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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교황청이 폭파 위협을 받는 동안 진짜 교황까지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영화 '천사와 악마'가 개봉하는 주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중동 지역을 순방하면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유태인들을 하나로 묶는 '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물론 현 교황은 지금까지 입만 열면 사고를 쳐 온 터라 이번 중동 방문을 놓고도 우려가 엇갈렸습니다. 심지어 '교황은 반유태주의자다' '지금이 십자군 전쟁 때인 줄 아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적이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번 중동 방문은 자칫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별 무리 없는 순방을 마쳤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언론들은 "끝내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독일의 책임을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고도 보도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히틀러 유겐트라고 불리는 나치 청년단체의 활동 경력이 있는 것으로 꼽히는 인물인 만큼, 더욱 그런 언급이 필요했겠죠.

사실 평소 여기로 가져오던 글들에 비해 좀 무겁습니다. 어쩔까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아카이브의 의미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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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시대

14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중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톨릭에 의해 탄압당한 중세 과학자들의 후손들이 바티칸을 상대로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의 반성을 은근히 촉구하는 이 영화가 전 세계에 공개될 무렵 진짜 교황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방문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에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스라엘 측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고, 베들레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국가 설립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경의를 표한 셈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은 천주교 교단의 입장에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교황청은 이미 1965년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 즉 노스트라 아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라는 뜻의 라틴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교·힌두교·이슬람교·불교 등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아 배격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그 정신에 역행하는 보수적인 행보로 이미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추기경이던 1990년에는 과학자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지목했던 당시 교황청의 조치를 지지해 물의를 빚었고, 2006년엔 이슬람 비하 발언으로 아랍 국가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더욱이 올 연초엔 공공연히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 1988년 파문당한 네 성직자를 복권시켜 국제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그런 베네딕토 16세인 만큼 이번 방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긴장감이 흘렀지만 교황은 15일 별 무리 없이 일정을 마쳤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유럽 각국 군주들에게 “보병이든 기사든, 가난뱅이든 부자든,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악의 종족을 무찌르라”고 소리 높여 외친 뒤로 수백 년간 중동은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피로 물들었다. 그 성지에서 900여 년 뒤의 후임 교황이 평화를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 아직 존중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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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스트라 아에타테, 즉 '우리 시대'의 정신이란 간단히 말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 사이의 반목이나 대화의 단절, 상호 배타적인 입장의 철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화 발전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 문서가 2221대 81이라는 표차로 채택된 것은 인류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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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아무리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해도, 그 전임자들을 두루두루 훑어보면 꽤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중세의 교황들이 바라보던 유럽의 군주들은 비록 기독교도라고는 하나 사랑의 실천보다는 전투의 영광을 더 높이 사는 인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르반 2세가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구원 요청을 받고 1095년 십자군 파병을 제안한 동기중의 하나가 "같은 기독교도 끼리의 살육을 좀 막아 보자는" 것이기도 했다니 말 다 했죠. 물론 이런 동기에도 불구하고 뒷날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꾀임에 빠져 당시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격분했고 책임자들을 파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어차피 성지로 가서 이교도와의 싸움에 참가하면 다시 사면해줘야 할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의 무수한 교황들 역시 평화 유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에도 2차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피우 12세는 "은근히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지지했다"는 음모설에 시달리기도 했죠. 물론 이 음모설은 거의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유력한 유태인 단체들은 피우 12세의 노력이 없었으면 유태인 희생자들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의 수호자보다는 분란의 기원으로 더 잘 어울렸던 교황이 중동 평화를 위해, 타 종교인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저 글을 쓰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동영상이었습니다.



보고 나면 참 씁쓸합니다. 대체 언제쯤 이런 모습을 안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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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호평받은 미국 '타임'의 리뷰에는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는 누구나 박찬욱 감독을 말할 때면 '복수 3부작'을 얘기하곤 하죠. 잘 아시는 대로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복수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DVD세트가 나와 있을 정돕니다.

사실 어느 정도 박감독에게 관심이 있는 팬들이면 이 '복수 3부작'이라는게 처음부터 존재했던 구상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하지만 어느새 박찬욱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이 되면서, 마치 이 '3부작'이 처음부터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예정됐던 작품인 것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생긴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랄까요.

물론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박감독 본인입니다. 하지만 처음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 때만 해도 '3부작'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2003년 11월, '올드 보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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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감독은 머잖아 다시 털어놓습니다. "솔직히 그냥 우발적으로 한 얘기였다. '올드 보이'를 만들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온갖 기자들이 죄다 '왜 또 복수 얘기냐'고 묻길래 그냥 아예 '복수 3부작을 채울 생각이다'라고 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쩌다 보니 다음 작품이 진짜 복수를 소재로 한 '친절한 금자씨'가 되는 바람에 결국 3부작이 채워진 셈입니다. 반면 이번 '박쥐'는 '올드 보이'보다도 훨씬 먼저 구상했던 작품이지만 뒤로 미뤄진 거였죠.

세 편의 영화는 복수라는 주제 외에는 그리 비슷한 데가 없습니다. '올드 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지만 '복수는 나의 것'은 형식과 플롯, 그리고 다양한 함의를 갖춘 낯선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이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익숙지 않은 데서 오는 자극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쥐'를 본 사람들 가운데서도 '복수는 나의 것'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2002년작인 '복수는 나의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도 나중의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옛날 영화'인 듯한 대접을 받곤 합니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본 사람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박쥐'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복수는 나의 것'이 다시 생각나서, 예전에 써 뒀던 리뷰를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다른 게시판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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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들은 내용은 '엄청나게 잔인하다' 였고, 그 다음은 '뭔지 모르겠어, 이상해'였다. 그리고는 극장에서 보려고 짬을 내다가 어느날 보니 개봉관에서 사라져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체질상, 그리고 그가 살아온 영화 인생상 '흥행 감독'이 되기 힘든 사람이다. 차라리 임권택은 될지언정 강우석은 절대 될 수 없다. 그런 그가 'JSA'라는 영화 때문에 온 영화계의 기대(물론 여기서 '기대'란 '대박 기대'를 말한다)를 짊어지게 된 것도 약간의 넌센스다.

물론 정작 본인은 그런 기대에 크게 구애당하지 않는 것처럼, 즉 "누가 너네보고 언제 기대하래?"라는 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분이 직접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영화는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유쾌해하는 놈이 있다면 당장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무척 재미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영화다.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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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유괴범에 대한 영화다. 그럼 유괴범이 죽일 놈이고, '복수'하는 애 아버지가 착한 사람이냐, 그렇지는 않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계급간의 몰이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원초적으로, '남의 살의 아픔에 대한 무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장기밀매범들이 '남의 살'에 대해 생각한다면 신장만 떼낸 채 신하균을 길바닥에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역시 '남의 고통'을 안다면 장난이거나 선의라도 남의 딸내미를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며, 사장인 송강호 역시 기주봉의 온 가족이 그렇게 될줄 알았다면 함부로 사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착한 동생'의 정체를 안 다음 상품 걱정부터 하는 아나운서도 없을 거다.

그럼 또 그게 모르는 사람 쪽의 잘못이냐. 꼭 그렇지도 않다. 심지어 누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착한 동생 신하균조차 고통에 몸부림치는 누나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라면이나 먹고 있게 된다. 이건 그가 나쁜놈이라서 아니라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아닌 옆집 총각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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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시각은 대단히 구조주의적이다. 사람은 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기의 입장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갈등은 필연적이고, 해소는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는 개개인의 입장으로 문제를 치환시키지만, 넓은 시각에서 보면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 '피'를 볼 수 있는 긴장이 내재돼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6.25 이후 만들어진 한국영화중 가장 위험한 영화다. (심지어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대체 그 영화들을 몇명이나 봤냐.)

때로 자신의 계급을 망각하고, 이런 갈등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순간의 송강호, 즉 "너, 착한 놈인거 안다"라고 말하는 송강호가 그렇다. 그러나 그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섣불리 관용을 취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와 신하균은 이미 충돌을 예상하고 달리는 기차다. 그리고 복수를 하건 안 하건, 그에게 남은 길은 어차피 파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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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때로 섬뜩하면서도, 때로 코믹하게 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무표정한 유머'의 힘이다. 특히 배두나가 말하는 "아저씨, 백 퍼센트야. 정말이야."가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야말로 관객은 기절할 정도가 된다.

(여기에 대해 박감독은 "아무리 평소에 뻥 치고 다니는 애들이라도, 그 말을 허투루 들으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딱 저런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화는 시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평론가 출신 감독'이라는 딱지 만큼이나,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볼 것인가...'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명료하기보다는 약간 고의적으로 초점을 흐린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 고상하게 말하자면 '해석자의 공간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겠고, 좀 천박하게 말하면 '너무 뻔히 다 보이는 영화'라는, 먹물들의 비틀린 비난을 피하려는 세련된 몸놀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상태에서도 '복수는 나의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영화다. 특히나 이런 영화를, 송강호나 신하균 같은 재능있고 비싼 배우들을 데리고 만들 수 있다는 건 그의 행운이기도 하다.

다음번엔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지가 자못 궁금하다. 갑자기, 예전에 한 10분 보다가 만 '삼인조'를 어디 가면 다시 볼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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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단역진은 꽤 화려합니다. 아나운서 역으로 이금희씨가 나오고, 장애인 역으로 류승범이 나옵니다. 사실은 형인 류승완 감독도 배달원 역으로 잠깐 나오죠. 신하균이 맡은 류 역의 이름은 '류완범'이라고 돼 있는데 이게 아예 류승완-승범 형제의 이름을 하나로 합친 거라는군요.

이밖에 이 영화 얘기를 하자면 오광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봉고차를 타고 달려온 일행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었죠.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밖에 정재영도 나온다고 하는데 무슨 장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다시 찾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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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영화의 영화 제목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영어 제목은 'Sympathy for Mr. Vengeance'죠. 그냥 직역하면 'Vengeance is Mine'이겠지만 아마도 이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와 제목이 똑같아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제목이 바로 저 제목이고, 이 제목이 해외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자 아예 '친절한 금자씨'의 영어 제목도 'Sympathy for Lady Vengeance'로 붙여집니다. 이때는 이미 세 편의 영화가 모두 나온 뒤였으니까 '3부작'으로서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데 아무 하자가 없는 셈입니다.



p.s. 그러고보니 요즘 유행하는 '백프롭니다'의 원조가 배두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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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극찬을 날렸습니다. 이어지는 분위기가 너무나 뜨겁습니다. 칸에서 열린 '박쥐' 상영 때에는 온 관객이 10분간 기립박수를 쳤다는군요. 심지어 타임의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마지막날 뭔가 상을 타고 말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칸 영화에제 공식 초청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초청은 됐지만 수상이야...'하는 게 국내의 중론이었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워낙 화려한 감독들이 총출동한 분위기라서 무슨 상이든 받는다는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주목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5일자 '타임'에 실린 '박쥐' 리뷰입니다. 글에서도 흥분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링크를 하면 안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그냥 전문을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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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A Priest Becomes a Vampire
http://www.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898196_1898204_1898882,00.html


러브 스토리를 고를 거라면 기왕이면 미친 러브 스토리를 골라라. 키워드는 이렇다: 환락, 고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체액(주로 피). 박찬욱은 DVD 전문가들에겐 '복수 3부작'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감성적 폭력물의 숙달된 대가다. 그는 요즘 한창 뜨고 있고, 그리 기괴하지는 않은 한국산 심리 액션 영화 장르의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박쥐'는 -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아주 매혹적인 한 줄의 광고 문구와 더불어 - 박찬욱의 작품 중 가장 풍성하고, 가장 미친 듯 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성숙한 영화다.

