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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낼 물건을 대충 치우고 나니 랜 선이 남았습니다.

꽤 오래 앉아있던 자리입니다.

어찌 보면 6개월, 어찌 보면 2년 6개월 정도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퍽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시간은 꽤 빨리 흘러갔습니다.

체중이 제법 늘었고 흰머리가 꽤 돋았습니다.

그래도 어떤 때에는 퍽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잘 한 선택이라고 자위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리고 나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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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썰렁해진 새 자리입니다. 어찌 보면 바뀐 건 의자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새로운 출발입니다.

특별한 격려나 각오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째 흰머리는 늘어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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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 드디어 서라벌 10화랑이 공개돼 활약하고 있습니다. '화랑'이란 말을 들으면 당연히 '꽃같은 남자'라는 뜻이라는게 떠오르겠죠. 올 한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F4의 F가 FLOWER의 약자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테고, 그러니 서라벌 10화랑은 F10이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

물론 캐스팅을 놓고 보면 정작 '꽃'이라는 이름을 과연 붙여도 좋을까 싶은 친구들도 몇명 섞여 있습니다만^^, 알천랑 역의 이승효가 무섭게 뜨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드라마는 캐릭터가 최고라는 생각도 듭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풍월주인 호재랑은 10대 화랑에 속해 있지 않고 유신랑도 빠져 있으니 현재 '선덕여왕'에서 활약하고 있는 화랑들은 모두 F12라고 할 수 있겠죠.

대부분 신인들이라 누가 누군지 잘 모르실 겁니다. 이 기회에 한번 싹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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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고윤후

'화랑세기'에 나오는 14세 풍월주의 이름은 호림(虎林)입니다. 굳이 이름을 호재라고 살짝 바꾼 것은 아마도 '화랑세기'와 드라마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호림공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뒷날 진덕여왕때 함께 국사를 논했다는 여섯 명의 중신, 즉 유신, 호림, 임종, 알천, 염장, 술종의 여섯 사람 중 하나입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비처왕의 증손이고 어려서부터 문노의 제자였으며 문노의 사위이기도 하죠. 당연히 문노의 진전을 잇는 화랑입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좀 달라지겠죠.

고윤후는 잘 알려진대로 '에덴의 동쪽'에서 송승헌의 적대자에서 심복이 되는 독사 역으로 등장했습니다. 올백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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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성도 보종 백도빈

'화랑세기'에 나오는 미실의 막내 아들. 드라마에는 강인하게 나오지만 '화랑세기'에는 오히려 상당히 나약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보종의 성격과 유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선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화랑 풍월주의 계보상 유신이 보종에게 풍월주의 자리를 물려주는 관계입니다.

백도빈은 잘 알려진대로 백윤식 주니어입니다. 얼마 전 정시아의 남편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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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익도 석품 홍경인

역사에는 진평왕 말년 선덕여왕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귀족들의 이름으로 칠숙과 석품이라는 등장합니다. 알고 보니 드라마 '선덕여왕'의 구상에서는 칠숙(안길강)과 석품이 형제간으로 설정되어 있더군요. 터미네이터 칠숙이 혹시 살아 돌아오면 강력한 형제 듀오가 생성될 듯 합니다. 드라마에선 보종의 오른팔처럼 등장합니다.

홍경인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테죠? 제대 후 눈에 띄는 복귀작이 없었는데 여기서 보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에서의 눈매를 보니 군대에서 후임병들 깨나 갈궜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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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도 덕충 서동원

화랑세기에는 나오지 않는 화랑입니다. 꽃 이름의 문파 이름이 미실의 지지세력임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석품-박의와 못된 놈 3총사라는군요.

군 입대 전의 서동원은 '말죽거리 잔혹사',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을 통해 살짝 가벼운 조연으로 두각을 보였습니다. 제대 후에도 활발하게 움직이더니 이런 역을 맡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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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매도 박의 장희웅

역시 화랑세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석품의 패거리. 박의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의 작명으로는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무신경한 이름입니다. 화랑 알천이 소씨의 시조이듯 다른 화랑들도 모두 성이 따로 있는데, 굳이 성을 붙여서 표기한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박박의도 아니고...

장희웅은 '이산'에서 호위무사 '레골석기'로 인기를 끌던 배우입니다. 이번엔 악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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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선도 임종 강지후

'화랑세기'에 따르면 호국선도라는 이름은 문노를 추종하는 세력의 이름입니다. 세상에서 문노의 낭도들은 호국선, 설원의 낭도들은 운상인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죠.
문노가 행방불명이라 '선덕여왕' 제작진은 임종을 용춘의 측근으로 놓고 그 이름을 호국선도라고 한 듯 합니다.
임종은 앞서 말했듯 실존하는 화랑 출신 중신의 이름입니다. 배역은 '뉴하트'에서 레지던트 역이었던 강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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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지도 알천 이승효

호림(호재) 부분에서 설명했듯 알천은 뒷날 유신, 호림 등과 함께 선덕-진덕여왕 때 국사를 맡았던 여섯 대신 중 한 사람입니다. 특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용맹무쌍한 인물인데 이 드라마에서도 그런 기백이 잘 살아 있습니다. 물론 삼국유사의 기록은 김유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런 용맹스런 알천도 유신의 위엄 앞에 항상 한 수를 양보했기 때문에 나라가 잘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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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효라는 이름은 정말 낯설었습니다. '대조영'에 이해고(정보석)의 부장으로 나왔다는군요. 충주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습니다. 이렇다 할 출연작도 그다지. 이준기와 닮았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찬성하고 싶지 않군요. 쌍꺼풀이 없다는 것 외에는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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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지도 필탄 이상현

기록에는 없는 인물인가...했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군요. 선덕여왕의 세가지 신묘한 예측 가운데 '한겨울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울자 백제군의 공격을 알았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 선덕여왕은 '알천과 필탄을 보내 백제군을 섬멸시켰다'고 되어 있더군요.
드라마의 설정으로는 10화랑 중에서 알천에 이어 두번째로 유신을 인정하는 인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할은 신인 배우 이상현이 연기합니다. 아무튼 참 스샷도 어렵게 찾았습니다. 다른 화랑들에 비해 좀 나이들어 보이는 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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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상인도 선열 최성조

호국선도 편에서 설명한대로 '운상인도'라는 이름 자체가 설원랑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입니다만, 드라마에서는 또 어떻게 갈지 지켜 볼 일입니다. 이름으로 봐서는 미실계의 주축이어야 합니다만.

배역은 '간고등어 코치'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최성조. 차승원 등 연예인들의 헬스 트레이너로 TV에 자주 등장했었죠. 특기를 고려할 때 아마도 화랑들의 노출 신을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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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시원도 왕윤 김동희

F10 중에서 마이너 그룹의 주자입니다. 솔직히 왕윤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유는 박의 부분에서 얘기한 바와 같습니다. 진성여왕 때의 왕거인으로부터 왕씨가 있었다는 추정을 했는지 모르지만, 10화랑에 들 정도면 중앙 귀족이었을텐데... 이런 이름은 참 어색합니다. 삼국지도 아니고. 아무튼 사진상으로는 맨 왼쪽입니다. 그 옆으로 선열(최성조), 임종(강지후)가 나란히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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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하기 전부터 명성을 얻은 김동희는 김혜수의 막내 동생입니다. 닮았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만... 잘 생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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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비도 대남보 류상욱

사진 왼쪽 인물입니다. 드라마에선 아직 부각될 일이 없지만 대남보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13세 풍월주 용춘공의 시절에 기록이 있죠.

대남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감하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급인지풍(急人之風: 남의 위급함을 구해주는 성격)이 있어 무리들이 모두 우러러보았다. 그런데 골품이 없고 균등의 힘이 없었다.

용춘은 대남보가 딸을 바쳐 출세하기를 거절했다는 소문을 듣고,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발탁해 재능을 키워 줍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문노를 찾아가 항의하지만 문노 역시 "현재 풍월주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며 용춘의 판단을 지지합니다.

이런 배경을 그대로 가져 온 거라면 대남보는 당연히 유신에게 우호적인 용춘의 지지 세력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이름만 가져온 거라면... 장래는 알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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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욱은 '신데렐라 맨' 등에 출연한 예비 스타 꽃미남입니다. 가끔 주상욱과 헷갈리시는 분이 있지만 다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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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에 나오는 그림입니다만, 어쨌든 10화랑에는 보종이 들어가야 하고 호재가 빠져야 하니 이 그림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풍월주 호재는 중립이라고 치고 보종과 석품, 덕충, 박의는 미실계로 보입니다. 선열 역시 이름으로 보아 미실계일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문노의 후예이며 용춘계인 임종, 유신에게 기우는 알천과 필탄, 그리고 이름은 당연히 용춘계인 대남보까지가 대적 세력이 되겠군요. 왕윤은 이름으로 보아선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당분간 '선덕여왕'은 미실-천명의 수 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유신이 10화랑을 어떻게 하나 하나 자기 편으로 만드는가의 게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걸로 10회 이상은 버텨야 할테니 좀 지루해질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걸 막기 위해 사극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주인공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이 또 시작될 전망인데, 이게 얼마나 재미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난주의 예고 생략으로 보아 제작진은 촬영분 축적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합니다만, 시청률이 30% 장벽에서 맴도는 것은 추진력 부족을 상징합니다.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느끼고 있겠지만 그럴 여력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마음에 드셨으면 추천이라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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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내린 비가 이미 부산 앞바다를 장악한 비키니 열풍을 잠잠하게 한 주말, MBC TV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하 그냥 '친구')' 1회와 2회가 방송됐습니다.

