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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나는 가수다'에 쏟아졌습니다. '대박이다' '감동이다' '이소라 노래 듣다가 눈물이 났다' '가수들이 이렇게 노래 잘 하는 지 몰랐다' 등등. 모처럼 새로운 볼거리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시다시피 '나는 가수다'는 일곱명의 가수들이 출연해 관객 평가단 앞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그 미션에 따라 한번에 한명씩 꼴찌는 탈락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첫회에 등장한 가수들이 이소라 김범수 백지영 정엽 윤도현 박정현 김건모 등 7명이라는게 사실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가수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첫회에 나온 일곱 가수들은 자신의 대표곡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진지하게' 가수들의 노래에 집중한 시청자들은 찬탄을 아끼지 않았지만, 가수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방청석의 청중 평가단(몇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은 1등 박정현부터 7등 정엽까지 순서를 매겼습니다.

물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1등부터 7등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혹하다? 사실 가수들은 매일, 매번 노래를 할 때마다 순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점수를 매깁니다. 그 순위가 음반/음원 판매량이 아닌 노래 실력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채점으로 매겨진다는 건 그리 불합리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한명씩 떨어진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한다는 7명 중에서 떨어지는 것 쯤이야 별 문제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7등'이라고 생각하면 못 버틸 이유도 없죠. 더구나 자기 노래로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네. 가수들의 각자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건 아마 첫 회가 마지막일 겁니다. 다음부터는 특정 미션에 대한 수행으로 경쟁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슈퍼스타K 처럼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될테니 그게 반드시 '진검 승부'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우리도 가수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지. 그런데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만 하면 시청률이 안 나와. 어쩌겠어? 방송이란게 시청률이 나와야 먹고 사는 건데. 그러니까 이렇게 서바이벌 형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팍 끌어야 한다고. 어차피 가수라는게 매일 무대에 설 때마다 남보다 잘 하려고 경쟁하는 거 아닌가?"


아마 이런 식으로 제작진은 가수들을 섭외했고, 가수들도 이런 논리에 동의해서 출연에 임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도 합니다.



박정현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데뷔 14년차. 미국에서 왔다는 땅콩만한 키의 가무잡잡한 소녀 가수가 입을 열었을 때, 허공에 음표가 뿌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름은 리나 박. 한국어 실력은 자신이 부르는 가사를 다 이해하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아무튼 '목소리를 가지고 노는' 그 솜씨는 실로 경이적이었습니다.

당시 소속사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남녀 가수는 우리 회사에 있다'며 큰 자부심을 내세웠습니다. 바로 임재범과 박정현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듀엣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이렇게 이뤄진 거였습니다.

14년 뒤. 그 박정현이 방송에서 '실력에 비해 참 안 알려진 가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가요계의 현실입니다.


방송사는 '대중음악을 살려 보자'는 대의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가수들은 그 대의를 높이 사서 자신들의 체면이 깎일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프로그램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대의는 좀 의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상업방송' SBS도 유지하고 있던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이 '공영방송' MBC에는 아주 오랫동안 없었습니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요예술무대'는 어느새 폐지됐고, 최근에서야 자회사 케이블 TV에서 부활됐습니다.

대중음악을 살리겠다는 MBC의 그 '대의'는 케이블 TV M.NET이 총력을 기울여 '슈퍼스타K'를 만들자, 곧바로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위대한 탄생'을 만들어 물을 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위대한 탄생'은 이제 '슈퍼스타 K'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과시하며, 시즌 2 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새로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해 놓으니 대기업이 압도적인 자본력과 유통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그 시장을 채우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과연 '대중음악계의 숨겨진 재능'을 찾는 것이 목표였을까요, '케이블 TV 따위가 감히...'가 목표였을까요.

'노래 자랑 프로그램을 케이블 TV만 하라는 법이라도 있냐. '슈퍼스타 K'도 '전국 노래자랑'과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고 개량한 프로그램 아니냐'면 할 말은 없습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한다고 다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위대한 탄생'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위대한 탄생'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재미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라고 한 MBC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그닥 페어플레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제 '위대한 탄생'은 이번 시즌을 마치면 바로 다음 시즌 준비로 들어갈 겁니다. 시점상 '슈퍼스타 K'의 시즌 3와 '위대한 탄생'의 시즌 2가 거의 정면으로 대결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올 연말이면 국내 스타 서치 프로그램의 대명사는 '슈퍼스타 K'가 아니라 '위대한 탄생'이 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시 '나는 가수다'로 돌아갑니다. 가수들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해 가면서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건 그만치 '프라임 타임 대에 가수들이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게 어디냐'는 얘기가 절실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한국 TV에서 '가수'들의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 '대의' 속에서도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계속해서 개그맨들을 투입해 '노래 듣는 분위기'를 흔들어 놓더군요. 지나치게 많은 가수들의 인터뷰 삽입, 특히 노래를 끊고 들어가는 중간 화면 등은 그렇게 '음악'을 강조한 프로그램에서까지 꼭 이렇게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많은 음악계 인사들과 가수들은 '"그래도" 가수들이 프라임 타임에 노래를 하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관심있게 듣게 해 준 게 어디냐'며 환영의 뜻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되고야 만 상황이 참 허탈할 뿐입니다.

앞으로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일곱 가수가 노래 경연을 펼친 첫회를 봐선, 내세우는 '대의'와 프로그램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합니다.



P.S. 그리고 '가수'들이 방송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은 방송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청중도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방송에서 안 틀어 줘서, 방송에서 출연시키지 않아서 몰랐다고 변명하지 맙시다. 음반이며 음원을 사지 않고, 콘서트도 가지 않은 채,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밖에 나오지 못하게 한 건 바로 '시청자 여러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가수들이 열심히, 진지하게 노래하는 게 보기 좋았다'고들 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가수들은 거의 항상 '진지하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최근에도 그랬습니다. 다만 아주 아주 오랜만에, 그들이 노래하는 광경을 당신이 '진지하고 열심히' 바라본 것 뿐입니다.

P.S.2. 첫 방송이 나간 뒤로 이소라와 박정현의 음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고,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진짜 노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네. 분명히 '나는 가수다'는 일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절대 "'나는 가수다' 따위의 나쁜 프로그램은 당장 때려 치우라"고 외치는 글이 아닙니다. 현재의 가요계에서 그나마 이런 프로그램이 순기능을 수행한다면, 그 역할도 인정합니다. 다만 이소라나 박정현 같은 가수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게 참 안타깝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나'라는 한탄일 뿐입니다.

대체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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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는 가다피라고 불렸던 카다피. 요즘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미친 노인네 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때는 '제3세계 반미 자주의 상징'으로 영웅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국내에서 카다피의 인기는 대단했죠. 한때 한국의 운동 깨나 한다는 학생들은 '카다피의 리비아야말로 한국이 미래에 본받아야 할 국가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를 표방하긴 했지만 리비아는 한국과 친근한 나라였던 것도 분명합니다. 동아건설이 주도했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포함해 한국 건설사들이 많이 진출했던 나라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 우연히 탔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왕년에 리비아 건설 현장의 중장비 기사 출신이시라며 가까이서 본 카다피의 영걸스러움(?)에 대해 한바탕 칭찬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카다피의 독재나 국내 인기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없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보신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1980년작, '사막의 라이온'이란 영홥니다.



그동안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신문에 쓴 글을 이쪽으로 가져오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꽤 오랜만에 가져오는군요.^^


[분수대] 영화와 현실

2009년 6월, 위성방송 스카이 이탈리아 채널은 느닷없이 1980년작 영화 ‘사막의 라이언(Lion of the Desert)’을 편성했다. 미국·리비아 합작인 이 영화는 1930년대 리비아 민중이 지도자 우마르 묵타르(Omar Muktar)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침략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 영화가 이탈리아군이 포로를 폭행해 학살하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1982년 상영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었다. 하지만 2009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이탈리아 방문 기간에 맞춰 TV 편성이 이뤄졌다.

 카다피와 이 영화의 인연은 매우 각별하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대작 영화를 통해 ‘서구에 맞서는 아랍의 영웅’으로 자신의 위업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이미지의 이상적인 모델이 바로 우마르 묵타르였다.

 할리우드의 아랍계 프로듀서 무스타파 아카드가 감독에 선정됐다. 아카드는 1977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기 영화 ‘무함마드, 신의 메신저’ 제작 때문에 카다피의 신뢰를 얻은 인물이었다. 3500만 달러의 오일 머니가 아낌없이 투입됐다. 같은 해 나온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제작비 2800만 달러)보다도 1.5배나 많은 규모였다.

 그 결과 묵타르 역의 앤서니 퀸을 비롯해 올리버 리드, 로드 스타이거 등 월드 스타들이 캐스팅됐고, 수백 명의 기마대가 탱크부대와 맞서 싸우는 대규모 전투 장면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관객은 프로파간다를 원치 않았다. 전 세계 흥행 수입은 1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이는 20세기 영화 사상 손꼽히는 실패 사례로 꼽힌다. 물론 가장 큰 투자자 카다피가 만족했으니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리비아인들은 유목민족 베두인의 후예답게 탱크 앞에서도 끈으로 다리를 묶고(후퇴하지 않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다. 포로가 된 묵타르도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우리에게 타협이란 없다. 내가 안 되면 다음 세대가 이어 싸울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과연 카다피는 그 국민이 목숨을 걸고 물리치려 하는 상대가 바로 자신이고, 국민들이 외세 개입에 희망을 거는 상황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직도 “국민들은 나를 사랑한다”고 우기고 있는 카다피는 더 이상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될까.

송원섭 JES 선임기자



영화 속에도 나오듯 이슬람 지도자이며 교사 출신이었던 우마르 묵타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 특유의 치고 빠지는 기동력을 이용해 이탈리아 침략군을 괴롭혔습니다.

사실 로마 제국 이후 이탈리아군이 다른 나라 앞에서 무력을 뽐낸 사례는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19세기까지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돼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2차대전사에서도 이탈리아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해 같은 편인 히틀러의 골머리를 썩힌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됩니다.

지금도 리비아는 광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는 600만 정도입니다. 만약 이탈리아가 아니라 좀 더 군사력이 강한 나라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묵타르의 영도력이 카다피에게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1981년 12월 국내에서 개봉됐고, 저도 광화문 한복판에 있던 '국내 최대의 무허가 건물' 국제극장에서 봤습니다. 대한극장을 제외하면 당시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극장이었기 때문이죠.

