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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기자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2명의 도전자가 예선을 통과해 현재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고, 그중 한명이 최종 선발됩니다.

공식적으로 세번째 미션은 일간스포츠의 간판 상품 중 하나인 취중토크. 스타와의 '술 한잔' 을 통해 솔직한 진심을 들여다보는 특색있는 인터뷰입니다. 초기에는 '취중토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인터뷰어로 나서는 기자도 주당 기자가 나섰고, 인터뷰 대상도 연예계에서 소문난 주당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짜 인터뷰에서 누룩 냄새가 났죠.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가끔씩 '기사에서 술 냄새가 안 난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나 건강상의 문제로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주당 중의 주당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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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석은 "사회에 나와서 한번도 나보다 술 센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고 공언하는 공식 인증된 주당입니다. 인기 연예인 중에는 참 술 센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30-30클럽(하룻밤에 양주 스트레이트 30잔과 폭탄주 30잔을 마셔야 가입할 수 있다는 클럽)'을 자랑하는 영화배우 정모씨^^를 비롯해 수많은 주당들을 만나봤지만 남희석만큼 위압감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개그맨과 MC로 10년이 넘게 발군의 활약을 하고 있는 남희석은 현재 일간스포츠 지면에 '남희석의 아무거나'를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글쓰는 일로 10년 넘게 먹고 살고 있지만, 사실 남희석의 글을 보다 보면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전문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을 쓰는 세세한 스킬이나 맞춤법, 어법에서는 걸리는 부분이 있지만 발상의 자유로움이나 전개 방식, 글을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 등은 천부적인 소질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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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스타와의 술자리 인터뷰는 제작진이나 저희나 꼭 한번 넣어 보고 싶은 아이템이었고, 이 코너를 넣는다면 최고의 적임자는 남희석일 거라고 생각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코너에 출연 요청을 했고, 장난기 넘치는 그는 "그거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응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인터뷰는 현장에서 인터뷰 대상을 만나기 전에 승부가 60% 이상 결정돼 있다는 것이 정론입니다. 얼마나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를 해 갔느냐가 인터뷰의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현장에서의 순발력이나 친화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사전 준비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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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개인적으로는 도전자들이 남희석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 오기를 기대했지만 제작진은 '깜짝 인터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출연자들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남희석이 갑자기 출현하는게 가장 효과적일 거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선 양보를 해야 했죠.

설정은 이랬습니다. 남희석과의 취중토크를 앞두고 출연자들은 하루 종일 힘든 미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도전자들은 '1차 미션 수행 뒤에 선배와의 술자리가 있고, 거기서 환담하는 내용을 촬영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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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의도대로 도전자들은 힘든 미션을 마쳐 홀가분한 심정으로 술자리에 모였습니다. 소주로 만든 폭탄주가 몇잔 돌았고, 다들 마음이 풀어진 상태에서 '남희석이 술집 바깥에 도착했다'는 사인이 왔습니다. 도전자들과 함께 술자리에 앉아 있던 저도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습니다.

"...기자라면 항상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지.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가도 주변에 연예인이 나타나면 주목할 줄 알아야 해. 이를테면 지금처럼 저렇게 스타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단 말이야."

'저렇게'하고 가리킨 순간 남희석이 술집 안에 등장하자 출연자들은 바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출연자 A양은 나중에 "어? 정말 술을 마시다가 연예인을 만날 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것이 새로운 미션이라는 걸 알고 다들 바짝 긴장했죠.

남희석에게는 이미 "까칠하고 날카롭게 대해 달라"고 요청을 해 놓은 상태였고, 그는 역시 자기 역할을 120% 해냈습니다. 처음 술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폭탄주 제조자의 임무를 차지한 그는 "난 술 안 마시는 기자와는 친해지고 싶지가 않아요"로 시작해 출연자들의 기를 팍팍 눌렀습니다.

10대1이지만 대한민국 정상급 MC의 노련함과 기세 앞에서 도전자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더군요. '질문이 재미없어' '지금 기자회견하나?' '어디 술자리에서 필기를 하고 그래' 등등의 코멘트에 도전자들은 우왕좌왕하기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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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남희석은 몇가지 인터뷰에 대한 팁을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방송 뭐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가장 기분나쁘다. 그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인터뷰하러 나온 사람의 자세 아닌가", "'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나요?'라는 질문도 수준 이하다. 정상적으로 질문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흘러나올 수 있게 해야지." "특히 술자리에서는 술자리 분위기에 걸맞게 질문을 해야지. 허허 하하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면 분위기가 뭐가 되겠나."

하프타임. 남희석이 바깥에서 취재진에게 "너무 재미있다. 이런 건 매일 해도 되겠다"며 신나하고 있을 무렵 저는 짐짓 도전자들을 혼냈습니다. 남희석의 기에 눌려 다들 기사 한 줄 쓸 게 없는 질문만 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결의를 다지더군요. 하지만 후반전에도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워낙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기량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혼자 질문을 독점했다' '알맹이 없는 질문만 많이 하면 뭘 하나'라는 식으로 비판을 받은 도전자 B양은 화장실에서 혼자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또 가장 술이 약한 C양은 남희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따라 마시다가 장렬하게 첫 전사자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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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도전자들도 지리멸렬. 남희석의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D군은 친분을 과시하긴 했지만 기사로 쓸 거리는 그닥 뽑아내질 못했고 E군은 "질문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몇 차례 커트당한 뒤 좌절했습니다. F군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말문을 열지 못할 정도더군요. G군은 의욕은 돋보였지만 "예의가 없다"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계란 기자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던 듯 남희석은 예상 시간을 훨씬 넘긴 3시간의 술자리가 끝난 뒤 "해장 겸 매운 짬뽕을 먹으러 가자"며 그때까지 살아남은 열혈기자들을 인솔하고 밤거리로 사라졌습니다. 이미 구도는 '형님과 동생들'로 짜여진 상태였습니다.

다음날 남희석은 남자 도전자 세명을 점찍었습니다. "연예인 입장에서 기자를 만나더라도, 어딘가 관심이 가고 끌리는 사람인 경우가 있어. 그런 게 좋은 자질인 것 같아. 아무개는 웬만한 연예인들이면 만나서 대화를 하더라도 '이 사람 봐라?'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어. 또 다른 아무개는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자세가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고, 또 아무개는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 제작진이나 저희 쪽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시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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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도전자들은 영화배우 장진영의 빈소와 이영애의 동선을 체크하는 '단순작업'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일명 '뻗치기'라고 불리는 작업입니다. 하염없이 시간을 낚시질하며 현장에서 기다리는 작업이죠. 법조 기자들은 검찰청이나 법원 앞에서 죽치고, 사회부 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죽치듯 연예 기자들도 이렇게 시간과의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됐습니다.

두세시간씩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납니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하지만 이들에겐 그것마저도 새로운 자극이고 신기한 현장 경험으로 여겨졌던 듯 합니다.

처음에는 '과연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기자를 뽑을 수 있을까'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시작한 뒤에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 퍽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현장에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정이란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전염성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P.S. 그나자나 회를 거듭할 수록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누군가를 남겨야 한다는 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게 고민입니다. 생각같아선 다 데리고 있고 싶은데 말이죠.

남희석이 등장하는 '열혈기자'는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 QTV에서 방송됩니다.

방송시간입니다.

화요일 오후 11시 (말하자면 '본방'은 이때입니다)
목요일 오전 1시
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9시
일요일 오전 11시
월요일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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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일수록 이상하게 정작 보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 뮤지컬깨나 보셨다는 분들 가운데서도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2007년 토니상에서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올해에야 브로드웨이를 벗어나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질 정도로 '새로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근래 몇년 사이 나온 작품 가운데서 '빌리 엘리엇'이나 '위키드' 못잖게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뮤지컬의 주제가 역할을 하고 있는 'I Believe'는 뮤지컬 '렌트'의 'Seasons of Love'나 '헤어'의 'Let the Sun Shine in'에 해당하는 히트 넘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뒤의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강렬함이 며칠이 지나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시간과 자본의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꼭 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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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 19세기 말 독일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활화산처럼 뿜어나오는 젊음의 호기심과 욕구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18세기의 방법으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려 합니다. 15세 소녀 벤둘라 역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어른들에 대한 갈증에 시달립니다.

체벌이 당연히 허용되는 학교. 우등생이며 머리가 일찍 깬 멜키어와 낙제 위기의 열등생에다 겁보인 모리츠는 절친한 친구 사이. 특히 멜키어는 억압 일변도의 세상을 냉소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추지만, 15세라는 나이 때문에 역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였던 멜키어와 벤둘라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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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만 놓고 보면 철지난 성장 드라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 귀가 뻥 뚫리는 음악이 처음 보는 작품인데도 관객의 심장 박동을 두배로 빨라지게 합니다.

위에서는 'I Believe'를 다른 의미로 '렌트'와 '헤어'에 비교했지만 사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작품 전체를 볼 때에도 그 두 뮤지컬과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세상을 향한 강렬한 반항의 외침'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흔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가씨와 건달들'같은 소극이나 본격적으로 오페라를 모방하기 시작한 '팬텀 오브 오페라'나 '레미제라블'같은 대작들을 연상하지만 뮤지컬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이나 반역의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줄거리의 흐름은 다소 유치하고 뻔할 수도 있지만 거기 들어간 노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 역할을 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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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나오는 노래들은 '헤어' 풍의 사이키델릭에서 시애틀 출신 얼터너티브 밴드들을 연상시키는 그런지 록까지, 배우들은 마지막 한 호흡까지 무대에 쏟아 부으라는, '부르다 쓰러질' 노래들의 연속입니다. 현재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연강 홀은 500석 정도 규모. 무대의 에너지가 그대로 객석에 전해집니다.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릅니다.

백번 얘기하는 것보다 노래를 한번 들어보는게 빠를 겁니다. I Believe. 특이하게도 2007년 11월, 극장 파업으로 공연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브로드웨이 출연진이 거리에서 I Believe를 부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입니다.




다음은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2007년 토니상 시상식장 축하 공연.




