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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가 끝난지 2주가 지났습니다. 후속 드라마 '종합병원 2'도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고 있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2008년의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전망입니다. 시청률은 간신히 20%에 턱걸이한 정도였지만, 화제성과 파급력은 시청률 40%대를 넘나드는 드라마 이상이었습니다.

수천개의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졌고, 저도 이 드라마와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 캐릭터의 인기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해괴한 주장들이 발견되더군요. '우리도 강마에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강마에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하는 류의 주장들이었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강마에 리더십'이라고 부를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발견된 일이 있던가요? 실력만 좋으면 자신의 지휘하에 놓인 사람들을 그렇게 공깃돌 놀리듯 다뤄도 되고,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일까요? 문득 20여년 전의 또 다른 신드롬이 생각났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한 모든 시청자들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 말했듯 '비정상적으로', '강마에 리더십'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입니다. 이 점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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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마에의 외인구단', 그렇게 마음에 드시던가요?

 1983년, 대한민국 곳곳의 만화 대본소에서는 비슷한 대화가 수없이 오고 갔다. "'외인구단' 9권 나왔어요?" "네. 나왔어요." "어디 있어요?" "지금 누가 보시는데. 줄 섰어요. 기다리세요."

이현세의 장편 극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30권으로 완간될 때까지 당대 대중문화의 코드를 지배했다. 처음에는 만화에 친숙했던 10대들이, 곧이어 대학생을 거쳐 사회인들까지도 이 만화의 영향권에 흡수돼 버렸다. 1986년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도 원작 마니아들에겐 혹평을 받았지만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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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이었을까. 잠시 기억을 되살려 보자. 한국에도 프로야구라는 것이 생긴지 얼마 안 됐을 즈음, "강해져라, 그럼 아무도 너희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손병호라는 광적인 지도자가 야구계의 루저들을 불러 모은다.

주인공 까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수들은 무인도에서 손 감독의 지휘로 1년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혹독한 훈련을 받아 무적의 야구 전사로 거듭난 뒤, 꼴찌 구단과 단체 계약을 한다. 조건은 후기리그 50전 전승에 1인당 2억원씩(당시 물가로는 서울 시내 아파트 5채 값 정도 된다)의 보너스를 맞바꾸는 것. 물론 구단주는 야구에서 50전 전승이란게 가능할 리 없으니 날로 먹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차근차근 목표를 달성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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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손병호 감독의 메시지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돈 없고 가방끈 짧고 빽 없어서 한탄하던 사람들에게, 유능하고 집념에 불타는 지도자가 나를 단련시켜 최강의 승부사로 거듭 나게 해 준다는 얘기가 더없이 매력적인 판타지로 여겨진 거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얘기 아닌가? 최근 한국 시청자들은 어중이 떠중이 단원들에게 "이기적이 되어라. 남들을 위해 희생해서 얻은 게 뭐냐"고 강변하는 한 곱슬머리 지휘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단원들의 볼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니들은 내가 연주하는 악기일 뿐"이며, 심지어 "니들은 그냥 개고 난 주인이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나 짖으라"고 소리친다. 이런데도 차츰 단원들은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어 간다.

물론 현실에선 어림없는 얘기다. 그래도 실력은 있으니 따르는 거 아니냐고? 강마에는 커녕 카라얀이 다시 살아 온다 해도 이런 막말을 참고 견딜 단원들이 있을 리 없다. 야구 감독이라면 당장 선수들이 태업에 들어간다. 담임 선생님이 이런 식이면 교육청에 신고할 학생들이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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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 전 '외인구단' 분위기 그대로 '강마에 신드롬'이 등장한 건 무슨 이유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즉, 내가 성공하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다. 머리 좋게 낳아 주지도, 엄청난 재산을 물려 주지도 않은 부모 탓이며, 일찌기 재벌 2세와 초등학교 동창이 되지 못한 탓이고, 욕설과 구타를 퍼부어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유능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강마에는 자녀들을 과외로 뺑뺑이 돌리는 학부모들과도 코드가 맞는다.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신경써서 교육했다면 내가 뭐가 되어도 됐을 것"이므로, "우리 애들이 나를 똑같이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혹독한 강훈으로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님이 바로 강마에였다는 걸 알아 줘야 할텐데. 글쎄다.

아무튼 온 세상이 강마에를 동경하는 사람들 판인 걸 보면 세상이 지나치게 빨리 변한다 싶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공포의 외인구단'도 내년에 드라마로 나온다던데, 무대를 입시학원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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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외인구단' 신드롬은 두 가지 면에서 전근대적인 판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옥훈련' 만능주의였죠. '실미도'에서 보듯 '지독하게 굴리면' 다들 '붕붕 날아다닐 수 있다'는 군대식 문화가 온 사회에 확산된 경우였습니다.

지금 들으면 웃어 넘길 일이지만, 고 김동엽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아마추어 시절의 실업 구단 이름입니다) 창단 감독을 맡아 전 선수단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 구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 롯데가 실업야구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의 매스컴은 '스파르타식 훈련'의 미덕을 칭송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겪었던 야구인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세상에 그거보다 무식한 짓이 없었다. 감독이 뛰라는데 안 뛸수도 없고, 그 첫해 이후로 몸이 망가져서 옷 벗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이런 문화의 잔재는 지금도 사회 각계에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대표 축구팀이 졸전 끝에 패하기라도 하면 바로 "군기가 빠졌다. 더 굴려야 한다"는 비난이 쇄도하죠. 어떤 조직이든 '쥐잡듯 잡으면' 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풀어 주면 기어 오르는' 게 세상 이치라는 논리가 거의 항상 득세합니다.

인격이나 자율성 따위를 인정하는 리더는 그날로 '나약하고 조직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딱지가 붙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강마에가 멋진 리더로 착각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욕먹는 사람들이 남들일 때 얘기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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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남 탓'과 자율성의 실종입니다(남 탓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기대는 경향도 강합니다). 내가 지도자는 아니지만, 지도자는 전지전능해야 하고 청렴결백해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완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완성된 스승이나 리더가 나타나 나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용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는 리더나 스승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보통입니다. 내가 바람직한 인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죠. 유능한 리더의 출현을 동경하고, 그 리더의 성공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권위를 인정하는 짓은 죽어도 못한다는 이율배반입니다.

거스 히딩크의 성공을 찬양하고, 히딩크같은 지도자가 다시 없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지도(휘)하는 사람들이 그때 '태극전사들'이 치른 파워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마구 굴림'을 시도라도 할라치면 도끼눈을 뜨는게 인지상정입니다. 어떤 지도자도 스스로 변할 의지가 없는 구성원을 드림팀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동기부여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것도 베이스가 있을 때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 서서히 식어가고 있지만, '강마에에 대한 열광'은 좀 쓴 웃음을 짓게 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요.  



p.s. 좀 생뚱맞기도 하지만 정말 찾아보니 별게 다 있군요.^^



그나자나 까치 오혜성 역으로 윤태영은 너무 건장한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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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 드라마 초창기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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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동방불패' 이전에도 여러번 임청하를 접했지만 그게 임청하인지 몰랐던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촉산'에서 선녀, '폴리스 스토리'에서 기업형 악당 두목 애인 역할로 이미 국내에서 꽤 많은 관객들에게 노출됐었지만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임청하였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는 4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대단히 히트하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지만 사람들은 '폴리스 스토리'하면 장만옥만 기억할 뿐입니다. 1편에서 성룡과 경찰들은 한 기업형 악당을 처벌하기 위해 그의 내연의 여자인 임청하를 검찰측 증인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당연히 보호가 필요하고, 그 보호자 역할을 성룡이 맡죠. 이때부터 이미 성룡의 여자친구 역이었던 장만옥과는 묘한 긴장을 주고 받습니다. (이때의 장만옥을 생각하면, 그 뒤로 장만옥은 상당히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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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 영화 속의 임청하는 단발 커트였습니다.^)



(도입부에서 비탈길의 판자촌 하나를 박살내고 내려오는 카 체이싱 신은 당시로선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이클 베이의 '나쁜 녀석들 2'를 먼저 보고 이 '폴리스 스토리'를 보신 분이 있다면 꽤 충격을 받을 겁니다. '나쁜 녀석들 2' 마지막 부분에도 이를 베낀 것이 분명한 액션 시퀀스가 나오기 때문이죠. 80년대 홍콩 영화, 특히 성룡 영화의 액션은 정교함 뿐만 아니라 규모에서도 대단했습니다.)

 

주윤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86년작 '몽중인'은 '폴리스 스토리'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지만, 임청하의 존재감은 이 쪽이 훨씬 강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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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내에서는 '천녀유혼'의 대성공 이후, 그리고 '화중선' 같은 일련의 모방작들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 이후에 등장했던 작품이라 큰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일부 격렬한 주윤발 팬들에 의해 기억되는 작품이죠. 아무튼 이 작품에서 주윤발과 임청하는 진시황 때 서로 사랑했다가 2000년이 지나 다시 교감하게 되는 비운의 커플을 연기합니다.

80년대의 임청하를 대표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서극 감독의 '도마단(刀馬旦)'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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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하-종초홍-섭천문이라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한 작품에 집결했다는 것도 화제지만, 특히나 임청하는 여기서 또다시 남장을 하고 묘한 중성적 매력을 뽐냅니다. 이 작품에서의 임청하는 남성 관객들보다는 여성 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어찌 보면 다카라즈카 극의 남자 주인공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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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동방불패'의 성공 이후 '동방여신'이라는 아주 해괴한 제목을 달고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합니다. 이미 '도마단'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된지 한참 다음에 말입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도마단'이란 경극에 나오는 여장부 역할을 말합니다.

이 비슷한 시기, 홍콩발로 장국영이 한때 임청하를 짝사랑했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는 풍설이 들려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임청하라는 여배우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죠. 대체 임청하가 누구길래 '영웅본색' '천녀유혼'의 대 스타 장국영이 그렇게 힘들어 한단 말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당대 홍콩 최고의 여배우는 당연히 임청하와 종초홍이었지만, 전편에서도 말했듯 이들을 스타로 만든 멜로드라마는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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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에서 임청하의 스타성이 폭발한 것은 1992년, '동방불패'가 개봉됐을 때의 일입니다. 1990년, '소오강호'의 성공은 홍콩 영화계에 김용 원작 붐과 정통 무협 붐에 불을 지릅니다. 물론 '소오강호'는 어느 정도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속편격인 '동방불패'는 주요 캐릭터들을 이어받았을 뿐 거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원작의 동방불패는 무공을 위해 거세를 하긴 하지만 영호충과 로맨스를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가 전혀 아니었죠.



하지만 영화 제작진은 이 역할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을 더했고, 임청하라는 스타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이미 '도마단'에서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이 갖고 있는 폭발력을 확인한 서극과 정소동에게 임청하를 이용한 동방불패 캐릭터의 구현이라는 시도는 정말 '바로 이거다' 싶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미 촬영 당시 나이 37세, 하지만 놀랍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임청하는 이 작품 하나로 홍콩 영화의 구원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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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위 사진은 안 나오느니만 못했던 '동방불패 2'의 홍보용 사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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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패'의 성공 덕분에 양우생 원작의 '백발마녀전', 김용 원작의 '녹정기'와 '천룡팔부' '동사서독(사조영웅문)', 고룡 원작의 '절대쌍교'가 모두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화되죠. 이들 대부분이 히트하면서, 임청하는 '정통 무협물의 여왕'으로 다시 부각됐고 70년대와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까지, 3 decade에 걸친 스타덤을 구축합니다.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청하가 1인2역을 연기한 '동사서독'을 최근 왕가위 감독이 '동사서독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놨습니다. 이번엔 DVD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 예고편.



