트 총잡이로 나오는 율 브리너의 무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작품.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넋을 잃고 두 시간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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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80년대의 남성 섹스 심벌이었던 톰 셀렉이 주연한 '런어웨이(Runaway, 1984)'입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정식 수입도 되지 않은 1985년 서울 노량진의 한 다방에서였습니다. 당연히 자막도 없는 비디오로 봤지만 충분히 즐길만 한 활기찬 액션 영화였습니다. (나중에 더빙된 TV 방송때 보니 좀 지루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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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선 곧바로 1993년의 '쥬라기 공원'으로 넘어갑니다. 소설이건 영화건 이 작품에 대해선 굳이 더 보탤 말이 없겠죠. 그의 경력의 절정이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 사이 살짝 감춰져 있는 것이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 1993)'이라는 영화입니다. 사실 서구인의 시각으로 동양인을 보는 작품은 동양인들이 보기엔 어색할 때가 많죠. 전자제품 수출로 제2의 진주만 공격을 노리는(?) 일본인들의 음모에 션 코너리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맞서 싸우는, 좀 어정쩡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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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그의 원작 영화화는 미친듯이 진행됩니다. 마이클 더글러스, 데미 무어의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묘한 우화 '폭로(Disclosure, 1994)', 회오리바람(tornado)을 쫓는 과학자들 이야기 '트위스터(Twister, 1996)도 이때 영화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최악의 졸작은 1995년작 '콩고(Congo)'죠.

원작 소설 콩고는 구 콩고 지역의 밀림 속에 감춰진 황금의 사원을 우연히 발견한 탐험대와 유적을 지키는 놀라운 수호자들(고릴라라고 말해도 재미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사이의 대결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스릴러의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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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재미있고 박진감넘치는 원작을 갖고 코미디도 아니고 액션도 아닌, 어정쩡하고 한심한 영화가 나와 버린 거죠. 당부를 하나 하자면, '콩고' 원작을 보신 분은 절대 영화를 보지 마시고, 둘 다 안 본 분은 그냥 소설만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작을 이렇게 망쳐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냉정하게 말해 크라이튼의 영화는 '쥬라기 공원' 1편에서 끝났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시리즈의 2, 3편도 그렇고, 그 뒤에 나온 '13번째 전사(13th Warrior)'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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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역시 권하고 싶은 것은 소설 쪽입니다. 중세 베오울프 전설에 대한 참신하고도 신비로운 해설에다 아랍 문화의 흔적을 섞은 크라이튼의 솜씨가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크라이튼이 직접 나선 영화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죠. 아마도 이 시기의 크라이튼은 'ER'에 너무 힘을 많이 기울인 듯 합니다.

2003년의 '타임라인'은 영화와 원작 모두 기대 이하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타임 슬립 액션이었고, 캐릭터도 진부하기 그지없었으니 당연히 흥행에서도 대패했죠.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웨스트월드'의 리메이크와 '쥬라기 공원' 4편의 제작이 한창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가는 건 당연히 '웨스트월드'쪽이죠. 첨단 CG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더 강력한 영상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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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자나 크라이튼 옹이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셨다니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군요. '타임라인' 이후로는 신작을 보지 않았는데 이제 유작인 셈인 '공포의 제국(State of Fear)이나 읽어 봐야 할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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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무식한 것은 군사문화가 설칠때 학교를 다닌 탓입니다.^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를 원하시는 메일을 보낸 분들께 답장을 보냈습니다.

혹시라도 메일이 도착하지 않은 분들은 여기에 댓글로(비밀댓글로 하셔도 됩니다)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아, 혹시 저번 공지 글을 놓치신 분은 지금이라도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isblog.joins.com/fivecard/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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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가수 인순이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를 왜 열어주지 않느냐고 강력한 항의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대중 가수나 대중 가요를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짙습니다. 특히 클래식 연주자나 성악가들은 대단한 예술가 취급을 하지만 대중 가수들은 딴따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 편견을 생각하면, 인순이의 항변은 심정적으로 강력하게 끌리는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런 편견 외에도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본질적으로, 수준 있는 공연장의 절대 부족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 형식으로 이번 인순이 파문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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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순이는 데뷔 후 30년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대형 가수다. 이미 '열린음악회'를 통해 전 국민에게 대형 무대에서의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이며, 세종문화회관 무대에도 섰다. 그런 가수가 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는 공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B: 왜 하필 오페라하우스인가?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오페라하우스는 글자 그대로 오페라를 위한 공간이다. 극장의 용도가 정해진 공간이다. 세계 유수의 오페라 홀을 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콘서트 홀은 다양하게 개방하지만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와 발레를 위한 전용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뉴욕의 메트 오페라, 런던의 코벤트 가든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디를 가나 오페라 극장은 대단히 제한된 공간이다. 함부로 개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A: 말 잘 했다. 지금 예로 든 극장 중에서 뮤지컬이나 개인 독창회를 위해 개방하는 곳이 있나?

B: ...없는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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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지만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이미 수없이 많이 뮤지컬을 위해서도 개방됐다. 극장의 순수성이라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게다가 조용필이라는 대중가수를 위해 개방한 선례가 있지 않나.

B: 아니 어따 감히 조용필 선생과 인순이를! 대한민국에 조용필은 단 한 사람 뿐이다.

A: 인순이도 한 사람 뿐인데?