그리고 UCLA에서 열린 시연회장에서의 'Totally Fu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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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배우들의 역량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려 해도 이 공연의 제작사 뮤지컬헤븐이 만든 홈페이지는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지조차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는 홈페이지는 도대체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을 고려해도 가장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건 벤둘라 역의 김유영입니다. 무대에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아, 이 역할은 딱 쟤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유난히 센 벤둘라 역할을 그 깔끔하게 해낸 걸 보면 김유영은 올시즌의 가장 빛나는 신인 중 하나로 꼽을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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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국내 배우들의 연기가 브로드웨이판에 비해 겉모습만 따랐을 뿐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최소한 김유영만 보더라도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P.S.2 그러고 보니 '헤어'도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됐군요. 한국에서는 언제쯤 '헤어'를 볼 수 있을지... 누군가 한번 가져와야 할 작품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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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가 소리소문 없이 귀국하려다 길목을 지키던 취재진에게 '적발'됐습니다. 느닷없이 카메라를 발견했으니 놀랐을 법도 한데 찍힌 사진을 보면 우아하기만 합니다. 역시 월드스타답게 취재진을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얼굴을 가리거나 어설픈 달리기로 '못볼 꼴'을 찍히는 우를 범하지 않았더군요.

사진들을 보니 입국검사장보다 훨씬 안쪽인 방역검색대 앞에까지 진출해서 찍은 사진도 있던데 이 지점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취재진의 치밀함이 참 놀랍습니다. 경쟁매체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스타들을 추적하는 취재진도 고생이지만, 문득 소위 신비주의 노선을 가고 있는 스타들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게까지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는 데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문득, 거의 80년 전부터 신비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한 스타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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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주의

1936년 11월 23일, 미국의 사진 전문 주간지 라이프(Life)는 창간 특집으로 그레타 가르보의 화보를 실었다. 인터뷰는 없었다.

당시 최고의 톱스타로 군림했던 가르보는 화면 밖에서는 철저하게 은둔자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초기를 제외하면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팬들의 사인 요청도 거절했으며 자기가 주연한 영화의 시사회에도 참석을 거부했다. 41년 은퇴 후 90년 사망할 때까지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비주의의 원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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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신비주의(mysticism)란 ‘자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절대자와 소통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비주의라는 말은 ‘대중과의 소통을 극도로 기피해 자신을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두려는 연예인들의 전략’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의미의 ‘한국적 신비주의’는 마땅히 영어로 옮길 말이 없다. 간혹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는 가르보이즘(Garbo-ism)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이런 신비주의의 화신으로 꼽히던 이영애가 결혼까지도 극비리에 치러 화제다. 남편의 신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 식을 올리고, 결혼 이튿날 법무법인을 통해 사실 통보만을 한 결과 온갖 억측과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영애의 행동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스타로서 팬들에 대한 예의를 잊은 행동이라는 비판론과 아무리 스타라 해도 스스로 사생활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사실 이영애에 대한 이런 큰 관심은 본인이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가르보의 전기 작가인 존 베인브리지는 “결국 언론 보도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그녀를 역사상 가장 파헤쳐 보고 싶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신비화한 결과가 필요 이상의 궁금증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일부 팬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결혼으로 인한 논란이 장기적으로 이영애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정작 걱정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마땅히 내세울 출연작도 없이 그저 이영애풍의 신비주의를 추종하며 30초짜리 CF를 대표작으로 삼고 있는 일부 스타들이다. 이영애야 10년 뒤에도 ‘대장금의 이영애’로 기억되겠지만, 과연 그들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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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위에서 말했듯, '대중과의 직접 접촉이나 매체를 통한 접촉을 모두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을 과연 '신비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약간 복잡한 문제입니다. 제1감으로는 누군가의 무신경한 오용이 굳어진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비'와 '소통'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아주 얼토당토 않은 적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한국어로 연예인들의 '신비주의'라고 쓰고서 그걸 mysticism이라고 옮겼다간 큰일 난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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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우면서도 차가운 미모로 근 20년간 톱스타의 자리를 지킨 가르보의 은둔생활은 여러 모로 특이합니다. 가르보는 신분을 감추고 어디 적막산골로 간 것이 아니라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맨하탄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라이프는 만년에도 가르보를 몇번 더 괴롭힌 적이 있지만, 가르보는 입을 꼭 다물고 취재진을 뿌리쳤을 뿐입니다. (위 사진은 사망 4일 전 '라이프'가 포착한 1990년의 가르보입니다. 지팡이를 들어 사진기자에게 반감을 표현하고 있죠. ...노인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다니.)

아무튼 신비주의의 요체는 분명합니다. '가릴 수록 더 궁금하다'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전략이죠.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인적인 성향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스타덤에 높이 오를수록 사생활이라는 것은 사라져가기 때문이죠. 소위 유명세라는 것도 날이 갈수록 비싸집니다.

(가끔 신문 등에서도 '유명세를 타다'와 같은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이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실수입니다. '유명세'라는 말은 有名勢가 아니라 有名稅, 즉 유명해진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세금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명세는 '타는' 것이 아니라 '치르는' 것이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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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신부 이영애는 이제 귀국을 했고, 결혼한 사람으로서 생활해 갈 겁니다. 당장은 취재 열기가 뜨겁겠지만 언젠가는 그 관심도 잦아들겠죠. 어쩌면 신비주의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 연기생활을 계속할지, 하지 않을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연기를 계속 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상태에서 연기를 중단하고 '보통 사람'이 된다면 오히려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겠죠.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영애든 그레타 가르보든, 스타덤에서 멀어진 다음에 생각해 볼 때 신비주의는 매우 사소한 문제입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카메라를 피했건 안 피했건, 이건 한 배우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그냥 에피소드로나 기억될 문제죠. 그레타 가르보는 '안나 카레리나'나 '마타 하리'로 기억될 것이고, 이영애는 '장금이'나 '금자씨'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그만한 업적도 없이 신비주의로만 인기를 유지하는 배우들은 과연 늘그막에 어떻게 될까요. 대체 무엇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과연 몇십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왕년의 유명했던 핸드폰/샴푸 모델'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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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장진영이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진영은 단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 표현을 '였습니다'라고 써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연기력으로, 미모로 장진영과 경쟁할 만한 30대 여배우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1997년쯤의 일이군요. 지금은 사라진 현대방송(HBS)의 '연예특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인은 탤런트 김승환씨와 함께 MC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그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인을 처음 알게 된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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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진영은 미스코리아 출신(1993년 충남 진)이었고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끌었지만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진영의 소속사는 스타들의 집결지였죠. 이승연 장동건 김지수가 한창 빛을 발하고 있었고 원빈과 윤손하가 발군의 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뒤늦게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양정아와 장진영이 있었습니다.

스타군단의 막내...란 쉽게 스타들의 후광으로 떠오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욕심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 대표의 말은 "갖출 건 다 갖췄지만 본인이 그리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하려는 뜻이 없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쪽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미모와 몸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지만 이 대표의 예상대로 장진영은 쉽게 스타덤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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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장진영의 첫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이 1999년의 '순풍산부인과'지만 그 전에도 장진영의 출연작은 여러 편 있었습니다. 1997년 출연작인 '내안의 천사'때 OST 표지(위 사진)에서도 아랫줄 오른쪽 장진영을 못 알아 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고와야지'같은 드라마에선 극중 비중도 꽤 컸습니다. 단지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죠.
 
농담처럼 베스트극장 '그와 함께 타이타닉을 보다'가 대표작이라고 말하던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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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간호사 역할은 이미 연예계에서는 '유망주라기엔 너무 세월이 흘렀고,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엔 너무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진영이 하기엔 좀 아슬아슬한 역이었습니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배우가 하기엔 너무 작은 역이었죠. 말하자면 백의종군인 셈입니다. 아마도 장진영이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자'고 각오를 다진 것이 '순풍산부인과'를 전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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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손짓에 응한 장진영은 '반칙왕'에서 송강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관장 딸(요즘 드라마 '드림'의 손담비 역에 가깝군요) 역으로, '싸이렌'에서 신현준의 애인 역으로 출연합니다. '반칙왕'은 좀 주목을 끌었지만 '싸이렌'에선 영화도, 장진영의 역할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인공도 애인이 있어야겠지?'라는 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캐릭터였죠.

하지만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다음부턴 좀 비중이 큰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말하던 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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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진영은 마침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한국 공포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열연을 펼칩니다. '소름'은 철거 직전의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저주'라는 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걸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걸작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장진영과 김명민이라는 두 주인공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장진영으로선 자신의 가능성을 이 한편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죠. 영화는 그리 히트하지 못했지만 김명민과 장진영, 두 배우의 이름은 한국 연예계에서 '더 비싸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할' 명단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첫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습니다.

사실 그리 흥행작도 아닌 영화에서, 그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다는 건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와 장진영이 던진 파문이 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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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가 조금 아쉬움을 남긴 화제작이었다면 '싱글즈'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주인공으로도 장진영을 능가하는 배우는 없다는 확신을 주는 흥행작이었습니다.

김주혁과 장진영이라는 배우의 절묘한 호흡이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만들었죠. 장진영은 이 작품으로 두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한손에 거머쥐었습니다. 장진영으로서는 '귀여운 여자'의 이미지로도 변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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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5년 '청연'의 흥행 실패, 2006년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의 부진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연애참'은 장진영이 자존심을 건 열연을 펼쳤지만 제작편수 증가와 한국영화 인플레이션의 틈바구니에서 관객 동원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만 강한, 실속이라곤 없는 고참 호스테스 역을 맡은 장진영의 연기가 돋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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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발표 때, "감독님에게 서운했고, (김)승우 오빠에게 서운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장진영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리고는 2007년작 '로비스트'가 있었고, 그 이후로 장진영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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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데뷔 연도에 비해 장진영이 실제로 주목받은 기간은 매우 짧은 편입니다. 관객 동원으로 봐도 장진영은 천만 관객은 커녕 3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도 갖지 못한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고인에 대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장진영은 대형 스크린을 혼자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습니다. 또 활동기간이 훨씬 더 긴 배우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적응력을 보인 사례는 현역 여배우들 가운데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해낸 기록만으로도 대단한 배우임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고인이 조금만 더 일찍, 연기로 인생의 승부를 걸었더라면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진영보다 훨씬 더 큰 배우로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씩씩하고 밝은 성격에 두주불사의 친화력을 자랑하던 이 배우가 아직 한창 나이에 이렇게 팬들의 곁을 떠난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병세가 회복되어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다던 그가 어느새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렇게 글로 조상하는 일도, 참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더욱 빛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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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 역시 이 노래겠죠.