광대한 화면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전혀 나쁘지 않았고, 약소국 국민들이 제국주의 침략군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리비아는 적대해야 할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한국이 개척해야 할 건설 시장이었으므로 이 영화가 상영되는 데 장애 같은 건 전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 90% 정도는 이 영화의 배경이 리비아였다거나, 이 영화와 카다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광고를 보면 사상 초유의 제작비 3500만달러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당시의 3500만달러가 엄청난 돈인 건 분명하지만 그때도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 같은 영화는 5000만달러 대의 제작비를 쓰곤 했습니다. 물론 뒷날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2'로 1억달러 제작비를 넘어 서기 전까지 이 정도의 금액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분명 영화가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대실패한 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제작/후원/배급자인 카다피가 이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 들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도 거의 무료로 틀어달라고 한 게 아닐까...




묵타르에 대한 카다피의 집착은 바로 저 가슴에 달린 사진에서도 나타납니다. 이탈리아 군에 생포된 당시 묵타르의 사진(위 사진)을 가슴에 붙이고 공식석상에 수시로 등장할 정도로, 묵타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카다피의 야망은 적나라했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변했고, 카다피는 자신이 원했던 묵타르의 모습이 아니라 묵타르와 리비아 민중에게 쫓기는 이탈리아 침략군의 위치에 오게 됐습니다.

30년 사이 카다피가 초심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30년 사이 가식이 걷힌 것인지.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아무튼 30년 전 그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생각한 영화를 보면 정말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합니다.

P.S. 가끔 이 영화 얘기를 하면 션 코너리가 아랍 족장으로 나왔던 영화를 떠올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바람과 라이온'입니다. 두 영화 모두 '사자'를 굳이 '라이온'이라고 쓴 이유는 아마도 일본식 표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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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가 아카데미상 시상식 이틀 전에야 그 소문이 파다한 '블랙 스완'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완성도와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을 칭송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발레라는 소재,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의 분위기, 발레리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엄청난 변신 노력 등이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완벽을 향한 집념과 그 집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그리고 그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여리디 여린 신경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예술을 통한 성취 그 자체보다는, 세심하게도 이 여배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깔아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의 원천은 바로 '마마걸'이란 요소입니다.


미국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니나 세이어(나탈리 포트만)는 이 발레단을 이끌어 온 스타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은퇴와 함께 새 시즌의 개막작인 '백조의 호수'의 여주인공을 따내기 위해 엄청나게 긴장합니다. 단장(?)인 토마(뱅상 카셀)는 니나의 테크닉을 높이 평가하지만, 백조 여왕 오데트와 쌍둥이 흑조 오딜을 동시에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감정 표현이 완벽하지 않다며 의구심을 보입니다.

토마는 니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여주인공 역할을 맡기지만, 악의 상징이며 남자를 유혹해 오데트를 파멸에 빠뜨리는 오딜 역을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니나를 압박합니다. 이때문에 안 그래도 여린 니나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몇 분들이 오데트와 오딜을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토마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오해하시곤 하는데 사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거의 초연 때부터 오데트와 오딜을 한 무용수가 춤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백조의 호수'나 발레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는 결국 재능과 성공, 노력과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며, 그 단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아주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한 연출로 만만찮은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의 니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극중 발레 장면에서 보여주는 발레리나 연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설탕 인형 같은 니나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기하는 데 있어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 골든 글로브와 영국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BAFTA를 비롯해 13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여주인공의 극중 비중이나 연기력 면에서 2010년의 영화들 가운데 따라올 작품이 없다는 압도적인 성과인 셈입니다. 물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배우들 중 무시할 수 있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 올해만큼은 포트만의 독주에 제동을 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요소들에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이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웅대한 스케일, 피로를 날려 줄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약 두시간 동안 송곳으로 놋그릇을 긁는 소리를 듣는 감정의 혹사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블랙 스완'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건, 나탈리 포트만이 여우주연상을 받건 말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영화를 보는게 좋습니다. '명화'라는 말이나 지적 허영에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영화 소개는 이 정도.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니나 못잖게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의 세 여자입니다. 첫째는 예전 발레단의 여왕이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 천재성을 상징하는 릴리(밀라 쿠니스), 그리고 니나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엄마(바브라 허쉬)입니다. 사실 니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클리셰 덩어리 같은 캐릭터일 뿐입니다. 이 세 인물과의 관계가 니나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베스는 니나가 닮고 싶은 존재, 니나가 지향하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니나는 심지어 베스의 물건들을 훔쳐 가면서까지 베스의 세계에 접근하려 합니다.




릴리는 니나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무대공포증도 없고, 완벽에 대한 압박도 없이 발레를 즐길 수 있는 발레리나입니다. 니나와 같은 자기 혹사도 없고(자몽 반개로 끼니를 때우는 니나와는 달리 릴리는 치즈버거 -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다이어트로 인한 욕구불만의 상징으로 그려지죠 - 를 먹으며 춤을 춥니다), 목숨을 걸고 연습하지도 않지만 노련한 안무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유형의 예술가입니다.

릴리와 니나의 관계는 고전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릴리는 모짜르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예술이 원하는 완벽성을 희생시키는 존재입니다. 다만 니나가 90에서 100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의 90 이상을 투입해는 삶을 살고 있다면, 릴리는 80에서 90 정도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 인생의 50 정도(니나의 시선에서는 더 낮아 보입니다)를 투입하는 캐릭터입니다. (예술가의 노력과 결과로 나타나는 성취의 관계는 흔히 지수함수로 표현됩니다. 최정상의 단계에서 1%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선 그 전보다 몇 배의 투입 요소가 필요한 법입니다.)

니나가 본능적으로 릴리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 릴리처럼 역량의 50 정도를 투입한다면 릴리가 보여주는 80 정도의 퍼포먼스를 결코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릴리가 만약 인생의 100을 발레에 투입한다면 - 물론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 자신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릴리의 자유분방함은 니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상대에 대한 공포는 흔히 혐오로 바뀌기 마련이죠.




니나의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엄마와의 삶입니다. 영화 속 내용으로 짜 맞춰 보면 엄마는 그닥 재능있지는 않은 발레리나였고, 28세때 니나를 임신한 이후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니나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뒤로 다른 남자와의 삶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하고, 마찬가지로 니나의 성장과정에서 연애 같은 것은 아예 배제시켜버린 주역이기도 합니다.

니나를 사랑하고 니나를 통해 자신이 못 이룬 프리마돈나의 꿈을 이뤄보려 하지만 한편으로 니나는 자신의 발레 인생을 강제로 끝내게 한 존재(사실과 다르지만 니나 엄마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넘어 너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니나가 오데트 역을 따냈을 때 엄마는 니나에게 케이크를 먹이려 하고, 니나가 케이크를 거부하자(자몽 반개 먹는 사람에게 케이크라니...) 바로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 시도합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정상적인 딸이 자랐을 리 만무합니다.



물론 니나와 니나 엄마 같은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 쉽게 발견됩니다. 딸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장래의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딸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교우, 취미, 사회생활, 특히 연애 등을 철저하게 차단해 스파르타식으로 단련시키는 어머니들과 그 밑에서 경주마처럼 키워지는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성공하고, 어차피 몇몇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딸의 실적이 성공이냐 실패냐와는 별개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에선 엄청난 긴장과 비극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 '블랙 스완'은 좀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속 요소들이 대단히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위에서 소개한대로 아로노프스키의 섬세한 영화 작법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재능있는 딸에게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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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 인도네시아 특사들의 롯데호텔 방 침입 사건이 국정원의 망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아테나'에 나오는 민완 요원들은 드라마 속에나 있는 거냐"며 비웃었죠.

그런데 드라마를 봐도 사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국정원은 아니고 NTS(...세무서?) 요원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요원들은 총 쏘고 차고 때리는 법만 배웠지 총 피하는 법(?)이나 머리 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듯 합니다.

더구나 어제 방송된 마지막회... 드라마 '아테나'나, 현실의 국정원 망신이나, 드라마 속의 요원들이나 다 그 밥의 그 나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참 실망이 큽니다.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때 '아줌마를 위한 드라마는 없다 http://fivecard.joins.com/893 '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만치 '아테나'의 도입부는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국내 드라마들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정우성이라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맞게 다소 엉뚱하면서도 밝고 활기찬 첩보 액션 드라마가 나오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회를 거듭할수록 무참히 무너져갔습니다. 초반에는 '스토리가 없다'는 일부의 지적에 '전형적인 멜로드라마가 없다는 걸 스토리가 없다고 말하면 곤란하다'고 옹호도 했었는데 드라마가 진행되고 나니 오히려 어정쩡한 멜로드라마만 남고 진짜 스토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도대체 맥락 없이 이어지는 진행. 최소한의 리얼리티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주요 캐릭터들은 '날아다니는 것'과 '머리 쓰는 것' 외에는 뭐든 다 합니다. 특히 마지막 두 회 분량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액션영화의 짜증나는 클리셰, '총 겨누고 서서 안 쏘고 말 많이 하다가 당하기'는 마지막 2회에만도 서너번 등장하는 듯 합니다. 주인공들 중 아무도 '다이 하드'를 못 본 모양입니다.

차승원으로부터 미사일을 발사하는 노트북 컴퓨터를 빼앗은 이지아는 3층에서 혹시나 컴퓨터가 망가질까, 고이 고이 받쳐 들고(총까지 맞아 가면서) 내려와서는, 1층에서 노트북에 총을 쏴 망가뜨립니다. 그리곤 "노트북을 던져서 망가뜨릴 힘만 있었어도 마지막 한발을...(그러니까 그 총알로 너를 쏴 죽였을 거란 얘기죠)" 하죠.  ...그럴 거면 대체 왜 3층에서 노트북을 내던지지 않았던 걸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NTS 과학수사실장인 오윤아는 괴한들에게 납치되자 핸드폰을 이용해 비상 구조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최시원과 심창민은 차 바퀴 자국을 보며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그제서야 "납치된 것 같다"고 보고합니다.  ...그럼 대체 NTS요원은 어떨 때 구조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그제서야 심각한 표정을 짓는 유동근 국장의 수준도 역시 안습. (그런 반면 납치된 오윤아는 맘 먹자마자 순식간에 찾아냅니다. 대단해!)

