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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루저가 돼 있었습니다. 네. 저도 몇cm 모자라는 루저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 봤습니다. 지금 스무살 안팎이라면 분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저의 난 1주일. 잠깐 웃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파가 길었고, 처음에는 '홍대녀'라고 불리던 여대생이 표적이 되어 세상의 지탄을 받더니 이제는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다시 표적이 됐더군요. 평소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과연 이 프로그램이 표적이 되는 것이 적절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과연 누가 진짜 루저인지가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짜 '루저'는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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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미수다'에 대해 "그런 발언을 걸러내지 않고 방송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송이 '공개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별 생각 없이 공개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의 역사를 되짚어 생각해 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 성매매 현장이나 교외로 빠져나간 집창촌을 고발한다는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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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려던 얘기가 너무 깊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방송이 '걸러지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노출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이런 저런 사례들을 살펴 보더라도 '미수다'에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별로 없더군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수다' 제작진이 욕을 먹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대본'으로 문제의 여대생에게 '루저녀' 발언을 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편집에서 그 문제의 발언을 걸러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다 조금 의아해집니다.

첫째. 대본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진실게임이 벌어졌지만, 정황으로 볼 때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루저'라는 말이 작가들의 창작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토크쇼의 '대본'을 드라마 대본으로 착각하는 것은 제작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에 대본이 있는 것은, 대개 작가들이 출연자들과 사전에 주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을 방송에 맞도록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제작 환경을 감안할 때, 작가들이 "대본에 '루저'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출연자와의 사전 대화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 말이 사실일 것입니다.

만약 문제의 여대생이 대본을 받아들었는데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루저'라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도 그 대본을 그냥 읽어 방송했다면, 이것은 더욱 더 자신의 생각 없음을 드러내는 얘기일 뿐입니다. 자신의 '루저'라는 발언을 제작진의 실수인 것처럼 떠 넘길 상황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여대생은 문제의 '미수다' 방송이 나가기 전 자신의 싸이에다 '우린 솔직하게 얘기한 것 뿐인데 안티가 생길까 두렵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자신의 본래 생각을 반영한 것임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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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두번째 비난, '루저'라는 문제 있는 발언을 방송으로 내보내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런 식의 선정성에 기초한 방송은 사라져야 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는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이 방송 내용이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의 존재가 사라질까요?

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는 '퀸카 여대생'이라는 이름의, 혹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병든 환자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교재나 두꺼운 책은 갖고 다닐 수 없다는, 소개팅을 나가기 위해서 화장품과 옷값으로 이미 상당액을 지출했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은 부담할 수 없다는, 내가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보다는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해 편히 사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은 이날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된 '미수다'는 이런 형태의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도마 위에 올려 놓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했습니다.

방송 뒤에 있었던 수많은 대화들은 이런 병증이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도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날 '미수다'에 출연한 외국인 출연자들만큼, 그런 병적인 생각들이 왜 잘못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인지를 선명하게 지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루저'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차단되었어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욕설이거나, 의미 있는 말이었을까요. 이날 방송은 우리 사회에 이 정도로 그런 말의 사용에 무신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고, 그 말로 압축되는 우리 사회의 한 경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사람들의 논의 대상으로 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건 방송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이런 내용이나 방송하는 미수다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희들만 조용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너희가 그런 내용을 방송하는 바람에 문제가 됐다'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 없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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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으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정말 생각 없고 어리석은 사람임이 드러난 것은 문제의 발언을 할 '용기'가 있었던 여대생 이모씨입니다. 하지만, 그 이모씨에 대한 논란 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못난 남자'들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 하나가 방송에 나와선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듣고 "하하. 너때문에 내가 하루아침에 루저가 돼 버렸구나"하며 웃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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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얘기에 진지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낸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재점검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분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얘깁니까? 혀를 끌끌 차면서 "참 대학까지 보내 놨더니 저런 소리나 하고... 등록금이 아깝다"고 비웃으면 충분할 얘기 아니었나요?

미안하지만 그 말에 벌컥 분노하는 것은 '그래, 알고보니 나는 정말 루저였는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당신은 키가 180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루저입니다. 문제의 '홍대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달려가 욕설을 퍼붓고, 홍익대 게시판을 마비시키고, 방송국 게시판에 욕설을 써 놓는 건 당신이 루저라는 사실을 더욱 공고하게 할 뿐입니다.

(네. 이 글 아래에 욕설로 댓글을 달고 싶어지는 것 역시 당신이 루저라는 걸 다시 확인해 주는 행동일 뿐입니다.^^)


P.S.2. 못 알아듣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하니 더 쉽게 한마디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당신을 루저로 만들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당신 자신뿐입니다."

하긴 이래도 못 알아 들을 사람이 꽤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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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드걸'로 불리는 김연아가 또 일을 터뜨렸군요. 잇달아 세계 신기록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김연아의 이번 안무를 '본드걸'이라고 부르는 건 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이 제임스 본드 테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안무에서 김연아의 역할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본드걸의 역할이 아니라 007 제임스 본드의 역할인 거죠.

뭐 쓸데없는 얘기긴 합니다. 그건 그냥 그렇고, 오늘 할 얘기는 진짜 피겨 스케이트 선수 출신으로 007 영화에 본드걸로 출연한 배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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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 중 1981년작인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는 본드 팬들에게도 사실 그리 인기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시나 이스턴이 부른 주제곡은 대대적으로 히트했고 이 영화의 메인 본드 걸인 캐롤 부케는 역대 최고로 칠만 하지만, 그다지 긴박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는 악당이 키우는 피겨 스케이터 역으로 린 홀리 존슨이라는 배우가 나옵니다. 얼굴을 보시면 기억하실 분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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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생인 린 홀리 존슨(Lynn Holly Johnson)은 1974년 전미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한 유망주였지만 프로 진출을 위해 1977년 아마추어 경력을 포기합니다. 이렇게 해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일은 없어진 것이죠.

대신 1978년, '사랑이 머무는 곳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개봉됐던 '아이스 캐슬(Ice Castles)'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합니다. 린 홀리 존슨의 징크스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역시 영화 자체보다는 멜리사 멘체스터가 부른 'Looking Through the Eyes of Love'라는 주제곡이 훨씬 더 히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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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상당히 80년대풍의 신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두 남녀가 있지만 여자가 스케이트 신동으로 주목받는 스타가 되면서 조금씩 둘은 멀어집니다. 하지만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여자는 거의 시력을 잃게 되고, 자연히 경력을 포기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여자는 다시 설 용기를 얻고, 스케이트장의 크기를 느낌으로 외운 상태에서 피겨 연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래 화면은 'Looking Through the Eyes of Love'가 깔리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입니다.

무대에 복귀한 여자는 명연기를 펼쳐 관객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습니다. 모두 그녀의 재기를 기뻐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그녀는 관객들이 던전 꽃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

정작 멜리사 멘체스터의 목소리는 1,2분 정도를 남겨 놓고 나옵니다. 당시의 스타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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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 이후 사실상 두번째 출연작이 '유어 아이즈 온리'고 여기서도 스케이트 유망주로 출연하면서, 린 홀리 존슨은 007 로저 무어를 좋아하는 연기를 합니다.

뭐, 31년 차이다 보니... 별 긴장감은 없죠. 이 설정은 역대 007과 본드걸의 관계 사상 최악의 커플링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23세의 본드걸과 54세의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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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누구나 예상하시겠지만, 그 뒤로 린 홀리 존슨의 커리어에는 기억할만한 작품도, 사건도 없습니다. 지금도 뭔가 하고 있겠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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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연아의 '본드걸' 기사가 하도 많길래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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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건 누가 봐도 본드걸은 아니고 본드의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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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아이리스'가 김소연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축은 어디까지나 이병헌-김태희 커플이었고, 그밖에도 쟁쟁한 김승우 정준호 같은 톱스타들의 등장은 시선을 분산시킬 요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리스'라고는 하지만 '여자 1번'도 아닌 2번의 역할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던게 시작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뛰어넘었고, '아이리스'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태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참 의외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김소연은 김태희가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주목받고 있는 스타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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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김소연이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을 알지만, 기억은 서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김소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작품 중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김소연은 본래 주연이었는데 무슨 소리냐고도 합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껏 기억하는 것이 '순풍 산부인과'나 '식객' 정도인 듯 합니다. 하지만 김소연은 그 정도 경력을 가진 배우가 아닙니다. 올해가 데뷔 16년차인 관록의 연기자죠. 남들처럼 스무살 안팎에 연기자로 데뷔했다면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어야 할 경력입니다. 단지 너무 일찍, 그것도 아역이 아닌 사실상 성인 역할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른의 나이에 16년차의 경륜을 지니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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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단 김소연에게 연예계 진출이라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김소연의 데뷔는 1994년, 만 14세 때의 일입니다. 이때 김소연은 중3이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3인데 얼굴은 20대인 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죠.