P.S. 출생 연도가 최종 확인되어 1972년으로 정정합니다. 오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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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잇달아 새로운 인물들의 활약으로 흥미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서라벌 10화랑으로 부족해서 가야파의 1인자 월야(주상욱)에다 사라졌던 미실의 아들 비담(김남길), 그리고 다음엔 또 누가 등장할지 모르겠군요. 물론 춘추 유승호는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라 저기서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나올까 할 때가 있습니다. 사극이라 특히 그렇죠. 진지-진평왕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반드시 나와야 할 인물들이 안 나옵니다. 김유신과 덕만의 로맨스를 강조하기 위해 천관녀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건 지난번에도 얘기했었지만 당대를 호령해야 할 유명한 화랑들이 다수 드라마에서 사라진 건 좀 아쉬운 구석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인물들이 안 보일까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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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광법사

사실 진흥-진지-진평왕 시대의 화랑 얘기를 하면서 원광법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반칙입니다. 화랑을 논하면서 세속오계를 빼놓을 수 없고, 오계를 부정하지 않는데 원광법사가 단역으로라도 등장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젭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전혀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지금 나오면 그것도 반칙입니다. 이유는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원광법사의 입적 연도가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난 연도인 602년이기 때문입니다. 춘추가 수나라로 유학을 갔다 오는 마당에 원광법사가 살아 있다는 건 좀 심각한 왜곡이죠.

하지만 원광법사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이 화랑들은 세속오계를 모르는 족보 없는 화랑들이 돼 버렸습니다. 수나라에서 돌아온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을 불러 오계를 내리고 화랑도의 근본으로 삼으라고 해야 할텐데, 그 대목이 빠지니 오계를 논할 시점을 놓친 것입니다.

사실 원광법사가 '선덕여왕'에서 사라진 뒤에는 더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따르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원광의 아버지는 4세 풍월주 이화랑이고 어머니는 세종(미실의 남편)의 누나인 숙명공주입니다. 세종의 외조카가 되어 버리니 세종-미실 측과 너무 가깝죠. 이화랑과 숙명공주는 원광과 동생 보리공(12세 풍월주)를 낳아 신라의 화랑 계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랑오계를 내리는 등 당시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원광법사가 세종-미실의 측근이라는 건 드라마 속에서 미실에 대항하는 덕만 세력의 정통성을 지나치게 크게 해치는 구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원광법사를 등장시킬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게 역사 왜곡은 좀 작작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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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산과 추항

마찬가지로 원광법사로부터 오계의 가르침을 받아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을 다른 화랑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중책을 맡은 인물들인데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습니다. 아마 원광법사의 생몰연대에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이들은 이미 어디선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를 해 버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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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형

사실 '선덕여왕'의 흐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던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활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비형은 진지왕(사륜왕)이 죽은 뒤 그 혼령이 서라벌의 미녀 도화랑과 정을 맺어 태어난 아들입니다.

기록을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진지왕은 도화랑의 미모에 반해 궁으로 불러 범하려 합니다. 하지만 도화랑은 "남편이 있는 몸이 어찌 몸을 함부로 하겠느냐"며 왕명을 거역하죠. 기특하게 여긴 진지왕이 "그럼 남편이 없다면 되겠느냐"고 묻자 도화랑은 "그렇다면 허락하겠다"고 답합니다.

진지왕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선덕여왕'에 따르면 미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죽죠), 도화랑의 남편 역시 3년 뒤 죽습니다. 남편이 죽은 어느날,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랑을 찾아와 동침을 요구하고, 열달 뒤 비형이 태어납니다.

왕가의 핏줄이라 소문이 나자 진평왕은 비형을 궁중으로 데려와 길렀는데, 이때에도 비형은 밤마다 몰래 혼자 빠져나가 귀신들을 거느리고 노는 비범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때 진평왕은 비형에게 "귀신들 가운데 인간세상을 섬길만한 자가 있느냐"고 묻자 비형은 길달이라는 귀신을 추천합니다. 이에 진평왕은 길달을 각간 임종(네. 아래 사진에 나오는 10화랑 중의 바로 그 임종입니다)의 양자로 삼게 합니다.

이렇게 귀신을 거느릴 정도로 신통방통한 비형. 물론 과학 기술을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에겐 이런 비형의 사적이 공자님께서 꺼리라 하신 괴력난신에 해당할테니 '선덕여왕'에서 제거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뒷날 누군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때는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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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륵선화 미시

진지왕때 흥륜사에서 진자대사가 기도해 맞아들인 미시(未尸)는 불교의 미래불인 미륵의 화신으로 인정받은 소년 화랑입니다. 홀연히 나타나 신라의 화랑, 국선이 되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의 화랑입니다.
물론 '화랑세기'의 역대 풍월주 명단에는 미시랑의 이름이나 사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삼국유사의 미시랑 관련 기록에는 최초의 화랑 이름이 설원이라고 되어 있죠. 물론 '화랑세기'에는 설원의 앞에 6명의 풍월주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상충되는 기록들을 모두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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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세, 구참

진평왕때의 명승인 혜숙대사의 사적에 나오는 화랑들입니다. 특히 구참공이 사냥과 살생을 즐기는 것을 보고 혜숙대사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그렇게 고기가 좋으면 이 살을 드시오" 하고 권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물론 '화랑세기'에도 이런 인물들은 아예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화랑세기'가 정교한 위서라면 이런 화랑들을 일부러라도 등장시켜서 삼국유사 기록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을 늘려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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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향가 '모죽지랑가'로 유명한 죽지랑이 등장해야 하겠으나 주요 활동 연대가 진덕여왕 이후이니 아직 태어났어도 어린 소년일 겁니다. 유신랑의 동생인 흠순이나 관창의 아버지 품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다지 큰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김유신을 중심으로 '족보 있는(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근거가 나오는)' 알천과 임종, 필탄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화랑세기에만 나오는 보종이나 그 계열의 '창작 화랑진'은 조역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게 되겠죠.

이런 구도는 '그들은 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한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매우 교묘한 배치입니다. 마야부인이 미실을 향해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것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미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 역할을 하듯, 드라마 속 화랑들의 운명 역시 미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설명이 이뤄질 겁니다. 이런 인물 배치 속에도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봐야겠죠.

그나자나 비형랑이 '선덕여왕'에 나온다면 비담 못잖은 괴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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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의 본격화가 곧 드라마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리 있는 얘깁니다. 왕년에는 의사 가운이건, 이발사 가운이건 어쨌든 흰 가운만 입고 나오면 의사라는 식의 드라마도 꽤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명찰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만드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그만큼 '날림 제작'은 사라져가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직업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왔을 때 "실상은 저것과 전혀 달라!"라며 분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불만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매우 드물 지경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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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스타일'이 방송된 이후, 잡지사에 근무하는 여기자들(요즘은 주로 '에디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의 반응이 이런 저런 방향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제작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만족한다는 반응은 거의 없다. 99%가 "세상에 저런 잡지사가 어디 있냐"는 내용이다.

날마다 파티 의상인 김혜수를 두고 "어떻게 저렇게 입고 일을 하냐"는 반응이 기본이고 "남의 회사 어시(assistant, 즉 수습)를 돈 주고 빼간다는게 말이 되냐" "포토그래퍼가 기획회의에 들어오는 회사가 어디 있냐"는 등 디테일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타일'만 그랬던 게 아니다. 직업의 세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치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야, 정말 리얼하다. 실감난다'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당최 들어 보질 못했다. 신기할 정도다.

의사든 변호사든 예외가 없다. '종합병원' 이후 모든 메디컬 드라마, '애드버킷' 이후 모든 법정 드라마가 진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는 "세상에 무슨 의사(혹은 변호사)가 그따위냐. 대체 병원(혹은 로펌)인지 놀이터인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들어왔다. 최근의 '뉴하트'나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주된 평가는 "저런 식으로 했다가는 당장 옷 벗어야 할 것"이란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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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꼭 전문직만 그런 건 아니다. 농부든, 어부든, 간호사든, 항공사 여승무원이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자신들의 직업에는 죄다 불만이다. 체크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재벌이나 조직폭력배들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자신들의 역할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재벌 2세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야, 저게 말이 되냐? 근데 너 혹시 니네 회사에 맘에 드는 여직원 있으면 저렇게 하냐?"하고 통화를 할까?)

물론 기자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연예 담당 기자들은 정상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 지는 것 같다. 사실 '스타의 연인'에 나오던 얼띤 기자(정운택)나 영화 '과속 스캔들'에 나오던 봉필중 기자(임승대)를 마음에 들어 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게다가 봉필중 기자처럼 기사를 썼다간 집이 몇 채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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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되는 드라마 '드림'에 나오는 희한한 기자(정은표)는 사진 한 장의 댓가로 스포츠 백 하나에 가득 찬 현찰을 챙긴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긴 그 정도 돈을 막 뿌려댈 수 있을 정도로 격투기 선수와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떼돈을 벌고 다니는 날이 오긴 했으면 좋겠다(이 친구들도 '드림'에 불만이 많더라는 얘기).

기자의 경우는 다른 직업들과 좀 다른 면도 있다. 다른 직업의 경우엔 좋은 변호사나 좋은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도 '리얼리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기자의 경우엔 아예 '좋은 기자'라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손예진이 주연했던 '스포트라이트'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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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경우에도 '정의를 지키는 신념에 찬 방송 기자'들과 '부패하고 타락하고 게으른 신문 기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뭐 방송국에서 만든 거니까 이해한다. 신문사가 만들었다면 아마 반대가 됐겠지). 아무튼 일부나마 '좋은 기자'들을 다룬 죄로 이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참패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좋은 기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군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전문직 드라마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온에어'를 두고 PD나 드라마 작가로부터 불평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연기자나 매니저들은 이들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지만, PD나 작가들이 이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을 거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작가협회에서는 '해당 직업을 가진 극중 인물들이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 그 드라마는 망한다'고 가르치는 걸까? 그런데 이거 혹시 한국 드라마만 이런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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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은 모르지만 최소한 기자에 대한 한 한국드라마만 저런 건 아닌 듯 합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1976)'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자라는 종자들은 항상 무슨 일이 되게 하기보다는 안 되게 하는데 재능이 많은 존재들로 그려집니다.

아래 사진의 아저씨가 나오는 '다이 하드'가 대표적인 경우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하는 역할이란게 대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대단히 무모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뭘 믿고 기자를 주인공으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목에 대한 답은 나와 있는 셈입니다. '망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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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즘 '스타일'을 본 잡지사 쪽의 반응이나 '드림'을 본 스포츠 에이전트, 혹은 이종격투계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현실불감증'은 여전한 듯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현실보다 한심하게'가 아니라 '현실보다 너무 화려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이 불만은 그냥 불만 수준으로 남아 있는게 다행일 듯 합니다. 만약 현실보다 나쁘게 그려졌다면 당장 소송이나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간호사 단체나 항공사 여승무원 단체에서는 이런 일이 꽤 잦았죠. 바로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라는 항의 말입니다.

