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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태양을 삼켜라'는 일명 '올인 2'라고 불립니다. '올인'의 두 주역인 최완규 작가 - 유철용 PD가 다시 뭉친 작품이기도 하고, 지성이나 진구, 정호빈 등 '올인' 때 호흡을 맞췄던 멤버들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밑바닥에서부터 다져 올라가 야망에 젊음을 거는 주인공 김정우의 모습에서는 '올인'의 김인하가 언뜻언뜻 보입니다.
하지만 15일 방송된 2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올인'이 아닌 다른 작품의 향기가 짙게 풍겼습니다. 설정은 극중 장회장(전광렬)이 제주도에서 발견한 정우(지성)를 쓸만하게 여기고 아들 태혁(이완)의 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태혁이 어떤 여자와 진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본 정우가 태혁에게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고 하자 태혁은 "우리 아버지가 보냈으면 양아치 아니면 쓰레기"라며 아버지에 대해 극도의 경멸을 표현합니다.
자, 이 대목에서 어떤 영화가 떠오르시나요?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는 20세기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히는 알랑 들롱의 25세때 모습을 볼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서 들롱이 연기하는 톰 리플리는 한 백만장자의 부탁을 받고 비뚤어진 아들 필립(모리스 로네)을 찾아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합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필립과 톰은 친구가 되는데 톰은 어느새 필립의 애인 마지(마리 라포레)에게 연정을 품게 됩니다. 물론 친구라고 해도 둘 사이에는 엄밀히 신분의 격차가 있죠.
네. 맷 데이먼 - 주드 로 - 기네스 팰트로가 주연한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의 오리지널인 바로 그 영화입니다.
드라마 보기 30여년의 경력으로 짐작해 볼 때 '태양을 삼켜라'의 다음 진행은, 당연히 수현(성유리)과 태혁을 맺어주려 애써야 하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수현을 좋아하게 되는 정우의 내면 갈등이 될 것 같습니다. 뭐 '태양은 가득히'나 '리플리'를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구성이죠.
정우와 톰 리플리는 재능은 있지만 배경이 없고, 가진 것에 비해 야심만만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태혁이나 필립은 성공의 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끈을 놓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한눈에 반하게 된 여자에 대한 갈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합니다.
물론 톰 리플리는 이 정념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겠지만, 정우의 운명은 좀 다르겠죠.
현재까지 '태양을 삼켜라'의 전략은 '올인 2'라는 평가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드라마들이라면 '올인 2'라는 이름에 다소 짜증섞인 반응을 보일 법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내놓고 '올인'과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TV 드라마의 시청층을 생각할 때 익숙한 코드와 영상의 재현은 그리 나쁜 전략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최근 들어 '선덕여왕'이 다소 유치한(?) 구도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걸려 있던 30% 벽을 훌쩍 뛰어넘은 데서도 알 수 있듯 적절한 선에서의 '어디선가 본듯 한 느낌'의 재현은 시청률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물론 이런 화려한 출연진과 제작진을 갖춘 드라마가 성공했던 전작의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품성을 평가할 때에는 엄연한 감점 요인입니다.
p.s. 묘하게도 지성의 얼굴에서 자꾸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뭐 여기까진 괜찮은데 정작 심각해야 할 장회장의 얼굴에서는 어쩐지 '씁쓸한 인생'의 김준호가 연상되어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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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TV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인데, 거기에 대한 포스팅을 너무 자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사실 선덕여왕을 열심히 보다 보니 거기에 대해 쓸 거리가 많아지는 것은 아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겁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신라사나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책인 '화랑세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집필의 의욕을 좀 많이 느끼게도 합니다.
그 중에는 특히 문노, 미실, 칠숙, 대남보, 보종 등 기존의 역사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인물(심지어 실존 인물인지도 아리송한)들에 대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서라벌의 10화랑이라든가, 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긴 하지만 김유신의 드라마 밖 이야기 같은 것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들을 새롭게 포스팅할때마다 지난 포스팅들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게 좀 아쉽더군요. 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아서 보실 분들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고... 그래서 아예 인덱스 포스팅을 하나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글은 지난 포스팅들에 대한 목록과 안내의 성격을 갖는 포스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서 찾아보시면 될 듯 합니다.
천추태후 덕을 본 선덕여왕
첫번째로 쓴 글입니다. 미실이란 어떤 인물이며, 그 복잡다단한 사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선덕여왕'이란 드라마를 보실 때 꼭 필요한 내용일 겁니다. 물론 미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젊은 날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다음 포스팅의 주요 내용입니다.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
신라를 이끌어갈 젊은 화랑이던 사다함이 어떻게 해서 요절하게 됐는지, 그리고 미실과 그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주로 다뤘습니다. 지금 방송되는 '선덕여왕'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부분입니다.