과연 800만 관객을 동원한데다 글자 그대로 전설이 되어 버린 영화를 어떻게 드라마로 다시 만들까, 굳이 드라마로 다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1회에서 현빈과 장동건의 연기 논란이 뜨겁게 일기도 했지만, 결국 1회와 2회의 의미는 '이 드라마를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곽경택 감독의 대답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1회에선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니가 가라, 하와이" 시퀀스가 방송됐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드라마의 결론, 뭐 감출 필요가 있겠느냐는 계산이었겠죠. 배우는 달랐지만 전복되는 얼음 트럭까지 영화 그대로 재현된 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1회와 2회에 걸쳐 과연 동수의 죽음과 준석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첫 단서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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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를 보고 난 사람들 중 절대 다수는 당연히 동수(장동건)의 죽음은 준석(유오성)이 지시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두 조직간의 갈등이 갈 데까지 가 있었고, 수습하기 위해선 동수와 준석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할 상황이었죠. 그리고 준석이 동수의 아지트를 떠나기 전 던진 담배가 '타협의 여지는 없다. 동수를 제거하라'는 명령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동수의 죽음과 준석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준석의 모습과 '건달은 쪽팔리면 안되잖아'라는 대사를 증거로 댑니다. 즉 준석은 동수 살해와 무관하지만 조직의 논리에 의해서, 혹은 죽은 동수의 체면을 위해서 자신이 배후라고 자백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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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해석 과잉이란 생각도 들지만, 또 한 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조직과 조직간에 이런 사태가 생기면 동수는 양쪽 조직 모두로부터 제거 대상 1호가 됩니다. 동수와 준석은 모두 조직의 보스는 아니고, 더 상위에 있는 보스의 지휘를 받는 입장입니다. 양쪽의 최고 보스들이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사태를 수습하려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동수를 제거하는 것으로 '성의 표시'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준석이 상관이 없다면 동수의 죽음은 (1) 준석의 조직 상부로부터 준석을 건너 뛰고 내려진 암살 지시 (2) 동수의 조직 상부로부터 내려진 제거 명령 등 둘 중 하나로부터 나온 결과라는 얘기가 됩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동수의 심복이었던 은기(정호빈)이 동수 살해의 순간 뒤에서 동수의 팔을 잡고 암살에 협조하는 장면이 보이기 때문에 (2)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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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드라마. 2회에서 준석(김민준)은 진숙(왕지혜)에게 "동수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 없다"며 괴로워합니다. 진숙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며 위로하죠. 그리고 1회에서는 동수의 보스(이재용=영화와 같은 역입니다)가 "그놈들(동수와 준석)이 우정 생각을 할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곽경택 감독은 영화를 만든지 8년만에 드라마 '친구'를 통해 동수는 조직의 논리에 따라 같은 편에 의해 제거된 것이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 셈입니다.

이런 해석이 마음에 드는 분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친구끼리도 죽고 죽이는 이야기'라는 쪽이 보다 현실에 맞는 얘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자칫하면 지금의 드라마 이야기는 '좋은 건달과 나쁜 건달이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로 흐를 가능성이 보입니다.

아무튼 영화 '친구'는 누가 뭐래도 진하디 진한 건달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과연 방송용 소재로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은 좀 더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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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모자이크로 떡칠을 하면서까지 굳이 방송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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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에는 그리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현빈은 영화보다 훨씬 더 비중이 커진 동수 역할을 소화하는 데 있어 할만큼 했다는 느낌입니다. 문제의 '니가 가라 하와이' 신에서는 현빈이 문제가 아니라 김민준의 연기가 눈에 걸렸습니다.

수세에 몰렸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고 친구에게 도피를 권유하던 영화판의 준석 유오성에 비해 드라마 친구의 준석 김민준은 누가 봐도 겁에 잔뜩 질려서 제발 하와이로 도피해달라고 비는 얼굴이더군요. 이런 준석은 영화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유오성이 너무 명연을 펼친 터라 김민준으로서는 좀 역부족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드라마 '친구', 다음 주부터는 진숙을 둘러싼 세 친구의 첫사랑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폭력성 시비를 줄이려면 액션은 최소화하고 개인사를 파고 드는 수밖에 없겠죠. 영화만 봐서도, 동수 역시 진숙을 좋아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 부분이 보다 적극적으로 묘사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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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똑같았나 했더니 옷 색깔과 머리칼 방향이 바뀌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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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2 - 패자의 역습'을 보고 왔습니다. 사정상 두번 볼 수밖에 없었는데, 두번째 관람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느낌은 마이클 베이의 전작인 '나쁜 녀석들'과 '나쁜 녀석들 2' 를 보았을 때와 거의 같습니다. '분명히 더 커지고, 나빠진 건 없는 듯 한데 만족감은 전만 못하다'는 걸로 요약할 수 있겠죠.

'트랜스포머 2'는 실시간으로 관객과 함께 움직입니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중국 상하이에서 격돌하는 오토봇 군단(이 세계에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좋은 로보트 군단')과 디셉티콘(역시 같은 의미로 '나쁜 로보트 군단)의 국지 전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상하이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는 대사가 나올 정도로 초반부터 '트랜스포머 2'는 물량을 쏟아 붓는 것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1편에서 메가트론(디셉티콘의 리더)이 죽은 뒤에도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스토리 진행을 위해 심해에 버려진 메가트론은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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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샘(샤이아 라보프)은 대학 진학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물론 대학 따위는 가지 않을 미카엘라(메간 폭스)와는 여전히 뜨거운 관계입니다. 하지만 1편 때 파괴된 큐브의 조각이 샘에게 이상한 영향을 미칩니다. 갑자기 이상한 외계 문자가 눈앞을 스쳐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간들과 공조하고 있는 옵티머스 프라임(오토봇의 리더)은 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샘은 이제 조용히 살고 싶다며 거부하죠. 하지만 그러면 영화가 될 리가 없습니다. 여차여차에서 부활한 메가트론은 디셉티콘의 초기 대부(?) 격인 노장 로봇 폴른을 찾아가 아직 지구에서 얻을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백배합니다.

당연히 이런 얘기는 샘에게 나타나는 외계 문자와 관련이 깊고, 결국 샘과 미카엘라는 다시 전쟁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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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봤을 때만 해도 관객들을 압도한 감정은 '이야~~~~~~~~~~~~ 로보트다!'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실제 화면에서 뛰어다니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서로 쿵쿵 부딪히며 싸우는 로보트들을 본 순간, 머리 속에 다른 생각은 모두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스토리가 유치하다든가, 뭔가 전개가 부실하다든가.... 이런 생각들은 '야, 시끄러, 로보트나 봐'라는 생각 앞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1편 때의 감흥이 어땠는지는 그때 썼던 '마음속의 소년이여 일어나라'라는 글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동했었죠.

1편 때의 리뷰입니다. 흥분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감동이 2년을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2편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1편과 2편을 비교한다면, 2편은 훨씬 더 많은 돈과 볼거리를 쏟아 부은 역작입니다. 2편에서는 양쪽에서 나오는 로보트 캐릭터만 42종이나 된다는군요(몇개나 확인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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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화려하고 과감한, 그리고 탁월한 CG 액션을 보면서도 2편을 대하는 심정은 '이거 뭔가 좀 비어 있는 것 같은데'라는 쪽으로 기울고 맙니다. 네. 사실 비어 있는 걸로 따지면 1편도 꽤 비어 있었죠. 그런데 1편에 비해 2편에선 영 정교한 전개가 아쉬워집니다.

이를테면 영화 중반 이후, 그러니까 샘의 대학 진학 에피소드가 지난 뒤 과연 샘의 부모가 계속 등장하는게 좋았을까, 그리고 그냥 큐브 조각이 아무 다른 조치 없이 메가트론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면 또 다른 큐브 조각으로 그냥 옵티머스 프라임을 다시 일어나게 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와 같은 진행상의 이의 제기가 마구 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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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플롯의 돌아가기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우리의 주인공은 앞으로 똑바로 걸어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멀고 먼 길을 빙빙 돌아갑니다. 그럴 때 당연히 제작진은 관객들에게 '이건 이래서 돌아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을 해 줘야 하죠. 바로 그것이 잘 된 플롯과 엉성한 플롯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2'의 플롯은 열살만 넘어도 허점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진창입니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런걸 신경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플롯이 정교해진다고 해서 소년 관객들이 실망하지는 않을 거란 점을 생각하면, 역시 이런 부분이 베이의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괜찮아, 내 영화 보는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라는 식의 자세로는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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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역시 전혀 연구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1편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건 냉각수를 펑펑 쏟으며 통곡하는 연기를 보여준 범블비밖에 없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해지고 액션 비중이 커지다보니 연기를 할만한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은 존 터투로(어떤 역으로 나오는지는 비밀입니다) 뿐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이클 베이는 2편을 향해 혹평을 퍼붓는 평론가들을 향해 "흥, 너희들 1편때도 망한다고 그랬잖아"라고 콧방귀를 끼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1편 때와 2편 사이에 2년의 시간이 있다는 걸 베이도 인정해야 합니다. 충분히 사랑이 식고 관객들이 냉정을 되찾을 만한 긴 시간이었던 거죠. (아, 물론 트랜스포머2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단지 꽤 실망스럽다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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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이 자꾸 반복될 우려가 있으므로 여기서 한번 정리합니다.

1. 트랜스포머2의 플롯은 극악이다.

2. 물론 1편때도 그랬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그때는 그런게 눈에 띄지 않았다.

3. 관객들도 2년 사이 서서히 냉정을 찾아갔다.

4. 결국 이제 그 플롯의 구멍은 로보트에 대한 감동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5. 그래서 2편을 보고 1편 때의 흥분과 감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여전히 가슴이 뛰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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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다 보니 어른 관객들에게 위안거리는 미카엘라의 등장 뿐인데, 미카엘라는 이번 영화에서 오히려 1편보다 역할이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1편이 액션이었다면 2편은 그냥 평이한 멜로에다 손 잡고 뛰는 게 전부더군요. 그 달리는 액션 만으로도 흥분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메간 폭스는 엄청난 물량이 투입돼 만들어진 CG에 결코 뒤지지 않는 볼거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줍니다. 대단합니다.)