그리고나서 오래지 않아 김소연을 실물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놀랍더군요. 정말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밝은 성품에 총명하기까지 하더군요. 한 마디로 대형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17세 되던 해, 김소연은 MBC TV 주말드라마의 여주인공 역을 맡게 됩니다. 1997년 여름 방송된 '예스터데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김소연은 여고생에서 20대 중반까지 약 10년간의 세월을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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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으로 이정재와 이종원, 두 근육질의 미남 스타가 격돌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레 이정재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 이정재의 역할을 이종원이 맡게 되고, 여주인공으로 김소연이 깜짝 등장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캐스팅이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죠.

하지만 갑자기 이정재가 빠지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온 새로운 스타 하나가 각광받게 됩니다. 바로 MBC의 공채 신인이었던 이성재. 이 드라마는 부잣집 아들(이성재)과 그 집에서 양자처럼 자라게 된 소년(이종원), 그리고 그 집의 운전기사 딸(김소연)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본래 이종원과 이성재는 형제처럼 친한 사이였지만 성장하면서 김소연 때문에 원수처럼 변해갑니다.

여고생이야 현재 자신의 모습이니 큰 무리가 없겠지만 그 나이에 경험해보지 못한 열살 위의 모습을 연기한다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닐텐데 김소연은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합니다. 한번은 이성재와 약간 농염한(?) 장면까지 있어 '아무리 성숙해 보여도 실제론 여고생인데...'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이종원과 김소연 사이의 불균형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20대 후반이던 이종원이 고교생으로 나오고, 그와 동갑내기 역인 김소연이 이종원에게 "영호야"하고 부르는 장면 등은 아무래도 영 어색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종영을 맞습니다.

(이 드라마의 성과라면 비틀즈의 노래 여러 곡을 드라마에 삽입하면서 방송사가 음악 저작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방송사는 매년 저작권협회에 거액을 지불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트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국제 기준이 처음 국내에도 적용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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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청순가련형 연기자의 면모를 보인 김소연은 같은 해 영화 '체인지'에서는 톱보이 연기자로서 다양한 재능을 뽐냅니다. 스타 드라마 PD인 이진석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 '체인지'는 고교생인 정준과 김소연이 서로 몸이 바뀌면서 빚어지는 코미디입니다. 말하자면 '스위치'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국 고교생 버전이었고 당시로서는 드문 30만 관객(와이드 릴리즈 시대가 오기 전엔 꽤 큰 숫자입니다)을 넘어 서며 꽤 큰 성공을 거둡니다.

(스타 드라마 PD의 작품답게 수많은 스타들이 우정출연합니다. 특히 정준의 형 역으로 나온 김민종의 코믹 연기는 레전드급이었죠.^)

이렇듯 '성인형 하이틴 스타'로서 김소연의 위치는 공고했습니다. 이해 김소연의 출연작에는 김수정 원작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일곱개의 숟가락'이 있습니다. 사실 만화에서 가장 인기있던 삼룡이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등 만화 팬들에겐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이 해 극심한 부진을 겪던 MBC 드라마에는 숨통을 터 준 작품입니다. 홍경인과 이정현의 연기가 불을 뿜었던 작품으로, 김소연의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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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편과 영화 1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1997년에 비해 이후 2년간의 활동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김소연의 재능과 미모를 알아본 사람들에겐 참 혀를 찰 일이었지만 아무튼 '집안 문제'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리고 나서 빛을 발한 작품이 2000년 '이브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김소연은 '여자 2번'이었고 드라마의 간판은 장동건-채림이었지만 이 작품으로 김소연의 입지는 튼튼해집니다. 당시 채림은 시트콤의 잇단 성공과 밝은 캔디 이미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둘 중 누가 진짜 방송 앵커로 보이느냐는 질문엔 누구나 '김소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이해 김소연은 주말극 '엄마야 누나야'에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장미희의 딸(고수와 쌍둥이 남매)로 출연해 두각을 보입니다. 그런데 두 편 연속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맡는 것이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김소연의 경력을 보면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정작 경력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마땅히 있었어야 할 누군가(주로 매니지먼트)의 도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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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김소연은 류시원과 공연한 MBC TV '그 햇살이 나에게'로 다시 한번 적시타를 터뜨립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력을 과시한 것이죠. 큰 특징 없는 신데렐라+캔디형 드라마였지만 어쨌든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성공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라는 점은 입증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그 여세를 몰아...'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물론 어떤 배우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력 관리'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 뒤로 약 5년간 김소연은 악몽같은 세월을 보냅니다. 몇 안되는 출연작들도 한결같이 흥행에 실패하고, 한창 국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20대 중반의 나이에 서극 감독의 영화 '칠검' 촬영 외에는 다른 활동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위안이 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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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던 김소연이 느닷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바로 2007년 부산영화제의 레드 카펫이었죠. 전례를 보기 힘든 과감한 흰 드레스가 사람들이 잊고 있던 '김소연'이라는 배우를 메인 스테이지로 끌어낸 겁니다.

그 뒤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식객'과 '아이리스'가 나왔고, 우리 나이로 서른의 김소연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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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할리우드 배우는 제니퍼 코넬리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기억하듯, 소녀시절 남다른 미모와 재능으로 각광을 받지만 잠시 방황하며 엉뚱한 작품으로 세월을 보내고, 학업 수행 등으로 연기에 전념하지 않은 제니퍼 코넬리는 '잠시 반짝했다가 일찍 사그러든 배우'로 기억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생인 코넬리는 서른 즈음에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1998),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레퀴엠'(2000) 등으로 다시 배우로서의 재기를 알린 코넬리는 마침내 '뷰티풀 마인드'(2001)에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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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외에도 두 배우는 호소력짙은 미모, 지적인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김소연도 제니퍼 코넬리처럼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20대를 접고 30대 여배우로서 화려하게 개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은 일단 성공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향후 2-3년간의 작품 선택과 열정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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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TV든 라디오든 수험생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시험을 치는 당사자들에게 주위 사람들의 '아무쪼록 감기 걸리지 말고 모든 수험생들이 자기 실력 유감없이 발휘하길 바라겠습니다' 같은 멘트들이 얼마나 귀에 들어올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들 수능 대박나세요'같은 멘트야말로 어떤 때에는 짜증날 수도 있는 멘트죠(다 대박나면 대체 변별력은 뭘로...).

하지만 노래 한 소절은 또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뇌활동이 빨라지면서 내가 혼자 개고생을 하고 있는게 아니구나, 내 뒤에 나를 향해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부담감으로 어깨가 천근 뭔가 이유 모를 용기가 솟아나곤 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제가 수험생일 때만 해도 그런 용도로 사용될만 한 노래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당히 질적/양적으로 풍성해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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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많은 노래들 가운데서 아예 '수능 응원가'로 자리를 잡고 나온 것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이번 'Fly Higher'가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다면... 너무 노골적이란 생각도 듭니다. 뭐랄까, 가사부터 너무 시험 시험 하면 오히려 긴장을 부추기죠.

 


 

   그래서 따로 좀 꼽아 봤습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으면서 힘을 줄만한 곡들.


1. 소녀시대 힘내
 

 

네. 정말 진정으로 힘을 내고 싶습니다. 뭐 꼭 수험생이 남자가 아니라도.^^



2. 강산에 '넌 할수있어'

 

이 분야의 클래식이죠. 예전엔 이 시즌이면 하루에 20-30번씩 나오던 노래입니다. 요즘도 꽤 자주 나오는 듯 합니다. 강산에의 목소리와 '격려'란 말이 너무나 어울립니다.




3. 이한철, '슈퍼스타'
 

 

물론 전곡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수험생용 응원가'와는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경우엔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도입부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뒤에 어떤 가사가 나오든 이 도입부가 다 덮어 버린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수험생,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4. 러브홀릭스 버터플라이
 

지난해 겨울 처음 발표됐을 때에는 누군가 '수험생용 노래로 대박날 것'이란 예상을 했을 것도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영화 '국가대표'의 삽입곡으로 비로소 세상이 이 노래를 알아주게 되었습니다. 가사, 감동적인 멜로디, 노래의 힘, 모든 부분이 갖춰져 있습니다.

고치 속에 들어 있는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는 너, 세상이 모르는 너의 실력을 이제 화끈하게 보여주고, 나비처럼 날개를 펴고 세상으로 날아 오르라는 메시지도 선명합니다. 장갑 한 켤레로 손을 녹이고, 이 노래로 가슴을 녹이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5. '지킬 앤 하이드' 중 '지금 이 순간'
 

물론 가사는 끝으로 갈 수록 수험생용 노래와 멀어지지만^^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과 함께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오직 승리 뿐'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필요할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가치가 더욱 올라갑니다.

