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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중앙일보에 매주 토요일마다 '분수대'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칼럼인 터라 감히 제가 거기에 숟가락을 디민다는게 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상명하복. 시키는 일은 다 하자는게 좌우명인 만큼 열심히 해 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첫회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문득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나'를 외치는 강호동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도 "재석아! 재석아! 재석아아!"를 외쳤던 그입니다.

강호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을 주문처럼 사용합니다.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김건모가 두번째 출연했을 때에도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해서... 대한민국 최고 MC 유재석이었다면 이렇게 두번씩 나오시게 하지 않았을텐데..." 로 웃음을 자아내더군요. 그런데 반대로 유재석이 강호동을, 특히나 '대한민국 최고 MC 강호동'이라고 언급하는 모습을 보신 분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10월 말, '1박2일'의 현장 기자 동행 취재 때에는 유재석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고 "누가 뭐래도 최고는 유재석이다. 흠잡을 데가 없다"고 다시 못박기도 했습니다.

왜 강호동은 유재석을 그리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재석은 강호동을 의식하는 모습이나 발언을 하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받아도 되나'를 언급이라고 치면 곤란합니다. 이건 그냥 응수 수준) 이 궁금증이 바로 이번 글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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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인자

1962년. 미국의 조그만 렌터카 회사 에이비스(Avis)가 야심 찬 슬로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합니다(We Are No.2. We try harder)'.

이 광고는 신화적인 성공을 거뒀다. 말이 좋아 2위지 당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허츠(Hertz)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던 에이비스는 이 광고 연작의 성공에 힘입어 그 한 해에만 50%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업계 1위는 아니지만 2007년 말 현재 자산 규모가 69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넘버2 마케팅'이란 말은 온갖 광고 교과서에 실렸다.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에이비스의 전략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넘버2 마케팅의 핵심 공격 대상은 자신보다 앞선 1등이 아니다. 자신과 엇비슷한 3등, 4등, 5등들이다. 당시 에이비스의 넘버2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마치 에이비스와 허츠가 렌터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고, 의도대로 에이비스는 고만고만했던 동급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1위를 위협할 수 있는 라이벌로 성장했다.

이런 속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넘버2 마케팅은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도 스스로를 2위로 내세우는 보험사 광고, 라면 광고 등이 있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외형만 흉내 냈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몸소 실천해 성공하고 있는 연예인이 있다. 바로 강호동이다.

한국갤럽이 매 연말 실시하는 '올해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유재석은 2008년에도 49.9%의 지지로 4년 연속 최고 개그맨으로 꼽혔다. 강호동은 37.7%로 2위. 그런데 강호동은 지난 한 해 내내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이라고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8일 KBS 연예대상을 받고도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겠니”라는 소감을 남겼을 정도다.

강호동은 2008년 3대 지상파TV 중 KBS와 MBC의 연말 연예대상을 거머쥐었고, 유재석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보여주며 특유의 공격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효과까지 누렸으니 2008년 연예계의 진정한 승자는 그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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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에 실리는 글의 한계는 지면의 한계입니다. 한줄 더 쓰면, 두배 길이로 쓰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면의 한계라는 것은 항상 치열한 타협을 요구합니다. 저 칼럼의 길이는 1150자입니다. 이 정도 길이에 이런 스타일의 칼럼이라면 '어, 이런 것도 있었구나'라는 시각의 제공 정도가 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비스의 넘버 투 마케팅은 광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성공사례입니다. 20세기 광고계의 신화적인 인물인 윌리엄 번박이 만들어 낸 이 광고는 일단 '누구나 광고를 할 때는 강해 보이고, 커 보이고, 뛰어나 보이고 싶다'는 너무도 기본적인 원칙을 깼다는 데서 탁월성을 보여줍니다.

'1등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한 뒤에 곧바로 역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차를 이용해야 할까? 1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재떨이도 잘 비운다. 세차가 덜 된 차나, 낡은 타이어를 끼운 차를 고객에게 내놓는 짓은 상상할 수도 없다....' 등등입니다. 1등 자리만 양보했을 뿐 제대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탄, 3탄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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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나자 아예 'No.2 ism' 이란 말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런게 고객에게 먹혀 든 겁니다. 그리고 어쨌든 칼끝은 1등을 겨누고 있지만, 본문에서도 적고 있듯 정작 칼바람을 맞는 것은 다른 3, 4, 5등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공격받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칼을 맞고 나뒹구는 신세가 됩니다.

물론 한때 허츠도 에이비스의 공세를 의식, 역공을 취하기도 합니다. 내용인즉 '1등이 1등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차 대수, 대리점 수,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측면에서 1위업체에게 모두 상대가 안 된다면 뭐라고 할까요? 우리라도 '우리 차는 재떨이를 잘 비웁니다'라고 할 겁니다"라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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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은 분명 에이비스와는 다른 2위입니다.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양강 체제의 주역이고, 아주 냉정하게 여론 조사 결과를 수용해 강호동을 2위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차이는 미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상적인 경우라면 양쪽 모두 '사실은 내가 1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경우고 만약 그게 보기좋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사람들이 알아서 '투 톱'임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호동은 굳이 '유재석이 1위고 나는 2위'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강호동만의 넘버 투 마케팅이라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듯 유재석의 강점은 부드러움, 강호동의 강점은 강렬함입니다. 체구나 외형으로 봐서는 강호동이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이죠. 이런 상황에서 강호동의 '2위 인정'은 진행 능력을 떠나 사람의 됨됨이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한국 연예게에서 대단히 훌륭한 처신입니다. 강호동으로서는 프로그램 속에서 보여주는 다소 거친 면모를 벗어나 세심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적 겸손'은 강호동의 공격적인 개성을 해칠 수준이어서는 안되죠. 유재석과 같은 노선으로 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강호동에게 더욱 이런 전략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다고 유재석이 강호동의 강점을 부분적으로 채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겸손과 인화의 MC로 국민적인 호감도가 극에 달해 있는 유재석이 굳이 과거의 '깐죽이기'로 돌아가거나, 강호동 식의 우격다짐을 시도해 봐야 결과는 마이너스일 뿐입니다.

결국 강호동의 '2위 처신'은 현재로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전제는 모두 유재석이라는 거물의 존재가 있을 때의 상황입니다. 만약 현재의 구도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ex. 유재석의 전격 은퇴?)가 생긴다면, 그건 그때 또 달라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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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여러 모로 불편한 병원을 탈출하자마자 감기에 걸려 버렸습니다.

며칠 병원에 있었다고 몸의 경계가 허술해졌는지 그냥 제대로 쓰러져 버리더군요.

주말 이틀 동안 식은땀과 된땀을 번갈아 흘리며 앓다가 겨우 정신이 좀 들었습니다.

아직도 기침이 가라앉지 않지만 이제 좀 수습되는 듯 합니다. 한가지만이면 괜찮을텐데 이건 이중고라서... 아무튼 블로깅도 곧 재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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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끄러웠고, 매년 잊혀졌습니다. 방송 3사의 연말 연기대상 결과 얘깁니다.

매년 연말 연기대상 결과가 발표되면 시청자들과 인터넷 게시판은 수상 결과에 대해 한 순간 파르륵 불타 오릅니다. 욕을 먹는 이유도 매년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상의 갯수가 많냐' 에서부터 '그 많은 상에 공동 수상은 또 왜 그리 많으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못 받고 엉뚱한 데로 상(특히 대상)이 갔다'는 식의 푸념입니다.

올해만 그랬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데, 내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송 3사의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은 진짜 시상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상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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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의 연기대상이 시상식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다시 한번 정확하게 풀어서 쓰자면, '비록 이름은 연기대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개개인 연기자의 연기력에 대해 평가하는 상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상을 주고 박수도 치니 시상식은 분명히 시상식이죠. 하지만 시상 기준은 일반 시청자들이 '상상'하는 것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이런 연기대상을 볼 때에도 청룡상이나 대종상 같은 영화상 시상식을 연상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시상식에서 주는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조연상도 냉정하게 말하자면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만으로 수상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암묵적인 평가 기준은 '연기력 : 배우의 지명도 : 출연작의 흥행 내지는 화제성'의 비율이 5:2:3 정도라고 할까요? 물론 이건 심사위원 개개인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3:3:3(나머지 1은 전체 형평성)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7:1:2 정도로 볼 수도 있죠. 여기에 '연기력'이라는 것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에 대한 평가가 심사위원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끔씩 일반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하지만 방송사의 연말 연기대상 결과는 훨씬 예측하기 쉽습니다.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해당 방송사에 대한 공헌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헌도는 '시청률, 방송 기간, 화제성(혹은 스타성)'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시청률이 90%를 결정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방송 3사 연기대상은 연기로 주는 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느 해, 어느 방송사도 '연기'를 제 1 조건으로 평가해서 연기대상을 준 적은 없습니다. 해당 방송사가 자국에서 방송된 1년간의 드라마들을 총정리하면서 거기에 '출연해 주신' 연기자들을 상대로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시청률과 가장 긴 방송기간으로 기여해주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연기대상의 본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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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던 MBC 연기대상의 송승헌-김명민 공동 대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에덴의 동쪽'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시청률은 일단 시청률 면에서 상대가 안 됩니다. '에덴의 동쪽'이 1.5배 이상 앞서죠. 방송 기간 역시 '에덴의 동쪽'이 2배 이상 깁니다. 그렇다면 '에덴의 동쪽'의 주인공인 송승헌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김명민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두 배우의 극중 비중에 대해 따질 수도 있겠지만 통상 두 주인공은 각각 두 드라마를 대표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럼 왜 송승헌의 단독 수상이 아니라 김명민과의 공동 수상일까요. 이건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합니다. 지난해 MBC는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에게 대상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배용준은 다리 부상을 이유로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을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검은 목발을 짚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상은 누구의 것일까요. 당연히 '하얀 거탑'의 김명민이 차지했을 겁니다. 그리고 배용준의 부재시를 대비해 어느 정도는 김명민에게 '당신이 대상'이라는 귀띔이 들어갔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2008 대상도 송승헌이 차지하고 김명민이 2년 연속 최우수연기상(2등)에 머문다면, MBC는 최악의 경우 김명민과 등을 지는 상황을 각오해야 합니다. 물론 MBC는 현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 중 한명을 적으로 돌릴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송승헌이야 단독 수상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시상식 목전에 벌어진 이다해 사건의 부담을 생각하면, 공동수상이야말로 두 사람이 윈-윈 하는 결과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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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KBS의 김혜자 수상은 누구나 인정할 상이겠죠. 단 이 경우에도 가장 큰 이유는 '연기력'이 아니라 '공헌도'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른 원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KBS의 경우에는 1980년대부터 1TV의 주말 시간대에 방송되는 대하 사극 주인공에게 강력한 어드밴티지를 주어 왔습니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같은, KBS의 간판 프로그램들이죠. 이 드라마들은 시청률에서도 선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논란이 있었던 것은 2005년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이었죠. 시청률이나 화제에선 '장밋빛 인생'의 최진실이 앞섰지만, KBS는 100회라는 긴 기간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놓고 들였던 고생(이병헌-정준호-최수종-송일국의 캐스팅 실패로 엄청난 애를 먹었습니다) 등 여러가지 이유로 김명민의 공헌도를 더 높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대왕 세종'의 기세가 약했던데다 '엄뿔'의 성공이 너무 폭발적이었죠. 김수현 작가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03년, 이병헌이 '올인'으로 대상을 수상하자 자신의 작품인 '완전한 사랑'의 김희애가 받지 못한 데 흥분, '내 마음으로는 김희애에게 이미 상을 줬다'고 홈페이지에 쓰기도 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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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변은 SBS의 문근영 시상입니다. '바람의 화원'은 작품성은 몰라도 시청률 면에서는 절대 앞으로 내세우기 힘든 드라마입니다. 아마도 역대 방송사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낮은 시청률(내내 10%대 초반)일겁니다. 그럼 문근영의 연기력(물론 칭찬할 만 했습니다)을 높이 평가한 결과일까요. 그렇게만 보면 너무 순진한 평가겠죠.

