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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김명민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충분히 받을만한 상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나 올해는 '박쥐'의 송강호, '국가대표'의 하정우 같은 쟁쟁한 상대들과의 대결을 통해 따낸 주연상이라 가치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김명민의 연기에는 누가 토를 달지 않았지만, '내사랑 내곁에'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가 좀 엇갈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김명민의 이번 수상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듯 합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달라지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단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여전히 수많은 보도들이 '20kg를 감량하는 연기 투혼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식의 도식적인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일전에 썼던 글을 뒤늦게 이쪽으로 가져옵니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리고 나서 상당한 김명민 팬들의 오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해명의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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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우의 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1983)를 본 많은 사람은 리얼리티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혀를 내둘렀다. 중세 일본 어느 산골 마을의 기로(棄老) 풍습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은 3년간 실제로 오지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흙냄새를 피부 깊숙이 묻혀냈다.

특히 할머니 역의 배우 사카모토 스미코는 돌벽에 이를 부딪혀 부러뜨리는 연기를 조작 없이 실제로 해내는 열의를 보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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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를 돌이켜 보면 과감하게 몸을 혹사해 전설이 된 배우들이 적지 않다. 많은 배우가 극중 인물로의 완벽한 변신을 위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신체 변형을 감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배우는 로버트 드 니로다. '분노의 주먹'(1980)에서 한 복서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연기한 그는 23㎏의 중량 변화를 실제 몸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언터처블'(1987)에서도 갱 보스 알 카포네로 변신하기 위해 27㎏을 불리는 한편 앞쪽 머리숱을 뽑아 대머리가 되는 열의를 보였다.

24일 개봉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이 20㎏을 감량했대서 화제다. 영화에서 루게릭병 환자 역을 맡은 김명민은 평소 체중인 72㎏에서 극중 환자의 상태에 맞게 감량을 시작, 사망 직전에는 52㎏의 앙상한 몸을 드러낸다.

체중의 변화가 연기 열정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것은 제아무리 명배우라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던 시절의 유산이다. 말런 브랜도는 영화 '데지레'(1954)에서 나폴레옹 역할을 맡아 감쪽같은 매부리코를 분장으로 만들어 냈지만 1m83㎝의 키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요즘 같으면 '반지의 제왕'에서 1m67㎝의 배우 일라이저 우드가 키 1m20㎝ 내외인 난쟁이로 변신하는 게 예사지만 말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일상화된 2009년에도 배우의 실제 신체 변형에 가산점이 주어져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글자 그대로 '뼈를 깎고 살을 찢는' 고통을 감수해 가며 성형수술을 통해 불멸의 젊음과 새로운 미인형에 도전하는 여배우들에게 세상은 왜 그리 냉담한 것일까. 첨단 기술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열정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사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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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분들은 이 글이 김명민의 연기 열정에 대한 폄훼라며 흥분하시기도 한 모양인데, 분명히 그게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이 글에서 공격하고 있는 것은 '살빼기=명연기(혹은 명배우)'라는 식의 단세포적인 시각입니다. 영화 개봉 당시를 생각해보면 어디를 봐도 '살을 뺐다'는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그게 영화의 질이나 김명민의 연기의 질을 설명해주는 결정적인 요소인 양 말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김명민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연기를 잘 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살을 많이 뺐기 때문입니까. 연기는 지독하게 못 하는 배우가 다이어트에는 재능이 있어서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20~30kg씩 체중을 늘였다 줄였다 한다면, 과연 그럴 때에도 '연기 투혼'이라는 말로 칭찬하고 '연기상을 줘야 한다'고 칭찬해야 한단 말입니까.

연기란 '실제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관객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위한 예술입니다. 만약 '실제로 그런 것'만이 진정한 연기라면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 연기는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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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해가며 자신이 연기하려는 상태에 최대한 근접해 보려는 시도는 대단히 숭고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희생의 의지만으로 칭찬받을 수는 없습니다. 축구경기의 예를 들어 보자면, '투혼이 빛났다'는 이유로 우승컵을 줄 수는 없지요. 우승컵은 이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민의 연기력은 '연기력' 자체, 혹은 관객에게 '보여진 결과'를 통해서 칭찬받아야지 '20kg를 감량해 건강에 위협이 왔다'는 이유로 칭찬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김명민은 눈빛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이 연기는 살을 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애를 낳아 보지 않은 여배우가 애 셋을 둔 여배우보다 관객들이 보기엔 더 훌륭한 연기를 해 낼 수도 있습니다. 우주에 한번도 나가 보지 못한 배우가 무중력상태에서의 격투 연기로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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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성형 수술 이야기는 당연히 농담입니다. '만약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만으로 배우가 칭찬받아야 한다면 가장 칭찬받아야 할 사람들은 수시로 자신의 몸을 고통과 마취의 위협을 감수하고 수술대에 올려놓는 여배우들이야말로 진짜 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아니냐는 얘기죠.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면 김명민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탁월한 '연기력' 때문입니다. 살을 빼는 '투혼'이 빛나서가 아니라, 그 결과로 관객 앞에 드러난 연기가 훌륭하게 비쳤기 때문이죠.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살 아니라 팔을 하나 잘랐어도 그것만으로 훌륭한 배우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배우의 실제 신체 변형에 가산점을 줄 수는 없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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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한번 빠진 살이 잘 돌아오지 않는군요. 요요로 걱정하시는 분들에겐 참 부러운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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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씩 되풀이되는 희망고문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물론 2002년은 예외로 치고 하는 얘깁니다. 매번 월드컵 조추첨이 있을 때면 '한국의 탄식'이 시작됐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한번도 한국은 '죽음의 조'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월드컵이라는 대회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너무도 당연한 거였죠. 정상적으로 조편성이 될 경우 탑시드(말하자면 세계 8강) 팀 하나와 바늘구멍같은 유럽 예선 통과팀 하나를 같은 조에 넣고 시작해야 하는게 정상이니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같은 축구 약소국의 입장에선 월드컵 조편성은 '죽음의 조'가 기본이고 어쩌다 아주 운이 좋으면 행운의 조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무슨 전문가는 절대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상식선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맞붙게 된 2010년 조편성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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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조는 어떤가 한번 비교해 봅니다.

A조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 프랑스
B조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한국 그리스
C조 잉글랜드 미국 알제리 슬로베니아
D조 독일 호주 세르비아 가나
E조 네덜란드 덴마크 일본 카메룬
F조 이탈리아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G조 브라질 북한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
H조 스페인 온두라스 칠레 스위스

척 보기에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아시아 대표들, 일본/북한/호주는 그 자리에서 묵념 분위기입니다. D조의 호주, G조의 북한은 맡아놓은 최하위에다 냉정하게 말하면 승점 1도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E조 일본의 16강은 그 자리에서 포기 수준이군요.

이 세 이웃에 비하면 한국은 - 물론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나라들은 아니지만 -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나이지리아와 그리스는 그나마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 중 상대해볼만 하다고 꼽히는 팀들이고 아르헨티나 역시 스타 감독 마라도나씨의 활약(?) 덕분에 정상적인 위력을 뽐내지 못하고 있으니 '지더라도 개망신은 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한국은 희한하게도 월드컵 본선에서 두번째 상대한 나라에게는 웬만하면 성적이 나아졌다는 희한한 징크스(?)도 갖고 있습니다. 과연 아르헨티나에게도 이게 통할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모두 첫판에선 졌지만 두번째 대결에선 비기거나 이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2년 독일에게 져서 4강 탈락했던 걸 깜빡했군요. 수정했습니다.)

역대 조편성과 이번 조편성을 비교해 보시면 이번 조가 그나마 얼마나 편한 조인지 알 수 있습니다. 1986년 이후를 보겠습니다. 조 추첨 전 언론이 자꾸 남아공 얘기를 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솔직히 2002년에 포르투갈 축구 팬들이 '한국과 같은 조'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현실적으로 제가 살펴 본 1986년 이후, 주최국이 16강에 못 간 대회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주최국'은 브라질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남아공과 같은 조가 안 된 게 대단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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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아르헨티나(1대3패), 불가리아(1대1), 이탈리아(2대3 패), 한국
아르헨티나-서독 결승서 아르헨티나 우승, 이탈리아 16강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조편성입니다. 물론 이때는 조3위도 잘하면 16강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2무1패만 거뒀어도 가능성이 있었다는 아쉬움도 따릅니다. 아무튼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강. 마라도나가 5골, 발다노가 5골을 넣으며 우승해버립니다.
개최국인 멕시코는 본래 잘 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조 1위로 8강까지 승승장구하다 이 대회 준우승국인 서독에게 승부차기로 패해 운이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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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벨기에(0대2 패), 스페인(1대3 패), 우루과이(0대1 패), 한국
벨기에, 스페인 16강. (서독 우승)

스페인이야 여전하지만 당시의 벨기에는 지금과는 천양지차. 이탈리아 국가대표를 마다하고 벨기에 소속으로 뛴 엔조 시포(위 사진)라는 세계 최고 레벨의 게임메이커가 뛰고 있었습니다. 86년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막강한 팀이었죠. 물론 그 벨기에도 16강에서 돌풍이 그쳤지만 한국에겐 버거운 조편성.
뭐 이번엔 별 의미 없지만 개최국 이탈리아의 성적은 4강(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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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스페인(2대2) 볼리비아(0대0) 독일(2대3 패), 한국
독일, 스페인 8강 (브라질 우승)

