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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를 싸고 돌던 교통사고의 망령이 끝내 구혜선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김범이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이민호 김현중 김준이 모두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났고(그 가운데도 인조인간 구준표군은 차만 다쳤을 뿐 사람은 멀쩡했습니다^), 구혜선 역시 촬영중 다이빙 사고로 액땜을 하나 했지만 끝내 교통사고로 세 바늘을 꿰메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본인의 안타까움은 말할 것도 없고, 한창 잘 나가던 KBS 2TV '꽃보다 남자' 제작진에겐 치명타가 됐을 법 합니다. 결국 방송 한 회가 못 나가게 됐죠. 2일 방송분은 급히 F4 토크쇼가 편성돼 구멍을 메우고 3일부터 다시 드라마가 재개되게 됐습니다.

반 넘게 방송된 드라마가 연기자의 부상으로 아예 방송이 못 나가게 되어 버리는 이런 '생방송 드라마'의 폐해는 이미 여러번 지적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문근영의 부상으로 '바람의 화원' 방송이 중단됐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이번 구혜선의 부상을 '꽃보다 남자' 팀보다 더욱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9일부터 방송 예정인 SBS TV '자명고'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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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은 무슨 얘긴지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자명고'는 당초 예정대로라면 '떼루아'가 끝난 다음 주인 지난 2월 23일부터 이미 방송을 시작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 차례 방송을 미뤄 3월 9일로 첫 방송이 잡혔습니다.

연기된 이유는 촬영이 미진해서가 아닙니다. 연기를 결정한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30%에 육박하고 있던 '에덴의 동쪽'을 어떻게 피해 가느냐는 것이었죠. 당초 50부작으로 예정된 '에덴의 동쪽'은 54회로 연장하면서 3월3일까지 방송되는 걸로 결정됐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SBS는 '자명고'를 다시 2주 늦춰 3월9일로 첫 방송 시점을 잡은 것이죠. 여기에 당초에는 별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했던 '꽃보다 남자'가 돌풍을 일으키며 '에덴의 동쪽'을 앞질러버리자 SBS 측은 '그나마 늦춘게 다행'이라며 판단하고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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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바람이 무색하게 MBC는 후속작의 촬영 지연을 이유로 '에덴의 동쪽'을 다시 2회 연장, 3월10일까지 방송하겠다고 발표해버렸습니다. '자명고' 쪽에서는 첫회와 2회가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에덴의 동쪽' 결말 부분과 맞붙게 되어 버린 셈입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SBS는 다시 3월9일 시작을 포기하고, 3월10일 '자명고' 1회와 2회를 연속 방송한다고 다시 물러섰습니다.

이렇게 시작 전부터 굴욕을 당한 '자명고'에 구혜선의 부상은 또 다른 충격입니다. 사실 '꽃보다 남자' 팀은 1회 결방에 그리 타격을 받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히려 F4 멤버들의 팬들은 "잘 됐다. 배우들 얼굴이 홀쭉해졌던데 이 기회에 쉬어 가게 하라"며 성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2일 시청률이야 일시적으로 떨어지겠지만 상황이 변한게 없으니 3일에는 충분히 회복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당초 24일 24회로 막을 내릴 것으로 예상됐던 방송이 3월30일까지 밀려가는 건 '자명고' 쪽의 악재죠. 원래대로라면 6회만 겹쳐도 될 '꽃보다 남자'와의 대결이 7회나 겹치게 됐습니다. 게다가 KBS 2TV 측이 '기왕 이렇게 된 것, 1회만 더 연장해 화요일(3월31일)에 끝내는 것으로(본래 월-화 드라마이므로) 조정하자'는 의견이라도 내놓게 되면 무려 8회가 겹쳐지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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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자명고' 팀이나 SBS 드라마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자명고'의 제작비는 어림잡아 회당 3억원, 50부작이면 150억원 정도가 투입되는 대작입니다. 올해 SBS 드라마 중 최대 규모가 예상되는 작품인데 이런 작품이 무너지면 타격이 이만저만 아닌 셈이죠.

게다가 드라마든 예능이든, 초반의 기선 제압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대개는 1-4회 이내에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그 시간대에 30-40%대의 시청률을 장악하고 있는 히트작이 있는 경우, 아예 새로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일 기회를 빼앗겨 버린다는 점입니다. 가끔은 1-2회, 혹은 3-4회의 재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유입되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죠.

최근의 일로 예능의 경우지만 '스타킹'이 '무한도전'의 아성을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건 바로 MBC의 파업이 계기가 됐죠. 평소 '무한도전'을 보아 오던 시청자 중에는 아예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을 단 한번도 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사람도 상당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파업을 겪으며 사실상 결방 사태를 맞고, 이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스타킹'을 접하게 된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파업이 끝나 '무한도전'이 정상 방송을 하고 있는 시점에도 계속 '스타킹'을 시청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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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타킹'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가능한 얘기지만, 만약 파업으로 '무한도전'이 계속 정상적인 방송을 했더라면 그 시청자들은 여전히 '스타킹'이 무슨 내용을 방송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현재 '꽃보다 남자'는 30%대, '에덴의 동쪽'은 2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드라마를 합하면 55%선. 현재의 HUT(전체 가구시청률)을 감안할 때 이 시간대에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은 약 5%의 시청자들만을 겨냥하고 첫 시위를 당기는 무모한 행동인 셈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구혜선이 다쳐 방송이 한회 쉬게 되더라도, 3월 2일이 아니라 3월10일 방송이 결방이라면 '자명고' 팀에는 대단한 호재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다쳐서 오히려 방송이 밀리게 됐으니 이건 엄청난 악재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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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자명고'가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 '자명고' 팀은 정려원과 박민영의 목욕신을 공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성패는 결국 두 여배우에게 달려 있는 셈이죠.

그건 이 드라마가 유난히 '와호장룡'을 의식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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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끝나기 전까지 40대 이하의 절대 다수 여성팬들이 F4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한다면 이 드라마가 겨냥할 수 있는 것은 전체 남성 시청층, 특히 고연령대의 시청층일 겁니다. '에덴의 동쪽'과 '꽃보다 남자'가 모두 미남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 이 드라마는 두 미녀가 톱에 서 있는 점도 대조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두 여배우가 얼마나 '와호장룡' 풍의 액션을 매끄럽게 소화해내느냐가 이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50회 내내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최하 1-4편까지는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는 작전이 펼쳐질 겁니다. 대하사극의 경우 특히나 여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건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과연 '자명고' 도입부가 '에덴'과 '꽃남'의 수비를 뚫고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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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백상예술대상을 마침내 마쳤습니다. IS 일간스포츠는 매년 두 개의 연예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하나는 매년 연말에 하는 가요 시상식인 골든디스크요, 또 하나는 매년 봄에 하던 TV-영화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입니다.

올해는 다양한 사정과 요구 때문에 평소보다 2개월 정도 시상식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매년 백상이 전하는 것은 만개한 꽃바람 같은 것이었는데 올해는 날씨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비록 날씨가 따뜻해지는 천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보여준 화려한 컬러는 봄 소식을 꽤 빨리 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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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45년이라는 긴 역사에 비해 백상예술대상의 명성은 그리 강하게 부각돼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수상 분야가 발목을 잡았다고 봅니다. 과거의 백상은 TV와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 라디오까지 포함하는 대형 시상식이었죠.

이렇게 시상 분야가 많아지면 후보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미리 발표하고, 그저 상을 받는 사람들만 오는 시상식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고, 3년 전부터 시상식의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일체 수상자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게 됐고, 후보들의 참석도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단, 어제 시상식의 경우엔 사전에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고 있던 수상자가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 얘기는 저 밑에서.)

물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더군요. 꿈은 연기부문 40명(남/녀, 영화/TV, 최우수/신인)의 후보를 모두 앉혀 놓고 치르는 것이지만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좀 더 자리를 잡으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앉아서 보시는 분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물론 어제 시상식 정도의 스타들을 모으는 것도 주최측으로서는 뼈골이 빠지는 일입니다.)

우선 수상 결과부터.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수상자 명단

■ 영화부문

▶대상=강우석(강철중:공공의 적 1-1)▶작품상=이형승 아이비픽쳐스 대표(경축! 우리사랑) ▶감독상=이윤기(멋진 하루) ▶신인감독상=이충렬(워낭소리) ▶최우수연기상(남)=주진모(쌍화점)▶최우수연기상(여)=손예진(아내가 결혼했다) ▶신인연기상(남)=소지섭·강지환(영화는영화다) ▶신인연기상(여)=박보영(과속스캔들) ▶시나리오상=강형철(과속스캔들) ▶푸르밀 인기상=주지훈(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박보영(과속스캔들)

■ TV부문

▶대상=김혜자(KBS 엄마가 뿔났다) ▶작품상(드라마)=정을영(KBS 엄마가뿔났다) ▶작품상(교양)=한재신(SBS 그것이 알고싶다 '독도의 선택')▶작품상(예능)=김석현(KBS 개그콘서트) ▶연출상=신우철(SBS 온에어) ▶신인연출상=부성철(SBS 스타의연인) ▶최우수연기상(남)=김명민(MBC 베토벤 바이러스) ▶최우수연기상(여)=문근영(SBS 바람의 화원) ▶신인연기상(남)=이민호(KBS 꽃보다남자) ▶신인연기상(여)=윤아(KBS 너는내운명) ▶예능상(남)=김병만(KBS 개그콘서트) ▶예능상(여)=박미선(MBC 일요일일요일밤에) ▶극본상=유현미(SBS 신의저울)▶하이원 인기상= 김현중(KBS 꽃보다남자) 윤아(KBS 너는내운명) ▶공로상=이순재(KBS 엄마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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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서 후보들의 참여율이 가장 저조했던 분야가 TV 부문 남자 연기상과 영화 부문 여자 신인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의 그림자가 너무 컸기 때문이죠. 송승헌, 송일국, 박용하 등 세 후보가 '김명민'이라는 이름 앞에서 좌절하고 참가를 기피한 가운데서도 이준기는 끝까지 식장을 지켰습니다. 꼭 우리가 주최측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참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제 이준기를 보고 잠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시상자로 나와 박솔미와 주고 받던 대화중에 나온 일입니다. 이준기가 박솔미의 출연작 '핸드폰'을 '휴대폰'이라고 얘기해 잠시 웃음이 터졌죠. 박솔미가 마무리 멘트로 "..그리고 핸드폰, 꼭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하자 이준기는 "네.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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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 국민의 70%정도는 '물건을 흘리다'라는 뜻의 '잃어버리다'와 '기억이 사라지다'의 뜻인 '잊어버리다'를 혼동해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준기가 두 단어의 뜻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구별해서 사용하더군요.