사다함과 미실의 진짜 비밀은
사다함이 마침내 어린 미실과 함께 드라마 '선덕여왕'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다함과 미실의 관계에는 상당히 큰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 김정현이 연기하는 미실의 아들 하종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것이죠.
터미네이터, 칠숙의 정체
이 칠숙은 의외로 실존인물입니다. 그리고 정사에 나오는 칠숙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안길강이 연기하는 칠숙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슬슬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속 칠숙의 모습은 정말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더군요.^^
선덕여왕의 문노, 진정한 화랑
많은 분들이 '선덕여왕'을 보면서 '도대체 왜 문노는 말로만 나오고 실제로는 안 나오는 거냐'고 궁금증을 느끼곤 합니다. 선덕여왕 최대의 떡밥 문노.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김유신의 어린시절, 화랑세기 기록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10권의 열전 중 3권을 김유신의 전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김유신이란 인물은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인물이죠. 이런 유명한 인물고, '선덕여왕'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관계로 묘사되었는지 '화랑세기' 기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드라마에 없는 김유신의 첫사랑
지금까지 김유신이 등장한 모든 드라마에는 천관녀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말 목을 베는 에피소드는 김유신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일화죠. 이를 포함해 삼국사기 기록에 나오는 김유신의 실제 여자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서라벌 10화랑, 총정리
화랑세기 기록과 '선덕여왕' 작가진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F10, 서라벌 10화랑에 대한 참고 사항 총정리입니다. 각 화랑의 성격과 그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위정자들이 봐야할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이 과연 오늘날에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측면에서 본 글입니다.
선덕여왕 3대떡밥 언제 다?
'선덕여왕'이 위기에 놓이면 드라마에 등장할 세가지 비밀무기에 대한 글입니다. 첫째가 덕만의 출생의 비밀, 둘째가 문노의 재등장, 그리고 세째가 김춘추=유승호의 등장입니다. 이때는 비담의 등장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비담 캐릭터 어디서 봤다
비담에 대한 내용은 별도 포스팅으로 처리했습니다. 비담과 '베가본드'에 나오는 무사시의 공통점, 그리고 이런 캐릭터의 역사와 김남길(이한)의 경력에 대한 간략한 정리입니다.
무삭제로보는 19금 선덕여왕
'선덕여왕'을 제대로 만들면 19금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 '선덕여왕'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문의 사서 '화랑세기'에 나오는 '마복자' '용양신' 등의 특수 용어를 통해 신라인들의 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재미로 본 화랑들의 전투력 랭킹
과연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강한 전투력을 갖고 있을까요? 화랑 전투력 랭킹 베스트 5를 꼽아 봅니다.
'선덕여왕'에서 소외된 화랑들
진지왕-진평왕대에 이름을 날렸으면서도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은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세속오계를 남긴 원광법사, 원광으로부터 오계를 받아 화랑들에게 전파한 귀산과 추항 등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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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면서 옷을 하나씩 벗는다. 혹은 아예 아무 것도 안 입은 여자가 뉴스를 진행한다. 처음 들으면 참 솔깃한 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네이키드 뉴스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시작됐습니다. 엄청난 인기라는 사람도 있고, 정작 보니 시시하더라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성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자극적인 성인용 오락물에 비해 지독하게 단순하고 심심하겠죠. 여기에 살짝 뉴스라는 서비스를 얹어 상품으로 개발해 낸 발상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뉴스를 보기 위해 네이키드 뉴스를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뉴스도 뉴스 아니냐?'고 누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기가 좀 궁색해 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네이키드 뉴스는 왜 뉴스가 아닌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키드 뉴스만 욕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쓴 얘깁니다.
네이키드 뉴스
일본에 뇨타이모리(女體盛り)라는 묘한 풍속이 있다. 옷을 벗은 여자의 몸에 생선회나 초밥을 올려 놓고 먹는 것을 말한다. 최근엔 일본 음식 붐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런 풍습이 꽤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생선회를 여자의 몸 위에 올리면 맛이 각별할까. 아무리 시각이 미각에도 영향을 미친다지만 맛 때문에 뇨타이모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번 달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가 화제다. 지난 1999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는 근엄한 정장 차림의 앵커 대신 나체의 여자가 뉴스를 읽어준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감출 것은 없다(Nothing to hide)'는 광고 문구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1000만명에 가까운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물론 네이키드 뉴스를 놓고 뉴스의 질을 논하는 것은 뇨타이모리의 초밥 맛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벗은 여자를 보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인터넷 방송의 음란성을 주목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인용 유료 서비스를 놓고 새삼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닌 듯 싶다. 굳이 지적하자면 이 '뉴스 아닌 뉴스'의 진짜 문제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고, 단 한 건의 기사도 직접 취재하지 않으면서 뉴스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기자의 손을 거쳐 어떤 앵커가 보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들 스스로 '뉴스는 그냥 구색 맞추기'라고 자백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눈을 돌려 보면 이것이 네이키드 뉴스만의 문제는 아님을 알게 된다. 기자 없이도 뉴스를 생산하는 매체들이 이미 널려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 7월호에 따르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인터넷 신문은 1399개나 된다. 절반은 유명무실이지만 실제로 기사가 공급되는 곳만도 706개에 이른다.
