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KBS 2TV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 윤시윤에 이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예는 구마준 역을 맡고 있는 주원입니다. 그리고 그의 프로필을 보면 2006년 아이들 (idol) 그룹 '프리즈' 출신이라는 이력이 나옵니다. 1987년생인 주원이 19세때의 일이죠. 그리고 나서 주원은 뮤지컬 쪽으로 진출해 경력을 쌓은 뒤 이번에 드라마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비와 붐이 멤버였던 '팬클럽'이나 원더걸스의 유빈과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멤버였던 '오소녀' 처럼 제대로 활동다운 활동을 하지 못한 그룹들도 다 기억하는 아이들 세계에서, 이상하게도 프리즈라는 그룹에 대해서는 '도대체 기억이 없다'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간단히 말해 이 프리즈는 정상적인 아이들 그룹과는 좀 달랐기 때문입니다.



프리즈라는 그룹은 지난 2006년 초, 문준원(19, 이상 나이는 모두 당시 발표 나이), 김윤미(23), 한진희(20), 이경은(20), 황바울(21)이라는 다섯 멤버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여자가 3명, 남자가 2명이라는 구성은 지금으로선 꽤 희한하게 보이지만 서지영과 이지혜 외에도 여성멤버 1명이 더 있었던 초기 샵이 이런 구성이었죠. 외양으로는 이상할게 전혀 없었습니다.


(네. 이 무렵에도 당연히 강동원 얘기가 나왔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프리즈가 활동하던 공간은 쇼 프로그램도,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비바 프리즈'라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었다는 거죠. 2006년 11월부터 SBS에서 방송된 교육용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프리즈는, 가수로서 활동하는 그룹이라기보다는 '비바 프리즈'의 출연 캐릭터 팀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데뷔 초기부터 '아이들 그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키즈 엔터테인먼트 그룹', 혹은 키즈 싱어라는 등의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실제로 만나 본 이들은 꽤 가능성을 보이는 팀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준원이 가장 눈길을 끌었고, 그저 '미인대회 출신'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경은이라는 멤버가 있었죠.



이 친구도 연기자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케이블TV 드라마 '하자 전담반 제로'에 출연한 이경은과 동일인물입니다. 미스코리아 2005년 선 출신이죠.



아무튼 이런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프리즈는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불행히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만, 멤버들이 원했던 것과 회사가 원했던 것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듯 합니다. 팀 해체와 함께 멤버들은 각각 자기 길을 가게 되죠.

그리고 본명 대신 주원이란 이름으로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던 문준원은 '제빵왕 김탁구'를 통해 안방극장에 안착하게 됩니다. 좋은 출발입니다.



당시 프리즈 활동 때의 영상입니다. 주원이나 이경은이나 지금보다는 조금 살이 붙은 듯한(젖살?) 모습이지만,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튼 유망주들의 변신과 과거는 늘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실 2006년 초에 이들을 불러다 놓고 인터뷰를 했을 때, 방송 카메라도 아닌 스틸 카메라 앞에서도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을 볼 때에는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첫발을 잘 디딘 연기자 주원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공할지도 궁금합니다.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바로 아실수 있습니다.


728x90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찬 음식 마니아입니다. 냉면, 냉모밀, 막국수, 차가운 생맥주, 얼음 뜬 김치말이 국밥 같은 것들이 제가 열광하는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여름 한철로 모자라서 한겨울에도 이런 음식을 찾아 어슬렁대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올해 평소보다 훨씬 무더운 날씨와 정부의 에어컨 틀지마라 정책 때문에 더욱 각광받고 있는 것은 바로 빙수입니다. 뭐 그깟 빙수에 무슨 품질 차이가 있을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잘 만들어진 빙수와 그렇지 않은 빙수 사이에는 그냥 커피와 세글자 커피 사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지금부터 보셔야 할 겁니다.



서울 시내에서 꽤 유명한 빵집의 빙수입니다. 모양새는 그럴싸하지만 실속은 전혀 없습니다. 싸구려 통조림 팥과 연유, 딸리 젤리... 이런 모양의 빙수는 먹고 나면 싸구려 단맛이 입안을 텁텁하게 하고, 갈증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그 집에서 파는 빵과 빙수의 레벨 차이가 이렇게 현격하다는 데 놀랐습니다.

일단 좋은 빙수와 그냥 그런 빙수 사이의 가장 큰 벽은 얼음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삭빙이냐 쇄빙이냐의 차이죠.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 써둔 글이 있습니다. 다시 뭐라고 주절주절 하느니 그걸 보시는게 제일 나을 듯 합니다.



제목: 빙수론(氷水論)


내 삶에 차가운 음식이 세가지 있으니 그것이 냉면이고, 빙수고, 차가운 맥주다.

일찌기 한방에 밝은 지인이 "당신 체질에는 찬 음식이 안 어울린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좋아하는 음식은 맨 찬 음식인 것을 어쩌랴. 항상 냉면집에 가면 사리를 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빙수 한 사발'의 유혹에 번번이 넘어가며, 무한정 마시는 주당은 아니지만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맥주에는 그저 무릎을 꿇고 만다.

빙수의 마수에 처음 걸려든 것은 국민학교 2학년때쯤 된다. 집 바로 골목 건너에 반 가건물 형태의 떡볶이 집이 생겼다. 처음 생긴건 이른 봄이었던 것 같은데, 여름이 되자 그 집 벽에는 '팥빙수 개시'라는 벽보가 붙었다. 30원.

누나 손에 이끌려 빙수를 시켰다. 에펠탑 비스무레한 기계에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얼음이 얹혔고, 재봉틀처럼 큰 바퀴가 돌았다. 맘씨좋은(?) 아줌마는 한번 갈아서 수북히 쌓인 얼음을 손으로 꾹꾹 누르고, 다시 한번 얼음을 갈아 얹었다. 그 위에 단팥이 세 술, 잘게 썬 젤리가 세 술, 서울우유 깡통에 담긴 연유가 휘휘 뿌려졌다. 아줌마는 빨간 병에 든 빨간 물을 찔끔, 녹색 병에 든 녹색 물을 찔끔 하더니 그릇에 숟갈 두개를 꽂아 내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기하게도 이 추억을 그대로 되살린 듯한 이미지가 있더군요. 사진 출처에 양해를 구해보려 했습니다만 저 사이트는 이미 없어졌길래 그냥 퍼 왔습니다.^)


오오.

오뎅을 처음 먹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온몸을 휩쓸었다. 입안 가득 퍼졌다 사라지는 이 냉엄하고도 달콤한 맛이라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팥알 몇개가 뜬 그릇 바닥을 아쉬움 가득한 숟가락으로 박박 긁고 있었다.

가정용 빙수기 따위는 나와 있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잔돈만 생기면 떡볶이집으로 달려갔다. 몇번인가 설사도 하고 배탈도 났지만, 감히 그것이 빙수 때문이라고는 의심조차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원래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었다. 내가 만약 건강한 편이었다면 빙수 같은 건 당장에 못 먹게 됐을 거다.

단골이 되다 보니 아줌마는 2단으로 담던 얼음을 3단으로(두번 꾹꾹 눌러서) 담아 주기도 했고, 가끔 "이렇게 빙수에 환장한 놈 첨 봤다. 원없이 먹어 봐라"라며 냉면 사발에 얼음을 갈아 특제 빙수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마법의 빨간 병과 녹색 병에 맛을 내는 비장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나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것 좀 많이 넣어 달라"는 말에 히죽 웃으며 "이거 많이 넣으면 써서 못 먹어"라고 못을 박았다. 알고 보니 그건 그냥 색소였다.

그 뒤로 근 30년 동안 빙수를 먹어 왔지만, 빙수는 뭐니 뭐니 해도 팥빙수가 제격이다. 대체 과일 빙수라는 음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맨숭맨숭하고 밋밋한 것은 빙수라는 이름을 달기에 부끄러울 뿐이다.

제대로 된 빙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잘 갈린 얼음이다. 어떤게 잘 갈린 얼음이냐고? '맛의 달인'을 보면 일본 화과자의 이상은 바로 감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빙수에 들어가는 얼음의 이상은 함박눈이다. 눈이 되기 직전의 상태로 곱게 갈린 얼음이 바로 빙수의 이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 지방에서 빙수를 부를 때 빙설(氷雪)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욱 빙수의 원형에 충실한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위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파는 빙수들은 저 먼 아랫길을 면치 못한다. 거칠대로 거친 빙질 때문이다. 패스투푸드점의 빙수기들은 얼음을 깎아 눈을 만드는 삭빙(削氷) 의 형태가 아니라, 얼음을 부숴 가루로 만드는 쇄빙(碎氷) 의 형태다. 이렇게 만든 빙수는 사시미에 비교하자면 언 고기를 그대로 썰어 회를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팥이 중요한 재료라 해도 얼음 반 팥 반인 상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요즘은 어느 집이나 공장에서 나온 빙수용 팥 잼을 쓰기 때문에 팥 맛의 차별성은 없어졌다. 예전에는 팥의 단 맛이 부족할 때 연유로 보강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냥 우유를 넣는 것이 보통이다. 우유는 초반 얼음이 녹기 전, 윤활제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그러나 빙수가 발달하며 아이스커피가 최고의 윤활제로 각광받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빙수는 이렇다. 잡다한 과일 칵테일이며 콘 플레이크 등은 일단 뺀다. 잘 갈린 얼음에 팥을 올리고 그릇 가장자리를 따라 아무것도 넣지 않은 차가운 커피를 슬쩍슬쩍 붓는다. 팥 위에 아이스크림을 작게 얹고, 아이스크림 대신 우유나 연유를 조금 흘려 두는 것도 좋다. 그 밖에 과일 등을 얹는 것은 맛 보다는 색깔을 맞추기 위한 것이므로, 칵테일 통조림보다는 생과일이 좋다. 하지만 과일을 먹자는 것인지, 얼음을 먹자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되면 곤란하다.

최근엔 녹차 빙수라는 것도 여기저기 있지만 사실상 녹차(혹은 녹차 아이스크림)가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가 빙수의 맛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커피와 얼음의 조화 때문에 커피 빙수라는 것도 등장했다. 그러나 팥이 들어간 상태에서 커피를 추가하는 것은 훌륭한 맛을 내지만, 오직 커피와 과일, 흑설탕 등속으로만 맛을 낸 것은 역시 맛의 불균형이 두드러져 별 매력이 없다. 아, 물론 예외도 있다.

최근 먹어본 한 커피 빙수는 얼음을 갈아 어찌어찌 한 것이 아니라, 아이스커피를 얼려 통 얼음을 만든 다음, 그걸 갈아서 빙수를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 초코 시럽과 소프트 아이스크림(우유는 이미 아이스커피에 충분히 들어간 상태였다)을 얹은 빙수 맛은 제법 일품이라 부를 만 했다. 역시 맛의 길에는 정도가 없다. 大道無門! (끝)




어린 시절엔 누구나 이렇게 하늘에서 내린 눈을 먹어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물론 중국에서 핵실험을 한다는 소문 뒤에는 절대 못 먹게 하시는 부모님들이 꽤 많아졌죠^^). 그 맛을 어떻게든 되살려 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바로 오늘날, 빙수라는 음식으로 나타나게 됐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수많은 패스트푸드점이나 군소 제과점 빙수가 신통치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팥도 팥이지만 얼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드드득거리며 얼음을 잘게 부수는 기계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양질의 눈 같은 삭빙을 사용하는 빙수전문점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유명한 현대백화점의 밀탑 계열이 모두 그렇고, 제가 요즘 최고로 치고 있는 C4의 빙수가 그렇죠. 그밖에도 유명 호텔 가운데에는 눈꽃같은 얼음을 쓰는 곳들이 꽤 많습니다.

기계도 아직 팔고 있더군요. 26만원인가 합니다. http://www.dxmall.co.kr/



왕년에 많이 보던 기곕니다.^^ 이 기계를 전동식으로 개조한 기계도 해외에서 검색됩니다. 의외로 싸더군요. 200달러대?



딱 정해진 이름은 없고, 미국에서도 그냥 snow ice machine, 혹은 ice shaving machine이라고 쓰이는 듯 합니다. 뭐 이름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지만, 어쨌든 얼음을 곱게 갈아서 뭉친 눈 같은 얼음 디저트를 먹는 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뭐 서양에선 이런게 보통이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팥과 우유, 얼음의 조화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이미 일찍부터 꿰뚫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중 어느 쪽에서 팥빙수의 원형이 시작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 널리 퍼져 있는 건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일빙수'라고 불리는 빙수 가운데 심지어 팥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과일과 얼음만 들어간 것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대체 그런 것을 어떻게 빙수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설레설레)



상해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초대형 팥빙수입니다. 만든 공력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도 어쩐지 관서지역이 관동지역보다 빙수에 대한 열정이 훨씬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조형미까지 강조한 느낌의 빙수가 흔히 보입니다.