여자 신인상 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난해 여자 신인 연기의 최고봉은 '미쓰 홍당무'의 서우와 황우슬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말부터 '과속스캔들'의 열풍이 불었고, 박보영의 이름이 너무 크게 부각됐습니다. 결국 다른 후보들은 '박보영에게 이번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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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뭐니뭐니해도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구도가 가장 좋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 영화 부문의 남/녀 연기상 같은 경우는 정말 치열한 경합이 이뤄졌죠.

'쌍화점'의 주진모도 '멋진 하루'의 하정우나 '공공의 적'의 설경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상 소감 직전 잠시 눈물을 비친 주진모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사람들이 상을 받으면 왜 우나 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 오르자 정말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다. 눈물이 솟구치려는 찰나, 내 눈 앞에서 팔을 풍차처럼 돌리고 있는 조연출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 눈물이 쑥 들어가더라."

'팔을 풍차처럼'이라는 것은 생방송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수신호입니다. 현재 시간이 많이 오버되어 있으니 빨리 진행하라는 것이죠. 오래 전 한 배우는 조연출이 앞에서 풍차처럼 팔을 돌리는데도 무려 7분에 걸친 소감을 털어놓는 바람에 연출진을 기절시킨 적도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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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상식에서 자신의 수상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딱 하나. 바로 손예진이었습니다. 이건 담당 작가의 실수 탓입니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손예진은 이날 시상식 맨 마지막 순서에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과 함께 대상 시상자로 결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진행 작가가 대상 시상때 읽어야 할 약식 대본을 2부 시작 때 손예진에게 먼저 건네 준 겁니다(미리 읽어보고 연습해 두라는 뜻으로 가끔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대본 첫줄의 사장님 코멘트가 "손예진씨, 수상을 축하드립니다"였던 겁니다. $%&^*&^((&(&)) (생방송에서도 이 코멘트는 그대로 나갔습니다.)

물론 대본을 집필한 작가야 대상 시상이 여자 연기상 결과 발표보다 뒷 순서이니, 아무 상관 없을거라고 생각했겠죠. 대본을 전달한 작가 역시 모든 시상자에게 자기 코멘트를 미리 나눠줬으니 손예진만 예외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튼 지난 연말 청룡영화상 수상 때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으로 소감을 말했던 손예진은 미리 수상 사실을 안 덕분인지 훨씬 안정된 소감을 말했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경우도 코믹합니다. 올해 백상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늦은 오후 9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우석 감독의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랍니다. 담당자의 강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강감독은 감독상 시상이 끝나자 "그럼 내 순서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했답니다. 그러다 담당기자와 마주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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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나 이제 할일 다 했으니까 가도 되지?"라고 말하는 강감독에게 기자는 진땀을 빼면서 "안됩니다. 제발 제 얼굴을 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주십쇼"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대상 수상자가 중간에 가 버리면 정말 대형 사고죠.^^)  이때 담당기자가 복도에서 강감독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뭐 생방송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입니다. 2006년에는 시상자로 결정돼 있던 남상미가 늦게 오는 바람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아중이 방송 시작 3분전에 대리 시상을 한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예능상 수상자 유재석은 수상 8분 전에 현장에 도착하기도 했죠. 이럴 때 주최측은 피가 마릅니다.

올해도 시상식 진행 대본에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애가 수애로, 김준이 김범으로 잘못 쓰여져 있어 아찔한 상황을 연출할 뻔 했습니다. 그밖에도 사소한 꼬임으로 준비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런 기억은 갖고 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빨리 잊는게 상책입니다.

기타 수상 결과에 대해서는 이만하면 잘 됐다고 자평합니다. '엄마가 뿔났다'에 너무 상이 몰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지난해 '엄마가 뿔났다'가 국민들에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현 작가가 몇해 전 '시상식 은퇴'를 선언하지만 않았어도 극본상까지 돌아갈 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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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잘한 게 있다면 F4를 한 자리에 모은 겁니다. 뭐 저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F4의 인기가 극도로 치솟은 가운데서 열린 첫 메이저 시상식에 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다른 걸 아무리 잘 해봐야 허전한 행사였겠죠. 그래서 'F4를 모아라!'가 이번 백상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됐습니다만, 정말 넷 다 모으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공이 들었습니다.

'꽃보다 남자'의 촬영 일정이 당일 오전에 오후 스케줄을 모르는 식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네 사람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게 참 기적같은 일이죠. 자리를 빛내 준 네 사람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특히 구준표군은 생애 첫 시상식에서 넘어지는 멋진 추억도 남겼습니다.

물론 진선미 삼총사를 포함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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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백상을 생각하니 다시 쓰러져 잠들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짜증을 유발하는 얼굴들도 잇달아 떠오릅니다.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내가 상도 안 받는데(혹은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왜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생방송 2시간 전까지 '수상 내역을 알려달라'며 졸라대는 사람만큼 끔찍한 사람들이 없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들이 없는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과연 언제나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p.s. 어제 현장에서 진행이 꼬여 한껏 짜증나 있는 상황에서 출연자의 길을 막고 질문하던 리포터 한 분을 밀쳤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같고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도 뒤늦게 사과했지만,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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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어제 시상식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 옆 사람이 절로 생각나더군요.

한쪽은 장근석, 한쪽은 전 Guns and Roses의 기타리스트 Slash입니다. (원피스에 나오는 로브루치의 캐릭터도 아마 슬래시에서 따온 것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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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드레서는 각자 골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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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 하면 떠오르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아예 2002년용 가수로 기획(?)되어 나왔다는 의혹을 산 미나가 있고, 2002년 월드컵의 열풍을 겪으면서 국민 가수로 떠오른 윤도현 밴드도 있습니다. 이밖에 크라잉넛, 버즈 등도 있지만 진짜 월드컵 수혜가수는 따로 있습니다. 이건 글 맨 아래에서 공개합니다.

2006년 월드컵이 낳은 주요 스타 중 하나인 엘프녀 한장희가 가수로 데뷔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똥습녀, 시청녀에 이어 결국 엘프녀도 활동을 시작하는군요. 막상 2006년 당시에는 온 사방의 인터뷰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나는 연예인 절대 안 할 것"이라고 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자 이미 몇년 전부터 트레이닝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훈련을 시작한 것이 2004년 무렵이라고 알려졌으니 무려 5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셈입니다. 소녀시대처럼 15세때부터 훈련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좀 길긴 하군요.

아무튼 엘프녀도 월드컵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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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리키 마틴입니다. 무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였던 리키 마틴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주제곡인 'Cup of Life'로 세계 최고의 팝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물론 무명이라는 건 세계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어린 시절엔 미키마우스클럽 출신 -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이쪽 출신이죠 - 의 아이들 스타로 꽤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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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대 월드컵 주제가중 가장 인기를 얻은 노래라면 Cup of Life보다는 '올레-올레올레올레'로 유명한 'Ole Ole'를 먼저 꼽아야겠지만, 이 노래로 스타가 된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리키 마틴은 잘생긴 외모와 춤 실력을 이용해 그 뒤로 Livin La Vida Loca까지 히트시키며 한때 라틴 팝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한때 이탈리아 꼬모에서 설익은 리조또를 씹으며 리키 마틴을 인터뷰하던 좋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아. 세월이여.)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하늘을 찌를 듯 하던 리키 마틴의 인기도 참 온데간데 없으니 정말 권불십년이란 말이 맞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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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월드컵으로 뜬 가수로 아무래도 윤도현을 가장 먼저 꼽게 됩니다. 그 전에도 물론 인기 밴드였지만 '오 필승 코리아' 열풍을 몰고 온 데에는 아무래도 YB의 공로가 가장 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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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금까지도 '월드컵 가수'라고 불리는 미나는 그 뒤로 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사실 가수라고는 하지만 누구라도 미나를 생각하면 노래보다는 몸매가 먼저 떠오르죠. 아마도 미나는 '월드컵으로 가장 성공한 가수'보다는 '월드컵을 가장 잘 이용한 가수' 쪽으로 포함시켜야 할 듯 합니다.



그럼 국내 가수 가운데 월드컵을 통해 가장 크게 성공한 가수는 누구일까요?

