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 8일 방송된 TOP4 대결에서 결국 강승윤이 탈락, TOP3는 존 박, 장재인, 허각으로 압축됐습니다. 초기에 많은 사람이 예측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TOP 11이 처음 발표됐을 때 TOP4, TOP3에 들 것으로 예측됐던 사람들 중 김지수 하나만 바뀐 셈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가하는 것은 그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느냐(다시 말해 잘 부르나 못 부르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지난 2주에 걸쳐 '어떻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하는 것임을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미션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미션을 잘 소화한 두 후보가 탈락 위기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슈퍼스타K'가 짧은 시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좋은 선생님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처음 시작할 땐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고, 이미 외국에서 여러 차례 검증된 시스템을 사실상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올해가 국내에선 두번째인 만큼 여러가지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날 미션도 마찬가지. 세 명의 심사위원이 남은 네 도전자를 나눠 갖고 자기 노래를 지도해 부르게 한다는 미션입니다. 이렇게 해서 장재인은 엄정화의 '초대'. 강승윤은 윤종신의 '본능적으로', 허각과 존 박은 각각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와 '잠도 오지 않는 밤에'를 불렀습니다.
물론 '잠도 오지 않는 밤에'는 엄밀히 말하면 이승철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없죠.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와 함께 1989년 이승철의 1집에 들어 있었지만 당시엔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작곡자인 박광현이 이듬해 자신의 앨범에 넣으면서 알려진 곡입니다. 김건모의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에도 삽입되면서 유명해졌죠.
(처음에 쓴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저는 이승철이 뒤늦게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곡자 박광현이 이승철에게 먼저 이 곡을 주고 나중에 자신이 다시 불러 자기 앨범에 수록한 것입니다. 공교롭게 이날 허각이 부른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도 박광현 작곡입니다.)
솔직히 말해 장재인과 존 박에겐 대딘히 불리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첫번째는 장재인. 엄정화의 노래 중에는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의 4강에서 부를만한 곡이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처음부터 대부분의 곡 자체가 가창력을 뽐내기보다는 춤과 노래를 함께 하기 위해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춤과 노래를 함께 할 때라야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노래들인데, 제아무리 장재인이라 한들 이런 노래를 그냥 서서 부른다면 그 결과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초대'는 매력적인 곡이지만 장재인과는 1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노래였고, 이날 장재인의 존재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존 박은 아마도 이승철이 녹음했던 노래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색깔과 맞는 곡을 골라 냈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블루스의 색채가 깊이 배 있는 곡입니다. 존 박은 그런 곡을 잘 소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과연 블루스를 들고 나오는 것이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좋은 전략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그건 다른 경쟁자들, 허각과 강승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각은 이승철의 대표적인 히트곡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 '제대로' 소화해냈습니다. 타고난 미성과 고음 처리 능력을 유감없이 뽐낼 수 있었습니다.
강승윤도 끝내 따라다니던 '인물로 올라왔다'는 평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무심한 듯 거만하게' 부르라는 윤종신의 조언을 잘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정작 윤종신 자신의 점수는 그리 좋지 않더군요^^).
그렇게 해서 만약 이날 대결로만 평가했다면 허각과 강승윤이 안전한 자리를 차지하고 존 박과 장재인이 피말리는 마지막 대결을 폈어야 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간단합니다. 대다수 투표자들이 이미 표심을 굳혔기 때문입니다.
TOP11이 발표됐을 때, 이미 엘리트 그룹과 비 엘리트 그룹의 구분은 거의 바뀌지 않을 정도가 돼 있었습니다. 장재인과 존 박 등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죠.
여기서 다양한 라이브 미션을 통해 비 엘리트 그룹의 구성원들이 느낌을 바꿀 계기가 주어졌다면 모르겠는데, 역시 초반 2회의 라이브를 통해 절반인 5명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엘리트 그룹의 환상이 씻길 시간, 그리고 비 엘리트 그룹이 성장할 시간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의 순위가 그냥 굳어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이날의 TOP4 미션은 그 순위를 한번 바꿔 보자는, 사실상 첫번째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듯 한데 불행히도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4명밖에 안 남은 이상 투표자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후보를 하나로 줄여 놓고 있습니다. TOP6 정도까지는 자신이 올려 놓고 싶은 후보를 두명까지는 수용할 여지가 있지만 TOP4 이후엔 자칫하면 자신의 넘버 원 후보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인 된 겁니다. 그러니 강승윤이 아무리 TOP4 미션을 잘 끝냈어도 그게 순위를 바꾸는 건 이미 늦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결국 TOP4까지 오고 나면 이미 정해진 순위에 변화를 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건 아마도 앞으로 내년 이후의 '슈퍼스타K' 제작진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까지의 제도라면 TOP4 이후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빨리 도전자의 숫자를 줄인 것이 그 주 요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 물론 현재보다 더 뛰어난 도전자들이 많이 나와서 마지막까지 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겠죠.
그리고 강승윤에겐 이제 리얼 월드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도 TOP1이 아니었던 가수가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이도 어린 강승윤,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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