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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 가면 시내 한 복판에 조안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구상할 때 들렀다는 카페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 카페는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이라는 선전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에딘버러는 여름 기온도 20도 위로 잘 올라가지 않는 북유럽형 도시입니다. 그나마 여름에는 맑은 날씨가 꽤 계속되지만 그 밖에는 쌀쌀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곳입니다. 여름 한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miserable" 하다고 표현하길 꺼리지 않습니다. 해가 지면 중세 도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회와 종탑의 그늘에서 스물스물 귀신들이 기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절로 연출됩니다. 묘지와 지하실들을 도는 '유령 투어'가 인기를 끌기도 하죠.

이런 도시를 배경으로 탄생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주 처음부터, 밑바닥에 결코 아동소설답지 않은 어둠을 깔고 있었습니다. 1부에서 2부, 3부로 넘어갈 수록 조금씩 고개를 들던 이 음울한 기운이 극에 달하는 것이 바로 6부,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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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15세?)가 된 해리 포터와 친구들. 시리우스 블랙의 죽음 이후 호그와트는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짐 검사를 할 정도로 위기감에 휩싸입니다. 덤블도어는 옛날 볼드모트가 호그와트 학생일 때 그를 지도했던 슬러그혼을 다시 교수로 불러들이고, 해리 포터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죽음을 먹는 자(볼드모트의 추종자)가 됐다는 확신을 갖고 그의 뒤를 쫓습니다.

이런 사건들 사이로 성장한 해리와 론의 여자관계가 전면으로 부상합니다. 해리는 론의 여동생 지니가 다른 남학생과 데이트하는 것을 안타깝게 쳐다보고 매일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론과 헤르미온느(허마이오니라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사이에서도 뭔가 일어날듯 일어날듯 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마침내 해리와 덤블도어는 볼드모트의 가장 중요한 비밀에 접근하지만, 그 비밀을 안 대가는 생각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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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혼혈왕자'는 해리가 우연히 얻게 된 마법약 교과서를 옛날에 썼던 학생의 별명입니다. 사실 그 학생이 왜 그런 별명을 얻게 됐는지, 그가 누구인지는 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는 합니다만, 이름 자체가 극의 흐름에 큰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이미 소설로는 7부까지 다 나와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6부와 7부는 그저 드라마를 끝내기 위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 6편은 7편에서 거대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이전까지 '해리 포터'의 매편은 볼드모트라는 거대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항상 해리 포터의 성장과 희망을 담은 마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6편은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짓밟습니다. 스토리의 음울함은 극단으로 치닫고, 볼드모트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어린 시절의 모습만 나옵니다), 악의 세력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전체 여덟 편의 영화 시리즈(마지막 7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두 편의 영화로 각각 2010년과 11년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중 한 편으로 의미가 있을 뿐,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기엔 어려운 영화가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이 영화의 관객들은 인질이 되어 버린 상태이니, 꼬박꼬박 극장에 출석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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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6부나 7부가 이런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저자 조안 K. 롤링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오늘날의 결과를 낳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다니엘 래드클리프라는 배우라고 봐야 합니다.

2001년만 해도 너무나 동화 속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던 그가 '아즈카반의 죄수' 때부터 턱이 넓어지기 시작하고, 아무리 좋게 봐 줘도 10대 후반의 얼굴이 되어 버린 것이 소설의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미 소설과 영화가 한 배를 타고 나아가고 있는 마당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해리 포터가 얼굴이 삭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으로 바꿔 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스토리도 그에 따라 성장해야 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불가항력의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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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러다 보니 무리도 꽤 따릅니다. 배우가 성장하고, 작가가 거기에 연령대를 맞췄으니 해리 포터와 친구들은 꽤 자란 상태이건만 하는 짓거리는 1, 2부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나이와 몸은 성장했으되 정신적으로는 취약한 상태 그대로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사춘기의 주인공들을 그리다 보니 당연히 멜로드라마가 강조됐고, 여러 가지로 연애담들을 펼치고 있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요즘 중학생들에 비해도 턱없이 유아적인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몸만 어른에 가까워지도 보니 불균형이 꽤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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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섯 편의 전작이 거둬들인 천문학적인 성공 탓에 6편과 7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책은 팔리고, 영화는 대박이 나는게 정상인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에서 초기의 발랄함과 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중간에도 얘기했듯, 어쩌겠습니까. 차라리 시작하지 말았다면 모를까, 이제 두 번만 더 견디면 결말을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야죠. 6편과 7편의 세 작품은 2009, 2010, 2011년 3년간 매년 개봉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의 작품들처럼 2년 간격으로 개봉했다간 래드클리프가 30대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제작진을 마구 몰아치게 된 듯 합니다. 그때까지만 래드클리프가 버텨 주길(?)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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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도 세 주인공 중 하나는 건졌다는 것이 6편의 유일한 위안거리입니다. 참... 잔인한 자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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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태양을 삼켜라'는 일명 '올인 2'라고 불립니다. '올인'의 두 주역인 최완규 작가 - 유철용 PD가 다시 뭉친 작품이기도 하고, 지성이나 진구, 정호빈 등 '올인' 때 호흡을 맞췄던 멤버들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밑바닥에서부터 다져 올라가 야망에 젊음을 거는 주인공 김정우의 모습에서는 '올인'의 김인하가 언뜻언뜻 보입니다.

하지만 15일 방송된 2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올인'이 아닌 다른 작품의 향기가 짙게 풍겼습니다. 설정은 극중 장회장(전광렬)이 제주도에서 발견한 정우(지성)를 쓸만하게 여기고 아들 태혁(이완)의 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태혁이 어떤 여자와 진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본 정우가 태혁에게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고 하자 태혁은 "우리 아버지가 보냈으면 양아치 아니면 쓰레기"라며 아버지에 대해 극도의 경멸을 표현합니다.

자, 이 대목에서 어떤 영화가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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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는 20세기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히는 알랑 들롱의 25세때 모습을 볼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서 들롱이 연기하는 톰 리플리는 한 백만장자의 부탁을 받고 비뚤어진 아들 필립(모리스 로네)을 찾아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합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필립과 톰은 친구가 되는데 톰은 어느새 필립의 애인 마지(마리 라포레)에게 연정을 품게 됩니다. 물론 친구라고 해도 둘 사이에는 엄밀히 신분의 격차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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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맷 데이먼 - 주드 로 - 기네스 팰트로가 주연한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의 오리지널인 바로 그 영화입니다.

드라마 보기 30여년의 경력으로 짐작해 볼 때 '태양을 삼켜라'의 다음 진행은, 당연히 수현(성유리)과 태혁을 맺어주려 애써야 하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수현을 좋아하게 되는 정우의 내면 갈등이 될 것 같습니다. 뭐 '태양은 가득히'나 '리플리'를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구성이죠.

정우와 톰 리플리는 재능은 있지만 배경이 없고, 가진 것에 비해 야심만만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태혁이나 필립은 성공의 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끈을 놓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한눈에 반하게 된 여자에 대한 갈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합니다.

물론 톰 리플리는 이 정념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겠지만, 정우의 운명은 좀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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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태양을 삼켜라'의 전략은 '올인 2'라는 평가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드라마들이라면 '올인 2'라는 이름에 다소 짜증섞인 반응을 보일 법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내놓고 '올인'과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TV 드라마의 시청층을 생각할 때 익숙한 코드와 영상의 재현은 그리 나쁜 전략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최근 들어 '선덕여왕'이 다소 유치한(?) 구도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걸려 있던 30% 벽을 훌쩍 뛰어넘은 데서도 알 수 있듯 적절한 선에서의 '어디선가 본듯 한 느낌'의 재현은 시청률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물론 이런 화려한 출연진과 제작진을 갖춘 드라마가 성공했던 전작의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품성을 평가할 때에는 엄연한 감점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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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묘하게도 지성의 얼굴에서 자꾸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뭐 여기까진 괜찮은데 정작 심각해야 할 장회장의 얼굴에서는 어쩐지 '씁쓸한 인생'의 김준호가 연상되어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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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은 끊임없이 화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초반의 기대에 못 미친다, 자꾸만 '궁정 내 싸움'으로 작은 드라마가 되어 가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있지만 경쟁작들의 추월 가능성은 이제 거의 희박해졌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이런 인기와 관련해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선덕여왕'의 메시지입니다. 굳이 옛날의 예를 들지 않아도 모든 사극은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시대, 어떤 사건을 소재로 삼느냐부터 바로 이 '메시지'는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덕여왕'은 현대의 위정자들이 보기에 두 가지 두드러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관련된 문제, 또 하나는 위정자의 도덕성과 능력 사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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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과연 화랑들은 누구의 아들들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바로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명문 귀족의 자제들이 모두 화랑을 이끄는 화반들이고, 아무리 명문 거족의 후예라도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지 못하면 고위직에 발탁될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흥왕의 동생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도 일찌기 장군으로 수차 전장에 나갔고, 세종과 미실의 아들인 하종 또한 전투에 나가지 않았으면 관직에 나갈 명분이 없다는 내용이 수차 방송됐습니다.

비단 이런 내용은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선덕여왕'이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화랑세기' 만의 기록은 아닙니다. 이른바 정사인 삼국사기를 통해서도 귀한 가문 출신의 화랑들이 앞다퉈 목숨을 내던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일찌기 구리공의 아들이며 5세 풍월주인 사다함도 16세의 나이로 선봉의 중책을 맡아 대가야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을 비롯, 김유신 또한 약관의 나이에 백제와의 국경을 지키는 중책을 맡아 무장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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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장 잘 말해주는 인물들은 너무 유명해서 다시 거론하기가 힘들 지경인 반굴과 관창이 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김유신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를 돌파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역사의 기록입니다.

관창에 가려 명성이 덜 알려진 반굴은 유신의 동생인 흠순의 아들이니 신라군 총사령관의 조카인 셈입니다. 반굴이 먼저 단기로 적진에 달려들어 용맹을 뽐내고 죽은 뒤 관창이 풀려나면 달려들고 풀려나면 다시 달려들어 오늘날까지 이름을 남겼습니다.