If you're going to do a love story, make it a mad love story. Get down into the essentials: ecstasy, pain and all the bodily fluids, especially blood. Park Chan-wook, best known to DVD connoisseurs for his Vengeance trilogy, is a past master of emotional violence. He's the soul of South Korea's vigorous, not to say kinky, psychological action movies. And Thirst — with its irresistible one-line sales pitch: a priest becomes a vampire — is his richest, craziest, most mature work yet.

신부 상현(한국의 슈퍼스타 송강호가 연기하는)은 친절하면서도 깨인 천주교 사제다. 그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마지막 기도를 낭송해주며, 한 고민하는 간호사의 고해성사에서 속죄를 위해 성모송을 20회 외우고,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고, 항우울제를 먹어 보라고 권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 심각한 채찍질 고행자여서 솟구치는 성적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허벅지를 내리친다(박찬욱의 '올드보이' 역시 좀 도가 지나친 자해행위를 자랑한 바 있다). 그는 고행을 통해 온 세계를 구원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그 소명은 그로 하여금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의학 실험으로 이끈다. 그 실험을 받은 다른 모든 사람은 죽었다.

Father Sang-hyun (Korean superstar Song Kang-ho) is a Catholic priest who's both caring and modern. He intones the last rites over terminally ill patients at the local hospital, and in confession he gives one troubled nurse the penance of 20 Hail Marys, a walk in the sun and a recommendation to take antidepressants. He is also a serious flagellant, whipping his thighs in mortification to suppress sexual urges. (Park's Oldboy also boasted more than its share of self-mutilation.) He has a Christ-like desire to save the world through suffering, and that vocation leads him into a medical experiment with dire effects: everyone else who's undergone it has died. (See pictures of the Cannes 2009 Red Carpet.)

그 실험 - 도대체 말이 안되지만 상관없다. 이건 공포영화니까 - 을 통해 혼자 살아남은 바람에 그는 소수의 신도 집단으로부터 모든 병증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상현의 허약한 학교 동창생 강우(신하균)의 희망이기도 하다. 강우는 괄괄한 성격의 엄마(김해숙),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음울한 젊은 아내 태주(김옥빈)와 함께 살고 있다. 가족이 몰랐던 것은 그 훌륭한 신부가 실험 참여로 사소한 부작용-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그는 가로등을 구부러뜨리고, 높은 담 위를 오르는 등의 장점도 얻지만, 이런 모든 장점은 단점에 비해 별 소용이 없다. 그에게 필요한 식량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병원으로 침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신부복을 입은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환자의 링거 호스를 통해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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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eriment — makes no sense, doesn't matter, this is a horror movie — is one he somehow survives, making him a figure of veneration to a small cult believing he can cure all ailments. That's the hope of Father Hyun's feeble school chum Kang-woo (Shin Ha-kyun), who lives with his termagant mom (Kim Hae-sook) and his strangely silent, sullen young wife Tae-ju (Kim Ok-vin). What the family doesn't know is that the good father has picked up a little side effect of the experiment: vampirism. The condition's benefits — he can bend lampposts, scale high walls — don't always outweighs its liabilities. The food supply he needs is hard to find in the local market. So, as you walk unawares into a hospital room, you might find a man in a collar and cassock supine on the floor, sucking the blood from a patient's IV bottle.

태주야말로 이 동정의 뱀파이어에게 딱 맞는 바로 그 여인이란 점이 드러난다. 성적 긴장감이 팽배한 한 긴 신에서, 그녀는 상현에게 키스하며 거의 그를 유혹에 빠뜨린다: 반면 그는 그녀의 매력과 그의 탐욕스러운 새로운 본성을 알아차리고, 두 남녀는 합방에 이른다. 이 관계로 인한 과도한 황홀경(ecstatic excess)은 영화의 후반부를 결정짓는다. 신성하기도 하면서 미치기도 한 이들의 사랑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 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은 성찬식때 사제의 말을 연상시키는 '이것은 나의 피'다 - 그들과 함께 미쳐간다. 캐릭터들의 강박관념을 혼합시키며, 장르상의 구속을 여지없이 풀어 버리며, 관객들에게 미친 것이 영화인지, 아니면 관객들 자신인지를 묻는 이 작품을 보는 것은 꽤나 해방감을 준다. 올해 하반기에 미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조언은 "'박쥐'가 미친듯이 달릴 때 당신도 같이 미치라"는 것이다.

Turns out that Tae-ju is just the woman for this virgin vampire. In one long scene of sexual tension, she kisses Hyun and nearly seduces him; in another, he acknowledges both her attractiveness and his rapacious new nature and they consummate their relationship, one whose ecstatic excess will define the rest of the film. Their love is both sacred and insane: sacra-Mental. And the movie — whose French title translates as the liturgically evocative "This Is My Blood" — goes mad with them. It's liberating to watch a film that melds with the obsessions of its characters, that strips the moorings from genre expectations and leaves viewers asking whether the film has lost its mind or they have. Our advice to those who see Thirst in its U.S. release later this year: when Thirst goes nuts, go with it. (See the top 10 Cannes Film Festival movies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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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쉬리', '반칙왕', '살인의 추억', '괴물', '밀양'과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이 배우는 트레이드마크인 둔감함(stolidity)을 통해 포복절도할 코미디에서 맹렬한 마초 역할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어울려 왔으며, 자신의 몸에 침투한 충동과 싸우는 신부 상현의 금욕적인 투쟁을 연기하는 데 있어 매우 적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의외의 발견은 바로 22세의 아름다운 김옥빈이다. 그녀는 침묵으로 순종하며, 그리고는 열정을 추구하고, 그리고는 폭발하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태주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 아니, 아예 그 인물 자체다. 그녀는 채털리 부인과 맥베스 부인이 하나의 우아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형태로 결합한 것 같다.

Song Kang-ho has starred in many of the films that mark the Korean renaissance: Shiri, The Foul King, Memories of Murder, The Host, Secret Sunshine and Park's Joint Security Area, Sympathy for Mr. Vengeance and Lady Vengeance. The actor's trademark stolidity, which lends itself equally well to deadpan comedy and high-voltage macho roles, is a suitable vessel for Father Hyun's stoic battle against the impulses that have invaded his system. But it's the lovely Kim, just 22, who is the revelation here. She can play — no, she can be — a creature of mute docility, then searching ardor, then explosive eroticism, then murderous intent. She is Lady Chatterley and Lady Macbeth in one gorgeous, smoldering package.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Double Indemnity)'과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의 플롯 요소에다 프란시스 코폴라가 '드라큘라'에서 보여준 농익은 관능을 더한 이 영화는 이번 칸 영화제의 평론가들에게 놀라운 기쁨으로 충격을 주었다. 마치 그들이 (역주:뱀파이어에게)달콤하고 육감적인 목 물림을 당한 듯이 말이다. 이 영화가 폐막식 날 뭔가 중요한 수상을 할 것임은 거의 보장돼 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지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 우수성으로 볼 때 '박쥐'는 그보다 더 큰 상을 받을 만 하다. (끝)

Blending plot elements of Double Indemnity and Natural Born Killers with the ripe sensuality of Francis Coppola's take on Dracula, the film has made festival critics sit up in startled pleasure, as if they'd just received the most luscious neck-bite. It's almost guaranteed to get an important citation on closing night. Park's Oldboy won the Grand Jury Prize, the second-place award here at Cannes, in 2004. On its merits, Thirst should do bett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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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너무 심한 격찬(?)이라 오히려 뭐가 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글을 쓴 리처드 콜리스(Richard Corliss)는 이번 영화제에 대해 타임에 기고한 다른 글, 'Cannes 2009: Great — or the Greatest — Festival?'에서 수많은 거장들과 명배우들의 등장으로 이번 칸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이번이 칸 영화제만 36번째 방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베테랑 평론가의 말이니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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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는 이번 61번째. 그 절반 이상을 참여했다는 얘기군요. 이 글은 아내이며 역시 평론가인 메리 콜리스와 함께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For two TIME.com critics, this is our 36th festival on the Cote d'Azur.'라고 되어 있으니 어쩌면 36회에서 몇번쯤 빠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후덜덜한 숫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09 칸 영화제에 대한 개괄 형식인 이 글은 http://www.time.com/time/arts/article/0,8599,1897891,00.html)

아무튼 콜리스는 그 글에서도 박찬욱, 미하엘 하네케, 마르코 벨로키오, 알랭 레네를 이번 칸을 빛내는 선두 거장들로 꼽고 있습니다. 이들 넷을 가장 먼저 꼽은 다음에야 이안, 샘 레이미, 페드로 알모도바르, 퀜틴 타란티노와 제인 캠피언을 꼽을 정도로 우리의 박찬욱 선생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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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드보이' 때의 이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불과 5년 전인데 당시만 해도 박찬욱 감독이 이상할 정도로 어려 보이는군요.^^

일전에 썼던 '박쥐'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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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이 첫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바로 '텐프로(룸살롱) 아가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그 방송입니다. 시청률은 동시간대에 방송된 세 프로그램 중에서 꼴찌를 했습니다.

'텐프로 아가씨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인터넷은 들끓었습니다. 꽤 인기있다는 연예 블로거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더군요. 한마디 하고도 싶었지만 방송을 볼 때까지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텐프로 아가씨'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대체 '텐프로 종사자'가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까? 그 방송이 그 '텐프로 종사자'를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다루는지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욕부터 하는 것이 온당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5일, 이 프로가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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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김시은(가명). 현재 대학생이고 텐프로 룸살롱에 나가고 있습니다. 텐프로 룸살롱이라는 세계는 사실 이 세상에 있는 90%의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계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위 최고급 룸살롱이라는 '텐프로'에 나가거나, 변두리 대폿집에 나가거나, 술집여자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웃음과 교태, 때로는 몸을 파는 가격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텐프로'에 가는 손님이나 업소 종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님들은 손님들대로 그런 비싼 술값을 감수하고 그런 업소에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엘리트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게 보통입니다. 마찬가지로, 종사자들 - 즉 '텐프로 아가씨' 들 역시 자신들이 최상위의 엘리트들만을 상대하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런 업소에 가는 손님들 - 거액의 술값을 지불하는 그 사람들 - 가운데는 이런 아가씨들과의 성적인 관계를 '사귄다'고 포장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방송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왔지만, 돈과 명품 선물, 심지어 살 집까지 제공해주며 갖는 성관계를 '사귄다'고 지칭하는 것은 일반인들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얘깁니다. 이처럼 이 세계의 사람들과 바깥 세계의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만만찮은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에 나온 김시은씨는 그런 기만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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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침반'의 패널들은 나름대로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이행했습니다. 김시은씨는

"월 1000만원 정도 벌어서 700만원 정도 쓴다"

"가게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다. 평균잡아 월 400만원 정도를 용돈으로 받고 있다. 그래도 나는 '오빠'에게 내가 300만원 정도를 쓰기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 그를 만나는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텐프로 아가씨들? 그 사람들은 스폰서를 만난다"

"집에서 받는 용돈은 고작 70만원 정도 뿐이다.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집세는 누가 내 주나? 공주만 택시를 타고 다니는 건 아니다"

는 식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해서 패널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아마 절대 다수 시청자들도 분개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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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이 느꼈을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 사람은 김어준씨였습니다. 김시은씨의 논리를 가장 잘 파헤친 사람은 단연 김어준씨였죠. 물론 방향을 잘못 잡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패널1: 혹시 그 일을 하면서 보람같은걸 느낀 적 있나
김시은: 뭐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을 위로해줬다든가 할때...
김어준: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하러 업소에 나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김시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것도 이유 중 하나로...
김어준: 생각해보라. 돈을 안 줘도 가게에 나가서 술마시는 손님들을 상대하겠나?
김시은: 오빠(김어준을 지칭)는 돈 안 줘도 이 프로에 나오시겠어요?