당연한 얘기지만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분투했다는 것 때문에 94년의 김호 사단은 2002년을 제외하곤 가장 선전한 팀으로 꼽혔습니다. 특히 스페인전에서 서정원의 동점골은 온 국민을 환호로 들끓게 했죠. 비록 탈락했지만 이 끔찍한 조편성에선 할만큼 했다는 평입니다.
개최국인 미국은 스위스, 루마니아, 콜롬비아와 같은 조가 되어 1승1무1패, 조3위로 16강에 오릅니다만 바로 브라질을 만나 꼬리를 내립니다. 어쨌든 당시 미국 전력으론 과분한 1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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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멕시코(1대3 패), 네덜란드(0대5 패), 벨기에(1대1), 한국
멕시코 16강, 네덜란드 4강

스포츠에서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대회. 예선과 평가전까지만 해도 사상 최강을 운운하던 대표팀은 본선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전력의 핵인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부상으로 출전 불가 상태(2002년 한국과의 평가전 이후 지단이 빠진 프랑스의 운명과 유사합니다)가 되는 비운을 맞습니다. 게다가 첫판인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하석주가 곧바로 퇴장당하면서 분위기는 급냉각. 결국 세 골을 내주며 역전패.
이 두 사건만 없었어도 히딩크 사단에게 '오대영'의 참변을 당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기를 계기로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게 된 게 전화위복이라면 축구의 신의 섭리는 참 오묘하다고 해야 할까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주최국 프랑스는 우승. 좋은 전력이었지만 무적 브라질까지 이긴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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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폴란드(2대0 승), 미국(1대1) 포르투갈(1대0 승), 한국

너무나 다들 생생하게 기억하시니 자세한 내용 생략. 목이 터져라 외친 감격도, 지저분한 잡음도 다 기억하실테니 생략. 조편성때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뿐만 아니라 폴란드 국민들도 만세를 외쳤겠죠 아마.
공동개최국인 일본 역시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한 조를 이뤄 무난히 16강 진출. 글쎄 1986, 90년 때의 벨기에가 아니더라니까요. 아무튼 국제대회에서 일본의 조편성 운빨은 늘 한국을 앞질렀습니다. 이번엔 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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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토고(2대1 승), 프랑스(1대1), 스위스(0대2 패), 한국
스위스 16강, 프랑스 준우승

그동안 워낙 극악의 조편성에 시달려 온 터라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몰랐던 거죠. 스위스가 이 무렵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는 걸. 아무튼 1승2무 세 팀에 토고가 3패 팀이 되는 경우를 예상해 골득실을 조절하면 16강이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건 '결과론'이 아니라 대회 직전에 웬만한 축구팬이면 다 예상(기대)했던 결과입니다. 그래서 토고전의 후반부에 아드보카트 감독이 수비 위주의 안전 플레이를 했을 때 탄식이 나왔던 거죠. 이건 이겨도 16강은 못 올라간다...는 슬픈 예감 때문에.
그런데 이 예상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겁니다. 스위스-프랑스, 한국-프랑스가 비겨 버린 가운데 토고를 상대로 한국은 2대1, 프랑스와 스위스는 2대0의 성적을 거둔 거죠. 한국은 스위스와 비겨도 조3위로 탈락하는 운명이 됐고, 결국 맞불을 지르다 2대0으로 패하고 맙니다. 물론 이 결과로 아드보카트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토고전에서 한골을 더 얻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길이 길이 남습니다.
역시 이번엔 별 의미가 없지만 개최국인 독일은 4강(3위)에 오릅니다.



2010년엔 결국 C조의 미국이나 F조의 뉴질랜드 정도가 우리보다 나은 조편성으로 보일 뿐, 이만하면 해볼만 하다는 쪽으로 다시 기대를 걸어 보렵니다. 이번엔 정말 주최국이 아닌 위치에서 처음으로 16강에 갈 수 있을지... 허정무 사단 빠이팅입니다.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화끈한 추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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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어쌔신'을 보러 간 동행인으로부터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닌자 어쌔신'은 신개념의 슬래셔 무비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양의 선명한 피가 화면을 가득 채우더군요. '신 시티'처럼 흑백 영상으로 핏빛의 거부감을 살짝 속이거나,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처럼 사람 목을 뎅겅 잘라도 피 한방울 비치지 않는 영화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칼에 베이면 바로 피를 흘립니다. 그것도 한 사발씩.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일단 핏빛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영화에서 사람 목이 날아가면 '으익' 하면서 눈을 가리던 심약한 여성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1) 아무 것도 본 게 없어서 영화 내용에 대해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거나 (2) 이 영화 덕분에 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져서 극장 문을 나서면서 초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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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폴(뭐 인터폴의 유럽판이겠죠)의 자료분석요원 미카(나오미 해리스)는 일련의 살인 사건이 기존의 테러 조직이 아닌 수백년 된 닌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순간, 미카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입니다.

라이조(이준/정지훈)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비밀의 닌자 조직을 거느린 오즈누(쇼 코스기)에 의해 살인병기로 사육됩니다. 하지만 그는 비인간적인 닌자로 살기를 거부하고 조직을 이탈하죠. 당연히 조직의 살해 명령이 떨어져 쫓기는 처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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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분만 영화를 보거나,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의 얼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줄거리 혹은 플롯을 극도로 슬림하게 한 뒤, 나머지를 모두 피칠갑의 전투 신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영화에서 필수일 '쫓기는 킬러와 여주인공 사이의 멜로드라마' 까지도 생략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정지훈군은 그 나머지 시간을 종횡무진 닌자들을 도륙하는데 사용합니다. 얻어맞고, 칼로 쓸리고, 피를 흘리고, 복근을 보여주면서 어쨌든 끝까지 달립니다. 당연합니다. 주인공이 죽거나 하면 그걸로 영화는 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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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닌자들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물이나 음식 따위의 기초적인 생명 유지 조건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심지어 나중에는 상처의 자연 치유능력까지 보여줍니다. 그런 닌자 수십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라이조는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애당초 이 영화는 '딱 그런 관객'들을 위한 맞춤 상품입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볼 필요가 없겠죠. 마찬가지로 피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거나 물리적인 타당성이 결여된 액션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예 극장 근처에도 가면 안 될 작품이죠.

반면 그런 장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닌자 어쌔신'은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영화입니다. 액션 연출은 진부하지 않고, CG도 훌륭합니다. 스파이더맨이나 '매트릭스'의 니오는 왜 100대 1로 싸우면서도 적을 해치우지 않고 톡톡 때려서 꼭 다시 반격하게 만들까 짜증을 냈던 분들에게는 강추작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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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정지훈군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정지훈에겐 그리 많은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감정을 배제한 채 의미만 전달하면 되는, '킬러의 대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TV 드라마에 나오는 T모군을 보면 그런 대사도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정지훈군의 연기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정지훈이 연기하는 라이조의 캐릭터가 좀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영화의 마무리나, '닌자에게는 아홉개의 오랜 파벌이 있다'는 설정 등은 속편 제작을 향한 제작진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만, 개봉 첫주에 박스 오피스 6위를 기록한 미국 시장에서의 흥행 성적으로 볼 때, 속편 제작 여부는 그리 낙관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여자 마법사 나오미 해리스보다는 좀 더 젊고 예쁜 상대가 나타나 주길 기대합니다. 억지로든 뭐든 약간의 '느낌'을 내려 시도한 부분이 보이긴 합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이모와 조카 사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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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왕년의 닌자 마스터 쇼 코스기의 등장은 '킬 빌'에 나오는 소니 치바의 등장만큼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합니다. 반면 한때 아시아계의 별로 꼽혔던 릭 윤의 캐릭터는 '몰락'이란 두 글자를 너무나 선명하게 새기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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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여서 눈 깜빡할 사이에 청룡영화상 날짜가 돼 버렸군요. 수상자 맞추기 놀이를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오늘이 시상식이라... 최소한 하루 전에는 하려고 했는데 다 제가 게으른 탓입니다.

올해는 MBC의 대한민국영화상도 예산 부족(?)으로 아예 행사가 취소됐고, 대종상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결국 올해 한국 영화의 정리는 청룡영화상에게로 넘어간 듯 합니다. 뭐 예년에도 그랬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우울한 얘기는 뒤로 미루고, 올해는 누가 수상자가 될 지 한번 점쳐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다 보셨건 안 보셨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재미로 찍어보는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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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는 당연히 제 맘대로입니다. 먼저 남녀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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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경우, 김무열(작전)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수상자는 김지석(국가대표)과 양익준(똥파리) 사이에서 나올 듯 합니다. 특히 워낭소리에 이은 작은 영화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과감하게 양익준을 찍어 봅니다.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과속스캔들'에서 아직도 후보작이 나온다는게 참 문제로군요. 이런 경우 항상 지나치게 오래된 후보작은 불리한게 인지상정입니다. 기억에서도 희미하고...이미 상도 탈대로 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신인상은 박보영이 받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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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은 저보고 뽑으라면 김인권(해운대)과 진구(마더) 사이에서 꼽겠습니다. 둘 다 유감없는 호연이고, 누가 받아도 뭐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순서를 정하라면... 김인권이 1순위, 진구가 2순위로 하겠습니다.