모든 걸 벗어 던지고 시험 하나에 집중해 끝장을 보라는 확실한 응원의 목소리입니다. 이 노래를 알린 최대의 공로자는 조승우지만, 좀 더 응원의 노래로 어울릴 듯 한 임태경의 노래를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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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들 노력한 만큼 제대로 거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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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선을 떠났지만 다시 한번 눈이 동그래지는 사건을 접하게 됐습니다. 만약 이런 일을 현역 때 맞았다면 정말 흥분됐을 듯 합니다. 바로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등장 소식입니다. 근래에도 설경구-송윤아 부부의 탄생 등 스타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화제가 됐지만 이만한 볼륨감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1999년 영화 '연풍연가' 때 처음 만났고, 두 사람이 사귄 것은 2년 정도 됐다는 것이 공식적인 발표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알고 지낸 것은 90년대초 장동건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고소영이 '내일은 사랑'으로 데뷔한 직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들이 친구 사이로 지낸 건 무려 17년 정도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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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편의 드라마에서는 90년대와 현재까지도 톱을 달리고 있는 수많은 젊은 연기자들이 배출됐죠. '우리들의 천국'에서는 염정아 유호정 김찬우 박철 전도연 등이 있었고 '내일은 사랑'에서는 신인 박소현과 이병헌이 나왔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공연하게 된 것이 '연풍연가'였죠.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장동건은 이 작품으로 영화에 발을 들여놨고 청룡상 신인상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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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살짝, 2000년 연말과 2001년 초 사이에 장동건과 고소영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문은 실체가 없으면 그냥 사그러들기 마련입니다. 그 전후로 이들이 실제로 만났다는 모습을 전하는 사람은 없었고, 다른 소문이 엇갈리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냥 '없었던 일'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거의 9년 뒤인 지금에 와서 두 사람이 사귄다고 인정을 한 걸 보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두 사람의 위치나 나이로 볼 때 '사귄다'고 인정하는 것은 거의 '결혼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셈인데, 그렇다면 정말 대한민국 연예사에 남을 초대형 커플이 탄생하는 단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과 비견할만한 대형 커플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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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성일-엄앵란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스타 커플 가운데 과연 이들을 앞지를 커플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특히 1964년 결혼한 이들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로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히트작 '맨발의 청춘'에서 공연하면서 곧바로 결혼으로 이어진 케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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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무룡-김지미

어쩌면 부부 양쪽의 스타덤을 따져 볼 때 단연 1위라고 해도 좋을 듯 하지만 결혼 생활이 그리 길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습니다(어쩌면 나훈아-김지미 커플을 더 위로 놓아야 할지도...). 아무튼 대한민국 최고 스타들끼리의 결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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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수종-하희라

결혼할 당시의 인기,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볼 때 현역 커플 가운데 최고의 스타 커플이라고 할 만 합니다. 특히나 5년간 열애를 하면서도 귀신같이 관계를 감춰왔다는 점에서 대단한 커플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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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불암-김민자

물론 두 사람이 결혼할 때만 해도 최불암이 '국민 아버지'급의 스타는 아니었겠지만, 결혼 이후 꾸준히 쌓아올린 스타덤을 고려할 때 최고 커플로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민자가 결혼 후 상대적으로 활동이 적어, 부부 동반으로 시골에 가면 촌로들이 "아니 진짜 마누라(김혜자)는 어쩌고 엉뚱한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했다는 전설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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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동근-전인화

'왕과 왕비' 커플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톱스타 커플입니다. 물론 결혼 당시에는 유동근이 지금만큼의 톱스타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 명실상부한 왕족 부부가 됐죠.

물론 대중 스타의 폭을 좀 더 넓게 보면 백건우-윤정희, 조성민-최진실 커플의 화제가 결코 이들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또 그 아래로는 현재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유동근-전인화, 차인표-신애라, 김승우-김남주, 손지창-오연수, 이재룡-유호정, 김호진-김지호 커플 등이 당대의 스타 커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들 화제 속에 결혼하며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커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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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장동건-고소영 커플이 맺어진다면 이들은 대한민국 커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놓여야 할까요. '일상생활이 화보'인 이들 커플이 함께 CF라도 촬영할라 치면 대체 모델료는 얼마나 내야 할까요. 다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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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한국의 '브란젤리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럼 한국식으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장동영? 고소건?  

P.S. 상처받은 팬 여러분. 과음해 봐야 자기 건강만 해칩니다. 아무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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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로 해놓고 시간만 잡아먹고 있는 일... 계획했던 대로 안 돼서 처음부터 안 한거나 마찬가지가 된 일... 처음에는 호랑이를 그린다고 시작했다가 고양이도 안 된 일... 뭘 하는지 모르고 시작해서 막상 끝나고 보니 아쉬움만 남는 일... 제때 처리하지 않아서 결국 부담이 되고 만 일...

달력이 달랑 두장 남고 보니 일, 일, 일, 2009년의 일들이 어깨를 짓누릅니다. 특히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더더욱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뭐 간교하게 '남들도 별 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 된 건 안 된 겁니다. 정말 만사 다 치워버리고 단풍 구경이라도 가고 싶은 나날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터라.

이런 느낌이신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이 친구는 참 일(공부)과의 갈등이 일찍 시작됐군요.

저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던 적도, 저 나이때 잠을 설쳐가며 공부를 한 기억도 없는데, 어머니가 워낙 극성인 건지, 아니면 얼마나 공부가 싫다고 떼를 썼으면 엄마가 저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 친구도 자기가 쓰고 있는 '내가 이래갖고 우째 살겠나'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합니다. 그냥 주변 어른 중에 저 말이 말버릇인 사람이 있는데 그걸 무작정 따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안 살면 어쩔래?'하는 엄마의 반문에 '뭘?'하며 당황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 갑자기 뭣부터 처리해야 좋을지 어정쩡한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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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모델 대회 심사를 하게 됐습니다.

S맥주의 모델 콘테스트였는데 이게 제가 일하는 회사와 관련된 행사다 보니... 싼맛에 불려 나가게 된 겁니다. 본래 이런 행사의 심사위원들은 많건 적건 심사료는 받는게 보통인데, 마케팅팀의 이규철 팀장은 "점심은 드릴게요" 한마디 해놓고 시치미를 뚝 떼더군요.

뭐 그런데 이런 장소는 한번쯤 가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평소 이런 행사의 결과(?)로 배출되는 친구들을 보고 "도대체 왜 저런 친구들을 뽑는 거지?"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해 보셨을 걸로 압니다), 정말 현장에서 보면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을 척 보고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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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인 호텔의 무대. 그리고 아래쪽은 이 행사의 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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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은 당연히 작년에 같은 대회를 통해 선발된 인물이죠. 소개는 아래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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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홈페이지입니다.
www.s-beer.com으로 들어가면 있습니다. 아직 행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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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런 사진을 한번 찍어 보고 싶었습니다. 얼굴이 드러나면 불쾌해 할까봐 다리만 찍었습니다. 뭐 제가 무슨 발 페티쉬 같은게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이하의 사진들은 하이트맥주 측에서 제공된 겁니다. 심사하다 말고 이렇게 사진 찍고 돌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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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제가 만나 본 모델 지망생은 약 30명. 이렇게 4인 1조로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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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심사를 하게 됩니다. 1차 심사는 흰 탱크탑과 핫팬츠로 복장 제한을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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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은 모두 여섯명이었습니다. 본사 직원, 모델관련사 대표, 다이어트 업계 대표, 드라마 제작사 대표, 영화감독, 그리고 저더군요. 제 등짝도 만만찮게 우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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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친구들은 어디서 본 듯도 하더군요. 얼굴을 다 소개드렸으면 좋겠지만, 혹시 꺼려할 친구들도 있을 듯 해서 이렇게 어느 정도 활동한 친구들 둘만 골랐습니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저의 심사 방향이나 전체 심사 결과와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어떤 친구들이 왔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선택한 인물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어떤 식으로든 선발 결과와 무슨 관련(내정?)이 있을 거라는 오해는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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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심사는 자유복입니다. 여기에는 개인기 테스트가 포함돼 있더군요. 춤과 노래가 대표적이고 춤 가운데서도 재즈댄스나 발레 등 특이한 쪽으로 재주를 보여주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개그'는 없더군요.

제공받은 사진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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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좁다며 바닥까지 내려와 춤추는 친구의 발을 찍어 봤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 발 페티쉬 아닙니다. ;;

행사에 가본 소감으로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참 뭐랄까... 포토샵 기술이 너무 많은 폐해를 끼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이번 행사에 지원한 사람은 무려 1500여명. 그 인원을 모두 만나볼 수는 없고 당연히 사진 심사를 통해 30명을 골랐는데, 사진만큼 실물이 뒷받침되는 사람은 10명 내외였습니다.