2편의 결말은 누가 봐도 '3편도 만들테니 또 보러 와 주세요' 였습니다. 3편을 만든다면 어쩔 수 없이 또 보러 가긴 하겠지만, 그땐 미카엘라가 좀 더 나은 대본을 받아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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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편에 비해 인간과 오토봇-디셉티콘간의 화력 차이가 너무 좁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1편 때의 디셉티콘이 인간의 화력으로는 감히 맞설 수 없는 강력한 존재들이었다면 2편에서는 인간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디셉티콘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하더군요. 이래서야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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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트랜스포머' 1편이 개봉했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오래 산 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트랜스포머 2'를 보고 나서, 문득 예전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시 한번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은 2년 전에 썼던 '트랜스포머' 1편의 리뷰입니다. 최근 개봉한 트랜스포머2의 리뷰는 바로 다음에 이어집니다. )

그렇습니다. '트랜스포머'는 로보트가 나오는 영화였던 것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트랜스포머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런 영화일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영화는 일단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브라이언 싱어의 'X맨', 그리고 톰 행크스 주연의 '빅'입니다.


마이클 베이는 처음 이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바보같은 로보트 얘기를 왜 내가 만들어!"라고 발끈하며 시놉시스를 내던졌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누군가 조용히 한마디를 했다는군요. "당신, '레이더스' 때도 그런 말을 했었지." 다 아시다시피 '레이더스'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가 어떻게 됐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죠.

그래서 이 말을 듣고 베이는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진지한 자세로 '트랜스포머' 만들기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물론 '레이더스'가 나올 무렵 베이는 조지 루카스 아래서 하급 스태프로 일하고 있을 때고 그가 감독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과거의 실수를 돌이켜보는 자세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건 놀랍기만 합니다. 더구나 현역 최강의 대형 액션 감독이 말이죠.





아무튼 마이클 베이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트랜스포머'는 전미 흥행 기준으로 3억불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아무리 까다로운 관객이라도 이 정도면 만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랄까요. 마이클 베이가 정교한 테크닉을 제공했다면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 혹시라도 빠져 있을지 모를 '소년의 마음'을 공급했다고나 할까요?

잠시 부언하자면 이렇습니다. 일찌기 아톰과 철인 28호 시대 이후 유년기를 보낸 모든 남자들은(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거대 로보트의 신화에 매혹돼 성장했습니다.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건담,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변신 로보트들, 지금까지도 FSS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같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트랜스포머'에서 거대한 로보트들이 주먹질로 맞붙는 장면을 본 순간, 모든 남자들은 가슴 속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소년이 번쩍 눈을 뜨는 걸 느꼈을 겁니다.



물론 일부 평론가나 기자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도 당연히 수긍이 갑니다. 거대 로보트라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괴물딴지들이 치고 받는 영화가 유치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죠.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유치하되 '고질라'처럼 한심하게 유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결국 로보트 완구 장사꾼들의 농간 아니냐는 얘기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들 완구회사의 스폰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루먼이나 보잉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가 '탑건'이나 '에어포트'를 볼 수 없었을거란 점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카타르에 위치한 미국 특수군사령부에 정체 불명의 괴 로보트가 나타나 닥치는대로 파괴를 자행하며 미 국방부의 정보 네트워크 접속을 시도합니다. 레녹스 대위(조쉬 더하멜)와 극소수만 간신히 살아남아 정보를 본국에 전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미국 어딘가의 고등학교. 괴짜 집안의 후손 샘 윗위키(샤이아 라뵈프)는 새 차와 예쁜 여자친구에 목을 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속의 미국 고등학생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물 빈티지 스포츠카가 그의 손에 들어오고, 이 차로 인해 샘은 학교의 킹카 미카엘라(메건 폭스)와 인연이 맺어지죠. 하지만 곧이어 샘은 어처구니없이 초대형 로보트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돼 버립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라의 팔자가 된 거죠.

인간 주인공들은 이 정도입니다. 국방장관 역의 존 보이트, 특수조직 섹터7의 시먼스 요원 역으로 존 터투로가 나와 무게 중심을 좀 잡아 주지만 출연진은 거의 다 초짜들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CG라는 걸 의미하죠. 안 그러고선 제작비를 감당할 재주도 없습니다. 바로 20년 전 '스타 워즈'가 했던 그 방식입니다.

이 영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영화 '트랜스포머'가 애니메이션이 먼저니 만화영화가 먼저니, 변신 로보트 이야기가 일본이 원조니 미국이 원조니 하는 오다쿠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 필요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세계에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이라는





두 개의 로보트 종족이 존재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이 리드하는 오토봇은 좋은 쪽, 그리고 메가트론이 지휘하는 디셉티콘은 나쁜 쪽이라는 점만 이해하면 됩니다.

더욱 구별하기 쉽게 이 영화에선 좋은 쪽 로보트들은 색깔을 입히고 나쁜 쪽 로보트들은 금속색(은색)으로 남겨놓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마이클 베이의 빠른 편집 속에서는 마구 뒤섞여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토봇 종족과 디셉티콘 종족을 헷갈릴 위험은 없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영화 전체가 어린이 전용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샘이 미카엘라에게 처음 접근하는 장면의 라디오 신(뭔 말인지 보시면 압니다)이나 샘이 중고차를 사러 가는 장면, 그리고 거대 로봇들이 샘네 집 정원에 숨는 장면 등의 유머는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어지간히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한 메건 폭스는 그 자체가 대단히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매우 스펙터클하죠.






이 보닛을 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조쉬 더하멜도 드라마 '라스베가스'에서의 뺀질뺀질한 이미지에서 확실한 느낌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완전히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오히려 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역할이 좀 단조롭기 때문이죠. 이런 역할에 너무 많은 신을 주면 오히려 영화 전체가 지루해집니다.

아무튼 메건 폭스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한국에서도





맥심에서도



그리고 GQ에서도




섹시함을 뽐냅니다. 피부가 약간 거칠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좀 더 노골적으로 섹시해진 린다 카터같다는 느낌. 같이 본 마나님의 평가로는 '캐서린 제타 존스와 카메론 디아즈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제타 존스는 본래 린다 카터와 닮은 배우라는 점, 그리고 디아즈는 발랄하고 섹시한 느낌(그리고 나쁜 피부)으로 유명한 배우이니 비슷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로보트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스포일러가 되기 쉬울 것 같아 가능하면 덜 쓰려 했습니다. 한마디 보태자면, 화면상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솜씨가 여지없이 드러나죠. 편집의 대마왕으로 불리는 그 속도감은 실사와 CG를 육안으로 구별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니까 CG라는 걸 알아보지, 한 30년 전의 관객들이라면 '진짜 로보트를 만들어서 찍었다'고 해도 그냥 믿어 버릴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입니다. '아마겟돈'에서 벤 애플렉과 립 타일러의 신과 비슷하죠.)

아무리 로보트가 많이 등장하고 CG가 훌륭하다 해도, 그 안에 드라마가 녹아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마이클 베이가 최고의 액션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만으로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2의 마이클 베이'가 되려 하는 후배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자나 실사판 '마징가 Z'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일본 영화계 파이팅!

최근 개봉한 2편에 대한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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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중 첫번째 경우가 바로 1996년,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스크바에 다녀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일 겁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해 10월 11일과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마이클 잭슨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공연이 열렸습니다. 잠실에서의 동시 2회 공연은 한국 공연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입니다. 메탈리카나 케니G도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2회 공연을 매진시킨 적이 있지만, 그래봐야 잠실 주경기장의 1회 공연에도 못 미치는 3만 정도의 관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시 잭슨의 공연은 5만석짜리 2회였죠.

이 초대형 공연을 유치한 태원예능(태원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공연 홍보를 위해 한국 공연보다 약 4주 먼저 열린 모스크바 공연에 주요 언론을 초대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야 기사를 써도 쓸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죠. 요즘의 우스꽝스러운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재수 좋게 제가 거기에 끼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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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연출이 변경됩니다. '배드'를 냈을 때에는 '배드 투어', 'Dangerous' 앨범을 냈을 때에는 '데인저러스 투어'가 되는 거죠. 그리고 1996년부터 97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펼쳐진 투어는 바로 '히스토리 투어'였습니다.

히스토리 투어의 예비 공연은 1996년 7월16일 브루나이에서 열렸습니다. 브루나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무료로 진행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워낙 부자인데다 잭슨과의 친분도 두터운 왕가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의 투어에서 브루나이가 빠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투어는 그해 9월7일, 체코 프라하의 레트나 공원(Letna Park)에서 12만700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시작됐습니다. 이어 부다페스트, 부쿠레슈티, 모스크바, 바르샤바, 사라고사, 암스테르담(3회), 튀니지, 그리고 서울 공연으로 순서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간혹 히스토리 투어 영상물을 볼 수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물은 1992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데인저러스 투어의 dvd입니다. 유독 이 공연만이 국내에 출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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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태원예능 측에서는 10여명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을 이끌고 9월17일 모스크바 공연을 참관하러 떠났습니다. 이때 동행했던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정태원 현 태원 엔터테인먼트 대표(한국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수입한 바로 그 분입니다)와 최규선 현 유아이에너지 회장입니다. 네. 최규선 게이트라는 이름을 만드신 바로 그 분이죠. 한때 '마이클 잭슨과 친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건 1996년 당시 잭슨의 내한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 잭슨 측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여권을 보니 9월15일 출국해 19일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모스크바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길을 걸은 것은 이미 꽤 전의 일이었지만 이때까지도 오랜 사회주의의 폐해는 만연해 있었습니다. 공항 통과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입국하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성질 급한 일행들 사이에선 "입국 심사원이 여권을 펴 놓고 자는 것 같다"고 얘기가 돌 정도였으니까요. "항의할수록 더 오래 걸린다"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나중 출국때는 4시간 전에 공항에 나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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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장을 푼 호텔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멀쩡한 외관과는 달리 속은 엄청나게 낙후돼 있었습니다. 방 구석에 먼지가 남아 있었고 방에서 국제전화를 하려면 24시간 전에 신청하고 30불 가량을 선불로 내야 했습니다. 국제전화가 가능한 공중전화가 로비에 1대 있었는데 그것도 밤 9시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잭슨이 묵은 켐핀스키 호텔은 기억나는데 이 호텔이 기억 안 나는 것도 직업병인가봅니다.)

