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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에서 가장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이병헌에서 빅뱅의 탑에 이르는 엄청난 캐스팅입니다.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 등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충분히 주연을 맡을 배우들이 모두 조연급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기만 합니다.

'이죽사'의 김규태PD와 '리베라메'의 양윤호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고 있긴 하지만 이런 캐스팅은 아무래도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전면에서는 빠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작품을 컨트롤한 최완규 작가(초기에는 작가명이 드러나 있었지만 어느새 크레딧에는 '극본-김현준 조규원 김재은'이라는 표기로 바뀌어 있습니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완규-이병헌이라는 라인이 아무래도 '올인'의 향기를 다시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아이리스' 1부는 그동안 흘러나왔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은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고 대놓고 자랑하는 화력시범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전체적으로 흠잡을데가 별로 없는 드라마에서도 위험 요소 하나가 보입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맨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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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내용을 살짝 요약하자면 -

헝가리에 와 있는 NSS 소속 요원 현준(이병헌)은 부국장(김영철)으로부터 북한의 최고위 요인을 저격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현준은 임무를 수행하지만 북한의 엘리트 요원이 철영(김승우)과 선화(김소연)의 추격을 받아 총상을 입습니다. 하지만 부국장은 현준의 구조 요청에 굳은 얼굴로 전화를 끊습니다.

이어지는 과거 회상. 707특임대 소속인 현준(이병헌)은 대학에 나가 공부를 하라는 기이한 특명(?)을 받고 학교 강의실에서 여학생 승희(김태희)를 만나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한편 현준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특임대의 에이스 자리를 다투는 사우(정준호)는 선배 상현(윤제문)과의 술자리에서 승희를 만나 역시 반해버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 현준과 사우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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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모를수록 감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눈치 빠른 시청자들이라면 이후의 진행이 대략 짐작될 겁니다. 사전에 알 수 있는 줄거리는 홈페이지상에도 나와 있죠. 검은 양복들에게 끌려간 현준과 사우는 고문 테스트를 받고 부국장 김영철이 이끄는 비밀 기구의 요원이 됩니다. 신분을 가장하고 두 사람을 각각 만난 승희는 그 기구의 선배 요원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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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회에서 보여준 물량과 빠른 편집은 시청자들이 갖고 있던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두 연출자의 역할분담은 대략 스토리 라인은 김규태 PD가, 외부 촬영과 스펙터클은 주로 양윤호 감독의 몫으로 나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양윤호 감독의 작품들이 극악의 스토리라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그런 부담을 씻고 자신의 장기인 '볼거리'에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외화들을 통해 저격 장면들을 보아 온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간단하게 피격 포인트를 파악하고 너무 간단하게 저격 장소로 이동하며, 역시 너무 간단하게 현준의 은신처를 알아내 버리는 진행이 좀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진행은 '총감독 정태원'의 스타일이라 매우 익숙합니다.

(흔히 정태원 대표는 작가, 감독, 제작사 대표를 모두 겸임해 '정태원 총감독'이라는 우스개로 불리곤 합니다. 그리고 이분의 스타일은 '귀찮고 머리 써야 하는 부분은 모두 삭제'라는 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이분이 아니면 '아이리스'같은 대작은 나올 수 없었다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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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익숙한 장면. 사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걸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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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파격적인 스타 파워와 물량의 결합은 '아이리스' 1회에서 좋은 효과를 냈습니다. 대학 생활 장면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1회의 하이라이트인 고문 장면에서 이병헌의 힘은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화면을 꽉 채워버리는 압도적인 연기력은 시청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죠.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쉬리'와 '올인'의 유산들입니다. 여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국가로부터 오해받는 요원'이라는 키퍼 서덜랜드의 '24'가 오무라이스의 계란처럼 덮입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일은 아닙니다. 일찌기 '쉬리'를 만든 강제규 감독 팀의 구호가 '한국에서도 블럭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였다면 '아이리스' 제작진의 정서는 '미드에서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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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여주인공입니다. 김태희는 이미 1회에서도 몇차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지나치더군요. 어떤 연기를 할 때에도 변화 없는 표정을 보면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비밀 요원의 역할에 적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1회에서도 이렇게 불안요소를 드러낸다면 본격적인 멜로드라마(순간 '메롱드라마'라고 쓸 뻔 했습니다)가 진행되어야 할 때에는 진짜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병헌은 지금까지 혼자 연기할 때는 물론 상대 여배우로부터 멜로드라마 연기를 이끌어내는 데에 발군의 솜씨를 보여왔습니다. 반면 김태희는 상대역이 누구든 간에 아무런 변화 없는 연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조현재-김래원-정우성은 물론이고 설경구조차 끌어내지 못했던 김태희의 '연기'를 과연 이병헌은 끌어낼 수 있을까요?

아이리스는 첫회만으로도, 어쩌면 방송 전부터 어느 정도의 성공은 보장된 작품이란 게 분명해졌습니다. 이 점을 인정하고 나면, 바로 이 '위험 요소'의 처리 결과가 '아이리스'가 한국 드라마사에 남는 대작이 될지, 아니면 수많은 성공작 중 하나가 될 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 가능성은 정말 반반이군요.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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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천사의 유혹'이 방송 초반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아내의 유혹'에 중독됐던 주부층을 다시 사로잡을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작품도 도입부부터 '놀랍도록 빠른 전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천사의 유혹'의 스토리가 새롭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천사의 유혹'이나 '아내의 유혹'과 자주 비교되는 아침드라마들의 경우, 비슷한 엽기성 스토리가 날이면 날마다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아침부터 이런 얘기들이 먹혀드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천사의 유혹'이나 '아내의 유혹'의 인기는 수십년간 축적된 아침 드라마 시장의 소비자들과 분리해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 드라마를 놓고 방송의 공익성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안정된 시청률과 광고 판매의 효자인 이런 드라마를 없앤다는 건 방송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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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드라마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천사의 유혹'의 베이스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주아란(이소연)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의 아들 현우(한상진-나중엔 배수빈)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주아란을 돕는 의사 남주승(김태현)과는 내연의 관계죠. 주아란은 현우의 집안을 박살내는데 성공하지만 식물인간이 됐던 현우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성형수술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해 다시 주아란에게 복수합니다.

딱 보면 아시겠지만 배신과 복수, 그리고 다른 인물로의 변신이 주요 소재입니다. 네. '아내의 유혹'에서 익히 봤던 소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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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 작가의 이 드라마들은 왜 인기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화 보시는 분들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만화 많이 본 독자일수록 만화 한 권을 보는 속도가 빠릅니다. 소설도 사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영화를 1년에 100편 이상 보시는 분들은 가끔씩 빨리감기로 보는 영화가 있을 겁니다.

이 '유혹'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용이야 이미 수십년간 아침드라마들을 시청하며 첫장면 봐도 끝장면이 보이는 높은 내공의 주부 시청자들에게, '당연히 생략해도 좋을' 장면들은 과감하게 날려 주는 것이 이 '유혹' 시리즈의 서비스입니다.

'유혹' 시리즈는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긴 하지만 다른 막장성 드라마들처럼 시청자를 짜증나게 하는 요소들이 과감하게 생략돼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건 너답지 않아!'라며 말리는 친구에게 '그럼 나다운게 뭔데?'라고 반문하는 여주인공 같은 장면들입니다. 이런 구태의연한 장면은 '유혹' 시리즈에서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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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좀 더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엊그제 결혼한 새색시가 사실은 강남 텐프로 룸살롱의 에이스 출신이고(이름은 웬 로즈마리?) 악당 회장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룸살롱에서 007 쇼를 벌입니다.

여기에 주아란과 남주승은 와인 잔을 부딪히며 자신들의 음모가 성공하는 걸 자축하다가 그 자리에서 눈에 불이 붙어 바로 뜨거운 키스와 함께 베드신으로 직행합니다. (어딘가 외국 영화에서 본듯한 장면입니다만, 연출이며 연기가 사실 좀 낯뜨거울 정도로 어설펐습니다.)

어쨌든 이 드라마의 매력은 1.5배속, 혹은 2배속으로 아침 드라마를 보는 재미입니다. 지루한 부분은 확실히 생략. 괜히 시간만 끌고 러닝타임만 잡아먹는 똑같은 줄거리의 드라마에 비해 '유혹' 시리즈의 만족도가 높은 건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그리고 가끔은 상상을 초월하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등장해 시청자의 기대를 무너뜨려 줍니다.

그런데 기껏 애쓰고 돈들여 만든 드라마보다는 이런 드라마들이 확실한 효과를 주고 있으니, 방송사 입장에서도 어찌 보면 답답한 노릇입니다.

아, 처음에 얘기한 해결 방법은 왜 안 나오냐구요. 네. 지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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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이 드라마의 장르 표기를 바꿔 버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미니시리즈 천사의 유혹' 이라고 부르는 대신, '코미디 극장 천사의 유혹' 이라고만 부르면 만사 해결입니다(마침 강유미도 나오지만, 강유미가 나와서 코미디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이미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가지고 있어야 할 대체적인 미덕을 넘어서서 '황당무계한 상황'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 웃음'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콘'이나 '웃찾사'를 보면서 '저게 세상에 말이 되는 얘기야? 말도 안돼!'라며 흥분하지 않죠. 다소간의 과장은 코미디의 미덕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방송사측에 권합니다. 그냥 제목과 장르 표기만 바꾸시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떤 시청자 단체가 코미디라는데 토를 달겠습니까. 게다가 '천사의 유혹'은 현재의 '웃찾사'보다 훨씬 더 많은 웃음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인지, 정말 즐거워서 나오는 웃음인지는 굳이 구별하지 맙시다. 어쨌든 웃음은 웃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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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유혹'을 보면서 TVN의 '롤러코스터'에 나오는 '막장로맨스'나 '막장극장'과 혼동을 느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들 코너들은 '막장드라마의 엑기스만을 모아' 드라마처럼 꾸며 방송하는 패러디 코너들이죠. 그런데 '천사의 유혹'을 보다 보니 어느 것이 원작이고 어느 것이 코미디 프로그램의 패러디인지 구별을 못하게 돼 버렸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는 '천사의 유혹'의 장르 표기만 코미디로 바꾸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출연하는 배우들이 항의할까요? 에이, 사실은 다들 알고 출연했을텐데요. 그리고 요즘 왕비호한테 욕 한번 먹으려고 줄 선 배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 오늘 저녁부터 '코미디 극장 천사의 유혹', 어떻습니까?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화끈한 추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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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두 작가 중 하나인 박상연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선덕여왕'이 너무 기록된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가능하면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더군요.