바로 앞에 실물이 있어도 이 사진이 대체 누구 사진인지를 알아볼 수가 없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절세미인이 아닌 친구들이 없다는 게 놀라웠지만 역시 실물은 절대 그렇지 않았고, 간혹 개중에는 사기죄로 사법처리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할 정도도 있더군요. (이러다 보면 포샵 안 쓰고 진짜 사진으로 승부하다가 억울하게 떨어진 피해자도 꽤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선발대회에서는 '적극적인 친구가 예쁘게 보인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이건, 경력이 있건,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역시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자질의 차이를 자신감이 극복할 수는 없겠죠. 아무리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고 있다 해도 자신감만으로 100m를 9초대에 뛸 수는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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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모델 심사'였긴 했지만 전문적인 패션 모델 선발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이름을 알려 연예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면, 참 이쪽 일을 원하는 친구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뭣보다 용모는 몰라도 몸매들, 특히 다리 길이는 정말 훌륭하더군요. 1500명에서 30명으로 추린 친구들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가 자랄 때와 비교해 볼 때 품종 개량은 확실히 이뤄진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회를 하고 나면 '내가 떨어진 건 뭔가 음모가 있기 때문이야. 다들 인맥과 빽으로 미리 작업을 해 놔서 합격자는 내정돼 있었을 거라고!'라고 생각하거나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나를 보여주라는거야?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항상 있습니다.

좀 더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충고하자면, 늘 그런 태도 - 항상 잘못은 내게 있는게 아니라 내 밖에 있다 - 를 갖고 있는 한, 주어질 기회라는 건 영원히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경쟁이든 내가 탈락했다면, 과연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고, 문제점을 정정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세상의 기준이 변해 주기를 바라는 건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의 태도로는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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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포스터의 주인공이자 지난해 1등인 김은선 양입니다. 지난해 '연예가중계' 리포터로도 출연했고 SAT라는 이름으로 가수로도 활약했습니다. 최근에도 MNET의 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군요.

부디 2009년 선발된 모델도 훌륭하게 성장하길 바라겠습니다.

음... 뭔가 마무리 코멘트가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냥) 앞으로도 S맥주를 애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화끈한 추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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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의 블록버스터 토크쇼 '강심장'이 방송 4주째를 맞았습니다. 대개 새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의 4주째는 적응기 내지는 숙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퀸의 'Seven Seas of Rhye'로 시작해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JCST'에서 'Superstar'로 이어지는 오프닝 뮤직도 이제야 귀에 익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심장'은 이제 딱 네번 방송을 한 프로그램치고는 이례적으로 '이제 보여줄 건 다 보여준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시작은 정말 장대했습니다. 다른 토크쇼에서 한두명씩 나올 출연진이 무려 20여명이나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각자 감춰놓은 사연들을 털어놓는 광경은 그럴싸한 볼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과 4회만에, 슬슬 끝을 보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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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은 왜 조기에 정착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이유 1번은 '강호동+이승기'라는 슈퍼 MC 조합입니다. 2번은 이런 MC진의 힘에 걸맞는 화려한 게스트 섭외력이었고(물론 1번의 힘이 작용합니다), 3번은 새로운 포맷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는, 아주 단순하고 익숙한 포맷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3번은 왕년의 인기 프로그램 '서세원쇼'에서 '토크 1위'를 바꾸던 방식과 같습니다.

아, 물론 그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고, 분명히 말하지만, 이미 사용된 포맷이라고 해서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오래됐다는 것 자체가 나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얘기지만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나 '오프라 윈프리 쇼'가 무슨 대단히 새로운 포맷을 갖고 있어서 오래 가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개그 콘서트'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대단히 독특한 포맷이 있어서 장수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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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토크'가 너무 얄팍하고 소모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강심장'이 초반에 보여준 '20여명 게스트'의 본질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말하자면 '뒷줄'의 고정(혹은 반 고정) 게스트들은 '앞줄'에 앉은 진짜 게스트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가질 뿐, 토크쇼의 게스트로서 결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케이크의 포장 상자일 뿐이죠. 그 고정(반 고정) 게스트 가운데서도 '붐 아카데미'라는 식으로 자력 구제에 나선 팀도 있지만 어쨌든 그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진짜 '얘기'를 할 사람은 '앞줄'의 6-8명 정도에 국한됩니다. 물론 이 숫자도 '해피투게더'나 '놀러와', '상상더하기'에 비하면 많은 편이죠. 어쨌든 이 숫자가 많고, '뒷줄 멤버' 들에게도 얼마간의 시간이 할애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 출연자들은 모두 '편집과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휘발성 토크'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지금은 '서세원 쇼'가 독주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온 채널에 비슷한 류의 폭로성 토크 프로그램들이 널려 있죠.

물론 초기처럼 빅뱅이나 2NE1같이 예능 출연이 적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빅 게스트들이 계속 나와 준다면 뒷줄 멤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국내의 뻔한 토크쇼 게스트 풀에 비쳐 볼 때 이걸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결국은 몇달 안에 '너 또 나왔니' 성 게스트들이 뒷줄 멤버들과,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자학성 치고 받기로 생명을 유지하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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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작진이 설정한 몇가지 장치가 보입니다. 이를테면 '붐 아카데미'라든가 '솔비-낸시 랭'의 경쟁구도, 그리고 김태훈의 분석 코너 등이 있지만 사실 이런 장치들은 메인인 토크가 살아 줄 때 빛을 발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강심장' 특유의 어수선한 포맷은 이른바 빅 게스트들의 기피 요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강호동이 길 건너편에서 진행하고 있는 '무릎팍 도사'급의 게스트들은 이런 식의 마트 형 토크쇼에 나올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포맷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 선에서 좀 더 밀도 있는 얘기를 원하는 게스트들은 '라디오 스타' 정도에서 타협이 이뤄질 겁니다.

얘깃거리가 상대적으로 풍성한 중년 게스트들은 '세바퀴'가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겠죠. 반면 '강심장'이 선호하는 아이들 그룹 멤버들은 어쨌든 인생 경험 자체가 얇은 만큼 얘기할 만한 에피소드 역시 곧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박규리처럼 아역때 강호동과 키스를 해 본 건 아니겠죠.

이런 저런 요인들을 둘러보고 나면 '강심장'에 남는 것은 이승기와 윤아의 러브라인 뿐입니다. 매우 강력합니다. 하지만 과연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두 사람이 실제로 사귀어 준다면 꽤 폭발력이 있겠지만, 설마 그런 자살행위를 하도록 양쪽 회사가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겠죠(혹시 모르겠습니다. 엄청난 프로모션을 위해 아예 작정하고 '둘이 사귀어야 해!'라고 나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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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27일 방송된 '강심장'은 불과 네번 방송된 프로그램답지 않은 익숙함-지루함을 줬습니다. 물론 당장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또 모든 예능프로그램들은 시간이 가면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와 '1박2일'이 한창 최고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관계자들은 누구나 1년 늦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가 먼저 힘이 빠질 거라고 예상했고, 지금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뭐 '6개월(혹은 1년)이면 충분해. 뽑아 먹을 것 다 뽑아먹었는데 뭘'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할 말은 없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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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샤키라 삼고무'라는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샤키라는 아는데 삼고무가 뭐더라... 하고 보니 샤키라가 방송 출연 때 한국 전통 무용단을 앞세우고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더군요. 놀라웠습니다.

한국 가수가 미국에 간 것도 아니고, 샤키라 정도의 톱스타가 한국 무용을 자신의 퍼포먼스에 이용하고, 자기의 뮤직비디오에 넣었다는 건 정말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원더걸스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들어간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빌보드 싱글 탑10 히트곡을 여러 곡 갖고 있는 샤키라 정도의 스타가 이렇게 한국 문화 홍보(?)에 앞장선 것도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 그럼 거기 함께 출연한 한국 무용수들은 누굴까요? 또 샤키라는 대체 왜 한국 무용수들을 기용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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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키라 무대의 한국 무용수는 재미 무용가 캐슬린 고


세계적인 팝스타 샤키라의 무대에 한국의 전통 무용 삼고무(三鼓舞)가 등장해 화제다.

최근 샤키라는 NBC TV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ABC TV '댄싱 위드 더 스타즈' 등 미국 지상파 방송의 유명 쇼 프로그램에 잇달아 한국 전통 무용단과 함께 등장해 신곡 '디드 잇 어게인(Did It Again)'의 무대를 꾸몄다. 샤키라와 함께 한복을 차려 입은 무용단이 장고춤과 삼고무를 보여주는 광경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국내 네티즌들에게도 알려졌고, 자연히 이 영상에 등장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누구냐는 궁금증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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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결과 이들은 재미 한국무용가 고수희씨(53)의 맏딸 캐슬린 고(21)가 이끄는 단원들이었다. LA에서 고수희 무용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고수희씨는 샤키라와의 협연에 대해 "샤키라가 신곡의 안무를 위해 전 세계의 전통 북 퍼포먼스를 검색하다가 한국의 삼고무를 직접 점찍었다고 들었다. 마침 딸 캐슬린이 다니고 있는 연기학교 관계자가 샤키라의 안무가인 하이햇(Hihat)과 친한 사이여서 우리에게 요청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캐슬린 고와 고수희 무용단은 이번주 공개될 '디드 잇 어게인'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것을 비롯, 다음달로 예정된 샤키라의 런던 공연에도 동행할 예정이다.

