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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오래 전, 학교 다니던 시절에 자주 들을 수 있던 노래 가운데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

주위엔 비슷한 행색의 누추한 사람들 뿐입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빛이 나는 반면, 나이의 증거는, 고생의 흔적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보통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광경을 보면 뭔가 약간 의아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쇠창살 너머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 '새'라는 노래를 들을 때 문득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시절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Annie Haslam이란 이름을 들을 때 Renaissance 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분들은 만만찮은 연력을 쌓은 분들이겠군요.^^

퀴즈: 이 여가수와 민해경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을 편곡한 노래를 불렀다. 애니 해슬럼은 이 노래, 민해경은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





정답은 예전처럼 'Indiana Jones3: Last Crusade'에 나오는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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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어쩌다 아주 가끔씩, 몇초 동안의 여유에

언뜻 언뜻 떠오르는 옛날 생각으로 흘러가는 달.

스스로를 격려할 필요.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

그런데 그 제목을 가진 노래가 한둘이 아니더라는.

어쨌든 찾으려던 노래는,

바로 이거.



 
언뜻 들으면 그냥 쿵/딱/쿵/딱 막 치는 드럼 같은데 이 양반, 왕년에 제프 벡과 BBA 트리오도 하고 바닐라 퍼지도 하고 한창 잘 나가던 카마인 어피스라는 형.

어쨌든 에리어 88도 참 옛날 생각 나게 합니다그려. 신이 F8 타는 걸 보니 초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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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그런 경험 있으실겁니다.

무슨 짓을 해도 여유없을 시간에 잠깐 한눈 파는게 얼마나 달콤한지 느껴볼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죠.

학력고사 2주 남은 재수생 시절에도 어쩐지 당구 한 게임 안 치면 시험 당일날 장이 꼬여서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느낌.

사람이 나이 먹어도 절대 철이 안 든다는 게 바로 지금 또 느껴지는 듯 합니다.





지난번엔 밑도 끝도 없이 카레짜 호수가 떠오르더니 어제부터 불현듯 이 노래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놀랍게도 이 노래가, 이 영화가 나올때에는 저도 10대였군요.

이 노래에는 두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위의 연주곡 버전이 있고, 육성 버전이 있죠. 목소리가 있는 버전의 제목은 For Just A Moment 입니다. 사실 박자도 육성 버전이 조금 느리죠. 어쨌든 데이빗 포스터의 전성기입니다.



왠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갑자기 코 끝에 볏짚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스치는 듯 했습니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의 들판, 끝없이 뻗은 듯한 지평선. 지는 해. 지는 나뭇잎.

비슷하게 느끼시는 분이 또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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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덕분에 구경은 제법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 보겠다고 마음먹은 곳도 많습니다만, 그 중에 카레짜 호수(Lago di Carezza, Carezza lake)란 곳이 있습니다.

갑자기 이 호수가 생각난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 호수의 영상이 떠올라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네요. 그저 아름다운 호수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 때문인지는 쓰면서 정리가 될 듯도 합니다.

이 호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거울같은 호수 위로 침엽수림이 잔뜩 우거져 있고, 그 뒤로 눈덮인 알프스의 연봉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건 어쩐지 영화의 세트지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환상적인 공간입니다.

이 호수가 있는 곳은 북부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e)라고도 불리고 남 티롤(South Tyrol)이라고도 불리는 알프스 산맥의 남쪽 끝자락입니다.


(당연히 A자 마크가 있는 곳이 바로 이 카레자 호수가 있는 곳입니다.)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한참 올라가다 보면 볼차노(Bolzano)라는 제법 큰 도시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국경선은 알프스 산맥입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눈 덮인 알프스를 관광자원으로 화려하게 개발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는 제가 가 본 10년 전까지 아직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구글 어스의 힘으로 이 호수의 주변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그리 큰 호수는 아닙니다. 긴 쪽의 길이가 한 100m 정도?


그런데 이런 주변 여건 덕분에 저런 환상적인 풍경이 나타나는 겁니다. 사진의 각도상으로는 북쪽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남쪽으로 저렇게 거대한 바위산이 있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 덕분에 이 각도의 광경을 좀 더 실감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호수 주변은 죄다 이런 바위산 투성이입니다. 이 바위산들이 절경 중의 절경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 지역에서는 이 동네를 '신의 장미정원'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그런데 사진이 도저히 그 실체를 따라가지 못하는군요. 왜 저렇게 빛바랜 색만...

이 사진이 비교적 실제 색상에 가깝습니다.

이런걸 바로 벽옥색이라고 해야 할까요. 황룡 오채지의 물색이 어떤지는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렇게 녹색, 푸른색, 하늘색, 연두색이 뒤섞인 채로 투명하게 빛나는 물색은 다른 곳에선 본 적이 없습니다.

뚱딴지같은 먼 호수 얘기에 당황하신 분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마음이 좀 가라앉는 듯 합니다. 언제쯤 저런 물색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음달 초까지는 블로깅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뭐 트위터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나날이 계속되다 보니 이렇게 푸념처럼 떠드는 것도 사치일테지요. 아무튼 가끔씩 뜬금없이 한두마디씩 올리는 걸로 위안을 삼아 보렵니다.

날이 쌀쌀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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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과 존 박의 아름다운 성공드라마가 여전히 화제입니다. M.net의 '슈퍼스타K' 시즌2를 통해 두 사람은 매주 금요일 늦은 밤마다 온 국민을 설레게 하며 열띤 경쟁을 펼쳤고, 우승자 허각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의해 정치권 화두로도 등장했습니다.

거의 10주간에 걸쳐 시청률 10%가 넘는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고정출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10%는 방송/연예/가요계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에서는 그 몇 배나 될만한 수치고, 마지막에는 거의 20%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이들 두 사람은 웬만한 신인 가수와 소속사가 약 1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활동한 수준의 지명도를 얻고 정식으로 데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수많은 기획사들이 이들에게 문전성시를 이뤄야 정상이겠지만, 어쩐지 수많은 회사들이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과연 눈치를 본다면 이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요.



허각과 존 박의 미래를 보기 위해 가장 좋은 비교 대상은 지난해 '슈퍼스타 K' 우승자 서인국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인국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우승 직후 내놓은 싱글 '부른다'는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연말까지 서인국은 이해 최고의 신인으로 당당히 꼽힐만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내로라할 소속사와 계약도 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서인국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분명 지난해 연말이 최고점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활동을 쉰 것도 아니죠. 올해 5월과 8월 미니앨범을 내놓고 활동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서인국의 활동을 지상파 3사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서인국의 지상파 나들이는 아직도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KBS는 최근 '남자의 자격' 합창단 멤버로 나선 것을 비롯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에도 꽤 여러번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서인국이 과연 얼마나 비중을 차지했는지는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실 겁니다.