네. 이런 부분은 좀 논리의 부족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돈을 안 받고 환자들의 고민을 들어 주지는 않죠. 위 대화에서도 보듯 김시은씨는 만만찮은 '말빨'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법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만 했습니다. 논지를 슬쩍 슬쩍 비껴가는 교묘한 화법이었죠. 김어준씨는 "핵심적인 비판은 슬쩍 흘려보내는 화법이다. 말하는 태도를 보니 술집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김시은씨도 "그 말이 가장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날 대화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스스로 술집에 나가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의 논리를 들어 합리화하고 있지만 정작 "술집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 이것이 그녀의 모순을 요약해서 보여준 대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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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황금나침반' 첫회의 룸살롱 아가씨 출연은 제가 보기엔 할만 한 방송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대체 정신이 어떻게 박혔길래 멀쩡한 여대생이 룸싸롱에 나가냐"고 혀를 끌끌 차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박혔는지'를 알 기회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얼마나 황당무계한 논리가 있는지 들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비판과 함께라면 말입니다.

게다가 당사자의 나이가 23세.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황금나침반' 첫회는 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텐프로'라는 기형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 23세의 한 개인에 대한 조언이라는 두 개의 차원 사이에서 비교적 적절한 균형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김제동이라는 MC가 자기 몫을 다 했다는 얘기도 됩니다. 단지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에 그런 조언과 비판이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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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어준씨와 다른 패널들 사이의 기량 차이가 너무 심했습니다. 다섯 패널 가운데 자기 역할을 다 한 사람은 김어준 김현숙 두 사람 뿐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별 존재감이 없었고, 특히 요즘 유난히 포장되고 있는 이외수씨는 대체 왜 앉아 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젊어서 아내가 술집에 나간다면 말렸을 거다. 지금 아내가 술집에 나간다면 대 환영이다"라는 식의 얘기를 유머라고 하고 있는 이외수씨의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오더군요.

결론적으로, '황금나침반'의 텐프로 아가씨 출연은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막연히 비판받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 방송은 '텐프로 아가씨'를 돈 잘 버는 신세대 직장인으로 묘사하지도 않았고,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비판의 초점을 놓쳐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방송된 '바람둥이 남자' 쪽에 비판의 여지가 훨씬 많더군요. 별로 관심 갈 만한 얘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p.s. 그나자나 케이블TV에서 방송중인 '화성인 바이러스' 팀이 참 박탈감을 느끼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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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목요일 밤이 즐겁습니다. SBS TV '시티홀' 때문입니다. MBC TV '신데렐라 맨'과 KBS 2TV '그저 바라보다가'도 각각 화려한 캐스팅과 나름대로의 매력으로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시티홀'이 갖고 있는 화려한 '대사빨'의 마력 앞에는 한수 양보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 예상했던 일이지만, 김은숙 작가는 이번에도 또 해냈습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도다리라도 칼잡이를 잘못 만나면 손님의 타박을 면할 수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시티홀'의 호조는 그 맛깔나는 대사를 착착 입에 붙게 소화해내는 차승원과 김선아의 매력에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다고 봐야죠. 특히 코믹 연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질 리 없는 차승원이 김선아가 마음대로 특유의 오버 액션을 펼칠 수 있게 조용히 받아주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호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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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의 출발점은 어찌 보면 그리 독창적이지는 않습니다. 일개 민초의 눈으로 소위 '잘 나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나라를 형편없이 다스리고 있는지를 통쾌하게 비판하고 풍자하자는 생각은 그리 새롭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방송 전부터, 이 드라마의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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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닙니다.^^ 기무라 다쿠야가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에서 어찌어찌하다가 일본 총리가 되는 이야기, 바로 지난해 5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체인지(chang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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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빠글 파마 머리로 초등학생들과 씨름하고 있던 아사쿠라 게이타(기무라 다쿠야)는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출마하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습니다. 망설이던 아사쿠라는 출마하자마자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에 꽤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일본 정치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천재 선거 전문가 니라사와(아베 히로시)의 도움으로 당선됩니다.

아사쿠라의 상품성을 알아본 일본 여당의 실력자 간바야시(데라오 아키라)는 아사쿠라를 일본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깜짝 총리로 만들었다가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간바야시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어 버린 아사쿠라. 하지만 일단 하면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의 아사쿠라는 간바야시의 생각대로 허수아비가 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일본을 바꿔 나가려고 노력하죠. 여기서부터 아사쿠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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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드라마 사이의 공통점은 '정치라곤 아무 것도 모르던 평범한 사람이 어느날 권력을 쥐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 정도입니다. 이런 설정을 가져오면 당연히 '부패한 기존 권력의 거두' 캐릭터가 나오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지만 그리 타락하지는 않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1+1=2가 될 것처럼 당연한 일이죠. 드라마 '체인지'에서 조력자라면 니라사와 역의 아베 히로시, 권력자라면 간바야시 역의 데라오 아키라가 대표적입니다.

전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시티홀'의 구상에 '체인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시티홀'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 것은 '체인지'의 약점을 극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체인지'는 아사쿠라라는 인물의 수직상승폭이 너무 크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단조로우면서도 황당무계해지는 약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티홀' 팀은 김선아를 대통령을 만드는 대신 시장 정도로 조정한 듯도 합니다.

부언하자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사쿠라가 얻은 지혜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건 좀 너무 비약이 심해서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김선아가 10급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지혜는 충분히 인주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이용될 수 있겠다는 것이 시청자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죠. (물론 시장은 아무나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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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봐 거듭 강조하지만, 발상 자체는 그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시티홀'이 성공적인 드라마인 것은 발상 때문이 아니라, 디테일과 전개, 그리고 화려한 대사와 두 주인공의 매력 넘치는 연기 덕분입니다. 차승원과 김선아가 1:1로 연기 배틀을 벌이는 장면들은 그냥 한번 보고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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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아베 히로시와 차승원의 비교입니다. 두 배우 모두 훤칠한 키의 미남형 배우이면서도, 스스로 웃지 않고 남을 웃기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외모...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까칠한 수염이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죠. 저는 사실 '트릭' 시리즈나 '드래곤 사쿠라'보다 'Hero'를 먼저 본 탓에 처음에는 아베 히로시가 그렇게 웃기는 배우인 줄 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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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가 간바야시 의원 역의 데라오 아키라>

당초 '시티 홀'팀의 구상을 보면 차승원이 연기하는 조국은 '체인지'의 간바야시를 빼닮은 악역이 될 것처럼 보입니다. 철저한 야심 덩어리인 조국이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신미래를 시장의 자리까지 끌어올리지만 신미래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당을 만들기 싫어하는 한국 드라마의 특성상 절대 이렇게 끝나지는 않겠죠. 어느새 신미래의 열정과 헌신이 조국을 개과천선시켜서 이름 그대로 조국을 위한 큰 인재가 되게 하는 식의 진행이 예상됩니다. 그러다 보면 차승원은 절로 아베 히로시와 이미지가 다시 겹쳐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티홀', 경쟁작들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15%대의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시청률로 1위를 달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머잖아 제대로 바람을 타면 올 상반기 드라마들 중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드라마로 꼽힐 만 합니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은 김선아가 모처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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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회 개최면 개최, 도배면 도배, 연설이면 연설,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슈퍼 10급 공무원 김선아의 캐릭터를 보고 있자니 절로 이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혹시 이 드라마의 김선아를 보다가 '홍반장'의 김주혁을 떠올리신 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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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참 특이한 존재들입니다. 뭐 문화와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흡혈귀의 대명사인 드라큘라 백작을 물리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햇빛, 그리고 마늘이죠. 하지만 '박쥐'의 송강호는 원래 신부라서 그런지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 사람이니 아예 음식을 안 먹는다 해도 사방에 널린게 마늘인데, 마늘을 겁내선 도저히 돌아다닐 수가 없겠죠.

대개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이고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지만 전설을 종합하면 이처럼 꽤 제약이 많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 물리학자에 따르면, '전통적인(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도 수학으로 증명이 된다는군요. 왜 그럴까요? '박쥐'를 보다가 생각난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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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뱀파이어

'박쥐’의 박찬욱 감독과 주요 출연진이 13일 칸 영화제 본선 장도에 오른다. 뱀파이어 이야기를 다룬 ‘박쥐’는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뱀파이어에 대한 전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야행성이고 햇빛을 두려워하며, 피를 빨린 피해자도 뱀파이어가 된다는 점 역시 만국 공통이다. 이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의 코스타스 에프티뮤 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그 존재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인구가 5억 명 정도이던 서기 1600년 1월, 지구상에 단 1명의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그가 생존하기 위해 월 1명씩의 희생자를 찾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1600년 2월, 뱀파이어는 2명으로 늘어난다. 다음 달에는 4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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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출산을 감안해도 1603년이 오기 전에 지구상에는 먹이가 될 인간이 더 이상 남지 않으므로 뱀파이어 역시 전멸하게 된다. 결국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인류의 말살은 물론 스스로의 운명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뱀파이어 경제(vampire economy)’라는 시사용어가 떠오른다.

뱀파이어 경제란 정상적인 기업행위나 노동을 통하지 않은 채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행위, 혹은 남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기업을 말한다. 4, 5년 전만 해도 월 스트리트는 한국 경제에 대해 구조조정이 보다 엄격했어야 했다며 “햇볕만 쬐면 사라질 부실기업들이 판치는 뱀파이어 경제”라고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거물 뱀파이어들의 소굴은 그쪽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지구를 휩쓴 경제 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사들이 그동안 서민들의 피를 빨아 부를 축적해 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때는 세계 경제를 리드한다며 대접받던 엘리트들이 하루아침에 전염병 보균자 취급을 받고 있다.

영화 ‘박쥐’의 결말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영화 속 뱀파이어)이 타자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 채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 경우, 누군가는 정지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 물론 영화 ‘박쥐’는 이런 한마디 교훈으로 정리하기엔 훨씬 복잡한 영화다. 미묘하고 중층적인 ‘박쥐’가 칸 영화제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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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초의 인구 5억명이 모두 뱀파이어로 바뀌는 시기는 1602년 6월 정도 됩니다. 2의 30제곱이 5억3000만 정도 될 겁니다. 중간에 아기가 무리하게 태어나고 했다고 하더라도 한두달이면  흡혈귀의 증가 속도가 출산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역설을 의식했는지, 20세기 후반의 뱀파이어들은 매우 똑똑해졌습니다. 앤 라이스의 작품에 나오는 뱀파이어들만 해도 모든 희생자를 뱀파이어로 바꿔 놓지는 않죠. 특별히 오래 오래 데리고 싶은 사람만을 뱀파이어로 바꿔 놓고, 나머지는 그냥 식용(?) 취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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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화한 뱀파이어들을 생각하면 에프티뮤(Efthimiou) 교수의 계산은 그리 적절치 않은 셈입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무시할 것만은 아닙니다. 뱀파이어들이 지혜롭게 자신들의 개체수를 유지하고, 무분별한 살육으로 인간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 피를 빨아야 그들도 살고 인간들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셈이죠. (아시다시피 신문에 쓰는 글은 지면의 한계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자 신문에 저 글을 써놓고 밍기적거렸더니 그새 더 자세한 글이 올라와 있군요. 재반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쪽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쥐'의 송강호만 해도 그렇습니다. 혈액은행을 이용하고, 산 사람으로부터 그냥 주스(?)만 받아 마시고, 자살하는 사람을 식용으로 이용하죠. 하지만 김옥빈은 그런 금욕적인 삶을 비웃습니다. '여우가 닭 잡아 먹는게 죄냐'는 대사가 인상적이죠.