B: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을 비교하는 건 무리다. 가수로서 전성기의 위치, 히트 곡의 수, 범 국민적인 인기 등등을 고려할 때 조용필은 인순이에 비교할 수 없는 가수다. 대체 인순이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뭐가 있나. '밤이면 밤마다'? 그 밖에 뭐가 있나. '친구여'나 '거위의 꿈' 역시 자기 노래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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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체 언제부터 오페라극장이 대한민국 가수의 경력 판단기관이 됐나? 그럼 대체 히트곡 몇곡 이상, 앨범 판매량 얼마 이상, 해외 공연 몇회 이상이면 오페라극장 공연 가능 가수인가?

B: 그동안 운영 방침이 약간 정상 궤도에서 어긋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순도 높은 클래식 이벤트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A: 사실 전통이며 품위며 얘기하는 것도 우습다. 한국에 유럽처럼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있나? 팝이건 클래식이건, 한국 사람이 보기엔 모두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고급 문화 취급을 받고, 어떤 것은 싸구려 취급이다. 허위의식이 낳은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B: 그 말을 뒤집으면, 인순이가 반드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허위의식의 소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대중가수라면 어떤 무대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굳이 일반 가수들이 서지 못하는 무대에 서서 자신의 훌륭함을 입증하겠다는 식의 사고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A: 인정한다. 사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무대를 가릴 이유가 없다. 12월에 오는 플라치도 도밍고도 체육관에서 공연하던데...
여담이지만 한국 가수들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을 탐내는 것은 일정 규격 이상이 되면 좀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공연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늘 일본같은 선진국과 비교해서 그렇지만, 한국에서 2, 3천석 이상 되면서 좌석이나 무대가 세종문화회관 수준인 곳이 도대체 몇 군데나 있나. 인순이의 주장 가운데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왜 좋은 공연장은 전부 클래식용이냐. 우리도 좀 좋은 공연장 쓰면 안되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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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그렇긴 하다. 공연 문화의 수준과 공연장 수는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강남이건 강북이건, 으리으리한 대형 건물들이 올라갈 때마다, 저 건물들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씩만 들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두산 연강홀도 좋은 예지만, 다른 회사들도 이런 식으로 자기 이름 붙은 공연장 하나 갖기 운동을 하는게 어떨까.

A: 그렇게 따지면 없는게 한둘인가. 20년째 투덜대고 있는 야구 팬도 있다. 프로야구 20년인데 서울 부산 수원 인천 빼면 여전히 수용인원이 만명 수준이다. 우리도 돔 구장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도대체 남아도는 거라곤, 2002년 월드컵 치르고 남은 초대형 축구전용구장들 뿐이다. K리그 경기때마다 텅텅 비어서 차마 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치지 못하는 구장들 말이다.

B: 정말 한국 가수들 안됐군.

A: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에 어떻게 인순이 좀 잘...

B: 아니, 글쎄, 여태 얘길 했지만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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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백날 얘기해봐야 매일 똑같은 얘기라는게 우울해질 뿐입니다.

내한공연은 소리가 컹컹 울리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하나, 사무-전시용 공간인 코엑스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가수들. 그나마 12월에는 대관이 안 되는 현실. 대체 언제쯤 좋아질까요. 대중 가수라고 해서 노래방 마이크 들고 공연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호텔 디너쇼, 호텔이 음향 좋고 공연하기 좋아서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가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들 하는 거죠. 예술의 전당 아니라도 가수들은 갈 곳 많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강남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왜 다른 곳에도 살 데가 많은데 굳이 강남에 살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인순이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건 안 하건, 대중가수들이 '나도 빨리 저 무대에 서야지'라고 꿈을 키울만한 무대는 따로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부도칸이든, 미국의 슈라인 오디토리엄이든, 영국의 로열 알버트 홀이든 말입니다. 그래야 '클래식 공연만 하는 무대에서 공연했으니 나도 A급 가수'라는 생각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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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현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특히 왕조현을 기억하는 분들이면 1965년생 정도에서 시작해 70년대 초반 생 남자에서 그칠 거리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현재 20대인 분들도 그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참 영화 한 편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습니다. 사실 '화피'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천녀유혼'에 대한 추억을 다시 나눌 일도 없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화피'의 공로를 인정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는 왕조현의 어두운 면을 다뤄 보겠습니다. 만 20세에 '천녀유혼'으로 일약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왕조현은 왜 거기서 더 성장해 종초홍이나 임청하의 위치에까지 오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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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0세의 왕조현. 얼굴은 성숙했지만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를 나이입니다. 당연히 주위의 유혹도 많았겠죠. 그리고 스캔들은 18세때부터 시작됩니다.

홍콩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된 왕조현은 '위사리전기(衛斯理傳奇)'라는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위슬리라는 주인공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베스트셀러 모험소설 시리즈가 처음으로 영화화된 것이었죠. '위사리'란 위슬리의 한자 표기입니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허관걸. 국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성룡이나 주윤발에 비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중화권에서는 이 두 사람에 결코 못지 않은 인기 스타였습니다. 특히 '미스터 부' 시리즈나 '최가박당' 시리즈는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못지 않은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왕조현이 나온 '위사리전기'는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티벳의 포탈라이궁을 무대로 용의 기원과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특이한 발상이 눈길을 끄는,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였죠.




국내에서 '미스터 부'라는 제목으로만 개봉된 시리즈 4편 '마등보표'나 '최가박당'은 홍콩 코미디의 전성기를 열었다 해도 좋은 작품들입니다. 허관걸이 국내에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은 훨씬 뒷날의 '소오강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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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48년생인 허관걸과 67년생인 왕조현은 거의 아버지와 딸의 차이가 나지만 이 허관걸이 바로 왕조현의 첫 스캔들 상대가 됩니다. 그 뒤로도 상대역으로 만나는 연기자마다 모두 왕조현과 연인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분방한 생활을 하죠. 아무리 홍콩 기자들이 뻥이 세기로 유명하다지만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왕조현은 한 인터뷰에서 "촬영장에 나가면 다들 나를 친근한 막내동생처럼 대했다. 그만큼 나와 상대역 배우들은 대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나 역시 스스럼없이 그들을 대하다 보니 가끔 감정이 불쑥불쑥 드러날 때도 있었다"고 술회한 걸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왕조현의 가장 오랜 연인이라면 가수 제진(齊秦, Chyi Chin)입니다.