제가 요즘 사랑하는 C4(압구정 미성아파트 건너편)의 밀크티 빙수. 실날같은 얼음에 달달한 밀크티를 붓고, 팥은 따로 내 옵니다. 팥의 당도가 약한 반면 얼음에 가미된 밀크티+연유의 당도가 높아 균형이 맞춰집니다. 얼음이라기보다는 눈으로 뭉친 솜사탕 같은 맛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좀 수정이 필요합니다. C4는 2011년 이후 하향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릇도 작아졌고, 가격은 크게 올랐고, 만드는 공덕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빙질은 여전히 좋지만, 권할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빙수의 변형 음료(?)들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소 거친 얼음을 우유, 팥과 함께 갈아 굵은 빨대로 빨아 마실 수 있게 한 레드 빈 슬러시 (레드 빈 프라푸치노라는 이름도 본 듯 합니다) 같은 경우는 빙수의 약점인 휴대성을 해결한 훌륭한 상품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맛의 세계에는 제한이나 고집이 있어선 안됩니다. 한번 최고의 맛집이었다고 해서 변화나 발전 없이 그대로만 머물러 있어선 곤란하겠죠. 빙수의 세계에서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맛이 등장할지 기대됩니다.


P.S. 조선호텔 컴파스로즈의 빙수. 재료며 우유를 섞어 직접 얼린 듯한 얼음이며, 역시 직접 만든 팥이며 흠잡을 데 없는 명품이지만 재료에 비해 얼음의 양이 너무 적었다는게 약간의 아쉬움입니다. (참고로 저는 얼음만 리필해달라고 했습니다.^) 맛은 보장할만 하지만 가격은 후덜덜.^^

아예 삭빙기를 하나 사 버릴까 생각중입니다. 전동형도 300달러 이내던데.^^


그럴싸했으면 아래 왼쪽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심야 상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원빈의 '아저씨' 상영관에는 거의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만치 관객들의 기대가 컸다는 얘기였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난 첫번째 느낌은 '대체 한국영화계는 그동안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고 뭘 했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나가 작품상을 받을 영화가 아닙니다. 요리로 치자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대단한 명품 음식이 아니지만, 싸고 맛있는 떡볶이 같은 영화입니다.

무슨 대단한 상상력이나 엄청난 기술의 힘, 혹은 거액의 제작비가 필요한 작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를 등한히했던 영화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꽃미남 배우의 제대로 된 활용이란 면에서도 이 영화는 동료 감독들에게 귀감이 될만 합니다.



달동네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태식(원빈, 이름은 한참 나중에 나옵니다)의 유일한 친구는 매일 혼자서 노는 소미(김새론). 나이트클럽 댄서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녀입니다.

하지만 마약중독자인 엄마가 섣부른 욕심을 내는 바람에 엄마와 소미는 거대한 마약 조직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직간 암투에 뛰어든 경찰은 소미의 운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황. 이제 소미를 구할 수 있는 건 '옆집 아저씨' 하나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줄거리.

소미에게 다행인 건, 이 옆집 아저씨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한 소녀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킬러의 이야기 '레옹'과,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온 프랑스의 인신매매 조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테이큰'으로부터 태어난 자손입니다(뭐 '맨 온 파이어'를 살짝 덮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대개 이런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특수부대원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80년대 한국에도 '사형집행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던 돈 펜들턴의 펄프 픽션 'Executioner' 시리즈는 아마도 이런 판타지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은 월남전 그린베레 출신인 맥 보란이 스스로 '1인 군대'를 선언하고 여동생을 망친 마피아에게 단신으로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바로 이런 판타지에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 '사법 제도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과 불만', '여자나 어린이에 대한 보호'와 같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잘 섞어 폭발력 강한 혼합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원칙에 민감한 법조계 관련 인사들은 법 질서에 근거하지 않은, 사사로운 정의 실현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이 영화의 주제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영화 속 원빈이 악당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면서 동정심보다는 쾌감을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다크 나이트'같은 속터지는 영웅 이야기보다 이런 영화를 100배 정도 선호하는 유전자가 계승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료만 좋다고 바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만 이정범 감독의 세심한 솜씨는 곳곳에서 반짝입니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좋은 배우들입니다.

악당 형제 역의 김희원과 김성오, 믿음직한 수사관 역의 김태훈(김태우의 동생이죠), 그리고 낯설지만 적역에 들어간 태국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까지 다양한 조역 배우들이 최상의 연기를 펼칩니다. 연기 못하는 아역 배우란 원래 존재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김새론은 참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인물 배치는 현역 최고의 꽃미남 스타인 원빈이 케이크 꼭대기의 체리 역할을 유감없이 해낼 수 있게 하는 탄탄한 팀워크를 만들어 줍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원빈은 정확한 타깃 역할만 하면 되는 구성입니다. 그에게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패스를 받아 골문까지 드리블을 하거나 상대 수비를 유인하는 일, 혹은 수비에 가담하는 일 따위를 맡기지 않고 오직 골을 넣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 대목에서 이정범 감독의 용병술은 빛을 발한다고 하겠습니다. 

원빈의 연기력을 논하기에는 대사가 너무 적기도 하지만(녹음 때문인지, 발음 때문인지 중요한 대사가 그리 잘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리한 요구 없이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한 것이 좋았다는 얘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원빈은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작품의 원빈보다 멋집니다. 역시 아무리 명품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법입니다. 이정범 감독과 만난 건 원빈의 행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저씨'는 정당하게 느껴지는 폭력(물론 실제로 정당한 것과는 큰 거리가 있죠)과 적절한 유머("나, 옆집 아저씨야" "중문과, 너 오늘 알바비 날렸다" 등등), 속도감 넘치는 구성과 아동 대상 폭력에 대한 공분이 무르익은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불만 붙이면 바로 터질 수 있는 폭탄같은 영화로 태어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판타지 스타일의 마무리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지만, 오히려 여성층은 현재의 결말에 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이 영화의 흥행에는 아무 걱정이 없을 듯 합니다.

분명 '아저씨'는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을 걸작형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영화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장인 이정범'의 발견이란 면에서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을 듯 합니다.



P.S. 특수부대원 판타지와 관련: '람보' 시리즈 1편 '퍼스트 블러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트라우트먼대령이 람보를 뒤쫓는 경찰들에게 람보가 얼마나 시골 경찰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아저씨'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설명을 하다 만 듯한 느낌이라 좀 아쉬웠습니다. (혹 다 찍어 놓고 편집에서 삭제된 것이 아닐지...)


P.S.2. 이렇게 시작된 '아저씨'의 속편은 혹시 특수부대원 '아저씨'가 특수 업무 수행을 위해 투입되는 시리즈로 이어지게...되는 걸까요? ^^

 공감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공약대로 인셉션에 대한 세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은 그냥 전반적인 '인셉션 많이 보기 캠페인', 그리고 두번째 글이 '인셉션,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에 대한 집중 설명'이거나 '겉으로 안 보이는 인셉션의 속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세번째는 인셉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 속에 감춰진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 이름짓기의 원조도 역시 매트릭스라고 할 수 있겠죠. 주인공의 이름을 one의 배치를 바꾼 neo로 짓는다거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대장의 이름을 모피어스라고 지은 것이나... 여기에 비할 때 가장 선명하게 의미가 오는 '인셉션'의 캐릭터는 바로 아리아드네입니다.


<<<이번 글 역시 스포일러 가득입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보고 오세요. 그게 아니고 영화 속 의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분은 바로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

 

 


그리스 신화에 조금만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 속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의 연인이었던 아리아드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일 겁니다. '인셉션'의 코브는 아리아드네를 보자 마자 미로를 그려 보라고 하죠.


신화 속의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덕분에 미로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기 위해 테세우스는 제물을 가장해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데,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실꾸리를 가지고 들어가 길을 잃지 않고 미노타우르스를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해피엔딩이 아니죠. 신화에도 스포일러가 있다는 세상이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아무튼 아래 그림, 낙소스 섬에 버려지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그 다음 눈길을 끄는 건 임스입니다. 임스의 스펠링은 Eames. 바로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임스 체어의 임스입니다. 건축가와 가구 설계자로서 전 세계적으로 '공간의 마술사'라는 호평을 받았던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를 가리키죠.

흔히 의자 만드는 사람들로만 알고 계신 분도 있었겠지만 아래 사진이 이분들이 만든 임스 하우스라는 건물입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건축과 공간의 대가에게 오마쥬의 뜻으로 이름을 따 오는 건 그리 희한한 일이 아닐 겁니다. 아무래도 이 임스는 그 임스에서 따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놀란이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따 오고 싶었던 대상은 아마도 따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주에 중앙일보 '분수대'에 썼던 글을 잠시 갖고 오겠습니다.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SF영화 ‘인셉션’은 흔히 1999년작 ‘매트릭스’와 비교된다. ‘매트릭스’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가짜’라는 메시지와 충격적인 영상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면 ‘인셉션’은 자유자재로 타인의 꿈속에 침투하며 그 내용을 지배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뜻 듣기엔 매우 획기적인 내용 같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왜 그럴까. 사실은 인류가 몇천 년 전부터 이미 익숙해져 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꿈속의 수십 년이 현실에선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영화 속 아이디어는 이미 『삼국유사』의 조신지몽(調信之夢) 설화에 등장한다. 신라 승려 조신은 태수의 딸에게 반해 매일 그녀와 맺어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슬피 울던 조신에게 어느 날 밤 그녀가 찾아와 “함께 달아나자”고 한다. 그 뒤로 두 사람은 50년을 살았지만 결국 가난을 이기지 못해 헤어졌다. 그리고 조신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50년 세월이 고작 하룻밤의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모습을 바꿔 활약하는 이야기도 그리스 신화에서 엿볼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따르면 바람의 신의 딸 알키오네는 항해 나간 남편이 익사한 줄도 모른 채 매일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이를 보다 못한 헤라는 꿈의 신 몰피우스를 시켜 사실을 알려 주게 했다. 알키오네의 꿈속에 들어간 몰피우스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익사한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 그의 죽음을 알렸고 잠에서 깬 알키오네는 남편을 따르기 위해 자결한다.

이렇듯 고대에는 꿈의 지배가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면 현대에는 프로이트의 후계자들이 그 권능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28일자 뉴욕 타임스는 ‘대본을 따라 악몽에서 탈출하기(Following a Script to Escape a Nightmare)’라는 기사를 통해 최근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꿈의 변환을 이용해 성폭행 피해자나 참전 용사들을 치료하는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악몽을 좋은 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 환자가 꿀 꿈의 구체적인 내용을 미리 정하는 것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셉션’은 무당이 하던 일을 과학자들이 하게 된 지금, 과연 인간은 더 행복해진 것인지를 묻는 영화로도 읽힌다. (끝)



가운데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영화 속 임스의 역할을 연상시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기능을 생각하면 아마도 임스의 이름은 몰피우스로 지어졌다면 딱 떨어졌겠죠. 하지만 불행히도 몰피우스라는 이름은 '매트릭스'에서 이미 사용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놀런 감독은 아예 방향을 틀어 임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다음은 한 팀입니다. 피셔, 아서, 유수프는 하나로 엮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성배'라는 상징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아서 왕과 성배의 관련은 새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원탁의 기사들에게 최대의 목표는 성배를 발견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성배의 위치를 발견하는데 이르기까지 꿈을 통한 암시와 상징은 매우 중요한 단서로 간주됐습니다.

아서 왕 전설에 방계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어부 왕, 피셔 킹입니다. 물론 영화 속의 피셔는 Fisher가 아니라 Fischer지만 독일어의 fischer는 영어의 fisher와 같은 뜻, 바로 어부라는 뜻입니다.



어부 왕은 아서 왕 전설에 한때 성배를 수호했던 왕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성배와 원탁의 기사 전설은 여러가지 방계 전설들로 둘러싸여 매우 혼란스럽지만, 그중 정설로 여겨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원탁의 기사 중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랜슬로트가 어부 왕의 성을 찾아갔을 때, 어부 왕은 성스러운 창에 찔린 상처로 병석에 누워(!) 아들과 함께(!)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랜슬로트가 신비로운 힘으로 어부 왕을 치유하고(위 그림은 어부 왕의 치유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이 왕은 자신의 딸 일레인을 랜슬로트와 동침시켜 성배를 찾을 능력을 가진 성스러운 기사 갈라해드를 태어나게 합니다.