'애자'를 못봤습니다만 역시 여자 부문도 김보연(불신지옥)과 김해숙(박쥐)으로 압축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김해숙에게 기웁니다만, 여러가지 고려의 요인이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김해숙-김보연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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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감독상은 작품상 부문의 2등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한국 처럼 대부분 감독이 각본을 겸하는 경우에는 작품상이 1등, 감독상이 2등, 각본상이 3등이라고 불릴 만 합니다. 뭣보다 작품-감독-각본을 한 영화가 휩쓰는 경우는 한국에선 대단히 드물죠.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구도이긴 합니다만, 일단 감독상으로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을 찍어 봅니다. 그 다음 각본상으로는... 박은교 봉준호(마더)와 이해준(김씨표류기)으로 추리겠습니다. 마더가 1번, 김씨표류기가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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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주연의 구도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일단 남자는 사상최고의 경합이군요. 작품 요인을 고려해서 장동건/김윤석에게 좀 미안하지만 김명민/송강호/하정우로 압축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송강호/하정우의 대결이라고 생각하지만 김명민 지지세력도 만만찮을 듯 합니다. 그동안 송강호를 좀 등한히했던 청룡영화상의 사죄 기회로 보고 1번 송강호, 2번 김명민, 3번 하정우를 찍겠습니다. 이건 정말 누구라고 점찍기 힘들군요.

여자는 김혜자(마더)가 받지 못한다면 이변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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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이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작품은 '국가대표'입니다. 물론 나머지 작품들도 훌륭합니다. 다만 윤제균 감독을 감독상으로 점찍었으므로(물론 제 맘대로) 작품상은 '국가대표'와 '마더'의 경합으로 보고 싶습니다.

국내 시상식을 '나눠먹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국가대표' '마더' '박쥐' 등 일장일단이 있는 수준작들이 있을 때 이 중 하나에만 상을 몰아 주는 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이쪽에 작품상을 주면 감독상은 이쪽으로... 뭐 이런 식의 배치가 이뤄지곤 하죠. 단 심사위원이 많을수록 이런 배려(?)는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는 이렇게 찍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상을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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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상보다 궁금한 건 올해는 이 분이 과연 어떤 차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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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MBC TV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부러진 이유를 대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명 재미도 전만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분통이 터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선덕여왕'에서 생기가 도는 캐릭터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동안 그토록 재기발랄하게 극의 흐름을 끌어가던 죽방(이문식)과 염종(엄효섭)까지도 지금은 사실상 병풍이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왜 이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 시작은 창대했던 드라마가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증언할 의무감 같은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드라마는 시청률 30%를 넘는 인기 드라마입니다. 이 수치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고, 다른 드라마들이 언감생심 넘보지 못할 시청자들이 덕만과 유신의 갈팡질팡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사극에서 역사왜곡이 무슨 문제냐' '드라마는 드라마고 다큐는 다큐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분명히 말합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왜곡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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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역사가 문제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은 아마 대야성의 성문을 연 배신자의 이름이 검일(黔日)이라는 데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겁니다. 당시 백제의 장군 이름이 윤충일 뿐, 계백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야성 함락은 선덕여왕 11년(642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당시 검일이 성문을 열어 항복하는 바람에 백제에게 대야성이 넘어간 것도 역사에 기록된 사실입니다. 그런데...문제는 당시 대야성을 지키던 성주가 품석이라는데 있습니다. 품석은 춘추의 사위죠. '삼국사기'는 딸과 사위를 잃은 춘추의 비탄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춘추는 이 소식을 듣고 기둥에 몸을 기대 선 채로 하루 종일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고, 자신의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내 말하기를 "아아!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무너뜨리지 못한단 말이냐!" (春秋聞之, 倚柱而立, 終日不瞬, 人物過前而不之省. 旣而言曰 "嗟乎! 大丈夫豈不能呑百濟乎)

실제 역사의 흐름은 이렇게 격노한 춘추가 고구려와 연합해 백제를 치기 위해 단신으로 고구려에 넘어가 연개소문과 협상을 벌이고, 여기서 여의치 않자 당나라로 가 외교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또 진덕여왕 원년(647년), 유신이 백제군의 침입을 격퇴하고 대승을 거둔 뒤 생포한 백제 장군 8명과 품석 부부의 유해를 교환해 신라로 가져오자 춘추가 감격을 금치 못하고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다른 배우들이 백발과 콧수염을 달고 나올 때에도 여전히 솜털 하나 없는 얼굴로 샤방샤방 눈웃음을 날려 주시고 있는 꽃미소년 춘추공이 징그럽게도 사위와 장성한 딸을 거느리고 있는 아저씨였다는 겁니다. 네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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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이 문제가 아니라고 해놓고 왜 역사 얘기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드라마가 역사를 다루는 수준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콩쥐팥쥐 이야기를 다루는 수준입니다. 그만치 경외심도 없고, 이해하는 수준도 낮습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아니냐, 그건 역사 왜곡의 정도보다, 사극 드라마로서의 기본, 아니 드라마로서의 기본에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왕마마의 충신 유신공이 거짓말장이로 몰리게 된 계기, '대야성에는 이름이 흑으로 시작하는 관원이나 군사가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유신이 고한 것은 '대야성에 있는 첩자가 내응해 관문을 열 것이고, 그 첩자의 이름은 백제 작전지도에 흑 뭐시기라고 쓰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신라의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흑 뭐시기라는 사람은 대야성에 없으니 유신 저놈이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들끓기 시작합니다. 어이 상실 시퀀스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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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상황이 다 정리될 즈음에서야 그중 똑똑하다는 비담이 '부수일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다시 명단을 뒤져 봅니다. 기절해 쓰러질 일입니다. 한글로 '흑'이라고 써 놓고, '검'이라고 써 놓으면 전혀 다른 글자겠지만 한자로 '黑'을 써놓고 그 옆에 '黔'을 써 놓으면, 똑같은 黑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도 명단을 보면서 여기 있네 흑, 하고 찾아 낼 겁니다.

게다가, 한글이 아니라 한문을 베이스로 생각한다면, 단지 한자로 선명한 黑 한 글자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黑으로 암시할 수 있는 비슷한 글자들을 모두 생각의 범위에 넣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를테면 먹을 뜻하는 묵(墨)이라거나, 검은 색을 뜻하는 현(玄), 칠(漆) 등도 일단 의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같으면 얼굴이 검은 사람도 일단 용의선상에 놓겠습니다.^^)

한번만 더 생각하면, 그 글자가 올라간 곳이 백제의 작전지도라면... 애당초 간첩의 본명이 써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007은 007이니까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자신의 실명을 까고 활약하지만 세상 어디의 스파이가 실명으로 활동하며, 스파이를 보낸 자가 스파이의 실명을 아무데서나 거론한단 말입니까.

애당초 '적의 스파이가 있다'는 것만 알아도 대야성의 수비진을 소환해 단속하는게 보통이겠죠. '첩자가 성문을 연다'는 구체적인 행동까지 알고 있다면 그걸로 막을 생각은 않고, 이름이 있네 없네만 따지고 있다는게 과연 정상적인 행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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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수준으로 미실 사후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국면을 이끌어가고 있는게 현재 '선덕여왕'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넓게 전체를 봐도 상황은 모순 투성이입니다. 미실의 도전을 물리치고 왕이 됐건만 덕만의 주변에는 여전히 미실의 세력이 득시글거리고, 덕만은 미실 코스프레와 성대모사에 빠져 있을 뿐 왕으로서의 면모는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만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고, 유신은 이순신 장군이 아니건만 '선덕여왕' 제작진에게는 이미 자신들이 어디서 본 두 역사적 인물의 캐릭터를 '선덕여왕'의 두 인물에 덮어 씌우려는 생각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 좀 더 지나면 '주인공 고립시키기'를 위해 '우리 편' 인물들이 억울하게 죽어갈 일밖에 없을 듯 합니다. 서현, 용춘, 알천, 필탄, 죽방, 고도 등은 이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나날입니다. 하긴, 이젠 그냥 죽고 쉬는 게 나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제작진에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신라를 이렇게 바보들의 나라로 만들어 놓고도 과연 덕만이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영명한 여왕으로, 유신이 통일과 구국의 일념으로 사랑조차도 제쳐놓은 영웅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P.S. 이제 남은 욕은 '재미없으면 보지마 이 시키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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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형법상의 처벌 규정이 위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혼인빙자간음에 대한 헌법소원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지만 이번에야말로 이 규정이 사라질 때라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에 대해 한줄 글을 남기게 됐습니다. 시간에 쫓기다가 쓴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러다 보니 좀 불친절한 글이 된 듯도 해서 거기에 대해 뭔가 해설의 성격을 가진 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글의 출발점은 이것입니다. 혼빙간(이젠 그냥 이렇게 쓰겠습니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여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이 법을 옹호해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진짜 '보호'가 이뤄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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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빙자간음

최근 영미법의 이슈 중 하나는 ‘기만에 의한 강간(Rape by deception)’의 성립 여부다. 지난 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최고법원은 동생으로 가장하고 동생의 애인과 성행위를 한 남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이 성행위에 동의했을 경우는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으며, 동의가 기만에 의한 것인지는 법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계에서는 의사로 위장한 병원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의 사례 등을 들어 ‘기만’도 강간의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6일 한국에선 혼인빙자간음죄에 56년 만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한국 사법행정학회가 2006년 펴낸 ‘주석 형법’ 교과서에 따르면 이 죄는 1953년 9월 대한민국 형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존재했다. 당시 일본도 유사한 법을 제정하기 위한 초안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 반영하지는 않았다. 현재는 미국의 일부 주와 터키·쿠바·루마니아 등에 유사한 죄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의 의미는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이었지만 이 법 제정 2년 뒤에 일어난 박인수 사건을 볼 때 과연 그 취지가 받아들여졌는지는 의문이다. 55년 7월 미남의 전직 해군 대위가 20여 명의 여대생을 유린했다는 스캔들은 장안의 화제였고 결국 박인수는 2심에서 혼인빙자간음으로 1년형을 선고받지만, 대중은 도리어 피해자(?)인 여대생들에게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68년작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유부남 사업가(신영균)와 사랑에 빠진 여교사(문희)가 남자를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했다면 관객은 여주인공을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물론 세월이 흘러 지난해엔 남편(김주혁)을 둔 아내(손예진)가 미혼 남성과 또 한번 결혼한다는 파격 소재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가 화제가 됐다.

