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간단한 퀴즈: 최민수의 스승, 손석희의 매형, 윤석화의 친구이면서 김혜자의 매니저이고 대학가요제 심사위원장인 사람은 누굴까요?

참 특별한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제목은 '주철환 음악이야기 - 노래는 불러야 노래'. 주철환 전 OBS 사장-교수-PD께서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한 현장이었습니다. 9월26일 오후 8시,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이화여대에는 모세의 지팡이 앞에 갈라지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멋진 건물이 들어섰더군요. 초행길이라 허겁지겁 들어가 보니 벌써 700여석의 내부가 꽉 차 있었습니다. 다행히 미리 좌석을 확보(?) 해둔 턱에 서서 구경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콘서트는 거의 2시간30분에 걸쳐 펼쳐졌습니다. 워낙 마당발에 사람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수많은 게스트들이 참가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 등장한 게스트는 동북고 교사 시절의 제자 최민수. "일곱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사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형"이라는 소개를 받자 최민수는 "그래도 첫 마디에는 '선생님'이라고 딱 한번 불러 드리겠다"며 장단을 맞췄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민수는 주철환 선생에 대해 "영화 '작은 시인의 사회(죽은 시인의 사회의 최민수식 표현)'에 나오는 그 선생님 있잖아, 그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어요"라고 고교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어 최민수가 "무슨 선생님이 소줏병을 들고 학생한테 한모금 마시라고 할 수가 있어요?"라고 따지자(?) 주선생은 "전혀 기억에 없다"며 시치미를 떼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해보니 이분이 이렇게 웃으며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도 참 오랜만이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어 유세윤이 '건방진 프로필'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출연자들 중 상당수가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주선생이 주례를 봐 준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철환 선생의 옆에 선 흰 옷 입은 청년이 바로 아드님 오영군입니다. 이 분의 나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저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데 깜짝 놀라기도 하죠. 주변의 청년들은 현재 군복무중인 오영군의 친구들.

한 친구는 "아버님(주선생에 대한 이들의 호칭입니다)과 술을 마시면 꼭 사망자가 생기고 피를 토하는 부상자가 나오기도 한다"는 비화를 공개해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남인 손석희 교수의 영상 메시지. "참 별 짓을 다한다 싶었다"는 멘트에서 빵 터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의외의 인물인 김창렬. 알고보니 주선생의 수많은 주례 목록 중에서 연예인 1호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얼굴이 잘 안 보이는 분은 바로 아래 사진의 왼쪽 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 KBS 뉴스 시청률 상승을 가져온 박영환 앵커. 이분이 바로 MBC TV '퀴즈 아카데미'의 1회 출연자였습니다. 당시 고려대 방송국 국장이었다는 이유로 강제 징발(?)을 당했던 거였죠. 당시 1회 출연자 중에는 영화 '과속스캔들'의 시나리오를 쓴 김영찬 작가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당시 '퀴즈 아카데미' 출연자 몇명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나눴습니다. (물론 제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밖에 비운의 프로그램(?)이던 'TV 청년내각'으로 등용된 이훈, 그리고 이훈이 MC로 나선 1994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가수 이한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희망전도사'로 유명한 강연가 최윤희씨와 박경림.

박경림은 "신인 시절, 모든 사람이 '네가 무슨 방송이냐'고 할 때 주철환 선생님만큼은 유일하게 내게 '넌 앞으로 잘 될 수 있다'며 희망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선생은 "사실은 나도 이렇게 잘 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습니다. 이어진 "이것이 바로 칭찬의 힘, 긍정적 사고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실례"라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분 사진은 알아볼 수 있게 나온 사진이 단 한장도 없어 바깥 사진을 공수해 왔습니다. 주선생은 자칭 '김혜자의 매니저'입니다. 김혜자 선생은 '연민'이란 노래의 가사를 낭송하기 전, "나는 가사가 하도 좋아서 누가 시를 써 준 줄 알았다"고 말해 다시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많은 덕담이 쏟아졌지만, 방송사 사장을 역임한 55세의 전직 대학교수가 자작곡으로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건 정말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저는 몇달 전에 "요즘 열심히 녹음하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이렇게 끊임없이 사고(?)를 칠 열정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12년,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728x90

'내사랑 내곁에'를 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장애나 병을 다룬 영화 중에서도 '나의 왼발'이나 '블랙' 처럼 인간승리의 드라마도 아니고, '러브 스토리'처럼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죽을 병 - 불치의 병이 사용된 경우도 아니고, '병과 환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에 선뜻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겁니다.

예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시사회를 지켜 본 한 지인은 "왜 박진표 감독이 처음에 권상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 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그 개인의 생각이고, 이유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본래 김명민이 이 역할을 맡기 전에 권상우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적이 있었죠. 그리고 나서 곡절 끝에 권상우가 하차하고 주인공이 김명민으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은 '전화위복(?)'이라며 이 영화 제작사에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도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어렴풋이 지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루게릭병이 어느 정도 진척되어 휠체어 신세가 된 종우(김명민)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 알고 지냈던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를 만납니다. 그 자리에서 지수에게 프로포즈하는 종우.

하지만 이미 끝이 정해져 있는 게임이라 종우는 점점 죽음을 향해 가고, 두 사람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만 경제적 위기, 오해, 불신, 갈등이 찾아옵니다.

줄거리를 정리하려니 정말 정리할 게 없는 줄거리입니다. 이미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있는 남자와 헌신적으로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야기'라는 전제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의 방향과 전개과정은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단 '줄거리의 진행 방향에 대한 궁금증'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걸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나 연출자가 박진표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박감독은 이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이즈 걸린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남자 이야기'라는 역시 끝이 다 보이는 소재로, 그리고 '유괴범은 목소리만 들려줬을 뿐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세상이 다 아는 미결의 미스테리로 두 편의 히트작을 만든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치 박진표 감독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가장 기초적인 정서를 뒤흔드는 데 있어 오케스트라 앞에 선 명지휘자의 솜씨를 줄곧 발휘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듭니다. '너는 내 운명'에서 주인공은 분명 절망적인 사랑을 하는 두 남녀였고, '그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은 절박한 부모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내사랑 내곁에'의 주인공은 왠지 인물이 아니라 루게릭 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병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명이라면 이건 제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제작에 착수한 이후 모든 홍보의 포인트는 '김명민의 감량'에 맞춰졌습니다. 즉 다른 모든 것보다 김명민이 엄청나게 말라 죽어가는 루게릭병 환자의 모습을 얼마나 성실하고, 숭고하고, 제대로 재현하느냐에 모든 관심이 쏟아져 버린 겁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사람도 다른 모든 조건에 앞서 김명민의 몸 상태에 눈길이 쏠립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관 때문인지, 영화는 두 남녀의 관계를 조명하기 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쫓아가는 데 몰두합니다(아니면 감독의 편집 의도와는 달리 관객의 눈에는 뭘 만들든 '환자의 상태'만 보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온전히 루게릭병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스탠스는 약간 어정쩡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변명을 한 김에 조금 더 하자면, 이 영화가 '너는 내 운명'과 '그놈 목소리'의 마법을 이어가려 했다면 분명 루게릭병보다는 두 남녀 사이의 사랑이 좀 더 밀도있게 그려져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 제 눈에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두 주인공 김명민과 하지원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화학적인 반응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김명민 쪽을 보자면, 누가 봐도 '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뜻하지 않게 병마로 쓰러졌지만 억울해서라도 그냥 죽을 수는 없다며 분투하고 있는 남자'라는 설정에 수긍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지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 번 결혼에 실패하고 그래도 열심히 살다가 곧 죽을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역을 연기하고 있는 하지원'이 보일 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배우 하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때부터의 무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주인공은 배경 설정에 비해 너무 밝고 씩씩하고 명랑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나름대로 생사에 대한 생각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대목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그냥 발랄하고 청순한 20대 초반 여성의 느낌이 그대로 풍겨나옵니다. 이런 두가지 느낌이 하나로 융화되지 못하고 그때 그때 다른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이렇게 불안한 캐릭터인데다, 김명민과 단 둘이 있는 장면에서도 어쩐지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그닥 느껴지질 않습니다. 김명민-하지원 커플보다는 오히려 남능미 부부나 임하룡 부부의 사연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특히 '그 순간'을 놓쳐 버린 임하룡이 자책하며 쓰러지는 장면에선 절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애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실컷 울고 싶은 관객이 기댈 곳은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아픈 김명민의 참상(;)입니다. 하지만 냉정을 되찾고 보면, 정작 김명민은 앙상한 갈비뼈로만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목소리를 잃은 다음에도 끊임없이 뭔가 말하기 위해 눈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도 압도적인 '몸'의 연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건강이 위험할 정도로 살을 빼는' 결단은 확실히 아무나 내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만, 그 '몸'의 상태 때문에 명배우와 보통 배우의 격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몸'에 초점이 맞춰질 거였다면 김명민 같은 당대의 명배우가 과연 필요했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김명민 팬들에겐 좀 불측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지금처럼 바짝 말라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관객을 감동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영화였다면, 좀 더 젊고 잘생긴 꽃미남 배우가 했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권상우나 송승헌, 소지섭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었다면 더 많은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역할에 김명민을 기용한 것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이 투입된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를 좀 더 해 볼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김명민은 몇 개의 트로피를 더 받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 전체를 구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어쨌든 온 세상이 모두 자신들을 위한 무대와 설정으로 보이는, 한창 뜨거운 연인들은 보실만 합니다. 하지만 솔로부대는... 자제하시는게 나을지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제작발표회때 하지원의 스타일이 어쩐지 낯이 익더군요. ...혹 라키시스 코스프레?


728x90
분주하다보니 참 쓸건 많은데 쓸 새가 없는 사태를 맞고 말았습니다.

들르셨다가 헛걸음 하신 분들 죄송합니다.

그냥 하고 싶은 일 두가지로 오늘을 때우겠습니다.^


2009. 10. 24 - 25
 



and...