낮에는 늘 전화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죠. 이 밖에는 문서 한장 보내는데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낡은 팩시밀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요즘도 유럽 지역으로 가면 인터넷이 느리다고 한국 사람들은 짜증을 내게 돼 있지만 이 시절만 해도 인터넷이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술이었습니다. 현지 사정을 본 기자들은 '기사 송고 불가' 판단을 내렸고, '체류 기간 중에는 취재나 잘 하자'고 합의했습니다. 네. 그냥 마음 편히 공연을 보는데 전념하자고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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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공연이 열린 디나모 스타디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서부터 기자들은 다들 잭슨과의 인터뷰를 원했지만 그것만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히스토리 투어 내내 잭슨은 단 한번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잭슨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습니다. 호. 마이클 잭슨을 실물로 본다고?

일행은 디나모 스타디움의 한 방으로 안내됐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스태프가 와서 3-4명씩의 일행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그 방 역시 대기실이었고, 러시아에서 뭔가 한 가닥씩 하는 듯한 사람들(그냥 느낌입니다)이 우리 일행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잭슨과의 접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진 촬영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이 가져간 카메라로는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고, 잭슨 측이 촬영을 한 뒤 개개인에게 사진을 발송해 주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까지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철저한 관리였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차례가 들어와 세 명이 잭슨 앞으로 갔습니다. 근접거리에서 잭슨을 본 느낌은 - 잭슨이 아니라 잭슨의 밀랍인형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짙은 화장을 한 그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조각한 인형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낭비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가 묻더군요.

"Where are you from, Guys?"
"...Korea."
"Hi, Koreans, I love you."

네. 수만번 들었던 바로 그의 '알라뷰'였습니다. 그리고는 찰칵. 바로 다음 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와의 유일한 대면이었죠. "사진을 찍을 때에도 어떤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사전 지침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면 한개 정도는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스태프는 그럴 틈을 주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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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시 찍은 이 사진은 - 아마도 언제까지 기자 생활을 하게 될 지 모르지만 - 가장 값진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중에는 취재원과 절대 사진을 찍지 않는 불문율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만, 과연 마이클 잭슨과 사진을 찍을 기회가 왔을 때 그걸 거부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얼굴을 아시는 분들은 '?' 하실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보정을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잭슨의 얼굴을 보정하면서 제 얼굴에도 손을 좀 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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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 이상 기다려온 공연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모스크바 공연의 한가지 특징이라면 'Stranger in Moscow'에 대한 호응이 남달리 뜨거웠다는 것(뭐 당연한 얘기죠), 그리고 'Smooth Criminal' 때 커튼 장비가 고장났었다는 것입니다.

무대 전체를 흰 커튼으로 가린 뒤 시작해 잭슨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보여주다가 윗부분의 흡입구로 커튼을 휙 빨아들인 뒤, 잭슨과 댄서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커튼은 올라가지 않았고, 잭슨과 댄서들은 허리 아래 부분만이 올라가다 만 커튼 아래로 드러났습니다. 대놓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스태프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일부는 무대 위로 올라와 커튼을 잡아당겨 보기도 했고, 결국 수동 장비를 이용해 커튼을 감아 올렸습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커튼이 올라가지 않은 게 연출이냐, 사고냐를 놓고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이견이 오갔습니다. 의외로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주장이 득세하더군요. 아무리 봐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서울 공연 때 진실이 가려졌습니다. 연출은 무슨 연출. 커튼이 한방에 휙 빨려 들어가버리더군요. (네. 역시 교훈은 '다수결이 진리는 아니다' 였습니다.)

바로 그 커튼 신입니다. 역시 한방에 휙 올라갑니다.


아무튼 일행의 대다수는 공연을 보고 나서도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무대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영상을 통해 잭슨의 공연장에서 실신해 실려나가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장에 가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올 스탠딩으로 관람에 나선 5만 관객들은 잭슨이 몸짓 하나를 보일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였습니다. 9월의 모스크바는 이미 꽤 쌀쌀했지만 관중석의 열기에 날씨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안전 문제로 제지당했지만 그 관중들 속에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구치는 장관이더군요. 아마도 이런 스타디움 공연을 태어나 처음 봤을 때라 더욱 그랬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딱 한분. 그닥 문화적인 소양이 별로 없어 보이는 단 한 명의 기자만은 이 공연에 별 만족이 없어 보였습니다. 주최측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별 감흥이 없으셨나요?" "네. 뭐 생각보다는 별로..." 도대체 그는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보드카 잔을 기울이며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펑크 비트가 떠다녔습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에게 어떻게 이 환상적인 공연의 모습을 전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뻥이 아닙니다.) 아무튼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서울에 온 마이클 잭슨을 따라다니던 얘기는 다음 번으로 넘기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천천히 그의 죽음이 다시 현실로 느껴집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죠.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입니다. 바로 96년 서울 공연때의 모습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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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마이클 잭슨이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문 워킹을 할 수 있을까.

눈을 뜨고 TV를 켜자 마자 이런 충격적인 소식이 흘러나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살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팝스타들의 심장마비란 대개의 경우 약물과 관련이 깊다는 통례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팝의 제왕. 지구상 최고의 스타. 마이클 조던을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MJ 이니셜의 주인공.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전 샀던 스릴러 앨범의 감촉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검은 표지, 흰 자켓의 잭슨. 속지 가득 빽삑히 쓰여 있던 가사들. 스티브 포카로, 폴 매카트니, 에디 밴 헤일런 같은 이름들.

팬으로 15년, 기자로 15년을 그를 지켜보며 보냈습니다. 우선 팬으로 15년에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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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스타리썸-띵, 갓투비스타리썸-띵.

중학생이 되었을 때의 천하는 레이프 가렛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금발의 미소년 가렛은 초유의 아이들 스타 내한 공연이라는 간판으로 엄청난 폭풍우를 몰고 왔습니다. 남산 숭의음악당에 이 공연을 보러 가면 퇴학이라는 협박도 소년 소녀들의 열기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들은 TOTO의 'Hold the Line'과 마이클 잭슨의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은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놨습니다.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 '선진' 음악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뼈를 시리게 했습니다.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 부르는 사람은... 크리스 터커입니다. 성룡도 보이죠.


웨스트라이프도 리메이크. 원작의 느낌보다는 약하지만 아무튼 들을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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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열혈소년은 두 장의 신화적인 앨범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TOTO IV와 Thriller. 두 앨범에 모두 스티브 포카로라는 인물의 이름이 들어 있어서일까요. 죽을 때까지 가져갈 두 장의 앨범이라는 느낌이 온 몸에 소름을 끼치게 했습니다. 물론 '소장하고'라는 뜻은 아닙니다. 두 앨범의 수록곡 전곡을 몸과 마음에 담고 간다는 얘기죠.

워낙 몸치였던 터라 어설프게라도 문 워킹을 따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Billy Jean보다는 Beat It의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더욱 열혈소년을 매혹시켰습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 청소년의 인지 구조에서 음악 미학의 완성된 형태는 'Beat It'이라는 형태와 'Africa'라는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준이 된 거죠.

전곡의 백미인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솔로. 심장을 멎게 합니다.


그래도 전곡이 필요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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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Bad'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나이트클럽을 강타합니다. 여전히 그는 허점이 없습니다. 'Dirty Diana'의 강렬한 록 사운드에서 'Smooth Criminal'의 섬칫한 비트까지.

신발이 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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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계가 위험에 빠집니다. 뮤직비디오를 통한 비주얼 쇼크는 여기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Black or White에서 Remember the time, Heal the World까지. 언제고 한번 그의 공연을 보고 나야 제대로 죽을 수있겠다는 생각이 든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나오미 캠벨과 춤추는 In the Closet를 보고 나면 더욱 그렇죠.

1993년, 기자가 됐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를 볼 기회나 전망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니 1996년, 한발짝 그에게 다가갑니다. 네. 팝 담당기자가 된 거죠. 그리고 그 해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온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를 직접 보게 되는 이야기는 다음편으로 넘기겠습니다. 마이클 잭슨 얘기로 기사 두개에 칼럼 하나를 썼더니 진이 다 빠지는군요.^^ 다음 글 내용은 당연히 '마이클 잭슨, 기자로 15년의 기억'입니다.