역시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기 가수 겸 배우인 제진은 1988년부터 10여년간에 걸쳐 왕조현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연인입니다. 홍콩 쇼비즈니스계는 수차에 걸쳐 이들의 결혼 날짜를 보도하지만 결국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제진과 계속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더라면 왕조현의 이미지가 나빠질 일은 없었겠지만 왕조현은 엉뚱하게도 홍콩과 대만 실업계-연예계의 거물인 임건악(林建岳, Lam Kin Ngak)과의 염문설에 휩싸입니다. 임건악은 현재 홍콩 영화계의 최대 배급사로 꼽히는 미디어 아시아(환아)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서울공략' 개봉때 이명박 시장을 만난 임건악.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입니다.



문제는 임건악이 처자식이 있는 중년이었다는 것이죠. 관계는 공공연해졌지만 결국 왕조현은 부자 남자의 첩에 머물고 맙니다.



이런 소문이 왕조현에게는 치명적이었죠. 영화 '청사'가 개봉됐을 때, 홍콩에서는 별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만에서는 관객들이 이 영화의 관람을 보이코트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1994년, 불과 27세의 나이로 왕조현은 첫번째 은퇴선언을 합니다. 1997년 일본 영화 '북경원인'과 일본 드라마 한편에 우정출연한 것 외에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죠. 오랜 칩거에도 좋아진 것은 없었고, 영화 '유원경몽'의 촬영을 마친 뒤에는 두번째 은퇴 선언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은퇴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임건악과 결별하고, 임건악은 대만 출신의 모델 모니카와 정분이 납니다.  결별 이후 애인 제진과의 재결합 소문이 잠시 돌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내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난번에 말했듯 왕조현은 '미려상해-상하이 스토리(2004)'를 촬영하죠. 이 영화로 왕조현은 색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마침내 연기에 눈을 떴다'는 긍정적인 평가였죠.

'미려상해'의 공개 이후 왕조현은 문제의 '뚱보 사진' 공개로 곤욕을 치릅니다.





'차기작에서의 캐릭터를 위해 살을 찌우고 있다' '스트레스성 폭식이다' '장국영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아 먹기만 한다' '평소에도 워낙 많이 먹는 습관이 있었다'는 등 온갖 해석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나서 또 새로운 모습이 공개되죠. 이번엔 다시 멀쩡해진 왕조현입니다. 두달 동안 야채만 먹었다든가 뭐 그런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미려상해' 이후 왕조현은 여전히 밴쿠버(위 사진의 溫哥華)에서 조용히 칩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며 활동이며 완전히 중단한 지 오래. 아직 활동 재개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겠죠.

** 밴쿠버 사시는 분들, 사진 한장 찍어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정도의 스캔들이 배우의 운명을 좌우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왕조현은 임건악과의 연애로 상당히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물론 왕조현 본인이 좀 더 배우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고, 커리어 관리에 관심이 많았다면 일찌감치 이뤄 놓은 아시아 권의 톱스타 자리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겠죠. 장만옥이나 공리, 양자경 같은 선배들은 물론이고 훨씬 어린 장자이가 오늘날 가 있는 위치를 생각하면, 왕조현이 그 자리에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인터넷에 '왕조현의 최근 사진'이라고 돌고 있는 사진이지만 진위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그나마 21세기에 촬영된 그녀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유원경몽'의 예고편입니다.



마무리는 그래도 '천녀유혼'으로 해야겠죠?



아쉽다는 여론에 따라 전설의 목욕통 신을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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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왕조현에 대한 추억 밟기를 마무리합니다. 이번에 저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왕조현도 '화피(Painted Skin)'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더군요. 국내에 '무림객잔'이라고 소개됐던 1992년작 영화의 원제가 '화피지음양법왕(畵皮之陰陽法王)'이었습니다. 왕년의 명감독 호금전이 역시 화피 이야기를 소재로 음양법왕이라는 악의 존재와 싸우는 도사와 서생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겁니다.

(호금전과 임청하의 '신용문객잔'의 영향이겠지만 도대체 이 이야기와 '무림객잔'이란 제목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참...) 왕조현은 여기서도 귀신 역으로 나오고, 정소추와 홍금보가 공연합니다. 설정으로 봐선 별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진짜 끝.




전편입니다. 왕조현의 전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못 보신 분은 이쪽으로.




영화 '화피'에 대한 내용은 이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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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영중인 중국산 판타지 영화 '화피'를 보고도 '천녀유혼'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영화 '천녀유혼'(최근 제작된 드라마 '천녀유혼'이 아닙니다)을 본 적이 없는 사람뿐일 겁니다. 21세기의 감각과 기술이 21년 전의 영화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건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죠.

문화적으로 척박하기 짝이 없었던 80년대, 푸른 색 조명 아래 등장한 한 미녀의 고혹적인 자태는 한국 젊은이들의 삼혼칠백(三魂七魄)을 사정 보지 않고 안다리로 후려 버렸습니다. 개봉관인 아세아극장에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천녀유혼'은 재개봉관으로 흩어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신드롬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미 개봉했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에스케이프 걸'까지 '의개운천'이라는 중국영화풍 제목으로 다시 개봉됐고, 이 영화 이후에는 '귀신같다'는 말이 더 이상 욕이 아니었습니다. 꼴사나운 산발 머리를 한 여자를 가리켜 '귀신같다'던 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예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자를 보고 '귀신같다'고 하게 됐죠.

