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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할배'라는 별명이 김래원에게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MBC TV '무릎팍도사'에 나온 김래원의 모습이 퍽 신선했던 것은 우선 이런 프로그램에서 김래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는 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난 2003년 MBC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정다빈과의 공연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사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면 김래원은 한방에 올라선 반짝 스타는 아닙니다. 데뷔가 너무 빨랐던 셈이죠. 1997년 김수근 최강희 등이 주연이었던 청소년드라마 '나'에서 이미 모습을 비쳤고 2001년-2002년에 이미 주연급으로 얼굴을 비쳤지만 히트작이 없었을 뿐입니다. 얼마 전 '꽃남' 이민호가 "김래원 선배를 롤 모델로 생각한다"고 말한게 우연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다른 청춘스타들에 비하면 훨씬 긴 시간을 이미 활동해 왔고, 그런 동안 천천히 성장해서 어느새 정상에 위치하게 된 김래원. 그야말로 '요란하지 않은 스타덤'인 셈인데 그의 이런 성장사를 돌이켜보다가 기억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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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민호의 태국 방문 얘기 때 잠깐 소개드린 분이 다시 등장합니다. 요즘 태국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한류 관련 행사를 떠맡고 있는 KTCC의 이유현 사장님입니다. 그동안 태국에 다녀온 수많은 스타들 중 이분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죠. 그런 이사장님이 유독 칭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김래원입니다.

김래원은 지난해 10월, 방콕에서 열린 한국-태국 수교 50주년 기념 행사에 한류 스타를 대표해 참석했습니다. 당연히 공항에까지 많은 팬들이 몰렸고,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했습니다. 호텔까지 경찰들이 에스코트를 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여기까지는 여느 스타들과 똑같았다는 거죠.

그런데 김래원은 여기서부터 달랐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김래원은 자신을 호위해준 경찰관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감사 인사를 하더라는 겁니다. "이때부터 김래원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 이사장님의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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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사소한 일들은 생략. 그 다음은 행사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의 김래원입니다. 이사장님의 부하 직원의 증언은 대략 이렇습니다.

호텔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김래원은 진을 치고 있던 많은 팬들이 택시를 타고 자신을 따라 공항까지 오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가이드를 통해 태국 현지 직원(바로 이사장님의 부하 직원이죠)에게 '공항까지 택시비가 얼마나 드냐'고 물었다는 겁니다. 얼마라고 대답하자 김래원은 그 팬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김래원은 통역을 거쳐 "공항까지 멀고, 택시비도 많이 나온다. 또 중간에 들를 곳이 있어 바로 공항으로 가지도 않는다. 공연히 고생할 필요 없이 여기서 이별을 하자"고 한 뒤 단체로 사진 촬영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이 현지 직원이 "이런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하더라는군요.

뭐 더 많은 팬 인파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호텔에 와 있던 팬들이 별로 없어서 그게 가능했나 보지'라고 웃어넘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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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서 '무릎팍 도사'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김래원은 스스로 '재미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자신이 남을 웃기거나 즐겁게 하는 데 큰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털어놓더군요.

이날 방송 분량은 평소 다른 스타들에 비해 조금 짧았습니다. 브라운관에서의 '재미'를 위해 뽑아낼 부분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죠. 글자 그대로 '예능에는 최악의 출연자'라고 꼽을 만 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라도 '무릎팍 도사'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강호동과 유세윤의 몫인 만큼 어제는 두 MC의 활약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강호동의 사과 개인기 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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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예계에서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굳혀가고 있는 김래원이 말한 일화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가 끝날 때까지 말을 놓지 못하고 (상대역인 김태희에게) '태희씨'라고 물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이런 사람 보다는 오히려 약간 오버하는 사람이 상대를 더 편하게 해 줄 때도 있습니다. 결코 장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경우지만, 여기서 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연기자 중에는 차인표가 상대방에게 '말 못 놓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영화 '닥터 K'를 다 찍도록 상대역 김혜수에게도 '혜수씨'라고 불렀다는 것을 비롯해 함께 출연한 배우들 가운데 말을 놓고 오빠-동생, 혹은 형-동생 하는 경우가 더 드믈 지경입니다. 이 부분에서 묘하게 두 배우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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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가 최근 종영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이 드라마를 '절대 실패한 드라마'라고 규정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YWCA 대학생 방송모니터회의 분석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단체에서 이 막장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TV 시청자들을 상대로 어떤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어떤 TV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으싶니까'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교양, 다큐멘터리, 사회고발성 뉴스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응답합니다. 어떤 조사에서도 '코미디, 리얼 버라이어티, 막장성 드라마'라고 응답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청률 조사는 그런 설문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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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지적하고 있는지 역시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성공의 요인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종합선물세트 ▲캐스팅의 대 성공 ▲노이즈마케팅의 위력 ▲힘들고 지친 일상에 대한 아스피린 등 덕분이라고 꼽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이야기 ▲고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폭력, 유흥 문화 ▲갈 곳을 잃은 어설픈 스토리 ▲CG의 남용과 폐해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 ▲한숨짓게 하는 여주인공 캐릭터 등을 들었다는군요.

아울러 여주인공 금잔디 캐릭터에 대해 "한마디로 이처럼 수동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안하무인이고 종속적인 캐릭터는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고(이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합니다), "철저한 배금주의와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무장한 '꽃보다 남자'는 새로운 막장 드라마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상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사실 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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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사상의 문제, 즉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우려가 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좋게 본다 한들 두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에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첫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 드라마의 폐해인가 하는 점은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가 이 드라마로 인해 장려되고 있을까요? 이 드라마 보다는 현실이 훨씬 이런 현상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을까요? 과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저 두 부분에 대해 '현실은 그렇지 않아! 이 드라마는 현실을 오도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드라마의 저런 부분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현실과 선을 긋게 해 주는, 즉 '대놓고 비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 드라마보다는 '내조의 여왕'이 훨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드라마죠.

'꽃남'이 끝난 뒤 지난주에 '꽃보다 남자가 남긴 것 - 아저씨가 본 꽃남'이라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수많은 문제는 문제로 치고,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자들의 욕망이라는 부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 왜 중년 남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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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저씨들은 왜 '꽃남'에서 소외됐나

지난달 31일 KBS-2TV ‘꽃보다 남자’의 마지막 회는 방송위원회의 경고 처분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방송됐다. 이 드라마에 지속적인 적대감을 표방해 온 사람은 적지 않다. 폭력 묘사, 지나친 간접 광고 등의 이유에서부터 형편없는 완성도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이르기까지 ‘마음먹고 보면’ 비판할 구석이 넘쳐나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용서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 이 드라마의 미덕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그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가 ‘그동안 엄마·아내·이모 등 관계 중심의 호칭으로 규정되어 왔던 한국의 성인 여성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본연의 욕망을 깨닫게 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다. 자칫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다시 풀어 말하면 ‘여성들은 꽃미남을 보며 흐뭇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온 세상이 피부로 이해하게 해 줬다는 뜻이다.

남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런 욕망의 은근한 표출이 그리 추하지 않은 것으로 허용되어 왔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시대를 보면서 헤벌레 웃는 것이 그리 주책 맞은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롤리타 콤플렉스’나 ‘원조교제’와 음습한 동기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스무 살 언저리의 해사한 청년들을 보고 헤벌쭉 미소를 짓거나, 지나가는 미남 청년을 돌아보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아내의 유혹’에 열광하던 주부들이 동시에 ‘사실은 꽃남 팬’이라며 커밍아웃하는 광경은 요즘 그리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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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여자들에게만 꽃미남과의 우발적인 연애, 혹은 그와 관련된 바랜 옛 추억을 꿈꾸게 한 것은 아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성 시청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욕망의 대상을 구현한 판타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등장만으로 주위 여자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화려한 레스토랑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공부 따위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재능과 환경을 꿈꾸기 때문이다.

사실 ‘꽃보다 남자’는 학교나 부모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라 해도 ‘서민 가정’ 출신인 한 유력가의 자제들에 비해 사회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요즘의 10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계층이 중년 남성층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욕망의 대상도, 자신을 투영할 만한 대상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F4 멤버들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다행이겠지만, 대다수 중년 남성에겐 ‘미워도 다시 한번’의 박상원 같은 캐릭터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영 낯설기만 하다.

‘꽃남 현상’의 이해를 위해 시청을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말았다는 중년 남성들의 경험담도 드물지 않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만약 F4 대신 소녀시대 멤버들이 출연한 ‘꽃보다 소시’가 방송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무튼 이 드라마의 사회적 의미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드라마 본연의 가치인 극의 완성도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바람 빠진 공이 되고 만다. 가장 기본적인 플롯의 개연성에서 벌써 무너지기 시작하고, 뮤직비디오를 연결해 붙인 듯한 흐름은 대체 연출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꽃보다 남자’의 최고 시청률은 가장 우호적인 수치를 따져도 35%를 넘지 못했다. 대단한 숫자지만 기록적인 높이는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에도 경쟁작인 MBC-TV ‘내조의 여왕’이나 SBS-TV ‘자명고’도 모두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숫자들은, 그래도 드라마 한 편이 40%, 50%의 시청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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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윗글은 YWCA의 보고서 전에 쓰여진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도 아니지만 다만 마지막으로 그 YWCA의 조사 보고서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늘 똑같은 문제점만 지적하고 있어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늘 똑같은 19세기 서도 민요만 부르고 있으면 뭘 어쩌자는 겁니까. 더구나 대학생들이 본 시각이라면 30년 전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용어들 말고 좀 더 참신한 시각으로 판단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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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하반기 쯤에는, '꽃보다 소시(물론 가제)'같은 드라마 한편이 세상사에 지친 아저씨들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기를 슬쩍 기대해 봅니다. 만약 그때 대한민국의 온갖 아저씨들이 소주잔을 던지고 오후 9시 50분이면 칼같이 귀가해 TV 앞에 앉는다면, 그때 아줌마들의 표정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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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굳은 마음의 다짐 같은 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측근 한 사람이 이 영화를 극찬한 꼴을 봤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결국 예매했던 '분노의 질주-오리지널'을 취소하고 '우리 집에 왜 왔니'로 바꿔타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다소 실험적이고 새롭게 보이는 영화들을 고르는 건 상당히 모험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미쓰 홍당무'처럼 신선하고 상쾌했던 기억이 있는 반면, 차마 거론하기도 싫은 실패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약간은 불안한 기분으로 극장에 들어섰는데, 나올 때에는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는 엎치락 뒤치락 코미디일 것이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무척이나 슬픈 영화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 잘 만든 영화에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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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삶에 모든 의욕을 잃고, 자살여행에서도 실패하고 돌아온 병희(박희순)는 자살을 감행하려던 순간, 자기 집처럼 불쑥 나타난 노숙자 차림의 수강(강혜정)에 의해 오히려 결박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수강과의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고, 병희는 수강이 자기 집에 들어온 이유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지민(이승현 - 빅뱅 멤버 승리의 본명입니다)을 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지민 때문에 두번이나 교도소까지 갔다왔다는 수강은 "저 자식을 납치해다 산 채로 묻어버리겠다"고 투지를 불태웁니다. 네. 수강은 그리 정상적인 성인의 지능이나 판단력을 가진 인물은 아닙니다.

