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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에 이어 간밤에는 웬 우락부락한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 분들이 저 세상에서 심심하셨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자신들이 드라마에 나온다니까 TV를 열심히 보신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분 또한 MBC TV '선덕여왕'에 대해 할 말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또 타이핑된 글이 있군요. 매일 이런 탓에 낮에 피곤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어제와 똑같은 과정이었다는 점만 말씀드리고 그냥 올리겠습니다.

아, 이번 글의 싸인은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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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은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봤다면' 편을 먼저 보시는 게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빙의 시리즈 두번째 편입니다.^



내 이름은 유신. 당연히 김씨다. 우리 조상은 금관가야의 왕족이지만 일찌기 신라와 나라를 합쳤다. 결코 복속된 것은 아니다(불끈). 증조부 때 신라 조정에 출사했고 내 조부 무력공은 일찌기 진흥제를 도와 관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백제 왕(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라벌의 콧대 높은 귀족들이 우리 가야 출신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조부의 공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서현공은 감히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부인과 혼인도 없이 사통을 했다.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제의 여동생이며 며느리(동륜태자의 부인)인 만호태후가 숙흘종과 사통을 해서 낳은 딸이지만, 숙흘종 역시 진흥제의 동생이었으므로 부/모계가 모두 왕족인 귀인이었다. 다행히 뒷날 만호태후가 나를 보시고 자신의 외손자로 인정하셨으므로 나는 비로소 왕가와 피를 섞은 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어머니와 짝을 이루려 한 것도 내게 보다 나은 출세의 기회를, 더 나아가 가야 출신들이 신라에서 더 나은 지위를 얻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자진해서 왕실을 상대로 사기를 칠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고? 일설에 따르면 나는 어머니가 임신한지 스무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게 스무달을 뱃속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 건 아마도 어머니가 아버지와 야반도주를 할 때, '나는 이미 서현공의 아이를 가졌으니 더 이상 따라와서 괴롭히지 말라'는 식의 통보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어머니가 나를 가진 것은 그로부터 열달 뒤의 일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스무달 만에 아이가 나왔다'고 얘기하게 된 게 아닐까?

이런 부모님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달리 노력했다. 열다섯에 화랑이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긴지 백년도 되지 않은 제도였지만 화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엄은 대단했다. 사다함같은 명문가의 자손들이 화랑이란 이름으로 피를 뿌린 뒤로 누구도 화랑을 무시하지 못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신라는 화랑의 피를 먹고 자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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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이란 이름으로 검을 허리에 차고 나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나라에 내놓은 셈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만큼 삶에 대해 알지 못했고, 늘 자랑스럽게 죽어 나라의 제사를 받는 선배 화랑들의 명예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히 전장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는 자가 있으면 적보다 내가 먼저 목을 쳤을 것이다.

내 나이 열다섯. 세상에서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병법을 열심히 연구했으므로 실제로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개개인의 용맹보다는 장수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정병이라도 무능한 장군 아래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을 쌓아 가며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지만, 어쨌든 아군의 희생 없이 거둘 수 있는 승리는 없었다. 필요한 피를 아끼는 것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할 뿐이었다. 만약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내게도 목숨을 바쳐야 할 시점이 왔다. 건복 51년, 아버지와 함께 출전한 낭비성 공략은 다소 무모한 싸움이었다. 고구려의 장병들은 날래고 거칠었다.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아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병력은 뒤지지 않았고 훈련도 잘 되어 있었지만 서전의 패배로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투구를 벗고 창을 잡자 놀란 흠순(꽤 유명한 내 동생이다. '선덕여왕'에 자신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다. 나는 혹시 월야가 나중에 흠순으로 개명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이 말고삐를 잡았다. 우리 군의 총수인 아버지에게 결심을 알렸다. 흠순과 달리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단신으로 적진에 돌격해 내가 살아 남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죽음의 두려움을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지만, 왠지 자신감이 솟구쳤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내 피는 총명한 아우 흠순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었다.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신라군의 전설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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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다소 방심한 듯 했다. 설마 한 놈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달려드는 미친 놈에게 다들 길을 비켜 주었다. 내가 홀로 적진을 돌파하고 돌아오자 아군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두번째 말을 달려 적진으로 들어갈 때에는 나를 따르는 아군의 용사가 십여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적진을 누볐다. 이때에는 고구려군도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뒤를 돌아 보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이 다시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독이 오른 아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들어오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대승을 거뒀다.

그날 이후로 사병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단신으로 창을 잡아 적진으로 돌격한 화랑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두번이나 적진을 돌파하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나는 하늘이 돕는 신장이며, 창과 화살도 나를 꿰뚫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깨를 두드린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으며, 내가 벼린 창검은 부러지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래도 나는 전과 다름 없이 사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사졸들과 같은 곳에서 잤다.

그 뒤로도 적진에서 위기를 맞은 적은 많았지만 휘하의 장병들은 나와 싸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수백번 전장에 더 나섰지만, 내가 있는 주진이 돌파당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물론 나는 가끔 저 청년들을 대신해 내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비녕자에게 적진으로 뛰어들어 죽으라고 할 수 있으며, 조카인 반굴에게 죽음으로 모범을 보이라고 할 자격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위기를 맞았을 때 목숨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병사는 운으로 살아남는다. 운이 중첩되면 그 장수는 신장(神將)이 되고, 그 군대는 신병(神兵)이 된다. 신장이 이끄는 신병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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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역을 맡은 배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곱상하고 야리야리한 배우들이 인기라고 들었는데 무엇보다 남자답고 무게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다 보니 점점 속이 상했다.

나를 따르는 용화향도를 철없는 시골 소년들처럼 그린 것까진 이해한다. 천여명에 달했던 용화향도가 스물 남짓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화랑으로서 인정받기까지 내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내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너무 하는 일이 없었다. 국선이 되고, 풍월주가 된 뒤에도 드라마 속의 나는 도대체 위엄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휘하 화랑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국선이었다. 화랑들이 나를 그토록 우습게 여겼다면 내가 어떻게 신라군의 수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드라마 속의 나는 사소한 계략에도 쉽게 빠져드는 용렬한 인재였다. 내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나는 일찌기 전장의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손자병법에도 병불염사(兵不厭詐)라 했지만 적의 계략을 꿰뚫는 것은 장수의 기본이다. 내가 저렇게 우둔하고 우직하기만 한 인물로 그려지다니, 슬슬 짜증이 났다.

대체 저 사람들은 김부식이 쓴 내 열전(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읽어 보기는 한걸까? 사방에 간첩을 보내 적정을 정탐한 건 염종이 아니라 나라는 걸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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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황고가 등극하신 뒤로 나는 신국을 수호하기 위해 신명을 바쳤다. 그런데 어느날 드라마를 보니 내가 흰 옷을 입고 옥에 갇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은 나를 약 천년 뒤 사람인 이순신과 착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음 회에 내가 졸병으로 강등되어 싸우는 장면(백의종군)이 나오는게 아닐까 의아해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래 이 무렵의 나는 나가서 싸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장의 승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뛰어난 내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춘추에게 걸기로 했다. 좋은 장군의 재목은 아니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화술, 그리고 놀랍도록 빠른 상황판단은 내가 본 최고의 인재였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신라의 복이었다.

물론 나와 춘추의 동맹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자가 비담이었다. 그와 여왕 폐하가 사귀는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 여왕폐하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나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나오던데 참 보기에 민망했다. ...여자와 관련된 스캔들은 천관녀 하나로 족하다.

아무튼 비담은 자신이 왕이 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이거야말로 최후의 발악이었다. 어차피 전장에서 단련될대로 단련된 나의 군사들에게 비담의 무리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명활산성에 웅거한지 10일만에 비담군을 격파했다. 물론 연을 날린 것도 나의 계책이긴 했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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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드라마 속 나는 그저 무능한 장군일 뿐이었다. 적군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제대로 공성전을 펴지도 못했으며, 비담이 스스로 자기 편을 해하지 않았다면 난을 진압하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데 과연 누가 드라마 속의 나를 명장이라고 생각할까. 예상대로 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는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무능하게 그려지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어차피 드라마는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였다면, 그냥 소년시절만 나오고 말았으면 할 정도로 창피했다. 이 긴 드라마에 나오면서 내가 나름 머리를 써서 한 것이 불붙은 연을 날린 것 하나라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여왕께서는 드라마 홈페이지의 기획의도를 보고 분노하셨지만, 사실 드라마 시작할 때만 해도 옛날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새주가 죽고 나서 그 작가가 이후의 진행 방향을 거론하며 "천하의 기재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무적의 군신으로서 서라벌 최고의 중망을 가진 장군인 김유신. 그토록 비담이 갖길 원했던 ‘천년의 이름’을 당당히 거머쥔다. 김유신은 앞으로 삼국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꿈을 위해 덕만을 끝까지 지지하고 덕만 역시 끝까지 김유신을 신뢰함으로써 둘의 완전한 결합은 이뤄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뭐가 천하의 기재고 뭐가 무적의 군신인가. 드라마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차라리 말이나 말지. 완전한 결합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興武大王.

P.S. 심지어 전화기 광고에도 바보로 나오다니. 가문의 치욕이다.


장군의 분노가 이해가 가시면 과감하게 추천을! (왼쪽 손가락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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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오랜 시간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한두달 전에 끝난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아직 이 드라마의 엔딩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담의 피눈물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제 노트북에 이상한 글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전원을 끄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 제 손이 친 것 같기는 한데, 마지막에 '聖祖皇姑'라는 서명이 있는 것을 포함해 글의 내용은 참 생소하기 짝이 없더군요. 물론 글의 내용은 평소 '선덕여왕'을 보면서 하던 것과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 글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젯밤 꿈에 웬 할머니가 뭐라고 구구절절 길게 얘기를 하신 것 같은 기억이 났습니다. 뭔가 좀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하고, 서글퍼 보이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분이 마지막에 '올려 놔, 올려' 라고 하신 것 같기도 해서, 블로그에 올려 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구절 구절 그분이 불러주신대로 제가 넋놓고 타이핑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졸려서 잘못 받아 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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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덕만. 사람들은 내가 왕위에 오른 뒤 성조황고라고 불렀다. 신국이라고 불려 온 내 나라, 신라의 성스러운 핏줄을 이은 동시에 나라 최고의 여자 어른이란 뜻이다.

아버지 진평제께서는 아들이 없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내가 신중하고 영명하다 하셨고, 당신의 뒤를 이을 사람은 나뿐이라고 일찌감치 점찍어 놓으셨다. 아무리 왕이 아들이 없다 한들, 왕이 될 남자 친척이 없었겠는가. 용춘/용수공은 아버지의 숙부인 진지제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 된다. 비록 진지제가 폐위를 당했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이나 용수공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외손자인 춘추 모두 왕위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혈통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여자라 하여 왕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주위에 많은 인재를 모았다. 유신과 호림, 알천, 임종, 술종, 염장과 보종이 나를 따랐다. 인재들을 서로 엮어 주는 것도 나의 할 일이었다.