연기대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헌도와 함께 미래 공헌도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미래 공헌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타에 대한 투자입니다. 방송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당근인 대상은 '두고 두고 우리와 잘 해볼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1994년 MBC의 최대 히트작은 심은하의 'M'이었지만 대상은 '서울의 달'의 채시라에게 돌아갔습니다. 간단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엔 채시라가 훨씬 더 스타였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잔혹한 얘기지만, 이런 면에서 SBS는 '조강지처 클럽'의 오현경이나 '일지매'의 이준기보다 문근영에게 빚을 지우는 쪽을 선택한 셈입니다. 그리고 '바람의 화원'은 방송사의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는 시청률 이상의 공헌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부천사 문근영'의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기도 하죠.

이렇게 보면 MBC는 공헌, KBS는 명실상부, SBS는 미래가치에 각각 투자한 모습입니다. 사실 KBS는 행운입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배우(김혜자)의 주연작이 최고의 성과를 거뒀으니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죠. 하지만 어떤 경우든, 수상자의 결정은 방송사의 몫, 기준은 방송사의 기준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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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군가는 그럼 대체 '방송국 연말 공로대상'이라고 하지 왜 '연기대상'이라고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느냐고 울분을 토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연말 연시에 '모범 사원'을 표창합니다. 이때의 '모범 사원'은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서 정말 타에 모범이 되는 그런 사원일까요? 그럴 리가 없죠. 이 모범 사원이란 '최고의 실적을 올려서 회사의 수익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원'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겁니다. 원래 사회란 그런 거죠.

그래서 앞으로 매년 방송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볼 때면 저 상은 원래 그런 상이겠거니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 상은 본래 모범사원 표창 내지는 유치원의 재롱잔치같은 성격을 가진 상입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시상식에 온 배우들 중 어느 한 사람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죠. 그래서 누구도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 상하는 어린이가 없도록 배려하는 유치원 선생님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이걸 알고 보신다면 '대체 저 상은 뭐야?' '왜 또 공동수상이야?'라는 생각은 안 하시게 될 겁니다. 이게 바로 한국 방송사들의 현재 수준입니다. 이런게 방송의 사유화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식의 시상식은 전파 낭비라고도 하는데 사실 전파 낭비가 맞습니다. 이런 식의 상이라면 내부적으로 큰 행사장을 빌려 파티를 열고 나눠 주는게 마땅할겁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큰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일 리가 없겠죠. 그래서 방송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생방송으로 대형 행사를 진행하는 겁니다. 권위의 추락이니 뭐니 하는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당초 권위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에 대해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납니다. 채널을 돌리는 거죠. 미리부터 욕을 하려고 마음 먹고 보신다면 모르지만, 이제 연말 연기대상의 본질을 아셨으니 앞으로는 공연히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p.s. 마지막으로, 세상의 어떤 시상식도 '연기력만 갖고' 사람에게 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매년 변희봉, 김혜자, 나문희, 김수미 같은 배우들이 상을 휩쓸고, 그 틈으로 간간이 송강호나 김윤석, 설경구, 김희애의 이름이 보이는 시상식만 보게 될 겁니다. 과연 시청자 여러분이 그런 시상식을 원하실지, 그건 정말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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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럼 '올해의 연예인'은 누구일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테니 서로 다른 사람이 나올 겁니다. MC 지존 유재석이나 강호동, 음반 판매량 46만장의 동방신기, 남우주연상 6관왕의 김윤석, 8억 몰래 선행의 문근영, 신비주의를 벗은 서태지, 뿔난 국민엄마 김혜자까지 모두 충분한 이유를 가진 후보들이죠.

저는 그 중에서도 김장훈을 꼽겠습니다. 물론 제목에도 밝혔듯 선정 기준은 저의 편견이지만 입장이 다른 분이더라도 충분히 납득하실만 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 한국 연예계를 이끈,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한 인물이란 점에서죠. 이번 글은 그에 대한 간단한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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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선행 바이러스 퍼뜨리는 ‘쇼킹’
기부천사·독도 지킴이로 뜬 김장훈  
 
2008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는 누구일까. ‘아시아의 별’ 보아에서 ‘월드 스타’ 비, ‘가왕’ 조용필이나 ‘대장’ 서태지, 당대의 지존 동방신기까지 많은 후보를 댈 수 있겠지만 질문을 살짝 바꿔 보자. ‘가장 존경할 만한 가수’라면 누가 첫손에 꼽힐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 김장훈(41)을 능가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배우 문근영과 함께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선행 아이콘이 된 김장훈의 연말은 분주하다. 19~24일엔 서울 올림픽 홀, 30~31일엔 부산 KBS 홀에서 ‘원맨쇼-쇼킹의 귀환’ 공연을 펼친 한편, 31일 개봉하는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에선 내레이션을 맡았다.

1991년 데뷔 때만 해도 김장훈이라는 깡마르고 키만 큰 가수가 이런 존재가 될 줄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김현식의 사촌 동생’이라는 꼬리표로 알려졌던(뒷날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직접 해명함) 이 가수는 불성실의 극치였다. 매니저가 갖은 애를 써서 출연 스케줄을 잡아 놓으면 어디론가 사라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속사가 김현식·들국화·신촌블루스·김현철·장필순 등을 배출한 명문 ‘동아기획’이 아니었다면 가요계에서 매장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워낙 존재감이 약했으니 미운털이 박혀 출연정지를 당했다 해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97년, 당시 최고 인기 가수 중 하나였던 신해철이 공개 인터뷰 도중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가 김장훈”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김장훈은 4집 ‘발라드 포 티어즈’를 내놨고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크게 히트하며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콘서트에서의 다양한 퍼포먼스와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다소 지나친(?) 의욕 때문에 한때 ‘가수냐, 개그맨이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대중은 그의 철들지 않는 이미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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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뒤) 김장훈과 관련된 화제는 올 한 해 내내 쏟아졌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뉴욕 타임스에 실었고 기름 범벅이 된 서해안을 살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남들이 모두 잊을 때까지 봉사원정대와 함께 시커먼 바위를 닦았고, 6월의 약속을 지켜 찬바람이 불던 지난 6일 충남 보령에서 ‘서해안 페스티벌’ 공연을 끝마쳤다.

어록도 생겼다. “대출 받아 기부한 적도 있다” “기부는 과시가 아닌 습관”이라는 말을 남긴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선행은 전염된다”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2009년 새해 계획도 이미 시작됐다. 서해안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 ‘서해안 페스티벌’을 국제 음악제로 키워 내는 한편 올해 광복절에 이루지 못한 독도 공연의 꿈도 내년엔 꼭 성사시킨다는 각오다.

그와 고락을 함께 한 매니저는 지금도 24평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의 노후를 걱정한다. “버는 규모를 생각해 나이 들어 쓸 돈은 남겨 놓고 기부했으면 좋겠다. 가끔씩 ‘욱’하는 성질로 통장 잔고를 탈탈 털 때는 솔직히 말리고 싶다”는 속내다.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도 말한다. “뭘, 정치 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남들이 먹고 살게 해 줄 텐데.” 김장훈이 궁핍해지는 날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이 아닐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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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난 것은 지난 1998년, '나와 같다면'이 한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시절입니다. SBS 등촌동 스튜디오에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의 첫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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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시 하록선장..." 하고 말문을 열었더니 정색을 하고 "누구한테 얘기를 들으신 건가요, 아니면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건가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무 얘기도 들은 게 없다고 했더니 "아, 제가 하록선장이랑 비슷하다는 얘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하록선장 팬이에요"라며 웃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악명' - 스케줄 펑크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 을 익히 듣고 있었기에 어쩐 일로 이렇게 점잖게 방송국까지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어느날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안 되겠더라구요."

위에는 쓰지 않았지만 그가 방송 출연을 펑크낸 이유 중에는 황당무계한 것도 많았습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로서 왜 내가 방송같은 데 출연해 음악의 순수성을 훼손해야 하느냐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함께 살던 매니저가 라면을 끓여먹고 설겆이를 안 해 놨다는 이유로 '잠수'를 타 버리기도 했답니다. 참 요즘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게 인기가수가 된 뒤 김장훈 콘서트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좍 퍼졌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콘서트 하다 말고 갑자기 영화가 나오고, 그 영화에는 당연히 김장훈이 나오고, 여주인공은 그 무렵 막 뜨기 시작했던 박경림이었습니다. 아무튼 공연 하다 말고 예의 발차기가 나오고, 목은 쉬고...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이 정도면 꽤 중독성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2008년, 김장훈이 어떤 일을 벌이고 어떻게 진행해 나갔는지는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유난히 암운이 깊었던 2008년, 김장훈은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을 남겼습니다.