솔직히 참 무책임한 얘기입니다. 사극도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역사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신라시대를 조명한 사실상 두번째 사극(그리고 첫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삼국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역사의 '의미'에 충실한 드라마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춘추의 역할이 드라마의 활력소가 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의 춘추 해석은 좀 무리한 구석이 많아 보입니다. 드라마 속의 춘추는 스스로 '왕이 되겠다'며 나서고 있지만 진평왕 치하의 춘추는 그렇게 마음 편한 상태였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조 후기의 세손 이산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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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 김춘추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太宗武烈王立. 諱春秋, 眞智王子伊龍春之子也.母, 天明夫人, 眞平王女

태종무열왕이 즉위했다. 이름은 춘추.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다. (드라마만 보시던 분은 용춘은 숙부인데 무슨소린가 하시겠지만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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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26대 왕인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로써 남자 성골이 사라졌고,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등장합니다. 여왕 등극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을 정도로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게 환영받지는 못하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27대 왕인 덕만공주=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왕이 됐어야 했을까요. 남자 중에서 왕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춘추입니다. 폐위당한 진지왕의 손자이며, 어머니 또한 진평왕의 딸이므로 사실상 성골입니다.

그렇다면 왜 춘추가 있는데도 덕만공주가 왕위에 올랐을까요?



 진흥왕(24대왕) -   동륜태자           -   진평왕(26대왕)      -   덕만(27대왕)
                           진지왕(25대왕)   -   용수(용춘)           -   춘추(29대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모계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덕만공주가 춘추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따뜻하기만 합니다. '비명에 간 언니 천명공주의 아들'이라는 시선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계에 따라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들은 6촌 남매의 같은 항렬인 왕위 경쟁자입니다. 덕만공주 대신 춘추가 왕위에 올라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왜 춘추는 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까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진평왕과 당시의 지배 세력들이 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그 정도로 - 여자를 왕위에 올려 놓을 정도로 -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춘추와 춘추의 아버지 용수(혹은 용춘)는 진지왕이 폐위당하지 않았다면 적통으로 왕위에 올랐을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용수의 장인인 진평왕은 진지왕과 그 후손들인 용수(용춘)의 왕 자리를 빼앗은 인물인 것이죠. 아울러 진평왕을 왕으로 만든 사람들은 모두 용수-춘추 부자의 적들인 셈입니다.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을 내쫓은 대신 그 아들이며 자신의 사촌인 용수를 사위로 삼아 포용하는 정책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왕위를 물려 줄 정도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설사 진평왕이 믿었다 해도 진지왕을 내쫓고 진평왕을 옹립한 세력들은 용수를 왕위에 올려놓는 것은 자신들의 목을 용수의 정치적 보복 앞에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춘추는 감히 덕만의 경쟁자가 될 수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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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용수-춘추는 한 다리 건너 조선시대 정조의 위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에 올랐으나 이내 빼앗긴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갖고 있는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진평왕이 용수를 사위로 삼으며 감싸긴 했지만, 폐위된 왕의 자손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 죽음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들입니다. 또 진평왕을 왕위에 올려놓은 사람들은 춘추가 왕위에 오르면 정치 보복이 시작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는 면에서, 영조때의 노론 벽파와 다를 게 없습니다.

결국 용수, 용춘, 춘추가 살아남는 길은 '왕위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음을 강조'하는 길 뿐입니다. 다른 마음이 없음을 증명하고 진평왕-선덕여왕에게 적극 협조하는 길 뿐이죠. 이 대목에서 '나도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설치는 길은 '나를 죽여주세요'하는 거나 마찬가지일겁니다.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춘추가 안 그래도 주목을 받는 처지에서 이런 자살행위를 할리는 없겠죠.

오히려 춘추는 대외적으로 신라의 위치를 높이는 외교 활동으로 큰 공을 세우고, 안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신라 무장 세력의 핵심인 유신과 연합합니다. 이 연합은 자신이 유신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거기서 태어난 조카를 다시 유신에게 시집보내는 겹사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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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합은 선덕여왕 사망 직전에 발발한 비담-염종의 난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대체 선덕여왕의 치세에 반대한 세력이라면 왜 여왕이 죽기 직전에 난을 일으켰을까요. 이것은 난의 상대가 여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담-염종은 이미 신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춘추-유신의 세력에 대항해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즉 비담과 염종의 난은 춘추의 등극을 원하지 않고 있던, 진지왕 폐위 세력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죠.

비담과 염종의 난을 진압하기에 앞서 춘추-유신은 진덕여왕을 옹립, 자신들이 '왕위에 사심이 없음'을 천명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7년 동안 이 겹사둔 콤비는 신라 안팎을 다져 춘추의 등극을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결국 이런 오랜 준비의 결과로 춘추, 즉 태종무열왕 이후 약 100년간 이 가문에 도전할 사람은 없어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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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깐 이런 식의 희화화도 좋고, 촌장의 목을 한방에 날리는 결단력있는 여왕 덕만의 모습도 좋습니다. 다 좋지만,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너무 엉뚱하게 돌려 놓는 시도는 좀 곤란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천추태후'와 비교하면 양반이지만 말입니다.


방문의 완성은 한방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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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하실 분들이 꽤 있을 줄로 압니다.

옆의 숫자가 1900****로 접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904**** 정도로군요. 이게 저는 가끔 날짜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19040805라면 1904년 8월5일이라는 얘기겠죠.

곧 1910년 한일합방을 거쳐 19450815, 19480815, 19500625, 19530727 등 한국사에 의미있는 숫자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보면 19670608 같은 중요한 숫자도 지나가겠죠. 공화당 정권 치하의 부정이 심했던 총선 날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숫자들이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21세기의 숫자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건 이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2000만을 넘어설 거란 뜻입니다.



뭐 구구절절 사설이 긴 이유는 가을도 깊어가는데 한번 뵙자는 뜻입니다.

날짜는 이번주 금요일, 10월16일로 하겠습니다. (이유 없습니다. 뭔 이유가 필요합니까.)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 전과 똑같이 - 비밀댓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단 참가 자격은 이 블로그에 최소한 두번 이상 댓글을 다신 분에 한합니다.

(댓글때문에 참가가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지금부터 빨리 댓글을 두개 달고 오세요.)



가장 최근의 모임 공고입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435

그리고 가장 최근의 모임 후기입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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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1박2일'에서는 연평도 꽃게 요리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세 팀으로 나뉘어 진행된 꽃게 요리 대결에서 흔히 '몽장금'으로 불리는 MC몽과 김C 조는 꽃게탕과 게살 볶음밥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상식적인 요리죠. 이어 강호동과 이수근 조는 카레 소스로 꽃게를 버무린 꽃게 카레범벅을 만들었고 누가 봐도 요리와는 거리가 먼 은지원-이승기 조는 꽃게 간장조림(?) 등의 희한한 음식을 내놨습니다.

사실 심사위원들도 지적했지만 꽃게라는 재료의 특징은 아무리 엉망으로 만들어도 맛있게 만들기보다 맛없게 만들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재료 자체의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요리를 해서 엉망이란 판정을 받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도 누가 봐도 엉망이었던 은지원-이승기 조를 뺀 상태에서 예상을 뒤엎고 강호동-이수근 조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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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꽃게의 결합. 사실 이건 한국 요리의 영역은 아닙니다만, '신세대 퓨전'이라고 추켜세울만한 뜻밖의 음식은 아닙니다. 태국 요리에서는 게와 카레의 결합이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유명한 음식인 푸 팟 퐁가리(Pu Phad Pong Gari) 입니다. 영문표기는 제각각입니다. Boo Pod Pong Kharee 까지 다양한 표기가 존재합니다. 어쨌든 발음이 '뿌빠뽕가리' 비슷하게 나면 그걸로 대략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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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 보신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태국 요리의 특징은 대부분 재료와 조리법이 그대로 요리의 이름이 된다는 점입니다.

푸 팟 퐁가리에서 푸는 게, 팟은 풀어 볶다, 퐁가리는 노란 커리를 가리킵니다. 즉 글자 그대로 그냥 '노란 커리에 볶은 게'라는 뜻이 됩니다.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쿵팟크라티얌프릭타이라는 음식 이름도 기억하실만 합니다(맛있습니다). 쿵(또는 쿰)은 새우, 팟은 역시 볶다, 크라티얌은 마늘, 프릭타이는 후추입니다. 즉 마늘후추새우볶음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리 이름이 재료와 조리법으로 이뤄진 것은 태국만의 특징이 아니군요.^^ 한국도 갈비찜은 갈비를 넣고 찐 음식, 김치찌개는 김치로 끓인 찌개죠. 물론 부대찌개나 궁중전골같은 변형도 있지만 아무튼 기본은 요리 이름이 재료와 조리법으로 이뤄진게 전 세계 공통적으로 기본인 듯 합니다. (별거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아, 푸팟퐁가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형상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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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흥건한 국물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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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짝 소스 형태로 얹힌 것도 있습니다. 게다가 게도 꽃게는 아니군요. (어떤 게로도 할 수 있는 듯 합니다. 태국에서는 분명히 꽃게로 만든 푸팟퐁가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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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애프터 더 레인'이라는 국내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소프트셸 크랩으로 만든 푸팟퐁가리입니다. 소스도 아니고 아예 계란찜(?) 처럼 커리 양념이 얹혀져 있다는 게 특이합니다. 아무튼 맛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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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리들과 비교해 볼 때, 강호동과 이수근도 조리과정에서 직접 넣고 함께 볶았더라면 좀 더 본고장(?)의 풍미가 도는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꽃게와 카레 양념이 따로 따로 조리됐다는 게 약간 아쉽습니다. 아무튼 맛은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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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역시 가장 군침도는 음식은 몽장금의 꽃게탕이더군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꽃게탕의 국물은 역시 된장 베이스가 최고입니다. 가끔 전문 꽃게탕 요리점에서도 고추장 국물의 꽃게탕을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꽃게에 대한 모욕입니다. 은은한, 결코 진하지 않은 연한 된장 국물에 꽃게를 넣고 끓여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맛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몽장금의 말 그대로 "꽃게 자체에서 단맛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MC몽의 요리 내공은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좀 '특이한 요리'에 점수가 더 갔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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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날 요리 대결의 백미는 상품의 향방. 이들은 '집으로' 편에서 정을 쌓았던 기산리의 노인들에게 꽃게를 선뜻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의 한방을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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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꽃게를 자주 드셔보시지 않았다는 노인들이 꽃게 조리는 잘 해서 드셨을지 걱정입니다. 뭐든 자주 드셔 보시는 분들이 맛나게 드시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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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평도를 떠나는 강호동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꽃게에 대한 열망을 되새겼습니다. 이번주에는 꼭!

