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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수목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보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한마디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회사가 회사다 보니 주변에 널린 게 기자들입니다. 요즘은 신문과 방송이 한 건물 안에 있으니 신문기자, 방송기자가 다 있습니다. 그중 한 선배에게 요즘 '아내의 자격'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야, 말도 마라. 요즘 집에서 마누라 그거 못 보게 하느라고 마크하는데 진땀 뺀다."

아니 회사의 간판 프로그램인데 못 보게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 남편, 얼마나 찌질하게 나오냐? 거기다 기자잖아."


'아내의 자격'에서 극중 방송사 중견기자 한상진 역으로 나오는 배우는 장현성. 왕년에 '놀러와'에 출연해 "지적인 외모 때문에 한때 길에서 정치범(?)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는 바로 그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상진 캐릭터는 정말 '먹물 찌질이'의 대명사라 할만한 캐릭터입니다. 뭔가 아는 것도 많고, 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은 다 그럴듯하지만 방송 밖으로 나오면 금세 본색이 드러납니다.


서래와 결혼할 때만 해도 뭔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인 듯 보였겠지만 결국은 출세와 성공을 기준으로 인생을 평가하는 그런 남자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집에서는 큰소리를 쳐야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어 보이는 말'로 자기를 포장하기 바쁩니다.

'이런 남자'에 대한 정성주 작가의 서릿발같은 비판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바로 왕년의 히트작 '아줌마'에서 강석우가 연기했던 장진구라는 캐릭터입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속물 지식인이었던 장진구는 늘 학력 컴플렉스가 있는 아내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양 포장해 떠들지만 자신의 실체와는 영 거리가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14일 방송된 '아내의 자격'에서 상진은 한술 더 뜹니다. 캠핑장 가는 길을 못 찾자 "이런데 캠핑장 만드는 것 부터가 자연 훼손"이라고 욕을 하더니 캠핑장이 마음에 들자 "역시 사람은 자연의 기를 자주 들이마셔야 한다"고 금세 팔랑거리고, 처음 만난 태오 부부에게도 바로 '학번'과 '학교'를 묻고 그 학교의 '아는 사람'을 들먹이며 선배 행세를 합니다.

15일로 넘어가면, 상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과 친한 태오의 선배를 불러내 굳이 술자리를 갖고, 술에 취해 나뒹구는 추태를 보입니다. 아무튼 학벌/인맥/사회적 지위 앞에 한없이 작아져 '언론인의 기개'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한껏 보여줍니다.


사실 너무 익숙한 광경이어서 소름이 끼칠 정돕니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저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집에서 그거 볼까봐 겁난다"는 선배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아무튼 14일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불륜의 적발 장면. 늦은 밤 캠핑장에서 혼자 불 곁에 앉아 술을 마시던 태오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나온 서래와 마주칩니다. 코를 고는 남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나온 것이죠. 차에 가서 자겠다는 서래를 따라 나선 태오는 서래의 차 옆자리에서 잠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서래는 차창 밖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지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순간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서래. 모두 다 모인 자리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던 지선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서래를 꼭 껴안고 귀에 나지막히 속삭입니다. "내가 결이 엄마 좋아하는 거 알죠?"


결국 다시 '내가 미쳤지 미쳤어'의 자세로 돌아간 서래는 지선을 찾아가 "모두 내 불찰"이라며 간곡히 사과합니다. (물론 주인공들이 이 선에서 마무리한다면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가정이 회복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겠죠.ㅋ) 하지만 이미 서래의 남편 상진과 시누이 명진이 사건의 추이를 알고 있는 이상, 간단히 일이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 방송에서는 두 개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는 태오에게 "이건 밥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서래의 대사. 뒤늦게 찾아온 감정이 소중하긴 하지만, 없어서 죽는 건 아니라는 걸 가리키는 얘기죠.

하지만 다음주 예고에서 서래는 "10년만에 내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드라마며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여운이 남다릅니다. 글쎄, 여자가 아닌 제가 이해하기는 참 힘든 얘깁니다만... 남자들이라고 매일 매 시간 '나는 남자다'라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인식시키며 살지는 않죠. 그럼 남자들은 언제 '나는 아직 남자다'라는 걸 느낄까요. 그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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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서래(김희애)의 대사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미쳤어"입니다. 입으로는 계속 '미쳤어' '미쳤어'를 되뇌면서도, 마음이 몸을 어찌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치동 교육 현실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던 1,2부에 이어 이번주 3,4부에서 '아내의 자격'은 서래와 대오의 격정이 명진과 은경의 감시망에 걸려드는데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생긴 듯 합니다. '과연 한번 빠지면 저렇게까지 될까?' 라는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3부. 서래의 집에 시댁 식구들이 다 와서 저녁을 먹고 서래 남편 상진이 진행하는 '생생경제학'이라는 뉴스 꼭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로원에 가서 서래 엄마의 치과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태오가 계속 문자를 보냅니다. '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배에서 내렸습니다', '터널 막 지났습니다'. 그 문자를 계속 확인하는 서래는 금방이라도 손에서 그릇을 놓쳐 깨뜨릴 사람처럼 보입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밝은 낮에 주세요' 이 한마디를 왜 못하나 화가 날 지경입니다. 마지막에 서래는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이 한마디를 못 하죠. '경비실에 맡겨 주세요'를 문자로 다 쳐 놓은 뒤에도 서래는 끝내 보내질 못하고 달려나갑니다. 그리고는 태오의 차 옆자리에 앉아 숨을 헉헉거리며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집에 시댁 식구들 다 와 있는데 거짓말 하구 나왔어요. 결혼해서 단 한 번두 안해본 짓이예요. 엄마가 치매라는 거두 숨기구 싶었지만 그러믄 내가 더 속상할 거 같아서 다 말했어요. 애 학원에선, 애 땜에 의논 좀 하자는데 그냥 내뺐어요. 그 학원 보낼려구 온갖 짓을 다 하구,원장 말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나야 마땅한데, 도망쳤다구요.  어떻게든 김태오씨 만나구 싶어서요. 지금, 원장이 전화 하라는데두, 안하구 싶어요. 내일 하구 싶어요. 말두 안되는 일이예요. 정신이 나간 거예요."

(정성주 작가님 존경합니다. 대사의 생생함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정말 미친게 맞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시댁 식구들 다 와 있어요. 다음에 주세요'라고 했겠죠. 태오야 뭐 사정을 알리 없으니 그냥 문자 계속 찍어 보내는 거고. 아무튼 얼마든지 미룰 수 있었는데 서래는 미루질 못합니다. 왜. 그냥 당장 보고 싶은거죠. 당장 그 사람 얼굴을 못 보면 안될 것 같은 거고. 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 주부가 말입니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제가 알 길이 별로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금단의 사랑에 빠져드는 여자들은 흔히 '미친 것'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예는 많습니다. 영화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너무 남자(주진모)가 만나고 싶었던 전도연은 젖병에 수면제를 타 아기를 재워 놓고 달려나갑니다. 그 결과는... 유혈극이죠.



영화 '쌍화점'에서도 왕비 송지효는 왕의 심복인 무사 조인성에 대한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고를 치고 맙니다. 이처럼 많은 작품에서 여자들은 '한번 사랑에 눈을 뜨면 세상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격정을 가진 존재들'로 그려지곤 합니다.

사실 속설로도 이런 얘기는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는 어쩌다 바람을 피워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냥 한번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바람이 나면, 남편이며 자식이며 다 버린다. 여자란 사랑에 눈멀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맞는 얘기인지 알 수 없지만 참 많이 들은 얘깁니다.



제목은 저렇게 달았지만, 남자인 저로서는 참 궁금합니다. 왜 여자는 '스쳐가는 바람에 인생을 거는' 존재로 그려질까요. 왜 남자는 한번 스치고 지나가서도 흘러간 시절을 가끔씩 기억하며 잘 사는 반면, 여자는 평생을 잊지 못하고 한을 품는다고들 한 것일까요. 이런 건 정말 옛날, 여자들이 억압받고 살던 시절이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시절에나 통하던 얘기일까요?

그런데 정말 더 궁금한 건, '아내의 자격'을 보면서, 이 21세기의 다 열린 시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김희애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들 하는 겁니다. 과연 여자는 원래 그런 존재일까요?




P.S. 사실 김희애에 가려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아내의 자격'에는 또 하나의 '미친 여자'가 있습니다. 바로 서래의 앞집에 사는 은주(임성민)입니다.

은주는 서래의 시누이인 명진(최은경)과 친구 사이지만 사실은 명진의 남편 현태(박혁권)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은주가 혼자 기르는 아들 재훈이 바로 현태의 아들인 것이죠. 한 동네에서 두집살림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은 치밀한 구성이 숨어 있습니다. 3부에 나온 바로 이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은주-설마 당신 오늘 저녁 때 우리 앞집에 납실 건 아니겠지?
현태-돌았냐?!
은주-명진이가 늦더라두 오래던데?
현태-말이 그렇지!
은주-당신 명진이 말 잘 듣잖아. 좋은 남편 행세하느라 왔다가 재훈이랑 정면으루 마주치믄 참 볼 만 할거야,그치?
현태-얼른 가. 쓸데 없는 걱정 말구.  
은주-알았어...비루하지? 처남 집에두 맘놓구 못다니구.
현태-가라고!
은주-재훈이 국제중 들어갈 때까지만 참어. 나두 그 때 바라보구 참는 거야. 그리구,재훈이 아침 공부 매일 해 줘.일주일에 하루,거지한테 적선해? 나 그거 싫거든?
현태-아,아니,이거 봐,
은주-조현태씨. 재훈 아빠.나 당신 쫌 많이 알어. 나는 최후에 터질 폭탄이지만, 그러기 전에, 내 맘에 안들게 굴믄 터뜨릴 게 무수히 많다구...당신 별명이 2차 대마왕이라지?
현태-누가 그따위 소릴 해!
은주-당신 나 어디서 만났니...나 아직 그쪽 인맥 안 끊었어...왜냐,당신이 여전히 출입하구 있으니까.
현태-그,그거야 업무의 연장,
은주-뭐?
현태-아,알았어,일단 가.누가 보기 전에.

그러니까 이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은 은주가 한때 룸살롱에 나갔다는 것, 현태는 여전히 룸살롱 업계의 큰 고객이라는 것, 두 사람은 호스티스와 손님 사이로 만났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한 동네였던 게 아니라 혼자 아들(재훈)을 키우던 은주도 바로 '교육 때문에' 현태와 명진이 사는 바로 그 동네로 왔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은주 또한 미쳐 있는 거죠. 분명 현태가 유부남인 것도 알고 만났겠지만, 어쨌든 자기가 온전한 가정을 갖지 못한다는 불만이 늘 가득 차 있고, 그것 때문에 현태의 목줄을 쥐고 놓지 않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랑에 미친 것인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미친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지지만, 이 광기는 왜 은주가 서래와 태오의 관계를 폭로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자기가 차지하지 못한 현태를 차지하고 있는 명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명진이 늘 자랑하는 '완벽한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죠. 아무튼 이런 광기 때문에 '아내의 자격'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아내의 자격 - 김희애, 이성재 주연 JTBC 수목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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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우리는 비슷한 의문을 갖습니다. 왜 김치찌개는 7천원만 해도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그 많은 파스타집의 스파게티는 1만5천원에서 2만원까지 하는데도 그냥 대강 넘어갈까. 물론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과 스파게티를 파는 레스토랑은 식사 분위기를 만드는 내장 비용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지만, 그 고정비용을 꼬박꼬박 음식값에 포함시킨다 해도 너무 비싼 건 아닐까.

'트루맛쇼'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탄탄한 소견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극장용 '트루맛쇼'를 통해 이런 관심에 불을 붙인 김감독은 최근 JTBC에서 '미각 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TV판 '트루맛쇼'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에 에드워드 권의 문제에 대해 기고해 큰 반향을 일으켰을 정도로 글 솜씨도 만만찮은 분입니다. 이 분이 JTBC 홈페이지에 3월6일부터 제작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미각 스캔들' 의 제작일기라고 봐도 좋고, 그 자체로서 먹을거리에 대한 훌륭한 칼럼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본인의 양해를 얻어 그 글을 이 자리로 퍼오고, 제 의견도 덧붙여 보겠습니다.

'미각 스캔들'에서 요즘 하고 있는 '한국판 수퍼 사이즈 미' 실험에 대한 포스팅을 보시려면 이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김재환 감독님의 기고문은 여기부터입니다.



식자재 공급업체 체험기

<한겨레 21>에 기고하려고 쓴 글인데 에드워드 권 때문에 시끄러워져서 더 이상의 매체 기고를 포기했다. <미각스캔들>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너무 썰렁해서 일단 이걸로 스타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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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 공급업체 체험기

                                                                        * 김재환

프랜차이즈 업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조크가 있다. “당신이 어디서 정말 싼 식자재를 보았더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그보다 더 싼 식자재는 반드시 있다!” 프랜차이즈는 정말 싼 식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메뉴 위주로 발달한다. 규모의 경제가 주는 혜택은 오직 본점만 누린다. 손님은 차라리 자신이 먹은 메뉴의 원가를 모르는 게 속 편하다. 알면 알수록 입맛만 떨어진다.

‘통큰치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불하는 음식의 원가를 의심해보게 만들었다.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마케팅이 영세 상인들을 죽이는 약탈적 가격전략인지 소비자들을 위한 가격 거품빼기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다양한 꼼수를 생각한다면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무감각증을 흔들어 놓은 건 잘한 일이다.

<트루맛쇼> 취재를 위해 다양한 프랜차이즈 업자들을 만나 식재료비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식재료 원가와 식당이 실제로 지불하는 식자재 코스트의 괴리가 큰 메뉴일수록 뛰어드는 업자들이 많아지고 프랜차이즈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한다. 황교익 선생이 쓴 <대한민국 음식문화박물지>를 보면, 한 때 국수 프랜차이즈 열풍이 분 건 값싼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실국수에 초저가 중국산 멸치와 화학조미료가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피자 프랜차이즈가 난립하는 건 커피를 빼고는 피자만큼 마진이 큰 장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저렴한 원가 덕분이다. 다른 식당들보다 음식값을 더 받지 않으면서 프랜차이즈 본점도 돈을 벌고 가맹점도 이익을 남기려면,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든지 식자재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든지 둘 중 하나다. 

식당을 직접 해보면 일부 식자재의 업자간 거래가격이 너무 낮은 데 놀라게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포장 두부 한 모를 사려면 2~3천 원 정도 지불해야 하지만 일부 순두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쓰는 두부의 공급가는 충격적이다. 손님들은 순두부를 비싼 웰빙 식재료로 알고 있으니 업자들 입장에선 사업성 있는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좋은 식당은 요리사가 직접 그 날 새벽에 당일 사용할 재료만큼만 장을 본다. 처음 오픈할 땐 누구나 그런 식당을 꿈꾸지만 한 달만 해보면 그게 얼마나 실천하기 힘든 꿈인지 알게 된다. 객 단가와 주류 매출 비중이 높고 재료의 신선도가 식당의 성패를 가르는 고급 스시집 주방장이라면 새벽마다 직접 장보러 다니는 게 당연하겠지만 저가의 대중음식점 사장님들로선 무척 힘든 일이다. 결국 식자재 공급업체를 찾게 되는데 겪어보면 정말 가관이다.