그분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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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그는 누구인가

'팝의 제왕(King of Pop)'이라는 공식 명칭을 인정받은 마이클 잭슨은 19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로 최고의 팝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80년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1958년 8월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철강 노동자 조 잭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조셉 잭슨은 유아시절부터 춤과 노래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어머니 때문에 외부와 단절되어 성장한 마이클은 형들과 함께 그룹 잭슨5를 결성, 11세 때인 1969년 첫 싱글을 내놨다. '벤' '아일 비 데어' 'ABC' 등을 내놓으며 모타운 레코드의 간판으로 성장했고, 1971년에는 '갓 투 비 데어'로 솔로 데뷔했다.
그룹과 솔로를 병행하던 잭슨은 1979년 앨범 '오프 더 월'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이어 '스릴러(1982)', '배드(1987)' '데인저러스(1991)' '히스토리(1995)'까지 모두 멀티 밀리언 셀러의 기록을 세웠다. 특히 '스릴러'는 빌보드 앨범 차트 37주 연속 1위, 80주 연속 톱 10 등재, 1983년과 84년까지도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위를 기록하는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이 앨범은 전 세계에서 1억장 이상이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네스북은 6500만장의 판매를 인정해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공인됐다.
1994년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지만 채 2년이 못돼 이혼했고, 간호사 출신인 두번째 아내 데비 로와의 사이에서 아들 마이클 잭슨 주니어와 딸 패리스를 뒀다. 2002년에는 인공수정과 대리모를 통해 아들 프린스 2세가 태어났다.
잦은 성형수술과 대인기피 등 기벽으로 미디어의 집요한 추적을 받았던 잭슨은 최근 들어 아동 성추행 파문과 투자 실패 등에서 온 타격으로 은둔 생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음달 런던에서 50회의 '은퇴 기념 공연'을 예정하고 있었다.
잭슨은 제임스 브라운이 완성시킨 R&B와 펑크의 결합에 강렬한 록 사운드를 더해 흑인 음악이 세계 팝 뮤직의 중심이 되게 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또 그를 통해 뮤직비디오라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가 새롭게 자리를 굳혔고, 브레이크 댄스를 발전시킨 독창적인 안무와 무대 연출은 대중 가수의 콘서트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는 데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20세기말 대중문화의 요체를 한 몸에 구현한 진정한 제왕이었다.

13년 전, 내한 공연을 앞두고 마이클 잭슨을 모스크바에서 만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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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벌써.... 정신이 하나도 없군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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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이 다시 점화됐습니다. 전 소속사 대표 김모씨가 일본에서 불법체류로 체포됨에 따라 곧 한국 측에 인도될 듯 합니다. 김씨는 이미 대한민국 여권의 효력이 없어진 상태이므로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라 넘어 오는 것이 아니고, 불법 체류자로서 추방되는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절차보다 훨씬 빨리 한국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군요.

경찰도 워낙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사건이라는 걸 알고 있는 터라 25일 오전 바로 분당경찰서에서 브리핑을 했습니다. 당연히 할 말이 나왔습니다. "내사 중지, 내사 종결로 구분됐던 사람들까지 모두 다시 조사선상에 선다. 엄밀하고 분명하게 수사하겠다." 네. 당연한 얘깁니다. 잊고 있던 일이 다시 불거지며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 이번엔 '모든 것'이 밝혀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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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건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불이 붙을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건의 몸통 중 몸통인 김씨로부터는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무능과 부실수사를 탓했지만, 경찰로서도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번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사람 - 여기서 '사건'이란 '과연 장자연은 어떻게 술자리에 나가게 되었나'와 '과연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로 일단 한정합니다 - 은 굳이 규정하자면 죽은 장자연 본인과 김씨 두 사람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자연이 남긴 문서에는 여러 정황과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역시 김씨 뿐입니다. 장자연이 증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씨의 증언과 확인이 없으면 대체 술자리에 누가 있고 누가 없었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술집 영수증이나 전화 통화 기록은 보조적인 증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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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한동안 잠자고 있었던 이번 사건은 다시 불붙을 전망입니다. 지난번 조사를 10여명이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확실히 죄를 인정받은 사람이 없어 각계에서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지난번 조사 때 '확실히 관련 없음이 인정된 사람' 또한 불기소 처분을 받은 몇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확증이 없어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기소 중지 조치를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이들 중 김씨의 입을 통해 사건 관련 정도가 새롭게 밝혀지는 사람들은 즉시 재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시 수사선상에 선다고 해서, 김씨의 증언도 없는데 다시 불러들일 일은 없겠죠. 김씨가 뭔가 새로운 사실을 털어 놓는 경우라야 재조사가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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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씨의 귀국과 경찰의 재조사를 통해 모든 것이 속시원히 밝혀질까요? 하지만 아직도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아마도 김씨의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김씨의 수사 협조와 정상 참작을 맞바꾸려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교환이 그리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어찌 보면 김씨의 입장에서는 더 '영양가 있는 증언'을 할수록 자신이 인정해야 할 죄가 커지기 때문이겠죠.

경찰이든, 언론이든, 일반 관전객들이든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김씨처럼 사회 대다수에게 관심 밖인 인물보다는 '뭔가 있는 거물'이 걸려들기를 바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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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전제는 모두 김씨가 '경찰이 원하는 내용을 모두 증언해 준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김씨가 이미 조사를 받은 사람들이 증언한 내용만을 모두 확인해준다거나 할 경우, 경찰은 재조사의 명분을 잃게 됩니다. 이런 경우, 마음 속으로 이미 모든 판결을 내려 버린 상태인 일반 국민들은 크게 불만을 갖게 되겠죠. 경찰이 어떻게 수사를 한 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찌라시' 수준의 결과는 나오기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물론 경찰이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여러가지 수단이 있으니(물고문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전보다는 한 단계 올라선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아무쪼록 김씨에 대한 경찰 조사가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 내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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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시피 사상 첫 남북 동시 월드컵 진출이라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1986년 이후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물론 2002년은 개최국이라 예선을 거치지 않았지만) 매번 월드컵에 진출하느라고 이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그렇지, 월드컵 본선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나라 수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아시아에 너무 많은 티켓을 주는게 아니냐(현재 4매)고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북한이 새로 본선 진출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꽤 대단한 일이라고 할 만 합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축구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박두익이라는 북한의 축구 영웅과 8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무렵, 한국 축구는 북한을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붙었다면 어떻게든 우열이 가려졌겠지만, 70년대까지의 남북축구사는 기를 쓰고 북한과의 대결을 피해 온 과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그 세월을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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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북축구 잔혹사

1970년대까지 축구인들에게 남북 대결은 한·일전보다 두려운 경기였다. 자존심을 넘어 ‘죽어도 질 수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65년.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참가를 선언하자 한국은 불참을 선택했다. 혹시 질지도 모르니 아예 안 붙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선을 통과한 북한은 이듬해 본선에서도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해 세계 축구에 파란을 일으켰다. 충격을 받은 한국은 전열을 정비해 70년 멕시코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이번엔 북한이 발을 뺐다.

박두익과 북한 축구의 사다리 전법(공을 잡은 선수의 상-중-하 세 방향을 세 선수가 동시에 마크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터이니 따로 설명을 달지 않습니다. 아무튼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사상 처음 출전했고, 58년과 62년에는 석연찮은 이유로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두 해 중 한번은 서류 접수 실수로 참가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죠.

아무튼 1965년, FIFA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예선을 캄보디아에서 치르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예선에 북한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한국은 발을 뺍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한국은 북한에게 경제 면에서도 절대 우위를 장담하기 힘들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축구 쯤이야...'지만 당시엔 '축구까지 지면'이란 시각이 있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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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전설의 사다리 전법. 근데 대체 저게 실전에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결국 한국은 제재를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대회를 보이코트했고, 북한은 한국이 빠진 예선을 쉽게 통과해 본선에서 파란을 일으킵니다. 아, 참고로 당시엔 본선 진출국이 16개국이었으므로 예선만 통과하면 8강이었습니다. 8강전에선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에게 패해 탈락했죠.

북한 축구의 선전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국내 최고 스타들을 한 팀에 모아 '양지팀'을 관리했다는 것 또한 유명한 얘깁니다. 양지팀 덕분에 자신감에 찬 한국은 1970년 예선에 참가하지만 북한이 이번엔 불참합니다.

북한 축구가 처음 아시안게임에 등장한 74년 테헤란. 대회 개막을 2주 앞두고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으로 서거한 뒤끝이었다. 굳이 북한과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고, 한국은 대회 내내 북한과의 대진에만 신경 쓰다가 석연찮은 연패로 수상권에서 멀어졌다.

이때까지도 '만약 이런 정치상황에서 북한에게 혹시 지기라도 한다면'이란 생각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한국은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 전에서,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 있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0대4로 대패하고 맙니다. 만약 이 경기를 이기면 다른 조에서 올라올 북한과 2차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될 상황이었죠. 하지만 한번 북한을 패한 뒤 두번째 대결도 피하기 위해 맥빠진 경기를 벌이다 결국 2차 예선에서 탈락해버립니다.

4년 뒤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수퍼스타 차범근을 앞세운 한국은 대결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양팀은 승승장구 끝에 결승에서 맞붙었고 접전 끝에 0-0으로 비겨 공동 우승이 결정됐다.

차범근을 앞세운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1974년과 78년 월드컵 예선에서 두번 모두 호주에게 결정적인 순간 역전을 허용하며 월드컵 출전권을 빼앗깁니다. 북한은 74년 예선에 참가하지만 최종 예선까지 도달하지 못해 한국과 맞붙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자신감이 가득한 한국은 마침내 1978년, 북한과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립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승전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양쪽 모두 너무나 부담스러운 경기였으므로, 답답할 정도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칩니다. 결국 결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0대0 공동 우승.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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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서도 신경전은 계속됐다. ‘한국축구 100년사’에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김호곤(현 울산 현대 감독)은 “북한 주장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했지만 그는 내가 올라설 자리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골키퍼는 나를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상대에 오른 김호곤은 “우리 손 잡읍시다”고 제의,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렇게 해서 사상 첫 남북대결은 해피엔딩이 됩니다. 그리고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바로 저 경기 직후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 진출, 한국 축구를 세계에 알리죠.

