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해피선데이 - 1박2일'의 센티멘탈 로망스 1,2편이 고전 명곡 10곡으로 정리됐습니다. 두 편에 걸쳐 소개된 10곡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 가요사'를 정리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발표 연대도 대략 1984년에서 1990년 사이로 한정되어 있죠. 그러니까 80년대에 20대를 보낸 40대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선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이룬 노래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습니다. 사실 이 노래를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히트곡들이 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허공'에 이르는 트로트 계열의 히트곡들, 그리고 '물망초'에서 '자존심', '청춘시대', '모나리자'에 이르는 록 위주의 곡들과는 또 궤를 달리하는 서정적인 발라드 중에서도 쉽게 첫 손에 꼽히지 않는 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전면에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2주간에 걸쳐 방송된 10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이 노래들 외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흘러갔지만, 제작진이 힘을 주어 순위에 포함시킨 노래들은 이 10곡입니다.
(1주)
이문세 '시를 위한 시'.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홍성민 '기억날 그날이 와도'
산울림 '너의 의미'
부활 '사랑할수록'
(2주)
최호섭 '세월이 가면'
전영록 '종이학'
조용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양희은 '한계령'
김광석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 중에서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취침 미션도 끝난 뒤, "수면을 앞두고 감상용으로 틀겠다. 제목을 맞추거나 하는 미션이 걸린 것이 아니니, 조용히 들어 보기 바란다"는 설명과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은지원도 후드 티셔츠로 얼굴을 가린 뒤, 김종민에게 모창을 권유하는 등 '예능 모드'를 끄지 않았지만 곧 분위기를 눈치챘습니다(아마도 연출진의 손짓 제지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이내 다섯 멤버들이 모두 노래의 분위기에 젖어 진지한 '감상 모드'가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승기는 틀고 또 틀고 하면서 노래에 푹 취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네. 분명히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입니다.
작사:박주연 작곡:조용필
나는 떠날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너를 보낼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손에 익은 물건들 편히 잘수 있는 곳
숨고 싶어 헤매던 세월을 딛고서 넌 무얼 느껴왔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1988년 이후 조용필은 방송을 통한 전방위적인 활동에서는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88년의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89년의 'Q', 90년의 '추억속의 재회', 91년의 '꿈'에 이르는 히트곡들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송 활동 자제의 영향으로 음반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과 노랫말의 조화는 더욱 원숙해졌고, 음악적으로는 1980년대, 폭발적인 대중의 호응이 있던 때보다 훨씬 성숙했던 시기입니다. 이런 흐름은 1993년의 '슬픈 베아트리체', 그리고 1996년의 '바람의 노래'(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에 이릅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추억속의 재회'와 함께 1990년 앨범(통칭 12집)에 수록됐던 곡입니다. 마니아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노래이지만, '추억속의 재회'에 비해 훨씬 덜 알려졌고, 80년대 히트곡에 비하면 확실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곡이죠.
이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는 것은 노랫말의 완성도입니다. 명 작사가 박주연의 명성이야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가사의 탁월함은 단연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요즘 가요의 노랫말들입니다.
물론 최근이라고 해서 노랫말의 중요성이 덜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연히 예나 지금이나, 곡만 좋아서 히트하는 노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가요의 주 소비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그 세대의 고민과 감흥에 맞춰진 가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라고 서정이 없고 관조적인 태도가 없을 리 없건만, 요즘 히트하는 노래의 가사들을 볼 때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한번 더 걸러 보다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 승화시키거나, 즉물적인 고통이나 분노, 환희나 절망을 조금 더 보편적인 정서에 비쳐 해석하거나 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웃기면 웃긴다, 미우면 밉다의 선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직선적은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어른들이 듣는 노래라고 해서 아이들이 듣는 노래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현재의 가요계에선 '어른 노래'와 '아이 노래' 사이의 차별점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사이에는 아무 차별점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노래를 듣다 보면 저런 '옛날 노래'들의 서정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요즘도 저런 노래가 어딘가에서는 만들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자취를 감췄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1박2일'에서 2주간에 걸쳐 방송된 '센티멘탈 로망스'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런 가사에 대한 향수로 집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한 시점, 가장 방해가 없는 타이밍에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흘러나온 것은 그런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바로 '직선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충분히 숙성된 가사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그런 메시지 말입니다.
강호동이 '조용필 선생을 모시고 1박2일 명사특집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그냥 개인의 바람일 뿐, 이 분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함께 복불복을 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연출진의 의도가 그런 섭외에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남자의 자격'에서 흘러나온 '넬라 판타지아', 그리고 얼마전 MBC TV '놀러와'에 출연한 음악다방 4인조(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의 서정 탐험을 통해 드러난 시청자의 욕구가 이번 '센티멘털 로망스'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시청자들에게 시적인 노랫말을 전해준 건 고맙지만 자막엔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합니다. 시청자들의 대다수가 청각장애인이 아닌 이상, 이런 자막은 출연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는 데에도 유용하지만, 출연자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비속어나 틀린 말을 정정해주는 효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틀린 말을 그대로 자막으로 옮겨 놓는 건 출연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죠. 물론 10년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작가나 PD들이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수훈갑일까요, 수문장일까요. 수훈장은 대체 뭘까요. 처음 듣는 말.
혹한데라는 건 대체... 혹한(매혹당한) 데라는 뜻일까요? 아마도 '혹한을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데'라는 의미를 한방에 표현하신 듯 하지만, 효율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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