이런 변화를 봐선 혼인빙자간음죄의 퇴장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 여성의 성적 결정을 존중하게 된 것일까. 지금이야말로 여성에게만 일방적인 정조를 강요하는 봉건적인 시선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를 자문해 볼 때다. 분명한 것은 ‘기만에 의한 강간’의 성립 여부를 논의하기까지엔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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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의 박인수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 판결문에 있었던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명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의 취지가 어쨌든, 박씨를 혼빙간으로 고소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미 법적인 보호대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타락해 있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혼빙간'으로 여자가 남자를 고소한 경우 일반 대중의 비난의 시선은 '당연히 나쁜 놈'인 남자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여자 역시 '가볍게 행동한, 아무 생각 없는 여자' 취급을 받기 마련입니다. 전문가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설레발에 넘어가 '천금같은' 정조를 함부로 아무게나 줘 버린 여자 취급인 것이죠.

또 '혼빙간'의 고소인이 되는 순간 여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피해자를 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윗글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은 이 부분에 대한 얘깁니다. 이 영화가 당시의 관객들에게 먹혔던 것은 유부남을 사랑한 유치원 여교사가, 시골에서 남자의 본처와 아이가 상경했을 때에 그냥 조용히 물러날 마음을 먹고 혼자 아픈 가슴을 달랬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자가 '내 청춘을 물어내라'며 남자를 고소했다면, 많은 관객들은 오히려 이 극중 캐릭터를 '독한 년'이라고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혼빙간의 요소가 성립하려면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감췄어야 하지만, 고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여자 쪽에서는 어쨌든 '나는 남자가 유부남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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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여자들이 '사짜(의사, 변호사 등등)' 스펙을 들이미는 남자들의 '결혼하자'는 말에 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결국 많은 여자들이 결혼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어쨌든 '조건'이라는 것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일겁니다.

좋은 조건을 이용해 '혼인을 빙자'해서 여성의 몸을 농락하는 것과, 윗글 맨 위에서 소개한 '기만을 통한 강간(Rape by deception)'은 꽤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두 경우 모두 여자가 남자에게 속아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징벌이 있어야 한다는 시선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과연 '피해자'인 여성을 순수한 의미에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논의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지각 능력을 보는 수준에서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혼빙간' 규정이 여자를 보는 시선은 금치산자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시선이 제 높이로 올라오고 나서야 비로소 '기만에 의한 강간'을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여성계가 혼빙간의 폐지에 적극 찬성하고 나선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혼빙간이라는 죄가 존재하건 안 하건, 한 여자가 어떤 이유에서든 한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헤픈 X' 취급을 받는 사회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를 해 두고 싶습니다. 1955년의 박인수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심에서 박씨를 무죄로 풀어 준 재판부의 '놀라운 명판결'이 아니라, 판결이 어떻든 이미 대중의 여론은 그 사건의 고소인들(혹은 피해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난해의 아이비 사건만 돌이켜 생각해 봐도 이 부분에서 한국 사회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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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턱뼈가 저립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터져서 21세기들어 가장 정신없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국경일이겠군요. 혼인빙자간음죄가 사라진 날... 이제 총각 행세하고 다니는 불량 유부남들 이마의 주름 좀 펴지려나...(농담입니다)

이런 저런 소식 가운데 가장 웃음이 나오는 소식은 영화배우 김민선의 개명이더군요. 어려서부터 불리던 이름인 '규리'를 쓰겠다는 겁니다. 도대체 왜? 이미 활동하고 있는 김규리는 어쩌고? 다른 사람들은 헷갈려서 어떡하지? 게다가 규리라는 이름이 이미 드문 이름도 아니고...

문득 머리에 떠오른 그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요즘 매주 고생하시는 이 분. 거기에 맞춰서 살짝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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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인생' 테마 흐르고>>

김: 우리 조직중에 가장 엘리트인 유상무상무?
유: 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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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화배우 김민선이 이름을 바꿨다며?
유: 네. 그렇습니다.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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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럼 원래 김규리는 어떻게 됐나.
유: 원래 김규리는 본명이 김문선인데, 규리의 세계로 온걸 환영한다고 합니다.
김: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바꿨는데 본명이 김문선인 오리지날 김규리가 김규리로 이름바꾼 김민선에게 규리의 세계로 온걸 환영한다고 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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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카라 박규리가 규리라는 이름 가진 애들은 다 예쁘다고 좋아하자 옆에 있던 티아라 큐리가 '거.짓.말'이라고 했답니다.
김: 티아라에도 큐리라는 애가 있나?
유: 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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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바꿨는데 본명이 김문선인 오리지날 김규리가 김규리로 이름바꾼 김민선에게 규리의 세계로 온걸 환영한다고 했더니 카라 박규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모두 예쁘다고 하자 옆에 있던 티아라 큐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카라 박규리보고 거짓말을 한다고 했구만?

<우와~~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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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레이싱걸 이규리가 나도 규리라고 주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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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씨야 출신 남규리가 규리 규리 한다고 다 규리냐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김: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바꿨는데 본명이 김문선인 오리지날 김규리가 김규리로 이름바꾼 김민선에게 규리의 세계로 온걸 환영한다고 했더니 카라 박규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모두 예쁘다고 하자 옆에 있던 티아라 큐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카라 박규리보고 거짓말 말라고 했고 여기에 레이싱걸 이규리가 나도 규리라고 하자 옆에 있던 씨야 남규리가 규리 규리 하면 아무나 다 규리냐고 했구만?

유: 아직 더 있습니다.

김: 다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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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바로 옆 귀리밭에서 귀리 농사를 짓고 있던 퀴리부인이 이런 라듐으로 지져서 폴로늄으로 태워먹을 것들, 하고 한마디 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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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김민선이 김규리로 이름을 바꿨는데 본명이 김문선인 오리지날 김규리가 김규리로 이름바꾼 김민선에게 규리의 세계로 온걸 환영한다고 했더니 카라 박규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모두 예쁘다고 하자 옆에 있던 티아라 큐리가 김민선 김규리 김문선 김규리 카라 박규리보고 거짓말 말라고 했고 여기에 레이싱걸 이규리가 나도 규리라고 하자 옆에 있던 씨야 남규리가 규리 규리 하면 아무나 다 규리냐고 했고 바로 옆 귀리밭에서 귀리 농사를 짓고 있던 퀴리부인이 이런 라듐으로 지져서 폴로늄으로 구워먹을 것들 하고 한마디 했구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좀 할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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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라는 이름이 예쁘다는 건 알겠지만 생각보단 참 규리가 많군요. 황우석 박사 사건때 유명해지신 서울대 안규리 교수님은 실제로 '퀴리부인처럼 위대한 과학자가 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더군요.

아무튼 김문선 김규리와 김민선 김규리, 헷갈리지 않고 잘 살면 좋겠군요. 나이도 79년생 동갑에다 키도 사실 엇비슷한데... 그거 참.

P.S. 제목이 '씁쓸한 인생'인 건 개콘의 코너 제목이 그런 거지 김민선의 개명이 씁쓸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유머는 유머일 뿐!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강력한 추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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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날 보는 만화책이 제일 재미있고 치과 가기 전날 그렇게 호박엿이 먹고 싶다고, 바쁜 와중에 하고 싶은 건 점점 늘어만 갑니다.

이달초쯤에 '올해의 가장 보고 싶은 공연'이 변경됐습니다. 물론 GNR의 공연이야 대단히 기대되는 바이지만 '가장'은 아니게 됐다는 얘깁니다. 이미 짐작하신 분도 많겠지만 한자로 地風火, 영어로 Earth, Wind, and Fire라고 쓰시는 형님들이 한국에 오신답니다.

'12월17일 오후 8시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이라는 곳에서 첫 내한 공연이 잡혔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이 형님들의 팀 결성 40주년이라는군요.

물론 오랜 팬들이야 이미 진작부터 예매 모드로 들어가셨겠지만 - 이 기회에 형님들을 지켜본 30년 세월을 잠시 되새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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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에는 롤러 스케이트의 물결이 밀어닥쳤습니다. 네. 바퀴가 한줄로 붙은 날렵한 롤러 블레이드가 아니라 베어링같이 생긴 바퀴가 달린 롤러 스케이트입니다.