화랑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고 있던 유신은 일찌기 진흥제를 도와 신라의 국경을 확장한 명장 무력의 손자긴 했지만 가야의 후손이라 서라벌의 중앙 귀족들과는 차이가 있었고, 춘추는 총명하고 담대했지만 폐위된 왕의 후손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이들이 협력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준다면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두 기둥이 될만 했다. 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춘추를 결혼하게 해 두 사람을 인척으로 맺어준 것도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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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의 일연국사는 내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며 이를 지기삼사라고 칭찬하기도 했지만 나라고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당 황제가 보낸 그림을 보고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고 한 것은 그때까지 내가 본 모란꽃이 향기가 없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그림과 함께 온 씨앗을 심자 향기 없는 꽃이 피었다. 본래 모란에도 향기가 있다고는 하나, 내 생각엔 일부러 나를 비웃기 위해 보낸 것이 분명한 듯 하다.

물론 지기삼사중의 하나인 '여근곡에 매복한 백제 군사의 위치를 파악한 일'을 두고 내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군사적으로 신라가 크게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대외 정복을 계속 추진하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시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있었던 일일 뿐이다.

신라는 본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약소국이었다. 그러던 나라가 지증-법흥-진흥제에 이르는 강력한 군주들의 노력으로 급격한 팽창을 이룩했다. 특히 진흥제때 관산성에서 백제 성왕을 포함해 백제군 3만을 참살한 것은 결정적으로 양국의 균형을 흔들었다. 신국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두 배 가까운 확장을 이뤘다.

하지만 땅만 넓어지면 그 땅이 모두 우리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정복 다음에는 치세가 와야 한다. 그건 아버지 진평왕과 나의 몫이었다. 내지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새로 정복한 땅에 살게 해야 했고,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는 고구려, 백제, 가야의 백성들을 신라 조정에 귀순하게 해야 했다. 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백제와 고구려가 역습해 왔을 때 성을 지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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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짜증스러웠다. 진흥제가 확보한 국경은 너무나 넓었고, 10년 20년에 우리 땅으로 다져질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는 굳은 동맹을 맺고 땅을 다시 회복하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국의 수나라를 동원해 이 둘을 견제해야 했다. 자주? 난 그런 건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신국의 도요, 선대왕들의 유지를 이어 신라가 삼한일통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중국이 우리 땅을 삼키려 한다면 그건 통일 뒤에 맞서 싸울 일이다. 또는 힘을 모아 중원으로 치고 나가려 해도, 왕이 셋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해서 아버지와 나는 수시로 농민들을 격려하고, 이 신라를 부처님의 땅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아시다시피 내 아버지의 이름 백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어머니 마야의 이름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에게서 따 온 것이다. 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 땅에서 석가 세존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절을 짓고 불교를 장려한 것 역시 국민 총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별 난리를 피우며 대항했다. 정복 전쟁의 성공은 무장들을 교만하게 했고 신라는 전통적으로 귀족들의 권력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여자 군주는 국가의 기강을 약하게 할 것이란 게 그들의 명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난을 일으킨 칠숙이나 석품이 대표적인 경우였고, 비담과 염종은 내 뒤의 천하가 춘추에게 돌아가는 것을 좌시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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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얻은 땅을 굳히려 안간힘을 쓰는 사이 백제는 서서히 국력을 회복했다. 특히 의자왕은 대단한 무장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야성을 지키던 춘추의 사위 품석 부부가 죽은 것도 이 때이고, 화랑을 단합시킨 유신이 간신히 막지 않았더라면 삼한일통은 백제의 몫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전술가였던 반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전략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어진 승전에 교만해졌고, 중도에 정복을 포기하고 인생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듯 하다.

이제 옛날 말고 요즘 얘기를 좀 해야겠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는 좀 황당무계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 역할을 맡은 어린 배우는 귀여웠고, 상상력으로 채워진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사관들의 탓이겠지만 아무튼 나도 어린 시절에 그렇게 중원을 유랑했다면, 좀 더 풍부한 식견을 가진 군주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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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궁주같은 나라의 어른과 내가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진 것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후세의 우매한 사람들이 머리를 짜 내어 했다는 일에 크게 마음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이라는 배우는 참 훌륭했다. 사실 드라마가 뭐라 한들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 일이라고도 생각했다(그런데 이건 내 생각이 틀렸다. 소화 말로 요즘 사람들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보다 드라마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치세에 조정이 화합하지 못하고 정권 다툼을 벌였다면 서라벌은 진작에 백제 왕의 말발굽 아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보다는 거의 바보에 가깝게 그려진 용춘공이나 싸움은 꽤 잘 하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게 그려진 유신, 그보다 더 하는 일이 없었던 알천 등이 훨씬 불만이 많을 듯 했다. 아, 그리고 6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왕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인물로 그런 것은 참 우스운 일이었다. 뭐 미실궁주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을테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쪽 편으로 그려진 인물들 역시 불만이긴 마찬가지일 듯 하다. 설원공 하나를 빼고는 모두 팔푼이들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뒤로 가면서 드라마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천년의 대업을 이룩하려고 왕위 계승을 노리는 내가 나라의 목표가 삼한일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대체 누가 납득하겠는가. 나 뿐만 아니라 신라의 그 많은 화랑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무공을 연마하고 심신을 다졌을까.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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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숙의 난의 정체가 미실의 난이었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그려진 미실궁주를 그대로 두고 내가 왕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난의 진행 과정은 도대체 역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인지 의아해질 정도로 무성의했다. 심지어 나는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십대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부끄럽고 화가 났다.

게다가 미실의 난 때 주역이었던 미생과 하종, 보종 등이 그대로 뒷날 비담의 난 때에도 주역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갖가지 미사여구로 사실을 덮으려 했지만 드라마 내용대로라면 그들은 나와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자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미실이 멋진 여걸이라는 건 나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반을 감행한 자들을 다시 중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똑같은 자들에게 두번이나 당할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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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아프다. 내가 비담을 좋아했었던가? 뭐 까짓거 이미 천년도 넘은 일이니 비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물론 그 드라마에 나오는 김남길이란 배우만큼 잘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랬다고 치자. 내가 비담을 그렇게 좋아했다면 그냥 서슴지않고 남편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 그게 무슨 흉이 되겠는가. 물론 비담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나, 유신이 보기에나, 결국 대업을 달성할 인물은 춘추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비담을 압박하고, 비담이 못 견뎌 난을 일으키고, 우리가 비담의 무리를 쓸어 버린 것은 춘추의 치세를 위해 '가시를 뽑은 천하를 물려준' 것이다. 아, 미안하다. 이 표현은 나중에 중국에서 명나라라는 나라를 세운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도 나처럼 자신의 뒤에 올 왕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해한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늙은이들이 끝낼 일이다. 아무튼 비담 역시 일국의 왕을 노린 자신이 자제력 0에다 염종이 한마디만 하면 무조건 속아넘어가는 IQ 14짜리 캐릭터로 그려진 걸 결코 즐거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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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끝까지 비담을 놓고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비담이 죽자 혼절까지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꽤 분이 끓어올랐다. 도대체 그 작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춘추가 홈페이지라는 곳에 들어가면 기획의도라는 것이 있다고 가르쳐 줬다(역시 춘추는 똑똑하다).

'남성들만이 전유하던 왕의 자리를 공주의 신분으로 도전하여 최초로 차지하게 된...' 까진 좋다. '수많은 영역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 시청자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주고자 한다'. 음. 뿌듯하다.

그런데 '왕이 되는 과정을 권력투쟁의 승리과정으로 그리기보다는 사람을, 인재를 얻어가는 과정으로서 그리고자 한다. 자신과 뜻이 같고 훌륭한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 속세를 버린 사람은 물론 명백한 적들까지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도록 했던 그 지도자의 힘! 그 힘을 보여주려 한다' 는 내용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과연 이 드라마가 나를 이렇게 그렸나? 내가 본 드라마가 이 드라마가 맞나 싶었다. 내가 본 드라마에서 나는 오로지 권력투쟁만 벌였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입으로 쉴새없이 말했지만 결국 내가 내 사람으로 만든 것은 따지고 보면 월야 한 사람 뿐이었고, 오히려 우유부단하게 적들을 방치하다가 나라를 내란으로 몰고 가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왕일 뿐이었다.
 
내가 휘하로 흡수했어야 할 화랑들도 중년이 되어 수염을 붙인 뒤로는 모두 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들로 변신했다. 평소에 강한 척 하던 나는 오히려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왕에서 가녀린 여자로 변신했다. 여자들에게 자긍심을 주긴 커녕, '저래서 여자는 큰 일을 못 해'라는 얘기가 안 나오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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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은 당장 그 드라마를 만든 이들의 꿈에라도 나타나 크게 호통을 치고 꾸짖자고 한 반면, 계략의 달인인 유신공은 이미 끝난 드라마, 죽은 자식 **만지기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다른 수단을 써서 내 생각을 널리 알리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가끔 꿈에 나타난 얘기를 반대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지혜로운 인물의 조언이라 따르기로 했다. 사실 화랑의 꽃인 그도 이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우정과 사랑, 의리로 뭉쳤던 그들(화랑)의 삶을 보여줌으로서 감동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신라 정신의 핵심으로, 삼국 통일의 핵심세력으로 떠올랐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해 놓고 그의 동료 화랑들을 권력에 빌붙어 자기 잇속이나 챙기려는 장교집단 정도로 그려 놓은 데 꽤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한 블로거(난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이건 죽방이 가르쳐 줬다)에게 빙의해 글을 남기게 됐다. 가능한 한 후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새로운 말들을 섞어 쓰려고 노력했다. 이 글이 널리 알려져 후세 사람들이 내가 그렇게 무능하고 정신나간 여왕이 아니었다는 걸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배운 빵꾸똥꾸라는 말을 한번 써볼까 했는데 주위에서 말린다. 이걸로 그만 하련다. 聖祖皇姑.


빙의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2편은 김유신이 본 '선덕여왕'.
여왕님 말씀에 동의하시면 과감하게 추천을(왼쪽 손가락을 누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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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결론부터 얘기하면 돈벼락을 맞았습니다. 할렐루야!

뭐 세상에 돈 싫어할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관대하신 지마켓으로부터 지원금 100만원을 따내는데 성공했습니다.

700여표를 획득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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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회사 일만으로도 정신없는 판에 일을 벌이다니, 하고 허벅지를 찌르고 있습니다.)

제가 현찰을 따내기 위해 제시한 공약은 이런 거였습니다.