2009. 12. 13.




'블로그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ON 16TH: 예비 2000만  (60) 2009.10.17
20세기로 접어들었습니다.  (57) 2009.10.13
휴가들은 다녀오셨나요?  (22) 2009.07.22
자리를 옮겼습니다.  (52) 2009.06.30
16 on 18th  (52) 2009.06.19
728x90
아직 초반이지만 김병욱 감독의 '지붕뚫고 하이킥'은 상당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5초에 한번씩 '빵' 터지는 순도 높은 웃음에 중독된 사람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트콤이냐 드라마냐' '왜 전처럼 쉴새없이 웃기지 않느냐'는 게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은 시청률면에서는 12-14%대의 시청률을 보이며 순조롭게 항행하고 있습니다. 일부의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 새로운 시트콤의 매력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 핵심은 아역 서신애(신세경의 동생이므로 극중 이름은 신신애)입니다. 김병욱 감독을 잠시 뵐 기회가 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면도를 안 하고 나왔다고 하셔서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 감독이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묻길래 "(서)신애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지지만 않으면 끝까지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솔직한 의견입니다). 김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바스트샷이 너무 좋아요. 그 안에서 정말 무궁무진하게 표현이 되는 아이에요."

- 어떻게 신애를 캐스팅하게 됐나.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보고 그때부터 꼭 데리고 하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방송 시작 시점도 신애의 스케줄에 맞춘 셈이다(웃음)."

- 그런데 아동학대라는 지적도 있다.
"극중 이순재의 손녀 해리(진지희)가 자기 집 가정부로 들어온 신애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 때문이다. 이 장면 전후에 웃음(시트콤에서 흔히 나오는 웃음 효과음)을 깔았다는 이유로 반발이 엄청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거였다."

- 신애의 '울다가 먹다가' 연기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다.
(해설: 신애가 언니를 잃어버리고 서울 시내를 해메고 다니는 장면에서, 먹을 것만 보면 울음을 멈췄다가 다 먹고 나면 또 우는 장면이 있었음.)
"나이 먹은 시청자들은 그 장면을 보고 자신들도 따라서 울다가 웃다가 했다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젊은 층은 '왜 애가 배고파 우는데 거기에 웃음 효과음을 깔았나. 제작진이 제정신이냐'는 반응들을 보이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회에 나왔던 '칡뿌리 캐먹는 신애' 모습.)

- 그런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때리는 척만 한게 아니라 실제로 때리는 걸로 찍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시청자들은 표현하려는 뜻을 봐 줬으면 좋겠다."

- 어린 여배우들(?)과 일하는데 상당히 애로도 있겠다.
"뭐, 워낙 성격들이 좋아서 별 문제는 없다. 사실 열두살이면 다 컸다고 봐야 한다. 둘 다 굉장히 어른스럽다. 특히 신애는 이해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 신애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나.
"물론 성장해가고... 신애의 러브 라인도 있다. 상대는... 아직 비밀이다."

누구냐고 추궁해서 그 상대를 알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직 공개하면 안될 듯 합니다. 그런데 참... 대단히 의외의 인물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좋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8년생인 서신애는 아무래도 2007년 영화 '눈부신 날에'와 드라마 '고맙습니다'로 대중의 주목을 확 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맙습니다'에서 치매 노인 신구와 함께 보여준 노-소의 조화는 그야말로 환상의 컴비네이션이었죠.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안겼습니다.

신애의 특이한 점은 더없이 귀여운 얼굴이면서도 얼굴 한 구석에 슬픔의 흔적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웃는 얼굴을 보고 있어도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듯한 구석이 있죠. 그동안 신애를 만나 본 연출자나 제작자들이 이 점을 캐치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눈부신 날에'에서도 불치병, '고맙습니다'에서도 불치병.... 신애가 그동안 비극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 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 어디선가 발견한 신애의 데뷔 시절 오디션 모습입니다. 공식 데뷔가 2004...




이번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도 신애는 부모와 헤어져 언니와 함께 남의 집 살이를 하는 역으로 등장합니다. 신애의 가장 큰 적은 엄청난 식욕. 이 풍요로운 시대에 배고픔이라는 원천적인 동기와 싸워야 하는 신애의 투쟁은 참 재미있으면서도 눈물겹더군요.

사실 '지붕뚫고 하이킥'은 21세기 드라마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1970년대, 혹은 60년대가 어울리는 광경이 자주 연출됩니다. 이미 기획안에서 '식모'라는 사라진 말이 다시 등장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 그 시대에는 충분히 있었을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야채는 먹기 싫어하고, 고기와 우유만 좋아하는 덕분에 늘 변비로 고생하는 이기적인 서울 아이 해리와 뭐든 신기한 것 투성이에 순수하기 짝이 없는 산골 소녀 신애의 대비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 먹먹해지는 신애의 눈빛은, 가능하면 이 시트콤이 신애가 행복해지는 쪽으로 끝나기를 그저 기원하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런 장면은 '지붕뚫고 하이킥'이 '거침없이 하이킥'을 넘어설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보다가 그냥 쓰러졌습니다. 서신애의 '마트송'입니다.





728x90
최근 방송에서 이민정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비키니 사진을 올렸을 때의 반응에 대해 털어놔 화제가 됐습니다. 올린 이유에 대한 해명(?)은 "발리에 웨딩 화보 찍으러 갔다가 모처럼 수영장에 혼자밖에 없어 찍은 사진들"이라는 약간은 빗나간 대답이었습니다만, 어쨌든 상관 없습니다. 올려 주시기만 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뭘 이유까지 따진단 말입니까.

지난해 이후로 미니홈피를 이용한 비키니 마케팅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이런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리는 이유도 제각각입니다. 물론 '일부러 화제 되라고 사진을 올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보는 사람들이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잘 보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제 찬바람도 불기 시작했으니 미니홈피 비키니 시즌은 끝물인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미니홈피 비키니 상' 후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스타들이 미니홈피에 올리는 사진을 놓고 '성형수술 성과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미리 체크하려는 시도'라고 가시돋친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여기선 그런 의견은 무시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이민정. 바로 어제 방송에서 얘기한 그 사진입니다. 물론 미니홈피에 굳이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스타들에게 가장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면 자신감입니다. 올려서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을 수준의 사진을 올리는 바보 연예인은 한국에 없습니다.

그만치 일단 미니홈피에 올라온 사진의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자체 화보라고나 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반드시 발리에서만 미니홈피 사진을 찍는다는 법은 없죠. 집에서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집에서 찍은 사진 치고는 광선까지 신경쓴 공이 역력합니다.^ 아, 탤런트 연미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그콘서트'의 곽현화. 용모도 몸매도 훌륭합니다. 웃기기만 하면 참 좋을텐데...

지금까지는 알려진 스타들이라면 이제부터는 미니홈피 비키니가 큰 역할을 한 신인들입니다. 이들의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노력이 필요했는지 한번 보시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인가수 소리입니다. '효리 말고 소리'라는 구호만으론 좀 부족했던 듯 합니다. 오일이 카메라에도 튄 듯, 절로 뽀사시한 느낌이 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틀 한예슬'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신인 윤선경입니다. 쇼핑몰도 함께 운영한다는군요. 한예슬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미니홈피 비키니 활동 외에 어떤 연예활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탤런트 한예원의 수줍은 비키니(?). 이 정도로는 뭘 기대했건, 별 효과가 없을 게 자명합니다. 예상대로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예원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체 화보(?) 따위는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C몽 여자친구'가 대표작인 주아민입니다. 이 사진이 공개된 뒤 '공개에서 비공개로 바꾸는 1초 사이에 누가 사진을 퍼 갔더라'고 좀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1초간이라도 공개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 덕분에 어쨌든 'MC몽 여친=주아민'이란 이름은 대단히 생생하게 아로새겨졌습니다. 네. '올해의 미니홈피 비키니' 상은 아무래도 이 분의 차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아주 간단하게 최근 몇년 사이의 미니홈피 비키니 사(史)를 돌이켜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니홈피 비키니의 역사를 바꿔 놓은 분입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4억소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분이죠. 이 분은 미니홈피와 쇼핑몰을 통해 자신의 비키니 사진을 널리 퍼뜨려 쇼핑몰 대박의 신화를 이룩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노출(?)을 비난하자 '그래, 난 사업가야'라고 당당하게 받아쳤다는 분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존경과 감사를 드려야 할 분입니다. 이분이 없었다면, '미니홈피 자체화보'의 유행은 절대 없었을 겁니다.


그 뒤로 황혜영이나 김준희같은 이 부문의 신화적인 존재들이 비키니 사진을 공개했고 그로 인한 화제가 쇼핑몰 대박으로 이어졌다고들 하지만, 이런 분들의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한 비키니 사진들은 별 감동을 주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니홈피 비키니' 장르는 아무래도 좀 덜 연출된 자연스러움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좋은 카메라를 써도, 너무 전문가의 냄새가 나도 실망스럽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해의 '미니홈피 비키니 상' 수상자로는 아무래도 '손호영 누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손정민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얏트 호텔 야외수영장으로 보이는 공간인데, 아마추어리즘이 빛나는 수작 화보라고 불러야 적당할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던 일이 오프라인에서 곧 이어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손정민 스타화보가 등장한 것이죠. 손정민의 예에서도 보듯 미니홈피 비키니 사진 등장은 얼마 뒤 스타화보 공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미니홈피 비키니 공개때 다 예정됐던 일인지, 아니면 미니홈피 비키니 공개 이후에 섭외가 들어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천둥이 치면 비가 오고 방귀가 나오면 .... 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두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프로가 찍었다는 화보보다 위의 자체 화보가 더 훌륭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큐멘터리의 승리라고나 할까...