그가 올해 남긴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선행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선행이라는 것도 누군가 보여 줘야 다른 사람이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난번 문근영 때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선행은 본질적으로 감춰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왼손과 오른손 얘기도 나오지만, 이런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선행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2009년에는 김장훈에 의해 또 어떤 기행과 선행이 펼쳐질까요.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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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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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리안 특급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허당 박찬호'가 등장하자마자 '1박2일'을 일요일의 시청률 톱에 올려놨습니다.

사실 그동안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시청률 진검 승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SBS TV '일요일이 좋다'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시청률을 체크하는데 1부='패밀리가 떴다'이기 때문에, '패밀리가 떴다'의 시청률은 매주 선명하게 알 수가 있었죠.

하지만 '1박2일'이 속해 있는 KBS 2TV '해피선데이'는 3시간짜리 프로그램 전체의 시청률로 공개되기 때문에 '1박2일'만의 시청률은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패밀리가 떴다'가 '1박2일'보다 시청률이 앞선다는 말은 대략 추정한 수치였죠. 아무튼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1박2일' 부분의 시청률이 32.5%, '패밀리가 떴다' 쪽이 27.7%였습니다. (처음에 한 얘기는 착각이었습니다. 숫자를 잘못 읽었군요. 죄송.^)

물론 두 프로그램이 28일에도 별로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숫자 역시 진검대결이라고 할 수는 없죠. 아무튼 박찬호 덕분에 '1박2일'은 상징적으로나마 일요일 밤의 최고 인기 코너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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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연으로 박찬호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다소 친근하지 못한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박찬호는 아주 친근한 스타는 아니었죠. 잘생긴 외모와 빼어난 성적 덕분에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대 스타였지만 한 켠에서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엄..."하는 식의 말투와 함께 다소 까다로운 이미지 덕분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인상을 줘 왔습니다. 그동안 방송에서도 웃는 얼굴보다는 경기중의 긴장된 얼굴,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잘 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1박2일'에 출연한 박찬호를 보면 그 동안의 유감(?)이 사라지는 느낌을 누구나 받았을 겁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건 강호동에게 '딱밤'을 맞은 뒤 바로 "한판 더 합시다" 하고 정색을 하는 박찬호의 모습이었습니다. '박찬호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를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로 만든 것은 바로 저런 '지고는 못 사는' 경쟁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장면이었죠. 이어진 '허당 찬호'의 등장은 말할 것도 없죠.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13년 전의 박찬호가 떠올랐습니다. 1995년 초, 귀국 개인 훈련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박찬호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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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미국행이 결정된 것은 1993년 말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처음 출근할 바로 그 시점이었죠. 처음 '박찬호 메이저리그행' 보도가 나갈 때만 해도 '그냥 조회만 해 본 정도겠지'라는 의견이 과반수였습니다. 최동원이며 선동렬, 박찬호의 동기생들인 임선동 조성민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리그가 관심을 가졌던 한국 투수들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박찬호의 경우는 진짜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회의적인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거기가 어떤 덴데... 가서 얼마나 버티고 올 지 모르겠다.' 이들의 예상대로 1994 시즌,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단 2경기에 등판, 11.25라는 치욕적인 방어율을 기록합니다. 한마디로 성적이랄 게 없었죠. 물론 토미 라소다 감독은 끊임없이 박찬호에 대한 칭찬을 했지만 이때는 '립 서비스'라는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첫 시즌을 마친 박찬호가 귀국했을 때 공항에는 취재진이 인산인해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야구계와 취재진의 기본적인 정서는 '어쨌든 간 게 어디냐'는 생각과 '첫 시즌을 보니 별볼일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반반쯤 혼재된 상태였죠. 여기서 박찬호는 은근히 국내 야구인들의 심사를 건드리는 대답을 한마디 합니다. "지금 한국 프로에서 뛴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엄... 한 20승?"이라고 가볍게 대답한 것이죠.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한 지도자는 어떻게 보느냐는 말에 "하하하"하는 냉소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물론 1997년, 14승을 거둔 뒤의 박찬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20승도 꽤 겸손한 대답이었겠지만, 이건 아직 1994년의 얘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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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중에도 그랬지만 윈터 시즌의 신문 스포츠면은(스포츠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박찬호 얘기로 도배가 됐습니다. 고향 잔치에까지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이 득시글거릴 정도였죠. 그런데도 쉬이 식는 것이 인심이듯, 정작 박찬호가 95년 초 출국할 때에는 공항에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급히 몰래 출국한 것이기도 했고, 워낙 그동안 수없이 다뤄진 터라 이제 더 얘기할 거리도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무튼 입국할 때의 아수라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모습이었죠. 기자는 단 두명, 지금은 모 포탈에 계신 전 중앙일보의 이 모 기자(박찬호의 결혼식에 기자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분입니다)와 저뿐이었습니다. 환송객도 박찬호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한양대 동기생이던 차명주 한 사람 뿐이었죠.

저를 뺀 세 사람은 그 며칠 전에도 함께 노래방을 다녀왔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좀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저는 세기의 대투수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어 봤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까지의 박찬호는 맥주 한잔도 피할 정도의 금주가였던 반면 노래방이 없으면 못 산다는 귀여운(?) 면을 보여줬습니다.

기회가 기회였으므로 내심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94년말, 박찬호가 소속된 LA 다저스에 일본의 야구 영웅 노모 히데오의 입단이 결정됐습니다. 매스컴이 노모에게 박찬호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된 소감을 묻자 "축하한다. LA의 한국 나이트 클럽이 좋다던데(?) 박찬호와 함께 놀러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당연히 기자들은 박찬호에게 이 말을 전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죠. 이때 박찬호의 대답은 "난 그런데 안 간다"는 짧고 무뚝뚝한 것이었다고 보도됐습니다.

저는 95년의 박찬호에게 당시 왜 이런 식으로 대답했느냐고 물어봤죠(메이저리거에게 그 귀한 시간에 이런 거나 물어보냐고 질책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그게 궁금했거든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분 나쁘잖아요. 자기가 왜 한국 나이트를 가요." 그렇습니다. 독립기념관이 가까운 공주 출신의 우리 찬호군은 항일정신이 탄탄한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뒷날, WBC 일본전에서의 박찬호를 봤을 때도 이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도 박찬호는 지극히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은 기회가 왔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즐기지 않죠. 당시 박찬호는 슬슬 '거만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라 그 정황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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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대를 뛰어넘어 2008년 연말, '1박2일'에 나온 박찬호는 몰라볼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방송 초반에는 어느 정도 경직된 모습이었죠. 하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보면 강호동이 아닙니다. '운동 선후배'임을 들어 일단 '말을 트고', 한대 맞고 나면 아찔해지는 딱밤을 통해 박찬호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죠. 이것이 당대 최고 MC의 실력입니다.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누구나 알 수 있듯 냉수 입욕입니다. 여기서 강호동 역시 특유의 경쟁심을 보여줍니다. '네가 1인자면 나도 1인자'라는 것이죠. 한겨울에 냉탕에 들어간 두 사람은 만만찮게 버팁니다. 여기서도 강호동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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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출연은 강호동과 박찬호에게 윈-윈 게임이었습니다. '1박2일'은 정상의 방송이라는 성적과 자신감, 또 첫 게스트 기용에서의 성공이라는 이익을 봤고 박찬호는 그동안 자신을 알게 모르게 감싸고 있던 '거리감'과 '거만함' 등등의 부적절한 이미지를 씻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또 과거로 잊혀질 뻔한 '117승의 신화'를 되살리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죠. 

(이날 막내 이승기가 "저는 어려서 잘 모르는데 그때 그렇게 박찬호 선수가 대단했나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저는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그게 벌써 그렇게 옛날 일이 됐구나....)

아무튼 13년전의 그 내성적인 거한 청년이 이렇게 유연하게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걸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현역인 박찬호, 2009 시즌에는 왕년의 위력을 다시 찾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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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가 국내에서 상영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제작자를 꼽자면, 1위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월트 디즈니일테고 두번째는 미야자키의 이름이 나올 겁니다.

미야자키가 왜 유명한지까지를 글 하나로 커버한다는 건 만용일테고, 얼마 전 '포뇨'의 개봉에 맞춰 미야자키를 잠시 돌아본 글을 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문득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안노 히데아키도, 오시이 마모루도, 다카하타 이사오도,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거장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봉준호, 임권택, 박찬욱이 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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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간 67세의 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친화, 환경보호, 반전 등의 주제와 그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1978년 감독 데뷔작 '미래소년 코난'은 핵전쟁으로 철저하게 문명이 파괴되어 바다로 덮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나온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바다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다.

포뇨는 인간세계가 싫어 바다로 떠난 마법사 아버지와 대양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얼굴의 물고기 소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간 소년 소스케와 포뇨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두 어린이의 사랑은 바다로 뒤덮일 뻔한 지구를 구한다.

