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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인가 있었던 '빨간 마후라' 사건 때문에 '빨간 마후라'가 구글에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검색할 수 있는 단어가 돼 버렸다는 개탄할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의 영화 '빨간 마후라'와 김영환 장군의 이름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고유명사들입니다.

지난 주 일제히 '김영환 장군'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치러진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요약하자면 김영환 장군은 6.25가 한창이던 1951년 12월18일, 공비 토벌을 위한 공습에 나섰다가 UN 사령부의 공격 목표가 해인사인 것을 알고 명령에 불복, 인류의 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또 이 분은 한국 공군 파일럿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도입한 분이기도 하더군요. 그 분의 사적을 돌아보다 생각난 얘기들을 지난 주말에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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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숭고한 불복종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Von Choltitz)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개월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 히틀러는 그에게 거듭 “절대 파리를 온전한 채로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폰 콜티츠는 이 명령을 묵살한 끝에 8월 25일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폰 콜티츠의 항복 소식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연합군의 파리 수복 과정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폰 콜티츠는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감지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파리를 보게 된 것은 폰 콜티츠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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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군대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지 않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군 형법 44조도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명령 불복종으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는 6·25 당시 유엔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가 열렸다. 그는 항명을 추궁하는 상부에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해 '귀하와 같은 장교를 둔 건 대한민국의 행운'이라는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물론 그 뜻을 받아들여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난 이름 모를 국군 장교를 빠뜨릴 수 없다.

위화도 회군 이후 수많은 장군이 사리 사욕에 의한 하극상으로 역사를 더럽히기도 했지만, 이렇듯 숭고한 불복종의 기록은 인간이 명령대로 단순 복종하는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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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생인 김영환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넘겨 받아 한국 공군 최초의 전투비행단을 지휘한 에이스였습니다. 이 분이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착용하게 된 계기를 찾아 보다 보니 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김영환 당시 대령이 1951년 형인 김정렬(뒷날 참모총장) 장군의 집에 가서 치맛감인 빨간 비단 천을 얻어다 목에 감은 것이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차대전때 독일의 에이스였던 리히토펜의 진홍색 머플러에서 착안한 김대령이 '빨간 마후라'를 후배 조종사들에게도 사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
http://www.army.mil.kr/history/%C2%FC%B0%ED/%C1%D6%BF%E4%C0%CE%B9%B0/%B3%B2/%B1%E8%BF%B5%C8%AF.htm 에 더 자세한 얘기가 있습니다.일설에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도 김영환 장군이라고 합니다만, 이 사이트에 따르면 영화의 내용은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을 지휘한 유치곤 장군의 이야기에서 더 많은 것을 따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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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그야말로 전쟁 영화의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선 폰 콜티츠가 양심적인 지식인의 표상으로 그려지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인사들은 그가 파리에서 항복하기 전까지 수많은 레지스탕스들을 체포해 처형했으며, 전세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판단, 전쟁 이후 자신의 삶을 도모하기 위해 급격히 변신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요소를 참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파리의 보존은 아이젠하워도 쉽게 파리로 진공하지 못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였고, 그 부분에서 콜티츠에게 공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아울러 콜티츠의 항복 때문에 드골의 자유프랑스군과 파리 수복의 공을 나눠 갖게 된 좌익 레지스탕스들은 콜티츠를 미워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는군요. 이 구도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좌익의 운명에 꽤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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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수필엔 방한암 선사가 상원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 장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이 수필엔 한암 선사가 장교를 "이삿짐을 싸야 하니 며칠 뒤에 오라"고 돌려보내고, 돌아온 장교가 법당 문을 열자 한암 선사가 절명해 있는 광경을 본 뒤 차마 절에 불을 지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과는 좀 다르다고 하더군요.^ 한암 스님이 절의 소각을 막은 것은 맞지만 입적하신 것은 이보다 좀 뒤의 일이라고 합니다. 선우휘의 단편 '상원사' 때문에 사실과 전언 사이에 혼란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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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차일혁 총경은 유명한 아드님 때문인지 요즘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입니다.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으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 분은 지금 들어도 전설적인 일화를 여럿 남겼습니다. 가극 '눈물의 여왕'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분이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듣고 한 말이 "이 절을 태우는데 하루면 충분하지만 다시 지으려면 천년도 부족하다"는 명언입니다. 전쟁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용기로는 감히 하기 힘든 말일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참 이런 분들의 일화가 자꾸 잊혀지는게 아쉬울 뿐이라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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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의 러브라인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정음(황정음)에게는 장난치듯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세경(신세경)에게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지훈(최다니엘)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힘듭니다. 여기에 늘 세경에겐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준혁(유시윤)이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죠.

김병욱표 시트콤의 마력인 '살아 숨쉬는 캐릭터'는 이 시트콤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세경 앞에선 꼼짝없이 동생인 준혁이 정음에게는 오빠처럼 대하는 것 역시 설정을 넘어 너무나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 4각관계가 더욱 흥미를 더합니다.

과연 이 4각구도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요. 물론 결과는 이 시트콤이 끝날 때에서나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미리 내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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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혁-정음, 지훈-세경

아마도 가장 순리에 맞는 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준혁이 정음을 하대하고 정음이 거기에 대해 옥신각신하는 것은 그만치 정신연령이 맞는다는 얘기일 것이고(황정남씨...), 이렇게 다투다 보면 해리가 신애를 그리워하듯 어느날 갑자기 정음이 빈 자리를 보일 때 준혁도 그 공백을 느끼게 될 겁니다. 현재까지 준혁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준혁을 각성시킬 계기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준혁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이 나타나 갑작스레 정음을 자신의 적으로 지목하면 준혁이 그때 가서 정신을 차릴지도.

지훈-세경은 이 시트콤의 방송 초기까지는 꽤 유력한 후보였지만 최근들어 지훈-정음 라인이 꽤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어찌 될지 알 수 없게 된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김병욱 감독의 취향상 이 커플을 쉽게 맺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부터 '현실의 벽'이 무겁게 느껴지겠죠. 의사가 고등학교도 못 나온 자기네 집 가정부와 맺어진다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라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죠(물론 그 가정부가 신세경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세경-신애 자매에게 호의적인 이순재 가족들도 이런 경우를 맞으면 쉽게 찬성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튼 치과에 누워 세경이 흘린 눈물에는 자신의 신세 한탄과 함께 지훈에 대한 약간의 야속한 마음이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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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준혁-세경, 지훈-정음

일단 지훈-정음은 언제든지 맺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훈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던 정음도 슬슬 지훈이 꽤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고, 지훈만 뭔가 사인을 던져준다면 두 사람은 곧바로 커플로 진행하는게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작진 측에서 보더라도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게다가 '인기투표편'에서 지훈은 정음에게, 준혁은 세경에게 투표한 것이 언젠가는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의 문제는 준혁-세경이죠. 준혁이 세경을 어려워하고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세경이 과연 준혁을 남자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가 장애가 될 듯 합니다. 이미 가장이 된 세경의 눈에 현재까지 준혁은 그냥 철없는 소년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만약 이 커플이 맺어진다면 그건 최종회에서 '10년 후' 정도로 처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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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경을 사이에 둔 지훈-준혁의 삼각관계

어찌 보면 현재 상태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라인이 본격화된다면 지훈-세경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준혁이 괴로워하는 국면이 예상됩니다. 이 경우 정음의 위치가 애매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소위 '막장성'은 최강이죠. 어찌 보면 '하이킥' 시리즈의 전통이 '이순재가 나온다'가 아니라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에게 올인한다'는 것이 될지도...

아무튼 두 사람 중 어느쪽과 맺어져도 세경은 현실의 벽을 강하게 느낄 것이고, 이건 이번 '하이킥'의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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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음을 사이에 둔 지훈-준혁의 삼각관계

현재까지는 가장 가능성없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묘사된 정음의 성격상 어장관리(?)는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막장드라마라면 정음의 성격 따위는 갑자기 변할 수도 있겠지만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지금까지 구축한 등장인물의 성격이 그렇게 무시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어쨌든' 이 드라마의 핵심인 세경-신애 자매의 존재감이 갑자기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다른 쪽으로 아무리 세경이 두각을 보인다 해도 이 두 남자와의 관계가 사라지면 그건 세경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셈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정음을 좋아하는 두 남자 중 하나에게 세경이 매달린다...는 것 역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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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훈을 둘러싼 정음-세경의 삼각관계

같은 이유로 이 관계 역시 이 상큼한 시트콤을 뭔가 묵은 냄새 나는 옛날 드라마로 바꿔놓는 효과가 있을 것 같기만 합니다. 아무튼 지훈이 누구를 좋아한다 해도 쉽게 겉으로 드러내거나 금세 마음을 정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짧게라도 이런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은 항상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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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음->준혁->세경->지훈의 돌고 도는 관계

'한여름밤의 꿈'을 패러디한 특집 한 회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누군가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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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을 사용한 코미디도 딱 5초 쓰고 말 정도로 '뻔한 것'을 거부하는 김병욱 감독님의 스타일로 볼 때 위의 경우의 수는 전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무시무시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개인적으로는 1번이 기대됩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떠실지도 궁금합니다.