그게 바로 왕조현의 위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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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는 조이 웡(Joey Wong)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왕조현은 1967년 1월 31일생입니다. 광동어로는 왕조인, 북경어로는 왕쭈샨, 대만식 북경어(북경어와 다른가보죠?) 왕츄션, 복주어로는 옹조헨이라고 불린다는군요. (네. 장난은 그만 치겠습니다.)

대만의 수도 대북에서 태어난 왕조현은 2남2녀의 둘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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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80년대에는 '왕조현이 대만 대표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는 비장함 때문에 영화배우로 변신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왕조현은 어린 시절부터 쿠오 콴 아트스쿨에서 배우수업을 받은 연기자였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농구선수였고, 14세부터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는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5세때 농구화 CF 한 방을 찍고서 농구 선수로서의 미래와는 안녕을 고하게 되죠. 당연합니다. 이런 미녀를 농구계로 돌려보낼만큼 대만 연예계가 무능하지는 않았겠죠.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키였을 겁니다.





그의 프로필에는 키가 1m72로 돼 있지만 실물을 본 사람들은 "최소한 1m80"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릭을 쓰지 않고 그녀와 나란히 연기할 수 있는 남자 배우는 홍콩에는 거의 없었단 얘기죠.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주윤발과 공연한 1986년작 '의개운천(義蓋雲天)'입니다. 처음에는 '에스케이프 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가 몇년 뒤에 한문 제목으로 다시 개봉됐죠.

왜 한문 제목으로 다시 개봉됐을까요. 이유는 당연합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열렸기 때문이고, 한자 제목(그것도 넉자라야 제 맛입니다)을 달아야 진정한 홍콩 영화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성기를 연 작품이라면 당연히 '영웅본색' 연작을 꼽아야겠지만 '천녀유혼'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1987년,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한국 남자들은 모두 이 여자에게 혼이 나갔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8번 본 제가 과장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제 주위에는 10번 이상 본 사람도 즐비합니다) 이 영화는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그 신비로움은 왕조현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어떤 사진을 봐도 '천녀유혼'의 왕조현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특히 이 물통이 나오는 신에서의 아름다움은 정말 숨을 멎게 하죠. 이렇게 흘러갑니다.

아시다시피 '천녀유혼'은 포송령 원작 '요재지이'의 한 토막입니다. '요재지이'는 구우의 '전등신화',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마찬가지로 이곳 저곳의 민담을 소설에 가까운 형식으로 엮은 단편집 형태의 책입니다. 당연히 '천녀유혼' 이야기도 매우 짧습니다.

아내가 있는 영채신이라는 남자가 객지의 절에서 하룻밤 유숙하다가 섭소천이라는 절세미인으로부터 유혹을 받지만 준엄하게 꾸짖고 물리칩니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옆방의 서생들이 죽어 있죠.

어찌어찌해서 영채신은 역시 같은 절에 머물게 된 연적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고, 섭소천이 귀신이란 사실을 알고 유골을 파내 고향으로 돌아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줍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섭소천은 다시 영채신의 곁에 나타나 두 사람이 남매의 연을 맺고, 영채신의 아내가 병들어 죽자 재혼해서 아들 낳고 딸 낳고(...귀신이?) 행복하게 삽니다. 매우 동화적인 해피엔딩입니다.





이게 전부냐구요? 그렇습니다. 천녀(섭소천)를 괴롭히는 대마녀도, 인간세계에 실망해 숲으로 들어온 도사 연적하의 사연도, 흑산대마왕과의 혈투도, 천녀를 안장해 주면 영원히 그녀와 이별해야 하는 영채신의 애절한 사랑도 원작에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모두 서극과 정소동의 창작입니다.

자, '천녀유혼'을 보신 분이라면, 이 짧고 심심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대하고 아름다운, 가슴아픈 이야기로 만들어 낸 장인들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여기에 음악이며, 푸른 색과 붉은 색을 자유자재로 이용한 조명 역시 장인의 솜씨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80년대 홍콩 영화의 르네상스는 짤짤이로 따온 게 아니었던 겁니다.


'영웅본색'이나 마찬가지로 '천녀유혼' 이후 엄청나게 많은 모방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인 '화중선'에는 왕조현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죠. 아무튼 그중 퀄리티를 유지한 작품이었던 '천녀유혼 2 - 인간도'를 제외한 모든 작품은 한마디로 허섭쓰레기에 불과했죠.






최근 TV 시리즈로 재탄생한 천녀유혼 시리즈. 이렇게 장면까지 거의 똑같이 재현해 냈지만 원작의 포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중론입니다.





아무튼 이 영화 한편은 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홍콩 영화의 미적 감각을 지배했고, 또 한편으로는 왕조현이라는 배우의 연기 인생을 정리해 버렸습니다. 이 배우가 그 이후로 어떤 역할을 맡아도 '천녀유혼'의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죠. 물론 이후의 배우 인생을 볼 때 그리 적극적으로 지우려는 노력이 있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천녀유혼' 이전의 '의개운천'에서는 그래도 배우로서의 진지한 모습이 보였다고 할 수 있지만 '도신' 시리즈와 같은 현대물에서 왕조현은 그냥 예쁜 장식 같은 배우일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스타의 자리를 유지하게 해 준 것이 '천녀유혼'의 또 다른 변형이랄 수 있는 '청사' 정도죠.