영국 밖으로 나가면 이 전설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에서는 이 상처입은 어부 왕이 암포르타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다른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로엔그린은 또 이 파르지팔의 아들이라는 설정입니다. 물론 이 파르지팔은 원탁의 기사 중 하나인 퍼시벌의 독일식 발음이죠.

아무튼 병석에 누워 성을 지키는 피셔 킹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비밀에 접근하는 아서, 이런 설정은 왠지 '인셉션'과 겹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 유수프는 뭐냐구요? 아, 유수프는 성경에 나오는 요셉(즉 영어식으로 조셉)을 아랍식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처음에는 이 유수프라는 이름이 바이블 앞부분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 요셉(꿈으로 자신이 선지자임을 깨닫죠)에서 따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런 피셔 킹의 등장과 관련해 생각해보면 아리마대의 요셉 Joseph of Arimathea 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아리마대의 요셉은 바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피를 성배에 받아, 그 성배를 유럽으로 가져왔다는 인물이죠(위 그림). 비밀의 운반자라는 의미에서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그럼 남는 것은 코브와 사이토입니다. 일단 코브라는 이름은 놀런 감독이 전에도 한번 써 본 적이 있습니다. 1998년작 'Following'이란 작품이었죠. 저도 보지 못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Cobb라는 인물의 직업도 도둑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이토라는 인물은 당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선 워낙 흔한 성이라서..


이걸로 끝은 아닙니다. Eames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도 있습니다. 혹시 등장인물 모두가 건축가 이름에서 따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이것도 꽤 유력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집단 가운데 Pei Cobb Freed & Partners라는 회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루브르 박물관의 리모델링으로 대단히 유명합니다. Cobb이란 이름은 이 멤버 가운데 Henry Cobb라는 건축가에서 따 온 것이죠.

이 길로 가면 사실 더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빈의 쉔브룬 궁을 설계한 사람은 요한 베르나르트 피셔 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 라는 건축가이고, 유수프라는 이름도 카이로의 살라딘 성을 건축한 그리스 출신의 건축가 유수프 부쉬나크 Yusuf Bushnaq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Saito Kazuya라는 건축가가 있다고 구글이 가르쳐 주는데,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아서나 사이토는 사실 흔한 이름과 성인 만큼 어떤 직업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건축가 이름 집단이라는 게 더 간단해 보이지만, 성배 전설과 관련된 짜깁기도 꽤 매력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뭐든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얼마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뭐 어차피 영화 '인셉션'은 놀런 감독의 꿈이고, 그 꿈 속에서는 뭐든 그분 마음대로이니 말입니다.

 




이상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에서 링크를 타고 오신 분들은 화면 상단에 추천표시가 있습니다.


 

728x90
SBS TV '강심장'의 4일 방송에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특집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MC인 이승기가 주인공을 맡고, SBS의 하반기 기대작인 드라마였으니 '강심장'을 통해 한번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 보자는 작전이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사 프로그램을 내놓고 홍보하는 것이 약간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정규 뉴스를 통해서도 직접 홍보를 하는 등 그동안 방송사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크게 문제될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다 보니 이건 드라마 홍보를 넘어 서서 너무 낯뜨거운 장면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과연 드라마 한 편을 넘어서서 주인공 한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올인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TV를 보다 보다 이렇게 '나머지 출연자들'이 불쌍해 보이는 방송은 처음이었습니다.


작년 10월말에 방송 한달째인 '강심장'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심장'이 초반에 보여준 '20여명 게스트'의 본질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말하자면 '뒷줄'의 고정(혹은 반 고정) 게스트들은 '앞줄'에 앉은 진짜 게스트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가질 뿐, 토크쇼의 게스트로서 결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케이크의 포장 상자일 뿐이죠. 그 고정(반 고정) 게스트 가운데서도 '붐 아카데미'라는 식으로 자력 구제에 나선 팀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4일 방송된 '강심장'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편은 이런 '뒷줄의 병풍화'의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MC인 이승기를 비롯해 신민아, 노민우, 박수진 등 이 드라마 출연진들을 중심으로 한 토크쇼라고 포장되긴 했지만 사실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신민아 하나 정도였죠.



강호동의 최대 장기인 '우격다짐식 관계 만들기'가 빛을 발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이승기-신민아의 관계 엮기, 그리고 중간에는 신민아를 10년간 팬으로 사랑했다는 임슬옹의 고백, 그리고 나서 마지막엔 다시 이승기와 신민아를 엮어 띄워주기가 이날의 주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두 MC와 나머지 게스트들이 이승기와 신민아를, 더 좁혀 보면 신민아 한 사람을 띄워 주기 위해 쇼 한편을 들어다 바친 형국이 됐습니다.



과연 신민아가 그런 여신 대접을 받을만한 스타인지, 혹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제 수상작이나 히트작을 만들어낸 배우인지 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신민아가 출연한 '강심장'은 20%를 넘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물론 이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 2TV '승승장구'가 사실상 경쟁을 포기한 게스트를 출연시켰다는 데에서도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이 시청률로 볼 때 SBS로서는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이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방송은 예능으로서의 오락성 이전에 뭔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과연 맨 앞줄 한 가운데의 신민아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 - 심지어 이승기 신민아와 함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나오는 연기자들을 포함해서 - 은 이날 방송에 어떤 이유로 출연한 것일까요. 강호동이 신민아에게 던지는 칭찬에 탄성을 터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었을까요?

'특별 게스트'를 위해 '예능 스타'들을 경시하는 풍조는 다양한 부작용과 잡음을 낳고 있습니다. '강심장' 출연 거부 때문에 '인기가요' 출연이 무산됐다는 이하늘의 주장은 좀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김C가 '김정은의 초콜렛'에 나온 김연아를 보고 한마디 불평을 했더군요. 이런 내용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김연아가 1년 내내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나오는 김연아에게 노래 3곡 정도 부르게 해 준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초콜릿'이 고품격 라이브 프로그램을 지향한다면, 진짜 가수들을 뒤로 제끼고 아마추어인 김연아를 너무 내세운 것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오랜만의 예능 나들이'를 한 신민아에게 열띤 지지를 보낸 시청자들, 그리고 그 게스트를 위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올인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을 보면, 한국 연예계의 오랜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은 느낌도 갖게 됩니다. '어떻게 별다른 히트작도 없이 CF만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군림할 수 있는 배우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수수께끼죠.


공감하시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KBS 2TV '해피션데이'의 '1박2일'이 상당한 모헙을 치렀습니다. 70-80분 정도 되는 프로그램 한회 내내 고비에 이를 때마다 치르던 복불복을 시작할 때 모두 끝내 놓고 1박2일 일정을 진행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박2일' 멤버들은 복불복 없이도 웃길 수 있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보여 준 셈입니다. 특히 복불복 말고는 별로 한 게 없는 서해안 무계획 여행 첫회에서 하이라이트는 빈 시골 정류장에서의 라면 끓여먹기였습니다.

저녁식사 전인 시청자들은 물론 저녁식사를 마친 사람들도 침이 넘어갈만한 광경이었죠. 여기서 강호동은 국수로 라면을 끓여먹는 것은 물론, 잘게 부순 라면을 죽처럼 만들어 먹는 '라죽'까지 싹싹 긁어 먹는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일단 다양한 옵션을 모두 결정하고 나니 서해안의 한적한 어촌으로 떠나는데 용돈은 단 1만원. 그리고 은지원은 낙오로 결정되고 나머지 멤버들 다섯명이 김종민의 차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물론 누구 차로 이동하든 운전은 역시 이수근.



한참을 가던 다섯 사람은 주어진 돈 만원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가장 싼 라면을 사서 배 터지게 먹어 보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봅니다. 그래서 라면 10개와 계란, 그리고 1천원에 20개짜리 미니 호떡을 사서 먹기 시작합니다.

야외에서 라면을 끓여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이들은 나이를 생각하면 별로 먹지 않은 셈입니다. 물론 집에서 라면을 끓여 드시는 분들에게 라면 2봉지는 대단히 많은 양입니다. 20대라면 몰라도 30대 후반 이후라면 속이 더부룩해질 양이죠. 그렇게 따지면, 5명이 라면 10개를 나눠 먹는 건 꽤 많은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순히 생각하면 간과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국물의 문제입니다.




다양하게 라면을 드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주 덩치가 크지 않은 성인 남자라면 국물 있는 라면 2개를 먹는게 꽤 부담스러운 양입니다. 하지만 비빔면이나 짜장라면은 그렇지 않죠. 어지간한 사람은 1개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2개를 먹는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집에서 혼자 라면 2개를 끓여 먹는 것과, 야외에서 5명이 라면 10개를 끓여 먹는 것과는 심각하게 포만감에서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아마도 코펠의 크기, 김치가 없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처음에 4개, 나중에 4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2개를 '라죽'으로 끓여 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변수가 되는 국물은 평소 집에서 끓여 먹을 때의 절반 이하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더 끓일 때마다 물을 다시 부어 보충했다 해도, 처음부터 10개 분량의 물을 넣은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왕년 한국 권투 중량급의 스타였던 박종팔씨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니 배는 고픈데 돈이 없으니 만만한 먹을 거라곤 라면밖에 없었다. 후배와 둘이 살면서, 방 안에 버너를 피워 놓고 라면을 끓여 먹는데 둘이 먹기 시작하면, 일단 국물은 계속 끓이고, 국수는 먹으면 또 넣고, 먹으면 또 넣고 하면서 계속 먹었다. 이렇게 먹으면 둘이 10개 먹는 건 금방이었다. 가끔은 밤참으로도 먹고 해서, 라면 100개짜리 한 상자를 사면 1주일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작은 솥(또는 코펠)으로 라면을 끓이면 같은 원리로 평소의 양보다 훨씬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 '1박2일'에서 강호동이 라면 6봉지를 먹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다른 멤버들이 자기가 먹었다고 생각하는 양 보다는 훨씬 많이 먹었을 겁니다. 국물을 덜 먹으면 그만치 포만감을 덜 느낀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호동이 많이 먹는다지만, 전체 양의 60%를 먹었을 거라고는 좀...^^

(뭐 성석제의 단편 '대식'에는 고기 약 30인분을 먹어치우는 고등학생 씨름선수 얘기도 나옵니다만^^ 강호동이 현역 선수도 아니고, 그렇게까진 무리겠죠.)


게다가 한창 때인 남자 5명이 라면 8개를 끓여 나눠 먹고 다들 그만 먹겠다고 포기하는 건, 아무래도 연예인이다 보니 몸 관리를 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반인들이라면 훨씬 더 쉽게 더 많이 먹었을 게 분명합니다.^




뭐 검증을 하거나 하기는 힘든 얘기고,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어쨌든 비오는 날 라면 끓이먹는 광경은 강렬한 라면 소비욕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1박2일' 팀은 웬만한 라면 광고의 몇 배나 되는 효과를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쓰다 보니 또 침이 굅니다. 점심엔 어디 김치찌개 집이나 가서 사리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지적질 하나.



P.S. 지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이죠. 대청봉은 설악산의 최고봉입니다. 현장에 있던 강호동이야 잠시 실수로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자막까지 만들어 넣은 제작진이 이런 실수를 하는 건 곤란하죠.

공감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어린 시절,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한국에 온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던 무렵, 저 바다 건너 나라에서 치러진다는 다양한 락 페스티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한 폭의 상상도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글래스톤베리며 후지 락 같은 이름들을 듣게 됐을 때에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꽤 듣게 됐습니다. '냄새나고, 진창에다, 덥고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은 계속 커졌고, 언제 한번 그런 곳에 가서 뒹굴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록 페스티발이 열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바로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발'이란 이름이었죠. 하지만 첫 만남은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비가 며칠씩 쏟아지는 가운데 송도 갯벌에 세워진 무대와 주변 공간은 거대한 진창으로 변했습니다. 공연은 좋았지만 새로 산 신발 한 켤레가 재기불능이 되어 그냥 버려야 했고, 주차해 놓은 차가 물에 빠져 레커차를 불렀습니다. 비를 맞으며 진창 속에 서 있자니 극기훈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걸 즐길 나이는 어느새 지나가버렸나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 후로 오랫동안, 아예 록 페스티발이라는 말을 잊고 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디 가서 잘 놀고 왔다는 얘기를 해도 '너희들 아직 젊구나'라며 웃어넘겼죠. 그러다 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31일 지산 락 페스티발을 통해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 거죠.