아무튼 비키니 화보는 아주 신인이 아니더라도, 순간적인 지명도 획득과 새로운 활동의 신호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례들을 보시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흔히 '4차원'으로 불리던 화요비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지난해 상반기에는 꽤 화제가 됐던 사진이죠. 아무튼 이 사진 이후 화요비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꽤 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송현에게는 이 비키니 탑 사진이 '이제 연예인'이라는 신호탄 역할을 한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비키니의 일상화 - 혹은 생존 확인 신호화를 이룬 이파니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수시로' 존재를 확인해주는 목적으로도 미니홈피 비키니는 훌륭하게 가치를 인정받을 만 합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 미니홈피 비키니는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미풍양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견이 있는 분이라면, 왜 그런지는 각자 블로그를 만들어서 자기 블로그에 쓰시기 바랍니다.




...글쎄 추천은 공짜더라구요.

728x90

최나연이 LPGA에서 마침내 1승을 올렸습니다.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스 남코스에서 열린 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정상에 올랐다'고 하는군요.

이번 우승이 있기까지 최나연은 무려 55회나 LPGA 대회에 출전해 54전 55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올시즌 신인왕과 MVP 동시 석권을 노리는 신지애를 비롯해 이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거나, 거둔 선수는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최나연이 첫 우승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골프 문외한인 제가 대체 왜 LPGA 우승 경력도 없는 선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요. 물론 답도 뻔합니다. 당연히 '얼짱 골퍼'라는 호 때문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그동안 각종 언론들이 '얼짱 골퍼'라는 별칭을 붙여 준 골퍼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미셀 위만 얼짱 소리를 들은 게 아닙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김초롱 외에는 모두 얼짱 골퍼라고 불렸다고 해도 심하게 사실과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최나연은 다른 조작된 '얼짱 골퍼'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어느날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입니다. 건강미넘치는 얼굴과 짧은 머리가 흰 미니 드레스와 너무나 생기있게 잘 어울리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화장발, 조명발, 뽀샵빨.... 수도 없이 많은 가공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원판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런 정도의 비주얼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 바닥 10년'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생얼은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조금만 검색해 보면 '최나연'의 이름으로 된 사진들은 수도 없이 나옵니다. 일단 꽤 가공된 사진들을 먼저 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명 예쁜 얼굴이고, 어느 정도 가공이 된 것이 분명한데도 여성적인 매력보다는 산에서 뛰어놀던 야생 소년(?)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 어린왕자 삽화형의 헤어스타일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비슷한 인물을 고르라면 피구왕 통키같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침 최나연은 일간스포츠의 '오픈하우스'라는 코너에 등장해 '쌩얼'을 보여준 적이 있더군요. 역시 실물은 보다 더 남자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픈하우스: 최나연 편'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25488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25494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25502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25506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25509

그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을 중성적인 쪽으로 파악하고 있더군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왜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느냐'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답니다. 힙합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평소 취향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여자인 건 맞습니다. 이상형이 조인성이라는군요. 게다가 그린에 나갈 때는 피부 관리가 가장 걱정이라는(혹시 성적보다 더...?) 보통 여대생입니다. 그리고는 여고시절부터 가수 채연의 팬이고 지금껏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든 스포츠 스타들이 가장 경계하는 사진은 경기 현장에서 찍힌 사진들입니다. 땀이나 먼지로 엉망이 되기 쉬운데다, 스포츠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들은 연예인을 찍는 경우와는 달리, '실물보다 예쁘게 찍어야 한다'는 쪽으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나연은 '현장 사진'의 공포를 이겨내는 몇 안되는 스포츠 스타로 꼽힙니다. 물론 스포츠를 얼굴로 하는 건 절대 아니겠죠. 김연아나 박태환이 얼짱이 되기 위해선 용모 못잖은 우수한 성적이 따라 주기 때문입니다.

최나연도 어쨌든 LPGA 1승을 통해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골퍼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성적이 얼마나 따라주느냐가 '최나연'이란 이름을 보다 확실히 각인시키느냐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나연 프로필
생년월일=1987년 10월28일
출생지=경기도 오산
신장=168cm
혈액형=O형
학력=대원외고-건국대(재학)
가족=아버지 최병호(44), 어머니 송정미(43), 오빠 창환(24)
소속=SK텔레콤
KLPGA프로데뷔=2004년 11월
KLPGA투어 우승=통산 3승
LPGA 루키 시즌=2008년
LPGA투어 성적=준우승 2회(사이베이스클래식, 에비앙마스터스·2008년)
2008년 상금랭킹=109만6000달러(랭킹 11위)
2009시즌 최고 성적=SBS오픈 공동 3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쎄 늘 말씀드리지만 추천은 공짜 아닙니까. 소신있게 꾹!

728x90

'국가대표'가 감독판 상영 등으로 화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흥행 최고점은 지나친 듯 하지만 뒤늦게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 아직 적지 않은 듯 합니다.

'국가대표'가 주는 메시지는 자명합니다. 21세기의 '겉으로는 최첨단'인 대한민국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타인에 대한 관용의 결여'라는 부분에 대한 비판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 밥(헌태)은 스키 점프 대표팀의 정체에 대해 안 다음 자신이 이용당하고, 또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국가대표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낀 사람들은 그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재일동포인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국가대표

관객 800만 동원을 앞둔 영화 '국가대표'에는 밥(하정우)이라는 재미동포가 나온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아예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지만 밥은 애국가 1절 가사도 모른다. 자연히 '양키 새끼'라며 욕하는 동료와 갈등을 빚는다.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재일동포 출신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1961년 1월 1일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 처음 국가대표로 뽑혔다. 당시 나이 19세. 59년 8월 7일 재일동포 학생야구선수단의 일원으로 한국 땅을 밟은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최근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집 『꼴찌를 일등으로』에 따르면 가네바야시 세이콘(金林星根)으로 불리던 소년은 한국에 와서야 자기 이름이 '김성근'이라는 걸 알았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동포 여학생의 미소는 따뜻했다. 처음 먹어 보는 불고기 맛에 반했고 영화 '비극은 없다'의 주인공 김지미에게 매료됐다. 동료 선수의 친척들이 숙소로 찾아오면 그때마다 눈물바다가 펼쳐졌다. 뭉클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좋지만은 않았다. 경기 도중 교포 투수의 공이 경남고 4번 타자 박영길의 머리를 맞히자 관중은 일제히 '쪽발이 물러가라'며 야유를 보냈다. “일본에서 조센진이라고 차별받고 사는 것도 서러운데, 재일동포 선수단을 구성하는 일도 얼마나 어려운데, 쪽발이라니….” 국가대표가 된 뒤에도 '쪽발이'라는 수군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일민족'의 순혈주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인기 아이들 그룹 2PM의 리더였던 재미동포 출신 박재범은 4년 전 인터넷에 남긴 몇 마디 불평 때문에 하루아침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시애틀로 돌아가는 신세가 됐다. '군대도 안 가는 교포'라는 이유가 그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북돋웠다. “한국에서 돈만 벌어 돌아갈 거라면 지금 당장 꺼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혹시 한국식 생활 방식과 예절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4년 전의 그를 몰아붙인 결과가 '난 한국인들이 싫어(I hate Koreans)'라는 불만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을까. 그 실수 하나로 등을 떠밀듯 보낸 조국은 과연 그에게 어떤 나라로 기억될까. 그를 바라보는 다른 동포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은 까다롭고 차갑기만 한 나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2009년 현재 재외 한인의 수는 682만 명에 달한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성근 감독은 - 가끔 해설자로 TV에 나오는 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 아직도 한국어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 ㅇ 받침 발음은 절대 안 되는 편입니다.^ 그의 아들 김정준은 그에겐 여전히 '존준'입니다. '꼴찌에서 일등으로'를 보면 '고려왕'이라는 브랜드의 CF 모델로 나섰을 때 '고려왕'이 '고려완'으로 발음되는 바람에 수없이 NG를 낸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그가 1961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지 1년 반만에 국가대표가 됐을 때는 어떤 상태였을지 쉽게 상상이 됩니다. 1년 반을 모두 한국에서 산 것도 아닙니다. 학생야구단 원정을 왔다가 일본으로 돌아갔고, 고교 졸업후 프로 구단과 사회인 야구단 진출이 좌절된 뒤 한국 동아대에 스카웃되어 6개월 정도(그러니까 야구 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철도부 야구단의 선수로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꼴찌에서 일등으로'에는 '쪽발이라는 말을 들어도 올 수 있는 조국이란게 있다는게 좋았지만, 조국은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국가대표 투수로, 60년대 실업야구의 에이스로 명성을 떨친 그였지만 워낙 외곬수인 성격 탓인지, 아니면 서투른 한국어 탓인지 그는 수시로 코너에 몰렸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조국'을 따뜻하게만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한때 삼성에 김성길이라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언더스로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였죠. 그도 몇 차례 이런 어려움을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부산이나 광주 경기에서 이기고 있으면 어김없이 '이 쪽발이'라는 야유가 날아왔다. 일본에서는 내가 속한 팀이 이기고 있으면 '조센진'이라는 야유가 날아왔다. 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불과 15년 전 일입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일민족과 순혈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재외 한인의 수는 700만에 육박합니다. 결혼이나 기타 이유로 아예 이 통계에서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 자손들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국인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를 자진해서 이어 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먼 해외에서 그런 문화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배척하다 보면 결국 한국은 자꾸 작은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윗글에서는 분량때문에 제외했지만, 700만에 달하는 재외 한인은 물론이고 한반도 안에서의 '다문화 가정'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용모는 같지만 한국말도 못하는' 부류와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딘가 용모가 이질적인' 사람들은 이미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단일민족의 신화에 매달리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인 풍토가 자리해야 합니다. 더 넓게 수용하지 않으면 이 나라 앞에는 점점 더 쪼그라들거나, 쪼개지는 길이 선명해 질 뿐입니다.