그러나 90년대의 임청하는 스스로 성공일로의 경력을 끊어 버립니다. '중경삼림'의 히트 이후, 임청하는 갑작스레 결혼을 발표합니다. 상대는 홍콩의 유명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 그룹의 거물인 형리원(邢李원, 마지막 글자는 火+原, Michael Ying Lee Yuen). 주윤발, 성룡 등 숱한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그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경요가 "임청하가 진정 사랑한 사람은 진한 뿐이었다"고 말했듯, 팬들은 "어쨌든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진한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군요.
나이든 뒤의 진한과 임청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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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임청하


이건 결혼 발표 보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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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리원-임청하 부부

 

물론 형리원과의 결혼은 임청하를 여왕 중의 여왕으로 만들었습니다. 형리원은 한때 에스프리 그룹 지분의 45%를 보유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40대 거부 중 12위에 올랐을 정도의 자산가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4년 동안 가끔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낳고 잘 살아왔습니다.

'에스프리 사모님'이던 시절의 임청하를 만난 사람 중 하나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송승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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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송승헌은 홍콩에서 서기, 막문위와 함께 영화 '버추얼 웨폰(당시에는 '석양천사'라는 한자 제목으로 불렸습니다)'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촬영장으로 임청하가 딸과 함께 구경을 왔다는 겁니다. '가을동화'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말입니다.

 

임청하는 송승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당연히 송승헌도 응했습니다. "어려서 본 '동방불패'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더라"는 증언입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대화가 여의치 않아 "한국 배우들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는군요.

식사를 마칠 무렵 형리원 당시 에스프리 사장이 등장해 인사를 나눴고, 이별이 아쉬웠는지 임청하는 송승헌 일행을 에스프리 본점 매장으로 데리고 가 "선물하고 싶다. 마음대로 골라라. 매장을 다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는 큰 통(?)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송군이 "그럴 수는 없다. 사양하겠다"고 예의를 차리자(물론 브랜드가 에스프리여서 그랬을 수도 있죠^^), 못내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언제든 홍콩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했었답니다.

(불행히도 송군은 이런 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찍은 기념사진은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임청하는 47세. 뭐 이 정도 모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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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의 홍콩 촬영 회고를 통해 이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이 아마 임청하가 한국 미디어의 관심을 끈 사실상 마지막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뒤로 임청하에 대해 들려온 소식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있다는 등 단발성의 잡음 정도였습니다.

임청하는 공식적으로 은퇴 여부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종초홍이 그랬듯 그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을 뿐입니다. 아마 그 자신도 중단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맡아 영화계와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다시 한번 일선에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합니다. 임청하가 일선에 복귀한다면, 그가 시발점이 되어 지난해 남편의 사망으로 거액의 유산 상속자가 돼 화제를 모았던 종초홍이나 소식도 알 수 없는 섭천문 등이 장만옥과 유가령 등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왕년의 전설적 여배우군에 합류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보너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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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노래가 빠지면 안되겠죠? 장국영이 부른 '백발마녀전'의 주제가 '홍안백발'의 MV.



이상입니다.




임청하 지난 이야기를 못 보신 분은 이쪽으로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왕조현편입니다.

전편



후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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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 중 이걸로 진짜 돈(돈이라고 생각되는 액수의 돈)을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해외에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버시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그 정도 되는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블로그에는 두가지 광고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유명한 구글 애드센스고 또 하나는 다음 광고입니다. 매커니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는 클릭을 하면 돈이 되고, 후자는 눈으로 보면 돈이 된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구글에서 난생 처음 수표를 받아 봤다는 얘기는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궁금해서 여기저기 엿보고 다녔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블로그 트래픽은 이 블로그의 1/10 쯤 되는 분들이 한 10배쯤 되는(여기서 뻥이라는게 들통난다)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 찾아보니 '타겟의 중요성'이라는게 부각되더군요. 검색을 쓰든 추천을 쓰든 어떤 토픽에 관심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에 맞춰진 광고가 제공된다는,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블로그는 도대체 돈 될 여지가 없군요. 다이어트법 소개도 없고, 성형수술 후유증 얘기도 없고, 현명한 대출방법에 대한 내용도 없고...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봅니다.

아무튼 결론은 그냥 '포스팅이나 하자'였습니다. 뭐 이걸 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의 심정이 되는 거죠. 그렇다고 광고를 떼 버리거나 하는 과격한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구요.

혹시 기업체 근무하시는 분들 중에, 이 블로그에 내면 적당할 것 같은 광고 아이템 같은 게 있으시면 말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사람은 많이 오니까요.

안정된 수입이 확보되면 회사를 관둬 버릴 수도 있고 뭐 그렇게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혹시 이런 툴을 어디론가 이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냥 오늘 포스팅 안 한 김에 이런 걸로 하루 때우자는 뜻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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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화피' 때문에 왕조현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이번엔 임청하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벌써 14년이나 됐군요. 임청하는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동을 주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몇 차례 컴백설이 흘러나온 적이 있지만, 대개는 임청하의 이혼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곁다리로 나온 소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혼설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컴백 가능성만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임청하를 촬영장으로 다시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나이 54세. 대개의 여배우들이 50대가 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게 정상일 겁니다(간혹 과도한 성형 수술이나 미용 시술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1954년생인 배우들로는 성룡과 존 트래볼타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연배 여배우가 컴백 하건 말건,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임청하는 다르더군요. 대체 그 전설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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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홍콩영화를 대표한 것이 성룡을 중심으로 한 코믹 액션과 '영웅본색'으로 대변되는 느와르의 흐름이었다면, 90년대는 시대극을 표방한 리얼 액션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는 1991년작 '동방불패'와 임청하가 있었죠. 이 시기의 홍콩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임청하와 '동방불패', '백발마녀전', '신용문객잔'과 '동사서독'을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임청하는 그 시기에 이미 30대 후반(37세)의 나이였죠. 그때까지 임청하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많은 한국 팬들은 임청하를 '젊은 날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다 나이 먹어서 뜬 배우' 정도로들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국에선 잘 몰랐지만, 임청하는 70년대부터 이미 중국어권을 통틀어 여배우 중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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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하는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났고, 1972년 경요(瓊瑤) 원작 영화 '창외'에 캐스팅됩니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탓인지 '17세'로 소개되기도 했군요.

 

이때부터 미모가 각광을 받아 일약 대만의 톱스타가 됩니다. 특히 대만 최고의 인기 작가 경요(흔히 '대만의 김수현'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주로 남녀간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 발표하는 족족 메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죠)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될 때 응당 주인공은 임청하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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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요의 소설과 영상 작품들은 대만에서뿐만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동남아 일대는 물론 중국 본토와 해외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이면 어디서나 인기 폭발이었기 때문에 임청하의 스타덤은 일찌감치 국제적이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스무살도 되기 전에 온갖 남자들의 구애로 요란한 스캔들이 시작됩니다.

 

임청하의 오랜 스캔들 중 첫 남자이자 끝까지 가는 남자는 바로 진한(秦漢, 1946년생)입니다. 이 스캔들이 절정에 올랐을 때에는 진상림(秦祥林, 1948년생)과의 삼각관계가 온 중국계 호사가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역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어권에서는 당대의 미남 톱스타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배우들이 잘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에서 흥행이 되는 중국어권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쿵후 액션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멜로드라마형 스타들은 드러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거죠. 아비와 진추하 주연의 '사랑의 스잔나' 같은 경우가 좀 드문 예외였고, 진추하조차도 그 이후의 스타덤을 이어 갈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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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진한, 오른쪽이 진상림.)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만 드라마. 초반 몇분은 그냥 지나치면 얼음여왕님의 앳된 비키니 장면이 나옵니다. 제목은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진한.





임청하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는 세 스타가 공연한 1976년작 '아시일편운(我是一片雲, 역시 경요 원작)'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여기서 승자가 되는 진한은 국내에서는 관금붕 감독,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에 중간 정도 비중으로 얼굴을 비춥니다. 이에 비해 진상림은 국내 팬들이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얼굴은 꽤 알려진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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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성룡, 홍금보와 함께 80년대에 '오복성' '복성고조' '하일복성' 시리즈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다섯 멤버 중 얼굴만 번드르하고 실속은 없는 바로 그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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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네 사람 중 맨 오른쪽이 진상림. 옆의 배우 이름에도 성룡, 홍금보, 종초홍과 함께 진상림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아무튼 국내에 임청하가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1978년작 한-홍콩 합작 '백사전(眞白蛇傳)'인 것으로 보입니다. 흰 뱀이 변한 여자가 인간의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요물을 용서하지 않는 인간들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슬픈 전설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고, 뒷날 왕조현 장만옥 주연의 '청사'와도 사실상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진상림이군요.

임청하가 언제 홍콩으로 본격 진출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977년 쇼 브라더스 영화 '홍루몽'에도 나오는 걸 보면 교류는 일찍부터 있었을 듯 합니다.

이한상 감독의 '홍루몽' 앞 부분입니다. 이때부터 소년 역으로 나오니 임청하의 남장은 정말 역사가 길다고 해야겠죠.




1980년, 당대의 검술 액션 1인자 정소추와 공연한 1980년작 '정인간도(情人看刀)'가 히트할 무렵에는 스타덤의 중심지가 대만에서 홍콩으로 이동해 있습니다. 그리고 1982년, '미니특공대(迷니特攻隊)'로 더 이상 멜로 스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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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1985년 국내에서 '대복성'이란 제목으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본 저로서도 이 영화에 임청하가 무슨 역으로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만들어진지 3년이나 지나 개봉된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원제와 전혀 무관한 '대복성'인 이유는 '오복성'의 히트 때문이라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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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과 왕우, 정소추와 임청하 등 호화 배역진이 출동한 이 영화의 배경은 참으로 황당무계합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열대지방의 전선(?)에서 뭔가 미션을 이행하기 위해 왕우가 인솔하는 특공대가 길을 떠납니다. 특공대원 중 성룡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죠. 네. 리 마빈 주연의 '특공대작전(Dirty Dozen)'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길을 떠난 뒤로 여인족(?)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귀신나오는 집(?)에서 귀신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아무튼 결말은 장렬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영화 보신 분들 있나요? 영상을 보시면 기억이 좀 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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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순서대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국내에서 임청하를 볼 기회는 1978년 개봉된 '백사전', 1983년의 '촉산', 그리고 1985년의 '대복성'과 '폴리스 스토리'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역할은 '촉산'이죠. 물론 이때까지도 '악의 화신이 된 정소추 때문에 번민하는 예쁜 그녀' 정도로만 기억될 뿐이지 임청하라는 이름은 전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중반까지밖에 못 왔는데, 예상대로 너무 길어지는군요. 이번엔 이 정도에서 끊겠습니다. 나머지 얘기들은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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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입니다.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전편



후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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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흥행에서는 날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모습에서 '세련된 영국제 스파이'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영 아쉬운 부분입니다. 비록 왕년의 선배 007들은 이제는 서민용 대출 광고나 상조 광고에 나올 정도로 노장들이 되어 버리셨지만 말입니다. 아랫 글은 '카지노 로열'때 쓰여진 글입니다만, 대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007이 본 시리즈를 모방했다든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서 션 코너리의 냄새를 느낄 수 없다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본 시리즈야말로 결국 고전 007 시리즈에서 많은 부분을 모방했다는 것(엄밀히 따지만 제이슨 본, J.B.라는 이니셜부터 이미 대놓고 베끼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이언 플레밍이 그려내고 있는 원작 소설의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Young 님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건질 건 이언 플레밍과 다니엘 데포의 공통점 정도...? 아무튼 '일요일은 재방송'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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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진짜 007을 돌려다오

007 제임스 본드와 로빈슨 크루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국 작가의 유명한 주인공'이라는 대답은 5점.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적이 있는 역할'이라면 8점 쯤 된다. 10점짜리 대답은 이 둘에다 '전직 첩보원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추가되어야 한다.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 2차대전 당시 진짜 영국 첩보원으로 활약했다는 건 상식이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데포가 영국 첩보기구의 창시자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명예혁명으로 뒤숭숭했던 17세기 말 윌리엄 3세의 편에서 '영국의 적'들과의 첩보전을 주도했다.