SBS는 '슈스케' 우승 직후 '김정은의 초콜릿'과 '강심장' 등에 출연하며 부각되는 듯 하더니 역시 올해 봄 이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5월 초, '인기가요'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져 "대체 왜 안 나오는 거냐"는 의혹의 대상이 됐죠. 정말 대단한 것은 MBC입니다. 이제껏 서인국은 MBC TV를 통해선 한번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는 건 세 지상파 채널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사실 요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선 채널의 경계가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강호동이나 유재석은 수시로 다른 채널에서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해 버리고, 다른 채널에서 뜬 스타를 이쪽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띄워 주는 것도 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풍조에 앞장섰던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에서도 '슈퍼스타K'에 관련된 소식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연예계에서 최강자는 세개의 지상파 채널입니다. 어떤 영화도, 어떤 노래도 지상파 3사의 도움 없이는 히트할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죠. 이런 현실의 영향인지 서인국은 지난 9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묘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슈퍼스타K'에는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겁니다. "어릴 때부터 회사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후 가수로 데뷔하고 싶다"는 뜻이었다는데, 과연 그렇게 했더라면 '슈퍼스타K'를 통해 얻은 엄청난 관심과 지명도를 한방에 얻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이 발언은 어떤 뜻이든, "이제는 '슈퍼스타K'와 연결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과연 그를 지치게 한 것이 '슈퍼스타K'에 따라다니는 아마추어의 인상인지, 아니면 지상파 TV들의 외면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허각과 존 박의 미래도 사실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과연 현재 이들 두 사람에게 열광하고 있는 대중이 지상파 TV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어도 지금처럼 지지해 줄 지도 의문입니다. 어쨌든 큰 변화가 없다면, 지상파 TV들은 앞으로도 '슈퍼스타K'를 통해 배출된 신인들에게 그리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지금은 '강심장' 등 몇몇 프로그램에서 섭외 제의를 하고 있지만,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허각이나 존 박이 현재의 지상파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대형 기획사와 손을 잡는다면 그건 또 새로운 국면이 될 듯 합니다. 이를테면 SM이나 JYP, YG같은 회사들 말입니다(하긴 현재 CJ계열, 특히 M.net과 적대적 관계인 SM이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이건 또 상상하기 힘든 국면이군요^^). 물론 10대 초반부터 신인을 선발해 육성하는 것을 장기로 여겨온 이런 회사들이 이미 '머리가 굵은' 이런 거물들에게 관심을 보일지, 혹은 이런 대형 회사들이 제시하는 조건이 이미 눈이 높아진 슈퍼스타K 우승자들의 성에 찰지도 알 수 없는 일이죠.



또 하나의 변수는 CJ계열 채널들의 약진입니다. 이미 M.net은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케이블 TV는 CJ계열 채널들의 독무대가 된지 오래죠. 그룹 차원에서 힘을 모은다면 TVN이나 온스타일, 올리브나 스토리온 등(온미디어도 CJ와 합병했습니다)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슈퍼스타K'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밀어줄 수' 있습니다. 이들이 역량을 집중한다면 지상파도 무시할 수 없는 매체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미 국민적인 인기인이 되어 버린 허각과 존 박이 과연 프로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게 될 것인지, 내년 이맘때에는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KBS와 SBS는 이미 허각-존박을 어떻게 이용할지 연구에 들어간 듯 합니다만, MBC는 여전히 '위대한 탄생'에 골몰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는 사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다뤄지지 않던 허각이 MBC 뉴스데스크에는 등장하는 사건도 있었죠. 자사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을 홍보하기 위한 뉴스에 허각이 등장한 겁니다. '키워주지는 않으면서 우리 프로그램 홍보에는 이용한다'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P.S. 이런 상황이면 '위대한 탄생'에서 발굴된 신인을 KBS나 SBS에서 어떻게 대우할지도 매우 자명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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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으로 기획된 KBS 2TV '성균관 스캔들'이 마침내 마지막 4회를 남겨 놓고 금등지사 찾기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이미 홍벽서-재신(유아인)가 금등지사를 거론하며 조정 중신들을 공격했고, 윤희(박민영)의 아버지와 재신의 형이 모두 정조의 최측근들인데다 금등지사와 관련된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금등지사 이야기는 드라마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 자명했습니다.

대체 금등지사가 뭐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초간단으로 설명하자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론 벽파를 처단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비밀 문서'라고 하는게 가장 적절할 듯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어쨌든 이인화 소설 '영원한 제국' 이후 수시로 등장했던 소설/드라마/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이 드라마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그리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



본래 금등지사란 일반명사입니다. 그냥 '후대에 전하기 위해 고이고이 간직된 글' 정도의 뜻입니다. 중국 주나라때부터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 만큼, 널리 쓰이던 단어입니다.


금등지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영조는 손자 정조를 왕위에 올려놓는 조건으로(즉 노론 벽파가 정조의 등극을 반대하지 않게 하는 명분으로), "나(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다. 만약 누가 나를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부르는 자가 있다면 역적으로 다스리겠다"고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선언하게 합니다. 또 영조는 여러 차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주모자'가 있다면 첫째는 자신이요, 그 다음은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즉 정도의 외조부)이라고 주입시킵니다.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 싶지만 사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대왕인 영조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조의 국정 운영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조가 왕이라 해도 이런 무리수를 두다간 반정이 일어나 왕위를 빼앗길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영조가 뒷날 입장을 바꿔 '사도세자를 죽인 것은 내 뜻이 아니었고, 너(정조)는 왕위에 오르게 되면 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단하라'는 밀지를 내린 적이 있다면 상황은 일변합니다. 정조는 영조의 명을 거역했다는 정치적 부담 없이 보복을 할 수 있고, 이는 곧 정조와 대신들의 힘겨루기에서 정조가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금등지사입니다. 그럼 실제로 금등지사가 존재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금등지사는 소설 속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금등지사는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정조 17년인 1793년 5월28일, 영의정 채제공은 상소를 올립니다. 잘 알려진대로 채제공은 남인이고 정조가 노론인 윤시동, 김종수와 함께 자신이 탕평책으로 국정을 논할 수 있는 세 사람의 중신으로 꼽은 사람입니다(아울러 이 드라마에서 4인방이 이뤄낸 성과로 그려지는 신해통공의 주역이죠^^). 그런데 상소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정조가 즉위한지도 이미 17년, 그런데 갑자기 그는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재조사하고 확실히 진실을 밝힌 뒤 역적들을 토멸하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전략) 신이 기유년 현륭원(顯隆園, 사도세자의 묘)을 옮길 즈음에 우리 성상(정조를 말함)께서 입으신 소매자락에 흐른 눈물이 피로 변하여 점점이 붉게 물든 것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일찍이 옛 글에서 혈루(血淚)라는 두 글자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것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었는데 부득이하게 군부의 소매자락에서 직접 그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 하늘이여, 이것이 무슨 까닭입니까.