728x90
팬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JYP는 "박재범 없이 6인 체제 2PM의 활동을 재개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박진영 명의로 된 발표문에는 분칠이나 화장이 없더군요. 직설적으로 "재범이에게 쏟아졌던 비난의 말씀이 과했다고 생각했던 것만큼, 지금 당장 재범군의 탈퇴철회를 요구하는 말씀도 조금 과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는 말을 통해 당장 팬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최초 사건 발생 시점부터 JYP의 대처를 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일정한 원칙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움직임과 그 원칙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팬들입니다. 팬들에게는 그 움직임의 방향이 보이지도 않는 듯 합니다. 네비게이션도 없습니다.

오히려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에서 판단한다면, 현재 박재범의 앞날에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은 팬들로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일단 팬들의 주장을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JYP는 박재범을 보호하지 않았다?

이것이 아마도 2PM 팬들의 생각인 듯 합니다. 그래도 나름 이 바닥에서 꽤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으로서, JYP의 대처를 볼 때 현재까지 취해진 조치는 박재범을 위한 최선의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박재범에게 사건 발발과 함께 쏟아진 비난이 그리 정당하지만은 않았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건 직후의 하늘을 찌를 듯한 네티즌의 분노와 비난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여론이 어느 정도 이성을 찾았다고 생각됩니다.

2PM 팬들이 판단력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과연 재범이 그대로 한국에 남아서 어떻게든 '그건 과거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이렇게 빠른 국면의 전환이 가능했을까요? 박재범의 미국행을 JYP가 막았다면 전체 여론(팬들만의 여론이 아닌)이 그에게 쏟아진 비난이 지나쳤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요?

일부 팬들은 '그렇게 추방하듯, 이코노미 좌석에 태워서 쫓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참 답답한 일입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한국을 떠나는 박재범이 편안한 퍼스트 클래스에 타고 출국했다면 과연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도 거론했지만 2PM은 박재범 혼자가 아닙니다. 과연 나머지 여섯 멤버들이 박재범 때문에 함께 비난받는 일까지 감수해야 했을까요. 그랬다면 JYP는 정말 무능한 회사였을 겁니다. 박재범과 나머지 여섯 멤버를 분리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복을 막기 위해.... 이번 사건에 대한 저의 기본 생각은 이렇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박재범을 복귀시킨다는 약속을 해라!

문제는 박재범의 복귀 시점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4800만 전 국민이 박재범의 팬이라면 모를까, '박재범을 용서'하거나 '다시 활동을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을 할 수 있는 것은 전 국민입니다.

박재범이 JYP 숙소에서 돈을 훔쳤다거나, 후배 멤버들을 구타했다거나 하는 문제라면 박재범이 계속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팬들이 가장 먼저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다릅니다. 박재범이 4년전에 저지른 잘못이 정말 대단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만 보이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는 '여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론'의 성숙은 그 판단의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과연 팬들에게 그 시기를 판단할 능력이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팬들이 '탈퇴 철회', 혹은 '나중에라도 반드시 복귀시킨다'고 약속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것이 '당장 복귀시키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팬들은 주장하지만, 과연 그것이 차이가 있을까요. 외부에서 보는 시각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왜 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박재범 없는 2PM은 보이콧한다?

반대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박재범이 언젠가 국내에 복귀해 활동을 하는 날이 온다고 예상해 보겠습니다. 그때 만약 2PM이 없다면, 혹은 2PM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실패한 유닛이 되어 있다면 그때에도 복귀가 가능할까요? 아니, 복귀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대중의 취향이란 무서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보입니다. 3주 전 쯤의 2PM은 최고의 인기 아이들이었지만 6개월 전, 1년 전의 2PM을 보고 오늘날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6개월 후, 1년 후의 2PM의 모습을 생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정상의 위치에 와 있는 2PM이 재범의 문제와 함께 막연히 활동을 쉬는 동안, 또 다른 어떤 신인들이 나와 그 자리를 위협할지 모릅니다. 기존의 다른 팀이 새로운 이미지로 그 인기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안정된 인기란 없습니다. 전성기의 모습으로 어떤 유닛을 평가한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오류입니다. 한번 얻은 인기가 영원하다면 H.O.T나 god 멤버들은 지금도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어야겠죠.

지금 2PM 멤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사람들이 2PM을 잊지 않도록, 그리고 박재범을 잊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는 것 뿐입니다. 2PM이 건재해야 - 언제쯤 가능해 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 박재범이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팬들이 박재범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은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여인이 남자를 위해 항상 최선의 판단을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랑에 눈이 먼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박재범의 팬이 아닙니다. 단지 구경꾼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구경꾼의 눈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솔직히 팬들이 이 글을 읽고 태도를 바꿀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뻔히 보이는 일이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게 그냥 좀 답답할 뿐입니다.



728x90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이 폭력 사건 연루로 시끄럽습니다. 안 그래도 남성 아이들 그룹들이 잇달아 내부 분열, 표절설, 물의와 탈퇴 등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데 이번엔 폭력까지 끼어들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갑기만 합니다.

그런데 강인이 연루됐다는 이번 사건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뭔가 있어선 안될 일이 있었다는 정황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경찰과 관련된 인물이 인터넷을 통해 이번 사건을 처음으로 알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 바로 느낌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씨인사이드에 코메디 갤러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강인이 경찰서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16일 오전 6시58분의 일입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지워서 글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있던 주소는
http://gall.dcinside.com/comedy/52114310  이었습니다.)

제목은 '강인 술퍼먹고 싸우다 잡혀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 말씀드렸지만 원글은 현재 지워진 상태고, 누군가가 글을 그대로 캡처한 내용만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습니다. 아무튼 6시58분은 이 사건이 알려지기 훨씬 전입니다. [단독]이라는 간판으로 이 사건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가 처음 나온 것이 오전 8시42분.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은 최초 보도보다 거의 2시간 가까이 빠릅니다.

그때문에 아래 댓글의 반응도 '장난치는거 아니냐'는 식의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입니다. 하지만 글을 올린 사람은 '강인의 본명이 김영운 아니냐', 심지어 '나 경찰서에서 일한다'고 자기의 신원을 드러내기까지 합니다.

물론 진짜 경찰관이나 경찰서에서 일하는 전-의경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의 신분을 사칭해 장난으로 올린 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초 보도가 있기 2시간 전이라는 점, 강인의 본명이나 시비가 붙었던 업소의 이름까지 적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MBC 기자에게 전화왔으니 곧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까지 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글을 올린 인물은 사건이 진행될 당시 경찰서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게 됩니다.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인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올린 사람은 강인이 경찰서에 온 것을 봤을 뿐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술먹고 싸우다 끌려왔다'는 내용을 유출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이나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온 사람의 신원을 공개해 버린다는 것은 직업윤리의 심각한 부재라고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이 정말 경찰서에 있던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건과 비교할만한 사건이 몇해 전에 있었습니다.

서울지법 민사84단독 예지희(芮知希) 판사는 26일 탤런트 황수정씨(33)가 “재소자 검색프로그램에 실린 수의(囚衣) 차림의 내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돼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국가와 사진 유포자 정모씨(교도소 경비대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2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씨가 재소자 검색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황씨의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군인 신분으로 교도소에 배치된 정씨에게 재소자 검색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방치한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하 생략, 동아일보 2003년 6월26일 보도)


문제의 전 교도대원은 황수정과 성현아의 사진을 인터넷에 유출한 죄가 인정돼 손해배상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실제로 죄가 있었고, 복역중인 상태였지만 죄수복 차림의 사진을 유출하는 것은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에 해당하는 죄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 유출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장난치듯 사진을 흘렸습니다.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사진을 유출하지 않았겠죠.

더구나 강인은 지금 실제로 폭행에 가담했는지를 조사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혐의가 범죄로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관들이 피의자의 신상을 개인적으로 흘려 내보낸다면 과연 누가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기관의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접할 수 있는 개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누구보다 충실하게 보호하고 보안을 유지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임을 망각했거나, 아예 처음부터 죄의식 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강인이 폭행에 가담했건 안 했건, 이런 사건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의 신상정보가 너무도 간단하게 빠져나오는 일은 그 몇배나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부 경찰들이 심부름센터 업자들과 결탁해 용돈을 받고 몇몇 사람들의 신원 정보 등을 유출해 물의를 빚은 사건도 이런 보안의식의 부재와 밀접한 관계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한 얘기가, 모두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경찰서 근무자를 사칭해 벌인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경찰이 내부 기강을 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 이 글은 강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법기관에서의 개인 정보 유출 혐의에 대한 글입니다. 제대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MBC TV '선덕여왕'이 32강 비재 선수권대회로 시청자들을 확 끌어당겼습니다. 이럴 때 역시 불쌍한 건 주인공입니다. 이미 이 대목에서 유신이 풍월주가 된다는 건 정해진 사실인데도, 역으로 유신이 너무 쉽게 우승하면 극의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개고생을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이 던진 것은 비담이라는 새로운 변수. 그냥 유신과 보종이 각각 싱거운 4연승으로 결승에 올라 맞붙으면 너무 단순한 얘기가 되는 반면, 검술 실력만으로는 유신과 보종을 앞설 수 있는 비담의 등장이 새삼 긴장을 불어 넣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비담이 시청자들에게도 널리 호응을 받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극중 인물들의 입장에서 보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나 모두 해당되는 말입니다. 먼저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비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갸웃거리는 반응을 보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문제를 겪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송 내용으로 볼 때 비담의 문제 해결 방식은 참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도덕관이나 예의범절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곧바로 결론으로 치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떼도둑들로부터 서책이 담긴 가방을 되찾으려면 그냥 그들을 죽이면 됩니다. 범죄나 살인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지만, 감히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고, 상상한다 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걸 사이코패스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인들과는 매우 다른, 초 효율적인 사고방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비담의 존재는 덕만이건 미실이건 진평왕이건, 심지어 그를 키운 스승 문노에게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됩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동시대의 신라를 살아왔고, 당시 사회의 가치와 판단 기준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인물들입니다(엄밀히 따지면 덕만이야말로 이런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어쨌든 지금은 공주라는 위치에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잘 적응하고 있으므로 따지지 맙시다).