사실 일반인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지만 '월드컵 덕을 가장 많이 본 가수라면 싸이를 꼽아야 합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지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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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당시 싸이는 다소 불미스러운 범법사건^^ 때문에 방송을 쉬는 연금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월드컵이 개최됐고, 응원의 불꽃이 그렇게 뜨거워질 줄 몰랐던 각종 기업과 단체들은 거리 응원 인파를 모으기 위해 가수들을 동원한 대형 공개 행사를 앞다퉈 개최했습니다. (뒷날의 그 인파를 생각하면 가수 개런티가 아까울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수 수요가 부족하자 방안에 조용히 있던 싸이에게도 손길이 뻗어왔습니다. 사실 야외에서 관중들을 흥분시키려면 발라드가수로는 한계가 있죠. 특히나 각종 대학 행사등을 통해 내공을 쌓은 싸이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이때만 해도 싸이는 무척 겁을 먹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야유라도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죠. 하지만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관객들은 싸이의 사소한(?) 잘못 따위는 싹 잊어버렸고, 열심히 월드컵 응원관중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싸이에게는 어느새 면죄부가 내려진 셈이 됐습니다. 자연히 그 열기를 타고 방송 출연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응원 열기의 경험이 바로 싸이의 명곡인 '챔피언'의 탄생 배경이 됐습니다. '모두의 축제/ 서로편가르지 않는것이 숙제'라는 얘기가 바로 월드컵 응원 얘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월드컵 열기가 식지 않은 2002년 9월, 이 노래는 당연히 대박이 났습니다.




뭐 2006년의 싸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챔피언'에다 신무기 '위 아 더 원'으로 무장한 싸이는 월드컵 관련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수로 부각됐습니다. 아마도 이때가 싸이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싸이에게는 또 한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군대를 두 번 간 남자가 되어 버릴 운명이었던 거죠. 세월은 빨리도 흘러 오는 6월이면 싸이는 두번째 제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묘하게도 또 한번의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시기입니다.

과연 지금부터 준비하면 2010년 월드컵은 싸이에게 세번째 도약의 기회를 제공해줄까요? 지금까지의 운으로 봐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과연 엘프녀 한장희도 그때 스타덤에 올라 있을지, 그건 좀 더 지켜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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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런데 그때 나름 유명했던 시청녀는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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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가 2주에 걸쳐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주제는 '너무 솔직해서 사고를 치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난 10년간 권상우와 주고 받은 말들이 눈앞을 스쳐갔습니다.

물론 고민은 저렇게 설정됐지만, 진짜 고민은 다른 데 있었죠. 권상우에게 현재 최고의 악재는 자신도 밝혔듯 거짓말로 인한 이미지 악화입니다. 그는 결혼식 당시 아내 손태영의 혼전 임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임신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는 '오삭동이'라는 비아냥이었죠.

하지만 권상우는 2주간의 '무릎팍 도사'를 통해 어느 정도 이미지 회복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그가 약점으로 꼽은 '솔직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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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가 솔직담백한 성격이라는 것은 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갈 길이 정해지면 그냥 질러 버리는 스타일이죠.

그가 25일 밤 손태영과 만나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 하고 그대로 밀어붙여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는 동안, 잠시 눈앞에 스치는 광경이 있었습니다.

6년 전, 권상우는 대전 동산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남대 미술교육과 출신인 권상우는 교사자격증 취득을 위해 교생실습이 필수였죠. 이 학교로 가게 된 것은 친형인 권상명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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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 정도의 스타가 교생실습을 하고 까까머리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건 당시에도 흥미로운 뉴스였기 때문에 수많은 기자들이 대전으로 몰려갔습니다. 당시에 저도 내려갔는데 학교 문 앞에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 줄을 서고, 난리도 아니더군요.^ 이때 우연히 권상명 선생님과 잠시 1:1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얘기 끝에 '권상우의 여성관'에 대한 화제가 나왔습니다. 이때 권선생님은 씩 웃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어려서부터 여자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데를 못 보더라구요. 순정파라고 해야 하나, 한번 빠지면 다른 여자는 거들떠도 안 봐요." 권상우의 이런 성격에 대한 얘기는 서울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터라 형의 말씀에 함께 으하하 웃을 수 있었습니다.

형이 알고 있을 정도면 대전에 살던 시절의 얘기였을 겁니다. 한눈에 반해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는 권상우가 '무릎팍 도사' 이전에도 직접 여러 차례 밝힌 이번 결혼 과정과도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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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는 손태영을 만나면서 열기구를 태우는 등 호주로 데리고 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고, 사랑을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호주의 대자연을 유난히 좋아하던 권상우의 얘기도 사실 이전에 들은 것과 거의 똑같더군요.

2006년에 만났을 때도 권상우는 '저 푸른 초원'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온 가족이 호주 여행을 다녀온 것이 이 무렵인 듯 합니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되면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넓은 초원에 전원주택을 지어 놓고 살고 싶다." 이때는 손태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시절입니다. "그 넓은 초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뛰어 놀고, 좋은 아버지로 아이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당시 했던 얘기와 25일 '무릎팍 도사'에서 한 얘기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런 얘기들은 갑자기 지어낸 것이 아니라, 권상우의 마음 속에 늘 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데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 속 깊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런 일련의 행돌들은 결국 '내 가족을 갖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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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의 권상우는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군복무를 마친 뒤 서울 이모 집에 얹혀 살면서 부지런히 모델 에이전시에 자기 사진을 돌리던 꿈만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던 권상우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동네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었다. 몸이 재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나면 밖에 나가서 먹을 점심값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많이 먹었다. 정말 많이 먹었다. 점심을 걸러야 하니까. 그러고서 압구정동으로 전철을 타고 나가 모델 에이전시를 돌면서 혹시 일 들어온게 없나 확인했다. 대부분 그 일대에 회사들이 몰려 있어서 한남대교에서 삼성동 정도는 그냥 걸어서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다시 밥을 먹으러 들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MBC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 중국집 배달청년으로 등장했고, 거기서부터 권상우의 스타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립니다.

(그 무렵에 대한 얘기는 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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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솔직해서 늘 손해'라는 말과 '거짓말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그의 모습은 상당한 불일치를 이루는 게 사실입니다. 결혼과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팬클럽 급감과 CF 이탈로 10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은 것도 눈에 보이는 변화입니다.

하지만 "100억원을 날린 대신 1조원을 얻었다(아들을 낳았다는 뜻)"며 활짝 웃는 권상우의 모습은 본래의 가식 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보여준 행동들이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치러야 했던 일들임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합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동안의 다소 경솔했던 행동에 어느 정도 족쇄를 채워 주는 역할을 하겠죠. 그런 면에서, "욱 할때는 아들 얼굴을 생각하라"는 무릎팍도사의 처방은 어느 때보다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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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식탁에서 고추를 제외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마 살 맛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겁니다. 매운 떡볶이 생각에 자다가도 깬다는 유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눈길을 잡아 끄는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때에도 고추가 있었다' 등등 일련의 기사였죠. 똑같은 자료에서 나온 기사이기 때문에 내용은 대동소이했을 겁니다.

먹거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국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라고 알고 계셨을 겁니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고추가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그것이 다시 유럽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조선으로 전해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죠. 그래서 약 18세기 이전까지 한국인들이 먹어온 김치는 백김치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최근 연구 결과는 이런 정설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궁금증이 절로 떠오릅니다. 대체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매운 음식을 먹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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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치 미스터리

 우리는 언제부터 매운 고추를 먹었을까. 오래전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왜놈들이 처음에 고추를 먹어 보니 이게 독(毒)인 거야.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죽이려고 임진란 때 고추 종자를 뿌렸지. 그런데 조선 사람들한테는 독은커녕 입맛에 잘 맞아 널리 퍼진 거야.”

고추가 16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정설이었다. 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이 반론을 제기했다. '시경'이나 3세기 문헌인 '삼국지 위지동이전' 이후 초(椒)라는 식물이 수많은 문헌에 등장하며,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에도 이 글자의 뜻이 '고쵸 초'라고 기록돼 있는 등 본래부터 한국에는 고유종의 고추가 있어 널리 식용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고추의 도입 시기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문건은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나오는 '남만초(南蠻椒)는 독이 있으며 왜국을 통해 들어와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린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권 박사는 남만초와 왜개자는 모두 우리가 먹는 고추(椒)와 다른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연구자들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고추와 한국산 고추는 전혀 다른 품종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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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할 때 16세기 이전에도 고추가 있었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이어지는 궁금증은 각종 음식, 특히 김치에 사용한 기록은 왜 별로 보이지 않으냐는 점이다. 1670년 발간된 한글 요리 책자인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수많은 김치 가운데서도 고추를 사용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의 문헌 『규합총서』(1809)에 나오는 김치 중에도 대부분의 종류에는 고춧가루 아닌 실고추가 들어갈 뿐이다.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의 저자 김찬별은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우리는 모두 고추 중독자다'라는 기사를 인용해 새빨간 음식의 유행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하루 세 끼의 반찬이 모두 고추로 양념돼 음식 맛까지도 모두 고추 맛으로 변해 버렸다'며 당시의 풍조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권대영 박사는 “고추는 소금 못잖게 김치의 장기 보존에 절대적인 조건”이라며 “김치에 고추가 사용된 것이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을 증명해 내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반만년 역사에 비춰 볼 때 최근 100년 안팎의 유행일까, 아니면 면면한 전통의 결과일까. 연구 결과가 정말 기대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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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저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 뿐, 역사 분야에도 식품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닙니다(먹는 쪽이라면 비교적 전문가에 가까울 수도...^^). 다만 우리가 먹는 음식의 기원에 궁금증을 느낀 사람일 뿐입니다.