여러 업체들을 체험해본 결과, 처음 1~2주는 지불하는 돈에 합당한 꽤 괜찮은 식자재를 공급하다가 조금만 틈을 주면 이내 최하 품질의 식자재를 가져다준다. 때깔은 그럴싸한데 향이 하나도 없다. 어지간한 식당 주인들은 그 등급의 차이를 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식자재 납품의 세계는 가히 꼼수의 경연장이다.

심지어 공산품을 납품 받아도 암수가 등장한다. 우리가 오픈한 식당 ‘맛’에서 쿨피스를 서비스로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았더니 유통기한이 당일 끝나는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유통기한이 다된 물건만 처리하는 땡처리 블랙마켓에서 초저가에 가져다가 제값 다 받고 납품한 것이다. 싸구려 식자재를 공급받아도 주방에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납품의 대가로 요리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관행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구석구석 리베이트 공화국이고, 세상은 알면 알수록 절망적이다. 

이태원에서 ‘이스트빌리지’라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오너셰프 권우중 씨에 따르면 상업적으로 성공한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음식재료비를 25% 내외로 맞추게 된다고 한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고향에서 부모님이 물고기를 잡아 보내주시지 않는 한, 싼 가격에 좋은 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 결국 대부분의 ‘싸고 푸짐한 집 = 좋지 않은 재료 + 다양한 조미료 사용’이란 말이다. 권 셰프가 밝히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영업구조는 이렇다.

매출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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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 코스트 25~30%
인건비 20%
식당 임대료 10%
공과금 7~10%
기타 운영비 10%
마진 25% 내외

마진이 25%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테리어, 등의 투자비와 금융비용을 생각하면, 25% 마진에 웬만큼 손님이 들지 않고서는 오너가 가져가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자기 음식에 프라이드가 강한 오너 셰프들은 보통 매출의 40~60%를 식자재 코스트로 지출하다 보니 몇몇 대박 난 레스토랑을 제외하고는 적자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 요리사들의 딜레마가 있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선 식자재 코스트를 낮춰야 하고 코스트에 맞추면 좋은 재료를 쓸 수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손님들의 혀는 식자재의 퀄리티를 논할 수준이 아니다. 오너 셰프는 늘 시험에 빠진다. 

식자재 코스트 스트레스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복 받은 메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파스타다. 이탈리안 요리로 유명한 어느 셰프에게 파스타의 매력에 대해 물어보니 재료비는 얼마 안 들어가는데 음식 값은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시니컬한 답변을 내놓았다. 동네마다 파스타 집들이 들어서고 프랜차이즈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건 그만큼 음식값에 바가지가 심하기 때문이란다. 김치찌개 하나만 봐도 기본 반찬 네 가지는 나가야 하니 파스타보다 원가는 더 든다. 게다가 한식 반찬은 손이 많이 가고 오래 보관할 수도 없다. 김치찌개는 7천 원 받으면 너무 비싸다고 하지만 피클 하나 주는 파스타는 1만 8천 원 받아도 비싸다는 말 안 한다. 말린 국수에 통조림 토마토소스, 냉동 해산물을 주로 쓰는 파스타 집이라면 식재료 코스트 2천 5백원도 안 나온다. 일부 프랜차이즈 파스타 집은 음식값을 지금의 반으로 낮춰도 버틸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음식값은 참 이상하다. 어떤 음식은 가격이 너무 낮고 어떤 음식은 완전 바가지다. 한식 가격은 상대적으로 너무 싸고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은 만만치 않아 식재료에 꼼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식당 주인들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비싼 임대료 부담과 권리금 관행, 식당들의 과당 경쟁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불만제로>와 <소비자 고발>이 장수하는 이유다.

싼 음식 가격에도 식당들이 망하지 않는 건 MSG와 중국 덕분이다. 사실 우리는 중국이 가까이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값싼 중국산 식자재가 없다면 지금 가격으로 김치찌개를 즐기는 건 불가능하다. 싼 가격에 싸구려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과당 경쟁과 높은 식자재 코스트에 지친 식당주인들을 위로하는 건 역시 화학조미료다. MSG는 식재료의 쌩얼을 숨겨주는 짙은 싸구려 화장술이다. 황교익 선생님은 그의 저서 <미각의 제국>에서 우리나라 식당들이 싸구려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어도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MSG의 마법 덕분이며 좋은 음식을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버려야 한다고 단언한다. 화학조미료 몇 숟갈이면 재료의 질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고 소비자들은 쉽게 구별하지 못하니 양심적인 식당 사장님들로선 미칠 노릇이다.

박찬일 셰프는 “요리사란 결국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고, 자신이 만드는 요리 재료가 산지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좋은 걸 먹으려면 어떤 식당 음식의 맛이 식자재의 본성에서 온 것인지 화학조미료에서 온 것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래저래 MSG가 문제다.

맛의 세계는 너무 어렵다.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우리 평범한 혀들을 위해 대단한 혀를 가진 분들이 수고해 주셔야 한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블로그에 좋은 정보를 올려주시는 선한 분들은 복 받을 것이다.

God bless you~^^

(원문은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072&menu_id=PM10012549&bbs_code=BB10010137 )

                (유명 김치찌개 프랜차이즈 장호왕곱창의 제작 사진입니다.)

사실 영화 '트루맛쇼'를 통해 여러가지 메시지가 전해졌지만 그 중에는 '한국 사람들이 선진 식문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건 대중의 입맛 때문이다. 좋은 귀를 가진 청중이 많은 나라에서 음악이 발달하듯, 좋은 혀를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가 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뭐 이건 사실 돌고 도는 챗바퀴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과 재료를 판별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실제로 어려서 이것 저것 많이 먹어 본 아이들이 커서도 미식가가 될 가능성이 높죠^^), 그게 대대 손손 물림을 하기 마련입니다.

음식문화가 바뀌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면 생선 요리, 특히 회 문화에 있어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만만찮아 보입니다. 반면 육류 가운데서 일본의 쇠고기 문화는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래 전부터 쇠고기가 가장 고급 음식으로 대우받아온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고대 이후 수백년 동안 쇠고기가 식재료에서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일본 평론가들도 "일본은 근대 100년 사이에 쇠고기 먹는 법을 새로 익혔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물론 모든 정보가 널리 공유되는 인터넷 시대는 이런 변화를 상당히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윗글에서도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블로그에 좋은 정보를 올려주시는 선한 분들은 복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절대 동감입니다. 뭐 개중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혀를 갖고 있는 분들도 분명 계시지만^^... 그래도 진정한 전문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절대 다수인 듯 하여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MSG에 대해서는 참 개인적으로 애증이 엇갈립니다. 유명한 맛집에서 진정 침이 넘어가는 이 국물에 분명히 다량에 MSG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심증은 가지만, 까짓거 이 맛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어떠랴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뭐 이런 얘기는 나중에...

아무튼 글을 통해서든, 매주 일요일 밤 10시 JTBC에서 방송되는 '미각 스캔들'을 통해서든 김재환 감독과 그 일당들은 앞으로 때론 충격적으로, 때론 유머 넘치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분들의 혀를 자극해 갈 듯 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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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맛쇼'를 보신 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다큐멘터러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트루맛쇼'는 TV에 소개되는 맛집들이 얼마나 기만적인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보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과연 TV에서 아예 TV판 트루맛쇼를 방송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김재환 감독의 제작사 B2E에 이런 제안을 했죠.

3월4일부터 정규 편성된 JTBC의 '미각 스캔들'은 바로 그 결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김재환 감독이 제작 총지휘를 맡았고, '트루맛쇼' 제작진이 진행하고 있는, 최초의 '본격 TV 맛집 고발 전문' 프로그램이 탄생한 겁니다.

그리고 이 '미각스캔들'은 4일, 정규편성 첫 방송에서 이색적인 실험 프로젝트를 선언합니다. 바로 '편의점 음식만 먹고 한달을 살면 몸에 어떤 변화가 올까'를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사실 '미각스캔들'은 지난달 초, 설 연휴때 파일럿 프로그램을 내보내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양념 치킨을 먹으면 안되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죠. 내용인즉, 상당히 많은 수의 치킨집들(동네 군소 치킨집들 뿐만이 아닌, 유명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일반 프라이드 치킨을 튀기는 기름솥과 양념치킨용 치킨을 튀기는 기름솥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따로 관리하기만 한다면 별일 아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프라이드 치킨을 60~100마리 정도 튀겨 낸 '헌 기름'으로만 양념치킨용 닭을 튀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름은 육안으로만 봐도 시커먼 색이기 때문에 새 기름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게다가 튀겨낸 닭의 색깔 역시 확연히 다릅니다. 당연히 맛도 다르겠죠.



하지만 '양념을 묻히면'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양념에 버무리면 이런 정도의 차이는 강한 양념 맛에 슬쩍 묻혀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순서를 바꿔 말하면, '양념을 발라 놓으면 구별을 못 하기 때문에' 굳이 새 기름으로 튀길 필요가 없는 것이고, 몇몇 치킨집 주인들이 이런 사실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몇몇'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방송상으로는 그냥 '일부'라고 표현됐지만, 김재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상상보다는 훨씬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양심적으로 장사하시는 치킨집 사장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방송에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앞으로 양념치킨을 꼭 드셔야 하는 분들이라면, 치킨을 주문하실 때 '그냥 프라이드 치킨을 주시고 양념치킨 소스를 넉넉하게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 합니다.



어쨌든 첫회부터 꽤 강한 주제를 다뤘던 '미각스캔들' 팀은 정규 편성 이후 이색적인 실험에 도전했습니다. 바로 '한국판 수퍼 사이즈 미' 실험입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는 모건 스펄록 감독의 2004년작 다큐멘터리입니다. '볼링 포 콜럼바인' 류의 다소 장난스러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용인즉, '과연 패스트푸드만 먹고 한달을 살면 몸이 어떻게 변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흔히 우리는 '햄버거만 1년 먹으면(방부제 때문에) 죽어도 시체가 썩지 않는다', '라면만 1년을 먹으면 몸보다 먼저 정신에 이상이 온다'는 식의 도시괴담을 얘기하곤 합니다. 패스트푸드가 몸에 좋을 리 없다는 것은 누구나 들어 본 상식이지만 실제로 라면이나 햄버거를 눈앞에 두거나 냄새를 맡으면 입에 침이 고이는 것 역시 인지상정입니다.



아무튼 스펄록은 직접 실험을 했고, 그 결과 한달만에 자신의 건강 상황이 상당히 악화됐다고 밝힙니다. 11kg인가 체중이 늘고, 당뇨병과 심장병의 위협을 받게 됐다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와 맥을 같이 하는 실험 결과는 꽤 많습니다. 2010년 '데일리메일'에는 사진과 함께 참 아찔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2009년 3월에 사 놓은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세트를 1년간 사무실에 놔 둔 결과를 사진으로 비교해 볼 수 있었죠. 그 결과.... 햄버거 패티는 이상하게 말라 붙었지만 빵과 프라이는 '육안상으로 큰 변화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기사 제목은 '방부제의 힘' 입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1258913/Happy-1st-birthday-Mother-keeps-McDonalds-Happy-Meal-year--gone-off.html

(물론 반론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식품이든 미생물이 번식하려면 습기가 있어야 하는데 프렌치 프라이는 일단 바싹 튀긴데다 소금을 뿌려 두죠. 표면이 단단하게 굳은데다 소금기도 있고, 바람에 말려 더 바싹 마르고 나면 보존성이 극도로 좋아질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이건 방부제의 효능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쪽을 믿든 그건 읽는 이의 몫...정도의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아무튼 '미각스캔들' 팀은 '수퍼 사이즈 미'의 영향을 받아 편의점 음식으로만 한달 내내 세 끼를 먹는 실험에 들어갑니다. 제작진의 강 모 PD와 서울대, 숭실대 재학중인 두 남학생까지 3명의 젊은이가 한달 내내 편의점에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겁니다. 비용은 끼니당 3천원으로 제한. (가운데가 영화 '트루맛쇼'에도 출연했던 강 PD입니다.^^)



편의점 식사의 문제는 꽤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고생이나 재수생들이 밀집한 학원지역에서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 보입니다. 가장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 뭔가 미심쩍은 음식으로 한끼를 때우는 건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설마 한달만에 무슨 문제가 생길까 싶기도 한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끼니당 3천원이라는 가격이 좀 걱정스럽습니다. 바나나우유 하나에만도 1200원씩 하던데... 한끼 3천원이면 배는 곯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컵라면 1개, 삼각김밥 1개 정도면 음료수 사 마실 돈이 모자라지 않을까 싶네요.

(아울러 방송이 진행되다 보면 나오겠지만,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면 당연히 술 마실 일이 꽤 있을텐데 안주는 어떻게....? 그렇다고 술자리를 한달 동안 피하면, 금주의 효과로 건강은 오히려 좋아지는...?^^)



이런 저런 면에서 사뭇 궁금한 '편의점 음식으로 한달 살기' 실험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수퍼 사이즈 미'와는 달리 상당히 체중 감소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이런 효과가 있다면 저도 한번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ㅋ)

                           (하도 오랜만이라서 감격적이라 올려 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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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주연 '아내의 자격'이 첫 전파를 탔습니다. 연출 안판석, 극본 정성주, 주연 김희애 이성재 이태란 장현성. 이 정도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라인업입니다.

처음 대본을 대했을 때의 느낌은 '정성주 작가의 화려한 귀환'이었습니다. 1999년 최진실-김혜자가 환상의 고부간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장미와 콩나물', 2000~2001년 원미경 주연의 '아줌마'로 남자들의 위선적인 가부장주의를 거침없이 공격했던 대 작가였죠(한 시대를 풍미한 미남 스타 강석우가 찌질남의 대명사 '장진구'로 불리게 됐던 바로 그 드라마입니다). 이 시기의 정성주 작가는 포스트 김수현의 선두로 불러 아깝지 않은 필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홈 드라마에서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힘은 대단했죠.

그러나 '고질적으로 대본이 늦는다'는 혹평과 함께 드라마 '술의 나라' 파동을 겪은 이후 정 작가의 작품에선 이전의 파괴력을 엿보기 힘들었습니다. 최정원 주연의 '애정만세'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변호사들'은 마니아 층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지만 예전의 정 작가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정 작가가 절치부심 뽑아낸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소한 조연급 인물 하나 하나의 동작에도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 것은 물론, 대사 하나 하나에도 섬세한 디테일이 잘 지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의 자격'은 아들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전세를 얻어 이주한 주부 서래(김희애)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강남 중산/부유층에서 자라나 방송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 상진(장현성)이 '아들 결이의 장래를 위해 이대로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이동생(최은경)의 딸이 국제중에 입학하는 장면을 본 다음의 결론입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강남의 벽'은 높았고, 결이는 국제중 입학을 위해 다녀야 할 학원 시험에서마저 꼴찌를 하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합니다. 궁지에 몰린 서래는 학원 원장인 '홍마녀'(이태란)를 찾아가 결이를 받아줄 것을 간청하고, 서래에게서 일반적인 대치동 아줌마들과 다른 뭔가를 본 홍마녀는 결이에게 기회를 줍니다.

