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의 난'. 이번주 방송된 MBC TV '선덕여왕'의 핵심은 미실이 일으킨 정변입니다. 정변의 기본은 누군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세력이 등장했다'고 크게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함께 진짜 거병이 이뤄집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의 난은 이런 기본 원칙에 아주 충실하게 진행됐습니다. 유신과 알천의 무력 도발이 유도됐고, 이어 석품에 의한 세종 습격 자작극으로 혼란을 유발한 뒤 수도 서라벌 인근의 정규군이 수도로 진격, 일시적인 계엄 상태를 만드는 것 하나 하나가 쿠데타의 기본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사건을 보는 눈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것 정도.
그런데 미실의 난이 정말 일어났다 해도, 금세 정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지금 시작은 대단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이 난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볼 때 이 난 이후에도 미실과 그 측근 인물들은 멀쩡히 살아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고, 덕만공주와 그 측근인 유신이나 알천, 비담 가운데서도 이 난으로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누가 이 난의 희생양이 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일단 이번 포스팅에서는 '화랑세기'의 미실 관련 기록들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과 최대한 맞춰 보는 걸로 시도해 보겠습니다.
작가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미실의 난'을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칠숙/석품의 난'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반란이든 이 반란은 실패합니다. 실제 역사가 이 반란을 진압하고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미 결과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반란을 미실이 주도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미실과 미실의 남편인 세종, 그 아들인 하종, 정부인 설원, 역시 그 아들인 보종, 미실의 동생 미생 등은 모두 참살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세종이 난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건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거대 사건입니다.
하지만 세종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것은 단 한번, 그것도 진지왕 2년의 무훈에 대한 기록입니다.
겨울 10월, 백제가 서쪽 변경의 주군을 침범하자, 이찬 세종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게 하였다. 세종은 일선 북쪽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3천7백 명을 목베었다. 내리서성을 쌓았다. (冬十月, 百濟侵西邊州郡, 命伊찬世宗出師, 擊破之於一善北, 斬獲三千七百級. 築內利西城)
그리고 아무런 기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화랑세기'에도 미실이 반란에 관여했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죠. 미실과 설원은 잘 늙어 죽었고, 이들의 아들 보종 또한 유신의 뒤를 이어 풍월주에 오를 몸입니다.
한마디로 '난은 무슨 난?'입니다. 반란의 주모자들이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신 역사의 기록이 지목하고 있는 반란의 주범은 칠숙과 석품입니다. 이미 이 부분은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삼국사기 원문을 한번 확인합니다.
여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반역을 도모하였다. 왕이 이를 알고 칠숙을 잡아 동쪽 시장에서 참수하고, 구족을 처형하였다. 아찬 석품은 백제 국경까지 도망하였으나, 처자가 보고 싶어 낮에는 숨고 밤이면 걸어서 총산까지 돌아왔다. 그는 그 곳에서 나무꾼 한 사람을 만나 그의 헤어진 옷과 바꾸어 입은채 나무를 지고 몰래 집에 돌아왔으나 곧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夏五月, 伊찬柒宿與阿찬石品謀叛, 王覺之, 捕捉柒宿, 斬之東市, 幷夷九族. 阿찬石品亡至百濟國境, 思見妻子, 晝伏夜行, 還至叢山, 見一樵夫, 脫衣換樵夫衣, 衣之, 負薪潛至於家, 被捉伏刑)
석품의 말로가 참 불쌍합니다. 아무튼 반란은 미실이 일으켰는데 칠숙과 석품은 척살당하지만 미실과 주변 인물들은 멀쩡하다.... 이건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과연 작가들이 어떻게 드라마를 풀어 나갈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아마도 덕만공주와 비담의 활약으로 미실은 큰 무력 충돌 없이 스스로 병력을 거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미실이 난을 일으킨 이유가 비담의 장래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담의 요청에 따라 난을 거두는 것도 가능할 듯 합니다. 애당초 '미실이 직접 왕이 된다'는 황당무계한 목표는 무시해도 좋았을 듯 합니다.
그러고 나면 덕만공주와 미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겠죠. (혹은 아래 댓글로 다른 분이 지적하셨듯 진주군 사령관 주진공과 덕만 사이에 먼저 합의가 타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강요하려 했던 것과 반대로,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이 모든 정무에서 손을 떼고 재야에 칩거하는 대신 난의 주모자로서의 처벌은 모면하게 해 주는 선에서 대략 대화가 끝날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정변이 있었고 군이 출동했는데 그냥 덮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기선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칠숙과 석품이 그 굴레를 뒤집어 쓰게 될 겁니다. (아마 드라마 속 칠숙의 충성심으로 봐선 스스로 죄를 자처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이렇게 해서 비담과 유신, 춘추는 덕만공주를 옹립하는 세 축이 되고, 선덕여왕의 즉위에는 걸림돌이 사라집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유신과 춘추가 한 편이 되어 비담을 배척하고, 결국 궁지에 몰린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지경에 다다르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입니다. 당장은 가장 확실한 같은 편일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번에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역사를 바꾸지 않는 한 필연입니다. 다만 남은 궁금증은 대체 덕만공주가 어떤 제안으로 미실로 하여금 뽑은 칼을 거두고 반란을 무마시킬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어떤 명분을 대든 참 황당무계한 진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담과 덕만의 혼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만, 그 정도로 뽑은 칼을 스스로 거두고 정국에서 물러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21세기도 아닌 7세기에 말입니다. 고작 몇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변을 마무리한다는 건 그만큼 정변이 신속하고 별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됐을 때에나 가능한 일인데, 과연 무엇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부디 작가진이 지혜를 발휘해서 보다 설득력있는 스토리를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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