그나마 상당수는 실제 취재 인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남이 쓴 기사를 '긁어다 붙여(copy and paste)'. 바이라인도 없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기사의 저작권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된다. 이런 '사이버' 사이비 언론들이 멀쩡히 숨쉬고 있는데 누가 네이키드 뉴스를 '무늬만 뉴스'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끝)
얼마 전 'CSI 뉴욕'을 보다가 이 뇨타이모리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인터넷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뇨타이모리와 관련된 사진은 서구인들이 등장하는 게 훨씬 더 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서양에서 뇨타이모리를 그렇게 많이 즐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걸 '변태 짓'이라며 아예 거론하기를 꺼리는 우리 쪽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그냥 신기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뜨뜻한 스시는 생각만 해도 별로일 것 같거든요. 아, 왜 남자들을 위한 서비스만 있냐고 분개하실 여자분들을 위해 난타이모리(男體盛り)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위에도 썼지만 뇨타이모리의 스시와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는 결국 같은 의미입니다. 그냥 눈가림이란 얘기죠. 물론 이 스시로도 배는 채워지고, 그 뉴스로도 시사 상식은 채워질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왜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가 '진짜 뉴스'가 아닌지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자 없는 뉴스'의 심각성은 인터넷의 폐해 중 하나입니다. 요즘 이쪽 업계에서는 '기사 도둑질'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매체에 나온 기사를 받아 쓰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똑같이 취재를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기사가 사실인지, 혹시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지 보충 취재를 한 다음에 기사를 쓰는 것이 상식이죠. 하지만 특종성 기사가 하나 보이면 다짜고짜 휙 긁어다 토씨 몇개를 고쳐 자신들이 취재한 기사인 양 내보내는 비양심 매체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런 매체들의 비양심이 1차적인 문제지만, 그런 무자격 매체들의 기사를 싼 맛에(거의 공짜에 가까운 값이라고 합니다) 게재해 주는 포털들도 문젭니다. 이렇게 '무슨 일만 생기면 쌍둥이같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써 둔 글이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게 아무 기사나 척척 베껴서 내 기사인 척 하는 기괴한 매체들은 네이키드 뉴스에 비해 나을 게 없다는 얘깁니다. 그쪽은 그나마 '보여주기'라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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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을 보내는 자리에 가족이 아닌 '여자'로 나온 사람은 결국 브룩 실즈 뿐이었습니다. 브룩 실즈는 그와의 추억, 어린 왕자였던 잭슨의 모습을 찬찬히 털어놔 사람들을 감동시켰죠. 실즈의 말 가운데 가장 가슴에 남는 말은 "우리가 같이 다니고 사람들로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힐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상한 커플, 있을 수 없는 커플'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에겐 그런 둘만의 관계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는 동안, 여자관계에 대한 소문은 하루도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여자들과 MJ가 진지한 관계(육체적인 관계?) 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죠. 다이애나 로스에서 시작하는 잭슨과 여자들의 관계는 테이텀 오닐, 브룩 실즈,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거쳐 두 아내와 보모에 이릅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명멸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잭슨에게 있어 첫 여인은 아무래도 다이애나 로스일 겁니다. 1967년, 9세의 잭슨이 형들과 함께 할렘 아폴로 극장에서 모타운 레코드 오디션을 겸한 무대에 섰을 때 23세의 로스는 이미 슈프림스의 일원으로 스타덤에 올라 있었습니다.
14세 차이는 이 정도 연령대에선 거의 엄마와 아들의 차이죠. 아무튼 잭슨5도 곧 스타가 됐고 잭슨과 로스는 자주 얼굴을 대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무렵 다이애나 로스는 어린 마이클에게 이른바 미의 전형 역할을 했고, 마이클의 심미안은 이후로 줄곧 로스를 기준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80년대 이후, MJ가 잇단 성형수술을 할 때 그 모델이 로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재미있는 동영상이 있어 퍼 왔습니다. 10대 초반인 듯한 마이클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It was a very good year'를 부르며 20대 중반인 다이애나 로스에게 쿨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플레이보이를 연기합니다.
영상에서도 보듯 이 두 사람의 사이를 염문설로 묘사하는 건 좀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뭐랄까, 사이 좋은 모자 같은 관계라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리즈 테일러는 저 위 사진의 '화장 짙게 한 할머니' 이미지로 남아 있겠지만, 전성기 때의 리즈 테일러는 정말 '세계 최고의 미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한번 보시라고 끼워 넣어 봅니다.)