지산리조트에서 열리는 지산 락페에는 3개의 무대가 설치됐습니다. 그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빅 탑 스테이지. 31일에는 오후 5시30분에 장기하와 얼굴들, 7시에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9시에 왕년의 형님들인 펫 샵 보이즈가 공연하는 라인업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다른 무대에서 열리는 6시30분의 크래쉬도 있었습니다.

한낮의 땡볕은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어 오후 일찍 경부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빅탑 스테이지 앞의 드넓은 잔디밭이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있더군요. 본래 잔디밭은 텐트를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몇개의 텐트가 진출해 있었고, 낚시 의자를 동원한 '선수'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대세는 돗자리.



네. 지산 락페의 문화는 바로 돗자리의 문화였습니다. 공연은 당연히 서서 보고, 아무데서나 땅에서 뒹구는 저 서양식 락페와는 달리 한국의 락 페스티발은 돗자리와 선크림이 함께 하는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락 페스티발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여초 공간이었다는 점. 수만 많았던 건 아닙니다. 조금만 뻥을 보태면 온 나라의 미인들은 다 와 있는 듯 했습니다.



도착하고 현지 적응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로 일단 몸을 헹구고 나니 뜨거운 날씨도 한결 견딜만 해졌습니다. 이내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이 시작됐고, 어디 한번 뛰어 볼까....

역시 뛰니까 덥더군요. 장기하의 고동색 티셔츠가 30분만에 검정색으로 변할 정도로 날씨는 무더웠습니다. 공연 중간 지나가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 해서 반가워했는데 알고 보니 사방에서 쏘아올리는 물총.^^ 사방에서 뿜어나오는 사람들의 열기로 갑갑한 공간에서 이 물총 놀이는 매우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락 페스티발의 다른 이름은 자유입니다. 풀타임 공연을 다 미친듯이 '달릴' 수도, 또는 돗자리와 양산 아래서 누워서 즐길 수도 있는 거죠. 각자의 체력과 취향에 따라 즐기는 문화가 성숙해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화장실(특히 여자 화장실)은 갈 때마다 장사진이었고, 먹거리며 마실거리를 사는 줄도 항상 길더군요. 그렇지만 짜증 내는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의 시간에 비해 모든 시간이 천천히 진행됐습니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줄을 서고, 누워서 음악을 듣다가 흥이 나면 무대 앞으로 달려나가기도 하고,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허공에 주먹질을 하기도 하고.

잔디밭에 누워서 쿵쾅대는 심장을 느끼는 기분.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겁니다. 문득 20년 전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네.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먹고 마시는 사이 언니네 이발관이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들으며 또 먹고 마시고, 언니네 이발관의 강렬해진 베이스에 감동하면서 한편으론 언니네가 역시 여성 팬들이 많았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면서, 그렇게 완전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깜깜해진 뒤, 이날의 헤드라이너인 펫 샵 보이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돗자리를 걷고 무대 앞으로 우루루 몰려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백인 여성 두 사람이 맞고를 치고 있는 진푼경도 있었죠^^), 무대 앞쪽으로 가 보니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이 1:2 정도는 될 듯.



사실 공연장에서 이 '외국인'들은 약간 애물이기도 합니다. 액션이 크고 부딪힐 위험이 있고 무엇보다 체취가 좀 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여름철, 그리고 이런 야외에서는....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뒤쪽을 외국인들에게 둘러 싸인 형국이 됐습니다.

뭐 이런 것도 공연의 재미라면 재미겠지만 아무튼 이 냄새나는 덩치 큰 형씨들이 땀에 젖은 등을 비벼 오는 건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닙니다. 심지어 바로 뒤에 있던 친구는 음료수인지 뭔지가 담긴 작은 통을 들고 뛰다가 계속 제 다리에 액체를 흘리더군요.

도시였다면 싸움이나 언쟁이 오갔겠지만 그래도 여기는 락페. 그냥 잊고 즐기는게 상책입니다. 아무튼 기다림은 지나고 음악이 꽤 사람들을 달궜을 무렵, 마침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강렬한 비트의 신스 팝이 관중들을 들뜨게 하고 30분 남짓, 첫번째 절정은 알려질대로 알려진 히트곡 'Go West'에서 왔습니다. '오 오 오오 오오오, 오 오 오오 오오오'하는 전주와 함께 관중들은 전부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춤사위도 없고, 세련되게 추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냥 그저, 다들 제 흥에 겨워서, 전부 색다른 자세로, 하늘을 향해 뛰는 겁니다.


(요긴하게 쓰였던 저 골판지 박스, 공연 내내 쌓았다 허물었다 하다가 끝날때는 관객들에게 던져서 가져 가는 사람도 있었다는... 대체 그걸 가져다 뭐에 쓰시려는지.^^)

밤이라 더위는 훨씬 견딜만 해졌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몇배나 뜨거워져서, 공연 후반부는 다시 돗자리 모드. 한때 나이트클럽에서 모든 손님들을 무대로 달려나가게 했던 전설의 히트곡 'It's a sin'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자 사람들은 'Go West'의 전주부를 합창하며 앵콜. 그리고는 'Being Boring'과 'West End Girls'가 흘러나왔습니다.

...정말이지 스물 몇살때였다면 집 같은 건 정말 가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평생 다시 보기 힘들 형님들의 공연을 귀가 문제 때문에 맨정신으로 봐야 했다는 게 정말이지 안타까웠습니다.ㅠㅠ)


비록 귀가 때 주차장 연결 버스의 수가 너무 적어 1시간 가까이 길에서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이런 부분은 좀 시정되어야 할 거라고 믿습니다),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공연을 만들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됐고,

내년에는 공연이 끝나도 집에 오지 않을 방법을 연구해보게 됐습니다.^^


P.S. 웬만하면 근 10년만에 들어보는 쿨라 셰이커와 서드 아이 블라인드, 그리고 얼마 전 내한공연을 했던 뮤즈의 1일 무대도 찾아 보고 싶었지만, 밥벌이가 유죄라..ㅠㅠ 티켓이 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간과 여유가 되는 분들은 오후에 고속도로를 달려 보시기 바랍니다.

P.S.2. 주변에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시는 분들, 지금부터 내년을 위해 친구를 잘 사귀어 보시기 바랍니다. 1년, 금세 지나갑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이미 화제가 될 만큼 된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제리'를 읽었습니다.

김혜나의 '제리'는 알려진대로 소위 '루저'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그린 작품입니다. 굳이 88만원 세대라는, 이제는 진부할대로 진부해진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들의 절망과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진학 대상인 고3보다 전국의 대학급 학교 정원이 더 많아진 세상, 그리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분위기가 점점 더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세상은 반드시 뒤처지는 사람을 낳기 마련입니다. 물론 흔히 말하는 취업난의 현장에 좀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늘 신문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측면도 있다고 말하긴 합니다.



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현재 강조되고 있는 취업난이란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자리가 없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취업 희망자의 절대 다수가 대기업이나 은행 등 '초봉 3000만원 이상' 직종에 연연하거나 공무원, 공사처럼 안정된 자리를 원하기 때문에 경쟁에 비해 일자리가 없다는 면이 너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현재 취업 실패로 좌절과 혼란을 겪고 있는 연령층이 좀 넓은 시야에서 냉정하게 판단하면 일자리는 어디에든 있다는 주장입니다.

뭐 이런 주장에 공감하실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상황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세상에는 대학이나 대기업 취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학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는 것은 분명 그쪽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 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김혜나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거든요. 저처럼 스무 살에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쨌거나 이 사회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게 마련이니까요. 클럽이나 바는 물론 백화점, 레스토랑, 호프집, 노래방, 단란주점, 그리고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연극이나 미술, 음악, 미용, 제빵, 정비 등을 배우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모두 다 저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제리'의 주인공 '나'는 수도권의 2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학교 수업이며 장래에 대해선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는 여학생입니다. 그런 '나'가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간 노래바(노래방+호스트바의 성격인 듯 합니다. 시간당 3만원을 내면 호스트 개념의 놀이 상대 남자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에서 제리라는 이름의 스무살 안팎 청년을 만납니다. 그 '나'와 제리의 아주 짧은 만남에 대한 기록이 이 소설입니다.



이 책을 추천한 한 지인은 "세상에서 1등만 했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도 했습니다. 솔직히 읽다 보면 답답한 구석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어른'의 눈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단 한푼 벌 능력도 없으면서 용돈으로 날마다 술자리를 벌여 놓고 있는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아이들, 남자와 자는 이유도 '그저 새벽 길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라는 아이들, 심지어 20대 초반 나이에 술자리 상대를 돈으로 사는 아이들과 스스로를 누군가의 술자리 노리개로 내놓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너희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어른'이란 존재는 소거되어 있습니다. '나'의 엄마가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나'와 엄마에게는 대화나 소통이란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주치면 불편한 사이일 뿐입니다. 유일하게 의미있게 등장하는 어른은 '나'와 남자친구 강이 자주 가는 모텔 주인 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주인공들이 뭘 하건 관심을 갖지 않고 돈을 받아 챙겨 방 열쇠를 내주는 것 뿐입니다. (네. 이 부분에서 작가가 보는 어른들이란 '입만 열면 늘 혀를 차지만 돈벌이 대상이기만 하면 도덕이고 뭐고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만 얽매여 있으면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영상에 비유하자면 이 책의 시선은 거의 지면에 붙어 있습니다.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청춘의 불안과 고민, 가족보다 친구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묘한 공허감, 그리고 그런 공허를 채울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할 수록 더욱 깊어가는 고민이라는 악순환이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심한' 주인공 '나'와 마찬가지로 한심한 호스트 제리는 그 절망의 끝에서 만나지만 그걸로 끝나지는 않는다는데서 이 소설이 그런 '바닥의 젊음'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다음 첫번째 소감은 '아니, 시작하려니까 바로 끝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만치 한 호흡에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먼 장래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소설이 커버하는 시간은 끽해야 몇달 정도. 그리고 이 한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습니다. 혹자의 표현을 빌면 '간신히 한 계단 올라서는' 정도라고도 하죠.

아무튼 이 책을 읽기 위해 '88만원 세대를 이해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 책 내용 속에서 언젠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있고, 그들의 운명에 가슴 졸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솜씨가 훌륭합니다.

여러 서평은 이 책의 '노골적이고 드라이한 성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깜짝 놀랄 정도라거나 흥분되는 대목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그런 걸 원하시는 분들은 아오이 소라에게 가시는게 낫겠죠^^). 물론 그렇다고 어린이/청소년 용 추천도서는 아닙니다.


문득 '제리'를 읽고 나면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 리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마지막에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는 이야기를 나누듯, 지지리도 못나고 답답하고 한심한 청춘에게도 빛이 깃드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이 휴가용 서적 추천 1호가 되겠군요.^^


 

그럴듯했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안 보면 왕따된다는 영화 '인셉션'. 본 사람도 또 보고 아이맥스로 봐야 진짜배기라고들 소문이 자자한 인셉션. 요즘 단연 장안의 화제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두가지네 어쩌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반지가 어쩌네 저쩌네, 킥과 토템이 어쩌네 저쩌네 떠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괜히 화제를 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보다 슬쩍 잠들었다는 분,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없었다는 분, 대체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난 다 봤는데도 당최 먼 소린지를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단,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절대 읽어선 안 될 포스팅입니다. (아, 드물게 '난 결말을 알고 봐야 영화가 눈에 들어온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분들은 보셔도 좋습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무시하고 그냥 읽은 다음에 스포일러 작렬 어쩌고 화내 보셔야 소용없습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의 덩어리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는 분들을 위한 해설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설계자는 뭐고 추출은 뭐냐? 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해설: '인셉션'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의 꿈을 연결하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거나 표적이 되는 사람을 자신의 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떤 수단을 쓰든 다른 사람의 꿈 속에서 깊이 감춰진 비밀을 가져오는 것을 추출(extra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꿈의 설계자(architect)입니다. 이 사람은 때로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꿈 추출의 표적이 되는 사람이 현실로 착각할 수 있도록 그 사람에게 친숙한 공간을 그대로 모사해내기도 합니다. 본래 영화의 앞부분에선 내쉬(루카스 하스)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팀의 설계자이지만, 무능한 배신자로 밝혀지고, 결국 파리에서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설계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밖에 꿈 속에서 활동하는 캐릭터로는 포인트맨(pointman)과 페이크맨(실제론 forger)이 있습니다. 전투 게임에서 근접전 요원을 말하는 포인트맨은 이 영화에선 꿈과 현실을 출입하며 안전을 관리하는 전술전문가를 말하고, 페이크맨은 꿈의 특징을 활용해 모든 캐릭터로 변신하는 일을 맡습니다.

