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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법무법인 결혼 발표'가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이영애가 언제 누구와 결혼한다'는 떠들썩한 화제가 나오고, 그 결혼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결혼식 당일에는 으리으리한 결혼식장과 톱스타들로 만발한 하객이 오고... 뭐 이런 모습이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톱스타의 결혼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기의 결혼식'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법무법인에서 날아온 '보도자료 한 장'은 좀 실망스러웠던 듯 합니다. 물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하는지는 당사자의 자유이지만, 이번엔 유독 서운함을 표시하는 팬들이 많은 듯 합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요즘 웬만한 연예인, 특히 톱스타의 결혼식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치러집니다. 외국 매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아무개의 결혼식 사진 독점 공개'는 이제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스타들의 결혼식은 언제부터 보안 대상이 되었을까요. 시대순으로 되새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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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 스타들의 결혼식장 내부가 취재 금지 영역이 된 최초의 경우는 1998년 황신혜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스타의 결혼식을 취재 대상으로 하는 매체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현장에 나온 사진기자들끼리도 대부분 안면이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낯뜨거운 취재 경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대략 현장에서 포토라인을 준수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결혼식 당일, 처음 보는 보디가드들이 등장했고 취재용 카메라(누가 봐도 금방 티가 납니다)를 가진 하객은 결혼식장 로비에서 제지당했습니다. 이전까지 없던 일이라 승강이가 오갔지만, 결국 황신혜 측이 "결혼식장 내부 사진은 나중에 배포하겠다"고 얘기하는 걸로 합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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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분위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식장 내에 너무 많은 취재 카메라가 있는 것은 좀 문제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폐해가 극에 달했던 것이 2000년 조성민-최진실 부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결혼식인 만큼, 온갖 매체란 매체는 총출동했던 결혼식이었죠.

하이야트 그랜드 볼룸이라는 드넓은 결혼식장에도 불구하고 식장 안에는 앉은 하객보다 서 있는 사진기자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취재 인력이 넘쳐났습니다. 결혼식은 패션쇼장을 연상시키는 T자형의 무대 위에서 진행됐고, 신랑 신부가 T자형 무대 위에서 객석 쪽으로 행진할 때에는 사진기자들이 일제히 무대 쪽으로 달라붙어 행진이 방해될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조차도 '최소한 식이 열리는 식장 안에는 취재 카메라를 막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눌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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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시까지는 식장 내 취재 불가 방침을 내린 결혼식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2001년 가수 임재범의 결혼식은 꽤 화제를 낳았습니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결혼한 임재범은 식이 열리는 동안 사진기자는 물론 취재기자도 들어 올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래도 취재 기자들은 어떻게든 삼엄한 경비를 뚫고(?) 식장 안에까지 들어갔지만 내부 사진은 제대로 찍힌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박박머리로 삭발을 한 신랑 임재범의 모습은 그리 널리 보도되지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훨씬 나중 여성동아 인터뷰때 나온 사진입니다. 화질로 보아 임재범 측이 제공한 사진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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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차츰 식장 내 비공개는 연예계의 원칙이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스타들은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는게 팬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선에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연예인 결혼식장에서는 식이 열리기 한시간 정도 전에 약식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보통입니다. 신랑-신부 양측이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고, 부부 중 한쪽이 연예인이 아닌 경우는 한쪽만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튼 대부분 취재진에게 식장 내 취재를 불허하는 대신 '결혼식용 사진'을 촬영하고 간단히 당일 소감을 말하는 자리를 갖는게 일반화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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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정도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는 스타들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톱스타들일수록 그랬죠. 2007년 전도연의 결혼식을 시작으로 심은하, 김희선의 결혼식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식장은 물론, 식장 건물 전체가 취재진 출입금지 구역이 됐고 결혼식 광경은 절대 보안의 대상이 됐습니다. 대부분 '점잖은 집안과 결혼을 하기 때문에 소란을 피울 수 없다'는 이유들이었죠.

이들은 어쨌든 결혼식 시간과 장소는 미리 알렸고 전도연은 끝까지 결혼식 장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심은하는 결혼식장을 현장 중계했고 김희선은 사후에 남편과 함께 찍은 결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2007년 결혼한 전재용-박상아 커플은 아예 결혼식 사실을 감췄고, 결혼식 다음날에서야 그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죠.

아무튼 이때부터 취재진은 술래잡기를 벌였습니다. 결혼식장은 호텔 객실에 방을 잡고 15층 높이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하객 가운데 일부와 사전 교감을 해 사진을 제공받기도 하고,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의 강 건너편에 있는 고층 건물에서 촬영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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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즘도 수많은 스타들은 결혼식 직전 '사전공개' 순서를 갖습니다. 권상우-손태영 부부도 인터뷰는 따로 하지 않았지만 결혼식 직전 취재진에게(엄밀히 말하면 취재진이 찍은 사진을 볼 팬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강호동과 유재석도 신부들은 감춰 뒀지만 신랑들이 식장에서 미리 포즈를 취했죠.

아무튼 전도연의 결혼식이 원천 비공개 결혼식의 시작이 됐듯, 이번 이영애의 결혼식은 스타들의 해외 결혼식을 유행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지만, 결혼식을 가문의 잔치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오랜 습관에 비쳐 볼 때 이런 결혼식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될 듯 합니다.

해외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양가 주요 친척들이 해외에 거주하거나, 아니면 양가 모두 널리 친척들이 결혼식에 참가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만 가능할 듯 싶습니다. 대단한 스타가 대단한 명문가와 결혼을 하는 경우, 결혼식을 멀리 해외에서 치러 참가하지 못한 가족들의 원망도 대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결혼식은 아직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성격이 강한 만큼, 비록 힘들게 취재 봉쇄를 하더라도 어쨌든 결혼식은 양가 친지들이 두루두루 참여한 가운데 정상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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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은 '어떻게' 보다는 '왜'일 것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연예인에게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영애 스스로 '내 사생활은 스타로서의 의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팬들은 자신의 결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남들이 동의하건 말건, 어쨌든 본인이 그렇게 선택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신비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겨온 이영애는 정말 온갖 매체를 따돌리고 은밀한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은 4년 전부터 돌았고, 지난 1월부터는 '결혼이 임박했다'는 결정적인 제보에 따라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결혼식 5일 전 남편 정씨를 만나는 데 그쳤습니다. 당시 정씨는 "결혼식은 특종을 줄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런 약속은 참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정씨 인터뷰 기사 참조: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212975)

할리우드 스타들은 조용하고 은밀한 결혼을 위해 진입로가 없는 고성을 빌려 결혼하기도 하고, 카리브해의 외딴 섬에서 치르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시골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홍보담당자를 통해 간략하게 결혼 사실만 알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찬성하지 않지만 어쨌든 본인들의 선택입니다.

아무튼 이런 결혼식을 취재하기 위해 해외 취재진들은 스쿠버 다이버를 동원하기도 하고,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하면서 철통같은 보안을 돌파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스타의 결혼식 장면을 보여주려는 기자들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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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Stefania Fernandez)2009년 미스 유니버스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에게 왕관을 건네 준 지난해 수상자도 베네주엘라 출신이었습니다. 이름은 데야나 멘도사(Dayana Mendoza). 2007년 미스 베네주엘라 출신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미녀의 나라'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우스개로 '베네주엘라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와 미녀'라고 할 정도라는군요. 베네수엘라 미녀들이 미스 유니버스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6번째라고 합니다. 1979, 1981, 1986, 1996, 2008년에도 미스 베네수엘라가 미스 유니버스 왕관을 썼죠.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미인대회에 강한 것일까요? 남미의 다른 나라들과 인종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문화가 다른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좋은 성적을 연거푸 내고 있을까요? 우연히 그런 걸까요? 그런데 조금 알아보니 우연은 아니더군요. 비밀은 바로 '미인대회 사관학교'의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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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스 유니버스에서 베네수엘라가 역대 최다 수상국은 아닙니다. 미스 USA가 지금까지 7번 미스 유니버스가 됐다는군요. 하지만 영어 사용이나 스폰서 기업들이 절대적으로 미국 아가씨들을 선호했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베네수엘라의 위력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의 수상 성적만 놓고 보면 베네수엘라에 필적할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은 50, 60년대에 4번이나 왕관을 가져갔더군요. 한마디로 지금의 베네수엘라 미녀들은 월드컵의 브라질이나 세계육상대회에서의 자메이카가 보여주는 위력에 비해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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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내 대회에 나갔을 때의 스테파냐 페르난데스.) 물론 7명은 미스 유니버스만 센 겁니다. 미스 월드나 미스 영 인터내셔널 같은 다른 대회들을 합치면 세계 최고 미녀의 자리에 올랐던 베네주엘라 미녀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강한 것일까요. 이걸 조사하다 보니 오스멜 수자(Osmel Sousa)라는 사람의 이름을 만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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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자씨는 말하자면 세계 최고의 미녀 조련사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수많은 베네수엘라 미녀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는군요.

영국 타임즈가 지난해 데야나 멘도사의 수상 때 이런 특집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베네수엘라가 여섯번째 미스 유니버스 패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작은 제목은... '오스멜 수자가 또 해냈다' 정도더군요.

긴 기사라서 의미 있어 보이는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기사 끝까지 나오는 사진은 모두 2008 미스 유니버스 데야나 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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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선발과정이 시작된다. 17세에서 25세까지의 여성 수천명이 참여한다. 500명이 선발돼 주 대회에 나가고, 각 지역에서 선발된 60명이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미스 베네수엘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두달간의 혹독한 훈련에 들어간다. 7월이면 주최측은 최종 후보 28명을 뽑는다. 대회장인 수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은 없다. 우리는 소녀들을 '미의 여왕이 되라'는 철학에 따라 무장시키는 학교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의 목표는 "그들을 완벽하게 만들자"다.