저 연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신문 기사의 요약(이런 경우 많지만 대개 심각한 오류나 생략이 있기 마련입니다)을 기대하지 마시고, 직접 연구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www.kfri.re.kr에 가서 '사이버 홍보실 - KFRI 발간자료'로 가시면 원문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사는 일단 임란 100여년 전인 1487년 편찬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임진왜란 이전의 문서들에서 한자 ‘초(椒)’에 한글로 ‘고쵸’라는 설명이 명시돼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도 '훈몽자회'의 예를 들었지만, 이런 단어 분석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문서에 전차(戰車)가 나온다고 해서 그 시대에 오늘날 우리가 전차라고 부르는 탱크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아무래도 16세기 고추 전래에 대한 의문 제기입니다. "만약 멕시코에서 나온 '아히'라는 고추가 1492년 유럽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면 고작 몇백년 사이에 한국 고추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종류로 바뀔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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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사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낚시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지적은 아무래도 "멕시코 산의 고추와 한국-중국의 고추가 과연 DNA 차원에서 같은 조상을 가진 것인지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리고 몇몇 분들이 멕시코를 원산지로 하는 고추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중 일부는 한국-중국산 고추와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주장은 http://hosunson.egloos.com/2296323

이런 주장에 따르면 권박사님의 연구에 나오는 '한국의 고추는 콜럼버스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것과 다른 종자일 수 있다'는 가설은 원천봉쇄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가능성을 남겨 둔다면, 고추의 도래 시기가 16세기보다는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단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15세기 초 정화의 원정대가 북미대륙 서해안에 도착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때 고추가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뭐 물론 근거라고는 전혀 없으니까 농담으로 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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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까지의 정설을 따르자면 한국인들은 16세기 후반에 고추를 처음 접했고, 이 식물이 전국에 퍼지는 데에도 최소 100년 정도는 걸렸을테니 17세기 후반이나 18세기 초반에 온 국민이 고추를 식용으로 이용하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맛에 익숙해지는 데 다시 100년 정도는 걸렸다는 얘기죠.

또 위에 예로 든 김찬별님의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에 나오는 내용을 보거나, 매운 떡볶이의 등장마저도 해방 이후, 심지어 6.25 이후라는 증언들을 들어 볼 때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에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겁니다. 매운 음식 없으면 못 사는 한국인들이 고작 100년...? 왠지 서운하다는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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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쓰기 위해 권대영 박사님과 통화했을 때에도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내가 이 연구를 시작한 것도, 한국인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지금처럼 먹은 것이 최근(역사적으로 최근)의 일이라는 걸 납득하기 어려워서였다. 또 소금만으로 야채의 신선도는 유지되기 힘들다. 고추는 소금 못지 않게 김치의 보관에 절대적인 요소였다. 비록 현재까지 문서상으로 확보된 근거가 없어 지금은 뭐라 말할 수가 없지만,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반드시 한국인의 고추 식습관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된 일이라는 것을 밝혀내겠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존 연구가 뒤집히든, 아니면 더욱 강화되든 고추와 고춧가루의 역사는 좀 더 자세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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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인의 매운 맛 사랑은 최정상급은 아닙니다. 상위 30% 이내에는 확실히 들겠지만 10% 이내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한국산 고추 자체가 그리 맵지 않기 때문이죠. 흔히 '쥐똥고추'라고 불리는 동남아산 고추만 맛본 분들이라도 아마 이 말에 절대 반대하시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일본사람이나 앵글로색슨계의 백인(라틴계는 매운 맛에 익숙하죠)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매운 거라면 우리가 독보적"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도 같습니다.

(물론 최근 몇년 사이에도 한국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매운 맛의 강도는 나날이 드높아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불닭이라는 음식을 가장한 고문 도구의 등장도 그렇고, 매운 맛의 정수인 수입 캡사이신액이 식당 주방에서 공공연히 쓰인다는 얘기도 들리고...

그렇다면 계속 떠오르는 의문. 대체 왜 하필 20세기에 들어와서 한국인들은 매운 맛에 눈을 뜨고 나름 즐기게 됐을까요? 일제 식민지의 고초를 견디기 위해서? 아니면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역시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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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5분을 선정했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심사를 한 건 아니고, 선착순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당첨되신 분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lcg***@naver.com   이현*
pink****@hanmail.net **라
van****@naver.com 김*현
god*****2@naver.com 김*빈
101*****@hanmail.net 제이*

muha***@naver.com 정*재
chn***@hanmail.net 작은**
rab***@vcomm.co.kr  김*영
lilli******@hanmail.net 선우***
cycl****@hanmail.net 김찬*

hae*****@gmail.com 이*영
dnc*****@hanmail.net  **스
shc****@postech.ac.kr 김*휘
dkd******@hanmail.net 할수******
haki****@naver.com 김*림

뭐 본인이 보시면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티켓 수납 요령은 상기의 메일 주소로 이미 연락 보냈습니다. 메일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받으신 분들은 이 글에 비밀 댓글로 확인 한번씩 해 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혹시 위의 명단에 있는데 메일이 안 간 분들도 비밀댓글로 달아 주시면 안전할 듯 합니다.)

그럼 구경들 잘 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빠진 분들,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더 많은 인원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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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마침내(혹은 예상대로) 아카데미상을 차지했습니다. 죽은 히스 레저가 산 다른 명배우들을 압도한 셈이죠. 레저의 수상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아는 분들은 다 아십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수상이었는지를.

지금은 히스 레저가 요절한 재능있는 스타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그 전에도 수많은 요절 스타들이 있었죠. 이소룡이 있었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있었고,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있었고, 약간 범위를 넓히면 기타의 제왕 지미 헨드릭스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름들을 모두 합해도 '제임스 딘'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상징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이번 수상으로 제임스 딘의 신화를 넘어 선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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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올해 히스 레저가 수상할 수 있었던 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론의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후보의 선정을 보면 아카데미가 교묘하게 레저의 수상을 지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올해 남우조연상의 후보들입니다.

Heath Ledger for The Dark Knight (2008)
Josh Brolin for Milk (2008/I)
Robert Downey Jr. for Tropic Thunder (2008)
Philip Seymour Hoffman for Doubt (2008/I)
Michael Shannon for Revolutionary Road (2008)

조쉬 브롤린의 '밀크'는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왕년의 오스카 수상자들에 비해 필모그래피나 지명도에서 많이 떨어집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년은 연기는 좋았지만 극중 비중이 너무 작았죠. 윈슬렛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두 번 방문하면 그의 역할은 끝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위력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트로픽 선더'로 오스카를 받는다면 그건 그 자체가 패러디 코미디의 소재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있습니다. 영화도 오스카가 좋아하는 진중한 소재에다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이 막강합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연극적인 소품인데다, 아카데미는 이미 주연상을 받은 배우에게 조연상을 주는 것을 꺼린다는 속설(한 평론가의 주장입니다)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년에 비해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와 경쟁할만한 후보가 똑부러지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레저의 운이기도 하죠. 지난해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뎀 같은 역사에 남을 연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면 조커 아니라 조커 할아버지를 했어도 수상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오스카 81년 사상 두번째의 사후 연기상 수상의 영광이 레저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이 그동안 사후 수상에 실패했는지 궁금한 분들은 맨 아래 링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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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전설은 1956년 이미 탄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청춘의 상징으로 꼽히는 명우 제임스 딘이 1955년 사망한 뒤, 영화 '에덴의 동쪽'으로 195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딘의 사망은 반향이 컸습니다.

당시의 여론은 너무도 당연하게, 딘의 수상으로 전설을 완성시키자는 분위기가 거셌지만 그 해의 대세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마티'였습니다.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고, 흥행에서도 대박을 기록했죠. '블랙록에서의 하루'에서의 스펜서 트레이시도 당대의 터프 가이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연기(트레이시를 괴롭히는 악당들 중 하나로 보그나인이 출연합니다^)를 펼쳤고, 제임스 캐그니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이름도 쟁쟁합니다.

Marty (1955) - Ernest Borgnine
Bad Day at Black Rock (1955) - Spencer Tracy
East of Eden (1955) - James Dean
- This was the first posthumous acting nomination in Academy Awards history.
Love Me or Leave Me (1955) - James Cagney
Man with the Golden Arm, The (1955) - Frank Sinatra
 
하지만 제임스 딘이 1956년에 주연상을 받기 어려울 운명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유는 바로 그 1년 전인 1955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휩쓴 작품과 관련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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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는 1955년 남우주연(말론 브란도), 여우주연(에바 마리 세인트)과 작품-감독-각본상 등 핵심 5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등 8개 부문을 석권한 걸작입니다. 총 10개(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는데 그중에서도 남우조연 부문에는 무려 3명이 후보로 올라가 집안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표가 분산된 탓인지 아무도 못 받았죠.

어쨌든 이 작품이 화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1년 전 같은 시상식에서 이렇게 싹쓸이를 해 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에서 2년 연속으로 남우주연상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나 아카데미가 싫어하는 수상의 방식입니다.

아카데미상은 한 해에 한 영화에 상을 몰아주는 데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지만, 같은 배우나 같은 감독의 영화에 2년 연속으로 좋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은 상당히 꺼리는 듯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톰 행크스의 3회 연속 남우주연상 수상 좌절 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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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필라델피아', 95년 '포레스트 검프'로 행크스가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나서 96년 벽두, 언론은 '행크스의 3연패가 유력하다'며 바람을 잡았습니다. 해당작은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 그리고 마땅히 행크스를 저지할만한 다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의 예상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듯 아카데미는 행크스를 아예 그 해의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물론 '데드 맨 워킹'의 션 펜이나 '일 포스티노'로 사후에 후보에 오른 마시모 트로이지 등 당시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수상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였습니다.