P.S. 그런데 MC몽은 왜 스키장 제설작업을 자청하면서 제무덤을 판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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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축구라는게 본래 발로 하는 거다 보니 눈으로 보기엔 답답할 때가 많죠. 세 골째를 먹었을 때에는 저절로 채널이 돌아가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골을 넣고, 그렇게 쉽게 골을 내주다니..

물론 8강이면 훌륭한 성적입니다. 당초 이번 대회가 시작할 때만 해도 목표는 16강 진출이었습니다. 최근 몇년간 20세 이전부터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 팀을 이룬 상태에서도 16강 진출에 계속 실패해왔고, 이번 대회에도 카메룬-미국-독일과 한 조를 이루면서 '죽었구나'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브라질-스위스-나이지리아와 붙어야 했던 2005년, 브라질-미국-폴란드와 한 조였던 2007년에 비해 유난히 나쁜 대진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사실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1983년의 기억이 되살아난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의 찬란했던 기억과 함께 그 시절의 아쉬움도 함께 다시 살아나더군요. 그래서 써본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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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소년 강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이집트에서 선전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에게 잊혀졌던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1983년 6월 16일 오전 8시. 일찌감치 출근한 사람들은 TV 앞에서 일손을 잡지 못했다. 각급 학교에서도 수업은 뒷전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은 멕시코에서 열리고 있던 한국과 브라질의 U-20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준결승 경기에 쏠려 있었다.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경이적인 연승으로 세계 4강에 진출, 온 국민의 가슴을 들끓게 했다. 비록 접전 끝에 1대2로 아깝게 패하긴 했지만 외신들은 붉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들의 분전에 ‘마치 붉은 악마들 같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뒤로 이 말은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박종환 감독과 주축 선수들은 귀국해서도 영웅 대접을 받았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신군부는 “이 팀이 88년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온 국민이 ‘88팀’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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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공 신화는 여기까지. 박종환 감독은 1986년 대표팀을 맡았지만 88년 7월, 올림픽 개막을 2개월 남기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됐다. 결국 그해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는 2무1패로 조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83년 멤버’ 가운데 소기의 목적대로 88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뛴 선수는 수비수 김판근 정도였을 뿐, 신연호와 김종부 등 발군이었던 선수들은 여러 이유로 한국 성인 축구의 간판이 되지 못했다. 83년 당시 한국을 꺾고 우승한 브라질의 베베토와 둥가·조르징요 등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되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축구에서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 청소년’은 세계 수준의 기량을 과시했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나 과학 올림피아드 무대에서도 한국 고교생들이 지난 20여 년간 거둔 성적이 좋은 예다. 하지만 이들이 성인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라났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어느 분야에서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즉시 점수를 딸 수 있는 편법만 판을 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홍명보 감독의 데뷔작인 이번 젊은 영웅들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커나갈 수 있을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끝)


1983년 청소년 팀의 기적같은 4강 신화는 이미 리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브라질만 베베토나 둥가 같은 저런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8강에서 탈락한 네덜란드 멤버 가운데에도 그 이름도 거룩한 마르코 반 바스텐이 포함돼 있더군요.

잘 키운 청소년 대표팀이 미래의 주축이 되는 경우는 여러 차례 목격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91년, 피구와 코스타 등이 이끈 포르투갈의 '황금세대'죠. 이들의 힘으로 포르투갈은 유로 2000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일약 유럽 축구의 주도국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사실 이들이 가장 화려하게 꽃필 것으로 예상됐던 2002 월드컵 무대는 주최국 한국과 같은 조가 되는 바람에 망쳐졌다는 느낌도 있죠. 이 대목에서 잠시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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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8년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당시 공포의 투톱이었던 앙리와 트레제게도 바로 1년 전인 97년 U-20 대회에서 곧바로 두각을 보였습니다. 이때의 프랑스도 8강 진출국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예선 같은 조였던 한국은 앙리와 트레제게에게 각각 두골씩을 내주며 2대4로 참패했습니다. 이관우가 이끌던 당시 한국 팀은 박진섭이 두 골을 넣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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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한국이 국제대회 대진운이 별로 안 좋은 편이긴 하지만 이 해의 대진은 참 볼만합니다. 브라질-프랑스-남아공과 한 조. 아, 물론 이 대회 전까지 프랑스의 느낌은 지금 같은 강팀의 느낌은 아닙니다. 이 대회를 계기로 프랑스도 축구 강국의 면모를 되찾았죠.

이 대회 최고의 참극은... 당시 브라질에게 당한 3대10의 참패입니다. 지금 볼로냐에서 뛰고 있는 아다일톤에게 무려 6골을 먹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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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등등의 성공사례들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83년 멤버들은 그 뒤로 화려하게 개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관심을 모으고 집중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멤버들 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입니다.

88년 대표팀에 속했던 83년 멤버들은 김판근 김종건 김풍주의 세 사람입니다. 이중 주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김판근 정도였죠. 물론 2년 전에 열린 86년 월드컵 대표에 속했던 김종부가 있지만 프로 진출과 관련, 복잡한 스카우트 파문에 휘말려 운동을 쉬면서 성인 무대에서는 기대했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골감각을 자랑했던 신연호는 물론이고 '제2의 스트라이커'였던 이기근 역시 88년 K-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지만 국가대표와는 별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건 물론 당시의 기형적인 대표팀 운영과도 관련이 깊죠. 90년대까지 역대 K-리그 득점왕들은 대부분 국가대표에서는 소외된 선수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왜 김주성은 거론되지 않나 하실테지만 김주성은 '88팀'의 주요 멤버였긴 했지만 '83년 멤버'는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김주성도 83년 멕시코에 뛴 것으로 착각하시는데 김주성은 83년 4강 이후 88팀의 육성 과정에서 최진한 김삼수 황영우 여범규 등과 함께 뒤늦게 발굴된 선수들 중 하나였던 것이죠. 물론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 축구의 주축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만, 윗글은 '83년 멤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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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거듭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한국은 그동안 유독 '청소년만 강한 나라'의 면모를 여러 분야에서 보여왔다는 것입니다. 수학과 과학 올림피아드의 예도 들었지만 그에 앞선 기능올림픽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스포츠의 여러 종목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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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2012년 올림픽까지 일단 지휘권을 보장받았습니다. 이번 대회가 U-20(20세 이하)이고 올림픽은 사실상 U-23 대회인 만큼, 2009년과 2012년의 연관성은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축구계의 비주류였던 박종환 감독과 대한민국 축구의 적자인 홍명보 감독의 입지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연히 훨씬 좋은 여건과 지원이 이뤄지겠죠. 부디 어젯밤 눈물을 흘리던 선수들이 3년 뒤 런던에서는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때에는 8강 이상의 성적을 내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한번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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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 축구가 U-20 대회에서 오는 9일 26년만에 세계 4강에 재도전합니다. 이런 경사가 없습니다. 박주영과 신영록 같은 특급 골잡이들이 활약하던 시절에도 16강 진출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18년만에 8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타가 없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막상 대회에 나가자 수비수 출신인 김민우가 3골을 터뜨리며 난세의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8강 진출은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이 이룬지 18년만의 성적입니다. 그리고 9일 가나를 꺾고 4강에 오르면 지난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이 이끈 '기적의 4강'에 이어 무려 26년만의 쾌거가 되는 셈입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때 아예 태어나지 않은 분들도 꽤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 본 분들은 당시의 열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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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이 멕시코에서 열리는 U-20 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박종환 감독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박종환 감독은 2년 전인 1981년에도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호주로 날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에이스는 최순호.

한국은 첫 경기에서 최순호의 2골을 포함, 이탈리아를 4대1로 격파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이후의 경기를 연패하며 예선탈락의 쓴맛을 봤습니다. 그리고 2년 뒤, 83년 대회는 처음부터 행운이 잇달았습니다. 당초 이 대회 출전권을 딴 것은 북한이었지만 북한 성인 팀이 아시안게임에서 폭행 사건을 벌이며 2년간 국제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그 결과 공석이 된 티켓이 한국의 차지가 된 것입니다.

그 뒤로 박종환 감독이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벌인 고된 훈련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경기가 주로 멕시코의 고원지대에 열린다는 점을 감안, 저산소 상태에서도 뛸 수 있도록 마스크를 착용한 채 훈련을 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당시의 선수단입니다.