이런 항의를 고려한다면 역시 특정 직업을 나쁘게 그리는 것 보다는 좋게 그리는 것이 유리하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쁘게 그리는 것이 대세'인 이 직업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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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왔습니다.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하는 갱스터 무비라는데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죠. 이름 값으로 놓고 보면 왕년에 만 감독이 '히트'에서 이뤄냈던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경연 이후 최강의 진검 승부라고 부를 만 합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로 잘 알려진 남녀 커플 강도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와 함께 가장 유명한 범죄자였던 존 딜린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930년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이면서 미국의 FBI가 오늘날의 명성을 차지하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제임스 캐그니 주연의 오리지널 영화 '퍼블릭 에너미'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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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강도 존 딜린저(조니 뎁)는 단정한 용모와 세련된 옷차림, 그리고 여자에겐 손을 대지 않고 은행을 털 때에도 저금하러 온 일반 고객의 지갑은 건드리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로 팝스타 못잖은 명성을 누립니다. 그런 그는 어느날 클럽에서 미모의 빌리(마리옹 꼬띠야르)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결국 딜린저와 빌리는 연인이 됩니다.

한편 쉴새없는 딜린저의 발호로 곤경에 몰린 FBI 국장 후버(존 크루덥)는 딜린저 못잖게 유명한 갱인 프리티보이를 사살한 명수사관 퍼기스(크리스찬 베일)를 FBI 시카고 지부장으로 임명하고 딜린저 체포의 전권을 맡깁니다. 일반 경찰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 낼 때 FBI라는 조직의 앞날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후버의 승부수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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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내놓으며 70년대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예로 들었지만 딜린저를 소재로 한 영화도 한두편이 아닙니다. 한국에 비디오로 나왔던 영화만도 '델린저'와 '전설의 대도 딜린저' 등이 있습니다. 두 편 모두 딜린저와 퍼기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도 너무나 유명한 얘기지만, 혹시라도 이걸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테니 그 얘기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클 만은 1930년대 매스컴에 의해 '로빈 후드'로 묘사됐던 독특한 성격의 은행 강도를 다루는 데 있어, 역시 평소의 그답게, 다소 혼란스러운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만은 참 희한한,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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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뉴스 프로그램 PD 출신답게 냉정하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 남아 있는 연출을 즐기는 듯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격렬한 신파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결말은 산으로 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노미네이트작인 '인사이더'가 그의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공연'이라는 간판이 달린 '히트'일 겁니다.

그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열정을 보여줄 때 '인사이더'나 윌 스미스 주연의 '알리'같은 영화가 나옵니다(단 '알리'는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비추). 하지만 그가 오우삼 못잖은 닭살 느와르 감독의 본색을 드러낼 때에는 '히트'나 '콜래트럴', 그리고 이번 '퍼블릭 에너미'같은 영화가 나오죠.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최초의 작품인 '킵'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들은 갱들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지만 후자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한때 그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가 갖고 있는 두 가지 세계의 화해를 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차기작에는 더욱 관심이 쏠렸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형식면에서의 높은 완성도에 비해 유난히 돋보이는 세계관의 부재 덕분에 불균형이 더욱 눈에 뜨는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어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좀 편안한 말로 풀어 설명하자면, 때깔과 만듦새는 매우 그럴 듯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좀 의아한 영화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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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가 그럴 듯하게 '있어 보이는' 것은 마이클 만이 깔아 놓은 알리바이가 꽤 그럴싸하기 때문입니다. 만은 딜린저를 시대를 잘못 태어난 낭만주의자이며, 그를 '퍼블릭 에너미'로 만든 것은 FBI 국장 에드가 후버라는 식의 서술 말입니다. 만은 영화 곳곳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인기 없는 인물인 에드가 후버가 진짜 악역이라는 식의 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 합니다.

게다가 관객들은 '퍼블릭 에너미'를 볼 때 '1930년대 미국 갱의 역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 속의 사건들은 그냥 만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재배치되어 있습니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를 애인인 아나 프리셰트의 구출을 위해 목숨을 거는 순정남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많은 기록들은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폴리 해밀턴과도 연인 관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딜린저와 동시대의 갱들인 프리티보이 플로이드와 베이비페이스 넬슨은 모두 딜린저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변동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 영화는 겉으로 포장된 것 만큼 '담담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묘사된 진짜 느와르의 시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겉멋에 치중해 알맹이는 하나 없는 화려한 한 폭의 그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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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상황 판단을 못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와 한때 그의 치명적인 매력(...그런데 그것은 딜린저의 매력이라기보단 조니 뎁의 매력으로 보입니다)에 빠져 인생을 망친 아나 프레셰트의 덧없는 사랑 이야기 뿐입니다. 크리스찬 베일에겐 미안하지만 이 영화에서 '때로 자기 환멸에 빠지는 고독한 법의 집행자' 이미지는 그냥 겉돌다 사라질 뿐입니다.

너무나 캐스팅이 화려한 탓에 늘 실망하면서도 꼭 보게 되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들.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는 영화는 '인사이더'와 '마이애미 바이스' 정도입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부동심을 지켜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봅니다. 아무튼 제 의견을 묻는다면, 보러 가시라고 추천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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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딜린저의 실제 얼굴과 영화 속 조니 뎁입니다. 뭐 그리 닮은 편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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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연예계를 돌이켜보면 참 굵직한 사건 사고가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자연 사건으로부터 최진실 유해 도난사건, 마이클 잭슨의 죽음까지 충격적인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는 걸 어제 깨달았습니다.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복귀 소식입니다. 무려 7년만의 일이군요.

수많은 명가수들이 명멸하고 있고, '노래 잘 하는 여가수'에 대한 대명사도 어느새 "니가 무슨 휘트니 휴스턴이냐?"에서 "니가 무슨 머라이어 캐리냐?"로 바뀐지 오래지만 그래도 제 마음 속에는 진정한 이 시대 최고의 여가수는 휴스턴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셀린 디온도, 머라이어 캐리도, 알리샤 키스도 감히 거기에는 따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복귀에 대한 생각(감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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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휘트니 휴스턴, 누나가 돌아왔다

지난 2월 8일 그래미상 시상식장, 휘트니 휴스턴이 '올해의 R&B 앨범' 부문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무대로 나서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수상자도 아닌 시상자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상을 받은 제니퍼 허드슨마저 "다른 사람도 아닌 휴스턴으로부터 상을 받다니"라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 휴스턴이 최근 새 앨범을 내놓고 복귀를 선언했다. 7년만의 일이다.

'도대체 휘트니 휴스턴이 뭐길래 이 호들갑일까'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휴스턴이 판 음반의 수는 1억7000만장에 달한다.

전미 음반산업협회(RIAA)의 통계에 따르면 휘트니 휴스턴은 미국 내에서 지금까지 5400만장의 앨범을 팔아 역대 20위에 올라 있다. 여자 가수로는 네번째다. 특히 단 5장의 앨범으로 낸 성적이라는 게 경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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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내놨을 때 그는 이미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머니 시씨 휴스턴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관록의 가스펠 가수였고, 사촌인 디온 워윅은 이미 톱스타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R&B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이 대모(代母)라면 그 성장 환경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경우 주로 등장하는 것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격언이지만 휴스턴은 예외였다. 세번째 싱글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가 빌보드 싱글 차트를 석권하는 등 5곡이 잇달아 히트했고 앨범은 14주 동안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휴스턴의 추종자들이 등장할 정도로 그의 가창력은 여성 디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가끔 경쟁자로 꼽히는 머라이어 캐리조차도 "아레사 프랭클린과 휘트니 휴스턴이 없었다면, 그 후배들인 우리들 중 아무도 지금처럼 노래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공연한 영화 '보디가드'도 주제가와 함께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아이들 스타 출신인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도 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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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지 않는 해는 없었다. 2001년, 앨범 6장에 1억 달러(약 1240억원)라는 초유의 계약에 성공했지만 가정 불화와 마약의 충격이 밀려왔다. 2007년 이혼이 성립되며 외신은 폐인이 된 휴스턴의 모습을 전송해왔다. 전 세계가 디바의 실종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마침내 6집 '아이 룩 투 유'의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초 그래미 시상식 전야제에서 휴스턴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전성기의 힘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앨범도 마찬가지. 예전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이다.

오는 9월 14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는 휴스턴을 두고 외신은 "지난 10년간 가장 흥분되는 음악인의 복귀"라고 타전하고 있다. 올해 46세를 맞은 전설의 디바가 과연 "진짜 전설은 이제부터"라는 장담을 실현할지, 지켜보는 가슴이 뛴다.
isblog.joins.com/five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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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과 머라이어 캐리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충격을 비교하자면 전자가 훨씬 큽니다. 이유는 당연히... 머라이어 캐리는 앞에 휴스턴이 있었기 때문이죠.

휴스턴 이전에도 많은 훌륭한 R&B 가수들이 있었지만 스타일은 다릅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후계자를 꼽자면 차라리 디온 워윅이 더 가까울 것이고, 다이애나 로스는 흑인이지만 흑인 본연의 창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흑인 여가수의 싱싱한 힘과 탄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R&B의 틀을 넘어 보다 팝적인 사운드를 완벽하게 소화한 여가수는 아마도 휴스턴이 처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디바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휴스턴의 등장은 많은 후배 여가수들에게 '아, 나도 저렇게 노래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면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면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코멘트는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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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가 휴스턴에 대해 한 말은 2005년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가끔 자신의 후배 여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듣다 보면 '흠, 이건 날 따라한 거잖아'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자신도 분명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저 말을 한 것입니다.

원문은
http://www.usatoday.com/life/people/2005-04-10-mariah-carey-cover_x.htm 관련 부분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She gives kudos to some of her successors, notably Keys, whom she praises as "talented and very much involved in everything she does musically."
And Carey doesn't pretend to be unaware of the influence that her ornate, technically dazzling vocal style has had on many of Idol's female contestants ? or a lot of their peers on the pop and R&B charts, for that matter.
"There are definitely moments when I hear things that I've done, very specifically, repeated on record," she says. "And I'm like, 'Hmmm, that's interesting ? did I get publishing (credit) on that?' "
But Carey quickly adds, "We've all been influenced by other people. None of us would sound the same if Aretha Franklin hadn't ever put out a record, or Whitney Houston had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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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감동적인 장면들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는 것은 오래 전에도 한번 소개했던 1989년 그래미상 시상식장에서 부른 One Moment in Time입니다. 이 노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미국 중계방송 주제가로 사용됐습니다.