이런 부분에서 경제 엘리트들의 무한에 가까운 욕망이 화를 불렀다는 이번 경제 위기가 오버랩됩니다. 소위 엘리트라는 이유로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결국 갈 데까지 가 버린 사람들이야말로 먹이가 사라진 뱀파이어의 운명이 돼 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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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뱀파이어 경제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자료를 보다 보니 이 말 처럼 참 다양하게 쓰이는 말도 드물더군요. 윗글대로 미국의 경제 엘리트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햇빛만 비치면 사라져야 할 뱀파이어같은 기업들이 아직도 즐비하게 남아서 은행이며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부실 기업의 퇴출이나 구조조정이 미비하다고 비꼬곤 했던 때도 이 말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쓰이는 의미는 역시 '남들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사는 경제주체들을 가리킬 때였죠. 물론 위 문단의 뱀파이어같은 회사들도 이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또 어떤 때는 생산성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하청업체를 울리는 대기업의 귀족노조를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부동산투기를 유발해 먹고 사는 속 시커먼 건설사들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입장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휘두를 수 있는 비유의 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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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든, 스스로가 뱀파이어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피를 너무 빨아서 희생자를 죽게 하거나 자기 같은 뱀파이어들을 양산하고, 심심하다고 함부로 인명을 해치는 뱀파이어는 자기 목을 조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이미 설명했습니다. 경제 시스템 안의 뱀파이어들을 완전히 쓸어 버리는 게 어디서나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쪽이 현명하게 살아남는 길입니다. (어떤 작품들에는 치안유지에 재능을 활용하는 뱀파이어들도 나오곤 합니다.^^ '블레이드'라든가...)

아무튼 '박쥐'가 칸에선 어떤 성적을 낼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이번에도 상을 탄다면 좋겠지만, 경쟁작들이 워낙 대단해서 마음은 싹 비웠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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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에는 프랑스 병이라는 이름만 소개했지만, 이 병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프랑스 병, 이탈리아 병, 스페인 병, 영국 병, 터키 병, 폴란드 병... 온갖 나라 이름이 이 병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 결코 아무도 자기 나라 이름을 이 병에 붙이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최근 돼지(Swine)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SI라는 명칭이 폐기되고 신종플루, 인플루엔자 A, 혹은 H1N1이라는 약칭이 대신 사용되게 됐습니다.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 글을 쓴지도 벌써 2주째로 접어들었군요. 5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SI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날 쓴 글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리로 옮겨오는게 좀 늦었는데, 사실 더 늦어도 상관없을 글이지만 중간에 희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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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프랑스병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대는 황금과 함께 얄궂은 병(病) 하나를 유럽으로 가져왔다. 이 병은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이 병을 ‘프랑스병’이라고 불렀지만, 반대로 프랑스에선 ‘이탈리아병’이란 이름을 붙였다. 동시에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터키에서는 기독교도병으로 통했다. 멀리 타히티 섬에서는 영국병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발생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들 ‘몹쓸 병을 옮기는 책임’은 외국에 떠넘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시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 이 병에 ‘시필리스(syphilis·매독)’란 새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은 지금까지도 서로 상대국의 이름을 병 이름으로 부르며 감정다툼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달 30일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창궐하고 있는 국제 전염병에 대해 ‘SI(Swine Influenza)’ 대신 ‘인플루엔자 A형’ 또는 ‘H1N1’이란 명칭을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널리 쓰이는 SI를 굳이 새로운 이름으로 바꾼 건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WHO는 “이 병은 인간들 사이에서만 전염됐으며, 돼지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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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돼지고기를 먹거나 만졌다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됐다. 이집트 등지에서 일어난 돼지 살처분 논란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돼지고기 기피 움직임에 경종을 울리는 발표인 셈이다.

병의 이름은 혐오와 공포감을 함께 옮긴다. 20세기 이후 사람들은 병의 이름이 주는 그릇된 인식을 방지하기 위해 증세나 원인을 노골적으로 설명하는 이름은 피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문둥병은 한센병으로, 노망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간 광우병도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불리게 됐다. 정신분열증도 ‘도파민 항진증’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미 욕설이 된 ‘지랄’이라는 고유어 대신 간질(癎疾)이라는 한자 병명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철없는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향기롭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름만 몇 자 바꿔도 아파트 가격이 천양지차가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세상인심이 얼마나 이름에 민감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WHO의 결정이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양돈 농가들의 시름을 씻어주길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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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SI와 프랑스 병이 연결되는 것은 이 두 병이 각각 신종 플루와 매독(syphilis)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본래의 이름에 담겨 있던 불필요한 편견이나 공포, 증오와 같은 감정을 희석시켰기 때문입니다.

SI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신종플루라는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이 병과 돼지고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SI라는 명칭이 사용되던 기간 중에 삼겹살집이나 족발집은 손님이 뚝 떨어졌다던데 중국집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더군요.^^ 짜장면이며 탕수육, 모두 돼지고기 없으면 못 만드는 음식들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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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 선생은 1478년 베로나에서 태어나 활동하신 분입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대개 그랬듯 그냥 시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파두바 대학의 논리학 교수였으며, 코페르니쿠스와 절친한 천문학자였고 또 의사였다고 합니다.

이 분은 Syphilis sive morbus gallicus라는 서사시에서 프랑스 병(morbus gallicus: gall은 프랑스의 옛 이름)이라는 병에 처음 걸린 사람으로 시필루스(Syphilus)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거기서 병 이름인 Syphilis를 만들어냅니다. 뭐 지금은 이 병의 이름을 지은 것이 이분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꽤 존경받는 전염병 연구가였던 모양입니다. 티푸스라는 이름도 이 분이 지은 거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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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으로서의 매독은 환자와 직접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면 거의 걸릴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전염성이 미약하지만, 막상 걸리면 살더라도 신체 일부가 썩어들어가고 환자의 외양이 흉칙해지는 등 극악의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한 공포심은 대단했다고 합니다(사진도 여러개 구할 수 있지만 너무 끔찍해서 피하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생활 패턴상(?) 예술가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다 보니 근세 수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이 병으로 죽거나, 이 병을 치료하려고 수은을 마시다 죽었다는군요.

구한말이며 일제시대까지도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 증기를 들이마시는 위험천만한 시술을 하다가 죽은 사림이 꽤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치료법 역시 프라카스토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니 참 유서가 깊습니다. 병에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만... 다른 효과가 더 빠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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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짓은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가 1910년 살바르산 606호(어쩐지 친숙한 이름입니다. 606회의 실험 끝에 만들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어린 시절 읽은 과학도감에 쓰여 있었습니다. 여명 808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아시겠습니까?)를 만들 때까지 계속됐다고 합니다.

아무튼 대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퍼뜨리고 다시 되돌아온 병이라고도 주장한다고 합니다. 뭐 500년 전의 일을 지금에서 알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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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이 나간 뒤 어떤 분이 댓글로 노망이 알츠하이머 병과 다르며, 광우병과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도 다르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사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두 병의 이름 모두 원래의 병 이름이 갖고 있는 멸시나 공포의 느낌을 함께 싣지 않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글의 취지에서 빗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랄'이라는 말이 본래 병의 이름이라는 것은 모르셨던 분도 꽤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 지랄이야'라는 말이 생각보다는 훨씬 심한 욕이었던 셈이죠. 이 말이 본래의 의미와 살짝 떨어져서 아예 욕으로 굳어진 이상, 실제 환자에게 그 병 이름을 쓰는 건 대단히 모욕적이고 가혹한 일이겠죠. 그래서 간질, 혹은 전간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유명한 줄리엣의 대사는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에 나옵니다. 유명한 발코니 신에서 로미오가 엿듣고 있는 줄 모르는 줄리엣이 '당신의 이름에서 몬테규라는 성만 지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읖조리는 말이죠. 원문은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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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은 요란하지만 아무튼 결론은 이름 그거 함부로 지었다가 엉뚱한 사람이 애매하게 피본다. 그러니 이름 함부로 짓지 말자. 가능하면 아무 뜻도 없는 이름으로 짓는게 좋다는 얘깁니다. 저 칼럼은 5월2일자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그러니까 5월9일자 조선일보에 이런 글이 실렸더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08/2009050801610.html?srchCol=news&srchUrl=news2

서울대 주경철 교수님의 이름이 걸린 '주경철의 히스토리아'라는 연재물입니다. 뭐 천하의 주경철 교수님('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이 위의 저런 후줄근한 칼럼 따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을 리는 없고 그냥 묘한 우연이겠죠. 그냥 참 신기한 일도 있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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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프라카스토로 선생의 고향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인 베로나입니다. 그 분의 동상도 바로 베로나의 시뇨리 광장에 있다는군요. (그래서 뭘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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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의 홍보 영상을 우연히 TV에서 봤습니다.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슨 질문엔가 '에? 정말요?'하고 반문하는 광경이 나오더군요. 뭘 물어봤는지는 좀 나중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이 126분(2시간 6분)이란 걸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이었죠.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잇달아 나오는 걸 보면서 참 괜찮은 홍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가 길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치 흥미진진하다는 얘기니까요.

그러고 나서 직접 영화를 봤는데 놀랍게도 그 홍보 영상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가운데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 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롤러코스터의 속도감과 적절한 유머가 '어, 벌써 끝이야?'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원작? 몰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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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은 없어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1966년 9월8일부터 미국 NBC TV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스타트렉은 우주 공간을 무대로 한 최초이자 최고의 드라마로 공전의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 첫번째 시리즈(T.O.S, 즉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불립니다)는 4년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 뒤로 40년에 걸쳐 수많은 속편과 외전, 그리고 11편의 극장용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외형상으로 볼 때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를 능가하는 최고의 인기 우주 모험담으로 자리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인기를 모았다고 해 봐야 남의 나라 얘기긴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국내에서 더빙 버전으로 이 드라마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AFKN 혹은 AFN은 수시로 이 시리즈를 다시 방송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1970년대며 80년대에도 윌리엄 섀트너가 연기하는 커크 선장과, 레너드 니모이가 귀 뾰족한 스팍(스포크) 부함장으로 나오는 오리지널 시리즈는 계속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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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다시 패트릭 스튜어트가 피카드 함장으로 나오는 후속 시리즈, 또 그 뒤의 후속 시리즈가 줄줄이 나왔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시리즈의 상징은 바로 스포크 부함장이었죠. 레너드 니모이가 이 역할을 한 건 오리지널 시리즈의 4년 정도 뿐이었지만, 그 여파가 어찌나 강했던지, 일상 생활에서도 그를 외계인이라고 착각(?)하는 팬들 때문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고 하는군요. 오죽하면 그의 자서전 제목이 '나는 스포크가 아니다'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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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귀 하나 떼고 본다 해도 사실 지구인같지 않은 얼굴.>

아무튼 '스타 트렉'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저는 말할 자격도 없고, 지금부터 연구할 기력도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물론 이 정도도 몰라도, 영화를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드라마 '로스트'와 영화 '미션 임파서블 3'를 통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총아로 떠오른 J.J 에이브람스는 이 너무도 유명한 '스타 트렉'이야기를 가지고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합니다. 바로 오리지널 시리즈 주인공들의 젊은 날, 즉 이들이 첫번째 시리즈에서 모험을 펼치기 전 신출내기일 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프리퀄인 셈이죠.