Each year, the selection process begins in March when thousands of women between the ages of 17 and 25 apply to take part; 500 are picked to enter their state beauty competitions. The 60 regional winners are then taken to the Miss Venezuela school in Caracas for two months of intensive training before a casting in July when Sousa and his team select the final 28 who will compete before judges for the Miss Venezuela crown. “In other countries there is no organisation like there is here,” says Sousa. “We have our school where the girls are prepared for this philosophy: to be beauty queens.” The aim, he explains, is “to make them perfect”.

학교는 카라카스 북부 아비야 산 기슭에 있는 거대한 핑크색 건물이다. 미스 베네수엘라 대회의 스폰서이며 중계사인 베네비전 방송사와는 한 블록 거리다. 카라카스 밖에서 온 학생들은 기숙사로 배치돼 오전 8시부터 시작해 오후 10시에 끝나는 고된 나날에 들어간다.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행운을 누리는 극소수는 1년 내내 이 학교에 머물기도 한다.

The school is a large pink building at the foot of the Avila mountain in northern Caracas, a block from the Venevision studios - the channel that funds and broadcasts Miss Venezuela. Students from outside the capital are put up in nearby rooms and subjected to gruelling days, often starting at 8am and finishing at 10pm. The lucky few who go on to compete at an international level stay at the school for a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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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 이상의 교사들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법, 음성과 동작, 사진 포즈 취하기, 에티켓, 인터뷰 테크닉 등을 가르친다. 화장법도 물론 포함된다. 짙은 파운데이션으로도 가려지지 않느 결함은 다른 방법으로 교정된다. 베네수엘라의 성형수술은 영국에 비해 싸다. 가슴 성형도 1300파운드(약 260만원?)면 된다. 살아있는 바비인형에 도전하는 10대 소녀들 사이에선 결코 드문 수술이 아니다.

An army of more than nine teachers give classes on how to walk in high heels, voice and movement, posing for photographs, etiquette, and the vital interview techniques. The contestants are also taught to apply their make-up - and what can't be hidden by foundation can be rectified in other ways. Plastic surgery in Venezuela is relatively affordable compared with the UK, and breast implants - which can cost as little as £1,300 - are not uncommon among teenage girls desperate to emulate these living Barbies.

수자에게는 완벽한 도전자를 만들기 위해 몇몇 과격한 방법도 용인된다. 예를 들면 지방 흡입이다. "만약 어떤 여성이 체육관에 가기를 게을리해 허리 라인을 다듬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그걸 한방에 빼버리는게 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 성형이나 종아리 가늘게 하기 역시 흔한 일이다. 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건 "사소한 디테일 수정"일 뿐이다.

Such measures must be taken to create the perfect contestant, admits Sousa, who prefers radical procedures such as liposuction as the simplest way to deal with a contestant's “excess” weight. “If a girl is lazy in going to the gym and has to work on her waistline, I think it's much easier to get it all out in one go,” he says. Nose jobs and “thigh trimmings” are also frequent over the duration of the course, but Sousa's view is that they are “correcting little det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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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씨와 포즈를 취한 데야나 멘도사. 그런데 이 멘도사양은 지난해 당신 이후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를 방문했다가 "그곳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했다. 거기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어쩌고 하는 무뇌 발언을 해서 미녀에 대한 선입견 하나를 더욱 굳히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무튼 기사에서 보듯, 세계 제패는 공짜로 이뤄진 게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좋은 조건에서 선수촌을 통한 집중적인 엘리트 미녀(?) 육성까지 한 결과였습니다.

마지막은 역대 미스 유니버스 수상자 명단입니다. 인도가 혹시나 베네수엘라의 경쟁국이 아닐까 했는데 라라 두타 외에는 그리 눈에 띄는 수상자가 없군요.

왕년의 베네수엘라 선배들도 살짝 곁들입니다.


2009: Stefania Fernandez, Venezuela
2008: Dayana Mendoza, Venezuela
2007: Riyo Mori; Japan
2006: Zuleyka Rivera, Puerto Rico
2005: Natalie Glebova, Canada
2004: Jennifer Hawkins, Australia
2003: Amelia Vega, Dominican Republic
2002: Oxana Fedrova, Russia (dethroned), replaced by Justine Pasek, Panama
2001: Denise Quinones, Puerto Rico
2000: Lara Dutta, India
1999: Mpule Kwelagobe, Botswana
1998: Wendy Fitzwilliams, Trinidad and Tobago
1997: Brook Lee, USA
1996: Alicia Machado,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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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Chelsi Smith, USA
1994: Sushmita Sen, India
1993: Dayanarra Torres, Puerto Rico
1992: Michelle McLean, Namibia
1991: Lupita Jones, Mexico
1990: Mona Grudt, Norway
1989: Angela Visser, Holland
1988: Porntip Nahirunkanok, Thailand
1987: Cecilia Bolocco, Chile
1986: Barbara Palacios Teyde,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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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Deborah Carthy Deu, Puerto Rico
1984: Yvonne Ryding, Sweden
1983: Lorraine Downes, New Zealand
1982: Karen baldwin, Canada
1981: Irene Saez, Venezuela
1980: Shawn Weatherly, USA
1979: Maritza Sayalero,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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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Margaret Gardiner, South Africa
1977: Janella Commisiong, Trinidad & Tobago
1976: Rina Messinger, Israel
1975: Anne Marie Pohtamo, Finland
1974: Amparo Munoz, Spain
1973: Maria Margarita Moran, Philippines
1972: Kerry Anne Wells, Australia
1971: Georgina Rizk, Lebanon
1970: Marisol Malaret, Puerto Rico
1969: Gloria Diaz, Philippines
1968: Martha Vasconcellos, Brazil
1967: Sylvia Hitchcock, USA
1966: Margareta Arvidsson, Sweden
1965: Apasra Hongsakula, Thailand
1964: Corinna Tsopei, Greece
1963 Ieda Maria Vargas, Brazil
1962 Norma Nolan, Argentina
1961 Marlene Schmidt, Germany
1960 Linda Bement, USA
1959 Akiko Kojima, Japan
1958 Luz Marina Zuluaga, Colombia
1957 Gladys Zender, Peru
1956 Carol Morris, USA
1955 Hillevi Rombin, Sweden
1954 Miriam Stevenson, USA
1953 Christiane Martel, France
1952 Armi Kuusela, Finland


그러고 보니 미스 재팬도 둘이나 보이는군요.

마지막 사진에 대해선 노코멘트입니다. ...제게 돌을 던지실 분들은 던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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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가 쓴 책을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합니다. '미수다'에서 베라의 캐릭터는 '뭘 말해도 웃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잡혀 있죠. 같은 독일 사람인 미르야가 다소 딱딱하면서도 분명한,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 사람' 이미지인 반면 베라는 부드럽고 밝은 이미지라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그 '스마일 베라'가 독일에서 출간한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Schlaflos in Seoul)'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부분 번역에서 인터넷에 올린 몇몇 사람들에 따르면 '작정하고 한국을 까려고' 마음먹은 듯한 내용이라는군요.

원문을 보지도 못했고, 본다 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서 책의 내용이 한국을 비하했는지 아닌지 뭐라 말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수많은 매체들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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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의 내용에서 사람들이 흠을 잡는 부분은 * 한국인을 쥐에 비교했다 * 한국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다 * 한국여자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다리를 가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 등등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쥐에 비교했다는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한국의 지하철을 출퇴근시간에 타면 서로 밀고 밀치는 환경이 끔찍하다. 지하철을 탈 때는 파리에 있던 시절을 연상시켰다. 서울이나 파리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남들을 앞질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나는 내 누이가 키우던 쥐들을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쥐들이 있을 경우, 쥐들은 서로를 물어뜯어서 우리는 그 쥐들을 떼어놔야 했다."

최초의 번역자와는 다른 사람인 블로거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구체적인 번역 내용은 이 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underba/50069746349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부분이 '한국인을 쥐에 비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쥐라는 동물을 유쾌하게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만큼 출퇴근 시간의 만원 전철에 오르는 것 역시 불유쾌한 일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여기서 쥐라는 것은 그 불쾌감의 상징일 뿐, 이를 '한국인=쥐'라는 비교로 보는 것은 지나친 자학 증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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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누군가 '63빌딩에 올라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고 썼다고 칩시다. 이걸 '그 아무개가 한국인들을 벌레에 비유했다'고 주장하는게 그리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 좀 거칠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단 '스마일 베라'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뭐든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던 스마일 베라와는 달리 이 책을 집필한 베라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한국어 교육원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계속 아내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 가면서 노래방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이런 한국 남자의 태도가 그리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연 이런 비판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한국인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외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다소 희화화된 글을 쓰는 경우는 지금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처럼 지독하게 악의적이고 왜곡된 글을 쓰는 한국인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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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에나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소개된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경우는 그 뒤통수 때리기의 정도가 정말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름 한 글자를 바꾼 필명까지 사용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털털한 웃음과 전혀 다른 면모를 과시한 미즈노 씨는 다시 한국에 발 붙일 자리가 없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베라의 경우를 미즈노 슌페이 교수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꽤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베라는 학자도, 한국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인상을 그대로 서술한 일반인일 뿐입니다.

(아울러 아직도 한국을 미개국 보듯 하는 일부 선진국 매체들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분개하거나 항의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인'들에 비해 '언론 매체'들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비판할 의무가 훨씬 무겁기 때문입니다. 즉 미즈노 슌페이 같은 '학자'들이나 구로다 가쓰히로같은 '기자'들의 발언이나 논설은 주목할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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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미수다'에서 요즘 모습을 볼 수 없는 캐서린의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서린의 실종이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수다'가 한국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미수다' 제작진으로부터 퇴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미수다', '작가가 써 준대로 방송하는 미수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베라 사건에서 볼 때 결국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누구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바로 한국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미수다'가 아니라 '한국 여론'이, '네티즌'이었던 겁니다. 베라의 잘못이라면, 한국인들이 이렇게 속좁은 사람들인 줄 모르고 섣부르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다는 점일 겁니다. 아직 한국인들을 잘 몰랐던 것이죠.