하지만 비담은 다릅니다. 아직까지 비담의 마음 속에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은 알게 됐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려 할지도 모르는데다, 그 '무엇'을 하기 위해서 대체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담은 다른 모든 캐릭터들을 긴장시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청자들에게도 이런 비담의 행보는 흥미를 북돋는 요소입니다.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애같은 모습으로, 또 때로는 음험하고 속 깊은 음모가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수시로 변신하는 비담의 모습은 그의 앞에 펼쳐진 스토리조차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더구나 비담의 이런 모습은 유신과 덕만 등 '고지식 캐릭터'에 답답함을 느끼던 시청자들에게는 청신호입니다. 뻔히 돌파할 길이 있는데, 조금도 곁길이나 속임수를 쓰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그저 정도를 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이때 비담이 나타납니다. 대략 이런 상황이 펼쳐집니다.

비담: 니가 고민하던 문제, 내가 해결했어.
유신: 네 이놈, 이게 말이 되는 짓이냐!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했어!
비담: 왜? 안되나? 원래 이렇게 되길 바란거 아냐?
유신: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해주진 않아! 난 정당하게 해야 해! 이건 반칙이야!
비담: 그래? 할수 없지. 그럼 도로 원래대로 해 놓고 올게.
유신: (바짓단에 매달린다) 야, 잠깐만,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그게 아니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승부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유신과 알천의 대결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모두 '그래, 저게 진정한 승부지'라고 감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이런 부분을 해소해 주는 것이 바로 비담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비담에게선 '전통 질서의 파괴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2강 비재에서도 비담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입니다. "난 엉덩이만 노려"나 엉덩이 춤 같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가 하면, 문노나 덕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자신도 신라 정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야망을 드러냅니다.

이런 비담의 행동은 이미 대략 정해져 있는 화랑들의 무공 서열에서 상당한 변수 역할을 합니다. 그것도 흥미의 요인이죠.


물론 비담의 문제 해결 방식이 때로는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차와 관습, 규범이라는 것은 괜히 생긴게 아니죠. 우리 편이라면 이렇게 상대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멤버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겠지만, 문제는 비담 같은 캐릭터는 과연 언제까지 우리 편일지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누구를 배신하는 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죠.

'선덕여왕' 제작진의 가장 큰 성과는 현재까진 비담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그 정착입니다. 이런 캐릭터 활용이 다소 수준 낮은 역사 해석에서 오는 줄거리상의 문제점들을 잘 덮고 있습니다. 아무튼 비담의 활약은 춘추의 등장과 함께 이 드라마의 흥미를 끝까지 끌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궁을 떠나 오래 생활한 춘추 역시 진평왕이나 미실이 볼 때 도저히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담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담과 춘추가 대면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춘추는 정말 저렇게 꽃미남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2. 보너스 샷은 보종의 암바-^^  전국 화랑 이종격투대회가 돼 버렸군요.

맘에 드시면 팍팍 추천 부탁드립니다.-
728x90

MBC TV '선덕여왕'이 마지막 카드를 다 펼쳤습니다.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김춘추 역의 최종병기 유승호군이 예고편에 살짝 얼굴을 내밀었군요. 많은 분들이 지난주에서 이번주로 넘어오는 '삼한일통' 에피소드의 실망감을 씻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김춘추는 신라는 물론 한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엄친아 왕으로 거론됩니다. 미남 귀공자로 학식과 덕망, 그리고 현실 정치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승호라는 차세대 꽃미남이 청소년기의 김춘추 역으로 일찌감치 캐스팅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김춘추는 정말 미남이었을까요? 혹시 요즘의 시각으로 볼 때 전혀 미남이 아니거나 오히려 특이한 용모는 아니었을까요? 의혹을 추적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승호가 김춘추 역에 캐스팅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김춘추가 미남이라는 기록은 여기 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김춘추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고모도쿠(孝德)왕 시대. '김춘추는 잘생기고 말을 아주 잘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봐도 그렇습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당나라 황제가 김춘추의 용모를 칭찬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 태자(동궁) 자격으로 고구려 정벌을 위해 청병차 당나라에 들어갔다. 당나라 임금이 그 풍채를 칭찬해 '신성한 사람'이라고 하고 굳이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원했지만 애써 설득시켜 돌아왔다. (在東宮時 欲征高麗 因請兵入唐 唐帝賞其風彩 謂爲神聖之人 固留侍衛 力請乃還)

뭐 물론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아무튼 대표적인 귀공자의 풍모를 가진 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사인 '삼국사기'도 짧지만 왕의 외모와 총명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왕은 의표가 뛰어나고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을 지녔다(王儀表英偉, 幼有濟世志)

이런 기록들을 훑어볼 때 외모가 출중했던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의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그것은 '삼국유사'에서 위에 서술한 '신성지인'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왕은 하루에 쌀 서말과 장끼 아홉마리씩을 먹었다. 백제가 망한 뒤에는 점심을 거르기 시작했지만 이때도 하루에 쌀 여섯말, 술 여섯말, 꿩 열마리를 먹었다. (王膳一日飯米三斗 雄雉九首 自庚申年滅百濟後 除晝膳 但朝暮而已 然計一日米六斗 酒六斗 雉十首)

그러니까 백제 멸망 이전까지는 한끼에 밥 한공기(한 말 크기)와 꿩 세마리 씩을 드시다가 백제 멸망 후에는 아침과 저녁만 먹는 대신 한끼에 쌀 세말과 꿩 다섯마리를 드신 모양입니다. 오히려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한끼에 드시는 양은 더 많아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략 꿩의 크기를 닭과 비슷하다고 친다면,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덜 먹을 때 하루에 치킨 아홉마리(혹은 삼계탕 아홉 그릇), 좀 더 먹을 때에는 치킨 열 마리를 드시는 분은 과연 어떤 체형을 갖고 있을까요. 이건 일반인의 식사가 아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게 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양은 절대 아닙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다른 숫자들(예를 들어 지철로왕의 체격이나 진평왕의 키 같은)에 비하면 대단히 현실적인 숫자입니다. 요즘도 웬만한 고등학교 씨름부 학생이라면 저 정도는 거뜬히 먹을 겁니다. 즉,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체형은, 요즘의 꽃미남들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란 점입니다. 저렇게 먹고 얼마나 운동을 했을 지 모르지만, 아마도 모델보다는 씨름 선수에 가까운 체형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의표가 출중하고', '용모가 신성하다'는 것이 반드시 요즘의 시각에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위에 나오는 마신 부우 같은 체형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비명을 지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시대엔 저런게 미의 상징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대가 있다면 그때 태어났어야 했는데...)

물론 저 식사량 얘기가 아예 '왕을 신비롭게 그려내기 위한 조작'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보시는 분들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얼굴을 강호동이나 개그맨 유민상에 맞추기보다는 유승호로 상상하시는 것이 여러 모로 정신건강에 좋겠죠. 뭐 누가 실제로 만나보고 온 것도 아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무 길어져서 태종무열왕의 능력치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추천이 공짜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팍팍!

비담의 활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728x90

오래 전,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개'가 무엇이냐는 넌센스 퀴즈가 있었습니다. 정답은 '아이템 세 개'. 이와 유사하게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물고기가 뭐냐'는 것도 있었죠. 정답은 아이디어(魚)였죠. 그만치 기획 회의라는게 지긋지긋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아마도 '섭외'일 겁니다. 기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방송국에서도 구성작가의 역량으로 집필력 못잖게 섭외력이 중요한 기준이 된지 오랩니다. 연예인들의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사회 전분야에서 연예인 섭외의 수요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 축제는 물론 어지간한 고등학교 축제에도 연예인들이 필수라더군요.

QTV '열혈기자'에서도 출연자들을 자주 좌절시키는 것이 바로 이 섭외입니다. 요즘 '내가 만약 저런 미션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친구들은 과연 어떻게 연예인들을 섭외할 수 있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QTV에서 진행중인 '열혈기자'는 연예기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두명의 도전자가 매주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승자 1명이 채용되는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도전자들은 첫회부터 섭외의 무서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첫 미션이 각각 3명씩의 연예인 이름만을 받고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라면 잘들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잘들 해 내더군요. 내심 놀랐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최근 네번째 미션으로 주어진 것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계 현상을 영상 뉴스로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미션이 '사진만 찍어 오면 된다'는 것이었다면, 네번째 미션은 한 단계 더 어려워 진 셈입니다. 이번엔 최소한 인터뷰까지 따 와야 하기 때문이죠.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봤습니다. 팀마다 대응 방안이 달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번째 팀. 이 팀에는 삼촌이 방송국 간부인 K양이 있었습니다. K양에겐 정말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셈이죠. K양은 첫번째 미션 때에도 삼촌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삼촌의 도움으로 K양은 웬만한 취재 공력으로는 가기 힘든 곳까지 출입하며 영상에 담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친척의 도움으로 앉아서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닙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음악 페스티발을 취재하는 열의도 보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히려 '앉아서 쉽게 떡먹기를 한 팀'은 두번째 팀이었습니다. 이 팀에는 모 기획사 사장님이 집안 어른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K군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팀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여성 5인조 카라 측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촬영 내용은 정말 영양가가 넘쳤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갔어도 저렇게 협조가 잘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문제는 쉬운 떡을 그냥 먹었을 뿐, 참신한 구상이나 기획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보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번째 팀. 이 팀 멤버들에게는 '방송국 삼촌'도, '기획사 사장님과 친한 삼촌'도 없었습니다. 결국 '일반인의 뼈저림'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 것도 이 팀이었죠.

이들은 (1) 연예인의 이름을 죽 적는다 (2) 인터넷을 이용해 기획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따낸다 (3) 기획사마다 전화를 한다는 단순 무식 돌파력의 3단계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오기 하나로 수백명의 기획사에 전화를 한 것이죠. '영상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으로.