어쨌든 이지아는 차승원에게 총을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고, 아테나 요원들은 수애에게 총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고, 차승원도 정우성에게 총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습니다. 네. 어쨌든 '총을 겨눈 상태에서는 말을 하지 말라'는 교훈만큼은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사고현장에서 여러 차례 총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실려간 수애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자 마자 앰뷸런스에 실려 어디론가 갑니다. 그리고 그 호송을 맡은 것은 북한 특수요원인 김민종입니다. "내가 이런 미친 짓 하는 것도 정우(정우성) 놈 속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 호송은 NTS 몰래 하는 '수애 빼돌리기'입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NTS 본부를 초토화시킨 사건 현장의 주요 인물인 수애가, 이렇게 병원에서 아무런 경호나 감시 없이 실려 나가는 것도 일단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수애가 사라질 때 유일하게 병원에 있던 NTS 요원 정우성에게 아무도 수애가 어떻게 됐는지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해직당한 거리면 최시원이 '정말 안 돌아올 거냐'고 묻지 않겠죠.) 수애 정도를 마음대로 풀어 줄 권한은 원래부터 정우성에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북한 요원인 김민종이 국내에서 중상을 입은 수애를 회복시키고, 해외로 빼돌릴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뭐 그렇다고 넘어가겠습니다. 결국 뉴질랜드에서 수애와 정우성은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드라마는 마치 해피엔딩인 양 포장되지만 수많은 한국 요원들을 무참히 살해한 수애의 죄과가 한방에 세탁되는 것이 과연 이 드라마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마지막 두 회분만 따져도 이렇습니다. 게다가 더 근본적인 질문, 대체 차승원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냉혹한 국제 스파이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살 테러범으로 급변신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말하듯 수애를 잃은 좌절감으로? 일반적으로 배신을 당하면 배신한 '연놈'들을 죽이려 하는게 보통인데, 왜 애꿎은 원자로에 미사일을 쏴 대는 걸까요. 원자로가 파괴되고 NTS가 해체되어 정우성이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대단한 정교한 음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국민에게 실망감을 준 건 아마도 제대로 본받을 드라마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의 재기발랄하던 '아테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더 심해 집니다. 앞으로 첩보 액션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실 분들, 제대로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P.S. 이 드라마로 유일하게 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최시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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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MBC TV의 '스타 오디션 - 위대한 탄생'이 마침내 TOP 20을 뽑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신승훈 김태원 이은미 방시혁 김윤아 등 다섯명의 멘토들이 자신의 제자로 4명씩을 생존시키고, 그 4명씩을 집중 지도해 대결하게 한다는 시스템입니다.

'위대한 탄생'의 초기에 쏟아졌던 수많은 비난은 방송이 궤도에 오르면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슈퍼스타 K' 따라할 걸 왜 하냐, 공개 오디션에 3천명밖에 안 왔다더라, 출연자들이 우중충하다, 멘토들이 이상하다...뭐 등등 있었습니다만 결론은 '역시 한국에 노래 잘 하는 사람은 끝없이 많더라' 정도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역시 아직 갈 길은 멉니다만, 이미 '슈퍼스타 K'와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슈퍼스타 K' 시즌 2의 심사위원진을 가장 오래 유지한 건 이승철-엄정화-윤종신이었고, 본선 직전까지는 박진영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심사위원단에게는 상당히 엄정한 심사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건 '가수로서의 희망이 보이되 나쁜 버릇이 몸에 배지 않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버릇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미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가수의 스타일을 거의 모창에 가깝게 모방하는 경우, 혹은 불필요한 기교나 콧소리, 바이브레이션 등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경우 등등입니다. 과도한 몸짓이나 눈을 까뒤집는 버릇 등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기준은 가끔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의 완성도와는 동떨어진 결정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분명 A가 B보다 '지금은' 노래를 더 잘 한다. 하지만 B가 '제대로 길러진다면' A를 능가할 수 있다, 뭐 이런 식의 과정을 통해 B가 선발되곤 했던 것이죠. 아무튼 이런 기준 자체에 누가 이견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슈퍼스타 K'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그건 누구나 인정해야 할 일입니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안타까움을 샀던 것이 바로 김보경입니다. 당시 '너무 창법이 올드하다'는 평을 들었죠. 이미 통기타를 들고 무대에서 활동하던 경력이 있다 보니 흔히 라이브 카페의 통기타 가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창법의 흔적이 보였다는 게 감점 요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의 참가자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탄생'에서도 몇몇 심사위원들이 "모창은 곤란하다"는 식의 지적을 하곤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위대한 탄생'은 성장의 가능성 보다는 현재 해내고 있는 퍼포먼스에 좀 더 우위를 두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재까지 선발된 많은 출연자들을 보면, 앞으로 90점이 될 수 있는(물론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70점보다는 이미 되어 있는 80점을 더 높이 산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차이가 보이는 이유를 꼽자면 아무래도 '슈스케'에서는 박진영과 윤종신이 육성자(프로듀서) 마인드에서 선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위대한 탄생'의 멘토들 중 과반수가 가수들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멘토들 가운데서 누군가로부터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은 없죠. 다들 혼자 연습해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김경호 모창이냐'는 비판을 받은 백청강이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런 경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현재까지 선발된 내용을 보면 김태원 사단이 주로 그런 편이군요^^). 이런 분위기에서, 만약 김보경이 '슈스케' 아닌 '위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쪽이라면 훨씬 더 높은 순위까지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권리세라면, '슈스케'에서는 좀 더 장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현재의 성취냐, 장래의 가능성이냐 하는 것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기 힘듭니다. 야구로 치자면 미국 마이너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2군의 차이와 비슷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야구는 폼, 특히 투수의 투구 폼에 예민하고, 어느 단계에서든 신인 투수의 폼 교정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현역 투수들 가운데에도 별별 폼이 다 눈에 띕니다. 프로야구 초기 한국 코치들이 미국에 가서 '올바른 투구 폼'에 대해 묻자 대다수 지도자들이 '자기가 편하게 던지는 게 최고의 폼'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 마이너리그의 기준은 어떤 폼이든 지금 잘 던지는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고, 일본 프로야구 2군의 기준은 원석을 좋은 폼에 맞춰 '육성'하는 것이라는 말이 야구계에선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든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슈스케'와 '위탄'의 또 다른 차이라면 멘토와 심사위원의 차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제간의 관계를 갖게 될 멘토들이 '슈스케'의 심사위원들보다는 훨씬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승훈이나 김태원은 이 프로그램이 '오디션'보다는 '예능' 쪽으로(특히 '휴먼 예능' 쪽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깐깐한 독설 담당으로 포지셔닝했던 방시혁도 서서히 제자를 받는 멘토로 변신하고 있다는게 눈에 띕니다. 초기의 안경과 재킷 차림이 '엄격한 선발자'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점점 곰인형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살벌한 대결장 보다는 인간적인 교육현장 쪽으로 끌고 가는데 멘토들의 영향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런 초기 모습에서


                                   다소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ㅋ

'위대한 탄생'과 '슈퍼스타 K'의 방향이 달라 보인다는 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프로그램이 장수한다는 것을 가정할 때 보다 다양한 가수 지망생들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의 안목이 더 뛰어났는가 하는 것은 먼 훗날, 어느 쪽 길에서 더 훌륭한 가수들이 배출됐는가로 판가름날 것 같습니다.


P.S.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다음달부터 방송된다는 '나는 가수다'... 당장은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참 씁쓸합니다. 어떻게 이런 기획이 이뤄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P.S.2. 멘토들 중 한명은 여전히 평가도 이상하고... 자신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 합니다. 처음 선발될 때의 우려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P.S.3. 저는 '위대한 탄생'을 볼 때마다 윌 스미스가 떠오릅니다. 이유를 아시는 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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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자의 자격' 팀의 지리산 등반은 '산행 예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완주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다음 문제입니다. 완주를 하면 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얘깃거리는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힘이 들기 때문에 평소 그렇게 말이 많던 출연진도 할 말이 끊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체력이 어쩌네 저쩌네 했지만 지리산에서도 이경규가 그나마 '방송 분량'을 뽑아 냈을 뿐, 나머지 멤버들은 입을 꼭 봉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만 보여줬을 뿐입니다. 그럼 등반 일정도 조금 짧고(지리산에 비해 설악산), 멤버들의 연령대도 훨씬 젊은 '1박2일' 팀은 어땠을까요. 화면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중요한 교훈을 준 점에서는 '1박2일'이 발전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사람이 찍고 있었다'는 것이죠.



설악산을 겨울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 위를 올라 보면 대체 왜 산 이름에 눈 설(雪)자가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순백의 눈 덮인 산 위에 나무마다 피어 있는 눈꽃과 얼어붙은 계곡이 자아내는 풍경은 아무리 숨이 차도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위험하기도 위험하죠.

이렇게 말하면 제가 무슨 등반 전문가인 것 같지만 저도 겨울 설악산 등반은 딱 한번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20년 전 일입니다. 당시 저희 일행은 가장 효율적으로 설악산을 즐길 수 있는 코스, 즉 소공원-비선대-양폭-희운각-대청봉-오색 코스를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날 밤에 설악동 부근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해 이른 낮 시간에 대청봉에 오른 다음, 해지기 전에 오색으로 쏜살같이 내려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설악동으로 돌아와 저녁을 지어 먹고 놀다가^^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급한 분들은 오색으로 하산해서 바로 (서울이든 어디든) 귀가 차편을 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코스는 가장 시간이 짧게 걸리면서 설악산의 진미를 다이제스트로 맛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물론 상급자용으로는 한계령 코스, 공룡능선 등의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진미'가 있겠지만, 시간과 체력, 장비 등을 감안해 산 속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설악산을 살짝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시간 단축만을 생각하면 최단 왕복 거리인 오색-대청봉-오색 코스도 있지만 이건 설악산의 산악미를 맛보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 모로 가로든 세로든 평지-대청봉-평지로 왕복하지 않고 쭉 넘는 종주가 좋습니다.)