1941년생이지만 미야자키에게서 은퇴의 기미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영화제들로부터 받은 찬사가 노익장을 뒷받침하는 분위기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지브리 박물관은 전 세계 '아니메(Anime)'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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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에서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극장에서도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대박을 터뜨리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미야자키도 이제 늙었다'는 신통찮은 평가를 들어야 했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상과 동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 관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부모들은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플롯에 고개를 흔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사실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봐도 어린이용, 온 가족용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이웃집의 토토로'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이 10대 중반 이하의 소년 소녀지만,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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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모험 드라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일본 전설을 배경으로 한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놀라울만치 성숙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돼지 얼굴이 되어 숨어 사는 노장 파일럿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미야자키는 이런 평가에 대해 주인공 소스케가 자신의 아들 고로의 다섯살 때를 모델로 했으며, "처음부터 다섯살 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쩐지 이 작품 속의 어른들은 동화적인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소스케를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구박하지 않는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른' 들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의 장남 고로의 감독 데뷔작인 '게드 전기(2007)'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고 자란 '제2의 미야자키'가 즐비하다. 그 또한 자신을 애니메이터로 만든 것은 '우주소년 아톰(원제: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을 만든 거인 데츠카 오사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에서 제2의 김청기, 제2의 신동헌은 언제쯤 나올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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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신동헌의 '소년 홍길동'이나 김청기의 '로보트 태권 V', '황금날개'를 보고 자란 세대 중에는 아직 그만한 스타 애니메이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닐 겁니다. 정부의 지원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물론 저 일본의 거장들이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 방안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힘든 일이나 도제식 수업을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보다 구체적인 데 강하고 상상력이 다소 부족한 듯한 국민성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스토리의 힘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법이나 신기한 CG가 아니라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지막으로 탄탄한 스토리의 국산 애니메이션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원작의 장점까지도 망쳐 버렸던 '아마겟돈'의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아무튼 더 길게 얘기할만큼 아는 게 없어서 유감입니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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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벼랑 위의 포뇨' 리뷰는 이쪽입니다. 일각에서는 메시지라고는 없는 '포뇨'를 보고 미야자키 선생의 에너지가 다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하게 듣지 않았습니까? 이제 '토토로'의 세계를 다시 한번 본다고 나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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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서운 기세로 대세로 상승하고 있는 손담비 얘깁니다. 연예계에서는 흉내내는 사람이 나타나면 뜬 거라는 얘기가 있죠.

손담비가 '미쳤어'에서 보여주는 의자춤을 온갖 여자 연예인들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신봉선, 현영, 정가은 등에 이어 남자인 비도 살짝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정도입니다. 동영상 사이트들을 찾아보면 '여고생 의자춤' '여고생 미쳤어' 등의 제목으로 일반인들이 흉내낸 손담비의 의자춤 UCC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굴+몸매+춤 실력은 탁월해서 언젠가는 뜰 거라고 생각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동안 손담비를 띄우려는 주위의 노력에 비해 큰 성과가 없어 소속사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기도 했는데, 이제 걱정이 끝난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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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포즈는 사실 그리 쉽게 나오지 않죠. 몇몇 사람들이 따라했지만 저 쭉 뻗은 다리의 포스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대개 저 상태에서는 무릎을 어느 정도 구부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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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자춤의 원류는 어디일까요. 사실 의자를 사용한 춤 자체는 드물지 않습니다. 25년 전 영화 '플래시댄스'에도 이미 의자를 이용한 섹시 댄스 퍼포먼스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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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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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이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Stronger'의 뮤직비디오에서 의자를 갖고 별 짓을 다 한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기억이 나실 겁니다.




물론 저 비디오에도 결정적으로 손담비를 유명하게 한 '의자 등받이 위로 다리 넘기기' 동작은 나오지 않죠. 그런데 놀랍게도 할리우드의 고전 명화를 보다가 손담비 의자춤의 원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51년작, '파리의 아메리카인'입니다. 뮤지컬 영화의 역사를 따질 때 역시 진 켈리가 주연한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과 함께 결코 빠뜨려서는 안될 대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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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살고 있는 가난한 미국인 화가 제리(진 켈리)는 어느날 우연히 부자 미망인 마일로(니나 포크)로부터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같은 날 프랑스 미녀 리즈(레슬리 카론)를 보고 반합니다. '무척 가난한 도시'로 묘사되고 있는 2차대전 직후의 파리를 배경으로 제리가 두 여자 사이에서 겪는 고뇌와 가난한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이 그려진 고전 뮤지컬의 걸작이죠.

최근 DVD 시장의 충격을 대변하듯 직배사들이 잇달아 한국을 대상으로 한 DVD 사업을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폭탄 세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고전 걸작인 '키스 미 케이트'와 이 영화를 묶어 파는 상품이 있어 얼른 샀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TV로 볼 때는 몰랐던 장면이 나오더군요. 물론 다 커서 보더라도 요즘이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갈 장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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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유튜브에는 역시 있군요. 

여기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 40초쯤부터 시작됩니다.)

 

의자 위로 다리 드는 춤 정도야 '시카고'에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하지만 저렇게 의자 등을 앞으로 해 놓고 다리로 넘기는 장면은 그리 흔치 않죠. 아마도 저 영화가 1951년작이니 '의자 등받이 위로 다리 넘기기'의 오리지널은 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워낙 고전에 걸작이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써먹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기도 하죠.

그냥 뜻밖의 장면에서 낯익은(!) 장면을 발견하고 혼자 웃었다는 얘깁니다.

참 이 카메라 CF에 나올 때만 해도 '왜 이렇게 성장 속도가 더딜까' 우려하게 했던 손담비 양. 이제 내년엔 할리우드 영화에도 나온다니 여러 가지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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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이런 사촌동생까지 등장했군요. 인물이 집안 내력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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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혹시 이게 낚시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까봐 - 이건 낚시 아닙니다. 17대 1로 악당들과 싸우다가...는 아니지만 아무튼 약간의 부상으로 집 근처 병원에 들어앉게 됐습니다.

이게 아무래도 2008 운세의 마지막 챕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말연시라 한창 바쁠 때 혼자 쉬게 되어 여기저기에 참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팔자라면 받아들여야죠.^^ 어쩌겠습니까. 병상 사진이라도 찍어 올려 볼까도 했는데 뭐 흉한 모습 보여 뭘 하겠습니까.

아무튼 당부하자면, 다들 샤워하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대개 운동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말려들었을 때 흔히 써먹는 핑계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당하고 보니 아찔합니다.

입원이긴 합니다만 별 일은 아니니 걱정들은 마시고 - 그나자나 이 부상 때문에 각종 마무리 송년회와 신년회는 당분간 힘들어질 듯 합니다. 다들 올해 마지막 주말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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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저렇게 붙인 건,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강력한 낚시 얘기가 있어섭니다. 오래 전 제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한 편 올려 보겠습니다. 어찌 보면 좀 무섭고 슬픈 얘기기도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6.25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서울 거리, 한 거지 소년이 있었어.

비록 거지라고는 하지만, 시절이 시절이다보니 거지지, 누가 거지가 되고 싶었겠어?

먹을 게 없어서 거지가 되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다

잘 씻어놓고 보면 배추쪽같이 희멀걸 것 같은 얼굴의 소년이 있었어.

이 비슷한 또래의 소년들이 깡통을 놓고 다들 구걸을 하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매일 지나다니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전당포를 경영해서 그 시절에도 따슨 밥을 먹고 사는 부자였지.

 이 할아버지도 수많은 거지들 중에서 어딘가 눈에 띄는 소년을 알고 있었지.

 어느날 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던 할아버지가 괴한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어.

 할아버지의 현금 보퉁이를 노린 거지.

 괴한들은 달아나고, 혼자 거리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그 소년이 발견하고,

 병원까지 업고 뛰어가서 목숨을 구하게 된거야.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는 소년을 알아보고,

 '진작부터 너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내 너에게 목숨 빚을 졌구나.

 이 은혜를 갚고 싶다.

 혹 부모님이나 친척이 계시냐' 하고 물었어.

 그런 사람이 있으면 거지로 길에 나앉아 있을 리가 없지.

 소년이 고개를 젓자 할아버지는,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세끼 밥이나 먹고, 학교는 가게 해 주마.'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갔어.

 마침 할아버지도 아들 내외를 전쟁통에 잃고 가정부 아줌마와 손녀딸만 함께 살던 참이었지.

 소년이 들어오면서 집안은 묘하게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

 잘 씻기고 먹여 보니 예상대로 소년은 귀태 나는 미소년인데다 머리도 총명했지.

 처음엔 거지라고 싫어하던 손녀딸도 한살 아래인 소년을 잘 돌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둘은 친남매 못잖게 친숙한 사이가 되어 버린거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둘은 어른이 됐어.

 둘은 너무나 서로를 아꼈지만, 누구도 그걸 남녀감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그러다 나이가 찬 소녀가 선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됐어.

 소년은 왠지 모를 상실감에 시달리게 됐지.

 그러던 어느날, 못 먹는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방황하던 소년은 문득 깨달아버렸어.

 그녀를 잃으면 자기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녀에게 반드시 이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걸.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은 바로 내일.

 미친듯이 집으로 달려간 소년은 소녀를 찾았어.

 그러나 방은 텅 비어 있었지.

 이방 저방을 찾아 헤매던 소년은 마침내 다락방에서 소녀를 발견했어.

 소녀도 허전한 마음에 어려서 함께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첩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던 참.

 이제 처녀가 된 소녀는 놀란 눈으로 숨을 헐떡이는 소년을 바라봤지.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누나...'

 소녀는 물었지.

 '왜...?'

 소년은 목이 메어 소리쳤어.

 '누나, 결혼하지마! 난 누나를 정말 사랑해!!!'

 소녀의 눈이 놀람으로 커지는 걸 바라보면서 소년은 소녀를 와락 껴안았어.


 그 순간!








'우지지지직!' 소리가 소년의 머리 속 가득 울렸어.








그 소리에 놀란 소년은 눈을 번쩍 떴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있던 깡통이, 너무 세게 껴안는 바람에 찌그러져 있었던 거야."



어땠습니까? 너무 강했나요?^^

즐거운 연말, 사랑하는 분들을 이 얘기로 낚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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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지나면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포스팅일 것 같아 허겁지겁 올립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때 생각나는 수많은 음악 종류들이 있지만 캐럴 종류를 제외하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삽입곡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에 들지 않을까 합니다.

'뮤지컬=앤드류 로이드 웨버'로 여겨지는 한국에서도 이 뮤지컬(이하 'J.C.S')은 사실 그리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팬텀'을 가장 먼저 꼽게 되고 그 다음은 '캐츠'나 '에비타'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웨버의 최고 걸작을 논한다면, 저는 이 작품을 빼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뮤지컬을 처음 본 것은 1981년의 일인 것 같습니다. 당시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 무대에 올려진 'J.C.S'에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멤버들이 캐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김도향 추송웅(이상 유다), 윤복희(막달라 마리아), 이종용(예수), 그리고 유인촌 최주봉(이상 빌라도) 등이 기억나는 출연진입니다.