청사, 결말의 특수효과만 좀 자제했더라도 괜찮은 영화로 기억에 남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장동건이 나왔던 '무극'과도 통하는 영화입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과부(widow가 아니라 발이 엄청 빨랐던 전설의 거인족 이름입니다) 전설에 기반을 두고, 해보다 빨리 달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역시 허무한 '천녀유혼'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물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캐릭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연기력의 부족이었죠. '천녀유혼'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요부 연기가 현대극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관객들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왕조현이 현실로 내려오는 것, 즉 밥을 먹고 똥을 싸는 연기를 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는지도...

물론 저 '우연'은 그런 얘기를 들을 가치도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왕조현의 존재감은 거의 없습니다. 장국영을 좋아하는 동료 가수 역으로 나왔던 매염방의 우수 어린 눈길이 기억에 남을 뿐. 그러고 보니 왕조현을 뺀 두 사람은 고인이 됐군요.





'천녀유혼'은 한국과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히트했고, 왕조현은 일약 아시아의 톱스타가 됩니다. 한국에서 찍은 이 CF는 지금까지도 그 시대를 산 분들의 기억에 생생할 겁니다.



자, 이 CF를 보고 나면 꼭 생각나는 CF가 있죠.



이후 왕조현은 1989년에는 '홍콩에서 온 여인'이라는 일본 드라마에도 출연하죠. 이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상당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스타덤에 오른 것이 장애가 됐습니다. '천녀유혼'이 공개됐을 때 만 20세. 홍콩 진출 이후 8년간 왕조현은 58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매년 7편 이상을 찍은 셈이죠.

이 정도의 작품수를 유지하면서 이미지관리를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당시 홍콩 영화계의 현실이었다고 보는게 좋을 겁니다. 그야말로 그냥 찍어 붓는 형태의 제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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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발목을 잡은 것은 그녀의 사생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홍콩에서의 그녀는 스캔들의 여왕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회에 자세히 하겠습니다) 결국 생활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한때 왕조현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 대중을 경악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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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됩니다.



바로 그 다음편입니다.

왕조현이 왜 배우로 계속 성공하지 못했나, 후일담입니다.




영화 '화피'에 대한 내용은 이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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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로 추정되는 시대. 중국 북서쪽 변방의 한 요새를 지키던 장군 왕생(진곤)이 유목민족과의 전쟁터에서 미녀 소유(주신)을 데려온 이후부터 성 안에서는 심장을 도려낸 시체들이 잇달아 발견됩니다.

왕생의 아내 왕부인(조미)은 소유를 의심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소유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죠. 이때 왕부인을 사모하던 도법의 달인 방용(견자단)이 성으로 돌아오고, 우연히 여우 요괴를 쫓던 항마사 하빙(손려)과 마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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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피(畵皮)'의 원죄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열 중 일곱 사람은 '천녀유혼'을 떠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녀유혼'의 영어 제목이 Chinese Ghost Story라는 데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제목은 영화 한 편의 제목이라기보단 하나의 장르 이름으로 어울릴 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 이후로, '중국의 미녀 귀신'을 소재로 한 아류작들이 끝없이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화피'와 '천녀유혼' 사이에는 일단 똑같은 '요재지이'에서 원작을 뽑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녀유혼'도 마찬가지지만 '화피' 역시 원작의 이야기는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남자가 미녀를 집으로 데려와 첩으로 삼고 희희낙락하는데, 길에서 만난 도사가 "당신 지금 혼이 빠져나가고 있어. 그냥 두면 오래 못 살아"라고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고 나니 정말 건강에 이상이 생기죠. 그러다 우연히 문틈으로 미녀가 가죽을 벗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가죽에다 그림(화장)을 그리고 있는 걸 목격합니다. 뭐 그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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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피' 제작진은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외로운 변방의 장병들과 요괴, 무림의 고수에다 심지어 요괴를 사모하는 다른 요괴(아마도 천년묵은 도마뱀 정도로 추정되는)까지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로 바꿔 놓았습니다.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공간과 요괴의 습격이라는 주제는 고전 공포영화 '더 씽(The Thing)'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가 초반 도입부에서 방용과 하빙이 등장하기까지 약 40분이 지나면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사건이 해결되건, 주인공들이 요괴에게 죽음을 당하건 뭔가 결론이 지어 져야 할 시점이죠. 하지만 이야기는 16부작 드라마처럼 지지부진하게 한참 동안 방황합니다.

정리는 커녕,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동안 '말하자면 주인공'인 왕생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내 패용에 대한 사랑과 소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방황이나 그 방황 과정에서 필연처럼 따라다니는 패용의 오해와 절망이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관객의 짜증 역시 필연처럼 따라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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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불행히도 이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천녀유혼'과 비교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서극-정소동-장국영-왕조현이라는 황금의 멤버들이 만들어낸 역작 '천녀유혼'을 가슴 한 구석에 담은 관객에게 있어 '화피'는 우울하고 조악한 복제품의 운명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나아진 것은 CG 가술 뿐인데, 그나마도 영화에 대한 평가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 관객의 인내심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피'는 중국어권 영화의 위기를 대변해주는 듯한 작품입니다. 지난 2006년 이후 중국 영화 거장들이 줄줄이 내놓는 대작들 중 도대체 이거다 싶은 영화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죠.