1981년 도미한 고수희씨는 88년 LA에 고수희 무용연구소를 설립, 한국 전통 문화를 보급해왔다. 고씨는 "이번 샤키라와의 공동 작업을 본 현지인들로부터 '한국 춤이 저렇게 멋진 줄 몰랐다'는 관심어린 인사가 쏟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춤과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출신의 여가수 샤키라는 현재 라틴 음악의 여왕으로 자리하고 있는 월드 스타. 지난 2001년 '휀에버, 웨어레버(Whenever, Wherever)'가 일약 빌보드 싱글 차트 6위까지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6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빌보드 라틴 차트 1위에 올려 놨다.
송원섭 기자 f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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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고수희씨 모녀. 분홍 스카프 한 사람이 고수희씨, 그리고 그 왼쪽이 딸 캐슬린 고입니다. 샤키라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쪽 입장을 몰라서 공개할 수가 없다더군요.

처음 소니뮤직 측에 "도대체 샤키라와 함께 나온 한국 무용팀이 누구냐"고 물으니 "LA에 있는 고수희 무용단이라는 것 까지는 알아봤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안 됐다"고 하더군요.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전화번호는 있는데 불통. 그런데 알고 보니 무용 연구소가 두 군데더군요. 나머지 한 군데로 연락해 고수희씨와 통화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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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캐슬린 고. 단체사진을 받아서 "대체 누가 캐슬린이냐"고 묻자 고수희씨는 "아유, 당연히 제일 예쁜 애죠"라며 웃습니다. 아, 어머니 마음이 아니라도 물론 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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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샤키라는 어떻게든 타악기 퍼포먼스를 하나 가져다 쓰고 싶었고, 유명 안무가 하이햇 (Hihat)을 졸라 갖가지 퍼포먼스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다가 한국의 삼고무에서 딱 꽂혔다는 겁니다. '옷이 너무 예쁘다'고 했다는군요. 정해 놓고 샤키라는 자신의 곡과 춤을 국립무용단 등 국내 전통무용단의 유튜브 영상과 맞춰 봤다고 합니다. 샤키라의 안무가 하이햇도 유명하지만 샤키라는 그 자신이 소문난 안무가일 정도로 춤과 퍼포먼스의 전문가이기도 하죠.

그래서 합격점이 나오자 그때부터 미국 내에서 한국 전통 무용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고수희 무용연구소에 연락이 닿은 겁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Did it again'의 뮤직비디오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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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샤키라의 퍼포먼스의 의의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쇼 프로그램에 한국의 전통문화 퍼포먼스가 들어갔다는 데 있습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줄여서 SNL은 1975년부터 무려 35년째 방송되고 있는 유서깊은 오락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이름을 대면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프로그램이죠. 초대되는 스타도 최고 레벨입니다. 이번 시즌은 지난 9월26일부터 방송이 시작됐는데 메건 폭스, U2, 드루 배리모어, 레이디가가가 나왔습니다. 샤키라와 같은 주에는 제러드 버틀러가 나왔군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또 하나, '댄싱 위드 더 스타즈(DANCING WITH THE STARS)는 현재 전 미국에서 시청률 3,4위권에 드는 쇼입니다. 지난 10월12일 방송분은 10.8%(시청자 수 약 1600만)를 기록했군요. 한국 기준으로 10.8%면 별볼일 없는 숫자지만 워낙 다매체 사회인 미국에선 그 주에 시청률 10%를 넘은 프로그램은 셋 뿐이었습니다.
http://en-us.nielsen.com/rankings/insights/rankings/television

물론 한국의 전통무용이란 설명이 붙어 나간 건 아니지만, 아마 이 퍼포먼스를 계기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무용을 보게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 무용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이봐, SNL(혹은 '댄싱 위드 더 스타즈')에서 샤키라가 춤출 때 뒤에 나오던 유니크한 무용 못봤어? 그게 한국 무용이야"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Shakira - Loba [She Wolf] Mp3 Lyrics Letras mp3 download rint...


샤키라... 이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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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해피 선데이'의 두 축은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입니다. 후자가 이미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 됐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이 블로그의 포스팅 목록을 보시면 제가 얼마나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지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간판은 분명히 '1박2일'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자의 자격'이 만만찮은 포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1박2일'의 앞 시간대에서 최강자는 단연 SBS TV의 '패밀리가 떴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패밀리가 떴다'의 힘이 부쩍 빠지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죠. 뒤늦게 투입된 멤버 때문이다, 빠져나간 멤버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문제다 등등 분석이 엇갈리는데 그중 한 요소는 '남자의 자격'의 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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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아 연예인들의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남자의 자격'의 포맷이 크게 독특할 것은 없습니다. 초기의 이 프로그램은 사실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웠기 때문이죠. 최근 몇해 동안 이경규가 출연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이윤석이 있었습니다. 어떤 포맷의 프로그램이든 호통치고 다그치는 이경규와 거기에 벌벌 떠는 심약+신약 이윤석의 구성은 21세기 들어 방송된 '이경규 예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은 전형적인 이경규 예능이면서 멤버 구성에 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윤석이 너무 많았던 거죠. 진짜 이윤석은 물론이고 김태원과 김국진도 사실상 '변형 이윤석'이었던 겁니다. 특공대 훈련을 가건, 뭘 하건 '몸' 쓰는 예능에서는 일단 먼저 쓰러지고 보는 멤버가 셋이나 되다 보니 차별화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그저 그런 쇼가 될 위기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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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21세기 예능의 화두는 캐릭터. 오래 되지 않아 촐삭대는 김성민과 시니컬한 할머니 김태원의 캐릭터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김성민은 '환상의 커플'의 얼떨떨한 남편 빌리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가는, 철없는 개구장이 역할로 자신을 부각시키기 시작했죠.

이에 비해 김태원은 대단히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어떤 때에는 세상 이치에 통달한 중년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때에는 철없는 중학생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비호감이지만 어찌 보면 젊은이들이 보기에 '(쎈 척 하지 않는)귀여운 중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고 있는 '무기력한 중년 남자'를 대변하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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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재 '남자의 자격'의 세 축은 이경규-김태원-김성민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말하자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형국입니다. 윤형빈은 좀 더 버라이어티 적응기가 필요할 것 같고, 이정진은 처음부터 제작진과 본인의 의사에 차이가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태원 없이 맞게 된 '하늘을 날다2' 프로젝트에서는 김성민의 역할이 단연 빛을 발했습니다. '하늘을 날다2'는 F-16에 조종사와 함께 탑승해 초음속 전투기를 체험해 보는 순서. 남자라면 언젠가 한번쯤 꿈꿔봤을만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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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빨간 마후라를 매고 '자신을 위한 프로젝트'에 뛰어든 김성민은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따발총 멘트'로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물론 효율로 보면 많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다 웃길 수는 없죠. 하지만 이런 따발총 멘트는 주변의 다른 멤버들이 웃길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실제 방송에서도 김성민의 멘트는 거의 다 편집됐지만 그가 없었다면 이경규의 "쟤(김성민) 미친 거 다 찍었지?"같은 멘트가 살지 못했을 겁니다.

생방송이든 녹화방송이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김성민은 고품질이든 저품질이든, '죽은 시간'을 최소화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자의 자격' 멤버 구성상, 이런 '깔아 주는' 멤버의 의미는 각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김봉창'이라는 별명대로 엉뚱한 대로 가기도 하는 멘트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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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공군 조종사 육성 훈련 코스 탐방. 아무래도 가장 기대를 모은 것은 평상시 중력(흔히 1G라고 표기됩니다)의 6배에 달하는 6G 중력의 체험이었습니다. 여기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 김국진, 중간에 실신한 이윤석은 이 훈련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죠. 이럴 때는 또 상대적으로 '건강체'인 윤형빈 이정진 김성민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이정진이 6G를 경험한 뒤 '생각보다 그리 심하지 않더라'고 하자 김성민은 아예 실제 조종사들이 초음속 모드에서 경험하게 되는 9G 체험을 해 보겠다고 '나섭니다'. (참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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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창' 김성민은 어쩌면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 '국민할매' 김태원은 진지한 록 뮤지션으로서의 색채를 무너뜨릴 위험을 무릅쓰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변신에 나섰습니다. 일단 예능계에서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지만 과연 본래의 영역에선 각각의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직 뭐라고 딱 잘라 얘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 둘의 활약이 계속되고, 여기에 기존 멤버들 중 2명 정도만 분명한 캐릭터를 잡아 준다면 '1박2일'과의 자리 바꿈도 결코 꿈은 아닐 듯 합니다. '남자의 자격'의 분전에 부쩍 눈길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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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딸 원더걸스의 빌보드 싱글차트 상륙이라는 승전보가...라는 식의 70년대식 표현을 쓰고 싶은 나날입니다. 원더걸스가 빌보드 싱글100 차트에 76위로 올라갔더군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경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동안 어설프게 '빌보드 마케팅'에 나섰던 몇몇 팀들이 있긴 했지만 사실 전부 군소 차트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대중음악전문지 빌보드가 내놓는 차트는 수십가지죠. 그래도 그 중에서 핵심은 핫100 싱글 차트와 핫 200 앨범차트입니다. 물론 아직도 빌보드 차트가 판매량 순위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빌보드 차트는 음반의 판매량과 예상 판매량, 방송 회수 등의 여러 가지 지표(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빌보드의 영업 비밀로 되어 있습니다)를 종합해 매겨지는 '예측 순위'입니다. 즉 빌보드 차트상의 순위는 '우리가 예측하건데 2주 뒤면 이런 판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의미의 예상 차트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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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부동의 권위를 갖고 있는 빌보드 차트에서 원더걸스가 인정받았다는 점은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이들은 미국 활동을 하는 동안, 별 희한한 말들을 다 들어야 했었죠. 언플(언론 플레이)이다, 과대포장이다, 그러다 한국에서도 잊혀지고 공중에 붕 뜬다... 참 요란했습니다.