P.S. 그나자나 김용준은 언제 다시 한번 제대로 나오는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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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공개 1주일째에 거론하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2주가 지났습니다. 그 2주 사이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국민 커플의 등장은 알게 모르게 한국과 주변 국가들에 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영향은 커플 공개 1주일 동안 한국 연예계에 밀어닥친 결별 선언 열풍이었고(2주 동안 안용준-서승아까지 무려 네 커플의 결별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연예계는 물론 정계와 일반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소소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주째까지 보이는 여파를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아, 물론 잘 아시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개는 그냥 웃자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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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이때다 - 결별 묻어가기

평소같으면 꽤 여진이 있었을 사건이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 흔히 '묻어간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장동건-고소영 열애가 공개된 날, 공교롭게도 백보람-김재우 커플의 결별 보도가 있었습니다. 백-김 커플은 아주 조용히 결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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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그 직후 하하-안혜경 커플의 경우에는 발표 시기가 살짝 의심스럽습니다. 장-고 커플의 여파에 살짝 묻어 가려는 의도가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장-고의 열애 공개 이후 1주일 안에 개그맨 채경선-가수 태사비애까지 세 커플의 결별이 보도된 것은 아무래도 우연이라고 보긴 힘들겠죠. (2주가 지난 뒤의 안용준-서승아는 여기서 제외해도 될 듯 합니다만^^)

그리고 연예계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오래된 커플의 결별이나 이혼은 누구도 오래 화제가 되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뭔가 큰 사건이 터지면 이때다 싶게 슬쩍 공개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꽤 많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장-고 커플의 등장에서 딱 한달 전, 결별을 발표한 김주혁-김지수 커플이 '한달만 기다릴 걸'하고 후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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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모설은 죽지 않는다

장동건-고소영의 열애 발표가 있던 날 일부 정치 관련 매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 육사 혈서 보도를 막으려는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음모설은 일찌기 잠들 날이 없었죠. 가장 먼저 기억나는 예로는 '비와 이효리의 열애설을 막기 위해 JYP가 카우치 사건을 만들어 냈다'는 얘깁니다.^^ 10대 선에서는 꽤 설득력있는 얘기인가봅니다. 아무튼 '고소'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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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왠지 가슴이 아파

일반인들 가운데 식욕감퇴, 불면, 편두통, 의욕상실, 현실부정의 증세를 보인 분들이 꽤 있다는 것은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도...). 연예인들 사이에도 이런 대형 커플의 등장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박소현이나 박정민(SS501) 처럼 공개적으로 아예 이런 언급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이죠. 같은 연예인이라도 박성광처럼 "에잇, 사귀는 것도 1등끼리만 사귀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심지어 한 교회에서도 제일 잘생긴 오빠와 제일 예쁜 언니가 사귀면 우울증에 빠지는 여학생들이 있을텐데 오죽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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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훈 1: 꺼진불도 다시 보자

사회적으로는 이들이 17년 친구라는 사실 때문에 "결국 짝이 없으면 그냥 친구 사이도 언제든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오래된 교훈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스물 언저리의 친구들은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다가 서른(혹은 서른다섯, 혹은 마흔) 넘어서까지 서로 짝이 없으면 같이 살자"는 식의 덧없는 약속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커플의 등장은 나이 먹은 솔로들에게 '혹시나'하는 마음에 주변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아울러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은 일반인들로 치자면 오랫동안 서로 지켜봐 온 직장동료(뭐 이게 너무 심하면 업계 동료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특수한 직업이라 서로 일하는 환경과 고민을 잘 알기 때문에 이해의 폭도 넓다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일반인들의 연인 선택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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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훈 2: 항상 '최측근'과 '2선 측근'이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A와 B가 사귄대!'하는 소문이 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넌 몰랐냐? 난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같이 만난 적도 있어' 하는 사람이 있고, 쓰린 속을 달래며 '응.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방해될까봐 말은 안 했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장-고의 열애 발표 이후에도 김승우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일찌감치 주변에 냄새를 뿌리고 다닌(심지어 방송에서도...) 경력이 드러나는 등 '장동건의 진정한 측근'임을 과시하게 됐습니다. 반면 이번 사건에 대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은 내심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보통 사람들도 나 자신은 주변 사람들의 최측근인지, 2선에서 소문을 전해 듣는 쪽인지도 점검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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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애인 없는 분들은 오래된 주변 친구들을 점검하시고, 짝 있는 분들은 옆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연락 안 했던 친구들도 해 바뀌기 전에 얼굴 볼 땝니다. 그리고 뭐든 충격적인 보고는 슬쩍 묻어갈 수 있을 때 하시는게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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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다'. 한국 영화의 스토리를 훑어 보면서 '독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들로는 '박하사탕'과 '올드보이'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 비교해도 '백야행'의 처절함은 그리 뒤처지지 않습니다. 원작을 읽으면서, 치과의 치료용 침상에 누워 있는 심정이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원작 소설과 일본 드라마 판을 비교해 보며 기다리기를 6개월, 마침내 완성된 영화 '백야행'을 봤습니다.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살렸네 못 살렸네에 대한 논란도 오가고 있지만 최소한 한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우리의 여주인공 손예진은 일본의 아야세 하루카를 압도했다는 겁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긴 글 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로 압축해서 얘기하자면: 볼만 합니다. 그리 본전 생각은 안 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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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은 미호(손예진)와 승조(박성웅) 사이의 질펀한 정사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고교 미술 교사인 미호는 국내 굴지의 재벌인 승조와 결혼을 앞둔 사이. 하지만 미호의 표정에서 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 요한(고수)은 한 남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있습니다.

시점은 14년 전으로 이동합니다. 형사 동수(한석규)는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한 폐선 안에서 중년 남자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남자는 어린 요한의 아버지. 동수는 사건 현장의 단서를 쫓다가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뒷날의 미호)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은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지어지고 수사가 종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게 된 동수는 맹목적으로 이 사건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현재, 승조는 미호가 자신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비서 시영(이민정)을 시켜 미호의 과거를 조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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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르는 음악은 일관되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클래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유명한 곡이죠. 이 '백조의 호수'의 이미지, 처음부터 끝까지 흰 색 위주의 스타일링으로 고수와 대비를 이룬 손예진의 패션, 그리고 마지막 패션 쇼장에 놓였던 흰색의 니케 여신상(날개가 달려 있죠)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게 이 영화가 지향하는 길을 비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낮게 낮게(혹은 쉽게 쉽게) 가겠다'는, 대중적인 노선의 선택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 '백야행'은 읽는 데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 3권 분량의 원작을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압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원작에서 빼놓은 부분이 없나 하는 점에 지나치게 매달리다보면 스토리만 요약해 놓았을 뿐 원작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작품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상징성에 집작하다 보면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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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을 감안할 때, 한국 영화 '백야행'의 시나리오를 비난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에서 살려야 할 요소들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관객을 혼란시키지 않는 적절한 선을 유지했다고나 할까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 상당히 어렵게 빙빙 돌아 간 길을 한방에 질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들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료지(요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만큼 그의 범죄에서 어떤 의도나 흔적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요한은 허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차이는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요한이 잡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원작의 료지 수준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사건을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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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갔던 길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너발짝이면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건 아마도 원작 팬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백조의 호수'나 동수 아들의 죽음 등 원작에 없는 요소들의 등장 역시 원작의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요소로 여겨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작 팬들의 욕구를 모두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10편 이상의 드라마화뿐일까요? 하지만 일본에서 이미 제작돼 방송됐던 드라마 '백야행' 역시 원작 팬들로부터 '원작 훼손'이라는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길다고 능사도 아닌 듯 합니다.^^

(많은 경우, 마니아들이 많은 원작일수록 영상화는 거의 반역에 가까운 대접을 받습니다. 내년 등장할 영화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또한 이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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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나리오를 비교할 때 개인적으로 100점짜리 각색은 아니지만 90점은 주어야 마땅할 듯 합니다. 하지만 박신우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꽤 역량을 발휘한 반면, 연출에서는 80점 이상을 받기 힘들 듯 합니다. 특히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데에서 아직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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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작진은 탁월한 여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있지만,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국내에서 손예진 이상의 선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기분나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연령대의 배우들 가운데서 '미소짓는 악녀'의 아우라를 누가 더 강하게 풍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장면에서 '작업의 정석'의 몇 장면이 떠올라 웃음을 참아야 했던 게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손예진은 '백야행'에서 '가식의 끝'과 '내면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 쉬운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일본 드라마판의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와의 비교를 통해 아주 간단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야세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감정의 기복이 잔물결이라면 손예진이 보여주는 격동은 해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 영상물을 비교해서 보면 여주인공의 역량 차이가 너무도 극명합니다. (아역의 경우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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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전부터 손예진에 비해 고수를 불안요소로 생각한 사람은 꽤 있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의 고수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었죠. '이미지로 가는 배우'였습니다. '백야행'에서도 고수에겐 많은 대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표정과 분위기는 요한 역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이 경우에도 아역과의 불균형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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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연기한 형사 동수 역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이 부분이 원작 팬들에겐 꽤 불만일 법 합니다). 영화 내내 까칠하고, 냉소적인데다 반항적이고 가시돋친 인물로 등장한다는 건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그닥 애정이 없었거나, 아니면 무신경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요소를 넣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캐릭터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어야 했을 마지막 장면, '아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은 한번이면 족했을 듯 합니다. 굳이 동수의 입을 빌어 두번 질문을 반복하는 건 연출권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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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주인공의 형상화만에도 힘이 부쳤던 걸까요. 박성웅이 연기한 승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민정이 연기한 시영은 기대했던 비중에 비하면 처참한 실패입니다. 배우와 연출자 중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둘 중 누군가는 열의가 좀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총정리하자면 '백야행'은 초기 세 명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한 제작진이 "이 정도 배우들이라면 이만만한 관객을 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대중용 영화를 지향해 만든 작품입니다. 이때문에 좀 서비스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던 관객들에겐 너무 안전한 운행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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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가 그렇듯, 이 영화 이야기는 손예진으로 시작해 손예진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결코 '백야행'을 보고 실망할 일은 없을 듯 합니다.


P.S. 그런데 한국 사람이라면, '며칠 모자라는 15년'을 14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굳이 왜 '14년'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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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미실 시대의 '선덕여왕'에서 제작진은 눈여겨 볼 부분 중 하나로 '김유신의 복권'을 꼽았습니다. 삼국통일의 주역이자 불패의 명장인 유신의 면모를 살려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덕여왕' 52회에서는 뭔가 선봉대장으로의 면모를 갖춘 듯한 고도와 함께 턱수염을 기른 유신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상으로 '첫 승리'를 기록한 유신의 직위가 상장군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다 보니 갑자기 유신이 승리를 거두는 상승장군이 된다 해서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김유신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줄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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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서 김유신의 전공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630년(진평왕 51년)의 낭비성 전투입니다. 이때 기록은 이렇습니다.

51년 가을 8월, 왕이 대장군 용춘·서현과 부장군 유신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성 밖에 나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아주 드높았다. 아군은 이를 보고 겁을 내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신은 "나는 '옷깃을 잡고 흔들면 옷이 반듯해지고, 그물의 꼭지를 쳐들면 그물이 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물의 꼭지와 옷깃이 되어 보겠다!"라고 말하며, 즉시 말에 올라 칼을 빼들고 적진을 향하여 곧장 돌진하였다. 세 번을 적진 속에 들어 갔다 나오면서 그 때마다 적장의 목을 베거나 깃대를 뽑아왔다. 그러자 군사들이 기세를 올리며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여 5천여 명을 목베어 죽였다. 낭비성이 항복하였다.