감독 박종환, 코치 원흥재
이문영 김풍주(GK) 김판근 문원근 유병옥 장정 이승희 최익환(FB) 김흥권 노인우 김종건 최용길(HB) 이현철 강재순 이태형 이기근 김종부 신연호(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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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다들 1983년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셔야 할 겁니다. 당시의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도, 월드컵 4강에 이른 적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1954년 이후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이보다 3년 뒤인 1986년의 일입니다. 월드컵 예선은 번번이 호주의 벽에 막혀 탈락했고, 한국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치의 성적이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안컵 정도였던 시절(물론 지금이라고 이 목표들이 쉬운 건 아니지만)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해 6월, 마침내 한국 팀은 멕시코로 날아갑니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에겐 갔는지 안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대2로 패했다는 기사를 보고 청소년대회가 시작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판부터 졌다는 소식에 뭐 이번에도 별건 없겠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런데 둘째 판, 한국은 신연호와 노인우의 골로 멕시코에 2대1 승리를 거둡니다. 이어 스코틀랜드가 호주에 패하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줍니다. 결국 한국은 A조 예선 최종전에서도 김종건과 김종부의 골로 호주에 2대1 승리를 따내며 스코틀랜드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오릅니다. 이때는 대회 참가국이 16개국이었으므로 예선 통과하면 8강이었죠.




마침내 6월11일 4강 진출을 앞둔 우루과이와의 대전이 펼쳐집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6월12일 일요일이었습니다. 현지시간 오후 5시 경기였으므로 한국에서는 아침 8시부터 중계가 시작됐죠. 익히 알려진대로 박종환 감독의 당시 대표팀은 뛰고 또 뛰는 숏패스의 축구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의 골로 앞서가지만 후반 26분 마르티네스에게 동점골을 내줘 1:1.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연장 14분 신연호가 대망의 결승골을 터뜨립니다.

온갖 신문은 한국의 4강 진출 소식으로 도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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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에게 낯익은 이 소식. 바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이 처음 만들어 진 것이 이 때라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당시 외신이 "한국의 붉은 악마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선전에 대한 기사를 타전하면서 생겨난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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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등교를 했을 때 다른 화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건 학교 뿐이지만 아마 회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온 세상이 축구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물론 온 국민이 거리로 달려나간 2002년만은 못했지만, 대략 WBC 급의 화제는 됐던 것 같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 준결승 상대는 브라질. 2년 전 0대3으로 패한 기억도 있고, 누가 뭐래도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청소년대회 4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싸운다는데, 온 국민의 관심은 불타올랐습니다.

그 주 내내 문교부에서 학생들이 중계방송을 볼 수 있도록 임시 휴교령을 내릴 거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아마도 학생들의 희망사항), 대신 전날인 15일, "학교로 TV를 가져오겠다"는 열혈남아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저희 반은 담임선생님의 "헛소리 하지 마랏!"에 시청의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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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도 무시할 수 없었던 대사건인터라, 16일 오전 8시부터 학교 방송 스피커로 중계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 그때까지 11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방송으로 스포츠 중계를 틀어준다는 건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었죠. (인터뷰를 보니 홍명보 감독은 중3때 버스로 등교하다가 라디오로 중계를 들었다던데, 아마 축구부라서 늦게 등교했던 모양입니다.^^)

찍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전교생이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14분. 김종부의 선제골이 터지자 대한독립만세를 방불케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어느 반에선가 유리 깨지는 소리까지 났습니다. 하지만 22분, 브라질의 동점골 때도 그 못잖은 비명이 터져나왔죠.

결국 팽팽하던 경기는 경기 종료 9분 전, 브라질의 결승골로 끝났습니다.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습니다. 교실에 들어와 있던 선생님도 "자, 이제 수업 하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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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브라질 대표팀 멤버들을 보면 - 그땐 전혀 알지 못했지만 -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팀을 상대로 싸웠는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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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더에 17번 올리베이라와 16번 둔가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모두 축구선수 이름으로는 꽤 흔한 편이지만, 이중 둔가는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인 그 둥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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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올리베이라, 그때는 성으로 표기하는 국내 원칙 때문에 이렇게 보도됐지만 그 뒤로 이 선수는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해집니다. 바로 베베토라는 이름이죠. 90년대 초, 호마리우와 함께 브라질 A대표팀의 투톱으로 활약하던 그 베베토입니다.

둥가와 베베토는 1994년 월드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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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다 실바는 나중에 88올림픽 브라질 대표팀(은메달) 멤버로군요. 83년 당시 최다득점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선수는 브라질 A대표팀에 드는데에는 실패합니다.

관심을 끄는 건 감독의 이름. 당시 보도로는 '페레이라'라는 이름의 감독이 지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브라질에 페레이라, 혹은 파헤이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입니다. 축구 선수중에도 한둘이 아니죠.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카를로스 알베르투 파헤이라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명장 파헤이라는 이미 82년에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니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혹시 맞다면... 후덜덜이죠. 아무튼 당시 브라질 감독은 경기 후 호텔에 가서 "지금도 다리가 떨린다"고 한국과의 격전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렇게 브라질에게 치열한 접전 끝에 패하고, 3-4위 전에서 한국은 주전 스트라이커 신연호가 빠진 가운데 폴란드에게 패해 4위에 그칩니다. 맥이 좀 풀린 탓도 있었겠죠. 한국을 이긴 브라질은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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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90분 내내 안 보여도 골 넣을 때 보면 그 앞에 있다'는 신비로운 스트라이커로 온 국민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신연호 감독. 올해는 김민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디 이번 홍명보호는 1983년의 전설을 넘어 2009년, 우승까지 가 보는 새로운 전설의 주역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상의 마무리는 추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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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본 총선에서 만년 여당 자민당이 침몰하고 사실상 최초의 정권교체가 일어난게 지난 8월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용히 묻혀 지나간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이쪽으로 가져올 타이밍을 놓쳐 버렸는데, 바로 일본 최고의 스타, 여자들이 매년 뽑는 '최고의 남자 연예인'에서 10년 넘게 일본 최고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와 소속 그룹 SMAP이 관련된 사건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SMAP 정도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여당인 한나라당을 공개 지지하며 '구관이 명관'이라고 옹호하고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인기 있는 연예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달자면 'SMAP의 자민당 지지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미 전해 들은 분도 있겠지만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할만한 한국 사례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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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타의 한마디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장에 당대 최고 인기 코미디언 김병조가 등장했다. 그가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통민당(당시 통합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말하자 박수와 웃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음 날 언론에 보도되자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김병조는 하루아침에 방송·광고계에서 퇴출돼 '자숙'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받은 대본대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일본의 총선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8월 26일, 대표적인 우익 언론인 산케이 신문에 희한한 광고가 실렸다. 신문을 완전히 싼 4페이지짜리 래핑 광고. 겉보기엔 일본 최고의 인기 그룹인 남성 5인조 스마프(SMAP)의 새 음반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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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안쪽 두 페이지 내용.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방법'이란 제목의 글이 SMAP 멤버들의 명의로 실려 있었다. 내용은 '경기가 좋으면 총리도 인기가 있고, 경기가 나빠지면 인기도 떨어진다' '행복한 미래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남 탓하기는 쉽지만 막상 자기가 직접 하려 하면 뭐든 힘든 법이다' 등등.

긴 글 어디를 봐도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라는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의미는 불 보듯 선명했다. 위기에 몰린 집권 자민당을 응원하는 노골적인 메시지였던 것이다.

서구 언론들은 이런 기이한 현상을 크게 보도했다. 일본 주오 대학의 스티븐 리드 교수는 영국 텔레그래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프가 정치 캠페인에 동원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민당이 얼마나 절박했는가를 보여준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해외에서의 이야기다. 정작 일본 내에서는 이 사건을 거론한 언론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광고가 실린 신문은 품귀현상 속에 인터넷 경매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그 내용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고 인기 코미디언이 강요된 말 한마디로 방송에서 퇴출되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약 한국의 인기 아이들 그룹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글 한 줄이라도 미니홈피에 쓴다면 그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한해협 양쪽에서 '연예인의 발언'에 실리는 무게가 이토록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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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펼쳐 놓으면 이런 내용의 광고입니다.

위에 대략 정리를 했지만 주제만 얘기하면 '지금 있는 사람들도 선거로 뽑은 정치인들 아니냐. 사실 막상 일 시켜 놓으면 거기가 거기다. 구관이 명관이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해라. 바꿔 봤자 별수 없다...' 이런 내용입니다.

정말 자민당이 얼마나 다급했나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하지만 일본의 수많은 신문-방송 가운데 이 문제를 짚고 나선 곳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블로고스피어가 좀 시끄러웠고, 그걸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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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팬들은 그 래핑 광고가 담긴 신문을 서로 사고 파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일본 옥션의 매물 페이지입니다. 꽤 전에 캡처한 화면이라 지금은 다 없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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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문이 옥션에서 거래될 정도로 인기 높은 SMAP인데 정작 그 메시지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니.... 이건 광고를 낸 쪽이 서운해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SMAP 쪽에서 서운해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 사건은 일본 정치를 바라보는 해외 매체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됐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쟈니즈쪽에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광고를 한 것이냐'고 문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답은 '이건 아무런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그냥 SMAP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글일 뿐'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제정신인 사람 가운데 저 글을 SMAP 멤버들이 직접 썼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가 보나 쟈니즈와 극우 언론 산케이의 합작품이겠지만 이런 일에 말려들어 이름을 내주고도 아무 소리 없는 SMAP 멤버들이나, 거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SMAP 팬들이나, 언론 매체들이나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한국같으면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 통했을까요. 어림도 없겠죠.

문득 떠오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윗글에 나오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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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19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하신 말씀은 이런 식으로 보도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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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내용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1987년 6월. 바로 뜨거웠던 '6월 항쟁'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앞선 4월29일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이 있었고, 6월10일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후보가 민정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이때를 전후해 민심은 들끓었고, 마침내 6월29일 노태우 후보는 당시 헌법의 대통령 간접선거 조항을 포기하고 직선제 개헌을 통해 87년 연말 대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튼 이건 좀 지난 다음 얘기고, 바로 다음날 신문 만화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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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시청자들의 항의로 MBC는 김병조씨의 방송 출연을 제한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김병조씨가 출연하는 방송은 모두 MBC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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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만인 6월13일. 김병조씨는 스스로 '당분간 쉬겠다'고 선언합니다.