여기까지가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정작 그의 아내들은 참 뭐라 말하기 묘합니다. 잭슨이 1994년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을 때 대다수 인물들의 반응은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정략결혼"이라는 것이었죠. '팝의 제왕(King of Pop)'인 잭슨이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n Roll)의 딸과 결혼했으니 이건 글자 그대로 왕가의 결혼인 셈이니까요. 두 사람은 왕자와 공주 자격으로 리사 마리가 7세 때인 1975년 라스베가스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결혼을 하긴 한거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2년만인 1996년 갈라섭니다. 리사 마리는 한참 뒤인 2002년 니콜라스 케이지와 결혼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의 케이지는 '케서방'이 되어 있죠.
마이클 잭슨의 팬들이 리사 마리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리 만무하지만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볼 때 리사 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답게,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익힌 사람이었고 MJ와도 충분한 공감의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MJ가 정신적으로 리사 마리를 많이 의존했다는 주장도 있죠. 하지만 리사 마리의 자유분방함을 '소년 그 자체인' MJ가 감당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을 듯 합니다.
1996년 리사 마리와 이혼한지 10개월만에 잭슨은 간호사 출신인 백인 여성 데비 로와 결혼한다고 발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로는 두 아이 프린스1과 패리스를 낳고 99년 MJ와 이혼해 사라집니다. 셋째인 프린스2(블랭킷)는 로와 이혼한 뒤에 태어난 아이로, 누가 낳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로는 팬들에겐 저주의 대상입니다. 아이들의 생모이지만 실제로는 수정된 난자를 받아 아이들을 낳은 대리모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아이들에 대해 아무런 애정을 보이지 않았으면서도 MJ가 죽고 난 지금 아이들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죠. 참고로 MJ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아이들을 어머니인 캐슬린 잭슨이나 다이애나 로스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는 유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생부와 생모 중 한 쪽이 사망했을 때 다른 한 쪽이 친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데비 로는 지난 2003년 했던 인터뷰 내용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로는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도 아이를 낳아 주기로 했지만 엄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며 아이들을 마이클에게 내주고 혼자 위자료를 챙겨 떠난 데 대해 아무런 후회나 고통이 없음을 밝힌 바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인 엄마라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죠.
MJ의 마지막 여자로 기록될 사람은 아마도 아이들의 보모인 그레이스 르와람바일 듯 합니다. 비서와 보모로 총 17년 동안 잭슨가와 인연을 맺었던 르와람바가 사실은 MJ와 비밀 결혼을 올린 사이라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사실이라면 이미 본인이 아이들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천명하고 나섰을테니 별 근거는 없는 얘기인 듯 합니다.
아무튼 영결식에서 딸 패리스의 눈물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은 가운데 세 아이는 어떻게 될지, 특히나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는 어떻게 자라게 될 지, 제왕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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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영결식이 새벽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참 지나서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tvN에서 새벽 1시부터 생중계라는 자막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시작할 생각은 안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포기하고 그냥 잠들어 버렸는데 2시30분에나 시작했더군요. 다행히 아침에 스트리밍 채널을 찾아 행사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자막도 없고 해설도 없는 방송;; 한번 보고 뭘 쓰려니 좀 꺼려집니다만, 아무튼 중계를 못 보신 분들이나, 보시고도 기억할 거리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정리해 봅니다. 아무래도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정리된 내용은 별로 없을테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행사 지켜보신 분들의 많은 지적과 수정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좀 더 남을 가치가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09년 7월7일, 미국 서부 시간 11시 로스 엔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
- 스모키 로빈슨이 다이애나 로스와 넬슨 만델라의 서한을 관객들에게 읽어줌.
로스는 "마이클은 내 인생에서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적절한 말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가 내게 그의 아이들을 부탁했으니, 나는 그들이 나를 원할 때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함.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공연하면서부터 그를 알게 됐고, 그와 점점 친근해져 나중엔 가족의 일부가 됐다. 마이클은 거인이었고, 음악계의 전설이다. 수백만 팬들과 함께 애도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음.
- 7명의 남자들이 마이클 잭슨의 관을 무대로 옮김.
- 성가대의 찬송.
- 루시어스 스미스(Lucius Smith) 목사의 추도사.
- 머라이어 캐리와 트레이 로렌즈(Trey Lorenz), 잭슨5의 히트곡 'I'll be there'를 부름. (그러나 돌고래 소리는 트레이 로렌즈의 몫...) 마지막은 캐리의 "We miss you."
아시다시피 이 노래는 캐리의 초기 히트곡이기도 하죠.
- 퀸 라티파(Queen Litifah), 추도시 낭송
-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Jesus is my love' 부름.
- 베리 고디(Berry Gordy, 전 모타운 레코드 사장) 추도
'드림 걸즈'를 통해 잘 알려진 베리 고디는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수많은 흑인 음악의 슈퍼스타들을 발굴해 키워낸 인물.