동영상 기준으로 3분대 후반에서 4분대 전반에 걸쳐 도달하는 클라이막스의 아름다움은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라이브에서 이런 가창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죠.

예전에는 유명 가수들의 그래미상 시상식 라이브를 모은 Grammy's Greatest Moments라는 편집 음반에 이 라이브가 담겨 있었는데, CD 버전으로 들으면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터뜨리는 탄성도 생생하게 들립니다. 요즘은 워낙 CD 자체가 귀한 시대가 돼 놔서... 어디서 팔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끼셨습니까? 다음은 1994년 버전의 I'm Every Woman.




이 노래를 안 들으면 들은 것 같지가 않겠죠. '웬다이아'입니다. 2000년 버전.



신곡은 퍼올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여기선 광고로 만족하시고, 가서 들으세요.

I Look to you 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dwlEkiiREFA

아무튼....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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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결혼을 놓고 화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영애라는 스타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비밀 유지를 위해 온 정성을 기울였는데 며칠 사이 결혼식장이라는 하와이의 한 호텔에서 이영애를 목격했다는 주장에서 남편의 신원에 대한 온갖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영애의 비밀 결혼은 몇가지 부분에서 초유의 사건입니다. 이영애 정도의 톱스타가 해외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 것도 처음일 뿐더러, 법무법인을 통해 보도자료로 결혼 사실을 알린 것도 처음입니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셈입니다.

사실 2년 전, 또 다른 스타가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연입니다. 전도연의 결혼이 남긴 새로운 기록이라면 전도연은 그동안 몸담아온 연예계의 동료 배우나 관련자들을 일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고, 남편의 신원에 대해 전혀 공개하지 않았으며, 결혼식장의 안팎에서 일체의 취재를 불허했습니다. 이런 결혼식은 대한민국 연예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사이, 많은 것이 변한 듯 합니다. 여론의 방향이 정 반대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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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과 이영애의 결혼식은 대단히 닮아 있습니다. 이영애가 '대장금'으로 세계 만방에 한국 대중문화를 알린 스타라면 전도연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월드 스타입니다. 연기력이라면 전도연은 이영애는 물론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한 수를 접어주는 빅 스타죠.

전도연이나 이영애나, 결혼식을 비밀리에 치른 이유로 든 것은 똑같습니다. '여자로서 조용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고, 스타에게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는 있다'는 것이죠. 사실 전도연의 비밀스러운 결혼과 이영애의 결혼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전도연의 시도가 없었다면 그 뒤의 수많은 보안 철저했던 결혼식도 없었을 것이고, 이영애의 이런 결혼 발표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2년 전 전도연의 결혼식에 대해 '전도연씨, 왜 숨습니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톱스타로서 이렇게 결혼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전도연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스타는 사생활을 누릴 권리도 없냐'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는 주장이 대부분이었죠.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옛날 글과 댓글 보러 가기:
http://blog.joins.com/fivecard/7690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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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일이라 기억들이 희미하실지 모르지만 당시 전도연 측의 정보 관리는 철저했습니다. 신랑의 이름이나 직업, 나이 등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 있었죠. 하지만 결혼식 당일, 참석한 하객들에 의해 신원이 공개됐고, 신혼여행지 공항에서 두 사람이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직접 알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2년 뒤, 그리 다를 것 없는 이영애의 결혼을 놓고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영애의 비밀 유지에 대해 '팬들에 대한 톱스타로서의 예의'를 지적하고 있더군요.

불친절한 톱스타, 이영애 http://v.daum.net/link/4019144

이영애,결혼의 자유와 스타의 책임 사이에서 http://v.daum.net/link/4024824

스타와 팬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 이영애의 결혼 http://v.daum.net/link/4020262

이영애 결혼, 무시된 대중들 남편에게 집착하는 이유 http://v.daum.net/link/4023410

물론 그 반대 입장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조회수나 추천수에서 위쪽의 주장들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이영애는 결혼도 궁민 허락받아야 하는거임??  http://v.daum.net/link/4025126
이영애 결혼,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 http://v.daum.net/link/4033061
이영애의 결혼과 팬들의 빗나간 짝사랑 http://v.daum.net/link/402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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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전도연에게 요구하지 않았던 '톱스타의 예의'를 이영애에게는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을까요? 이영애가 전도연보다 훨씬 스타이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니겠죠.

스타를 가족처럼 느끼고, 스타의 결혼식에는 온 국민이 하객이 된 것처럼 느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전도연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스타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결혼'이 이영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저는 참 궁금합니다. 물론 제 입장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전도연과 이영애에 대한 반응의 차이는 대중의 변덕일까요, 세상의 변화일까요?


P.S. 많은 분들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겟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는 댓글들이 많더군요. 이 글에 한해서 댓글 기능을 정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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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법무법인 결혼 발표'가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이영애가 언제 누구와 결혼한다'는 떠들썩한 화제가 나오고, 그 결혼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결혼식 당일에는 으리으리한 결혼식장과 톱스타들로 만발한 하객이 오고... 뭐 이런 모습이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톱스타의 결혼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기의 결혼식'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법무법인에서 날아온 '보도자료 한 장'은 좀 실망스러웠던 듯 합니다. 물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하는지는 당사자의 자유이지만, 이번엔 유독 서운함을 표시하는 팬들이 많은 듯 합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요즘 웬만한 연예인, 특히 톱스타의 결혼식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치러집니다. 외국 매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아무개의 결혼식 사진 독점 공개'는 이제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스타들의 결혼식은 언제부터 보안 대상이 되었을까요. 시대순으로 되새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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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 스타들의 결혼식장 내부가 취재 금지 영역이 된 최초의 경우는 1998년 황신혜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스타의 결혼식을 취재 대상으로 하는 매체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현장에 나온 사진기자들끼리도 대부분 안면이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낯뜨거운 취재 경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대략 현장에서 포토라인을 준수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결혼식 당일, 처음 보는 보디가드들이 등장했고 취재용 카메라(누가 봐도 금방 티가 납니다)를 가진 하객은 결혼식장 로비에서 제지당했습니다. 이전까지 없던 일이라 승강이가 오갔지만, 결국 황신혜 측이 "결혼식장 내부 사진은 나중에 배포하겠다"고 얘기하는 걸로 합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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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분위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식장 내에 너무 많은 취재 카메라가 있는 것은 좀 문제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폐해가 극에 달했던 것이 2000년 조성민-최진실 부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결혼식인 만큼, 온갖 매체란 매체는 총출동했던 결혼식이었죠.

하이야트 그랜드 볼룸이라는 드넓은 결혼식장에도 불구하고 식장 안에는 앉은 하객보다 서 있는 사진기자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취재 인력이 넘쳐났습니다. 결혼식은 패션쇼장을 연상시키는 T자형의 무대 위에서 진행됐고, 신랑 신부가 T자형 무대 위에서 객석 쪽으로 행진할 때에는 사진기자들이 일제히 무대 쪽으로 달라붙어 행진이 방해될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조차도 '최소한 식이 열리는 식장 안에는 취재 카메라를 막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눌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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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시까지는 식장 내 취재 불가 방침을 내린 결혼식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2001년 가수 임재범의 결혼식은 꽤 화제를 낳았습니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결혼한 임재범은 식이 열리는 동안 사진기자는 물론 취재기자도 들어 올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래도 취재 기자들은 어떻게든 삼엄한 경비를 뚫고(?) 식장 안에까지 들어갔지만 내부 사진은 제대로 찍힌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박박머리로 삭발을 한 신랑 임재범의 모습은 그리 널리 보도되지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훨씬 나중 여성동아 인터뷰때 나온 사진입니다. 화질로 보아 임재범 측이 제공한 사진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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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차츰 식장 내 비공개는 연예계의 원칙이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스타들은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는게 팬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선에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연예인 결혼식장에서는 식이 열리기 한시간 정도 전에 약식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보통입니다. 신랑-신부 양측이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고, 부부 중 한쪽이 연예인이 아닌 경우는 한쪽만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튼 대부분 취재진에게 식장 내 취재를 불허하는 대신 '결혼식용 사진'을 촬영하고 간단히 당일 소감을 말하는 자리를 갖는게 일반화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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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정도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는 스타들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톱스타들일수록 그랬죠. 2007년 전도연의 결혼식을 시작으로 심은하, 김희선의 결혼식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식장은 물론, 식장 건물 전체가 취재진 출입금지 구역이 됐고 결혼식 광경은 절대 보안의 대상이 됐습니다. 대부분 '점잖은 집안과 결혼을 하기 때문에 소란을 피울 수 없다'는 이유들이었죠.

이들은 어쨌든 결혼식 시간과 장소는 미리 알렸고 전도연은 끝까지 결혼식 장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심은하는 결혼식장을 현장 중계했고 김희선은 사후에 남편과 함께 찍은 결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2007년 결혼한 전재용-박상아 커플은 아예 결혼식 사실을 감췄고, 결혼식 다음날에서야 그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죠.

아무튼 이때부터 취재진은 술래잡기를 벌였습니다. 결혼식장은 호텔 객실에 방을 잡고 15층 높이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하객 가운데 일부와 사전 교감을 해 사진을 제공받기도 하고,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의 강 건너편에 있는 고층 건물에서 촬영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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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즘도 수많은 스타들은 결혼식 직전 '사전공개' 순서를 갖습니다. 권상우-손태영 부부도 인터뷰는 따로 하지 않았지만 결혼식 직전 취재진에게(엄밀히 말하면 취재진이 찍은 사진을 볼 팬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강호동과 유재석도 신부들은 감춰 뒀지만 신랑들이 식장에서 미리 포즈를 취했죠.

아무튼 전도연의 결혼식이 원천 비공개 결혼식의 시작이 됐듯, 이번 이영애의 결혼식은 스타들의 해외 결혼식을 유행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지만, 결혼식을 가문의 잔치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오랜 습관에 비쳐 볼 때 이런 결혼식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될 듯 합니다.