날아갈 것 같지만 여전히 대치동 생활이 낯설고 힘든 서래는 동네 치과를 갔다가 언젠가 자신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 준 태오(이성재)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서래와 태오는 양로원에 있는 서래의 어머니 치료를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귀경하는 배를 놓칠 위기에 놓입니다. (여기까지가 1~2부의 주요 내용)



대본상으로 여기까지 내용을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여기 저기 나타나는 치밀한 취재의 흔적이었습니다. 대본은 강남 아이들이 학원 시험을 치르는 과정, 실제 가족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반찬 아줌마'들의 네트워크, 가족관계와 대화 내용 등 '대치동 라이프 스타일'의 디테일을 생생하게 살려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대치동'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흔히 '욕망 `1번지'로 불리는 강남 일대. 그 가운데서도 자녀들의 미래가 교육에 걸렸다는, 가장 첨예한 욕망이 들끓어 오르는 곳입니다. 몇해 전부터 유행하던 말입니다만 흔히 자녀 교육의 성공에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네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 중에서 '아빠의 무관심'이란 -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되니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그냥 방해나 안 되게 멀찌기 가 있는게 낫다는 뜻 - 남자들이 지어낸 말 같기도 합니다만, 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보시면 이 네가지 요소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가장 간단한 요약은 '김희애의 불륜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런 소개에 상당히 거부감을 갖습니다. 이 드라마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미 1, 2회를 통해 '강남 교육특구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2세 교육이 현대 한국 부부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쉽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예전만큼 부모 자식간의 유대가 굳지 않고 어떤 부부도 노후 대비를 자녀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됐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은 그 전의 어느 세대 못지 않게 치열합니다. 그 경쟁의 강도를 놓고 보면 사상 최고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1편에서 서래의 남편은 '이건 전쟁'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의미 못잖게 서래와 태오의 관계 역시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칫하면 '불륜 미화'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죠. 두 사람의 만남이 수채화같은 영상 속에서 아른아른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따져 보면 단순히 불륜 미화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해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선배 등으로 규정되어 가는 것이죠.



이런 관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두 성인이 기존의 관계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감정을 느꼈을 때, 과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 가는지를 바라보자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의 차이가 있겠지만, 정성주 작가의 시선은 두 사람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등지고 개인의 욕망을 향해 가는 과정을 참 설득력있게 그려냅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는 저도 아직 모릅니다. 단지 지켜볼 뿐입니다. 물론 응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네. 누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ㅋ)

마무리는 이 드라마의 주제곡처럼 쓰이게 된 Byrds의 Turn, Turn, Turn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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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빠담'이 이제 두 회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일 개국 때부터 종편방송은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외면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드라마 한 편이 나쁜 얘기 한마디 듣지 않고 방송되고 있는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 시작하는 방송사에서 '빠담빠담'을 방송하는 것도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개국 첫 드라마를 무엇으로 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름 돈 깨나 써서 방송하는 드라마인데, 그래도 반향이 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민간 상업방송인데 시청률이 우선이라는 의견 등등.

하지만 그래도 '빠담빠담'이라는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그래도 이런 작품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쉽게 모아졌습니다. 안 그래도 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을 방송, 이 작품이라면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 묘한 반응이 일각에서 나왔습니다. 쏟아지는 호평 한 구석에서 "왜 이런 드라마는 '종편'에서 해서 사람을 갈등하게 만드냐'는 의견(아니 종편이 무슨 유신 시절의 대남방송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ㅋ ), 그리고 '지상파에서 했으면 20%는 나왔을 걸작인데 방송사를 잘못 만나 참 안타깝다'는 의견 등등.

그런데 과연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빠담빠담'은 빅 히트를 기록했을까요. 현재 '빠담빠담'은 2%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지상파 채널도 아니고, 아직 채널의 존재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을 벗어나면 '채널15'라고 자신있게 말할 처지도 아닌 상태에서 이 정도면 대단히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그만치 달라졌을까?> 미리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는 의견입니다. 

시작합니다.



얼마 전,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 2010)을 집필하던 김수현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이미숙이 수애 남매 생모일 것이라는 점치기가 있었던가 본데 하하’, 이어서 ‘이젠 사촌 오빠 이상우가 수애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좋아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사촌 누이동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가 전부, 숨겨놓은 카드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그리 아시길’이라는 내용이었다. <천일의 약속>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미숙은 지형(김래원)을 끝까지 애닯게 사랑하는 향기(정유미)의 엄마 역으로 출연했다. 만약 자신의 딸을 버린 지형에게 서연(수애)이란 연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찾아가서 어떤 행패를 부렸을지 모를 캐릭터였다.

물론 이 드라마가 <천일의 약속>이 아니고, 작가가 김수현이 아니었다면, 이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알고 보니 이미숙이 어려서 수애 남매를 버리고 달아난 생모였다’는 식의 진행은 충분히 가능했을 거다. 최근 몇 년간 지상파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아 온 시청자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김수현 작가도 일단 ‘하하’ 하고 반응했던 것이다.

드라마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가 종편 채널 JTBC에서 방송되고 있다.

면면이 일단 화려하다. 국가대표 작가 노희경과 <아이리스>(KBS2, 2009)의 김규태 PD가 힘을 합쳤고, 정우성 한지민 김범이라는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 드라마는 현재 전국 기준으로 2퍼센트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이하 <빠담빠담>)가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빠담빠담>의 기획안은 각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국 데스크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품을 거부했다. ‘장사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빠담빠담>은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은 드라마다. 첫 장면부터 주인공 강칠(정우성)이 교수대에 목이 매달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사건의 물리적 순서도 불분명하다. 귀휴로 교도소 밖에 나가 있던 강칠과 국수(김범)가 어느새 교도소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꿈인지, 환각인지도 분명치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신경 말초를 박박 긁는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강칠에게 이어지는 기적이 과연 환상인가, 아니면 자칭 천사인 국수가 일으키는 기적인가를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10대 시절 교도소에 들어가 16년 옥살이 끝에 출감한 강칠이 여주인공 지나(한지민)를 만나 조금씩 삶의 기쁨에 눈떠 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10퍼센트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선전했을까.

노희경 작가의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KBS2, 2008)도 완성도에서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현빈과 송혜교라는 주인공의 무게 역시 <빠담빠담>에 비해 못할 것이 없다. 극 중 사극 제작 신(<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 PD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다)에서 단 1회를 위해 사극 세트를 세웠다가 바로 불태워버렸을 정도로 투입된 물량도 <빠담빠담>을 넘어섰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최고 시청률 7.7퍼센트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거부한 시청자들이 과연 <빠담빠담>은 받아들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담빠담>의 현재 시청률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유료방송 채널이라는 약점과, 종편에 대한 일각의 반감을 극복하고 이만한 수의 시청자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반갑다. ‘화학조미료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주방에서 MSG를 쓰지 않는 식당은 며칠 못 가고 망한다는 것을. 드라마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수라도 진짜 음식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입맛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나니 이런 이야기가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경영 압박이 심해지면 퀄리티를 훼손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을 100% 부인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최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이 기조를 간직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빠담빠담' 19회와 20회.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빠담빠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 결말은 저도 모릅니다.;;)



다음주부터는 송창의, 한혜진, 조재현, 박건형 주연의 '신드롬'이 방송됩니다. '브레인'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뇌수술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바꿔 놓으려는 위험한 시도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김성령이 송창의와 모자관계로 나온다니... 이건 좀 가슴이 아프군요. 아직 너무 젊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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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봤습니다(극장을 찾은게 얼마만인지...ㅜㅜ).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세븐' '파이트 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으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2011년작입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미 2009년에 작가의 모국 스웨덴에서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밀레니엄 1부'라는 제목으로 이달초 국내에서도 개봉됐는데, 사실 이 영화에도 관심이 갔지만 개봉관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밀레니엄'이라는 소설이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동안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욱 '영화부터 보자'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주연 여배우 루니 마라의 'W' 지 화보에서는 더더욱.




현대. 스톡홀름. 시사잡지사 '밀레니엄'에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Blomkvist,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업 총수 베너스트롬(Wennerstrom)의 비리를 폭로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해 패소하고 60만 크로나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됩니다.

좌절해 있던 미카엘에게 스웨덴의 오랜 재벌 가문인 방예르(Banger) 가문에서 연락이 옵니다. 방예르 가문의 가주 역할인 헨리크(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천재적인 조사관 리스베트(루니 마라)를 이용해 미카엘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조사해놓고 있죠.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4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조카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내 주면 베너스트롬을 몰락시킬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떡밥을 던집니다. 영하 20도를 넘는 한겨울, 몸이 덜덜 떨리는 시골 저택의 별채에서 미카엘은 뭔가 음습하고 비밀이 넘치는 방예르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갑니다.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왜 이 작품이 소설로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롬크비스트, 베너스트롬 같은 낯선 이름. 흔히 해외 유명 작품들이 무대로 삼는 런던, 파리, 제네바 같은 도시가 아니라 퍽 생소한 스톡홀름 등의 배경이 확실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Blomkvist라는 이름은 이전의 상식대로라면 Blomkwist, 즉 '블롬퀴스트'라고 읽어야 할 듯 하지만 여기선 또 '블롬크비스트'라는 발음이 등장합니다. 사실 '헤르미온느'나 '케드릭' 이후 한국 번역가들의 이름 발음 문제에 대해서는 큰 신뢰를 갖지 않게 됐지만, 북유럽 이름까지 가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문득 올림피크 리옹에서 뛰던 노르웨이 스트라이커 John Carew의 이름 표기를 놓고 벌어졌던 왕년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존 캐루 - 욘 캐루 - 욘 카레우 - 욘 카레브 - 욘 사레브까지 온갖 한글 표기들을 검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처럼 좋은 시절이라면 http://ko.forvo.com/word/john_carew/#no 를 검색해서 '욘 카레브'라고 자신있게 쓸 수 있었겠죠.)



어쨌든 핀처의 솜씨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Immigrant Song'으로 시작하는 격렬한 그래픽의 타이틀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비교는 쉽지 않겠지만, 편집의 대가답게 핀처는 대단한 속도감으로 전반부를 폭풍처럼 휩쓸어 갑니다. 꽤 숙련된 관객에게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달려나간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한 속도입니다. 반면 비숙련 관객에게는 '뭐야. 얘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라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포탈 감상평을 일별하면 이런 요소가 이 영화의 흥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달려가는 영화 사이사이에도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의 풍광은 핀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충분히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눈덮인 평야와 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사물들. 모든 등장인물이 영어로 대사를 하고 있지만 '뭔가 대단히 이질적인' 이 느낌들은 관객이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천재 조사관(우리나라로 치자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직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죠. 전문적으로 남의 뒷조사를 하는 사람입니다)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의 루니 마라입니다.


아마 이 장면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 말고도 '소셜 네트워크'를 보신 분이라면 놀라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도 이 배우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만들 동기를 부여한, '예쁜이 여대생 에리카'였다는 사실을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물론 배우 노릇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욕심 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리스베트 역할은 매력적입니다. 23세. 어려서 아버지를 죽이려 시도한 죄로 금치산자 판정. 천재 해커. 발군의 운동능력.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과단성과 일반인과는 사뭇 다른 도덕관("정말 죽여도 돼요?"에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연기하던 무대포 캐릭터의 "정말 죽여?"가 떠오릅니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펑크 스타일의 패션. (위 사진. 페레즈 힐튼에 따르면 저 피어싱은 모두 진짜랍니다.)




(네. 솔직히 이 분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코믹하지 않아서 그렇지... 딱 스웨덴의 김꽃드레라고 할 수 있죠.)

고만고만한 20대 여배우 풀이 넘쳐 나는 세상, 데이빗 핀처 같은 감독이 이런 역할을 제안한다면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백번 해야 마땅한 일일 겁니다. 이 역할 하나로 루니 마라는 수년간 고민했을 '존재감'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자 안톤(하비에르 바뎀)에 비견할 만한 압도적인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1차적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해 낸 루니 마라를 칭찬해야겠지만, 간장보다는 고추장이 인상적인 맛을 내기 쉬운 재료이듯 이런 역할이 배우의 기량을 100% 끌어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3편의 원작이 모두 영화화된다면 루니 마라는 그때 가선 '어떻게 리스베트 캐릭터로부터 도망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워낙 본 모습과 멀리 떨어진 캐릭터인 만큼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문제 -.

(일각에서는 스웨덴 판에서 리스베트 역할을 한 누미 라파스와 비교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글쎄, 일단 사진만으로는 23세라는 설정과 라파스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23세가 원작과는 관련 없는 나이일 수도 있겠군요. 라파스에게서는 마라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미성숙'의 느낌이 풍겨나오지 않습니다.)



리스베트 캐릭터가 빛이 나는 만큼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블롬크비스트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007 배우가 육체적으로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히려 너무 무기력하게 리스베트에게 리드당하는 역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게 핀처의 의도인지, 원작자의 의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만약 대단한 미스테리를 기대하고 '밀레니엄'을 보신 분이 있다면 실망하시기 십상일 겁니다. 어차피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고, 결과를 볼 때 그리 엄청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과 첨단 디지털 기법을 병행해 가며 묵묵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리스베트/블롬크비스트 콤비의 노력은 대단히 흥미롭고, 충분히 돈 값을 합니다. 죽도록 달려 목표에 도달하는 본 요원이나 헌트 요원 못잖게, '죽어라고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긴장감 유발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리스베트의 여성성을 강조한 에필로그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에필로그를 보고도 2편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상당히 건조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핀처 판 '밀레니엄'은 강추작입니다.



P.S. 헨리크 역을 맡은 할아버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실 단역에 해당하는, 대사 하나 없는 '젊은 헨리크' 역을 줄리언 샌즈(58년생인데 '젊은 헨리크'...)가 맡을 정도로 호화 캐스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P.S.2. 날이 갈수록 동태눈 증세가 심해지는지, 로빈 라이트와 대릴 해너가 헷갈릴 지경에 온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P.S.3. 도입부의 'Immigrant Song'과 '해커1'의 NIN 티셔츠는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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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드라마에서 나온 것만도 한두번이 아닌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바로 수양대군, 뒷날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권을 견고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견제하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다수의 인물들을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대군을 귀양보낸 사건이죠. JTBC 드라마 '인수대비'가 계유정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언젠가부터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의 이름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정란(政亂)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계유정난의 정의는 '단종 1년인 계유년(1453년)에 난을 진압한 사건'입니다. 진압의 주체는 수양대군이고 '난'의 주체는 김종서-황보인인 셈이죠. 

물론 어느 쪽이 난의 주역이고 어느 쪽이 왕권 수호의 주축인지는 결과를 보고 나서도 헷갈립니다.

과연 계유정난의 시점에서 수양대군은 조카를 죽이고 제위를 차지한 명나라 영락제의 심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린 조카를 보필해 '간신들'을 물리치고 왕위를 굳게 지킨 주나라 주공 단의 심정이었을까요. 전자라는 쪽이 압도적이지만 후자의 마음도 1% 정도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혹시 영화 '관상' 때문에 오신 분이라면 '관상' 리뷰는 이쪽입니다.