('미수다'에서는 좋은 말만 하던 베라가 한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데 배신감을 느끼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 사건의 반응들을 보면, 왜 '미수다'가 한국 찬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만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 부드러운 말투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모두 칭찬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칭찬에만 반색을 하고 사소한 비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면 과연 누군들 그 사람에 대해 '뒷다마'를 까지 않게 될까요.

누구든 남들의 행동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아, 이런 것은 이래서 다르구나'라고 이해한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겠지만, 그냥 본 대로 받아들이고 '이런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일일히 '망언' 이라고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체나 기자들도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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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든 생각은 - 누구라도 비슷했겠지만 - 정말 한 시대가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과 비교하자면 결례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이끌고 가던 인물의 사망 소식이라는 건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위업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정리가 있었을 겁니다. 여기선 생략하고, 이 분의 죽음에 임해 '화해'를 표방하고 나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DJ에 대해 "정신이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게 아니다"라는 말로 원색적인 비판을 했던 YS입니다. 그런 그가 DJ의 병문안을 가 "화해라고 봐도 좋다"고 말하고, 추모의 코멘트를 하는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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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이벌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와 로마의 1인자 자리를 다툰 최강의 라이벌은 폼페이우스였다. 3두 정치의 두 축을 이뤘던 두 사람은 결국 내전으로 정면 대결에 들어갔다. 패주하던 폼페이우스를 뒤쫓아 이집트까지 간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담한 자들을 모두 처단해버린다. 이를테면 라이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역사를 장식한 라이벌들은 상대로 인한 위협이 사라진 순간, 때로 일생을 사귄 친구처럼 유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재위 초기 사촌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때문에 줄곧 왕위를 위협당했다. 엘리자베스가 결국 메리를 사형에 처하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이를 빌미로 무적함대를 동원해 영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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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굳이 메리의 아들 제임스(뒷날의 제임스 1세)를 지목했다. 메리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도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물론 모든 라이벌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 전국시대 방연(龐涓)은 최고의 전략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빈(孫臏)의 다리를 잘랐고, 복수에 나선 손빈에게 패한 방연은 최후까지 “이렇게 해서 어린 놈이 명성을 얻는구나(終於成就了這小子的名聲)”라고 분개하며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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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에게도 마지막 화해란 없었다. 1881년 4월 디즈레일리가 사경을 헤맬 때 글래드스턴은 문병 한번 가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권유에도 글래드스턴은 “가 봐야 할 말도 없다”며 거절했다. 디즈레일리가 국장을 사양하고 개인 장례식을 택한 데 대해서도 글래드스턴은 “겸손해 보이려고 쇼를 하는 것”이라고 빈정댔다.

디즈레일리가 죽은 다음달, 글래드스턴은 의회에서 송덕문을 낭독하게 돼 있었다. 마지 못해 짧은 송덕문을 읽은 글래드스턴은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라고 불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비하면 대한민국 1인자의 자리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생을 경쟁한 YS와 DJ의 마지막 화해 분위기는 훨씬 훈훈한 풍경이다. 물론 이들의 진정한 협력이 20년, 30년 전에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지만, 구태여 이를 따지기에도 퍽 긴 세월이 흘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9단들의 시대'가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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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그당의 글래드스턴과 토리당의 디즈레일리는 평소에도 디즈레일리가 재난과 불행의 차이에 대해 "글래드스턴씨가 강물에 빠진다면 그건 불행이지만 누군가 그를 건져 준다면 그것은 재난"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지독한 앙숙이었습니다.

물론 빅토리아시대의 총리로서 두 사람은 누가 더 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이 시기의 영국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총리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영어를 세계 공용어의 자리에 올려 놓는 데 초석을 제공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인물들도 상대방이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도 용서나 화해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참 의외의 일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한국식의 사고방식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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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DJ와 YS의 화해(...뭐 좀 일방적이긴 합니다만)를 보고 있으면 1987년을 정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두 사람의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특히 1987년의 단일화 실패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인 터라 더욱 쉽지 않았을 거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을 포함해 몇몇 사람을 가리켜 흔히 '정치 9단'이라고 부릅니다. 예측불허의 한국 정계에서 50여년간 정상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만 봐도 이런 호칭에 의아해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9단'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한국 정치사의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단의 시대란 마주보는 9단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9단의 한수'는 그 의미를 짐작하고 대응하는 다른 9단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서거를 진정으로 아쉬워 할 사람은 YS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닐 듯 합니다.

이런 9단들의 시대가 갔다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아니면 퇴보일까요. 그건 세월이 알려줄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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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의 천만 관객 동원이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다섯번째의 위업이고, 과연 어디까지 더 갈지가 궁금합니다.

사람 힘만으론 안되고 하늘이 도와야 가능하다는 천만 관객 동원,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윤제균 감독의 힘, 설경구와 하지원, 그리고 이대호(^^)의 열연, 김인권과 이민기의 탁월한 재능 발휘, 해운대라는 친숙한 환경이 사라진 폐혀의 모습, 등등은 이미 수없이 거론됐던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해운대'라는 영화 바깥에서 천만 관객 동원을 지원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 세력들입니다. 과연 누가 '해운대'를 외부에서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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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발 금융위기

참 멀리 간 얘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대체 금융위기가 영화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아실수 있을 겁니다.

1991년 '터미네이터2'가 최초로 제작비 1억달러 선을 돌파한 이후 거의 20년, 이제 여름 시즌을 겨냥한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예산은 평균 1억달러를 넘긴 지 오래입니다. 1억5천-2억달러 선의 영화도 한 시즌에 두세편씩 개봉되는게 보통이죠. 한국 돈으로 는 2000억원에서 5000억원까지의 돈이 왔다 갔다 합니다.

아무리 할리우드라지만 이런 돈을 쌓아놓고 장사하는 영화사는 없습니다. 대개 영화 제작 단계에서 제작비 투자를 받죠.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월 스트리트를 싹 쓸어버린 금융위기는 블럭버스터 투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여름, 할리우드의 이렇다 할 블럭버스터가 최소한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해와의 차이는 다음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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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랜스포머 2

2억 달러가 들어간 대작 '트랜스포머 2'는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약 4억달러 가까운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지난 6월24일 국내에서 개봉한 뒤에도 740만 관객을 쓸어모았죠. 전 세계적으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전망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해운대'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걸까요? 위 항목과 연계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될 영화에 투자가 끊기는 법은 없습니다. 금융위기일수록 확실한 곳에 투자가 몰리는 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올해, 2년만에 마이클 베이가 감독하는 '트랜스포머'의 속편이 나온다는 사실은 다른 영화에 대한 투자가 쑥 들어가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대자본 영화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바로 1년 전 여름 시즌 할리우드의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월E'와 '쿵푸팬더' 등 애니메이션 대작을 비롯해 '다크나이트' '핸콕' '원티드' '아이언맨' '헬보이2' '마마미아' '미이라3' '인크레더블 헐크',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 4'가 줄줄이 개봉했습니다. 5월 말 이후 개봉 일정에서 대혼전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의 한국 영화들인 '님은 먼곳에' '놈놈놈' '눈눈이이' 등은 이런 대작들과 힘겨운 정면승부를 펼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상대적으로 헐렁했습니다. '트랜스포머 2'와 앞서 개봉한 '터미네이터4',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와 '지.아이.조' 정도를 빼면 이렇다할 대작이 보이질 않습니다. 일찌감치 개봉한 '천사와 악마'를 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국 국내 흥행을 살펴봐도 대작들이 사라진 결과 한 여름의 황금 시즌에 '행오버(Hangover)'같은 3500만달러짜리 소품(^^)이 2주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억6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더군요. 이런 영화들은 국내 개봉 일정도 불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와 '트랜스포머 2'의 합작으로 '해운대'는 할리우드의 대작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여름을 맞았습니다. '트랜스포머 2'는 경쟁작들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이 '해운대'의 천만 관객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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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리 포터

그 몇 안되는 블럭버스터 가운데 '해운대'의 가장 강력한 위협으로 꼽힌 것이 바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 '해운대' 쪽은 쾌재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반응이 완전히 썰렁했기 때문이죠. 물론 해외에서의 해리 포터는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시리즈 6편인 이런 작품도 세계적으로는 4억달러 이상의 돈을 걷어들이며 순항중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봉 초기 악평이 쏟아진 가운데 전편들에 비교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음울하고, 특별히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소설에서도 6부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맹점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골수 팬들 외에는 대부분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운대'는 '트랜스포머 2'를 피하고 '해리포터'가 예상보다 약했던 덕분에 견제 세력이 사라진 고삐 풀린 말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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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스 울릭

'해운대'가 개봉을 앞둔 올 상반기, 홍보의 초점은 한스 울릭이라는 시각효과 전문가였습니다. 뉴욕이 빙하기를 맞는 영화 '투모로우', 거슬러 올라가면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가했던 CG의 대가죠. 특히 '퍼펙트 스톰'에서는 대양을 휩쓰는 해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스 울릭과의 협업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영화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입을 빌어 "할리우드에 비싼 돈 내고 갔는데 정작 배울게 없더라. 괜히 돈만 날린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결정타가 된 것이 일찍 공개된 예고편이었습니다. 해운대를 휩쓰는 엄청난 해일이 강조된 예고편을 본 순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과장하면 '해운대 망했다'는 소문이 쓰나미처럼 번져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제작진이 전면 재편집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사실 CG는 아무리 좋아도 영화의 성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건 세계적인 거장들도 여러 차례 경험한 교훈입니다. 한스 울릭이 만들어 낸 '해운대'의 비주얼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물론 아주 나빴다면 그건 치명타였겠죠).

어쨌든 울릭은 '해운대'가 영화의 방향을 CG와 쓰나미 자체가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드라마에 맞추게 하는 데 큰 영향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중심이 되면서 비로서 '해운대'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뜻하지 않은 기여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긴, 이렇게 쓰고 보니 네가지 요인 중 의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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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네 팀(?)의 외부 조력자들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조건이 갖춰진다고 그냥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제균 감독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천만 관객이란 꿈에 불과했을 겁니다.