만약 여론이 너무 일찍부터 '행크스 3연패'라는 식으로 몰아 가지 않았더라면 행크스는 진짜 사상 초유의 3연패를 달성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Leaving Las Vegas (1995) - Nicolas Cage
Dead Man Walking (1995) - Sean Penn
Mr. Holland's Opus (1995) - Richard Dreyfuss
Nixon (1995) - Anthony Hopkins
Postino, Il (1994) - Massimo Tro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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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957년으로 돌아갑니다. 제임스 딘은 이번엔 '자이언트'로 남우주연상을 다시 한번 노크합니다. '자이언트'는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이라는 막강무비의 세 주역 때문에 화제가 안 될래야 안 될수가 없는 작품이었죠. 특히 비뚤어진 성격의 석유 재벌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의 연기는 그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고 할만한 독특함으로 빛났습니다. 영화가 그의 사후 1년 뒤인 56년에 공개됐으므로 57년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겁니다.

King and I, The (1956) - Yul Brynner
Giant (1956) - James Dean
Giant (1956) - Rock Hudson
Lust for Life (1956) - Kirk Douglas
Richard III (1955) - Laurence Olivier

하지만 이 해의 제왕은 생애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왕과 나'의 율 브리너였습니다. 이 해의 제임스 딘은 사망한지 2년이나 됐다는 점이 이번엔 감점 요인이 된데다, 공연한 록 허드슨과도 표를 나눠 가져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왕과 나=율 브리너'로 통하는 인상적인 명연기를 보여준 대머리 왕의 위력이 너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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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기는 배우가 책임질 수 있지만 영화의 흥행은 당시의 대진운을 비롯해 수많은 다른 외부 요인들에 의해 어디로 갈 지 모릅니다. 연기상의 경우에도 상을 받고 못 받는 데에는 그 해의 다른 배우들, 영화의 완성도, 심지어 그 전년이나 전전년의 수상 기록, 같은 해의 다른 시상식 결과 등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한마디로 한 배우의 전설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실력 못잖게 운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히스 레저는 비록 사후이긴 했지만 제임스 딘보다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물론 그런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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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의 오스카를 대리수상한 아버지 킴, 어머니 샐리, 그리고 누나 케이트 레저입니다. 영화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 레저의 '케이트'와 히스 레저의 '히스'는 모두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따 온 것이라는군요. 히스클리프같은 비운의 주인공 이름을 따 온 바람에 슬픈 운명을 맞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p.s. 사후 수상은 대단히 감동적인 이벤트이지만, 이것 역시 '이벤트'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순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에 기대 시상식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는 이벤트죠. 아카데미가 81년 역사 동안 단 두번밖에 사후 시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시상식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정적인 선동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사후 시상을 당연한 일이라거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는 시선은 위험합니다. 사망한 최진실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시상식을(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시상식이긴 했지만) 비난하는 것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노벨상은 아예 사망한 사람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업적으로만 평가하자는 생각입니다. 시상식장이 추도식장으로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관련된 글은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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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시상식장, 사회자가 '동 건 촹'을 호명하고, 장동건이 환호에 답합니다. 수상소감은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 비비디바비디 부." 대체 저게 뭔 팬더 국수뽑는 소린가 했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는 떼놓고 '비비디 바비디 부(Bibidi Babidi Boo)'만 귀에 쏙쏙 들어온 분들도 많을 겁니다. 장동건이 읊조리는 곡조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테구요. 놀랍게도 '드래곤 볼' 애독자 중에도 이 말이 기억 안 나는 분들이 있다니 참 신기합니다.

비비디, 바비디, 부가 따로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요? 잘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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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CF를 못 보신 분들은 거의 없겠죠?

이 광고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다 써 있지만 이 '비비디 바비디 부'의 정체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꽤 있더군요. 요즘 이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대체 비비디 바비디 뜻이 뭐야?"

디즈니 만화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주문입니다. 신데렐라에게 무도회 채비를 해주는 요정 할머니가 외는 주문이죠. 주문을 외면 호박이 마차가 되고 누더기가 드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라는 의미가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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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저작권에 민감한 디즈니다 보니 영어로 만든 버전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질 않더군요. 포르투갈 말로 된 더빙 버전입니다. 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는 선명하게 잘 들립니다만.^^ 가사는 별것 없고, 대략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대로 이뤄진다'는 내용입니다.

Salaga 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It'll do magic believe it or n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ans mechicka booleroo
But the thingmabob
that does the job
is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boo!

자세히 보니 '살라가둘라/ 메치카불라'가 맞군요.^^

그런데 '신데렐라'야 워낙 오래된 작품이고, 이걸 못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보셨더라도 기억에서 지워졌거나), 아마 '드래곤 볼'을 안 보고 자란 분들은 없을텐데 그 분들도 이 비비디 바비디를 기억못하시는 건 좀 의외입니다.

드래곤볼 최강의 악당이라면 아마도 마인 부우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이 부우를 만든 마법사의 이름이 비비디, 그리고 그의 아들이며 부우를 깨워 세계 정복에 이용하려 한 마법사의 이름이 바비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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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아버지 비비디, 왼쪽이 아들 바비디입니다. 이 일련의 이름을 비비디-바비디-부우라고 지은 것은 도리야마 선생의 유머감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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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착한 부우 참 좋아합니다. (...동질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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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Deerhof라는 밴드가 2004년에 이 제목의 앨범을 낸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뭘 해도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사바' 하나지만 서양에서는 주문도 참 다양합니다. 유명한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비비디 바비디 부'까지. (가끔 '하쿠나 마타타' 얘기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건 주문은 아니죠.^^)

아무튼 결론은 '비비디 바비디 부'는 한국식으로 하면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이 닦는 소리의 차음이라고도 하죠)'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 '치키치키'를 쓰는 광고가 나오는 날이 언제쯤 올까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군요. 혹시 '우랑바리다라나 바로오 무따라까 따라마까 쁘라냐!'도 기억나는 분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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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은 한 대의 오토바이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한 후배가 얼마 전 자기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 연애를 못 하는 여자는 어딘가 연애세포가 정상인에 비해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 예화로 자신의 친구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었더군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한 여대생이 밤에 학교를 나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임 장소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만납니다. 우산도 없고, 비를 피할 데도 없고, 쉬이 그칠 비 같지도 않아서 무대책으로 비를 맞고 가는데 길 옆으로 오토바이 한대가 서더니, 몰고 가던 남자가 뒤에 타라고 말을 걸더라는군요.

당연히 처음엔 거절했겠죠.



...이런 남자면 또 모를까...



그러자 남자는 "우리 같은 수업도 들었는데 나 모르겠느냐"고 친근감을 표시하더랍니다. 보아하니 무슨 과의 누구인지도 대략 알겠고, 위험한 사람도 아닌 것 같았지만 몇 번을 권하는데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아 오토바이를 그냥 보냈답니다. 하지만 막상 보내고 나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두고 두고 남더라는 것이죠. 만약 탔더라도 별 일 없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났답니다. 그 부분은 제가 거친 글로 옮길 수가 없어 본문을 잠시 업어오겠습니다.



근데 웃긴 건요, 제 대학 여자동기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저랑은 달리 여리여리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의 귀여운 전라도 아가씨인데

그녀는 냉큼 그 오토바이를 탔다네요.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대요

"아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요




잇힝~~~ 이런 분위기?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그 아가씨(당연히 오토바이 탄 아가씨)는 지금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태워준 그 남자와 결혼했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또 이런 타입의 아가씨라면 그 남자와 헤어졌더라도 금세 또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찾았겠죠.

이 이야기에 후배는 '오토바이로 본 결혼할 수 있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 판별법' 어쩌구 하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물론 공감이 가는 얘깁니다. 하지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이런 일은 남자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찬스가 왔을 때 본능적으로 '아 이게 찬스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따르지 못해 골을 넣지 못하는 경우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아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글자 그대로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죠.

저는 문득 이런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지붕이 새는 것을 깨닫고 동네 잡일을 해주는 40대 노총각 아저씨를 불렀다.

잠시 후 와장창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아저씨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 무릎을 망치로 찍은 이 아저씨가 지붕에서 떨어져 기절해 있는 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자리에 눕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아저씨에게 동네 사람들이 어쩐 일인지 물었다.

"글쎄 한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지 뭡니까."

당시 아저씨, 아니 총각은 여기저기를 떠도는 장사치였다. 하루는 어떤 마을 부잣집의 헛간에서 하룻밤에 지내게 됐는데, 야심한 밤에 그 집의 예쁜 딸내미가 문을 두드리며 '뭐 필요한 것 없느냐' 고 붇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피곤했던 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이러고 왔다는 거죠.

잠시 후 밤이 더 깊어졌을 때, 아가씨는 술 한병을 들고 나타나 뭐 필요한게 없냐고 했다. 마지못해 술병을 받아 든 아저씨는 없다고 그냥 자라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가씨는 정말 필요한게 없느냐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속치마 차림이었지만 워낙 고된 하루를 보냈던 아저씨는 짜증을 버럭 내며 필요한게 없다는데 왜 사람을 귀찮게 하냐고 쫓아 보냈다.

여기까지 들은 동네 사람이 물었다.

"들으니 속터지긴 하네만 대체 그거랑 지붕에서 떨어진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아저씨가 대답했다.

"지난 20년 동안 그냥 잘 잊고 살아왔는데, 아까 지붕 위에서 갑자기 '아, 그때 그래선 안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때리더란 말이죠.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지붕에서 떨어져 있더구만." (얘기 끝)


...그러니까 이런 여자가 나타나면, 절대 20년 뒤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선수냐, 개발이냐의 차이는 결국 찬스에 얼마나 강하냐의 차이입니다. 공이 달려들 때 우겨 넣느냐, 아니면 슈팅이라도 시원하게 날려 보느냐, 그도 저도 아니고 그냥 어, 어, 하다가 공 지나간 다음에 땅을 치고 스스로를 원망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이렇습니다.