(다니엘 데포)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국제 스파이'의 장구한 역사를 짚어 보자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한발 건너 있는 영국은 오래전부터 군사력보다는 외교력과 정보력으로 균형자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런 전통을 대변하듯 007로 대표되는 영국제 스파이들은 깔끔한 의상과 침착하고 우아한 태도,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이미지를 굳혀 왔다. 프랑스인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영국인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느낌 그대로다.

 (이언 플레밍입니다.)



하지만 007 시리즈 최신작 <카지노 로얄>은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새로 발탁된 제임스 본드 역할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우아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사건이 닥치면 일단 몸으로 밀어붙인다. 유머도 모른다. 당연히 플레이보이도 아니다. 오히려 순정을 바치다 당하기도 한다.

이번 변화는 궁여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007 시리즈 제작진이 피어스 브로스넌을 은퇴시킨 이후 캐스팅난에 시달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멜 깁슨, 조지 클루니에서 주드 로를 거쳐 제라드 버틀러까지 이들이 물망에 올렸던 수많은 후보들을 거론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 수많은 진통 끝에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거친 용모의 배우가 선택됐고, 거기 맞춰 새로운 본드 상이 탄생했다.



결국 <카지노 로얄> 자체는 나름대로 완성도있는 작품이 됐지만 골수 007 마니아들로부터는 '진짜 본드를 돌려달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크레이그에게선 션 코너리나 로저 무어의 향취를 전혀 느낄 수 없는데다, 본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감초였던 비밀병기 전문가 Q도, 국장 M의 비서 머니페니도 등장하지 않는 본드 영화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콜리스는 이번 제임스 본드에 대해 "훌륭한 몸은 갖고 있지만 영혼은 없다"고 혹평했다.

일리가 있다.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으면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나 빈 디젤의 <XXX>를 보면 된다. 전반부의 맨몸 추격전이 멋지다면 프랑스 영화 <13구역>이나 <야마카시>를 볼 일이다. 이런 주인공들이 널렸는데 대체 왜 제임스 본드가 후배들의 흉내를 내 가면서 이미지를 바꿔야 할까. 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다. (끝)






피어스 브로스넌이 나온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별 재미는 없습니다. <로마 Rome>에서 섹시한 모습을 과시했던 폴리 워커가 나온다는게 인상적인 정도.


다니엘 데포의 경력이 궁금하신 분은
http://en.wikipedia.org/wiki/Daniel_Defoe 나 콜린 윌슨의 <잔혹>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저는 본드 캐릭터의 원형은 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의 데이비드 니븐입니다. 원작에 그려진대로 어떤 난국을 맞아도 절대 흥분하거나 판단력을 잃지 않고, 정확한 판단으로 태평스럽게 행동하는 영국 신사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낸 명배우였죠.

물론 나중에 등장한 진짜 본드들은 훨씬 더 당당한 체구의 미남들이었지만, 이런 느낌들은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지 라젠비나 티모시 달튼이 장수하지 못한 것은 모두 이런 부분들에서 본드의 분위기를 풍기지 못했기 때문이죠. 특히 늘 긴장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달튼이 007이 된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못지 않은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작자 이언 플레밍 역시 션 코너리가 007 1호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데이비드 니븐이었으면 했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뒷날 션 코너리의 발전을 지켜본 플레밍은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해 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무튼 범인이 뛰면 같이 뛰는 본드 캐릭터의 어디에서 우아함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뛰어라. 네가 뛰어서 도착하는 그곳에서 나는 기다리마...라는 것이 진정한 본드의 자세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본드를 보고 싶은 겁니다.

(앞글의 댓글에도 달았지만 차나 모터사이클, 스키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직접 뛰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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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올드보이'를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어이없어 할만한 얘기였죠.

'올드보이'가 담고 있는 어둡고 음침하며 염세적인 분위기가 윌 스미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과연 어울리기나 한단 말입니까. 윌 스미스가 가발 쓰고 성형수술 하고 특수분장이라도 해서 최민식의 얼굴이 된다는 것 만큼이나 어이없는 얘기라서 많은 국내외 팬들은(국외에도 '올드보이' 마니아들은 많습니다) 격렬하게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그동안 언급을 하지 않던 윌 스미스가 모든 사람을 안심하게 할만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드보이'는 '올드보이'인데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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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chool Rejects라는 한 영화 전문 웹진은 21일, 브라이언 깁슨이라는 필진의 글을 통해 윌 스미스가 자신의 '올드보이'는 박찬욱의 영화를 번안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건 전문을 보셔야 직성이 풀릴 겁니다.

제목: 윌 스미스는 올드보이가 박찬욱 영화의 번안작이 아니라고 말했다

윌 스미스의 '7 파운드(Seven Pounds)'의 레드 카핏 시사회에서 막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이미 두 번이나 오스카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던 이 스타는 벌써부터 오스카 관련 소문이 돌고 있는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시사회 투어 중이다. 레드 카핏 시사회 풍경은 나중에 다른 글로 전하겠지만, 나는 스미스를 멈춰 세우고 몇가지 질문을 던진 뒤 함께 낄낄거리고 웃을 기회가 있었는 얘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게 있어 가장 궁금한 소식은 그가 스필버그의 '올드보이' 판권 획득에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였고, 스미스는 이 뉴스에 대해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는 이 소식을 거의 2주 전에 보도했지만, 그 사이 스미스가 내게 얘기해 줄만한 큰 발전이 있었다. 팬들은 벌써부터 이 리메이크와 스미스의 주연설에 대해 탐탁찮은 얘기들을 주고받아 왔다. 글쎄, 그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는 분명히 스필버그의 '올드보이'에 출연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스미스는 그가 박찬욱의 2003년작 영화를 번안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그럼 대체 어떤 영화일까?

"우리는 지금 그 작업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의 번안은 아니다. 우리의 영화는 바로 '원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원작 역할을 한 만화 말이다. 영화의 번안이 아니다" 라고 스미스는 말했다.

분명히 스필버그는 영화 '올드보이'가 아니라 원작 만화 '올드보이'의 판권을 구입한 것이다. 아마도 다음 질문은 "대체 그게 무슨 의미야?"라는 것일게다. 팬들이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무도 미국 관객들을 위해 (박찬욱의 영화보다) 더 나은 '올드보이'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스필버그가 원작 만화를 각색하려는 것이지 박찬욱의 걸작이 갖고 있는 뛰어난 점을 베끼려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건 또 스필버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영화가 될 것임을 뜻하지만, 사실 원작 만화와 박찬욱의 영화도 아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들어올 때까지 관심을 기울이시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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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스미스와 스필버그는 영화 '올드보이'의 원작이 됐던 일본 만화의 판권을 구입해 그걸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만든다는 얘깁니다. 미네기시-쓰치야의 만화 '올드보이'를 영화화한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기사 원문입니다.

FSR Exclusive
Will Smith Says Oldboy Won’t be Adaptation of Chan-wook Park’s Film
Posted by Brian C. Gibson (
brian@filmschoolrejects.com) on November 21, 2008

I just came home from a red carpet premier of Will Smith’s film Seven Pounds. The star is on a tour of premiers promoting the film which is starting to create some major Oscar buzz for the already twice-nominated superstar. I’ll have a full red carpet report later, but first, I was able to stop Smith for a few questions, and a couple laughs. One of the hottest topics for me is Smith’s involvement in Steven Spielberg’s acquisition of the rights for Oldboy, and the actor didn’t disappoint on the news front.

We reported on this news almost two weeks ago, but there is a big development from what the star was able to tell me. Fans have already made themselves heard about their distaste for Oldboy being remade and Smith being the man rumored to take the lead. Well, we heard it straight from the star’s mouth that he is definitely starring in Steven Spielberg’s Oldboy…with a twist. Smith wanted to make a very strong point that this is not an adaptation of Chan-wook Park’s 2003 film. So what is it an adaptation of?

"We’re looking at that right now. Not the film though, it’s the original source material. There’s the original comics of ‘Oldboy’ that they made the first film from. And that’s what we’re working from, not an adaptation of the film…,” said Smith.

Apparently Spielberg wasn’t acquiring the rights to the film Oldboy, he was acquiring the rights to the original source material of the graphic novel ‘Oldboy.’ I guess the next question would be - what does this mean? This means that fans can rest a bit easier knowing that no one is trying to make a better Oldboy for an American audience. This means that Spielberg is free to truly adapt the source material and not try and copycat the brilliance of Park’s masterpiece. This also means that it will likely be an entirely different film, however, but the graphic novel is still very close to Park’s movie. So stay tuned as more details com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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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기자가 쓴 글은 아닙니다.^^ 저 FSR이라는 사이트의 성격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블로그와 웹진의 중간 정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필진이 10여명이나 되는 제법 큰 사이트로군요. 아무튼 저 글을 받아 쓴 뉴스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뉴스들의 논조는 거의 다 일치합니다. '다행이다. 좋은 영화 하나 망치나 걱정했는데. 스필버그, 잘 생각했다.'

그만큼 영화 마니아들이 '올드보이'를 높이 평가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을 걱정한 겁니다. 리메이크설이 한창일 때 해외 네티즌 반응 중에 이런 게 있더군요.

올드보이는 걸작이야. 너 바보구나. 예를 들어서, 스필버그가 만들고 윌 스미스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근친상간 얘기가 다뤄질 리가 없잖아! 스필버그는 아마 망치를 워키토키로 바꿔 버릴 거야.

Oldboy is a classic, you are a moron..For one...a movie made by Speilberg and Starring Will Smith..isnt' going to be about incest...Is Spileberg will change the hammer to a walkie-tal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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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면의 망치...;;;

물론 원작 만화와 영화 '올드보이'가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다는 점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어쨌든 '올드보이'의 핵심인 15년간의 감금생활 같은 건 그대로 남겠죠), 만화에 등장하지 않는 박찬욱판 '올드보이'의 특징들은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제외될 거란 얘깁니다. 어찌 보면 스필버그와 박찬욱의 '올드보이' 각색 대결이 되겠군요. 은근히 '내 작품 망가질까봐' 걱정하셨다는 박찬욱 감독님(전해 들은 얘깁니다), 이젠 마음 편히 보셔도 될 듯 합니다.

혹시 "뭐야, 그럼 한국영화의 수출이 아닌 거야?"라고 실망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스필버그가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한다면 제대로 만들 리가 없잖습니까. (대체 어떤 괴작을 만들지 궁금하기도하지만) 그렇게 만들려면 안 만드는게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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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국에서 시사중이라는 '7파운드'는 윌 스미스가 일곱 사람의 인생을 바꿀 운명을 갖고 있는 세무서 직원으로 출연하는 영화라고 합니다. 로자리오 도슨, 우디 해럴슨과 함께 13세 소년 코너 크루즈가 윌 스미스의 아역으로 출연한다는군요.

성이 크루즈라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입양한 흑인 소년입니다. 윌 스미스가 일찌감치 자기 역으로 찍었다는 후문이니 나중에 배우로 대성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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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가문의 영광', '너는 내 운명',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 제목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재탕 제목이라는 거죠. 왕년에 히트한 제목을 그대로 갖고 오는 작품들을 보면 그렇게 새로운 제목 짓기가 힘든가 하는 안쓰러움이 앞섭니다.