1. 적당한 장소를 빌려 영상물 상영회를 한 뒤

2. 유명 영화 감독이나 평론가를 초청해 약식 강연회를 마련하고

3. ...호쾌하게 술판을 벌이고 걸찍하게 놀아 보겠다

이렇습니다.

그래서 1, 2, 3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방법은, 현재도 영상물 상영을 하고 있는(예: 뮤직비디오) 카페나 주점(당연히 음향 상태가 수준급인 곳)을 저녁 시간대에 빌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날짜는 1월 중의 토요일이 좋을 듯 합니다.

혹시 주변에서 이런 상황에 적절한 장소를 알고 계신 분들은 댓글로 연락처와 위치를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본인이 이런 업소를 경영하거나 관계되어 있는 분들도 부끄러워 마시고 적극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하는 겁니다.

권장 사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프로젝터와 DVD 플레이어, 우수한 음질의 음향 장비를 갖춘 곳(마이크 포함)

2. 가능하면 지하철 2호선 테두리 안에 있는 곳
   (2호선 역 근처란 뜻이 아닙니다. 2호선으로 둘러싸인 서울 시내란 뜻)

3. 주류 판매에 지장이 없는 곳

4. 주말에 문을 여는데 문제가 없는 곳

5. 좌석이 50석 정도는 확보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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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예산을 불사르겠습니다.
(물론 모자라면 회비도 걷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청춘만 불사르시면 됩니다.)

아무튼 이제 조속히 장소를 마련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들 먹고 노는 건 자신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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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화두를 던진 이래 이 주제는 한국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의 벗어날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얘기인 즉 간단합니다.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영화건 드라마건, '블록버스터'라고 불릴 만한 성과를 향해 투자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옹호세력은 만만찮습니다. 이를테면 '쉬리'를 위시해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도전했던 수많은 대작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성원을 얻어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나 '디 워', 올해의 천만 관객 동원작 '해운대'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대작들을 겨냥하고 그 스타일을 표방했던 작품들이 '그래도 이게 한국 영화의 저력'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작품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외양에 비해 자랑할만한 내실을 갖췄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비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옹호론자들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외양을 키우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외양과 내실이 모두 탄탄한, 소위 '작품성있는 대작'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의혹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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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색칠한 스티로폼이라는게 너무 역력한 바윗돌을 던지며 싸우는 신라군과 백제군을 보는 시청자들, '아이리스'의 어이없는 마무리를 보며 분개했던 시청자들은 과연 어떤 쪽의 손을 들어 줄까요. 그와 관련한 생각입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하려다 보니 꽤 길어졌습니다.



제목: 한국 사극의 전투신은 왜 동네 북인가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스펙터클 전쟁 영화와 드라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소지섭 김하늘 주연의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연출 이장수)이 있고, KBS는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6·25 소재 드라마 <전우>를 부활시킨다는 방침이다. 영화계에선 차승원 김승우 권상우 주연 <포화속으로>(감독 이재한)의 제작 소식이 눈길을 끈다.

이런 현대전 대작들의 영향인지 드라마 <선덕여왕>의 붐을 이어갈 사극 대작의 소식은 잠잠하다. 이병훈 프로듀서의 <동이>(MBC) 외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없다. 제작사들은 아예 사극 시놉시스를 대놓고 기피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제작비가 현대극의 두 배 이상 드는 데다 상품 노출을 통한 제작비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영세한 외주제작사의 입장에선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피할 수밖에 없다.

또 최근 몇몇 대작 사극들의 경우,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작품의 시각적 퀄리티가 뚝 떨어지는 안타까운 경우를 낳곤 했다. 유종의 미를 위해선 드라마 후반에 대형 전투 신 등이 나와야겠지만, 불행히도 거기 들어갈 제작비는 이미 다 쏟아 부은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사극 전문가는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50부작이라고 치고 처음 2회까지 20회 분의 제작비를 쏟아 붓는다. 초반에 눈길을 끌지 못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10회까지 40회까지의 제작비를 쓴다. 시청률만 기대대로 나오면 나머지 회차에 대한 제작비는 방송사에서 부담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엔 200~300명의 단역 배우에다 수십 필의 말까지 동원돼 그럴싸한 전쟁 장면이 구현되지만, 후반에는 네티즌들로부터 ‘30만 대군이 아니라 30명 대군이냐’는 악플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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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들일 돈을 다 들인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그냥 감동해 주는 것도 아니다. 최근 종반으로 접어든 <선덕여왕>의 전투 신은 초반에 비해 물량 면에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시청자의 기대치는 <글래디에이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맞춰져 있다. <적벽대전>조차도 어설퍼 보일 정도다. 한국 TV 드라마의 제작비로 이런 작품들과 스펙터클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바엔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HBO의 인기 사극인 <로마(Rome)>나 <튜더스(The Tudors)>같은 작품들을 참고하는 거다. <로마>는 카이사르의 말년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출범에 이르는 로마의 격동기를, <튜더스>는 영국의 전제 왕정을 확립한 헨리 8세의 파란만장한 편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에서 대규모 전투 신을 찾아보기는 너무도 어렵다.

특히 <로마>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 -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 - 옥타비아누스와 브루투스의 대결 -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 등 로마의 운명을 건 전투들을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 50명 이상의 병력이 격돌하는 전투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스펙터클이 없다는 이유로 실망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전쟁 장면만 피해 가는 솜씨가 너무도 절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상이나 미술비까지 아낄 수는 없겠지만, 한국 사극의 제작진이 연구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두어 시간에 끝나는 영화야 어쩔 수 없겠지만, 드라마는 특히 이런 지혜를 닮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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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태왕사신기'의 전투 신은 위에 든 예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학이라는 완벽주의자의 손끝에서 나온 전투신은 위에 거론된 작품들과는 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왕사신기'또한 '내실과 외양의 균형'을 비교하는 논리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배용준이라는 한류 슈퍼스타의 등장과 호쾌한 전투신까지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쥬신의 왕'을 자처하는 담덕이 대체 왜 한민족의 재통일과 중원 회복을 꾀하지 않는지를 비롯해 작품의 내적 논리에서는 수없이 많은 허점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현재 방송가나 업계에서 맞서는 내용을 요약하면 "드라마가 드라마지(혹은 영화가 영화지)", 즉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래"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실의 퇴장을 전후에 '선덕여왕'에 쏟아진 실망과 비난에 대해 제작진이나 MBC 드라마국이 '그런건 설정'이라거나 '작가의 권한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 역시 그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결국은 그냥 그 정도라는 것을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 시청자들(혹은 관객)의 수준으로 보아 내용의 논리적 완결성이나 플롯의 개연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 현재 제작진의 논리입니다. 거기에 쓸 시간이나 노력, 자본이 있으면 더 비싼 배우를 쓰거나, 더 많은 엑스트라를 쓰거나, 말을 몇마리 더 쓰거나, 더 화려한 갑옷을 만들거나, 화약을 몇KG 더 쓰는게 시청률을 높이는데(혹은 관객을 늘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죠.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면 거기에 정면으로 반발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네. 이 부분에선 시청자/관객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 엑스트라 500명을 써 본 경험이, 제작비 200억원을 컨트롤해본 경험이, 할리우드 특수효과팀과 작업해 본 경험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겪으면 한국 영화/드라마가 제작비 1억 달러짜리 영화나 회당 제작비 1000만달러대의 드라마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가 열심히 따라잡는 속도가 할리우드의 발전 속도보다 빠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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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참고로 삼고 싶은 것은 BBC의 드라마 진용입니다. 척 봐도 그리 돈 들어가는 드라마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장수 SF 시리즈 '닥터 후'만 해도 거대 미드에 비하면 제작비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각개 드라마의 완성도는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형 전투신 하나 없이 대작의 느낌을 다 내는 '로마'나 '튜더스'의 교훈도 연구해볼 만 합니다.

이제는 한번쯤, '어떻게 하면 돈을 덜 들이고 돈 들인 드라마보다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까'에 좀 투자가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어떻게 하면'을 연구하는 비용은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것 또한 생각해둬야겠죠. 언제까지 '역시 일본 원작이 내러티브가 튼튼하다'면서 드라마며 영화며 죄다 일본 원작 판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물론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당장 돈이 안 되는 단막극을 통해 연출자나 작가들을 훈련시키는 비용은 너무나 아깝지만, 작품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광고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투자(이를테면 단막극 한 편의 제작비와 맞먹는 톱스타의 기용)에는 눈에 불을 켜는 방송사에 사실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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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지난 12월17일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형님들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리뷰는 슬쩍 미루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분들의 공연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형님들의 공연을 직접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연말의 약속 홍수 속에서도 "12월17일만은 안돼!"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엑스 대서양홀. 전문 공연장 - 뭐 그렇게 따지만 우리나라에 전문 공연장이 대체 어디냐는 반박이 당연히 등장하겠지만 - 이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 떨떠름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번 공연의 화두는 '그래도 그게 어디냐'와 '니가 인제 배가 불렀구나'의 정서입니다. ...직접 보게 된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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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교통 체증으로 오후 8시 개막 예정이던 공연 시간은 8시30분 정도로 자동 시프트. 뭐 며칠 전의 GNR 공연이 2시간 30분 늦게 시작했다는 데 비하면 대단히 훌륭한 공연 시간이었습니다. 좌석은 콘솔/조명 타워 살짝 오른쪽 뒤. 기울어진 공연장이라면 최적의 조건이겠으나 아쉽게도 코엑스 대서양홀은 전혀 경사가 없는 평지 바닥입니다. 이 평지라는 조건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연이 시작하고 몇분 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 옹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미처 좌석 확보(?)는 되어 있지 않았는지, 아니면 잡힌 좌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두 양반은 콘솔 타워 기둥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신나게 춤을 추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 물론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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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셋리스트... 빌리 조엘 때만 해도 직접 만든 리스트에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엔 자신이 없습니다. 메모도 별로 하지 못했고. 아무튼 'Boogie Wonder Land'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Fantasy' 'September' 'Let's Groove'로 달릴 때는 '아니 대체 앵콜로 무슨 노래를 하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앵콜은 Getaway...