이 바람에 불을 댕긴 것은 바로 영화 '롤러 부기(Roller Boogie)'였습니다. '엑소시스트'의 목 돌아간 소녀 린다 블레어가 하이틴 스타로의 변신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스토리라인은 엄청나게 단순합니다. 그냥 소년 소녀들이 피겨 스케이팅과 비슷한 롤러 부기 선수권대회를 통해 꿈을 키워나가는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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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준으로는 도저히 참고 보기 힘든 영화지만 1979년은 영화 '록키 2'가 개봉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냥 그 시절의 생각으로 눈높이를 내려 보시고... 아무튼 그 시절의 서울 시내 아파트(흙마당이 없는)에서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롤러 스케이트로 기초적인 턴 연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인 노래가 바로 EW&F의 'Boogie Wonder Land' 입니다. 그리고 이 때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EW&F라는 형님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안 때입니다.

 

롤러장이 청소년들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자 탈선공간(?)으로 자리하던 무렵, 서서히 소년은 팝에 눈을 떠 가기 시작했습니다.

'Boogie Wonder Land'가 있던 'I Am' 앨범에는 또 다른 불멸의 히트곡이 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촌스러워지지 않는, 놀라운 완성도의 명곡이죠. 물론 이 노래가 진정 필요하게 된 것은 그 후로도 거의 10년 세월이 지나서의 일이 됩니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며 불면의 밤을 달랬을까요.


Earth, Wind & Fire - After the love has gone

그 뒤로는 이 형님들의 히스토리를 찾아 보게 됩니다. 사실 제가 처음 안 것이 1979년이라는 거지, 이 분들의 전성기는 이미 진작부터 시작돼 있었던 겁니다. 뭐 당시까지 제가 아는 팝이라고는 'Genghis Khan'이나 ABBA의 'Waterloo' 정도뿐이었으니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닙니다.

이건 좀 최근의 모습입니다. 지금부터 한 10년 전?

Earth,Wind & Fire - Fantasy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분들의 세계입니다.

어떤 분들은 EW&F를 무슨 70년대를 풍미하고 어디론가 가버리신 디스코의 제왕 그룹 정도로 생각하고, 빌리지 피플의 라이벌 정도로 생각하시는 경향도 있는데 이건 큰일 날 소립니다. 'Open Our Eyes'같은 초기 앨범을 들으면 정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주력에 감동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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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TOTO의 골수 팬입니다만, TOTO를 비롯해 Steely Dan, 심지어 Chicago 등 연주력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명 밴드들도 EW&F에게는 한 손을 접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들 백인 밴드들에게 '진정 펑키한 것이란 이런 것'임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이 형님들이기 때문입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남편 닉 캐논의 출세작 '드럼라인(2002)'에서 대학 고적대가 "역시 클래식이지!"하며 'In the Stone' 을 연주할 때 혼자 남몰래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이 형님들의 DVD는 LA에서 열린 Chicago와의 조인트 공연입니다. 피터 세트라가 빠진 Chicago와 모리스 화이트가 없는 EW&F... 뭔가 핵심 부품이 빠졌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이 두 형님들의 명성은 멤버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피터 세트라 없이 내한공연을 왔던 Chicago와는 달리 이번 EW&F의 내한에는 모리스 화이트가 함께 한다고 하는군요. 건강도 안 좋다던데...

여기까지 오면 왜 '두 유 리 멤바'가 안 나오느냐고 불평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두 유 리 멤바'는 워낙 많이 들으셨을테니 하루쯤 쉬셔도 괜찮을 겁니다. 뭐 이 분들의 좋은 노래를 따지자면 끝이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곡은 이겁니다.

Earth, Wind & Fire - Reasons

아무튼 형님들을 친견할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형님들, 한국에서 제대로 하시려면 지금부터 무리하지 마시고,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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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인가 있었던 '빨간 마후라' 사건 때문에 '빨간 마후라'가 구글에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검색할 수 있는 단어가 돼 버렸다는 개탄할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의 영화 '빨간 마후라'와 김영환 장군의 이름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고유명사들입니다.

지난 주 일제히 '김영환 장군'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치러진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요약하자면 김영환 장군은 6.25가 한창이던 1951년 12월18일, 공비 토벌을 위한 공습에 나섰다가 UN 사령부의 공격 목표가 해인사인 것을 알고 명령에 불복, 인류의 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또 이 분은 한국 공군 파일럿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도입한 분이기도 하더군요. 그 분의 사적을 돌아보다 생각난 얘기들을 지난 주말에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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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숭고한 불복종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Von Choltitz)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개월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 히틀러는 그에게 거듭 “절대 파리를 온전한 채로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폰 콜티츠는 이 명령을 묵살한 끝에 8월 25일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폰 콜티츠의 항복 소식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연합군의 파리 수복 과정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폰 콜티츠는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감지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파리를 보게 된 것은 폰 콜티츠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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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군대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지 않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군 형법 44조도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명령 불복종으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는 6·25 당시 유엔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의 추모제가 열렸다. 그는 항명을 추궁하는 상부에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해 '귀하와 같은 장교를 둔 건 대한민국의 행운'이라는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물론 그 뜻을 받아들여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난 이름 모를 국군 장교를 빠뜨릴 수 없다.

위화도 회군 이후 수많은 장군이 사리 사욕에 의한 하극상으로 역사를 더럽히기도 했지만, 이렇듯 숭고한 불복종의 기록은 인간이 명령대로 단순 복종하는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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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생인 김영환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넘겨 받아 한국 공군 최초의 전투비행단을 지휘한 에이스였습니다. 이 분이 빨간 마후라를 처음으로 착용하게 된 계기를 찾아 보다 보니 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김영환 당시 대령이 1951년 형인 김정렬(뒷날 참모총장) 장군의 집에 가서 치맛감인 빨간 비단 천을 얻어다 목에 감은 것이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차대전때 독일의 에이스였던 리히토펜의 진홍색 머플러에서 착안한 김대령이 '빨간 마후라'를 후배 조종사들에게도 사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
http://www.army.mil.kr/history/%C2%FC%B0%ED/%C1%D6%BF%E4%C0%CE%B9%B0/%B3%B2/%B1%E8%BF%B5%C8%AF.htm 에 더 자세한 얘기가 있습니다.일설에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도 김영환 장군이라고 합니다만, 이 사이트에 따르면 영화의 내용은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을 지휘한 유치곤 장군의 이야기에서 더 많은 것을 따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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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그야말로 전쟁 영화의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선 폰 콜티츠가 양심적인 지식인의 표상으로 그려지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인사들은 그가 파리에서 항복하기 전까지 수많은 레지스탕스들을 체포해 처형했으며, 전세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판단, 전쟁 이후 자신의 삶을 도모하기 위해 급격히 변신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요소를 참고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파리의 보존은 아이젠하워도 쉽게 파리로 진공하지 못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였고, 그 부분에서 콜티츠에게 공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아울러 콜티츠의 항복 때문에 드골의 자유프랑스군과 파리 수복의 공을 나눠 갖게 된 좌익 레지스탕스들은 콜티츠를 미워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는군요. 이 구도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 좌익의 운명에 꽤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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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수필엔 방한암 선사가 상원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 장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이 수필엔 한암 선사가 장교를 "이삿짐을 싸야 하니 며칠 뒤에 오라"고 돌려보내고, 돌아온 장교가 법당 문을 열자 한암 선사가 절명해 있는 광경을 본 뒤 차마 절에 불을 지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과는 좀 다르다고 하더군요.^ 한암 스님이 절의 소각을 막은 것은 맞지만 입적하신 것은 이보다 좀 뒤의 일이라고 합니다. 선우휘의 단편 '상원사' 때문에 사실과 전언 사이에 혼란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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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차일혁 총경은 유명한 아드님 때문인지 요즘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입니다.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으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 분은 지금 들어도 전설적인 일화를 여럿 남겼습니다. 가극 '눈물의 여왕'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분이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듣고 한 말이 "이 절을 태우는데 하루면 충분하지만 다시 지으려면 천년도 부족하다"는 명언입니다. 전쟁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용기로는 감히 하기 힘든 말일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참 이런 분들의 일화가 자꾸 잊혀지는게 아쉬울 뿐이라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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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의 러브라인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정음(황정음)에게는 장난치듯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세경(신세경)에게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지훈(최다니엘)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힘듭니다. 여기에 늘 세경에겐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준혁(유시윤)이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죠.

김병욱표 시트콤의 마력인 '살아 숨쉬는 캐릭터'는 이 시트콤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세경 앞에선 꼼짝없이 동생인 준혁이 정음에게는 오빠처럼 대하는 것 역시 설정을 넘어 너무나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 4각관계가 더욱 흥미를 더합니다.

과연 이 4각구도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요. 물론 결과는 이 시트콤이 끝날 때에서나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미리 내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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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혁-정음, 지훈-세경

아마도 가장 순리에 맞는 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준혁이 정음을 하대하고 정음이 거기에 대해 옥신각신하는 것은 그만치 정신연령이 맞는다는 얘기일 것이고(황정남씨...), 이렇게 다투다 보면 해리가 신애를 그리워하듯 어느날 갑자기 정음이 빈 자리를 보일 때 준혁도 그 공백을 느끼게 될 겁니다. 현재까지 준혁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준혁을 각성시킬 계기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준혁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이 나타나 갑작스레 정음을 자신의 적으로 지목하면 준혁이 그때 가서 정신을 차릴지도.