(박진표 감독의 영화 '너는 내 운명'도 사실은 재탕 제목입니다. 70년대 한국 영화 중에 이미 '너는 내 운명'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있었죠.)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썼던 제목 또 쓰기' 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이미 있던 제목을 꼭 가져 와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게는 이런 제목 재활용은 창의성의 결여를 예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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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제목은 어딘가 내용과 겉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Roma, Citta Aperta = Open City)'는 2차대전 종전 직전 나치의 지배하에 있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 '무방비도시'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도시가 무방비라는 것인지 좀 아리송합니다. 소매치기 범죄로부터 무방비라는 것인지... (아마 그렇겠군요)

일본에서 활개치고 있던 미녀 소매치기 백장미(손예진)는 법망에 쫓기게 되자 귀국해 다시 조직을 꾸립니다. 한편 엘리트 형사 조대영(김명민)은 오연수 반장(손병호)가 다시 부임해 소매치기 조직 검거를 계획하자 적극적으로 반항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전설적인 여자 소매치기 강찬옥(김해숙)이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하죠.




사실 '무방비도시'는 전혀 스토리의 진행이 궁금한 영화가 아닙니다. 일단 예고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고편만 봐도 이 영화의 마지막 10%를 제외한 모두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약간 감각이 발달한 분들은 그 10%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건 넘어갑니다).

게다가 백장미와 조대영 형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고대 소설의 상투성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백장미가 어설프게 위기에 몰리고, 조대영이 멋진 주먹 솜씨로 미녀를 구출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싹튼다는 건 뭔가 좀 더 고민했어야 하는 문제였다는 생각입니다.





형사와 범죄자의 위험한 관계. 게다가 한시간 정도 지나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백장미가 아니라 강찬옥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게 됩니다. 비교적 뚜렷한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강찬옥에 비해 백장미는 너무도 속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백장미가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을 갖추려면, 천인공노할 팜므 파탈인 백장미도 뭔가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 예를 들면 조대영이나 강찬옥에게 하려는 일에 대해 약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해야 - 하는데 이 캐릭터는 전혀 후회라는 걸 모릅니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에 살인을 저지르고 벌벌 떨 때에는 너무도 필요 이상으로 벌벌 떨기만 하죠. 이건 아무래도 대본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장미라는 캐릭터에게 어디까지 주도권을 줘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됐다는 뜻도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방비도시'가 완전히 한심한 영화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꽤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캐스팅입니다.




사실 손예진은 할만큼 했습니다. 그리 재미없는 캐릭터를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것은 손예진의 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상을 줘도 좋을 정도입니다.

물론 손예진의 연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악당 여두목 보다는 일반 관객들이 생각하는 '약간 과장된 여자 보스'의 모습에 더 가깝겠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 캐릭터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은 '민완 형사가 넘어갈 정도로 그녀가 유혹적인가' 인데, 손예진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네. 충분합니다.





김명민도 심심하긴 합니다만 자기 몫을 다 합니다. 애당초 이 캐릭터에서 이 이상을 뽑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상기 감독도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김명민-손예진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갑자기 영화는 김명민-김해숙의 구슬픈 모자 드라마가 되어 버립니다.

이건 아마도 김해숙의 열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숙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고 아마도 상당히 많은 관객들로부터는 눈물도 뽑아냈을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김해숙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소 무책임한 엔딩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상기 감독이 생각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액션일 겁니다. 첫 장면의 조폭단 검거 장면이나, 김명민이 수시로 보여주는 액션은 상당히 좋습니다. 심지호를 비롯해 '프랑켄' 김준배, '주무치' 박성웅 등의 호흡이 제대로죠.

솔직히 액션만으로도 '무방비도시'는 평균점 이상을 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액션만 갖고 한 영화가 승부를 볼 수 있다면 이연걸이나 성룡의 영화가 가끔씩 흥행에 실패하는 이유가 뭘까요.





손예진의 패거리나,




김준배(영화 '강적'에서 공포의 대상 강철민 역으로 주목을 확 받았죠)




그리고 주무치 박성웅의 제 모습.


여기에 1인2역을 한 김병옥까지(그런데 왜 1인2역을 굳이 했는지 모르겠군요) 배우들은 각기 자기 몫을 해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플롯과 연출의 약점을 건져 올리지는 못합니다.

현재의 상태로도 '무방비도시'는 꽤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진행은 빠르고 액션은 군더더기가 없죠. 하지만 역시 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마무리 솜씨에 실망을 표현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껏 펼쳐진 이야기를 하나로 쥐고 홱 틀어 올리는 솜씨, 그리고 수백번 되풀이된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로 들리게 하는 기술을 가다듬지 않으면 이상기 감독은 당분간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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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완성되기 전부터 '뭔가 괴물같은 영화가 하나 나올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나홍진이라는 신인 감독은 '어쩌면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고, 두 명의 주연 배우 역시 역량이 입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윤석은 '타짜'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 같은 선에 설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고, 하정우 역시 뭔가 터뜨리고 말 재목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죠. 그래서 정작 영화의 세부 사항(잔혹한 스릴러라는 것 외에는)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대가 꽤 영글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원래 큰 법. 하지만 진짜 물건은 그런 큰 기대를 넘는 파도를 만듭니다. 저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2008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추격자'는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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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마사지 업주로 변신한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잇달아 일어나는 휘하 마사지사들의 실종으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는 어느날 애 딸린 미진(서영희)을 억지로 한 손님에게 내보낸 뒤에 문제의 휴대폰 번호가 수상하다는 걸 깨닫죠. 하지만 미진은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맙니다.

'추격자'는 잘 알려진대로 출장마사지사 등 유흥업계 종사 여성들을 주로 살해했던 유영철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누가 살인마인지를 추격하는 두뇌 게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범인의 정체는 시작하고 20분 이내에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죠. 하지만 게임은 거기서 시작되고, 나홍진 감독은 두 시간 내내 관객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듭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가리켜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연출 데뷔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장편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감독의 작품으로서 이보다 훌륭한 영화는 없었다는 뜻이죠.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는 그런 칭찬을 받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미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 만큼, 칭찬은 간략하게 보태고자 합니다. 영화 진행상 중요한 대부분의 장면들이 밤의 골목길이나 실내의 침침한 화면인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의도한 것, 즉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콕콕 찌르듯 전달됩니다. 이건 감독이 화면 어디를 어둡게, 어디를 밝게 해야 할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는 뜻이죠.

화면의 물림 또한 거의 완벽합니다. 갑자기 밝아졌다 어두워진다거나, 중견 감독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화면 톤의 갑작스런 변화도 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미 편집 단계에서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장면을 모두 갖고 있지 않고선 확보하기 힘든 완성도입니다.

(물론 현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완성도는 감독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엄청난 강도의 재촬영 -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죽을 때까지 다시 찍을 수 있는 끈기와 스태프를 설득해내는 리더십의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배우들 또한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정우는 상대적으로 인물의 설정이 쉬운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은 데 비해 김윤석은 다소 복잡한 엄중호라는 인물을 너무도 완벽하게 관객에게 납득시킨 공로가 있어 더욱 칭찬받을 만 합니다.

엄중호는 지나치게 악하지도, 또 지나치게 선하지도 않은 인물입니다. 그저 어떻게든 먹고 살아 보려는 인물이고 초반에는 어쨌든 자기가 본 손해를 만회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지만, 영화 후반이 되면 정의의 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원에 누워 있는 미진의 딸을 위해 어떻게든 미진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실천으로 옮길 양심은 갖고 있는 사람이죠.

미진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도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미친년, 차라리 사우디라고 하지"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해 대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뼈속까지 썩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보통이거나 보통만 못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의 메시지는 황정민이 연기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관객이 느끼는 설득력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튼 미진의 어린 딸을 이용한 엄중호의 동기 부여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흔들림과 엄중호의 변화는 김윤석의 놀라운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자기 일처럼 전달되죠.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해묵은 궁금증 하나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경찰 부분에 대한 놀라운 디테일에 대해 "정말 리얼하다"며 감탄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들 중 실제로 이 영화가 '리얼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진짜 경찰 관계자이거나, 경찰 가족이거나, 하다못해 경찰서 출입기자이거나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드는 범법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체 어떻게 이 영화가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역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름끼치도록 리얼하다"는 찬사를 받아냈던 오마하 비치 상륙 장면에서부터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관총에 맞아 병사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관객들 중 0.001%도 안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화가 구현해내는 전쟁을 '리얼하다'고 느낍니다.

실제 있었던 전쟁이고, 그 참상을 전해듣거나 다큐멘터리로 봤기 때문일까요. 가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리얼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에 나오는 우주해병대와 에일리언의 격전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정리해서 말하자면, 많은 경우 관객들이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리얼리티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건 연출자와 배우들의 교묘한 사기일 뿐이죠. 즉 '그럴 듯 한 것'과 '실제로 그런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이 펼치는 엉성한 법정 변론 장면에 대해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추격자'에서도 관객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의 모습에서 리얼함을 느끼는 것은 '왠지 그럴 것 같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많은 관객들이 알기 때문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격자'의 대본과 설정은 매우 성공적이란 얘기가 되겠죠.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추격자'는 순식간에 끝나 버립니다. 러닝 타임은 두시간이 넘지만 너무도 짧게 느껴지게 말이죠. 수많은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 스릴러의 수준이 낮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건 정말 기적으로 여길만 합니다.



p.s. 두번이나 시도한 끝에 영화를 봤습니다. 스타라고는 없는데다 개봉 직전까지 인지도도 극히 낮았던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건 더욱 더 놀라운 일입니다. 평단과 언론의 집중적인 호평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기본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말이 되는' 영화의 흥행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이 대본 단계에서의 완성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군요.




p.s.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혹시 잔혹한 장면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좀 주의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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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 없게 보았어야 정상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저는 원신연 감독의 전작 '구타유발자'를 매우 불쾌하게 봤습니다. 게다가 한국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김윤진의 연기력 또한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연기를 볼 때면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김혜영씨의 목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즉 '기본적으로 오버하는 목소리'라는 생각이죠.

뭘 해도 자연스럽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셰익스피어 극을 대극장에서 공연한다거나 할 때에는 이런 과장된 스타일의 연기 방식이 반드시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배우의 털구멍까지 다 보여주는 HDTV나 스크린에서 이런 배우는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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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긍정적인 자세로 돌아서게 됐습니다. 최소한 영화의 80%까지는 극찬을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는 한국 영화지만 그 가운데서 예외 취급을 받아 온 미스터리 스릴러 - 물론 '범죄의 재구성'같은 극소소의 예외가 있긴 합니다만 - 장르에서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온 건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줄거리. 승소율 99%라는 명 변호사 유지연(바로 김윤진입니다)은 어느날 운동회 판에서 딸을 잃어버립니다. 평범한 유괴가 아니죠. 범인은 돈 대신 사형이 확실시되는 흉악범을 풀어 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 유지연은 어린시절의 친구인 비리 경찰 김형사(박희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적해나갑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죠. 어쩌면 재판을 기다리는 범인이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우선 칭찬할 것은 영화의 한 80%지점까지 쉴새없이 관객들을 독려해서 목적지로 몰고 가는 원감독의 힘입니다. 물론 김형사가 지나치게 유능하다는 점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하나 하나 드러나는 증거들은 매우 흥미롭고, 귀찮은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낸 결단력도 좋았습니다.