이 용어보다는 리부트(Reboot)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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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원작보다 세월이 흐른 뒤에 나오는 프리퀄에는 몇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양들의 침묵'보다 11년 뒤에 나온 '레드 드래곤' 처럼, 오히려 시간상으로는 앞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훨씬 늙어 보인다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죠. 또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처럼 '에피소드 4, 5, 6'보다 훨씬 앞의 시대인데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영상의 화질 등은 훨씬 뒤의 시대처럼 보인다는 문제도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주인공들의 젊은 날'이라고 한정해서 새로운 배우들로 왕년 추억의 스타들을 모두 대체해버리고, 익숙한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무장 등을 가능한 한 원작에 가깝게 유지합니다. 조종석이나 사용하는 무기, 순간 이동장치 등이 드라마와 거의 똑같아서 감탄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승무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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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체코프, 커크, 스코트, 맥코이, 술루, 우후라>

제임스 T 커크 함장 - 크리스 파인
스포크 부함장 겸 과학장교 - '사일러'로 더 유명해진 재커리 퀸토
레너드 맥코이 군의관 - '반지의 제왕'의 에오메르 칼 어반 (못 알아봤습니다.^)
몽고메리 스코트 기관장 -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사이먼 페그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
니오타 우후라 통신장교 - 조 살다나
히카루 술루 조타수 - 유일한 동양인 캐릭터. 존 조.
파벨 체코프 항해사 - 안톤 옐친. 개봉할 '터미네이터 4'에선 카일 리스의 어린 시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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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이 스포크 역으로 거론됐다는..>

영화는 커크 함장의 아버지인 조지 커크가 위기를 맞은 전함의 임시 함장을 맡아 장렬히 전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공들은 지구인과 외계인들이 결성한 우주 연합함대(스타플리트 Starfleet)의 승무원 양성 과정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스타플리트에 합류한 외계인 중에는 벌칸 행성 출신의 스포크가 있습니다. 인간에 비해 고도의 지성을 갖고 있는 벌칸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스포크는 이미 스타플리트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지만, 커크는 사고뭉치에 정학을 당하는 존재죠. 그런 그가 우연히 전함 엔터프라이즈에 타게 되고, 자신이 태어날 무렵 스타플리트에 닥쳐 왔던 위기가 재현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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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타 트렉'은 원작의 존재 유무를 떠나 '60년대 느낌의 SF로 회귀'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1990년대 이후의 SF 판타지는 "유치해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좀 유치해 보이면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라는 태도를 아예 대놓고 과시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과 여유가 넘치던 시대였거든요. 그러니까 90년대 이후의 SF 영화들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 현실에 대한 은유, 철학적인 깊이를 담으려는 시도 등을 싹 쓸어 버리고, '이건 그리스 신화나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이 펼치는 신나는 모험담이면 돼'라는 자세를 꿋꿋하게 밀어부칩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드라마 '스타 트렉'에서도 우주를 누비는 베테랑 승무원인 주인공들이 모두 실수 투성이의 신참들이라는 건 참신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커크 함장 역의 크리스 파인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모두 봤지만, 거기 나오는 커크 함장의 신중하면서도 원숙한 함장 연기 보다는 '탑 건'의 톰 크루즈나 '스타 워즈'의 해리슨 포드 같은 연기를 지향했다고 하는군요. 실제 모습도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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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영어 발음이 안 되는 러시아계 항해사 역의 안톤 옐친, 우주전함 워프를 시키지 못하는 조타수역의 존 조, 개발되지 않은 이론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선각자 역의 사이먼 페그 모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밖에도 행성 하나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규모의 거대한 액션, 인간 하나는 화면의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우주 전투 등은 '이것이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한마디로 체급이 다릅니다.

5월 이후 한국 영화든, 할리우드 산이든 볼만한 영화들이 쏟아져서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시간들을 쪼개서 극장을 좀 더 자주 찾으셔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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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에릭 바나가 이런 분장을 하고 악역으로 나온다는 게 참 충격적입니다만, 정작 놀라운 카메오는 두 사람입니다. 일단 스포크의 지구인 어머니 역으로 위노나 라이더가 나옵니다. 꽤 나이든 모습으로 나오는데, 주름은... 설마 분장이겠죠?

또 한 사람은 이 시리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너드 니모이. 무슨 역으로 나오는지는 그냥 비밀로 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군요.






최근 영화들에 대한 리뷰입니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


박쥐
 


똥파리
 


7급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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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보고 참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듯 합니다. 지난번에 '울버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항상 헤니의 얼굴은 서구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다가, '울버린'에서 진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동양인의 얼굴이더라"라는 얘기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거기에 공감하시더군요.

그런데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녀 배우들 사이에는 무시 못할 차이가 나타납니다. 남자 배우의 경우,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이는 배우들은 모두 아시아계와 백인의 혼혈입니다. 즉 순수 아시아인의 얼굴로 할리우드에서 뭔가 해보려는 배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거죠. 반면 여배우들은 혼혈이건 아니건 모두 경쟁력이 있더라는 겁니다.

어찌 보면 좀 기분나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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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니군, 그러고보니 자네 동양인이었나?

다니엘 헤니가 나온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봤다. 휴 잭맨보다 헤니가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영화는 예상대로 시원한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호화 오락 대작. 그런데 두 가지 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첫째, 헤니가 꽤 괜찮은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비교의 기준은 '스피드 레이서'의 비나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박준형일텐데 둘 보다는 훨씬 할리우드 관객들에게 괜찮은 모습으로 비칠 듯 했다.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앞으로 미국 관객들에게 헤니를 설명할 때 "'울버린'에서 에이전트 제로 역으로 나온 배우"라고 설명하면 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원작이고, 박스 오피스 1위 영화의 프리미엄도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면에서 'G.I 조'를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삼은 이병헌의 선택도 훌륭했던 셈이다. 80년대 이후 성장한 미국 남성 가운데 G.I. 조 시리즈의 인형 한두개 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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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전혀 뜻밖으로, 헤니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이 "헤니가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꺼냈을 때,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조각 미남' 헤니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울버린'에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누가 봐도 '걔네 편'이 아니었던 거다. 그쪽 관객들이 헤니를 보더라도 "음. 잘생긴 동양인 총각이군"이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닌 듯 했다. 필자의 블로그에 이런 얘기를 쓰자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오히려 해외 거주기간이 긴 사람들은 '그럼 헤니가 서양 얼굴 취급을 받았단 말이야?'란 식으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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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자 배우로서 그나마 미남 대접을 받는 배우 가운데 순수 아시아풍의 얼굴을 가진 배우는 거의 없다. 어머니가 독일계 혼혈이었던 이소룡을 거쳐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황제'의 존 론도 중국계 아버지와 포르투갈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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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3'에 진나라 장군으로 등장한 러셀 웡(중국명 왕성덕) 역시 중국계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그의 막내 동생이며 홍콩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웡(왕민덕)에 이르기까지 이 왕씨 형제들은 혼혈 미남의 대표주자 격인 인물들이다.

아무튼 다니엘 헤니를 포함해 이런 얼굴들 역시 구미인들의 시각에서는 죄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로 보였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런 미남들도 아직 할리우드의 주인공 자리는 역부족이다.
반면 여배우의 경우 아시아계 혈통은 꽤 선호되는 편이다. 이미 피비 케이츠(어머니가 필리핀계 화교)에서 매기 큐(어머니가 베트남계 화교), 데본 아오키(어머니가 독일계)에 이르는 아시아 풍 혼혈 미녀들은 상업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심지어 나이를 먹지 않는 신비로운 얼굴이라는 전설까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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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배우들로 한정한다면 굳이 혼혈일 필요도 없다. 여배우들 중에는 김윤진이나 양자경, 공리, 장자이 같은 전형적인 아시안 얼굴의 미녀들까지도 월드 스타 자격증을 받았다. 루시 류나 산드라 오, 바이 링 등은 좀 다른 분류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여배우는 혼혈이 아니더라도 꽤 경쟁력이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굳이 스타들을 꼽지 않아도 해외로 진출한 동포/유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이같은 추세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계 남성의 인기와 여성의 인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반면 주윤발이나 성룡을 섹스 심벌이라고 우기지 않는 한 남자 배우 가운데서는 이런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순수 아시아인 남성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봐도 결국 믿을 사람은 단 한명 뿐인 듯 하다.

정지훈군. 건투를 비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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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하는 얼굴과 세계에서 통하는 얼굴이 반드시 다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서구 백인 중심의 심미안에 너무 젖어든 탓인지도 모르지만, 웬만하면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나 한 지역에서 특출한 미모는 다른 지역에서도 대략 인정받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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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루시 류라는 배우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혹시 중국인들은 루시 류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군요(이건 한국 사람이 산드라 오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친다는 생각만큼이나 큰 오해입니다). 그저 백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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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데본 아오키도 그리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무튼 서구인들은 열광합니다. 몸매가 뛰어난 거야 인정하지만... 아무튼 저런 얼굴을 '신비롭다'고 하더군요.

한때는 백인들이 '김태희나 김희선 같은 미인들보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무수리 같은 얼굴을 더 미인으로 친다'는 오해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별로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백인들도 아시아의 대표 미녀들을 보면 안 예쁘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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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제가 듣고 본 바에 따라 내린 결론은, 백인들은 동양인 여자는 다 좋아한다는 겁니다. 동양인 여자가 심한 기형만 아니면 '작은 도자기 인형'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백인들 중에서도 좀 깨인 사람들은 공리나 장자이가 루시 류보다 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루시 류나 장자이를 비슷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동양인 여배우들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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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윗글에 나오는 중국계 미국인 배우 왕성덕씨. 러셀 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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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인 왕민덕씨도 홍콩 영화 좀 보신 분들에겐 참 낯익은 얼굴이죠. 아무튼 이런 수준의 용모도 할리우드의 높은 벽 때문에 미국 영화에서는 조연급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이 나오는 걸로는 일본계인 마코 선생을 따를 사람이 없죠.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얼굴을 보면 아, 저 할아버지? 할 얼굴입니다. 한국인인 오순택 선생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의 동양인 역할은 거의 쓸었던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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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좀 나아질 지 모르지만, 할리우드가 동양인 남자 배우들에게 기대했던 역할이 이런 수준의 용모였다는 건 참 불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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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윤발 형님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죠. 나이도 있고...  '아시아인의 덴젤 워싱턴'이 되기엔 좀 여러 모로 부족합니다.

한동안은 동양인 남자 배우가 백인 여배우와 키스신을 연기하는 것도 금기 취급을 받았다니 뭐 이런 데서 뭘 기대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벽을 넘어서려면 시간도 꽤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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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비가 잘 되기를 더욱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제목에도 저렇게 달았듯, 비든 다니엘 헤니든 이들이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건 '아시아인의 성공'이라는 뜻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헤니가 한류 스타냐 아니냐 하는 옹졸한 생각을 계속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아계 남자 배우가 미국 본토에서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대국적인 할리우드 역사를 볼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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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피아르라는 꽤 잘 알려진 조사기관이 지난 3월1일부터 31일까지 전국 5대 도시 13~65세 남녀 1천3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 한국 최고의 인기 남녀 배우는 장동건 - 김태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조사에서 최고 인기 개그맨은 유재석-신봉선, 최고 인기 스포츠 스타는 박지성-김연아, 가수는 빅뱅-소녀시대라는군요. 모두 수긍이 가는 조사 결과고, 어쩌면 당연한 정답인 듯 합니다.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조사 기준에 붙은 '2009년 상반기 최고'라는 기준이 약간 의아합니다. 2009년 상반기에 장동건, 김태희는 대체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그리고 한국인이 생각하는 '배우'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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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비비디 바비디 부'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장동건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한번 기억을 되살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2004년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 뒤로도 2006년 진개가 감독의 '무극', 2005년 곽경택 감독의 '태풍'이 있었지만 그리 많은 관객들이 보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최근 3년간,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장동건씨는 CF 모델 혹은 가수(히트곡이 두개나 있습니다. '생각대로 송'과 '비비디 송')였던 셈입니다.