"그는 내겐 아들과도 같았다. 재키, 저메인, 티토, 말론과 함께 그를 만났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모두 그가 특별하고 세상을 앞서가는 아이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상에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The Greatest Entertainer Ever Lived)였다."
...다이애나 로스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게 좀 의외로군요.
- 마이클 잭슨 추모 비디오 상영
- 스티비 원더 등장. 간단한 스피치와 함께 "I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와 "They Won't Go When I Go" 두 곡을 부름. 노래 도중 "Michael, why didn't you stay?" 라는 가사로 관객들을 뭉클하게 함.
- 코비 브라이언트 & 매직 존슨 등장.
브라이언트는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팝스타로서의 그를 기억하자. 그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추도.
Remember the Time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매직 존슨(그도 MJ군요...), "그의 형 재키 잭슨과 알고 지낸지 벌써 30년이다. 그와 말론은 레이커스 홈티켓 소지자다. 그러면서 자연히 마이클과도 친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좀 더 나은 포인트가드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흑인들에게 세상의 문들을 열어줬다. 그를 통해 흑인들은 각계에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됐다"고 좀 길게 추도.
Remember the Time에는 에디 머피, 이만, 매직 존슨이 나왔죠.
- 제니퍼 허드슨, 잭슨의 'Will you be there' 부름.
- 알 샤프톤(Sharpton) 목사(흑인 민권운동가). "절대 포기하지 않아서 그는 더 위대하다."
- 존 메이어, 일렉트릭 기타로 잭슨의 'Human Nature' 연주.
- 브룩 실즈 등장.
"13세때 그를 처음 만났다. 우리가 한창 여기 저기서 사진을 많이 찍히고 다닐 때, 사람들은 주로 우리를 이상한 커플, 존재할 수 없는 커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관계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동질감을 느꼈다. 가끔 나는 '난 11개월 때 데뷔했는데 당신은 다섯살때 데뷔했나? 게을러(slacker)' 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문워킹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나는 배우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주로 그를 왕(King of Pop)이라 불렀지만, 내 생각에 그에게 알맞는 이름은 어린 왕자다. 그는 너무나 많은 명곡들을 만들었지만 마이클 잭슨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Smile'이었다. 이 노래는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위해 직접 작곡한 노래였다."
1980년대, 브룩 실즈와 마이클 잭슨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염문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잭슨이 성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가짜 애인이 필요한 모양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죠. 아무튼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면서 열애설은 꽤 오래 갔습니다.
- 저메인 잭슨, 'Smile' 부름.
- 마틴 루터 킹 3세(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아들)과 누이동생 버니스 추도사.
- 셸라 잭슨 리(텍사스 주 출신 의원. 흑인 민권운동가), 잭슨의 인권 기여 추모.
- 어셔 등장, 잭슨의 'Gone too soon' 부름. 감정에 복받쳐 흐느낌.
베이비페이스의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에서 잭슨이 부른 이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 잭슨5 시절의 추모 비디오.
-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 등장.
"(Who's Loving you의 끝자락이 흐르자)네. 제가 이 노래를 만든 사람입니다. 10살때의 잭슨을 처음 봤는데 이건 10세 소년의 노래가 아니었어요. 그 나이에 그런 soul이 들어 있는 아이는 처음이었죠. 그는 세상 최고의 축복이었어요."
스모키 로빈슨은 당시 모타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수 겸 작곡가였습니다. 로빈슨의 Who's Loving You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됐지만 누구나 이 노래를 잭슨5, 혹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탁월했던 거죠.
- 섀힌 자파골리(Shaheen Jafargholi), 잭슨5의 'Who's Loving You' 부름.
노래 끝난 뒤 "정말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마이클 잭슨"이라고 코멘트.
잘 아시겠지만 얼마 전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재림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소년 가수입니다. 이번 This is it 공연에서 설 예정이었다는군요.
- 케니 오르테가(Kenny Ortega, 공연 디렉터, 안무가)
This is it 공연을 준비하던 디렉터이자 잭슨의 사업 파트너였다고 자신을 소개. 잭슨이 얼마나 This is it 공연에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김.
- 잭슨의 공연을 준비하던(?) 백 보컬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르며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대로 올라옴. 노래가 'Heal the World'로 바뀌며 어린이 합창단이 무대를 감쌈.
- 형제들의 추도사. 잭슨의 딸 패리스(Paris), "아빠는 정말 최고의 아빠였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림.
- 루시어스 스미스 목사, 폐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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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의 매화'가 호기심을 자극한 MBC TV '선덕여왕'의 한편이었습니다. 물론 일부러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시도이니 6일 방송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것은 뻔하지만 아무튼 정보 빠른 네티즌들에 의해 이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사다함의 매화는 월력, 즉 달력이었죠. 미실이 기우제를 지내자 바로 비가 온 것도 사실은 미실이 선진 책력을 이용해 천기를 짐작한 덕분이었던 겁니다.