풍소강의 '야연'과 '집결호', 진가신의 '명장(投名狀)', 장예모의 '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 정소동의 '연의 황후(江山美人)', 심지어 오우삼의 '적벽대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무협 액션과 결합된 스펙터클만 살아 있을 뿐, 따분하지 않은 영화를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한마디로 내러티브의 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볼거리만 있고 뭘 봤는지 기억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영화들의 범람은 결국 중국 영화의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게 자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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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올림픽 개최로 떵떵거리는 외형을 과시하면서도 속으로는 엉터리 분유 파동으로 갓난아이들이 죽어가는 중국 내정의 현실을 영화계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2005년작인 진개가(첸카이거)의 '무극', 서극의 '칠검하천산', 당계례-성룡-김희선의 '신화'까지 올라가 봐도 한숨만 짙어질 뿐입니다. 뭐가 문제인지, 깊은 반성이 필요할 듯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얘기하기엔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너무도 허술합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두 스타 여배우의 모습 정도군요. 물론 거기에도 차이가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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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생 동갑인데도 조미의 얼굴에서 이제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반면('적벽대전'과 비교해 볼 때 이 영화의 조미는 3년 정도는 더 나이들어 보입니다. 의도된 분장인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주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한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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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런 모습도 미녀 요괴의 기준이 된 이 분과 비교하면 어쩐지 초라해지고 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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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녀 요괴를 사모하는 도마뱀 요괴 소이(小易) 역의 척옥무. 어쩐지 연정훈을 연상시키는 얼굴이라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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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왕조현과 '천녀유혼'의 전설이 그리우신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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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홍조증이란 약간의 감정 변화, 심지어 약간의 온도 차이만 느껴도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변하는 증세를 말합니다. 이것이 일종의 병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갖가지 치료 방법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피부병이나 마찬가지로 '절대 죽을 병은 아니지만 완치도 되지 않는' 증세인 듯 합니다.

안면홍조증에다 외모 컴플렉스가 심각하고 스토커 기질을 보이는 여주인공. 대체 이런 주인공을 누가 만들어 낼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어떻게 이런 주인공을 가지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미쓰 홍당무'는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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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피부과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양미숙(공효진)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여중 영어교사인 미숙은 고교시절 스승이자 이제는 같은 계열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종철(이종혁)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철에게는 아내(방은진)와 미숙의 제자인 딸 종희(서우)가 엄연히 있죠. 게다가 예쁜 얼굴에 백치미 넘치는 동료 교사 유리(황우슬혜)와 종혁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사실까지 알아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처를 받고 '소주 한 잔'으로 쓰라린 속을 달래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강함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즉 '네가 아니면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이 어디 없을 것 같냐'는 생각이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양미숙은 그런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기상천외의 독특한 해결 방식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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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독창적이고 싱싱한 캐릭터들입니다. 양미숙 같은 캐릭터라면 주변이 어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건, 왕따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겁니다. 늘 피해의식과 암울한 자기만의 상상에 갇혀 있고, 늘 기괴한 자기만의 해결 방식을 고집하면서 자기는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는데 왜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의아해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괴짜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거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일상은 엉망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서서히 그 주변을 피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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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숙은 이런 괴짜의 매커니즘을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누구라도 마음속 깊숙한 곳에 조금은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캐릭터에게 마음을 열기도 쉽지만, 또 한편으로 양미숙은 누구도 똑바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바보같은 면을 증폭시킨 캐릭터이기 때문에, 너무 심하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양미숙은 그 사이의 선을 적절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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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의 적'으로 묘사되는 이유리 선생은 언뜻 공주병의 흔적과 함께 '왜 다들 나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식의 백치미가 돋보입니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착한 공주' 스타일이기도 하죠. 이런 캐릭터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진짜 예쁘기 때문이기도 하고(안 예쁜 공주는 매장당하기 십상이죠), 또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선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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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겉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전따(전교 왕따)가 되어 있는 종철의 딸 종희. 자신이 친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깊은 컴플렉스를 안고 있습니다. 아무튼 본질적으로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영혼(요즘 여중생 중에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이가 몇명이나 있을까요?)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위 아이들과는 거리가 생깁니다.

볼수록 내공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인데다 그 역할을 맡은 공효진, 황우슬혜, 서우는 모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듯한 호연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혼연일체라고나 할까요.

이런 인물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나오는 이경미 감독의 솜씨 또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캐릭터에 곧 스토리가 담겨 있고, 스토리가 캐릭터를 다시 보여주는 데 있어 너무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솜씨 때문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정말 비교되는 올해의 영화는 바로 '놈놈놈'입니다. 2차원의 스토리와 2차원의 캐릭터가 그나마 따로 따로 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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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유머감각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만화에서 곧바로 실사영화가 된 듯한 장면들이 관객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미 유명해진 "러시아 어로 라이터를 섹시하게 말해봐!" 장면을 비롯해 영화를 보는 내내 심심함을 느낄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말은 '영화라는 건 메시지가 있어야지!'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만족시킬만 합니다. '왕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하는 건 사회적 패자(loser)들을 다루는 영화에서 너무 자주 등장해 진부하게 느껴지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왕따와 왕따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더군요. 그걸 보여주는 방법도 매우 독창적입니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엄청난 대박은 아니지만 이런 영화를 알아보고 호응하는 관객이 꽤 있다는 것도 한국 영화의 희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한마디로 알이 꽉 찬 꽃게를 쪄서 쪽쪽 빨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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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양미숙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는 코트. 자세히 보면 영화 마지막의 고교시절 단체사진 촬영 장면에서, 종철의 옆에 선 (그리고 아마도 종철이 귀여워했을) 여학생이 입은 코트와 같습니다. 미숙의 뿌리 깊은 열등감을 표현해줍니다.