'지구를 떠나거라' 등의 유행어, '나도 리도 샴푸를 써야겠다'는 등의 광고로 세상에 거칠 것이 없던 인기 코미디언이 하루 아침에 야인이 돼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예인이 무슨 힘이 있나. 시키는데 어떻게 안 하냐"는 항변은 일면 일리가 있는 얘기였지만 성난 여론은 그런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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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이름들이 몇명 더 있지만, 아무튼 김병조씨는 당시의 뜨거웠던 정치 열기에 애매하게 희생된 케이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한국과 너무나 대조적인 일본의 반응. 과연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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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추석 특집이 없었던 짧은 추석 연휴였습니다. 매년 과도한 성형 논란(?)을 일으켰던 동안 선발대회는 이제 시청자들이 이런 포맷에 식상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인들도 너무 젊어지는 바람에 대회 출연자들이 그리 돋보일 것이 없게 된 것인지 예전만큼의 폭발력은 없더군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주말 예능에다 '추석특집'이라는 간판만 붙여 단 이번 연휴 중에서 그래도 '1박2일'의 추석 놀이가 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특히 1:1:1 윷놀이는 방송이라는 시간 제한 때문에 말 수를 네개에서 두개로 줄여 진행됐지만 적절한 편집과 강호동 팀의 대역전이라는 화끈한 진행 덕분에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진행 도중, 강호동 팀은 만만찮은 - 어쩌면 결정적일 수도 있는 -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다른 분들도 눈치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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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앞의 말들이 모두 잡혀 꼴찌가 된 강호동-이수근 팀이 던지는 족족 개만 나와 '개잡이=게잡이'라는 평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터져나온 장타였습니다.

이승기-은지원 팀이 1등으로 나간 상황. 몽-김c 팀과 강호동-이수근 팀이 살아남기 위해 2등 자리를 노리고 있을 때 강호동 팀은 두 개의 말을 업은 상태였고 몽-김c팀은 두 말이 따로 따로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강호동 팀의 업은 말과 몽 팀의 뒤쳐진 말은 네 칸 차이. 윷이 나와야 잡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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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강호동이 그림같은 윷을 던지며 뒤쳐진 말을 잡아 기적같은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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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보너스 샷으로 이수근이 개를 던지면서 역전 분위기가 무르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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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에도 2칸 차이로 쫓기는 상황이 연출됐지만 역시 마지막에 적시에 터진 걸 한방으로 추격전은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강호동 팀은 1번 더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넘기고 그냥 몽 팀에게 공격권을 넘겨 버립니다. 이 부분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더군요.

바로 김c팀의 말을 잡았을 때 던져 나온 결과가 윷이었기 때문에, 이후에 강호동 팀은 2번 더 윷을 던질 수 있었죠. 하지만 1번만 더 던졌습니다. (말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편집상 삭제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동네에 따라 윷으로 상대의 말을 잡아도 1번만 더 던지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윷놀이의 상식은 윷이나 모로 상대의 말을 잡으면 2번 더 던지는 것입니다. 즉 윷이나 모로 1번, 상대의 말을 잡았으므로 1번을 따로 따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전혀 논란이 되지 않고 넘어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윷놀이를 보다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해(즉 '예능의 정석'을 위해) 일부러 강호동 팀에서 한번을 덜 던졌는지도 모르겠지만(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전략가라고 할 수밖에...) 그게 아니라면 큰 실수였던 셈입니다. 만약 강호동 팀이 윷놀이를 졌다면 패인은 바로 그거였다고 부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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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평도 꽃게찜과 꽃게 라면은 정말 침이 꿀꺽 넘어가게 하더군요. 특히 라면 끓일 때 꽃게를 넣으면 국물에서 풍기는 풍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는 건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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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까운 꽃게를 왜 라면 끓이는 데 넣느냐고 하실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다리라도 넣어 보라는 겁니다. 전문 업소에서는 큰 찜통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지만 가정이나 펜션에서는 작은 솥에 여러 마리의 꽃게를 넣고 찌다 보면 서로 얽히고설킨 게들이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다리가 많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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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떨어진 다리만 주워 라면 끓일 때 넣어도 맛이 그만입니다. 찌기 전에 게를 깨끗이 씻었다면, 찐 물로 끓여도 좋습니다. 게라는 동물은 어쩌면 이렇게 무슨 짓을 해도 맛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연평도는 배로 다섯시간...살짝 부담스럽지만 언제 또 게를 좀 해치우러 한번 떠야겠군요. 올해는 꽃게 시세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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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면서 중간에 몇번 웃었습니다. 이 영화는 명성황후 민씨와 그 호위무사 사이의 멜로드라마입니다. 또한 무려 90억원의 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에픽이기도 합니다. 순 제작비가 90억원이라는 것은 홍보와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실제 제작비는 그보다 훨씬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끔 어떤 영화는 돈을 잔뜩 들이고도 도대체 어디에 제작비가 들었을까 보는 이를 궁금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90억원이 들어간 영화로 보일까요? 네. 어디에 돈이 들었는지 확실히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돈이 제대로 쓰일 곳에 쓰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좀 궁색해집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출발점은 지난 2002년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로 쓰였던 조수미의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입니다. 당시엔 정준호가 훈련대장 홍계훈에서 모티브를 따 온 호위무사로, 이미연이 명성황후 역으로 나왔죠. 불행히도 영화는 그 뮤직비디오 한편만큼의 여운을 남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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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아버지를 잃은 소녀 자영(수애)은 대원군(천호진)의 간택을 받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이때 늪을 헤치고 물길을 타준 사공 무명(조승우)은 수애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그러다 자영은 반대파의 기습을 받고, 무명이 가까스로 자영을 구해내지만 자영은 대원군이 보낸 뇌전(최재영)의 경호를 받으며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자영의 곁에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무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궁을 지키는 무예별감이 되어 호위를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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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실제 시간으로 본다면 1866년 자영이 입궁할때부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물론 아직 대한제국 선포 전이므로 사망시까지는 그냥 민비입니다)가 살해당할 때까지의 29년간을 커버합니다. 자영은 1851년생이므로 만 15세때부터 44세까지의 세월이죠. 아무 생각 없이 '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길어야 3-4년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시각에서 다룬 드라마는 꽤 여러편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다뤄진 것이 2002년이었으니 그 내용을 대략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시려면 구한말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예 버리고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아니, 최소한의 '건전한 상식'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영화 감상에 아주 막대한 지장이 옵니다.

이후의 내용에는, 저는 전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역사라고는 20년 전 초등학교때 배운 뒤로는 단 한번도 되새김질 한 적 없는 분들에게는 스포일러일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맨 아래, P.S로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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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역사적 발판이라고는 '(1) 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고, 자영은 고종의 아내다 (2) 중간에 임오군란(1882)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자영은 죽을 위기를 넘긴다 (3) 을미년(1895년) 명성황후는 일본 공사 미우라가 보낸 낭인들에게 참살당한다', 이 세가지 정도입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 밖의 설정과 구성은 여러가지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 극치는 임오군란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한 대원군의 경복궁 진공(?)입니다. 대원군이 백주 대낮에 수천명의 군병을 이끌고 광화문을 향해 6조 앞 대로를 진격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앞의 궁내가 수비 병력으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은 한국사에서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장면입니다. 한마디로 '황후화'나 '야연' 같은 중국식 에픽의 영향을 받은 기상천외의 유치한 장면일 뿐입니다.

그밖에도 헤아리자면 사흘 밤낮이 모자랄 정도지만 그냥 이 정도로만 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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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제가 살짝 비꼬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 영화가 조선의 명성황후가 아니라 오로라제국의 별나라 여왕과 호위대장의 이야기래도 좋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 수준입니다.

전반부의 스토리는 요약하자면 '스토커 조승우와 인기를 즐기는 수애여왕'입니다. 낮에는 뱃사공, 밤에는 살인청부업자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던 무명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자유분방하고 씩씩한 미녀 자영에게 반나절만에 홀딱 빠져버립니다.

생전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무명은 자기 페이스대로 스토킹에다 납치까지, 정상적인 연애 감정에서는 있어선 안될 행위들을 마구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를 따끔하게 혼내고 잘라 버려야 할 자영양은 은근히 그의 마음 속 불꽃에 땔감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정작 제목대로라면 자영이 불꽃이고, 그 불꽃에 너무 겁없이 다가간 무명이 나비겠지만 이 전개 과정을 보면 누가 불꽃이고 누가 나비인지 불분명합니다. 둘 다 너무나 무모하고 무책임합니다. (아,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구요?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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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남편에 대한 애정 따위는 없지만 나라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왕비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자영과 '난 그런 건 모르니 그냥 어디로 둘이 훌훌 떠나면 안되겠니'의 무명 사이는 끝없이 그냥 평행선을 탑니다. 여기에 '그냥 똑똑한 것 같아서 호감이 갔는데 알고 보니 내 마누라였고, 다른 놈이 좋아하는 듯 하니 기분나빠서 내거라는 걸 분명히 해야겠다'는 고종까지 합세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멜로드라마에서 한몫을 합니다.

결국 도를 넘어선 무명은 주제를 잊고 엄한 남편과 아내의 잠자리까지 질투하기 시작합니다(뭐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시기에 고종과 자영은 이미 다섯 자녀(모두 어려서 잃고 뒷날 순종이 되는 세자만 생존)를 낳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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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설명해서 그렇지만, 문제는 영화를 봐도 이런 황당무계한 전개를 뒷받침해 주는 감정의 디테일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납득이 가는 전개'의 실종입니다. 조승우나 수애 급의 배우들이 거기에 불만이 없었던 걸 보면 아마도 찍어 놓기는 한 7시간 분량을 찍어 둔 듯 하지만 7시간짜리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죠.