신은 전하께서 제왕의 효성으로 몸소 증자(曾子)·민자(閔子)와 같은 효도를 행하시는 것은 본디 알지만, 진실로 원통함이 하늘에 사무치고 맺힌 한을 펴지 못한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이 어떻게 참으로 피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가슴 속에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히고 억제하고 또 억제하여 의리가 크게 천명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단지 혹시라도 선대왕(즉 영조)의 훌륭한 덕에 털끝 만큼이라도 관계됨이 있을까 염려하신 때문입니다. 신이 어리석어 죽을 죄를 짓사오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대왕께서 이미 전하를 위해 큰 괴수로서 원수가 되는 자들에 대하여 이름을 들어 말씀하였으니 선대왕께서 확연히 느껴 깨달았음을 이로 미루어 대략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선대왕께서 느껴 깨달으심이 이미 이와 같이 정녕하였고 보면 전하께서 속히 천토(天討)를 거행하시어 사도 세자의 무함 입은 것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이야말로 비록 성인에게 질정해보더라도 어찌 의심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중략)


                                                 (번암 채제공)

신이 수십 년 동안 마음을 썩히고 뼈에 사무치는 아픔으로 마치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던 까닭은 바로 여러 역적 무리가 무함하였던 일들은 곧 천고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아직까지 미처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서 그 거짓들을 소상하게 변파하여 천하 만세에 알리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신이 굳게 결심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선세자에 대한 무함이 깨끗이 씻겨져서 징계와 토죄가 크게 시행되기 이전에 신이 만일 다시 관복을 찾아 입고 반열의 한가운데에 선다면 이는 의리를 잊어버리고 부귀를 탐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하가 신을 영의정에 발탁시킨 뜻이 어찌 신을 부귀하게 해 주려고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신으로 하여금 의리로써 마음을 가지고 의리로써 임금을 섬겨 온 세상을 의리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하도록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전하를 섬기는 일 가운데서 이 큰 의리를 버려두고 다시 어디에다 손을 쓰겠습니까. (중략)

신의 부적합한 실상과 병에 찌든 상태는 오히려 부차적인 일에 속한 것입니다. 오직 이 큰 의리만이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나갈 것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대로 간직한 채 황천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에게 새로 제수한 수상직을 체직하시어 하찮은 신의를 온전히 지키도록 해주시고, 이어 신의 말을 채택하여 의리가 크게 밝혀지도록 하신다면 비록 죽는 날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해와 같을 것입니다.”


은유고 뭐고 없습니다. 정면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정조 혼자 끙끙 앓고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니라, 이제 그 죽음을 다시 현실 정치의 아젠다로 삼고,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처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방 유생 몇몇이 아니라 국정의 수반인 영의정이 말입니다.

정조는 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만 이미 알 사람은 다 안 이상 정국은 발칵 뒤집히고, 좌의정이자 노론의 수반인 김종수는 목숨을 걸고 이 상소를 올린 채제공을 역적으로 규정합니다. 



물론 김종수 본인이나 노론 전체가 그 책임을 지지는 않겠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복수가 감행된다면 정국의 균형은 일시에 무너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김종수로서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조용한 해결을 택합니다. 채제공과 김종수를 모두 파직시킴으로써 이 상소에 대한 논의를 강제로 덮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여론이 전부 가라앉을리는 없습니다. 3개월 뒤까지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8월8일, 2품 이상의 모든 대신들을 소집한 정조는 금등지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하게 합니다.


"(전략)전 영상(채제공을 말합니다)의 상소 가운데는 비(非) 자 한 구절로 말머리를 꺼내고 즉(卽) 자 한 구절로 말을 끝맺었는데, 즉 자 이하의 내용은 아무해의 일(사도세자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지극히 중대한 일이었다.

가령 전 영상이 국가를 위하여 한 번 죽기로 작정하고 미덕을 천양하려는 애타는 마음과 피끓는 정성에서 한 말이라 하더라도 내가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전 영상이 감히 말하였으니 그 겉면만을 얼핏 본다면 그의 죄는 용서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전 영상이 남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말한 것은 대체로 곡절이 있어서였다.

전 영상이 도승지로 있을 때 선조(先朝, 즉 영조)께서 휘령전(徽寧殿)에 나와 사관(史官)을 물리친 다음 도승지만을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어서(御書) 한 통을 주면서 신위(神位)의 아래에 있는 요[褥] 자리 속에 간수하도록 하였었다. 전 영상의 상소 가운데 즉 자 아래의 한 구절은 바로 금등 가운데의 말인 것이다.

내가 처음 왕위에 오른 병신년 5월 13일 문녀(文女,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 정조가 즉위한 직후 처단됨) 의 죄악을 드러내어 공포할 적에 전 영상이 윤음(綸音)을 교정하는 일에 참여하여 아뢴 것이 있었고 승지와 한림(翰林)을 보내어 이를 받들어 상고한 일까지도 있었다. 지금 물러가기를 청하는 상소에서 죽음에 임박하여 이런 진실을 말한 것은 전 영상만이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혼자서 그 일을 말한 것이니, 이는 속에서 우러나온 충성과 의리의 발로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전 좌상은 이런 본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단지 그 표면에 나타난 것만을 의거하여 지난 여름 이후로는 감히 말하지 못할 의리로써 성토한 것이니 이 또한 속에서 우러나온 충성과 의리에서 발로된 것이다. (하략)"


그럼 정조는 그것이 전해진다는 사실만을 알고 그 내용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예 정조는 작정하고 그 내용을 공개합니다. 단 두줄만. 이것이 바로 영조가 직접 썼다는 금등지사 가운데 공개된 20자입니다.


피묻은 적삼이여 피묻은 적삼이여, 동(桐)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血衫血衫, 桐兮桐兮, 誰是金藏千秋? 予懷歸來望思)

"내가 이덕사(李德師)와 조재한(趙載翰)을 사형에 처하게 하던 날 문녀와 김상로(金尙魯)도 처단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때 이미 금등의 글 가운데 들어 있는 선왕의 본의(本意)를 이해하고 그 뜻을 약간 반영하였던 것이다. (중략) 내가 차마 이 말을 하는 것은 나도 생각이 있어서이다. 요컨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 영상이 상소에서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또 전 좌상이 준엄한 성토를 한 것도 내면의 사실을 모른 데에서 나온 것임을 알리고 싶을 뿐인 것이다.(중략)

오늘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대체로 ‘대고(大誥)’의 뜻을 모방하여 사람마다 그 뜻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금으로부터는 다시 이를 빙자하여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구는 일이 있으면 사람마다 성토할 것이다. 오늘 이후로 사리를 천명할 책임은 오로지 경 등에게 있는 것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정조는 다음날, 김종수를 따로 불러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설명합니다. 즉, 채제공이 한 상소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왜 채제공을 처벌하지 않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입니다.
 
“(전략) 아무해의 사변(사도세자의 죽음)은 차마 제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이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차마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양조(兩朝)의 미덕을 천명하기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여태껏 차마 제기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했기에 차라리 덮어둔 채 드러내지 않은 지가 지금 거의 10년이나 되었는데도 끝내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중략)

전 영상(역시 채제공)이 설사 국가를 위하여 한 번 죽기로 작정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차마 제기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을 제기하여 나에게 들려준 것은 죄가 되는 것이고 가령 그 마음이 옛날의 미덕을 드러내기 위한 데에서 나왔더라도 도리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막중한 자리에 미치게 한 것도 죄이며, 옛날 일을 언급하면서 선조에게까지 언급이 된 것도 역시 죄인 것이다. (중략) 이를 보았거나 들은 뭇신하들로서 그를 엄중히 성토하려 했던 것은 경(김종수) 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들 그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다만 전 영상이 차마 제기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을 혼자서 말한 데에는 대체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대왕(先大王, 영조)께서 휘령전에 친림했을 적에 전 영상이 도승지로 입시하였었는데 사관을 문밖으로 물러가게 한 다음 선대왕께서 한 통의 글을 주면서 신위(神位) 밑에 있는 요의 꿰맨 솔기를 뜯고 그 안에 넣어두게 하였던 바 그것이 바로 금등 문서였던 것이다. 내 그 내용을 반포하는 것이 막중한 관계가 있고 또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아픔을 참고 억울함을 간직한 채 오늘까지 끌어온 것은 오로지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녀의 처분에 관한 전교를 내리면서는 그 속에 약간의 언급이 있었던 것이다. 전 영상의 상소문 가운데 즉 자 이하는 바로 아무해 이전의 흉도(凶徒)들이 한 흉악한 말이었는데
아무해 이후에 선대왕께서 즉각 이를 깨닫고 이 금등의 글을 내렸던 것이고 전 영상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혼자서만 이를 말하게 된 것이다.