지훈-세경은 이 시트콤의 방송 초기까지는 꽤 유력한 후보였지만 최근들어 지훈-정음 라인이 꽤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어찌 될지 알 수 없게 된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김병욱 감독의 취향상 이 커플을 쉽게 맺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부터 '현실의 벽'이 무겁게 느껴지겠죠. 의사가 고등학교도 못 나온 자기네 집 가정부와 맺어진다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라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죠(물론 그 가정부가 신세경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세경-신애 자매에게 호의적인 이순재 가족들도 이런 경우를 맞으면 쉽게 찬성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튼 치과에 누워 세경이 흘린 눈물에는 자신의 신세 한탄과 함께 지훈에 대한 약간의 야속한 마음이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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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준혁-세경, 지훈-정음

일단 지훈-정음은 언제든지 맺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훈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던 정음도 슬슬 지훈이 꽤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고, 지훈만 뭔가 사인을 던져준다면 두 사람은 곧바로 커플로 진행하는게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작진 측에서 보더라도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게다가 '인기투표편'에서 지훈은 정음에게, 준혁은 세경에게 투표한 것이 언젠가는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의 문제는 준혁-세경이죠. 준혁이 세경을 어려워하고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세경이 과연 준혁을 남자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가 장애가 될 듯 합니다. 이미 가장이 된 세경의 눈에 현재까지 준혁은 그냥 철없는 소년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만약 이 커플이 맺어진다면 그건 최종회에서 '10년 후' 정도로 처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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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경을 사이에 둔 지훈-준혁의 삼각관계

어찌 보면 현재 상태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라인이 본격화된다면 지훈-세경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준혁이 괴로워하는 국면이 예상됩니다. 이 경우 정음의 위치가 애매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소위 '막장성'은 최강이죠. 어찌 보면 '하이킥' 시리즈의 전통이 '이순재가 나온다'가 아니라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에게 올인한다'는 것이 될지도...

아무튼 두 사람 중 어느쪽과 맺어져도 세경은 현실의 벽을 강하게 느낄 것이고, 이건 이번 '하이킥'의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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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음을 사이에 둔 지훈-준혁의 삼각관계

현재까지는 가장 가능성없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묘사된 정음의 성격상 어장관리(?)는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막장드라마라면 정음의 성격 따위는 갑자기 변할 수도 있겠지만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지금까지 구축한 등장인물의 성격이 그렇게 무시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어쨌든' 이 드라마의 핵심인 세경-신애 자매의 존재감이 갑자기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다른 쪽으로 아무리 세경이 두각을 보인다 해도 이 두 남자와의 관계가 사라지면 그건 세경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셈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정음을 좋아하는 두 남자 중 하나에게 세경이 매달린다...는 것 역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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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훈을 둘러싼 정음-세경의 삼각관계

같은 이유로 이 관계 역시 이 상큼한 시트콤을 뭔가 묵은 냄새 나는 옛날 드라마로 바꿔놓는 효과가 있을 것 같기만 합니다. 아무튼 지훈이 누구를 좋아한다 해도 쉽게 겉으로 드러내거나 금세 마음을 정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짧게라도 이런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은 항상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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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음->준혁->세경->지훈의 돌고 도는 관계

'한여름밤의 꿈'을 패러디한 특집 한 회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누군가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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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을 사용한 코미디도 딱 5초 쓰고 말 정도로 '뻔한 것'을 거부하는 김병욱 감독님의 스타일로 볼 때 위의 경우의 수는 전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무시무시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개인적으로는 1번이 기대됩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떠실지도 궁금합니다.

P.S. 그나자나 김용준은 언제 다시 한번 제대로 나오는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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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공개 1주일째에 거론하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2주가 지났습니다. 그 2주 사이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국민 커플의 등장은 알게 모르게 한국과 주변 국가들에 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영향은 커플 공개 1주일 동안 한국 연예계에 밀어닥친 결별 선언 열풍이었고(2주 동안 안용준-서승아까지 무려 네 커플의 결별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연예계는 물론 정계와 일반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소소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주째까지 보이는 여파를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아, 물론 잘 아시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개는 그냥 웃자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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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이때다 - 결별 묻어가기

평소같으면 꽤 여진이 있었을 사건이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 흔히 '묻어간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장동건-고소영 열애가 공개된 날, 공교롭게도 백보람-김재우 커플의 결별 보도가 있었습니다. 백-김 커플은 아주 조용히 결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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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그 직후 하하-안혜경 커플의 경우에는 발표 시기가 살짝 의심스럽습니다. 장-고 커플의 여파에 살짝 묻어 가려는 의도가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장-고의 열애 공개 이후 1주일 안에 개그맨 채경선-가수 태사비애까지 세 커플의 결별이 보도된 것은 아무래도 우연이라고 보긴 힘들겠죠. (2주가 지난 뒤의 안용준-서승아는 여기서 제외해도 될 듯 합니다만^^)

그리고 연예계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오래된 커플의 결별이나 이혼은 누구도 오래 화제가 되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뭔가 큰 사건이 터지면 이때다 싶게 슬쩍 공개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꽤 많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장-고 커플의 등장에서 딱 한달 전, 결별을 발표한 김주혁-김지수 커플이 '한달만 기다릴 걸'하고 후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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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모설은 죽지 않는다

장동건-고소영의 열애 발표가 있던 날 일부 정치 관련 매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 육사 혈서 보도를 막으려는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음모설은 일찌기 잠들 날이 없었죠. 가장 먼저 기억나는 예로는 '비와 이효리의 열애설을 막기 위해 JYP가 카우치 사건을 만들어 냈다'는 얘깁니다.^^ 10대 선에서는 꽤 설득력있는 얘기인가봅니다. 아무튼 '고소'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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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왠지 가슴이 아파

일반인들 가운데 식욕감퇴, 불면, 편두통, 의욕상실, 현실부정의 증세를 보인 분들이 꽤 있다는 것은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도...). 연예인들 사이에도 이런 대형 커플의 등장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박소현이나 박정민(SS501) 처럼 공개적으로 아예 이런 언급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이죠. 같은 연예인이라도 박성광처럼 "에잇, 사귀는 것도 1등끼리만 사귀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심지어 한 교회에서도 제일 잘생긴 오빠와 제일 예쁜 언니가 사귀면 우울증에 빠지는 여학생들이 있을텐데 오죽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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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훈 1: 꺼진불도 다시 보자

사회적으로는 이들이 17년 친구라는 사실 때문에 "결국 짝이 없으면 그냥 친구 사이도 언제든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오래된 교훈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스물 언저리의 친구들은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다가 서른(혹은 서른다섯, 혹은 마흔) 넘어서까지 서로 짝이 없으면 같이 살자"는 식의 덧없는 약속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커플의 등장은 나이 먹은 솔로들에게 '혹시나'하는 마음에 주변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입니다.

아울러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은 일반인들로 치자면 오랫동안 서로 지켜봐 온 직장동료(뭐 이게 너무 심하면 업계 동료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특수한 직업이라 서로 일하는 환경과 고민을 잘 알기 때문에 이해의 폭도 넓다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일반인들의 연인 선택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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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훈 2: 항상 '최측근'과 '2선 측근'이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A와 B가 사귄대!'하는 소문이 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넌 몰랐냐? 난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같이 만난 적도 있어' 하는 사람이 있고, 쓰린 속을 달래며 '응.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방해될까봐 말은 안 했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장-고의 열애 발표 이후에도 김승우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일찌감치 주변에 냄새를 뿌리고 다닌(심지어 방송에서도...) 경력이 드러나는 등 '장동건의 진정한 측근'임을 과시하게 됐습니다. 반면 이번 사건에 대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은 내심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보통 사람들도 나 자신은 주변 사람들의 최측근인지, 2선에서 소문을 전해 듣는 쪽인지도 점검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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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애인 없는 분들은 오래된 주변 친구들을 점검하시고, 짝 있는 분들은 옆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연락 안 했던 친구들도 해 바뀌기 전에 얼굴 볼 땝니다. 그리고 뭐든 충격적인 보고는 슬쩍 묻어갈 수 있을 때 하시는게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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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다'. 한국 영화의 스토리를 훑어 보면서 '독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들로는 '박하사탕'과 '올드보이'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 비교해도 '백야행'의 처절함은 그리 뒤처지지 않습니다. 원작을 읽으면서, 치과의 치료용 침상에 누워 있는 심정이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원작 소설과 일본 드라마 판을 비교해 보며 기다리기를 6개월, 마침내 완성된 영화 '백야행'을 봤습니다.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살렸네 못 살렸네에 대한 논란도 오가고 있지만 최소한 한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우리의 여주인공 손예진은 일본의 아야세 하루카를 압도했다는 겁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긴 글 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로 압축해서 얘기하자면: 볼만 합니다. 그리 본전 생각은 안 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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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은 미호(손예진)와 승조(박성웅) 사이의 질펀한 정사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고교 미술 교사인 미호는 국내 굴지의 재벌인 승조와 결혼을 앞둔 사이. 하지만 미호의 표정에서 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 요한(고수)은 한 남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있습니다.