한 여자의 지독한 짝사랑 이야기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살짝 '미쓰 홍당무'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강혜정의 깜찍한 표정에서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리고 극중에서는 노골적으로 대놓고 '미저리'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겠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도 '우리 집에 왜 왔니'에는 퍽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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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영화가 시작하고 한 30분 동안은 솔직히 좀 불안했습니다. 박희순의 도주와 추격 장면에서의 핸드헬드 풍 화면은 관객을 어지럽히는 것 외에는 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또 강혜정의 등장 직후에서 박휘순과 강혜정이 어느 정도 친분(?)을 쌓기까지의 전개는 좀 아슬아슬합니다. 관객에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맞춰 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관객과 영화의 만남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관객은 이제 막 박희순과 어느 정도 친해졌고, 강혜정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강혜정과도 친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등장한 이수강은 살짝 정신이 이상한 노숙자 치고는 너무 새침떼기처럼 행동합니다. 조금은 관객의 기대에 맞게 행동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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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90분이 충분히 관객을 빨아들여버리기 때문이죠. 수강에게 지민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인물인지, 병희는 왜 서서히 수강에게 마음을 열어 가게 되는지를 두 배우와 황수아 감독이 설득력있게 풀어 줍니다.

물론 지민에게 있어 이 영화의 수강은 스토커입니다. 그것도 매우 위험천만한 스토커죠. 하지만 영화가 끝나 갈수록 관객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수강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만약 이 영화의 수강과 지민이 성별이 바뀌어 있었다면, 황수아 감독은 '스토킹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오아시스' 때 생각이 나는군요.)

촬영 순서와 영화의 진행 순서가 같았다면, 강혜정도 이 영화에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듯 합니다. 영화 뒷부분으로 갈수록 영화에 푹 젖어드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도록 예쁘다는 게 문제긴 합니다만, 연기력만큼은 한국 영화계의 보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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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도 그리 두드러질 데가 없는 역할이었지만, 무리해서 돋보이려 하지 않고 영화의 흐름을 제대로 끌어 주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승리 이승현군도 비중이 크거나 대단한 연기력을 요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머리 감겨주는 신'일 겁니다. 두 주인공이 이해의 폭을 넓혀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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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추천은 이 정도입니다만, 지난번 '미쓰 홍당무' 때도 강추했던 영화가 흥행에서는 참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보실 분들은 가능하면 서두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란방'과 '노잉' 등 대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이 영화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림자 살인'보다는 훨씬 만족도가 높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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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아주 약한 수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일단은 경고 표지를 붙여 두겠습니다. 영화를 보실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는 걸 꺼리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결국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 서는, 혹은 다른 사람을 내 인생에 개입시키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회생활을 통해 조심성을 다진 사람들은 쉽사리 남의 일에 개입하려고도, 다른 사람이 내 일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누구나 내 인생에 남이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원하지 않죠. 다만 내가 남의 인생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을 뿐입니다.

어린 지민은 수강에 대한 자신의 개입이 자신의 인생에 수강을 들여 놓는 것이라는 점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죠. 하지만 어른인 병희는 어느 한 순간에 선을 그어 놓습니다. 호빵을 사다 준 것이 수강에 대한 마지막 감정의 표현이었고,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설정하는 행동이기도 했던 거죠. 만약 그 이상이 있었더라면 면회를 가든가 편지를 쓰든가 했을 겁니다.

놀랍게도 아무 분별력이 없을 것 같던 수강은 어느 선에서, 어른이 되어 이런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지민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 만족하게 됩니다(물론 그러기 위해서 병희의 인생에 무단으로 침입하지만, 수강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만약 지민이 위기에 놓이지 않았다면, 수강과 지민이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병희가 그 선에서 수강에게 잠시 뻗었던 손을 거둬들인 탓에 영화는 지금대로의 결말을 갖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도구로 황수아 감독은 우리가 귀찮아서, 혹은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혹은 나도 먹고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에게 내민 손을 너무 빨리 거둬들였던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을 예리하게 파고 듭니다. 물론 병희의 죄책감(혹은 관객의 죄책감)을 씻어 주기 위한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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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조은지와 오광록의 카메오 출연에서 빵 터집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강혜정은 '꽃찾으러 왔단다' 라는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군요. 이 제목과 희한한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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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남' 이민호가 태국에 가 있다는 건 팬들이면 다 아실만한 얘기죠. 시위 때문에 걱정하신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 중에 '송크란(Songkran) 기간인데도 정말 많은 취재진과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태국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죠. 송크란 때 사람들이 이런 일에 신경을 쓴다는 건 좀 이례적인 일입니다.

송크란이란 굳이 말하자면 태국의 설날에 해당합니다. 저도 태국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여러 해 전 마침 송크란 기간에 태국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때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태국에는 설날이 셋 있죠. 양력설, 음력설, 그리고 송크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설날은 바로 송크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마도 태국 기자들은 이민호의 갑작스런 방문 앞에서 "왜 하필 송크란때 오고 난리야"라고 중얼거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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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민호 관련 이야기. 방콕에서 한류 행사를 주로 맡아 하시는 분 가운데 KTCC의 이유현 사장님이 계십니다. 한때는 현장을 누비는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기자였고, 그 뒤로는 연예 기자로 변신해서 역시 업계의 최고로 인정받았던 분인데 이제는 한류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우연히 다른 일로 통화하다가 이민호의 태국 입국 일정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딱 송크란 기간이더군요. 이사장님도 "송크란 기간 중에는 대개 무슨 행사가 열리건 사람들이 무관심하기 마련인데, 이민호의 영향력이 대단하더라. 아직 태국에서는 '꽃보다 남자' 방송 얘기도 없는데 다들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봤는지, 이민호에 대한 성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태국의 시위 때문에 걱정했는데 시위대는 마주치지도 않았다는군요. 태국도 사람들이 워낙 시위에 둔감해져서 한쪽에선 시위를 해도 관광이나 일상생활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유현 사장님은 "시위 때문에 집회 금지령이 내려졌는데도, 그리고 무엇보다 송크란 기간인데도 이만한 취재진이 모인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더군요.

사실 이민호는 기자회견 하러 간 게 아니라 바빠서 못 찍은 화장품 CF를 찍으러 간 거였는데, 현장에서 겸사겸사 행사를 갖게 된 거였습니다. 이민호로서는 뜻깊은 생애 첫 해외 기자회견인데 다행히 성황을 이뤘다는군요. 최근 파타야에 소녀시대와 샤이니가 다녀가는 등 요즘 태국의 한류 붐이 한껏 물이 올랐다는데 이민호가 그 뒤를 곧 이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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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뿐만 아니라 구경 온 팬들도 만만찮습니다. 아직 드라마는 방송도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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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크란은 매년 4월 13일에서 15일까지 열리는 축전인데 주말과 겹치면 자동 연장됩니다. 기후를 따지자면, 태국에는 건기와 우기, 그리고 그 중간의 봄철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늦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양력 3월까지는 건기입니다. 태국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날씨죠. 파란 하늘과 무덥지 않은 날씨가 그만입니다. 그리고 송크란은 건기의 끝, 그러니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전입니다. 이때부터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고, 한국의 여름철이 되면 본격적인 우기를 맞아 매일같이 비가 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크란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고, 생명의 근원인 물을 기념하는 축제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뭐 굳이 축제랄 것도 없더군요. 거리를 달리는 차들(픽업 트럭이 유난히 많습니다)에는 물을 가득 담은 드럼통과 물총을 든 사람들이 빼곡 타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물총을 이용한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좀 심하게 노는 사람들은 밀가루나 색소를 뿌리며 물총을 쏘아대기도 합니다.

문득 한 9년 전에 송크란을 구경하고 돌아온 감상을 쓴 글이 생각나서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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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크란: 1년에 계절이 3개인 태국에서 건기(dry season)가 지나고 여름(hot season)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명절. 과거 태국의 설날. 4월 13~15일 정도를 가리키며 이 기간중에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는 뜻에서, 길거리에서 마구 서로 물을 쳐 뿌리는 축제 기간이기도 하다...

  라고 여행안내서에는 써 있었다. 사실 무슨 아침 여성프로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세상에 길 다니는 사람에게 마구 물을 뿌리다니, 뭐 저런 무식스런 놈들이 다 있어. 거기다 그 물에서 냄새가 얼마나 나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어떤 후배 한 놈(노는데 환장해서 미친듯이 놀면서도 여자들도 수십명 거느리고, 이번엔 박사학위를 한꺼번에 3개를 따는 아주 요상한 놈이다)이 "형, 금요일 출발로 대한항공타고 방콕 파타야 3박5일가는 34만원짜리 투어가 나왔는데 갑시다. 마침 송크란이야. 송크란"하고 나섰다. 그 바람에 송크란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으윽.. 금요일 가는걸 월요일에... 라고 잠시 고민했지만 어느새 "마일리지는 얼마나 쳐 준대냐?"를 물어보고 있었다. 아. 이 충동구매 인생.

  그러던 수요일,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충동구매 황제 한놈까지 자기도 가겠다고 나서 결국 남자 셋이 여행을 떠났다. 가보니 투어 전체 인원이 남자 셋. 분위기 싸아 했을건 다들 보이지? 이 정도 인원이면 원래 투어 취소했어야 정상이지만 남자 셋이니 어디 음흉한데 가서 부수입이라도 짭짤할줄 알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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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크란, 가보니 장난 아니었다. 태국은 세계에서 픽업트럭이 두번째로 많은 나라다. 방콕에서 파타야로 가는 도로 위에 가득 찬 그 많은 픽업 트럭 뒤에 애들이 빼꼭 타고, 가운데 커다란 드럼통 하나 가득 물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애녀석들이 전부 손에 손에 물총을 들고 있는 거다. 달리는 차에서 서로 물총을 쏴 대느라 정신이 없다. 개중에는 밀가루 탄 물도 있어서 잘못하면 바로 문둥이 꼴이 된다. 우리는 그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철없는 가이드는 판촉에 헛고생만 한다.