아예 처음부터 대본이 이 수준이었다면 조승우가 이 역할을 맡았을지도 궁금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조승우가 출연한 작품들 중 이 정도로 극중 인물의 감정이 제멋대로에다 요령부득인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은 작품이 있고 좋은 배우가 있지, 배우는 잘했는데 작품은 엉망이라는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무능한 연출가도 - 혹은 연출가가 무능할수록 - 초절정 명배우가 한달 고민해서 한 연기를 학예회 수준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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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흥행 성과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등급을 보니 15세 이상 관람가더군요. 과연 15세가 넘은 분들 중에도 이 영화를 즐기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일 듯 합니다. 물론 제 주변 분들 중에도 '나쁘지 않다'는 분들이 몇분 있긴 했습니다. 제 경우엔 그냥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로 감상할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P.S.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 이 영화의 미술이며 복식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한마디로 화면은 참 화려하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90억원 쓴 태가 확실히 납니다. 특히 수애의 광팬이라면, '수애에게 한복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는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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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사건으로 온 세상이 뜨겁습니다. 추석 명절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고 화날 뿐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래된 이슈들 - 왜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이 이렇게 솜방망이냐(사실은 우리나라 형법의 양형은 전체적으로 솜방망이입니다. 엄격한 것은 속도위반과 주차위반 단속 등 교통관련 법규 뿐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대책은 뭐냐, 왜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는 이렇게 실효성이 없게 해 놓은 거냐...등등 - 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거론되고 있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이렇게 한창 이 이슈가 뜨거운 동안만 분개하다가 다들 잊어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많은 관련 법규가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도 모든 관련 규정이 한꺼번에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특히 성범죄 피해자의 가족들이) 노력한 결과로 정비가 이뤄진 것입니다.

예전에 한번 미국은 어떻게 성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조금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입니다.




미국 법무성에 연결된 NSOPR(www.nsopr.gov) 홈페이지입니다. 성범죄 전력을 가진 사람의 얼굴 사진, 풀 네임, 마지막 주소, 신장과 신체 특징, 심지어 문신을 했으면 문신의 종류와 내용, 별명까지 명시해두고 있습니다. (주요 부분은 제가 지운 겁니다.)

한국보다는 평소 사람들의 인권을 훨씬 중시한다고 알려진 나라가 미국이지만, 성범죄자, 특히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는 한국보다 훨씬 철저합니다. 그럼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요. 거저 된 건 아니더군요.

웹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이 과정에서도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Violent sex attacks lead to tough laws' 라는 제목으로 Lauren FitzPatrick이 정리한 내용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1944년부터 성범죄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관심이 인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미국 워싱턴주는 1990년 '지역사회 보호법(Community Protection Act)'을 통과시킵니다. 사실 그 배경에는 1989년 일어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한 남자가 7세 소년을 성폭행하고 숲속에 버려 두어 죽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2년간 옥살이를 한 뒤 출감하자마자 2명의 10대 소녀들을 납치해 폭행합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사건들. 13년간의 수감생활끝에 출감한 남자가 두 여자를 습격했고, 또 다른 범인은 극장에서 6세 소년을 납치하려다 붙잡혔는데, 나중에 공원에서 자전거 타던 소년 두명과 4세 소년을 납치해 살해한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경찰은 그제서야 성범죄 전과자를 석방할 때에는 지역사회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리고 1994년 제이콥 웨터링 법이 등장합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조셉에 살던 11세의 제이콥 웨터링 은 1989년 10월 집에서 복면을 하고 총을 든 남자에게 납치됐습니다. 이웃들은 물론 안면 없는 사람들도 연대해서 실종 아동 수색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죠. 웨터링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미네소타에서 '제이콥 웨터링 법'을 만들게 합니다.




1996년, 메건 캉카 의 유괴 사건 이후 미국 연방법에 등장한 '메건 법'은 지역사회에서 성범죄 전력자가 이주했을 경우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게 됩니다.

뉴저지주 해밀턴 타운십에 살던 일곱살의 메건 캉카는 강아지를 주겠다고 유혹한 동네 주민의 집으로 따라갑니다. 그리고 이 주민, 두 차례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남자 제시 티멘데쿠아 는 메건을 성폭행하고 살해합니다. 그의 집은 캉카 가족과 같은 블록에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1994년에만도 이미 5세 남아와 7세 남아를 습격한 전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집행되지 않았고, 2007년 뉴저지 주가 사형을 폐지함에 따라 종신 복역중입니다.

사건 이후 메건 캉카의 부모들은 "모든 부모는 위험한 성적 육식동물이 이웃에 이주할 경우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운동을 펼쳤고, 이들은 40만명의 서명을 받습니다. 법안은 89일만에 통과됐죠. 뉴저지주는 주 법규로 이 메건법을 통과시켰고, 1996년에는 클린턴 대통령도 이 법안에 사인을 합니다.


어린이들만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죠. 휴스턴의 부동산업자였던 팸 리크너 는 집 구경을 하고 싶다는 남자의 연락을 받고 빈 집으로 갑니다. 하지만 두 차례 처벌을 받은 적 있던 이 남자는 그녀를 덮쳤고, 리크너는 근처에 있던 남편의 도움을 목숨을 건집니다. 리크너는 이후 성범죄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라는 운동에 나섭니다.



플로리다주의 제시카 런스포드 법은 12세 이하의 아동에게 외설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판정된 성인에게는 최하 25년의 형량과 종신 전자 모니터링(전자 팔찌등을 이용한)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동에 대한 성적 폭행과 강간은 사형이나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후 12개 주가 이와 유사한 법안을 도입했습니다.

2005년 2월, 당시 9세였던 제시카 런스포드는 한 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적 있는 범죄자에 의해 집에서 유괴됐고, 이후 성폭행을 당한 뒤 암매장됐습니다. 부검 결과, 런스포드는 매장당할 당시 살아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06년 아담 월쉬 법에 의해 미국 법무부는 50개 주정부에 네트웍을 설치해 전국적인 성범죄 전력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됐습니다. 이 법에 따라 모든 성 범죄자들의 정보는 2009년까지 표준화되어 일반인들에게 노출되게 됐습니다.

아담 월쉬는 1981년 플로리다주의 한 백화점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던 도중 실종됐고 몇주 뒤 살해된 채 머리만이 발견됐습니다. 이미 유죄 판결이 난 연쇄 살인범이 그 범행도 자신의 것이라고 자백했지만, 얼마 뒤 주장을 철회하는 일도 있었죠.



2003년 11월, 당시 22세의 여대생 드루 조딘 은 미국 노스 다코타 주의 쇼핑몰 주차장에서 일하던 도중 미네소타주 크룩스턴으로 납치됩니다. 강간당한 뒤 사지가 잘린 조딘의 시체는 눈이 녹은 이듬해 4월에야 발견되죠. 이미 각종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50세의 전력 있는 범인은 차에서 조딘의 혈흔이 발견돼 체포됩니다. 그는 2006년 9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조딘이 죽은 뒤 사람들은 NSOPR(National Sex Offender Public Website:www.nsopr.gov)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국 어디에서도 성범죄 전력자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법률 전문가도 아니고 해서 중간에 이상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대의는 충분히 전달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중 처벌이다, 법 정신에 위배된다, 범죄자 자신은 몰라도 그 가족까지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저렇게 엄격하게 범죄자의 신원 공개를 통해 재발을 막도록 하게 된 것은 희생자가 나왔을 때 그 가족과 관계자들이 두번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입니다. 특히 희생자의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 그 이후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됐죠.

물론 미성년자 성범죄의 많은 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는(미국의 경우 90%에 이른다고 합니다) 통계에 비쳐 볼 때 저런 신원공개가 큰 효력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과 몇명이더라도, 저런 공개가 어린이들을 구해낼 수 있다면 그건 효율성으로 따질 문제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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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나영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실 늦은 느낌입니다. 대체 왜 이제서야 이런 얘기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지 분하기만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 되풀이되는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혹시 혜진-예슬법이라는 이슈를 기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래 전도 아닙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안양에서 두 명의 초등학교 재학생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하고 무참하게 살해되 시신도 버려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여론은 불타올랐고, '범인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는게 결국 또 드러났습니다. '나영이 사건'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 사회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줬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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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해 4월, '혜진-예슬법'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을 때의 시점에 쓰여진 것입니다. 과연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보시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그리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엊그제 '혜진-예슬법'이라는 새로운 시사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새로 추진된다는 이 법은 아동 성범죄를 엄벌하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025393

내용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만 뽑아 봅니다.

법무부는 1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아동 성폭력 사범 엄단 및 재범 방지 대책'을 보고하고 안양 초등생 살해 사건과 같이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유사성행위 등 성폭력을 가한 뒤 살해한 경우 해당 범죄자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가칭 '혜진ㆍ예슬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도 아니고 그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저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운 대목입니다. 아니 그럼, 저렇게 나쁜 놈들을 지금까지는 대체 어떻게 다뤘다는 얘길까요.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어이가 없었습니다.

미성년인 친딸을 강제로 성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선고 기사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012279

울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곽병훈 부장판사)는 자신의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에 대해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친딸인 피해자를 수회에 걸쳐 강간 및 강제추행한 사안으로 패륜적 범행에 해당한다는 점과 피해자가 입은 육체.정신적 상처 등을 감안해 중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경우에 5년이면 중형이군요. 아니 대체 5년이 정말 중형이긴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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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닙니다. 어린이나 마찬가지인 정신지체 2급자에 대한 성범죄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001415

전주지법 제2형사부(조용현 부장판사)는 13일 항거 불능의 정신지체 2급 소녀를 성폭행 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장애인 준강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씨(60)에 대해 징역 2년 을 선고했다.

다음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점, 피고인이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등 뉘우치지 않는 점 등에 비춰 그 죄책이 매우 무거워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만약에 피해자(또는 부모)가 합의라도 보고, 탄원이라도 해 주고, 피고인이 범행을 뉘우친다고 연기라도 하면 그냥 풀어줄 태세로군요. 어이가 없습니다.

놀랍게도 실제로 그랬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48921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2일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시 한 아파트 계단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김모양(당시 6세)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정모씨(50)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정도면 원래 집행유예가 가능한 거였군요.