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懼, 殊無鬪心. 庾信曰: "吾聞: '振領而 正,  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乃跨馬拔劒, 向敵陣直前, 三入三出, 每入或斬將, 或 旗. 諸軍乘勝, 鼓 進擊, 斬殺五千餘級, 其城乃降.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유신이 신라군의 사령관이 되기 전, 일개 비장이던 시절에 '단신으로 적진으로 돌격했다'는 첫번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김유신의 뒷날 전투 기록을 살펴보고 "참으로 모질고 독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신의 전투에서는 드물지 않게 최측근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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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비녕자와 관련된 기록입니다. 유신의 낭비성 전투와 비교할만 합니다.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침입하여 무산, 감물, 동잠 등 세 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유신에게 보병과 기병 1만을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유신은 어렵게 싸웠고 마침내 기력이 떨어졌다. 유신은 비녕자에게 말했다. “오늘의 사태가 위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군사들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으랴!”
비녕자가 절을 하고 말했다. “어찌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적진으로 달려갔다. 그의 아들 거진과 종 합절이 그를 따라 적의 칼과 창 속으로 돌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고 감격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진격하여 적병을 대파하고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冬十月, 百濟兵來, 圍茂山,甘勿,桐岑等三城, 王遣庾信, 率步騎一萬拒之. 苦戰氣竭, 庾信謂丕寧子曰: “今日之事急矣, 非子, 誰能激衆心乎.”
丕寧子拜曰: “敢不惟命之從.” 遂赴敵. 子擧眞及家奴合節隨之, 突劒戟, 力戰死之. 軍士望之, 感勵爭進, 大敗賊兵, 斬首三千餘級

화랑의 감투정신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예화입니다. 사실 선덕여왕 연간에 신라는 백제에게 수세로 전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덕여왕 원년, 신라와 백제의 전투에서 김유신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이때 비녕자에게 "네가 나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들끓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비슷한 사적은 먼 뒷날, 황산벌에서 계백과 대치한 김유신의 군대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이 전투에서 김유신은 계백의 결사대에 연거푸 패해 군심이 흔들리자 자신의 친 조카인 반굴(유신의 동생 흠순의 아들)과 역시 조카뻘인 관창을 희생시켜 전군을 격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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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에는 흠순이 나오지 않는 대신 월야가 의동생 역으로 나오고 있죠.)

총사령관의 동생인 흠순이 반굴에게 말합니다. "신하된 바로는 충성이 제일이요, 아들된 바로는 효도가 제일이다. 이날 우리가 위기에 처했으니 목숨을 버리면 충효를 모두 갖추는 것이다(爲臣莫若忠, 爲子莫若孝, 見危致命, 忠孝兩全)." 이 말에 반굴은 적진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립니다.

화랑들이 단신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용맹을 과시하면 아군 병사들의 사기가 치솟을 수 있겠지만 그 뛰어든 사람은 십중팔구는 죽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무위가 뛰어나다 해도 수천 수만의 적군과 혼자 대치하면 죽음을 피하기 힘듭니다.

유신과 비녕자, 반굴과 관창을 비교해 볼 때 기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유신은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죽었다는 것 뿐입니다. 이 말은 유신 역시 낭비성에서 적진으로 침투할 때에는 역시 비녕자나 관창과 같은 운명이 될 각오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도구로 던질 각오가 있었던 사람이 장군이 되고, 그런 장군인 만큼 휘하의 병사들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신의 리더십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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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런 배경을 찾아 볼 수는 없겠습니다. 이미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고 유신은 상장군이 됐지만, 그의 휘하 장병들이 그를 믿고 따라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이미 고위 장성이 되기 전에 그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인물이란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생략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신이 명장이 된 것은 일신의 용맹보다는 빼어난 지략과 정략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후세로 갈수록 김유신의 면모에선 지장의 면모가 풍겨나옵니다. 어쨌든 김유신을 '선덕여왕'에서 빛나는 캐릭터로 키워내기 위해선 필수적인 부분이 생략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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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실이 하는대로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여왕마마께서는 안 늙는 비법도 그대로 물려받으셨습니다. 유신과 알천, 월야가 수염이 시커매지고 설원과 미생은 노인이 됐건만... 참고로 드라마 '선덕여왕'의 설정을 따를 때 이 시기의 선덕여왕은 60세 전후입니다. (자꾸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네 하는 분들, 이건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설정에 따를 때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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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의 역사를 가진 동춘 서커스가 해체를 선언했다는 얘기를 듣고 쓴 글인데, 어느새 '해체는 없다'는 새로운 소식이 떴습니다. 일단 수원시가 상설 공연을 할 수 있는 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기로 하는 등 각지로부터의 관심이 급한 불을 끄게 했다는 얘깁니다.

지난달 말, '마지막 공연'을 전제로 진행된 공연은 동춘서커스 역사상 가장 홍보가 잘 된 공연 중 하나였을 겁니다. 동춘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조차도 까맣게 잊었을 사람들까지도 '해체' 기사를 보고 '아, 아직도 열심히들 하고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 공연에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동춘' 얘기를 하면서 유행처럼 '태양의 서커스'를 반찬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식의 단순한 비교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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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커스

2세기 초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는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포기한 다음부터, 우리는 단 두 가지에만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라는 구절이 나온다. 당장 달콤한 복리와 오락에 혹해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포기한 민중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이 시기 로마에선 각종 기예나 신기한 동물 쇼, 광대놀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에 전차 경주까지 합쳐진 대규모의 서커스가 성행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수많은 해외 사신들을 초빙한 가운데 백희(百戱)라는 이름의 대형 서커스 쇼를 펼친 기록이 있다. 2세기 초 장형(張衡)이 쓴 '이도부(二都賦)'에 동해황공(東海黃公)이나 어룡만연(魚龍蔓衍)처럼 구체적인 연희의 제목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2000년간 인류를 즐겁게 해줬던 서커스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놓였다. 산업사회의 성숙과 함께 등장한 TV와 영화, 프로 스포츠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맞서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8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춘 서커스가 경영난 끝에 오는 11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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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4년 창단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서커스가 결코 시대에 뒤진 오락이 아님을 입증해냈다. 이들은 기존의 볼거리에 음악과 조명, 의상과 스토리 등 현대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관객의 발길을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창단 이후 지금까지 200개 도시를 돌며 9억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내년에도 20개의 서로 다른 공연을 온 세계에서 펼칠 예정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으로 꼽는 상하이 서커스(上海雜技)도 유서 깊은 중국 기예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는 하나 사라져가던 이 연희가 재건된 것은 1994년, 아크로바트 쇼 '금색서남풍(金色西南風)'이 크게 성공한 뒤의 일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역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손을 잡기 전까지는 사양 시장으로 취급됐다. 어떤 장르도 그 역사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는 변신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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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주브날(Juvenal)이라고 불릴 것 같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는 16편의 정치 풍자시(satire)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빵과 서커스'가 나오는 10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유베날리스의 시대는 로마의 혼란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정 초기, 5현제 시대로 이어지는 안정기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베날리스는 대중이 '빵과 서커스'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포기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양식'과 '오락'에만 취해 길들여졌다는 얘깁니다.

이 시기의 서커스는 지금의 서커스와는 좀 다릅니다. '서커스'라는 것이 거대한 공연장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고, 각종 기예나 동물 쇼, 광대 놀이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커스의 요소 외에 검투사의 싸움이나 전차 경주까지 포함된 초대형 버라이어티 공연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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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오던 서커스가 어떻게 위기를 맞았는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몰락의 길을 걷던 서커스라는 장르에 태양의 서커스라는 새로운 조류가 등장하며 이를 모방한 수많은 '현대적 서커스' 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서커스가 그렇듯, '현대화된 서커스' 또한 모두 성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태양의 서커스'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것 역시 그냥 되는 건 아닙니다. 쉴새없이 새로운 요소와 도전이 실현되고 있고, 그 동안 쌓아올린 자본력과 노하우로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의 취향이란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동춘이든 누구든, 혹시라도 정부 당국이 나서면 결과는 너무나 뻔할 겁니다. 해외 연수를 통해서든 자료 분석을 통해서든 '태양의 서커스'를 모델로 한 개혁이 이뤄지겠죠. 하지만 과연 그런 모방이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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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웨스트엔드의 황금기를 연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는 "우리가 처음 무대에서 쇼를 짤 때만 해도 뮤지컬은 돈 버는 쇼가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우리 쇼로 이 공연장을 꽉 채우고 말겠다"는 열정 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장르든 공연 예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는 '우리의 애환이 담긴 장르를 살려야 한다는 동정'이나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공무원들의 문화 상품 기획서의 구색 맞추기 항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열정과 재능이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지원도, 어떤 동정도 저절로 관객을 몰아다 주지는 않을 겁니다.

P.S. 쓰고 보니 '신문산업'에도 해당되겠군요. 갑자기 한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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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루저가 돼 있었습니다. 네. 저도 몇cm 모자라는 루저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 봤습니다. 지금 스무살 안팎이라면 분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저의 난 1주일. 잠깐 웃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파가 길었고, 처음에는 '홍대녀'라고 불리던 여대생이 표적이 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더니 이제는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다시 표적이 됐더군요. 평소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과연 이 프로그램이 표적이 되는 것이 적절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과연 누가 진짜 루저인지가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짜 '루저'는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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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미수다'에 대해 "그런 발언을 걸러내지 않고 방송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송이 '공개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별 생각 없이 공개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의 역사를 되짚어 생각해 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 성매매 현장이나 교외로 빠져나간 집창촌을 고발한다는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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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려던 얘기가 너무 깊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방송이 '걸러지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노출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이런 저런 사례들을 살펴 보더라도 '미수다'에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별로 없더군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수다' 제작진이 욕을 먹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대본'으로 문제의 여대생에게 '루저녀' 발언을 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편집에서 그 문제의 발언을 걸러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다 조금 의아해집니다.

첫째. 대본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진실게임이 벌어졌지만, 정황으로 볼 때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루저'라는 말이 작가들의 창작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토크쇼의 '대본'을 드라마 대본으로 착각하는 것은 제작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에 대본이 있는 것은, 대개 작가들이 출연자들과 사전에 주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을 방송에 맞도록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제작 환경을 감안할 때, 작가들이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출연자와의 사전 대화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 말이 사실일 것입니다.

만약 문제의 여대생이 대본을 받아들었는데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루저'라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도 그 대본을 그냥 읽어 방송했다면, 이것은 더욱 더 자신의 생각 없음을 드러내는 얘기일 뿐입니다. 자신의 '루저'라는 발언을 제작진의 실수인 것처럼 떠 넘길 상황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여대생은 문제의 '미수다' 방송이 나가기 전 자신의 싸이에다 '우린 솔직하게 얘기한 것 뿐인데 안티가 생길까 두렵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자신의 본래 생각을 반영한 것임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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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두번째 비난, '루저'라는 문제 있는 발언을 방송으로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런 식의 선정성에 기초한 방송은 사라져야 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는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이 방송 내용이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의 존재가 사라질까요?

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는 '퀸카 여대생'이라는 이름의, 혹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병든 환자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교재나 두꺼운 책은 갖고 다닐 수 없다는, 소개팅을 나가기 위해서 화장품과 옷값으로 이미 상당액을 지출했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은 부담할 수 없다는, 내가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보다는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 편히 사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은 이날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된 '미수다'는 이런 형태의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도마 위에 올려 놓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했습니다.