가이드: 씨푸드(가이드 가격 40불, 실제 가격 15~20불)라도 드시죠?
우리: (멀뚱멀뚱 창밖만 본다)
가이드: 알카자쇼(게이쇼. 가이드 가격 30불, 실제가격 10불) 아세요?
우리: (멀뚱멀뚱)
가이드: 한밤 시내 투어 어떠세요?
우리: (멀뚱멀뚱)
가이드: 악어농장이라도 함 가실래요?
우리: (멀뚱멀뚱)

가이드: 마사지(가이드 가격 20불, 실제 가격 5불), 이거 꼭 하셔야 합니다.
우리:(멀뚱멀뚱. 한놈이 창문을 열고 애들한테 소리지르는 걸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가이드: (포기한듯) 개인적으로 시내 가시게요?
우리: (헤벌레)
가이드: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기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리에요. 뭐 불교국가라지만 범죄율, 만만치 않습니다. 또 송크란 축제 기간이라 교통 엄청 막혀요. 시내까지 한 40분 걸릴겁니다. 택시비도 한 400바트(10불) 나올거구요. 영어 쓰는 사람 한명도 없습니다. 무슨 일 생기시면 전 절대 책임 못 집니다.
우리: (멀뚱멀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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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까지 150바트에 딱 10분 걸렸다. 시내 나가자 마자 숙원사업인 50바트짜리 물총(거대한 주사기에서 바늘을 뺐다고 생각하면 된다)을 샀다. 잠시 후, 이 '물총을 들고 있는 행위'가 바로 '제발 날 좀 물총으로 쏴 주세요'라는 뜻임을 알게 됐다. 다행인 것은, 이 사람들이 반드시 깨끗한 물로 물총을 쏜다는 에티켓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다(밤에만 그런 모양이다). 양놈 일본놈 조선놈 태국놈 할것 없이 죄 물총들고 시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야아. ... 다 젖었다.

  외국 나가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도 별로 없었다.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은 내년 송크란때 태국에나 가 보길. 편하게 입고 한번 뛰어 보라니까. 애 있는 사람들은 애들 물총 하나씩 사서 들려 주고 말이야.

  암튼 가이드를 울리면 여행이 즐겁다. "제발 여러분같은 분들은 웬만하면 패키지 여행 하지 마세요"라던 가이드의 마지막 절규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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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의 송크란은 여행 성수기가 아니라서 요금도 싸고, 덤핑 패키지도 많이 나올 때였습니다. 지금도 사방에서 물총 쏴 대던 어린이들, 어른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올해는 벌써 지나갔지만 내년쯤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총 하나씩 들고 태국으로 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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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외로 탈출한 지사들과 중국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데 뭉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죠. 또 올해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이기도 해서 백범의 유품 19점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품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윤봉길 의사와 바꾼 회중시계'도 있더군요.

마침 매주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 금요일에 이런 발표가 있었는데 이 시계 말고 두 개의 시계가 머리 속을 스쳐 갔습니다.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람들의 염원과 관련된 시계들입니다. 특히나 그중 한 시계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 시계더군요. 그래서 이 시계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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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역사박물관에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품인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 안에는 감춰진 메시지가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3월 11일 그 전설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시계 수리공 조너선 딜런에 의해 1861년 4월 13일 새겨진 메시지는 “포트 섬터가 반란군(남군)에 의해 공격당했다. 우리에게 정부를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남북전쟁 발발 당시, 마침 딜런은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초의 우국충정이 남북전쟁 기간 동안 대통령의 품 안에 늘 간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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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인 오는 13일을 앞두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물 19점을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다. 『백범일지』는 거사일인 1932년 4월 29일 아침의 정경을 이렇게 전한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살아서 조국의 광복까지 매진할 사람과 몸은 버리고 이름만을 청사에 남길 사람. 두 장부의 맞잡은 손길을 따라 전해진 것이 시계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문화재 지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문득 꽤 유명하되,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사연을 담은 시계 하나가 떠오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0·26의 두 달 전인 197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62회 생일 선물용으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메이커에 2만 달러짜리 순금 손목시계를 주문했다. 이렇게 충성을 과시하려던 인물이 어떻게 시해자로 변신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결국 이 시계는 정작 선물로 쓰여야 했을 그해 11월 14일에는 주문한 사람도, 받을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비운의 미아가 됐다.

두 개의 시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참 이채롭다. 한 시계에 구국의 신념과 사나이들의 정이 담겨 있다면, 다른 시계가 보여주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헛된 야심과 표변하는 인심뿐이다. 가능하면 두 개의 시계를 어디엔가 나란히 전시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을 더욱 깊게 해주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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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WBC 얘기를 쓸 때, 척 웨프너가 알리와 경기한 날짜가 한국이 WBC에서 일본과 결승전을 벌인 날짜와 같은 3월 24일이라는 걸 알고 참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도 날짜가 겹치더군요. 조너선 딜런이 링컨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던 날은 4월 13일, 바로 남군이 포트 섬터를 공격해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4월 12일의 바로 다음 날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도 얘기했듯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기념일이죠. 따로 따로 떼놓고 보면 별 상관 없는 날이지만, 이렇게 한 칼럼 안에 모아 놓고 보니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링컨 대통령은 딜런이 자신의 시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한 시계수리공의 마음이 위대한 대통령에게 금속 표피를 뚫고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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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 교과서나 학교에서 주는 교양도서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정된 내용 때문에 좀 축소했지만 저 앞 뒤에도 이야기가 조금씩 붙어 있습니다. 다 복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튿날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에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군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은 무엇이요?"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은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장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향하여 달렸다.
(이하 생략)


'제 시계는 한 시간 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읽으면 아직도 가슴이 찡 해 옵니다.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한 남자의 결연하면서도 담담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어설픈 호기와는 다른 진정한 용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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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라는 구멍을 통해서 보자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선물하려 했던 시계는 이와 정 반대인 헛된 의리와 충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부장도 혁명을 함께 할 때에는 나름대로 사나이의 의리로 뭉쳐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이 시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0.26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89년, 박근혜 의원이 MBC TV에서 가진 박경재 변호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몇몇 시사지들이 이 시계와 관련된 추적 보도를 한 적도 있죠. 혹시 더 빠른 기록이 있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담에서 박근혜 의원은 '10.26은 김재규가 오래 전부터 기회를 노려 계획하던 일'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시계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러니까, 그 우발적이라는게 아주 무모한, 자기 자신이 앞으로 이 사건으로 해서 사형을 당한다던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했다 이런 말씀이신지요. 그 10.26 저녁 궁정동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지 사전에 김재규 피고인이 법정에서 얘기한 그대로 건설부 장관을 할 때, 또 그후에도 계속 기회를 노렸다, 이런 말은 믿지 않으신다는 말씀이군요. 
"아, 말이 안돼요. 아버지 생신이 11월 14일 이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제가 물건 을 하나받은게 있어요. 11월 14일 조금 못돼선가 그런데, 김재규 그 당시 정보부장이 아버지 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시계 선물이에요 몸에다 이렇게 차는 선물인데 어쨌든 아버지께 좋은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금시계로, 거기에다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글씨도 박고 또 아버지가 훈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새겼고, 국내에서 선물을 준비해도 될 것을 스위스의 유명회사에 다 일부러 맞춰서 11월 14일날 드리려고 했었던 거죠. 그런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뭐 있 었겠어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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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소도구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윗글에 쓴 대로 두 개의 시계가 보여주는 대조가 참 극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한쪽은 명품 금시계, 한쪽은 가난한 독립 지사의 시계지만 두 개의 시계가 나란히 있을 때 정작 빛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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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는 지금도 저런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저 장소에 직접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에서 간 방문단이 폭탄이 터졌던 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일행 중의 미녀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앞길로 기차가 다녔던 건가요?"

약 2초 동안의 침묵. 아니 공원 한 복판에서 웬 기차?

"...기차에서 내리는 걸 총으로 쏜 거 아니었어요?"

그 다음부터 이 미녀의 별명은 '미스 돌고래'가 되었다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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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라는 이름을 듣고 "누구야?" 할 사람에겐 별 의미 없는 포스팅입니다.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라고 하면 좀 달라지겠지만, 역시 요즘 분위기로 봐선 "딥 퍼플이 뭐야?"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테죠. 하긴 딥 퍼플이라고 해도 '하이웨이 스타'나 '스모크 온 더 워터'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별 관심 없을 공연입니다.

'존 로드 콘체르토-에이프릴(Jon Lord Concerto - April)'이라고 이름붙여진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이상하게 꼬인 일정 때문에 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결국 시작 시간을 념겨 도착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안 왔더라면 정말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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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같이 갈 사람을 꾀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마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존 로드라는 사람이 공연을 하는데..."
"그게 누구야?"
"딥 퍼플이라는 그룹에서 키보드를 치던 아저씨야. 딥 퍼플은..."
"나도 딥 퍼플은 알아. 그런데 별로 안 내키네."
"...스티브 발사모가 보컬로 같이 와."
"그건 또 누군데?"
"왜 전에 '게세마네' 잘 부르던 잘생긴 뮤지컬 스타 있잖아."
"아 그래?"

네. 존 로드 선생이 발사모의 덕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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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나 딥 퍼플의 역사에 대해 맘 먹고 얘기를 하자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일단 딥 퍼플이라는 이름과 거의 비슷한 무게를 갖고 있는 리치 블랙모어 선생을 빼고 나면 그들의 사운드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가진 사람은 이 로드 형님일 겁니다.

특히 전자 사운드의 개척기인 1970년대, 하먼드 B3와 C3 오르간으로 이 분이 보여준 절정의 무공은 당대 최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 같은 거인들과 견줘 한 치의 손색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록 사운드와 하먼드 오르간의 결합이라는 건 이 분에 의해 진정한 궤도에 올랐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를 제외한 나머지 딥 퍼플 멤버들이 존 로드의 사운드와 공헌에 대해 얘기합니다. 잠시 'Highway Star'의 솔로 부분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죠.

 

내친 김에 그냥 원곡까지. 1972년 라이브입니다. 로드 형님의 얼굴은 막 피해가는군요.



로드는 딥 퍼플의 음악과 클래식의 결합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실이 1969년의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같은 곡이죠.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S&M을 하기 수십년 전에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히트곡이 아닌 독자적인 곡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도했던 겁니다.

이미 딥 퍼플 멤버들과 함께 두어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지만 존 로드는 이번엔 스티브 발사모, 카시아 라스카(여)라는 두 보컬과 함께 왔습니다. 밴드는 국내 멤버들로 채워졌고 서울 아트 오케스트라가 협연했죠.

이날 연주 곡목은 이랬습니다.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3 movements)
Pictures of Home
One from the meadow
Bourre
Pictured within
The Telemann Experiment
Wait a while
Gigue

Encore: Soldier of fortune, Child i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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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정으로 Concerto 2악장 때에야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그리 많이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2부 시작부터 로드 선생은 마이크를 잡고 나서시더군요. 2부 시작 첫 멘트는 누가 영국 사람 아니랄까봐 "다들 바에 갔다 오셨나요?"였습니다.