 

2. 대체 맬은 왜 모든 사람의 꿈에 등장하나?

엄밀히 말하면 맬(마리옹 코티아르)은 별도의 인격이라기보다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머리 속에 박힌 하나의 소인격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평소에는 활동하지 않지만 코브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즉시 활성화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무 꿈에나 다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코브가 들어가는 꿈에만 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이 맬의 존재는 '인셉션'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이토의 꿈에 들어갔다게 맬에게 총질까지 당한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코브와 함께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는 일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코브와 함께 꿈속 일을 하는 건 자살행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2세 피셔(킬리앙 머피)의 꿈 속에 들어갈 때 그렇게 무방비상태였다는 건 아서의 무능함을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3. 왜 한 단계 깊이 들어갈 때마다 팀은 한명씩 남을까?

피셔의 꿈에 들어간 뒤, 꿈1에서 꿈2로 갈 때 유수프(딜립 라오)는 남아서 차량의 운전을 맡습니다. 이건 꿈1의 주인이 유수프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꿈2의 주인은 아서였고, 아서는 꿈3으로 가지 않죠. 이건 그 사람이 남아서 더 깊은 단계로 가는 멤버들의 몸을 돌보고, 적절한 시기에 음악 신호나 킥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모두 이 영화의 설정입니다. 꿈 3에서 현실로 바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고, 깨어날 때에도 꿈3-꿈2-꿈1-현실의 순서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한 스테이지에는 한 사람씩 남아서 그 과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4. 왜 다들 꿈 속에서 천하무적인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인셉션'의 배경이 되는 세상에서는 꿈 추출이 하나의 전문직이 되어 있습니다. 코브와 아서 팀 외에도 기억 추출을 위해 암약하는 무리들이 꽤 있다는 뜻입니다.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이들 전문가들은 꿈 속에서 거의 람보같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터프해 보이는 무장 경호원들도 이들에게는 1:1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현실세계의 킬러 하나가 코브에게 '어이, 너 현실에서도 꿈속처럼 터프하냐?'고 물어보기도 하죠.)

그건 이들이 꿈 속에서의 활동을 위해 다양한 훈련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꿈 속에서 이들은 사고하는 존재인 반면, 나머지 인물들은 그냥 표적 인물의 무의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 계산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일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떨어지는 게임 속의 졸때기들처럼 주인공들의 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누구나 꿈속에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곤 하죠.^ 아마 '인셉션 2'가 나온다면 그때는 주인공들이 다 날아다닐 겁니다.


5. 자살신에서 왜 둘은 젊은 얼굴인가? 실수?

아내를 림보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코브는 아내에게 눈에 보이는 세상을 믿지 말라는 인셉션을 하고, 그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철길에 누워 죽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 아내가 "나와 함께 늙어가겠다고 맹세했잖아!"라고 말하자 코브는 "이미 그렇게 했었다"고 대답합니다. 즉 림보에서 보낸 50년 동안, 그들은 노인이 되어 갔다는 걸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노인이 되어 거리를 걷는 이들의 뒷모습도 나옵니다.

하지만 앞서 나오는, 철길에 누운 자살 장면에서 코브와 아내는 젊은 얼굴 그대로입니다. 이걸 놀런 감독의 실수라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실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뭐랄까, 연출자의 의도라고나 할까요. 그 시점에서 이들의 얼굴을 노인으로 바꿔버리는 건 상당히 김빠지는 일이 됐을 법도 합니다.

영화 속에선 페이크맨 임스(톰 하디)의 얼굴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장난이 여러 번 등장하죠. 한마디로 그 정도는 알아서 이해하라는 것이 놀런의 입장인 듯.


6. 림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인가, 아니면 개인에게 하나씩의 림보가 있나?

사실 매우 혼란스러운 부분입니다. 만약 림보가 공통이라면, 코브와 아내가 림보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림보는 본래 한 사람에게 하나 씩 존재하는 공간이며, 림보에서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꿈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 뿐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코브와 피셔가 연결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코브와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림보로 내려가 피셔를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하에서 보면, 코브가 "사이토를 찾아서 데려가겠다"며 림보에 남는 설정이 매우 애매해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코브는 사이토보다 먼저 림보에 온 것이고(코브와 아리아드네가 림보로 가고 꽤 시간이 지나 사이토는 송풍구에 수류탄도 던지고 하며 나름 활약을 하다가 꿈3 스테이지에서 숨을 거둡니다 - 정확하게 말하면 꿈1에서 죽는 거죠. 어쨌든 코브와 아리아드네보다 늦게 림보로 가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의 맨 첫 장면에서 사이토만 노인이 되어 있고 코브는 젊은 채로 있다는게 말이 안 됩니다. 늙어도 코브가 더 늙어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여기에 대한 해결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리아드네와 피셔가 뛰어내리는 킥(자살입니다)으로 꿈3에 돌아간 뒤, 코브도 꿈3으로 복귀했다가 꿈1에서 물에 빠져 죽어서(꿈1의 코브는 물에 빠진 미니버스 안에 안전벨트로 묶여 있죠^^) 다시 림보로 간다는 설정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코브가 한번 빠져나왔다가 다시 림보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코브는 젊고 사이토는 늙어 있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코브가 호기있기 "나는 사이토를 찾아 데리고 갈게! 너희는 먼저 가!"라고 한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혹이 남습니다. 너무 길어져서 한번 더 쪼갭니다.




7. 비행 시간의 문제 - 왜 20분만 남아 있나?

주인공들이 비행시간이 10시간이나 되는 LA행 비행기 안을 '범행 장소'로 채택한 것은, 이들이 꿈1 스테이지에서 일주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사이토가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사이토가 림보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모든 걸 계획보다 서둘러 진행하게 되죠.

(일반 꿈이라면, 사이토는 꿈 속에서 죽으면 바로 현실로 살아나지만 이들은 10시간 동안 깨지 않게 하기 위해 유수프의 독한 약을 썼기 때문에 꿈1에서 죽으면 림보로 떨어진다는 설정입니다. 이 사실을 안 임스는 "나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기 싫으니 여기(꿈1)서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코브는 "10시간이면 꿈1에서 1주일인데, 그 사이에 피셔의 경호원들에게 잡혀 죽을게 뻔하다. 차라리 일정을 앞당겨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킥으로 빠져 나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꿈2, 꿈3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결국 꿈 1 기준으로 약 2시간만에 모든 일정을 다 해치워 버립니다. 현실에서는 10분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죠.

무슨 말이냐면, 바로 위 항에서 얘기한대로 코브가 미니버스 안에서 익사 - 그리고 바로 림보로 가서 사이토를 구출하는 과정이었다면 아무리 해 봐야 현실에서는 1시간 이상 지나가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코브와 사이토가 눈을 떴을 때, 비행기는 LA 도착 20분을 남겨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7-8시간 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혼자 추측해 봤습니다. 그 대답은 다음 질문에서 해결합니다.


8. 맨 첫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 장면에서 코브는 의식을 잃은 채 해변에 밀려 옵니다. 영화를 죽 보다 보면 그 해변이 바로 림보에 빠진 사람이 처음 도착하는 망각의 해변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브는 그 상태에서 사이토의 부하들에게 이끌려(어떤 사람은 림보에서 단 둘만 살고, 어떤 사람은 림보에서도 부하들에게 둘러 싸여 삽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죠) 이미 노인이 되어 있는 사이토에게 끌려 갑니다.

사이토는 코브의 총과 토템을 보고(물론 이것도 영화를 한참 더 봐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죠) 그를 어렴풋이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사이토는 말합니다. "오래 전 꿈에서 본 젊은 남자가 이런 걸 갖고 있었다. 나를 죽이러 온 남자..."


이 말은 코브가 이 전에도 사이토를 죽이러(즉, 죽여서 림보에서 끌어내러) 왔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 후반에서 사이토가 꿈3에서 죽고, 곧바로 코브가 사이토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현실-림보-현실-림보로 몇 차례에 걸쳐 다시 다이빙을 한 끝에 간신히 사이토에게 도달하고, 그리고서도 실패를 겪은 뒤 겨우 다시 사이토를 만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이렇게 설명하면 위에서 얘기했던, 시간이 한참 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 안에 이런 설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지만, '매트릭스2'에서 아키텍트가 네오에게 "네가 처음은 아니다. 네 전에도 다섯명이나 전임자가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의 황당함에 비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은 코브에겐 절박한 거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LA 도착 시간이 20여분 남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신히' 성공을 거둔 코브는 현실에서 한숨을 내쉬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 멤버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뭐 중요하진 않지만 이제는 우호적으로 변한 피셔와 함께 1주일 동안 꿈1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일찍 현실로 빠져나왔는지, 사이토를 구하러 갔다가 사이토에게 죽어 현실로 돌아온 코브가 킥으로 깨워 줬는지... 그거야말로 관객이 알아서 할 부분이라는게 역시 놀런의 입장.^)



9. 그래서 도대체 마지막에 토템은 멈추나, 안 멈추나?

사실 토템이라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별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대사가 나온 다음부터, 눈치 빠른 분들은 아마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쯤에 감독이 이 이야기를 써먹을거라는 걸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사이토를 무사히 구출하고, 수배에서 자유로워진 코브는 마침내 아버지(장인?) 마일스 교수의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떤 분들은 마일스가 파리에 있지 않고 미국에 있는게 이 마지막 시퀀스가 꿈이라는 증거라고도 하는데, 이건 놀런의 수준에 비하면 너무 유치한 얘기죠. 그리고 애당초 파리에서 코브는 마일스에게 "아이들에게 나 대신 선물(인형)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어쨌든 코브는 집에 도착하고, 밖에 아이들이 보이자 습관적으로 토템을 꺼내 테이블 위에 돌려 놓고 아이들을 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죠. 물론 보인다, 안 보인다가 현실과 꿈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꿈에서 코브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건 코브가 아이들의 얼굴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스스로 죄책감으로 억압했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그 죄책감은 꿈 속에서 다시 한번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모두 해소했죠.

(이 대목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과거와 똑같으므로 이 대목은 꿈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분명히 다릅니다. 특히 여자아이의 옷이 똑같이 핑크 톤의 색이긴 하지만, 디자인이 다릅니다. 꿈속의 필리파는 그냥 원피스를 입고 있지만 마지막 장면의 필리파는 흰 티셔츠 위에 끈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어쨌든 코브가 아이들과의 재회하는 사이에도 토템은 계속 돌아가고, 멈출 듯 하면서 다시 돕니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서 끝나 버립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토템이 그냥 쓰러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 쓰러졌고, 이게 모두 꿈이라고 믿고 싶은 분은 "그냥 그렇게 믿으라"는게 놀런의 생각입니다.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찌보면 이 결말을 통해 논란을 일으키겠다는 얄팍한 수이기도 하죠.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그 수는 먹혀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인셉션'의 플롯은 완벽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보고 있는 사이에 관객에게 큰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는 물론 아니죠.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영화에는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자는 거대한 세계관이나 미래를 향한 의지 같은 것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건 그야말로 보기에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오백년 묵은 버드나무를 신으로 섬기는 거나 비슷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인셉션'은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진 오락영화이고, 수작입니다. 그리고 못 보시면 대단히 아쉬울 작품입니다. 그리고 감탄할만한 상상력의 활용이란 면에서 정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번째 리뷰. 물론 제 설명이 모두 맞다는 보장은 절대 할 수 없겠죠? 지적, 의견 개진 적극 환영합니다. 함께 설명해가는 인셉션을 만들어 봅시다.^^

세번째 리뷰는 '인셉션, 아는 만큼 보인다' 정도 될 듯 합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 표시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트위터에서 링크로 들어오신 분들은 화면 상단에 추천 마크가 있습니다.^^


728x90

네. 물론 공신력있는 조사 결과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대한민국의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 남자 가운데서 미중년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사람이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40여분이 50개의 답변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손석희 교수님(성신여대)은 무려 9표의 몰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다수표를 받은 분들을 보다 보니, 묘한 추세가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즉, '꽃미남'을 고른다면 미모와 몸매로 평가할 여성들이, '미중년'을 고를 때에는 뭔가 다른 기준을 적용하더라는 거죠. 그게 뭐였을까요?