Boogie wonderland
Jupiter
Serpentine Fire
Sing a Song
Shining Star
Kalimba
Brazillian Rhyme
That's the way of the world
After the love has gone
Reasons
In the stone
Got to Get You into My Life
(잘 모르는 곡이 2곡 정도...?)
Fantasy
September
Let's Groove

encore:
Get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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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두 시간 동안 16-17곡의 노래가 나왔는데 전 공연이 풀 스탠딩으로 진행돼 버렸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우선 첫곡이 너무나 신나는 'Boogie Wonderland'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맨 앞줄의 열성 팬들이 일제히 기립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앞서도 얘기했지만 대서양홀은 경사진 공연장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무대가 보이지 않게 된 뒷줄의 다소 덜 열성적인 팬들까지 일제히 일어서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루브의 제왕인 이 형님들은 도대체 노래가 끊기지를 않는 논스톱 퍼포먼스로(전 노래와 다음 노래 사이에 음악이 쉬는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죠) 관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현장음이 사실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분들의 음악의 특징인 '둥글게 감싸주는 소리'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각각의 악기들은 좀 심하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그리 잘 섞이지 않더군요. 브라스 섹션은 기대대로 훌륭했지만, 랄프 존슨 대신 자리에 앉은 드러머는 이들과 그리 긴 시간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슬쩍... (물론 그게 어딥니까^^) 또 이렇게 대강 대강 하는 듯 하면서도 다 맞춰 주는 것이 흑인 음악의 매력이기도 하죠. 정말 흑인 세션들의 천재적인 음감이란.

우리 한민족도 흥 하면 한 흥 한다고들 하지만 요즘 방송중인 '일밤'의 '단비'를 보면서도 대체 저 아프리카 사람들의 리듬감과 춤/노래 유전자는 강하구나...하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네. 남들이 한지민의 눈물에 감동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흑인음악이 세계 대중음악을 지배하고 있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가끔은 아프리카의 DNA가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걸 흉내내는 것조차도 좀 무모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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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에 선 사람은 총 11명. 포지션도 맘대로 왔다갔다 하시는 분들이라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중간에 '오리지널 멤버'라며 이제는 완전히 그룹의 간판이 된 필립 베일리와 모리스 화이트의 동생인 버딘 화이트, 그리고 랄프 존슨이 인사를 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창단때부터의 '오리지널 멤버'는 버딘 화이트뿐이지만..^^)


(어느 분이 참 질기게 동영상을 찍어 놓으셨더군요. 유튜브에 줄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냥 분위기만 느껴 보시라고 하나 올려 봅니다. 곧 사라질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얼른 검색.)

막판에 '코리아... 좋아요?'하나 물어보신 것 말고는 한국 팬들에 대해 특별한 서비스를 생각한 것도 없는 듯 하고, 립서비스도 "앞엣분들이 우리 가사를 다 아는 걸 보니 우리 이번이 처음이지만 다음에 또 오게 될 것 같네요" 정도로 그쳤지만, 그래도 직접 뵈니 참 좋습니다.

그래서 할말은 "얼른 또 오세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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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생각보다 젊은 관객들이 많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요즘도 클럽에서 'Boogie Wonderland'나 'September'를 자주 틀어주기 때문"이랍니다. 형님들 참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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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적인 예매율, 대출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보고 말겠다는 영화 팬들의 의지가 이렇게 뜨겁게 느껴진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바로 '아바타' 얘깁니다. 제왕 제임스 카메론의 11년만의 신작. 이미 흘러 넘칠 정도의 호평과 찬사.

영화 관객 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갖고 있는 재화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호평받는 상품에 끌리게 되고,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명품 브랜드(패션으로 치자면 샤넬 정도 되려나요^)를 신뢰하게 됩니다. 패션 명품과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어쨌든 똑같은 가격이라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뭐라고 하건 '아바타'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건 눈치채셨을 겁니다. 물론 어떤 영화라도 '이걸 보라고 추천한 개**들은 뭐냐'고 투덜대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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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전직 해병 제이크(샘 워딩턴)는 미 정부의 부름을 받고 죽은 형의 대타로 판도라 행성에 갑니다. 6년간 잠자며 날아간 판도라 행성은 지구인들이 탐내는 희귀 자원의 보고로, 자원 채굴을 위해 진출한 기업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원주민(즉 판도라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행성에 파견된 생물학자 그레이스(시고니 위버)는 인간과 원주민의 DNA를 합성해 만든 아바타를 동원해 인간과 원주민 사이의 대화 창구로 삼으려 합니다. 곡절 끝에 제이크의 아바타는 원주민 추장의 딸 네이티리(목소리는 조 살다나)를 만나 그들의 부락으로 가게 됩니다. 한편 용병의 리더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은 제이크에게 언젠가 있을 무력 충돌에 대비해 원주민들을 낱낱이 탐색해 보고하라고 유혹합니다.

대략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만 아무튼 영화의 설정은 이보다 훨씬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되어 있습니다(괜히 카메론을 제왕이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 '아바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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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니메이션의 미래다?

카메론이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건 이미 유명해진 얘깁니다. '아바타'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CG 화면은 실사와 비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일각에서는 '베오울프'나 '크리스마스 캐럴' 등 제멕키스의 작품들과 비교하며 '아바타'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사실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파이널 판타지' 계열과 비교해 봐도 '아바타'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엔 살짝 함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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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위에서 든 영화/애니메이션들이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얼굴의 솜털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교한 애니메이션이 동원됐지만, 이들 중 어떤 작품도 인간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이를 모를 리 없는 카메론은 제멕키스처럼 우직하게 맞붙는 대신, 슬쩍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아바타'에 등장하는 디지털 배우(즉 아바타들)들의 연기가 호평받은 것은, 그들이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바타'에서도 판도라 원주민 아닌 진짜 인간들의 얼굴을 디지털로 표현하려 했다면, 제아무리 카메론이라도 망신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골룸도 진짜 인간의 얼굴이면 그런 호평은 없었을 겁니다.) 이런게 바로 제왕의 지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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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의 얼굴이 아니면서도, 이게 누구의 얼굴인지는 다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미래는 아니다'입니다. 혹자는 '현재 블록버스터의 첨단 기술 수준을 1이라고 봤을 때 카메론이 사용한 것은 20'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카메론과 이 분야의 경쟁자들 사이에 결정적인 기술적인 격차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단지 이쪽이 좀 더 현재 상태에서의 기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 뿐입니다. 좀 더 영리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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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정주의 서부극의 변신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줄거리를 들으면 제일 먼저 '포카혼타스'를 떠올리고,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라스트 사무라이'를 연상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더스틴 호프만의 고전 '작은 거인'이나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 처럼 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고 써야 하나...)들의 시각에서 본 서부극 영화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20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종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윤리를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시험관 아기나 생명 복제에 대한 부분이 그랬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지구를 나눠 쓰고 있다. 인간의 생존권과 동물의 생존권이 대립할 때 동물의 편을 들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환경보호론에 대해서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아바타'가 제시하고 있는 상황은 이보다 한발 더 앞서 있습니다. 누군가 외계에서,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번식하는 지적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과연 이들을 '외계인 괴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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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정도라면 큰 고민이 필요 없을 듯도 하지만 가령 어느 외계 행성에서 발견한 오랑우탄 수준의, 혹은 개구리 수준의, 혹은 지렁이 수준의 '외계인'에 대해 각각 어느 정도나 '예우'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아바타'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인간들끼리도 경멸하고 차별하는 인종주의자들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 환호하는 수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얘깁니다. 그리고 카메론은 그런 논의가 결코 흥행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그런 도덕에 대한 문제를 '시사'하는 선에서 더 나가지 않습니다.

사실 '아바타'가 영화니 그렇지만 어느 별에서 발견된 '외계 지렁이의 생존권'을 위해 지구인에게 총질을 해 대는 사람을 우리가 현실에서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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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타쿠에 대한 풍자다?

사실 '아바타'라는 제목부터 현실 세계의 아바타들을 연상하게 하죠. 지난 여름 개봉했던 영화 '써로게이트'는 '아바타'와 출발점이 똑같은 영화입니다. 단지 그 아바타들이 우주 아닌 지구의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는 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저는 '아바타'를 보다가, 아바타와의 접속 상태에서 풀린 제이크가 '얼른 먹고 빨리 다시 접속해야지'라는 자세로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그레이스가 제이크에게 '대체 너 마지막으로 목욕한게 언제냐'고 물을 때 빵 터졌습니다. 삼시 세끼를 컵라면과 초코파이로 때우고,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와 면도 따위는 잊은 몰골로 게임 속 엘프가 되어 있는 'PC방의 아저씨들'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여기에 대해선 따로 써놓은 글이 있어 이 정도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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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임스 카메론의 자기 복제다?

이 영화에 비판적인 사람들(그리 많지는 않지만)은 '카메론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비교할 때 새로운게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평생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면서도 거장으로 대접받는 사람이 있는데 카메론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그만큼 완벽주의자 카메론에 대한 기대가 두텁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약간 다른 얘기지만, '아바타'를 보면서 카메론이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들의 편린을 살펴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는 건 0.1초 안에 '에일리언 2'를 생각하게 합니다. 당초 쿼리치 대령 역으로 내정됐던 마이클 빈이 탈락한 것도 "시고니 위버에다 마이클 빈까지 나오면 이건 누가 봐도 '에일리언2'"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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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미셀 로드리게스가 연기하는 트루디 캐릭터에서 '에일리언 2'의 흔적을 발견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체구는 작지만 남자들을 압도하는 라틴 혈통의 터프한 여전사'라면 '에일리언 2'에서도 이미 본 적이 있죠. 지넷 골드스타인(Jenette Goldstein)이 연기한 바스케스 상병입니다.

또 원주민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아바타들은 '적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와 똑같이 생긴 괴물'들입니다. 적대적이지 않을 뿐, 바로 터미네이터죠. 누가 운영하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쿼리치 대령이 아바타의 운영을 맡았다면, 이 아바타들은 바로 터미네이터가 됐을 겁니다. 아마도 카메론 팀은 스토리를 개발할 때 이런 방향도 검토했겠지만, 누군가 "그렇게 되면 그건 너무 '터미네이터잖아"라고 지적했을테죠.

물론 지금껏 카메론이 만든 영화 가운데 '아바타'와 가장 많은 유사점이 발견되는 작품은 그의 유일한 실패작^^으로 기억되는 '어비스'입니다. 미지의 지성체와의 조우, 부활의 주제, 막연한 공포와 적대감/광기, 미래 인류의 생존과 자원 등 '어비스'에서 카메론이 건드렸던 수많은 어젠다들이 '아바타'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짝 모습을 바꾼 채로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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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보든, 이중 어느 한 시각에서 보든, 혹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보든 '아바타'는 멋지고 감탄할 만한 영화입니다. 가장 좋은 감상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보는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아직 3D 버전을 보지 못해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3D버전과 아이맥스/3D버전을 각각 따로 한번씩 볼까도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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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자는 "그래픽이 훌륭하다 훌륭하다 하길래 봤는데 만화영화인 걸 다 알 수 있더라"고 불평하시기도 하더군요. 물론 다른 분들이 '다 알 수 없어서' 이 영화를 호평하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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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드라마에서 웬만한 성형수술이나 윤곽변형은 책잡을 거리도 안 됩니다. 얼굴 고쳐 놓고 치열교정이라고 우기는 것도 애교에 속합니다. 정말 대단한 건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마무리하는 솜씨들입니다.