아무튼 최고의 공헌자는 당연히 윤 감독과 직접 영화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네 팀의 조력자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영향의 크기라는 건 그냥 웃고 넘어가셔도 될 겁니다. 혹시라도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데 여건이 좋았다"는 얘기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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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아가씨를 부탁해'가 화제 만발입니다. 윤은혜를 둘러싼 미스캐스팅 논란에서부터(...별로 미스캐스팅같지 않은데), 연출이 닭살이라든지(...뭐 이런 드라마가 그렇지), 연기가 발연기라든지(....사실 이런 드라마 보면서 연기력 따지는 것도 좀) 예상할 수 있던 모든 얘기들이 다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꽃보다 남자'의 성공에 용기백배한 KBS 드라마국의 기획 드라마 2탄이라는 점이 분명하고(물론 외부 기획 중에서 선택한 것이죠), 그런 만큼 이 드라마의 한계와 표적 또한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좀 심한 것이, 장면 장면마다 죄 너무나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이 흘러 넘치더군요.

물론 공감하시는 분도, 안 그런 분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제가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면서 느낀 기시감(데자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긴 '일본 드라마 짜깁기'는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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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편 설명을 곁들이지면, 한국의 패리스 힐튼인 강혜나(윤은혜)는 강만호 회장(이정길)의 사실상 유일한 후계자(물론 강회장의 후처-아들-딸로 이어지는 경쟁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로 온 아시아를 뒤흔드는 핫 셀러브리티입니다.

그 반대쪽에는 전직 제비족이지만 손을 씻고 여의주(문채원)네 꽃집에 얹혀 살고 있는 서동찬(윤상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을 씻은 대가는 사채업자들의 집요한 빚 독촉이죠. 그러던 동찬이 꽃배달을 가다가 혜나의 '싸가지 없는 운전 매너' 때문에 얽혀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강회장이 동찬에게 혜나의 '사람 만들기'를 목적으로 동찬을 혜나의 전속 집사로 고용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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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지막 시퀀스가 좀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드라마를 봐도 당연히 이해가 안 갑니다), 어쨌든 드라마가 원래 저렇게 되게 되어 있었으니 그냥 갈 길을 가는 겁니다. 거기에 토를 달아 봐야 별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너무 노골적으로 일본 드라마의 만화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도입부의 장중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남자 목소리의 나레이션은 수많은 일본 드라마에서 써먹은 테크닉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드라마는 당연히 '부호형사'입니다. '꽃보다 남자'에도 많은 영향을 줬던 이 드라마는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손녀딸인 후카다 교코가 형사가 되어 '이해하기 힘든 서민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가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하이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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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다 교코가 극중에서 살고 있는 저택입니다. 네버랜드는 여기 비하면 콘테이너 임시주택 수준이군요. 저 넓이에다 한쪽에는 독자적인 항구까지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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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은혜가 살고 있는 '골프장, 테니스장, 수영장이 갖춰진 40만평짜리 저택'을 보다 보니 '부호형사'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많은 분들이 떠올리실 '메이의 집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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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에서 방송되어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국내의 일드 마니아들이 '꽃보다 남자'의 금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는 작품입니다.

내용인 즉 귀족가문의 영양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기숙학교(물론 가상)가 있고, 이 학교에는 학생 한명마다 식사와 의전을 책임지는 집사가 하나씩 있다는 기본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이 학교에 어쩌다 너무나 평범하게 자란 메이라는 소녀가 다니게 되고, 그 어설픈 메이에게 어쩌다가 최고 중의 최고인 집사가 붙습니다. 당연히 메이와 집사 사이에는 뭔가 띠용띠용한 감정이 생기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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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사 역의 미즈시마 히로(당연히 가운데)는 차세대 기무라 다쿠야(물론 너무나 지겨운 호칭이기도 합니다)의 선두주자로 단연 부각되며 톱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차기작인 '미스터 브레인'에서는 기무라와 공연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이번엔 좀 바보 캐릭터더라 전작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겠더라는...)

아무튼 '메이의 집사'는 철저하게 '아가씨들의 판타지'에 입각한 드라마입니다. 공주 옷을 입고 하늘하늘 뛰어다니던 아가씨.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이때 준비돼 있던 미남 집사가 나직한 저음으로 "비를 맞으면 건강에 해로우십니다, 아가씨"하며 우산을 펼쳐 줍니다. 정 우산이 없으면 "전 비같은 거 맞아도 괜찮습니다. 아가씨만 멀쩡하시다면" 하면서 재킷을 벗어 씌워주겠죠. 혹시 길에서 깡패를 만난다, 당연히 "네 이놈들, 우리 아가씨에게 감히 손가락 하나라도 댈 셈이냐! 내 목숨을 걸고 지킬테다!"하며 눈에서 불이 뿜어 나옵니다.

...네. 제정신을 가진 남자 시청자들은 절대 참고 볼 수 없는 드라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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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가씨'와 '집사'라는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아가씨를 부탁해'와 '메이의 집사'의 관계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미즈시마 히로와 윤상현의 캐릭터 차이, 또 정일우라는 새로운 인물의 보강으로 스토리 라인은 절대 비슷하지 않을 구조를 갖췄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그냥 느끼할 정도로 달디 달게, 그냥 판타지의 세계로 달려가 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볼 사람들도 그 이상의 생각은 할 능력이 없거나, 할 능력이 있어도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만큼은 잠시 어디다 '생각'을 접어 두고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굳이 이 드라마에 '생각'을 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강만호 회장의 캐릭터나 굳이 '인권 변호사'라는 명함이 붙은 정일우의 캐릭터는 좀 우려를 낳게 합니다. 괜히 이 드라마를 가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물론 첫회에서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쓰였습니다만)를 얘기하거나 하는 건 오히려 참기름을 물에 녹이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걸작을 지향하지도 않고, 지향할 수도 없는 드라마입니다. 10만원짜리 떡볶이를 만들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저기까지 가는구나'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게 시청자들의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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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을 치우는 혜나의 모습을 보다 보니 바로 패리스 힐튼의 '심플 라이프'가 떠오릅니다. 사실 패리스 힐튼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냉혹한 사업가 기질이 돋보입니다. 힐튼가의 부를 축내는 천덕꾸러기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자신을 상품화해서 힐튼 가의 재산을 오히려 늘려 주고 있죠.

뭐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강만호 회장의 문제(건강? 피습?)로 그룹에 위기가 닥치고, 갑자기 경영의 천재로 돌변한 혜나양이 남자 주인공들의 도움으로 가문을 지키는 처녀 회장으로 돌변한다... 뭐 이런 진부한 진행만은 좀 피해 줬으면 합니다. 그건 '보자 보자 하니까...'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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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참, 이 만화와는 그냥 제목만 똑같을 뿐 내용은 거의 겹치는게 없다는군요. 제가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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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석 박신혜가 출연하기로 한 SBS TV의 차기 수목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뜻하지 않은 새 캐스팅 소식이 있었습니다. FT아일랜드의 이홍기가 이 작품에 합류한다는군요. 더군다나 장근석+이홍기+남자판 박신혜 등 네명이 아이들 그룹을 결성한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느낌은... '어떻게 구별하나'.

장근석은 알아도 이홍기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두 친구는 구별이 안 되게 닮았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몇살 더 먹은 장근석이 살짝 더 남자 티가 난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둘이 헤어스타일을 어지간히 다르게 하기 전에는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둘을 구별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지도 모르는데 과연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적인 캐스팅인지,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환상의 커플'의 홍자매가 집필하는 드라마라는데, 아무래도 이들 둘을 공연하게 할 때에는 뭔가 복안이 있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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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썰미가 아주 좋은 분들은 '난 암만 봐도 다르구만' 하실테지만... 제 눈에는 똑같습니다(참고로 왼쪽이 이홍기, 오른쪽이 장근석입니다). 신기한 건 연예인 A와 B가 닮았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경우에도 팬들은 "우리 오빠가 훨씬 잘생겼어욧!"하고 발끈한다는 겁니다. 지난번에 한국과 일본 연예인들 사이의 닮은 얼굴에 대한 포스팅을 했을 때에도 김현중과 야마삐가 닮았다는 말에 격분(?)하는 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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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류의 닮은꼴들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뭐 한예슬-하주희, 정려원-이요원 등등이 닮았다는 건 너무 오래된 얘기고,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셨을테니 조금 신선한 쪽으로 골라 봤습니다. 성형수술의 보편화 이후로 닮은 연예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있죠.

일단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티아라의 지연과 김태희. 그런데 사실은 여기는 비밀이 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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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연이 정면을 바라보면 김태희와 별로 닮지 않았다는 사실. 물론 어떤 분들은 정면 얼굴도 똑같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살다 보니 느끼는 건데, 닮았다고 느끼는 감각도 개인차가 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척 닮았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닮지 않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기태영과 이상우가 잘 구별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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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모범생 이미지 때문에 더 닮아 보입니다. 하긴 또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별로 안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군요.

기태영은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아들, 이상우는 '조강지처 클럽'에 오현경의 상대역인 구세주 역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어? 걔가 걔 아니었나?'하는 분이 꼭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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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진모 사진이 둘일까 생각하는 분도 있으려나요. 가운데 김범을 사이에 두고 있는 주진모와 이용우도 참 비슷한 이미지죠. 나이는 주진모가 위지만 혼동할 수도 있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서로 별로 닮지 않았는데도 구별이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 두 배우가 헷갈립니다. 사진을 붙여 놓고 보더라도 분명히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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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정태와 이종혁은 이상하게 제 머리 속에서 뒤섞여 있습니다. 아마 저만 그럴 겁니다. '친구'에서 김정태가 맡았던 도루코 이미지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종혁이 연기했던 못된 규율부장 역할이 교복과 함께 엇갈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둘도 최근까지 이름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둘 중 하나가 따로 있으면 '이 친구가 고명환 아니면 문천식인데... 대체 둘중 누굴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건 둘이 닮았다기 보다는 너무 오랫동안 붙어 활동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붙어 활동해도 서경석과 이윤석, 이수근과 김병만을 혼동하는 일은 없죠. 대체 왜 이 둘이 헷갈리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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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장 닮았으되 가장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라면 이 둘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90년대 중반, 이 두 사람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데뷔 시기도 거의 비슷했고, 누가 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연기력도 둘 다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나이는 이세창이 두살 위.