방송 뒤에 있었던 수많은 대화들은 이런 병증이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날 '미수다'에 출연한 외국인 출연자들만큼, 그런 병적인 생각들이 왜 잘못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인지를 선명하게 지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루저'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차단되었어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욕설이거나, 의미 있는 말이었을까요. 이날 방송은 우리 사회에 이 정도로 그런 말의 사용에 무신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고, 그 말로 압축되는 우리 사회의 한 경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사람들의 논의 대상으로 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건 방송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이런 내용이나 방송하는 미수다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희들만 조용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너희가 그런 내용을 방송하는 바람에 문제가 됐다'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 없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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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으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정말 생각 없고 어리석은 사람임이 드러난 것은 문제의 발언을 할 '용기'가 있었던 여대생 이모씨입니다. 하지만, 그 이모씨에 대한 논란 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못난 남자'들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 하나가 방송에 나와선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듣고 "하하. 너때문에 내가 하루아침에 루저가 돼 버렸구나"하며 웃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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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얘기에 진지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낸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재점검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분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얘깁니까? 혀를 끌끌 차면서 "참 대학까지 보내 놨더니 저런 소리나 하고... 등록금이 아깝다"고 비웃으면 충분할 얘기 아니었나요?

미안하지만 그 말에 벌컥 분노하는 것은 '그래, 알고보니 나는 정말 루저였는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당신은 키가 180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루저입니다. 문제의 '홍대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달려가 욕설을 퍼붓고, 홍익대 게시판을 마비시키고, 방송국 게시판에 욕설을 써 놓는 건 당신이 루저라는 사실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입니다.

(네. 이 글 아래에 욕설로 댓글을 달고 싶어지는 것 역시 당신이 루저라는 걸 다시 확인해 주는 행동일 뿐입니다.^^)


P.S.2. 못 알아듣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하니 더 쉽게 한마디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당신 자신뿐입니다."

하긴 이래도 못 알아 들을 사람이 꽤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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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드걸'로 불리는 김연아가 또 일을 터뜨렸군요. 잇달아 세계 신기록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김연아의 이번 안무를 '본드걸'이라고 부르는 건 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이 제임스 본드 테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안무에서 김연아의 역할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본드걸의 역할이 아니라 007 제임스 본드의 역할인 거죠.

뭐 쓸데없는 얘기긴 합니다. 그건 그냥 그렇고, 오늘 할 얘기는 진짜 피겨 스케이트 선수 출신으로 007 영화에 본드걸로 출연한 배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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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 중 1981년작인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는 본드 팬들에게도 사실 그리 인기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시나 이스턴이 부른 주제곡은 대대적으로 히트했고 이 영화의 메인 본드 걸인 캐롤 부케는 역대 최고로 칠만 하지만, 그다지 긴박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는 악당이 키우는 피겨 스케이터 역으로 린 홀리 존슨이라는 배우가 나옵니다. 얼굴을 보시면 기억하실 분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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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생인 린 홀리 존슨(Lynn Holly Johnson)은 1974년 전미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한 유망주였지만 프로 진출을 위해 1977년 아마추어 경력을 포기합니다. 이렇게 해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일은 없어진 것이죠.

대신 1978년, '사랑이 머무는 곳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개봉됐던 '아이스 캐슬(Ice Castles)'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합니다. 린 홀리 존슨의 징크스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역시 영화 자체보다는 멜리사 멘체스터가 부른 'Looking Through the Eyes of Love'라는 주제곡이 훨씬 더 히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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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상당히 80년대풍의 신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두 남녀가 있지만 여자가 스케이트 신동으로 주목받는 스타가 되면서 조금씩 둘은 멀어집니다. 하지만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여자는 거의 시력을 잃게 되고, 자연히 경력을 포기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여자는 다시 설 용기를 얻고, 스케이트장의 크기를 느낌으로 외운 상태에서 피겨 연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래 화면은 'Looking Through the Eyes of Love'가 깔리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입니다.

무대에 복귀한 여자는 명연기를 펼쳐 관객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습니다. 모두 그녀의 재기를 기뻐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그녀는 관객들이 던전 꽃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

정작 멜리사 멘체스터의 목소리는 1,2분 정도를 남겨 놓고 나옵니다. 당시의 스타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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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 이후 사실상 두번째 출연작이 '유어 아이즈 온리'고 여기서도 스케이트 유망주로 출연하면서, 린 홀리 존슨은 007 로저 무어를 좋아하는 연기를 합니다.

뭐, 31년 차이다 보니... 별 긴장감은 없죠. 이 설정은 역대 007과 본드걸의 관계 사상 최악의 커플링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23세의 본드걸과 54세의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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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누구나 예상하시겠지만, 그 뒤로 린 홀리 존슨의 커리어에는 기억할만한 작품도, 사건도 없습니다. 지금도 뭔가 하고 있겠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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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연아의 '본드걸' 기사가 하도 많길래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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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건 누가 봐도 본드걸은 아니고 본드의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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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아이리스'가 김소연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축은 어디까지나 이병헌-김태희 커플이었고, 그밖에도 쟁쟁한 김승우 정준호 같은 톱스타들의 등장은 시선을 분산시킬 요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리스'라고는 하지만 '여자 1번'도 아닌 2번의 역할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던게 시작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뛰어넘었고, '아이리스'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태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참 의외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김소연은 김태희가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주목받고 있는 스타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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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김소연이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을 알지만, 기억은 서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김소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 중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김소연은 본래 주연이었는데 무슨 소리냐고도 합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껏 기억하는 것이 '순풍 산부인과'나 '식객' 정도인 듯 합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그 정도 경력을 가진 배우가 아닙니다. 올해가 데뷔 16년차인 관록의 연기자죠. 남들처럼 스무살 안팎에 연기자로 데뷔했다면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어야 할 경력입니다. 단지 너무 일찍, 그것도 아역이 아닌 사실상 성인 역할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른의 나이에 16년차의 경륜을 지니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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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단 김소연에게 연예계 진출이라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김소연의 데뷔는 1994년, 만 14세 때의 일입니다. 이때 김소연은 중3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3인데 얼굴은 20대인 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죠.

그리고나서 오래지 않아 김소연을 실물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정말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밝은 성품에 총명하기까지 하더군요. 한 마디로 대형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17세 되던 해, 김소연은 MBC TV 주말드라마의 여주인공 역을 맡게 됩니다. 1997년 여름 방송된 '예스터데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김소연은 여고생에서 20대 중반까지 약 10년간의 세월을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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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으로 이정재와 이종원, 두 근육질의 미남 스타가 격돌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레 이정재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 이정재의 역할을 이종원이 맡게 되고, 여주인공으로 김소연이 깜짝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캐스팅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죠.

하지만 갑자기 이정재가 빠지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온 새로운 스타 하나가 각광받게 됩니다. 바로 MBC의 공채 신인이었던 이성재. 이 드라마는 부잣집 아들(이성재)과 그 집에서 양자처럼 자라게 된 소년(이종원), 그리고 그 집의 운전기사 딸(김소연)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본래 이종원과 이성재는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지만 성장하면서 김소연 때문에 원수처럼 변해갑니다.

여고생이야 현재 자신의 모습이니 큰 무리가 없겠지만 그 나이에 경험해보지 못한 열살 위의 모습을 연기한다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닐텐데 김소연은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합니다. 한번은 이성재와 약간 농염한(?) 장면까지 있어 '아무리 성숙해 보여도 실제론 여고생인데...'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이종원과 김소연 사이의 불균형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20대 후반이던 이종원이 고교생으로 나오고, 그와 동갑내기 역인 김소연이 이종원에게 "영호야"하고 부르는 장면 등은 아무래도 영 어색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종영을 맞습니다.

(이 드라마의 성과라면 비틀즈의 노래 여러 곡을 드라마에 삽입하면서 방송사가 음악 저작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방송사는 매년 저작권협회에 거액을 지불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트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국제 기준이 처음 국내에도 적용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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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청순가련형 연기자의 면모를 보인 김소연은 같은 해 영화 '체인지'에서는 톱보이 연기자로서 다양한 재능을 뽐냅니다. 스타 드라마 PD인 이진석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 '체인지'는 고교생인 정준과 김소연이 서로 몸이 바뀌면서 빚어지는 코미디입니다. 말하자면 '스위치'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국 고교생 버전이었고 당시로서는 드문 30만 관객(와이드 릴리즈 시대가 오기 전엔 꽤 큰 숫자입니다)을 넘어 서며 꽤 큰 성공을 거둡니다.

(스타 드라마 PD의 작품답게 수많은 스타들이 우정출연합니다. 특히 정준의 형 역으로 나온 김민종의 코믹 연기는 레전드급이었죠.^)

이렇듯 '성인형 하이틴 스타'로서 김소연의 위치는 공고했습니다. 이해 김소연의 출연작에는 김수정 원작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일곱개의 숟가락'이 있습니다. 사실 만화에서 가장 인기있던 삼룡이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등 만화 팬들에겐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이 해 극심한 부진을 겪던 MBC 드라마에는 숨통을 터 준 작품입니다. 홍경인과 이정현의 연기가 불을 뿜었던 작품으로, 김소연의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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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편과 영화 1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1997년에 비해 이후 2년간의 활동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김소연의 재능과 미모를 알아본 사람들에겐 참 혀를 찰 일이었지만 아무튼 '집안 문제'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리고 나서 빛을 발한 작품이 2000년 '이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김소연은 '여자 2번'이었고 드라마의 간판은 장동건-채림이었지만 이 작품으로 김소연의 입지는 튼튼해집니다. 당시 채림은 시트콤의 잇단 성공과 밝은 캔디 이미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둘 중 누가 진짜 방송 앵커로 보이느냐는 질문엔 누구나 '김소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이해 김소연은 주말극 '엄마야 누나야'에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장미희의 딸(고수와 쌍둥이 남매)로 출연해 두각을 보입니다. 그런데 두 편 연속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맡는 것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김소연의 경력을 보면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정작 경력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마땅히 있었어야 할 누군가(주로 매니지먼트)의 도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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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김소연은 류시원과 공연한 MBC TV '그 햇살이 나에게'로 다시 한번 적시타를 터뜨립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력을 과시한 것이죠. 큰 특징 없는 신데렐라+캔디형 드라마였지만 어쨌든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성공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라는 점은 입증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그 여세를 몰아...'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물론 어떤 배우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력 관리'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 뒤로 약 5년간 김소연은 악몽같은 세월을 보냅니다. 몇 안되는 출연작들도 한결같이 흥행에 실패하고, 한창 국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20대 중반의 나이에 서극 감독의 영화 '칠검' 촬영 외에는 다른 활동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위안이 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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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던 김소연이 느닷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바로 2007년 부산영화제의 레드 카펫이었죠. 전례를 보기 힘든 과감한 흰 드레스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김소연'이라는 배우를 메인 스테이지로 끌어낸 겁니다.