저는 유괴 사실 확인 - (경찰에 신고 - 경찰 출동 - 범인의 전화 - 돈가방 전달 게임) - 범인의 비웃음과 진짜 목적 공개에 이르는 과정에서 (   ) 안의 부분을 거의 1분 내외에 압축한 부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법정 장면에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 제작진은 한국의 형사 재판을 단 한번도 방청해보지 않았거나,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묘사에 아무런 열의가 없는 사람들일겁니다. 하긴 관객 중에도 진짜 법정에 가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 미국 법정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들처럼 대강 그려도 뭐랄 사람이 없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법정에서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튀는 배심원 설득 경쟁 같은 것은 절대 볼 수 없습니다. 한국 법정은 방청객을 위한 쇼 무대가 아니라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인 판사 사이의 숙의가 이뤄지는 곳이죠. 물론 이때문에 사실대로 그리면 절대 재미있지 않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중학교 2학년만 되어도 충분히 알만한 내용의 '국민 기초 법률 상식'-이를테면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을 마치 새로운 관점인 양 들고 나와 변론을 풀어가는 유지연 변호사의 역량을 보면 도대체 저 변호사가 어떻게 99%의 승률을... 이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배운 관객'이라면 충분히 흥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오광록의 증거 제시 장면은 '말 안 되기'의 극치입니다. 한국 법정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무죄로 풀려날 사람도 사형 판결 날 겁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 중에는 '지나치게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와 설정이 비슷한 작품은 한둘이 아닙니다. 조니 뎁 주연의 1995년작 '닉 오브 타임'은 범죄자들이 조니 뎁의 딸을 납치한 뒤 풀어주는 대가로 유력자를 암살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뭐 더 비슷한 영화도 있죠.



'주어러'는 악의 화신인 알렉 볼드윈이 유명 마피아 보스 재판의 배심원이 된 데미 무어에게 "안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해 보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아들을 데려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무어의 설득력과 리더십이 불을 뿜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런 줄거리의 유사성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세븐 데이즈'에선 '세븐'의 냄새가 풍깁니다. 어두침침한 실내, 음침한 메시지 전달, 소포로 전달되는 절단된(?) 물건, 그리고 바람부는 갈대밭에서 이뤄지는 마지막 시퀀스는 이 영화가 '세븐'에 대한 오마주라는 걸 내놓고 보여줍니다.

뭐 잘된 작품을 따라하는 걸 흠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영화가 자기만의 독특한 색채로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죠. 나쁘지 않습니다.




이 분의 연기는 처음에 얘기한대로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특히 앞 부분에 딸과 욕조에서 노는 장면 같은 데서는 어떻게 해도 엄마와 딸의 그림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냥 '엄마와 딸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정도.





반면 이 영화 최고의 소득은 이 분입니다. 이름조차도 생소했던 배우가 이제는 한국 영화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면 좀 과장일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 영화에서의 박희순은 훌륭했습니다. 내년쯤 이런 저런 영화제에서 조연상 후보로 거론될 수도 있겠더군요.

(어쩐지 NRG의 이성진을 연상시키는 용모.^^)






그리고 흑개 형님과 현무가 나와서 이건 뭔가 태왕세븐기...^^

아무튼 결론적으로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지나친 지식(^^)'만 없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원신연 감독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살짝 생기더군요. '구타유발자'로 입은 내상이 충분히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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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우생순'이 받았습니다. 다소 의외이기도 했지만 워낙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는 별로 이의를 달 생각이 없습니다.

개봉된지 좀 지난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그 뒤로 또 한번 올림픽이 있었고, 또 한번 한국 여자 핸드볼의 선전을 성원하시는 분들이 있었죠. 하지만 예상대로 핸드볼은 역시 그때만 관심을 끌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마음만 갖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영화 개봉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위해 리뷰를 리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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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올림픽 때가 되면 몇몇 종목에 갑자기 관심이 생기곤 하죠. 평소에 양궁 선수권대회를 중계하는데 그걸 보고 있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필드하키도, 유도도, 핸드볼도 마찬가집니다. 오죽하면 '한데볼'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혹자는 "세계적인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한국에게 금메달 딸 기회가 오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인기 종목'인 육상 단거리나 축구, 남자 농구라면 한국이 메달권에 들 수 있겠느냐는 독설인데 뭐 일면 맞는 부분도 있고, 진정으로 팬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는 종목이라면 평소 관객석이 차지 않는 것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넘어 스포츠맨들의 투혼이 때로 드라마틱한 감동의 순간을 낳는 것은 승부의 순간에서 아주 단순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이 그 순간 눈을 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종목이든 '선수들'이란 스포츠맨십이고 나발이고 자신의 영달과 복리를 위해서만 뛰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심사 비틀린 사람들(네. 주로 기자중에 많습니다^)이더라도 어느 한 순간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후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결승에서 덴마크를 만난 한국 선수단은 두 차례나 연장까지 가는 대 접전 끝에 석연찮은 판정 등으로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지만 대단한 투혼으로 국민의 성원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영화 '우생순'은 핸드볼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 해체되는 날의 광경부터 시작됩니다. 핸드볼계의 스타플레이어 미숙(문소리)는 같은 선수 출신 남편이 사업에 실패, 쫓겨다니는 상황이라 생계를 위해 선수생활을 마치고 대형 마트의 판매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한편 미숙의 평생 라이벌이자 일본에서 선수 겸 감독 생활을 하고 있는 혜경(김정은)은 대표팀 감독 대행 자리를 맡아 귀국하죠. 혜경은 전력 보강을 위해 미숙을 합류시키려다 팀 해체로 놀고 있던 정란(김지영)까지 합류시키죠. 하지만 이들에다 골키퍼 수희(조은지)를 포함한 고참 4인방은 후배들과의 호흡이 영 껄끄럽고 협회는 혜경에게 남자인 안감독(엄태웅)에게 지휘권을 넘기자고 얘기합니다.




뭐 영화와 실제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죠. 아무튼 아테네 대표팀이 실제로 팀 해체 때문에 다른 일 하고 있던 선수들을 데려온 건 아닙니다(아무리 국내 선수층이 엷어도 그런 일까지야...). 당시 세대 교체를 시도하다가 팀 전력의 약화로 92년, 96년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던 고참 선수들을 다시 불러 모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들 '아줌마 군단'은 다들 일본 실업 팀 등에서 잘 나가고 있던 선수들입니다.

보다 완벽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이들이 거저 은메달을 딴 건 아닙니다. 그리고 역시 여자인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를 그저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로 그치게 하기 보다는 이 사회 안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비추는 창문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면 이혼 경력 때문에 국가대표 감독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혜경이나 아이 봐 줄 사람이 없어 훈련장에 아들을 데려오는 미숙, 그리고 성적을 내기 위해 생리 주기까지 조절하다가 불임으로 고생하게 된 정란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렇죠.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주가 되면 지나치게 이야기가 빡빡해 지겠지만 임 감독의 솜씨는 그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반박의 기세를 높입니다. 항상 여자들이 많은 조직에서는 남자들보다 훨씬 거센 반목과 편가르기, 그리고 세대간의 부조화가 술자리의 안주로 등장하죠. 하지만 '우생순'에서는 이런 현상을 대표팀이 극복해가는 과정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경기와 훈련 장면을 최소화한 것이 감독의 공일지, 제작사의 공일지, 아니면 유능한 편집자의 공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대단히 좋은 선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출연자들이 남자건 여자건, 스포츠 영화에서 감독은 배우들이 일정 수준 이상 전문 선수들처럼 보일 수 있는 기량을 익히길 기대합니다. 왕년의 히트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도 선수들은 '연기 연습보다 농구 연습이 몇배 힘들었다'며 지칠대로 지친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우생순'에서도 배우들은 '선수가 다 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죠.




사실 이런 부분은 스포츠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직접 보여주는 기량이 관객들의 만족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이 대단히 뛰어난 농구 기량을 보인 것도 아니고, '아이싱'의 장동건이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마지막 승부'에서의 농구 선수보다 심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승부'는 크게 성공하고 '아이싱'은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운동선수로서의 기량이 드라마의 재미를 결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배우들이 선수 뺨치는 실력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하지만 어차피 거기엔 한계가 있고, 감독의 역량은 그런 한계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살짝 극복할 수 있는지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론 어떤 스포츠 영화든 진짜 마이클 조던이 주연으로 나서지 않는 한, 배우들의 경기장면은 짧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생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스포츠 영화, 그리고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이것도 정말일까요?^^)로서 값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는 영화로 말입니다.




문소리와 김정은의 연기는 가끔씩 몇 장면에서 지나치게 교과서처럼 흘러가기도 했지만 매우 훌륭한 호흡을 보였습니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는(본보기도 많고, 공감을 이끌어 내기 쉬운) 미숙 역의 문소리보다 좀 생뚱맞은 혜경 역을 맡은 김정은의 손을 살짝 들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성지루-김지영의 코믹 듀오도 아주 좋았고,




조은지의 코믹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보였지만 이 영화에선 훨씬 약한 소재로도 자기 몫의 웃음을 다 뽑아냅니다.




사실 엄태웅이 그리 좋은 연기를 보여준 건 아니지만, 꽤 어울렸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상 뭘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네요. '그들만의 리그'의 톰 행크스는 지나 데이비스와 살짝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지만 이 역할엔 그런 것도 그냥 웃어넘길 수준으로 그려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유부녀 선수와 뭔가 교감이 있는 걸로 그려지면 선수들에게 누가 될까봐(워낙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골치아픈 문제는 피해가려 한 거였을까요?




아무튼 이들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가 그저 '감동적이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대중들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상품이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임순례 감독도 드디어 히트작을 갖게 될 것 같군요.










당시의 주역들인 실제 '아줌마 군단' 선수들의 모습.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간단한 실제 선수-감독들의 인터뷰가 삽입됐습니다. 여기서 압권은 임영철 감독. 한국의 핸드볼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임 감독은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지 '허, 참' 하면서 눈물을 참으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영화 백편보다 더 절절한 장면. 물론 영화 본편보다 엔딩 크레딧이 더 감동적이라는 '디 워'도 있었지만, '우생순' 마지막의 임영철 감독의 모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생순', 보셔도 좋습니다. 뭐 꽤 오래 극장에 걸려 있을 것 같으니 천천히 보셔도 무방하겠지만.



p.s. 영화의 제목에 대해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서 따 왔다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전 다른게 생각나더군요. 바로 "감독님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전 지금입니다!"라는 대사...


마지막 장보람의 출전 장면도 이 만화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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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2'는 전형적인 추억 마케팅입니다. 어찌 보면 14년 전의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 동창회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994년 '종합병원'이 방송될 때에 비해 환경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당시의 '종합병원'은 그저 배우들이 하얀 가운에 차트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애정행각을 벌였던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 달리 '본격' 병원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최근 들어 메디컬 드라마는 아예 순번이 돌아가면서 고정 배치될 정도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얀 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뉴 하트'의 순으로 방송되면서 모두 일정선 이상의 히트를 기록했죠.

그렇다고 셀레브리티들의 성형수술 열풍을 풍자한 미국 드라마 '닙턱' 처럼 특이한 설정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방송 전의 '종합병원 2'에는 '막차'를 탄 듯한 불안감도 있습니다. 그래서 19일 방송된 첫회는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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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첫회는 일단 스토리나 형식상의 차별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본래 '종합병원'은 '연속극'이 아니라 매회 하나의 에피소드를 수행하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었고, '종합병원 2' 역시 첫회에서 수술 시연회와 동남아 근로자들의 숙소 붕괴 사고 대량 입원, 외과 신입 레지던트들의 면접이라는 세 가지 사건이 한 회에 완결되는 형태를 보였습니다.

김정은-차태현 조는 왕년의 '정신과 인턴 - 환자' 커플 때부터 다져 온 호흡이 유감 없이 빛을 발했고(자꾸만 그 드라마가 '종합병원'이었던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김정은-차태현이 함께 출연한 의학 드라마는 '종합병원'이 아니라 안재욱-김희선 주연의 '해바라기'였습니다. 그닥 나이가 어리지 않은 분들도 두 드라마를 혼동하시더군요.^^), '독사' 오욱철의 캐릭터를 이어 받은 군기반장 류승수의 모습도 친근감을 자아내더군요.