찬스다 싶으면 주위 돌아보지 말고 과감하게 지르십시오.




지를때 안 지르고 나이 먹어서 후회하면 뭘 합니까.



p.s 토요일에 차 안에서 라디오를 돌리다 보니 우연히 '익명노래방'이라는 코너를 듣게 됐습니다. 40-50대 여자분들이 '인생을 살다가 정말 후회되는 일'들을 되짚어 보는 코너였는데, 당연히도 '그때 그 남자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때 조금만 더 과감했어야 했는데'라는 사연이 줄을 잇더군요.

나이들어 그런 생각으로 혼자 쓸쓸하게 웃음짓는 분들이 많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보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상황을 그냥 지나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되겠죠.

예전에 이 글을 본 분들 중에도 정색을 하고 '오토바이 뒤에 타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그러냐'는 분들이 꽤 있었지만(더구나 강호순 사건 이후로 뭘 타란다고 타는 건 바보 짓이 되겠죠), 위에서 말한 오토바이는 하나의 예고 비유일 뿐입니다. 요지는 '찬스가 왔을 때 주저하면 나이 먹어서 반드시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끝의 고춧가루를 햝지 마시고 부디 달을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질러서 후회할 일이 생길 리는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질러 봐야 어떨 때 과감하고 어떨 때 신중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법이죠. 한번도 안 질러 본 사람은 그 다음 찬스가 와도 어물어물 지나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혹시 못보신 분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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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거침없이 하이킥'을 볼 때만 해도 김범이 이렇게 빨리 정상으로 치고 올라올 연예인인 줄은 몰랐습니만, '에덴의 동쪽'을 보다 보니 이미 그냥 한낱 미소년이 아니라 연기력 면에서도 정상급인 배우가 되어 있더군요.

아무튼 이 글은 그토록 연기 잘 하고 잘 생긴 김범이 왜 KBS 2TV '꽃보다 남자'에서는 주인공이 아니냐...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민호나 김현중이 김범만 못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난번 '구준표의 정체는 인조인간?' 때 워낙 어처구니없는 댓글이 많아서 미리 말해 둡니다. '심각하게 보는 사람 바보.'

물론 이 블로그를 꾸준히 보신 분이라면 정답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꽃보다 남자'에서 김범이 주인공이 아닌 이유는 이미 지난 번 포스팅에서 밝혔다시피, 김범이 현재 이중생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이정, 혹은 김범이라 불리는 이 소년은 '꽃남 월드'와 '하이킥 월드'라는 두 개의 세계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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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시작하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단 밝은 세계, '꽃보다 남자'의 세계에서 김범은 소이정이라는 이름의 천재 도예가이자 유명 미술가의 아들로 등장합니다. 아버지 소**(김종진) 교수님은 대단한 재산가이자 미대 교수지만 딸같은 여자들을 수시로 농락하는 바람둥이이기도 하죠.

한편 그에게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그는 김범, 혹은 하숙범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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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김범이 자기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민호(김혜성)나 윤호(정일우) 형제까지도 김범의 집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합니다.

이 세계는 소이정이 김범이라는 이름으로 구축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삶입니다. F4 친구들과의 부자 놀음에 질렸을 때, 그는 이쪽 세계에서 서민으로 위장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 겁니다. 바람둥이 아버지와 그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때문에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하이킥'의 이원장 댁에서 늘 아무 음식이나 먹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버티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이정이 금잔디나 추가을 같은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가 일반인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소이정은 심지어 수업도 민호, 윤호네 학교에서 들어왔습니다. (사실 소이정이 신화고에서 수업을 들어가는 장면을 본 사람이 없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신화고에서 소이정이 머무는 건 F4 멤버들과 어울릴 때 뿐이죠.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이원장 댁에서 죽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꽃보다 남자'에서 소이정의 아버지는 나왔지만, 어머니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아버지 때문에 속이 썩을 대로 썩어 있다는 설정일 겁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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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를 찾아 이원장네 집을 방문한 범이 엄마는 범이보다 더 이 집을 재미있어 하면서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범이네 엄마가 '우리 집은 재미 없다'고 한 이유는 뭘까요. 당연히 남편의 바람기 때문이죠. 이때만 해도 아마 이혼 전이었던듯 합니다.

중간 결론: 소이정은 김종진-최화정 부부의 아들이었다.


물론 간과해선 안될 것은, 이 시기는 소이정-김범의 고1때라는 겁니다. '꽃보다 남자'보다 2년 전이란 얘기죠. 그래서 '하이킥'은 '꽃보다 남자'의 프리퀄 역할을 합니다. '꽃보다 남자'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소이정의 프로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형을 향한 열등감에 갇혀 밀어낸 첫사랑의 상처를 숨기고 산다. 대안이 없어 선택 되었다는 콤플렉스도, 당주로서 지위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혼란스럽고 싫다. 불특정다수의 여자들과 깊이 없는 만남을 전전하며 F4 최고의 플레이보이로 부유하는 이유일 거다.
 
그렇다면 소이정의 첫사랑은 누구일까요?

이미 웬만한 분들은 다 알고 있죠. 소이정-김범이 첫 키스를 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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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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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린 여자입니다. (...이러다 '꽃보다 남자'에 박민영이 나오는거 아닐까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소이정-김범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고, 더 이상 '하이킥'의 이원장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외국으로 이민간다는 핑계로 김범은 사라지고, 소이정만 남게 됩니다. 이런 비틀린 첫사랑의 기억 때문에 아무에게도 진정으로 대하지 못하고, 바람둥이가 되어 버린, 알고 보면 불쌍한 소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그렇다면 가을(김소은)은 왜 소이정을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이건 이 두 사람의 전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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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김소은은 많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천추태후(채시라)였죠. 그리고 김범은 전생에 천추태후의 연인이었던 김치양(김석훈)이었습니다.

무슨 근거없는 얘기냐구요? 근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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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정은 한때 신분을 감추고 서민으로 살던 시절, 왕건이라는 부하를 거느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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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왕건이는 전생에 사가문이라는 이름으로 김치양을 모신 적이 있었죠. 잘 보시면 왕건과 사가문은 동일인물입니다(당연합니다. 김형민이라는 같은 연기자기 때문이죠). 이걸 보면 소이정이 다시 태어난 김치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전생에 천추태후였던 가을은 그렇게 소이정을 그리는 겁니다.

이렇게 사연을 알고 보면 '꽃보다 남자'의 캐스팅은 참 신비롭고 정교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역시 또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물론 심각해지면 지는 겁니다.)

이상이 김범-소이정의 이중생활에 얽힌 비밀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저번 글'이란 이걸 얘기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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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레닌상(과학, 인권), 페르마상(수학), 오일러상(수학), 퓰리처상(언론), 로버트 카파상(보도사진), 간디상(인권), 사하로프상(인권), 막사이사이상(인권), 노구치 히데요상(의학), 에드가 앨런 포 상(문학), 오 헨리 상(문학)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수많은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 중에 다윈상 혹은 다윈 어워드(Darwin Awards)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과 차이가 있다면 전혀 명예롭지 않은 상이라는 점입니다. 1985년부터 수상자를 배출해 왔지만 수상자 가운데 저나 여러분이 이름을 알만한 사람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냥 장난이라면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유쾌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장난이기도 합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고 지난 12일은 바로 찰스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났던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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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윈상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다윈 어워드(The Darwin Awards, 2005)'는 다윈 상 수상자와 주위 여건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다윈 상이란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기념해 제정된 상이며, '자연선택설에 입각해 그들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유전자 개선에 공헌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상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복잡하지만 풀어 설명하면 '살아 있었다면 인류의 형질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후손들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상'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이 상(http://darwinawards.com)은 198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해 왔고, 수상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담은 책들도 여러 차례 발간됐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콜라 캔을 공짜로 빼내려다 자동판매기에 깔려 죽은 사람, 요트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항해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아내에게 위자료로 집을 주라는 판결이 나오자 집에 불을 질렀다가 타 죽은 사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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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는 어쨌든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게 그리 편치는 않다. 유명인들의 사망 기사에 달리는 인터넷 악플들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이런 장난에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는 데 대해 다윈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윈의 이론이 인류의 지성 발전에 기여한 내용이야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론 그의 주장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는 비판도 항상 따라다닌다. 다윈이 없었다면 우생학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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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서도 가끔은 다윈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다. 시청률에서 경쟁 방송에 뒤지는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어야 하고, 박스 오피스를 장악하지 못하는 영화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다행히도 가끔씩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난 12일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인류는 그동안 그의 가르침을 빙자해 저질러온 수많은 바보짓에 대한 반성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윈 상의 존재 의미는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잊지 말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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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다윈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더군요.