어쨌든 이런 '쉬운 코스'도 겨울에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이젠과 피켈은 당연히 필수. 걷는 동안은 땀이 뻘뻘 나지만 멈춰 서서 휴식에 들어가면 3분 이내로 온 몸이 시려오고 장갑은 북어처럼 빳빳해집니다. 중간에 몸을 덥히려 코코아를 끓였는데 두모금 째부터는 따뜻해지고 네모금째에는 미지근해집니다. 위험한 것도 당연합니다. 제가 올라가기 며칠 전 폭설과 조난으로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었고, 대피소에서 실종자의 시체를 수거해서 하산하는 구조대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네. 무척 쫄았습니다.;)





그런데 1박2일 팀은 2개 조로 나뉘어 강호동-은지원은 상당한 난코스인 한계령 코스, 나머지는 상급자용 코스인 백담사 코스로 잡았습니다. 아마도 '산에서 1박2일'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짧은 코스를 배제한 것이겠지만, 그 결과 상당히 위험한 일정이 짜여졌습니다.

백담사 코스는 흔히 '길어서 그렇지 가장 평탄한 코스'로 꼽힙니다. 완만한 경사로 오래 오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날씨입니다.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 해도 산길에서 7~8시간을 머무는 건 큰 각오를 해야 하는 코스죠. 더구나 난코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의 상식대로 "설악산 갖고 무슨 종주냐. 아침에 올라가서 저녁에 넘어 오면 되는 건데"와는 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1박2일' 팀은 잠시 '찍는 사람'의 수고에 고개를 돌립니다. 사실 전문 산악 다큐멘터리를 봐도 출연자보다 보이지 않는 촬영팀이 훨씬 더 힘들 것이라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 주인공이 땀흘려 정상으로 오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선, 누군가는 그보다 한발 앞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더구나 무거운 촬영 장비를(심지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들고 말입니다. 


연예인이 이렇게 얼굴 내놓기를 꺼릴 정도의 추위라면 말 다 한거죠. 그런 데서 남들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강호동은 말합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가시는데다가, 우리는 앞 보고 가는데 저 분들은 뒷걸음질로 올라가요. 그러다 나무에 부딪히고, 바위에 부딪히고... 참 고생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화면에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산악 촬영팀이 아니라 예능 촬영팀이다 보니 이번 '1박2일' 촬영 과정에서도 촬영팀이 뒤로 처져 오히려 출연진의 발걸음이 더뎌지기도 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 예능특공대에게 복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설악산은 아니지만 저도 여러번 일출을 보려고 노력해 봤는데, 이날 화면에 나온 것만큼 둥글고 제대로 계란 노른자 깨듯 쏙 튀어나오는 해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침놀이 지고, 그 구름 속에 갇혀 있던 해가 그냥 퉁 하고 어느 순간 드러나있는게 보통입니다. 아주 운이 없으면 흐린 하늘 아래서 그냥 날이 훤해지고 말죠. 이렇게 선명하게 쏙 나오는 일출은 참 운이 따르지 않으면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일출 장면의 순간 시청률은 40%대를 넘었다고 하는군요.)

이런 보람이 있었으니 체감온도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도 산에 올라 웃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일출을 바라보는 출연진의 눈꼬리에 맺히는 눈물은 연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감격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는 게,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남다른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나자나 이승기가 빠지면 저 눈물은 대체 누가 대신 흘려 줄까요. 지난번에 '제6의 멤버'라면 이승기보다 어린 멤버가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젠 4명의 기존 멤버에 2명을 보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군요. 제작진의 위기감이 대단하겠습니다.

이런 빈 자리도 공개 오디션으로 뽑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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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동안 가장 친하게 지낸 건 만화였습니다. 인생의 로망이 만화책 끼고 뒹굴뒹굴인데 평소에 그럴 짬이 별로 없다 보니... 모처럼 연휴가 좋은 기회였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려면 또 할 일이 여러가지 있는 터라, 5일동안 37권밖에 못 봤습니다.

평소 친애해마지않는 한국 벤처기업의 기수이자 왕년의 만화평론가? 권대석 사장의 추천작을 중심으로 골랐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부터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뭐 만화같은 걸 볼 시간이 있다니...하고 혀를 차실 분들도 있을테지만 아무튼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래도 오카자키 마리의 '서플리'. 연애 문제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오카자키 마리 - 서플리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AE에 해당하는 한 20대 후반의 열혈 직장 여성이 일에 치여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남녀관계의 깊이에 점점 눈을 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뭐 더 간단히 요약하면 'OL의 일과 사랑'입니다.

물론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20대 후반까지 연애 한번 못해 본.... 타입은 아니고, 첫 등장부터 동거하는 남친이 있습니다. 그 남친과 깨지면서 본격 스토리가 시작되죠. 둘러싼 여성 캐릭터는 (1)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30대 초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2) 외모도 일도 완벽에 가까운, 다소 얄미운 30대 초반 유부녀 AE (3) 제대로 된 남자를 잡아 결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전문대 출신의 20대 중반 사무직 (4) 단단히 프로 의식을 보여주는 30대 독신 스타일리스트 (5) 인생의 쓴맛을 모른 채 선배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6) 좋아하는 남자에게 자존심이고 뭐고 일방적으로 매달려 목을 매는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7) '좋은 시절' 다 보낸 40대 후반의 독신 여사원 등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남녀관계에 대한 밑그림은 다 다릅니다.


이 만화에는 '직장생활 5년이 넘었는데 애인이 없으면 연애결혼은 힘들다'는 말이 나옵니다(죄송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잊어버렸습니다.^^) 물론 3년이냐 4년이냐 5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치 직장생활과 연애관계를 함께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일의 강도도 중요하죠.



사실 그냥 막연히 '직장생활'이라고 했지만 이 만화 속 인물들의 '일 중독'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광고회사가 일 많이 하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 회사의 이 주인공들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뭐 하긴...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일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 맨 위 사진의 "나랑 일 중 뭐가 더 중요해?"는 남자친구가 하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만화에는 그리 강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한국 쪽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하건 네트워킹이 강조되다 보니 식사와 술자리가 '사회 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직장 동료 끼리, 동년배끼리의 릴랙스를 위한 술자리야 차라리 휴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분들'과의 술자리는 그 자체가 심한 스트레스죠. 이 만화에 나오는 분들은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워커홀릭이지만 늘씬한 미녀, 사귀는 남자들은 뉴욕 지사로 뽑혀 갈 정도의 미남 엘리트, 혹은 국제감각이 탁월한 사진작가, 업계 최고의 CF 감독 등 화려한 면모가 부각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아직 세상을 모르는 10대 소녀적 판타지에 충실한 만화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묻혀 있는 남녀 사이의 줄다리기 감정, 연애할 때 놓치거나 강조되는 점들, 일하면서 만나는 같은 여자들끼리의 연대감 혹은 적대감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고(뭐 저는 어차피 건너 느끼는 것이지만;;)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매우 드라마적 요소가 풍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2006년 일본에서 원제 그대로(물론 일본 식으로 하면 '사프리'가 됩니다) 드라마화된 적이 있습니다. 여주인공 역은 '전차남'의 이토 미사키. 후리후리한 키가 강조되는 캐릭터인 만큼 적절한 캐스팅이었던 듯 합니다. 다만, 이 만화가 그 무렵 연재가 시작돼 2010년에서야 완간된 점을 생각하면 드라마의 결말은 만화의 결말과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일하는 여성'들은 한번쯤 보실만 한 작품인 듯 합니다. 딱 10권으로 끝납니다. 다만 남자 입장에서 볼때 결말은 좀.... 그렇습니다. 여자분들은 좀 다른 느낌을 가지실 수도 있을 듯.




다케토미 토모 - 이루어질수없는 사랑

전 3권이라는데 앞의 2권밖에 구해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결말이 궁금합니다.

20대 초반에 이미 같이 잔 여자가 100명이 넘는 플레이보이가 명문 꽃꽂이 가문에서 고이고이 자란 영양(명문댁 아가씨라는 뜻의 일본식 표현이죠)에게 홀딱 반해 버립니다. 그야말로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알아 버린 겁니다.

그런데 장애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 아가씨는 빚 때문에 저택과 장원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돈많은 정혼자와 결혼해야 하고, 정혼자의 어머니는 또 남자주인공이 아는 사람입니다.
2권까지 봤는데 결론이 매우 궁금하다는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19금.




오바 츠쿠미(스토리작가), 오바타 타카시(작화) - 바쿠만

만화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앞의 두 사람은 '데스노트'를 함께 만든 콤비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만화를 그린다는 것'에 대한 만화를 그렸습니다.

너무 몸을 혹사해 만화를 그리다 죽은 삼촌을 둔 중학생 1은 어느날 학교 최고의 우등생인 중학생 2로부터 "너 나랑 같이 만화계에 뛰어들지 않겠니?"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습니다. 평소 만화 스토리를 쓰고 싶었던 2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 1을 스카우트한거죠.

중학생으로 출발한 이들 듀오는 갖은 연구로 작품을 만들어 일본 최고의 만화 주간지 '점프'에 도전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역시 아시겠지만 '점프'는 독자 앙케이트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만화의 인기도를 측정하고,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만화는 잔혹하게 잘라버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세계적인 스토리의 보고인 일본 '망가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가르쳐주는 충실한 교과서 역할을 합니다. 신인 작가가 주간지의 연재에 도전하고, 연재에 성공하면 단행본이 나오고, 단행본이 히트하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거기서 결과가 좋으면 극장판까지 다시 만들어지는 그런 과정이 알기 쉽게 다뤄져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 1과 친구 여중생과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우리는 사랑하지만 서로 성공할때까지 만나선 안돼") 같은 정서, 또 지나치게 엄숙하게 묘사되는 역시 일본적인 점프 편집부의 권위주의("한번 결정된 일이야!") 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아무튼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만화적인 개그 스토리도 충분히 재미를 제공합니다. 현재까지 10권 나와 있고, 극중 주인공들과는 달리 만화 '바쿠만'은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더군요.^^

(이들 콤비의 라이벌로 불리는 동년배의 천재 만화가에게서 '데스노트' L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점도 웃음거리로 꼽을 만 합니다.^)




토보소 야나 - 흑집사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라고 해서 조카분의 강력 추천으로 보게 됐습니다. '...집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꽃미남 집사와 아가씨의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가씨가 아니라 안대를 한 꽃미남 도련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왕의 번견'이라고 불리는 팬텀하이브 가문의 어린 후계자(백작)는 12세에 불과하지만 영국 정부의 구린 일들을 해결하는 '어둠의 손' 역할과, 세계적인(?) 완구 회사의 경영자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정체불명의 완전체 미남 집사가 버티고 있죠.