그렇게 해서 딱 한명의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인맥 없는 섭외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영상 뉴스=연예인 인터뷰 섭외'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반드시 인터뷰만이 영상 뉴스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어려움 끝에 간신히 섭외에 성공하니 기쁨 두배.)

이렇게 세 팀의 미션 해결 과정을 살펴보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사람과의 대화를 편의상 한 사람으로 정리했습니다.)

- 혹시 요즘 일반인들로부터 섭외 요청이 있나?
"글쎄, 일반인이라니, 어떤 일반인들 말인지?"

- 이를테면 행사 섭외.
"뭐 행사전문업체를 통해서 올 때가 더 많다. 그냥 일반인들이 바로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 대학 총학생회 같은 곳은 자기네가 직접 연락을 하잖나.
"그런 데는 이미 프로고... 그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정보 교환도 하고 해서 이제 사정에 아주 빠삭하다. 몇군데 학교가 연결해서 가격 네고까지 들어온다."

- 고등학교는?
"고딩들은 아직 '아무개 방송사 누구 피디 아들 다니는 학교' 이런 식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고딩들이 직접 전화해서 섭외하고 하는 일들은 드문 것 같다. 학부형들이 대신 전화한다."

- 드물다면 있긴 있단 말인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애일텐데 너무 애 아닌 척 해서 좀 재수없었다. 지가 어른인줄 아는 것 같았다. 애들은 좀 애 같은 맛이 있어야지."

- 그래서 안 갔나.
"스케줄도 안 맞고 해서 안 갔다. 뭐 재수없어도 조건 맞으면 갈수 있었지."

- 일반인이 직접 연락하면 잘 해주나.
"학교 방송제에 축하 영상 따 달라는 연락은 엄청나게 많이 온다. 다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건 웬만하면 해주려고 한다. 사인 해 주는 거랑 비슷하고... 안해주면 요즘은 인터넷에서 씹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무료봉사, 자선 요청도 많을텐데.
"사실 이런게 더 부담스럽다. 시간 많이 뺏기고, 돈은 당연히 안 되고... 한군데 가면 거기는 가고 왜 우린 안 가냐는 말도 나오고. 거기다 가끔 사기도 있다. 분명 무료 행사라고 갔는데 가보면 사람들이 '돈내고 들어와서 이게 뭐냐'고 한적도 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무대에 안 올라가면 욕은 우리가 먹는다. 웬만하면 검증된 곳만 하려고 한다."

- 결혼식 축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달라면 사실 난감하다. 그래도 아는 사람의 축가라야 가수도 할 맛이 나지 않겠나. 가끔 아는 피디의 친구의 친구까지 해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이건 양심불량이다. 축가 해주고 돈 달라 할 수도 없고 - 물론 주면 받긴 하지만 - 가수한테 미안하다. 팬들 축가는 해준 적 있다."

- 일반인이 연예인 섭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잘 알면서 왜 그러나? 일단 뭐니뭐니해도 인맥이 최고다. 기자도 있고 피디도 있지만, 매니저만큼 연예인 섭외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아는 매니저가 있으면 최고다. 같은 처지라서 한번 도와달라고 하면 다들 도와준다. 언제 입장이 바뀔지 모르니까."

- 그게 안되면?
"팬클럽 회원이라도 있어야지. 싸이 1촌이라도 아무 관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물론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성을 보이고, 세상 이치를 좀 알만한 사람이면 얘기 못할 사람 없다. 페이 문제도 있고, 사기도 많으니까 경계하는거지 우리가 무슨 사람을 가리거나 하는 건 아니다. 정성을 들이고 믿음이 가고 하면 도와줄 일은 도와주고 돈 받을 일은 돈 받고 한다. 그렇게하면 중간업체 안 끼고 할수도 있지. 뭣보다 정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평소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키워드는 결국 '정성'이었습니다.

'열혈기자' 멤버들이 만난 클릭비 오종혁의 말도 그랬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말을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미리 연락 안 하고 현장에 가서 몸으로 부딪히는게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이 사람이 나를 진정 필요로 하고 있고, 이런 정성을 갖고 있다고 설복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뜻이죠. )

결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 가장 중요한 건 정성과 진심이더군요. 여기에 인맥을 더하면 제목에서 말한 세가지 조건이 완성됩니다. 정성과 진심이 통할 때라면, 당장은 안 될 일이 있을 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안 될 일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참 많은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맨땅'에 헤딩한다고 뭐든 그 자리에서 해피엔딩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피엔딩은 먼 미래의 일까지 감안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정말 진심을 담아 노력하면 당장은 안 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가장 손쉬운 길인 '인맥'을 형성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정성'과 '진심'이기 때문이죠. 이건 반드시 연예인 섭외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P.S. '인맥이 중요하다'고 해서 저한테 부탁하진 마세요.^ 저 힘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가지 마시고 아래 추천을 좀 꾸욱.;;

P.S.2. QTV '열혈기자' 방송시간입니다.

화요일 오후 11시 (말하자면 '본방'은 이때입니다)
목요일 오전 1시
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9시
일요일 오전 11시
월요일 낮 12시


728x90

아이들(idol) 그룹 멤버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방신기 사태는 물밑에서 장기화되어 가는 듯 하고, 2PM의 리더 재범이 미국으로 돌아간데 이어 SS501의 김현중은 신종 플루로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공통점 없는 사건들이지만 이런 뉴스들이 일으키는 반향을 보면, 이들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대체 아이들이 뭐길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한국은 1996년 H.O.T의 출현과 함께 아이들 시대를 맞게 됩니다. 10년이 조금 넘은 역사죠. 아이들 그룹의 운영이나 결성에 있어 아직 한국은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그룹이라는 존재와 사회적인 영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우를 참고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아이들 그룹을 만들고, 독특한 운영 노하우를 키워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아이들 그룹 운영은 올해로 47년에 달합니다.

일본 아이들 그룹을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자니즈의 팬이었던 분들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일 겁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의 '아이들 입문'을 위해 쓴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이버 펑크라는 문학 장르를 세상에 알린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의 장편 소설 중에 '아이도루(Idoru)'라는 작품이 있다. 1997년작이다 보니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일본의 사이버 가수 교코에 착안한 미래 사회의 사이버 스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은 아이들(Idol)이 아니라 아이도루(Idoru)일까. 당연히 '아이도루'는 '아이들'의 일본식 발음이다(사실 한국에도 '아이들'보다는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아이돌'이 공식 표기 방침이기도 하다). 깁슨은 소위 '만들어진 아이들 스타'는 미국보다 일본이 원조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아이들 그룹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필요할 듯 하다. 보통 팝 아이들(pop idol)이라고 하면 십대들이 열광하는 인기 스타를 통칭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렇고 비틀즈도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 그룹이라는 말은 특정한 형태의 뮤지션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즉 ▲10대 초반, 늦어도 10대 중반부터 전문적인 기획자에 의해 발굴된 멤버들로 구성돼야 하고 ▲데뷔 전 상당기간의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며 ▲가사와 음악 역시 전문적인 기획자들에게 의존하며 ▲팬들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해가는 운명을 갖는다는 점이 아이들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팀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볼 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팝 아이들이긴 하지만 아이들 그룹은 될 수 없다.

영미권에서는 보이 밴드(boy band)라는 말이 좀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이 말 역시 사용되면서 의미가 조금씩 변했다. 처음 쓰인 것은 마이클 잭슨과 형들로 이뤄진 잭슨5가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한 1968년 무렵이다. 이 시기의 보이 밴드라는 말은 그냥 나이 어린 멤버들로 이뤄진 그룹이라는 정도였지만, 1984년 뉴 키즈 온 더 블럭이 신화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보이 밴드=아이들 그룹'이라는 시각이 보편화됐다.

그런데 아이들 그룹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과 잭슨 5가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인 1962년, 이미 오늘날의 형태와 거의 차이가 없는 아이들 그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일본에서 결성된 사상 최초의 아이들 그룹 자니즈(Johnnys)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31세였던 자니 기타가와는 16세의 마이에 히로미와 이이노 오사미, 15세의 나카타니 료, 14세의 아오이 테루히코 등 네 미소년을 모아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그룹을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인 기타가와는 주일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가 우연히 음반 기획자로 변신했다.

자니즈는 멤버들 개개인의 매력은 물론 쉽고 밝은 노래,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춤과 몸짓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또 멤버들은 청소년 대상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기타가와는 아예 재능있는 소년들을 조기에 발굴해 제 2의 자니즈로 키워낼 수 있는 기획사를 창업한다. 이것이 바로 자니즈 사무소의 시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사 자니즈라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일본 연예계에 손톱만큼의 지식만 있다면 자니즈 출신 보이 밴드들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들 그룹이 자니즈라면 70년대에는 포 리브스(Four Leaves)가 있었고 80년대에는 본격적인 댄싱 아이들 그룹 쇼넨타이, 즉 소년대(少年隊)가 위력을 뽐냈다. 1984년 3인조로 구성된 쇼넨타이의 인기는 곧바로 국내에도 이어져 소방차라는 대체 그룹이 만들어졌다. 물론 자니즈의 최대 걸작은 1991년 데뷔한 SMAP다.

1988년, 기타가와는 당시 인기 아이들 그룹이던 히카루 겐지의 백댄서로 12명의 소년 댄싱 팀을 가동시켰다. 이미 스타가 되어 있는 팀과 함께 무대에 세움으로서 누가 실전에서 통할지를 검증하는 방법이었다(이런 시스템은 나중에 자니즈 주니어라는 '2군' 체제로 확립된다). 이 12명 중 기무라 타쿠야, 나카이 마사히로, 구사나기 츠요시(초난강), 이나가키 고로, 가토리 신고, 모리 가쓰유키의 6명이 SMAP이라는 새로운 팀으로 선택됐다. 1991년 이들이 정식 데뷔했을 때의 나이는 나카이와 기무라가 19세, 이나가키와 모리가 18세, 구사나기가 17세, 막내인 가토리는 14세였다.