사실 찰스 다윈의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실수로 인한 발전도 꽤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해군 함선 비글호에 편승한 다윈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군도에 도달할 무렵 너무 심해진 배멀미로 인해 하선 조치를 당합니다. 만약 이때 다윈이 함선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했더라면 '종의 기원'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뭐 남들의 어리석은 실수에 대해 비웃고 손가락질하는거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 죽은 사람까지 대놓고 웃음거리로 삼는 건 좀 편치 않더군요. (아무래도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너무 영감같은 소리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계와 다윈의 비유는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화계에서의 적자생존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윈의 어두운 쪽을 계승한(혹은 했다고 자처하는) 후계자들 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는 식의 믿음에 따라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것들'을 참혹하게 억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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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도 나오는 천지불인 天地不仁 이라는 경구는 다윈의 가르침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자신들의 잔혹성을 포장하는 데 사용해온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어떤 현명한 가르침이라도 비뚤어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남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윈상 홈페이지에는 볼테르의 경구가 떡하니 쓰여 있습니다. '수학자들이 무한이라고 말하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총량을 생각해봐야 한다(The only way to comprehend what mathematicians mean by infinity is to contemplate the extent of human stupidity.)' 이 말은 아마 이런 상을 만든 사람들 자신도 돌이켜봐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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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에 나오는 닥터 매튜린(폴 베터니가 연기했던)은 찰스 다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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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연예인 강호동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감 때문입니다. 가끔은 MC몽이나 유세윤을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고, 처음 정했던 조건에 쉽게 승복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그의 밑바닥에는 대중에 대한, 또 함께 출연하는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선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방송인 강호동을, 가끔은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구라나 신정환과는 다른 종류의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18일 방송된 '무릎팍도사'에서 유세윤과 강호동의 모습은 그런 부분에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늘 웃음의 대상이 되는 권상우의 혀짧은 발음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입니다. 권상우도 웃어 넘겼지만, 사소하게 넘어가기에는 그 대목이 영 마음에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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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은 처음부터 '덩서야 한덩서'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한정서는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의 이름)'에 나오는 대사를 흉내내며 권상우를 자극했습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권상우의 프로필을 낭독할 때에도 마지막 순간에 '다당은 움디기는 거야(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권상우의 CF 멘트를 흉내냈죠.

이걸 본 권상우가 기가 차다는 듯 웃자 강호동은 사과한답시고 엎드려서 '데송합니다. 데송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뭐 재미있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고, 언뜻 암시된 대로 권상우와 강호동이 사석(같은 사우나에 다닌다더군요)에서는 형 아우 하고 지내는 격의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편안한 말투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발음 부분은 배우로서의 권상우에게 계속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어 온 부분이고, 어찌 보면 태생적인 약점입니다. 권상우는 데뷔 이후 줄곧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 약점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입니다(물론 흥분하거나 긴장된 장면의 연기 때에는 가끔 다시 살아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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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발음으로 놀리기'는 '천국의 계단' 때의 상대역이었던 최지우가 더 많이 당한 바 있습니다. 있는 자리건 없는 자리건, 화를 잘 내지 않는 최지우의 성품을 이용해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약점을 놀려먹었죠.

아무튼 이런 부분들은 당사자의 노력으로 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는 사람을 그리 즐겁지 않게 합니다.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권상우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지도 모르고, 권상우 본인이 웃어 넘겼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코미디란 남의 약점보다는 나의 약점을, 남의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수근과 정명훈이 '키컸으면'을 외칠 때 웃을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의 약점을 코미디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정종철이나 오지헌이 자신들의 외모를, 대성과 김종국이 자신들의 작은 눈을, 이윤석이나 윤종신이 자신들의 건강을 거론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페어 플레이지만, 이런 약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캐내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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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에게 혼전 임신을 부정한 거짓말을 추궁하거나, 손태영의 옛날 애인이던 신현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거나, 이런 부분들은 토크 프로그램의 본령이고 권상우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감수했을 부분들이니 여기서 예의를 따지는 건 좀 빗나간 행동입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보다는 혀짧은 소리의 흉내가 훨씬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몇년 사이 막말과 예의상실이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경험담을 이용해 남을 스토커로 몰거나(김세아 - 김민준 사건이죠), 방송에서 '개새끼'라는 욕을 하고도 아직 아무런 조치도 없는 방송(상상플러스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대표 방송인 강호동까지 그런 대열에 합류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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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날 방송 최고의 유머는 권상우의 '숙면'이었습니다. 자신과 송승헌이 출연한 영화 '숙명'이 전날 잠을 못 잔 관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다며 '숙명'이 아니라 '숙면(영어로는 Deep Sleep이라고 친절하게 영역까지)'이라고 빗대더군요. 그러고 보면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킨 개그'의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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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보신 분도 있습니까? 연예인이나 웹서핑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퓨마쇽(Pumashock)이라는 아이디를 아실 겁니다. 아니면 '소녀시대, 원더걸스 노래를 한국어로 자유자재로 부르는 흑인 여가수'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이 흑인 여가수의 이름은 나탈리 화이트입니다(나이는 굳이 안 밝히겠다는군요. 한 독자 분의 도움으로 알아낸 결과는 82년생^^). 아직 음반을 내거나 한 적은 없지만 게임 음악 등을 직접 만들고 있는 뮤지션이고, 자신이 만든 곡으로 싱글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프로 가수 지망생이더군요.

며칠간 추적 끝에 저희 팀에서 이메일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탈리, 엄청나게 밝은 아가씨에다 한국 대중문화를 줄줄이 꿰고 있는 미국의 한류 마니아더군요. 발빠른 SBS TV '스타킹'에서도 벌써 접촉을 했다니 잘하면 곧 한국 TV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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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셨던 분들이라면 일단 노래를 들어보시는게 가장 이해가 빠를 겁니다. 소녀시대의 'Gee'.



노래 중간의 가사 '바보'에서 머리를 툭툭 치는 몸짓을 보면, 그냥 한국어를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포 혹은 2세 쯤 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사실 지난주에 교포걸님이 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기 전까지 이 친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더군요. 원더걸스의 '노바디' 등 노래들을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더욱 놀라운 건 발음만 한국어로 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알고 부르더라는 겁니다.

이런 친구라면 한번 찾아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유튜브에 개인 페이지가 있더군요. 즉시 안 되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쪽지를 날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오더군요.^

Hello Song,

Thank you so much for contacting me! It's a pleasure to meet you :)
It's so cool that you watched my videos! I'm just amazed at the positive response and would like to reach out to as many Koreans as I can with my singing.
I'd love to do an email interview with you. It's an awesome opportunity!
Please contact me at 이메일 주소^^ with your instructions.
...how exciting X-D

Thanks again,
Natalie White

그래서 그 다음에는 저보다 영어 잘 하는 후배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답장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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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듯 중간 중간 한국어를 섞어 쓴 구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일 먼저 본 한국 드라마는 지진희 수애 조현재 주연의 '러브레터'였고, 가장 먼저 본 뮤직비디오는 신화의 것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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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고 나온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902/18/2009021810212610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그러니까 시카고 근처 노스웨스턴 대학(대단한 명문입니다. 엄친딸 냄새가...) 재학중 자취방에 채널이 3개밖에 안 나오는 채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나오는 채널이 하필 한국 교포 유선방송이라 어쩔수없이 한국 문화에 노출됐다가 깊이 빠져들었다는군요.

그 뒤로 10년. 항상 백설공주에 나오는 듯한 멋진 남자들(Prince Charming)이 여주인공을 놓고 싸우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고, 이제는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김기덕 감독의 '빈집(3-iron)'을 꼽는 수준이 됐습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의 이름은 한 20여명 되는 리스트였지만, 가장 먼저 있는 이름은 윤은혜였습니다. '커피 프린스'를 열심히 본듯 공유의 이름도 곧 나오더군요. 특히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해피 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이었고 유재석과 김제동을 정말 좋아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신동엽과 이효리 시절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온갖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과 노래까지 챙기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지만 LA의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새 춤을 춘 뒤 새벽까지 하는 코리아타운 식당가에 가서 daeji bulgogi, spicy rice cakes(...아마 떡볶이가 아닐까요^), ox-tail soup(...떡볶이에 꼬리곰탕이라... 음... 럭셔리하군요) 등을 시켜 먹는걸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역시 한국의 24시간 영업문화, 경쟁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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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자기 홈페이지의 게시글을 통해 "내가 한국어로 연기한다면 '내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다니엘 헤니 같지 않을까?^^" (I want to perform in Korea someday and act too! I could be like Daniel Henney's character in "Samsoon" haha!** I'm working hard to learn the language, so please forgive any mispronunciations... I'll get better!) 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한국에 대한 나탈리의 관심은 뜨겁기만 합니다.

그동안 한류 팬이라면 우리 아시아 동포들이나 '대장금'을 보시는 아랍, 아프리카의 친구들만 생각했다가 미국 본토에서 이런 반응을 보니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는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한국 문화에 빠져든 지 10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마 30대 초반 정도...? ^^  요즘 '꽃보다 남자'도 혹시 잘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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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국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메일로만 접해봤지만 참 밝고 씩씩한 친구더군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꿈을 펼치고 잘 살기를 바라게 됩니다.

16일 올라온 나탈리의 최신작, 이효리의 '유고걸'입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





동방신기의 '미로틱'입니다. 특이합니다.



유튜브 개인채널 http://www.youtube.com/user/Pumashock 에서 신청곡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편곡하는지 궁금하신 곡이 있으면 신청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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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연예기자들 중 상당수가 2부로 접어든 KBS 2TV '꽃보다 남자'로 먹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3개의 연재를 하고 있는데 주기가 모두 다릅니다. 중앙일보 분수대는 매주, 일간스포츠 두루두루는 격주, 그리고 무비위크의 롤링페이퍼는 확실치 않지만 4주에 1회 정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불운한 경우에는 한주에 모두 몰리게 되죠. 거기다 다른 회사일까지 겹쳐서 지난주는 제법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 시사회도 드문드문 갈까말까한데, 본 건 '꽃보다 남자' 뿐이고, 그렇다고 전부 '꽃보다 남자' 얘기로 쓸 수도 없고... 무척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가 이 글입니다.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미덕'이라고 할만한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장점 한가지가 있더군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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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미덕

아주 오래 전, 필자가 코흘리개 학생이던 시절의 얘기다. 어느날 집에 좀 일찍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밥그릇이 좀 컸다. 귀찮은 설겆이를 피해 냉면 사발에 반찬을 몰아 넣고 간이 비빔밥을 만드신 듯 했다. 입이 방정이었다. "엄마,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그날 저녁 내내 분위기가 냉랭했다. 당시엔 대체 어머니가 별것도 아닌 말에 왜 그렇게 분개(?)하셨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해가 지난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뒤통수를 갈겼다. 그랬다. 어머니도 여자였던 거였다. 말한 사람이 누구건 그런 식의 무식한 논평을 당했다는 사실은 한 여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거다.