그 뒤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식객'과 '아이리스'가 나왔고, 우리 나이로 서른의 김소연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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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할리우드 배우는 제니퍼 코넬리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기억하듯, 소녀시절 남다른 미모와 재능으로 각광을 받지만 잠시 방황하며 엉뚱한 작품으로 세월을 보내고, 학업 수행 등으로 연기에 전념하지 않은 제니퍼 코넬리는 '잠시 반짝했다가 일찍 사그러든 배우'로 기억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생인 코넬리는 서른 즈음에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1998),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레퀴엠'(2000) 등으로 다시 배우로서의 재기를 알린 코넬리는 마침내 '뷰티풀 마인드'(2001)에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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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외에도 두 배우는 호소력짙은 미모, 지적인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김소연도 제니퍼 코넬리처럼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20대를 접고 30대 여배우로서 화려하게 개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은 일단 성공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향후 2-3년간의 작품 선택과 열정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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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대하사극 '여걸 미실'이 마침내 끝을 맺었습니다(아, 제목이 저게 아니던가요?). 50회. 타이틀 롤인 선덕여왕 역의 이요원보다 더 많은 회차에 출연했고, 아마도 출연 시간으로 따지면 전 출연진 가운데 단연 1위일 겁니다. 지금까지 고현정이 연기한 모든 역할 가운데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고현정 혼자의 힘은 아닙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창조(라기 보다는 각색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해낸 제작진, 특히 작가진의 힘이 없었더라면 '미실 고현정'의 영광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럼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의 힘이 더 클까요? 미실이라는 캐릭터가 고현정의 명연기를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명배우 고현정이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만든 것일까요? 비율로 따진다면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줘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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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비교할 거리가 있겠지만, 일단 가장 비교할만한 캐릭터와 배우를 찾아 보자면 한국 사극에서는 단연 장희빈을 꼽게 됩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무려 7명의 배우들이 이 역할을 연기했고, 현재 이병훈 PD가 만들고 있는 드라마 '동이'에서도 여덟번째 장희빈이 등장할 전망(물론 이번엔 주인공은 아니지만)입니다.

가장 최근 장희빈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가 "장희빈 역을 맡는 건 신인때부터의 꿈"이라며 이미 캐스팅된 역할을 포기하면서까지 드라마에 매달린 것은 이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을 상징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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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청자들은 장희빈에 열광했을까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인들의 악녀 사랑은 지극했습니다.^ 뺑덕어미에서 장화홍련전의 계모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을 학대하는 악녀들은 한국인 관객들에게 최고의 극적 흥분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죠.

사극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희빈의 인기에는 좀 미치지 못하지만 명종 때의 정난정이나 연산군때의 장녹수, 광해군때의 김개시 김상궁 등이 모두 비슷한 의미의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비상한 두뇌와 성적 매력으로 정국을 뒤흔든 여자들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캐릭터들입니다.

게다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되면서 이들 캐릭터에게는 점점 더 많은 '동정의 여지'가 첨가됐습니다. 전통적인 역사책 안에서 '선한 인현왕후를 핍박하는 악녀 장희빈'이라는 '사씨남정기'적인 해석이 주를 이뤘다면 드라마 속에서는 점점 더 '장희빈만 나빴던 것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중심 축이 옮겨져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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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영화 속 장희빈들이 오빠 장희재와 함께 분탕질을 일삼는 못된 여자였다면 1982년 MBC의 이미숙 장희빈 이후에는 남인과 노론의 당쟁 사이에서 중심에 서게 된 장희빈의 '입장'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사약 신'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은 "장희빈도 불쌍했네"쪽으로 오히려 동정심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장희빈을 보다 보면 이번 '선덕여왕' 때에도 미실의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그려질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큰 방향', 즉 '일단은 악역으로 그려지되, 여기에 충분히 인간적인 연민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그 안의 세세한 디테일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미실이라는 캐릭터에 화려한 외피를 입히는 데 성공합니다. 신라 최고의 권력과 수많은 수하 남자들을 주었고, 어린 아이에게 '공주님의 남동생들이 모두 죽은 것은.... 모두 네 탓이다. 앞으로도 모두 죽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악함을 주었습니다. 소름끼치는 팜므 파탈이면서도 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거느리는 희대의 여걸이 등장한 것입니다. 장희빈과 명성황후의 합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강력한 캐릭터가 구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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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과 미실 캐릭터의 성공은 제작진의 힘일까요. 여기에는 조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화랑세기'의 미실은 인간적으로 동정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강력한 캐릭터입니다. 3대의 왕과 잠자리를 같이 했고, 남편과 남동생, 두 연인과 두 아들이 화랑 최고의 영예인 풍월주를 지냈습니다. 그 밖의 풍월주들도 사실상 미실이 골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라 융성기 화랑의 역사가 곧 미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실이 곧 신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선덕여왕' 제작진은 그런 강대한 미실과 선덕여왕을 적대자로 놓는 구도를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실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유일한 문헌 근거는 '화랑세기'인데, 이를 아무리 뜯어 봐도 미실과 선덕여왕이 대립할만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설정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미실은 귀족 중심의 보수파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삼국통일을 국시로 삼는 것도 반대하며, 민중은 본래 어리석기 때문에 다소 기만을 해서라도 끌고 가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여기에 대항하는 덕만은 당연히 '사람'을 정치의 근본으로 생각하고, 과학과 기술의 개방을 통해 민중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설정은 전체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미실과 덕만의 관계에는 어떤 사서나 사료의 뒷받침도 없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그냥 그렇다니까 그런 것'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7세기의 신라 조정에 21세기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비쳐 보려는 의도가 너무나 앞서기 때문에 이런 무리는 점점 더 깊어져 갑니다. 이런 시도는 상당히 세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뭐 어때,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설정이잖아'라는 식의 진행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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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 중심에 선 미실조차도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본래 자신의 권력 유지가 최대의 목표인 미실은 수많은 만행을 저지르지만, 화랑들은 "미실 새주가 하신 일 중 대의에 따르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미실을 맹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드라마가 시작된 뒤로 미실이 그리 대의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화랑들이 잘 알고 있죠. 심지어 임종랑은 미실이 보종을 시켜 문노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화살로 보종을 쏘아 목숨이 위태롭게 한 적도 있습니다(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임종은 그 사실을 싹 잊어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대남보가 천명공주를 시해한 범인이라는 것도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대남보가 단독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화랑들이 바보일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미실은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지만 화랑들은 여전히 "미실 새주가 하시는 일은 대의에 따른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랑들은 몰라도 시청자들은 미실이 수많은 암수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죠. 문노-천명-서현-덕만은 모두 미실이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미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면서 몇가지 사수를 쓰자 지금까지 가만 있던 설원은 갑자기 "아니 왜 새주답지 않게 비겁한 짓을 하십니까?"하면서 만류합니다(네. 설원도 상당히 건망증이 심합니다).

뭐 점점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살짝 오락가락하던 미실은 결국 "지금의 신라는 내가 전우들과 함께 피를 흘려 만든 것"이라는 감상과 함께 "피땀흘려 건설한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다"며 원군을 복귀시키고 장렬하게 죽어갑니다. 자신이 한때는 "통일을 국시로 삼고 대외적으로 팽창하면 왕권만 강화될 뿐이고 우리 귀족들의 세력은 축소된다"며 쌍심지를 돋우던 사람이라는 것은 역시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뭐 생각이야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건망증의 결과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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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있으면, 이런 문제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쉴새없이 의심하고 생각해보지 않는 한 말입니다(물론 그런 시청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마는).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들 여지를 막아낸 것이 바로 고현정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을 보고 있으면 '웃는 얼굴의 악녀'로서 역대 최고의 연기를 보았다는 데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웃는 얼굴에서 똑같이 다정한 말이 나오고, 누군가를 주살해야 한다는 명령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눈꼬리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미실의 감정 변화가 감지됩니다. 과연 이 역할을 다른 배우가 했다면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 방금 전에 사람의 목을 치고도 화사하게 웃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 싶냐는 분위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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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배우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구요. 명배우가 모든 플롯의 구멍과 대본상의 모순을 덮어버리는 예는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의 조니 뎁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논리적인 스토리의 진행을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입니다. 설정은 수시로 추가되고, 어린아이의 놀이들처럼 룰이 수시로 바뀝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면을 따지지 않습니다. 만약 잭 스패로우 선장을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 영화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악녀 미실', 혹은 '여걸 미실'의 시대를 이끈 것은 제작진의 힘이라기보다는 70% 이상이 배우 고현정의 힘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배우 하나의 포스가 이렇게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포스트 미실 시대의 '선덕여왕'(아, 이제야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군요)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과연 덕만공주는 지기삼사의 재능을 드러내며, 유신은 통일의 주역인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돌아오며, 이제는 골치아파진 비담(배신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한)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살짝 걱정도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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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TV든 라디오든 수험생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시험을 치는 당사자들에게 주위 사람들의 '아무쪼록 감기 걸리지 말고 모든 수험생들이 자기 실력 유감없이 발휘하길 바라겠습니다' 같은 멘트들이 얼마나 귀에 들어올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들 수능 대박나세요'같은 멘트야말로 어떤 때에는 짜증날 수도 있는 멘트죠(다 대박나면 대체 변별력은 뭘로...).

하지만 노래 한 소절은 또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뇌활동이 빨라지면서 내가 혼자 개고생을 하고 있는게 아니구나, 내 뒤에 나를 향해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부담감으로 어깨가 천근 뭔가 이유 모를 용기가 솟아나곤 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제가 수험생일 때만 해도 그런 용도로 사용될만 한 노래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당히 질적/양적으로 풍성해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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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많은 노래들 가운데서 아예 '수능 응원가'로 자리를 잡고 나온 것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이번 'Fly Higher'가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다면... 너무 노골적이란 생각도 듭니다. 뭐랄까, 가사부터 너무 시험 시험 하면 오히려 긴장을 부추기죠.

 


 

   그래서 따로 좀 꼽아 봤습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으면서 힘을 줄만한 곡들.


1. 소녀시대 힘내
 

 

네. 정말 진정으로 힘을 내고 싶습니다. 뭐 꼭 수험생이 남자가 아니라도.^^



2. 강산에 '넌 할수있어'

 

이 분야의 클래식이죠. 예전엔 이 시즌이면 하루에 20-30번씩 나오던 노래입니다. 요즘도 꽤 자주 나오는 듯 합니다. 강산에의 목소리와 '격려'란 말이 너무나 어울립니다.