그 뒤로 남북 대결은 흔한 일이 됐고 긴장은 사라졌다. 오히려 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최종전에서 북한은 한국에 0-3으로 대패, 한국이 기적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월드컵에 진출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남아공 월드컵 1차 예선에서 북한은 평양에 태극기와 애국가를 들일 수 없다며 남한과의 홈 경기를 거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본이 '도하의 참극'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일본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과 한국의 탈락이 유력한 상황, 한국은 1승2무1패로 승점 4(당시에는 승이 2점, 무가 1점), 일본은 2승1무1패로 승점 5점으로 각각 한경기씩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의 최종전을 무조건 큰 점수차로 이겨야 했고, 설혹 한국이 이긴다 해도 일본이 이라크와의 최종전을 이기면 일본이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총 6개국 중 탈락이 확정된 것은 북한 뿐.

한국-북한전. 전반을 0-0으로 비기고 하프 타임이 되자 "점잖기로 소문난 김호 감독이 발길질로 머리를 걷어차더라"고 홍명보가 뒷날 회고할 정도로 한국 라커는 "지면 죽는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북한이 과연 의도적으로 봐주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아무튼 한국은 후반전에 대분발, 세 골을 넣어 3대0으로 경기를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열리고 있는 일본-이라크전도 일본이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 결국 3대0으로 이기고도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던 한국 선수들은 벤치의 후보 선수들이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함께 고함을 지릅니다. 종료 30초를 남기고 이라크의 자파르가 기적같은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죠. 이렇게 해서 한국과 일본은 승점 6으로 동점이 되지만 북한전에서 넣은 세 골 덕분에 한국이 득실차로 94년 월드컵에 진출합니다. 아마도 해방후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장 고마운 마음을 가진 것이 이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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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지난 반세기 간의 남북 축구 대결사는 양자 간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압축해 보여 주는 듯하다. 곡절 끝에 남북한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하게 됐다. 그저 본선에서도 양측 모두 선전을 거듭해 78년의 어깨동무가 재현되길 바랄 뿐이다. 

2010년 대회 예선에선 한국이 마지막까지 이란 전에서 무승부를 이끌어 낸 것이 북한과의 동반 진출을 일궈냈습니다. 제발 이게 조금이라도 경색 국면을 푸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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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북한이 다시 본선에서 대결을 벌이려면 둘 다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하는데 그건 좀 쉽지 않겠군요. '어깨동무'는 경기장 밖에서 하는 것도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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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소녀시대 왜색논란'이라는 검색어가 요란하더군요. '성형 논란은 있었어도 웬 왜색 논란?'이라고 생각하며 보니 논란의 근원은 소녀시대의 앨범 재킷입니다. 뭐 이미 아실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요점만 말하자면, 소녀시대 앨범 재킷의 중앙에 위치한 프로펠러기가 2차대전때 일본이 사용한 제로전투기의 모습이며, 윤아가 쓰고 있는 모자의 장식이 나치 독일 공군의 상징인 독수리 마크와 거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색 반, 나치 반이 논란의 핵심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소녀시대가 아니라 '제국시대', '전범시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한참 돌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게 소녀시대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들이 온갖 매체들을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참 눈들도 좋구나 하는 것, 둘째는 정말 할일 없는 기자들이 많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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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색이라는 말을 일단 사전에서 찾아봅시다(왜색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청소년들도 꽤 되는 듯 합니다). "일본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띠고 있는 색조"라고 나옵니다. 대략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왜색=일본풍'이란 뜻이 되죠. '왜(倭)'라는 말은 일본의 오래 전 이름이자 비하하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즉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를 때 한국인이 모욕감을 느끼듯, '왜'라는 호칭은 비하와 적대감을 담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70년대까지, '왜색'이라는 말은 최악의 범죄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 처분을 받은 가요 투성이었고, 사회와 문화 각 분야에서 '왜색'은 반드시 처단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드라이브는 역설적으로 당시의 한국 사회가 '왜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디를 가나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에 '다꾸앙'을 찾았고, 손톱은 '쓰메끼리'로 잘라야 했고, 부엌에서는 '다마네기'를 까고 있었죠. 대대적인 국어 순화운동이 일어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물리적인 광복 뿐만이 아닌, 정신적인 독립을 이뤄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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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떻습니까? 일본 문화는 이미 개방된지 오랩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가요, 영화, 내놓고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일본 만화 주인공들의 의상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취미로 받아들여 진지 오래입니다.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르면서 일본 팬들을 향해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외치는게 당연히 받아들여 지는 시대인 겁니다.

이런 시대에 '왜색'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녀시대의 저 영식전투기가 '왜색'이라면 과연 '왜색'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왜색'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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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라도 '왜색'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이 옷을 입은 이 분이 '미스코리아'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이 분은 한 나라를 대표해서 외국에 나갔던 상황이었죠. 그런 분이 이런 국적불명의 의상을 입고 '이게 한국 옷'이라고 우긴다는 건 비판받을 만한 일이었죠. 하지만 소녀시대가 지금 국가대표로 앨범을 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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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왜색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을 표방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집니다. 저 앨범 재킷을 보고 저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저것이 문제가 되려면, '(1) 소녀시대는 매우 인기있고 영향력도 크다 (2) 소녀시대가 일본 제국주의의 표상을 사용했다 (3) 소녀시대가 하는 것은 옳고 아름다운 것이다 (4) 소녀시대가 일본 제국주의의 표상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옳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다 (5) 나도 일본 제국주의의 옹호자가 되겠다' 라는 식의 사고 과정이 소녀시대 팬들 사이에서 진행되거나, 진행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소녀시대 팬들이 모두 참치나 새우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 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위험하다면, 한 눈에 일본의 영식전투기를 알아보고, 한 눈에 나치의 문장을 알아보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이야말로 제국주의와 침략 노선에 경도된 사람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밀리터리 마니아들이야말로 이런 식의 시각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이들 마니아들을 탓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런 지적이 순수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든, 또는 자신의 밀리터리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것이든, 이런 주장 - '소녀시대의 일본 제국주의(혹은 나치) 상징 이용은 심각한 문제다!' - 을 개진할 자유는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네. 이런 주장을 펴신 분들에겐 그런 주장을 펼 만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물론 누군가 이 분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유 또한 보장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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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웃기는 것은 이런 주장을 좌우 판단 없이 그냥 받아들여서 사회적인 이슈로 포장하는 일부 매체들입니다. 23일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덮었던 수많은 '소녀시대 왜색논란'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 가운데서 과연 21세기 초의 한국 사회에서 '왜색'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저 앨뱀 재킷에서 과연 일본 제국주의나 나치즘 추종의 혐의를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이 '어, 인터넷에서 화제래. 쓰자'와 '야, 쟤들이 썼네. 베끼자'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긴 얼마 전, 일본 작가가 만든 일본 원작이고, 무대도 일본인 '블러드'에 출연한 전지현을 보고도 '왜색 논란'이라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작자들이 있는 걸 보면 이 정도는 대단히 양호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기지 않는 분들은 '전지현 왜색'을 한번 검색해 보시죠.)

도대체 왜 이런 사건들이 '논란'으로 포장되는 걸까요. 더욱 우울해지는 건 날이 갈수록 이런 일들은 더욱 심해질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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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은 그냥 기분 푸시라는 짤방입니다. 참 코믹하기 짝이 없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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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에서 성인 연기자들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10화랑을 비롯해 청소년 역으로 나오던 배우들이 모두 어른으로 바뀌었지만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김유신(엄태웅)과 천명(박예진), 덕만(이요원)의 세 등장인물입니다. 이 셋은 앞으로 아주 뜨겁지는 않지만 아무튼 오묘한 감정의 흐름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덕만공주와 김유신은 꽤나 진척된 연인 관계가 될 것 같기는 하나, 어쨌든 드라마가 역사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맺어지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초등학생이라도 '삼국 통일의 명장 김유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김유신의 여자관계도 제법 잘 알려진 편입니다. 각종 자료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김유신의 일생에는 최소한 서너 명의 여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선덕여왕과의 로맨스(?) 때문에 기존의 여자관계는 모두 묻힐 듯 합니다.

그 사이에 묻힌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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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김유신의 첫사랑'으로 묘사되는 천관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절대 나오지 않지만, 훨씬 후대의 문헌인 '파한집' 등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단히 유명한 이야기였던 듯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수백년이 지나서까지 이렇게 인구에 회자될 리가 없지요.

내용은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김유신은 기녀 천관에게 정을 두고 향락에 빠지지만, 어머니 만명부인의 엄한 꾸짖음에 정신을 차리고 천관에게 가던 발을 끊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유신을 태우고 가던 말은 늘 가던 길대로 천관의 집 앞으로 갔고, 늘 하던대로 천관은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제서야 술이 확 깬 유신이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쳐서 결심을 확인하고, 그 다음부터 향락을 멀리해 뒷날 통일의 영웅이 되었다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남은 것은 그 교육적인 가치 때문일 겁니다. 당시에 비해 훨씬 보수적인 후대의 유학자들에게도 구미에 맞는 얘기였겠죠. 사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성공을 향해선 사랑 따위는 가볍게 버릴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의 이야기로 비쳐지기도 합니다만..^^

가장 최근에 천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SBS TV '연개소문'입니다. 김유신 역으로는 이종수, 천관 역으로는 박시연이 나왔죠. 이 드라마에도 미실이 나오긴 합니다. 천관의 양어머니 역이고 서갑숙이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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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천관녀 얘기도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만, 이 드라마에 천관녀까지 나왔다가는 영웅 김유신이 어째 너무 난잡한 남자로 보일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덕만과의 애틋한 관계까지 해칠 우려가 있죠. 여기서 천관녀는 아쉽지만 삭제될 듯 합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유신의 여인은 하종의 딸 영모입니다. '선덕여왕'을 보시는 분들을 잘 아시겠지만 하종이 미실의 아들이니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혼맥을 봐도 미실이 유신을 멀리 할 생각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죠. 나중엔 영모의 동생 유모도 첩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미실로서도 가야계의 핵심이자 떠오르는 무장인 유신을 자신의 품에 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하종과 보종이 모두 유신과 지극히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지난 포스팅에서 얘기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특히나 보종은 유신을 두려워 할 정도로 존경했다는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나옵니다. - 물론 '화랑세기'의 기록을 신뢰한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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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화랑세기 식으로 하자면 이 분이 바로 유신랑의 장인 되실 분.