관상: 관상은 정말 운명을 지배하나? http://v.daum.net/link/49999746


아무튼 계유정난이 일어난 날, 1453년 음력 10월10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매우 길고 흥미롭습니다. 박진감넘치는 묘사로 보아 이 사건을 기록한 사관은 아마도 문학적 재능이 풍부했던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중간중간 역주의 색을 바꿔 놨는데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은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PC를 통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그리고 기록이 꽤 길고 정교합니다. 물론 가끔씩 시간대가 뒤바뀌곤 합니다만...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세조가 새벽에 권남(權擥)·한명회(韓明澮)·홍달손(洪達孫)을 불러 말하기를,
“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히 하겠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약속과 같이 하라. 내가 깊이 생각하여 보니 간당(姦黨) 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金宗瑞) 같은 자가 없다. 저 자가 만일 먼저 알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두 역사를 거느리고 곧장 그 집에 가서 선 자리에서 베고 달려 아뢰면, 나머지 도적은 평정할 것도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 여러 무사(武士)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조용히 이르겠으니, 그대들은 느지막에 다시 오라.”
하고, 드디어 무사를 불러 후원에서 과녁을 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한낮쯤 되어 권남이 다시 왔다. 세조가 나와 보고 말하기를,
“강곤(康袞)·홍윤성(洪允成)·임자번(林自蕃)·최윤(崔閏)·안경손(安慶孫)·홍순로(洪純老)·홍귀동(洪貴童)·민발(閔發) 등 수십 인이 와서 더불어 과녁을 쏘는데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곽연성(郭連城)은 이미 왔으나 어미의 상중(喪中)으로 사양하기에, 여러 번 되풀이하여 타이르니, 비록 허락은 하였으나 어렵게 여기는 빛이 있다. 그대가 다시 말하라.” 하고, 세조는 도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권남이 곽연성을 보고 말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지금 종사의 큰 계책으로 간사한 도적을 베고자 하는데,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이니, 자네는 장차 어찌하려는가?”
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들었습니다. 장부가 어찌 장한 마음이 없을까마는 최복(衰服)이 몸에 있으니(상중이니) 명령을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지금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만번 죽을 계책을 내어 국가를 위하여 의(義)를 일으키는 것인데, 자네가 어찌 구구하게 작은 절의(節義)를 지키겠는가? 또 충과 효에는 두 가지 이치가 없으니, 자네는 구차히 사양하지 말고 큰 효를 이루라.” 하였다.

곽연성이 말하기를,
“수양 대군께서 이미 명령이 있으니 마땅히 힘써 따르겠으나,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니, 그대는 자세히 방략(方略)을 말하여 보라.”
하였다. 권남이 하나하나 말하니, 곽연성이 말하기를,
“나머지는 의논할 것이 없고, 다만 수양 대군께서 김종서의 집을 왕래하는 데 이르고 늦는 것을 알 수 없으니, 성문이 만일 닫히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이것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마땅히 선처하겠다.”

[수양대군은 도성 안에, 김종서는 도성 밖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김종서를 제거한다 해도 도성으로 들어와야 궁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날이 저문 뒤에 도성을 출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김종서가 대세를 뒤집지 못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

하였다. 해가 저무니 홍달손(洪達孫)이 감순(監巡)으로 먼저 나갔다. 세조가 활 쏘는 것을 핑계하고 멀찌감치 무사 등을 이끌고 후원 송정(松亭)에 이르러 말하기를,
“지금 간신 김종서(金宗瑞)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君上)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서 비밀히 이용(李瑢)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당원(黨援)이 이미 성하고 화기(禍機)가 정히 임박하였으니, 이때야말로 충신 열사가 대의를 분발하여 죽기를 다할 날이다.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위 문장 속의 '이용'은 당연히 안평대군.]

하니,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하고, 송석손(宋碩孫)·유형(柳亨)·민발(閔發) 등은 말하기를,
“마땅히 먼저 아뢰어야 합니다.”

[당연히 역적을 토멸하려면 임금에게 아뢰고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세조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답입니다. '역적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받는다 해도, 저쪽에서 준비할 시간을 줄 뿐입니다. 기습 외에는 방법이 없던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말이나 듣고 있자니 속이 탔겠죠.]

하니, 의논이 분운(紛?)하여 혹은 북문을 따라 도망하여 나가는 자도 있었다. 세조가 한명회에게 이르기를,

“불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계교가 장차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하니, 한명회(위 사진) 가 말하기를,
길 옆에 집을 지으면 3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큰 일이겠습니까? 일에는 역(逆)과 순(順)이 있는데, 순으로 움직이면 어디를 간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모의(謀議)가 이미 먼저 정하여졌으니, 지금 의논이 비록 통일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청컨대 공(公)이 먼저 일어나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作舍道旁, 三年不成 이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옆에 집을 짓자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참견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이 말도 들었다 저 말도 들었다 하면 도저히 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하고, 홍윤성(洪允成, 위 사진)이 말하기를,
“군사를 쓰는 데에 있어 해(害)가 되는 것은 이럴까 저럴까 결단 못하는 것이 가장 큽니다. 지금 사기(事機)가 심히 급박하니, 만일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른다면 일은 다 틀릴 것입니다.”
하였다. 송석손 등이 옷을 끌어당기면서 두세 번 만류하니, 세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 가서 먼저 고하라. 나는 너희들을 의지하지 않겠다.”

[ 여기서 강경파의 한 사람인 홍윤성은 뒷날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는 세도가가 되지만 뒷얘기는 영 좋지 않습니다. 성품이 잔혹한 탓인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횡포도 심했지만, 세조의 총애 때문에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고, 드디어 활을 끌고 일어서서, 말리는 자를 발로 차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지금 내 한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었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社稷)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나는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만일 고집하여 사기(事機)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먼저 베고 나가겠다. 빠른 우레에는 미처 귀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는 신속한 것이 귀하다. 내가 곧 간흉(姦凶)을 베어 없앨 것이니, 누가 감히 어기겠는가?”
하고, 중문에 나오니 자성 왕비(慈聖王妃)가 갑옷을 끌어 입히었다.

드디어 갑옷을 입고 가동(家?) 임어을운(林於乙云)을 데리고 단기(單騎)로 김종서(金宗瑞)의 집으로 갔다. 세조가 떠나기 전에 권남과 한명회가 의논하기를,
“지금 대군이 몸을 일으켜 홀로 가니 후원(後援)이 없을 수 없다.”

[주: "從者從, 去者去, 吾不汝强". 비장한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수양대군도 김종서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권언(權?)·권경(權擎)·한서구(韓瑞龜)·한명진(韓明?) 등으로 하여금 돈의문(敦義門) 안 내성(內城) 위에 잠복하게 하고, 또 양정(楊汀)·홍순손(洪順孫)·유서(柳?)에게 경계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따라가게 하였다. 세조가 처음에 권남에게 명하여 김종서를 그 집에 가서 엿보게 하였다.

권남이 투자(投刺)[주: 명함을 드림] 하니, 김종서가 〈불러들여〉 별실에서 한참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남이 돌아와 보고하니, 세조가 이미 말에 올라탔다. 세조가 김종서의 집 동구(洞口)에 이르니, 김승규(金承珪, 김종서의 장남)의 집앞에 무사 세 사람이 병기를 가지고 귀엣말을 하고 있고 무기(武騎) 30여 인이 길 좌우를 끼고 있어 서로 자랑하기를,
“이 말을 타고 적을 쏘면 어찌 한 화살에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세조가 이미 방비가 있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하기를,
“누구냐?”
하니, 그 사람들이 흩어졌다.

양정(楊汀)은 칼을 차고 유서(柳?)는 궁전(弓箭)을 차고 왔다. 세조가 양정으로 하여금 칼을 품에 감추게 하고 유서를 정지시키면서 김종서의 집에 이르니, 김승규가 문 앞에 앉아 신사면(辛思勉)·윤광은(尹匡殷)과 얘기하고 있었다. 김승규가 세조를 보고 맞이하였다. 세조가 그 아비를 보기를 청하니, 김승규가 들어가서 고하였다. 김종서가 한참 만에 나와 세조가 멀찍이 서서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들어오기를 청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해가 저물었으니 문에는 들어가지 못하겠고, 다만 한 가지 일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하였다. 김종서가 두세 번 들어오기를 청하였으나 세조가 굳이 거절하니, 김종서가 부득이하여 앞으로 나왔다.

김종서가 나오기 전에 세조는 사모(紗帽) 뿔이 떨어져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정승(政丞)의 사모 뿔을 빌립시다.”
하니, 김종서가 창황(蒼黃)히 사모 뿔을 빼어 주었다. 세조가 말하기를,
“종부시(宗簿寺)에서 영응 대군(永膺大君)의 부인의 일을 탄핵하고자 하는데, 정승이 지휘하십니까? 정승은 누대(累代) 조정의 훈로(勳老)이시니, 정승이 편을 들지 않으면 어느 곳에 부탁하겠습니까?”
하였다. 이때에 임어을운이 나오니, 세조가 꾸짖어 물리쳤다. 김종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윤광은·신사면이 굳게 앉아 물러가지 않으니, 세조가 말하기를,
비밀한 청이 있으니, 너희들은 물러가라.”
하였으나, 오히려 멀리 피하지 않았다. 세조가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또 청을 드리는 편지가 있습니다.”
하고, 종자(從者)를 불러 가져오게 하였다. 양정이 미처 나오기 전에 세조가 임어을운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 편지 한 통이 어디 갔느냐?”
하였다. 지부(知部)의 것을 바치니 김종서가 편지를 받아 물러서서 달에 비춰 보는데, 세조가 재촉하니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쳐서 땅에 쓰러뜨렸다. 김승규가 놀라서 그 위에 엎드리니, 양정이 칼을 뽑아 쳤다.

[이 대목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수양의 옆에 있던 무사래봐야 4~5명 남짓. 장소는 김종서의 홈. 이미 아들 김승규와 30여명의 기병이 지키고 있던 상황. 측근들은 '할 얘기가 있으니 멀리 가라'는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테러가 가능했다는 것일까요. 김종서의 방심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방심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첨가합니다.]

하여금 말고삐를 흔들게 하여 돌아와서 돈의문에 들어가, 권언 등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이날 김종서가 역사(力士)를 모아 음식을 먹이고 병기를 정돈하다가 세조가 이르니, 사람을 시켜 담 위에서 엿보게 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적으면 나아가 접하고, 많으면 쏘라.”
하였다. 엿보는 자가 말하기를,
“적습니다.”
하니, 김종서가 오히려 두어 자루 칼을 뽑아 벽 사이에 걸어 놓고 나왔다.

[수양대군 일행의 수가 적다는 말에 오히려 방심해서 당했다는 이야기. 다음 부분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해치려 떠난 뒤, 후원에 남아 불안에 떠는 무사들과 그들을 안정시키는 권남의 역할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참 생생합니다.]

처음에 세조가 김종서의 집에 갈 때에 무사들을 저사(邸舍)에 가두게 하고 나왔다. 여러 사람이 오히려 떠들어대며 다투어 튀어나오려고 하자, 권남(權擥)이 문에 서서 막으니, 혹은 말하기를,

“먼저 아뢰지 않고 임의로 대신을 베는 것이 가합니까? 장차 우리들을 어느 땅에 두려고 합니까?”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용렬하지마는 대군(大君)은 고명하니, 익히 계획하였을 것이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일을 만일 이루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혼자 살겠는가? 장부는 다만 마땅히 순(順)을 취하고 역(逆)을 버리고, 종사를 위하여 공을 세워 공명을 취할 것이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어째서 우리들에게 미리 일러 활과 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다만 빈 주먹이니 어찌합니까?”
하니, 권남이 말하기를,
“만일 격투할 일이 있으면 비록 그대들 수십 인이 병기를 갖추었더라도 어찌 족히 쓰겠는가? 그대들은 근심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만약 병력 대결로 간다면 팔도의 병권을 장악한 김종서에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수양과 측근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은 단신으로 대담한 암습을 감행했던 것이죠.]

하였다. 한명회(韓明澮)가 세조를 따라 성문(城門)에 이르렀다가 돌아와서, 또 세조의 명령을 반복하여 고해 이르고, 세조가 돌아오는 것을 머물러 기다리게 하였다. 권남이 달려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洪達孫)을 보고 세조가 이미 김종서의 집에 간 것을 비밀히 알리고, 순졸(巡卒)을 발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약속하고는, 또 두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숭례문(崇禮門)·서소문(西小門) 두 문을 닫게 하였다. 권남은 스스로 갑사 두 사람, 총통위(銃筒衛) 열 사람을 거느리고 돈의문(敦義門)에 이르러 지키게 하고 명령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께서 일로 인하여 문 밖에 갔으니, 비록 종(鍾)소리가 다하더라도 문을 닫지 말고 기다리라.”
하고, 권언(權?)을 시켜 문을 감독하게 하였다.

[순청이란 야간 통행금지를 관장하던 기관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수양대군 휘하의 세력 외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었으니 일단 절반 이상의 성공입니다.]

장차 대군(大君)의 저사(邸舍)로 돌아가려 하여 미처 돌다리를 건너기 전에 성 안으로부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세조가 이르렀다. 웃으며 권남에게 이르기를,

“김종서(金宗瑞)·김승규(金承珪)를 이미 죽였다.”
하였다. 권남이 말하기를,
“여러 무사가 아직도 공의 저사에 있으니, 따라오게 할까요?”
하였다. 세조가 조금 멈추었다가 부르니 한명회가 거느리고 달려왔다. 세조가 순청(巡廳)에 이르러 홍달손을 시켜 순졸(巡卒)을 거느려 뒤에 따르게 하고, 시좌소(時坐所) 로 달려가서 권남을 시켜 입직(入直) 승지(承旨) 최항(崔恒)을 불러내었다.

세조가 손을 잡고 최항에게 이르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이양(李穰)·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원구(元矩)·조번(趙蕃)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당부(黨附)하고,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경성 부사(鏡城府使) 이경유(李耕?)·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조수량(趙遂良)·충청도 도관찰사(忠淸都都觀察使) 안완경(安完慶) 등과 연결하여 불궤(不軌)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여 형세가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다. 김연(金衍)·한숭(韓崧)이 또 주상의 곁에 있으므로 와서 아뢸 겨를이 없어서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金宗瑞) 부자를 베어 없애고 그 나머지 지당(至黨)을 지금 아뢰어 토벌하고자 한다.”
하고, 연하여 환관 전균(田畇)을 불러 말하기를,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이 안평 대군(安平大君)의 중한 뇌물을 받고 전하께서 어린 것을 경멸히 여기어 널리 당원(黨援)을 심어 놓고, 번진(藩鎭)과 교통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기를 꾀하여 화가 조석에 있어 형세가 궁하고 일이 급박한데 또 적당(賊黨)이 곁에 있으므로, 지금 부득이하여 예전 사람의 선발후문(先發後聞)의 일을 본받아 이미 김종서 부자를 잡아 죽였으나, 황보인 등이 아직도 있으므로 지금 처단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너는 속히 들어가 아뢰어라.”
하고, 또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기운을 돌리고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천천히 아뢰고 경동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도진무(都鎭撫)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김효성(金孝誠)이 입직(入直)하였는데, 세조가 그 아들 김처의(金處義)를 시켜 부르고, 또 입직한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계전(李季甸) 등을 불러 들이어 세조가 최항·김효성·이계전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 아뢰고, 황보인·이양·조곡관·좌찬성(左贊成) 한확(韓確)·좌참찬(左參贊) 허후(許?)·우참찬(右參贊) 이사철(李思哲)·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정인지(鄭麟趾)·도승지(都承旨) 박중손(朴仲孫) 등을 불렀다.