일단 그 설문조사(?) 내용을 토대로 쓴 글을 먼저 보시는게 정리가 빠를 겁니다.

제목: 왜 한국엔 미중년이 드물까

그러니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꽃미남의 표상, 완벽한 미모의 상징이던 원빈이 23세 연하의 소녀에게 망신을 당할 날 말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상대역인 만 열살 소녀 김새론은 "촬영 시작할때 원빈이 누군지 몰랐다", "우리 또래는 2PM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원빈을 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연기 쪽으로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원빈 아저씨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3연타로 원빈을 넉다운시켰다.

물론 33세와 10세는 큰 차이지만 세월이 흘러 48세와 25세쯤 되면 자연스럽게 멋지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키애누 리브스나 조지 클루니, 톰 크루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여대생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미중년. 그런데 갑자기 국내에서는 거기에 대응시킬만한 인물이 금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한국 여성들이 생각하는 미중년은 어떤 사람일까. 이럴땐 트위터에 묻는게 제격이다. 질문을 올렸다. "한국 남자 중에 미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연예인이건, 그냥 유명인이건)은 누가 있을까요?"



짧은 시간에 50명 가까운 분들이 답변을 해 왔다. 61세의 정동환에서 37세의 김원준까지 총 26명이 거론됐다. 순간적으로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트위터의 각별한 매력이다. 아무튼 다양한 답변을 들은 결과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9표로 1위, 조국 서울대 교수와 배우 안성기가 6표로 공동 2위, 배우 정보석이 5표로 4위, 배우 홍요섭이 3표로 5위였다. 그밖에 송호창(변호사) 염재호(교수) 천호선(정치인) 정명훈(지휘자) 김광민(피아니스트) 등 일반인 셀레브리티들이 박상원 정동환 천호진 조민기 차인표 탁재훈 등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뜻밖에도 연예인에 대한 선호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창 활동이 많은 박중훈 정준호 신현준 유동근 최민식 등 40대 톱스타들이 단 한표도 나오지 않았다는게 의외였다.

물론 응답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던 약식 조사지만 추세는 뚜렷했다. '20대 꽃미남'을 골라 달라고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미모와 몸매가 여기선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꽃미남 아닌 미중년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에는 응답자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지성이나 사회적 지위, 능력, 도덕성 등을 고려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러고 보면 미중년이 드문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기름진 안주와 잦은 술자리, 운동부족이 젊어서 한가닥 하던 미남들을 망가뜨렸다는게 흔한 핑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세상 자잘한 욕심에 흐려진 마음은 그대로 안색에 비치기 마련. 또 교언영색과 눈치보기에 도가 튼 영악한 눈빛에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풍길 리 없다. 심지어 학교 졸업한 뒤로는 독서로 머리를 채우지 못하고, 여유로 옷장을 채우지 못하니 제아무리 타고난 외모가 원빈 아니라 텐빈이라 해도 스타일이 따라 주지 못한다. 이게 일반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팔자다. 마음가짐이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자신감이라도 버텨 주련만.



50대 동안의 기수인 주철환 전 OBS사장은 최근 저서 '청춘'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당.포'를 꼽았다. 인생 선배로서 가져야 할 '전문성', 그리고 약간의 '당근', 마지막으로 '포용력'을 지닌다면 마음을 터놓고 젊은이들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거다. 자기 혼자 거울 보고 웃는 미중년보단, 젊은이들과 함께 웃는 전당포 중년이면 제법 만족해도 좋을 듯 싶다.

P.S. 월드컵 붐을 타고 미중년 붐을 일으킨 독일 대표팀의 속칭 '장동건' 뢰브 감독도 코딱지 먹는 동영상 하나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게 세상이다. 미중년까진 언감생심이라도 최대한 깔끔은 떨어야 한다는게 교훈이다. 곱게 늙기, 정말 쉽지 않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네. 하려는 말이 모두 들어 있다 보니 더 보탤 말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눈꼬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미중년' 아저씨들이 젊은 아가씨들에게 빠다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눈빛과 멘트로 어필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저건 그러니까 그냥 영화, 그것도 미국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위에 나온 분들 가운데 얼굴을 잘 모를만한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사진을 몇장 더 덧붙입니다. (의외로 조국 교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일단 한국의 진정한 엄친아로 꼽히는 조국 서울대 교수.


송호창 변호사


염재호 고려대 교수, 그리고


아, 죄송합니다. 이 분이 아니군요.


(야유는 좀;; 솔직히 이런 저질 개그 좋아하시는 분도 많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여성들이 '중년 남성'의 매력으로 꼽는 가장 큰 요소가 지성미였다는 겁니다. 잘생기되 살짝 비어 보이는 것도 젊어서는 매력으로 커버될 수 있지만 나이 먹은 뒤에는 뭘 채워 줘야 버틸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아, 물론 며칠 전에 만나 뵌 미모의 법조인 한 분이 엄격하게 제한을 하신 내용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성미가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어쨌든, 뭐니 뭐니 해도, 심지어 얼굴 생김보다도 날씬한게 중요하다. 배 나오고 퉁퉁한 사람은 절대 미중년이 될 수 없다. 지성미 아니라 뭐라도 그냥 아저씨다."

네. 그래서 미중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성미+날씬한 뱃살이라고 정리하면 될 듯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있는 분들은 그냥 '괜찮은 아저씨'에 만족하셔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무슨 노력을 해도 뢰브 감독 같은 외양을 갖출 수 없는 분들은 지성미라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괜찮은 아저씨 소리라도 듣죠. 이게 오늘의 주제.)

보너스는 - 이미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 뢰브 감독 팬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바로 그 동영상입니다. 파는 건 뭐 그렇다 치지만 먹는 건 좀...;;



그럴듯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트위터에서 링크를 클릭하신 분들은 추천창이 글 맨 위에 있습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빨리 아실 수 있습니다.



728x90

비정상적인 연애 관계들이 TV 드라마를 점령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KBS 2TV '결혼해 주세요'에서 이종혁과 이태임이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대학 교수이며 유부남인 이종혁에게 아나운서인 이태임이 계속 눈길을 주고, 결국 야한 수영복 차림으로 혼자 수영을 즐기는 이태임을 이종혁이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결국 다가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뭐 불륜은 그냥 하나의 소재일 뿐이고, 이런 드라마가 나온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불륜'을 다루는 시선이 너무도 원초적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꽤나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보다 훨씬 쇼킹한(장면이 아니더라도) 드라마 속 설정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번은 MBC TV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의 박상원과 조윤희. 실제로도 23년차인 이들은 극중에서도 20년 차이가 넘는 연인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박상원은 부담스러워하지만, 조윤희가 막무가내로 애정 공세를 퍼붓고 있는 거죠.



여기에 질세라 KBS 1TV 일일드라마 '바람불어좋은날'에서는 이 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얘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이현진이 엄마뻘인 김미숙에게 막무가내로 구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나이 차이는 이쪽이 더 심합니다. 실제로 26년, 극중에선 약 20년 차이). 남녀가 바뀌었을 뿐, 양쪽 방송사의 일일드라마에서 모두 중년 남녀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젋은 남녀의 애정 공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년 얘기는 아니지만 이 '바람불어좋은날'이라는 드라마는 주인공 김소은이 애 딸린 진이한과 결혼하지만, 그 아이의 생모이자 진이한의 회사 회장 딸인 이성민이 미국에서 갑자기 돌아오는데 이 생모는 옛 애인이 키우고 있는 그 아이가 자기가 낳은 아이라는 것도 모르고, 심지어 과거에 아이까지 낳았던 연인인 진이한과 이성민은 한 회사 한 사무실에서 서로 존댓말을 써 가며 함께 일하고 있다는... 참 어처구니없는 설정까지 동반하고 있습니다. 한숨만 납니다.^)



대체 이런 설정들은 왜 등장하고 있는 걸까요. 우선 TV 드라마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자면,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간대별 최적 제작비를 구축해놓은 상태입니다. 즉, 다시 말해 일일드라마가 방송되는 시간대에는 제작비가 얼마를 넘으면 안되고, 그 결과로 시청률이 얼마 이상 확보되면 얼마 정도의 광고가 붙는다는 계산이 끝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는 줄이고 시청률은 올리는 방법은 결국 '막장'이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출연료나 로케이션, 특수효과 같은 돈은 전혀 들이지 않고 센세이셔널한 상황으로 시청자들을 잡아당기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여기에 '중년의 큰 나이차 연애'라는 게 들어간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입니다. 젊은 층이 지상파의 실시간 시청자에서 이탈하면서 이 시간대의 주요 시청층은 아무래도 이현진이나 조윤희보다는 박상원이나 김미숙 쪽과 감정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게 사실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션 코너리 같은 미노년(?)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자주 다뤄지는게 대부호인 할리우드 스튜디오 임원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한국 TV의 중년 열애 붐은 바로 시청자들에 대한 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당장 40, 50대 시청자들에게 20대의 꽃미남 꽃미녀가 달려들어 '저랑 사귀어 주세요'라고 말하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겠지만 드라마 속 얘기는 흐뭇하게 볼 수 있는 거죠.



단 이런 얘기들이 너무 막 나가다 보면 얼마전 방송된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이필모와 박지영의 연하남-연상녀 상황처럼 욕을 먹게 됩니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조금 더 높았더라면, 이 베드신은 아마 꽤 논란이 됐을 겁니다. 사실 맨 위에서 소개한 '결혼해주세요'의 장면들은 이 베드신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죠.^

그러니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황금물고기'는 섣불리 사랑의 진도(?)를 나가지도 못합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우리 세대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하는 흐뭇함일 뿐, 거기서 뭔가 더 진척되면 채널이 돌아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중년의, 나이 차이가 큰 사랑 이야기를 다뤄도 지난달에 방송된 MBC TV 특집극 '나는 별일없이 산다'의 경우는 70 노인인 신성일과 30대인 하희라의 애정행각(?)이 그려졌어도 '망칙하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극중 신성일이 곧 삶을 마감할 환자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철없다거나 장난스럽다는 느낌, 혹은 억지라는 느낌 없이 매끄럽고 성숙한 만남으로 승화되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만큼 자극적인 재미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중년 열애든 불륜이든, 소재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인 것은 그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드라마들은 이런 소재들을, 가능한 한 자극적이고 싸게(제작비 안 들게) 다뤄서, 사람들의 원초적인 호기심만 키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너무 선명합니다.

시청률의 확보, 그리고 중노년층 시청자에 대한 아부(!)라는 두 가지 속보이는 목적을 가진 요란한 불륜-중년 연애 드라마들, 어째 정신건강을 위해선 좀 시청을 피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 지나면 좀 제 정신이 돌아오려나요.


그럴듯하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바로 아실수 있습니다.


728x90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에 대해 수없이 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들 속에는 흔히 공통된 단어나 어구가 등장합니다. '난해' '관객의 혼동' '지적인 블록버스터'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꿈과 현실의 혼란' 등등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말들에 현혹되어 이 영화가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하며 다 보고 나서도 뭔가 화장실에서 물 안 내리고 그냥 나온 듯 찜찜한 기운이 남는 영화라고 착각하실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아 급히 몇줄 쓰기로 했습니다. '인셉션'은 절대 그런 영화 아닙니다. 탄탄한 대본과 놀라운 연출이 조화를 이룬, 독창성에 찬탄을 금할 수 없는 그런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놀런의 전작 '다크 나이트'를 훨씬 뛰어넘는 작품입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설정을 전혀 모르셔도 상관 없지만, 아셔도 될 부분까지만 설명드리겠습니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아서(조셉 고든 래빗)는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해 비밀을 찾아내는 콤비입니다. 이들은 큰 회사의 요청에 따라 일본의 대부호 사이토(켄 와타나베)의 꿈에 침투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사이토에 의해 격퇴당하고, 반대로 그의 청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새로운 미션을 위해 코브와 아서는 꿈 속에 침투하는 드림팀을 짭니다. 새로운 꿈의 설계자로 여대생 아리아드니(엘렌 페이지), 무엇으로도 변신하는 임스(톰 하디), 약물전문가 유수프(딜립 라오)가 합류하죠. 그런데 코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아내였던 맬(마리옹 코티아르)가 계속 꿈에 등장한다는 거죠.


영화 내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꿈 속에서 또 꿈을 꾸고, 그 꿈에서 한 단계씩 심연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설계'한 놀런의 상상력입니다. 게다가 놀런이 창조한 세계 못잖게 보는 이를 놀라게 하는 것은 실로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연기파 배우들로 채워진 라인업입니다. 화려함으로는 '오션스 일레븐'에 뒤질 지 모르지만 실력파들로 채워졌기로는 근래 보기 드문 탄탄한 진용이더군요.