과학 기술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김영현 작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미 '서동요' 때, 시청자들이 기대하던 신라와 백제의 패권 다툼 이야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전파 이야기에만 주력하다가 시청률이 고비(30%)를 넘기지 못한 기억이 여전하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김작가는 다시 과학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물론 '서동요'때는 지나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꽤나 근거 있는 이야기가 될테니 - 어차피 드라마 후반에 첨성대 이야기가 나와야 할테니까요 - 너무 과학 기술 이야기에 깊이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번엔 시청률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아무튼 달력은 달력이고, 사실 사다함과 미실 사이에는 다른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부인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의혹이 짙은 부분이죠.
사실 '사다함의 매화'가 달력이라는 것은 제작진의 1급 비밀이었지만 드라마가 끝난 직후 검색해보니 이미 '매화의 정체는 달력'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더군요. 뭐 짐작으로 맞췄다 해도 사실 그리 엄청난 건 아닙니다. 소화와 덕만 얘기에서도 달력 이야기가 나왔고, 6일 방송 끝자락, 다음회 예고에 보여준 '책력(冊曆)'이라는 글자(위 사진이죠)가 이미 답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의 각국은 이미 모두 국가 지정 달력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미실 혼자 독점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듯도 하지만, '보다 정확한 달력'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몰래 감춰 둔 승려는 그걸 신라의 날짜에 맞춰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죠.
아무튼 아쉬웠던 것은 미실과 사다함의 러브스토리가 너무 축소됐다는 것입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 한편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지난번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빠진 내용에 대해 몇가지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사다함은 삼국사기 열전 4권에 전기가 나오는 실존 인물입니다. 실존 여부가 분명치 않은 미실이나 설원 등 '화랑세기'의 주요 인물들(혹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화랑세기'는 사다함을 중심으로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실은 사다함의 옛 연인이며, 설원은 사다함과 어머니가 같은 형제입니다. 둘 사이는 참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공이 설성(설원의 아버지)의 어머니를 첩으로 취하자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은 소년 설성을 정부로 취해 설원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원랑의 입장에서 보면 구리지공은 할머니의 정부이면서 어머니의 남편이라는 복잡한 촌수입니다.^
하지만 '화랑세기'의 이런 기술과는 달리 정사인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사다함은 그냥 씩씩한 화랑일 뿐입니다. 16세의 나이로 5천 병력을 거느리고 대가야 정벌의 선봉을 맡았고,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조한 친구 무관랑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병들어 죽어간 비운의 화랑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에 따르면 사다함이 죽은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다시 한번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첫번째 이유는 전쟁에 나간 사이 연인이던 미실이 세종전군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무관이 자신의 낭도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화랑세기' 기록에 따르면 금진은 미실 못잖은 남자 밝힘증 환자입니다. 설성을 비롯해 다섯 남자를 동시에 거느렸고, 아들의 친구인 무관랑도 정부로 삼습니다.
사다함은 이를 알고도 뭐라 하지 못했지만, 사다함의 낭도들은 풍월주의 어머니를 탐한 무관을 용서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무관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다함의 낭도들로부터 달아나다가 해자에 떨어져 죽고, 무관이 비참하게 죽어간 데 대해 사다함은 비애를 이기지 못합니다. 두 겹의 슬픔이 사다함을 일찍 숨지게 한 것이죠.
(사다함 역의 박재정과 미실 역의 유이... 대사가 하나도 없는게 영 아쉽군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 세종과 미실 사이에선 아들 하종이 태어납니다. 네. 지금 김정현이 연기하고 있는 바로 그 하종입니다. 과연 이 하종의 친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이 오늘의 미스터리입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에 대한 '화랑세기' 세종전의 기록입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 천주사에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날 밤 과연 사다함공이 미실의 품에 들어오며 "나와 그대가 부부가 되기를 원하였으니, 그대의 배를 빌려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미실이 세종공에게 아뢰니 공 또한 이상하게 여겼다.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을 낳았다. 하종공은 모습이 사다함과 심히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혹 사다함과 정을 통할 때에 이미 임신을 하고서 입궁하여 낳은 아들이라 하나,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저 '그렇지 않다' 가 너무 궁색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또 미실이 진흥왕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권세가 날로 높아가는 대목을 설명하는 데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다함의 영혼이 미실의 가슴 안에 있으며 좋은 계책으로 도와주는 덕분이라고 하였다.