그 상소문이 나온 뒤로 조정이 시끄럽게 들끓었으나 그대로 방임했던 것은 내가 차마 제기할 수 없어 아직껏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인데, 오늘에서야 한 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말하게 된 것이다.

(중략) 이제 와서 내가 차마 말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여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가 도리어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세상에 멋대로 전파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세상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볼지 모를 일이니, 그렇다면 한때에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은 작은 문제이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그 사실이 후세에 흘러 전하게 되는 것은 관계됨이 매우 중대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볼때 정조의 입장은 분명해집니다. 즉,

"나는 금등지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고, 그 내용이 영조가 한때 사도세자를 미워해서 죽였지만 그것이 실책이었음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후손에게 분명히 알리고자 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따라서 그 사실을 전한 채제공을 처벌할 이유는 없다. 아울러 나머지 중신들이 채제공을 비판한 것 역시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니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정치적인 보복을 할 생각 따위는 없다. 채제공의 상소를 묵살하고 그를 즉시 파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논의가 가라앉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 상소의 내용을 이유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불안해 하거나, 상대 당파를 공격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혼란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에 온 중신들에게 분명히 밝혀 둔다.

병신년 3월10일(정조가 즉위하던 날) 분명히 밝힌 대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밝힌다는 것이 그 사건과 관련된 일들을 다시 캐내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든 의혹이나 불안을 씻고, 나와 함께 정국을 이끌기 바란다."



물론 정조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조와 김종수는 다소 삐걱거립니다만, 아무튼 이상의 내용을 보면 금등지사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이라는 건 전혀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석에 따르면 정조는 금등지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즉 실제로 금등지사 카드를 사용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들먹여 노론 세력을 억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럴듯 합니다.

사실 정조는 집권 초기에 금등지사 없이도 꽤 신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7년. 다시 또 사실을 캐고 한대봐야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늙어 죽었거나, 정조 초기에 죽거나 귀양을 가거나 했죠. 30년이나 지난 뒤에 굳이 복수를 거론하는 건 결국 왕권 강화를 위한 명분쌓기였을 뿐인 듯 합니다.

아무튼 너무 길어져서 정작 금등지사와 현재 '성균관 스캔들'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겨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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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이 우승하고 존 박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TOP11이 TOP6으로 줄어들 때까지만 해도 예측은 전혀 달랐죠. 존 박의 우승에는 별로 장애가 없어 보였습니다. 여성 팬들의 고정 지지는 절대적이었고, 이하늘 같은 출연자들이 "어차피 우승은 존 박이 하게 돼 있어. 너희(허각, 김지수)는 꽁치같은 아이들이야"라고 농담을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의 미션 사이에 상황이 일변했습니다. 허각은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그리고 마지막 자유 선택곡인 김태우의 '사랑비'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곡들을 누구보다 완성도있게 소화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존 박에게는 그렇게 인상적인 선곡과 가창을 보여줄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존 박에게 가장 인상적인 무대는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였죠. 최종 자유 미션으로 왜 팝송을 부르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한국어 노래와 영어 노래를 할 때의 존 박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노래 실력만으로 승부가 가려진 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허각의 우승 드라마를 엮어낸 1등공신은 바로 제작진이죠.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제작진은 '누가 결승에, 누가 우승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물론 방송사 측에) 결과를 낳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그런 고민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방송에 반영되기 마련이죠(물론 결과가 조작됐다거나 하는 큰일 날 상상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심지어 그런 '상상'만 하고 있어도 이상할 정도로 그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결국 허각의 우승은 '스타성'에 대한 '스토리'의 승리이자 전 국민에게 정의의 승리라는 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또 한가지는, 2위에 그친 것이 존 박에게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존 박은 아주 깔끔한 패자의 모습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허각의 우승을 축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겠죠. 이 결과는 두 사람 모두에게 최선으로 보여집니다.

하고싶은 얘기는 산처럼 많지만 그렇게 주절주절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이만 줄입니다. 더 이상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제 쓴 칼럼으로 대체합니다.



 
대회가 스타를 만들까, 스타가 대회를 빛낼까. 1970년대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라면 단연 ‘대회’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유럽방송연합 회원국 가수들이 국가 대항전을 펼치는 이 대회는 명실공히 스타의 산실(産室)이었다. 스웨덴의 무명 그룹이었던 아바(ABBA)도 74년 ‘워털루’로 우승한 뒤 곧바로 월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80년대 이후 이 대회의 명성은 퇴색했다. 세계 팝 시장이 급속히 미국 중심으로 개편돼 버렸기 때문이다. 88년에는 캐나다 출신의 프랑스 여가수 셀린 디옹이 발군의 가창력을 뽐내며 우승했지만, 그가 세기의 디바(diva)로 성장한 것은 5년 뒤 영어로 ‘파워 오브 러브’를 발표하고 나서의 일이다. 사람들이 디옹의 프로필을 보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기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3일 새벽 두 번째 우승자를 내놓은 노래자랑대회 ‘슈퍼스타 K’가 화제를 양산 중이다. 케이블TV로는 공전의 15%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인 가수 선발대회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30여 년 전 ‘대학가요제’를 연상시킨다. 77년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도 활짝 핀 것은 2년째인 78년이었다. 1회 대회의 성공으로 수준 높은 참가자가 대거 몰렸고, 그들 중 배철수·노사연·임백천·심수봉 등이 80년대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역시 78년 출범한 TBC ‘해변가요제’도 왕영은·주병진·구창모·이치현(벗님들) 등을 배출했다. 이후 다양한 대학생 가요제가 한국 방송·가요계의 등용문(登龍門)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90년대 이후 가요계는 개인의 재능보다 기획사의 육성 능력이 중시되는 쪽으로 변했다. 대학생 가요제는 빛을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K’의 성공은 ‘만들어진 가수’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대회가 앞으로 명성을 계속 유지할지도 결국 이 대회 출신의 신인들이 새로운 흐름을 이루며 가요계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로 수많은 ‘슈퍼스타K’ 도전자들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심수봉이다. 대학생 가요제 출신의 숱한 스타들 가운데 최고의 가수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너무 기성 가수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슈퍼스타K’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승자는 가려졌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p.s. 어쩐지 어제 허각에게서 엘튼 경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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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 때도 그랬고, 이번 SBS TV '대물'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최고 권력자에 오른다는 내용의 드라마 때마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아예 '경상도 출신의 여자 최고 통수권자'가 주인공이라는 바람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노골적으로 밀어주자는 드라마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어야 했죠. 하지만 만약 '박근혜를 밀어주자'는 드라마였다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진짜 주인공은 여왕이 아니라 미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물'은 아예 무대가 현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더 말들이 많습니다. 물론 나올법한 얘기겠지만 이번에도 박근혜 대표와 유사점을 찾는 얘기들이 주루룩 등장했죠. 하지만 드라마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쑥 들어갈 정도로 '대물'의 서혜림과 현실의 박근혜 사이엔 비슷한 점이 없습니다. 같은 여자라는 것 외에는 전혀 공통점을 찾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박근혜가 아니면 누구라도 닮아야 한다'는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듯, 야권 정치인들이 대거 물망에 올랐습니다.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가 나오는가 하면 얼마 전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한명숙 전 총리 얘기도 나왔습니다. 참 고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대물의 고현정'과 닮은 점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인들이야 어떻게든 한번 비슷한 점을 찾아서 '대물의 실제 모델'로 행세하는 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위 언론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당찮은 놀이에 끼어들어야 하는 걸까요.