해외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양가 주요 친척들이 해외에 거주하거나, 아니면 양가 모두 널리 친척들이 결혼식에 참가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만 가능할 듯 싶습니다. 대단한 스타가 대단한 명문가와 결혼을 하는 경우, 결혼식을 멀리 해외에서 치러 참가하지 못한 가족들의 원망도 대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결혼식은 아직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성격이 강한 만큼, 비록 힘들게 취재 봉쇄를 하더라도 어쨌든 결혼식은 양가 친지들이 두루두루 참여한 가운데 정상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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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은 '어떻게' 보다는 '왜'일 것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연예인에게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영애 스스로 '내 사생활은 스타로서의 의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팬들은 자신의 결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남들이 동의하건 말건, 어쨌든 본인이 그렇게 선택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신비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겨온 이영애는 정말 온갖 매체를 따돌리고 은밀한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은 4년 전부터 돌았고, 지난 1월부터는 '결혼이 임박했다'는 결정적인 제보에 따라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결혼식 5일 전 남편 정씨를 만나는 데 그쳤습니다. 당시 정씨는 "결혼식은 특종을 줄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런 약속은 참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정씨 인터뷰 기사 참조: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212975)

할리우드 스타들은 조용하고 은밀한 결혼을 위해 진입로가 없는 고성을 빌려 결혼하기도 하고, 카리브해의 외딴 섬에서 치르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시골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홍보담당자를 통해 간략하게 결혼 사실만 알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찬성하지 않지만 어쨌든 본인들의 선택입니다.

아무튼 이런 결혼식을 취재하기 위해 해외 취재진들은 스쿠버 다이버를 동원하기도 하고,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하면서 철통같은 보안을 돌파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스타의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려는 기자들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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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Stefania Fernandez)2009년 미스 유니버스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에게 왕관을 건네 준 지난해 수상자도 베네주엘라 출신이었습니다. 이름은 데야나 멘도사(Dayana Mendoza). 2007년 미스 베네주엘라 출신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미녀의 나라'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우스개로 '베네주엘라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와 미녀'라고 할 정도라는군요. 베네수엘라 미녀들이 미스 유니버스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6번째라고 합니다. 1979, 1981, 1986, 1996, 2008년에도 미스 베네수엘라가 미스 유니버스 왕관을 썼죠.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미인대회에 강한 것일까요? 남미의 다른 나라들과 인종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문화가 다른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좋은 성적을 연거푸 내고 있을까요? 우연히 그런 걸까요? 그런데 조금 알아보니 우연은 아니더군요. 비밀은 바로 '미인대회 사관학교'의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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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스 유니버스에서 베네수엘라가 역대 최다 수상국은 아닙니다. 미스 USA가 지금까지 7번 미스 유니버스가 됐다는군요. 하지만 영어 사용이나 스폰서 기업들이 절대적으로 미국 아가씨들을 선호했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베네수엘라의 위력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의 수상 성적만 놓고 보면 베네수엘라에 필적할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은 50, 60년대에 4번이나 왕관을 가져갔더군요. 한마디로 지금의 베네수엘라 미녀들은 월드컵의 브라질이나 세계육상대회에서의 자메이카가 보여주는 위력에 비해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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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내 대회에 나갔을 때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 물론 7명은 미스 유니버스만 센 겁니다. 미스 월드나 미스 영 인터내셔널 같은 다른 대회들을 합치면 세계 최고 미녀의 자리에 올랐던 베네주엘라 미녀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강한 것일까요. 이걸 조사하다 보니 오스멜 수자(Osmel Sousa)라는 사람의 이름을 만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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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자씨는 말하자면 세계 최고의 미녀 조련사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수많은 베네수엘라 미녀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는군요.

영국 타임즈가 지난해 데야나 멘도사의 수상 때 이런 특집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베네수엘라가 여섯번째 미스 유니버스 패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작은 제목은... '오스멜 수자가 또 해냈다' 정도더군요.

긴 기사라서 의미 있어 보이는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기사 끝까지 나오는 사진은 모두 2008 미스 유니버스 데야나 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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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선발과정이 시작된다. 17세에서 25세까지의 여성 수천명이 참여한다. 500명이 선발돼 주 대회에 나가고, 각 지역에서 선발된 60명이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미스 베네수엘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두달간의 혹독한 훈련에 들어간다. 7월이면 주최측은 최종 후보 28명을 뽑는다. 대회장인 수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은 없다. 우리는 소녀들을 '미의 여왕이 되라'는 철학에 따라 무장시키는 학교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의 목표는 "그들을 완벽하게 만들자"다.

Each year, the selection process begins in March when thousands of women between the ages of 17 and 25 apply to take part; 500 are picked to enter their state beauty competitions. The 60 regional winners are then taken to the Miss Venezuela school in Caracas for two months of intensive training before a casting in July when Sousa and his team select the final 28 who will compete before judges for the Miss Venezuela crown. “In other countries there is no organisation like there is here,” says Sousa. “We have our school where the girls are prepared for this philosophy: to be beauty queens.” The aim, he explains, is “to make them perfect”.

학교는 카라카스 북부 아비야 산 기슭에 있는 거대한 핑크색 건물이다. 미스 베네수엘라 대회의 스폰서이며 중계사인 베네비전 방송사와는 한 블록 거리다. 카라카스 밖에서 온 학생들은 기숙사로 배치돼 오전 8시부터 시작해 오후 10시에 끝나는 고된 나날에 들어간다.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행운을 누리는 극소수는 1년 내내 이 학교에 머물기도 한다.

The school is a large pink building at the foot of the Avila mountain in northern Caracas, a block from the Venevision studios - the channel that funds and broadcasts Miss Venezuela. Students from outside the capital are put up in nearby rooms and subjected to gruelling days, often starting at 8am and finishing at 10pm. The lucky few who go on to compete at an international level stay at the school for a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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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 이상의 교사들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법, 음성과 동작, 사진 포즈 취하기, 에티켓, 인터뷰 테크닉 등을 가르친다. 화장법도 물론 포함된다. 짙은 파운데이션으로도 가려지지 않느 결함은 다른 방법으로 교정된다. 베네수엘라의 성형수술은 영국에 비해 싸다. 가슴 성형도 1300파운드(약 260만원?)면 된다. 살아있는 바비인형에 도전하는 10대 소녀들 사이에선 결코 드문 수술이 아니다.

An army of more than nine teachers give classes on how to walk in high heels, voice and movement, posing for photographs, etiquette, and the vital interview techniques. The contestants are also taught to apply their make-up - and what can't be hidden by foundation can be rectified in other ways. Plastic surgery in Venezuela is relatively affordable compared with the UK, and breast implants - which can cost as little as £1,300 - are not uncommon among teenage girls desperate to emulate these living Barbies.

수자에게는 완벽한 도전자를 만들기 위해 몇몇 과격한 방법도 용인된다. 예를 들면 지방 흡입이다. "만약 어떤 여성이 체육관에 가기를 게을리해 허리 라인을 다듬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그걸 한방에 빼버리는게 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 성형이나 종아리 가늘게 하기 역시 흔한 일이다. 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건 "사소한 디테일 수정"일 뿐이다.

Such measures must be taken to create the perfect contestant, admits Sousa, who prefers radical procedures such as liposuction as the simplest way to deal with a contestant's “excess” weight. “If a girl is lazy in going to the gym and has to work on her waistline, I think it's much easier to get it all out in one go,” he says. Nose jobs and “thigh trimmings” are also frequent over the duration of the course, but Sousa's view is that they are “correcting little det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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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씨와 포즈를 취한 데야나 멘도사. 그런데 이 멘도사양은 지난해 당신 이후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를 방문했다가 "그곳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했다. 거기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어쩌고 하는 무뇌 발언을 해서 미녀에 대한 선입견 하나를 더욱 굳히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무튼 기사에서 보듯, 세계 제패는 공짜로 이뤄진 게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조건에서 선수촌을 통한 집중적인 엘리트 미녀(?) 육성까지 한 결과였습니다.

마지막은 역대 미스 유니버스 수상자 명단입니다. 인도가 혹시나 베네수엘라의 경쟁국이 아닐까 했는데 라라 두타 외에는 그리 눈에 띄는 수상자가 없군요.

왕년의 베네수엘라 선배들도 살짝 곁들입니다.


2009: Stefania Fernandez, Venezuela
2008: Dayana Mendoza, Venezuela
2007: Riyo Mori; Japan
2006: Zuleyka Rivera, Puerto Rico
2005: Natalie Glebova, Canada
2004: Jennifer Hawkins, Australia
2003: Amelia Vega, Dominican Republic
2002: Oxana Fedrova, Russia (dethroned), replaced by Justine Pasek, Panama
2001: Denise Quinones, Puerto Rico
2000: Lara Dutta, India
1999: Mpule Kwelagobe, Botswana
1998: Wendy Fitzwilliams, Trinidad and Tobago
1997: Brook Lee, USA
1996: Alicia Machado,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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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Chelsi Smith, USA
1994: Sushmita Sen, India
1993: Dayanarra Torres, Puerto Rico
1992: Michelle McLean, Namibia
1991: Lupita Jones, Mexico
1990: Mona Grudt, Norway
1989: Angela Visser, Holland
1988: Porntip Nahirunkanok, Thailand
1987: Cecilia Bolocco, Chile
1986: Barbara Palacios Teyde,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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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Deborah Carthy Deu, Puerto Rico
1984: Yvonne Ryding, Sweden
1983: Lorraine Downes, New Zealand
1982: Karen baldwin, Canada
1981: Irene Saez, Venezuela
1980: Shawn Weatherly, USA
1979: Maritza Sayalero,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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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Margaret Gardiner, South Africa
1977: Janella Commisiong, Trinidad & Tobago
1976: Rina Messinger, Israel
1975: Anne Marie Pohtamo, Finland
1974: Amparo Munoz, Spain
1973: Maria Margarita Moran, Philippines
1972: Kerry Anne Wells, Australia
1971: Georgina Rizk, Lebanon
1970: Marisol Malaret, Puerto Rico
1969: Gloria Diaz, Philippines
1968: Martha Vasconcellos, Brazil
1967: Sylvia Hitchcock, USA
1966: Margareta Arvidsson, Sweden
1965: Apasra Hongsakula, Thailand
1964: Corinna Tsopei, Greece
1963 Ieda Maria Vargas, Brazil
1962 Norma Nolan, Argentina
1961 Marlene Schmidt, Germany
1960 Linda Bement, USA
1959 Akiko Kojima, Japan
1958 Luz Marina Zuluaga, Colombia
1957 Gladys Zender, Peru
1956 Carol Morris, USA
1955 Hillevi Rombin, Sweden
1954 Miriam Stevenson, USA
1953 Christiane Martel, France
1952 Armi Kuusela, Finland


그러고 보니 미스 재팬도 둘이나 보이는군요.