그런데도 최고 인기 배우로 꼽히는 건 대한민국 국민들이 CF를 심각하게 대중문화 장르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아무튼 3년째 아예 출연작이 없는 배우가 '인기순위 1위'라는 건 참 뜻밖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조사에 응한 1천여명의 '일반 국민'들이 이런 응답을 한 것이니까 결과는 인정해야 합니다. 인기라는 건 일반 대중이 '인기 있다'고 인정하면 있는 겁니다. 관객 동원 수나 TV 시청률보다, 이런 직접 조사 결과가 훨씬 더 확실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단지 다른 배우들, 그 5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히트작을 낸 배우들은 참 자존심 상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인기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더 나아가 연극, 뮤지컬...) 등 작품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또 한번 증명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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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김태희씨까지 돌아봐야 할까요? 단역으로 나온 걸 빼면 이 분의 활동 경력에는 5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보자면, 권상우와 최지우가 주연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김태희는 꽤 중요한 역이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죠.

주연작 중 최고의 히트작이라면, 빅 히트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화제작이었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더 꼽기가 어렵습니다. 영화 '중천'이나 '싸움'은 뭐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아무튼 이번 조사에 응한 분들의 확실한 생각은, '어쨌든 배우는 잘생기고 예뻐야 한다'는 것인 듯 합니다. 아무리 많은 관객을 동원하든, 아무리 연기를 잘 하든 미남 미녀가 아닌 한은 최고 스타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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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고의 미남 미녀가 최고 인기 스타가 되면 안된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실적' 없이도 인기는 유지된다는 게 신기하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본 최고의 스타는 기무라 다쿠야죠. 그를 '일본 최고의 미남'이라고 불러도 어폐가 없겠지만, 그의 인기를 뒷받침하는 건 일본 역대 시청률 톱10을 거의 모두 차지하고 있는 그의 드라마 출연작 리스트입니다.

홍콩/중화권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사대천왕'이냐고 물어볼 분들도 있겠지만, 성룡/ 이연걸과 사대천왕(유덕화, 여명, 곽부성, 장학우)은 여전히 음반이며 영화며 나오는 족족 히트하며 그 위명을 잇고 있습니다. 결코 한때 전성기를 누리고 그 위세로 버티고 있는 배우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자 배우로는 후배들이 아직도 그 기세를 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죠.

그렇다면 또 하나 궁금해집니다. 대체 왜 한국인들은 '최고 인기 배우'의 출연작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정상적인 사고방식에 따르자면, '최고 인기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당연히 대박이 나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함께 조사한 다른 세 분야에서는 이런 상관관계가 분명합니다. 유재석, 신봉선, 빅뱅, 소녀시대, 박지성, 김연아, 모두 흥행의 제왕들이죠. 유독 '연기자'의 경우에만 이렇게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 이유는 대체 뭘까요?  농담을 하거나 비아냥거리는게 아니라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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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학생 손수경(24)씨가 '브리튼스 갓 탤런트'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 손(Sue Son)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혹시 한국인일까...'하는 궁금증만 낳았지만 곧 발빠른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 덕분에 한국인임이 밝혀졌습니다. 하긴 중국계 손씨들은 대개 'Son' 아닌 'Sun'이라고 영문 표기를 하죠.

아무튼 손수경씨는 이날 바네사 메이(키가 좀 클 뿐 스타일도 꽤 흡사합니다)의 'Storm'을 신나게 연주해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도를 생각하면 수잔 보일, 샤힌 자파골리, 홀리 스틸 등과 함께 거의 4강 수준인 셈이죠(과대평가인가...). 그런데 그녀의 이 프로그램 출연에는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소재가 개입됐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일단 그 경과를 좀 보시겠습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의리와 기회 사이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I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한국인 손수경씨가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일반인들이 출연해 장기자랑을 펼치는 이 프로그램에서 손씨는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바네사 메이의 '스톰'을 멋지게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손씨는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 뒤 펄쩍 뛰며 좋아했지만 그 뒷얘기가 만만찮다. 당초 손씨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제니 칼릴과 함께 예선에 출연했지만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은 "둘 사이의 불협화음이 너무 심하다. 차라리 혼자 연주를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결국 손씨는 솔로로 다시 도전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추천을 받았지만 대신 친구를 잃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보도에 따르면 손씨는 "제니가 페이스북(한국의 싸이월드와 유사한 네트워크 사이트)의 친구 목록에서 나를 삭제했다는 걸 알게 됐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제니에게 먼저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몫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손씨는 또 "용서를 바랄 뿐이다. 놓치기엔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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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제니의 어머니는 "손씨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내 딸은 애당초 그 쇼에 출연할 생각도 없었다"며 손씨에 대한 비난을 그치지 않았다.

유력한 성공의 기회와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일은 연예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유명 밴드의 보컬 중에는 솔로로 데뷔하라는 제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스타들이 무명시절부터 고락을 함께 한 소속사를 버리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돈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약속의 소중함을 지켜 가끔 세상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최근 종영한 SBS TV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으로 소지섭이 캐스팅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이 말은 그가 주인공을 맡은 뒤로 이 드라마가 1년 이상 표류했다는 뜻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수차례 바뀌었고, 작가와 연출자도 교체됐다.

1년이나 제작이 지연됐다면 일반적으로 배우가 계약금만 챙기고 계약 무효화를 주장해도 책임이 없다. 이 경우 계약금은 그 작품 때문에 흘려 버린 다른 기회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지섭은 영화 '영화는 영화다' 한 편을 촬영했을 뿐, 끝내 '카인과 아벨'로 안방극장에 복귀해 제작사와의 의리를 지켰다.

의리보다 이익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는 이익보다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결국 우리가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도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경우든 정답은 없지만 의리와 기회가 충돌할 때, 일단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 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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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용 칼럼이라는 건 짧은 지면 안에 뭔가 세상에 교훈이 될 얘기를 꾸려 넣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쓰고 나서도 이걸 이렇게 짧게 쓰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지섭과 손수경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손수경씨는 연예인도 아니고, 누구와 계약을 한 것도 아닙니다. 이 글에 두 사람이 나오는 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자는 게 아닙니다. 요즘 이러이러한 일이 화제가 됐는데, 연예계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한 배신도 날마다 벌어진다(굳이 다 예로 들 수는 없지만^^). 그런데 그 중에서도 소지섭이라는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 같은 경우도 있었다... 뭐 그런 얘깁니다.

손수경씨도 꽤 상심이 컸겠지만, 데일리 메일의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댓글로 '진정한 친구라면 제니가 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친구가 잘 됐으면 축하해주는 게 진짜 친구 아닌가? 섭섭하겠지만 용서하라'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더군요.

(댓글은
http://www.dailymail.co.uk/tvshowbiz/article-1176746/Britains-Got-Talent-cost-best-friend-says-violinist-stormed-semi-finals.html)


맞는 말입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손수경씨가 재도전을 결심해서 말하기 전에 제스처라도 그 자리에 있던 제니양에게 '미안하지만 도저히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혼자 해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진짜 친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겠죠.

(손수경씨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는 이쪽에 있습니다.
http://www.sueson.me.uk/sue-son/sue-son-loses-best-friend/)


진짜 친구라면, '내 실력이 모자라서 미안하다. 그래.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해라' 라고 했겠죠. 만약 여기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 혼자 잘 되겠다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너 성공이 그렇게 좋아? 사람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 볼지 생각도 안 해봤니?'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입장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이 상태라면 설사 재도전을 포기한다 해도, 우정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겁니다.

(물론 손수경씨의 경우라면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태라서 진심이 나오기 쉽지 않았겠지만, 실제로는 친구의 심중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아예 물어보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인 거죠. 아, '너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남자가 나타났어. 그 남자와 결혼할건데, 날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행복해지길 기도해 줄 거지?'라는 식의 배신이라면 전화하지 않는게 나을 겁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길게 쓴 글은 '우정을 위해서는 기회를 포기할 수 있어야 진짜 훌륭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역시 중요한 건 역지사지 죠. 만약 x표 3개를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재도전을 하고 싶어 죽겠을 때 친구에게 솔직히 심정을 털어 놓고 허락을 구하는 형식이라도 취해야 했을 겁니다. 반면 그 친구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어 안달복달하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가 혼자 나가 재도전을 하고 싶어 할 때 굳이 그걸 막지 않을 겁니다.

좋은 기회를 잡아 떠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지내느냐도 중요하겠죠. 아무튼 손수경씨가 하루빨리 친구와의 우정도 회복하고, 앞으로 좋은 연주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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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즈 갓 탤런트' 인기의 주역인 수잔 보일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홀리 스틸과 한 무대에 선 동영상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지미 키멜 쇼에서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섰다는군요. 지미 키멜은 지난번 소개했던, 맷 데이먼이 나오는 'I'm F***ing Matt Damon' 시리즈의 무대를 제공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떻게 됐냐구요? 직접 영상을 보시면 압니다. 참고로 47세와 10세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정하거나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시기를 권합니다. 충격적인 무대가 연출될 지도 모릅니다. (일단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제목이 낚시라는 이유로 저를 죽이고 싶을 분도 있겠지만, 화면의 완성도로 보아 뭔가 착각할만 하다든가,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든가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찾아 봤습니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하를 보게 됩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5093629&q=%BC%F6%C0%DC%20%BA%B8%C0%CF%20%C8%A6%B8%AE%20%BD%BA%C6%BF

물론 이런 경우 현실과 조작을 구별못한다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얼마전 주말에 좀 심각한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되는 '로스트 테이프(Lost Tapes)' 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당연히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죠. '몬테레이의 바다 괴물(Monster of Monterey)이라는 작은 제목으로,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같은 화면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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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1977년 일본 어선이 건져올린, 이상하게 목이 길고 거대한 해양 생물의 시체를 보여주더군요. 그리고는 흔히 장경룡이라고 불리는 플레지오사우루스(Plesiosaurus)에 대한 설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2007년, 샤론 노박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던 도중 미국 서부의 몬테레이 앞바다에서 겪은 일이라는 부제의 영상이 시작됐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샤론 노박(Sharon Novak)은 요트 여행을 모두 온라인으로 중계하기 위해 마스트 끝을 비롯해 보트 곳곳에 카메라를 부착했고, 배 위에 있는 노박의 모습은 잡지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팬(?) 혹은 독자들에게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선상 트루먼 쇼인 셈이죠. 심지어 노박의 잠수복에도 카메라가 달려 있습니다.

문제의 날, 노박은 배를 타고 육지를 향해 오다가 우연히 조난 신호를 포착합니다. 주변에 다른 배가 없다고 판단한 노박은 일단 구난을 위해 신호 위치로 향하죠. 하지만 문제의 장소, 배는 있지만 배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배 한 켠에 낭자한 핏자국만 있을 뿐입니다.



공포에 질린 노박은 요트의 엔진을 가동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만 엔진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바람으로 항해하기 위해 돛을 펴던 노박은 밧줄을 풀던 도중, 무언가가 배에 부딪히는 바람에 배 밖으로 떨어집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노박. 그리고 마스트에 달린 카메라는 노박을 향해 물 밑에서 헤엄쳐가는 뭔가 거대한 물체를 슬쩍 보여줍니다. 노박의 몸에 달린 카메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노박은 "살려줘! 수영할수가 없어!"라고 외치며 서서히 배에서 멀어져갑니다.