세번째. 진짜 사서에 나오는 김유신의 부인은 지소부인입니다. 오래 전 교과서에도 나오던 유치진의 '원술랑'에 원술의 어머니로 나오는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런데 이 지소부인과 유신은 사실 나이 차이가 상당히 크게 나야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소 부인은 김유신의 조카이기 때문입니다.

김유신과 김춘추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누이 동생 태워죽이기 쇼'가 있죠. 김춘추가 유신의 동생 문희와 정을 나누고도 혼례를 올리려 하지 않자 김춘추가 선덕여왕을 모시고 산에 오른 날 유신이 '불륜을 저지른 문희를 태워 죽인다'며 집에 장작을 쌓아놓고 연기를 피워 올려 혼인을 성사시킨 이야기 말입니다.

사연을 안 여왕이 혼인 허락을 하고, 김춘추가 즉시 집으로 달려와 장작에 불을 끄고 문희를 품에 안았다는 해피엔딩입니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김춘추가 바람둥이라서 책임지기를 거부했다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 나라의 중신이라 해도 왕가의 직계인 김춘추와 가야에서 넘어 온 가문의 후손인 김유신 사이에는 함부로 혼인할 수 없는 신분의 벽 같은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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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천관녀 이야기와 연결시켜 볼 때 이 이야기 역시 왠지 아름다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장차 왕이 될 귀인과 인척 만들기에 골몰한 성공지상주의자의 일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참 지모가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김춘추와 왕비가 된 문희는 잘 사는데, 뒷날 김춘추는 손위처남인 김유신에게 문희가 낳은 딸 중 지소 공주를 내려주어 혼인을 시킵니다. (...난감하죠.) 뭐 당시 신라의 분위기로 보아 이 정도가 큰일 날 근친혼은 아닌 듯 하고, 오히려 공주와 결혼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일 듯도 합니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유신의 아버지 서현은 만명공주와 몰래 사통을 해서 멀리 도망친 끝에 유신을 낳습니다. 이걸 봐도 김유신의 가문이 함부로 왕가와 혼인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그러니 만년에 진짜 공주와 결혼하는 영광을 안게 된 김유신은 - 비록 조카라고 해도 - 이를 절대 거부하지 않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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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과 장군의 로맨스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이야기를 보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선덕여왕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엘리자베스 1세의 이미지에 덧씌워진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만, 뭐 상상으로는 나쁠 것이 없겠죠.

사실 기록에 나타난 김유신의 모습으로 보아 만약 여왕의 남편이 될 기회가 있었다면 그를 거부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도록 해야겠죠.

어쨌든 위 사진에서 보듯 여왕마마와 유신랑의 로맨스는 저렇게 가학적인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어째 이쪽 방향으로 자꾸 상상을 하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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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자나 10화랑이 모두 등장을 하는데 다들 한 미모 하는군요. 아마도 F4에 대응하기 위한 신라시대 F10의 등장이 아닐까 싶은데(미모로 따지자면 엄포스 장군은 아무래도 좀 뒤로...), 나중에는 이쪽으로 정리를 좀 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름부터 '화랑'이니 F10이라고 해도 이쪽이 더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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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가 전혀 거북이같지 않은 걸음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는 딱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김.윤.석'.

애당초 김윤석 이외에 내세울만한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설마 '내조의 여왕'의 선우선을 보러 이 영화를 선택하신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특별히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10배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블러드' 같은 영화를 새까맣게 뒤로 제쳐 놓고 있습니다.

'거북이 달린다'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봐도 이 영화의 촌스러움이 그 한 비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북이 달린다'는 물론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만, 재미있고 재미없고를 떠나서, 분명히 이 영화의 어느 한 모서리에 관객들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김윤석이라는 뛰어난 배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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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소싸움 대회를 앞두고 있는 예산 경찰서. 이미 형사들도 치안보다는 소 싸움 대회 사무국 직원들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형사 조필성(김윤석)은 다섯 살 연상의 아내(견미리)에게 무능한 남편으로 찍힌 지 오랩니다. 형사라는 무게감? 만화가게를 차릴 때 빌린 돈의 이자 갚기도 급급한 소시민의 지위에 깔려 버린 상태죠. 촌지 봉투를 거부할 자존심 같은 건 애당초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뒤입니다.

그런데 이 소읍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탈주범 송기태(정경호)가 나타납니다. 잘생긴 용모와 5:1로 싸워도 끄덕 없는 신출귀몰한 싸움 실력이 전설이 되어 인터넷에 팬카페가 있을 정도의 인물이죠. 우연한 사고로 정직을 당한 필성은 아내 몰래 목돈을 만들려고 아내의 통장을 슬쩍했다가 어찌어찌 해서 송기태와 마주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강철중 형사도 아니고, 한낱 시골 형사가 전국 최강의 탈주범과 1대1로 맞붙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필성은 개망신을 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바닥까지 떨어진 필성의 복수, 혹은 체면 회복하기 대작전이 시작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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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가 대표하던 정서가 부산 사투리로 구현되는 '경상도 사나이'의 정서라면,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은근슬쩍 눙치고 넘어가는 충청도 사투리의 매력입니다. 물론 매우 효과적입니다. 개그맨 가운데 충청도 출신이 많다는 건 우연이 아닌 듯 합니다. 한마디로 '액션은 경상도, 코믹은 충청도' 사투리가 최고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듯 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대립의 구도를 촌스러움 대 세련됨, 중년 대 청춘, 시골 대 서울, 생활 대 낭만, 현실 대 판타지라는 식으로 선명하고 잡고 있습니다. 탈주범 신창원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송기태를 세련미 넘치는 꽃미남으로 설정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라도 중년의 시골 형사보다는 미남 탈주범을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말입니다. 이런 경우 많은 구경꾼들의 머리 속에는 어느 쪽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어느 쪽이 해가 되는 존재인지 따위는 뒷전으로 밀려 버립니다.

바로 그런 대목에서, 과연 우리가 응원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짚어 내는 것이 이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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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발맞춰 주인공 조필성이 등장합니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안 다음에도 조필성은 마지막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개발에 땀난 듯, 뜨거운 철판 위에 놓인 거북이라도 된 듯 있는 힘을 다해 달립니다. 이 조필성은 정리해고 당한 도시의 40대 가장일 수도, 한 학기 5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 때문에 자식에게 대학 진학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촌스럽고, 술이나 퍼 마시고, 배는 불룩 나온데다 머리는 숭숭 빠지고, 입만 열면 저질스러운 소리나 해 대는 그런 '동네 아저씨'들이 사실은 구멍 뚫린 아내의 팬티에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고 딸이 다니는 학교 1일 교사를 뽀대나게 치르는게 일생일대의 중대사인 아버지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어떻게든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이 사회의 주축 구성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를 더욱 가치있게 합니다.

이런 영화가 깔끔하고 똑똑 떨어지는 영화 문법을 구사해서는 정나미가 떨어질 지도 모릅니다. 촌스러울땐 제대로 촌스러워야죠. 사실 담고 있는 내용 못잖게 '거북이 달린다'의 만듦새는 그리 유려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조명은 지나치게 어둡고, 음향은 울리기까지 합니다. 90년대 초반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매무새가 희한하게도 시골 소읍이라는 공간과 잘 어울린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김윤석이 무슨 인도 액션 영화 주인공처럼 나온 이 포스터는 뭐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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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엔 '후줄근한 아저씨 연기'라면 국가대표급인 김윤석이 있죠. '거북이 달린다'를 통해 김윤석은 송강호를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또 한번 넓혔습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추격자'에 송강호가 출연했다면 아무래도 '추격자'는 소름끼치는 추격전 사이 사이에 훨씬 유머가 많이 개입된 영화가 됐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거북이 달린다'의 필성 역을 송강호가 맡았다면, 필성이 느끼는 무력감이나 좌절감은 많이 희석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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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역이 잘 어울리는 정경호를 보고 있자니 '자명고'가 더 안타까워지는군요. 그러니까 정경호가 전념해야 했던 건 '거북이 달린다' 쪽이었던 겁니다. '자명고'에서 조명과 의상에 기대기보다는 송기태 같은 캐릭터로 내실을 다져야 했던 단계였다는 게 훨씬 더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로 부각되는 두 명의 조연이 있다면 아무래도 이 분이 1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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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쪽 사진에 나오는 배우의 이름이 신정근이라는 걸 알고 계신 분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요. 사채업자나 나이트클럽 사장 역, 조폭 두목 역이 적역이었던 이 분이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싸움을 못하는 역으로 나오는 게 바로 이 '거북이 달린다'일 겁니다.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가 이 분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누가 5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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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은 사진 왼쪽의 김희원. 필성의 후배인 특공무술 사범 역을 맡아 그리 길지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연기로 이 영화에 힘을 불어 넣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될 분인 듯 합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전국에 있는 어깨 처진 아저씨들을 위한 응원가입니다. 절대로 '젊고 잘생긴 놈들'과의 경쟁에서 포기하지 말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물고 늘어지라는 격려의 박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의 그런 분위기가 가끔 바퀴벌레도 지나가는 비닐 장판처럼 관객들을 쩍쩍 달라붙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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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네.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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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선우선은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화면에 나오는 것 만큼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내조의 여왕'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도 '어, 저 배우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는 충분히 해 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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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씨가 또 책을 냈습니다. 꽤 여러 권 내셨는데 하고 찾아보니 벌써 여덟권째랍니다. 여덟번째 책의 제목은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더군요. 그런데 내용 중에서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김혜자씨입니다.