마지막 사진에 대해선 노코멘트입니다. ...제게 돌을 던지실 분들은 던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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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가 쓴 책을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합니다. '미수다'에서 베라의 캐릭터는 '뭘 말해도 웃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잡혀 있죠. 같은 독일 사람인 미르야가 다소 딱딱하면서도 분명한,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 사람' 이미지인 반면 베라는 부드럽고 밝은 이미지라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그 '스마일 베라'가 독일에서 출간한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Schlaflos in Seoul)'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부분 번역에서 인터넷에 올린 몇몇 사람들에 따르면 '작정하고 한국을 까려고' 마음먹은 듯한 내용이라는군요.

원문을 보지도 못했고, 본다 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서 책의 내용이 한국을 비하했는지 아닌지 뭐라 말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수많은 매체들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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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의 내용에서 사람들이 흠을 잡는 부분은 * 한국인을 쥐에 비교했다 * 한국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다 * 한국여자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다리를 가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 등등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쥐에 비교했다는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한국의 지하철을 출퇴근시간에 타면 서로 밀고 밀치는 환경이 끔찍하다. 지하철을 탈 때는 파리에 있던 시절을 연상시켰다. 서울이나 파리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남들을 앞질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나는 내 누이가 키우던 쥐들을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쥐들이 있을 경우, 쥐들은 서로를 물어뜯어서 우리는 그 쥐들을 떼어놔야 했다."

최초의 번역자와는 다른 사람인 블로거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구체적인 번역 내용은 이 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underba/50069746349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부분이 '한국인을 쥐에 비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쥐라는 동물을 유쾌하게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만큼 출퇴근 시간의 만원 전철에 오르는 것 역시 불유쾌한 일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여기서 쥐라는 것은 그 불쾌감의 상징일 뿐, 이를 '한국인=쥐'라는 비교로 보는 것은 지나친 자학 증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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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누군가 '63빌딩에 올라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고 썼다고 칩시다. 이걸 '그 아무개가 한국인들을 벌레에 비유했다'고 주장하는게 그리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 좀 거칠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단 '스마일 베라'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뭐든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던 스마일 베라와는 달리 이 책을 집필한 베라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한국어 교육원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계속 아내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 가면서 노래방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이런 한국 남자의 태도가 그리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연 이런 비판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한국인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외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다소 희화화된 글을 쓰는 경우는 지금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처럼 지독하게 악의적이고 왜곡된 글을 쓰는 한국인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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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에나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소개된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경우는 그 뒤통수 때리기의 정도가 정말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름 한 글자를 바꾼 필명까지 사용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털털한 웃음과 전혀 다른 면모를 과시한 미즈노 씨는 다시 한국에 발 붙일 자리가 없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베라의 경우를 미즈노 슌페이 교수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꽤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베라는 학자도, 한국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인상을 그대로 서술한 일반인일 뿐입니다.

(아울러 아직도 한국을 미개국 보듯 하는 일부 선진국 매체들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분개하거나 항의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인'들에 비해 '언론 매체'들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비판할 의무가 훨씬 무겁기 때문입니다. 즉 미즈노 슌페이 같은 '학자'들이나 구로다 가쓰히로같은 '기자'들의 발언이나 논설은 주목할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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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미수다'에서 요즘 모습을 볼 수 없는 캐서린의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서린의 실종이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수다'가 한국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미수다' 제작진으로부터 퇴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미수다', '작가가 써 준대로 방송하는 미수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베라 사건에서 볼 때 결국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누구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바로 한국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미수다'가 아니라 '한국 여론'이, '네티즌'이었던 겁니다. 베라의 잘못이라면, 한국인들이 이렇게 속좁은 사람들인 줄 모르고 섣부르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다는 점일 겁니다. 아직 한국인들을 잘 몰랐던 것이죠.

('미수다'에서는 좋은 말만 하던 베라가 한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데 배신감을 느끼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 사건의 반응들을 보면, 왜 '미수다'가 한국 찬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만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 부드러운 말투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모두 칭찬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칭찬에만 반색을 하고 사소한 비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면 과연 누군들 그 사람에 대해 '뒷다마'를 까지 않게 될까요.

누구든 남들의 행동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아, 이런 것은 이래서 다르구나'라고 이해한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겠지만, 그냥 본 대로 받아들이고 '이런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일일히 '망언' 이라고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체나 기자들도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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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든 생각은 - 누구라도 비슷했겠지만 - 정말 한 시대가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과 비교하자면 결례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이끌고 가던 인물의 사망 소식이라는 건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위업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정리가 있었을 겁니다. 여기선 생략하고, 이 분의 죽음에 임해 '화해'를 표방하고 나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DJ에 대해 "정신이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게 아니다"라는 말로 원색적인 비판을 했던 YS입니다. 그런 그가 DJ의 병문안을 가 "화해라고 봐도 좋다"고 말하고, 추모의 코멘트를 하는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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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이벌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와 로마의 1인자 자리를 다툰 최강의 라이벌은 폼페이우스였다. 3두 정치의 두 축을 이뤘던 두 사람은 결국 내전으로 정면 대결에 들어갔다. 패주하던 폼페이우스를 뒤쫓아 이집트까지 간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담한 자들을 모두 처단해버린다. 이를테면 라이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역사를 장식한 라이벌들은 상대로 인한 위협이 사라진 순간, 때로 일생을 사귄 친구처럼 유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재위 초기 사촌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때문에 줄곧 왕위를 위협당했다. 엘리자베스가 결국 메리를 사형에 처하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이를 빌미로 무적함대를 동원해 영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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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굳이 메리의 아들 제임스(뒷날의 제임스 1세)를 지목했다. 메리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도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물론 모든 라이벌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 전국시대 방연(龐涓)은 최고의 전략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빈(孫臏)의 다리를 잘랐고, 복수에 나선 손빈에게 패한 방연은 최후까지 “이렇게 해서 어린 놈이 명성을 얻는구나(終於成就了這小子的名聲)”라고 분개하며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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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에게도 마지막 화해란 없었다. 1881년 4월 디즈레일리가 사경을 헤맬 때 글래드스턴은 문병 한번 가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권유에도 글래드스턴은 “가 봐야 할 말도 없다”며 거절했다. 디즈레일리가 국장을 사양하고 개인 장례식을 택한 데 대해서도 글래드스턴은 “겸손해 보이려고 쇼를 하는 것”이라고 빈정댔다.

디즈레일리가 죽은 다음달, 글래드스턴은 의회에서 송덕문을 낭독하게 돼 있었다. 마지 못해 짧은 송덕문을 읽은 글래드스턴은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라고 불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비하면 대한민국 1인자의 자리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생을 경쟁한 YS와 DJ의 마지막 화해 분위기는 훨씬 훈훈한 풍경이다. 물론 이들의 진정한 협력이 20년, 30년 전에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지만, 구태여 이를 따지기에도 퍽 긴 세월이 흘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9단들의 시대'가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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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그당의 글래드스턴과 토리당의 디즈레일리는 평소에도 디즈레일리가 재난과 불행의 차이에 대해 "글래드스턴씨가 강물에 빠진다면 그건 불행이지만 누군가 그를 건져 준다면 그것은 재난"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지독한 앙숙이었습니다.

물론 빅토리아시대의 총리로서 두 사람은 누가 더 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이 시기의 영국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총리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영어를 세계 공용어의 자리에 올려 놓는 데 초석을 제공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인물들도 상대방이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도 용서나 화해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참 의외의 일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한국식의 사고방식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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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DJ와 YS의 화해(...뭐 좀 일방적이긴 합니다만)를 보고 있으면 1987년을 정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두 사람의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특히 1987년의 단일화 실패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인 터라 더욱 쉽지 않았을 거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을 포함해 몇몇 사람을 가리켜 흔히 '정치 9단'이라고 부릅니다. 예측불허의 한국 정계에서 50여년간 정상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만 봐도 이런 호칭에 의아해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9단'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한국 정치사의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단의 시대란 마주보는 9단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9단의 한수'는 그 의미를 짐작하고 대응하는 다른 9단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서거를 진정으로 아쉬워 할 사람은 YS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닐 듯 합니다.

이런 9단들의 시대가 갔다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아니면 퇴보일까요. 그건 세월이 알려줄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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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의 천만 관객 동원이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다섯번째의 위업이고, 과연 어디까지 더 갈지가 궁금합니다.

사람 힘만으론 안되고 하늘이 도와야 가능하다는 천만 관객 동원,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윤제균 감독의 힘, 설경구와 하지원, 그리고 이대호(^^)의 열연, 김인권과 이민기의 탁월한 재능 발휘, 해운대라는 친숙한 환경이 사라진 폐혀의 모습, 등등은 이미 수없이 거론됐던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해운대'라는 영화 바깥에서 천만 관객 동원을 지원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 세력들입니다. 과연 누가 '해운대'를 외부에서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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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발 금융위기

참 멀리 간 얘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대체 금융위기가 영화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아실수 있을 겁니다.

1991년 '터미네이터2'가 최초로 제작비 1억달러 선을 돌파한 이후 거의 20년, 이제 여름 시즌을 겨냥한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예산은 평균 1억달러를 넘긴 지 오래입니다. 1억5천-2억달러 선의 영화도 한 시즌에 두세편씩 개봉되는게 보통이죠. 한국 돈으로 는 2000억원에서 5000억원까지의 돈이 왔다 갔다 합니다.