이 화면의 화질로는 뭘 볼 수가 없죠. 좀 더 선명한 영상을 보기 위해선
http://animal.discovery.com/videos/lost-tapes-top-10-scariest-moments/ 를 방문한 다움, 10위부터 1위까지의 영상 중 '1. Sharon Novak's Disappearance'를 클릭하면 됩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물 밑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노박을 향해 움직이는 장면을 100번쯤 다시 돌려 보여줬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냉정합니다. 테이프가 끝나는 시점에서 방송을 딱 끊어 버리고 엔딩 타이틀이 흐릅니다.



아무튼 이 '로스트 테이프'라는 방송을 본 뒤로 상당히 짜릿한 충격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제목을 잃어버린 테이프라고 지은 것은, 탐험자들 본인은 사라지고, 테이프만 남아 있는 경우의 충격적인 영상들을 모아 방송한다는 뜻이겠죠. 이런 테이프를 통해 전설 속 동물들의 실체를 조명한다는 시도도 신선한 듯 했고... 아무튼 흥미로운 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를 느끼고 뒷조사를 좀 해보려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샤론 노박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질 않는 겁니다. 이 정도의 사고라면 이렇게 정보가 없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테이프야 디스커버리 채널이 독점으로 점유해서 관련 영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하다못해 샤론 노박이라는 사람의 존재 여부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미국내 게시판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진위 여부를 놓고 아귀다툼이 한창이더군요. '이 바보야 그럼 니 눈엔 저게 진짜로 보이냐'와 '넌 디스커버리 채널(엄밀히 말하면 애니멀 플래닛)을 호구로 아냐'가 격돌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보면서도 영화가 떠오르긴 했던 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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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결정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역시 없는게 없는 imdb.com. 거기서 찾아 본 '로스트 테이프'에는 엄청난 수의 제작진이 붙어 있었고, 출연한 배우(!)들의 명단도 있었습니다. 제가 본 '몬테레이의 괴물'편에는... '샤론 노박 역을 한 로렌 올리프라(Lauren Olipra)라는 여배우의 얼굴도 나와 있더군요. 어쩐지 여류 저널리스트치고는 너무 예쁘다 했더니...

완전히 속았습니다. 보는 동안은 진짜 다큐인 줄 알았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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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TV에서 부지불식간에 어느새 리얼 다큐와 픽션의 경계가, 현실과 조작의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미국 TV에서 그렇습니다. '제리 스프링거 쇼'나 '치터스'가 사실이냐 연출이냐의 논란 속에서도 별탈없이 계속 방송을 타고 있고, 위에서 말했듯 디스커버리 채널까지도 유사 다큐멘터리로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한국 방송도 이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참 모골이 송연합니다. 그때 되면 꽤 심각한 문제가 될 듯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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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X-men)'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엑스멘이라는 코믹스 시리즈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사람으로서, 그 장구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엑스맨' 에서 '이번의 '엑스맨 탄생: 울버린 (X-Men Origins: Wolverine, 2009)'에 이르는 네 편의 극장용 영화들 뿐입니다.

휴 잭맨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오고, 사전에 90% 완성본이 인터넷에 떠도는 등 유난히 화제가 무성했던 작품 - 물론 이런 낚시밥들보다 '절반은 한국인'인 다니엘 헤니의 출연이 훨씬 더 관심을 모았지만 - 이라 냉큼 달려갔습니다. 107분. 딱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뭐랄까, '사람 배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정도가 적절할 듯 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에서 본 '우리편 배우', 다니엘 헤니의 활약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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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미국 중서부 어딘가에서 태어난 지미와 빅터 형제. 아버지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친형제인 이들은 각각 로건/울버린(휴 잭맨)과 빅터/세이버투스(리브 슈라이버)로 성장합니다. 성장은 하되 30-40대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춘다는 설정입니다.

이들은 남북전쟁, 1차대전, 2차대전, 월남전을 거쳐 미국의 비밀 특수부대에까지 합류해 거기서 많은 돌연변이 전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울버린은 결국 살육의 나날에 염증을 느끼고 캐나다 오지에서 연인 카일라(린 콜린스)와 함께 도피 생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갑자기 특수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스트라이커(대니 휴스턴 - '엑스맨2'에선 브라이언 콕스가 했던 역할입니다)가 찾아오면서 평화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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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엑스맨'의 프리퀄입니다. '엑스맨'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했던 캐릭터 로건/울버린이 어떻게 해서 돌연변이 전사 울버린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죠. 지금까지의 시리즈를 다 본 관객들은 당연히 이 영화를 보기 전, 몇가지의 필수 조건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엑스맨'이나 '엑스맨 2'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 영화에서 절대 죽어선 안 됩니다. 반대로, 저 영화들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캐릭터들은 모두 이 영화에서 정리가 되어야 하죠. 주요 인물들의 생사가 이미 결정된 셈입니다.

다시 말해 결말의 윤곽이 대략 다 나와 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줄거리로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고, 볼거리와 간단한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또 영화 1, 2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삽입하면서(예를 들면 어린 사이클롭스^^) 마니아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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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은 그런 교훈에 매우 충실한 영화입니다. 개빈 후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든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걸작을 만들겠다는 식의 야심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팬서비스의 정신 뿐이죠. 그가 만든 이 107분짜리 아드레날린 펌프에는 장광설이나 설교, 거창한 세계관 따위는 나올 시간도, 이유도 없습니다. 엑스맨 1, 2편에서 브라이언 싱어가 구사했던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은유 같은 것은 그에겐 비싼 사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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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덕에 영화는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가끔씩 미국식 코믹스 특유의 바보스러운 도덕관, 즉 '히어로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혹은 '함부로 주요 캐릭터를 죽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죽일 수 있는 대상은 엑스트라 뿐이다'로 바꿔 부를 수도 있습니다)'가 한국 관객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울버린이 고민하지 않고 똑똑하게만 행동하면 영화는 30분만에 끝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런 문제는 '배트맨'에서 극에 달하고, '슈퍼맨'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들이 악당을 제때 해치우지 않아서 악당들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고, 그때 가서 또다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 나약한 미국제 슈퍼 히어로들은 아무리 봐도 제 취향이 아닙니다. "난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뭐 이런 대사를 들으면 짜증이 솟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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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돌연변이들이 등장하지만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신기에 가까운 총 솜씨를 갖고 있는 에이전트 제로(다니엘 헤니)입니다. 아, 에이전트 제로는 돌연변이가 아니라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원작을 본 적이 없는지라...). 정상적인 인간이 그 정도의 순발력이나 점프력, 조준능력을 갖고 있을 리는 없으니 돌연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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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는 다니엘 헤니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한국에 활동의 근거를 둔 연예인이 할리우드에 블록버스터에 진출해서 확보한 최대의 존재감 있는 배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박중훈의 '찰리의 진실'을 블록버스터가 아니라고 볼 때 그렇습니다. 또 '스피드 레이서'에 나온 비와 비교해 봐도 '울버린'이 '스피드 레이서'보다 흥행 폭발력 면에서 훨씬 더 클 것임을 감안하면 의미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죠. 한국어를 제대로 못 하는 헤니가 한국 배우냐 아니냐 하는 건 일단 접어 놓기로 합니다. 어쨌든 각국의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따졌을 때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대한민국일테니까요.

성공일까요? 일단 배우의 존재감은 확실합니다. 에이전트 제로라는 역할은 꽤 의미가 있고,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악당으로서도 기억에 확실히 남습니다. 듣자니 본래 독일인 캐릭터라던데, 굳이 아시아계 배우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헤니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헤니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은 냉정함보다는 여유로움입니다. 미소짓는 플레이보이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릴 마스크의 그가 시종일관 굳은 얼굴로 연기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갖고 있는 역량을 다 보여주기는 힘들었을 듯 합니다. 대사가 좀 더 많았어도 좋았을 듯 하고. 어쨌든 이제부터는 에이전트의 역할이 중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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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한국 배우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너무나도 선명해 보이던 헤니의 얼굴 윤곽이 진짜 코카서스 인종 배우들과 서 있으니 오히려 부드럽게 보이더라는 경험입니다. 즉, 한국에서 통하던 '얼굴만으로도 확 눈길이 가는 외모'의 효과는 이 영화에선 그리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쪽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강점일지 약점일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런 걸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듯 하고...

아무튼 캐릭터가 100% 적절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떠나서 '울버린'에서 에이전트 제로로 나온 배우라는 간판은 헤니의 앞날에 결코 손해가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최소한 '데어데블'에서 콜린 패럴이 여기한 불스아이 역할에 비해선 몇배 더 훌륭한 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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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잭맨의 연기는... 뭐 별 의미는 없습니다. 이건 그런 걸 따질 영화는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액션은 뛰어나고, CG도 훌륭하고, 이야기도 큰 무리 없이 이어집니다. 약간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지만 그런 건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에서나 따질 일입니다. 두어 시간 정도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휴일 한때를 보내기에는 최적의 영화입니다. 단 옆자리의 여자친구가 휴 잭맨에게 너무 눈길을 빼앗겨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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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코믹스 판의 울버린은 휴 잭맨 같은 멋진 남자는 전혀 아닌 듯 하던데 어쩌다 휴 잭맨이 이 역할을 맡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2000년 '엑스맨' 이후의 만화 그림체가 휴 잭맨의 얼굴을 따라가는 듯 하던데.

그런데 대체 왜 울버린과 세이버투스는 늙지 않는 겁니까? 달이 뜨면 변하는 늑대인간도 아닌데... 혹시 원작에 정통하신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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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웨이드/데드풀(라이언 레이널즈)과 뮤턴트XI(스콧 앳킨스)는 당연히 같은 배우일 줄 알았더니 다른 배우더군요. 코믹한 건 라이언 레이널즈가 훨씬 더 키가 크다는 것. 무술 전문 배우인 스콧 앳킨스의 실제 키는 1m80에 불과하더군요. 마지막 시퀀스의 촬영이 쉽지 않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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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찾아서 읽어보기 힘들 만큼 '박쥐'에 대한 세상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팔자에 없는 지방행으로 시사회를 놓치는 바람에 개봉날 밤에라도 볼까 했더니 이미 남아있는 좌석이 없더군요.^ 대단한 열기를 느끼면서 간신히 금요일 밤에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은 늦은 시간이지만 꽉 차 있었는데 같이 보시는 관객들의 반응은 대단히 잠잠했습니다. 간간이 웃음이 일긴 했지만 확 퍼지는 그런 웃음은 아니었고, 딱 한번, 송강호의 '문제의 그 신'에서 '아아' 하는 탄성이 일어나더군요. 혹시나 그 장면 하나를 보기 위해 이 많은 관객이 와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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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르실 분이 없겠지만 간단한 줄거리.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 신부 상현(송강호)은 세상을 위한 희생을 목표로 아프리카의 한 희귀병 연구소에서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를 자원해 떠납니다.

치사율이 사실상 100%인 병에 시달리던 상현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는 대신 뱀파이어가 되고 맙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신 사지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명성은 그를 스타 신부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친구인 강우(신하균)와 엄마(김해숙), 그리고 이 집에 얹혀 살다가 아예 강우의 아내가 된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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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플롯을 요약하자면 '세속의 욕망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한 신부가 피맛을 알게 된 뒤로 타락해 가면서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은 때로 찬탄을, 때로 안쓰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욕망'입니다. 아마도 이 단어를 빼고 '박쥐'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Thirst, 즉 갈증이라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오히려 한글 제목인 '박쥐'가 더 겉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욕망의 상징처럼 보여지는 것이 바로 피죠. 이런 박찬욱 감독의 시각은 본질적인 뱀파이어 영화의 함의를 뒤집어 버립니다. 뱀파이어 영화에서 피를 빠는 행위가 섹스의 대체물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흡혈은 착취와 지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고전에서 탐관오리가 '백성의 고혈을 빤다'고 할 때의 의미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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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때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를 '복수에 대한 3부작'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뭐 시각을 약간 비틀어 본 것의 차이일 뿐이지만, '박쥐'가 나온 뒤에는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 그리고 '박쥐'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름아닌 '사회에 대한 우화 3부작'이라고 말이죠.