김혜자 선생과 김수미 선생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예계 종사자들에게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TV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이들 두 사람이 언니 동생 하는 절친한 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김혜자 41년생, 김수미 51년생. 10년 차이지만 두 분이 얘기할 때 보면 참 격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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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전원일기' 시절 방송국에 나가 분장실에 들러보면(당시에는 여자 분장실에도 기자들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작가 김정수 선생과 두 분이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쉴새없이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두 분에 대한 얘기라면 들을 만큼 들었고,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에 대한 글은 오래 전에도 한번 쓴 일이 있는데, 필요한 부분만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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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크쇼에 김혜자와 김수미가 나란히 출연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김수미가 김혜자에게 물었다.
-수미: 언니,
김치 담글 줄 알아?
-혜자: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이며) 몰라.
-수미: 김치 담가 보긴 했어?
-혜자: (벌써 웃음이 나와 허리가 꺾어진 상태) 아니, 안 해봤어.
-수미: 그런 사람이 무슨 한국의 어머니야? 난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웃겨 죽겠어.
김혜자는 김수미보다 나이로 10년, 연기로 9년 선배다. 그런데도 참 스스럼없다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 어머니'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달리 누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만큼 두 분의 사이가 돈독하고, 또 서로를 잘 아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번 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에서는 또 한번 두 분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굳이 요약을 하느니, 그 부분을 직접 옮겨 보겠습니다.

김수미 선생은 한때 연기자로서의 수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빙의현상으로 자살충동을 느꼈고, 연기 생활을 그만두겠다며 삭발을 하고 다니기도 했었죠.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도 책에 나옵니다만, 아무튼 여기서 그런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한 직후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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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병세가 나아져서 다시 재기할 무렵,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가족이 손을 놓고 틈만 나면 죽을 생각뿐인 나에게만 매달렸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전엔 지점장이 맨발로 뛰어나오던 은행은 이제 지랄을 하고, 작가 김정수 선생님과 고두심, 나문희 언니에게 몇 백만원씩 꾸어 급한 일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사업을 수십년 한 남편은 어디서 일억도 구해오지 못했고 몇백억 자산가인 시누이도 모른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너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만 원씩 꾸지 말고, 필요한 액수가 얼마나 되니?" 하셨다. 언니는 화장품 케이스에서 통장을 꺼내시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 나면 그때 주든가" 하셨다. 나는 염치없이 통장 잔고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모든 은행 문제를 해결했다. 언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렇게 못한다.

얼마 전 언니가 아프리카에 가신다고 하기에 나는 언니가 혹시 납치되면 내가 가서 포로 교환하자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당시 외국에선 한국인 선교사들의 납치 사건이 있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나는 무조건 간다. 꼭 가고야 만다.
(이하 생략)

네. 과연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책에는 이 얘기 말고도 생판 모르는 모녀가 빨래 하기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세탁기를 사주는 얘기, 불우 아동을 돕는다고 덩치만한 옷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남대문 시장을 헤매던 얘기 등등 김혜자 선생의 남다른 마음 씀씀이에 대한 얘기가 줄곧 나옵니다. 하지만 참 이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얘기는 심히 감동적입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람을 사귀고, 자기 아닌 남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아무런 잇속을 따지지 않고 남에게 뭔가를 해 주고 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아니,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가 되어서도 네 맘 내 맘을 혼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장 '철없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곤 하죠. 심지어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우리 집 가훈은 '보증 서지 마라'다. 내가 혹시 서 달라고 해도 빚 보증은 서지 마라"라고 농담 섞인 교훈을 남긴다는 것도 이런 세태를 보여주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도 참 내 통장을 바로 꺼내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시 한번 경악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제가 아는 바로 그 김혜자 선생이라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갑자기 올 연초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때, 약간 섭섭하게 해 드렸던 일이 갑자기 죄책감으로 다가오더군요. (선생님, 다음번엔 절대 그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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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는 김혜자 선생 말고도 수없이 많은 동료들에 대한 일화가 소개돼 있습니다. 김수현 작가에 대한 서운함을 얘기하려다 과음해서 유인촌 장관의 차에 실례를 한 이야기, 의외로 대식가라는 황신혜 이야기, 부인 상을 당한 조용필에게 게장을 싸 가 밥을 먹인 이야기, 은근히 사위감으로 눈여겨 봤던 유재석 이야기 등등 다른 사람 같으면 이렇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할 법한 얘기들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p.s. 아무래도 책이 잘 팔리면 '개콘'의 한민관에게 좀 떼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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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2009 외인구단'이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있습니다. 40대 정도의 시청자 중에는 원작 만화는 거의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외우다시피 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만, 드라마 시청률은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습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경제 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가벼운 이야기 쪽에 눈과 귀를 기울이게 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가 21세기의 풍조와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원작을 뜯어 다시 드라마를 만든 솜씨가 어쩐지 허술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가장 안됐다 싶은 사람은 주인공 까치 역을 맡은 윤태영입니다. 윤태영이 까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은 분도 아마 별로 없었을 겁니다. 그동안 윤태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까치 오혜성이라는 주인공에서 겹쳐지는 부분은 별로 없는게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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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첫번째 이유는 윤태영이든 누구든, 까치 오혜성 역할을 한다고 나섰을 때 어떤 한 사람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1986년의 최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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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야인시대'의 마루오카나 지금 방송중인 '천추태후'의 강조를 통해 최재성을 알 젊은 시청자들에겐 황당무계한 얘기겠지만 당시의 최재성은 지금의 조인성이나 송승헌이 부럽지 않은 초절정 꽃미남 스타였습니다. 거기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반항아 특유의 눈빛은 여성 관객들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죠.

그 시절을 못 본 분들을 위해 퍼왔습니다. 왕년의 '외인구단' 주제가로 한창 유행했던 정수라의 '난 너에게' 뮤직비디오입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 '.



그렇기 때문에 윤태영에게 가해지는 평가에는 좀 부당한 요소들이 많이 개입해 있다는 게 사실입니다. 워낙 원작과 영화판의 최재성이 동일시되는 까닭에, 다른 사람을 그 이미지에 덧씌우기가 쉽지 않은 거죠.

사실 윤태영의 노력은 이미 촬영 전, 1년 전부터 시작된 야구 트레이닝에서부터 잘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이 준비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윤태영은 몸 만들기를 했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긴, '아르바이트로 연기하는거죠?'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던 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전-현직 야구인들의 도움으로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고, 그 결과 직구 최고 시속이 120km를 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일반인이 130km의 공을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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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되는 '외인구단'을 보고 있으면 그 고생이 절로 느껴집니다. 방송이 시작된 뒤로 장염에다 크고 작은 부상까지 겹쳐서 발병해서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까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살을 뺀 뒤라 더욱 수척하게 보입니다. 나이들어보인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으면 참...

물론 윤태영에게도 장점이 있습니다. 영화판의 최재성에 비해 훨씬 진짜 선수같다는 것이죠. 실제 윤태영의 체격은 야구선수로 직접 나선다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탄탄합니다.

연기력 부분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1980년대 중반의 최재성은 '얼굴로 사는 배우'였죠. '외인구단'에서는 워낙 적절한 이미지 때문에 그냥 넘어갔지만 연기력은 사실 크게 기대할 게 없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윤태영의 연기가 훨씬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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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니뭐니해도 2009 외인구단이 영화판에 비해 갖는 강점이라는 것은 CG의 힘입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 5, 6이 어찌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1, 2, 3과의 CG 차이죠.
영화판을 만들던 시절의 제작진은 투수가 던진 공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투명한 아크릴 판 위에 야구공을 올려 놓은 다음 회전하는 모습을 찍어 보자는 식이었죠. 당연히 써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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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판 외인구단은 철저하게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특수효과(?)라면 검도 사범 출신의 나한일을 외팔이 최관 역으로 기용한 것이죠. 검도인답게 나한일은 한팔로 배트를 잡고(자세히 보면 짧습니다) 공을 쳐내는 연기를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2009년 드라마에서는 이 역할을 야구선수 출신 이정준이 맡았다더군요.

영화판을 통해선 나한일 외에도 하국상 역의 권용운, 조상구 역의 조상구(아예 이 배역때문에 이름을 바꿨습니다) 등이 데뷔했죠. 이 조상구씨는 외화 번역가로 이름을 떨치기 전에 다른 한 편의 이현세 원작 영화에서 오혜성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옥의 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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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과 드라마 '외인구단'의 공통점이라면 최대한 유명 연기자의 캐스팅을 피하고, 무명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인생 역전을 노린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실제 생활에서도 외인구단'이라는 것이죠.

드라마 '외인구단'의 실패와 극장판 '외인구단'의 성공 사이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원작에 대한 태도입니다. 영화판은 물론 20여년 전의 작품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최대한 살리고, 새로운 에피소드의 추가를 기피했습니다. 가능하면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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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라마는 가능한 한 많이 뜯어고치겠다고 작정한 듯한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까치와 마동탁이라는 주축 캐릭터는 물론이고 이해할 수 없이 커진 현지의 비중, 지지부진한 진행 등은 원작에 대한 경외심의 부족과 함께 대체 원작이 왜 성공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일 뿐입니다.

드라마 '외인구단'은 오우삼의 '적벽대전' 상-하편과 함께 전설적인 원작을 무시하고 사소한 잔재주에 의존한 결과가 어떤 재난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남을 듯 합니다. 윤태영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땀방울은 대체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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