일본 아이들 역사상 최고의 그룹으로 불리는 SMAP은 1993년 '캐릭터 부여'라는 새로운 전략과 함께 순항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에 따라 나카이는 열정적인 리더, 이나가키는 시니컬한 귀공자, 구사나기는 배려심 강한 착한 친구 등의 이미지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기무라 다쿠야가 드라마에 데뷔하며 뒷날 일본 최고의 인기남으로 발돋움할 계기가 만들어진 것도 1993년의 일이다. 1996년 모리의 탈퇴로 5인조가 된 SMAP은 오늘날까지도 그룹을 유지하면서 멤버 개개인이 모두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이 함께 진행하는 토크쇼 'SMAP X SMAP'에 게스트로도 초대되느냐 마느냐는 한류 스타들이 일본 내에서 스타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통할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MAP 이후에도 자니즈는 V6, 아라시, 캇툰(KAT-TUN) 등 최정상의 인기 그룹들을 배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성 멤버가 단 한명이라도 있는 그룹은 배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니즈는 1980년대 오렌지 시스터즈라는 여성 그룹 프로젝트를 시도하다 실패한 것 외에는 아예 여자 연습생을 받지 않고 있다.

이런 운영은 곧바로 기타가와의 성적 취향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기타가와는 여러 차례 자기 휘하 아이들 멤버들에 대한 성희롱 혐의를 받았다.

1999년, 일본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슈칸분슈운(週刊文春)은 자니즈 내부의 성추행과 음주, 흡연 등 어두운 구석을 캐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이로 인해 자니즈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됐고, 기타가와는 의회 청문회에도 나서야 했다. 혐의를 전면 부장한 기타가와는 곧 슈칸분슈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은 5년 이상 진행되다가 결국 '슈칸분슈운 측의 취재에는 자니즈의 비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보도할만한 근거가 있었다. 단 음주와 흡연 부분에서 자니즈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다소 애매한 결론이 내려졌다. 물론 이런 내용 역시 주요 언론에 의해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고, 자니즈는 지금도 최고의 미소년 아이들 그룹들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동성애나 성추행 부분을 제외하고 한국의 아이들 업계는 대동소이하게 자니즈 모델을 모방하고 있다. 90년대 초에도 잼이나 투투, 룰라 같은 댄스 그룹들이 인기를 얻었지만 최초의 한국형 아이들 그룹이라면 아무래도 1996년의 H.O.T를 꼽게 된다. 이후 SM이 S.E.S와 신화, 대성기획(현 DSP)가 젝스키스와 핑클을 내놔 성공을 이어가자 이들을 모방한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급조된 아이들 그룹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SM과 대성기획 이외의 기획사 소속 아이들 그룹 중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것은 소방차 멤버 출신 김태형이 제작한 NRG 정도일 뿐, 나머지는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F와 가요계의 경기 추락은 '신생 아이들 그룹'의 맥을 끊었다. 아이들 그룹은 고비용일 수밖에 없다. 연습생이건, 데뷔 초년생이건 백댄서와 스태프를 포함해 장정 10~20여명이 몰려다니면 밥값이나 교통비만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공백을 깬 건 역시 SM. 2004년 등장한 동방신기는 오랜만에 아이들 그룹에 목말랐던 10대 팬들에게 감로수 역할을 했다. 4~5팀을 만들 에이스들을 뽑아 한 팀에 몰아넣었으니 자질은 우수할 수밖에 없었고 동방신기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아이들 그룹 비즈니스의 필연인 장기 계약과 처우 문제는 또다시 그룹의 장래에 암운을 던졌다.

일본이라면 어땠을까. 자니즈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기본적으로 모든 계약은 주기적으로 갱신되지만 사실상 종신 계약이라고 보는 게 좋다. 자니즈가 포기하지 않는 한, 스스로 자니즈를 벗어나 연예계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니 기타가와와 슈칸분슈운의 법정 분쟁이 진행중인 기간에도 분슈운(文藝春秋)계열의 매체를 제외하곤 어떤 방송이나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만치 자니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류 스타들을 놓고 일본 매체 기자들이 가장 의아해 하던 것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무소(소속사)가 자주 바뀌냐"는 것이었다. 일본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동방신기의 이익 배분 논란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니즈는 물론 어떤 기획사에서도 한창 인기가 치솟는 20대 초반의 청춘 스타들은 돈을 벌지 못한다. 소속 연예인들은 연공 서열과 왕년의 활동 경력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당장 인기 있는 최고 스타보다 10년 20년 '근속'한 왕년의 스타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이것이 일본의 '사무소' 시스템이다. 일본 연예인들에게 데뷔 5년째인 가수들이 1인당 20억원 넘게 돈을 벌었다고 하면 눈이 휘둥그레 질 것이다.

아이들 그룹이란 연예계의 냉혹함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학업과 학교생활로 보낼 10대 시기를 이른 직업훈련으로 보낸 아이들 그룹 멤버들은 춤과 노래, 그리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을 제외하면 성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이 결핍되기 쉽다. 물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설사 아이들로 성공한다 해도 그 전성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찬란한 시기를 되새김하며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함을 동경하는 10대들은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결국 이들에게 조언해줄 어른들의 현명함만이 비극을 줄일 수 있다.
(끝)



좀 더 길게 썼어야겠지만 주어진 지면의 한계로 이 정도에 끝냈습니다. 미국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비교 등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쇼넨타이가 활동하던 80년대만 해도 한국은 단순히 일본 대중문화의 모방국이었습니다. 쇼넨타이가 준 충격이 바로 이 분들을 만들어 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쩌면 한국 최초의 아이들 그룹(?)이라고 봐도 좋을 이 분들은 당시에는 초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분들이 성공을 거둔 이후로 차츰 댄스 그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햇죠. 일본과는 달리 혼성 그룹들이 두각을 보였습니다. 윤현숙의 잼을 비롯해 투투와 룰라의 전성기가 있었고, 노이즈도 이 시기를 빛낸 그룹이죠.

그런 시기를 지나 이제는 한국산 아이들이 일본 시장을 넘나들며 한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아이들 그룹이라고 해도 일본에서는 10대 시장을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등의 문제는 있지만 절대적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한 것만으로도 상황은 고무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 그룹의 육성과 운영은 꽤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물론 그 멤버 개개인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학교생활과 바꾼 배움의 장이라는 면에서 더더욱 그렇죠. 글 말미에 '어른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그런 부분들을 고려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아이들 그룹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팬들입니다. 팬덤의 결집과 육성, 관리는 아이들 그룹의 생존과 지극히 밀접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팬들의 사랑은 맹목적이라는 겁니다. 이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애당초 정상적인 판단을 요구한다면 아이들 그룹이라는 현상 자체가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팬들의 이런 맹목적인 사랑은 가끔 아이들 아티스트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지나친 팬들의 사랑은 가끔 스토킹으로 변하기도 하고, 안티 팬들을 불러모으기도 합니다. 팬덤은 흔히 아이들의 기획사와 대립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그릇된 판단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가끔 팬들은 아픈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도 긴 주삿바늘이 아기를 찌르는 걸 볼 수 없다며 한사코 아기를 내려놓지 않는 엄마를 연상시킬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팬들의 사랑은 아이들 아티스트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때로 팬들은 그들의 우상을 죽인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기도 합니다. 요즘도 팬들의 바보같은 사랑때문에 완전히 재기불능이 될 지도 모르는 한 아이들 아티스트의 모습에 눈길이 갑니다. 과연 그 팬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바로 '오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글에 많은 내용을 담느라 부실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연재를 하다가 > 여기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요즘은 스타 아나운서가 없을까  (52) 2009.03.11
728x90

MBC TV '선덕여왕' 제작진은 퀴즈놀이에 푹 빠진 듯 합니다. 저번에는 '사다함의 매화'로 낚시질을 하더니 이번에는 유신과 보종의 비재 대결에서 신라(新羅)라는 국호의 세번째 의미(?)를 묻는 문제로 다음주 월요일까지 시청자들을 붙잡아 놓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비밀이 다음주까지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답은 이미 8일 방송된 드라마 속에서 전부 나와 있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답이 있어서 설마 이게 답일까 했던 분들, 여러분의 생각이 맞습니다. 정답은 삼국통일입니다. 그 밖에 무슨 답이 또 있겠습니까.

특히 주인공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동안 죽방 이문식은 혼자 정답을 말하기도 했죠.




문노가 화랑들에게 낸 문제는 '지증왕 때 생긴 신라라는 국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으며, 그 세 가지 의미는 화랑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세 가지 의미를 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무력의 양성, 신흥 세력의 육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는 다들 알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번째 의미는 아무도 - 심지어 문제를 낸 문노까지도 -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낭도들이 답을 놓고 고민하는 장면. 죽방은 태연히 "신라면 새 그물이잖아. 화랑들이 그물이 돼 갖고, 그 그물에다 백제고 고구려고 다 쓸어 넣겠다는 거 아녀! 그물이 답이여!"라고 말합니다. 다른 낭도들이 "그렇게 쉬울 리가...?"하고 의심하자 "그래서 국선이시지, 그렇게 허를 찌르는거여"합니다.

죽방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답은 맞았습니다. 그리고 유신과 덕만이 거칠부가 숨겨 놓은 소엽도 표면의 미세한 글자를 들여다 보는 장면에서, 정답은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덟 자가 보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군요.