물론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오래 전 본 '복수는 나의 것'이 흥미로웠던 것은, 한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서 있는 위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박찬욱 감독의 구조주의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강호와 신하균이 물속에서 마지막 격돌을 하기 직전, 송강호는 "너 좋은 놈인 거 안다"고 내뱉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할 수도 있던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격돌하게 되는 것은 이미 두 사람의 입장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읽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은유는 이보다 훨씬 노골적입니다. 결국 '과거사'와 '고백',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은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큰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쥐'에서 읽을 수 있는 은유는 매우 중층적입니다. 물론 표면에 나타난 것처럼 이 영화는 구원과 사랑, 선과 악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다른 해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전면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의 배경으로, 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화와 욕망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후의 내용을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그리 스포일러라고 얘기할만한 내용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매우 주관적이고, 감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겠다는 분들이 그렇게 나약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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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공간은 한마디로 '혼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자개 옷장과 열대성 관상식물, 괘종시계와 한복집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70년대의 부유층 가정 느낌입니다. 반면 강우와 태주의 방에 있는 물침대는 80년대식 타락의 상징이며, 강우 엄마가 마시는 보드카나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당연히 21세기를 보여줍니다.

송강호가 획득하는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은 곧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욕망을 실현하는 힘, 즉 물질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능력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이브 바이러스의 체내 투입은 성취에 대한 도전, '50명의 실험 도전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음'은 이 사회 안에서의 물질적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힘을 갖게 됨으로 인해 상현의 세계관은 완전히 뒤집힙니다. 아예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욕망에 눈을 뜸과 동시에, 주기적으로 피를 빠는 행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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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 태주입니다. 태주를 만나 생리혈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 영화 속에서 상현이 피를 먹는 장면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는 피를 먹지 않고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태주와의 만남-교통사고 환자의 피 맛 보기-호성씨의 피를 빨기에 이르는 과정이 지나고서야 상현은 피가 이브 바이러스의 발현을 막는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상현이 언제부터 피를 먹었나 하는 부분은 약간 모호합니다. 뱀파이어의 본능이 태주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그 관심이 다시 뱀파이어의 본능을 일깨운 과정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아무튼 생존을 위해 타인의 피를 빨되 이 뱀파이어는 '절제의 미덕'을 잊지 않습니다. 아울러 함부로 그 능력을 공유해선 안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에게 눈먼 신부의 갑작스런 욕구는 당혹스러울 뿐이고,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으면 누구에게도 능력을 나눠주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타인에게 능력을 나눠 준 뒤에야 그는 자신의 처음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길은 순교의 길입니다. 그의 순교-자기희생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과 자신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두는 것으로 구현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당연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박찬욱 감독이 '무슨 헛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원래 영화란건 각자 알아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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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의 캐스팅은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영화 속 태주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의 억압과 거기에 대한 폭발적인 반동입니다. '나 부끄럼 타는 사람 아니에요'라는 대사는 태주의 순종하는 모습이 해금됐을 때 얼마나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인지를 예견하게 합니다.

그런 태주의 모습, 순진한 듯 하면서도 냉혹하고 무지한 듯 하면서도 음험한, 본능 그 자체인 태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김옥빈은 최적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해, 경찰 조사 받고 하면 날 샐지도 모르는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김옥빈의 모습은 그동안 감춰진 이 배우의 재능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더군요. 물론 그것이 단순히 디렉션의 승리인지, 이 배우가 연출진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한 결과인지는 김옥빈의 이후 행보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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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송강호는 10%쯤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첫 대사, '당근이죠'는 유난히 '이건 송강호의 대사다'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 대사를 말하는 순간, 송강호라는 배우는 단지 감독의 도구가 아닌, 그 이상의 배우라는 점을 분명하게 관객에게 선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와 박찬욱 감독은 영화 내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역시 송강호'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잇달아 등장하지만, 앞부분에서의 송강호는 최적의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 배우의 특징인 능수능란함이 부각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된, 순진한 신부의 당혹감 같은 감정은 왠지 자취를 감춘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 정말로 '이 역할을 위해 태어난 배우'가 있지 않은 한 감독은 현존하는 배우들 가운데 자신의 이상을 구현해 줄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우들 가운데 송강호 같은 배우를 쓸 수 있다는 건 감독의 행운이죠. 아무튼 이 역할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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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의 액션이나 긴장감, '친절한 금자씨'의 비틀린 유머가 '박쥐'에서는 많이 약화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관객의 만족도는 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영화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객의 욕구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은 작품들이었다면, '박쥐'는 이 두 편 보다는 훨씬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 쪽으로 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쓰리, 몬스터'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피곤한 일상에 달콤한 자극이 될 스트레스 해소의 방안으로 이 영화를 선택할 관객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런 관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티켓을 취소하고 '7급 공무원'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은 '어쨌든 박찬욱', '아무렴 송강호' 라는 이름 값, 약간의 지적 허영심, 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노출 신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세상의 중요한 이슈에서 빠질 수 없다는 동반자 의식으로 매표에 나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가장 즐기는 방법은... 스스로 보물찾기에 나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미 '박찬욱의 영화'를 놓고 한 편 한 편에 평점을 매기는 수준을 넘어 선 관객들에게 '박쥐'는 하나 하나 까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보물단지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다른 개봉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중간 중간 시계를 보게 하는 영화일 수도 있죠.

'대체 왜 영화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생각이나 고민 같은 걸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관객에게 굳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선 천왕봉에 올라가야 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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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카톨릭 교단이 왜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이렇게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일찌기 만들어 진 적이 없는 듯 한데 말입니다. 너무 강력한 신성모독이라 아예 영화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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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착 입에 감깁니다. '똥파리'. 그렇게 끈적끈적하고 냄새도 좀 나면서, 구질구질하고 보고만 있어도 없애 버리고 싶어지는, 그리고 당장 파리채로 때려 죽여서 휴지로 닦아 쓰레기통에 치워 버려도 세상에 아무 변화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존재감을 묘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느낌입니다.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가 이런 저런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걸 모르는 분들은 아마 아니 계실 듯 합니다. 그런 똥파리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지난주 극장을 찾았습니다. 의외로 객석은 많이 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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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조폭사회의 맨 아래 층을 담당하는 인력동원 및 수금업에 종사하는 3류 건달 상훈(양익준)은 어느날 기분도 껄쩍지근하던 차에 길에서 자신의 험상궂은 외모와 말투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여고생 연희(김꽃비)를 만납니다. 흔한 날라리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닌 연희에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는 상훈.

전반부에서 영화는 상훈이 왜 아버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며 심지어 구타까지 하는지, 연희는 어떻게 상훈의 심한 욕설과 험악한 태도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둘은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개입해 가기 시작합니다. 연희는 상훈의 배다른 누나(이승연)와 그 아들인 형인(김희수)을 알게 되고, 상훈은 모르는 사이에 연희의 남동생인 영재(이환)와 인연이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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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의 최대 미덕은 일단 내러티브가 탄탄하고 관객에게 쏙쏙 들어온다는 점입니다. 이야기의 서술 방식은 사실상 상훈의 1인칭에 가깝습니다. 가끔씩 시점이 연희에게 이동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죠. 프롤로그를 빼면 이 영화는 어느날 회사(?)에 출근한 상훈에게서 시작해, 그가 다른 어느날 일과를 대략 마치게 되는 데서 끝납니다.

양익준 감독의 욕이 절반인 구수한(?) 연기와 함께, 상훈의 구구절절 기구한 사연은 당연히 관객에게 이온음료처럼 흡수됩니다. 상훈과 연희의 삶은 정말 처절하다 못해 어떻게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상훈과 연희는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캐릭터들입니다.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성선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캐릭터는 사실상 없습니다. 이 사회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악의는 이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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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은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에게 정서적으로 동화되기 쉽다는 강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판의 여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과연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한 선의로 행동할까요? 세상이 이렇게 혼탁한 것은 오로지 착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악한 환경에 버려지기 때문일까요?

특히 주인공 상훈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눈물겹습니다. 입만 열면 욕에다 자기에게 잘 한다고 잘 하는 사장 만식에게도 함부로 대하고, 후배들까지도 늘 때려서 말썽을 만드는 사고뭉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상훈의 내면은 꽃밭입니다. 깊은 속정으로 똘똘 뭉친 남자죠. 그가 입만 열면 흘러나오는 욕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안녕하세요'나 비슷하다고 봐야 합니다. 선의를 선의로 포장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애도 딸린데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누나를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따뜻한 말을 한다든가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돈 뭉치를 건네주고도 "누가 누나야? 너 우리 엄마 알아?"라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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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장면에서 참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한 코미디.>

이렇게 보면 볼수록 이 남자는 미워할 수 없는 남자입니다(심지어 적절한 유머까지 곁들여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하는 일은 사람을 때리고 겁 줘서 밀린 돈을 받아오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종종 다음과 같은 논리로 연결되곤 합니다. '우범자든, 범죄자든,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살아 보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정작 나쁜 것은 이 사회다. 이 불공평한 사회가 이 사람들로부터 양심과 윤리를 빼앗아 가고, 손쉬운 범죄의 길로 내몬다.'

좀 위험한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는 가끔 법정에서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데 사용되곤 하죠.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주위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사회의 보살핌으로부터도 벗어나 있어 비뚤어진 청소년기를 보낸 끝에.....' 뭐 꼭 맞다, 틀리다로 나눌 수 없는 논리이긴 하지만 이런 논리에 가장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정직하고 규범을 준수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너무 당연한 얘기라는 건 저도 압니다만, '똥파리'라는 영화가 담고 있는 사실 전달, 혹은 진정성이라는 부분을 너무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면에서 한번쯤 짚어 둬야 할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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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영화적으로 '똥파리'는 저예산영화일수는 있지만 전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이지 않습니다. '똥파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 즉 아주 단순화해서 '한 건달의 내면에 있는 순수 이야기'는 이미 한국의 상업영화들이 수십번 울궈먹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찌들대로 찌든 삼류 건달이지만 속으로는 가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그의 내면을 조명하는 영화들은 꽤 많이 꼽을 수 있습니다.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에서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파이란'의 최민식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초록물고기'의 한석규도 있군요.

다시 말해 '똥파리'는 흔히 독립영화군에 기대하는 '기존의 상업영화들이 다룰 수 없는 신선한 소재나 시각'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상업영화들이 다뤄왔던 이야기 사이에서 상당히 영악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 낸 영화입니다.

물론 이런 점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아예 대형 영화들과 똑같이 극장에서 경쟁하는 입장에서, '독립영화의 순수성'을 앞세워 '똥파리의 타락'을 꾸짖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무튼 '똥파리'는 그 자체로서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제작비 50억원짜리 영화들과 똑같은 돈을 내고 봐도 절대 손해라는 느낌은 없을 겁니다. 초반과 중간, 원경을 찍을 때 너무 카메라가 흔들린다는 점만 빼면 저예산 영화 특유의 기술적인 허점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양익준 감독과 '똥파리' 팀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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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장면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옵니다. 어쩐지 양익준 감독은 등으로 연기하는 데에도 꽤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익준 감독이 다른 영화에서 이 상훈 캐릭터를 연기하면 꽤 반응이 있을 듯 한데 그럴 의향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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