출연진 가운데 7명이 오스카 후보에 올랐고 그중 2명(마이클 케인, 마리옹 코티아르)은 수상자입니다. 나머지 6명은 3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 수상하지 못한 디카프리오,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피터 포슬스웨이트, '주노'의 엘렌 페이지, '라스트 사무라이'의 켄 와타나베, '플래툰'의 톰 베렌저입니다.
 
하다못해 단역인 첫 장면의 설계자 역으로 루카스 하스, 그리고 누워서 몇마디 하지도 않는 늙은 피셔 회장 역으로 피터 포슬스웨이트가 나오는 걸 보고 '이것이 스타 감독의 위용인가...'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초반부터 조셉 고든 래빗과 루카스 하스가 함께 나오는 걸 보니 갑자기 아이디어가 신선했던 영화 '브릭' http://www.imdb.com/title/tt0393109/  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배우가 있더라도 그게 영화의 성패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배우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제대로 활용한 놀런의 실력은 다시 한번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놀런이 이번에 창조한 세계는 꿈 속. 물론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1950년대의 영화광에게 '인셉션'을 보여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그동안 '매트릭스'를 봤고, '바닐라 스카이(혹은 '오픈 유어 아이즈')'를 봤고, 하루 아침에 도시 하나를 만들었다 허무는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를 봤고, 사람의 뇌를 하드 디스크로 활용하는 윌리엄 깁슨의 원작 소설을 기초로 한 '코드명J(Johnny Mnemonic)'를 봤고, 사람의 마음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아이덴티티'를 봤고, 연인의 마음 속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을 그린 '이터널 선샤인'을 봤으므로 남의 꿈속에 들어가고, 남과 나의 꿈을 연결해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이 감춰진 비밀을 훔쳐낸다는 황당무계한 설정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변화에 따라 놀런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을 서로 연결해주는 기계의 매커니즘 따위에 대해서는 설명을 절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으로 러닝타임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것이 놀런의 입장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설정의 기본 골격이 워낙 탄탄하고 설명이 명료하기 때문에, 놀런이 사소한 부분에선 수시로 설정을 바꾸는 데에도 관객은 쉽게 적응합니다.

그러니까 '매트릭스' 시리즈가 1편의 탁월한 설정과 창의력에도 불구하고 2편, 3편으로 가면서 지나치게 관객들을 혼란시키며 자멸의 길을 걸은 반면, 놀런은 아예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설정을 완전히 배제해버리며 보다 관객들에게 친숙한 길을 걷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 장면 하나 정도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건 글자 그대로, '관객의 취향'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기도 책임질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결말을 내려 놓고서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관객에게 '그건 관객이 해석할 몫'이라고 대답하는 한심한 감독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무책임한 감독들이 '관객이 해석할 몫'이라고 말할 때에는 콘서트에서 진정 관객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이 올라가지 못하는 고음 파트에서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내미는 가수가 떠오릅니다.


잠시 다른 길로 빠졌지만 이 영화를 통해 놀런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오래 전 칼 융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은 깨어 있을 때 의식상태에서 하는 것과 달리 무의식이 뭔가를 위해 움직이고, 그 결과물인 꿈에서 사람은 자신이 의식상태로 인지하지 못하는 의미를 전달받곤 한다는 식이죠. 그래서 주인공들은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 단서를 심고,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데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써놓고 보면 길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고, 칼 융 이후에 누가 또 뭘 어쩌고 누구의 철학 이론에 따르면 꿈이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에는 아무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데 그런 바보같은 수작은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놀런의 공헌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충분히 납득이 가면서도 박진감있는 스토리로 풀어놓는가 하는 부분에 있죠. 이런 차이가 어떤 사람은 공부나 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대 감독이 되어 떼돈을 벌게 합니다. 꿈속의 꿈 부분, 그리고 꿈의 단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부분 등은 정말 탁월한 설정입니다.



'인셉션'에 대해서는 깊이 우려먹을 부분이 또 있을 것 같아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해 두려 합니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해도 꽤나 머리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어쨌든 이런 얘기들은 나중에 다시 하고, 결론은 꼭 보시라는 것.^^

P.S. 많은 분들이 결말을 갖고 머리를 썩히시지만,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정답이 없는 결말입니다. 어느 한 쪽이든, 관객이 믿고 싶은 쪽을 믿으면 됩니다. 

P.S.2. 소위 '킥 송'으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마리옹 코티아르가 여주인공인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솔직히 '아이들 5초 가수 비판'이라는 리포트가 MBC 뉴스데스크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이들 가수들에 대한 '주류 언론'의 시각이 그리 곱지 않았다는 건 엊그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 지나는 동안, 이 '5초 가수 비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을, 정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선 아무래도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꼼꼼이 다시 뜯어 봐도 뭔가 이상한 논리였기 때문입니다.



보도를 직접 보지 못한 분들도 있을테니, 보도의 주요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전체 보도 내용은 이쪽에 있습니다.

http://imnews.imbc.com//replay/nwtoday/article/2663569_5782.html




그리고는 애프터스쿨의 사례가 제시됩니다.

8인조 걸그룹 애프터스쿨이 음악방송에 출연해 부른 3분짜리 노래입니다.
멤버들이 개인별로 노래한 시간을 재봤습니다.
리더인 가희가 18초, 메인 보컬 레이나가 13초, 정아는 6초, 주연은 가장 적은 3초.
멤버 하나가 빠져 일곱명이 노래를 불렀지만 솔로파트 시간은 3초에서 최대 18초였습니다.



일단 전제가 해괴합니다. 한 그룹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각각 개인이 부른 솔로 파트가 짧으면 '가수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일단 이 말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건 우선 조금 두고 보겠습니다.

두번째, 배분 문제입니다. 3분짜리 노래를 8명이 정확하게 나눠 불렀다면 약 22초, 7명이 불렀다면 25초 정도씩이 나옵니다. 그런데 3분짜리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솔로들이 돌아가며 불러야 정상적인 노래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전주 빼고, 간주 빼고, 후주 빼고, 여러명이 함께 부르는 하이라이트(업계에선 '싸비'라는 말로 자주 불립니다) 부분을 다 빼고, 돌아가며 부르는 부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많아 봐야 전체 노래의 60%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가희의 18초 등등은 오히려 인당 평균보다 많이 불렀다는 뜻도 되겠죠. 그러고 나면 대체 '가수란 말이 무색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이 보도에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얘기일 수도 있을 법 합니다. 이를테면 한 그룹 내에 '노래하는 멤버'와 '노래보다는 다른 쪽으로 기여하는 멤버'의 구분이 너무 확연하고, 그러다 보니 양쪽 멤버들 사이에 노래의 배분이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그래서 후자 쪽, 즉 노래보다는 미모나 댄스 솜씨로 기여하는 멤버들은 과연 가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뭐 이런 뜻이라면 이것 역시 철지난 얘기긴 하지만, 어쨌든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보도 내용을 보다 보면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최근 우리 대중가요판에는 이처럼 무늬만 가수라는 비아냥 섞인 소리를 듣는 초단위 가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창력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제가 말한 '호의적인 해석'에 따른다면, 한 팀 안에서 노래를 잘 하는 멤버에게 그냥 무임승차하는 이상한 멤버들이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끌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보도는 내내 '혼자 부르는 시간이 초 단위이기 때문에 그룹 전체가 문제'이고 '이런 그룹의 창궐이 가요계의 문제'라고 몰고 가고 있습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지금껏 나온 어떤 그룹에도 에이스에 가까운 멤버들이 있고, 그 멤버에게 가창 시간이 집중되어 왔다는 걸 모르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슈프림스의 노래를 틀어 놓고 과연 다이애나 로스에 비해 다른 두 멤버들의 솔로 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잘라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노래 시간이 짧으면 가수가 아니라는 생각은 어느 시대의 발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보도 하나로 메인 보컬 한 사람의 비중이 거의 2/3를 차지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수로서의 자격이 없는 그룹이 되어 버린 거죠.

네. 오케스트라에서 40분 내내 졸다가 1분 둥둥둥 두드리고 나오는 팀파니 주자는 연주자도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논리의 혼란이 오자 아예 '댄스 그룹이 문제'라는 쪽으로 논리가 전개됩니다.

◀ANC▶
그런데 이런 가수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요?
◀ 기 자 ▶
팬들의 쏠림현상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수익을 위해서 그 조류에 영합해야 하는 가요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짚어보겠습니다.
우리 대중가요시장을 주도하고 있는건 10대와 20대 젊은 팬들입니다. 방송도 이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기획사들은 젊은층의 기호에 맞출 수밖에 없고 그 해답을 아이돌 댄스그룹에서 찾았습니다.
자연히 노래실력 보다는 외모와 춤실력 거기다 개인기까지 지닌 이른바 엔터테이너가 각광받게 됐는데요
여기에 설 자리를 잃은 음반시장으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야하는 기획사들의 현실적인 이해가 더해져 노래실력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아이들 그룹이 국내에 처음 생겨나던 1996년 언저리였다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만 해도 '붕어'라는 놀림에 맞대응할만한 그룹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2004년 데뷔한 동방신기는 처음부터 아카펠라를 시도하며 '누가 아이들 그룹이 노래를 못한대?'라며 정면으로 치고 나옵니다.

그 이후, H.O.T와 핑클을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세대들은 노래와 춤 면에서 전 세대에 비해 획기적인 기량의 발달을 보이죠. 다른 기량을 다 잘라 버리고 '노래 실력'만 놓고 보더라도 그 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들이 데뷔하기 전까지 수년간 받은 엘리트 훈련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얘기입니다.

사실 너무 허점이 많은 논리라서 무엇부터 공격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보도는 뒤로 가면서 '노래 실력=가수의 가치'라는 해괴하고도 1차원적인 논리에만 기대고 있습니다.

일찌기 70년대 포크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대의 국민가수 송창식 선생은 지난해 연말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그룹이라고 나오는 친구들을 우습게 보면 큰일나지. 옛날 가수들하고 비하면 실력이 월등해. 기본적으로 연습을 많이 하잖아. 물론 혼 같은게 실린 노래가 별로 없다는 건 좀 아쉽지."

그러니까 '노래 실력'이라는 기준도 분명 의심스럽습니다. 매끈한 음색과 엄청난 폐활량, 폭발적인 가창력 등으로 평가한다면 라이브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김장훈이나, 가끔씩 '노래 솜씨'를 보여주는 유희열은 가수라는 명패를 달 자격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뉴스데스크의 논리로 따지자면 밥 딜런은 정말 쓰레기일수도 있겠죠.




어쨌든 댄스 장르의 창궐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발달하는 걸 가로막고 음악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논리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귀가 닳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보도에서도 지적하듯, 한국 가요 시장이 10대 20대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맞지만 어느 나라나 대중 음악 시장은 10대나 20대가 주요 고객이고, 어느 나라나 10대나 20대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문제는 10대나 20대가 아이들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30대나 40대가 음악 시장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 있다는 거란 사실을 제발 좀 직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뻔한 얘기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10여년 전 10대 시절에 아이들 그룹을 좋아하셨던 분들, 이제는 한참 어른이 된 강타나 바다, 옥주현의 음악을 돈 내고 소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뉴스 만드는 분들, 기사 쓰는 분들, 음악 시장의 장르가 다양화되는 게 좋은 일이란 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댄스 음악이 잘 되기 때문에 다른 장르가 죽는다고는 하지 맙시다. 그건 그나마 아이들 그룹 덕에 먹고 사는 가요 시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스포츠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프로 야구만 좋아하고, 다른 프로 스포츠를 외면한다면 '프로 스포츠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로 야구가 한국 프로 스포츠를 교란하고 있다고, 그게 문제라고 보도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올림픽 종목도 아닌 '저질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야구 팬들을 매도해도 좋겠습니까? (선수 열한명이 쉬지 않고 90분 내내 뛰어다니는 축구에 비해)타자 한명이 때리는 시간이 전체 경기 시간의 1/9이 안 된다고 야구를 저질 스포츠라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올림픽 전략 종목인 핸드볼이나 필드하키 경기장의 객석이 비는게 과연 야구 팬들 때문일까요? 

공감하시면 왼쪽 아래 손가락 표시(추천)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실시간으로 아실 수 있습니다.
 