물론 이재룡-이종원의 '좋은 의사 - 나쁜 의사' 구도는 너무 많이 써먹은 전가의 보도지만 메디컬 드라마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종원은 전형적인 '나쁜 의사'라고 보기 어려울 듯 해서, 오히려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보는 '악역 없는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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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면들이 있었던 반면, '종합병원 2'는 보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문제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묘하게도 첫회 에피소드가 '의사는 어쨌든 환자 치료가 최우선이고, 병원은 치료도 치료지만 기본 수칙의 준수가 필수'라는 식으로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몇 군데에서 '기본'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바로 연출의 문제입니다. 70~80년대 한국 액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격투 장면 도중 장면이 전환될 때, 배우나 엑스트라들이 '차렷 자세로 있다가' 갑자기 서로 치고 받기 시작하는 장면이 꽤 자주 눈에 띄곤 했습니다. 편집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정교함이 결여된 연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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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감독 중에도 기타노 다케시처럼, 다소 어설퍼 보이는 액션 신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영화에 엮어 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라는 식의 거만한 당당함을 느끼게 할 지경입니다. 물론 기타노의 영화들은 피가 튀고 총알이 난무하는 장면까지도 어린아이들이 주먹다짐 하는 장면처럼 전혀 심각성 없이 가볍게 넘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실함까지도 의도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종합병원 2'의 매끄럽지 않은 액션 연결은 진지함이 생명인 메디컬 드라마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시체도 연기를 한다'는 봉준호 식의 디테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심각한 응급 상황의 병원 장면에서 간신히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의 엑스트라들은 통제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완전히 정지해 있다가 카메라의 주목을 받고서야 주-조연 배우들이 움직이는 장면이 몇 차례나 등장하는 건 비전문가인 저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더군요.

노도철 PD가 시트콤 연출자 출신이라서 "감히 시트콤 출신이 무슨 드라마를..."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누구 못지 않게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이 연출자가 드라마 연출이 요구하는 정교함의 수준을 너무 안이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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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2' 첫회에서 지적할만한 부분들은, 만약 '종합병원 2'가 시트콤이었다면 오히려 웃음을 주는 장치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의 살짝 어설픈 장면들은 시트콤이라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트콤을 보는 시청자들과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조연들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응급상황이라지만 주연급 배우들의 대사가 도대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응급실 장면에서는 이재룡 외의 배우는 무슨 말을 하는지 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연기를 하더군요. 물론 의학 용어는 발음하기 어렵고, 배우들의 입에 붙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웅얼웅얼 왈그락 하는 수준으로 떠들고 지나가서는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이것 역시 연출자가 바로잡았어야 할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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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고 탈락을 예감한 차태현의 전화기 배터리가 어머니와 통화할 때에는 딱 한칸 남아 있다가, 김정은의 자취방에 실려 간 다음날 새벽 합격 통지를 받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풀로 충전되어 있는 장면은 다른 드라마라면 '옥에 티'로 대접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닙니다. '옥에 티'가 아니라 '티 속의 티'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드라마의 완성도가 끝날 때 쯤에는 어느 정도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좋다 해도 디테일이 내내 이 정도라면, '종합병원 2'는 결코 '잘 만든 드라마'로 기억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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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드라마가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차태현은 대체 언제까지 '엽기적인 그녀'에서 정지해 있을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p.s.2. 앞부분에도 '닙턱' 얘기가 나왔지만, 이런 대학병원 이야기 말고 성형외과-피부과 이야기라면 오히려 한국에서 정말 엽기적인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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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회 청룡영화상이 20일 개최됩니다. 물론 경쟁 매체의 행사지만 이 정도면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건 다 접어 둔다 해도, 여자 MC가 김혜수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행사보다는 30점 정도 가산점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시상식의 규모나 수준에서 볼 때 한국 영화 시상식 중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의 수고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올해는 이 불황의 그늘이 영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시상식이 가까워지고, 후보들이 발표되면 누가 상을 받을지에 관심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과연 올해는 누가 트로피를 안고, 누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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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 수상자는 시상식 직전에나 결정되는게 관례이니 아직 모든 후보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게 좋겠지만, 이럴 때 밖에서 수상자를 점쳐 보는게 국외자들의 재미죠. 그래서 이번엔 하루 전인 19일, 순전히 재미로 수상자를 한번 찍어 보겠습니다.

물론 저라고 무슨 특별한 정보를 갖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냥 관객의 입장과, 다년간 이 영화제를 지켜봐 온 경험으로 찍을 뿐입니다.^^ 나중에 진짜 결과가 나왔을 때 너무 많이 틀렸다고 타박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은 청룡영화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겁니다. 한줄씩 가져오느라 좀 길어졌습니다. 혹시 깨진 글자가 거슬리는 분들은 사진을 클릭하면 크고 선명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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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 사실 시상식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할 부분이지만 작품상이 맨 위에 올라와 있군요. 이제 와서 다시 순서를 바꾸기도 귀찮으니 그냥 이 부문부터 생각해 보렵니다.

소거법을 써서 일단 먼 후보부터 제외하면서 줄여 보겠습니다. 우선 개봉 시기가 먼 작품들은 수상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세븐 데이즈'와 '우생순'은 그런 의미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추격자'도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이미 대상을 수상했으므로 좀 뒤쳐지는게 정상인데 올해는 좀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남는 작품이 '놈놈놈'과 '크로싱'인데, 두 작품 모두 정상적인 경우의 수상작들과 좀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특히 '놈놈놈'이 작품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좀 힘듭니다. 돈을 건다면 '놈놈놈'에 20, '추격자'와 '크로싱'에 40씩을 걸겠습니다. 딱 한편만 찍으라면... 고민 끝에 '추격자'.

(사실 어느 해나 이변은 있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론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살인의 추억'을 제치고 청룡 작품상을 받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 틀렸을 때를 대비한 탈출로 확보 차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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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일단 나홍진 감독이 신인감독상 부문으로 빠진 게 변수입니다. 올해의 경우 감독상은 작품상 부문의 2위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에 좀 복잡합니다.

아무래도 작품상은 아니더라도, '놈놈놈'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볼 때 '놈놈놈'의 화사한 화면이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김지운 감독을 찍겠습니다.^ 어떤 경우든, 올해 작품상과 감독상을 한 작품이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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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후보가 여섯이 된 데서 주최측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추격자'에서 김윤석과 하정우, '놈놈놈'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정우성은...).

이런 점에 역점을 두고 볼 때 일단 김주혁과 설경구의 수상 가능성은 떨어진다 보겠습니다. 근접성의 원칙에 따르자면 아무래도 '놈놈놈'이, 연기의 밀도로 보면 '추격자' 쪽에 자연스럽게 점수를 주게 됩니다.

후보를 먼저 줄여 보면 '놈놈놈'에서는 송강호, '추격자'에서는 김윤석이 한발 앞서 있다고 봐야겠죠. 양쪽 모두 수상해야 할 이유에서는 백중세. 하지만 송강호가 지난해 드디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한풀이를 했다는 점에 눈길이 갑니다. 결론은 조심스럽게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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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일반적인 시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기를 뽑자면 단박에 공효진과 수애가 눈에 들어옵니다. 김윤진과 문소리는 근접성이 떨어지고, 손예진도 연기만 놓고 보면 훌륭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전통적으로 청룡상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닙니다.

작품의 규모로 보면 수애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청룡영화상의 연기상 부문은 가끔씩 의외의 선택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2004년 '아는 여자'의 이나영같은 깜짝 수상이 이뤄질 때가 있어서 대단한 백중세로 예상합니다. 아무튼 공효진 수애 둘 중에서 굳이 찍으라면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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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 엄태웅과 임원희를 일단 제일 먼저 빼겠습니다. 정경호도 아직까지는 후보에 오른 걸 영광으로 여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1감으로는 '영화는 영화다'에서 감독 역을 기가 막히게 뽑아 낸 고창석이지만, 시상식이 원하는 '얼굴'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죠. 그래서 박희순이 살짝 유리해 보입니다. 청룡상이 이제껏 유지했던 '시상을 통한 스타의 발굴'이라는 관점에서도 박희순에게 표를 던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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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조연상. 여기서도 우선 김미숙과 박시연은 피하게 됩니다. 나머지 세 사람 중 사실 김해숙은 반칙입니다. '무방비도시'의 진짜 주인공은 손예진이나 김명민이 아니라 김해숙이기 때문입니다. 주연상 후보로 올라가야 마땅한 배우가 조연상에 들어 있다는 건...^

아무튼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 김지영과 김해숙, 서영희 중 누가 수상자가 되어도 이유는 충분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달렸죠. 일단 '영화상'의 순결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화배우'의 이미지가 강한 서영희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유동근이 한때 남우조연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이미 중견 배우이던 장동건이나 배용준도 영화배우로서 신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전통적으로 조연상은 영화계를 오래 지킬 새로운 얼굴에게 주는 게 보통입니다. 서영희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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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신인상. 아마도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분야일 겁니다. 이 영화상이 장동건과 배용준에게 준 상이 이번엔 소지섭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명도 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이제는 인정해줄만 하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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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인상. '거물'과 '진짜 신인'의 싸움이군요. 한예슬에겐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수상이 약간 부담이 될 것이고, 서우와 황우슬혜는 같은 작품에서의 경쟁이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수상자들을 고려해 볼 때 한예슬과 황우슬혜로 과감하게 압축. 근접성의 원칙에서 황우슬혜에게 조금 더 점수를 주는게 그리 부당한 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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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상. 사실 소지섭보다 조금 더 쉬운 예측이겠죠. '영화는 영화다'와 '미쓰 홍당무'의 높은 완성도가 안타깝지만, 나홍진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서 빠진 이상 신인감독상을 다른 사람이 받는 건 정말 이변 중의 이변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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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주요 부문을 예측해 봤습니다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예측일 뿐입니다. 설마 심사위원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뀌실 분은 안 계시겠죠.^^ 혹시 이 글에서 본인이 수상자가 아니었다고 해서 시상식을 불참하거나 하는 분들도 없길 바랍니다. 이거 그냥 장난이라니까요.

여러분도 같이 찍어 보셨습니까? 그럼 진짜 수상 결과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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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와 대표적인 우익 인사로 꼽히는 원로 작가 이문열씨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문열씨는 미국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요즘 우익에 자살골을 넣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지만원씨는 "지적한 내용으로 보아 나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좌경 방송이 내 발언의 요지를 왜곡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나를 매도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문열씨의 사과로 대략 마무리가 된 듯 합니다.

이 사건에서 누가 잘못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의 일들을 눈여겨 보니 대체 자살골이란 게 어떤 것인지는 잘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니면 이번 사태가 지만원씨의 사상적 커밍아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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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의 홈페이지(http://www.systemclub.co.kr)에 올라온 수많은 문근영 관련 글들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혼동을 막기 위해 지만원씨의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은 모두 파란 색으로 표시합니다.)


'다음'에서 류낙진 검색어를 치니 동영상이 뜬다. 내용은 예측한대로였다.

문근영은 얼굴 예쁘고, 연기 잘 하고, 마음도 예쁘고, 집안까지 훌륭하니 엄친딸에 딱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의 여동생이고, 그녀의 외조부는 통일운동가, 작은 외조부는 민주화투사, 외삼촌과 이모도 경찰 조사를 받을 반큼 애국자라는 뜻으로 선전을 한다.

빨치산은 통일운동가이고, 빨치산 가족은 집안 좋은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하고 엄친딸을 키운 집안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빨치산 집안은 아주 훌륭한 집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빨치산들의 심리전이며, 문근영의 선행이 선전되는 것만큼 빨치산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는 선전도 동시에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저들은 문근영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놓고 빨치산에 대한 혐오감을 희석시키고,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근영과 신윤복 프로를 띄워주는 조중동은 이런 심리전에 착안하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문양의 선행을 문제 삼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녀의 선행을 등에 업고 "보아라 문양은 훙륭하다. 그런데 그 가문은 빷치산 가족이다. 빨치산이란 통일운동가이고, 그래서 문양의 가문은 명분가문(좋은 집안)이다" 이렇게 선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만원씨를 이렇게 분노하게 한 것은 와이텐이라는 인터넷 방송사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방송 내용에 분명히 '....집안도 좋고, 엄친딸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이 나오긴 나옵니다.