[양정, 유수 등 수양이 계유정난에 동원한 주요 인물들은 바로 내금위 소속입니다. 국왕의 친위부대인 내금위는 김종서의 손 밖에 있는 병력이었죠.]

세조는 처음에 궐문에 이르러 입직하는 내금위(內禁衛) 봉석주(奉石柱) 등으로 하여금 갑주(甲胄)를 갖추고 궁시(弓矢)를 띠고 남문 내정(內庭)에 늘어서서 간적(姦賊)을 방비하여 엿보게 하고, 또 입직하는 여러 곳의 별시위 갑사(別侍衛甲士)·총통위(銃筒衛) 등으로 하여금 둘러서서 홍달손(洪達孫)의 부서를 시위하게 하고, 여러 순군(巡軍)은 시좌소(時坐所)의 앞뒤 골목을 파수하여 차단하게 하고, 친히 순졸(巡卒) 수백 인을 거느려 남문 밖의 가회방(嘉會坊) 동구(洞口) 돌다리[石橋] 가에 주둔하고, 서쪽으로는 영응 대군(永膺大君) 집서쪽 동구에 이르고 동쪽으로 서운관(書雲觀) 고개에 이르기까지 좌우익(左右翼)을 나누어 사람의 출입을 절제하고, 또 돌다리로부터 남문까지 마병(馬兵)·보병(步兵)으로 문을 네 겹으로 만들고, 역사(力士) 함귀(咸貴)·박막동(朴莫同)·수산(壽山)·막동(莫同) 등으로 제3문을 지키게 하고, 영을 내리기를,

이 안이 심히 좁으니, 여러 재상으로서 들어오는 사람은 따라오는 사람을 제거하고 혼자 들어오도록 하라.” 하였다.

[한명회가 이미 생살부(生殺簿)-요즘은 살생부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는 듯 합니다-를 작성해 놓고, '살'쪽에 기록된 인물이 들어오면 가차없이 처단하게 했다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임금의 명으로 불러 옆에 따라오는 사람을 모두 떼어냈으니 꼼짝없이 죽을 밖에요.]

조극관(鳥克寬)·황보인(皇甫仁)·이양(李穰)이 제3문에 들어오니, 함귀 등이 철퇴로 때려 죽이고, 사람을 보내어 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조번(趙藩)·원구(元矩) 등을 죽이고, 삼군 진무(三軍鎭撫) 최사기(崔賜起)를 보내어 김연(金衍)을 그 집에서 죽이고, 삼군 진무 서조(徐遭)를 보내어 민신(閔伸)을 비석소(碑石所)에서 베고【이때에 민신은 현릉(顯陵)의 비석을 감독하고 있었다.】또 최사기(崔賜起)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신선경(愼先庚)을 보내어 군사 1백을 거느리고 용(瑢, 안평대군)을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서 잡아서 압송(押送)하여 강화(江華)에 두고, 세조가 손수 편지를 써서 그 뜻을 이르고, 또 시켜서 말하기를,

“네 죄가 커서 참으로 주살(誅殺)을 용서할 수 없으나, 다만 세종(世宗)·문종(文宗)께서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너를 용서하고 다스리지 않는다.”
하였다.

용(瑢)이 사자(使者)를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도 또한 스스로 죄가 있는 것을 안다. 이렇게 된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삼군 진무 나치정(羅致貞)이 군사를 거느리고 용(瑢)의 아들인 이우직(李友直)을 잡아 압령하여 강화에 두었다. 용(瑢)이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급히 그 종 영기(永奇)를 불러 옷을 벗어 입히고 비밀히 부탁하기를,
“네가 급히 가서 김 정승에게 때가 늦어진 실수를 말하여 주라.”
하였으니, 대개 김종서가 이미 주살된 것을 알지 못하고 다시 이루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이 실록이 이미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쓰인 거란 점을 생각하면 사실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실록은 권람 등이 이미 9월25일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를 감지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야겠죠. 과연 이런 음모가 존재했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

또 말하기를,

“일이 만일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석(河石)이 반드시 먼저 베임을 당할 것이니, 네가 꼭 뼈를 거두어 오라. 내가 다시 보고야 말겠다.”
하였다. 이우직(李友直)이 강화에 이르러 용에게 말하기를,
“제가 여쭙지 않았습니까?”
하니, 용(瑢)이 말하기를,
“부끄럽다. 할 말이 없다.”
하였다.

용(瑢)의 당(黨)에 대정(大丁)이란 자가 있어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집에 숨어 있었는데, 성씨(成氏)가 여복을 입히어 침병(寢屛) 뒤에 엎드려 있게 하였다. 잡기를 급박하게 하니, 성씨가 부득이하여 내보냈는데, 곧 베었다. 운성위(雲城尉) 박종우(朴從愚)가 문에 이르러 들어가지 못하고 말하기를,
“비록 부르시는 명령은 없으나 변고가 있음을 듣고 여기 와서 명을 기다립니다.”
하니, 세조가 불러 들였다. 우승지(右承旨) 권준(權?)·동부승지(同副承旨) 함우치(咸禹治)가 또한 오니, 세조가 권준만 불러 들이었다.

[눈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줄을 서게 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도 만나 주지를 않으면 참 난감하겠죠.ㅋ]

정인지(鄭麟趾)가 권남을 시켜 붓을 잡고 이계전·최항과 더불어 함께 교서(敎書)를 짓는데, 밤이 심히 추웠다. 노산군(魯山君)이 환관 엄자치(嚴自治)에게 명하여 내온(內?) ·내수(內羞)로 세조 이하 여러 재상을 먹이었다. 세조가 군사에게 술을 먹이도록 아뢰어 청하고, 또 아뢰어 용(瑢)의 당(黨)인 환관 한숭(韓崧)·사알(司謁) 황귀존(黃貴存)을 궐내에서 잡아 의금부(義禁府)에 넘기었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빌려옴. ㅋ)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명민(李命敏)도 또한 다시 깨어나서 들것에 실려 도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홍달손(洪達孫)에게 고하니 호군(護軍) 박제함(朴悌緘)을 보내어 베었다.

세조가 인하여 여러 적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려하여, 양정(楊汀)과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흥상(李興商)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고, 김종서를 찾아 김승벽의 처가에 이르러 군사가 들어가 잡으니, 김종서가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軒)을 가져오라.”
하니, 끌어내다가 베었다.

[이렇습니다. 김종서는 설마 수양대군이 나선다 해도 감히 선왕의 고명대신인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너무도 방심했던 겁니다. 자신의 수족들이 하룻밤 사이 다 참살당하고 있는 판에 도성 진입도 실패하고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요. 이렇듯 무기력하게 도성 부근의 사돈 집에 숨었다 잡힌다는 건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수양이 최측근과 거사를 결심한 것이 9월29일. 그런데 10월2일, 이미 황보인과 김종서에게 이 정보가 누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수양은 "저 우유부단한 것들이 손을 쓰는데 열흘은 걸릴테니 열흘 안으로만 손을 쓰면 된다"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역시 후세의 영웅전설 꾸미기였는지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한 강심장입니다
.]

김종서의 부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뒤에 저자 아이들이 난신(亂臣)의 머리를 만들어서 나희(儺戱)를 하며 부르기를,
“김종서 세력에 조극관 몰관(沒官)하네.”
하였다. 이날 밤에 달이 떨어지고, 하늘이 컴컴하여지자 유시(流矢)가 떨어졌다. 위사(衛士)가 놀라 고하니, 이계전(李季甸)이 두려워하여 나팔을 불기를 청하였다. 세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무엇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는가? 조용히 하여 진압하라.”
하였다. [10월10일의 실록 끝]


 

 


이렇게 해서 이틀에 걸친 살육이 끝났습니다. 조정을 가득 채웠던 김종서의 파벌, 안평대군의 사람들이 싸그리 제거된 것이죠.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듯 '계유정난=수양대군이 단군을 몰아낸 사건'은 결코 아닙니다. 계유정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계유정난 이후에도 단종의 치세는 2년 더 이어졌습니다. 안평대군도 귀양을 간 상태였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계유정난때 이미 단종과 안평대군의 운명은 결정돼 있었을까요. 물론 이때 세조의 심정이 어땠는가는 큰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살아 있는 한은 제아무리 세조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정국이 안정될 기회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주말, 김영호 수양대군이 어떤 카리스마를 발휘할 지 궁금합니다.

숨가쁜 계유정난의 틈바구니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기회가 없다는게 참 아쉽기도...^ 어쨌든 우리의 한모양도 시아버지를 도와 뭔가 하는 모습이 보일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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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는 JTBC 개국 전부터 가장 기대를 모은 콘텐트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시트콤 데뷔작이라는 점, 일찌기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극장판 '올드 미스 다이어리', 그리고 영화 '조선명탐정'을 만든 김석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시작. 국민 어머니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궁상 아줌마로 변신한 김혜자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함께 '청담동 살아요'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금요일 오후 8시대라는 만만찮은 시간대(MBC TV의 '하이킥' 3부와 일일드라마가 상당 부분 겹치죠)에 자리잡은 '청담동 살아요'는 힘든 싸움이지만 확실히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혹시 '청담동 살아요'를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 에피소드가 빠져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분들을 위한 '일단 가이드'입니다. 한번 보시면 헤어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중독성 경고는 생략합니다.






먼저 혜자. 

혜자네 식구가 청담동으로 오게 된 건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경기도 서평(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가상의 지명일 겁니다)의 단칸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혜자는 '서해안에서 낚시를 하던 이낙구씨가 해일 때문에 실종됐다'는 뉴스를 보자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사고무친인 '낙구오빠'는 청담동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서평에서도 살 길이 막막했던 터라 그 집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말만 청담동이지 사는 건 예전과 똑같은 혜자네 가족이지만, 혜자는 어찌어찌하다가 부잣집 마나님으로 오해를 받고, 상위 1%들만 드나든다는 글로리아 백화점^^ 문화센터의 VIP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클럽 멤버가 됩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실체를 감추기 위한 혜자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됩니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아 그렇지 혜자는 한방에 거주지를 옮기는 과단성도 있고, 엄청난 양의 만화 독서로 쌓은 교양(최근에 '귀신의 물방울'이란 만화 덕으로 와인 지식을 뽐내기도 했죠^), 가끔씩 알바로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도 갖춘 능력자입니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라도 '청담동 상류층 행세'를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한편, 혜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 온 국민이 바라마지 않는 '청담동 생활'이란게 얼마나 허영과 거품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청담동 살아요'의 진짜 주제는 이 쪽에 있는게 아닐까요.


 
보희(이보희)는 혜자의 유일한 여동생. 미모 덕분에 20대 초반 시절 영화배우로 딱 한 작품을 히트시킨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재벌 2세와 결혼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주사 때문에 결국 이혼당하고 혜자에게 얹혀 사는 신세가 됐습니다.

지금도 미모는 여전하지만 살아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은 전혀 없는 민폐의 화신입니다(혜자는 청담동으로 이사 오면서 보희를 버리고 오려고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 정회장이 신문이나 TV에 나올 때마다 속을 끓이고 술병이 도지고, 정회장이 집어 주는 5000만원짜리 수표는 땅바닥에 팽개칠 정도로 괜히 통만 커서 더욱 골치덩이입니다.



혜자의 딸 지은(오지은). 혜자의 딸이자 보희의 조카답게 미인이지만 설정상으론 약간 예쁜 정도의 얼굴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청담동의 VIP들만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됐고, 여기서 A급 킹카 상엽과 자꾸만 엮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바닥 생활을 탈출하려는 의지 때문에 청담동 생활이 지은에게는 행운이면서도 고통입니다. 자신이 꿈꾸는 생활이 바로 앞에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 거리에서 이방인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은 앞에 만화가게 백수 현우(현우)가 자꾸만 어슬렁거립니다.



외모, 집안, 실력, 모든 것을 갖춘 상엽(이상엽)은 지은이 꿈꾸는 생활로 지은을 데려다 줄 수 있는 티켓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뺀질뺀질하기 짝이 없고, 수시로 여자(그것도 자신과 어울려 손색이 없는 A급 미녀들만)를 바꿔친다는 게 문제죠. 지은은 어떻게든 작업을 해 보려 하지만, 바둑으로 쳐서 지은이 3급이라면 상엽은 5단쯤 됩니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지만 아주 멀리 가버리지도 않는, 아주 고통스러운 존재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 작품에서 상엽은 지은의 시선에서만 존재감을 갖습니다. 지은에게 탄탈로스의 고뇌를 안겨주기 위한(tantalize라는 동사가 이 신화에서 나왔죠^^) 존재인 겁니다. 

물론 언젠가는 상엽도 지은의 매력을 알아 볼 때가 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얼마전까지 '뿌리깊은나무'에서 학사 성삼문으로 나오던 꽃미남 현우. 늘 혜자네 만화가게에서 빈둥거리는 백수고, 직업을 물으면 '뮤지션'이라고 합니다. 잘생기긴 했지만 어딜 봐도 돈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애저녁에 지은의 작업 선상에서 제외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가 아예 혜자네 옥상의 콘테이너에서 살겠다고 들어오고, 지은은 현우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불안해합니다(네. 잘 생겼기 때문에 불안한거죠).

물론 웬만한 시청자들이면 눈치채셨겠지만 현우는 그냥 가난한 백수는 아닌 듯 합니다. 대체 현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앞으로 등장할 볼거리.



혜자의 남동생 우현(우현). 딱 한번 만화를 출간한 적 있는 만화가이며 역시 생활력은 없어 혜자에게 얹혀 삽니다. 혜자의 하숙생인 '인상 나쁜 3인조'의 맏이인 셈이죠.

역시 최근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방지 역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연기파 배우 우현답게 이 시트콤에서도 최강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다음주 쯤에는 이방지 패러디도 등장할 듯...?



혜자네 하숙생 상훈(오상훈). 역시 인상 나쁜 얼굴 때문에 뭘 해도 오해를 사고, 아이들은 눈 마주치면 우는 인물이지만 마음씨만큼은 비단결. 인상과는 거리가 먼 순박한 인물입니다.

악역 3인방의 막내. 본래 무술감독 출신으로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무인 역을 맡기 전까지 온갖 영화에서 건달 역의 조연으로 활약해온 배우입니다. 언젠가 '청담동 살아요'에서도 그의 액션을 볼 수 있게 될지도...



기러기 아빠인 성형외과 의사 무성(최무성). 송금할 양육비 때문에 혜자네 하숙생이 된 신세.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생활고와 엄청난 외모! 때문에 역시 정상적인 '청담동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의 동료 연쇄살인마^^역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잘 해내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입니다. 여기서도 가끔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때를 연상시키죠. 악역 3인방의 중심.



지은이 일하게 된 VIP 레스토랑의 셰프 정민(황정민). 해외 유학파인데다 영국 여왕과 절친(?)이고 요리 솜씨도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역시 '청담동에서 행세'하기엔 2% 부족합니다. 바로 외모.

하지만 실력과 자부심으로 꿋꿋하게 청담동 생활을 이어갑니다. 도도하고 까칠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속도 깊고 이해심도 뛰어납니다. 혜자와 지은의 실체를 가장 먼저 알게 되지만 함께 비밀을 덮어 주는 공범 역할을 자청합니다.