728x90

'이끼'가 벌써 관객 100만을 넘어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워낙 기대작이었고 관심이 쏟아지던 터라 흥행 호조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 '이끼'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이미 쓴 터라 이번엔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영화 속 인물들과 실제 인물들의 일치도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일치도 1위는 단연 박해일이겠지만, 물론 얼굴이나 분위기가 닮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캐스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이끼'에 대한 리뷰는 이쪽입니다.




'이끼'가 영화화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독자들은 해국 역으로 박해일을 추천했습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었던 듯 합니다. 박해일은 나무랄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지만, 한편으로는 반항기 풍기는 프로필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해국은 똑똑하고 용의주도한 인물이면서도, 세상을 손해 보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어찌 보면 너무 올곧아서 비뚤어져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남편과 사는 아내라면 가끔씩 소리를 지르는게 정상이겠죠. "제발 웬만한건 좀 대충 넘어가! 당신은 뭐가 그렇게 잘 났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박해일에겐 왠지 그런 캐릭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가장 논란이 심했던 것은 이장 역의 정재영. 이장 천용덕과 해국의 아버지 류목형 역으로는 30대 배우와 70대 배우를 각각 기용하는 방법과, 한 배우에게 노역과 젊은 역을 모두 연기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강우석 감독은 한 배우에게 모두 맡기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정재영이 선택됐습니다. 젊은 천용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과, 감독이 함께 일해서 신뢰할 수 있는 배우를 쓰겠다는 뜻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아무튼 앞의 글에서도 거론했다시피 정재영의 연기는 합격점 이상입니다. 다만 류목형이 '두려움이 당신을 구할 것'이라고 선언할 때 등의 디테일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와 관련해 솔직히 가장 기대와 벗어났던 캐스팅은 류목형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어찌 보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중 하나인 허준호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류해국이나 천용덕에 비해 훨씬 깊이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아마 강우석 감독도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원작의 인물에 비해 영화 속의 류목형은 어느 정도 평범한 성직자의 느낌이었달까요. 류목형은 그저 자애로운 인물의 느낌이라기보다는, 광기 어린 교주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한없이 포근하게 온갖 죄인들을 끌어안는 모습인 동시에, 말 한마디로 산전 수전 다 겪은 천용덕이 움찔하게 하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눈빛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신비로운 인물의 이미지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유선. 영화 속의 영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비극적인 여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선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청승'의 극한이죠.

하지만 원작의 영지는 오히려 기이한 마을의 유일한 여자로서, 그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 보이는, 묘하게 육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캐릭터입니다. 그 마을의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에 여족장처럼 잘 젖어 있는 모습이죠. 하지만 영화 속 유선은 매일 밤마다 눈물로 지샐 것은 같은 연약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원작과 달라서 효과적인 부분도 없습니다.




유해진, 김준배, 김상호가 연기한 마을 주민 3인방은 그림에서 튀어나온듯한 조화가 빛났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들 세 캐릭터가 얼마나 흉악하고 무서운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김상호가 연기한 성만은 원작 속에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사이코패스지만 영화 속에선 그저 흔한 밀렵꾼으로 축소되어버리더군요. 아무튼 신체적인 강건함으로 상대를 위압하는 성규 역의 김준배는 매우 인상적인 호연을 펼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작과 가장 달라진 캐릭터로는 박검사를 들 수 있습니다. 유준상이 연기하는 박검사는 시종일관(?)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는 캐릭터입니다. 오버액션도 제일 많고, 어쩌면 원작 '이끼'의 박민욱 검사보다는 '공공의 적2'의 강철중 검사(설경구)와 훨씬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원작의 박검사는 류해국에 대한 원한과 막혀버린 출세길에 대한 좌절감으로 폭발하기 직전에 있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박검사는 해국 때문에 시골로 좌천된 것을 오히려 즐거워하는 듯한 묘한 냄새를 풍깁니다. 원작에서 '고민'의 요소가 어디론가 가출해버린 캐릭터가 된 것이죠.

물론 전후사정을 다 떼고, 그저 활기차고 정의로운 검사 캐릭터가 하나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유준상은 그 연기라면 제대로 멋지게 해 냈습니다.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작과의 비교인데, 캐릭터 하나의 성격이 변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캐릭터가 그대로인데 배우가 살리지 못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절대 간과하면 안 될 것이, 만화 원작과 영화 속 캐릭터의 일치나 불일치를 얘기하는 건 그냥 그걸로 끝나야 합니다. 그 일치와 불일치를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건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원작 팬과 영화 관객이 모두 환호하면 좋겠지만, 원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영화 관객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원작과 동떨어진 각색이라도 독자적인 생명을 갖는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원작에서 빼다 박은' 캐스팅이라고 반드시 베스트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은 정말 정교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에 썼던 글 하나를 붙여 보겠습니다.


제목: 캐스팅

1938년 마거릿 미첼의 베스트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누가 남녀 주인공을 연기할 것인가에 몰렸다. 레트 버틀러 역을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 클라크 게이블이 한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 역은 달랐다. 캐서린 헵번, 메이 웨스트를 비롯한 30여 명의 톱스타와 그 몇 배나 되는 신인들이 물망에 올랐어도 전설적인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은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셀즈닉은 '마법과도 같은 그 어떤 것'을 가진 여배우를 원했다.

여주인공 없이 촬영이 진행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셀즈닉은 영국 출신의 비비언 리를 낙점했다. 여론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무명의 영국 배우가 '남부의 정신'을 대표하는 여주인공을 연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셀즈닉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완성된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지금도 '너무나 완벽한 캐스팅이라 감히 리메이크할 수 없는 작품'의 대명사로 꼽힌다.

원작이 있는 영화치고 독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감독이 고른 실제 배우의 일치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은 예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최근에는 '싱크로율(synchro率)'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제 캐스팅된 배우가 원작의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기존 독자들의 지지가 높지만 그것이 반드시 최상의 캐스팅인 것은 아니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는 원작인 윤태호의 동명 웹툰(인터넷 연재 만화)이 워낙 인기였던 탓에 제작 초기부터 싱크로율 논란에 시달렸다. 주인공 중 유해국 역의 박해일은 독자들로부터 '싱크로율 100%'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이장 역의 정재영은 '싱크로율 50% 미만'이란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영화가 공개되자 정재영에 대한 지지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최근 후임 총리와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화제다. 민심 속의 이미지와 싱크로율이 높은 캐스팅, 뭘 시켜도 잘 해낼 듯한 인기스타를 앞세우는 캐스팅에도 장점이 있지만, 처음에는 평이 엇갈려도 세월이 흐른 뒤 적역이었음이 입증되는 게 진정한 인선의 묘미다. 캐스팅 책임자의 안목과 의지가 더없이 중요할 때다. (끝)



이상. 마음에 드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728x90

올해 한국영화 최대의 기대작이라는 표현이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강우석 감독의 '이끼'는 초반 화제 몰이에 성공한 느낌입니다. 첫 주말이 오기 전에 이미 10만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관객 중에는 여성층의 호응이 높은 편입니다.

반면 웹툰으로 연재됐던 원작 '이끼'에 애정이 깊었던 관객들이 영화로 등장한 '이끼'에 보여주는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지난 100년간 '원작보다 훌륭하다'는 평을 얻었던 영화는 그야말로 극소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영화 '이끼'가 웹툰 '이끼'와는 참 다른 작품이 됐다는 점입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일단 줄거리- 영화의 전개를 따릅니다.

1970년대 후반. 독하기로 소문난 형사 천용덕(정재영)은 친분이 두텁던 한 기도원 원장으로부터 어떤 남자가 기도원 측으로부터 신도들을 빼앗아가고 있으니 손을 봐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류목형(허준호). 처음에는 그저 겁을 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천용덕은, 이 남자가 기도원 신도들은 물론 같은 교도소의 흉악범들까지도 길들여버리는 무서운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원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작대로라면 이렇게 시작해야겠죠.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농촌 마을, 류목형의 부고를 받은 아들 류해국(박해일)이 찾아옵니다.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부조리한 꼴이나 억울한 손해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소한 폭력 사건에 휘말린 뒤 분쟁 과정에서 담당 검사 박민혁(류준상)을 시골로 좌천당하게 만들지만, 그 또한 직장도 잃고 아내에게도 버림받은 남자입니다.

그런 류해국을 마을에서 맞은 것은 이장인 천용덕, 덕천(유해진) , 성만(김상호), 성규(김준배). 그리고 류해국은 이 마을에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돈다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묘한 분위기의 미인 영지(류선)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류해국이 어두운 밤, 차를 달려 마을에 도착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점점 마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장의 전직이 형사였고, 아버지 목형과 이장 천용덕의 인연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 인연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아마도 영화의 전체 얼개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큰 차이일 듯 합니다. (흔히 영화와 웹툰의 결말이 다르다는 부분이 언급되곤 하지만, 그건 사실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이런 전개 과정의 변화는, 어쨌든 영화는 영화고 웹툰은 웹툰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수용할만한 일입니다. 원작 팬들은 '이끼'의 숨막히는 구성과 절묘한 커트에 열광했던 터라, 웹툰 '이끼'의 어느 장면 하나, 어느 컷 하나, 어느 대사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는 영화화를 기대하는게 당연하지만, 세상에 그런 영화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원작의 완벽한 미적 구성을 생각하면, 웹툰은 콘티로 삼아 그 컷대로만 찍으면 될 것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극단적인 비난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영화 '이끼'는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원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관객들의 성원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원작 '이끼'의 볼륨은 160분에 담을 수준은 아닙니다. 아마도 원작 팬들이 원하는 영화를 뽑아내려면 최소 300분 정도는 필요합니다. 도입부의 설정을 바꾼 것도 일단은 물리적으로 관객이 볼 수 있는 시간 안에 '이끼'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캐스팅은 매우 긴 얘기가 되겠지만, 원작과 영화의 캐릭터가 100% 똑같지는 않다는 정도로 얘기해 두려고 합니다. 아마도 가장 다른 인물은 유준상이 연기하는 박민욱 검사일 겁니다. 원작에서 박민욱 검사가 느끼던 좌절과 분노가 많이 희석된 만큼, 어찌 보면 코믹하고 지나치게 밝은 인물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정재영의 이장 연기는 '우려에 비하면 대단히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젊은 이장과 나이든 이장에 두 명의 배우를 써서, 늙은 이장 역에는 이 분의 연기를 보고 싶었지만 어쨌든 정재영은 충분히 제 기량을 보여줬다고 인정합니다.


정작 아쉬움이 남는 캐스팅은 영지 역의 유선과 류목형 역의 허준호입니다. 캐스팅에 대해서는 더 할 이야기가 있어 이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캐스팅, 레전드급은 아니지만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 '이끼'와 웹툰 '이끼'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웹툰 '이끼'가 그 많은 독자를 매료시킨 동력은 음울하면서도 사방에서 죄어 들어오는 듯한 독특한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영화 '이끼'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힘듭니다.

웹툰 속 마을은 대체 해가 비치기는 하는지,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웃고 떠들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음습한 공간입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지역과는 다른, 이계와 같은 공간입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정도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영화 속 마을은 여느 농촌과 그리 다를 게 없습니다. 해가 비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게다가 수시로 삽입되는 강우석 감독 특유의 유머는 원작 속 어둠의 흔적을 저 멀리 날려 버립니다.

물론 160분짜리 영화를 내내 어둡고 무겁게만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강우석 감독의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유머가 삽입됐다고 해도, 전체적인 영화의 톤이 그렇게 밝아져버린 것은 매우 의아한 선택입니다.



이럴 때 '살인의 추억'을 들고 나오는 것은 좀 불공평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살인의 추억'을 본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가?'를 비롯해 여러 차례 등장하는 코믹한 대사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밝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가 보여준 전체적인 밝은 분위기를 더욱 선호하실 분도 있을 듯 하지만 원작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분위기의 교체는 좀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류목형과 천용덕이 이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될 죄인들을 억류해 놓은 마을'이 그냥 태양이 비치는 일반적인 마을로 그려진 것은 좀 불만스럽습니다.

(사실 이 유머 부분은 영화화 과정에 대부분 스태프처럼 참여한 윤태호 작가도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요소'라고 지적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525310)


결론적으로 영화 '이끼'는 160분을 즐기는 데 그리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고 평할 만 합니다. 하지만 원작을 사랑하셨다면 그 사랑의 깊이가 깊을 수록 실망이 커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만약 둘 다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영화를 먼저 보시고 웹툰을 나중에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아마도 그 쪽이, 두 작품을 최대한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일겁니다.


흥미로우셨으면 왼쪽 아래 손가락(추천)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