물론 '화랑세기'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이 자손을 낳을 때 한 여자가 아버지가 제각각인 아이들을 낳는 것은 흉이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가 죽고 없는 아이라면, 왕의 아들인 전군의 아들로 포장하는 것이 죽은 화랑의 아들이 되는 것 보다는 장래를 위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세종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종은 뒷날 전군의 칭호를 달고 왕자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봐도 하종의 생부는 세종이 아니라 사다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사다함의 좋은 계책'이 바로 달력이 된 셈입니다. 혹시 '선덕여왕'에서도 나중에 언젠가 세종의 입으로 "하종이 내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뭐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p.s. 그나저나 대남보가 미생의 아들이었다니, 실망입니다.
미실이 왜 조카를 못 알아보는지 궁금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래 미생은 수많은 첩들로부터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선덕여왕'에서도 미실이 미생에게 "아우님은 자기 아이들 이름은 다 압니까?"하고 면박을 주는 장면이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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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준비하고 있던 런던 O2 아레나 'THIS IS IT' 공연의 리허설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시간은 1분 40초 남짓. 노래는 They Don't Care About Us였고 여러 차례 사용했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나오는 '키에프의 대문'이 다시 한번 삽입됐습니다.
이 동영상의 모습으로 봐서는 체중이 50kg에 불과해 뼈만 남았다는 얘기(물론 몇몇 기사에 실린 대로 그의 키가 180cm에 달하지는 않습니다. 13년 사이에 갑자기 자라지 않았다면 그보다 대략 10cm 정도는 작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혹은 뱃속에 알약만 가득 차 있었다는 얘기 등등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박력 넘치고, 힘차 보이는군요. 50세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영상이 있는 걸 보면 마지막 리허설 영상 등등이 판매용으로 묶여 나올 가능성도 꽤 높을 듯 합니다. 사실 이 리허설 영상을 보고 나서 유튜브를 뒤져 보니, 그동안 'THIS IS IT'과 관련해 공개된 동영상들이 꽤 있더군요. 그래서 한군데 모아 봤습니다.
먼저 잭슨이 직접 나오는 리허설 동영상입니다.
1분40초밖에 안 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다른 동영상들로 아쉬움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벌써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THIS IS IT을 열겠다는 그의 공식 기자회견입니다. 이번 공연이 무대에 서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는 얘기 외엔 거의 하지 않는군요.
그 다음은 마이클 잭슨의 모습이 몇번 지나가는 오디션 광경입니다. 지난 4월, LA의 노키아 극장에서 있었던 'THIS IS IT' 공연의 댄서 오디션 장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댄서들의 인터뷰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그는 전설이에요." "그의 공연에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왔어요. 꼭 뽑히고 싶어요." 스태프 중 한 사람도 말합니다. "다들 춤추는데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유튜브에서 8분50초나 되는 동영상을 안 끊고 다 보기도 처음인 듯 합니다. 영화 '코러스 라인' 못잖은, 화려한 오디션이 펼쳐집니다. 오디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군무로 보일 정도더군요.
그 다음은 이 오디션 광경을 누군가 촬영한 듯한 화면입니다.
분위기만 느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동영상의 뒷부분에서 경쟁을 뚫고 백댄서로 선발돼 감격하던 댄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야말로 정말 잭슨의 죽음 앞에서 정말 좌절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바라보던 우상과 함께 춤출 기회를 날려 버리다니.
마지막은 THIS IS IT의 공식 프로모션 영상입니다. 편집도 훌륭합니다. 광고인데도 길이가 3분30초나 됩니다. 그의 마지막 정수를 이걸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런 류의 영상은 곧 뭐라도 정리되어 나올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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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경험한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이야기 두번째 편입니다. 지난 번에는 1996년 내한공연을 한달 앞두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그와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던 자랑 얘기였다면, 이번에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빅 스타의 내한을 처음 경험한 대한민국의 난리법석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스크바의 기억을 뒤로 하고 귀국해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사실 가기 전부터 손봉호 교수가 주도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연합(줄여서 기윤실)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타겟으로 삼아 공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잭슨의 공연이 턱없이 고가라서 국부의 유출 혐의가 있는데다 잭슨이라는 자는 듣자니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다니는 악한이라는데, 그런 악한이 벌이는 장사 판을 어떻게 국내에서 벌이느냐는 식의 준엄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난감한 얘기였는데, 사실 기독교계에서 진짜 잭슨의 공연을 반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당시 골수 기독교 측에서는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을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오직 기독교 하나 뿐이며, 타 종교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이었죠. 뉴에이지라는 것은 좁게 보면 서구 사회에서 일회성으로 흘러가는 동양적인 정신수양에 대한 경도 정도였는데 이걸 사회 전반적인 반 기독교 운동이며 사탄의 책동이라고 규정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수많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그 주역으로 지목됐죠. 특히나 아랍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잭슨은 그야말로 악마의 자식이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외계인이나 UFO 등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사탄의 역사에 기대는 자'라고 낙인찍히기에 충분했습니다. 뭐 타 종교와의 화해를 주장한 바티칸 교황청마저도 '뉴에이지 운동의 주구'라며 비난하던 사람도 있었으니 이 정도는 장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국내에선 저 반대운동이 꽤나 먹혀 들었습니다. 몇몇 큰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이 한두번씩 이런 나쁜 공연을 자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설교까지 하셨다는군요. 이러니 주최측에선 분통이 터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태원예능 측은 미국의 흑인 인권단체 NAACP를 끌어들여 맞대응을 합니다. 흑인 성직자들이 이끄는 이 단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반대하지 않던 잭슨의 공연을 한국에서 열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전달합니다. 의외로 이것이 기윤실 측의 반대를 잠재우는 데 꽤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첫날 공연은 공연 며칠 전까지 3만여장이 판매되는 데 그칩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일각에선 '왜 한물 간(!) 80년대 스타를 이렇게 고액의 출연료를 줘 가며 대형 공연장에 데려오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부 매체는 공공연히 이런 논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죠. 그리고 이틀 전인 10월 9일, 잭슨이 입국합니다.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의 VIP 주차장 앞에 신문 방송 기자들이 진을 쳤습니다. 여기에 전경에다 기동수사대까지 동원됐고, 정작 팬들은 주변에 접근도 못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용기로 입국한 잭슨은 VIP 채널을 통해 일반 이용객들과는 다른 길로 나오게 돼 있었던 거죠.