'피터팬' 종류를 제외하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뮤지컬이었는데, 그야말로 혼이 나가 버렸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멜로디, 처음 들어보는 가사. 이건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세계의 바깥에 있는 물건이더군요.

그날로 성음에서 나온 오리지널 캐스트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습니다. 그 테이프 속의 유다 목소리가 머레이 헤드(몇년 뒤 'One Night in Bangkok'으로 유명해집니다), 예수 목소리는 그 유명한 딥 퍼플의 리드 보컬 이언 길런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아무튼 골백번 들었습니다. 노래 순서는 물론이고 가사까지 다 외웠죠.

(뭐 옛날 얘깁니다. 확인은 하지 마시고. ^^; )




그 뒤로 당연히 1973년 노먼 주이슨이 만든 영화판도 봤고, 공연만도 5-6차례 봤습니다. 그리고 최근, 지난해 12월 15일에도 브로드웨이 투어 팀(?)의 잠실 공연도 달려가서 봤죠. 그리고 나서 다시는 체육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뮤지컬에는 수없이 많은 명곡이 등장합니다. 유다와 예수 역의 노래들은 전부 명곡 중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예수가 부르는 '겟세마니 Gethemane'는 웬만한 가수가 불러도 박수가 나오는 강렬한 곡입니다. 들어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웨스트엔드-브로드웨이의 최고 스타 테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볼은 이 노래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이 버전은 일종의 표준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버전도 휼륭하지만 물론 약간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 노래가 담고 있는 절박한 상황, 즉 아들 예수가 "왜 당신의 계획을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하느냐"고 아버지 하느님에게 마지막 한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점잖다는 것이죠.

비교의 근거는 이런 가창입니다. 이언 길런이 부른 버전이죠.




물론 어느 쪽이든 훌륭한 가수의 훌륭한 가창이기 때문에 한 쪽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의 '절절한 심정'이 녹아 흐르는 듯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미칠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적인 예수의 목소리로는 길런이나 영화판의 테드 닐리가 더 마음에 듭니다.

길런의 스타일을 재현하는 가수로는 인기 높은 스티브 발사모가 있습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박자가 약간 제멋대로^^인 느낌이 있지만 라이브에서 이 정도의 감정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최고 수준의 가수나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젊은 이언 길런이 1990년대의 음향 장비로 이 노래를 불렀다면 이보다 더 인상적인 녹음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 역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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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뮤지컬에서 예수 역보다 좀 더 중요한 역은 유다 역입니다. 두 역할은 서로 대립하면서, 어떤 때에는 살짝 동성애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죠. 아무튼 약간 대조를 이루는 가수들이 역할을 나눠 맡게 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노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곡은 아무래도 마지막 부분의 'Superstar'죠. 이 뮤지컬 전체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불행히도 이번 공연에서 유다의 목소리는 그럴 듯 했지만 코러스나 무용수들의 배치가 좀 무성의했습니다. 좀 더 화려한 무대를 기대했기 때문일테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들어 본 녹음 중에서 가장 훌륭한 버전으로는 이걸 꼽고 싶습니다. 1998년 로열 알버트 홀에서의 웨버 50세 기념 공연중(위의 마이클 볼이 등장한 바로 그 무대입니다) 마커스 로빗이 전 출연진을 코러스로 두고 불렀습니다.






그 다음은 살짝 코믹한 버전입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부르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선 링크를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버전은 퍼 올 수가 없게 되어 있더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ZDGoFnMNHVI 로 가서 직접 보세요.

(코믹하다는 것은 언어에 대한 편견이 아닙니다. 노래 실력은 상당하지만, 시립 오페라단의 바리톤과 합창단이 와서 'JCS'를 공연한다면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웃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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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유다를 중심으로 볼 때 이 뮤지컬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최후의 만찬'입니다.

예수와 열두 사도가 모여 저녁식사를 나눕니다.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포크 풍으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서의 소박한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던 예수는 너무도 생각 없고 단순하기만 한 사도들에게 역정을 내며 '너희들이 날 기억하겠느냐. 베드로 너는 내가 죽자마자 세번이나 나를 부정할 것'이라며 가치돋친 말을 쏘아댑니다.

이를 본 유다는 '그건 다 네가 자초한 것'이라고 되쏘고, 예수는 '배신자. 어서 가서 네 일을 해라. 그들이 기다리고 있잖아'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은 보컬로서의 한계를 시험하듯 치열한 배틀에 들어갑니다.


1973년 영화판을 보시는게 이해가 빠를 겁니다. 예수는 테드 닐리, 유다는 칼 앤더슨입니다.




김동욱과 박완규 버전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실연과 녹음의 차이이기 때문에 이 소리만으로 한국 가수들을 폄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김동욱은 약간 아쉽습니다.






자,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니까 마지막압니다. 이 뮤지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의 노래, 'I Don't Know How to Love HIm'입니다. 이 노래를 녹음하지 않은 여가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가수들도 선호하는 곡이죠.

누구의 녹음을 고를까 하다가 웨버의 영원한 디바인 사라 브라이트만부터...




하지만 이 노래를 누구든 불렀을 때 가장 기준이 되는 건 아무래도 이본느 엘리먼입니다. 아무래도 브라이트먼의 목소리는 이 노래에는 좀 지나치게 기름지다는 느낌이 있죠. 그래서 좀 부족하고 애절하다는 느낌이 떨어집니다. 반면 엘리먼은 감정이 넘쳐 흐릅니다.





어떤 무명 가수가 유튜브에 올려 놓은 버전입니다. 이번 내한 공연팀의 마리아는 독감에라도 걸렸는지 너무나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이 노래는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 어떤 공연도 완벽할 수는 없겠죠.




시너드 오코너가 부른 버전도 저는 마음에 듭니다만 그건 퍼 올 수가 없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ryCMGSK6slQ 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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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에덴의 동쪽'에 나오고 있는 이다해의 모습을 2주 후면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다해가 '거짓된 연기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선언한데 이어 제작사와 방송사 측이 이다해는 40회 정도까지만 출연하는 것으로 조정을 마친 듯 합니다.

이다해와 유사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너무 과도한 PPL 등으로 비난을 받아온 '루루공주' 출연 도중 "진심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출연할 수 없다"고 했고 '마녀유희'의 한가인이 제작진을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례들도 이다해와는 사건의 핵심적인 동기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쨌든 출연하던 작품을 끝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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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해의 글이나 주변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중도 하차를 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이다해의 역할이 당초 기획단계에서 약속된 것에 비해 너무 축소된 것이라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너무도 흔했습니다.

1997년, '별은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에서 최진실 차인표 안재욱 전도연이라는, 당시로서도 빛을 발하는 캐스팅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안재욱과 전도연은 아직 최고 스타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레벨이었고, 차인표와 최진실이 단연 투톱이었죠.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만화 '캔디 캔디'와 똑같았습니다. 고아 출신의 여주인공 최진실이 부잣집에 들어오고, 우연히 명문가 출신으로 가수 지망생인 반항아 안재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죠. 물론 이 뒤에는 조용히 최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엄친아 차인표가 있습니다. 결국 안재욱은 전도연에 대한 연민 때문에 전도연과 맺어지고 최진실은 차인표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당초의 구도였습니다. 만화를 보신 분이라면 캔디(최진실) 테리(안재욱) 윌리엄(차인표) 스잔나(전도연)이 그대로 구현됐다는 걸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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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하자 구도가 흐트러집니다.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톱스타 감은 아니라고 여겨졌던 안재욱은 이 드라마를 앞두고 독한 마음을 먹고, 앞머리를 늘어뜨린 순정만화형 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여기에 당시 소녀 팬들의 열광이 쏟아진 거죠. 시청률은 사회 현상이 될 정도로 치솟고, 제작진은 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안재욱-최진실의 비중을 높입니다. 주인공이었던 차인표는 조연이 되어 갔고, 조연이었던 전도연은 단역이 되어 갔죠. 결국 결말마저도 시청자들의 뜻대로 최진실과 안재욱의 해피엔딩이 됐습니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분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인표와 전도연은 지금도 당시 드라마의 제작진과 소원한 관계입니다만 당시에도 공식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부분은 연출진의 권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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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얘기지만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방송을 해 가면서, 시청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가면서 드라마를 만드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드라마의 결말이나 인물의 비중이 당초의 구상과 달라지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합니다. 이유도 여러가지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갑자기 비중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연출자의 판단에 따라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류의 문을 연 드라마 '가을동화'도 마찬가지. 당초 송승헌-송혜교의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악역은 송혜교와 바뀐 딸 역인 한채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인이었던 한채영은 그 역할을 감당할만한 연기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채영은 단역으로 변했고 송승헌의 애인 역으로 나왔던 한나나의 비중이 갑자기 커졌습니다.

왕년의 인기 드라마였던 '여인천하'에서도 강수연-전인화가 주인공으로 굳혀지는 과정에서 박상민과 김정은 등 당초 주연급으로 간주됐던 연기자들이 도중에 빠져나갔습니다. 당연히 이들 또한 자신의 역할 축소에 대한 문제로 제작진과 갈등을 빚었죠.

이처럼 배우의 비중이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커지고 작아지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그런 상황에 이다해처럼 격렬하게 반응하는 일은 대단히 드뭅니다. 이다해의 경우, 하차 문제를 놓고 제작진과 충분히 논의를 했고, '하차선언' 이전에 하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스스로 '나 이 작품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은 경솔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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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현장 관계자들은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한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것은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합의한 것인데 이렇게 빠져나가 버린 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입장입니다. 또 어떤 경우든 자신이 출연하던 작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의를 지켜 줘야 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스스로 원했든, 제작진의 선택이든 중도 하차가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닌 만큼 내놓고 얘기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은 배우와 제작진 중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일부 연기자들은 "시나리오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영화만 하겠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의 경우에도 중간에 배우의 비중이 달라지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죠.