조카를 희생시킨 마당에 아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죠.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펼쳐진 나-당 전쟁에서 김유신은 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원술을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고 내칩니다. 고위층 자제들이 가끔 병역 문제로 물의를 빚는 오늘날의 모습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른 분위기인지 실감이 납니다.

얼마전 '선덕여왕'의 전투신에서 부상당한 화랑 알천이 자신은 퇴각의 짐이 될 뿐이니 죽이고 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작가의 창작이겠지만, 전반적인 화랑의 분위기를 볼 때 크게 벗어남이 없는 진행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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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권력을 쥔 자들이 어떻게 정당성을 얻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14일 방송분으로 볼 때 '선덕여왕' 제작진이 제시한 미실의 권력 기반은 한발 앞선 정보력과 기술력에서 온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속임수이고, 또 미실은 당시 세계 최첨단의 과학 기술을 먼저 도입했고, 비록 그 기술을 사사로이 사용했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그들이 아니었다면 신라가 혜택을 보지 못했을 새로운 문명을 접하게 한 것 역시 미실 일파의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미실과 '선덕여왕' 속 권력자들은 세계의 흐름과 문명의 발전에 있어 일반 국민이나 그들에게 도전하는 다른 세력에 비해 한발 앞서 있었다는 것이 제작진의 주장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90% 이상 창작이니 사실 여부와는 무관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첨단 기술에 의한 사회의 변화 속도가 날로 빨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작진이 굳이 '정보와 기술의 이해'를 권력의 핵심으로 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권력은 뒤로 밀려나 마땅하다는 생각도 도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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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은 덕만에게 '미실이 악이냐'고 묻습니다. 이미 미실은 정권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것을(드라마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짙게 풍깁니다) 전제라고 하고 있고, 지금도 공포를 정치의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덕만은 미실이 악에 더 가깝다고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게다가 미실은 민본주의자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덕만은 미실의 도덕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실은 '지금 신라에 나보다 더 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나보다 더 세계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고, 나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잘 읽으며, 나보다 더 국민들의 신망이 두텁고, 나보다 더 무사 집단이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당당하게 던질 수 있고, 여기에 대해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위정자라면, 과연 국민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과연 우리는 이 시대에 이런 위정자나 거기에 걸맞은 대안을 갖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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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TV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인데, 거기에 대한 포스팅을 너무 자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사실 선덕여왕을 열심히 보다 보니 거기에 대해 쓸 거리가 많아지는 것은 아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겁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신라사나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책인 '화랑세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집필의 의욕을 좀 많이 느끼게도 합니다.

그 중에는 특히 문노, 미실, 칠숙, 대남보, 보종 등 기존의 역사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인물(심지어 실존 인물인지도 아리송한)들에 대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서라벌의 10화랑이라든가, 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긴 하지만 김유신의 드라마 밖 이야기 같은 것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들을 새롭게 포스팅할때마다 지난 포스팅들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게 좀 아쉽더군요. 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아서 보실 분들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고... 그래서 아예 인덱스 포스팅을 하나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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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포스팅들에 대한 목록과 안내의 성격을 갖는 포스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서 찾아보시면 될 듯 합니다.


천추태후 덕을 본 선덕여왕

첫번째로 쓴 글입니다. 미실이란 어떤 인물이며, 그 복잡다단한 사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선덕여왕'이란 드라마를 보실 때 꼭 필요한 내용일 겁니다. 물론 미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젊은 날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다음 포스팅의 주요 내용입니다.




미실의 첫사랑, 사다함
 
신라를 이끌어갈 젊은 화랑이던 사다함이 어떻게 해서 요절하게 됐는지, 그리고 미실과 그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주로 다뤘습니다. 지금 방송되는 '선덕여왕'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부분입니다.



사다함과 미실의 진짜 비밀은

사다함이 마침내 어린 미실과 함께 드라마 '선덕여왕'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다함과 미실의 관계에는 상당히 큰 의혹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 김정현이 연기하는 미실의 아들 하종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것이죠.



터미네이터, 칠숙의 정체

이 칠숙은 의외로 실존인물입니다. 그리고 정사에 나오는 칠숙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에서 안길강이 연기하는 칠숙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슬슬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속 칠숙의 모습은 정말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더군요.^^




선덕여왕의 문노, 진정한 화랑

많은 분들이 '선덕여왕'을 보면서 '도대체 왜 문노는 말로만 나오고 실제로는 안 나오는 거냐'고 궁금증을 느끼곤 합니다. 선덕여왕 최대의 떡밥 문노.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김유신의 어린시절, 화랑세기 기록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10권의 열전 중 3권을 김유신의 전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김유신이란 인물은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인물이죠. 이런 유명한 인물고, '선덕여왕'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관계로 묘사되었는지 '화랑세기' 기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드라마에 없는 김유신의 첫사랑

지금까지 김유신이 등장한 모든 드라마에는 천관녀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말 목을 베는 에피소드는 김유신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일화죠. 이를 포함해 삼국사기 기록에 나오는 김유신의 실제 여자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서라벌 10화랑, 총정리

화랑세기 기록과 '선덕여왕' 작가진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F10, 서라벌 10화랑에 대한 참고 사항 총정리입니다. 각 화랑의 성격과 그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위정자들이 봐야할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이 과연 오늘날에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측면에서 본 글입니다.


선덕여왕 3대떡밥 언제 다?

'선덕여왕'이 위기에 놓이면 드라마에 등장할 세가지 비밀무기에 대한 글입니다. 첫째가 덕만의 출생의 비밀, 둘째가 문노의 재등장, 그리고 세째가 김춘추=유승호의 등장입니다. 이때는 비담의 등장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비담 캐릭터 어디서 봤다

비담에 대한 내용은 별도 포스팅으로 처리했습니다. 비담과 '베가본드'에 나오는 무사시의 공통점, 그리고 이런 캐릭터의 역사와 김남길(이한)의 경력에 대한 간략한 정리입니다.


무삭제로보는 19금 선덕여왕
 
'선덕여왕'을 제대로 만들면 19금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 '선덕여왕'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문의 사서 '화랑세기'에 나오는 '마복자' '용양신' 등의 특수 용어를 통해 신라인들의 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재미로 본 화랑들의 전투력 랭킹
 
과연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강한 전투력을 갖고 있을까요? 화랑 전투력 랭킹 베스트 5를 꼽아 봅니다.



'선덕여왕'에서 소외된 화랑들
 
진지왕-진평왕대에 이름을 날렸으면서도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은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세속오계를 남긴 원광법사, 원광으로부터 오계를 받아 화랑들에게 전파한 귀산과 추항 등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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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면서 옷을 하나씩 벗는다. 혹은 아예 아무 것도 안 입은 여자가 뉴스를 진행한다. 처음 들으면 참 솔깃한 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네이키드 뉴스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시작됐습니다. 엄청난 인기라는 사람도 있고, 정작 보니 시시하더라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성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자극적인 성인용 오락물에 비해 지독하게 단순하고 심심하겠죠. 여기에 살짝 뉴스라는 서비스를 얹어 상품으로 개발해 낸 발상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뉴스를 보기 위해 네이키드 뉴스를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뉴스도 뉴스 아니냐?'고 누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기가 좀 궁색해 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네이키드 뉴스는 왜 뉴스가 아닌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키드 뉴스만 욕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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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뉴스

일본에 뇨타이모리(女體盛り)라는 묘한 풍속이 있다. 옷을 벗은 여자의 몸에 생선회나 초밥을 올려 놓고 먹는 것을 말한다. 최근엔 일본 음식 붐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런 풍습이 꽤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생선회를 여자의 몸 위에 올리면 맛이 각별할까. 아무리 시각이 미각에도 영향을 미친다지만 맛 때문에 뇨타이모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번 달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가 화제다. 지난 1999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는 근엄한 정장 차림의 앵커 대신 나체의 여자가 뉴스를 읽어준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감출 것은 없다(Nothing to hide)'는 광고 문구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1000만명에 가까운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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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이키드 뉴스를 놓고 뉴스의 질을 논하는 것은 뇨타이모리의 초밥 맛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벗은 여자를 보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인터넷 방송의 음란성을 주목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인용 유료 서비스를 놓고 새삼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닌 듯 싶다. 굳이 지적하자면 이 '뉴스 아닌 뉴스'의 진짜 문제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고, 단 한 건의 기사도 직접 취재하지 않으면서 뉴스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기자의 손을 거쳐 어떤 앵커가 보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들 스스로 '뉴스는 그냥 구색 맞추기'라고 자백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눈을 돌려 보면 이것이 네이키드 뉴스만의 문제는 아님을 알게 된다. 기자 없이도 뉴스를 생산하는 매체들이 이미 널려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 7월호에 따르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인터넷 신문은 1399개나 된다. 절반은 유명무실이지만 실제로 기사가 공급되는 곳만도 706개에 이른다.