제법 쌀쌀해진 날씨 속에 주최측과 방송사는 모스크바에도 동행했던 탤런트 이제니를 환영 사절로 임명하고, 꽃다발을 들려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초 생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이제니를 리포터로 삼아 간단한 인터뷰 영상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저번에도 얘기했듯 그건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국 환영 장면이라도 간단하게 그림 거리를 만들려던 거였죠.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잭슨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 전용기라는 게 사실 탄 사람 마음이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들만 오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예정보다 두 시간 늦어서야 잭슨은 마침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별 경험이 없던 전경들과 기자들은 그 한 순간에 왁 몰려서 현장이 뒤집어졌습니다. 게다가 어디 숨어 있었는지 팬들까지 와락 그 자리를 덮쳤죠. 밖에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만 보고 있던 경비 담당 미스터 웨인(마이클 잭슨을 늘 따라다니는, 농구선수풍의 키 큰 흑인 아저씨입니다)은 인터뷰고 꽃다발이고 뭐고 잭슨을 0.5초만에 차에 휙 태우고 숙소인 워커힐 호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정작 환영 사절이라고 두시간을 기다려 꽃다발을 들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제니양(당시 겨우 17세였군요)만 속상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모스크바에 이어 두번째 허탕을 친 거죠. 몇몇 기자들은 차를 타고 그 뒤를 쫓아 워커힐 호텔까지 갔지만 기사거리라곤 나온 게 없었습니다. 잭슨은 꼭꼭 방 안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본래 일정은 9일 낮 도착 - 저녁 강남역 타워레코드 방문 - 10일 김수환 추기경 예방 - 장애아동 보호시설 방문 등등의 사전 스케줄이 잡혀 있었지만 이런 스케줄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이의 마음인 잭슨이 '안 갈래' 하면 천하의 무슨 스케줄도 바로 취소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본인이 아니더라도, 그를 살아있는 신처럼 모시는 주변의 인물들이 "잭슨님이 피곤하셔서 안돼!"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10월10일 있었던 '도심 한복판 유턴사건'입니다. 10일 늦은 오후, 잭슨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아동보호기관 송죽원을 방문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김상현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도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아무튼 잭슨의 차량은 워커힐 호텔에서부터 취재차량을 주렁주렁 달고 서울 을지로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하더라는 겁니다(이 장면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몇몇 경호원들이 뛰어내려 수신호로 차를 막고, 군사훈련을 하듯 능숙하게 차를 돌리더라는군요. 무슨 비상사태가 있나 해도 따라가던 취재차들도 일제히 유턴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친 차량은 유유히 한 피자집 앞에 섰고, 경호원이 피자집 안으로 들어가 피자 몇 판을 사오더랍니다. 확인 결과, 유턴 직전 잭슨이 차 안에서 길 건너편의 피자 간판을 보고 "피자 먹고 싶어"라고 말 한마디를 했답니다. 그러자 매니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차 돌려!"라는 명령을 내렸고, 신호고 뭐고 바로 중앙선을 넘은 것이죠. 잭슨의 주위 사람들에게 잭슨의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당시 내한 기간 내내 그 주변 사람들의 '잭슨 보호'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걸 보고 절로 느낄 수 있었죠. 잭슨 하나가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그를 꽁꽁 둘러싸고 아기처럼 보호하고 있으니, 세상 일들이 그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그가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기는 참 힘들 거라는 걸 말입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또 너무 길어졌습니다. 정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 했네요. 10월 11일과 13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맛뵈기로 - 서울 공연에서 부른 They don't care about u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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