KBS 2TV '아이리스'가 마침내 이병헌에 대한 저격으로 마무리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병헌이 '아이리스2'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있을 때부터 그 운명이 대강 짐작되긴 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마지막 부분, 그 처리의 방식에 정말 턱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입이 딱 벌어졌다'의 다른 표현입니다. 물론 좋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떻게 이 비싼 드라마가 이렇게 끝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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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현준(이병헌)은 승희(김태희)가 기다리는 호텔로 반지를 사들고 룰루랄라 돌아옵니다. 승희는 승희대로 쓸데없이 호텔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하고, 전화기를 켰다 껐다 하며, 이어폰을 꽂고, 그동안 못다 했던 PPL 광고주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현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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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등대가 승희가 기다리는 바로 그 등대일 겁니다. 지금은 새치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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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죽죽 달려갑니다. 중간에 계속 승희의 얼굴이 삽입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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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앞 장면에서 가볍게 틱, 소리가 들리고 여기서 차가 뒤뚱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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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총에 맞은 현준이 운전능력을 상실하고 차가 정규 통행 방향에서 벗어납니다.

물론 총에 맞아 핸들을 놓친 사람이 브레이크는 어떻게 밟았는지... 저 짧은 거리에서 바다쪽으로 구르거나 왼쪽 절벽을 들이받지도 않고 절묘하게 차를 정지시킵니다. (촬영 막바지에는 제작비가 좀 더 딸리기 마련입니다. 더 이상 KIA 차량을 희생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유리 깨는 정도로 마무리.)

화면에 스키드마크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급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그럼 이 차는 운전자가 총에 맞으면 저절로 서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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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유리가 대파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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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은 운전대에 머리를 받고 쓰러져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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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많이 흐르고, 눈물도 흐릅니다.

지금부터 신의 조건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차량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오른쪽은 바다입니다. 저격수는 바다 한 복판에, 아마도 배를 띄워 놓고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겁니다. 당연히 바다는... 육지보다 출렁거립니다(무슨 소리야). 날씨가 좋아서 파고가 일정하긴 하겠지만, 아무튼 꽤 흔들립니다.

문제의 저격수는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커브 구간이긴 하지만, 운전자가 반지를 들고 애인에게 프로포즈하러 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 상황에서 유유자적 천천히 가고 있다면 그건 정신병자죠)를 겨냥하고 저격을 합니다.

이 차의 진행방향과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면, 현준이 차에서 내려 등대로 갈 것 또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달리는 차 안과 외부에 노출된 등대 중에서 어느쪽이 쉬운 저격 목표일지는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차를 선택한 건 그만큼 저격 실력에 자신이 있단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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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총알은 정확하게 오른쪽 유리를 깨고 현준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차 유리가 대파된 걸 보면 총알은 상당히 큰 구경인 듯 합니다. 그런데 총알은 유리를 깬 뒤에는 갑자기 소심해져서 현준의 머리 형상을 그대로 남겨 둘 정도로만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저 정도의 위력이라면 머리가 절반은 날아가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 현준의 오른쪽 머리로 들어간 총알은 왼쪽으로 관통해서(그렇지 않았다면 현준의 왼쪽 머리에서 피가 날 리가 없죠. 충돌시 핸들에 부딪힌 머리도 오른쪽이니까요), 살짝 피가 날 정도까지만 힘을 냈습니다. 왼쪽으로 총알이 뚫고 나왔는데도 왼쪽 유리창에는 피 한방울 튀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사실 총격전 영화만 몇편 보신 분들도 저건 좀 이상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제가 무슨 총기 전문가는 절대 아니지만, 총상은 엑시트 운드(Exit Wound)가 더 큰 법이잖습니까. 오른쪽으로는 살짝 구멍만 나더라도 왼쪽 머리로 뚫고 나갔다면 왼쪽 머리는 지금보다 한참 더 심각한 상태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범인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몇 Km 밖에 있는 달리는 차 안의 표적을, 그것도 단 한 방으로 정확하게 머리를 맞히고, 그것도 엑시트 운드도 없이 딱 출혈만 일어나도록 관통한 겁니다. 과연 이걸 신의 솜씨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이런 킬러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신의 솜씨는 여기 저기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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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요원 역을 맡은 류승룡입니다. 이 화면은 백화점을 점거한 테러범들이 NSS 요원들에게 보낸 협박 요구사항입니다. 류승룡은 자신만만하게,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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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혼자 자신만만하게 얼굴을 드러낸 이 요원은 나중에 대통령의 정상회담 자리에도 그 얼굴 그대로 버젓이 들어와 총질을 합니다. 물론 실력은 신의 실력이 아니지만, 이 테러리스트는 신의 배짱을 가졌습니다.

참...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닙니다. 온 NSS 요원이 얼굴을 알고 있는 테러리스트가 몇시간 뒤 곧바로 대통령을 죽이러 난입해도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스펙터클도 좋고 총싸움 저도 좋아합니다만, 이건 뭐 좀 어떻게...하는 생각밖에 들질 않습니다.

어쨌든 권총 한 자루로 그 많은 테러리스트를 진압한 신의 요원 현준. 그런 현준인 만큼 그를 죽이려면 신의 능력을 가진 저격수가 필수였겠죠.

네. 아이리스는 신들의 이야기, 그냥 신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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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였기 때문에 전쟁의 신 현준과 미의 여신이자 거짓말의 여신인 승희는 맺어질 수 없었던 거겠죠. 드라마의 신들이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신화가 된 모양입니다.

"난 전설같은 건 믿지 않아"라는 대사 뒤엔 "왜냐하면 내가 신이기 때문이야"라는 말이 감춰져 있었던 걸까요. '아이리스'를 봐도 그렇고, '선덕여왕'을 봐도 그렇고.... 대체 왜들 마무리가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신들의 얘기를 평민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와 죄송하지만,

아직 투표 안 하신 분들,

한표만 부탁드립니다.

http://www.gmarketstory.co.kr/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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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코믹했던 캐릭터는 이런 드라마에선 총부터 쏘고 말을 해야 한다는 사소한 진리를 몰랐던 이 아이리스 요원... 말이 많은 사람부터 죽는다는 것도 몰랐다니. 저도 이제 입 다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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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후로 이 블로그의 방문수는 월 최하 120만 선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하루 평균 4만분의 방문자가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같은 아이피의 당일 재방문은 그냥 1회로 계산됩니다)

지난 월요일 부탁드린 투표에 참가하신 분은 400분 안팎입니다. 방문자 수로 단순 계산하면 100분 중 1분 정도가 투표에 참여하신 셈입니다.

물론 저 4만은 포탈에 의한 소나기 트래픽이 작용한 숫자이기 때문에 상당히 과장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별반 큰 이벤트가 없을 때에도 하루 1만5000명 정도는 꾸준히 찾아오신다는 것을 숫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별일 없으면 찾아오시는 분을 넉넉잡고 하루 1만명으로 잡으면 400명은 4% 정도입니다. 그렇게 보고 나면 나머지 96%의 방문객들은 참 무심하신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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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긴 합니다만, 만약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할 때, 댓글 하나 달리지 않고, 추천수도 올라가지 않고, 위아래로 클릭하시는 분도 없다면 블로깅이라는 걸 하면서 얼마나 공허할까 하는 생각을 혹시라도 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헌혈을 하시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입금해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무슨 아프리카 방송처럼 별을 쏴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하다 못해 추천 편지를 써 달라거나, 댓글을 한줄 달아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직접 나와서 얼굴을 보여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단 두번의 클릭이면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무관심하신 건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네. 물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결식아동을 돕는 일도 아닙니다.

100만원이라는 돈에 미치도록 욕심이 나서도 아닙니다.

현재 성과가 1위냐 2위냐를 보고 있는게 아닙니다.

이기고 지고는 이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블로거는 방문객들에게 이 정도도 기대하면 안 되는 겁니까?

다만 한번이라도, 이런 식으로 그동안 글 잘 보고 있었노라고, 네가 온라인에서 하고 있는 이 짓이 그냥 공허하게 혼자 끄적이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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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외면하지 않고 성원해주신 400여분께는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나니 왠지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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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대로 달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군요.^^


P.S.2. 베스트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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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빵 터졌습니다.

제가 '이기고 지는건 이제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하니까

곧이듣지 않는 분들이 꽤 계신듯 합니다.

하지만 한번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2등과의 표 차이는 200여표, 배수로는 두배가 채 안 됩니다.

그 블로그에 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쪽의 트래픽은 이 블로그의 1/10 미만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블로그의 득표수는 1일 방문자 수의 30%가 넘더군요.

이걸 방문객의 애정 차이라고 생각하면 오버일까요?

그런 기분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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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먼 산으로 가고 있는 본방에는 사실 흥미를 잃었습니다. 뭐 이제 와서 드라마가 망가지고 있네 어쩌네 해 봐야 몇회 안 남지도 않았더군요. 사실은 이미 '삼한일통' 때부터 드라마는 산소호흡기로 숨쉬기 시작했고, '미실의 난'이 시작될 때에는 맥박이 멎었습니다. 네. 드라마로서의 '선덕여왕'은 미실보다 먼저 운명하셨습니다.

드라마가 히트할 때마다 가끔씩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을 할리우드로 옮겨 캐스팅해보면 어떨까 하는 장난이 유행하곤 하는데, '선덕여왕'의 경우에는 아직 그런 경우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종방 기념으로 한번 짝을 맞춰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꽤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인물들의 캐릭터가 워낙 흔들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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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선덕여왕'이라고 쓰고 '여걸 미실'이라고 읽는 드라마이다보니 미실 역할이 가장 핵심적입니다. 고현정이라는 배우의 족적이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에 누구를 올려놓으면 좋을까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은 제 맘대로 모니카 벨루치를 낙점했습니다. 영어 연기가 안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정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경력은 일천하지만, 웃으면서 군사들의 목을 칠 수 있는 '잔혹한 아름다움'이라면 가장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매트릭스2'나 '그림형제'에서의 이미지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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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당연히 덕만인데 이 역할부터는 정말 생각이 잘 나질 않더군요. 이유는 도대체 덕만이라는 캐릭터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어린 덕만은 다코타 패닝이라는 안전한 카드를 씌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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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덕만은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고(변덕이 죽끓듯), 어려서의 총기는 어디론가 내다 버린 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점에서 '이제 여자이고 싶어요'를 외쳐 대는 짜증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리메이크를 한다 해도 별 비중 없는 캐릭터가 될 것 같으니 그냥 여전사 이미지만 살려 보겠습니다. '니벨룽겐의 반지'의 크리스티나 로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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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엄태웅. 설정대로라면 대단히 멋진 남자 중의 남자이며 장군 중의 장군이어야겠지만, 실제로는 이름만 탱크일 뿐, 보도블록도 넘어가지 못하고 반드시 턱에 걸리는 출력 부족의 무늬만 무한궤도 답답이 캐릭터가 됐습니다. 어쨌든 이름 값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엄태웅의 본래 포스를 고려해 좋은 배우를 골랐습니다. 크리스천 베일.