곧 드러나지만 이 미남 집사는 완벽한 두뇌와 완벽한 전투력, 그리고 절대 죽지 않는 완벽한 체력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악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마 치고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정의롭습니다. 그가 백작의 집사로 봉사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백작의 영혼을 차지하는 댓가로 백작이 이승에 사는 동안 충실하게 그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네. 이런 이론에 따르면 악마는 계약에 죽고 사는 존재라고도 하죠)이라는데, 한 남자아이의 영혼을 차지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 치고는 너무 셉니다.

뭐 만화니까 그렇다고 치겠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다소 심각한 대사(인간의 본질적인 악에 대한 성찰...성 대사)와 집사를 제외한 세 사람의 고용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초등학생용 개그(그야말로 슬랩스틱성이 주류)의 불균형은 매우 심각합니다. 심각한 대사는 고교생 이상 용, 개그는 초등학생용이라고 생각하면 평균 잡아 중학생 이상은 재미있게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흑집사'의 인기는 중학생을 넘어 성인층에게도 한창 폭발적이라는군요. 물론 만능인 미남 집사가 인기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 치지만, 평소 생각하던 '악마'라는 존재의 능력에 비하면 이 집사의 능력은 너무 약하기도 하고(또 어떤 때에는 너무 무리하게 강합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구성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쉽지 않은 만화였습니다. 초기 설정으로 끝까지 먹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

현재까지 10권 나와 있고, 앞으로 30권은 무난히 돌파할 듯 합니다. 아무튼 저는 별로 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긴 '홍차왕자'나 '꽃보다 남자' 역시 저는 참고 보지 못합니다.) 전형적인 소녀 만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이상입니다. 사실 '최근 읽은 책' 등 무게있는 포스팅도 하고 싶지만 어쩐지 무거워서... 이런걸로 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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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에 걸쳐 MBC TV  '아이돌 스타 육상·수영 선수권 대회'를 지켜봤습니다. 사실 KBS 2TV의 '드림팀 시즌2'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새삼스러울게 없는 일이지만, 샤이니 민호의 운동신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 합니다. 물론 '드림팀' 쪽에서 보면 운동신경의 1인자는 민호가 아니라 상추(마이티마우스)죠. 상추가 출전했더라면 민호의 3관왕 독주는 그리 쉽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뭐 마이티마우스가 아이돌이냐 아니냐 하는 얘기도 나올수 있겠지만 명색이 록밴드인 씨엔블루나 트랙스도 나오고 채연이나 황보, 마르코도 나오는 판에 그런 얘기는 별 설득력이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암만 봐도 어색하고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옷 입고 수영하는' 초유의 수영대회에 대한 불만입니다. 도대체 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신경전이 오갔다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수영대회=수영복'이 상식이다 보니 이건 저절로 '아이돌 아이들을 벗겨 놓고 한번 보여주겠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로 연결됐을 겁니다. 뭐 늘상 터지는게 '쇼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의 선정성'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논란은 제작진에게 상당한 부담을 줬을 게 틀림없는 일이고, 결국 제작진은 고심 끝에 여자는 허벅지까지 오는 전신수영복, 남자는 상의에 흰 티셔츠를 입고 수영하게 했습니다. 참 코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전신수영복은 뭐 어쨌든 없는 옷을 만든 건 아니니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 사이에 레인보우 멤버들의 싱크로나이즈 시범이 있었는데, 아무리 '선정성'의 압박에 시달리는 제작진이라 해도 수영경기용 수영복을 입고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을 시킬 수는 없었는지 이 경우엔 원피스 수영복이 등장했습니다. 그나마 허리에는 희한한 스커트를 달게 했고, 그것도 40초 편집으로 마무리해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거면 수영대회를 하지를 말지, 할거면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말든가?'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여자 경기용 수영복은 뭐 원래 있는 옷이니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남자까지 옷을 입고 수영을 하게 한 건 뭐란 말입니까. 남자용 전신수영복이 금지되지만 않았으면 그걸 입했을지 모르지만, 수영복 재질도 아닌 티셔츠는 물속에서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심지어 젖은 티셔츠 안으로 '비칠 건' 다 비치죠.

남자의 수영복 입은 상체가 얼마나 선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방송사가 겁내는 '선정성 시비' 여론은 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요. 참 이해하기 힘든 나라의 이해하기 힘든 여론입니다.

아이돌 수영대회에서 민호가, 마르코가, 닉쿤이 웃통 벗고 수영하는 장면이 그렇게 선정적이라서 전국의 여자 청소년들이 음탕하게 변할 거라는 걱정이라도 든단 말입니까? 대체 그런 걱정은 누가 하는 걸까요? 만약 그런게 걱정이라면 전국의 남녀노소가 훌러덩 벗고 돌아다니는 캐리비안 베이 같은 음란 업소들부터 영업정지를 시켜야 하는게 아닐까요.

정말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수영장에서 수영복 입은 모습이 그렇게 두려워 할만큼 선정적인 거라면, 대체 가족 시간대 드라마에서 수시로 나오는 수영복 신은 어떻게 아무 문제 없이 방송되는 겁니까?




만약 이태임은 성인이라 괜찮고, 아이돌들은 상당수가 미성년이라 안되는 거라면, 고교시절의 박태환이 나오는 수영 대회 중계방송은 모두 19금이어야 했다는 걸까요. 박태환이 인기가 없거나 수영이 너무나 비인기종목이라서 관심을 끌 수 없다는 말(물론 농담입니다)은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CF와 비교해도 참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드라마도 되고, 스포츠 중계에서도 되고, 광고에서도 되는데 왜 예능에서는 안되는 걸까요. 같은 장면도 드라마에서 보면 선정적이지 않고 예능에서 보면 선정적인 걸까요. 늘 겪는 일이지만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방식입니다.

대회 내용은 그냥 틀어놓고 있으면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수영복 개그는 참 보기 안쓰러웠습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내년부터는 새로운 패션을 추천합니다. 요즘 아랍 지역에서 유행하는 최신 모드 수영복이라고 합니다.



이거 하나면 노출 시비는 완전 차단입니다. 어떻습니까? 강력히 추천합니다.

P.S. 그나자나 매주 '드림팀'을 방송하면서 이 아이템을 이렇게 강력한 명절용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KBS 예능국은 군소리 좀 나오겠군요. 아이디어의 길이란 참 험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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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최근 연예 관련 외신들이 꽤 비중있게 다룬 뉴스 중에 미국(정확하게는 멕시코)의 영화 제작자 일리아 설카인드(솔카인드라고도 합니다. 스펠링은 Ilya Salkind)라는 사람이 실종됐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 영화 제작자가 한두명이 아니고 제리 브룩하이머도 아닌 이런 아저씨가 실종되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많지만, 이 사람의 경력은 s자로 시작해 s자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경력의 정점은 바로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영화 '슈퍼맨' 이었죠. 그렇다면 사건은 새롭게 발전합니다. 바로 '슈퍼맨의 저주'라는 전설이 되살아날뻔 한 거죠.



물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설카인드는 실종 나흘만에 병원에서 발견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중입니다. 사실 설카인드가 살아서 발견되는 바람에 아쉬워(?) 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바로 오랜 슈퍼맨의 저주 시리즈 마니아들이겠죠. (물론 농담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딸의 주장에 따르면 설카인드의 실종은 일종의 납치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이건 조사가 더 진행되면 확인될 일이겠죠.

사실 슈퍼맨의 저주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분은 안 계실 겁니다. 사실 꽤 역사가 깁니다. 꽤 과장된 면이 있지만, 크리스토퍼 리브 부부의 비극은 참 안된 일입니다.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 상태가 되어서도 많은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던 리브스는 9년간의 투병 끝에 2004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저 사진처럼 끝까지 남편의 생존을 도왔던 아내 데이나 리브 역시 남편이 사망한 1년만에 폐암으로 숨을 거둡니다.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역을 맡았던 배우 마고 키더도 1996년, 리브스가 사고를 당한 1년 뒤 갑자기 실종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 경찰에 의해 발견된 뒤에도 환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말론 브란도의 경우에도 비극이 가족으로 확산됩니다. 슈퍼맨의 아버지 역이었던 브란도는 아들이 이복 누이의 남자친구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사고로 체포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딸은 자살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물론 본인도 당뇨병과 암, 그리고 인한 실명, 은둔생활 등 불행한 말년을 보내다 2004년 사망합니다.



이건 '알고보니' 성이지만 영화 '슈퍼맨'의 도입부에서 어린 슈퍼맨 역을 했던 리 퀴글리라는 아기까지도 1991년, 14세의 나이로 독성 용액을 잘못 마셔 숨을 거뒀다는군요.




'따지고 보면'은 사방으로 퍼져가기 시작합니다. 초창기 슈퍼맨 TV 시리즈의 주인공이

었던 조지 리브스도 1959년 자살해 숨을 거뒀습니다. 뭐 전형적인 '찾아보니 이런 일도 있었더라' 류입니다.



이밖에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어도 '슈퍼맨'에 출연한 뒤 운이 다했더거나, '슈퍼맨'이 오히려 액운이 됐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입니다(케네디 대통령도 슈퍼맨 시리즈에 대통령이 나오고 나서 바로 죽더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영화 '슈퍼걸'의 헬렌 슬레이터 같은 경우도 그 뒤로 시들시들해진 인물들입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만화 슈퍼맨 시리즈의 원작자는 이 엄청난 슈퍼맨 시장을 개척해놓고도 1년에 3만5천달러씩의 '연금'을 받는 것으로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는군요(물론 저주가 저주인 만큼 슈퍼맨 이후로 어떤 히트작도 내지 못했다고도...).