그 시기의 이세창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동건이가 꽃사슴 이미지라면 나는 들개 이미지"라고 했었죠. 뭐 그렇게 공감 가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둘 다 꽃사슴 이미지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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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과연 무엇이 그렇게 두 사람을 갈라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맨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장근석과 이홍기가 같이 나오는 드라마... 자칫 영화 '디파티드'를 볼 때 맷 데이먼과 마크 월버그를 구별하지 못해서 곤란을 겪었던 분들(생각보다 꽤 많더군요^^)의 고초가 재현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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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1박2일'이 다음주까지 글로벌 특집으로 진행됩니다. 미국, 영국, 루마니아, 코트디브와르(아이보리코스트), 일본, 인도에서 온 각국 젊은이들이 기존의 1박2일 멤버들과 각각 파트너가 되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이미 친구를 한명씩 데려와 보기도 했고, 일반인 한 부대씩을 이끌고 1박2일을 치러본 적이 있는 멤버들이라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리 어려울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1박2일 멤버들이야 원래 연예인이라 그렇겠지만, 새로 등장한 외국인 친구들의 끼는 못말릴 정도더군요.

이 대목에서 우리가 느낄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 나온 친구들은 '한국인의 좋은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객지인 외국에 와서도 잘 적응하고, 한국 방송에까지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기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도 사랑받는 외국인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1박2일 글로벌 특집의 교훈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외국인이 될 수 있을까'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단합니다. 입장만 바꿔 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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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그 나라 말을 쓰려고 노력해라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려고 결심하면 6개월 전부터 그 나라 말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뻥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와 6개월 사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배울 수 있는 지능을 모두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건 그냥 예로 든 겁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가이드북이라도 그 나라 말을 어느 정도 소개하지 않는 가이드북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인삿말이라도 좋습니다. 그 나라 말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합시다. 패키지 여행만 가도 가이드는 처음에 그 나라 인삿말과 몇가지 표현을 가르쳐 줍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말을 한번이라도 써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냥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어느 쪽에 더 정이 갈까요.
소위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웬만한 지역에 가면 불편 없이 지내다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지어 인사말 한 마디는 팁보다 좋은 효과를 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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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은 못해도 좋다.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여라

자, 인삿말은 할 수 있다. 그래도 의사소통은 언감생심. 특히 '외국어 울렁증'이 많은 분들은 아예 말을 못 꺼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함부로 영어로 입 열었다가 전혀 '외국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현지인들의 따발총같은 말투(...이건 누가 뭐래도 미국인들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에 찔끔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더욱 그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국을 몇번 나가 본 결과, 양쪽 모두 소통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사람과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할 줄 알고 모르고보다는 이 의지가 중요합니다.
'1박2일' 글로벌 편에서 감탄한 건 아프리카 출신의 와프입니다. 한국어 실력이 여섯명중 가장 처지는 사람이지만, 눈치 하나로 뭐든 해결할 수 있는 재치가 돋보였습니다. 눈치 하면 또 한국 사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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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해라.

미국 출신 출연자가 시애틀 출신이라고 하자 강호동이 "오바마의 고향?"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하자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카고도 고향은 아니죠. 오바마씨는 하와이 출신입니다) 어쨌든 이런 말이라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감동적인 건 청산도를 걷다가 "아리랑 노래 부를때 이 길 아니야?"(위 사진)하던 단의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은 '서편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세 주인공의 '진도 아리랑 신'(아래 사진)을 보았던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한국 사람도 '서편제'를 봤다면, 단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말 한마디로 단은 '나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람의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다른 말 백마디 보다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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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루마니아에 갔다고 칩시다. "우리(루마니아) 축구 예전에는 잘 했는데 요즘은 영 별로다"라고 말하는 현지인들에게 "무슨 소리냐. 게오르그 하지는 정말 최고의 선수였다"고 말해줘 보십쇼(물론 무투도 좋습니다).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하다못해 "어려서 코마네치의 팬이었다" 정도만 해 줘도 좋아할 겁니다. 이날 출연한 와프가 제기를 찰 때 "와, 디디에 드록바(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첼시 스트라이커)의 나라 출신이라 역시 대단하구나"하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90년대에도 유럽에서 기차 타고 배낭여행을 하다가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면 아무 맥락 없이 "루드 훌리트, 반 바스텐, 라이카르도, 요한 크루이프!" 라고만 해도 치즈와 하이네켄 맥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요즘은 오히려 그쪽에서 '박지성!'해서 한국 관광객들로부터 뭘 얻어 먹을지도...).
예를 축구로 들어서 그렇지,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공부하고 갑시다.



4. 그 나라 음식을 먹어라.

요즘은 용병 선수들이 흔해져서 그렇지 프로야구나 농구의 용병 도입 초기에는 지겨울 정도로 '토종 용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어느 구단의 아무개는 곰탕에 밥을 말아 김치를 척척 얹어 먹네, 아무개는 보쌈에 굴김치가 없으면 못 먹네, 아무개는 청국장도 먹네...
그렇습니다. 음식만큼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도 드물죠. '똑같은 것을 먹는 사람=통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산 외국인 가운데 "개고기 먹을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붙임성이 없는 사람일 겁니다.
'1박2일'에서도 묵은지에 회를 싸먹는 외국인들의 식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미녀들도 말합니다. 한국 식당에 가서 한국어로 "아줌마, 소주는 써비쓰!"하면 술값은 안 내도 된다는 거죠.
물론 닳고 닳은 관광객 전용 식당에서는 이런게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느 나라를 가건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가 봐야 하는 겁니다. 외국인이 발품 팔아 찾아온 걸 신기하게 여기는 그런 식당에서는 "맛있다. 뭐 다른 건 없어?"라고 할 때마다 신이 난 주인들이 더 맛난 걸 가져옵니다. 원래 사람이란 그러게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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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말이라도 조심해라.

이미 2번 항에서 얘기했지만 신기하게 한마디도 모르는 나라 말이라도, 의미는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억양만 봐도 이게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는 귀신같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해외에 나가면 "한국말로 하는 건 절대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큰 소리로 방문한 나라를 욕하는 것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생각나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6.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

해외에서 처음 만나는 미국인들에게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건 "나는 미국이 싫으니 내 앞에서 썩 꺼져"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요즘은 별로 없겠지만 예전엔 일본 사람만 만나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야?"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C가 이날 한 말 중에 위태위태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인 와프에게 "우리보다 이 프로그램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야생의 땅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이유로 와프는 야만인이나 원시인 취급을 받는데 진력이 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미개척 지역이 많다고 해서 와프가 나무에 매달려 야자열매를 따 먹다가 온 건 아니겠죠.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위험합니다.
베트남에 가서 "우리 삼촌이 월남전때 와서 무공훈장 받았다던데..."라는 말로 '방문국과 나의 인연을 얘기해서 친근감을 두텁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터키에 가서 친숙하게 보이려고 "아, 나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보고 터키에 꼭 와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터키를 소재로 한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이 영화 속의 터키 교도소는 생지옥입니다. 일본에 가서 "태어나서 가장 신났던 영화가 '일본 침몰'"이라고 말하는 식일 겁니다.
3번의 '공부하자'는 말과 통하는 얘깁니다. 어설프게 알면 사실 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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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 "미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 와서 제멋대로 하는데 왜 우리라고 나가서 눈치를 보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미국 사람 뿐만이 아니라 잘 사는 나라일수록 밖에 나가서 현지인들의 눈치를 안 보는 경향이 있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그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으면 맘대로 하라"고 해야겠죠. 우리가 무시당한 걸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로 풀고 싶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습니까. 다만 그런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괜히 피해보는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외국은 나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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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후편에서도 역시 와프의 활약이 돋보일 듯 합니다... 아, 그리고 인도 청년의 '뚫훅송'도 오랜만에 참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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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정우성의 기무치 파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드카의 원조 전쟁(?)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책에서 그 이야기를 보고 시간이 좀 지난 터라 약간 부정확한 인용이 있었는데, 다시 참고해서 정확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입니다.

최근 한국의 술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몇몇 일본 대형 주류사들이 막걸리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김치-기무치 전쟁'이 재현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이번엔 막걸리 대 맛코리가 되는 셈이겠죠.

관심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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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걸리

보드카는 어느 나라 술일까. 스카치 위스키의 고향이 스코틀랜드이고, 사케 하면 일본이듯 보드카라면 러시아가 떠오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정답'은 공짜가 아니었다.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에 따르면 1977년 유럽과 미국의 주류회사들이 소련 정부가 생산한 보드카에는 보드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자신들이 보드카를 상품화한 것(1918년)이 소련 정부(1923년)보다 5년 빠르므로 배타적 우선권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보드카를 마셔온 러시아인들의 입장에선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얘기였으므로 역사책 한번 들추는 것으로 이 문제는 가볍게 해결됐다. 그러나 같은 1977년 폴란드 정부가 “보드카는 16세기 폴란드에서 발명됐으며, 다른 나라는 보드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하자 느긋하던 소련 정부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즉시 자료 조사팀이 발족돼 고문서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5년간의 분쟁(?) 끝에 1982년 러시아는 '보드카의 조국'으로 공인받았고 보드카의 출생 연도도 1446년으로 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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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쟁은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한국이 자랑하는 발효식품 김치의 국제 공식 표기가 kimchi 아닌 kimuchi가 될 뻔한 쓰라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kimchi'를 공식 표기로 인정하면서 이 분쟁은 끝났다.

최근에는 서민의 술 막걸리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으며 일본의 대형 주류업체들이 '일본산 막걸리'를 내놓을 것이란 얘기에 국내 주조사들이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 아닌 맛코리(マッコリ)에 시장을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등장했다.