(그쪽 나라에서는 인터미션 때면 다들 바에 가서 한 파인트 정도 맥주를 마시고 오곤 하죠. 불행히도 세종문화회관엔 그런 바가 없답니다.ㅋ)

Pictures of Home을 연주하자 다들 열광. 하지만 2부에서 딥 퍼플 시절의 곡은 이 곡 한곡 뿐이었씁니다. 나머지는 전부 로드 선생의 솔로 활동 앨범 수록곡들이었죠. 생소한 곡도 많더군요. 보컬이 없는 Bourre같은 곡은 집시의 멜로디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 The Telemann Experiment는 바흐 시대의 작곡가인 텔레만의 멜로디 하나를 듣고 이리저리 변형시켜 만든 곡이라는 설명이 따라왔습니다. 이렇게 진행이 되다 보니 은근히 본 공연보다 앵콜이라는 떡밥 쪽에 더 마음이 쏠렸습니다.

마지막 곡인 Gigue는 대단히 규모가 큰 록 협주곡 형식이었습니다. 스스로 '크레이지 피스'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연주 중간에는 살짝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메리카'와 드보르작 교향곡 9번 4악장의 멜로디를 섞여 연주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형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예정됐던 앵콜. 객석의 아저씨 관객들은 "하이웨이 스타!" "번!"을 외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여유있는 미소의 로드 형님은 "그건 다음 기회에"라고 넘기며 "아마도 오늘 곡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작곡에 손대지 않은 곡일 것"이라며 'Soldier of Fortune'을 연주했습니다. 아아, 해 주시면 고맙기 짝이 없을 뿐이죠.

노래가 끝나고 로드 형님은 '한 곡만 더 하겠다. 이번엔 제목은 말하지 않겠다'며 다시 하먼드 오르간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단 세개의 음표만 듣고도 객석은 들끓어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세 음만 듣고 이 곡을 모르면 감히 딥 퍼플 팬이라고 할 수가 없죠.




발사모는 그가 왜 뮤지컬을 떠난지 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최고의 예수로 꼽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특히 Child in Time의 고음부에서는 절로 소름이 끼치더군요. 노래 중간에서 쉴새없이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전성기의 길런이 아니라는 게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모르시는 분이라면 발사모의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게세마네'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가 끝날 때만 해도 아무도 이게 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공연의 제목이 'April'인데다 4월 아닙니까. 당연히 문제의 노래가 나올 줄 알았죠. 그런데 웬걸, 피곤하셨는지 로드 형님은 그냥 자리를 뜨셨습니다. '누가 공연 끝이래'는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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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Child in Time의 고음부를 따라하다가 동승자들에게 구박받은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니었을 듯 합니다.

문득 존 로드 선생을 위시한 당시 록의 거장들이 하먼드 오르간을 연주하던 시대가 그리워집니다. 창작력과 에너지가 온 사방에서 뭉클거리고 쏟아져 나오던 그 시대 말입니다. 그래서 골라 봤습니다.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입니다. 매튜 피셔의 하먼드 오르간은 지금 들어도 영롱하기만 합니다.

 

언제건 다른 멤버들은 떨구더라도^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다시 뭉쳐서 딥 퍼플의 사운드를 재현해 준다면 참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0이라는게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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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나 이슬람교의 신자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 분들을 아예 적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드시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삶의 양식이 등장하는 데에는 그 배후에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슬람교 교단에서 돼지고기나 술을 금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초코파이를 '먹을 수 없는 음식'의 범주에 넣는다고 하는 건 좀 생소하실 겁니다. 물론 초콜렛은 먹을 수 있지만, 초코파이는 안 된다고 하는군요. 마찬가지로 우유는 마셔도 되지만 요플레는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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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halal)

미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한국계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의 취임에 보수파의 반발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즈가 2일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고 학장의 발언에서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은 일상 생활에서 투자-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규정해 놓았다.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 중 하나인 초코파이를 먹어선 안 된다는 것도 있다.

초코파이의 젤라틴 성분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질감을 내는 제과용 젤라틴은 돼지 가죽에서 추출한다. 무슬림에겐 최대의 금기인 돼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성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각국 이슬람 교단에서는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식품의 목록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알려 준다. 이를 할랄 푸드(halal food)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공인 할랄 푸드 시장 규모는 580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 이슬람교 교단에서도 지난달부터 '먹어도 좋은 한국 과자'의 목록을 공지하고 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육류의 경우 돼지고기, 피,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등은 먹어선 안된다. 허용된 고기라 해도 율법 규정에 따라 도살된 것이어야 할랄 푸드로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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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돼지가 금기일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 이유를 돌린다. 유목민들에게 최고의 가축인 양이 풀만 있으면 자라는데 비해 돼지는 사람과 양곡을 나눠 먹어야 하고, 젖이나 털 등 부가 자원도 얻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사치품인 돼지를 키우느라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도가 금기로 변한 것이란 설명이다.

결국 모든 금기의 이면에는 그 사회 특유의 필연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금기의 무시는 때로 유혈 사태로 이어지곤 한다. 1857년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반란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금기를 경시했던 영국 통치 세력의 오만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슬람 세력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경계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의 거부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할랄의 이해는 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 대한 아랍권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도 지난달 말 무슬림 모델을 기용한 한국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할랄 푸드 제공 식당을 안내하는 등 아랍권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기회에 다른 경로로 젤라틴을 추출한 '할랄 초코파이'를 만드는 건 어떨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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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이처럼 할랄 확인 마크를 만들어 식품에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품목'임을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랄의 상대 개념인 '금지'는 '하람(haraam)'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이렇게 잘난 척 하고 끝맺음을 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오리온제과의 김태욱 홍보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는 오래 전부터 중동 및 이슬람 국가에 수출되는 초코파이에는 돼지 추출 젤라틴 대신에 소 추출 젤라틴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 이상 없이 소비됩니다."

아앗 이런;;;; 역시 글쟁이보단 업계에 계신 분들의 손이 훨씬 빨랐던 거군요. 그런데 사막에서는 초코파이가 너무 빨리 녹지 않을까요?

"다 안 녹게 처리를 했죠."

그랬군요. 알고 보니 온 세계로 수출되는 초코파이는 소비되는 나라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성분이 다르다고 합니다. 덜 녹거나 덜 얼도록 처리가 되어 있다는 거군요. 훌륭합니다,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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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안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조금 보충하자면 이렇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 현지인들을 세포이라는 이름의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당연히 이들은 거의 모두 힌두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였죠. 당시 이들에게 지급된 총의 탄약통(magazine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의 총에 탄창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은 입으로 물어 뜯어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는군요.

이 물어 뜯는 부분이 기름 먹인 종이였는데, 문제는 그 기름이 소 기름 아니면 돼지 기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소=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 돼지=이슬람의 금기이니 둘 다 입에 댈 수 없다는 반발을 낳은 겁니다.

처음에 이 문제를 무시하던 영국 당국은 뒤늦게에야 '탄통에 먹이는 기름은 염소기름만 사용한다'는 식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불만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 결국 세포이들은 반란을 일으킨다...는 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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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 할랄을 준수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추정치로는 약 70% 정도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전 세계 시장이 56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죠.

아무튼 요즘 무슬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마음 놓고 식사를 하려면 할랄 여부를 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일 듯 합니다. 또 설명에 따르면 아랍 여성들도 이제는 히잡을 패션으로 인식할 정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확산이 오일달러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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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중동 지역의 최신 유행 수영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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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미워도 다시한번'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결국은 근친상간 테마의 드라마였던 거죠. 박상원-최명길 부부의 아들 정겨운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박예진이 사실은 자신이 박상원-전인화 사이의 불륜에서 태어난 딸이란 걸 알게 된 거죠. 죽은 걸로 알려져 있던 이들 커플 사이의 첫 딸이 살아서 자라난 거였습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공포영화 수준으로 죽었던 사람이 반드시 되살아나는 막장 드라마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렇다고 정겨운-박예진이 모두 박상원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아예 여기서 끝나 버려야겠죠. 다행히도(?) 정겨운은 최명길이 박상원과 결혼하기 전, 옛 애인인 화가 선우재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정겨운과 박예진 사이의 혈연은 아슬아슬하게 꼬이지 않고 비껴 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게 아니겠지만, 이런 진행 왠지 너무 낯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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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안방극장을 흥분시켰던 '하늘이시여'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남자주인공 이태곤은 여주인공 윤정희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결혼을 하죠.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 한혜숙이 사실은 윤정희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한혜숙은 이태곤이 태어난 다음 그의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이기 때문에 자신과는 혈연이 닿지 않지만, 윤정희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한 순간에 친어머니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윤정희의 아이를 두고 이태곤의 여동생인 이수경이 하던 대사가 걸작입니다. "그럼 얘는 내 친조카야, 외조카야?" 이 사실을 윤정희에게 알린 못된 계모 박해미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던 이태곤이 화장대 거울을 깨던 소란스러운 장면만 기억에 남지만, 아무튼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틀어 놓으면 또 보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막장 드라마였죠.

시아버지가 친아버지가 된 박예진, 시어머니가 친어머니가 된 2005년의 윤정희. 그대로 베꼈다는 평을 피하기 위해 살짝 성별을 바꿔 가는 패턴도 고전적인 스타일을 따랐습니다. 정말 '미워도 하늘이시여 다시한번' 혹은 '하늘이시여, 미워도 다시한번' 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딱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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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전개는 새롭거나 특이한 건 아닙니다. 문득 오래 된 서양 농담이 생각납니다. 한 청년이 사귀던 아가씨를 데려가 아버지에게 결혼 승락을 받으려 합니다.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흡족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아가씨의 출신 내력과 부모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얼굴이 흐려졌습니다. 서둘러 아가씨를 돌려보낸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 아가씨의 어머니는 예전에 나와 사귀던 사람이란다. 우리가 불륜의 만남을 갖던 시기에 저 아가씨의 아버지는 해외 체류중이었지. 태어난 달을 보니 저 아가씨는 분명 내 딸이다. 너희는 남매가 되는구나. 이뤄질 수 없는 사이니 어서 잊도록 해라."

비감한 마음을 견딜 수 없던 아들은 그날로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웠습니다. 병이 깊어져 사경을 헤메던 아들에게 병상을 지키던 어머니는 고민이 있어 보이는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몸을 해치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던 아들은 결국 어머니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놔 버리죠. 하지만 어머니는 얘기를 다 듣고도 냉소를 지을 뿐입니다.

"걱정마라, 아들아. 너도 네 아버지 아들이 아니야. 너희는 결혼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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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이야기를 자기 작품으로 가장 먼저 승화시킨 사람은 무협의 거장 김용 선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의 작품 '천룡팔부'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뜻인지 금세 이해하실 걸로 믿습니다.