어쨌든 이제 첫 성공을 거뒀으니 모두 옛날 일로 웃어 넘길 일입니다. 그런데 모든 기사마다 '원더걸스는 아시아에서 데뷔한 가수 가운데 네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원더걸스에 앞서 빌보드에 상륙했던 아시아 가수들은 모두 일본 소속이었습니다. 그럼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들이 걸은 길을 보면 원더걸스의 방향도 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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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을 따지자면 무려 19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일본인은 물론 아시아 출신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른, 그것도 영어 가사도 아닌 일본어 가사로 된 노래로 오른, 심지어 그냥 차트에 오르기만 한 게 아니라 무려 3주간이나 1위를 한 가수의 이름은 사카모토 큐(坂本九)입니다. 그리고 노래는 흔히 '스키야키(Sukiyaki)', 혹은 '스키야키 송'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목이 참 특이합니다. 아시다시피 스키야키는 불고기와 비슷한 일본의 쇠고기 전골 요리 이름이죠. 물론 원제가 아닙니다. 원제는 '위를 보고 걷자(上を向いて歩こう)' 였습니다. 그럼 대체 왜 미국에선 엉뚱한 제목을 갖게 된 거냐, 뻔한 얘깁니다. 일본어로 된 노래 제목을 외우지 못하는 미국 음악 관계자들이 그냥 친숙한 일본 요리 이름을 써서 '스키야키 송'이라고 불러 버린 겁니다. 또 처음 이 곡이 미국에 소개될 때에는 연주곡이었기 때문에 가사 내용은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어쩌면 '스시 송'이나 '템푸라 송', '우동 송'이 될 수도 있었단 얘기죠.

(미국식이란 건 가끔 이런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원더걸스도 노래 제목이 '노바디'였으니 망정이지 '총맞은 것처럼'이었다면 그냥 '김치찌개송'이나 '비빔밥송'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노래는 애조를 띤 듯 하면서도 가볍고 산뜻한 멜로디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10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수십명의 가수들이 이 노래의 리메이크에 나섰고, 그중 가장 히트한 곡은 1981년 여성 듀오 테이스트 오브 허니(A Taste of Honey) 버전입니다. 싱글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원곡만은 못했네요.
 "

그리고 나서 한참 세월이 지난 뒤, 1979년 핑크 레이디가 다시 세계 무대를 노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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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979년 'Kiss in the Dark'로 빌보드 싱글 차트 37위에 오르며 Top 40 안에 드는 성공을 거뒀고,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해집니다. 특히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가해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당시 한국의 문물 수준으로는 빌보드 싱글차트 37위의 노래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서울 국제가요제의 영향으로 핑크 레이디는 꽤 유명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서울 국제가요제가 아닌 다른 행사였고, 그랑프리가 아니라 특별 초청 공연이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확인이 힘들 듯 합니다만 이 분들의 지적이 맞는 듯 합니다. 추가 정보 환영.)

심지어 미국에서도 말입니다. 미국 TV에 처음 소개된 핑크 레이디의 모습입니다. 그들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얼굴을 보시면 깜짝 놀랄 분들도 있을 겁니다. 바로 이 시절, 숭의음악당에서 내한 공연을 해 한국 언니들을 자지러지게 했던 레이프 개릿이기 때문입니다.

 

노래가 참 묘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 무렵, 디스코의 물결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저 스타일이 첨단 유행이었습니다. 바로 같은 해에 아니타 워드가 명곡으로 꼽히는 'Ring My Bell'로 인기가도를 달립니다.

다이나믹 듀오에 의해 리메이크됐던 바로 그 노래입니다.

 

정말 비슷한 느낌 아닙니까?

하지만 핑크 레이디의 선풍적인 인기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한번도 진지하게 미국을 활동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어디까지 이들의 시장은 일본이었습니다), 미국 진출 2년만인 1981년, 핑크 레이디라는 체제로는 일본 음악 시장에서 성인으로서의 미래가 없다는 판단 하에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꽤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마 세계적인 디스코 열풍의 퇴조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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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1년 뒤인 1980년, 일본이 자랑하는 '시대를 앞서간 트리오' YMO가 1978년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Computer Game'으로 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둡니다.

이 곡의 히트와 함께 YMO는 앨범 2장을 빌보드 앨범 차트에 올려놓는 쾌거를 이룹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노래가 히트할 수 있었는지 어처구니없어 하실 분들이 꽤 될 겁니다. 6분이란 긴 러닝타임에 도입부만 1분30초, 백남준 선생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난해한 화면 등이 그렇습니다.

YMO는 일본에서 1978년, 사카모토 류이치(키보드), 타카하시 유키히로(드럼), 호소노 하루오미(베이스)가 모여 결성한 일렉트로니카 그룹입니다. 그야말로 '최소한 10년 이상은 빨랐다'고 평가받는 혁신적인 뮤지션들이었죠. 문제의 노래 'Computer Game'입니다. 고전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펙트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 원더걸스의 쾌거를 보도한 국내 매체들의 기사를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매체가 YMO를 '옐로우 멍키 오케스트라' 라고 표기해놓고 있더군요. YMO는 YELLOW MAGIC ORCHESTRA의 약자입니다. MAGIC이 어쩌다 MONKEY가 돼 버린 걸까요.

거의 모든 매체가 공히 틀린 것으로 보아 아마도 보도자료 배포 축의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자료를 받으면 그 자료를 검증해 보려는 노력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매체가 이렇게 많다는 게 다시 한번 드러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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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YMO는 무명 뮤지션도 아닙니다. 최소한 그 멤버들 중 한 사람은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다시 성장했습니다. 바로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맡았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 사람입니다.

 

아무튼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일본 대중음악은 세계와 리얼 타임으로 맞붙을 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장르도 다양했죠. 이 무렵에 등장한 메탈 밴드 라우드니스도 앨범을 빌보드 차트에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그런 도전정신이나 경쟁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90년대 일본 최고의 프로듀서였던 고무로 테츠야를 비롯, 아무로 나미에에서 우타다 히카루까지 수없이 많은 빅 스타들이 미국 시장 상륙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듯 일본 음악시장이 거대해지면서 굳이 세계 무대를 노릴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든가 하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엔 '진출'을 시도한 톱스타들의 면면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대체 왜 일본 대중음악이 80년대 초의 에너지를 잃었는지는... 누군가 알고 있겠죠.^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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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레이디와 비교해 볼 때 원더걸스는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영어 실력도 점점 나아질 겁니다. 뭣보다 미국 사정을 잘 알고 비즈니스 감각도 뛰어난 프로듀서가 아예 옆에 붙어 있다는 것도 꽤 바람직한 상황입니다.

이번 진입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이번 일도 대단히 기쁘고 의미 깊은 일이지만, 앞으로 원더걸스가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바로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일이라는 게 더욱 보는 사람을 기대하게 합니다. 아무쪼록 더 나은 모습이 있길 바랍니다.

뮤직비디오는 국내에서 만든 걸 그대로 쓰는 모양이더군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이라면 원더걸스의 영어 발음을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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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케이블채널 tvN에서 '80일만에 서울대가기'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됐습니다(우선 가장 궁금하실 것부터 보면 비밀번호는 dream80이랍니다^.) 아무튼 제목부터 참 관심을 끕니다. 한국 중년 남녀의 공통적인 관심사라면 돈과 교육이 1,2위를 다툴텐데 그중 하나를 정면으로 겨냥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겁니다. 진지하게 성적을 올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EBS를 보는게 낫겠죠. 이 프로그램은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공부'를 갖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를 시험해보는 프로그램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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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일찌기 MBC에서는 '공부의 제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의 왕도를 가르쳐주겠다'고 나선 적이 있고, 또 '꼴찌탈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학능력이 매우 낮은 학생들의 성적을 단시일내에 끌어올려 보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희한하게도 이 두 프로그램의 MC였던 이윤석과 김진수가 이번 '80일만에...'를 진행하는군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과 '80일만에...'의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열등생을 데리고 하건, 우등생을 데리고 하건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전제는 분명히 같습니다만 예전의 프로그램들은 어딘가 느슨한 면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즉, '언제까지 어느 정도나 성적을 올린다'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폭넓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여지가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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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다릅니다. '80일'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서울대'라는 공간적인 제약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즉 '80일 안에 (현재 성적으로 보아 서울대에 가지 못할 학생들이) 서울대를 가게 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설정이 정직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첫 방송에서는 7명의 고3 및 재수생들을 모아 놓고 합숙 수험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화면상으로 나타난 수능까지의 시간은 80일도 아닌 75일. 7명 가운데 과연 서울대를 가는 학생이 나올까요?