'대물' 속 서혜림은 사투리가 심한 드센 시골 처녀에서 어찌 어찌하다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고, 어찌 어찌 하다가 남편이 무리한 해외 취재 끝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는데, 거기에 대해 항변하다가 해고당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환경운동가로 변신하고, 그러다 갑자기 여권의 젊은 실력자 강태산(차인표)의 눈에 띄어 출마하는 인물입니다.



과연 현재 정치권에 있는 사람 중에 이 사람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전개 과정이 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황당무계한데다, 주인공 서혜림의 캐릭터 역시 지독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저런 캐릭터와 삶의 궤적을 살던 사람이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나라가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한명숙/박선영/박영선/이정희 어느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댈 수 있는 근거라면 하차한 황은경 작가가 "나는 박근혜보다 한명숙 박영선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게 전부일 정도입니다. 방송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중 서혜림이 박영선 의원과 비슷하다면, 전여옥 의원도 '나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네.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 추측하고 비슷한 점을 빗대 보는 건 시청자의 즐거움입니다. 이를테면 '제빵왕 김탁구'의 윤시윤을 실제 제빵계의 성공한 기업인들과 견주어 보는 건 당연히 나올법한 얘기죠. 하지만 누가 봐도 상상의 산물인 것이 너무나 분명한 주인공을 엉뚱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편을 닮았다'고 우겨대는 건 참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드라마 '대물'이 호평을 얻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이 억울하게 피해보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국민의 가려운 데를 확실히 긁어 준 드라마라는 데 있을 겁니다. 그럼 정치인 여러분, 드라마 속 고현정과 자기 사연이 닮았다고 좋아하실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 안 본다고 금배지 못 달 일도 없을테니 닥본사하지 마시고, 하던 대로 국정에 힘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 정작 드라마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벌써부터 표류하고 있던데 거기에, 작가 교체, 연출자 교체, 연출자 사퇴 선언, 연기자 촬영 거부 등등 난리도 아니군요. 배우들의 열연은 훌륭하지만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는 듯 합니다. 광고는 벌써 완판됐다던데 이러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건 아닐지.

P.S. 새로 들어온 유동윤 작가는 왕년의 히트작 '여인천하'의 작가입니다. 여성 정치인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된 덕분에 기용된 것일까요? 아무튼 앞으론 '대물'의 고현정에게서 '여인천하'의 전인화 냄새가 나는지 지켜볼 만 할듯 합니다.^^ (그럼 차인표가 경빈 박씨?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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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K'는 드디어 두 사람만이 남은 결승전이 됐습니다. 누가 우승하건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의 신데렐라로 남을 것이고, 또 스타덤에 오를 것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우승자만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회의 TOP4, TOP6 정도에 오른 후보자는 이미 대부분의 신인 가수들에 비해서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잡았습니다. 온 국민을 상대로 이 정도의 지명도와 실력 검증을 거친 신인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개별 출연자들 가운데서도 등수보다 더 득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자 외의 출연자 중에도 대단히 득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최고 수혜자는 윤종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윤종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슈퍼스타 K'의 사이먼 코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사이먼 코웰이 '아메리칸 아이들'의 상징이 된 것은 그저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코웰이 한 말 중에서 틀린 말은 없었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가입니다.

때로는 상대적 약자인 출연자들에게 너무 지나친 공격을 한다는 부분에서 욕을 먹고 안티들에게 시달리기도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판정관이 코웰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느 심사위원보다도 냉정하고 정확한 지적을 했기 때문입니다.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 중 역시 직선적인 평으로 출연자들의 가슴을 찢어놨던 이승철은 황금의 목소리를 가진 톱스타의 명성에도 불구, 가끔은 기분에 치우친 듯한 평가를 내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윤종신은 적절한 유머감각을 바닥에 깐 상태에서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심지어 '가수로서의 윤종신'을 모르는 일부 시청자들(지난번에 지적했던 한국 가요계의 세대 단절이 가져온 결과입니다)은 '대체 왜 개그맨(!!!!)이 슈퍼스타 K 심사를 하고 있는거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고도 합니다만, 실제 심사에 들어간 뒤에는 '역시 윤종신'이란 평이 잇따랐습니다.



윤종신이 누린 덕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본능적으로'는 그리 큰 히트곡이라고 할 수는 없던 노래입니다. 하지만 TOP4에서 강승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상황은 일변했습니다. 1주일이 지났는데도 강승윤이 부른 '본능적으로'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고, 윤종신이 부른 버전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윤종신이 강승윤을 이용한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이런 사례는 프로듀서로서 윤종신의 재능을 확인하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과적으로 윤종신은 '슈퍼스타K2'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결과 (1) 예능 늦깎이로서 형성된 '촐삭이' 이미지를 덮을 수 있는 전문가 이미지를 얻었고 (2) 냉철하고 설득력있는 심사평으로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에 대해 신뢰감을 더욱 높였으며 (3) 심지어 윤종신이 가수라는 것을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롭게 그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효과까지 얻었습니다. 이쯤 되면 누가 우승을 하건, 윤종신 또한 그 우승자 못잖은 수혜자라고 감히 인정할 만 하지 않습니까?

P.S. 여기에 트위터로 장재인에게 보낸 '팥빙수 빨리 먹자'는 내용은 따뜻한 스승 이미지까지 굳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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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해피선데이 - 1박2일'의 센티멘탈 로망스 1,2편이 고전 명곡 10곡으로 정리됐습니다. 두 편에 걸쳐 소개된 10곡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 가요사'를 정리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발표 연대도 대략 1984년에서 1990년 사이로 한정되어 있죠. 그러니까 80년대에 20대를 보낸 40대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선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이룬 노래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습니다. 사실 이 노래를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히트곡들이 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허공'에 이르는 트로트 계열의 히트곡들, 그리고 '물망초'에서 '자존심', '청춘시대', '모나리자'에 이르는 록 위주의 곡들과는 또 궤를 달리하는 서정적인 발라드 중에서도 쉽게 첫 손에 꼽히지 않는 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전면에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2주간에 걸쳐 방송된 10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이 노래들 외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흘러갔지만, 제작진이 힘을 주어 순위에 포함시킨 노래들은 이 10곡입니다.

(1주)
이문세 '시를 위한 시'.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홍성민 '기억날 그날이 와도'
산울림 '너의 의미'
부활 '사랑할수록'

(2주)
최호섭 '세월이 가면'
전영록 '종이학'
조용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양희은 '한계령'
김광석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 중에서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취침 미션도 끝난 뒤, "수면을 앞두고 감상용으로 틀겠다. 제목을 맞추거나 하는 미션이 걸린 것이 아니니, 조용히 들어 보기 바란다"는 설명과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은지원도 후드 티셔츠로 얼굴을 가린 뒤, 김종민에게 모창을 권유하는 등 '예능 모드'를 끄지 않았지만 곧 분위기를 눈치챘습니다(아마도 연출진의 손짓 제지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이내 다섯 멤버들이 모두 노래의 분위기에 젖어 진지한 '감상 모드'가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승기는 틀고 또 틀고 하면서 노래에 푹 취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네. 분명히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입니다.