'천룡팔부'는 한 세대를 풍미한 무협지의 주인공이 가장이 되어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무협지의 장르 파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초반의 '미워도 다시한번'을 보고 중년 스타들의 연기력에 혹해 '명품 드라마' 운운 하셨던 분들이 이제 이 드라마의 본질을 보시고 충격을 받지나 않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정겨운이라는 새로운 연기파 배우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 외의 부분들은 김종창이라는 명 연출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중견 연기자들의 호연이야.. 그 분들이 연기 잘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대한민국에 있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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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누구나 조금씩 했을 겁니다. 이민호는 KBS 2TV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라는 캐릭터를 만나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잡았고, 대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같은 캐릭터를 또 맡을 수는 없는 일이죠. 팬들이야 1년 뒤든 2년 뒤든 구준표와 금잔디의 결혼을 그리는 속편이 나오길 바랄 수도 있고, 주구장창 두 사람의 부부생활을 그린 100부작 일일드라마가 나와도 좋아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민호나 소속사가 제정신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사진을 보니 이미 이민호는 '탈출 구준표'를 시작했더군요. 물론 이번 달과 5-6월까지는 '꽃보다 남자'의 일본 프로모션이 잡혀 있으니 다시 구준표 이미지로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모습의 이민호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순서입니다. 사진은 카스 모델로 나서 제시카 고메스와 포즈를 취한 이민호입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글 맨 아래 첨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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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카스 뮤직비디오 프로모션입니다. 2x송이라는 노래를 이민호가 직접 불렀다는군요. 가창력은 일반으로선 훌륭하지만 깜짝 놀랄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팬들의 귀에는 천상의 소리로 들리겠죠.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궁금증은 이런 겁니다. 과연 짧게는 2-3년, 길게는 5-10년이 지난 뒤에 살아 남을 것은 이민호일까요, 구준표일까요. 어느 쪽이 과연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을까요.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민호는 구준표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벗어나서도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까요?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선 우선 역사의 교훈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년의 선배 구준표들은 과연 어떻게 한방에 벼락같은 인기를 얻었고, 어떻게 그걸 유지했을까요. 과거를 돌이켜 보면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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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호(차인표)

1m80에 탄탄한 근육질의 체구. '기름바른 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선진국형 용모. 빼어난 영어 실력. 다소 어색한 듯 하지만 과묵함으로 커버한 연기력. 이상이 신인 차인표의 스펙이었다면 강풍호는 재벌 2세, 느끼함과 귀여움의 겸비, 뛰어난 두뇌, 손가락 액션과 색소폰 연주에 이르는 다양한 개인기를 갖춘 캐릭터였습니다. 둘이 만나자 저절로 시너지가 폭발했고,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결혼에 이르며 전설이 완성됐습니다.

이후 차인표의 행보는 '단색 귀공자 연기에 머물지 않겠다'는 몸부림의 연속이었죠. '허리케인 블루'가 가장 대표적인 행보였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심하게 망가진 연기 한 번'+'귀공자 연기 한 번'의 패턴을 계속했지만 사실 '망가진 연기' 쪽에서의 히트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한민국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라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투철한 신념과 실천으로 장동건과 문근영을 제치고 '안티 제로'라는 신기원에서 독주하고 있는 거죠. 냉정하게 말해 연기력 면에서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널려 있지만 '강풍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멀리 날아오른 걸 따지자면 대단히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민호를 위한 교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인격의 성숙은 연기력과 외모를 뛰어 넘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만과 방종, 나태로 인해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스타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예인과의 사귐은 결코 나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여자 연예인'과 만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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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이정재)

"감독님, 정말 잘생기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간지가 납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연기력이 아직 좀..." "그래? 그럼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전설 속 '침묵의 보디가드'. 그 뒤로 수많은 연출자들이 잘생긴 신인을 섭외할 때마다 "야, 너 이거만 하면 불같이 뜬다. 어떤 역이냐고? 왜 있잖아. '모래시계 이정재' 역할. 니가 아직 연기가 안 돼도 이건 할 수 있어." 물론 그 수많은 이정재의 복사본들이 다 떴다면 지금껏 '모래시계 이정재'가 전설로 남아 있을 리가 없죠. 대사 없이 가만히 서 있어도 멋있어지는 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약 10년 간, 이정재는 '모래시계 이정재'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물론 연기력 면에서는 괄목상대의 변화를 겪었죠. '태양은 없다'에서의 능글맞은 매니저 연기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무시할 수 없는 배우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흥행 운이라는 건 영 따라 주질 않았습니다. 일단 본인이 작품 수를 매우 제한하는 정책을 취했는데, 이 경우 한번 떴을 때 오래 간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실패하면 후유증도 오래 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민호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작품 수를 너무 제한하는 것도 곤란하다. 지나치게 작품성 위주로 출연작을 선택하는 것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항상 대중과의 호흡을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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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윤(이서진)

이서진은 이때까지 절대 무명이 아니었습니다. 나름 주연급 배우로 평가도 받았습니다.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분명 똑같은 이서진이었는데도 수염을 붙이고 상투를 틀자 갑자기 여자들이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투박하게 생겼다'는 평을 듣던 광대뼈가 갑자기 귀골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거죠.

그리고 나서의 이서진은 최고의 섹시 스타로 대접받게 됐습니다. 다만 '다모'의 성공이 다시 이어지지 않은 것 뿐이었죠. '불새'가 히트했지만 황보 종사관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한풀 꺾인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인기는 상투를 틀자 마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바로 '이산'이죠. 이산가족이 됐던 이서진의 팬들은 어느새 다시 뭉쳤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거죠. 아무튼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이서진이 확인한 것은 시대극에서의 폭발력이 훨씬 앞선다는 거였습니다.

이민호를 위한 교훈: 왠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장 잘 나갔을 때의 모습으로 잠시 돌아오는 것도 괜찮다. 야구선수들도 슬럼프 때는 '제일 잘 맞을 때의 폼'을 확인하기 위해 옛날 비디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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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안재욱)

돌이켜 생각해보면 안재욱 역시 '별은 내 가슴에' 이전에도 꽤 촉망받는 배우였습니다. '눈먼 새의 노래' 이후 '연기력은 동년배 중 최고'라는 평가를 얻고 있었죠. 다만 '외모가 주는 임팩트가 약해 원톱 주인공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을 뿐입니다.

'별은...'에 캐스팅될때만 해도 이 드라마의 최초 구상은 차인표-최진실 커플을 축으로 한 것이었죠. 하지만 앞머리를 기른 가수 강민역의 안재욱이 보여준 폭발력은 드라마의 결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여느 배우들을 뛰어넘는 가창력은 '가수 겸엄 안재욱'의 시대를 열었죠.

그 뒤로도 안재욱은 4-5년간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약간 소강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예상 밖의 일이지만 지나간 나날을 해석해 보자면 당시의 틴 아이들 이미지가 신인 시절의 안재욱이 추구하던 연기파 배우로서의 꾸준한 성장을 잠시 가로막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게 안재욱의 경력에 쉼표나 마침표를 찍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도 비슷한 또래에서 안재욱을 뛰어넘을 진지한 연기파 배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나이와 함께 오히려 그동안 '강민 이미지'에 묻혀 있던 안재욱의 진짜 강점이 드러날 시기가 온 것 뿐이죠.

이민호를 위한 교훈: 한때 주춤할 지는 몰라도 연기력에는 슬럼프가 없다. 용모는 언젠가 쇠퇴할 수 있어도, 연기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짝 아이들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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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이민호는 그 나이 때의 차인표나 이정재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력, 이서진이나 안재욱보다 훨씬 뛰어난 신장과 외모라는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현재로서는 성장을 가로막을 장애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험요소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일단 위에 나오는 선배들은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성공했나, 혹은 왜 한때 주춤했나를 알아 두는 것이 본인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본인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말입니다. 위에서는 기술하지 않았지만 이준기가 '개념준기'로 큰 가닥을 잡은 데에는 '스타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 채찍질한 팬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민호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팬들은 또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본인은 올해 학교에도 좀 다니고 싶다고 했다는데...^^

보너스컷을 몇장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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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은 다니엘 헤니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마지막 컷은 카스 광고와는 무관하지만 남성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너무 한국에서 활동이 많다보니 이제 고메스는 한국 연예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면 꽃남에 대한 글을 꽤 썼지 말입니다.

이건 꽃남 출연자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이건 PPL에 대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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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태연의 푸딩-젤리 커플이 파국을 맞았더군요. 정형돈의 '실제' 연애가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커플을 무참하게 깨 놓은 셈입니다. 구분을 하자면 정형돈이 출연하고 있는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계열의 프로그램이지만, '무한도전'에서는 정형돈의 연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당연히 다르죠. 이 프로그램이 발을 딛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가상현실이니까요. 이 쇼의 생존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쇼를 철석같이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프로그램 안에서 달달한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따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있다는 것 만큼이나 '확 깨는' 일은 또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연출진과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충분히 오갔기 때문이죠.

"출연자 중에서 누가 열애설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게 해야죠."

하지만 그 우려하던 일이 이번에 일어났고, 누구나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속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제부터 '우결'을 보는 눈은 달라질 겁니다. 제작진은 즉시 정형돈-태연 커플을 퇴장시켰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안 그래도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우결'을 지탱하고 있던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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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전에 '우리 결혼했어요' 가 처음 화제를 일으킬 때 썼던 글로 넘어갑니다. 새로 글을 써도 되겠지만, 어차피 지금부터 하려던 말도 그 때 이미 했던 말과 거의 흡사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사태는 '우결'이 시작하던 지난해 5월에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해 봅니다. 리얼리티 쇼는 정말로 리얼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리얼리티 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바이버'나 '배철러' 같은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의 상당 부분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믿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쇼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우승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든가 하는 정도까지 미리 다 짜여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배철러'같은 경우에는 1위로 뽑힌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하는 일도 있죠. 하지만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가끔씩 악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작설'이 믿고 싶어집니다.

누구라도 잘 보이고 싶을 게임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건 다른 보상을 약속받고 하는 행동일 거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심플 라이프' 같은 쇼에 나오는 것처럼 패리스 힐튼이 저능아일 거라고는 절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역시 리얼리티 쇼인 '밀착취재, 스타의 신혼(Newlywed)'에서 '참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던 제시카 심슨도 쇼가 끝난 뒤 "이 쇼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쇼 아니냐"며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제목에 리얼리티가 들어간다고 다 사실은 아닌 겁니다.

그리고, 최소한 미국의 리얼리티 쇼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출연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래야 진짜 리얼리티 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리얼리티 쇼'라는 간판을 내걸고 연예인들이 출연합니다. 말하자면 '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내놓고(가수도 포함됩니다. 가수는 노래가 곧 연기죠) 그걸 믿어달라고 하는 셈인데, 그걸 또 악착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걸 보다가 쓴 글입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이건 현실이 아니야!"