3. 이한철, '슈퍼스타'
 

 

물론 전곡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수험생용 응원가'와는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경우엔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도입부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뒤에 어떤 가사가 나오든 이 도입부가 다 덮어 버린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수험생,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4. 러브홀릭스 버터플라이
 

지난해 겨울 처음 발표됐을 때에는 누군가 '수험생용 노래로 대박날 것'이란 예상을 했을 것도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영화 '국가대표'의 삽입곡으로 비로소 세상이 이 노래를 알아주게 되었습니다. 가사, 감동적인 멜로디, 노래의 힘, 모든 부분이 갖춰져 있습니다.

고치 속에 들어 있는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는 너, 세상이 모르는 너의 실력을 이제 화끈하게 보여주고, 나비처럼 날개를 펴고 세상으로 날아 오르라는 메시지도 선명합니다. 장갑 한 켤레로 손을 녹이고, 이 노래로 가슴을 녹이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5. '지킬 앤 하이드' 중 '지금 이 순간'
 

물론 가사는 끝으로 갈 수록 수험생용 노래와 멀어지지만^^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과 함께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오직 승리 뿐'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필요할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가치가 더욱 올라갑니다.

모든 걸 벗어 던지고 시험 하나에 집중해 끝장을 보라는 확실한 응원의 목소리입니다. 이 노래를 알린 최대의 공로자는 조승우지만, 좀 더 응원의 노래로 어울릴 듯 한 임태경의 노래를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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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들 노력한 만큼 제대로 거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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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납득이 안 가는 걸까요. 미실의 퇴장을 하루 앞두고 방송된 MBC TV '선덕여왕'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진흥왕이 남긴 조칙이었습니다. 문제의 문서가 대단한 비밀무기인 양 덕만은 문서를 땅속에 파묻고, 비담은 고민하고, 미실은 문서가 없어진 걸 보고 안색이 변합니다. 그리고 비담은 문서는 없었다고 보고합니다.

이 대목에서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과연 이 문서는 그렇게 큰 폭발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서가 공개되면 세상의 판도가 바뀔까요? 제작진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지난주, 이 문서의 정체가 예고편을 통해 밝혀지면서 계속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덕만은 저 문서를 어떻게 사용하려고 한 것일까.

그리고 이번 주, 그 해답이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납득은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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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각 인물의 입장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덕만의 입장:

소화는 죽기 전에 덕만에게 문서를 전해 줍니다. 문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칙: 신라의 적인 미실을 척살하여 대의를 바로 세우라(詔勅: 新羅之敵 美室刺殺 而? 正立大義)' 그리고 '무신년 3월'이란 날짜가 쓰여 있고, 옥새가 찍혀 있습니다.

자, 일단 이 문서가 '진흥왕이 쓴 것'이라는 것이라는 보장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쨌든 옥새가 찍혀 있으므로, 왕명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고 칩시다. (사실 저 문서에서 알 수 있는 건 진흥왕의 한문 실력이 형편없다는 겁니다. 기초 문법에 맞게 쓰려면 '刺殺 新羅之敵 美室 而? 正立大義'라고 써야 합니다.)

만약 미실이 권세를 잡고 있을 때 이 문서가 공개된다면, 미실에게는 꽤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진흥왕의 유지의 계승자'라는 미실의 권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문서를 공개하는 쪽도 죽음을 각오해야겠지만, 어쨌든 미실에겐 대단히 위험한 문서임에 틀림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덕만이 이 문서를 공개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은 바로 공개추국입니다. 백관들이 덕만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진흥제의 유지를 배반한 것이 바로 미실'이라고 공개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공격입니다. 하지만 덕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문서를 땅 속 깊이 파 묻었죠.

정작 덕만이 이 문서를 꺼내드는 것은 미실로부터 궁성을 회복하고, 대야성에 진을 친 미실과 일전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엔 미실의 위치에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죠. 어제까지 위국령에 따라 정부 수반이었던 미실은 이제 반란의 수괴가 되어 있습니다.

이미 반란의 수괴란 죽어 마땅한 죄인인데, 여기에 진흥왕의 유언으로 다시 한번 미실을 신라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을 죄+ 죽을 죄'를 해 봐야 한 사람이 두번 죽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를 공개할 가장 좋은 시기를 휙 넘긴 덕만은 뒤늦게 '이 문서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라며 비담에게 문서를 파 오라고 심부름을 보냅니다. 이건 뭘까요? 그 문서를 덕만이 쓰는 것은 반칙이란 뜻입니까? 몰래 훔쳐 온 문서이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미실을 공격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뜻일까요?

(아마도 제작진이 생각한 이유는 다른 이유일 겁니다. 그건 다음 단락에서 얘기합니다. 한번에 다 해버리면 재미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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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담의 입장:

비담은 덕만의 심부름을 떠나 붉은 비단보 속에 들어 있는 진흥왕의 조칙을 열어 봅니다. 거기에는 '신라의 적인 미실을 척살하여 대의를 바로 세우라'고 쓰여 있습니다. 물론 쓴 사람이 누구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를 보고 비담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알아내 버립니다. 첫째. 이 글을 쓴 사람은 진흥왕이다(대단합니다. 심지어 연도도 엉망인데 그걸 알아내다니...). 둘째, 이 글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조칙을 실행하지 않고 미실에게 바쳤다.

자, 여기서 비담의 두뇌는 계속 돌아갑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 조칙이 덕만에게 전달되고, 덕만이 이 조칙을 공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각지의 귀족과 장군들이 '오오, 그동안 우리는 미실에게 속아왔구나. 미실은 이미 진흥왕에 의해 신라의 적으로 지명돼 죽었어야 할 몸이었구나! 그래!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덕만공주님께 달려가자! 가서 미실을 쳐부수고 신라를 바로 세우자! 야호' 하고 소리칠까요?

...라고 생각한다면 참 순진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미실은 진평왕을 구금하고, 위국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궁을 점거하고, 회의석상에서 대신을 함부로 죽이고, 화랑들을 닥치는대로 고문해 죽이고, 덕만공주 체포령까지 내린 상황입니다. 그리고 나서 상황이 뒤집혀 도성에서 시가전을 벌이고, 도망쳐 남서쪽의 한 성에 웅거하고 있습니다. 네. 설명이 너무 길었나요? 간략하게 요약하겠습니다. 반란의 수괴이자 내란의 주모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졸들이 미실을 따르는 건 모두 '미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고 진평왕이야말로 왕 자격이 없는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겠죠. 사실은 미실에게 아직 승산이 충분하고, 미실이 있는 힘을 다 발휘하면 서라벌의 왕과 덕만(얼마 전까지도 미실 앞에서는 쥐새끼같은 존재들이었던 자들이죠. 풍월주 유신? 서현? 웬 듣보잡들?) 따위는 한방에 날아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에 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했지만, 서라벌에 진평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 한, 이미 미실은 '반란의 수괴'입니다. 충분히 죽을 죄입니다. 여기에 '진흥왕도 미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해도 죽을 죄에 죽을 죄를 보탠 들, 그냥 죽을 죄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즉, '진흥왕의 조칙 따위는 이미 소용 무'인 상태입니다.

하지만 비담에겐, 그리고 '선덕여왕' 제작진에겐 이런 상식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담은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함께 의문을 갖게 됩니다. 대체 똑똑하기로 소문난 우리 엄마 미실이, 왜 있어 봐야 불리할 뿐인 이 문서를 그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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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실의 입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걸 보관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부분, 난을 일으키기 직전 모드로 갔을 때 이 문서는 설원에게 있었습니다. 미실이 설원에게 이 문서를 맡긴 것은 '이 문서를 공개하면 나는 죽을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따라서 당신에게 나는 목숨을 맡긴 셈이다. 그만치 나는 당신을 신뢰하며, 나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난을 일으키면서 미실은 다시 그 문서를 회수합니다. 그리고 설원에게 "우리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비담입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번 난이 실패하면, 이 문서를 비담에게 전하고, 비담으로 하여금 나를 죽이게 해서 큰 공을 세우게 하고, 그럼으로써 덕만의 치하에 나, 미실의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계산을 위해 미실은 염종으로 하여금 비담을 서라벌에서 먼 곳에 묶어두게 하고, 당장 난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못하게 합니다. 글쎄... 과연 난이 진압된다면 그 대혼란 속에서 무슨 수로 비담에게 그 문서를 전하고 무슨 수로 다른 사람 말고 정확하게 비담에게 죽게 될지도 참 궁금하지만, 아무튼 그런 건 어떻게든 가능하다고 칩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것은, 천재 비담은 진흥왕의 조칙을 보는 순간, 거기에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배려가 담겨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버린다는 점입니다. 뭐... 제작진의 배려겠죠.



4. 소화의 입장

소화는 이 문서를 갖고 '미실에게 해가 되고, 비담과도 관계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말만 하고,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라는 걸 덕만에게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이 문서가 왜 비담과 관계가 있을까요. 이 문서때문에 미실이 진지왕에게 접근해 비담을 낳아서? 즉 비담이 태어나게 된 계기가 이 문서 때문이라서? 그리고 이 문서가 공개되면 비담이 역적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건 모두 '세상 사람들이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라는 걸 다 안 다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심지어 소화 자신도 덕만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은 비밀을 대체 누가 안단 말입니까. 이것이 가장 어처구니없는 답답이 소화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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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실을 지지하던 지방 군단장 A씨의 입장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분을 위한 마지막 설명입니다. 비담이 문서를 덕만에게 정상적으로 전달하고, 궁성을 차지하고 있는 덕만이 대야성의 미실 토벌을 위한 지방군의 동원령을 내리면서, 칙서 하나를 공개합니다. 칙서에는 (반복하기도 귀찮다) '미실을 죽여라. 나 진흥왕' 이라고 써 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정상인 A씨의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래? 그런데 왜 덕만공주가 그 문서를 갖고 있지?'
상식인인 A씨에게는 대체 왜 그런 문서가 남아 있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문서를 받은 게 설원이고 설원이 냉큼 그 문서를 미실에게 바쳤는지 말았는지 그가 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조칙이 실현되지 않았는데 그 문서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 문서를 갖고 있다면 왜 이제사 공개하지?'
이 대목에서 덕만공주에게 살짝 의심이 갑니다. A씨는 사실 속으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쪽으로 붙어야 하나. 미실이 더 세 보이긴 했고, 미실에게 그동안 받은 것도 많은데 또 보니 미실은 궁성에서 쫓겨나 대야성에 있다고도 합니다.