얼마 전 '박중훈 쇼'에서 박중훈은 최진실과 함께 출연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의 에피소드를 얘기했습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최진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연기도 썩 잘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촬영이 진행되는 사이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광고가 떴고, 하루가 다르게 최진실이 스타가 되는 걸 느꼈다. 결국 영화가 개봉될 때 영화사는 포스터에서 아예 내(박중훈) 사진을 빼고 최진실 혼자 있는 모습을 내놨다. 기분이 나빠 항의했다"는 얘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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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이다해의 문제는 결국 전작제가 실시되지 않는 상황, 즉 드라마 전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을 시작하고,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촬영을 계속해야 하는 현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방송 전에 드라마가 모두 촬영됐더라면 이렇게 문제가 될 일도 없었죠.

하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게다가 20부작도 아닌 50부작을 모두 사전제작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그리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죠. 또 어떤 배역이 축소되고 어떤 배역의 중요성이 갑자기 부각되는 것은 결국 제작진의 권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드라마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제작진이죠. 이를 위해 역할을 조정하거나 아예 빼 버리는 일, 새로운 역할을 추가하는 일 등은 제작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다해의 '공개 해명'은 좀 성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이다해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조용히 하차하거나 묵묵히 끝까지 출연하는 것이었을텐데, 그렇게 하기에는 연기자로서의 자존심이 너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이다해의 가장 좋은 복수는 최대한 이 작품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에서 멋지게 성공해 '에덴의 동쪽'이 스타 이다해의 위치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것이었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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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용 포스팅이 보입니다. 크리스마스용 영화 관련 포스팅도 넘쳐나죠. 주관적으로 뽑은 베스트 크리스마스 무비 순위 등등. 뭐 역시 뻔합니다. '러브 액츄얼리', '세렌디피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로맨틱 홀리데이' '그린치' '007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달달한 영화들의 줄세우기죠.

그래서 약간 색다르게 구성해봤습니다. 제목은 '7편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통해 정리한 한 남자의 일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크리스마스 때에는 기적이 일어나 인생의 전기를 맞는 꿈을 꿉니다. 아무튼 일곱 편의 영화 속 주인공이 모두 같은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일곱 번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어떻게 변신해가는지 살펴보자는 의도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보시면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갈 겁니다. 자, 그럼 첫번째 영화부터 시작합니다.



1.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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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은 이렇지만,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겐 '도쿄 갓파더스', 혹은 '도쿄 대부'로 더 익숙한 작품입니다. 콘 사토시 감독의 2003년작이며 초강추작입니다.

존 웨인 주연의 1947년작 '3 Godfathers'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은 황야에 버려진 아기 하나를 발견한 세 명의 무법자가 어찌 어찌 하다가 자기 목숨을 버려 가면서 아기를 보호한다는 내용으로 저도 어렸을 적 TV에서만 본 작품입니다.

콘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까칠한 노숙자, 은퇴한 게이, 가출 십대 소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고 친부모를 찾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동, 웃음, 액션,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걸작입니다.

...뭐 이런 얘기가 전부가 아니고,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 고해라는 걸 깨달은 셈입니다.



2. 나홀로 집에(Home Alone,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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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애정이 없는 영화입니다. 참고로 저는 '톰과 제리' 보면서도 톰을 응원한 사람입니다. 매컬리 컬킨 같은 꼬마를 보면 그냥...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은 갓 태어났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소년으로 자라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집에 도둑이 들면 울거나, 오줌을 싸거나, 도망치거나 하겠지만 이 당돌한 소년은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대항합니다. 영화니 망정이지 실제 상황이었다면 도둑들은 화상으로 죽고, 맞아 죽고, 계단에서 굴러 목 부러져 죽고, 못 밟아 죽고, 과다출혈로 죽고, 이 소년은 어린 나이에 찰리 맨슨의 후계자로 위키피디아에 등재됐을 지도 모릅니다.

어째 다음 영화로 '양들의 침묵'이 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 소년의 폭력성(!)은 약 30년  동안 잠잠하다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다시 살아납니다.




3. 패밀리 맨 (Family Ma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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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밖에 모르는 월가의 거물 니콜라스 케이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사랑하던 여인 티아 레오니와 헤어지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꿈을 꾼 뒤 인생의 의미를 찾는 내용입니다. 수전노 스크루지가 꿈을 꾸고 나서 새 삶을 찾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패러디죠.

사실 제가 독신이던 시절, 이 영화는 꽤나 가슴을 무겁게 했습니다. 라디오 출연때 이 얘기를 했더니 황정민 아나운서 왈, "내가 아는 독신남 하나는 지난 10년간 크리스마스 때마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 영화를 보고, 볼 때마다 운다더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이 영화엔 남자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 영화의 첫 시퀀스입니다. 하룻밤 파트너 아가씨에게 "오늘 저녁에도 만날까?" 했다가 "뉴저지에 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 해. 크리스마스 이브잖아"라는 말에 머쓱해진 니콜라스 선생. 괜히 파바로티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La Donna Mobile)'를 100평짜리 아파트에 쩌렁쩌렁 울려퍼지게 틀어 놓고 팔까지 휘저으며 따라 부릅니다. 남자들은 압니다. 본능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지극히 성공지향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해서 바람둥이가 되고, 꿈을 꿔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지만(영화의 결말과는 조금 다르게) 결국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래서...?




4.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 1957, Love Affai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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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그란트-데보라 카, 워렌 비티-아네트 베닝 두 번의 커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고. - 자연스럽게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과 연결되는 전설적인 멜로 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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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남자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를 우연히 만나, '우리의 사랑이 식지 않는다면 6개월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나오지 않고... 평생을 갈 것 같던 오해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아마도 현대 관객들에게는 1994년판의 비티와 베닝이 더 취향에 맞겠지만, 그 원작의 아름다움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아, 물론 보진 못했지만 프랑스 영화인 진짜 오리지널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데보라 카가 불렀던 'Our Love Affair'를 조쉬 그로번이 부릅니다. 원곡을 알건 모르건, 이 목소리와 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실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남자의 인생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하지만 그 다음 영화는...?



5. 다이 하드(Die Hard,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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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랑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여자는 남자가 있는 뉴욕을 떠나 LA로 일하러 가버립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아내를 만나러 LA에 간 남자는 아내가 있는 건물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점거되는 광경을 목격하죠.

어쩌겠습니까. 아내를 구해야죠. 그런데 신기한 건 자신이 이런 상황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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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그가 어린 시절, '나홀로 집에' 있을 때 저질렀던 그 잔혹한 만행들을. 그 꼬마가 커서 이제는 힘과 경험, 총기 사용법까지 익혔으니 그저 상대 테러범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몇년 뒤, 공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홀로 집에'를 보지 못한 악당들은 너무도 가련하게 시체조차 찾기 힘든 죽음을 맞습니다. 또 다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몇 차례나 테러의 위협을 물리쳐 영웅이 된 남자는 정계로 진출합니다.



6.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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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유쾌했던 건 영국 총리가 된 휴 그랜트가 비서를 유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워킹 타이틀=휴 그랜트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그의 명 연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테러를 진압하더니 갑자기 웬 영국 총리냐고 항의하시는 분들, 네. 그 분들을 위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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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미국 대통령 빌리 밥 손튼이 되어 영국 총리가 눈독 들이고 있던 비서에게 추근댑니다. 그 결과가 미국에 대항하는 영국의 자주 정책(?)으로 나타나죠. 뭐 어느 쪽이면 어떻습니까. 아무튼 정치를 하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총리 관저에서 '미국 대통령에 맞선 용감한 총리'라는 라디오 방송의 칭찬을 듣던 휴 그랜트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노래는 포인터 시스터즈의 올드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걸즈 얼라우드의 'Jump'.





7. 34번가의 기적  (Miracle on 34th Street 1947, 1973,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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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는 실제로 존재할까요? 영악한 아이들은 일찍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은 꽤 믿는 편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미국의 수많은 백화점들이며 각종 기구에서 '아르바이트 산타클로스'를 고용하죠. 할일없는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주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를 진짜 산타라고 믿는 소녀, 소녀를 위해 진짜 산타임을 고집하는 노인, 그러다 이 노인이 법적으로 자신이 산타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선의를 가진 어른들이 노인을 도우면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세 편의 영화가 있지만 아무래도 우체국 두 남자의 장난(?)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오리지널 1947년판의 문제 해결 방식이 가장 유쾌하고 인상적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대통령직(총리직...?)도 말아 먹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이 지나치게 충동적인 삶을 살았다는 걸 반성하고 아르바이트 산타로서의 직무에 충실해집니다. 마지막에나마 세상에 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말이죠.

이렇게 해서 이 남자의 인생에도 마지막으로 평화가 찾아옵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면 10년에 한번 꼴로 인생이 변하는 남자라니. 하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만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요. 기대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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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에 걸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1000회 특집이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지난 20년, 1000회에 걸쳐 국민들의 주말 시간대를 장악했던 거대한 프로그램의 역사를 짚어 보는 특집이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일밤'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빠져서는 안 될 주병진, 노사연, 이문세, 이홍렬, 신동엽, 최수종 같은 이름들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자료 화면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병진의 경우 스스로 연예인으로서 다시 TV에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고, 신동엽의 경우 SBS에서 현재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예의상' 출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작 두 차례의 특집에 출연한 사람들 중, 최근 몇년이 아니라 일밤의 20년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이경규와 김용만, 이휘재, 김국진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이 정도의 숫자는 '20년 총정리'를 말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밤 1000회' 특집의 제작진은 어느 정도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리가 허술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이경규의 존재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대중문화에서 이경규와 '일밤'이 지금까지 남긴 족적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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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일밤'에 가장 많이 출연한 인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이경규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가지 장르의 막을 열었습니다. 하나는 그 자체가 장르의 이름이 된 '몰래카메라'고, 또 하나는 '이경규가 간다'로 대변되는 국민 계도성 오락 프로그램 입니다.

90년대 후반까지 누가 뭐래도 MBC 예능은 경쟁 방송사들을 압도했습니다. 그 시기를 지킨 수많은 예능 PD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송창의(현 tvN 사장)-은경표(현 워크원더스, DY 사장)로 대변되는 '재미 지상주의' 세력과 주철환(현 OBS 사장)-김영희(현 PD연합회장)로 대표되는 '교양주의(혹은 당의정파)' 세력입니다. 일단 오락 프로그램은 재미가 있어야 하며 그 재미가 바로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라는 것이 전자의 입장, 그리고 재미가 있는 가운데서도 보고 나면 뭔가 생각할 거리나 느낄 거리를 줘야 한다는 것이 후자의 입장입니다.