아무리 할리우드라지만 이런 돈을 쌓아놓고 장사하는 영화사는 없습니다. 대개 영화 제작 단계에서 제작비 투자를 받죠.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월 스트리트를 싹 쓸어버린 금융위기는 블럭버스터 투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여름, 할리우드의 이렇다 할 블럭버스터가 최소한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해와의 차이는 다음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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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랜스포머 2

2억 달러가 들어간 대작 '트랜스포머 2'는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약 4억달러 가까운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지난 6월24일 국내에서 개봉한 뒤에도 740만 관객을 쓸어모았죠. 전 세계적으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전망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해운대'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걸까요? 위 항목과 연계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될 영화에 투자가 끊기는 법은 없습니다. 금융위기일수록 확실한 곳에 투자가 몰리는 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올해, 2년만에 마이클 베이가 감독하는 '트랜스포머'의 속편이 나온다는 사실은 다른 영화에 대한 투자가 쑥 들어가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대자본 영화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바로 1년 전 여름 시즌 할리우드의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월E'와 '쿵푸팬더' 등 애니메이션 대작을 비롯해 '다크나이트' '핸콕' '원티드' '아이언맨' '헬보이2' '마마미아' '미이라3' '인크레더블 헐크',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 4'가 줄줄이 개봉했습니다. 5월 말 이후 개봉 일정에서 대혼전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의 한국 영화들인 '님은 먼곳에' '놈놈놈' '눈눈이이' 등은 이런 대작들과 힘겨운 정면승부를 펼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상대적으로 헐렁했습니다. '트랜스포머 2'와 앞서 개봉한 '터미네이터4',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와 '지.아이.조' 정도를 빼면 이렇다할 대작이 보이질 않습니다. 일찌감치 개봉한 '천사와 악마'를 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국 국내 흥행을 살펴봐도 대작들이 사라진 결과 한 여름의 황금 시즌에 '행오버(Hangover)'같은 3500만달러짜리 소품(^^)이 2주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억6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더군요. 이런 영화들은 국내 개봉 일정도 불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와 '트랜스포머 2'의 합작으로 '해운대'는 할리우드의 대작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여름을 맞았습니다. '트랜스포머 2'는 경쟁작들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이 '해운대'의 천만 관객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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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리 포터

그 몇 안되는 블럭버스터 가운데 '해운대'의 가장 강력한 위협으로 꼽힌 것이 바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 '해운대' 쪽은 쾌재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반응이 완전히 썰렁했기 때문이죠. 물론 해외에서의 해리 포터는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시리즈 6편인 이런 작품도 세계적으로는 4억달러 이상의 돈을 걷어들이며 순항중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봉 초기 악평이 쏟아진 가운데 전편들에 비교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음울하고, 특별히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소설에서도 6부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맹점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골수 팬들 외에는 대부분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운대'는 '트랜스포머 2'를 피하고 '해리포터'가 예상보다 약했던 덕분에 견제 세력이 사라진 고삐 풀린 말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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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스 울릭

'해운대'가 개봉을 앞둔 올 상반기, 홍보의 초점은 한스 울릭이라는 시각효과 전문가였습니다. 뉴욕이 빙하기를 맞는 영화 '투모로우', 거슬러 올라가면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가했던 CG의 대가죠. 특히 '퍼펙트 스톰'에서는 대양을 휩쓰는 해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스 울릭과의 협업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영화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입을 빌어 "할리우드에 비싼 돈 내고 갔는데 정작 배울게 없더라. 괜히 돈만 날린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결정타가 된 것이 일찍 공개된 예고편이었습니다. 해운대를 휩쓰는 엄청난 해일이 강조된 예고편을 본 순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과장하면 '해운대 망했다'는 소문이 쓰나미처럼 번져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제작진이 전면 재편집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사실 CG는 아무리 좋아도 영화의 성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건 세계적인 거장들도 여러 차례 경험한 교훈입니다. 한스 울릭이 만들어 낸 '해운대'의 비주얼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물론 아주 나빴다면 그건 치명타였겠죠).

어쨌든 울릭은 '해운대'가 영화의 방향을 CG와 쓰나미 자체가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드라마에 맞추게 하는 데 큰 영향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중심이 되면서 비로서 '해운대'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뜻하지 않은 기여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긴, 이렇게 쓰고 보니 네가지 요인 중 의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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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네 팀(?)의 외부 조력자들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조건이 갖춰진다고 그냥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제균 감독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천만 관객이란 꿈에 불과했을 겁니다.

아무튼 최고의 공헌자는 당연히 윤 감독과 직접 영화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네 팀의 조력자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영향의 크기라는 건 그냥 웃고 넘어가셔도 될 겁니다. 혹시라도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데 여건이 좋았다"는 얘기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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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아가씨를 부탁해'가 화제 만발입니다. 윤은혜를 둘러싼 미스캐스팅 논란에서부터(...별로 미스캐스팅같지 않은데), 연출이 닭살이라든지(...뭐 이런 드라마가 그렇지), 연기가 발연기라든지(....사실 이런 드라마 보면서 연기력 따지는 것도 좀) 예상할 수 있던 모든 얘기들이 다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꽃보다 남자'의 성공에 용기백배한 KBS 드라마국의 기획 드라마 2탄이라는 점이 분명하고(물론 외부 기획 중에서 선택한 것이죠), 그런 만큼 이 드라마의 한계와 표적 또한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좀 심한 것이, 장면 장면마다 죄 너무나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이 흘러 넘치더군요.

물론 공감하시는 분도, 안 그런 분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제가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면서 느낀 기시감(데자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긴 '일본 드라마 짜깁기'는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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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편 설명을 곁들이지면, 한국의 패리스 힐튼인 강혜나(윤은혜)는 강만호 회장(이정길)의 사실상 유일한 후계자(물론 강회장의 후처-아들-딸로 이어지는 경쟁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로 온 아시아를 뒤흔드는 핫 셀러브리티입니다.

그 반대쪽에는 전직 제비족이지만 손을 씻고 여의주(문채원)네 꽃집에 얹혀 살고 있는 서동찬(윤상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을 씻은 대가는 사채업자들의 집요한 빚 독촉이죠. 그러던 동찬이 꽃배달을 가다가 혜나의 '싸가지 없는 운전 매너' 때문에 얽혀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강회장이 동찬에게 혜나의 '사람 만들기'를 목적으로 동찬을 혜나의 전속 집사로 고용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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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지막 시퀀스가 좀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드라마를 봐도 당연히 이해가 안 갑니다), 어쨌든 드라마가 원래 저렇게 되게 되어 있었으니 그냥 갈 길을 가는 겁니다. 거기에 토를 달아 봐야 별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너무 노골적으로 일본 드라마의 만화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도입부의 장중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남자 목소리의 나레이션은 수많은 일본 드라마에서 써먹은 테크닉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드라마는 당연히 '부호형사'입니다. '꽃보다 남자'에도 많은 영향을 줬던 이 드라마는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손녀딸인 후카다 교코가 형사가 되어 '이해하기 힘든 서민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가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하이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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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다 교코가 극중에서 살고 있는 저택입니다. 네버랜드는 여기 비하면 콘테이너 임시주택 수준이군요. 저 넓이에다 한쪽에는 독자적인 항구까지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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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은혜가 살고 있는 '골프장, 테니스장, 수영장이 갖춰진 40만평짜리 저택'을 보다 보니 '부호형사'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많은 분들이 떠올리실 '메이의 집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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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에서 방송되어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국내의 일드 마니아들이 '꽃보다 남자'의 금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는 작품입니다.

내용인 즉 귀족가문의 영양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기숙학교(물론 가상)가 있고, 이 학교에는 학생 한명마다 식사와 의전을 책임지는 집사가 하나씩 있다는 기본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이 학교에 어쩌다 너무나 평범하게 자란 메이라는 소녀가 다니게 되고, 그 어설픈 메이에게 어쩌다가 최고 중의 최고인 집사가 붙습니다. 당연히 메이와 집사 사이에는 뭔가 띠용띠용한 감정이 생기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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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사 역의 미즈시마 히로(당연히 가운데)는 차세대 기무라 다쿠야(물론 너무나 지겨운 호칭이기도 합니다)의 선두주자로 단연 부각되며 톱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차기작인 '미스터 브레인'에서는 기무라와 공연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이번엔 좀 바보 캐릭터더라 전작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겠더라는...)

아무튼 '메이의 집사'는 철저하게 '아가씨들의 판타지'에 입각한 드라마입니다. 공주 옷을 입고 하늘하늘 뛰어다니던 아가씨.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이때 준비돼 있던 미남 집사가 나직한 저음으로 "비를 맞으면 건강에 해로우십니다, 아가씨"하며 우산을 펼쳐 줍니다. 정 우산이 없으면 "전 비같은 거 맞아도 괜찮습니다. 아가씨만 멀쩡하시다면" 하면서 재킷을 벗어 씌워주겠죠. 혹시 길에서 깡패를 만난다, 당연히 "네 이놈들, 우리 아가씨에게 감히 손가락 하나라도 댈 셈이냐! 내 목숨을 걸고 지킬테다!"하며 눈에서 불이 뿜어 나옵니다.

...네. 제정신을 가진 남자 시청자들은 절대 참고 볼 수 없는 드라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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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가씨'와 '집사'라는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아가씨를 부탁해'와 '메이의 집사'의 관계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미즈시마 히로와 윤상현의 캐릭터 차이, 또 정일우라는 새로운 인물의 보강으로 스토리 라인은 절대 비슷하지 않을 구조를 갖췄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그냥 느끼할 정도로 달디 달게, 그냥 판타지의 세계로 달려가 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볼 사람들도 그 이상의 생각은 할 능력이 없거나, 할 능력이 있어도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만큼은 잠시 어디다 '생각'을 접어 두고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굳이 이 드라마에 '생각'을 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강만호 회장의 캐릭터나 굳이 '인권 변호사'라는 명함이 붙은 정일우의 캐릭터는 좀 우려를 낳게 합니다. 괜히 이 드라마를 가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물론 첫회에서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쓰였습니다만)를 얘기하거나 하는 건 오히려 참기름을 물에 녹이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걸작을 지향하지도 않고, 지향할 수도 없는 드라마입니다. 10만원짜리 떡볶이를 만들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저기까지 가는구나'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게 시청자들의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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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을 치우는 혜나의 모습을 보다 보니 바로 패리스 힐튼의 '심플 라이프'가 떠오릅니다. 사실 패리스 힐튼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냉혹한 사업가 기질이 돋보입니다. 힐튼가의 부를 축내는 천덕꾸러기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자신을 상품화해서 힐튼 가의 재산을 오히려 늘려 주고 있죠.

뭐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강만호 회장의 문제(건강? 피습?)로 그룹에 위기가 닥치고, 갑자기 경영의 천재로 돌변한 혜나양이 남자 주인공들의 도움으로 가문을 지키는 처녀 회장으로 돌변한다... 뭐 이런 진부한 진행만은 좀 피해 줬으면 합니다. 그건 '보자 보자 하니까...'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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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참, 이 만화와는 그냥 제목만 똑같을 뿐 내용은 거의 겹치는게 없다는군요. 제가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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