뭐 그런 방송을 보셨다면 흥분하시는게 어쩌면 우익 인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비쳐 보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조직적인 심리전'이며 '조중동도 현혹되어 있다'고 주장하시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게다가 다음 부분은 한 단계 위의 상상력을 볼 수 있게 합니다. 바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속에 숨어 있는 좌익의 음모(!)에 대한 내용입니다.


갑자기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을 띄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띄워서 기존의 정통사관을 뒤집는 것이며, 사회 저항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역사에 기록된 인물, 신윤복은 기록되지 못한 인물이다. 기록된 이승만, 기록되지 못한 김구, 기록된 박정희와 기록되지 못한 장준하. 주몽을 통해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는 등의 심리전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최근 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신윤복 신드롬도 이런 차원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한다. 패자의 역사를 정사로 만들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것이다.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 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띄우는 것' = '좌익의 심리전' 이군요. 이 분의 다른 글을 보면(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바람에 퍼올 수 없었습니다),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배우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과격한 발언으로 논란을 유발시켰던 김민선이라는 것 역시 거대한 음모의 일각을 보여주는 증거인가봅니다.

'미인도'와 '바람의 화원'을 살펴보다가 신윤복 역을 맡은 두 여배우를 보고 "하나는 빨치산 손녀, 또 하나는 '청산가리',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다 증거가 드러나잖아!"라고 발견의 기쁨을 느끼신 듯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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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물론이고 전혀 역사에 기록된 바 없는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한 '대장금' 역시 대단한 좌경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허준 역시 별로 기록된 바가 없군요. '허준'도 좌경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좌경 색채가 강한 '대장금'같은 드라마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한국은 좌경 이념을 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선도국가였군요. '주몽' 외에도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려 했던 '태왕사신기'며 '바람의 나라', 곧 방송될 '자명고' 역시 좌경 드라마라는 굴레를 벗기 힘들 듯 합니다.

차라리 사극을 아예 금지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글에서는 또 문근영과 다른 의인들을 비교합니다.



(전략: 앞부분은 동아일보 광고 취소사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문근영 Vs. 다른 의인들

이 세상에는 평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러는 언론에 발표되지만 대부분은 오직 자신과 하늘만이 알고 넘어 간다. 일생을 바쳐 나병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오웅진 꽃동네에 가서 온갖 궂은 일들을 묵묵히 해내며 일생을 바친 사람들,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있으면서도 산동네를 매일 다니면서 세상이 외면한 인생들을 보살피는 사람들 등등 하늘만 아는 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다. 이들은 언론들을 장식할 만큼 화려하게 큰돈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돈보다 더 귀중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지난 2001년 일본 유학 중인 이수현씨가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졌다. 그 후 일본인들은 해마다 그를 초무하는 행사를 진행해 왔고, 2006년에는 영화가 제작되어 10주간 연속 박스오피스에 오를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일본과는 정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 이틀 기사로 뜬 후 이내 잠이 들었고,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도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을 것이라며 수입이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2006년 05월 25일에는 또 다른 지하철 의인이 일본에서 탄생했다. 한국 유학생 신현구씨(27세), 선로에 넘어져 있는 여학생을 보고도 승강장에 있던 20여 명 정도의 일본인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는 거침없이 뛰어 내려 여학생을 구했다 한다. 한국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타인을 살려내는 의로운 선행들이 많이 있었지만 크게 기사화되지는 못했다.

그 다음의 의인들은 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를테면 빌케이츠 같은 사람들이 그가 가진 돈의 일부를 헐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해도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것은 빌게이츠 유의 의인들보다 한층 더 하기 어려운 의로운 선행이다.

얼른 과거의 기사를 몇 개 찾아보았다.  2002.05.30에는 40대 초반에 막 접어든 젊은 의사가 모교에 6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내놔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대구시내 중심가인 중구 삼덕2가 삼성안과의원 이승현(41), “그는 또 5년전부터 경북 군위·고령군 등 산골마을에 한 달에 한 번씩 무료진료,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수술, 부정기적으로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의 봉사와 기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04.19.에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80대 노인이 건국대에 장학금을 기탁해 화제”라는 기사가 있다.

2008.4.15.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할머니가 노년에 갑자기 손에 쥐게 된 토지보상금을 연세대에 찾아가 장학금으로 과감히 기탁했다”는 기사가 있다.

2008.8.14.에는 류근청 박사가 자식들에게는 돈 한 푼 안주고 모두를 털어 578억원을 KAIST에 기탁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이야기도 하루 이틀 언론에 뜨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문근영이 6년간 8억5천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사실은 위와 같은 의로운 선행 중 어디에 속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문근영의 선행은 위의 선행과는 달리 파장이 아주 크다. 조중동까지 나서서 문근영을 띄우고, 다음에서는 전달력이 매우 큰 동영상까지 만들어 이상한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가 연일 문근영을 띄우더니 오늘(11.17)은 동아일보에 “제2의 문근영 자주 보고싶다”는 제하의 시론이 실렸다.(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익명의 기부자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자 누리꾼들은 ‘이름 없는 천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문근영씨.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 씨였다. 누리꾼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의 선행을 미화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뜬  동영상과 글들은 선행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종의 음모를 연출하고 있다. 문근영은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마음씨가 아름답고, 출신(광주)도 좋고, 외할아버지가 통일운동가이고, 작은 외할아버지와 외가 식구들이 민주화운동가라 집안이 좋으니 엄친딸(엄마친구 딸, 가장 이상형이라는 뜻)의 전형이라는 메시지요, 비전향장기수 빨치산을 통일 운동가로 승화시키고, 광주와 김대중을 함께 승화시키는 메시지인 것이다.      

문근영의 선행, 이 하나만을 놓고 보면 참으로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며 기부의 모범으로 칭송할만하다. 그래서 그녀를 칭송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는 필자를 매우 이상한 꼴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꼴통, 꼴통이라는 의미는 고정관념에서 편집증 환자처럼 색깔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꼴통이라는 필자는 선행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선행과 선행을 띄워주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띄워주는 행태와 띄움에 내재한 숨은 메시지를 문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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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요약하면 다른 의인들도 많은데, 그 분들은 그리 화제가 되지 않았다. 문근영을 지속적으로 띄우는 데에도 음모가 숨어 있다는 얘기 되겠습니다.

물론 - 그래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팔순 할머니 기부왕보다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여동생이 알고 보니 익명의 기부왕이었다는 것이 훨씬 더 화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라 죄송합니다.)

아마도 지만원씨가 문제삼은 동영상보다, 지만원씨의 글이 훨씬 더 '빨치산의 손녀이며 좌익 선동의 정수인 문근영에 대한 호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과연 지만원씨가 흔히 말하는 '고도의 **'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합니다. 대체 지만원씨는 어느 쪽 편 일까요?

지만원씨는 17일 밤부터 시작된 수많은 보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해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해명이 잘 됐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문근영에 대한 문답
 
 

문1: 지만원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문양의 선행에 대해 문양 집안의 좌익이념을 문제삼아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는 구시대적 연좌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답: 어제부터 인터넷과 언론들은 저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확산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만원은 기부 문화에 찬 물을 끼얹은 사람이다.

둘째, 지만원은 아름다운 기부자를 빨치산 가족이라며 문제를 삼으면서 색깔을 씌우고 있다.

셋째, 지만원은 악풀의 진원지다.

이 모두가 거짓 모략입니다. 좌익세력에 의한 인민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행위에 딴지를 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기부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부행위를 등에 업고 빨치산 집안을 미화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기부 기사가 나온 11월13일부터 대다수 인터넷 매체들에는 문양의 외조부에 대한 기사가 도배돼 있었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보고 비로소 외조부 류낙진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빨치산 생활과 감옥생활로 채웠더군요. 그런데 도배된 글들의 대부분은 문양의 외조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라, 문양은 훌륭하다. 문양의 외조부가 통일운동가다. 빨치산 가문은 명문가다” 이런 식으로 표현돼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인터넷 방송 why 10 news의 11월14일자 동영상이었습니다. 좌익이 아닌 이상 이 동영상을 보고 어찌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문양의 기부행위에 감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선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좌익들이 벌이는 심리전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2: 문근영 양의 외조부와 식구들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답: 저는 문양의 외조부가 빨치산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11월14일, 갑자기 인터넷에 도배된 글들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글들의 대부분은 외조부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만 올린 것이 아니라 “문양의 가문이 통일운동가문이자 민주화 가문이고 그래서 명문가다” 이런 글들이었습니다. 저는 빨치산 기문이 명문가라는 표현들을 문제삼은 것이지 선행에 딴지를 건 것이 아닙니다. 악풀의 진원지라는 말은 모략인 것입니다.

문3: 문양에게 전신적 고통을 주고, 불우이웃돕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동이 아닌가요?

답: 결과적으로 문양의 입장에서는 서글프고 속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양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문양의 아름다운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왜곡하는 불순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들 역시 이런 불순세력, 플러스, 일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언론들이 제 글과 인터넷 글들을 비교하여 정확한 기사를 쓰지 않고 인민재판으로 지만원이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고, 악풀의 진원지라고 매도한 것입니다. 언론들은 어째서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을 미화한 불순세력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런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저를 공격하는 것이지 참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언론왜곡이 매우 심각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5년 3월 SBS방송이 "지만원이 강연에서 위안보 할머니들에게 은장도로 자살하라 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허위였지요. "은장도로 성을 지키던 시절에 국가는 아녀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위안부들의 울굴을 정치목적으로 거리에 내돌리지 말고 국가가 먼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왜곡한 것입니다. SBS는 언론중재위의 권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인사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면 되느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판사가 써준 대로 정정과 사과의 의미가 드러 있는 보도를 하라고 했는데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3천만원 손해배상청구를 했지요. 2천만원 승소판결이 나왔습니다. 공정을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들이 어러면 되겠습니가? 이렇게 사람 잡는게 언론의 현실인 것입니다.

문4: 문양에 대해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 가운데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나요?

광화문 폭력 시위를 옹호하고 경찰을 매도하는 네티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들이 사상적으로 건전합니까?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문양의 선행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선행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가 왜 딴지를 걸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선행을 격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선행을 배경으로 빨치산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이 사상적으로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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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사랑의 연탄 5만장 북한에 전달(2004년 북한 직접 방문)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409200439

문근영 불법 이적단체에 거금 지원(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08)

영화배우 문근영씨(18)가 최근 타계한 외조부 류낙진옹의 부의금 전액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 전달, ‘통일기금’으로 써 줄 것을 당부했다. 부의금의 액수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낙진의 묘비문: "통일애국열사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7152



이상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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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의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미리 몇 글자 써 놓고 가도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막상 뭔가 글을 쓰려고 하는데도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멈춰 버리는 듯 하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1949년생. 내년이면 환갑.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중요한 다른 일정도 있었지만, 이 공연을 뒤로 미루고 할 만한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공연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주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제 인생에서 2008년은 '빌리 조엘의 공연을 본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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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역사를 정리할 때 흔히 50년대는 엘비스 프레슬리, 60년대는 비틀즈, 70년대는 엘튼 존/ 빌리 조엘, 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의 시대로 정리하곤 합니다. 틀린 말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차트상으로 볼 때는 분명 참이 아닙니다. 엘튼 존이나 빌리 조엘은 나머지 세 아티스트에 비해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 1위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빌리 조엘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한 앨범은 4장(52nd Street, Glass Houses, Storm Front, River of Dreams)이지만, 싱글 히트곡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은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Tell Her about It, We Didn't Start the Fire의 단 세 곡 뿐입니다.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는 내놓는 족족 석권했지만 전체 싱글 차트에서는 그렇게 위력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아티스트들 중 홀 앤 오츠 등과 비교해도 초라해지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은 단기간에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는 않았다는 것일 뿐, 20년간의 앨범 활동 기간을 통틀어 본 전체적인 앨범 판매량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전미 음반산업협회(RIAA) 자료에 따르면, 빌리 조엘은 생애 통산 미국내 앨범 판매량에서 약 8천만장을 판 것으로 나타나 종합 6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약 6천만장으로 집계되는 마이클 잭슨(17위)보다 많습니다. 전 세계 판매량을 합치면 1억장을 훨씬 넘겠죠.