시점은 14년 전으로 이동합니다. 형사 동수(한석규)는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한 폐선 안에서 중년 남자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남자는 어린 요한의 아버지. 동수는 사건 현장의 단서를 쫓다가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뒷날의 미호)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은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지어지고 수사가 종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게 된 동수는 맹목적으로 이 사건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현재, 승조는 미호가 자신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비서 시영(이민정)을 시켜 미호의 과거를 조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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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르는 음악은 일관되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클래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유명한 곡이죠. 이 '백조의 호수'의 이미지, 처음부터 끝까지 흰 색 위주의 스타일링으로 고수와 대비를 이룬 손예진의 패션, 그리고 마지막 패션 쇼장에 놓였던 흰색의 니케 여신상(날개가 달려 있죠)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게 이 영화가 지향하는 길을 비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낮게 낮게(혹은 쉽게 쉽게) 가겠다'는, 대중적인 노선의 선택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 '백야행'은 읽는 데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 3권 분량의 원작을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압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원작에서 빼놓은 부분이 없나 하는 점에 지나치게 매달리다보면 스토리만 요약해 놓았을 뿐 원작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작품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상징성에 집작하다 보면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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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을 감안할 때, 한국 영화 '백야행'의 시나리오를 비난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에서 살려야 할 요소들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관객을 혼란시키지 않는 적절한 선을 유지했다고나 할까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 상당히 어렵게 빙빙 돌아 간 길을 한방에 질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들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료지(요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만큼 그의 범죄에서 어떤 의도나 흔적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요한은 허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차이는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요한이 잡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원작의 료지 수준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사건을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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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갔던 길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너발짝이면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건 아마도 원작 팬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백조의 호수'나 동수 아들의 죽음 등 원작에 없는 요소들의 등장 역시 원작의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요소로 여겨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작 팬들의 욕구를 모두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10편 이상의 드라마화뿐일까요? 하지만 일본에서 이미 제작돼 방송됐던 드라마 '백야행' 역시 원작 팬들로부터 '원작 훼손'이라는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길다고 능사도 아닌 듯 합니다.^^

(많은 경우, 마니아들이 많은 원작일수록 영상화는 거의 반역에 가까운 대접을 받습니다. 내년 등장할 영화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또한 이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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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나리오를 비교할 때 개인적으로 100점짜리 각색은 아니지만 90점은 주어야 마땅할 듯 합니다. 하지만 박신우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꽤 역량을 발휘한 반면, 연출에서는 80점 이상을 받기 힘들 듯 합니다. 특히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데에서 아직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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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작진은 탁월한 여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있지만,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국내에서 손예진 이상의 선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기분나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연령대의 배우들 가운데서 '미소짓는 악녀'의 아우라를 누가 더 강하게 풍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장면에서 '작업의 정석'의 몇 장면이 떠올라 웃음을 참아야 했던 게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손예진은 '백야행'에서 '가식의 끝'과 '내면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 쉬운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일본 드라마판의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와의 비교를 통해 아주 간단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야세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감정의 기복이 잔물결이라면 손예진이 보여주는 격동은 해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 영상물을 비교해서 보면 여주인공의 역량 차이가 너무도 극명합니다. (아역의 경우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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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전부터 손예진에 비해 고수를 불안요소로 생각한 사람은 꽤 있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의 고수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었죠. '이미지로 가는 배우'였습니다. '백야행'에서도 고수에겐 많은 대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표정과 분위기는 요한 역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이 경우에도 아역과의 불균형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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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연기한 형사 동수 역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이 부분이 원작 팬들에겐 꽤 불만일 법 합니다). 영화 내내 까칠하고, 냉소적인데다 반항적이고 가시돋친 인물로 등장한다는 건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그닥 애정이 없었거나, 아니면 무신경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요소를 넣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캐릭터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어야 했을 마지막 장면, '아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은 한번이면 족했을 듯 합니다. 굳이 동수의 입을 빌어 두번 질문을 반복하는 건 연출권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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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주인공의 형상화만에도 힘이 부쳤던 걸까요. 박성웅이 연기한 승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민정이 연기한 시영은 기대했던 비중에 비하면 처참한 실패입니다. 배우와 연출자 중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둘 중 누군가는 열의가 좀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총정리하자면 '백야행'은 초기 세 명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한 제작진이 "이 정도 배우들이라면 이만만한 관객을 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대중용 영화를 지향해 만든 작품입니다. 이때문에 좀 서비스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던 관객들에겐 너무 안전한 운행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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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가 그렇듯, 이 영화 이야기는 손예진으로 시작해 손예진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결코 '백야행'을 보고 실망할 일은 없을 듯 합니다.


P.S. 그런데 한국 사람이라면, '며칠 모자라는 15년'을 14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굳이 왜 '14년'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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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미실 시대의 '선덕여왕'에서 제작진은 눈여겨 볼 부분 중 하나로 '김유신의 복권'을 꼽았습니다. 삼국통일의 주역이자 불패의 명장인 유신의 면모를 살려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덕여왕' 52회에서는 뭔가 선봉대장으로의 면모를 갖춘 듯한 고도와 함께 턱수염을 기른 유신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상으로 '첫 승리'를 기록한 유신의 직위가 상장군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다 보니 갑자기 유신이 승리를 거두는 상승장군이 된다 해서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김유신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줄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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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서 김유신의 전공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630년(진평왕 51년)의 낭비성 전투입니다. 이때 기록은 이렇습니다.

51년 가을 8월, 왕이 대장군 용춘·서현과 부장군 유신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성 밖에 나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아주 드높았다. 아군은 이를 보고 겁을 내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신은 "나는 '옷깃을 잡고 흔들면 옷이 반듯해지고, 그물의 꼭지를 쳐들면 그물이 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물의 꼭지와 옷깃이 되어 보겠다!"라고 말하며, 즉시 말에 올라 칼을 빼들고 적진을 향하여 곧장 돌진하였다. 세 번을 적진 속에 들어 갔다 나오면서 그 때마다 적장의 목을 베거나 깃대를 뽑아왔다. 그러자 군사들이 기세를 올리며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여 5천여 명을 목베어 죽였다. 낭비성이 항복하였다.

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懼, 殊無鬪心. 庾信曰: "吾聞: '振領而 正,  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乃跨馬拔劒, 向敵陣直前, 三入三出, 每入或斬將, 或 旗. 諸軍乘勝, 鼓 進擊, 斬殺五千餘級, 其城乃降.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유신이 신라군의 사령관이 되기 전, 일개 비장이던 시절에 '단신으로 적진으로 돌격했다'는 첫번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김유신의 뒷날 전투 기록을 살펴보고 "참으로 모질고 독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신의 전투에서는 드물지 않게 최측근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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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비녕자와 관련된 기록입니다. 유신의 낭비성 전투와 비교할만 합니다.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침입하여 무산, 감물, 동잠 등 세 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유신에게 보병과 기병 1만을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유신은 어렵게 싸웠고 마침내 기력이 떨어졌다. 유신은 비녕자에게 말했다. “오늘의 사태가 위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군사들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으랴!”
비녕자가 절을 하고 말했다. “어찌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적진으로 달려갔다. 그의 아들 거진과 종 합절이 그를 따라 적의 칼과 창 속으로 돌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고 감격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진격하여 적병을 대파하고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冬十月, 百濟兵來, 圍茂山,甘勿,桐岑等三城, 王遣庾信, 率步騎一萬拒之. 苦戰氣竭, 庾信謂丕寧子曰: “今日之事急矣, 非子, 誰能激衆心乎.”
丕寧子拜曰: “敢不惟命之從.” 遂赴敵. 子擧眞及家奴合節隨之, 突劒戟, 力戰死之. 軍士望之, 感勵爭進, 大敗賊兵, 斬首三千餘級

화랑의 감투정신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예화입니다. 사실 선덕여왕 연간에 신라는 백제에게 수세로 전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덕여왕 원년, 신라와 백제의 전투에서 김유신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이때 비녕자에게 "네가 나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들끓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비슷한 사적은 먼 뒷날, 황산벌에서 계백과 대치한 김유신의 군대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이 전투에서 김유신은 계백의 결사대에 연거푸 패해 군심이 흔들리자 자신의 친 조카인 반굴(유신의 동생 흠순의 아들)과 역시 조카뻘인 관창을 희생시켜 전군을 격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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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에는 흠순이 나오지 않는 대신 월야가 의동생 역으로 나오고 있죠.)

총사령관의 동생인 흠순이 반굴에게 말합니다. "신하된 바로는 충성이 제일이요, 아들된 바로는 효도가 제일이다. 이날 우리가 위기에 처했으니 목숨을 버리면 충효를 모두 갖추는 것이다(爲臣莫若忠, 爲子莫若孝, 見危致命, 忠孝兩全)." 이 말에 반굴은 적진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립니다.

화랑들이 단신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용맹을 과시하면 아군 병사들의 사기가 치솟을 수 있겠지만 그 뛰어든 사람은 십중팔구는 죽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무위가 뛰어나다 해도 수천 수만의 적군과 혼자 대치하면 죽음을 피하기 힘듭니다.

유신과 비녕자, 반굴과 관창을 비교해 볼 때 기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유신은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죽었다는 것 뿐입니다. 이 말은 유신 역시 낭비성에서 적진으로 침투할 때에는 역시 비녕자나 관창과 같은 운명이 될 각오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도구로 던질 각오가 있었던 사람이 장군이 되고, 그런 장군인 만큼 휘하의 병사들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신의 리더십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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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이런 배경을 찾아 볼 수는 없겠습니다. 이미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고 유신은 상장군이 됐지만, 그의 휘하 장병들이 그를 믿고 따라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이미 고위 장성이 되기 전에 그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인물이란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생략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신이 명장이 된 것은 일신의 용맹보다는 빼어난 지략과 정략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후세로 갈수록 김유신의 면모에선 지장의 면모가 풍겨나옵니다. 어쨌든 김유신을 '선덕여왕'에서 빛나는 캐릭터로 키워내기 위해선 필수적인 부분이 생략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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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실이 하는대로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여왕마마께서는 안 늙는 비법도 그대로 물려받으셨습니다. 유신과 알천, 월야가 수염이 시커매지고 설원과 미생은 노인이 됐건만... 참고로 드라마 '선덕여왕'의 설정을 따를 때 이 시기의 선덕여왕은 60세 전후입니다. (자꾸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네 하는 분들, 이건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설정에 따를 때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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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의 역사를 가진 동춘 서커스가 해체를 선언했다는 얘기를 듣고 쓴 글인데, 어느새 '해체는 없다'는 새로운 소식이 떴습니다. 일단 수원시가 상설 공연을 할 수 있는 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기로 하는 등 각지로부터의 관심이 급한 불을 끄게 했다는 얘깁니다.