그나마 상당수는 실제 취재 인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남이 쓴 기사를 '긁어다 붙여(copy and paste)'. 바이라인도 없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기사의 저작권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된다. 이런 '사이버' 사이비 언론들이 멀쩡히 숨쉬고 있는데 누가 네이키드 뉴스를 '무늬만 뉴스'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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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CSI 뉴욕'을 보다가 이 뇨타이모리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인터넷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뇨타이모리와 관련된 사진은 서구인들이 등장하는 게 훨씬 더 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서양에서 뇨타이모리를 그렇게 많이 즐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걸 '변태 짓'이라며 아예 거론하기를 꺼리는 우리 쪽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그냥 신기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뜨뜻한 스시는 생각만 해도 별로일 것 같거든요. 아, 왜 남자들을 위한 서비스만 있냐고 분개하실 여자분들을 위해 난타이모리(男體盛り)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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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위에도 썼지만 뇨타이모리의 스시와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는 결국 같은 의미입니다. 그냥 눈가림이란 얘기죠. 물론 이 스시로도 배는 채워지고, 그 뉴스로도 시사 상식은 채워질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왜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가 '진짜 뉴스'가 아닌지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자 없는 뉴스'의 심각성은 인터넷의 폐해 중 하나입니다. 요즘 이쪽 업계에서는 '기사 도둑질'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매체에 나온 기사를 받아 쓰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똑같이 취재를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기사가 사실인지, 혹시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지 보충 취재를 한 다음에 기사를 쓰는 것이 상식이죠. 하지만 특종성 기사가 하나 보이면 다짜고짜 휙 긁어다 토씨 몇개를 고쳐 자신들이 취재한 기사인 양 내보내는 비양심 매체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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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매체들의 비양심이 1차적인 문제지만, 그런 무자격 매체들의 기사를 싼 맛에(거의 공짜에 가까운 값이라고 합니다) 게재해 주는 포털들도 문젭니다. 이렇게 '무슨 일만 생기면 쌍둥이같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써 둔 글이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게 아무 기사나 척척 베껴서 내 기사인 척 하는 기괴한 매체들은 네이키드 뉴스에 비해 나을 게 없다는 얘깁니다. 그쪽은 그나마 '보여주기'라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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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을 보내는 자리에 가족이 아닌 '여자'로 나온 사람은 결국 브룩 실즈 뿐이었습니다. 브룩 실즈는 그와의 추억, 어린 왕자였던 잭슨의 모습을 찬찬히 털어놔 사람들을 감동시켰죠. 실즈의 말 가운데 가장 가슴에 남는 말은 "우리가 같이 다니고 사람들로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힐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상한 커플, 있을 수 없는 커플'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에겐 그런 둘만의 관계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는 동안, 여자관계에 대한 소문은 하루도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여자들과 MJ가 진지한 관계(육체적인 관계?) 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죠. 다이애나 로스에서 시작하는 잭슨과 여자들의 관계는 테이텀 오닐, 브룩 실즈,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거쳐 두 아내와 보모에 이릅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명멸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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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에게 있어 첫 여인은 아무래도 다이애나 로스일 겁니다. 1967년, 9세의 잭슨이 형들과 함께 할렘 아폴로 극장에서 모타운 레코드 오디션을 겸한 무대에 섰을 때 23세의 로스는 이미 슈프림스의 일원으로 스타덤에 올라 있었습니다.

14세 차이는 이 정도 연령대에선 거의 엄마와 아들의 차이죠. 아무튼 잭슨5도 곧 스타가 됐고 잭슨과 로스는 자주 얼굴을 대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무렵 다이애나 로스는 어린 마이클에게 이른바 미의 전형 역할을 했고, 마이클의 심미안은 이후로 줄곧 로스를 기준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80년대 이후, MJ가 잇단 성형수술을 할 때 그 모델이 로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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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재미있는 동영상이 있어 퍼 왔습니다. 10대 초반인 듯한 마이클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It was a very good year'를 부르며 20대 중반인 다이애나 로스에게 쿨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플레이보이를 연기합니다.

영상에서도 보듯 이 두 사람의 사이를 염문설로 묘사하는 건 좀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뭐랄까, 사이 좋은 모자 같은 관계라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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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MJ의 인생에는 테이텀 오닐이 등장합니다. 요즘에 와선 잊혀진 이름이지만 테이텀 오닐은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 라이언 오닐의 딸로, 11세 때인 1974년 아버지와 공연한 영화 '페이퍼 문'으로 사상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오닐은 지난 2003년 "12세 때 17세인 마이클 잭슨이 나를 덮쳤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사실 이건 "테이텀 오닐이 12세 때 나를 집으로 유혹해 키스하려 했다"는 잭슨의 주장을 반박한 것입니다. 오닐은 "잭슨이 나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머쓱한 얼굴로 '나 갈래'라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별 것 아닌 얘기지만, 당시 잭슨은 오랜 아동 성추행 재판중에 있었고 오닐의 이런 주장은 원고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예민한 얘기였죠.

아무튼 이들이 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이미 모든 사람이 알아보는 스타가 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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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오랜 팬인 쿨탱씨는 MJ의 여자들로 꼽히는 테이텀 오닐, 브룩 실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공통점으로 '이미 유년 시절에 웬만한 성인들을 능가하는 스타가 된 사람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그렇게 조명과 분장, 박수갈채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남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란 점을 생각하면 매우 타당한 이론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MJ의 내면을 감싸 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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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스릴러'로 지구 최고의 팝스타가 된 MJ는 당시 버전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브룩 실즈를 데리고 그래미상 시상식에 나타납니다. 둘의 로맨스는 널리 널리 퍼져나갔고, 이때 한창 피어나던 커플인 존 본 조비-다이언 레인은 아예 이들의 화제에 묻혀 뒤 페이지로 밀려나는 굴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커플은 어딘가 어색하다는 평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최고 스타들끼리의 만남이라는 건 좋지만 MJ는 이미 이 시절부터 성적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만큼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이상한 소문을 떨구기 위한 위장 데이트라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브룩 실즈 또한 극성스러운 엄마 때문에 '순결 선언' 같은 닭짓을 할 때였으므로 '별난 것들'이란 시선이 따가웠죠. 결국 이 커플은 소리없이 그냥 해체돼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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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MJ가 아무리 유별나다 해도 26년 연상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관계를 그냥 사이 좋은 의붓 모자 이상을 보는 건 힘들 듯 합니다. 테일러는 마이클의 죽음을 맞아 "I loved Michael with all my soul and I can't imagine life without him" 이란 비탄 어린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습니다. 특히 2005년 재판 때 잭슨을 위해 증언한 사실도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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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리즈 테일러는 저 위 사진의 '화장 짙게 한 할머니' 이미지로 남아 있겠지만, 전성기 때의 리즈 테일러는 정말 '세계 최고의 미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한번 보시라고 끼워 넣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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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정작 그의 아내들은 참 뭐라 말하기 묘합니다. 잭슨이 1994년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을 때 대다수 인물들의 반응은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정략결혼"이라는 것이었죠. '팝의 제왕(King of Pop)'인 잭슨이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n Roll)의 딸과 결혼했으니 이건 글자 그대로 왕가의 결혼인 셈이니까요. 두 사람은 왕자와 공주 자격으로 리사 마리가 7세 때인 1975년 라스베가스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결혼을 하긴 한거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2년만인 1996년 갈라섭니다. 리사 마리는 한참 뒤인 2002년 니콜라스 케이지와 결혼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의 케이지는 '케서방'이 되어 있죠.

마이클 잭슨의 팬들이 리사 마리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리 만무하지만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볼 때 리사 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답게,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익힌 사람이었고 MJ와도 충분한 공감의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MJ가 정신적으로 리사 마리를 많이 의존했다는 주장도 있죠. 하지만 리사 마리의 자유분방함을 '소년 그 자체인' MJ가 감당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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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리사 마리와 이혼한지 10개월만에 잭슨은 간호사 출신인 백인 여성 데비 로와 결혼한다고 발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로는 두 아이 프린스1과 패리스를 낳고 99년 MJ와 이혼해 사라집니다. 셋째인 프린스2(블랭킷)는 로와 이혼한 뒤에 태어난 아이로, 누가 낳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로는 팬들에겐 저주의 대상입니다. 아이들의 생모이지만 실제로는 수정된 난자를 받아 아이들을 낳은 대리모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아이들에 대해 아무런 애정을 보이지 않았으면서도 MJ가 죽고 난 지금 아이들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죠. 참고로 MJ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아이들을 어머니인 캐슬린 잭슨이나 다이애나 로스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는 유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생부와 생모 중 한 쪽이 사망했을 때 다른 한 쪽이 친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데비 로는 지난 2003년 했던 인터뷰 내용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로는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도 아이를 낳아 주기로 했지만 엄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며 아이들을 마이클에게 내주고 혼자 위자료를 챙겨 떠난 데 대해 아무런 후회나 고통이 없음을 밝힌 바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인 엄마라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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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의 마지막 여자로 기록될 사람은 아마도 아이들의 보모인 그레이스 르와람바일 듯 합니다. 비서와 보모로 총 17년 동안 잭슨가와 인연을 맺었던 르와람바가 사실은 MJ와 비밀 결혼을 올린 사이라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사실이라면 이미 본인이 아이들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천명하고 나섰을테니 별 근거는 없는 얘기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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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결식에서 딸 패리스의 눈물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은 가운데 세 아이는 어떻게 될지, 특히나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는 어떻게 자라게 될 지, 제왕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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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도 하지 않다가 반가운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나오시더군요. 한때 MBC 뿐만 아니라 한국 예능의 큰 흐름을 이끌었던 스타 PD였고, 최근에는 저술가로 변신하신 분입니다. 아프리카를 다녀 오신 경험을 쓰셨더군요.

사실 PD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다는 것은 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현재 MBC 예능의 주력인 여운혁 CP 계열의 직계 선배이고, MBC 예능국장을 역임하신 분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 예능 PD로 일선에 복귀를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무릎팍 도사'에 이 분이 출연한 것은 지나친 전관예우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건 방송을 보기 전 얘기고, 어제 이 분이 풀어 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만한 분이었다는 걸 수긍하게 될 겁니다. 특히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가 당시 온 국민에게 줬던 감동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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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는 방송사는 드라마건 예능이건, PD를 스타로 만드는 데 있어 다른 방송사들보다 항상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영희 PD는 90년대 중반의 MBC를 대표하는 예능 PD였죠. 그 위로는 송창의 주철환 은경표와 같은 거물들이 있었고, 이후에는 고재형 여운혁 김태호로 예능 스타 PD의 명성이 이어집니다.

이 분을 처음 뵈었을 때가 주철환 전 OBS 사장의 조연출일 때였으니 참 오래 전 일입니다. 그 무렵이 바로 이 분이 '몰래카메라'를 열심히 찍고 계실 때였죠. 방송에서도 이범학의 몰래카메라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몰래카메라'라는 포맷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송창의 PD(현 tvN 대표)였지만, 이범학과 이경규가 등장한 '몰래카메라'는 주철환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지휘봉을 넘겨 받은 첫 회의 기획이었습니다. '퀴즈 아카데미'를 연출하던 주 PD가 '일밤'으로 옮겨가면서 '퀴즈 아카데미'의 포맷을 오락 프로그램에 응용한 것이었죠.

이 얘기는 지난번에 상세히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선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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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예능 스타 PD의 계보에서 김영희 PD와 주철환 PD는 유독 밀접한 관계입니다. 바로 MBC 예능에 면면히 계승되는 '교양파'의 전범을 만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능도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가운데서도 뭔가 느끼고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당의정 이론'의 대표자들이죠.