1938년. 미국 뉴저지주가 발칵 뒤집혔다. 라디오에서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물론 이건 진짜 뉴스가 아니었고, 뒷날 '시민 케인'을 내놓은 천재 영화감독 오손 웰스가 H.G. 웰스의 SF소설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실감나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방송극 중간 중간 여러 차례 '이 방송은 실제가 아니라 구성된 드라마'라는 고지 방송이 나갔고, 심지어 광고도 끼어 있었지만 속은 사람들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부분만을 들었기 때문이다.

뒷날 미디어 연구자들은 이 사례에서 '매스컴은 사람들에게 탄환이나 피하주사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강효과이론을 주창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사건의 교훈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무엇을 보여 주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쪽이다.

바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 얘기다. 남녀 네 쌍이 각각 둘만의 공간에서 밤을 지새며 나누는 '결혼 역할극'이 이 프로그램의 실체지만, 여기에 열광하는 여성 시청자들에겐 마지막의 '극', 혹은 '역할극'이라는 부분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예전부터 드라마 속 커플들의 희로애락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열혈 시청자들은 많았지만, '우결'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들이 실제로 결혼했거나,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전판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열혈 팬들은 이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출연자들이 이런 상황에서의 연기에 매우 능숙한 전문가들이라는 사실도 그냥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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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에게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통해 최고의 '훈남'으로 떠오른 알렉스가 음반 준비를 위해 이 코너에서 빠졌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마치 알렉스가 파트너 신애를 차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라도 한 듯 아우성 일색이었다.

문득 오래 전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이 생각난다. 기운 빠진 목소리의 한 여자가 당시 인기 절정이던 배우 H의 전화번호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기를 당하고 식구들이 병이 있는데 전부 길에 나앉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H씨의 전화번호가 필요할까. "도와주실 것 같아서요."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희 사연을 알면 꼭 도와주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리고 싶어요."

최신 미디어 이론들은 대부분 '매스컴에 의해 섣불리 휘둘리지 않는 똑똑한 정보 수집자'로서의 대중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건 연기야. 실제가 아니야'라는 말을 무시하고 방송이 주는 판타지에 푹 빠져 있는 시청자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에겐 누가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줄지 궁금하다. (끝)



혹시 마지막의 빨간 알약 얘기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신 분들은 없겠죠.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개의 알약을 내밉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이 상황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매트릭스가 주는 환상 속에서 잘 살게 되죠. 하지만 빨간 알약을 먹으면 꿈에서 깨고, 잔혹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바로 뒤에도 나오지만 모피어스와 함께 싸우는 전사들 중에도 '차라리 그때 파란 알약을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의 팬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현실과 이 프로그램 내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해, 알렉스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신애와의 신혼 생활'을 포기한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의 함성이 일었죠.

하지만 알렉스가 군에 입대하는 성시경의 뒤를 이어 6월 초부터 라디오 DJ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이 아쉬움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악플이 달리기 시작한거죠. 물론 그 수가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알렉스의 소속사 쪽에선 경악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팬들은 '어떻게 DJ할 시간은 있고, 신애와 달콤하게 속삭일 시간은 없느냐'는데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스의 죄(?)라면 너무도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한 죄겠군요. 만약 이 대목에서 알렉스가 따로 사귀는 여자친구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대목은 지난해 5월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형돈- 저 위 사진을 보니 심지어 재혼이었던 - 이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최근 결혼 발표를 한 신애는 과연 저 때 '그분'을 사귀고 있었을까요, 아닐까요.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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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예화로 들어간 전화는 제가 직접 받은 거였습니다. 사연은 위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은 무척이나 절박해 보였습니다. 도저히 매니저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그 뒤로 진짜 도움이 갔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가 '이미지가 좋은' 스타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당혹스러운 일이겠죠. 아무튼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를 소비하시는 분들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지나치게 빠져서, 현실과 방송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분들은 빨리 주변 분들이 깨워주셔야겠죠.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점점 똑똑한 정보 추구자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정론인데, 21세기에도 이런 판타지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참 놀랍기만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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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의 후속으로 박용하 박시연 주연의 '남자 이야기'가 6일 처음으로 방송됐습니다. 첫회에는 사회적 이슈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듯한 시도가 엿보이더군요. 박용하가 석궁을 들고 방송사 생방송 스튜디오로 난입하는 장면이나, 박용하의 형이 경영하는 만두 공장이 쓰레기 만두 파동에 휘말리는 장면 등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좀 어처구니없는 것은 아직도 그 시절의 '만두 파동'에 대해 엉뚱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쓰레기 만두'라는 말을 유행시킨 당시의 만두 파동은 한국 언론의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만한 사건인데, 아직도 그 실수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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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박용하의 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만두가게를 만두공장으로 끌어올린 성공적인 기업인입니다. 하지만 회사로 찾아온 방송사 기자가 만두의 제조 공정을 오도할만한 화면을 촬영해 방송하면서 '비위생적인 만두가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를 터뜨립니다.

이어 각종 언론사가 이를 이어받아 보도하고, 네티즌들은 '먹을 것 갖고 장난치는 놈들은 사형대로 보내라'며 들끓어 오릅니다. 사태가 커지자 식약청은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일단 여러 개 업체의 만두를 불량식품으로 낙인찍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조사결과가 밝혀졌을 때, 각종 매체에 보도가 나가지만 이미 그때는 1단짜리 기사만 나갈 뿐입니다. 이미 공장은 망해 있고, 명예는 회복되지 않은 채 박용하의 형은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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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은 지난 2004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소위 '쓰레기 만두 파동'을 대략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의 파동은 방송사 기자가 독자적으로 엉터리 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각 방송사가 경찰이 촬영한 자료 화면을 그대로 쓰면서 경찰의 초기 수사 결과를 아무 검증 없이 방송하면서 이뤄진 것입니다. 문제의 보도는 '만두 소를 공급하는 소형 식품사들이 단무지 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 단무지로 만두 소 원료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죠. 이 보도는 대기업 식품사들도 이 소형 식품사들이 공급하는 만두 소로 만두를 만든다는 사실로 이어지며 대대적인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폭등한 여론은 "즉시 '쓰레기 만두'를 만드는 회사의 이름을 공개하라며 관계 당국을 압박했고, 식약청은 여론에 밀려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25개 업체를 공개합니다. 결국 이 리스트에 오른 만두 회사들은 거의 폐업 위기에 몰리고, 그중 한 회사의 대표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감행합니다.

조사 결과는 씁쓸했습니다. 문제의 '쓰레기 단무지'라는 것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죠. 단무지 회사들은 단무지를 담근 다음 상품으로 포장할 때 둥글게 쓸 수 없는 무우의 양쪽 끝 부분은 '버립니다'. 이 '버리는 부분'이 만두 원료로 만두 소 회사에 팔려갔다는 것이죠. 즉 '모양 때문에 상품화할 수는 없지만 먹는 데에는 지장 없는 부분'을 판 겁니다. 문제될 게 없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어 다르고 아 다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건 말하자면 김밥을 예쁘게 썰어 도시락에 담기 위해 각 줄에서 양쪽 끝 부분은 '버린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즉 예쁘지 않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지, 그걸 '쓰레기'라고 불러서는 안 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한탕'을 위해 이를 '쓰레기 단무지' 혹은 '단무지 공장의 폐기물'이라고 불렀고, 이런 선정적인 표현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한 것입니다.

뒤늦게 식약청 조사 결과 많은 업체가 누명을 벗게 되지만 이미 이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 있었던 터라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신을 표명합니다. 또 언론의 본질상 '터뜨릴 때는 크게, 해명은 조용하게'가 여기서도 적용됩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반성'하는 두 개의 기사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55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276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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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번 머리에 박힌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입니다. 최근들어 '남자 이야기' 방송을 앞두고, 1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 여러 인터넷 매체의 기사들입니다. 한번 보시죠.

'남자이야기'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극중 ‘김신’(박용하 분)의 형 ‘김욱’(안내상 분)이 운영하는 만두공장이 ‘쓰레기만두’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사건이다. ‘쓰레기만두’ 파동은 지난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으로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실제로 쓰레기 만두 파동은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으로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 우리 사회가 식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 주었던 실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 같은 사건은 지난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아이템.


아주 사이 좋게 연도도 틀린데다(위에서도 말했듯 2004년 6월의 일입니다. 누가 하나 잘못 쓰면 끝없이 베껴 쓰는 인터넷 보도의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쓰레기 만두'를 들고 나와 당시 처참한 피해를 입은 만두 회사 관계자들을 두번 죽이고 있습니다. 결국은 '사고는 크게 치고 해명은 작았던' 당시의 보도 행태가 이런 식으로 또 한번의 오류를 낳은 것이겠죠. 이 사건은 식품 위생에 대한 경각심도 경각심이지만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하는데, 비록 인터넷 매체라지만 아직도 저런 보도가 나오고 있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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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가 또 하나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흥분의 폐해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댓글 알바'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식품 회사의 M&A를 위해 만두 파동을 조작하고 크게 확대시키는 주범들이 알바들을 동원해 뉴스 댓글로 만두 사건을 확대시키는 장면이었죠.

알바 몇명으로 여론이 좌우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정확한 정보 없는 속단이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경우, 그 폭발력은 지금까지 수없이 지켜본 바와 같습니다. 집단지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끔은 과연 집단에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 드라마에 등장한 두번째 소재, '석궁 테러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법치 국가에서 피고인이 판사를 석궁 같은 흉기로 쏘아 부상시킨 것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입니다. 한데 이런 사건을 놓고도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여론과 함께 사건 당사자를 로빈 훗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여론이 일어난 것은 도저히 합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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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식으로 꽤 생각할 여지가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로 풀어내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자칫하면 사건의 의미를 엉뚱하게 오도하는 우스꽝스러운 드라마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이야기' 첫회는 '역시 송지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박용하와 박시연의 연기도 칭찬할만 했습니다. 박용하는 본래의 모습인 터프가이로 유감없는 매력을 발산했고, 박시연은 이제 연기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프트가 인프라를 따라가지 못한다(죄송합니다. 전문용어라서^)를 평가는 이제 접어도 좋을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아빠와 크레파스' 신, 뱅 앤 올룹슨 오디오를 이용한 '고급 악당' 김강우의 연출 등은 좀 의욕 과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첫회가 이 정도라면 꽤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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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중훈쇼'가 오는 1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시청률은 참담할 정도입니다. 5일 엄정화-신영옥 출연편이 3.4%로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최근 방송분이 3~4%대를 오르내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예 회복이 안 되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연말, 방송 전만 해도 '박중훈 쇼'는 방송가의 최대 화제가 될만 했습니다. 아마도 방송-영화계를 망라해서 지금 연예 대통령을 뽑는다면, 스스로 고사하지 않는 한 박중훈이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겁니다. 물론 연예계에는 그보다 훨씬 관록이 두터운 선배들도 있지만, 그만큼 연륜과 인망, 친화력에서 넓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중훈쇼는 4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이 쇼의 제작진입니다. 박중훈 본인이 이 멍에를 다 뒤집어쓰기엔 제작진의 책임이 너무도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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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박중훈 쇼'는 본래 S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었습니다. 일이 잘 풀렸다면 1년 전에 이미 방송을 하고 있을 상황이었죠. 하지만 방송 계획이 이미 언론에 공개된 이후, 방송의 세세한 조건을 놓고 이견이 발생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박중훈은 제작진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KBS가 먼저 제의를 했는지, 박중훈 측에서 제의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무튼 박중훈은 "SBS만 아니면 어떤 방송사든 좋다. 당초 SBS가 내건 조건보다 나쁜 조건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입장이었고, KBS건 MBC건, "박중훈이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호재를 놓칠 방송사는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덥석 물었죠.