하지만 '슈퍼맨' 시리즈에 나왔어도 렉스 루더 역을 맡은 진 해크먼과 케빈 스페이시는 아주 멀쩡한 걸 보면 악역에게는 저주도 통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많은 슈퍼맨들 가운데 실제로 큰 불행을 겪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저주' 마니아들은 윗줄의 양쪽에 선 딘 케인과 브랜든 루스도 잠재적인 예비 피해자로 놓고 있기도 합니다. 딘 케인의 스타 커리어는 슈퍼맨으로 사실상 끝났고, 브랜든 루스 역시 별 미래가 없을 거란 얘기죠.

근데 이런 건 슈퍼맨 뿐만 아니라 007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이렇게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나면 다른 역할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슈퍼맨 역할은 연기력보다는 외모 위주로 캐스팅하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역할에서 빛을 발하기가 쉽지 않겠죠^)

아무튼 결론은 정초부터 괜히 헛소리 한 셈이 됐지만, 일리야 설카인드의 실종 때문에 잠시 반짝 했던 관심을 그냥 접기 아까워서 흔적으로 남겨 봅니다.

다들 새해 복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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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아주 오래 전, 국사 시간의 660-668-676 을 기억나게 하는 영화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 축출이라는 시간표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각각 정확하게 8년차가 나서 기억하기 쉬웠던 숫자였죠.

이준익 감독은 일찌기 세 편의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산벌'이 6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번 '평양성'은 668년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는 676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세력을 흡수해 당과 일전을 벌이고 한반도 경략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을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꽤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갑니다. 각각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공해 평양성에서 만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문무왕(황정민)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신(정진영)은 신라군 본진을 한성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 남생(윤제문), 남건(류승룡), 남산(강하늘)의 3형제가 항전을 이끌지만 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남생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남건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끝내 남생이 축출됩니다.

한편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으로 참전했던 거시기(이문식)는 이번 전쟁에는 신라군으로 징발돼 참전해 있습니다. 신라를 원수로 생각했던 거시기에게 신라군으로 뛰라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고구려군의 미녀 갑순이(선우선)을 보고 뭔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합니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평양성'이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과연 '평양성'을 극장에서 보는 관객 중 몇명이나 660-668-676을 기억하고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초반에 아무 설명 없이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를 몇명이나 제대로 느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전개는 '황산벌'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관객 대다수는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이 모두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며 형제간이라는 것, 김유신과 김흠순도 역시 형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자인 김인문은 오래 전부터 당과의 연락 담당(인질이라면 인질, 현지화 조기 유학생이라면 유학생)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 왜 맨날 뒷처리는 내가 하는 거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이라는 점, 이들 형제는 김유신과 군신관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처형이자 신라 군사력의 핵심인 김유신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황산벌' 때에도 이런 이유로 관객 중 절대 다수는 '황산벌'의 코미디 요소 중 상당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 절대 다수에게 '황산벌'은 백제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서로 사투리로 욕을 하는 코미디 영화였을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민초들에게 갖는 전쟁의 의미 등 정작 이 영화에서 중요했을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었고, 당시 삼국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이나 이해는 전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좋은 배우가 계백장군이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상황들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놀랐던 것은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평양성'은 '황산벌'의 맥을 제대로 잇고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인 만큼 TV 사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량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진행도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마구잡이 개싸움'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투 진행에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준익 식의 유머도 제몫을 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을 보다 보니 이준익-조철현 콤비는 '황산벌'의 성공 요인을 좀 오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양성'은 엄밀히 말해 '황산벌'보다 훨씬 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김유신이 평양성 내의 고구려 잔존 세력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읽힐 뿐입니다.


실제로 668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1년전 당은 백제의 영토를 관장하는 웅진도독부에 의자왕의 아들 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과 백마의 목을 잘라 화친을 맹세하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구 백제 지역 영토를 신라에게 넘겨줄 뜻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결과 고구려 멸망 2년만인 670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을 꾀하는 왕족 안승을 지원해 고구려 왕에 임명, 당에 반발하게 하고 웅진도독부 지역을 공격해 백제 영토의 본격적 병합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당과의 전투가 이어지고 결국 676년,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 전략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그 순간마다 당과 결전을 벌일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당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병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황산벌'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수많은 TV 사극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실제 당시에 펼쳐졌던 사건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과거'에 '현대'의 의미를 담으려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판단이 어쩌면 관객들에게는 지나친 역사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시도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됐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준익 감독의 역사 강론은 자칫 관객들에게 '너무 직설적인 강의'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양성'의 코미디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문식을 비롯한 백제 출신 병사들이 부르는 '쌀노래'는 포복절도할 환경을 만들고 독특한 유머감각은 각처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만 고구려와 그 백성들에게 놓인 운명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밝은 면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 9단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선우선이 아쉽습니다. 선우선이 구사하는 이북 사투리 연기 가운데 제대로 소화됐다고 보이는 것은 '어찌 보니(왜 쳐다보니)?' 정도일 뿐, 나머지는 뭉개지고 흩어져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지만 '조선명탐정'에게 워낙 밀리다 보니 불길한 예감(이준익, "관객 250만을 넘지 않으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도 들지만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을 둘러 봤지만 제 취향에는 '평양성'이 가장 맞는 듯 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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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작, 황정민 주연의 '그림자 살인'입니다. 시대극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시대극이 아니고, 코믹한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군요.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림자 살인'도 190만명대의 관객을 동원했고, '조선명탐정' 역시 개봉 첫주 1위를 기록하며 순항중입니다. 이런 특이한 분위기의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정조 때인 1782년. 왕은 조정 대신들의 세금 포탈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探正)이라는 관직을 마련해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탐정(김명민. 끝까지 극중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름 비상한 현장감식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살해한 혐의로 옥에 갇힙니다.

어느새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개장수(오달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립니다. 왕(남성진)과의 호흡으로 열녀 감찰을 위해 떠나지만 실제로는 역시 비리 조사가 목적. 음모세력의 암살 도구를 쫓다 보니 만나게 된 한객주(한지민)에게 반하랴, 악당들과 치고 받고 싸우랴, 개장수와 코미디 하랴 마냥 바쁜 명탐정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려다 보니 참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는 추리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를 쓰는 추리는 저 멀리 가고 엎치락 뒤치락, 탐정 일행의 슬랩스틱과 말장난이 주요 내용입니다.

아마도 역시 2009년작인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역시 전통적인 셜록 홈즈 상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흥행 면에서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대변신입니다. 천의 얼굴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살짝 보여주다 만 코미디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쳐 줍니다. 첫 등장부터 몸개그를 작렬하는 데 이어 비속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상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튕겨 주는 '새끼' '자식' '임마'로 웃겨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변신의 백미는 한지민. '이산'을 생각하면 충격입니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그 변신(골...)이 매우 강조됐죠.



늘 청초한 눈빛 하나로 먹어주던 한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팜므 파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나이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늘 '다 큰 여자'라기 보다는 소녀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배우였기에 더욱 놀라운 변신입니다.

한국 여배우들에게 가장 부담없는 노출의 자리인 시상식 무대도 극구 거부하던 한지민이었기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ㅋ) 참 이런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잘 어울리더라는 것.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의 히트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한지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다소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는 배역 선정이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번 작품은 확실한 선을 긋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달수를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물론 늘 보던 모습이라 새로운 맛은 없지만, 최근 '높낮이없는 말투 개그' 부문에서 송새벽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던 터라 이 영화에서의 호연이 더욱 반갑습니다.



김석윤 감독의 예능 전력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 '조선명탐정'을 논리적인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의 차원에서 접근하신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플롯의 개연성이란 기대할 수 없고,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좀 의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비슷할지 매우 의문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일찌감치 퇴출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명탐정'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오달수의 찬탄을 자아내는 코믹 호흡과 함께 한지민의 새로운 매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슬랩스틱성 코믹 컷들이 관객을 계속해서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롯에서 좀 더 큰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단편적인 즐거움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가려줍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연기상을 줄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트 갓파더' 처럼 관객을 화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두어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설 극장가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S. 그런데 굳이 그런 영화에 '감동'이 비집고 들어가려 한 건 좀...^^


P.S. 영화 시작 때 나오는 '탐정'이란 관직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이건 그냥 뻥입니다. 그런 관직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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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의 이탈과 MC몽의 법정문제 장기화로 인한 '1박2일'의 5인 체제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5명 체제가 당장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1박2일'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5명 보다는 6명으로 진행되는게 훨씬 안정된 모습일 거라는 것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동안 '1박2일' 팀도 제6의 멤버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거론된 인물이야 송창의와 윤계상 둘 뿐이지만 내부적으로 검토된 인물이야 수십명이 넘을 겁니다. 솔직히 스스로 원해서 '1박2일'의 여섯번째 멤버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야 수백명이 되겠죠.

그런데 1월30일 방송을 보다 보니 역시 제6의 새 멤버로는 이승기보다 어린 멤버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루 아침 생각은 아닙니다.



최근 '1박2일'의 흐름을 보면 이승기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특히 최근 몇달간 '사실상 제6의 멤버' 역할을 해 온 나영석 PD의 성대모사를 통한 나영석-이승기 대결 모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날도 '1대 기획' 이야기가 나올 때 멤버들을 대신해 제작진에게 가장 강력한 항의를 한 사람은 이승기였죠.

'1박2일'이 시작된 이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강호동의 지도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1년 이상 강호동 한 사람의 위력에 나머지 멤버들이 힘을 합쳐 대항하는 듯한 구도가 '1박2일'을 국민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1박2일'의 재미를 이끈 것은 강호동에 대항하는 지략가 은지원을 앞세운 OB:YB의 대결 구도였죠. 강호동-김C-이수근 조와 은지원-MC몽-이승기의 3:3 게임은 현재까지 '1박2일'의 전성기를 이끈 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체제는 강호동과 은지원의 톰과 제리 구도를 기본으로 나머지 멤버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명승부와 웃음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김종민의 제대와 김C의 탈퇴가 이어지며 6명 체제가 계속 이어지는 듯 했지만 새로운 3:3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팀에 끼어도 그 팀을 치명적인 약세로 만드는 '구멍' 김종민 때문에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부터 김종민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1박2일의 위기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MC몽 사태가 발생했고, 불안한 5인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 불안은 '국민 예능'으로서의 불안입니다. 지금까지 갖춰진 다섯 멤버의 개인적인 인기나 기량, 노련미와 팀웍을 생각해면 솔직히 진짜 위기가 오는 것은 6개월 뒤쯤 될 겁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 적응하는 기간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는 것이 좋을 겁니다.