혜자가 오기 전부터 만화가게 건물 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던 5인조 청담불패의 기획사 사장 관우(조관우). 말은 사장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는 백수건달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먹는 라면을 빼앗아 먹기도 합니다.

'얼굴없는 가수'에서 '나는 가수다'를 통해 엔터테이너 기질을 보여준 조관우. 연기까지 보여주는 걸 보면 갑작스런 변신이 참 놀랍습니다.



관우가 키우는 5인조 '청담불패' 아이돌 준비생. 좁은 방 안에서 몸을 공처럼 감고 자고, 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꿈을 안고 있습니다. 가끔씩 들려주는 아카펠라 실력은 '청담동 살아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늘 입고 나오는 의상이 항상 똑같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실제로도 연습생인 이들은 곧 비스트와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할 예정입니다. 그때도 이름이 청담불패일지는...ㅋ



혜자의 어린 시절 서평여고 동창생 승현(서승현). 왕년엔 여고 짱의 주먹 실력을 뽐냈지만 시집을 잘 간 덕분에 청담동 사모님이 되어 있고, 혜자와 문학 클럽에서 마주쳐 혜자를 긴장시킵니다.

혜자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가장 경계하는 인물 1호. 혜자와는 별 나쁜 감정이 없지만 보희와는 어렸을때부터 앙숙입니다.

 


이낙구씨가 키우던 개 개똥이. 옥상 콘테이너 박스 옆에 살고 있는데, 본래 주인이 현우였다는 게 얼마전에 밝혀졌습니다. 현우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개.



가끔 김혜자 선생의 연기를 볼 때마다, 표정의 '천연덕스러움'이 참 코믹한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청담동 살아요'에서는 그런 '천연덕스러움'이 활짝 피어납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곳 청담동. 그 욕망의 무대에서 '나야말로 바로 청담동의 주인'이라고 자부할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잘 나가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 속에 티끝만한 불안감이나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들이야말로 더 큰 가식과 위선으로 행여 상처받을지 모르는 본체를 똘똘 감아 보호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청담동 살아요'는 그 핵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총 200회로 기획된 '청담동 살아요', 이제 딱 10%가 지나갔습니다. 당연히 새해부터는 더욱 확장된 혜자 가족의 이야기가 진행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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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송된 '빠담빠담' 5회가 제 날짜에 방송이 나가느냐 마느냐는 상당히 논란거리였습니다. JTBC 개국 이후 맞는 최대 사건(아마도 올해 대한민국 10대 사건 중 당당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사건) 때문이었죠. 하지만 하루 종일 뉴스 속보를 방송하던 중에도 '빠담빠담'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방송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팍팍한 뉴스에 시달리던 분들은 충분히 위안을 얻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빠담빠담'은 꿈과 현실 사이를 구분하기 힘들게 했던 초반을 지나,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강칠(정우성)과 국수(김범)가 강칠의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강칠의 어머니(나문희)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강칠은 수의사 지나(한지민)와 잇단 인연 끝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강칠이 간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국수는 일단 강칠의 아들 정(최태준)을 통영으로 데리고 내려옵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던 강칠과 지나, 마침내 서울 여행을 통해 충격적인 엔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죠.



물론 이날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 키스신이었지만, 최고의 대사는 전반부에 강칠에게서 나왔습니다. 16년 전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이 여전히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강칠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대가를 받는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지 국수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지나의 호의로 함께 떠나 온 서울 여행,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난생 처음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며 행복에 빠진 강칠은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내 인생을 보상받으면 얼마나 될까요? .... 당신같이 괜찮은 여자를 만나도 사귀자고 말을 못하고.... 이걸 보상받으려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누가 봐도 고백이지만 지나는 슬쩍 눙쳐 버리고, 둘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강칠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두 가지 과거의 두려움을 떠올리죠.



강칠을 체포해 감옥으로 보낸 형사가 바로 지나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강칠이 죽인 동급생이 바로 지나 아버지의 동생이라는 것. 두 가지 과거가 강칠의 눈 앞을 스쳐 갑니다.

물론 강칠이나 지나나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죠. 그리고 강칠은 또 지나가 속옷을 사서 포장해 보내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오래 전 자신을 면회 오고 자신에게 속옷을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 지나의 죽은 어머니라는 것 역시 모릅니다.




그리고 전철 안. 흔히 남녀 사이에서 키스의 전주곡으로 통하는 '어색한 거리'가 연출됩니다. 뭐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 안이기 때문에 실제로 맞닿지는 않지만....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잡고 달리는 두 사람. 마침내 가까스로 기차에 오르고, 난생 처음 겪어 본 스릴에 웃고 있는 지나를 바라보다 강칠은 용기를 냅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번 파란이 시작되려는.


강칠의 '인생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문득 고전 영화 '빠삐용'의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빠삐용(스티브 맥퀸)은 꿈 속에서 사막을 걷고 있습니다. 모래 언덕 건너편에는 판관들이 서 있죠. 그들은 빠삐용에게 "너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묻습니다. 누명을 쓴 빠삐용은 외치죠. "나는 무죄다!" 하지만 판관들은 냉정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너는 유죄다."

이유를 묻는 빠삐용. 판관들은 말합니다. "너의 죄는 살인이 아니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이 말에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습니다. "...유죄 맞습니다."

 



        (역시 인터넷엔 없는게 없군요. 마침 딱 그 장면의 캡처가 있습니다. ㅋ)

빠삐용이 스스로 낭비한 인생의 값을 치르기 위해 멀리 남미의 유형지에 와 있는 것이라면, 강칠은 타의에 의해 빼앗긴 인생의 값을 뒤늦게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었을 뿐,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두 작품의 메시지는 같습니다. 타의에 의해 갇혀 있는 것도 아닌 당신들(바로 TV를 보고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은 인생을,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낭비하지 않고 쓰고 있느냐는 질문이죠.


한때 강칠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국수는 강칠이 계속 꿈꾸는 '사형당하는 꿈'에 대해 "출감 후의 삶이 두렵고, 밖에 나가 적응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그냥 여기서 다 포기하고 죽고 싶기 때문에 꾸는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살려고 좀 해 봐 이 바보야!"라고 외치죠.

강칠이 감히 지나에게 키스할 수 있었다는 건 강칠이 마침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강렬한 의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들 자신만 모르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이게 그리 쉽지는 않겠죠. 과연 강칠은 아들의 간을 이식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삶을 마감하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과연 이번엔 해피엔딩이 가능할지.



P.S. 계단 올라가기를 힘들어하는 지나의 모습은 죽은 어머니로부터 심장질환을 물려받았다는 암시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너무 환자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ㅋ. 아무튼 20일 밤 9시에 6회가 방송됩니다.

5회 다시보기는 이쪽.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13&menu_id=PM1001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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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JTBC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의 컨셉트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소녀시대에게 다섯 명의 비행청소년들을 데려오고, 아홉 멤버가 다섯 소년들의 멘토가 되어 바른 길(?)로 이끌어 준다는 거였죠.

별별 생각이 다 오갔습니다. ...과연 선도가 될까. 어쨌든 소녀시대 멤버들이 모두 다 주위에서 말하는 속칭 '범생이'는 아니었을텐데(물론 서현양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과연 멘토 역할을 할 자격은 될까. 한 단계 더 나가서, 전국의 청소년들이 '나도 소녀시대 누나들을 만나고 싶다'며 집단적으로 "비뚤어질테다"를 외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첫회가 방송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신생 방송사의 여러 가지 여건상 '내부자'들도 방송이 나가기 전 콘텐트를 요모조모 뜯어 보면서 꼼꼼히 검토할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분 부분 보는 것과, 전편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더군요.



방송이 나가기 전, 실시간 검색을 통해 소녀시대 팬들...로 추정되는 분들의 반응을 슬쩍 살펴봤습니다. 대략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1번 그룹은 '방송 정말 기다려진다'에서 '어떻게 하면 나도 위험한 소년으로 선발될 수 있느냐'까지,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편입니다. 'SM 앞에 가서 옷벗고 막 난동부리면 뽑힐 수 있냐'는 의견도 있더군요.^^ 

두번째는 '이따위 프로그램 확 망해버려라' 그룹입니다. '종편 망해라' 그룹은 아니고, '어떻게 우리 누나들을 그따위 놈들과 붙여 놓을 수 있느냐'는 쪽입니다. 소녀시대에 대한 사랑이 질투로 변하면서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놈들과 보낼 시간이 있으면 팬미팅을 하지!'라는 절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소년들일까요.


황용현. 전형적인 '뺀질이'입니다. 예고편에서 '놀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국회의원이 장래 희망이라고 말한 그 친구입니다.

그저 노는데 정신이 없고, 늘 지능적인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나려 합니다. 곱상하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술 담배는 기본이고, 술을 마시고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려 구치소에도 다녀온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언변과 지능이 우수하고, 사교적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진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 타입으로 보입니다.

윤아/효연 담당.


박경규. 부산 출신이고 현재 학교를 자퇴한 상태. 폭행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고, 가출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쉼터에서 픽업됐습니다.

결손가정에서 생활하고 있고, 스스로도 순간적인 폭력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충동조절장애 - 이건 흔히 말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받아야 하는 병입니다 -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영/티파니 담당.



김회훈. 경남 거창 출신. 가장 의욕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타입. 뭘 하고 싶다기보다는 만사가 귀찮아 보입니다. 목표는 군대 다녀와서 '자는 것'.

욕을 많이 하는 건 혼자만의 특징이 아니고, 아직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습니다. 안경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이미지가 퍽 다릅니다.

서현/태연 담당.


구지수. 이렇게 찍어 놓고 보니 신장이 꽤 작군요.^ 광주 출신으로 가장 쿨해(?) 보이는 타입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나름의 논리가 있고, 말수가 적어 허점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죠.

특히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기 때문에, 어른이든 아이든 이런 친구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애어른이라고 할까요. 가수를 꿈꾼 적이 있고, 노래 실력도 꽤 있어 보입니다.

유리/제시카 담당.


김성환. 나이도 가장 어리고, 1m86의 신장에 꽃미남 풍의 얼굴을 갖췄습니다. 힙합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하지 않을 뿐, 이미 '비행'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본 '형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속단해선 안될 듯. 앞으로 지켜보다 보면 의외로 주위와 잘 섞이지 못하는 문제를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써니 담당(9를 5로 나누면 누군가는 단독 담당일 수밖에...)

어쨌든 프로그램은 이들 소년들의 평소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음주, 흡연, 욕설은 기본입니다.

학교에서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교사들도 어떻게 제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말로 달랠 뿐입니다. 아이들도 전혀 교사나 교실의 권위를 인식하지 않습니다.






아마 대다수 시청자들의 느낌도 소녀시대 멤버들의 반응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다섯 소년보다 그 현장의 '분위기'가 정말 더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다섯 소년이지만, 소녀시대 멤버들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하긴 누군들, 그가 대한민국의 17~19세 청년이라면, 느닷없이 소녀시대 멤버들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 때 이런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송에서 나온 대로 이들 앞에 소시 멤버들이 등장한다는 건 절대 비밀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소년들에게 소녀시대가 상담자 역할을 한다면, '선도'가 효과적일 것임은 달리 의심할 필요가 없겠죠. 그건 전문가 의견과도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분 또한 소녀시대에 빠지지 않는 미인이더군요.

박소장님의 조언에 따라 소녀시대 멤버들은 이 다섯 소년을 훈련시켜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 출전시키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 소년들은 합숙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터져나올 듯 합니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선, 당최 제재라는 것을 받지 않고 자란 다섯 혈기황성한 소년들이 어떻게 적응해 갈지...가 볼거리인 거죠.


과연 이것이 진정한 '선도'로 인정받게 될지, 다섯 소년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될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특성상 결과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방송에 노출된다는 사실 자체가 다섯 소년들의 인생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비록 이런 우려는 있지만, 이미 첫회를 통해 한국 청소년들이 접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그 존재 가치를 절반은 입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은 누군가로부터의 따뜻한 관심, 게다가 그 '누군가'가 평생 한번 만나볼까 말까 할 '여신들'이라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도 있을 거라고 턱없이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첫회에서 보여준 진지함이라면(물론 진지하다고 재미가 없을 수는 없더군요. 특히 진지할수록 더 코믹해 지는 서현 같은 친구도 있으니...^), 저희 채널이 부끄러움 없이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년들' - 학교에서 교사들은 '차라리 수업시간에 조용히 잠이나 자 주길' 바라고, 우등생들은 '그저 내 석차가 유지될 수 있게 알아서 밑밥을 깔아 주는' 존재로 여기는 그런 소년들 말입니다 -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일정 부분이라도 기여한다면, 이런 예능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지금의 이 나라에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7시30분(대략 '1박2일'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1회는 이쪽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25&menu_id=PM10010236

p.s. 물론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좋은 교본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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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들의 무식함'이 소재로 동원되곤 합니다. 일찌기 '무한도전'에서 여섯 멤버들은 지식, 체력, 순발력 등에서 대한민국 최저 수준임을 표방(물론 재력에서는 절대 아니지만^^)해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1박2일' 역시 마찬가지. 수시로 등장하는 퀴즈 코너를 통해 멤버들의 지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했죠.

물론 실제로 연예인이 무식하냐, 아니면 방송용 연출이냐를 떠나 이런 설정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았던 듯 합니다. TV에 나와 수억원을 버는 연예인들이, 어린 시청자들조차도 '뭐야, 저런건 나도 아는 건데'라고 말할 만한 문제를 틀릴 때, 사람들은 묘한 우월감과 함께 쾌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사실 연예인 개개인에게도 이런 '캐릭터 구축'은 매우 유효합니다. 잘생기고 고교시절 전교 회장까지 했다는 이승기가 어설프게 문제를 틀릴 때, 그렇게 해서 생긴 '허당' 이미지는 너무 모든걸 다 갖춰 자칫 얄미울 수도 있는 이승기를 국민 남동생으로 키워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JTBC의 금요일 새 예능, '아이돌 시사회'는 이런 기존의 프로그램들과는 좀 다릅니다. 사실 그동안 TV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머리 빈'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과 친숙함을 쌓아 왔다고 할 수 있죠(지금은 여신들이 되어 있는 소녀시대도 데뷔초에는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엄청난 오답을 대고 '어 왜 답이 아니에요?' 라며 배실배실 웃고 있었습니다). 방송가에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시청자는 자신들보다 똑똑하게 보이는 연예인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돌이 나오는 시사 퀴즈쇼'를 표방하는 '아이돌 시사회'는 아이돌 멤버들이 기를 쓰고 서로 정답을 맞추기 위해 나서는 프로그램입니다. 예능인들이다 보니 '방송 분량'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보니 한번 경쟁심에 불이 붙으면 무섭게 달려드는 것 역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특징이죠.

(물론 호승심이 바로 실력으로 이어지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겁니다. 의욕만 앞서고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정말 폭소를 자아내는 아귀다툼이 벌어집니다.)


사실 - 제가 내부자이다 보니 - 이 프로그램의 컨셉트를 들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MC는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역시 그 MC를 기용하더군요.

바로 김구라입니다.