이중 후자의 결정판이 바로 '이경규가 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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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뭐든지 할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만큼 '이경규가 간다'의 정체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 어느날, '이경규가 간다'는 이른바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우리 사회의 숨은 양심을 찾겠다는 취지에서 전 국민을 몰래카메라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포상을 의식하지 않고 대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 국민의 영웅으로 삼겠다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습니다.

지금도 몇몇 주인공들 - 심야 정지선을 지킨 장애인 운전자, 한밤에도 자동차 전용도로 제한속도를 지킨 중소기업체 사장, 복잡한 지하철의 높은 계단 앞에서 무거운 보퉁이를 든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장병 등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경규가 간다'는 그동안 재미만 있으면 자기 몫을 다 했다고 여겨지던 오락 프로그램들도 공익적인 목표를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나갔습니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뿌리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MBC만이 가진 독보적 무기로 톡톡한 공을 세웠습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나 아예 다른 프로그램으로 출범한 '느낌표'를 비롯해 수많은 코너와 프로그램들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감동과 재미라는, 종래에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울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죠. '이경규가 간다'는 또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보였듯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오락 프로그램에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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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상에서의 나날이 길다 보니 이경규 역시 잘 된 프로그램도, 실패한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너구리 사건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적도 있었죠. 주병진이나 이홍렬, 신동엽처럼 당대 최고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천재형 MC들과 나란히 섰을 때에는 재능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예능 MC의 가능성을 지금처럼 확대했고, 10년 이상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다는 꾸준함과 공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수많은 '진짜 왕'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무시당해 '일밤 1000회 특집'이 내세운 '왕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낯간지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경규가 있어 볼만했습니다. 공약대로 '일밤 2000회 특집'에서도 이경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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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영화의 제목 짓는 기술이 영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과속스캔들'도 제목만 잘 지었다면 훨씬 더 히트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이어 '달콤한 거짓말'도 어쩐지 이 너무나 평범한 제목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박진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박진희가 거짓말을 해서 여러 남자를 농락하는 여자인 양 그려져 있습니다. 상세한 줄거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어쨌든, 제목의 '거짓말'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뭔가 너무나 뻔한 영화인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심한 영화 취급하기엔 '달콤한 거짓말'은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다른 요소를 다 떠나서,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중 가장 여주인공의 비중이 큰 영화의 주역을 맡은 박진희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영화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리고 박진희는 그럴 자격이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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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이 꽤 고약한데다 맡은 방송마다 조기종영하기 일쑤인 노처녀 방송작가 지호(박진희, 그래 봐야 스물아홉 서른 정도의 나이입니다)는 어릴 적부터 남자와는 낭만적인 첫 만남으로 한 눈에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릴 적 고교 1년 선배인 민우(이기우)에 대한 짝사랑이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추억으로 남아 있죠.

그런 그가 어느날 소매치기를 쫓아 달려가다 외제차에 부딪힙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그리고 자신을 들이받은 차의 운전자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민우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짝사랑이었으므로 민우는 지호를 절대 알아보지 못하죠. 민우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어 가기 위해 지호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상실증을 가장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통해 민우의 집에 들어앉게 된 지호는 우연히 민우의 이상형이 현모양처형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갖은 내숭으로 민우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본색을 너무나 잘 아는 고교동창 동식(조한선)의 등장으로 지호의 사기극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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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배경을 읽고 보면 그리 신기할 게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많은 사건들이 대부분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도 하지만, 설정을 잘 살펴 보면 어떻게든 아귀를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민우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지호가 우연히 동식을 만나 위기를 맞곤 하는 것도 지나친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 세 주인공이 모두 고등학교 동창이고, 그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지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 은숙(최은주)이나 민우의 친구이자 옛날 은숙의 짝사랑 대상이었던 한상(조진웅)이 모두 고교 동문이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추억의 공간이 모두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한 동네이며 함께 소풍을 가곤 했던 동물원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죠. 아울러 양자강이라는 동네 중국집도 여전히 영업중이라는 사실 역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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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코미디 영화인 만큼 가끔씩 개연성의 벽을 슬쩍 넘으려 드는 '달콤한 거짓말'을 안정시키는 절대적인 요소는 박진희입니다. 한국 영화의 신화 중 하나인 '여고괴담' 첫편이 벌써 10년 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에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만큼 빨리 성장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이 배우는 어느 감독이라도 욕심낼 만큼 탄탄한 연기력으로 자신을 관리해왔습니다. 쉽게 빠질 수도 있었던 '글래머 여배우'의 길과는 다른 성실한 노선을 걸어 온 거죠.

최근 들어 '돌아와요 순애씨'나 '쩐의 전쟁'같은 드라마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둬 왔지만 불행히도 스크린에서는 데뷔작 '여고괴담'만큼 주목받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의 기대작 '궁녀'에서도 훌륭한 소재에 비해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본이 박진희의 열연을 묻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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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달콤한 거짓말'은 그야말로 박진희의 원맨쇼입니다. 관객들은 박진희가 가는 길로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두 남자 상대역은 아직까지는 '연기 멀었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젊은 배우들이죠. 이기우도 조한선도 키 크고 허우대 좋지만 한 사람의 배우로 평가받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희의 분전은 정말 눈부십니다. 몸을 날려 차를 들이받는 건 기본이고, 코미디의 기본 요소인 순간적인 표정 변화와 적절한 망가짐이 이 배우가 일정 수위 이상의 내공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익스트림 클로즈업에서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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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배우 중에는 조한선의 캐릭터가 좀 더 유리합니다. 그저 멋진 척만 하면 되는 이기우에 비해 조한선은 확실한 변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죠. 동식이란 인물은 뜯어 놓고 보면 복잡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이나 찍찍 내뱉고 패션이라곤 트레이닝복이 제격인 껄렁한 '동네 형'의 분위기인데 의외로 착실한 살림꾼이고 마음 씀씀이도 깊은 데다 정도 깊습니다. 나름 상상력도 풍부합니다.

동식에게 있어 최고의 장면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패러디 신입니다(역시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기준으로 조한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한 75점 정도는 줘도 될 듯 합니다. 슬슬 이 친구에게도 배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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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거짓말'의 가장 큰 미덕은 코미디를 위해 배치한 사소한 요소들이 제몫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 큰 역이라고 볼 수 없는 지호 동생 역의 김동욱, PD 역의 김광규나 AD 역의 개그맨 정성호, 그리고 제법 중요한 역할인 양자강 맨 정재용은 큰 욕심 없이 자기 몫을 다 합니다. 모든 배우가 홈런을 치려고 달려들다 망하는 실패한 코미디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달콤한 거짓말'을 전체적으로 봐도 이 영화는 '두 시간 이내에 최대한 웃긴다'는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한껏 발휘한 작품입니다. 무슨 대단한 교훈을 주겠다는 야심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엔딩은 - 물론 무슨 반전이 있는 듯도 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죠 - 나름 따듯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실한 제목인 '달콤한 거짓말'에 비하면 훨씬 속이 알찬 영화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코미디의 수작이라는 말은 아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제목이 주는 거부감을 누르고 표를 살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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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박진희의 매력이 빛나는 장면은:
지호: 그럼 민우씨가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민우: 거짓말하는 사람이요.

p.s.2. 영화 도입부와 뒷부분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참 의이한 부분입니다. 만약 영화가 진행 순서대로 촬영됐다면, 정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3. 이승환의 '좋은날'이 나옵니다. 공식 주제곡은 리메이크 버전이지만 역시 원곡을 따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맛뵈기로 살짝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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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독사'와 '독사2'가 만났습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종합병원2'에는 류승수가 악명 높은 치프 레지던트로 나옵니다. 쌍꺼풀 없는 쭉 찢어진 눈에 우락부락한 생김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후배들을 단련시키는 '독사' 역할은 류승수에게 딱 어울립니다. '종합병원2'가 어떻게 끝나든 류승수에겐 남는 게 있을 법 합니다.

오래된 시청자들은 이 '독사' 캐릭터가 어디서 온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원조 '종합병원'에 나왔던 오욱철의 캐릭터였죠. 오욱철의 매서운 눈매와 고문 앞에 이재룡 신은경 등 당시의 젊은 레지던트들은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특히 권위와 관행에 얽매이지 않으려던 주인공 이재룡은 독사에게 '찍혀' 고난의 나날을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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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의 인기에는 바로 이 독사 캐릭터가 큰 몫을 했습니다.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드라마의 인기를 주도하듯 한 거죠. '대장금'으로 대입하면 이재룡이 장금이, 오욱철이 최상궁 정도 됐으려나요. 그런데 18일 방송에 오욱철이 등장하면서 '원조 독사'와 '현재의 독사'가 만났습니다. '종합병원'의 역사를 생각하면 사뭇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독사도 독사 나름입니다. 후배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 되라고 갈구는' 선배와 '죽이려고 드는' 선배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독사라고 불렸다 해도 메디컬 드라마의 단골 캐릭터인 치프 레지던트(레지던트들의 기강과 훈육을 담당)는 분명 전자에 해당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주인공이 최고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이런 캐릭터는 쉽게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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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실미도'의 허준호. 부대원들을 악마처럼 굴리는 조중사 역이었죠. 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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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오래 된 영화지만 '사관과 신사'의 루이스 고세트 주니어입니다. 해군 비행학교 사관생도 리처드 기어를 악랄하게 못 살게 구는 교육 담당 하사관 역이죠. 이 연기로 82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 역시 매끝에 정든다는 속담을 구현하기라도 하듯 마지막에는 리처드 기어와 서로 인간적인 교감을 보여줍니다. 이 대사가 지금도 생각나는군요. 마침내 역경을 딛고 장교가 된 리처드 기어. 이제 상관이 된 기어에게 고세트 주니어가 "Sir"라고 부르며 경례를 합니다. 그리곤 그동안 고마웠다는 듯 닭살스러운 말을 하려는 기어에게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이죠. "빨리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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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제인'의 비고 모텐슨은 독사이기도 하면서 너무 처음부터 데미 무어에게 동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진정한 독사로서의 순도는 떨어집니다. 아무튼 기억에 남는 독사 캐릭터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드라마의 공식 속에서 독사는 끝까지 독사로 남으면 안 되죠. 어느 시점에선가는 '그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였어'라는 식의 해소가 필요합니다. 뭐 너무 당연한 일이라 드라마의 흐름상 이런 장면이 생략되기도 하지만 다소 단순한 시청자들을 고려하고, 또 독사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장면은 반드시 들어가는게 좋겠죠.^