송창의와 윤계상을 쓰려고 했다는 데에서 연출진의 생각은 쉽게 드러납니다. 일종의 업그레이드이고, '1박2일'의 새로운 시청층을 개척할 수 있는 멤버가 필요하다는 생각일 겁니다. 미남형의 드라마 주인공급 멤버가 고려된다는 건 그 개척의 범위가 어디인지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런 멤버는 현재의 구도를 변화시킬 여지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강호동-은지원의 체제는 지나갔고, 결혼 이후 어쩐지 몸을 좀 사리는 듯한(?) 은지원을 제치고 이승기가 강호동의 대항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강호동-이승기, 나영석-이승기의 두 가지 축이 요즘 '1박2일'의 기본 그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보면 새로 '1박2일'에 필요한 것은 좀 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풋풋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부동의 막내가 이승기였지만 사실 이승기는 처음부터 '허당'이긴 했으돼 어리고 철없는 느낌은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의바르고 애늙은이 같은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줬죠. 반대로 타고난 아웃사이더인 김C, 개구장이 은지원-이수근 등 이승기의 형들이 어리광을 부리는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승기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멤버를 맞아야 합니다. 이제 강호동에게 대항하고 기어 오를 악동이 필요한게 아니라, 이승기에게 기어오르고 막내에서 벗어난 이승기가 예측하지 못한 도전에 당황하는게 자연스러운 그림이 아닐까 합니다. 이승기는 이제 더 이상 '형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착한 막내 역할만 하기엔 너무 웃자랐습니다. 마땅히 새로운 멤버에게 형 노릇을 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승기는 1987년생. 그보다 어린 멤버라고 해도 후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 예능의 주축인 아이들 그룹 멤버들을 비롯해 1988~1991년생 남자 연예인들은 풍년도 이런 풍년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질과 양 양면에서 얼마든지 고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작진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위해 이런 '쉬운' 후보들이 아닌 멤버를 찾으려고 심사숙고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한번 팀에 들어 오면 1년 이상 빠지지 않고 스케줄을 낼 수 있는 멤버라는 점이 중요한 변수가 되겠죠.


물론 이건 그냥 한가지 면에서 본 생각일 뿐이고, 제작진은 제작진대로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최악의 선택이 아닌 한은, 새로운 멤버가 '1박2일'이 지금 누리는 인기를 크게 올려놓거나 크게 까먹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너무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여섯번째 멤버가 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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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대략 이러이러하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예측은 거의 틀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 영화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은 예상을 벗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고, 또 충주 성심학교라는 실제 청각장애인 고등학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거기에 '강우석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해진 길로 다니는 지하철처럼 '뻔한 영화'인 것이 분명한데도 '글러브'는 여전히 위력적인 상품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강철처럼 심장이 단련된 사람들이라 해도 '글러브'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것이 분명 '덜 가공되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세 차례나 MVP에 올랐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이었지만 이제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인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여러 차례 누적된 음주 사고로 선수 생활이 끝장날 위기에 놓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매니저 철수(조진웅)는 왕년의 은사인 KBO 상벌위원장의 주선으로 상남을 충주 성심학교로 보내 코치 자원봉사를 하게 합니다.

'전국대회 1승'이라는 이들의 목표를 보고 코웃음을 치던 상남. 하지만 교감(강신일)과 나선생(유선), 열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열정은 상남을 움직이고, 결국 상남은 아이들이 봉황대기에 나가 진짜 고교야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뻔할 뻔짜의 스토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중간 중간 들어가는 70년대풍의 닭살 대사 또한 무척 거슬립니다. 인물들은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두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는 상남-나선생-상남-철수-상남-교장선생-상남-아이들 사이를 계속 오가지만, 카메라 밖의 시간은 아예 정지해 있습니다. 어떤 상상력도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꽤 긴 상영시간 동안 스토리의 진행은 하품이 날 정도밖에 진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최악의 캐릭터는 유선이 연기하는 나선생입니다. 이 역할은 스토리 진행(그나마)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되는 듯 합니다. 상남이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냉정하게 굴면 "아이들은 어쩌구요?", 상남이 화를 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상남이 유난히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나선생을 보며 "이건 숫제 엄마구만"하고 빈정대면 보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전 그냥 이 아이들이 좋아요(네. 정말 2011년 한국 영화 최악의 대사로 꼽힐 만 합니다. 19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가면 "이제 그만해요!"하고 울부짖는 역할이죠.



그야말로 '전형성 100%'의, 뻔하디 뻔뻔뻔뻔뻔한 캐릭터입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위원이 공모작에서 발견하면 빨간 줄로 북북 그었을 것 같은 캐릭터죠. 이런 캐릭터이니 유선 아니라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 헬렌 미렌을 데려다 놔도 제대로 된 연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편집 과정에서 완벽하게 들어 내도 영화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대사량은 전체 출연진 가운데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는 건 이 영화의 성격을 제대로 말해 주는 요소입니다. 이런 쓸데 없는 대사와 감정 전개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정작 있어야 할 아이들과 상남의 관계나 아이들 서로간의 관계 같은 건 그냥 휙휙 넘어 갑니다. 본래 시나리오에도 없었는지, 아니면 찍어 놓고 다 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관객은 "여러분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하시죠? 네. 맞아요. 자, 그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수준의 내용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 투수 역의 장기범이나 포수 역의 김혜성 등 열명의 선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김혜성의 러브라인이 잠시 눈에 띌 뿐, 최소한 각각의 아이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비쳐질 기회는 전혀 없죠. 그냥 '선수 1, 선수 2, 선수 3....'일 뿐입니다.



또 '명색이 야구 영화인데 야구 장면을 보여줘야지' 라는 강박관념도 높은 점수를 보기 힘듭니다. 세 차례의 야구 경기 장면이 나오는데, 첫 경기와 둘째 경기는 크게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세번째 경기는 아무리 봐도 너무 길고, 너무 산만합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그 많은 커트를 찍기 위해 고생했을 양팀 선수 역의 배우들과 스태프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대체 왜 이렇게 긴 경기 장면, 그것도 수없이 똑같은 시퀀스가 반복되는 장면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엄청나게 긴 반면, 야구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 봐도 엉성한 진행이 너무나 눈에 띕니다. 손톱이 갈라져 피를 흘리면서도, 정규 이닝에서만 120개 넘게 던지고, 연장전에 들어가 4이닝을 더 역투하는 투수.... 이 정도가 되면 난타를 당하건 말건 다른 선수 중 누군가를 마운드에 올려 놨어야 합니다. 게다가 연장 13회, 전광판을 보면 양팀의 안타 수는 25대27이더군요. 아무리 난타전을 치렀다지만 이건 좀 아니죠. 또 아무 맥락 없이 왜 명재가 SF볼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왜 상남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지 등등은 계속 영화의 구멍으로 남습니다.



뭣보다 '왜 봉황대기인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습니다. 봉황기는 한국 고교야구 대회 중 유일하게 지역 예선이 없는 대회죠. 다시 말해 성심학교로서는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없는 실력을 감안할 때) 유일하게 서울에 올라와 참여할 수 있는 전국대회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 또한 전혀 없습니다.

(더 지적하자면, 이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1승'이지만 봉황대기에서의 1승은 다른 대회 지역예선에서의 1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선 없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전국대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굳이 '전국대회 1승'이라고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전국대회 1승'이 '지역 예선을 통과한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 한 1승'이란 의미라면 청룡기나 대통령배같은 다른 대회 이름을 댔어야죠.)



이 영화의 주역 가운데 유일하게 칭찬할만한 사람은 정재영 하나뿐입니다. 그조차도 영화 전반부에서는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짜증나는 캐릭터에 매달리지만, 이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인 "정말 무서운 적은 우리를 동정하는 놈들이다!" 장면에서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한껏 빛을 뿜습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여럿 있겠지만, '글러브'에서 상남 역을 맡아 이 대사를 이런 분위기로 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역시 정재영일 겁니다. 그 밖에도 영화 전편을 통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은 정재영뿐입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영화의 완성도는 후하게 줘야 70점을 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너무나 뻔한 눈물 코드인데도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참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화를 '더 잘' 만들면 더 많은 눈물이 날지, 아니면 대략 이 정도의 완성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더 큰 것인지, 저는 아직 이런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략 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고, 이런 영화가 던져줄 수 있는 감정의 격동을 원하는 관객에게 '글러브'는 최적의 선택입니다(절대 비아냥거리는게 아닙니다. 정말 눈물이 납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어쩌면 그런 아쉬움은 애당초 지하철을 설계한 감독에게 왜 포르셰 스포츠카를 내놓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바보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바로 '글러브'입니다. 지하철에겐 지하철의 미덕이, 스포츠카에겐 스포츠카의 미덕이 있는 법이죠. 그리고 사람이 더 많이 탈 수 있는 쪽은 역시 지하철인지도.




P.S. 이 만화 수준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한 건 너무 과욕이었을까요. 그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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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최초의 히트작 '시크릿 가든'이 마침내 16일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20회를 앞두고 수많은 예측과 우려가 스쳐갔죠. 작가와 제작진이 모두 해피엔딩임을 공언했지만 마지막까지 드라마 주변에 깔렸던 단서들 가운데서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 아이가 울고 있다"는 아영의 꿈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마지막 20회는 그동안 양산된 '시크릿 가든' 마니아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던 듯 합니다. 20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김주원-길라임 커플의 결혼 후 닭살 행각을 보여주는데 할애됐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은 오래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을 듯 합니다.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생각이 되풀이될수록 뭔가 앙금이 남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토요일자 신문에도 썼듯 작가의 집필권은 독자의 향유권 위에 있는게 분명합니다. 그 전제를 허물지 않는 한도 안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회, "34년을 어머니의 아들로 살았으니 이제 한 여자의 남자가 되어 살겠다"는 말을 던진 주원은 라임을 데리고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해 버립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결혼식은 올리지 않겠지만 법적으로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두 사람은 5년 동안 세 쌍둥이(얼굴은 닮지 않았지만 세 아이 사이에 나이 차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살아갑니다. 주원은 어머니로부터 의절당하지만 백화점 사장직은 유지하고, 라임은 무술감독이 되어 임감독의 대사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의 어느날, 라임은 주원에게 "나를 보러 오고서 왜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주원은 그날 밤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사고 후 병원에 입원중인 주원은 환자복 차림으로 라임 아버지의 빈소를 찾고, 통곡하고 있는 교복 차림의 소녀 라임을 봅니다. 죄책감 때문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오래도록 빈소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주원은 문상객이 모두 돌아긴 빈소에 혼자 지쳐 잠든 라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 같이 잠들어 버리죠. 이것이 바로 '시크릿 가든'의 엔딩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엔딩은 죽었던 라임을 구해낸 주원이 기억상실 증세를 보일 때, 왜 깨나서 처음 본 라임을 낯설어하지 않는지, 그리고 라임의 이름도 귀에 익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까 주원은 언젠가 라임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고, 그 얼굴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바로 빈소에 지쳐 잠든 라임의 얼굴을 본 것이었다는 얘기죠.