또 학교 축제 장면에서는 교장선생님의 복장을 그대로 코스프레한 여학생이 교장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얼핏 지나갑니다. 특정 장면에서 유리 선생의 구멍난 원피스도 웃음을 자아내죠. 한마디로 배경 하나에도 제작진이 신경을 썼다는 증거가 역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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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유리 선생 역의 황우슬혜는 연극 경력이 탄탄한 82년생, 종희 역의 서우는 중학생 역이지만 88년생으로 20세입니다. 사실 서우의 '엽기성'은 '옥메와까'라고 불리는 빙과 CF에서 익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고정관념을 깨 주는 CF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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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당연히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이용의 '잊혀진 계절'입니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수 이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입니다. 81년 제5공화국 문화 정책의 야심작인 '국풍 81' 축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이용은 다음해인 82년,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한 조용필의 아성을 깨고 MBC TV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차지했습니다.

사실 그 방송을 직접 본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10대 가수'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샤이니나 원더걸스 같은 teenager 가수들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하지만 90년대 까지만 해도 '10대 가수'라면 당연히 매년 연말 뽑는 MBC 10대 가수를 가리키는 말일 정도로, '10대 가수 가요제'의 중량감은 대단했습니다. 김흥국이 단 한번 10대 가수에 든 것으로 '안녕하세요, 10대 가수 김흥국입니다'라고 몇 해를 버틸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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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시 이용은 데뷔곡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로 누구도 부럽지 않을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가수들이 트로트나 스탠다드 팝 스타일의 보컬을 고수하고 있는 환경에서, 당시만 해도 이렇게 쭉쭉 뻗는 성악적인 발성의 고음 가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당시의 대한민국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이용의 인기가 대단하긴 했지만 82년의 조용필 역시 대단했습니다. 이해 4집을 내놓은 조용필 역시 '못찾겠다 꾀꼬리'와 '기도하는~'이라는 가사로 너무나도 유명한 '비련', '자존심' 등을 히트시키며 정상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이용이 가수왕에 오른 것은 이변으로 여겨질 만 했습니다. 조용필 팬들은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었죠.

(자, 당연히 이런 얘기들은 본론이 아닙니다.)

이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가사나 제목에 날짜가 등장하는 노래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 이 날짜가 기쁜 날인 경우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일단 '잊혀진 계절'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로 시작합니다. 당연히 '10월31일'은 노래에 나오는 두 사람이 헤어진 날입니다. 그 이별의 아픔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에게 10월 말은 잊혀진 계절이 되고 만 겁니다.


서태지의 유명한 '10월 4일' 역시 마찬가지죠.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 떠올라
내가 숨을 멈출 때 너를 떠올리곤 해

내 눈가엔 아련한 시절의
너무나 짧았던 기억 말고는 없는데

넌 몇 년이나 흠뻑 젖어
날 추억케 해

네가 내 곁에 없기에
넌 더 내게 소중해

그렇습니다. 역시 그 소녀도 지금 옆에 없죠. 서태지는 한 인터뷰에서 "중2때 좋아했던 소녀의 기억을 담은 노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비의 최신 앨범에 있는 '9월12일' 역시.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나는 멋지게 이별의 말 뱉었죠
나보다 좋은 사람을 찾아가라고 겉으론 그렇게..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 없다'고 나오는군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9월12일이 헤어진 날이 아니라 옛 애인을 처음 만난 날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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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날짜가 들어가진 않지만 버즈의 '일기'라는 노래도 있죠.

12월 9일 목요일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고
4월에 나눌 인사를 미리 서둘러 하고
세상과도 이별한다고
눈을 감으면 깨어나지 못하면 매일 써오던 일기
내게 전해주라고

혼자 남은 나를 걱정했나요 많이 아파했나요
갚지 못할 그 사랑에 자꾸 눈물이 나죠
사랑했던 날을 모두 더하면 이별보다 길텐데
그댄 벌써 내게 제발 잊으라고만 하네요

4월에 내린 햇살을 만져보고 싶다고
힘없이 눌러쓴 그대 팔에
몇일동안 비가 내려 많이 아파하던 날
멈춰버린 4월 어느날
가지말라고 제발 눈을 뜨라고
이건 장난이라고 이럼 화낼거라고

버즈 멤버들은 아니지만 작사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노래라고도 하는군요. 구체적인 사연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행복한 사연은 아닌게 선명합니다.


날짜가 나오는 노래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곡을 찾자면 아무래도 에픽하이의 '11월1일'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친구가 있었죠 내 숨소리 보다 가깝게 느꼈죠
피아노와 통키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현실보다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오 그 지난 날 남다른 길에 발 딛고
무대위에서 내게 보내던 분홍 빛깔 미소
아직도 그때가 그립다 그땐 사랑과 열정이
독이 될 줄 몰랐으니까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가슴이 타 몇 순간마다
술잔이 술이 차 내 친구가 걱정돼도
말을 못하고 가리워진 길로 사라지는
뒷모습 바라봤죠 그가 떠나가
남긴 상처 보다 깊은 죄가 비라며
내 맘속엔 소나기뿐 너무나 그립다
텅빈 무대끝에 앉아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 쫓던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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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볼 것도 없이 이 날은 소중했던 친구가 떠나간 날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친구란 누구일까요. 이 노래에 원티드의 김재석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교통사고로 숨진 원티드의 전 멤버 서재호를 추모하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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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국 가요계의 두 거목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바로 1987년 11월1일 사망한 유재하와 1990년 11월1일 사망한 김현식이죠. 에픽하이의 타블로도 "어려서부터 존경하던 유재하의 기일이 노래의 제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에선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군요. 한국어가 남아 있는 한, 한국어 가요라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마지막까지 흘러나올 노래들 중 하나일겁니다.