물론 일련의 사태로 인해 막걸리의 국적이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쌀로 만든 탁주가 한국만의 술은 아니다. 일본에도 니고리자케(にごり酒)가 있고 중국도 일찍부터 요(醪)를 만들어 마셨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막걸리의 우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욕심을 내자면 '막걸리는 본래 한국 술'이란 것만 인정받는 걸로는 부족하다. 이미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보드카 생산국 자리를 미국에 내준 지 오래다. 주류업계가 분발해 상품으로도 '한국산 막걸리'의 인기가 죽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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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막걸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위 사진의 니고리자케 때문입니다.

쌀로 만든 술을 덜 걸러 만든 니고리자케는 눈으로 보기에도 막걸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도수가 한국산 막걸리보다 좀 더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똑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의 우조와 터키산 라키의 차이 정도라고나 할까요.

다만 일본에서도 '별반 자극 없는 맛'이라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술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이런 비슷한 술이 있는데도 한국산 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건 이색적이기도 하면서 막걸리의 우수성(?)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도 막걸리가 있(었?)다는 것 역시 문서자료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자로 막걸리를 뜻하는 요(醪)라는 글자는 이미 병서 '육도삼략'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유구합니다. 사실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현대 중국에서 이 요는 사전에 '강미주(江米酒)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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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주란 이렇게 생겼습니다. 술보다는 식혜에 더 가까운 모습인 듯 합니다. 이런 술은 들어 본 적도, 당연히 마셔 본 적도 없습니다. 혹시 중국에서 강미주라는 것을 접해 본 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제왕 중에는 막걸리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분들이 많습니다. 농민의 술이라는 이유에서였죠. 그리고 연산군(하필 연산군이라서 좀 그렇지만) 막걸리를 소재로 한 시를 두 편이나 썼다는 사실이 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중 한 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掉雀爭枝墮, 飛蟲滿院遊。
濁醪誰造汝 一酌散千憂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비충도 원에 가득히 노니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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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동양 3국에 모두 탁주 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막걸리의 독자성을 절대 훼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3국 중에서 탁주를 이만한 경쟁력있는 물건으로 키워낸 것은 한국 뿐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겠죠.

비교하자면 이 3국 가운데 쌀로 만든 청주(淸酒)문화가 없는 나라도 없습니다. 중국 하면 40도가 넘는 백주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찹쌀로 만든 소흥주(紹興酒)는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입니다. 한국 역시 천년이 넘는 청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이 청주 문화의 원조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쌀로 만든 술 = 사케'라는 식의 관념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죠. 그냥 사케도 아니고 정종(正宗)이라고 불리면서 말입니다. 이 정종은 일본 사케의 한 브랜드인 마사무네(正宗)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우리 말이 아닙니다.

여튼 황급히 보드카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현재 보드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보드카도 러시아산이 아닌 스웨덴 원산의 압솔루트라는 점, 세계에서 보드카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도 미국이라는 점 등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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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교를 다니게 된 덕분에 막걸리를 좀 마셔 봤습니다만, 솔직히 이 술을 값진 술이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마시고 트림하면 냄새가 환장하는 술, 안주를 덜 먹어도 배 부른 술, 너무 마셔서 토할 때에는 가장 호쾌하게(?) 뿜어 나오는 술, 바지에 튀기면 잘 안 지워지는 술... 유난히 봄날 아침이면 여기 저기 토해져 있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곤 했던 술에 대해 그리 아름다운 기억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나이를 먹고 공기 좋은 곳에 가면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여러 사발은 좀 곤란합니다)에 두부나 파전이 입맛을 당기더군요. 보쌈이나 감자지짐에도 제격이죠. 이런 막걸리 맛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s.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막걸리의 영문 표기가 Makgeolli 라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걸 읽으라는 것인지... 그냥 Makoli나 Macoly 정도로 간편하게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미를 살려서 Takju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해외 언론들이 막걸리를 Milky Sake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빨리 이름 알리기부터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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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 '미식견문록'은 이번 휴가철에 본 책 중 최고의 강추작으로 꼽을 만 합니다. 해박한 저자가 넓고 광대한 맛의 세계에서, 누구라도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펼쳐놓는데, 그야말로 한번 잡으면 정말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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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할리우드에서 전설의 지존 이소룡의 출연작 리메이크 소식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이소룡이 출연했던 TV 시리즈 '그린 호넷'의 주역으로 권상우가 물망에 올랐다더니 결국 중국의 인기 가수 겸 배우 주걸륜이 이 역할을 따냈습니다.

그와 함께 이소룡의 영화 빅4('사망유희'는 차마 여기에 포함시킬수가 없더군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용쟁호투'의 리메이크에는 이소룡의 역할로 한국의 정지훈이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주걸륜은 캐스팅 확정이고 비는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단계에서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소룡의 리메이크작에서 이소룡 역을 맡는다는 것은 아시아 출신 배우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면서 기회인 좋은 조건입니다. '이소룡의 후계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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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8일 처음 방송된 '그린 호넷'은 이소룡이 복면 속의 쿵후 영웅으로 출연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카토는 낮에는 평범한 일본인 운전사고 밤에는 악당을 물리치는 가면 영웅이 되는 캐릭터였죠. 이소룡은 '그린 호넷'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고 있던 아담 웨스트의 TV판 '배트맨'에도 몇 차례 특별출연했습니다.

'그린 호넷'은 꽤 인기를 끌었지만 한 시즌만에 끝났고, 여러 편의 TV 드라마와 영화에 그리 크지 않은 역으로 출연하던 이소룡은 1971년 홍콩으로 와 골든 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 회장과 의기투합, '당산대형'을 만듭니다. 일설에는 이 영화의 히트와 함께 TV 시리즈 '쿵후'의 주역이 자신이 아닌 '백인' 데이비드 캐러딘에게 넘어갔다는 데 대한 분노로 이소룡은 홍콩에 그대로 남아 '정무문'과 '맹룡과강'을 만들며 영화 속에서 백인 거한들을 때려눕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단 세편의 영화로 홍콩-중국어권 최고의 스타가 된 이소룡에게 할리우드는 다시 손을 뻗어 왔고, 이렇게 해서 할리우드와 홍콩의 합작으로 '용쟁호투(Enter the Dragon)'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1973년 7월 이소룡은 의문의 죽음을 맞고, 그의 사망 한달 뒤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 '용쟁호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이렇게 그가 저 세상 사람이 된 뒤에는 생전 촬영했던 일부 필름을 짜깁고 붙여서 '사망유희'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이소룡과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된 당룡(唐龍: 김태정)이란 이름의 한국인 배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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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지고 보면 '그린 호넷'보다는 '용쟁호투' 쪽이 더 끌리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단 '그린 호넷'은 당시 시대가 갖고 있던 '허드렛일 하는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이 깔려 있는 작품인데다 감독이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이고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 세스 로건이 주연과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원작의 분위기나 감독의 스타일을 볼 때 진지한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코미디로 리메이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주걸륜의 캐스팅도 비슷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주걸륜에게서 액션 스타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니셜 D'나 '쿵푸덩크'가 있고 '황후화'에서는 무협 액션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주걸륜이 보여준 가장 훌륭한 모습은 피아노를 두드리는 로맨틱 가이의 모습입니다. 그에게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물론, '그린 호넷'의 카토라는 캐릭터 자체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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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가 물망에 올라 있다는 '어웨이큰 더 드래곤(Awaken the Dragon)'은 '용쟁호투'의 배경을 그대로 현대로 옮겨 놓았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인 무술가가 미국 정보기관의 의뢰로 비밀 무술대회에 침투해 범죄조직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내용이죠.

'용쟁호투'는 지금까지도 서구인들이 기억하는 이소룡의 전설을 만든 작품이면서, 그 자체로 미국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이소룡의 후계자로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다는 뜻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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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까짓게 뭐라고'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소룡은 그냥 흔히 치부하는 '무술 액션 잘 하는 중국인 배우'의 범주를 넘어 선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한 시대에 있어 동양인 배우의 한계를 넘고, 백인들에게 아시아인의 새로운 이미지를 남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대 중국어권 영화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성룡과 주성치, 이연걸이 모두 '정무문', 혹은 '신 정무문'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통해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제 2의 이소룡'이 되기를 기원했죠. 물론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로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래의 이소룡이 갖고 있던 강인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 중에서는 이연걸이 가장 가까이 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근본부터 스타일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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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종합적으로 볼 때 두 작품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용쟁호투'의 리메이크 쪽입니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그린 호넷' 쪽이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인 반면, '어웨이큰 더 드래곤'은 영화 경험이 없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비 측에서 '어웨이큰 더 드래곤'에 관심이 있다면 전체 제작비와 공연하는 배우, 전문적인 무술 감독의 기용 등 주변 조건들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닌자 어새신'도 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인 만큼 후속작을 그보다 못한 영화로 고를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정지훈군이 그냥 '제2의 이소룡' 에서 그치지 않고 '브루스 리의 신화를 계승한 배우'로 각인되길 바랍니다.



'용쟁호투'의 오리지널 예고편입니다.
70년대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건 21세기의 이소룡 팬이 다시 편집한 버전.
편집만 다시 했는데도 상당히 새로운 감각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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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기무치 파동'이 결국 본인의 실수 인정과 사과로 끝났습니다. 전말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일본 후지 TV의 인기 프로그램 '톤네루즈'에 출연한 정우성이 한국의 음식 이름을 'kimuchi chige'라고 쓴 패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김치찌개를 표시하는데 왜 굳이 김치(kimchi)라고 쓰지 않고 일본식 표기인 기무치(kimuchi)라고 표기했느냐는 것이 이 방송을 본 국내 네티즌들의 지적이었죠. 그런데 정우성의 소속사는 초기 대응에서 또 한번의 실수를 합니다. "kimuchi라는 글자는 정우성이 쓴 것이 아니라 일본 방송의 스태프가 쓴 것"이라고 발뺌한 것입니다.