물론 엄밀히 말해 이런 이론을 주창한 사람은 주PD지만 이를 실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구현한 사람은 김PD였던 겁니다. '남는 것이 있는 예능'은 이른바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 그리고 신동엽의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 또 '느낌표'의 '기적의 도서관'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람들은 TV가 그저 웃기고 울리고, 화려하고 요란한 세상만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고,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공 뒤에는 김PD의 힘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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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의도 MBC 3층에 있던 예능국의 '일밤' 회의실에 가 보면 이 분은 깨 있는 모습보다 잠자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회의실 한켠에 아예 야전 침대가 있고, 거기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죠. 방송에서도 '예능국장이 되자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놨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미 평 PD일 때부터 회의실에는 침대가 있었습니다. "왜 매일 주무시느냐"는 농 섞인 질문에 "송기자, PD 해봐. 간이 상해"하던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양심냉장고'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당시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지선을 칼같이 지켰습니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 '잘하면 횡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래. 이게 원래 지켜야 하는 선이었지'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파고 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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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이경규와 김PD는 수없이 많은 작은 영웅들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 많은 주인공들 중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사람은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할머니(네. 이 분이 바로 설정이죠)의 짐 보따리를 선뜻 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 한 국군 장병이었습니다.

얼굴도 늠름하게 잘 생겼던 이 장병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생각났다"는, 쪽 빠진 멘트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선물을 받고 난 마지막 말까지도 "혼자 휴가 나와 미안한데, 동료 전우들에게도 한턱 내야 겠다"는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더군요. 장동건이 나온 들, 이영애가 나온 들 이보다 멋진 방송을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처럼 김PD와 이경규의 실험은 "톱스타 없이도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전례를 확실하게 남겼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그걸 극복한 건 아이디어에서 끝나지 않는 끈기와 뚝심의 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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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도 일본 후지TV 연수 얘기가 나오던데, 이분이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하신 얘기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10년 이상 전의 얘기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가니 우리와 큰 차이 없는 방송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인력이 우리의 몇 배나 됐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 만드는데 PD가 10명, 스태프가 60명이 넘었다.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이런 걸 PD 2-3명이 한다'고 했더니 다들 놀라면서 '아, 한국 PD는 슈퍼 PD다'라며 칭찬을 하더라. 그런데 그날 저녁, 술자리에 갔는데 선임 PD가 한마디 하는거야. '사실은 일본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더 높은 품질을 위해 급속도로 투입하는 인력이 많아진거다. 다 필요해서 늘렸다.' 그러니까 낮에는 예의상 그렇게 얘기했던 거지."

2009년, 한국 예능 프로그램도 2시간짜리 주말 버라이어티를 만드는 데 모두 합치면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예전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국장 아닌 김PD의 복귀 출사표는 마냥 반갑습니다. 뭐 늘 성공하는 프로그램만 만드신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한 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p.s. 혹시 이 글 보시게 되면 책 한권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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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영결식이 새벽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참 지나서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tvN에서 새벽 1시부터 생중계라는 자막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시작할 생각은 안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포기하고 그냥 잠들어 버렸는데 2시30분에나 시작했더군요. 다행히 아침에 스트리밍 채널을 찾아 행사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자막도 없고 해설도 없는 방송;; 한번 보고 뭘 쓰려니 좀 꺼려집니다만, 아무튼 중계를 못 보신 분들이나, 보시고도 기억할 거리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정리해 봅니다. 아무래도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정리된 내용은 별로 없을테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행사 지켜보신 분들의 많은 지적과 수정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좀 더 남을 가치가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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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7일, 미국 서부 시간 11시 로스 엔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

- 스모키 로빈슨이 다이애나 로스와 넬슨 만델라의 서한을 관객들에게 읽어줌.
로스는 "마이클은 내 인생에서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적절한 말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가 내게 그의 아이들을 부탁했으니, 나는 그들이 나를 원할 때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함.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공연하면서부터 그를 알게 됐고, 그와 점점 친근해져 나중엔 가족의 일부가 됐다. 마이클은 거인이었고, 음악계의 전설이다. 수백만 팬들과 함께 애도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음.

- 7명의 남자들이 마이클 잭슨의 관을 무대로 옮김.

- 성가대의 찬송.

- 루시어스 스미스(Lucius Smith) 목사의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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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라이어 캐리와 트레이 로렌즈(Trey Lorenz), 잭슨5의 히트곡 'I'll be there'를 부름. (그러나 돌고래 소리는 트레이 로렌즈의 몫...) 마지막은 캐리의 "We miss you."

아시다시피 이 노래는 캐리의 초기 히트곡이기도 하죠.

- 퀸 라티파(Queen Litifah), 추도시 낭송

-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Jesus is my love'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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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리 고디(Berry Gordy, 전 모타운 레코드 사장) 추도
'드림 걸즈'를 통해 잘 알려진 베리 고디는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수많은 흑인 음악의 슈퍼스타들을 발굴해 키워낸 인물.
"그는 내겐 아들과도 같았다. 재키, 저메인, 티토, 말론과 함께 그를 만났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모두 그가 특별하고 세상을 앞서가는 아이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상에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The Greatest Entertainer Ever Lived)였다."

...다이애나 로스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게 좀 의외로군요.


- 마이클 잭슨 추모 비디오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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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비 원더 등장. 간단한 스피치와 함께 "I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와 "They Won't Go When I Go" 두 곡을 부름. 노래 도중 "Michael, why didn't you stay?" 라는 가사로 관객들을 뭉클하게 함.

- 코비 브라이언트 & 매직 존슨 등장.
브라이언트는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팝스타로서의 그를 기억하자. 그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추도.
Remember the Time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매직 존슨(그도 MJ군요...), "그의 형 재키 잭슨과 알고 지낸지 벌써 30년이다. 그와 말론은 레이커스 홈티켓 소지자다. 그러면서 자연히 마이클과도 친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좀 더 나은 포인트가드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흑인들에게 세상의 문들을 열어줬다. 그를 통해 흑인들은 각계에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됐다"고 좀 길게 추도.

Remember the Time에는 에디 머피, 이만, 매직 존슨이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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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퍼 허드슨, 잭슨의 'Will you be there' 부름.

- 알 샤프톤(Sharpton) 목사(흑인 민권운동가). "절대 포기하지 않아서 그는 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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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메이어, 일렉트릭 기타로 잭슨의 'Human Nature'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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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룩 실즈 등장. 
"13세때 그를 처음 만났다. 우리가 한창 여기 저기서 사진을 많이 찍히고 다닐 때, 사람들은 주로 우리를 이상한 커플, 존재할 수 없는 커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관계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동질감을 느꼈다. 가끔 나는 '난 11개월 때 데뷔했는데 당신은 다섯살때 데뷔했나? 게을러(slacker)' 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문워킹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나는 배우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주로 그를 왕(King of Pop)이라 불렀지만, 내 생각에 그에게 알맞는 이름은 어린 왕자다. 그는 너무나 많은 명곡들을 만들었지만 마이클 잭슨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Smile'이었다. 이 노래는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위해 직접 작곡한 노래였다."

1980년대, 브룩 실즈와 마이클 잭슨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염문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잭슨이 성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가짜 애인이 필요한 모양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죠. 아무튼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면서 열애설은 꽤 오래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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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메인 잭슨, 'Smile' 부름.

- 마틴 루터 킹 3세(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아들)과 누이동생 버니스 추도사.

- 셸라 잭슨 리(텍사스 주 출신 의원. 흑인 민권운동가), 잭슨의 인권 기여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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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셔 등장, 잭슨의 'Gone too soon' 부름. 감정에 복받쳐 흐느낌.

베이비페이스의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에서 잭슨이 부른 이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 잭슨5 시절의 추모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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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 등장.
"(Who's Loving you의 끝자락이 흐르자)네. 제가 이 노래를 만든 사람입니다. 10살때의 잭슨을 처음 봤는데 이건 10세 소년의 노래가 아니었어요. 그 나이에 그런 soul이 들어 있는 아이는 처음이었죠. 그는 세상 최고의 축복이었어요."

스모키 로빈슨은 당시 모타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수 겸 작곡가였습니다. 로빈슨의 Who's Loving You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됐지만 누구나 이 노래를 잭슨5, 혹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탁월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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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섀힌 자파골리(Shaheen Jafargholi), 잭슨5의 'Who's Loving You' 부름.
노래 끝난 뒤 "정말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마이클 잭슨"이라고 코멘트.

잘 아시겠지만 얼마 전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재림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소년 가수입니다. 이번 This is it 공연에서 설 예정이었다는군요.

- 케니 오르테가(Kenny Ortega, 공연 디렉터, 안무가)
This is it 공연을 준비하던 디렉터이자 잭슨의 사업 파트너였다고 자신을 소개. 잭슨이 얼마나 This is it 공연에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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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슨의 공연을 준비하던(?) 백 보컬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르며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대로 올라옴. 노래가 'Heal the World'로 바뀌며 어린이 합창단이 무대를 감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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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들의 추도사. 잭슨의 딸 패리스(Paris), "아빠는 정말 최고의 아빠였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림.

- 루시어스 스미스 목사, 폐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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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대중 아티스트의 영결식'이란 느낌이 역력했습니다. 추도하기는 하되 모든 것이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라는 사실이 너무도 뚜렷했죠. 추도사를 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청중들에게 웃음을 자아냈고, 퍼포먼스에 나선 가수들은 최선을 다해 노래했습니다. 어셔가 노래 막판에 울음을 터뜨렸지만, 슬픔으로 인해 노래가 끊겨서는 안된다는 프로 정신도 돋보였습니다. 팝의 제왕에겐 영결식도 훌륭한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압권은 잭슨가 형제들의 패션입니다. 모두 저렇게 검은 양복에 노란 넥타이, 그리고 검은 선글래스와 한 손엔 잭슨의 반짝이 장갑으로 통일했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제왕은 이 세상과 결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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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의 매화'가 호기심을 자극한 MBC TV '선덕여왕'의 한편이었습니다. 물론 일부러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시도이니 6일 방송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것은 뻔하지만 아무튼 정보 빠른 네티즌들에 의해 이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사다함의 매화는 월력, 즉 달력이었죠. 미실이 기우제를 지내자 바로 비가 온 것도 사실은 미실이 선진 책력을 이용해 천기를 짐작한 덕분이었던 겁니다.

