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이소룡의 영화 빅4('사망유희'는 차마 여기에 포함시킬수가 없더군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용쟁호투'의 리메이크에는 이소룡의 역할로 한국의 정지훈이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주걸륜은 캐스팅 확정이고 비는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단계에서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소룡의 리메이크작에서 이소룡 역을 맡는다는 것은 아시아 출신 배우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면서 기회인 좋은 조건입니다. '이소룡의 후계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죠.
1966년 9월 8일 처음 방송된 '그린 호넷'은 이소룡이 복면 속의 쿵후 영웅으로 출연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카토는 낮에는 평범한 일본인 운전사고 밤에는 악당을 물리치는 가면 영웅이 되는 캐릭터였죠. 이소룡은 '그린 호넷'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고 있던 아담 웨스트의 TV판 '배트맨'에도 몇 차례 특별출연했습니다.
'그린 호넷'은 꽤 인기를 끌었지만 한 시즌만에 끝났고, 여러 편의 TV 드라마와 영화에 그리 크지 않은 역으로 출연하던 이소룡은 1971년 홍콩으로 와 골든 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 회장과 의기투합, '당산대형'을 만듭니다. 일설에는 이 영화의 히트와 함께 TV 시리즈 '쿵후'의 주역이 자신이 아닌 '백인' 데이비드 캐러딘에게 넘어갔다는 데 대한 분노로 이소룡은 홍콩에 그대로 남아 '정무문'과 '맹룡과강'을 만들며 영화 속에서 백인 거한들을 때려눕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단 세편의 영화로 홍콩-중국어권 최고의 스타가 된 이소룡에게 할리우드는 다시 손을 뻗어 왔고, 이렇게 해서 할리우드와 홍콩의 합작으로 '용쟁호투(Enter the Dragon)'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1973년 7월 이소룡은 의문의 죽음을 맞고, 그의 사망 한달 뒤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 '용쟁호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이렇게 그가 저 세상 사람이 된 뒤에는 생전 촬영했던 일부 필름을 짜깁고 붙여서 '사망유희'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이소룡과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된 당룡(唐龍: 김태정)이란 이름의 한국인 배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그린 호넷'보다는 '용쟁호투' 쪽이 더 끌리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단 '그린 호넷'은 당시 시대가 갖고 있던 '허드렛일 하는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이 깔려 있는 작품인데다 감독이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이고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 세스 로건이 주연과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원작의 분위기나 감독의 스타일을 볼 때 진지한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코미디로 리메이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주걸륜의 캐스팅도 비슷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주걸륜에게서 액션 스타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니셜 D'나 '쿵푸덩크'가 있고 '황후화'에서는 무협 액션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주걸륜이 보여준 가장 훌륭한 모습은 피아노를 두드리는 로맨틱 가이의 모습입니다. 그에게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물론, '그린 호넷'의 카토라는 캐릭터 자체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반면 비가 물망에 올라 있다는 '어웨이큰 더 드래곤(Awaken the Dragon)'은 '용쟁호투'의 배경을 그대로 현대로 옮겨 놓았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인 무술가가 미국 정보기관의 의뢰로 비밀 무술대회에 침투해 범죄조직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내용이죠.
'용쟁호투'는 지금까지도 서구인들이 기억하는 이소룡의 전설을 만든 작품이면서, 그 자체로 미국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이소룡의 후계자로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다는 뜻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소룡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까짓게 뭐라고'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소룡은 그냥 흔히 치부하는 '무술 액션 잘 하는 중국인 배우'의 범주를 넘어 선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한 시대에 있어 동양인 배우의 한계를 넘고, 백인들에게 아시아인의 새로운 이미지를 남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대 중국어권 영화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성룡과 주성치, 이연걸이 모두 '정무문', 혹은 '신 정무문'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통해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제 2의 이소룡'이 되기를 기원했죠. 물론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로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래의 이소룡이 갖고 있던 강인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 중에서는 이연걸이 가장 가까이 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근본부터 스타일이 다릅니다.
아무튼 종합적으로 볼 때 두 작품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용쟁호투'의 리메이크 쪽입니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그린 호넷' 쪽이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인 반면, '어웨이큰 더 드래곤'은 영화 경험이 없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비 측에서 '어웨이큰 더 드래곤'에 관심이 있다면 전체 제작비와 공연하는 배우, 전문적인 무술 감독의 기용 등 주변 조건들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닌자 어새신'도 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인 만큼 후속작을 그보다 못한 영화로 고를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정지훈군이 그냥 '제2의 이소룡' 에서 그치지 않고 '브루스 리의 신화를 계승한 배우'로 각인되길 바랍니다.
70년대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건 21세기의 이소룡 팬이 다시 편집한 버전.
편집만 다시 했는데도 상당히 새로운 감각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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