작사:박주연 작곡:조용필

나는 떠날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너를 보낼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손에 익은 물건들 편히 잘수 있는 곳
숨고 싶어 헤매던 세월을 딛고서 넌 무얼 느껴왔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1988년 이후 조용필은 방송을 통한 전방위적인 활동에서는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88년의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89년의 'Q', 90년의 '추억속의 재회', 91년의 '꿈'에 이르는 히트곡들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송 활동 자제의 영향으로 음반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과 노랫말의 조화는 더욱 원숙해졌고, 음악적으로는 1980년대, 폭발적인 대중의 호응이 있던 때보다 훨씬 성숙했던 시기입니다. 이런 흐름은 1993년의 '슬픈 베아트리체', 그리고 1996년의 '바람의 노래'(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에 이릅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추억속의 재회'와 함께 1990년 앨범(통칭 12집)에 수록됐던 곡입니다. 마니아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노래이지만, '추억속의 재회'에 비해 훨씬 덜 알려졌고, 80년대 히트곡에 비하면 확실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곡이죠.

이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는 것은 노랫말의 완성도입니다. 명 작사가 박주연의 명성이야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가사의 탁월함은 단연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요즘 가요의 노랫말들입니다.




물론 최근이라고 해서 노랫말의 중요성이 덜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연히 예나 지금이나, 곡만 좋아서 히트하는 노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가요의 주 소비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그 세대의 고민과 감흥에 맞춰진 가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라고 서정이 없고 관조적인 태도가 없을 리 없건만, 요즘 히트하는 노래의 가사들을 볼 때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한번 더 걸러 보다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 승화시키거나, 즉물적인 고통이나 분노, 환희나 절망을 조금 더 보편적인 정서에 비쳐 해석하거나 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웃기면 웃긴다, 미우면 밉다의 선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직선적은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어른들이 듣는 노래라고 해서 아이들이 듣는 노래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현재의 가요계에선 '어른 노래'와 '아이 노래' 사이의 차별점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사이에는 아무 차별점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노래를 듣다 보면 저런 '옛날 노래'들의 서정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요즘도 저런 노래가 어딘가에서는 만들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자취를 감췄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1박2일'에서 2주간에 걸쳐 방송된 '센티멘탈 로망스'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런 가사에 대한 향수로 집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한 시점, 가장 방해가 없는 타이밍에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흘러나온 것은 그런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바로 '직선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충분히 숙성된 가사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그런 메시지 말입니다.

강호동이 '조용필 선생을 모시고 1박2일 명사특집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그냥 개인의 바람일 뿐, 이 분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함께 복불복을 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연출진의 의도가 그런 섭외에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남자의 자격'에서 흘러나온 '넬라 판타지아', 그리고 얼마전 MBC TV '놀러와'에 출연한 음악다방 4인조(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의 서정 탐험을 통해 드러난 시청자의 욕구가 이번 '센티멘털 로망스'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시청자들에게 시적인 노랫말을 전해준 건 고맙지만 자막엔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합니다. 시청자들의 대다수가 청각장애인이 아닌 이상, 이런 자막은 출연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는 데에도 유용하지만, 출연자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비속어나 틀린 말을 정정해주는 효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틀린 말을 그대로 자막으로 옮겨 놓는 건 출연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죠. 물론 10년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작가나 PD들이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수훈갑일까요, 수문장일까요. 수훈장은 대체 뭘까요. 처음 듣는 말.



혹한데라는 건 대체... 혹한(매혹당한) 데라는 뜻일까요? 아마도 '혹한을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데'라는 의미를 한방에 표현하신 듯 하지만, 효율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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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의 '슈퍼스타 K2', 마지막 3명 중에서는 솔직히 누가 떨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을 볼 때 세 사람 중 고정표가 가장 적은 건 허각이었죠. 존 박이나 장재인은 확고한 고정표를 안고 있었고,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가수의 느낌이 강했던 허각에 비해 존 박은 블루스와 흑인 음악, 장재인은 포크 록 혹은 브릿 팝 느낌의 깔끔한 음악성으로 개성을 뽐냈습니다. 또 짧은 결선 기간 사이에 투표자들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허각이 가장 불리할거란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허각은 오직 실력으로 이런 열세를 한방에 뚫어 버렸습니다. 허각이 부르게 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는 오선지 저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를 다 써야 하는 힘든 노래입니다. 게다가 음의 진행도 일반적인 가요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노래죠. 이런 노래를 잘 부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허각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허각의 성공과 장재인의 실패 뒤에는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들 느끼셨겠지만 그건 바로 선곡입니다.


이날 세 사람은 모두 네티즌이 골라 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공모에서 허각은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존 박은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 그리고 장재인은 박혜경의 '레몬 트리(Fool's Garden의 동명곡을 리메이크한 곡입니다)'를 부르게 된 겁니다.

존 박에게 박진영의 노래를 골라 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곡입니다. 상식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윤종신이 지적한대로, 이 노래가 '노래를 잘 하게 보이는 곡'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이번 대회가 시작된 뒤로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 왔습니다. 본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할 뻔 했던 존 박이 특별 심사위원 이문세가 바꿔 준 노래 한 곡 덕분에 일약 돋보이는 도전자로 변신한 사연(이문세는 어떻게 존 박을 되살렸나?  http://fivecard.joins.com/858), 여기에 마이클 잭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곡이 또 한번 존 박을 최강의 도전자로 거듭나게 했던 그 다음 도전(왜 강승윤 존박을 무시하나?  http://fivecard.joins.com/863), 그리고 비록 퍼포먼스가 당락을 결정짓지는 못했지만 허각과 강승윤이 돋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경우(강승윤, 잘 하고도 떨어진 이유  http://fivecard.joins.com/867)에 걸쳐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제가 주장한, 선곡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드라마틱한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사는 그집'은 분위기 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경합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 줄수 있는 노래가 절대 아닙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장재인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목소리와 가창력, 해석력을 겸비한 장재인에게 '레몬 트리'는 너무도 평이한 노래입니다. 절대 클라이막스를 형성할 수 없는 노래죠. 박혜경의 노래라면 'It's You'같은 노래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장재인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장재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설마 그랬을 리는 없겠죠. 예를 들어 4위에 오른 노래가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라는 데서는 전에 장재인이 김윤아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데 대한 자우림 팬들의 반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2위를 한 '어떤이의 꿈'같은 노래는 장재인이 재해석해서 부르면 꽤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은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일부 불순한(?) 세력의 선곡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레몬트리'를 부르게 한 것은 장재인을 지지하던 팬들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죠. 만약 남이 대신 골라 주는 거라면 윤하의 '비밀번호486'이나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같은 곡들을 새롭게 해석해서 불러 보도록 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혹은 히트곡은 아니지만 W&Whale의 '월광' 같은 노래도 궁금합니다.

그랬다면 장재인의 3강 무대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허각이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를 받은 것은 단지 행운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주로 발라드를 부르며 고운 목소리와 탁 트인 고음을 자랑했던 허각은 바로 지난번, 미군 부대 미션에서 본 조비의 'You Give Love a Bad Name'을 화끈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이 미션에서 1등이었죠).