잠시 중간광고: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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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 기호 4번, '송원섭의 스핑크스'에 한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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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은 예측불허의 캐릭터일 때에는 매력 만점이었지만 이제 질투쟁이에다 칭얼대기나 즐겨 하는 어른 놀이 상대등이 되면서 매력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드라마의 엔딩을 이룰 비담의 난 조차도 스스로 일으키지 못하고 남들에게 떠밀려 벌어질 모양이니 참...

어쨌든 예측불허의 매력남이라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잭 스패로 선장을 빼놓고 누구를 떠올리겠습니까. 조니 뎁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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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풍알천'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알천 또한 지금의 상태에선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말로만 하는 캐스팅이므로 최고 수준으로 꼽아 봅니다.

알천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일을 완성하는 의기와 충성(뭐 대사가 너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입니다. 가장 신뢰감 가는 얼굴이라면 맷 데이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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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처음 3회 정도 매력있었던 춘추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이상하게 주위 배우들 다 늙어가는데 혼자 수염 한 가닥 나지 않는 요괴동안의 지진아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

설명해봐야 답답해질 뿐이니까 일단 캐스팅. 할리우드의 유승호라면 누가 좋을까요. '어거스트 러쉬'의 프레디 하이모어가 꽤 자랐습니다. 크면서 이상해진 할리 조엘 오스몬트나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가볍게 제칠만한 미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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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모습을 기억 못하실까봐 - 어린 시절의 유승호군 못잖은 귀염둥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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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던 죽방조차도 여왕이 등극한 뒤로는 어쩌다 한마디 하는 내시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세 개 이상의 캐릭터를 동시에 관리하는 건 정녕 무리란 말입니까.

가끔 자기 무릎을 찍기도 하는 꾀돌이 캐릭터라면 드라마 '앙투라지'의 제레미 피븐을 꼽고 싶습니다. 사진은 에미상 수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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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상으로는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미중년이라며 칭송받고 있는 설원공이 남았군요. 설원공 좋아하는 분들, 나이든 어르신들이 전두환 장군의 측근들에게 호감을 갖는다고 욕할거 하나 없습니다. 댁들도 똑같습니다.

어딘가 음흉한 눈빛을 풍기지만 머리 좋은 미중년. '트로이'의 션 빈을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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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애당초 웃기려고 들어간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매번 무게만 잡고 있더군요.

본분을 되찾으란 뜻에서 강한 캐스팅으로 밀어 봅니다. '이어 원'의 잭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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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를 빼면 좀 아쉽겠습니다. 가장 고민 없이 한 캐스팅입니다. 깊은 눈빛, 미중년, 칼이 어울리는 사나이, 진중한 한마디 한마디, 뭐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이상 있겠습니까. 비고 모텐슨 낙찰.

마지막 커플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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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출 좀 받게 보증 서 달라는 얘기 아닙니다.

돈 받아서 지방 빼고 성형수술하는데 쓰겠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유명한 지마켓에서 블로그 네 군데를 골라 100만원씩 모임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얘깁니다. 이런걸 보고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냉큼 지원했습니다. 지금 8군데가 남아 있고, 여기서 4등 안에 들면 100만원의 예산 지원이 나옵니다.

4등 안에 들면 되는줄 알았더니 1등에게만

100만원 지원이 된답니다. 이런 된장



사실 여덟군데 목표들을 보니 다들 좋은 데 쓰실 모양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공약으로 낼 수 있는 건 돈 받아 몽창 여러분을 위한 이벤트 비용으로 쓰겠다는 겁니다.

돈 받으면 뭐 할거냐길래 '뽀대나는 장소 빌려서 영화/공연 동영상 존 거 감상하면서 유명한 전문가 모셔서 강연 비스무레하게 서로 얘기도 나눠 보고, 술도 한잔 하고, 늘 하던 퀴즈 이벤트도 상품 그럴싸한거 걸어 놓고 하면서 연말연시를 신나게 보내 보겠다'고 썼습니다. (뭐 이거보다는 점잖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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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블로그 오프 이벤트라면 꽤 해 봤잖습니까.

돈 있으면 더 뽀대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폭발적인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셨던 분들

위아래 짜잘한 클릭질 아까워 하셨던 분들

이번이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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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4번입니다.

그냥 이렇게만 얘기하면 보고 지나치실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이번 투표로 여러분의 신임을 묻겠습니다.

지지가 저조하면 주제에 블로그는 무슨 블로그냐는 뜻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내용을 다시 확인해보니 4등 안에 들면 주는게 아니라 1등에게만 100만원을 지원해 준답니다.

간이 작아져서 신임은 나중에 묻겠습니다.

그래도 1등 하면 좋겠습니다.

마이 찍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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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치명적인 매력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시절부터 존재했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매력적인 귀족 남성입니다. 그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그런 매력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픽션들이 뱀파이어를 다루고 있었지만, '못생기고 추악한 흡혈귀'에 대한 작품은 '노스페라투'외엔 그닥 생각나지 않습니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시리즈를 봐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뱀파이어 연대기'의 주요 주인공인 레스타(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는 톰 크루즈가 연기한 역할입니다)가 록스타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 아예 '인간보다 아름답고 인간보다 우아한' 흡혈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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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 문

흡혈귀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의 라미아(Lamia)나 로마 신화의 스트리고이(Strigoi)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발생한 것은 빨라야 17세기, 영어로는 18세기의 일이다.

로런스 리켈스(미국 UC샌타바버라 교수)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저서 『뱀파이어 강의』에서 이 시기 유럽에서 뱀파이어에 대한 공포가 급격히 확산된 것은 서유럽인들이 느끼던 동유럽의 야만성이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사망 후 '무덤으로부터 되돌아와 사람들의 피를 빨 가능성이 높은 자들'로 분류됐다. 알코올 중독자, 자살자, 몽유병자, 세례받기 전에 죽은 아이, 매춘부, 동성애자, 심지어 '언청이로 태어난 아이' 등이다.

공통점을 추려 보면 소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 다시 말해 죽어도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임을 알 수 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누군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공동체에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공리적인 경고가 전설 속에 숨어 있는 셈이다.

브램 스토커가 1897년 소설 『드라큘라』로 뱀파이어를 픽션 소재로 이용한 이후 이 괴물들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영생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비유로 성장했다. 하지만 요즘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꽃미남들은 이전의 뱀파이어들과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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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시리즈 2편 '뉴 문'은 미국에서 이미 2억5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고, 최근 국내에서도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 속 뱀파이어들에게 영원한 삶의 고뇌와 죄의식 따위는 없다. 인간을 죽이지 않아도 혈액은행을 통해 허기를 해결할 수 있고, 신비로운 외모와 초능력에다 '네가 숨쉬는 것 자체가 내겐 선물이야'라고 속삭이기까지 한다. 상대가 반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이런 '뉴 문'의 열기 속엔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소박한 흡혈귀의 전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을 바라보는 여성 팬들의 시선은 하이틴 스타들을 바라보는 10대 소녀 팬들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아무리 진지한 고민은 일단 거리를 두는 시대라지만 초승달(New moon)에서 밝게 빛나지 않는 부분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끝)



'뉴 문'을 볼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보고 나서 그리 유쾌해지지 않을 거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런 세계적인 문화현상을 외면한다는 것은 직업윤리(?)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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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줄거리는 요약하고 말고도 없을 정도입니다. 일단 악한 뱀파이어들이 자취를 감추자 고민거리가 없어 고민인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따라 죽을 수가 없을까?"하는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과 함께 있는 한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안전할 수 없다는 (좀 납득은 가지 않지만)결론을 내리고, 깔끔하게 벨라와의 관계를 정리해버립니다.

에드워드가 하루아침에 떠나자 벨라는 산 송장이 되어 버리는데, 그런 벨라를 여전히 노리는 악한 뱀파이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벨라 곁에는 어느새 자신이 늑대인간임을 자각한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이 있습니다. 제이콥이 벨라를 보호하고, 어느새 벨라와 제이콥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지만... 벨라는 여전히 에드워드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미친 짓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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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 이성적인 사고나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절대 금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뭐 등장인물들이 모두 10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상당히 리얼하다고 볼 여지도 있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흥분하는 관객들은 - 10대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 상당히 넓은 연령대에 포진해 있습니다. 20대는 물론 30대, 40대 관객들도 꽤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남성 아이들 그룹의 '이모 팬들' 현상을 생각하면 전혀 놀랄 일은 아닙니다. 잘생긴 청년과 닭살 로맨스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연령을 무시한 전체 여성층으로 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이 잘생기고 멋진 인물들로 그려진 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력적이고 위험한 뱀파이어의 캐릭터는 기존의 뱀파이어에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불노불사의 미남 청년' 이미지가 입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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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캐릭터들이 상징하는 것 역시 그동안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은 '과연 사람이 늙지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간직하고, 먹고 살 걱정도 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모든 고민과 번뇌가 사라질까'에 대한 상상의 결과입니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면 결코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영생을 가진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고독과 권태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등장합니다. 이 시리즈의 뱀파이어들은 매우 새롭긴 하지만 사실은 상상력 부족의 소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에 걸친 뱀파이어 픽션의 전통을 싹 무시해 버리고, 영생과 불멸이라는 소재에 대한 인간의 축적된 사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잘 생겼는데 늙지도 않아? 그럼 좋은 거 아니야? 돈도 많아? 그럼 더욱 좋지. 몸도 날쌔고 초능력도 있어. 어머, 그럼 내가 위기에 빠지면 언제든지 구해줄 수 있겠네? 그런데 피를 먹는다고? 뭐 내 피만 아니면 어때. 아, 사람은 안 죽여도 된다고? 그럼 문제될 게 없잖아? 완벽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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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에드워드와 크리스틴 커플이 생각해 낸 가장 큰 문제라는 게 2편인 '뉴 문'에 나오는 "내가 늙어서 할머니가 되어도 너는 나를 사랑할거야?" 정도입니다. 이건 '하이랜더' 시리즈만 해도 시작하고 10분만에 등장하는 문제죠. 네네.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아무 생각 없는 10대들입니다.