김 부장판사는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을) 세상에서 살아 남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고 이런 범행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 고 호소했다”며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 어머니의 호소에 합당한 답변을 마련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 이렇게까지 거룩한 말씀이 있어야만 '징역 3년'이라는 엄청난 중형을 때릴 수 있었단 말이군요. 그럼 위에 나오던 징역 7년은 실로 엄청난 형벌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수사기관에서 저렇게 말을 했다는 건 1심 재판부도 저 '호소'를 잘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럼 대체 그때는 왜 집행유예라는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이런 것도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0193854

그러나 오히려 친족간의 범죄라는 점이 처벌이 약화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이동근 공보판사는 “우리 법원의 경우 대체적으로 피해자측이 처벌을 원하는 경우 7년,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4~5년의 징역형이 선고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이 7년이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얼마나 큰 중형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0801060

공사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강종만 전남 영광군수가 1심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경우 군수직을 잃게 됐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70447

멀쩡한 남편이 숨졌다고 허위 신고해 7억 원 대의 보험금을 챙긴 부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형사6단독 문준섭 판사는 24일 허위 사망신고를 통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박모(40)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뇌물 1억원을 받아 드신 군수나 죽었다고 사기를 쳐 보험회사를 등친 범인의 잘못이 가볍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범인들이 7년 형을 받는데, 어린아이나 미성년자들이 평생 안고 갈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한 범인들이 3년, 5년, 심한 경우에나 7년 형을 받는다는 건 너무 약한 처벌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7년이면 얼마든지 다시 나와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일산 어린이 납치미수사건의 범인 이모씨도 본래 12년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10년으로 감형받고 복역한 뒤 출감해 2년만에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어린이가 큰 일을 당했다고 치면(물론 지난 2년 사이에도 피해자가 없으란 보장이 없지만), 대체 10년이 길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48725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범 이모씨는 10여년 전에도 5~9세 여자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성범죄를 저질렀던 상습범이었다. 이씨는 1995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여자 어린이들을 위협해 성폭행하거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5건의 범행 모두 이번 사건처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씨는 95년 12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탄 여자 어린이를 흉기로 위협해 6층까지 데려갔다 여아가 소리치며 도망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이씨는 1시간30분 뒤 같은 아파트에서 2층 비상구 계단을 지나던 여아를 위협해 옥상으로 올라가 주먹 등으로 폭행하고 성폭행했다. 이씨는 다음해 2월과 3월에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자 어린이를 옥상으로 끌고가 성폭행했고, 반항하는 어린이에겐 흉기로 위협하며 폭행했다.


이 정도의 범죄력을 갖춰야 간신히 10년을 가둬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짓을 생각할 때 10년은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데도 이 10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http://www.freezonenews.com/news/article.html?no=25478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최근 잇따라 일어나 국민들을 격앙시키는 가운데 법무부가 ‘혜진.예슬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아동 대상으로 성범죄를 하고 살해한 경우 법적 형량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무겁게 하자는 법률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벌써부터 이 법의 실효가 없을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신당 이선희 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구멍난 치안은 처벌 강화로 해결이 안된다”며 “아동 성범죄의 경우 낮은 처벌이 범죄 재발의 원인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변인은 “10년을 복역하고도 똑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른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범의 경우를 보라”며 “‘혜진.예슬법’에 의해 예상되는 범죄 차단 효과는 극히 적고 인권 침해의 여지만 넓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 범죄자가 형을 사는 동안 잘못된 성 인식과 인권 의식에 대해 교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도 프로그램이 개선되어야 한다”며 “기존에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시행하고 경찰은 시국 사찰로 넋을 놓지 말고 민생 치안에 주력하라”고 말했다.


이 분의 생각으로는 이런 경우에도 10년이 결코 낮은 처벌이 아니었던 것이군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선 분통이 터집니다. 물론 '교정과 재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저 말 속에는 '10년이나 되는 중형을 받고도 결국은 재범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말에는 10년이면 매우 무거운 벌이란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 이런 낮은 양형은 판사들의 직업윤리를 의심하게 합니다. 현직 판사일 때 일반적인 판결의 형량을 낮춰 놓아야 결국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그 득을 보게 될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직 판사로 재직할 때에는 엄청나게 엄격한 양형을 매기다가 변호사로 독립하면서 이번에는 피고인의 편에 서서 가벼운 처벌을 호소한다면 아무래도 그만치 설득력이 떨어지겠죠. 한국 사법부가 일반적으로 가벼운 양형에 치우치는 데에는 이런 정서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고개를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요즘 들어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죄질이 나쁜 범죄자는 마땅히 법이 규정하는 한도 안에서 엄격한 처벌을 받게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특히 어린이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 범죄자의 경우 언제쯤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형량이 매겨질 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전자팔찌나 범죄자 신원공개가 인권 침해라는 분들은 제발 이럴 땐 좀 빠져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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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2009년 10월의 시점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6월, 가칭 '혜진-예슬법'은 통과됐습니다. 부모의 간청에 따라 '혜진-예슬법'이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게 됐지만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가중처벌이라는 취지는 살려서 입법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물론 4월에 들끓었던 여론은 6월이 되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 역시 잊어선 안됩니다. 심지어 4월에는 닥치는대로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들도 6월에는 잠잠해졌고, 형량 강화 사실을 보도한 매체도 얼마 안 됩니다.

그럼 대체 형량은 얼마나 강화됐을까요.

13세 미만의 여성에 대하여 ‘형법’상 강간죄를 범한 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못하도록 법정형의 하한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상향 조정됐다. 또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유사강간행위를 한 자에 대한 법정형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상향 조정됐다. 유사강간행위에는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의 일부나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가 추가됐다.

아울러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형법’상 강제추행죄를 범한 자에 대한 법정형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됐고, 13세 미만자를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범하고 상해를 가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하고 있다.

또 13세 미만자를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범하고 살해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함을 명확히 하고,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 자에 대한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하도록 개정됐다.


정말 중형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번 사건의 범인은 위 기사의 '강화된 기준'에 따라 처벌됐습니다. 단, 위 기준에 따라 법이 정한 가장 경미한 선의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법원의 기준에 한탄이 절로 나오는 아침입니다.

(아울러 대체 왜 대한민국 법원은 알코올 중독이나 음주자의 범행이 좀 더 관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정말 의문이지만, 이것까지 건드리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울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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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해, 그리고 아사하라 쇼코가 그 유명한 옴 진리교를 창시한 해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해의 이름에서 9을 Q로 바꿔(일본어로는 발음이 같은 '큐'라고 합니다) 1Q84라는 소설을 써냈습니다.

책을 잡으면 원래 잘 놓지 않는 편이긴 합니다만, 이만치 다음 얘기가 궁금해지는 책은 참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키 선생의 책을 처음 읽는 것이 아닌 터라 결국은 끝까지 읽고 나서도 뭔가 한눈에 확 들어오는 명쾌한 설명 같은 것은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묘한 글쓰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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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소개된대로 이 책은 2중 구조로 쓰여져 있습니다. 한 장은 남주인공 덴고의 눈으로, 그 다음 장은 여주인공 아오마메의 눈으로 쓰여져 총 48장에 맞춰져 있습니다.

학원 수학 강사이며 데뷔하지 않은 소설가인 덴고는 어느날 편집자 고마쓰로부터 한 소녀가 쓴 미완성 소설을 제대로 된 소설로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습니다. 한편 무술 강사인 아오마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는 바늘을 이용해 사람을 해치우는 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오마메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이끌려 이 세계와 겹쳐 있으면서도 이 세계가 아닌, 즉 1984년이 아니라 1Q84년인 세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이 둘은 지금껏 한번도 서로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다른 한 켠에 버티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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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문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도대체 리틀 피플이 뭐냐'는 것입니다. 1Q84의 세계에서, 문제의 '교주'는 리틀 피플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루키는 칼 융을 인용합니다.

융의 '인간과 상징'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융은 한 민족, 혹은 한 문화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해 '원형'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신화나 전설, 꿈은 하나의 공동체를 묶어 주는 역할, 즉 그 공동체를 공동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하루키의 리틀 피플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정령과 같은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하루키가가 이들을 가리켜 '선이나 악이라는 존재로 막연하게 가릴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이들이 단순한 악령이나 외계인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교단'의 모델이 하루키가 일찌기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집필할 때 대상이었던 옴 진리교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굳이 왜 하루키가 이 교단과 리틀 피플에 대해 호의적인 묘사를 하려 하는지 좀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하루키는 칼 융과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인용하면서 이 교단의 존재 의미를 인류 공통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원시적인 종교성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과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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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번데기와 도플갱어에 이르면 하루키에 익숙한 독자들은 '아아, 또 시작이구나'하는 실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하루키 스타일의 '독자 흔들기'입니다. 사실 하루키 선생은 가끔씩 이렇게 변화구를 던지면서 이야기의 진행에 목마른 독자들을 약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위해 하루키가 사용하는 소재와 학설들, 칼 융, 마셜 맥루헌,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그리고 '헤이케 이야기'와 '1984'는 모두 지나간 것들, 흘러간 것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착을 드러냅니다. 굳이 2009년에 왜 하루키는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는 시대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요.

그의 머리 속에서 1984년은 현재, 즉 2009년의 맹아가 될 수 있는 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해, 어느 시점도 마찬가지겠지만 1984년의 우리가 뭔가의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죠. 하루키에게는 아마도 그 시간, 1984년의 시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재도 아닌, 별 의미 없이 정의되지 않은 시간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제가 이 소설에 끌린 것 역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젊은 날을 보냈던 사람으로서의 느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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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특유의 논지 피해가며 변죽 울리기 - 이 소설에는 "나는 말이지, 특히 소설에 관해서는 내가 다 읽어낼 수 없는 것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해. 내가 죄다 알아버리는 그런 것에는 도대체 흥미가 없어. 당연하지. 지극히 단순한 일이야"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 는 이 소설에서도 여전합니다. 어떤 독자라도 '한 눈에 모든 것을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히 빛을 발합니다.