이 노래를 통해 허각은 그저 예쁜 목소리의 발라드 전문 가수가 아니라 꽉 찬 무대에서 제대로 로큰롤을 소화할 수 있는 재목이라는 점일 시청자들에게 확연히 일깨웠습니다. 오랜 행사 무대 경험이 큰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많은 허각 팬들이 '하늘을 달리다'를 허각에게 권한 데에는 이 미군 부대 미션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어쨌든 허각의 이날 열창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나 평이했던 존 박과 장재인의 부진은 최약체로 평가됐던 허각을 1등으로 결승에 진출시키는 이변을 자아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상한 선곡의 주역이 제작진...? ㅋ) 그리고 결승은 그동안 너무 친한 모습을 보여 '슈퍼스타 게이(줄여서 슈스게)'라는 농담까지 나왔던 절친한 존 박과 허각의 차지가 됐죠.



이번엔 허각의 가창력과 존 박의 폭넓은 인기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 될 듯 합니다. 지난해의 서인국-조문근에 비쳐 '보나마나 존 박'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3강에서 허각이 보여준 위력은 슈퍼스타K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결승에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고 보면, 매우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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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산에 갇혔던 33인 광부의 인간 승리가 며칠째 계속해서 전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TV 중계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예전같으면 상상할수도 없는 깊이에 갇힌 사람들을 이렇게 구할 수 있는 첨단 과학의 힘에 놀라지 않은 분들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이 33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쏟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온 세상 매체가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할 겁니다(이들은 인터뷰 수입도 모두 공평하게 나눠 갖기로 했다는 미담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지에서 살아 나온 대가로 일약 스타가 된 동시에 돈방석에도 앉게 된 셈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들 당사자 못잖게 득을 본 회사들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선글래스 메이커 오클리와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입니다.



깊은 땅속에서 몇달만에 나온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요. 물? 음식? 이건 어느 정도씩 공급이 되고 있었다고 한다면, 당장 필요한 물건은 선글래스였을 겁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강렬한 햇살을 이겨낼 수 있을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어떤 선글래스를 쓰고 나올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꽤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이 빠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눈이 빠른 분들은 아셨을 겁니다. 워낙 특이하게 생겼다는게 오클리의 강점이기 때문입니다. 보도도 나와 있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com/2010/10/13/chile-miners-rescue_n_761259.html


사실 다른 선글래스 메이커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유능한 담당자가 없어서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오클리만큼 독특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어서, 광부 구출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아, 저거 어느 회사 제품이구나'라고 알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오클리는 발빠르게 이 광부들을 위해 450달러 정도 가격의 선글래스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자사 제품을 노출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450*33 달러라는 건 그야말로 껌값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디자인 얘기를 했지만 사실 이것 역시 부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광부들이 줄지어 선글래스를 쓰고 나오는데, "저 선글래스가 다 어디 제품이라더라"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선글래스 값이 아깝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네. 물론 오클리만큼 효과가 크진 않았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승자가 있다면 역시 아디다스. 설명은 생략합니다.




P.S. 지하에 있는 동안 불륜이 탄로난 아무개씨는 아내는 아예 구조 현장에도 오지 않고 애인만 왔다는군요. 평화롭게 선택이 이뤄졌으니 이것도 해피엔딩?

P.S.2. 어제 술자리에선 누구든 나오자마자 인터뷰에서 "코카콜라가 가장 마시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평생 코카콜라 무료 시음권 정도는 따놓고 들어갔을 거란 얘기도 있었습니다. 잘하면 이걸로 팔자도 고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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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발언이 나왔던 일은 아마 거의 찾아보기 힘들 듯 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패러디한 코미디는 많았지만, 실제 인물이 자신의 사례나 다른 사람의 사례에 대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농담의 소재로 사용한 경우는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12일 방송된 SBS TV '강심장'에서 홍석천이 조용히 한방을 터뜨렸습니다. 크게 화제가 되거나 요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의의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농담입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최근 방송을 마친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이승기와 신민아의 키스신을 패러디하는 순서가 마련됐습니다. 여자 출연자들 가운데 서인영이 신민아의 역할을 이승기와 함께 재현하는 역할을 맡았죠.


이승기와 포옹하는데까지 진행한 서인영은 "아 좋다"라며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대가 당대 최고의 인기남이며 흔히 '황제'라고 불리는 이승기였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인영이 자리로 돌아와서도 '아 좋다'를 연발하고, 다른 여자 출연자들이 꺅꺅 소리를 내는 가운데 홍석천이 조용히 한마디를 던진 겁니다. "난 인영이가 참 부럽네."

현장에선 당연히 폭소가 터졌고, 시청자 가운데서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네. 이승기가 그만치 매력적이라는 뜻인 거죠. 그리고 홍석천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빗대 한 농담이라는 것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홍석천이 실제로 이승기를 덮치겠다거나 하는 뜻은 아닐겁니다. ㅋ )





최근까지 이뤄졌던 한국 사회, 한국 연예계에서의 동성애 담론에 비교해 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가까운 일로는 SBS TV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정체 불명의 '어머니 단체'가 낸 신문 지면 광고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립니다'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이 사회의 일각에는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죄악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 존재합니다.



예능에서의 '동성애 관련 발언'이라는 건 꽤 오래 전 김구라가 '명랑 히어로'에서 '어떤 남자가 목욕탕에 T팬티를 입고 왔더라'는 다른 출연자의 말에 '석천이 아니야?'라고 반문했다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라는 이유로 타박을 받은 게 사실상 유일한 사례일 정도입니다.

커밍아웃한 연예인도 극소수인데다 그나마 홍석천 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태이고 보면, TV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을 할 일도 없거니와 그런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가 돼 버립니다.

이런 환경에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물론 '김수현'이라는 대 작가의 이름이 없었다면 이런 내용이 들어 있는 드라마가 지상파에 편성된다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였다면, 홍석천의 작은 농담 한마디는 예능에서의 금기를 한번에 뛰어 넘은 시도로 볼만 합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시청자들의 욕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한번이 아니라 홍석천이 비슷한 수위의 발언을 계속 한다면, 자연히 '강심장'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농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겁니다. '강심장'이 그 수준을 소화할 수 있다면,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그런 수위에 대한 판단이 있을 테지요.

한 편에는 드라마 속 동성애 커플의 등장에 발끈한 보수 단체가 거액을 들여 신문에 5단 광고를 내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농담에 출연자와 시청자들이 깔깔 웃는 현상이 공존합니다.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견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선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같은 드라마라도 '개인의 취향'에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코미디가 큰 문제 없이 넘어간 반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신문 광고에까지 이어진 것 역시 그 프로그램의 시청층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강심장'에서 괜찮았다면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는 어떨까요? 혹은 '세바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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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타블로의 학력에 대한 의심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터넷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운영자 왓비컴즈가 미주 중앙일보(시카고)와의 인터뷰에서 '타블로가 승자다. 더 이상 의혹을 제기하지 않겠다. 승자로서 관용을 베풀어 고소를 취하해 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왓비컴즈는 타진요 카페에 글을 올려 '보도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 나는 나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카페 회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기사 제목은 “더 이상 타블로에게 학력 인증 요구를 않겠다. 고소를 취하해 주기 바란다” 지만 기사 내용을 보면 '고소 취하'의 대상이 고소된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왓비컴즈가 '나에 대한 고소는 취하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큰 차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것은, 거기에 대한 타진요 회원들의 반응입니다.