BEATLES, THE 170
BROOKS, GARTH 128
PRESLEY, ELVIS 118.5
LED ZEPPELIN 111.5
EAGLES 100
JOEL, BILLY 79.5
PINK FLOYD 74.5
STREISAND, BARBRA 71
JOHN, ELTON 70
AC/DC 69

(사실 가스 브룩스야 미국내 인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AC/DC의 경우가 정말 놀랍습니다. 저 정도로 많은 앨범을 팔았다니.)

역시 RIAA 집계에 따르면 단일 앨범으로도 빌리 조엘의 '베스트 1, 2집 합본(물론 맨 처음부터 합본으로 나왔습니다)'은 2100만장이 팔려 역대 미국 내 히트 앨범 6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9 EAGLES/THEIR GREATEST HITS 1971 - 1975 EAGLES ELEKTRA
27 THRILLER JACKSON, MICHAEL EPIC
23 LED ZEPPELIN IV LED ZEPPELIN ATLANTIC
23 THE WALL PINK FLOYD COLUMBIA
22 BACK IN BLACK AC/DC EPIC
21 GREATEST HITS VOLUME I & VOLUME II JOEL, BILLY COLU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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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빌리 조엘의 가치는 단기간의 1, 2위에 있는 게 아니라 두고 두고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 가수로서의 힘에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자는 그의 성공을 가리켜 미국 라디오 방송사들이 록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인 청취자들을 겨냥하고 의도적으로 그를 '키워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뭐 그렇게 '키워내서' 이 정도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1971년 데뷔해 1973년, 두번째 앨범에서 'Piano Man'을 내놨던 빌리 조엘은 1993년 "더 이상 새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신곡을 내놓지 않았을 뿐, 공연을 통해서는 팬들과 계속 만났습니다. 1999년 12월31일의 밀레니엄 콘서트는 물론이고 총 24회에 걸친 엘튼 존과의 조인트 콘서트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는 전 세계를 흥분시킵니다. 일본에서도 몇 차례 '페이스 투 페이스'의 공연이 있었는데, 대체 왜 한국에서는 이 공연이 유치되지 않는가에 분통을 터뜨린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어 2006년부터는 전미 순회 공연이 이뤄졌고, 잘하면 한국에도 올 수 있겠다고 기대를 부풀게 하던 즈음에 마침내 한국 공연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날짜가 하필 11월이어서 실내(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로 들어가야 했지만, 조금만 빨랐다면 엘튼 존이 했던 잠실 종합운동장 메인 스타디움도 채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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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오후 7시20분쯤 조엘 선생은 7명의 백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기본 멤버에다 퍼커션과 두 명의 브라스 주자가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 당연히 포함.

공연을 보다 보면 이 백밴드의 활약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가지만 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색소폰 주자는 'Stranger'의 앞부분 휘파람 라이브를 맡기도 하고, 여성 퍼커션 주자는 백보컬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본 중에 가장 다재다능한 밴드가 아닐까 합니다.

이날의 공연 목록은 이랬습니다.

1. Angry Young Man
2. My Life
3. Honesty
4. Zanzibar
5. New York State of Mind

6. Allentown
7. Stranger
8. Just the Way You Are
9. Movin' Out
10. Innocent Man

11. Keeping the Faith
12. She's Always a Woman
13. Don't Ask Me Why
14. River of Dreams
15. Highway to Hell (AC/DC)

16. We Didn't Start the Fire
17.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18. Big Shot
19. You May Be Right

여기에 앵콜로 Only the Good Die Young 과 Piano Man까지 총 21곡. 숨가쁘게 흘러간 100분간이었습니다. 당연히 30년을 기다렸던 골수 팬들이 운집했을테니 첫곡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피아노 전주만 듣고도 함성을 울려댔으니 말입니다. 'Honesty'나 'Just the Way You Are'처럼 국내에서 인기 높은 곡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죠.

 
(15일 서울 공연의 모습과 거의 똑같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피아노 위의 생수병만 머그 잔으로 바꿔 놓으면 정말 구별을 못 할 지경이군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River of Dreams에서 We Didn't Start the Fire까지 세 곡의 열광. River of Dreams에서는 앞으로 뛰쳐나온 관객들을 저지하려던 질서유지요원에게 빌리 조엘이 화를 내면서 잠시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고, 아무튼 그 열띤 분위기가 그대로 온 관객을 벌떡 일어서게 했습니다. 조엘이 기타리스트로 변신하고 스태프 중 하나(?)라는 거구의 호주 남자가 AC/DC의 Highway to Hell을 멋지게 불러 제끼는 깜짝 이벤트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짜여진 각본대로 앵콜이 진행됐고, 누구나 알고 있었던 마지막 앵콜 곡인 Piano Man이 흘러나오면서, 대형 스크린에는 Piano Man의 가사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필 선생이 잠실벌을 노래방으로 만들듯, 조엘 선생은 체조경기장을 다시 한번 노래방으로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묘하게도 그 순간은 '토요일 저녁 오후 9시(Nine O'clock on a Saturday)' 즈음이었고, 온 관객이 한 마음으로 Piano Man을 따라 불렀고, 가사가 Pretty Good Crowd for Saturday에 이르고 조엘이 슬쩍 관객들을 바라보자 센스 있는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러 자축했습니다.

긴 노래도 어느덧 끝나 가고 있었을 때 조엘 선생은 반주를 끊고, 관객들에게 이날의 공연을 함께 마무리할 기회를 줬습니다.

Sing Us a Song, You're a Piano Man,

Sing Us a Song, Tonight.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You've Got Us Feeling Alright.

마지막 네 소절이 관객들의 생 목소리로 울려퍼졌습니다. 다시 한번 목이 메어 옵니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그의 피아노와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기다렸던 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p.s. 당연히 그렇지만 - 어느 곡 하나 버릴 게 없는 명곡들의 나열인데도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못 들은 명곡들,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And So It Goes'나 'Longest Time', 'I Go to Exterme', 'Lenningrad'나 'Goodnight Saigon' 같은 노래들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아, 물론 'Uptown Girl'은 기대도 안 했습니다만.

And So It Goes의 뮤직비디오는 퍼올 수가 없어서 King's Singers의 리메이크를 가져왔습니다. 이 버전도 훌륭하지만 빌리 조엘의 원곡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원곡은 http://kr.youtube.com/watch?v=eELB6NxrZ7A


I Go to Extreme을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부르는 80년대 조엘의 모습입니다.




p.s. 이제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이 내년 일본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F2F) 공연을 재개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두 명의 슈퍼 피아노 맨이 만나 벌이는 피아노와 노래의 혈투. 생각만 해도 흥분됩니다. 일본까지 오는 김에 한국에도 한번 들러 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니면 휴가라도 내야겠죠?

1998년 도쿄에서 있었던 F2F 공연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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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살짝 바꿨지만 본래 '앙코르 와트, 가이드없이 4박5일가기(8)'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지나간 내용을 보실 분들은 왼쪽 Category에서 '여행을 하다가/ 앙코르와트' 폴더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씨엠립 여행 4일째. 서울서 안 하던 걷기 운동을 좀 하고 났더니 피로도 밀려오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휴가라는 게 좀 농창거리는 맛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사 니르낫 군과의 계약도 2일째와 3일째 뿐. 실컷 늦잠을 자면서 게으름을 부린 뒤에 툭툭을 타고 맛집 순례에 나섰습니다. 사실 맛집이라고 소개를 하려면 좀 민망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북한 식당(이 시리즈의 2편에 집중 소개돼 있습니다)에 간 터라 현지 식당에 그리 많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집 하나만큼은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바로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히는 '아목'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은 무슨 관계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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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면 누구나 톰양꿈이나 뿌팟풍가리를 먹는다. 한국에 오면 불고기나 비빔밥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 캄보디아에 가면? 누구나 아목(amok)을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대체 아목이 뭐야?

거기에 대해 속시원히 설명해 놓은 곳은 별로 없다. 어떤 곳에서는 카레를 이용한 생선찜이라고 하기도 하고, 현지인 중에도 '코코낫 소스 등으로 양념한 고기나 생선을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이런 아목도 있을 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설명할 씨엠립 시내의 레스토랑 위로스(Viroth)의 추천으로 올드 마켓 지역의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맛집 '아목'을 찾아갔다. 위로스 측의 추천에 따르면 '베스트 아목 인 타운'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식당 이름이 아목일까. 자부심이 느껴져서 신뢰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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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같은 곳이라면 절대 찾지 못할 곳에 있었지만 씨엠립은 워낙 작다. 씨엠립 최고의 유흥가(?)라는 올드 마켓 지역의 크기는 홍콩의 란 콰이 퐁 정도다. 두 바퀴만 돌면 못 찾을 곳이 없다.

캐논 S-30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아무리 꼬질꼬질한 동네를 찍어도 지중해 풍의 마을처럼 나온다는 것이다. 이 카메라로 찍으면 대단히 깔끔하고 잘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물론 워낙 어수선한 이 골목 안에서는 대단히 신경 써서 가꿔진 집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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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다시피 에어콘은 기대할 수 없다. 금방 따라 놓은 콜라가 이렇게 되는 건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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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전경은 이렇게 생겼다. 사실 전경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래 층에 테이블이 세 개,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도 있지만 거기도 테이블은 세 개 이상 놓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외경에서도 볼 수 있듯 문 밖에도 테이블이 여러개 있다. 하지만 골목 안 분위기로 보아 별로 밖에서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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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카(Tom Kah) 수프(USD 4.5)와 모듬 아목 정식(USD 6) 두개를 시켰다. 먼저 나온 톰 카 수프. 코코낫 향이 진하게 풍기는 수프다. 맛? 전체적으로 톰양쿵에서 매운 양념을 빼고 코코넛 밀크를 넉넉하게 넣은 맛이다. 새큼한 맛이 사뭇 식욕을 자극한다. 나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나님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팍치(corriander)의 맛이 너무 강했나 싶다.

 드디어 메인인 아목 정식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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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문한 모듬 아목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새우 등 다섯 가지 재료를 사용한 아목을 조금씩 맛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첫 술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너무나도 친숙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바로...

우거지 찜!

꽁치나 북어, 신김치 등에다 된장을 약간 넣고 푹푹 쪄서 만든 우거지 찜은 내가 워낙 좋아하는 반찬이다. 그런데 이 이역만리에서 먹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음식에서 그 맛이 느껴지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코코넛 밀크와 섞인 약한 커리 양념의 맛이 된장 맛과 묘하게 겹쳐지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무튼 결론은 매우 유쾌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맛이었다는 것. 앞으로 세계 어디를 가거나, 캄보디안 레스토랑에 아목이라는 메뉴가 있으면 안심하고 주문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고향의 맛(물론 요즘은 세계 어디를 가도 캄보디아 식당보다는 한식당이 더 많겠지만)을 느끼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혹시라도 씨엠립에 갈 사람이 있다면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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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규모로 봐서 참 찾기 어려울 듯 하지만 막상 가 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정도의 정보(약도)도 없이 금세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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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과 마사지 가게 사이로 난 저 골목 안으로 약 30m만 가면 된다.

그런데 이거 보고 저 집 찾아 가실 분이 있으려나...?

아무튼 이걸로 씨엠립 기행은 마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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