과학 기술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김영현 작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미 '서동요' 때, 시청자들이 기대하던 신라와 백제의 패권 다툼 이야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전파 이야기에만 주력하다가 시청률이 고비(30%)를 넘기지 못한 기억이 여전하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김작가는 다시 과학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물론 '서동요'때는 지나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꽤나 근거 있는 이야기가 될테니 - 어차피 드라마 후반에 첨성대 이야기가 나와야 할테니까요 - 너무 과학 기술 이야기에 깊이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번엔 시청률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아무튼 달력은 달력이고, 사실 사다함과 미실 사이에는 다른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부인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의혹이 짙은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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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다함의 매화'가 달력이라는 것은 제작진의 1급 비밀이었지만 드라마가 끝난 직후 검색해보니 이미 '매화의 정체는 달력'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더군요. 뭐 짐작으로 맞췄다 해도 사실 그리 엄청난 건 아닙니다. 소화와 덕만 얘기에서도 달력 이야기가 나왔고, 6일 방송 끝자락, 다음회 예고에 보여준 '책력(冊曆)'이라는 글자(위 사진이죠)가 이미 답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의 각국은 이미 모두 국가 지정 달력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미실 혼자 독점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듯도 하지만, '보다 정확한 달력'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몰래 감춰 둔 승려는 그걸 신라의 날짜에 맞춰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죠.

아무튼 아쉬웠던 것은 미실과 사다함의 러브스토리가 너무 축소됐다는 것입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자체가 드라마 한편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지난번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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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빠진 내용에 대해 몇가지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사다함은 삼국사기 열전 4권에 전기가 나오는 실존 인물입니다. 실존 여부가 분명치 않은 미실이나 설원 등 '화랑세기'의 주요 인물들(혹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화랑세기'는 사다함을 중심으로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실은 사다함의 옛 연인이며, 설원은 사다함과 어머니가 같은 형제입니다. 둘 사이는 참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공이 설성(설원의 아버지)의 어머니를 첩으로 취하자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은 소년 설성을 정부로 취해 설원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원랑의 입장에서 보면 구리지공은 할머니의 정부이면서 어머니의 남편이라는 복잡한 촌수입니다.^

하지만 '화랑세기'의 이런 기술과는 달리 정사인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사다함은 그냥 씩씩한 화랑일 뿐입니다. 16세의 나이로 5천 병력을 거느리고 대가야 정벌의 선봉을 맡았고,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조한 친구 무관랑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병들어 죽어간 비운의 화랑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에 따르면 사다함이 죽은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다시 한번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첫번째 이유는 전쟁에 나간 사이 연인이던 미실이 세종전군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무관이 자신의 낭도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화랑세기' 기록에 따르면 금진은 미실 못잖은 남자 밝힘증 환자입니다. 설성을 비롯해 다섯 남자를 동시에 거느렸고, 아들의 친구인 무관랑도 정부로 삼습니다.

사다함은 이를 알고도 뭐라 하지 못했지만, 사다함의 낭도들은 풍월주의 어머니를 탐한 무관을 용서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무관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다함의 낭도들로부터 달아나다가 해자에 떨어져 죽고, 무관이 비참하게 죽어간 데 대해 사다함은 비애를 이기지 못합니다. 두 겹의 슬픔이 사다함을 일찍 숨지게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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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 역의 박재정과 미실 역의 유이... 대사가 하나도 없는게 영 아쉽군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 세종과 미실 사이에선 아들 하종이 태어납니다. 네. 지금 김정현이 연기하고 있는 바로 그 하종입니다. 과연 이 하종의 친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이 오늘의 미스터리입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에 대한 '화랑세기' 세종전의 기록입니다.

(사다함이 죽은 뒤) 천주사에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날 밤 과연 사다함공이 미실의 품에 들어오며 "나와 그대가 부부가 되기를 원하였으니, 그대의 배를 빌려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미실이 세종공에게 아뢰니 공 또한 이상하게 여겼다.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을 낳았다. 하종공은 모습이 사다함과 심히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혹 사다함과 정을 통할 때에 이미 임신을 하고서 입궁하여 낳은 아들이라 하나,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저 '그렇지 않다' 가 너무 궁색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또 미실이 진흥왕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권세가 날로 높아가는 대목을 설명하는 데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다함의 영혼이 미실의 가슴 안에 있으며 좋은 계책으로 도와주는 덕분이라고 하였다.

물론 '화랑세기'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이 자손을 낳을 때 한 여자가 아버지가 제각각인 아이들을 낳는 것은 흉이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가 죽고 없는 아이라면, 왕의 아들인 전군의 아들로 포장하는 것이 죽은 화랑의 아들이 되는 것 보다는 장래를 위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세종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종은 뒷날 전군의 칭호를 달고 왕자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봐도 하종의 생부는 세종이 아니라 사다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 '사다함의 좋은 계책'이 바로 달력이 된 셈입니다. 혹시 '선덕여왕'에서도 나중에 언젠가 세종의 입으로 "하종이 내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뭐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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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저나 대남보가 미생의 아들이었다니, 실망입니다.

미실이 왜 조카를 못 알아보는지 궁금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래 미생은 수많은 첩들로부터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선덕여왕'에서도 미실이 미생에게 "아우님은 자기 아이들 이름은 다 압니까?"하고 면박을 주는 장면이 나왔죠.

 

대남보가 누군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마음에 드시면 추천 버튼을 눌러 주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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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을 들다'가 얼마나 선전할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 2'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한 것은 분명한 일일 듯 한데 관객은 꽤 몰리고 있는 듯 합니다.

'킹콩을 들다'는 그 배경이 현재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칩니다. 장미란이 금메달을 딴 2008 베이징 올림픽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장미란은 출연하지 않았지만 한국 역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병관 감독과 이배영 선수가 나옵니다. 실명으로도 여러번 거론되는 전병관은 국가대표 감독 역으로, 이배영은 역도 심판 역으로 나오죠.

그런데 시점이 친숙하다 보니 과연 영화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일단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역도 동메달을 딴 이지봉 감독'은 실존 인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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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를 살짝 살펴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앞둔 여자 역도 선수 박영자(조안)은 출국 직전 옛 친구들로부터 소중한 추억이 담긴 앨범과 이지봉 선생님(이범수)이 남긴 동메달을 건네받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옛 추억에 잠깁니다.

10여년 전, 한 시골 여자중학교 교장이 테니스부와 사격부에 이어 역도부를 신설합니다. 하지만 코치로 내려온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선생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역도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그는 역도부를 형편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급식하는 곳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은 그렇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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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88올림픽에서 역도는 어떤 성적을 거뒀나 하는 겁니다. 당시 52kg급의 전병관이 은메달, 82.5kg급의 이형근이 동메달을 땄습니다. 이형근 감독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때 남자 역도 팀의 감독을 맡았던 그 분입니다. 일단은 동메달이라는 점에서, 아예 없는 얘기는 만들어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병관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은 다음 대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입니다.)

하지만 이형근 감독은 운동을 때려 친 적도, 술집 웨이터를 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범수와는 체급이 좀 다르죠. 이범수의 체격에 82.5kg급은 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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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재혁의 팔을 번쩍 들어주는 분이 이형근 감독입니다. 사진이 어찌나 없는지.)

'킹콩을 들다'가 끝날 무렵이면 이 영화가 실제 모델로 삼았던 고 정인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에선 이지봉 코치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전국체전을 휩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지난 2000년 정인영 감독이 지휘하던 전북 순창고 여자 역도 선수들이 남긴 기록을 모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순창고는 5명의 선수가 출전해 15개 부문 중 14개의 금메달을 가져가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박은진 이현정 등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습니다. 이밖에 순창고 출신 남자 선수로는 이배영이 있죠.