지상파 데뷔 초기, '면죄부' 문제로 논란이 일었던 김구라는 거친 막말 진행으로 한동안 비판 여론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그 공격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 나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그냥 거칠기만 했다면 김구라 스타일은 애시당초 지상파에서 퇴출됐을 겁니다. 하지만 김구라의 공격성에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시원하다'고 표현할 요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나 같으면 저기서 당연히 저런 걸 물어 볼텐데' 라든가 출연자가 좀 심하게 가식적이거나 상투적인 대답을 할 때 '또 저딴 소리야?'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죠. 이런 경우 시청자의 마음속에 떠오른 저런 생각을, 아주 적나라하게 던져 주는 역할은 대개 김구라가 맡았습니다.

물론 김구라의 재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면박을 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시스타 효린이 '눈치없이' 나오자 마자 문제를 맞췄을 때) "'붕어빵'에선 여덞살 짜리도 문제를 돌릴 줄 아는데, 이건 뭐 초짜들을 데리고 하려니..."  같은 멘트가 적재적소에서 터집니다.

이번 '아이돌 시사회'에서도 김구라는 아이돌 멤버들의 비위를 맞춘다든가, 방송을 품위있게 보이게 한다든가 하는 쪽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단 한수 위의 지적 능력과 입심으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쪽을 택했죠.

그런데 걸그룹 시스타를 비롯한 첫회 출연자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첫회 방송 내내 김구라는 '어라? 제법인걸?'하는 표정을 더 자주 짓게 됐습니다. (물론 원래 웃기는 것이 직업인 김태현, 김영철이나 아예 '백지 캐릭터'로 방향을 굳힌 해금이는 제외...)

사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과연 아이돌은 박원순 시장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만약 모른다면 '어른들'은 혀를 찰 일이죠. 그런데 아이돌 멤버들의 눈에는 박원순 시장과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사례 하나. '배우 리처드 기어의 얼굴을 맞히라'는 문제인데, 일단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의 이름에 출연자들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아니 어떻게 리처드 기어를 몰라?'하고 혀를 차실 겁니다. 하지만 충분히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저 자신부터 '아니 어떻게 리처드 기어를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어 저희 부서의 신입사원 후배를 불렀습니다. 참고로 1986년생, 서울대 졸업반입니다.

나: 너 혹시 앤서니 퀸이라는 배우 아냐?
그: 아뇨, 모르겠는데요.
나: 안소니 퀸이라고 하면 아냐? 혹시 그런 배우가 있다는 건 아니?
그: ...전혀 들어본 적 없는데요.
나: 그럼 혹시 아랑 드롱은 아니?
그: ....아뇨.

이런 상황이라면, 1990년대생 아이돌 멤버들이 리처드 기어를 모른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뭐 직접 관련은 없을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초반생인 다른 후배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나: (신작과 고전 영화에 대해 대화 도중)...그래도 고전 영화들은 다시 보면 재미있지 않냐?
후: (무시하지 말라는듯) 저도 옛날 영화 좋아해요.
나: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
후: 아녜요. 저 요새도 옛날 영화 TV에 나오면 계속 보고 그래요.
나: 그래? 그런데 네가 말하는 옛날 영화 중에서 '제일 오래된 옛날 영화'는 뭐냐?
후: (당당하게) 백투더퓨처요.

참고로 '백 투 더 퓨처' 1편은 1985년작입니다. 뭐 저 후배들에게 공감하실 분들이 당연히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사실 이날 방송을 통해 시스타의 다솜에 대해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예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날 성적으로 봐선 대단히 지적이고 또렷한 면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디 가서 '아이돌 계의 브레인'으로 대접받을 만 하다는 느낌입니다. (네. 다솜은 박원순 시장도 알고, 공지영 작가도 알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재주있는 아이돌들과 김구라가 만났을 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신생 채널의 신생 프로그램이라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좀 더 입소문을 타고 나면 저희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을 듯 합니다.

첫회를 못 보신 분은 이쪽 다시 보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공짭니다.
http://home.jtbc.co.kr/Vod/Vod.aspx?prog_id=PR10010019&menu_id=PM10010033


(이날 가장 웃겼던, 김영철이 분노했던 장면.) 개그맨 김영철과도 한참 세대차가 나는 아이들. 김영철과 심현섭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이 프로그램이 세대간의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과 자녀들이 '야, 니들은 정말 저런 것도 몰라?' '아빠는 그럼 %%% 알아요?' 하는 대화를 나누며 격차를 좁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군요.


P.S. 본방은 금요일 밤이지만 일요일 오후 1시10분에 재방송도 한다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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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JTBC '상류사회'가 처음으로 전파를 탔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더라'는 반응이 꽤 많았고, '첫회라 그런지 썰렁하더라'는 반응도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이만한 반응도 저희로서는 감지덕지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아무리 이수근 김병만이 나오고, '1박2일'의 이동희 PD가 연출자라 해도 처음 개국한 방송사, 마땅한 홍보 경로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첫회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까 하는 것은 참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짓을 하든 최소 5%의 시청률은 보장하고 들어가는 지상파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의 '무모한 도전'과 '1박2일'이 과연 얼마나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게다가 '상류사회'의 첫 방송 시간은 토요일 오후 7시30분. 지상파의 강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토요일의 핵심 시간대입니다. 이 시간에 겁없이 뛰어든 '상류사회'가 첫 방송으로 이만한 반응을 얻었다는 건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상류사회'는 '골방 버라이어티'입니다. 그냥 장난 반으로 '펜트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공간(뭐 겉에서 보기엔 그럴싸합니다)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절반으로 나눠 한 방은 이수근, 다른 한 방은 김병만이 거주합니다.

이 두 명의 거주자에게 시청자들이 보낸 택배가 도착합니다. 이 물건들을 하나 하나 까 보면서 벌이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상류사회'의 컨셉트인 겁니다.




보기엔 그럴싸하게 생긴 펜트하우스가 지어 진 곳은 여의도 인근, 영등포의 한 건물 옥상입니다. 촬영 내내 벗고 있는 두 출연자를 보면 아시겠지만 난방은 무척 잘 된다고 하는군요.^^ 물론 상류사회에 걸맞는 각종 편의시설...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일본의 예능성 다큐멘터리(혹은 다큐성 예능) 가운데, 일정 기간 동안 한 사람이 신문이며 방송의 상품 응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트의 쿠폰 응모건, 각 기업의 신제품 이름 짓기 공모건 닥치는 대로 응모해서 상품을 얼마나 타낼 수 있느냐 하는 거였죠. 리얼리티의 나라 일본답게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몇달 동안 빈 아파트에서 감금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고, 요즘은 집안에 앉아 전화 한통 걸지 않고도 온갖 생활용품을 구입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들에겐 최적의 환경인 셈이죠. 

어쩌면 '상류사회'는 그런 시대에 대한 패러디인 듯도 합니다. 집 밖으로 머리를 내밀지 않아도 온갖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 때로는 명품과 사치품도 직접 구매하러 나가지 않는 시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편리하고 발달했지만 여전히 그게 서민의 삶으로 느껴지는 시대.

이런 세상일수록 '진짜 상류사회'는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세트에서 샛강 건너 보이는 고층빌딩군의 불빛처럼 말입니다. 두 주인공이 거의 원시 상태의 알몸으로 출연하는 것 역시 현대 사회의 본질에 대한 풍자를 느끼게 하죠.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제목이 바로 '상류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택배로 물품을 보내 준 시청자 중 1등을 뽑아 매주 100만원씩을 '품위유지비'라는 명목으로 시상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비싼 물건을 보내 주신 분들 위주로 드린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디 프로그램이 유지되겠습니까.^^

처음 이 프로그램을 구상하던 제작진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글쎄요, 작은 회사들이 신제품을 보내 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일은 설마 없겠지만 혹시라도 장난으로 위험한 물건을 보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택배 물품에 대한 사전 점검은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도 소개됐지만 X레이 검사와 안전도 체크는 기본입니다.

택배를 보내실 때 '이수근 앞', '김병만 앞'이라고 따로 따로 보낼 수도 있고, 별도 표시 없이 경쟁을 통해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그 경쟁 방법까지 시청자가 지명해서 보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다 보면 명품 스타킹을 선물받게 되기도 하고...^^

사실 첫회이다보니 택배 물품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이었지만 앞으로 이 부분은 금세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각각 자신의 방에서 벌인 100M 경주였습니다. 워낙 작은 방이라 20바퀴를 돌아야 100미터가 나온다는 미니 트랙(^^). 물론 금을 밟아도, 벽을 짚어도 실격패인 엄격한 규정 때문에 뛰는 자세도 각이 안 나옵니다.

'1박2일'에서 주로 비오는 날 많이 시도됐던 '방안 게임', 그 진수를 앞으로 '싱류사회'에서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그 방 안에서 대체 둘이 뭘 하고 70분을 보낼까' 했는데 그건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참 할게 많더군요. ㅋ





이렇게 길게 써 놨지만 핵심은 하나. '상류사회'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1661-3645로 전화하시면 됩니다.

반복하지만 결코 비싸고 화려한 물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정성이 담긴, 그리고 마음이 담긴 물건이 좋은 방송을 만들어 낼 겁니다.


참 의상비 안 드는 방송, '상류사회'.

P.S. 이미 도착한 물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물건이 있던데... 과연 그게 저 방 안에선 무슨 용도로 쓰일지...(들어가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류사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저도 궁금하군요. 

P.S.2. '상류사회' 1회는 JTBC홈페이지(www.jtbc.co.kr)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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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남들이 만드는 드라마, 영화 방송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런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 뭐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뭐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곧 방송국을 오픈할 주제에 남들 작품 갖고 왈가왈부하는 게 솔직히 불안했죠. 뚜껑 연 뒤에 "남의 것 갖고 그 난리를 치더니 참 대단한 물건들 만들어 놨다"는 비아냥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2월1일 JTBC가 개국을 하고, 하나 하나 준비한 물건들을 까 보는 과정에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 교양 '깜놀, 드림프로젝트', 그리고 예능 '칸타빌레'를 보면서 콘텐트의 질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 한편을 빼놓으면 말이 안 되겠죠. 바로 '노희경표 드라마', '빠담빠담'입니다.




JTBC 월화드라마 '빠담빠담'의 원제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입니다. 좀 길죠. 이 드라마는 16년 전 어울려 다니던 동년배 학생을 죽인 죄로 수감된 강칠(정우성)과 어찌 어찌 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수의사 지나(한지민)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100% 드라마 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강칠은 사건의 진범이 아니고, 강칠의 손에 피묻은 칼을 쥐어 준 진범은 현재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대법관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첫회부터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마주치는 강칠과 지나 사이에는 끈끈한 인연이 숨어 있습니다. 강칠이 죽인 것으로 오해를 산 학생은 지나의 삼촌, 그러니까 형사인 지나 아버지의 나이 차이 나는 동생이었던 겁니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싸움질이나 하다가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지나 아버지는 강칠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살인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나 어머니는 강칠이 진범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면회를 다니며 강칠의 구명 운동을 펴고, 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이때문에 지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죠.

참 난마처럼 얽인 관계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갈등 구조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빠담빠담'을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드라마를 풀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꿈'과 '현실'의 교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스로 천사라고 주장하는 국수(김범)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의 궁금증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국수가 진짜 천사인가, 아니면 자기가 천사라고 믿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연 이 드라마가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가, 아니면 강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는 결코 무관하지 않죠. 제가 이 글의 제목에 '인셉션'을 끌어들인 것도 이 질문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 내부자(?)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보다 별로 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모두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절대 회사나 제작진의 의견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흑백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대는 남북전쟁기의 미국. 한 남군 포로가 북군에게 체포돼 다리 위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줄이 끊어지고, 그 포로는 강물 속 깊이 빠집니다.

다리 위의 적군이 총을 쏘지만 포로는 요행히 총을 피해 내고, 들판을 달려 집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그리던 고향 집이 눈에 보이고, 예쁜 아내가 환히 미소지으며 포로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가 아내와 손을 맞잡는 순간,

목줄이 조여지고, 포로의 다리가 축 늘어집니다. 그러니까 고향 집과 행운의 탈주는 모두 이 포로가 목이 졸리고 숨이 끊기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 동안 꾼 아름다운 꿈이었던 것이죠. 어찌 보면 삼국유사의 조신지몽과 비교할 수 있는, 인생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수작입니다.

(뭐 대략 짐작도 하실 수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결말은 감춰 두었습니다. 마우스로 위의 흰 부분을 긁으시면 답이 보입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 단편 영화는 로버트 엔리코(Robert Enrico)의 1962년작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입니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상 단편 부문을 휩쓴 유명한 작품이고, 저 결말은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단편 영화 치고는 24분 가량으로 좀 길지만, 한번 보실만한 수작입니다.

굳이 이 영화 얘기를 왜 꺼냈는지 이해 못할 분은 안 계시겠죠.^^



1, 2부에 걸쳐 강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석방 직전의 갈등 - 싸움 - 김교위의 갑작스런 죽음 - 교수형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귀휴-아들과의 만남-지나의 차에 의한 교통사고 - 병원에서의 깨어남 역시 반복됩니다.

두 사건의 흐름은 정상적이라면 귀휴 - 교통사고 - 병원에서 눈뜸 - 교도소로 귀환 - 싸움 - 교수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강칠은 교수형 이후 병원에서 눈이 뜨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싸움 장면을 경험하면서 국수에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라고 절규합니다. 마지막 순간, 김교위에게 향하던 주먹을 간신히 멈춰 정해진 사건을 중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의아해하게 됩니다. 과연 강칠에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의 사건이 미래를 내다보게 해 준 예지몽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현실이라면 왜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그냥 그대로 '국수가 천사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천사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개연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건 바보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은, 뒷부분을 '강칠의 꿈'으로 풀어 가는 해석입니다. 강칠은 김교위를 죽인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형이 집행되기 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후회를 수십번, 수천번은 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몸을 멈췄다면...'하는 간절한 소망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강칠에게는 수많은 상상들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출감하고, 출감해서 귀휴 때 만났던 그 예쁜 아가씨를 다시 만나고, 알고 보니 그 아가씨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속옷을 보내 주던 그 아주머니의 딸이고.... 간절함이 현실로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꿈은 꿈. 언젠가 꿈은 깨게 되어 있는 법. 그래서 어느 한 순간, 강칠은 다시 깨어납니다. 그 깨는 장소가 병원 침대 위일지, 감방 안일지,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장소일지는 알 수 없겠죠. 그리고 그 꿈을 깬 뒤의 결과가 해피엔딩일지 비극일지도....

만약 이렇게 진행된다면 참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노희경 같은 대 작가가, 저 따위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진행을 선택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빠담빠담'은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아직 18회나 남아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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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11번은 영구결번이 됐군요. 과연 이제 와서 구단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이 팬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최동원 잔혹사' 풍의 냄새를 풍기기는 합니다만, 최동원이 속해 있던 '70년대 야구'의 풍경을 바라볼 때 최동원의 혹사는 어찌 보면 거의 모든 투수들, 특히 에이스 급 투수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김경홍(가네다 마사이치. 한때 김정일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의 투구사를 보면 50~60년대 일본 프로야구 역시 '투수 혹사'라는 면에선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매년 투구 이닝이 300이닝이 넘고 '25승20패' '24승24패' 등의 연간 기록을 보다 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최동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것을 안 세대입니다.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일 수도 있겠죠.