결국 정우성이 이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직접 밝히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정우성은 남자답게 사과를 했고, 이번 사건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스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네.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해둬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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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어느 나라 음식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코웃음을 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볼 때 과연 김치와 기무치 중 어느 쪽이 더 인지도가 높을지, 김치가 한국 원산인지 일본 원산인지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 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당연히 김치는 한국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은 '기무치'라는 상품을 통해 '김치는 한국산, 기무치는 일본산'이라는 식의 노선을 취해 세계 시장을 차지해갔습니다. 결국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한국이 황급히 노력해 이뤄낸 것이 2001년 CODEX의 식품명 공식 표기 선정입니다. 이때부터 kimuchi라는 상품은 사라지고, 모두 kimchi라는 이름을 쓰도록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즉, 세계가 공짜로 '김치=kimchi'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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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kimchi라고 표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우수한 상품으로 평가된다는 법은 없으니 김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인 kimchi가 자칫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kimuchi라는 표기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악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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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품 시장에서 이런 식의 원산지 빼앗기 다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보드카=러시아의 국민주'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1977년대에는 폴란드가 "보드카는 폴란드에서 처음 탄생한 술이므로 폴란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술에 보드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청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구 소련 측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폴란드가 고문서와 기록 등을 들어 이 주장을 본격적으로 관철하려 해 두 나라 사이에 '보드카 원조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결국은 러시아가 100년 정도 앞선 보드카 생산 기록을 제시함에 따라 '보드카 원조는 러시아'라는 내용이 공식 인정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정우성의 kimuchi는 그동안 kimuchi를 몰아내고 kimchi를 표준으로 하기 위해 애쓴 분들의 노고에 대한 결례로 여기지는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의미는 꽤 큰 차이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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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사건은 최근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 출연한 이병헌의 한국어 대사와 맞물려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병헌은 일본 캐릭터도 되어 있는 자신의 역할 스톰 섀도우를 '한국인 출신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 자신의 아역인 소년에게 직접 한국어 대사를 지도하는 열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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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흐름으로 따지자면 닌자인 스톰 섀도우는 일본인이라는 쪽이 훨씬 자연스러웠겠지만 어쨌든 이병헌은 이 대작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좀 더 확실히 해 두려 했고, 혹시나 일부 국내 팬들이 일본인 역할을 연기하는 데 대한 반감을 갖지 않을까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건 정우성의 경우와 절대적인 차이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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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비가 역시 자신의 캐릭터 이름인 '토고 칸'을 '태조 토고 칸'으로 바꾼 것 역시 같은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임을 뜻하는 태조, 일본 식의 성 토고, 그리고 징기스칸에서 따온 듯한 칸으로 이 이름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인'을 의미하는 이름이 됐죠.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비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부착된 유니폼을 고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좀 더 선명하게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국내용 프로모션이든, 국제용 프로모션이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정우성의 기무치 사건은 그가 한국의 얼굴로 해외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국내 팬들에 대한 배려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입니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우성의 사과를 인정하되,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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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해운대'의 흥행 폭발은 엄청납니다. 공식 집계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 영화 '친구' 때를 생각해 보면 부산 지역에서의 흥행 성과가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부산 해운대 지역의 올해 피서철 매출이 예년이 두배 가량 된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해운대'를 보다 보면 살짝 아쉬운 구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연진 중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이 영화가, 정작 보여주고 있는 '부산 사람'이나 '부산'의 모습이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해운대'는 부산 바깥에 사는 한국인들은 물론,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부산과 해운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부산 사람', 혹은 '부산'의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살짝 느껴져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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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운대, 고향 사랑은 좀 더 지나쳐도 좋지 않았을까

여기저기서 사투리 마케팅이 한창이다. 얼마 전 영화 '킹콩을 들다'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어필하더니 방송에선 왕년의 히트작 영화 '친구'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를 재탕하고 있다. 곧이어 새 드라마 '탐나는도다'를 통해서도 제주도 사투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영화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는 등장인물 중 90%가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영화다.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 관객이 본다면 꽤 당황할지도 모를 정도다.

'해운대'의 흥행을 위해 제작사는 부산 지역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부산은 특히 이런 지역 정서가 강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영화 '친구'때는 "전 부산 시민이 두 번씩 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모든 지역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목포는 항구다'도 향토색에선 결코 뒤지지 않을 영화지만 개봉 초 호남보다 영남 지역의 객석 점유율이 더 높게 나타나 제작사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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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운대'는 선입견에 비해 지역 정서를 그리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부산 사람'들은 그저 재수없게 엄청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이고, 롯데 자이언츠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오히려 윤제균 감독 자신이 부산 출신이라 좀 자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약 이 영화가 부산 지역 주민들에게 좀 더 어필하길 바랐다면, 뜻밖의 환난을 맞아 용기있게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무참하게 무너진 도시와 애도하는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는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보소 마, 우리 부산 사람들이 이따우 쓰나미에 기죽을 줄 알았능교?" 이런 식의 분위기 말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적지 않겠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동의할 수 없는 분들은 수백만 관객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했던, '디 워'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리랑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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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지나치게 낯간지러운 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대사도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란다. "당신은 타라의 붉은 대지로부터 힘을 얻지. 스칼렛. 당신과 타라는 하나요(You get your strength from this red earth of Tara, Scarlett. You're part of it, and it's part of you)." 바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사.

이 영화는 구구절절 미국 남부인들의 애향심에 불을 지르는 대사들로 점철돼 있다. 1939년작이라 불만이라면, '러브 어페어'에서 '섹스 앤 더 시티'에 이르기까지 수백편의 영화들이 얼마나 뉴욕이라는 도시와 거기 사람들을 미화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혹시 같은 것도 할리우드에서 하면 촌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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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첫째는 부산 사람, 그리고 둘째는 부산이라는 도시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 나지만 그 이야기들은 어디 사는 누구라도 해당되는 얘기들입니다. 굳이 이 영화 속에서 '부산 사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롯데 자이언츠 응원 외에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부산 사람'을 매력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번째는 '부산'의 활용입니다. 역시 이민기와 강예원이 야경을 구경하는 포인트 외에는 '아름다운 부산'의 이미지가 별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긴박감 넘치게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정작 만들어지고나니 이런 아쉬움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윗글에서는 부산 지역 사람들의 애향심을 좀 더 자극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주로 다뤄졌지만, 사실 이런 부분들은 부산 바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야 해운대가 뭐고 부산이 뭔지, 더 열심히 홍보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영화를 한국 사람만 보는 시대는 아닙니다. 특히 '해운대' 정도 규모의 영화라면, 해외에서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을 위한 대비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해운대'를 통해 처음 한국의 피서지를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부분에 대해 혹자는 "로맨틱 무비와 재난영화가 같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후자 쪽이 더 파급력이 클 수도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의 무대가 된 빌딩으로보다는 킹콩이 올라간 빌딩으로 더 유명할수도 있을테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이 여신상의 머리가 날아가는 '클로버필드' 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해운대'가 잘 되고 있으니까 하는 얘깁니다. 정작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런 얘기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겠죠. 이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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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오는 13일이면 마이클 잭슨의 49재가 되겠군요. 한국식 습관이지만 뭔가 의미를 찾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눈물로 그를 보낸 사람들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법도 한데 들려오는 소식은 논란과 번복, 말다툼의 연속입니다.

한 시대를 지배한 팝의 제왕이 죽은 뒤 정리하는 포스팅도 꽤 많이 올렸습니다. 세 보니 모두 9개더군요. 15년간 취재한 그의 모습은 이제 마지막 한 편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1999년 서울에 마지막으로 왔을 때까지 정리하는 걸로 그에 대한 조상을 마칠 생각입니다.

관련 포스팅을 한데 묶을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인덱스 포스팅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찾을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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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으로 15년
 
사망후 첫번째 쓴 글입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정리입니다.


1. 모스크바에서 만난 마이클 잭슨
 
1996년, 첫 내한공연을 앞두고 모스크바로 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을 정리한 포스팅입니다. 그와 함께 찍은 가보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2. 96년 내한공연(1)
 
마침내 서울에 온 잭슨과 당시 국내에서 펼쳐졌던 잭슨 공연 반대 운동의 기이한 열기, 그리고 서울에 온 잭슨의 몇가지 기행들을 다뤘습니다.


3. 96년 내한공연(2) - 그를 껴안은 남자
 
2회 공연중 무대에 오른 마이클 잭슨에게 한 단발머리 남자가 달려들었습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왜 그에게 달려든 것일까요?


4. 평양에 먼저 갈뻔한 마이클 잭슨
 
1997년 갑자기 무주 리조트에 나타난 마이클 잭슨. 그는 왜 돌연 한국에 나타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평양으로 가려던 그의 노력은 어떻게 됐을까요.


5.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서울 무대

<이 포스팅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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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그에 대한 이런 저런 화제들입니다.


왜 라이브가 드물까?
 
MBC는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 실황을 방송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그의 유일한 공식 공연 영상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대체 전설로 남은 그의 공연 영상이 왜 이렇게 상품화되지 않은 것일까요.


사망 직전의 영상들
 
사망 직전, 런던 공연을 준비하던 그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영상들입니다.


영결식 총정리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영결식에 누가 왔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


마이클 잭슨의 여인들
 
다이애나 로스에서 브룩 실즈를 거쳐 데비 로에 이르는, 그의 일생을 스쳐간 여인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중 진정한 그의 사랑은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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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사인에 이어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의 생부가 자기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왕년의 '멜로디' '올리버'의 아역 스타 출신 배우 마크 레스터라는군요('코만도'의 감독인 마크 레스터와는 동명이인). 사후 한달이 넘었지만 잭슨과 관련된 화제는 끊일 날이 없어 보입니다.

저도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이야기를 빨리 정리해야 할텐데 막상 쓰기 시작하면 또 얘깃거리가 새록새록 살아나서 어느새 분량이 길어지곤 합니다. 아무튼 기왕 시작한 거니 끝을 보겠습니다.

