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트랜스포머' 1편이 개봉했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오래 산 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트랜스포머 2'를 보고 나서, 문득 예전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시 한번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은 2년 전에 썼던 '트랜스포머' 1편의 리뷰입니다. 최근 개봉한 트랜스포머2의 리뷰는 바로 다음에 이어집니다. )
그렇습니다. '트랜스포머'는 로보트가 나오는 영화였던 것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트랜스포머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런 영화일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영화는 일단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브라이언 싱어의 'X맨', 그리고 톰 행크스 주연의 '빅'입니다.
마이클 베이는 처음 이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바보같은 로보트 얘기를 왜 내가 만들어!"라고 발끈하며 시놉시스를 내던졌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누군가 조용히 한마디를 했다는군요. "당신, '레이더스' 때도 그런 말을 했었지." 다 아시다시피 '레이더스'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가 어떻게 됐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죠.
그래서 이 말을 듣고 베이는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진지한 자세로 '트랜스포머' 만들기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물론 '레이더스'가 나올 무렵 베이는 조지 루카스 아래서 하급 스태프로 일하고 있을 때고 그가 감독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과거의 실수를 돌이켜보는 자세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건 놀랍기만 합니다. 더구나 현역 최강의 대형 액션 감독이 말이죠.
아무튼 마이클 베이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트랜스포머'는 전미 흥행 기준으로 3억불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아무리 까다로운 관객이라도 이 정도면 만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랄까요. 마이클 베이가 정교한 테크닉을 제공했다면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 혹시라도 빠져 있을지 모를 '소년의 마음'을 공급했다고나 할까요?
잠시 부언하자면 이렇습니다. 일찌기 아톰과 철인 28호 시대 이후 유년기를 보낸 모든 남자들은(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거대 로보트의 신화에 매혹돼 성장했습니다.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건담,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변신 로보트들, 지금까지도 FSS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같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트랜스포머'에서 거대한 로보트들이 주먹질로 맞붙는 장면을 본 순간, 모든 남자들은 가슴 속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소년이 번쩍 눈을 뜨는 걸 느꼈을 겁니다.
물론 일부 평론가나 기자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도 당연히 수긍이 갑니다. 거대 로보트라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괴물딴지들이 치고 받는 영화가 유치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죠.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유치하되 '고질라'처럼 한심하게 유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결국 로보트 완구 장사꾼들의 농간 아니냐는 얘기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들 완구회사의 스폰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루먼이나 보잉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가 '탑건'이나 '에어포트'를 볼 수 없었을거란 점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카타르에 위치한 미국 특수군사령부에 정체 불명의 괴 로보트가 나타나 닥치는대로 파괴를 자행하며 미 국방부의 정보 네트워크 접속을 시도합니다. 레녹스 대위(조쉬 더하멜)와 극소수만 간신히 살아남아 정보를 본국에 전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미국 어딘가의 고등학교. 괴짜 집안의 후손 샘 윗위키(샤이아 라뵈프)는 새 차와 예쁜 여자친구에 목을 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속의 미국 고등학생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물 빈티지 스포츠카가 그의 손에 들어오고, 이 차로 인해 샘은 학교의 킹카 미카엘라(메건 폭스)와 인연이 맺어지죠. 하지만 곧이어 샘은 어처구니없이 초대형 로보트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돼 버립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라의 팔자가 된 거죠.
인간 주인공들은 이 정도입니다. 국방장관 역의 존 보이트, 특수조직 섹터7의 시먼스 요원 역으로 존 터투로가 나와 무게 중심을 좀 잡아 주지만 출연진은 거의 다 초짜들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CG라는 걸 의미하죠. 안 그러고선 제작비를 감당할 재주도 없습니다. 바로 20년 전 '스타 워즈'가 했던 그 방식입니다.
이 영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영화 '트랜스포머'가 애니메이션이 먼저니 만화영화가 먼저니, 변신 로보트 이야기가 일본이 원조니 미국이 원조니 하는 오다쿠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 필요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세계에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이라는
두 개의 로보트 종족이 존재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이 리드하는 오토봇은 좋은 쪽, 그리고 메가트론이 지휘하는 디셉티콘은 나쁜 쪽이라는 점만 이해하면 됩니다.
더욱 구별하기 쉽게 이 영화에선 좋은 쪽 로보트들은 색깔을 입히고 나쁜 쪽 로보트들은 금속색(은색)으로 남겨놓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마이클 베이의 빠른 편집 속에서는 마구 뒤섞여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토봇 종족과 디셉티콘 종족을 헷갈릴 위험은 없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영화 전체가 어린이 전용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샘이 미카엘라에게 처음 접근하는 장면의 라디오 신(뭔 말인지 보시면 압니다)이나 샘이 중고차를 사러 가는 장면, 그리고 거대 로봇들이 샘네 집 정원에 숨는 장면 등의 유머는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어지간히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한 메건 폭스는 그 자체가 대단히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매우 스펙터클하죠.
이 보닛을 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조쉬 더하멜도 드라마 '라스베가스'에서의 뺀질뺀질한 이미지에서 확실한 느낌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완전히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오히려 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역할이 좀 단조롭기 때문이죠. 이런 역할에 너무 많은 신을 주면 오히려 영화 전체가 지루해집니다.
아무튼 메건 폭스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한국에서도
맥심에서도
그리고 GQ에서도
섹시함을 뽐냅니다. 피부가 약간 거칠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좀 더 노골적으로 섹시해진 린다 카터같다는 느낌. 같이 본 마나님의 평가로는 '캐서린 제타 존스와 카메론 디아즈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제타 존스는 본래 린다 카터와 닮은 배우라는 점, 그리고 디아즈는 발랄하고 섹시한 느낌(그리고 나쁜 피부)으로 유명한 배우이니 비슷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로보트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스포일러가 되기 쉬울 것 같아 가능하면 덜 쓰려 했습니다. 한마디 보태자면, 화면상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솜씨가 여지없이 드러나죠. 편집의 대마왕으로 불리는 그 속도감은 실사와 CG를 육안으로 구별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니까 CG라는 걸 알아보지, 한 30년 전의 관객들이라면 '진짜 로보트를 만들어서 찍었다'고 해도 그냥 믿어 버릴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입니다. '아마겟돈'에서 벤 애플렉과 립 타일러의 신과 비슷하죠.)
아무리 로보트가 많이 등장하고 CG가 훌륭하다 해도, 그 안에 드라마가 녹아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마이클 베이가 최고의 액션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만으로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2의 마이클 베이'가 되려 하는 후배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자나 실사판 '마징가 Z'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일본 영화계 파이팅!
최근 개봉한 2편에 대한 리뷰는 이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