회전을 시켜 보면 좀 더 확실히 보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입니다. 해석하자면 '나라의 덕업을 새롭게 하여 천하를 받아들이다'라는 얘기가 됩니다. 즉, 나라를 잘 다스려 부강하게 하고 그를 통해 덕을 쌓아 사방으로 영토를 펼쳐 나가자는 얘기죠. 이 시기의 신라에서 다른 말로 바꾸면 삼한일통, 즉 삼국통일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제작진에게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그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위해 이 감춰진(?) 의미를 '진흥왕의 불가능한 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진흥왕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꿈꿨고, 거칠부가 편찬한 국사에 그 뜻을 담아 후세에 전하려 했으나 뒤를 이은 진지왕이 그 뜻을 잇기를 거부했고, 진지왕이 폐위된 뒤에도 미실과 세종이 짜고 그 뜻을 감추었기 때문에 지금(드라마 속의 시대)에 와서는 그 뜻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식으로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 제작진의 설정에 따르자면, 미실이 권력을 쥐고 있던 진평왕 때에는 왕도, 왕비도, 대신들도, 장군들도, 화랑들도, 아무도 '삼국 통일'이라는 대명제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아무도 이것이 국가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당시 신라의 힘을 보겠습니다. 진흥왕 이후의 신라에게 있어 삼국통일이란 '불가능한 꿈'도 아니요, 어느 한 시대의 집권세력이 감추려 한다 해서 감춰질 정도로 불분명한 목표일 수도 없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도를 봐도 금방 드러나지만 진흥왕대의 신라는 이미 한반도의 핵인 한강 하구를 손에 넣었고 함경남도 지역까지 깊숙히 고구려의 영토로 침투하는 등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더구나 신라인의 스케일은 그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해 통일을 이루는 정도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흔히 '삼국통일의 염원이 담긴 탑' 정도로 알려진 황룡사 9층탑은 한 층마다 한 나라씩, 모두 아홉 나라를 병탄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이 담긴 탑입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6층 말갈, 7층 단원, 8층 여적, 9층은 예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9층의 예맥 속에 포함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전체를 집어삼키겠다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탑인 것입니다. 이 탑을 세운 것이 선덕여왕때라고 해서 이런 비전을 선덕여왕 혼자 갖고 있었다고 밀어붙이는 건 좀 곤란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미실은 "국가가 전쟁에 나서면 왕권은 강화되고 귀족들은 세력을 잃을텐데 무엇때문에 내가 세번째 의미(삼국통일)를 계승해야 하느냐"고 냉소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그럼 대체 미실은 '삼국 통일', 다른 말로 '백제와 고구려의 정복'을 접어둔 채 어떤 주장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히고, 화랑이라는 무장 집단의 발전을 정당화했을까요.  

요즘 같으면 '국방'과 '정복 전쟁'은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7세기에도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그저 방어만을 위한 무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을까요.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당시의 눈높이로 보자면 화랑과 상무정신의 존재는 정복 전쟁으로 이어질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진흥왕의 정신은 책 한권을 태우고 다시 쓰고 해서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흥왕의 의지를 표현하는 증표는 역사책 몇권보다 훨씬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네 군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진흥왕이 스스로 개척한 국토를 돌아보며 세운 세 군데의 비석만큼 팽창해가는 신라의 에너지를 잘 상징해주는 유물은 없습니다. 순수비가 뻔히 서 있는데 책 몇권을 조작한다고 이만한 국가적인 목표가 잊혀질 거란 생각은 참 안이합니다.

이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미실 일파는 반 통일세력이고, 그 이유는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사리사욕에 빠져 국가적인 목표를 잃었다는 점이 미실 그룹이 타도되어야 하는 이유이고, 덕만은 이를 통해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이란 바로 삼국 통일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온 나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다음 주의 '선덕여왕' 내용일 듯 합니다.

반통일적인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 통일을 명분으로 내건 젊은 개혁세력 덕만. 용어는 그럴듯하지만 비유는 참 공허합니다. 용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끌어다 붙인 억지 춘향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걸 '작가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겠죠.

저는 이미 몇달 전부터 '대체 미실과 덕만의 차이는 무엇인가, 덕만이 미실을 대신해야 한다면 그 명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드라마 제작진이 답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 드라마의 초점이 '대체 덕만이 미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도 좋은 명분은 무엇일까'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을 보며 내심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작진이 내놓은 답은 참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판타지 드라마로 남아 있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728x90

MBC TV '선덕여왕'의 문노가 마침내 솜씨를 과시했습니다. 칼 한번 뽑지 않고 비재를 위해 연무장에 모인 화랑들을 단번에 제압해 버리더군요. '내가 칼 뽑으면 니들은 다 죽어'라는 식의 위압감이 넘쳤습니다. 알천을 비롯한 10화랑들도 감히 손가락 하나 손댈 수 없었습니다.

문노가 검으로 단연 신라 최고라는 것은 이미 '선덕여왕'의 설정이자 '화랑세기'의 기본 이해 사항입니다. 문노 이후의 화랑들 중 문노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랑세기'에 문노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문노 이외의 다른 화랑들은 어느 정도인지가 다뤄져 있지는 않습니다.

문노를 포함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의 칼솜씨에 순위를 매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랭킹을 좀 따져 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위는 당연히 문노.

'검술이 뛰어나고 의기가 빼어났다'는 것이 문노에 대한 기록입니다.

문노편에는 사다함의 어머니 옥진궁주가 '문노로 하여금 사다함의 스승이 되게 하였다'고 되어 있고, 하종편에도 '(하종이)15세때 화랑에 입문하여 역사는 토함공에게, 노래는 이화공에게, 검술은 문노에게, 춤은 미생에게 배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생과 관련된 기록. 미생은 12세에 사다함의 문도로 화랑에 입문했으나 너무 어려서(혹은 운동신경이 떨어져서) 말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랑에 들어올 수 없는 상태였지만 열혈 누나 미실이 나서 "왜 내 동생을 함부로 떨어뜨리느냐"고 반발해 그대로 눌러 앉게 됐다고 합니다. 이때 문노의 반응입니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가 말에 오르지 못하고 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하루 아침에 일이 생기면 어디에 쓸 것인가"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어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받아들일 만 하지 않겠습니까"하여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배경을 기본으로 창조된 '선덕여왕'의 문노는 '고독한 최강의 사나이' 이미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젊은 화랑들과는 이미 비교할 수 없는 수준차이가 나죠. 드라마상으로는 스카우터도 필요 없는 단연 최강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위는 칠숙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문노와 짧긴 하지만 그나마 1대1로 싸움을 펼쳤습니다. 또 미실도 '네가 문노에 비해 뒤질 것이 뭐가 있느냐'며 칠숙의 솜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죠.

검술도 검술이지만 터미네이터같은 집념과 사막의 폭풍우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은 랭킹 2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위는 비담.

문노의 제자로서 엄청난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지만 최근 미실에게 잡혔을 때 혼자 다수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는 점도 드러났기 때문에 문노나 칠숙에 비교할 실력은 아닌 듯 합니다. 칠숙과는 한번 겨뤄 봤지만 당시 칠숙은 그의 검술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냥 치고 빠졌죠.

하지만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이나, 물불 안 가리는 과감성 덕분에 동년배의 화랑들에 비해서는 이미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위: 유신

죽방 이문식의 대사로 '백만스물 하나, 백만스물 둘'이 나온 것으로 보아 드라마 관계자가 이 블로그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물론 처음부터 작가진이 '백만 스물 하나'를 염두에 두고 썼을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런 무식한(?) 타격 훈련의 힘 덕분에 유신은 이미 보종을 넘어서 기존 화랑 중에서는 최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덕만을 구하기 위해 비담과 함께 화랑들을 상대로 싸울 때, 문노가 '최근에 검을 겨룬 적이 없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는구먼'이라면서 힌트를 준 적이 있죠. 그리고 실제로 보종과 석품을 단칼에 물리쳤습니다.

보종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미 '선덕여왕' 드라마 상에서 유신의 검술은 보종을 넘어서 있습니다. 8일 방송일지 다음주일지 유신과 보종은 차대 풍월주 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치겠지만 유신의 낙승이 예상됩니다.

(이미 시청자들이 유신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므로 예선에서 유신과 맞붙은 석품이나 기타 등등이 보종의 우승을 위해 유신에게 반칙으로 부상을 입힌다... 등등의 전개가 예상됩니다. 가능하면 이런 진부한 전개는 좀 피해 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물론 '화랑세기'상의 기록에도 14세 호림(호재)의 다음인 15세 풍월주는 유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유신의 승리는 역사적인 필연입니다.^^ 보종은 유신으로부터 풍월주의 자리를 물려 받을 운명이죠. 안타깝지만 조연의 팔자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위: 보종

설원과 미실도 당연히 비재를 하면 보종이 1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10화랑들도 이미 보종에게 모두 무릎을 꿇은 상태이니 그중 최강은 보종입니다. 알천과 석품도 "이미 유신 빼고는 모두 보종에게 굴복했다"고 이야기했죠. 보종의 낭도들도 "보종과 다른 사람들이 겨루면 재미가 없어서 못 본다(너무 쉽게 승부가 가려진다는 뜻)"고 할 정도로 보종의 검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 서라벌에 처음 올라온 유신은 보종에게 수준차를 느끼며 굴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보종은 비담과 유신에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죠.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보종입니다. 문노를 찾으러 갔다가 임종의 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서현을 죽이려다 미실에게 죽음을 당할 뻔 하고, 힘든 일만 있으면 파견되고... 조연의 운명 치고는 참 가혹합니다. 일복을 타고 났다고나 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머지는 사실 별 의미도 없고, '선덕여왕' 제작진도 이 이상의 서열 매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알천이 그리 검술로는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나자나 뒷날 칠숙이 석품과 함께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해 죽음을 당할 때(뭐 대략 미실파의 마지막 실질적 위해 시도라고 생각되지만) 혁혁한 공을 세워야 할 염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의문입니다. 염장은 17세 풍월주로 보종과 춘추 사이를 잇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뭐 드라마에서는 월야나 알천, 지금까지 전혀 활약이 없는 필탄 등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겠죠.

그러고 보니 궁금합니다. 칠숙이 덕만을 살해하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칠 때 칠숙을 제압하는 것은 문노일까요, 비담일까요, 유신일까요. 여기서 또 한번 순위 변동의 계기가 생길 듯 합니다.^




그동안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