하지만 '박중훈 쇼'라는 이벤트는 현재의 제작진에겐 너무 큰 고깃덩이였습니다. 소화시킬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현재의 제작진들의 전력을 살펴보면 '예능 전력'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마도 교양/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훌륭한 연출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교양 출신으로 예능으로 전업해서도 훌륭한 재능을 발휘하는 연출자들도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 교양과 예능은 동양과 서양처럼 쉽게 만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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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쇼'에 불만을 느낀 시청자들의 반응 중 가장 큰 목소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요. 많은 시청자들은 '다 아는 얘기,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만 골라 물어보는데 어떻게 재미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합니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와 제작진이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중훈은 여러 차례 '정통 토크쇼를 하겠다(품위있게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작진도 재현 화면이나 자막 같은 것이 없는 토크쇼를 하겠다고 이 말을 뒷받침했습니다. 좀 답답한 노릇입니다. 박중훈이라는 MC는 이름 값이 무겁지만 TV 토크쇼 진행자로서는 초보입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을 요구하는지를 체크해서 MC에게 전달해야 할 사람이 바로 제작진인데, 제작진도 MC와 마찬가지로 시청자의 요구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시간이 흘러도 쇼가 달라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겁니다.

'감히' 톱스타 박중훈에게 진행의 방향을 이러이러하게 가는게 좋겠다는 말을 누가 하냐구요.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제작진이 있고, 전문 작가진이 있는 겁니다. 초보 MC가 '내가 생각하는 토크쇼는 이렇다'고 할 때 잘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걷는 사람은 박중훈씨의 개인 스태프입니다. 방송 제작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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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인 장동건 편에서 이미 제작진의 한계는 드러났습니다. 박중훈과 장동건이 친한 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제작진은 여기서 '장동건이 나온다' 이상의 욕심을 내야 했습니다. 물론 친하다고 아무거나 물어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박중훈의 품위'와 '장동건의 몸 사림' 사이에서 신선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방송에 낼 수 있도록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쇼의 제작진은 '무릎팍도사' 식의 토크쇼가 경박하고 저열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한 것은, '무릎팍도사'의 질문들은 출연자에 대한 치열한 연구, 수년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예능 전문 작가들과 연출자들)에 의해 나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 받는 사람도 뜨끔하고, 보는 사람도 아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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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중훈 쇼'의 질문들은 '우리는 사실 장동건(혹은 김태희, 혹은 주진모, 혹은 김혜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색이 토크쇼인데 질문자가 일반 시청자보다도 식견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어 온 것이죠.

그동안 이 쇼의 내용 중 가장 진부했던 것이 소녀시대 편, 흥미로웠던게 장기하 편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유는 뭘까요. 장기하라는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는 어차피 제작진도 잘 모르고, 시청자도 잘 몰랐기 때문에 격차가 그만큼 좁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쇼의 제작진이 '예능을 다루는 태도'는 5일 엄정화 편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날 '엄정화의 패션 변천사'라는 간단한 구성 화면이 나왔습니다. 3-4곡 정도의 과거 히트곡 뮤직비디오를 짜깁기한, 상당히 성의 없는 화면이었는데 배경음악은 전부 'D.I.S.C.O'였죠. 이 때문에 화면은 과거 화면이었는데, 박중훈이 "아, 저게 'D.I.S.C.O'때의 모습이군요"라고 얘기하는 실수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청자들이 충분히 채널을 돌릴 만한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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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제작진은 구성 단계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자막 나오는거 봤어?"하면서 '자막으로 도배된' 무릎팍 도사를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제작진은 오프라 윈프리 쇼의 소파와 세트는 참고할 줄 알았어도, 그 쇼에 나오는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하지 않은 태가 역력했습니다. 미국 시청자들이 세트가 멋져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열심히 본 줄 알았나보죠.

'박중훈 쇼'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아무리 달변의 진행력과 톱스타의 섭외력을 갖춘 훌륭한 MC를 데려다 놓아도 제작진이 그걸 훌륭한 방송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는 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톱스타를 데려와서도 망하는 드라마가 한둘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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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갖고 "박중훈은 역시 방송용은 아니었어" 라든가, "&&&는 인제 텄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제작진이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해에도 '교양 마인드로 예능을 건드린' 시도는 몇 차례 있었습니다. MBC에서도 주말 다큐멘터리 코너를 통해 이영애와 비를 밀착 취재(?) 한 적이 있었죠. 두 번 모두 시청자들로부터 '잔뜩 기대했는데 보여준 게 뭐냐'는 질책을 면치 못했습니다. 방송의 내용으로 봐선 피사체가 된 스타들은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꽃등심이나 바닷가재가 만족하면 뭘 합니까. 손님이 좋아해야 식당이 잘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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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돈 관련 일을 하는 후배와 식사를 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동안 잘 살던 돈 관련 일들을 하는 친구들이 아주 죽을 맛인 모양이더군요. "그러게 돈이란 건 원래 땀 흘려서 벌었어야지!"라고 농담을 했지만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영국 시간에 맞춰 업무를 보고, 뉴욕 시간에 맞춰 오후 11시에 회의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저러고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이야 저보다 훨씬 많이 벌겠지만 그래도...

4월이면 벚꽃, 벚꽃하면 4월이죠. 이놈의 벚꽃이라는 꽃은 의외로 수명도 짧습니다. 2주 정도 활짝 피었다가 슬쩍 져 버리는게 일이더군요. 이게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로 뜻없이 미움도 받지만, 뭐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중에서 장미를 미워하는 나라는 못 본 듯 합니다. 그걸 나라 꽃으로 고른 사람들이 문제지 뭐 꽃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본래 없던 꽃도 아니고.

아무튼 다른 뜻 하나도 없이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뜻으로 경주를 휙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네. 돈은 좀 깨집니다만...ㅠㅠ 그래도 활짝 핀 벚꽃 터널에서 산보도 해 보고 하니, 그래도 사람이 이런 맛에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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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문단지에 벚꽃 보러 처음 간 건 지난 3년 전입니다. 그때는 4월중순쯤이었는데 이미 벚나무들이 저런 모양이 되어 있더군요. 물론 저건 좀 심한 가지를 찍은 거고, 대부분 꽃이 볼만큼은 있었지만 언제고 한번쯤 꽃이 확 피어 있을 때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드랬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날짜를 좀 빨리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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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한풀이를 했습니다. 꽃이 아주 탱글탱글 꽉 차 있더군요.

벚꽃이라는 게 한껏 피어 있을 때는 흰 색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질 때가 되면 붉은 빛으로 보이더군요. 위 사진도 있지만, 저게 꽃 자체가 붉은 빛으로 바뀌는지, 아니면 꽃이 지고 난 대궁이 붉은 색이라서 비쳐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꽃 구경 하실 여유 없는 분들, 구경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더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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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 꽃길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문단지 주변에는 북군동이라고 식당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의 지존은 유명한 맷돌순두부. 하지만 최근에는 게장순두부집이 출현해 화제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가 봤습니다. 북군동 식당가로 진입해 바로 왼쪽 골목으로 죽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맷돌순두부를 지나 골목 끝쪽에 게장순두부 간판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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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순두부 + 비빕밥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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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순두부의 게장이란 간장에 게를 재운 그 게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게의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게장을 가리키는 겁니다. 게장과 게살을 갈아서 국물을 내고, 그 국물에 순두부를 말아 냈다는 것이죠.

콤콤한 게 국물 맛이 나긴 합니다만, 결국은 순두부 맛입니다.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겠지만, 아무튼 한끼 식사로는 만족스럽습니다. 가격이 7000원이라는 거야... 관광지니까.


저녁은 경주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경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화리라는 동네가 있고, 거기에 서면식육식당(054-751-1173)이 있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면 김유신장군묘와 태종무열왕릉으로 가는 사거리가 나옵니다. 그 길에서 왼쪽, 무열왕릉쪽으로 사정없이 달리다 보면 고속도로 같은 길이 나오고, 한 30분 지나 아화리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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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를 직접 키운다고 하는데, 사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가격표를 한번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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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 '갈비살'이 서울에서 파는 그 길쭉길쭉한 수입 갈비살이 아니라 '꽃등심+갈비살'이라는 데 있습니다. 갈비살 2인분을 시켜 봅니다.

고기 좀 드셔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저 때깔이 그냥 나오는게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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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절반은 이미 불 위에 올려 놓은 다음입니다. 고기를 보자 이성을 잃어서, 나오자마자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아무튼 이 가격이 이런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서울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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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에게 아양도 떨어 봅니다.

"하도 맛있다길래 서울서 여기까지 왔어요. 잘 좀..."
"네. 존 데로 드릴께예."

고기맛은 눈으로 보는 대로 g.o.o.d. 양이 좀 적다고 엄살 컴플레인을 해 봅니다.

"무슨 말씀? 서울 손님들 다 와서 싸고 양 많다고 좋아하던데."

어라? 예상했던 반응과는 좀 다릅니다. 아니나다를까.

"작년에 인터넷에 떴다면서 서울 손님들 엄청나게 왔다 갔어요."

...안 통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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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맛도 맛이지만 이 물김치 엄청나게 시원합니다. 소면 삶아서 여기다 바로 말아 먹으면 일품이겠건만... 메뉴판에도 있는 소면, 국수가 없다며 주문 불가를 외치십니다.

아. 여기 경상도였지.


아무튼 경주 요맘때면 참 좋습니다. 이번엔 가보지 않았지만 감포 앞의 저 파란 바다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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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지 않게 다들 나들이 한번 짜 보시죠.

하기야 올해 아니면 어떻습니까. 내년에도 벚꽃은 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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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이 돌아왔다'. 각종 매체들이 '개그 왕의 귀환'을 소리높여 외친 지 약 100일이 지났습니다. 100일이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죠. 그 사이 '꽃보다 남자'는 25부작 방송을 마쳤고, '에덴의 동쪽'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송승헌이 뭘 하는지 가물가물해 졌습니다.