기자들도 초년병일 때에는 거의 모두 독사같은 선배를 경험합니다. 그 선배가 좋은 기억으로 남는지, 아니면 끝까지 '인간 말종'으로 기억되는지는 결국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칼자루를 바꿔 잡고 보면, 굳이 미워할 이유가 없어도 어쨌든 어리버리한 후배들을 보면 목소리가 커 지는게 선배들의 인지상정인 것 같더군요. 물론 소리만 질러서 될 일도 아니죠. 적당히 조이고, 적당히 풀어주는 게 선배가 할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너무나 심하게 '쪼아 대는' 선배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는 이런 말로 슬쩍 넘어가곤 합니다. '탄소를 다이아몬드로 바꿔 놓는 건 엄청난 압력'이라고. 아무튼 요즘 고민 많은 '종합병원 2'에 '돌아온 독사' 오욱철이 어떤 영향을 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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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런 얘기가 왜 나오나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은 지난 주말 방송된 '박중훈 쇼' 첫회 때문에 다시 기어나온 겁니다. (주중에도 재방송?)

언젠가부터 한국의 진짜 톱스타들은 토크쇼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도 정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너무도 바르고 고운 모습들만을 고집하기 때문이죠. 물론 원조 바른생활 사나이 차인표처럼(왕년에 '허리케인 블루' 패러디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작심하고 무너져서 온 국민을 즐겁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다수는 절대 그런 모헙을 하지 않습니다.

'박중훈 쇼'가 장동건에 이어 정우성을 두번째 출연자로 정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재미있을까요? 정우성은 가끔씩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라 첫회보다는 훨씬 부드러울 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할리우드 스타들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썼던 포스팅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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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미국에는 지미 키멜 Jimmy Kimmel이라는 토크쇼 사회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지미 키멜 라이브'라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쇼를 끝낼 때마다 독특한 엔딩 멘트를 사용해왔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뭔고 하니...

누가 게스트로 나오든, 누구와 인터뷰를 하던 중이건 마지막 멘트로 ", 오늘 방송은 이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됐군요. 대기하고 있던 맷 데이먼씨, 죄송하지만 다음 번에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히계십쇼" 라고 말하는 겁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굳이 달자면 "우리는 맷 데이먼 정도는 시간이 남을 때를 대비한 예비 출연자로 쓰고 있다. 즉 우리 쇼에 나오는 사람들은 맷 데이먼보단 훨씬 중요한 스타들이다"라는 식의 농담입니다. 참 한국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물론 미국이라도 '(사람 좋은)맷 데이먼이니까 참는다' 수준의 얘깁니다. 아무튼 맷 데이먼은 자신이 이런 멘트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걸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을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직접 출연 또한 굴욕의 연속입니다. 지미 키멜은 맷 데이먼을 소개하면서 데이먼의 모든 출연작 제목을 거론하는 데 1분 넘는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증스럽게(^^) 데이먼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A man who needs no introduction)"이라고 덧붙입니다.

환호와 함께 등장해 지미 키멜의 옆자리에 앉는 맷. 하지만 여지없이 이날도 ", 시간이 다 됐습니다. 맷 데이먼씨, 죄송하지만 이만---"의 선언이 이어집니다.

맷 데이먼의 'Fuck, Fuck, Fuck' 시리즈도 볼거립니다.

이어지는 공격. 지미 키멜은 정체불명의 하수인 기예르모를 보내 영화 '오션스 13'의 시사회장을 기습합니다.



천진난만한 웃음이 무기인 기예르모는 '지미 키멜 라이브'가 방송되는 방송국의 주차장 관리인 또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솜씨로 보아 방송 훈련을 쌓지 않은 일반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대강 그렇게 넘어가야 합니다.

기예르모의 활약을 살짝 정리해봤습니다.
(뭐 제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한거니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류수정 환영입니다.^)


제작자 제리 와인트로브

기예르모(이하 기): 나도 좀 배우로 써 줘요
제리 와인트로브 : 난 돈은 많이 안 줘
: 사실 지미 키멜도 나한테 돈 주고 이런거 시키는 건 아니에요.
제리: , 그렇군 ;;;

수퍼 데이브 오스본

: (포스터를 가리키며) 그런데 왜 당신은 사진(picture)에 없지?
수퍼: 나는 저 영화(picture)에 나와! (해설: 기예르모가 말하는 picture는 영화 포스터. 하지만 수퍼 데이브 오스본이 말하고 있는 픽처는 영화 '오션스 13'. 같은 단어로 뜻이 달라지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
: (포스터를 가리키며) 봐요. 당신 얼굴은 저 사진에 없잖아.
수퍼: 나 분명히 영화에 나와. 나는 플롯상 미리 공개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당신 저 영화를 보기나 했어?
: (완전히 무시) 맛 데이몬! 맛 데이몬!
수퍼: (열받음) 이봐. 데이먼은 바빠. 여기서 당신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알아? (계속 무시당함)

엘렌 버킨

: 당신 정말 이뻐.
: 고마워.
: 브래드 피트보다 이뻐. (^^;;;;;;)
: (...너 뭐냐)
: 그렇게 수많은 잘생긴 남자들과 수퍼 데이비드 오스본과 함께 영화 찍은 기분이 어때요?
: , 오스본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인데. (예의상)

돈 치들 (이 부분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 돈 치들씨, 안녕하세요.
돈 치들 : 내 이름 좋아해?
: 그럼요
: 대체 무슨 뜻으로 좋아하는거지?
: 당신 보고 있으니 배가 고파져요. (뭐냐;;)
: (쓰러짐)
: 치토스 먹는게 생각나요.
: (뭐라는거냐 -_-;;;)


앤디 가르시아

기예르모와 인사를 나누던 앤디가 옆에 온 버니 맥과 포옹한다.
: 나도 안아줘요! 나도 안아줘요!
앤디, 마지못해 안아준다.


알 파치노

: 안녕하세요 알 파치노씨! 안녕하세요!
: (미소)
: 당신은 어떤 바다인가요?
(오션스 13... 바다가 13개 있다는 뜻으로 슬쩍 넘겨서 그중 당신은 어느 바다냐는...)
: (기이한 표정) 내가 무슨 바다냐고?
: .
: (한참 고민하다가) 글쎄... 대서양(Atlantic)?
: (혼자서 알 파치노가 멋지다며 감탄한다. 글쎄... 별로 재미있는 개그도 아니었는데.)

조지 클루니

: 클루니씨, 우리 엄마가 당신 영화를 좋아할까요?
: 지금 여기 계세요? 이리 오슈. , 거래합시다.
엄마: (조지 클루니 옆으로 온다)
: , 당신이 영화를 돈 내고 보면, 지미 키멜이 차를 사 줄겁니다.
: 엄마, 들었어요?
: 클루니씨, 고마워요.
: 아녜요. 정말 예쁘시네요.
: 클루니씨, 그런데 섹시하게 보이는게 어려워요?
: (예의 눈빛) 이봐,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그거 하나도 안 어려워. 아주 쉬워. 그냥 있으면 돼. 어머니한테 물어봐.
: 엄마, 클루니씨 섹시해요?
: Very Sexy!

브란젤리나

: 안젤리나! 안젤리나! 나 좀 입양해 줘! 나 좀 입양해 줘(Adopt me)!

맷 데이먼

: 맛 데이먼! 맛 데이먼!
: 안녕하세요!
: (냉정하게 돌아서서 카메라를 보고) 시간이 다 됐군요. 이만 마칩니다.
: (당황한 척;;) 너 뭐야! (생각하는 척) 혹시 지미 키멜이 보내서 온거냐?
: (전혀 개의치 않고) , 데이먼씨, '오션스14'때 봅시다.

.......


세번째 테러. 지미 키멜은 '본 얼티메이텀' 촬영장으로 자객 기예르모를 보냅니다.

이건 뭐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듯.

", , , 예이슨 본!"



그래서 마침내 맷 데이먼의 복수가 시작됩니다.

지미 키멜에게는 나이는 좀 많지만 섹시한 애인이 있죠. 이름은 사라 실버맨입니다.




잘 보시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스쿨 오브 락'에서 잭 블랙을 구박하던, 함께 살던 친구의 여자친구입니다. 코미디쪽에 재능이 있죠. 미국의 정선희랄까...

'저게 뭐가 섹시해!'라고 하실 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아무튼 이 사라 실버맨이 지미 키멜 라이브에 게스트로 나와 갑자기 고백할 게 있는데 말로 하긴 그렇다며 비디오 클립을 공개합니다.

그 비디오가 바로 유명한 'I'm F***ing Matt Damon!' 입니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후렴구를 외치는 맷 데이먼의 천진난만(?)한 모습이란... '침대에서도! 마루에서도! 타월을 깔고도! 문에 대고 서서도! ....'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찍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 현재까지 나온 마지막 타이틀입니다.

맷 데이먼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긴(?) 지미 키멜이 복수를 시도합니다. 데이먼이 자기 여자를 빼앗았으니 자기는 데이먼의 가장 친한 친구인 벤 애플랙과 잤다고 선언을 해 버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저번에 보신 'I'm F***ing Ben Affleck!' 비디오입니다. 화려한 캐스팅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에 피아노에서 일어나는 조쉬 그로번(점잖고 깔끔한 노래와 이미지로 인기있는 가수죠)을 보고 쓰러졌습니다.



참 이런 걸 보다 보면 미국이란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희한한 사고방식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맷 데이먼은 연구 대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난질(?)에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인지.

한 매체가 그에게 "지미 키멜의 여자를 빼앗은 소감"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마냥 실제 상황인 것처럼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맷 데이먼. 아예 이 역할에 푹 빠졌군요.

아무튼 맷 데이먼, 참 연구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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