팝 쪽으로 가봐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정도를 제외하면 날짜를 담은 노래 중에 밝은 사연을 담은 노래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비지스의 'First of May'가 생각나는군요.

다 아시겠지만 소년 소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 '멜로디'에 실렸던 노랩니다. 지금도 5월1일이면 신청이 폭주한다는 곡이죠.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The apple tree that grew for you and me,
I watched the apples falling one by one.
And I recall the moment of them all,
The day I kissed your cheek and you were mine.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Do do do do do do do do do...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듣고 있으면 참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어 기억이 달력장에 덮여도 느낌은 그대로 남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과 다시 오지 않을 느낌들이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는 게 가끔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날짜가 제목에 담긴 노래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안타까움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씩 사라져 가겠지만.



p.s. 날짜를 명시하고 있는 좋은 노래들로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별의 12월32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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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이라는 바이러스가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모두 걸립니다.

아무래도 남의 글이니까 휙 보고 만다는 생각이 이 바이러스에게는 너무나 좋은 환경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앞서면 남의 글이 무슨 내용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블로그 월드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옳은 주장이든, 무리한 주장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남이 해 놓은 말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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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블로거 뉴스 베스트 화면에 두 개의 글이 떠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에로영화 후원하는 영진위'(5번)라는 글이고, 또 하나는 '스포츠서울 글에 대한 반론'(9번)이라는 제목입니다.

두 개의 글은 모두 핑크영화제라는 행사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행사는 11월1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시너스 체인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핑크영화가 뭔지 생소한 분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본제 준 포르노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제일 적절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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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반 극장용 영화와 비디오-DVD로 나오는 AV 영화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장르죠. 일본만의 독특한 장르인데 철저한 저예산 체제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일반 극장용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표현이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또 그냥 포르노라고 치부하기에는 작품성이나 수준에 대한 자기검열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영화를 좀 기형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들여온다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핑크영화제도 사회 일각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 관객들을 위한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남자 관객들은 매주 수요일, 그것도 여성을 동반한 경우에만 입장할 수 있다는군요.



아무튼 이런 행사에 대한 비판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을 '원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http://press.sportsseoul.com/471

제목만 보면 '에로영화같은 걸 왜 후원해?'라는 뜻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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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비판 글에 대한 반박이 나왔죠. (편의상 이 글을 '비판글'이라고 부릅니다.)

http://blog.daum.net/songcine81/137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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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글을 모두 읽어 보면, 비판글의 방향이 영 석연찮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비판의 대상이 된 원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비판글의 논조는 "스포츠서울 블로그에 실린 글이 핑크영화제를 비판하고 있다. 핑크영화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인데 그걸 한국의 영진위가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크영화는 그런 후지고 나쁜 영화가 아니다. 게다가 니들이 그걸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라" 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원글을 잠시만 살펴보면,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글은 핑크영화제가 '일본의 저질 에로 영화를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에로 영화는 수많은 제도적-비 제도적 장벽때문에 고사위기에 있는데, 한국에서 찍는다면 오만 난리가 다 날 영화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행사를 영진위가 후원한다는 데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를 들여다 영화제까지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느냐는 비분강개가 담긴 글이죠.

원글의 일부분입니다.

에로영화 제작현장을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의 에로영화는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놓여져 있다. 가장 중요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에로영화다. 영등위의 서슬퍼런 칼날은 유독 에로영화에만 잔혹하다.

이번 핑크영화제에서 예매가 쇄도한다는 '노예- 누가 뭐래도 좋은 나의 이야기'가 에로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가위질을 하고 재심, 삼심을 거쳐도 심의 불가다. 새디즘, 매저키즘 같은 변태성향의 스토리는 에로영화에서 절대 다룰 수 없다.

동성애도 안되고 2대1 성행위도 안된다. 에로영화는 안되는 것 투성이다. 그런 판국에 진정한  하드코어(포르노를 두개로 분류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성행위 묘사가 매우 강한 쪽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소프트코어라고 한다)라는 일본 핑크영화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원글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일본 핑크무비도 예술이랍시고 영화제까지 여는데 더 말해서 뭣하랴. 억울하면 에로영화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덕분에 한국 에로영화의 숨통도 사실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신인 에로배우가 없어 더 이상 찍어댈 것도 없다는 것이 감독들의 하소연이다. 좋겠다. 에로영화가 없어져서. 대신 그 자리에 일본 음란물을 들여와서. 실제로 요즘 케이블TV 등을 보면 일본 핑크영화에서부터 포르노물까지 다양하게 줄창 나오고 있다."


아마 이 부분만 봐도 원글이 어떤 취지인지는 충분히 짐작하실만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비판글은 이렇게 보고고 있습니다.  



"스포츠서울 블로그의 글로 보면 모든 애로 영화들은 벌거벗은 여자들이 남성의 그거(?)나 열심히 빨고 있는 그런 변태적 성향의 영화로만 생각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이 블로그 글에 올린 스틸컷만 보면 딱 그런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한심한 소리이다." (오자나 비문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남의 다리 긁는 비판입니다. 원글은 핑크영화를 매도하지도 않았고, 변태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걸 왜 한국 에로영화에는 허용하지 않느냐'고 분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열심히 '핑크영화가 왜 저질이 아닌가'를 설명하는 건 정말 초점 없는 얘기죠.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튼 '비판'이라는 간판을 걸 때에는,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는 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p.s. 사실 이 분만 갖고 뭐라 할 일은 아니죠. 워낙 이런 풍조가 퍼져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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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그나자나 저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남자는 안된다니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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