일단 기사를 못 보신 분들은 순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미주 중앙일보가 왓비컴즈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타블로가 이겼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검증된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타블로 측이 고소한 사람은 7명이다. 이 중 2명만 타진요 회원이고 나머지는 아니다. 승자로 이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대화합으로 끝내기 바란다”며 인터뷰를 끝냈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10/12/4045561.html?cloc=nnc)

그리고 이 기사가 자신의 진의를 왜곡했다며 왓비컴즈가 어젯밤 타진요에 올린 글입니다.


물론 그동안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타블로에 대한 사과의 뜻은 전혀 없습니다. 너무도 당당한 모습입니다.

놀라운 건 이 인사에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여전히 '그동안 수고하셨다' '건강하시라' 등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인사에 왓비컴즈는 일일히 댓글을 달아 주며 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탐진강님의 블로그에서 타진요의 한 회원이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썼다는 '반성의 글'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 http://jsapark.tistory.com/1152 에 가면 전문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실만 합니다.^^)

그 글 역시 반성의 의미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언뜻 보면 타블로와 가족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반성하는 듯도 하지만, 오히려 타블로에게 '몇십분이면 밝힐 수 있는 일을 쉽게 밝히지 않고 스스로 고난의 길로 갔느냐, 나같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서였느냐'고 따지는 부분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여겨집니다.



소위 악플러의 밑도 끝도 없는 주장과 악성 루머라는 이름의 허위 사실 유포, 그리고 턱없는 공격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피해에 대한 구제는 커녕,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사실상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합니다. 대다수 피해자들이 인기로 먹고 사는 유명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타블로 이전까지, 최진실의 자살 사건 이전까지 악플러들과 싸우는 연예인들은 사건이 어느 정점을 지나가면 '이제 다 밝혀졌는데 그만 하지 그래' '뭐 사실 피해본 것도 없잖아. 연예인들 알고 보면 다 그렇지' '아니, 가해자라는 것도 알고 보니 다 어린 학생들인데 끝까지 죄를 추궁하겠다고? 어쩌려고? 알고 보니 정말 인정사정없고 독한 * 아냐?' 이런 식으로 여론이 바뀌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당한 입장에선 참 펄쩍 뛸 일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관용과 선처가 미덕'이라고 권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이걸 거부하면 천하의 독종 취급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은 이런 이상한 여론 때문에 아무리 억울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가해자가 대부분 미성년자들이라 잘 몰라서 한 일이고, 지금은 자신들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요청한다'는 발표를 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해자들을 잡은 사이버수사대 요원들에게도 참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해자 측에서 신고를 하고 발을 동동 굴러도 '어차피 다 놔 주자고 할 거면서...'라는 생각이 들면 수사에 열의가 있을 리 없겠죠. 언젠가 접촉한 경찰 관계자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기껏 잡아 놔도 나중에 처벌 의사가 없다고 다 풀어주자고 할 거라면, 누가 굳이 잡아 들일 의욕을 느끼겠느냐'는 겁니다.

이제 변할 때가 됐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악성 루머의 유포와 이유 없는 증오의 표출은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모욕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이해할 때가 됐습니다. 왜곡된 온정주의야말로 그동안 악플러들이 활개칠 수 있었던 환경이라는 걸 이제 아실 때가 된 겁니다.

아울러 악플러 여러분, 사소한 처벌 따위가 두려워 짐짓 반성을 가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뜻 있는 자의 삶이란 본래 가시밭길인 법입니다. 일각의 동정 따위에 나약해져선 곤란합니다. 정의의 칼을 휘두를 때의 기개와 배짱을 끝까지 간직하시고, 끝까지 소신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바람이 몰아칠수록 자신의 행동을 끝까지 책임지는 용자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끝까지 분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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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TV 신에서 가장 열연하고 있는 배우로는 SBS TV '대물'의 고현정과 MBC TV '욕망의 불꽃'의 신은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배우 모두 팔색조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여배우로서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두 배우에 대한 평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현정은 '선덕여왕'에 이어 다시 한번 카리스마를 재확인했다는 호평에서부터, 사투리 쓰는 아가씨에서 아나운서,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는 다양한 변신에 성공했다는 칭찬을 듣고 있는 반면 신은경은 '신들린 열연'이라는 말은 듣고 있지만 그 이상의 호평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작품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먼저 '대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그린다는 이 드라마는 고현정이 대통령이 될 결심을 하기까지를 그리는 단계입니다. 사투리 쓰는 아가씨에서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는데 성공한 고현정은 카메라기자인 남편이 중동 위험지역에 무리하게 취재를 나갔다가 현지 반군들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결국 남편의 죽음을 맞은 고현정은 왜 대한민국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 주지 않느냐는 항변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대통령이 된 장면에서도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있어선 안됩니다. 그것이 제가 대통령이 된 이유입니다"라고 말하죠.



그 다음 '욕망의 불꽃'의 신은경. 이 인물은 성공을 위한 집념의 화신입니다.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재벌 회장이 의리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아들과 언니를 결혼시키려 하자 깡패 출신 직원을 동원해 언니를 강간하게 하고, 자기가 언니 대신 재벌 아들과 결혼합니다. 그 재벌 회장 아들이 이미 임신한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 자기 대신 아이를 낳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아이를 후계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방송가에 등장했던 막장 드라마를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초 막장 스토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여자가 대신 낳아 자신이 아들로 기른 유승호가, 자신이 낳아서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는 딸 서우와 연인이 된다는 얘기죠. 전에는 드라마 한 편 정도를 만들 수 있었던 사연과 배신과 원한과 우연이 한방에 시청자를 집어삼킬듯 기세가 등등합니다.



고현정과 신은경에 대한 평가의 차이는 '대물'과 '욕망의 불꽃'의 차이입니다. 물론 '대물'이 흠 없는 걸작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설정은 억지 투성이고, 인물들은 어처구니 없는 대목에서 시청자보다 훨씬 빨리 흥분해버립니다. 감정을 절제해서 전달하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사실 '욕망의 불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물'에서 고현정이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충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느끼는 분노에 개연성이 있고, 그건 한국인들이 작은 나라 사람으로 태어나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겪었던 일과 와 닿습니다. 비록 드라마 속의 작은 분풀이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맛이 있습니다.



반면 신은경이 '욕망의 불꽃'에서 재벌가 며느리가 되고, 아들을 재벌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어떨까요. '나도 저런 상황이면 저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도의 공감은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얼마나 인간이 추악해 질 수 있는지 한번 보자'는 정도는 가능할까요? 여기에는 어떤 명분도, 어떤 메시지도 없습니다.

'욕망의 불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을 향해 '그래, 당신들이 비틀린 스토리를 좋아한다니,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좋아한다니,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 주지. 자,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스토리야' 라고 속삭이는 목소리 뿐입니다. 진저리가 쳐 질 정도입니다.



지금 두 배우가 받고 있는 평가의 차이에는 개개인의 기량이나 실력보단 작품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망의 불꽃'에서 신은경이 연기하는 캐릭터나 그 주변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상은 참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리고 '욕망의 불꽃'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대체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까지일지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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