유력한 후보자는 지난해 연세대와 고려대를 지원했다 낙방했다는 재수생입니다. 이 정도라면 단기간에라도 입시에 도가 튼 유능한 강사들이 본격적으로 지원한다면 서울대를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나머지 학생 가운데서도 서울대를 진학하는 학생이 나온다면 이 프로그램은 꽤 성공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꽤 큰 금액이 될 제작비는 스타 강사들의 홍보비와 입시관련 용품의 PPL로 상당 부분 커버될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 '80일만에 서울대 가기'는 다소 기만적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그만이지만,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 어쨌든 나머지 학생들도 성적이 꽤 오르기만 한다면 뭐라 탓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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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프로그램은 입시지옥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한국의 입시현장을 고발하는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세상에 공부의 왕도라는게 있을리가 없죠. '성적올리기의 왕도'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일곱명의 학생들이 과연 성적이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에 대한 변형 게임 쇼일 뿐입니다.

지원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최정예 전문가들로부터 무료로 지도를 받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치 방송으로 인한 귀찮은 요소들도 감내해야 합니다. 조명과 카메라의 방해로 공부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가끔은 '좀 더 재미있는 방송'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조건을 이겨내고 예상보다 좋은 학교를 간다면 뭐 누구라도 불만 없겠지만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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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학생들에게 과도한 동정을 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대개 자체 경쟁을 통해 단 한 사람만 살아 남는 절대 다수의 서바이벌 쇼에 비해 이 학생들은 그 안에서의 경쟁 같은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봐도 이들은 결코 불행한 편이 아닙니다.

또 이 프로그램의 성공에서 최대의 관건은 이들의 입시 결과겠지만 그 사이에 시청자들을 잡아 놓으려면 아무래도 출연자들이 드라마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들이 공부하는 중간에 보이는 감정의 변화나 발산이 화면으로 드러나야 할텐데, 과연 수험생들을 상대로 그런 밀착된 카메라 워킹이 가능할지도 궁금합니다.

아무튼 현재 가장 큰 관심은 이 영악한 쇼 프로그램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에 몰려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시청자들의 관심을 잡아 놓을 수 있을까요. 첫회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2회에서도 그런 호응이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성공한다면 최초의 '성공한 교육 버라이어티 쇼'가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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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비슷한 소재의 일본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도 내년 1월쯤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 될 예정입니다. 그야말로 교육 붐이군요.


P.S.2. 오랜만에 이윤석과 김진수를 보니 '허리케인 블루'가 절로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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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권상우 부부의 화보가 눈길을 끈 적이 있습니다. 이 화보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다른 부부의 이름이 떠올랐을 겁니다. 바로 데이비드 베컴 - 빅토리아 베컴이겠죠.

스타 커플들은 가끔 부부라는 이점(?)을 이용해 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하곤 합니다. 가끔은 '화보 찍으려고 결혼한거냐!'는 얘기가 나오고 싶도록 말이죠.^ 뭐 당연히 그럴 리는 없겠습니다만.

문득 권-손, 그리고 베컴 부부를 제외한 다른 커플들은 어떤 화보를 찍었는지 한번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뭐 그리 사례가 풍부하지 않아도 그냥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직접 찾아보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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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이런 화보의 가장 큰 목적은 뭘까요? 돈? 명예? 그건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을 부러움이나 좌절감에 빠뜨리려는게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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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미남 미녀 커플은 이미 결혼 직전에도 다른 사람들의 염장을 지른 적이 있습니다. 벌써 기억이 안 나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때도 이런 화보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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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화보의 경우, 국산품의 수준은 강도 면에서 뚝 떨어집니다.

속옷 광고니 잡지 화보니 해서 꽤 많은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있는 베컴 부부의 경우. 어떤 사진들은 좀 낯뜨거울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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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포즈를 맘놓고 취할 수 있고, 남들도 뭐 그러려니 넘어가는게 바로 부부 사이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은 장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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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윌리스는 이들을 살짝 따라하는 듯한 화보를 내놨습니다. 'MR. AND MRS WILLIS'라는 것은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표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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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의 새 아내는 22세 연하의 영국 출신 모델 겸 배우 에마 헤밍입니다. 젊은날의 데미 무어를 닮았다는 평을 꽤 많이 듣고 있습니다. 사람의 취향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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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안에는 이런 SM 느낌의 화보도 있다는군요.

W지의 특징인가봅니다.


머라이어 캐리도 남편 닉 캐논과 함께 이런 포즈를 잡아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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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보를 찍는데 꼭 부부가 필요한 건 아니죠.

'하이스쿨 뮤지컬' 커플인 잭 에프런과 바네사 허진스도 동화 느낌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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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제시카 비엘... 이건 연출된 화면인지. 파파라치 샷이라기엔 너무 여러모로 완벽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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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용 사진은 아니지만 진짜 커플들은 러브신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이 '돌이킬수 없는'에서 보여준 후반부의 베드신은 자연스러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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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직업이 연기인 배우들은 화보 촬영 때에도 그럴싸한 감정을 뽑아내는게 당연합니다. 별 사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소지섭과 이지아가 얼마 전 진행한 이 화보도 꽤 느낌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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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보를 보고 있으면 제목에 쓴 '스타커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무색해지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두 배우가 화보를 찍는 동안만이라도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도.^

자, 진짜 커플 사진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느낌이 좀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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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커플의 이권 남용(?)은 클래식에서도 있습니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무대에서 수시로 '애정행각(?)'을 보여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죠. 특히 갈라 쇼 무대 같은 데서는 너무 천연덕스럽게 키스 등을 연출해 '뭐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아무튼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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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1박2일'에서는 연평도 꽃게 요리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세 팀으로 나뉘어 진행된 꽃게 요리 대결에서 흔히 '몽장금'으로 불리는 MC몽과 김C 조는 꽃게탕과 게살 볶음밥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상식적인 요리죠. 이어 강호동과 이수근 조는 카레 소스로 꽃게를 버무린 꽃게 카레범벅을 만들었고 누가 봐도 요리와는 거리가 먼 은지원-이승기 조는 꽃게 간장조림(?) 등의 희한한 음식을 내놨습니다.

사실 심사위원들도 지적했지만 꽃게라는 재료의 특징은 아무리 엉망으로 만들어도 맛있게 만들기보다 맛없게 만들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재료 자체의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요리를 해서 엉망이란 판정을 받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도 누가 봐도 엉망이었던 은지원-이승기 조를 뺀 상태에서 예상을 뒤엎고 강호동-이수근 조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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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꽃게의 결합. 사실 이건 한국 요리의 영역은 아닙니다만, '신세대 퓨전'이라고 추켜세울만한 뜻밖의 음식은 아닙니다. 태국 요리에서는 게와 카레의 결합이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유명한 음식인 푸 팟 퐁가리(Pu Phad Pong Gari) 입니다. 영문표기는 제각각입니다. Boo Pod Pong Kharee 까지 다양한 표기가 존재합니다. 어쨌든 발음이 '뿌빠뽕가리' 비슷하게 나면 그걸로 대략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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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 보신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태국 요리의 특징은 대부분 재료와 조리법이 그대로 요리의 이름이 된다는 점입니다.