정인영 감독은 역도 영웅 전병관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분입니다. 본래는 역도 문외한일 뿐, 그냥 체육교사였던 이 분은 전북 진안 마령중학교에서 역도부를 창설하고 그때부터 이론서적을 읽어가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이 분의 경력을 보다 보면 수영과 롤러스케이트 코치로도 명성을 떨쳤더군요). 이때 그 학교에 전병관이라는 소년이 발굴됐죠. 그리고 2000년, 전국체전 순창고의 신화를 남긴 뒤 그해 뇌출혈로 작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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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지도하던 선수들과 함께 한 정인영 감독의 모습. 영화에도 잠깐 이 사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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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조안이 이 영화에서 박영자라는 이름의 선수로 나오는데, 박영자라는 실제 역도 선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1년 전국체전 당시 전북체고의 박영자 선수는 48kg급에 출전해 3관왕이 됐습니다. 이 선수 역시 순창여중 시절 정인영 감독의 지도를 받았고 전북체고로 진학해 여자 역도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더군요. 하지만 이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진짜 선수의 실명을 쓴 이유는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이 영화의 무대는 정작 보성이 아니라 순창이어야 했을 것 같은데, 여기에도 무슨 사연이 또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제 영화 얘기로 넘어갑니다. 많은 분들이 '우생순'과 비교하는 이 영화는 두 가지로 평이 갈릴 여지가 있습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정석에 충실하고 진정성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를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도식적이고 촌스러운 영화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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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의 역자도 모르는 소녀와, 역도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진 지도자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극장에 가면, 여러분이 상상한 모든 것이 영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극빈자 소녀, 다른 운동부와의 신경전, 미남 소년에 대한 짝사랑, 못된 다른 코치, 부상, 세상의 몰이해.... 순서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주로 이범수의 대사에 나오는 70년대풍의 '공자님 말씀'도 가끔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웃게 하고, 눈물을 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진정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1등공신은 여섯명의 역도소녀들입니다. 정말 고교 운동부 선수처럼 보이는 이 아가씨들은 그야말로 영화 찍는 내내 죽을둥 살둥 뛰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범수도 여느 때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필생의 명연기로 꼽기엔 대본이 너무 정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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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사람이라면 교장 역의 박준금을 꼽게 됩니다. 아주 오래 전,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에서, 김수현 작가의 리메이크 '사랑과 야망'을 통해 연기파 중년 배우로 변신해(이유리의 시어머니 - 전노민의 어머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분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아주 '작살인' 코믹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킹콩을 들다'에서 가장 창의적인 부분을 꼽자면 이 교장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이 영화도 '우생순'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트랜스포머의 압박이 무척 거세긴 하지만 이번 주말을 넘기고 이 영화가 얼마나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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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보성여중은 실제로 있는 학교입니다. 서울에도 남산 자락에 보성여중-여고가 있지만, 차 산지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도 보성여중이 있습니다. 역도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여고라는 학교는 없는 지역이 없는 듯 합니다. 서울과 광주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제주, 김해, 포항, 창원에도 있다고 합니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중 지리적으로 보성과 가장 가까운 곳은 여수 중앙여고인 듯 한데, 이 학교도 역도부가 있다는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학교와 관련된 부분은 그냥 이름만 빌려 왔다고 알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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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시사회에 온 장미란 사재혁 선수. 영화에 장미란이 나왔으면 정말 대박이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습니다. '무릎팍도사' 때의 말솜씨를 생각하면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잘 할 것 같던데.. 물론 선수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 보여주는 것이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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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뷰에 올라온 연예 관련 포스팅 중에서 황당무계한 것을 보게 되는 건 꽤 일상적인 일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인터넷 이용자들의 관심도 높고, 또 특별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포스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블로그라는 것은 대개 자기의 의견을 자기 생각대로 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다음 뷰와 같은 포털의 채널을 통해서 꽤 많은 블로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열배, 백배, 천배 이상 크게 증폭시켜 세상에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것은 매체 종사자들의 특권이었죠. 이 특권이란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특권이란 책임 없이 손에 쥐어선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책임이란 뭘까요. 당연히 거짓말을 해선 안되고,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전달해도 안 되고, 근거 없는 얘기를 해도 안 됩니다. 그런 경우라면, 커진 특권에 비례하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바로 '큰 목소리'에 따르는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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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지만 본론은 이렇습니다. 한 블로거가 자기 블로그에 '박진영의 거짓말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라는 포스팅을 했습니다. 내용인 즉 박진영이 지나치게 소위 '매스컴 플레이'에 의존하고 있으며, 많은 거짓말로 언론과 독자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박진영이 비를 띄우고, 원더걸스를 띄운 것은 언론사와 결탁해서, 기자들에게 거짓 기사거리를 제공하고 그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속아서 생긴 결과라는 식입니다.

그 포스팅을 보다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클릭하시면 글자가 안 깨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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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따르면 요즘 박진영이 하고 있는 거짓말의 예에는 대략 세가지가 있습니다(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짓말 중에서 대표적인 세가지를 꼽은 것이겠죠). 가능한 한 원문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1. 원더걸스를 미국 가수(조나스 브라더스)의 콘서트 게스트로 내보내면서도 미국을 정복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 한다.

2. 알 켈리와 인간적인 아픔을 공유한 사이라고 떠벌리게 만들었다.

3. 미국 한 블로거의 포스팅을 가져와 미국 언론 전체가 그와 원더걸스를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짓도 했다. 마치 한국 어느 블로그에 싱가포르 가수와 관련된 글이 포스팅되면, 그 가수가 한국에서 최고 인기 가수로 주목받고 있다는 우습지도 않은 논리까지 가져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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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거짓말은 좀 아리송한 부분이 있습니다. '포장하고 싶어한다'.... 프로듀서가 자신의 가수를 더 크게 포장하고 싶어 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없죠. 가능하면 어떤 프로듀서라도,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자신의 가수가 한 것이라면 크게 보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박진영이 원더걸스의 오프닝 출연과 관련해 보낸 보도자료들을 다시 살펴봐도, "...이로써 대한의 딸 원더걸스는 미국 대륙을 정복하고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와 같은 구절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톱스타들도 처음에는 자기보다 먼저 성공한 스타들의 오프닝에 출연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는 식의 의미 설명이 붙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프닝 쇼에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아, 원더걸스가 미국 최고의 스타가 됐구나'라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기자들이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아무개의 쇼 오프닝에 섰다'는 기사를 크게 처리하는 것은 원더걸스가 한국에서 스타이기 때문이지, 오프닝에 선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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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번째, 알 켈리와 박진영이 얼마나 친한지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이 부분은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자, 알 켈리 같은 거물과(알 켈리 대신에 브래드 피트라든가, 안젤리나 졸리라든가, 버락 오바마라든가, 다른 이름들을 넣어 봅시다) 친분이 있다면, 토크쇼에 나와서 그런 걸 자랑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겁니다.

이 블로거는 아마도 자랑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친분을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박진영은 그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문화계 거물들과 친분을 자랑해왔죠.

이를테면 박진영과 릴 존(21세기 초 미국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하나)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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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지 직접 봤다고 하더라도, 정말 이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마음속을 내보이는지는 알기 힘들죠. 그런데 문제는 그 부분에 있습니다. 박진영이 '알 켈리와 정말 친하다'고 말한다면, 그걸 반박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데, 쟤들 실제로는 하나도 안 친해"라는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저 블로거는 대체 박진영과 알 켈리 사이의 친분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요? 그들이 '박진영이 주장하는 것 만큼 친하지 않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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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거짓말에 대해서는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부분을 계속 다시 읽어보다 보면 혹시 이 블로거가 박진영과 원더걸스의 열혈 팬이고, 박진영의 안티 팬들을 조롱하기 위해 이런 낚시 포스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JYP 쪽에서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환영한다'는 포스팅을 반가워한 블로그는 그냥 우수마발의 블로그가 아니라 유명한 페레즈힐튼의 블로그(perezhilton.com)이기 때문입니다. (이 블로그가 처음 소개될 때에는 '파리스 힐튼의 블로그'라고 잘못 소개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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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블로그라고 되어 있으니 어쨌든 블로그이긴 합니다. 하지만 판자집도 집이고, 타워팰리스도 집이죠. 더 실감나게 하자면 유원지의 오리배도 배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도 뱁니다. 똑같이 '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냥 다 같은 배라고 할 수는 없겠죠.

페레즈 힐튼은 한때 자신의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가 800만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고, 그의 적들은 "그건 말도 안된다"고 반박한 적도 있었죠. 아무튼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누구도 그 트래픽이 엄청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알렉사(alexa.com)를 이용해 페레즈힐튼 닷컴의 트래픽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습니다. 이곳에서는 트래픽을 숫자로 보여주지는 않고, 상대평가로 등수만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사이트들의 트래픽 총량을 대략 비교할 수 있는 곳으로는 이 정도가 유력합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1위는 뭐니뭐니해도 구글. 중국의 바이두가 9위, 한국이 자랑하는 네이버는 88위에 올라 있습니다. 페레즈힐튼 닷컴은 427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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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위가 어느 정도인가 비교해보기 위해 다른 사이트들을 찾아 봤습니다. 한국의 네이트가 463위입니다. 뭐 이건 서구 이용자을 대상으로 주로 조사하다 보니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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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닷컴이나 롤링스톤스 매거진이 2000위 대에 올라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특종 보도로 최근 약진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 tmz.com이 450위군요. 한마디로 페레즈힐튼은 그냥 블로거가 아닙니다. 권위는 어쨌건 미국에서 16세-20세 사이 여성들이 선호하는 사이트 1위라는 보고도 있었고, 그 영향력이 어지간한 매체를 능가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성장한 그는 요즘 전국 각 라디오사에서 방송하는 신디케이트 라디오 쇼를 갖고 있고, 수없이 많은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올해는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도 했죠. 오히려 이제는 그 자신이 셀러브리티가 된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이 원더걸스를 소개한 것과, '한국의 일개 블로거가 싱가포르의 듣보잡 가수를 소개한 것'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건 몰상식의 극치이거나, 대단한 유머감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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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블로거가 혹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괜히 내가 낚시에 걸려 농담을 진담으로 오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열심히 다시 읽어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물론 '홍보에 의존하지 말고, 진정한 실력으로 가수를 평가하자', '미디어가 하는 말을 그냥 수용하지 말고 꼼꼼하게 체크하고 감시하자' 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말은 더욱 해롭습니다.

문제의 포스팅은 이미 4만여명이 봤고, 무려 800명이 이 글에 동의한다는 추천을 했더군요. 이 정도면 자신의 글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주장으로 네티즌들을 선동해선 곤란합니다. 이런 글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닙니다. 박진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쪽에 더 가깝죠.


p.s. 혹시 내 댓글이 왜 삭제됐나 궁금해하는 분께 대답: 같은 아이피로 여러 사람인척 하는 댓글은 사절입니다. 앞으로 댓글 달고 싶으면 한가지 닉을 이용하세요. 익명이라는 이유로 어둠 속에서 음침하게 굴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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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준비하고 있던 런던 O2 아레나 'THIS IS IT' 공연의 리허설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시간은 1분 40초 남짓. 노래는 They Don't Care About Us였고 여러 차례 사용했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나오는 '키에프의 대문'이 다시 한번 삽입됐습니다.

이 동영상의 모습으로 봐서는 체중이 50kg에 불과해 뼈만 남았다는 얘기(물론 몇몇 기사에 실린 대로 그의 키가 180cm에 달하지는 않습니다. 13년 사이에 갑자기 자라지 않았다면 그보다 대략 10cm 정도는 작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혹은 뱃속에 알약만 가득 차 있었다는 얘기 등등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박력 넘치고, 힘차 보이는군요. 50세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영상이 있는 걸 보면 마지막 리허설 영상 등등이 판매용으로 묶여 나올 가능성도 꽤 높을 듯 합니다. 사실 이 리허설 영상을 보고 나서 유튜브를 뒤져 보니, 그동안 'THIS IS IT'과 관련해 공개된 동영상들이 꽤 있더군요. 그래서 한군데 모아 봤습니다.

먼저 잭슨이 직접 나오는 리허설 동영상입니다.

1분40초밖에 안 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다른 동영상들로 아쉬움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벌써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THIS IS IT을 열겠다는 그의 공식 기자회견입니다. 이번 공연이 무대에 서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는 얘기 외엔 거의 하지 않는군요.