순서대로: 1편은 이쪽입니다. http://5card.tistory.com/m/post/view/id/954


고교생 최동원이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관심사였듯 연세대 에이스이자 한국 최고 투수 최동원의 졸업 후 진로는 국민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국내 실업야구 사정상 최동원을 데려갈 수 있을만한 팀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은행팀이 아닌 기업 팀, 즉 롯데, 한국화장품, 포철 등이나 그만한 스카우트 비용을 낼 거라는 게 기정사실이었죠. 특히 롯데는 김동엽 감독에 의한 창단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세미 프로 냄새를 강하게 풍겼습니다. 부산 지역과의 끈끈한 연고 의식으로 박영길 감독을 비롯해 경남고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는 점 역시 최동원이 롯데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짙게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 입단도 만만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게 '최윤식씨'와 '선판규씨'는 스타플레이어나 감독 못잖은 유명인이었습니다. 당연히 두 분은 최동원과 선동렬, 두 국보급 투수의 아버지들이고 그만치 열성적으로 아들을 보살핀 분들입니다.


대학 이후 최동원의 진로에 대한 입장들은 대부분 최윤식씨의 입을 통해 알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주장들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대학 시절 구타 사건 뒤엔 "동아대로 전학시켜 달라. 맞아 가면서 연세대에서 운동을 시키지 않겠다", 대학 졸업반일 때에는 "롯데에 가지 않고 그냥 군 입대를 시키겠다", 81년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곤 "시리즈가 끝나면 은퇴시키겠다"는 등의 말들이 최윤식씨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당연히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억지였고 이런 주장들은 최동원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일생을 둔 동갑내기 라이벌 김시진은 포철과 입단 줄다리기를 하다가 이른 군입대를 선택, 경리단 소속이 됩니다. 포철이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지출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그 '거액'은 얼마쯤이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81년. 곡절 끝에 최동원은 "무려 3000만원의 계약금에" 아마추어 롯데자이언츠의 에이스가 됐습니다. 그해 롯데는 사실상 투수 최동원과 강만식을 스카우트하는 정도로 선수 보강을 마쳤습니다. 역시 이미 최강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기 방식상 여러 명의 투수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포철은 상당히 가난한 기업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과 당시의 물가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야겠죠.^^)

당시의 각 팀 전력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초기 프로야구를 휩쓴 스타들이 당시엔 어떤 팀 소속으로 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성인야구의 특성상 경리단과 성무, 두개의 군 팀이 가장 유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지난번 글에서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1년 방식은 10개 팀이 4차례의 리그(전기 1,2차와 후기 1,2차)를 펼치는 것. 그래서 총 36게임을 치르게 됐고 롯데와 경리단이 각각 전,후기를 나눠 가져 코리언시리즈에서 맞붙었습니다.

관심이 가는 건 최동원의 등판입니다. 총 36경기 가운데 무려 30경기에 등판, 17승4패를 기록했습니다. 매일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지나치다 싶은데... 전기리그만 놓고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총 18경기에서 최동원이 13승1패를 기록한 겁니다. 전기 1,2차 리그를 합한 롯데의 성적은 18승2패.

이런 말이 안 되는 기록이 가능했던 건 당시의 진행 방식입니다. 일단 10팀이 풀리그를 벌이면 경기수는 총 45경기. 하루 3~4경기씩 약 2주에 걸쳐 대회가 진행됩니다. 매일 한 경기씩 완투하던 최동원에겐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대회 끝나면 또 몇달 푹 쉬지 뭐", 이런 식). 성인야구라고는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얘기했듯 30대 선수라곤 리그 전체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 한 젊은 리그에서 최동원을 막을 적수는 김시진 정도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전기 1,2차 리그를 휩쓴 롯데는 후기 리그에선 다소 부진합니다. 최동원이 지친 탓인지, 아니면 굳이 코리언시리즈를 없앨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후기 우승은 경리단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5판 3선승제의 코리언시리즈가 개막된 겁니다.

이 무렵,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같은해 9월, 결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는 AP 통신의 보도, 그리고 계약이 "사기계약이라 무산됐다"는 최윤식씨의 발표, 이어 왜 사기계약인지에 대한 해설 기사 등등이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한 1981년 9월24일자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좀 길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재합니다.

금테안경을 끼고 시속 1백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야구의 간판스타 최동원(23·롯데자이언츠)이 미국 프로야구 아메리컨리그 소속인 터론토 블루 제이즈팀과 입단계약을 맺었다는 23일의 AP통신 보도는 국내 야구계를 흥분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결론적으로 최동원의 캐나다 터론토에 프랜차이즈(전용구장)를 둔 블루 제이즈 입단은 현재 양측의 조건이 엇갈려 결렬상태에 있다고 최의 전권을 쥐고있는 부친 최윤식씨(52)가 23일 밝혔다.
<정부차원 타결모색>
그러나 최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블루제이즈 구단은 스카우트의 관건이 되는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의 고위인사가 오는 27일 방한하는 캐나다 「트뤼도」수상 일행과 함께 와 한국정부측에 비공식으로 요청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는 AP통신이 『블루제이즈측은 최의 병역문제를 28일 한국정부가 보류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농구 전 국가대표 김명자씨가 통역>
한편 최동원의 블루 제이즈 입단계약은 지난 15일 서울 플라자호텔 18층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고 부친 최씨가 말했다.
전 국가대표 여자 농구선수인 김명자씨(36)가 스카우터들이 와 14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롯데-성무와의 경기를 보고 15일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완투, 2-0으로 패했으나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잰 이들은 만족을 표시했다.
김명자씨의 남편인 미국인「프랭키·위키」씨(미8군 골프클럽지배인)는 터론토에 오래 거주한 일이 있어 블루제이즈측은 이들 부부를 통역으로 내세운 것이다.
열렬한 스포츠맨인「위키」씨는 『만일 내 한 팔을 잘라 내 아들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기꺼이 이를 해내겠다』고 극언할 정도로 흥분되어 이번 일에 성의를 다해 도와주었다는 최씨의 설명이다. 15일 밤 플라자호텔에서 블루제이즈 구단의 지난25년동안 스카우트요원으로 활약한 「엘리어트·웨일」인사담당관을 비롯, 「봅·주크」감독, 그리고 「웨인·모건」스카우터 등 3명을 혼자서 만난 최씨는 계약금 20만 달러(약1억4천 만원)에 연봉 20만 달러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메이저리그 규약상 신인에겐 첫해에 연봉 3만2천5백 달러(약2천2백75만원)이상을 줄 수 없으며 2년째부터 향후 4년 동안 총계 61만 달러(약4억2천7백만원)를 지급하는 조건의 계약서를 제시해왔다.
<깨알같은 계약서>
최씨는 약간 미심쩍기는 했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장장 7면에 걸친 계약서를 얼른 알 수도 없어 사인을 한 뒤 사본을 하나 얻어 돌아왔다. 그러나 최씨는 메이저리그 신인선수의 연봉 최하한선이 3만2천5백 달러라는 조항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계약에 따라선 이 이상 제한 없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씨가 사기계약을 했으므로 계약서를 파기하고 안하는 경우 출국정지를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당황한 이들은 계약은 무효로 하되 본사와의 관계로 계약서를 폐기할 수는 없다며 17일 떠났다. 최씨는 자기아들을 높이 평가하여 이역만리를 찾아온 손님들이어서 계약파기만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23일 느닷없이 외신으로 입단계약이 이루어졌다는 보도에 놀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동원은 최근 로스앤젤레스 다저즈 팀에서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는 경우엔 이 블루제이즈와의 계약이 불씨로 남게 됐는데 최씨도 이점은 시인하고 있다.
한편 최동원은 오는 28일 병역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블루제이즈 팀의 입단가능성이 남아있어 앞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면, 신인 연봉 상한선이라는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하한선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속인 데 항의해 계약무효를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루제이스 측은 최윤식씨가 서명한 계약서를 파기하지 않았고, 향후 몇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최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은퇴설이 아버지 최윤식씨에 의해 제기됩니다. 이런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최동원 측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별 실현 가능성 없는 '은퇴'같은 말이 나온 것은 좀 아쉽다고나 할까요.

○…한국야구의 간판투수인 최동원 (23·롯데) 을 둘러싸고 화제와 잡음이 꼬리를 물고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인 터론토 블루제이즈 입단여부로 화재를 뿌렸던 최동원이 이번에는 은퇴설이 나돌아 야구계를 아연케하고 있다. 연세대 진학과 지난해 롯데입단 때도 잦은 후문을 낳았던 최동원의 이번 은퇴설은 잡음의 극치를 이룬 느낌.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씨(51)는『잘하면 잘하는 대로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데도 조금만 잘못하면 탓하고 인기에 먹칠을 하는 현재의 국내야구풍토에서는 더 이상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다』면서『롯데를 떠나기 위해서라도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롯데­경리단의 코리언시리즈를 끝으로 은튀 시킬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해 롯데와의 심한 불화관계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최씨는 『외국에 나가는 길이 있으면 내보내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해 은퇴는 미국프로야구진출을 위한 연막으로 해석하는 야구인들이 많다.
이같은 최씨의 발언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둔데다 체육특기자의 병역혜택이 발표된·직후에 일어난 것이어서 야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약삭 빠른 태도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최동원과 함께 청주에 전지훈련중인 박영길 롯데감독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더구나 코리언시리즈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일어난 것이어서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뭏든 앞으로의 최동원의 진로가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있다.

네. 진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렇게 뒤숭숭한 가운데 코리언시리즈가 시작됩니다. 후기리그 들어 최동원이 부진 아닌 부진을 보인 결과 롯데가 후기 우승을 경리단에 내줬다는 점에서, 혹시 최동원이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에 따른 의욕 부진으로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건 기우였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이 메이저리그 진출 포기에 상응하는 다른 당근을 제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또 이해 하반기부터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 새롭게 의욕에 불을 질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81년의 최동원-김시진 시리즈를 84년 한국시리즈의 전초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필생의 동갑내기 라이벌과 맞붙어 6경기 전부를 등판하고 2승을 올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84년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3승1무2패로 롯데가 경리단을 꺾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거죠.

당시의 보도.

끈기의 롯데가 2년만에 실업야구 왕자자리에 복귀했다. 초반2연패를 기록했던 롯데는 31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코리언시리즈 6차전에서 7회초 9번 손상대의 천금같은 결승꼴로훔런으로 지난해 우승팀인 훈리단을 6-4로 물리치고 79년에 이어 2년만에우승을 되찾았다.
롯데는 월드시리즈에서의 로스앤젤레스다저즈가 2연패후 내리 4연승을 거두고 괘권을 안은 것처럼 초반 2연패 후. 3연승을 기록, 일대 역전승을 장식한것이다.
한편 롯데의 최동원은 최우수선수 (MVP)·최다승리투수 (17승4패) 그리고 신인투수상등 3관왕을, 이해창은 최고 수훈상을 각각 차지했다.
이날 롯데는 최동원을 6게임째 등판시켰고, 경리단은 권영호·김시진 (6회)을 계투시켜 숨가쁜 한판승부를 펼쳤다.


다만 이때 적인 경리단에 김시진과 권영호만 있었다면 84년에는 황금박쥐 김일융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틱하다고 할까요. 어쨌든 이 81년 시리즈가 '최동원의 전설'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당시를 사셨던 분들에게도 이 81년 시리즈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치 '실업야구'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아니었죠. 코리언 시리즈 기사가 신문 스포츠면의 톱도 아니고 2단 기사 정도로 처리됐으니 말입니다. 81년 한국 야구계의 가장 큰 스타는 이미 최동원이 아니라 박노준이었고, 이 해의 가장 큰 사건은 최동원의 성인야구 데뷔와 스윕이 아니라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박노준의 발목이 부러진 것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최동원이 우승을 했다 해도 '뭐 한국 야구는 원래 최동원인데...'하는 것이 일반 통념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최동원이 실업야구에 진출해 우승하지 못했다면 '최동원도 이제 한물 갔구나'하는 게 뉴스가 됐을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1981년 10월말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발표가 나자 이듬해인 82년부터 당장 리그 시작이 확정될 정도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82년 서울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릴 예정이라 83년에 개막한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도 당시의 '하면 된다' 분위기에서는 어림없었을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가 한국의 우승으로 끝났고, 선동렬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투수가 발굴됐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대표팀의 면면을 소개하는 선에서 마쳐야 할 듯 합니다. 감질나시겠지만 하나 더 써야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0일 오는 9월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잠실구장및 서울운동장·인천구장에서 열릴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23명을 최종확정하고 단장에 김상겸 부회장을 선임했다.
12월 선발한 국가대표상비군 28명중 그동안 국내성적과 대만전지훈련 (2월)결과를 토대로 윤학길 김정수(이상 연세대) 이상군(한양대) 김봉근(동국대) 김상기(인하대) 등 투수5명을 제외하고 포수및 내·외야수들은 그대로 선발, 오는 26일부터 영동유드호스텔에서 합동훈련에 들어가기로했다.
최종확정돤 대표선수를 보면 실업에서는 최동원 임호균 (이상한전) 김시진 장효조(이상경리단) 김재박 이해창 (이상한화) 등 11명이며 대학에서는 선동렬 박노준 김정수(이상고려대) 박영태 조성옥 김상훈 (이상동아대) 오영일 김진우(이상인하대)등 12명으로 구성, 대학과 실업, 노장과 신예가 조화를 이루고있다. 사상 처음 대회를 유치한 한국은 이번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고있으나 힘의 야구를 구사하고있는 쿠바·미국·일본등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올해 프로야구출범으로 경험있는 많은 유망선수들이 프로로 진출, 우승을 차지하는데는 다소 어두운 전망이다.
이번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1.1세에 평균신장 178.2cm, 타율2할8푼으로 되어있다.
한편 어우홍대표팀 감독(한전)은 『프로로 많은 선수를 빼앗겨 경험이 부족한것이 흠이지만 노련한 실업선수들과 패기의 대학선수들이 잘만 조화된다면 쿠바·미국등과 한번 겨뤄볼만하다』면서『14일동안 11게임을 치러야하기때문에 평균연령이 22.1세로 구성된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표팁명단
▲단강=김상겸 ▲총무=김진영(인하대감독) ▲감독=어우홍 ▲코치=배성서(한양대) 김 충 (상업은)▲투수=김시진 (23 189cm) 최동원 (25·179cm) 임호균 (26·l75cm·이상 한전) 선동렬(20·183cm) 박노준(21·178cm·이상 고려대) 오영일(22·185m·인하대) 박동수(22· 174cm·동아대) ▲포수=심재원(29·178cm·한화) 김진우(25·l88cm·인하대) 한문연(22·l73cm·동아대) ▲내야수=김상훈(23·180cm) 박영태(24·180cm·이상 동아대) 이석규(24·178cm ) 정구선(25·178cm·이상경리단)한대화(21·177cm·동국대) 김재박(28·174cm·한화) 이선웅(22·173cm·인하대)▲외야수=이해창 (29·180cm·한화) 장효조 (25·174cm·경리단) 박종훈 (23·176cm·상업은) 유두열 (27·172cm·한전) 조성옥 (22·176cm·동아대) 김정수(23·177cm·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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