나쁘지 않은 결말입니다만, 역시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의문이 남습니다. 그럼 대체 주원은 언제 기억상실이 된 걸까요? 본래 주원이 엘리베이터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사고 당시의 충격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고 이후에도 기억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라임을 찾아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려 한거죠.



그럼 사고를 겪고 난 주원은 왜 또 기억상실이 된 걸까요. 굳이 머리를 굴려 해석을 하자면 라임을 찾아가서, '라임의 모습을 보고 너무 큰 죄책감에 시달린 탓에 기억상실이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게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일까요.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라면, 빈소에서 나란히 쓰러져 잠든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눈을 뜨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주원은 그 상황에서도 자기가 왜 누군가의 빈소에서 눈을 떴는지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냥 병실로 돌아가 기억 안 나는 부분은 기억 안 나는 채로 살아간다는 얘기가 됩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마지막회 내내 강조되던 메시지가 '기적'이고, '이건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메시지도 반복해서 강조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색함은 왠지 마지막 장면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게 좀 더 매끄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즉 두 사람이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미래는 라임 옆에 쓰러져 잠든 스물 한살의 청년 주원이 그 자리에서 꾼 미래에 대한 꿈이라는 것이죠.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가면서.

.... 이 상태에서 나는 기억을 모두 잊고, 세월이 흐른 뒤 이 여고생과 다시 만난다. 라임. 그래. 이름이 라임이었지. 아버지가 없어도 잘 자라 있으려면 상당히 씩씩하고 남자다운 성격이면 좋겠어. 그럼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냥 평범한 여대생은 아닐 거야. 그렇게 씩씩하다면 음...여군? 여경? 혹시 여자 스턴트? ....


뭐 이런 엔딩도 굳이 말하자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시크릿 가든'의 열혈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해피엔딩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그 열혈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겠지만 아무튼 주원이 꿈꾸는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란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잠에서 깬 주원은 쑥쓰럽게 그냥 달아날 수도, 라임의 눈을 마주보고 "이제 내가 네 아빠 역할을 해 줄게"라고 말할 수도, 아니면 잠에서 깼을 때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 긴 인연을 다시 시작할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이 쪽이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튼 제시된 엔딩만으로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원과 그 상황이 그리 썩 잘 어울리지 않는 건 분명합니다. 뭐 '시크릿 가든'의 열혈 팬들이라면 사소한 부조화가 있더라도 맨 처음 제시한 결말을 그냥 간직하실 겁니다.




'시크릿 가든' 20회는 그동안 나왔던 어떤 다른 편보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느낌을 주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오스카와 윤슬의 관계, 김비서와 아영의 관계도 세심하게 정리됐죠.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임감독과 주원의 여동생 사이에서 생길 뻔한 러브라인이 사라진 대신 임감독은 톱스타 손예진을 캐스팅하는 행운을 차지했습니다. (뭐 약간 심술궂게 생각한다면 이런 메시지들은 다 "현실이라면 이런 일이 동시에 다 일어날 리가 없잖아! 이건 꿈이야! 판타지라고!"라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아영이 발견하는 병속에 든 편지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꿈이든 판타지든 시청자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에는 저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단서조차 주어지지 않은 궁금증 하나는 매우 아쉽습니다. 대체 주원이 제주도에서 들은 라임의 비명소리(15회인가 16회에서 주원이 "그런데 정말 그때 비명 지른 적 없어?"라고 상기시키기까지 하죠)는 무슨 의미였을까요?

몇몇 시청자들은 "그냥 라임과 주원을 비밀가든으로 유도하기 위한 라임 아버지의 조작"이라고 해석하는 듯도 합니다만, 정말 그게 전부라면 좀 허무하긴 합니다. 김은숙 작가님, 과연 이게 진짜 의도였던 겁니까?



P.S. 물론 '시크릿 가든'은 이런 사소한 지적질로 흔들릴 정도의 허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꽤 흐른 뒤라면 김은숙 작가의 최고작으로 평가될 작품은 바로 이 '시크릿 가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 왜 좋은 드라마의 종방은 이렇게 빨리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P.S. 2. 그리고 이 엔딩은... 새로운 작품의 시작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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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과 김태희의 MBC TV 새해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SBS TV '사인'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월화 드라마가 '역전의 여왕', '드림하이', '아테나'의 3자 대결 국면인 데 비해 수목 시장은 '마이 프린세스'와 '싸인'이 '프레지던트'를 따돌리고 선두 경쟁을 하는 모습이죠.

'마이 프린세스'는 두 명의 톱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기대를 모은 만큼 우려도 많이 모은 작품이었습니다. 비주얼로는 국내 최강의 자리를 누구에게 내주기 힘든 송승헌-김태희를 남녀 주인공으로 놓고도 우려가 있었다는 것은 대체 왜일까요.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최강 비주얼'을 투톱으로 내놓은 드라마들의 성적이 썩 우수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드라마가 있었는지 살펴보시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뭐 누구랑 누구랑 같이 하는 드라마가 망할 리가 있겠어'라고 쉽게 얘기하곤 하지만, 다음 드라마들을 보시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여기서 예로 드는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그리 낮지 않았던' 작품들도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송 전에 몰렸던 기대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작품들 위주로 꼽았습니다.

남녀 톱 주인공에 대한 기대를 배신한 작품들이라는 면에서 기억해둘만 합니다. (혹은 망각 속에 묻어 두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을지도...^^)




5. 장동건-김현주, '청춘'

이런 드라마가 있었나 싶은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심지어 장동건-김미숙-최지우가 공연한 '사랑'과 혼동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1999년의 장동건은 톱스타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후광이 머리 뒤에 걸려 있는 스타는 아니었고, 김현주는 앳된 미모가 확 피어나던 무렵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률 부진으로 삐걱거린데다, 일본 드라마 '러브 제너레이션'의 표절 시비에까지 말려들며 조기 종영의 비운을 면치 못했습니다. 장동건의 연기 역사상 유일한 조기 종영작...이라고나 할까요.



4. 이정재-최지우 '에어 시티'

비교적 최근작이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공항을 무대로 국정원 요원 이정재와 노련한 공항 운영 전문가 최지우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였죠.

물량이며 인물 배치에서 방송사에 남을 드라마 한 편이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모았지만 개봉 직후 시청률은 연일 급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를 통해 유일하게 위너가 된 건 최지우-이진욱 커플 뿐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3. 권상우-김희선, '슬픈 연가'

도저히 망가질래야 망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프로젝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건 아무래도 송승헌의 중도 하차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송승헌-권상우-김희선의 동갑내기 트리오가 함께 출연한 예고편 형식의 뮤직비디오(라고는 하지만 20여분의 길이입니다. 한편의 단편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는 지금 봐도 가슴 떨리는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될 때에는 송승헌 자리에 연정훈이 투입됐고, 한 축이 빠진 멜로드라마는 기운 배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물론 10%대 후반의 시청률을 나쁜 시청률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안이 성사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4. 송승헌-손예진, '여름향기'

'가을동화'의 윤석호 감독, 주인공은 송승헌과 손예진. 어디서도 실패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고 난 뒤 드라마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멜로드라마는 주인공들 사이의 상성이 중요한데, 송승헌과 손예진은 그리 잘 맞는 파트너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여름향기'는 시청률로 보면 그리 실패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20%대를 넘나들며 선방한 드라마였지만 워낙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의 후광이 강렬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내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들은 거죠. 아무튼 '여름향기'에서 전작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윤석호 감독은 서서히 한류 대표 연출자의 자리를 위협받게 됩니다.




1. 배용준-김혜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지난 10년간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김혜수와 당대 최고의 미남 스타 욘사마가 함께 출연했지만 이 드라마는 흥행 면에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고학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가는 배용준이 연상의 대학 강사인 김혜수를 사랑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죠.

하지만 이 드라마를 지금까지 기억에 남게 하는 것은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라는 기록입니다. 시청률에 비해 그 시청층의 충성도가 엄청나게 높았던 겁니다. 게시판은 격려와 성원의 포스팅으로 가득 찼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칭송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힘든 사랑의 나날이 지나고 배용준의 죽음으로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에는 탄식이 가득 찼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마니아 드라마'의 특징은 '우정사'를 거쳐 '다모', '아일랜드' 등으로 이어졌고, 노희경, 인정옥 등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작가군의 팬층을 두텁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건 이뤄질 뻔 했던 '슬픈연가' 뮤직비디오 판의 한 장면.)

이상 다섯 편의 드라마를 살펴봤습니다. 이밖에 이병헌 최진실 정우성 이영애라는 당대 최강의 얼굴들을 모아 놓은 '아스팔트 사나이'도 있지만, 1995년작이다 보니 시청률 관련 자료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튼 당시 이 드라마도 성과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들 작품들 가운데 몇몇 작품은 높은 완성도에 비해 시청자의 성원이 떨어진 작품으로, 또 몇몇 작품은 출연한 배우들의 얼굴이 아까운 졸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겁니다. 어쨌든, 시청률이 낮았다고 해서 드라마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예로 든 작품들은, 저마마한 주인공들을 내걸고도 실패할 수 있을만큼,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란 천-지-인의 기운을 다 모아야 가능한 어려운 일이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전작들을 감안하면 '마이 프린세스'의 성공 역시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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