그 다음은 마이클 잭슨의 모습이 몇번 지나가는 오디션 광경입니다. 지난 4월, LA의 노키아 극장에서 있었던 'THIS IS IT' 공연의 댄서 오디션 장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댄서들의 인터뷰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그는 전설이에요." "그의 공연에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왔어요. 꼭 뽑히고 싶어요." 스태프 중 한 사람도 말합니다. "다들 춤추는데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유튜브에서 8분50초나 되는 동영상을 안 끊고 다 보기도 처음인 듯 합니다. 영화 '코러스 라인' 못잖은, 화려한 오디션이 펼쳐집니다. 오디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군무로 보일 정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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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이 오디션 광경을 누군가 촬영한 듯한 화면입니다.

분위기만 느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동영상의 뒷부분에서 경쟁을 뚫고 백댄서로 선발돼 감격하던 댄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야말로 정말 잭슨의 죽음 앞에서 정말 좌절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바라보던 우상과 함께 춤출 기회를 날려 버리다니.

마지막은 THIS IS IT의 공식 프로모션 영상입니다. 편집도 훌륭합니다. 광고인데도 길이가 3분30초나 됩니다. 그의 마지막 정수를 이걸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런 류의 영상은 곧 뭐라도 정리되어 나올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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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가 4일 밤 12시(5일 새벽 0시)부터 마이클 잭슨 추모 특집으로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공연 실황을 90분짜리로 편집해 방송한다고 합니다. 여러가지로 의미가 깊은 행사입니다. 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잘 알겠지만, 잭슨의 공연 실황을 방송으로 보거나, 영상물로 감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튜브로 보면 되지, 하는 분들은 일단 제외.)

그냥 '영상물'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본 그의 뮤직비디오들을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물을 말하는 겁니다. 마이클 잭슨은 단순히 춤과 노래 뿐만 아니라, 팝 아티스트의 공연을 한 단계 성장시킨 주역입니다. 그만큼 그의 공연은 최고의 퍼포먼스였고,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연들을 DVD로 발매하는 것 역시 대단한 의미를 가진 일일테지만 불행히도 그 영상물들은 지금까지 극히 제한적으로 유통되어왔습니다. 이번에 MBC에서 방송하는 공연 실황은 'Michael Jackson Live in Bucharest: The Dangerous Tour'라는 제목으로 지난 2005년 DVD로 발매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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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1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펼쳐진 공연 실황을 담은 이 DVD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지금까지 마이클 잭슨의 음반 판권을 갖고 있는 소니/BMG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에 DVD로 발매를 허용한 유일한 공연 실황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유일하게 미국 HBO를 통해 TV로 방송된 공연이라는 점이죠. 단 1회 방송에 200만달러의 기록적인 콘텐트 이용료가 지불됐다고 합니다.

전체 내용은 약 122분.

1. Main Title
2. Jam
3. Wanna Be Startin' Somethin'
4. Human Nature
5. Smooth Criminal

6. I Just Can't Stop Loving You
7. She's Out Of My Life
8. I Want You Back/The Love You Save
9. I'll Be There
10. Thriller

11. Billy Jean
12. Working Day And Night
13. Beat It
14. Will You Be There
15. Black Or White

16. Heal The World
17. Man In The Mirror

이렇습니다. 뭐 지금까지 부른 곡들을 종이에 써서 하늘에 던져 놓고 떨어지는 순서대로 골라도 한폭의 아름다운 공연이 될 수 있는 분이니 당연히 명곡들의 행진입니다. 그 공연 중에서 I Just Can't Stop Loving You입니다.


문제는 이 공연이 - 무려 17년 전인 1992년이니 당연한 거지만 - 우리나라에 가져왔던 History Tour가 아니고 Dangerous Tour라는 겁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마이클 잭슨의 투어 이름은 대개 그 투어를 내기 전 발매한 앨범의 제목입니다. 그런 이유로... 현재 DVD를 통해 Histroy 앨범의 수록곡들, 즉 Scream이나 You Are Not Alone, They Don't Care About Us 같은 노래들을 잭슨이 직접 부르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건 유튜브의 동영상 뿐이란 얘깁니다.

영상물 쪽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부쿠레슈티 라이브가 있고, 1997년엔가 나온 서울 공연의 VHS 테이프(상하)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비디오 가게에는 다 있던 인기 대여 품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비디오로 보는 분보다는 이 비디오를 원본으로 한 유튜브 동영상이 훨씬 보기 쉽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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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체 다른 아티스트도 아니고, 대 마이클 잭슨의 공연 실황 DVD가 공식적으로는 단 하나뿐이라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영상물들, 부쿠레슈티 공연이나 서울 공연 비디오의 질을 봐서는 처음부터 '공식 DVD'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나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화질과 음질 면에서 두 작품 모두 그리 칭찬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뮤직비디오의 역사에 신기원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그만치 영상물이 관심이 많았던 잭슨이 왜 이렇게 자신의 공연을 영상으로 남기는 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해 보면 또 희한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주최했던 각 지역별로 공연 실황 DVD가 나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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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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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87년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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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는 안 보이지만 BAD TOUR 인 걸로 보아 비슷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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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연과 같은 연출인 히스토리 투어로는 96년 오클랜드 공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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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는 확실치 않지만 뮌헨 공연을 담은 것이 발견됩니다. 심지어 이 DVD는 1997년 나온 싱글인 Blood on the Dance Floor가 담겨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의 라이브 영상은 아마 이것 하나뿐인 듯 합니다.



아니 도대체 '공식 발매' DVD는 하나 뿐인데 왜 이리 동네 DVD가 많은 걸까요?

이 의문을 풀어 보기 위해 소니뮤직 관계자에게 문의했지만, 대답은 "어쨌든 공식 발매된 건 부쿠레슈티 공연 단 하나 뿐"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위 재킷 사진을 보면 심지어 웸블리 공연은 소니/BMG의 경쟁사인 유니버설 뮤직의 로고를 달고 있죠.

소니뮤직 측의 설명은 "공연을 유치할 때 각국 기획사와 개별 계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해당 국가에서 공연을 할 때 그 나라에서 공연한 영상은 그 국가 안에서만 방송하거나 특정인이 영상물로 제작해 판매할 권리를 갖는다는 식이죠. 한국 공연 VHS 비디오 역시 소니뮤직과는 아무런 협의 없이 나온 것입니다.

즉, '무허가'는 아니지만, 대신 그 공연이 열린 나라 밖으로 수출하거나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렇게 많은 영상물들이 세계 각국에서 나왔지만 일반 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돼 있습니다.

그래도 남는 궁금증은 그럼 대체 가장 많은 공연을 했을 미국 무대의 영상 기록은 왜 하나도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애매한 수준이었습니다. "잭슨 본인이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대체 왜? 공연에서는 음반이나 뮤직비디오처럼 완벽한 연출을 할 수 없어서? 그의 완벽주의 때문에? 그렇다면 저렇게 많은 영상물들이 세계 각국에서 발매되게 내버려 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요.

어쩌면 이 동영상들은 잭슨이 아이들이나 가족들을 위해 남겨 놓은 비장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실제로 부쿠레슈티 공연이 잭슨의 인가를 받아 발매된 것도 2005년의 일, 공연이 이뤄진지 13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이때 이미 잭슨은 내리막을 걷고 있었죠.

그가 불귀의 객이 된 지금, 그가 펼친 공연 현장을 담은 영상물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는 한껏 치솟아 있습니다. 과연 잭슨의 새로운 '미공개' 라이브 영상은 언제쯤 볼 수 있게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p.s. 결론은... 그동안 잭슨의 추억에 목말랐던 분들, 토요일 밤 12시에 부쿠레슈티 공연을 보시면서 갈증을 푸시기 바랍니다.



** 이번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비롯해 그가 마지막 남긴 영상들을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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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경험한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이야기 두번째 편입니다. 지난 번에는 1996년 내한공연을 한달 앞두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그와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던 자랑 얘기였다면, 이번에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빅 스타의 내한을 처음 경험한 대한민국의 난리법석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스크바의 기억을 뒤로 하고 귀국해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사실 가기 전부터 손봉호 교수가 주도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연합(줄여서 기윤실)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타겟으로 삼아 공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잭슨의 공연이 턱없이 고가라서 국부의 유출 혐의가 있는데다 잭슨이라는 자는 듣자니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다니는 악한이라는데, 그런 악한이 벌이는 장사 판을 어떻게 국내에서 벌이느냐는 식의 준엄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난감한 얘기였는데, 사실 기독교계에서 진짜 잭슨의 공연을 반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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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수 기독교 측에서는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을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오직 기독교 하나 뿐이며, 타 종교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이었죠. 뉴에이지라는 것은 좁게 보면 서구 사회에서 일회성으로 흘러가는 동양적인 정신수양에 대한 경도 정도였는데 이걸 사회 전반적인 반 기독교 운동이며 사탄의 책동이라고 규정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수많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그 주역으로 지목됐죠. 특히나 아랍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잭슨은 그야말로 악마의 자식이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외계인이나 UFO 등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사탄의 역사에 기대는 자'라고 낙인찍히기에 충분했습니다. 뭐 타 종교와의 화해를 주장한 바티칸 교황청마저도 '뉴에이지 운동의 주구'라며 비난하던 사람도 있었으니 이 정도는 장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국내에선 저 반대운동이 꽤나 먹혀 들었습니다. 몇몇 큰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이 한두번씩 이런 나쁜 공연을 자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설교까지 하셨다는군요. 이러니 주최측에선 분통이 터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태원예능 측은 미국의 흑인 인권단체 NAACP를 끌어들여 맞대응을 합니다. 흑인 성직자들이 이끄는 이 단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반대하지 않던 잭슨의 공연을 한국에서 열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전달합니다. 의외로 이것이 기윤실 측의 반대를 잠재우는 데 꽤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첫날 공연은 공연 며칠 전까지 3만여장이 판매되는 데 그칩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일각에선 '왜 한물 간(!) 80년대 스타를 이렇게 고액의 출연료를 줘 가며 대형 공연장에 데려오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부 매체는 공공연히 이런 논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죠. 그리고 이틀 전인 10월 9일, 잭슨이 입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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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의 VIP 주차장 앞에 신문 방송 기자들이 진을 쳤습니다. 여기에 전경에다 기동수사대까지 동원됐고, 정작 팬들은 주변에 접근도 못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용기로 입국한 잭슨은 VIP 채널을 통해 일반 이용객들과는 다른 길로 나오게 돼 있었던 거죠.