푸 팟 퐁가리에서 푸는 게, 팟은 풀어 볶다, 퐁가리는 노란 커리를 가리킵니다. 즉 글자 그대로 그냥 '노란 커리에 볶은 게'라는 뜻이 됩니다.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쿵팟크라티얌프릭타이라는 음식 이름도 기억하실만 합니다(맛있습니다). 쿵(또는 쿰)은 새우, 팟은 역시 볶다, 크라티얌은 마늘, 프릭타이는 후추입니다. 즉 마늘후추새우볶음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리 이름이 재료와 조리법으로 이뤄진 것은 태국만의 특징이 아니군요.^^ 한국도 갈비찜은 갈비를 넣고 찐 음식, 김치찌개는 김치로 끓인 찌개죠. 물론 부대찌개나 궁중전골같은 변형도 있지만 아무튼 기본은 요리 이름이 재료와 조리법으로 이뤄진게 전 세계 공통적으로 기본인 듯 합니다. (별거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아, 푸팟퐁가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요리들이 모두 똑같은 형상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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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흥건한 국물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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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짝 소스 형태로 얹힌 것도 있습니다. 게다가 게도 꽃게는 아니군요. (어떤 게로도 할 수 있는 듯 합니다. 태국에서는 분명히 꽃게로 만든 푸팟퐁가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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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애프터 더 레인'이라는 국내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소프트셸 크랩으로 만든 푸팟퐁가리입니다. 소스도 아니고 아예 계란찜(?) 처럼 커리 양념이 얹혀져 있다는 게 특이합니다. 아무튼 맛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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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리들과 비교해 볼 때, 강호동과 이수근도 조리과정에서 직접 넣고 함께 볶았더라면 좀 더 본고장(?)의 풍미가 도는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꽃게와 카레 양념이 따로 따로 조리됐다는 게 약간 아쉽습니다. 아무튼 맛은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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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역시 가장 군침도는 음식은 몽장금의 꽃게탕이더군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꽃게탕의 국물은 역시 된장 베이스가 최고입니다. 가끔 전문 꽃게탕 요리점에서도 고추장 국물의 꽃게탕을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꽃게에 대한 모욕입니다. 은은한, 결코 진하지 않은 연한 된장 국물에 꽃게를 넣고 끓여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맛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몽장금의 말 그대로 "꽃게 자체에서 단맛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MC몽의 요리 내공은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좀 '특이한 요리'에 점수가 더 갔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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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날 요리 대결의 백미는 상품의 향방. 이들은 '집으로' 편에서 정을 쌓았던 기산리의 노인들에게 꽃게를 선뜻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의 한방을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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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꽃게를 자주 드셔보시지 않았다는 노인들이 꽃게 조리는 잘 해서 드셨을지 걱정입니다. 뭐든 자주 드셔 보시는 분들이 맛나게 드시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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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연평도를 떠나는 강호동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꽃게에 대한 열망을 되새겼습니다. 이번주에는 꼭!

P.S. 그런데 MC몽은 왜 스키장 제설작업을 자청하면서 제무덤을 판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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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 축구가 U-20 대회에서 오는 9일 26년만에 세계 4강에 재도전합니다. 이런 경사가 없습니다. 박주영과 신영록 같은 특급 골잡이들이 활약하던 시절에도 16강 진출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18년만에 8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타가 없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막상 대회에 나가자 수비수 출신인 김민우가 3골을 터뜨리며 난세의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8강 진출은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이 이룬지 18년만의 성적입니다. 그리고 9일 가나를 꺾고 4강에 오르면 지난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이 이끈 '기적의 4강'에 이어 무려 26년만의 쾌거가 되는 셈입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때 아예 태어나지 않은 분들도 꽤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 본 분들은 당시의 열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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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이 멕시코에서 열리는 U-20 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박종환 감독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박종환 감독은 2년 전인 1981년에도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호주로 날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에이스는 최순호.

한국은 첫 경기에서 최순호의 2골을 포함, 이탈리아를 4대1로 격파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이후의 경기를 연패하며 예선탈락의 쓴맛을 봤습니다. 그리고 2년 뒤, 83년 대회는 처음부터 행운이 잇달았습니다. 당초 이 대회 출전권을 딴 것은 북한이었지만 북한 성인 팀이 아시안게임에서 폭행 사건을 벌이며 2년간 국제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그 결과 공석이 된 티켓이 한국의 차지가 된 것입니다.

그 뒤로 박종환 감독이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벌인 고된 훈련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경기가 주로 멕시코의 고원지대에 열린다는 점을 감안, 저산소 상태에서도 뛸 수 있도록 마스크를 착용한 채 훈련을 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당시의 선수단입니다.

감독 박종환, 코치 원흥재
이문영 김풍주(GK) 김판근 문원근 유병옥 장정 이승희 최익환(FB) 김흥권 노인우 김종건 최용길(HB) 이현철 강재순 이태형 이기근 김종부 신연호(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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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다들 1983년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셔야 할 겁니다. 당시의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도, 월드컵 4강에 이른 적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1954년 이후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이보다 3년 뒤인 1986년의 일입니다. 월드컵 예선은 번번이 호주의 벽에 막혀 탈락했고, 한국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치의 성적이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안컵 정도였던 시절(물론 지금이라고 이 목표들이 쉬운 건 아니지만)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해 6월, 마침내 한국 팀은 멕시코로 날아갑니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에겐 갔는지 안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대2로 패했다는 기사를 보고 청소년대회가 시작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판부터 졌다는 소식에 뭐 이번에도 별건 없겠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런데 둘째 판, 한국은 신연호와 노인우의 골로 멕시코에 2대1 승리를 거둡니다. 이어 스코틀랜드가 호주에 패하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줍니다. 결국 한국은 A조 예선 최종전에서도 김종건과 김종부의 골로 호주에 2대1 승리를 따내며 스코틀랜드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오릅니다. 이때는 대회 참가국이 16개국이었으므로 예선 통과하면 8강이었죠.




마침내 6월11일 4강 진출을 앞둔 우루과이와의 대전이 펼쳐집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6월12일 일요일이었습니다. 현지시간 오후 5시 경기였으므로 한국에서는 아침 8시부터 중계가 시작됐죠. 익히 알려진대로 박종환 감독의 당시 대표팀은 뛰고 또 뛰는 숏패스의 축구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의 골로 앞서가지만 후반 26분 마르티네스에게 동점골을 내줘 1:1.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연장 14분 신연호가 대망의 결승골을 터뜨립니다.

온갖 신문은 한국의 4강 진출 소식으로 도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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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에게 낯익은 이 소식. 바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이 처음 만들어 진 것이 이 때라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당시 외신이 "한국의 붉은 악마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선전에 대한 기사를 타전하면서 생겨난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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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등교를 했을 때 다른 화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건 학교 뿐이지만 아마 회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온 세상이 축구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물론 온 국민이 거리로 달려나간 2002년만은 못했지만, 대략 WBC 급의 화제는 됐던 것 같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6일 오전 준결승 상대는 브라질. 2년 전 0대3으로 패한 기억도 있고, 누가 뭐래도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한국이 세계청소년대회 4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싸운다는데, 온 국민의 관심은 불타올랐습니다.

그 주 내내 문교부에서 학생들이 중계방송을 볼 수 있도록 임시 휴교령을 내릴 거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아마도 학생들의 희망사항), 대신 전날인 15일, "학교로 TV를 가져오겠다"는 열혈남아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저희 반은 담임선생님의 "헛소리 하지 마랏!"에 시청의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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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도 무시할 수 없었던 대사건인터라, 16일 오전 8시부터 학교 방송 스피커로 중계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 그때까지 11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방송으로 스포츠 중계를 틀어준다는 건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었죠. (인터뷰를 보니 홍명보 감독은 중3때 버스로 등교하다가 라디오로 중계를 들었다던데, 아마 축구부라서 늦게 등교했던 모양입니다.^^)

찍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전교생이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14분. 김종부의 선제골이 터지자 대한독립만세를 방불케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어느 반에선가 유리 깨지는 소리까지 났습니다. 하지만 22분, 브라질의 동점골 때도 그 못잖은 비명이 터져나왔죠.

결국 팽팽하던 경기는 경기 종료 9분 전, 브라질의 결승골로 끝났습니다.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습니다. 교실에 들어와 있던 선생님도 "자, 이제 수업 하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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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브라질 대표팀 멤버들을 보면 - 그땐 전혀 알지 못했지만 -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팀을 상대로 싸웠는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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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더에 17번 올리베이라와 16번 둔가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모두 축구선수 이름으로는 꽤 흔한 편이지만, 이중 둔가는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인 그 둥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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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올리베이라, 그때는 성으로 표기하는 국내 원칙 때문에 이렇게 보도됐지만 그 뒤로 이 선수는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해집니다. 바로 베베토라는 이름이죠. 90년대 초, 호마리우와 함께 브라질 A대표팀의 투톱으로 활약하던 그 베베토입니다.

둥가와 베베토는 1994년 월드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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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다 실바는 나중에 88올림픽 브라질 대표팀(은메달) 멤버로군요. 83년 당시 최다득점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이 선수는 브라질 A대표팀에 드는데에는 실패합니다.

관심을 끄는 건 감독의 이름. 당시 보도로는 '페레이라'라는 이름의 감독이 지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브라질에 페레이라, 혹은 파헤이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입니다. 축구 선수중에도 한둘이 아니죠.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카를로스 알베르투 파헤이라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명장 파헤이라는 이미 82년에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니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혹시 맞다면... 후덜덜이죠. 아무튼 당시 브라질 감독은 경기 후 호텔에 가서 "지금도 다리가 떨린다"고 한국과의 격전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그렇게 브라질에게 치열한 접전 끝에 패하고, 3-4위 전에서 한국은 주전 스트라이커 신연호가 빠진 가운데 폴란드에게 패해 4위에 그칩니다. 맥이 좀 풀린 탓도 있었겠죠. 한국을 이긴 브라질은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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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90분 내내 안 보여도 골 넣을 때 보면 그 앞에 있다'는 신비로운 스트라이커로 온 국민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신연호 감독. 올해는 김민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디 이번 홍명보호는 1983년의 전설을 넘어 2009년, 우승까지 가 보는 새로운 전설의 주역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상의 마무리는 추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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