젊은 꽃미남들에게 온 세상 여성들이 환호하는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아는 처지에서 새삼 '뉴 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인 뱀파이어는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하고 육성돼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정리된 뱀파이어는 인간이 갖지 못한 장점들을 엄청나게 갖고 있지만, 결코 인간보다 우월해 질 수는 없는 반면교사의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들을 상대로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다 갖는다 해도 그것이 곧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철학적인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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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그 모든 걸 한방에 날려 버린 얄팍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깊이 있는 사유의 중요성을 아예 부인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고 있죠. 영화 속의 뱀파이어 집단은 스타이며 셀레브리티인 이들이고, 영화 속 여주인공이나 관객들은 이들의 밝은 면만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바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죠. 아이들 그룹의 멤버들도 죽을 때까지 춤과 노래를 연습해야 하고, 때로는 성공을 위해 야비해져야 하고, 치열한 경쟁 속의 삶을 살아야 하며, 언젠가는 나이를 먹어 팬들의 사랑을 잃는다는 사실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깊은 사랑은 아닙니다. 명품 백에 대한 사랑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깊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뉴 문'은 현실을 떠난 판타지이기는 커녕 현실의 무시무시함을 더욱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 나서도 몸서리가 쳐 집니다. 제목에 대한 답은 '여자들은 항상 뱀파이어 캐릭터를 사랑했다'입니다. 하지만 뱀파이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 이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랑하게 된 것은 처음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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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이돌 걸스'와 '짝퉁 소녀시대'로 인터넷이 요란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의 소녀시대를 모방한 9인조 걸 그룹이 나왔다는 얘기더군요. 궁금증이 도졌습니다. 대체 얼마나 비슷하길래...?

찾아 본 결과는 - 물론 말씀 안 드려도 알겠지만 - 비슷하다는 정도일 뿐, 사실 약간 실망스럽습니다. 지난 11월30일 처음 등장했다는 아이돌 걸스는 멤버가 9명, 중국식으로는 애타여해(爱朵女孩, 중국어 발음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불립니다. 애타(爱朵)는 중국어로 idol을, 여해(女孩)는 여자 아이 즉 girl을 가리킵니다. 애타문화(爱朵文化)라는 말은 중국쪽 문건에 많이 등장하죠.

백문이 불여 일견. 지금부터 아이돌 걸스(爱朵女孩)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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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간판 사진입니다. 현재 뉴스에 떠올고 있는 '소원을 말해봐' 컨셉트의 사진과는 어쩐지 약간 얼굴이 달라 보입니다. 이쪽이 11월30일 나온 EP의 자켓 사진인 듯 합니다. 이번 EP의 대표곡은 '순진연대(纯真年代, 역시 중국어 발음은 모릅니다. 그런데 노래 제목에서부터 어떻게든 소녀시대의 느낌을 풍겨 보려는 노력이 눈물겹군요)'. '순수했던 시절' 정도의 뜻인 모양입니다. 뭐 노래에서 한국의 소녀시대와 비교할만한 포스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4곡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또 하나의 노래는 '기이여정(奇异旅程)'이라는 제목입니다. 글자 그대로 '기이한 여행'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가 따로 있지는 않은 듯 하고, 멤버들의 얼굴을 좀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한번 발병하면 잘 치료되지 않는게 불치병입니다. 도대체 멤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더군요. 개인 샷을 찾아 봤습니다. 발빠른 중국 네티즌들이 올려 놓은게 있더군요.

자, 지금부터 아홉 멤버를 모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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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张薰元 • 英文名:Kileko • 出生日期: 1/09 • 星座:摩羯座 • 身高:163公分 • 体重:42公斤 • 个性:外向,开朗,可爱

장훈원이라고 불리는 멤버가 위 사진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한국 소녀시대로 치면 윤아인 셈인데 스타일은 태연에 가깝군요. 일단 공식적으로 중국 측 발표는 '9명의 멤버 나이 평균이 18세'라는 것인데, 이 친구는 1989년생입니다.

중국어를 몰라서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원원(元元)이란 이름으로 아역 활동을 한 듯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돌 걸스에서도 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듯 합니다. 킬레코(Kileko)라는 이름을 따로 갖고 있는 건 아마도 해외 활동(?)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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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인 모양입니다. 상당히 귀여운 모습입니다. 아무튼 꽤 알려진 인물이라는 정도 외에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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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宋翊菲 • 英文名:Fiona • 出生日期: 3/24 • 星座:白羊座 • 身高:163公分 • 体重:45公斤 • 个性:知性,温柔

송익비라는 이름 때문에 2위에 올렸습니다(종씨라서...). 상당히 귀염성있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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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王晶 • 英文名:Crystal • 出生日期: 1/12 • 星座:摩羯座 • 身高:168公分 • 体重:42公斤 • 个性:温文尔雅

홍콩의 왕정 감독과 혼동하면 곤란. 중국에도 크리스탈이 있군요. 아무튼 이 팀에서는 이 친구가 최장신입니다. 소녀시대의 수영 역할 정도? (그런데 168에 42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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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陆丹蓝 • 英文名:Genie • 出生日期: 4/20 • 星座:金牛座 • 身高:161公分 • 体重:42公斤 • 个性:精灵可爱

육단람(우리에게 친숙한 한자론 陸丹藍). 어딘가 카라의 니콜을 벤치마킹한 듯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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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唐小雅 • 英文名:LUcky • 出生日期: 12/04 • 星座:射手座 • 身高:163公分 • 体重:45公斤 • 个性:幽默,假小子

당소아. 영문명은 러키. 역시 귀여움 담당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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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曾惜 • 英文名:carina • 出生日期: 10/11 • 星座:天枰座 • 身高:162公分 • 体重:44公斤

증석. 카리나. f(x)의 앰버를 벤치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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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李佳遥 • 英文名:Donna • 出生日期: 1/15 • 星座:摩羯座 • 身高:168公分 • 体重:40公斤 • 个性:内外兼修

이가요. 공동 최장신인데 심지어 이번엔 168에 40... 어떻게 걸어다니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과장이 심한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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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索菲娅 • 英文名:Sophia • 出生日期: 9/15 • 星座:处女座 • 身高:165公分 • 体重:44公斤 • 个性:古灵精怪,活泼可爱

색비아라는 한자 이름이 이미 소피아의 차음인걸 보면 교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녀시대의 제시카나 티파니의 작명법을 참고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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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文名:李雨晴 • 英文名:Elsa • 出生日期: 5/23 • 星座:双子座 • 身高:167公分 • 体重:45公斤 • 个性:四次元少女,迷糊的小女人

이름은 이우청. 용모에는 별 특한 점이 보이지 않는데 개성에 '4차원소녀'라는 말이 보입니다. 중국 연예계에서도 쓰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직수입 용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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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상의 키와 비교해보면 포샵으로 다리 늘리기는 시대의 대세인 듯. 물론 이것도 전체적으로 벤치마킹의 결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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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해서 짝퉁 소녀시대, 아이돌 걸스(爱朵女孩)의 멤버들을 살펴봤습니다. 눈길이 가는 멤버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살펴본 소감을 말하라면 - 이미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 오리지널과는 비교 불가. 우리의 소녀시대와는 '감히 어따대고' 수준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카피 그룹이 나올 정도로 소녀시대가 성장했다는 얘기로 받아들이면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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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우리의 우월한 소녀시대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근데 이래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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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시민'의 기본 골격대로 평범한 사람이 복수의 열정으로 슈퍼맨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합니다. (한국에선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주로 성형수술을 하지만)할리우드 영화 중에도 수백편은 쉽게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할리우드제가 아닌 액션 영화 하나가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후, 할리우드에서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바로 '테이큰'. 영어로 된 영화지만 프랑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이것 저것 따지고 가리는, 그리고 사람을 죽이거나 과감하게 행동을 해야 할 때 갑자기 햄릿으로 돌변하는 할리우드식 소심형 주인공에 대한 반발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모범시민'은 '할리우드에서도 아무 것도 가리지 않는 무대포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언더 시즈'의 스티븐 시걸 류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만치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는 클라이드 쉘튼은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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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장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는 어느날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딸이 죽음을 당하는 참변을 경험합니다. 범인들은 곧 모두 체포되지만 경찰의 현장 훼손으로 증거들의 법정 채택이 어려워지고, 유죄판결률(즉 검사의 승률) 96%를 자랑하는 출세지향형 검사 닉(제이미 폭스)은 클라이드에게 '이 상태에선 둘 다 무죄로 판결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두 범인(다비와 에임스) 중 한쪽으로부터 증언 협조를 받아 다른 한쪽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증언하겠다는 쪽이 주범인 다비라는 것. 클라이드는 다비가 증언의 대가로 5년 이내의 형을 받을 거라는 데 경악하지만 닉은 어쩔수 없다며 클라이드를 외면합니다. 10년 뒤, 에임스의 사형이 집행되는데... 이때부터 클라이드의 진짜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네. 클라이드는 그냥 평범한 가장은 아니었던 거죠.

이 영화의 홍보 문구에는 닉이 '부패한 검사'라는 표현으로 등장하지만, 닉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부패한 검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범죄자를 더 많이 잡아 넣는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검사라는 쪽이 맞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검사로서의 실적, 즉 재판에서 자신이 기소한 범인이 더 많이 유죄판결을 받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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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부분적인 승리를 위해 진짜 처벌되어야 할 사람과 거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소한 이유(이 영화에선 그런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로 결정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명백한 흉악범에게 중형을 선고하지 않는 법정, 그리고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법 제도의 활용에 도움을 주고 있는 법률가들에 대한 분노가 등장합니다.

최근 조두순 사건을 통해 한국 법정에 만연한 온정주의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우선해서 고려되는 듯한 분위기,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는 일부 인권옹호론자들의 위선적인 면모에 대한 분노가 한국 사회를 쓸고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법과 질서는 썩었고,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다. 내가 직접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상당히 큰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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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의 시선은 참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면 당장 검사인 닉, 그리고 다비가 가벼운 징역만 살고 풀려날 수 있게 해 준 변호사, 기타 법정 주변 인물들이 좀 더 악랄한 사람들로 그려지는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저 평소대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될 때까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게다가 클라이드가 폭주하면서 죽어 나가는 사람 중에는 정말 무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클라이드의 동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막상 클라이드가 행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의 행동에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동조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F. 개리 그레이 감독의 입장입니다. 아마도 '테이큰'의 제작자가 이 영화를 만들었자면, 클라이드는 좀 더 박수받는 존재가 됐을 지도 모릅니다. (클라이드의 희생자들을 더 나쁜 놈들로 그려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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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과 '모범시민'의 이런 차이는 그 사회와 영화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법치국가에서 사적인 정의의 실현이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족의 가치'와 '사적인 정의 실현의 실현 금지'라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을법 합니다.

과연 한국 관객들이라면 클라이드의 '단독 행동'에 어디까지 박수를 보낼까 하는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현재의 법률제도와 정의 실현에 대한 불만에서 클라이드에게 동조할 수도 있고, 이미 잊혀져 가는 '김회장님의 아들 구출작전' 사건 때 쏟아진 공분처럼 누구나 법에 의한 해결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정의 실현(?)에 나설 때의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을 다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 김회장님 사건 때에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가 밖에 나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내가 그 사건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와 다르게 행동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드러내는 '아버지'들이 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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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과 '리쿠르트' 같은 영화를 쓴 커트 위머의 대본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다양합니다. 물론 영화를 107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귀가 딱딱 맞게 하는' 치밀한 구성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야 했을 겁니다.