제법 쌀쌀해진 날씨 속에 주최측과 방송사는 모스크바에도 동행했던 탤런트 이제니를 환영 사절로 임명하고, 꽃다발을 들려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초 생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이제니를 리포터로 삼아 간단한 인터뷰 영상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저번에도 얘기했듯 그건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국 환영 장면이라도 간단하게 그림 거리를 만들려던 거였죠.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잭슨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 전용기라는 게 사실 탄 사람 마음이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들만 오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예정보다 두 시간 늦어서야 잭슨은 마침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별 경험이 없던 전경들과 기자들은 그 한 순간에 왁 몰려서 현장이 뒤집어졌습니다. 게다가 어디 숨어 있었는지 팬들까지 와락 그 자리를 덮쳤죠. 밖에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만 보고 있던 경비 담당 미스터 웨인(마이클 잭슨을 늘 따라다니는, 농구선수풍의 키 큰 흑인 아저씨입니다)은 인터뷰고 꽃다발이고 뭐고 잭슨을 0.5초만에 차에 휙 태우고 숙소인 워커힐 호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정작 환영 사절이라고 두시간을 기다려 꽃다발을 들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제니양(당시 겨우 17세였군요)만 속상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모스크바에 이어 두번째 허탕을 친 거죠. 몇몇 기자들은 차를 타고 그 뒤를 쫓아 워커힐 호텔까지 갔지만 기사거리라곤 나온 게 없었습니다. 잭슨은 꼭꼭 방 안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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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참 귀여움의 극치였는데... 국적문제만 해결됐다면 문근영이 됐을지도.)

본래 일정은 9일 낮 도착 - 저녁 강남역 타워레코드 방문 - 10일 김수환 추기경 예방 - 장애아동 보호시설 방문 등등의 사전 스케줄이 잡혀 있었지만 이런 스케줄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이의 마음인 잭슨이 '안 갈래' 하면 천하의 무슨 스케줄도 바로 취소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본인이 아니더라도, 그를 살아있는 신처럼 모시는 주변의 인물들이 "잭슨님이 피곤하셔서 안돼!"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10월10일 있었던 '도심 한복판 유턴사건'입니다. 10일 늦은 오후, 잭슨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아동보호기관 송죽원을 방문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김상현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도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아무튼 잭슨의 차량은 워커힐 호텔에서부터 취재차량을 주렁주렁 달고 서울 을지로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하더라는 겁니다(이 장면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몇몇 경호원들이 뛰어내려 수신호로 차를 막고, 군사훈련을 하듯 능숙하게 차를 돌리더라는군요. 무슨 비상사태가 있나 해도 따라가던 취재차들도 일제히 유턴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친 차량은 유유히 한 피자집 앞에 섰고, 경호원이 피자집 안으로 들어가 피자 몇 판을 사오더랍니다. 확인 결과, 유턴 직전 잭슨이 차 안에서 길 건너편의 피자 간판을 보고 "피자 먹고 싶어"라고 말 한마디를 했답니다. 그러자 매니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차 돌려!"라는 명령을 내렸고, 신호고 뭐고 바로 중앙선을 넘은 것이죠. 잭슨의 주위 사람들에게 잭슨의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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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당시 내한 기간 내내 그 주변 사람들의 '잭슨 보호'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걸 보고 절로 느낄 수 있었죠. 잭슨 하나가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그를 꽁꽁 둘러싸고 아기처럼 보호하고 있으니, 세상 일들이 그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그가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기는 참 힘들 거라는 걸 말입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또 너무 길어졌습니다. 정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 했네요. 10월 11일과 13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이 앞뒤의 다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맛뵈기로 - 서울 공연에서 부른 They don't care about u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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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씨의 네티즌 고소가 연일 화제입니다. 지난달부터 이외수씨는 디씨인사이드의 이외수 갤러리를 통해 네티즌들에 대한 응대 방안을 현장 중계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일입니다. 특히 몇몇 블로거나 네티즌들은 '인터넷으로 뜨더니... 이제는 네티즌을 고소하냐', '그 바닥에서 어울리면 그렇게 되는 걸 몰랐느냐'며 비난을 보내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자기도 늘 욕설을 했으면서 왜 자신을 향한 욕설에는 이렇게 민감하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외수씨가 유명인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네티즌들을 고소한 사실을 놓고 이외수씨를 비판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온당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 저런 일들에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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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노털 옵하'의 이유 있는 분노

네티즌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소설가 이외수씨가 네티즌을 고소한다고 밝혀 화제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악플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댓글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이씨가 이런 입장이 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일이다.

이씨는 이번 고소 대상이 된 네티즌들이 "반말지거리의 욕설과 조롱, 야비한 언사, 심지어는 부모와 아내를 들먹이며 입에도 담지 못할 성적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일부 네티즌은 이씨가 사과문을 요구하자, 겉으로 보기엔 번듯한 사과문이지만 첫 글자만 떼어 읽으면 욕설이 되는 조롱으로 응수했다. 결국 이씨는 "법이 철저한 조사를 거쳐 악플러들을 엄중하게 처벌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나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씨가 오늘날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기 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씨는 육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네티즌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대의 벽을 넘어 젊은 세대와 '소통'해 왔다. "이거나 먹어라 신발쉐이", "님 좀 썅인 듯" 등 이씨의 어록이 널리 유통됐고, 네티즌들은 그를 향해 "촌철살인이 빛난다"고 찬사를 보냈다. '꽃노털 옵하(꽃미남+노털+오빠. 나이에 비해 젊고 유연한 모습이라는 칭찬)'라는 애칭도 따라왔다. 저서 '하악하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는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인터넷이야 말로 그 인기의 원천이었고, '장벽 없는 비판 정신'이야말로 이씨의 가장 큰 무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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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당수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이씨의 강경한 입장에 혼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미 문제가 된 디씨인사이드 게시판에 대해 "거기가 그런 곳인줄 몰랐느냐"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며 도리어 이씨의 고소를 비난하는 네티즌들까지 상당수 있다. 하지만 이씨가 네티즌과 법정 분쟁을 벌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씨는 지난 2003년에도 한 네티즌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결국 맞고소를 통해 해당 네티즌이 처벌을 받고서야 일단락됐다. 이씨는 지난달 디씨인사이드 이외수 갤러리에 올린 글을 통해 "악플러 퇴치법: 약간의 번거로움을 참고 고소해 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중략)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동정은 금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사건으로 인해 드러난 것은 독설과 욕설, 비판과 모욕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 인터넷 댓글 문화의 폭력성이다. 한때 그런 문화를 옹호하는 것 처럼 보였던 작가 이외수마저도 이제는 그런 문화의 폐단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오늘도 인터넷에서 '반말지거리의 욕설과 조롱, 야비한 언사, 부모와 아내가 들먹여지는 욕설'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과연 그 일이 '나의 일'이 됐을 때에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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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장난 사과문입니다. 이렇게 해 놓고 좋다고 킥킥거렸겠죠.

물론 저는 이외수씨의 팬도 아니고, 지금까지 이외수씨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시원시원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자랑하며 명성을 얻은 이외수씨가 과연 서슬이 시퍼런 80년대에는 뭘 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쪽입니다. 그분이 방송에서 하시는 말씀들도 그리 아름답게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육순의 작가(물론 요즘 기준으로 육순을 노인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낯간지러운 면이 있습니다만)에게 함부로 막말을 해 대고, 욕설을 퍼부은 자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유명인이 악플러를 고소해서 법적 처벌을 요구하면 오히려 고소한 피해자를 욕하는 기이한 세태 또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까지 수많은 연예인들은 악플러를 고소했다가도 어느새 고소를 취하해주고 마는 일을 반복해왔습니다. 악플러 고소가 더 많은 악플을 불러 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이니, 최일선에 나가 있는 사이버 수사대 역시 수사 의욕을 잃습니다. 잡으면 다 풀어줄 걸 뻔히 아는데 굳이 잡아들이는 건 귀찮기만 할 뿐이죠.

이번에는 이외수 옹이 결코 유명인은 봉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이외수 옹의 최근 어록입니다. 이미 꽤 알려진 내용이지만 매우 적절합니다.

악플러
대부분 제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남 걱정해 주는 척 하면서 시비를 건다
그냥 내버려 두면 병적으로 같은 맥락의 헛소리를 반복한다
비열한 성정을 가지고 있어서 고정닉을 쓰지 않는다
상대편의 심기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절대로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비심을 베풀면 자기 주장에 승복한 줄 안다
논리적인 척 하지만 개뿔, 논리의 낱말 뜻조차도 모르는 족속들이 대부분이다
언제나 무지를 갑옷처럼 장착하고 있으므로 말이나 글로는 설득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퇴치법
약간의 번거로움을 참고 고소해 버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경험에 의하면 빵에 갔다와서 적어도 3년 동안은 찍소리를 못한다
그러나 3년이 지나면 다시 고질병이 재발한다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동정은 금물이다
재발할 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빵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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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리고 고소당한 악플러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사실 댁들이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공격하는 방법을 욕설밖에 모른 죄 때문이란 걸 좀 깨닫기 바랍니다. 조금만 똑똑했어도 겪지 않을 수 있는 일인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걸 느끼게 될 겁니다. 다음부터는 욕설 한마디 하지 않고도 사람을 분통 터지게 하는 법에 대해서 공부 많이 하고 돌아오기 바랍니다. 그동안은 인터넷 끊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뭐든 노력하지 않고 쉽게 하려니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 겁니다.

아, 그리고 이번 사건 진행 과정에서 나온 얘기에 따르면, 인터넷이라도 실명인 사람이 익명인 사람에게 욕하는 것과 익명으로 실명인 사람에게 욕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계속 악플을 달고 싶으면 실명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물론 그럴 배짱이 있을 리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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