'저 문서가 진짜긴 진짜야?'
A씨는 바로 얼마 전, '공주가 난을 일으켰으니 체포하라'는 문서에 당당하게 옥새가 찍혀 공개됐던 것을 기억합니다. 옥새가 찍힌 문서라는 건 권력을 쥔 쪽에선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죠. 진흥제가 미실을 죽이려 했는지 말았는지, 내 눈으로 원본을 본 것도 아니고 그깟 문서 쯤이야 궁성을 장악한 쪽에서는 백개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네. 지금 A씨에게 중요한 건 '그 문서가 진짜인지 아닌지'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덕만은 이 문서의 진위를 어떻게 천하의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답은 '없다'입니다. 현재는 21세기 아니고 7세기입니다. 기자회견을 할 수도 없고, 문서를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릴 수도 없습니다. 또 국과수에 문서의 필적 감정을 요청할 수도 없고, 문서에서 진흥왕의 DNA가 나오는 지 알 수도 없습니다. 문서가 최소한 30년이 됐다는 과학적 감정도 할 수 없습니다.
덕만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문서가 있다'고 선포하는 것 뿐이고, 사람들은 그걸 믿고 싶으면 인정하고, 믿기 싫으면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A씨에게 정말 중요한 건 뭘까요.

'그런데 대체 누가 이길 상황이지?'
빙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만약 미실이 이길 상황이라면 그깟 문서 따위는 '간교한 덕만공주가 만들어 낸 것'으로 쳐 버리면 됩니다. 반대로 공주가 이길 상황이라면 '아 그래! 우리는 그동안 미실에게 속아 왔다! 자! 정의의 군사를 일으켜 역도 미실을 치자!'고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대체 그놈의 문서가 뭐라고 이 난리란 말입니까. 정 뭐하면, 진흥왕의 유서 같은 건 백개라도 다시 만들면 그만입니다. 그게 양심에 걸리면, '진흥왕의 손자이며 신라의 왕인 진평왕'의 이름으로 다시 '반란을 일으킨 신라의 적 미실을 처단하라'는 조칙을 내리면 어떻습니까. '미실은 진흥왕의 조칙으로만 죽일 수 있다'는 무슨 특별법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식이기 때문에, 현재 '선덕여왕'이 비틀거리는 이유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제작진의 억지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긴, 까짓 거 어떻습니까. 오늘 밤 미실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면서 그냥 감동 한 번 해 주면 그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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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엔 좀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에게는 꽤나 이른 시간(오후 7시45분)에 방송되기 때문에 매일 챙겨 보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재방송도 너무 찔끔찔끔입니다.

성형수술로 신분을 바꾼 주인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어린이들의 나이로 볼 때 치열교정 정도는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 물론 점으로 정체를 바꾼 해리는 나왔죠^) '하이킥'은 재미있습니다. 9월 정도까지만 해도 '하이킥'이라고 하면 '거침없이 하이킥'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지붕뚫고 하이킥'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추억을 충분히 대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과연 이 두 편의 '하이킥'의 차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침없이 하이킥'도 너무나 재미있는 시트콤이었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편과는 달리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웃음 속에 슬쩍 묻혀 있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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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즘은 시트콤의 축이 지훈(최다니엘)과 정음(황정음), 준혁(윤시윤)과 세경(신세경)을 둘러싼 4각 관계 쪽으로 옮아 왔지만 이 시트콤이 초반에 자리를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신애(서신애)와 해리(진지희)의 관계입니다.

모든 게 신기하고 탐나는 신애와 100을 갖고 있으면서도 1을 내주기 싫어하는 욕심 많은 해리의 다툼은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애를 동정하게 하고, 눈물과 웃음을 주곤 했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답지 않게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신애의 표정이 어른 시청자들에게는 직격탄을 날리기에 충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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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도는 분명합니다. 김병욱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순박한 시골 자매의 눈을 통해 현대의 도시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를 조명해보고 그를 통해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고, 충분히 그 의도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뭐 보탤 것도 없이 원래 포함돼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태도를 정면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귀한 자녀'에 대한 입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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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신애와 해리의 관계에서 가장 분통터지는 일은 아무도 해리를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부모가 그렇습니다. 정보석이든 오현경이든, 부모 중 어느 한 쪽도 해리의 만행(?)에 정면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느긋하게 '...하지 마라...', '엄마가 그러지 말랬지' 하는 정도로만 막을 뿐입니다. 가끔씩 이순재가 약간 강경한 태도를 취하곤 하지만 그도 잠시뿐입니다.

즉 해리가 신애에게 가하는 만행들은 모두 어른들의 방조 속에서 이뤄집니다. 이 부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도 꽤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해리에게 제재를 가하는 사람은 삼촌 지훈과 오빠 준혁 정도입니다. 해리가 뭔가 위해를 가하려 하면 지훈이 아예 해리를 번쩍 들어 다른 데로 옮겨 놓거나 준혁이 쥐어박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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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준혁에게는 해리를 강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원죄(?)가 있습니다. 해리가 세경에게 "야 이 그지 똥꼬야"하고 부를 때 준혁은 화를 내며 "왜 그런 식으로 부르느냐"고 야단을 치지만 해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준혁도 과외언니한테 야야 하면서 뭘 그러느냐고 대응하죠.

이건 사실은 준혁도 성장 과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준혁도 예의범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교육 과정에서 그리 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거의 20년 전부터 수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핵가족화, 한자녀 가정의 보편화, '내 아이는 특별해' 라는 식의 전 사회적인 마케팅 등등이 복합적인 원인일 겁니다. 즉 생활 형편은 나아지는 반면 투자해야 할 자녀의 수는 줄어든 결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왕자님과 공주님들이 대량으로 육성된 것이죠.

학교 생활을 통해 이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교사들도 '야단치는' 역할을 가정으로 떠미는 형편입니다. 안 그런 교사들도 있겠지만 제가 아는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보다 엄마를 100배 쯤 더 무서워한다"며 학교 생활을 통한 교정의 가능성에 상당히 비관적이더군요. 그런데 그 '엄마'가 야단을 치는 주제는 '왜 공부 안 하니' 뿐이라면 아이들의 인성에 대한 훈련은 과연 누가 맡아야 할지 의문입니다.

(네.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영감태기가 되어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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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안 그런 아이도, 안 그런 엄마도, 안 그런 선생님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이런 식으로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꾸밀 사회가 과연 어떤 것이 될까에 대한 우려가 싹트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이킥'의 해리는 그런 정경을 단적으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나마 '하이킥' 속 해리는 세경과 신애 자매의 등장에 따라 어느 정도 교정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게 위안일 듯 합니다. 이미 해리는 동화책 사건으로 신애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했고, '애기똥과 아빠똥'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했죠.

과연 해리가 이 시트콤이 끝날 때까지 신애에게 지금 같은 입장을 취할지(물론 김병욱 감독의 스타일로 볼 때 해리가 쉽게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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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주간에 걸친 이승기의 '비어 캔 치킨' 고집을 보면서 '귀한 아들'과 '아무도 야단치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이 이쪽에도 적용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황현희와 안영미가 아이들 그룹에 대한 악담을 할 때마다 종이컵 든 손을 떠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을 겁니다.^^)

P.S.2. '하이킥' 최고의 수혜자는 왠지 최다니엘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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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아이러브유'를 보러 갔던 많은 분들이 '러브 액추얼리'를 기대했다가 분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절대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11명의 유명한 감독들이 '뉴욕'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갖고 각각 8분 가량의 단편을 만들고, 그 각각의 영화를 이어 붙여 만든 옴니버스형 영화인 겁니다.

길게 늘어지지 않고 짤막짤막 간명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긴장을 풀지 못하고 계속 몰입되어 보게 됐는데 그렇지 않았던 분들도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기대할 만큼만 기대했더라면 오히려 다양한 감독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부페처럼 즐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즐기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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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 워낙 감독도 다양하고 배우도 엄청나게 나오다 보니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다는 게 이모저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단, 에피소드의 순서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혹시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은 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파트의 제목은 모두 감독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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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문(姜文, Jiang Wen)  

프로 소매치기인 벤(헤이든 크리스찬슨)은 호감을 느낀 몰리(레이첼 빌슨)를 유혹하려다 비슷한 기량의 '선수'인 백전노장 개리(앤디 가르시아)를 만납니다. 과연 개리와의 대결에서 벤은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요.

남녀간의 사랑이란 흔히 '마음을 빼앗는다'고 표현합니다. 마음 훔치기를 글자 그대로 도둑질에 덮어 씌운 비유가 상쾌합니다.

Hayden Christensen ...  Ben (segment "Jiang Wen")
Andy Garcia ...  Garry (segment "Jiang Wen")
Rachel Bilson ...  Molly (segment "Jiang Wen")
Sinsu Co ...  Mystery Bar Girl (segment "Jiang Wen")
Jeff Chena ...  Bartender (segment "Jiang 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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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라 네이르(Mira Nair)

인도 출신의 자이나 교도 만수크바이(이판 칸)와 유태인 리프카(나탈리 포트만)는 모두 다이아몬드 중개상입니다. 교조적인 유태인과 결혼을 앞둔 리프카와 만수크바이는 다이아 세트를 거래하면서 문화의 벽을 넘어 서로의 내면을 엿보게 됩니다.

'몬순 웨딩'의 여감독 미라 네이르의 섬세함이 드러납니다. "아무거나 다 먹는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믿고 다이아몬드를 맡기겠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Natalie Portman ...  Rifka (segment "Mira Nair")
Irrfan Khan ...  Mansuhkhbai (segment "Mira Nair")
Eddie D'vir ...  Rabbi (segment "Mira Nair")
Aron Charach ...  Young Hasid (segment "Mira Nair")
Brad Naprixas ...  Hassid in Wedding (segment "Mira Nair")
Eliezer Meyer ...  Grand Rabbi Elli (segment "Mira N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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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반 아탈(Yvan Attal)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 겸 감독으로 샤를롯 갱스부르의 남편이었던 아탈의 작품은 두 개로 쪼개져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자(이선 호크)와 여자(매기 큐)의 속사포같은 대화가 이어집니다.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를 꾀어 침대로 데려가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있으며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뿐이라고 하죠.

과연 남자는 여자를 유혹할 수 있을까요. 유머 만점.