과연 '왕의 복귀' 100일 성적은 어땠을까요. 초반의 화제는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최양락 아저씨가 누군가요?'하고 호기심을 가졌던 10대들도 이제 최양락이 누군지는 다 알았습니다. 최양락이 복귀하면서 함께 합류한 이봉원에 이어 양원경, 홍기훈 등도 방송 활동을 재개했고, '저그(아저씨 개그맨)' 라는 신조어까지 꽤 귀에 익었습니다.

과연 저그의 전성기는 다시 올까요? 이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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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최양락의 '왕의 귀환'이 한창 화제일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최양락이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개그맨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쇼 비디오 자키' '유머 1번지'에 대한 추억을 기록한 글이었죠. 그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협력체제입니다. 현재의 예능계는 독불장군이 살아남기 힘든 형태입니다. 유라인과 강라인은 물론이고 대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윤종신-신정환-김구라-김국진의 라디오 스타 팀, 또는 송은이-신봉선의 패키지를 보듯 팀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라인의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그럼 과연 최양락의 곁에는 누가 있게 될까요?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입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왕년에 잘 나갔던 노장들'만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상당한 약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지금은 강호동이 살짝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은 쪽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노장 노장 하지만 최양락은 1962년생. 이경규보다 2년 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비교하면 최화정과 황신혜의 사이에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나이입니다. 모처럼 노장들의 성공적인 행진이 오래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전문은 이쪽에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저그', '저그시대'라는 말은 매우 폐쇄적입니다. 이건 '아저씨 개그맨들끼리의 연대' 혹은 '80년대 개그맨들의 회귀'라는, 듣기 좋고 기사 제목 뽑기 좋은 허울 안에 갇히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들이 '옛날식 개그'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옛날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의 개그를 구사한다 해도 스스로가 이렇게 '나는 옛날 사람'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으면 현재의 방송환경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연하 예능인들과의 과감한 연대죠. 물론 1962년생인 최양락씨는 '지금도 젊은 사람들과 충분히 연대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젊은 사람'이 우리 나이로 40줄에 접어든 강호동(1970년생)이라면 매우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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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이 차이로 계산해봅시다. 최양락과 강호동은 8세 차이가 납니다. 강호동에게 8세 차이가 나는 후배는 은지원, 9세 차이가 나는 후배는 MC몽입니다. 치고 받고 하는 스스럼없는 사이를 생각하면 최양락-강호동의 관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깝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최양락과 강호동의 관계는 강호동과 이승기(17년 차이)의 관계보다 더 멀어 보입니다.

비슷한 경우는 강호동보다 두 살 어린 유재석에서게 볼 수 있습니다. 유재석의 요즘 파트너는 1989년생인 대성입니다. 강호동-이승기와 마찬가지인 17년 차이죠. 현재 정상에 서 있는 이들은 그 정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려 17년이나 어린 동생들의 정기(?)를 흡수하며 견고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좀 더 세월이 흘러 20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도 훌륭하게 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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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하면 현재의 '저그'들은 아래로의 연대가 매우 힘겨워 보입니다. 최양락과 17년 차이가 나는 후배라면 이효리나 김동완 정도의 1979년생들이 되겠군요. 이들과 최양락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풍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당장 시도한다 해도 될 일은 아니지만, 최양락이 '그래도 말이 통하는' 강호동이나 윤종신의 보호벽 안에 있는 한 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요원할 뿐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그들에게는 40대-50대에 이미 구축된 팬층이 있고, 이들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굳이 부담을 감수해 가면서 '아래로 내려가라'고 강요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방송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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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들이 드라마 위주의 연기자라면 전혀 '아래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능은 이야기가 다르죠. 예능에서 40대 이상의 성인 시청자들이 마이너 계층이라는 것은 매우 선명합니다. 10대와 20대를 겨냥하고 40대까지 흡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40대와 5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이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일단 이런 프로그램은 광고주들이 외면합니다. 각 방송사들은 대외적으로는 '온 세대를 아우르는' 방송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광고주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굳이 살려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면피용으로 일요일 새벽 6시-7시대 정도에는 편성할 수 있겠죠. 한국의 중년층이 또 다른 소비 시장으로 거듭나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이 연령대 시청자들은 과외비를 대느라 자기 본인들에게 투자할 여력이 거의 없는 불쌍한 부모들입니다. 광고주들이 매력을 느낄 여지는 별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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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예능인들은 나이를 먹어도 젊은 세대와 연대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연입니다. 이런 논리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당장 1958년생인 조형기와 4세 연하인 최양락 중 누가 더 젊은 세대에 친근하게 느껴질까요. 이들보다 훨씬 젊은 박명수는 이미 데뷔 초부터 이런 논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자신의 입으로 그런 비결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내가 장수하는 이유를 알아요? 나는 항상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친구들과 방송을 했어요. 그 기를 흡수해야 나도 살거든." 이 말을 들은 것이 3년 전. 그의 '제8, 제9의 전성기'는 그저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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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저그'들의 앞날은 그리 선명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복귀를 앞다퉈 환영했던 미디어는 벌써 시들해졌습니다. 이들은 냉혹합니다. 절대 생존에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내일에는 또 내일의 스타가 뜨고, 미디어는 다시 그들을 쫓기 바쁠 겁니다. 그건 본래 미디어의 속성이니까요.

가장 좋은 대책은 '아래로 아래로'입니다. 이를 부정하고 '저그들끼리의 더 공고한 연대'나 독자적인 생존을 노린다면, 그나마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저그에 대한 특수'가 사라진 다음에도 이들이 지금같은 관심과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능하면 이들이 오래 오래 현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도 그 세대이기 때문이죠. 저도 어린 시절의 영웅들이 계속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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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당연히 '막장성을 갖춘 드라마', 혹은 '막장스러운 드라마'라고 규정해야 할 겁니다. 막장성이란 스토리상의 막장성(이른바 작가가 원하는 것은 뭐든 이뤄지는 비비디 바비디 부 스토리), 연기의 막장성(소리만 지르고 막말로 싸늘하게 쏘아붙이기만 하면 '탁월한 감정 연기'냐), 연출이나 설정의 막장성(정말 점만 붙이면 아무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 모두를 갖춘 막강 드라마도 있겠죠.

그런데 요즘 이 막장성 풍부한 드라마들 가운데 희한한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만 보고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거죠. 이게 바로 공포영화와의 공통점입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할로윈',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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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포영화들을 보면 많은 주인공들이 범인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보는 관객들을 짜증나게 합니다. 목을 조른다든가, 몸에 불을 지른다든가, 쇠몽둥이로 머리를 때린다든가 하는 방식은 도대체 소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총에 맞는 것도 불충분합니다. 사지가 붙어 있기만 하면 괴물은 무조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공포영화의 원칙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확실한 건 '13일의 금요일' 1편 이후로 머리를 날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제작자들이 속편을 만들지 못하죠. 그래서 항상 제작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공포영화 출연자들을 바보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략 어정쩡하게 죽여서 꼭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막장드라마 출연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요즘 드라마들 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죄다 살아 돌아옵니다. 막장계의 선두주자인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장서희와 채영인은 모두 죽음에도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이 드라마의 세계에선 아무리 아이를 막 놓아 기르다 잃어버려도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어느새 부모의 주변으로 돌아와 있곤 합니다. (참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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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버지가 쓰러져 있어도 시청자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비탄에 젖은 출연자들이 지겨울 뿐입니다. 깔끔한 연출과 중년 연기자들의 호연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은 '미워도 다시한번'의 막장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최명길의 옛 애인 선우재덕은 '당연히' 살아 있습니다. 하긴 도입부에서부터 냄새를 적잖이 풍겼죠.

'카인과 아벨'에 나오는 소지섭의 죽음 연출에 이르면 짜증이 날 뿐입니다. 대체 이 드라마에서 소지섭이 정말로 죽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요. 이렇게 뻔하다 못해 뻔뻔한 진행에도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는게 참 안습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후손들이 아무 고민없이 브라운관을 누비고 다니고 있을까요. 좀 전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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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장 드라마

남편이 정부와 작당해 아내를 죽이려 하는데 그 아내는 살아 돌아와 다른 인물로 변신해 복수를 노린다. 그런데 그 변신이란 게 얄궂어서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남편은 물론 부모와 친오빠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6개월 만에 4개 국어와 골프, 수영을 마스터하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SBS TV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울고 갈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요즘 이 드라마를 모르면 주부들 사이에선 대화가 힘들다.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소위 ‘막장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채널을 돌려도 소용이 없다. 등장인물의 내면묘사나 정교한 내러티브는 모두 뒷전, 비정상적인 인물과 개연성을 무시한 사건 진행이 드라마마다 넘쳐난다.

국어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면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인생 막장’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정도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선정성이 ‘막장 드라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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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 쏟아지지만 방송사는 아랑곳없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광고를 앞뒤로 꽉꽉 붙여주는 효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극에도 소위 ‘막장성 요소’는 있다”며 이 계열의 드라마들을 옹호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는 자신의 손에 남편을 잃은 여인에게 뻔뻔스레 청혼하는가 하면 어머니와 형수의 저주를 받으면서 조카딸에게 청혼한다. 이 밖에도 남녀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야기(‘십이야’),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신비의 약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로미오와 줄리엣’) 정도는 쉽게 발견된다.

물론 대문호의 작품에서도 이런 요소가 보이는데 한낱 TV 드라마에서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다른 논의를 다 미뤄 두고,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가 언제인지만 살펴보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전’과 비슷한 연대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자를 400년 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황의 영향일 듯하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경기침체 탓으로 대형 뮤지컬들이 잇따라 막을 내리고, 스트립쇼 위주의 오락 공연 벌레스크(burlesque)가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도 세계의 첨단 조류인 ‘대중문화 퇴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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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나오는 벌레스크란 뮤지컬의 초기 시대에 등장했던, 노래와 춤이 있는 극장용의 버라이어티 쇼, 유흥거리입니다. 이렇게만 쓰면 보더빌(vaudeville)과 차이가 없게 보이지만, 대략 벌레스크는 여자의 나체나 나체에 가까운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성인용 오락거리인 반면 보더빌은 줄거리와 노래, 춤에다 마술 등의 볼거리까지 결합해 보다 수용층이 넓은 형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아무튼 세상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생각이 없어진다고 해서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각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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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글은 이쪽으로 옮겨 오는데 시간이 살짝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공공기관장께서 '막장이란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장소'라며 '막장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말씀하셨더군요. 하지만 그냥 이 말은 영어의 dead-end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 듯 할 뿐, 저런 식의 확대 해석은 오히려 좀 과민반응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다간 '개판', '개고생' '개수작' 등의 말이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동물인 개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표현이니 자제하자'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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