지난 설 연휴, 수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한편의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네 명의 꽃미남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그린 '꽃보다 남자'는 KBS 2TV와 기타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과 재재방송, 사방 오방 재생되어 나갔다. 그리고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집집마다 초등학교 5학년 손녀에서 칠순을 넘긴 할머니까지, 온 집안의 여자들은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아 네 꽃미남들의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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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본 남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그들 여자들이 드라마 보느라 수정과 한 사발만 달라는 남편(혹은 아들, 혹은 아빠)의 요청은 들은 체도 않는 데 격분하여 "에잇, 여자들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며 다시 화투 패를 펼쳐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몇몇 남자들은 그 썩 잘 만들지도 못한 드라마 한 편이 대한민국의 10세에서 75세 사이 여성들을 홀딱 사로잡아 버린 데 대해 평소답지 않은 인류학적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내린 결론을 대략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우리 마누라, 우리 어머니, 우리 형수들도 우리(이란 약 10세에 75세 사이의 남자들을 말한다)가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볼 때 느끼는, 막연하고 나른한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중 몇몇의 느낌은 이랬다고도 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도 아직 여자였구나!"

남자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방신기나 H.O.T의 파괴력은 대략 초등학교 학부형의 연령 장벽을 넘지 못했다. '다모'의 이서진이나 '주몽'의 송일국,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이나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도 F4의 강력함에 비길 정도는 아니었다. 필자가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인 것은 '첫사랑'의 배용준 외에는 없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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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매주 주말이면 저녁밥 내놓으라고 짜증내는 남편과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TV 앞에 숨 죽이고 앉아 있다가 "아이고! 배용준이가 끝내 깡패가 되려나보다. 어쩌면 좋으냐!"고 속상해 했다는 바로 그 드라마 말이다. 이 드라마가 기록한 65.8%의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은 거저 먹은 게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 욕하려고 맘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허술한 편집,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대사, 음악 구성이고 뭐고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OST 수록곡, 무개념의 학원 폭력 묘사…. 장담하건데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그 촌스러움에 치가 떨릴 드라마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딸들이 '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공감하게 해 줬다는 공, 또 그 어머니들에게 그 먼 옛날, 당신들도 눈썹 진한 오빠들을 보고 가슴 떨려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 공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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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그따위 저질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야!'라면서 격분하실 분들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분명히 '꽃보다 남자'도 아니 보고 '아내의 유혹'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불철주야 자식 걱정과 남편 걱정, 또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날을 지새느라 그따위 드라마를 볼 시간 따위는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너무 우아하시고 고상하셔서 이런 허섭쓰레기에는 아무 관심 없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시간낭비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어머니 잘 모시고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버지나 삼촌들이 TV에 나오는 소녀시대를 무슨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 좋아하는게 아니잖습니까. 어머니들도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음흉한 마음(?)이라면 여중생들이 더 많이 갖고 있겠죠.

주위의 증언이나 반응으로 미뤄 볼 때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여성 중 적잖은 분들이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그놈 참 잘났다'는 감탄사를 토해 내고 계신 듯 합니다. 그 분들에게 잠시나마 고단한 인생사를 잊게 해 주는 효과를 냈다면 드라마가 막장 아니라 막막장이라 해도 충분히 용서를 해야겠지요.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잘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여전합니다. 어떤 분이 '꽃보다 남자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욕하지 말라'고 분개하는 댓글에다 '그럼 너는 천추태후 보다가 운동화 신은 놈 나와도 좋으냐'고 답글을 다셨던데 제 말이 그말입니다. 이 드라마 수출까지 한다는데 너무 막나가면 민망하잖습니까.

2부의 도입부는 시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찍은 덕분인지 1부 끝부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몇번 더 볼때까지 평가를 미뤄야 할 듯 합니다.





그 전의 꽃남 관련 글들입니다.


12부에서 극에 달한 '꽃보다 남자'의 허술함에 대한 농담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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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중훈 쇼'의 게스트로 최양락이 나와 좋았던 옛 시절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박중훈이 최양락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배우 경력을 폭로(?)했죠. 최양락은 87년 이후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박중훈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뭣보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공연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규형 감독의 1987년작,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입니다. 흔히 '청춘스케치'라면 이 영화였는데 뒤늦게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1994년작 'Reality Bites'가 '청춘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면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긴 원제를 다 얘기해야 통하는 영화가 돼 버렸습니다.

지금이라면 우스운 숫자지만 1987년 7월 개봉한 이 영화는 2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6월 항쟁 때 깔린 종로 거리의 최루탄 가루가 아직 다 흩어지기 전인 정치의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갑갑한 청춘들에게는 피난처 역할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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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겠지만 한국 대중문화는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88년 올림픽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컬러 1면과 가로쓰기 체제의 스포츠 신문이 새로 나온 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죠.

이 신문은 급속도로 젊은 층 독자를 빨아들였는데, 당시의 제작1선에 섰던 분들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규형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주간 연재 소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였죠. 감각있는 필체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던 글쟁이 이규형 감독은 턱없이 순수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볼일없는 남자 대학생 철수와 역시 그저 그런 여대생이지만 장래에 대한 꿈 만큼은 원대한 미미 커플을 등장시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웃기는 짜장면' '슬픈 울면' 같은 표현도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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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심하고 빌빌한 철수와, 술 - 주먹 - 미모(책에는 나중에 미미가 영화배우로 캐스팅되는 사연까지 나오죠)만큼은 탁월한 미미 커플은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영화 데뷔작인 '청 블루 스케치(천호진과 허준호의 데뷔작)'로 감각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이었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이규형 감독은 글쟁이로서의 재능을 한층 높이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6년 연말, 소설 '청춘스케치'가 미미와 철수의 결혼생활로 접어들어 아직 연재되는 상황에서 태원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청춘스케치'의 영화화를 결정합니다. 뒷날 '서편제'를 만든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지만 당시까지는 소장파 제작자에 속했던 분이죠.

영화판의 주인공은 세 사람. 철수, 미미와 철수의 친구 보물섬이었습니다. 철수 역은 '깜보'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중훈, 보물섬 역은 '가슴을 펴라'라는 영화로 주목받은 김세준으로 일찌감치 결정됐습니다. 미미는 '엽기적인 그녀'의 원형을 이루는 말괄량이로 워낙 선명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수많은 배우들이 거론됐지만 결정은 쉽게 되지 않았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강수연이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른 주장은 쑥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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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신화는 이뤄지기 몇달 전(물론 '씨받이'는 1986년 개봉됐었죠)이었지만 강수연은 다른 두 배우와는 격이 다른 스타였습니다. 1970년대 아역 시절부터 지존의 미모로 신화적인 인기를 누렸고, '고교생일기'나 기타 다른 드라마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었던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조연급으로 '최 아랑드롱'이라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이 역할은 본래 소설에선 철수를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이태원으로 데리고 가 프로의 위력을 보여주는 초절정 미남이었지만 영화에선 말만 앞세우는 속빈 강정 캐릭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역할은 당시 이규형 감독과 친분이 두터웠던 개그맨 최양락의 차지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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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감독은 최양락을 캐스팅할 때 '강수연과 러브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강수연과 단 한 신도 함께 출연하지 않아 뒷날 '속았다'며 투덜댔습니다. 최양락은 15일 방송에서 "그래서 시사 이벤트 때 콩트를 짜 실컷 껴안아 봤다"고 뒷얘기를 하기도 했죠. 최양락은 이후 이규형 감독의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와 '난 뭔가 깜짝 놀랄 일을 할거야'에 잇달아 출연해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이규형 감독은 흥행을 위한 영화 홍보에도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신기법을 활용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대대적인 엑스트라 모집 광고도 그중 하나였죠. '철수 뒤에서 짜장면먹는 남자 역, 미미 뒤에서 짬뽕 먹는 여자 역, 지하철에서 조는 남자 역' 등의 조역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공모를 받아 채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의대생 역에는 진짜 의대생, 법대생 역에는 진짜 법대생을 캐스팅하겠다는 공고도 있었죠(절반 정도 성공했습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이규형 감독은 오래 전부터 혹독한 브레인스토밍을 거쳤습니다. 7-8명으로 구성된 팀이 늘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감독과 김영남 조감독(뒷날 최진실의 데뷔작인 '꼭지딴' 감독)이 판정위원이 되는 식의 회의였죠. 이때 회의를 거친 사람들 중 상당수가 90년대에서 현재까지 한국 예능 방송계를 이끌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음악도 꽤 주목을 끌었습니다. 일단 1986년 발매된 산울림 11집 수록곡 중 2곡이 메인 테마로 쓰였습니다.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안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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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두 곡 외에도 가수 최성수가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O.S.T에는 당시 꽤 주목받던 노래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프닝에 흐르던 손현희의 '오늘은 어떤 일이'에서, 미미의 나이트클럽 신에 나왔던 벗님들의 '우리의 젊음', 그리고 최성수의 '내사랑 미미'까지 꽤 짭짤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참 22년전, 어제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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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이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까요?^

산울림의 '안녕'입니다.



p.s. '박중훈 쇼'가 날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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