흑인인 F. 개리 그레이 감독은 '이탈리안 잡'의 감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일찌기 사무엘 잭슨과 케빈 스페이시의 격돌을 그린 '니고시에이터'에서 흑/백 두 남자의 대립을 그리는 데 재능을 발휘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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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리:  '모범시민'은 '테이큰'과 '친절한 금자씨'의 딱 중간 정도에 머무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사적인 정의 실현'이란 주제에 대해 보여주는 시선도 그렇고, 전자의 호쾌함과 후자의 우울함 사이에서도 딱 중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심각한 척 하지만, 절대로 고민을 위해 엔터테인먼트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고 특이한 액션 영화'입니다. 관객을 고민하게 하는 결말이었다면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비의 두 배나 벌어들이진 못했을 겁니다. 특히 클라이드의 '시원시원한(?)' 행동은 미국 관객들보다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훨씬 잘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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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원제 'Law Abiding Citizen'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란 뜻으로, 영화 속에선 법정에 서게 된 클라이드가 로라 버치 판사에게 직접 보석을 요구하는 대사의 첫 머리로 사용됩니다. 특별히 '타의 모범이 되는 시민'이라기보단 '잘못한게 없는 사람'이란 뜻에 가까워서 '모범시민'과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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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의 연간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24회 골든디스크 시상식이 간밤에 끝났습니다. 당연히 끝나고 나면 아쉬움도 많지만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가운데(?) 진행됐던 터라 그저 잘 마무리됐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수상자들이 박수를 받고 자축 공연을 펼쳤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하. 물론 이런 사심이 절대 수상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다짐해 둡니다(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날도 소녀시대는 세번이나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뭐 관심이 관심인 터라 제목대로 눈물 흘리는 모습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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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대상 수상이 발표된 뒤, 수영양이 대표로 소감을 얘기하는 동안 뒷줄 멤버들 사이에서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서현, 윤아, 제시카가 가장 눈물이 많더군요.

시간순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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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펫은 흰 차림입니다. 백조의 호수 컨셉트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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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거지만 한국 스타들은 레드 카펫에서 너무 소극적입니다. 팬들이 환호할 때 쳐다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는 대체 언제쯤 생길까 답답합니다. 하긴...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슈퍼주니어도 레드카펫에서는 절에 간 색시처럼 얌전하게 걸어들어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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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포토월에서나 살짝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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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게 입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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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용 테이블에 착석. 수상자들은 이렇게 차례를 기다리게 됩니다.

2부 시작할 무렵엔 마이클 잭슨 안무조로 변신합니다. 언젠가도 보여줬던 듯한 효연-수영-유리의 'Smooth Criminal' 댄스 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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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면서 군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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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음원 부문 본상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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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때까진 울진 않는군요. 자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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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역시 음원 부문 본상 수상입니다. 이때부터 본격 감동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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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군의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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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좀 마른 상태입니다. 수상 소감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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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형식적으로라도 수상자들을 정리합니다.

디스크 대상 = 슈퍼주니어
음원 대상 = 소녀시대
디스크 본상 = 슈퍼주니어, 2PM, 이승철, 드렁큰타이거, SG워너비
음원 본상 = 소녀시대, 다비치, 이승기, 손담비, 백지영
신인상 = 포미닛, 티아라
록상 = 장기하와 얼굴들
힙합상 = 에픽하이
인기상 = 샤이니, 슈퍼주니어
공로상 = 송창식
제작자상 = 이호연 DSP 대표


이쯤에서 아쉬워하실 분들이 있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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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마치... 택미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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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녀시대도 빛났지만 이날의 드레스 퀸은 단연 손담비였습니다. 스와슬롭스키로부터 공수해 온 드레스는 조명을 받아서 정말 찬란하게 빛을 뿜더군요. 물론 다른 사람이 입었더라면 이렇게 빛이 나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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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시상자로 나선 윤은혜도 이색적인 스타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겨울 속의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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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날 시상자들은 묘하게도 여전사 스타일로 미리 스타일리스트들이 손발을 맞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활기찬 가수들이 많이 나오는 행사인 만큼 짧은 전투형 스타일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전혜빈과 정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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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도 여태까지의 조신한 스타일에서 확 과감해졌습니다. 못알아볼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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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도 이 대열에 동참. 아직 레드카펫에선 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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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아에 이르면 공통점이 점점 확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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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혜와 김정화 정도만 드레시한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공동 시상자인 한광섭 삼성전자 상무님이 워낙 장신이라 늘씬한 김정화와 퍽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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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분들. 20년 동안 세 차례 본상을 수상한("3년 연속 수상하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든 거야") 이승철 옹과 공로상을 수상한 송창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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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은 손담비의 '빛나는' 레드 카펫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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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올해 행사가 끝났습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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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어쌔신'이 한국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정지훈(비)이 주연한 '닌자 어쌔신'의 미국 흥행 성적은 지난 주말까지 3000만달러 정도. 실제 제작비는 예상보다 적은 4000만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제 미국내 흥행만으로 손익균형을 이루기는 조금 힘겨워 보입니다.

하지만 비에게는 막강한 아시아의 응원 세력이 있죠. 모국인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어느 정도만 밀어 주면 '닌자 어쌔신'은 시리즈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비를 주인공으로 채택했을 때부터 아시아권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일각에선 비의 출연이 결정됐을 때부터 "왜 하필 (일본의 고유 캐릭터인) 닌자 역이냐"고 불만을 드러낸 분들도 있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할 때 닌자 캐릭터가 있었기에 한국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이 수월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분나빠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마워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닌자와 한국 영화인들의 인연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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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닌자

1676년 일본에서 출간된 『반센슈카이(萬川集海)』라는 책을 보면 일본인들에게 닌자(忍者)는 단순한 암살자나 특수요원 이상의 의미임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닌주쓰(忍術)라고 불리는 닌자의 온갖 기술과 무기 사용법, 철학을 집대성한 이 책은 닌자의 역사를 '중국 고대 복희씨와 황제 때부터'로 거창하게 잡고 있다. 일설엔 '고지키(古事記)'에 나오는 4세기의 왕자 야마토 다케루(日本武)가 닌자의 시조라고도 한다. 그는 여자로 변장하고 적진에 침투해 두 적장을 살해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복면 닌자는 14세기 이후 기록에 등장한다. 각지의 영주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국(戰國)시대 들어 닌자는 전문직으로 승격됐고, 이가(伊賀)와 고가(甲賀) 지역은 우수한 닌자들의 출신지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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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에도 도쿠가와 막부는 '정원지기'라는 뜻의 오니와반슈(お庭番衆)라는 닌자 비밀 조직을 운영했다. 피터 루이스의 『닌자 이야기』에 따르면 비교적 근세인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막부에 개항을 요구했을 때에도 닌자들이 미군 군함에 침투해 문서를 훔쳐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화려한 전설은 현대전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닌자들은 20세기 후반 일본 대중문화의 꽃으로 되살아났다. 한국에서는 '왜색'이란 이유로 배제됐지만 닌자가 나오는 영화들은 홍콩제 권격 액션 영화들과 나란히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모았다. 1970년대의 소니 지바, 80년대의 쇼 코스기 같은 '닌자 스타'들은 아직도 매니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최근에는 닌자 캐릭터가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우드 진출 경로 역할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상옥 감독은 1995년부터 할리우드에서 저예산 영화 '닌자 키드' 시리즈의 제작자로 성공을 거뒀고 시리즈 3편 '닌자 키드 3(3 Ninjas Knuckle Up)'은 직접 연출했다. 이병헌도 할리우드 대작 'G.I.조'에서 닌자 캐릭터를 맡았다. 정지훈(비)이 주인공인 '닌자 어쌔신'은 말할 것도 없다.

하필 왜 죄다 닌자 역할이냐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일본 국내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요즘 제작되는 영화의 닌자 역을 왜 모두 한국 배우들에게 빼앗기는 거냐”라는 시각이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동양인 소프라노들의 세계 진출 창구 역할을 해왔듯 닌자 캐릭터는 남자 배우들의 문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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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의 캐릭터는 '일본'이라는 독특한 문화권을 세계에 설명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떠올릴 때 첨단 기술이나 자동차를 생각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사무라이나 닌자를 떠올립니다. 복면과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칼을 들고 있는 캐릭터를 보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닌자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겁니다.

과연 한국의 문화 요소 중에서 이 정도로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 있나 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깟 자객 따위, 라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세계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닌자'는 흉폭한 살인자의 이미지보다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슈퍼 히어로 캐릭터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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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닌자 캐릭터는 일찌기 문화 상품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이소룡이 너무 일찍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은 '아시안 액션' 상품의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 흐름을 주도한 것이 소니 지바(치바)와 쇼 코스기라는 스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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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치바는 많은 사람들이 '킬 빌'에서 칼 만드는 아저씨 역으로 기억하고 있는 배우이지만 왕년의 일본제 액션 영화에서 단골 스타였습니다. 기억을 도와드리자면 오키나와에서 초밥 만들다 말고 우마 서먼에게 칼을 만들어주는 아저씨죠. 이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의 이름인 '핫토리 한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디가드였던 전설적인 닌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물론 소니 치바가 한창 때 활동하던 영화들은 국내에는 전혀 반입되지 못한 영화들이기 때문에 그가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은 곽부성과 정이건의 사부 역으로 출연한 '풍운' 등 중국 무협 영화가 개봉된 뒤의 일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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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어쌔신'에 정지훈의 사부 역으로 등장한 쇼 코스기는 미국으로 진출해 미국산 닌자 영화 시리즈로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닌자 어쌔신'에 출연한 것도 당연히 그 이유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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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연기한 닌자 캐릭터 스톰 쉐도우와 정지훈이 연기한 닌자 라이조 역을 두고 혹자는 '닌자 캐릭터로 밤낮 할리우드 진출 어쩌고 해 봐야 결국 할리우드에서 동양인은 무술 전문 배우 역할이나 하고 말 뿐'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얘기는 전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동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 구사 능력과 그쪽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연기력, 그리고 그 배우가 끌어들일 수 있는 관객의 규모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할 때 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미국에서 황인종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무협이든, 아니든)를 개봉한다 칠 때 과연 그 영화가 흥행성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배우들이 닌자 역할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그 배우들이 거기서 그칠지 혹은 그 이상으로 발전할지의 여부는 그 다음에 생각할 부분입니다. 도전해 보지도 않고 '가서 닌자 역이나 할 걸 뭐하러 가'라고 말할 얘기는 아니죠. 그리고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백인 여성 관객들이 정지훈군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광경을 머잖게 보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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