사실 기자 생활을 10여년 하면서 참 신기한 일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세상에서는 가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식의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그게 사실이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고 말한 날은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이 끝나고 1년이 지난 1997년 11월18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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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오전의 일입니다. 마감을 마치고 점심 약속차 회사를 벗어났는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김 아무개 작가님(지금은 원로급 작가가 되셨죠)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대뜸 "마이클 잭슨이 지금 한국에 와 있다더라"는 거였습니다.

에이 아무리...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습니다. 마이클 잭슨 쯤 되는 사람이 그렇게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을리도 만무하고, 우리 나라가 그렇게 마이클 잭슨 같은 인물이 조용히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거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그런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이클 잭슨이 들어왔으면 지금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텐데 이렇게 조용하다는게 말이 되냐"고 오히려 훈계조(?)의 말을 늘어놨습니다. 마무리는 "지금 잭슨이 서울에 있다면 내가 손바닥에 당장 장을 지지겠다"는 걸로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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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뭔가 찜찜하긴 했는지 회사로 정보보고를 했습니다. 이런 소문이 돈다는 정도였죠. 하지만 회사 안의 반응도 냉담했습니다. "너 할일 되게 없구나"라는 식이었죠. 그런데 오후, 회사에서 긴급 호출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정말 왔다"는 거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무주 리조트에 갑자기 떠서 난리가 났답니다.

그때부터 호떡집에 불난 듯 여기저기 확인에 들어갔지만 사실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행적에 대해 취재를 한대봐야 찔러 볼 곳이 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잭슨의 음반 발매사인 소니뮤직으로 문의가 빗발쳤지만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 없다. 연락받은 것 없다"는 멘트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확인된 것은 무주 리조트에서 만날 사람이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라는 것 정도였죠. 이 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은 "리조트 산업에 관심이 많은 잭슨이 무주 리조트에 거액을 투자해 세계적인 관광단지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너무 허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잭슨이 해외의 리조트 산업에 투자를 했다는 얘기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조트를 개발한다면 그게 왜 한국이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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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오후, 국내 최고의 팝 전문가였던 당시 데스크께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해냈습니다. 잭슨의 이번 극비 방한은 마이클 잭슨의 숙원인 평양 공연을 이루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는 겁니다. 충격적인 얘기였죠.

마이클 잭슨의 야망이 세계의 모든 폐쇄적인 나라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라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온 얘기지만, 1994년 6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삼아 평양에서 김일성과 협상을 벌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카터가 가져간 카드 중 하나가 마이클 잭슨의 평양 공연이었다는군요.

이야기가 제대로 진전됐다면 잭슨은 서울 공연보다 평양 공연을 먼저 치렀을 지도 모릅니다(그랬다면 상당한 망신이었겠죠. 북한보다 더 폐쇄적이고 장애물이 많은 나라 취급을 받았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김일성-카터 회담이 있은지 한달만인 7월, 김일성은 갑작스레 사망합니다. 설혹 이때 잭슨의 공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런걸 이행할 정신은 누구도 없었을 겁니다. 만약 김일성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뭐 역사에서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겠죠. 다행히 1996년 서울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열렸고, 이로써 북한에 추월될 가능성은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그런 사연 속에서 1997년 내한한 잭슨은 1안으로 평양 공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판문점이나 비무장 지대 공연을 염두에 두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한했다는 것이 새로운 정보의 내용이었습니다. 잭슨 혼자 벌이는 공연이 아니라 그와 친한 세계적인 스타들이 함께 할 것이고, 그 수익금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벌인다는 명분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공연장으로 불러낸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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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내용을 대서특필했는데, 취재는 데스크가 거의 다 하셨지만 관례상 이름은 제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극비 방한, 진짜 목적은 평양 공연 추진'이라는 화끈한 기사였죠.

그런데 특종이란게 사실 너무 앞서가도 못쓰는 법입니다. 제 이름으로 나간 기사 빼고는 온 사방의 모든 기사가 '마이클 잭슨, 무주 리조트 투자차 방한'이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경쟁사들이 따라오고 싶어도 도대체 기사를 확인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잭슨은 21일 서울로 올라와 그해 연말 있을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잭슨이 한국을 떠난 뒤 마침내 26일,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잭슨이 판문점에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북한 어린이 돕기 공연을 펼칠 것이라는 내용이었죠. 이로써 특종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지만 마음 속으론 '평양에선 결국 공연이 열리지 않는구나'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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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2월, 잭슨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서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도 자주 오다 보니 잭슨이 오는 것도 이제는 그냥 늘 있는 일처럼 여겨지더군요^^. 이때 방한한 잭슨은 무주 리조트에 대한 투자 양해각서(MOU)를 작성하고 1억달러인가 하는 거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원석 당시 동아그룹 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150만평에 달하는 인천 매립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논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돈 얘기는 그냥 이렇게 나왔다 사라졌습니다. 잭슨은 한국 땅에 단 한푼도 투자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마이클 잭슨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알 왈리드 왕자 같은 갑부들이 몇몇 한국 기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98년으로 예정됐던 문제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습니다. 아마도 잭슨의 개인 사정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듯 합니다. 그러는 사이 잭슨과 한국의 인연을 만든 최규선씨도 이 공연과 관련된 사기 혐의로 궁지에 몰리고, 잭슨의 공연은 다시 한국에서 열릴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1999년, 국내 최대의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참여하면서 꺼져가던 불씨는 확 되살아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한국 땅에서 열린 '팝의 제왕'의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바로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공연이죠. 여기까지 정리를 해야 이 글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p.s. 최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파견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태라는 뉴스를 보면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리고... 여러분도 어떤 경우에든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말은 함부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의 앞의 사연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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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탐나는도다' 첫회를 봤습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재미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에 관심이 끌렸던 드라마입니다. 조선 인조 때를 배경으로 제주도에 표류해 온 영국 귀족 청년과 조선의 선비, 그리고 순진무구한 해녀가 펼쳐가는 드라마라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원작 만화는 보지 못했지만 영국 귀족 청년 역에 프랑스 출신인 금발의 미남 청년이 등장하고 선비 역에 임주환, 해녀 역에 서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훌륭한 진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탐나는도다'는 실망이 앞서는 드라마였습니다. 뒤로 가면서 좀 더 나아질 지도 모르지만 요즘 드라마의 스타일로 볼 때 이런 1회를 만든 드라마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서우의 열연이 아깝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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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포장된 도입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1회에 방송된 '탐나는도다'는 시퀀스들이 너무 깁니다. 아마 다른 드라마들이라면 '탐나는도다'의 1회에 방송된 분량은 20분 정도면 정리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1회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영국 귀족 청년 윌리엄(황찬빈-피에르 데포르트)은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네덜란드를 넘나드는 일본 상인 얀(이선호)과 함께 나가사키행 배에 올랐다가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 해안에 표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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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양의 선비 박규(임주환)는 부녀자 희롱죄(?)로 제주도로 유배를 오게 되고, 여기서 천방지축에 난채 그대로 있는 해녀 장버진(서우)과 엮이다가 결국 버진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처지가 됩니다. 버진은 우연히 바닷가에서 윌리엄을 발견하고, 몰래 감춰준 뒤 보살피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 내용으로 한시간 가까운 분량을 만들었다는게 놀라울 지경입니다. 물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소개되고, 이런 저런 '코믹' 에피소드들이 끼어들지만 문제는 이 코미디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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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보는 순간 윌리엄과 버진이 만났을 때 윌리엄이 버진을 virgin이라고 생각할 거라는 걸 모를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마찬가지로 박규를 만나게 되면 fuck you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이 드라마의 코미디는 대개 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네. 한국 드라마에 외국인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던 1970년대 수준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 조선시대 사람들과 만나 벌이는 해프닝이 한동안 방송에 나오지 않아서 신선할 거라고 생각한걸까요. 혹시 보다 보면 윌리엄이 고추장을 보고 "오! 케첩!"하고 퍼먹다가 매워 매워 물좀 줘 하는 내용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진의 연구가 영 부족해 보입니다.

버진과 해녀들, 박규와 버진이 벌이는 해프닝도 영 어설프기는 마찬가집니다. 한번 뒤져보기나 하면 될걸 계속 진상패를 내놓으라는 버진과 그런거 안 갖고 있다는 박규의 승강이는 정말 지칠 정도로 이어집니다. "진상패 내놔요!" "어허, 네가 지금 정녕 진상을 떨고 있구나" 이런 식의 말장난이 시청자들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는게 놀랍습니다.

용변 해결을 위한 버전아비(변우민)와 박규의 나무 판자 놀이...도 제작진은 아마 '너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 제작진은 매주 '개그콘서트'라도 보면서 요즘 시청자들의 수준을 익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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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를 지켜보고 나서 든 생각은 "서우가 아깝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선 볼거리도 서우, 앞으로 발전이 기대되는 것도 서우밖에 없더군요. 조선시대의 4차원 해녀라는 생뚱맞은 캐릭터지만 서우가 연기하고 있으면 생기가 느껴집니다. 이 드라마가 어떤 결과를 내든 서우에게는 그리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임주환도 재능있고 매력적인 배우이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를 통해 얻을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탐나는도다'는 매력적인 설정과 관심 가는 배우들로 이뤄진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느린 전개와 설정 자체에서 한발도 더 나가지 못한 지루한 대본은 이 드라마를 나락으로 밀어넣는 느낌입니다. 첫 주말이 지나고 나면 제작진도 느끼는 바가 있겠지만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p.s. 사실 제주도 사투리가 낯설기는 박규나 윌리엄이나 별 차이 없었을 듯 한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더군요.


p.s.2. 댓글들을 보니 이 드라마에 만족하신 분들이 꽤 많군요. 워낙 관심이 가던 작품이라 제가 이 드라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했었나봅니다.

이렇게 '탐나는도다'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니 드라마의 앞날이 생각보다 밝은 듯 하군요. 부디 닥본사하셔서 '탐나는도다'가 흥행면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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