그런 모든 요소를 하루키의 허세라고 치부해 버리더라도, 이 소설이 갖고 있는 고갱이는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파란 하늘, 두 개의 달이 빛나는 저녁, 두 개의 달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사랑을 떠올리고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내는 정경은 하루키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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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 중에선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유니콘의 꿈)'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겹쳐지는 세계라는 면에서는 또 다른 무라카미인 무라카미 류의 '오분 뒤의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하죠. 물론 가리키는 방향은 정 반대입니다.

1Q84는 순간의 인기에 따라 사라질 책은 아닌 듯 합니다. 지금이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 읽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어쩌면 한 10년 뒤 쯤이 가장 좋은 시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한번 '빠져 보시죠'.


P.S.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다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는 곡은 태어나 제목조차도 들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멜로디는 놀랍도록 친숙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의 라이브 앨범에서 들어 본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이거였더군요. 'Knife Edge'.

모처럼 추억 속의 EL&P를 되새겨 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전람회의 그림' 가운데 '키에프의 대문'입니다. 익숙지 않은 분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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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이 조금만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 느끼는 첫번째 궁금증은 대략 비슷합니다. "도대체 미실은 몇살인거야?" 네. 분명 백발의 파파할머니여야겠지만 드라마 속의 고현정은 팽팽하기만 합니다. 보톡스도 없고 리프팅 기술도 없던 7세기 초, 대체 무슨 재주로 미실은 젊디 젊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미실이 며칠 전 유신에게 "내 나이만 젊다면 내가 직접 너를 품고 싶다만..."이라고 할 때 사실 많은 분들이 좀 의아했을 겁니다. 실제 고현정과 엄태웅은 세살 차이군요. 충분히 직접 나서셔도 될텐데 딸도 아닌 손녀를 유신과 짝지워 주려고 하는 역할이라니...^^)

물론 나이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선덕여왕'은 당장 무너져 버릴 드라마라는 걸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28일 방송에서도 그냥 홍안의 청년인듯 하던 보종이 시집갈 나이의 딸 보량(그 시절엔 12-13세에도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의 아버지로 급변신하는 모습에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미 이런 얘기는 많이 한 터라 더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관심인물인 춘추의 활약(?)을 보다 보니 살짝 어이없어지더군요. 바로 춘추의 현재 나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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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출생 연도는 604년, 즉 진평왕 26년입니다. 595년생인 김유신보다는 9세 연하이지만 출생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덕만공주와는 몇살 차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는 어렸을 때 어머니 천명공주에 의해 수나라로 보내지고, 거기서 약 10년을 머물다 천명공주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나라로 가기 전의 춘추의 모습, 그리고 돌아온 뒤인 현재의 춘추 모습으로 보아 대략 5-8세 정도에 가서 15-18세 정도에 돌아왔다고 하면 적절할 듯 합니다. (아, 물론 김춘추가 수나라에 유학갔다는 것은 드라마 속 설정입니다.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나라가 망한 것이 618년이라는 점입니다. 수나라는 612년 양제의 고구려 정벌군이 을지문덕에 의해 격파당해 곤경에 놓인 뒤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617년, 사실상 궤멸 상태에 이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춘추가 귀국한 것은 최소한 616년 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617년은 뒷날 당나라의 시조가 되는 이연의 반란군이 수도 대흥성을 함락하고 허수아비 황제인 공제를 세웠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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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당에 인질도 아닌 신라의 왕자가 그렇게 한가하게 남아 있었을 리가 없죠(강제로 억류돼 있었다면 어머니가 죽었다고 쉽사리 귀국할 수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더구나 28일 방송에서도 설원이며 보종이 "수나라 정세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덕담을 했건만, 이때에도 수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들이 대화하고 있는 시점은 최대한 늦게 잡아 봐야 617년 상반기 이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617년이라고 쳐도 춘추는 만 13세. 우리 나이로 열 네살. 그런데 하는 짓은 가관입니다. 미생과 함께 술맛을 논하는 가 하면(논하는 풍을 보니 이미 수나라에서부터 술깨나 마신 분위기입니다. 그 나이에...) 기방에 가서 미색을 논하고, 도박장에선 주사위를 던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보종의 딸과 결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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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워낙 옛날이니 조혼을 하고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조숙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그래도 만 13세에 음주에 기방, 도박이라는 건 좀 너무 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선덕여왕' 제작진도 지금의 춘추가 만 13세라고 설정해놓고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 않다는 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당연히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춘추의 출생 연대와 수나라가 망한 해, 중국의 정세를 결합해 볼 때 춘추가 드라마 속에서 보이듯 10대 후반의 나이로 중국에서 귀국하려면, 그건 수나라로부터가 아니라 당나라로부터 귀국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 정도로 춘추의 나이가 흔들리는 것 보다는, 그냥 소년 화랑인줄 알았던 보종이 갑자기 보량이라는 다 큰 딸을 데리고 불쑥 나타나는 것이 더욱 황당무계할 수도 있습니다. 좀 어설프긴 합니다만, '판타지 선덕여왕'의 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있어 온 일이죠. 어쩌겠습니까. 그냥 넘어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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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케이블TV 사상 최고의 히트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도 막바지에 달해 최종 승자 가리기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예선을 시작한다고 홍보에 열을 올릴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지난 주에 이 프로그램은 MC와 심사위원 한명을 교체했습니다. 예정된 수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청자들의 방송평과 일치하는, 적절한 교체였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심사만 시청자 피드백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죠.

'슈퍼스타K'가 본선을 시작했을 무렵, 시청자들로부터 적잖은 불만(?)이 터져나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투표 결과(10%)가 아니라 네티즌들의 투표(70%)에 의해 사실상 상위 입상자가 결정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꽤 많았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공평'과 '불공평'을 나누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의견입니다.



슈퍼스타 K가 불공평하다고?

요즘 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다. '열혈기자'란 연예기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물론 지원자는 수백명이었다)에게 매주 미션을 부여하고, 수행 결과를 토대로 매주 한두명씩을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는 한 사람은 일간스포츠 연예기자로 채용된다. 부상으로는 차를 한대 준다.

이 도전자들에게 기사 연습 삼아 현재 방송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리뷰를 시켰더니 한 친구가 M.net의 '슈퍼스타 K'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껏 최고 가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는 10%만 반영되고 네티즌 투표가 70%를 차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한 제도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말 불공평한 제도일까?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도전자를 탈락시키는 방법은 크게 나눠 세가지다. 같은 도전자들끼리 평가해 떨어뜨리는 방법('서바이버', '배첼러' 등),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해 떨어뜨리는 방법('어프렌티스', '프로젝트 런웨이' 등), 그리고 시청자나 네티즌들이 떨어뜨리는 방법('아메리칸 아이돌' 등)이다. 마지막 방법은 앞의 두 방법에 대해 불공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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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일단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슈퍼스타 K'는 대중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고의 대중 가수는 어떤 사람인가? 전문가들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사람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어느 시대나 '비운의 명가수'라는 이름으로 소수 마니아들의 칭송을 받지만 최고의 자리에선 한발 비껴 가는 가수들이 있다. 자주 예로 드는 코멘트지만, 한때 최고의 남성 R&B 보컬이었던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내한 공연 때 기자회견에서 "농구에선 가장 골을 잘 넣는 마이클 조던이 최고지만 팝계에선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인정한다면, 전문가들인 심사위원들이 1위를 선정하는 것보다 대중이 직접 ARS 투표를 통해 떨어뜨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불공평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실 불공평하다면 대중의 인기라는 것이 본래 '공평'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뽑았다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작이 흥행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이보다 훨씬 대중적이라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역시 정작 일반 관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대중적으로 만들면 늘 대박이 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늘 도박성을 띤다. 그나마 실력과 인기의 차이가 가장 적은 분야는 스포츠다. 그 스포츠에서도 팬들이 뽑은 인기 순위 1위와 전문가들이 뽑은 실력 1위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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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확장시킬수록 대중의 선택이란 점점 더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잘 만들어진 자동차가 항상 판매 1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최고 품질의 상품이 반드시 시장 점유율 1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온 세상의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에게 '지금 당신네 나라의 국가원수는 당신네 정치인들 가운데 제일 뛰어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그런 면에서 '슈퍼스타 K'의 방식(혹은 그 원조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방식)은 대중의 잔혹함과 변덕스러움, 그리고 때로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좋다는 건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어쩔 수 없어.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니까…"라고 안영미 흉내를 내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대중과 평단을 모두 감동시키는 진짜 천재가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웅크리고 있다. 사실은 이런 희망이 '슈퍼스타 K'를 지탱하는 진짜 힘일 지도 모른다.

P.S. 그럼 '슈퍼스타 K'에서 대중이 선택한 최종 우승자는 켈리 클락슨 같은 슈퍼스타의 자리가 보장되는 거냐고? 어허. 지금까지 뭘 들으셨나. 대중에게 어떤 식이든 변덕 없는 일관성을 기대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좌절로 끝난다니까. 그건 그때 가 봐야 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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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관련된 각종 산업은 모두 동전던지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치 현재까지의 추세로 미래의 경향을 점치는 것이 그야말로 '점치는' 수준에 가깝다는 얘기죠. 가장 믿을만한 생산 단위들을 이용해 콘텐트를 만들어도 기대했던 결실이 나올지 안 나올지에 이르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슈퍼스타 K'는, 말하자면, 대중문화의 생산 단위에서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중간 마진을 제거하려는 시도입니다. 생산자들이 직접 대중 앞에 나서서 우리의 가치를 매겨 달라고 요청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의 직접 평가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배출된 승자들은 그만치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다만, 이 가능성 역시 '높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뜬다'고 말하기는 힘들 겁니다. 대한민국 연예계로 진출하는 채널이 바로 이 '슈퍼스타 K'하나로 한정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 TV로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이 전체 대중의 취향을 대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릅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들'의 경우에도, 모든 우승자가 승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슈퍼스타 K'는 미국 시장에 비해 턱없이 위축돼 있고 지금 이 순간도 무너져가고 있는 유료 음악 시장을 무대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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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중이 직접 뽑은'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정작 음반을 내놓고 프로로 데뷔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 물론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 그거야말로 대중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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