Ethan Hawke ...  Writer (segment "Yvan Attal")
Maggie Q ... Girl (segment "Yvan A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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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와이 슌지

애니메이션 음악가인 데이빗(올란도 블룸)은 까다로운 감독에게 시달리다가 늘 감독의 요청을 전달해주는 카미유(크리스티나 리치)의 목소리만 듣고 호감을 갖게 됩니다. 과연 그는 카미유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와이 감독의 솜씨답게 너무나 일본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 일본 영화였다면 소심한 남자주인공과 더 소심한 여주인공 때문에 도저히 8분 동안에는 다룰 수 없을 소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Orlando Bloom ...  David (segment "Shunji Iwai")
Christina Ricci ...  Camille (segment "Shunji 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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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앨런 휴즈(Allen Hughes)

거스(브래들리 쿠퍼)와 리디아(드리아 드 마테오)는 격정적인 첫 만남 이후 두번째 만남을 앞두고 안절부절못합니다. 첫 만남에서 너무 진도를 많이 나간 후유증. 과연 이들의 두번째 만남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앨런 휴즈의 영화로 제가 본 작품은 잭 더 리퍼 사건을 다룬 조니 뎁 주연의 '프롬 헬'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단편들 중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고 싶지 않은 작품입니다.

Bradley Cooper ...  Gus (segment "Allen Hughes")
Drea de Matteo ...  Lydia (segment "Allen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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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브렛 래트너(Brett Ratner)

졸업무도회(Prom)를 앞두고 여자친구(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 차여 버린 고교생(안톤 옐친)에게 동네 약국 아저씨(제임스 칸)가 미녀인 자기 딸(올리비아 실비)의 사진을 보여주며, 무도회 파트너로 데려가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 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죠. 하지만...

'러시 아워' 시리즈의 브랫 래트너답게 유머 감각 넘치는 한폭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James Caan ...  Mr. Riccoli (segment "Brett Ratner")
Anton Yelchin ...  Boy in the Park (segment "Brett Ratner")
Olivia Thirlby ...  Actress (segment "Brett Ratner")
Blake Lively ...  Girlfriend (segment "Brett Ratner")


7. 파티 아킨(Fatih Akin)

혼자 사는 고독한 화가(우구르 유셀)는 차이나타운의 단골 약방에서 카운터 소녀(서기)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낍니다. 결국 그는 그녀를 찾아가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터키계 감독인 파티 아킨은 2004년 '미치고 싶을 때'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감독입니다. 저도 이 양반의 작품을 본 적이 없으므로 설명은 패스. 평이하지만 가슴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Burt Young ...  Landlord (segment "Fatih Akin")
Ugur Yücel ...  Painter (segment "Fatih Akin")
Qi Shu ...  Chinatown Girl (segment "Fatih A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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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셰카르 카푸르(Shekhar Kapur)

왕년의 오페라 프리마돈나 이사벨(줄리 크리스티)이 뉴욕의 호텔에 투숙합니다. 불구의 웨이터 제이콥(샤이아 라보프)은 아직도 미모를 잃지 않은 노부인의 친절에 정성스러운 봉사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백미로 꼽는 단편. 대부분의 시간을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호흡이 절묘합니다. 특히 라보프는 이 작품으로 그동안 액션 위주의 영화에서 쌓아온 '찧고 까부는 배우'의 이미지를 싹 벗어 버리고 깊은 눈빛의 매력적인 배우로 탈바꿈합니다. 유체이탈(?)과 동양적인 여운이 일품.

Shia LaBeouf ...  Jacob (segment "Shekhar Kapur")
John Hurt ...  Waiter (segment "Shekhar Kapur")
Julie Christie ...  Isabelle (segment "Shekhar Ka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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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탈리 포트만

중남미계의 성인 남자(카를로스 아코스타)는 백인 소녀(테일러 기어)를 데리고 하루 종일 공원서 놉니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온 주변 부인들로부터 "정말 아이 잘 본다"고 칭찬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나탈리 포트만의 감독 데뷔작. 깔끔하면서도 긴 여운이 느껴집니다. 단지 마지막 1분 정도는 사족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Amy Raudenbush ...  Mom #1 (segment "Natalie Portman")
Carlos Acosta ...  Dante (segment "Natalie Portman")
Cesar De León ...  Dominican (segment "Natalie Portman")
Taylor Geare ...  Teya (segment "Natalie Por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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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반 아탈

이반 아탈의 작품 뒷부분. 한 레스토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년 남자(크리스 쿠퍼)에게 매력적인 중년 여인(로빈 라이트 펜)이 접근해 자극적인 유혹의 말을 던집니다.

3-1에 비하면 좀 떨어집니다. 평이한 수준.

Robin Wright Penn ...  Anna (segment "Yvan Attal")
Chris Cooper ...  Alex (segment "Yvan A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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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슈아 마스턴(Joshua Marston)

8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엘라이 월락)와 할머니(클로리스 리크먼)가 철지난 유원지 코니 아일랜드로 나들이를 나갑니다. 서로에 대한 잔소리가 끊이지를 않지만...

조슈아 마스턴 감독은 2004년 콜럼비아의 마약 현실을 다룬 '기품있는 마리아(Maria Full of Grace, 한글 제목이 저런 모양입니다만 아무래도 '은총 가득한 성모 마리아'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로 데뷔해 주목받은 신예입니다. 이 영화가 두번째라는군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많은 분들에게 감명을 준 듯 합니다만, 사실 저는 이 할아버지가 일라이 월락이라는 걸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일라이 월락이 누구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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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무법자 3부작 중 마지막 편,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몇몇 분들이 '석양의 무법자'라는 잘못된 제목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영화입니다)'를 보신 분들은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영화에서 '못난 놈(the Ugly)'역을 맡은 배우가 일라이 월락입니다. (심지어 저는 '로맨틱 홀리데이'도 봤는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럴수가...)

Eli Wallach ...  Abe (segment "Joshua Marston")
Cloris Leachman ...  Mitzie (segment "Joshua Marston")
Gary Cherkassky ...  Skater Punk (segment "Joshua Mar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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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10편, 이반 아탈의 갈라진 에피소드를 각각의 영화로 치면 11편의 영화 소개가 모두 끝났습니다. 감독이 11명이라는 건 여기에다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에 진행되는 막간 에피소드들을 감독한 렌들 볼스마이어(Randall Balsmeyer)를 합해서 얘기하는 것이더군요.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러 가실 생각이 있다면, '뉴욕-꿈꾸는 모든 사랑이 이뤄진다'와 같은 싸구려 홍보 문구에 현혹되지 마시고, 그냥 신기한 볼거리 하나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극장 의자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뜻밖의 종합선물세트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P.S. 다른 분들은 어떤 에피소드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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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erds, 이하 '바스터즈')'을 보면서 설마, 설마...? 하신 분들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타가 터졌을 때, 뭔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당연히 '선덕여왕'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사든 고대사든, 뭔가 실제 일어난 일을 토대로 서사물(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을 만들 때에 작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는 여러 갈래로 갈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바스터즈...' 처럼 아예 역사를 싹 무시하고 자기가 갈 방향으로 가 버리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 달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선덕여왕'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해선 안되는 걸까요? 창작자의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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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참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어의 욕으로 사용되는 저 단어의 스펠링은 basterd가 아니라 bastard죠.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개새끼들'이 아니라 '개세끼들'인 겁니다. 단순히 1977년 영화와 구별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스터즈'는 엄청나게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 긴 이야기 때문에 간략하게 요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대한 정돈해서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물론 최대한 모르고 보시는게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별로 원치 않는 분들은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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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군의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는 유태인으로만 구성된 8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독일 점령지역 프랑스에서 독일군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특공대를 운영합니다.

나치에 의해 온 가족을 잃고 파리에서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는 쇼샤나(멜라니 로랑)는 우여곡절 끝에 극장을 운영하게 되는데, 어쩌다 그 극장에서 나치 고위 장성들과 핵심 요인들이 모인 가운데 나치만을 위한 영화 시사회를 갖게 됩니다. 쇼샤나는 이를 복수의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한편 영국군도 영화전문가 윌콕스 소위(마이클 파스빈더)를 보내 이 극장을 폭파하는 특수 작전을 수행하려 합니다. SS의 수사전문가 란다 대령(크리스토퍼 월츠, 발츠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은 이들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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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펄프 픽션'에 열광하고, '킬 빌'에 환호했겠지만 안 그런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물론 그의 작품에도 높낮이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포 룸'이나 '데스 프루프'는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의 작품 중 최고봉은 '펄프 픽션'과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뭣보다 첫 장면부터 타란티노 특유의 장난기가 뿜어나오죠. 영화 '알라모'의 주제가였던 'Green Leaves of Summer'가 깔리는 가운데 지평선 멀리서 농가를 향해 달려오는 독일군의 오토바이가 보입니다. 오토바이가 아니라 몇필의 말이었다면, 그냥 그대로 마카로니 웨스턴의 도입부일 겁니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나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찾는 건 바보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런 액션 없이 대화만으로 서스펜스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그의 솜씨에서, 진정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을 느끼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특히 영화 도입부, 란다 대령이 프랑스인 농부를 신문하는 장면에서 서서히 높아져가는 긴장감과 공포는 마치 관객이 직접 심문당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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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만으로 사람 긴장시키기' 기법은 영화 여기저기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는, 제법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기상천외의 결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기대는 더욱 부풀어 오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잔인하다고는 하지만 그 잔인함이 영화의 재미를 해치지는 않습니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Cat People'과 온 사방에 깔려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온 관객들을 롤러코스터에 올려놓고 주무르는 타란티노의 솜씨는 이번에도 절대 실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소감은 여기까지. P.S. 이후는 나머지는 제목에 대한 설명입니다. 스포일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감상을 위해선 건너 뛰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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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고의 배우라면 역시 란다 대령 역의 크리스토퍼 발츠를 꼽아야겠지만,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만만찮게 빛을 발합니다. 벤자민 버튼으로서도 훌륭하다고 칭찬할 만 했지만, 역시 그가 가장 빛날 때는 건달 비슷한 계열의 연기를 보여줄 때입니다.

그 외의 배우들은 - 어쩌면 타란티노의 장난감 노릇을 한 - 뭐라 말할 부분이 그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들도 자기 몫은 다 했습니다. 배우로서든, 장난감으로서든. (이젠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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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타란티노는 지금껏 관객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멍- 하니 저 세상으로 날려버립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곰 유태인' 역을 맡은 일라이 로스의 방망이로 후려치듯 말입니다.

이런 결말에 환호하면서 '선덕여왕'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고 짜증내는 건 이율배반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그리고 '타란티노'라는 브랜드에서부터 이 영화는 '자, 지금부터 우리는 무슨 짓이든 맘대로, 막 나갈테니 알아서 하게'라고 선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일탈은 그 자체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한 방식인 셈입니다. 이 영화가 현실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건 '맨 인 블랙'을 보면서 외계인이 어디 있냐고 성을 내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선덕여왕'은 나름 진지한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굳이 홈페이지로 찾아가서 '신라의 혼을 되살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나름 숭고한 기획의도를 다시 찾아 읽지 않아도, 이 드라마가 '화랑들이 등장하는 만화같은 풍경'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선덕여왕'이 잘못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선덕여왕'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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