지난달 말, '마지막 공연'을 전제로 진행된 공연은 동춘서커스 역사상 가장 홍보가 잘 된 공연 중 하나였을 겁니다. 동춘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조차도 까맣게 잊었을 사람들까지도 '해체' 기사를 보고 '아, 아직도 열심히들 하고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들리는 말로는 그 공연에도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동춘' 얘기를 하면서 유행처럼 '태양의 서커스'를 반찬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냥 그런 식의 단순한 비교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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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커스

2세기 초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는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포기한 다음부터, 우리는 단 두 가지에만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라는 구절이 나온다. 당장 달콤한 복리와 오락에 혹해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포기한 민중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이 시기 로마에선 각종 기예나 신기한 동물 쇼, 광대놀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에 전차 경주까지 합쳐진 대규모의 서커스가 성행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수많은 해외 사신들을 초빙한 가운데 백희(百戱)라는 이름의 대형 서커스 쇼를 펼친 기록이 있다. 2세기 초 장형(張衡)이 쓴 '이도부(二都賦)'에 동해황공(東海黃公)이나 어룡만연(魚龍蔓衍)처럼 구체적인 연희의 제목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2000년간 인류를 즐겁게 해줬던 서커스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위기에 놓였다. 산업사회의 성숙과 함께 등장한 TV와 영화, 프로 스포츠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맞서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8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춘 서커스가 경영난 끝에 오는 11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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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4년 창단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서커스가 결코 시대에 뒤진 오락이 아님을 입증해냈다. 이들은 기존의 볼거리에 음악과 조명, 의상과 스토리 등 현대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관객의 발길을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창단 이후 지금까지 200개 도시를 돌며 9억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내년에도 20개의 서로 다른 공연을 온 세계에서 펼칠 예정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으로 꼽는 상하이 서커스(上海雜技)도 유서 깊은 중국 기예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는 하나 사라져가던 이 연희가 재건된 것은 1994년, 아크로바트 쇼 '금색서남풍(金色西南風)'이 크게 성공한 뒤의 일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역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손을 잡기 전까지는 사양 시장으로 취급됐다. 어떤 장르도 그 역사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는 변신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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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주브날(Juvenal)이라고 불릴 것 같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는 16편의 정치 풍자시(satire)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빵과 서커스'가 나오는 10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유베날리스의 시대는 로마의 혼란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정 초기, 5현제 시대로 이어지는 안정기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베날리스는 대중이 '빵과 서커스'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포기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양식'과 '오락'에만 취해 길들여졌다는 얘깁니다.

이 시기의 서커스는 지금의 서커스와는 좀 다릅니다. '서커스'라는 것이 거대한 공연장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고, 각종 기예나 동물 쇼, 광대 놀이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커스의 요소 외에 검투사의 싸움이나 전차 경주까지 포함된 초대형 버라이어티 공연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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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오던 서커스가 어떻게 위기를 맞았는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몰락의 길을 걷던 서커스라는 장르에 태양의 서커스라는 새로운 조류가 등장하며 이를 모방한 수많은 '현대적 서커스' 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서커스가 그렇듯, '현대화된 서커스' 또한 모두 성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태양의 서커스'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것 역시 그냥 되는 건 아닙니다. 쉴새없이 새로운 요소와 도전이 실현되고 있고, 그 동안 쌓아올린 자본력과 노하우로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의 취향이란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동춘이든 누구든, 혹시라도 정부 당국이 나서면 결과는 너무나 뻔할 겁니다. 해외 연수를 통해서든 자료 분석을 통해서든 '태양의 서커스'를 모델로 한 개혁이 이뤄지겠죠. 하지만 과연 그런 모방이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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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웨스트엔드의 황금기를 연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는 "우리가 처음 무대에서 쇼를 짤 때만 해도 뮤지컬은 돈 버는 쇼가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우리 쇼로 이 공연장을 꽉 채우고 말겠다"는 열정 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장르든 공연 예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는 '우리의 애환이 담긴 장르를 살려야 한다는 동정'이나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공무원들의 문화 상품 기획서의 구색 맞추기 항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열정과 재능이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지원도, 어떤 동정도 저절로 관객을 몰아다 주지는 않을 겁니다.

P.S. 쓰고 보니 '신문산업'에도 해당되겠군요. 갑자기 한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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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루저가 돼 있었습니다. 네. 저도 몇cm 모자라는 루저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 봤습니다. 지금 스무살 안팎이라면 분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저의 난 1주일. 잠깐 웃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파가 길었고, 처음에는 '홍대녀'라고 불리던 여대생이 표적이 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더니 이제는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다시 표적이 됐더군요. 평소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과연 이 프로그램이 표적이 되는 것이 적절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과연 누가 진짜 루저인지가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짜 '루저'는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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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미수다'에 대해 "그런 발언을 걸러내지 않고 방송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송이 '공개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별 생각 없이 공개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의 역사를 되짚어 생각해 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 성매매 현장이나 교외로 빠져나간 집창촌을 고발한다는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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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려던 얘기가 너무 깊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방송이 '걸러지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노출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이런 저런 사례들을 살펴 보더라도 '미수다'에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별로 없더군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수다' 제작진이 욕을 먹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대본'으로 문제의 여대생에게 '루저녀' 발언을 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편집에서 그 문제의 발언을 걸러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다 조금 의아해집니다.

첫째. 대본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진실게임이 벌어졌지만, 정황으로 볼 때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루저'라는 말이 작가들의 창작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토크쇼의 '대본'을 드라마 대본으로 착각하는 것은 제작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에 대본이 있는 것은, 대개 작가들이 출연자들과 사전에 주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을 방송에 맞도록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제작 환경을 감안할 때, 작가들이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출연자와의 사전 대화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 말이 사실일 것입니다.

만약 문제의 여대생이 대본을 받아들었는데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루저'라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도 그 대본을 그냥 읽어 방송했다면, 이것은 더욱 더 자신의 생각 없음을 드러내는 얘기일 뿐입니다. 자신의 '루저'라는 발언을 제작진의 실수인 것처럼 떠 넘길 상황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여대생은 문제의 '미수다' 방송이 나가기 전 자신의 싸이에다 '우린 솔직하게 얘기한 것 뿐인데 안티가 생길까 두렵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자신의 본래 생각을 반영한 것임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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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두번째 비난, '루저'라는 문제 있는 발언을 방송으로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런 식의 선정성에 기초한 방송은 사라져야 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는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이 방송 내용이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의 존재가 사라질까요?

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는 '퀸카 여대생'이라는 이름의, 혹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병든 환자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교재나 두꺼운 책은 갖고 다닐 수 없다는, 소개팅을 나가기 위해서 화장품과 옷값으로 이미 상당액을 지출했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은 부담할 수 없다는, 내가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보다는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 편히 사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은 이날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된 '미수다'는 이런 형태의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도마 위에 올려 놓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했습니다.

방송 뒤에 있었던 수많은 대화들은 이런 병증이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날 '미수다'에 출연한 외국인 출연자들만큼, 그런 병적인 생각들이 왜 잘못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인지를 선명하게 지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루저'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차단되었어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욕설이거나, 의미 있는 말이었을까요. 이날 방송은 우리 사회에 이 정도로 그런 말의 사용에 무신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고, 그 말로 압축되는 우리 사회의 한 경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사람들의 논의 대상으로 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건 방송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이런 내용이나 방송하는 미수다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희들만 조용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너희가 그런 내용을 방송하는 바람에 문제가 됐다'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 없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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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으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정말 생각 없고 어리석은 사람임이 드러난 것은 문제의 발언을 할 '용기'가 있었던 여대생 이모씨입니다. 하지만, 그 이모씨에 대한 논란 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못난 남자'들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 하나가 방송에 나와선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듣고 "하하. 너때문에 내가 하루아침에 루저가 돼 버렸구나"하며 웃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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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얘기에 진지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낸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재점검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분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얘깁니까? 혀를 끌끌 차면서 "참 대학까지 보내 놨더니 저런 소리나 하고... 등록금이 아깝다"고 비웃으면 충분할 얘기 아니었나요?

미안하지만 그 말에 벌컥 분노하는 것은 '그래, 알고보니 나는 정말 루저였는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당신은 키가 180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루저입니다. 문제의 '홍대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달려가 욕설을 퍼붓고, 홍익대 게시판을 마비시키고, 방송국 게시판에 욕설을 써 놓는 건 당신이 루저라는 사실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입니다.

(네. 이 글 아래에 욕설로 댓글을 달고 싶어지는 것 역시 당신이 루저라는 걸 다시 확인해 주는 행동일 뿐입니다.^^)


P.S.2. 못 알아듣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하니 더 쉽게 한마디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당신 자신뿐입니다."

하긴 이래도 못 알아 들을 사람이 꽤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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